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on Moments
2010-09-09

인종차별의 기원 

(The Origin of Racism)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 (사도행전 17:26)

하나님께서 다른 인종간의 결혼을 인정하실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종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봐야 한다.  성경은 우리 모두가 아담으로 부터 태어났다고 가르친다.  성경은 또한 우리 모두는 한 핏줄이라고 말하며, 결코 인종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함의 후손들은 저주를 받았는데, 이들이 바로 가나안 족속이었다. 그러나 가나안인인 라합이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었을 때 그녀는 믿는 자와 결혼할 수 있도록 환영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녀를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는 족보에 포함시키셨다.

찰스 다윈이 1859년 자신의 그 유명한 책인 '종의 기원'을 썼을 때까지, 교회에서의 다른 인종이라는 개념은 다른 종교와 구별되듯이 그리 대단한 문젯거리가 되지 못했다. 다윈은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으로 관점이 극도로 인종차별주의적이어서 유색인종들을 언제나 야만인들이라고 부르곤 했다.

진화론을 주장하기 위한 그의 책의 의도적인 과학적 논거들 중의 하나는 여러 인종들 중 일부의 인종들은 다른 인종들보다도 더 많이 진화되었다는 주장이었다. 교회 밖과 안에서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인종차별주의는 공공연하게 조직화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한 사람과 다른 사람간의 유전적 차이가 보통 0.2%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것처럼 인류는 하나인 것이다. 교회는 이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실제 인간인 아담 한사람으로 부터 갈라져 내려온 한 피를 공유하는 한 몸임을 선포함으로서 인종차별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이다.

교회는 또한 모든 신앙인들은 우리를 구속하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신 두 번째 아담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후손들이라는 복음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References: Ken Ham, Inter-racial marriage: is it biblical?, Creation 21(3) June-August,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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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김계환

링크 - http://www.creationmoments.com/content/origin-racism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952

참고 : 2358|1176|4626|3744|2582|2584|2588|2580|2426|2578|1204|518

조민완
2009-12-04

인류학에서의 진화이론과 창조과학적 접근

(Evolutionary theory in Anthropology and Creationistic approach)


요지 : 인류학은 ‘사람에 대한 연구(study of Human)’를 목적으로 하는 분야로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받아들여 ‘인류학’만의 독특한 학문분야로 자리잡았는데, 그 중심에는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이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인류학내에서 진화론은 모든 이론과 방법론을 통제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체질(생물)인류학에서는 사람의 뼈대에 대한 분석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이를 고인류학에 적용하여 인류의 진화 계통을 그리고 있으며, 사회-문화인류학에서는 단순한 생물학적 인간의 진화에서 더 나아가 사회조직과 문화의 진화를 설명하려 하며, 고고학에서는 이러한 생물학적인 인간, 그리고 사회조직과 기술의 진화, 그리고 오랜지구의 근거로 삼는 갖가지 연대측정법들을 사용하여 인간과 문화, 사회조직을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진화론이 인류학 안에서 강하게 영향을 끼치고 이러한 진화이론만이 인간에 대한 모든 설명들로 이해되는 상황속에서 이떻게 성경적인 패러다임, 특별히 창조론적 세계관을 세워 인간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을지 하는 고민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특별히 저자는 대학원 내에서 체질(생물)인류학과 고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떤 전략과 지혜로 인간이 원숭이의 형상에서 진화된 존재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특별한 존재임을 이러한 인본주의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학문세계 내에서 선포할 수 있는가 하는 것들을 모든 이들과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인류학(anthropology)은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사회학적, 자연과학적 연구로 학문자체의 형성과정에서 진화론의 깊은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특별히 인류학은 20세기 이후 고고학(archaeology), 사회-문화인류학(social-cultural anthropology), 생물인류학(biologica anthropology), 언어인류학(linguistic anthropology) 등으로 세분화되어 더욱 진화론적 이론을 견고히 받아들여 학문의 틀을 만들어나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인류학에 대한 창조과학적 대응은 생물인류학(고인류학)에서 언급하는 인류 진화론에 대한 반박에 머물렀고, 생물(체질)인류학의 성립근거가 되었지만, 이미 1970년대에 사회 생물학으로 대체되었던 ‘인종학(우생학)’에 대한 표면적인 비판에만 머물러 있어 인류학 전체 담론을 지배하는 진화론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과 비판, 그리고 대안제시에는 아직 역부족인 상황으로 여겨진다.

이 논문에서는 인류학의 학문적 특성과 진화론이 인류학에서 차지하는 학문적 위치와 이러한 진화론적 세계관에 맞서 창조론적 세계관을 심을 수 있는 대응방안을 찾아보기로 한다.

 

Ⅰ. 인류학의 정의와 진화이론

1. 인류학의 정의와 분화

인류학(人類學, anthropology)은 인간에 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이해되며, 인류학의 연구대상이 되는 '인간(human being, Homo sapiens)'은 통상적으로 ‘members of the species Homo sapiens, which arose in Africa around 200,000 BP’으로 정의되고 있다. [1]

인류학은 크게는 인류의 신체적 측면을 연구하는 체질인류학(형질(생물)인류학, physical anthropology), 사회문화적 측면을 연구하는 사회문화인류학(socio-cultural anthropology), 과거의 유물을 통해 인류의 과거를 연구하는 고고학(archaeology), 그리고 언어의 인류학적 측면을 연구하는 언어인류학(linguistic anthropology) 등으로 크게 나눈다. 이밖에도 민족학(ethnology), 민속학(folklore) 등을 인류학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인류학은 16세기부터 시작된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 이외의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학문적 토대가 만들어졌으나 인류학이 현대적인 학문으로 형성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진화론’이었다. 1859년 다윈은 자신의 저서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에서 인류의 진화에 대하여 ‘light will be thrown on the origin of man and his history'라고 아주 짧게 언급하였으나, 이는 인류학에서 진화론이 기본적 이론적 토대가 되었으며, 또한 인류의 조상이라고 여겨지는 화석들이 대량으로 발견되면서 생물(체질)인류학과 고인류학이 새로운 학문으로 대두하게 된다.

인류학은 각각의 세부분야가 19세기와 20세기에 분화된 후에 서로 다른 방법론과 대상을 가지고 발전하였지만, 인류학의 목적인 ‘사람에 대한 연구’라는 전제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적절한 해결점을 준다고 여겨졌던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기 때문에, 진화론이 각 분야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인류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성경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새로운 인류학을 세워나가는 첫 단추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지면을 통하여 언어인류학을 제외한 고고학, 사회-문화인류학, 생물(체질)인류학 가운데서 진화론이 구성해 놓은 이론들을 함께 알아보고자 한다.


2. 고고학(Archaeology)에서의 진화론

19세기 중엽에 학문으로 처음 자리를 잡은 고고학은 초기에는 ”과거 인류가 남긴 물질적인 자료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간단히 정의되었으나 오늘날에는 ”과거 인류들이 남긴 물질적 자료(고고학 자료)를 통해 당시의 문화, 즉 행위, 사회적 조직, 이념 등을 복원하고 그들의 문화가 어떻게 그리고 왜 변했는가를 연구하는 학문”(Sharer and Ashmore 1993)으로 정의되고 있다.

고고학은 17세기 말부터 유럽 등지에서 유행한 ‘胡考主義’, 즉 골동품의 수집과 전시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진화론을 수용하면서부터 현대적인 학문적 모습을 갖추게 된다.

고고학이 학문적 모습을 갖추게 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중엽 사이에 지질학자 허턴(J. Hutton, 1726~1797)이 제공한 동일과정설과 라이엘(Lyell, 1797~1875)에 제시한 ‘지층 누중의 법칙’은 이전의 퀴비에(G. Cuvier)등이 주장한 대격변(다중격변설)을 무력화시켰으며, 지질의 변천과정, 지구의 구조와 층위, 그리고 절멸화석 등에 대한 균일론적 설명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단순히 지구의 역사뿐 아니라 인류와 함께 관련되어 있는 동식물들의 역사가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주 짧은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하는 의식적 변화를 야기한 기폭제가 되었다.

또한 덴마크의 박물학자 톰센(C.J. Thomsen, 1788~1865)이 제시한 삼시대법(돌의 시대, 청동의 시대, 철의 시대)는 후에 연대결정법(상대연대결정법, 절대연대결정법)과 결합하여 인류의 역사에 대한 단계적인 시대구분법의 기초를 마련하게 된다.

1859년 이후 다윈의 진화론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이론들은 다윈의 진화론과 결부되어 발전되기 시작되는데, 다윈의 저작들은 피트리버스, 존 에반스, 그리고 오스카 몬텔리우스 같은 초기 고고학자들에게 직접 영향을 주어 유물을 형식학적으로 연구하는 토대를 놓게 하였다.

아우구스투스 래인폭스 피트리버스 장군(1827~1900)은 생애의 많은 기간을 직업군인으로 보냈던 경험을 살려 처음으로 잘 조직된 고고학 발굴작업을 수행한 인물로서, 그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도구들의 컬렉션, 즉 박물관을 통해서 인류 문화의 진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으며, 문화의 진화란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와 마찬가지로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고도의 형태로 진화되어 왔다고 주장하였다.

스웨덴의 고고학자 오스카 몬텔리우스(Oscar Montelius, 1843.9.9~1921.11.4)는 북부 유럽의 청동기시대를 연구하면서 진화론적 이론을 자신의 연구에 대입하여 오늘날 고고학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방법론 중 하나인 ‘형식학적 방법’을 주장하였다.

그는 유물의 편년적 위치를 아는 방법으로는 상대적 연대가 있고, 상대적 연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층위적 방법을 이용해야 하나, 층위적인 방법만을 가지고는 유물의 상대적인 연대를 설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시기의 선후 관계를 결정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방법으로 ‘형식학적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는 형식을 생물학에서의 ‘종’으로 파악하고, 형식 상호간에 나타나는 내적 관계를 추적하여 종과 같이 한 개의 형식이 다른 형식으로 진화되는 상황을 밝혀야 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물질문화의 선후관계와 인간 전체를 구성하는 문화와의 관계 규명을 위해 대입된 진화론은 문화의 발전도 생물학에서의 진화와 같이 환경에 적응(adaptation)함으로써 진화한다는 견해를 제시하였으며, 이는 사회-문화 인류학에서도 다루게 되는 사회 진화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낳게 하였다.[2]


3. 사회-문화 인류학에서의 진화론

보통 문화인류학으로 불리는 ‘사회-문화 인류학’은 인류가 걸어온 역사와 현존의 인류에 의한 각종 소산(所産)을 대상으로 문화를 관찰 ·분석하고 그것을 종합하여 문화의 법칙성 또는 규칙성과 변이(變異)를 탐구하는 과학이다. 문화인류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미국의 경우이며, 영국에서는 사회조직과 친족연구를 중시하여 사회인류학이라고 부르며, 독일 ·오스트리아 그 밖의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민족학이라고 부른다.

