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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연대문제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창세기 제1장의 YOWM에 대한 고찰

성기문 


I. 서론 

건전한 기독교인들은 구태여 West-Minster 신앙고백서1)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고백한다. 그러나 성경의 신적 권위를 기꺼이 고백하는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도 그들의 관점들이 소위 제한영감과 완전(혹은 축자)영감론2)으로 나뉘는 것은 의외의 일일 것이다. 제한영감론자들의 말처럼 과연 성경이 소위 ‘신앙과 행위’ 부분에서만 무오하고, 역사적이며 과학적 측면을 기술한 부분에서는 오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3)


우리는 ”성경이 무오하지 않다면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4) 고 말한 E. J. Young의 말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그의 말처럼 만약에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한다면,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이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도 당연히 믿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기독교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성경이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우리의 신앙과 행위에서 그러하듯이) 오류가 없음을 전제해야만 하고, 또 그것을 믿어야만 한다. 그러나 성경의 절대성이 정통기독교에 유익이 되고 신앙적 기초가 된다고 해서 성경의 무오성을 주관적이거나 독단적으로 변증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과 실제에 근거하지 않았다면, 바로 그것이 성경의 오류를 입증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초자연적인 기초 위에 서 있다. 그러므로 이 확고한 기반이 흔들리고 의심된다면 기독교는 허물어지고 만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까지 단 한 부분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배제하고서는 자연스럽고 논리적으로 이해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연 질서의 주관자도 창조주 하나님이시므로, 편견 섞인 혹은 불충분한 과학지식으로서 무신론적 입장을 취하거나 성경의 진리를 왜곡할 수는 없다.


우리는 먼저 과학은 과연 중립적인가에 대하여 질문하여야 한다. 즉 과학은 편견이 없는가의 물음이다. 또한 세상의 기원에 대한 문제를 과학에서 해결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무엇보다도 먼저 제기되어야 한다. 과학이란 반복적이어서 관찰 가능한 것에만 국한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에 그 한계를 벗어나서 기원(origin)의 문제를 다루게 된다면, 그것은 자연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철학의 영역이나 종교의 영역이 되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설(즉 관찰의 대상이 될 수 없으므로)에 근거한 진화론적 세계관을 거부하고, 우리는 새롭게 성경에 근거하여 창조론 model을 세워야 하며 그래야 할 것이다. 이것이 과학적 창조론자들의 입장이며 필자의 견해이기도 하다.


”창세기가 과학서적으로서 의도되어 집필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주제를 다룰 때 창세기는 정확하다” 5) 고 말한 E. J. Young의 말처럼 창세기 1장은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한 자연계의 창조에 관한 기록이며 정확하다. 그러므로 단순히 철학적 사색이나 진화론적 관찰에 의거해서는 해결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논문은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창세기 1장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날이라” 라는 문구의 의미를 역사적인 접근과 과학적인 접근, 그리고 문법적인 접근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II. 본론 

창세기 1장에 대해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창세기가 역사적 사건임을 완전히 부인한다. 예를 들어서 신정통주의 신학자인 Karl Barth는 성경저자가 창세기 1장에서 태양과 달을 언급하기 전에 빛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당시의 모든 태양숭배에 대한 공개적 항의라고 말했다.6) 혹자는 Akitu 바빌론의식과 유사한 이스라엘의 신년제(New year festival)를 위한 노래라고 주장한다.7)


반면에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도 통일된 견해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포괄적으로는 두 가지 견해 즉 문자적 해석(a day)과 비문자적 해석(a period)으로 나뉜다.8) Yowm (히브리어로 날(day)을 의미함)은 구약에서 1,154회 사용되었다.9) Barabas에 따르면 구약에서의 용례는 1)문자적 하루(a day)(창1:5,2), 법적 공공적 하루 즉 밤과 반대되는 의미(legal, civil day)(창1:14,3), 시간에 대한 불확정적인 기간(창2:4), 4)특별하게 성별된 날(holy day)(창2:3, 출20:8~11), 5)주의 날(종말론적 의미에서)로 쓰였다.10)


E. J. Young은 Yowm의 문제에 관하여 ”우리가 Yowm에 관해서 매우 많은 이야기를 하기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충분하게 계시하지 않으셨다는 단순한 이유로 인해서 Yowm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11) 고 했지만, 이 논문에서 우리는 성경적인 가설이 허락되는 한 심도 있게 토론하여 보기로 한다. 


먼저 창세기 1장의 Yowm에 관한 여러 가지 해석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모세에 의해 쓰여진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문자적인 Yowm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다.

”엿새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 일에 쉬었음이니라.”12)

예수님과 동시대의 유대인인 요세푸스(Josephus)는 전 문자적인 날(Yowm)을 지지하였으나,13) 그 후 성경의 알레고리적인 해석이 주류를 이루는 동안 오리겐(Origen)은 상징적 의미로 각기 피조물의 등급으로서 이해하였고, Basillus the Great는 여기 기록된 날들의 길이가 다 같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14)


또한 위대한 신학자인 어거스틴(Augustine)은 그의 고백론15)에서 시간에 대하여 장황하게 논의하면서 이 날들이 무한한 길이의 기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에는 성경의 알레고리적 해석이 퇴조하였고, 문자적 해석이 주류를 이루었다. 개혁자들은 문자적인 육일로서의 창조의 날들로서 보았다.16)


즉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그의 창세기 강론에서 어거스틴의 상징적 해석을 비난하면서, 문자적 의미를 다시 강조하였다.17) 존 칼빈(John Calvin)은 그의 창세기 주석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육일간의 공정을 취하셨다. 그것은 그분의 일을 인간의 역량과 조화시키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18) 라고 말했다.


