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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Brian Thomas
2018-04-02

이사야 선지자의 인장이 발견되었다. 

: 히스기야 왕의 인장에 이은 놀라운 발견! 

(Archaeological Evidence for Prophet Isaiah)


      최근에 이스라엘 고고학자인 에일랏 마자르(Eilat Mazar)와 그녀의 발굴팀은 예루살렘에서 놀라운 발견을 했다. 그것은 이사야의 실존과 구약성경의 사실성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었다.

성전 산(Temple Mount) 남쪽 벽 아래를 파내던 발굴팀은 이사야(Isaiah)의 이름이 새겨진 진흙 인장(clay seal, bulla)을 발견했다.(사진은 아래 관련기사 클릭). Biblical Archaeology Review 지에서 마자르는 이 이사야의 공문서용 인장(bulla)의 음역을 ”Yesha‘yah[u] Nvy[?]”라고 표현했는데, 점토의 손상으로 인해 알 수 없는 글자의 부분은 [?]로 표시하였다.[1] ”Yesha'yahu”는 ”이사야(Isaiah)”이다. 잃어버린 철자를 히브리어의 앞부분 철자(Nvy)를 통해 추정하면, 이사야 뒤에 나오는 단어는 ”예언자(prophet)”이다. 아마도 이사야는 자신이 이 도장을 만들었을 것이다.

2015년에 발굴팀은 단지 3m 떨어진 곳에서 히스기야 왕(King Hezekiah)의 것으로 보이는, 공문서용 인장(bulla)으로 불리는 점토 인장을 발견했었다.(아래 관련기사 참조). 성경에 따르면,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 왕의 통치 기간 동안 봉사하면서, 왕과 직접 대화를 했었다.

히스기야 인장과 이사야의 인장이 들어있던 고고학적 지층은 비잔틴과 초기 로마시대의 부스러기 아래에 놓여있던 지층이다. 이것은 BC 729~687년까지 지속됐던 히스기야의 통치 기간과 일치한다.[3] 따라서 이 두 유물은 구약성경의 인물들이 실제로 성경이 말했던 시점에 살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함께 발견된 이 두 유물은 구약성경의 인물이 실제로 성경이 말했던 시점에 살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이 두 개의 인장은 수십 년 동안 성경을 의심해온 자유주의 신학자들을 파산시킨다. 예를 들어, 회의론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히스기야의 삶과 통치 시기 이후 수세기가 지나서, 바빌론 포로기의 어떤 시기에, 알려지지 않은 저자들에 의해서 이사야서가 집필됐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었다. 그들은 창세기로부터 열왕들의 시대까지, 성경은 바빌로니아 신화나 여러 문서들을 수집하여 지어낸 날조라고 주장해왔었다. 그러나 이제 이들 가련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추정은 잘못된 것임이 드러났다.

이사야가 실존하지 않았다는 비성경적이고, 이제는 고고학적으로 부정확한 것으로 밝혀진 주장은, 아마도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예언을 방해하고자하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예언의 성취를 지우는 시도 중 한 가지 방법은, 예언된 사건들 훨씬 이전에 예언의 말씀이 성경이 쓰여졌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베드로후서의 기록처럼, 그들은 창조, 노아 홍수, 출애굽과 같은 성경의 기록들을 부인하려고 한다.[4] 신약에 기록된 것처럼, 그리고 많은 목격자들에 의해 확인된 것처럼, 이사야의 한 예언은 예수의 생애에 관한 세부 사항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기록해놓고 있다.

이러한 두 인장의 발견 이전부터, 이사야를 진정한 선지자로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이사야의 예언이 신약에서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발견되고 있는 많은 고고학적 증거들은 성경의 기록이 사실이라는 것을 또 다시 확인해주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Mazar, E. 2018.Is This the Prophet Isaiah’s Signature?Biblical Archaeology Review. 44 (2): 64-73, 92.
2. Impression of King Hezekiah’s Royal Seal Discovered in Ophel Excavations South of Temple Mount in Jerusalem. The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News. Posted on new.huji.ac.il February 12, 2015, accessed February 23, 2018.
3. Steimann, A. E. 2011. From Abraham to Paul. St. Louis: Concordia Publishing House.
4. 2 Peter 2:1-2; 3:1-7.

*Brian Thomas is Science Writer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관련기사 : 이사야 선지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장 발견 (2018. 3. 7.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10164

'선지자 이사야 인장 발견… 이름 직함 선명” (2018. 3. 23. 교회와 신앙)
http://m.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249

2700년 된, 성서 속 히스기야왕 인장 발견 (2015. 12. 3.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19187237

2700년 된, 성서 속 히스기야왕 인장 발견 (2015. 12. 3. 뉴시스)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51203_0010456203

히스기야 왕 인장 발견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q1LbBwIqCI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archaeological-evidence-for-prophet-isaiah

출처 - ICR, 2018. 3. 22.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08

참고 : 1412|1413|1536|1756|1790|2245|2515|2525|2530|2688|2746|2797|2996|3020|3022|3055|3148|3162|3166|3208|3218|3233|3249|3633|3641|3872|3945|4043|4071|4100|4148|4237|4480|4329|4376|4383|4385|4387|4390|4391|4394|4399|4413|4414|4416|4450|4451|4452|4463|4488|4492|4599|4578|4514|4868|4726|4725|4723|4718|4714|4713|4819|4878|4872|5018|5034|5094|5275|5395|5415|5402|5463|5514|5638|5741|5852|5861|5969|5985|6017|6066|6071|6089|6179|6205|6235|6351|6387|6401|6432|6446|6458|6529|6533|6639|6657|6679|6697

Shaun Doyle
2017-09-05

가나안 인의 DNA 분석은 성경의 정확성을 입증했다. 

(Canaanite DNA disproves the Bible? 

Or, Canaanite DNA disproves media’s ability to read the Bible)


     최근 언론 매체들은 '가짜 뉴스'가 성경을 공격할 때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 연구자들은 3,750년 전 가나안 인(Canaanites)들이 살았던 고대 도시 시돈(Sidon)에서 발굴된 사람의 두개골에서 DNA를 추출하였다. 이 지역은 성경에 언급된 가나안(Canaanites) 인들에서 유래됐던 고대 페니키아 문명이 번성했던 지역이다. 민수기 13:29절은 가나안 인들이 거주했던 구체적인 위치를 말해주고 있다.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DNA 염기서열 분석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그 DNA를 현대 레바논 사람들의 DNA와 비교하여, 현대 레바논 인들은 그들 조상의 약 93%가 이들 가나안 사람들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결과를 의심할만한 이유는 거의 없어보였다. 그리고 역사적 기록이 부족할 때, 어떻게 유전학이 역사에 대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성경을 비판하는 과학부 기자들은 재빠르게, 그 결과는 성경이 틀렸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 몇 가지 사례들이 있다 :

”청동기 시대의 DNA는 가나안 사람들이 멸망되었다는 성경의 주장을 반증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들의 유전자는 현대의 레바논 사람들 속에서 살아있었다.” (Daily Mail. 2017. 7. 27)

”성경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사람들을 쓸어버렸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과학자들은 레바논에 살고 있는 그들의 후손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The Independent. 2017. 7. 27.)

”과학자들은 고대 가나안 사람들이 오늘날에 살아남았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 성경은 틀렸는가?” (Tech Times. 2017. 7. 28)

”새로운 DNA 연구는 성경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Mother Nature Network. 2017. 7. 27)

”성경은 틀렸다 : 하나님이 죽이라고 명령했던 문명이 아직 살아있었다.” (Express. 기사 삭제)

”유전적 증거는 결국 가나안 인들이 멸절되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Ars Technica. 2017. 7. 28)

”가나안 사람들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서 소멸되지 않았다.” (Newser. 2017. 7. 29)

”연구는 고대 가나안 사람들이 멸절되었다는 성경의 주장을 반증하고 있었다.” (Telegraph. 2017. 7. 28)

”DNA 대 성경 :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멸절시키지 않았는가?” (Cosmos. 2017. 7. 28)

”성경은 틀렸다. 고대 가나안 사람들은 살아남았고, 그들의 DNA는 현대 레바논 인에 살아있었다.” (Pulse Headlines. 2017. 7. 27) [1,2]

그러나 성경은 이들 언론 매체들의 주장과는 정확히 반대로 기록하고 있었다!

가짜 뉴스 제목들의 목록은 더 길었지만, 초기 보도 이후에 몇몇 기사들은 그들의 제목을 변경하고, 내용을 다소 수정하고 있었다. 댓글 작성자들은 대체적으로 아래에서 지적한 것과 같은 이유들로 그 기사들을 비난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에 나열된 기사들은 여전히 수정을 하지 않은 채로, 문제를 가진 기사를 그대로 남겨놓고 있었다.

유명한 잡지조차도 그 내용을 수정하고 있었다. Science 지(2017. 7. 27)는 그들의 기사에 대한  '업데이트'를 추가하고 있었다 :

 7월 28일 업데이트 : 이 기사와 제목은 성경에 있는 내용을 반영하기 위해서 업데이트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사람들의 멸절을 명하셨지만, 일부 성읍에서 사람들은 살아남은 것 같다.

일부 가나안 사람들은 ”살아남은 것 같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그들은 살아남았고, 그 땅에서 거주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DNA 증거가 가리키는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이다. 업데이트 전의 Science 지의 원래 제목은 무엇이었는가? ”고대의 DNA는 미스터리한 가나안 사람들에 대한 성경적 설명과 모순된다” 였다.[3] 즉, 위에서 나열한 오류 기사들 목록에 포함되는 수치스러운 기사를 게재했던 것이다.


