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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교회 목사님이 창세기를 믿지 않습니다. 저는 교회를 옮겨야만 하나요?” 

(My pastors don’t believe Genesis. Should I leave my church?)


     우리는 한 후원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는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이 창세기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매우 놀랐다는 것이다. 태스 워커(Tas Walker) 박사가 이에 대해 숙고해야 하는 몇 가지 점들을 이야기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당신들의 연구와 사역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며, 간행하시는 여러 잡지와 글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 12년 동안(지금 나이는 30살) 한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 명의 목사님들 중 어느 누구도 성경 창세기를 사실로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두 분은(한 분은 아직 확인을 못함) 노아의 홍수가 전 지구적 홍수였다는 사실도 또한 믿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에 대해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두 아이를 두고 있고, 한 아이는 뱃속에 있습니다. 저는 자녀들이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가르치는 교회에서 자라기를 원합니다. 창세기를 사실로 믿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 저희 교회는 너무도 좋습니다. 교회를 옮기는 것은 너무 과격한 생각인가요?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태스 워커 박사가 이에 대해 대답했다 :

성경 창세기를 기록된 그대로 믿지 않는 목사님들이 이끄시는 교회에 다니시는 귀하의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일은 진화론으로 가득한 오늘날 매우 흔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어느 교회를 다닐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여러 요인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당신이 기도하면서 생각해보아야할 몇 가지 점들이 있습니다.

1. 이 세상에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교회가 당신에게 어떤 면에서는 정말로 좋을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에서 많은 요인들에 대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2. 교회에 속해있는 것에는 많은 좋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합니다. 예를 들어 간혹 청소년 사역자들은 강하고 전투적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목사님들도 변해갑니다. 아마도 당신이 기다리면, 많은 것들이 개선되는 것을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3. 교회는 당신이 얻기만 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당신의 은사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사역지이기도 합니다. 창조론에 대한 당신의 열정과 경험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다면,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4. 당신은 교회에서 진리를 말하고 진리 위에 서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 다른 주제들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창세기의 진실성과 기초됨은 이 특별한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줄 필요가 있는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마음으로, 그리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진리를 말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했던 멋진 진리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6일 창조를 강요하기보다, 그들이 알기를 원하고 필요로 할 때 말해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당신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 ”당신은 성경에 관한 의심을 풀어주며,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 확고한 기초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항상 교회에 창조 잡지들, DVD, 브로셔 등을 갖다놓고, 필요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가져가게 하고 있습니다.

5. 당신은 목사님의 생각과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목사님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불화를 일으키거나, 논쟁하지 마십시오. 한 주제에만 집착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교회의 광범위한 사역에 관심을 가지십시오. 당신의 열정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께 봉사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오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여기에 성도였던 한 사람이 교회 목사님을 창세기의 진리로 나아올 수 있게 했던 두 사례가 있습니다.

1) 교회의 한 젊은 성도가 교회 목사님에게 한 권을 책을 빌려주었고, 목사님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see Esa Hukkinen interview).

2)오웬 버트(Owen Butt) 목사님은 창세기를 신화(myth)라고 믿고 있었지만, 창조과학 세미나를 참석한 후에 그의 생각이 바뀌었고, 그의 전체 사역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를 창조과학 세미나에 초대하고 정보를 줬던 사람은 그 교회의 성도였습니다. 그곳에서 목사님의 모든 생각이 변화되었습니다. (See Catching the vision).

6. 당신의 자녀와 가족이 창세기와 창조의 진리에 잘 서있는지 확인하십시오. 그들에게  창조과학 도서, DVD, 다른 소스들을 제공하며, 제기하는 의문과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십시오. 그러나 당신의 교회와 목사님들, 특별히 당신의 자녀들에 대해 항상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집에서 당신의 교회나 목사님을 비난하거나 비판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독이 될 것입니다.

7. 만약 목사님이 창조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고, 상황이 당신에게 매우 어렵게 된다면, 그래서 당신의 입지가 좁아지고, 설교 중에 공격적인 말을 듣는다면, 교회를 옮기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 인생의 전체 여정에서 주님과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야고보서 1:5)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시길 빌며, 

태스 워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com/my-pastor-doesnt-believe-in-genesis

출처 - CMI, 2014. 11. 15.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044

참고 : 4339|5686|2942|2797|5275|5627|3640|5381|4375|4869|3589|2864|512|3901

Jeffrey Tomkins
2014-09-10

뱀독의 기원이 밝혀졌다. 

(Decoding Snake-Venom Origins)


      뱀독(snake venom)의 기원은 창조론자와 진화론자 모두에게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하지만 최근 진화론적 패러다임을 벗어난 일부 과학자들은 뱀독 단백질이 기존의 타액 단백질에서 생겨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1]

태초의 창조 시에 하나님은 사망, 질병, 폭력으로 가득한 세계를 창조하시지 않았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의 반역 때문에, 독을 가진 뱀을 포함하여, 부정적인 모든 요소들이 창조물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면 생겨나는 질문은 어떤 방법으로 저주가 창조물에 치명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창조주에 의해서 부정적인 요소들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유전자들이 추가되었는가? 아니면 기존의 유전정보가 손상되었거나, 어떤 식으로든 변형되었는가? 유전체의 붕괴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지식에 따르면, 유전자 엔트로피(무질서도)와 관련된 유전자 변형이 그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2, 3]

오늘날 지배적 과학 패러다임인 진화론적 견해에 의하면, 뱀독 단백질은 비뱀독 유전자의 복제 과정을 통해 어떻게든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무작위 돌연변이 과정을 통해서 정확한 조직에서 새로운 유전자들의 발현과 결합하여, 새로운 기능을 제공하도록 어떻게든 다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취적인 세속적 과학자 그룹은 유전자 중복(gene duplication)은 그 자체가 극히 드문 사건이고, 중복된 유전자가 돌연변이에 의해서 용도변경이 발생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임을 인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뱀독의 분비샘과 다양한 뱀들(독사, 비독사, 도마뱀붙이 등)의 다른 신체 조직에서의 유전자 발현을 비교해 봄으로써, 뱀독의 기원에 대한 다른 설명을 찾기 시작했다.

연구자들은 ”뱀독은 뱀독 분비샘 안으로 생리적 또는 신체 유전자의 중복 및 연속적인 보강(recruitment)을 통하여 진화되었다는 가설은 데이터에 의해서 지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했다.”고 말함으로서, 그들의 결과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로 보강을 진행했다고 주장되는 많은 수의 유전자 계통은 비뱀독 파충류의 침샘을 포함하여, 다양한 조직에서 발현되는 패턴의 증거임을 발견했다.” 다른 말로해서, 뱀독 유전자는 독사나 비독사 모두의 많은 다른 신체 조직들에서 발현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독(venom) 유전자는 독사와 비독사 모두 파충류 조직에서 (침샘에서의 기능을 포함하여) 독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저자들은 ”사실 우리의 분석은 뱀독 성분의 대부분은 기존에 있던 타액 단백질로부터 파생된 것임을 보여준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뱀독은 단순히 침의 변형된 형태로 간주되어야한다”고 인정했다. 

이들 뱀독의 단백질이 독사나 비독사 모두의 다른 타입의 신체 조직에서 발견된다면, 독성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자들은 그들의 데이터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기존의 타액 단백질이 뱀독이 된 한 가능한 경로는, 초기 독성이 용량 의존적(dosage-dependent)인 곳에서 단순히 높아진 발현 수준일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더 높게 발현된 독액 유전자는 자신의 제어 영역의 변경에 의해서 원인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전사요소 결합 부위(유전자 조절스위치)의 소실에 의해서 발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존의 전사 조절 염기서열을 방해하거나 삭제해버릴 수 있는, 단일염기쌍의 무작위적인 돌연변이, 또는 커다란 삽입 및 삭제에 의해서 발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저자들은 말했다.

따라서 오늘날 독사에서 발견되는 독의 수준은 뱀독 분비샘의 과도 발현을 초래한 유전정보의 변경에 기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타입의 유전학적 모델은 사실, 유전체(genomes)는 쇠퇴되고 있고, 유전정보의 변경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창조론자들에 의해서 예측되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아메바-사람으로의 상향적인 (새로운 유전정보의 증가가 필요한) 진화론적 과정이 아닌 것이다.

