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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한국창조과학회
2004-07-26

한겨레 지상 논단을 게재하면서 : 한림대 송상용 교수의 창조과학 비판


     본 誌에서는 지난 1994년 4월 14일(목) <한겨레 21> 제4호에 게재된 송상용 교수(한림대)의 본회 사역에 관한 일방적 비방으로 시작된 <한겨레 21>의 지상 논단을 싣기로 결정하였다. 가감 없는 이 3편의 논지만을 가지고도 본회의 회원들과 본회를 기억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 그 진상을 정확히 알고 각자 스스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송 교수의 글이 나간 후 본회로는 명예훼손에 가까운 그런 글에 대하여 왜 창조과학회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느냐고 전화가 빗발쳤다. 그러나 본회는 가장 정중(?)하고도 의연하게 이 일에 대처하기로 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지만 끝까지 기다리신다"는 톨스토이의 말을 기억하면서......  
 

1. 1994. 4. 14일(목)자 한국창조과학회에 관한 송상용 (한림대 사학과) 교수의 비판 기사.

" '원숭이 재판' 다시 할 건가" 

"얼마 전 신흥종교 연구가의 피살사건을 계기로 또 다시 광신이 문제되었다. 물론 우리나라 뿐 아니다. 선진 미국에서 후진 아랍세계까지 광신과 몽매주의가 기승을 떨고 있다.

광신은 무지한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다. 최고의 지식인들도 곧잘 빠져든다. 창조과학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과학사학자 넘버즈가 쓴 〈창조론자들〉(1992)을 보면 미국이 수출한 한국창조과학회는 10년만에 회원 1천명을 확보했으며, 그중 3백명이 박사학위 소지자이고, 미국에 여러 개의 지부를 두고 있다. 이 모임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기본 생물체는 창세기에 말씀하신 대로 창조주간에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셨음을 믿는다"고 한다. 회원들은 그동안 5천여회의 강연을 통해 창조론이 과학임을 주장해 왔다. 대전엑스포 기간에는 5억원을 들여 창조과학전시관을 열었으며, 러시아 창조과학회 등을 불러 국제학술대회를 가졌다. 

사실 창조과학운동의 뿌리는 1925년 미국의 '원숭이 재판'까지 올라간다. 프로테스탄트 보수주의의 아성 테네시州에는 인간이 하등동물에서 진화했다고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있었다. 이에 반해 진화론을 가르쳤던 과학교사 스코프스는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42년을 끈 이 사건은 대법원이 반진화론법을 연방헌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판결함으로써 종지부를 찍었지만, 그 여파는 엄청났다. 이때 이후 생물 교과서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던 진화론은 최초의 유인우주선 스푸트니크호 발사 충격과 '종의 기원' 1백주년의 자극을 받은 과학 교과과정 개혁으로 1960년대 초에 복권되었다. 

창조론은 새 전략으로 이에 대처했다. 진화론과 똑같은 시간을 창조론에도 주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창조론을 교과에 넣으려면 진화론처럼 과학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창조론은 '과학적 창조론' 또는 '창조과학' 을 표방했다. 사회학자 넬킨에 따르면 창조론자들은 당시 가정의 몰락, 도덕적 타락, 공산주의 등의 책임을 과학에 덮어씌웠는데 진화론이 속죄양으로 걸려든 것이다. 창조과학 운동은 레이건 등 극우정치세력의 지지를 받았고, 1970 년대 보수회귀 무드에 힘입어 무섭게 커갔다. 1980년대 들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는데, 한국이 가장 강력한 우방이 된 것이다. 

미국에서 창조과학운동에 대항하는 만만치 않은 움직임이 번져갔다. 과학자, 과학 교육자, 진보적 종교지도자들이 정치가 과학에 개입하여 정통논리를 배척해 버린 '뤼생코 사건의 미국판'을 막자고 일어섰다. 20년대 스탈린의 소련 공산당은 농업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획득형질이 유전한다는 뤼생코의 설을 지지하고 정통 유전학을 배척하였다. 아무튼 이들은 '통신위원회'를 만들어 전국적인 연대를 이루었고, 언론, 의회, 법정에서 광신자들과 대결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창조과학운동은 미국과는 대조적으로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있다. 창조과학 고정칼럼을 주어 적극 지원하는 일간지가 있는가 하면, 다른 언론들도 가끔 호의를 보인다. 창조과학은 교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학교에 교두보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교재를 만들어 대학강의에 침투하고 있고 동아리를 만들어 교사강습회도 연다. 

3월 17일자 한 주간지(시사저널임)에는 한국창조과학회가 한국기계연구원 선박해양공학 연구센터에 3천5백만원을 주어 의뢰했다는 연구 과제의 결과를 보도했다.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조선공학적으로 안정성이 있는지를 연구했다는데, "그것이 지극히 과학적이며 대홍수 또는 역사적 사실임을 보여준 것"이라는 결론이다. 진화론의 약점만 들춰내면서도 스스로 과학임을 증명하지 못한 창조과학이 이제는 적극 공세로 전환하는 모양이다. 

이와 같은 웃음거리를 그대로 넘겨버리는 한국의 과학 풍토는 참으로 한심하다. 노아의 방주가 묻혀있다는 아라랏산에 발굴대를 보내야 정신을 차릴까. 과학자, 과학교육자들이 창조과학에 무관심하거나 회피하는 태도는 재고되어야 한다. 4년전 생물 교과서에 창조론을 포함시켰다가 검정을 못 받자 저자들이 문교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패소했지만, 아직도 계류 중이다. 기세 등등한 창조과학 쪽에서 앞으로 어떤 기발한 카드를 내놓을지 불안하다. 

한국 교회는 창조과학이 과학에 대한 모독일 뿐 아니라, 종교에도 불명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학회에 수천만원 기부금을 내는 교회 명단에는 진보적인 교파도 보이는 딱한 노릇이다. 원숭이 재판에 소리 높여 항의한 니버 같은 신학자가 이 땅에는 없을까? 다윈 당시 자유주의적인 신학자들은 신이 생물을 창조했고, 그 뜻에 따라 진화한다고 함으로써 멋진 타협을 제시했다. 현명한 그리스도교도라면 진화론을 과감히 수용하거나 과학의 일로 돌려놓을 것이다."


2. 송상용 교수의 창조과학 비판에 관한 본회 김정욱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의 반론 (1994.5.12일(목) 제8호 한겨레 21) 

'저절로 '펑' 터진 게 아니다.

'신의 섭리' 주장도 마땅히 존중되어야

사람의 판단이란 것은 참으로 믿을 것이 못된다. 살인범이라고 잡아서는 현장검증까지 다 하고 나서 처형했는데 나중에 보니 진짜 살인범은 엉뚱한 데서 나타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본다. 우리가 두 눈을 뻔히 뜨고 보는 세계에서도 이런 잘못을 범할 수 있는데, 하물며 아무도 본 적이 없고 실험도 해볼 수 없는 우주만물의 기원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사람의 머리엔 한계가 있다


우리는 〈사람의 두뇌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이 무슨 뜻인고 하니, 사람의 두뇌를 컴퓨터와 비교하여 설명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컴퓨터는 컴퓨터의 기본 작동단위보다 더 작은 공간이나 시간의 개념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즉 컴퓨터는 일정한 양의 전류의 흐름을 기본 작동단위로 하기 때문에 공간적으로 보아서는 그 전류의 흐름보다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 전혀 반응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두뇌도 어떤 전기 화학적인 작용이 기본 작동 단위가 된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두뇌가 감지할 수 있는 기본단위보다 더 작은 공간적인 사건, 또 그 보다 더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사건은 인간의 이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빛이나 소리를 컴퓨터가 전혀 느끼지 못하듯이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현상도 이 우주공간에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과학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우리의 감각기관이 느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현상을 연구할 수 있을 뿐이다. 그 현상을 일으키는 본질이 무엇인지는 결코 알 수 없다. 본질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 본질의 기원도 물론 알 수가 없고, 또 그런 본질이 있게 한 신(神)이 있는지 없는지도 증명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만물의 기원이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다고 보든지 저절로 진화되었다고 보든지, 그것은 다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둘 다 믿는 것일 뿐이다. 몇몇 진화론자들의 잘못은 자기들은 실제로 일어난 사실을 믿는데, 창조론자들은 틀린 것을 믿는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데 있다.

사실 나는 무신론자인 동시에 진화론자였다가 삼십대 후반에 들어서야 창조론자로 바뀌었다. 갑자기 무엇에 덮어씌여서 정신이 든 것이 아니라, 맑은 정신을 되찾고 깨달음이 생겨서 창조론자가 된 것이다. 내가 생각을 바꾼 후에 알게 된 것은 진화론이야말로 자연법칙상 일어날 수 없는 것을 믿는 하나의 믿음이었다는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당연한 것을 믿고 있을 뿐이다. 왜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몇 가지 쉬운 예를 들어 보겠다. 

우리는 아무리 자연을 관찰하고 실험을 해봐도 아무것도 없던 데서 에너지나 물질이 저절로 나타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창조론자들이 그렇다면 그것들은 초자연적으로 창조되었음이 틀림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나타난다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실험을 통해서 대칭되는 모양과 목적과 질서와 상호의존적인 것은 설계해서 만들지 않으면 저절로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엇을 하나 '펑!' 터뜨렸는데 거기서 대칭이며 질서며 목적이며 상호의존이며 그런 것이 나타난 것을 본적이 없다. 

민심을 어지럽히는 광신도?

우주와 생물과 원자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연에 나타나 있는 대칭성과 목적과 상호의존과 질서를 두고 창조론자들이 그렇다면 누군가 지혜로 설계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반면에 진화론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펑 터져서 나타났다고 믿는다. 누가 더 타당한 믿음의 근거를 가졌는가?

창조과학회에 있는 과학자들이 무슨 이상한 도를 퍼뜨려 민심을 어지럽히는 광신자들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인정된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 과학자들일 뿐이다. 그리고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충실히 일하고 훌륭한 업적을 쌓고 있어서 사회에서도 인정들을 받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정직하고 겸손한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신이 창조한 환경을 아끼며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도록 권면함으로써 과학의 발전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사회를 가꾸어 나가는 데 기여하고 있다.



3. 한겨레 21 송상용 교수 논단에 대한

한국과학기술원 창조과학연구회(RACS)의 입장 

시사주간지 한겨레 21에 실린 송상용 교수의 논단은 창조과학을 감정적으로 대하고 있으며,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 두 가지의 배경을 설정하고 있는데, 첫째가 국내의 탁명환 소장 피살 및 영생교 사건과 국외의 종교분쟁을 인용하고 있다. 송교수의 글에 의하면 광신과 정상적인 신앙을 혼돈하고 있는데, 창조과학 활동을 어떤 면에서 광신이라고 주장하는가? 사실 정직한 과학자라고 한다면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관한 한 아직은 잘 모른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과학자다운 자세라고 생각한다. 기원에 관한 각자의 판단에는 그것이 과학적이라기보다 신념과 신앙의 문제이다. 만약 생명의 기원이 진화론에 의해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라고 즉, 진화는 과학적 사실이라고 증명된 것이 있으면 제시해 보라. 결국 기원의 문제에 대해 잘 모르고 있거나 최소한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어떠한 가설이 현재의 상황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자신이 갖고 있는 신념,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신앙에 근거하여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창조과학회는 창조는 물론이고 진화도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둘 다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왜냐하면 기원에 대한 두 입장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실험이나 관측을 통해서 재현하거나 확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서 지적했듯이, 확인할 수 없는 기원의 문제를 대하는 자세는 어떤 가설이 더욱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선택하는 것은 일종의 신념에 관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관한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송교수가 예로 든 스코프스 재판에 대한 설명은 일부분만 본 것이다. 그 사건의 결말에 대해서 정확히 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송교수는 그 재판에서 어떻게 진화론자들이 승소했는지를 알고 있는가? 진화론자들이 그 재판에서 진화론이 과학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사용한 화석이 있었다. 그것은 당시 네브라스카인 이라고 명명된 이빨 화석이었는데, 당시는 그 네브라스카인이 인류진화과정을 설명해 주는 중간단계 화석으로 주장되어, 인간이 원숭이에서 유인원으로 다시 중간단계를 거쳐 현인류로 진화된 것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증거로 사용했다. 그 네브라스카인의 화석으로 인해 창조론은 패소했고 진화론은 승소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중간단계 화석이라는 네브라스카인은 미국 네브라스카 지방에선 멸종된 혹은 남미에서 발견되고 있는 멧돼지 이빨로 확인되었다. 아직까지도 원숭이에서 혹은 다른 생명체에서 인류가 진화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 상태로 남아있다. 그러므로 사실상 행정적인 판결은 아직 끝났으나 과학적인 판결은 아직 끝나지 않는 상태임을 알아야 한다. 원숭이 재판을 다시 하려 든다고 매도하지 말라. 다만 진화론이든 창조론이든 둘 다 기원에 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광신인가? 송교수는 창조론을 교과서에 넣으려면 진화론처럼 과학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에서 진화론이 과학이라고 주장하는가? 과학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증명도 할 수 없고, 실험도 할 수 없고, 관찰도 되지 않는 이론이 과학이라 할 때 그 한계는 어디까지나 가설의 범위를 넘을 수 없는 것이고, 가설은 과학자의 신념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기존의 중, 고등 과정뿐 아니라 대학과정의 교과서를 보아도 진화가 확인된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곳은 없다. 다만 진화가 됐을 것으로 생각하거나 추측할 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지금 한창 UR 문제와 북한 핵사찰 문제 등으로 인해 반미(反美) 감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이 때에 어디에 무슨 근거를 두고 있는지 모르지만 창조과학이 미국 내 극우세력의 정치적 지지를 받았다고 하면서, 한국창조과학회가 마치 미국의 정치적 영향을 받은 것처럼 기술하였다. 보수회귀 무드 하에서 진화론이 핍박을 받은 것 같은 감정적 표현에 대해 송교수는 무엇을 보고 그러한 판단을 내렸는가? 70년대 이후 지금까지 보수회귀 무드에 의해 진화론과 창조론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배격을 받았는지 송교수는 정직한 판단을 내리기를 바란다. 그리고 과학을 평론하는 사람이라면 보다 객관적이고 신중하며 정직하기를 바란다. 