성경은 가나안 사람들의 운명에 관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분명히 이들 '보도'들은 DNA 증거가 성경의 기록과 ”모순되는” 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들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성경이 틀렸다고 조롱하는듯하게 보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민수기 33:55절은 보자 :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민수기 33:55)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들은 남아있게 됐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러한 DNA 분석 결과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명령을 내리셨는가?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if you do not drive out the inhabitants of the land)...”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사람들의 멸절, 학살, 전멸, 파괴를 명령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몰아내길(drive out) 원하셨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냈는가? 여호수아 16:10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

분명히, 가나안 사람들은 쫓겨나지 않았고, 거주하며 노역하는 일을 했으며, 멸절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들을 도살하라고 말씀한 것이 아니라, 쫓아내라고 말씀하신 것에 다시  한번 주목하라. 진멸하는 일은 가증한 일들을 행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죄에 빠트릴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만 사용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고, 가나안 사람들을 예속시켜 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사사기 1:27~36절에서 더욱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

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그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 아셀이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들을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

납달리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아낫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이 그들에게 노역을 하였더라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 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행하지 않았음을 대한 긴 목록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쫒아내지 아니한 것을” 책망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마침내, 이 모든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평결은 사사기 2:1~3절에 나온다.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다.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는 대신에, 그들에게 노역을 시키면서 예속시켜버렸다. 민수기 33:55절에서 경고하셨던 것과 정확하게 동일한 형벌을 받았다는 것에 주목하라.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그리고 보라. 우리가 무엇을 발견하는가? 성경 전체를 통해, 심지어 신약성경(마태복음 15:22, 마가복음 7:26)에서도, 가나안 사람들은 원래 이스라엘 지파들에 배정된 땅에 살아왔던 것이다.


가나안 사람들을 죽여야 했는가, 쫓아내야 했는가?

그러나 신명기 20:16 절과 같은 구절은 무엇인가?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이것은 신명기 20:10~15절의 성읍들에 대한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일반적인 규칙에 있어서 하나의 예외적인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은 그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성읍들을 복속시킬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셨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신명기 20:18절은 그 이유를 말씀해주고 있다 :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다른 말로 해서, 가나안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수세기 후에 심판을 받게 되는(창 15:16), 도덕적으로 가증한 일들을 행하던 타락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16절은 일반적인 땅이 아니라, 요새화된 성읍들을 특별히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라.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그 성읍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요새화된 성읍에서 그들은 보호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다른 말로하면, 성읍에 남은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한 사람들이었고, 그 땅에서 나가기를 거절했던, 가장 완고하며 반항적인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어쨌든 ”그들을 쫓아내라”와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는 상호 주의깊은 해석이 필요한 구절이다. 가나안 사람들에게 행할 수 있는 선택은 추방 또는 죽임이었다. 추방은 이스라엘이 한 성읍에 들어왔을 때에 대부분의 경우에서 제공되는 첫 번째 옵션이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오기 전에, 가나안 사람들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하셨던 일들을 들었기 때문에, 심히 두려워했고 간담이 녹았다고 기록하고 있다.(여호수아 2:9~11) (상세한 정보는 Does the Bible condone slavery, abuse of women or mass murder?을 보라).[4]


고고학은 이스라엘의 정복을 부정하는가?

일부 기사들에 의하면, 고고학자들은 여호수아의 정복(Conquest) 사건이 역사적으로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랜 시간 후에 의도적으로 쓰여진 신화일 뿐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이 실제로 사실이라는 많은 고고학적 증거들이 있다. 핵심은 표준 이집트 연대기는 축소되어야만 하고, 고고학자들이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시기를 살펴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자세한 정보는 ‘여리고 성벽(The walls of Jericho)’, ‘여리고 이야기(The story of Jericho)’, ‘이집트 연대기와 성경(Egyptian chronology and the Bible)’을 읽어 보라. (아래 관련자료 링크 1~8번 참조)


과학부 기자들은 성경의 정확성이 입증됐다는 보도를 왜 그렇게 싫어할까?

우리는 기원(창조-진화)에 관한 토론에서 그 사람의 세계관 또는 편견이 증거들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능력을 어떻게 방해할 수 있는지를 항상 보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서 '가짜 뉴스'를 보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성경이 정말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사들에 대한 인터넷 댓글을 보고서 그것을 수정했다(그것도 일부 언론 뉴스만).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그 이유는 자극적인 제목만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많이 읽혀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사례는 언론 매체들이 매우  반-성경적(반-기독교적) 입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창조-진화 논쟁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쓴 뉴스가 아니다. (창조-진화 논쟁에서도 진화론의 문제점에 대해서, 장구한 연대를 부정하는 과학적 증거들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무조건 창조과학자들을 비난하는 것과 같이) 이 사례는 진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성경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과학은 성경이 역사적으로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이번에는 고대 DNA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새로운 기술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는 다음 발견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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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Jer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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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God a ‘moral monster’?
Is the Bible an immoral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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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ther Reading
Answering Bible skeptics
Countering the Critics Questions and Ans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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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 Media
Does the Bible condone slavery, abuse or mass murder? (Creation Magazine LIVE! 6-08)


References and notes
1. Adapted from Klinghoffer, D., For Culturally Illiterate Science Reporters, Canaanite DNA Yields Occasion to Slap Bible Around, evolutionnews.org, 29 July 2017.
2. There were some exceptions to this trend, like Fox News, but they seemed to be in the minority.
3. This original title is still reflected in the url for the Science article: sciencemag.org/news/2017/07/ancient-dna-counters-biblical-account-mysterious-canaanites.
4. A useful in-depth defense of the morality of the Israelite conquest is Copan, P. and Flanagan, M., Did God Really Command Genocide? Baker Books, Grand Rapids, Michigan, 2014.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com/canaanite-dna-confirms-bible , http://www.icr.org/article/10173

출처 - CMI, 2017. 8. 4. (GMT+10)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679

참고 : 3872|3148|1412|1413|4463|5985|6089|1536|1756|1790|2245|2515|2525|2530|2688|2746|2797|2996|3020|3022|3055|3162|3166|3208|3218|3233|3249|3633|3641|3945|4043|4071|4100|4148|4237|4480|4329|4376|4383|4385|4387|4390|4391|4394|4399|4413|4414|4416|4450|4451|4452|4488|4492|4599|4578|4514|4868|4726|4725|4723|4718|4714|4713|4819|4878|4872|5018|5034|5094|5275|5395|5415|5402|5463|5514|5638|5741|5852|5861|5969|6017|6066|6071|6179|6205|6235|6351|6387|6401|6432|6446|6458|6529|6533|6639

Ken Ham
2017-03-01

새로운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기인가? 

(Is It Time for a New Reformation?)


       이 세상을 한번 둘러보라. 우리의 문화나 교회나 새로운 개혁(reformation)이 필요하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우리는 우리의 절대적인 권위로서 성경(the Bible)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자유주의, 진화론, 영지주의, 모르몬교, 이슬람, 뉴에이지, 도덕적 이슈들(예를 들어, 낙태나 동성애), 지구의 나이 등과 같은 것들은 궁극적으로 모두 같은 이슈들에 대한 전투이다.

고린도후서 11:3절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의 영감하에서 우리에게 일찍부터 있어왔던 위험에 관하여 경고하고 있었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 11:3)

바울은 사탄이 하와에게 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똑같은 방법을 우리들에게 계속 사용할 것이라는 것을 크리스천들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즉, 사탄은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순전히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유혹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창세기 3:1절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태초부터 전투는 하나님 말씀의 권위(authority)에 관한 것이었다. 최초의 여성 하와와 그녀의 말을 따른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말라는 뱀의 유혹에 넘어갔다. 대신에 그는 진실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그의 인간적인 이성(human reason)에 의존하였다.

아담은 인류의 조상이었기 때문에, 그의 반란은 전체 인류를 죄로 몰아넣었다. 모든 그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를 본질적으로 상속받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 대신에 인간의 이성을 그들의 절대 권위로 만들어놓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항하는 이러한 전투는 인류 역사의 모든 시대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채로 지속되어져 왔다.

바울은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했었던 회의론자(skeptics)들에 언제나 직면했었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기독교인들은 사람 자신이 신이라고 가르쳤던 영지주의(Gnosticism)를 포함하여 성경의 권위에 대한 여러 도전들과 싸웠었다. 공룡들의 나이, 또는 방사성탄소 연대측정(carbon dating)과 같은 현대의 이슈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래된 공격들의 새로운 형태들일 뿐이다.


인간의 이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체하였다. 그리고 타협이 교회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로 돌아가는 교회의 개혁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16세기에 죄가 용서되고 연옥의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교회의 면죄부 판매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인간의 생각을 올려놓는 최절정의 사건이었다. 수도사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면죄부 판매에 도전하면서, 비텐베르크 교회(Wittenberg Church)의 정문에 그의 95개 조항을 게시하였다. 이 행동은 궁극적으로 교회 위에 성경의 권위를 두어야한다는 것에 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 개혁 운동에 연합하였다. 성경과 책자들이 새로운 인쇄기들로 인쇄되었고, 성경적 진리가 널리 퍼져나감으로서, 서구 세계는 극적으로 변화되었다. 사실 최근 수십년 전까지도 서구 세계의 많은 부분들은 아직도 종교개혁에 의한 영향을 받아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일련의 사람들과 사건들은 종교개혁의 긍정적인 결과들을 원상태로 되돌려 놓으려 시도하였다. 그러한 공격 뒤에는 인간의 이성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만들려는, 그리고 사람들을 하나님 말씀의 권위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것은 창세기 3:1절에 대한 또 다른 발현이었다.

18세기와 19세기에 성경에 대한 공격은 강렬해졌다. 지구의 나이에 관한 새로운 추정과 진화론은 성경의 정확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핵심적인 이슈들은 예수님의 빌라도 법정 이후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재판으로, 그리고 문화 형태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재판이었다고 말해지는 스코프스 재판(Scopes trial)에서 드러났다.

1925년의 스코프스 재판은 사실 흔히 믿어지고 있는 것처럼 진화론 교육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 재판은 기독교 전체를 법정에 세우려는 미국 자유시민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의 치밀하게 계산된 책략이었다. 비록 기소자 측의 윌리암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이 훌륭했던 기독교인 정치가였지만, 그의 기독교 신앙은 창세기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 위에 견고히 서있지 않았다. 예를 들면, 그는 가인(Cain)의 아내에 관한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지구의 나이가 매우 오래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였다.

