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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김정훈
2005-03-21

다시 생각해보는 창조의 순서와 그 내용


      창조과학 사역을 하면서 성경에 관하여 많은 질문을 받게 되는데, 한 번은 어떤 교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질문을 받게 되었다. 창세기 1장과 2장을 보면, 창조의 순서에 있어서 언뜻 모순되어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실제로, 창세기 1장에 보면, 식물이 먼저 창조되고(1:11-12) 그 후에 사람이 지은바 된 것으로(1:26-27) 기록되어 있는데, 2장에서는 그 순서가 바뀌어 마치 식물이 사람보다 나중에 창조 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기록이 있음으로, 이 부분에 대한 분명한 해석상의 정리가 있어야만 하겠다는 생각을 필자 자신도 같이 하게 되었다. 아울러 이 기회에 창세기 1장과 2장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으며, 각각의 창조의 순서는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는지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창세기 2장의 성격부터 분명히 이해해 보도록 하자. 앞서 1장에서 연대기적인 창조의 기술이 있은 후 그 결론이 2장 3절까지 이르러서 일단락을 지음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뒤에 이어지는 2장의 내용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은 2장에 나오는 창조의 내용은 1장과 서로 다른 창조의 기사를 후대에 와서 편집하여 합쳐 놓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같은 주장은 소위 '문서설'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데, '문서설'이란 그 이론 자체에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성경의 영감성을 부인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옴을 인하여 사실 신앙생활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이론이다. 여기서 2장 4절이 뒤에 나오는 창세기 2장 전체의 해석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Westminster 신학교의 구약학 교수를 지낸 Edward J. Young 박사는 이 구절을 단호하게 표제문으로 본다. 다시 말하면, 4절은 앞서 1장의 창조의 내용에 대한 종결문이 아니라, 새로운 문단을 여는 표제문으로 봐야 옳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4절에서 사용된 '대략' 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톨레돗' 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 단어가 창세기에서만 열 번이나 사용되고 있으며, 그 때마다 새로운 문단을 시작할 뿐만 아니라, 앞서 기술한 어떤 주제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이고 자세한 설명으로 범위를 좁혀 가며 기술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2장 4절에서도 이 구절이 사용됨으로써 앞서 1장에서 기술한 창조의 내용을 이제 보다 자세하게 그 중의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하려고 한다는 게 자명해 진다. 결국, 창세기 2장은 1장의 내용을 보완하며 동시에 에덴 동산으로 창조의 시선이 모아간다. 이는 또한 뒤에 3장에 나오는 에덴 동산에서의 인류의 타락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3장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창세기 2장의 성격이 1장의 많은 창조 내용 중에서 특히 인간의 창조와 에덴 동산의 환경을 1장에 대하여 보완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진다면, 그 안에 기록된 창조의 순서와 내용 또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2장 5절은 분명히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한가지 주목하여야 할 부분은 '들'과 '밭'은 동일한 원어에서 나온 단어로서 인간의 농사를 암시하고 있는 단어라는 점이다. 실제로 영어 성경은 이 부분을 번역할 때 들의 초목(plant of the field) 과 밭의 채소(herb of the field)라는 말에서 같은 field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이 같은 사실은 5절 앞부분에 아직 비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과 경작할 사람이 없었다는 기록에 의해 더욱 뒷받침되고 있다. 사실 밭(field)이라는 것은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얻게된 결과로써, 가시덤불과 엉겅퀴와 싸우면서 이마에 땀을 흘린 후에야 비로소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얻어 낼 수 있는 땅의 일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  결국 5절에 기록된 내용은 앞서 1장에서 창조의 셋째날,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으로 표현된 지상의 모든 종류의 식물이 '땅'에는 이미 창조되었으나(1:11-12), 인간의 노력에 의하여 땀흘려 농사 지으며 가꾸게 될 '밭'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는(2:5) 뜻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그럼 여기서,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창조의 순서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우선 하나님께서는 1장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으로 지구와 함께 모든 우주에 필요한 구성 물질을 창조하셨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여기서 사용된 창조하다의 히브리어 'bara'는 무에서 유의 창조를 가리키는 특별한 단어로서, 이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임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 지구는 아직 혼돈하고 공허한 상태에 있었다(2절). 이제 하나님께서는 빛을 창조하시고, 그 빛을 중심으로 지구를 한 바퀴 자전시키심으로, 저녁이 되며 아침을 오게 하여 지구에 첫째 날을 되게 하셨다(3-5절). 여기서 창조된 빛은 태양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우주의 어딘가 에서 단지 지구를 비추는 빛의 근원에 대한 창조를 가리킨다고 여겨진다. 한 가지 더 주목하여 말할 것은 여기서 창조된 빛은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하나님 자신이 빛을 비추는 그런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하나님 자신이 피조물이 되는 우스꽝스런 결과를 낳고 말기 때문이다. 둘째 날은 궁창을 만드시고, 물을 둘로 나눠 궁창 위의 물과 그 아래의 물로 나누시었다(6-8절). 여기서 궁창 위의 물은 당시 지구의 환경과 후에 노아의 홍수 사건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셋째 날에는 육지가 드러나면서 식물이 만들어진다(9-13절). 식물은 본래 광합성을 할 때 태양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만, 이 때 창조된 식물은 이미 잎사귀가 무성한 장성한 식물로서 태양이 있기 전에 만들어 졌어도 다음 날 태양이 나올 때까지 충분한 양의 에너지가 이미 그 잎사귀에 저장되어 있었을 것이며, 또한 첫째 날 만들어진 보다 근원적인 빛이 지구를 비추고 있으므로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라는 측면에서 하등의 문제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어서 하나님은 놀랍게도 넷째 날에 가서야 비로소 태양과 달과 별을 만드시는데(14-19절), 태양에서 지구가 떨어져 나왔다는 식의 진화론적 사고와는 정반대의 순서로 창조를 하시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족속들은 한결 같이 태양을 하나의 신으로 숭배하였던 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 태양을 하나의 피조물로써 넷째 날 만드신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제 태양이 창조됨으로써 지구를 비추는 빛의 역할을 태양과 달, 그리고 별들이 맡아 하게 된다. 다섯째 날이 이르러 하늘의 새와 물 속의 생물을 창조하시는데(20-23절), 이때 다시 한 번 'bara' 라는 특별 동사를 사용하신다. 아마도 이제까지의 식물을 포함한 다른 피조물에는 없는 무언가를 동물을 창조하실 때 새로이 창조하신 것 같다. 어떤 학자는 이것을 'soul' 로 보는데, 꽤 설득력이 있는 생각이다. 이제 여섯째 날이 이르러서는, 땅 위의 모든 생물과 사람을 지으시는데(24-31절), 사람을 창조하실 때 다시 한번 'bara'가 사용됨으로 이제까지의 피조물에는 없는 근본적인 새로운 것을 사람에게 새로이 창조하여 주심을 볼 수 있다. 동물을 포함한 모든 다른 피조물에서는 찾아 볼 수 없고 오직 사람만이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의 형상, 'spirit' 이 아닐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하필이면 6일간에 걸쳐서 창조를 하셨을까?  그 분은 본래 전능하시어서 단 하루 만에도 천지를 지으실 수 있는 분이 아닌가?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제 칠일 째 되는 날 친히 안식을 하심으로(2:1-3), 우리도 하나님처럼 6일 동안 힘써 일하고 7일에는 안식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을 갖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출20:8-11).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진리임에 틀림이 없다. 진화론적 사고에 익숙하여 창조의 각 하루를 수억 년의 긴 연대로 인식하는 혹자들에게는 6일 창조의 내용이 오히려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가령, 셋째 날 만들어진 식물이 수억년 동안을 태양도 없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6일의 노동 후 7일째 안식의 개념은 또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하나님께서 수억 년을 안식하셨어야만 된다는 결론이 아닌가?  성경은 창조의 기록에 있어서 분명하다. 창세기 1장은 창조의 순서를 6일 간에 걸쳐 명시하고 2장에서는 초점을 에덴 동산으로 모아 3장에서 타락된 존재로서의 우리의 실체를 밝힐 준비를 한다. 창세기 1-2장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고는 인간이 상상하여 쓸 수 있는 종류의 글이 아니다. 여기에 성경의 위대함이 있다.