노아 방주의 조선공학적 안정성에 관한 연구는 실제의 실험과 컴퓨터 시물레이션에 의해 밝혀진 결과였다. 어떤 이유에서 웃음거리인지, 또한 정신 못 차리고 한 일인지를 송교수는 보다 과학적으로 평가하고 평론하기를 바란다.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고 선입견과 주관적 견해로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송교수가 지적한 광신임을 명심해야 한다.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내용중 과학적으로 입증되며, 관찰되며, 증명된 사실이 있으면 지적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한 내용이 있으면 기원에 관한 창조론적 입장이 수정되고 개선되어야 할 문제이지, 타협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과학하는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일 것이다.

 

출처 - 창조지, 제 90호 [1994. 4~6]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80

참고 :

김기태
2004-07-26

하나님은 생물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데


      진화론은 화학진화의 결과로 생긴 최초의 원시세포가 오늘날 수 백만 종의 다양한 생명체의 공통조상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호에서 우리는  화학진화설이 과학이론으로서 얼마나 문제가 많은 주장인가를 검토한 바가 있다. 이를 인식한 과학자들 가운데는 최초의 생명체가 지구에서 자연발생한 것이 아니라, 외계로부터 일종의 포자와 같은 형태로 우주진에 섞여서 지구에 유입되었다는 소위 판스퍼미아설을 제안하는 경우가 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서 노벨상을 수상하였던 프란시스 크릭이 그 대표적인 사람이다. 

어쨋든 진화론에 있어서의 두번째 과제는 하나의 지극히 간단한 원시생명체에서 엄청나게 다양한 생물로의 진화를 자연적 메카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과 그에 대한 과학적 증거들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있다. 그래서 그들이 채택하고 있는 것은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한 신종의 출현 메카니즘과 화석학적 증거 내지는 발생학적 증거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풀과 씨 맺는 채소,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종류대로,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종류대로, 날개있는 모든 새를 종류대로,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것과 그들이 창조된 후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을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면 각각의 생명체들은 종류대로 초자연적인 기원을 갖고 있으며, 처음부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을만큼 완성된 모습을 갖추고 지구에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진화론과 성경적 창조론은 생물종의 출현과정에 대해서 다시 큰 이견을 보이게 된다. 즉 하나의 조상에서 부터 점진적인 변이를 거쳐서 새로운 생물종이 출현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각양의 생물종들은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들이 보고 있는 모습에 준하는 완성된 형태로 출현하게 되었는지 이다. 

이러한 두 가지 가능성을 점검하는데 가장 긴요한 과학적 자료는 생물의 화석이다. 화석재료는 생명체들이 지구상에서 어떠한 역사적인 변천과정을 거쳤는지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어쩌면 유일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진화론이 주장하는 점진적인 변이와 자연상태에 의한 생물종의 출현은 필수적으로 중간형태의 생명체가 역사적으로 존재했었음을 가정하게 된다.

예를 들면, 고래가 포유동물(대부분 육지에서 서식)이기 때문에 육상의 어떤 동물이 바다에서 살 수 있도록 진화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한다면, 육상의 동물이 가지고 있는 다리가 없어지면서 지느러미의 형태로 바뀌고, 몸은 유선형으로 바뀌고, 꼬리가 꼬리 지느러미의 형태로 바뀌는 점진적인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리나 꼬리가 지느러미의 형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양자의 특징을 부분적으로 지니는, 고래의 원래 조상이라고 생각되는 육상동물과 고래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형태의 생명체가 지구상에 출현했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세계 도처에서 발굴되고 있는 화석들 가운데에 이러한 애매한 중간형태의 것에 해당되는 화석이 분명히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창조론적인 관점에서 그 고래가 아예 처음부터 하나님에 의해서 완성된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면, 고래의 조상에 해당되는 육상동물과 고래를 연결하는 중간형태의 생물은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따라서 그러한 류의 화석이 발견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져 중간형태의 화석이 결코 발견된 바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이제는 많은 진화론자들도 동의하고 있다. 때로는 시조새의 화석과 같이 중간적인 특징을 지니는 것처럼 해석되는 화석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면밀한 검토를 하였을 때 그들은 언제나 하나의 독립된 생물종으로 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기는 하였다.

결국 성경에서 언급하듯이 모든 생물들이 각기 종류대로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어서 처음부터 완성된 모습을 가지고 지구에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 오히려 타당성을 지니게 되고, 점진적인 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한 생물종의 진화라는 주장은 아무런 과학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진화론자들은 기존의 이론을 대체하기 위하여 소위 '점단식 평형이론' 또는 '괴물이론' 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제안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오늘날 유전학이 이해하고 있는 유전의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는 황당무계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고 밖에 달리 평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를 테면, '괴물이론' 이라는 것은 도마뱀이 알을 낳았는데 그 알이 부화되고 나니 거기서 참새가 나왔다는 식이다. 점단식 평형이론 이라는 것도 새로운 종의 출현은 매우 급격한 속도로 진행이 되어서 그의 중간형태의 화석을 남길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식이어서 문제의 본질을 교묘하게 피해보려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예로 부터 '닭이 먼저냐, 달갈이 먼저냐?' 라는 질문은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수수께끼로 여겨왔다. 하지만 창조론적인 관점에서는 분명히 닭이 먼저라고 대답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면 분명히 닭을 창조하셨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달걀을 창조하셨다면 그 달걀은 누가 품어서 부화시켰는지를 설명하기가 어려워진다. 우리는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는 인과율이나, '송아지는 엄마소를 닮는다'는 유전학의 법칙 등 모든 과학적 추론을 동원해 볼 때, 성경이 가르치듯이 하나님께서 종류대로 모든 생물종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무신론적 진화론이 과학의 영역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은 결코 과학적 이유에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의 기본적인 원죄적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창조냐, 진화냐?'의 논쟁은 결코 과학적 논쟁으로 성립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창조지, 제 96호 [1996. 3~4]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81

참고 :

Encyclopedia
2004-07-26

양자택일 : 진화냐 창조냐? 

(Only Two Alternatives)


      무엇이 지구의 생명을 만들었는가? 어떻게 하늘의 별들이 만들어졌을까? 과학자들은 이것을 주의깊게 심사숙고하여 왔다. 그리고 우리에게 단지 두 가지 가능성만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진화되었거나, 창조되었다. 여기에 그들의 말들이 있다. 이것은 과학 대 진화이다. Creation-Evolution Encyclopedia은 당신에게 창조과학이 진실임을 알려줄 것이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만약 과학자들과 우리들중 몇몇이 어리석은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결정한다면, 유일한 선택은 창조론 뿐이다. 별들과, 행성과, 식물과, 동물과, 사람들이 스스로 생겨나지 않았다면, 유일한 대안은 신이 그들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유일한 대안(창조론)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 우스꽝스러운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진화론은 동물학자들에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론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화가 실제로 발생한다고 보여지거나……또는 논리적인 증거에 의해 입증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유일한 대안 즉 특별한 창조가 확실히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 *D.M.S. Watson, 'Adaptation,' in Nature, Vol. 123, p. 233 (1929).

사실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인간의 지성뒤에는 진화론적인 변화 아니면 초자연적인 신의 개입이 존재한다” - *S. Zuckerman, Functional Activities of Man, Monkeys and Apes (1933), p. 155. 

신이 모든 것을 창조했거나, 모든 것이 스스로 진화되어 만들어졌거나 이다.

”그러한 설명은 두 가지의 부류중 하나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다. 즉 특별한 창조 또는 진화이다. 이 두 가지 개념에는 다양한 혼합과 변형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두 개념을 완벽하게 제외하고 기원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 *Davis and *E. Solomon, The World of Biology (1974), p. 395.

이 양자택일의 해결을 반박할 수는 없으나, 경멸할 수는 있다.

”시대에 뒤지고 완전히 비평되며, 무식하고 독선적이고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창조론을 제외하고는 경쟁할만한 가설은 없다.” - *H. Newman, Outlines of General Zoology (1924), p. 407. 

생물과 무생물 어느 쪽을 보건대, 우리는 명확한 설계와 세심한 의도를 볼 수 있다. 오직 훌륭한 지적능력과 이해력을 가진 '지성적인 존재' 만이 이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과학의 사실들이 단순히 우연이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우리가 지구를 연구하면 할수록, 그것은 만들어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내가 지구에 대해 연구한 것은 나를 절대자를 믿는 사람으로 만들기에 부족하지 않았다……우리는 확실히 신이 만들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신의 작품들을 보아 왔다.”

”정직한 사색가들은, 만약 그들이 세밀히 살펴본다면, 놀랄만큼 복잡한 우리의 세계와 그 속의 생명들은 절대의 정신(Infallible Mind)만이 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다.” - *Paul Francis Kerr, quoted in F. Meldau, Why We Believe in Creation, Not Evolution, pp. 50-51. 

그밖에 다른 가능성은 없다. 생물들은 완벽히 발달한 상태로 이 지구에 나타났거나 혹은 그 반대이다.

”창조와 진화, 이들 사이에, 생물의 기원에 대한 가능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물들은 완벽히 발달한 상태로 이 지구에 나타났거나 또는 그 반대이다. 만약 생물들이 발달되지 않은 상태로 출현하였다면, 그들은 계속 발달되어야만 하며, 또는 아닐 수도 있다. 만약 아니라면, 그들은 몇몇 변형과정에 의해 이전부터 존재하던 종들로부터 발달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완벽히 발달한 상태로 나타났다면, 그들은 절대적 지성에 의하여 창조되었을 것이다.” - *D.J. Futuyma, Science on Trial (1983), p. 197. 

진화론은 과학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지지하는 사실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화라는 사실은 생물학의 중심이고, 생물학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입증되지 않은 이론에 기초를 둔 과학이라는 특이한 위치에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과학일까 믿음일까? 그러므로 진화론을 믿는 것은 창조론을 믿는 것과 완벽히 유사한 입장이다. 두 가지 다, 믿는 자들은 진실이라고 생각하나 현재까지 둘 다 증명될 수가 없는 개념인 것이다.” - *L.H. Matthews, 'Introduction' to The Origin of Species by Charles Darwin pp. x, xi (1971 edition). 

대안 이론인, 창조론은 이것을 지지하는 사실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보다 더 깊이 들어가서 유일하게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은 창조론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이 물리학자들에게 몹시 혐오된다는 사실을 안다. 정말로 나에게도 그러하다. 그러나 실험의 증거가 뒷받침해 줄 경우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이론이라도 거부해서는 안된다.” - *H. Lipson, 'A Physicist Looks at Evolution,' Physics Bulletin, 31 (1980), p. 138. 

이 두 가지는 절대로 서로 조화될 수 없다. 하나가 받아들여지면 두 번째 것은 거부된다, 혹은 두 번째 것이 받아들여진다면, 첫 번째 것은 거부된다. 그리고 진실은 오직 한 쪽에만 존재한다.