그 재판은 기독교계와 미국 사회에 하나의 커다란 상징적 전환점이 되었다. 전 세계의 언론매체들은 기독교인들은 성경(창세기)을 하나님이 하신 말씀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그것을 적절히 방어할 수도 없어 보인다고 보도하였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는 것에 대한 교회의 실패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황폐함을 가져다주었다. 한 예로 한때 유명한 복음전도자였던 찰스 템플턴(Charles Templeton)이 있다. 그는 신학교에 있을 동안에, 수억 년의 지구 나이를 포함하여 진화론적 시간 틀을 믿도록 교육받았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도록 그를 이끌었다.     

창세기 1-11 장의 성경적 권위에 대한 타협(Compromise)은 교회를 너무도 약하게 만들어서, 성경이 이 세상에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충격을 주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대게 인간의 이성(human reason)이 교회 내로 침입하여 하나님의 말씀(God’s Word)을 옆으로 밀어놓기 때문에 발생해왔다.

오늘날 새로운 개혁이 요구된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 위에 견고히 설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세대의 개혁자들을 필요로 하는 시기가 되었다. 가령 창조박물관(Creation Museum)과 같은 성경적 창조과학 사역들은 오류 많은 인간들의 이론들을 쫒아내고 전적으로 성경 위에 확고히 설 수 있도록 하는 많은 일들을 이미 해오고 있다. 

이제 믿는 자들이 창세기 1-11장을 교회들의 문 앞에, 그리고 대학과 박물관들과 같은 이 세상의 세속적 건물들의 문 앞에 게시하고 목소리를 내야할 시기이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붙잡고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권능이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세상 문화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Ken Ham is the founder and president of Answers in Genesis-USA. He has authored or co-authored many books concerning the authority and accuracy of God’s Word and the effects of evolutionary thinking, including Genesis of a Legacy and The Lie: Evolution.

 

*참조 : The Reformation of the 16th Century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2/n4/reformation-sixteenth-century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2/n4/new-reformation

출처 - Answers, 2007. 10. 19.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495

참고 : 3024|2346|2313|2864|548|2942|2797|2016|3640|3654|4375|4380|2067|3677|4010|2061|2530|2321|4868|4870|4872|4878|4982|4985|5094|5271|5275|5332|5394|5395|5402|5415|5440|5463|5514|5578|5625|5627|5628|5711|5723|5741|5753|5852|5861|5870|5882|5886|5889|5910|5985|5986|6044|6017

Brian Thomas
2017-01-30

성경은 누가 썼는가? 

: 사해사본과 엔게디의 불에 탄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Who Wrote the Bible?)


      최근에 나는 한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성경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었다. 젊은이의 고등학교 교사는 그에게 성경에 대해 이렇게 가르쳤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나, 사도들이 선교를 위해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는 것과 같은 사건들은, 그것들이 기록된 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일단의 가톨릭 성직자들이 이것저것을 함께 모아 만든 것이 성경이라는 것이었다. 그 교사의 말은 맞는 것인가?


시대가 흘러도,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한 것이라고 성경은 주장한다. 예를 들어,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시편 12:6,7)[1] 반면에, 내가 만난 젊은이와 그의 교사는 성경을 기록하고 필사했던 사람들도 사람이었기 때문에, 성경에는 오류와 실수가 들어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들은 이러한 생각을 거부할 수 있는 새로운 이유를 제공하고 있다.


사해문서(The Dead Sea Scrolls, 사해사본)는 성경의 기록을 확증하는 고고학적 발견의 긴 목록에서 상단에 위치한다.[2] 유대 필경사는 이스라엘의 사해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절벽 동굴에 이 성경 두루마리를 숨기고, AD 68년 로마 제10군단이 그들을 점령하기 전에 동굴 입구를 막아버렸다. 1946년에 우연히 발견된 이 두루마리 성경에는 많은 성경의 책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항아리들은 타임캡슐과 같이 고대 문서들을 보존했다. 현대의 성경과 비교해보았을 때, 사해문서는 성경이 전래된 후 2,000년이 지났지만 사실상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약간의 철자법 변경 등이 있었지만, 모든 절의 기본 내용은 변경되지 않았다. 이것은 성경이 필사되거나 전달될 때, 손상되고 오류가 생겨났다는 주장들이 거짓이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었다.


또 다른 고고학적 발견도 성경의 완전성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고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1970년 이스라엘의 엔게디(Ein Gedi)에서 3세기의 두루마리 성경을 발견했다. 불행히도, 그것은 불에 타있었다. 부서짐 없이 그것들을 펴서 읽어볼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전문가들은 잉크 잔해를 읽어낼 수 있는, 정교한 소프트웨어와 X-레이 스캔을 사용하여, 3D 이미지로 사실상 '열어볼' 수 있게 되었다.[3] 이제 전문가들은 처음으로 겹쳐서 구부러진 두루마리 내부에서 히브리어 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다.[4]


히브리어 대학의 엠마누엘 토브(Ammanuel Tov)는 두루마리 스캔에 관한 기술 보고서를 공동 저술했다.[5] 그는 AP 통신(Associated Press)에서 오늘날 성경 번역에 사용됐던 히브리어 레위기와 '100% 일치'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대단히 놀랐습니다. 2000년 동안 이 텍스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4]


이 발견은 놀라운 일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말씀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1]

성경의 말씀도 사람이 기록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별개가 아니었다.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6] 그리고 그 이후로 하나님의 신실했던 종들이 정확한 단어들을 꼼꼼하게 필사해 왔던 것이다.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시편 119:160)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이사야 40: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태복음 5:18)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복음 17:17)



References

1.Psalm 12:6-7.
2.Price, R. 1997. The Stones Cry Out. Eugene, OR: Harvest House Publishers.
3.The process resembles the computed tomography (CT) scanning technology used in hospitals.
4.Estrin, D. Scanning software deciphers ancient biblical scroll. Associated Press. Posted on bigstory.ap.org September 21, 2016, accessed September 22, 2016.
5.Seales, W. B., et al. 2016. From damage to discovery via virtual unwrapping: Reading the scroll from En-Gedi. Science Advances. 2 (9): e1601247.
6.2 Peter 1:21.


*관련기사 : 새까맣게 타버린 1천500년 전 성서 첨단기술로 해독 (2015. 7. 21.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7/21/0200000000AKR20150721107100009.HTML

1,500년 전 불탄 성경, 첨단 기술로 해독 성공 / YTN 사이언스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d4_FNm9rEis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유대 광야 (사해 사본) (2013. 12. 6. 국민일보)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7819112&code=23111617&sid1=ser


*참조 : Ancient Manuscripts, Translations, and Texts

https://biblearchaeology.org/research/topics/ancient-manuscript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9700

출처 - ICR, Acts & Facts. 45 (12). 2016.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33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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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서의 하솔에 관한 기록은 정확했다. 

(Joshua Was Right about Hazor)


       텔 하솔(Tel Hazor)에서 발견된 깨진 동상 조각(statue pieces)은 이스라엘에서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장소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 옳았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Science Daily(2016. 7. 25) 지가 성경이 정확했다고 보도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당신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 그 글을 옮겨본다 :

이것은 당시 남부 가나안에서 가장 중요한 왕이었던 하솔 왕의 특별한 위상을 고려해볼 때 놀라운 일이 아니다. BC 15~13 세기에 하솔의 특별한 중요성은 '모든 나라의 머리(the head of all those kingdoms)'(여호수아 11:10)라고 표현했던 하솔에 대한 성경 기록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

BC 두 번째 천 년 전에 하솔의 인구는 약 20,000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지역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였다. 도시의 크기와 애굽(이집트)과 바빌론을 연결하고 있는 전략적 위치는 성경 여호수아서(수 11:10)의 기록처럼 '모든 나라의 머리'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스라엘 인들은 하솔을 점령함으로서,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의 정복과 정착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 도시는 재건되어, 솔로몬 왕에 의해서 요새화되었고, 아합 왕과 여로보암 2세 시대까지 번성했다가, BC 732년 앗수르에 의해서 최종 파괴되었다.

기사는 하솔에서 발견된 이집트의 신, 아마도 프타(Ptah)의 깨진 조각들에 대한 것이었다. 고고학자들은 그것은 강력한 왕에게 선물되었던 골동품이나, 공식 선물로 생각하고 있다. 그 지역에서는 3년 전에 스핑크스 발의 조각이 발견됐었다. Science Daily(2013. 7. 9) 지는 그것을 그 시대에 '놀라운 등장'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것은 레반트에서 발견됐던 유일한 다른 로얄 스핑크스 조각품(royal sphinx sculpture)이었기 때문이었다. 조각 난 상태의 동상 모습은 가나안의 신상들을 파괴해버렸다는 성경 기록을 확인해주고 있었다. ”절단된 명확한 흔적들은 아마도 BC 13세기 경에 있었던 도시의 마지막 정복과 파괴 시에, 그것들 대부분이 의도적으로 격렬하게 부서졌음을 가리킨다.” 여호수아 11장은 하솔과 북부 연합 왕들의 패배를 기록하고 있다.



고고학자들에게 성경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창조로부터 노아 홍수, 홍수 이후 족장들, 모세, 여호수아, 그 이후 사건들에 대한 끊김이 없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세속적 고고학자들은 때때로 그들이 신뢰성이 있다고 간주하는 성경의 부분만을 선택하고 참고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의 모든 다른 부분들도 신뢰할 수 있음이 독립적으로 확증되고 있다. 다른 고고학적 설명과는 다르게, 성경 기록은 왕들의 업적만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반대로,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왕들의 죄에 대헤서 잔인할 만큼 정직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항상 역사(History, His story)를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이 고고학적 장소에 대한 크기와 인구는 여호수아의 정복이 더욱 놀라운 일이었음을 보여준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내왔던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여러 도시들을 점령했다. 하솔의 왕 야빈(Jabin)뿐만이 아니라, 그가 조직했던 다른 왕들의 연합군을 물리치고 말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6/07/joshua-hazor/

출처 - CEH, 2016. 7. 25.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32

참고 : 5985|4422|4409|4405|4395|4390|4381|4376|4148|3872|4071|3233|6401|6205|6179|6089|6066|6017|5969|5741|5627|5463|5395|5275|4852|4819|4742|4385|4383|4391

사해의 후퇴하는 해안선이 드러낸 놀라운 지질학 

(Dead Sea Receding Shoreline Reveals Amazing Geology)


    사해(Dead Sea)의 해수면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면서 흥미로운 지질학적 측면이 드러나고 있다.

