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김무현
2004-11-10

아브라함과 욥은 어떻게 그것을 알았을까?


     창세기 22장 17절에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며 그 자손이 번성할 것과 그 자손에서 온 인류를 위하여 사단의 권세를 멸할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이 나온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창세기 22:17-18)

여기에 보면, 앞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셀 수도 없이 많아질 것이라는 비유로,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가 나온다. 천문학자 케플러 시대에만 해도 하늘에 있는 별의 총수는 1,000-1,500개 정도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 후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발명하면서 그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전자 망원경의 발명과 대기권 밖 우주망원경의 공로로 이 우주에 충만해 있는 별의 수는 그야말로 엄청나며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세는 것이 불가능함이 밝혀졌다.


구약성경 욥기에는 하나님이 자연과 피조물 등을 통해 욥에게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 하심을 알려주시는 시청각 교육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중 38:31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욥기 38:31). 

묘성(Pleiades)으로 알려진 처녀좌의 별들은 육안으로는 7개밖에 보이지 않고, 특정한 형체가 없이 서로 흩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천체 망원경으로 관측한 결과 수백 개의 별들이 서로 만유인력에 의하여 결합되어 있는 성단 즉 '떨기(cluster of stars)' 임이 밝혀졌다.  다시 말하면 묘성은 모여서 '떨기' 되어 있음을 이미 4000년 전에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하고 계셨던 것이다.  아브라함 이전의 부족시대에 살았던 욥이 그러한 사실을 다 이해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그렇게 기록할 수 있었을까? 성령의 인도로 성경이 기록되었음을 믿으려 하지 않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성경구절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은 우주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초월하심을 선포한다고 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시편 19:1).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시편 57:10). 

한편, 성경에서는 이 우주에도 분명히 종말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이사야 34:4).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헤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51:6)

이와 같은 배경을 고려할 때, 이사야나 시편 기자도 자기 상식에 의해 기록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여 주셨으므로 그렇게 쓴 것이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 시, 이 모든 우주만물을 사람을 위하여 만드셨음을 믿는 것 같이, 마지막 때 모든 인류를 심판하러 오시는 날, 이 우주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재창조/재편성하실 것임도 굳게 믿기 바란다.

 

 

*참조 : Pleiades and Orion: two ancient Hebrew word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2/j20_2_100-103.pdf
Pleiades and Orion: bound, unbound, or … ?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8_2/j18_2_44-48.pdf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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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김무현
2004-11-09

성경은 과연 비과학적인가?


      이 세상의 진리나 과학적 패러다임은 시대가 바뀌어 가면서 변해 간다. 하지만, 성령님에 의해 기록 된 성경은 시대의 흐름에 관계없이 참 진리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이러한 무오성은 과학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현 과학의 패러다임으로 뿌리를 내린 진화가 과학적 사실이라면 창세기의 창조내용이 근거 없는 비과학적인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창세기가 폐기되기보다는 진화론의 문제점들만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디 과학연구소의 소장이었던 어윈 문(Erwin Moon) 박사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내가 일생동안 성경의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수 차례에 걸쳐 과학적으로 어떤 문제나 모순이 있는지 면밀히 검토하여 보았으나 그러한 오류를 찾을 수 없었다."

에스겔 7:2과 이사야 11:12에 '땅사방'이라는 말이 나온다. 영어로는 네 구석들(four corners)로 번역되어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성경은 지구가 사각형으로 되어있다 하니 비과학적이고 오류가 있다"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corners'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나프'의 일반적인 의미는 '극한(extremity)'이다. 이 '카나프'는 욥기 37:3과 38:13에서도 쓰였는데 그곳에서는 땅끝(ends)으로 번역되었다. 땅 끝이란 번역도 땅에 끝이 있는 것처럼 잘못 전달될 위험이 있다(실제로 중세 및 그 이전의 사람들 중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음). 실제로 욥기 37:3은 "빛으로 아주 먼 곳(extremity)까지 이르게 하시고"란 뜻이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네 모퉁이를 가진 사각형을 말하고자 했다면 '파무드'라는 정확한 의미의 히브리 단어를 주셨을 것이다. 히브리 원어의 부적절한 번역 표현으로 발생된 오해들이다.

또 간혹 성경에 지구가 평평한 것 (flat earth)으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하는 비평가들이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성경에는 그런 구절이 전혀 없다. 오히려 욥기 26:7에는 "그는 땅을 공간에 다시며(He suspends the earth over nothing: NIV)" 와 같이 우주 공간 속에 아무런 지지도 없이 중력에 의해 떠있는 지구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이사야 40:22에는 "그는 땅 위의 궁창에 앉으시나니(NIV: He sits enthroned above the circle of the earth)"와 같이 지구가 원형임을 증거하고 있다. 'circle'이라는 말은 구상/원형을 의미하는 히브리 원어 '쿠그(khug=sphericity or roundness)'를 번역한 것이다. 잠언 8:2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을 두르실 때"에서도 같은 원어 '쿠그'가 'compass'로 번역되었다. 하여튼 성경에서는 분명히 지구가 구형으로 되어 있으며, 우주 공간에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오히려 더욱 놀라는 것은 B.C. 700년경에 살았던 이사야 선지자가 어떻게 지구가 구형임을 알았으며, 아브라함 시대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욥이 어떻게 지구가 이 우주 공간에 덩그마니 있을 수 있음을 알 수 있겠냐는 것이다. 문명이 발달했다고 하는 그리이스나 로마 사람들, 심지어 중세의 사람들까지도 지구를 거대한 코끼리나 거북이 또는 헤라클레스등이 받치고 있다고 이해했던 것과 비교해 본다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직 성령님께서 그들의 손을 빌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였음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누가복음 17:34-35을 읽어보면 예수님의 재림시 지구의 한편에서는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고 다른 한편에서는 낮에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예수님의 재림은 순간적이며 전지구적 사건일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주신 말씀이다. 이 당시 어느 누구도 지구가 구상이며 자전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지구 상에 밤과 낮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과학의 여러 분야의 박사학위를 가진 윌더스미스 (A. E. Wilder-Smith)는 그의 『성경의 신뢰성(The Reliability of the Bible)』이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성경은 과학교과서도 아니고 과학적 전문 용어로 쓰여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성경은 여러 과학적 현상들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한 어휘들로 명확하고도 무오하게 기록하였다."

