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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Headlines
2005-10-24

도버에서 열린 지적설계론 재판에 스타 증인이 섰다.

(Dover I.D. Trial Calls Star Witness)


       편모(flagella), 쥐덫(mousetraps), 블랙박스(black boxes) 등으로 유명한, 그리고 ”한 요소도 제거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주장하는 레히(Lehigh) 대학의 생화학자 마이클 베히(Michael Behe)가 2005. 10. 17일 펜실바니아주 도버(Dover)에서 열린 지적설계론 재판에 증인으로 섰다. 이 사실은 New Scientist, MSNBC News, Washington Post 등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실제 진행에 대한 더 많은 상세한 내용은 지적설계에 호의적인 EvolutionNews을 보라.

베히는 기술적 전문용어들을 사용하며 일부 방청자들을 압도하였다. 그리고 생물학에서 명확한 증거들에 기초한 지적설계의 증거들이 너무도 많다는 그의 견해를 주장하였다. 그는 또한 분자 기계(molecular machines)들을 설명하고 있는 다윈주의 메커니즘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다른 교육위원회들도 관심과 공포(trepidation)로 이 재판을 지켜보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지는 다음과 같은 글을 싣고 있다 :

'더 많은 교육위원회들이 지적설계를 언급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중이다. 해리스버그(Harrisburg)의 북쪽에 있는 쉭스쉬니(Shickshinny)의 교육위원회 위원인 랜디 토마사치(Randy Tomasacci)는 그의 교육위원회도 교사들에게 지적설계론을 가르칠 것을 요구할 것인지에 대해서 몇 일을 소비하며 토론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지적설계를 고려 중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고소당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베히의 지위는 안전하다. 비록 그가 재직하고 있는 레히 대학은 지적설계론을 거부하고 있지만, 베히는 정년을 보장받았고 (다른 지적설계 지지자들과 같지 않게), 그의 견해에 대해서 제약을 받을 수 없다. 한편 기자들과 비평가들은 베히가 가톨릭 신자라는 것에 대해, 그래서 그가 지적설계자를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 것에 대해서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기자(reporters)들은 베히가 가톨릭 신자라는 것에 집중하는 대신, 과학적 증거(evidences)들에 대해 시선을 집중할 수는 없을까? 아마도 그들은 그들이 풍자하고 있는 지적설계론자들에 대한 비밀스런 움직임 대신에, 과학에 대한 새로운 지식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반-지적설계론 기자인 알란 보일(Alan Boyle)은 그의 편견에 대한 독자들로부터의 수많은 이메일들을 받았던 것처럼, 진화론만을 주장하는 책들과 진화론 웹사이트 만을 살펴볼 것이 아니라 (MSNBC을 보라), 리 스트로벨(Lee Strobel)의 책 ‘The Case for a Creator ’을 읽어보고 기사들을 써야할 것이다

또한 MSNBC은 딸이 지적설계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다른 학생들에 의해서 따돌림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을 걱정하는 한 부모에 관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라. 크리스천들은 진화론자들이 했던 것처럼 똑같이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진화론-지적설계론 재판에서 피고측 변론이 시작되다 (10/20/2005)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 ID)에 있어서 유명 스타인 레이 대학(Lehigh University)의 생화학자인 마이클 베히(Michael Behe)가 증인으로 어제 법정에 섰다. 이것은 키츠 밀러(Kitz miller) 등과 도버(Dover) 교육위원회 사이의 진화론-지적설계론과 관련한 소송사건에서 변론이 시작됨에 따른 것이다. 그는 창조론과는 달리 지적설계론은 '과학” 이며, 진화론 모두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고, 진화론의 한 측면인 자연선택설에 관련된 것을 문제 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펜실베니아 연방법원에서 4주째 진행되고 있는 이 소송은 전 세계의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는데, 그 이유는 공립학교에서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대체 이론인 지적설계론이 학생들에게 가르쳐질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이기 때문이다.

피고측 변호사인 로버트 뮤즈(Robert Muise)의 심문에 대한 답변에서, 베히는 지적설계론은 다윈의 이론인 자연선택설 보다는 훨씬 더 과학적이라는 것을 재판관 존스(John E. Jones III)에게 설명하였다. 베히는 지적설계론은 두 가지 독립적인 주장에 근거한다고 말하였다. 하나는 다윈설의 실체를 밝히려는 것으로서, 자연선택설은 "한 요소도 제거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보이는 시스템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좋은 예는 세균의 편모(flagella)인데, 이것은 세균에 있는 작은 회전 모터로서, 세균은 이것을 이용하여 그 몸체를 회전하면서 추진력을 얻어 나간다. 이것은 모든 복잡한 구성 요소들이 모두 같이 있어야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이 시스템 즉, 편모는 진화론의 메커니즘인 무작위적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서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구성 요소들이 의도적인 배열을 보이는 것은 지적설계의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과학자들이 지적설계론을 비과학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 개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편모에 대한 주장은 직접적인 실험적 증명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베히는 주장했다. 그는 꼬리 없는 세균을 만 세대 동안 증식시켜보면, 자연선택만으로 충분히 편모가 재창조될 수 있는지를 2~3년 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편모가 생겨난다면, 지적설계론은 의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원고(진화론) 측은 베히의 증언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묵살하지도 않았다. 청중 중의 한 명인 랜디 토마사치(Randy Tomasacci)는 근처 지역의 교육위원회 위원인데, 그의 지역은 지적설계론을 학생들의 커리큘럼에 포함시키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하면서, 베히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출처 : http://sciencenow.sciencemag.org/cgi/content/full/2005/1018/1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200510.htm 

출처 - CEH, 2005.10. 18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930

참고 :

Carl Wieland
2005-10-22

원숭이는 말하는 것을 배웠는가? 

(Has an ape learned to talk?)


       칸지(Kanzi)라는 난쟁이 침팬지(bonobo or pygmy chimpanzee)가 말하는 것을 배웠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사실, 진화론자들의 흥분이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현실은 훨씬 더 요란스럽다.

칸지와 다른 침팬지들은 바나나, 포도, 주스, 또는 예스 같은 개념을 나타내는 단순한 기호들을 사용하는 훈련을 수년 동안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제, 분석한 테이프로부터, 이 원숭이들은 네 가지의 특별한 개념을 나타내는 데에 네 개의 분명한 소리(sounds)를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어떤 원숭이 또는 사람이 그것을 이해했는지는 현재 명백하지 않다.

인간의 말(speech)과 같은 소리는 없으며, 그것을 흉내 낼 수도 없다는 것을 주목해야만 한다. 원숭이의 후두(larynx)는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예를 들면, 그것은 인간 언어의 기본적인 모음(아, 오, 이.., 등)을 만들 수 없다. 인간과 가까운 관계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아프리카 회색 앵무새(African Gray Parrots)는 상징적인 개념을 전하는 데에 발성(vocalization)을 사용해서 원숭이보다 훨씬 더 나은 소리를 낼 수 있다.

얼마 전 창조(Creation) 지에서 보고했던 것처럼, 그들 중 한 마리는 최소한 실제 영어 단어를 명료하게 발음할 수 있었고, 그것들을 의미 있는 개념으로 연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떠한 명백한 진화론적 유용성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처럼 이것을 듣지 못한다.

더 중요한 것은, 앵무새도, 칸지도, 다른 어떠한 동물도 실제 언어를 사용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언어(language)는 말해지는 단어 또는 어떠한 소리를 포함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몸짓 언어(sign language)를 생각해 보라. 그것도 진정 언어이다. 그러나 언어는 음성화 되든지 아니든지 간에, 언어학자들에 의해서 단지 기호들의 사용 이상으로 정의되고 있다. 언어는 구문과 문법과 같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록 원숭이들이 약간의 것들에 대한 신호를 만들 수 있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진정한 몸짓 언어와 결코 혼동되서는 안 된다.

니카라과(Nicaragua)에서 여러 귀머거리 어린이들이 어떠한 언어도 배우지 못한 채, 환경에 함께 놓여졌을 때, 그들은 구문과 문법 규칙들을 완비한 그들 자신의 매우 복잡한 몸짓 언어를 발달시켰다. 인간의 뇌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도록 하는(심지어 필연적으로) 복잡한 프로그래밍을 운반한다.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람들이 언어를 진행시키는 뇌의 같은 부위에서 몸짓언어를 진행 처리한다. 그러나 이들 언어 부위(language areas)는 사람에게만 독특하게 있고, 사람이 아닌 생물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서, 말하는 원숭이(talking apes)는 존재하지 않는다.



Reference

1. Birdbrain matches chimps (and neither makes it to grade school)Creation 19(1):47, 1996.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5/i3/talkingApe.asp

출처 - Creation 25(3):52–53, June 2003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928

참고 :

Lee Strobel
2005-09-28

너희가 진화를 믿느냐? - 제3장


      근대의 과학 세계에서 진화(evolution)는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세계의 모든 과학자와 여러 과학적 증거들이 당연히 진화론을 지지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케임브리지, 스탠포드, 코넬, 예일, 프린스턴 등 유명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우리는 진화에 대해 회의적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들은 동료들의 박해가 있을 위험에도 불구하고 과학계에서는 금기시 되는 주장을 과감히 밝혔다.

우리는 과연 현대 과학이 무신론을 지지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지지하는지 체계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먼저 진화론의 주장들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이를 위해 진화론의 아이콘(밀러의 실험, 다윈의 진화계통수, 헤켈의 배아발생도, 시조새 화석)들을 재검토 해 본다. (저자는 조나단 웰스 박사를 찾아가 그와의 대화에서 문제의 해답을 찾는다. 그는 UC 버클리에서 지질학과 물리학 학사를 받았는데, 부전공으로 생물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예일 대학원에서 종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때의 전공 분야는 다윈을 둘러싼 19세기의 논쟁이었다. 그리고 다시 버클리에서 분자와 세포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그의 연구의 초점은 주로 척추동물의 발생학과 진화였다. 그는 진정으로 과학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졌다. 얼핏 들은 풍월을 마치 사실인 양 고집하는 사람과 다르다.)


