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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미디어위원회
2016-01-28

문화 전쟁 (2) : 신앙과 과학의 분리 

(PART 2 ; Culture Wars : Ham vs Bacon)

Ken Ham 


     문화전쟁 1부에서는 베이컨의 철학이 사람들의 사고에 끼친 영향을 논했다. 여기서는 베이컨에 의해서 자물쇠가 풀린, 인본주의의 문이 세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점차 활짝 열리게 되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한 마디로 베이컨이 서구사회에 끼친 영향은 '교회의 약화(기독교의 쇠퇴)'였다. 예를 들어 오늘날 자신이 (십자가의 공로로) 거듭난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는 미국 십대들 가운데서도, 단지 9% 만이 절대적 진리(absolute truth)가 있다고 믿고 있다.1 과거 한때 매우 기독교적이었던 서구사회에서 오늘날의 교회는 더 이상 영향력이 없다. 오늘날 교회의 약화로 인해 오히려 세상 문화가 급속히 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영국,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와 같은 나라들을 생각해 볼 때, 이들 나라의 문화들이 과거 한때 오늘날 보다 훨씬 더 기독교적이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국을 보자!  미국이야말로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독교 국가라고 할 것이다. 이 나라에는 아직도 가장 많은 수의 교회, 성서대학, 기독교대학, 신학대학원, 기독교 라디오, 기독교 TV, 그리고 기독교 서점 등이 있다. 그리고 세계 선교사의 반 이상이 미국에서 파송되었다. (Operation World, p747, 2001).2 그러나 각종 사역들이 행해지고 있지만, 오늘날 문화는 매일매일 비기독교화 되어가고 있으며, 반기독교화 되어가고 있다. (참고: Barna Research, Gallup G Jr, Unchurched on the rise 8-15-2002).3 필자는 이러한 오늘날의 상황이 바로 교회가 베이컨식 철학을 수용함으로써 초래한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한다.

요한복음 3장 12절에 예수께서 ”내가 땅의 일(earthly things)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 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heavenly things)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라고 유대인의 관원 니고데모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여기서 이 말씀을 자세히 적용해 보자. 우리가 성경이 말하는 땅의 일, 즉 생물학, 지질학, 인류학 등을 포괄하는 창세기 역사를 믿을 수 없다면, 이 땅의 역사에 바탕을 둔 영적인 일, 즉 도덕률과 구원의 메세지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성경에 족보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이유는 창세기에 시작된 역사(첫 아담과 죄와 죽음의 근원)가 마지막 아담(고전 15:45, 우리를 죄에서 구하려 역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까지 직접 연결된 것임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만약 성경이 기록한 역사를 신뢰할 수 없다면, 바로 이 역사에 근거를 두고 있는 구원의 복음도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첫 아담과 원죄로 인한 타락, 그 결과로 생긴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마지막 아담과 그 분의 죽음과 부활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성경이 무오한 것이 아니라면, 그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은 절대자 일 수 없다. 그렇다면 누가 절대성을 결정하겠는가?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성경의 영적 가르침(도덕성과 구원에 관한 메세지)은 받아 들였지만, 중요한 성경의 역사는 거부해 버렸다. 기껏해야 성경은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는 이야기책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특히 창세기의 앞부분에 기록된 역사)는 중요하지 않으며, 심지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음의 대화를 숙고해 보라. 이것은 필자가 미국, 영국, 호주 등에서 강연할 때, 청중들과 흔히 나누는 대화이다.


내가  만약 전형적인 주일학교 교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면, 그들은 무엇이라 대답할까?

”당신은 주일학교에서 생물학, 지리학, 천문학, 인류학, 그리고 화학을 가르칩니까?”

그러면 ”아니오” 라고 답한다. 또 묻는다.  

”그러면 주일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칩니까?”

그 주일학교 교사는 뭐라고 대답할까? 

”예수님과 성경 이야기를 가르칩니다.”  ”네 좋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렇게 물어본다. 

”학생들은 그러면 어디에서 생물학, 지리학, 천문학, 인류학, 화학을 배웁니까?”

그 교사는 뭐라고 대답 할까요?  언제나 쩡쩡 울리는 대답은 ”학교에서요!” 이다.

 

그러면 내 반응은 ”아! 알았습니다. 교회 주일학교와 대부분 프로그램에서는 예수님과 성경에 대해서만 배우고, 지질학이나 생물학 등 실제 역사는 세상 학교에서 배우는군요!”

 

그 다음 교회를 다니는 가정에서 자라는 80~90%의 학생들이 공립학교에 다닌다는 통계 자료에 대해 설명한다.4 바나 연구소(Barna Research)의 보고에 의하면,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난 학생이 일단 집을 떠나면 약 70%가 교회를 등지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5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날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학생들은 교회에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요나와 거대한 물고기, 오병이어의 기적, 그리고 바울의 선교 여행 등에 대한 이야기를 배우고, 반면에 학교에서는 지질학, 생물학, 천문학 등의 과학을 통해 우주와 지구의 소위 실제 역사에 대해서 배운다. 학교에서 배우는 소위 실제 역사라는 내용을 보면, 지구의 나이는 46억 년이고, 인간은 원숭이 같은 유인원에서 진화되었다는 내용이다. 성경은 과학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우주는 빅뱅(big bang, 대폭발)으로 생겨났고,  태양과 지구 및 행성들은 가스와 먼지 구름으로부터 생겨났고, 우연히 원시 수프에서  생명체가 자연발생되었고, 그 생물은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해서 계속 진화되었고, 화석 증거들은 무기물에서 인간으로의 진화를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종교를 가르치고, 세상 학교는 참된 과학과 실제 역사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세대가 지나가면서 점차적으로 성경은 도덕률과 구원을 다루며,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실제 역사라는 생각을 점차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시작 부분에 기록된 역사야 말로 실제로 생물학, 지리학, 천문학, 인류학, 화학 등 모든 학문의 근본 이슈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다. 그것이 매우 다행인 것은 과학 교과서들의 내용은 해마다 바뀌지만, 성경은 모든 분야의 ‘큰 그림’을 보여주는 변함없는 역사의 계시인 것이다. 즉 성경은 우리에게 올바른 기본 틀을 제공하여 바른 지질학, 생물학, 인류학 등 모든 분야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죽음은 아담의 범죄 후 세상에 들어왔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따라서 전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는 화석들은 아담의 죄 이전에는 존재할 수 없다. 또한 성경은 전 지구적인 대홍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 대홍수 사건은 지표면의 모습과 거대한 퇴적지층들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또 대부분의 화석들이 형성된 과정을 설명하는 지질학과 고생물학 연구의 열쇠가 되는 것이다.


보라. 세상은 학교와 미디어를 통해서 전 지구적인 대홍수는 결코 없었으며, 죽음은 생명이 시작된 이래 장구한 세월 전부터 항상 있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기에 성경에 근거한 지질학은 오류일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지구가 태양보다 먼저 창조 되었다고 말하는데, 세상은 '빅뱅'의 결과로 태양이 지구보다 먼저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성경의 천문학이 틀린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흙으로 첫 인간을 만드셨고, 모든 인류는 그의 후손이며, 따라서 오직 한 족속만이 존재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세상은 수백만 년 전에 유인원으로부터 다양한 종의 사람들이 진화되었다고 가르친다. 고로 성경의 인류학은 잘못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동식물을 창조하시되 각 종류대로 지으셨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세상은 처음 생겨난 동식물들이 진화하여 다른 생물 종류들로 나타났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성경의 생물학은 오류일 수밖에 없다. 


