회색으로 덮인 대륙 : 호주의 놀라운 토끼 증식이 가르치고 있는 창세기의 대홍수

미디어위원회
2006-01-25

회색으로 덮인 대륙

: 호주의 놀라운 토끼 증식이 가르치고 있는 창세기의 대홍수

 (The grey blanket) 

Carl Wieland 


      동물들은 어떻게 중동 지역에 안착한 노아의 방주로부터 그렇게 짧은 기간에 지구의 가장 먼 구석까지 퍼질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지구의 생물체들에 관한 성경적 역사의 신뢰성을 거부하기 위해 자주 제기되었다.

예를 들면, 성경 비판론자들은 숲을 생태학적 서식지로 가지고 있는 민감한 동물들이 아라랏 산에서 출발하여 호주 남단에 떨어져 있는 태즈메이니아 섬으로 이동하기까지 도중에 광대한 호주 내륙사막을 어떻게 건너갈 수 있었겠는가 라며 비웃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거부는 호주의 내륙 지역이 항상 건조했었다는 동일과정설적 가정(uniformitarian assumption)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호주의 내륙은 한때 울창한 열대림으로 뒤덮여 있었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1] 물론 시간 척도 상으로는 의견이 다르지만, 이 사실은 진화론자들과 창조론자들이 동일하게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대홍수는 급격한 기후 변화의 이상적인 메커니즘을 제공하였을 것이다. 대양의 (창세기 7:11, 8:2에 언급한 바와 같이 대부분은 지하에서 분출한) 따뜻한 물은 수백년 동안 막대한 증발을 통하여 엄청난 양의 습기를 대기에 추가했을 것이다. 지구의 추운 지역에서는, 수세기에 걸쳐 지상에 거대한 빙상(ice sheets)의 형성을 촉발하여 대빙하기(great Ice Age)를 열었을 것인데, 이에 대하여는 명확한 증거들이 지구상에 남아있다.

지구의 다른 지역에는 강우량의 증가로 인해 울창한 열대림 혹은 아열대림을 형성했을 것이다. 이삼백년 후에 저장된 거대한 열의 일부를 대기로 내뿜으며 대양은 식어갔고, 오늘날의 온도 균형에 도달하였다. 이로 인해 호주 내륙과 같은 지역들은 현재의 기후로 안정되었다.  이제는 건조한 지역에 알맞은 식물들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일부 열대림의 잔재물은 건조된 상태로 현재의 불볕 더위 사막에 보존되었다.[2] 사하라(Sahara) 사막 또한 과거에 열대우림이 있었음에 모두들 동의하고 있다.[3]  

또 하나의 명백한 문제는 아라랏 지역과 호주와 같은 먼 대륙 사이에 대양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대로 홍수 후에 있었던 단기간의 빙하기는 수백만 입방킬로미터의 물들을 대양에서 제거하여 대륙에 거대한 빙상을 존재하게 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로 모두들 동의하는 바와 같이 해수면이 엄청나게 낮아져서, 오늘날의 바다도 그 때에는 통행이 가능한 육지였을 것이다.[4] 사실, 이것은 진화론자들이 수수께끼로 여기고 있는 동물들의 분포 상태에 관하여 오래 전부터 설명해온 것이다.[5]

그렇지만, 홍수 이후의 동물분산(post-Flood animal dispersion)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라고 생각하는 심리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각나는 장면은 한 쌍의 동물이 방주에서 나와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쌍이 그 엄청난 거리를 여행하며 생존하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그 수많은 동물들 모두가 한 쌍씩 동시에 성공한다는 것은 정말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성경은 개개의 쌍이 전체 거리를 여행했다고 기록하지는 않았다.

이것을 이해하고 또한 이러한 분산이 얼마나 빨리 발생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회색의 담요(the grey blanket)’라고 이름 붙여진 그 당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생물학적 침입(biological invasion) 중의 하나를 살펴보자. 토끼(rabbits)가 호주에서 정착하며 퍼져나간 속도는 기록상의 어떤 이주동물이 어떤 지역에서 달성한 경우보다 빠른 것이었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6]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이전에 호주에는 토끼가 없었다. 1788년 최초의 선단이 도착했을 때부터 집토끼가 몇 번 반입되긴 했지만[7, 8], 호주 대륙에 대규모로 토끼들이 야생으로 살게 된 것은 1859년이었다.[9] 그 해에 대륙의 남동쪽 끝인 빅토리아 주 남부에 토마스 어스틴(Thomas Austin)이라는 지주가 자기 땅에 야생의 유럽토끼를 수렵 목적으로 방사했다. 어스틴은 나중에 토끼들의 파괴적인 공격에 호주를 시달리게 한 장본인으로 비난을 받았다.  그는 처음에는 매우 흡족해 했음에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7년 후인 1866년에 수렵가들이 그의 땅에서만 14,253 마리의 토끼를 잡았기 때문이다.[10]  

.호주 남부의 한 물웅덩이에 모여 있는 토끼들, 1938년 사진.


그 때, 어스틴의 토끼들은 이미 그의 소유지 경계선을 훨씬 벗어났고, 그의 성공을 보고서 다른 지역에서도 토끼들을 방사하기 시작했다. 1890년까지, 토끼들은 100만 평방 킬로미터를 훨씬 넘는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첫번째 방사 후 단지 51 년이 지난 1910년에, 그들의 자손들은 광대한 지역으로 이주하여 이 거대한 호주 대륙의 다른 끝인 서해안까지 퍼졌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통과지역에서 별도로 생긴 집단들을 동화시켰는데, 그 중에는 남부 호주의 큰 집단도 포함되어 있었다. 

