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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John Morris
2007-06-11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라는 구절은 

'날(day)'을 정의하는데 도움이 되는가?

(Does the Phrase 'Evening and Morning' Help Define 'Day'?)


      창세기 1장에 기록되어 있는 ‘날(days)’들의 길이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창세기 1장의 ‘날’이 과연 지구가 지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태양력의 하루(solar day)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지질학에서 말하는 장구한 지질시대들에 버금가는 길고 무한한 기간들을 의미하는 것인가? 후자로 해석한다면, 창세기와 긴 연대와의 조화를 꾀하려는 크리스천들에게는 위로가 될 것이다. 

실제로 ‘날(day)’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욤(yom)’은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가장 흔한 쓰임새는 문자 그대로 ‘날’이다. 그러나 ‘시대(age)’를 뜻할 수도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이다.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에 대하여 항상 그렇듯이, 특별히 사용된 ‘날’의 의미를 규명하는 데 있어서도 성경적 문맥(Scriptural context)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흥미롭게도 그 단어가 처음 사용된 창세기 1장 5절에서, ‘날’은 한 방향에서 오는 빛의 근원(directional light source) 하에서 지구가 회전할 때 갖게 되는 빛/어둠의 주기 (낮/밤을 만드는) 중에서 빛이 비춰지는 부분으로 너무도 분명하게 정의되고 있다. 또한 둘째 날 또는 여섯째 날에서처럼, ‘날’이 숫자의 수식을 받을 때는 언제나, 태양력상의 진짜 하루를 뜻한다는 것이 사실이다. 히브리어에서도 예외는 없다. 이는 십계명을 보면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창조를 하시고 제 칠일에 쉬셨듯이 우리에게도 엿새 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라고 말씀하셨다. (출애굽기 20:11)

이제 창세기에서의 각 날들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구절로 수식되고 있음을 숙고해 보자. 이들 ‘저녁과 아침(evening and morning)’이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단어이다. 그 단어들이 무한한 길이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표준성경 연구 자료를 보면, ‘저녁(evening, ereb)’이란 단어는 단순히 저녁 또는 밤(night)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다. 그것은 ‘해가 지는 것 또는 일몰(sunset)’을 내포하는 표현에서 파생되어, 저녁에 드리는 희생 제물과 제사의식과 연관되어 있다. ‘저녁에 드리는 희생제물(evening sacrifice)’이나 ‘저녁에 돌아간다(returning at evening)’는 식으로 자주 쓰인다. 마찬가지로 ‘아침(morning, bôqer)’이라는 단어도 문자적으로 ‘아침 또는 새벽(dawn), 하루의 날이 밝아 옴’을 뜻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rising early in the morning)’ 또는 ‘아침까지 모닥불을 피우다’는 식이다. 이 두 개의 단어가 한 쌍으로 ‘한 시대의 끝(the end of an age)’과 ‘한 시대의 시작(the beginning of an age)’을 뜻하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성경 연구가나 주석가들은 성경의 기자가 독자들에게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를 주의 깊게 결정해야 한다. 우리는 정직한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자신의 편견을 감히 덧붙일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 서야 한다. 기억해야 것은 하나님은 전적으로 지혜로우시고, 우리가 알지 못할 수도 있는 진리를 우리에게 나타내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또한 분명하게 기록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그분의 생각 아래 복종시키기만 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구절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Dr. John D. Morris is the President of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3228/ 

출처 - ICR, BTG, 2007. 4. 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932

참고 : 2016|2982|1922|888|1571|2638|2302|1940|2704|2936|87|2134|766|2942|891|2336|930|3020|2378|1790|1756|3302|3901|3898|3735|3709|3640|3589|3331|769|3707|3689|3628|3731|3641|2797|4440|3932|4297|4375|4380|4140|4374|4204|5394|5381|5265|5275|5035|5033|4869|4540|4492|4487

이강래
2007-01-25

창세기 5장과 11장의 수명변화에 나타난 

생노병사 현상과 열역학


서론

첨단 과학과 기술이 고도로 발달해 가고 있는 이 시대에서 성경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성도의 신앙을 위하여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 할 것이다. 성경과 과학은 서로 배치되거나,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인들이 보통 가지고 있는 선입관이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과학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과학과 신앙은 별개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이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과학법칙들의 심오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진리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자칫 맹목적인 신앙으로 치우쳐서 왜곡된 신앙관을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은 완벽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그 자체로 논리적이며 합리적이다. 자연과학에서 보여주는 관찰과 실험에 의한 제반 법칙을 발견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성경 내에서도 추구할 수가 있다. 성경의 과학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화론이 가설로 출발하여 완벽한 검증 없이 지속적인 보완을 해나가고 있는 것에 반하여 성경은 자연과학에서 발견되는 법칙들과 상보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구약에서의 이론과 예측이 신약에서 입증되며 완성되고 있지만, 성경전체를 본다면 창세기 1장의 대전제가 구약과 신약에서 더 분명하게 들어나고 적용되어진다.

본고에서는 우주물리과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인 열역학법칙들과 성경내의 말씀과의 관계를 통하여 성경과 과학의 상보적 개념을 밝히고 사이비 과학인 진화론 사상에 대비하기 위하여 성경의 말씀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하고자 한다. 특히 창세기 5장과 11장에 나타난 수명변화의 연구를 통하여 열역학과 수명곡선 사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생노병사의 문제를 바르게 이해하여, 과학기술우상화의 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


본론

1. 사이비 과학과 참 과학

대폭발 이론에 의하면 혼돈의 극한 상태인 빅뱅(Big Bang)의 순간부터 질서와 법칙들이 나타나 우주의 형태를 이루었으며, 우연한 과정들과 오랜 세월을 통하여 지구 생태계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진화론의 주장은 오랜 시간과 우연의 연속이라는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하여 이 세계가 형성되었다는 가설로 시작된다. 지구 생태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아주 간단한 유기물이 우연히 형성되어 더욱 복잡하고 고등한 생명체로 진화하여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화가설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진화라는 시스템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현재 존재하는 우주와 생명 현상들에 대하여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들의 질서와 구조에 대한 원인은 추구하지도 않으며, 미적 감정도 개입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타난 모든 것은 우연한 결과이며 약육강식의 존재 방식을 논리적인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화론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를 모호하게 하고 성경을 왜곡시키는 불신앙을 조작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참 과학은 확고부동한 법칙들을 통하여 우주를 이해하고자 한다. 과학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열역학은 전문적인 과학 분야라고 생각되어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게 들리게 되지만, 현대과학이론과 기술의 모든 과정을 포괄하여 우주와 지구를 이해하는 대단히 중요한 법칙이 된다. 특히 이 열역학 법칙은 만물의 기원과 미래에 대하여 성경 말씀의 진실성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조명해주고 있다.


2. 열역학 법칙(Thermodynamics1) law)

열역학 법칙이라 불리는 과학적 사실 혹은 과학법칙은 진화론에 대항할만한 가장 유력한 과학적 증거에 속한다. 두 가지의 열역학 법칙은 주후 1850년, 즉 대략 150여 년 전에 과학적으로 사실로 발견되고 입증되었다. 이러한 법칙은 모든 과학 분야 혹은 과학체계에서 기초가 된다. 그래서 이것은 모든 과학의 가장 보편적이며 기본적인 중요한 법칙이다. 과학에서의 이러한 두 가지 법칙은 지금까지의 어떠한 예외도 없는 보편적 법칙이다.

(1) 열역학 제 1 법칙

제 1 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질량을 에너지와는 다른 한 형태의 실체로 본다면 이 법칙은 ‘우주내의 에너지/질량의 총량은 보존 된다’는 뜻이 된다. 에너지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되기도 하고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전환될 수도 있지만 결코 창조되거나 소멸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에서 알고 있는 한, 우주는 그 안에 존재하는 에너지의 총량들이 항상 보존되지만, 절대로 다시 창조되거나 소멸되지 않는 세계들로 이루어졌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2) 열역학 제 2 법칙2)

제 2 법칙을 ‘무질서도 증가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우주가 계속하여 무질서한 상태를 향하여 진행한다는 뜻으로서 제 2 법칙과 관련하여 엔트로피3)(entropy)라는 용어가 사용되는데, 이 용어는 어떤 체계 내의 ‘무질서’나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의 양을 나타내는 수학적 함수로 정의할 수 있다. 제 2 법칙은 어떤 체계에서든 엔트로피는 증가하거나 증가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이 법칙이 시사하는 바는 궁극적으로 우주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제 1 법칙과 제 2 법칙은 보편적인 법칙들이지만, 왜 이 법칙들이 성립하는지, 또 이 법칙이 어디서든 항상 동일하게 적용되는지 아무도 모르며, 그 원인과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과학자는 아무도 없다.

생물학의 진화론은 한 개체가 보다 복잡하고 더 발달된 상태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엄격하게 말하자면 진화론은 이 두 보편적인 법칙에 대하여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


3. 열역학 법칙에 대한 성경적 이해

열역학 제 1 법칙에 의하면 우주는 스스로 생성되거나 소멸될 수 없으나 영원하다는 것을 나타내며, 열역학 제 2 법칙에 의하면 우주는 죽어가고 있으며 언젠가는 죽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두 법칙이 함께 적용될 때 우주의 미래는 영원히 멸망당한다는 이상한 현상에 이르게 되는데, 그것을 열사상태(heat death)라고 한다. 이 열사상태는 우주 내에 존재하는 태양과 같은 별들의 고단위 에너지체들이 다 타버려서 온 우주 공간이 균등하게 온도가 낮은 상태로 퍼지게 되어 에너지가 소멸하지는 않지만 결코 일을 할 수가 없는 죽음의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신학적인 면에서 이 두 법칙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만약 우주가 영원 전부터 이런 상태로 작용해 왔다면, 이미 우주는 죽어 있어야만 한다. 아직 우주가 죽지 않았고, 시간 내에서 죽어 가고 있기 때문에, 시간은 출발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제 2 법칙은 시간, 공간, 물질로 이루어진 우주가 적어도 현재의 형태를 유지하려면 ‘시점(beginning)’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력히 증거하고 있다. 더욱이 제 1 법칙은 우주가 자기 스스로 시작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제 2 법칙은 창조가 있었음을 말해 주지만, 제 1 법칙은 우주가 자신이 스스로 창조할 수 없음을 말해 주는 이러한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창세기 1장 1절은 참으로 과학적인 언급으로서, 우주의 모든 체계와 과정들을 한데 묶어 표현하는 진리의 말씀이다.

교회 내에서 유신론적 진화론의 입장을 견지하는 과학자들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기 위하여 수십억 년이나 질질 끌면서 우주가 쇠퇴하길 기다리셨다면, 그는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시는데 있어 가장 낭비적이고 비효과적이고 잔인한 과정을 택하신 셈이 된다는 것이다.

성경이 참 과학을 조명할 때, 우주의 존재 원인과 현재와 미래의 상태가 분명하게 들어 나게 된다. 성경은 오래 전부터 두 법칙이 성립할 것을 예견하고 있었고, 왜 그것들이 법칙이 되는지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시148:6).

[말씀] 저가 또 그것들을 영영히 세우시고 폐치 못할 명을 정하셨도다 (시148:6).


(1) 제 1 법칙에 대한 성경의 조명

현재 새 에너지가 창조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창2:2-3)”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우주에서 아무 것도 소멸되지 않는 이유는 창조주께서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기(히1:3)”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든 창조를 마치셨을 때 온 우주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심히 좋았(창1:31)”었다. 더 이상 더하거나 뺄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큰 첫 안식일에 그의 보존의 법칙을 입법하시고, 우주의 모든 과정이 그 이후 영원토록 이 법칙에 순응하도록 하셨다.


(2) 제 2 법칙에 대한 성경의 조명

현재 우주의 엔트로피는 증가하고 있으나, 원초의 창조 때는 엔트로피도 에너지처럼 보존되어 전체 세계 내의 엔트로피는 항상 일정했을 것이다. 심지어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찰력 때문에 소모되는 열에너지도 온전히 생산에 사용되어 ”낭비되거나 늙어지는” 경우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본래 '땅의 티끌”로부터 엄청나게 복잡한 두뇌를 가진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창조된 생물적 실체들은 육체적인 죽음이 없도록 계획되었다. 그러나 제 2 법칙에 급격한 수정이 가해졌으며, 현재 만물들은 열역학 제 2 법칙에 의하여 먼지로 되돌아가고 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고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8:22)” 성경은 이를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저주로 답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 죽게 되리라고 경고하셨다 (창2:16-17).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사단의 말을 믿었기 때문에 세상에 죽음이 들어오게 되었다. ”…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7-19)” 이 말씀은 타락 이후의 제 2 법칙에 대한 정식 선포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과 이 법칙을 함께 생각해보면, 열역학 제 2 법칙이 적어도 오늘날의 형태로 성립된 시기는 아담이 죄를 지은 비극의 날, 곧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고전 15:21)”라고 한 그 날 이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이 저주는 훈도적일 뿐 아니라 종말적이다. 이 저주는 비록 미래에 있을 우주의 열사상태를 예시하고 있지만, 한편 사려 깊은 하나님께서 결코 우주를 죽게 내버려두시지 않을 것임을 암시해 준다 (롬8:20, 21).

[말씀]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8:20-21).

”다시는 저주가 없을(계22:3)” 그 위대한 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에덴 이후 지금까지는 ”피조물이 다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고”있다 (롬8:22).


4. 과학이 조명하는 성경의 창조와 보존

성경에서는 이 세상의 시작에 관하여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우주만물의 궁극적인 원인을 하나님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그 분의 초자연적인 능력인 말씀으로 세상을 만드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대과학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소위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에 대한 원인이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성경의 권위와 참됨을 객관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생명체가 복잡하고도 난해한 생화학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전능자의 지적설계의 개입이 없이는 생명현상들이 저절로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이 오늘날 많은 과학자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견지하고 있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핵심은 창조와 타락과 구속으로 요약될 수가 있다. 창조는 완벽하고 선하고 아름다웠다(창1:31).

[말씀]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1:31).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능력의 말씀으로 6일 동안에 온 우주를 포함한 모든 세계를 창조하셨다. 그 세계는 인간으로 하여금 영원을 사모하도록 설계되었고 아름다웠다 (전3:11).

[말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3:11).

오늘날 우주물리과학은 우주가 시간, 공간, 물질의 삼위일체로 구성된 연속체로서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아름답고 질서가 있는 세상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가하는 것에 대하여는 물질은 물론이고 시간이나 공간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절대 무의 상태에서 한 질점으로부터 대폭발에 의하여 시작되었다고 가정하고 있다. 과학이 밝힌 절대 무의 세계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1) 빠라(bara)와 아사(asah)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고 선포하신 이 말씀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시간/공간/물질로 된 우주의 모든 체계와 과정들을 한데 묶어 표현하는 참으로 과학적인 언급인 것이다. 여기에서 사용된 ‘창조하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빠라(bara)’는 무에서 유로의 창조를 뜻하는 것이다. 현대 과학의 가장 심오한 가설인 대폭발 이론(Big Bang theory)은 결국 창세기 1장 1절을 규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창세기 1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잘 이해하는 데는 1장에서 사용된 히브리 언어 ‘빠라(bara)’와 ‘아사(asah)’의 두 가지 동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빠라(bara)’는 무로부터의 창조를 뜻하며, ‘아사(asah)’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이용하여 만든다는 뜻이다. 창세기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는 무에서 유로의 창조와 유에서 유에로의 지으시고 만드시는 두 가지로 구별된다.