첫 번째 이미지 : 밀러의 실험

당시 밀러는 노벨상 수상자이자 그의 지도교수였던 해럴드 유레이의 대기 이론에 의지하여, 원시 지구의 환경을 설정하여 아미노산을 합성하는 실험을 하였다. 현재 원시 대기가 어떤 상태였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원시 대기가 밀러가 조성한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밀러는 메탄, 암모니아, 수증기에다 수소가 많이 들어간 혼합물을 선택했다. 당시의 많은 과학자들은 원시의 대기상태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대의 과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1970년대 중엽, 벨기에의 생화학자인 마르셀 플로르킨은 밀러의 원시대기론을 바탕으로 한 개념은 ‘폐기되었다‘고 선언했다. 저명한 생명기원 연구자들인 클라우스 도스와 시드니 폭스는 밀러가 잘못된 혼합가스를 사용했음을 확증했다. 그리고 1995년에 “사이언스“지는 ‘원시 대기가 밀러의 실험에서 가정한 것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제 전문가들은 그 실험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의 과학자들은 원시 대기가 이산화탄소, 질소, 그리고 수증기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1960 년대부터 대부분의 지구과학자들이 원시 대기는 밀러의 실험에 사용된 혼합 가스와 전혀 다른 상태였다고 밝혔는데도, 아직도 교과서는 밀러의 실험이 원시 지구의 환경을 재현한 것처럼 소개하고 있다. 정확한 대기를 사용하여 밀러의 실험을 재연하면 분명히 아미노산을 얻지 못한다. 실제 대기를 사용해도 여전히 유기분자를 얻을 수 있기는 하지만, 그 유기분자란 포름알데히드, 즉 시안화물(쉬운 말로, 청산가리)이다. 그것은 비록 유기분자일지 모르지만, 너무 독성이 강해서 그 주위의 단백질이 익어버린다. 그것은 생명체의 배아를 죽이므로, 현실의 원시 대기를 사용해 생명 기원의 첫 단계에 들어선다는 것은 그야말로 웃기는 소리이다. 그것을 가지고는 기껏해야 방부제가 생길 뿐이다.


밀러의 실험에 대한 평가 : 깨진 달걀 다시 붙이기

화학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지만, 원시 지구의 실제 대기 조성에서 아미노산이 만들어졌다고 치더라도, 그 아미노산이 살아있는 세포로 생성되기까지는 믿기 어려울 만큼 많은 과정들을 거쳐야 한다. 우선 수십 개의 단백질 분자들이 올바른 순서로 배열해야만 살아있는 세포 하나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시험관 안에 살아있는 세포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분자가 다 들어 있더라도 그 조건에서 살아있는 세포를 만들 수 없다. 결론적으로, 생명체를 창조하려면 무기물에서 세포의 구성요소들을 만들어 내는 어려움은 물론이고, 그 요소들이 올바른 방식으로 결합해야만 한다. 그것은 깨진 달걀은 다시 붙지 않는 원리와 같다.

오늘날 밀러의 실험이 가지는 과학적인 의미는 사실상 없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흥미로운 실험이었다. 바로 그 이론 때문에 여러 해 동안 많은 사람들이 생명이 저절로 생겨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것이 영향이 되어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부터 공립학교에서 주기도문과 십계명을 없애버렸다.

생화학자이자 영적 회의론자이며, DNA의 분자구조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프랜시스 크릭은 몇 년 전 ‘기적‘이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지식으로 무장한 정직한 사람이라면, 어떤 의미에서 생명의 기원은 거의 기적으로 보인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미지 : 다윈의 진화계통수

가장 유명한 진화의 아이콘 중 하나는 『종의 기원』에서 실린 다윈이 직접 그린 그림이다. 다윈은 그 그림을 통해 모든 생물이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나왔고, 자연선택이 우리 현대 세계에서 보는 수많은 유기체의 발달을 낳았다는 이론을 주장했다. 그것은 마치 자연사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열쇠 같았다. 그러나 과연 그 계통수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일치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화석기록은 철저히 그것을 부정하고 있다.

다윈 이론의 핵심 중 하나는 "사소하고, 연속적이고, 유리한 변이가 서서히 축적됨으로써" 자연선택이 일어나되 "갑작스럽거나 커다란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윈이 활동하던 당시에도 다윈은 화석기록이 전혀 자신의 진화계통수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윈은 미래에 발견될 화석들이 자신의 이론을 입증해 주리라고 믿었지만, 그 이후로 150년 동안 발견된 화석들은 오히려 다윈의 진화계통수를 뒤엎어 버렸다. 화석기록은 다윈의 이론과 정반대되는 내용을 보여주고 있는데, "캄브리아기 폭발"이 그 예이다. 캄브리아기 폭발이란 "생물학적 빅뱅"이라고도 부르는데, 진화론 연대로 약 5억 4천만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질학 시대인 캄브리아기에 지금 멸종한 동물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대부분의 주요 동물문이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화석 기록에 따르면 캄브리아기 이전에는 일부 생물들만 있었다. 그러다 캄브리아기로 들어서자 갑자기 "펑!" 하고 빅뱅이 일어난 것이다. 이 시기에 절지동물(현대의 곤충, 게 등이 해당), 극피동물(현대의 불가사리와 성게), 척색동물(현대의 척추동물) 등이 나타났다. 포유류는 나중에 나타났지만, 척색동물은 캄브리아기 초기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다윈의 진화 계통수와 정반대되는 모습이다.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동물들이 완전히 발달된 형태로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결국 캄브리아기 폭발은 다윈의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린 것이다.


세 번째 이미지 : 헤켈의 배아발생도

헤켈의 배아발생도란 발생의 세 가지 단계에 있는 물고기, 도룡뇽, 거북이, 병아리, 돼지, 송아지, 토끼, 사람의 배아를 나란히 보여주는 그림이다. 다윈에 따르면, 초기 배아들 사이의 놀라운 유사성은 모든 생물이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나왔다는 그의 이론을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하나의 사실이었다. 그 그림을 보면 초기 단계의 배아들이 서로 너무나 닮아서, 이것은 다윈주의를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헤켈의 그림과 실제 배아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 그림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점은, 첫 번째 단계의 유사성이 조작된 것이라는 것이다. 학생 때 배운 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람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 설마 조작된 것이라니? 그런데 실상은 조작이 맞다. 심지어 헤켈은 하나의 목판으로 다른 동물의 배아를 찍어내기까지 했다. 그는 모든 동물의 초기 배아가 똑 같다는 자신의 이론을 너무나 확신한 나머지 각 동물의 배아를 따로 그릴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실제보다 더 비슷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그림을 조작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 그림들은 실제 배아들과 다르다.

그 사실이 밝혀진 것은 사실 1860년대 후반이다. 헤켈의 동료들이 그를 사기꾼이라고 비난하며 폭로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에도 그리고 지금도 교과서에서 그것을 사실인 양 배우고 있다. 진화론계의 거장이었던 하버드의 굴드 박사는 배아발생도가 한 세기가 넘도록 분별없이 재활용된 것에 대해 교과서 저자들이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적어도 그에게는 그것을 “학문적 살해행위”라고 말할 정도의 솔직함이 있었던 것이다.

헤켈의 두 번째 잘못은, 헤켈이 표본을 세심하게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는 척추동물의 7개 강 중에서 일부만을 선택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배아발생도에는 여덟 개의 서로 다른 동물이 있다. 그 중 넷은 포유류지만 모두 태반류이다. 배아발생도에서 빠진 두 종류의 포유류는 모양이 완전히 다르다. 나머지 네 동물은 척추동물의 네 강(파충류, 조류, 양서류, 어류)을 보여주는데, 그가 생략한 나머지 네 강들에 비해 모습이 서로 비슷하다. 그는 양서류를 대표하는 것으로 개구리 대신 도롱뇽을 사용했다. 개구리는 모습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는 각 강(綱)에서 결과를 조작하기에 쉬운 동물만을 선정한 것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헤켈이 주장한 초기 단계의 발생이라는 것이 전혀 초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발생의 중간 단계에 해당한다. 좀 더 초기 단계로 거슬러 올라가면 배아들은 훨씬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헤켈은 의도적으로 그 전 단계를 몽땅 생략했다. 다윈의 주장이 맞으려면, 초기 단계의 배아들이 비슷해서 그것이 바로 생명체가 공통 조상에서 나왔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싶은데,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척추동물의 배아들은 세포분열 초기단계에서 서로 매우 다른 모습으로 출발한다. 예를 들어 포유류의 세포분열은 파충류나 조류 등 다른 강의 세포분열과 확연히 다르다. 그것들은 서로 혼동할 여지가 없다. 사실 개개의 강 내에서도 배아들은 전혀 다르게 생겼다. 그러다가 헤켈이 초기 단계라고 주장했던 중간 단계의 시기에 접어들면 배아들은 좀 더 비슷해진다. 그러나 헤켈이 주장했던 정도의 유사성은 어림도 없다. 그 다음 과정에 이르면 배아들은 다시 확연히 달라진다. (헤켈이 그린 조작 그림과 실제 사진을 다음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85¶m=category=J05)

 

아가미에 관한 진실

모든 생물이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나왔다는 증거로 주장하는 것은 헤켈의 배아발생도만은 아니다. 진화론자들은 인간의 배아가 발생 단계에서 목에 아가미 같은 구조를 가지는 시기를 거친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조상들이 바다에서 살았다는 확신을 심어준 정보였다. 백과사전에도 “포유류의 태아들은 어류의 아가미와 닮은 아가미구멍이 생기는 단계를 거친다.”고 나와 있다. 그리고 근래에 출판된 일부 생물교과서들조차 인간 배아에 ‘아가미 주머니’ 또는 ‘아가미 틈새’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상은 이렇다. 머리를 배꼽 쪽을 내려다보면서 목을 만져보면 피부가 접혀져 생긴 이랑들이 있다. 배아는 몸을 구부리고 있는데 그 목에는 이랑들이 있다. 물론 이것은 피부가 접힌 것만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러나 이것은 척추동물의 배아가 발생하면서 보이는 해부학적 특성일 뿐 분명히 아가미는 아니다. 그 단계에서는 물고기도 아가미가 없다. 인간에게 있어서 그 이랑들은 나중에 귀와 턱 부분이 되고, 어류는 아가미가 된다. 그것은 절대 아가미구멍이 아니다. 이것을 아가미와 비슷한 구조라고 하는 것은 진화론적 시각에서 진화의 증거로 해석하는 것일 뿐이다. 영국 발생학자 루이스 울퍼트가 말한 것처럼 유사성은 착각일 뿐이다. 진화론자들은 한때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유명한 표현을 가르쳤다. 그것들은 배아들이 발생 과정에서 그 동물의 진화 과정 전체를 되풀이한다는 말을 근사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배척되어 왔다. 그런데도 지금까지도 "아가미구멍" 이론 같은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날개, 물갈퀴, 다리, 손

