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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기독교

미디어위원회
2020-12-01

치명적 결함의 진화론적 환초 이론이 여전히 가르쳐지고 있다.

(Darwin’s Flawed Atoll Theory Still Taught)

David F. Coppedge


     산호로 이루어진 반지 모양의 환초가 장구한 세월 동안에 형성되었다는 다윈의 이론은 “치명적 결함”을 갖고 있다고 라이스 대학(Rice University)의 연구자는 말했다.


환초에 대한 다윈의 이론은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Rice University2020. 10. 12). 다윈은 따개비, 비둘기, 생물... 등의 진화뿐만 아니라, 다른 궁금한 것들도 조사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들을 장구한 세월 동안의 점진적인 변화의 축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오늘날 산호로 이루어진 환초(atoll reef)에 대한 다윈의 이론은 이제 “치명적인 결함”을 갖는 것으로, 즉 잘못된 것으로 비판 받고 있다. 그러나 죽었지만 “깊이 뿌리박힌” 다윈의 이론이 학교에서 여전히 가르쳐지고 있다.

해양지질학자이자 해양학자인 안드레 드록슬러(André Droxler)는 환초에 대한 찰스 다윈의 이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40년 넘게 산호초를 연구해온 드록슬러는 다윈의 모델이 교과서, 대학 강의실, 자연과학 박물관, 위키백과 등에서 지속되는 등장하고 있는 이유를 알고 있다.

최근 라이스 대학에서 은퇴한 드록슬러는 "아름답고, 단순하며, 즐거워서 모두가 여전히 그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구과학과 해양과학의 모든 입문서에는 여전히 다윈의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해양과학’ 101페이지에서 산호초나 탄산염에 관해 말하면서, 그 모델이 가르쳐진다.”

하지만 그들은 거짓말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즐거운 거짓말도 거짓말이다.

33년 동안 라이스 대학에서 지구, 환경 및 행성과학 교수였던 드록슬러는 환초의 기원에 관한 유명한 기술을 바로잡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이번 달에 Annual Review of Marine Science 지에 게재된 논문은 드록슬러와 그의 오랜 협력자인 프랑스국립해양개발연구소(French Research Institute for Exploitation of the Sea)의 해양지질학자이자 해양학자인 스테판 조리(Stéphan Jorry)가 공동 집필했다.

찰스 다윈은 비글호 항해 후인 1842년에(‘종의 기원’을 발간하기 17년 전) 그의 이론을 발표했다. 드록슬러는 환초를 지도화 하려는 다윈의 시도에 찬사를 보내고 있었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드록슬러의 설명도 오랜 세월(50만 년)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윈이나 드록슬러 모두 실제로 환초가 형성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해수면의 주기적 변화가 환초 형성을 주도했다"고 드록슬러는 말했다. "1860년대까지 빙하작용에 대한 일반적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다윈은 해수면이 오르내릴 수 있다는 개념이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윈은 그의 "치명적으로 결함이 있는" 가설을 수정할 수 있는 거의 20년이라는 시간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2020년에도 아직까지 학생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다. 드록슬러와 스테판은 다윈의 가설을 버리고, 자신들의 새로운 "복잡한" 버전을 제시했다.

드록슬러는 다윈의 분류 체계와 이론의 단순함이 지속적인 호소력을 갖게 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초 형성에 대한 더 정확한 설명은 1930년대부터 있었지만, 훨씬 더 복잡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많은 증거는 지난 40년 동안 지구 기후와 해수면 기록, 그리고 수많은 과학적 탐사 및 석유 탐사로부터 나온 것이다. 

해안선 위치, 빙하 기록, 대양 시추 코어 등은 관찰될 수 있지만, 어떤 관찰자도 환초가 형성되는 것을 직접 볼 수 없었다. 과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현재 관찰되는 강력한 증거를 기초로 가설적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랑기로아 환초(Rangiroa Atoll). (D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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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들의 시나리오는 언제나 장구한 시간을 가정하는 세계관에 기초하여 구축된다.

이 이야기는 과학 분야에서 관측과 다른 비경험적 주장에 대한 하나의 교훈을 제공한다. 어떤 과학자들은 단순한 이론을 좋아하고, 어떤 과학자들 우아한 이론을 좋아한다. 어떤 과학자들은 아름답거나, 기분 좋은 이론을 선호한다. 어떤 과학자들은 지적으로 겸손한 이론을 좋아하고, 어떤 과학자들 방법론적으로 자연주의적 이론을 선호한다. 새롭게 제시된 이론은 이러한 것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지만, 여전히 거짓이다.

나는 환초에 대한 진화 이론이 나의 고등학교 생물학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약 90년이 지나 틀렸다는 것이 밝혀진 후에도, 오늘날까지 계속 가르쳐지고 있다. 이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아름답고, 단순하며, 즐거운 이론보다 진실된 이론이 중요하다.

덧붙여, 라이스 대학은 현대 창조론의 아버지인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 Jr.) 박사가 수년간 가르쳤던 곳이다. 그는 수문학(hydrology)과 유체역학에 관한 지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홍수지질학(flood geology)이 합리적임을 제시했다.



*참조 : 산호초는 자라는데 얼마나 오래 걸릴까?

http://creation.kr/YoungEarth/?idx=1289359&bmode=view

신발 위에 산호

http://creation.kr/YoungEarth/?idx=1289379&bmode=view

산호와 동굴들

http://creation.kr/Sediments/?idx=1288528&bmode=view

산호 연대측정 

http://creation.kr/YoungEarth/?idx=1289323&bmode=view

암초는 오래된 것이 아니라, 격변에 의해 퇴적되었다.

http://creation.kr/YoungEarth/?idx=1289345&bmode=view

산호 시계는 믿을 수 없는 것임을 50년 연구는 밝혀냈다.

http://creation.kr/Dating/?idx=1289563&bmode=view

해조류의 진화적 기원에 관한 나쁜 소식

http://creation.kr/Variation/?idx=3579204&bmode=view

산호에서 발견된 RNA 편집은 진화론과 모순된다 : RNA 편집이라는 초고도 복잡성이 다양한 생물들에 있었다!

http://creation.kr/IntelligentDesign/?idx=1291776&bmode=view

바다조름 : 극도의 살아있는 화석은 ‘종류대로’를 외친다. ; 5억6천만 년(?) 전 에디아카라기의 살아있는 화석

http://creation.kr/LivingFossils/?idx=1757554&bmode=view

산호초는 진화의 요람인가? 

http://creation.kr/Circulation/?idx=1294966&bmode=view

산호조류가 실루리아기에서 발견되었다! : 출현 시기가 무려 3억(?) 년이나 더 뒤로 내려갔다.

http://creation.kr/LivingFossils/?idx=1757551&bmode=view

산호 기원은 5억 년 전 (연합뉴스. 2011. 7. 25.)

https://www.yna.co.kr/view/AKR20110725136000073


출처 : CEH, 2020. 10. 13.

주소 : https://crev.info/2020/10/darwin-coral-atoll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0-08-02

인간의 활동이 척추동물의 진화 역사를 방해하는가?

(Human Activity and Vertebrate Evolutionary History) 

by Frank Sherwin, M.A.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물들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으며, 우리가 ‘온 땅’에서 책임있는 청지기 직분을 행사하기를 기대하신다. 대홍수 후에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9:1~10절에서 그 명령을 재확인하셨다.

그러나 세속적 과학자들에 의해서, 인간은 모든 생물들의 진화 역사를 위협한다고 비난받고 있었다! 최근의 “양서류, 조류, 포유류 및 파충류 같은 육상 척추동물의 진화 역사”라는 기사는 오늘날의 ‘진화론적으로 구별되는 종’들이 ‘인간의 발걸음’에 의해서 어떻게 방해받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3] 아이러니하게도, 척추동물의 진화 역사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없다. 척추동물들은 항상 다른 생물들과 구별되어 왔다. 실제로 그 기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인정하고 있었다 :

우리는 진화계통나무의 가지 끝에 혼자 있다. 땅돼지(Aardvarks), 악어, 키위새(kiwis)는 모두 수천만 년 전에 가장 가까운 진화론적 친척들과 분리되었으며, 독특한 진화 역사를 갖고 있다.[3]

화석기록에 따르면 땅돼지, 악어, 키위새는 항상 땅돼지, 악어, 키위새였다. 세속적 과학자들은 “동물 문(phyla) 사이의 계통발생적[진화적] 관계는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5] 수천만 년 전에 존재했다는 그 생물들의 “가장 가까운 진화적 친척들”은 알려져 있지 않다. 두 진화론자들은 이 문제를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

화석기록에서 도움이 될만한 증거가 거의 없다는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로 인해, 척삭동물(chordates, 모든 척추동물들을 포함하는 큰 계통)의 기원에 대한 의견 불일치가 일반적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6]

턱이 없는 무악류 척추동물로부터 유악류(gnathostomes, 앞에서 언급된 척추동물의 큰 그룹)의 출현은 척추동물의 진화에서 한 주요한 사건이다. 이러한 변화는 많은 형태학적 혁신 및 표현형적 혁신을 동반했다... 이러한 혁신이 어떻게 출현했으며, 유악류는 어떻게 분기되었고, 적응했고, 살아있는 척추동물의 주요 그룹(99.9 %)이 됐는지는 주요 해결되지 않은 질문이다.[7]

과거에 척추동물들이 커다란 진화적 변화를 했다는 증거는 없다. 이 기사는 세계의 동물들이 멸종될 위협에 놓여있음을 말하면서, 불필요하게 관측되지 않은 척추동물의 진화적 과정과 장구한 진화적 시간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연구자들은 약 25,000 종의 멸종 위험 데이터를 사용하여, 최소 45억 년의 진화적 유산이 위협을 받고 있음을 발견했다.”[3]

또한 이 기사는 “연구자들은 인간의 위협이 큰 지역은 파충류의 낮은 다양성 지역과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한다.[3] 이 기사는 ‘인간의 높은 압력’을 암시적으로 다루고 있었지만, 예를 들어 엄청난 양의 용암 분출이 인류가 21세기 전체에 걸쳐 만들어낼 이산화탄소보다 많은 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8]

바울은 피조물이 아니라 조물주를 경배하라고 말씀한다.[9]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롬 1:25). 창조된 동물들과 그 환경을 돌보기 위해서, 알려지지 않고, 관측되지 않은 척추동물의 진화 역사와 장구한 시간을 제기할 필요는 없다.


