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번삼
2004-07-26

지상강좌 - 진화론, 창조론, 그리고 유신진화론


카톨릭의 유신진화화

카톨릭내의 유신진화론의 뿌리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가미된 스콜라 철학(Thomism)과 유니테리언(Uniterianism), 니이덤의 자연발생설(abiogenesis), 다윈의 진화론(evolutionism) 및 베르그송의 생의 철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그림4).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74)는 13세기에 야기되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단죄사건'(Aristoteles Condemnation 1210)을 성경과 교묘히 조화시킴으로써, 카톨릭에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접목시켰다. 그는 그리스의 자연관, 성경, 하나님, 인간 및 자연을 망라하는 스콜라철학을 <신학대전>에 집약하여 카톨릭 내에 범신론적 자연사상이 침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아퀴나스는 하나님을 '만물의 제일생성원인'(prima causa)이라고 표현하였다.

한편 예수회 신부였던 니이덤은 창세기를 인용하여 하나님이 물과 흙에서 생물(신종)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도록(tadsche, produce) 만드셨다고 해석하면서 생명의 자연발생설을 주장하였다(창세기 1;20-21, 2;19).

19세기로 들어서면서 영국성공회 출신의 뉴먼(John Henry Newman, 1801-1890)은 카톨릭교회의 추기경으로 자리를 바꾸면서 카톨릭 내의 진화서적에 대한 금서조처를 해제하고 유신진화론을 도입하였다.

20세기초 나타난 생의 철학자 베르그송(1859-1941)은 진화론과 창조론의 조화를 처음으로 시도한 사람이었다. 그는 <진화적 창조>(1907)에서 진화현상을 물질과 기계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에는 반대했으나 진화의 역사적 측면은 인정하였다. 자연계의 생명현상은 그 내면에 어떤 잠재력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창조주가 진화 메커니즘을 통하여 생물을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생명의 내부에는 보다 높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생의 원동력'(vital impulse)이 있기 때문에 생명의 기원과 역사는 창조적 진화론에 의해 이해되어야 한다고 하며 이러한 생명의 추진력을 '초월의식'이라고 불렀다. 이 흐름이 생식작용으로 다음 세대로 이전되면서 신종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예수회 신부인 샤르뎅(1881-1955)은 진화론을 입증하기 위하여 비정상적이리만큼 열성적으로 활동한 사람이었다. 샤르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에 동양의 신비주의를 접목시켰다. 그는 태초에 원물질(en arche)이 있었고 이것이 진화하여 단세포에서 식물, 동물,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후 온 세계가 하나로 통일되는 오메가포인트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것이 곧 예수라는 것이다.

이러한 샤르뎅의 저서들에 대해 카톨릭 당국은 처음에는 퇴출과 불매명령을 내렸으나(1957), 그후 모니텀(Monitum, 1962)은 금서조치를 해제했다. 샤르뎅이 소속한 예수회에서도 그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였다. 그는 유인원으로부터 인간이 진화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필트다운인, 북경인, 로데지아인 등의 조작 및 조립사건에 선도적으로 관여하였다. 그는 교황청과 프랑스정부에 의해 두 번에 걸쳐 추방당하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카톨릭의 유신진화화를 촉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비오 9세는 사실상 진화론을 수용했으나(Syllabus of Errors), 비오 12세는 <인간탄생>(Humani Generi, 1958)이라는 교서를 통해 진화론과 공산주의를 격렬히 비난하였다. 그러나 교황청 산하 과학아카데미의 압력으로 진화론을 신중히 연구, 검토할 것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를 계기로 카톨릭은 급속히 진화사상으로 물들어갔다.

이러한 추세는 마침내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청 산하의 과학아카데미에 보낸 서신(1996. 10. 23)을 통해 "인간이 생명의 초기형태에서  진화했다는 진화론은 가설 이상의 이론"이라고 피력함으로써 극에 달했다. 그리고 1999년에는 진화론을 카톨릭의 한 교리로 수용하면서 "이미 있던 존재(유인원)에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아담이 탄생했으며, 진화론은 지동설처럼 언젠가는 정설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진화론을 카톨릭의 공식 교리로 명확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카톨릭계의 한 신문은 "교황이 갑자기 우리를 원숭이의 후손으로 만들었다"고 개탄하였다. 이러한 전통복음주의의 퇴조는 사도 바울이 말했던, 말세에 나타날 배도 사건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개신교의 유신진화화

초대교회에서 교부시대까지 카톨릭과 같은 역사와 전통을 공유하는 개신교의 유신진화론의 역사적 뿌리는 역시 일부 교부들이 6일이라는 기간을 해석한 것에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명백하게 유신진화론의 모습이 드러나게 된 것은 에든버러 대학의 교수이자 목사인 찰머스(1780-1847)가 큐비에(1768-1832)의 다중격변설(multiple catastrophism)을 창세기의 내용과 조화시킨 간격설(gap theory)을 주장한 데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그림5).

큐비에는 창세기의 6일은 비유이며 지구상에는 여러 번 국지적 홍수가 있었고 그 때마다 지층과 화석이 형성되었으며,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가 전 지구를 덮었던 최후의 대홍수였다고 주장하였다. 찰머스는 창세기 1장의 1절과 3절 사이에 간격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6일창조설에 대해서는 문자적으로 24시간의 하루(literal 24 hour theory)를 지지하는 비교적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 후,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이면서 목사인 버클랜드(1784-1856)는 간격설을 수용하면서  여기에 6기간설을 덧붙였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그의 제자 라이엘(1797-1875)은 허튼의 지층형성 이론을 더욱 발전시킨 동일과정설과 국부홍수론을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동일과정설은 다윈의 진화론은 물론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등의 종교계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영국 지질학의 아버지"라 불린 스미스(1774-1851)도 국부홍수론을 주장하였다.

창세기의 6일창조설을 6기간설로 재해석하려는 이러한 국부홍수론(local flood theory)은 히치칵(1793-1864)에 의해 미국에 소개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찰머스의 간격설은 그후 밀러, 쿠르츠, 펨버, 스코필드 등에 의해 이론이 더욱 체계화되었으며, 특히 펨버의 이론이 스코필드 주석성경(Scofield Referance Bible 1917)에 소개됨으로써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영국에서 개신교의 유신진화화는 먼저 개신교의 한 축인 성공회를 통하여 가속화되었다. 스트라우스(1808-1874)는 <종의 기원>을 접한 후 성경의 기적들을 믿지 않게 되었다고 다윈에게 고백하였다. 킹슬리 신부(1819-1875)는 다윈에게 기증 받은 <종의 기원>의 영향으로 종의 불변설을 부인하고 자연선택설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다윈은 "기독교의 한 성직자가 내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은 스스로 다른 형태로 분화할 수 있는 약간의 원형만을 창조하신 것으로 믿는다고 하였다......그가 만든 법칙에 따라서" 라고 <종의 기원> 제2판에서 기술하고 있다. 킹슬리는 어린이용 교재인 <물의 자손들>(1863)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자연 어머니"라고 고쳐서 부르기도 하였다.

캔터베리의 추기경인 프레드릭 템플턴(1821-1902)은 진화론을 본격적으로 성공회 내로 이끌어 들였을 뿐만 아니라 영국 상원에 영향력을 발휘해 다윈을 기독교 심장부인 웨스트민스터교회당에 묻히도록 했다. 그의 아들인 윌리엄 템플턴 추기경(1881-1944)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진화론에 좌익사상까지 성공회 내로 유포시켰다. 이 밖에도 보이스카웃을 창설한 포웰(1857)과 나탈의 주교로서 모세오경과 여호수아서의 기적을 믿지 않았던 클렌소(1814-1883)의 역할도 지대하였다.

미국에서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죤 듀이(1859-1952)가 진화론적인 환경론을 교육계에 끌어 들였다. 그는 진화론에 기초한 인본주의선언(1933)을 만들어 기독교와의 대결을 선언하였다. 기독교계에서는 대중설교가 비쳐(1813-1887), 자유교회의 목사인 포스딕(1878-1969) 등이 진화론의 전파에 열성적이었다. 그리고 복음주의 신학자로 알려진 독일의 성경주석가 델리치(1813-1890)를 비롯하여 프랜시스 쉐퍼(1912-1984)나 에드워드 영(1907-1962)과 같은 학자들도 6기간설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유신진화론의 주장 종합

이상에서 보았듯이, 유신진화론에는 간격설, 날-연대설, 골격가설, 진행적 창조설 등이 있다. 이들의 주장하는 바는 조금씩 다르고 상호 모순되는 점도 있지만 개요는 다음과 같다.

간격설(Gap Theory)은 창세기 1장 1-2절 사이에 큰 간격이 있다는 주장이다. 첫번째의  창조세계가 천사장 루시퍼의 반란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그 상태가 2절에 나타난 혼돈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3절부터 시작되는 6일간에 지금의 우주를 다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첫번째 세계가 파괴되면서 동식물과 인간이 지층 속에 매몰된 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화석이 되었다고 한다. 창세기 1장의 1절과 3절 사이에 큰 지질학적 간격이 있다 하여 간격설이라 하며 재창조설(reconstruction)로 부르기도 한다.

날-연대설(Day-Age Theory)은 창세기 1장 3절 이하의 6일 창조가 문자적으로의 24시간이 아닌 지질학적 여섯 기간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각 지질연대마다 그 시대에 살았던 진화된 동식물들이 그 지층에 묻혔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날의 원어인 욤(yom)의 복수형 야민(yamin)이 '날' 이외에 '기간'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는 데 근거를 둔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서는 모두 단수형으로만 기술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골격가설(Frame Theory)은 성경은 구원에 대한 골격을 설명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창조→타락→구속→회복의 과정을 나타낸 것이므로,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과정은 구원을 설명하기 위한 신화이며 풍유이거나 비유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창세기의 역사성을 부인한다. 눌찌(1924) 등이 주장했으며, 일명 풍유설(allegory theory)이라고도 한다.

진행적 창조론(점진적 창조론, Progressive Creationism)은 하나님이 진화과정을 통해 천지를 창조하셨으나 필요에 따라 진화를 중단시키거나 직접 개입하여 신종을 만드신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생물의 신종이 전혀 태어나지 않는 현상을 설명하려고 고안해 낸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설명한 유신진화론의 공통된 주장은 다음과 같이 종합할 수 있다.

① 하나님이 창조의 주체이시나 진화론적으로 만물을 만드셨다. 따라서 지금도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법칙에 따라 창조는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은 창조사역에 직접 관여하지 않으며, 모든 자연계의 작용은 자연법칙에 따라 정해진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결정되어 있다(결정론).

②아담이 탄생하기 전(Pre-Adamic Age) 긴 지질연대가 있었다. 그 지질시대에 살았던 생물들이 그 해당되는 지층 속에 묻히면서 무기질과 치환된 것이 오늘날의 화석이다.

③하나님이 한 유인원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현생인류인 아담을 만드셨다.

④창세기에는 창조의 구체적 기록이 없으며, 모두 신화, 비유, 풍유적이다.

⑤하나님이 굳이 엿새동안에 서둘러서 창조하실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복음과는 너무나도 먼 거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비복음주의적 성격에 대한 신학적 연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①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신화나 비유화로 치부하며, 성경을 상징적이거나 상황적으로 해석한다. 예컨대 아담을 지은 흙은 선재하는 피조물(pre-existence 유인원)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②자연계에서 진화가 일어나 사람이 탄생했다는 주장은 질서도(orderness)의 지속적 증가를 나타내는 주장으로 이는 열역학 제2법칙(무질서도의 증가법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더구나 훼손된 자연회복에 대한 성경의 예언과도 대치된다.

③창세기 1장에는 10회나 모든 생물을 '종류대로'(min, kind)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풀과 채소(창1;12), 물고기들(창1;21), 새들(창1;21), 육상동물들(창1;24-25) 등이 진화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완전한 형태로 만드신 것이다. 종(species)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으며 벌게이트 성경 주석에 능통하였다는 린네는 성경에 기록된 '종류'가 생물학적인 '종'과 같은 의미라고 해석하였다.

④창세기에는 만물을 6일만에 창조했다고 했으며, 출애굽기에서도 하나님이 직접 6일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쉬셨다고 말씀하셨다. 그 어디에도 진화적 표현은 찾아 볼 수 없다. 만일 6기간설이 맞다면 성경은 왜 6일이라고 표현했을까 하는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⑤아담이 유인원에서 진화했다는 말은 반성경적이다. 그렇다면 이브 역시 같은 시기에 아담처럼 암컷 유인원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만드셨다고 추리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 경우, 인류는 한 혈통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신구약의 여러 곳에서 하나님이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한 혈통으로 만드셨다고 말한다.

⑥고통과 죽음은 첫 사람 아담의 범죄에서 왔다는 것이 성경의 핵심교리이다. 그러나 유신진화론에서는 아담이 태어나기도 전에 수많은 동식물과 인간이 죽어서 지층 속에 화석이 되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아담의 범죄로 죽음이 온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성립하게 되어 전통복음의 기초를 흔들고 있다. 창조라는 기초가 파괴되면 구원이라는 건축물은 자동적으로 무너지고 말  것이다.

⑦유신진화론자들은 특수계시(성경)보다 자연계시(자연법칙)를 더 중시한다.

⑧이들은 과학과 성경을 분리하여(Compartmentalism) 이분법적으로 해석하려 한다. 그럼으로써 양자간의 불일치와 마찰을 회피하려고 한다.

⑨창조연대가 길다는 주장은 역으로 짧다고도 주장할 수 있는 자가당착의 논리에 빠지게 한다. 유신진화론자들이 왜 굳이 진화론과 성경을 조화시키려고 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창조론

창조론의 뿌리는 창세기이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문자적 표현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축자영감설1)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에 플라톤(BC 429-347)의 관념론(idealism)과 로마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시의였던 갈레노스(130-200)의 목적론적 생기론(teleological animationism)이 창조론의 학문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선포된 후(313) 창조론은 다윈의 진화론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사실상 서양의 학계를 지배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견지되어 왔다. 중세기에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루터를 비롯하여 캘빈과 멜랑히톤(1497-1560), 카톨릭의 수아레스(1548-1617)와 페타비우스(1583-1652) 등에 의해 지지되어 왔다.

루터(1483-1546)는 어거스틴의 6기간적 해석을 비판하면서 지구는 6천년 전 어느 봄에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장로교 창시자인 캘빈(1509-65)도 이렇게 단호하게 말했다.

"(6일간이라 기록한 것은) 여러 나라에서 성행하는 괴이한 우화들을 물리치고 세계는 처음부터 시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림으로써 하나님의 영원성을  분명히 빛내며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며...... 우리로 하여금 일체의 공상을 물리치고 유일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6일간으로 나눔으로써 우리가 일생동안 이를 명상토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우주를 카오스상태로 창조하셨다고 했다.(When God in the beginning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the earth was empty and waste.)

이러한 창조론적 해석은 히브리원어성경을 가장 정확하게 번역했다는 흠정역 성경(King James Version 17C)에 인용됨으로써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번역에 참여했던 캠브리지 대학의 부총장인 라이푸트(1602-75)는 지구의 창조연대를 기원전 3,928년 9월 17일로(1642), 아일랜드 아르마 교구의 어셔 주교(1581-1656)는 기원전 4004년 10월 3일로 추정하였다(1650).

이러한 연대가 너무 짧은 것 같다고 지레 판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추측보다는 사실의 확인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9세기의 옥스퍼드 운동을 주도했던 웨슬레(1703-91)도 창조신앙의 회복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개신교는 물론 카톨릭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자연과학계에서는 린네, 파스퇴르(1822-1895), 슈라이덴(1804-1882), 슈반(1810-1882), 버효(1821-1902), 멘델(1822-84) 등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과학자들이 창조론에 입각한 자연과학의 이론을 확립하였다. 오늘날의 생명과학 이론들은 대부분 창조과학자들에 의해 수립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린네(1707-1778)는 생물과 광물의 분류체계를 확립하였다. 그가 동식물을 이분법으로 분류한 것은 종간에 불변하는 독립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비록 하등생물에서 고등생물의 방향으로 분류하였지만, 이것은 진화계열이 아닌 형태적 배열을 나타낸 것이었다.(Not phylogeny but taxonomy)

한편 프랑스의 해부학자인 큐비에(1769-1832)도 루터교도인 부인의 영향으로 종의 불변설을 주창하면서 라마르크(1744-1829)의 진화설과 대립하였다. 그리고 파스퇴르는 약관 39세의 나이에 <자연발생에 관한 시험적 검토>(1861)에서 "생명은 오직 생명으로부터 유래한다(life from life only)"는 생명속생설을 실험적으로 입증하여, 천여 년간 지속되어 온 생명의 기원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하였다.

오스트리아의 수도원 신부였던 멘델(1822-1884)은 완두콩과 분꽃을 이용한 실험으로 모계의 형질이 자손에게 유전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밝혔다. 그가 수립한 유전법칙은 다윈의 진화론과 대립되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으나 오늘의 생명과학은 그의 이론 위에 세워진 것이다. 독일의 슈라이덴, 슈반, 버효 등의 세포학자들도 "세포는 세포로부터 유래한다(cell from cell)"는 세포설(cell theory)을 확립하였다.

