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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하나님은 도덕적으로 괴팍하신 분인가?

미디어위원회
2014-04-03

하나님은 도덕적으로 괴팍하신 분인가?

(Is God a ‘moral monster’?)

Lita Cosner 


        많은 성경 회의론자들은 만약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분이 행하셨다면, 그분은 매우 비도덕적인 분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에 대해 그렇게 묘사한 성경을 비난하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런 논점에 답하는 것을 힘들어 하며, 어떤 사람들은 이런 어려운 질문을 피하기 위해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 사이에 차이를 두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매우 큰 결함이 있다. 왜냐하면 동일하신 하나님이 구약과 신약 성경 모두에 영감을 불어 넣으셨기 때문이다. 사실상, 신구약 성경 모두 하나님은 사랑하시며, 오래 참으시지만, 동시에 죄를 참으시지는 않는다고 가르친다. 또한 예수님 자신도 구약을 인정하셨다(눅 24:44~47, 요 10:35). 더욱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은, 회의론자들의 공격이 근본적인 오해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희생제물?

실제로 인간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을 하나님이 용납하신다는 성경 구절은 없다. 사실상, 성경은 자기들의 자녀를 몰렉에게 희생제물로 바친 사람들을 가장 나쁘다고 비난했다(레 18:21, 렘 32:34-35).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이들은 대개 어린아이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자기 아들과 딸들을 희생제물로 바쳤을 때, 성경에서는 그들이 자녀를 악귀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쳤다고 말한다(시 106:37).

인간 희생제물은 살인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몹시 싫어하신다. 그것은 무고한 사람을 고의적으로 죽이는 것이므로 항상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회의론자들은 성경이 인간 희생제물을 명령하고 있다고 그들이 주장하는 몇 가지 구절을 인용한다.

창세기 22:1-8절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희생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것은 시험이었다는 것과 하나님은 결코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에게 해를 입히라고 의도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회의론자들은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경우에 생각해야할 몇 가지가 있다. 이즈음에 아브라함은 늙은이였고, 이삭은 아마도 십대 혹은 젊은 성인이어서, 그가 원하기만 하면 아버지에게 저항하여 도망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그를 묶을 수 있었고 그를 제단에 올려놓았다는 것은 이삭이 거기에 협조했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아브라함 자신은 이삭이 죽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최소한 그는 하나님이 그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실 것을 예상했다. 아브라함은 그의 하인에게 그와 그의 아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창 22:5).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그분이 이삭을 통해서 큰 나라를 이루시겠다고 하셨으므로, 가능한 경우의 수로는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이 다른 희생제물을 제공하시든지(결국 그렇게 되었다), 아니면 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살리시는 것이 있다. 이 구절에 관하여 히브리서 11:17~19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출애굽기 13:1~2, 11~16절에서 하나님은 장자에 대한 봉헌을 지시하신다. 어떤 회의론자들은 이것을 오해하여 첫 번째 태어난 아들들을 죽이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실상 이것은 첫 번째 태어난 자녀를 구속하기 위해 동물 희생을 명령하는 것이다. 13절에서는 나귀에 대한 대속을 말하고 있는데(나귀는 깨끗하지 않으므로 희생제물이 될 수 없다), 거기서 대속하지 않은 나귀는 그 목을 꺾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아들들에 대해서는 그런 선택이 없음을 주목하라. 오히려 아들들은 어린양으로 대속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중에 이 명령은 모든 사람의 첫 번째 태어난 사람 대신에 모든 레위인들에게 적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민 3:11~13).

레위기 27:28절에서는 사람을 ‘여호와께 바칠’ 수 있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일부 회의론자들은 이것이 사람이 희생된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헌신’의 한 가지 형태인 일생동안 성전에서 봉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이며, 나실인의 서약 같은 서약은 또 다른 형태의 헌신이다(민수기 6장, 삼상 1:10~11).