문화인류학의 이론적 기초를 이루는 문화에 대한 개념은 영국의 인류학자 타일러(E.B. Tylor)가 정리했는데, 그는 ‘문화란 사회구성원에 의해 습득된 지식, 신앙, 예술, 법, 도덕, 관습 및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어떤 다른 능력이나 습관 등을 포함한 복합총체’라고 정의하였다. 이 정의는 진화론을 배경으로 제시되었으며, 지금까지 널리 통용되고 있다.

인류학에서는 진화론을 주로 사회구조 형성과 변천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도구로 사용하였는데, 특별히 인류학이 이론적 토대를 갖추던 시기에 단순 진화론을 전파한 학자는 헨리 루이스 모건이었다. 그는 그의 저서 <고대사회(Ancient Society,1877)>에서 인류 사회의 발전단계를 야만, 미개, 문명으로 나누고 이를 더욱 세분화하여 인류 사회 발전단계가 하위단계의 야만 (단순채집)→중간단계의 야만(단순한 어로, 불의 사용)→상위단계의 야만 (활과 화살의 사용)→하위단계의 미개(토기사용)→중간단계의 미개(동식물의 재배 및 사육)→상위단계의 미개(철기의 사용)→ 문명단계(문자의 사용)로 변천된다고 파악하였다.[3]

인류학자 애드워드 타일러는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여 현존하는 제도들은 오직 과거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만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역사과정은 갑자기 일어나는 도약 같은 것이 없이 느리게 지속된다는 진화론적 전제를 받아들였다.

이러한 모건과 타일러의 문화에 대한 단선진화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데,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The Origins of the Family,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라는 저서에서 선계급(pre-class)사회는 선혈연(pre-clean), 모가장혈연(matriarchal clan), 가부장혈연(patriarchal clan), 최종혈연(terminal clan) 단계로, 계급사회는 노예 봉건, 자본주의 사회로 구분되며,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체제로 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엥겔스의 연구는 모건의 <고대사회>의 영향을 받아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사례연구를 통해 도출된 것이었다.

이렇게 단선진화론적 설명은 인류학, 고고학 및 사회학에 큰 영향을 주었으나, 19세기 말에 이러한 단선진화론에 대항하여 전파론(傳播論)이 등장하면서 크게 위축되게 된다. 전파론(diffusionism)은 문화의 변동을 주로 외부적인 영향인 전파에 기인한다고 보는 관점인데, 전파(diffusion)란 문화요소들이 한 지역에서 발생하여 다른 지역으로 이주, 무역, 전쟁 및 다른 접촉들에 의해 확산되어 가는 것을 말한다.

문화인류학에서의 진화론은 다시 신진화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하게 되는데, 미국에서 정립된 신진화론은 1940년대 이후 인류학에, 1950년대 말에 고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신 진화론은 다선진화론이라고도 불리게 되는데, 이는 지난 19세기 말 모건과 테일러가 제시한 단선진화론에서 설명하지 못했던 서로 다른 사회발전 단계를 지닌 다양한 사회구조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려는 데서 비롯되었다.

신진화론의 선구자인 레슬리 화이트(Leslie White, 1900~1975)는 자신을 모건과 타일러의 직접 후계자로 자처했는데, 그는 열역학적 관점을 도입하여 ‘다른 요인들이 일정할 때, 문화는 단위 에너지양의 증가, 곧 에너지의 효율이 증가함에 따라 진화한다’(White 1959:368-9)라고 하였는데, 화이트 퇴임기념논문집에서 메거스는 ”에너지의 역할과 문화진화에 대한 연구는 1943년 화이트가 처음 시작하였다...이 법칙은 문화는 기술, 사회조직, 철학이라는 세 가지 현상으로 이루어졌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가운데가 가장 중심적이어서 다른 두 요소, 곧 사회와 철학의 내용과 형태를 결정한다.(Meggers 1960:302-3)”라고 논평하였다.

즉, 화이트는 기술계제를 가장 우선시되는 문화의 영역이며, 여기에서 에너지가 모여 체계에 공급되는 식으로 다른 모든 사회생활의 요소들이 에너지활용(energy processing)단위를 중심으로 배열되어 있다고 보았는데, 이러한 화이트의 진화이론은 초기 원시인류사회에서 20세기까지 인류사의 커다란 전환까지를 포괄하는 것으로 보통 ‘일반 진화(General evolution)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에 반하여 줄리안 스튜어드(Julian Steward, 1902~1972)는 일반진화 과정이 모든 인류사 저변에 깔려 있음을 인정하였지만, 지역적 진화연쇄는 지역의 조건에 따라 상이한 방향으로 일어난다고 보았다. 즉, 그는 비슷한 자연 배경에서는 비슷한 문화적 반응이 나타나며 문화는 핵심 특성을 중심으로 여러 성격들이 결합된 것이며, 주로 생계행위의 성격을 바탕으로 형성되지만, 경제, 정치 및 종교적 유형들이 포괄되어 있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스튜어트의 방법은 ‘문화생태학(cultural ecology)’이라 알려졌으며, 오늘날 문화와 생태계 사이의 상호연결에 초점을 맞춘 생태인류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화이트와 스튜어트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킨 다음 세대의 신진화론자들로는 살린스와 엘만 서비스를 들 수 있다.

마샬 살린스(Mashall Sahlins)와 엘만 서비스는 문화나 사회구조에 대한 진화이론을 일반진화와 특수진화로 구분하여 화이트가 강조하였던 ‘모든 인간사회들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움직임’을 ‘일반진화’로, 스튜어드가 강조하였던 ‘집단이나 개인의 지역 환경에 대한 적응’을 ‘특수진화’로 구분하고,l 이들은 또한 모든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이른바 ‘사회발전단계설’을 주장한다.

엘만 서비스가 주장하였던 ‘사회발전단계설’은 이른바 ‘인류사는 군집사회(band)에서 부족(tribe), 족장(Cheifdom), 그리고 최종적으로 국가(state)단계로 진화한다는 주장이다.

프리드(Fried)는 이를 수정하여 평등사회(egalitarian society)-계급(서열)사회(ranked-society)-계층사회(stratified society)-국가(state) 등의 사회 발전 모델을 제시하였다.[3]

이러한 사회발전단계설은 고고학에서 고대 국가의 형성과정을 설명하고 이해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별히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신고고학(과정고고학)에서는 신진화론의 이론들을 가지고 사회조직을 밝히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문화인류학에서의 진화론(특별히 ‘신진화론’)은 문화를 설명하는 수많은 이론들 중의 하나로 존재할 뿐 특별한 위력을 가지지는 않으며, 오히려 고고학에서의 사회발전단계설로 더 많이 언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의 단선진화론과 신진화론(다선진화론)은 이론 자체의 형성과정에서 초기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인류 사회의 발전단계를 설명하려고 했다는 점에서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4. 생물인류학에서의 진화론

생물인류학은 그 자체가 다윈의 진화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된 분야로, 주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생물학적 진화와 변이를 연구한다. 생물인류학은 그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에, 크게 고인류학, 영장류학, 인류의 다양성 연구로 나누어진다.

고인류학은 인류의 생물학적 역사를 다루는데, 지금껏 창조과학 내에서 가장 많이 비판하고 반박했던 분야가 이 고인류학 분야이다.

영장류학은 인류와 가장 가까운 영장류의 진화와 행위를 연구하며, 이를 토대로 오늘날 현존하는 다양한 인류와 그들의 생물학적인 환경적응방법을 유추하여 연구하고 있다.

인류의 다양성 연구에서는 인류가 다른 영장류와 어떻게, 그리고 왜 다른가를 생물학적 입장에서 다루며 또한 인류의 경우, 문화와 생물학적 특성이 어떻게 상호 관련이 있는지를 연구대상으로 한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생물인류학(고인류학)에 대한 창조과학적 비판은 대부분 ‘지금껏 발견되어진 인류의 조상화석들은 모두 원숭이 또는 인간이지 인간과 유인원을 잇는 중간단계의 화석이 아니다’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을 뿐, 그 외 생물학적 인간에 대한 올바른 학문적 접근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생물인류학 자체를 진화론의 영향으로 출현한 ‘우생학의 사생아’ 정도로만 여겨왔다는 것이다.

사실 생물인류학의 탄생 자체가 우생학을 통해서 시작되긴 하였지만, 이 분야가 기본적인 학문의 틀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준 것은 바로 하버드 대학의 곤충행동학자인 윌슨(Edward Willson)이 주창한 사회생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윌슨은 1975년《사회생물학-그 새로운 이론》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동물과 사람에 있어 나타나는 모든 형태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생물학적 요인(유전)으로 파악하면서 동물집단에서 관찰되는 행위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일반 법칙을 발전시켜 이 법칙을 인간에게 적용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생물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에게 동물과 사람의 행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게끔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동시에 사회과학자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불러 일으켰다.[4]

이 외에도 생물인류학에서는 인종에 대한 개념이나 인종의 다양성 문제, 인류의 적응과 성의 문제에서도 좀더 다선적인 진화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Ⅱ. 인류학에 대한 창조과학적 접근

1. 인류학에 기존의 시각과 중요성

현재까지의 창조과학운동은 주로 자연과학적 영역에서 활동이 이루어졌으며, 예전에 활동하였던 창조사학회에서도 인류학이나 역사학 이론연구 자체보다는 아라랏산 탐사나 고대근동학 연구를 통한 이스라엘민족과 한민족과의 관계 연구에 치중하였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성경적으로 접근하였던 성서고고학이나 선교인류학도 마찬가지로 인류학이나 고고학 이론에 대한 성찰과 성경적 검증보다도 성경과 관련 있는 유물, 유적 및 지명을 파악하거나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문화’라는 개념을 이용한 것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한편으로는 성경을 통한 지식추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에 집중되어 있었고 ‘사람을 아는 지식(knowing human)'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보다는 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만물을 만드신 목적이 바로 ‘사람’에게 있고 인간에게 청지기의 권한을 주셔서 이 땅의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게 하신 것을 인식할 때, ‘사람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큼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의 표현대로 ‘우리는 그의 만드신 (ποίημα, 포이에마, ’작품‘)’라고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어떻게 만들어졌고 이 만물 속에서 인간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성경적인 인류학의 목표를 이루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2. 인류화석과 분류학에 대한 태도