'이브의 배꼽, 아담의 갈비뼈' 중에서

 

*참조 : 시간의 창조(上) : 상대성이론 성서의 '6일창조설' 뒷받침

http://www.kacr.or.kr/bbs/view.asp?tn=news&key_id=750&b_no=697


출처 - 이브의 배꼽, 아담의 갈비뼈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528

참고 :

김무현
2004-11-18

가인이 두려워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성경을 비판하는 사람들(특히 진화론자들)중에는 ”아담이 가인과 아벨을 낳고 가인이 아벨을 죽였는데, 그의 아내는 어디서 얻었으며, 그 가인이 주위에 무서워했던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성경이 그 자체적으로 모순이 있기 때문에 창세기가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라 사람이 지어낸 신화와 같은 책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이 질문은 1925년에 테네시주에서 있었던 그 유명한 스콥스 재판(Scopes trial)에서 유창한 ACLU의 변호사 대로우(Clarence Darrow)가 성경을 믿을 수 없는 근거로 내 걸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이러한 성경의 비판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먼저 다음의 성경구절들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4:1-2절로 보아 가인과 아벨이 첫째와 둘째 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창세기 4:3을 보면 ”세월이 지난 후에” 라고 되어 있고, 그 후, 가인이 아벨을 살해하고 유리 방황하다 놋 땅에 거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창세기 4:25을 보면 셋의 출생은 아벨의 죽음 바로 다음이며(그래서 아담이 셋을 ”아벨대신 얻은 자(replacement for Abel)”라고 불렀음) 창세기 5:3을 보면 아담이 130세에 셋을 낳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처음부터 출산 가능한 성인으로 창조되었음은 성경이 말하는 바이고, 하나님이 아담에게 준 문화명령 중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Be fruitful and multiply)” (창세기1:28)가 중요한 요소 였음을 고려한다면, 가인과 아벨의 출생 후 아벨이 죽고 셋이 태어나기까지는 120년 정도 이상의 기간이 있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창세기 5:5에 아담이 930세까지 살았음을 감안한다면, 그 120년 동안은 하나님 명령에 충실하게 많은 자녀들을 낳았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자녀들이 하나님의 문화명령을 따라 또 결혼하여 많은 자녀를 낳고, 이 과정이 120년 동안 계속된다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가인이 아벨을 살해했을 당시 공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창세기 4:14의 가인이 '나를 죽이려 할 것이다.'라고 했던 사람들이 가인이나 아벨과 전혀 관계가 없던 다른 족속(race)이었다면,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설사 알았다 한들 죽이려고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본다면, 아마도 그들도 아벨과 깊은 관계가 있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는 왜 구체적으로 다른 자녀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창세기 5:4을 보면 아담에게 많은 자녀가 있었다는 것 외에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내용만 선택하여 주신 메시지입니다. 아마 창조에 관한 기사만 해도 하나님께서 미주알 고주알 다 쓰셨다면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전체의 분량도 모자랐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21:25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한복음 21:25)