”창세기의 창조이야기와 진화론은 조화될 수 없다. 둘 중 한 가지가 옳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틀릴 것이다. 화석 이야기는 창세기의 이야기를 긍정한다. 가장 오래된 암석에서 우리는 가장 원시적인 생명체부터 발달된 모습으로 점진적인 변화를 보이는 일련된 화석들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가장 오래된 암석에서 발달된 종들이 갑자기 나타난다. 모든 종들 사이에 중간과정의 화석은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 *D.B. Gower [biochemist], 'Scientist Rejects Evolution,' Kentish Times, England, December 11, 1975, p. 4. 

창조된 우주가 근원도 없고, 계획도 없고, 기준도 없으면서, 목적도 없고, 가능성도 없고, 미래도 없는 사람을 생산했다고 생각해 보라.

”다윈론자들의 이론이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렸기 때문에, 이 엄청난 충격으로 인간은 목적도 없고, 끝도 없는 우주를 방황하게 되었던 것이다. 현 시대에서 다른 지적인 혁명은 없다……그래서 인간들은 우주에서의 그들의 위치와 그들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법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 *Michael Denton [Australian molecular biologist], Evolution: A Theory in Crisis (1985), p. 67. 

단지 두 가지 선택만이 있을뿐, 세번째는 없다.

”적당한 입장은 자연발생을 믿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일한 대안은 초자연적인 창조가 태초에 한 번 일어났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세번째 입장은 없다.” - *George Wald, 'Origin of Life,' Scientific American, August 1954, p. 46.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pathlights.com/ce_encyclopedia/Encyclopedia/20hist15.htm

출처 - Encyclopedia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92

참고 : 3800|3856|3841|4146|4039|3919|3808|3887|3744|3736|3729|3679|3677|3606|3598|3586|3593|3591|3426|3391|3360|3341|3293|3262|3109|3107|3059|3051|3012|2859|2748|2763|2752|2579|2504|2334|2125|2153|2114|2067|2061|1912|1914|1907|736|730|729|657|658|659|696|653|654|551|328|201|202|45

Ken Ham
2004-06-26

창조 : 그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Creation : Where's the Proof?)

여러 해를 걸쳐 나는 많은 사람들한테서 다음과 같은 질문공세를 받아왔다:

”저는 친구들에게 증명해 보여주려 노력했습니다. 친구들은 성경을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 성경 안에 내용들에 흥미를 느낄 수 없다고들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하신 창조의 참 증거를 보고 싶다고 하며, 기독교에 관한 나의 주장을 한번 들어보자는 것입니다. 그들의 경청을 유도하기 위해서 과연 성경을 언급하지 않고서도 제가 하나님의 창조의 증거를 말할 수 있을까요?”

내 대답은 간단하다.

 

증거 (Evidence)

창조론자나 진화론자, 크리스천이나 비크리스천 따질 것 없이 모두가 다 같은 증거를 가지고 있다━사실은 누구에게 같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지구에서 살고 있으면서, 그 위에 있는 같은 화석 퇴적층을, 그리고 같은 동물과 식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다시 말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실들은 동일하다.

나타나는 차이는 다른 데 있지 않고, 같은 사실을 해석하는 방법에 있다. 그러면 왜 우리들은 동일한 사실들을 다르게 해석할까? 그 이유는 우리들의 해석이 서로 다른 '전제' (자명원리 라고도 함; axioms) 들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 전제를 증명할 수 없으면서 제 각기 참이라고들 가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차이가 생기는 원인이다. 일단 전제를 참이라고 가정한 다음 사람들은 그 전제를 다른 이론의 결론을 도출하는데 근거로 삼는다. 모든 주장은 전제 위에 근거한다. 과거의 사건을 해석할 때 전제는 특히 적절하게 이용된다.

 

과거와 현재 (Past and Present)

우리는 모두 현재에 존재한다. ━ 그리고 모든 사실도 현재에 있다. 이 사실들의 현재적 존재를 가능하게 한 방법을 (동물들은 어디서 왔을까? 화석의 퇴적층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따위를) 이해하려 할 때, 우리는 실질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본다.

그러나 과거에 없었던 우리는 당연히 과거의 사건을 관찰할 수 없었는데, 어떻게 과거의 사건을 알 수 있어서 현재 이 시점에서 그것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타임머신이라도 있어서 과거의 사건을 확신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크리스천은 당연히 그런 것을 하나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의미로는 '타임머신'이 맞다. 크리스천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성경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계시기에 우리가 꼭 알아야할 과거의 사건들을 알려주신다.

그런 중요한 사건들 (창조, 타락, 대홍수, 바벨탑 등등)을 근거로 하고, 우리는 현재의 증거들에 대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사고방법을 세워나가는데 필요한 일련의 전제를 가지게 되었다.

진화론자들은 그들 나름의 과거/현재에 관한 일종의 신념의 근거가 되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하나님 (최소한 특별한 창조의 사역을 하는 하나님)은 없다는 전제가 그것으로서, 그 위에 그들은 현재의 증거들을 해석하는 방법을 크리스천의 그것과 달리 한다.

이런 까닭으로 크리스천과 비크리스천 사이에 증거에 관한 논쟁이 벌어질 때면, 그것은 실질적으로는 그들 나름의 전제 에 근거한 서로 다른 해석 에 관한 논쟁인 것이다. 이것이 논쟁이 자주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흐르게 되는 이유이다:

”저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겁니까?”

”그래요, 모르겠어요. 그러는 당신은 당신 말이 얼마나 틀렸는지 모른다는 말씀입니까?”

”천만에요. 저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제 말이 분명히 맞아요.”

”아닙니다. 전혀 분명하지 않아요. 오히려 제 말이 맞는다는 것이 분명한데요.”

이 두 사람은 동일한 증거를 놓고 논쟁을 벌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제 각기 다른 안경을 끼고 증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출발부터 실질적으로 서로 다른 전제에 관해서 논쟁을 벌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전 까지는, 그들은 서로 다른 믿음의 근본적인 이유에 관해서 토론해볼 생각을 시작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안경으로 바꿔 쓰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증거해석을 바꿔보려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전제를 바꾸기 전까지는 믿음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이론을 이해하는 크리스천이 실질적으로 진화론자의 안경을 (전제들을 진실이라고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쓰고 보면 진화론자들이 증거를 바라보는 자세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비크리스천은 정신적인 이유를 포함하여 수많은 이유 때문에, 그들과 크리스천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이 전재의 싸움임을 인식하고 자신들의 전제에 대해 자문해 보기 전에는 크리스천의 안경을 쓰려 하지 않는다.

때로는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데 어쩌면 그것이 당연하다. 창조에 대해 어떤 특수한 과학적인 논쟁에서 우리가 창조의 '증거'를 그냥 제시하기만 해도, 그것으로서 창조가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상대방은 납득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는 동일한 증거에 대해서 제 3자로부터 다른 해석을 들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해석이 우리의 해석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면, 그는 우리의 설명을 버리고 ”더 확실한 증거를” 찾았다고 믿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싸움의 문제는 전제 라는 것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킬 수만 있다면, 그들은 문제의 소재를 더 잘 이해할 것이다. ━ 즉, 해석이 다른 것은 전제가 달랐던 것이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 다시 말해서 출발선에서 이미 마음에 품고 있는 믿음 자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한 사람의 교사로서 나는 창조의 사실들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줄 때마다, 그들은 나의 해석과는 다른 해석을 다른 교사들로부터 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럴 때에는 학생들은 나에게 다시 와서는, ”자, 우리들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가르쳐 주세요!”

그런데, 나는 학생들에게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사실해석을 어떻게 우리가 세운 전제에 근거시키는가를 가르치는 방법을 안 다음부터는 그 방법대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다음부터는 다른 교사들이 사실을 자기네들 식으로 해석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학생들이 교사들의 근본적인 가정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학생들이 아니고 교사가 저한테 찾아왔다. 이 교사는 학생들이 이 교사의 증거해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면서, 그 교사의 사고의 기본에 도전하였다고 내게 항의하였다.

어떤 일이 일어났었기에 학생들이 예전 같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생각하는가보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반 학생들이 변화된 모습은 놀라웠다! 한 10여년이 지난 후에 우리 반 학생들 가운데 몇몇이 찾아와 그들이 학창시절 내가 가르쳐준 사고방법 덕분으로 활동적이고 확신에 찬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말해주었을 때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토론을 전개하는 방법 (Debate Terms)

자주 사람들은 성경을 펴들지 않고 토론을 하자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동의하려면, 토론을 전개하는 방법을 설정하여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토론을 전개하는 조건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1. '사실들은' 중립이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해석이 안 되는 사실 (brute facts)” 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실들은 해석이 되게 되어있다. 일단 성경을 논쟁에서 배제하고나면, 그 때엔 크리스천의 전제들은 사라지고 말아서 사실을 해석할 대안을 효과적으로 제시할 수 없다. 그런데도 크리스천에 반대쪽 토론자는 여전히 그들의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크리스천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다.

2. 진리는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확정될 수 있으며 또 확정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다” (시편 111: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잠언 1:7).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린도전서 2:14).

크리스천은 이 싸움에서 성경을 떼어놓을 수는 없다는 점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아무리 뭐라고 해도 비크리스천은 결코 중립이 아니다. 성경은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해치는 자니라' (마태복음 12:30).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한복음 3:19).

상대방이 요구하는 토론의 조건에 동의하면 우주역사에 대한 성경의 말씀이 그 역사를 이해하는데 적절하지 않다는 저들의 전제를 암암리에 수용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판결한다 (Ultimately, God's Word convicts)

베드로전서 3:15는 물론 다른 성경 구절들에 있는 말씀들도 사람들에게 진리를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모든 논쟁의 수단을 다 사용하여야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고린도 후서 10:4-5은 저들의 오류를 반박하여야 한다고 말씀한다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선교할 때와 같이). 어쨌거나 우리는 결코 히브리서 4:12의 말씀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또한 이사야 55:11의 말씀은,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하였다.

비록 우리 인간의 논리가 제아무리 힘이 있다고 하여도, 궁극적인 판결의 권위를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에게 진리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 우리는 어떤 논쟁에 임할 지라도 판결의 권위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 논쟁을 하여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실용적인 적용방법 (Practical Application)

사람들이 내게로 와서 성경은 아니고 '증명'을 또는 '증거'를 말하라고 언쟁할 때면, 나는 아래와 같이 대답한다.

”저로서는 당신들이 성경을 믿는지 안 믿는지 알 수 없군요. 그러나 저는 성경을 믿습니다. 성경은 제가 우주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주변의 사실들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근거라고 믿습니다. 성경에 기초를 두고 생각하는 저의 사고가 어떻게 이 세계를 설명하는가를 그리고 어떻게 과학과 상충하지 않는가를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컨대, 성경은 하나님이 동물과 식물들을 그 종류별로 지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소위 자연선택이라든가 유전적 부동(浮動)이란 것이 어떻게 설명될 수 있으며, 또 해석될 수 있는가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유전학이라는 과학이 성경에 기초를 두면 어떻게 조리가 서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 과학적인 예에도 이 방법을 적용한다. 예컨대, 죄와 심판과 같은 문제가 지질학이나 화석의 증거와 얼마나 적절하게 연계되는 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인간의 최초의 타락이 뒤이은 창조의 저주와 더불어 인간에 유해한 돌연변이, 폭력 그리고 죽음의 증거로 되었는가를 보여주었다.

일단 이것을 상세히 설명한 다음, 나의 설명은 이렇게 이어졌다.

”자 내 설명은 이만큼 해두고 지금부터는 이 사안들에 대한 당신의 설명을 들어봅시다. 당신의 신념에 기초를 둔 당신의 사고 방법이 어떻게 이와 같은 증거들을 설명할 수 있는지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나의 과학적 설명과 논리에서 어디에 오류가 있었는지도 지적하여 보세요.”

논쟁을 유리하게 펼쳐 나아가려면, 크리스천은:

1. 증거를 해석하는 사고방법을 구축하기 위하여 성경적인 전제들을 사용하여야 한다.

2. 성경과 과학은 적대하지 않고 동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3. 상대방이 근거로 삼는 전제들 (전제조차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지만)에 공격을 가하여야 할 것이다.

4. 상대방한테 그들의 과학과 그들이 내세우는 설명이나 전제들과 논리적으로 합치되는가를 증명해 보라고 강력히 요구한다.