실제 인류학 전체에서 진화론은 문자 그대로 제왕처럼 군림하며 하위분야의 이론들과 방법론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생물인류학과 고인류학은 그 자체가 생물진화론의 연장선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인류 진화에 대한 가설을 뒷받침하였던 것은 지금까지 세계도처에서 발견된 수많은 인류화석들이다. 사실 지금까지 발견된 인류화석들은 창조과학 도서에 소개된 것보다 더 많으며, 화석 하나하나에 매우 큰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에, 어떤 화석에 대한 출처나 본질들을 더욱 세밀하게 연구하지 않으면 오히려 진화론자들의 역공을 받을 공산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이러한 인류화석들은 린네의 분류법을 마치 진화계통도처럼 변형을 하여 각기 철저한 분류법을 가지고 분류를 하고 발표를 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인류화석에 대한 비판을 하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바로 ‘분류법’에 대한 새로운 정리와 의미부여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즉, 생물진화론 및 생물인류학에서는 린네의 분류법이 고정된 ‘종’의 개념을 강요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지금껏 수많은 ‘종의 개념’에 대한 변형을 하여 마치 분류법 자체가 진화론을 정당화시키고 증명하는 것처럼 인식시키고 교육시켜왔다. 때문에 생물인류학 및 고인류학 내에서 창조과학적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진화론적 입장을 대변하는 분류법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지며, 이와 함께 고고학과 생물인류학의 시간적 패러다임을 결정하고 있는 동일과정설 및 균일설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대홍수 이론 등을 인류학계 안에 도입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3. 인류문화에 대한 성경적 이해

인류학이라는 학문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연과학처럼 단순히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만이 아닌, 더 나아가 논리적으로 ‘사람’이 무엇인가 라는 문제를 해석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때문에 인간의 생물학적 문제 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 역사적 문제 까지 모두 서술하는 서사적 구조를 함께 포함하고 있다. 이는 성경에서 취하는 유사한 구조로, 천지창조에서 인간의 타락, 그리고 대홍수와 바벨탑 사건을 통한 대확산 등의 문제가 바로 성경의 인류학적 문제들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천지창조부터 바벨탑을 통한 인류의 대확산까지의 문제를 통해서 우리는 단순히 어떤 과거의 사실을 확실히 아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 성경적 사실들이 현재 인류에 미친 영향,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피조물 사이의 관계도 규명하는 것이 성경적 인류학의 또 하나의 목표가 되리라 여겨진다.



Ⅲ. 결론

인류학은 태동기부터 진화론을 양분삼아 발전하여 왔고, 과거와 현대사회를 규명하는 중추적인 학문으로 발전해왔으나 진화론에 갇힌 인류학은 아직까지도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아주 기본적인 질문조차도 제대로 답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이유는 모든 질문의 뿌리를 하나님께 두지 않고 인간에게 두고 인간 안에서만 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이러한 아주 근본적인 대답에 아주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대답을 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며, 그 모습도 동물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지음 받아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땅을 다스리고 있는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화론에 갇혀있는 인류학을 다시 말씀으로 새롭게 하여 인간과 사회의 시작, 역사와 문화의 시작이 창세기에 있고 성경에 있다고 선포하는 것은 지금껏 제대로 시도되어 본적이 없었고, 어떠한 학문적인 선례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러한 일들이 시도되어야 하고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모든 이론을 파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라”는 말씀처럼 하나님보다 더 높아진 인간의 교만함을 인류학이 담고 있다면, 그 교만한 이론을 파하고 인간을 본래의 위치로 되돌리는 것이 바로 성경적 인류학의 본질이자 목적이 될 것이다.



Ⅳ. 참고문헌

[1] http://en.wikipedia.org/wiki/Human
[2] 최성락, 2007, 고고학입문, 학연문화사
[3] 크리스 고스든 지음, 성춘택 옮김, 인류학과 고고학, 사군자
[4] 박선주, 2003, 생물인류학, 도서출판 개신


출처 - 2009. 10. 10. 한국창조과학회 학술대회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782

참고 :

이억섭
2009-11-16

창조론과 진화론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


Ⅰ. 서론

   2009년은 다윈 탄생 200주년, 다윈의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맞아 세계적으로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많은 관련 서적이 출판 되고 있다. 또한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당시의 기독교뿐만 아니라 현재의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관계로 '과학과 종교”라는 제목의 서적이 많이 출판 되고 있다[예를 들면, 1]. 우주 만물의 기원이 성경의 창세기에 분명하게 기술된 대로 하나님의 창조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진화론에 의해서 공격을 받기 시작한 이후에, 과학의 발전에 따라 성경의 창조론이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조차  온전하게 받아 드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론을 주장하는 기독교인들 중에도 하나님의 창조를 받아들이는 정도(程度, degree)가 넓은 스펙트럼으로 나타나고 있다[2].

필자가 2003년 미국의 피츠버그 부근에서 열린 미국 창조과학회 연례회의에 참석하여 미국의 많은 과학자들이 젊은 지구의 창조론을 지지하는 과학 기술 논문을 발표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3]. 또한 이 학회에 참석한 미국 침례교회 목사님의 진화론이 성경을 믿는 미국 대학생들의 믿음을 허물어뜨리고 있는 예를 듣고 다시 한번 놀랐다(note; 고등학교까지 신실하게 믿음을 지켜온 학생들이 대학교에 들어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는 거의 모두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된다는 요지였다).

간단하게 살펴본 바와 같이, 국내외적으로 지금까지 이런 저런 모양으로 갈등과 화해 양면성을 가지고 창조론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진화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기독교 교리의 안팎에서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예를 들면, 4].

특히 미국에서 최근에 수행한 대중 여론조사에서 미국 국민의 45-50% 정도가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론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인류가 약 10,000년 전에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고 믿는다고 밝혀졌으며[5], 많은 과학자들이 6일 동안의 창조를 지지한다는 서적도 출판되고 있다[6].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창조론과 진화론의 본격적인 대결은 지금부터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위에서 창조론과 진화론이 대중과 학생들의 신앙에 미치는 영향을 아주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필자는 성경의 창세기가 선언하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는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이며, 21세기 과학 시대에 하나님을 올바로 이해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견지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창조과학회의 도움을 받아 여러 교회에서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세미나를 3 시간 정도 베푼 후 설문지에 직접 응답한 402명의 응답 내용을 교회의 직분별, 연령별, 성별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그 분석한 내용을 소개하고 교회가 어떻게 진화론과 진화론적인 세계관에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기로 한다.  


Ⅱ. 대상 및 설문 조사 방법

설문 응답자의 구성을 그림 1에 나타내었다 (note; 본 논문에서는 그림은 생략하였다. 그림은 논문 발표 시에 슬라이드로 제시될 것이다).


Ⅲ. 자료 처리

각 질문 문항에 대한 응답은 통계적으로 처리하였으며 표본오차는 96%의 신뢰수준에서 ±4.9%이다.


Ⅳ. 세미나 내용과 설문지 내용

창조와 진화에 대한 내용을 주제로 한 9개의 테마로 3 시간가량 진행되었다. 9가지의 주제 테마는 다음과 같다: 1) 기원의 중요성 2) '창조”와 '진화”란 무엇인가? 3) 진화-증명된 것인가 아닌가? 4) 진화에 반대하는 이유들 5) 방사선 측정으로 지구의 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가? 6) 노아홍수와 지질학상의 기둥 7) 공학적인 유사 8) 하나님 창조 증거의 요약 9) 기계 공학적인 완벽한 설계; 지적인 설계의 증거.

설문지의 내용은 객관식으로 응답하는 28 개의 문항으로 이루어졌다(note; 구체적인 문항내용은 본문에서는 생략함).


Ⅴ. 응답 결과 분석

창조론적인 세계관과 진화론적인 세계관에 입각하여 이루어진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응답 결과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Ⅴ-1. 목회자의 세계관

(1) 목회자의 32%는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인 내용을 듣거나 읽은 적이 없다. 그러나 응답한 목회자의 100%가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믿는다고 응답하였다.

(2) 그러나 놀랍게도 응답자의 30% 정도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70% 정도 받아들이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유신론적 진화론이 이미 많은 목사님들에게 침투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목회자들의 이런 현황은 유신진화론적인(note; 유신진화론에 대한 설명은 논문 발표 시에 요약될 것임) 패러다임에 기인하는 세계관으로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여 전파할 우려가 있다고 사료된다.

(3)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은 외양적인 능력에 따라 상대적으로 비교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인상 갚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문화가,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하는 세계관과 일맥상통하는, 외양적인 면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이해된다.

(4) 창조론과 진화론은 모두 과학이 아니라 신앙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사항으로 응답한 목회자는 가가 25%와 11% 정도로 나타났다.

(5) 70% 정도는 젊은 지구의 나이에 동의하고 있으며, 지구의 나이를 46억년 정도로 응답한 목회자가 약 39% 정도였다. 그러나 응답자가 모두가 노아의 홍수가 지구 전체를 덮었다는 것을 역사적인 사실로 인식하고 있었다. 지구의 나이에 대한 응답은 진화론적인 세계관에 입각하여 보도하는 메스컴의 영향이 지대한 것으로 사료된다.

(6) 최근 국내외 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생명 복제에 대한 응답은 우리 교계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응답한 목회자의 약 68%정도는 생명복제를 반대하고 있으나, 32% 정도는 이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을 표시하고 있지 않다.

(7) 응답한 목회자들은 모두가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응답하고 있다. 응답자의 32%는 성공의 기준을 권력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상당히 의외로운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8) 다른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응답자의 30% 정도가 과학의 능력이 하나님의 능력보다 더 크다고 답하고 있다는 것이다.       


Ⅴ-2. 성도들의 세계관

(1)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전연 믿지 않는 응답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평신도 중 40% 정도는 천지 창조를 100% 믿지 않고 40-70% 정도 믿는다는 응답을 하고 있다. 이 응답 결과는 1993년 미국인을 상대로 '인류의 기원”에 대한 설문 조사에서 유신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의 숫자와 비슷한 결과이어서 흥미롭다[7].

본 연구의 결과에서는 20 세 이하와 21-35세의 응답자 중 각각 35%, 15% 정도가 유신 진화론적인 응답을 택하였다. 나이가 적은 성도일수록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한 세계관에 큰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성(20%)보다는 남성(28%)이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대한 의구심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평신도의 36%, 일반봉사자의 10% 정도는 천지창조를 40-70% 정도만 신뢰하고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기독교의 '뿌리”이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성경에 기술되어 있는 대로 믿지 않은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결과는 공교육은 물론이고 교회교육도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 사료된다.