따라서 실제로 희생제물로 허용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문맥 속에서 읽어야 하는데, 이 문맥에서는 일생동안의 성전봉사에 헌신된 사람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것은 입다가 섣불리 서약한 이후 그의 딸의 운명과 같은 경우이다(삿 11:29~40). 이것은 그녀가 처녀로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해 몹시 슬퍼한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으로, 그녀에게 죽음이 다가와서가 아니라, 자기 아버지 계보가 끊어지게 될 것을 슬퍼한 것이다.

그 다음 구절은 이렇게 말한다. ”온전히 바쳐진 그 사람은 다시 무르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레 27:29). 이는 율법을 치명적으로 어긴 사람에게 죽음이 선고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그 선고는 무를 수 없다.


종족 말살과 전쟁 범죄?

민족 간의 전쟁이 고대 역사를 지배했었으므로, 구약에 전쟁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부 회의론자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정복할 때 하나님이 주셨던 일부 명령에 대해 비난한다.

가장 많이 인용하는 ‘잔학행위’는 아말렉 족속을 여자와 어린 아이와 재산을 포함하여 전적으로 파괴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러한 파괴를 명령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로부터 나올 때 그들이 대적했기 때문이다. 신명기는 이렇게 말씀한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신 25:17~18, 삼상 15:2~3).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시겠다고 맹세하셨다(출애굽기 17장). 그들은 자기들의 죄 때문에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고, 그 곳을 이스라엘이 대신 차지할 것이다. 그들의 죄에는 가증스런 부도덕과 어린이 희생제물이 포함된다. 이것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고, 이스라엘은 단지 그 심판을 위한 하나님의 대행자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모든 것을 철저하게 파괴해야 했고, 자기들을 위하여 아무것도 취하지 말아야 했다. 사울과 그의 군대가 아각 왕을 살려주고 가축의 일부를 취했을 때, 그것은 중대한 범죄였으므로, 하나님이 사울을 심판하시고 그에 대한 그분의 호의를 영원히 버리셨다(사무엘상 15장 전반부). 실제로는 일부 아말렉인들이 다른 곳에 남아있었는데, 사무엘상 30장에 보면 급습한 아말렉인 무리들을 다윗이 쳐부수었다.

아말렉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행동이 부도덕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분이 창조하신 사람이 그분을 거역하여 반역할 때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뿐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피조물을 그분이 택하신 방식으로 취급하실 권리를 갖고 계신다(사람들은 ‘놀고 계시는 하나님’이 이러한 특권들을 빼앗은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상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사람들의 혐오스런 일들을 답습한다면, 그들도 역시 그 땅에서 쫓아낼 것이라고 경고하셨다(신 29:18~28).


도덕의 기준은 선한 하나님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무신론자들이 성경의 도덕성을 공격할 때, 그들이 말하는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은 어디서 왔는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자신이 그 기준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그분이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그것을 임의적으로 하시지 않는다. 옳고 그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같은 노선을 취하느냐 아니면 맞서느냐에 의해 정의된다. 무신론자들은 도덕성에 대해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그는 어떤 개인이나 그룹의 주관적인 견해가 갖는 권위에 토를 달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의 기준이 주관적이라면, 그들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부과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서로 다른 시기와 장소에서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타락한 세상에서 사랑의 하나님의 말씀과 행하심.

성경의 내용 중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들은 반대할만한 것들일 수 있다. 사사기나 신명기를 읽을 때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많은 것들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것들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인류의 타락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들이 성경에 의해 승인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는 많은 경우에, 그분은 우리 마음의 완악함을 고려하셨다(마 19:8). 이것은 보다 큰 악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보다 작은 악을 허용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점점 더 드러내시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악을 제거하시는 길로 진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요한계시록 21~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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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See also Wieland, C., Jesus on the age of the earth, Creation 34(2):51–54, April 2012; creation.com/jesus_age.
2.Sarfati, J., What is good? (Answering the Euthyphro Dilemma), creation.com/euthyphro, 5 May 2007.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creation.com/god-moral-monster 

출처 - Creation ex nihilo, Vol. 36(2014), No. 2, pp. 4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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