당신은 당신의 친구로부터 성경은 오류가 많고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이러한 조롱에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사도 베드로의 말씀처럼 우리의 소망에 관해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온유와 두려움으로 준비하고 있는가?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베드로전서 3:15)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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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David Catchpoole
2004-10-10

고기를 먹지 않는 사자 

: 육식동물도 채식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 

(The lion that wouldn't eat meat)


     금세기 초, 아프리카산 암사자 한 마리가 미국에서 태어났고 자랐었는데, 9년 동안의 전 생애 동안 전혀 육식을 하지 않고 살았었다.1 사실 사자의 주인이었던 조지(Georges Westbeau)와 마가렛 웨스트뷰(Margaret Westbeau) 부부는육식동물들은 육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과학자들의 보고에 경각심을 가졌었고, 그들의 특별한 애완동물 (‘리틀 타이크(Little Tyke)' 라는 이름의)에게 육류를 먹이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노력했었다. 심지어 그들은 그 암사자가 좋아할 육류가 함유된 식사를 고안하는 사람에게 현상금을 걸기도 하였다. 뉴욕 동물원의 사육사는 웨스트뷰 부부에게 리틀 타이크의 우유병에 혈액을 몇 방울 섞는 것이 젖을 떼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지만, 그 새끼 암사자는 단 한 방울의 혈액이라도 섞여있는 경우에 그것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웨스트뷰 부부의 100에이커(40 헥타르)의 목장을 방문한 많은 방문객들 중 많은 식견 있는 동물 전문가들 또한 조언을 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리틀 타이크는 조리된 곡물과 날달걀, 그리고 우유를 주식으로 매우 건강하게 자랐다. 네 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완전히 성장했고, 몸무게는 160kg 이나 되었다.


조지 웨스트뷰는 리틀 타이크를 달래서 (육식동물의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어떻게든 육식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으로, 그의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준 사람은 히든 밸리(Hidden Valley) 목장의 ' 젊은 방문자' 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

 ”그는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 후 물었다. ”성경을 읽지 않습니까?” 나는 아마도 내게 필요한 만큼 읽지는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는 말을 이었다. ”창세기 1장 30절을 읽으면 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나는 처음으로 성경을 갖고 그가 말했던 그 문구를 펼쳤다. 놀랍게도 나는 다음의 말씀을 읽게 되었다.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리틀 타이크의 주인들은 사실 기독교인들은 아니었지만, 그 암사자가 육식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 대해 안심했고, 그 대신 태도를 바꾸어 그 암사자의 채식성 3사료에 추가할 새로운 곡물들에 대해 더욱 주의를 기울여 배웠다. 수많은 곡물들을 가루로 만들고 말린 상태에서 섞은 후, 조리하고 우유와 설탕을 혼합했다. 암사자는 가끔 점심을 포함하여, 매일 아침과 저녁에 이 혼합물로 사육되었다. (이빨과 잇몸의 조절을 위해  갉아먹기 위한 뼈들의 제공을 단호하게 거부했기 때문에, 리틀 타이크에게 씹는 용도로 무거운 고무장화를  주었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삼 주 가량을 견디었다.) 이 암사자는 이러한 사료로 겨우 생존만 하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튼튼하게 성장하였다. 미국의 가장 유능한 동물원 사육사 중 한 명은 분명히 ”그가 지금까지 보았던 사자 중에서 최상의 암사자 였다”고 말했다.


웨스트뷰 부부는 그들의 목장에서 리틀 타이크와 마찬가지로 다른 무리의 동물들도 돌보았다.  히든 밸리 (Hidden Valley)의 많은 방문객들 중 다수는, 이사야 11:6절의 예언과 흡사한 상황인 ”사자들이 어린 양과 뛰노는” 장면을 떠올리게 되었다. 암사자가 평온하게 양, 소, 그리고 공작들과 사는 모습은 많은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리틀 타이크의 TV 장면들과4 신문의 사진들 또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는데, 그 중 한 명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당신의 사자와 어린 양의 사진 만큼 저를 행복하게 한 것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성경을 믿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리틀 타이크의 경우를 비추어 볼 때, 다른 육식동물들의 선조들도 채식성 식사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5, 이것은 아담의 원죄 사건 이전에 동물들은 식물들을 먹이로 살았었다는 창세기의 기록과 쉽게 연관된다.6


”위의 상태를 조절하기 위해, 그 암사자는 한 번에 한 시간 가량을 소요하며 평원에서 즙이 많은 키 큰 풀들을 먹었다”는 웨스트뷰 씨의 관찰 또한 이사야 11:7, 65:25절의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라는 예언을 생생하게 기억나게 한다.



References and notes

1. Westbeau, G., Little Tyke: the story of a gentle vegetarian lioness, Theosophical Publishing House, IL, USA, 1986. (Information is drawn from pp. 36, 17, 3235, 5960, 113114.)

2. 이 암사자는 생후 하루가 지난 새끼로서 매우 심하게 할퀸 상처를 입은 채, 그 어미가 있는 동물원에 의하여 웨스트뷰 부부에게 보내졌다. 그 어미는 이전에 네 번의 출산에서 새끼들을 낳자마자 모두 죽여 버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물원 관계자들이 출산 순간에 그 새끼를 서둘러 구출하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었다. '리틀 타이크'의 구출은 성공했지만, 그 어미의 재빠르고 강력한 아래턱이 새끼 사자의 오른쪽 앞다리에 상처를 입혔었다.

3. 최근 많은 사람들은 달걀을 '채식주의' 식단에 포함시킨다. 이것은 수정이 안 되었기 때문에, 동물을 죽이는 것과 상관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달걀 (또는 장성한 동물들을 위한 우유)이 원죄 이전에는 식품의 일부로 포함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자가 생존하는 데에 육식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는 많은 식물들이 멸종되었다. 이는 원죄 이전(또는 홍수 이전)에는 식물계에는 매우 풍부한 단백질 공급원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게 한다.

4. 슬프게도, 헐리우드의 전국 TV 방송용 영화 제작 도중, 리틀 타이크는 폐렴이 걸려 몇 주 후 죽고 말았다.

5. 1980년 인도네시아에서 살았을 때, 몇몇 가족들은 그들의 애완견들이 먹는 음식 찌꺼기 중에 뼈들이 섞여있을 가능성은 있었지만, 그들에게 전혀 육류를 먹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보고서들은 그 나라에서는 매우 흔하게 있는 일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6. 성경은 원죄 이후에 어떻게 채식에서 육식으로 바뀌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지 않는다. 하나의 가능성은 하나님에 의한 '재설계(redesign)' 일 수 있다. 그래서 비록 오늘날의 사자들에게 고기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일지라도, 이것으로 창세기에 오류가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Answers in Genesis'의 글들을 살펴보라. 좀 더 깊은 논의를 위한 답들이 들어있다. 


