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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기독교

미디어위원회
2004-12-06

성경과 환경

김정욱
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1. 창조질서에 대한 이해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로는 하나님이 이 땅을 창조하셨다고 떠들면서 땅을 대하는 태도는 전혀 딴판이다. 물, 공기, 흙이며 거기 사는 생물들 각각이 왜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그 이유나 가치를 연구하고 더 좋은 모습으로 가꿈으로서 인류의 생활을 보다 풍성하게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돈벌이하고 정욕적인 쾌락을 위해서 이용하기 위한 재료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비능률적이고 무가치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보다 더 가치있는 모습으로 변형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굽은 강을 곧게 하고, 습지에서는 물을 빼고, 마른 땅에는 물을 넣고, 살림을 풀밭으로 만들고, 바다를 땅으로 만들고 하는 등등의 대규모의 토목공사들을 벌이고는 인간의 위대함을 자랑해 왔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이러한 인간의 노력들이 많은 경우에 형편없는 실패에 지나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원래 있던 자연의 모습들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오묘한 섭리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과 같은 예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플로리다에서 굽이쳐 흐르는 키시미(Kissimee)강을 곧은 수로로 만들고 나니 강에 살던 많은 생물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강은 굽이쳐 흐르면서 물살이 빠른 곳 느린 곳, 깊은 곳 얇은 곳 등이 있어야 수초가 자랄 수 있는 곳, 물을 잘 정화시킬 수 있는 곳, 수중생물들이 알을 낳을 수 있는 곳, 새끼가 자랄 수 있는 곳 등이 있어서 물도 깨끗하고 다양한 생물들이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키시미강을 원래 모습대로 돌리고 있는데 직강화(直江化)할 때보다도 그 모습을 복원하는데 훨씬 더 많은 돈이 들고 있다. 이디오피아에서는 1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땅의 절반이 살림이었다. 그러나 그 삼림을 아무 짝에도 쓸데 없다고 생각하고는 목재도 팔고 목축도 하고 농사도 지어 꿩 먹고 알 먹겠다고 다 없애 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삼림이 3퍼센트 정도 밖에 안 남아있다. 나무를 없애고 나자 이 땅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온 땅이 가물어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참사가 벌어지게 되었다. 육지에는 나무가 있어야만 나무에서 증산(蒸散)된 수증기가 비가 되어 내리고 내린 비는 나무가 있어야만 땅에 저장이 되어 생태계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간척사업도 마찬가지이다. 밀물 때 잠기고 썰물 때 드러나는 간석지는 해일을 막아주고, 물을 정화시켜주고, 영양이 풍부한 퇴적물로 인하여 수많은 조간대(潮間帶) 생물들을 부양하기 때문에 해양생태계를 지탱하는 기본이 된다. 서해 바다 물고기의 90 퍼센트 정도가 간석지와 직,간접으로 이 갯벌과 연관되어 있다. 근래에 서해안의 건석지가 거의 사라지면서 해일의 빈도가 커져서 간척하느라고 쌓았던 많은 수산물을 값비싼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다. 간척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간척 이전에 생산되던 수산물에 비하면 그 수익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결국 엄청난 돈과 수고를 들인 끝에 얻는 이익보다는 잃는 손해가 훨씬 큰 것이다. 

결국 가만히 따져보면 하나님께서는 강이 필요한 곳에 강을, 바다가 필요한 곳에 바다를, 간석지가 필요한 곳에 간석지를, 땅이 필요한 곳에 땅을, 산림이 필요한 곳에 산림을, 풀밭이 필요한 곳에 풀밭을, 저수지가 필요한 곳에 저수지를 이미 다 주셨던 것이다. 자연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모든 것이 다 뚜렷한 목적이 있고 질서가 있고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억지로 뒤바꾸고 흐트러 놓는 것이 아니라, 그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북돋우어 주는데 있어야 한다. 자연이 그 원래의 기능을 전혀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변형을 가해서는 어리석은 결과 밖에 얻는 것이 없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연고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창조질서의 파괴 

지금 인류는 자연의 창조질서를 무시하고 무책임하게도 이 땅을 수많은 오염물질로 더럽히고 있다. 오염물질 중에서도 자연계에서 분해가 잘 되지 않는 농약이나 중금속과 같은 독성오염물질들은 두고두고 생물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 이들 독성오염물질들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내에서 생물체 사이를 순환하기 때문이다. 이들 오염물질들이 생태계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순환하면서 생물들에게 피해를 입히나 하는 것은 다음의 예들에서 잘 증명되고 있다. DDT는 2차대전 중에 발명된 살충제인데 모기와 같은 해충을 박멸하기 위하여 열대와 온대지방에 주로 뿌려졌다. 그런데 지금은 먹이순환법칙을 타고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서 DDT가 검출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세대가 다 죽고 없어진 다음에도 이 DDT는 지구상에 그대로 남아서 생물들에게 피해를 입힐 것으로 예상된다. 이 DDT가 바로 간암을 비롯한 여러가지 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 중의 하나이다. 통계조사에 의하면 DDT가 암환자에게서 정상인들보다 두 곱절 반 이상이 많이 검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DDT는 또 칼슘대사를 방해하기 때문에 많은 새들이 알껍질이 얇아져서 번식을 제대로 못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DDT는 플랑크톤의 광합성 능력을 떨어뜨리는데 오늘날 세계 각국의 연안의 생산성이 떨어진 것도 여기에 그 원인의 일부가 있을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먹이연쇄에 의한 독성물질의 순환이 얼마나 정확하나 하는 것은 일본에서 일어난 미나마타병이나 이타이이타이 병에 얽히 이야기를 보아도 명확히 드러난다. 산업폐수에서 미량 배출된 중금속이 바다로 나가서 희석되어 없어진 것이 아니라, 결국은 먹이연쇄를 타고 인체에 축적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인명을 빼앗아 가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미국에서 조사된 바에 의하면 독수리류의 알은 거의 60%가 부화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 알에서 검출되는 오염 물질들이 DDT며, PCB(polychlorinated bipheny)며, dioxin이며, 각종 농약과 중금속 들이다.

지금 인류는 단지 자연을 좀 변형시키고 오염시키는데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물들을 또한 죽여나가고 있다. UN의 조사에 의하면 앞으로 20년 내지 30년이 지나면 지구에 있는 생물 종의 1/4이 멸종하리라고 한다. 만약에 내가 성경 중에 디도서 같이 짧은 한 권 정도는 있으나 마나라고 생각해서 성경에서 영원히 찢어 없애려고 했다고 하자. 그러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떼를 지어 몰려 와서는 나를 사단으로 몰아 찢어 죽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 못지 않게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려주는 증거인 생물들이 떼죽음을 당하는데 대해서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눈도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그 존재를 나타내 보이시는 것이 아니라 그 피조물인 자연을 통해서도 알려 주고 계신다. 욥기에도 자연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알려주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자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가장 잘 드러내 보이는 것이 생물들이다. 인간이 똑똑해서 문명을 이룬 줄로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다 자연을 모방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생물들을 모방한 것이 많다. 비행기는 새, 잠수함은 물고기, 레이다는 박쥐, 컴퓨터는 두뇌를 모방한 것이다. 인간이 생물들을 아무리 잘 모방한다 해도 생물들 그 자체만큼 훌륭한 물건들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밥 떠 넣어주면 에너지가 나오는 기계, 나무 잎사귀 넣어주면 비단이 나오는 기계, 흙에 꽂아 두면 곡식이 나오는 기계 등등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가 병이 났을 때 병을 낫게 하는 약들도 대개는 생물들에서 나온다. 그리고 많은 생물들은 그 자체가 아름다워서 그것을 보는 것 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된다. 이 생물들이 바로 우리 생명의 기반이고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재료이고 생활의 지혜의 근원이다.

그러면서도 지금 인류는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명목하에 삼림이나 습지 같은 생물들의 가장 중요한 서식지들을 집중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영종도에 공항을 짓는 것도 바로 이러한 경제개발의 논리로 이루어진다. 영종도의 갯벌은 여름을 시베리아에서 보내고 동남아와 호주에서 겨울을 나는 수십만 마리의 철새들이 봄과 가을의 이동 중에 잠간 들르는 중간 경유지이다. 여기 갯벌에 사는 생물들을 먹이로 하여 계속되는 비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갯벌을 서해의 해양생태계를 지탱하는 기반이기도 하다. 영종도의 갯벌인 이런 생물들에게는 사활이 걸린 지역이지만 경제적인 논리로 주판을 튀기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주판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인다.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서 창조하신 생물들을 그것이 어떤 생물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다 죽여 없애 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약도 안주시고 우리에게 병을 허락했다고는 절대로 믿지 않는다. 지금 암이나 에이즈가 잘 치료되지 않는 것은 그 약을 만드는 생물들을 인간이 이미 다 멸종시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류는 또 많은 땅들을 황무한 사막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생태학적으로 농경지로 부적합한 곳을 무리하게 개간함으로 인하여 일년에 600만 ha의 농경지가 완전한 사막으로 변하고 있으며, 또 일년에 1100만 ha, 즉 남한만한 면적의 삼림이 무리하게 농경지로 개간되고 있는데 이의 대부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국 사막으로 변하고 만다. 지금 아프리카에서만도 수백만의 인구가 삼림을 농경지로, 농경지를 다시 사막으로 만들면서 여전히 새로운 농경지를 찾아 국경을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남미나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프리카에서 땅을 무리하게 혹사하면서 농사를 짓거나 목축을 하여 사막을 만들게 되는 동기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가난한 나라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자연을 희생하였다가 다시는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환경이 황폐해진 나라들도 많이 있다. 


3. 21세기의 환경문제 

이러한 환경문제는 머지 않은 장래에 인류에게 큰 재난으로 닥칠 것이다. 현재 50억의 인구가 다음 세기의 들어서서 80억 내지 140억에서 안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인류의 끊임없는 경제개발 노력에 힘입어 지구의 경제규모가 앞으로 2025년이면 다섯 배, 2050년이면 열 배는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경제규모가 열 배 커진다는 말은 생산이 열 배 커진다는 말과 같고 생산이 열 배 커지기 위해서는 인류가 지금과 꼭 같은 방식으로 산다면 에너지와 자원이 열 배 더 필요하고 환경파괴 행위도 열 배 더 커진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열 배나 더 커진 경제를 뒷받침할 많은 에너지와 자원이 이 지구상에 있느냐 할 것 같으면 한 마디로 말해서 '없다'. 이러한 경제는 대부분이 재생이 불가능한 에너지, 광물, 삼림, 흙, 바다 등으로부터 얻게 되는데 이러한 자원은 한정이 되어 있어서 언젠가는 거덜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 지구가 지금보다 열 배나 더 커진 환경파괴 행위를 감당할 수 있나 할 것 같으면 그것도 한마디로 말해서 '없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석유의 매장량은 지금대로 쓰면 앞으로 약 50년 정도 쓸 수가 있고 석탄은 200년 쓸 것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을 열 배 더 빨리 쓰면 50년이 5년, 200년이 20년 밖에 안된다. 에너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자원도 다 마찬가지이다. 모든 선진국들이 처음 산업을 일으켰을 때에는 자기나라에서 나는 자원으로 산업의 수요를 충족시켰지만, 지금은 선진국 치고 자기나라에서 나는 자원으로 자기나라 산업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나라가 없다. 모두가 후진국으로 부터 수입한 자원에 의존한다. 앞으로 몇십 년 지나고 산업화가 더욱 진전되면서 지금은 후진국으로 있는 중국이나 브라질 같은 나라가 자국의 산업에 충당하기 바빠서 더 이상 자원을 수출할 수 없다고 할 때, 그 때 지구 경제는 마비가 되고 말 것이다. 무한한 자원이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한 가지 자원이 모자랄 때마다 과학자들은 대체자원을 찾곤 하지만 대체자원이라는 것도 언젠가는 끝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무한한줄 알았던 물이나 흙까지도 유한하다는 것을 지금 우리는 절실히 깨닫고 있다.

열배나 더 커진 경제활동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환경문제도 인류의 앞날을 위협한다. 그 중의 하나가 지구의 온실화 현상이다. 산업화 이전에 대기중에 250 ppm이던 이산화탄소가 지금은 350 ppm으로 증가하였고, 이것이 다음 세기의 중엽 이후에는 배가할 것으로 예상이 된다. 그래서 다음 세기의 말까지는 더워진 기온으로 인하여 빙하가 녹아 지구의 해수면이 65cm 이상 상승하리라고 예측하고 있다. 만약에 지구에 매장되어 있는 석탄과 석유를 한꺼번에 다 태운다면 이산화탄소는 지금의 다섯 배로 늘어나리라고 예상된다. 이럴 경우에 지구의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만약에 이 때 지구의 빙하가 다 녹는다면 해수면은 60 내지 70m 상승하게 되어 지구 대부분의 인간의 주거지와 농경지가 바다에 잠기게 된다.

오존층의 파괴도 두드러진다. 지난 10여년간 남극 상공의 오존층은 절반이, 칠레 남부의 상공은 1/4이, 북반구 지역은 3% 정도가 얇아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최근에는 북극의 상공에서도 남극에서와 비슷한 파괴현상이 나타났다고 보고되고 있다. 오존층은 태양이나 외계에서 오는 강한 자외선이나 우주선, 감마선 등을 차단하여 생물들을 보호한다. 앞으로 오존을 파괴하는 원인 물질인 CFC(chloro-fluoro-carbon: 염화불화탄소)를 전혀 규제않고 나간다면 2020년이면 북반구의 오존층이 평균 15%정도 파괴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그 파괴는 고위도로 올라 갈수록 파괴의 정도가 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CFC를 더 이상 방출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미 대기중에 방출해 놓은 오염물질 만으로도 오존층은 상당량이 더 파괴될 것으로 예상된다. 산성비를 비롯한 환경오염으로 인하여 생태계가 광범위하게 피해를 입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지금 유럽과 북미에서 많은 삼림이 죽어가고 산성호수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대부분이 그 원인을 산성비에 돌리고 있다. 산성비는 극동지역에까지도 확장되었다. 앞으로 21세기에 이르러 남미와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지역까지도 경제개발이 확산되어 산성비의 영향을 받게 된다면, 지구상에서 온전하게 남을 생태계를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급속도로 사막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이 현상이 두드러진데 이로 인하여 해마다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다. 21세기에 이르러 지구의 경제규모가 열 배 커지고, 이에 따라 사막화의 속도도 열 배 커진다면, 그 때는 2, 3년이면 인도대륙, 4, 5년이면 중국대륙이나 미국대륙이 사막으로 변하게 된다. 지금도 육지의 거의 30%가 사막인데, 이런 속도라면 머지않은 장래에 지구상의 대부분의 땅들이 사막으로 변할 것이다.