아마도 이들 세속적 연구자들이 언급했던 가장 놀라운 발언은, 표준 진화론적 추론을 질책하는 말이었다. 그들은 말했다. ”우리의 연구 결과는 특히 확립된 사실로서 간주되고 있는, 진화생물학의 ‘그랬을 것이다’라는 추정 이야기의 문제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 일부 과학자들은 진화론의 신다윈주의적 모델이 연구의 진행을 발전시키는 대신에, 제한하고 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부 세속적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깊게 뿌리박혀있는 진화론적 설명에 과감히 의문을 제기하는 용감함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References

1.Hargreaves, A. D. et al. 2014. Restriction and Recruitment—Gene Duplication and the Origin and Evolution of Snake Venom Toxins. Genome Biology and Evolution. 6 (8): 2088–2095.
2.Sanford, J. C. 2008. Genetic Entropy and the Mystery of the Genome, 3rd ed. Waterloo, NY: FMS Publications.
3.Sanford, J., J. Pamplin, and C. Rupe. 2014. Genetic Entropy Recorded in the Bible? FMS Foundation. PDF posted on kolbecenter.org July 2014, accessed July 25, 2014.

*Dr. Tomkins is Research Associate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received his Ph.D. in genetics from Clemson University.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8339/

출처 - ICR News, 2014. 9. 3.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995

참고 : 4618|4677|2365|4927|2998|4351|2996

David Malcolm
2014-08-25

더 많은 날과 월을 가진 달력들. 

: 창세기에 기록된 시간 단위와 로마력, 태음력, 이슬람력.

(Calendars more than just days and months)


      태음력(Chinese calendar)과 이슬람력(Islamic calendar)은 서구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인다.

(구정처럼) 1월말 근처에 있는 새해, 또는 매년 점점 일찍 다가오는 라마단(month of Ramadan)은 이상해 보인다. 우리는 이러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 무슬림들은 그들의 농작물을 언제 심어야할지를 어떻게 알게 되는 것일까? 만약 무슬림의 달력에서 어떤 날들이 몇 년 전에 정해진 것이라면, 계절들과 완전히 조화될 수 있는 것일까? 서구 사람들에겐 익숙하지 않지만, 이슬람력의 특징은 달(month)은 달의 위상(phases of the moon)과 정확히 관련되어있는 태음력(lunar calendar)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데서 설명될 수 있다.


.월식(lunar eclipse) 동안 지구에서 본 달. 붉은 색과 오렌지색을 띠고 있다.

달은 약 29.5일(삭망월이라 불리는)이라는 주기로 달의 위상을 진행해간다. 그래서 29일에서 30일 사이의 한 달(month)을 갖는다는 것은 달(moon)과 정확히 보조를 맞추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겐 어떤 달력의 특성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는 것일까?

초승달은 새로운 달(new month)이 되었다는 신호이고, 보름달은 한 달의 중간이 되었다는 신호이다. 이런 개념은 서구에서 이질적인 개념은 아니다. 소형 옥스퍼드(The Shorter Oxford) 사전에는 월(month)이라는 개념은 달(moon)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적혀있다. 월이라 말은 달의 공전주기와 상응하는 시간의 길이로서 정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력 달이라는 개념은 논리적이다. 이슬람력에서 연속적인 12개의 이런 음력 달은 1년이 된다.

중국달력은 더 복잡하다. 그것은 종종 태음력이라고 일반적으로 불려지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태음태양력(luni-solar calendar)이다.

이슬람력이 그러한 것처럼, 태음력은 달(moon)의 위상과 관련된 월(months)들을 가지고 있으나, 추가적으로 그것은 13개월을 지닌 몇 개의 해(year)들을 가짐으로써, 장기적으로 해가 계절과 보조를 맞추도록 하고 있다. 다시 한 번, 그것은 서구 사람들에겐 이상하게 보여진다. 정말로 한 해는 12개월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달력들을 공식화할 어떤 특정한 규칙은 없는 것인가? 우리 달력을 만들어낼 기초를 가진,  여러 인종 그룹들에 제시될 판단기준은 없는 것인가? 어떤 달력의 기준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말해줄 절대적인 기준이 될 만한 것을 우리는 갖고 있지 못하는 것인가?

사실, 우리는 그러한 판단기준을 이미 가지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미 (천체에) 규정해 두신 것을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창 1:14~19)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간(즉 계절)을 결정하도록 우리에게 천문학적 주기들을 제공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다.

로마력(Roman calendar)은 결함이 있다. 그것은 한 해를 임의로 12개로 나눈 월들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의 자전에 의해 야기되는 밤과 낮이라는 주기는 우리에게 날(day)이라는 개념을 정의하도록 해준다. 그러나 달의 위상은 우리에게 월(month)이라는 개념을 준다. 그리고 약 365일 동안 1회전하여 움직이는 별들의 움직임은 우리에게 1년이라는 시간을 정해준다. 그러므로 한 해 안에 12개월이 있어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어떤 달력도 하나님이 천제에 규정해 놓으신 것과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로마력 또한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약간의 충격을 준다.

모두에게 친숙한 우리의 달력은 초창기 교회에 의해 채택되었고, 지금은 세계적인 표준이 되었지만, 실은 결함이 있는 상태이다. 사실, 이슬람력이 12개의 임의로 된 음력 달로 이루어진 한 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함이 있는 것과 같이, 로마력도 1년을 임의로 12개로 그저 나누어놓은 월(month)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결함을 가지고 있다.

유대력(Hebrew calendar)은 수세기동안 유대인들에 의해 사용되어 왔고, 오늘날도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태음력과 같이, 29일 아니면 30일이 번갈아 나오는 월(months)들을 가지고 있고, 음력 달과 보조를 맞추고 있으며, 또한 장기적으로는 태양년과도 보조를 맞추고 있다. 그것은 19년마다 7번의 13개월을 가진 해들을 가지고 있다. (아래 비교표를 보라)
 

주(week)

우리는 일(day), 월(month), 년(year)이 천문학적 기간에 있어서 그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그 목적을 위해 정해 놓으신 것들이다. 그러나 주(week)는 다르다. 그것은 어떤 관찰 가능한 천문학적 기간위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 7일이라는 주(week)의 기원은 하나님께서 창조를 완성하시고, 그의 창조물을 위한 어떤 패턴을 설정하셨던 창세기에서 시작된다. (창 2:2-3, 출 20:11)
 

12 개월(twelve months)

한 해가 12개월로 구성되어야한다는 어떤 의무도 없어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여러 그룹의 사람들은 1년에 12개월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을 마음대로 해왔던 것이다. 왜 그럴까?

원래 1년의 태양년 안에 정확히 12개의 음력 월들이 있었는지 아닌지 궁금해할만하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완벽한 창조가운데 세워놓으신 방법으로, 한 월안에는 정확히 30일이 있었고, 한 태양년 안에는 정확히 360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은 바벨탑 사건 때, 다른 언어들이 생겨 사람들이 흩어지기 전에, 이미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근거 있는 문화적 기억들을 가지고 있었을 수 있다.

이것에 대한 수학적으로 완벽한 몇몇 징후들이 있다. :

• 우리가 각도에서 사용하는 1도(degree)라는 단위는 분명 바벨론 수학자들에게서 온 것이고, 그것은 태양을 나타내려던 의도였다. 한 해가 360일을 가지고 있다면, 태양은 정확히 하루에 1도씩 움직일 것이다. (하루 밤, 별들의 움직임에 의해 관찰된 바에 의하면)

• 히브리 용어로, 29일만을 가진 달은 ‘결함 있음’이라고 불려진다. 그러므로 정상적으로 1달은 30일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 성경 창세기 6~9장에 나오는 전 지구적인 홍수의 연대기를 보면, 370일 동안 일어났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홍수의 시작일과 끝난 날은 명확히 1년 더하기 10일이었다고 나타나 있다. (창세기 7:11~13절에는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2월 17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또 창세기 8:13~16절에는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둘째 달 스무 이렛날(2월 27일)에 땅이 말랐더라”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물리학을 고려할 때 입증하기는 어렵다.

지구가 지구회전 속도를 증가시켰을 수 있고, 그래서 한 해에 5일여 되는 시간이 추가되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노아홍수 때 지구의 관성모멘트를 감소시켰던 격변적 판구조 운동을 통해서) 그리고 어떤 특정한 메커니즘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달(moon)은 지구로 더 가까워져서, 한 해 속에 증가된 음력달 수를 갖게 되었을 수도 있다.