성경은 또한 무한하신 창조주의 뜻에 따라 생명체들이 완벽한 기능을 가지고 존재하게 되었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그 분께서 DNA와 같이 복잡한 생명 정보체계도 주셨다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세상은 물질 자체에서 그러한 정보체계가 저절로 우연히 생겨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화학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지질학, 생물학, 인류학 등을 포괄하는 창세기의 역사는 십자가의 도까지 이어지는 역사이며, 바로 이 역사로부터 우리가 지켜야 할 도덕률이 나오는 것이다. 창세기의 지질학, 생물학 등의 역사가 사실이 아니라면, 궁극적으로 나중 역사도 진실일 수 없는 것이다. 베이컨주의는 교회로 하여금 성경을 점차 실제 세계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고, 구원에 대한 놀라운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하나의 이야기책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성경이 실제 과학과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는 이 관문의 자물쇠를 베이컨이 풀어 놓았던 것이며,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문은 매 세대마다 더욱 넓게 열리게 된 것이다. 성경에 시작되는 역사가 사실이 아니라면, 그 나머지는 어떻게 진실일 수 있겠는가? 땅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신뢰할 수 없다면, 영적 가르침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 결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고, 성경이 가르치는 도덕률과 구원을 거부하는 것이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으라! 낙태는 죄악이다! 동성애는 잘못이다!” 등등을 외치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회가 성경 말씀의 권위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문에 인터뷰를 했던 배우 부르스 윌리스의 말에 잘 요약된다.  ”... 과학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누구나, 지옥의 불꽃을 더 이상 믿으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내고 있는 도덕성에 관한 목소리는 점점 그 힘을 잃고 있다.” 6   


그렇다. 이제 교회가 힘을 발휘하려면 잘못된 세속적인(진화론적) 역사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진실의 역사로 돌아와야 한다. 교회는 잃어버린 반쪽의 참된 역사를 찾아야 한다. 설교에서, 성경공부에서, 각 교회 프로그램에서 지질학, 생물학, 인류학, 천문학 등 가르치기 시작하여야만 한다. 크리스천들은 역사에 대한 큰 그림(big picture)을 가져야 한다. 그리할 때 믿는 자들과 미래의 후손들은 우주와 삶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바른 기초를 가지게 될 것이다.   



References

1. Barna research online, The year’s most intriguing findings, from Barna Research Studies15 August 2002.

2. Johnstone, P. and Mandryk, J., Operation world, Paternoster USA, Georgia, p. 747, 2001.

3. Barna research online, Annual study reveals America is spiritually stagnant; How America’s faith has changed since 9–11,15 August 2002. Gallup G. Jr., ‘Unchurched’ on the rise?, 15 August 2002.

4. Smithwick, D.J., Teachers, curriculum, control, Nehemiah Institute Inc., Kentucky, USA, p. 5, 1998.

5. Barna, G., Real Teens, Regal Books, Ventura, California, p. 136, 2001. Barna Research Online, Teenagers embrace religion but are not excited about Christianity, 21 August 2002.

6. Bruce Willis, actor—Die Hard series, USA Weekend Magazine, Cincinnati Enquirer, February 11–13, 2000, p. 7.


번역 - 한국창조과학회 시카고지부

주소 - https://creation.com/part-2-culture-wars-ham-vs-bacon

출처 - Creation 25(1):49-51, December 2002.


미디어위원회
2015-08-06

욥기 38장에 기록된 ‘바다의 샘’이 확인되었다. 

(Scientists Describe Job's 'Springs of the Sea')

by Brian Thomas, Ph.D.


       현대의 최첨단 장비들은 이전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지식을 우리 세대에 제공하고 있다. 우리의 조부모 세대 중 어느 누가 깊은 대양 바닥에 열수구(hydrothermal vents)를 통해서 물이 솟아나오는 장면을 보았겠는가? 바다로부터 해저 지각의 암석층 안으로, 그리고 다시 대양으로 순환하고 있는 물(water circulating)에 대한 새로운 연구는 하나님이 수천 년 전에 욥에게 하셨던 질문을 생각나게 한다.


욥기 38:16절에서 하나님은 묻고 계셨다.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Have you entered the springs of the sea? Or have you walked in search of the depths?)” 하나님은 극도의 고난 속에서도 욥이 겸손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계셨다. 욥은 그 말씀을 받았다.[1] 물론, 욥은 바다의 샘이 있는 대양 바닥이나 깊은 물 밑을 결코 걸어본 적이 없었다. 욥은 아마도 바다의 샘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말 그대로 이 깊은 물 밑으로 걸을 수는 없지만, 심해잠수함과 컴퓨터 모델을 가지고 그곳을 탐사하고 있다. 2003년에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 대학의 지구 및 행성과학 교수인 앤드류 피셔(Andrew Fisher)는 대양저의 지각 안으로 바닷물이 가라앉고, 몇 마일 떨어진 분출구를 통해 올라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2] 2015년 보고서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이러한 과정이 발생하는 장소를 발견했지만, 무엇이 이 바닷물의 흐름을 유도하는지, 그것은 무엇처럼 보이는지, 그리고 무엇이 그 흐름의 방향을 결정하는 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3]


무슨 힘이 바닷물을 펌프하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연구자들은 해저 지각(seafloor crust)의 3차원적 가상 버전을 만들었다. 그들은 그들의 모델에 태평양의 Juan de Fuca Ridge의 물리학을 모방한 매개변수들을 집어넣었다. Nature Communications 지에 보고된 그들의 결과에 의하면, 땅 아래의 요인들이 물이 대양지각 내로 들어가는 장소와 가열된 물이 샘이 되어 바다로 다시 나오는 장소를 결정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요인들로는 적은 투과성의 퇴적층 위에 있는 암석질 지각의 물질의 량, 어떤 주어진 위치에서 암석의 투과성, 그리고 지구 아래 깊은 곳으로부터의 열의 량 같은 것들이었다.[4]


수천 년 전에 쓰여진 성경 욥기에는 놀랍게도 ”바다의 샘”이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의 과학자들이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열수구의 분출 과정을 연구하면서, 그들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성경 기록의 정확성과 지혜를 확인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References

1.He replied to the Lord, 'Behold, I am vile; What shall I answer You? I lay my hand over my mouth.' Job 40:4.
2.Fisher, A. T. et al. 2003. Hydrothermal recharge and discharge across 50 km guided by seamounts on a young ridge flank. Nature. 421 (6923): 618-621.
3.Stephens, T. A 'hydrothermal siphon' drives water circulation through the seafloor.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Cruz News. Posted on news.ucsc.edu June 26, 2015, accessed June 29, 2015.
4.Winslow, D. M., and A. T. Fisher. Sustainability and dynamics of outcrop-to-outcrop hydrothermal circulation. Nature Communications. 6:7567. Posted on nature.com June 26, 2015, accessed June 29, 2015.

 

*매튜 폰테인 모리: 해양학의 아버지 

https://creation.kr/Peoples/?idx=13306398&bmode=view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8838 

출처 - ICR News, 2015. 7. 23.

미디어위원회
2014-12-25

시간, 공간, 물질, 그리고 삼위일체 

(Spacetime : Virtual Particles, Time, ... and the Trinity)

Dr. Jason Lisle


      시간, 공간, 물질은 자연에서 모두 삼위일체(three-in-ones, Trinity)의 예가 되고 있다. 아마도 하나님은 자신의 삼위일체 되심을 선포하시기 위해서 자연을 이러한 방식으로 창조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빈 공간을 창조하셨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간(space)도 창조하셨다! 공간은 ‘무(nothing)’가 아니다. 그것은 나무나 구름같이 어떤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시작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요 1:3) 만약 공간이 정말로 무였다면, 우리는 그것을 측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빈 방의 크기를 측정할 때, 나는 그 공간의 총량은 정말로 측정할 수 있다.

공간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그것은 3차원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내가 공간을 통하여 3개의 독립적인 길(위 아래, 좌 우, 앞 뒤)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떠한 다른 움직임도 이 3 방향의 연합이다. 아마도 하나님은 그의 삼위일체 되심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기 위하여 공간을 3차원으로 만드셨을 수 있다. 하나님은 삼위(위격)이시지만, 본질적으로 한 분(일체)이시다. 마찬가지로, 공간은 3차원이지만 본질적으로 하나이다.