이처럼 오늘날의 생명과학 이론은 대부분 창조과학자들에 의해 기초가 잡혔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이론들이 흡사 진화론을 증거라도 하는 양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현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성경적 창조론(biblical creationism)은 스키너의 제목설(title theory)로 정리되었다. 즉 창세기 1장 1절은 1장 전체의 제목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창조론에서는 전통적으로 지구의 나이를 6천여 년에 문자적인 6일창조설을 신봉하고 있다. 그리고 창조과정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창 2;3f)라는 창세기의 내용은 무에서 유(時空物)의 창조(bara, creation)와 6일간 질서를 부여하는 만듦의 과정(asah, make)을 내포한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창조론은 헵(1879-1950), 훽세마(1886-1965), 루터교의 피퍼(1852-1931) 및 안식교의 지질학 교사였던 프라이스 등으로 이어졌다. 프라이스의 영향을 받은 헨리 모리스는 창조론연구회(CRS:The Creation Research Society, 1963)와 창조과학연구소(ICR: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1973)를 설립하여 전세계적인 창조과학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현재 켄 햄이 주도하는 AIG(Answers In Genesis)를 비롯하여 130여 개의 창조과학 단체들이 활동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1년 필립 존슨은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를 제창하고 진화론과 그 바탕이 되는 자연주의를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윌리엄 뎀스키와 마이클 베히 등에 의해 더욱 체계화된 이 이론은 자연과학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창조-진화논쟁을 사회과학의 무대로 확대시키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우리 나라에서는 세계복음화성회(1980)에서의 창조론 강의를 계기로 탄생한 한국창조과학회(1981)가 창조과학관 건립 등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창조과학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이 밖에 창조사학회(1997)와 창조신학회(1999)도 활발한 학술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맺는 말

진화론은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인 세계관으로서 조립, 조작, 사기 사건으로 점철되어 왔다. 유인원의 발굴 역사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는 나치의 만행을 포함한 수많은 역사적 범죄사건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 앞에 진실한 참회나 반성 없이 그런 사건들을 학문의 발전과정에서 빚어진 해프닝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지금도 진화사상에 알게 모르게 오염된 많은 과학자들이 인류의 복지와 국익을 내세워 낙태수술과 인간 배아의 복제를 감행하려 하고 있다.

진화론의 사실 날조는 일본 동북구석기문화연구소의 후지무라(藤村新一) 부이사장이 자국의 고대사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가짜 유물로 역사를 조작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는 두 곳에서의 유물날조를 시인했지만(2000. 11) 일본고고학회에서는 20개소 이상의 날조사실을 확인(2001. 9)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역사가들은 과거는 용서하되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참회가 없는 용서가 진화론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더욱 비극적인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마저 갖게 한다. 세계사는 이처럼 국수주의, 종교, 이데올로기, 진화론 등의 영향으로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 잘못된 역사는 반드시 정사로 복원되어야 한다.

특히 동물이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전제 아래 구성된 진화론적 시각의 문화사는 시급한 수정이 요구되고 있다.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 시대로 이어지는 역사기술이 전형적인 역사왜곡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창세기의 기록은 인간이 창조되면서 바로 목축과 농업이 시작되었고, 축성문화가 있었으며, 아담의 7대손 라멕 때에는 이미 지금과 같은 음악, 목축, 동철 문화가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4-5천년 전에는 노아가 2만 톤이 넘는 방주를 건조하였고, 뒤이어 그 후손들이 메소포타미아에서 드높은 바벨탑을 건조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최초의 인류문명이 매우 뛰어난 것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죄의 유입으로 홍수심판을 받아 모든 문명이 일시에 바닷속으로 수장되어 소멸하였다는 것이다. 그 후에 다시 신구석기의 문화가 출현하여 공존하면서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성경적 암시이다. 이토록 구체적인 성경의 기록을 무슨 이유로 굳이 외면하면서 인간의 상상력으로 과거사를 추리해 내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마음속에 하나님을 멀리 하려는 인간의 죄성에 기인함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진화론에 각별한 경계를 기울여야 한다. 진화론이 기독교계로 침투하는 것은 매우 교묘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들이 처음부터 무신론적 유물론의 모습으로 도전해 왔다면 기독교계는 놀라 합심하여 대항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유신진화론의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사상을 흡사 성경에 대한 해석의 일환인 양 신학의 형태로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구미의 많은 교육기관들이 이러한 사상으로 물들어 있는 것은 매우 우려할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기독교계마저 진화사상으로 물든다면 세계의 복음주의는 암울한 미래만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 교계에는 현재 이러한 진화사상이 구미제국에서 공부하고 갓 돌아온 젊은 신학자들에 의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한국교계마저 유신진화론으로 물든다면 '진리의 기둥과 터'인 하나님의 교회는 머지 않아 설자리 마저 완전히 잃게 될 것이다. 여기에 창조과학운동의 중요성이 있으며 모든 교회교육에 창조과학 커리큘럼을 필수적으로 삽입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교계와 학계가 협력하여 유신진화사상의 침투에 대처해야 한다. 학계에서는 창조신앙에 입각한 이론의 정립과 진화론의 허구를 체계적으로 파헤쳐야 하며, 진화론자들을 비롯한 불순한 세력들에 의해 왜곡된 인류의 역사를 정사로 복원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아울러 신학계에서는 창조과학에 대한 신학적 정통성을 뒷받침해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복음전파의 수단으로 우리 나라에 설립되었던 미션계통의 연세, 이화, 숭실 등의 대학과 배재, 경신, 오산, 이화, 정신, 대광 등의 고등학교들이 지금은 생물과 지구과학시간에 진화론에 입각한 내용만 열심히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반면, 창조과학은 거의 외면을 당하고 있다.

학교 당국의 행정책임자들이 현재의 상황을 이처럼 무관심으로 일관해도 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도대체 교육부에서는 무슨 권한으로 우리 자녀들에게 무신론적 유물론인 진화사상만 가르치도록 강요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계가 집단적으로 항의라도 해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아니면, 홈 스쿨링(home schooling)이라는 극단적인 처방까지도 검토해야 할 상황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1)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 verbal inspiration) : 성서의 한자 한자가 모두 하느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주장.  

  

출처 - 창조지, 제 131호 [2002. 5~6]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902

참고 : 5462|5461|5413|5272|5211|5210|5112|4766|4765|4636|4635|4542|4140|4039|3077|3426|3812|3244|3241|3041|3039|3037|3024|2864|2579|2359|2307|2114|2039|2016|1174|6107|6110

한국창조과학회
2004-07-26

진화론과 현대 발전 이론


     19세기 후반에 진화론은 영국의 철학자이며 사회학자인 스펜서(Herbort Spencer)의 노력에 의하여 좀 다른 형태로 출현하였다. 스펜서는 맬서스(Thomas Malthus)로부터 생각을 도출하여 다윈(Charles Darwin)과 같은 '적자생존(適者生存)'의 개념을 수정하면서 그 자신의 사회진화론을 그 자체의 조직 구조에 근거를 두었다. 스펜서의 진화에 대한 정의는 고전이 되었다.

"진화는 사물의 통합이며 운동에 부수하는 소실(燒失)이다. 그 기간 동안에 사물은 불명확하고 앞뒤가 맞지 않은 동질(同質)로부터 명확하고 시종 일관하는 이질(異質)로 변화하고, 보유된 운동은 평행적인 변형을 하게 된다"(Timasheff, 1964: 32).

콩트는 진화가 주로 도덕적 발달과 관념의 발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으며, 스펜서는 진화가 사회구조의 심층적인 전문화와 분화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콩트는 진화가 인간의 중재에 의하여 유도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사회의 과학적 지식은 도덕적 발전으로 귀착되며 계획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주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과 '사회위생학(social hygienics)'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반면에 스펜서는 '사회적 다원주의자(Social Darwinist)'라고 명명되었다. 그는 식물과 동물세계의 진화와 같이 '적자생존'의 원리가 사회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스펜서는 가난한 자들은 그들이 보다 덜 적합하기 때문에 가난하고, 반대로 부유한 자들은 부자가 될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상 스펜서 사상의 정치적 의미는 당시의 방임주의의 정치적 정책과 일치하였으며 현재의 철학적, 정치적 사상 속에도 존재하고 있다.

진화론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도 때로는 미미하지만 계속 보급되었는데 특히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Emile Durkheim)과 다른 사회학자들의 이론 속에 보급되었다. 진화라는 말을 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의 사회는 단순한 원시적 상태로부터 복잡한 현대적 상태로 발전한다는 논지를 포함시켰다.

사회발전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러한 일반 이론을 실제적으로 적용하면 이렇다. 가난하고 산업화되지 않은 사회는 진화의 원시적 단계를 나타내는 것이고, 반면에 산업화된 국가는 보다 복잡하고 개화된 단계와 관련되었다는 것이다. 보다 발전되고 복잡한 사회는 원시적(덜 발전된)사회가 결과적으로 도달하게 될 목표점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모든 사회는(비록 그 사회가 발전된 형태일지라도) 계속 발전적인 방향으로 진화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기간 동안에 진화론은 다른 나라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드는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특히 식민지 사회의 노동력과 물적 자원을 자국의 산업화를 지원하는데 사용하는 반면에 식민지 사회는 전산업단계에 그대로 남아 있도록 하는데 활용되었다. 식민지 정부의 활동과 종교 전도사업은, 덜 개발된 사회의 사람들은 원시적이고 '퇴보적'이며 '미개'하므로 자신들의 사회가 횡단한 것과 같은 단일의 직선적인 진화의 길을 따라서 발전하도록 이들을 도와줄 필요가 있다는 가정에 기초를 두었다.

20세기초 '진화론은 발전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도전을 받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면 사회적 행위의 특별한 측면과 어떤 사회 발전의 수준은 그 자체 기원(起源)의 견지에서만은 효과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비평가들은 주장하였다. 즉 한 사회의 역사적 진화의 계속성을 가정할만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진화론에 대한 두번째의 비판은 그것이 사회적 변칙, 예를 들면 현대 산업화된 환경 속에서도 대단히 전통적인 종교의식(宗敎儀式)이 존재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을 항상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은 이론에 맞지 않는 불규칙한 형태를 과거의 시대착오적 자취로서 설명하는 반면에 어떤 학자들은 사회 내에서의 그들의 기능적 상호관계와 실용의 측면에서 그것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진화주의에 대한 세 번째 비평은 점차로 지지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단일의 직선적인 성격에 관한 가정에 대한 것이었다. 이것은 특히 사회주의 국가의 출현으로 명백해졌다. 많은 비평가들은 진화론이 인과율(因果律)의 메커니즘과 변화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지 않았다고 느꼈다. 즉 이 이론은 사회의 상이한 진화단계는 기술할 수 있으나 한 사회가 한 단계로부터 다음 단계로 어떻게 이행되어 가는지에 관해서는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류의 필연적인 진보에 관한 가정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이 사건들은 사회가 발전해감은 물론 쇠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지적해 주었던 것이다.

 


출처 - 창조지, 제 130호 [2002. 3~4]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896

참고 :

John D. Morris
2004-07-26

진화론의 댐에 생긴 틈새가 넓어지고 있다.

(Cracks are widening in Evolution's Dam)


     지난 수십년 동안 공립학교 교실은 진화론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교과서에 있는 진화론 편향의 수많은 주장들이 허위라는 것과 심지어 어떤 것들은 새빨간 사기라는 것이 알려진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은 총체적 통제를 여전히 만끽하고 있습니다. 주(州) 교육법과 전국 교습(敎習)기준은 기원에 관한 과학적 이론을 다룸에 있어서 진화론에 대체할 수 있는 이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만을 배타적으로 교수하라는 지령을 내립니다. 진화론에 부합하지 않는 증거들은 교실 안에 도입되어서는 안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진화론에 반대하는 학생들은 동료 학생들 앞에서 모욕을 당하든가 등급사정 때 핍박받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사태가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진화론의 댐에 틈새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육계에 대한 진화론의 목조르기도 머지않아 곧 손을 놓고야 말 것입니다.

하지만 성급한 결론은 금물입니다. 성경적 창조이론은 공립학교의 과학수업에서 진화론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꿰찰 수는 없을 것입니다. 법정은 공립학교에서 '종교'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제어의 목소리가 단호합니다. 아무리 과거에 오랜 기간동안 공립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쳤지만, 아무리 미국의 머릿돌을 놓은 선조들과 나라의 교육체계가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치기를 소망하였지만, 오늘날의 기상조건 하에서는 창조론이 다시는 학교에 도입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기도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본래의 목적을 손상할 뿐입니다.

그러나 진화론도 또한 종교라는데 주목하여야합니다! 이 글에서는 물론이고 다른 세속적인 글에서도 그 사실이 극명하게 밝혀지고 있습니다. 진화론이라는 종교도 또한 학교에서 가르쳐서는 안 되기는 마찬가집니다. 미국의 과학교실에서는 다시 과학을 다루어야 합니다. 역사를 다루어도 안 되고, 과거에 대한 철학적(종교적) 이념을 다루어도 안 됩니다. 진화론의 기원의 이념 ━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라는 주제를 과학교실에서 다루지 말아야 합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동물적 본능으로부터 유발된다는 진화론의 도덕관이나, 인간생명을 천대하는 진화론의 인생관도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은 우리 학교를 송두리째 틀어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의 세계관도 큰 부분은 진화론의 영향하에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로 용인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화론의 댐에 생긴 주요 틈새는 1999년 8월에 드러났습니다. 캔자스 주 교육위원회가 교육계의 '엘리트' 한 분으로부터 건네 받은 추천내용을 좇아 내놓은 새로운 교수안내 지침을 거부하는 투표를 하였던 때가 그 때입니다. 그 교수안내 지침 내용은 지난날의 것보다 오히려 더 진화론적이었습니다. 여러 명의 교수들과 교육자들, 그리고 관련된 시민들은 학교 이사진과 함께 새로운 안내지침을 제기하였던 것입니다. 그 새로운 안내지침이란 것은 학교 교습시간에 찬성과 반대의 증거를 같이 제기하여도 좋다는 허락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비평적 사고의 능력을 고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새로운 안내지침이 채택되어 마침내 전 세계의 진화론자들로부터 빗발치는 비평을 유발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곧 '전문가'들이 캔자스 주로 쏟아져 들어와서 진화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사들을 학교 이사회에서 제거할 것을 극구 주장하였습니다. 외부로부터 막대한 자금이 그 안내지침을 반대하는 이사들의 금고 속으로 흘러 들어갔던 것입니다. 뒤이어 11월에 진화론자들은 이사회의 통제를 탈환하고 결국 결정을 뒤집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캔자스 주의 학교들은 예전보다 더 진화론적으로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진화론의 댐에 틈새가 생겨 누수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 누수 틈새가 임시변통으로 땜질이 됐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뒤이어 다른 주와 다른 학교 이사회들이 과학교육을 개선하고 과학시간에 종교교습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심사숙고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이때 이래로 펜실베이니아주, 서 버지니아주, 루이지애나주, 아칸서스주, 미시간주, 캘리포니아주, 인디아나주, 워싱턴주, 앨라배마주, 코네티컷주, 하와이주, 그리고 아마 그 밖에 다른 주들에서도 중대한 노력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진화론자들의 패배가 결정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진화론을 옹호하기 위하여 집결한 열성분자들은 언제나 똑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창조론자들의 조직과 창조론에 대한 선교와 과학적 탐구는 계속 활기를 띠어 갔습니다. 특히 창조과학회(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는 진화론의 과학적 파산상태에 관해서 계속 사람들을 교양하면서 창조론을 강화해나갔습니다. ICR는 어떤 정치적인 조직체가 아님은 물론이고 학교 이사회에 대해 로비활동 따위는 더더구나 하지 않습니다. 또한 어떤 후보를 후원하려는 의도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가능할 때면 정보를 제공하고, 또 자문에 응합니다. 캔자스 주에서 그렇게 하였으며, 또 많은 주에서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육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지 법제화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시민이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주의적인 진화론에 반대하는 이론적 근거들이 엄청나게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다 덜 '종교적'으로 개선된 교육을 원하는 욕구도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현상은 우리가 노력한 소산입니다.

물론 이 사역은 창조론자 조직이 혼자서 한 것이 아닙니다. 최근 이 일에 주요하게 참여한 사역자는 '지적 설계 (Intelligent Design)' 운동입니다. 이 단체는 특별히 고명한 과학자나 철학자를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기독교운동 단체라는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단호하게 반-자연주의자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들은 진화론이 의지하고 있는 종교 색을 띤 토대와 파탄 난 주장을 거침없이 폭로하고 있습니다. 많은 측면에서 이들의 이론은 주도면밀하게 비종교적이며, 또 훌륭한 과학교습을 창설하고 있기 때문에 공립학교 교습에 훌륭하게 부합합니다.

부가해서 말씀드리면, ICR는 지적 디자인 운동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들의 일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들은 공공연하게 크리스천임을 천명하는 과학자들입니다. 우리는 자연주의적 진화론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창조사역을 지지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창조주이신 성경의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로 하는 인격적인 친교를 옹호합니다. 우리는 ID (지적 설계) 단체의 과업을 지지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과업은 한계가 있는 것으로 느끼고 있음을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비록 어느 누가 자연 속에서 디자인의 증거를 발견한다 해도, 그한테는 여전히 구주가 필요할 것입니다. ICR과 ID의 십자군운동 (개혁운동)은 하나같이 효과적이고도 중요합니다.

2002년 1월에 부시 대통령은 새로운 교육 법안에 서명하였습니다. 그 법안은 학생들은 생물학적 진화론을 지지하지 않는 증거까지도 포함하여 모든 증거들을 배울 수 있어야한다는 특별 지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학생들은 이런 사안들에 관하여 어느 한 쪽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흉내 내지 않고 비평적 사고를 어떻게 하는가 하는 사고방법을 가르쳐야만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법안에 대해서는 Acts & Facts에 실린 본 사안의 Back to Genesis 장에서 토론되어 있습니다).  

