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이 끼친 해악 : 인종차별, 국수주의, 공산주의, 생명윤리 문제

미디어위원회
2004-06-22

진화론이 끼친 해악 

: 인종차별, 국수주의, 공산주의, 생명윤리 문제

임번삼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지도 140여년이 흘렀다. 그동안 진화론이 끼친 영향은 다른 어떤 학설보다도 위력적이었다. 그 실상에 대해 메이어(Ernst Mayr 1963)는 이렇게 말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하이젠버그의 통계이론도 개개인의 신념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이나 뉴톤의 세계관은 전통적인 신념에 다소의 변화를 주었다. 그러나, 다윈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사상만큼 종교와 윤리에 관하여 새로운 의문을 불러 일으켰던 이론은 없었다.” [Ernst Mayr; Animal Speies and Evolution, p 988, Harvard University Press, Cambrdge Mass, 1972]

40여년 전에 시카고의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렸던 <다윈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1959)에서 헉슬리(Julian Huxley)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다윈의 이론은 더 이상 이론이 아닌 사실이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을 인정하는 과학자라면 누구든지 진화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굴하지 않고 일어 선 사람이 영국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자인 페터슨박사(Collin Patterson)였다. 그는 1981년에 시카고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렸던 <진화론회의>(1981.11.20)에서 이렇게 고백하였다.

”나는 20년 이상 진화론을 연구했으나...무엇 하나 제대로 알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게 되었다. 20여년을 허비한 셈이다. 그래서, 수주일간 여러 학자들에게 묻고 다녔다. 당신이 진화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으며, 하나라도 진화의 증거를 대어 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침묵뿐이었다.” 그는 이어서 회의장에 모인 진화학자들에게 폭탄적인 선언을 하였다. '이 방에 계시는 여러분들도 과거에 진화론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공감)을 하셨다면, 그것은 지식이 아닌 신앙으로서 였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그와 정반대인 것 같다.”

영국의 생물학자인 매튜스(1971)는 이렇게 말한다.

”생물학을 지지하는 근거가 진화론이기 때문에 생물학은 결국 증명되지 않은 이론 위에 세워진 묘한 위치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생물학은 과학인가 믿음인가? 진화론에 대한 믿음은 창조론처럼 꼭 같은 믿음에 속한다. 이러한 개념들은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진리로 생각하겠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지금까지 증명될 수가 없었다.” [I.H. Mathews; The Origin of Species, Introduction by Charles Darwin, J.M. Dent and Sons Ltd, p10, London, 1971]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학문의 발전을 이룬다는 미명하에 끝없이 새롭게 진화이론을 진화시켜 나가고 있을 뿐이다. 후레이져(Alex Fraser)는 ”진화의 과정은 정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진화를 추진하는 것만이 정신이다...정신이란 자연계의 생물가운데 있다기 보다는 자연 그 자체이다”고 하였다. 이것은 전형적인 범신론적 견해이다. 그러나, 성경은 유일신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홀로 만드셨다고 선언하고 있다. 진화론이 신앙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범신론적 신앙이다. 따라서,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은 범신론과 유일신론 간의 투쟁이라 할 수 있다.


진화론은 자연계의 공생관계나 인류사회의 사랑의 관계를 경시한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회를 흡사 양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원리만이 통하는 세계인 양 오도한 과오를 범한 것이다. 이러한 무신론적이며, 범신론적 진화론에 기초한 운동중 최근에 크게 유행하는 대표적인 운동이 뉴에이지이다.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은 이념적으로는 동양의 명상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와 접목된 것으로 유신진화론과 맥을 같이 한다. [우사미 마사미저, 장혜영/오덕철/김남형 역; 창조의 과학적 증거들, 한국창조과학회, pp 98-99, 서울, 1996]


오늘날, 많은 한국교회들이 이러한 혼합주의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것은 불행스러운 일이다. 기독교계에서 이러한 경향은 과학과 종교가 별개라고 믿는 젊은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복음이 맹신적인 과학주의와 결탁할 때, 또 다시 중세의 지동설에 대한 종교심판과 같은 오류가 과학주의에 의해 범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냉철한 이성에 입각한 과학주의와 순수한 성경말씀이 서로 손을 잡을 때 신앙과 과학간의 바른 관계가 정립되리라 확신한다. 맹신과 독단은 의심의 여지없이 종교계나 학문세계에서 꼭 같이 경계하여야 할 독소들이다.