(2) 무로부터의 세 가지 창조와 완전한 창조

창세기 1장에서 무에서 유에로의 창조를 뜻하는 고대 히브리동사 ‘빠라(bara)'는 모두 세 군데에 기록되어 있는데, ‘빠라(bara)'된 세 가지는 물질적인 우주(창1:1), 생명의 우주(창1:21), 하나님 형상의 우주(창1:27)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가 살아가야 하는 환경적 우주와 생명의 원리들의 실체인 생명체들과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창조(빠라)하셨다.

창세기 1장은 과학이 발달할수록 더 잘 이해가 될 것이다. 현대과학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열역학 제1, 2법칙으로 창조의 완료(열역학 제1법칙)와 창조의 시점(열역학 제2법칙)이 있었음을 알게 한다. 이미 논하였지만 현재의 우주는 점점 죽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cosmos(질서)의 상태에서 chaos(혼돈)의 상태로 질적인 저하를 가져오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가 완료되었을 때, 그 창조는 완벽하고 좋았을 것이라는 것은 열역학 제2법칙이 입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을 모두 6번씩이나 기록하고 있다.


(3) 인간의 위상

창세기 1장 28절은 인간이 피조세계와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잘 나타내고 있다.

[말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1:28)”

모든 동물들을 다스리고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은 곧 이 우주 만물이 인간을 위하여 만드셨다는 것이며, 인간에게 위임되고 상속됨을 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곧 법이며, 질서이다. 인간에 의하여 정복되지 않는 땅과 다스려지지 않는 동물들의 존재는 하나님의 법에서 떠나게 되므로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며, 도리어 인간을 해롭게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 이외의 피조물들은 창조주가 부여하신 존재 가치가 인간에 의하여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다른 피조물 속에 감추어진 창조주의 영광을 발견하고 그 영광을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리는 관계를 통하여 복의 근원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재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5. 세 가지 창조에 대한 저주

창조 시의 아름답고 완벽한 피조세계는 오늘날 참 과학이 밝히고 있듯이 고통을 동반한 죽음을 향하여 치닫고 있는 이상한 현상을 맞이하고 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창조의 중심에 있는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의 결과로서 흙으로 돌아가는 저주를 받게 된다(창3:19). 하나님 앞에서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려야할 인간이 그 존재의미를 상실하였으므로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던 우주 환경도 저주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었으며(창3:17-18), 모든 생물들도 저주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었다(창3:14). 로마서 8장 20절 ~ 22절의 말씀에서 이러한 비참한 피조세계의 고통을 잘 표현하고 있다.

[말씀]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8:20~22)

완벽하고 아름답게 창조된 세상이 인간의 불순종으로 붕괴되어갈 때 나타나는 현상은 끝없는 고통과 어둠을 상징하는 생노병사의 세상으로 표현될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생노병사는 범신론적인 윤회의 현상이 아닌 일회적이나 종말적인 역사의 반복으로 나타났다.


6. 성경에 나타난 생노병사의 구체적 현상들

열역학 제 2 법칙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세계가 쇠퇴하게 되면서 열사상태에 이르는 생노병사의 현상을 말한다. 그것의 대상이 물리학적이든, 생물학적이든, 사회학적4)이든 이 법칙은 모든 과정에 적용되고 있다. 성경은 나타난 모든 피조세계가 죽어 가는 현상을 과학보다 먼저 예견하고 있다. 여기서 제 2 법칙은 인간을 포함한 생물계에 대하여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데 유전적인 질환인 노화 현상이 병이라는 고통스런 동반자와 함께 치명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하였다.

(1) 우주의 쇠퇴에 대한 성경의 언급

다른 종교의 경전과 달리 성경은 우주에 관한 열역학 제 2 법칙의 심각한 현상을 깨닫게 하는 말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만이 오직 창조주의 말씀인 것을 확신하게 한다.

[말씀]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룰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시 102:25-27).

[말씀]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사 51:6)”

[말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말씀]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 8:20-22)”


(2) 인간의 쇠퇴에 대한 성경의 언급

시편 90편 9, 10절의 말씀은 인간의 쇠퇴에 대한 성경의 언급이다.

[말씀]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9-10).

창세기 5장과 11장에 나타난 믿음의 조상들의 수명의 변화를 살펴본다면 노아홍수를 전후하여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엄청난 수명의 차이가 나고 있다. 이것은 대홍수 전의 장수 현상이 완벽한 지구 환경에 기인한 것이다. 오늘날 방사선의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궁창 위의 물에 대한 환경적 역할이 입증5)되기도 하였다. ‘그림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노아는 502세에 셈을 낳았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오늘날 생각하는 노화현상의 심각성은 홍수 전에는 별로 없었다고 보여 진다. 홍수가 끝났을 때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고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8:22)”6)는 예언의 말씀대로 환경의 변화가 극심하므로 이에 따른 생명의 단축 현상과 노화, 병드는 현상이 심각해져 갔다 (그림2). 창세기 11장을 분석하면 아르박삿과 셀라는 조상 셈보다도 먼저 사망을 하였으며, 벨렉부터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의 후손들이 셈과 아르박삿, 셀라, 에벨 등의 조상보다도 먼저 사망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홍수 후에 생노병사에 대한 극단적인 이상 현상이 발현하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생물계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여 진다. 조심스럽게는 이때부터 방주에서 나온 많은 종의 생물들이 멸종하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그림1) 창세기 5장과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조상들의 수명변화에 관한 그림

1. (그림1)의 위의 변화선은 각 사람의 수명을 나타내며, 아래 변화선은 족보상에 이어지는 아들을 낳을 때의 나이를 나타낸다.
2. 대홍수 이전의 조상들이 900년 이상을 살았던 사실은 현실적으로는 믿기 어려우나, 하나님의 완벽한 창조의 결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아담에서 노아에 이르기까지 홍수전의 기록은 아들을 낳은 나이가 100세 전후로 나타나는 것에 반하여, 홍수 이후의 후손들은 기록상으로 30세를 전후하여 아들을 낳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홍수를 중심으로 달라진 환경으로 인하여 장수에서 단명으로 변화하는 수명감소의 타당성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3.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5:21~24)”의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승천한 에녹의 후손들이 다수 있었지만, 구원의 방주에는 오직 노아의 가족만이 들어갔다. 이것은 당시의 좋은 환경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등한시되었는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병적인 현상의 일반화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던 땅(창1:10)이 대홍수로 멸망을 당하고 궁창 위의 물이 사라진 환경은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들과 생태계에 고통과 고난을 주었을 것이다. 홍수 후에 수명의 급격한 감소 현상이 나타나면서 생로병사에 대한 슬픈 징조가 여러 곳에서 기록되어 있으며 그 징조는 점차 확산되어 갔다.

[말씀] 나홀은 이십 구세에 데라를 낳았고, 데라를 낳은 후에 일백 십구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창11:24, 25)

홍수 후 200년이 지나기 전에 태어난 나홀은 조상이신 노아가 돌아가시기 전에 사망하는데 당시에 수명이 200년 이상을 사는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명은 148년에 지나지 않았다. 나흘의 사망원인은 사고사가 아니었다면 병사였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가 일백 이십 칠세를 살았는데 오늘날과 비교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장수였지만, 남편인 아브라함의 향년 175세에 비하면 단명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없이는 자녀도 낳지 못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사라의 인체에 이미 병적인 현상의 어두운 그림자가 깊이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0세까지 장수한 이삭은 아들 야곱이 고향을 떠날 때 약 130세였는데, 에서와 야곱을 구별하지 못할 만큼 노안이 빨리(?) 왔다. 그는 거의 50년의 여생을 장님으로 보내야만 했다.
”야곱이 그 아비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가로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그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치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창27:23, 24)

아브라함으로부터 4, 5대에 걸친 후손들이 애굽으로 해방되었을 때, 이미 그들에게는 온갖 질병의 가능성이 있었다.

[말씀]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하사 너희가 아는바 그 애굽의 악질이 네게 임하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임하게 하실 것이라 (신7:15).

[말씀] 여호와께서 애굽의 종기와 치질과 괴혈병과 개창으로 너를 치시리니 네가 치료함을 얻지 못할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너를 미침과 눈멂과 경심증으로 치시리니 (신28:26, 27)

더욱이 레위기에 문둥병의 기록이 있다는 것은 홍수 후에 급속한 수명 단축 현상이 나타나면서 대부분의 질병들이 인간사와 함께 동반된 것으로 보여 진다. 신약에 이르러서는 예수님께서 친구 나사로의 병들어 죽은 것에 대하여 눈물을 흘리셨고 온갖 종류의 병자를 위한 치료봉사에 힘을 쏟으셨다. 이러한 인간의 고통에 대하여 창조주 하나님도 가슴 아파 하셨던 것이다.


(4) 급속한 수명변화의 기록 속에 나타난 숨겨진 사실들에 대한 고찰

(그림2) 천지창조이후 창세기 5장과 11장에 나타난 조상들의 출생, 사망연도에 관한 그림


1) 그림2에는 두 가지의 선들이 표시되어 있다. 아래의 점선은 창세기 5장과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조상들이 천지창조 이후 언제 태어났는가를 나타내며, 위의 실선은 그 분들이 돌아가신 해를 나타낸다. 이러한 곡선을 연구, 분석하면 성경전체에 대한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셋’은 천지창조 후 130년에 태어나, 912년 동안 살다가 천지창조 후 1042년에 사망하였다. ‘에노스’는 천지창조 후 235년에 태어나, 905년 동안 살다가 천지창조 후 1140년에 사망하였다.

2)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한 에녹은 천지창조 후 622년에 태어나, 987년에 승천하였다. 에녹이 태어나서 승천할 때까지 1대이신 아담을 비롯한 모든 조상이 다 살아 있었으니, 그가 아담과 다른 조상들을 만나 천지창조에 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실낙원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의 승천 시기는 아담과 셋의 사망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3대 후손인 노아가 만든 방주에는 그의 다른 후손들은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3)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대홍수 5년 전에 사망하였고, 969세로 최고로 장수하였던 조부 므두셀라는 홍수가 나던 해에 사망하였다. 므두셀라의 이름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의 주장이 있다. 첫째는 ‘창을 던지는 자’란 뜻으로 마을을 대표하는 최고의 창잡이가 결투로 죽으면 마을이 패배한다는 의미에서 ‘그가 죽으면 세상 끝 날이 오리라’로 해석된다. 둘째는 ‘무트(죽다)’ + ‘솰라흐(보내다)’로 분석하여 ”그가 죽으면 홍수 심판을 보내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한다. 두 주장 모두가 므두셀라가 돌아가신 이후에 노아의 홍수가 발생하였다고 설명된다.(노아는 1056년에 태어났으며, 그의 나이 600세가 되던 해 2월 17일, 즉 1656년 2월 17일에 홍수가 발생하였는데 이 해가 바로 므두셀라가 사망하는 해였다)

4) 노아는 홍수 후에 350년을 더 사셨는데, 기록상으로는 그의 후손들이 바벨탑을 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바벨탑을 쌓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시기를 벨렉이 태어난 해로 본다면, 노아홍수 이후 겨우 100년 정도가 지났을 따름이다. 겨우 3, 4세대가 지났을 따름인데 니므롯과 같은 영적 대역적이 나타났다는 것은 부모나 조상의 신앙과 관계없이 그 마음에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타락은 항상 신속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5) 셈의 아들 아르박삿과 손자 에벨이 조상인 셈보다 먼저 사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그림에서 작은 원)를 들어 본적이 있는가, 그리고 셈과 아르박삿과 에벨 모두는 그 후손들인 벨렉, 르우, 스룩, 나흘, 데라 등이 죽은 후에도 살아 계셨다는 이야기(그림에서 큰 원)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림에는 이 모든 것이 나타나 있다.

6) 홍수 직후의 후손들에게 나타난 생로병사 현상의 심각성들은 바로 죄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이 지은 심각한 죄의 그림자는 생태계 전체에 나타났을 것이며, 지금은 화석에만 존재하는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비록 방주에서 나왔다 할지라도 건강한 처음 몇 세대를  제외한 그 후손들은 이 이상한 시기를 기점으로 서서히 사라져 갔을 것이다.

7) 이 그림에서 나타난 중요한 한 가지 해석은 ‘멜기세덱’에 관한 정보이다. 아브라함은 노아 사망 2년 후인 2008년(2183년 사망)에 태어났는데, 그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갈 때(75세, 2083년) 노아의 아들인 셈(2158년 사망)과 셈의 증손자 에벨(2187년 사망)이 살아 있었다. 노아 홍수의 산 증인이며, 후손들과는 달리 장수하였던 그들의 영향력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아는 많은 제사장들이 배출되었을 것이다. 멜기세덱도 그러한 제사장 중의 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는 특별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경건한 제사장이었으며, 가나안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멜기세덱의 축복은 아브라함을 그 지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종교적인 선포로서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인 것이었다.


(5) 생로병사를 허락하신 이유

하나님의 말씀인 질서에서 멀어질 때, 불순종에 따른 저주가 자연과 생태계의 재앙으로 나타나는 영적 법칙에 따라 영적인 엔트로피는 증가하게 되어 필연적으로 늙고 병들어 가는 무질서가 인류 역사에 나타나게 되었다.

홍수전의 사람들이 완전히 멸망당한 것에 대하여 완벽한 환경이 오히려 믿음에 대한 걸림돌이 되어 성령을 거역하는 강포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는 것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천년 가까이 살 수 있는 그러한 완벽한 생태계의 환경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겨우 여덟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심령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찾도록 그 완벽한 환경을 멸하셨다. 그러나 인간이 계속하여 죄를 짓게 됨에 따라 수명을 더욱 단축시키면서 인생이 병들고 연약하게 되도록 하셨다. 그것은 인간들로 하여금 노아 홍수전의 세상이 꿈같도록 하시어 하나님의 은혜와 구세주를 갈망하도록 하셨으며, 마지막 날까지 다시 오실 예수님을 학수고대하는 신앙을 갖게 하시고자 함이었다. 그러므로 말세를 살아가는 모든 기도교인들은 요한계시록 22장 20절의 말씀과 같이 항상 주 예수의 재림에 관하여 기도할 필요가 있다.

[말씀]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22:20).