오하이오 주가 이 새로운 연방법의 적용을 제일 먼저 기도하였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예전의 그 진화론의 부하들은 오하이오 주로 몰려와서 그 진저리나는 주장을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까지도 그 어떤 결론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합니다. 이제 이 사안의 진실한 본질을 인지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진화론자들의 주장에서 그들의 열기와 거친 호통을 여실히 알았습니다. 그들은 진화론자들이 전문가인 체하는 말속에 진실을 갈파하였던 것입니다. 지도급 진화론자들은 모두가 무신론자들이든가 아니면 무신론자인체 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미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사람들은 과학이라는 허울을 쓴 종교를 식상하고 있음은 물론, 보다 더 훌륭한 그 무엇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화론 사상과 가정과 사회의 도덕에 끼친 진화론의 악영향을 비난합니다. 현실적으로는 오하이오주의 창조론자들에게 불리하게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창조론자들은 실패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화론의 댐은 틈새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사태는 결코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 Dr. Morris is President of ICR.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president/prz-0205.htm

출처 - ICR President's Column, May 200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03

참고 :

Douglas W. Phillips
2004-07-26

법과 규범은 진화하는가? 

(Do Laws and Standard Evolve?)


       모든 지적, 또는 문화적 투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가설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말의 뜻을 명확히 정의하는 자는 승리한다. 진화론과 성경의 창조론과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화석이나 유인원 차원 이상에 것에 관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 논쟁이 관여하는 기본적인 전제들에 비추어 인생, 법률, 그리고 인간관계에 관련된 질문에 대답한다. 가장 중요한 논쟁의 주제는 지배권(Lordship)에 관한 싸움이다. 즉, 누가 주인인가? … 하나님인가, 아니면 사람인가?

금세기(20C)의 대부분을 통하여 다윈의 진화론이 문화 투쟁에서 승리자로 부상하였다. 진화론은 미국의 생물학 교과서를 재구성하는 일을 훨씬 넘는 성과를 이룩하여, 쟁점 사항인 자연에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뱀이 하와에게 던졌던 질문, ”하나님이 말씀하시더냐?” 바로 그 질문을 다윈이 현대인들에게 물으면서 선언하기를, 권위의 궁극적인 원천은 인간이라고 부추겼다.

이로 인해서 초래된 결과는 가히 파괴적이었다. 기독교를 공공의 장에서 배제하는 일, 모태 안에 있는 9개월 짜리 제 자식을 죽이는 일, 그리고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공공연하게 토론할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가 타락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물론 이런 것들을 승인하지 않지만, 일단 수세에 몰리면 그들도 도덕이 정치의 본령이 아니라는 항의에 순순히 침묵하고 만다.

그와 같은 논쟁에 사회가 취할 대응방법은 다음의 3 가지 원초적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과 직결된다. (1) 인간은 도덕률을 입법화할 수 있는가? (2) 가능하다면, 어떤 규범에 따라서 입법화할 수 있는가? 그리고, (3) 그와 같은 규범은 진화하는가? 이 질문들이 그것이다. 이 질문들 하나하나에 대한 대답은 기원의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 여하에 따라서 결정된다. 법률은 도덕적으로 중립이며, 인간 이성은 진리의 전권 결정자이다, 규범은 문화의 성숙도에 따라서 변한다는 화두를 가지고 다윈주의는 수많은 크리스천들을 설파하여 문화에 대한 성경적 기독교의 억제력을 무력화 시켰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진화론의 전제들을 정식으로 수용하기를 거부하지만, 그들은 그 이론이 근거하는 가정들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였다.

 

사람은 도덕률을 법제화할 수 있는가?

도덕률이 함축되어 있지 않는 법은 법제화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실질적인 질문은 과연 인간은 도덕률을 법제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고, 도덕률의 어떤 체계를 법제화할 것인가에 있다. 모든 법률은 명시적으로 도덕적이든가, 아니면 어떤 확실한 도덕적 개념을 지향하는 절차이다. 심지어 교통 신호등을 규제하는 법규까지도 도덕률을 내포한다. 교통신호등의 목적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게 하여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교통신호등도 다음의 명제들을 도덕적 개념으로 전제한다. 즉, (a) 질서는 선이고 혼돈은 악이다, (b) 재산권은 존중되어야한다, (c) 생명은 보전되어야 한다, 이런 것이 그것이다. 이 하나 하나의 원칙은 기원에 대한 창세기의 규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즉, (a) 당신의 사역을 '심히 좋았더라'(창세기 1:31)라고 선언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무질서의 창시자가 아니다(고린도전서 14:33), (b) 그는 사람으로 땅을 다스리게 하시며, 피조물에 질서를 마련하게 하사 재산권의 기초를 놓으셨다 (창세기 1:26), 그리고 (c) 그는 생명의 신성함을 합법적인 정부의 제1 원리로 정하셨다 (창세기 9:5, 6). 이런 명제들이 하찮은 신호등에도 그 기조를 이루는 무언의 도덕적 전제들이다.

물론 법률은 사람을 구원할 수도 죄를 씻을 수도 없다. 하나님은 민법으로 악행을 억제하려 하시지, 영혼구원의 원천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없다 (로마서 13:4). 아이러니컬하게도 실정법을 통한 인간구원을 주장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진화론적 인본주의자들이다. 인간의 문제는 상황적인 것이지 죄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진화론자들은 그 해결을 정부 차원에서의 계획이나 교육개선으로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희망한다. 그런 세상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 국가가 참 구세주로 존경받을 것임은 당연하다 하겠다.

 

법제화가 준거하는 규범은 무엇인가?

인간이 통치에 적용할 수 있는 규범은 단지 두 가지뿐이다. 즉, 하나님의 법이 아니면 인간의 의지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 두 규범들 사이에서 중간적인 바탕은 없다고 이해했다. 그들은 창조주에 대한 충성을 선언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초월적인 원리로서 법질서를 설정하셨음을 인정하였다. 우리들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로부터 고유한 권한을 부여받았음을 자명한 진리로 확신한다.

이와 같이 선언하면서 독립선언서는 창세기의 기원설에 견고하게 근거하고 있는 서유럽의 1000년에 걸친 법의 전통을 미국의 헌장에 구현하였다. 수십년 동안 미국의 법학도들은 윌리엄 블랙스톤 경(Sir William Blackstone)으로부터 법 이론의 기초를 창세기에서 배워왔다. 블랙스톤의 영국 법률에 대한 논평(Commentaries on the Laws of England)은 미국 법학도의 주요 교재였다. 그의 논평은 법 연구의 접근방법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법이었다.


1. 블랙스톤 전통 (The Blackstone Tradition)

블랙스톤은 법에 대한 총체적 분석의 근거를 일반계시(자연)에 대한 특별계시(성경)의 우월성 위에, 문자적 24 시간으로 된 6 일간의 창조주간 위에, 문자적 아담과 그의 원죄가 인간이성의 타락을 결과한 이유 위에, 그리고 재산권의 법률적 근거로 온 땅을 다스리게 허락하신(Dominion Mandate) 창세기의 기록 위에 세웠던 것이다. 블랙스톤은 성경의 권위를 사회의 유일한 합법적 근거로 단정하고 법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진화한다는 사상을 반박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람은 법을 만들지 않는다. 그 대신에 사람은 법을 찾아낸다. 법은 대다수의 의지 이상의 그 무엇에 의해 정당화되어야만 한다. 법은 영원한 의(義)의 기초 위에 서야만 한다. … 이에서 정해진 원리를 우리는 계시된 법률이라, 또는 신성한 법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런 법률은 성경 속에서만 발견된다. … 그리고 만약에 우리 이성이 우리의 최초의 조상이 죄를 범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 정욕에 의해 어지럽혀지지 않은 상태로 있고, 편견에 의해 흐려지지 않은 상태로 있고, 질병이나 방종에 의해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면, 우리 과업은 쉬울 것이다. … 그러나 사람마다 경험하는 자기 자신은 이에 역행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즉, 자기 이성이 타락하였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

계약, 재산권, 사범(私犯, 개인적 불법행위), 그리고 증거에 관한 기본적 관습법의 이론의 기원은 창세기의 처음 열한 장(章)들 안에 들어있다. 창세기는 하나님을 법의 부여자로(창세기 2:17) 명시하고 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의(義)와 자비의 의미를(창세기 3:15), 최초의 관례로서의 결혼의 취지를(창세기 2:21), 범죄자에게 속죄와 복원의 필요성을 (창세기 2:17, 3:17, 9:6), 성약(聖約)의 뜻을(창세기 9:12, 13, 15:18), 국가의 살인자 사형집행 관할권을(창세기 9:6), 가족의 자손양육권을(창세기 1;28), 가족에 대한 가장의 지휘권을(창세기 3:16, 18:19), 환경에 대한 인간의 지배권(창세기 1:31), 등등을 제정하신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법에 대한 블랙스톤의 명백한 창조주의적 접근의 엄청난 영향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작물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무시되고 천대받았다. 미국변호사협회 저널(American Bar Association Journal)의 1978년 7월 판에서 역사학자 헨리 스틸 코매거(Henry Steele Commager)는 벌어진 이 일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진화의 법으로 대체해버렸다.'


 2. 법에 대한 '과학적' 접근 (The Scientific Approach to Law)

”19세기 한 세기 내내 진화론의 영향 하에서 역사, 법률, 그리고 정치경제와 같은 구시대의 학문들에는 철저한 변화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인류학, 사회심리학, 비교신학, 범죄학, 사회지리와 같은 새로운 학문들이 대두하였다 …” (Julian Huxley).

1000년을 이어온 크리스천 법의 전통은 1870년에 들어와 맥이 끊겼다. 그 해 하버드 법과대학 신임학장 크리스토프 콜럼버스 랑델(Christopher Columbus Langdell)은 법학교육에 진화론적 접근을 시작하였다. 특히 법에서 창세기적 근본을 버리고 다윈주의에 뿌리를 대고 있는 철학을 취하였던 것이다.

랑델은 관습법에서 기독교 원리의 전통적 교수법을 포기하고 새로운 '케이스 북 방법'을 택하였다. 케이스 북 방법은 꾸준히 진화하는 판사들의 의견들을 통하여 법을 찾아내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최초로 출판된 그의 '케이스 북'인 Cases on Contrasts의 서문에서 랑델은 과학과 법률, 그리고 동일과정설과의 사이에 개재하는 상호관계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과학으로 간주되는 법은, … 현재의 상태로 되기까지는 그 진전이 완만하였다. 환언하면, 법은 하나의 성장하는 생명체로서 많은 경우 신장하는데 몇 세기를 걸리기 일쑤였다. 법의 성장과정은 대체로 일련의 사건 사례들(cases)을 통하여 추적해볼 수 있다. 그런데 법 이론이 구현된 사건사례들을 연구하는 것이 법 이론을 통달하는데 유일한 방법이 아닌 이상, 많은 경우 가장 짧은 사례들의 연구가 최선의 방법이라 하겠다.”

법학자 허브 티투스(Herb Titus)는 설명하기를, ”랑델은 사건사례들은 법 이론들과 원리들의 '원천'이라고 믿었다. 사건사례는 법규를 탄생시켰다. 탄생된 법규는 완만하게나마 일련의 사건사례들을 통하여서 완숙한 법의 원리로 진화한 것이다”라고 했다. 랑델은 한 세기를 풍미하던 전통을 세웠다. 그 전통에 따라서 판관들은 스스로를 선재(先在)법을 해석할 의무에서 해방되었다고 내다봤다. 그들은 이제는 무슨 법을 적용할 것인가를 자력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랑델은 ”무슨 규범에 따라서 사람은 법을 제정하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인간의 자유이성을 지목하면서 대답에 대신하였던 것이다.

 

법률은 진화하는가? (Do laws evolve?)

랑델의 법의 진화설은 1765년에 블랙스톤의 Commentaries가 출판된 이후 유일하게 미국의 법률에 크게 영향을 미친 이론이었다. 케이스 북 방법이 출판된 이후 여러 해를 통하여 학자들과 법학자들은 진화론을 미국의 법체계에 통합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랑델의 주된 영향은 법률 교육에 분명하게 다윈주의 방법론을 도입하는 일이었으나, 법 이론에 진화론적 인본주의 형상을 갖추는 과업은 그의 후배 법학도들과 지적 후계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미합중국 대법원 판사 올리버 웬델 홈즈 2세(Oliver Wendell Holmes Jr.)는 누가 뭐라고 해도 20세기를 통틀어 최대의 영향력이 발휘하였던 독보적 법학자였다. 그의 묵중한 논문, The Common Law는 블랙스톤의 Commentaries를 법학도들의 입문교재의 자리에서 밀어내고 대신 들어앉았다. 홈즈는 "법의 생명은 논리가 아니고 경험"이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법원은 법의 진화를 가르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옳고 그름은 절대적 의미로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판관들은 어떤 주어진 시점에서 진화하는 사회에 가장 적절한 규범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스스로 결정하여야만 한다고 설파하였던 것이다.

30여 년 간 홈즈는 그의 명백한 진화론적 편견을 법정에 도입하였다. 그는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사람에게 개코원숭이나 한 톨의 모래알과 다른 의미를 부여해야할 이유를 모르겠다.”

지조 굳은 진화론자 홈즈는 '인간 생명을 신성시하는 것은 관할지역 밖에서는 효력이 없는 순전히 제한적인 이상에 불과하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Buck v. Bell에서 획기적인 결심을 피력하였다. 즉, 그는 버지니아 주정부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간주한 사람들에게 강제로 거세를 명령하는 우생학 법을 공포하였을 때 이를 지지 격려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퇴보한 후손들이 범죄로 사형집행 되기를 기다리는 대신에, 또는 그들이 기아로 저능인간으로 영락하게 내버려두는 대신에, 사회가 나서서 명시적으로 적절치 못한 자들이 후손을 이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세상을 위해 좋은 일임을 알아야 한다.”

홈즈와 그의 동료들은 임신중절의 합법화, 이유 없는 이혼, 동성결혼의 입법화, 그리고 헌법입안자들의 이상을 거부하는 헌법해석, 이런 목표를 위한 기초를 놓았던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법정은 헌법을 입안자들이 의도하였던 의미에 비추어 해석하여야 한다는 개념을 거부하고 진화론적 기준을 헌법해석에 적용하고 있다.

 

결론 (Conclusion)

악(惡)이 문화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있어서 진화론이 광범위한 호응을 얻는 일까지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이론의 배후에 있는 가정들만으로도 족할 것이다. 진화론과 창조론과의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은 그것이 주도권의 싸움이기 때문에 포괄적이다. 법의 원천은 언제나 문명의 참 주인이어야 한다. 법의 수여자는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규범은 절대로 진화할 수 없다(히브리서 13:8). 인간을 위한 주님의 도덕법은 그것이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의 불변의 속성을 반영하기 때문에 결코 변할 수 없다. 이 원리들의 특정한 적용은 문화와 문화와의 사이에서는 다를 수 있겠지만 원리 그 자체는 변화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도덕과 정치의 분리, 아동 권리, 과다인구, 환경주의, 동성결혼, 교육, 극형, 형법체계의 목적, 이런 문제들에 관한 논쟁은 창세기에 근거하여 토론을 펼쳐야만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은 창세기 말씀으로 무장하고서만이 권위를 가지고 오늘날의 문제들을 명료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Douglas W. Phillips, Esq., is an attorney and adjunct professor of apologetics at ICR.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03.htm

출처 - ICR, Impact No. 303, 1998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90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4-07-26

냉혹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에 대한 다윈의 영향

: 카네기, 록펠러 등의 자본가들과 진화론

(Darwin's Influence on Ruthless Laissez Faire Capitalism)


개요 (Abstract)

몇몇 지도자적 위치의 '강도 귀족(robber baron, 착취로 축재한 19C 자본가)'들에 대한 글들을 검토하여 보면, 그들의 많은 수가 강자가 궁극적으로 약자를 지배한다는 다윈 사상의 영향을 극명하게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윈 사상을 신봉하였던 자본가들은 결국 강자의 약자 지배가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완전히 자연스럽다고 믿었기 때문에, 무자비한(때로는 비윤리적이며 불법적인) 상거래 관행이 과학적으로도 정당화된다고 확신하였다. 다시 말해서 다윈주의가 표방하는 관념과 결론은 '역사 전개'에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확신한 그들은 무자비한 상거래관행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서론 (Introduction)

다윈의 세계관은 나치즘이나 공산주의의 발전뿐만 아니라, 1800년대와 1900년대에 번창한 냉혹한 자본주의의 융성에도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Morris and Morris, 1996). 자본주의에 따라다니는 오명의 핵심은 남은 중요하지 않다는 극단적 개인주의에서 출발하여, 마침내 '약한' 회사를 착취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동시에 타당한 상행위라는 그들의 확신에서 연유되었다. 소위 robber baron들은 그들의 행동이 자연법에 의해 정당화되는 불가피한 역사의 소산이라고 추단(推斷)하였던 것이다.(Josephson, 1934). 그들 중 크리스천으로 성장한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교리를 거부하든가, 사회주의적 다윈주의를 포용하기 위하여 기독교 교리를 수정하려 하였다. 겔트루드 힘멜파브(Gertrude Himmelfarb)는 다윈사상이 영국에서 수용된 데는 부분적으로나마 그것이 어떤 특수층의 탐욕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르기를, 자연선택 이론이 영국 땅에서 발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이론이야말로 냉엄한 영국의 국가이념이 필요로 하는 원자론적(原子論的)이며, 이기적(利己的)인 의식구조에 기여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에서 다윈은 기본 단위는 개인이며, 기본 본능은 이기심이며, 기본 활동은 투쟁이라고, 사뭇 유순한 척 말하였다. 스펭글러(Spengler)는 기원을 '생물학에 대한 경제학의 적용' 이라고 기술하면서, 그것은 영국에서 빅토리아여왕 시대에 풍미하던 자본주의 윤리와 맨체스터 경제학의 '탐욕 철학'이었기 때문에…영국 공장의…자연선택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풍기고 있다(1962, p. 418)고 지적했다.”