진화론의 위험성은 140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미 증명이 된 것이다. 그 중에서 몇가지 사례만 들어보기로 하자. [임번삼; 진화론이 학문세계에 끼친 영향, 창조, 70호(7, 8월호), pp 2-6, 한국창조과학회출판부, 1990], [John N. Moore; How To Teach Origins Without ACLU Interferance, Mott Media, pp 1-13, Milford, MI, 1983]

 

(1) 인종우생학과 인종차별

다윈은 ”좀 더 문명화되었다는 백인종은 생존경쟁에서 미개한 터어키인들을 멸망시켰다. 최근까지도 세계의 많은 하류인종들이 상류의 문명을 가진 인종들에게 무시당하며 살아왔을 것이다.”고 인종차별적인 표현을 하였다. [Letter from Charles Darwin to W. Graham, July 3, 1881]. 헤켈은 파푸아뉴기니아 원주민을 원숭이와 인간의 중간으로 평가했으며, 헉슬리(Thomas Huxley)는 ”흑인은 백인과 동등하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Thomas Huxley; Ley Sermons, Address and Reviews, Appleton, p 20, New York, 1971].

다윈의 사촌동생인 갤튼(Francis Galton 1822-1911)은 인종우생학(Eugenics 1883)을 만들어 인종개량을 역설하였고, 소위 우수종인 백인 위주로 인종을 개량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펼쳤다(사진 1). 그의 주도로 결성된 인종우생학회(Eugenics)는 영국(1907)과 미국(1926)을 필두로 구미의 백인국가에서 설립되어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하였다. 그 결과, 유전병을 가진 사람들의 결혼을 금지하는 단종법(斷種法)과 유색인종의 백인국가로의 이민을 규제하는 이민제한법의 제정에 기여하였다. 

단종법은 미국의 27개 주와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채택되었다.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에 의하면,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인종우생학의 영향으로 ‘임의 단종법’을 만들어 과거 10여년간(1926-1935) 유전병, 신체부자유인, 정신박약아들에 대해 9931명을 강제로 단종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The New Encycloedia Britanica, 15th Ed., Vol. 30, 7-23, pp  1023-1026, 1984]. 이 법은 그 후 북구라파의 여러나라(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스위스, 독일)에서도 채택되었다. [동아원색 세계대백과사전, 22권, p 69, 동아출판사, 서울, 1988]. 나치 독일에서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이 단종법에 준거하여 200만명 이상이 처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위 갤튼 법칙(Galton's Law 1897)에 의하면, 개개인의 인격은 모든 조상들의 총합이며 1/4 만이 양친으로부터 온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1900년에 멘델의 법칙이 재발견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지능은 뇌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프랑스의 브로카의 법칙(Broca's Theory 1859)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더욱 발전시켰다. 그는 지능이 높을수록 도덕성도 높아진다고 하여, 교육에 지능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이러한 갤튼의 이론은 다윈을 비롯한 생물진화론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후일 죤 듀이 등의 진화론적 교육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갤튼의 인종론은 미국에서는 고다르드(Goddard), 오스본(Henry Fairfield Osborn), 로글린(Harry Lauglin), 그랜트(Madison Grant) 등에 의해, 영국에서는 다윈의 아들인 레오날드 다윈(Leonard Darwin), 성공회의 옥스포드 주교인 처칠(Winston Churchill) 등으로 이어졌다(Chase 1980).