성경에서는 계보를 기록할 때, 이러한 원리로 꼭 필요한 사람들만 인용합니다. 그러므로 가인과 아벨 출생 후 120여 년 동안 아무도 태어나지 않았다가 셋이 태어났다고 해석한다면 오히려 더 무리가 있습니다.

어떤 크리스천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 이외에도 동시다발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든 것이 아니냐?” (유신론적 진화론자 또는 진화론자들은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화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겠지만)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렇지만 성경 전체의 가르침은 분명히 우리들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며, 그 첫째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죄와 사망이 시작되었고(그 때문에 그 후손들은 영적으로 눈먼 상태로 태어남),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둘째 아담(예수)으로 피의 언약을 완결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관점은 대단히 비성경적 입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사도행전 17:26)

최근 진화론 과학자들에 의해서 오히려 창세기와 사도행전 17:26 말씀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많은 종족의 미토콘드리아 DNA(반드시 모계로만 승계됨)를 자세히 분석한 결과, 지구상의 모든 종족이 한 여자로부터 유래했다는 연구발표가 권위있는 진화론 저널에 몇 차례 발표되었습니다. 이 연구 후, 다른 연구팀에 의해서 많은 종족의 Y염색체(Y-Chromosome: 부계로만 승계됨)를 자세히 분석하여, 모든 종족이 한 남자로부터 유래했을 것이라는 같은 결론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연구결과들은 그 동안 진화론자들이 전통적으로 고수해온 ”현 인류가 지구 여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화하여 지금에 이르렀다”는 견해를 뒤집고 미궁에 빠뜨리게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연구의 결과로 자연주의에 세뇌된 진화론 과학자들이 성경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로마서 1:21-22)

그들은 ”동시에 진화되어 온 여러 다른 종족들이 있었을 텐데, 그 중에 오직 한 여자, 한 남자의 자손들만이 다른 종족과 하나도 섞이지 않은 채로 현재의 모든 인류의 조상이 되었으며, 다른 종족들은 이유는 모르지만 모두 멸종되었고, 그 후손을 하나도 남기지 못하였다” 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은 과학이 아니라 신념입니다. 하여튼, 진화론자들은 굉장한 믿음의 소유자들입니다.

또, 성경을 비판하는 진화론자들이나 일부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한 부모의 자녀들이 서로 결혼하게 되면 기형아가 태어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하던데 아담과 하와로부터 인류가 퍼지기 시작하였다는 창세기의 기사가 모순이 있는 것이 아니냐?” 라는 질문을 자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모든 것을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첫째 인류 아담의 불순종의 원죄 이후 모든 피조세계는 저주를 받고 심각한 문제점들이 발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돌연변이(genetic mutation)는 유전자 복제시 이상이 생긴 것으로서 이 중의 한 현상입니다. 타락 이후, 이 돌연변이(genetic copy error)가 계속 후 손으로 전해지고, 그것들은 점점 증가되며 누적되게 됩니다.

한 사람의 유전자는 아버지로부터 반, 어머니로부터 반을 물려받게 됩니다. 부계나 모계의 유전자중에는 돌연변이에 의한 비정상 부분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만약 유전적으로 관계가 먼(즉 가까운 친척이 아닌) 남녀가 결혼하게 되면, 이러한 반쪽의 유전자에 있는 카피 에러가 정확히 겹칠 수 있는 확률이 매우 줄어들며, 반대로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운(즉 가까운 친척 안에서) 남녀가 자녀를 낳게되면 그 카피 에러가 겹칠 확률이 매우 커집니다. 만약에, 부계와 모계의 카피 에러가 정확히 겹치지 않으면 정상의 것이 비정상의 것을 수정하도록(override) 되어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정확히 겹칠 시에는 수정이 불가능하고 그러므로 유전적 결함을 갖는 기형아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근친결혼을 법적으로 금지시켜놓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돌연변이가 계속 증가하고 대대로 누적되며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 현상이지, 처음의 아담의 후손 시에는 그런 문제가 거의 없었을 것이고, 홍수심판 후 노아의 후손들 사이에서도 매우 희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세월이 갈수록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임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18장을 통해 근친 결혼 불가법 (The law forbidding marriage between close relatives)을 주시며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하고 계십니다(물론 모세는 이러한 유전학적 이유를 몰랐을 터이지만).