References

  1. Genesis 1:28.
  2. Genesis 1:26.
  3. Human activity threatens vertebrate evolutionary history. ScienceDaily. Posted on sciencedaily.com June 3, 2020, accessed June 13, 2020.
  4. Morris, J. and F. Sherwin. 2010. The Fossil Record: Unearthing Nature’s History of Life. Dallas, TX: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5. Hickman, C. P. et al. 2017. Integrated Principles of Zoology, 17th ed. New York: McGraw Hill, 213.
  6. Kardong, K. 2012. Vertebrates: Comparative Anatomy, Function & Evolution, 6th ed. New York: McGraw Hill, 74.
  7. Venkatesh, B. et al. 2014. Elephant shark genome provides unique insights into gnathostome evolution. Nature. 505: 174-179.
  8. Capriolo, M. et al. 2020. Deep CO2 in the end-Triassic Central Atlantic Magmatic Province. Nature Communications. 11: 1670.
  9. Romans 1:25.

* Mr. Sherwin is Research Associate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earned his M.A. in zoology from the University of Northern Colorado. 

Cite this article: Frank Sherwin, M.A. 2020. Human Activity and Vertebrate Evolutionary History. Acts & Facts. 49 (8).


*참조 : 500 마리의 척추동물 물고기들이 초기 캄브리아기 지층에서 발견되었다

http://creation.kr/Controversy/?idx=1294668&bmode=view

캄브리아기에서 척추동물 물고기가 또 다시 발견됐다.

http://creation.kr/Circulation/?idx=1295039&bmode=view

가장 초기 동물이라는 5억5800만 년(?) 전 에디아카라기의 디킨소니아 화석에 동물성 지방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http://creation.kr/YoungEarth/?idx=1757384&bmode=view

16,000 개의 거대한 겹눈이 5억 년 전에 이미? : 아노말로카리스는 고도로 복잡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http://creation.kr/Circulation/?idx=1295026&bmode=view

바다조름 : 극도의 살아있는 화석은 ‘종류대로’를 외친다. ; 5억6천만 년(?) 전 에디아카라기의 살아있는 화석

http://creation.kr/LivingFossils/?idx=1757554&bmode=view


출처 : ICR, 2020. 7. 31.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human-activity-vertebrate-evolutionary-history/

번역 : 미디어위원회





토양의 중요성과 청색혁명 

(Soil, Sustainability, and the Blue Revolution)


   생명을 지탱해주는 원천은 바로 우리의 발아래에 있다고 한 수문학자(hydrologist)는 말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의 토양수문학 교수인 헨리 린(Henry Lin)은 물이 부족한 세상에서 물의 가용성을 걱정하는 환경론자들에게 몇 가지 좋은 소식을 제안하고 있었다. 그는 펜실바니아 주립대학의 보도 자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우리 주변의 모든 아름다움과 모든 풍요로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그러한 지속가능성의 열쇠가 바로 우리의 발밑 땅속에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혹은 잊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린은 말했다.

그는 토양 생태학(soil ecology)에 관한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나누었다:

•  토양은 ”지나친 영양분, 중금속, 기타 불순물 등을 추출해냄으로써, 물을 정화하며, 물을 흡수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  ”토양은 또한 담수(freshwater)의 저장 컨테이너로 작용할 수 있다”.

•  ”세계의 년간 강수량의 약 60%는 이 토양존(zone)에 머물러 있다”.

•  ”사실, 호수나 강 같은데서 보이는 소위 ‘푸른 물’보다 지하에 보다 많은 양의 물이 들어있다”고 덧붙여 말했다.

우리는 토양에 대하여 잊고 있는 경향이 있다.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진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제 그것을 바꿀 필요가 있다:

”물이 없으면 생명체도 없다”, ”지하수가 없다면, 깨끗한 물도 없다”고 린은 말한다.

농부들은 홍수를 예방하며, 건물 설계자는 지표를 흘러가는 빗물을 최소화하여 지하수를 풍부하게 하며, 도시 계획가는 지하수의 오염을 최소화 시키는 '청색혁명(Blue Revolution)”을 그는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한 혁명은 ”전 세계에 깨끗하고 안전한 물의 공급으로 물 안전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토양에 대해 언급하면서, PhysOrg(2013. 2. 18) 지는 어떻게 천연의 토양 항생제가 농약의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을까를 논의하고 있었다. ”당신이 해야만 하는 일은 미생물 군집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 연구자는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식량 문제의 해결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인트호벤 기술대학(Eindhoven University of Technology)의 연구자들은, 깨끗한 물에 대해 말하면서,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강수가 적은 지역에서 대기로부터 깨끗하고 신선한 물을 자기 무게의 340% 함유할 수 있는 목화로 된 코팅 장치를 개발해 왔다. 그들은 안개로부터 물을 수집하는 사막 딱정벌레(desert beetles)와 거미(spiders)로부터 이 아이디어를 얻었다.



토양은 전 세계 강수량의 60%를 보존하고 그것을 정화시키는 거대한 스폰지라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단순해 보이는 토양이 분해되는 식물재료, 수많은 동물들, 셀 수 없이 많은 미생물들을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복잡한 생태시스템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토양은 인간을 보호하며, 보존 또는 파괴시킬 수 있는 경이로운 설계된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많은 제3세계의 국가들은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하여 필사적이다. 몇 가지 상식적인 계획을 통해 토양이 주는 혜택을 증진시킬 수 있으며, 그 혜택은 넘치도록 풍부한 생명체들로 되돌아 올 수 있다. 새로운 생체모방공학 기술은 대기 중에서 깨끗하고 순수한 마실 수 있는 물을 끌어낼 수 있다.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과학은 관측 불가능한 먼 과거에 대한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이러한 종류의 과학이다. 이제 지금부터 진화 이야기를 집어 치우고, 실제적으로 사람들을 돕는 과학을 연구해보자.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crev.info/2013/02/soil-sustainability-and-the-blue-revolution/

출처 - CEH, 2013. 2. 20.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595

참고 : 2487|2249|3287|4652|4268|2565|4367|3392

김준
2017-05-30

소자에게 물 한 잔 – ‘HydroAfrica’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 이 원고는 3월 22일 물의 날을 맞이하여 쓰여진 글입니다.


      7년 전 이맘때, 세계 물의 날을 맞이하여 ‘한국 물안보의 현주소’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조선말에 있었던 대가뭄을 고려하여 국가의 장기 수자원 계획을 재해석함으로써 물부족에 대한 위기의식을 일깨워 각성을 유도하려는 제시경발(提撕警發)의 노력이었다. 이미 미디어를 통해서도 홍보되었듯이 한국은 ‘물부족 국가’이다. 지난 한 세기동안에 심각한 가뭄이 없었지만, 과거 240여 년간의 강수기록은 우리나라가 극심한 가뭄국가였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선각자들로서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발명하여 비의 양을 측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국에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관측을 지속하고 파발마를 통해 모은 자료들을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승정원일기에 남아있는 영조 46년(1770년) 이후의 자료는 오늘날 세계적 강수기록으로서 평가받고 있다. 21세기 프런티어연구사업인 ‘수자원의 지속적인 확보기술개발사업단’에서 ‘HydroKorea’ 세부과제 책임을 맡고 있었던 나로서는 지난 240여 년간 서울에서 관측된 연강수량 자료에 나타난 극심한 가뭄 사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1880년대 초반에 시작되어 약 25년간 지속되었던 이 대가뭄은 동학란, 임오군란 등 사회혼란과 더불어 결국 조선왕조의 몰락을 가져온 주요 원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놀라운 가뭄자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던 중, 나는 문득 구약성경의 열왕기상에 기록된 엘리야의 가뭄 사건을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부터 약 3000년 전 북이스라엘, 한 선지자가 왕궁의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경비대원들을 제치고 질풍같이 왕의 보좌가 있는 방안으로 뛰어들어 악한 아합 왕을 마주 대하여 선포한다.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왕상 17:1). 여기서 우리는 이 말을 선포하고는 황급히 사라지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와 만나게 된다. 그가 왜 이렇게 폭발적인 선포를 감행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살고 있던 시대를 이해해야 한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는 나태함과 안일함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등지고 있었고 아합 왕과 아내 이세벨은 더욱 그러했다. 야고보는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약 5:17)라고 말하고 있다. 엘리야는 왕과 정면 대결할 용기를 어디서 얻었을까? 그것은 그의 기도 생활의 산물이라고 하워드 헨드릭스 교수는 말한다. 무엇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일까? 신명기 11:16-17에 의하면 우상숭배는 가뭄을 가져오게 되어 있었고, 엘리야는 그 사실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배역하는 백성에게 비를 내리지 않으심으로써 자신의 말씀을 지키실 것을 확신한 엘리야는 의를 위해 분연히 일어나 하나님께 비를 내리지 마시도록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셨던 것이다.

대가뭄이 시작되기 전인 1860년대 말의 조선은 천주교 박해가 절정을 이룬 시기였고, 불길에 싸인 셔먼호에서 뛰어내려 대동강 강변에 오른 토머스 목사가 참수 직전 군인에게 성경을 주고 무릎 꿇고 기도를 올리며 개신교의 첫 순교자가 된 시기이다. 가뭄이 시작된 1880년대는 천주교의 대박해가 계속되는 가운데, 알렌, 언더우드, 스크랜톤, 아펜젤러 등의 많은 개신교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온 시기이다. 그 당시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에는 ”오,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앉히셨습니다.  . . .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만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주소서!”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즈음 시작된 조선의 대가뭄은 그 누군가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야와 같이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결과가 아닐까?