히틀러는 ”진화사상을 이론적 근거로 삼아 게르만족의 번영을 위해 유태인들을 기생충과 같은 존재라며 600만명이나 학살했다”고 호우퍼(Houper)는 말한다. [W. Houper; 나치즈다큐멘트:13단계에 이르는 길, pp 45-48, 論爭社, 東京]. 나치는 1930년대의 전당대회에서 진화론을 당의 지도이념으로 채택하였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1940년 후반에 열렸던 뉴른버그의 전범재판시 인종우생학에 관한 자료들은 거의 분실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도 진화론자들의 인종차별적 발언은 계속되고 있다. 풋남(C. Putnam 1961)은 ”흑인이 백인처럼 진화하려면 거의 무한대의 시간이 필요하며.....5천억 년이 지나야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해 흑인이 백인을 능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할 것”이라고 하였다.[C. Putnam; Race and Reason: A Yankee View, p 53, Public Affairs Press, Washington DC, 1961]. 또 다른 진화론자인 민츠(S. W. Mintz 1972)는 ”지식인들은 아메리카 흑인들을 구제불능적이며 변화할 가능성도 없는 열등한 존재로 간주했다”고 하였다. [S.W. Mintz; American Scienists, 60, p 387, 1972]. 젠센(Jensen 1969)은 천부적으로 인종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인종적 차이에 대해 흑인보다는 높은 지능을 가진 백인종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Van Evrie 1868).

 여기에서, 우리는 백인우월주의가 진화론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종우생학이 요즈음 인간유전체연구와 배아복제연구에 힘입어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다시 등장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우려할만한 사태이다. 우리는 진화론자들이 인종을 차별하는 이론을 개발했을 뿐 아니라, 한 때 아프리카 등지에서 잡아 온 흑인들이 진화과정상 동물이나 사람의 어느 수준에 속하는 것인지 연구대상으로 삼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 국수주의와 민족주의 자극

진화론은 무엇보다도 국수주의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일본, 이태리와 같은 국수주의적 국가들은 예외없이 진화론을 국가적으로 적극 장려하였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시에는 베를린에서 삼국동맹을 맺어 연합국에 공동으로 대항하였다. 이들의 침략은 적자생존의 이론에 따라 강한 힘으로 약자를 지배하려는 제국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본의 경우, 일본창조과학연구회 회장인 우사미 박사(Masami Usami 1998)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 유럽에서는...진화론과 창조론을 가르쳤고, 미국에서는 창조론만 가르쳤다. 이러한 가운데 가장 먼저 진화론을 가르친 것은 일본이었다. 왜냐하면 ‘천황은 살아 있는 신’이라고 믿는 일본의 독특한 환경때문이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는 참 신을 가르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宇佐神 正海 著, 장혜영외 역; 창조의 과학적 증거들, p 15, 1998] 

동 학회의 부회장인 호리코시 목사(Rev. Nobuji Horikoshi)에 의하면, 쟈비에르(Francis Xavier 1549)에 의해 일본에 전파된 기독교는 도쿠가와 막부의 정권유지에 위협이 된다 하여 금지당했다가(1613.12), 1837년에 미국의 압력으로 자유화가 되었다. 그 대신, 동양제국에 대한 침략을 꿈꾸고 있었던 메이지 정권은 기독교 정신을 상쇄할 목적으로 철저한 진화론자인 미국의 몰스(Edward S. Morse 1877)를 동경대로 초빙하여, 유물론적이며 반기독교적인 교육을 하였다 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당시의 문부상으로 창조론 교육을 교과서에 삽입하려고 시도했던 모리(森)장관은 애석하게도 암살을 당하고 말았다 한다.