5. 인간의 영혼을 판결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논쟁 중에 상대방을 창조자/회복시키는 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신뢰로 인도하려는 노력은 않고 창조만을 믿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영광되게 하는 사람을 영광되게 하신다. 우리들은 생명에 관한 모든 진실을 사람들에게 가르칠 때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방법을 사용하여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연주의와 논리, 그리고 현실 (Naturalism, Logic and Reality)

창조론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들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차 의식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기본적인 전제라고 하면 다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배제한다는 전제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은 물질로부터 생겼으며, 세상에는 초자연적인 존재라든가 태초의 창조적인 지성 따위는 없었다는 자연주의/유물론의 주장이바로 그들의 전제이다. 아래에 제시된 두 예가 그들의 가정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부각시키고 있다.

1. 한 젊은이가 내 세미나에 찾아와서, "아무리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도 저는 여전히 '빅뱅(big bang)' 이론을 믿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모두 무작위적인 과정을 거쳐 우연히 여기 던져졌다는 이론 말입니다. 요컨대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 그래요! 그렇다면 당신의 두뇌나 생각조차도 무작위의 산물이라는 말이군요. 따라서 당신의 생각이 옳은지 조차도 모르겠다는 말씀이 되겠어요.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두뇌가 올바른 길로 진화되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심지어 그런 맥락에서 보면 당신은 옳다는 말의 의미도 모른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당신은 지금 당신의 진술이 옳은지 또한 내게 던진 질문 그 자체가 옳은 지도 모르겠군요."

그 젊은이는 나를 쳐다보다가 머쓱해서 불쑥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이 추천하신 책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는 결국 자신의 믿음이 그 스스로의 근거를 도려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전개하는 ”합리적 설명이란 것”이 그 합리성 자체의 근거를 파괴하였던 것이다.

2. 또 한 번은, 세미나가 끝나자 한 남자가 내게로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절대가치를 믿지 않음은 물론이고 현실은 확신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인식합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시다면 당신은 지금 이 진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는 ”그렇군요” 하고 내 말에 호응하였다. 그래서 나는 재차 ”뭐가 그렇다는 것이죠?”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미소를 머금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나는 집으로 돌아갈까 봅니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집에서도 없을 것입니다” 했다. 그는 다시 ”그렇군요”. 그래서 나도 또 다시 ”뭐가 그렇다는 것입니까?” 라고 되물어주었던 적이 있었다.

이 정도에서 그 사람은 내 말뜻을 알았을 것으로 나는 믿는다. 만약에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그리고 또 철학적으로 어떻게 현실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진리가 무엇인지 아는 것 자체는 고사하고 우리는 어떻게 진리라는 가치의 존재를 합리적으로 믿을 수 있겠는가?

 

Ed. Note: for more information on formal logic and the Christian faith, see Loving God With All Your Mind: Logic and Creation.

 

참고자료

1. 사실을 말하자면, 과학은 기독교적 이념구조 안에서만 실패작을 피할 수 있었다. 심지어 세속적인 과학자들도 이 점에 한해서는 실질적으로 동감하고 있다. 과학도 실질적이며 객관적인 이 우주가 변하지도 속이지도 않는 신성의 법 수여자(神性의 法 授與者)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성경적 전제를 요구하고 있다. 그 신성의 법 수여자는 인간의 마음을 원칙적으로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으로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분이다. [Ed. note: Refuting Evolution, Ch.1, discusses this in more detail]

2. This assumption is even defended, as a 'practical necessity' in discussing scientific things including origins, by some professing Christians  who are  evolutionist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www.answersingenesis.org/docs/4179.asp

출처 - Creation 22(1), December 1999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65

참고 :

Ken Ham
2004-06-23

스코프스 재판과 십계명 

(Scopes & the Ten Commandments)


       공공학교에서(그리고 앨라배마의 사법부 건물에서) 십계명의 제거는 2003년 미국 전역에서의 주요 뉴스였다. 그러나 당신은 이 사건과 1925년 스코프스 재판 사이에 연관이 있음을 알고 있는가? 내가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는 동안, 나는 공공 장소에서 십계명 판들을 제거하라는 결정 후, 앨라배마 사법부 건물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일부는 이 일의 발생을 멈추어달라고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땅 위에 엎드러져 있었다. 그러나 이들 사람 중에 얼마나, 이 전투의 근본적인 본질을 이해하고 있을까?

만약 내가 카메라와 마이크를 가지고, 시위를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실례합니다. 당신은 수십억 년의 지구 나이를 믿고 있습니까? 그리고 창세기 1 장의 창조의 날(days)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창조과학 사역 동안의 나의 오랜 경험에 의하면, 그 대답은 대부분 다음과 같을 것이다.

 ”무엇이라고요? 그들이 십계명을 제거했습니다. 당신은 왜 아무 관련도 없는 질문을 나에게 물어보는 것입니까?”

또는 내가 '당신은 가인(Cain)이 그의 아내를 어디서 얻었는지 대답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당신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합니까? 그들이 십계명을 법으로 제거했다구요. 당신은 왜 그것과 상관없는 질문들을 물어보며, 내 시간을 허비하게 합니까?” 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질문들은, 문화(culture)가 이처럼 행동하고 있는 진짜 이유와 관련이 있다. 스코프스 재판(공공학교에서 진화론의 교육에 관계된)이 진행되는 동안, 기독교인이었던 기소자 윌리암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이 증언석에 섰을 때, ACLU(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미국시민자유연맹)의 변호사였던 클러렌스 대로우(Clarence Darrow)가 그에게 이와 비슷한 질문들을 했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구의 나이, 창조의 날들, 가인이 아내를 어디서 얻었는지”에 관한 것들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러한 질문들은 오늘날의 십계명 논쟁과 확실히 관련이 있으며, 대로우도 그것을 정확하게 파악했던 것이다.

증언석에서 기독교인으로 서있었던 브라이언은, 가인의 아내에 관해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문자적인 6일 창조를 믿고 있지 않으며, 수백 수천만 년의 지구 나이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인정했다. 

그때 대로우는 자신이 승리하였음을 알았다. 왜냐하면, 전 세계의 청중들 앞에서 기독교인은 성경의 역사(즉, 가인의 아내)를 방어할 수 없다는 것과, 성경을 기록된 말씀 그대로(창조의 날들) 받아들이지 않고, 세상적인 가르침(오래된 연대)을 인정하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브라이언은 (고의는 아니지만) 성서의 권위를 손상시켰고, 세속적인 철학이 문화와 교육계에 널리 퍼지도록 하는 길을 닦았던 것이다.

슬프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도 브라이언처럼, 역사로서 성경의 평범한 말씀들을 거부하고 세상적인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은 창세기에서부터 믿을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을, 세상이 다음 세대의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을 돕고 있다. 그러한 세뇌 교육이 수십 년 동안 진행되었고, 이제 한 세대가 일어나서 성경에 기초한 도덕성까지도 (논리적으로) 제거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국가적으로 기독교적 이념에 기초한 구조들이 점점 제거되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이것은 왜 AiG가 세워졌는지, 그리고 창조박물관(성경의 역사가 사실임을 전 세계에 말해줄)이 오늘날에 왜 필요한지에 대한 또 하나의 극히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참조 : 스코프스 재판에서 진화의 증거로 제시되었던 흔적기관, 헥켈의 배아, 자바인, 필트다운인, 네브라스카인 등은 사기와 허구로 밝혀졌지만, 이들 가짜 증거들로 인해 진화론은 과학적인 것으로 위장되었고, 대대적으로 홍보되었으며, 기독교 신앙의 쇠퇴와 함께 과학, 교육, 문화, 예술, 사회,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참조 : The Scopes 'monkey trial”—80 years later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3544

The wrong way round!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037

Inherit the Wind: an historical analysi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682

Scopes Trial facts v Inherit the Wind fic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793

The big picture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3/i2/bigpicture.asp

Evolution in American education and the demise of its public school system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2005/0131education.asp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us/newsletters/1103lead.asp ,

출처 - Answers Update – US, November 2003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61

참고 : 2067|3677|4010|3051|2148|2061|729|180|91|485|1440|1441|1454|3054|3056

과학동아
2004-06-21

과학동아에 게재됐던 창조-진화 논쟁

: 네 차례(1991년 7, 8, 10월, 1995년 10월)에 걸친 토론 전문


1991년부터 과학동아에 게재되었던 네 차례 (1991년 7, 8, 10월, 1995년 10월)의 창조론-진화론 지상 토론을 모아 놓았다.


진화냐 창조냐? : 첫 번째 논쟁

이 글은 과학동아 1991년도 7월호에 실린 기사이다 :

진화론과 창조론의 공방이 뜨겁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 먼저 불이 붙어 한국까지 건너온 이 논쟁은 급기야 법정으로 비화되기에 이르렀다. 창조론을 옹호한 고등학교 생물교과서에 대해 교육부가 허가취소를 한 것인데, 현재 이 문제는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남겨 놓고 있다. 19세기 영국의 찰스 다윈으로부터 시작된 진화론은 처음 발표됐을 당시 창조론자로부터 커다란 저항을 받았으나, 이를 극복 현재는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그때 창조론자들에게는 진화론에 맞설 이론적 무기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근의 논쟁은 제반 사정이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19세기와는 정반대로 챔피언과 도전자의 입장이 뒤바뀌어 있다. 특히 도전자가 제시하는 과학적 근거가 만만찮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내로라 하는 과학자들이 창조과학회를 결성, 자신들의 과학적 신념을 줄기차게 내보이고 있다. 과연 무엇이 옳은가? 진화론은 전열을 새로 가다듬은 창조론의 주장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창조론의 이론가들은 오래도록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진화론의 어떤 허점을 파고들고 있는가? 양측에서 팽팽하게 펼치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 들어보자.    - 과학동아 편집자 -


1. 진화는 때때로 신속하게 이뤄진다. (진화론측 주장)

2. 엔트로피와 화석은 창조론을 지지한다. (창조론측 주장)

3. 창조론자에게 묻는다. (진화론측)

4. 진화론자에게 묻는다. (창조론측)

  


진화냐 창조냐? : 두 번째 논쟁

이 글은 과학동아 1991년도 8월호에 실린 기사이다.


1. 진화론측 주장

비전문가의 아전인수식 해석은 곤란

2. 창조론측 주장

진화론만이 옳다는 독선은 버려야

  


지형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 세 번째 논쟁

'서서히' 대 '급격히' 

이 글은 과학동아 1991년도 10월호에 실린 기사이다.


1. 진화론측 주장

'현재는 과거의 열쇠다'

2. 창조론측 주장

'땅은 윤회하지 않는다'

  


진화론 vs 창조론 : 네 번째 논쟁

이 글은 과학동아 1995년도 10월호에 실린 기사이다.


1. 최초의 생명체는 언제 어떻게 생겼나?

2. 화석의 '잃어버린 고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3. 열역학법칙을 어떻게 볼 것인가?

4. 인간정신의 기원은 무엇인가?

 5. 미래 인간의 모습은 어떤 형태일까?



출처 - 과학동아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1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

박희주
2004-06-21

창조-진화 논쟁 : 회고와 전망


      진화론 논쟁은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의 출간과 함께 시작되었다. [종의 기원]은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출간되었으나, 초기의 논쟁은 주로 영국에서 발생했다. 이 논쟁은 생물학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철학 등 사회 각 영역에 걸쳐 다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특별히 여기서 우리는 종교적 논쟁에 관심을 가진다. 영국에서의 논쟁은 대략 지식인들 간의 논쟁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반진화론적 흐름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영국교회는 진화론과 타협 또는 화해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반면 미국의 경우는 반진화론적 경향이 우세했으며, 진화론 논쟁은 처음부터 사회적인 논쟁으로 치달았다. 1920년대 본격화된 이 논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따라서 창조-진화 논쟁사에 있어서 중심무대를 차지하는 것은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20세기 미국의 경우를 중심으로 창조-진화 논쟁사를 살펴보기로 한다.

창조과학이란 용어는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는 1980년대 초 한국에 소개된 바로 그 창조과학이며, 미국의 창조론 운동은 올해 20주년을 맞은 한국창조과학회의 지적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난 20년간 전개되어온 한국 창조론 운동의 특성과 그 전개과정은 미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창조-진화 논쟁사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특별히 한국창조과학회 20 주년을 맞아, 그 역사적, 지적 배경을 더듬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나아가 창조과학회가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함에 있어 이러한 역사적 반추는 필요 불가결한 작업이라고 믿는다.

미국 창조-진화 논쟁은 1960년을 전후로 대략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920년대 스코프스 법정 논쟁으로 대표되는 반진화론 운동과, 1980년 아칸소 법정논쟁으로 정점을 이룬 창조론운동이 그것이다. 이외 1990년대 초 등장한 지적설계운동은 최근 미국 창조-진화논쟁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앞의 두 가지 운동이 창조-진화 논쟁의 회고 부분이라면, 지적설계운동으로 시작된 최근의 동향은 앞으로의 전망과 연결되어 있다. 오늘 발표에서는 대략 이 세 가지를 다루고자 한다.