.공간의 3차원. 공간은 무가 아니다. 공간은 길이, 폭, 높이의 3차원을 가지고 있다. 한 물체가 움직일 때, 그것은 이들 3차원의 공간을 통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셨다. 시간은 시작(창 1:1)을 가지고 있고, 그러므로 창조자를 요구한다. 시간은 오직 1차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의 3부분으로 나누어서 인식한다. 그래서 시간도 공간처럼 일종의 삼위일체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상기시켜준다. 우리는 공간에서는 자유로운 움직임을 가질 수 있었지만, 시간에서는 오직 앞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경험하며, 미래를 기대한다. 하나님은 홀로 시간 너머에 계시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이 미래를 아실 수 있다. 우리들은 몇몇 경우들에 대해서 미래에 대한 합리적인 예측들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이 특정한 미래의 사건을 확실하게 예측하실 수 있으시다. 이사야 46:9-10절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선포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시는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임을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시간의 3차원. 과거, 현재, 미래는 시간의 3차원이다. 시간은 과거에 대한 기억들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인간을 현재에 묶어두고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시간 너머에 계신다. 그는 영원하시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고 계신다.


시공의 특성들

아인슈타인은 공간과 시간이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즉, 공간과 시간은 우리가 시공(spacetime)이라고 부르는 단 하나의 구조에 양쪽 부분이다. 아인슈타인은 공간에서의 거리 측정과 시간의 간격(흐름)에 대한 측정이 움직임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이 영향은 어떤 물체가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면 분명해진다). 그러나 시공에서 한 간격에 대한 우리의 측정은 속도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는다.


양자물리학(quantum physics)에 의하면, 가장 작은 스케일에서, 시공은 ‘가상입자(virtual particles)’라 불리는 극단적으로 작은 질량의 입자들을 끊임없이 만들고 파괴한다는 것이다. 가끔 비기독교인들은 가상입자들은 어떤 것이 무로부터 나올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입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제 명백하다. 가상입자들은 무로부터가 아니라, 시공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떤 물질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시공을 필요로 한다. 어떤 물리적 물체는 공간과 시간에서 하나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시공간은 그 안에 위치하는 물리적 물체를 가지는 하나의 격자 눈금과 같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어떠한 물리적 물체(질량)가 그 격자 눈금을 찌그러트릴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물질은 시공간을 구부린다. 그리고 시공은 물질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말하고 있다.


물질의 성질들

일상적인 물질들은 원자(atoms)들로 구성되어있다. 놀랍게도 원자들 또한 삼위일체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3가지 타입의 입자들, 즉 양성자, 중성자, 전자들로(정상적으로 중성자가 없는 수소를 제외하고) 구성되어있다. 또한 양성자와 중성자들은 쿼크(quarks)라고 불리는 3가지의 작은 입자들로 각각 구성되어진다. 어떤 사람들이 삼위일체 원리를 거부하고 있지만, 자연에서 많은 삼위일체의 사례들이 보여지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아마도 이것이 하나님이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롬 1:20)라고 말씀하신 하나의 이유일 수 있다. 

.입자들의 3가지 타입. 심지어 원자 입자들도 하나님의 삼위일체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모든 원자들은(수소를 제외하고) 양성자, 중성자, 전자들로 구성되어있다.


성경은 ”태초에(in the beginning, 시간) 하나님이 천(the heavens, 공간) 지(the earth, 물질)를 창조하시니라”(창 1:1) 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래서 우주 그 자체는 일종의 삼위일체로서 그 창조주를 반향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가 운행하고 있는 논리적이고 질서정연한 방식 또한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붙들고 계시는(히 1:3) 그 분을 반향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21:11절에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베드로가 그물을 던졌을 때 그물에 가득 잡힌 물고기의 수는 일백쉰세 마리였다.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요 21:11) 

이 153 이라는 숫자는 매우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수이다. 세 자리 숫자로 되어있으면서, 구성하고 있는 각 숫자들의 세제곱의 합이 다시 자기 자신이 되는 수이다. 즉 1³+5³+3³ = 1+125+27 = 153 이다. 또한 153은 17(7과 10을 더한 수)까지의 숫자들의 합이기도 하다. (153 = 1+2+3+.....+17).    

또한 사람은 몸(body), 혼(soul), 영(spirit)으로 되어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your whole spirit, soul and body)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Jason Lisle is one of the few astrophysicists in creation science research today. For a more complete biography, see the end of The Big Bang on page 29.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3/n1/spacetime 

출처 - Answers, 2007. 12. 7.

김만복
2014-12-24

에볼라 바이러스(Ebolavirus) : 창조 vs 진화


      살아있는 바이러스(live virus)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 중에서 가장 작은 크기로 자연에 존재한다(대략 30~500nm). 그래서 나노생명체라고도 불린다. 혹자는 바이러스가 독립적으로 대사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생명과 무생명의 중간 형태라고도 여기지만, 감염력이 있는 바이러스는 ‘살아있는 바이러스’라고 불려지고 있다. 살아있는 바이러스는 백신으로 사용되기도 하고(생백신), 최근에 와서는 항암바이러스 등 이로운 역할로 사용되기도 한다.


바이러스는 그 종류에 따라 작게는 대략 5개에서 많게는 300개에 이르는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급성 출혈열(Ebola haemorrhagic fever)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이며 유전자는 8개로 구성되어있다. 에볼라 바이러스(Ebolavirus)는 마버그 바이러스(Marburgvirus)와 함께 필로 바이러스과(Filoviridae)에 속하는 단일가닥 RNA바이러스이다. 에볼라 바이러스 출혈열은 대개 아프리카의 풍토병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질환의 숙주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박쥐, 설치류, 유인원 등이 바이러스의 숙주일 가능성이 보고되어 있다. 2014년 대유행의 원인 숙주 역시 불분명하나, 박쥐가 원인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최장 21일 간의 잠복기 후(잠복기간에는 전염성이 없음), 초기에는 말라리아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다가 심한 구토, 혈변, 호흡곤란 등이 나타나고 코, 입, 직장에서 출혈이 일어나 최악의 경우 2주 만에 사망하는 질병이다[1]. 에볼라 바이러스는 대개 아프리카의 풍토병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최근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기니 등 서부아프리카 3개국 지역에 감염 및 사망자 수가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치료를 위해 파견된 의사 및 간호사와 발병 지역을 여행한 민간인들이 간혹 감염되었다는 소식 또한 들을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4년 11월 26일 서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자(의심사례 포함)가 23일까지 8개국 1만 5935명, 이중 5689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지난 10월 미국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숨진 토머스 에릭 던컨(Thomas Eric Duncan)을 치료하던 의료진이 에볼라 바이러스에 양성 반응을 보이며 감염된 것이 확인돼 큰 파장을 불러왔다. 감염자를 치료해야 할 의료진까지 감염되자 국제 사회에 큰 불안감을 준 것이다. 그러나 사망자 토머스 에릭 던컨을 제외하고, 그를 치료했던 간호사 2명 등 3명이 격리되어 혈장 치료를 받은 결과 완치 판정을 받아 퇴원했다는 기쁜 소식을 접하며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스페인에서도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를 돌보다 감염된 여성 간호사 로메로가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세계보건기구(WHO)가 밝혔다. 로메로 간호사와 접촉했던 여러 사람들을 관찰하고 지켜봤지만, 에볼라 바이러스의 잠복기인 21일(최장 시간)을 훨씬 넘긴 42일이 지나도록 추가 감염자가 없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위의 사례는 치사율이 아종에 따라 30~50%에 달했던 에볼라 바이러스의 예방 및 치료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었다. 완치 판정을 받은 환자의 수가 아직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치료 과정을 공유하여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대책을 세운다면 40% 이상의 치사율을 가진 에볼라 바이러스를 빠른 시일 내에 정복할 수 있을 거라 예상된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호흡으로 쉽게 감염되고 또한 걸리면 ‘무조건 죽는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에 국민을 대상으로 바이러스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실시할 필요성이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무작정적인 공포는 최근 피어볼라(Fearbola: Fear와 Ebola의 준말)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하였다. 바이러스는 무조건 호흡으로 전염되는 것이 아니며, 종류성이 있고 숙주특이성이 있으며, 또한 유익한 바이러스도 있다는 것을 널리 홍보함으로써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식물바이러스는 식물에만, 세균바이러스는 세균에만, 토끼폭스바이러스는 토끼에만, 다람쥐폭스바이러스는 다람쥐에만 감염시킨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바이러스가 무조건 인간에게 해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식시켜 줘야 한다. 또한, 바이러스를 이용해 항암치료 등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통해서도 바이러스 전체에 대한 무조건적인 두려움을 없애줄 수 있겠다. 또한 바이러스는 예방을 통해 감염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홍보해야 할 것이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서부아프리카 3개국에서 갑작스레 퍼져나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야생박쥐를 날 것으로 즐기는 음식문화, 장례문화에서 감염자의 시체를 만지는 것 등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독성이 강한 에볼라 바이러스는 직접적인 접촉으로 감염자체액을 통해서만 전염되기 때문이다.