우리나라의 건전한 미래목회를 위하여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한 세계관을 창조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한 세계관으로 전환 시켜줄 수 있는 대책이 시급히 간구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2)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전연 믿지 않는다는 응답자의 수가 약 70%정도인 것은 1963년 미국 북가주의 교인 중 47% 정도가 진화론을 반대했다는 조사에 비하여 상당히 고무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직분자 중 약 5%는 진화론을 100% 믿는다고 응답하여 조사자를 놀라게 하였다. 직분자의 100%가 창조론을 믿는다는 응답을 기억하면 유신론적 진화론을 믿고 있는 성도들이 많은 것이 밝혀진 것이다.

남녀로 구분한 응답의 결과는 남녀  모두 약 60-70%는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나 30-40%는 진화론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하고 있다. 20세 이하의 40%는, 그 정도(程度, degree)는 다르지만,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결과는 기독교인 대학생 중 40-58%가 진화론은 과학적인 증거가 있다고 응답한 결과와 비슷하다[7]. 또한 이 결과는 우리나라 고등학교 학생 67%(미국인 70%, 한국생물교사 43%) 정도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 창조론과 진화론을 모두 가르쳐야 한다는 응답과 유사한 결과이다[9].

성도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유신진화론자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이런 가슴(마음)에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역사와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구원 사역, 성령의 오심,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메시지가 온전하게 전해지겠는가? 이것은 한국교회의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3) 일등만이 각광을 받아야 한다는 사고를 창조론적인 사고로 응답한 경우가 전체적으로 20%정도 되었다. 하나님은 이등도 기억하신다는 사실을 성도들에게 주지시켜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4) 나이와 남녀에 크게 관계없이 22%의 정도의 성도들(직분자 20%, 일반봉사자 28%, 평신도 17%)에게는 적자생존의 개념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들의 생활에 역사하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은 나이가 작을수록 크게 나타났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자기가 지고 가겠다는 것이다. 성도의 30% 정도는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살아가겠다는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5) 20% 내외의 성도들이 인물과 사회적인 지위를 보고 잘난 사란과 못난 사람을 구분한다고 응답을 하고 있고, 나이가 젊을수록 그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 응답의 책임의 일부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 사료된다.

(6) 모든 연령, 남녀 구별 없이, 일반봉사자와 평신도의 80% 정도는 믿음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으나 20% 내외가 하나님께서 행실로 사람을 평가하신다고 응답하고 있다.

(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중에서 성도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자유의지, 자연, 가정, 교회의 손서로 응답하였다. 성도들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크게 간섭하지 않으면서 굳건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 창조론적인 패러다임의 중요성이 입증 된 것으로 사료된다.

(8) 성도들의 50% 이상이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수십억 년을 지구의 나이로 응답하고 있다. 이 경향은 젊을수록 크게 나타나고 있으며 20세 이하에서는 70% 정도가 진화론적인 응답을 하고 있다. 공교육에서 실시하고 있는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의한 교육의 영향이 그대로 들어나는 결과이다. 이 결과에 대해서는 교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교회에서 젊은이들에게 창조론적인 패러다임에 대한 세계관을 함양시키지 못한 결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성경 말씀이 진실되게 증거될 수 없다.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9) 20세 이하의 젊은이들 중 20% 정도가 돈을 성공의 기준으로 응답하고 있음을 교회는 주목해야 한다. 지금 교회의 많은 젊은이들이 진화론적인 세계관으로 자기의 주위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음을 직시하고 창조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하는 세계관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시키는 일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여서는 안 된다 생각된다.

(10) 20세 이하 32%, 21-35세 72%, 36-50세 50%, 51세 이상 57% 정도가 창조론에 대한 과학적인 내용을 듣거나 읽은 적이 있다는 응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한 세계관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고 있음이 분명하게 때문에 창조론을 듣게 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될 것으로 사료된다. 듣게 하고. 이해시키고, 믿게 하여,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하는 세계관을 극복하고 승리를 이루게 해야 할 것이다.      


Ⅵ. Concluding Remarks

위 5절에서 논의한 사항은 논의이자 결론적인 사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따로 결론을 제시하지 않기로 한다(note; 논문 발표 시 요약한 결론을 말씀드릴 것임). 단 여기에서는 본 논문과 관련된 미래의 연구 방향과 테마를 정리해 보기로 한다.

(1)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한 세계관의 영향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여 목회에 적용하여야 한다.

(2) 창조론적인 패러다임에 기인한 세계관과 진화론적인 패러다임에 관한 세계관으로 목회자들의 설교를 분석하여 진화론적인 설교 내용을 지양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체계적인 연구가 수행되어야 한다.

(3) 과학과 신학을 통합에 관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연구가 수행되어 21세기 과학시대의 목회자들이 목회 현장에서 응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 감성을 터치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목회 패러다임을 이성을 올바로 세우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목회 패러다임으로 전환시키는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5) 진화론적인 목회 패러다임이 창조론적인 목회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추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도록 한다.


Ⅶ. 참고 문헌 

[1] Dixon, Thomas, 'Science and Religion;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2009.
[2] ibid, pp. 87-93, 'Varieties of creationism'.
[3] 미국 피츠버그 미국 창조과학회 학술대회, 2003.
[4] Bickel Bruce and Jantz Stan, 'Creation & Evolution 101, A guide to Science and the Bible in Plain Language', Harvest House Publishers, Eugene, Oregon USA, 2001.
[5] Dixon, Thomas, 'Science and Religion; a Very Short Introduction', p.95, Oxford, 2009.
[6] John f. Ashton, F. John(edited), 'in six days with fifty scientists choose to believe in creation', Master Books, April 2009(7th printing)
[7] Gallup poll, 1993.
[8] 이웅상, 이형복, ”대학에서 창조과학 가르치기”, 창조 11-12월호, pp. 4-12, 2002.
[9] 조정일, ”도마 위에 오른 진화론 교육”, 창조 7-8월호, p. 15, 2002.



출처 - 2009. 10. 10. 한국창조과학회 학술대회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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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Thomas
2009-10-07

도킨스의 최근의 책 : 지상 최대의 거짓말 

(Dawkins' Latest Book : The Greatest Lie on Earth)


     오늘날 아마도 가장 유명한 진화론자인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이 달에 서점에 등장할 새로운 책을 한 권 발간했다. ”지상 최대의 쇼(The Greatest Show on Earth)”라는 제목의 책은 그의 기준으로 독창적이고 확신하는 진화론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으로 있다.

”진화론은 하나님을 아무런 할 일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책의 발간을 앞두고 도킨스는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한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놀랄만한 범신론적 믿음을 드러내면서, ”생명체는 물리 법칙들이 만들어낸 가장 놀랍고 아름다운 산물이다”라고 주장하였다.[1]

하지만 그의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들이 동일한 물리 법칙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일까? 가디언 지에 실린 한 호의적인 리뷰글은, ‘지상 최대의 쇼’는 ”다시 한번 설명가로서 도킨스의 노련함을 입증하였다”고 했지만, 그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과학은 ‘꽤 표준 재료’들을 대부분 재탕하고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었다.[2]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도킨스의 글도 물리 법칙들이 어떻게 우연히 자연발생적으로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에 관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고 있었던 것처럼, 그의 새 책도 그가 전파하려는 진화론을 부정하는 수많은 강력한 증거들을 설명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그 책은 진화론이 주장하는 장구한 시간 동안의 끊임없는 변화와 일치하지 않는, 많은 생물 종들의 변화정지(stasis) 문제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2]   

생명체의 탄생에 있어서 물리적 힘에 호소하고 있는 도킨스의 주장은 허공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물리적 상호 작용들은 언어(language)라고 불리는, 생명체의 특징인 암호화된 생물학적 정보(coded biological information)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도킨스 자신도 ”생명체는 디지털 정보들이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쌓여서 이루어진다”고 인정했었다.[3] 하지만 그러한 정보가 자연적으로 우연히(지성의 개입 없이) 발생했다는 그 어떠한 관측 사실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도킨스는 물리학이 언어를 발명했음을 보여주는 단 하나의 사례도 제시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었다. (참조 : Was Dawkins Stumped?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712/)

물리학에 대한 연구들은 물질들의 상호작용을 설명하고 있다. 음성 언어처럼, 생물학적 언어도 물질들의 존재 없이도 ‘한 요소도 제거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y complex)’으로 되어있다. 생물학적 언어는 기호들, 기호들의 의미들, 해석을 위한 문법적 구조 등을 갖추고 있다. 이들 3가지의 기본적 특성들 중 하나라도 제거된다면, 그 정보 시스템은 소실된다. 물리학은 기호나 문법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물리학은 생명의 기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생명체는 암호화된 정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물리학이 부적격자라면,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그리고 누가 생명체에 들어있는 정보의 진정한 저자가 될 수 있는 것일까?[4] 만약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면, 그리고 그 저자가 성경의 하나님이라면, 그러면 사도 요한이 기록한 것처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라는 말씀은 신뢰될 수 있는 것이다.

도킨스의 말 중에서 한 가지 맞는 말은, 진화론은 하나님을 아무런 할 일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적 생명의 기원이나, 단세포에서 복잡한 생물로의 대진화는 관측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진화론은 기본적인 정보과학뿐만 아니라, 진화론과 맞지 않는 고생물학적 증거들을 무시하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광대극(farce)이다. 관측되는 생물학적 정보들은 하나님이 태초부터 많은 일들을 하셨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Dawkins, R. Man vs. God. The Wall Street Journal. Posted on wsj.com September 12, 2009, accessed September 16, 2009.
[2] Fortey, R. The Greatest Show on Earth by Richard Dawkins. The Guardian. Posted on guardian.co.uk September 5, 2009, accessed September 16, 2009.
[3] Dawkins, R. 1995. River Out of Eden: A Darwinian View of Life. New York: Basic Books, 19.
[4] Former atheist Antony Flew concluded that God was that author. See Thomas, B. Why Did Life Evolve Beyond Bacteria? ICR News. Posted on icr.org December 5, 2008, accessed September 16, 2009. 

 

*참조 : Darwinopterus v Dawkins : Pterosaur ‘missing link’ poses problems for a Dawkins’ evolutionary story in The Greatest Show on Earth
http://creation.com/richard-dawkins-v-darwinopterus

첨단과학으로 무장한 진화론, 다시 신의 존재를 묻다 (2009. 12. 11. 중앙일보)
http://arts.joins.com/news/article.asp?total_id=3918898&cloc=home|lifeb|culture

도킨스, 아직도 신을 믿는 이들을 꾸짖다 (2009. 12. 10.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09/12/10/0901000000AKR20091210151600005.HTML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4965/ 

출처 -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738

참고 : 4441|4131|3744|3729|1895|4068|3642|4704|4588|4494|4393|4342|4189|3714|3182|3333|4672|4366|4321|4491|3373|3075|2185|4634

Christine Dao
2009-06-13

대중문화는 진화론을 과학으로 선전하고 있다. 