이러한 유전학적 사실들은 진화론 유전학자인 마르쿠스(John Marcus) 박사가 ”인류가 과거 초기에는 유전적으로 매우 강하였으나, 돌연변이가 많이 누적된 현생 인류는 유전적으로 매우 약한 상태”라고 지적한 바와 같이 진화론 측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학설입니다.

결국, 가인의 아내는 아담과 하와의 수많은 후손 중의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인이 두려워 한 사람들도 그 후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족인 아벨의 죽음에 대해서 그토록 흥분하고 가인을 죽이려고 까지 한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가인과 아벨과 전혀 관계가 없는 동시 다발적으로 진화한 사람들이었다면, 오히려 자기와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가인이 두려워 떨 만큼 그토록 흥분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를 크리스챤들이 스콥스 재판에서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후, 성경은 불신자들이나 진화론자들에게 아주 우스운 책으로 여겨졌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로 쓰여진 책(God breathed words: 디모데후서 3:16)입니다. 진화론으로 세뇌된 우리들이 함부로 ”이러한 성경구절은 상식이나 과학에 맞지 않아!”하며 성경의 권위나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을 가볍게 판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역대상 29:11)


구분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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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2530|2074|5895|4878|4872|4870|4868|4726|4725|4723|4718|4714|4713|4599|4578|4540|4514|4492|4488|4480|4463|4452|4451|4450|4416|4414|4413|4400|4399|4394|4391|4390|4385|4383|4387|4376|4375|4329|4685|4237|4148|4100|4071|4043|3945|3932|3872|3707|3689|3641|3633|3628|3311|3302|3249|3233|3218|3208|3166|3162|3148|3020|3022|2321|2805|2688|2525|1756|1793|1790|720|721|4819|2330|5861|5852|638|5753|5741|5723|5638|5628|5625|5578|5555|5514|5094|5463|5415|5402|5395|5275|5271|5035|5034|5033

이재만
2004-09-14

창세기 1장 (33) - 완벽하게 끝맺은 창조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창 2:1)


창조의 끝에 성경이 여러 번 강조하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마치셨다'는 의미이다.  2장 1절에는 창조를 다 이루니라(completed), 라고 되어있으며 2절에는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 마치시니(By the seventh day God completed His work)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done)'라고 하셨다.  3절에도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라고 하셨다.


창조역사가 마쳤다는 말씀은 완벽한 창조를 드러내는 '하나님이 지으시던 모든 것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1:31)'는 구절과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완전하게 끝마치셨다는 의미이다.  창조는 더 이상 진행되지도 않았으며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실로 완벽한 창조를 마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 칠일에 안식하셨다.


만약에 기원에 대한 어떤 이론이 창조가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면 이는 성경과 위배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의견으로 만들어진 어떠한 기원모델도 창조역사가 그쳤다고 하는 것을 찾을 수 없다.  진화론자들은 아직도 진화가 계속되고 있다라고 말하며 진화가 진행되는 모습을 찾으려고 수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하는 대표적인 진화모델인 빅뱅이론도 지금도 우주는 진화하고 있으며 지금의 진화하고 있는 모습을 찾으므로 과거로부터 우주가 진화했음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이렇게 완전하게 이루어진 피조세계는 바로 인간의 죄로 인하여 깨어지기 시작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롬 5:12).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이 완벽한 세계에 들어갈 수도 없었으며,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할 수가 없어진 것이다.  죄를 짓기 전 아담과 같지 않으면 도저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런 존재가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living soul)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life-giving spirit)이 되었나니” (고전 15:45).  바로 죄를 짓기 전의 완전했던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과 같이할 완벽한 세상의 소망을 갖게 되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2).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고후 5:17).


기독교적 세계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완벽한 창조와 인간에 의한 타락과 저주, 그리고 그리스도 구속을 통한 완벽한 세계의 성취를 말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올 소망은 하나님의 완벽한 창조의 확신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창조모델은 결코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나올 수가 없으며,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계시로만이 가능한 것이다.  바로 인간타락 전의 모습인 창세기 1장과 2장을 통해서이다.


진화론은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과 거꾸로 시작은 불안정하고 점점 완벽을 향하여 가고 있다고 가르친다.  생존경쟁을 통하여 미래가 열린다고 말한다.  복음을 통한 소망을 흔들어놓았다.  바로 창세기를 흔들므로 그렇게 한 것이다.  죄로 인하여 더욱 완벽이 깨어지는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소망을 주시고 하나님의 완벽한 창조사실을 그려볼 수 있도록 하여주신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209

참고 :

이재만
2004-09-13

창세기 1장 (32) -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여섯째 날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 1:31b)

성경은 매번 창조의 하루가 지날 때 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몇째 날이니라”로 마친다. 그리고 이것이 여섯 번 지속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과학적인 이해로는 24시간씩 지구가 자전을 여섯 번 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구절은 창조주간의 마지막인 여섯 번째 하루가 지났음을 의미한다.