사해는 죽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말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수면(해수면 아래로 400m)으로 유명한 이 호수는 역사적 랜드마크이며, 지질학적 경이가 되고 있다. 또한 그곳은 유명한 광물자원의 창고이고, 성지순례의 인기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해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 아마도 금세기 내에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해에서 밝혀지고 있는 과학뉴스들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콜롬비아대학 지구연구소의 레나 그레고리안(Lena Gregorian)은 연구소의 블로그인 ‘행성의 상태’에서 사해에 관한 심도 있는 글을(Dead Pool: the Depletion of a Shared Natural Resource) 썼다. 그녀의 글은 후퇴하는 해안선에 따라 노출된 거대한 ‘싱크홀(sinkholes, 땅꺼짐)’들에 대한 사진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해수면은 1년에 1m 정도씩 낮아지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그러한 후퇴는 호수의 광물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서, 특히 수분 제거에 기초한 추출방법으로는 얻어지기 어려운, 비료로 사용되는 가성칼리(potash)는 전 세계적으로 수출되고 있다. 그녀는 다음 세대들을 위하여, 사해 바다를 보존하기 위한 실행 방법들을 추진할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

BBC News(2016. 6. 17) 지에서 케빈 콘놀리(Kevin Connolly)는 사해에 관한 더 심도 있는 글을 게재했다. 많은 관광객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사해는 물에서 뜬 상태로 신문을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해는 독특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고, 세계의 환경 상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특히 건조기후의 지역에서 관개수로로 인해 지속적인 물 부족이 발생되는 장소들에 대한 민감한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그 글은 지난 44년 동안에 후퇴하는 해안선에 대한 위성사진들을 비교하며 보여주고 있었다. 물이 줄어드는 원인은 주로 유일한 물의 공급처인 요르단 강물의 수량 감소에 기인한다. 1차 세계대전 동안에 만들어졌던 해수면을 표시해 놓았던 한 표식은 이제 마른 암석의 높은 곳에 남겨져 있다.

사해는 오늘날의 여행가들뿐만 아니라, 고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뛰어난 장소였다. 사해의 풍경은 정말로 뛰어나다. 그곳은 달 표면과 같은 모습으로, 그랜드 캐니언의 깊은 곳에 있는 코머 호수(Lake Como)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고 콘놀리는 썼다. ”고대의 사람들은 그곳에는 어떤 독특한 것이 있다고 이해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이러한 세계적인 경이가 우리 세대에서 영구적으로 황폐화되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있다.

해안선의 후퇴는, 특히 지질학적 작용에 의한 싱크홀들의 발생은 해안에 있는 산업과 도시에 피해를 주고, 관광객들의 방문을 감소시킬 수 있다. 그러한 일은 40년 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지금은 5,500여개의 싱크홀들이 존재한다. 콘놀리는 이전 해안가에 있던, 씽크홀에 의해서 심각하게 파괴된 한 리조트 건물 사진을 보여주고 있었다. 싱크홀의 형성은 가속화되고 있는 중이다. 싱크홀은 올해에만 700여개가 생겨났다고 그는 말했다.

싱크홀은 바다가 물러가면서, 뒤에 남겨진 지하의 소금 퇴적층이 거대한 틈 안으로 붕괴되거나, 지하에서 담수가 새어나와 표면을 흐르면서, 소금들을 녹여 사라지게 할 때 형성된다.

일부 싱크홀은 직경 100m, 깊이 50m나 되는 거대한 크기인데, 그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에 걸쳐 강력한 지진들이 발생했던 지역으로 보여지게 한다.

지질학자들은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그 지역을 주목하고 있는 중이다.(cf 5/03/2004). 미국 지질협회의 GSA Bulletin 지에서 이스라엘과 영국의 지질학자들은 후퇴하는 해안선 때문에, 리산 반도(Lisan Peninsula)의 명백한 지진 사건들로 인해 발생했던 수평전단(horizontal shear) 지역을 연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중대한 변위(displacements)가 단 한 차례의 지진 동안에 동시에 발생했었다고 결론지었다.

지진발생 동안 지표 근처에는 파괴적인 수평변위(horizontal displacements)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수평 불연속선을 따라 지진파에 의한 미끄러짐(coseismic slip)이 일어나 있는 현장 증거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지진 활동이 활발했던, 사해 분지 내에 있는 홍적세 말기의 리산 지층(Lisan Formation)에는 측면이 잘려진 최대 15m 깊이의 수직적 쇄설성 암맥(clastic dikes)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이것은 그러한 수평적 변위에 대한 고유의 옆모습(profiles)을 제공하고 있다... 뛰어난 노출면과 표지자의 질은 우리에게 최초로 상세한 지표근처의 수평전단(horizontal shearing)을 기록할 수 있게 해주며, 수평지층면을 따라 발생한 변위는 지표 근처의 층리가 발달된 지층에서 지진파에 의한 변형을 흡수하는 하나의 가능한 메커니즘임을 나타낸다.

창조 지질학자인 스티븐 오스틴(Steven Austin) 박사는 역사적 지진(see ICR article, 아래 관련자료 링크 1, 2 참조)의 증거를 찾아볼 수 있는 기회로 이곳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사해 해안 퇴적층을 따라 노출된 협곡에서, 아모스 서에 의해 기록되어 있는(아모스 1:1), 웃시야 왕 때에 이스라엘 땅의 대부분을 뒤흔들었던 지진을 포함하여,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여러 지진들의 표지자(earthquake markers)들을 확인해왔다. 그는 또 다른 글에서(see ICR article) 주요한 지진들의 발생과 영향을 기술해 놓았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그러나 바다보다 8~9배나 더 짠 소금 바다인 사해의 해안선이 점점 후퇴되는 것을 방지하는 일은 이스라엘, 요르단, 그리고 사해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 이웃 나라들의 정치적 입장 차이로 인해 쉽지 않아 보인다.
 



오늘날 이스라엘 내의 많은 것들이 성경 시대에 있었던 것들과 매우 다르다. 일부 관광객들은 성전산 꼭대기의 사원은 말할 것도 없고, 기브아에 있는 사울 왕의 궁전터 뒤에서 쇼핑몰과 햄버거 가게를 발견하고 당황해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을 여행해볼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YouTube에 올라온 요르단 강에 있는 ‘두 바다 이야기(Tale of Two Seas)’, 갈릴리 바다와 사해 바다에 관한 1분짜리 동영상은 영적 교훈을 주고 있다.



*관련기사: 사해에 생긴 커다란 구멍..곳곳에 '거대 싱크홀'(2015. 7. 30. SBS News)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098604

사해 바닥이 녹고 있다.. ‘싱크홀’ 빈발해 유명 해변 2곳 폐쇄(2015. 7. 30. 국민일보)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703845

사해 수면 낮아져 주변에 '싱크홀' 급증…관광산업 큰 피해 (2015. 7. 30.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7/30/0200000000AKR20150730077900009.HTML

사해 살리고 이·팔 공존 물길 뚫고 … 홍해서 답을 찾다
: 요르단·이스라엘·팔레스타인 '홍해~사해 파이프라인' 협정 (2013. 12. 23. 중앙일보)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2213163

'중동에 맑은 물을'..1조원대 ‘요르단 담수화 사업’ 잡아라 (2015. 9. 16. 환경 TV)
http://www.greenpostkorea.co.kr/news/article.html?no=52240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6/06/dead-sea-drying/

출처 - CEH, 2016. 6. 27.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10

참고 : 5018|2739|5332|4881|5780|4696|5002

소위 ‘예수 아내 복음서’는 사기로 확인됐다. 

(Fake ‘Gospel’ Manuscript Exposed)


      소위 '예수 아내 복음서(Gospel of Jesus’s Wife)'라는 고대 문서는 거의 확실한 사기(fraud)로 밝혀졌다. 당신이 이러한 사기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다면, 이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1세기 크리스천들에게 신약성경의 4 복음서(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성경으로 받아들여진 후, 수세기 동안 수많은 가짜 문서들이 예수님과 관련하여 쓰여졌다고 주장됐었다. 2012년에 발표됐던 최근의 한 사례는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었다. Live Science (2016. 6. 17) 지는 말한다 :

2012년에 발표된 이후로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예수 그리스도가 결혼을 했다고 제안하는 한 고대 파피루스 문서는 거의 확실하게 가짜임이 밝혀졌다.

소위 ‘예수 아내 복음서’를 발견했고, 그것이 진짜라고 주장했던, 하버드대학 교수인 카렌 킹(Karen King)은 이제 그 파피루스 문서가 위조(forgery)된 것 같다는 것과, 그 고대 문서의 소유자가 문서의 출처와 배경에 대해서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위조범은 월터 프리츠(Walter Fritz)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그럴듯하게 말하는 플로리다 거주자로, 포르노 사진작가이며, 이전 동독의 비밀경찰 스타시(East German Stasi)의 회원이었다. 그 파피루스 조각이 진품이라고 제일 먼저 주장했던, 하버드 대학의 역사학자이며, 페미니스트(Feminist)인 카렌 킹은 이제 그 사건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가려 하고 있다. The Atlantic 지에서 아리엘 사바르(Ariel Sabar)는 그것을 '터무니없는 현대적 사기'라고 부르면서, 그 사기 사건의 음모, 위조, 기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보도하고 있었다.

당신은 이제 정상적인 생활로 다시 돌아가면 된다.