그 후 현대의 화란의 개혁주의 신학자 Abraham Kuyper와 Herman Bavink는 반문자적 날 이론(즉 전 3일간은 길고 후 3일은 통상일)으로 보았고19), 19세기의 독일의 유명한 보수주의 신학자 Keil과 Delitzsch는 그들의 모세 오경 주석20)에서, 그리고 Geerhardusvos는 그의 책 ‘개혁주의 교리(Gereformeerde Dogmatiek)’에서, Bavink의 후계자인 Hepp는 그의 책 ‘칼빈주의와 자연철학(Calvinism and the Philosophy of Nature)에서, Arie Noortzij는 그의 책 ‘하나님의 말씀과 시대의 증언(Godswoord en der Eeuwen Getuigenis: 1924)’ 에서 전문자적 날을 주장하였다.21)  그 외에 일순창조설22)(Calvin과 E. J. Young에 의해서 비판되었다), 간격설, 조화일치설(성경의 창조의 날들과 지질학적 연대와의 일치를 모색), 유신론적 진화론 등이 있다.23) 


결국 성경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축자영감되었다고 믿는 자들로부터 성경의 고매한 신적 유래와 권위를 인정치는 않으나 성경에 근거하려는 자들에게까지 그들을 사분 오열케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이미 전술한 것처럼 ”창세기 제1장을 겉핥기식으로 읽을 때 모든 창조의 과정이 24시간을 하루로 하는 6일만에 이루어졌다는 인상을 받는다?” 24) 고 말하면서 문자적 날 이론을 비판한 Gleason Archer의 견해처럼 문제는 현대과학과 성경과의 불일치로 인한 난점이다 (특별히 이 논문에서는 태양보다 빛이 먼저 존재할 수 있느냐 에 대한 질문25)과 창세기 제2장 4절에서의 기간(period)으로써의 Yowm의 문제를 다루어 볼 것이다).


이미 이 글의 서두에서도 제기한 바와 같이 자연과학, 즉 진화론 중심의 체계에서는 아무런 해답도 찾을 수 없다. 진화론은 무신론적 전제 하에서 하나의 불신앙적 편견을 발견시키고 있을 뿐이다. Louis Berkhof는 그의 책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에서 ”그것[비문자적 해결]은 석의적 연구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과학이론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다. 19세기 이전에는 창세기의 날들은 가장 일반적으로 문자적인 날들로 간주되었다.” 26)고 말한 것처럼 정확여부와는 관계없이 J. Ussher 감독(1581-1656)의 지구연대 4004년 이론27)을 꺼내지 않더라도, 성경적 연대계산은 쉽사리 진화론(소위 현대과학)과는 일치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날-시대 이론을 주장하더라도 태양보다 지구가 먼저 창조되었다는 것은 성경에 의해 부인될 수 없는 것이다. (우주진화론은 반대순서를 주장한다.)


우리는 생명체의 진화는 쉽사리 배척하면서도 진화론의 근거인 수백억년의 기간을 배격치 못한다. ”진화론의 주장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오랜 시간이 요구되나 창조론은 시간의 장단과는 무관하다..... 지구의 연대가 오래되었다는 주장에 반하여 매우 젊다는 과학적 증거도 많이 있다.” 28)


다시 말해서 생물의 진화를 설명하자면 당연히 지구의 나이가 길어야 하지만, 지구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면, 지구의 나이가 꼭 길고 오래되어야 할 필요 없는 것이다. 또한 지층의 연대 기준을 잡아주는 화석층도 진화론적 균일설보다는 성경적 격변설을29) 더 옹호해준다.


우리는 진화론에 의한 ‘우연’과 성경에 의한 '필연’ 둘 중에 하나를 확실히 택하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성경전체의 논리적 연속성 때문에 우리는 성경적 각각의 구석구석들이 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만일 성경적 우주발생론이 현대인들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성경의 계명들을 현대 도덕에 적용할 수 있다거나, 성경적 종말론이 미래를 위한 계획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30)

결국 과학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중립적이거나 적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기원의 문제에서는 양자병존이 불가능하고 더구나 많은 양심적인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부인 혹은 창조론을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빛의 선재성에 관하여 O. T. Allis는 그의 책에서 ”만약에 그것(즉 빛)이 우리가 그 굉장한 잠재력에 대하여 단지 배우기 시작한 우주광선이나 복사에너지 혹은 원자력 에너지를 포함한다면, 그 누가 태양 없이 혹은 그 이전에 빛이 식물을 자라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위치에 있겠는가?” 31) 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빛의 선재성에 대한 반대는 두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그 첫째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부인하는 것이요, 둘째는 비록 태양이 없이 식물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더라도 태양이 빛의 근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32)  