창세기 1장을 접하기에 앞서 먼저 우리는 진화론뿐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진화론적 지질시대에 벗어나야 한다. 수 십 억년씩 하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숫자에서도 자유 하여야 한다. 또한 창조의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이 조작한 진화론적 우주와 지구의 생성모델에서 벗어나야 한다.

앞서 이 글을 통하여 하루가 지날 때마다 다루었던 진화론에 영향을 받은 해석들을 언급해왔다.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사이를 늘이려고 했던 간격이론, 진화론과 창세기를 타협했던 유신론적 진화론과 진보적 창조론, 하루를 지질시대와 연결시키려고 했던 날-시대이론(day-age theory) 등이 과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다루었다. 한편, 타협을 너머 사실임을 회피했던 구조가설(framework hypothesis)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 우주, 식물, 동물들의 완전하게 디자인된 모습을 그려보았다. 여기에는 시간적 간격이 들어갈 수 없으며, 오히려 시간이 들어가면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우주의 완벽성은 시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창조주의 신성과 능력만을 보여준다. 식물이 없이 동물이 존재할 수 없다. 물론 곤충을 포함한 동물 없이 식물이 존재할 수 없다. 누가 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이는 아주 짧은 시간에 행하지 않았으면 안 된다. 창조의 기간을 늘이고자 하는 마음은 진화론에 영향을 받은 자신의 편견을 성경에 맞추고자 하는 욕심일 뿐이다. 자신의 한계에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자 하는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창세기 1장의 창조가 오늘날의 하루 여섯 번이 지나면서 이루어졌다는 것만 남았다. 성경에서는 여기에 추호의 양보가 없다. 매번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실 때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출 20:11)' 라고 직접 말씀하신다. 출애굽기 32절에도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에 기록을 찾아볼 때 어디에도 이에 대하여 타협이 없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6일 동안의 창조를 믿는 것은 그 사실 자체를 너머서 말씀에 대한 자신의 태도에 관련이 된다.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였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를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뇨?” (사 40:13-14)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모사의 위치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사의 위치인가 하는 자세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이 항복하든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편견에 항복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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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재만
2004-09-10

창세기 1장 (31) - 하나님의 Very Good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31a)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신 후에 하신 말씀이다. 이전에는 여섯 번에 걸쳐 ”보시기에 좋았다(good)”고 하셨는데, 창조를 마치신 후에는 특별히 '심히 좋았다(very good)'고 하셨다.


창세기 1장은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완벽하고 선하신 창조과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극치의 완벽하고 선한 창조의 모습을 강조하셨다. 여기에는 어떤 불완전하고 보기에 좋지 않은 모습을 찾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시간 공간 물질을 창조하셨다. 완전한 빛과 대기와 땅과 바다 그리고 식물들을 창조하셨다. 완벽한 상태로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셨다. 완전한 물고기와 새와 짐승들 그리고 완전하고 선한 인간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시행착오도 없으셨고 처음부터 완전했다. 창조하시는 순간마다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으며, 그 결과도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했다.


만약에 창세기 1장을 보면서 어떠한 불완전한 창조의 과정이나 모습을 그린다면 분명 잘못된 해석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면 하나님이 악을 통하여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는 이율배반적인 성품을 가진 분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에는 불안전한 어떤 부분도 찾을 수 없다. 과정도 완전했으며 결과도 완전했다. 선하지 않은 과정도 볼 수 없다. 과정도 선했으며 결과도 선했다. 완전하고 선하신 하나님의 성품이 그 피조물에도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인간이 만든 수많은 창조모델 가운데 어디에도 과정과 결과가 이와 같이 완전하고 선한 것을 찾을 수 없다. 이는 스스로 깨달아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진화론은 처음이 완전하지 않았으며 시간에 따라 더 완전한 상태로 간다고 한다. 이에 영향을 받은 우주의 모델인 빅뱅이론도 마찬가지 이다. 처음부터 인간과 생물이 살기에 완전한 우주를 말하지 않는다. 이런 모델들은 과정이나 결과에서 완전함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들은 과학적으로도 결함이 있을 뿐더러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하고도 거리가 멀다.


이러한 완벽한 창세기 1장의 모습에 금이 간 것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았다고 성경은 말한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인간 스스로 도저히 바른 창조모델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일단 죄악으로 떨어진 인간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알 수가 없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what is seen)은 나타난 것(things which are visible)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3). 이것이 첫 믿음이며, 이 믿음 없이는 눈에 보이는 모습을 보고 시작의 모습을 그려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며 진화론적인 사고인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처음을 바르게 믿어야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왜 이런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죄악 된 우리는 타락 전의 창세기 1장이 말하는 완전한 세상을 도저히 그릴 수 없다. 그러나 감사할 것은 도저히 그릴 수 없는 우리에게 창조의 완전했던 모습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소망으로 완전히 회복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창세기 1장의 완전히 선한 모습에 대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히 회복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믿음하고 직결된다. 그런 면에서 창세기 1장에 대한 순수한 믿음은 죄로 인해 저주 받은 이 땅에 대한 미련 보다 죄 없는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간절히 바라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망이 구체화되면 될 수록 이 땅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더욱 구체적으로 변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 (살전 1:3)를 갖고 살게 되는 것이다.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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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재만
2004-09-10