그 후, 미국의 유학시절에 창조론 교육에 감명을 받았던 니이지마(Joe Niijima)는 도지샤대학(同志社大學)을 설립했으나, 다른 미션 계통인 아오야마(靑山學院), 죠우치(上智) 대학 등과 더불어 진화론의 교육장으로 바뀌고 말았다. 메이지 정권은 아시아 제국을 침략하기 위한 전초작업으로서 메이지 23년(1890) 천황의 칙령으로 천황이 중심이 되는 가족국가를 만들었다고 한다. [N. Horikoshi; 일본창조과학의 현주소, pp 58-59, 창조과학 국제학술대회, 한국과학기술원 시청각교실, 1993]. 그 시기를 전후하여 일본은 청일전쟁(1884), 러일전쟁(1904), 을사보호조약(1905)과 한일합병(1910)을 강행하면서 군국주의의 길로 치닫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1, 2차 세계대전을 유발하여 아시아 지역을 피로 물들이게 하였다. 이들의 침략야욕에는 분명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인 진화론 사상이 깊숙히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냉철하게 음미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경우, 가스만(Gasman 1971)은 어떻게 인종우생학 사상이 ‘다윈 진화론의 사도’로 불리운 헤켈(Ernst Haeckel)로 부터 독일국가사회주의당(German National Socialist Party)으로 이어졌는지,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총정리하였다. [Daniel Gasman; The scientific origins of national socialism, American Elsevier, New York, 1971]. 그 책에 의하면, 헤켈은 1918년에 나치당의 산파역을 한 극우적인 툴레당(Thule Geselschaft)의 비밀요원이 된다. 이 모임에는 히틀러(Hitler)와 헤스(Rudolf Hess)가 손님으로 참석하였다 한다. [Reginard Phelps; Before Hitler came: Thule Society and Germanen Orden, Journal of modern History, 25, p 245, University of Chicago, 1963]

이 책은 이어서 소개하기를, 헤켈은 <생명의 신비>(1904)에서 ”새로 태어난 어린애가 귀머거리에 의식이 없는 존재로 태어나는 것은 영혼이 없다는 증거” 라면서, ”이런 어린애를 죽이는 것은 살인이 아니다”고 강변하였다. 더 나아가 ”인위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수백 수천의 불치환자들인 나병환자, 정신이상자, 암환자들은...자신에게는 물론 사회에 조금도 이익을 주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악으로부터 보상을 받는 길은 이들을 고통없이 빠르게 퍼지는 독약을 먹임으로써 이룰 수 있다...정부기관의 허가를 받아서.” 라고 주장하였다. [Ernst Haeckel; The wounders of life, Harper, New York, 1904]. 이러한 그의 사상은 후일, 그대로 히틀러에 의해 실행에 옮겨졌다.

진화론자인 영국의 케이스(Arthur Keith 1949)까지도 말하기를 ”독일 총통은 독일의 개혁을 진화론에 따라 추구해 왔다”고 말한다. [Arthur Keith; Evolution and Ethics, p 230, G.P. Putnam, New York, 1949]. 매이서(W. Maser 1970)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Mein Kampf 1924)을 분석한 글에서 히틀러가 생물학, 예배, 권력, 투쟁, 그리고 역사에서 도덕적 요소를 거부하게 된 것은 다윈사상에 기초한다고 지적하였다. [Werner Maser; Hittler's Mein Kampf: An analysis, Faber and Faber, London, 1970].


히틀러로 하여금 아리안족 우월사상을 갖도록 자극한 또 다른 두 권의 책이 있다. 하나는 미국우생학자인 그랜트(Madison Grant)가 쓴 <위대한 종의 소멸>(The Passing of the Great Race)의 독일어판(1916)이었다. 이 책에서 그랜트는 미국이 어떻게 유전적으로 ‘부적합한 인종’에 의해 오염되어 있는지 설명하였다. 그리고, 독일인들이 30년 전쟁(1618-1648)에서 너무나 많이 죽었기 때문에 우수혈통의 부족으로 1차대전에서 패망한 것이라는 잘못된 진단을 내렸다. 히틀러는 1930년대부터 우수한 아리안족의 혈통을 확보하려는 정책을 실행에 옮겼고, <마인 캄프>(Hittler 1941)에 이러한 이념을 포함시켰다. 이렇게 하여 진화론적인 헤켈의 인종주의와 갤튼의 인종우생학이 마침내 국가단위로 실현되기에 이른 것이다.