 

* 관련기사 : 전주동물원: 독수리-닭 아름다운 동거 (2007. 4. 2. 동아일보)
http://www.donga.com/fbin/output?f=total&n=200704020249&top20=1

 

* 참조 : Lea, the spaghetti liones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6147/

The Scriptural advent of animal carnivory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5_1/j15_1_69-75.pdf

The carnivorous nature and suffering of animals
http://creation.com/the-carnivorous-nature-and-suffering-of-animal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2/i2/lion.asp

출처 - Creation 22(2):22–23, March 2000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245

참고 : 3046|2202|4451|2200|2291|5031|5903|5739

최무용
2004-07-28

성경과 과학은 잘 조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성경과 과학의 관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갈등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과학관으로 인해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과학에 비교해 시대에 뒤떨어진 책일까요? 아니면 과학과 성경은 다른 결코 연결될 수 없는 책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이 너무나 초과학적이어서 그 당시 과학이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지,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과학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의 한 부분으로서 성경과 과학은 자연스럽게 잘 화합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섭리 안에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인들의 고집만이 아니고, 실제로 과학적으로 증명된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과학에 위배된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가지게 된 것은 오늘날 진화론 일색의 교육이 마치 성경이 비과학적인 것처럼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무기물에서 우연한 충돌에 의해 유기물이 생겨나고, 여기서 최초의 생명체가 우연히 탄생했다는 화학진화론적 생명의 기원관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최초의 한 생명체에서 진화되어 나온 것에 불과하다는 생물학적 진화론이 그 원인인 것입니다. 이런 기원관으로 보면 결국 인간은 그 기원에 있어서 다른 동물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으며, 궁극적으로 무생물에서부터 생겨난 우연의 산물일 뿐입니다. 이런 인간 속에 무슨 도덕과 영원한 세계가 있겠습니까? 그냥 우연히 무기물에서 왔다 무기물로 돌아가면 그만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이러한 철저한 유물론적 사고에 근거한 진화론적 사고는 인간의 도덕관념을 흐리게 합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은 동물과 같은 조상에서 진화된 존재에 불과하며, 결국 동물과 같은 모든 행동을 할 수 있다고 까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진화론은 이미 신앙을 소유한 기독교인에게도 신앙성장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신앙이 시작된 후에도 이 문제가 분명히 해결되지 않으면 늘 방황하기 쉽습니다. 현재까지도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시절에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까지는 부모님의 강권에 못 이겨 교회를 나가고 자연히 창조에 관해 들어왔지만, 학교 교육을 통해 진화론만이 과학적 정설로 꾸준히 강요되면서 자연스럽게 진화론으로 세뇌되어 왔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대학에 들어가면 한꺼번에 밀려오는 너무 많은 자유 속에서 부모님과 교회에 의해 강요되어 온 비과학적인 창조론을 포기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현실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진화론적 교육을 강요당한 이들에게는 창조주 하나님은 하나의 우스운 전설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철저한 유물론적 사고로 세뇌된 이들에게 영적인 세계란 하나의 허황된 꿈과 같은 얘기일 뿐이며, 이러한 영원한 세계를 갈망할 필요도 없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독생자도 예수 그리스도도 별 의미 없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교회 주일학교에서도 청소년 때부터 신앙과 함께 진화론의 비과학성과 창조론의 과학성을 가르침으로 성경은 현대과학과 모순된다는 잘못된 학교 교육을 교정해 주어야 합니다. 일단 이렇게 기본적인 것에 확신이 생기면 그 후에 새로운 이론과 반론이 엄습해 올 때 스스로 방어할 준비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진화론과 창조론이 서로 공격하는 장면 . 진화론은 기독교의 창조(근원)를 공격하는 반면, 기독교에서는 진화론의 열매만 공격하고 있다.



출처 - 목회자사모신문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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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최무용
2004-07-28

성경 속의 신기한 과학이야기 ② : 해로의 발견자 매튜 머리


    오늘은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여러분 혹시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바로 해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 듯이 바닷물은 고여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패턴을 갖고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해류라고 하지요. 배들이 바로 이 해류를 따라 이동하면 보다 안전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다의 길을 최초로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해양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은 바로 매튜 머리 박사(1806~1873)입니다. 매튜 머리 박사는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바다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일찌감치 선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항해 중 불의의 부상을 입게되었고 사고 후부터 해양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842년 그는 워싱턴에 있는 해양관측소의 소장이 되었습니다.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매튜 머리 박사가 바다의 길을 발견하게 된데는 다음과 같은 성경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1927년 찰스 루이스라는 사람이 쓴 「해류의 발견자 매튜 머리」라는 책에 보면 그가 아파서 침대에 누워 꼼짝 못하고 있을 때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부탁으로 밤마다 그에게 성경을 읽어주었다고 합니다.그러던 어느날 아들은 시편 8편을 읽게 되었는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라는 8절의 말씀을 듣는 순간 영감을 받고 “내가 해양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해로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들어보았다. 그러나 성경에 해로가 있다고 말씀하셨다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병이 나으면 한번 그것을 찾아야보아야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윽고 그는 대서양 바닷물의 온도와 해류 그리고 바람의 흐름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시행하여 바람과 해류의 순환 사이에는 상호 관련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냈습니다.또한 1855년 그는 항해일지를 참고하고 바람과 해류에 관한 보다 자세한 연구 끝에 북대서양을 가로지르는 항로와 기상도를 작성하였습니다.그가 작성한 항로는 후에 국제협정의 기초가 되었고 이것이 최초의 해도와 해상 기상도였던 것입니다.

미국의 남동부에 있는 바다인 멕시코만에는 적도의 북쪽을 흐르던 해류가 쿠바의 남쪽에 위치한 카리브해를 거쳐 흘러 들어와서는 플로리다해협을 지나 대서양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이 해류는 적도 부근의 따뜻한 바닷물을 몰고 와서 대서양을 거쳐 멀리 서유럽에까지 이르게 되는데,서부유럽의 온화한 기후가 바로 이 해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 해류를 멕시코만류라고 부르는데 바로 매튜 머리 박사가 발견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양학 연구를 위해 평생을 바친 매튜 머리박사는 1873년 2월 1일 그의 고향인 버지니아주 렉싱턴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그 후 사람들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23 그가 태어난 버지니아주의 리치먼드와 고쉔 지방에서는 그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고쉔 지방에 있는 그의 기념동상의 비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쓰여 있습니다.

"해로의 발견자인 그는 대양과 바다로부터 처음으로 그 법칙을 찾아낸 천재였다. 오가며 바다를 항해하는 모든 세대의 항해자들은 해도를 볼 때마다 당신을 생각하리라. 특히 성경의 시편 8편8절과 107편 23.24절,전도서 1장7절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음을 밝힌다."

이것은 2000여년 전에 쓰여진 성경말씀에 대한 신뢰가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이루어 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성경이 과학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가 충만한 책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과학이란 이름으로 성경을 교회 안에 묻어버린다면, 과학의 근본 목적인 자연세계 탐구는 잘못된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출처 - 목회자사모신문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798

참고 :


남병곤
2004-07-28

운동과 창조섭리


      보편적 진리와 은혜 가운데 있는 인간은 성서의 말씀에서 벗어나 초연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운동을 선택한 이들이라면 이 말씀을 아예 마음의 판에 새겨야 할 만큼(잠 6:21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스포츠의 키워드다.    