라셀(Rachels)은 자본가들이 생물학의 '적자생존' 이론을 "살인적 경쟁을 승인하는 경제계의 윤리적 권유"로 해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였다.(1990, p. 63, see also Hsu, 1986, p. 10). 쥴리안 헉슬리(Julian Huxley)와 키틀웰(H.B.D. Kittlewell)은 다윈주의 사회학은 ”자유기업에 영광을 돌린 결과 경제사회를 무자비한 상행위와 전쟁, 비과학적인 우생학과 인종주의로 인도하여 마침내 히틀러와 나치의 이념을 낳았다”고 결론지었다.(헉슬리와 키틀웰에서, 1965, p. 81).

 

냉혹한 자본주의 (Ruthless Capitalism)

다윈주의는 공산주의자들의 무자비한 착취뿐만 아니라,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와 존 록펠러 (John D. Rockefeller)와 같은 독점 자본가들의 무자비한 상행위를 정당화하였다. 켄네스 슈(Kenneth Hsü) (1986, p. 534)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다윈주의는 영국과 미국에서 경쟁적 개인주의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상행위를 변호하는데 이용되었다.”

스탈린, 마르크스, 레닌, 그리고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카네기(Carnegie)도 한 때는 기독교 교리를 믿었으나, 결국에는 포기하고 다윈주의를 수용한 후, 저 유명한 다윈주의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와 친밀한 친구관계를 유지했다. 카네기는 자서전에서 친구 몇 사람과 함께 기독교 교리에 회의를 품게 되었을 때를 이렇게 회고하였다.

”… 기독교 교리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요소, 그리고 대속을 통한 인간구원의 계획과 그 위에 세워진 온갖 조직구조까지도 포함하여, 내가 회의를 품게 되었을 때, 다윈과 스펜서의 저작물을 만났던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 나는 빛이 홍수와 같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으며, 모든 것이 분명하게 밝아지던 경험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는 신학과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을 물리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진화의 진리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더 좋게 자라가는 것은 다 좋은 것이다' 라는 격언이 내 좌우명이 되었으며, 나의 진정한 위안의 원천이 되었다. 사람은 원죄를 가지고 지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저급한 모습에서부터 고급한 모습으로 높여졌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완성을 지향한 행진을 가로막는 어떤 막힘도 상상할 수 없다” (1920, p. 327).

아래 인용된 카네기의 말은 그의 지론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

”경쟁의 법은 그것이 선의냐 악의냐 와는 상관없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경쟁의 대체 개념은 아직 발견된바 없다. 법이 때로는 개인한테는 가혹할 수도 있을 것이나, 그것이 경주의 최선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모든 삶의 현장에서 적자의 생존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Hsu의 글을 인용함, 1986, p. 10).

기록에 의하면, 존 록펠러는 언젠가 한 번 ”대기업의 성장은 단지 적자생존의 결과다 … 자연의 법칙이 성취됐을 따름이라는 말이다 … ”라고 말했다.(Ghent, 1902, p. 29). 명목상의 크리스천 명사로 행세하던 록펠러 가문의 사람들은 진화론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다 못해 성경 앞부분의 책들을 신화라고 치부해버렸다.(Taylor, 1991, p. 386). 어떤 박애주의자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 Bryan, 스코프스 재판에서 창조론을 변호함)의 이름을 딴 대학의 설립을 위해 1만 달러의 희사를 약속하였을 때, 존 록펠러 2세는 이에 응수하기 위해 바로 그 날 공개적인 反창조주의 대학교인 시카고 신학교(Chicago Divinity School)에 100만 불을 기부하였다.(Larson, 1997, p. 183).  Morris and Morris는 록펠러의 철학이 철도계의 거물인 제임즈 힐(James Hill) 뿐만 아니라, 아마도 당시의 대부분의 자본가들에 의해서 수용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1996, p. 87). 모리스가 암시하는 바에 의하면, 수많은 현대의 진화론자들도

”…사회주의적 진화론자들의 극단적인 경향을 한탄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다. 즉, 다윈주의야말로 사업계와 정치계에 고루 팽배하던 무자비한 경쟁에 과학적인 재가를 허락해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19C의 자유방임주의적인 자본가들 사이에서 크게 인기가 있었다.” (p. 83).

이런 암시뿐만 아니라 Morris and Morris는 다시 이렇게 지적한다. 즉, 좌익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냉정한 극우 자본가들도 한 가지로 反창조론자들이다. 그리고 '심지어 상호간에 싸움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도 그들이 창조론에 대항할 때만은 공동전선을 펼친다 … (p. 82). 기독교를 포기하지 않는 자본가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 신앙을 다윈주의에 대한 신념과 혼합하려 한다. 그 결과 그들의 신앙은 유신론적 진화론이라는 절충 형태가 되어버렸다. 비록 대부분의 미국 사업가들이 짐작컨대 의식화된 사회주의적 다윈주의자는 아닐지라도,

”… 그들은 자신들이 거둔 것과 같은 성공은 상대적으로 덜 성공적인 경쟁자들을 유린하여 얻어진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근면과 덕행의 소산이라고 정의하였다. 어쨌거나 그들은 결국 스스로를 크리스천으로 인정하였으며, '너희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과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라'는 가르침을 충실하게 지켰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그들은 불가능한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부라는 신을 동시에 섬기려하였지만, 그들은 기독교 교리를 다윈의 생존투쟁과 적자생존 이념에 순응시키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동업자들과 결코 경제전쟁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의식하고 있었다.”(Oldroyd, 1980, p. 216).

자유방임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다윈의 중요한 기여를 기록한 몇 가지 연구발표가 있다. 무연탄 파업연대(Anthracite Coal Strike Commission) (1902-1903)의 청문회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 석탄 트러스트는 '적자생존' 이론에 개인의 자유와 권한을 가미하여 다윈의 이념을 설교하였다'(Doukas, 1997, P.367). 이 연구는 '미국의 국가 이념 안에서 엿볼 수 있는 사회주의적 다윈주의의 인기를 법인자본주의의 쇄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Douka, 1997, p. 367)라고 하였다.

로젠탈(Rosenthal, 1997)은 역사적으로 보아 생물속생설(생물은 생물에서만 발생한다는 이론)은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전쟁, 그리고 자본주의들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들을 수용하는 태도를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생물발생 이론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어떤 생물발생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새로운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생물속생설은 사업/사회에서의 경쟁, 남성우월주의, 공격적인 사회현상, 영토주도권 싸움, 외국인을 싫어함, 그리고 심지어 애국심, 이를 위한 전쟁, 그리고 인종간의 대량학살까지도 유전학적인 근거를 가진 인간의 보편적 특질이라는 새로운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발생 이론은 미국사회학 역사의 대부분을 통하여 두드러진 위치를 점하여왔다. 로젠탈(Rosenthal)은 쿨리(Cooley)나 소로킨(Sorokin)나, 섬너(Sumner), 그리고 로스(Ross)는 물론 심지어 파크(Park)까지도 지나날 반동적 사회정책을 권장하던 생물학적 인종주의 이론에 추파를 던지고 충실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오늘날 비즈니스에 집요하게 남아있는 다윈사상

비즈니스에 적용되고 있는 다윈주의 개념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곁에 팽배하다. 로버트 블레이크(Robert Blake)는 1996년에 출판한 Corporate Darwinism의 공동저자들과 더불어 현대적 다윈주의를 비즈니스에 적용하려 기도하였다. 그들은 비즈니스가 매우 예측 가능한 방법으로 진화할 뿐만 아니라, 특히 인간진화의 단계들과 매우 흡사한 단계들을 거치어 진화한다고 결론지었다. 이와 같은 '비즈니스 진화'는 자연스러운 진화라고 하였다. 즉 비즈니스는 경쟁상대를 먹든가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경쟁자에게 먹힌다는 다윈의 원리를 따랐던 것이다.

 

요약 (Summary)

다윈사상이 나치즘이나 공산주의의 발전과 성장에만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던 것이 아니고, '강도 귀족(robber baron)'이라는 말로 훌륭하게 설명되고 있는바와 같이, 자본주의가 무자비한 형태로 성장하고 발전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만약에 다윈이 그의 진화론을 발전시키지 않았어도 과연 냉정한 자본주의가 실제로 꽃을 피울 수 있을까에 대해 결정적으로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만약에 카네기나 록펠러, 그리고 다른 자본가들이 어린 시절에 품고 있던 순수한 유태교적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계속 포용하고 있었다면, 그리고 다윈주의자가 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는 1800년대 후반에서와 1900년대 초반에 그랬던 것처럼 무자비한 이념이 되지 않았을 것은 명백하다. Morris and Morrs(p. 84)가 암시하는 바에 의하면, 다윈이 출현하기 오래 전에 이미 다른 동기들(탐욕이나 야망, 그리고 심지어 일종의 선교사적 열정까지 포함된 동기들)이 포악하고 무원칙한 robber baron 상거래 행위를 자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다윈주의는 자본주의에게 일종의 외양상의 과학적인 합리성을 부여하여 주었기 때문에, 지난 세기(20세기)의 초반에 자본주의가 너무도 두드러지게 극단으로 흐르게 된 원인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Acknowledgements: I want to thank Bert Thompson, Ph.D. Wayne Frair, Ph. D., and John Woodmorapper, M.A., for their comments on an earlier draft of this article.

 


References

Blake, Robert, Warren Avis and Jane Mouton. 1966. Corporate Darwinism. Houston, Tx: Gulf Pub.

Caarnegie, Andrew. 1920. Autobiography of Andrew Carnefie, ed. John C. Van Dyke. 1986; reprint, Boston: Northeastern Uninversity Press.

Doukas, Dimitra. 1997. 'Corporate Capitalism on Trial: The hearings of the Anthracite Coal Strike Commission, 1902-1903. 'Identities: Global Studies in Culture and Power, 3(3): 367-398.

Ghent, William. 1902. Our Benevolent Feudalism. New York: Macmillan.

Himmelfarb, Gertrude. 1962. Darwin and the Darwinian Revolution. New York : W.W. Norton.

Hsu, Kenneth. June 1986. 'Darwin's Three Mistakes,' Gerlogy, (vol. 14), p. 532-534.

Hsu, Kenneth. 1986. The Great Dying:Cosmic Catastrophe, Dinosaurs and the Theory of Evolution. NN. Harcourt, Brace, Jovanovich.

Huxley, Julian and H.B.D. Kittlewell. 1965. Charles Darwin and His world. New York: Viking Press.

Josephson, Matthew. 1934. The Robber Barons. New York: Harcourt and Brace.

Larson, Edward J. 1997. Summer for the Gods: The Scopes Trial and America's

Continuing Debate Over Science and Religion. New York: Basic Books.

Oldroyd, D.R. 1980. Darwinian Impacts. Atlantic Highlands, NJ: Humanities Press.

Oxford University Press.

Rosenthal, Steven J. 1977. Sociobiology: New Synthesis or Old Ideoloy? American Sociological Association.

Taylor, Ian. T. 1991. In the Minds of Men: Darwin and the New World Ordr. Minneapolos: TFE Publishing.

Jerry Bergman, Ph.D., is on the Biology faculty at Northwest State Sollege in Ohio.

 

*참조 : Darwin’s critical influence on the ruthless extremes of capitalism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601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index.php?module=articles&action=view&ID=454 

출처 - ICR, Impact No. 333, 200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2

참고 :

Henry M. Morris
2004-07-26

진화론은 과학이 아닌 종교이다.

(Evolution Is Religion - Not Science)


       필자는 최근 2편의 Impact 글에서1, 2 진화론자들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무기입자들로부터 사람으로 진화했다는 생각이 과학적 이론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얘기한 바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나 과거 화석의 기록에서도 진화적인 전이형태들이 관찰되지 않았고, 보편적 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열역학 제2법칙)'은 그러한 것들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진화론자들은 진화가 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하지만, 창조과학자들과의 과학적 논쟁에서 항상 패배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 진화론자들은 과학적 논쟁의 기회는 갖으려하지 않고 창조론자들에 대한 일방적인 공격만을 가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창조론자들과의 공식적인 논쟁은 피해야하는데, 그 이유는 그러한 논쟁들이 득이 되지 않고 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여전히 창조론자들의 메시지를 반박할 필요가 있다.” 3

그들은 창조론자들의 주장에 그토록 반대해야 하는가? 왜 그들은 철저한 반창조론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진화론자들이 진화를 믿는 것은 그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억지로라도 창조주가 없이 모든 생명의 근원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그러므로 무신론 종교인 셈이다. 어떤 이는 이것을 인본주의라고도 부르고 있다. 그리고 신세대 진화론자들은 범신론의 한 종류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모두 같은 것을 의미한다. 무신론이든지 인본주의(혹은 범신론)든지 간에, 그 목적은 우주나 인간을 포함한 모든 구성물에 대한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에 있어서 신이라는 존재를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인본주의 철학의 핵심은 자연주의이다. 자연세계의 일들은 그들 자체의 원리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며, 신이나 초자연적인 조절과 안내 따위는 없으며, 우리 인류는 그러한 과정 중의 산물이다. 초기 인본주의 운동의 철학자들이 인본주의나 자연주의 중 어느 용어가 자신들의 입장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토론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두 개념은 상호보완적이며, 분리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4

자연주의와 인본주의는 일반적으로 과학이나 생명의 유지, 우주 등에서 신의 존재를 배제하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이 분명 무신론인 것은 분명하다. 무신론은 유신론이 아닌 이상 하나의 종교인 셈이다! 광신적인 무신론 진화론자인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조차도 무신론이 진실인 것은 증명할 수 없다고 했다.

”물론 우리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5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을 믿어야만 하고, 진화론을 종교로 만들었다. 진화론의 무신론적 성향은 허용되는 것뿐만 아니라, 진화론적 생각의 지도자들에 의해서 주장되고 있다. 예를 들면 Ernst Mayr는 이렇게 말했다.

”다윈주의는 모든 초자연적 현상이나 원인들을 거부한다”6

캔사스 주립대의 한 생물학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데이터가 지적 설계자를 설명한다해도, 그러한 가설은 자연주의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에서부터 배제된다.”7

매우 영향력 있는 진화론자인 하버드 대학의 굴드(Stephen Jay Gould)와 윌슨(Edward Wilson), 영국의 도킨스(Richard Dawkins), 코넬 대학의 프로바인(William Provine), 수많은 다른 진화론자들이 무신론자임은 과학계에 잘 알려져 있는 바이다. 심지어 저명한 과학철학자이자 열렬한 다윈주의 무신론자인 마이클 루즈(Michael Ruse)는 진화론은 그들의 종교라고 얘기한바 있다.

”진화론은 단지 과학이라기보다는 견습자(practitioner)에 의해 발전되었다. 진화론이 의미와 도덕성을 지닌 기독교를 완전히 대신할 수 있는 이상, 특정한 종교로서 공표 되었다… 진화론은 종교인 셈이다. 이것이 초기 진화론의 실체였고 오늘날도 여전히 그렇다.” 8

'종교(religion)'를 말하는 다른 방법은 실재사물을 바라보는 '세계관(worldview)' 이다. 진화론적 세계관은 생명체의 진화뿐 아니라, 전체 우주의 진화에도 적용된다. 우주적 진화론의 영역에서 자연주의 과학자들은 생명과학자가 실험하는 것보다 훨씬 실험적인 면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그들은 난해한 수학과 형이상학적 고찰을 통해 진화론적 우주론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Jeremy Rifkin은 이런 놀라운 놀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주론들은 사회에 의해 엄청난 기만(deceptions)들로 재구성된 물리적 실체의 작은 조각들로 구성된다.”9

그들은 모든 (진화론에 반하는) 과학적 근거들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믿어야만 한다. 그것은 과학적 근거가 그것을 증명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러한‘기만’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다음의 놀라운 구절을 주목하기 바란다.