계절과 날과 년의 측정

성경 창세기 안에 모든 단서들이 존재한다. -하나님의 완벽한 창조 하에- 24시간으로 된 하루를 가지고 시작하여, 인간이 자신의 삶을 관리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6일 일하고 7일째 쉬는 패턴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구에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고 그분은 창조주에게서 나오는 우리의 지능을 사용해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질서정연한 우주를 만들어주셨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지능으로 우리는 일 년에 한 번 지구가 태양주변을 공전한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고, 또한 지구가 매 24시간마다 자전축을 기준으로 자전한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2]

그리고 천문학의 지식을 사용하여, 고대인들은 우주에서의 지구의 위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날, 월, 년, 계절은 항상 우리 존재의 중심에 있었고, 달력은 우리의 삶의 날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필수적인 도구가 되어왔다. 그래서 결점 많은 달력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휙휙 넘길 때, 그 달력은 하나님의 창조의 천재성과, 대략 6,000년 전에 문자 그대로 24시간의 6일 동안 이 세계를 정해놓으신 분은 바로 하나님, 그 분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달력들의 비교



로마력의 문제점

• 서구 달력에 있는 월들(months)은 달의 위상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지만, 문제점이 이것 하나뿐만이 아니다.

• 대부분의 월들(12개의 월들 중 7개의 월들)은 31일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소수 5개의 월들은 30일 이하의 날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총 365일이라는 날짜는 30일짜리의 달 7개와 31일짜리의 달 5개로 구성될 수 있다. 그리고 윤년에는 31일짜리 달을 6개 두면 된다.

• 우리가 갖고 있는 월의 이름들 중 4개가 숫자를 의미하는 라틴어로 되어있다. 글자대로 해석하면 9월(September)은 7번째, 10월(October)는 8번째, 11월(November)는 9번째, 그리고 12월(December)은 10번째를 의미한다. 아마도 예전에는 한 해가 3월에 시작된 것 같다. 그것은 (연말에 해당하는) 2월 달이 고작 남아있는 몇 일을 가지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중국 달력 (태음력)

Source: Reid, L., The Complete Book of Chinese Horoscopes, Butler & Tanner Ltd., London, pp.15, 1997.
Note: Numbers of days in each Chinese year, and hence the number of lunar months (last two columns of the above table) have been worked out by the author from the dates given in the reference.
Years are identified by one of 12 animals in a cycle as shown in this table.


어떤 해들은 보통의 12개월 대신에 13개월을 갖고 있다. 그것은 별자리가 밤하늘의 고정된 위치에 올 그때에 새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월들은 항상 달의 위상과 일치한다. 


날짜 계산 작업표

이 표는 게시된 날짜들로부터 저자가 태음력으로 계산해놓은 표이다.
3월부터 12월까지의 총 날짜 수는 항상 306일이었다.
1986년 2월 9일부터 2004년 2월 8일까지 저자가 19년을 검사한 것이다.
이것은 정확히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에 있는 19년과 같고, 이것은 6940일로 이루어져 있고, 5번의 윤년일(2월29일)을 포함하고 있다.(360×19+5)
태음력에 있는 이 날짜들을 더해도 역시 6940일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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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long were the days of Genesis 1?


Further Reading
2012 Mayan doomsday predictions
How does the Bible teach 6,000 years?


References and notes
1.Baumgardner, J., Catastrophic plate tectonics: the geophysical context of the Genesis Flood, creation.com/cpt-flood. 2.DeYoung, D. B., Astronomy and the bible.



번역 - 김서정

링크 - http://creation.com/odd-calendars 

출처 - CMI, 2014. 6. 26.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986

참고 : 3036|4540|4440|1790|5394|5035|5033|4380|4375|4297|3707

Brian Thomas
2014-07-23

아담은 정말 930년을 살았는가? 

: 사람 수명의 감소곡선은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가리킨다. 

(Did Adam Really Live 930 Years?)


      창세기 5:5절은 아담이 930년 동안 살았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현대의 많은 독자들은 창세기를 읽을 때에 이러한 숫자에 대해 머뭇거리게 되고, 결국 일부 사람들은 성경 전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식물 유전학자인 존 샌포드(John Sanford)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족장들의 나이를 도표로 만들었다. 그 결과 950살을 산 노아 이후에 사람들의 수명은 체계적으로 감소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결과를 보여주는 온라인 게시물에 따르면, ”이러한 감소곡선(decay curve)은 결코 우연히 생겨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1] 

노아 홍수 이후에 시작된 사람 수명의 감소 현상은 뚜렷한 감소곡선을 이루고 있다.

 

연구자들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사람 수명의 생물학적 감소곡선이, 과학 분야에서 돌연변이 축적으로 인해 알려진 생물학적 감소곡선(biological decay curve)과 어떻게 그렇게 일치할 수 있는지 놀라고 있었다.[1, 2] 사람의 매 세대마다 발생한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들이 축적됨에 따라, 유전정보는 지속적으로 소실되어왔다. 

초기의 돌연변이들이 한때 사람을 수백 년이나 살 수 있게 했던 유전자들에 손상을 입혔던 것은 아닐까?

연구자들은 쓰고 있었다 : ”수명 데이터는 초기 족장들의 매우 긴 수명이 실제였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노아 홍수 이후에 사람 수명의 급속한 하락은 사실이었다.”

족장들의 수명이 사실이라면, 그들에 관해 기록하고 있는 성경 구절들도 정확한 실제 역사였다는 것이다.



References

1. Sanford, J., J. Pamplin, and C. Rupe. Genetic Entropy Recorded in the Bible? Encouragement for Believers – Science Update. Posted on logosra.org June 1, 2014, accessed June 26, 2014.
2. Also see Sanford, J. 2008. Genetic Entropy. Waterloo, NY: FMS Publications, 155.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8215/

출처 - ICR News, 2014. 7. 14.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969

참고 : 4982|3101|3783|5935|5870|5725|5753|2936|2697|5443|5372|5094|4998|3730|3936|5536|5105|6283|6376|6642


David Catchpoole
2014-04-28

채식을 하는 상어

(Vegetarian shark)


너스상어는 날카로운 톱니모양의 치아를 사용하여, 브로콜리, 양배추, 셀러리, 상추 등을 잘게 씹어 먹는다.

   상어는 언제나 고기만을 먹는가? 아니다 틀렸다! 영국 버밍햄 국립해양센터에 있는 1.8m 길이의 너스상어(nurse shark, 대서양수염상어)는 채식주의자로 바뀌었다.

2009년 이후로, 플로렌스(Florence, 조련사는 그 상어를 이렇게 부름)는 어떤 형태의 고기나 물고기를 기피하고 있었다. 대신 그 상어는 브로콜리와 양배추를 먹는다. ”그리고 그 상어는 다른 종류의 채소들도 먹으며, 몰로카이 푸른거북(Molokai the green turtle)이 거주하는 해양 수조에서 동료들로부터 그런 것들을 훔칠 수 있다.”[1]

조련사들은 그 상어가 적절한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플로렌스가 고기를 먹게 하려고, 그들이 고안할 수 있는 모든 트릭을 사용한다”. 예로서 그들은 셀러리, 속이 빈 오이, 상추 잎 사이에 물고기 조각을 숨겨 놓곤 했다.

”그것을 잘 숨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플로렌스가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녀는 그것을 먹지 않고, 채소를 줄 때까지 완고하게 기다립니다”라고 해양생물 큐레이터인 그레이엄 버로우(Graham Burrows)는 설명한다.

플로렌스는 분명 고기를 먹는 것으로 생활을 시작했지만, 플로렌스의 입안 깊숙이 박혀있던 녹슨 고리(낚시 바늘)를 제거하는 수술 후에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플로렌스가 다른 세 마리의 너스상어와 함께 플로리다에 도착했을 때, 한동안 음식을 멀리했다”고 버로우는 설명했다. 초음파 검사는 문제를 곧 보여주었다. ”낚시 고리가 분명 수년 동안 거기에 박혀있었고, 심하게 녹이 슬어서 그녀를 심하게 아프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항생제를 투여 받았고, 빠르게 회복되었다”.

틀림없이 낚시 고리의 외상 후 충격이[2] 플로렌스를 채식주의자로 만든 요인이 되었다.

 이 너스상어는 물고기나 고기를 거부한다. 그녀는 대신 날카로운 톱니 이빨로 브로콜리와 양배추를 잘게 씹어 먹는다.