보통 운동 시작 후 6개월쯤이면 체력의 지수(근력 • 근지구력 • 심폐지구력 • 평형감각 • 유연성 • 순발력 • 민첩성)가 점차 높아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근력이나 근지구력, 심폐지구력, 평형감각, 유연성 등은 굳이 전문적인 시각이 아닌 상식으로 접근해도 이해가 가능하지만 순발력과 민첩성은 그렇지 않다. 순발력은 보통 0.8-1초 이내에 어떤 동작을 시작해서 완료하는 것이고 민첩성은 순발력이 요구하는 시간을 단위로 같은 동작을 7-8회 반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첩성은  순발력에 기초하고 있으며 순발력은 민첩성에 의해 강해진다. 

이런 체력의 요소 즉 지수가 높아지면 많은 이들은 자신의 체력을 시험하고 싶은 강한 유혹에 빠지게 된다. 이런 유혹은 스포츠심리학에 따르면 내면의 욕구에 뿌리를 박고 있다.    보통 이 욕구는 1년 후쯤에 강하게 분출하는데 이 욕구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체력의 지수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많은 이들은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운동의 강도를 과감하게 높이곤 한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체력의 한계상황에 도전하면서 야릇한 만족감에 사로잡히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다. 

그렇다면 체력의 한계상황에 도전하는 고강도 운동이 왜 '체력의 실수'로 평가받는 것일까.고강도 운동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 그에 대한 해답은 명쾌해진다. 고강도 운동은 세포내 DNA를 심각하게 손상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한양대학교 임인수박사(운동생리학)가 최근 운동과학회지에 발표한 ‘운동 강도별 산소레디칼(활성산소)에 의한 DNA손상정도와 항산화제의 방어효과’ 란 제목의 논문이 바로 그것이다. 임 박사는 하루 평균 1시간씩 주당 4일 정도 7개월이상 규칙적으로 유산소성 운동을 한 H대학교 체육학과 16명을 대상으로 고강도(6명), 중강도(5명), 저강도(5명) 등 세 그룹으로 나눠 운동 상황(안정시, 운동 직후, 운동 후 60분, 운동 후 120분)에 따른 DNA손상 정도를 파악키 위해 실험에 들어갔다. 고강도 운동은 최대운동능력의 90%상태에서 하루 평균 20분, 중강도는 70%에서 35분, 저강도는 45%에서 50분씩 운동을 실시토록 했다.

최대운동능력은 가장 강한 운동부하를 말하는데 여기에는 최대산소섭취량과 최대심박수 및 운동자각도 등이 고려돼 운동부하가 결정된다. 이 같은 운동 강도와 시간은 미국 대학스포츠의학회(American Collage of Sport Medicine ; ACSM)가 제시한 유산소성 운동프로그램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임 박사는 실험운동이 끝난 후 이들 세 그룹에서 각각 안정 시, 운동 직전, 운동 후 60분, 운동 후 120분 등 4개 시점으로 나눠 채혈, DNA손상 정도를 분석했다. 채혈분석결과 중 • 저강도 운동 그룹은 DNA손상에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나 고강도 운동 그룹은 현저한 차이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강도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은 운동전 안정시(공복시) DNA손상 정도가 2.86에서 운동후 120분이 지나면서 4.09로 껑충 뛴 것으로 조사됐다.

DNA가 파괴되면 노화가 촉진되고 각종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학계의 해석은 이제는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이 자신의 또래보다 훨씬 나이가 많게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고강도 운동 시 DNA가 손상을 입는 것은 몸속에서 발생한 활성산소 때문이라는 것이 생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최대운동능력의 90% 상태에서 20분 동안 운동을 지속시켰을 경우 섭취된 산소는 완전히 처리되지 못한 채 평소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남게 된다. 통상 운동을 하지 않거나 저강도 운동을 했을 때는 25%정도 쌓이게 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렇게 잔류된 산소는 정상적인 산화과정을 거치지 않고 불완전한 산화 등에 의해 활성산소로 변종된다. 이것이 바로 세포막을 파괴하고 DNA를 손상시키는 산소독이다. 체내에서 발생한 활성산소는 다행히 내부 항산화효소에 의해 무력화되지만 그래도 평상시에는 5%,고강도 운동 시에는 10%이상 남게 된다. 이렇게 남은 활성산소를 처리하기위해 강력한 항산제인 비타민-C • E, 베타카로틴, 세레늄 등을 다량 섭취할 것을 전문가들은 권하고 있다.

그렇다면 고강도 운동 시 이런 엄청난 활성산소가 왜 생성 될까.  격렬한 운동을 하면 몸속의 혈류가 재분배된다. 예컨대 간, 신장, 위, 장과 같이 직접적으로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기관들은 혈액을 활동근이나 심장과 하체에 보낸다. 이 때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기관들은 저산소증인 심각한 산소 부족현상을 겪게 되는데 이를 국소빈혈재관류라 한다. 이런 산소부족 현상은 운동이 종료되면 서서히 정상을 되찾는데 바로 이때 혈류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폭발적으로 활성산소가 생성된다. 임 박사의 연구논문에서 보듯 운동종료 후 120분의 시점에서 DNA손상정도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난 것은 고강도 운동을 했을 경우 그 여파 즉 피로도나 혈류의 재분배 등이 운동종료 후 120분까지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강도 운동의 위험성은 스포츠심리학이나 한의학에서도 지적되고 있다. 양쪽 영역에 따르면 운동 시 에너지는 두 종류인데 바로 의식과 무의식 에너지가 바로 그것이다. 의식에너지는 수의근(맘대로 움직이는 근육)에서, 무의식 에너지는 불수의근(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근육. 주로 오장 육부의 내장 근육이 여기에 속한다)에서 분출된다. 그런데 고강도 운동을 하면 수의근의 의식에너지가 고갈되기 때문에 불수의근에 내재된 무의식에너지를 끌어다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내장 등에 저장된 에너지를 끌어다 사용하게 되면 자연히 그 영역의 기운이 빠져 허(虛)하게 된다. 결국 고강도 운동에 의해 내장 영역이 허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이론의 출발은 프로이드 심리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이는 현대과학에 의해 최근 그 실체가 밝혀지고 있다.  