다른 하나는 1920년대 초에 발행된 <로린의 신조>(Harry Laughlin's Creed 1920')이다. 로린은 사회적으로 부적합한 사람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역설했으며, 이러한 주장은 단종법(斷種法 Sterilization Law)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 법은 지금도 범인, 간질, 알콜중독, 장님, 귀머거리, 불구자, 고아와 같은 무의탁자들을 대상으로 수행되고 있다. 이 법은 독일에서는 1927년부터 자율적 참여방식으로 시행되다가, 나치의 국가사회주의당(National Socialist Party)이 정권을 잡은 1933년에 히틀러가 총통으로 선출되면서 인종오염자의 명단인 <로린리스트>(Laughlin's List)에 기재된 대상자들은 강제적으로 단종처리를 하기 시작하였다(Popenoe 1934).


1945년, 히틀러가 몰락한 후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1927년에서 1933년 사이에 매년 85명이 자발적으로, 나치 치하에서는 매일 450명씩 최소한 2백만 명이 단종처리가 되었다고 한다 [Alan Chase; The Legacy of Malthus, University of Illinoise Press, Chicago, 1980)]. 여기에서 자발적이라 함은 결혼의 유보를 뜻하지만 강제적 단종처리란 살해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이러한 작업은 헤켈이 주장한대로 헬멧을 쓴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집행됐다고 한다.

헤켈이 주장한 ‘몸속에 빨리 퍼지는 독가스’는 데게쉬(Degesch)라는 회사에서 개발되어 팔벤사의 레버쿠젠 공장(Leberkusen Plant, I.G. Farben Chemie)에서 지클론 상표(Ziklon B brand)로 생산되어 나치에 납품되었다 한다. 이 회사는 2억 명을 죽일 수 있는 독가스를 생산하였으며, 실제로 30회 이상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나치가 점령했던 지역까지 포함하면 제3제국의 통치를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Sutton 1976). 이러한 독가스는 마침내 6백만명의 유태인을 독살시킨 아우슈비츠의 학살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결코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처럼, 진화론은 이러한 히틀러의 아리안족 우월사상은 물론 니체의 초인주의, 일본의 극우적인 야마또사상, 러시아의 슬라브주의, 백인우월주의 등을 직간접적으로 부추겨 민족우월감에 따른 침략주의를 고취시켜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여기에 열거한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약육강식에 의한 적자생존의 원리를 강조하는 진화론은 국수주의를 표방하는 거의 모든 국가나 단체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 할 수 있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범죄에 대해 침묵이 아닌 정중한 사죄를 해야 할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비극들을 곰곰히 반추하면서, 무엇이 과연 바르게 학문을 하는 길인가 판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를 36년간 억압했던 바로 그 일본의 군국주의의 바탕인 진화론을 우리 학계가 그래도 옹호해야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3) 공산주의 및 파시즘과의 연계

헤켈은 일찍이 자연선택 이론을 도입한 정치이념은 소수의 엘리뜨에 의한 통치체제라는 사실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자연선택 이론은 동식물들은 물론 우리 인간의 삶에 있어서 언제 어디서나 단지 선택받은 소수만이 번성하며, 대부분의 존재들은 처참하게 굶주리고 비참하게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Ernst Haeckel; Freedom in science and teaching, p 93, D. Appleton, New York, 1879]. 그가 주장했듯이 극소수의 엘리뜨 집단에 의해 정치적으로 실현된 전형적인 조직이 극우적인 파쇼주의(Facism)와 극좌적인 막스주의(Maxism)였다. [Leonard Carmichael; Science and social conservatism, The Scientific monthly, 78(June), p 373, Washington D.C, 1954].