 

결론

완벽한 하나님의 창조에 나타난 처음 세상은 생로병사의 고통이 없는 아름답고 선한 세상이었다. 인간은 창조의 중심에 있었으나, 피조세계인 환경적 우주와 생명계에 대하여 하나님의 상속자와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채 불순종의 길을 가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하고 아름답게 창조하신 세 가지에 대하여 모두 저주하시므로 오늘날까지 만물이 고통 하는 가운데 있게 하셨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과학은 열역학 법칙을 통하여 성경을 조명하고 있다. 참 과학은 우주의 영원성과 유한성을 발견하였다. 과학과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이 시대에서 참 과학과 성경은 서로 상보적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을 때 창조주 하나님이 모든 만물보다 선재하심과 인간의 불순종에 기인한 우주의 종말이 필연적이라는 당위성을 다시 한 번 깊이 인식하게 된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저주는 종말적이지만 훈도적이다. 이 저주는 비록 미래에 있을 우주의 열사 상태를 예시하고 있지만, 한편 사려 깊은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고 계신다.

노아 홍수 이후 열악한 환경으로 인하여 수명의 감축현상과 함께 심각한 돌연변이적 유전질환으로 인한 질병 현상이 극심하여 생로병사가 인간의 영원한 과제가 되었다. 열역학 제 1, 2 법칙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세계가 쇠퇴하게 되면서 열사상태에 이르는 생로병사의 현상을 모든 방향에서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고통을 통하여 선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창조신앙을 회복하고, 잠깐 동안의 안개와 같은 세상에 애착을 두는 것보다는 다시는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저주가 없는 영원한 세상에 대한 소망을 이루어 주실 예수님의 재림을 학수고대하여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권명상 외, 자연과학. 생능, 2000.
2. 마이클 베히, 김창환 외 15인 역, 다윈의 블랙박스. 풀빛. 1979.
3. 모리스 헨리 M., 이현모, 최치남 역, 현대과학의 성서적 기초, 요단출판사, 1988.
4. 양승훈, 창조론 대강좌, CUP.1996.
5. 임번삼,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상), (하), 두란노, 2002.
6. 창조과학회편, 기원과학, 두란노, 2000
7. Bowden, Malcolm. The Rise of the Evolution Fraud. San Diego: Creation-Life, 1982. 227 pp.
8. Sire, James W. The Universe Next door. Dower's Grove, Ill.: Inter-Varsity, 1976. 238 pp.
9. Wilson, Clifford, and Weldon, John. Occult Shock and Psychic Forces. San Diego: Creation-Life, 1980. 482 pp.
10. Wood, Nathan R. The Trinity in the Universe. Grand Rapids: Kregel, 1978. 220pp.


주석

1) 그리스어인 ‘Thermo’는 열을 의미한다. ‘Dynamis’는 에너지 혹은 힘을 의미한다. 열역학(Thermodynamics)은 열이 있는 에너지와 힘을 취급하는 학문이다.
2) 열역학 제2법칙은 카노트(Carnot), 클라우시우스(Clausius) 그리고 캘빈(Kelvin)이 1850년에 발전시킨 법칙이다. 그것의 기본 골격은 다윈이 『종의 기원』을 썼을 당시에 형성되었다. 19세기 말경에는 점차 이해될 수 있는 폭넓은 개념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 당시에 진화론자들은 열역학 제2법칙이 갖는 광범위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3) 월드 북 백과사전에서 엔트로피의 뜻을 살펴보면, ”열역학 제2법칙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은 기계에너지가 열로 완전히 전환될 수 있지만, 열이 기계에너지로 완전히 전환될 수 없다. 엔트로피는 일할 수 없거나 기계에너지로 변화될 수 없는 무용한 열에너지이다. 에너지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할 것이고, 결코 감소하지 않는다.”
4) 사회이론가인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 새로운 세계관』에서 해결할 수 없는 모든 문제들(통화팽창, 실업문제, 새로운 질병, 환경오염, 성적 문제, 관료주의, 자원의 고갈 등등)은 엔트로피의 증가에 기인한다고 하였다. 사회, 정치, 경제, 그리고 윤리 분야에서 모든 일들이 산산이 흩어지고 심지어 몰락하고 있는 것도 이 법칙에 기인한다고 본다.
5) 방사선의학의 발전
6)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포도 농사를 지었는데 그것은 땅의 황폐화로 인하여 포도즙으로 음료수를 대용하는 일이 시급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홍수 전후의 생태계에 나타난 극심한 변화를 깊이 숙고하지 않으면 당대의 의인인 노아가 술 취한 기록에 대하여 잘못된 해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조 : Temporal changes in the ageing of biblical patriarch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151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783

참고 : 3101|3707|4982|5969

John Morris
2006-12-21

므두셀라는 어떻게 죽었을까?

(How Did Methuselah Die?)


      구약성경 중에서 흥미로운 인물 중 하나는 969세 라는 가장 오랜 수명을 가졌던 므두셀라(Methuselah)이다 (창 5:27).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walked with God)’고 말해지는 에녹(Enoch)이다 (창 5:24). 에녹은 365세에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하나님이 데려가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므두셀라의 아들 라멕은 노아(Noah)를 낳고 홍수 나기 수년 전에 777세의 나이로 죽는다 (창 5:31).

므두셀라가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였던 하나님의 사람 에녹은 아들의 이름을 '그가 죽을 때 심판이 온다”라는 의미를 가진 ‘므두셀라’로 지었다. 그는 아마도 장차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예언적으로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매우 흥미롭게도 므두셀라는 하나님이 노아의 대홍수로 타락한 세상을 심판하셨던 바로 그 해에 죽었다. 

노아 홍수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지만, 많은 것들은 단지 추측해볼 수밖에 없다. 아마도 노아는 홍수가 일어날 것이라는 경고를 120년 동안 포기하지 않았다 (창 6:3). 그리고 노아는 방주를 건조하는 동안에도 '의를 전파하는”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벧후 2:5). 그러나 단지 여덟 명만이 구원을 받았다 (벧전 3:20). 왜 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지 못했었는가? 마른 땅 위에 거대한 방주를 건조하는 그의 신앙적 순종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을 것이고, 죄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라멕과 므두셀라도 노아의 일을 지지하고 도왔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같은 가족인 8명만이 방주에 들어갔다.  

므두셀라가 홍수가 나던 해에 죽었기 때문에, 혹자는 그가 믿음이 없어서 홍수 물로 인해서 죽은 것은 아닌지 궁금해 하기도 한다. 그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는 거의 알 수가 없다. 단지 므두셀라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에녹의 아들이었다는 것과, 노아의 출생 시에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예언을 했던 라멕이(창 5:29) 그의 아들이었다는 것뿐이다. 

여기에 몇 가지 더 숙고해 보아야할 구절들이 있다. 하나님은 장차 여자의 후손이 뱀(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창 3:15). 그리고 그 이후로 사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미워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려고 음모를 꾸민다 (창 4:7, 6:2). 더군다나 사람의 생각은 항상 악했고(창 6:5), 땅에는 사람들로 인한 강포(violence)가 가득하였다 (창 6:13). 제지되지 않고 내버려둔다면, 조만간 여자의 후손들은 남아있지 않을 것이었다.

확실히 강포는 많은 생물들에게서도 일어났을 것이다. 동물들은 사나워지고, 피에 굶주리게 되었다. 사람의 죄악 된 본성이 가득해지면서, 전쟁은 맹렬해졌음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강포와 환란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닥쳐왔을 것이다. 아마도 노아는 여러 해 동안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남겨진 사람이 8명이었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므두셀라에게 일어났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는 마지막 순교자였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살해되었을 때, 하나님의 인내는 끝났던 것이다. 인류를 보존하시기 위해서, 특별히 장차 구속주가 오시게 될 여자의 후손을 남겨놓기 위해서, 하나님의 정의는 마침내 촉발되었던 것이다.


*Dr. John D. Morris is the President of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참조 : Methuselah and the Ark; Dirt and ‘supergerm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210/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3123/

출처 - ICR, BTG 216a, 2006. 12. 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739

참고 : 930|2936|3101|1922|2016|2138|2638|2797|2982|3020|3024|3331|3589|3640|3689|3731|3901|4297|4351|4440|4487|4492|4540|4869|5033|5035|5084|5265|5275|5381|5394|5542|5628|5627|5969|5870|5923|6044|6107|6110|6135|6146|6152|6153|6283|6285|6360|6414|6477|6480|6491|6581|6512

Stephen Caesar
2006-12-11

별들 이전에 빛은? : 빛의 창조와 음파발광 

(Light before Stars?)


      창세기 1:3절은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경 비판가들은 별(stars)들은 16절에서나 창조되었기 때문에, 3절의 기록은 오류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빛(light)을 내는 별들이 아직 창조되지 않았다면, 빛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을까? 최근의 과학적 발견과 함께 3절을 다시 자세하게 살펴본다면, 그 답을 얻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3절을 다시 주의 깊게 읽어보면, 빛은 하나님이 있으라고 말씀하심으로(가라사대) 있게 되었다. 현대과학은 빛은 별들과 같이 오로지 빛을 내는 근원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단순히 소리(sound)에 의해서도 만들어질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물리학자들인 웨닝거(Keith Weninger), 푸터만(Seth J. Putterman), 바버(Bradley P. Barber) 등은 소리로부터 만들어진 빛인 음파발광(sonoluminescence, SL)의 존재를 확인하는 놀라운 실험을 수행했다. Science News는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 '강한 음파(sound wave)로 충격을 받은 물에 부유하는 작은 가스 기포(gas bubble)는 극도로 짧고 밝은 빛의 파동(pulses)을 방출할 수 있다. 음파발광으로 알려진 이 소리로부터 빛으로의 전환은, 기포가 음파와 보조를 맞추어 진동하면서 빠르고 강렬하게 수축(contraction)하는 동안에 발생한다.” (Peterson 214)
 
Discover 지도 유사하게 언급하였다 : '음파발광이라고 불리는 과정에서, 음파는 물 속의 하나의 기포(air bubble)를 1초에 2만 번 진동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각 기포의 붕괴는 기포의 안쪽에 미세한 압력을 창출할 수 있다. 이것은 태양의 표면보다 더 뜨거운 것으로 믿어지는 작은 백열광(white glow)을 방출한다. 그러한 온도는 이론적으로 핵융합(fusion)을 만드는 데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Saunders 50).

같은 저널에서 음파발광 과학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보고된 음파발광에 대한 발견은 우주의 형성에 대한 창세기 첫 장의 기록과 전적으로 일치한다. 그 잡지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었다 :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우주론자들은 빛이 공간을 통하여 방해받지 않고 여행을 할 수 있기 전에, 음파(sound waves)들이 전 우주를 통하여 자유롭게 울려 퍼졌었다고(reverberated) 믿고 있다. 음파는 우주가 엄청난 팽창을 경험했을 때인 우주 탄생의 최초 순간에 시작되었을 지도 모른다.” (Folger 48).
   
소리가 창조의 바로 그 순간에 존재했었다는, 그리고 소리가 우주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었을 것이라는 이 이론은, 하나님이 말씀하셔서(가라사대) 빛이 있게 되었다는 성경의 기록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음파발광이 발견되기 이전에, 신학자들과 성경학자들은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기 위해서 왜 말씀을 하실 필요가 있으셨는지, 그 이유를 단지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음파를 사용하셔서 창세기 1:3절의 빛을 창조하셨던 것처럼 보인다. 다시 한번 철저한 과학적 연구는 창세기 기록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들을 청소해 버리는 것이다. 

   
 
References: 
.Folger, T. (2000). 'The Magnificent Mission.' Discover 21, no. 5.
.Peterson, I. (1996). 'Glimpses inside a tiny, flashing bubble.' Science News 150, no. 14.
.Saunders, F. (1999). 'Bubble, Bubble.' Discover 20, no. 8.


* Stephen Caesar holds his master’s degree in anthropology and archaeology from Harvard University. He is the author of the e-book: The Bible Encounters Modern Science, available at: www.1stbooks.com.  http://www.creationism.org/caesar/
http://www.creationism.org/caesar/index.htm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ism.org/caesar/sonoluminescence.htm

출처 - Revolution against Evolution, 2002.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731

참고 : 1790|2541|5394|5381|5265|5275|5035|5033|4869|4540|4492|4487|4440|4297|3731|3689|3589|3331|3024|3020|2982|2936|2797|2638|2138|2016

이강래
2006-11-14

창세기 사건들과 관련된 족장들의 연대와 나이에 관한 연구


      주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한 기독교인들에게 성경 기록의 진실성과 역사성에 대한 신뢰는 한 번의 믿음(요20:29)으로도 충분하지만, 그것을 더욱 연구하고 알리는 것은 신실한 기독교인들의 사명이기도 하다. 한국창조과학회 홈페이지에 소개된 Larry Pierce가 쓴 ‘벨렉의 시대에(In the days of Peleg)’[1]는 성경의 기록들이 진실된 역사들임을 굳게 믿는 신앙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내용이다. 성경의 기록을 입증하려는 노력은 교회까지도 진화론의 영향을 받는 이 시대에 올바른 믿음을 견지하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큰 빛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성경에서는 하나같이 창10:21에서 노아의 아들 ‘셈’을 ‘야벳의 형’으로 잘못 번역함으로써, 그를 세 아들 중에서 장남으로 알고 있는 성도들이 많다.[2] 이것은 창5:32에서 노아의 아들들을 소개할 때 셈을 가장 먼저 기록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장남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몇 군데를 더 살펴보면, 셈이 장남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이렇게 잘못 번역된 부분들은 불신자들이 기독교를 비난할 때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으므로, 지금이라도 잘못 번역된 부분은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성경공부를 할 때나 설교를 할 때, 창세기의 나이와 관련된 기록들에 대하여 이해가 잘 되게 설명을 한다면, 성도들에게 성경의 진실성과 역사성을 인식시키게 되므로 개인의 신앙을 굳건히 하는데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본고에서는 창세기의 나이 문제에 관하여 두 부분으로 정리하였는데, 첫 부분은 창세기 5장과 11장의 족보에 나와 있는 족장들의 나이를 계산하여 창조를 시점으로 한 출생연도와 사망연도를 표로 정리하였으며, 두 번째 부분은 12장부터 창세기 나머지 부분에 산재해 있는 나이들과 사건들을 서로 연결이 되도록 정리하였다.

 

Ⅰ. 창세기 5장과 11장에 나타난 족장들의 연대

 

1. 노아의 아들 셈의 정확한 출생 시기

(창5:32) '노아가 오백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이 말씀은 노아가 세쌍둥이를 낳았다는 오해를 불러 올 수도 있고, 셈이 장자인 것처럼 이해되기도 하는 구절이다. 히브리어에서 ‘오백세 된 후에’라는 표현은 ‘오백세 되는 해에’라는 말과 같다.

(창9: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창10:21)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한글 개역성경에 나타난 위의 두 말씀에 의하면 ‘함’은 막내아들임에 틀림이 없고, ‘셈’이 장자가 되는 것이다. 고대 히브리어의 모호한 구조는 21절에서 ‘셈’과 ‘야벳’이 어느 쪽이 형인지 잘 알 수는 없게 되어 있으므로, 21절에 대한 올바른 번역은 ‘야벳의 형’이 아니라 ‘야벳의 형제’라고 하여야 한다. 새로 나온 성경들도 여전히 고쳐지고 않고 있다.