대대적으로 선전됐던 안티 기독교인의 한 '증거'는 또 다시 쓰레기통에 들어가게 되었다. 왜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훼손하려고 하는 것일까? Live Science 지는 쓰고 있었다. ”2012년에 그 문서가 처음 공개된 이후, 많은 언론 매체들은 그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었다.” 진화론이 만연해 있는 오늘날의 학문 세계에서 이러한 종류의 쓰레기 주장들은 너무나도 넘쳐나고 있다. 그 문서를 위조했던 사람의 면면을 살펴보라. 공산주의자, 포르노 사진가, 사기꾼... 정말로 슬픈 일이다. 정확한 보도를 해준 Live Science 지와 The Atlantic 지에 감사드린다. 그러나 처음에 보도됐던 것만큼 대대적으로 보도되지는 않고 있었다. 따라서 대중들은 그것이 사기로 밝혀진 사실을 잘 모를 수 있다.  

2017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성경 박물관(The Museum of the Bible)'이 개장될 예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경 박물관 중 하나로 여겨짐). 이미 소규모의 미니 전시관이 여러 도시들을 순회하며 개최되고 있다. 설형문자로 된 고대 문서에서부터, 원본 사해문서와 사본들, 종교개혁 시대의 성경, 희귀 사본들, 현대의 디지털 성경까지 4만 점 이상의 많은 전시물들이 특수 효과와 함께 전시될 계획으로 있다고 한다.



*이전 관련기사 : 예수 결혼?  '내 아내…' 문서 기독교 발칵 (2012. 9. 20.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9376586

예수의 아내 언급한 고대 파피루스 문서 발견 (2012. 9. 20.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People/3/06/20120920/49538270/1

”예수의 부인 언급 파피루스, 고대문서 맞다” (2014. 4. 11.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632388.html

예수 '나의 아내…' 직접 언급한 고대 파피루스 문서, 위조 아닌 진짜'(2014.4.11.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11/2014041102328.html?Dep0=twitter&d=2014041102328


예수님 아내 등장하는 파피루스 가짜 (2015. 2. 28. 교회와 신앙)
CNN 다큐멘터리 '<예수 아내 복음서>는 위조된 것” 방송 예고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549

”'예수 아내 복음서'는 현대에 위조된 것” 전문가들 결론 (2015. 7. 19.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7/19/0200000000AKR20150719003800091.HTML


*관련기사 : '‘예수의 아내 파피루스’의 가치는 먼지 수준”
美 신학자들, 신빙성 혹평하며 위조 확실시  (2016. 6. 21. 기독일보)

''예수의 아내' 파피루스 날조였다'… 하버드대 교수 과거 주장 번복 (2016. 6. 21. 포커스뉴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6/06/fake-gospel-manuscript-exposed/ ,

출처 - CEH, 2016. 6. 19.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01

참고 : 4663|4878|4872|4870|4868|4726|4725|4723|4718|4714|4713|4599|4578|4540|4514|4492|4488|4480|4463|4452|4451|4450|4416|4414|4413|4400|4399|4394|4391|4390|4385|4383|4387|4376|4375|4329|4685|4237|4148|4100|4071|4043|3945|3932|3872|3707|3689|3641|3633|3628|3311|3302|3249|3233|3218|3208|3166|3162|3148|3020|3022|2530|2321|2805|2688|2525|1756|1793|1790|720|721|4819|2330|5861|5852|638|5753|5741|5723|5638|5628|5625|5578|5555|5514|5094|5463|5415|5402|5395|5275|5271|5035|5034|5033|6205|6235|6353|6360

Russell Grigg
2015-09-08

갈릴레이에 대한 오해

 (The Galileo 'twist')

Russell Grigg 

      오늘날 창조과학자들은 갈릴레이 시대에 로마 가톨릭 교회가 범했던 실수를 똑같이 되풀이 하고 있다고 (창조과학자들의 입장을 반대하는, 진화론과 수십억 년의 장구한 지구 연대를 믿는 크리스천들로부터) 자주 비난 당한다. 그 당시 제도권 교회들은 천동설(태양이 지구의 

둘레를 도는 것으로)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 반대(지동설)가 사실임이 갈릴레이에 의해서 밝혀진 후, 신자들은 성경 내에서 그들의 믿음에 어떠한 문제 없이 이 새로운 사실이 편안하게 수용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갈릴레이를 둘러싼 역사적 사건들은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의 창조를 주장하는 창조과학자들에게가 아니라, 유신론적 진화론자들과 오래된 연대의 지구를 믿는 사람들에게 경고가 되어야만 한다. 


배경 

2천 년이 넘는 이전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384–322 BC)는 지구가 완벽한 우주의 중심이고, 별들은 끝없이 원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AD 2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Ptolemy)는 천동설(Ptolemaic system)로 알려지게 된 생각으로 이것을 확장하였다. (아래의 박스 글을  보라). 그리고 16세기에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1473–1543)는 지구와 행성들이 태양 둘레는 돈다는 더 나은 설명을 가정했다.1,2 

 

17세기에, 갈릴레이(Galilei Galileo, 1564–1642)는 망원경을 가지고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를 반박하고, 코페르니쿠스를 지지하는 반복 가능한 관찰을 반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그는 태양의 흑점이 표면에서 움직이는 것을 관측하여, 태양이 완전하지 않으며 스스로 회전하고 있음을 알아내었다. 그는 금성의 상(phases)들을 관측하였고, 이것으로 금성은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음이 틀림없음을 알아내었다. 그리고 그는 목성의 4개의 위성들이(지구가 아니라) 목성의 둘레를 돌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지구가 모든 것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1618년에 그는 프톨레마이오스의 투명 구체(crystalline spheres, 행성들과 별들이 지구 둘레를 돌고 있는 것으로  추정)를 통해 쉽게 통과하는 3개의 혜성들을 관측함으로서, 이 구체가 상상임에 틀림없음을 보여주었다.   


태양중심설(heliocentric system, 그리스어 helios는 태양) 또는 코페르니쿠스설(지동설)은 아리스토텔레스나 프톨레마이오스의 생각을 가르치며 생계를 이어가던 그 당시의 천문학자, 철학자들의 입장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변화를 거부하는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갈릴레이의 글들을 무시하며, 조롱하고, 파괴하며, 적의를 가지고 반대했다.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우주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 추종자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성경은 천동설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갈릴레이의 주장은 성경과 모순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의 발견을 부인하기 위해서 갈릴레이를 죽음의 고통으로 밀어 넣을 만큼 맹렬히 반대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1. 이것은 당시 교회 지도자들이 세계관의 과학적 기저를 이루고 있었던 아리스토텔레스나 프톨레마이오스와 같은 이교 철학자들의 믿음체계를 교리로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교회 지도자들은 당시의 지식을 평가하는데 성경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해석하는데 그 당시의 지식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2. 그들은 갈릴레이가 반복적이며 과학적인 관측을 근거로 하여 논란의 여지가 없는 증거들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주에 관한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와 같은 ‘소수의 견해(minority view)’을 거부하고, ‘대다수의 의견(majority opinion)’에 매달렸다. 

3. 그들은 성경이 지구 둘레를 태양이 돌고 있음을 말한다고 생각한 몇몇 구절들을 성경에서 선택해 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의 기록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이해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데 실패했다. 모세가 ”해가 돋았더라 (risen) (창19:23)” 그리고 ”해가 진지라 (set) (창28:11)” 라고 기록했을 때, 그의 목적은 천문학적 관점으로 기술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세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 당시 사람들이 말하던 표현으로 언어를 사용하였다.3 그리고 가장 편리한 기준 틀(reference frame, 이 경우에서는 지구)로 상대적 운동을 기술하는 것은 물리학에서 완벽하게 유효한 것이었다. (다음의 글 Sunspots, Galileo and heliocentrism 을 보라). 


명백한 의미는 태양 자체가 움직인다는 이차적인 추론을 요구하지 않고, 보여지는 현상을 언어로 완벽하게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이것은 오늘날의 기상학자들이 기상예보 시에 ‘해 뜨는(sunrise)’ 시각과 ‘해 지는(sunset)’ 시각을 알려줄 때 사용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이다. 그들은 기준점을 지구로 사용하여, 보여지는 현상을 표현하는 언어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말을 편리하게 사용하였다고 해서, 기상 예보관들을 과학을 모르는 비과학적인 사람들이라고 취급하지 않듯이, 성경에 그러한 표현이 있다고 성경을 비과학적으로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분명히 시적 표현을 의미하는 시편 19:6, 시편 93:1 과 같은 구절들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4,5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시19:6).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 (시93:1))  


오늘날 

오늘날 우리들은 대부분의 과학적 제도들이 자연주의(naturalism, 모든 것들이 자연적 원인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와 오래된 연대(long ages)에 매우 편향되어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 과학적 제도들은 우주의 모든 것들은 한 번의 큰 폭발(빅뱅)로 기원 되었으며, 수십억 년 동안의 진화를 거쳐서 모든 것들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서, 자연주의적 믿음 체계를 선전하고 있다. 오늘날 정말로 많은 천문학자, 과학자, 교사들이 이러한 이론을 가르침으로서 그들의 생계를 꾸려가며, 돈을 벌고 있고,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프톨레마이오스 계 (The Ptolemaic System, 천동설)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하면, 태양, 달, 행성, 별들은 일련의 오목한, 수정구체(crystalline spheres)의 둥지 안쪽에 고정된 지구 둘레를 돌고 있었다. 이것은 지구중심설(geocentric or earth-centred system) 이라고 불리웠고, 천동설로서 알려져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이 완전히 설명하지 못했던 몇 가지 문제점들이 있었다. 특히 지구에서 보여 지기에 하늘을 가로지르며 앞뒤로 움직이는 행성들의 움직임이었다. 그래서 그는 독창적인 그리고 처음에는 설득력이 있었던 몇 가지 메커니즘을 가정했다. 그러나 결국 불가능하도록 복잡하고, 과학적으로 잘못되었음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각 행성들은 주전원(epicycle)이라 불리는 자신의 작은 곡선 내에서 움직인다고 말했다. 반면에 모든 주전원들은 지구 둘레를 더 큰 가상의 원(deferents) 내에서 움직였다.