파시즘은 생물학적 결정론과 연계되어 있으며, 유전적인 적자(適者)만이 불공평한 경쟁에서 생존하게 된다고 가르친다. 막스주의는 혁명의 각 과정에 의해 사회가 발전한다고 가르치면서도 역설적으로 평화를 강조하고 있다고 <유네스코 25주년 기념사>는 지적한다. [UNESCO contributors; In the minds of man, UNESCO 1946-1971, UNESCO publication, Paris, 1972] 훼스트(Fest 1974)는 히틀러의 파시즘과 레닌의 공산주의 간의 유사점을 항목별로 설명하면서, 히틀러는 막스를 자유롭게 인용하였으며, 소수의 엘리뜨가 지배한 두 이론은 모두 같은 운명을 맞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놀트(Nolte 1972)는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지배되는 파시즘이나 막시즘과 같은 전체주의는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하였다. [Ernst Nolte; Three faces of facism, Richard and Winston, New York, 1966]. 그는 지적하기를 파시즘과 막시즘은 상호 동맹관계에 있으며, 같은 시기에 스페인에서 봉기한 프랑코 총통에게서 보듯이 자유선거가 아닌 엘리트에 의한  장기집권이나 프랑스 사회주의 강령(1793) 등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하였다(Nolte 1966). 

 <공산당선언>(Communist Manifesto 1850)를 발표했던 공산주의의 창시자인 막스(Karl H. Marx 1818-1883)는 다윈의 <생존경쟁>(struggle for survival)이라는 용어에서 <계급투쟁>(class struggle)의 이론을 도출하였다(사진 2). 그는 루터교 신자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신학논문을 쓰기도 하였다. [R. Wurumbrand; marx and Satan, p 11, Crossway Books, Wetchester, 1987]. 그러나, 베를린 대학에서 다윈의 글을 보면서 적자생존 개념에서 사회계급 간의 생존경쟁 개념(struggle for existence)을 이끌어 내었다. 그는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생존경쟁을 계급투쟁(class struggle)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표현하였다. 막스는 영국망명 시절에도 헉슬리의 강연회에 참석하면서, 진화론의 적자생존 개념이 자신의 계급투쟁(class struggle)과 유사하다고 생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다윈에게 존경한다는 뜻으로 그의 <자본론>(Das Kapital 1867)의 속표지에 ”찰스 다윈 선생님께, 당신을 진심으로 숭배하는 칼 막스로부터(1873.6.16)”라고 자필 서명하여 증정하였다(Padover 1979). 6년후, 막스는 다윈에게 자신의 자본론 속권(續卷)을 다윈에게 바치기 위해 저술하겠으니 허락하여 달라고 했으나, 다윈은 자기가 무신론적인 책과 연계된다면 고통스러워질 것을 우려하여 거절했다고 한다(Keith 1955). 발준(Barzun 1958)은 막스사상이 진화론과 평행을 이룬다고 하였다.


