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 Clarey
2014-06-27

석유, 셰일오일, 천연가스의 기원과 최근의 전 지구적 홍수. 

(Oil, Fracking, and a Recent Global Flood)


       셰일오일(shale oil)에 대한 수압파쇄(fracking, hydraulic fracturing)의 장단점과 함께, 석유 관련 기사는 자주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전 세계의 석유(oil) 매장량의 약 10%는 셰일질 암석(shale-rich rocks) 내에 들어있고, 이 석유는 고압의 물로 암석을 부수는 방법인 수압파쇄로 추출할 수 있다.[1] 2013년의 한 연구에 의하면, 채취 가능한 셰일오일은 3450억 배럴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같은 셰일 암석은 전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의 32%에 이른다고 평가되고 있다.[1] 셰일에서 채취 가능한 천연가스의 양은 약 7,300조 입방 피트로 추정되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의 이러한 방대한 매장량의 기원을 고려해보면, 이러한 연료 자원은 대부분의 세속 과학자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오래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석유의 나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근원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질학자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화학적 성분에 대해서 많은 연구들을 수행해왔다. 그들은 석유와 천연가스의 대부분은 셰일 암석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지문처럼, 석유와 가스의 화학적 서명은 자주 일치했다. 셰일(shale, 혈암)은 가장 흔한 퇴적암이며, 석유의 근원 암석으로 ‘봉인(seal)’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점토가 풍부한 이 셰일 층은 낮은 투과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액체 및 가스는 매우 천천히 통과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새어나온 석유는 그 안에 단단히 봉인되고 갇히게 되는 것이다. 수압파쇄는 석유와 가스가 이들 치밀한 지층암석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해준다.  


석유와 천연가스의 기원은 무엇인가? 그것들 모두는 유기물질 파편(organic debris)의 퇴적으로부터 시작한다. 많은 오일셰일이 흔히 5% 이상의 총유기탄소(total organic carbon, TOC)를 포함하고 있다. 석유에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유기화합물은 바다조류의 퇴적(marine algal deposits, Type 1 oils) 및 해양플랑크톤의 퇴적(marine planktonic deposits, Type 2 oils)과 일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유형의 퇴적층은 둘 다 지구의 자연적 온도 구배(thermal gradient)에 의해서 가열될 때, 석유(oil) 또는(그리고) 천연가스(natural gas)를 만든다. 이들 퇴적물이 깊은 곳에 묻혀서 충분히 '요리'되면, 석유와 가스를 발생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유기물질에서 석유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암석이 2,400~4,500m 깊이에 묻혀야만 하고, 82~121℃(=180~250℉)에 도달해야만 한다고 가정했다. 이 온도 범위는 일반적으로 '석유 창(oil window)'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그리고 지역적인 지열의 온도 차이는 이 석유 창을 위 아래로 상당히 이동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산활동 인근 지역은 일반적으로 높은 온도 구배가 있으므로, 근처의 퇴적층은 상대적으로 얕은 깊이에 석유 창을 형성할 수 있다. 만약 유기물질이 풍부한 퇴적층이 석유 창을 통과한다면, 높은 온도에서 요리가 계속될 것이고, 액체 석유는 더 나눠질 것이고, 단지 가스만을 남겨놓을 것이다.

오늘날에 거의 모든 유기물질 잔해들은 퇴적층에 갇히기 전에, 포식자나 미생물에 의해서 소비되고 분해된다. 이것을 고려해볼 때, 전 세계의 석유를 만든 엄청난 량의 유기물질들은 어떻게 퇴적지층에 파묻히게 됐던 것일까?

그 답은 전 지구적 대홍수이다. 그 대홍수는 대륙을 가로지르며 대륙 지각 위에 엄청난 양의 바다퇴적물을(바다조류와 플랑크톤을 포함하는) 파묻고 배치시키면서, 빠르게 수천 피트 두께로 퇴적지층들을 퇴적시켰다. 이 과정은 유기물질의 자연적 분해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유기물질 잔해들을 가두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 와이오밍에 있는 깊은 퇴적층 분지 같은 곳에서는 1년 정도의 대홍수 기간 동안에 9,000~12,000m에 이르는 거대한 퇴적지층이 쌓여졌다. 그리고 이들 퇴적층의 대부분은 점토와 셰일이다.

빠른 판구조적 침강은(인접 산맥들의 융기를 동반하며) 매몰의 깊이를 깊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지판들의 이동은 유기물질이 풍부한 셰일 층을 ‘석유 창'에 위치시키던지, 더 높은 온도의 지역으로 위치시켰다. 이곳에서 석유는 요리(가열)되었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천연가스로 변환되었다.     


석유를 발견하려는 사람에게는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석유와 가스를 만드는, 화학적으로 탄화수소(hydrocarbons)와 관련된, 유기물질이 풍부한 셰일은 지질학적 지층들 내에 분산되고 혼합되어 있다. 이것은 매장된 석유를 발굴하고자할 때, 클럽 샌드위치(club-sandwich, 세 조각의 빵 사이에 내용물을 두 층으로 넣은 두꺼운 샌드위치)와 같은 모양의 복잡한 지층 구조를 탐사하게 만든다. 트랩 또는 돔(traps or domes, 즉 석유와 가스를 수집하고 보관하고 있는 지층구조)이 유기물질이 풍부한 셰일 층의 위쪽 그리고 인근의 정확한 위치에 위치해야만 한다. 그리고 셰일이 트랩의 효과적인 근원이 되기 위해서, 소위 '석유 창' 내에 위치해야만 한다.

중동(Middle East) 지역은 매우 유리한 석유 매장 지역의 예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석유를 만들고 가둘 수 있는 정확한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지역은 대홍수 동안에 퇴적된 유기물질이 풍부한 셰일 층과 함께, 홍수 말에 거대한 습곡이 일어난 퇴적지층을 또한 가지고 있다. 그 지층은 후에 발생된 석유를 가둘 수 있었다. 그 결과 수십억의 수십억 배럴의 석유가 이 지역에 갇혀 있게 된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지속적으로 더 발전된 기술을 사용하여, 셰일 층 자체뿐만이 아니라, 석유 트랩 구조를 찾고 있는 중이다. 유정 굴착과 지진파 데이터를 사용하여, 그들은 전 세계의 잠재적인 석유 트랩들을 찾기 위해서 땅 아래를 살펴보고 있다. 또한 그들은 복잡한 수압파쇄를 통해 생산량을 증가시키면서, 근원 암석인 셰일 안으로 수평 굴착 기법을 사용하여 구멍을 뚫어 석유가 흘러나오게 하고 있다. 이 새로운 기술들은 셰일오일이 꽤 풍부한 미국 텍사스, 오하이오, 노스다코타의 경제에 큰 혜택을 주고 있다.

최근 창조와 전 지구적 홍수의 비판가들은 발견되는 석유 매장량은 일 년 정도의 홍수로 인한 유기물질들의 퇴적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엄청난 량이라고 종종 주장한다. 그러나 주어진 시기에 바다에 유기물질의 량은 막대했다.[2] 창조과학자들은 오늘날의 바다에 풍부한 유기물질들을 연구함으로써, 발굴되고 매장되어 있는 모든 석유들이 일 년 정도 지속된 한 번의 전 지구적 홍수로 인한 유기물질들의 퇴적으로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질학자들은 이 모든 과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순히 석유가 모여 있다고 알려져 있는, 돔으로 습곡된 암석지층 또는 트랩을 찾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초에 암석지층에 막대한 량의 유기물질 잔해를 파묻어버린 비정상적이고 특별했던 과정은 고려하지 않고 말이다.

종종 세속적 지질학자들은 대부분의 석유들은 수백만 년 전에, 심지어 1억5천만 년 전에 만들어졌고, 그때 이후로 큰 압력 하에서 갇혀 보존되어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적으로 결코 성립될 수 없는 잘못된 가정이다. 만약 지구가 진정으로 그렇게 오래되었다면, 석유는 박테리아에 의해서 파괴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질학적 압력은 석유를 오래 전에 암석들 사이를 통과시켜버렸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2010년 멕시코만 호라이즌 심해 기름 유출 사건에서처럼, 석유는 지표면에서 박테리아의 작용에 의해서 빠르게 분해된다(글자 그대로 먹혀진다).[4] 박테리아는 사실상 지구의 모든 환경에서 살고 있다. 심지어 지하 깊은 곳에서도 살고 있다. 그래서 석유는 수천 년 후에는 완전히 분해되고 소모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석유는 수백만 년 동안 지속될 수 없다. 유기화합물은 어떠한 자연적 환경에서도 수백만 년 동안 지속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곳에서도 고대 석유는 존재할 수 없다!

고대 석유에 대한 잘못된 가정에도 불구하고, 세속적 지질학자들은 검은 황금만을 따라가며, 진정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나 의문을 갖지 않은 채 굴착만을 계속하고 있다. 매년 수백만 배럴의 석유가 전형적인 트랩에서 발견되거나, 수압파쇄를 통해 비전형적인 치밀한 셰일에서 계속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으로 풍부하고 밀집된 석유는 분명 하나님의 손길과 최근의 대홍수를 가리킨다.

전 세계적으로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것은 최근의 대홍수 동안에 일어났던, 매우 특별한 매몰 상황을 가리키고 있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매우 특별한 매몰 환경이 최근 대홍수 동안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세속적 석유 지질학자들은 전 지구적 대홍수를 거부한다. 석유 탐사를 하면서 매일 이러한 증거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는 격변적인 전 지구적 홍수 심판을 내리시면서도, 오늘날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하기 위해 석유를 만들고 계셨던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References
1. Dittrick, P. 2013. Focus: Unconventional Oil & Gas: EIA-ARI Issues Update of World Assessment of Shale Oil, Shale Gas. Oil & Gas Journal. 111 (7): 46-48.
2. Woodwell, G. M., et al. 1978. The Biota and the World Carbon Budget. Science. 199 (4325): 141-146.
3. Woodmorappe, J. 1986. The Antediluvian Biosphere and Its Capability of Supplying the Entire Fossil Record. In Proceedings of the First International Conference on Creationism, vol. II. R. E. Walsh et al., eds. Pittsburgh, PA: Creation Science Fellowship, Inc., 205-213; Technical Symposium Sessions and Additional Topics.
4. Foley, J. A. Oil From Deepwater Horizon Spill Broken Down By Hungry Ocean Bacteria, Researcher Says. Nature World News. Posted on natureworldnews.com April 8, 2013, accessed August 15, 2013.

* Dr. Clarey is a Research Associate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received his Ph.D. in geology from Western Michigan University.


*관련기사 : 셰일 원유의 힘…미국 40년 만에 석유 수출국 (2014. 6. 26. Korea Daily)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2632539

美 ‘셰일가스 지진’ 급증, 오클라호마 연 109회로 (2014. 6. 19. 아시아경제)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61909065855469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oil-fracking-recent-global-flood/

출처 - ICR, Acts & Facts. 42 (10), 2013.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951

참고 : 5898|5825|5834|5285|5147|2674|5721|5586|5037|3883|4610|4607|4490|4473|4235|4275|4198


Brian Thomas
2014-04-18

지구 깊은 곳에 엄청난 량의 물과 바다의 존재 가능성 

: 맨틀 전이대의 링우다이트 광물에 함유된 물 분자

 (Water Deep in Earth's Mantle)


      지구 표면 아래 얼마의 깊이에도 물이 있을까? 땅 아래로 수백 마일을 파볼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깊은 곳에서부터 지표면으로 어떤 증거가 나오기를 기다려야만 한다. 최근 한 국제적 과학 팀은 지구 깊은 곳에 풍부한 물이 있음을 가리키는, 독특한 브라질산 다이아몬드 함유물(diamond inclusion)의 발견을 Nature 지에 보고했다.[1] 그것은 지구의 구조에 관한 성경적 설명과 적합 될 수 있을까?


브라질산 다이아몬드 내부에는 지표면 아래 450마일 깊이의 맨틀 전이대(mantle's transition zone) 근처에서 형성되는 링우다이트(ringwoodite)로 불려지는 작은 녹색의 광물이 갇혀있었다.[1] 앨버타 대학의 지구화학자 그라함 피어슨(Graham Pearson)이 이끌고 있는 Nature 지의 연구 저자들에 의하면, 이 광물은 그 광물의 형성에 요구되는 압력 하에서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광물과 일치했다는 것이다.


피어슨과 동료들은 링우다이트 광물 내에 들어있는 수분의 양을 확인하기 위해서 여러 기법을 사용했다.[1] 광물 내의 수분 농도는 광물이 형성됐을 때 얼마나 많은 물이 존재했었는지를 알려줄 수 있다. 예상대로 그들의 링우다이트에는 많은 양의 물 분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물 분자 함량이 1% 정도).