또한 저들이 예로 드는 태양이 없으면 하루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다는 질문에 답하기로 한다. 첫째로 빛이 선재 했기 때문에 태양의 역할이 잠시동안 필요 없이 진행될 수 있었으며, 둘째 하루의 개념은 태양의 유무가 아니라 지구의 자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비록 빛의 근원이 아직 지금의 형태의 태양은 아니었지만 저녁과 아침이 계속된 것으로 보아 땅의 축의 회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3)


마지막으로 Yowm의 용례에 관한 것인데, 이 문제는 문맥상의 해석의 상태로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창세기 2:4의 Yowm을 단어적 의미만 고집한다면 민수기 3:1의 Yowm도 단어적 의미로 해석해야 하겠고 당연히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문맥에 따라서 즉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가 반복된 문맥에선 하루(a day)로 해석하며, 창조의 전 과정을 언급할 때는 그때(at the time)로 해석함이 합당하다.”34)

 

III. 요약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물론 성경은 역사책이나, 과학책이나, 법률책이나, 문학서적이나, 철학책으로 계획되어 기록된 책은 아니지만, 세상의 모든 참 진리를 포함하며 모든 것의 해결책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유신론적 혹은 무신론적 진화론을 버리고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성경적 과학적 방법론을 취한다면, 모든 분야에서 일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구세주로서 뿐만 아니라 만유의 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연구는 신학에만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모든 학문이 잠언에서 말하는 것처럼 신학(즉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를 배우는 학문으로서)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창세기 일장에서의 Yowm의 적절한 해석에 관하여 역사적인 접근과 과학적인 접근을 통하여 문맥에 따른 해석(즉 문자적 24시간)이 적합한 것이라는 결론을 맺는다.

”이는 만물이 주께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6)” 

〈이 글은 기독교학문학회 발표 논문집(89.8. 10~12)에 게재된 논문임을 알려드립니다.〉

 

END NOTES 

1)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I, i-x를 보라

2) 여기서 영감이란 성령께서 성경기자가 성경을 기록함에 있어서 기자를 감동시키셔서 성경기록에 오류가 없게 지켜주시는 작용을 말함.

3) James M. Boice(ed.), THE FOUNDATION OF BIBLICAL AUTHORITY (Michigan : Zondervan, 1978) : 일부 복음주의자들이 신적 영감과 무오성(INERRANCY)을 분리한다. 즉 신앙고백에서의 '신앙과 행위' 란 문맥만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려고 함. 그러나 이런 편중된 문자적 고집은 WESTMINSTER 신앙고백을 곡해함. 이 신앙고백은 완전무오와 완전영감을 고백함. cf. G. E. Ladd, THE NEW TESTAMENT AND CRITICISM (Michigan : Eerdmans, 1982), pp.16-17이 제한영감의 예이다 ; Harold Lindsell, BATTLE FOR THE BIBLE (Michigan : Zondervan, 1977), P.115를 참조하라.

4) Edward J. Young, THY WORD IS TRUTH (Michigan : Eerdmans, 1982), p.5.

5) Edward J. Young, A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Eerdmans,²1983), p.49

6) Karl BARTH, CHURCH DOGMATICS(Ⅲ,i),trans., J. E. Edwards, O. Bussey, & H. Knight (edinbugh : T&T Clark, 1982), pp.120f

7) Derek Kidner, GENESIS (Leiceste : IVP, 1985), p.54

8) 정규남, 구약개론 (경기도 : 개혁주의 신행협회, 1985), pp87-88

9) Robert Young, YOUNG'S ANALYTICAL CONCORDANCE TO THE BIBLE (Michigan : Eerdmans, 1973) 여기서는 단독적인 형태의 빈도수만 계수한 것임.

10) S. Barabas, 'DAY', deit, Merrill C. Tenny, THE ZONDERVAN PICTORIAL ENCYCLOPEDIA OF THE BIBLE (Michigan : Zondervan, 1977), pp.45-46

11) Edward J. Young, IN THE BEGINNING (Edinburgh : The Banner of truth Trust, 1984), p.43

12) 출애굽기 20:11a, 한글개역성경전서, 대한성서공회, 1982

13) Josephus, (Ant.,I.1:1,2)

14) 박윤선, 성서주석(창, 출), VOL.1 (서울:영음사, 1975), p.78

15) St. Augustinus, THE CONFESSION, Vol. 21 trans. V. J. Bourke, the fathers of the church (Washington :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1953), XI, XII, XIII: R. S. Harris, INSPIRATION AND CANONICITY OF THE BIBLE, 박종칠 역(경기도 : 개혁주의신행협회 1978) p.25 : O. T. Allis, GOD SPAKE BY MOSES, Presbyterian & Reformed Co, 1951), p.10

16)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Michigan : Wm. B. Eerdmans, 1977), p.127

17) Martin Luther, LECTURES ON GENESIS: chapter 1-5 edit. J. Pelikan (St. Louis : Concordia Publishing House, 1958), p.4-5

18) John Calvin, GENESIS, trans. & edit. John King (Edinburgh : The Banner of Truth Trust, 1975), p.78

19) Louis Berkhof, p.154

20) C. F. Keil & F. Delitzsch, PENTATEUCH vol.1 (Michigan : Wm. B. Eerdmans, 1973), p.52

21) L, Berkhof, p.154

22) P. J. Wiseman, CREATION REVEALED IN SIX DAYS (Marshall, Morgan & Scott, 1948), pp.33f

23) L. Berkhof, p.158-163

24) Gleason Archer, A SURVEY OF OLD TESTAMENT INTRODUCTION (Chicago : Moody Press, 1980), p.181

25) G. Ch. Aalders, GENESIS I. trans. W. Heyne (Michigan : Zondervan, 1981), p.58 에서도 문자적 하루이론을 태양이 창조되기 이전임을 들어서 '부정적'인 입장을 하고 있다.