(창11:10)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위의 말씀에서 셈은 홍수 후 제 2년에 100세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노아가 600세 되는 해에 홍수가 발생(창7:11)하였다는 것은 셈의 나이 98세에 해당되는 해였으므로 셈은 노아가 502세 되는 해에 태어난 것이었다. 그러므로 노아 나이 500세 때에 태어난 장자는 다름 아닌 야벳이었다. 셈과 야벳의 서열이 이렇게 분명한 이상 우리나라 거의 모든 성경에서 보이는 창10:21의 ‘야벳의 형이라’를 영어성경 NIV, KJV과 같이 ‘야벳이 그의 형이라’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다면 5장 32절의 정확한 진술은 '노아가 오백세 된 후에 야벳과 셈과 함을 낳았더라.”라고 해야 한다. 셈이 세 아들 중 첫째로 언급된 것은 홍수 후 믿음의 조상으로서 그의 중요성 때문이라 할 것이다.


2. 천지창조에서부터 노아홍수가 발생한 시기

(창7:11~12)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성경은 노아가 1056년에 태어났으므로 천지창조 이후 1,656년에 노아홍수가 발생한 것으로 계산된다.[3]

(창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앞으로는 사람의 수명을 120년으로 제한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홍수 직후에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120년보다 더 오래 살았다는 사실과 모순이 된다. 이 말씀은 홍수 전 모든 인류의 극심한 타락에 대한 심판에 대한 예고로서 회개하고 돌아오길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과 인내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120년 후에 대홍수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었다. 오래전부터 에녹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이 이제는 구체적으로 그 시기까지 알려주심으로 온 인류가 회개하고 돌아올 충분한 시간을 주신 것이다. 노아가 그 말씀을 받들고 지켜 나갔던 시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다. 노아는 오늘날 우리들의 수명보다 더 긴 시간동안을 전보다 더 경건한 생활을 하며, 당시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을 것이며, 방주를 만드는 일에 모든 준비를 다하였을 것이다.


3. 바벨탑은 언제 쌓았는가?
앞서 소개한 Larry Pierce가 쓴 ‘벨렉의 시대에(In the days of Peleg)’라는 글에서 대홍수는 B.C. 2349-2348년에 일어났으며, 벨렉은 약 백년 후인 B.C. 2247년에 태어난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부록에 나타난 연대표에 의하면 벨렉이 태어날 때가 천지창조 이후 1757년이므로 홍수 후(노아 나이 600세가 되던 해가 1656년이 됨) 101년 정도가 될 때였다. 노아는 홍수 후에 350년을 더 살았으므로, 바벨탑의 사건과 그 이후의 하나님의 심판을 목도하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4]


4. 데라는 칠십 세에 누구를 낳았는가?

(창11:26) '데라는 칠십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창22:20) '이 일 후에 혹이 아브라함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밀가가 그대의 동생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11장 26절의 기록은 데라의 세 아들들이 세쌍둥이인 것 같이 보일 수도 있고, 아브람이 장남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22장 20절의 ‘동생 나홀’은 11장 26절에 기록된 순서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기에 기록된 ‘동생’이란 것은 잘못된 번역이다. 아브라함이 나홀의 ‘형’이라는 증거가 성경에 없기 때문이다. 히브리 원문에 충실하여 외국의 대부분의 성경들은 ‘동생’이 아닌 ‘형제’라고 표현하고 있다.[5] 그러나 뒤에 나오는 말씀들을 상고하면 아브람은 오히려 막내에 가까운 것을 알 수가 있다.

(창11:32) '데라는 이백 오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행7: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위의 세 구절의 말씀에서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가나안으로 떠날 때는 아버지 데라가 죽고 난 이후였으며 그 때의 나이는 75세이었다는 것이었다.[6] 그러므로 데라는 아브람을 낳을 때 적어도 130세 이상이었을 것이다. 11장 26절의 말씀은 데라가 70세부터 아들을 낳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뜻하는데, 아브람을 가장 먼저 기록하는 것은 히브리인의 조상으로서 그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창11: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창11: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위 말씀들은 데라가 70세에 낳은 아들은 하란으로서 그가 장자일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Ⅱ. 창세기 12장 이후의 연대

1.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에 관한 이야기

(가나안에서의 생활)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창17:17)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창20:12) '또 그는 실로 나의 이복누이[7]로서 내 처가 되었음이니라”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란을 떠났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창20:12에 의하면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의 딸이지만, 어머니가 다른 이복누이로서 부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성취하기 위하여 한 가족 내에서 형제자매들과의 결혼이 아브라함 때까지 비교적 오랫동안 유행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근친간의 결혼은 후에 모세의 율법시대(레18:6,9,14)부터는 철저히 금지 된다. 사라는 아브라함보다 10살이나 적었으므로, 부친인 데라는 적어도 140세에 딸 사라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바로의 궁으로 간 사라)
(창12:15)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창23:1) '사라가 일백 이십 칠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

가나안으로 이주한 그 해에 바로 기근이 들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기근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갔다. 사라가 심히 매력적인 까닭으로 강제적으로 바로의 궁으로 끌려갈 때의 나이는 65세 이상일 때였다. 이 기록은 오늘날의 경우와 비교하면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이지만, 그 부친 데라가 205세까지 살았고, 아브라함이 175세까지 살았으며, 사라 자신은 127세까지 살았으므로, 당시의 수명은 오늘날의 2배는 족히 되었다. 그러므로 당시 사라의 65세 매력은 오늘날 30~40대의 나이에 해당하는 젊음을 가졌다고 보여 진다. 사라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특별히 오랫동안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도 있었겠으나, 65세 사라의 매력에 관한 이야기는 오히려 노아홍수 직후 50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오늘날보다 두 배 이상 장수할 수 있었던 지구환경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노아 방주로 구원받았으나 지금은 멸종한 많은 종류의 공룡들이 그 시대까지는 살아남아 있었다는 증거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8]

(이스마엘의 출생)
(창16: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가져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십년 후이었더라”

(창16: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 륙세이었더라”

창세기 16장은 아브람과 사래가 가나안 땅에 온지 10년 동안 유지되었던 믿음이 무너져버린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할례의 명령과 개명)
(창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창17:11)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창17:15)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창17:15)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창17:24) '아브라함이 그 양피를 벤 때는 구십 구세이었고”

(창18:11)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창18: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16장의 아브람과 사래의 실패에 대하여 17장에서 하나님은 다시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심히 번성케 하시는 복을 주시되, ‘아브라함’과 ‘사라’라는 각각 의미 있는 이름으로 바꾸어 주셨으며, 할례를 명하시므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굳은 믿음을 갖도록 하셨다. 그러나 18장에서 보인 사라의 반응으로 볼 때, 그녀는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브라함이 99세, 사라가 89세 때 되던 이야기이다. 단순하게 그들의 나이로만 생각한다면 완전하게 생각이 굳어버린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믿음을 심어 주기 위한 하나님의 끝없는 노력을 어떻게 이해를 할 수가 있을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18:14).”

아브라함 99세, 사라 89세 때에는 자식에 대한 소망이나 열정이 완전히 식어져 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때에 나타나셨으며, 이름을 바꾸게 하시고 할례를 행하게 하셨다. 그들의 나이에 관계없이 다시금 용기를 주시고 사명을 부여 하셨다. 우리들도 때로는 도저히 재기할 수 없을 만한 영적인 침체 상태를 들어갈 때가 있다. 그럴수록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2. 이삭의 연대

(이삭의 출생과 순종)
(창 21:5)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세라”

(창 21: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분이라, 약속된 아들은 아브라함이 100세, 사라가 90세가 되는 때에 마침내 태어나게 되었다. 이삭이 젖을 떼는 나이는 3세라고 보여 진다.[9] 그런데 이 날에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므로 사라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하갈과 이스마엘은 결국 쫓겨나게 된다. 아브라함의 나이가 103세 때의 일이다. 아브라함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았으므로 17세에 그가 쫓겨난 셈이 된다.

(창 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 22: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는 아브라함의 결단은 물과 불을 통과할 믿음의 순종이었다. 높은 산을 향하여 자신을 태울 그 무거운 번제 나무를 지고 올라갈 수 있는 나이는 15세 이하로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이때의 이삭의 나이를 대략 20세 전후로 본다면 아브라함의 나이는 120세 전후로 판단된다. 목까지 차오르는 숨을 가피 쉬며 '내 아버지여, 번제할 어린 양이 어디 있나이까?” 하고 물었을 때, 100세에 낳은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아브라함의 아픔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이삭이 드디어 결박을 당하고 단 나무 위에 뉘인 상태에서 아버지의 칼이 목을 내려치려고 할 때까지 죽음의 공포를 무릅쓰고 순종하지 않았다면 늙은 아브라함은 이삭의 반항을 당해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이삭의 순종은 골고다를 향하여 수치스러운 십자가를 지고 말없이 걸어 가셨던 예수님을 예표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그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정말 죽게 하셨다. 예수님도 인류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에 감동하여 순종(마 26:39)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분이 가장 귀한 인격을 소유하신 탓이리라.

(창23:1) '사라가 일백 이십 칠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

(창23: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창23:3) '그 시체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가로되”

(창23: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

사라가 90세에 이삭을 낳았고, 127세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이삭의 나이 37세 때였으며, 남편 아브라함이 137세 때였다. 사라는 살아생전에 이삭이 결혼하여 낳은 손자를 안아 보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삭은 늙은 어머니를 위하여 왜 미리 결혼을 서두르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생길만 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사라가 죽고 나서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매장지를 급하게 마련한 것을 보면 사라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느낌을 받는다. 사라가 남편 아브라함이나, 아들인 이삭만큼 오래 살지 못한 이유는 90세에 이삭을 낳는 목숨을 건 출산 때문일지도 모른다. 늙은 사라에게 있어서 이삭을 얻는 것은 자신의 목숨과 바꾸어도 좋을 소망이었을 것이다. 사라는 그래도 오늘날의 우리들보다는 훨씬 오래 행복하게 살다가 하나님의 품으로 갔다.


(이삭과 리브가)
(창24:24) '그 여자가 그에게 이르되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

(창25:20) '이삭은 사십세에 리브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창25:7) '아브라함의 향년이 일백 칠십 오세라”

(창25:17) '이스마엘은 향년이 일백 삼십 칠세에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창25: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세이었더라”
이삭은 어머니 사라의 사망 후 3년 만인 40세에 5촌 조카인 리브가와 결혼을 하게 된다. 아브라함의 나이 140세일 때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75세 때에 175세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아브라함이 죽을 때에 애굽 종 하갈에게서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나이는 89세였으며(창16:16), 아브라함의 귀여운 손자 야곱과 에서의 나이는 15세였다.

(창26:34) '에서가 사십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더니”

(창27:46)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을 인하여 나의 생명을 싫어하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면 나의 생명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창28:8)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하는지라”
이삭과 리브가에 있어서 큰 아들 에서의 결혼은 근심이었다. 에서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나안 지방의 딸과 결혼할 때, 이삭의 나이는 100세였다.[10]


3. 야곱의 연대

(야곱의 도망)
(창27:1)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가로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창35:28) '이삭의 나이 일백 팔십세라”

(창28: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창세기 27장은 이삭은 눈이 너무나 어두운 관계로 자신이 곧 죽을 것만 같아 죽기 전에 큰 아들 에서에게 모든 축복을 하게 하려 할 때,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의 계략으로 그 축복을 가로채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건이 나던 때는 이삭이 137세 때였는데, 그가 180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는 아직도 43년이나 남아 있었다.

야곱이 형 에서의 분노로부터 벗어나 사는 길은 하란에 있는 삼촌의 집으로 피신하는 것이었다. 야곱이 길을 떠나 하란으로 가던 중에 해가 저물어 유숙하려고 한 돌을 취하여 베게하고 잘 때, 땅과 하늘을 통하는 사닥다리 꿈을 꾼 이야기를 할 때는 청년 야곱을 상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야곱의 도망할 때, 아버지 이삭의 나이가 137세였다면 야곱의 나이는 77세 때(창25:26)의 일이었다. 이 나이의 계산은 다음 말씀들에서 가능하다.

① 야곱이 애굽에 내려갈 때 그의 나이는 130세였다.

(창47: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하고”

② 요셉이 바로를 섬기기 시작할 때 30세였다.

(창41:46) '요셉이 애굽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③ 요셉이 형들에게 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가족을 데려오도록 하여 아버지를 만날 때의 나이는 39세였는데, 이것은 30세 때에 바로를 섬기기 시작하여 7년간의 풍년과 2년간의 흉년이 지나갔다는 다음 기록에서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요셉이 태어날 때 야곱은 91세였다.[11]

(창41:53-54) '애굽 땅에 일곱해 풍년이 그치고,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식물이 있더니”

(창45:6)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찌라”

④ 요셉이 태어날 때는 라반의 집에서 봉사한 14년의 끝 무렵이었다. 따라서 야곱이 집을 떠날 때의 나이는 77세(91세-14년)였고, 아버지 이삭의 나이는 137세(창25:26)가 되는 것이다.

(창29:18)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년을 봉사하리이다”

(창29:27) '이를 위하여 칠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그를 위하여 또 칠년을 내게 봉사할찌니라”

(창30:25) '라헬이 요셉을 낳은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내 본토로 가게 하시되”

(하란에서의 야곱)
(창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

(창29: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다시 칠년을 라반에게 봉사하였더라”

(창31: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 사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변역하셨으니”  

야곱이 77세에 부모를 떠나 삼촌 라반의 집에 머물며, 라반의 두 딸과 결혼 한 때는 84세였으며, 그때부터 무려 13명의 자녀를 얻게 된다. 이것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은 것과 거의 비슷한 나이인 84세나 85세경에 첫아들 르우벤을 레아를 통하여 낳은 셈이다. 요셉이 태어난 것은 야곱이 91세 때였으며, 이삭의 나이 151세 때였다. 야곱이 라반의 집을 떠나 귀향할 때는 무려 20년이 지난 97세일 때였으며, 이삭의 나이는 157세였다.

(야곱의 귀향 후 10여 년 동안의 일들)
(창30:21) '그 후에 그가 딸을 낳고, 그 이름을 디나라 하였더라”

(창30:25) '라헬이 요셉을 낳은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내 본토로 가게 하시되”

(창34:13)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과 그 아비 하몰에게 속여 대답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그 누이 디나를 더럽혔음이라”

(창37:2)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 칠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하였더니,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

창세기 29장 후반부와 30장 전반부까지는 야곱이 자매인 레아와 라헬과의 결혼 생활에서 자녀들이 태어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부분의 기록들이 자녀를 낳는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다고 가정하면, 라헬이 요셉을 낳을 때까지 레아는 무려 7년 동안 7자녀를 낳게 되는 셈이다.[12] 이러한 무리한 가정에서 벗어나자면 레아의 딸 디나는 라헬의 아들 요셉보다 뒤에 태어나야만 한다. 따라서 야곱이 하란을 떠날 때에 외동딸 디나는 4, 5세에 불과했을 것이다. 디나가 세겜에게 봉변을 당했을 때는 그 땅의 여자 친구들과 놀기 위하여 혼자 돌아다녀도 간섭하지 않는 14, 15세 이하의 나이로 짐작이 된다. 그것은 요셉이 그 형제들에 의하여 강제로 노예로 팔려나갈 때가 17세였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온 지 대략 10년 전후의 일이라고 추측된다. 동생 디나가 봉변을 당함으로 20세 초반에 불과한 시므온과 레위는 자제력을 상실하고 엄청난 피의 보복을 감행하였고, 야곱은 또 다른 위기를 맞게 된다. 야곱과 요셉의 나이 차이는 91세이므로, 요셉이 17세의 나이로 노예로 팔려갈 때, 야곱은 108세였다. 이 당시에 야곱과 같이 살던 이삭은 168세였으므로 야곱의 슬픔을 함께 나누었을 것이다. 이삭은 이 사건 후에도 12년을 더 살았다.