”우리는 자연의 구성물중 일부가 들어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주의에 대해 확실치 않은 것에 대해 과학계가 관용적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한 면을 취했다.....… 우리는 관찰되는 사물에 대해 물질적 요인을 먼저 고려하도록 되어있으며, 물질주의적 설명만을 생산해내도록 개념이 잡혀있다. 더욱이 물질주의는 절대적인데, 이는 우리의 영역 안으로 신의 발걸음을 허락할 수 없기 때문이다.” 10

이렇게 솔직한 말을 한 사람은 하버드 대학의 Richard Lewontin 이다. 진화가 실험적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그 실험을 평가할만한 방법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이 교과서를 장식하는 데에는 쓰일 수는 있어도, 그것을 사실로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최근에 다른 진화론자에 의해 쓰여진 것에는 진화론자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연결고리가 빠진 조상을 규명할 수 없고, 진화가 어떤 식으로 일어났을 것인가를 설명해줄 만한 실험 가능한 이론을 짤 수가 없다. 애석하게도 어떻게 파충류가 마른 땅을 처음으로 정복하게 되었는지, 새들이 어떻게 날기 위한 날개와 깃털을 갖게 되었는지, 어떻게 공룡이 멸종했는지, 어떻게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는지 등은 편견에서 오게 된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11

놀랍게도 물리학자에 의한 이러한 정직한 고백은 과학자들의 근본이 자연주의임을 암시하고 있다. 믿음의 학생들은 가르치고 있는 고등교육을 받은 대학교수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나는 효과적으로 그들의 머리를 말끔히 비우기 위해서 신뢰를 사용한다. 우리의 교육방법은 1차적으로는 선전의 방법이다. 우리는 설명없이 우리의 입장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를 제시한다. 우리는 단지 현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들에 대한 증거와 논증만을 소개하고 반대되는 어떠한 근거도 제공하지 않는다.”12

진화론자 교수에게 과학을 배우고 있는 창조론자 학생들은 진화론에 관한 진술들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인가를 증명할 수 있다. Ruse가 지적했듯이 실제로 진화론은 종교성을 띄는 무신론을 기초로 하고 있는 비과학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 코넬 대학의 Will Provine은 이것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 과학자 중 한 명이다.

”창조론자들이 주장하듯이 현대 진화론에 대한 믿음은 사람을 무신론자로 만든다. 종교적 관점이 무신론과 구별될 수 없을 경우에만, 진화론과 같이 양립될 수 있다.”13

다시 한번 강조하면 진화론은 진화론자들의 장황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아니다. 진화론은 하나의 철학적 관점일 뿐이다. 다른 저명한 진화론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화론은 그들이 느끼듯이 모든 것을 설명해야만 한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은 실제 설명할 가치를 가지지 못할 때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진화론에 반대되는 것도 거짓임을 증명할 수가 거의 없기 때문에 논의될 수 있다. 실험적 증거들은 미미하다.”14

이러한 주장은 매우 일반적이다. 실제 진실된 진화(대진화를 의미)를 설명하는 실험적 증거는 적은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적 형태의 진화라는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항하는 오랜 전쟁(The long war against God)’15 이란 나의 책에서 역사의 초기부터 진화론의 일부가 반창조론자들에 의해 가짜 증거들이 근거로 제시되었음을 밝혔다. 이런 반창조론자들은 모든 고대 종교를 포함하며 오늘날의 세계적인 종교인 불교, 힌두교 등을 포함한다. 심지어는 창조론자들이 갖는 종교(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내에서의 자유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포함하고 있다.

20세기 진화론자들의 리더는 일반적으로 신다윈주의의 창시자인 줄리안 헉슬리(Julian Huxley)로 생각된다. Huxley는 진화론은 ”계시가 없는 종교 (religion without revelation)”라고 부르며, 그것을 제목으로 책을 썼다. 최근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진화는… 지구상에서 나타난 생각 중 가장 강력하고 가장 설득력 있는 생각이다”16

그 책에서 그는 열정적으로 하나님 중심의 종교적 관점으로부터 진화론 중심의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7 그리고는 계속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에 대한 가설은 지혜를 필요로 하며 도덕적 부담이 된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맺고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할만한 어떤 것을 만들어야 한다.”18

물론 여기서 말한 어떤 것이란 진화 인본주의의 종교이며, 오늘날 진화 인본주의자들이 시도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진화론에 반대되는 과학적 예의 요약을 마치며, 독자들은 모든 인용문들이 광신적인 진화론자들의 글들임을 주목하기 바란다. 성경의 인용은 전혀 없으며, 창조론자들의 진술도 전혀 없다. 진화론자들 스스로 진화는 과학이 아니라, 무신론으로서 종교적 신념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Morris, Henry M., 'The Scientific Case Against Evolution - Part I,' (Impact No. 330, December 2000), pp. i-iv.
2 Morris, Henry M., 'The Scientific Case Against Evolution - Part II,' (Impact No. 331, January 2001), pp. i-iv.
3 Scott, Eugenie, 'Fighting Talk,' New Scientist (vol. 166, April 22, 2000), p.47. Dr. Scott is director of the anti-creationist organization euphemistically named The National Center for Science Education.
4 Ericson, Edward L., 'Reclaiming the Higher Ground,' The Humanist (vol. 60, September/October 2000), p. 30.
5 Dawkins, Richard, replying to a critique of his faith in the liberal journal, Science and Christian Belief (vol. 7, 1994), p. 47.
6 Mayr, Ernst, 'Darwin's Influence on Modern Thought,' Scientific American (vol. 283, July 2000), p. 83.
7 Todd, Scott C., 'A View from Kansas on the Evolution Debates,' Nature (vol. 401. September 30, 1999), p. 423.
8 Ruse, Michael, 'Saving Darwinism from the Darwinians,' National Post (May 13, 2000), p. B-3.
9 Rifkin, Jeremy, 'Reinventing Nature,' The Humanist (vol. 58, March/April 1998), p. 24.
10 Lewontin, Richard, Review of The Demon-Haunted World, by Carl Sagan. In New York Review of Books, January 9, 1997.
11 Bowler, Peter J., Review of In Search of Deep Time by Henry Gee (Free Press, 1999), American Scientist (vol. 88, March/April 2000), p. 169.
12 Singham, Mark, 'Teaching and Propaganda,' Physics Today (vol. 53, June 2000), p. 54.
13 Provine, Will, 'No Free Will,' in Catching Up with the Vision, Ed. by Margaret W. Rossiter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9), p. S123.
14 Appleyard, Bryan, 'You Asked for It,' New Scientist (vol. 166, April 22, 2000), p. 45.
15 Morris, Henry M., The Long War Against God (Grand Rapids, Michigan: Baker Book House, 1989), 344 pp.
16 Huxley, Julian, Essays of a Humanist (New York: Harper and `Row, 1964), p. 125.
17 Ibid., p. 222.
18 Ibid.
* Dr. Morris is Founder and President Emeritus of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32.htm

출처 - ICR, Impact No. 332, 200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9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진화론에 반대되는 과학적 사례 2 

(The Scientific Case Against Evolution : A Summary Part Ⅱ)

Dr. Henry M. Morris 


      우리는 현 진화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의 진술로부터 한 종류의 개체로부터 더욱 복잡한 종류의 개체로 수직적 진화를 한 예를 인류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음을 지적했다.

진화론자들의 비슷한 진술들도 과거의 지질학적 시대에서 발견된 수십억 개의 화석들 중에서 그러한 진화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예들은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실제로, 이렇게 진화에 반대되는 증거들은 동시에 특별한 창조의 강력한 증거들이다. 사실 그것들은 기원의 창조모델에 기초한 특이적인 예견들인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명백히 창조된 것들간의 산재해있는 벽들을 분명히 예견해왔다. 비록 각 종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변이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멸종되지 않고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창조론자들은 또한 복잡하게 조직된 것에서의 수직적 변화는 좋게 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악화되는 것이라는데 동의한다. 왜냐하면 창조주는 시작될 때부터 정확하게 모든 것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화에 반대되는 논쟁과 증거들은 동시에 창조에 대한 긍정적인 증거가 되는 것이다.

 

유전학의 애매한 증거

진화에 대한 직접적인 어떠한 증거도 턱없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진화론자들은 DNA나 다른 생화학적 물질 같은 애매한 증거들이 진화가 과학적인 사실이라는 점을 증거해 준다는 입장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많은 진화론자들조차도 DNA 자체가 진화의 증거가 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DNA가 모든 개체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다른 두 개체간의 유사한 DNA 구조가 공통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한 주장은 근거가 없는 얘기다. 창조주가 생명체들을 창조할 때 같은 종류의 DNA 정보를 사용하지 않거나,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진화의 증거가 아니라, 지적설계와 창조의 증거인 것이다.

DNA 유사성의 예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예는 단지 DNA 유사성이 90% 이상이 되는 사람과 침팬지의 유사성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과 침팬지의 생리학적 유사성을 고려할 때 그리 놀라울만한 것은 아니다. 왜 그들은 사람과 거미간의 DNA 유사성을 비교하지는 않는가?

유사성(유전학적, 해부학적, 발생학적 등 어느 것이든)은 진화와의 관계보다는 동일한 설계자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더욱 잘 설명해준다. 유사성보다는 개체간의 큰 차이가 더욱 중요하다. 진화론은 모두가 공통 조상을 갖는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지만, 이것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이 없다. 어떻게 자연적 과정에 의해서 이렇게 커다란 틈이 도대체 발생했단 말인가?

사람과 침팬지의 명백히 적은 DNA의 차이는 해부학적으로 지성 등 여러 면에서 큰 차이를 나타낸다. 모든 유인원들과 인류와의 피상적인 유사성은 실제 관찰에서 보는 차이와 비교할때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진화론자들은 중간단계가 비어있는 틈을 발전하는 DNA나 다른 증거들이 메워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화의 증거가 화석기록이라는 마법에 걸려 있다. 그러나 화석증거나 비교형태학도 때론 그 결과가 앞뒤가 맞지 않을 때도 있다. 유전학 얘기에서 일관성 없는 많은 것 중 일부를 이야기하자면 Roger 박사가 Part I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러한 상황을 이렇게 요약했다.

”전반적인 영향은 분자 계통발생학이 결코 처음의 진화론자들이 믿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전체 변화의 복잡한 역동성은 분자 계통발생학에 여러 다른 결과들을 갖게 된다. 다른 유전자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1

Lewin은 전통적인 다윈주의의 증거들과 관련된 계통발생학적 증거들이 낳는 몇 개의 전형적인 자기모순을 언급했다.

”전통적인 분류방식에 의해 식충류에 분류되는 'elephant shrew'는 사실 진짜 코끼리와 매우 근접해있다. 소는 말보다는 돌고래에 더욱 가깝다. 오리너구리는 캥거루와 코알라와 진화적으로 같은 위치에 있다.” 2

이러한 접근 방법은 매우 이상한 비교가 되곤 한다.

유전자 암호에서 소위 '정크 DNA(Junk DNA)'가 많은 것이 진화의 특별한 증거로써 제시되었다. 특히 이들 Junk DNA는 돌연변이가 일어났던 것으로 생각되었고, 때론 pseudogenes(가짜 유전자-역자주)3 라고 불린다. 그러나 쓸모 없는 유전자로 간주되던 것이 실제로는 유용한 기능을 하는 것이라는 증거가 빠르게 축적되고 있다.

많은 유전자가 유전자 더미 속에서 이미 밝혀지고 있고, 쓰레기로 간주되던 것들이 과학적 암호인 것으로 밝혀지는 것을 보게 된다. 4

그러므로 정크 DNA (Junk DNA, 심지어는 pseudogene이라 불리던)가 기능이 없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단지 무지를 드러낸 것이었고, 유익한 연구에 대한 방해였던 것이다. 사람의 흔적기관도 진화의 증거로써 한때 간주되었지만, 현재 모두가 특이한 쓰임새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것은 단지 그것의 쓰임새가 과학자들에 의해서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기껏해야 이런 류의 증거들은 엄밀히 얘기하면 부수적인 것이다. 이런 증거들은 창조모델에서 기대되는 것처럼, 태초의 창조 후 점차 쇠퇴되어 가는 과정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진짜 문제는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진화에 과연 목격할만한 증거가 현재 있는지, 또는 과거에 있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보아왔듯이 심지어 진화론자들조차도 진화의 실제적인 과학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진화에 대항하는 가장 좋은 질문은 ”왜 목격 가능한 진화적 변화들은 모두가 수평적이거나, 소진화로 불리는 사소한 변화이거나, 퇴화나 멸종의 방향으로 향해 가는가?”이다. 그 대답은 과학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열역학 법칙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진화는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에나 과거에나 진화에 대한 증거가 없는 가장 과학적 이유는 자연의 가장 기본이 되는 법칙 중 하나가 이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 법칙은 바로 열역학 제 2법칙이라고 알려져 있는 엔트로피의 법칙인데, 이는 실제 세계에서 모든 시스템은 쇠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질서가 파괴되고, 복잡성이 감소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경향을 말한다.

엔트로피의 법칙은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잘 증명된 자연법칙 중 하나이다. 이 법칙은 단지 물리학이나 화학 시스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이나 지질학, 모든 시스템에서 예외 없이 적용되는 법칙이다.

”열역학 제 2법칙에 어떠한 예외도 발견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매우 작은 것에서조차도 말이다. 제 1법칙인 에너지에 관한 것에서처럼 정확하고 모델의 세부사항에 영향을 받지 않는 법칙이 존재하기 위해선 구성하고 있는 상호작용하는 물질들에 영향을 받지 않는 논리적 기반이 있어야만 한다.” 5

이 인용문의 저자는 일차적으로 물리학을 언급하고 있지만, 열역학 제 2법칙이 모델의 세부사항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게다가 실제적으로 모든 진화론자들은 환원주의자들(reductionists)이다 - 즉 그들은 생명체 내에는 생명의 기원이 되는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모든 생물학적 과정들은 물리, 화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생물학적 과정들은 또한 열역학 법칙에 따라 조정되어야하고, 실제로 모든 생물학자들은 이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에너지의 유입이 있는‘열린계 (open system)’이고, 이를 통해 모든 시스템이 자연적으로는 쇠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진화가 유지될 수 있으므로 논쟁은 해결될 수 있고, 진화는 어쨌든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뎀스키(W.A Dembski)의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 라는 최근의 감명 깊은 책을 진화 곤충학자가 거들떠보지 않는 이유이다. 이 과학자는 열역학 제 2법칙에 위반되는 진화의 결점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고 함으로서, 자연적인 과정으로 복잡성이 증가될 수 있다는 자신의 생각을 지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결점은 무엇인가?

”비록 닫힌계(closed system)에서 전체적인 무질서도가 감소되지 않을지라도, 커다란 시스템 내의 국소적 질서(local order)는 지적 요소의 작용 없이도 증가할 수 있다.” 6

이러한 엔트로피 법칙에 대한 얕은 생각의 답변은 전형적인 진화론의 위선이다. 열린계에서 어떤 조건에서는 부분적인 질서는 증가할 수 있지만, 진화는 그러한 조건들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지구는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오는 에너지로부터 열려있다는 것이 어떻게 태양열이 열린계나 닫힌계에서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변화를 했는지에 대한 아무런 해답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잘 알려지고 가장 근본적인 열역학 방정식은 열린계에서 열의 유입이 그 시스템의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증가시킬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열린계에서 알려져있는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경우는 어떤 종류의 안내 프로그램을 따를 때와 하나 이상의 에너지 전환 메커니즘이 있는 경우에서이다.

진화는 이 두 가지의 경우에 다 해당되지 않는다. 돌연변이는 질서화되는 메커니즘이 아니라, 제 2법칙에 따라 질서가 파괴되는 메커니즘이다. 그것들은 모두 해롭고, 때론 아무런 해가 없는 정도이지, 유익하진 않다 (적어도 지금까지 관찰된 돌연변이에 있어서는). 자연선택은 질서를 만들어낼 수 없고 단지 질서가 와해된 돌연변이를 걸러줄(제거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지, 새로운 질서가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원칙적으로 모든 시스템이 즉시 또는 나중에 와해되는 경향에도 불구하고, 진화가 열린계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러한 우주적인 경향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과거나 현재나 진화를 믿을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진화론자들 스스로가 말한 것처럼, 실제 진화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는 없다. 유일하게 관측되는 증거는 엄격한 한계 내에서 매우 제한된 수평적 변화뿐이다. 진화는 과거에 결코 발생하지 않았고, 현재에도 발생하지 않고 있으며, 전혀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References
1 Roger Lewin, 'Family Feud,' New Scientist (vol. 157, January 24, 1998), p. 39.
2 Ibid., p. 36.
3 Rachel Nowak, 'Mining Treasures from `Junk DNA',' Science (vol. 263, February 4, 1994), p. 608.
4 Ibid.
5 E. H. Lieb and Jakob Yngvason, 'A Fresh Look at Entropy and the Second Law of Thermodynamics,' Physics Today (vol. 53. April 2000), p. 32.
6 Norman A. Johnson, 'Design Flaw,' American Scientist (vol. 88. May/ June 2000), p. 274.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scientific-case-against-evolution-summary-part-2

출처 - ICR, Impact No. 331, 2001.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진화론에 반대되는 과학적 사례 1 

(The Scientific Case Against Evolution : A Summary Part I)

Dr. Henry M. Morris 


      진화에 대한 믿음은 매우 놀라울만한 현상이다. 이는 대진화를 뒷받침할만한 과학적 증거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토양 위에 열렬히 보호되고 있는 믿음이다. 이런 이상한 상황은 진화론자들이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최근의 말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언급들은 진화가 현재에도 일어나지 않으며, 과거에도 절대 일어나지 않았음을 무의식중에 보여주고 있다.

 

진화는 현재 일어나지 않고 있다.

첫째로, 진화의 예가 적다는 것은 진화를 관찰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볼 때 명백하다. 진화가 실제 일어나는 과정이라면, 진화는 현재에도 일어나야만 하고,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전이 형태 (transitional forms)'가 수없이 존재해야만 한다. 물론 그 대신에 우리가 보는 것은 종 내에서 서로 다른 많은 변이종들을 가지고 있는, 식물과 동물의 분명한 '종류들(kinds)'의 나열뿐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분명히 연결할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많은 종류의 개들이 있고, 많은 종류의 고양이들이 있을 뿐이지, 이들을 합쳐놓은 듯한 동물은 없다. 이러한 변이들은 소위 소진화(microevolution)라 불리고, 이러한 작은 수평적인 변화들은 엄연히 일어나지만, 이것이 수직적인 진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진화 유전학자들은 초파리로 실험을 하거나, 매우 빠르게 번식하는 다른 종들을 사용하여 새롭고 좋은 변이종을 만들기를 희망하며 돌연변이를 유도하곤 하였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목표를 성취하지 못했다. 어떤 새로운 종도 만들어지지 않았고, 단지 원래의 종(basic kind)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오늘날의 진화론을 이끄는 진화론자이며, 피츠버그 대학의 인류학 교수인 Jeffrey Schwatz는 최근에 이렇게 말했다.