”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지면에 비를 내리리라”(왕상 18:1). 이제 엘리야는 갈멜산 위에서 큰 비를 위해 다시 간절히 기도한다. 제단에 불을 내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고백하게 한 것도 기도였고,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부터 작은 구름으로, 작은 구름에서 결국 큰 비를 내리게 한 것도 일곱 번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의 진전이었다. 이로부터 약 삼천년 후에 하나님은 또 다른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조선 땅에 비를 내리신 것이 아닐까?

조선의 대가뭄이 해갈되던 시기인 1905년에서 1910년 사이의 기간은 독로회(獨老會)가 설립되어 한국 교회의 독자적 발전이 기약되는, 한국 그리스도교 사상 가장 희망적인 시기인 동시에 통감정치가 시작되어 일본침략의 마수가 최종 단계에 이르는 한국 역사의 가장 비극적인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온 몸에 전율을 느끼며 깨닫게 된 것은 1907년 1월에 바로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나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온 조선 땅을 덮었고, 이 사건 이후 고백과 뉘우침, 새로운 삶을 선언하는 운동이 전국의 교회로 확산되면서 조선의 기독교인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실로 엘리야의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조선 땅의 작은 신음에도 귀 기울이시고 자신의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나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역사이래, 인류는 전례 없는 속도로 지구 환경을 망가뜨려왔고 이제는 자연의 정화능력의 한계를 넘어선지 오래이다. 요한계시록 6장에서 네 말 탄 기사의 말씀을 통해서도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와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혹자는 일곱 개의 봉인된 두루마리 중에서 이미 네 개가 열렸는데 네 말 탄 기사는 각각 과잉인구, 지속불가능한 경제발전, 기아와 빈곤, 그리고 환경파괴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대로 갈 경우 2030년까지 지구가 적어도 두 개는 더 있어야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보고서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삼월에 영국 런던에서 열린 ‘압박받는 지구(Planet Under Pressure)’ 라는 중요한 전 지구적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수천 명의 과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이 한 주간동안 함께하며 지구를 살리고 다음 세대에 풍요로운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모두가 힘과 정성을 다해 청지기의 삶을 살 것을 다짐하고 선포하는 자리였다. 사실 이러한 지구환경을 돌보는 청지기의 삶의 모범이 바로 교회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는 없을까?

이제 우리는 리처드 라이트 교수가 강조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자연에 대한 우리의 특권과 책임을 다시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창세기 1장 28절에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다스리고, 지배권을 갖고, 경작하는 일들은 모두 문화의 발달을 의미한다. ”생육하고 번성하여”라고 한 것은 이러한 문화적 통치 위임의 수행이 새벽이슬처럼 나아올 미래의 후속세대를 통해서만 가능함을 말한다. 즉 우리의 지배권은 위임된 권한이며 이는 문화를 발달시키는 것과 피조물을 보살피는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이러한 청지기적 사명은 창세기 2장 15절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다스리며' 라는 히브리어는 일하다, 섬기다, 경작하다, 예배하게하다 등의 여러 의미를 지닌다. 또한 '지키게 하시고‘의 경우, 보호하다, 선지자로 지키다, 보존하다, 파수꾼으로서 경계하다, 앞을 내다보며 자세히 들여다보다 등의 뜻을 지닌다. 이 두 단어는 히브리어에서 피조물에 대한 섬김과 보존의 태도를 암시한다. 이 말씀을 21세기를 사는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면, 우리의 특권은 하나님의 문화적 통치위임을 받은 청지기로서 맡겨진 각자의 영역(가정, 마을, 교회, 학교, 직장, 사회, 국가, 지구, 우주)에서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을, 양을 돌보는 선한 목자와 같이, 지키고 경계하되, 멀리 내다보며, 선지자적 파수꾼으로서 섬김과 보존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십 년간 한국의 물부족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앞서 언급한 ‘HydroKorea’라는 국책연구사업을 수행하였는데, 매년 40여 명의 학생들과 학자들이 참여하였다. 그 중에서 지하수 분야로 석사학위를 받은 한 젊은 과학도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케냐와 수단의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비록 연구 프로젝트는 종료되었지만, 이들은 HydroKorea의 비전을 넘어, ‘HydroKenya’로, 더 나아가 이제 ‘HydroAfrica’의 비전을 품은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었다. 아프리카 온 땅을 두루 다니며 수백 개의 우물을 파서 맑은 물을 공급하고, 그것을 관리하는 법을 가르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있는 그 젊은 과학도는 편지에 이렇게 전했다.

”여러분,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 모두가 지구를 지키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각자 거하는 처소에서 열심히 땀 흘리기를 소망합니다. 연구하시는 분들은 HydroAfrica의 비전이 이루어지도록 전 지구적 협력에 땀을 흘리시고, 저희들은 현장에서 유목민들과 호흡하며 땀을 흘리고,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기쁨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는 편지의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썼다.

”우리가 기쁜 일이 한 두 가지이겠냐 마는 그 중의 제일은 맑은 물 한잔 마시는 일, 맑은 물 한 잔 나누어 주는 일,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아마도 '마음의 성실함'과 '손의 공교함'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긴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의미일 것이다. 주님이 맡겨 주신 작은 일에 열심과 열정으로 묵묵히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새벽이슬처럼 더 많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그 자리에 굳게 서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이 세대에 영향력을 끼치시도록 그들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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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e Hebert
2017-05-30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에 기인한 지구온난화를 한 유명한 기상학자가 비판하다. 

(Weather Channel Founder Blasts 'Climate Change')


    기상학자이며 날씨 채널(Weather Channel)의 공동설립자인 존 콜맨(John Coleman)은 오랫동안 ‘사람에 기인한 지구온난화(man-made global warming)’에 대해 거침없이 말해오던 비판론자였다. 그는 최근에 사람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CO2)의 증가를 유발시켜 기후 변화를 초래했다는 주장은 '거짓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1] 그의 발언은 이 오래된 논란에 대해 가장 최근에 가한 일격이다.

창조과학자들은 이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데이터들을 객관적이며 정직하게 분석하기를 원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해왔었다. 창조론자이며 기상학자인 마이클 오드(Michael Oard)는 지구온난화는 대부분이 인위적 원인(man-made causes)보다는, 오히려 자연적 원인(natural causes) 때문에 발생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었다.[2]

마찬가지로, 은퇴한 창조과학연구소(ICR)의 대기과학자인 래리 바디만(Larry Vardiman) 박사는 이 이슈에 대해 광범위하게 연구했었고, 심지어 여러 기후 데이터들에 대해 자신의 독립적인 분석을(이 주제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소수의 과학자들도 실제로 귀찮아하는) 수행하기도 했다. 비록 그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해 비판론자이지만, 바디만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증거는 적어도 최근 과거에 존재한다고 결론 내렸다.[3] 하지만 바디만은 이산화탄소의 증가와 함께 온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동적으로 지구온난화가 이산화탄소의 증가에 기인된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상호 관계가 원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라는 규칙을 기억해야만 한다. 사실, 데이터를 신중하게 조사해보면, 어떤 경우에서 온도의 증가는 그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는 대기 중의 CO2 증가 이전에 발생하고 있었다.[4] 또한 과거의 온도 증가는 이러한 증가가 계속될 것을 반드시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논란은 증가되는 대기 중 CO2가 지구의 기온을 상승시키는지 여부에 관한 것이 아니다. CO2가 ‘온실가스(greenhouse gas)’라는 것은 밝혀진 사실이다. 이 논란의 핵심은 다른 기후 요인들이 온난화 경향을 증가시키는지, 방해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들 다른 요인들에 비해, CO2가 얼마나 민감하게 기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일까?

온난화 경향이 과거부터 계속되고 있다는 컴퓨터 기후모델의 예측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평균 표면 온도는 1998년 이후로 크게 증가하지 않고 있다. 이 사실로부터 기상학자이며 조지아 공대의 지구대기과학과 학장이었던 주디스 커리(Judith Curry)는, 현재의 기후모델은 너무 뜨겁게 예측하고 있고, 증가된 CO2 농도에 기후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주장했다.[5]

이러한 기후모델에서 불확실성을 야기시키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구름(clouds)이다. 왜냐하면 구름이 냉각효과를 갖는지, 온난효과를 갖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구름의 행동에 대한 더 나은 이해는 이 이슈를 보다 명확히 해줄 수 있는 한 중요한 단계가 된다. 그리고 기후모델이 구름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았음을 추정케 하는 많은 이유들이 있다.[6]

크리스천들은 이 문제에 관한 몇 가지 핵심 포인트를 기억해야만 한다. 첫째, 기후 변화에 대한 지나친 걱정은 성경적 세계관을 거부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기후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며 급격하게 변화될 수 있다는 제안에도 불구하고, 지구 행성의 대기는 모든 것을 아시는 창조주에 의해서 잘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행성 지구의 역사에서 가장 큰 기후 변화를 초래한 창세기 홍수는 한 번의 빙하기에 대한 유일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되고 있다.[7] 그리고 주님은 전 지구적인 홍수로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겠고, 홍수 후의 세계는 비교적 안정적인 계절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창 8:21~22).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기후 변화에 대해 과도하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 사실, 얼음 핵(ice cores) 내의 화학적 단서에 대한 동일과정설적 해석이 쓸데없는 기후 걱정에 미묘하게 기여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8]

마지막으로, 크리스천들은 창조-진화 논쟁처럼, 이 논란은 고도의 정치적 측면이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만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우울한 전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조심해야할 것이다.



References

1. Huston, W. T. Top Meteorologist: Climate Change 'Nothing but a Lie'. Breitbart. Posted on breitbart.com October 23, 2014, accessed October 23, 2014.
2. Oard, M. 2010. The Great Global Warming Debate: The facts, the fiction, and the furor. DVD. Creation Ministries International.
3. Vardiman, L. 2007. Evidence for Global Warming. Acts & Facts. 36 (4).
4. Vardiman, L. 2008. Does Carbon Dioxide Drive Global Warming? Acts & Facts. 37 (10): 10.
5. Curry, J. The Global Warming Statistical Meltdown. The Wall Street Journal. Text reposted on Dr. Curry's personal blog October 9, 2014, accessed October 22, 2014.
6. Hebert, J. 2013. Two possible mechanisms linking cosmic rays to weather and climate. Journal of Creation. 27 (2): 91-98.
7. Hebert, J. 2013. Was There an Ice Age? Acts & Facts. 42 (12): 20.
8. Oard, M. J. 2005. The Frozen Record. Santee, CA: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128.