(유다와 요셉의 나이 차이)
(창35:28) '이삭의 나이 일백 팔십세라”

(창41:46) '요셉이 애굽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창47: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하고”

아버지 이삭이 180세에 사망할 때에 야곱의 나이는 120세였다. 야곱은 97세에 고향으로 돌아 왔고, 그 후 그가 바로와 만난 것은 130세일 때이므로, 고향 가나안에서 아버지 이삭과 23년의 세월을 함께 지냈다. 죽었다고 생각한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지 13년만인 30세에 총리가 되었을 때, 야곱은 121세였고 이삭은 1년 전에 사망하였다.

(창29:31)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

(창29:35) '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생산이 멈추었더라”

(창30:9) '레아가 자기의 생산이 멈춤을 보고 그 시녀 실바를 취하여 야곱에게 주어 첩을 삼게 하였더니”

(창30:17) '하나님이 레아를 들으셨으므로 그가 잉태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창30:21) '그 후에 그가 딸을 낳고 그 이름을 디나라 하였더라”

(창30:25) '라헬이 요셉을 낳은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내 본토로 가게 하시되”

(창46:12) '유다의 아들 곧 엘과 오난과 셀라와 베레스와 세라니, 엘과 오난은 가나안 땅에서 죽었고 또 베레스의 아들 곧 헤스론과 하물이요”

라헬의 언니 레아가 낳은 자녀들은 아들 6명과 딸 1명이었다. 이 중에서 네 번째 아들인 유다를 낳고 난 이후에 일시적으로 생산이 멈추었다고 기록하는 것으로 보아서 첫 아들인 르우벤부터 유다까지는 연년생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현대에도 형이 돌이 되기 전에 동생이 태어나는 경우가 흔히 보고되고 있으므로, 유다는 레아가 결혼한 후부터 4년 동안의 기간에 태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루우벤부터 유다에 이르는 4형제가 연년생이라는 것을 가정한다면, 유다는 요셉보다 3년 먼저 태어나게 된다.[13] 따라서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이주할 때 유다는 42세[14]가 되며, 쌍둥이 아들들을 비롯하여 손자들도 함께 도착하게 된다. 이 기간이 22년 밖에 안 되므로, 어쩌면 증손자가 될 수도 있었던 유다의 손자들이 생길 수 있는 최대한의 나이가 되기 위하여 르우벤부터 유다까지는 연년생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요셉의 고난)
(창37:2)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 칠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하였더니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

(창38: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서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로 나아가니라”

(창38:2)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취하여 동침하니'

(창38:25) '여인이 끌려 나갈 때에 보내어 시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나이다. 청컨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뉘 것이니이까 한지라”

(창46:12) '유다의 아들 곧 엘과 오난과 셀라와 베레스와 세라니, 엘과 오난은 가나안 땅에서 죽었고 또 베레스의 아들 곧 헤스론과 하물이요”

창세기 38장의 기록은 유다 지파의 기원을 보여 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그런데 문제는 유다가 언제 결혼을 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많은 주석가들은 창38:1의 ‘그 후에’라는 문구를 ‘요셉이 팔린 때 이후’라고 해석하고 있으나, 앞서 언급한 대로 야곱의 모든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할 때에 42세의 유다에게는 헤스론과 하물이란 손자가 있었으므로, ‘그 후에’라는 말은 야곱이 가나안으로 귀향하여 생활한 전반적인 기간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바람직 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요셉이 팔릴 때에 17세가 되므로 유다의 나이는 20세가 되는데, 애굽으로 이주할 때까지 유다가 겪은 파란만장한 22년의 기간 동안에 결혼하여 손자까지 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유다의 손자 2명이 태어나기 위하여 적어도 3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며, 다말에게서 유다의 쌍둥이 아들 ‘베레스’와 ‘세라’가 태어날 때 장자인 엘이 죽은 후 2년 정도의 기간이 흘렀을 것이다. 그렇다면 22년에서 5년을 뺀 나머지 17년의 기간 동안은 다말과 결혼한 엘과 다말이 낳은 유다의 아들 베레스에게 주어져야 하는데 균등하게 배분한다면 엘과 베레스는 태어난 지 8년 반 만에 자녀를 낳았다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15] 만약 이 당시의 결혼 적령기를 13세 전후로 생각한다면 유다가 결혼한 나이를 역산할 수가 있다.

유다가 결혼 한 나이 = 42세(애굽으로 이주) - 2년(유다의 아들 베레스가 낳은 장남의 나이) - 13년(유다의 아들 베레스의 결혼 적령기) - 2년(엘이 죽고 다말에게서 베레스가 태어날 기간) - 13년(유다의 장남 엘의 결혼적령기) = 12세

위의 계산에서 베레스의 두 아들이 헤스론과 하물이 쌍둥이가 된다면 유다가 결혼 한 나이는 13세가 될 것이다. 유다는 14세 이전에 결혼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38장의 기록을 검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첫째, 요셉이 팔려갈 때에 유다는 이미 결혼하여 자녀를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 창37:2에서 요셉이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한 것은 일종의 고자질이 아니라, 다른 형제들이 약속의 자녀들로서의 품성을 닦는데 게을리 하여 큰아버지 에서처럼 자신들의 욕망에 사로잡혀 이방 여인들과 함부로 결혼하는 잘못된 삶의 방식을 아버지와 함께 이야기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요셉은 다른 형제들이 조상들을 인도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삶을 회복하도록 기도하며 노력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요셉의 팔림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순수한 신앙을 고수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고난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요셉의 고난은 예수님의 고난의 예표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조
1) 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3372&orderby_1=editdate desc
2) 영어 성경 NIV와 KJV(한글 번역본 포함)에서는 한국 성경들과는 반대로 야벳을 셈의 형으로 소개하고 있다.
3) ‘사마리아 오경’은 야렛과 므두셀라와 라멕의 나이를 줄임으로써 1307년 만에 노아홍수가 발생한 것으로 계산되며, ‘70인역’의 다양한 사본에서는 아담에서부터 에녹에 이르기까지 자녀를 낳은 나이를 약 100년 씩 더하므로 2242년~2262년으로 계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참고만 할 뿐이다.
4) 벨렉이 출생한 해에 바벨탑 사건이 일어났다면, 이때는 노아, 셈, 아르박삿, 셀라, 에벨 등 모든 조상이 모두 살아 있었다.
5) 한글성경 공동번역은 ‘아우’로, 표준새번역도 ‘동생’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형제’로, 영어성경은 모두 ‘brother’로 표기되어 있고, 일본과 중국 성경도 ‘兄弟’로 표기하고 있다.
6) 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2754&orderby_1=editdate desc
7) (Genesis 20:12) Besides, she really is my sister, the daughter of my father though not of my mother; and she became my wife.(NIV)
8) 성경의 증거로는 욥기 40장에 나오는 ‘하마’와 ‘악어’는 각각 ‘베헤못’과 ‘리워야단’이라는 특이한 모습을 한 동물들을 번역한 것인데, 그것들은 노아 홍수 후까지 살아남은 공룡들의 후손이라고 보아야 한다. 1997년 일본의 한 저인망 어선이 뉴질랜드 앞바다에서 바다공룡인 ‘플레시오사우루스(Plesiosaurus)’의 사체를 발견하였다. 이러한 증거들로 노아 홍수 직후부터 오랫동안의 자연환경은 최근보다는 훨씬 양호한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많은 증거들을 보기 원한다면 창조과학회의 홈페이지를 방문하길 바란다.
9) 유대인 어머니들은 대개 3년 동안 아기에게 젖을 먹였다고 보여진다. 대하31:16, 삼삼1:22~28, 마카베오하 7:27.
10) 창25:26과 창26:34에서 이삭의 나이 60세와 에서 40세의 나이를 더하면 이삭의 나이는 100세가 된다.
11) 130세(야곱이 바로 왕을 만날 때) - 39세(요셉이 태어나서 아버지 야곱을 만날 때, 30+7+2).
12) 요셉은 7년 봉사가 끝나는 시기에 태어났으므로 창29:31~창30:25의 자녀들의 출생이 7년간의 일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레아는 이 기간 동안에 4째 아들 유다를 낳고 잠시 생산이 멈추었기 때문에(29:35, 30:9) 쌍둥이가 아닌 자녀를 7년 만에 7자녀를 출산하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13) 야곱의 결혼 첫 해부터 레아의 네 아들이 연년생으로 출생하였으며, 요셉은 결혼 생활 7년 말미에 태어났다.
14) (창41:46, 창45:6) 요셉이 총리가 될 때 30세였고, 아버지와 재회할 때는 풍년 7년과 흉년 2년이 지났으므로 그의 나이는 39세가 된다. 유다가 요셉 보다 3년 위가 된다면, 이때 유다의 나이는 42세가 되는 셈이다.
15) 유다의 장남 엘이 살아 있던 기간과 엘의 사후에 엘의 처 다말로부터 낳은 유다의 아들 베레스의 결혼 적령기의 기간은 중복되지 않는다.

 

*참조 : The Genesis 5 and 11 fluidity ques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754

Who Begat Whom? : Closing the Gap in Genesis Genealogies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1/n2/who-begat-whom

The antediluvian patriarchs and the Sumerian King Lis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53

Some remarks preliminary to a biblical chronology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56


출처 - 창조 147호, 2006년 10-12월호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707

참고 : 1922|2016|2138|2638|2797|2936|2982|3020|3024|3331|3589|3640|3689|3731|3901|4297|4351|4440|4487|4492|4540|4869|5033|5035|5084|5265|5275|5381|5394|5542|5628|5627|5969|5870|5923|6044|6107|6110|6135|6146|6152|6153|6283|6285|6360|6414|6477|6480|6491|6581|6512

Kent Hovind
2006-10-30

아담의 범죄 이전에 사망이 있었는가? 

(Was there Death Before Adam Sinned?)


사망(death)은 사람의 죄(man's sin) 때문에 이 세상(the world)에 들어왔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2).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로마서 5:14)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21-22)

일부 기독교도인들은 지구가 수십억 년 되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다. 오래된 지구 연대의 가장 큰 장애물은 죄 이전에 사망이 있어야한다는 사실이다. 지구의 오래된 연대를 가르치는 선생들은 아담이 식물(plants)을 먹었을(죽였을) 것이기 때문에, 죄 이전에 죽음이 있었다고 흔히들 말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식물이 성경적 의미에서 살아있는(alive) 것으로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많은 성경 구절들에서, 식물은 사람과 동물이 죽는 것과 같은 의미로 죽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컴퓨터는 복잡한 기계로서 자판을 누르는 것으로 가동될 수 있는 것처럼, 식물들은 하나의 복잡한 자체가 재생되는 음식물 근원(self-replicating food source)이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는 멈출 수 있다. 그리고 자동차 엔진도 정지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람이 죽는 것처럼 죽는 것이 아니다. 식물들은 호흡을 하지 않고(no breath), 피도 가지고 있지 않다(no blood). 아래의 구절들에서 식물과 살아있는 것들의 차이가 뚜렷함을 주목하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세째 날이니라” (창 1:11-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창 1:20-23)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창 1:24)

식물들은 셋째 날에 창조되었고, 살아있는 것들은 다섯째 날,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음을 주목하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29-30)

푸른 풀(green herbs)을 살아있는 동물들에게 식물(food)로 주셨음을 주목하라.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 3:3)

사람은 나무 또는 실과와 같지 않게 죽을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창 4:3-5)

가인의 제물은 피(blood) 또는 생명(life)이 들어있지 않았고, 하나님은 열납하지 않으셨다. 이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있다. 당신은 감자에서 피를 얻을 수 없다. 가인의 제물은 아름다울 수 있었고, 그것을 드리기 위해서 가인이 열심히 일했을 수 있었지만, 거기에 죽음(희생)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받으시지 않으셨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창 6:17)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창 6:19-21)

여기에서 살아있는 것(living things)과 먹기 위한 음식(식물) 사이에는 분명한 구별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 곧 각양의 새가 그 종류대로 무릇 기식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창 7:14-15)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창 7:22)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것이니라” (창 9:1-4)

이제 사람은 식물처럼 고기를 먹는 것까지 허락되었다. 여기에 다시 한번 우리는 살아있는 것과 식물의 차이를 볼 수 있다.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라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나니 무릇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 먹을만한 짐승이나 새를 사냥하여 잡거든 그 피를 흘리고 흙으로 덮을찌니라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 무릇 스스로 죽은 것이나 들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을 먹은 자는 본토인이나 타국인이나 물론하고 그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고 그 후에 정하려니와” (레 17:10-15)

식물들은 피를 가지고 있지 않다. 과일과 열매들은 나무로부터 떨어지고, 우리는 그것을 먹는다. 만약 그것들이 나무 위에 있는 동안은 살아있는 것이고, 땅에 떨어질 때 죽는 것이라면, 금지되었을 것이다. 식물들은 마르고, 시들고, 쇠잔하는 것으로 말해진다. 이것은 사람과 동물이 경험하는 것과 같은 사망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렘 8: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3)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시편 37:2)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음으로 내 마음이 풀 같이 쇠잔하였사오며” (시편 102:4)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쇠잔함 같으니이다” (시편 102:11)

”저희는 지붕의 풀과 같을찌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 (시편 129:6)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이사야 1:30)

”니므림 물이 마르고 풀이 시들었으며 연한 풀이 말라 청청한 것이 없음이로다” (이사야 15:6)

”강들에서는 악취가 나겠고 애굽 시냇물은 줄어들고 마르므로 달과 갈이 시들겠으며” (이사야 19:6)

”나일 가까운 곳 나일 언덕의 초장과 나일강 가까운 곡식 밭이 다 말라서 날아 없어질 것이며” (이사야 19:7)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이사야 40:7)

”그들은 겨우 심기웠고 겨우 뿌리웠고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의 부심을 받고 말라 회리바람에 불려가는 초개 같도다” (이사야 40:24)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 (이사야 64: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예레미야 8:13)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거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결국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예레미야 12:4)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 나무가 능히 번성하겠느냐 이 독수리가 어찌 그 뿌리를 빼고 실과를 따며 그 나무로 시들게 하지 아니하겠으며 그 연한 잎사귀로 마르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많은 백성이나 강한 팔이 아니라도 그 뿌리를 뽑으리라
볼찌어다 그것이 심겼으나 번성하겠느냐 동풍이 부딪힐 때에 아주 마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자라던 두둑에서 마르리라 하셨다 하라” (에스겔 17:9-10)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베드로전서 1:24)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전도서 3:2)

사람들은 태어나고, 죽는다. 그러나 식물은 뽑혀진다. 내가 발견한, 식물이 죽는다고 가르치고 있는 유일한 구절은 욥기 14:8절이다.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찌라도” (욥기 14:8)

이 장에서 말하고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라 욥이다. 그리고 욥은 이 문장에서 사람이 죽을 때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중이다. 욥기가 가르치는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매우 신중하게 읽어야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영감에 의해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욥(또는 그의 친구들)이 욥기에 기록된 것들을 말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말한 것은 진리가 아닐 수 있다. 성경은 사탄이 말한 거짓말까지도 정확하게 기록해 놓고 있다. 욥기에 기록된 이 한 구절로 성경이 식물들도 죽는다고 말했다고 볼 수는 없다.     