26) L. Berkhof, p.152

27) 한국창조과학회편,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 (서울 : 창조과학회, 1981), p.189 ; 창조과학회는 전 세계적으로 여러 곳에 있다. 이들은 모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Creationalist 들이다.

28) James Ussher, Annales Veterius et Novi Testamenti (1650-54)

29) J. Whitcomb & H. Morris, GENESIS FLOOD, 이기섭 역(서울 : 성광문화사, 1985) 여기서 격변설은 복구설(GEN.1:1-2)이 아니라 노아의 홍수의 결과라고 하는 증거를 더 확고히 변증하고 있다 ; H. M. Morris, 진화론과 현대기독교 (서울 : 생명의 말씀사, 1973)

30) H. M. Morris, 창세기의 대사건들 (THE BEGINNING OF THE WORLD), 이희숙 역, 생명의 말씀사, 1984 (p.5-6)

31) Oswald T. Allis, GOD SPAKE BY MOSES, (PRESBYTERIAN & Reformed Co., 1951), p.11

32) 창조과학회편, 창조는 과학적 사실인가? (서울 : 창조과학회, pp9-10)에서 '태양이 먼저 존재했다고 믿는 것은 지구가 먼저 존재했다고 했을 때 제기되는 문제만큼 이상의 문제를 제기한다.'

33) H. M. Morris, 창세기의 대사건들 (THE BEGINNING OF THE WORLD), P.24. 창조과학회편, 창조는 과학적 사실인가?, p.11에서 '태양이 존재하기 전의 하루는 (즉 길이는) 태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축을 중심으로 한 지구의 회전에 의해서 결정된다.' ; Henry M. Morris, THE GENESIS RECORD (Michigan ; Baker Book House , 1981), p.55.

34) U. Cassuto, DOCUMENTARY HYPOTHESIS, trans. Israel Abrahams (Jerusalem, Central Press, 1972), p.73; E. J. Young, IN THE BEGINNING, (Edinburgh : Banner of Truth Trust, 1983), pp.42-43을 참조하라

 

*참조 : The meaning of yôm in Genesis 1:1–2: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2/j21_2_52-55.pdf

Days 1–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69-76.pdf


출처 - 창조지 제 66호 [1989. 12]

미디어위원회
2004-07-07

기록들은 얼마나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가? 

(How Far Back Do The Records Go?)


     진화론자들의 주장대로 인류가 지구에 일백 만년 이상 전부터 존재했다면, 왜 인류의 활동에 대한 기록들은 겨우 수천년 전의 것들밖에 없는가? 발견되는 증거들은 진화론자들의 주장이 아닌 성경의 설명과 잘 들어맞는다. 진화론은 신화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드셨다. 수많은 증거들은 이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어떤 것도 산처럼 많은 증거들을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은 과학대 진화이다. Creation-Evolution Encyclopedia는 당신에게 창조과학이 사실임을 알려줄 것이다.

내용 : 기록들은 얼마나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가?

1. 역사 기록들 : 모든 것들은 B.C. 2000~3000 년경 완전히 발전된 형태로 시작되었다.

2. 초기의 이집트 기록들 : 마네토(Manetho)의 왕들의 목록은 B.C.3200~3600 년경 아래로 수정되어야 한다.

3.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들 : B.C 1600년 이전 것에 대한 탄소14 연대측정은 정확하지 않다.

4. 성경의 기록들 : 가장 오래된 역사책은 모세가 B.C. 1510~1450 년경에 쓴 창세기이다.

5. 천문학적 기록들 : 가장 오래된 일식(solar eclipse) 기록은 B.C 2250 년경이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6. 문자 : 가장 오래 전에 기록된 문자는 수메르인의 것이며, B.C. 3500년 경으로 추정된다.

7. 문명 : 모든 초기의 문명들은,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아라랏산에서 남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하고 있다.

8. 언어 : 고대의 언어는 B.C. 3000년 전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펴져 나왔다.

9. 고대의 역사 기록 : 가장 오래된 연대는 약 B.C. 3000년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0. 가장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 : 그들은 B.C. 3000년경 이전으로 올라가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살았다.

11. 결론 : 인간은 수백만년전부터 살기 시작하여 계속 진화하다가 십만년전에 진화를 멈추었다고 진화론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왜 우리에게는 적어도 십만년전의 문명, 도시, 그리고 살았던 인류가 남아 있지 않는가? 