다윈의 말년에는 칼 막스의 양자인 어벨링( Edward Aveling)이 접근하여 다윈에게 무신론을 받아 들이도록 설득했으나, 그는 스스로를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로 자처하면서 그러한 제안을 거절하였다고 한다. 이에 당황한 어벨링은 ”무신론이란 적극적인 불가지론이며, 불가지론은 상당한 수준의 무신론"이라고 자위했다고 한다. [Edward B. Aveling; Charles Darwin and Karl Marx, New Centry Review, 1: 323, London, 1897]. 막스의 동업자인 엥겔스(Fridrich Engels) 역시 베를린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기독교적 신앙을 버리게 되었다(Koster 1989). 그는 ”다윈이 생물의 진화법칙을 발견했듯이, 막스는 인류역사의 진화법칙을 발견했다”고 했으며(Traedgold 1972), 진화론이 공산이론의 한 뿌리라고 평가하였다. 반면에, 다윈 자신은 말사스의 <인구론>(人口論)을 읽으면서 인구과잉에 따른 적자생존의 이론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민중봉기에 의한 혁명이론을 수립한 허잔(Alexander herzan 1812-1870)은 진화론의 영향을 받았다(Malia 1971). 볼셰비키 혁명(1917)을 일으켰던 레닌(Nikolai Lenin 1870-1924)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다윈과 막스의 저서들을 읽은 후 영원히 기독교와 결별하였다. [W. Miller, H. Robert, M. Schulman; The Meaning of Communism, p 33, Silver Burdett, Morris Town, 1963]. 그는 진화론의 자연선택 이론에 따라 공산이론을 세웠다고 한다. [F. Schwartz; The Three Faces of Revolution, p 30, The capitol Hill press, Falls church, 1972]. 그 결과, 볼세비키당의 강령으로 ‘종교는 아편’이라는 말이 삽입되었다. 레닌체제 하에서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인 생명의 자연발생설을 만든 사람이 소련의 진화론적 생화학자인 오파린(A.I. Operin)이다. 그리고, 스탈린 체제에서 루이셍코(T.D. Lysenko 1898-1976)는 후천획득형질의 유전설을 주장하면서, 진화론을 공산이데올로기로 적극 활용하였다. 그는 인간이 훈련에 의해 무한히 발전할 수 있다는 공산주의적인 인간관을 지지하였다. 후천획득형질의 유전설은 오늘날 학계에서는 부인되었지만, 당시에 소련에서는 루이셍코에 반대했던 학자들은 무참히 숙청당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6천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진 독재자 스탈린(Joseph Stalin) 역시 진화론에 의해 기독교로부터 무신론적 공산주의자로 변신하였다. [J. Koster; The Aheisic Syndrome, Wulgemuth and Hyatt, p176, Brentwood, 1989], [E. Yaroslavsky; Landmarks in the Life of Stalin, pp 8-9, Foreign Lanuages publishing Huoss, Moscow, 1940] 그는 다윈 이론을 배운 후부터, 그가 다니던 신학교의 동료학생들에게 인간은 원숭이에게서 진화했다고 말하곤 하였다. [Koster; ibid, pp 76, 77, 177]. 레닌의 영향으로 스탈린을 비롯한 소련 지도자들은 다윈을 지식의 영웅으로 추앙하였으며, 모스크바에는 다윈박물관이 세워지게 되었다. [J. Huxley, H.B.D. Kittlewell; Charles Daewin and His World, p 80, Viking press, new York, 1965].


중국공산당을 이끌었던 모택동(Mao Tze Tung 1893-1976)은 진화론을 중국과학사회주의의 초석으로 여겼다. [G.J. Stein; Biological science and the roots of Nazism, p 52, American Scientist, 76:50-58, 1988]. 이러한 정책으로 그는 8천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Jerry Bergman; The Darwinian foundation of communism, TJ 15(1), p 94, 2001]. 그는 다윈에게 빚을 졌으며, 특히 다윈사상에 심취했던 히틀러와 헤켈에게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K.J. Hsu; The Great Dying: Cosmic atastrophe, Dinosaaurs and Theory of Evolution, p 1, Brace Jovanovich, Hrcourt, 1986]. 지금도 중국이나 북한을 비롯한 공산국가에서는 샤르뎅의 유신진화론을 이념교육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다음 세대들은 앞으로 공산주의와 카톨릭교회가 어떠한 관계를 정립해 나갈지 주의깊이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테일러는 지적한다. [Taylor; ibid, p 376]

 

(4) 인간존엄성의 훼손

진화론은 모든 인류를 사랑과 포용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살벌한 적자생존과 계급투쟁의 역사로 파악하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오늘날 사회윤리가 피폐해지는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요인들 중 하나가 진화론임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인간을 동물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간존엄성을 동물수준으로 떨어뜨렸고, 심각한 인명경시풍조를 야기시키도록 한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진화 생물학자인 하두봉 교수(전 서울대)는 이렇게 말한다. ”진화론이 내포하는 의미는 인간생명의 격하라 할 수 있다. 즉, 인간도 다른 생물 특히 다른 동물과 동격시 된 것이다. 모든 생물은 공통조상으로부터 진화되어 다양화되어 왔다고 하는 관점에서 인간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전통적 사고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생명관의 큰 변혁이 여기서 초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신의 창조라고 하는 종교개념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결과를 낳았고, 현대생물학의 분석적 방법론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하두봉; 분자생물학의 제문제(생물과학심포지움, 11월7일, 이화여대), 생명과학의 현재와 미래, 한국생물과학협회, pp 10-11, 1987]