토끼들의 전파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지역적 방사가 역할을 하였겠지만, 호주의 토끼들은 불과 수십년 동안에 엄청난 거리를 퍼져 나갔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일단의 토끼들은 꼬리표를 달아서 놓아 준지 불과 일년 만에 70km 떨어진 곳에서 붙잡혔다. 그렇지만, 토끼들의 놀라운 이동은 한 마리나 한 쌍의 토끼가 수천 km를 여행한 결과는 아니었다. 이들은 이전에 살지 않던 지역으로 개체수를 늘리며 점차적으로 확산(gradual spread)하여, 더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간 것이었다. 

창세기 대홍수 이후, 동물들이 전 세계로 이동하는 데에는 거의 방해요소가 없었다. 동물 개체군들은 연속적으로 사방의 텅 빈 생태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만일 호주의 토끼와 같은 실제 사례가 없었다면, 우리들은 직감적(gut feeling)으로 그런 이동에 수 만년이 걸렸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토끼들은 번식률이 유달리 높으며, 이미 언급한 사람들의 방사가 토끼들의 전파를 의도적으로 도운 것으로 믿어진다.[11] 그러나 이 도움을 상쇄하는 측면으로서 토끼는 원래 이동성 종이 아니라는 점이다. 토끼는 식물이 고갈되거나, 무리가 사멸할 지경이 되거나, 아니면 홍수나 화재와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만 서식지를 떠나 다른 곳에 정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2] 

어쨌거나, 아라랏 산에서 세계 구석구석까지 동물들의 이동이 모두 50년 내에 일어났다는 뜻은 아니다. 동물들은 수 세기(many centuries)에 걸쳐 광범위한 이동성과 번식율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많은 종류들은 오늘날에 보는 바와 같이 한 두 군데 지역에서만 살아남기 전에, 여러 곳에서 정착했을지도 모른다. 화석화는 동물들을 갑자기 매몰시키는 재난 등의 특수한 경우에만 발생한다. 따라서 이들 동물들의 이동경로에서, 특히 정착했다가 나중에 멸절된 곳에서 화석으로 발견될 가능성은 낮다. 호주대륙을 가로질러 퍼질 때에도 토끼들은 어떤 화석도 남겨놓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실제 동물들의 확산과 이동속도에 근거한 현실적인 계산에 의하면, 육상척추동물에 관한 창세기의 기록은[13] 현실과 아무런 모순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 3:12)”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생물학, 지질학, 그리고 현실에서 겪는 세상일에 관한 것도 믿지 못한다면, 우리의 영원한 운명에 관해서 성경을 믿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White, M.E., The greening of Gondwana, Reed Books, New South Wales, Australia, p. 40, 1994.
2. White, M.E., After the greening: the browning of Australia, Kangaroo Press, New South Wales, Australia, 78–92, 1994.
3. Note also that the high selection pressure after the Flood, as animals occupied empty niches, would have resulted in increased specialization as the gene pool narrowed. Thus, animals today will often be less robust and less genetically diverse than their ancestors, who will thus be inappropriately judged incapable of such migrations.
4. Secular geologists also recognize that there were great vertical land movements in the Pleistocene, the rock system most associated with the Ice Age. Thus, the existing sea floor levels may have varied by hundreds of metres in either direction.
5. For much greater detail, see Batten, D. (Ed.), The Answers Book, Brisbane, Australia, chapter 16, 1999.
6. Stodart, E. and Parer, I., Colonisation of Australia by the Rabbit, Project Report No. 6, Commonwealth Scientific and Industrial Research Organisation (Australia) Division of Wildlife and Ecology, p. 16, 1988.
7. Cobley J., Sydney Cove 1788, Angus & Robertson Publishers, London, p. 154; ref. 6, p. 4, 1962.
8. Coman, B., Tooth & Nail: The story of the rabbit in Australia, Text Publishing, Melbourne, Australia, pp. 13–14, 1999.
9. Ref. 8, p. 18; Rabbits had become feral in Tasmania earlier.
10. Rolls, E.C., They All Ran Wild: The story of pests on the land in Australia, Angus & Robertson, London, p. 26, 1977.
11. This cuts both ways, of course, since humans may have assisted post-Ararat migration. Just as the rabbit was brought to Australia by boat, people (who could have been building boats soon after the Flood) may have carried all manner of creatures to other land masses, whether or not these had land bridge access.
12. Ref. 10, p. 27.
13. The biblical criteria for the animals on the Ark likely limited their ranks to non-marine vertebrates (animals with backbones). See The Answers Book, ref. 5, chapter 13.


두꺼비의 이동 

토끼의 빠른 이동이 유일한 사례가 아니라는 것은 같은 대륙에서 아주 다른 동물인 퀸스랜드 주의 사탕수수 두꺼비(cane toad)의 경우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못생긴 모습의 파나마왕두꺼비(Bufo marinus)는 중미와 남미가 원산지이다. 1935년에 북쪽 퀸스랜드 주에서 사탕수수 산업을 황폐화시키고 있었던 딱정벌레(greyback beetles)를 통제하기 위해 일부러 이 두꺼비를 하와이로부터 들여와 방사하였다.

불과 10여년 만에 이 두꺼비들은 약 2,000 km나 떨어진 같은 주의 브리즈번(Brisbane)에까지 퍼졌다. 피부의 독샘(venom glands) 때문에 모두가 질색을 하는 이 생물은 뉴 사우스 웨일스(New South Wales) 주와 노턴 테리토리(Northern Territory)까지 퍼졌다. 지역에 따라 이들의 전파속도는 연간 5 내지 50 km나 되었다.


Sources

  1. Department of Public Health & Tropical Medicine, James Cook University, jcu.edu.au, accessed February 2002.
  2. Queensland Department of the Environment, env.qld.gov.au, accessed February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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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ation.com/the-grey-blanket

출처 - Creation 25(4):45–47, September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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