진화론적 모델에서는 바이러스는 소위 수십억 년 전이라는 초기 세포진화 단계에서 세포로 분리되어 나와 독립되었거나, 혹은 바이러스가 세포보다 먼저 진화하여 세포 내로 들어가서 세포의 일부분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바이러스는 너무 커서 세포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다고 보기 어려우며(미미바이러스; 백만 염기쌍, 500nm, 900개의 유전자), 결국 바이러스의 기원은 진화론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고 하겠다. 또한 바이러스의 유전정보가 5~10개 정도인 경우도 많은데, 이렇게 적은 정보량을 어떻게 오랫동안 변화 없이 유지할 수 있는 지도 진화론적 모델로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에볼라바이러스의 경우에도 8개의 유전정보량을 가지고 있는데, 1970년대에 아프리카 콩고강에서 처음 발병한 이래로, 유전정보량에는 변함이 없다. 이러한 바이러스 유전정보의 고정성(genetic rigidity)이 진화론적 모델에서는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늘 의문을 가지게 된다. 


창조론적 모델에서는 바이러스가 태초에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실 때 다른 생명체들과 더불어 창조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물론 바이러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출애굽기 31:17에 보면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 결국 태초 6일 동안에 여호와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바이러스 또한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창조된 것으로 설명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왜 여호와께서 창조하셨을까? 그리고 왜 바이러스 중에는 어떤 병원성을 띄며, 때로는 온 인류를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셨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는 창세기의 아담의 원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겠다. 창세기 3장 16절과 17절을 보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결국 태초에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셨을 때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무척 좋았으나, 아담의 원죄이후에는 땅이 저주를 받고, 식물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등 원래의 유익하거나 무해한 피조물들이 때로는 유해한 피조물로 역할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추론할 수 있겠다. 바이러스 또한 유익하거나 무해한 생물학적 기능에서 일부는 유해한 병원성으로서의 역할의 변화가 이때부터 일어났다고 설명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모든 바이러스가 유해하기만 한 것일까? 아담의 원죄에 의한 생명체의 변화는 일부분이며, 모든 생명체가 죄로 인해 유해하게 변화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식물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로 현재 유해한 종류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바이러스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경우에도 필로바이러스과(바이러스의 종류 중 가장 큰 분류)에 속하는 아종 중 독성이 강한 자이레아종(Zaire ebolavirus: ZEBOV)의 경우에만 치사율이 40-50% 수준이며, 다른 아종의 경우에는 치사율이 낮거나(수단, 코트디부아로, 분디부교), 인간에 감염이 일어나지 않는 아종(레스턴)도 존재한다. 그리고 감염경로도 호흡기로 전파될 수 있는 아종은 치사율 제로인 레스턴에 한하며, 다른 아종의 경우에는 호흡기로 전파가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레스턴아종은 인간에게는 감염되지 않으며, 영장류에만 감염된다고 알려져 있다. 일반인들은 모든 에볼라바이러스가 호흡기로 전파되는 듯 인식하고 있으나, 이는 과학적으로 잘못된 상식이다.


바이러스의 유전적 고정성(genetic rigidity)과 숙주제한성 또는 종류성(host range restriction)은 당초 창조된 유전정보로서만이 바이러스의 생물학적 기능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으며, 8개의 적은 유전정보량이라 하더라도 돌연변이 등에 의해 유전정보량에 심각한 변화가 일어날 경우 원래의 설계된 기능을 못하게 되어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보존되기 어렵다는 설명이 창조과학적 견지에서 가능하다 하겠다[2]. 그리고 숙주감염의 특이성도 종류성과 관련되어 있으며, 감염경로의 특이성/제한성도 종류성과 연관지어 설명될 수 있다. 최근 에볼라를 퇴치하기 위한 백신바이러스 개발이 한창인데, DNA 바이러스인 아데노바이러스 혹은 RNA 바이러스인 수포성구내염바이러스를 사용하여 에볼라 항원유전자를 모체바이러스 유전자에 도입시켜 발현하게끔 하여 백신개발을 서두르고 있다[3, 4]. 또한 어떤 항체백신은 이미 개발되어 치료제로 적용되고 있는데, 식물에만 감염하는 식물바이러스나 식물에만 감염하는 박테리아를 사용하여 에볼라 항원유전자를 발현하게끔 해서 항체백신생산을 담뱃잎에서 추출하여 단백질을 정제한 후 환자에게 투여하고 있다[5]. 결국 인간에게 감염되지 않는 동물 바이러스, 식물바이러스의 종류성을 응용하여 에볼라 퇴치약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해롭기만 한 진화론적 생명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피조물 중의 일부이며, 원죄이후 일부 독성을 가진 바이러스 아종도 있으나, 인간에게 유용할 수 있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겠다. 결국 성경에 기반을 둔 창조과학과 현대 최신생명과학은 서로 전혀 연관성이 없는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참고자료

1. http://www.who.int/mediacentre/factsheets/fs103/en/

2. Kim M .2006. Biological view of viruses: creation vs evolution. Journal of Creation, 20(3), 12-13, 2006

3. Geisbert TW, Daddario-Dicaprio KM, Geisbert JB, Reed DS, Feldmann F, Grolla A, Ströher U, Fritz EA, Hensley LE, Jones SM, Feldmann H. 2008. Vesicular stomatitis virus-based vaccines protect nonhuman primates against aerosol challenge with Ebola and Marburg viruses. Vaccine. 26:6894-6900

4. Ledgerwood JE, DeZure AD, Stanley DA, Novik L, Enama ME, Berkowitz NM, Hu Z, Joshi G, Ploquin A, Sitar S, Gordon IJ, Plummer SA, Holman LA, Hendel CS, Yamshchikov G, Roman F, Nicosia A, Colloca S, Cortese R, Bailer RT, Schwartz RM, Roederer M, Mascola JR, Koup RA, Sullivan NJ, Graham BS; the VRC 207 Study Team. 2014. Chimpanzee Adenovirus Vector Ebola Vaccine - Preliminary Report. N Engl J Med. Nov 26

5. Rybicki EP. 2014. Plant-based vaccines against viruses. Virol J. 11:205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062

참고 : 6035|6038|5217|5215|4744|4646|5872|4520|3265

미디어위원회
2014-11-24

긴 송곳니를 가진 사향노루가 아프가니스탄에 살아있었다. 

(Saber-Toothed Deer Alive in Afghanistan)

by Brian Thomas, Ph.D.


      문헌에 의하면, 1948년 덴마크 조사팀이 아프가니스탄 북동부의 먼 지역에서 사향노루(musk deer, 사향사슴)를 발견했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지만, 그것이 마지막 공식적인 목격이었고, 지금까지는 목격되지 않았었다. 이제 야생동물보존협회(Wildlife Conservation Society, WCS) 멤버들이 이끄는 새로운 조사팀은 그 종이 아직 살아있음을 보고했다. 하지만 멸종 위기에 놓여있다는 것이다.[1] 아시아 전역에서 발견된 유사한 7종들은 식물들을 먹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향노루는 왜 긴 이빨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사향노루는 뿔(antlers)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수컷은 송곳니(fangs)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외딴 곳에서 살아가며,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진 바위가 많은 환경에서 살아간다. 사향노루들이 더 잘 관측될 수 있었다면, 연구자들은 긴 송곳니를 사용하는 방법을 포함하여,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더 많이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사슴은 사람들을 피해 도망가는 데에 전문가이다. 