그렇다면 고강도 운동이 세포를 갉아 먹는 해당행위임에 불구하고 계속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지나친 자기 정당화 가설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외적 보상이 충분하게 다가오면 내적 판단보다 외적 보상에 훨씬 더 깊게 빠져든다는 이론이다. 체력의 지수가 눈에 띄게 높아져 외적 보상이 확인되면 고강도 운동이 DNA를 손상시킨다는 내적 판단보다 보이는 외적 보상에 더욱 집착한다는 해석이다. 자기 정당화 이론은 욕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결국 욕심이 고강도 운동을 불러오고 그것은 건강의 지수를 떨어뜨려 인체의 창조섭리를 깨뜨리게 되므로 성서는 이렇게 갈파하고 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출처 - 창조지, 제 136호 [2003. 4~6]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122

참고 :

이은일
2004-07-28

[창조의 신비] 레위기는 위생―보건 가르친 첫 의서


      인류는 질병과의 오랜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질병과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인류의 오래된 꿈이었다. 인체 해부학이 연구되고 항생제나 수술 기법이 발전되기 전까지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약초 등의 식물을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었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환경보건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었다. 나쁜 환경으로부터 질병이 옮겨진다는 개념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있었다. 이때의 개념은 ‘장기설(miasma theory)’이라고 하여 나쁜 공기에 의해 질병이 걸린다고 생각하였다. 예를 들면 습지가 있으면 말라리아에 걸리기 쉽다는 것이. 질병의 원인균, 매개동물들에 대한 의학적인 지식이 없었던 시대에 이런 장기설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고, 이런 장기설에 입각해 공기가 잘 통하는 곳, 해가 잘 드는 곳이 좋은 곳이라고 인식하였다. 이런 장기설은 17세기까지도 지배적인 이론으로 작용하였다.


인류 역사상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환경 위생과 보건을 강조하는 최초의 체계적이고 대규모적인 저서는 성경의 ‘레위기’이다. 모세의 저작으로 알려진 이 책은 집단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생적으로 살 수 있도록 자세하게 방법이 기술되어 있다. 상한 음식을 먹지 않도록 상하기 쉬운 돼지고기나 오징어 등의 연체류, 죽은 동물 등의 섭취를 금하고 물로 씻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전염병이 우려될 때는 집단과 격리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먹고 마시고 배설물을 처리하고, 물로 씻는 등의 위생처리에 대한 성경의 체계적인 기록은 영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이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을 무시하고 인간의 전통과 주장이 강조됨으로써 인류 역사는 전염병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전염병의 창궐이 계속되었다. 위생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써 14세기는 페스트가 대유행하여 유럽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되는 250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한센병(나병)도 13세기까지 정점으로 치달았다. 당시 유럽 사람들은 목욕을 하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믿었고, 따라서 냄새가 나는 것을 가리기 위해 향수가 발전되기도 했다. 16세기에는 문란한 성생활 때문에 매독이 대유행하였다. 이런 전염병이 유행하고 나서야 레위기에 기록된 격리의 개념을 사람들이 받아들여 검역제도가 실시되기 시작하였다.


전염병에 대한 검역 조치 등 여러 조치는 전염병을 줄이는데 많이 기여했지만 가장 결정적으로 전염병을 감소시킨 것은 영양상태의 개선이다. 이것은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해 영양결핍 상태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병은 치명적이 되지만 영양상태가 개선된 후에는 전염병에 걸려도 사망하는 사람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성경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특히 고아와 과부를 그 지역사회가 부양하도록 명령하고 있다. 이것은 질병에 걸려 다른 사람에게 질병을 옮길 사람들의 수를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이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위생, 격리, 사회적 보장은 전염병의 창궐을 예방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질병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성경의) 지식을 활용하지 못해 엄청난 전염병의 피해를 본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 들어서면서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은 질병으로부터 인류가 곧 해방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백신과 항생제 등에 힘입어 전염병은 이제 더 이상 문제딜 것이 없으며 암 등의 성인병을 정복하는 것이 인류의 다음 과제라고 공언하였다. 그러나 지난 81년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이 발견된 이후 99년 한해에만 해도 전세계적으로 5400만명의 AIDS 환자가 발생하였다. AIDS의 창궐 이후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이 중요한 전염병으로 대두되었을 뿐 아니라, 과거의 전염병으로 생각했던 결핵 등이 다시 재발하고 있으며 말라리아 등 열대성 전염병은 그 기세가 전혀 꺾이지 않은 상태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런 질병의 창궐은 성경이 말하는 삶의 방향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AIDS 창궐 원인은 문란한 성생활 때문이고 가난하고 굶주린 자가 방치되고 있는 아프리카 제국은 AIDS로 나라가 멸망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근본적인 죽음과 질병의 원인은 인간의 죄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동시에 성경은 사람들이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날이 의학이 발전하기 때문에 암과 같은 불치병도 곧 정복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성경은 질병의 예방이 의학의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위생, 단체위생, 공동체가 함께 건강해지도록 노력하는 건강한 삶의 태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진리임에도 사람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용어해설

△장기설 : 나쁜 공기에 의해 질병이 옮겨진다는 학설. 세균이나 매개동물에 대한 지식이 발달되기 전에 유행하던 설로서 콜레라가 오염된 물에 의한 것인지, 나쁜 공기에 의한 것인지에 대하여 19세기에 논쟁이 붙었던 적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매개동물 : 뇌염 모기와 같이 질병을 옮기는 동물. 주로 모기 벼룩 등의 곤충이 많다.

△한센병 : 나병의 공식명칭. 나병 환자는 모두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수 있는 심각한 환자로 생각하지만 실제 치료받고 있는 나병환자는 사람들에게 전염시키지 않는다. 나균은 정상적인 사람들을 감염시킬 능력이 매우 약하다. 나병이라는 이름 자체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주기 때문에 지금은 한센병이라고 공식 명칭을 바꾸었다.

△현대의학 : 해부학 등의 발전 이후 서양의학의 근간이 된 의학.생의학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것은 현대의학이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측면은 무시하고 지나치게 생물학적인 면에만 치우친다는 비판에서 나온 것이다. 현대의학의 장점은 수술(마취) 응급처치 항생제 등의 약물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 AIDS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론되며 미국의 동성연애자 사이에서 급격히 퍼짐으로써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AIDS의 발생지로 여겨지는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는 임신 기간에 어머니로부터 감염돼 태어나는 어린이들이 매우 많아 미국과 달리 모든 연령층의 남녀 모두에게 문제가 되고 있다.



출처 - 국민일보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956

참고 :

김광훈
2004-07-28

특종! 믿음 사건 (The Case for Faith)


 도서명 : 특종! 믿음 사건 (The Case for Faith)  
◆ 저 자 : 리 스트로벨 (Lee Strobel)
◆ 출판사 : 두란노
 

◆ 목  차 :
믿음을 향한 도전
답을 찾아 떠나는 길
반론 1 : 사랑의 하나님이 악과 고난을 허용할 수 있는가?
반론 2 : 비과학적 기적, 믿을 수 있는가?
반론 3 : 생명 기원, 진화론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반론 4 : 살인을 명하는 하나님, 예배 받을 자격이 있는가?
반론 5 : 왜 예수만이 유일한 길인가?
반론 6 : 영원한 지옥이 무슨 필요인가?
반론 7 : 교회야말로 압제와 폭력의 역사가 아닌가?
반론 8 : 여전히 회의가 드는데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결론 : 믿음은 살아있다!