이 자료는 '지구의 나이'라는 책에서 발췌되었다. 이름 앞의 별표(*)는 창조론자들로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Of over 4000 quotations in the set of books this Encyclopedia is based on (see Order Sheet), only 164 statements are by creationists.

'지구의 나이'의 웹 페이지를 읽어보면, 다음에 제시되는 과학자들의 주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 역사 기록들 (Historical Records) 

모든 것은 B.C 2000~3000년 경에 거의 완전히 발전된 형태로 출발하였다. 만일 인류가 지구에 수백만년 전부터 일하며 살았다면, 왜 인류의 기록은 오직 B.C 2000~3500년 된 것들에서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기록들이 발견되면, 왜 그것들은 매우 발전된 문명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일까?  

우리의 책 '고대인'에서 자세하게 보여준 것처럼, 고대 인류의 문자, 언어, 그리고 문화들은 전부 발전된 형태로 시작했다. 그리고 약 B.C 2000~3000년 이전에 시작된 것들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2. 초기 이집트의 기록들 (Early Egyptian Records) 

마네토의 왕의 목록(Manetho's king lists) 는 B.C 3200-3600년 아래로 수정되어야 한다. 

가장 오래된 역사책은 이집트인과 히브리인의 것이다. 이집트인과 수메르인의 역사가 시작된 연대는 주로 왕들의 목록(list)에 근거한다. 가장 초기의 기록은 이집트 왕들의 명단(list)으로서 B.C. 3200~3600경에 첫 번째 왕조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적 외적 증거들은 그 연대가 더 낮춰져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한 이집트 학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이집트의) 첫 번째 왕조가 적어도 B.C. 3400년 이후에 시작되었고, B.C. 3200년보다 더 많은 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A. Scharff는 그 연대를 B.C. 3000년경으로 낮추었다. 그의 주장은 매우 타당성이 높았다. 어쨌든 첫 번째 왕조가 B.C. 3400년 보다 이전이 아니라 이후일 가능성이 크다.”- * H.R. Hall, 'Egypt: Archaeology,' in Encyclopedia Britannica, 1956 edition, Vol. 8, p. 37. 

첫 번째 왕조의 연대에 관한 문제는 그것들이 수십세기 후인 B.C.250년 경에 살았던 이집트 제사장(priest)인 마네토(Manetho)가 기록한 왕들의 목록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네토의 글은 다른 고대 글들 중에서 부정확한 인용문으로 보존되었던 것이다. 펜실베니아대학의 Barton은 그 문제점을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각각의 이집트 왕들이 통치했던 기간과 그 왕조들이 존재했던 기간의 길이를 비교해보면, 두 개가 다릅니다. 그래서 Manetho의 작업이 연대학의 근간(backbone)을 형성했다고는 볼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믿을만한 절대적인 연대를 제공해 주지는 않습니다.” George A. Barton, Archaeology and the Bible, p. 11. 

이것에 더 많은 이해를 위해서는 The Truth about Archaeological Dating을 읽어 보라.

 

3. 방사성 탄소 연대 (Radiocarbon Dates) 

Carbon-14 연대측정은 보통 B.C. 1600년 이후의 경우에만 정확하다. 

”Libby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을 연구하고 발전시킨 사람) 박사의 협력자인, Frederick Johnson 은 역사적으로 기록된 무덤, 사원, 그리고 궁전 등에서 가져온, 그 나이가 알려진 다양한 샘플들을 가지고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을 해본 결과 그 둘이 비교적 잘 맞는다고 하였다.

John G. Read (J.G. Read, Journal of Near Eastern Studies, 29, No. 1, 1970)에 의하면 잘 입증된 연대는, 이집트 역사에서 최대한 B.C. 1600년 정도까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B.C 1600년 이전의 것에 대한 탄소14 연대측정은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 H.M. Morris, W.W. Boardman, and R.F. Koontz, Science and Creation (1971) p. 85. 

분명히, 탄소-14 생성의 비율에 영향을 주었던 현저한 대기의 변화가 그 시기 이전에 있었다. 

이집트인의 연대는 우주학자, 연대학자, 사학자, 그리고 고고학자들의 이론에 강하게 의존되므로, 이집트인의 연대는 고대 시대의 연대에 매우 중요하고, 따라서 매우 영향력이 있다. 이는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오래된 역사 연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고고학적 연대측정(Archeological Dating) 에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훨씬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고고학적 연대를 낮추어 성경의 연대기와 같을 수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들이 있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은 B.C.1500년 이전 과거에서는 신뢰성이 심각하게 감소한다.

 

4. 초기 성경의 기록들 (Biblical Records) 

가장 오래된 역사책은 창세기로서, 이는 모세가 B.C. 1510~1450 경에 집필했다. 