아담의 타락 이전인 대략 6천 년 전에 살았던 상어의 조상들은 생선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하와가 아담에게 선악과 열매를 주었고, 그것을 먹은 이후에, 상어는 물고기를 잡아먹는 식습관을 발전시켜왔다(창 3:6). 선악과로 인해 이 세상에는 죽음, 고통, 육식, 그리고 질병이 들어왔다.[3] 그래서 플로렌스가 식물을 먹는다는 것은 그렇게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오늘날의 타락이후 세계에서도, 그녀와 다른 ‘채식성 육식동물’들은 때때로 물고기 및 고기와 함께 식물 섭식을 증대시킬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4])

사실, 오늘날 지식이 풍부한 상어 관찰자들은 플로렌스의 식물을 먹는 능력이 독특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스상어들은 때때로 야생의 상태에서 바다조류(algae)를 먹는다. 그래서 우리는 플로렌스가 처음 푸른거북의 채소 일부를 훔쳤을 때 놀라지 않았다”. ”우리는 그녀가 완전히 채식주의자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녀가 해양수조에서 다른 육식성 귀상어(hammerheads sharks)와 흑기흉상어(black-tipped reef sharks)들을 당황시키는 것을 원치 않았다”라고 버로우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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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Wrenn, E., Meet Florence, the world’s first vegetarian shark who prefers celery sticks and cucumber to fish, dailymail.co.uk, 18 May 2012.
2. Fish feel pain, Creation 26(4):7, 2004; creation.com/fish-feel-pain.
3. For further details and discussion see ‘How did bad things come about?’ Chapter 6 of CMI’s The Creation Answers Book, chapter available as a pdf at creation.com/cab6.
4. Wieland, C., The cat who refuses to eat meat, creation.com/vegcat, 28 April 2009.


*관련기사 : 채식하는 상어등장, 물고기는 ‘외면’ (2012. 5. 16.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8194606&ctg=1300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creation.com/vegetarian-shark 

출처 - Creation 36(2):15–15, April 2014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903

참고 : 2245|3046|2291|5031|5739|4451|2202|2200|5500|4351|2996|2998|5838|5355|5317|5126|5037|4920|4792|4004|3747|3409|3647|3631|2627|2013

이재만
2014-04-17

Q & A - 가인의 아내는 누구인가요?


질문에 대한 첫 단계 : 가인의 아내는?

창조과학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바로 ”가인의 아내는 누구인가요?”이다. 미국 대표적인 창조과학 단체가 뽑은 ‘창조과학자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에서도 줄 곳 선두를 빼앗기지 않은 질문도 이것이다.

질문인 즉, 성경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 ”아내와 동침했다”(창 4:17)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아담의 자식은 가인, 아벨, 셋 이외에 또 있다는 것 아닌가?” ”이 아내는 어디서 왔고, 아담 말고 창조 때 이미 다른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 아닐까?” 대충 이런 식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다 보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곧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에 대한 답변을 한다고 할지라도, 잠재적으로 갖고 있던 의문이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더해지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근친결혼, 인류의 기원, 진화론적 세계관, 지구의 나이 등 얽혀있는 잠재된 의문이 계속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그러므로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하게 되면, 역으로 자신 갖고 있던 잠재적인 진화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하나 둘씩 매듭이 풀어지듯이 성경적 세계관을 갖추는 기회로 삼게 된다.

이 질문에 대한 성경 속의 실마리는 하와가 셋을 낳았을 때 했던 고백에서 시작한다.

”하나님이 아벨 대신 다른 씨를 주셨다”(창 4:25).

여기서 씨는 그의 아들인 셋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와가 아벨 ‘대신’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보아 셋이 태어난 때는 아벨이 태어난 다음이 아니라 ‘아벨이 죽은 다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세기 5장의 족보를 보면 아담이 130살에 셋이 낳았다고 말한다(창 5:3). 그렇다면 셋이 셋째 자식이 아니라, 이미 아담과 하와가 가인과 아벨뿐 아니라, 다른 자녀들도 여럿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5장에는 아담서부터 노아홍수 이전까지의 족보가 순서적으로 적혀있다. 그러나 이 족보는 아담 후손의 모든 이름을 적어놓은 것이 아니다. 노아의 직계조상만을 적어놓은 것이다. 즉 세대는 빠짐없이 적었지만, 모든 사람의 이름을 기록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노아는 자신의 여러 형제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구원 받은 노아 자신의 이름만 기록되어있다. 그의 아버지인 라멕도 많은 형제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의 직계 조상인 라멕만 적은 것이다. 이는 노아의 할아버지인 므두셀라, 증조인 에녹도 마찬가지다. 그들 모두에게 형제 자매가 있었겠지만 그들의 이름이 모두 기록되진 않았다. 즉 이 족보의 기록 목적 중에 중요한 점은 모든 인류는 아담의 후손이지만, 홍수 심판 이후 오직 노아만 살아남았으며,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노아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성경은 아담서부터 예수님의 족보까지를 연결하려는 것이다.

분명히 아담은 다른 자녀들도 있었겠지만, 성경에는 그들 중에 단지 첫 살인자 가인, 첫 피살자 아벨, 그리고 홍수 심판에서 유일한 구원자인 노아의 직계조상인 셋만을 기록한 것이다. 이 족보의 시작인 아담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아담은 셋을 낳은 후에 800년을 지내며 아들과 딸들을 낳았다”(창 5:4)

즉 아담은 세 아들만은 낳은 것이 아니라 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아들과 딸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는 셋을 낳은 후를 말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질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셋을 낳기 전인 130년 동안 아담이 아들만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욱 모순적인 생각이 아닌가? 더군다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첫 명령으로 ”생육하라”고 명령하셨는데, 단지 아들만 주었다는 것은 논리상 맞지 않는다. 하나님의 이 명령 속에는 남자와 여자를 동일하게 주셨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인은 아내를 어디서 얻었을까? 선택의 여지 없이 자신의 여동생이다!

하나님께서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벌을 주셨을 때 ”무릇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죽일 것입니다”(창 4:14)라고 가인이 극도로 두려워한다. 왜 가인은 이렇듯 사람들을 두려워했을까? 만약 앞으로 만날 사람들이 자신과 관계가 먼 자들이라면 자신을 ‘죽일까’ 봐 두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만날 사람들이 자신과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닌 모두가 자신의 형제들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일관되게 온 인류는 아담의 직계 후손이라고 말한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들었다” (행 17:26)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롬 5:12)

”기록 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 15:45)

그러므로 가인뿐 아니라, 아담의 자녀들은 모두 오누이끼리 결혼했음에 틀림없다.


질문에 대한 둘째 단계 : 근친 아닌가?

가인의 아내가 여동생이라고 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만약에 그 아내가 여동생이라면 근친결혼 아닌가요?”

어떤 면에서 이 근친결혼에 대한 부분이 가인이 여동생과 결혼했다는 성경적인 질문보다 더 부담되는 궁금증이다. 왜냐하면 여동생을 아내로 맞이했다는 것은 성경 속으로 들어가 꼼꼼히 맞춰보면 찾을 수 있지만, 근친결혼에 대한 질문은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현상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날에는 가까운 근친결혼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의 몸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돌연변이 같은 과정에 의해 이미 많은 유전자 손상을 입었다. 그런데 오누이끼리 또는 가까운 친척끼리는 그 손상 받은 유전자부위도 비슷하므로 서로 관계를 가질 경우 그 후손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치명적인 문제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아빠가 Aa이고 엄마가 Aa 유전자를 각각 가졌다고 하자. 이 둘이 결혼을 하면 다음 세대는 유전적 재조합에 의해 확률적으로 각각 AA, Aa, aA, aa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만약 아빠가 돌연변이에 의해 A유전자에 결손(A')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A'A, A'a는 엄마에게서 온 A a유전자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에 A라고 하는 유전자의 기능을 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 자식들끼리 근친결혼을 할 경우, 예를 들어  A'AA'a를 가진 오빠가 A'AA'a를 가진 여동생과 결혼하면 A'A'의 조합을 갖는 경우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때는 A에 대한 기능을 하는데 치명적인 문제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가까운 근친결혼은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오늘날의 세상과 지금 우리의 신체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지금의 세상은 창조 이후에 타락, 홍수심판, 바벨탑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주요 사건을 겪은 후에 맞고 있는 변질된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경은 이 굵직굵직한 사건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을 때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 하나님께서 땅을 저주하셔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났다. 아담 후손의 삶이 죄악으로 가득 찼을 때 하나님께서 쓸어버리셨던 노아홍수 심판사건 이후에 성경에서는 처음으로 추위와 더위가 등장한다. 즉 처음에는 아담과 하와가 옷을 입지 않았어도 좋았을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는 의미다. 홍수심판 이전 노아의 족보를 보면 당시 사람들이 900살 이상씩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홍수를 지나며 나이가 갑자기 줄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신체에 변화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라고 하셨는데, 즉 창조되었을 당시의 아담 부부의 신체는 흠이 없을 정도로 좋았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가인이 자신의 여동생을 아내로 맞이하여도 생물학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다. 가인이나 여동생이나 유전자에 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노아홍수 직후에도 비슷하게 펼쳐진다. 홍수심판 이후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인 함, 셈, 야벳 세 부부는 자식을 낳았을 것이다. 과연 이들의 자식들은 누구와 결혼했을까? 아무리 멀어도 사촌지간 일 것이다. 그래도 그때까지 유전적 결손이 그리 크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홍수 후에 태어난 노아의 후손들은 한동안 서로 결혼했을 텐데, 이런 상황에 변화를 주는 중요한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바로 바벨탑 사건이다. 이때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셨다. 이때 흩어지는 장면이 성경에 등장한다. ”각기 언어와 족속과 나라대로”(창 10:5). 영어로는 ”after their languages, after their families, in their nations”로 번역되어있다. 풀어서 쓰면 ”언어에 따라, 가족(들)에 따라, 그들의 나라가 되었다”이다. 즉 하나님께서 가족끼리 흩으셨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당시에 흩어지며 이들의 자식들은 누구와 결혼했을까? 여기서도 여전히 오누이간의 결혼이 그려진다.