 

1) 스코프스 논쟁 (1925)

1859 년 '종의 기원” 출간으로 미국 과학자 사회에 소개된 진화론은 당시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기원에 대해 지배적 답변이었던 '특별 창조설’을 급속히 대체하기 시작하여, 1880년경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 추세는 과학 교육에도 곧 반영되어 이때쯤 진화론은 처음으로 고등학교 생물교과서에 등장한다. 20세기 초 미국 중등교육의 급속한 팽창에 힘입어 진화론은 광범위하게 미국사회에 보급되며 이에 위협을 느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반진화론 운동을 일으킨다. 3 번이나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던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은 이미 교과서에서 사라진 특별창조론과 교육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진화론을 제거해야한다는 주장을 하며 이 운동을 이끈다. 미국 전역에 걸친 대대적 반진화론 운동의 결과 테네시(1925), 미시시피(1926), 아칸소(1928) 주에서 진화론교육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반진화론법이 통과된다.     

테네시주에서 반진화론법이 통과된 직후 미국시민자유연맹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이후 ACLU로 약칭)은 이 법의 실효성을 시험할 것을 선언하고 나서고, 이에 협조하기로 한 스코프스(John Thomas Scopes)라는 교사가 진화론을 교실에서 가르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테네시주가 즉각 스코프스를 고발하고 ACLU가 맞서 변호하는 희대의 재판이 1925년 7월 데이튼이라는 소도시에서 열린다. 약 2주간에 걸친 대 논쟁은 결국 스코프스 측이 $100 벌금형을 선고받음으로써 일단락 된다. 이 재판 과정에서 ACLU측 변호사 다로우 (Clarence Darrow)와 역시 변호사 출신이었던 브라이언이 맞붙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브라이언은 재판이 끝난 3일 후 돌연사 한다. 법률적으로는 진화론 측이 패소했으나, 자유적 경향의 미국 주류언론들은 스코프스 논쟁을 원숭이 재판으로 희화화하고, 반진화론적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조롱거리로 만듦으로서 근본주의 측 역시 큰 이미지 손상을 입게된다.

1920 년대 반진화론 운동을 돌이켜 볼 때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사건에 대한 역사적 해석의 변천과정이다. 스코프스 재판이후 60 년대에까지 이르기까지 이 사건에 대한 주류해석을 형성했던 자유주의적 해석들은 대체로 그 궤를 같이한다. 이들은 스코프스 재판(특히 재판 중 브라이언과 다로우의 격돌)을 근본주의와 모더니즘의 대결을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사건으로 부각시켰다. 이러한 구도 하에 아무런 지적내용이 없는 남부 농촌의 근본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브라이언을, 그리고 모더니즘의 상징으로 다로우를 설정한 후, 다로우의 냉정한 이성적 심문에 의해 브라이언의 맹목적 신앙이 철저하게 조롱거리가 된 것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이를 스코프스 재판의 하이라이트로 제시함으로써, 브라이언의 패배를 곧 근본주의의 패배로 연결시켰다. 한 마디로 스코프스 재판이 근본주의의 쇠퇴를 결과했다는 것이다. 브라이언의 돌연사도 결국 이러한 패배의 충격으로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볼 때 이들은 반진화론운동을 현대 세계와 과학에 대한 두려움 (1차 세계대전의 참상에 대한 반동, 교육과 사회를 근본주의의 이상과 부합하도록 교정하려는 욕구) 등 시대착오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규정하고, 현대 사회에서 그 영향력이 죽어가는 운동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반진화론적 근본주의가 부활함에 따라 이러한 예측은 빗나가고 만다. 따라서 자유주의적 해석에 근원적인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60년 대 이후 수정주의 역사이다. 대표적인 수정주의 역사가로 폴 카터(Paul Carter), 에른스트 산딘(Ernest Sandeen), 조지 마스덴(George Marsden) 이 세 사람을 꼽을 수 있다.

폴 카터 : 그는 근본주의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곧 쇠락할 주변적인 사이비 신앙이 아닌 수백만의 추종자가 따르는 강력한 신념으로 파악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스코프스 논쟁 이후 근본주의가 무너졌다는 주장은 근본주의를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연구하지 않은 자유주의 학자들이 만들어낸 판에 박힌 해석이라고 카터는 일축한다. 오히려 근본주의가 보이는 지속적인 활력에 주목하여 이를 가능케 한 요인을 근본주의 운동에서 찾아내는 것이 근본주의 연구에 있어 주요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제언한다.

에른스트 산딘 : 근본주의의 이념적 뿌리를 추적. 산딘은 근본주의 세력과 이념의 근원으로 무식한 남부의 시골문화를 지목한 기존의 해석과 달리 근본주의는 종말론적 신학과 관련된 당시 보편적 믿음이었으며, 따라서 지적 정통성을 지닌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조지 마스덴 (George Marsden): 이러한 수정주의 해석은 1980년 출판한 {근본주의와 미국의 문화: 20세기 복음주의의 형성, 1870-1925} (Fundamentalism and American Culture: The shaping of Twentieth-Century Evangelicalism: 1870-1925)에서 집대성된다. 마스덴은 근본주의 운동의 지적 이념적 기반을 분석함으로써 산딘과 함께 근본주의는 지적인 내용이 결여된 공허한 운동이라는 자유주의자들의 전제를 비판하며, 근본주의 운동의 해석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들 수정주의자들은 스코프스 논쟁을 자유주의적 언론이 창출한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으로 해석한다. 자유적인 경향의 언론이 반진화론 운동의 지적신뢰성에 손상을 가하기는 했으나, 이 운동의 운명에 즉각적인 그리고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스코프스 재판이후 반진화론운동은 곧장 몰락의 길로 접어들지 않는다. 재판이 끝난 2년 후인 1927년에 모두 13개 주에서 반진화론 법이 상정됨으로써 반진화론 운동은 오히려 그 정점에 도달한다. 사인은 불분명하지만 (대식가인 브라이언이 급체로 인해 사망했다는 설이 유력) 브라이언이 재판의 충격으로 고뇌 속에서 죽었다는 해석 역시 사실과 다르며 실제 낮잠을 자던 중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다. 수정주의자들은 브라이언의 죽음이 반진화론 운동의 쇠퇴원인으로 작용했다는 해석도 반박하며, 브라이언의 죽음은 근본주의자 들에게 순교로 받아들여졌으며, 오히려 잠깐이나마 반진화론운동을 가열시킨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자유적인 경향의 언론에 의해 반진화론운동이 타격을 받기는 했지만, 이 운동의 사멸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스코프스 재판이후 30년 동안의 소강상태 동안 진화론이 미국 생물교과서에서 모두 사라지는 다시 말해 반진화론 운동의 목적이 궁극적으로는 이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교과서 출판업자들이 진화론을 생물교과서에 그대로 둘 경우 각 주의 교과서 채택위원회에서 이를 문제 삼을 소지가 있고, 이는 교과서 판매부수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진화론을 기피했기 때문이다. 또한 반진화론적 근본주의는 이의 임박한 종말을 예언했던 자유주의적 해석과는 달리, 60년대 새로운 활력을 지니고 부활하여 80년대에는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까지 부상하게 된다.

 

2) 아칸소 법정 논쟁 (1981)

20년대 근본주의자들의 반진화론 운동은 60년대 창조론 운동으로 부활한다. 이들 운동의 가장 큰 전략적 차이는 전자가 교과서에서 진화론의 제거를 요구했다면, 후자는 창조론의 삽입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냉전체제 하에서 발생한 구 소련의 스퓨트닉 인공위성의 발사성공은 미국에 안보위기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고, 이는 대대적인 과학교육개혁작업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생물학 분야에서도 60년대초 진화론이 생물학 교과서에 복귀한다. 복귀하게된 진화론을 제거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인식하게 된 창조론자들은 기왕에 그렇다면 진화론과 함께 창조과학을 교과서에 포함시켜 기원에 대한 교육의 형평을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게 된다.

이에는 한 가지 문제가 따랐는데, 미국 헌법에 의하면 국가공공 기관인 공립학교에서 종교를 가르치는 행위는 위헌사항으로 규정되어있다. 창조과학이 종교라면 헌법에 의해 이를 공립학교 교과서에 포함시킬 수 없게 된 상황인데, 이를 우회하기 위해 고안해낸 전략이 과학적 창조론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적 창조론 (혹은 창조과학) 이라는 용어 자체가 70년대 중반 만들어졌는데, 창조론을 '성서적 창조론'과 '과학적 창조론' 둘로 나누어 종교인 전자는 배제하고, 과학인 후자만 선택적으로 생물 교과서 삽입을 요구한다는 전략이었다. 이와 아울러 두 모델접근법이라는 전략을 개발하여, 진화와 창조를 생명체의 기원을 설명하는 두 개의 모델이라고 제안하며, 기원의 문제는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양자택일의 문제라고 규정한다.

새로운 전략에 바탕하여 70년대 말 창조론자들은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1시간 가르치면 마찬가지로 창조과학도 1시간 의무적으로 가르칠 것을 요구하는 소위 '동등시간법' (Equal-Time Law) 을 고안하고, 미국 전역에 걸쳐 이 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게 된다. 그 결과 1981년 아칸소와 루이지애나 주 의회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성공한다.

동등시간법이 통과되자마자 미국시민자유연맹 (ACLU) 이 나서서 이 법의 위헌성을 제소한다.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닌 종교이며, 따라서 국가공공기관인 공립학교에서 이를 가르치도록 규정한 동등시간법은 위헌이라는 것이 제소의 요지이다. 따라서 창조과학의 과학성이 재판의 핵심문제로 떠올랐다. 아칸소주에서만 정식 재판이 열렸는데, 하일라이트는 창조 진화 양측이 동원한 전문가들의 일주일에 걸친 증언이었다. 양측에서 모두 자기 측을 대표하는 최고의 과학자, 신학자, 교육전문가들을 동원하였는데, 가장 관심을 끌었던 사람은 진화론 측의 생물철학자 마이클 루스(Michael Ruse) 였다. 오늘날 대표적 생물철학자중 한사람인 Ruse는 증언에서 창조과학이 과학이 아님을 입증하는 다섯 가지 과학의 요건을 제시하였다.


1. 과학은 맹목적이고 변치 않는 자연의 규칙성에 (자연법칙)에 기초해야만 한다.

2. 과학은 자연법칙에 의해 설명가능 해야한다.

3. 과학은 경험적 실재에 비추어 검증 가능(testable)해야 한다.

4. 과학은 반증 가능(falsifiable)해야 한다.

5. 과학은 잠정적(tentative)이어야 한다.     


재판을 주재했던 오버 (William Overton) 판사는 루스의 증언을 받아들여, 창조과학은 초자연적 설명에 바탕하고 또한 근본적으로 독단적인 믿음에 근거하므로 과학이 아니라고 판정을 내린다. 동등시간법은 결국 위헌판정을 받게된 것이다. 이어 1986 년 루이지애나주에서도 이와 동일한 판결이 내려진다.

창조과학의 과학성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보다 더 치열한 논쟁이 재판 후 발생했다. 재판이 끝난 후 얼마 되지 않아 몇몇 중진 과학철학자들이 루스가 너무한 것 아니냐며 반론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래리 라우든(Larry Laudan), 필립 퀸(Philip Quinn) 등이 그들인데, 이들은 모두 창조과학에 반대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루스가 전문 철학자로서의 윤리에 충실치 못하고 이중 잣대를 적용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했다. 전통적으로 과학철학자들 간에 과학을 비과학으로부터 구분하는 문제(demarcation problem)는 수세기를 끌어온 난제였는데, 이는 논리실증주의의 붕괴이후 해결할 수 없는 문제, 혹은 가짜 문 (pseudo-problem)로 간주되어왔다. 과학철학계가 이렇게 포기한 상황에서 Rus 가 대담하게 다섯 가지 범주를 제시한 것이었다.