앞으로 20년 내지 30년 안에 지구 생물종의 1/4이 멸종될 것이라고 추산이 되고 있는데, 21세기에 이르러 경제규모가 열 배 커지면서 생물의 멸종속도도 열 배 더 커져서 2, 3년마다 1/4씩 멸종해 간다면 지구 생태계는 안정을 찾지 못하고 금방 파멸되고 말 것이다. 

 

4. 교회의 사명 

인류가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살아가기를 고집한다면 머지 않은 장래에 인류가 자멸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렇기 때문에 21세기에 이르러 인류의 최대 과제는 환경문제를 해결하는데 촛점이 모아질 것이다. 환경위기에서 헤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현대의 물질 문명시대에 이르러 인간은 자연을 정복해서 길들이고 이용하기위하여 열심히 노력해왔다. 그리하여 자연에 가한 대규모의 파괴가 곧 인간의 승리인 것으로 인식하여 왔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린 대규모의 자연파괴 혹은 변형행위는 인간의 승리가 아니라 오히려 대규모의 재앙으로 나타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싸워 이기는 행위를 미덕으로 기려 왔으나, 인간은 결코 자연을 거스려 싸워서는 이길 수가 없다. 자연법칙에 순응해서 자연을 지키고 가꾸며 살아야 한다. 성경에는 분명히 에덴동산을 '가꾸고 지키도록 (to dress and to keep)' 사람을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 2:15). 인간이 이 땅을 마음대로 오염시키고 파괴하고 생물들을 죽여도 된다는 당위성은 성경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다.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이 땅을 가꾸며 살아야 한다.

현실을 볼 때에 우리는 이 땅의 종말이 나날이 나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에게는 큰 소망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어디에 만드실 예정인지 잘 모른다. 이 우주가 아닌 다른 곳인지, 아니면 이 우주 어디에 있는 다른 곳인지, 아니면 이 우주 어디에 있는 다른 별이 될런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혹은 이 땅을 다시 회복시켜서 만드실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 때에 교회는 이 땅을 회복시키는 일에 하나님의 충성된 동역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이 땅을 회복시킨다는 각오로 열심히 이 땅을 지키고 가꾸어야 한다. 교회가 이 땅도 간수를 못한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인들 어떻게 간수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이 땅의 많은 기독인들은 큰 착각들을 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만 열심히 일하면 할 일을 다 한 줄 생각하는데 그것은 큰 의미가 없다. 바깥 세상을 향하여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사람들을 전도하고 구제하고 사랑하는 것만이 세상을 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큰 착각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신 '세상'은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다. 예수님께서도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다.(막 16:15, 롬 8:21, 골 1:23). 이 땅이 오염되고 그 안에 피조물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천만이나 되는 기독인들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피조물들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해야 참다운 기독인이라고 할 수 있다. 피조물들에게 진정 기쁜 소식은 인간의 죄악으로 고통받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도록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출처 - 창조지, 제 105호 [1997. 11~12]

Michael Oard
2004-09-09

영화 '투모로우'의 지구 온난화에 대한 과대선전

(The Greenhouse Warming Hype of the Movie the Day after Tomorrow)

Michael Oard


     심각한 주제를 다룬 대재앙의 영화로 선전되어지고 있는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는 엄청난 속도의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1-3 지구 온난화는 극지방에서 일하는 한 팀의 과학자들 발아래 있는 남극 빙하의 붕괴로부터 시작되어진다. 연쇄반응과 같은 결과로, 빙하의 붕괴로 인하여 30m 높이의 쯔나미(tsunami; 해일의 일종)가 맨하탄을 뒤덮고, 곧이어 도시는 얼음으로 동결되어 버린다. 슈퍼 토네이도(super-tornadoes)는 로스앤젤레스를 파괴하고, 커다란 우박은 도쿄에 있는 사람들을 두들기며, 뉴델리는 눈 속에 파묻힌다. 3개의 거대한 허리케인과 같은 폭풍이 북반구를 뒤덮는다. 온도는 초당 18°F로 급강하하여 사람들을 완전히 얼려버린다. 지구 온난화는 순식간에 지구를 얼게 하여 다음 번 빙하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빙상들은 너무나 빨리 이동해서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가 없다. 미국 북부에 있는 사람들은 얼음 속에 파묻혀 버리며, 남부에 사는 사람들은 정치적 역할의 역전이 일어나, 모든 라틴 아메리카의 부채 탕감을 조건으로 추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멕시코에 난민 보호를 요청한다. 이 영화에는 부시에 반대하는 강한 정치적 편향이 들어있다.

이 영화는 최근에 발간된 ‘다가오는 대폭풍(The Coming Global Super-storm)’ 이라는 책을 상기시키는데, 그 책에서 빙하기가 펼쳐지는 것은 불과 며칠만의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책의 저자들은 빙하기 동안에 시베리아에 털이 많은 매머드가 있었다는 것에서 특히 영감을 얻었다.

지구 온난화가 빙하기를 유발했을 것이라는 생각의 기반은 무엇인가? 빙하기에 관해서는 족히 60가지가 넘는 이론이 있다. 거기에 한 가지, 즉 지구 온난화를 덧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강우를 유발시키고, 빙상을 녹여서 북대서양에 어마어마한 양의 담수를 보내게 되며, 멕시코 만류(Gulf Stream)와 온난 해류를 멈추게 한다. 인근 대륙들은 냉각되면서 전 세계에 빙하기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왜 이 영화를 추천하는가?


많은 과학자들은 처음에 그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가, 그 선전 가치에 열중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가 일반인들의 비이성적인 두려움을 가차 없이 이용한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영국에서 화요일에 있었던 영화 시사회(pre-release screening)에서 영화 홍보원들은 이 영화는 물리 법칙을 무시한 순전히 꾸며낸 이야기(fiction)이고, 지구 온난화가 벌써 일어나있기 때문에 그 영향력과는 어떠한 관계도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지구 온난화의 위험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영화는 환경론자, 과학자, 그리고 심지어 전 부통령 알 고어(Al Gore)와 같은 일부 정치가에 의해 과대선전이 되고 있다. 월러스 브뢰컬(Wallace Broecker)은 지구 온난화의 무시무시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그린란드 얼음에 보존된 기록을 통하여, 지구 기후계의 교란적인 특성, 즉 매우 다른 상태로 갑자기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밝혀졌다. 나는 온실 가스의 계속적인 축적이 이러한 대양의 재편성을 촉발할 수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연계된 커다란 대기의 변화를 유발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교란적 (disturbing)‘ 이라고 했다. 지구의 인구가 110억 내지 160억이 될 때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광범위한 기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6

많은 인기 작가들이 그러한 온실효과로 인한 빙하기의 공포를 퍼뜨리고 있다. 산불, 가뭄, 홍수, 허리케인, 그리고 심지어 강한 눈보라가 일어나면 지구 온난화 탓으로 돌리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윌리암 캘빈(William Calvin, 1998, p.47)은 월간 대서양(Atlantic Monthly)에서 다음과 같이 겁을 주고 있다. ”그러나 온난화는 역설적으로 급격한 냉각을 유발하여 문명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대격변을 일으킬 수도 있다” 7 뉴욕커(New Yorker) 지의 엘리자베스 콜버트(Elizabeth Kolbert)도 덩달아서 문명의 종말에 대하여 똑같이 무시무시한 경고를 하고 있다.8 일부 사람들은 그 기후 변화는 지구상의 95% 이상의 종을 쓸어버린, 가장 최악의 멸종으로 여겨지는 ‘페름기(Permian)’의 멸종과 같을 것이라고 협박한다. 일부는 심지어 이 멸종이 지구 온난화로부터 유발되었으며, 장래의 격변적인 온난화에 대비하여 어떤 일들을 시행하기에는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9 지구 온난화의 일부 옹호론자들은 지금 바로 행동해야만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은 그 영화와 같은 일이 미래에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 속도는 수십 년이라는 느린 과정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10 그렇더라도, 빙하기라는 것에 대해서 수십 년은 격변적인 속도이다. 기후학자(Climatologist)들은 최근에 기후가 빙하기와 간빙기 형태 사이에서 갑자기 바뀔 수 있다는 그들의 생각에 있어서 패러다임의 변동(paradigm shift)을 겪었다. 이러한 생각의 변동을 일으킨 것은 새로운 GISP2와 GRIP 그린란드 얼음 코어 내의 산소 동위원소에 있어서의 돌연한 변화이다.9

다른 과학자들은 전체 줄거리는 믿지 않지만, 돌연한 기후 변화는 그래도 수용하고 있다. 그들은 인공적인 CO2가 대양을 따뜻하게 해서 바닥으로부터 메탄 수화물(methane hydrates)의 방출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5,10 대기로 방출된 또 다른 온실 가스인 메탄은 격변적인 온난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온실 공포에 대해 어떤 근거가 있는가?

나는 지구 온난화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옹호자들은, 북극해의 얼음이 얇아지고 있는 것, 세계적으로 빙하가 후퇴하고 있다는 것, 최근 수십 년 동안 미시간 호에 호수 얼음이 줄어든 것 등과 같이 그것을 뒷받침하는 많은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모든 회의론자들도 온난화가 이미 발생해오고 있다는것을 인정하고 있다. 주된 의문점들은 다음과 같다: (1) 장래의 온난화 규모는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 그리고 (2) 그것은 유해할 것인가?

옹호자들이 그런 주장을 하게 된 동기는 그린란드 얼음 코어 내의 기후 변화가 급격하다는 증거뿐만 아니라, 2100년까지 CO2가 두 배가 되어 2-6 °F의 지구 온난화가 예상되는 대기 모델의 탓도 있다. 바로 최근에 과학자들은 명확한 피드백 메커니즘 때문에 온난화 되어지는 최대 온도 상승치를 10°F로 증가시켰다.11

그러나, 최근에 대기는 자연적으로 CO2 실험을 진행해 오고 있다. 산업혁명 이래로 대기권 내의 CO양은 약 30% 정도 증가했다. 다른 온실 가스, 특히 메탄은 CO2보다 30%나 더 많이 증가했다.12 따라서 본질적으로 CO2가 60% 정도 증가한 것이 되지만, 인정된 온난화의 정도는 단지 약 1°F 에 불과하였다. 이런 온도 변화의 어떤 퍼센트는 장기간의 온도 측정에서 나타나는 시스템 자체의 편차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게다가, 어떤 과학자들은 온난화의 일부 원인이 1800년대 후기에 끝난 소빙하기(Little Ice Age) 말엽 이래로 태양복사에너지가 약간 더 많아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13 따라서, 실제 온실 효과는 약 0.5°F 정도 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자연에서 일어나는 실제 상황과 비교할 때, 그 모델들은 CO2 증가에 너무나 지나치게 민감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옹호자들은 온도가 예상 외로 느리게 상승하는 이유가, 같은 기간 동안 대기 내의 황산염의 증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두 번째로 언급할 문제는 따뜻한 기후가 유해할 것인가이다. 많은 기후학자들은 따뜻한 기후가 더 많은 강수를 초래할 것이고, 증가된 CO2는 식물의 성장을 증가시켜서 결국 CO2의 증가를 늦추거나 멈출 것이라고 주장한다.14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러한 이점이 금방 끝나버릴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또 다른 연구 과제이다.


그린란드 코어는 정말로 갑작스런 기후 변화를 보여주는가?

온실 공포의 대부분은 GISP2와 GRIP 코어 내에서의 빠른 변화에 대한 진화론적, 혹은 동일과정적 해석의 결과이다. 산소 동위원소에 있어서 그런 갑작스런 변화는 코어의 빙하기 시기 내내, 그리고 심지어 마지막에 기후가 온난했을 때에도 나타난다. 빙하기 말의 낮은 온도 지점(cold spike)을 젊은 드라이어스(Younger Dryas)라 한다. 이들의 빠른 변화는 약 1,000년 동안 지속되는 변화를 20, 30년 미만 이내에 일으키는 갑작스런 변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 천년 규모의 사건들은 꽤 커다란 기후 편차를 나타낸다 - 중부 그린란드에서는 약 20°C[38°F]의 편차..... 그 사건들은 종종 급격하게 시작하거나 급격하게 끝난다. 대부분의 빙하기-간빙기 차이와 같은 변화는 대개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난다. 그리고 대기 순환 양상의 변화에 더 민감한 어떤 것들은 1-3년처럼 짧은 시간 내에 변한다.” 15

따라서, 최근의 지구 온난화의 공포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은 얼음 코어에 적용된 진화론적, 혹은 동일과정적 패러다임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대신 우리는 그린란드 얼음 코어에 대해 성경적 지구역사를 적용할 수도 있으며, 그러한 산소 동위원소 내의 빠른 변화는 한번의 빠른 빙하기 동안 추위와 더위가 반복된 것을 나타낼 수도 있음을 알고 있다.16,17 그렇지 않았다면, 그린란드 코어는 빙하기 이래로 기후가 대개 안정된 상태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홍수가 빙하기를 초래했기 때문에, 미래의 빙하기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기독교인들은 온난화의 공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성경은 우리가 지구의 청지기(stewards)라고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구를 돌보아야만 한다. 따라서 온실 효과에 의한 지구 온난화는 중요한 이슈이다. 환경 문제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도록 사명을 받은 사람들은 여기에 관여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들은 급진적인 환경주의자들의 모든 과대 선전과 유도된 공격의 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온실효과에 회의적인 대기 과학자들은 그들의 주장은 에너지 회사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논쟁하는 양측으로부터 증거를 다 들은 후에 균형 있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가능하다면 해석이 필요 없는 실제 데이터들을 많이 모을 필요도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실제적인 제안들을 수행함으로써 잠재적인 문제들을 해결해갈 수 있을 것이다.