브라질 아래 깊은 곳에 충분한 량의 물이 링우다이트의 수화 형태를 만들도록 존재했다면, 맨틀 내 깊은 곳의 유사 광물들 내에는 얼마나 많은 량의 물이 존재할까? 하부 맨틀로부터 상부 맨틀을 분리시키는 전이대에는 ”오늘날의 바닷물 총량과 맞먹는 막대한 량의 물이 존재할 수도 있다”고, 앨버타 대학 뉴스에서 피어슨은 말했다.[2]


Nature 지의 저자들은 제안했다. (대양저 암석층이 맨틀 깊은 곳으로 끌려들어가는) 섭입(subduction)은 맨틀 전이대로 물들을 끌고 들어간다. 창조론적(격변적 판구조론) 연구들은 노아 홍수 말기에 지각판들의 매우 빠른 이동과 섭입이 발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섭입은 전이대에 있는 모든 물들을 끌고 들어갔을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3]

첫째, 그 섭입은 아래로 내려가는 하나의 긴 길이다. 어떤 힘이 상부 맨틀의 두껍고, 건조한 암석 광물을 통과해서 그 깊은 곳으로 많은 물들을 밀어 넣을 수 있었을까?


둘째, 이 링우다이트 광물은 전이대가 상부 맨틀보다 더 축축함을 가리킨다. 만약 물이 표면에서부터 왔다면, 하강하는 물에 의해서 먼저 부딪혔을 상부 맨틀의 광물에서는 왜 물이 없는가? 더 깊은 곳에 있는 맨틀 전이대에 있는 암석보다 더 수화되어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또한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창 7:11) 노아 홍수가 시작되었을 때, 맨틀 전이대의 물과 같은 것이 지각을 통하여 올라왔을 가능성도 낮추고 있다. 그것은 상당한 두께의 암석들을 통과해야하는 긴 길이다. 오히려 깊음의 샘에서 터져 나온 물들은 맨틀 전이대 위쪽의 상부 맨틀에 있던 고대의 물 저장고로부터 쏟아져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어찌됐든 이 발견은 맨틀 물질에 막대한 양의 물이 저장되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지구의 대격변적 과거를 재구성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이러한 링우다이트의 발견은 몇몇 측면에서 중요한 점들을 시사하고 있다. 아마도 노아 홍수 이전에 상부 맨틀의 광물들은 한때 더 많은 물을 보유하고 있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물은 큰 깊음의 샘들과 관련되어 있을 수 있으며, 오늘날 상부 맨틀이 비교적 말라있는 것을 설명해줄 수 있다.


한편, 진화론은 지구 바닷물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진화론에 따르면, 바닷물은 지구 행성이 우주 암석과의 충돌되어 용융되었다가 장구한 시간에 걸쳐 냉각된 이후, 지구에 생겨났기 때문이다.[4] 많은 진화론자들은 그 용융된 물질에서 5억 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기체가 제거된(그들의 광물 내부로부터 물이 빠져나온) 이후에 바다가 형성되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결국 그 시기에 녹아있던 지구 행성은 물을 증발시켰을 것이고, 건조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제 자연주의적 진화론 이야기는 두 번째 바다(맨틀 속의 물)를 설명해야하는 추가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맨틀 깊은 곳에 바다는 어떻게 존재하는 것인가? 이제 세속적 과학자들은 지구에 있는 막대한 량의 바닷물과, 그 양과 동일한 맨틀 속 물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을 찾아야만 하게 되었다.   


반면에, 성경은 하나님이 지구를 용융된 암석으로부터가 아니라, 물로부터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 1~7).


또한 베드로는 마지막 때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이러한 사실을 일부러 잊으려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벧후 3:3~5) [4, 5, 6]


그러므로 지구 깊은 곳에서 막대한 량의 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은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믿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References

1.Pearson, D. G. et al. 2014. Hydrous mantle transition zone indicated by ringwoodite included within diamond. Nature. 507 (7491): 221-224.
2.Alary, B. Rare mineral points to vast 'oceans' beneath the Earth. University of Alberta news. Posted on ualberta.ca March 12, 2014, accessed March 18, 2014.
3.Baumgardner, J. 2003. Catastrophic Plate Tectonics: The Physics Behind the Genesis Flood. In Proceedings of the Fif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Creationism. R. L. Ivey, Jr., ed. Pittsburgh, PA: Creation Science Fellowship, Inc., 113-126.
4.Plummer, C. C., D. McGeary, and D. H. Carlson. 2005. Physical Geology. Tenth edition. Boston: McGraw-Hill, 444.
5.2 Peter 3:5.
6.Illustrating willful ignorance of Earth's divine creation out of water, the Nature study authors wrote, 'The ultimate origin of water in the Earth's hydrosphere is in the deep Earth—the mantle,' as confidently as if they were there to observe it. See reference 1.


*관련기사 : ”맨틀 전이대에 바닷물 총량 규모 물 존재 가능성” (2014. 3. 14.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4/03/14/0619000000AKR20140314138100009.HTML

'맨틀 전이대에 바닷물 총량 규모 물 존재 가능성' (한국일보. 2014. 3. 14)
http://news.hankooki.com/lpage/world/201403/h2014031417161722470.htm

'지구 맨틀층에 또 하나의 바다” 증거 찾아  (2014. 6. 15. 세계일보)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6/15/20140615002653.html

'지구 내부에 ‘거대 바다’ 존재할 가능성 커” (2016. 11. 28. 나우뉴스)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1128601008

동아시아 밑, 지구 내부에 ‘거대한 바다’ 있다 (2007. 2. 13. 조선일보)
http://photo.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2/14/2007021400526.html

지구 내부에 거대한 바다? : ‘지각 아래 북극해 이상 물 존재’ (2007. 3. 4.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94157.html

 

*참조 :  Diamond with Ringwoodite Reveals Water Deep in Earth’s Mantle
https://answersingenesis.org/geology/rocks-and-minerals/diamond-ringwoodite-reveals-water-deep-earths-mantle/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8036/

출처 - ICR News, 2014. 4. 4.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897

참고 : 4308|4640|3964|4276|1407|1415|1417|1419|1420|1422|1429|1436|4364|5797|4525|4371|3909|4326|4229|3829|4111|4017|5301|5448|5311|4722|5307|720|721|4198

T.Chaffey, R.Patterson
2014-04-14

영화 ‘노아’ - 비성경적 판타지

(The Noah Movie: Our Detailed Review)


Editor’s note: 영화 ‘노아’에 관한 짧은 리뷰는 전에 했었다. 그 영화에 대한 아래의 리뷰는 새로운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보다 상세한 조사이다.

  AiG(Answers in Genesis)의 사람들은 새로 나온 영화 ‘노아’를 봤다. 우리 사역팀의 신뢰할만한 친구의 리뷰에 근거하여, 스텝 멤버를 포함한 우리는 이 비성경적인 영화를 보는 데 돈을 조금이라도 허비하는 것을 망설였다. 그러나 심지어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그 영화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묻는 요청을 이미 수없이 받아왔다. 그래서 우리 AiG 연구자들은 눈으로 본 리뷰를 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명백히 비성경적이다. ‘노아’의 감독이자 작가인 다렌 아로노프스키(Darren Aronofsky)는 ‘New Yorker’ 지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영화는 ”여태까지 나온 성경 관련 영화 중에서 가장 비성경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좋으냐 나쁘냐를 판단하기 위해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 영화를 꼭 봐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잠언 11:14). 우리는 이번의 영화 리뷰를 통해 우리의 지략을 제공하려고 하며, 이미 이 영화에 대한 초기의 간략한 리뷰를 게재했고, 그 주제를 토론하는 인터넷 방송을 주재했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찬성할 수 없는 이 영화를 보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현명한 지략을 제공하는 것이다.


비판적인 리뷰에 대한 일반적인 반대에 대해 답한다.

어떤 영화에 대해 비판적일 때,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형태의 반응을 대하게 되는데, 이것을 먼저 앞부분에서 다루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1. 당신은 영화를 보지도 않고서 어떻게 그것을 비판할 수 있는가?

자, 우리는 이 영화를 봤으며, AiG 스텝 한 사람은 수개월 전에 이 영화의 한 컷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러한 반대는 부적절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비판적이었는데,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스텝을 포함하여 이 영화를 보았던 믿을만한 사람들과 이미 대화를 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The Last Temptation of Christ)’이라는 불경스런 영화의 경우에서도 그랬듯이, 그것이 극단적으로 비성경적이라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 영화를 꼭 볼 필요는 없다.

2. 할리우드가 성경적 영화를 제작하리라고 예상했단 말인가?

우리는 할리우드가 노아와 방주에 관한 성경의 설명을, 성경을 존중하며 진실되게 취급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슬프게도 기독교인 리더들이 그 영화를 추천하면서, 영화제작자들이 성경 원문을 잘 다루었다고 주장하며 사람들한테 그 영화를 보라고 독려하고 있다. 이제 그 영화를 보고 난 상태에서, 우리로서는 지식 있는 기독교인이 어떻게 해서 그러한 주장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그 영화가 성경을 왜곡한 여러 가지 사례들은 아래에서 읽어보라).

3. 그것은 그냥 영화일 뿐이니까, 그냥 즐기는 목적으로 보면 되지 않겠는가?

우리는 거룩하고 이 세상과 구별되라고 부름을 받았다. 왜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되는 생각을 자기 마음속에 채워 넣으려고 해야 하는가? 이 경우에, 영화 ‘노아’는 성경의 몇 가지 상세한 부분에서 약간 서투르게 표현한 정도를 넘어서서, 많은 경우에 있어서 성경의 가르침을 노골적으로 공공연하게 정반대로 가르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영화를 볼 수도 있고 보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시간과 자원을 현명하게 사용하도록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더욱이, 어떤 크리스천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그 영화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단지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우리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도록 부름 받았다는 성경의 명령과 반대되는 것이다.

4. 영화 제작자들은 단지 예술의 자율권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성경을 주제로 한 영화가 제대로 만들어진다면 예술의 자율권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실상, 역사적 사건을 묘사하고자 할 때는 예술의 자율권을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창조박물관’(Creation Museum)에 노아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있어서 예술의 자율권을 사용했으며, ‘방주와의 만남’(Ark Encounter)을 준비할 때도 그렇게 할 것이다. 우리는 노아가 어떻게 생겼는지, 무엇을 입었고, 어떻게 말했는지 등등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영화제작자들이 예술의 자율권 범위를 넘어섰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여러 분야에 있어서 공공연하게 원문과 반대되게 표현하고 있었으며, 경건하고 의로운 노아의 성품을 완전히 바꿔서, 마지막 남은 인간까지도 죽이려고 하는 삐뚤어진 성격의 미친 사람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노아는 자기의 친손녀까지도 살해하려는 사람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그 영화가 예술의 자율권을 남용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파라마운트사의 ‘노아’ : 예술의 자율권이 미쳐 날뛰다(Paramount’s Noah: Artistic License Run Amok)”라는 기사를 보라.

5. 이 영화가 복음 전도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기독교인들에게 이 영화는 사람들과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성경의 진실에 대한 개념을 연결시키는 일은 실제로 많은 수고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암석 사람(rock people)”을 성경 어디에 근거해서 설명할 것인가? 영화에서는 하나님이 왜 노아에게 직접 말씀하시지 않는가? 뱀 껍질이 왜 마술적인 능력을 정말로 가지고 있는 것인가? 따라서 이 영화는 수많은 오류투성이에 성경적 진실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그 영화를 본 사람에게 기독교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앉아서 성경을 펼쳐놓고 그가 본 것이 틀렸음을 조목조목 설명해주어야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많은 수고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차라리 그 영화를 보지 말라고 사람들을 독려한 다음에, 그들에게 노아에 관한 진실된 기록을 가르치는 것이 훨씬 더 쉬울 것이다.

결국 무신론자가 복음전도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영화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복음전파의 능력(로마서 1:16-17)과 복음전파의 명령을(우리를 도와줄 영화가 없을 때라도) 잊어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이미 그 영화를 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게 될 것이다. 그 경우에 크리스천들은 의지를 가지고 담대하게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은혜스럽게 진실되게 말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 영화는 성경의 기록과 일치하는가?

다양한 기독교 지도자들로부터 우리가 들은 말 중의 하나는, 그 영화는 성경 원전에 다소 충실했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7분짜리 비디오는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크리스천이 제작한 것으로, 그 영화의 다양한 보증 역할을 했다. 거기서 ‘노아’의 공동 극작가 아리 헨델(Ari Handel)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하나는 원전의 문자와 모순되는 것은 무엇이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우리가 할 수만 있다면 창세기와 모순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람들의 예상을 깨기 원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공동작가의 말에 의하면, 원전의 기록과 모순되지 않는 것을 그들이 매우 중요하게 여겼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과연 그들이 그 목적을 잘 이루었는지를 살펴보자.