 

  여러분 중 대부분은 성경을 읽으면서 궁금하거나 의심이 나는 부분을 만났던 때가 있었을 것 같다. 때로는 누군가가 기독교에 대해서 구체적인 질문을 해오면 말문이 막혀 답답해했던 경험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창조과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중에도 천지 창조를 비롯하여 노아의 홍수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다양한 기적들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계기가 되어 창조과학을 접하게 된 이들도 상당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런 문제들에 대해 성경이나, 다른 유능한 기독 지성인들과 신학자들이 설명한 여러 가지 변증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성경에서 여러 이해되지 않던 점들에 대해 창조과학자들의 도움을 얻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 소개할 <특종! 믿음 사건>은 아마도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의문점들을 해소시켜줄 것으로 보이는 책이다. 또한 신앙적인 면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지면을 빌어 이 책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생각하기로는 지금까지 이 코너를 통해 소개되었던 책들과 비교해 볼 때 이번에 소개할 책이 나름대로 가장 재미있는 책일 것 같다.

필자는 최근에 '기적(Miracle)과 법칙(Law)'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여러 가지 책을 보던 중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예전에 인터넷을 통해 원서로 구입할 계획이 있었던 리 스트로벨의 <특종! 믿음 사건>이 최근에 번역되어 출판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책 내용 중에 기적과 관련된 부분이 있기에 빨리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ECPA(미국복음주의출판협회)가 선정한 2001년 최고의 도서로 리 스트로벨이 3번째로 ECPA의 'The Gold Medallion Book Award'를 받도록 해준 책이다. 책 제목도 다소 가볍고, 내용 면에서도 다른 전문적인 변증학 관련 책들에 비해 그렇게 깊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 특유의 표현이나 전개 방식이 매우 흥미로워 독자들을 책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책을 어렵게 쓰는 것은 매우 쉽다. 그냥 쓰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는 이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도 재미있게 쓰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렵고 재능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재능을 소유한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이런 기독교 변증과 관련된 서적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책 번역이 깔끔하게 잘 되어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면 좋은 지식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1) 사랑의 하나님이 악과 고난을 허용할 수 있는가? 2) 비과학적 기적, 믿을 수 있는가? 3) 생명 기원, 진화론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4) 살인을 명하는 하나님, 예배 받을 자격이 있는가? 5) 왜 예수만이 유일한 길인가? 6) 영원한 지옥이 무슨 필요인가? 7) 교회야말로 압제와 폭력의 역사가 아닌가? 8) 여전히 회의가 드는데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라는 8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각 주제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전문가들을 찾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인터뷰를 하고 그 내용을 위주로 책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한때 기자 출신의 회의론자였던 저자 자신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핵심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그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혜로운 답변들을 잘 정리했다.

기독교인으로서 과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 책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주제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두 번째 주제인 기적에 대한 부분은 이름이 많이 알려진 윌리엄 크레그 박사의 인터뷰 내용이 주된 내용으로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크레그의 논증에 대해서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것 같다.

세 번째 주제인 생명의 기원에 대한 부분 즉, 창조론과 설계 논증에 대한 부분은 당연히 창조과학회 회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질 내용일 것이다. 약 30쪽에 걸쳐 나름대로 다양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으며, 우리에게도 유명한 월터 브래들리 박사와의 인터뷰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그 외에도 네 번째 주제인 살인을 명하는 하나님 부분에서는 다양한 학문적 활동을 벌이고 있는 노먼 가이슬러 박사의 견해가 실려있고, 지옥과 관련된 여섯 번째 부분에는 지적설계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J.P 모어랜드 박사의 견해가 실려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변증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더욱 정확히 이해한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비기독교인 또는 반기독교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기독교적인 입장을 지혜롭게 설명해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번에 소개한 책 <특종! 믿음 사건>에 나온 여러 가지 전문가들의 변증을 모두 받아들이는 데는 다소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타당성을 줄 수 있는 논증들이 많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실에 대한 설명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과연 어떤 사실에 대해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진실을 타당성 있게 설명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출퇴근길에 아침저녁으로 1장씩 읽었는데 일주일만에 쉽게 다 읽을 수 있었다. 여러분들도 이 기회에 편한 마음으로 책을 한번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출처 - 창조지, 제 131호 [2002. 5~6]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904

참고 :

이웅상
2004-07-28

성경과 과학(1) 너무나 과학적인 '성경'


      많은 사람들이 성경은 윤리, 도덕적으로는 위대한 책일지 몰라도, 과학적으로는 무엇인가 문제가 많은 책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 성경이 과학과 상충된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가지게 된 것은 오늘날 진화론 일색의 교육이 마치 성경이 비과학적인 것처럼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무기물에서 우연한 충돌에 의해 유기물이 생겨나고 여기서 최초의 생명체가 우연히 탄생했다는 화학진화론적 생명의 기원관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최초의 한 생명체에서 진화되어 나온 것에 불과하다는 생물학적 진화론이 그 원인인 것이다. 이 결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학문의 영역과 신앙의 영역을 따로 구분하는 이원론적인 사고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과학에 비교해 뒤진 책이 아니라 초과학적인 계시의 말씀이어서 그 당시의 과학이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한 부분을 연구하는 학문인 과학이 발달하면서 성경이 과학과 자연스럽게 잘 화합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섭리 안에서 잘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밝히게 된 일부 성경의 기록들을 살펴보며 성경의 권위와 무오함을 설명하고자 한다.


지구가 둥글게 생겼으며 허공에 떠서 태양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너무도 당연한 과학적 상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이 생겨난 것은 수 천년의 역사 속에서 불과 수 백년도 안되었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지구는 평평하며,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으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는 둥글며, 태양주위를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처음으로 주장하게 되었다. 이후에 뉴튼이 17-8세기에 두 물체는 질량의 곱에 비례하며, 거리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이 작용한다는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훌륭히 설명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성경은 과연 지구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혹시 천동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 중세 유럽교회의 천동설 주장을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과학사적인 해석을 통해서 그와 같은 반대는 성경에 입각한 것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요소와 그 시대의 세계관적인 요소에 의한 것이었다고 평가가 되었다. 과연 그러면 성경에는 어떻게 나와 있을까?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이사야 40:21-22)." 여기서 '땅 위 궁창' 할 때의 궁창은 원형의 모양을 의미한다. 그래서 NIV 영어성경은 "above the circle of the earth"라고 번역하고 있다. 또한 욥기 26:10에는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으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경계라는 말의 의미가 역시 원이라는 뜻이다.  욥기 26:7-8에 기록된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과학자들이 18세기에 와서야 정확히 이해한 "지구가 허공에 떠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읽을 수 있다. "공간에 다시며"라는 말은 허공에 띄워 놓으셨다는 말로 NIV 영어성경은 이 의미를 "suspends the earth over nothing"으로 표현하고 있다. 만유인력의 법칙과 같은 과학적 용어나 공식은 성경에 없지만, 지구에 대한 얼마나 정확한 표현인가?