창세기 1장 (30) - 채식동물과 육식동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30)

창조하신 동물들에게는 푸른 풀을 먹이로 주시는 장면이다. 인간에게는 식물(plant) 중에서도 채소와 과일을 음식으로 주시는 반면 동물들에게는 푸른 풀을 먹이로 주고 계시다. 어쨌든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 셋째 날 창조된 식물을 자신의 신체를 유지할 수 있는 주 에너지 원으로 주신 것이다.


오늘날 많은 동물이 육식을 하거나 잡식을 한다. 성경에는 인간에 대한 육식의 언급은 노아홍수 직후지만 동물에 대하여는 직접적 언급이 없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직후였는지 아니면 인간에게 육식을 허용한 노아홍수 직후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방주 안에 모두 탑승한 것을 보아 인간과 같이 홍수직후 였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세우는 사람도 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창조당시 즉 인간의 죄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만을 먹고 있었다는 것이다.


육식동물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등은 하나님의 저주동안에 생겼을 수도 있다. 이는 뱀에게 저주를 하여 배로 다니고 흙을 먹게 하였던 장면(3:14)과 땅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장면에서, 인간이 타락한 후에 피조물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빨이나 발톱이 꼭 육식동물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채식동물에게도 요긴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어떤 모습들은 창조될 당시 모습 그대로 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생물학적으로 육식동물과 채식동물이 왜 생겼을까 하는 것은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 중 하나이다.


실제로 육식동물에게 채식만 시켰을 경우에 신체적 어려움 없이 잘 자란다. 예를 들어 1980년도에 웨스트뷰(Westbeau) 부부가 자신이 키우는 아프리카 산 암 사자인 Little Tyke(사진)에게 9년 동안 고기 없이 곡물, 달걀, 우유만 먹인 적이 있다. 그런데 결과는 다른 사자와 다름없이 건강하게 살았다. 훈련도 잘 받아서 양이나 병아리를 보고 식욕을 전혀 느끼지 않을 뿐더러 함께 놀기도 한다. 고기를 주어도 거절하는 사진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러한 예뿐 아니라 육식동물로 분류된 동물에게 채식만을 먹였을 경우 생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사 11:6-9)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그리고 보고있는 것들은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에 의해 변화된 것들이다. 탄식하며 고통 받는 피조물을 보고 있는 것이다 (롬 8:22). 우리는 도저히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했던 그 모습을 완전히 상상할 수 없다. 단지 저주 받기 전 모습을 보여주는 성경을 통하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완벽하게 회복된 모습이 기록된 성경을 통하여 믿음으로 소망을 갖고 있을 뿐이다.

  

*참조 : The Scriptural advent of animal carnivory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5_1/j15_1_69-75.pdf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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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
2004-09-08

창세기 1장 (29) - 채식과 육식의 기원을 통해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창 1:29)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신체유지에 필수적인 음식을 준비하셨음을 가리킨다.  바로 음식의 기원이다.  그런데 음식을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명령을 하셨다는 것이 흥미롭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28절)”고 명령을 하신 다음에 자신이 직접 마련하신 음식을 보이셨다.  그 지상명령을 수행하기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당하는 방법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채소와 과일이 어디에 있었냐 하면 온 지면(upon the face of all the earth)이라고 하셨다.  오늘날 지구상에 채소와 과일이 온 지면에 있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모래뿐인 사막이나 얼음으로 덮인 동토나 바위 산이나 사람이 살기 어려운 어떤 지면도 없음을 의미한다.  이런 극한 기후들은 심한 기온차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성경에서 추위와 더위에 대하여 노아홍수 직후에 처음으로 언급된다 (창 8:22).  이는 노아홍수 이전은 둘째 날 만들어진 궁창 위의 물이 덮게 효과를 일으켜 온실처럼 지구 전체가 골고루 따뜻했으며, 노아홍수 때 그 궁창 위의 물들이 제거됨으로 지구에 온도차가 발생했다는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노아홍수 이전에는 온 지면이 채소와 과일로 가득찰 수 있는 환경임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창조당시 사람에게 식물(food)로 채소와 과일만을 주셨다.  그러던 것이 노아홍수 이후에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창 9:3)” 라고 하시면서 처음으로 육식을 허락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왜 이 때 육식을 허락하셨는지 성경에 직접적 언급이 없다.  홍수 전후의 환경변화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기도 하지만 확실치 않다.  어쨌든 육식의 기원도 창세기를 통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이며, 심판 이후에 동물과의 관계도 더욱 악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피흘림이 없는 관계였으며, 죄가 들어온 후에서부터 홍수 전까지는 제사를 드릴 때에나 사용되었던 동물들이 이제는 육신의 에너지를 충당하기 위해 살생되어야 하는 관계까지 악화된 것이다.  농사나 목축(창 4:2)을 넘어서 이제는 먹기 위해 사냥도 해야 하는 노동이 추가된 것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심판이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식을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죄가 들어오기 전에 인간이 채식만 한 것이 불교나 힌두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동물과 사람을 동등한 위치에서 두고 채식만을 하라는 진화론적 개념과는 결코 같은 내용일 수 없다.