”... 어떤 방식에 의해서든 새로운 종이 형성되는 것은 과거에도 관찰되지 않았고, 현재에도 관찰되지 않는다.” 1

전통적인 과학적 방법은 실험적 관찰(observation)과 재현성(replication)을 요구한다. 한 번도 관찰된 적이 없는 (소진화와 분명히 구별되는) 대진화(macroevolution)는 진정한 과학의 영역에서 추방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현재 살아있는 진화론자 중 최고참 격인 하버드대 생물학과 교수였고, 진화는 '단순한 사실(simple fact)' 이라고 우겨댔던 Ernst Mayr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는 '역사적 과학(historical science)' 이며, 법칙과 실험은 진화를 설명하기에는 부적절한 기술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진화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화는 과거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진화론자들은 오늘날 진화는 매우 느리게 일어나기 때문에 관찰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비판에 대해 답변한다. 그들은 진화의 실제 증거들은 과거의 화석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발굴된 수십억 개의 화석들에서 진화과정 중의 모습인 전형적인 전이형태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다윈에 의하면 진화는 움직이는 점진적인 과정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논리적으로 하등한 것에서부터 고등한 것으로 진화하는 전이형태의 화석증거들을 수없이 가져야할 것이다.” 3

심지어는 빠른 진화를 믿는 사람들조차도, 하나의 구별된 종(kind)이 다른 더욱 복잡한 종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세대가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화석에는 상당한 수의 전이형태의 구조가 있어야한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소위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s)라는 화석기록의 간격을 채우는 대신에, 대부분의 고생물학자들은 화석종 간의 중간형태에 대한 증거가 없고, 화석기록에는 간격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직면하고 있다.4

무생물에서 생명체로의 진화, 무척추동물로부터 척추동물로의 진화, 유인원에서 사람으로의 진화의 역사는 놀랍게도 그 중간단계가 빠져있다. 화석기록에서의 그 중간단계는 모두 빠져있다. 단지 현재의 세계에만 있을 뿐이다.

생명의 기원을 중요시하는 이 분야의 앞서가는 연구가인 Leslie Orgel은 단백질은 DNA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으며, DNA 또한 단백질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음을 이야기한 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일견하여, 생명체는 사실 화학적 수단에 의해 기원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려야할 것으로 보인다” 5

전적으로 진화론에 몸담고 있는 Dr. Orgel 로서는 그러한 결론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RNA가 제일 처음에 있었던 물질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는 다음 내용을 인정하고 있다.

”RNA가 생겨나는 정확한 원리는 아직 분명치 않다. ....과학자들은 많은 가설들을 내놓고 있지만 그 증거들은 기껏해야 조각에 불과하다.” 6

번역 (Translation) : ”생명이 자연적으로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다.”

불행하게도, 두 세대에 걸쳐 학생들은 스탠리 밀러(Stanley Miller)의 가스 혼합을 이용한 유명한 실험 (실제적으로 생명의 자연적 기원을 증명하였다는)을 배워왔다. 그러나 실제로 증명한 것은 아니었다.

밀러는 플라스크 안에 모든 것을 넣고 전기적 전하를 주고 기다렸다. 그는 실험장치의 바닥에 아미노산과 다른 기본적인 화합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발견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실제로 얼마간은 시험관 속에서의 생명의 창조가 실험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러한 실험은 원시적인 물질이상으로는 더 진전되지 않았고, 원시수프로부터의 쓴맛을 우리에게 남겨놓았다.7

또한 캄브리아기의 다세포 생물인 무척추동물들이 원시세계의 단세포 생물로부터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심지어는 고집스러운 진화론자인 굴드 조차도 이 부분은 인정했다.

”캄브리아기의 폭발은 생명의 역사 중 가장 놀랍고도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다.” 8

그리고 또 이해되지 않는 것은, 어떻게 원시 바다에서 살면서 겉은 딱딱한 부분으로 쌓여있던 무척추동물이 현재의 물고기와 같이 안의 구조만 딱딱한 척추동물로 진화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아직도 가시 없는 무척추동물에서 첫 번째 척추가 있는 물고기로의 전이는 미스터리로 남아있고, 많은 이론들이 분분하다.” 9

중간단계가 없는 다른 벽들도 매우 많다. 매우 까다로운 창조과학의 반대자인 고생물학자 엘드리지(Niles Eldredge)는, 화석기록에서 진화의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증거는 거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대신에 문제는 똑같이 남는다.

”사실상 생물군(biota)의 모든 종류들이 그들이 존재했던 기간을 통하여 기본적으로 안정한 상태로 (소수의 변동만을 가진 채) 있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10

어떻게 진화론자들은 화석 생물들이 존재했던 기간동안 변하지 않았던 개체 화석들을 가지고 진화계통나무를 만들 수 있었을까?

”화석의 발견은 간단한 진화 나무(중요 시기의 화석들은 자주 중간단계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다른 그룹의 잡동사니 모습을 하고 있다)를 만들려는 시도를 엉망으로 만들곤 한다. 일반적으로 주요 그룹들은 같은 선상이나 점진적인 방향의 것들과 함께 묶이지 않는다. 새로운 종들은 다른 시기에 다른 그룹으로 잘려지고 붙여지곤 한다.” 11

유인원과 사람의 중간단계에 관해 얘기하자면 진실은 똑같다. 비록 인류학자가 수십년동안 그것을 찾으려 했지만 말이다. 많은 증거들이 제안되긴 했지만, 차례로 모두 거절(reject)되었다.

”고생물학자들이 100년 이상 발굴하였던 것들은 2000 이 조금 안 되는 조상들의 유품들이었다. 그들은 현재 살아있는 종들의 분자적 증거들과 함께 턱뼈, 치아, 화석화된 뼈조각들로 분류되었고, 침팬지와 사람이 공통조상으로부터 갈려나온 시기인 5백만년에서 8백만년 이후에 인류의 진화계통(line)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었다.” 12

인류학자들은 자신들의 진화 시나리오에 맞추기 위해, 현재 살아있는 동물들의 DNA나 다른 분자 유전학적 증거들을 극히 단편적인 화석증거들을 보충하기 위해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전학적 증거들은 사실상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화석증거들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분자 계통발생학(molecular phylogenetics)은 결코 진화론의 창시자들이 믿었던 것들에 직접적이고 전반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 유전체(genome)의 변화의 복잡한 역동성은 다른 유전자마다 다른 스토리를 이야기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포함해서 매우 많은 다른 결과들을 가지고 있다.” 13

인간의 유전학적 자료들을 요약해보면 차라리 비관적이다.

”심지어는 DNA 염기서열 데이타에서도 진화과정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을 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과거의 재현은 창조적인 상상으로만 가능하다.” 14

현재나 과거나 진화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실제로 없음을 볼 때, 진화는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진화는 과학이 아니라, 보편적인 자연주의 믿음에 기초한 하나의 임의적인 체계(an arbitrary system)일 뿐이다.


References
1 Jeffrey H. Schwartz, Sudden Origins (New York. John Wiley, 1999), p. 300.
2 Ernst Mayr, 'Darwin's Influence on Modern Thought,' Scientific American (vol. 283. July 2000), p. 83.
3 Jeffrey H. Schwartz, op. cit., p.89.
4 Ibid.
5 Leslie E. Orgel, 'The Origin of Life on the Earth,' Scientific American (vol. 271. October 1994), p. 78.
6 Ibid, p. 83.
7 Massimo Pigliucci, 'Where Do We Come From?' Skeptical Inquirer (vol. 23. September/October 1999), p. 24.
8 Stephen Jay Gould, 'The Evolution of Life,' chapter 1 in Evolution: Facts and Fallacies. ed. by J. William Schopf (San Diego, CA., Academic Press, 1999), p. 9.
9 J. O. Long, The Rise of Fishes (Baltimore: John Hopkins University Press, 1995), p. 30.
10 Niles Eldredge, The Pattern of Evolution (New York; W. H. Freeman and Co., 1998), p. 157.
11 Neil Shubin, 'Evolutionary Cut and Paste,' Nature (vol. 349. July 2, 1998), p.12.
12 Colin Tudge, 'Human Origins Revisited,' New Scientist (vol. 146. May 20, 1995), p. 24.
13 Roger Lewin, 'Family Feud', New Scientist (Vol. 157. January 24, 1998), p. 39.
14 N. A. Takahata, 'Genetic Perspective on the Origin and History of Humans,' Annual Review of Ecology and Systematics (vol. 26, 1995), p. 343.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scientific-case-against-evolution-summary-part-1

출처 - ICR, Impact No. 330, 2000.

임번삼
2004-07-26

진화론 비판


      이상으로 진화론과 창조론을 비교하면서 살펴보았다. 두 이론이 근본적으로는 모두 추리요 추측이지만 창조과학자들이 생명속생설, 세포설, 유전설 등에서 보듯이 실험적으로 창조론의 과학적 타당성을 증거한 반면 진화론자들은 주로 추리나 간접적인 실험결과를 진화론적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간접실험은 정황근거는 될지언정 진화론 자체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드러나고 있는 진화론의 모순은 앞으로 커다란 학술적 논쟁을 예고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진화론이 성립될 수 없는 대표적인 이유 몇 가지를 정리해 보기로 하자.

 

1. 진화론은 열역학법칙에 위배된다.

열역학 제1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量的)으로, 이 우주계에서는 에너지가 생성이나 소멸이 되지 않고 항상 일정하다는 것이다. 에너지의 형태는 열, 빛, 힘, 물질로 서로 전환될 수가 있는 데 이는 아인슈타인에 의해 다음의 공식이 발견됨으로써 확인된 것이다. 이 공식은 질량(물질)도 에너지의 한 형태로서 '질량-에너지의 등가성(等價性)'을 잘 보여 준다. 즉, 에너지(E)는 질량(M)에 빛의 속도(C)를 제곱한 수치와 같다는 것이다.

                 E = MC2

예컨데, 장작개비를 태우면 열과 빛을 발하면서 타 없어진다. 그러나, 그러한 에너지는 하늘로 올라 가 구름층에 흡수되었다가 비가 되어 지표에 흡수되며, 일부는 다시 식물의 뿌리를 타고서 잎으로 올라가 과일을 만드는 데 이용된다. 그리고, 과일은 동물과 사람에게 섭취되어 몸속에서 체온으로 바뀐다. 이처럼, 에너지는 물질로, 물질은 다시 에너지가 되어 우주 안에서 돌고 도는 것이며, 생성도 소멸도 되지 않고 총량은 항상 일정하다. 그러면 저절로 생성되지 않는 에너지가 태초에는 어디서 생긴 것일까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인과율에 따르면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으로는 이러한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없는 이론의 벽에 봉착하게 된다.

열역학 제2법칙은 에너지의 질적 쇠퇴에 대한 것으로, 자연계의 물리화학적인 반응은 모두 무질서도(disorderness)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열역학적으로는 자유에너지(F)가 가장 낮은 쪽으로 반응이 진행한다는 것이다. 일명 ”엔트로피증가의 법칙”이라고 하며 다음 식으로 나타낸다. 엔트로피(entropy)란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로서 무질서도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F = H - TS

자유에너지(F)는 엔탈피(H)에서 절대온도(T)와 무질서도인 엔트로피(S)를 곱한 숫치를 공제한 것과 같다. 예컨데, 높은 곳에 있는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잠재에너지(potential energy)가 가장 낮은 상태가 되도록 함으로써 안정적 상태를 유지한다.

모든 물질이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것을 붙들어 주는 힘(에너지)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만물은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힘은 쇠퇴하고 질서도는 깨어지는 쪽으로 작용한다. 동식물은 나이가 들면 노화하고 결국 죽어서 흙으로 돌아감으로써 무질서도가 극에 달하며 마침내 일에너지(기계적 에너지)가 가장 낮은 상태가 된다. 새것은 낡아지며 질서는 사라지는 방향으로 세상의 모든 반응계는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이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기 때문에, 그 형벌로 만물은 쇠패하며 동식물은 일정한 수준으로 자란 후에는 반드시 노화하여 죽게 된 것이라고 성경은 증언한다.

우주만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엔트로피가 증가하여 언젠가는 물리화학적 반응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열사상태(熱死狀態 thermal death point)에 도달할 것으로 물리학에서는 전망한다. 한 컴퓨터의 계산에 의하면 태양은 80억 년 후에는 완전히 먼지로 바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처럼, 인류는 어차피 사라져 없어질 우주 속에서 한정된 기간을 살고 있는 시한부적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주에는 시작이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우주만물이 지금과 같은 질서체계를 갖게 된 것은 외부로부터 의도적인 에너지의 주입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진화론에서는 질서도가 더 발달하는 쪽으로 자연계의 반응들이 진행되어 왔다고 말한다(그림 11). 우주는 태초에 가스들이 폭발하여 준성, 은하계, 태양계를 거쳐 질서의 극치인 오늘의 지구가 탄생하였으며, 무기물이 유기물과 단세포로 발전한 후 장기간에 걸쳐서 오늘과 같이 고도의 질서체계를 갖춘 동식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즉,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우주의 반응이 진행한다는 열역학제2법칙과는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화학진화설을 주장했던 오파린은 ”진화론의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의 변천과정은 복잡하고 조직화된 기관으로의 진화과정이다. 열역학제2법칙에 비추어 볼 때 화학진화의 반응이 고분자로 합성되기보다는 분해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솔직히 시인하였다. [A.I. Oparin; Problem of Origin of Life, Present State and Prospects in Chemical Evolution and Origin of Life, American Elsvier, p 6, 1871]

이처럼, 열역학 제2법칙으로는 우주의 시작이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며, 제1법칙으로는 우주가 저절로 탄생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따라서, 우주는 초자연적인 위대한 힘에 의해 설계되고 창조된 것을 알 수 있다.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이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2. 진화론은 멘델의 유전법칙에 위배된다.

주지하듯이 멘델은 실험적으로 유전의 법칙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실증도 안된 진화론의 풍조에 밀려 그의 생전에 인정을 받지 못 했다. 왜냐 하면 두 이론이 상충되었기 때문이다. 멘델은 임종하면서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하였으며, 베잇손(William Bateson)은 ”만일, 멘델의 실험결과를 보았더라면 다윈은 종의 기원을 내 놓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멘델의 법칙은 생명체에는 유전자라는 것이 있으며 모계의 유전형질이 자손으로 유전된다는 것이다. 반드시 모계의 형질이 유전되는 것이지 모계에 있지도 않은 형질이 외부에서 나타나 유전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전에는 불변하는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제1법칙은 독립의 법칙으로 유전자의 상이한 형질(유전자는 한 쌍으로 되어 있음)은 독립적으로 분리했다가 수정에 의해 재결합한다는 것이다. 열성형질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 언젠가 다시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시 나타날 때 새로운 형질이 추가됨 없이 과거의 모계형질에 있었던 것이 다시 나타나는 것뿐이다. 그러나, 다윈은 불안정하게 형성된 작은 변이들이 축적되어 변종이 생긴다고 하였다. 돌연변이로 우량종을 만드는 것은 이미 있는 형질을 선별하여 강화하는 것일 뿐이다. 생명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진화할 수 없는 이유는 거기에 아무 것도 추가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제2법칙은 우열의 법칙으로 우성형질이 열성형질을 누르고 자손의 유전형질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제3법칙은 분리의 법칙으로 생식세포의 형성에 있어서 특성을 지배하는 각 쌍의 유전자는 각각 분리하여 다른 생식세포가 된다는 것이다. 모계의 유전자(2n)는 각각의 대립유전자가 분리되어 자손에게 일정한 비율로 유전이 된다.

그러나, 진화론에서는 모계에 없었던 형질이 외부요인에 의해 변화를 받아 전혀 다른 종으로 진화해 왔다고 주장한다. 어류가 양서류로, 양서류가 파충류로, 파충류가 새로, 새가 포유류로, 침팬지에서 사람으로 모계와는 전혀 다른 종으로 바뀌어 왔다고 하는 것은 멘델의 유전학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멘델의 법칙은 실험적으로 증명된 과학법칙이요, 학계에서 인정된 정설인 반면 진화론은 어디까지나 가설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설사, 인접한 종들 사이에서 잡종이 나온다 할지라도 그 후손은 번식능력이 없어서 당대에 없어지고 만다.

말과 당나귀를 교배시키면 잡종인 히니(Hinny)가 태어나지만 히니를 말과 교배시키면 말이, 당나귀와 교배시키면 당나귀가 태어날 뿐이다(그림 12). 즉, 종은 혼잡되지 않고 불변하도록 창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잡종과 잡종을 교배하면 후손은 태어나지 않는다.

최근에 발견된 DNA 수리기구(DNA Repair System)는 변이가 일어났을 때, 그 부위를 신속하게 제거함으로써 원상이 유지되도록 하는 놀라운 기능을 수행하는 기구로 알려져 있다.