요약

성경은 매우 분명하게 하나님이 6일(six days) 동안에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음을 말씀하고 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20:11).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출애굽기 31:17).

지구의 나이가 성경이 허락하고 있는 약 6,000 년 보다 더 오래되었기(수십억 년의 지구 나이)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주 간격이론(gap theory), 날-시대 이론(day-age theory),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ism) 등으로 타협하며 그들의 입장을 정당화 한다. 이러한 비성경적 견해들은 모두 죄 이전에 사망을 요구한다. 그래서 그들은 거의 항상 식물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식물들은 사람과 동물이 죽는 것과는 다른 경우임을 살펴보았다. 죄 이전에 사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필요를 무효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죽음과 고통과 질병과 서로 잡아먹는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를 보시면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시는 이상한 하나님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된 그대로 정확하다. 아담이 범죄 하기 이전에 어떠한 죽음도 없었다. 아담이 죄를 범한 이후에 많은 사망이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죄의 저주로부터 속량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께서 아무 대가 없이 선물로 주신 영생을 받지 못했다면(로마서 6:23), 지금 용서를 구하고 창조주이시며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길 바란다.



*관련기사 : '공룡도 암에 시달렸다'…공룡 화석서 골육종 흔적 첫 확인 (2020. 8. 4.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00804111100009?input=1195m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drdino.com/articles.php?spec=49 

출처 -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689

참고 : 3640|3589|2016|888|2982|2638|1571|1922|2302|1940

Henry M. Morris
2006-10-02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The Most Important Verse in the Bible?)


       성경의 첫 번째 절은 성경의 기초가 되는 구절이다. 사실상 창세기는 성경의 기초가 되는 책이며, 또한 전 세계와 모든 민족들을 다루고 있는 창세기의 처음 11장은,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을 다루고 있는 창세기의 나머지 부분들에 대한 기초를 이루고 있다.

마찬가지로, 창세기 1장은 세상의 창조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요약하고 있으므로, 처음 11장의 기초가 된다. 결국 창세기 1:1절은 이들 기초가 되는 장의 기초가 되는 절로써, 우주 자체의 최초의 창조를 말하고 있다. 그 절은 모든 기초들 중의 기초이므로,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 절은 기록된 단어 중 최초의 단어들을 담고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인쇄된 책의 시작 문장이므로, 이 단어들은 기록된 것들 중에 가장 널리 읽혀진 단어들이다. 서양 문명의 사람들은 최소한 성경을 읽으려 했을 것이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이상 진척이 되지 않는 경우라도 최소한 성경의 시작 문장들은 읽었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창세기 1:1절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성경에 기록된 나머지 어떤 부분이라도 믿기 어렵지 않다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다. 즉, 하나님이 정말로 만물을 창조하셨다면, 그분은 만물을 지배하시며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다.

더욱이, 이 한 절은 세상의 기원과 의미에 관한 인간의 잘못된 모든 철학들을 반박한다.

1. 그것은 무신론(atheism)을 반박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2. 그것은 범신론(pantheism, 신은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이 신이라는 믿음)을 반박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분이 창조하신 것들을 초월(물질적인 우주와 독립적이시고 그것들과 떨어짐)하시기 때문이다.

3. 그것은 다신론(polytheism)을 반박한다. 왜냐하면, 한 분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4. 그것은 물질주의(materialism)를 반박한다. 왜냐하면 물질은 시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5. 그것은 이원론(dualism)을 반박한다. 왜냐하면 그분이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홀로 계셨기 때문이다.

6. 그것은 인본주의(humanism)를 반박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며, 궁극적인 실체이시기 때문이다.

7. 그것은 진화론(evolutionism)을 반박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러한 모든 잘못된 철학들은 단지 같은 믿음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각각의 철학들은 인격적이고 초월적인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궁극적인 실체는 영원한 우주 자체 안에서 발견될 수 있고, 우주가 현재의 형태로 발달한 것은 단지 그 자신의 성분들이 본질적으로 갖는 성질들에 의해서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본질에 있어서, 위의 철학들 각각은 다른 모든 것들을 포용한다. 예를 들면, 이원론은 다신론의 요약된 형태이고, 다신론은 범신론의 통속적인 표현이며, 범신론은 물질주의를 전제로 하고, 물질주의는 그 기능이 진화론으로 이루어지며, 진화론은 인본주의 안에서 완성되어지며, 인본주의는 무신론에서 절정에 이르는 것이다.


위대한 진리에 대항하다

위의 모든 철학 체계들은 무신론적 진화론적 인본주의 체계(system of atheistic evolutionary humanism)라고 말할 수 있다. 기타 철학 개념(자연주의,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 이신론(deism), 불가지론(agnosticism), 일원론, 결정론(determinism), 실용주의(pragmatism) 및 기타)들은 그와 같은 기괴한 구조 속에 합병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놀랍도록 단순하며,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무진장 심오한 위대한 진리인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 대해 반대편에 서있는 것이다.

고대나 현대나 유신론에 반대하는 수많은 철학들이 있어서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왔지만, 하나님의 책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증거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놀랍다. 창세기의 첫 번째 구절은 하나님의 창조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 사실은 아주 명확하여, 어리석은 자만이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고(시 14:1)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서만
그러한 계시가 나타난다는 것은 반대편에서 바라볼 때 분명해진다. 즉, 현대의 모든 철학들처럼 고대의 모든 종교 책들과 종교 체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이미 존재하고 있던 물질이나 에너지로부터 시작한다. 태고의 혼돈(물이든 불이든 기타 무엇이든)에서, 자연의 힘(또는 그것들을 인격화해 주는 신과 여신)이 우주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해서 세상을 지금의 형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고대 민족들 가운데, 그러한 범신론적 진화론적 우주기원론이 널리 퍼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감을 받은 창세기의 기록은 그것들을 반박하거나,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신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이상한 침묵의 이유는 대개, 창세기 기록이 이들 다른 체계들이 발달되기 이전에 쓰여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것들은 창세기의 진실한 기록을 대치하거나 반박하려는 바로 그 목적으로 나중에 발전된 것들이다. 성경은 원래 천지창조 직후에, 하나님 자신에 의해(‘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창 2:4) 창조주간의 실제 사건을 단순한 이야기 형태로 시작하면서 쓰여졌다. 그 당시에는 하나님의 존재하심(reality of God)과 창조(Creation)에 대해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굳이 주장할 필요가 없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성경에 있는 것들이나, 혹은 일반적으로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전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먼저 창세기 1:1절의 가르침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이 중요한 선언에 들어있는 단어들을 고찰해 보자.

◈ ‘하나님 (God)’. 처음 등장하는 하나님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엘로힘(Elohim)으로써, 그분의 장엄하심과 전능하심을 강조하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이는 창세기 첫 장 내내 사용되는 이름이다. 마지막의 ‘임/im'은 히브리어의 복수어미이므로, 엘로힘은 실제로 ’신들(gods)‘을 의미할 수 있으며, 이방인의 신들에 관련된 여러 구절에서 그렇게 번역되었다 (예로써, 시편 96:5). 그러나, 여기서는 장엄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으로서 분명히 단수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그런 방식으로 사용된 2,000번 이상의 경우 중 첫 번째이다. 이와 같이 엘로힘은 단수의 의미를 갖는 복수형 이름, 즉, ‘단-복수’ 명사로써, 신격(Godhead)의 단-복수성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또한 한 분 이상이시다.

◈ ‘창조하시다 (Created)’. 이것은 놀라운 단어 빠라(bara)로써, 항상 하나님의 사역에만 사용된다. 하나님만이 창조하실 수 있다 즉, 존재하지 않는 것에 명령하여 존재하도록 하실 수 있다. 그분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롬 4:17).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하나님만 유일하게 하실 수 있는 일

사람은 사물을 ‘만들거나(make) 조성할(form)’ 수 있지만, 창조하지는 못한다. 하나님도 역시 사물을 ‘만들거나 조성할’ 수 있으신데(히브리어로 각각 아사(asah)와 야싸르(yatsar)), 사람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그리고 빨리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창조의 사역은 하나님만 유일하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만들거나 조성하는 일은 이미 존재하는 재료를 보다 복잡한 체계로 구성하는 것인데 반해, 창조의 활동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다만 하나님의 마음과 능력 가운데만 있었던 것이 말씀하심으로 인해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 창세기 1:1절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 점에 있어서 우리에게 다음의 정보를 주고 있다. 즉, 물리적인 우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최초의 창조활동 이전에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님 한 분만 무한하시며 영원하시다. 또한 그분은 전능하시므로, 그분이 말씀으로 우주를 존재하게 하시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가 영원한 초월적인 하나님에 관한 이 개념을 전적으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하지만, 그것에 대한 단 하나의 대안(alternative)인 영원히 스스로 존재하는 우주(eternal self-existing universe) 개념도 역시 이해할 수 없다.

영원한 하나님(Eternal God)이냐, 혹은 영원한 물질(eternal matter)이냐,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현재의 원인-결과에 관한 과학법칙이 유효하다면, 영원한 물질의 존재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무작위적인 물질 입자들이 복잡하고, 질서 있고, 지성적인 우주를 저절로 생겨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격적인 하나님만이 그러한 결과(effects)를 산출해 내실 수 있는 적합한 단 하나의 원인(Cause)이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참조 : 자료실/성경과 기독교/창세기
http://www.creation.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B04

*『창세기 1장 1절의 비밀』 - 김명현 교수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jdbnyKYN_F8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4/i2/verse.asp 

출처 - Creation 14(2):20-21, March 1992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654

참고 : 4868|4870|4872|4878|4982|4985|5094|5271|5275|5332|5394|5395|5402|5415|5440|5463|5514|5578|5625|5627|5628|5711|5723|5741|5753|5852|5861|5870|5882|5886|5889|5910|5985|5986|6044|6017

Clifford A. Wilson
2006-09-21

창세기와 잃어버린 점토판들 

(Genesis and the Lost Tablets)


    나의 이전 학생 중 한 명이 창세기 앞부분의 기록들이 문자 그대로 사실인지에 대한 나의 설명과 확실성을 물어왔다.

다른 민족들도 창세기 1-11장의 내용들과 비슷한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로서 알려져 있는 바빌로니아의 서사시(Babylonian epic)에는 창조(creation)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거기에 등장하는 마르두크(Marduk) 신은 괴물인 악어 신 티아마트(Tiamat)를 둘로 잘라서, 하나로부터 하늘(heavens)을, 다른 하나로부터 땅(Earth)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유프라테스(Euphrates) 강은 한쪽 눈으로부터 흘러 나왔고, 다른 한쪽 눈에서는 티그리스(Tigris) 강이 흘러 나왔다.

이 점토판(tablet)의 한 복사본이 아시리아의 왕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 오스납발, BC 625년에 죽음)의 궁전에서 발견되었을 때, 그것은 원래의 창조 점토판(original creation tablet)이라고 주장되어졌었다. 그래서 창조는 그때 이후 성경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에스라(Ezra)는 그보다 1000년을 더 일찍 살았던 모세를 대신하여 창세기 기록에 대한 신뢰를 제공하였다. 오늘날에는 바빌로니아 서사시의 다른 (수백년 더 초기의) 복사본들이 발견되어오고 있다.


성경적 기록의 우수성

또한 아시리아의 궁전에서 길가메쉬 서사시(Epic of Gilgamesh)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발견된 12 개의 단편적인 점토판(fragmentary tablets)들 중에서 11번째 점토판은 왜곡되었지만 홍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성경적 기록에 비해서 매우 열등함을 보여주었다. 거기에서 신들은 홍수물들이 점점 올라가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신들은 자신들이 하늘 밖으로 씻겨져 나갈 수도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홍수가 끝났을 때, 신들은 바빌로니아의 노아인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이 제공한 희생 제물에 파리 떼처럼 모여 들었다. 배고팠던 불쌍한 신들은 그들을 먹여줄 사람들이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바빌로니아의 이야기에서, 사람은 존엄한 신들 아래에서 천한 일을 떠맡기 위해 창조되었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친구로서 창조되었다.

최근에 아트라하시스(Atrahasis)의 단편 서사시가 번역되었는데, 이제 거기에는 창조, 사람의 역할, 홍수가 하나의 연속적인 기록으로서 함께 모아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성서고고학의 세계는 창세기의 (극적으로 우수한) 기록이 실제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세상을 떠난 유명한 알브라이트(W. F. Albright) 교수는 홍수에 대한 창세기의 상세한 설명들은 다른 어떠한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요소들이라고 썼다.

또 다른 유명한 고고학자인 크라머(Samuel N. Kramer) 교수에 의해서 잘 정리된 바빌로니아의 기록에는 바벨탑 이야기와 거의 비슷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는 바빌로니아의 기록을 성경의 기록에 비유하였다.


성경적 설명이 인정되다.

과거 사람들이 오랜 수명을 가졌었다는 사실은 키쉬(Kish, 오늘날 바그다드 남쪽)에서 발견된 수메르 왕들의 목록(Sumerian king list)에 의해서 인정되어졌다. 최근에 학자들은 왕들의 나이에 대한 수만 년이라는 숫자를 잘못 번역했었음을 밝혀내었다. 이들 수메르인들은 이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60진법이 아니라 십진법을 사용했었다. 따라서 이제 수메르인 목록에 있는 전체 연대는 창세기 11장에 기록된 전체 연대와 매우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수 이전에는 환경이 매우 달랐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입심 좋게 말해지던 오래된 연대를 던져버리게 한다)  

창세기 10장의 민족들의 표는 단순한 전설로 간주되었었다. 다시 한번 알브라이트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 그는 이들 표들이 '놀랍도록 정확하게(astonishingly accurate)” 쓰여져 있다고 말하고 있다. (참조 : 노아의 16명의 손자 : 고대의 지명과 민족들의 이름 속에 남아있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12)

소위 세속적 고고학에서도, ‘전설(legends)’들은 오늘날 훨씬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예는 아시리아 왕의 목록(Assyrian king list)으로, 여기에는 그들 왕들이 텐트에서 살았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 중 최초의 왕은 투디야(Tudiya) 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었는데, 그 왕의 실존 여부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름의 왕은 BC 2200년에 에블라(Ebla, 오늘날 시리아)의 왕과 동맹을 맺었던 실제로 존재했었던 왕으로서 밝혀졌다. 에블라 왕의 또 다른 동맹은 이집트 기록에서 알려진 것처럼 이집트의 바로인 페피 1세(Pepi I)와 이루어지고 있다.
 