과학자들이 공기는 혼합물로 된 무게가 있는 물질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쯤일까?  공기의 무게는 16세기에 갈릴레오가 처음으로 인식한 것을 그의 수제자인 토리첼리가 1640년에 그 무게를 측정하는데 성공했다. 토리첼리가 공기의 무게(압력)를 재는 기계인 압력계를 최초로 만들어 재어 보았더니 1기압이 수은으로 760mmHg로 나타났다. 그래서 토리첼리 박사가 이 단위를 자기 이름을 붙여 torr(토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이보다 3100여년 전에 기록된 창세기 1장 7절에 하나님이 궁창 (공기층)을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욥기 28:25절에 "바람(공기)의 경중을 정하시며, 물을 되어 분량을 정하시며"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그 공기와 물의 무게를 정하사 모든 물질의 기준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17세기에 알게 된 사실을 성경은 이미 수 천년 전에 밝히고 있다는 사실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것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성경과 과학의 관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갈등의 관계가 아니며, 이런 관계는 잘못된 과학관으로 인해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을 따름이다.

 


출처 - 기독공보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889

참고 :

David Demick
2004-07-28

창조주 그리스도의 흔적들

(Glimpses of Christ The Creator)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고, 아버지와 성령과는 하나이며 동격이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기독교 교회의 제1위적 교의(敎義)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창조의 동역자였으며, 전체 창조과정을 통한 주요 참여자였다.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은 창세기 1장의 처음 절들 속에 담겨있는 이 이념들을 이렇게 풀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1-3).

사도 바울도 또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골로새서 1:16).


하지만 이 진리가 복음서들의 서술 부분에는 두드러지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다. 거기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가르침들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당신의 사명과 가르침을 받드는 자들에게  죄의 회개에 대한 당부의 말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가 스스로를 하나님과 하나임을(요한복음 10:30), 창세 전에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있었음을 (요한복음 17:5), 그리고 피조물에 대한 당신의 권능을 증명하는 기적들을 행하신 (요한복음 20:30-31)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한편, 우주창조에서의 그의 직접적인 역할에 대한 당신 자신의 언급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서에 기록된 그의 말씀 중에 창조자 그리스도의 통찰의 면모가 번득이는 곳이 몇 곳 보인다.


예컨대 산상수훈 중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걱정 말라는 권면의 말씀 속에 담긴 그의 면모에서 그런 통찰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자연에서 예를 들면서 당신의 요점을 설명하셨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태복음 6:28, 29).

이 진술은 고대 희랍인과 로마인들이 알고 있던 진화론적 철학과는 정반대의 대조를 이루는 빛나는 말씀이다. 저들과 맥을 같이하는 오늘날의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고대 철학자들은 생명이 우연히 자연발생적으로 땅 속에서 솟아난 것이라는 '보다 더 단순한' 철학을 견지하고 있었다. 예컨대, 그리스도의 강림보다 3 세기 앞서서,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urus)는 현대 진화론 철학과 현저하게 유사한 우연적이며, 맹목적적인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진화론적 세계관을 제창하였다.

”원자는 자체의 영구운동 속에서 수없이 많은 결합과 분리의 과정을 지난 후에 마침내 소위 '세계' 라는 것에 융합되었다. 태초에 지구는 생명체가 없는 흙덩어리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동물과 새들이 갈기와 깃털을 내듯이 지구에 풀과 수풀과 꽃이 솟아났다. 그런 다음에 생명체들이 생겼다. 새들은 공중을 날고 … 짐승들은 어슬렁대기 시작하였다 … 몇몇 종들은 환경에 적응하여 마침내 생존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른 종들은 … 자연의 기형들은, 다시 말해서 맹목적인 세계의 맹목적인 실험의 희생자는 멸종이 될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아무런 플롯도 없는 이 흥미로운 연극의 주인공인 인간은 이 무대장면에 마지막으로 도착한 등장인물이다.” 1

이 철학은 오늘날의 진화론과 마찬가지로 경이롭게 디자인된 세계의 특징을 과소평가하는 세계관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사역을 지나치게 찬양하고, 창조주의 사역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것은 죄 많은 인간의 본성이다. 예컨대, 옷감을 마련함에 있어서 섬유질 식물의 수확, 직조, 염색 등과 같은 관련된 인간의 작업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다. 편협한 인간의 이해력으로는 그와 같이 복잡하고 중요한 인간의 작업행위에 비해 한 송이 꽃을 피우든가, 한 톨의 작은 씨앗이 자라는 것은 단순하고 흔한 일로 보일 것이다. 다른 한편, 하나님을 깊이 존경하는 마음에서 마틴 루터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할 때 진리에 더욱 가까이 가 있었다.

”만약에 그대가 한 톨의 밀알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대는 그 경이로운 사역을 알게될 것이다.” 

더욱 경이로운 것은 현대과학보다 오래 오래 전에 예수 그리스도는 전지전능한 창조주의 안목으로 한 송이 꽃을 피우고 꽃잎에 모양을 다듬고 색상을 입히는 것 같은 일견 하찮은 일에도 믿을 수 없을 만치 경이로운 미세공학 원리가 내포되어 있음을 소상히 알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해서 그는 꽃에 관한 진리를 자신감을 가지고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말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산상수훈 중 다른 구절에서는 심오한 과학적 함축을 담은 또 한 번의 예수님의 빛나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인간의 몸에 관련된 말씀이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마태복음 6:22-23).3

"The light (Greek, luchnos, lamp) of the body is the eye: if therefore thine eye be single (Greek, haplous, free from defect, unspotted), thy whole body shall be full of light (Greek, photeinos, full of light, shining, bright). But if thine eye be evil, thy whole body shall be full of darkness. If therefore the light (Greek, phos, radiance) that is in thee is darkness, how great is that darkness!" (Matthew 6:22-23).

성경의 다른 구절들과 마찬가지로 이 구절의 주된 목적은 도덕적 교훈이지, 결코 과학적 교육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된 구절들과 예수 시대의 교양 속에는 이기심과 탐욕에 대한 경고가 담겨져 있다.4 그 구절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진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자연 현상들을 이용하여 예를 들고 있는 또 다른 사례이다. 그런데 영적 진리도 자연 진리와 서로 공명되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다. 특별히 눈의 예를 들어 온 몸을 '가득 채우는(filling)' 등불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눈을 통하여 감지되는 빛이 갖는 체계적인 생리학적 효과를 암시하고 있었다. 이 같은 나의 생각은 공상일까? 최근까지 만해도 그렇게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경생리학의 발전으로 눈의 감광(感光) 지각은 온 몸의 건강한 기능에 진정으로 중요하다는 것이 알려졌다. 부단한 의학기술의 발달로 이와 관련된 성경 구절들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이 더욱 밝혀져서, 창조주로서의 그리스도의 천재성도 경이롭게 드러나고 있다.