* Dr. Hebert is Research Associate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received his Ph.D. in physics from the University of Texas at Dallas.


*관련기사 : ‘온난화 주춤’ 원인 놓고 과학자들 이견 (2014. 10. 23. 세계일보)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10/22/20141022005108.html

지구 온난화 '주춤'...왜? (2014. 10. 7. 아시아투데이)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41007010003659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8382/

출처 - ICR News, 2014.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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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산소 농도를 말해주던 지표 생물이 기각되었다. 

: 유공충은 메탄 누출지 원근에서 동일하게 살고 있었다. 

(Theory of Early Oxygenation Undermined)


        새롭게 발견된 대양 바닥의 메탄 누출지(methane seeps, 메탄이 가스 버블로 분출되는 곳) 내와 주변에 살아가고 있는 생물들은 지구의 기후 역사에 관한 전통적 이론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진화 지질학자들은 해양 생물 화석들, 특히 유공충(foraminifera) 화석으로 고대 바다의 산소 수준(oxygen levels)을 추정해왔다. 몇몇 특별한 유공충 종들은 용존산소가 높은 환경에서만 살아간다고 생각했었다. 과학자들이 화석기록에서 이들 생물 종의 껍질을 발견하면 지질역사에서 산소가 풍부했던 시기로 추정했었다. 이와 같은 생각에 기초하여 과학자들은 과거 대양과 기후가 어떠했을 지에 관한 개념들을 발달시켜왔다.      

이제 메탄 누출지 내와 주변에 있는 살아있는 유공충에 대한 한 연구에 의하면, 유공충들은 누출지와 가깝게, 그리고 멀리에서도 동일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누출지는 2014년 여름에 과학자들을 놀라게 하며 발견되었다.(see 8/25/14). PhysOrg(2015. 1. 6) 지는 인디애나 주립대학 연구자들이 수행한 새로운 화석 연구는 뜻밖의 놀라운 기념비적 연구였음을 보고하고 있었다. 발견된 유공충은 과거 시기의 산소농도에 대한 지표(index)로 생각되어왔던 것이었다.

그래서, 산소가 제한된 비누출지와 누출지 환경에서 동일하게 이러한 생물 종이 풍부하게 발견된다는 사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자신들의 연구에 기초하여, 래쓰번과 버켓(Rathburn and Burkett)은 이들 생물체가 있는 곳은 산소가 풍부한 곳이 아니라고 추정했다. 그들의 존재는 단순히 대양저에서 단단한 표면임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 발견은 과거 기후 변화 모델을 완전히 폐기시켜 버리는 것이다.

버켓은 그녀의 놀라운 결과를 2014년 10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미국지질학회에서 발표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이 회의에서, 우리의 결과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래쓰번은 말했다. ”(우리의 연구는) 이들 생물을 사용하여 과거의 환경을 해석했던 개념의 기초를 뒤흔들 것입니다.”

이 지표 위에 세워진 것들이 과거의 기후와 진화론적 변화 개념이다. 이제 그것들은 의심스러운 것들로 여겨질 것이다.



과거의 환경에 대한 추론은 항상 간접적인 것이다. 그것은 변화하는 환경을 나타낸다고 추정하는 일부 ‘지표(index)’들에 의존하고 있다. 그 지표가 결점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을 때, 그 위에 세워져 있던 모든 이론들은 같이 붕괴되는 것이다. 그러나 교과서, TV, 과학 기사들은 지구의 산소가 급증했을 시기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붕괴되고 있는 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증거를 진화론자들에게 담대히 말해주어야만 한다. 이제 그들은 유공충에 기초하여 과거의 기후와 진화를 말해서는 안 된다.

이 세계는 복잡한 생명체가 살 수 있도록 항상 적절한 환경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최근의 창조와 일치한다. 또한 기후변화를 과장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어야만 한다. 이들 메탄누출지에 관한 예상치 못한 발견은 미래의 기후 변화도 알지 못하는 여러 요인들로 인해,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5/01/theory-of-early-oxygenation-undermined/

출처 - CEH, 2015. 1. 9.

구분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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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아래는 과거에 온난했다. 

(Radar Reveals Former Warm Landscape Under Greenland)


      레이더 탐측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빙하 아래에서, 온대성 강에 의해 파여진 V 자형 협곡들을 밝혀냈다.


Live Science(2016. 7. 5) 지는 그린란드의 야콥샤븐(Jakobsvahn Isbrae) 빙하 아래에서, '시간의 동결'과 ‘숨겨진 강들의 연결망‘을 보여주는 새로운 레이더 지도(radar map)를 게재했다. 오늘날 그 지형은 2,000m 두께의 얼음으로 덮여있다. 과학자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렀던 이들 강들이 350만 년 되었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세속적인 지질학적 시간 틀로, 그때가 빙상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추정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레이더는 얼음으로 뒤덮여있는 비밀스런 세계를 밝혀냈다. 야콥샤븐 빙하 아래에는 그랜드 캐니언에 버금가는 대협곡, 극적인 계곡들, 산지하천의 그물망... 등의 놀라운 지형이 놓여있었다. 연구팀은 빙하 아래에 있는 계곡과 협곡의 형태를 분석하여, 이러한 모습들은 빙하에 의한 것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 강들이 암석들을 파내어 형성됐던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일부 관측들은 수백만 년의 시간이 의문스러운 것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

1. 협곡은 V-자 모양이다. 이것은 협곡들이 빙하가 아니라, 강에 의해서 파여졌음을 가리킨다. 현재의 빙하는 수백만 년 후에는 경계가 변경되지 않겠는가?
2. 나뭇가지 패턴의 하천 수로들은 야콥샤븐 빙하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 ”아래에 존재하는 수로들이 없었다면, 빙하는 현재 위치 또는 방향으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한 연구원은 말했다. 빙하는 현재 매년 18km의 맹렬한 속도로 흐르고 있다. 빙하는 하천 수로들을 지워버리거나, 지금까지 U 자형으로 만들어야하지 않았을까?
3.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어서 해수면 상승에 기여하고 있고, 과학자들은 기후 변화를 걱정하고 있다고, 그 기사는 말했다. 그러나 하천의 패턴은 분명 인간이 기후 온난화에 기여하기 오래 전에, 훨씬 따뜻한 세계가 있었음을 가리킨다.

지도를 만드는데 도움을 줬던 브리스톨 대학의 대학원생인 마이클 쿠퍼(Michael Cooper)는 한때 생물들로 가득했던 진정한 녹색의 그린란드를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 시점에 대한 의심 없이, 티아 고스(Tia Ghose) 기자는 그때와 지금의 차이를 강조하고 있었다 :

따라서 그 지형은 빙상이 형성되기 이전인, 적어도 350만 년 전에 형성됐음에 틀림없다. 그 당시 이 지역은 숲과 관목들이 번성했던, 훨씬 따뜻했던 곳일 수 있다고 쿠퍼는 말했다.
”나는 그곳이 많은 생물들의 고향이었을 것으로 상상한다.” 쿠퍼는 말했다.

다시 한번 숨겨져 있었던 세계가 드러났다. ”기후 과학자들은 최근 몇 년 빠르게 움직이는 빙하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가올 기후 변화의 전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스는 썼다.  

또 다른 Live Science(2016. 7. 7) 지의 기사는 암석질 행성들 중에서 독특하게 많은 량의 물이 있는 지구에 물을 공급했던 공급처에 관한 오래된 논란을 기술하고 있었다. 



이것이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중적 합의를 의심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기후 변화에 동의하는 기후학자들이 97%라는 것이 진짜인지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은 프래거 대학의 5분짜리 영상물 보라). 여기에 오늘날보다 훨씬 따뜻했던 지형이 있다. 아마도 생물들이 살기에는 지금보다 훨씬 좋은 환경이었을 것이다. 그 시기에 인간의 활동은 기후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았다. 


우리는 또한 연대에 대한 대중적 합의도 의심해 보아야만 한다. 진화론에서 장구한 연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의 녹는 속도로, 그린란드가 노출되는 데에는 수백만 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현재의 모든 얼음들이 축적되는 데에도 수백만 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수백만 년의 연대는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만들어낸다. 과학적 발전은 대중적 합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때가 아니라, 의심할 때 종종 일어난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6/07/warm-landscape-under-greenland/

출처 - CEH, 2016. 7. 18

구분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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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F. Coppedge
2017-05-30

전 세계에 유익을 주고 있는 작은 바다생물들 

: 동물성 플랑크톤은 바닷물의 혼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Tiny Life Benefits the Whole World)


     매일 밤바다를 휘젓는 작은 갑각류와 같은, 아주 작은 일부 생물들은 전 지구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바다에 생물들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미네랄, 가스, 영양물질이 단지 확산(diffusion)에 의해서만 혼합된다면, 그 과정은 매우 느릴 것이다. 바람과 조류가 혼합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제  Nature 지에 게재된 호튼(Houghton et al.) 등의 연구에 의하면, 매우 활발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해결책이 추가되었는데, 그것은 작은 플랑크톤 갑각류들이 물을 뒤섞음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바다생물들에게 이익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밤에 수십 미터 아래로 수영을 하고, 낮에 다시 올라온다. 이 일주 활동은 바다 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미쳐서, 바닷물의 혼합을 확산 하나보다 3배나 더 강력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발생된 교란(turbulence)은 영양물의 수송과 바닷물 혼합에 주요한 기여를 하는 것으로 제시되어왔었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수송과 혼합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교란이 바다에서 층의 길이 규모와 비슷한 규모의 소용돌이를 생성해야한다. 생물학적으로 생성된 교란은 개개의 동물 크기에 제한되기 때문에, 크릴과 같이 센티미터 크기의 풍부한 생물들에 의해서 발생되는 소용돌이는 바닷물의 혼합과는 무관한 것으로 여겨져 왔었다. 그러나 동물성 플랑크톤(zooplankton)은 그들의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수직적으로 수십 미터 이상으로 군집을 형성하며, 매일 수백 미터 이상을 수직적으로 이동한다. 군집의 크기와 함께 이러한 이동 행동은 생물학적으로 바닷물의 혼합에 기여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브라인 쉬림프(brine shrimp, 아르테미아 새우. 애완용으로도 키워지는 'sea monkeys”로 불려지는 새우)로 실험실 실험을 실시했다. 갑각류는 빛에 반응하기 때문에, 그들의 이동은 조절될 수 있었고, 수영했을 때 만들어내는 소용돌이의 힘은 측정될 수 있었다. 그들의 군집이 이동하며 발생시키는 소용돌이는 상당한 깊이의 물을 뒤섞을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것은 현장에서 관측되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심지어 열대 무풍대에서도) 모든 바다생물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매일 물을 휘젓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풍부한 생물 중 하나가 수행하는 완전히 새로운 역할을 나타낼 수 있다.”