아리 헨델이 원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거나, 아니면 그 영화를 선전하기 위해 자기의 관점을 가지고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했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영화 저작의 순수성이라는 한 가지 의문점으로 귀결된다.

어떤 사람은 성경적 이야기라는 거대한 기획에 있어서, 이런 많은 논점들은 다소 중요하지 않은 관점이라고 평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에 대한 오만한 자세를 드러내는 것이다. 작은 관점을 올바르게 받아들이는 것에 신경쓰지 않는다면, 그들이 더 큰 논점을 정확하게 취급하는지를 우리가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 아래를 보라.) 그들은 전체적인 스토리를 바꾸지 않고도, 세부적 내용을 바꾸고 있었다. 방주를 지은 것은 타락한 천사(Watchers, 감시자)들이 아니었다. 방주에 탄 노아의 아들들은 어리거나 미결혼의 상태가 아니었다. 함과 야벳의 아내들은 배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두발가인은 방주에 밀항하지 않았다. 까마귀를 내보낸 것은 야벳이 아니라 노아였다. 이것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라멕을 적당한 시간에 죽게 할 수 있었으며, 노아에게 사랑하는 삼촌 혹은 죽게 되는 큰 형을 만들어주어 후반부에 두발가인과 조우한다는 설정으로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영화제작자는 그들의 이야기 전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노골적으로 거슬렀다. 이는 그들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그들은 ”원전(성경)의 기록에 모순되는 그 어떤 것도” 피하려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다.


그 영화가 다루는 주제들은 성경과 일치하는가?

수많은 광고와 함께 제공된 선전 문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

이 영화는 노아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예술의 자율권이 도입된 것을 감안하면, 우리는 이 영화가 본질, 가치 및 전 세계 수백만 사람의 믿음의 초석인 이야기의 순수성 면에서 사실이라고 믿는다. 노아에 관한 성경의 이야기는 창세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지막 문장은 물론 확실히 맞지만 나머지 문장은 어떠한가? 그 영화가 성경의 노아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 한 가지는 맞다. 거기에는 노아도 나오고, 방주도 나오고, 홍수도 나오며, 성경의 다른 인물들의 이름도 나온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정말로 노아 이야기의 ”본질, 가치, 순수성 측면에서 진실”인가? 전혀 아니다.

이 영화에는 몇 가지 거대한 문제점들이 있다. 하나는, 노아의 성품이 매우 잘못되었다. 이 영화에서는 심하게 상처 입은 동물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노아는 세 명의 남자를 기꺼이 살해한다. 이 할리우드의 노아에게는 동물의 목숨이 인간의 목숨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는 함이 구하려고 했던 젊은 여자의 목숨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다. 더욱이, 노아의 며느리가 딸을 낳으려 할 때 노아가 이렇게 말했다. ”그녀가 태어나는 순간에 나는 그녀를 베어버릴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 내내 노아는 '결백한 자”(동물로 읽는다)가 홍수 이후의 새로운 에덴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모든 인간을 쓸어버리는 데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런 이야기 전개를 어떻게 성경의 노아와 비교할 수 있을까? 창세기 6:9절은 그가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말씀한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모든 것을 신실하게 준행했다(창 6:22).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창 7:1). 에스겔서에서 노아는 의인으로 평가되며 욥과 다니엘과 같은 수준의 위치에 있다(겔 14:14, 20). 베드로는 노아를 ”의를 전파하는 사람”으로 불렀다(벧후 2:5). 또한 노아는 ‘믿음의 장’인 히브리서 11:7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물론 노아는 완전하지 않았다. 노아는 아담의 죄성을 물려받았으며, 그의 평생에 수도 없이 죄를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의인이며, 그의 세대에서 흠 없는 자라고 선언하셨다. 노아가 완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는 죽어가는 도마뱀-개를 보호하기 위해 세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사람은 분명히 아니었다. 홍수 이후에 단 한 가지, 노아가 취해서 그의 아들 함에게 불명예스러운 사건을 초래하게 했다. 그러나 누구라도 그 영화에 나오는 노아가 성경의 노아를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성경의 노아는 영화에서 묘사된 노아가 아니다. 이렇게 고의적으로 선지자를 잘못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선택받은 종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영화에서 하나님을 잘못 표현하는 것이다. 우선, 하나님은 항상 창조주로만 연관 짓는다. 비록 이것이 하나님을 표현하는 적절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분에 대해 사용된 유일한 이름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보인다. 그 영화에서 하나님이 전혀 묘사되지 않으며, 그분이 전혀 말씀하지 않으실 때 그 성품으로부터 그분에 대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불경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항상 멀리 계신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라는 지시를 일련의 환상과 꿈을 통해 조각조각 받으며,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퍼즐을 자기 스스로 풀어야 한다. 사실상, 노아가 받는 홍수에 대한 ‘계시’의 일부는 므두셀라(영화에서는 일종의 주술사)가 노아에게 준 미혼약의 영향 하에서 나온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직접 말씀하셨으며, 그가 무엇을 해야 하며, 왜 그가 그것을 해야 하는지를 그에게 정확히 말씀하셨다고 우리에게 말씀해준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직접 말씀하실 수 없었는가? 하나님이 내키시지 않으셨던 것인가? 많은 경우를 볼 때, 영화 ‘노아’에서의 하나님은 이신론의 신, 즉 창조만 하고 그 이후에는 세상에 간섭하지 않는 신에 가깝다.

또한 영화 ‘노아’에서 하나님은 잔인하고, 사악하게 보여진다. 영화에서 노아가 단 한번 기도하는 때는 그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의 손녀들(그들이 여자일 경우)을 죽이기로 결심하기 직전이다. 쌍둥이 여자애가 태어났을 때, 노아는 기다란 단도를 애기 중 한명의 얼굴 위로 갖다 댄다. 약간의 긴장이 흐른 후에, 그는 칼을 치워버리고 하늘을 바라보고는 자기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자기는 하나님 뜻을 따를 수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영화에서 하나님은 노아가 자기 친손녀를 죽이기를 원하시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영화는 자비, 심판, 인간의 악행,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는 노력 등의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개념을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그런 주제들을 성경에서 묘사한 대로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러한 개념은 왜곡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노아는 그를 공격하려고 위협하는 사람들의 캠프를 방문한다. 그는 어둠을 틈타 들어가서, 신체학대, 유괴, 여자와 먹이를 교환하는 것(그리고 분명한 식인 행위), 및 기타 죄들을 목격한다. 그리고는 노아는 자기 자신(자신의 생령)을 동물의 고기를 먹고 있는 사람으로 보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의 죄성을 인식하며, 이것은 그의 가족에게까지 확대된다. 그러나 그 죄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스르는 죄는 아니다. 그것들은 창조를 거스리는 죄로써 동물을 먹고 땅에서 그 자원을 빼앗는 형태이다. 로마서 1장을 참고하면, 영화에서 노아는 창조주를 거스르는 것보다도 창조물과 창조를 범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 사람으로 보인다.


악을 선으로 선을 악으로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이사야 5:20).

이 영화는 종종 성경적 도덕성을 마치 물구나무서듯이 뒤집었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해 숙고하는 동안에 위의 구절이 반복적으로 떠올랐다. 감독이며, 동시에 공동 작가인 다렌 아로노프스키가 스스로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공언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사실만으로는 그가 성경적 역사에 근거한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그 사실은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그가 나타내려고 하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가져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노아’에 나오는 거의 모든 도덕적 논점은 뒤집혀져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성경에서 의인으로 명성있는 노아가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모든 인류를 쓸어버리려고 하는 정신병자로 그려지고 있다. 그는 사람에게보다도 식물과 동물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 영화에서의 신은 성경에 묘사된 거룩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노아가 임신한 자기 며느리에 대한 답을 간청할 때 침묵하는, 복수심 불타는 존재이다. 이 영화에서의 신은 아담과 하와가 존재하는 데에 (적자생존이라는) 진화의 잔인한 과정을 사용하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에 수십억의 동물들이 살고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화론적 가르침에 대해서는 아래에 더 언급했다). 이러한 진화론 옹호적 접근방식은 영화 속의 신을 우주적 위선자로 만들어버린다. 그는 모든 동물들을 방주에 태워 구함으로써 사람이 없는 새로운 낙원에서 다시 번성할 수 있도록 하기 원하고 있었지만, 진화의 방식으로 세상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신은 사람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에 수십억의 동물들이 고통 받고 죽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실제적인 '악당”은 신학적으로 가장 강한 것을 만드는 존재이다. 두발가인은 노아의 아들 함에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으며, 인간에게는 동물과 땅에 대한 지배권이 주어졌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물론 아로노프스키는 전적으로 통상적인 할리우드식 생각을 가지고 이에 대한 극단을 취한다. 두발가인은 악한 사람이지만, 그는 땅의 소유권과 권총 소유권(그렇다. 그는 일종의 폭발성 발사무기를 사용했다), 그리고 동물에 대한 인간의 우수성 및 동물을 사냥할 권리 등을 믿는다. 또한 그는 육식을 하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영화에서는 그것을 가장 나쁜 죄로 묘사하고 있다. 대홍수 이전에는 사람이 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되었다는 것이 사실이므로(창 9:3), 그 시기 이전에 노아가 고기를 먹는다면 잘못이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노아는 일부 사람이 동물을 먹으려고 할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류를 도살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동에 과도하게 싫증을 낸다.

노아의 가족이 방주에 들어가 있을 때, 노아가 그들에게 과거 이야기를 할 때, 에덴동산에서 뱀이 껍질을 벗었다고 말한다. 이것 때문에 아담이 혼란스러웠고, 하와는 방황하다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이른다. 이렇게 벗겨진 뱀 껍질이 일종의 마술적 부적이 되어서, 노아와 그의 조상이 자기들의 앞이마에 감고서, 자기 자손들을 축복하기도 하며, 기적을 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동산에서 벗겨진 뱀 껍질은 선한 것이며, 반면 하나님은 나쁘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이상하게 비틀은 것은, 타락한 천사가 착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다. 영화에서 타락한 천사(‘감시자’라고 부른다)는 마귀가 아니라 자기를 희생하고 있는 영웅이다. 심지어 아로노프스키와 헨델은 외경인 ‘에녹의 서(Book of Enoch)’와 다른 유대 고전의 도덕성까지도 뒤집었다. 에녹의 서에서는 ‘셈야자(Semjaza)’라는 이름의 한 타락한 천사가 200명의 천사 집단을 이끌고 지구로 와서 여자들과 결혼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해 반역하며 그들의 마법으로 인류를 부패시킨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복수심에 불타는 신이 인간들을 동산에서 쫓아냈다는 이유로, 이들 천사가 인간을 불쌍히 여겨 선한 의도를 가지고 인간을 도우려고 하늘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잔인한 신은 그들을 땅에 내팽개쳤다. 빛나는 그들의 몸에 흙이 달라붙어서 다중 갑옷의 (표석 덩어리를 닮은) 암석 거인으로 변해버렸다. 일종의 마술사인 므두셀라만이 그들의 보호자가 되는 유일한 인간이다. 심지어 그는 마술적인 뱀 껍질을 이용하여 폭발물을 만들어서 암석거인(타락한 천사)을 죽이려고 하는 수백 명의 전사들을 불태워버렸다.

영화 중반에서, 두발가인은 노아를 발견하고, 노아가 딛고 서 있는 땅에 대한 소유권이 자기에게 있다고 선언한다. 그는 노아에게, 그 혼자서 자기 군대에 대항하여 맞설 수 있느냐고 묻는다. 노아가 대답한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멋지다! 기독교인 관람객은 노아가 자기를 압도하는 기묘한 일을 당하여 하나님께 의지한다는 것을 시사하려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그 둘이 대치하는 동안에 돌더미처럼 꼼짝 않고 앉아있던 암석 거인 감시자가 그 순간에 일어나 두발가인과 그의 군대를 위협한다. 다시 말해서, 노아는 자기를 구출해 달라고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았다. 그의 도움은 타락한 천사에게서 온다.

그러나 영화 ‘노아’는 더 나쁘게 진행된다. 셈야자가 이끄는 타락한 천사들은 홍수 초반에 방주에 타려는 두발가인의 맹렬한 군대로부터 노아와 방주를 방어한다. 감시자들은 돌격한 군대를 한 사람 한 사람 떨어뜨리기 시작한다. 첫 번째 사람이 죽을 때 감시자는 하늘에 소리쳐 용서를 구한다. 그러면 그의 암석같은 몸이 빛으로 변하여 하늘로 뻗어 올라간다. 이러한 ‘부활’은 또 다른 암석 거인으로 하여금 ”그는 창조주께로 돌아간다”라고 선언하도록 부추긴다. 이와 같이, 성경에 의하면 타락한 천사는 구원받을 수 없으며, 영원한 형벌이 정해져 있다(마 25:41, 히 2:16, 벧후 2:4)는 것이 아주 분명한데, 아로노프스키는 자기 영화의 진정한 영웅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으로 만들었다. 또 다시 성경의 내용 크게 왜곡하고 있었다.