공통조상에 대한 또 다른 범주의 증거로, 척추동물의 팔다리와 날개에서 볼 수 있는 ‘상동성’이다. 즉, 박쥐의 날개, 돌고래의 지느러미, 말의 다리, 인간의 손 사이에서 보이는 골격 구조의 유사성에 대한 그림들이 있다. 이들 팔다리와 날개들은 각기 다른 용도로 적응했지만, 그 근저에 있는 유사성 혹은 ‘상동성’은 그들 모두가 공통조상에서 나왔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윈 시대에 가장 유명한 해부학자였던 리처드 오웬은 상동성이 ‘변이의 계승’이 아니라, 공통 원형 또는 설계를 가리킨다고 말했다. 그들 사이에 분명히 유사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변이의 계승과 설계 어느 쪽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모델 사이에 모양이 비슷한 것은 분명히 설계자가 개입했다는 증거이다. 만약에 그것이 다윈주의의 공정으로 생겨났다는 것을 보이고 싶다면, 일단 어떻게든 자동차 한 대를 얻고 난 후 녹, 바람, 중력 등의 자연적인 힘이 그 차를 신형 모델로 바꾼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다윈주의에서는 그것을 ‘공통발생 경로’라는 메커니즘을 제안했다. 상동적 특성을 가진 두 동물의 배아 단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유사한 세포에서 유사한 과정을 거쳐 나왔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어떤 개구리들은 발생과정에서 도롱뇽과 비슷하고 어떤 개구리들은 새와 비슷하지만, 다 자라고 나면 모두 거의 같은 모습의 개구리이다. 요즘은 유사한 유전자에서 상동성이 나온다는 설명이 일반적이지만, 실제로 다른 유전자에서 유사한 특성들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그보다 훨씬 많은 경우 유사한 유전자에서 전혀 다른 특성들이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발생경로설이나 유사유전자설도 상동성을 설명하지 못하고, 한 마디로 신비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교과서에서는 공통조상 때문에 생기는 유사성이 공통조상을 증명한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순환논증이다.


인간 유전자, 원숭이 유전자

인간과 원숭이의 유전자가 98% 내지 99% 똑 같다는 유전학 연구 결과가 있다. (이것은 최적의 조건에서 비슷한 부분끼리만 비교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것은 공통 조상으로부터 나왔다는 증거일까? 해부학적으로 유사한 두 생물이 유전적으로 유사한 경우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놀랄 만큼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것이 꼭 공통조상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통설계로도 설명할 수 있다.

여기서 신다윈주의의 주장을 분석해 보자. 인간이 인간 유전자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극적인 차이는 2%의 유전자에서 나온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차이가 나는 2%의 유전자는 해부학적 구조와는 거의 상관이 없는 비교적 사소한 유전자들이고, 소위 몸을 구성하는 유전자들이 그 98% 안에 있다. 그러니까 인간과 침팬지 DNA의 유사성은 신다윈주의자들의 설명과 맞지 않는다.


네 번째 이미지 : 잃어버린 연결고리 시조새 화석

1859년 “종의 기원”이 출간되었을 때, 다윈은 “내 이론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가장 명백하고 심각한 반론”은 화석기록이 그의 진화가설을 뒷받침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다윈은 이 문제를 화석기록이 불완전한 탓으로 돌렸고, 미래에는 화석들의 발견으로 자신의 이론이 입증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치 그 말이 신호이기라도 하듯이 2년 후 과학자들은 독일의 한 채석장에서 시조새의 화석을 발굴했다. 그리고 다윈의 지지자들은 감격했다. 파충류와 조류를 잇는 이 잃어버린 연결고리가 다윈의 책이 출간되자마자 그토록 빨리 발견된 것은, 그것을 필두로 앞으로 다윈의 주장을 입증하는 많은 화석들이 발견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 화석기록은 다윈을 완전히 실망시켰다. 시조새를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형태라고 주장한 근거는, 부리에 이빨이 있다는 것과 날개에 발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부리에 이빨 달린 새를 발견했으며, 날개 끝에 발톱이 달린 새는 타조 등 그 예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시조새의 치조골이나 깃털 구조 등으로 볼 때 시조새는 완벽한 새였음이 드러났다. 오늘날에도 오리너구리 같은 이상한 동물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중간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현재 진화론 학계에서는 시조새는 현대 조류의 조상이 아니라, 완전히 멸종한 조류의 일종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1982년 국제시조새회의에서 완전한 조류로 공식적으로 발표되었음.)


사기꾼과 칠면조

그러나 진화론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을 가진 고생물학자들은 조류의 파충류 조상을 찾아내려고 열광적으로 노력해 왔다. 그들의 열정 덕분에 최근의 과학계에 망신살이 뻗친 사건이 있었다.

몇 년 전 미국 국립지리학회는 애리조나의 한 광물전시회에서 구입한 화석이 실제로 날 수 있는 조류와 육상공룡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라고 발표한 적이 있다. 그들이 ‘아르케오랍토르(Archaeopteryx)’라고 부른 그 화석에는 공룡의 꼬리와 새의 앞날개가 함께 있었다. 1999년에 ‘내셔널지오그래픽’ 지는 이를 근거로 해서 깃털 달린 공룡이 첫 번째 새의 조상이라는 새로운 증거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조작품이라는 것이다. 한 중국인 고생물학자가 누군가 원시 새에다 공룡의 꼬리를 붙였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 누군가가 과학자들이 찾던 모습의 화석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또 어떤 컨퍼런스에서는 어떤 분자생물학자들이 6천5백만 년 된 조류 계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공룡 뼈에서 새의 DNA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그들이 발견한 DNA는 조류와 90% 내지 99% 정도 유사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100% 칠면조 DNA였다. 100%의 칠면조 DNA를 가진 것은 칠면조뿐이다.


자바인의 전설

인간의 진화에 대한 그림에 관하여 자바인 한 가지만 다루어 보자. 자바인에 대해 백과사전에는, 네덜란드의 과학자 유진 듀보아가 1891년과 1892년에 인도네시아의 한 섬에서 발굴 작업을 하는 도중 “강기슭에서 일부 뼈들을 파낸” 과정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가 50만년 이전으로 추정한 자바인은 “뇌가 더 작은 조상으로부터 현대인에 이르는 발달 과정의 한 단계에 해당한다.” 듀보아의 말에 따르면, 자바인은 원숭이와 인간 사이의 잃어버린 연결고리가 분명했다.

그런데 자바인의 진실은 이렇다. “자바인이 두개골 하나, 대퇴골(넓적다리뼈), 치아 세 개, 그리고 엄청난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자바인의 생생한 모습은 다윈주의가 옳다고 가정할 때 마땅히 갖추어야 할 모습에 대한 진화론자들의 추측이 낳은 결과물에 불과했다.

그 두개골은 인간의 것이 분명했고, 뇌의 용량도 오늘날 인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19명의 진화론자들로 이루어진 진상조사단이 제출한 342쪽의 보고서는 듀보아의 주장을 뒤엎었고, 자바인은 인간 진화에 대한 어떤 실마리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타임’ 지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듯, ‘타임’ 지는 지난 1994년에도 자바인을 인간의 합법적인 조상으로 다룬 기사를 실었다.


인간 진화 이야기

고인류학의 주요 문제들 중 하나는 현재 발굴된 화석 전체에 비교할 때, 인간의 조상이라 할만한 생물의 것은 그 수가 보잘 것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두개골 조각이거나 치아뿐일 때가 많다. 결론적으로 인간 진화론은 "인간의 편견에 따라 구성된 사실을 짜 맞춘 인간의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화석들이 인간 진화론을 뒷받침한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이유는 다른 사실들을 근거로 하여 다윈주의가 옳다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왜곡되고, 위조된 실패

진화의 아이콘이 하나씩 신빙성 없는 것으로 밝혀질 때마다, 다윈주의자들은 특유의 신앙적 열정으로 처음부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조사 결과는 정말 대진화를 지지한다고 내세운다. 그리고 이제 원래의 아이콘이 뒷받침해 주지 않아도 진화론 자체는 의문시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새로운 모델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진화론을 다시 사용한다. 일례로 몇 년 전 굴드와 그의 동료는 ‘단속평형설’이라는 새로운 가설을 제안했는데, 그것은 화석의 간격을 설명하기 위한 절박한 시도였다.


설계의 증거를 외치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로 다윈주의를 분석해 본다면, 다윈주의는 과학을 가장한 유물론 철학에 불과하다. 과학의 증거들은 오히려 ‘설계’를 강력하게 가리킨다. 캄브리아기 폭발이나, 상동성 등의 증거들은 생명의 기원이 설계자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가 된다. 뿐만 아니라 우주론, 물리학, 천문학, 생물학 등에서 최근에 나오는 분명한 증거들을 모아 분석해 보면, 지적 설계자를 지지하는 논거가 강력하게 발견된다.

 


번역 - 이종헌 편저

링크 - ,

출처 - 창조과학회 대구지부 월간소식지 제 35호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880

참고 :

이종헌
2005-08-19

너희가 진화를 믿느냐?


      저자는 1966년에 고등학교 신입생이었다. 그는 과학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무신론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정보를 얻었다.