Nature (2018. 4. 18) 지에서 은퇴한 편집자인 헨리 지(Henry Gee)는 이것을 다윈을 예찬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었음에도, 연구에 깊은 인상을 받고 있었다. ”새우는 휘젓기(stir)를 일으킨다”고 그는 적었다. ”바다 새우들의 이동으로 바닷물은 상당히 혼합된다.” 그 기사에는 새우가 물을 섞는 능력을 테스트한 영상물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그들은 새우가 위로 헤엄칠 때 물 흐름이 아래로 밀려드는 것을 발견했다.

10년 전만해도 과학자들은 이러한 종류의 군집 생물들의 혼합 효과가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나레이터는 말한다. 호튼 등은 그것이 지구 기후에 충분히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브라인 쉬림프와 같은 작은 생물들이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친다면, 극지방과 같은 기후에 민감한 지역에 살고 있는, 우주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무리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크릴(krill)과 같은 더 큰 이동 생물들은, 해양 화학의 균형, 영양물질의 흐름, 심지어 기후와 같은 것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효과는 바다에서 측정되어야하지만, 그것이 확인된다면 ”그것은 지구 행성에서 가장 풍부한 이 생물들에 의해서 수행되는, 완전히 새로운 역할일 수 있다”고 나레이터는 말했다.

그렇다면 진화론자들은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까? 헨리 지는 말했다 :

물리적 환경을 바꿀 수 있는 개인이나 집단의 능력은 오랫동안 생물학자들을 매료시켜왔다. 사실 찰스 다윈의 마지막 책인 ”벌레의 작용으로 인한 곰팡이의 형성(The Formation of Vegetable Mould through the Action of Worms. Murray, 1881)”에서 작은 생물의 반복된 행동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변화에 대한 분석을 보고했었다. 이 작업은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면서 작은 변화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그의 경력에서 피날레였다. 벌레와 마찬가지로 새우도 그랬다.

아무도 생물 연구에 있어서 현장 작업의 가치에 대해 논쟁할 수 없다. 다윈의 현장 작업은 때로는 올바른 것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책은 그의 진화론을 뒷받침하지 못했다. 벌레는 이미 있었고, 생태계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고 있었다. 그것은 벌레의 기원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는다. 또한 벌레의 토양 경작으로 인한 유익이 생태계의 출현을 설명하지 못한다. 새로운 연구는 물을 혼합하는 플랑크톤의 기원이나, 집단적 행동으로 이익을 주는 커다란 생물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처음부터 생태계가 확립되어 있었다면, 각 생물들은 각자의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되어, 지구 행성에 생물체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육지와 바다가 이 작은 생물들의 작업 없이, 거주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을까?

 

미생물과 지구의 기후

대부분의 기후 모델 연구자들은 규산염암(silicate rock)을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CO2)를 감소시키는 '탄소 흡수원'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Science Magazine(2018. 4. 13)에 실린 헤밍웨이(Hemingway) 등의 새로운 논문은, 미생물이 암석을 먹고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방출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와 규산염 암의 반응은 화산성 가스로 방출된 CO2를 상쇄시키는 탄소 흡수원으로서 역할은 한다. 그러나 일부 유형의 암석은 암석기원성 유기탄소를 함유하고 있어서, 이것의 산화는 대기 중에 CO2를 추가시켜, 규산염에 의한 흡수와 반대로 작용한다. 헤밍웨이 등은 빠르게 침식되고 있는 대만의 중앙산맥(Central Range)에서, 미생물들은 대략 그곳의 암석기원성 유기탄소의 2/3를 산화시키고 있었는데, 산화 속도는 침식 속도에 따라 증가한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기후 모델 수립자들은 이것을 알고 있을까? 그들은 이것을 고려했을까? 그것은 현재의 기후 변동을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연의 균형은 미생물이 육지에 살았던 이래로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그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진화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나쁜 습관을 버리고, ”그것이 존재한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할 필요가 있다. 미생물의 CO2 배출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양을 조절하기 위한 일종의 피드백 메커니즘일 수 있다.

다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고 누적된 변화의 효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상향식 세계관은 이기적 기회주의자가 생존 가능성이 높다는 윤리적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에 비해 지적설계가들의 하향식 세계관은 훨씬 더 합리적이다. 복잡하게 연결된 생태학적 네트워크는 작은 변동에도 치명적인 붕괴를 일으킬 수 있다. 어떻게 이러한 복잡하고 상호 연결된 유익한 네트워크가 무작위적인 과정에 의해서 생겨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적자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개체들이 자신보다 전체의 이익을 위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것일까? 이런 생물들의 특성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설계된 세계에서, 새우와 벌레와 같은 모든 생물체들은, 세계를 거주 가능하게 만드는 복잡한 네트워크의 일부로서 역할 수행의 목적을 갖고 있다.

성경적 창조론자들은 죄에 대한 저주로 이 세상이 고통 받고 탄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롬 8:18~25),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충분한 증거들이 남아있음을 보고 있다.(행 14:16~17).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신앙에 대해 핑계할 수 없는 것이다.(롬 1:20).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작은 생물들도 이전에 알지 못했던 방식으로 우리를 돕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될 때 놀라지 않는 것이다.


*관련기사 : 크릴처럼 작은 플랑크톤의 엄청난 힘, 뭉치면 바닷물도 휘저어 놓는다 (2018. 5. 21, The Science Time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rev.info/2018/04/tiny-life-benefits-whole-world/

출처 - CEH, 2018. 4. 19.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35

참고 : 5158|6276|6054|5014|4759|5962|6289|2086|4268|6593|5956|5478|5335|5342|5351|5355|5359|5360|5382|5439|5444|5488|5513|5560|5596|5598|5600|5608|5671|5673|5689|5694|5751|5767|5752|5759|5773|5810|5814|5839|5845|5850|5856|5888|5891|5894|5899|5902|5438|5920|5926|5932|5934|5959|5960|5975|5976|5997|6001|6023|6034|6069|6159|6160|6161|6162|6163|6165|6178|6199|6245|6272|6290|6291|6302|6304|6308|6324|6336|6406|6475|6492|6494|6516|6522|6526|6530|6536|6557|6572|6584|6590|6595|6609

Larry Vardiman, Ph.D
2006-01-18

허리케인은 더욱 파괴적이 되고 있는가? 

(Are Hurricanes getting more destructive?)


서론 (Introduction)

2005년 8월에 뉴올리언즈(New Orleans)를 휩쓴 허리케인 카트리나(Hurricane Katrina)는 미국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가져온 자연 재해였다. 그리 오래지 않은 1992년에 허리케인 앤드류(Hurricane Andrew)가 마이애미를 관통했었는데, 그때는 가장 큰 피해로 악명을 떨쳤었다. 그러나 카트리나에 바로 뒤이어 허리케인 리타(Hurricane Rita)가 발생했는데, 대서양에서 발생한 시속 155마일(248km)을 넘는 지속적인 바람을 동반한 5등급 허리케인이 두 개가 연속적으로 일어난 것은 역사상 2005년이 처음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왜 이렇게 강력한 허리케인들이 있었던 것일까? 이것은 새로운 동향일까, 아니면 단지 강력한 허리케인이 발생하는 일시적인 새로운 순환주기에 들어온 것일까? 본격적인 지구 온난화와 강풍을 동반한 최근의 수많은 허리케인들에 대한 최근의 관심사는 온난화 된 기후의 결과인가?

허리케인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자연력 중의 하나이다. 분출 에너지의 양은 지진, 화산, 쓰나미, 혹은 핵무기의 에너지 방출량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지구물리학적 사건처럼, 그것의 발생을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것의 형성에서 육지로의 접근경로는 꽤 불규칙적이다. 허리케인의 강도를 약화시키거나 인구밀집 지역으로부터 벗어나도록 경로를 전환하려는 시도들은 대개 실패했다. 허리케인에 관한 대부분의 조사는 그것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하고 강도, 빈도 및 지리학상 분포를 기록하기 위해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대서양 허리케인에 대한 가장 최근의 일부 조사 결과들을 보고하고, “허리케인이 점점 더 파괴적이 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것이다.