그러나 천동설과 같은 이러한 생각은 비록 재치가 있고 무신론자들에게 아마도 설득력 있게 보이기는 하겠지만, 복잡함과 모순으로 가득 차서 짐이 되고 있으며, 간단히 말해 틀린 생각이다.6 


동시에, 우주와 생명체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하나님에 의해서 직접 창조되었음) 성경은 더 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과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창조과학자들은 과학자들 중에서 소수이다. 그들은 설계의 흔적들, 화석 기록, 세포 내의 엄청난 정보...등과 같은 것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면 기대되는 것들이라고 말한다. 갈릴레이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모든 증거들은 무시당하고, 조롱

당하며, 감춰지고, 기존 과학계에 사람들에 의해서 악의적으로 반대되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교회의 지도자들은 대학에서 가르쳐지는 과학에 의해 설득 당해서, 빅뱅, 수십억년, 진화론과 같은 것들이 모두 성경과 양립할 수 있다고 말함으로서, 무신론자들의 공격을 피하여 버렸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소수(창조론자들)의 견해를 반대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1. 그러한 교회 지도자들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스테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등과 같은 비기독교인(즉 이교도)의 믿음 체계이며 철학을 교리로서 받아들였다. 그래서 17세기의 전임자들처럼 당시의 지식을 평가는데 성경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해석하는데 당시의 지식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2. 그들은 오래된 연대의 지구와 우주를 반대하고 있는 (젊은 연대를 나타내고 있는) 압도적인 관측들이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행해졌던 어떠한 (반복해 볼 수 있는 소수의) 실험 결과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진화는 확립되지도 않았고, 관측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견해(minority view)’을 거부하고 ‘대다수의 의견(majority opinion)’에 매달렸다.7 

3. 그들은 창조에 대한 창세기의 기록을 신화로서, 또는 오래된 시대에 걸쳐 일어난 일로 설명하며 빠져나가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창세기에서 저자가 전달하려고 했던 표현으로 이해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 실패했다. 따라서 본문을 읽을 때에 모세의 목적은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화들이나 옛날이야기들을 수집해서 늘어놓기 위함이 아니며, 창세기 1장의 날들은 오래된 시대와 같은 어떤 것의 은유적인 표현이나 원시문화의 사람들에게 수십억 년을 간단하게 설명하기위해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8 오히려 성경은 모세가 세계 역사를 태초의 창조 시점에서부터 히브리인들의 이집트 도착까지를 문자 그대로 기록하면서 창세기를 썼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갈릴레이의 상황에 대한 흥미로운 오해이다. 그 이후 교회 지도자들은 성경에서 시의 형태(poetic format)로 쓰여졌거나, 시가서의 구절들은 문학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오늘날에 그들은 산문으로 쓰여졌거나, 글자 그대로의 역사를 의미하는 성경의 구절들까지도 시(poetry)로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진정한 교훈 

창조과학자들은 교회가 17세기에 했던 것과 같은 똑같은 실수를 (즉 성경이 사실과 다른 것을 말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교회들이 대체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교회는 역사의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 그리고 성경을 지지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아직도 권위적인 대중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것을 고집하고 있다. 갈릴레이 시대의 교회 지도자들이 실수로 성경이 지구중심설을 지지한다고 생각했을지라도, 지구가 움직인다는 개념은 본질적으로 무신론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구와 태양의 상대적인 움직임을 방어하기 위한 다른 교리가 없었다. 


이에 비해, 진화론은 기원에 대한 무신론적 설명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속적 인본주의를 정당화하고 있는 이론이다. 또한 하나님을 죽음과 고통의 저자(원인 제공자)로 만들고 있다.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의 역사로, 창세기의 날들을 지구의 일상적인 날들로 받아들이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다른 많은 성경 구절들과 교리들을 설명해야만 할 것이다. 예를 들면, 타락 이전에 동물들의 먹이가 되는 녹색 식물들(창1:30), 안식일의 계명(출20:9-11), 하나님이 태초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는 예수님의 가르침(마19:4), 최초의 남자와 여자에 기초한 결혼에 대한 가르침(마19:3-9), 아담이 글자 그대로 최초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기초한 복음에 대한 바울의 설명(로마서 5장, 고린도전서 15장)...등등       


따라서, 갈릴레이로부터의 교훈은 교회가 진화론을 반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화론을 반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은 진화론을 입증하지 못했고, 오히려 진화론은 과학에 반대됨이 입증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도 명백히 반대되기 때문이다. 



*End notes :

Thomas Schirrmacher 박사의 글 'The Galileo Affair: history or heroic hagiography, CEN Technical Journal 14(1):91–100, 2000 (download PDF file)”은 전설과는 반대로,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교회 공직자들에 의해서 매우 존중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오만, 동료들의 시기, 그리고 교황 어반 8세의 정책 등에 의한 희생자였던 것이다. 그는 성경을 비판한다고 고소당한 것이 아니라, 교황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소당했다. 또한 Danny Faulkner 박사의 글 Geocentrism and Creation 과 Q&A의 다른 글들을 참고하라 Q&A: Galileo and Geocent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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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the Universe does not revolve around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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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동영상] 태양도 공전한다! 태양계의 실제 움직임 화제(2012. 12. 31. NewDaily)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36482


References and notes

1. His book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On the Revolutions of the Celestial Spheres), published in 1543, challenged Aristotle’s (and thus also at that time the Church’s) teaching that the earth was the centre of all change and decay, and that

around it were the changeless heavens.

2. In the Copernican system the earth and planets circle the sun, with the earth taking one year to do so; in the Ptolemaic system the sun, planets, and stars are all required to circle the earth every 24 hours. A huge problem with the latter system is that the nearest star, Proximus Centauri (also known as Alpha Centauri C),is 4.3 light years away, so that if this star circled the earth every 24 hours, its speed would need to be nearly 10,000 times the speed of light (and much greater speeds would be needed for the more distant stars).

3. Similarly, Joshua was using the language of appearance in Joshua 10:12–13. For a discussion on this miracle, see my article Joshua’s long day: Did it really happen—and how? Creation magazine, 19(3):35–37, June–August, 1997.

4. Psalm 19:4–6 metaphorically describes the sun as coming forth from a tent in the heavens, and also personifies the sun both as a bridegroom and as a strong man running a race. One would have thought that even the inflexible literalists of Galileo’s day might have allowed the writer of this Psalm to have meant it to have had a poetical meaning.

5. In Psalm 93:1, the phrase ‘the world also is established, that it cannot be moved’needs to be read alongside v. 2, ‘[God’s] throne is established of old, where the same Hebrew word [kown = ‘established’] is used and has the meaning 'set up', 'stable', 'secure', 'enduring', ‘confirmed’, etc., not ‘immobile’ or 'stationary’. Likewise the Hebrew word for ‘moved’ (v.1) is used in Psalm 16:8, ‘I shall not be moved’, meaning that the writer would not stray from the path of the Lord, not that he was rooted to any one spot.

6. For example, the exponents of the big bang fail to say where the energy originally came from, where the laws of science came from, and what it was that ‘quantum fluctuated’ before there was anything there to fluctuate, and so on—see What about the big bang? and If God created the universe, then who created God?. Molecules-to-man evolution is contrary to the principles of thermodynamics, as well as to the law of biogenesis (life comes only from life), the fossil record, and much more.

7. See, for example, John Morris, The Young Earth, Master Books, Arizona, 1994, and Evidence for a young world by Russell Humphreys.

8. Top-flight Hebrew academics, e.g. Professor James Barr of the University of Oxford, are unanimous that the plain meaning that the Hebrew text is intended to convey is that ‘creation took place in a series of six days which were the same as the days of 24 hours we now experience’. (See Six days? Honestly!)



출처 : Creation 19(4):30–32, September 1997

URL : https://creation.com/the-galileo-twist 

번역 : 미디어위원회


Lita Cosner
2015-01-08

성경 족보에 간격이 있는가? 

(Are there gaps in the biblical genealogies?)


       성경을 읽다가 성경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할 것만 같은 이름들이 장황하게 나열된 곳을 만나면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건너뛰고 싶어 한다. 이러한 족보들은 창세기와 역대기 및 구약 몇 군데에 나타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도 예수님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는데, 아브라함과 아담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조상들을 추적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목록에 싫증을 느끼는 경향이 있지만, 원래 성경이 쓰여졌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이들 족보가 실제 역사에 있었던 이야기와 실제로 살았던 사람들에 바탕을 둔 것이므로, 성경의 중요한 부분으로 보았을 것이다.


아담에서 노아까지

창세기(5장과 11장)에서 처음 등장하는 족보에는 아들을 낳았을 때 아버지의 나이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연대기 족보(chronogenealogies)’라 부른다. 이로부터 우리는 각 세대마다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를 매우 높은 정확도(일 년 이내)를 가지고 알아낼 수 있다. 또한 이름들 사이에 간격이 없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원래 성경이 쓰여졌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이들 족보를 성경의 중요한 부분으로 보았을 것이다.

창세기 5장은 아담에서 노아에 이르는 10세대를 제시하며, 노아의 세 아들들로 끝을 맺고 있다.

그 족보는 족장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제시해 줄 뿐만 아니라, 각각의 자손에 대해 그가 아들을 낳을 때의 나이와 그의 전체 수명, 두 가지 핵심 통계(수치)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의 요점은 아담과 노아 사이에 많은 세대와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다. 문맥에 따르면, 인류의 타락으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와 그들의 숫자적 성장이라는 두 가지의 개념이 명백하게 반복된다. ... 또한 마치 ”여기서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말하듯이 하면서, 그들 사이의 문학적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1]

그러나 그것은 ”여기서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로부터 대홍수에 이르는 시간표를 만들 수 있게 하기에 충분히 특별하다. 족보에는 몇 가지 중요한 신학적 요점이 들어있다. 첫째, 아담의 아들 셋은 ”그 자신의 모양 곧 그의 형상과” 같았다(창세기 5:3). 이것은 아담이 자기의 죄성을 그의 후손에게 물려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 Broken images). 둘째, 죽음이 죄와 함께 했다. ”그는 ... 죽었더라”가 족보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데, 이는 하나님이 에녹을 죽음 없이 데려가셨다는 예외적 기록이 오히려 더 놀랍도록 하며, 죽음이 인류의 최종적인 끝은 아니라는 암시를 준다. 노아가 그들에게 쉼을 주리라는 라멕의 선언 또한 창세기 3:15절에서 구세주를 보내주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대홍수 이전의 경건한 사람들의 세대를 이어져 내려오는 소망이었음을 말해준다.