과학은 "실험으로 증명된 진실"이라는 허울을 쓰고 우리를 미혹한다. 물론 과학에 그런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생물 시간에 개구리를 해부하는 경우, 개구리의 배를 갈라놓고 음식물이 어떻게 소화되고, 생명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보여주는 실험을 통하여 과학은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과학은 경험적인 것, 믿을만한 것, 의심할 수 없는 사실, 실험으로 증명된 진실 등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그저 의견이나 추측, 미신, 분별없는 믿음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무시한다. 과학에 대한 감탄이 늘어가면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은 약해져 간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만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증거가 없다면 거기에 관심 둘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사실들은 증거가 확고하며, 과학적 발견들은 "지적으로 온전한 무신론자"가 될 수 있게 해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과학은 "증명된 사실"이고, 종교는 "무조건적인 신념"이 아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과학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나면 오히려 그 반대가 된다. 이 책의 저자의 경우가 그렇다. 과연 과학의 바탕에는 어떠한 전제들이 깔려 있을까? 저자는 이번 장에서, 진화가 가지고 있는 상징물(icons)들을 나열하고, 다음 장부터 그것들을 깊이 있게 조사해 가며 하나하나 반박하고 있다. (편주 : 여기서는 각각의 주제들에 관하여 간단한 반론을 제시한다.)


진화의 이미지

첫 번째 이미지 : 스탠리 밀러의 실험 - 튜브와 플라스크, 전극

이 그림은, 1953년 당시에 시카고 대학원생이었던 스탠리 밀러가 생명체의 기본 요소들을 인공적으로 만들 때 사용한 실험 기구들이다. 밀러는 원시 지구의 대기 상태를 재현하고, 거기에다 번개에 해당하는 전기 스파크를 주어 아미노산이 함유된 붉은 응축물을 만들어 냈다.

이 실험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람들은, "생명의 기원이 순전히 자연적인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면 신이 더 이상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였다.

(반론 : 밀러가 만들어 낸 것은 생명을 이룰 수 없는 아미노산이었고, 그것도 무(無)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아미노산을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을 시험관에 넣고 그것들을 이용하여 만들어 냈다. 그 실험은 생명이 저절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가 못된다.)


두 번째 이미지 : 다윈의 ‘생물계통수‘(生物系統樹)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그린 그림으로, 맨 밑바닥에는 하나의 고대 조상이 있고, 그것이 몇 개의 큰 가지로 뻗어 나가다가 다시 작은 가지를 치고, 이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다양하고 복잡한 생명체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이런 진화의 모습은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모습과 비슷해서, "생물계통수"라고 부른다.

(다윈은 이 그림을 통하여 수백만 종의 유기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점진적으로 발달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지만, 너무나 어리석게도 아무도 이 그림의 과학적 증거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 그림이 나온 배경은 순전히 상상일 뿐, 어떠한 과학적 증거도 없다.)


세 번째 이미지 : 헤켈의 ‘배아발생도‘

독일의 생물학자 헤켈이, 모든 생명체가 공통 조상에서 나왔다는 증거로 제시한 것이 배아발생도이다. 헤켈은 물고기, 도룡뇽, 거북이, 병아리, 돼지, 송아지, 토끼와 사람의 배아 그림들을 나란히 놓고, 그 모두가 발생 초기단계에는 놀랄 만큼 닮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 그림을 보면 마치 배아 발생의 초기 단계에는 여러 척추동물들과 인간의 모습을 구별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통해서, 모든 생물에게는 공통의 조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그림이 사기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네 번째 이미지 : 잃어버린 연결고리(missing link)

시조새의 화석을 놓고 어떤 고생물학자는 "진화의 강력한 상징이 될 수 있는 과거의 신성한 유물"이라고 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시조새를 파충류와 조류를 잇는 중간 고리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진화론 과학자들도 시조새는 진화의 증거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에 대한 분명한 과학적 증거들이 있다. 1982년 국제시조새 회의에서 시조새는 더 이상 파충류와 조류를 잇는 중간종이 아님이 선포되었다. 그런데도 진화를 신봉하는 일부 편협한 사람들은 아직도 시조새를 진화의 증거라고 우기고 있다.)


다윈 대 하나님

다윈주의자가 동시에 기독교인이 될 수 있을까?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진실인 것처럼 여겨지자, 다윈의 진화론과 기독교의 교리를 조화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다윈주의가 무신론을 함축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설득력 있는 논증이 제시된 적이 없다. 나는 과학자, 진화론자, 찰스 다윈의 열렬한 찬미자이자 기독교인이다. 첫 번째 세포가 화학적 진화의 자연적 과정으로 생겨났다고 믿는 것은 무신론적 세계관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신이 세상의 시작 버튼을 눌러 놓고 미묘하게, 도무지 탐지할 수 없을 만큼 미묘한 방식으로 자연법칙을 통해 세계를 보존하고 역사한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서 신이 진화의 작동 원리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하나님을 믿는 것은 사실상 무신론을 믿는 것과 동일하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설계하는 대신 자연적인 메커니즘을 설계했다고 말하는 것은 자가당착이 분명하다. 하나님이나 자연선택 중 하나를 선택해야지 둘 다 가질 수는 없다.

진화론을 주장한 다윈은 “우리가 진화의 과정에 하나님을 허용한다면, 하나님은 ‘올바른 변이‘만 일어나도록 하기 때문에 자연선택을 불필요하게 만들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다윈주의의 요점은 자연이 스스로를 창조할 수 있으므로 초자연적인 창조주가 필요 없음을 보이는 것이다. 다윈주의의 진정한 핵심은 자연선택이고, 그것은 신의 개입이 아니라 자연적인 방법으로 적응에 대한 설명을 가능케 한다.

인류가 다윈주의의 자연선택으로 진화했다면(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이 믿듯이), 하나님이 아니라 유전적 우연과 환경적 필연이 종을 만든 것이다. ‘크리스천 진화론자‘ 라는 용어는 분명히 모순된 말이다. 찰스 다윈은 자신의 입으로 말한 것처럼 신을 살해할 뜻은 없었지만, 결국 그렇게 하고 말았다.


‘종의 기원‘이 있으면 성경은 필요 없다.

진화를 믿는다면 인간은 자연선택이라는 비인격적인 힘의 산물에 불과하므로, 하나님이 인간을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할 필요가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의 기원‘이 있다면 성경은 필요 없게 된다. 진화론에 충실하다면 저자가 과거에 생각했던 것들이 타당하다.

“나는 하나님의 도덕 구조에서 벗어나 새롭게 얻은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성혁명이 시작되었고, 나는 하나님의 찡그린 눈길을 의식할 필요 없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쾌락에 빠져들 수 있었다. 저널리스트였던 나는 윤리와 도덕의 성가신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경쟁에 뛰어들 수 있었다.“

유물론을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엔 물질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사람은 죽고 나면 완전히 끝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면 지구상에 질서라는 것이 존재했을까?)


“당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있었던 사건을 취재한 지 5년 후 저자의 아내는 기독교인이 되었고,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그렇게 합리적이었던 아내가 어떻게 헛된 기대와 가장, 신화와 전설이 뒤섞인 불합리한 종교를 믿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면서 아내의 인격은 달라졌고 가치관이 변했다. 더 사랑이 넘쳐 남을 많이 배려하는 진실한 사람이 되어 갔다.

그래서 저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사하기로 했다. 믿음과 하나님, 성경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2년 동안 집중적인 영적 탐구를 했다. 어릴 때부터 그를 괴롭혀 왔던 기독교의 난제들에 대해 답을 찾아보았다. 주로 과학계의 최신 연구 결과가 하나님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1) 과학과 믿음은 언제나 부딪칠 운명인가?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종교적 믿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이 과연 옳을까? 아니면 영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의 관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법이 있을까?
2) 과학의 최신 증거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뒷받침하는가, 부인하는가?
3) 과학이 최근에 발견한 바에 비추어볼 때, 나를 무신론으로 이끌었던 진화의 이미지들은 여전히 유효한가?

저자의 접근 방식은 여러 과학 분야에서 가장 최근에 발견한 내용들에 대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을 찾아가 반대 심문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편견을 넘어서서 완전히 열린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려는 저자의 용기는 참다운 용기이다.



출처 - 창조과학회 대구지부 월간소식지 창조 제34호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838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5-08-04

기독교 : 현대 과학의 원인? 

(Christianity : A Cause of Modern Science?)

by Eric V. Snow  



듀헴-자키, 머톤의 논문들

기독교는 과학의 발전을 저해했는가? 오늘날 대부분의 지성인은 17세기 갈릴레오의 지동설에 대한 종교재판과 1860년에 있었던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와 윌버포스 주교(Bishop Wilberforce) 사이의 진화 논쟁에서 주교를 당황하게 만든 것 등을 증거로 인용하면서 그렇게 했다고 믿고 있다. 그런 고정관념은 역사적으로 정확한가? 현대 과학(modern science)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가톨릭 대학과 수도원들에 있던 신학자들, 수도사들, 교수들에 의해서 일어났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만약 추측하는 것처럼 기독교와 과학이 서로 매우 맞지 않는다면, 어떻게 중세와 르네상스시대 동안 유럽에서 과학이 점차 발전할 수 있었을까? 어찌되었든 지동설을 믿었던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Copernicus)도 역시 기독교 신자였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피에르 듀헴(Pierre Duhem), 스탠리 자키(Stanly Jaki), 그리고 로버트 머톤(Robert Merton)의 역사적 연구에서 보듯이, 기독교 세계관이 현대과학의 발전에 필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술적 발달과 과학은 같은 것이 아니다.

과학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기독교의 역할을 부정하기 위해서, 회의론자들은 과학의 일부 정의에 해당하는 것을 사용하여, 모든 문명들이 과학을 발전시켰었던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이전의 시대에서 일상 생활에 영향을 주었던 발명품들은 자연의 법칙을 묵상했던 과학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능인들에 의한 ‘경험적인(empirical)‘ 발견이었다. 비록 그리스, 중국, 인도, 그리고 아랍 등에서 과학이라고 불려질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과학은 곧 사그라졌고, 갈릴레오의 전진으로부터 기독교 과학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엄격한 적용과 활력이 확실히 결여되어 있었다.