이 영화는 이와 같은 많은 성경적 주제들을 왜곡했다. 아로노프스키와 헨델이 이러한 논점들을 단지 우연히 간과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도 믿기 어렵다. 아니다. 그들의 대본에는 성경의 도덕성 뿐 아니라, 성경에서 선언하는 하나님의 품성, 의와 자비의 개념, 타락한 천사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영원한 심판, 및 창조에서 인간의 위치 등을 의도적으로 뒤엎으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유신론적 진화론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는 진화론적 견해를 조장하고 있었다. 노아는 방주로 모인 그의 가족들에게 ”태초에 아무 것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빅뱅이 시각적으로 드러나서, 용융된 공이 다른 물체와 부딪혀서 달이 형성된다는 등의 성운 가설을 통해 지구가 형성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그리고 생명체는 해양에서 작은 유기물로부터 시작하고, 원형질이 어류로 변하여, 해면 가까이로 헤엄친다. 이 어류가 일종의 양서류 생물이 되어서 육지로 기어 올라간다. 그리고는 파충류가 되어, 곧 땅 속의 굴에서 종종걸음으로 달리는 설치류로 진화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동물 형태는 영장류로 되고, 우리는 덩굴 사이를 활보하는 원숭이를 보게 되는데, 마침내는 그 덩굴이 제거되고 스크린이 밝게 빛난다. 빛이 희미해지면서 아담과 하와가 스크린에 등장하는데 빛으로 옷을 입었다.

그 영화를 추천했던 일부 기독교 리더들은 영화 ‘노아’에 진화론적 요소가 들어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담과 하와는 특별 창조된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영화는 아담과 하와가 활보하는 원숭이를 포함하여 진화론 사슬에서 바로 다음의 고리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영화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드러내는 부분이 몇 군데 있는데, 우리가 원숭이로부터 진화된 존재라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한다는 말인가? 이들 모든 생물들이 우리의 조상이라면, 그것은 그들도 역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음을 의미하지 않는가? 더욱이, 영화가 최고로 관심을 갖는 것이 생물이라는 것에 근거하면, 심지어 동물이 사람보다도 더 하나님의 형상을 많이 닮은 것이 되는 셈이다.

AiG는 진화론의 오류를 밝히고 있는 수많은 글들과 자료들을 가지고 있다. 진화론은 성경과 양립될 수 없다. 사실상 성경은 동물의 어떤 종류의 진화론적 발달도 부정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6일 만에 창조하셨으며(창세기 1장; 출애굽기 20:11), 각각의 동물과 식물들은 ”그 종류대로” 혹은 ”그들의 종류대로” 창조되었다. 다시 말해서, 개는 항상 개를 낳고, 고양이는 항상 고양이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의 진리는 우리가 여태까지 관찰했던 모든 사실들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리고 진화론 이야기의 사건과 영화에서 묘사된 사건의 순서는 성경과 모순된다(사건의 순서에 대한 20가지 이상의 차이를 상세히 다룬 Terry Mortenson 박사의 글 'Evolution vs. Creation: The Order of Events Matters!'을 보라).


우리는 더 말할 수도 있다.

영화 ‘노아’에는 다른 더 많은 오류들이 있고, 염려스러운 것도 있지만, 여기서는 이제 그만 둘 것이다. 시간이 없어서 더 말하지 않는 것들로는, 므두셀라가 가진 매우 기괴한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매우 신비스럽게 나왔다는 것, 동물들이 방주에 타서는 잎사귀로 만든 어떤 형태의 향 때문에 잠들게 된다는 것, 두발가인이 떠다니는 방주로 급히 들어온 후에 잠자는 동물을 먹는 것(이런 것으로 공룡의 멸종을 설명하려는 것인지?), 원형의 무지개가 진동하는 것, 도마뱀-개, 에덴동산으로부터 보존된 마술 씨 등등 많이 있다. 추후에 이들 특별한 논점들 일부를 보다 상세히 다루어서 웹페이지에 올리는 글들을 보라.


나쁜 것을 최대한 이용하기

영화 ‘노아’는 하나님을 불경스럽게 표현하고, 노아의 성격을 손상시키는 것으로 가득 찬 영화이다. 그것은 성경의 진리를 위험한 방식으로 왜곡하며, 성경이 실제로 가르치는 것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게 하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철회할 것을 요청하지는 않겠지만, AiG는 누구에게도 이 영화를 보라고 추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런 이유로, 기독교인들에게는 그 영화를 본 비기독교인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이용하여 어떻게 복음을 나눌 것인가? 첫째로, 당신은 누군가와 뛰어난 대화를 하기 위해 그 영화를 볼 필요가 없다. 당신은 다만 영화에서 어떤 것들을 보았는지에 대해 좋은 질문을 하고, 그리고는 성경을 펴서 대홍수 사건에 대해 성경이 진정으로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라 : 하나님이 노아에게 시키려고 한 일을 노아는 어떻게 알았는가? 영화에서 인류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영화에서는 어떤 이유로 세상에 홍수가 왔다고 하는가? 노아가 방주를 지은 목적은 무엇인가? 이 영화에서 무엇이 정말 이상하게 보이는가? 어떤 배역이 당신과 일치한다고 생각하는가? 그 이유는?

또한, 당신은 사람들에게, 그 영화는 기독교인인 당신을 거슬리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이 신뢰하는 사람들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그 영화를 보지 않기로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당신이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믿음에 높은 가치를 둔다는 강력한 간증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이런 토론을 할 때 당신의 성경을 펼쳐라.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의 권위로 설명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고 단순히 의견을 하나씩 논하라. 영화에서 하나님이 노아와 분명하게 의사소통하는 데에 실패했다는 것에 관해 말할 때나, 혹은 영화에서 동물이 사람보다 더 중요하다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지적할 때, 당신의 목표는 그 토론을 복음으로 이끌어가는 것임을 기억하라. 영화에서 제시된 죄와 의의 주제가 비록 왜곡되어 있더라도, 그것은 죄와 의와 자비에 관한 성경의 진실된 개념을 가리킬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 모든 것들이 당신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이 죄인이며,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심판을 해야 하는데, 하나님은 그분의 자비를 받을 수 있는 길을 동시에 제공하셨다는 것을 알도록 돕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대하여 완전한 순종의 삶을 사셨고, 기꺼이 그분의 목숨을 십자가상에서 인류의 대속물로 바치셨다. 그리고는 죽음에 승리하여 무덤에서 일어나셨다. 하나님을 거슬린 죄 때문에, 마땅히 죽어야 할 죄값을 예수님이 지불하셨다. 회개하는 믿음으로 우리가 그분에게 돌아서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노아가 하나님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하고 방주에 타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의 방주로 바라볼 수 있다.

가서 이 좋은 소식을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에게 전하자!



Footnotes
1.'Darren Aronofsky Gets Biblical,” The New Yorker, March 10, 2014, http://www.newyorker.com/services/presscenter/2014/03/17/140317pr_press_release.


Noah Movie and Other Articles
Noah Movie Review: An Unbiblical Film
An Examination of Christian Entertainment Choices and the Movie Noah
What We Know of Noah and the Ark in the Bible
AiG and Ray Comfort on Noah and the Last Days


Ken Ham
The Noah Movie Is Disgusting and Evil—Paganism!
Don’t Be Taken in by the Noah Movie’s Promotion
Yet Another Hollywood Deception to Promote the Noah Movie
The Positives? Make Sure You Also Hear the Negatives!
Was Noah an Environmentalist?


*관련기사 : 영화 ‘노아’ 8~9점 받던 평점 5~6점 급락, 왜? (2014. 3. 24.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NewsStand/3/all/20140324/61943525/1

성경 속 하나님의 홍수 심판 소재 영화 노아,  ‘반기독적·상업주의’ 논란 (2014. 3. 25. 국민일보)
http://missionlife.kukinews.com/article/view.asp?gCode=0000&sCode=0000&arcid=0008166479&code=30401100

영화 ‘노아’를 바라보는 이민교회의 시각은 (2014. 4. 9. 기독일보)
http://www.christianitydaily.com/articles/78231/20140409/영화-노아-를-바라보는-이민교회의-시각은.htm?r=ny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noah-movie/detailed-review

출처 - AiG–U.S. 2014. 3. 29. 창조대구 소식지 135호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893

참고 : 3032|1455|1458|4610|4607|4490|4473|4235|4275|4198|5841|5429|5399|5260|5311|4535|4354|4352|3725|3596|5737|5721|5556|5527|5400|5307|720|721|5628|5594|5468|2851|5225|5065|5062|4982|4722|4302


과학이 알지 못했던 놀라운 사실들 

: 무릎에서 새로운 인대의 발견과 해저 캐년

 (Surprising Things Science Didn’t Know)


    과학자들은 우주의 기원이나 수십억 년의 연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 발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들이 많다.


휘파람 소리를 내는 찻주전자의 미스터리 : 케임브리지 대학의 두 연구원은 찻주전자(teakettle)의 휘파람 소리가 어떻게 생겨나는지에 대해서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고 PhysOrg(2013. 10. 25) 지는 보도했다. ”연구자들은 100여년 이상동안 과학자들을 당황시켰던 문제인, 찻주전자의 휘파람 소음이 어디에서 생겨나는지에 대해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 Science Now(2013. 11. 22) 지는 이것에 대해서 재치있게 쓰고 있었다 :

수세기 동안,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비밀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연구들을 해왔다. 중력, 전기, 블랙홀, 힉스 입자, 초끈 이론 등과 같은 것들 사이에서 특별히 흥미로운 미스터리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왜 찻주전자는 물이 끓으면서 휘파람 소리가 나는가 하는 것이다. 프로그램 된 슈퍼컴퓨터 옆에 있는 난로 앞에 서서 그들은 말했다. ”오 그것은 진동(vibrations), 또는 어떤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지성이 마침내 무지의 어두운 그림자를 극복하고 승리했음을 보고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우리는 마침내 주방 가전제품 중 하나에 숨어있었던 가장 낮은 기술의 수수께끼를 풀었다... 그리고 광대한 우주의 또 다른 미스터리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들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차를 음미했다.


무릎에서 새로운 인대가 발견됐다 : 사람들은 수 세기에 걸친 해부와 수술을 통해 사람의 무릎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새로운' 인대가 발견되었다고 BBC News(2013. 11. 7)는 보도했다. 그것은 전외측인대(anterolateral ligament)라는 이름의 인대이다. Medical Xpress(2013. 11. 5) 지의 사진에서 그것은 꽤 명백하게 보인다. 그 인대도 역시 중요했다. 그 인대는 우리가 몸을 비틀 때나 방향을 변경할 때 무릎을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게 없다면, 무릎은 갑자기 주저앉을 수 있다. 그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던 한 외과의사는 ”과거의 역사를 뒤돌아본다면, 무엇인가가 무릎의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막연하게 이해하고 있었지만, 결국 이번 연구는 우리에게 더 나은 이해를 제공해주었다.”

맨해튼의 그랜드 캐년 : 맨해튼 해안에서 단지 160km 떨어진 곳에, 그랜드 캐년에 필적하는 거대한 협곡이 대륙경사면을 따라 깊은 바다로 나가며 파여져 있다. Live Science(2013. 10. 16) 지는 ”허드슨 캐년(Hudson Canyon)은 다양한 수많은 생물들이 거주하고 있는 하나의 도시이다.”라고 말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바쁜 도시 가까이에 있는 그 협곡은 초거대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생물학자들은 그곳에 서식하고 있는 플랑크톤에서부터 산호, 오징어, 말미잘, 황새치, 향유고래 등 수많은 작고 큰 동물들의 목록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이들 중 일부는 비디오에서 볼 수 있다. 허드슨 해저 캐년은 케이프 코드(Cape Cod) 남쪽의 동쪽 해안을 따라 나있는 15개의 거대한 해저 캐년 중 하나이다. 그 기사는 과거 해수면이 낮았을 때, 대륙붕을 따라 흘렀던 고대 강(ancient rivers)들의 잔재라고 말한다. 캐년 너머에는 대양저로부터 수천 피트 높이로 솟아있는 휴화산들인 일련의 해저산(seamounts)들이 있다.



이들 거대한 해저 캐년들은 노아 홍수 시에 대륙으로부터 물이 물러가면서 파놓은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 다수의 고대 강들이 서로 가까이에 존재하면서 그렇게 거대한 협곡들을 파놓았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만약 대규모의 예측될 수 없던 엄청난 물이 대륙으로부터 빠져나갔다면, 이러한 거대한 해저 캐년과 같은 지질학적 모습들은 예상될 수 있는 것들이다.