(Pop Culture Parades Darwinism as Science)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1859년에 발간한 ‘종의 기원’에서 생물체들의 기원을 설명해보려고 시도하였다. 150여년 후에, 자연선택에 의해서 수정된 그의 이론은 진행되는 진화가 결코 관측된 적도 없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증거들로 지지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과학적 방법론과 실험적 연구법과 동등하게 생각되고 있다. 다윈의 진화 철학은 과학교육의 커리큘럼을 점령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오락 분야와 대중문화에서도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다.   

MythBusters(호기심 해결사,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영)의 아담 세비지(Adam Savage)는 지난 9월에 Popular Mechanics 지에서 말했다 : ”진화론 대 창조론을 다루고 있는 신문들은 종교를 가지고 과학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1] MSNBC’s Hardball의 크리스 매튜(Chris Matthew)는 창조론에 관한 그의 믿음에 대하여 한 공화당 의원으로부터 도전을 받았을 때, 그 이슈를 정치적으로 다루었다. 2009년 5월 5일 대중적인 토크 쇼인 The View에서 조이 베허(Joy Behar)는 어린이에게 진화론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동학대(child abuse)’라고 말했다.

고생물학자인 메리 슈바이처(Mary Schweitzer)가 몬태나 주에서 발굴한 공룡 티라노사루스 렉스(Tyrannosaurus rex)의 뼈들에서, 추정되는 6800만년 전이라는 연대가 사실이라면 오래 전에 분해되었을 연부조직과 적혈구들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기 1년 전인 1990년에,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richton)은 ‘쥐라기 공원(Jurassic Park)’을 발간했었다.[3]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는 1993년에 크라이튼의 책을 소재로 블록버스터 영화를 히트시킴으로서 오래된 연대 이론을 확산시켰다.

영국의 모터 쇼인 Top Gear의 참가자들도 새로운 스포츠카의 선전에 ‘진화’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자동차의 진화, 최고로 진화된 자동차...등등. 미츠비시 모터스는 1992년 이후로 ‘창기병의 진화(Lancer Evolution)’, 또는 에보(Evo) 라고 불리는 스포츠카를 제조해오고 있다.

진화가 실제로 일어난 것인지에 관한 토론과 논란이 과학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논란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 자체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서) 진화 가설은 대대적으로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홍보되고 선전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만물이 자연적으로 저절로 우연히 생겨났다는 가설은 오늘날 문화가 되었고, 그러한 이론은 증거들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되었으며,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비과학적인 종교적 맹신자로 매도되고 있으며,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의 글을 읽어보지도 않고, 교회와 정부는 분리되어야한다고 주장되고 있다.[4]  

종의 기원이 출간되기 전후에, 다윈은 그의 이론을 변호해주고 홍보해줄 다윈의 불독(bulldogs)들인 토마스 헉슬리(Thomas H. Huxley)와 다른 친구들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진화론은 그 이론의 근간을 부정하는 수많은 새로운 증거들과 연구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을 홍보해주는 헐리우드와 대중문화의 도움을 받아 지속적으로 선전되고 있다.

이제 진화론은 무신론자들의 일종의 종교가 되었고, 과학은 과학 없이도 선전되는 상태가 되었다. 무신론자들에게 다윈은 과학적 사실과 관계없이 숭배되어야 하는 것이다.



References

[1] Dao, C. MythBuster Mistakes Evolution for Science. ICR News. Posted on icr.org November 13, 2008, accessed May 12, 2009.
[2] Interview with Rep. Mike Pence on Hardball with Chris Matthews, May 5, 2009.
[3] Fields, H. May 2006. Dinosaur Shocker. Smithsonian.  
[4] The concept of ”the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was advocated to protect religious rights (i.e., the church) from governmental control (i.e., the state), not to bar religion from the public arena. The phrase was first used by Thomas Jefferson in his 1802 letter to a group that called themselves the Danbury Baptists. The text of the original letter is available on the Library of Congress website at www.loc.gov. Despite popular belief (and in part, distorted education and bad press), the phrase does not appear in the U.S. Constitution’s First Amendment, which reads, ”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4640/

출처 - ICR News, 2009. 5. 26.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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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ne Dao
2009-06-11

사람이 하나님을 창조했다는 무신론자들의 광고가 시카고에 등장했다. 

(Atheist Ads in Chicago Say Man Created God)


      최근 미국 시카고에 ”태초에 사람이 하나님을 창조하였다(In the beginning, man created God)”라는 무신론자들의 광고가 25 대의 버스에 등장하였다. 인디애나 주의 무신론자 버스 캠페인 협회는 ”사람이 모든 종교들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창조했다는 생각”을 지지하기 위하여, 3번째 가장 큰 도시를 목표로 정했다는 것이다.[3]

그 광고들은 작년에 영국 인본주의자 협회(British Humanist Association)가 후원을 하고 ”만들어진 신”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지지했던 유사한 캠페인들에 의해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다.[2] 그 조직의 웹사이트 FAQ에 의하면, ”블루밍톤(Bloomington, IN)에 사는 소수의 사람들은 영국과 캐나다에서 실시된 무신론 캠페인의 성공을 듣고, 미국 중서부에서도 비슷한 캠페인이 시작되었는지 궁금해 하였다. 어떤 캠페인도 없었다는 것을 알고, 12명 정도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무신론 웹사이트인 [inatheistbus.org]를 개설하였고, 후원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1] 

그 광고 문구들은 창세기 1장의 말씀들을, 즉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를 비틀어서 왜곡 사용하고 있다.

다른 광고는 졸업식에 참석차 노트르담(Notre Dame)을 방문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일정에 맞추어 선전될 예정이다. 그 광고 문구는 ”당신은 하나님 없이도 좋을 수 있다(You can be good without God)”로서, 그 광고는 시카고 버스들의 특색이 될 수 있을지 버스 회사가 승인을 놓고 논란을 벌여 연기됐었다.

현재의 광고는 ”수 주”동안 붙여질 것으로 계획되고 있다. 그 단체는 그 광고를 지속하기 위해 최근에 미국 인본주의자 협회로부터 5만불을 지원받았으며, 2009. 6. 2일에 버스 회사에 1만불을 더 지급하였다고 한다.

최근 크리스천 포스트 지는 인디애나 주의 무신론자 캠페인에 대하여 이렇게 논평하였다 :

최근에 기독교에 도전하여 그들의 반기독교적 믿음을 큰 소리로 외치고 있는 무신론자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미국의 인구 비율에서 무신론자들은 작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들의 활동에 대한 공격적 특성은 크리스천들 사이에서 특히 주목을 받고 있다.[3]

그들은 매우 소수이다. 갤럽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의 78%는 하나님을 믿고 있고, 단지 대략 6% 정도만이 하나님 또는 절대자를 믿지 않는다.[4] 또한 찰스 다윈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2009년 2월에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61%의 미국인들이 사람의 진화를 믿지 않고 있었다.[5]

무신론자들은 미국의 인구 집단 내에서 작은 일부의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의 증가하고 있는 활동들을 바라보면서 지혜로운 사람들은 다음의 말씀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14:1)


References

[1] The Indiana Atheist Bus Campaign website is located at inatheistbus.org.
[2] Dao, C. Dawkins Supports ‘No God’ Ads. ICR News. Posted on icr.org October 23, 2008, accessed June 2, 2009.
[3] Black, N. Atheists Advertise ‘Man Created God’ on Chicago Buses. The Christian Post. Posted on christianpost.com May 25, 2009.
[4] Majority of Americans Believe in God. Gallup Poll Video report. Posted on gallup.com July 28, 2008. [link: ]
[5] Newport, F. On Darwin’s Birthday, Only 4 in 10 Believe in Evolution. Gallup News. Posted on gallup.com February 11, 2009, accessed June 2, 2009. See also ICR’s analysis of this poll report in Dao, C. Poll: Majority of Americans Don’t Believe in Evolution. ICR News. Posted on icr.org February 24, 2009, accessed June 2, 2009.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4742/

출처 - ICR News, 2009. 6. 4.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645

참고 : 4441|2938|3391|4068|4345|3949|4542|4501|3107|2535|2527|2443|3688

David Catchpoole
2009-06-01

진화론 - 영적 세계에 대한 거부 수단

 (Evolution - the ultimate antidote to spirituality)


    세상의 주요한 철학 가운데 어떤 것이 영의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는가?
 
힌두교도 아니고 불교도 아니다. 이슬람도 아니다. 또한 명백히 유대교나 기독교도 아니다. 그리고 호주 토착 무속과 같은 물활론적 종교도 아니다. 더욱이 불가지론도 아닌 것은 그것은 최소한 영적인 세계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답은 무신론이다. 그렇다면 무신론자들은 사람 및 사람의 영성에 관한 개념이 어디에서 왔다고 설명하는가? 물론 ‘진화’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진화됐을 때 영적 실체에 관한 개념도 같이 진화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은 실질적인 영적 실체는 없다고 말한다. 즉, 그것은 신자들을 속여서 영적인 실체가 실제적인 것처럼 생각하도록 하는, 뇌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일 뿐이라는 것이다.[1]
 
그렇다면 영적인 세계가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그러한 믿음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그것은 간단하다고 진화론자들은 말한다. 영성이 진화되었다는 사실은 그것이 생존하는 데에 몇 가지 장점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살인, 간통, 근친상간 등에 대해 ‘법률’과 ‘금기’를 제공함으로써, 그것들이 개인과 단체를 도와서 그들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보다 성공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도왔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안다면, 진정으로 사람들은 진화론이 철학적으로 영의 세계를 거부하는 궁극적인 거부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명백히 이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기독교인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 ”나는 하나님도 믿고 진화론도 믿는다. 거기에 어떤 모순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영이시니...(God is spirit)”라고 말하고 있으며(요 4:24), 반면에 진화론에서는(선도적 진화론자들이 이해하고 있듯이) 영적인 실체는 없고 (그것은 마음의 착각이다), 악한 영도 없고, 성령도 없고, ‘하나님은 영’이 아니라고 말한다.
 