이런 근친간의 결혼은 바벨탑 사건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그들은 모두 근친 간에 결혼을 했다. 아브라함의 가계도표가 도움이 될 것이다(그림). 아브라함과 그 아내인 사라와의 관계는 아버지(데라)는 같지만 엄마가 다른 이복 여동생이다(창 20:12).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서로 오촌간이다. 즉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형제인 나홀의 아들 브두엘의 딸이다(창 22:23).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남종에게 이렇게 명령한다.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해 아내를 택하라”(창 24:4). 여기서 내 족속은 영어로 ”my own relatives”, 즉 가까운 친족을 의미한다.

이런 모습은 이삭의 아들인 야곱에게도 등장하는데, 야곱과 아내인 라헬은 서로 외사촌간이다. 더군다나 이삭이 아들인 야곱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를 한다.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창 28:2). 라반은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빠다. 이삭이 야곱에게 외사촌과 결혼할 것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가까운 친척과 결혼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넘어 장려하고 있었다. 또한 에서가 다른 족속의 여자와 가까이 하는 것을 걱정하는 리브가의 걱정(창 27:46)을 보더라도 이런 분위기를 충분히 엿보게 한다.

성경은 여기에 어떤 이유도 말하지 않는다. 어색한 부분도 없다. 그러나 성경을 사실로 보고 접근을 하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즉 우리 신체는 처음이 좋았으며, 이때까지만 해도 근친결혼을 하더라도 유전자 결손 위험이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와 같이 근친결혼을 허용하던 상황이 반전되는 대목이 등장한다. 바로 출애굽을 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시는 명령에서다.

”각 사람은 자기의 살붙이를 가까이하여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레 18:6)

”너는 제 자매 곧 네 아버지의 딸이나 네 어머니의 딸이나 집에서나 다른 곳에서 출생하였음을 막론하고 그들의 하체를 범하지 말지니라” (레 18:9)

살붙이는 가까운 친척(close relatives)을 말한다. 야곱 때만해도 허용과 장려를 하던 상황이 수백 년 후에 바뀐 것이다. 그 동안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우리 몸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한결같은 하나님께서 조치를 바꾸실 때는 우리가 변했을 때다. 허락이 아니라 장려하던 근친결혼을 금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변명도 없이 명령하셨다. 사실인 성경적 역사를 보면 지금 이 시점에서 근친결혼 금지는 당연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는 역사관과 세계관으로 성경을 보는데 익숙하다. 그러나 성경을 사실로 놓고 볼 때 ‘가인의 아내’는 그 답에 어려움이 없다. ‘가인의 아내’에 대한 질문은 우리의 몸과 환경이 과거에도 지금과 똑 같았다는 사고로는 결코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이 기준이 아니라 성경적 역사가 사실이라는 생각으로 당시 상황으로 들어가면 분명한 해답을 얻게 된다. 더 나아가 자신이 갖고 있던 제한된 사고에서 벗어나서 처음이 좋았던 성경적 역사관을 갖추게 하는 귀한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질문에 대한 셋째 단계 : 미국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된 이유

이 질문은 특히 미국 사람에게 더 많이 받는다. 이 질문을 유명하게 만들었던 역사적 사건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1925년에 있었던 일명 ‘원숭이 재판’이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당시 미국의 테네시주 교육법 상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이 불법이었는데, 스코우프라는 고등학교 교사가 교실에서 진화론을 가르침으로 발생했던 소송사건이다. 1주일 동안 진행된 재판이 공판사상 처음으로 라디오로 전국에 생중계될 정도로 관심이 높았었다.

진화론 측 변호사는 재판이 일어나게 된 일차적 원인인 법적 문제보다는 거의 모든 시간을 성경의 난해한 부분을 공격하는데 할애하였는데, ‘가인의 아내’는 이때 그가 던졌던 질문들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이때 창조론 측 변호를 맡은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은 대부분의 다른 질문에 대하여는 답변을 잘했으나, 이 질문에 대하여 분명히 답변을 하지 못했다. 아래는 이 부분에 대한 대화 내용이다.

Q - 가인이 어디서 아내를 얻었는지 찾았습니까?
A - 아니요, 나는 이 부분은 불가지론적으로 남겨놓았습니다.

Q - 결코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고요?
A - 노력한 적이 없습니다.

Q - 노력한 적이 없어요?
A - 없습니다.

Q - 성경은 그가 아내를 얻었다고 말하지요. 그렇죠? 그때 지구상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단 말인가요?
A - 말할 수 없습니다.

Q - 고려해본 적이 없다고요?
A - 그것이 내게 어려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Q - 어떤 다른 사람의 언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아내를 얻었습니다.
A -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바입니다.

Q - 그녀가 어디서 왔는지 당신은 모릅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라디오와 신문을 통해 전파되며 더욱 여러 사람에게 알려진 질문이 되어버렸다.


.원숭이 재판에서 진화론 측 변호사인 대로우(좌)와 창조론 측 변호사인 브라이언(우)


코스모스’의 저자이며, 미국에 진화론이 들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진화론자 칼 세이건도 동일한 질문으로 크리스천을 조롱하기도 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가인의 아내’는 진화론자들에게 성경을 비판하는 일종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것이다.



출처 - 대전지부 계간지 “GooD” 33호 (2014년 4월)

구분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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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a Cosner
2014-04-03

하나님은 도덕적으로 괴팍하신 분인가?

(Is God a ‘moral monster’?)


        많은 성경 회의론자들은 만약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분이 행하셨다면, 그분은 매우 비도덕적인 분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에 대해 그렇게 묘사한 성경을 비난하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런 논점에 답하는 것을 힘들어 하며, 어떤 사람들은 이런 어려운 질문을 피하기 위해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 사이에 차이를 두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매우 큰 결함이 있다. 왜냐하면 동일하신 하나님이 구약과 신약 성경 모두에 영감을 불어 넣으셨기 때문이다. 사실상, 신구약 성경 모두 하나님은 사랑하시며, 오래 참으시지만, 동시에 죄를 참으시지는 않는다고 가르친다. 또한 예수님 자신도 구약을 인정하셨다(눅 24:44~47, 요 10:35). 더욱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은, 회의론자들의 공격이 근본적인 오해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희생제물?

실제로 인간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을 하나님이 용납하신다는 성경 구절은 없다. 사실상, 성경은 자기들의 자녀를 몰렉에게 희생제물로 바친 사람들을 가장 나쁘다고 비난했다(레 18:21, 렘 32:34-35).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이들은 대개 어린아이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자기 아들과 딸들을 희생제물로 바쳤을 때, 성경에서는 그들이 자녀를 악귀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쳤다고 말한다(시 106:37).

인간 희생제물은 살인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몹시 싫어하신다. 그것은 무고한 사람을 고의적으로 죽이는 것이므로 항상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회의론자들은 성경이 인간 희생제물을 명령하고 있다고 그들이 주장하는 몇 가지 구절을 인용한다.