과학은 이제 찻주전자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다루기 쉬운 것이다. 진화론은 가정들, 추정들, 알지 못하는 것들, 변수들, 오류들, 번복되는 것들로 가득하다. 오차 범위는 막대 축을 능가한다. 이것이 어떠한 이야기도 오차 범위 내에 들어가는 이유이다. 이제 진화론자들에게 말하자. 관측할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추정과 추측으로 연구비와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무릎에서 인대를 발견한 연구자와 같은 사람들을 지원해주라. 완벽한 치료를 위해 무릎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증거에 기초한 지식을 그는 필요로 하고 있다. 캄브리아기의 폭발을 설명해보려고 머리를 쥐어짜며 지어내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같은 것 말고 말이다. 


*관련 기사 : 벨기에 연구팀 새로운 무릎인대 발견…무릎부상 치료 혁신 가져올듯 (2013. 11. 7. 나우뉴스)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107601015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3/11/surprising-things-science-didnt-know/ 

출처 - CEH, 2013. 11. 17.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812

참고 :

David Catchpoole
2013-10-08

믿음은 산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Faith can move mountains but it can’t change history)


      수년 전에 영국의 한 작가가 히틀러 통치하의 독일에서 수백만의 유태인들이 죽음을 당했던 것을 부정했다고 해서 체포당할 위기에 있었을 때, 다음과 같이 생각했던 것이 기억난다 :

*그가 기꺼이 감옥에 갈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기가 말하는 것을 진정으로 믿고 있다면, 홀로코스트(Holocaust, 대학살)가 없었다고 믿고 있는 그의 믿음은 사실상 매우 강한 믿음이다.

*홀로코스트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고 아무리 열렬히 믿을지라도, 그리고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아무리 그와 동의하며 큰 목소리로 그를 지지할지라도, 그의 믿음은 수백만의 유태인 및 다른 사람들이 죽었던 대학살 사건이 정말로 일어났었다는 사실을 바꿀 수 없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것이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칭찬할 만한 많은 기독교인들이 창세기 6~9장의 전 세계적인 대홍수가 전 지구적 홍수가 아니라 국지적 홍수였다고 열렬히 믿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논하기를, ‘전 지구적인’ 홍수라는 말을 지구상의 제한된 영역에서 사용될 수 있다고 말하며, 홍수로 인하여 오직 제한된 지역의 일부(그리고 동물과 새) 거주지만을 휩쓸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제한된 영역을 전 세계로 생각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사람이 출현하기 이전에 수백만 년, 수십억 년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들은 이 개념이 화석 ‘기록’에 대한 세속적(진화론적) 해석에서 나왔다는 것을 통상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이 개념은 아담의 죄 이전에 죽음과 고통, 육식과 가시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대치된다.)


그러나 전 지구적 대홍수를 부정하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님 안에서 산을 움직일 수 있을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마 21:21, 고전 13:2), 그들이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심지어 ‘산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러한 믿음이, 노아가 소년일 때에 존재했던 세상의 모든 높은 산들이 600세 되던 해에 발생한 대홍수로 점차적으로 물속에 잠겼다(창 7:19)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천하의 높은 산들이 모두 물에 잠겼으므로, 그것은 국지적 홍수일 수 없고, 전 지구적 홍수였음에 분명하다.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심지어 가장 높은 산맥(예를 들면 히말라야)에서까지 퇴적암 속에 화석화된 식물과 동물들이 수십억 개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일리가 있다. 화석은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수백만 년 혹은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와 사멸의 ‘기록’이 아니라, 약 4,500년 전에 있었던 전 지구적 대홍수 및 그 이후 사건의 유산인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도 역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 역시 과거를 바꿀 수 없다.

진화론을 선도하는 리처드 도킨스는 하나님이 아니라 진화론이 우리의 기원을 설명해 준다고 주장하며, 역사를 다시 쓰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그는 오늘날에도 진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생물에서 인간으로의 돌연변이적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해 보라고 했을 때, 리처드 도킨스는 그것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후퇴한다 : ”진화는 관찰되어 왔다. 단지 진화가 일어나는 동안에는 관찰되지 못할 뿐이다.”


그것은 나를 믿으라는 말로 들린다. 이것은 분명 성경의 믿음에 대한 정의와 어울린다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사실상, 그것은 많은 증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증언하는 것과 같은, 증거와 항상 연결되어있는 성경적인 믿음보다도 훨씬 더 맹목적인 믿음이다. 성경적인 믿음은 증거 및 이성과 대조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견해와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가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진화가 사실이라고 확실히 바라는 것 같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이 없는 기원에 대한 믿음을 아무리 강하게 붙들고 있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열렬히 그에게 동의하더라도, 그것은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것을 바꿀 수는 없다. 약 6,000년 전에 하나님이 지구와 나머지의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실제 역사이며, 아무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 비록 그들이 산을 움직일 수 있는 믿음이 있을지라도 말이다.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creation.com/faith-can-move-mountains-not-history

출처 - Creation ex nihilo, Vol. 35(2013), No. 4, pp. 32-33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758

참고 : 5686|5275|5094|4998|3730|5035|5033|4540|4440|4380|4375|3945|3783|3707|3020|2982|2797|2936|2942|4473|4490|4607|4610|4235|4275|4198

David Wright
2013-06-14

노아 홍수 동안에 식물들은 어떻게 생존했을까?

(How Did Plants Survive the Flood?)


    창세기 기록에 대한 많은 성경비판가들은 담수(민물)와 염수(바닷물)에서 1년 동안 식물과 씨앗들이 살아있었다는 생각을 비웃는다. 이에 대한 간단하고 멋진 많은 설명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 지구적 홍수에 대한 성경 기록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몇 가지 가능성들을 살펴보았다. 문제의 핵심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전 지구적 홍수 시에 만나게 되는 이러한 어려운 문제들에 대한 설득력 있고 가능성 있는 설명들을 기꺼이 수용할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것이다.


서론
 
모든 데이터가 지적설계자를 가리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자연주의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에서 제외되고 있다.[1]

회의론자들은 성경을 허물기 위해서, 자신들의 교리에 맞는 성경속의 어떤 종류의 이슈, 모순, 오류, 불일치의 기록을 찾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의 주장은 종종 성경 말씀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가정으로부터의 출발한 것이며, 흔히 그들의 소망적 생각에 기인한 것들이다. 더군다나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이들 회의론자들은 그들의 주장에 대한 명백하고 논리적인 설명(대답)을 흔히 수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식물을 창조하실 때, 완벽하게 만드셔서, 식물들은 아름다운 디자인과 색상을 가지며, 생명력 넘치고, 튼튼하고, 강인하게 창조되었고, 가혹한 환경 조건에서도 견딜 수 있는 선천적 생존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고유의 메커니즘은 그들이 창조되었을 때 제공되었다. (혹은 타락 이후에도 지속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본 논문의 주제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이러한 간단한 설명은 흔히 회의론자에게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잘못된 전제에서 시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리를 볼 수 있도록 그들의 눈가리개를 제거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성령님이시지만, 그들의 이러한 비판적 질문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주는 것도 기독교인의 의무인 것이다.


기본적 논리

식물이나 씨앗이 어떻게 1년 동안 물속에서 생존할 수 있었을까? 노아 방주에서 내린 후에 초식동물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이런 종류의 질문들은 흔히 성경 비판론자와 기독교인들로부터 동일하게 받는 질문이다. 불행히도, 이것은 때때로 믿는 자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인간의 이론을 수용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아래의 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침수된 상태에서 어떤 식물이나 씨앗이 살아남는 방법은 간단하고 무수히 많다. 홍수의 진행 단계에 대하여 성경이 실제로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에 관한 몇몇 오해들을 주목하는 것 역시 가치 있는 일이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이고, 전 지구적인 홍수가 있었음을 알고 있다. 전 지구적 홍수가 있었고, 오늘날 식물들이 살아있다는 사실로부터 중요한 질문이 생겨나게 된다. 어떻게 식물과 씨앗들은 살아남았는가 하는 문제이다. 홍수 시에 식물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대한 논리적인 주장은 실제로 매우 간단하다. 

 성경은 전 지구적 홍수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식물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식물들은 대홍수 시에 살아남았다.

누군가의 잘못된 연구와 터무니없는 주장들이 의심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즉시 무시해버려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진정한 문제는 마음의 문제이고, 그래서 적절한 대답은 사랑의 방법으로 제시될 필요가 있다 (벧전 3:15).


얼마의 시간을 견뎌야 했나?

노아 홍수의 시간표(timeline)에 따르면, 지구는 노아 홍수 전체 기간 동안 물로 뒤덮이지는 않았다. 땅에 접촉되지 않고, 씨앗과 식물이 물속 혹은 물아래에 있었던 가능한 총 기간은 278일 이었다(약 9개월 1주). 성경에 의하면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홍수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창 7:11). 그리고 식물이 살아있음을 처음 기록하고 있는 것은 비둘기가 감람나무(olive)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온 사건이다(창 8:10~11). 대홍수 시간표의 상세한 내용은 표 1과 그림 1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식물과 씨앗이 물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1년이 아니라) 최대 9개월 이상 물에서 견디면 되었다. 그 기간은 아마도 더 짧을 수도 있었다(아래 그림 참조). 왜냐하면 높은 언덕과 산을 포함하여 온 지면이 물에 잠기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땅은 감람나무가 자라서 잎사귀를 낼 만큼 충분한 기간 동안 있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노아의 대홍수로 육지가 물에 잠긴 기간은 6-7개월 정도로 짧아질 수도 있다.

그림 1. 홍수의 시간표

 

바닷물의 염도 문제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는 바다의 염분 농도이다. 현재 바다의 염도(salinity)는 평균 35ppt(parts per thousand, 즉 물 1리터 당 소금 35g의 양)이고, 담수는 0.5ppt 이하이다. 성경 비판론자들은 바다가 오늘날의 증가율에 기초하여 현재의 염분 농도가 되기 위해서는 수백만 년에서 수십억 년이 걸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들은 대홍수 시기에도 바다는 현재의 염분 농도와 동일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왜냐하면 노아의 홍수는 약 4,400년 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험프리 박사가 지적한 것처럼, 사실 무근의 추측인 것이다.

강과 다른 경로를 통해 매년 4억5천만 톤의 나트륨이 바다로 들어간다. 이 나트륨의 27% 만이 매년 바다 밖으로 나가게 된다. 어느 누구라도 알 수 있듯이, 나머지 나트륨은 바다에 단순히 쌓이게 된다. 만약 바다에 나트륨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시작되었더라도, 현재의 유입과 유출 율로도 4천2백만 년 내에 현재의 농도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바다의 진화론적 추정 연대인 30억 년 보다 훨씬 더 짧은 기간이다.[2]

바다의 염도에 대해 하나 이상의 가능한 시나리오가 있다. 하지만 어떤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을까? 첫째는, 노아 홍수 이전에는 바닷물의 염도가 담수와 비슷한 수준으로 낮았을 가능성이다. 둘째는, 대부분 홍수기간 동안에는 0.5-30ppt 정도의 저농도 염수였을 가능성이다. 현재의 짠 염분 농도는 홍수 물이 대륙으로부터 후퇴, 화산폭발, 그리고 비와 강으로부터의 나트륨 유입으로 원인되었을 가능성이다. 염도가 홍수의 범람 단계 동안에도 대략 오늘날과 같은 농도였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만약 그랬더라도, 식물이 생존하기에는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 중요한 점은, 회의론자들도 당시의 염도를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홍수 때의 염도를 제멋대로 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억해야할 것은 성경 비판론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경을 훼손하는 것이다. 홍수 시의 염도가 오늘날 바닷물의 염도보다 훨씬 낮았을 가능성은 남아있는 것이다.


살아남은 식물들

회의론자들의 또 하나의 가정은 오늘날의 식물 종들이 대홍수 시기의 식물 종들과 동일했다는 것이다. 울레미 소나무(Wollemi Pine)와 같은 어떤 식물 종들은 당시에도 있었을 것이지만, 오늘날 우리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식물 종들은 4,400년 전의 노아 홍수 이전의 종들과 정확히 같다고 할 수 없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 한 가지 큰 이유는 오늘날의 식물들은 4,400년 동안 종 분화, 돌연변이, 유전적 퇴보를 겪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이 일부 유전정보의 소실을 의미한다. 4,400년 전의 식물 종들이 오늘날 많은 식물 종들처럼 섬세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유전적으로 물리적으로 더 강인했었을 것이다. 따라서 홍수 이전의 식물들은 오늘날의 식물들보다 극한 환경에 더 잘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9개월 동안 물에 잠겨있거나, (떠다니는 식물 매트 위를 포함하여) 물에 떠다니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울레미 소나무(Wollemi Pine, credit Amanda Slater via Wikimedia Commons)


회의론자들은 나무와 식물 종들이 홍수와 같은, 심지어 염수 조건에서도 실제로 번성한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맹그로브(mangroves)는 주로 열대 해안선을 따라 살고 있다. 습지(swamplands)에서도 번성하는 현화식물과 나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습지에서 살고 있는 일부식물은 편백나무, 솔송나무, 테다소나무, 검은가문비, 적단풍, 느릅나무, 대왕참나무, 자작나무 등이다. 어떤 나무들은 물이 포화된 상태에서도 견딘다. 따라서 ”식물들은 홍수 동안에 살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실제로 그런 나무들은 그러한 가혹한 환경에서도 번성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질문의 이면에 있는 진정한 이슈는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에 권위를 두는가, 아니면 인간의 부정확한 이론에 권위를 두는가 하는 문제이다.