명백히 (하나님도 믿고 진화론도 믿는 것에) 모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하나님에 관하여 실제로 말하는 것을 모르고 있거나, 혹은 진화론 교과서가 실제로 가르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혹은 그 둘 다에 대해 무지하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진화론이 진정 어떤 것인지 진화론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코넬 대학의 생물학 교수인 윌 프로바인(Will Provine) 같은 사람은 최고급 수준의 진화론을 가르치는 그런 권위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 현대 진화론에 대한 믿음은 사람들을 무신론자로 만든다. 사람들은 진화론에 부합하는 종교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는데, 그것은 그 종교적 관점이 무신론과 일치할 때에 한한다.”[2]

또한 전 UNESCO 총재였으며 진화론을 선도하는 생물학자 줄리안 헉슬리 경(‘다윈의 충견’이었던 토마스 헉슬리의 손자)의 말을 생각해 보라. 그는 사람이 ‘신’을 만든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진화론적 사고방식에서는 더 이상 초자연적 존재가 필요하지도 않고, 그럴 여지도 없다. 세상은 창조되지 않았다. 진화되었다. 따라서 그 안에 거주하는 동물과 식물 모두도 그러한데, 거기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마음과 혼 및 뇌와 신체 등을 포함한다. 따라서 종교도 마찬가지다.”[3]

”따라서 종교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진화론은 영적인 실체가 실제적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으며, 오직 정신적 작용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영적 실체 - 진화론에 대한 위대한 해결 수단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우리 주위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진화론적 ‘관점’에서 일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때로는 물질적 설명을 부정하고 초자연적 설명을 강력하게 가리키는 사건들이 일어나서, 심지어 완강한 진화론자들도 영적 실체와 강제적으로 맞부딪쳐서, 기독교인으로 전향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 무신론자였던 한 사람은 이러한 전향을 이끌었던 사건에 대해 이렇게 썼다 :

”나는 점점 불길하게 되어가는 그러한 사건에 관하여 말할 수 있다. …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상황에 있을 때 더 이상 물질주의를 계속해서 믿을 수 없다. … 나는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영적인 전쟁을 목격하고 있었다. … 이제 나는 ‘나쁜 사람들’(bad guys)이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며, 그것이 나로 하여금 최대한 빨리 ‘선한 사람들’(good guys)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데 충실한 역할을 했다.”[4]

사실이 그러하다. 그리고 요즘에 일어나는 다른 사건들도 진화론적인 설명을 부정한다. 중산층(혹은 심지어 부유층)의 학력 있는 사람들이 비싼 조종 훈련을 받은 다음에 여객기를 납치해서 그것을 몰고 큰 건물을 들이받는 이유에 대해서는 진화론적 논리가 없다. 혹은 사람들이 폭탄을 자기 몸에 매고 군중이 많은 시장이나 기차 및 버스에 돌진하여 자폭하는 이유도 그렇다. 그러한 파괴에는 진화론적으로 설명할 논리가 없다. 그러한 행동이 어떻게 해서 보다 많은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해주는 것일까?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그러한 일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적인 실재가 존재하며, 파괴자라고 불리는 악한 천사(원래는 ‘매우 선하게’ 창조되었는데 타락했다)들이 존재한다. 행동으로 단 한 분이신 진정한 창조주를 섬기지 않는 사람은 그가 실감을 하든 안하든 파괴자와 동일 선상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누가복음 11:23).
 
그렇다면, 당신은 그분과 함께 하는 자인가, 아니면 그분을 반대하는 자인가?

 


References and notes
[1] But atheists, to be consistent, need to acknowledge that their thoughts about atheism and evolution are themselves the products of brain chemistry. Sadly though, they rarely (never?) do.

[2] Provine, W.B., ‘No free will’ in Catching up with the Vision—Essays on the Occasion of the 75th Anniversary of the Founding of the History of Science Society, Margaret W. Rossiter (Ed.), Chicago University Press, Illinois, USA, p. S123, 1999. 

[3] Huxley, J., Essays of a Humanist, Chatto & Windus, London, UK, p. 78, 1964.

[4] From the account of Dr Carl Wieland, now Managing Director of Creation Ministries International—Australia, in Wieland, C., and Ham, K., Walking through Shadows, Master Books, Arkansas, USA, 2002. (Quote from pp. 35–36.) (Also available in Dutch and Polish)



번역 - 대구지부

링크 - http://creation.com/evolutionthe-ultimate-antidote-to-spirituality

출처 - Creation magazine 30(3), June 2008.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636

참고 : 4596|3591|3426|3241|3244|3887|4579|3746|3717|3077|3642|778

Russell Grigg
2009-05-30

다윈 대 하나님

(Darwin vs. God)


       사람들이 세상에 관하여 혁명적인 개념을 갖게 하는데 가장 공이 크다고 널리 인정받는 그 사람은 하나님에 반대하는 많은 주장들을 했다. 여기에 몇 가지를 소개한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널리 생각했던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를 받아들이며 자랐다. 즉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의 잘 알려진 논증으로서, 시계의 설계가 의미하는 것은 지적인 시계공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므로, 우주의 설계에 있어서도 지적인 창조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윈은 ”나는 페일리의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이라는 책보다 더 감탄했던 책은 없다고 생각한다. 전에 나는 그것을 거의 외울 수 있었다”고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은 자연의 설계를 어떤 목적이나 다스리는 지성의 필요성 없이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데에 그의 삶의 대부분을 보냈다. 67세 때에 그 자신을 불가지론자로 불렀다.

다윈은 창세기가 실제 역사(real history)라는 것을 부정했다. 그가 주장했듯이, 만약 모든 생물 종(種)들이 극도로 느린 진화의 과정에 의해 생겨났다면, 창세기에서는 하나님께서 갑작스런 명령에 의해 식물과 동물과 사람을 따로따로 창조하셨다고 가르치고 있으므로, 그것은 틀린 것이 된다. 그는 이렇게 썼다 :

”나는 지금까지(즉 1839년 1월, 그의 나이 29세 때에) 점차적으로, 바벨탑이나, 징조로서의 무지개 등등 세상에 관하여 구약성경에 나오는 역사가 명백히 거짓이라는 것과, 하나님이 복수심에 불타는 폭군의 감정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으로부터, 그것을 더 이상 힌두(Hindoos; 원문대로)의 신성한 책 혹은 어떤 야만인들의 믿음보다 더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다윈은 기독교에서 기적적인 것을 부정했다.

그는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기적’에 관하여 이렇게 썼다 : ”우리가 자연의 확고한 법칙을 알면 알수록 기적을 더 믿을 수 없게 된다. 즉, 그 당시 사람들은 무지했고, 우리가 거의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경솔히 믿었고, 복음서들이 사건과 동시에 기록되었음이 증명될 수 없으며, 그것들이 중요한 많은 상세한 부분들에서 서로 다르므로 … 나는 점차적으로 기독교가 거룩한 계시라는 것을 불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윈의 논쟁은 철학적으로 결론 난 것이었다. 그는 자연에 관한 법칙이 확고하다고 알고 있었으므로, 모든 기적에 관한 기록이 틀리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모든 기적에 관한 기록들이 틀렸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을 경우에만 이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그는 순환논리를 펼치고 있었다.
 
또한, 기적은 자연의 법칙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에 더해지는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적절하다.


2. 다윈은 미래의 심판에 관한 성경적 교리에 분개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 ”사실 나는 어떻게 사람들이 기독교가 사실이기를 바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만약 성경에 쓰여 있는 것을 사실로서 받아들인다면, 나의 아버지와 형제와 나의 친한 친구들 대부분이 포함되는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원히 형벌을 받아야만 할 것이다. 이것은 가증한 교리이다.”
 
비평 : 사실상, 주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죄 값을 대신하여 죽으시도록 보내심으로써(요 1:29), 하나님 아버지는 영원한 형벌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하셨다.
 
다윈은 또한 ‘분개적 주장(argument from outrage)’이라는 오류에 대신 의존함으로써, 왜 형벌이 불공평한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는 대단히 심각하다. 하나님의 완벽하신 공의로우심은, 유한한 죄인이 무한한 기간 동안 형벌을 받든지, 아니면 무한하신 대리자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할 형벌을 대신 받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이시자 인간이신 예수님 자신이 세상 죄를 지심으로 이루어졌다(사 53:6).


3. 다윈은 자연선택으로 말미암아 설계가 곳곳에 나타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 ”이전에는 내게 매우 결정적으로 보였던 페일리의 주장과 같은, 자연 내의 설계에 관한 구식 주장은, 이제 자연선택의 법칙이 발견되었으므로 의미가 없게 되었다. 예를 들면, 마치 문짝의 경첩을 사람이 만들었듯이, 이매패류(bivalve) 조개의 아름다운 힌지(hinge)는 지적인 존재가 만들었음이 틀림없다고 더 이상 주장할 수 없다... 자연 내의 모든 것들은 일정한 법칙의 결과이다.”
 
비평 : 틀렸습니다, 찰스씨. 자연선택은 집단 내에서 ‘부적당한’ 개체를 도태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 때부터 이미 있었는데, 이전에 보이지 않던 유전자의 조합, 혹은 (유전자의 복제 실수가 유전되는) 돌연변이에 의해 손상을 입은 유전자를 드러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이미 존재하는 유전정보에만 작용을 할 뿐, 정말로 새로운 어떤 것을 저절로 생겨나게 하거나 혹은 설계할 수는 없다.