이 과학적 진리를 풀어내는 길고 긴 이야기는 인간의 두뇌에 근접해 있는 비강(鼻腔) 바로 상단에 위치한 뇌하수체를 발견하였던 고대의 해부학적 업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여러 세기를 걸쳐 뇌하수체(腦下垂體, pituitary)는 비강 분비물에 관련이 있는 중요하지 않은 조그만 내분비선(腺; 샘)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밖에 뇌하수체의 용도는 모호하였다. 1880년대 후반에 들어 생리학자들은 뇌하수체가 내분비 체계의 실질적 '주 내분비 샘'으로서 신장, 부신장, 그리고 생식선(生殖腺) 등 다른 중요한 내분비 샘들을 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190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뇌하수체 바로 상단에 뉴런(신경단위 세포)들의 복합체인 시상하부(視床下部, hypothalamus)가 있어서 대부분의 뇌하수체를 조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시상하부의 중요성을 현행 생리학 교재에 실려있는 내용을 요약해 보았다 :

”이렇게 해서, 뇌 전체의 1%도 되지 못하는 시상하부는 대뇌변연계통(大腦邊緣系統)의 중요한 운동신경 출력경로들 중의 하나로 있다. 시상하부는 신체의 발육기능과 내분비기능은 물론 정서행동의 많은 측면들을 조정한다.” 5

뇌하수체와 시상하부에 관한 이와 같은 일련의 발견에 뒤이어, 1972년에 포유동물의 시신경섬유조직이 뇌의 시각피질(皮質)과는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망막에서부터 시상하부까지 직접적으로 감각신경을 연결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뇌에 보내지는 감광 자극의 부차적 통로는 '망막시상하부 경로(retinohypothalamic track)'6 라는 학술명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서 드디어 눈이 갖는 감광기관과 신체의 다른 부위의 전반적인 기능 사이를 연결하는 생리학적 연결고리를 설정하는 바탕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이쯤에서 뇌의 송과선(pineal gland)이라고 알려진, 뇌의 또 다른 조그만 한 부분이 '영상-신경계뇌분비선 체계(photo-neuroendocrine system)' 라고 불리는 중요한 구성요소라는 사실이 생리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졌다. 뇌하수체나 송과선의 존재는 고대부터 주목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기능은 알려지지 않았었다. 뇌의 송과선의 기능을 이해하려면 다윈의 지혜가 그것은 대부분 무용한 '퇴화기관'7에 지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던 1859년에서 한 세기가 지난 시대(1959년)까지 소급하여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1958년 송과선이 몇 가지 중요한 긍정적인 생리학적 효력을 가지고 있는 멜라토닌(melatonin) 이라고 불리는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부터, 그것이 갖는 중요성에 대한 현대적 안목이 생기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빛-뇌-몸의 상호작용의 효과에 관한 한, 멜라토닌 호르몬은 일일 수면-기침(起寢) 사이클에 영향을 미치는 24 시간(一日) 리듬의 내분비물의 분비작용에 영향을 받는다. 계속되어온 연구는 송과선과 suprachiasmatic nucleus, 즉 시상하부의 '시계 (clock)' 중심과의 사이에 있는 연결기능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의 일일 행동 리듬은 서로 밀접하게 묶여있다는 것도 발견되었다. 시상하부, 뇌하수체, 그리고 송과선을 통하여 눈의 망막을 거쳐 진행된 빛의 자극이 시각(視覺)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온 몸에 광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과학적인 성과는 지난 수세대 동안 의학적 용도에 크게 이용되었다. 그것은 겨울철에서 경험하는, 특히 지리학적으로 높은 위도에서는 점진적으로 상실되어져 엷어지는 주간 햇볕 때문에 경험하는 정신적 위축감의 증가에 대한 생리학적 설명근거를 제공하였다. 그것은 또한 일일 낮-밤의 사이클과 공시성(共時性)이 맞춰지지 않은 수면-기침 리듬을 유지하여야만 하는 교대근무자들이 흔하게 경험하는 의학적인 여러 문제들에 대한 생리학적 설명근거가 되기도 한다.8 이 현상은 우리가 온 몸의 건강을 위한다면 정상적 일일 사이클 중 눈을 통해 감지되는 강력한 빛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나타낸다고 하겠다.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는 동안에도, 영상-신경계내분비선 계통이 가지는 더 많은 유익한 측면들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크리스천들에게는 인체에 미치는 바로 이 유익한 빛의 효력에 관한 새로운 과학은 남다른 의미를 더해가고 있다. 그 과학적 발견은 우리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할뿐만 아니라, 또한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경이로운 방법으로 우리들에게 조명하여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와의 동행을 알리는 끊이지 않는 그의 영광의 빛 속에서 주신 영생에 대한 그리스도의 약속을 기쁘게 받아든 크리스천을 위해, 그는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은 그의 성(城)을 마련해 두셨다. (요한계시록 21:10-27).


결론적으로, 현대과학에 비추어 산상수훈에 기록된 성경 구절들을 세밀히 검토하여보면, 창조주로서의 그리스도의 본성에 드러난 위대한 지식과 통찰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그의 말씀이 도덕적인 가르침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경우도 이 점에서는 한결같다. 이와 같이 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성경의 다른 부분과 한 가지로 '흙 도가니에서 일곱 번 단련한 은' 같이 순결한 의미와 진리가 겹겹이 쌓여있음을 알 수 있다.


*Dr. Chaney Bergdall of Huntington College 와 Dr. Jerry Bergman of Northwest State College of Ohio 가 보내주신 충고와 조언에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References

1. Thomas, H. and Thomas, D.L. Living Biographies of Great Philosophers, Blue Ribbon Books, 1941, p. 44.

2. Bainto, Roland, Here I Stand: A Life of Martin Luther, Mentor Books, 1955, p. 168.

3. Scripture quotations from the King James Version with amplified word meanings from Young's Analytical Concordance to the Bible, Eerdmans, 1970.

4. France, R.,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inter-Varsity Press, 1985.

5. Guyton, A., A Textbook of Medical Physiology, W.B. Saunders, 8th ed., 1991,  p.

6. Klein, Moore, and Reppert. Suprachiasmatic Nucleus: The Mind's Clock, Oxford University Press, 1991.

7. Bergman and Howe. Vestigial Organs Are Fully Functional, Creation Research Society Monograph #4, 1990, pp. 49-55.

8. Moore-Ede, Sulzman, and Fuller, The Clocks That Time Us: Physiology of the Circadian Timing System, Harvard University Press, 19882, pp. 330-341.

9. Sack, Brandes, et al., 'Entrainment of Free-Running Circadian Rhythms by melatonin in Blind Peopl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ol. 343, no. 15, Oct. 2000, p.1070.

*Dr. Demick is a practicing physician in Hastings, Nebraska.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55.htm

출처 - ICR, Impact No. 355, 2003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69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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