같은 지역에 대한 2011년 조사는 법의학적 DNA 기록이나, 원격 동작 카메라의 사용에도 불구하고, 그 사슴이 아직 살아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보고했었다. 최근 야생동물보존협회의 조사자들은 사슴들이 매우 경계하고 있는 동안, 짧은 관측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컷은 짝짓기를 위해 다른 수컷들과 경쟁할 때 그들의 특별한 이빨을 사용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그들의 긴 송곳니를 의사 전달의 표현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한 고생물학자가 오늘날 사향노루가 갖고 있는 송곳니의 사용처를 알지 못하고, 화석 기록에서 사향노루의 송곳니를 발견했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아마도 긴 송곳니로 인해서 사향노루를 육식동물(carnivore)로 분류했을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그는 틀렸다. 사향노루는 식물을 분쇄하기 위해 적합한 어금니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송곳니는 식사 시에 전혀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2]

즉, 송곳니를 가지고 있는 모든 동물들이 그것을 비정한 약탈을 위해서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창조론적 관점에서, 수컷 사향노루의 생활양식은 하나님께서 원래 선한 목적으로 긴 송곳니를 만드는 DNA를 넣어놓으셨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Ostrowski, S. et al. Musk deer Moschus cupreus persist in the eastern forests of Afghanistan. Oryx. Published online October 22, 2014.
2. Criswell, D. 2009. Predation Did Not Come from Evolution. Acts & Facts. 38 (3): 9.
3. The same is true of fruit bats. See Thomas, B. Why God Created Large, Sharp TeethCreation Science Update. Posted on icr.org March 26, 2012, accessed November 4, 2014.


*관련기사 : 60년만에 뱀파이어 노루 발견, '무서운 송곳니” 사향 kg당 4800만원 (2014. 11. 5. 헤럴드경제)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41105000366

뱀파이어 노루 발견, 최대 10cm 송곳니...“특이해 어디다 쓰지?” (2014. 11. 5.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141105/67677115/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8389 

출처 - ICR News, 2014. 11. 14.


미디어위원회
2014-11-10

하나님이 에볼라 바이러스도 만드셨는가? 

(Did God Make the Ebola Virus?)

by Brian Thomas, Ph.D.


        서아프리카에서 치명적인 에볼라 바이러스(Ebola virus)에 감염된 사람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1976년에 최초로 보고된 이후로 가장 나쁜 질환이 되어가고 있다.[1]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에볼라의 창궐에 대해 염려하면서도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이 바이러스는 어디에서 왔을까?

박쥐로부터 사람에게 전달되지만, 이상하게도 서아프리카의 과일박쥐(fruit bats) 3개 종들은 연구자들이 에볼라 바이러스를 감염시켰을 때, 어떠한 증상도 나타내지 않았다. 1030마리 동물 중에서(새, 작은 포유동물, 679 박쥐 등을 포함하여) ‘에볼라 바이러스의 병원소’인 징후를 보여준 것은 3종의 박쥐에 해당하는 개체들이었다.[2] 


감염된 닭과 돼지에 아무런 증상도 일으키지 않는 조류인플루엔자나 돼지인플루엔자처럼, 에볼라 바이러스는 다른 동물과 사람에 전달되었을 때에만 병원성을 띠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프리카 적도 지역에서의 이전 발생은 과일박쥐에 접촉했던, 또는 숲에 떨어져 있는 박쥐가 먹다 남긴 과일에 접촉했던 동물과 사람들에서 감염이 초래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존재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던 창조와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 즉,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이 박쥐를 만드셨다면, 최초에 에볼라 바이러스는 어떻게 박쥐에 존재하게 됐던 것일까?


오늘날의 많은 병원성 미생물과 바이러스처럼, 에볼라 바이러스도 원래에는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아담의 범죄 이후 타락한 세계에서, 그것은 병원성을 갖게 되었을 수 있다. 스웨덴의 사업가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이 발명했던 다이나마이트(dynamite)처럼, 그는 광산과 건설을 위해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했지만, 전쟁에서 사람들을 죽이는데 사용됐던 것처럼 말이다. 더 깊은 연구들은 에볼라 바이러스의 창조된 목적이 무엇인지를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3]   

에볼라는 아무런 병원성도 가지고 있지 않던 한 바이러스의 퇴화된 버전일 수도 있다. 또는 에볼라는 사람이 아니라 박쥐에서 존재하도록 설계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타락 이후의 세계에서 숙주들 사이의 장벽이 무너졌을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설들이 아직도 조사 중에 있다. 그리고 유전학적 연구는 가장 가능성 있는 설명을 가져다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전 세계의 의료전문가들은 에볼라를 이해하고 대처하려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다이나마이트처럼, 에볼라가 선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했을 수도 있다는 개념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References

1. Butler, D., and L. Morello.Ebola by the numbers: The size, spread and cost of an outbreak. Nature.com. Posted on nature.com October 15, 2014, accessed October 17, 2014.
2. Leroy, E. M. et al. 2005. Fruit bats as reservoirs of Ebola virus. Nature. 438 (7068): 575-576.
3. It might have originated from mobile genetic elements. See Borger, P. 2013. The 'VIGE-first hypothesis'—how easy it is to swap cause and effect. Journal of Creation. 27 (3): 105-112. Alternatively, it might have originated as a useful virus. See Lucas, J.R., and T.C. Wood. 2006. The Origin of Viral Disease: A Foray into Creationist Virology, in Exploring the History of Life: Proceedings of the Fifth BSG Conference and Occasional Papers of the BSG. 8 (13).


*관련기사 : 에볼라 바이러스 재앙, 알려지지 않은 진실 (2014. 10. 19.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1029

'에볼라 바이러스' 공포 전 세계 확산, 어떻게 전염되고 예방법은 무엇인가?  (2014. 8. 2.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02/2014080200854.html?Dep0=twitter

에볼라바이러스 원인은 ‘박쥐’ (2014. 8. 5. 데일리한국)
http://daily.hankooki.com/lpage/society/201408/dh20140805112453137820.htm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8384/ 

출처 - ICR News, 2014. 10. 29.

미디어위원회
2014-06-06

근친결혼에 의한 한 유전병과 아담과 하와. 

(Brazil, Disease and Adam & Eve)

by Brian Thomas, Ph.D.


       미국인 1백만 명 중에 한 명은 '색소성 피부건조증(xeroderma pigmentosum, XP)'이라는 무서운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다. 그러나 브라질의 아라라스(Araras) 마을 사람들은 40명 중에 한 명 꼴로 그 질병을 가지고 있다. 불행은 피부가(자주 얼굴과 손) 태양빛에 노출될 때, 종양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이 질병이 아라라스 마을 사람들에게 잘 발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담과 하와에 관한 혼란스런 생각을 바로잡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최근 AP 통신은 이 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38세의 자르딤(Djalma Jardim)이 현지 병원을 방문하는 동안 사진을 게재했다. ”몇 년이 지나 내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자르딤은 AP에서 말했다.[1] 의료 전문가들도 2010년까지 그의 상태를 적절하게 진단하지 못했었다. 이제 몇몇 사람들은 마을의 상황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색소성 피부건조증은 유전병이기 때문이다. 아라라스 마을의 높은 발생률은 오래 전에 마을이 형성될 때,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던 작은 그룹의 후손들 내의 근친결혼에서 유래했다. 자르딤은 자신의 피부에 대해 50번 이상의 수술을 했고, 얼굴 일부는 피부가 없어 보호용 보철을 붙이고 있었다. 그의 상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자르딤은 젊은 시절에 근처의 햇빛에 노출되는 작업장에서 일했었다.