듀헴-자키의 이론은 사회학적 요인, 유물론자(materialist), 현상론자(externalist) 등과 같은 원인들이 현대과학을 발생시키는 데에 충분한 조건들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하고 있다. 자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88, p.35),

“과학의 역사문헌들은 왜 세 개의 고대 문명(중국, 인도, 이집트)이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비슷한 패턴의 마주보는 과학(vis-a-vis science)을 보여주는 지에 대한 문제에 여전히 직면해 있다. 그 문명들 각각은 뛰어난 재능들이 있었고, 사회적인 조직도 잘 되어 있었으며, 평화로운 기간을 상당히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것들은 역사 문헌이 강하게 신뢰하는 과학의 전지사회학(all-knowing sociologies)에 의해서 제공되었던 표준적인 설명 안이다) 불구하고 과학의 사산아였다.”

비록 이런 모든 조건들은 문명이 과학의 발전을 허락하는 데에 필요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왜 단지 하나의 특정한 문명만이 자립적으로 현대과학을 탄생시켰으며, 다른 문명들은 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의 지적, 철학적인 환경을 또한 살펴보아야만 할 것이다.


한 문화가 과학을 발전시키기에 필요한 철학적 개념들

듀헴과 자키에 의하면, 문명은 몇 세기 동안의 발전 이후에 소멸하지 않고 자립적으로 과학을 지키려는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첫째로, 시간은 직선적인(linear) 것이며 잠재적으로 정량화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시간에 대한 이해는 과거, 현재, 미래를 분명하게 구분해 주기 때문에, 자연(nature)의 원인-결과 관계를 훨씬 더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유대교과 기독교의 전통에서, 이러한 개념은 과거 어떤 특별한 시점에 무로부터 우주의 물질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행위로부터 시작한다. 시간은 현재로부터 미래의 심판의 날까지 행군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다른 이교도의 시선은 시간은 그 자체가 반복되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Great Year"의 개념은 수 세기에 걸쳐서 순환하는 시간들의 존재를 유지시켜왔다. 이론적으로 어떠한 종류의 발달이든지 영원히 진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고대 세계의 시간 개념은 미래는 과거의 반복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자기만족(complacency)이라는 의식을 갖게 하고, 이것은 과학의 발전을 방해한다. 영혼의 환생(reincarnation)과 윤회(transmigration)는 이러한 시간에 대한 관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만약 과학이 존재한다면, 자연 현상에 대한 해석들은 사건들에 대한 실제적인 원인을 설명하지 않는 추측적인(priori), 의사 과학적 설명(pseudo-scientific explanations)을 피하여야만 한다.

셋째로, 자연에 대한 유기체적 관점(organismic view)은 과학의 발전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전체 우주가 살아있다는(alive) 믿는 것은 세계를 앞에서 언급한 순환적 과정인 탄생, 성장, 죽음, 그리고 재탄생을 진행하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서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범신론(pantheism)과 결합되어 있다. 모든 것이 신(everything is God)이라고 믿는 이러한 개념은  힌두교(그리고 뉴에이지 운동)에서 보여지는 개념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서구 사람들은 바위, 별, 바다 같은 것들을 생명이 없는 사물로서 인식한다. 유기체적 관점은 위의 것들을 그것들 자신이 지적 능력을 가진 존재로서 간주한다.

넷째로, 우주의 기본적인 질서정연함과 실제성을 부정하는 것은 과학의 발달을 방해한다. 결코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그리고 또한 신과 자연이 임의대로 예측할 수 없이 변화시키는 것을 사람은 주의 깊게 조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섯째로, 자연 현상들에 대한 유기체적 개념의 한 작은 부분으로, 과학적 천문학(scientific astronomy)은 우주가 살아있다거나, 신이라고 믿지 않을 때 오직 발전할 수 있다.

여섯째로, 이성(reason)과 믿음(faith)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자연법칙들을 완전히 부정해서는 안 된다. 반면에 과학자들은 종교적 진실성의 가능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일곱째, 사람은 동물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정신(mind)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에 있는 것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대교-기독교 세계관에서, 창세기는 함축적으로 이 점을 나타내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창세기 1:26-29). 환생(reincarnation)은 사람이 죽고 다시 태어남으로서 동물의 영혼이 사람에게로 들어갈 수도 있고, 사람의 영혼이 동물에게로 들어갈 수도 있다고 주장함으로서 이것을 부정한다.


기독교 사상은 이교도 사상들을 몰아냈다.

상당히 많은 문명 지식인들이 이런 거짓된 사상의 모두 또는 대부분을 믿는 한, 스스로 유지되는 과학, 특히 외부적 실제 세계의 물리적 사물들에 대한 진정한 과학을 발생시킬 수 없다. 기독교 세계관은 이교도들의 개념에서 나온, 과학의 발달을 방해해 왔었던 우주의 본질에 대한 이념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피에르 듀헴은 10권의 웅대한 저서인 Le Systeme du Monde 에서 과학의 탄생은 219 개의 아리스토텔레스적 철학적 개념들을 구분했던(가르쳐지는 것을 금지했던) 파리의 주교였던 스테픈 템피어(Stephen Tempier)의 선언(condemnation)이 있었던 1277년에 이루어졌다고 선언했다.

어떤 문명들은 이런 거짓된 개념들의 모두 또는 대부분을 가지고 있고 (힌두 사상의 인도), 일부 문명은 적게 가지고 있고 (중국), 한 두 문명은 아직도 소수를 가지고 있다 (이슬람). 이에 일치하여, 이슬람은 인도와 중국에 비해서 과학이 더 발전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이러한 잘못된 개념을 적게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중국인들은 하늘이 신이고 살아있다 라는 잘못된 생각을 적게 가지고 있었지만, 이러한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매우 영향력 있었던 작품인 On the Heavens에 나타나 있었다. 이러한 개념은 고유의 이슬람 과학을 지속적으로 방해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런 불완전한 지적인 개념들은 궁극적으로 힌두 과학과 충돌하면서 결합했다. 그것은 외부의 진정한 세계와 질서를 거부했고, 영원한 순환과 자연의 유기체적인 개념을 지지했다. 그리고 하늘의 신성을 주장하였다. 힌두 개념의 확장이 불교를 통해서 중국인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면서, 중국의 과학은 초기에 질식되어져 버렸다. 만약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Quran)이 이성을 초월한 신의 의지와 권능을 강조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슬람의 지도자급 신학자들이 매우 신비적으로 남아있었던 동안 이슬람 과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물리학에 대해 무비판적이 아니었다면, 이슬람의 과학은 자기 보존이 되어졌을 지도 모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와 갈릴레오(Galileo)의 새로운 개념이 그냥 아무데서 쉽게 튀어나온 개념이 아님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신 그들은 뷔리당(Buridan)과 오렘(Oresme)과 같은 중세의 전임자들의 기록을 통해서 그들의 개념을 확립하였다. 이들 두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물리학 개념을 깨뜨리기 시작함으로서 현대 물리학의 개념적인 기초를 형성하는 첫 걸음을 시작했다는 것을 듀헴과 자키는 매우 강조하고 있다.


머톤의 논문이 언급했던 것

머톤의 논문은 17세기 청교도들의 과학적 연구들을 장려하였던 확실한 도덕적 가치관을 보여준다. 그는 영국 청교도들 가운데서 과학을 장려했던 여러 가치들을 목록화 하였다. 첫째 한 사람의 기독교인은 중세 가톨릭에서 특성화되어졌던 사회로부터 은둔하여 묵상하는 수도사적 개념이 아니라, 전체의 삶을 사회에 유용하도록 행동함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섬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회에 유용한 직업들을 열거함으로서 직업을 강조하면서, 청교도주의(Puritanism)은 부지런함, 산업,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것을 장려하였다. 결과적으로 개인은 그의 능력에 가장 잘 맞는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에 있어서 이성과 교육은 둘 다 칭송되었다. 교육은 내용에 있어서 문학적인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것이 되었다. 과학적인 방법론은 일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경험적이고(실용적인) 합리적인(이론적인) 시도들을 둘 다 필요로 했다. 이것은 자키가 반복적으로 되돌아갔던 하나의 이슈였다. 청교도주의는 각자의 소명을 감당하는 데에 필요한, 그리고 전체 사회에 유익한 지식의 탐사를 장려함으로서 경험주의를 증진시키는 것을 통해 이 둘을 제공했다.  


영국 청교도 과학자들

이 기간 동안 많은 영국 과학자들의 종교적 가치관과 신념들에 대한 기록들을 찾아보는 것은 쉽다. 위대한 생물학자인 존 레이(John Ray, 1627-1705)는 그의 친구에게 자연을 조사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자네가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작품과 자연을 조사하고 관찰하는 일에 시간들을 잘 보내고 있다네” 왕립협회(Royal Society, 영국의 우수한 과학적 조직)의 68명의 창립 멤버 중에 42명이 그들의 종교적 배경이 청교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인들의 대부분은 신앙적으로 영국 국교회(Anglican)가 주류였기 때문에, 높은 비율의 청교도들이 그들의 가치관에 따라 과학적인 연구들에 수행하였음을 의미한다. 로버트 모레이(Robert Moray), 윌리암 페티(William Petty),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존 윌킨스(John Wilkins), 존 월리스(John Wallis), 조나단 고더드(Jonathan Goddard) 등은 모두 왕립협회의 유명한 지도자들이었고, 모두 청교도인(Puritans)들이었다.


과학과 기독교는 양립할 수 있다.

듀헴, 자키, 머톤의 글에서 보여지듯이, 역사의 확고한 사실들은 과학과 기독교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는 진화론자들의 일상적인 주장을 거부하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 웨버(Max Weber)가 자본주의의 발전은 프로테스탄티즘의 가치관에 의해 기인했다고 말했던 것과 같이, 머톤의 이론은 영국 청교도들의 가치관이 과학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다 더 중요하게, 듀헴과 자키의 연구는 기독교에 대한 철학적 믿음이 과학이 탄생하도록 이교도들의 반과학적 개념들을 몰아냈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성경에 대한 믿음은 궁극적으로 스스로 유지되는 과학을 통하여 이성적인 표현을 막았던 이교도적 사고로부터 사람들을 자유롭게  했던 것이다.