성경은 생물 또는 생명이라고 할 때 동물에서부터 시작한다.  생물은 동물을 창조하시는 다섯째 날 처음 언급된다.  실제로 생명(life) 이라는 뜻인 히브리어 네페쉬(nephesh)는 혼(soul)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런 면에서 동물과 식물은 성경적으로 그 근본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생명은 피(레 17:11)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아에게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창 9:4). 


생명은 하나님께로만 온다.  생명은 피에 있으며, 피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히 9:22)고 하셨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피조물에 속하지 않은 영원한 피를 흘리셨다 (히 9:11-12).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가 흘리신 영원한 피가 내가 흘려야 할 피인 것을 믿음으로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롬 6:23).  육신을 위한 음식의 기원을 생각하며,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다.

 

 

*참조 : The carnivorous nature and suffering of animals
http://creation.com/the-carnivorous-nature-and-suffering-of-animals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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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
2004-09-07

창세기 1장 (28) - 세속적 / 기독교적 인본주의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  하나님의 형상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해야 할 일을 명령하시는 모습이다.  우리가 이를 지상명령(Supreme Order)이라고 부른다. 


인본주의(humanism)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세속적 인본주의(secular humanism)와 기독교적 인본주의(Christian humanism)이다.  세속적 인본주의는 인간이 최고이며 진리는 인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것은 인간 자신이 결정한다.  자신들은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 없이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즉 인간이 창조주의 형상인 것을 아는 것은 죄인인 인간에게는 스스로 알 수 없기 때문에 감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자신이 최고의 존재라고 생각하면 정말로 최고가 되어야 할 텐데 결과적으로는 사람보다도 더 낮은 동물 중에 하나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라고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관계가 깨어지면 '무'에서 '유'가 된 것을 알 수 없으며, 반면에 '유'에서 '유'로 되었다고 밖에 여길 수 없는 것이 죄인의 한계인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형상이란 말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고백 속에는 하나님을 인정해야 전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없으면 자신이 하나님같이 될 것 같지만,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지게 된다.  그 결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보이는 것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을 수 밖에 없다.  즉 보이는 우주, 자연, 동물 등에서 찾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우주의 부속품, 자연의 산물, 또는 동물 중에 하나로 여기게 된다.  바로 이것이 진화론적 사고인 것이다.


반면에 기독교적 인본주의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자신이 귀중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즉 인간이 귀하지만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자신이 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옳고 그른 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앎으로써 자신은 우주의 부속품이 아니라 그들을 '다스리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자신을 하나님 아래로 낮출 때, 오히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자신의 신분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를 더욱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인본주의라는 말 속에 동일하게 인간을 귀하게 여기는 내용이 들어 있지만, 바로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인정하면 속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임을 깨닫게 되어 나머지 피조물을 올바르게 다스리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을 부인하면 자유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스려야 할 동물 중에 하나로 전락하는 것이다.


'다스리라' 하는 명령 속에서 우리는 이미 지어진 피조물 중에 하나가 아니라, 그것들과 구분되게 창조주의 형상으로 지었다는 의미를 확인 받고 있는 것이다.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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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재만
2004-09-06

창세기 1장 (27) - 남자와 여자의 창조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7)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상태가 남자와 여자였음을 묘사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일련의 사건을 시간에 따라 기록하다가 그 가운데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자세히 기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창세기 10장에서 바벨탑 사건을 통해 흩어진 종족과 나라를 나열하면서 11장 전반부에는 특별히 바벨탑 사건의 그 동기와 방법에 대하여 따로 기록하고 있다.  긴 하루가 기록된 여호수아서에 아모리사람과 싸우는 전투에서도 일련의 전쟁을 묘사하다가(수10:6-11), 나중에 그 전쟁 가운데 중요한 부분인 여호수아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12-14)을 따로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창세기 1장에서 2장 3절까지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창조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반면에 2장 4절부터는 그 창조하신 상태와 함께 특별히 인간 창조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고 있다.  2장에는 창조된 지구의 상태(4-6), 아담을 지으시는 모습(7), 아담을 이끄시는 에덴동산의 모습(8-15), 선악과(16-17), 하와의 창조(18-25)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1장 27절 한 절에 대한 내용이 2장 7절부터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을 창조하시는 2장 7절부터 하와를 창조하시는 장면까지는 모두가 엿새째 하루동안 일어난 내용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안식을 취하신 일곱째 날 전인 엿새째 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신 이유는 아담의 독처함을 좋게 여기지 않으셨기 때문이며 그 목적은 돕는 배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2:18).  그리고 아담에게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도중에,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갈빗대를 취하여 살로 대신 채우셔서 하와를 창조하셨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1장 27절에 기록하였다.  또한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다.  바로 동등한 인격체로써 서로 돕는 관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셨을 때 아담의 첫마디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2:23)'고 했다.  하와가 얼마나 아담에게 꼭 맞도록 꼭 필요하게 창조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한마디로 나의 모든 것이란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직접 디자인 하시는 모습이고 그 가정의 처음이 얼마나 완벽했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24). 가정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만들어졌을까?  동물처럼 살다 보니까 필요에 의해서 시작됐을까?  그렇다면 가정도 점점 발달해 왔단 말인가?  그러나 성경은 살다 보니 가정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 우리를 위하여 완전한 가정을 만들어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화론은 바로 근원을 희미하게 만들므로 가정도 파괴시켜버렸다.  진화론자, 특별히 진화론자라고 하지 않더라고 성경적 가정의 기원을 믿지 않은 사람은 가정의 기원에 대하여 한가지밖에 생각할 수 없다.  살다 보니 필요에 따라 가정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깨달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그 기원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가족의 기원에 대하여 분명히 말한다.  처음이 완전한 가정이었으며 나중에 죄가 들어온 다음에 완벽한 가정이 깨어졌다고 말한다.  우리는 완전했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죄 때문에 깨어진 것이다.  어떻게 살다 보니 지금의 가정이 된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디자인된 가정이 있었으나 죄로 인하여 오늘날의 불안정한 가정으로 타락한 것이다.