인본주의자들은 두 과제에 당면하고 있다. 하나는 상황윤리(situation ethics)이다.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되었으며, 윤리의 근본인 신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기독교적 윤리를 부정하고 상황에 따른 윤리관을 쉼없이 설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룻소가 말했듯이 인간은 유전적으로 선한 존재이므로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 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여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형이상학적 족쇄로부터 해방하여 그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라몬트는 이렇게 부연한다. ”인본주의의 핵심적 관심은 현세에서의 행복이지 무덤 너머의 환상적인 세계의 것이 결코 아니다. 행복이란 살아 있는 동안에 의미가 있으며 초월적인 신에게 종속되거나 의존되는 것이 아니다.”[Lamont: ibid, p 30] 또 다른 진화론자인 차울라(Chawla 1964)는 이렇게 말한다. ”다윈의 진화론 발견으로 종교와 도덕적 가치는 조종을 울리게 되었으며 전통종교로부터 떠나게 되었다.” 이처럼, 진화론자와 인본주의자들은 집요하게 신과 기독교로부터의 해방을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진화론의 적은 초월적인 신과 기독교라는 말이다.


(5) 생명기계론과 생명윤리문제

진화론자들은 생명을 단순히 자동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기계로 인식함으로써 생명윤리문제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생명이 단순한 기계에 불과하다는 사고가 청소년들에게 심어질 때 그 영향을 어떻게 대처하려는 것인지 염려가 된다. 이러한 생명윤리문제에 대해 하두봉 교수(1987)는 이렇게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생명은 신비하고 존엄하다고 초중등 교육을 통해 강조함으로써 생명물질론의 충격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은 물질론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지구상의 현존하는 모든 생물들은 기나긴 진화의 소산이며, 또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이 현재로서는 진화의 극치에 달해 있는 고귀한 존재라는 개념을 교육의 초기부터 강조하는 것은 생명물질론에 대하여 완충작용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특히, 진화에 있어서 인간은 인간이 걸어 온 길로 진화한 것이며, 다른 생물 예컨데 세균은 세균대로의 진화과정을 걸어와서 각자가 자신의 환경에서 그리고 현재로서는 최고도로 진화되어 있는 생물이라고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전통가치관이나 윤리관 자체도 수정되어 가야 할 것이다. 이 관념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공통적인 주관인 것이며 어떤 고정된 객관성을 갖는 것은 아니므로,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이들도 수정되어 감으로서 전통가치관과 과학기술 사이의 마찰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과학의 대중화, 특히 지식인에게서의 대중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두봉; ibid, p 15]

참으로 우스운 대안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동물이며 기계라고 인정한다면, 차라리 사람이 동물답게 기계처럼 사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당당하지 않을까? 진화론이 주장하듯이  인간이 진실로 동물에서 진화한 것이라면 본질적으로 동물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인간이 본질상 동물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할 때 그로부터 야기될 수 있는 엄청난 부작용들을 어떻게 감당하려는 것인지 진화론자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많은 동물들을 잡아 먹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 다른 인간(동물로서의)을 생존의 명목으로 살생을 한다면 진화론적으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처럼, 진화론이 생명윤리의 근본을 깨뜨리고 있는 심각한 현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진화론자들이 인간존엄이나 윤리를 논한다는 것은 실로 넌센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참조 : The Darwinian foundation of communism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04

The church preaches eugenics: a history of church support for Darwinism and eugenic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54-60.pdf

A Civic Biology and eugenic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6038/

Darwinism and the teaching of racism and eugenics in biology textbook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8_1/j18_1_65-70.pdf

Adam’s brothers? Race, science and Genesis before Darwin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118-122.pdf

The history of the teaching of human female inferiority in Darwinism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12

Darwin Taught Male Superiority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2/n1/darwin-taught-male-superiority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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