.맹그로브(Mangrove swamp, public domain image via Wikimedia Commons)


가능성 있는 방법들

우리는 식물과 씨앗들이 홍수 동안 살아남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생존한 방법 모두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들 각각이 어떻게 생존했는지 모른다고 해서, 그것들이 생존하지 못했다거나, 생존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홍수기간에 식물과 씨앗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몇 가지 이론적 가능성을 생각해보자. 이러한 많은 가능성들이 기록되어 왔다. 예로서, 다윈은 무기물-인간의 진화를 주장했지만, 그는 (생물학 학위가 없다하더라도) 매우 예리하고 관찰적인 과학자였다. 다윈과 조지 하우(George F. Howe)는 각각 씨앗들이 염수에 침수된 상태에서 생존이 가능한지, 그리고 씨앗들이 물에서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지를 밝히기 위한 실험을 수행했었다. 따라서 진화론의 아버지의 연구도 식물과 씨앗들이 홍수 동안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었다.

성경은 홍수의 물이 물러가면서, 식물들이 이미 자라고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되돌아온 비둘기의 증거에서처럼(창 8:10-11), 이것은 홍수 사건에서 약 278일에 일어난 일이고, 노아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무른지 128일 째 되는 날이다. 이 기간은 씨앗 또는 가지가 뿌리를 내려 다시 자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된다. 조지 하우는 야생 현화식물의 씨앗은 염수에 담근지 140일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발아할 수 있는 충분한 생명력이 있었음을 발견했다.[3, 4]

식물이 살아남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노아와 그의 가족 그리고 동물들을 위한 식량으로서 식물이 방주에 실렸던 것을 생각할 수 있다(창 6: 21). 이들 식물들 중 일부는 곡물류(cereal plants)였을 수 있는데, 곡물류는 물에 오랫동안 잠겨있을 경우에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하우는 발견했었다. 이들 중 일부는 홍수 이후에 노아의 가족에 의해서 다시 심겨진 것 같다. 왜냐하면 노아는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다고 성경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창 9:20). 방주에 실렸던 어떤 씨앗들은 방주의 마지막 날에 동물들에 의해 섭취되었고, 방주에서 내린 후 동물의 배설물로 지상에 남겨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식물들과 씨앗들은 홍수 물위에 떠다니는 식물 매트(vegetation-mats)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5] 부유 식생은 뿌리 채 뽑힌 많은 나무들과 다른 식물들을 포함하고 있었고, 홍수 물이 물러감에 따라서 다시 자라날 수 있었다. 감람나무와 많은 다른 나무들과 식물들은 오늘날에도 가지를 잘라 심는 무성적 방법(asexual budding)으로 번식이 된다. 일부 씨앗은 찰스 다윈이 관찰했던 것처럼, 이러한 떠다니는 식물 매트와 그들 자신의 근계(root systems)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구의 작은 부분은 50년 후에 참나무 뿌리에 의해 완전히 둘러싸이게 되었고, 3개의 쌍자엽식물이 발아되었다”[6]
 
홍수 동안에 많은 초식동물들이 죽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체는 물 표면에 떠다니면서 씨앗들이 붙어있고 보호될 수 있게 하였다. 다시 한번, 다윈은 예리한 관찰을 했다 : ”다시, 나는 새의 사체가 바다에 떠 있을 때, 때때로 즉각적으로 먹히지 않았고, 떠다니는 새의 사체에서 많은 종류의 씨앗들은 그들의 생존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부는 비둘기 떼에 먹혀서, 30일 동안 인공호수에 떠 다녔다. 놀랍게도 이들 씨앗들은 거의 모두 발아되었다” [7]


결론

식물들이 홍수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여러 수단을 통해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단지 몇 가지 사례들만 적었다. 회의론자들은 정당한 근거 없이 ”식물이 전 지구적 홍수 시에 살아남을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그러한 주장은 다윈의 연구 일부를 무심코 무효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인간의 이론에 기초한 회의론자들의 주장이 하나님 말씀과 상식이라는 거대한 논리적 홍수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Footnotes
1. Scott C. Todd, correspondence to Nature 401 (1999): 423.
 2. Russell Humphreys, 'Evidence for a Young World,” First published in Impact #384 (2005), ICR.
 3. George F. Howe, 'Seed Germination, Sea Water, and Plant Survival in the Great Flood,” Creation Research Society Quarterly 5 (1968): 105–112.
 4. John Woodmorappe, Noah’s Ark: A Feasibility Study (Dallas, Texas: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2003), p. 155.
 5. The possibility of floating vegetation mats on the Floodwaters coincides with the huge quantities of vegetation buried in coal beds, which formed during sediment deposition after the Flood event began.
 6. Charles Darwin, The Origin of Species, Chapter XII, 'Geographical Distribution,” subsection 'Means of Dispersal” for Darwin’s salt-water studies. (New York: Signet Mass Market Paperback, original published 1859), p. 349.
 7. Ibid.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id/v7/n1/how-did-plants-survive-flood

출처 - AiG, 2012. 10. 10.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675

참고 : 2075|4512|721|2201|2121|5527|5468|5390|4198|3032|2851|5311|4722|2098|4325|5345|4275|4235|4473|4490|4607|4610|6547|6545|6543|6535|6531|6508|6507|6558|6551|6559|6549|6462|6417|6431|6524|6415|6413|6330|6254|6255|6240|6228|6225|6223|6222|6136|6170|6104|6076|6030|5556|5973|5958|5957|5951|5898

Michael J. Oard,
2013-01-11

전 지구적 홍수를 가리키는 아프리카의 평탄면 

(The remarkable African Planation Surface)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 패러다임 하의 지형학(geomorphology)은 지형(landforms)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에 커다란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지형(지형의 대부분은 한때 매우 컸다) 중에 하나는 평탄면(planation surface, 평탄한 표면)이다. 평탄면은 흔하고 전 세계적이다. 평탄면은 오늘날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파괴되고 있다. 아프리카는 어떤 대륙보다도 많은 평탄면으로 뒤덮여 있지만, 평탄면의 연대와 수는 항상 논란이 되어왔다. 아프리카의 평탄한 표면에 대한 한 새로운 합성 그림은 아프리카 표면(African Surface)이라 불리는, 아프리카에서 한 거대한 뒤틀린 평탄면이 있음을 결론내리고 있다. 아프리카 표면의 대부분은 견고피각(duricrust)이라 불리는 화학적 침전물에 의해서 뒤덮여 있다. 그것의 기원은 수수께끼이다. 평탄면과 침식면은 대륙의 융기 동안 물러가는 홍수물에 의해서 쉽게 형성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하 원문 http://creation.com/african-planation-surface 을 참고 하세요>

      <원문 전체가 번역 완료되었습니다. 아래 글을 클릭하십시요>

               전 지구적 홍수를 가리키는 아프리카의 평탄면 (new) : 동일과정설적 지형학이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모습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35 

Figure 1. Top of the planation surface in the western Cypress Hills. This surface is capped with an average of about 23 m of well-rounded quartzite gravel and boulders from across the continental divide, over 400 km away.


Figure 2. Lake Missoula flood bar along the Snake River, Washington, west of Little Goose Dam. The bar is about 60 m thick and made up of practically all basalt gravel eroded from the Columbia River Basalt substrate.
 

Figure 3. Planation surface in the Grand Canyon area after about 1.5 to 3 km of sedimentary rock was eroded.

Figure 4. A planation surface on top of a small plateau in the northeast Bighorn Basin, just west of Greybull, Wyoming. Note that the strata dip to the west (i.e. to the right) at about 30° (view south). 

Figure 12. A planation surface being destroyed east of the Little Rocky Mountains, central Montana, USA.

Figure 11a. The Great Escarpment (solid line) is located around southern Africa (after Oard, ref. 67, p. 54). Note that the escarpment is about 100 km inland from the coast, having retreated inland due to erosion



Figure 11b. Cross section through southern Africa showing the flexing upward of the coastal sections and the formation of a seaward-facing Great Escarpment (from Oard, ref. 67, p. 53). The Drakensberg Escarpment between the Highveld and the Natal coastal plain is about 3,000 m high.
 


Summary and discussion

Planation and erosion surfaces are common across the earth. They were once significantly larger, having subsequently been whittled down by erosion and tectonic processes. These surfaces are one of many geomorphological problems that uniformitarian scientists have great difficulty explaining, although they have a number of hypotheses. The main problem is that they are not forming today (except possibly in very small areas adjacent to rivers), but are being destroyed. There has been much contention on the number and ages of planation surfaces. This dispute is nowhere more evident than on the continent of Africa. Renowned geomorphologist Lester King vacillated on the number of African planation surfaces. A recent synthesis has claimed that there is only one planation surface on Africa currently found at different altitudes because of regional tectonics. This planation surface is called the African Surface, which was one of King’s main planation surfaces. 

Figure 14. A simple block diagram showing the current continental sedimentary rocks with the volume of sediments eroded after Day 150, the ‘Erodozoic’, during the Retreating Stage of the Flood (drawn by Mrs Melanie Richard).

The African Surface, as well as other planation surfaces, were readily formed as the floodwater rushed off the continents during the Retreating Stage of the Flood, while the continents uplifted and the ocean basins sank (Psalm 104:6–9). Planation surfaces are powerful evidence for the reality of the Flood. Planation surfaces were formed during widespread erosion of the continents by water, leaving behind erosional remnants, eroded anticlines and transported resistant rocks hundreds of kilometers from their source. The formation of planation surfaces was the last great event to affect the continents, the Ice Age notwithstanding. During planing, erosion was up to 5 km in places, such as on the Colorado Plateau88 and the Appalachians.[89] The literature claims deep erosion at many other locations on the continents.[67]

Planation surfaces not only tell us of the great erosion of the continents, but also demonstrate that the sedimentary rocks left behind underneath the planation surfaces likely were from before the Retreating Stage and thus from the early part of the Flood, called the Inundatory Stage.[86] The Retreating Stage was mostly a period of erosion on the continents and not deposition (figure 14). It is called the Erodozoic by Holt.[93] Such a deduction has profound implications for interpretation of the geological column. It implies that no matter what the uniformitarian date of the surface sedimentary rocks on the continents, especially at high altitude, even if dated Pliocene, they are from the first half of the Flood. This deduction makes the Cenozoic on the continents, especially at inland and high-altitude locations, as deposited predominantly during the Inundatory Stage. It also eliminates any significant post-Flood catastrophism. It also implies that the Flood/post-Flood boundary is in the late Cenozoic.


Acknowledgement
I thank Melanie Richard for drawing figures 13 and 14.


Related articles
 It’s plain to see
• The K/T impact hypothesis and secular neocatastrophism—why is this important to Flood geology?
 Noah’s long-distance travelers
• Flood transported quartzites—east of the Rocky Mountains
 Flood transported quartzites: Part 2—west of the Rocky Mountains
 Flood transported quartzites: Part 3—failure of uniformitarian interpretations
• 
Flood transported quartzites: Part 4—diluvial interpretations


Further reading
•Geology Questions and Answers



번역 -

링크 - http://creation.com/african-planation-surface

출처 - Journal of Creation, 25 (1):111–122, April 201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556

참고 : 6535|6531|6508|6507|6462|6417|6431|6524|6415|6413|6330|6254|6255|6240|6228|6225|6223|6222|6136|6170|6104|6076|6030|5556|5973|5468|5958|5957|5951|5898

Dominic Statham
2012-11-30

생물이 자신의 살고 있는 곳에서 발견되는 이유는? 

: 동식물의 생물지리학적 분포와 전 지구적 대홍수 

(Plants and animals around the world. Why are they found where they are?)


     2010년 3 월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호주 멜버른에서 개최된 글로벌 무신론자 대회(Global Atheist Convention)에서 연설을 했다. 그는 ”식물과 동물의 지리적 분포 패턴은 진화가 일어났었다면 예상될 수 있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1]. 그는 계속해서 그러한 지리적 분포는 ”어떤 대안적인 아이디어인, 노아의 방주에서 흩어졌을 때에... 예상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림 1. 오래된 지구 지질학에 의한 대륙의 이동


그러나 생물지리학(biogeography, 식물과 동물의 분포에 관한 연구)을 좀 더 깊게 들여다 보면 도킨스가 그린 것과는 매우 다른 그림을 보게 된다.