진화론적 교육을 받은 세속적 인본주의가 들어오게 된 이래로 오늘날의 가정이 어떤 위기를 맞고 있는지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  이혼율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져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기본적 질서가 깨어지고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답이 있는 책, 사실인 책을 통하지 않고는 어떠한 해답도 얻을 수 없다.  창조주께서 시작하신 가정이라는 근본적인 생각으로 돌아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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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재만
2004-09-03

창세기 1장 (26) - 하나님 형상의 창조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1:26)

하나님께서 시간을 포함한 천지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난 후, 마지막 차례로 자신의 형상과 모양인 사람창조를 계획하시는 모습이다. 


오스트랄로피데쿠스, 자바원인, 필트다운인,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 등 기존에 원숭이와 인간의 공통조상으로 발표된 유인원들에 대하여는 이미 지면을 통하여 여러 번 언급되었기에 자세히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으리라 본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들은 공통조상도 아니며, 언제나 원숭이는 원숭이, 인간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인간은 처음보다 나중이 더 진화된 존재라고 말한다. 그들은 신체적 기능뿐 아니라, 두뇌조차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늘날의 더 나은 현대인으로 되었다고 말한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나아질 사람을 창조하지 않으셨다. 기존에 창조된 피조물과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적응되어야 하는 불완전한 모습으로도 창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하게 준비된 피조세계 가운데 완벽한 사람을 창조하셨다. 어디에서도 유인원과 같은 진화과정이 들어갈 틈이 없다.  진화론과는 반대로 처음이 완벽했으며,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리 떠나면서 불완전해졌다고 말한다. 이런 면에서도 진화론적 사고는 성경의 근본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대적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되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오랜 기간 동안 생존경쟁에서 이겨낸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선하고 선한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완벽한 존재로 창조하셨다. 진화론은 인간을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로 여기게 만든다. 단순한 동물에서 복잡한 동물로 진화된 지질시대표를 보여주면서, 생존경쟁이 역사의 원리인 양 가르친다. 이 지질시대를 지구상에서 보여주는 곳은 어떤 곳도 없을 뿐 아니라, 이를 믿으면 순식간에 사람은 악하디 악하게 창조된 경쟁의 원리에 가장 적합한 존재로 둔갑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는 모습을 보면 누구와도 타협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삼위하나님 자신의 계획 하에 직접 창조하셨다.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였으며 누가 그를 교훈 하였으며… (사40:13-14)'  언제나 하나님이 우리의 상담자이지 우리가 하나님의 상담자가 아니다. 창조에 관하여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창조자께 창조를 가르치는 자세를 취하는 반대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 6일 동안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빅뱅을 사용하셨습니다. 진화를 사용하셨습니다. 수 억년을 걸려 창조하셨습니다. 유인원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등등이다. 창조하신 장본인이 그렇지 않다고 해도 수그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류로 가득찬 자신의 편견을 가지고, 감히 창조주의 모사가 되려고 한다.  더구나 자신의 형상을 창조할 때는  '우리가' 라고 강조하셨는데도 말이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의 형상이라고 하셨다. 창조주의 성품을 닮은 존재며, 교제를 나눌 대상인 것이다. 아울러 자신의 모양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육체가 없으시지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고 1절에 언급된 것과 같이 시공간 상에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셔야만 했는데, 바로 사람의 모습이었으며 자신의 모양이었다. 어렸을 때 왜 눈은 여기 있을까, 코는, 입은? 등과 같이 궁금해 하기도 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시공간 속에 드러내기에 '보시기에 좋은'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양이기 때문이다.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기 가장 완벽한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이웃들을 보자. 바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된 자들이 아닌가? 그러나 죄악으로 떨어져서 도저히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을 때,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바로 이 복음을 전파할 대상들인 것이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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