Selected References

.Stanley Jaki, The Origin of Science and the Science of Its Origin
(South Bend, IN: Regnery/Gateway, 1978).
.Stanley Jaki, The Savior of Science (Washington, DC: Regnery Gateway, 1988).
.Robert K. Merton, 'Science in Seventeenth Century England,' Osiris, 1938, pp. 360-632.

More specifics and further references are in my essay, 'Christianity: A Cause of Modern Science? The Duhem-Jaki and Merton Theses Explained.'

1 Empiricism maintains knowledge is mostly gained by the senses, while rationalism maintains knowledge is mostly gained by thinking, reasoning, and logic.

* Eric V. Snow has a master's degree in history.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christianity-cause-modern-science

출처 - ICR, Impact No. 298, April 1998.

Headlines
2005-07-23

툴사 동물원은 성경적인 것만 제외하고 종교에 대해서 관대하다. 

(Tulsa Zoo Tolerates Religion - Except the Bible Kind)


     미국 오클라호마에 있는 툴사 동물원(Tulsa zoo)에서 힌두교의 신인 가네사(Ganesha)를 찬양하고, 범신론(pantheism)을 외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성경적인 설명은 불가능하다. 동물원 위원회는 창조론적 설명의 전시를 허가하기 위한 첫 번째 미팅 후에 그것을 번복하였다고(2005. 7. 7) Agape Press는 보도하였다. 기독교 관계자들은 동물원 측이 힌두교에서 신성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는 코끼리와 같은 동상을 포함하여 종교적인 심볼들을 나타내는 여러 전시물들을 이미 특성화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전시가 금지되는 것은 오직 유대교-기독교의 창조론적 설명 만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 동물원 측은 동의했었다. 그러나 전시 디자이너인 힉스(Dan Hicks, an AiG friend)는 위원회가 특별히 몇몇 그룹들에 대해서는 조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힉스는 동물원에서 창조론의 전시를 원래 승인했던 툴사 공원과 레크레이션 위원회가 시끄럽게 떠드는 소수의 요구들을 조심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는 이종교간 동맹(Interfaith Alliance), 툴사 메트로폴리탄 미니스트리(Tulsa Metropolitan Ministries), 그리고 모든 것을 관용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몇몇 그룹들은 사실 교회와 정부의 분리를 위한 미국인 연합(Americans United for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과 제휴하고 있는 정치적 활동단체 라고 주장하였다.    

AiG(Answers in Genesis)는 또한 창조론적 전시의 취소에 대한 엄중한 논평을 하였다. 여론 조사는 대중들의 76%가 창세기의 전시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힌두-범신론적 전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외치고 있다. ”지구는 우리의 어머니이고, 하늘은 우리의 아버지이다”  



우리 문화에서 관용(tolerance)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크리스천들의 손을 뒤로 묶고, 입에는 재갈을 물리고, 상황 청구권도 없이, 목격되는 모든 악한 행동들과 타락하고 사악한 퍼레이드들이 앞으로 지나가는 것을 견디도록 강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저항하려는 시도를 하려고 하면, 교회와 정부는 분리되어야 한다 또는 진화는 사실이다 라는 주문(mantras)들이 끊임없이 외쳐지는 것을 들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인내를 해야만 하는가. 피해자들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그들의 묶여진 끈을 끊고 싸우려 나설 때, 그들은 웃으며 실제로는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단지 포함되기를 원했던 것이었다고 위장한다. 시간이 지나 평온해지고 나면 피해자들은 또 다시 느슨해진다. 이제 당신은 자유주의(liberalism)에 대해서 훨씬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될 예정이었던 창조에 대한 성경적 설명.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200507.htm 

출처 - CEH, 2005. 7. 16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63

참고 :

Doug Sharp
2005-06-25

걷는 물고기 : 유전적 다리? 

(The Fish that Walks : A Genetic Bridge?)


       진화론자들은 어류와 양서류 사이의 연결 고리(link)로 부를 수 있는 다수의 물고기 종들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말뚝망둥어(mudskipper), 등목어(climbing perch), 폐어(lungfish) 등은 모두 얼마 시간 동안 물 밖에 있을 수 있는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기물로부터 사람으로까지 모든 생화학적 정보들이 물에서 육지로 올라가는 동안 유전적 다리(genetic bridge)를 통하여 전달되었다는 것을 믿기 위해서는 논리적 도약이 있어야 한다.

양쪽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특성들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생물체들이 있다는 사실은, 이들 특성들은 처음부터 창조된 것이라는 창조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하지 못한다. 진화론자들은 과거 수억 수천만년 동안 발생된 진화론적 변화(transition)의 예로서 오늘날 존재하는 이들 종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 그들은 말뚝망둥어나 폐어가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사람으로 계속 진화해 갈 것으로 기대하는가? 아마도 그런 생물들은 진화론자에게 표면적인 수준에서 일부 위안을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포크가 스푼으로부터 진화했음을 입증하기 위해 수저세트를 정렬시켜 놓는 것만큼이나 오류가 있는 것이다.

한 유사한 문제가 비행의 기원(origin of flight)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조류(birds)에서, 박쥐(bats)에서, 곤충(insects)에서, 나는 파충류(flying reptiles)에서 적어도 4번을 각각 진화했어야만 한다. 관련이 없는 생물 종들에서 각기 4번이나 엄청난 진화가 일어났을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보다 창조주가 한 번에 그러한 것들을 창조하셨음을 믿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목적 중 하나는, 창조론자들의 관점은 합리적이고, 주어진 과학적 사실을 더 쉽게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창조주가 모든 동물들을 다르게, 그러나 비슷한 마스터 플랜을 가지고 만들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비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생명을 유지시키는 풍부한 단백질들이 같은 생화학적 구성요소들을 가지는 먹이(food)로부터 공급되지 않는다면, 생물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우리에게 모든 육상동물들에 암호화되어 있는 유전정보들이 말뚝망둥어와 같은 한 도관(conduit)을 통하여 전달되었다는 것을, 또는 어떻게 해서든지 후에 실현되었음을 믿으라고 요구한다.

나는 내 생활에서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사용한다. 컴퓨터 암호는 프로그래머 없이 실현되지 않는다. 살아있는 생물체는 3차원적인 컴퓨터 암호를 가지고 있다. 그 암호에는 손가락이 어느 정도 길이로 자라다가 멈추라는 명령이 들어가 있다. 당신의 눈동자는 직경 5cm 정도에서 더 자라지 않으며, 당신의 혀는 60cm씩 자라지 않는다. DNA, RNA, 단백질들의 경이로운 반응들은 한 종의 생물체 내에 엄청난 다양성을 제공하고 있음을 관측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조절되고, 스스로 수선되며, 엄청난 정확성을 가지고 스스로를 복제한다. 이 놀라운 시스템이 처음에는 달랐고, 더 단순했다고 믿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 단계에서 다윈설의 논리적 논쟁은 실패하고 만다.

창조론자들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창조된 여러 종류들(kinds)로부터 출발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생물체의 다양성(diversity)은 각 생물체들의 건설과 복제를 위해 암호화되어있던 ‘야생형(wild-type)‘의 유전정보 내에서 만들어졌다고 믿는다. 종의 분화(speciation)는 이들 생물체의 여러 집단들이 고립되고, 돌연변이나 유전학을 통하여 일부 정보들을 잃어버렸을 때 발생하였다. 진화론자들은 수백 수천만 년이 지나면서 정보의 획득이 일어났다는 불가능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시스템들은 거꾸로 일어날 수 없다. 유전 정보(genetic information)는 만들어지기보다 없어지기가 훨씬 쉽다. 생물체에 대한 생화학적 연구를 실시한다면, (이들이 모두 우연히 동시에 저절로 생겨났다는 것을 믿는 것보다) 어떤 설계자가 생물체의 놀라운 시스템을 설계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훨씬 더 쉬울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rae.org/fishwalk.html

출처 - Revolution against Evolution, 2000. 12. 25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13

참고 :

Headlines
2005-06-10

세계 언론들이 캔자스 주의 진화론 전투를 주목하고 있다. 

(World Press Eyes Kansas Evolution Battle)


      10여년에 걸친 ‘반-스코프스 재판(Un-Scopes trial)’이 미국 캔자스 주에서 진행 중이다. 그리고 세계 언론들이 주목하고 있다. 1925년의 스코프스 재판과는 달리, 이번에는 진화론이 주도적 이론이고, 지적설계 이론(intelligent design)이 경쟁자이다. 그러나 사실 지적설계 운동의 지도자들은 지적설계가 교실에서 가르쳐지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진화론에 대한 비판이 가르쳐지는 것을 허락해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위원회의 대다수가 '논쟁점 가르치기”를 허락하는 과학 기준을 찬성하는 쪽으로 변화되면서, 진화론자들은 거의 확실한 패배가 예상되고 있다. 그들은 법정에서처럼 찬반 양론을 듣는 것도 보이콧트 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이 이야기에 대한 최근 뉴스들이 있다. 아마도 다른 주들의 교육위원회에 입장에 영향을 미치게 될 이번 논의의 결과는 조정 상태에서 머물고 있다.    