References

1. Controversial disaster film casts spotlight on global warming, May 4, 2004, Environmental News Network

2. Scientists warm to climate flick, despite bad science, May 5, 2004, The Associated Press

3. Brown, P., T. Radford, and J. Vidal, May 13, 2004, Never mind the weather overkill: Scientists praise Hollywood's global warning, The Guardian

4. Bell, A. and W. Strieber, 2000. The Coming Global Superstorm, Pocket Books, New York.

5. Callus, A., May 12, 2004, Climate change gets a Hollywood makeover, Reuters

6. Broecker, W. S., 1997. Thermohaline circulation, the Achilles heel of our climate system: Will man-made CO2

 upset the current balance? Science 278, p. 1,588.

7. Calvin, W. H., 1998. The great climate flip-flop. Atlantic Monthly 281 (1): p. 47.

8. Kolbert, E., 2002. Ice memory: Does a glacier hold the secret of how civilization began—and how it may end? New Yorker January 7, pp. 30-37.

9. Lynas, M., May 17, 2004, NS Essay—global warming: is it already too late? New Statesman

10. Disaster flick exaggerates speed of ice age, May 13, 2004

11. Sisson, T. W., J. W. Vallance, and P. T. Pringle, 2001. IPCC report cautiously warns of potentially dramatic climate change impacts. EOS 82 (9), p. 113, 114, 120.

12. Michaels, P. J. and R. C. Balling, Jr., 2000. The Satanic Gases: Clearing the Air about Global Warming, CATO Institute, Washington, D.C., p. 31.

13. Lean, J., J. Beer, and R. Bradley, 1995. Reconstruction of solar irradiance since 1610: Implications for climate change. Geophysical Research Letters 22 (23):3,195-3,198.

14. Report: global warming not so bad, May 13, 2004. Search CNN.com

15. Hammer, C., P. A. Mayewski, D. Peel, and M. Stuiver, 1997. Preface. Journal of Geophysical Research 102 (C12): p. 26,315.

16. Oard, M. J., 2003. Are polar ice sheets only 4500 years old? Impact #361,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El Cajon, California.

17. Oard, M. J., 2002. Wild ice-core interpretations by uniformitarian scientists. TJ 16 (1):45-47.


* Michael Oard has a Master's of Science Degree in Atmospheric Science

 

 *참조 : Global Warming in Perspective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3/n4/global-warming

 

God’s global warming worked just fine : Evidence from the pre-Flood world suggests that we need not fear global warming from carbon dioxide
http://creation.com/global-warming-facts-and-myths



번역 - 한국창조과학회 대구지부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73.htm

출처 - ICR, Impact No. 373, July 2004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199

참고 : 3918|6027|5885|5785|5412|4981|4757

손기철
2004-01-14

유전자변형 농산물


      21세기의 삶을 맞이한 오늘날,우리에게 있어 가장 우려되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면, 이는 '환경오염 및 파괴'와 '녹색혁명의 종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모두 식물과 관련되어져 있는데,식물은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 에너지 제공처일 뿐만 아니라, 생명체의 건강유지 및 적절한 생존환경을 만드는데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창 2:8).

오늘날 인류가 60억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60년대 초부터 시작된 녹색혁명의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녹색혁명은 주로 전통적 육종기술의 발달,비료와 농약의 개발,그리고 농업기술의 신개발이 주축을 이루었다. 그동안 이러한 녹색혁명은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지만,이제는 그 반대급부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즉 생산지향적인 농업기술의 발달은 다양한 연유로 인해 환경문제를 초래해,토양의 중독성 및 토질악화,물 부족,환경파괴 등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재는 분명한 '녹색혁명의 한계성'이 예고되고 있다.

한편,최근 들어 분자생물학의 발전은 인간의 건강 및 질병치료 뿐만 아니라, 농업분야의 '녹색 바이오테크 혁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인류의 식량난을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그 서막은 오른 셈이다. 신문지상이나 TV 뉴스 시간을 통해서 심심찮게 유전자변형 농산물의 안정성에 대한 논란을 접하게 되는데,사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유전자변형 옥수수나 콩을 수입해서 먹고 있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라는 것이 바로 유전자변형 농산물을 일컫는 것으로,특별한 형질을 나타내는 DNA 유전자를 목적식물에 유전자조작을 통해 첨가시킴으로 그 특별한 형질이 발현된 식물을 말한다. 이 새로운 유전자조작 기술을 사용하면,앞으로 병충해 및 제초제 저항성,고품질성,고저장성,잡종식물 등 새로운 식물의 생산에 획기적인 발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GMO는 단지 과학기술 발전의 승리로만 치부되어질 것이 아니라, 환경생태 변화와 사회,경제적인 문제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그 미래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실정이다.

특히나,GMO는 인체에 직접적으로 독성물질 및 발암생성 및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시킬 수 있으며, 또한 환경에 방출될 경우  

1) 병해충이나 잡초화 가능성,

2) 야생 및 근연종과의 교잡과 유전자 전이,

3) 다른 생물체로의 전이 가능성,

4) 비목표 생물체에 대한 영향,

5) 생물 다양성에 대한 영향 등은 단순히 실험실에서 검증될 수 없고, 자연에서 상당한 세월이 거친 다음에 발현되기 때문에 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재의 상황은 2차세계대전 때 원자폭탄의 개발과 똑같은 경우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삶의 윤리적 측면과 신학적인 측면을 도외시하고 과학기술만이 최고의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믿는 일단의 과학자 태도와 과학이 아닌 신격화된 '과학주의'에 대한 맹종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성장제일주의'와 '국가경쟁력'을 위한 지식이 아니 라, 그것을 활용하는 지혜이다. 인간의 죄악성은 끝이 없다(창 6:5). '선악과'도 부족해서 이제 '생명과(生命果)'까지 도전하고 있는 셈이다 (창 2:9).



출처 - 기독공보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523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3-10-02

환경문제의 성경적 이해

강준원

전 연세대 환경공학부 교수


     우리는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영적인 눈과, 구속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창조주께 피조세계의 회복을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경적 원칙에 근거한 하나님의 법으로 피조세계를 다스려 나가야 할 것이다.

  

1. 머리말

현 시대에서 인류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환경오염이다.  '목타는 지구 : 물, 이제는 물 쓰듯 못쓴다.' '누가 시화호를 책임져야 하는가?' '당신은 동강을 아는가?' '성서소각장 다이옥신 배출 위험 수위!' '낙동강 취수원에서 검출된 환경호르몬 비스페놀 A! 모유에서 발암성 환경호르몬 검출!' 등은 최근 신문지상에 보도되었던 환경관련 뉴스들의 제목이다. 이 제목들이 말해 주듯이 환경문제는 우리의 생활을 여러 면에서 위협하고 있다. 이제 21세기는 환경문제가 핫 이슈(Hot Issue)로 등장할 '환경의 세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여러 분야에서 다각도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좀더 나은 과학이나 좀더 나은 기술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현재의 생태위기에서 구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성경을 통하여 나타난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세계, 환경문제의 실태와 현 접근방법의 한계점, 성경적 원리에 의한 대책 방안을 생각해 본다.

 

2. 하나님의 창조세계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옛 지구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31)",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은 외치며(시 96:11)", "하늘의 하늘도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찬양할지어다(시편 148:4)"와 같이 "좋았더라, 기뻐하라, 찬양하라"로 표현되는 참 아름다운 지구 생태계였다.  

시편 104편을 보면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수레를 삼으시고... 땅의 기초를 두사...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들의 각 짐승에게 마시우시니... 공중의 새들이 그 가에서 깃들이며... 땅에서는 식물이 나게 하시고... 나무가 우택에 흡족함이여... 높은 산들은 산양을 위함이여 바위는 너구리의 피난처로다... 젊은 사자가 그 잡을 것을 쫓아 부르짖으며... 사람은 나와서 노동하며... 크고 넒은 바다가 있고... 대소 동물이 무수하나이다...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 즉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시편 104편)" 라고 되어 있다. 

지구의 기본 생태계가 하늘, 땅, 바다/물로 구성되어 있고 다양한 생물 종으로 충만하며, 녹색식물이 땅에서 자라 생산자의 역할을 하고[1], 소비자는 먹이 사슬을 통하여 생명을 유지하고[2], 동식물의 사체는 토양 속에 있는 분해자에 의해 영양물질로 바뀌어 되돌아가며 순환하게 되는[3], 정교하며 균형 있는 생태계의 순환 법칙이 이미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이 세심한 창조주의 설계에 시편기자는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시 104:24)"라고 경외하였다.  

 

3. 환경문제의 실태와 접근 방법의 한계

오늘날 지구 생태계는 그 아름다웠던 모습을 잃고 점점 황폐화되어가고 있다. 인류는 자연과의 친화적인 관계를 유지하여 왔으나, 18세기 산업혁명 이래, 생산성 제고를 위한 국제적 경쟁 속에서 자연은 마구 파괴되고 훼손되었다. "자연을 정복하라"는 말을 인간 편의 위주로 해석하여, 인간과 자연은 대립과 주종관계로 변하였고 인간은 오만불손해졌다. 이제 우리는 자연으로부터의 도전과 반격에 직면하게 되어, 범 지구적 차원에서의 환경파괴가 우리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인간은 창조주가 설계하신 정상적인 순환사이클에 제동을 걸어 지구 생태계에 스트레스와 불균형을 초래하였다. 월드워치 보고서는 최근 연례보고서를 통하여 다가오는 21세기를 맞이하여 환경변화에 대처하지 못할 경우 세계경제가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고 뒤늦게 경고했다.[4] 21세기에 인류는 첨단과학의 발달로 일부 특권층에 편리함을 줄 수는 있으나, 60억에 이르는 인간에게 어떻게 맑은 물을 공급할지, 하루에도 수백 종 감소하는 생물의 멸종을 어떻게 감소시킬 수 있을지, 생태계 유지에 필요한 기본 에너지를 어떻게 공급할 수 있을지 아직 대책이 없다.  
 

이렇게 환경오염이 급속도로 가속화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이 피조세계는 인간만을 위한 끝없는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에는 분명한 물리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 현상은 엔트로피(entropy)증가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5] 우리는 살아가기 위하여 한정된 에너지 자원 중 한 형태의 에너지를 다른 형태로 변환시켜야 하는데(예 : 열이 운동에너지로 바뀌는 과정에서 손실된 에너지), 이 과정에서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고 사용 가능한 에너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한다. 또, 이 법칙은 한 곳에 질서를 창출하고자 하면, 다른 한곳에 더 큰 무질서를 낳는다는 충격적인 법칙이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무한한 발전은 비례적으로 엔트로피의 무한한 증가를 초래한다. 우리는 산업의 발달과 기계화로 인한 대량  생산과정에서 더 많은 엔트로피를 증대시킨다. 예컨대, 도시라는 시스템을 보면 생산활동에서 식료, 에너지, 재료 등과 저(低) 엔트로피 자원인 물, 공기 등을 원료로 한 산업활동결과 쓰레기, 폐수, 배출가스 등의 흔적을 남기게 된다. 이 결과 고(高) 엔트로피 부산물이 남게 되는데  부산물이 바로 환경공해이다.[6]) 우리가 자원과 에너지를 100% 재사용 할 수 있다면  엔트로피의 발생이 없는 상태가 되는데 이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하다. 폐기물 재활용 체계만 보더라도 폐자원을 재수집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에너지를 필요로 하여 반드시 여분의 엔트로피를 남겨놓게 된다. 한번 지나간 시간을 되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한번 생성된 엔트로피는 외부의 개입이 없이는 절대로 낮출 수 없다. 우리는 시간의 화살인 엔트로피가 한없이 증가하는 것을 바라만 볼 수가 없다. 우리의 노력과 지혜로 한없이 증가하는 엔트로피의 증가속도를 늦추어야 할 의무가 있다. 자연을 이용만 할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얻은 물질을 자체의 순환고리에서 청결히 보존하고, 그렇게 이용한 자연을 무해한 방식으로 다시 되돌려줘야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엔트로피 법칙은 우리에게 새로운 에너지 이용기술(예 : 청정에너지 이용기술, 대체에너지 개발)과 자원 절약 및 재이용 등 삶의 양식을 새로이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환경파괴로 연결되는 일부계층의 소비주의 문화의 확산이다. 소비는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상징의 하나이다. 192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소비주의는 급속도로 개발도상국까지 퍼져가고 있고, 최근 일회용 경제를 특성으로 한 소비주의는 지구 생태계를 더욱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으며 지구 경제 역시 지구 생물권에 비해 지나치게 거대화되고 있다. 현재 전세계인구의 5%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지구의 한편에서 전세계 자원의 1/3을 소비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식량부족으로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전세계 소비사회를 밑받침하고 있는 경제주체들은 인류가 지구자원에 가한 피해에 가장 큰 몫의 책임이 있다. 예를 들어 온실효과의 주범인 탄산가스 배출량의 2/3가 소비계층의 화석연료 사용으로 배출되고 있다. 또한 산성비를 일으키는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 전체 배출량의 3/4이 산업국가들의 연료사용으로 배출된다.[7] 우리 나라도 이러한 소비사회에 편입하기 위하여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IMF극복을 위한 경제회복책으로 건전한 소비를 권장했던 것도 잠시, 이제는 소비문화가 다시 빠른 속도로 급상승하여 주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구 생태계가 앞으로 살아남으려면 소비사회는 자원의 사용을 극적으로 줄이고, 부분적으로는 내구성 상품으로 전환하여 자원의 투입량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정부는 또한 소비를 부추기고 있는 현재의 세금 및 보조금 정책을 개선하고 상품가격에 환경비용을 충분히 반영하여야 한다. 지구 환경의 미래는 어떻게 소비사회를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검약과 절제의 정신, 가족과 지역과 국가간의 공동체의 소중함과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비물질적인 목표로 전환하는 가치의 변화가 요구된다. 세계 소비계층의 대다수는 우리 기독교인인데 "만약 사람이 전세계를 얻고도 영혼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마 19:23-24)"라는 성경말씀에서 중요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셋째, 도시화 정책으로 인한 환경파괴이다. 산업혁명은 대량생산을 추구하였고 도시화로 이어졌다. 우리 나라에서도 도시화, 거대화, 대량화로 물자가 한 곳으로 집중됨으로써 환경파괴가 가속화되었다. 과거 50년 동안 국민 총 생산량(GNP)은 40배, 자동차는 100배로 증가하였고, 농촌인구는 80%에서 10%로 줄어들었다.[8]) 도시화가 이루어지기 위한 필수 조건 중 하나는 수자원확보인데, 현재 우리 나라의 물 소비량을 보면 물의 양은 빈국이나, 물 소비는 선진국을 능가하고 있다. 물 소비량이 1인당 하루 398리터로, 독일(175리터)의 두 배가 넘고, 영국(279리터)을 포함하여 선진국보다 훨씬 많은 물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9 ) 정부는 물 절약을 유도하기보다는 과대하게 책정된 1인당 물 수요량으로 용수공급계획을 수립하고자 하였으니, 생태계의 파괴를 무릅쓰고 무리하게 동강 댐을 건설하여야한다는 계산은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다.