시간적 및 공간적 분포 (Temporal and Spatial Distributions)

열대성 저기압은 대개 남대서양과 남동 태평양을 제외한 위도 5도에서 30도 사이의 전 해양에서 형성된다. 그런데 적도 바로 부근에서는 코리올리 힘(Coriolis force, 지구자전으로 발생하는 회전효과)이 없기 때문에 열대성 저기압이 형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위도 30도가 넘는 극쪽 위도에서는 해수면온도(SST, sea surface temperature)가 너무 차갑기 때문에 열대성 저기압이 형성되지 않는다. 열대성 저기압을 대서양에서는 허리케인이라 부르고, 대서양이 아닌 다른 대양에서는 태풍(typhoons), 혹은 단지 열대성 저기압(tropical cyclones)이라고 부른다. 그것들은 해수면온도가 섭씨 26.7도(화씨 80°)를 초과하고 열대성 기류의 교란으로 말미암아 따뜻하고 습한 공기를 충분히 오랜 시간동안 모아서, 약한 소용돌이를 형성하고 그것이 발전하여 열대성 저기압이 될 때 만들어진다. 북반구에서는 열대성 저기압이 여름의 열기가 연장된 기간인 늦여름과 가을에 발생하며, 9월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에서는 2월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빈도 (Frequency)

일반적으로 1년에 약 85개의 열대성 저기압이 형성되는데, 그 가운데 대략 절반이 충분히 발달한 허리케인이나 태풍으로 진행한다. 대서양에서는 매년 약 9개의 허리케인이 형성된다. 그림1은 1851년 이래로 대서양에서 형성된 열대성 저기압 중 시간당 최대 풍속이 63km(39마일)을 초과하는 것의 연간 개수를 나타낸다. 이 자료는 열대기상센터(Tropical Prediction Center)에서 제공한 것으로, 특히 1800년대와 1944년-1969년의 허리케인에 대해서는 통계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최량-항로(best-track) 보정을 포함하고 있다.[1] 허리케인 연간 최대발생수와 최소발생수는 1933년과 1914년에 각각 21번과 1번이었다. 그림을 보면 153년에 걸쳐 연간 허리케인의 수가 30년마다 한 개씩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림1에 나타난 경향선(trend line)은 1851년에서 2004년까지의 최소자승회귀선(least squares regression line)이다.
            


그림1. 1851년 이후 대서양 허리케인의 빈도 (Frequency of Atlantic Hurricanes since 1851)

이러한 경향은 1944년에서 1994년까지의 50년에 대해 허리케인의 빈도가 감소된 것으로 조사된 랜씨 등(Landsea et. al.)의 결론과 대조적이다.[2] 이 새로운 분석에 대한 결론에 있어서 차이가 나는 것은 아마도 평균 허리케인의 수가 더 많은 (매년 약 14개) 다른 10년간의 자료를 추가한 것과, 훨씬 더 오랜 기간에 대한 분석을 포함한 영향일 것이다. 전체 자료를 놓고 보면 허리케인의 단기간의 빈도 변화는 잘못된 해석을 초래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1880-1900년 사이와 1945-1960년 사이에는 단기간의 높은 빈도수를 보여준다. 반면, 1910-1930년 사이의 빈도수는 이례적으로 낮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1995-현재까지 기간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시기상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매 30년마다 허리케인이 1번 증가하는 장기추세는 통계적으로 잘 뒷받침되어 있다.

사람의 활동에 의한 지구 온난화가 허리케인 빈도의 증가를 야기했을 수도 있다는 일부 사람들의 제안은 이 자료로는 증명될 수 없다. 열대성 저기압 발생(tropical cyclogenesis)의 문제는 극히 복잡하여 열대기후에 대한 커다란 의문중의 하나로 남아있다.[3] 거기에는 허리케인이 생성된 이후에 허리케인이 성장하는 것뿐 아니라, 초기 열대성 저기압을 형성하는 대기내의 유인(triggers)의 발달도 포함시켜야 한다. 이러한 유인들은 따뜻해진 해수면온도에 의해 두드러졌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게다가, 해수면온도의 온난화에 대한 다른 가능한 원인으로 인간 활동과 무관한 자연적인 변동일 수도 있다.


강도 (Intensity)

허리케인 발생의 빈도는 파괴력을 측정하는데 있어서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 에마누엘(Emanuel)은 허리케인의 세력 소산(power dissipation)을 계산하는 공식을 제안했다.[4] 그 공식에는 공기저항 계수(drag coefficient), 표면 공기 밀도, 표면 풍량 등급, 폭풍의 크기 및 폭풍의 지속기간 등의 항이 들어있다. 비록 그가 제안한 세력 소산의 계산이 파괴력에 대한 뛰어난 측정치를 줄 수 있을지라도, 폭풍의 규모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는 과거 자료를 사용하여 그것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는 계산을 단순화하였고 세력소산지수(Power Dissipation Index, PDI)라 불리는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그것은 한 허리케인의 전 지속기간 중 최대 풍속의 세제곱을 적분하고 약간의 평활(smoothing)을 수행한다.

에마누엘은 그 방법을 대서양 허리케인들에 적용하였을 때, 그의 지표가 1970년대 이래로 30년에 두 배 이상이 됨을 알았다. 이것은 폭풍이 평균적으로 더 거세졌고, 오랜 기간동안 높은 강도로 유지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에마누엘은 또한 그의 방법(technique)을 다른 자료에도 대입시켜보았다. 비록 이것이 보고 과정에서의 변화를 부분적으로 반영할 수도 있지만, 그는 대서양과 북태평양 서쪽을 합친 누적된 폭풍의 연간 지속기간이 1949년 이래로 거의 60% 증가했음을 알아냈다. 대서양과 북태평양에 걸쳐 합쳐진 연간 평균 폭풍 최고 풍속도 또한 이 기간동안에 약 50% 정도 증가했다. 그러므로 지속기간과 최고 강도의 경향 둘 다 최종 세력의 소산에서 전반적인 증가에 기여하고 있다. 증대와 소산의 비율을 고정시키면 태풍이 최강 풍속에 도달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것이며, 또한 소산하는 데에도 더 오래 걸릴 것이다. 그러므로 강한 폭풍이 더 오래 지속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결론 (Conclusions)

빈도, 강도 및 지속기간의 증가로 말미암아 허리케인이 더욱 파괴적이 되어간다는 것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특히 해안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걱정거리가 될 것이다. 역사 기록은 과거에 짧은 간격동안에 많은 변화를 보여준다. 어떤 해에는 많은 수의 폭풍이 발생했었고, 또 어떤 해에는 매우 격렬하고 파괴적인 폭풍이 일어났었다. 허리케인 빈도와 강도가 평균보다 약했던 1970년에서 1995년 사이엔 잠들 수 있을 만큼 잦아들었다. 하지만, 허리케인의 파괴력은 최근에 평균치 이상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보이며, 심지어 장기간의 평균도 넘어서서 증가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같은 기간 동안에, 광범위한 발달이 전 해안선을 따라 일어나기도 했다. 30년 전과 같은 빈도와 강도의 허리케인이 육지로 접근하게 되면, 이제는 그 당시보다 훨씬 더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낳게 될 것이다. 만약 허리케인의 파괴력이 증가하고 있다면,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해진다.

물론, 우리는 허리케인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고 있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허리케인 파괴력의 그러한 증가는 해수면온도의 증가와 일치한다. 하지만, 해수면온도의 작은 증가는 인간이 일으킨 영향이라기보다 자연의 변화로 인한 것일 것이라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대양에서는 7-10년 주기의 엘니뇨와 남방진동(Southern Oscillation)과 같이 많은 주기적인 현상이 일어난다. 현재 조사된 경향은, 그와 유사한 오랜 기간의 변화의 결과일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또한 1958년 이래로 마우나로아(Mauna Loa)에서 측정된 대기 내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인한 것일 것이다. 따뜻해지고 있는 해양은 해양으로부터 이산화탄소를 내보내어 대기 내 이산화탄소의 양을 증가시킬 것이다.

위에서 언급된 작은 온도변화 중 어떤 것도 창세기 대홍수 후에 일어났을 수도 있는 것들과 비교되지 않는다. 창세기 대홍수가 끝날 무렵의 해양 온도는 섭씨 37.8도(화씨 100도) 이상 정도로 따뜻했었을 것이다.[5] 해양이 그렇게 따뜻했기 때문에 대기 중으로 물이 엄청나게 증발하였고, 극지방과 그때 생겨난 산 정상에 눈이 쌓임으로 빙하기가 왔다는 것의 설명이 될 수 있다. 해수면 온도가 섭씨 37.8도이거나 그 이상인 해양에서는, 오늘날의 어떠한 허리케인보다 더 잦은 빈도와 강도의 허리케인을 발생시켰을 것이다. 특급허리케인(hypercanes)이라 불리는 거대한 허리케인들이 지구 전반부에 걸쳐 발생했었을 것임을 보여주었다 [6]. 그것들은 지름이 수백 마일 정도로 성장했으며, 시간당 483km(300마일)이 넘는 수평 바람을 일으켰고, 시간당 161km(100마일)의 수직 바람을 만들었으며, 시간당 254mm(10인치)보다 더 많은 속도로 비를 뿌렸을 것이다. 많은 양의 미고결된 퇴적물의 침식이 대홍수에 뒤이어 대륙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오늘날 허리케인의 활동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약 5,000년의 냉각이 끝날 무렵의 정상 상태에서 하나의 작은 진동을 나타낸다.



References

1. Landsea, C. W., 1993, A Climatology of Intense (or Major) Atlantic Hurricanes, Monthly Weather Review, 121, 1703-1713.
2. Landsea, C. W., N. Nicholls, W. M. Gray, and L. A. Avila, 1996, Downward Trends in the Frequency of Intense Atlantic Hurricanes during the Past Five Decades, Geophysical Research Letters, 23, 1697-1700.
3. Emanuel, K., 2005, Divine Wind: The History and Science of Hurricanes , Oxford University Press, New York, NY, 285 pp.
4. Emanuel, K., 2005, Increasing Destructiveness of Tropical Cyclones over the Past 30 Years, Nature, vol. 436, no. 4, pp. 686-688.
5. Vardiman, L., 1996, Sea-Floor Sediment and the Age of the Earth, ICR Technical Monograph,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El Cajon, CA, 94 pp.
6. Vardiman, L., 2001, Climates before and after the Genesis Flood: Numerical Models and Their Implications, ICR Technical Monograph,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El Cajon, CA, 110 pp.

* Dr. Vardiman is Chairman of the Astrogeophysics Department at ICR and Chief Operations Officer. 


번역 - 길소희

링크 - http://www.icr.org/index.php?module=articles&action=view&ID=2589

출처 - ICR, Impact No. 390, 2005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83

참고 : 2116|248|1472|1474|2249|2199|2141|2459

강성열
2005-04-29

시간과 자연, 그리고 생태학 - 제1부


호남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

본 논문은 3부로 나누어서 올립니다.