돌연변이 또는 일련의 돌연변이들은 중요한 DNA 수선 효소에 고장을 일으킨다. 자외선은 피부 세포를 관통해 DNA에 손상을 입힌다. 대부분의 사람들에서 효소 시스템은 손상이 일어난 DNA를 수선하기 때문에, 적절한 복구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다면, DNA는 해로운 방사선에 대책이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자외선은 세포 성장을 조절하는 유전자들의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암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분명히 아라라스 마을의 선조들은 그들의 돌연변이 유전자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 그들의 후손 내에서 근친결혼은 그 돌연변이가 개인에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증가시켰다. 이 상황은 가족 내의 근친결혼을 많이 하는 집단 내에서 해로운 돌연변이의 영향이 집중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전 글에서, 파키스탄 가족의 신경계 유전자 돌연변이에 대한 유전학적 연구를 보고했었다.[2]       

이 사례와 다른 많은 관측들로부터 한 분명한 원칙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작은 설립자 인구 집단 내에서의 근친결혼은 자주 해로운 유전적 결함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일이 항상 그러했다면, 인류는 단지 두 조상, 즉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일부 사람들은 주장한다. 모든 인류가 정말로 아담과 하와로부터 유래했다면, 우리 모두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돌연변이들과 유전병을 가지고 있어야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과 성경은 이 근친결혼의 원리가 항상 적용되어 내려오지는 않았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초기 인류에서 유전적 돌연변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일어나, 각 세대는 인간 DNA라는 수영장 크기의 물에 독성물질이 한 방울씩 추가되는 것처럼 아주 조금씩 손상이 축적되기 시작했다. 각 세대 당 60개 이상의 새로운 돌연변이들이 계속 추가되어, 아담 이후 수백 세대가 지난 오늘날에는 수많은 유전적 질병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류의 가장 초기 조상들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만큼의 돌연변이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3] 과학자들도 유전자의 돌연변이들이 신경세포에 영향을 주어, 지난 150여년 이상에 걸쳐서 사람 IQ의 저하, 반응 속도의 둔화 등을 유발했다고 보고하고 있다.[4] 따라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지난 수천 년에 걸쳐 발생됐던 돌연변이들을 지워버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우리의 조상들은 깨끗한 유전자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겠는가? 돌연변이 없는 유전자들을 가진 가족들은 질병의 위험 없이 서로 근친결혼을 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이러한 개념은 하나님이 인류를 포함하여 이 세상을 완벽하게 창조하셨다는 성경 기록과 잘 일치한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 1:31).[5] 따라서 아담과 하와는 심히 좋은(very good), 아마도 완벽한 DNA 염기서열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6]

아담의 범죄 이후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는 쇠퇴되기 시작했다. 아담과 하와 이후 몇 천 년이 지나, 하나님은 모세의 율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근친결혼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으셨다. 돌연변이의 축적에 대한 과학은 창세기의 역사성을 확인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색소성 건피증은 아담과 하와의 원죄와 이 세계는 지속적으로 쇠퇴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가슴 아프도록 상기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Peres, E. AP PHOTOS: Rare disease afflicts Brazilian village. Houston Chronicle. Posted on chron.com May 5, 2014, accessed May 6, 2014.
2.Thomas, B. Is There a Stuttering Gene? Creation Science Update. Posted on icr.org February 26, 2010, accessed May 6, 2014.
3.Kong, A. et al. 2012. Rate of de novo mutations and the importance of father's age to disease risk. Nature. 488 (7412): 471-475.
4.Woodley, M. A., J. te Nijenhuis, R. Murphy. 2013. Were the Victorians cleverer than us? The decline in general intelligence from a meta-analysis of the slowing of simple reaction time. Intelligence. 41(6): 843-850.
5.Genesis 1:31.
6.They possibly shared DNA (i.e., were genetic clones) since Eve was taken from Adam's literal side. Also, their genomes must have been packed with inherent variations that were not mutations—built-in variations that evolutionists overlook when genetically modeling human origins. See: Carter, R. The Non-Mythical Adam and Eve! Creation Ministries International. Posted on creation.com August 20, 2011, accessed May 6, 2014.


*관련 기사 : 브라질男 피부 유전병 ‘충격’… 태양 노출 시 피부 녹아 (2014. 5. 9. 인민망)

http://kr.people.com.cn/8622316.html

인류, 점점 ‘멍청’해지고 있다? 서양인 IQ 하락 (2014. 8. 22. 나우뉴스)

https://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0822601027

Scientists Discover Proof That Humanity Is Getting Dumber, Smaller And Weaker(2014. 8. 18. Investor Times)

https://investortimes.com/freedomoutpost/scientists-discover-proof-humanity-getting-dumber-smaller-weaker/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8066/ 

출처 - ICR News, 2014. 5. 19.

Jason Lisle
2014-04-08

하나님과 자연법칙

 (God & Natural Law)


      우주는 어떤 규칙을 따르고 있다. 그 규칙은 모든 만물이 순종해야하는 법칙(laws)들이다. 이러한 법칙들은 정교하며,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수학적이다. 자연의 법칙들은 본질적으로 계층적(hierarchical)이다. 그래서 자연의 2차 법칙은 1차 법칙에 의존되어 있으며, 우리의 우주가 존재하기 위해서 그것들은 정확해야만 한다. 그러면 이러한 법칙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그것들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우주가 단지 빅뱅(big bang, 커다란 폭발)에 의해서 우연히 생겨났다면, 왜 우주는 질서를 이루는 규칙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이루는 어떤 법칙들을 전적으로 따르고 있는가? 그러한 법칙들은 성경적 창조론과 일치한다. 논리적으로 자연의 법칙들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그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창 1:1).


하나님의 말씀

우주에 있는 모든 것들, 모든 식물과 동물들, 모든 암석, 모든 물질, 또는 빛의 파동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순종해야만 하는 법칙에 의해 구속되어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자연법칙인 '천지의 법칙(laws of heaven and earth)'이 있다고 알려준다(예레미야 33:25). 이 법칙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우주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법으로 표현되고 있다.


하나님의 논리는 우주에 확립되어 있고, 그래서 우주는 우연이거나 혹은 임의적이지 않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물리법칙에서 유래한 화학법칙에 따르고 있다. 물리법칙의 대부분은 논리적으로 또 다른 물리법칙과 수학법칙들에서 올 수 있다.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들은 하나님이 그것들은 의도하셨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논리적이고, 주님께서 창조하신 우주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질서적 방식인 것이다. 무신론자들은 우주의 질서적인 상태와 논리적인 상태를 설명할 수 없다. 우주에 법칙을 만든 분이 없다면, 왜 우주는 그 법칙에 순종하는가? 자연법칙들은 성경적인 창조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사실, 성경은 자연법칙의 기초인 것이다.


생물 법칙들 (생물속생설)

생명체에 대한 하나의 잘 알려진 법칙이 있다. 그것은 생물속생설(biogenesis) 법칙이다. 이 법칙은 생명은 언제나 생명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관측 가능한 과학이 말해주는 것이 이것이다. 생물체는 그 종류대로 다른 생물체를 만든다. 역사적으로,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는 생명체의 자연발생설을 근거 없는 주장으로 기각시켰다. 그는 백조목 플라스크를 사용하여 생명체는 이전의 생명체에서만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때 이후로 이 법칙은 예외가 없는 보편적인 것임을 우리는 보아왔다. 물론, 이것은 성경으로부터 우리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그것이다. 창세기 1장에 따르면, 하나님은 초자연적으로 지구상에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을 창조하셨고, 그들이 종류대로 번성하도록 하셨다. 무기물로부터 우연히 생명체가 생겨나고, 사람으로 진화되었다는 진화론은 생물속생설 법칙에 위반됨을 명심해야 한다. 진화론자들은 생명체가 (적어도 한번은) 비생명체인 화학물질들에서 저절로 우연히 자연발생 되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생물속생설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것이다. 진정한 과학은 성경을 확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화학 법칙들

생명체는 특정한 화학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몸은 화학 반응에 의해 힘을 얻고, 일정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화학 법칙들에 의존하고 있다. 모든 생명체를 이루는 유전정보들도 DNA라 불리는 긴 분자에 저장되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만약 화학 법칙들이 다르다면,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도록, 정확히 올바른 방법으로 화학 법칙을 창조하셨다.


화학 법칙은 우주의 다양한 원소들(elements, 각각은 한 형태의 원자로 구성됨)과 화합물(compounds, 함께 결합된 두 가지 혹은 더 많은 형태의 원자들로 구성됨)에 서로 다른 특성을 제공한다. 예로, 충분한 활성 에너지를 부여할 때,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hydrogen)는 물(water)을 만들기 위해 산소(oxygen)와 반응한다. 물 자체는 비정상적으로 많은 양의 열에너지를 보유할 수 있는 능력과 같은 몇 가지 흥미로운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동결이 되면 물은 대게 육각형의 대칭적 결정체를 형성한다. (이것은 왜 눈송이가 일반적으로 육면체인가에 대한 이유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소금(salt, 염화나트륨) 결정체는 정육면체(cubes)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얼음의 6겹 대칭(six-fold symmetry)은 얼음 결정체에 '구멍”의 원인이 되고, 그 자신의 액체보다 덜 조밀하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얼음이 물에 뜨는 이유이다. (반면에 다른 모든 동결 화합물들은 자신의 액체에서 가라앉는다).