창세기에서 동물들을 잡종으로 만들지 말며, 한 밭에 두 종류의 씨앗을 뿌리지 말도록 경고한 내용을 재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는 창조질서의 파괴에서 오는 혼란을 막으시려는 경고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3. 돌연변이는 진화가 아닌 퇴화를 일으킨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자연선택의 전제조건은 변이(individual variation)이다. 이러한 변이의 개념은 드브리스가 달맞이꽃을 가지고 연구한 후 돌연변이설(mutation theory)로 발전하였다. 돌연변이가 진화의 요인이라는 이론이 신다윈주의(Neo Darwinism)인데, 이 이론이 부정된다면 전통진화론의 근거는 사실상 사라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몰갠, 뮐러, 집단유전학자 및 분자진화주의자들이 돌연변이를 진화의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연변이는 무방향적이고 비연속적이며 자연발생확률이 매우 낮고 일어난다 해도 유해한 방향으로 일어난다. 수많은 실험결과에 의하면 돌연변이는 108 세대에 한번 정도 발생하며 무방향적이고 역돌연변이(back mutation)도 일어나기도 한다. 진화론자인 심프손(Simpson)은 말하기를 ”돌연변이가 만에 하나 일어난다 해도 다섯 개의 돌연변이가 한 핵에서 일어날 확률은 10^-22에 불과하다”고 하였고, 초파리연구로 유명한 진화론자인 뮐러(H.G. Muller)도 '대개의 돌연변이는 해롭게 나타나고 유익한 변이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다 해롭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몰갠이나 뮐러가 실험한 초파리들도 초파리의 종내에서만 변이가 일어날 뿐, 단 한 마리의 신종도 아직까지 태어난 적이 없다. 바뀐 것은 눈의 색과 형태, 날개의 길이와 모양, 몸체의 색깔만이 바뀔 뿐이다(사진 14). 이렇게 탄생한 변종들은 거의가  생존력이 취약한 기형종들 뿐이다. 인제대학장이며 생물학교수인 정계헌 교수(2000)는 이렇게 말한다.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연구하면 할수록 자연상태에서는..염기서열이 총체적으로 다 바뀌어 다른 종이 되는 경우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정계헌; 종은 변하는가?, 창조 121호(7-8월호), pp 9-12, 2000].

진화론자인 도브쟌스키도 "돌연변이는 생존능력의 약화, 유전적 질병, 기형을 만들므로 그런 변화는 진화를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실제로, 1945년에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탄으로 많은 돌연변이가 유발되어 기형아와 백혈병이 발병하여 오늘까지 고통을 당하는 환자들이 많이 있다. 그 폭탄의 피해자중 돌연변이적으로 몸이 더 좋아졌다거나 '바람직한 괴물'로 진화한 사례는 사람은 물론이고 어떠한 동식물에서도 보고된 바가 없다. 모두가 기형과 불구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리고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었다.

로브트롭(S. Lovtrup 1987)은 ”작은 변이는 일어난다. 그러나 이것으로 진화를 설명하려는 것은....모든 과학분야가 이런 거짓 이론에 중독이 된다면 큰 불행이라는 것을 부인치 않겠다. 그러나, 이런 불행이 생물학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다윈의 신화가 과학사에서 가장 큰 사기극으로 밝혀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실제로 그렇게 될 때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반문하게 될 것이다...돌연변이는 진화가 아닌 퇴화의 메커니즘이다”고 하였다. 무신론자이면서 반진화학론자인 덴튼은 이렇게 말한다.

”과거 100 여년간 다윈의 진화설이 지지다운 지지를 받은 것은 소진화(종내 변화) 밖에 없다...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유리한 돌연변이가 축적이 되었다가 생긴 것이라 주장은 ..진리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가설이다.” [임번삼외; 진화론과 과학, p  ,한국창조과학회, 1994, 원저는 Michael Denton; Evolutionism: A Theory in Crisis, 1986]

지난 1980년에 160여명의 진화론자들이 <대진화>(Macroevolution)라는 주제로 모인 시카고진화학술회의(1980.10.16-19, Chicago Field Museum)에서는 전통주의자들과 개혁주의자들간에 격론이 벌어졌다. 회의 후, 그들은 이례적으로 ”소진화(microevolution)는 대진화(macroevolution)로 연결될 수 없다”고 파격적인 선언을 했는데, 이는 전통진화론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다. [Roger Lewis; Evolution theory under fire, Science, 1980]

더구나, 최근에는 모든 생명체에는 유전자수리장치(DNA-repair system)가 있어 돌연변이에 의해 유전자구조가 손상을 받으면 재빨리 응급조치를 하며 이차, 삼차적 방법을 동시적에 동원하여 파손된 유전기구를 수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바꾸어 말해서 모든 생물은 변화가 아니라 자기 종을 연원히 불변하게 보존하려는 방향으로 상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장치가 가동하고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진화가 일어났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4. 화석생물은 중간종이 없이 불연속적이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진화론자들이 진화를 증명하기 위하여 내세운 근거 중 하나가 화석이었다. 그러나, 화석은 연구할수록 오히려 진화론이 잘못되었음을 증거할 뿐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진화론자들이 화석을 점차 회피하고 있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진화론에서는 모든 생물이 한 조상에서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고등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반드시 두 지층 사이에는 중간종(中間種 transitional form)이 수없이 있어야만 한다(그림 13). 그리고, 아직 지구상에 태어나지 않은 고등생물이 원시지층에서 발견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생물들은 아직 지구상에 태어나지도 안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화석들은 이러한 두 가지 조건들이 모두 잘못 되었음을 보여준다.

다윈은 "수많은 중간 형태의 화석들이 있어야 하는 데, 실제로 지층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라고 자문한 적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 보다 많은 화석들이 발굴되면 수없이 많은 중간종들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하였다. [Charles Darwin; The Origin of Species(1872), 6th ed,, Colliers Books, p309, New York, 1962] 다윈은 그의 친구인 유신진화론자인 아사 그레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잃어버린 많은 간격들은 상상력으로 메꾸지 않으면 안 된다.”[C. Darwin; A Letter to Asa Grey, September 5, 1857, Zoologist, 16, p6299, 1858]

그러나, 덴튼(Micheal Denton 1985)은 ”현재, 육상 척추동물의 329과(科)의 79.2%(261과), 조류를 제외할 경우 87.6%, 연체동물의 50%가 화석으로 발견되었다...그러나, 중간형태는 여전히 수수께기로 남아 있으며 일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중간형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화석기록에서 읽을 수 있는 주요한 특징이며...다윈의 진화론은 20세기의 대우주적 신화 그 이상이 아니다.”고 하였다.

바안즈(Robert D. Barnes 1980)는 ”화석에서 문(門)과 강(綱)의 기원에 대하여 어떠한 기록도 읽을 수 없다. 중간형태는 존재하지 않으며 발견도 안 되었고 흔적도 없다”고 하였다.  픽테트(Francis J. Pictet 1860)도 ”중간형태가 실제로 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고 하였다. 지질학자인 클라우드(1973)는 선캄브리아기의 화석에는 다세포인 후생동물의 화석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Preston Cloud; Geology, 1, p123, 1973]

시카고에서 열렸던 ”다윈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Chicago 1959)을 주관했던 대표적 진화론자인 심프손(G.G. Simpson)은 ”화석기록에는...새로운 생물들이 갑자기 출현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공식선언을 하였다. [The History of Life in Evolution of Life, Chicago, 1960] 그는 진화학계에서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발언은 진화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현대종합이론의 권위자인 아얄라(Francisco Ayala)는 ”화석학자들이 말하는 작은 변이들이 축적된 것이 아님을 이제 확신한다”고 하였고, 피터슨(1976)은 ”조상의 형태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으며..분류학자들의 생각속에 있을 뿐이나 (진화론자들은) 조상형을 얘기할 때에는 언제나 그것이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다”고 하였다. [C. Peterson; Major Patterns in Vertebrate Evolution. 1976]

현재, 가장 영향력이 있는 진화학자중 하나인 하버드대학의 굴드(Stephene J. Gould 1973)는 ”'조상과 자손사이에 기능을 잘 발휘하여 생존할 수 있는 전이형태의 계열을 추측할 수 있을까?...대답은 불가능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뉴엘(N. Newell)은 ”화석기록은 수집하면 할수록 불연속성이 확대된다”고 하였다. [N. Newell; Nature of Fossil Record, 1959] 과학전문지인 뉴스위크는 ”과학자들이 종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형태의 전이화석을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낙담하게 된다. 화석기록에는 중간형태의 전이화석이 없다는 것이 법칙이다”고 하였다.[News Week, Nov, 3, 1980]. 사이언스 지도 최근호에서 말하기를 ”실제로 발견되는 화석의 모습은 대진화의 가설을 부정하고 있다”고 하였다. [R. Lewin; Evolution Theory Under Fire, Science, No, Vol. 210, pp 883-887, 1980]

인류의 조상으로 제시되고 있는 유인원은 극소수의 뼈와 이를 조립하여 만든 허구로서 인류의 기원에 대한 해답은 아직 없다고 워시번(S.C. Washburn 1987)은 말한다. [Scientific American, September, p154, 1987] 타임 지는 최근에 3회에 걸쳐 진화론특집 기사를 실었는 데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결론을 맺고 있다. ”진화론이 나온 지 130년이 넘었으나 과학적 증거는 하나도 없고, 오히려 최근에 확인된 화석들은 다윈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사실만을 입증하고 있다.” [Times; 93.10.13,  94.3.4,  95.12.4]

진화론이 발표된 지 수십년간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화석고리들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 고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화석발굴과 울창한 밀림 속이나 깊은 바다에 대한 탐사였다. 여기에는 코난 도일(Connan Doyle)의 탐험소설인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가 한 몫을 하였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다음 해인 1860년대는 심해야말로 신비에 싸인 비밀의 세계였다. 마침내, 영국의 대서양연안과 노르웨이의 르포텐 피요르트 해역에서 역사적인 심해탐사가 개시되었다. 그 결과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어류들이 발견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심해야말로 가장 안전한 은신처이므로 오랜 지질시대의 생물들이 발견될 것이 확실하다”는 분위기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 속에는 중간종의 생물들이 발견되리라는 희망이 들어 있었다. 1972년에 영국군함인 체린저호가 본격적인 탐사작업에 들어갔는데, 그 당시에 동승했던 과학자중 한 사람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저인망이 올려질 때마다 배 위의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고리는 나타나지 않았다.”[N.B. Marshall; Aspect of Deep Sea Biology, pp 8-9,  Hutchinson Publishing Co, London, 1954]. 그 후의 계속된 해양탐사에서도 잃어버린 고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임번삼 외; ibid, p 179]

마이클 덴턴은 이렇게 단언한다.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모든 실험적 사실은 유형학적 모델로 설명할 수 있다. 유형학의 기본적 논리는 각 강(綱)은 독특성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그 구성원들은 자신이 속한 강의 특징적인 유형을 만족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모든 생물계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불연속성은 생명체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적용되는 특성이다...유사성은 진화를 암시하지만 구분은 변화에 대한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임번삼 외; ibid, p 130, p 173]

 

5. 살아있는 '멸종생물'은 진화를 부정한다.

지금도 세계도처에서는 진화론자들이 수천만년 전에 멸종했다고 주장한 생물들이 산채로 발견되고 있어 우리의 비상한 관심을 끈다. 그 이유는 어떻게 진화론에 의하면 그토록 오래 전에 출현했던 생물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과, 그들의 모습이 과연 진화론에서 주장하듯이 다른 형태로 진화되었는가 하는 관심에서이다.

실제로 발견된 <멸종생물들>의 모습은 크기만 다를 뿐 놀랍게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거의  동일하여 진화론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7천만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실러캔스가 지난 1938년에 이어 1987년과 1989년, 그리고 최근까지도 동아프리카의 해저 300m의 심해에서 살고 있는 장면이 촬영되었으며, 180마리 이상이 잡혔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이 기대했던 지느러미는 다리로 바뀌지 않은 채,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모습이었다. 진화론에 의하면 이들은 어류에서 양서류로 이행하는, 실루리아기에서 데본기에 살았던, 2억 년 전의 생물로서 7천만 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주장되어 왔었다.

오르도비스기(4억5천만년 전)에 살았다는 개맛(lingula)과 투구게(horseshoe crab), 그리고 데본기(4억년 전)에 출현했다는 폐어(lung fish)도 옛날과 같은 모습으로 세 종류가 살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그림 14). 데본기에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갈라치아(Nepillina galathiae)라는 연체동물은 지금도 아카펄크 트랜치(중앙아메리카)의 심해(해저 3,500m)에서, 조개의 조상이라는 앵무조개는 필리핀의 팔라오섬에서 잡히고 있다.

쥬라기(1억6천만년 전)에 살았다는 소나무가 호주의 월레미 공원(Wollemi National Park)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에 확인되었다. 1억3,500만년 전에 멸종되었다던 투아타라(Tuatara)라는 부리머리를 가진 파충류도 뉴질랜드에 살아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5만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바다거북(라바라크룸 엘세야가)도 현재 호주의 북부해안에서 살고 있는 모습이 발견되었다고 한다[조선일보 1996.6.2].

그리고, 7천만년 전에 멸종했다는 공룡의 일종인 사경룡(Plesiosaur)의 시체가 일본어선에 의해 1977년에 뉴질랜드연안에서 인양되었던 사건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욥기(3,500~4,000년 전)나 다른 구약성경에 악어나 하마로 번역된 리워야단(Leviathan)이나 베헤모쓰(Behemoth)는 공룡을 의미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6. 화석생물의 모습도 현재와 비슷하다.

화석생물들은 지금의 생물종과 거의 비슷하다. 간혹, 다른 점이 있다면 크기가 줄어들었다는 것 뿐이다. 선캄브리아기의 박테리아나 캄브리아기인 4~6억년 전에 살았다는 달팽이나 미국의 블랙힐즈(Black Hills, South Dakoda)의 쥬라기 암석층(5억년전)에서 발견된 불가사리의 화석도 지금 것과 동일하다. 미국(일리노이주)에서 발견된 바퀴벌레의 화석이나 발트해에서 발견된 화석(3천만년 전)은 모두 오늘의 바퀴벌레와 동일하며 진화의 흔적도 없다. 그리고, 2억5천만년 전의 거미와 지네, 신생대 제3기의 시신세(5천만년 전)에 살았다는 박쥐의 화석도 지금과 동일하다(Science 1966).

수천만년이 되었다는 호박(amber)속의 화석들은 지금의 생물종과 완전히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곤충화석은 고생대의 펜실바니아기 지층에서 수백종이 발견되었으나, 그보다 앞선 데본기나 미시시피기 지층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가장 오래되었다(3억년 전)는 호박 속에서 발견되는 1억년 전의 개미도 형태가 지금 것과 동일하기는 마찬가지이다.

5천만년 전에 출현했다고 추정되는 스칸디나비아산의 화석곤충도 현대의 것과 거의 일치한다. 곤충이 5천만년간 계속 존재하여 온 것이라면, 과실파리는 매미보다 10억 회나 많은 세대교체를 하여 온 생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곤충은 같은 종 내에서의 변이현상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C.T. Brues; Insects in Amber, Scientific American, 185(5), pp 56-61, 1951]. 곤충학자인 브루스(1951)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의 곤충집단은 옛날의 모습과 유사한 형태로 남아 있다...어느 것은 거의 변화지 않은 채 7억년을 존재해 오고 있다.” [C.T. Bruce; Insects in Amber, Scientific American, Vol. 185, p 60, 1951]

식물의 경우, 실루리아기의 고사리류, 현화식물류, 백악기에 갑자기 나타났다는 수많은 식물류는 벌써 수천만년에서 수억년이 흘렀지만 지금의 것과 변한 것이 없다. 백악기에 살았다는 버드나무, 종려나무, 포도나무, 목련의 화석들도 지금의 것들과 동일하다 볼드(Herlord C. Bold)는 꽃의 화석은 풀리지 않는 신비라 하였고, 코너(Corner 1961)는 식물화석을 보면 볼수록 창조설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E.J.H. Corner; in Contemporary Botanical Thought edited by A.M. MacLeod and L.S. Cobly, Quadrangle Books, Chicago, p 97, 1961]

1960년대까지 알려진 십여만 종의 화석들은 다윈시대에는 거의 없었던 종들이다. [G.G. Simpson; the History of Life, in The Evolution of Life edited by Sol Tax,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p 117-180, 1960] 그러나, 이들 대부분의 화석종들은 그 때까지 이미 알려진 화석형태와 같거나 유수동물처럼 어떤 종과도 관련이 없는 독립적인 특이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이었다. [임번삼 외; ibid, p 181]   

 

7. 시생대에는 아무런 후생생물의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다.

캄브리아기에 수천 종의 생물들이 갑자기 나타난다는 것은 이미 기술한 바와 같다. 이러한 각 생물마다 전 단계의 생물화석이 발견되어야 상식적이지만 단 한 건의 후생생물도 발견되지 않는다. 진화론자이며 지질학자인 클라우드(Preston Cloud 1973)는 ”캄브리아기에서는 다세포 후생생물의 화석기록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더구나, 미국의 지질학자인 버딕(Burdic 1971)은 그랜드캐년의 선캄브리아기의 지층에서 중생대의 소나무와 느룹나무의 화분을 발견했다고 한다.