라우든이 먼저 포문을 열고 나섰다. 라우든은 법정 판결이 내려졌던 1982 년 Science, Technology, & Human Values 가을호에 게재한 글에서 '창조과학'이 시험불가능, 독단성(비잠정적), 반증불가능 등의 이유로 창조과학을 비과학이라고 한다면 이는 잘못된 결론이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창조과학은 시험, 반증가능한 경험적 주장을 실제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구연령이 6,000-20,000년이라는 주장이나, 지구 초기역사에서 발생했던 대홍수가 현재의 대부분의 지질현상들을 결과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경험적으로 확인가능하며, 또한 실제 확인 절차를 밟았으며, 그 결과 틀린 것으로 판명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과학'을 반박하는 정공법은 창조론이 포함하는 경험적 주장들을 반박하는 것이지, '창조과학'이 그러한 주장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고 가장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라우든은 주장한다. 만일 '창조과학'의 핵심주장들 - 예를 들어 인간은 하등동물로부터 진화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였음, 노아 홍수는 역사적으로 실재한 사건임 - 이 변경 불가능한 독단이라면 마찬가지로 과학의 역사에 등장하는 여러 핵심이론들 역시 가변적인 보조가설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쉽게 포기되지 않는 독단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라우든은 루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범주 역시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비판한다. 어떤 현상이 자연법칙에 의해 설명될 때만이 비로소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과학사상에 등장하는 여러 중요한 자연현상에 대한 주장 역시 비과학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갈릴레오와 뉴튼은 중력현상에 대한 인과론적 설명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중력의 실재를 가정했으며, 다윈은 멘델에 의해 유전현상이 설명되기 전에 자연선택 이론에서 이미 그 존재를 가정했다. 노아 홍수의 실재가 자연법칙에 의해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비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면, 같은 논리로 중력이나 유전현상을 가정한 뉴튼이나 다윈 역시 비과학적이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 정리하면 문제의 핵심은 다분히 논쟁의 소지가 있는 과학의 범주를 '창조과학'이 만족하느냐 여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가지고 있는 증거가 진화론과 '창조과학' 어느 쪽에 보다 강력한 논거를 제공해주는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다고 라우든은 결론짓는다.

과학철학자들 간에 5 년여를 끌었던 이 논쟁은 필립 퀸의 제안에 의해 적당한 선에서 절충되는 것으로 끝난다. 퀸은 상아탑 속의 학자가 비 이상적인 세상 법정으로 나가서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해야만 할 때는 세상적 필요와 학문적 이상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여 손을 더럽힐 수밖에 없고, 다시 상아탑으로 돌아올 때는 손을 씻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때 타협의 역할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가끔씩만 수행함으로써, 한 개인의 전문가적 양심이 타락으로까지 가는 것을 방지하는 한도 내에서 이러한 타협은 현실적으로 용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논쟁에서 창조론에 반대하는 과학철학자들의 사회적 가치와 그들의 전문가적 양심 사이의 갈등이 절충되는 과정은 결국 과학 비과학 구별문제가 인식론적 문제인 동시에 다분히 사회 정치적 문제라는 것을 시사한다. 창조-진화 논쟁은 과학적이고 인식론적인 주제인 동시에, 이 논쟁에 참여한 당사자들이 가진 가치관의 갈등을 감안하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에서의 창조-진화논쟁이 전통적 프로테스탄트 가치와 새로운 다원주의적 가치 체계간의 갈등인 문화전쟁의 큰 틀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3) 지적설계운동 (1990 -  )

동등시간법이 1981 년 아칸소주와 1986 년 루이지애나주에서 패소한 사건은 몇 가지 중요한 결과를 초래했다.   

첫째, 법률제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벽에 부딪치게 된다. 그 결과 전국적인 동등시간법 캠페인을 주도했던 젊은지구창조론은 교육현장에서의 개별적 문제해결이라는 풀뿌리 운동으로 전략을 수정한다.

둘째, 지구연령문제가 표면으로 부상한다. 아칸소주와 루이지애나주에서의 동등시간법 통과는 진화론자들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동안 창조론운동을 무시해왔던 진화론 진영은 이 사건을 계기로 조직적인 반창조론운동을 펼쳐가기 시작한다. 이들은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지구연령문제를 창조과학의 아킬레스건으로 규정하고 이를 집요하게 공격하였다. 이러한 공격과 두 번의 법정패소는 복음주의 교회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특히 지구연령문제를 과도한 지적부담으로 여기면서, 오랜지구창조론의 목소리가 복음주의 교회 내에서 커지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지구연령문제를 중심으로 창조-진화 논쟁은 분열적인 이슈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셋째, 지적설계운동의 등장이다. 지구연령문제를 비롯해 창세기 1-2장의 구체적 해석을 둘러싼 서로 다른 시각들은 복음주의 교회의 결속을 심각하게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열상을 수습하기 위한 반성적인 움직임이 1980년 말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인물로 버클리 캘리포니어 주립대의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창조-진화 논쟁이 처한 상황을 분석하고 그 해결책으로 전략적 선회를 제안한다. 기존의 논쟁구도가 창조 대 진화 이었다면, 이제 초점을 옮겨 유신론 대 자연주의적 무신론의 대치구도로 이행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선회는 지적설계운동이라는 형태로 가시화 된다.

제한된 지면상 지적설계운동의 구체적 내용을 설명하기는 힘들고, 여기서는 몇 가지 중요한 전략적 의미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기로 한다. 무엇보다 유신론 대 자연주의적 무신론이라는 보다 큰 구도로 판을 다시 짤 경우, 창조-진화론 논쟁에서 보였던 보수 교단간의 미묘한 입장차이로 인한 갈등이 무마되며, 공통된 외부의 적에 대항하여 단결 할 수 있다는 잇점이 있다. 둘째, 기존의 창조과학 운동이 대중운동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어 오면서 보수 기독교 인구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성공을 거둔 반면, 지식인 사회로부터는 냉대 당하며 보수 기독교에 반지성적 이미지를 안겨준 한계를 지적한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지적설계운동은 지식인 사회, 특히 대학사회에서 기독교 유신론의 입지를 확보하는데 주된 목표를 두게된다. 셋째, 오늘날 세속학문의 절대적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자연주의의 폐해에 대한 인식이다. 자연주의의 한계를 조직적으로 비판하여 숨통을 트지 않는 이상 학문의 주 생산지인 일반 대학에서 진지한 유신론적 논의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창조-진화 논쟁에서 자연주의는 부수적인 이슈였으나, 지적설계운동에서는 자연주의의 한계 비판과 유신론의 과학적, 학문적 가능성에 대한 모색이 핵심적 이슈로 떠오른다. 진화론은 이들 이슈를 논의하는 대표적 사례로 사용된다.

아직 성장 단계에 있는 지적설계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평가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으나, 기원에 관한 논쟁의 맥락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 한가지만 지적하기로 한다. 지적설계운동이 기원문제에 관한 담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이다. 1920 년대 반진화론운동은 스코프스 논쟁을 거쳐가며 1930년대 들어서는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다. 창조론 운동 역시 80 년대 두 차례에 걸친 법정논쟁을 거쳐가며 한계를 노출하기 시작하고 활력을 잃는 듯 했으나, 90년대 등장한 지적설계운동으로 기원문제에 관한 논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 결과 지난 10년 미국에서의 기원문제에 대한 논의는 전혀 그 열기가 식지 않았으며, 오히려 기원문제를 지식사회 내에서 담론화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기원문제에 관련해서 복음주의 사회의 지적신뢰성을 구축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결론

한국의 창조론 운동은 이상과 같은 미국의 경험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체계적으로 답하기 위해서는 지난 20년 동안의 한국 창조론 운동사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창조론 운동사에 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유일한 예외가 한국창조과학회에서 오랫동안 간사로 일했던 조덕영 목사가 신학석사학위 논문으로 한국 창조론 운동을 내부자의 시각에서 정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상세한 비교연구는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 놓을 수밖에 없고,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한계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교훈을 미국의 경험에서 유추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전반적으로 볼 때 창조과학회의 자체적인 독창적 연구가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조덕영 목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의 창조론 운동은 신학적인 뒷받침이 빈약한 상태에서 과학 기술시대에 나타난 과학자들에 대한 대중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창조론이 전파되어온 감이 없지 않았다. 또한 번역물에 의존하고 자체적인 연구에 등한하다보니 신학과 과학 양쪽에 있어 창조론 운동이 침체기에 들어간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국내 창조과학 운동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대중운동으로서의 창조론이 성공하게된 핵심 요인을 과학자에 대한 대중의 전폭적인 신뢰에서 발견할 수 있다면, 이제는 이러한 신뢰의 원천인 과학적 전문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원에 관한 논쟁에 있어서 입장은 다를지라도 학문적 엄밀성만큼은 반대자들도 수긍할 정도의 전문성을 확보하지 않고는 앞으로 전문지식인은 물론이고 일반대중의 신뢰 역시 점점 기대하기가 힘들어 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미국의 경우 젊은지구창조론은 외부적으로는 자연주의적 진화론, 그리고 기독교 내부적으로는 오랜지구창조론과 유신론적 진화론과의 경쟁가운데서 보다 확고한 논의를 개발하는데 치열한 노력을 경주해 왔다. 젊은지구창조론의 대표적 이론가들인 폴 넬슨과 존 레널즈는 젊은지구창조론이 지난 20 년 동안 꾸준하게 '엄밀성과 정교함'을 더해왔다고 주장하며 '국제창조학회'(4년에 한번씩 개최)에서 발표된 최근 논문들을 그 증거로 든다. 나아가 미국의 젊은지구창조론은 "몇몇 자체 주장들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시인하는 학문적 책임감"과 심지어 "자기 비판적이기까지"한 열린 태도를 보인다고 넬슨은 지적하며, 이를 오랜지구창조론과 유신론적 진화론에 비해 상대적 강점으로 꼽았다. 넬슨의 분석에 따르면 자유로운 경쟁과 학문적 책임감, 그리고 비판적 태도가 최근 젊은지구창조론의 '엄밀성과 정교함'을 가능하게 한 요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상황에 비해 기원문제에 대한 한국의 논의는 상당히 제한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미국에서도 창조-진화 논쟁을 이끌었던 주류는 젊은 지구창조론이지만, 오랜지구창조론과 나아가 유신론적 진화론도 활발하게 논의에 참여했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들 간에 갈등도 발생했고 나아가 분열의 소지도 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원에 관한 논의의 폭과 깊이를 더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비판과 선의의 경쟁은 건강한 논의를 위해서는 필요 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이는 창조과학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한국창조과학회의 현 시점에서 새겨볼 점이라고 생각한다. 엄밀한 논의의 생산은 내부적으로 외부적으로 열린 토론과 건강한 비판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의 논의는 창조-진화를 넘어서 학문과 사상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무신론적 자연주의에 대한 전략적 대응으로 흐르고 있다. 지난 20년간 갈등과 분열도 있기는 하였으나, 기원에 관한 미국의 논쟁은 그 폭과 깊이에 있어 상당한 진전을 보여주었다. 이에 비해 국내의 현황은 20 년전 도입 당시의 젊은지구창조론에 멈추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한국은 미국과 호주에 이어 창조론 논의가 가장 활발한 나라이다. 이제 기원문제에 관한 국내의 논의도 한 단계 도약할 시점이라고 본다. 한국창조과학회 창립 20주년은 이러한 도전적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3/e31/2001_125_5.htm

출처 - 창조지, 제 125호 [2001. 5~8]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18

참고 : 2067|3677|4010|3051|2148|2061|729|3054|3056

이재만
2004-06-14

고생물학자와 대화


      창조과학 사역 초기에 7월 아는 분의 소개로 화석을 공부하는 한 고생물학자와 전화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고생물학은 화석을 연구하는 지질학의 한 분야로 전반적으로 진화론에 근거를 두고 발전하여 왔으며, 많은 분야에 진화론이 사실인 것으로 인식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여왔다. 대화를 시작할 무렵에는 자신은 크리스천이며, 진화론은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대화 가운데 스스로 진화론이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도, 진화론에 벗어나지 못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분은 “왜 성경이 꼭 맞아야 하느냐?”고 하면서 “성경은 믿는 것이지 과학으로 접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필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기도 하였는데 그 중 “성경이 맞다면 왜 사람 화석과 공룡 화석이 함께 발견되는 화석이 발견되지 않느냐?” 등 이었다(물론 이 질문을 하는 자체가 진화의 산물인 지질시대가 사실로 자신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질문 자체에 성경이란 말을 포함 하였기에 성경적인 상황 증거를 대려 하자 “성경은 언급하지 말고 대답하라”고 하였다. 성경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성경을 갖고 설명하려 하는 것도 못하게 하였다. 그러면서 “성경은 믿는 것이지 증거를 대는 것이 아니다”라고 계속해서 주장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화가 진전될 것 같지 않기에, 일단 그 분의 학위 논문을 이야기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역시 진화론에 근거하여 연구된 것들이었다.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던지자, 예를 들면 “연구하신 상어화석이 신생대인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등과 같은 것들이었다. 왜냐하면 진화론자들은 자신의 사고의 틀에 매어 상어화석이 나오는 층을 신생대로 정하기로 약속한 것이지, 실제로 상어화석 스스로 어느 시대인지는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이분은 “왜 그런 질문들을 하느냐?” “그런 것들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들이 아느냐?” 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필자의 질문들이 그 동안 이 분이 옳다는 “전제”로 두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들을 건드렸던 것이다. 한 90여 분의 대화가 오갔다. 성경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하기에 그 동안은 성경에 관한 언급을 피하였다.