넷째, 기존 환경운동의 방향이 인간위주의 환경운동이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만 해도 환경단체는 무수히 많다고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단체가 지금까지 인간만을 위한 환경운동을 추진하여왔다. 기존의 환경윤리를 부르짖고 있는 기존의 시민단체는 환경오염의 주원인이 경제발전, 물질만능주의(돈), 자본주의 사상이라고 하여 시민운동차원에서 도덕, 양심, 윤리의 회복이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역설적으로 환경보존을 금전적 가치의 차원에서 강조하며 경제적 가치로 재평가하고자 하였다.[10] 이러한 사고방식은 환경을 경제적 가치로 생각하는 인간중심의 이기주의이다. 그러나 가치를 위한 보존은 결국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며, 보존을 위한 절약은 인간을 탐욕의 노예로 만들게 된다. 기존 환경운동 단체는, 환경 보존은 수단이 아닌 하나의 목표이며, 단순한 경제적 논리에서의 접근으로는 환경의 진정한 보존과 회복이 불가능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4. 성경적 원리에 의한 대책 방안

위에 언급한 환경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성경적 대책방안을 제안해 본다.

첫째, 세속적 환경주의와 차별화된 진정한 회개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회개하는 그리스도인 : 환경오염의 근본원인은 아담의 불순종(창 3:17-19)으로 시작되었지만, 인간의 율법에 순종치 않은 죄악이 인간과 피조물의 관계를 더욱 분리시켰다(호 4:1-3). 우리는 이 세상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인정하고 우리가 이 피조물에 대하여 저지른 불순종과 도덕적 율법의 죄를 인정하고 철저한 회개를 통하여 '동산을 돌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세속적 환경주의자와 그리스도인 환경주의자의 차이이다.  이 회개운동은 개인으로부터 가정, 사회, 정부/국가로 확산되어야 한다.   

회개하는 정책 : 지난 역사가 경제와 경쟁 중심이었다면 이제 우리정부는 지난날의 오류에 대하여 회개하고, 인간과 자연이 화합하고 공조할 수 있는 정책 수립, 즉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ESSD: Environmentally Sound & Sustainable Development)을 통하여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공존할 수 있는 환경복지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자연과 인간의 공생관계, 환경 친화적 생산과 소비를 통한 순환형 사회 구축, 지구 환경보호를 위한 국제사회에의 적극적인 참여 및 파트너쉽 구축 등 정부, 기업, 국민의 삼위 일체적인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회개하는 과학 : 우리의 과학은 새로운 물질을 계속 만들어내고 파괴하는 과학이 아니라, 진정 회개하는 과학이 되어야 하고 또 그런 과학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유행을 따라 '더 앞선' 과학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창조세계를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한 과학을 회복시켜야 한다. 또, 현대의 과학교육은 너무 세분화되어 고립되어 각 분야 간의 연결이 없고 다른 영역의 과학을 볼 수 있는 시각이 결여되어 있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모든 학문은 성경과 공동 대응이 있어야 한다. 과학에는 분명히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놀라운 설계와 규칙성, 그리고 오묘한 법칙이 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의 말씀처럼 성경에는 분명히 어떻게 우리가 피조세계를 돌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원리가 숨어 있다.     


둘째, 진정한 피조세계와의 공동체 구현이다. '예수원'이라는, 진정한 공동체 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공동체가 있는데, 이 곳은 비교적 넒은 공간사용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레 25:23)"라는 철저한 하나님의 법을 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개인에게 부여된 최소한의 공간, 수련원에 머무는 동안 가능한 샤워는 자제하고 꼭 필요한 부분에만 물을 사용토록 정한 규칙, 수세식 화장시설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소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여 물을 절약함으로 검약정신을 습관화하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희생정신 등으로 이 곳은 생태학적 책임의 본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우리는 인구증가만을 환경파괴의 주범인 것처럼 내세우고 있지만, 이렇게 신앙에 기초한 피조세계와의 진정한 '나눔(koinonia)'이 있다면, 아직은 온 세계인구가 나누어 쓰기에 현재의 한정된 자원과 물자는 충분하다고 본다. 또한, 현재의 환경 운동이, 인간위주의 세속적인 환경운동으로부터, 이 세상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인정하고 피조세계와 인간의 진정한 나눔을 실현하는 생태계 중심의 환경운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환경교육을 실시하고 전문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청지기를 훈련시켜 배출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셋째, 믿음으로 창조세계의 회복을 고대하는 신앙과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영적 안목이 있어야 한다. 가나안 농군학교 설립자인 고(故) 김용기 장로는 환경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지 않았던 1976년에 장래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예측하여 다음과 같은 복민회가를 작사한 바 있다.  

      물질문명 과학만능 치솟는 자랑

      검은연기 푸른불길 말세의 증상

      이기주의 사랑의 적 탐욕과 증오

      근로봉사 희생으로 싸워 이기세           

우리는 이와 같이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영적인 눈과, 구속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창조주께 피조세계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믿음 -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롬 8:19)" - 을 가지고 성경적 원칙에 근거한 하나님의 법으로 피조세계를 다스려 나아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엽록소를 가지고 있는 모든 녹색식물을 생산자라하며 다른 모든 생물체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공기중 이산화탄소와 물을 이용하여 광합성작용으로 유기물질을 생산하기 때문에 생산자고 한다.

2) 생산자를 직접 또는 간접적인 먹이로 하는 생물체는 소비자이다. 생산자를 먹이로 하는 초식동물은 1차 소비자이고 1차 소비자를 먹이로 하는 생물체는 2차 소비자이다. 2차 이상의 소비자들은 육식동물이다.

3)  생태계내의 죽은 많은 생물들 (죽은 나무가지, 잎, 죽은 동식물 사체)은 분해자(진균류, 박테리아 등의 미생물)에 의해 썩어서 분해된다.  

4) UNEP 한국위원회, 제 9권 1-2월호, 2000년 1월 1일 발간.

5) 엔트로피 증가법칙은 열역학 제2 법칙에 해당한다. 열역학은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의 양과 형태를 다루는 학문이다. 열역학은 제1법칙과 제2법칙이 있다. 열역학 제1법칙은 우주 내에 있는 에너지의 형태는 변할 수 있으나 총량은 일정하다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며, 제 2법칙은 사물이 질서있는 상태에서 질서없는 상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가용에너지의 감소를 말한다. 열역학 제1법칙은 에너지의 정량적 보존을 다룬 것이며, 제2법칙은 에너지의 정성적인 질적 쇠퇴 현상을 말한다. (장대식, <신과 자연계시>, p57, 신과대학 자연과학 교재.)

6) 엔트로피를 생각하는 사람들, <엔트로피>, p39, 두레, 1999.

7) 엘런 테인 더닝 (구자건 역), <소비사회의 극복>, p23-47, p117, 도서출판 따님, 1994.

8) 옥치상, '지속가능한 환경보전과 개발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 통합연구, 제8권 3.4 호, pp10-26, 1995.

9) 전국수도 종합계획, 환경부 1998. 4

10) 환경운동연합 최 열 총장- 1999년 환경부 환경영향평가 교육 강연 중에서  


출처 - 창조지

미디어위원회
2003-10-02

성경적 환경관

김성현

건국대 시스템생명공학과 교수 


    인간에게는 다른 피조물에 대한 권위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권위는 한정되고 파생된 것이며 하나님의 궁극적 권위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1. 서론

요즈음처럼 환경문제가 모두의 관심이 된 적은 없었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무분별한 개발에 의한 환경파괴를 고발하고 있고, 많은 환경단체에서도 민감하게 환경오염과 파괴에 대해 반응하고 있다. 학계에서도 환경파괴에 의해 매일 수십 종의 생물이 멸절되어 종의 다양성이 줄어든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환경은 나아지는 것 같지 않으며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었다. 지구의 날이 제정 된지 30년이 지난 지금 각종 미디어에서는 이날을 특집으로 다루어 많은 환경관련 글들을 발표하였다. 주간지인 타임지 역시 어떻게 '지구를 구할 것인가(How to save the Earth)'란 제목의 특별판을 찍어내어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다. 필자는 대학에서 환경화학을 가르치면서 이 환경문제야말로 단순히 몇몇 기술의 개발로 해결될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세계관에 입각해서 접근해야 하며, 이런 면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책임감과 사명감이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창조지에 실린 두 편의 글을 통해 독자들은 이미 성경적 환경관의 개념을 파악했으리라 생각한다. 이 글은 앞의 글의 연장선상에서 좀더 깊이 논의한 것이다.

 

2. 지구, 그 미묘한 균형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지구는 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이다. 세이건(Carl Sagan)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외계의 지적 생명체(ET,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를 찾아봤지만 결코 존재한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바다는 푸른색으로, 대륙의 많은 부분은 녹색으로 덮여있다. 우선 지구의 크기와 태양으로부터의 거리도 매우 경이적이다. 만약 지구가 지금보다 더 크다면 지구의 중력이 커져서 메탄이나 암모니아와 같은 가벼운 기체들의 농도가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것이요, 만약 지금보다 더 작다면 산소가 외계로 빠져나가 농도가 낮아질 것이다. 그 어느 쪽도 지금의 조건보다 안 좋게되어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태양으로부터의 거리도 지금보다 가깝거나 멀다면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거나 하강하여 역시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조건이 될 것이다. 현재 지구의 평균온도가 약 15도인데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아주 적당한 온도이다.

생명체는 이런 지구의 표면에서만 살아간다. 물론 지구 내부에서는 아무 생명체도 살 수 없다. 지표면에서부터 대기가 존재하는 상층부를 대기권(atmosphere)이라 부른다. 대기권은 온도의 분포에 따라 4개의 권역(sphere)으로 나누는데 대기의 순환이 있는 지표면에서 약 10-12km까지의 부분을 대류권(troposphere)이라 하며 그 이상으로부터 약 50km까지를 성층권(stratosphere), 그 이상을 각각 중간권(mesosphere), 열권(thermospher)이라 한다. 각 권역마다 온도의 분포, 화학반응, 대기의 조성 등이 특징적이다. 그러나 생명체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권역은 대류권과 성층권이다. 대류권에선 모든 기상현상이 일어나며 생명체의 호흡에 필요한 산소가 많이 존재한다. 성층권은 많은 오존을 함유하고 있어 자외선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대류권의 두께를 한번 살펴보자. 약 10km 정도인데 지구의 직경이 약 6300km가 넘는 것을 생각하면 약 0.16%도 채 안 되는 두께이다. 사과를 지구로 생각하면 사과 껍질에도 못 미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류권이다. 성층권까지 고려해도 그 두께는 매우 미미하다. 여러분들은 아마 원자폭탄이 터지는 사진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굉장한 폭발력으로 위를 향해 올라가다가 옆으로 퍼져 마치 버섯모양으로 폭발이 진행되는데 그 이유는 폭발이 대류권 끝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들의 삶은 바로 그 밑의 공간이 어떠하냐에 달려있다. 만일 핵전쟁이 일어나면 그 대류권은 온전치 못할 것은 불문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가 계속 더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몇 십년 동안의 지구온도의 변화를 보면 약간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원인으로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를 꼽는데 이의가 없다.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 약 0.3%로서 질소, 산소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산화탄소는 녹색식물의 광합성에 필수불가결이다. 만약 이산화탄소의 양이 지금보다 적으면 식물의 광합성이 둔화되어 이산화탄소의 소모가 적어지고 따라서 대기의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증가하기 시작한다. 반대로 이산화탄소의 양이 많아지면 식물의 광합성이 활발하게 되어 이산화탄소 소모가 빨라져 결국 대기 중의 농도가 적정한 값을 유지하게 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방출량이 너무 많다는데 있다. 전 세계의 에너지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석유, 석탄,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는 연소하면 이산화탄소가 나오는데 그 방출량이 현재 식물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아 공기 중에 계속 축적이 되며, 지표면에 도달한 태양광이 적외선 형태로 우주로 방출이 되어야 하는데 마치 온실처럼 이산화탄소가 적외선을 흡수하여 지구의 온도가 서서히 상승한다고 한다. 더구나 지구의 허파라고 불려지고 있는 아마존 유역의 열대우림(rain forest)이 개간 등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어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지구온난화의 직접적인 효과는 기상이변 현상이다. 작년 유난히 엘리뇨에 의한 기상이변이 전 세계적으로 심했는데, 그 이유는 여름철에 태평양의 수온이 예년보다 몇도 더 상승하여 이와 맞닿고 있는 공기층이 어마어마한 열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대기의 순환에 의해 예측치 못한 기상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3. 환경을 보는 시각