성경은 매우 가치있는 역사책이고, 고대 사건들의 연대를 결정하기 위한 과학적인 노력들 가운데 성경이 제외되어서는 안된다. 성경은 권위있고 믿을만한 역사적, 고고학적 연구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증명되어왔다. (고고학적인 연대와 성경적인 연대의 불일치에 대한 주요 원인을 깊이 있게 분석하기를 원한다면, Archeological Dating을 보라) 

성경의 첫번째 책인 창세기는 B.C. 1510~1450년 경에 모세가 썼다고 전통적으로 생각되어 왔다. (출애굽은 약 B.C. 1492년 정도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창세기의 연대기적 자료에 의하면 창조 주간은 약 B.C. 4000년 경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노아의 홍수는 B.C. 2348년 경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노아 홍수의 연대에 대하여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고대의 연대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 홍수는 다소 더 일찍 발생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오히려 가장 오래된 세속의 연대가 다소 더 오래된 것일 수도 있으며, 지금의 경우가 아마도 이에 해당된다. 고대의 연대를 확증하기 위하여, 이집트나 수메르에서 발견한 것처럼 과거에 대한 세속의 기록에 전적으로 확신을 둘 수는 없다.

 

5. 천문학적 기록 (Astronomical Records) 

가장 오래된 일식의 기록은 B.C 2250년 경이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고대의 역사적 기록을 통하여보면, 학자들은 때때로 천문학적 사건, 특히 개기 또는 부분일식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것들은 더욱 정확한 연대 결정의 요소가 된다. 어떤 알려진 장소에서 자주 있지 않는 그 일식들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모든 일식이 일어난 연대를 결정할 수 있다. 어떤 한 사건이 고대의 기록에 의하여 확실시되었을 때, 일식은 그 사건의 연대 결정의 강력한 도구가 된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사건은 단지 B.C. 1~2천 년 전의 것이었다. 

우리는 왜 고대인들이 매우 드믄 사건인 일식을 언급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본영 (일식때 태양 빛이 전혀 닿지 않는 지구, 달의 그림자 부분) 지역안에 짧은 시간동안 노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B.C 2250년 이전에는 사람들에 의해 관측된 일식에 관한 단 한 개의 기록도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은 젊은 지구의 중요한 증거가 된다. 

”확률적으로 가장 초기의 중국인의 연대는 'Book of History' 의 천문학적 참고자료에 근거하여 B.C. 2250년 경으로 추정된다.” - *Ralph Linton, The Tree of Culture (1955), p. 520.

 

6. 문자 (Writing) 

가장 오래된 문자 서판(tablets)은 B.C 3500년 경으로 평가되는 수메르어였다. 

가장 오래된 문자는 근동지역에서 서판에 새겨진 상형문자인 수메르어(pictographic Sumerian)이다. 이러한 가장 오래된 서판들은 약 B.C. 3500년 경으로 추정되는데, Inanna의 수메르인 사원에서 발견되었다. 

가장 초기의 서구형태(Western type)의 문자는 최초의 시나이 문자(the proto-Sinaitic) 였다. 이는 B.C. 1550년경에 시나이 반도에서 나타났다. 그것은 오늘날 알파벳이 유래한 인도-아리안 (Indo- Aryan) 문자의 기원이었다. 

수메르인은 넓은 바빌로니아 지역에서 문자 기록을 가진 첫 번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초기 연대는 우리들이 이집트의 연대에서 발견했던 것과 같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 근동문명의 전문가인 *Kramer 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수메르의 초기 역사의 연대는 대부분 불확실하다.” - *S.N. Kramer, 'The Sumerians,' in Scientific American, October 1957, p. 72

 

7. 문명 (Civilization) 

최초의 것들은 모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위치하는데, 그곳은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아라랏산에서 조금 남동쪽에 위치한다

B.C.3000년경 이전의 역사들이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더 오래된 연대가 주장될 때, 그것은 사람에 의해 쓰여진 기록에 의해서가 아니라, 방사성 탄소연대 또는 다른 방법들을 통해서 주장되는 것이다. 

창세기8:4) 에는, 대홍수의 거의 말기에 방주가 아라랏산의 한 지역에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산지 지역은 오늘날 이란, 이라크 (고대의 페르시아와 바벨로니아)와 가까이 있는 터키의 극동지역에 위치해 있다. 창세기 10장에서 우리는 가계(races)의 목록과 대홍수 이후 후손들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민족들의 표'(the Table of Nations)를 발견할 수 있다. 미국 고고학계의 거두로 알려져 있는 William F. Allbright는 그 표를 '놀랄만큼 정확한 기록(an astonishingly accurate document)' 으로 간주했다. (See W.F. Allbright, 'Discoveries in Bible Lands,' in Young's Analytical Concordance, p. 30). 

이외에 더 많은 정보를 위해서는 우리의 책, 고대인(Ancient Man)을 보라. 그러나 농업재배, 가축이용, 금속가공, 마을과 도시 건축.. 등등 이런 모든 초기의 시작에 관한 기록들은 모든 예에서 모두 근동지역에서부터 시작한다. 이것에 대한 예외는 부정확하고 악명 높은 탄소-14 연대측정에 의해 결정된 세계 여러 지역에서 발굴된 것들 뿐이다. 

”문명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사람에 의하여 세워진 가장 큰 구조물이고, 오늘날 미국의 Grand Coulee Dam을 능가한다. 그러나 그 웅장한 피라미드가 세워지기 1세기 전에는 전 세계에 어디에도 돌로 만들어진 건축물이 없다. 이것이 진화처럼 보이는가?” - H. Enoch, Evolution or Creation (1967) p. 131. 

 

8. 언어 (Languages) 

고대의 언어는 B.C 3000 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있으며,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발생하여 퍼져 나갔다. 