New York Times article (as analyzed by Discovery Institute)
Wichita Eagle : "진화론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
Kansas City Star : "생명체는 설계자가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고 지적설계 이론은 주장한다'
MSNBC : "증인들은 진화론이 가르쳐지고 있는 방법을 비판하고 있다
MSNBC : "종국으로 향하고 있는 진화론 전쟁
CNN : "진화론에 대한 비판들이 캔자스에서는 공개되게 되었다
Science Daily : "교사들과 과학자들이 진화론 전쟁을 이끌고 있다
Lawrence Journal-World : "과학자들: 교육위원회는 진화론에 대해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Washington Times op-ed : "다윈니즘에 대한 논란
World Net Daily editorial : "폭발적인 메모가 캔자스에서 진화론자들의 전략을 나타내고 있다
Insight on the News (UPI) : "진화론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더 많은 뉴스 출처들이 창조론 대 진화론에 관한 이야기를 보도하고 있다 :

California Agee : "지적설계 이론가(Behe)가 다윈주의에 도전하다
Agape Press : "반창조론 글에서 명예를 훼손하였다며, 학부모들은 진화론자를 고발했다”  
MSNBC : "산에 대한 소란(한 창조론자가 세인트 헬렌 산을 성경적 지질학을 지지하는 것으로 사용하는 방법)'
Kentucky Post : "창조론에 대한 모든 것. 여기에서 하나의 사명이다 (Answers in Genesis 창조박물관)

과학 기준의 변화를 위해 제안된 모든 것들은 Kansas Science 2005 웹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가적 관심을 끌고 있는 이성에 대한 전쟁이며, 진실에 대한 전쟁이고, 선전에 대한 전쟁이 형태를 잡아가고 있다. 최선을 다해 잘 무장해야 할 것이다. 어리석은 감지기(Baloney Detector)를 제거하고, 배터리를 충전시켜라. 말하는 것만큼 말하지 않는 것을 주목하라. 허풍과 과학에 대한 재정의가 아니라, 진정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진화론자들이 화석(fossils)들과 분자 기계(molecular machines)들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보라. 그들은 그것에 대해 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커다란 거짓말로 시민들을 놀라게 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100% 진화론 이외의 어떤 것도 경제적으로 손실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04/21/2005 04/29/2005 이야기를 보라).     

그것을 믿지 말라. 아마도 부모들은 지적으로 디자인된 자녀들의 목구멍 아래로 다윈을 밀어 넣지 못하도록 떼를 지어 몰려올 것이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용돈도 줄 것이다. 산업체들은 ‘분석적 사고력(analytical thinking)‘을 가지도록 훈련된 젊은이들을 원할 것이다. 젊은이들은 진화론의 문제점들을 가르쳐달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다윈 이론에 대한 논쟁점을 분석할 수 있도록 가르치라. 진화론자들은 지적설계 이론은 '신념에 근거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다윈이라는 우상에 대한 그들의 경배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신념도 없을 것이다. (04/30/2005을 보라)        

이전에는 적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던 뉴스 언론들이 지적설계(ID)와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을 다시 보기 시작했고,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획일적인 자유주의적 다윈당의 거대한 과학 제국(Big Science Empire)은 이러한 세밀한 조사에 견뎌낼 수 있을까? 골리앗이 거대하다 하더라도, 그의 무기와, 그의 목표와, 어떻게 그들이 연결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는 젊은이를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지적 전투(intellectual battle)에서 필요한 모든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200505.htm#zoo105 

출처 - CEH, 2005. 5. 5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678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5-05-17

창조 교리에 대한 타협 : 점진론적 창조론

(Compromise in the Doctrine of Creation)

John D. Morris 


     교회의 역사는 수많은 개별적인 싸움으로 점철되어 왔다. 그 모든 싸움에서 궁극적인 승리자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섰던 사람들이었다. 예컨대 초기 교회의 교부(敎父)들은 율법주의자와 그노시스주의자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종교개혁 기간 내내 논쟁점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받는 구속 이론이었다. 이와 같은 싸움에서 매번 성경의 말씀을 순수하고 단순하게 주장하는 쪽이 승리를 거두었다. 창조론의 경우도 역시 논쟁을 피할 수 없다. 1800 년대 전반에는 간격이론(Gap Theory)과, 1800 년대 후반에는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과 시작된 타협주의자들과 싸움에서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진리의 방패를 들고 승리했던 것이다.


오늘날 선택된 타협 이론을 사람들은 '점진론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 이라고 부른다. 이 이론은 창조의 6 일을 지질학적, 그리고 천문학적 시간 개념으로 수십억 년에 해당할 수 있다는 날-시대 이론 (Day-Age Theory)의 현대적 수정 이론이다. 이 이론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시대적으로 광대한 간극을 넘는 별개의 시대들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이들이 신봉하는 아담 이전의 세계는 세속적인 지구관과 동일하다. 아담의 불순종한 결과로 죽음이란 징벌이 있기 이전에, 그 세계는 이미 질병, 피흘림, 그리고 살육행위로 대다수 생명체가 멸종하던 세상이다. 그런 세계를 믿는 점진론적 창조론은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의 의미를 최소화 할 수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그 이론은 십자가의 의미를 그리스도 당신의 육신, 또는 창조의 남은 숙제를 복원 또는 완성하는데 두지 않고, 인간 영혼의 구속에 한정하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안을 '오늘날의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발생관적 문제' 라고 정의한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다수의 크리스천 지도자들이 그릇된 편에 서서 싸우고 있다. 문제를 각성하지 못한 사람이나, 그릇된 편에 서있는 크리스천 지도자나 구별 없이, 그들은 모두 일견 권위있는 과학자들의 위협적인 이론에 밀려서 성경을 타협하려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ICR을  타협하지 않고 성경을 믿는 과학자들의 집단으로 세우시어, 타협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교회를 이끌어 올바로 세우려 하신다고 확실히 느끼고 있다.


이 사명을 다 하려고 ICR은 최근에 이름 있는 창조론자들을 소집하여 점진론적 창조론의 오류를 지적하게 하고, 성경의 창조진리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하기 위해 모든 준비를 갖추었다. ICR의 과학자 Dr. Henry Morris, Dr. John Morris, Dr. Russell Humphreys, Dr. John Whitcomb, Dr. Dou Phillips 등이 ICR 라디오 방송실에서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 모임은 4번에 걸친 일련의 1 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녹화하였다. 이 녹화기록은 크리스천/창조주의자의 세계관을 제시하여 점진적 창조론의 잘못된 가르침을 폭로하고, 특히 우리의 녹화테이프와 유사한 녹화테이프에 담긴 휴 로스(Hugh Ross) 박사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우리의 녹화 내용의 발췌가 앞으로 몇 달 후에 '과학, 성경 그리고 구속'이라는 제하의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송출될 것이다.


본 녹화내용이 조만간에 Dr. Henry Morris 3 세가 전사저술(傳寫著述)한 '에덴 이후━창조, 저주, 그리고 십자가의 이해' 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될 것이다. 성경적, 신학적, 그리고 과학적인 근거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들에게는 믿음의 방패 역할을 감당할 것이며, 타협자들에게는 맞대결자가 될 것이다.


교회는 전반적으로 전폭적인 성경적 세계관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과학'으로 가장한 그들의 세속적인 사고를 이제 그만 그쳐야만 한다. 점진론적 창조론 사상은 복음주의자들 중에 번지고 있는 그릇된 현대 사상의 아픈 가시이다. 여러분들은 ICR이 결코 이 과업에 위축되지 않을 것임을 믿어도 좋을 것이다.

 

*참조 : What’s wrong with ‘progressive crea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3358/

Progressive creationist anthropology: many reasons NOT to believe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31-38.pdf

Pre-Adamic man: were there human beings on Earth before Adam?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53/

Is cruelty normal?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918/

The dubious apologetics of Hugh Ros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65/

Exposé of The Genesis Ques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54/

Critique of the introductory chapter of Hugh Ross’ book A Matter of Days: Resolving a Creation Controversy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3138/

Hugh Ross lays down the gauntle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3973/

Jason Lisle vs. Hugh Ross debate: annotated transcrip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3414/

Beaded ornaments challenge ‘progressive creationist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205/

Progressive creationist anthropology: many reasons NOT to believe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31-38.pdf

A pathetic case for an old earth : A review of A Biblical Case for an Old Earth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52-54.pdf

Creation compromises—Gap Theory

http://creation.com/creation-compromises#gap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president/prz-0306.htm

출처 - ICR

미디어위원회
2005-02-05

원숭이(스코프스) 재판과 브라이언의 변론

(Scopes : Creation on Trial)

Richard M. Cornelius, John Morris


      1925년 미국에서 일명 ”원숭이 재판 (Monkey Trial)”이라고 불리는 재판이 있었다. 피고인의 이름을 따서 ”스코프스 재판(Scopes Trial)”이라고도 하는 재판으로, 사건은 그 해 7월 미국의 테네시 주의 데이턴이라고 하는 작은 시골도시에서 발생하였다. 한 공립학교 교사인 스코프스가 수업 중에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것과, 이에 대한 반진화론자인 기독교인들의 고소로 시작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기에는 참으로 우습고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당시의 주교육법상에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이 금지되었던 상태였기에, 이러한 고소가 가능하였던 것이다.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그것도 우리에게는 일제의 압제하에 있었던 시기에 일어난 것이기에 생소한 이야기이지만, 당시 재판의 관심과 이 재판의 파장이 미국 교육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의 교과과정에 진화론이 자리를 잡게한 중요한 사건이기에, 당시 재판의 진행을 검토하여 보는 것은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더욱이 재판의 기소자측의 변호를 맡았던 윌리암 제닝스 브라이언 (William Jennings Bryan)이 진화론자들의 심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한 점과 성서에 대한 그의 곳곳한 자세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도 많은 가르침이 되리라 생각한다. 


1. 언론의 관심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시작된 작은 시골도시의 이 재판이 보도되자, 빠른 속도로 전 미국의 이목이 이곳으로 집중되었는데, 이는 당시의 모여든 언론의 규모를 통해서도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200 여명의 신문 기자들이 취재를 위하여 이 작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방송계 대표자들도 대거 참가하였는데, 유명한 방송국인 시카코 트리뷴 WGN 에서는 이 재판을 미국내의 공판사상 처음으로 라디오 전국 중계를 준비하고 있었고, 65 개 전신 교환수들이 몰려들어 사상 최다의 기사를 유럽과 호주로 보내는 등, 그 관심은 대단하였다. 