역대상 1장과 누가복음 3장은 이들 족보가 완전히 역사적 사실인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족보의 품격을 신화적 지위로 떨어뜨리는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연대기 족보의 순수한 가르침뿐만 아니라, 성경의 나머지 부분이 그것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나라들의 표

창세기 10장은 정확한 족보만이 아니라,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의 기원을 추적할 수 있게 한다. 거기서는 이스라엘과 관련이 없는 지역의 사람들은 다루지 않는다. 예를 들어, 중국인, 아일랜드인, 호주 원주민들의 기원은 찾아볼 수 없고, 모세 시대에 중동에 살던 사람들만 다루고 있다. 이 부분은 셈, 함, 야벳으로부터 나온 민족 뿐 아니라, 그 후손들에도 관심이 없다. 벨렉의 때에 세상이 나뉘었다는 언급 외에는 연대기적 상세함이 거의 완전히 빠져있다는 것이 그것을 뒷받침한다(그러나 창세기의 이 부분에서, 이야기는 흘러 바벨에서의 혼돈으로 이어진다). (참조 : In Peleg’s days, the earth was divided’: What does this mean?)

이들 중 많은 나라들이 이스라엘의 적이 되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그들이 노아 아들들의 공통적 후손이라는 것과 대홍수 이후 나라들의 형성에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개입하셨다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성경을 꼼꼼하게 읽는 독자들에게는 이들 나라 중의 일부가 궁극적으로는 약속된 구세주를 통하여 구원받을 개인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다말, 룻, 라합 같은 사람들도 구세주의 조상 속에 포함되어 있다.


셈에서 아브라함까지

창세기 11장은 셈에서 시작하여, 노아처럼 세 아들의 아버지인 데라까지 아홉 세대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아브라함이었다. 이 족보는 창세기 5장의 족보와 마찬가지로 ‘연대기 족보’이다. 여기서는 창세기 5장과 다르게 ”... 죽었더라”는 반복구절이 없으며, ”X가 Z를 낳은 후에 Y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라는 식으로 약간은 더 낙관적이다. 이것은 바벨 이전 이야기를 아브라함 및 그 후손의 역사와 연결해 주는 문학적 기능을 담당한다.

이 족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요소는 수명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참조 : Decreased lifespans). 창세기 5장에서 유일하게 (평균과 비교하여) 매우 짧은 수명을 가졌던 에녹은 하늘로 데려감을 당했지만, 대홍수 이전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긴 수명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홍수 이후에 각 세대는 점점 더 짧은 생애를 살았으며, 많은 자녀들이 자기들보다 오래 산 부모 혹은 할아버지 이상의 세대보다 먼저 죽었다. 아브라함 시대의 수명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보다 두 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들 족보는 역사 속의 특정한 장소에 살았던 각 사람의 연대기를 기록함으로써 창세기가 신화가 아니라, 실제 역사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족보에 나오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을 기록한 유일한 목적은 한 명의 중요한 사람을 다른 사람과 연결시키는 것으로 보인다(예를 들면, 노아를 아담까지 거슬러 연결시키는).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은 히브리인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대인의 족보

구약 시대에 모든 유대인들에게는 자기 지파의 유래를 입증하기까지 자기의 계보를 추적하는 것이 중요했다. 더욱이 레위지파와 아론의 후손에 있어서는 그들이 제사장으로서 합당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특히 더 중요했다(에스라 2:59~63절을 보라). 따라서 모세 시대에 그는 레위, 고핫, 아므람의 후손임을 말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기간은 400년으로 추정되는 기간이며, 그에 해당하는 세대의 1/4 정도만 주어졌다. 그렇지만 그것이 문제 되지는 않는다. 그 족보는 조상들 모두의 이름을 빠짐없이 나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모세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레위와 그의 아들, 그리고 모세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구약의 다른 족보에 대해서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유다의 아들 베레스와 다윗 사이에는 1,000년 정도의 기간이 있지만, 룻기 4:18-22에는 10세대밖에 나와 있지 않다. 역시, 전체 족보를 빠짐없이 가지고 있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역시 같은 이유로 그것이 문제되지는 않는다.


마태복음의 족보

앞의 기사에서 논의했듯이(참조 : The genealogies of Jesus), 마태복음의 족보를 기록한 목적은 정당한 상속인의 합법적 가계를 다윗의 보좌까지 추적하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생물학적 후손 뿐 아니라, 남자에게 후손이 없을 경우, 자격을 잃은 ‘양자’도 포함되어 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명백히 덜 중요한 사람을 생략하는 ‘단축기법’을 사용했다.

마태는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마태복음 1:17)라고 언급한 세대의 숫자 때문에 자기가 선택한 이름들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가장 가능성 높은 설명은 ‘다윗(David)’의 이름에 대한 숫자 값을 합하면 14가 된다는 것 때문이다.


누가복음의 족보

족보를 정확하게 해석하면 그것들이 신뢰할만한 역사적 기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누가복음의 족보는 훨씬 더 완전한 것으로 보이며, 그것은 아마도 마리아의 생물학적 족보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윗으로부터, 그리고 아담으로부터 예수님의 생물학적 조상을 알게 된다. 우리는 누가가 우리에게 예수님과 다윗을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연결하는 고리를 제공하기를 원했다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아담부터 다윗까지는 구약의 자료를 이용했는데, 위에서 설명했듯이 거기에는 간격들이 존재한다.

다른 모든 족보들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내려가는데,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그래서 그것은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로 끝난다. 이것은 그 족보가 ”하나님의 아들”로 시작하고 마친다는 것을 의미하며, 예수님이 아담의 공통 자손이라는 것을 통해 모든 인류와 연결되어 있다는 신학적 논점을 멋지게 만들어낸다.


믿을 수 있는 역사적 기록

성경에 등장하는 족보들을 조사할 때, 그들 각각의 배후에 있는 목적을 살펴봐야 한다. 그러면 그것들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정확하게 해석할 때, 우리는 그것들이 믿을 수 있는 역사적 기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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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ealogies of Jesus


Further Reading
•Genesis Questions and Answers


References and notes
1. Kein, W., Blomberg, C., Hubbard, Jr, R., Introduction to Biblical Interpretation (Thomas Nelson: Nashville, 1993), p. 340.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creation.com/genealogy-gaps

출처 - CMI, 18 December, 2014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071

참고 : 4726|4713|5034|3707|3783|2936|3372|3249|6066|6064|5986|5969|5985|5870|5935|5628|5627|5394

Jonathan Sarfati
2014-02-17

구레뇨의 인구조사 누가가 잘못 알았을까?

(The Census of Quirinius : Did Luke get it wrong?)


      전통적인 성탄절 시즌 동안에 수백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마태와 누가의 예수 탄생 구절을 읽는다. 위대한 역사가였던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 시기와 배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이것은 구약에서 메시야에 관한 예언과 연결이 되는데, 탄생 시기는 다니엘서 9장, 장소는 미가서 5:2절에 들어있다. 누가복음 2:1~7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눅 2:1~7)

이 구절은 몇 가지 배경에서 회의론자들의 표적이 되었는데, 거기에는 인구조사의 실재성과 시기, 그리고 베들레헴으로 여행해야 할 필요성 등이 포함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종종 지적하였듯이, 경험에서 얻은 좋은 일반 원리는 ‘성경에 대한 회의론자들은 항상 틀리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드로전서 3:15절과 고린도후서 10:5절에 있는 성경의 명령에 따라 우리 믿음에 대한 이유를 갖고, 반대되는 논쟁들을 부숴버리자.


‘모든 세계(천하)’

어떤 사람들은 누가복음 2:1절에 있는 누가의 어법을 조롱한다. ”천하라고? 분명히 호주의 원주민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어!” 영어 번역에서도 그 본문을 이렇게 읽는 것은 어리석고 어색한 방식이다. 누가복음의 이 구절에서 ‘세계’라는 단어는 전 세계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을 논박하는 기사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

”이 절이 그리스어로는 πᾶσαν τἠν οἰκουμένην(파산 텐 오이코우메넨)이며, 그리스어를 생각해야 한다. ‘세계’로 변역된 기본 단어는 οἰκουμένη(오이코우메네)인데, 이 단어에서 ‘에큐메니칼(세계적인, 전반적인, 보편적인)’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리스 학자들은 신약성경에서뿐 아니라, 그 당시 세속의 그리스 문헌에서도 오이코우메네는 종종 ‘로마 제국’에만 국한된 것으로 사용되었다고 알고 있다. 따라서 아우구스투스 시저(가이사 아구스도)는 실제로 모든 오이코우메네, 즉 모든 로마제국의 인구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스코틀랜드의 아베르딘(Aberdeen) 대학의 신약 해석 명예교수인 마샬(I. Howard Marshall, 1934~)는 누가복음 주석가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렇게 설명한다 :

”ὀίκουμένη(오이코우메네)는 ‘거주하다’는 뜻의 ὀίκέω에서 나온 말로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라는 뜻이다. 그것은 로마제국에 대해 사용하는 말로써, 그것을 모든 세계로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NIV 성경에서 이 구절을 ‘전체 로마 세계’로 묘사한 것은 맞다.


구레뇨 시대에 인구조사를?