만약 식물과 동물들이 수억 수천만 년에 걸쳐서 진화했다면, 밀접하게 관련된 생물 종들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살 것이 예상한다. 어떤 경우에서 이것은 우리가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예로서,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유사한 핀치새(finches) 종들이 있다. 그리고 하와이 제도에는 유사한 초파리(fruit flies)와 달팽이(snails) 종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동물 분포는 창세기 대홍수에 뒤이은 것으로 예상될 수도 있다. 새들은 노아방주가 머물렀던 중동 지역으로부터 흩어졌을 것이고, 일부는 결국 갈라파고스 섬에도 정착했을 것이다. 이들 핀치새 후손들에서 연속된 변이와 자연선택이 일어났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생물학적 설계의 특징으로 보이는, 빠르게 변화될 수 있는 타고난 유전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게 되었다. 동일한 일이 하와이 섬에 도착했던(아마도 떠다니는 뗏목 매트로) 최초의 초파리와 달팽이에서도 일어났을 것이다. 이들 또한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함에 따라 다양화되었을 것이다.  


격리 분포

그러나 유사한 식물과 동물들이 거대한 육지나 대양에 의해 격리된 서로 다른 대륙에서 흔히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분포 패턴은 그들이 수억 수천만 년에 걸쳐 천천히 진화되었다면 예상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와 전 지구적 대홍수라는 성경적 기록과는 일치한다. 예로서, 많은 유사한 식물과 동물 집단들이 해안가 육지 주변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이주와 이동의 일관된 생물지리적 패턴은 진화론보다는 전 지구적 대홍수가 훨씬 더 적합해 보인다[2].이렇게 광대하게 분리된 집단들은 아주 흔해서 ‘격리 분포(disjunct distributions, 불연속 분포)’로 이름 붙여져 있다.

진화론자들은 때로 격리 분포를 대륙 이동으로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들은 수억 수천만 년 전에 대륙이 쪼개져서, 과거에 한때 나란히 살고 있었던 유사한 동식물들이 분리되었다는 것이다(그림 1). 예로서, 이것은 왜 깔따구(chironomid midges, 작은 파리 또는 각다귀 종류)가 남극대륙, 호주 남부, 남미,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발견되는 가를 설명해주는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3].

진화론적 시간 틀에서 이러한 설명이 가지는 하나의 문제점은, 하나였던 대륙이 분리된 이후에 많은 종들이 진화로 출현했다는 점이다[4, 5]. 예로서,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남미 대륙과 아프리카는 약 1억년 전에 분리되었다. 그러나 남미 대륙에서 약 3천만년 전에 진화된 것으로 추정하는 선인장 종들이 아프리카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발견되는 설치류 출현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대륙의 이동시기와 맞지 않는다[6]. 담수어 종인 시클리드 물고기(cichlid fish)의 예에서처럼, 대륙들을 건너 뛰어 존재하는 수수께끼 같은 수많은 격리된 동식물 분포가 알려져 있다[7]. 

 클레트라(Clethra)

또 하나의 문제점은 분리된 생물 종들이 결코 하나로 연결됐던 적이 없었던 대륙들에서도 흔히 발견된다는 것이다. 예로서, 많은 식물과 곤충들이 태평양 해안에 걸쳐서 불연속적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8, 9]. 그림 2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클레트라(Cleathra) 식물 속의 분포는 적절한 예가 된다. 흥미롭게도 남미 대륙인 칠레에서 발견되는 주머니쥐(opossum)와 드로미키오프스(Dromiciops)는 남미의 유대류보다는 호주의 유대류와 훨씬 더 가깝다.[10]

그림 2. 태평양을 가로질러 분포하는 클레트라(Clethra) 식물 속의 분포.

진화론적 예상 패턴과 일치하지 않는 다른 생물지리적 비정상들은 이외에도 많이 있다. 예로서, 아프리카 중부와 남부의 동물 종들은 아프리카 북부의 동물 종들보다 남아시아의 종들과 유사하다[11].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발견되는 식물은 인도네시아의 것들과 놀랍도록 유사하다.[12]. 시로미(Crowberries, Empetrum)는 북반구의 북쪽 지역과 남반구의 최남단 지역에서만 발견된다.


화석의 놀라움

또한 화석 기록에서도 상당한 격리가 발견된다. 예로서, 많은 유사한 식물 화석들이 북미대륙 서부와 남아시아에서 발견된다. 오래된 지구 지질학자들이 주장하는 느린 대륙 이동에 따르면, 이러한 화석들은 알래스카와 러시아가 아직 수천 km 떨어져 있을 때 묻혔어야만 했다[13].

살아있는 유대류[14]는 주로 호주와 남미 대륙에 한정되어 있지만, 백악기 후기(아마도 8500만년~6500만년 사이) 지층에서의 유대류 화석들은 유럽, 아시아, 북미 등에서만 독점적으로 발견된다. 오크라호마 대학의 동물학부 교수인 리차드 시펠리(Richard Cifelli)는 ”이러한 지리적 전환은 설명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고 말했다[15], 흥미롭게도, 오늘날 유대류 화석은 이제 어느 대륙에서나 발견되고 있다[16, 17].

진화론에 의하면, 태반동물(예로 토끼, 코끼리, 고양이 등)은 북반구에서 진화된 것으로, 약 500만년 전 까지는 호주에 나타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최근 호주에서 1억2천만년 전으로 추정하는 암석에서 태반동물 화석이 발견되었다. 이제 일부 진화론자들은 태반동물이 처음에는 남반구에서 진화되어 북쪽으로 이동했고, 그 다음에 다시 남반구 대륙에서 멸종되었다고 제안했다![19]

계속해서 새롭게 발견되는 동물들의 놀라운 분포를 설명하기 위해, 진화론자들은 지속적으로 임시변통의 수정 이야기들을 계속 발명해내고 있다.

그래서 식물과 동물들의 생물지리적 분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화가 일어났었다면 예상되는 분포가 아니다” 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오히려, 계속해서 새롭게 발견되는 동물들의 놀라운 분포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진화론자들은 지속적으로 임시변통의 수정 이야기들을 계속 발명해내고 있다.

한편, 식물과 동물들의 분포는 지구 역사에 대한 성경적 설명과 일치한다. 성경에 따르면, 최초의 세계에 있었던 육상 거주 생물들은(노아의 방주에 탔던 것들을 제외하고) 전 지구적 홍수로 멸절되었고 파괴되었다. 홍수물이 물러간 후, 코로 호흡을 하던 육상 거주 동물들은 방주가 도착한 중동 지역에서부터 서서히 오늘날 그들이 발견되는 곳으로 퍼져 나갔다. 이들 중 일부와, 방주에 타지 않았던 다른 동물(곤충과 달팽이 등)들은 육상식물과 함께 홍수물 위에 떠다니던 자연 뗏목(최초 숲의 파괴로 홍수물 위에 떠다녔던 거대한 통나무 매트들) 위에서 퍼져 나간 것 같다. Journal of Creation 지에 보고된 연구는 하나의 적절한 설명으로써 이것을 계속 확증해주고 있다[20].

 

*참조 : 日 쓰나미에 미국으로 건너간 생물이 무려..(2012. 6. 8. 파이낸셜뉴스)
http://www.fnnews.com/view?ra=Sent1101m_View&corp=fnnews&arcid=12060814011261&cDateYear=2012&cDateMonth=06&cDateDay=08

 

Related articles
Biogeography
Why evolution need not be true
The Creation Answers Book: How did animals get from the Ark to places such as Australia?
Genetics and geographical distribution
The opossum’s tale

 

References and notes
1. Zwartz, B., Dawkins delivers the sermon they came to hear, The Age (Melbourne), 15 March 2010; www.theage.com.au.
2. See: Statham, D., Biogeography, Journal of Creation 24(1):82–87, 2010.
3. Ridley, M., Evolution, ch. 17, Blackwell Science, Oxford, UK, 3rd edition, 2004.
4. George, W. and Lavocat, R., The Africa–South America Connection, p. 159, Clarendon Press, Oxford, UK, 1993.
5. Davis, C., et al., High-latitude tertiary migrations of an exclusively tropical clade: evidence from Malpighiaceae, International Journal of Plant Sciences 165(4 Suppl.):S107–S121, 2004; www.people.fas.harvard.edu/~ccdavis/pdfs/Davis_et_al_IJPS_2004.pdf.
6. Ref. 4, ch. 9.
7. Ref. 4, p. 159.
8. Thorne, R., Major disjunctions in the geographic ranges of seed plants, The Quarterly Review of Biology, 47(4):365–411, 1972.
9. Buffalo Museum of Science (New York), Panbiogeography—Pacific Basin tracks; www.sciencebuff.org/pacific_basin_tracks.php.
10. Allaby, M., Dromiciopsia, A Dictionary of Zoology,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1999; www.encyclopedia.com/doc/1O8-Dromiciopsia.html.
11. Beck, W., et al., Life: An Introduction to Biology, p. 1324, HarperCollins, New York, USA, 3rd ed., 1991.
12. Schatz, G., Malagasy/Indo-Australo-Malesian phytogeographic connections, in: Lourenço, W.R. (ed.), Biogeography of Madagascar, Editions ORSTOM, Paris, 1996; www.mobot.org/mobot/madagasc/biomad1.html.
13. Smiley, C., Pre-Tertiary phytogeography and continental drift—some apparent discrepancies, in: Gray, J. and Boucot, A., eds, Historical Biogeography, Plate Tectonics and the Changing Environment, pp. 311–319, Oregon State University Press, Corvallis, USA, 1976.
14. Marsupials differ from other mammals in the female having a pouch in which she carries her young through early infancy.
15. Cifelli, R. and Davis, B., Marsupial origins, Science 302:1899–1900, 2003.
16. Quantum, Australian Broadcasting Commission, 6 November 1991, cited in: ‘Nebraska mouse’ excites some, Creation 14(2):5–8, 1992.
17. Gish, D., Evolution: The Fossils Still Say No! pp. 178–183,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USA, 1995.
18. One of the ways placental animals are distinguished from other mammals is that their young stay inside the body until fully developed.
19. Tim Flannery, Forum: A hostile land—Could one tiny fossil overthrow Australia’s orthodoxy? New Scientist 2116:47, 1998.
20. See Ref. 2.


*참조 : 日 쓰나미에 미국으로 건너간 생물이 무려..(2012. 6. 8. 파이낸셜뉴스)
http://www.fnnews.com/view?ra=Sent1101m_View&corp=fnnews&arcid=12060814011261&cDateYear=2012&cDateMonth=06&cDateDay=08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에 해양생물 300종 북미로 이동' (2017. 5. 10. 매일경제)
http://vip.mk.co.kr/news/view/21/21/2755062.html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creation.com/plants-animals-biogeography

출처 - Creation 32(4):45–47, September 2010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527

참고 : 5468|5390|3204|3097|4512|2201|2075|4198|4473|4490|5400|3596|5037|1814|4326|367|3964|4229|4308|5957|5958

Dominic Statham
2012-09-21

자연적 뗏목이 동물들을 전 세계로 분포시켰다. 

: 방주에서 내린 동물이 어떻게 먼 곳까지 분산될 수 있었을까? 

(Natural rafts carried animals around the globe)


      성경에 의하면, 창세기 홍수 시에 코로 호흡하는 육상동물 중에서 노아 방주(Noah’s Ark)에 탔던 동물들만 살아남았다. 이것은 오늘날 지구상에 살아있는 모든 육상 척추동물들은 노아 방주에 실렸던 동물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들은 노아 방주가 도착했던 장소, 즉 중동의 아라랏산 부근에서 현재의 서식지로 이동했음에 틀림없다. 동물들이 어떻게 분산되었을 지에 관한 여러 이론들이 있어왔다. 어떤 이론은 꽤 설득력이 있어 보였는데, 오늘날 해수면 아래에 있는 육지 다리(land bridges)를 건너서 이동했다는 것이었다. 다른 이론은 사람들에 의해서 수송되었다는 것이었다.

점점 지지를 받고 있는 또 하나의 이론이 있는데, 그것은 뗏목 가설(rafting hypothesis)이다. 흥미롭게도 자연적 뗏목(natural rafts)으로 먼 지역까지 동식물이 분산했을 가능성은 오래 전부터 진화론자들에 의해서도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버몬트 대학의 폴 무디(Paul Moody) 교수는 주장했다.