 

1. 들어가는 말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환경 파괴와 생태계의 위기는 인류 전체의 생존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쟁점임에 틀림이 없다. 아마도 그것은 21세기의 인류가 해결해야 할 최대의 과제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환경 문제와 관련된 다양한 논의들과 정보들을 거의 매일같이 대하고 있다. 이것은 이제 환경 문제가 피할 수 없는 전 지구적인 관심사가 되어 버렸음을 뜻한다. 신학적인 논의라고 예외일 수 없다. 신학함이 본질적으로 신앙공동체가 마주하는 온갖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주려는 작업일진대, 환경 문제에 대한 신학적인 논의는 지극히 당연한 것일 수밖에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세계 신학계는 1990년대 이후 ‘자연의 신학’(theology of nature) 또는 ‘생태신학’(ecotheology)이라는 이름으로 자연과 생태계 문제에 관한 폭넓은 논의를 전개해 왔다. 목회상담학 분야에서조차 ‘생태요법’(ecotherapy)을 주창하고 있는 것을 보면1), 그러한 논의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국내의 성서신학 분야에서는 가장 최근에 성서를 ‘녹색의 눈으로’ 읽을 것을 제안하고 있기까지 하다2).성서신학이 이제는 녹색신학이 될 것을 요청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필자 역시 부족하지만 구약성서의 창조론을 생태학적인 시각에서 읽으려는 작업을 시도한 바가 있다.3)

그다지 새롭다고 할 수도 없는 그 작업에서 필자는 국내외 성서신학자들의 생태신학을 참고하면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갖는 생태학적인 의미를 종말론에 이르기까지 개괄적으로 추적하고자 했다. 더 나아가서 필자는 열 가지 재앙을 포함하는 출애굽 사건을 생태학적인 시각에서 이해하려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4).

이러한 방법을 확대 적용한다면, 아마도 창조 세계 내지는 자연계와 관련된 구약 본문들을 일일이 찾아 그 생태학적인 의미를 천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동의어 반복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필자는 솔직히 말해서 구약성서와 관련된 녹색신학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에서 논구한다는 것이 조금은 힘에 부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만큼 많이 연구되어서일 것이다. 환경문제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론적인 탐구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올바른 실천을 목표로 하는 과제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면 이제 끝인가? 그렇지는 않다. 성서 본문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항상 새로운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어딘가에 잠자고 있을 감추어진 의미를 색출해내는 힘겨운 작업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고통스러운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생태계와 관련된 논의에 시간 개념-넓게 보아 종말을 포함하는-을 도입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최근에 개인적으로 시간과 종말의 문제를 다루는 일반 서적들을 다수 접하면서, 하나님의 피조물임에 틀림이 없는 시간이 또 다른 피조물인 자연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부연 설명하자면, 태초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시간 개념이 창조의 동반자인 자연계와의 관련성 속에서 그 나름의 생태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리라는 추론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본 논문은 바로 이 점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시간이나 자연이 똑같이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 속한다는 평범한 인식을 생태학적인 논의의 장으로 이끌어 내보면,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겠는가 하는 소박한 생각으로부터 본 논문의 실마리를 풀어나가고자 한 것이다. 필자가 과문해서인지는 몰라도, 아직은 이러한 접근 방식이 충분히 공론화되지 않은 것 같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필자의 연구가 아직은 일천한데다가, 이 글의 주제와 관련된 문헌이 충분치 않다는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본 연구로부터 몇 가지 일반적인 결론을 이끌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부족하기는 해도 그러한 결론이 앞으로의 연구에 하나의 디딤돌이 될 뿐만 아니라, 성서를 녹색으로 칠하고 또 우리가 사는 세상을 녹색 생명으로 가득 채우고자 하는 노력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주)
1) Howard Clinebell, 『생태요법: 인간치유와 지구치유』, 오성춘ㆍ김의식 옮김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8).
2)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녹색의 눈으로 읽는 성서』(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3) “구약성서의 창조론과 생태학,” 『생태학과 기독교 신학의 미래』(서울: 한들출판사, 1999), 9-48. 이 글은 필자가 쓴 『오늘의 눈으로 읽는 구약성서』(서울: 쿰란출판사, 2003), 12-56에 그대로 실려 있다.
4) “생태학적 창조론의 시각에서 보는 출애굽 사건,” 『신학이해』 제19집 (2000), 9-38. 이 글 역시 『오늘의 눈으로 읽는 구약성서』, 57-91에 그대로 실려 있다.

 

2. 자연과 더불어 창조된 시간

(1) 시간 개념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

시간 개념의 생태학적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간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시간은 인간의 삶과 자연의 운행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에 해당한다. 참으로 우리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철저하게 시간에 의해 한정되며, 시간의 틀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뿐이 아니다. 해와 달과 별 등에 의해 대표되는 천체의 운행과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다양한 생명 활동 중에서 시간의 틀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어떻게 보면 시간은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의 근본적인 특성에 해당하는 것5) 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철저하게 시간은 인간과 자연 가까이에 있다. 아니 그 안에 확고하게 새겨져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누구나 눈에 보이지 않은 채로 끝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움직임에 매우 친숙하다. 친숙할 정도가 아니다. 시간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우리의 삶이 시간의 지배와 통제를 받고 있음을 누구나 깊이 인식하고 있다. 오랜 옛날에도 그랬지만, 요즘 사람들 치고 시간을 배제한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한술 더 뜨는 사람들도 있다. 시간의 지배를 받는 대신에 그 반대로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들은 시간을 한없이 잘게 쪼개어6) 사용함으로써 시간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계량화되고 계수화된 시간 개념-이를테면 각종 식료품의 유통기한 같은-으로 인간의 삶과 일상생활을 규정하기까지 한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명제는 그런 사람들의 시간 지배 욕구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시간이 인간의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시간의 본질 또는 시간이라는 존재 자체는 상당 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애매모호하다고 해야 할까? 굳이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고백7)을 빌지 않더라도, ‘시간은 이런 것이다’라고 몇 마디의 말로써 시간을 규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까닭은 시간이라는 것이 인간의 감각 기관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요, 그 지나온 길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는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아무런 냄새도 형체도 남기지 않은 채로 그저 쉼 없이 앞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그래서인지 20세기의 탁월한 시간 연구가인 화이트헤드(Whitehead)는 시간(과 자연)의 형성 과정이나 진행 과정이 갖는 신비로움에 대해서 명상할 때마다 인간 지성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고 말한 바가 있다8).

시간은 이처럼 모호하고 신비로운 것이다. 인간의 언어로 쉽게 규정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시간의 정체를 깨닫고서 그것을 찾아내고자 애썼다.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인간의 삶과 자연계 안에 새겨진 시간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 흐름을 제대로 파악할 때만이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삶이 가능하다고 믿었고, 또 실제로 그러했다.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들 역시 시간 개념이 인간의 삶과 역사에 있어서 갖는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시간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애썼고, 그 기원이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시간의 진행 과정과 그들의 삶은 결코 둘일 수 없었다. 시간의 진행 과정을 따라 사는 삶이야말로 창조 질서에 가장 부합된 삶이요, 따라서 가장 안정된 삶이라는 것을 그들은 절실히 느끼곤 했다. 그 증거를 우리는 구약성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시간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시간이 어떻게 진행되다가 또 언제 어떻게 끝나는지를 나름대로 정리하고자 한 다양한 노력들이 그렇다. 이른바 시간의 시작과 진행 과정 및 끝(종말)에 관한 신학적인 반성이 구약성서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 시간의 시작-창조된 세계의 기초

시간은 정확하게 언제 시작된 것일까? 아무도 이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렇지만 이 문제에 가장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자들이 있다. 과학자들이 그들이다. 한 예로 영국의 유명한 이론물리학자인 호킹(S. Hawking)은 시간과 우주의 역사를 다루면서 우주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상태로 영원히 존재할 수 없음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는 밀도가 무한히 큰 상태의 특이점이 150억년 전에 대폭발(big bang)을 함으로써 지금의 우주가 생겨났으며, 우주가 그 때 이후로 계속해서 아주 빠른 속도로 팽창하다가 언젠가는 급격한 수축 과정을 거치면서 밀도 무한대의 상태로 복귀함으로써 붕괴될 것이라는 견해를 내세웠다9).

아울러 그는 “시간이란 신이 창조한 우주의 특성이고, 우주가 시작되기 전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10)을 빌어, 시간이란 개념은 우주가 시작하기 전에는 아무런 뜻이 없는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11). 우주의 시작이 곧 시간의 시작이라는 얘기다.

필자로서는 물리학자들의 이러한 설명이 옳은지 확인할 길이 없다. 단지 그들의 주장이나 이론이 점차 우주의 기원과 운명을 규명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뿐이다. 정작 필자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구약성서의 창세기가 시간과 우주의 시작에 관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1656년에 영국의 어셔(James Ussher) 대주교는 지구가 주전 4004년 10월 22일에 창조되었다고 말했지만(인간 창조는 10월 23일)12),  이것 역시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말이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러한 연대 추정에 관심이 없다. 당시 사람들이 연대 추정을 할 수 있을 만큼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더욱 아니다. 그들은 오로지 창조의 시초와 그 과정 및 하나님의 창조 행위가 갖는 신학적인 의미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시간은 결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 세계에 속한 것이요, 자연과 더불어 창조 질서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구약성서의 맨 처음 책인 창세기 첫 장에서부터 이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창세기 1:2에 의하면, 하나님의 우주 창조는 맨 처음의 혼돈과 무질서 상태에서 출발한다. 이 본문이 말하는 태초의 혼돈은 아직 시간이 창조되기 전의 무질서한 상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시간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는 얘기다. 시간이 창조되기 전의 상태는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이 한데 엉켜 뒤죽박죽이 되어 있는 상태요, 온통 혼돈과 어둠이 지배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우주 창조-혼돈과 무질서로부터 질서를 세우시는-가 본격화되는 첫째 날에 시간이 창조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추론이 틀린 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3절이 시간의 창조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3절의 설명에 의하면, 첫째 날에 창조된 것은 어디까지나 빛이었지 시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빛은 어둠으로부터 분리되어 낮으로 칭함 받게 되었고, 그 상대자인 어둠은 밤으로 칭함 받게 되었다(4-5절). 3-5절의 이러한 서술은 빛이 생겨남으로써 태초의 혼돈과 어둠이 제거되고, 그 결과 질서 있는 우주와 세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빛과 어둠이 서로 분리되고 그로 인하여 낮과 밤의 질서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빛의 창조와 더불어 시간이 창조되었음을 의미한다13). 