원소와 화합물의 특성은 임의적이지 않다. 실제로, 원소들은 그들의 물리적 성질에 기반하여 원소주기율표에 논리적으로 배치시킬 수 있다. 주기율표의 동일한 족(세로)의 원소들은 유사한 특성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수직열의 원소들은 동일한 외부 전자 구조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최외각 전자들이 그 원자의 물리적 특성을 결정한다. 원소주기율표는 우연히 생겨나지 않았다. 원자와 분자들은 다양한 성질을 가지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전자는 양자물리학의 법칙에 따르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화학은 물리학에 기초하는 것이다. 만약에 양자물리학의 법칙이 단 조금이라도 다르다면, 원자들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정확하게 물리 법칙들을 설계하셔서, 화학 법칙들이 하나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나오게 했던 것이다.


행성 운동 법칙들

창조과학자였던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는 태양계의 행성들은 자연 법칙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행성들은 태양을 초점으로 타원형 궤도(이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완전한 원의 궤도가 아니라)를 돌고 있음을 발견했다. 따라서 행성들은 다른 시간에 때로는 태양에 보다 더 근접하게 된다. 케플러는 또한 행성이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지역을 통과하는 것을 발견했다. 바꾸어 말하면, 행성은 그들의 공전궤도 상에서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셋째로, 케플러는 태양에서 한 행성의 거리(A)와 그 공전 주기(P) 사이에 정확한 수학적 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태양에서 멀리 떨어진 행성은 가까운 행성보다 훨씬 더 긴 공전주기를 갖는다는 것이다(P2 = A3로 표현). 케플러의 법칙들은 또한 어떤 한 행성 주변의 위성들의 궤도에도 적용되었다.[1]


이들 행성 운동 법칙들은 화학 법칙처럼 근본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연의 다른 법칙들의 논리적 파생물이다. 실제로, 또 다른 창조과학자 아이작 뉴턴(Sir Isaac Newton)은 케플러의 법칙들은 어떤 물리 법칙들로부터, 특별히 중력과 운동의 법칙으로부터 수학적으로 유도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뉴턴 자신은 그것을 수식화 했다).


물리 법칙들

물리학 분야는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우주의 행동을 설명하고 있다. 거기에는 서로 다른 많은 물리 법칙들이 있다. 그것들은 현재 우주가 작동되는 방식을 설명해준다. 물리학의 어떤 법칙들은 어떻게 빛이 생성되었는지, 어떻게 에너지가 전달되는지, 어떻게 중력이 작동되는지, 어떻게 질량이 공간을 통해 움직이는지, 그리고 기타 많은 다른 현상들을 설명해준다. 물리학의 법칙들은 원래 흔히 수학적이다. 일부 물리학의 법칙은 E = MC^2 처럼 간단한 공식으로 기술될 수 있다. 간단한 공식 F = ma는 질량(m)을 가진 한 물체가 가속(a)하게 될 때 순수한 힘(F)이 생겨남을 보여준다. 우주에 있는 모든 물체들이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이러한 규칙들을 따르고 있는 것은 놀랍다.


물리학에는 하나의 계층(hierarchy)이 있다. 즉 어떤 몇 가지 물리 법칙들은 다른 물리 법칙에서 파생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 = MC^2 는 특수 상대성원리와 방정식에서 유도될 수 있다. 반대로, 다른 물리 법칙에서 유도될 수 없는 많은 물리 법칙들이 있다. 이들 중 많은 법칙들이 유도된 원리로 추정하지만, 과학자들은 그것이 무슨 법칙에서 유도되었는지 아직까지 추론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몇 가지 물리 법칙들은(다른 법칙에 근거하지 않음) 정말 기본적인 것일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의도하셨기 때문에 단지 존재한다. 사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적어도 한 물리 법칙(아마도 여러 개의)의 경우에서 틀림없는 것으로 보인다.

물리 법칙(그것의 관련 상수와 함께)들은 생명체를 위해서, 특히 인간의 삶을 위해서, 정확하도록 미세하게 조정되어 있을 수 있다. 이 사실은 '인류지향의 원리(anthropic principle)'로 불려지고 있다.[1] 인류(Anthropic)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사람(man)을 뜻하는 anthropos에서 왔다.
 

수학 법칙들

물리 법칙들은 고도로 수학적임을 주목해야한다. 물리 법칙들은 수학 법칙이 없었다면 작동되지 않았을 것이다. 수학의 법칙과 원리들에는 덧셈의 규칙, 이행속성, 덧셈 및 곱셈의 가환속성, 이항식 정리,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과 추가적인 규칙들이 포함된다. 물리 법칙들과 마찬가지로, 수학의 일부 법칙과 성질은 다소 수학적인 원리에서 올 수 있다. 그러나 물리 법칙과는 다르게, 수학 법칙들은 추상적이다. 그것들은 우주의 어떤 특정 부분에 '묶여 있지'는 않다. 물리 법칙들이 다른 어떤 우주를 상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러나 다른 수학 법칙을 가지는 어떤 우주를 상상하기는 어렵다.[2]


수학 법칙들은 '초월적인 진리'의 한 사례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어떤 종류의 우주를 창조하셨는지와 상관없이 진실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하나님이 본성이 논리적이고 수학적이시기 때문일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는 본질적으로 수학적일 수 있는 것이다. 세속적 자연주의자들은 수학 법칙들을 설명할 수가 없다. 물론 그들은 수학을 믿고, 수학을 사용하겠지만, 그러나 자연주의적 틀 내에서 수학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수학은 물질적 우주의 한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주님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우주와 수학 너머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수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비록 제한된 유한한 방법이지만) 하나님의 생각을 아주 조금이라도 살펴볼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3]


일부 사람들은 수학은 인간의 발명품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만약 인간의 역사가 다르다면, 완전히 다른 형태의 수학, 즉 대안적인 규칙, 정리, 공리 등이 만들어졌을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는 사람이 수학을 발견하기 전에는 수학법칙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행성들의 공전궤도는 케플러가 P2=A3 라는 것을 발견하기 전에는 다른 궤도를 돌았다는 것인가? 분명히 인간이 수학 법칙들을 발견한 것이지, 발명한 것이 아니다. 다를 수도 있는 것은(인간의 역사가 달랐다면) 단지 기호(부호)를 통해 수학적 진리를 표현하는 표기법일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표기하든 상관없이 진실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학은 '창조의 언어(language of creation)'라고 불려질 수 있는 것이다.


논리 법칙들

물리학, 화학에서부터 생물속생설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모든 법칙들은 논리 법칙에 의존한다. 수학과 마찬가지로, 논리 법칙들은 초월적인 진리이다. 논리 법칙들은 현재 존재하는 것이 어떤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예로써 ‘비모순의 법칙(law of noncontradiction)’을 생각해 보자. 이 법칙은 동일 시간에 동일 관계 속에서 'A'와 'A 아닌 것'을 가질 수 없음을 말한다. 논리의 법칙이 없이는 사유(사색)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논리 법칙은 어디에서 왔는가?


무신론자들은 어떤 합리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 논리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수용해야만 한다. 그러나 논리 법칙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논리적이시다. 실제로 ‘비모순의 법칙’은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으시며(민 23:19), 악의 유혹에 넘어가실 수 없으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에 모순되기 때문이다(약 1:13).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논리의 법칙을 안다. 우리는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비록 유한한 마음과 죄 때문에 항상 완전히 논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자연의 일관성

자연 법칙들은 일관적이다. 그것들은 임의로 바뀌지 않고, 우주 전체를 통해 적용된다. 자연 법칙들은 과거에 적용할 수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미래에 적용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모든 과학 분야에서 가장 기본적인 가정 중 하나이다. 이 가정이 없이는 과학은 불가능하다. 자연 법칙이 내일 갑자기 그리고 임의로 변경된다면, 과거의 실험 결과들은 미래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해주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자연 법칙들을 시간을 통하여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세속적 과학자들은 이 중요한 가정을 정당화 할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우리에게 그 답을 주고 있기 때문에 정당화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의 주인이시며, 지속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유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그분은 시간을 통해 지속적이고, 일관적인 방식으로 우주를 돌보신다(예레미야 33:25).


