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전 지구적인 홍수에 대한 대중적 개념

한 번의 전 지구적인 홍수에 대한 대중적 개념

 (Vulgar Notions of a Universal Flood)


     16세기 초의 과학자들은 하나의 딜레마에 직면했다. 그것은 화석(fossils)들은 어떻게 기원되었는가? 라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수세기 동안 산꼭대기에서 발견되는 바다 조개 화석들은 창세기 홍수(Genesis Flood)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반면에, 당시 유럽의 르네상스를 일으키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또는 신플라톤주의와 같은 이교도 철학들은 그것들은 그 위치의 암석 내부에서 신비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라는(자연발생설과 비슷한) 매우 통속적인 해석을 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 사실이었는가? 살아있는 바다 생물체와 화석이라 불리는 재미있는 형태들 사이의 유사성은 너무도 뛰어나서 이들 사이의 관계를 부정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전 지구적인 홍수 모델은 저항을 받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사가(science historian)인 마틴 루드윅(Martin Rudwick)의 뛰어난 책 ”화석의 의미: 고생물학 역사에 있어서 에피소드들(The Meaning of Fossils: Episodes in the History of Paleontology” (Univ. of Chicago Press, 2nd ed., 1985)에 따르면, 홍수는 화석들의 설명으로서 실패해 왔었다는 것이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이것이었다. 즉, 창세기 홍수에 대한 문자 그대로의 해석은 바다생물 화석들을 대륙들 위로 휩쓸어 올리기에 불충분한 사건이었으며, 더군다나 (1)생물학적으로 점점 밝혀지고 있던 엄청난 동물 종(species)들의 숫자는 그것들 모두를 방주에 태우기에 부적절한 것으로 보였고, (2)그리고 모든 산들을 덮을 만한 엄청난 물이 어디에서 왔으며, 이들 물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 하는 점은 홍수모델에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루드윅에 따르면, ‘한 번의 전 지구적 홍수에 대한 대중적 개념’은 실제로 그 가능성이 시도되었으나, 부족함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유일한 합리적인 대안은 성경의 홍수 이야기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주의적 철학을 조화시켜 타협하는 것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노아의 홍수는 여러 차례 있었던 국소적 홍수들 중 단지 하나였다는 것이다. ‘자연 지형에서 발생되는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들은 지형의 광대한 변화들을 설명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었다. 바다들은 광대한 시간에 걸쳐서 천천히 올라갔고, 천천히 내려갔다는 것이다. 루드윅은 대부분의 현대 신학자들이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았다. 즉, 이러한 식으로 노아 홍수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은 지구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는 것과 동등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변증론적 문제들에 대한 대답 없이, 그는 이것을 유일한 합리적인 안으로 생각했다. 간단히 말해, 대다수의 의견은 화석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틀렸으나, 지구의 장구한 연대와 지질학적 점진주의는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루드윅의 문제점들은 얼마나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인가? 나는 모든 깊음의 샘들이 터져 대양해분들이 갈라지며 시작되는 노아의 홍수가 수 주 만에 모든 산들을 덮었다는 기록이 대륙 위에 바다생물 화석들을 설명하는 데에 논리적으로 불충분하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육상에 거주하며 코로 기식을 호흡하는 알려진 모든 종류(kind, or baramin, not species)의 생물들이 거대한 노아의 방주에 다 탈 수 없었을 것이라는 데에 동의할 수 없다. 홍수 동안 전 지구를 덮을만한 물의 출처와 사라짐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은, 지구는 물이 풍부한 행성으로 대양의 깊은 해구들은 가장 높은 산들보다 더 깊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단지 태평양 해저 하나의 습곡만으로도 쉽게 지구는 물들로 범람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홍수는 이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판구조 운동과 관련되어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으로부터 몇 가지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로, 하나님은 결코 사람들에게 터무니없는 난센스를 믿을 것을 요청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로, 이교도 철학들은 16세기에 그랬던 것처럼, 21세기에도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은 그것에 의해서 고통당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창세기 홍수는 여러 사상들 가운데 당당히 서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William A. Hoesch, M.S. geology, is research assistant in Geology.

 


*참조 : 방주는 땅에 호흡하는 모든 동물 한 쌍씩을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컸습니까?
http://www.creation.or.kr/qna/view.asp?cate=B&id=21&no=6

큰 깊음의 샘이란 무엇이며, 대홍수 당시의 물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http://www.creation.or.kr/qna/view.asp?cate=B&id=62&no=7

노아 홍수가 끝나고 난 후 창일했던 물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http://www.creation.or.kr/qna/view.asp?cate=B&id=63&no=8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3149/

출처 - ICR, BTG 218c, 2007. 2. 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813

참고 : 1756|1817|1420|1422|1429|720|721|2121|2098|2075|512|2104|2094|269|271|3725|1799|3701|3596|2201|3346|3272|3119|3137|2754|2777|261|1493|2141|913|3044|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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