슈마허(E. F. Schmacher)는 그의 명저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를 통해 자본주의 경제원리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 비록 기독교적 관점에서 고찰한 것은 아니지만 환경문제에 관련하여 매우 통찰력 있는 분석을 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자원은 자본과 소득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자본주의적인 경제개념으로는 부존자원들, 예를 들면 화석연료나 기타 다른 광물들은 모두 소득에 속한다. 자기 자본을 갖고 장사를 할 때 소득이 생기면 누구라도 소비하게 되어있다. 반면 자본은 소비하지 않고 가능한 보존하려고 애쓰기 마련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선 자연을 소득이라고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다. 어느 누구에도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라도 기술력이 있고 자금력이 있으면 마음대로 캐내어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이 현재의 서구문명을 이룩했지만 한편 자연을 황폐케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동양적인 사고방식은 어떠한가. 도교사상으로 대표되는 동양사상은 자연을 글자 그대로 스스로(自) 그러한(然) 것으로 보았고 자연과 일체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소위 무위자연(無爲自然)설을 말하는데 인공적인 것을 가하지 않고 자연과 합일되는 사상을 말한다. 이러한 사상에서는 과학의 발달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성경적인 관점은 무엇인가? 성경은 자연을 정복이나 숭배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자연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6일 동안의 창조사역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가시적인 우주, 자연을 만드셨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인간의 창조에서 그 절정을 맞게 되는데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간도 피조물임에는 분명하지만 다른 피조물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주신 사명을 흔히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이라고 부르는데 이 피조세계를 다스리고 가꾸라는 것이다. 창세기 1:28절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였다. 린 화이트(Lynn White Jr.)로 대표되는 많은 사람들은 환경파괴의 원인을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성경 말씀 탓으로 돌리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다른 피조물에 대한 권위(dominion)를 뜻한다(창 9:1-7; 시 8:4-8). 그러나 우리의 권위는 한정되고 파생된 것이며 하나님의 궁극적 권위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변할 수 있는 유일한 피조물은 인간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자연을 본래의 의도에 맞게 잘 활용하도록 지음 받았다. 이렇게 인간이 부여받은 직위를 청지기직(stewardship)이라고 하는데 청지기는 주인을 대신해서 집안을 다스리는 자이다. 분명 집 주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종도 아니다. 아담이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처럼 우리들도 피조세계를 잘 관찰하고 연구하여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아야한다. 이러한 사명은 한 세대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에 함축되어 있듯이 대대로 이루어 가야하는 사명이며, 이 사명을 수행함으로써 인간과 피조물간의 온전한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

 

4. 피조물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지금처럼 신록이 우거진 계절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물고기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 아름답고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님의 오묘한 창조섭리를 맛보려면 자연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한편 잘 살펴보면, 이 아름다운 자연에 생존경쟁,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투쟁이 일어나고 있음을 본다. 약한 것은 강한 것에게 잡혀 먹힐 수밖에 없고 자연에 부적합한 것은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같은 자연에 실은 엄청난 부조리, 모순이 공존하고 있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철저히 잘못되어 있음이 틀림없다. 진화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이러한 상황을 당연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경은 그에 대한 답을 명확히 말한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인간뿐 아니고 다른 피조계까지 타락하였다. 아무 죄 없는 땅까지 저주받은 것을 보면 인간의 다른 피조물에 대한 우월성이 있음이 명백하다. 땅은 이제 아름다운 소산뿐아니라 가시덤불과 엉겅퀴도 내게 되었다. 즉, 열역학 제 2법칙이 말하는바 붕괴의 원리가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창조시 완벽한 샬롬의 상태에 있었던 피조물들 간의 관계도 왜곡되어 생존경쟁의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전에 누군가가 '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을 보았더니 매우 아름답더라. 하나님이 유해한 바이러스조차 그렇게 아름답게 만드셨나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러한 견해는 상당히 잘못된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쓸데없는 것, 해로운 것, 무익한 것은 하나도 만드시지 않았다. 인간의 타락의 결과 그러한 것들이 생겨난 것이다. 엉겅퀴를 하나님이 만드시지 않으셨지만 타락의 결과 그러한 것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또는 기존의 피조물의 기능이 악하게 바뀐 것이다.

 지금 피조물들은 신음하고 있다. 강한 자건 약한 자건 모두 신음하며 궁극적인 구속을 기다리고 있다(롬 8:19-23).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의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이러한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5. 해결책은 있는가?

 환경단체 중 그린피스(Green peace)나 지구의 친구들(Friends of the earth) 같은 단체는 환경보존에 매우 적극적이다. 이들은 포경선 앞에서 조그만 보트를 타고 시위함으로써 고래를 못 잡게 하거나 핵물질을 수송하는 배가 출항을 못하도록 하기도 한다. 이들은 압력단체로서의 역할을 자청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체나 환경보존을 강조하는 개인의 이면에 흐르고 있는 사고 방식은 과연 무엇인가? 이들이 우려하는 것은 환경으로부터의 인간의 고립이다. 인간이 환경을 오염시켰고 결국 인간도 환경으로부터 고립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역으로 환경을 보존하면 인간도 잘 될 것이요, 따라서 세계평화도 올 것이며 결국 지상낙원이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지구가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의 다른 피조물에 대한 우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환경으로부터의 인간의 고립이 궁극적 문제인가? 성경은 결코 그렇다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분명하게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인간의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라고 말한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의 결과, 모든 관계가 왜곡되기 시작하였다.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는 물론이요 인간과 자연 또는 자연계 내에서도 왜곡된 관계가 발견된다. 그러나 이 모든 왜곡과 모순의 근원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분리이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그 속에 하나님 모시기를 싫어해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거나 환경주의(environmentalism)라는 고상한 이름 아래 자연을 신성시하고 숭배하는데 까지 나아간다. 바울이 잘 지적했듯이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로마서1:25)." 자연을 보호해야 하지만 신성시하거나 경배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이는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한 것과 같다(히브리서3:3). 환경운동을 하는 자들에게 말해야 하는 것은 궁극적인 해결책은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인간은 지금 진정 큰 위험에 직면해 있다. 자연으로부터의 분리가 아닌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 때문이다.

 

6.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환경위기의 뿌리는 인간의 타락이며 타락한 인간의 본성 때문에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그때는 모든 것이 태초의 샬롬의 상태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무엇을 할 것인가. 작게는 물자 아껴쓰기, 함부로 쓰레기 버리지 않기로부터 크게는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의 감축, 대체 에너지의 개발 등이 있을 것이다. 필자의 생각은, 많은 경우 충분히 환경을 깨끗이 할 수 있는 기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오염이 되는 이유는 환경정화에 드는 비용을 아까와하고 모든 것을 경제논리로만 풀려고하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 때문인 것 같다. 단적인 예가 현재 경제성장의 지표에 환경파괴의 영향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피조계의 청지기로 부르셨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환경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명확해질 것이다.


출처 - 창조지

이웅상
2003-09-30

생물은 진화 아닌 멸종되고 있다.



       황소개구리가 외국에서 유입되어 작은 동물뿐만 아니라 뱀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잡아먹는 바람에 한국의 생태계가 교란된다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그런데 1973년에 호주에서 입으로 새끼를 낳는 개구리가 발견되어 전 세계의 과학자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르바트라쿠스」란 속명을 가지고 있는 이 개구리는 위 속에서 알을 부화시켜 올챙이 단계를 지난 후 어린 개구리 단계에서 입으로 토해내 새끼를 낳는다.이 개구리도 다른 개구리들과 같이 암컷이 알을 낳은 후 수컷이 수정을 시키게 되는데,수정된 알을 암컷이 다시 삼켜 위에서 발생과정을 거치게 한다.위 속에서 6주정도 머무르면서 초기 발생과정과 올챙이 단계를 거치면서 개구리로 성장하기까지 소화되거나 장으로 내려가지 않고 위에 머물게 된다.그렇다고 위의 기능이 다른 척추동물과 다른 것도 아니다.이들도 정상적으로 강한 산성의 염산이 위로 분비되고 있으며 위로 들어오는 모든 먹이를 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효소들을 갖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개구리가 삼킨 자기의 알이 소화되지 않고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있을까.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다른 종류와는 다르게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설계하신 「창조의 증거」인 것이다.

이 개구리의 알을 싸고 있는 젤리에는 특수한 화학물질이 있어 강한 산성의 염산이 생산되는 것을 중단시킬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위에서 장으로 물질을 밀어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 특수한 화학물질은 「프로스타글라딘E2」라고 불리며 위의 역할 외에도 위벽을 동시에 부드럽게 만들어 개구리 알이 발생과정을 따라 커질수록 위도 늘어나도록 한다.알이 부화해 나온 후에는 동일한 물질을 올챙이가 생산하여 계속 위에 머물러 개구리가 되기까지의 발생과정을 마치게 된다.일반적으로 한 마리의 암컷이 스물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게 되는데 이들의 네다리가 완성되어 낳을 때쯤되면 위는 팽창할 대로 팽창되어 마치 풍선과같이 얇게 된다.완전히 개구리로 발생된 후에도 어미 개구리는 스물여섯 마리의 새끼를 한꺼번에 토해내는 것이 아니라 일 주일에 걸쳐 뱉어 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종류의 개구리들이 1979년에 마지막으로 관찰된 후 더 이상 관찰된 보고가 없어 멸종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1984년 다른 종의 입으로 새끼를 낳는 개구리가 관찰되기도 했으나 이 종류역시 현재는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생물들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파괴된 지구로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피조물들이 고통중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번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로마서 8: 22, 19절)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917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3-09-18

창조신앙과 환경보전운동

이웅상 

전 한국창조과학회 회장


     산성비, 오존층의 파괴, 지구의 비정상적 온난화 등 상당히 전문적인 용어들이 연일 신문과 TV의 보도를 통해 이젠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이토록 심각한 지구의 환경을 바라보는 기독인의 바른 자세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 이를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성서적 자연관을 확립해야 한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곳곳에서 하나님이 창조자이심을 밝히고 있다.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원시대기에서 우연히 화학반응이 일어나 최초의 생명체가 생겨나고, 여기서부터 오늘의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생물들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무(無)에서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말씀 속에는 세계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이 함축돼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인간이 맡은 역할은 무엇인가. 창세기 1장 2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 주신 명령이 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즉 하나님은 인간에게 창조세계를 관리하는 청지기의 직분을 맡겨주신 것이다. 창조세계의 주인은 분명히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잠시 이 세상에 있는 동안 관리하는 책임을 맡은 자들인 것이다.


청지기로서 인간의 첫 번째 책임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자손번식에는 충만했지만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에는 거역했다. 창세기에서도 인류는 바벨탑을 쌓고 흩어져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했으나,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동케 하심으로 강제로 흩으셨다. 그러나 인간은 편리주의와 산업발전을 핑계로 도시를 건설하고 엄청난 인구가 한곳에 모여 살면서 온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을 어기며 살고 있다. 결국 자연은 훼손되고 오염물질의 대량생산으로 지구의 생태계는 파멸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다. 해결책은 말씀에 순종하는 길밖에 없다. 대도시를 지양하고 자연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청지기로서 인간의 두 번째 책임은 땅을 정복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인간은 "땅을 정복하라"는 말을 "땅을 소유하라"는 말 내지는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마음대로 개발하고 착취하라는 뜻으로 오해 해왔다. 그러므로 인류역사의 상당부분이 서로 땅을 점령하려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으며, 개발이란 명목 아래 자연은 말할 수 없이 파괴되어 왔다. 그러나 창세기 1장 28절의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의 뜻은 하나님의 법대로 "경작하라"는 말로 해석되어야 한다.

땅을 인간이 소유하고 마음대로 훼손하고 땅의 권리를 빼앗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잘 관리하며 경작하여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물들이 번성케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레위기 25장에는 땅을 경작하되 7년마다 1년씩 땅을 쉬게 하고 그 동안 저절로 맺힌 열매조차도 거두지 말도록 안식년을 명하시고, 50년째 되는 해에도 동일하게 땅을 경작하지 말고 쉬게 하도록 하는 희년제도를 주셨다. 결국 땅을 경작하되 훼손하지 않게 하여 자연을 보전케 하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청지기로서 세 번째 책임은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다스린다'는 말은 성경에서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보호한다'는 의미로, 다른 하나는 '섬긴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즉 자연을 지배하고 인간의 이익을 위해 착취하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자를 대신해서 잘 관찰하고, 관리하며 보호하는 책임이 인간에게 있다는 말씀인 것이다. 피조물인 인간이 죄 가운데 멸망해가고 있을 때 창조자이시요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섬기는 자로 이 땅에 오신 것처럼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바 된 존재인 인간 역시 자연을 섬김으로 보호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적 자연관은 창조신앙에 기초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자를 영접하는 구원에서 형성될 수 있다.