성경 기록들이 땅 속에서 파낼 필요 없이 완전하게 보존되어 왔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창세기는 모닥불 옆에서 들려주던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단지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시(poetry)도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한 인류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기록인 것이다.


* Clifford A. Wilson, Ph.D.
Dr. Wilson is known for his archaeological work and his book refuting Erich von Däniken's 'gods from outer space' theory. He has been in charge of Psycholinguistics at Australia's Monash University and was Professor of Early Childhood Education at the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참조 :  How was Moses able to read pre-Tower of Babel texts?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eedback/2006/1027.asp

The development of languages is nothing like biological evolution

http://www.answersingenesis.org/tj/v14/i2/languages.asp

Does Archaeology Support the Bible?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nab/does-archaeology-support-the-bible

On the origin of language—Part 1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i4/language.asp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7/i1/tablets.asp

출처 - Creation 17(1):50–51, December 1994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641

참고 : 2942|2797|2970|2425|2982|2549|666|1430|640|886|887|3249|3233|2323|1412|1413|629|2746|1805|528|2545|2515|2458|522|521|3148|3289|3372|4148|4100|4071|3974|3945|3872


Larry Pierce
2006-06-30

벨렉의 시대에 

: 고대문헌은 성경의 연대기와 전적으로 일치한다.

(In the days of Peleg)


      창세기 10:25에서는 노아로부터 네 세대 후에 벨렉(Peleg: 나뉨(division))이라는 의미)의 출생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때에 세상(the earth)이 나뉘었음이요.” 어떤 사람들은 그 때에 지구의 대륙들이 나뉘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러한 과정은 매우 제한된 시간 간격 이내에 일어났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생기는 지질학적 격변은 굉장한 재앙이 될 것이며, 이것은 또 다른 노아의 대홍수가 다시 일어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대륙이 나뉘는 것과 같은 사건은 노아의 대홍수 동안에 일어났을 것이다.[1]
 
전통적인 해석이 보다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 구절을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 때에 민족과 나라들이 나뉜 것과 관련짓는다. (영어에서 ‘earth’ 라는 말이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듯이, 히브리어의 ‘erets’도 나라(들)을 의미할 수도 있다 - 따라서 ‘erets Yisrael’이라고 하면 이스라엘의 땅, 나라, 민족 등을 의미한다.) 어셔(Ussher) 대주교가 추론한 성경 연대기에 따르면, 대홍수는 B.C. 2349-2348 년에 일어났으며, 벨렉은 약 백년 후인 B.C. 2247년에 태어났다. 이것이 언제 일어났는지에 대해 고대의 작가들이 밝혔던 적이 있는가? 그 대답은 틀림없이 ”그렇다”이다.


바빌론이 시작되다

때는 BC 331년이었다. 알렉산더 대제가 아르벨라(Arbela, 앗시리아의 고대 도시) 근처의 가우가멜라(Gaugamela)에서 다리오(Darius) 왕을 쳐부순 후에, 그는 바빌론(Babylon)으로 여행을 했다. 거기서 그는 갈대아 사람들(Chaldeans)이 1903년 동안 천문 관측을 한 자료들을 받았는데, 갈대아 사람들은 그것이 바빌론의 창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이 맞다면 바빌론의 창시가 BC 2234년이 되며, 벨렉의 출생 후 13년 뒤이다. 이것은 AD 6세기에 라틴의 작가였던 심플리키우스(Simplicius)가 쓴 ‘하늘에 관하여(De Caelo)’의 여섯 번째 책에 기록되어 있다. 포피리(Porphyry, 비기독교인 그리스 철학자, AD 234-305경)도 역시 같은 숫자로 추론했다.[2]


이집트가 등장하다

비잔틴의 연대기 작가 콘스탄티누스 마나세(Constantinus Manasses, 1187년 사망)는 이집트인의 국가가 1663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것이 맞다면, 페르시아의 왕인 캄비세스(Cambyses)가 이집트를 정복한 BC 526년으로부터 거꾸로 계산하면, 이집트의 창시는 BC 2188 년이 되는데[3], 이는 벨렉의 출생 후 약 60년이 되는 시기이다. 이때쯤 함(Ham)의 아들인 미스라임(Mizraim)이 그의 집단을 이집트로 인도했다. 그래서 히브리 단어로 이집트가 미스라임이다 [4]. (또는 때때로 ‘함의 땅’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면 시편 105:23,27).


.미술가에 의한 바벨탑(Tower of Babel)의 복원. 고대의 지구라트(ziggurats)를 모델로 한 이러한 그림은 실제의 바벨탑과 유사할 가능성이 있다. 바빌론을 여행하는 길에 그것을 보았던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 BC 5세기 경)는 그것은 8층을 가지고 있었으며, 60m 높이로 거대하게 서 있었다고 묘사하였다.

 

그리스가 출발하다
 
4 세기에 가이사랴(Caesarea)의 감독이며 역사가였던 유세비우스(Eusebius)에 따르면, 펠로폰네소스(Peloponnesus)에 있는 고린도(Corinth) 서부의 그리스 도시 시키온(Sicyon)의 왕이었던 에지알레우스(Egialeus)는 그의 통치를 BC 2089년에 시작했는데, 이는 첫 번째 올림픽(Olympiad)이 열렸던 BC 776년 보다 1313년 전이다.[5, 6] 만약 유세비우스가 맞다면, 이 왕은 벨렉의 출생 이후 160년 뒤에 그의 통치를 시작한 것이다.
 
바빌론과 이집트와 그리스는 각기 다른 언어를 말함을 주목하라. 이들 고대의 역사가들은 그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히브리인들의 성경에서 발견하는 성경적 계보가 매우 정확하다는 것을 확증해 주었다. 바벨탑 사건은 이들 다른 왕국들이 창시되기 이전에 생겼어야 할 것이다. 그 탑과 같은 지역에 있었던 바벨(바빌론)은 물론, 최초의 왕국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다른 왕국들 중에서, 바벨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왕국이 가장 늦게 창시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이들 작가들이 말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첫 번째가 바빌론이고, 다음이 이집트이며, 그 다음에 그리스가 창시되었다.
 
이것은 한편으로 인간성(human nature)에 관한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해주기도 한다. 바벨탑 사건이후 사람들은 그들의 새로운 언어에 따라서 강제로 그룹이 나뉘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게으르다. 그들은 평화롭게 살기 위해 부득이 할 경우에만 바벨에서 떠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인구의 증가, 군사적 위협, 혹은 더 푸른 목초지를 찾고자 하는 열망 등은 그들로 하여금 더 멀리 이동하게 했을 것이다. 따라서 문명은 바벨을 중심으로 하여 주기적인 이동에 의해 느리게 퍼져나갔을 것이다. 비록 세상의 역사가들은 바벨탑과 대홍수의 사건을 무시하고 있지만, 문명이 바벨탑이 있었던 부근의 중동에서 시작하여, 그곳으로부터 서서히 퍼져나간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적 연대기에서 추론한 시간보다도 훨씬 더 빠른 시간 틀(time frame)을 사용하고 있다.
 
B.C. 3세기에 이집트의 역사를 기록했던 마네토(Manetho)로부터 흥미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는 바벨탑 사건이 벨렉의 출생 이후 5년 뒤에 일어났다고 적고 있다.[7] 이것이 맞다면 창세기 10장에 기록된 이동이 어떤 기간을 두고 일어났다는 것을 확증해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어의 혼잡이 일어났을 때에는, 이들 여러 나라의 확실하게 알려진 지도자들이 매우 어린 아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8]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성경이 정확하다는 것이다. 세속의 역사를 재건했을 때, 그것이 성경과 일치하건 하지 않건 간에, 그것이 성경의 정확도를 바꾸지 못한다. 우리는 성경적인 연대기를 이용하여 세속주의자들이 어디서 길을 잃었는지를 결정해야 하며, 역사에 관한 최근의 세속적 고찰에 맞추기 위해 성경을 고쳐서는 안된다. 이 연구 영역은 지난 수백 년 동안, 가장 최근에 재건된 세속적인 인류 역사에 맞추기 위해 성경을 앞다투어 조작한 기독교인들이 주로 무시해 왔다.
 
최근에, 일부 기독교인들은 창세기 1-4장과 6-9장의 권위를 회복시키는 훌륭한 과업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창세기 5, 10, 11장(및 열왕기서와 역대기서의 연대기 부분)의 계보에 대해서는 세속의 역사학자들의 영향권에 조용히 복종해 버렸다. 이들 연대기에 관한 그들의 파괴적인 작업이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거꾸러뜨렸다. 이제 성경적 배경을 되찾을 때가 되었다. 성경의 연대기에 들어있는 숫자를 믿을 수 없다면, 그 숫자들 사이에 들어 있는 말씀들은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의 불신앙을 어디까지 가져갈 것인가?


*Larry Pierce is retired and publishes biblically related material as one of his hobbies and enjoys the study of ancient history. He and his wife, Marion, live in Winterbourne Ontario



References and notes

1. Baumgardner, J., Probing the earth’s deep places, Creation 19(3):40–43, 1997; Snelling, A.A., Plate Tectonics: Have the continents really moved apart? TJ 9(1):12–20, 1995.
2. Ussher J., Annales Veteris Testamenti, Flesher and Sadler, London, p. 5, 1654. (This work is in Latin. I am preparing a new English translation, which is scheduled to be published in September 2000. The paragraph number for this footnote is 49 in that revised work.)
3. Ref 2, p. 5, or paragraph 51 in the revised work.
4. Even now, Egyptians call their country Mizr.
5. Ref. 2, p. 6, or paragraph 54 in the revised work.
6. Eusebius, Chronici Canones, Humphredurn Milford, London, Preface pp. 1–14, 1923. (This Latin copy was prepared by Johannes Knight Fotheringham.)
7. Manetho, The Book of Sothis, Harvard Press, Cambridge, MA, p. 239. (Loeb Classical Library 350). Manetho was the victim of many Egyptian fairy tales in constructing his chronology of Egypt. The Egyptians would place the Flood and Peleg’s birth much earlier than the Bible, but still they linked the Babel incident with Peleg's birth.
8. Ussher deduced that the division of the earth at the time of Peleg’s birth was Noah dividing the land among his grandchildren. They subsequently moved to Shinar, where they conspired to hinder this dispersion of them as commanded by God and begun by Noah, building the city and tower of Babylon (Babel). God frustrated this project with the confusion of languages, which was then followed by the dispersion of nations.


부록 : 성경과 연대기

오늘날 성경의 연대기를 대하는 세 가지 잘못이 있다. 하나는, 성경을 열등하게 보아서 거기에 나오는 연대기적 자료들도 무시하는 사람들이다. 위의 기사에서 인용한 고대의 세속 작가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성경에 있는 자료의 정확성을 지지했는데, 이것은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믿는 것처럼 신화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두 번째 그룹은 분열왕국의 기간을 줄이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에 대한 주요 지지자로 에드윈 틸레(Edwin Thiele)가 있다.[1] 틸레는 단편적인 앗시리아의 연대기를 사용하여 분열왕국의 기간을 약 50년 가량 줄임으로써, 앗시리아에서 어림짐작으로 만든 자료와 맞추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바빌론은 벨렉이나 바벨탑보다 이전에 창시되었어야 한다.

세 번째 그룹은 성경의 연대기를 늘리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 초기의 사람으로는, BC 3세기에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여 70인역(LXX)을 만든, 이집트의 랍비들을 들 수 있다. 그들은 마네토의 연구와 일치시키기 위해, 노아와 아브라함 사이의 기간에 대한 성경 연대기에 700년 가량을 임의로 더했다. 그들이 행한 것이 옳다면, (나라들이 나뉠 때의 대부분의 지도자들도 그렇고) 벨렉은 바벨탑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에 죽어 없어진 것으로 된다.

칠십인역의 번역자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많은 성경적 고고학자들은 오늘날에도 같은 죄를 저지르고 있다. 칠십인역의 번역자들이 이집트 사제들의 꾸며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듯이, 현대의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바빌론과 이집트의 창시를 수천 년 이전으로 되돌린 세속의 역사가와 고고학자들의 이야기들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2]


References and notes

1. Thiele E., The Mysterious Numbers of the Hebrew Kings, Kregel, Grand Rapids, MI, 1994. The most mysterious thing about his work is the way he handled the Hebrew numbers to make them conform to Assyrian chronology. Little attempt was made to make Assyrian chronology fit the biblical chronology.

2. Merrill F. Unger, Archaeology and the Old Testament, Zondervan, Grand Rapids, MI, 1954. On page 84 he states Egypt dates back to about 5000 BC. On page 97 he states that Susa near Babylon dates back to about 4000 BC. Since the biblical date for the Flood is 2349 BC, how long could these people tread water? Although this book was published in 1954, its opinions are reflected in newer works dealing with biblical archaeology. If anything the situation has become worse, not better, in the last fifty years. Unger is a very conservative and well-respected Bible scholar. If he could be deceived, how much more careful should we be today when so many more errors are afoot?

 

*참조 : The Genesis 5 and 11 fluidity ques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754/

Biblical chronogenealogie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06/

A reliable historical record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2/j20_2_20-23.pdf

‘In Peleg’s days, the earth was divided’: What does this mea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420/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2/i1/peleg.asp ,

출처 - Creation 22(1):46–49, December 1999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372

참고 : 3148|3233|303|1412|1413|568|2545|2405|1395|528|512|3974|3945|3898|3872|2525|2323|1805|4148|4100|4071|4868|4870|4872|4878|4982|4985|5094|5271|5275|5332|5394|5395|5402|5415|5440|5463|5514|5578|5625|5627|5628|5711|5723|5741|5753|5852|5861|5870|5882|5886|5889|5910|5985|5986|6044|6017

Carl Wieland
2006-01-27

900년의 수명 

: 홍수 이후 단축된 인간 수명의 원인은? 

(Living for 900 years)


       소수의 사람들만이 120년 정도까지 산다. 우리가 (수명에 관하여) 더 많이 알아가고 있지만, 과연 새로운 연구를 통하여 우리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까? 노화에 관한 놀라운 새로운 정보는 대홍수 이전 사람들의 긴 수명(long lifespans)에 관하여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창세기는 오늘날의 경험에 비추어 말도 안 되는 긴 인간의 수명을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아담은 930 년(아래 그래프 참조)을 살았고 ,노아는 더 긴 950 년을 살았다. 이 긴 수명은 아무렇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규칙적으로 노아의 홍수 전에는 길었고 홍수 이후에 급격히 줄어들었다.