창세기 22:1-8절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희생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것은 시험이었다는 것과 하나님은 결코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에게 해를 입히라고 의도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회의론자들은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경우에 생각해야할 몇 가지가 있다. 이즈음에 아브라함은 늙은이였고, 이삭은 아마도 십대 혹은 젊은 성인이어서, 그가 원하기만 하면 아버지에게 저항하여 도망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그를 묶을 수 있었고 그를 제단에 올려놓았다는 것은 이삭이 거기에 협조했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아브라함 자신은 이삭이 죽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최소한 그는 하나님이 그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실 것을 예상했다. 아브라함은 그의 하인에게 그와 그의 아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창 22:5).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그분이 이삭을 통해서 큰 나라를 이루시겠다고 하셨으므로, 가능한 경우의 수로는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이 다른 희생제물을 제공하시든지(결국 그렇게 되었다), 아니면 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살리시는 것이 있다. 이 구절에 관하여 히브리서 11:17~19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출애굽기 13:1~2, 11~16절에서 하나님은 장자에 대한 봉헌을 지시하신다. 어떤 회의론자들은 이것을 오해하여 첫 번째 태어난 아들들을 죽이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실상 이것은 첫 번째 태어난 자녀를 구속하기 위해 동물 희생을 명령하는 것이다. 13절에서는 나귀에 대한 대속을 말하고 있는데(나귀는 깨끗하지 않으므로 희생제물이 될 수 없다), 거기서 대속하지 않은 나귀는 그 목을 꺾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아들들에 대해서는 그런 선택이 없음을 주목하라. 오히려 아들들은 어린양으로 대속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중에 이 명령은 모든 사람의 첫 번째 태어난 사람 대신에 모든 레위인들에게 적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민 3:11~13).

레위기 27:28절에서는 사람을 ‘여호와께 바칠’ 수 있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일부 회의론자들은 이것이 사람이 희생된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헌신’의 한 가지 형태인 일생동안 성전에서 봉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이며, 나실인의 서약 같은 서약은 또 다른 형태의 헌신이다(민수기 6장, 삼상 1:10~11).

따라서 실제로 희생제물로 허용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문맥 속에서 읽어야 하는데, 이 문맥에서는 일생동안의 성전봉사에 헌신된 사람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것은 입다가 섣불리 서약한 이후 그의 딸의 운명과 같은 경우이다(삿 11:29~40). 이것은 그녀가 처녀로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해 몹시 슬퍼한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으로, 그녀에게 죽음이 다가와서가 아니라, 자기 아버지 계보가 끊어지게 될 것을 슬퍼한 것이다.

그 다음 구절은 이렇게 말한다. ”온전히 바쳐진 그 사람은 다시 무르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레 27:29). 이는 율법을 치명적으로 어긴 사람에게 죽음이 선고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그 선고는 무를 수 없다.


종족 말살과 전쟁 범죄?

민족 간의 전쟁이 고대 역사를 지배했었으므로, 구약에 전쟁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부 회의론자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정복할 때 하나님이 주셨던 일부 명령에 대해 비난한다.

가장 많이 인용하는 ‘잔학행위’는 아말렉 족속을 여자와 어린 아이와 재산을 포함하여 전적으로 파괴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러한 파괴를 명령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로부터 나올 때 그들이 대적했기 때문이다. 신명기는 이렇게 말씀한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신 25:17~18, 삼상 15:2~3).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시겠다고 맹세하셨다(출애굽기 17장). 그들은 자기들의 죄 때문에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고, 그 곳을 이스라엘이 대신 차지할 것이다. 그들의 죄에는 가증스런 부도덕과 어린이 희생제물이 포함된다. 이것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고, 이스라엘은 단지 그 심판을 위한 하나님의 대행자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모든 것을 철저하게 파괴해야 했고, 자기들을 위하여 아무것도 취하지 말아야 했다. 사울과 그의 군대가 아각 왕을 살려주고 가축의 일부를 취했을 때, 그것은 중대한 범죄였으므로, 하나님이 사울을 심판하시고 그에 대한 그분의 호의를 영원히 버리셨다(사무엘상 15장 전반부). 실제로는 일부 아말렉인들이 다른 곳에 남아있었는데, 사무엘상 30장에 보면 급습한 아말렉인 무리들을 다윗이 쳐부수었다.

아말렉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행동이 부도덕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분이 창조하신 사람이 그분을 거역하여 반역할 때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뿐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피조물을 그분이 택하신 방식으로 취급하실 권리를 갖고 계신다(사람들은 ‘놀고 계시는 하나님’이 이러한 특권들을 빼앗은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상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사람들의 혐오스런 일들을 답습한다면, 그들도 역시 그 땅에서 쫓아낼 것이라고 경고하셨다(신 29:18~28).


도덕의 기준은 선한 하나님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무신론자들이 성경의 도덕성을 공격할 때, 그들이 말하는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은 어디서 왔는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자신이 그 기준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그분이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그것을 임의적으로 하시지 않는다. 옳고 그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같은 노선을 취하느냐 아니면 맞서느냐에 의해 정의된다. 무신론자들은 도덕성에 대해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그는 어떤 개인이나 그룹의 주관적인 견해가 갖는 권위에 토를 달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의 기준이 주관적이라면, 그들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부과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서로 다른 시기와 장소에서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타락한 세상에서 사랑의 하나님의 말씀과 행하심.

성경의 내용 중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들은 반대할만한 것들일 수 있다. 사사기나 신명기를 읽을 때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많은 것들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것들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인류의 타락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들이 성경에 의해 승인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는 많은 경우에, 그분은 우리 마음의 완악함을 고려하셨다(마 19:8). 이것은 보다 큰 악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보다 작은 악을 허용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점점 더 드러내시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악을 제거하시는 길로 진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요한계시록 21~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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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ther Reading
Answering Bible skeptics


References and notes
1.See also Wieland, C., Jesus on the age of the earth, Creation 34(2):51–54, April 2012; creation.com/jesus_age.
2.Sarfati, J., What is good? (Answering the Euthyphro Dilemma), creation.com/euthyphro, 5 May 2007.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creation.com/god-moral-monster

출처 - Creation ex nihilo, Vol. 36(2014), No. 2, pp. 47-49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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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Carter
2014-03-28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 그는 몇 살이었을까?

(How old was Cain when he killed Abel?)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창 4:8)

세상에서 최초의 살인에 관한 이야기는 슬픈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에 관하여 많은 의문을 일으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관한 질문들 중 일부는 대답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성경의 문맥을 잘 이해하면 전혀 다루기 힘든 것도 아니다.

최근에 나에게 새로웠던 질문은 기독교인 작가와 토론하던 중에 생긴 것으로, 가인과 그의 동생 셋은 각각 몇 살에 결혼 했느냐는 것이다. 그는 그들이 결혼을 하려면 셋의 여동생들이 태어나서 자랄 때까지 오랜 세월을 기다렸어야 했다는 생각을 넌지시 비추었다. 그가 말하는 문맥으로 보면, 그의 생각에는 그때까지 그들이 결혼할 여성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성경에 아담과 하와의 세 번째 자녀로 언급된 셋은 아담이 백삼십 세에 태어났으므로(창 5:3), 가인은 오랫동안 기다렸어야 했다는 것인데, 맞을까?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 5:3~4).

사실상, 가인과 셋이 나이가 들었을 때는 결혼하기 위해 전혀 기다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가인이 첫 번째 출생인 것은 맞지만(창 4:1), 성경은 그의 누이들이 언제 태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고, 셋이 세 번째 자녀라거나 혹은 세 번째 아들이라고 하는 언급이 없다. 우리는 아담이 130세 되었을 때 셋이 태어났다는 것과, 다른 형제 아벨이 죽은 이후에 태어났다는 것만 알 뿐이다: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창 4:8)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창 4:25)

셋이 세 번째 언급된 아들이라고 해서 그것이 태어난 순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을 생각해 보라: 하와에게 있어서 130년 이라는 세월은 단지 세 명의 자녀만 낳았다고 보기에는 매우 긴 시간이다! 그것은 43년마다 한 자녀씩 낳았다는 말이다. 아담과 하와가 생육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으로 볼 때(창 1:28), 가인은 아마도 매우 일찍, 즉 창조주간 이후 1년 내지 2년 안에 태어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이후에 아벨이 태어났지만, 그가 반드시 가인 바로 다음일 필요는 없다. 아벨의 이름이 가인 다음으로 나오지만, 그것은 그가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벨이 두 번째 자녀라고 할지라도, 셋이 세 번째 자녀는 아닐 것이다.