둘째, 환경에 대한 기독인의 바른 자세는 생태계의 특징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태계는 생물과 무생물과의 끊임없는 물질교환으로 되어 있으며,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이러한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모든 물질이 순환한다는 것이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무기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물이 순환함으로 물에 녹는 모든 물질이 역시 함께 순환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오염시킨 모든 물질은 물과 함께 순환하여 결국은 전 생태계를 오염시키게 되어 그 중의 한 구성원인 인간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전도서 1장 7절에는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고 연하여 흐르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연하여 흐른다는 말은 그것이 온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잠시 편하게 살려고 무심코 버린 오염물질이 나에게 되돌아오며,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야간에 몰래 버린 공장 폐수가 인간에게 되돌아온다는 경고인 것이다. 성경은 물뿐만 아니라 대기도 순환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전도서 1:6절에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무한히 넓은 하늘인데" 하고 무심코 방류한 매연이 산성비가 되어 전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으며, 오존을 생성해 식물의 생산량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동물의 호흡기 질환을 유발시키고 있다. 또한 과다한 화석연료를 사용함으로 발생된 이산화탄소가 온실효과를 가져와 전세계적인 온난기후 현상으로 빙하가 녹아 모든 땅이 물에 잠길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 오늘날 지구의 현실인 것이다. 전 기독인들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계를 바로 이해하고 우리의 우매함을 회개하며, 바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창조자 하나님께 지혜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셋째, 청지기로서의 자연보전에 대한 헌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먼저 기독인 한사람 한 사람이 편리주의를 버리고 좀더 단순하고 절제하는 생활로 돌아가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야겠다. 그리고는 나아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창조자를 증거하여 창조신앙을 갖고 청지기로 헌신하도록 해야겠다. 이것은 창조자이신 하나님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이 고대하는 바인 것이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로마서 8:19)

허종화
2003-09-18

식품, 냉동, 환경 산업에서 보는 창조섭리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생명을 주시면서 그 생명 연장의 방법은 숨 쉬는 것과 먹는 것, 그리고 활동(운동)과 휴식이라고 볼 수 있다. (창 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지금 IMF의 위기는 인간의 잘못된 식습관과, 에너지와 자원을 낭비하는 비효율적인 산업구조와 생활방식을 고치도록 강요하고 있는데, 가장 좋은 IMF의 극복방법은 자원과 에너지를 적게 쓰고도 높은 효율을 얻는 최고의 과학과 기술을 알아내고 그것을 최선을 다해 구체적으로 생활화하여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있다. 

이 삶의 질과 최고의 과학과 기술은 하나님께서 이 우주와 생명체를 만드시고 지금도 다스리시는 방법 즉 창조섭리를 바로 아는데 있으며, 위에 든 모든 일들 즉 수명, 건강, 식품, 환경과 에너지와 함께 경제까지도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따로 보면서 분야마다 알아내는 인간의 노력은 그때 그때 생각나는 차선(次善)이나, 보통선(普通善)으로 대처해옴으로써 부차적인 또 다른 문제를 야기 시키고, 식수(食水)까지 위협받는 환경 오염과 총체적인 경쟁력 저하를 불러 오고야 말았다 예를 들어 수질오염의 주범의 하나인 축산폐수를 보자. 현재의 정부나 산업계의 방법은 축산분뇨의 고, 액체 분리를 위해 톱밥을 사용하고 있는데, 비싼 톱밥과 페인트 등 화학물질로 오염된 폐 건자재로 만든 톱밥을 사용해 발효시킨 사료나 퇴비는 동물과 식물에게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있어 실패할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과 시설, 인력의 낭비를 초래할 뿐이다. 

전국의 강물은 2급수, 3급수로 떨어지고, 그 속에 포함된 질소(N)와 인(P)은 부영양화로 과다한 조류(藻類)발생을 초래하여 강과 호수의 산소를 줄이고, 동식물이 살 수 없게 할뿐만 아니라 바다에 흘러들어 적조(赤潮)를 일으켜 바다의 물고기까지 죽이고 있다. 또 적조를 막기 위해 육지의 흙인 황토를 바다에 뿌리는 차선책을 씀으로써 바다 밑바닥의 환경을 엉뚱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물고기에게 흙탕물을 묻혀 아가미가 막혀 죽게 하는 일도 생기고 있다 그 뿐인가 좁은 공간에서 대량 사육 시키면서 소와 돼지, 물고기에게 각종 첨가제가든 배합사료를 먹이므로 스트레스까지 쌓여 병이 나고, 항생제와 성장호르몬제를 투여하니 그 동물들과 물에 사는 물고기들에게 축적될 뿐만 아니라 최종 먹이사슬인 인간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렇다면 궁극적인 최선의 방안은 없는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채소와 과일(창1:29)과 곡류를 위주로 채식을 권장한 것이므로 과다한 육류섭취를 줄이는 것이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신대로 건강과 수명을 보장받는 길이다. 육류는 우리인체에 필요 이상의 활성산소를 일으켜, 질병과 노화의 원인이 되며, 특히 피는 신체 각부에서 운반해온 노폐물과 짐승이 죽을 때 계속 발생한 독소를 포함하므로, 장기적으로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악화시킨다.

축산과 양식을 계속할 때는, 배합사료 때문에 가축과 물고기의 모양과 색깔까지 변화를 일으킬 정도이므로, 배합사료를 줄이고, 창세기 1장 3O절('... 모든 짐승들에게 푸른 풀을...')의 가르침대로 푸른 풀(Green plant)을 먹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땅은 2/3가 산이고, 산과 들에는 풍부한 풀을 키울 수 있는데도 풀을 키우는데 등한히 하고, 미국에서 대부분의 배합사료를 수입하여 67%를 먹이고, 풀은 33%만 먹이고 있다. 반면에 한국에 배합사료를 수출하는 미국은 우리와 완전히 반대로 소에게 풀을 67%, 배합사료를 33%먹이고 있으며, 뉴질랜드는 풀을 95%, 배합사료를 5%만 먹이고 있음을 유념해야겠다. 바다의 전복과 물고기에게도 푸른 바다풀(Seaweed)을 먹여야 한다. 또한 푸른 풀을 재배하는 데에 축산분뇨와 어류 분비물을 분리시켜서 퇴비로 만들어 재활용해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섭리는 생명체의 먹이사슬을 통해 자원을 완벽하게 재활용하게 하심을 명심해야겠다. 채식을 하는 데에는 창조하신 상태 그대로 즉, 섬유질과 비타민, 탄수화물이 풍부한 식물의 신선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신선도와 영양가를 보존하는 방법으로는 단지 온도만 낮추는 냉장, 냉동방법과 야채와 과일을 절단만 하고 포장하여 저온유통(Co1d chain)하는 최소가공법(Minimally processing method) 등이 현재로서는 가장 효과적이고 경제적이며 환경 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냉장고에서 실내를 차게 냉각시키는 냉매는 그 만큼 뽑아낸 열을 가지고 나오므로 이때 고압상태에서 냉각시켜 냉매를 액화하여 재순환하기 위해 받은 압축기의 열량까지 합치면 훨씬 큰 열을 응축기에서 방출시켜야 하는데, 이 응축기 폐열을 난방, 가열에 이용하면 에너지를 재활용하는 열펌프(Heat pump)가 된다. 지금 기계적 열펌프에서 온도차가 적어도 실용성 있는 화학 반응식 열펌프로 에너지의 합리적인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다. 그런데 가장 완벽한 냉동공조기는 인체의 체온을 한평생 일정하게 조절하는 우리의 심장을 통한 혈액 순환과 피부와 털을 통한 땀의 증발에서 볼 수 있다. 놀라운 하나님의 냉, 난방설계능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에너지와 자원의 효율적인 이용과 100% 재활용은 환경문제 발생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대기와 수질, 폐기물 처리와 남은 음식문제 등이 최선의 해결책 없이는 Green Round까지 실현되는 세계화 시대에 경쟁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삶의 質' 과 '경쟁력', '환경보존'까지 완벽히 실현할 수 있는 길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우주창조의 설계대로 따르는 길이고, 하나님께서는 그 방법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알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복음 5장 48절)' 하신 말씀은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도록 명하고 있다. 

아! 합력하여 善을 이루시는 신묘 막측한 창조섭리!, 그것을 식품, 냉동, 환경산업에서 공부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으며, 가르치는 나의 학문과 인생을 생각하면 이 길을 택한 것이 너무도 행복하고 이 길을 보여주신 창조주께 감사할 뿐이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amazement/a3/a34/a34c4.htm

출처 - 창조지, 제 112호 [1999. 1~2]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1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3-09-18

환경을 지켜야 할 크리스찬

김정욱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환경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하는가 하는 것을 알려면 먼저 환경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 어떻게 만들어져 있나, 이것을 먼저 알아야겠습니다. 환경에 대하여 먼저 말씀드리면 우리가 살고 있는 생물 환경도 환경이 되고 생물을 제외한 무기환경도 환경에 속하는 데 먼저 무기환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무기환경은 쉽게 말하면 물, 공기, 흙 등이 무기 환경에 들어갑니다. 물, 공기, 흙이 어떻게 생물이 살기에 알맞도록 만들어졌는가를 살펴보면, 첫째 물은 생물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여러분 모두가 잘 알고있습니다. 물은 생명유지에 필수 불가결한 물질이며, 생체의 70~80%는 모두 물입니다. 또한 생명체내의 반응들은 모두 물에서 일어납니다. 물 아닌데서 일어나는 생체 반응은 하나도 없으며, 생화학반응 자체로 보아도 대부분 물하고 반응하게 됩니다. 

그러면 물이 어떻게 생물이 살기에 알맞게 되어 있는지 지구의 표면을 봅시다. 지구의 표면을 보면 약 70%가 바다이고, 30% 정도가 육지로 되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 하나님께서 땅을70%로 만들고 바다를 30%로 만들지 하고 말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만약 정말로 땅이 지구의 70%가 되면 땅에 생물이 살수가 없습니다. 물은 모든 물질 중에서 비열이 가장 큰 물질입니다. 햇빛이 비칠 때 보면 대양은 열을 받더라도 온도가 올라가지를 않습니다. 태양의 유무나, 구름의 유무에 따라서도 대양에서는 그렇게 온도의 변화가 없습니다. 우선 바닷속은 온도의 밤낮기온차가 없습니다. 그런데 육지는 어떻습니까? 만일 육지가70%이면 기온의 차가 열에 따라 극심하여 사람이 살기 불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다른 물질과는 달리 물은 4℃때 밀도가 가장 큽니다. 일반 금속들은 온도가 낮아지면 밀도가 커집니다. 그러나 물만은 특이하게 4℃에서 밀도가 가장 큽니다. 그러면 온도가 낮아질수록 밀도가 커지면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까요? 바닷물 밑은 모두 얼음으로 덮일 것이고, 호수도 아래서부터 얼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생명이 지탱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물이 4℃때에 밀도가 가장 큼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보존될 수가 있습니다. 

또한 물(H2O)의 분자구성을 알아봅시다. 만일 사람이 물분자를 구성한다면 아마 H-O-H (180°) 이와 같이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럴 경우 수소가 산소에 전자 하나씩을 주게 되어 물이 서로 붙어있을 수 없게 되고 산산조각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물분자의 각도는 H-O-H (105°)를 유지하여 물이 서로 붙들 수 있으며 용해성을 지니게 됩니다.

태양 주위에는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등 90개의 행성이 있으나, 물이 발견되는 곳은 유일하게 지구뿐입니다. 이것으로 보아 생명체가 그 생명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물이 귀중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얼마나 완벽하게 이 지구상에 물을 부여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공기에는 여러 기체가 존재하지만 대부분을 구성하는 것은 질소 78%, 산소 21%, 아르곤 0.9%, 탄산가스 0.034%입니다. 그 외에 여러 물질이 있어서 미약하나마 지구상의 모든 원소가 다 존재합니다. 공기의 총량은 물로 환산하여 지구를 약 10m 두께로 덮을 수 있는 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공기의 압력은 지구상의 생물들이 살아가기에 적합하도록 조성되어 있습니다. 만일 공기가 많아 너무 세면 사람은 바닷물 깊이 들어갈 수 없으며, 압력이 너무 약하다면 사람과 동물은 혈관이 터져서 살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살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공기의 양을 조정하십니다. 

질소는 공기 중 78% 정도 되는데, 이것도 우연한 것은 아닙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6년간 농사를 지은 후 1년간 안식년을 두어 토지를 휴식케 합니다. 이때 자라는 잡초들은 공기 중에 있는 질소를 고정하는 뿌리혹박테리아를 뿌리에 많이 가지고 있어 토지를 비옥하게 하는 질소비료를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산소의 비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숨 쉴 때 산소를 필요로 하게 되며, 산소의 적당한 비율은 생태계를 알맞게 유지하는 원인이 됩니다. 그러면 공기중의 산소의 비율이 달라지면 어떤 결과가 오겠습니까? 첫째 산소가 적으면 수중에 사는 생물들이 서식하기 어려워집니다. 물 속에는 산소가 매우 적게 녹아있으며, 만일 공기 중에 산소가 지금보다 적을 경우 물 속에 있는 생물들은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공기 중에 산소가 현재보다도 더 많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산불이 났을 때 진화할 수가 없어 온 지구상에 큰 재난을 초래하고 결국은 살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적당한 만큼의 산소를 공기 중에 주셨습니다. 