빛과 어둠의 구분으로 인하여 비로소 시간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에 해당하는 낮과 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첫째 날에 창조된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는 평가(4a절)는 빛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시간 창조의 기초가 된 빛의 질서 부여 기능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14).  

그리고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은, 낮과 밤이 오늘날과 같은 24시간 단위의 시계 시간이 없던 당시로서는 가장 기본적인 시간 단위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그 까닭에 창조의 날들을 셈하는 방식은 철저하게 이 둘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다(5b, 8, 13, 19, 23, 31절). 여섯째 날까지 계속되는 이러한 날짜 서술 방식 역시 낮과 밤의 구분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우주 창조의 첫째 날에 빛과 함께 창조되었음을 암시한다. 시간은 빛과 더불어 하나님의 맨 처음 창조물에 해당하는 셈이다15).
 아울러 빛과 시간의 창조는 이후에 이어질 다른 모든 창조-공간을 포함하는-의 시발점을 이루는 것이요, 엿새 동안 이루어지는 창조의 시간적인 연속을 가능케 하는 사건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3) 자연 안에 새겨진 시간

첫째 날에 창조된 시간은 넷째 날의 창조에 이르러 한층 구체화된다. 첫째 날(3-5절)이 낮과 밤의 가장 기본적인 시간 단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넷째 날(14-19절)은 낮과 밤뿐만 아니라 계절(seasons)과 날(days) 및 해(years) 등의 보다 큰 시간 단위들의 창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인지 넷째 날의 창조에 대한 설명은, 동물과 인간의 창조에 관해 설명하는 여섯째 날의 설명(여덟 절)을 제외하면, 엿새 동안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설명들 중에서 가장 긴 편(여섯 절)에 속한다. 저자가 보기에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해와 달의 기능을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까닭에1 내용 서술이 다른 날에 비해서 길다16).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에 이스라엘의 주변 세계인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해와 달과 별 등의 천체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신들로 폭넓게 숭배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세계의 한복판에 있던 이스라엘 역시 하늘의 일월성신(日月星辰)을 숭배하는 일에 있어서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신 4:19; 17:3; 왕하 17:16; 23:5; 렘 8:2; 9:13 등). 이 때문에 이스라엘의 규범적인 창조신학은 해와 달과 별 등의 천체가 하나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것들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부연하자면, 그것들은 단지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를 구분 짓는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바로 이 마지막 대목이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자연계의 일부로 창조된 천체가 첫째 날에 만들어진 시간을 구분하거나 반영하는 것들로 이해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이들 천체, 곧 광명체들(luminaries)에게는 몇 가지의 과제가 주어진다. 14-15절의 명령 진술에 의하면, 그 첫 번째 과제는 가장 기본적인 시간 단위인 낮과 밤을 구분하는 데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과제는 크고 작은 시간 단위들, 곧 계절-더 정확하게는 절기(cultic festivals)-과 날과 해를 나타내는 데 있었다. 시편 104:19는 달이 절기를 정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여호와께서 달로 절기를 정하심이여....” 마지막으로 궁창의 광명체들에게 주어진 세 번째 과제는 땅을 비추는 데 있었다(15절). 해가 낮에 지상 세계를 비춘다고 하면, 달과 별은 어두운 밤을 비추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던 것이다(참조: 렘 31:35).

그런데 16-18절의 행위 진술은 해와 달과 별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14-15절의 명령 진술에서 보는 것과는 구별되는 낱말들로 표현한다. 16절은 첫 번째 과제에 대해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해로 하여금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달로 하여금 밤을 주관하게 하셨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주관하다’로 번역된 낱말은 본래 히브리어로 ‘다스리다’ 또는 ‘통치하다’는 뜻을 가진 ‘마샬’ 동사를 가리킨다. 18절도 동일한 동사를 사용한다. 시편 136:8-9도 같은 동사를 사용하여 동일한 내용을 노래하고 있다:

낮을 다스릴 해를 지으신 분께 감사하여라....
밤을 다스릴 달과 별을 지으신 분께 감사하여라.

창세기 본문과 시편 136편의 이러한 내용들은 부분적이나마 해와 달에게 통치 기능이 수여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그것은 주변 세계의 종교에서 천체를 대표하는 자연 신들(nature gods)이 인간의 삶과 세계를 통치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해와 달에게 통치 기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완전한 의미에서의 통치, 곧 신적인 존재로서의 통치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완전한 통치 기능을 행사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피조물인 이들에게는 단지 제한된 기능-시간 구분을 위해 봉사하는 기능-만이 부여될 뿐이다. 그러한 기능을 통하여 해와 달과 별 등의 천체는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 질서의 한 부분이 된다17).  
창조 세계의 다양한 시간 구분은 노아 홍수 이야기의 결론 부분(창 8:20-22)에서도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구절인 22절은 홍수 이후에 새롭게 시작될 세계의 안정적인 지속을 시적인 언어로 표현하되, 자연계 안에 새겨진 네 가지의 시간 단위들을 소개한다. 이처럼 세계의 지속을 굳이 시간 단위를 빌어 표현한 것은, 아마도 시간의 일정한 반복과 되풀이야말로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세계의 안정적인 지속을 보증하는 가장 확실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땅이 있는 한,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이 본문에 언급된 네 가지 시간 쌍들(pairs) 중에서 처음 세 가지가 1년 주기로 반복되는 시간 단위를 가리킨다면, 마지막 네 번째인 낮과 밤은 하루 주기로 반복되는 시간 단위를 가리킨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해와 달이 이끌어 가는 낮과 밤의 순환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창조 세계의 호흡18)과도 같은 것이다. 1년 주기와 하루 주기에 기초한 이러한 시간 개념은 시계 시간을 알 턱이 없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시간 구분이 수확의 시기와 기온의 변화, 계절의 순환 및 낮과 밤의 반복 등과 같은 자연계의 리듬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자연 시간(natural time) 또는 생태계 시간19) 에 해당하는 셈이다. 아마도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모든 시간은 예외 없이 이러한 자연 시간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이 위의 본문에 반영된 시간 구분은, 창세기 1장이 소개하는 시간 구분과 마찬가지로, 고대 이스라엘이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 질서 안에서 시간 개념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그것은 그들이 자연계 안에 새겨진 시간을 크게 1년 주기와 하루 주기로 이해하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사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인간을 포함하는-의 삶은 1년과 하루라는 자연계의 기본적인 시간 리듬에 따라 유지된다. 이것은 시간의 순환성을 뜻하는 것으로서, 고대 이스라엘의 시간 개념이 시작과 끝(종말)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직선적인 시간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연 질서에 기초한 순환적인 시간관 역시 배척하지 않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20).


(주)
5) 오영환, 『화이트헤드와 인간의 시간경험』(서울: 통나무, 1999), 40.
6) 오늘날 과학자들은 1/10-15초인 펨토초를 사용한다: Jay Griffiths, 『시계 밖의 시간』, 박은주 옮김 (서울: 당대, 2002), 19.
7) “그러면 시간이란 무엇입니까? 누가 쉽게, 그리고 간략하게 그것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감히 그것을 잘 이해하여 그 대답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St. Augustine,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 성한용 옮김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0), 395.
8) Whitehead, The Concept of Nature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1920), 73; 오영환, 『화이트헤드와 인간의 시간경험』, 41에서 재인용.
9) Stephen Hawking, 『시간의 역사』, 현정준 옮김 (서울: 삼성출판사, 1988), 69-92, 175-213; 『호두껍질 속의 우주』, 김동광 옮김 (서울: 까치, 2001), 69-79.
10) Augustine,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 393-395.
11) Hawking, 『시간의 역사』, 32.
12) Jack Finegan, Handbook of Biblical Chronology: Principles of Time Reckoning in the Ancient World and Problems of Chronology in the Bible (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1999), 403-405; Stuart McCready 엮음, 『시간의 발견』, 남경태 옮김 (서울: 휴머니스트, 2002), 214, 220-222.
13) C. Westermann, 『창조』, 황종렬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1991), 66.
14)어둠도 시간 창조와 관련되는 것임에 틀림이 없지만, 4-5절은 어둠에 대한 언급 이전에 빛에 대한 긍정 평가를 서술함으로써, 빛이 어둠보다 우선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C. Westermann, Genesis 1-11: A Commentary, tr. John J. Scullion (Minneapolis: Augsburg Publishing House, 1984), 113.
15) 소광희, 『시간의 철학적 성찰』(서울: 문예출판사, 2001), 80.
16) 14-15절의 명령 진술(command-account)과 16-18절의 행위 진술(action-account)이 그에 해당한다: Westermann, Genesis 1-11, 127-129. 명령 진술의 14절은 행위 진술의 16절 및 18절과 일치하며, 15절은 17절과 일치한다.
17) Westermann, Genesis 1-11, 127; 『창세기 주석』, 강성열 옮김 (서울: 한들출판사, 1998), 31-32.
18) 왕대일, “생태계 안에서 오경 다시 읽기,” 『녹색의 눈으로 읽는 성서』, 22.
19) Griffiths, 『시계 밖의 시간』, 25-32; Wolfgang Achtner, Stefan Kunz & Thomas Walter, Dimensions of Time: The Structures of the Time of Humans, of the World, and of God, tr. Arthur H. Williams, Jr. (Grand Rapids: Eerdmans, 2002), 9.
20) Norman H. Snaith, “Time in the Old Testament,” in F. F. Bruce (ed.), Promise and Fulfilment (Edinburgh: T. & T. Clarke, 1979), 176-179; R. E. Murphy, “History, Eschatology, and the Old Testament,” Continuum 7 (1970), 583-593; Westermann, Genesis 1-11, 458.



출처 - 창조과학학술대회 논문집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597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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