”홍수 시기에 나무를 포함하여 식물들의 뿌리로 얽혀진 육상의 커다란 덩어리(masses)들이 강둑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바다로 들어갈 수 있다. 때때로 7~10m 크기의 야자수를 포함하여 여전히 무성한 녹색의 땅인 그러한 덩어리가 바다에 떠다니는 것이 목격되곤 한다. 아마도 육상동물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먼 거리로 수송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이어(Mayr)는 많은 열대 해류는 적어도 2노트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속도라면 하루에 80km는 이동할 수 있으며, 1600km의 거리는 3주면 이동할 수 있다.”[1] 

 이구아나(Iguanas)는 자연적 뗏목으로 서인도제도의 앙귈라(Anguilla)에 서식하게 되었다.


더 최근에 뗏목 가설은 인도네시아 술라웨시(Sulawesi) 섬의 곰쿠스쿠스(Bear Cuscus, Ailurops ursinus)와 난쟁이 쿠스쿠스(Dwarf Cuscus, Strigocuscus celebensis)[2], 그리고 마다가스카르(Madagascar) 섬의 여우원숭이(lemurs)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3], 진화론자들에 의해서 발전되어왔다. 1995년 어부들에 의해서 서인도 제도에 있는 앙귈라(Anguilla) 섬에 이구아나(Iguanas)들이 대량 서식하는 것이 목격됐다. 두 개의 태풍이 소앤틸리스 제도의 섬들을 강타한 후, 수주일 후에 이 섬의 동쪽 해변에는 통나무들과 뿌리 뽑힌 나무들의 식물 매트가 쓸려와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구아나가 과들루프(Guadeloupe)로부터 자연적 뗏목을 타고 320km를 이동해왔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4, 5]

중요한 것은 때때로 생물지리학자(biogeographers)들도 주요 생물지리학적 지역으로 대륙보다 해양을 더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여지는 패턴처럼, 많은 육상생물들이 매우 자주 대양 경계의 육지 주변에 분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생물지리학자였던 레온 크로이쟈아트(Léon Croizat)에게 이것은 분명했다. 그는 이러한 패턴의 반복적인 발생을 지도화하기 위해서 '트랙(tracks, 궤도)'들을 그리는 데에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6, 7] 예를 들어 사초과의 오레오볼루스(Oreobolus) 식물에 대한 트랙은 그림1에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여러 식물과 동물들과 공유되고 있는 트랙중 하나이다.[8, 9]

그림 1. 태평양 주변에서 Oreobolus 식물의 발생을 보여주는 트랙.


빠른 속도로 흐르는 다량의 물은 매우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창세기 홍수의 초기 단계에 많은 양의 숲들은 파괴되고 뜯겨져나갔을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퇴적물 속에 파묻혔지만, 수십억 그루의 나무들은 거대한 통나무 매트들을 이루면서 홍수 물 표면에 떠다녔을 것이다.

홍수 후에 이러한 뗏목들은 동물들이 아라랏 산으로부터 먼 지역으로 분산되는 것을 촉진했을 것이다.

이들 떠다니는 식물 섬에 정기적으로 내리는 강우는 이동되는 기간 동안 동물과 식물들이 쉽게 살아남을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대양 해류는 이들 덩어리 매트들을 먼 곳까지 운반했을 것이며, 때때로 육지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동물들과 곤충들을 내리게 했고, 그곳에서 또 다른 생물들을 태우기도 하여, 다른 육지로 운송했을 수도 있다. 나는 육상동물들이 창세기 홍수 사건에서도 살아남았다는 것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뗏목들이 홍수 후에 분산을 촉진했고, 아라랏 산으로부터 먼 곳까지 이동하고 증식시켰을 수 있다는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창 8:4)
         
떠다니는 물체를 전 세계로 분포시킬 수 있는 해류의 능력은 최근에도 입증되었다. 1992년 북태평양을 지나던 컨테이너 운반선은 수천 개의 욕조용 고무 오리를 잃어버렸다. 3개월도 되지 않아, 이들은 인도네시아, 호주, 남미 대륙으로 떠내려 왔고, 이후 북극과 대서양에서도 발견되었다.[10, 11]

흥미롭게도, 전 세계에 걸친 식물과 동물들의 분포 패턴은 진화론에서 예상하는 것처럼 무작위적이지 않다. 대신, 생물지리학자들이 ”고유지역(areas of endemism)”으로 기술하고 있는 곳에는 서로 다른 많은 종들이 자주 밀집되어 있는 것이 발견된다. 그곳에서 서로 다른 많은 동식물들이 동일하게 구별되어, 그리고 종종 작은 지역에 집중되어있다.   

또한 가장 중요한 사실로, 고도의 식물 고유지역은 일반적으로 고도의 동물 고유지역과 일치한다는 것이다.[12, 13] 고유지역 사이에 종종 많은 식물상과 동물상이 유사하다는 사실과 함께[14], 이것은 식물들과 동물들이 이 지역에 동일한 수단으로 이동되어왔다는 개념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것이다.

테네시주 브라이언 대학의 연구자들은 뗏목 이론을 지지하는 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그들은 육상 덩어리와 해류의 교차점은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는 고유지역과 일치하여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15]

생물지리학(biogeography)의 패턴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추정하는 사건들은 모두 기억 저편의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과학자들은 다른 과학자들보다 유리하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들의 사고를 안내할 수 있는 역사적 틀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과학의 다른 영역들처럼, 이 분야의 증가하는 데이터들도 진화론적 모델보다 성경적 모델에 더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Related articles
How did animals get from the Ark to places such as Australia?
Biogeography
Climate models fail
The Yellowstone petrified forests


References and notes
1. Moody, P., Introduction to Evolution, Harper & Brothers, New York, USA, p. 262, 1953.
2. Heinsohn, T., A Giant Among Possums, Nature Australia 26(12):24–31, Autumn 2001.
3. Tattersal, I., Madagascar’s Lemurs, Scientific American, p. 90, January 1993; Hitch-hiking lemurs, Creation 15(4):11, 1993.
4. Censky, E. et al., Over-Water Dispersal of Lizards due to Hurricanes, Nature 395:556, 8 October 1998; Surfing lizards wipe out objections, Creation 21(2):7–9, 1999.
5. Yoon, C., Hapless Iguanas Float Away and Voyage Grips Biologists, The New York Times, 13 March 2008, www.nytimes.com.
6. Humphries, C.J. and Parenti, L.R., Cladistic Biogeography: Interpreting Patterns of Plant and Animal Distributions,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UK, 2nd ed., pp. 33–37, 138, 1999.
7. Croizat, L., Panbiogeography, vol. 1, 2A and 2B, self-published, 1958.
8. Seberg, O., Taxonomy, Phylogeny, and Biogeography of the Genus Oreobolus R.Br. (Cyperaceae), With Comments on the Biogeography of the South Pacific Continents. Botanical Journal of the Linnean Society 96: 119–195, 1988.
9. Buffalo Museum of Science, Vicariance Biogeography and Panbiogeography of the Plant Genus Oreobolus (Cyperaceae): A Comparison of Methods and Results. New York, USA. www.sciencebuff.org/panbiogeography_of_oreobolus.php.
10. Ford, P., Drifting Rubber Duckies Chart Oceans of Plastic. Christian Science Monitor, 31 July 2003. www.csmonitor.com.
11. Clerkin, B., Thousands of Rubber Ducks to Land on British Shores After 15 Year Journey. Daily Mail, 27 June 2007. www.dailymail.co.uk.
12. Nelson, G. and Platnick, N., Systematics and Biogeography: Cladistics and Vicariance, Columbia University Press, New York, pp. 368, 524, 1981.
13. Cox, C.B., The Biogeographic Regions Reconsidered. Journal of Biogeography, 28:4 511–523, 2001. www.blackwell-synergy.com.
14. Ref. 6, preface and pp. 21,34, 87.
15. Wise, K.P. and Croxton, M., Rafting: A Post-Flood Biogeographic Dispersal Mechanism,. Proceedings of the Fif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Creationism, Creation Science Fellowship, Inc., Pennsylvania, pp. 465–477, USA, 2003.


*참조 : 日 쓰나미에 미국으로 건너간 생물이 무려..(2012. 6. 8. 파이낸셜뉴스)
http://www.fnnews.com/view?ra=Sent1101m_View&corp=fnnews&arcid=12060814011261&cDateYear=2012&cDateMonth=06&cDateDay=08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com/natural-rafts-carried-animals-around-the-globe

출처 - Creation 33(2):54–55, April 2011

구분-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468

참고 : 5390|3204|3097|4512|2201|2075|4198|4473|4490|5400|3596|5037|1814|5906|5930|6254|6255|5957|5958

과거 남극에 야자수가 번성했다. 

(Palm Trees Thrived in Antarctica)


     과거 남극에 열대 나무(tropical trees)가 번성했다는 증거가 남극 해안 5km 깊이의 땅속에서 발견되었다.

BBC News는 탐사자들이 남극의 동쪽 해안에서 굴착기로 4km 아래를 파 들어간 다음, 퇴적층을 뚫고 1km를 더 내려갔다고 보도했다. 채취한 드릴 코어에는 야자수(palm)와 바오밥나무(baobab), 마카다미아(macadamia)와 유사한 나무의 화분 알갱이들이 들어 있었다. 또한 단세포 생물인 고세균(archea) 잔존물이 발견되었다. ”저지대 해안지역은 야자수 나무가 번성했고, 반면 조금 안쪽의 내륙과 산지에는 너도밤나무(beech trees)와 침엽수(conifers)가 무성했다”고 그 기사는 전하고 있었다.


통합해양굴착계획(The Integrated Ocean Drilling Program, IODP)은 그 퇴적층의 연대를 5천3백만 년 전인 시신세(Eocene)로 추정했다. 연구자들은 그 식물상으로부터 지구 온도가 현재보다 약 5°C 정도 따뜻했었던 것으로 유추하였다. 그것은 극지방과 적도 사이에 뚜렷한 경계가 없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심지어 가장 어두운 곳인 극지방의 겨울도 10°C (50°F)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초기 시신세에 대기 중의 CO2 농도는 현재의 390ppm 보다 훨씬 더 높았을(적어도 600ppm 또는 그 이상) 것이다”라고 그 논문은 전했다. 과학자들은 이 자료가 컴퓨터 기후 모델을 개량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심지어 그 논문은 ”시신세는 어떤 시기에도 바로 도달할 수 없었던 높은 농도의 CO2를 나타냈다”고 주장하였다. 그 논문은 현재의 기후모델은 미래의 지구온난화를 잘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끝을 맺고 있었다.

BBC News는 IODP 구성원 중 한 명이 제공한, 그 발견에 대한 비디오 클립을 올려놓았다.



음, 이러한 사실은 놀랍지 않은가? 먼저, 진화론자들의 말처럼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가 지금보다 더 따뜻했다면, 오늘날 인간으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분명히 사람 때문에 멸종될 위기에 있다는 살아있는 화석을 포함하여, 모든 육상동물과 식물들은 이러한 온난한 시기에도 살아남았고 지금도 생존해있다. 그리고 어떻게 ”고세균이 5천3백만 년 동안이나 그 구조를 유지해 올 수 있었는지” 말해 달라.


둘째, 더욱 중요한 것은, 진화론자들은 왜 지구가 그 당시에 따뜻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어떠한 이론도 없다는 것이다. 많은 성경적 창조론자들은 수억 수천만 년의 진화론적 시간 틀을 믿지 않는다. 성경적 창조론자들은 데이터가 가리키는 것처럼, 홍수 이전의 세계는 극지방과 적도 간에 큰 온도 차이가 없는 온화한 기후였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러나 전 지구적 대홍수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뀌었다. 노아홍수 이전의 세계는 수 마일의 퇴적물 아래에 파묻혀버렸다. 그리고 빙하기가 도래했고, 최근까지 그 여파가 약화되었지만 남아있는 것이다. 이들 데이터에 보다 잘 부합하는 것은 어떤 설명인가?



*관련기사 : '5000만년 전 남극, 야자수가 울창” : 평균기온 16도 아열대기후 (2012. 8. 3. 동아일보)
http://news.dongascience.com/PHP/NewsView.php?kisaid=20120803100002324988&classcode=01

1천500만년 전 남극대륙은 푸르렀다 (2012. 6. 18.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economy/2012/06/18/0303000000AKR20120618046600009.HTML?template=5567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crev.info/2012/08/palm-trees-thrived-in-antarctica/

          http://creationrevolution.com/2012/08/palm-trees-thrived-in-antarctica/

출처 - CEH, 2012. 8. 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445

참고 : 3966|2179|1923|1921|3772|4195|3699|4116|1472|1474|5412|2459|4681|2645|4357|4757|4369|4467|4613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3

대표전화 02-419-6465  /  팩스 02-451-0130  /  desk@creation.kr

고유번호 : 219-82-00916             Copyright ⓒ 한국창조과학회

상호명 : (주)창조과학미디어  /  대표자 : 박영민

사업자번호 : 120-87-70892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18-서울중구-0764 호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5

대표전화 : 02-419-6484

개인정보책임자 : 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