셋이라는 이름은 그의 어머니가 예언적으로 붙여준 이름이므로(그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그가 지명했다”와 비슷하게 들린다. - 이상 저자주, 역주 - '셋”의 뜻은 ‘대신 누움’ 혹은 ‘갚음’이다.), 그는 아벨이 죽은 이후에 태어난 첫 번째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말의 의미는 아벨과 셋 사이에 다른 아들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셋이 노아의 가계에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가계에 들어있는 나머지 사람들도 반드시 첫 번째 태어난 자녀라고 볼 필요는 없다. 사실상 그럴 확률은 매우 작다. 아들이나 딸이 태어날 확률이 같다면, 아홉 세대 동안 첫 번째 아기가 아들로만 태어날 확률은 0.2% 이하이다. 여기에는 또 언급된 아들이 아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을 것으로 가정하고 있는데, 본문에는 그런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 사실상 그들이 모두 가장 나이가 많은 아들들이라면, 9세대 동안 각각의 아버지가 첫 번째 아들을 낳은 나이의 평균은 117세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창세기는 단순히 노아의 가계에 대한 기록일 뿐, 각 가정의 다른 자녀들에 대한 언급은 없다고 보는 것이 더 맞다. 가장 나이 많은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성경에서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가 마리아의 첫 태생이라는 그것만이 확실한 사실이다. 예수님의 생물학적 가계에 있는 거의 모든 중요한 사람들, 예를 들어, 셋, 셈,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 및 다윗 등은 장남이 아니었다. 장남이 아닌 다른 중요한 인물로 누구보다 요셉과 솔로몬을 들 수 있다.

문맥으로 보아, 가인이 자기 동생을 죽였을 때 그의 나이가 130살이 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 130년의 시간대 어디에선가, 그리고 셋의 출생 시기에 매우 근접하여, 지구상에 기록된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났다.

”그가 다른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으며”라는 공식이 마치 딸들은 항상 첫 번째로 아들이 태어난 이후에 나온 것으로 들리는데, 나는 가인이 결혼할 나이가 되었으며 (아마도 이미 결혼했을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 이미 여동생들이 있었고, 또한 이미 성경에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다른 형제들도 있었을 것이고,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는 가인의 나이는 이미 120살이 넘었을 것으로 주장하고 싶다. 이것은 추리에 의한 사실이지만, 셋이 태어난 이후에 여동생들이 태어났고, 그 여동생들이 자랄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인이 결혼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 가능성이 많다. 그가 조카나 조카의 딸이 나이가 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고 보는 것은 더 안 좋은 경우이다. 심지어 현대에 있어서 사람들의 생식 가능성을 보더라도(많이 낳을 때 평균 3~5년마다 한 명의 자녀를 낳는다면) 창세기 시대에 언급되어 있는 생물학적 가계는 태어난 모든 자녀들 중에서 선택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래된 질문인 ”가인은 어디서 아내를 얻었을까?”에 대한 답은 이런 식의 추론이 가능하다 :  가인은 자기의 누이와 결혼했으며, 그가 아벨을 죽이기 전에 이미 결혼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가인이 쫓겨나자마자 그녀의 존재가 언급되기 때문이다.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창 4:16~17).

어떻든, 하나님은 그로부터 2,500년 후인 모세시대 까지는 가까운 친족끼리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지 않으셨다(레 18:10). 성경에 언급된 중요한 예 몇 가지를 생각해 보자 : 노아의 손자, 손녀들은 그들끼리 결혼했음이 분명하다(그들 모두는 사촌 혹은 형제 자매였다). 아브라함은 그의 이복누이인 사라와 결혼했다(창 20:12).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사촌보다 가까운 리브가와 결혼했다. 그리고 야곱은 사촌보다 훨씬 가까운 레아와 라헬과 결혼했다. 그처럼 초기에는 가까운 친족과 결혼을 금하는 법이 없었다.

또 하나의 오랜 논쟁은 아담과 하와가 최초의 사람이 아니며, 성경은 그 당시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짐을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창 4:13~14).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시절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고 주장할 필요가 없다! 먼저, 그 본문은 처음의 창조로부터 약 130년이 지난 때의 일이다. 그리고 가인이 두려워한 것은 죽임당한 희생자의 살아있는 친척들로부터의 보복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그 수십 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문맥을 통해 볼 때, 족보의 자료와 창세기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건들의 순서를 고려해 보면, 이 모든 사건들이 모두 사실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creation.com/cain-chronology 

출처 - Creation ex nihilo, Vol. 36(2014), No. 2, pp. 16-17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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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e Hebert
2014-02-27

창세기의 낙타는 성경의 오류인가?

 (Genesis Camels : Biblical Error?)


      최근 텔아비브 대학의 고고학자들은 이스라엘-요르단 국경을 따라 나있는 아라바 계곡(Aravah Valley)에 있는 고대 구리 제련 캠프에서 낙타 뼈(camel bones)들을 발굴했고, 이들에 대한 방사성탄소(radiocarbon) 연대측정을 실시했다. 저자들은 실시된 방사성탄소 분석에 주로 기초하여, 남부 레반트(southern Levant,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남부를 포함하는 중동지역) 지역에서 가축화된 낙타의 최초 출현은 BC 900년 경이었다고 결론지었다.[1, 2] 그러나 성경 기록에 의하면, 길들여진 낙타는 아브라함의 시대인 BC 2100년 경에도 있었음을 가리킨다.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창세기 12:16). (또한 창세기 24장을 보라). 그렇다면 성경은 잘못됐는가?


언론 매체들은 레반트의 역사에서 가축화된 낙타를 너무 일찍 언급한 성경은 시대착오적이었다고 서둘러 주장했다.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 2014. 2. 10)의 기사는 창세기에 낙타가 기록되어 있는 것은 ”창세기가 오랜 세월 후에 구전되던 이야기가 편집되어 쓰여졌음을 가리키는 증거이며, 성경은 항상 신뢰할 수 없으며, 입증된 역사가 아니다”라는 대담한 주장까지 하고 있었다.[3]

이들 낙타 뼈들에 대한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이 정확했다 할지라도, 연구자들의 주장은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그들은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연구자들은 아브라함 시대에 남부 레반트에서 가축화된 낙타의 고고학적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 시대에 그 지역에 낙타가 존재하지 않음을 입증했다고 가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성경 비판가들이 늘상 사용하는 잘못된 주장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그들은 한때 성경이 히타이트족(Hittite people)에 대해서 언급했을 때, 성경의 오류라고 주장했었다. 왜냐하면 히타이트족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비판가들이 틀렸음이 확인되었다.[4]   


낙타가 족장들의 시대 동안에 이스라엘 땅에 극히 드물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낙타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 시대 이전인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에 길들여진 낙타가 존재했다는 증거들이 있다.[5] 더군다나 가축화된 낙타가 그려져 있는 (세속적 고고학자들도 아브라함 시대 이전으로 연대를 평가하고 있는) 이집트 유물이 발견됐었다. 거기에는 도자기로 만들어진 낙타의 머리, 테라코타 태블릿(terra cotta tablet), 낙타 모델, 암각화, 낙타털로 만든 밧줄...등이 포함된다.[5] 창세기에서 낙타는 아브람이 이집트에 있는 동안 바로가 선물로 주었을 때,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다.(창 12:16) 그래서, 가축화된 낙타가 아브라함 시대 이전부터 이집트에 있었다면, 그리고 이집트의 왕이 선물로 아브라함에게 주었다면, 아브라함의 낙타가 이삭과 야곱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존재했을 것이라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것인가? 어떻게 이것이 명백한 시대착오가 될 수 있는가?

100여 년 이상 동안, 성경 비판가들은 많은 보수적인 신학자들이 철저하게 믿고 있던 주장들을 사용하여, 성경에는 시대착오적인 낙타가 등장한다고 비판해왔다.[5, 6] 그러나 성경의 오류를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이들 최근의 비난자들은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으면서, 다른 고고학적 데이터들을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론 매체들의 과대 선전에도 불구하고, 창세기에 기록된 낙타는 성경의 오류가 아니다.



References

1. Sapir-Hen, L. and E. Ben-Yosef. 2013. The Introduction of Domestic Camels to the Southern Levant: Evidence from the Aravah Valley. Friends of the Institute of Archaeology of Tel Aviv University. 40: 277-285.
2. Finding Israel’s First Camels. American Friends of Tel Aviv University. Posted on aftau.org February 3, 2014, accessed February 13, 2014.
3. Wilford, J. N. Camels Had No Business in Genesis. The New York Times. Posted on nytimes.com February 10, 2014, accessed February 13, 2014.
4. Wilson, C. A. 1977. Rocks, Relics and Biblical Reliability. Grand Rapids, MI: Zondervan, 41.
5. Lyons, E. Camels and the Composition of Genesis. Apologetics Press. Posted on apologeticspress.org 2002, accessed February 14, 2014.
6. Caesar, S. 2006. The Wealth and Power of the Biblical Patriarchs. Bible and Spade. 19 (4).
 