4. 다윈은 세상의 고통과 불행을 하나님이 없고 자연선택이 맞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많은 민감한 존재들이 ”때때로 너무나 고통을 당한다. 그러한 고통은 그 작용이 완전하지 않다는 점에서 자연선택의 믿음과 꽤 잘 들어맞다…”고 썼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썼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실 수 있는 분으로서 그렇게 전능하시고 그렇게 지식이 풍부한 존재라면, 그 분은 우리의 유한한 정신에는 전지전능하므로, 그의 자비가 무한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건 우리의 오성과 맞지 않는다. 거의 무한한 시간에 걸쳐 수백만의 하등동물들이 고통을 겪는 것에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비평 : 다윈의 고통에 대한 관점은 1851년, 당시 10살이던 그의 딸 애니의 죽음으로 대단히 개인화되었다. 그 일은 ”도덕적이고 정당한 우주에 대한 다윈의 마지막 남은 믿음을 파괴했으며, 그의 기독교 신앙에 최종적인 조종을 울렸다.” 하지만 그 자신이 선호하던 이론에도 고통이 있었고, 핵심적인 부분으로서 죽음은 마찬가지로 위안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원래 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셨고, 거기에는 어떠한 죄악이나 고통이나 죽음도 없었다(창 1:29-31). 이 죄 없는 세상이 첫 번째 사람의 반역으로 망쳐졌고, 아담의 불순종이 세상에 죽음이라는 침입자를 가져왔다(창 2:17, 참고 3:19). 하지만, 지금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될 수 있으며, 그분과 함께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수십억 년이라는 연대 개념과 타협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교회 내에서 다윈을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점진론적 창조론’과 매우 유사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생물 종(種)들을 수십억 년에 걸쳐서 창조하셨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 관점은 (사람의 탄생 이전에도 죽음이 있었고) 애니를 죽인 세균을 하나님이 아주 치명적인 병원균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죽음이 ‘마지막 원수’(고전 15:16)이며, ‘죄의 삯’(롬 6:23)이라는 성경적 가르침과 모순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세균을 이로운 행위자(beneficial agent)로 창조하셨는데, 단지 아담의 타락 이후에 치명적으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5. 다윈은 기독교인들의 내적 확신을 하나님에 대한 증거로 보는 것을 무시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 ”그러나 힌두교도, 마호메트교도 및 다른 사람들도 한 분의 하나님이 존재한다거나, 혹은 많은 하나님들이 존재한다거나, 혹은 불교도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거나, 각자가 자기의 편에서 같은 방식과 같은 설득력으로 주장할 지도 모른다. 또한 많은 야만족들은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존재를 믿고 있는지 확실히 말할 수 없다. 사실상 그들은 영과 유령을 믿으며, 타일러(Tyler)와 스펜서(Herbert Spencer)가 보여주었듯이, 그러한 믿음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다.”
 
비평 :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셨다는 반박할 수 없는 역사적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초기 기독교인들의 내적 확신은 결코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증거가 없었다면, 1세기에 기독교가 사라지고 말았을 문화적 요인이 최소한 17개나 있다.


6. 다윈은 맹목적인 우연보다는 ‘제1 원인’이 보다 더 장엄한 개념이라는 것을 인정했지만, 그러면서도 ”가장 하등한 동물이 지녔던 그런 낮은 정신으로부터 발달…된 인간의 정신이 그런 웅장한 결론을 도출할 때 신뢰할 수 있을까?” 라고 썼다.

비평 : 이것은 회의론자들과 논쟁할 때 기억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왜 우리가 그들 자신의 진화론적 가정 하에서 추정한 이론을, 그리고 그들의 회의론적 생각을 사실이라고 믿어야 하는가? 자연선택은 생존 가치(survival value)에서만 작용을 하는 것이지, 논리나 진리에는 작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단백질들이 임의로 결합하여 생명체를 만들 확률이 제로라는 것을 알고 있다.


7. 다윈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자녀들을 ‘끊임없이 가르친’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원숭이가 뱀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과 증오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뿌리치기가 힘들 것이다.”
 
비평 :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하나님을 쉽게 믿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여기에는 대부분의 어른들이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생각하지 않는 일본과 같은 나라에서도, 되풀이하여 배우지 않은 어린이들도 포함된다.
 
다윈의 주장은 어떤 믿음의 원천을 추적하여 그것을 반증하려고 시도하는 오류인 발생론적 오류(genetic fallacy)를 범한다. 사람들은 잘못된 이유로 인해서도 옳은 일을 믿을 수 있다.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게 되는 이유는 창조와 부활의 진리와는 관계가 없을 수 있다.



결론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며, 어떠한 사람도 하나님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를 증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히 11:6). 만약 증명하려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보다 더 뛰어난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의 믿음은 비이성적이 아니며, 논리와 이치로 뒷받침된다 (롬 1:18-20, 벧전 3:15). 다윈은 논리적 오류를 범했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자연에 나타내신 증거들을 무시하였으므로, 하나님을 반박하는 논쟁에서 실패했다.


*관련기사 : '성경·예수 안 믿어' 다윈 편지 첫 공개 (2015. 9. 12.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12/2015091200286.html

다윈의 편지 공개... '성서도 예수도 믿지 않는다'(2015. 9. 12.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43522

'성경·예수 안 믿는다' 다윈 편지 경매에 나와 (2015. 9. 11.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9/11/0200000000AKR20150911071200091.HTML



번역 - 이종헌

링크 - ,

출처 - Creation magazine 31(2), March 2009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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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lines
2009-04-06

다윈의 유전학적 곁눈가리개

(Darwin Had Genetic Blinders)


      2009. 3. 4일 - 다윈은 멘델(Mendel)과 동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러면 왜 그는 유전에 대한 틀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이 질문은 독일 쾰른대학(University of Cologne)의 조나단(Jonathan Howard)에 의해서 Science Daily(2009. 3. 4) 지에 게재되었다. 그의 논문은 다윈은 그 앞에 있는 증거들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던 철학적 곁눈가리개(philosophical blinders)를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글의 제목은 ”왜 다윈은 멘델의 법칙(Mendel’s Laws)을 발견하지 못했는가?”이다. 양적변이(quantitative variation)는 다윈 이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으며, 진화의 원료로서 양적변이에 대한 다윈의 몰두는 논리적으로 유전을 볼 수 없게 했다고 독일 쾰른대학의 조나단은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멘델의 법칙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다윈의 이론은 불연속적 유전에 기초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다윈은 식물들에서 실시한 자신의 육종 실험에서 불연속적 변이(discontinuous variation)를 볼 수 있었다. 그의 책 ”같은 종의 식물에서 다른 형태의 꽃들(The Different Forms of Flowers on Plants of the Same Species)”에서, 다윈은 심지어 매우 뚜렷한 단위 형질들을 관측했으나, 그것의 중요성을 기각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왜냐하면 ”유전 법칙들은 너무도 복잡하였고 명확한 분석이 쉽지 않았으며, 오로지 양적 변이가 진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윈은 그것을 논하지 않은 채로 남겨두었던 것이다. 반면에 다른 가정들을 가지고 있던 멘델은 이 관측이 한 주요한 발견의 열쇠임을 알아차렸다. ”다윈은 자신의 상자 안에 갇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유전 법칙을 깨달을 수 있는 불연속적 변이의 진정한 중요성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다윈의 곁눈가리개는 어디에서 왔는가? 조나단은 그 곁눈가리개는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이 제공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생물학에 대한 다윈의 견해는 1831-1836년의 비글호 항해 동안과 그 이후에 지질학자인 라이엘에 의해서 매우 큰 영향을 받고 있었다. 다윈의 초점은 생존에 유불리를 가져다 주는 작은 차이들이 장구한 시간 동안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을 것인가에 맞춰져 있었다.” 그 기사는 설명하였다. 자넷 브라운(Janet Browne)은 그녀가 쓴 다윈의 전기에서, 다윈을 작은 변화가 오랜 세월 축적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었다.(see 03/05/2004). 이러한 생각이 자연세계를 보는 그의 시각(지질학과 생물학)에 곁눈가리개를 쓰게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윈은 환경적으로 결정된 변화들이 또한 유전될 수 있다는 부정확한 믿음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고 Science Daily 지는 말했다. 이러한 잘못은 ”양적 특성들, 키, 몸무게 등이 환경적 영향들에 의해서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그의 또 다른 초점의 희생물이었다”는 것이다.    

그 기사는 다윈보다 멘델을 훨씬 더 칭찬하고 있었다. ”멘델은 생물학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다. 물리학, 통계학, 확률론에 대한 그의 이해는 다윈 보다 훨씬 더 우월하고 깊었다.” 그 기사는 생물학 저널(Journal of Biology)에 게재된 조나단 호워드의 논문을[1] 참고문헌으로 하고 있었다.


[1] Howard et al., ”Why didn’t Darwin discover Mendel’s laws?” Journal of Biology, 2009; 8 (2): 15 DOI: 10.1186/jbiol123.



이것은 주목할 만한 기사이다. 이것은 어떻게 과학자가 그의 고정된 세계관에 의해서 관측 자료들을 통과시킬 때, 그의 코앞에 있는 사실에 눈 멀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연구가 되고 있다. 다윈은 찰스 라이엘의 책(‘지질학의 원리’)으로부터 왜곡된 상이 맺히는 안경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삶 내내 이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 안경은 다윈으로 하여금 모든 것들은 장구한 세월동안 작은 변이들의 느리고 점진적인 축적으로 생겨났다고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 안경은 이후 세대의 추종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 안경은 새로운 유행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쓰게 되었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환경적인 변화가 유전될 수 있다는 잘못된 가정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이러한 가정들에 적응되었다. (이 이론에 적응되지 않은 사람들은 과학계에서 제거되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이러한 신-라마르크설에 의해 새로운 유전정보(new genetic information)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은 없다).          

현대 진화론자들은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었다고 헛기침을 하며 선포하고 있다. 그들은 다윈이 몇몇 실수를 범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 행성에서 가장 위대하고 훌륭했던 과학자인 다윈의 약간의 실수들은 1940년대의 신다윈주의자들에 의해서 모두 완전히 통합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긴 수염을 가진 새로운 우상 찰스 다윈을 비판하는 것은 악(evil)이 되었다.

”이제 우리 진화 생물학자들은 어떠한 곁눈가리개도 쓰고 있지 않다. 진화는 매우 확실하다. 모든 것이 분명히 밝혀졌다. 창조론자들은 과학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어떠한 편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과학자이다. 우리는 더 이상 곁눈가리개를 쓰고 있지 않다.” (그들은 곁눈가리개가 필요하지 않다. 그들의 눈에 융합되어 붙어버렸기 때문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903.htm#20090304a 

출처 - CEH, 2009.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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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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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James-Griffiths
2009-03-30

진화론 : 고대의 이교도 개념

(Evolution : an ancient pagan idea)


      대학에서 고대 역사를 공부하는 동안에, 나는 기원에 관한 이교도의 신앙을 접하게 되었다. 그것을 공부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진화론과 우주에 주어진 막대한 나이에 의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수년간의 과학적 탐구 후에, 나는 마침내 자연주의와 성경적 기독교 믿음을 조화시키려 시도했던 자유주의적 이해로부터 탈피하게 되었다.  