인류는 매우 지적이어서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문자 기록으로 표현하여 지구의 표면에 남겨놓았다. 대홍수 직후에 언어와 방언들이 갑작스럽게 발달하였는데,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무리를 지어 사방으로 흩어질 때에 바로 그렇게 발달되었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창세기 11:1-9) 

고대의 언어에 대한 기록은 B.C 3000년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문헌상의 그리고 언어학상의 연구를 통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던 그 무리의 대부분은 '언어 가계(language families)' 이었고, 그들의 대부분은 바벨로니아 지역으로부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예를 들어, 창세기 10장에 나열된, 야벳 후손들은 유럽과 인도로 흩어져 나갔는데, 거기서 그들은 소위 아리안 민족(Aryan peoples)으로 불리어졌다. 오늘날 그들은 인도-유럽어계(Indo-European Language Family) 라고 불리운다. 현대 언어학적 연구를 통하여 그들의 언어는 발트해에 대해 남동쪽 유럽의 중앙에서 근원이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은 노아의 방주가 상륙한 아라랏산 지역과 가깝다. 산스크리트어와 비교언어학의 전문가인 예일 대학의 Thieme는 다음과 같은 평가를 하였다.

”추측컨대, 인도-유럽어는 B.C 3000년 말경 독일의 발트해 연안에서 사용되었다고 생각된다.” - *Paul Thieme, 'The Indo-European Language,' in Scientific American, October 1958, p. 74. 

언어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보길 원한다면 우리의 책, Ancient Man를 보라.

 

9. 고대의 역사적 기록 (Ancient Historical Records) 

가장 오래된 연대는 B.C 3000년 정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적 기록은 우리가 직접적으로 가지고 있는 유일한 연대측정의 정보가 된다. 단지 수천 년에 불과한 역사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단지 암석, 물, 하늘, 그리고 추측만 가지고 있다. 기록된 역사에 관한 연대를 결정하는데 필요한 초기의 실제적인 정보들에 대한 추가적인 여러 진술들이 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오직 B.C 30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초기의 인류에 대한 기록은 단지 5,00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간다.” - *World Book Encyclopedia, 1966 edition, Vol. 6, p. 12. 

또 다른 과학자들은 역사적 기록은 B.C 20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기록된 역사에 의하여 사람의 존재를 생각하는 것은 흔한 실수이다. 역사적 기록은 B.C. 3000년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며, 이것은 사람이 지구에 살았던 시간에 비하면 매우 작은 비율이다.” - *A.M. Winchester, Biology and Its Relation to Mankind (1964), p. 600. 

*Montague 는 가능한 역사적 기록의 절대적인 한계를 B.C. 4000년 이라고 말했다.

”인류는 약 100만 년 전에 존재했다고 믿어지기 때문에, 그들은 지구상에 존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기록된 역사는 6,000년 이상 되지 않는다.”- *Ashley Montagu, Man: His First Million Years (1957), p. 21. 

연대를 늘리는 어떠한 방안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문자의 발명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가능성도 단지 B.C. 4,000년 정도밖에 올라가지 못한다.

”약 6000년 전 문자의 발명은 사람의 역사상의 기간(period)을 알게 해 준다. 6000년 이전의 과거는 유사 이전의 시대로 알려져 있다.” - *Mark A. Hall and *Milton S. Lesser, Review Text in Biology (1966) p. 354. 

가장 초기의 문자는 B.C. 4000년 경으로 말하여진다 하더라도, 가장 초기에 기록된 언어(written language)는 B.C. 3,500년 정도이다.

”가장 초기에 쓰여진 언어인, 수메리안 상형문자는 B.C. 3,500년 정도이다.” - *Ashley Montagu, Man: His First Million Years (1957), p. 116. 

우리는 B.C 4,000년 이전에 그 어떤 인류 문명에 관한 자료도 가지고 있지 않다.

”B.C. 4000년 이전의 인류 문명의 역사적 기록은 전무하다.” - H. Enoch, Evolution or Creation (1967)? p. 137. 

이상한 일이지만, 사람은 지난 100만 년간 했던 일보다 지난 6000년 동안에 더 많은 일을 해냈다. 지난 100만 년 동안 인류가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어떠한 작은 증거도 없다는 사실은 그것을 더 명확하게 해준다.

”지난 6천 년 동안, 사람은 유사 이전의 백만 년 또는 그보다 더 오랫동안 발전했던 것보다 더 많이 발전했다.” - *Louise Eisman and *Charles Tanzer, Biology and Human Progress (1958), p. 509.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방법을 발전시킨 사람들은 B.C.3000년 이전에는 인류에 관한 어떤 기록도 없다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그들의 선생님들은 그것을 대학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연구는 두 가지 영역으로 나뉘었다. 그것은 각각 역사시대 그리고 역사 이전 시대의 중요한 사건들로부터의 표본(sample)에 대한 연대측정이었다. 역사가 오직 50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려주었을 때, 그것은 동료인 Arnold와 나에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당신은 사회적 또는 고고학적 유적이 20,000년이 되었다는 글을 읽게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정확성을 가진 가장 초기의 역사적 연대는 이집트의 첫 번째 왕조 시대인 것이다.” - *Willard Libby, Science, March 3, 1961, p. 624. 