결론

우리는 자연 법칙들이 다른 자연 법칙들에 의존한다는 것을 보고 있다. 자연 법칙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화학 법칙들이 올바르게 작동되도록, 마찬가지로 물리 법칙들을 창조하셔서 생명체가 존재하도록 하셨다. 인간이 그처럼 복잡한 퍼즐들을 모두 풀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셨다. 무신론자들은 자연의 이러한 법칙들을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법칙들도 무작위적인 커다란 폭발로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을까? 진화론자들이 자연 법칙들의 존재를 인정한다할지라도, 그러한 법칙들은 자연주의(진화론)와는 불일치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성경과는 완벽하게 일치한다. 우주는 초월적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우주는 논리적이고, 질서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어있고, 일정한 법칙들에 따르는 것은 예측될 수 있는 것이다.



Footnotes
1. However, the constant of proportionality is different for the third law. This is due to the fact that the sun has a different mass than the planets.
2. Granted, there are different systems of starting definitions and axioms that allow for some variation in mathematical systems of thought (alternate geometries, etc.). But most of the basic principles remain unchanged.
3. This phrase is attributed to the creation astronomer Johannes Kepler.

*Dr. Jason Lisle holds a Ph.D. in astrophysics from the University of Colorado at Boulder. Dr. Lisle is a popular author and researcher for Answers in Genesis and also uses his knowledge of the heavens to proclaim the handiwork of God in DVDs, such as Distant Starlight and Creation Astronomy.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1/n2/god-natural-law

출처 - Answers, August 28, 2006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889

참고 : 5374|3586|2233|2316|584|525|38|44|3831|1405|3777|3771|3971|5235|5148|2734|4068|3858|3733|3622

Brian Thomas
2014-03-11

사람 마음속의 영원성에 대한 증거

(Evidence of Eternity in Our Hearts?)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어딘가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학자들은 이 믿음의 근원을 추적해보려고 시도해왔지만, 지금까지 종교적 가르침의 노출과 분리되어 살펴볼 수 없었다. 이제, 새로운 한 연구는 우리 육체를 떠난 영원한 삶에 대한 믿음이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것은 의도하지 않게 성경적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 문제를 조사하기 위한 대부분의 연구들은 조사에 참가한 성인들에게 사후세계에 대해서 물어보았지만, 이 새로운 연구는 어린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보스턴 대학의 나탈리(Natalie Emmons)와 데보라(Deborah Kelemen)는 에콰도르에서 283명의 어린이들에 대해 두 가지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1] 그들을 설문 조사자로 선택한 이유는, 그들은 정글에서 살아가면서 죽음과 가까이 지내며, 사후 존재의 개념에 대해 생물학적으로 기초적인 상태일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도시에서 살면서 설문에 응답한 가톨릭 학생들은 생명은 임신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종교적 가르침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었고, 따라서 출생 이전의 삶에 대한 개념을 거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2] 놀랍게도, 두 그룹의 학생들 모두 각 사람의 핵심적인 부분은 육체 없이도 살아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어린이들이 각 사람은 사후에도 감정과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결국, 영혼의 불멸을 믿는 우리의 경향은 종교적 가르침으로부터 발생하지 않았음이 명백해졌다. 그러한 마음은 우리의 부분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면 자신들을 종교적 세속주의의 한 형태로 돌리고 있는 연구자들에게 종교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불교와 힌두교에서는 사람이 죽음 이후에도 존재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에 각 사람의 영혼은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종국에는 우주의 한 부분으로 병합된다는 것이다. 세속주의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일종의 종교인데, 물질적인 육체가 죽었을 때, 의지, 지성, 감정, 욕망 등과 같은 비물질적인 모든 것들이 끝난다고 믿고 있는 유물론이다.


선임 저자인 나탈리는 보스턴 대학의 보도 자료에서 말했다.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 이러한 연구를 한다. 그러나 나 자신도 그 일에 나태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나는 내 마음이 뇌의 산물임을 안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도 나 자신이 나의 몸과 독립된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2] 그녀는 분명히 이러한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세속적 교리는 그녀에게 비물질적 면들이 단순히 뇌의 화학적 산물이며, 따라서 육체적 죽음 이후에는 존속할 수 없다는 개념을 주입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선척적 인식은 그녀의 영혼은 죽음 이후에도 계속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힌두교나 불교나 세속주의는 영이나 혼이 지속된다는 믿음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어떤 주요 종교가 남는가? 기독교를 포함하여 하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니겠는가? 솔로몬이 쓴 책 전도서를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He [had] put eternity in their hearts)”라고 되어있다.[3] 유대인 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들이 영원을 알도록 해주셨다(Also, he has given human beings an awareness of eternity).”[4]  


하나님이 분명 우리의 마음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넣어두셨다면, 사회학자들이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전도서 3장 21절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이것은 우리 인간의 영혼은 동물들과 달리 죽음 이후에 위로 올라가 창조주를 만난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제 과학자들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었던 것처럼, 사람은 영원한 세계를 마음속 깊은 곳에 알고 있음을 확인해주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Emmons, N. A. and D. Kelemen. The Development of Children’s Prelife Reasoning: Evidence From Two Cultures. Child Development. Published online before print January 16, 2014.
2. Moran, B. Boston University Study Examines the Development of Children’s Prelife Reasoning. Boston University news release. Posted on bu.edu January 27, 2014, accessed January 28, 2014.
3. Ecclesiastes 3:11
4. Stern, D. H., trans. 1998. Ecclesiastes 3:11. In The Complete Jewish Bible. Clarksville, MD: Jewish New Testament Publications, 1077.
5. Ecclesiastes 3:21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7898/

출처 - ICR News, 2014. 2. 1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869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13-02-13

과학으로 지지된 예수님의 말씀 

(Science Supports Proverb of Jesus)

David F. Coppedge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제 심리학자들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뉴욕의 심리학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확증하려고 시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Medical Xpress(2013. 2. 4) 지의 제목은 놀랍게도 ”연구는 실제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좋다(건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였다. 20년 동안의 이전 연구들은 도움을 주는 자가 받는 자와 같은 유익을 얻는지는 발견하지 못했었다. 이제 5년 간 846명에 대해 실시된 한 연구에 의하면, 주는 사람은 마음의 기쁨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줄어들어 사망률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견은 돕는 자의 건강 유익이 특별히 스트레스 완충 과정으로부터 기인됨을 도출하기 위한 과거의 분석을 넘어서는 것이다.” 포울린은 말한다. ”그리고 도움을 주는 행동이 왜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으며, 일반적인 사회 활동이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신약의 네 복음서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대신에 사도행전 20:35절에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말할 때 인용되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많은 가르침이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외의 다른 목격자들에 의해서 수십 년 후에도 기억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놀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이 가르침을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를 마치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 21:25)



마침내 과학이 2천 년 전의 예수님 말씀이 진실임을 밝혀낸 것은 멋진 일이다. 그러나 과학자(심리학자)들의 생각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와는 다르다. 예수님은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그렇게 행동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잊고 남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모든 이타주의가 자신에게 유익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서 떨어진 수류탄에 몸을 던지는 병사를 생각해 보라. 다른 사람을 돕는 행동으로부터 부수적으로 건강과 행복이 생겨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건강만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은 그 점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창조주가 우리의 뇌를 창조하셨다면, 의로운 행동을 했을 때 부수적으로 건강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드시지 않으셨을까? 그것은 지적설계와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의롭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 건강이 손상되고 행복감이 사라지는 것도 역시 설계의 한 부분이 아니겠는가?)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3/02/science-supports-proverb-of-jesus/ 

출처 - CEH, 2013.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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