홍수이전 족장들에서부터 (출생년도에 따라 표시) 성경기록에 나타난 수명을 살펴보면, 홍수 후에 수명이 급격히 짧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세계 역사에서 극적인 무엇인가가 일어났다는 증거가 된다.

성경은 이러한 긴 수명이 그 당시의 시대에서는 특별히 이상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긴 수명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쉽게 비웃는다. 모든 치명적인 질병을 피한다고 해도, 오늘날의 인간은 일반적으로 100세를 얼마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도 120세를 많이 넘기지 못한다. 

그러나 노화(aging)에 관한 증거에 의하면, 오늘날 평균 수명의 상한선은 사람이나 다른 다세포 생물의 예에서 보듯이 생물학적으로 불가피한 어떤 것 때문은 아님을 제시하고 있다, 

질병, 음식, 부상과 여러 환경 요인들은 물론 우리의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의 저변에는 우리의 유전인자 속에 어떻게든 기록되어 있는 유전정보가 수명의 상한선을 결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정말로 놀라운 것이 아님은, 우리들은 어떤 가계는 대부분이 고령까지 살며, 또 어떤 가계는 그 반대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비록 평균 수명의 상한선이 각 종마다 프로그램 되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육종 실험은 이 한계가 바뀔 수 있음을, 심지어 극적으로도 바뀔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초파리(fruitflies)와 벌레(worms)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이 개체군에 수명연장을 발현시킬 수 있기도 하고 제거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로 같은 종류의 초파리 군에서 한 개체군이 다른 개체군보다 평균 몇 배나 더 오래 살게 할 수 있다. 심지어 수명과 관련되는 유전자 스위치(genetic switch)가 벌레의 한 종에서 확인되었다.


우리는 왜 노쇠해 가는가?

왜 모든 다세포 생물은 (인간처럼) 결국 노쇠하여 죽게 되는가? 모든 고정된 구조들은 결국 마모되어 없어진다는 물리법칙을 단순히 인용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생물학적 조직체는 그 자체를 스스로 수리하는 능력인 내재된 지능(DNA에 정해진 대로)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박테리아와 같은 단세포 동물들은 노쇠로 죽지 않는 이유이다. 그들은 단지 2개의 복제품으로 분화되고 각각이 다시 두개로 분화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인간과 같은 생물체에는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조직기관이 있다 (예: 간, 콩팥 등). 이 세포들은 왜 계속 나누어지고, 수리하여, 영원히 그 장기를 새롭게 하지 않는가? 만일 노쇠한 세포를 새 세포로 교체하여 새로운 조직기관이 만들어진다면, 인간의 신체도 노쇠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넘어지는 나무에 깔려죽거나 감염으로 죽을 수는 있겠지만, 늙어 죽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는 되지 않고, 우리의 각 기관은 노쇠하게 된다. 기관 내의 세포들은 일정기간 동안은 증식하지만 영원히 계속하지는 않는다. 몇 번의 분화(dividing)를 거친 후에, 이 세포들은 분화를 멈춘다. 보통 인간의 세포는 단지 약 80–90 회 분화를 하면, 그 이상은 분화하지 않는다.

우리 염색체들 각각의 끝에는 텔로미어(telomere)라고 불리는 구조가 있다. 이것은 끝에 많은 구슬(beads)이 달린 계수장치(counting device)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세포가 둘로 나뉘어 질 때마다 구슬 하나가 잘라져 나가서 텔로미어(아래의 그림 참조)가 짧아진다 [1]. 구슬이 모두 없어지면 세포 분열이 더 이상 발생할 수 없다. 그때부터는 각 세포는 쇠약해지더라도 새 세포로 교체되지 않는다. 그래서 비록 당신이 치명적인 사고나 질병을 피하더라도, 결국은 어느 기관의 고장으로 죽게 된다.

세포가 나누어지는 작용은 DNA에 기록되어 있는 유전정보의 지시에 의해 통제된다. 그래서 노화를 결정하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미리 정해진 유전적 한계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인다. 요컨대, 만일 그 유전적 한계가 다른 수명을 정해두었다면, 900년 이상의 수명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할 어떠한 알려진 생물학적 이유도 없다.

그리고 이 유전적 수명한계에 정말로 큰 변화가 있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할 이유가 있다. 우리는 단순히 초파리에서 육종 선택을 통하여 유전자 순서를 뒤섞어서 그들의 수명을 현저하게 늘릴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진짜 문제는 홍수이전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는가’가 아니라, ‘왜 우리는 더 이상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하는가’이다. 


노아의 새로운 환경

홍수 이후 수명 감소를 보면서, 그것이 현저하게 변화된 세계와 관계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화석 기록의 증거는 홍수이전 세계에서 탄산가스 (아마 산소도) 농도가 더 높았음을 시사한다. 많은 학자들이 대기의 수증기층이 홍수이전 세계를 우주방사선(cosmic radiation)으로부터 보호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이로 인해 노화가 크게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 

홍수 후의 환경이 엄청나게 유해하게 변화되어 수명이 800년이나 줄어들어 1/9로 되었다고 보는 것은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왔을 때에 그는 벌써 600 세가 넘었다. 그러나 훨씬 유해한 환경으로 인해 그가 빠르게 노화하여 20-30 년 만에 죽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350 년을 더 살아 심지어 그의 조상 아담보다도 오래 살았다.

우리는 환경적 요인들이 인간 삶의 발달 단계에서만 문제를 초래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노아가 여전히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는가에 대한 하나의 쉬운 설명은 노아의 유전적 구성상태가 그에게 긴 수명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전부는 아니더라도 홍수 이전의 사람들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정해진 수명보다 매우 긴 수명을 가지도록 미리 정해져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는 어떻게 되었나? 전 세계의 인구가 단지 몇 사람으로 줄어버린 점을 상기해 보자. 긴 수명을 결정하는 정보가 포함되었을지 모르는 특정 유전자가 (대립형질(alleles)로 알려짐) 인류가 사실상 8명만 남고 멸절되는 과정(병목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제거되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래글 참조)


다른 요인들

비록 그런 유전정보의 손실이 수명감소의 원인이었다 할지라도, 그것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닐지도 모른다. 유해한 돌연변이가 더 많이 발생한 것도 역할을 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 돌연변이의 일부는 텔로미어 길이의 손실을 초래했을 수도 있다. 홍수 이후에는 음식물로 사용 가능한 식물군이 급격히 줄어들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 시점에서 사람에게 고기를 먹도록 허락한 하나의 이유일지 모른다. 그러나 가장 열렬한 건강식품 예찬론자라도 우리가 단순히 음식을 바꿈으로서 오늘날 다시 950년이나 살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이 다른 요인들 일부는 수세기 동안 계속되는 지속적인 수명감소의 이유였을 것이다. 이삭은 180세까지 살았고, 모세는 120세, 다윗왕은 단지 71세까지 살았다. 흥미있는 것은 오늘날 우리는 환경요인으로 인해 수명이 증가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노아의 수명에 가깝게 살기 위해서는 그의 유전적 인자들의 일부가 있어야 될 것이다.  

물론, 모든 노화와 죽음의 궁극적인 이유는 창세기 3장에 기록된 모든 피조물에 대한 저주이다.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죽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다. 아담은 영적으로는 즉시 죽었고, 육적으로는 오늘날 우리들처럼 바로 그날부터 죽어가기 시작했다. 

현대의 유전학 연구는 우리 모두가 노쇠와 죽음의 필연성을 타고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거울로 우리 얼굴에 생기는 주름살을 볼 때, 신성한 하나님의 눈에 우리의 죄가 참으로 무거움을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정죄함으로부터의 피할 길을 주셨음을 한없이 감사해야 할 것이다.


수명의 차이

사고나 질병에 의한 사망을 무시하면, 여러 생물들은 상이한 평균수명을 가지도록 유전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정된 수명이 완전히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가 점점 축적되고 있으며, 어떤 종류의 생물에서는 선택적인 육종이 평균 수명을 크게 늘렸다.


가진 것 이상으로 사는 방법

약 30 년 전에, 프랑스의 어느 중년 변호사는 90대의 여성 고객과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  이 변호사는 그녀에게 상당한 월급을 주기로 하고, 그녀의 아파트 소유권을 양도받았다. 그녀는 그 아파트에서 월세를 내지 않고 평생 살수 있도록 합의가 되었다. 이 합의는 명백히 양쪽에게 다 유리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나이가 워낙 많았으므로 그 변호사는 아파트를 매우 싼값에 사는 셈이었고, 고객은 얼마 남지 않은 그녀의 여생을 충분한 수입으로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변호사에게는 아주 불운하게도 그의 고객 칼멘트(Jeanne Calment)는 현대 역사에서 가장 장수한 사람이 되었다. 1997년 그녀가 죽었을 때, 그녀는 122세 하고도 164일을 살았다.  그녀의 변호사는 그녀가 죽기 훨씬 이전에 노환으로 죽었다. 그는 결국 그녀에게 아파트의 가격의 몇 배를 지불하게 되었다.

최근 두 명의 프랑스 학자가 칼멘트의 양쪽 가계 5대를 거슬러 올라가며 조사를 했다. 그녀의 조상들은 모두 같은 지역 사람들의 평균 수명에 비하여 무려 10.5년을 더 오래 살았다. 그 학자들은 그녀의 생활양식이나 음식물은 장수에 큰 요인이 아니었으며, 희귀한 장수 유전자들의 집합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음에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분명히 그녀는 더 일찍 죽음을 초래했을지도 모르는 다른 불운도 겪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수명에 유전적 요인이 있다는 우리의 논제와 일치한다. 홍수 이전 우리 조상들에게 여러 가지 장수하는 유전적 요인이 있었던 것이 그들이 장수한 이유였고, 그 이후 이들 유전요인을 잃어버린 것이 수명감소의 원인일 수도 있다. 


홍수 이후의 유전적 손실이 수명 감소의 원인?

여러 형태의 유전자들(대립 형질로서 여러 특질을 나타내는 DNA 정보 사슬)이 소수의 개체군에서는 소멸되는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 이라고 알려진 단순한 현상이 있다.

유전자들은 쌍으로 존재하며, 하나는 아버지로부터 또 하나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는다.  위의 그림에서 보여준 것처럼 유전자의 G 형태는 아버지에게 있고 어머니에게는 없다. 그들의 아이들은 각각 G 형태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반반이다. 그러므로 후손의 누구도 이 유전자를 계승하지 않을 가능성은 그렇게 낮은 것이 아니다. (만일 그들이 단지 3명의 자녀를 가졌다면, 확률은 1/8이다). 전체 인류가 노아와 그의 3명의 아들과 3명의 며느리로 감소되었던 상황에서, 노아의 유전자 중 일부가 전달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지금 노화가 대부분 유전적 요인인 것으로 보이므로, 장수 유전자들의 일부 손실이 홍수 이후 수명감소의 이유일 수 있다. 아마 그 이후의 개체군 분리가(바벨에서) 이 유전자 제거에 더 한층 기여했을 것이다.[2]


자손에게 전달되는 유전적 조합의 가능성


죽음으로의 초읽기

각 염색체(텔로미어(telomere)로 불리는)의 끝에 있는 ‘덮개(capping)’는 운동화 끈의 끝에 있는 덮개처럼 말단이 닳아 없어지지 않도록 한다. 텔로미어는 세포가 분열될 때마다 짧아지다가 한계에 이르면, 세포는 더 이상 분열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의 제한된 수명이 결정되는 단지 하나의 방법이다. 만일 사람들이 적절한 유전적 구성(genetic makeup)을 가진다면, 그들이 현재보다 훨씬 오래 살지 못할 어떤 생물학적 이유도 없다.

인간의 세포 중에서 영원히 분열을 계속할 수 있는 세포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암세포이다. 이들에게는 분열을 멈추게 명령하는 스위치가 없는 것 같다. 그러한 까닭으로 인간의 세포를 필요로 하는 의학 실험실은 어느 불행한 암환자의 암세포에서 키운 세포를 계속 공급받을 수 있다 (이것을 헬라 세포(HeLa cells)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세포가 바로 Henrietta Lacks라는 여성의 암세포이기 때문이다). 헬라 세포는 실질적으로 영생한다 (기존의 헬라 세포를 전부 물리적으로 파괴하지 않는 한).

최근, 텔로미어의 복제와 관련된 효소에 의한 실험 결과는 많은 흥분을 초래했다.[3] 인간의 세포라인을 변화시켜 그들의 한계보다 많은 횟수로 분열하게 만들었다. 일부는 그런 조작에 의해 사람들이 질병이나 사고로 죽지 않는 한 매우 오래 살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화라는 것은 분명 이러한 기초적인 결과로 단순화한 논의보다는 훨씬 복잡한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증거로 보아 유전적 요인이 주된 역할을 하고 있음이 강력히 제시되고 있다.


*참조 : Temporal changes in the ageing of biblical patriarch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151/

Did People Like Adam and Noah Really Live over 900 Years of Age?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08/06/04/did-people-live-over-900-years

 

Bibliography/further reading

New Scientist: November 22, 1997, p. 7; January 3, 1998, p. 6; February 7, 1998, p. 14; February 28, 1998, p. 23.
▷ ‘Can science beat the body clock?’ Sunday Times (London) January 18, 1998, p. 15.
▷ ‘Extraordinary lifespans in ants: a test of evolutionary theories of aging’, Nature389:958–960, 1997.
▷ ‘Why do we age?’ U.S. News & World Report, August 18–25, 1997, pp. 55–57.
▷ ‘Genetics of Aging’ Science 278(5337):407–411, 1997.


References and notes

1. Simplified for brevity — there is a fluctuation in length, with a net shortening. In our brain cells, the telomere does not shorten.

2. This assumes that there was probably considerable variation in lifespans in the pre-Flood world, with some only programmed to live a maximum of say, 400 to 500 years. This may be why Noah’s sons failed to match his great age.

3. This enzyme, called telomerase, was discovered in 1980 by the winner of the 1998 Australia Prize, Prof. Elizabeth Blackburn. Without telomerase, cells cannot copy their ‘caps’. 


*관련기사 : 동물의 노화 늦추는 새로운 유전자 발견 (2007. 11. 5. 한국일보)

http://www.koreatimes.com/article/articleview.asp?id=414501


*참조 : 아담은 정말 930년을 살았는가? : 사람 수명의 감소곡선은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가리킨다.

http://creation.kr/Genesis/?idx=1289129&bmode=view

노아 홍수 이전 사람들의 긴 수명에 관해 밝혀지고 있는 사실들.

http://creation.kr/BiblenScience/?idx=1288883&bmode=view

조상들과의 만남 : 창세기 연대기의 정확성과 족장들의 긴 수명

http://creation.kr/BiblicalChronology/?idx=1289265&bmode=view

홍수 이후 단축된 인간의 수명

http://creation.kr/BiblenScience/?idx=1288796&bmode=view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0/i4/years.asp 

출처 - Creation 20(4):10-13, September 1998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101

참고 : 4067|3783|2936|77|491|489|4982|5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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