수천년전 특정 시점 이전에, 사람이 존재했다는 흔적이 없다. 특정 시점 이후에 문명, 문자, 언어, 농업, 가축이용,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들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시작되었다.

”최근 발굴에 있어서, 문명이 갑작스럽게 세상에 나온 것보다 더 놀랄만한 발견은 없었다. 이 발견은 기대했던 것과는 매우 반대의 결과이다. 문명의 자취가 거의 없고, 토착민이 나타날 때까지는, 더 오래전 고대의 시기일수록, 발굴자들은 더 원시적인 것을 발견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사람의 거주지역으로 알려진 바벨로니아나 이집트에서도 그렇지 않았다.” - P.J. Wiseman, New Discoveries, in Babylonia, about Genesis (1949 ), p. 28. 

B.C. 3000년 또는 4000년 정도의 연대는 가장 많이 거슬러 올라가는 연대로 추정된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역사의 가장 오래된 문명이라고 말하는, 이집트로부터 증명된 믿을 만한 연대는 단지 B.C. 1,600년 정도까지만 거슬러 올라갈 뿐이다.

”증명된 믿을 만한 연대는 이집트의 역사로부터 오직 B.C. 1600년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John G. Read, Journal of Near Eastern Studies, (1970), Vol. 1, p. 29.


10. 가장 오래된 사람들 (The Oldest People) 

그들은 B.C. 3,000년 전으로 올라가지 않으며, 메소포타미아에 살고 있었다. 

다양한 방사성 연대측정의 기술들은 너무 부정확하며, 인류는 지구상에 오직 수천년 동안 살아 내려왔다.

”방사성 붕괴에 의하여 측정된 연대는 단지 몇 년 정도가 아니라, 자리수가 틀릴 정도로 실제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사람은 360만 년 동안 지구상에서 살아왔던 것이 아니고, 단지 수천 년 동안인 것 같다.”- *Robert Gannon, 'How Old Is It?' Popular Science, November 1979, p. 81. 

우리는 인류의 문명이 수천년 이상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떤 기록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직 6000년 또는 7000년 전에... 문명은 출현하였고, 인간들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 *Jonathan Schell, The Fate of the Earth (1982), p. 181 

B.C. 3000년 이전에는 기록된 어떠한 자료도 없다.

”고대 세계에서 농업 혁명의 결정적 단계의 대부분은 B.C. 1000~5000년 사이에 발생했다....단지 마지막 5,000년 동안 인류는 문자로된 기록을 남겨두었다.” - *Readers's Digest, the Last Two Million Years (1984), pp. 9, 29. 

문명이 발생하자마자, 마을과 도시가 존재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메소포타미아에 있었다.

”대부분의 문명발생 지역에서, 도시화가 일찍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가장 오래된 문명과 가장 최초의 도시(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명과 도시)였다는 것에는 거의 의심이 없다.” - *Robert M. Adam, 'The Origin of Cities,' Scientific American, Vol. 203, September 1960, p. 154. 

가장 최초의 왕의 목록은 단지 B.C. 3,000년 정도까지만 추적된다.

”이집트 왕의 목록은 첫번째 이집트 왕조까지 추적되고, 그것은 약 B.C. 3,000년 전이다. 그 이전에는 어느 곳에서도 기록된 자료가 없다.” - *Colin Renfrew, Before Civilization (1983), p. 25.

 

11. 결론 (Conclusion) 

인간은 100만 년이 넘는 이전에 출현하여 10만 년 전에 진화를 멈췄다고('stopped evolving') 진화론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왜 적어도 10만 년 된 문명, 도시, 그리고 사람의 유물들은 없는 것일까? 

지구의 나이에 대한 진화론적 추정은 끊임없이 변하고, 날이 갈수록 길어졌다. (그것은 현재 50억 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과학적 증거들은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있고, 새로운 믿을만한 증거가 나타남으로서, 지구의 나이는 견고할 정도로 확정되고 있다. 그것들 모두는 우리 행성의 시작이 6000년 전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어떤 사람은 7,000년에서 10,000년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증거들은 지구의 기원이 약 B.C. 4000년 경이라고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젊은 지구에 대한 증거들은 과학적으로 견고하다. 

진화론자들은 말하길, 최초의 인간은 1~2백만 년 전에 존재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강조하여 인간은 10만 년 전에 진화를 멈추었다고 덧붙인다. 

그러면 왜 우리는 적어도 10만 년 된 문명, 도시, 그리고 모든 종류의 잔재들을 찾지 못하는 것일까? 우린 그걸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성경은 옳고, 진화론은 틀리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이 세상을 6000년 전에 창조하셨다. 그리고 약 B.C. 2348년에 거대한 홍수가 지구를 덮었다. 우리는 매우 고대의 사건을 다루고 있음을 명심하라. 모든 증거들은 이러한 그림과 조화롭게 일치하는 것이다.

 

*참조 : The antediluvian patriarchs and the Sumerian King Lis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53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sdadefend.com/pathlights/ce_encyclopedia/Encyclopedia/05agee4.htm

출처 - Creation-Evolution Encyclo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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