* Dr. Hebert is Research Associate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received his Ph.D. in physics from the University of Texas at Dalla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8008/

출처 - ICR News, 2014. 2. 24.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861

참고 : 4448|5603|918|4878|4872|4870|4868|4726|4725|4723|4718|4714|4713|4663|4599|4514|4492|4488|4480|4463|4452|4451|4450|4416|4414|4413|4399|4387|4685|3249|3233|3218|3208|3166|3162|3148|3020|3022|2530|2321|2805|2688|2525|1756|1793|1790|720|721|4819|2330|5018|5035|5034|5033|5094|5275|5271|5395|5415|5402|5463|5578|5555|5514|5638|5625|5627|5628|5723|5741|5852|5861|5886|5969|5985|5986|6017|6066|6071|6089|6179|6205|6235|6283|6351|6353|6360|6387|6401|6432|6446|6458|6471|6529|6533|6564|6639

Russel Grigg
2013-10-01

아담의 갈비뼈로부터 창조된 하와 

(Eve created from Adam's rib)


       하나님은 왜 하와(Eve)를 아담의 갈비뼈(Adam's rib)로부터 만드셨을까? 결국, 하나님이 원하셨다면, 그분은 하와를 땅의 흙으로부터 쉽게 만들 수 있으셨다. 실제로, 하나님은 아담을 이런 방식(땅의 흙)으로 만드셨으며(창 2:7), 뿐만 아니라 '들의 모든 짐승' 및 '하늘의 모든 새'도 그런 방식으로 만드셨다(창 2:19). 그런데 왜 하나님은 하와를 다르게 만드셨을까? 아마도 그분은 아담과 하와의 역할에 관한 것뿐 아니라, '마지막 아담'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고전 15:45)의 역할에 관해서도 우리에게 알려주시길 원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좋지 않다”는 말의 첫 번째 언급

하나님이 하와를 창조하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창조 이야기에 있어서, 독자들은 이 문장이 귀에 거슬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이전까지, 인류의 타락 이전에는 그랬으리라고 우리가 예상할 수 있듯이, 하나님은 그분의 창조물들을 돌아보실 때마다 '좋았더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첫 번째의 '좋지 않은' 일로써, 해결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위한 돕는 배필'로서 하와를 창조하셨다(창 2:18하). ‘돕는 배필’(히브리어 에쩨르)이라는 용어는 역할이나 신분이 낮은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기능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그의 상대편 혹은 그의 보족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용어는 시편 33:20, 121:1~2에서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돕는다고 할 때 하나님께 사용되었다. 사실상 이 단어는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성경 이름 아짜리아의 어근이 된다. 하와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을 때 아담이 이렇게 말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창 2:23).


'한 몸'의 중요성

그러나 하와를 만들 때 꼭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었어야 했을까? 여기에 대해 캘빈은 이렇게 주석을 달았다: ”만약에 두 성(sex)이 서로 다른 원천으로부터 나왔다면, 그 둘은 서로 모욕을 했거나, 시기했거나 혹은 투쟁을 야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담의 몸 일부를 취한 이유는 그 자신의 한 부분을 보다 큰 자비심으로 끌어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갈비뼈 중의 하나를 잃었지만, 그 대신에 훨씬 더 가치 있는 보상이 그에게 주어졌다. 그는 신실한 인생의 동반자를 얻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에 그는 불완전했었는데, 이제 그의 아내 안에서 완전하게 된 그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하와 역시 아담과 관계를 맺고 있어야 했다 - 만약에 그녀가 흙으로부터 창조되었다면, 전적으로 독립적인 창조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담의 한 부분으로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독특한 방법으로 아담의 후손이 되었다.

하와가 아담의 후손인 것은 그녀의 구원 가능성을 위해서도 중대한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오실 메시야를 '친족-구속자'(사 59:20), 즉 그가 구속할 사람들과 혈연으로 연결된 사람이라고 썼다. 히브리서 2:11~18절은 예수님이 어떻게 해서 천사(혹은 성질상 외계인으로 가정되는 존재)를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형상을 입으셨는지를 설명해 준다. 예수님은 문자 그대로 우리의 친척이 되기 위해, 이 하나의 인간 가족의 한 부분이 되시기 위해 아담의 계보 안으로 들어오셨다(눅 3:23~38). 모든 사람들이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면, 이 필수적인 친족-구속자 개념은 토대가 무너진다. 아니면 역으로 말해서, 오늘날 아담의 후손이 아닌 사람들이 있어서 아담을 통해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그들은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두 가지 상황 모두 성경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책임

최초로 창조된 인간으로서 아담은 인류의 연합적(혹은 책임 있는) 머리였고, 지금도 그렇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을 향한 자기의 태도가 인간 역사의 과정을 결정한 사람이었다. 연대기적으로 아담 이후에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담으로부터 창조된 하와는 비록 그녀가 아담이 금지된 과일을 먹기 조금 전에 그것을 먹었지만(창 3:6), 성경에서 볼 때 하와에게는 이런 책임이 주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명령을 준 사람은 아담이었으며(창 2:16~17), 아담은 하와가 그 과일을 먹었을 때 그녀와 함께 있었다(창 3:6). 그러나 명백하게, 그는 그녀가 그 경고를 흘려버리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창 3:1~3). 죄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대항하여 그분과 무관하게 살려는 욕망이다. 신약에서는 하와가 (뱀에게) 속은 것이지,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고 확언한다(딤전 2:14). 따라서 아담은 고의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기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즉 마음속으로 이미 저질렀던 죄가 공공연하게 드러난 것이다(마 15:19).

신약성경은 고린도전서 15:21~22절에서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한데 대해 아담에게 책임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아담이 인류의 머리였던 것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받은 인류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롬 5:12-21, 엡 1:22-23; 5:23).


그리스도 중심의 결혼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

결혼이라는 것이 하나님에 의해 설립된 한 가지 이유는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우리가 그려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일부일처 결혼은, 두 남자 혹은 두 여자 혹은 기타 다른 조합 사이의 ‘결혼’이 보여줄 수 없는 방식으로 이 목적을 잘 보여준다. 사실상, 예수님이 결혼에 대해 가르치실 때(마 19:3~6, 막 10:5~9), 예수님은 창조 기사를 실제의 역사로써 인용하셨다(창 1:27, 2:24).

더욱이 성경은 결혼 안에서 남편과 아내의 특별한 역할을 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긴 구절은 에베소서 5:22~33절이다. 남편들에게는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25~27절),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28~30절), 그리고 이것이 다른 모든 의무보다 앞선다(31~33절)고 말한다. 아내들에게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22절)고 말한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3:28절에서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는 바울의 주장과 모순되지 않는다.

다음을 주목하라: 결혼을 하면 우리는 마치 (은유적으로 말해서) 우리에게 부모가 없었던 것처럼 우리의 부모를 떠나야 한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에게 (문자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부모가 실제로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에 있어서 우리는 최소한 이상적으로는 마치 (은유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한 몸’인 것처럼 서로에게 밀착해야 한다. 왜냐하면 (문자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하와가 실제로 아담의 몸에서 취해졌기 때문이다.


상처를 통해 나온 신부

하나님이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를 만드셨을 때, 창세기 2:21~23절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담의 신부가 될 하와는 (문자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아담의 옆구리에 있는 상처를 통하여 태어났다.

마지막 아담이신(고전 15:45)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죽었을 때 옆구리를 창에 찔린 것은 예언을 성취시키신 것이다(요 19:34, 36~37; 슥 12:10). 이것은 그분의 죽으심 직후에 일어난 일이며, 그 죽음은 첫 번째 아담의 죄 때문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죄에 대한 희생으로, 하나님의 어린 양의 옆구리에 있는 그 상처로부터 흘러내린 것은 보배로운 피로서(벧전 1:19), 그것을 통하여 믿는 자들이 죄로부터 깨끗하게 된다. 이들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신부가 될 교회의 구성원이 된다. 따라서 은유적으로 말해서, 예수님의 신부가 될 교회는 그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린 상처에서 ‘태어난다.’


하늘에서 신랑 신부의 연합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죽음과 악의 멸망 이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의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다(계 19:6~9). 복음이란 비록 첫 번째 남편인 ‘아담 안에서’ 우리 모두가 죄를 지었지만, ‘마지막 아담’이시며, 교회의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가 모두 구속 받는다는 것이며, 또한 그분을 통하여 우리가 '죄들의 용서함'을 받고, '의의 선물을 값없이' 받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는 것이다(골 1:14; 롬 5:17; 요일 3:14).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www.creationmagazine.com/creation/2013vol35iss4?pg=42#pg42

출처 - Creation ex nihilo, Vol. 35(2013), No. 4, pp. 42-44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753

참고 : 3730|512|5458|3689|4452|3628|5440|5163|5578|4870|4726|4725|3967|3376|3379|3381|3393|3395|3397|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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