또한 지구 상층부에는 오존(O3)층이 존재합니다. 지구 상층 15~30km에 오존층은 존재하는데, 그 이유는 지구 대기권 안의 산소는 보통 O2로 존재하나 높이 올라가게 되면 태양에너지가 과다하게 되어 산소는 분자로 존재하지 못하고 원자상태(O, O, …)로 존재하게 됩니다. 물론 질소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아래로 내려오면 O2와 O가 공존하는 지역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오존층입니다. 이 오존층은 자외선, 우주선, 감마선, X선 등을 걸러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지구상의 공기의 양이 적으면 오존층은 지하로 더욱 내려오게 될 것이고 사람은 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오존은 많이 쬐면 사망하게 되나 적당한 거리로 유지하고 있어 생명을 보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기중에 0.034% 존재하는 탄산가스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비율이 일정하지 않은 수증기도 생명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지구의 평균 습도는 약 1.1%로서 수증기와 탄산가스는 공기중에서 그 양은 적지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긴 파장의 적외선을 흡수하여, 태양에너지를 받아 단파장을 흡수한 땅이 더워지면 장파의 적외선을 방출하게 되는데, 수증기와 탄산가스가 이 적외선을 흡수하게 되어 지구 기후를 따뜻하게 해줍니다. 공기 중의 위로 올라갈수록 태양과 가까워지나 더욱 기온이 떨어지는 것은 적외선을 흡수하지 않기 때문이며, 지상의 탄산가스와 수증기의 알맞은 조성은 지구의 기온을 꼭 알맞게 유지시켜 줍니다.

인공위성을 통하여 금성은 매우 뜨겁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약 400~500℃의 매우 뜨거운 지표면은, 금성이 탄산가스를 많이 포함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또한 공기 기체 중에는 색깔이 있는 기체도 많이 있으나, 지구의 공기가 투명하게 보이는 이유는 태양 광선에너지가 아주 유용한 것만 지표까지 보내주었기 때문입니다. 

흙은 점토(Clay)로 구성되는 이 점토는 모두 -전기를 띠고 있어 칼슘, 마그네슘, 칼륨 등의 생물에 유용한 성분을 붙들고 있으며, 흙 중에 있는 유기물질들은 +전하를 띠어 질산염, 인산염 등의 비료성분이 유기물에 붙어 영양분을 공급하여 식물이 성장하게 됩니다. 만일 돌이나 모래만 존재한다면 생물은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볼 때 환경은 생물이 살아가는데 가장 적합하도록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화론자들은 오히려 모든 생물들이 환경에 알맞도록 진화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정말로 그러한 진화의 흔적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하나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낙타의 예를 들어봅시다. 과거에는 사막에 살고있는 낙타의 혹 안에 물이 차있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물이 귀한 사막에서 잘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사막에 적응하도록 진화한 것으로 가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한 생물학자는 중동지방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조사해 보았으나 혹에서 물은 나오지 않고 탄소와 수소와 산소로 구성된 기름만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낙타는 이것을 산화시켜 탄산가스와 물로 만들 수 있도록 진화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수학적으로 이것은 맞지 않습니다. 낙타가 사막을 다니게 될 때에 공기 중에는 수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름은 아무리 많이 산화시켜도 내쉬는 숨속에 수분을 다 잃어버리기 때문에 몸속의 기름은 산화시킬수록 수분이 더 부족하게 될 뿐입니다. 사막을 건넌 낙타의 피를 조사해보면 피속에 물이 거의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이 없으면 죽으나 낙타는 물이 거의 없더라도 살 수 있도록 참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낙타는 사막에서 살 수 있도록 환경에 따라 진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짐승보다 오래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낙타는 물을 잘 주면 더 잘 자랍니다. 미국에서 발견되는 여러 화석 중에는 노루, 사슴 등과 함께 낙타의 화석도 함께 발견되어 집니다. 낙타가 진화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선인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선인장의 가시는 물을 조금 내뿜기 위해 가시로 진화한 것이고, 물을 많이 포함하기 위하여 두툼하게 진화하였다고 하지만 거짓된 것입니다. 오히려 선인장도 물을 많이 주면 더 잘 자랍니다. 비가 많이 내리는 곳에서도 선인장은 많이 있습니다. 다만 선인장이 사막에 많은 이유는 사막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선인장보다 다른 식물이 더 잘 자라므로 선인장이 잘 안 보이는 것입니다. 

북극에 사는 곰은 북극에 살도록 진화한 것이 아닙니다. 너무 추우면 곰도 잠을 잡니다. 곰은 대만에서도 발견되는데, 열대지방에서 곰이 살지 않는 것은 더위를 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든 생물은 환경에 알맞게 진화했다는 증거가 없으며, 환경을 잘못 가꾸면 오히려 생물은 견디지 못하고 멸종할 것입니다.


무기환경 뿐 아니라 생태계도 하나님께서 오묘하게 만드셨습니다. 찰스 엘톤이라는 생물학자는 1900년대 초 북극의 툰드라지방의 곰섬(Bear Island)을 탐험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여우를 관찰하였는데, 산도 골짜기도 없는 이곳에서 여우는 새를 잡아먹었습니다. 새는 또 풀을 뜯어먹으므로, 곧 여우는 풀을 뜯어먹은 것과 같은 결과가 되었습니다. 새 중에는 곤충을 잡아먹는 새가 있는데, 곤충은 풀을 먹기 때문에 여우는 곧 풀을 먹은 것과 같습니다. 즉 먹이사슬을 말하는 것으로 사람이 쌀을 먹고, 이 쌀은 곧 땅으로부터 온 것이듯, 창세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이 타락한 후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다의 영양분도 흙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흙에는 무수한 영양분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찰스 엘톤은 생물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식물 플랑크톤이나 풀과 같은 것을 생산자라 하고, 곤충, 새, 물고기 등 에너지를 직접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것들을 소비자라고 합니다. 땅에 있는 영양소는 동물의 배설물이나 식물이 썩어야하는데, 이것은 미생물들이 분해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생물을 분해자와 생산자, 소비자로 나누게 되어 결국은 영양소가 순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생태계를 순환하도록 만드심으로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하셨습니다.

이 생태계를 움직이는 에너지는 태양으로부터 오게 됩니다. 이 태양빛이 움직이는 경로는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에너지는 무질서해지는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즉 태양에너지는 열로 바뀌어 계속 없어집니다. 지구에 비치는 태양 에너지의 0.2%를 지구상의 식물들이 광합성에 이용합니다. 식물이 광합성한 에너지의 10%를 1차소비자들이 소비하고 1차소비자가 합성한 에너지의 10%를 2차소비자들이 소비하고 이러한 비율로 계속 소비하여 결국은 피라밋 형태를 이루어 이것을 에너지의 피라밋이라고 합니다. 모든 생태계는 생물집단과 영양물질 간에 완전한 평형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물고기, 새, 식물 등을 보시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하셨으며, 모든 것을 창조한 마지막 날에는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조화와 평형이 잘 이루어지는 환경도 잘 지키지 않거나 보존하지 않으면 쉽게 파괴됩니다. 이를테면 독성물질을 만들 경우 이 물질도 함께 순환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DDT는 2차 대전 중에 발명된 살충제입니다. 이 DDT를 캘리포니아 주의 클리어 호수에 1949년 0.014ppm(parts per million)을 살포한 결과 99%의 모기가 사멸하였습니다. 약 5년후인 1954년 다시 모기가 발생하여 0.02ppm 살포하였고, 3년후 또 발생하여 0.02ppm을 뿌렸습니다. 그러나 이 DDT는 물에 용해되지 않으므로 물고기 몸에 축적되어서 급기야 이 물고기들을 먹는 농병아리들이 떼죽음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그 몸에서 1600ppm의 DDT가 검출되었습니다. 이렇듯 독성물질도 먹이 사슬을 타고 순환하며 체내에 잔류하게 됩니다. 현재에는 먹이 사슬을 타고 돌고 돌아 알래스카의 에스키모인이나 펭귄의 몸에서도 DDT 검출되고 있습니다. 암에 걸린 사람과 걸리지 않은 사람을 비교해 보면 암에 걸린 사람의 몸에서 훨씬 많은 DDT가 검출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현재는 DDT의 사용이 금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생태계의 물질순환의 정확성에 대하여 믿지 않으므로 발생한 사고는 많이 있습니다. 


1953년 미나마타만에서 신일본 질소 공업주식회사의 폐수에 의하여 흘러 들어간 수은(水銀)에 의하여 시작된 미나마타병은 60년대에 40여명의 사망자와 환자 100여명이 발생하였으며, 그 후 계속 번져 지금까지 550명의 사망자가 보고되었고, 그 환자는 2500여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여러 번 있었습니다. 다만 사람들의 무지가 이러한 것들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먹이사슬의 아래에 있는 생물이 환경오염에 더욱 약하기 때문에 환경 오염은 생태계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쉽게 파괴합니다. 과거에는 많이 볼 수 있었던 바위옷이 현재는 대도시 근처에서는 대기오염으로 인하여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며, 이끼 등도 과거에는 우물가나 화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나, 현재는 대기의 오염으로 인하여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먹이사슬의 아래에 있는 생물은 더욱 약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물의 경우에도 바퀴벌레 약을 뿌리면 곤충들은 다 죽으나 사람에게는 피해가 없습니다. 사람은 담배를 피워도 정신이 온전하나 방안에 있는 새들은 죽어갑니다. 이처럼 환경이 오염되면 사람들은 모르는 사이 환경이 파괴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토양의 영양소도 산과 땅의 관리를 못하면 유실되고 맙니다. 브라질에서 아마존 정글의 나무를 베어내고 농사를 지으려 하였으나 토양이 황폐하여졌습니다. 토양에 영양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 자체에 영양분의 근원이 있는 것입니다. 그곳은 하루에 비가 한번씩 오는 곳이어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지 4~5년 만에 땅이 완전히 벽돌처럼 변하여 농사가 전혀 되지 않는 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타임」지에서는 열대정글을 구하자는 캠페인광고가 계속 실리고 있습니다. 

브라질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타이나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등도 비옥한 땅에 나무들을 모두 베어내자 나무뿐만 아니라 있던 풀마저 죽어버렸으며, 20~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나무가 전혀 나지 않고 황무지 그대로 있습니다. 

이것은 진화론자들이 가정하듯 나무는 베어내면 저절로 생겨난다는 생각과 가설에 속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으나, 우리나라는 조림에 노력을 기울여 성공한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만, 예전같이 비옥한 산지는 다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교훈을 보더라도 고대문명국가 중에서 이집트는 「유럽의 곡창」이라는 별명이 붙여졌었으나, 지금은 이집트 거의가 사막입니다. 피라밋은 거의 사막에 서있습니다. 그러면 과거에도 이집트가 사막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성경에도 보면 이스라엘 즉, 야곱이 20세 이상의 남자만 70명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가 430년을 거주하여 60만의 자손이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이렇게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그 땅이 그만큼 비옥했다는 단적인 증거가 됩니다. 

레바논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곳은 울창한 산림지역으로 솔로몬은 성전을 레바논에서 나무를 갔다가 지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온 후에도 그곳의 나무를 이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사막입니다. 

그뿐 아니라 중국, 인도, 마야 잉카문명, 지중해 연안국가들 그리고 희랍, 이태리 남부 등도 전부 사막인데, 그 이유는 환경을 보존하고 나무를 가꾸는데 등한히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만들어 놓으시고도 아담과 하와에게 마음대로 뛰어 놀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가꾸고 돌보라고 하셨습니다. 가꾸고 돌보지 않을 때 황폐하고 맙니다. 고대 문명국들은 수천년 걸려 황폐되었지만 요즈음의 환경오염은 수년 내에 환경을 망쳐버립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얼마 전에는 바다로 조금만 들어가서 흙을 파면 조개가 나오고 게도 잡고 고동도 잡았으나, 지금은 땅을 아무리 파도 아무 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농약을 대량 살포하고 환경을 오염시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에 충만하라는 것은 땅을 충족시키라는 뜻으로 땅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알아서 순리대로 땅을 다스리고 땅을 보살피라는 뜻입니다. 땅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연법칙을 알아야만 합니다. 땅을 정복하라는 것은 땅을 경작(cultivate)하라는 것으로, 땅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하고 풍성한 삶을 살으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개인의 욕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의 풍성한 삶을 위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악한 청지기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난뒤 누가복음 16장 10-12절에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 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자연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종래는 멸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새하늘과 새땅을 예비해놓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이 환경도 하나님이 주신대로 잘 돌보지 않을 때,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새하늘과 새땅을 받겠습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충실하게 행하라는 말씀인줄 알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고 환경을 보존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새하늘과 새땅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창조지, 제 36호 [1986. 9]


미디어위원회
2003-08-21

창조와 환경오염

이용희 


   우리는 홍수와 무지개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 이는 곧 우리가 한편으로는 생명에 대한 위협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 우리 시대는 심각한 위기의 시대, 곧 머지 않은 장래에 극도로 파국을 앞에 두고 있는 시대입니다.1)    

 

봄이 되어도 꽃이 붉지를 않고

비를 맞고도 풀이 싱싱하지 않다.

햇빛에 빛나던 바위는 누런 때로 덮이고

우리들 어린 꿈으로 아롱졌던 길은

힘겹게 고개에 걸쳐져 있다.

썩은 실개천에서 그래도 아이들은

등 굽은 고기를 건져 올리고

늙은이들은 소주 집에 모여 기침과 함께

농약으로 얼룩진 상추에 병든 고기를 싸고 있다.

한낮인데도 사방은 저녁 어스름처럼 어둡고

골목에는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없다.

바람에도 화약냄새가 난다.