회의론자들은 누가가 시기도 잘못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요세푸스의 주장에 따라 AD 7년 이전에는 구레뇨(Quirinius)가 시리아의 총독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헤롯 대왕이 죽기 전인 BC 4년에 태어났다. 그렇다면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이라고 말한 것은) 누가가 구레네의 치하에서 수행되었던 매우 잘 알려진 거대한 인구조사를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터무니없는 비난이다. 표면상으로 보더라도, 누가가 헛갈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 사도행전 5:37절에서 그는 AD 7년에 있었던 거대한 인구조사를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여기서 누가는 그것이 어떤 인구조사를 말하는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의 최초 독자들은 ”그 인구조사”가 어떤 것을 말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인구조사의 그리스어 단어로 ὰπογραϕῂ(아포그라페)를 사용했는데 이는 누가복음 2장에서와 같은 단어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그 둘 다 누가가 구레뇨가 실시했던 인구조사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

1. 누가복음 2:1~2절의 인구조사는 나중에 구레뇨가 행한 본격적인 인구조사가 아니라, 첫 번째 인구조사였으며(많은 성경 역본의 누가복음 2:2절에 ”첫 번째 인구조사(처음 한 것이라)”라고 되어 있다), 이는 사도행전에서 언급된 대대적인 인구조사 같은 것이 최소한 한 번 더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구레뇨가 시리아를 두 번, 한번은 BC 7년경에, 그리고 AD 7년경에 또 다시 통치했음을 의미한다. 고고학자이며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의 교수였던 윌리엄 미첼 램지 경(William Mitchell Ramsay, 1851~1939)은 구레뇨가 연속하지 않는 두 번에 걸쳐 시리아를 지배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1746년에 발견된 라틴 티부르틴(Tiburtine) 비문에 근거한 것으로, 누군가가 시리아를 두 번 통치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램지는 구레뇨가 그 기록에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푸블리우스 술피시우스 퀴리니우스(구레뇨, Publius Sulpicius Quirinius, BC 51~AD 21)는 가장 유능한 지휘관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의 터키산맥에 있는 갈라티아(Galatia)와 길리기아(Cilicia)의 호모나덴스(Homonadenses) 종족을 무찔렀다. 이것으로 인하여 그는 개선식을 했으며(‘개선식’은 위대한 승리를 축하하는 공공 행진이었다), 그가 죽은 후에는 공공장례가 치러졌다. 이것은 시리아의 공인된 통치자였던 푸블리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Publius Quinctilius Varus, BC 46~AD 9)와 대조가 된다. 그는 BC 7~6년과 BC 5~4년에 시리아를 통치했었다. 바루스는 재산을 거의 몰수하는 세금을 부과했으며, 2000명의 유대인 폭도들을 십자가에 처형한 잔인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더 중요한 것은, AD 9년에 있었던 튜토버그 숲 전쟁(Battle of the Teutoburg Forest)에서 세 개의 로마군단 전체가 전멸하도록 이끈 것으로 악명이 높다. 사람들은 그 전쟁을 클라데스 바리아나(Clades Variana) 혹은 바루스의 재앙(Varian disaster)이라고 부른다.

판단력이 좋았던 아우구스투스 시저(BC 63~AD 14)는 바루스가 인구조사를 감독할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나리오에 의하면, 아우구스투스는 구레뇨(Quirinius)가 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지시했다. 이 시기쯤 구레뇨의 개선식 현장인 길리기아가 시리아의 속주로 합병되었던 것이다. 그리스어 구절은 ἡγεμονεύοντος τῆς Συρίας Κυρηνίου(헤게모뉴온토스 테스 수리아스 쿠레니오우)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 총독(Governor)보다 낮은 직급의 관직인 지방총독('Legate”)을 뜻하는 단어 헤게몬에 근거한 동사구문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학자 글리손 아춰(Gleason Archer, 1961~2004)는 이렇게 제안한다 :

”효율성과 신속한 처리를 보장하기 위해, 아우구스투스는 사투르니우스(Saturnius)의 통치 말기와 BC 7년의 바루스의 재임기간 시작 사이에 시리아에서의 인구조사 등록을 맡을 사람으로 구레뇨(Quirinius)를 임명했다는 것이 타당하다. 그가 BC 7년의 인구조사를 유능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아우구스투스가 나중에 AD 7년의 인구조사를 그에게 맡겼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2. 이것은 구레뇨의 인구조사가 아니라 별칭으로 "그 인구조사”라고 부르는, 구레뇨 이전의 인구조사이었다. 신약학자 라이트(N.T. Wright)는 누가복음 2:2절의 πρῶτος(프로토스)는 ‘최초’를 의미하기도 하고, 소유격 앞에 나오면 ‘이전’을 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요한복음 1:15, 15:18 참조). 라이트의 견해를 많은 학자들이 지지하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맨체스터 대학 라이랜드 캠퍼스의 성경 비평학 교수였던 브루스(F.F. Bruce, 1910~1990)는 그 구절을 이렇게 번역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이 등록(인구조사)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이었을 때 했던 인구조사 이전의 것이었다.” 달라스 신학대학의 저명한 신약학 교수였던 헤롤드 호너(Harold Hoehner, 1935~2009)는 그 구절을 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인구조사는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이었을 때 했던 인구조사 이전의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탄생할 즈음에 했던 인구조사는 구레뇨가 시리아를 통치하기 이전에 일어났던 것이었다. 위에서 밝혔듯이 누가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베들레헴으로의 여행

어떤 사람은 무거운 몸의 임산부(마리아)가 그 먼 거리를 여행해야 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 기사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에서의 거리는 짧다. 1967년 이전만 해도, 요즘의 주에 해당하는 구역의 폭이 9마일(14.5km)밖에 안 되었는데, 이는 워싱턴 순환도로 폭의 반에 해당한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양아버지가 여행한 거리는 다소 멀기는 하지만, 그래도 70마일(113km)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마리아는 몸이 그렇게 무겁지 않았을 수 있다. 본문에는 예수님이 '그들이 그곳에 있는 동안에”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을 뿐, 그들이 도착한 그날 밤에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그래도 여전히 그들이 그곳으로 가야 했다는 것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는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기의 고향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 법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고고학적 발견은 누가의 정당함을 입증해 준다.

20세기 초반에 AD 104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파피루스가 발견되었다. 여기에는 이집트의 로마인 총독 가이우스 비비우스 막시무스(Gaius Vibius Maximus)의 다음과 같은 칙령이 들어있었다:

”가족별 등록이 다가오므로, 어떤 이유로든 자기 지역을 떠나있는 사람은 통상적인 과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자기 고향으로 돌아오도록 명령을 내려야 한다.”

위의 칙령에서 '등록”으로 번역한 단어인 ‘아포그라페’는 누가가 '인구조사”에 대해 사용한 것과 동일하다.

국제표준 성경사전(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예를 들어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에 의하면, 이집트의 장관(AD 104년)이었던 가이우스 비비우스 막시무스의 법령은 자기 지역을 떠난 모든 사람은 다가오는 인구조사에 대비하여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이었다(누가복음 2:1~5 참고).”

이것은 주로 이주 노동자들과 관련된 것이지만, 복음주의자가 아니었던 레이몬드 브라운(Raymond E. Brown, 1928~1998)은 혈통을 중요하게 여겼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보다 폭넓은 배경을 갖는다고 보았다.

”로마인들은 종종 지역적인 상황에 맞는 행정을 펼쳤기 때문에 유대지방에서 수행되었던 인구조사는 유대인의 지파와 조상의 관계가 강하게 밀착되었다는 것을 고려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누가의 기사를 뒷바침하는 또 다른 파피루스가 있다. 여기에 아버지의 관점에서 자기 가족을 바라본 글이 들어있다 :

”나는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임페라토(황제) 10년에 ...와 타오피스(Taopis)의 딸 타아시에스(Taasies)와 나에게서 태어난 아들 파켑키스(Pakebkis)를 등록했으며, 앞에서 언급한 나의 아들 파켑키스의 이름이 명단에 들어가도록 요청했다....”

이것은 로마의 지배 하에서 가족의 등록이 일상의 사실이었음을 보여준다.


결론

증거는 램지가 평생을 걸쳐 신약에 관하여 고고학적으로 연구한 것을 뒷받침해 준다 :

”나는 누가의 신뢰성을 고려할 때 그의 역사가 탁월하다는 관점을 취한다.... 다른 어떤 역사가들보다도 누가의 말을 더 받아들여도 좋으며, 그의 말은 예리한 조사나 혹독한 취급에도 견딜 수 있다.”

좋은 역사가들과 마찬가지로 누가는 우리로 하여금 성육신을 역사의 어떤 특정한 점에 위치시킬 수 있도록 상세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그에게는 신학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이 분리할 수 없도록 연결되어 있으며, 그 둘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이유가 된다.


<참고> ‘지역적’ 홍수?

어떤 타협자들은 누가복음 2:1절의 ”모든 세계”를 이용하여 창세기에서 가르치는 전 지구적인 대홍수를 공격하며, 지역적인 홍수가 동일과정설적 과학에 잘 들어맞는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아우구스투스의 지배가 분명히 호주까지 미치지는 못했다고 말하며, 그가 분명히 문자적으로 모든 세계에 등록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은 노아의 대홍수도 전 지구를 다 덮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첫째로 '세계”를 뜻하는 단어 οἰκουμένη(오이코우메네)는 전 지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에서 나타낸 바와 같이 로마제국을 의미한다. 둘째로, '모든”(창세기 기록에서 히브리 단어 לפ(콜))은 어떤 경우에는 전 지구를 뜻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창세기 7:19절에서는, 지역적인 홍수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해 어조를 훨씬 더 강조하고 있다.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And the waters prevailed exceedingly upon the earth; and all(콜) the high hills, that {were} under the whole(콜) heaven, were covered.” 류폴드(Leupold)는 ”‘all’(콜)의 이중 사용은 어떤 비교급의 의미로 볼 수 없다. 그것은 거의 히브리 단어의 최상급을 구성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 본문이 전 지구적인 대홍수의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믿는다”고 지적했다. 류폴드는 누가복음 같은 경우를 이렇게 논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이 ‘콜’을 한번 사용하는 경우를 무너뜨릴 수는 있지만, 본문의 경우처럼 ‘콜’을 두 번 사용한 경우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렇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creation.com/quirinius-census-luke

출처 - Creation ex nihilo, Vol. 36(2014), No. 1, pp. 42-44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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