그리스 사람들

BC 600 ~ BC 100 경에 살았던 그리스 철학자들의 작품을 읽었을 때, 나는 다윈이나 현대적 가정들이 있기 오래 전부터 초기 형태의 진화론과 막대한 연대 개념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발견하고서 놀랐다.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 c. 610-546 BC)의 단편에서는 ”인간은 원래 다른 종류의 동물, 즉 물고기를 닮았다”고 가르치고 있었다.[1] 데모크리토스(Democritus, c. 460-370 BC)와 같은 사람은 ”원시인이 처음에는 ‘혼란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지만 ‘점차적으로 낱말들을 똑똑히 발음’했다”고 가르쳤다.[2] 에피쿠로스(Epicurus, 341-270 BC)는 우주는 원자의 우연한 운동으로 생겨났으므로, 하나님이나 신들은 필요 없다고 가르쳤다.[3]
 
그들 이후에, 로마의 자연주의자인 원로원 의원 플리니(Pliny the Elder, AD 23-79)는 이렇게 말했다 : ”… 우리는 우연의 지배를 너무나 잘 받기 때문에 ‘우연’ 그 자체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므로 우연은 하나님이 불확실하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4]
 
우주의 엄청난 나이와 관련하여, 플라톤과 많은 그리스 철학자들은 현재의 이 우주가 수백 만 년 전에 출현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락탄티우스(Lactantius)는 AD 4세기에 이런 글을 썼다 :

”플라톤과 다른 많은 철학자들은, 모든 사물들의 기원과, 세상이 만들어진 최초의 시기에 관해 무지하였기 때문에, 세상의 이 아름다운 배열이 완성된 이후로 수천 시대가 흘렀다고 말했다…” (여기서 한 시대는 1,000년을 말한다.)[5]



이집트인, 바빌로니아인, 힌두인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사상의 일부를 바빌로니아인과 이집트인과 힌두인으로부터 빌려왔는데, 그들의 철학은 수세기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예를 들면, 힌두 사상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브라만(우주)은 씨앗처럼 저절로 자연적으로 진화한 다음, 약 43억 년 전에 팽창해서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만들었다.[6] 이들 힌두인들은 재탄생과 멸망과 휴면의 주기를 가진 영원한 우주를 믿었는데, 이것은 ‘칼파스(kalpas)’라고 하는 것으로, 진동 빅뱅이론과 다소 비슷하다. 또한 힌두의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에 보면 크리쉬나(Krishna) 신은 ”나는 모든 생물이 진화한 원천이다”라고 말했다고 적혀있다.[7]

일부 바빌로니아인들은 자기들이 점토판 위에 천문학이 기록된 명각을 730,000년 동안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베로수스(Berosus)와 같은 사람들은 그 명각이 490,000년 되었다고 주장했다.[4] 이집트인들은 그들이 100,000년 이상 전부터 천문학을 이해했다고 주장했다.[8]

초대 기독교회의 교부들은 지구의 나이 혹은 문명의 나이에 대해 이교도들과 끊임없이 논쟁해 왔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들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6,000년보다 이전에 하나님이 지구를 창조하셨다고 했다.[9] 예를 들면, 가장 영향력 있었던 사람 중의 하나인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AD 354-430)는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하나님의 도시(City of God)’에서, 한 장 전체를 ‘세상의 과거에 대해 수만 년을 지정한 역사의 허구성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썼는데, 거기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인류의 특징과 기원에 대해 말할 때 자신들이 말하는 바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추측을 빼버리자. … 그들 역시 역사가 수만 년이 넘는다고 공언하는 고도로 거짓된 문서에 속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가지고 계산해 보면 아직 6000년도 지나지 않았다.”[9, 10]

안디옥의 감독이었던 테오필루스(Theophilus, AD 115-181)는, 플라톤이 대홍수와 그의 시대 사이에 2억년의 기간이 있다고 했고, 이집트인 아폴로니우스(Apollonius)는 창조 이후로 최소한 155,625년이 지났다고 주장한 것을 언급하면서, 이교도의 긴 시대 문제에 관하여 이교도 행정장관이었던 아우톨리코스(Autolycus)에게 변증하는 글을 썼다.[11]
 
고대의 이교도들은 점성학을 진짜 과학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것을 통하여 막대한 나이를 계산했을지도 모른다.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Julius Africanus, AD 200-245)는 이렇게 썼다 :

”실로 자기들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자부하는 이집트인들은 점성가들의 손에 의하여 순환(cycles) 및 수만 년과 같은 그런 종류의 설명을 생각해냈다.…”[12]


현대의 이교도들?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막대한 나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훨씬 더 복잡한 ‘연대측정’ 방법, 예를 들면,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과 같은 것을 이용한다. 그러나 Creation 지에서 종종 보여주었듯이, 이 방법들은 시간의 측정치가 아니라, 방사성 붕괴 산물과 같은 것의 측정치에 대한 해석일 뿐이며, 그러한 해석은 잘못된 가정들에 근거하고 있다.[13]
 
보다 최근에, 과학자들은 확률적으로 0에 가까운 자발적인 진화가 실제로 일어났다고 가정하고서, 어떻게 해서 생명체가 지구에 나타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을 생각해 내고 있다. (왓슨(James Watson), 윌킨스(Maurice Wilkins)와 함께) DNA 구조의 공동 발견자인 고 프란시스 크릭(Francis Crick)은, 지구상에 생명체를 있게 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외계인이라고 믿게 되었다.[14] 이교도의 신들이 맹렬하게 외쳐지고 있는 것이다!

보다 최근에 Scientific American 지에 막스 테그마(Max Tegma)가 쓴 기사에서와 같이 ‘다중 우주’ 혹은 ‘평행 우주’ 이론 등에 관하여 많은 추측들이 이루어지고 있다.[15, 16] 공상과학 영화인 매트릭스(Matrix)에서와 같이 요사이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므로, 이런 환상은 꽤 유용하다! 하지만 그러한 개념은 고대의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AD 430년에 그것에 대해 불평하며 이렇게 말했었다 :

”또 다시, 이 세상이 영원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세상은 유일한 세상이 아니라 수많은 세상들이 있다고 하거나, 혹은 실제로 이 세상이 유일한 세상이기는 한데 이 세상이 죽으면 일정 기간 후에 또 다시 태어나며, 이런 것이 수없이 반복된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17]

솔로몬은 약 3,000년 전에 이렇게 썼다 :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전도서 1:9-11).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단지 약 150년 후에 테오필루스가 아우톨리코스에게 한 다음의 말을 명심해야만 한다 :

”내 말의 목적은 단순히 많은 말을 내뱉는데 있지 않고, 세상이 만들어진 이후 몇 년이 지났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빛을 던져주고, 이들 저자들의 헛수고와 실없는 말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세월이 지났다고 확신하면서 플라톤이 말했듯이, 대홍수 이후로 지금까지 2만 곱하기 만년이 지나지도 않았고,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이집트인 아폴로니우스가 제시한 것처럼 10,375년의 15배가 지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피타고라스와 나머지 사람들이 꿈꾸듯이, 세상은 창조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모든 사물들이 저절로 생겨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것들은 창조되어서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의 섭리에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리에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시간과 시대의 전체 과정이 분명하게 계산됩니다.”[11]
 
”세상의 창조로부터 대홍수까지는 2242년이고 … 세상의 창조로부터 모든 햇수를 합치면 5698년이 되며, 우수리로 몇 달과 며칠이 있습니다.” [18, 19] 

 

References and notes

[1] Barnes, J., Early Greek Philosophy, Penguin Books, London, England, p. 72, 1987. Return to text.
[2] Cartledge, P., Democritus, Phoenix, London, England, pp. 20–21, 1998. Return to text.
[3] The Epicurus Reader: Selected Writings and Testimonia, translated and edited by Brad Inwood and L.P. Gerson, introduction by D.S. Hutchinson, Hackett Publishing Company, 1994. Return to text.
[4] Pliny the Elder, Natural history, translated with an introduction and notes by John F. Healy, Penguin Books, London, England, p. 13, 1991. Return to text.
[5] Lactantius, The Divine Institutes 7:14, Of the first and last times of the world, <www.ccel.org/ccel/schaff/anf07.iii.ii.vii.xiv.html>. Return to text.
[6] From The Mundaka Upanishad, Understanding Hinduism, pp. 5–9, <www.hinduism.org.za/creation.htm>. Return to text.
[7] The Bhagavad Gita, translation and introduction by Eknath Easwaran, Penguin, Arkana, p. 142, 1985. Return to text.
[8] Augustine of Hippo, City of God 18:40, About the most mendacious vanity of the Egyptians, in which they ascribe to their science an antiquity of a hundred thousand years, AD>410, <www.ccel.org/ccel/schaff/npnf102.iv.XVIII.40.html>. Return to text.
[9] These figures are based on the Greek Septuagint translation (ca. 250 BC), while our English Bibles are mainly translated from the standard Hebrew (Masoretic) text. Dr Pete Williams shows why the Masoretic Text is likely to be closer to the original Hebrew in ‘Some remarks preliminary to a Biblical chronology’, Journal of Creation 12(1):98–106, 1998; . Return to text.
[10] Augustine, ref. 8, 12:10, <www.ccel.org/ccel/schaff/npnf102.iv.XII.10.html>. Return to text.
[11] Theophilus, To Autolycus 3:26, Contrast between Hebrew and Greek Writings, AD 181, <www.ccel.org/ccel/schaff/anf02.iv.ii.iii.xxvi.html>. Return to text.
[12] The Extant Fragments of the Five Books of the Chronography of Julius Africanus 3(1), On the mythical chronology of the Egyptians and Chaldeans, <www.ccel.org/ccel/schaff/anf06.v.v.i.html>. Return to text.
[13] Walker, T., The way it really is: little-known facts about radiometric dating, Creation 24(4):20–23, 2002; Radiometric Dating Q&A . Return to text.
[14] Bates, G., Designed by aliens? Discoverers of DNA’s structure attack Christianity, Creation 25(4):54–55, 2003; . Return to text.
[15] Tegmark, M., Parallel Universes, Scientific American 288(5):31–41, May 2003. Return to text.
[16] But it is unscientific and special pleading. See Sarfati, J., Multiverses: Parallel Universes, in: Refuting Compromise, pp. 187–189, Master Books, Arkansas, USA, 2004. Return to text.
[17] Augustine, ref. 8, 12:11, Of those who suppose that this world indeed is not eternal, but that either there are numberless worlds, or that one and the same world is perpetually resolved into its elements, and renewed at the conclusion of fixed cycles, <www.ccel.org/ccel/schaff/npnf102.iv.XII.11.html>. Return to text.
[18] Theophilus, ref. 11, 3:28, Leading chronological epochs, <www.ccel.org/ccel/schaff/anf02.iv.ii.iii.xxviii.html>. Return to text.
[19] An exact date for the age of the Universe cannot be ascertained, but we know from Scripture that it is somewhat less than 7,000 years—see Freeman, T.R., The Genesis 5 and 11 fluidity question, Journal of Creation 19(2):83–90, 2005; Sarfati, J., Biblical chronogenealogies, Journal of Creation 17(3):14–18,2003. Return to text.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creation.com/evolution-ancient-pagan-idea

출처 - Creation ex nihilo, vol. 30, No. 4(7)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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