2. 목적의 이탈과 제시된 진화의 증거들 

7 일간의 열띤 공방전이 오고 갔으며, 재판의 시작은 스코프스 교사가 주의 교육법상에 유죄인가 하는 문제에서 시작하였지만, 피고측의 변호사들은 피고인에 대한 무죄성을 변론하기 보다는 진화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더욱 열을 올렸다. 예를 들면 그들은 ”스코프스 교사가 진화론을 가르쳤습니까?” 라는 질문 조차도 전혀 없이, 스코프스의 위법행위에 대하여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당연히 재판의 진행은 진화론에 대한 정당성 문제로 확산되어, 이는 스코프스 교사의 위법문제에 대비하였던 기소자측을 적지않게 당황시켰다.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측이 몇 가지의 증거들을 제시하였는데, 그들이 제시했던 증거들은 오늘날에는 오히려 진화의 허구성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 증거들은 보면, 흔적기관, 태아(헥켈)의 배, 그리고 인류화석인 네안데르탈인, 호모에렉투스인, 필트다운인, 네브라스카인 ,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이었다. (이들 증거들에 관한 허구성은 그 동안 창조지에서 여러 번에 걸쳐 언급하였으므로 이를 참조하기 바람) 


3. 성경에 대한 피고측 공격과 브라이언의 대답 

재판은 진지하고 복잡한 질문들로 이어졌다. 특히 일곱째 날에 열띤 질문과 대답은 감정적인 분위기와 함께 재판의 절정을 이루었는데, 나중에 피고측 변호인은 성경의 무오성 문제까지 확대시켜 나갔다. 예를 들면, 뱀은 하나님이 기어다니라고 저주하기 전에 꼬리로 걸어 다녔습니까? 가인은 어디서 아내를 구하였습니까? 지구가 얼마나 오래되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3500~5000 년 전에 이집트와 중국에서 살았습니까? 라는 식의 질문이었다. 그러나 기소자측 변호사인 브라이언은 이러한 난해한 질문에 대하여 성경적인 지식을가지고 능숙하게 응수하였고, 그가 모르는 대답에 대하여는 솔직히 시인하였다. 가열된 대화 중에 브라이언은 성경의 문구가 실제로 말하는 점들은 지적해 주며, 피고측 변호사에게 성경을 부연 설명하지 말고 그대로 인용할 것을 요구하였다. 대표적인 대화내용을 보면, 

문 : 당신이 요나가 고래에게 삼키웠다는 내용을 읽을 때 당신은 어떻게 문자적으로 해석하는가?

답 : 나는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웠다고 읽었다. 고래라고 말하지 않았다.

문 : 그런가? 확실한가?

답 :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바이다. 큰 물고기,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나는 고래를 만들고, 사람을 만들고 ,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하나님을 믿는다.

문 : 브라이언씨, 신약성경이 고래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답 : 잘 모르겠다. 나는 그것은 물고기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상황을 크게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나는 성경이 물고기를 말한다는 것을 당신에게 주목시키고 싶을 뿐이다. 성경은 고래라고 말하지 않았다.

문 : 그러나 신약 성경은 고래라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은가?

답 :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 내가 그것에 관하여 어떻게 읽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겠다.

문 : 자, 당신은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었고, 그는 거기서 3 일 동안이나 지냈으며, 고래는 그를 땅 위로 토해내었다고 말하였다. 당신은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믿는가?

답 : 나는 그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단지 그것이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뿐이다.

문 : 당신은 그것이 일상의 물고기였는지 그 목적을 위하여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답 : 당신은 추측해도 된다. 진화론자들은 추측한다.

문 : 그러나 우리가 추측할 때 , 우리는 바른 감각을 갖고 추측한다.

답 : 그러나 종종 그렇지가 않다.

문 : 당신은 물고기가 사람을 삼키기 위해서 특별히 만들어졌는지 아닌지 말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답 : 성경이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나도 말하지 않는다.

문 : 당신은 하나님이 목적을 위하여 특별하게 물고기를 수리하셨는지도 모른다.

답 : 그렇다, 성경은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문 : 그러나 당신은 하나님이 그들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즉, 그는 그러한 물고기를 만드셨고 그것은 요나를 삼킬만큼 컸었다고 믿는다.

답 : 그렇다. 추가하자면, 하나의 기적은 다른 기적만큼이나 믿기가 아주 쉽다.

문 : 그것은 나에 관한 것이냐?

답 : 그것은 나에 관한 것이다.

문 : 그것이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니냐?

답 : 당신에게는 믿기 어렵다. 그러나 나에게는 쉽다. 기적은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행해지는 것이다. 당신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보았을 때 기적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리고 요나의 기적을 믿는 것은 성경의 다른 기적을 믿는 것 만큼이나 아주 쉽다.

문 : 요나가 고래에 의해 삼키웠다는 것을 믿는 것이 완벽하게 쉽나?

답 : 만약에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면...(그러나) 성경은 진화론자들이 하는 것처럼 그렇게 극단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 질문의 초기에 브라이언은 ”성경 안에 모든 것이 거기에 적혀 있는 대로 받아 들여져야 한다는 것을 믿는다” 고 말하므로,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한다고 몰아부치는 피고측의 함정을 피하였다. 그러나 브라이언은 ”성경의 어떤 부분들은 비유적인 곳이 있다” 라는 것과, 그러한 비유적인 언어는 적당히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언급을 피고측 변호인들은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해석을 가질 권리가 있다 라는 의미로 확대시켰다. 
 

4. 재판의 결론과 그 결과 

포성과 함께 시작하였던 ”스코프스의 재판”은 피고 스코프스가 유죄 판결과 100 불의 벌금형이 내림과 함께 막을 내렸다. 재판의 결과 미국의 일곱 주에서 연달아 비슷한 법적 논쟁을 일으키게 하는 발단이 되었다. 더욱이 이 재판은 1960 년대 까지 고등학교 생물교과서에 진화론을 크게 강조하지 않았던 당시의 추세에 큰 영향을 끼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당시 언론들의 보도방향은 사람들의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는데, 대부분의 기자들은 재판의 시작전부터 이미 기독교인인 브라이언을 공격하려는 생각을 갖고 취재를 시작하였으며, 브라이언의 진화론의 문제점에 대한 분명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브라이언에게 불리한 쪽으로 기사를 실었다. 한 기자에게 왜 재판을 취재하러 왔는가 하는 질문을 하자, ”오, 저는 무슨 일인지 알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무엇을 써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영화 관계자들도 가끔씩 흥미거리로 이 재판을 영화화 하였는데, 제작자들의 편견으로 재판의 중심 내용과는 많이 벗어난 경향이 있었다. ”세계의 가장 유명한 공판” 이란 영화제목으로 장식된 영화들은, 재판을 재연할 때마다 당시의 중요하고 근본적인 논쟁보다는 주로 유명한 관계자들, 극화한 논쟁들, 절정의 모습들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편견을 가진 기록들은 무모하게 성경을 고수하려는 기독인들에 의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한 진화론자의 피해로서 이 재판을 인식시켰다. 


5. 브라이언의 생각들 

이러한 언론의 편견된 기록들은 브라이언의 진의를 파악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도록 하였다. 재판 전후의 브라이언의 기록들은 그의 기본적인 생각이 어떠하였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 다음은 그의 기록중 몇 가지 예들이다. 

   # 192O년과 1923년, 네브라스카에서 있었던 입법총회

”우리는 공립학교 선생에게 종교를 가르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선생들이 학교에서 성경을 공격하는 것이 허락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공립학교와 대학에서 선생들이 정통기독교를 설명하는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향한 신념과 성경의 믿음을 약화시키고 그리스도를 인간의 수준으로 낮추는 식의 가르침에 대하여 저지할 권리가 있다.”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가르치기 원할 때 그들 자신의 학교를 설립한 것처럼, 진화론자들도 그들의 생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다면 그들 자신의 학교를 설립하여야 한다.” 

   # 1923년, 상원의원 싱글테리에게 보낸 편지

”진화론은 계속된 관찰에 의한 확정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가설이며, 사실로서 가르치는 것은 위험하다.” 

   # 1923년 월간 대중과학

”모든 진실은 하나님으로부터 라는 문제를 논하며 자연의 책 안에서 혹은 책중의 책(성경)안에서 발견되든지 어떤 것도 추측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 진화가설과 같은 가설들은 진실이 아니다.”

   # 1925년 5월 28일과 7월 12일, 데이턴 시의 법률가 수힉스에게 쓴 편지

”연설, 출판, 생각, 지식의 자유를 향한 어떤 공격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분명히 부모들은 자식들의 종교적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를 가졌다.”

”허위로부터 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동맹을 맺고, 한 개인으로서 사고하기 위해 만든 집단의 권리는 그 개인의 권리와 동등하게 인정되야 한다” 라고 하며 진화론의 침투에 대하여 단체적인 행동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브라이언은 정치적 사회적 활동에 대하여 자유롭고 진보적이었지만 성서적으로는 보수적이었다. 근본주의자들과 함께 성경의 성령의 감동과 권위, 신성, 처녀의 잉태, 기적들,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인류의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대속능력의 믿음에 관하여 논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위치는 브라이언을 도덕과 종교의 문제에서 절대론적인 권위주의로 치우쳐 있는 사람으로 인식시키기도 하였는데, 그는 삶의 모든 관점에서 영적인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진화론의 가설을 하나님의 권위, 성경의 기초, 기독교 정신, 마지막에는 문화의 모든 면을 향한 도전으로 보았다. 


6. 맺음말 

”원숭이 재판”에서 피고인 스코프스는 유죄로 선언되었지만, 실제로 이 재판은 진화론이 전 미국으로 확산되는 동기가 되었다. 재판과정에서 진화론의 증거들은 오늘날에는 케케묵은 허구들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람들에게는 진화의 논리성을 이해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기소자측 변호사인 브라이언의 정확한 진화론의 문제지적과 그의 성경에 대한 믿음을 향해서, 언론들은 브라이언을 성경을 무모하게 신뢰하는 고집쟁이로서, 그리고 피고측 변호단을 진리를 향한 피해자로 표현하였다. 재판으로부터 70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어떠한 편견 속에서 살고 있는지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추측된 이론인 진화론이나 동일과정설과 같은 진리로 향하는 길목의 장애물들 앞에서, 진리를 지켜야 할 사람들은 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준비하여야 한다.

 

번역 - 이재만

주소 - https://www.amazon.com/Scopes-Creation-Trial-John-Morris/dp/0890512574

출처 - 창조지, 제 108호 [1998.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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