긴 시간 동안의 전화통화 후에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느꼈을 때, 필자가 하나의 부탁을 하였다. 성경이 사실이라고 연구하는 지질학자들의 의견을 몇 분간 설명해도 되겠냐고 하였다. 그리고는 설명하였다.

먼저 화석 가운데 중간단계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야기 했다. (물론 이 분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화론을 믿는 지질학자들이 만들어왔던 지질시대표를 순서적으로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은 지구상 어떤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물론 이 분은 이 사실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화석이 만들어지는 것은 생물이 죽은 다음 “시간”이 지나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했다. (물론 이 내용도 잘 알고 있었다). 계속해서 수십 억년 하는 방사성 동위원소법의 문제점도 이야기 했다. (이 점에 대하여도 어떠한 반론을 피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분은 자신이 갖고 있는 진화론적 사고를 버리고자 하지 않았다.

필자는 결국 마지막 한 가지를 추가했다. 하나님이 생물을 만들기 전인 창세기 셋째 날 만들어졌으므로 화석을 포함하지 않는 층(노아홍수 이전의 층)과, 엄청난 물과 격변 때문에 (진화의 연속성 없이) 갑자기 화석들이 출현하는 홍수 동안에 만들어진 층들과, 홍수 후에 지층이 안정화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홍수 후 층들에 대하여 성경적 지질학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하였다.

물론 이러한 접근을 이 분은 이전에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음에 당연하였다. 그렇지만 이분은 성경이 사실이라고 보고 접근한 성경적 지질층서의 분류가 진화론에 근거한 것 보다 훨씬 명확하다는 것을 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얼마간의 침묵이 흘렀다. 이 박사님의 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학문을 버리겠다”고 말하였다. 어쨌든 이 분 역시 처음으로 진화론의 우산에서 벗어나서 “사실”에 근거한 지질학을 처음 대하였던 것이다.

그렇다. 성경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적인 답변을 할 때 가장 설득력 있는 답변을 찾을 수 있다. 이제까지 지구의 역사에 관한 연구를 성경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하지않았을 뿐이지, 성경에서부터 시작할 때 가장 쉽고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지식의 근본(The beginning of knowledge)은 여호와를 경외함이니 (잠언 1:7)” 여호와에 대한 언급은 성경을 제외하고 찾아볼 수 없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하나님께서 전해준 성경에서부터 시작할 때 분명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51

참고 :

한국창조과학회
2004-05-11

20세기를 마감하면서 - 창조론과 진화론 논쟁을 중심으로


      타락 이후 사람들은 그 마음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섬기고 하나님이 있어야 할 위치에 자신들을 올려 놓았다. 성경이 명백히 증거하고 있는 바 이 우주와 생명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에도, 태초에 물질만이 있었으며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연이란 과정을 통해 이 물질이 스스로 조직화되고 변화되어 지금의 정교한 우주가 되었다는 진화론을 주장하고 있다. 과학의 발달로 인해 진화론은 점점 교묘한 양상을 띠게 되었으며 이제는 일반인은 이해하기도 힘든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진화는 사실이 아니고, 이 우주는 절대자의 지혜와 의도에 의해 창조되었고, 지금도 그분의 손길 아래 유지되고 있다는 창조론을 믿는 과학자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런 현상은 몇몇 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유능한 과학자들이며 일생을 진화론 교육만 받아 왔던 사람들이다. 사물을 보는 건전하고 과학적인 눈이 있으며,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인재들이다. 과연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진화론에서 창조론으로 전향하게 하였는가? 그들이 창조론을 믿음으로써 모두 과학을 포기하였는가? 그렇지 않다. 이들은 현재 우리가 지니고 있는 과학적인 방법론과 도구들을 이용하여 면밀히 검토하더라도 오히려 창조론이 더 합리적이고 더 과학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사람들이다.

창조과학 운동은 이제 소수 몇몇 과학자들만의 운동이 아니다. 이 운동은 이제 기독교인들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관심을 갖고 호응하게 되었으며, 최근 미국의 캔자스주의 결정과도 같이 교육계도 수용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더불어 창조론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창조론-진화론의 논쟁은 과학의 논쟁 이전에 세계관의 차이, 패러다임의 충돌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며 20 세기를 마감하는 이 때에, 인류역사에 나타난 창조론과 진화론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현재 서 있는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며, 앞으로 나갈 길을 정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1.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와 생명의 자연발생설

생명의 기원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자연철학자로서 그는 부식토나 썩은 고기에서 작은 생물이 번식한다는 관찰에서 생물은 부모없이 무생물로부터 저절로 생겨난다는 자연발생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엄밀한 실험을 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생각은 17세기까지 지배적인 생명의 기원에 대한 이론이었다.


2. 케플러, 뉴턴, 패러데이, 켈빈, 파스퇴르 등 (17~19세기)

역사상 위대한 과학자들 중엔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창조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많았다. 행성의 운동법칙을 발견한 케플러는 우주에는 창조주가 부여하신 질서와 조화가 있다는 믿음을 가졌으며,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역학, 광학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뉴턴은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나는 넓은 바닷가에서 예쁜 조개껍질 몇 개를 줍고 기뻐하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하였다. 뉴튼은 성경이 문자적으로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성경의 연대기와 예언서에 관한 책을 쓰기도 하였다. 전자기 법칙을 발견한 패러데이, 지금도 절대온도 단위에 그 이름이 남아 있는 켈빈경, 발효와 세균학분야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파스퇴르 등 과학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과학자들 중에는 진화를 부정하고 창조를 받아들인 사람이 많았다.  


3. 허튼(1726-1797)과 라이엘(1779-1875)의 동일과정설

근대 지질학의 원조로 알려진 제임스 허튼은 1785년 지구에 관한 이론을 발표하여, 지구의 표면은 침식, 퇴적되고 습곡을 통해 새로운 지형을 이루며 다시 침식, 퇴적의 과정이 반복되는 순환하는 지구를 가정하였다. 라이엘은 이러한 '현재는 과거의 열쇠이다' 라는 생각을 더욱 발전시켜, 오늘날과 같은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이라는 이론을 만들어 냈다. 이 이론에 의하면 과거에도 지금과 똑같은 과정이 일어났으므로, 현재 일어나는 지질작용을 관찰하면 과거의 일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지층, 계곡, 산 등은 무한히 오랜 시간동안의 침식, 퇴적운동의 결과이며, 지구가 아주 오래되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라이엘이 쓴 지질학 원론은 다윈의 진화론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라이엘 이전에는 과거에는 지금과 다른 대격변이 있었다는 퀴비에(Cuvier, 1769-1832)의 격변설(catastrophism)이 주로 받아들여졌다. 최근에는 다시 격변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4. 다윈(1809-1882)의 종의 기원

다윈 이전에는 종은 변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굳게 자리잡고 있었다. 스웨덴의 린네(Linnaeus, 1701-1778)는 다양한 생물의 세계에 분류를 통해 질서를 부여하고자 하였다. 그는 지금도 쓰이고 있는 7 단계 분류법을 창안하였다. 그러나 다윈은 비이글호를 타고 5 년간의 항해 끝에 얻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구상의 다양한 생물들은 단일 종 혹은 몇몇 종으로부터 진화하였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1859 년 그의 저서 '종의 기원'을 통해 다윈은 1) 종은 불변이 아니며 새로운 종이 나타날 수 있고, 2) 진화라는 과정을 통해 모든 혹은 거의 모든 생명의 다양성을 설명할 수 있으며, 3) 이러한 과정은 자연선택 혹은 적자생존에 의해 인도된다는 가정을 하였다. 다윈식의 진화론은 그 후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고 더욱 공교히 되어 현대종합이론에까지 이르게 되어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 버렸으나, 그 기본적인 개념, 즉 종간의 진화가 가능하다는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진화론은 생물학 분야뿐 아니라 다른 학문분야, 우리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쳐 현대를 풍미하고 있는 주요 패러다임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5. 멘델(1822-1884)의 유전법칙 

비록 다윈이 여러 가지 증거를 들어 진화를 설명하려 했으나, 수많은 문제에 부딪혔다. 그중의 하나가 유전법칙인데, 오스트리아 부린의 수도원장이었던 멘델에 의해 1865 년 발표되었다. 멘델은 부모의 형질이 어떻게 자손에게 유전되는지를 정량적으로 밝혔는데, 이 이론에 의하면 부모에게 없는 형질은 절대로 자손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이론은 한 종으로부터 다른 종이 진화될 수 있다는 다윈의 진화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멘델의 유전법칙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는 당시 많은 학자들이 이미 다윈의 진화론을 신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6. 파스퇴르(1822-1895)와 생물속생설 

희랍시대로부터 믿어져 내려온 생명의 자연발생설은 17세기 후반에 들어, 생물은 생물에 의해서만 생긴다는 생물속생설이 제기되면서, 200년 동안 논쟁이 벌어졌다. 프랑스의 위대한 과학자였던 파스퇴르는 백조목실험이라는 유명한 실험을 통해 생물속생설을 결정적으로 증명하였다. 이 실험에서 파스퇴르는 S자 모양의 목이 긴 플라스크를 이용해 공기는 통하지만 미생물의 감염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든 뒤 플라스크내의 멸균된 고기즙을 조사한 결과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미생물이 생기지 않는 것을 발견하였다. S자 모양의 관을 사용하지 않으면 곧 공기중의 미생물에 의해 고기즙은 감염된다.  


7. 오파린(1894-1980)의 가설과 밀러(1930-)의 실험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인 후 무생명체와 생명체를 연결해 주는 고리가 필요하였는데, 소련의 생화학자 오파린은 화학진화가설을 발표하였다. 이 가설에 의하면 최초의 지구의 대기는 수소, 암모니아, 메탄, 수증기 등 환원성이었는데, 태양으로부터 빛을 받거나 번개 등에 의해 방전되어 아미노산을 비롯한 여러 유기물들을 만들고, 이것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 교질상태가 되었다가, 단백질 등의 콜로이드 입자가 결합된 코아세르베이트라는 작은 알맹이 형태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 코아세르베이트 내에서 효소가 형성되고, 유기물이 분해되어 에너지를 얻고 점점 성장하여, 최초의 생명체가 생겨났을 것이라고 오파린은 가정하였다. 환원성 대기로부터 아미노산이 합성되었다는 오파린의 가설은 1953년 시카고대학의 유레이와 밀러의 실험에 의해 확인되었고, 마치 오파린의 주장이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초의 대기가 환원성이었다는 증거가 없고, 생성된 아미노산이 생명체가 필요하는 L-형이 아닌 D-형과 L-형이 동일한 양으로 함유되어 있는 혼합물이라는 사실은 화학진화의 가설을 부정하고 있다.  


8. 인류의 조상을 찾아서 - 조작된 증거들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된 후 사람들의 초점은 역시 인류의 조상이었다. 사람도 진화의 산물이라면 인류의 조상을 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많은 사람들이 유인원의 뼈를 찾는데 일생을 바쳤다. 그러나 대부분 불충분한 자료로부터 얻어낸 결론이거나 선입관에 의한 결론이었다. 심지어 자료를 조작하거나 변형시킨 경우도 있었다. 1892 년 듀보아는 자바에서 두개골, 치아, 대퇴골을 수집하고, 이것이 50 만년 전의 직립원인이었다고 주장했으나, 나중에 자바인은 원숭이라고 고백하였다. 1922 년 도오손 등이 영국의 필트다운 근처에서 발견한 턱뼈와 두개골은 이들이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원숭이의 턱뼈를 줄로 연마하고 긁은 것임이 밝혀졌다. 한편 해럴드 쿡은 네브라스카 강바닥에서 멧돼지의 치아 하나를 발견하고, 이것이 원인에 속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1959년 리키 부부가 동부 아프리카에서 발견한 두개골은 원숭이의 두개골로 판명되었으며, 1907 년 독일 마우어에서 발견된 턱뼈는 25 만년 전에 살았던 하이델베르크인이라고 하였으나, 치아로 보건대 이는 완전한 사람의 치아임이 확인되었다. 이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조상을 발견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인류의 진화를 믿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나온 편견일 따름이다. 