종소리에도 가스냄새가 난다.2)

 

   성경의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공해(환경오염)로 인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다, 땅, 하늘이 더러워지고 있다. 1990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주최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JPIC) 세계대회에서 오늘의 시대를 가리키는 표제어로 '홍수와 무지개 사이에서' 라는 성서적 은유가 사용되었다. 이는 노아의 홍수 때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세기말 임박한 묵시론적 종말의 가능성을 예감하고 두려워 떨고 있는 오늘의 시대에 무지개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계약)을 바라보게 하는 일이야말로 기독교인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지개를 통하여 맺어주신 언약에(계약)에 인간만 아니라 다른 피조물들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데서 사회, 정치적 비전만이 아니라 생태,환경적비전을 전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창 6:8-16) 이에 본 강의에서는 환경오염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파괴위기에 대하여 그 원인,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따른 환경문제의 해결 및 몇 가지 실천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생태계(eco-system)라는 말은 근대부터 쓰인 용어로 독일의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이 1866년 처음 제창하였다3) Eco는 희랍어의 Oikos에서 유래한 것으로 집 또는 생활의 장을 의미한다. 즉 생태계라는 것은 '생활의 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생태계에서는 모든 생물이 환경과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생물들은 환경 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유기적인 조절 계를 형성하여 하나의 동적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한 환경인자의 변화는 연쇄반응을 유발하여 다른 평형상태로 전이될 수 있으며 어느 정도는 균형을 이루려는 힘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구상의 생명체는 종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빛, 공기, 물, 온도 등 물리적 환경이 적정한 범위 내에서만 생존 번성하기 때문에 환경의 파괴나 오염에 의한 지나친 환경의 변화는 생태계의 조절기능을 약화시키거나 손상을 입혀 위기를 초래한다. 인류는 죄악으로 에덴동산에서 쫒겨난 이래로 다시 타락하여 노아의 홍수를 겪었으며 노아 홍수 이후에는 지구상의 큰 환경변화의 영향으로 인간의 수명도 짧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이후로 인류는 발전을 거듭하여 현대에 이르렀다. 옛날에는 인구도 적었으며 인류도 동식물등 천연의 산물을 생활에 이용하였고 그 폐기물은 자연 속으로 희석되어 자연의 자정작용에 의하여 정화되거나 미생물에 의하여 분해되는 생태계의 균형을 통하여 재활용되었다. 그러나 산업이 발달됨에 따라 인류는 더 편안한 생활을 추구하게 되었고 이를 위하여 더 많은 산업생산과 소비가 일어나게 되었다. 즉 환경오염은 산업생산과 소비등 경제활동과 사람의 생활을 통하여 유발되는 대기, 수질, 토양, 해양 등의 오염, 방사능오염, 소음, 진동, 악취에 의한 환경, 생태계 및 인체에 피해를 주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환경오염 및 공해는 인구증가, 도시화 그리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위한 산업화 등 경제규모의 팽창에 수반되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산업혁명이후 과학은 급속하게 발달하였고 서구사회에는 기술지향주의라 부르는 것이 공공연한 지배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기술지향주의는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이익집단의 견해이기도 한데, 이는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세심한 관리가 행하여질 수 있다면 인간은 자신의 목적에 따라 자연을 적절히 조절이 가능하다고 함으로써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행위를 정당화한다. 이는 지구의 자원은 무한하고 아무리 남용해도 원상을 회복하며, 세상은 점점 잘되어 간다는 진화론적 낙관론과 결합하여 환경에 대한 지배적인 태도 즉 인간은 생태계로부터 따로 떨어져 나와 지구상의 모든 생물 및 자원을 마음대로 쓰고 버리는 것이 곧 문명이고 발전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임을 알 수 있다 인류는 여러 가지의 모든 노력을 쏟아 환경오염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고, 최고라고 생각하는 환경오염방지 기술을 적용해 보지만 오염된 환경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과학기술로 인하여 더럽혀진 환경을 과학기술로 해결해 보려는 기술지향주의로는 더 이상 오염된 환경 회복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는 환경오염문제는 인간이 에덴동산을 나온 후 자신의 지식과 노력으로 이 땅에 유토피아를 만들어 보겠다는 집요한 반항의 산물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인간의 범죄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은 입법이나 과학기술로는 되지 않고, 피조세계를 바라보는 사고의 전환 즉 창조신앙의 회복에 있음을 강조한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한 청지기의 직분을 잘 수행하기 위하여 환경오염의 근본적인 원인을 잘 살펴보며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가져야 한다.   


물 오염의 현실을 보자.  가정에서 버리는 오물,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는 하천을 오염시키며 농경지에서 농약으로 오염된 물이 하천으로  흘러오는 경우, 가축사육장에서 흘러나온 물도 하천과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우리의 몸은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어서 며칠만 물을 마시지 못하면 죽게 된다. 물은 밥하고 빨래 등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농업용수, 공업용수 등 없어서는 안될 천연자원이다. 그 만큼 물이 오염된다는 것은 우리의 목숨과 생활이 오염된다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는 물이 풍부한 것으로 생각하나 지구가 가지고 있는 물중 97%는 바닷물이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담수는 3% 이며 이중에도 강 호수의 지표수는 0.0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대기오염은 지구온난화, 오존층파괴, 산성비등 대기조성에 따른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지구환경문제가 있으며 인체 건강에 대한 국소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일반적인 대기오염문제도 있다. 대기오염물질은 기체 또는 먼지 형태인데, 기체는 아황산가스, 황화수소, 일산화질소, 이산화탄소, 암모니아, 일산화탄소, 오존, 탄화수소 등이 있다. 이들은 눈 점막, 천식등 호흡기 질환, 폐암을 유발하고 악취나 시야거리 악화 등을 초래한다.  자동차에서 나온 배기가스, 공장들의 굴뚝에서 나오는 매연, 먼지, 아황산가스는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표준 치를 넘어 하늘의 어두워지는 스모그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산화탄소, 이산화질소, 메탄, 염화불화탄소는 햇빛은 통과시키고 열은 잡아두는 역할을 하며 이런 현상을 온실효과라고 하는데 지구의 기온이 전반적으로 상승하게 되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된다. 이 현상 때문에 지구의 평균기온이 100년전 보다 0.6도 높아졌다고 하며 앞으로 백년 뒤에는 2.5도 내지 5.5도가 올라갈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것 때문에 해수면이 상승하여 육지가 점점 잠길 위험이 있으며 실제로 지면이 낮은 뉴욕, 런던, 도쿄, 홍콩과 같은 곳은 자꾸 물에 잠겨가고 있다고 한다.  대기 중에 아황산가스가 많이 배출되면 비와 함께 내릴 때 산성비의 원인이 된다. 순수한 물의 pH는 7.0 이지만 비는 대기중의 탄산가스등이 녹아 약간의 산성을 띄어 pH가 5.6-6.5 정도가 되는 것이 정상이다. 산성비는 공기 가운데 있는 오염물질인 황산화물이나 질소 산화물이 빗물에 녹아  pH 5.6 이하의 강한 산성을 가진 빗물로 변하게 된 것을 말한다. 이 산성비는 농작물 등에 큰 피해를 주며, 나무들을 말라죽게 만들기도 하며 부식성을 가지므로 문화유적등을 부식시키기도 한다. 또한 pH4.6 이하에서는 토양 중에 알루미늄, 수은, 카드늄, 납 등의 금속을 용출하게 하여 생태계에 심한 타격을 준다. 우리 나라에서도 서울, 인천, 대구, 부산, 울산 등지에서 pH4.9-5.6 의 산성비가 기록되고 있다.  대기오염물질에 의한 오존층파괴 또한 심각한 문제이다. 지상 20-30km 에 해당하는 성층권에 있는 오존층은 태양에서 오는 인체와 동식물에 해로운 자외선을 흡수 차단함으로써 지구상의 생태계를 보호해준다. 오존층은 CFC, 메탄, 암모니아, 이산화탄소 등이며 특히 영향을 주는 것은 프레온가스로 불리는 CFC이다. 이미 세계는 20세기 말 까지 프레온가스의 사용을 금지하는 협약을 맺고 있는 상태이며 현재는 가시적인 개선효과를 보고있다.     


다음은 쓰레기들에 의한 오염을 들 수 있는데 가정과 공장에서 나오는 쓰레기, 등산객과 여행객들이 버리는 쓰레기들은 산과 강을 오염시키고 있다. 우리 나라는 현재 국민 1인당 하루에 1㎏의 쓰레기를 버리고 있는데 물론 분리수거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보다는 가정에서 버리는 쓰레기는 많이 감소하였다. 이들 쓰레기는 땅에 묻거나 태우고 있는데, 인구에 비해 땅이 좁은 우리 나라는 뭍을 곳을 찾지 못하여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최근 쓰레기를 태워 없애기 위한 소각장을 많이 건설하고 있지만 이 또한 소각하는 동안 발생하는 다이옥신이라는 대기오염물질 때문에 그 소각장 주위의 주민들의 반대가 심한 형편이다. 특히 병원, 화학공장, 건설현장등에 나오는 특수한 쓰레기(특정폐기물)는 거의 줄지 않고 있으며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은 부족한 현실이다.  


땅의 오염도 심각하다. 땅은 우리의 살아가는 터전이다. 성경에도 우리는 흙에서 나와 흙으로 간다고 하였고, 매 7년마다 1년씩 땅을 쉬게 하는 땅의 보호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도 있다. 땅은 화학비료의 사용으로 지금은 대부분의 농토가 pH4.5-5.5의 강한 산성을 띠게 되었다. 땅에 사는 각종 균들 중에서 병원균들은 대부분 이 산성 속에서 잘 번식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산성을 띤 토양에서는 끊임없이 질병이 발생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농약을 많이 쓸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농약들은 빗물에 의하여 씻겨져 내려와 물을 오염시키며 농촌의 자연 생태계를 파괴시키는 원인이 된다. 실제로 예전에는 논에서 흔히 발견되는 미꾸라지, 우렁이, 메뚜기, 잠자리 등이 구경하기 힘들게 되었다. 또한 맹독성 농약 때문에 농민들이 중독 되는 사례도 많이 있다. 퇴비대신 사용하는 화학비료는 땅의 흙을 단단하게 만들어 식물의 생육을 부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밖에 화학물질의 과다사용으로 인한 피해, 1억종의 생물중 98%가 이미 멸종한 생물종의 멸종문제, 열대우림의 파괴(지구상에 생존하는 종의 50-90%는 열대 우림에 살고 있는데 지금 목재채취, 목축지, 농경지를 하루에 약 1900평씩 파손되고 있다), 사막화, 핵폐기물 오염문제등 많은 문제들이 있다.    


환경오염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의 욕심과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 때문이다. 점점 발달된 과학기술로 우리는 더 편하게 살 수 있게 되었고, 우리는 우리의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한계를 지켜야 할 때 지켜야  할 때 지키지 못하고 그르쳐 놓는 일들이 많은데 환경오염도 이러한 욕심으로 인하여 발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람은 편해지기 위하여 계속 바라며 끝이 없게됩니다. 결국 자기자신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져서 결국 환경오염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관련된 말씀은 다음과 같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후 내리신 명령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 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위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 (창 1:28)  '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맡아 돌보게 하셨다"(창 2:15)

여기서 '충만하여라', '정복하여라', '다스려라', '맡아 돌 보라'  우리환경을 보호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 해 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린 화이트, 법정스님, 카프라등)은 여기서 땅을 우리가 사는 환경으로 대체하여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울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기독교가 자연환경을 정복하고 파괴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위 본문을 잘못 이해한데서 온 것이다. 인간은 자연 환경의 모든 분야에 손을 미치고(충만) 봉사를 통하여 이김으로써(정복하여) 관리하여야(다스려야)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맡아서 잘 돌봐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정복과 욕심을 나타내는 것이 없어야 하며 오직 우리 하나님이 좋다고 말씀하실 수 있도록 그것이 보전될 수 있게 인간이 최선을 다하여 봉사하고 땀 흘려 돌 보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자연환경과 더불어 살아야 하고 자연환경은 인간에게 함께 살아가는 것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자연환경을 지키고 보전해야하는 우리는 스스로 타락으로 인하여 보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게 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사랑하시고 비록 에덴동산에서 쫒겨 났지만 취한 땅에서 농사를 지어먹도록 하였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자연환경에 대하여 땀흘려 가꾸고 돌봐야 할 사명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의 욕심을 발동시키고 자연을 악하게 이용하며 이익을 위하여 환경오염을 일으켰고 현재에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연환경 가운데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음식물로 먹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것만 사용하는 같이 더불어 산다는 생활방식을 택하여 생활하여야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겸손하게 이것을 받아들여 욕심이 없이 지나치지 않게 살아야한다는 교훈을 깨달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은 자연환경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보전하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셨으니 이것은 왜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전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대답을 주고 있는 것이다.  땅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은 이 땅의 창조주이시다. 따라서 이 땅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보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라는 말씀은 이 세상이 어떻게 해서 생기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확실히 대답을 주는 것이며, 또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진화하여 생겼다고 주장하는 진화론자에게 확실한 대답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시고 '참 좋았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보전되어야 합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 인간이 죄악으로 에덴동산에서 나와 하나님의 은혜로 흙을 갈며 살도록 허락하셨는데 그 인간이 오늘까지 이르면서 자기의 욕심대로 자연환경을 대하다가 우리의 환경이 오염되기에 이른 것이다. 사람들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자연의 회복을 위하여 외치고 노력하지만 잘 안되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사람이 자기의 생각으로 판단하며 자기 중심적으로 협동을 외치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사람이 자기를 중심한 개인주의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길이 있다. 성경에서는''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서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복 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라는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고후 5:17-19) 라고 쓰여져 있다. 즉 우리는 예수님안에서 우리자신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우리의 자연환경과 화목함으로써 진정으로 환경을 보호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고난과 절제의 삶을 살 때 소유지향의 세계에서 환경을 근본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유일의 길임을 알 수 있다. 절제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로 인간의 힘만으로는 어려우며 성령의 도움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즉 환경의 문제는 믿음의 문제이며, 영성의 문제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삶에서도 절제의 영성이 필요하며 이를 위하여 생명의 보호, 에너지절약, 음식물의 적당한 섭취, 자원의 절약, 쓰레기의 재사용, 나누어 쓰기 등의 부분에서 하나씩 하나씩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1) JPIC 제 2차 초안 문서, 정의, 평화, 창조 질서의 보전 세계대회 자료집,  기독교 사회문제 연구원, 1990, 58쪽

2) 신경림 시인의 시 , '이제 이 땅은 썩어만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에서 발췌

3) 환경연구회 편저, '환경논의의 쟁점', 나라사랑, 199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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