9. 지구의 연대 논쟁

창조론과 진화론의 핵심에는 지구의 연대에 관한 논쟁이 있다. 진화는 매우 천천히 일어나는 과정이므로 진화론자들에게는 필연적으로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창조론에서는 상당히 젊은 지구를 가정한다. 중세의 대학자이며 캔터베리 주교였던 어셔(Ussher)는 1650년 오랜 연구 끝에 지구는 BC 4004년에 창조되었다고 계산하였다. 본격적으로 과학적인 방법으로 지구의 연대를 계산한 사람은 켈빈경이었다. 그는 정교한 수학을 바탕으로 몇 번의 계산끝에 지구는 약 1억 년 정도 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 값은 현 창조과학적 입장에서 볼 때 매우 긴 연도지만 다윈의 진화론을 만족시키기에는 매우 짧은 연도였다. 이렇게 시작된 지구의 연대논쟁은 러더포드에 의해 방사성 동위원소에 의한 연대측정이 개발되면서 일단락되었다. 현재 진화론자들은 약 45억년 정도로 지구의 나이를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지구의 나이가 젊다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일례로서 지구의 자기장의 세기변화가 있다. 자기장의 세기는 계속 감소하는데, 감소속도로부터 자기장의 세기가 너무 강해 생명체가 살 수 없을 때까지의 연도를 계산하면 대략 1만 년 내외의 연도를 얻는다.  


10. 원숭이 재판과 진화론의 확산 

1925년 미국 테네시주의 데이튼이란 조그만 도시에서 세기적인 재판이 열렸다. 흔히 원숭이 재판으로 불리는 이 재판은, 피고인 스코프스라는 청년이 주헌법이 금하고 있는 진화론 교육을 공공연히 한데서 비롯되었다. 보조 생물교사였던 존 스코프스라는 청년이 당시의 몇몇 인물들과 모의하고 창조론 대신 진화론을 가르쳤다. 이 사실은 곧 교장에게 보고되었고 헌법을 위반한 죄로 고소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전 미국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재판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더 집중시킨 것은 검사와 변호사 모두 자원하고 나섰는데, 검사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서 세 번이나 경선에 나선 윌리암 제닝스 브라이언이었고, 변호사는 당시 명성을 날리고 있었던 클레런스 대로우였다. 그러나 결과는 브라이언의 참패로 끝났다. 이 사건으로 진화론은 더욱 위세를 떨치게 되었으며, 미 전역에 진화론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1981년 루이지애나주 입법자들은 공립학교에서 '진화 과학(evolution-science)' 을 가르칠 때는 '창조 과학(creation-science)' 도 동등하게 가르쳐져야 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법안은 연방판사가 종교를 세우려는 시도이므로 비헌법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시행되지 못하였다. 1987년 연방대법원은 루이지애나의 법안은 비헌법적이다 라고 7 : 2로 다시금 확인시켰다. 윌리엄 브레난 판사는 그 법안의 목적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인간을 창조했다는 종교적 관점을 고양하는 것이므로 비헌법적이라고 했으나, 반대의견을 낸 안토닌 스칼리아 판사는 "기독교인을 포함하여 루리지애나 사람들은 누구나 진화에 반대되는 과학적인 증거는 무엇을 막론하고 들을 자격이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창조론 교육이 금지되고 기도가 금지된 후 청소년들의 범죄율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통계는 얼마나 창조론 교육이 중요한지를 말해 준다. 현재 대부분의 주에서 창조론 교육이 금지되고 있지만, 학부형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다수가 창조론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11. 세인트 헬렌산 폭발과 지층의 형성 

1980년 5월 18일 미국 시애틀 남쪽의 캐스캐이드 산맥에 있는 세인트 헬렌 화산이 폭발을 일으키면서 주위에 지질학적 증거들을 남기게 되었다. 히로시마 원자탄의 수만배에 달하는 위력의 이 폭발은 엄청난 양의 화산분출물을 배출하였으며, 단 몇일만에 북쪽 평원에 지층을 형성하였다. 또한 화산활동으로 터져나온 엄청난 양의 흙더미가 화산 북쪽에 위치한 큰 강을 막아버렸고, 호수같이 변해버린 강에는 계속적으로 물이 차다가 결국 둑을 터뜨리고 홍수가 나면서 주변을 침식시켜 리틀 그랜드캐년(Little Grand Canyon)이라는 협곡을 형성하였다. 동일과정설에 의하면 수십, 수백만년이 걸려야 형성될 지질학적 과정들이 단 몇일 내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격변론을 증거하는 것으로서 부정합, 다지층 규화목 등을 포함한 여러 지질학의 난제들이 풀리게 되었다.  


12. 창세기 대홍수와 미국의 창조연구소의 설립 

현대 창조론의 시작은 1961년 헨리 모리스와 존 윗컴의 저서 '창세기 대홍수' 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9년 종의 기원 출판 100주년 기념행사가 시카고에서 대대적으로 열렸는데, 참가한 많은 과학자들은 이제 창조론은 사라지게 되었으며, 진화론만이 명백한 사실로 입증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창세기 대홍수'의 출판은 미약했던 창조과학 운동 부흥시키는 촉발제가 되었으며, 1963 년 창조연구회(Creation Research Society)를 설립하였으며, 1972 년 창조연구소(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를 설립하여 전세계의 창조과학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이 연구소에 창조과학 연구뿐 아니라, 석사과정의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으며, 해마다 전미국을 순회하며 '창세기로 돌아가자(Back to Genesis)' 강연을 하고 있다. 창조과학 박물관의 운영과 수많은 저술을 통해 창조과학의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13. 한국창조과학회 설립 

1980 년 복음화 대성회때 미국의 창조연구소의 과학자들을 초청하여 창조과학 세미나를 개최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81년 1월 31일 창립하게 되었다. 초대회장으로 김영길 박사(현 한동대 총장)가 임명되였으며, 현재 전국의 각 지역에 지부는 물론 미국 및 일본에도 지부를 두고 천 여명의 회원을 갖는 기독과학자 단체가 되었다. 사역은 주로 저술, 강연, 세미나를 통해 이루어지며, 최근에는 전국적인 창조과학 교사협의회, 청년창조과학자 모임이 결성되어 교육현장에서의 창조론 교육을 도모하고 있다. 또한 창조과학 교육원을 개설하여 기초교육과정 및 강사훈련과정을 통해 창조론 전파와 강사를 발굴하고 있다. 앞으로 창조과학관을 만들어 많은 이들이 직접 창조과학의 내용에 접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으며, 현재 인터넷 창조과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14. 생물교과서 소송사건 

이화여대 이양림 교수와 서울과학고의 이광원 교사(현 서울시 장학관)는 1990년부터 사용될 고등학교 생물교과서의 '생물의진화' 부분을 기존의 진화론과는 다른 입장에서 집필하였으나, 결국 교육부의 검정 불합격 처분을 받았다. 2차 심사까지 통과하였으나, 교육부의 수정지시는 책의 전체 내용을 흐리게 할 수 있고 집필의도와 상반되는 내용을 첨가해야 하므로 저자들은 이에 검정포기사유서를 제출하였다. 이에 교육부는 최종심사 불합격 판정을 내렸으며, 저자들은 탄원서를 제출하였으나, 교육부의 별다른 조치가 없자 교과서검정 불합격처분 무효확인 청구소송을 내게 되었다. 이 소송도 패소하게 되었으나, 창조론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생물교과서 소송사건은 현 교육계를 비롯한 우리 사회 지도층의 지적 수준을 나타낸 것으로서, 진화론의 영향이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15. 미국 캔자스주 교육위원회의 진화론 교육 금지 결정 

지난(1999년) 8월 11일 미국의 캔자스주 교육위원회는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모든 공립학교에서의 진화론 교육을 폐기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실로 획기적인 사건으로서 지난 수십년 동안 진화론은 과학이라는 미명 아래 진화론만 교육했던 미국을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다. 이 결정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사건은 지난 6 월의 컬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사건과 연이은 학생 총기사건이었다. 총기난사로 숨진 학생들의 장례식에 참석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는 "학교가 신앙교육을 금했고 그 결과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가 가장 위험한 곳으로 바뀌었다"고 설교했다. 그후 미 하원에서는 공립학교 및 공공건물에 십계명을 게시할 수 있다는 법안을 큰 표차로 통과시켰다. 진화론의 영향을 미국사회는 이제 인식해 가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창조지, 제 117호 [1999. 11~1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11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

김준
2004-05-11

창조론과 진화론


     성경의 내용과 오늘날의 과학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 가운데는 상충되는 것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현대과학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로서 어떻게 동시에 참된 그리스도인 될 수 있으며, 자연과학의 연구 결과들을 어떻게 신앙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일까 하는 문제는 많은 젊은이들의 고민거리라 하겠다. 그 많은 고민거리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문제가 '창조와 진화' 의 문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를 선포하고있는 반면, 많은 사람들은 과학은 진화를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흔히 '창조냐, 진화냐?' 하는 논쟁이 과학에 의해서 판결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진화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만이 과학적이고 우월하며, 창조론이라는 것은 순전히 비과학적이고 맹목적인 신앙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창조와 진화의 문제에 관한 한 과학과 신앙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전제를 갖고서 과학의 우월성 및 합리성의 주장을 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생명의 기원의 문제에 관한 한 엄밀한 의미에서 무엇을 아느냐에 관한 과학적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무엇이 진리임을 믿느냐에 관한 철학적 혹은 신앙적 영역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또한 성경과 과학이 모두 진리임에 틀림이 없으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성경은 수천년의 신앙의 기본을 이어온 불변의 진리이며, 과학은 그 시대의 지식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현상을 해석한 가변적인 진리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과학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무수히 그 이론이 깨어지고, 변화 및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며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창조론이든 진화론이든, 생명의 기원에 관한 논의는 진정한 의미에서는 과학적인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보편적인 관찰이나 실험적 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사람의 기원에 대한 견해를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믿느냐에 관한 종교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이 비과학적인 부분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진화론을 고수하려고 하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방법론의 적용 여부를 놓고 볼 때, 성경에 계시된 창조 기사는 창조주에 의한 관찰과 경험적 검증이 이루어진 생명 및 우주의 기원에 대한 진술이다. 우리가 대부분의 과학적인 지식을 과학자와 교사들이 전달하는 세상적인 지식을 믿는 것에서 얻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기원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은 만물의 시작을 관찰하고 경험한 인격적인 하나님과 그의 계시를 담고 있는 성경을 믿음으로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결코 불합리한 것이 아니라고 우리 기독교인들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지금 지구상에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이 존재하고 있는데는 태초에 분명히 어떤 원인이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생명체의 기원에 대한 설명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진다. 누군가가 만들었거나(창조설) 아니면 저절로 생겼거나(자연발생설) 둘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생명체는 저절로 생겨 났다는 진화론을 믿을 수 밖에 없음은, 그렇지 않다면 누가 그것을 만들었나하는 질문에 봉착하게 되어질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물학이 시작된 이래 생명체의 자연발생은 결코 관찰된 적이 없다. 아니 확률적으로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수 있다. 오히려 생명체는 생명체가 원인이 되어야만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 생명체를 정의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실험실에서 물질로부터 생명체를 합성하겠다는 실험은 계속 시도되고 있지만, 지금의 과학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만일 먼 훗날 그 실험들이 엄청나게 정교한 실험방법을 사용하여 성공을 거둔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결코 생명체의 자연적 발생에 대한 증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체가 우연히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은 과학적으로 0이기 때문에 만일 생명체가 만들어 졌다면, 그것은 누군가가 세밀하게 간섭하여 이루어 진 것이며, 결국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생명체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얼마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로부터 재미있는 질문을 받았다. "너 아직도 교회 다니고 창조론 믿으면서 대학교에서 생명공학을 연구하냐"는 의미있는 질문을 받았고 나는 "물론이지"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나의 친구는 어떻게 생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진화론을 안 믿을 수 있냐며 "너는 사이비 과학자든지 사이비 기독교인이다"라고 농담을 하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이 이상한 사람이 자기의 친구라고 이야기를 했다. 물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해가 안 가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지 40여년이 되어가고 또한 생물학을 전공으로 시작한지 20여년이 넘었으나 아직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을 의심한 적이 없었고 기독교인으로 과학을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사이비 과학자와 사이비 기독교인 중에 하나를 택하려면 차라리 사이비 과학자를 택하련다.



번역 -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3/e31/e31o22.htm

출처 - 교육원교재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98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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