캄브리아기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삼엽충은 큰 것은 45cm에 이른다. 바닷가재와 같은 속(屬)으로, 지금은 멸종했지만 그 구조는 단순하기는커녕 매우 복잡하고도 정교하다. 또한, 캄브리아기에서는 나올 수 없는 사람의 발자국 속에 삼엽충이 들어있는 화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화석은 최근(1999) 우리나라의 남해안(전남 해남)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

 

8. 확률론적으로 생명의 자연발생은 불가능하다.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생명이 과연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지 확률적으로 따져 보면 전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호일 등(1981)은 이렇게 말한다. ”단백질 한 종의 출현확률을 10-20이라고 할 때 생명이 출현할 확률은 2,000종의 효소가 무작위적으로 결합되어야 하므로 10-20×2,000 = 10-40,000이다. 이러한 확률은 우주 전체가 유기스프로 가득 차 있다 해도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Fred Hoyle, C. Wickramasinghe; Evolution From Space, 1981]. 그는 <우주의 본질>이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주의 나이를 100억 년이라 하고 포유류 세포핵에 들어 있는 2,000개의 유전자가 자연적으로 생성될 가능성을 계산해 보았더니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돌연변이에 의해 지금과 같이 복잡하면서도 질서정연한 생명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확률은 회오리바람이 티끌을 날려 제트기를 만든 것과 같이 황당무계한 것이다.”

생명체의 구성요소인 단백질은 20종의 L-아미노산이 수백에서 수만 개가 결합된 것이다. 자연발생설에서 주장하는 화학합성법으로는 아미노산이 두 가지 형태(D형, L형)가 반반씩 만들어진다. 따라서, 가장 짧은 단백질(L형 아미노산 100개로 구성)이 자연적으로 합성될 수 있는 확률은 10-130이다. "생명체의 형성확률이 10-130이라면 이는 생명은 주는 자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카프란(Kaplan)은 말한다. [R.W. Kaplan; Chemical evolution and the origin of life, p 320, 1971]. 덴턴은 평균적인 단백질의 생성확률은 10-13, 20개 아미노산의 특이적 배열순서는 10-26, 30개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은 10-39이며 지구상의 단백질이 10-40 이상을 넘을 수 없으므로 기능성 단백질의 존재확률이 10-40 이하의 확률로 존재해 왔다면 기능성단백질이 우연히 지구상에서 발견될 수 있는 확률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임번삼 외; ibid, p 364]

단백질과 더불어 생명의 핵심요소가 유전자(DNA)이다. 이들은 오탄당, 인산, 핵산염기가 한 분자씩 연결된 뉴클레오타이드가 에스텔결합을 한 폴리뉴클레오타이드(polynucleotide)이다. 오탄당(D-ribose)은 자연계에서는 D형만 합성되는데 반하여 화학합성 시에는 두 가지 형태(D형, L형)가 반반씩 만들어진다. 이러한 세 요소로부터 유전자(DNA)가 자연적으로 합성될 수 있는 확률은 잘스버그에 의하면 10-600에 지나지 않는다. [F.B. Sallsburg; Dought of Modern Systhetic Theory of Evolution, American Biology Teacher, p 336, 1971]

이웬(Ewen 1973)에 의하면, 단백질합성의 유전정보를 가진 유전자의 염기배열이 변화를 일으키는 형태는 단백질의 기능에 변화를 주지 않고 유전변화만 일으키는 중립돌연변이(neutral mutation)과 유익성돌연변이(advantageous mutation)가 있다. 그 어느 경우든 단백질 집단에 균일한 진화율을 일으키는 기구로서는 적합치 않다. 돌연변이율이 커지면 유전적 변화의 속도도 커진다. 다른 계통간에 유전적 변이가 균일하게 나타나려면 생물마다 일정시간 내의 돌연변이율도 일정해야 한다. 그러나, 조사결과들은 세대시간이 다르고 돌연변이율도 종에 따라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각 생물의 연간 뉴클레오타이드당 돌연변이율은 대장균(0.7×10-6), 초파리(2.5×10-8), 생쥐(3.0×10-9), 사람(1.0×10-10)이 각기 다르다. 따라서, 진화가 일정한 속도로 진행되는 유전적인 변화의 가능성은 부정되고 있다. 각 유전자들은 서로 다른 속도로 유전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W.J. Ewens; Comments on Dr. Kimura's Paper, Genetics Supplement, Genetics, 73:36-38, p 36, 1973]

더구나, 단백질과 유전자가 결합되어 자기복제능력을 가진 정상세포 한 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확률은 10-167,626에 지나지 않는다고 와이송(1978)은 말한다. [R. W. Wysong; The Creation-Evolution; Controversy, Inquiry Press, p 118, 1978]. 수학자 보렐(Borrel)은 우주에서 10-50 이하의 확률이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세포 한 개가 조직을 이루고 더 나아가 기관을 형성하며 뇌의 명령을 받아 일사분란하고 정교하게 동작을 하는 인체가 합성되려면 그 확률은 천문학적인 숫자로도 가히 표현할 수 없게 된다. 생명의 자연적 합성은 이처럼 확률론적으로 볼 때 불가능에 불가능일 뿐이다. 인체의 세포는 60~100조 개로 추산되며 30억의 염기쌍, 3~4만 개의 유전자, 46개의 염색체, 2,000여종의 효소, 100만 개 이상의 단백질, 오장육부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처럼 방대한 인체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자연발생적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세포와 같은 자동복제기능을 갖춘 기계가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수학자인 노이만(Von Neumann)은 ”진보된 기계는 간단한 문제를 풀 수 있지만 미리 설정된 프로그램에 의하지 않고는 임의적 선택에 의해 스스로를 진화시킬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앞으로 언젠가 조금이라도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기계가 만들어진다면 이는 인공지능을 넣어 준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 [J. Von Neumann; Theory of Self Reproducing  Automata,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Urbana, 1966].  쥬크스(Jukes)는 진화이론의 발전과정이 비행기의 발전과정과 유사하다고 하면서, 여러 종류의 비행기가 독자적인 설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진화하거나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T.H. Jukes; Aircraft Evolution, Nature, 295, p 548, 1982]. 지난 1965년에 열렸던 국제진화론전문가들의 연구보문 심포지움에서 미국국립보건원(NIH, Maryland)의 모라박사(Peter T. Mora)는 <확률론의 어리섞음>(The Folly of Probability)라는 글을 통해 ”자동복제기구의 자연발생확률은 제로”라고 발표하여 큰 논란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Sydney W. Fox; The Origins of Prebiological Systems, p 45, New York Academic Press, 1965). 이처럼 생명의 자연발생은 확률론적으로 볼 때에도 일어날 수 없는 시나리오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9. 현재도 아무런 진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진화론에서 주장하듯이 모든 생물들이 진화를 계속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 사실이라면 현존하는 생물들은 이미 수천만년에서 수억년을 경과한 생물종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하나같이 지금은 진화를 멈추고 있는 것일까? 무척추에서 척추로, 어류에서 양서류로, 양서류가 파충류로, 파충류가 조류와 포유류로, 설치류와 같은 포유류에서 유인원으로, 유인원이 사람으로 바뀌는(진화하는) 현상이 무수히 쏟아져 나와야 하는 데, 왜 최근 수천년간, 그리고 지금은 한 건의 이행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일까? 과거의 중간종들도 어디에 숨어 있기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일까?

참으로 상식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이러한 질문에 진화론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왜 진화가 멈추었는지 해명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러한 설명들은 극히 지엽적인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점잖은 진화학자에게 당신의 조상이 원숭이였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아마도 대노하면서 가족 모독죄로 당신을 법정에 고소할 것이 틀림없으리라고 생각한다.

 

10. 자연현상은 진화론과 상반된다.

다윈의 진화론은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선택을 주장하지만 자연계에는 이와 반대로 약한 생물들이 더욱 번성하여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다. 동물의 왕이라는 사자나 호랑이의 숫자는 매우 적지만 연약한 초식동물들은 번성하고 있다. 만일, 쥐를 잡아먹는 강한 고양이만 번성한다면 고양이들도 먹이인 쥐가 사라졌으므로 멸종하고 말 것이다. 이처럼, 자연계에는 먹이사슬이 작동하면서 생태계가 조화롭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계의 공생현상(symbiosis)도 그러하다. 나비와 벌들은 꽃이 없으면 아예 존재하지 못 한다.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도 신비롭기는 마찬가지이다. 공생의 원리는 동물뿐 아니라 식물의 세계에도 무수히 적용되는 법칙이다.

적자생존이론에도 반론의 여지가 많다. 예컨데, 강한 사자가 사슴을 공격할 때 운이 없이 무리에게서 떨어져 있는 사슴을 사냥했다면 이렇게 죽은 사슴은 약해서 죽은 것이 아니다. 단지, 운이 없어서 죽었을 뿐이다. 살아 남은 사슴들도 강해서 생존한 것이 아니다. 운이 좋았을 뿐이다. 더구나, 자연계에는 약한 짐승들이 더 잘 번식하며, 힘센 육식동물들은 그 숫자가 점차로 줄어 들어가는 추세이다.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본능(本能 instinct)도 창조주의 지적 설계를 암시하는 증거중 하나이다. 의도적인 정보가 유전자 내로 입력되지 않고서는 각종 생명체가 보여주는 본능적 행위에 대해 해석이 불가하다. 연어가 산란하기 위하여 먼 바닷길을 헤엄쳐서 자기가 태어났던 하천으로 되돌아오는 신비를 진화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철새들이 때를 따라 차질없이 머나 먼 대륙을 차질없이 이동하는 비행능력도 마찬가지이다. 거북이 새끼들은 알에서 부화하자마자 바닷 속을 향해 기를 쓰고 달린다. 제비갈매기의 새끼는 알에서 부화되면서 자기를 품어 준 어미새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어미새만 따라 다닌다. 다른 새들에게 접근하면 쪼여 죽기 때문이다. 모든 새들은 모성애를 어디서 배웠는지 자기가 품어서 낳은 새끼들이 자립할 때까지 쉬지 않고 먹이를 물어다 주며 양육한다. 그리고, 새끼들이 다 자라면 둥지 밖에서 먹이로 유인하여 자연에 적응하는 훈련을 시킨다. 종달새의 알을 분석하면 화학성분만이 분석될 뿐이다. 그러나, 봄이 되면 성장한 종달새는 하늘 높이 떠올라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온 종일 조잘거리며 노래한다. 그러한 노래는 화학적으로 분석되지 않는다. 이러한 노래의 정보는 어디서 온 것일까?

언젠가 필자가 부란기에서 갓 태어난 병아리 두 마리를 길가에서 구입하여 방바닥에 내려놓고 좁쌀을 뿌려 준 적이 있었다. 그러자, 병아리들은 기분이 좋다는 듯 조잘거리더니 뒷발로 흙을 헤집는 시늉을 하던 장면을 기억한다. 어미닭이 아닌, 기계에서 부화한 병아리의 이러한 거동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이러한 본능적 행위는 동물의 유전자 속에 미리 정보가 주입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들이다. 자연계에는 이처럼 진화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현상들로 가득 차 있다.

 

 11. 물질의 화학구조가 창조론을 증거한다.

화학이 밝혀낸 특정원소들의 무기화학적인 역할들도 설계의 강력한 증거이다. 모든 생명체의 골격을 구성하고 있는 비금속성의 탄소(C)는  모든 종류의 원자들과 결합할 수 있는 연쇄(catenation)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성질 때문에 핵산, 단백질, 섬유소와 같은 생명구성성분들이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탄소는 지구상에 0.017%, 모든 생명체의 9-10%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지만, 탄소가 없이는 생명이 유지되지 못 한다.

비금속 주족원소인 산소(O2)도 특이한 분자구조를 하고 있다. 산소를 제외한 비금속 주족원소는 짝수개의 전자쌍으로 있을 때에만 안정하므로 모두 공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나, 산소만이 두 개의 비공유전자(unpaired electron)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소는 화학적으로 안정하며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이러한 비공유결합이 없다면 산소가 혈관 속으로 들어가 헤모글로빈과 결합할 수 없을 것이다.

아연(Zn)은 시스테인이나 히스티딘과 같은 아미노산과 결합할 때 손가락처럼 행동하면서 DNA의 위치를 인식하도록 한다. 이를 아연손가락단백질(Zinc finger protein)이라 한다. 이 밖에 생리작용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원소들(Na, K, Cl, Mg, Ca)도 생리작용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자연계에서 합성되는 20종의 아미노산들은 예외 없이 L-형만 만들어지는 반면, 오탄당(ribose)은 D-형만 만들어진다. 수많은 당류 중에 오직 간단한 구조를 가진 D-형 오탄당만이 핵산의 구성성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핵산의 단량체인 모노뉴클레오타이드를 연결하고 있는 에스텔결합은 오직 인산염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이 인산염은 결합의 정확도가 뛰어나며 체내의 화학에너지인 ATP, GTP등의 구성성분이 되기도 한다. 모든 생명체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물의 구조(H20)는 화학결합보다 약한 수소결합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체(물), 고체(얼음), 기체(수증기)의 구조를 잘 유지하게 한다. 이러한 모든 화학적 구조들은 섬세하게 설계된 것임을 보여준다. [에드워드 부드로; 기초화학: 창조의 증거, 창조 121호, pp 17-21, 2000, 원문은 ;Edward A. Boudreaux;  Impact No. 324, ICR] 더구나, 물(H2O)은 수소(H) 두 분자와 산소(O) 한 분자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들을 분리하면 물의 성질은 없어지고 가스성분만 남을 뿐이다.

 

12. 진화론은 추리에서 출발하여 추리로 끝나는 비과학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흡사 자연과학의 대명사인 양 혼돈하고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진화론은 그 속성상 자연과학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물질의 기원에 대하여 설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주계 최초의 원인물질(또는 에너지)이 어디서 어떻게 유래했는지 대답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형이상학적으로 사고해야만 해답이 나오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처럼 모든 것을 오직 물질적인 것에서만 찾으려는 해석체계로서는 한계에 봉착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두 번째 이유는 진화론은 모든 주장을 주관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진화론에서는 모든 분야에 대해 항상 ”...할 것이다, ...라고 생각된다, ...라고 추측된다, ...일 것이다” 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자세는 자연과학의 속성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과학은 본질적으로 '과학적 방법'(scientific methodology)에 따라 사물 속에 숨어 있는 원리나 법칙을 찾아내고 실험적으로 검증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가 어디서 실험을 하든 동일한 결과가 변함없이 나올 때, 즉 재현성이 있을 때 비로소 자연과학의 법칙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론의 연구대상인 생명의 기원이나 생물종의 다양성문제는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이러한 문제들이 과거에 단 한번 밖에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과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자기 나름의 주관적인 해석을 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진화론은 그 스스로 정설이 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영국 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자인 패터슨(Colen Paterson)은 뉴욕의 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에서 행한 한 공개강연(Nov. 5, 1981)에서 지질학자들에게 ”진화론이 사실이라고 하는 증명된 것이 있으면 하나만이라도 말해 보시오”라고 했으나 아무도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이 침묵만 흐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같은 질문을 시카고대학에서 열렸던 진화론 세미나(Evolutionary Morphology Seminar)에서 제기했는 데, 그 중 한사람이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한다. ”내가 아는 한 가지 일은 진화론이 학교에서 가르쳐져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Albert Sippert; Evolution is not Scientific; 32 Reasons Why, p  353, Sippert Publishing Company, Mankato, MN, 1995]

 

13. 진화론의 주요 이론들은 이미 부정되었기 때문이다.

강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적자생존 이론은 초식동물이 육식동물보다 더 번성하고 있는 현실로 볼 때 타당성을 잃게 된다. 그리고, 초식동물들이 잡혀 먹히는 것은 대개의 경우 약해서가 아니라 운이 나빴기 때문이다. 후천적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 장기간에 서서히 진화한 흔적도 자연계에선 찾아 볼 수 없다. 진화의 요인이라는 돌연변이는 진화가 아닌 퇴화의 메커니즘일 뿐이다. 그리고, 물질로부터는 어떠한 정보도 나오지 않는다. 정보는 누군가가 외부에서 넣어 주어야만 한다.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6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최근의 진화론 (신다윈주의, 현대종합이론, 단속평형설, 분자진화설, 형질발현 단계설 등)

임번삼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다윈의 진화론은 최근의 학계를 지배하고 있으면서도 이론적인 모순들이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 그리고, 학계의 비판이 일어날 때마다 새로운 이론으로 끊임없이 그 얼굴을 바꾸어 왔다. 그렇게 하면서 학문이 발전하는 것이라는 미명 하에 말이다. 그 중 대표적인 이론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신다윈주의 (Neo Darwinism)

  이 설은 화란의 드브리스가 <왕달맞이꽃의 연구>(1901)로 인공돌연변이에 의한 변종을 만든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돌연변이설에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가미하여 바이스만(August Weismann 1834-1914)이 <진화론 강의>(1902)를 통해 제시한 이론이 신다윈주의이다. 즉, 자연은 돌연변이에 의해 생성된, 그래서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는 종을 선택하여 진화하도록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그 후, 밀러(1928)에 계승되었다. 바이스만은 라마르크가 예로 들었던 기린의 화석에서도 목의 길이가 현재보다 약간 짧은 중간길이의 화석생물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후천적 획득형질이 유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쥐의 실험으로 보여주었다. 즉, 수정하기 전에 생쥐의 꼬리를 잘라 낸 후에 20대 이상 교미를 반복하였으나, 꼬리가 없는 쥐는 태어나지 않았다.

그는 변이(變異 variation)는 생식시 자웅의 불변적인 유전단위인 생식질(生殖質)이 결합하여 생기는 것이며, 이 때 자연선택이 작용하여 진화를 일으킨다고 하였다. 생식질 내에서 생긴 이러한 미세한 변이가 축적되어 큰 변이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는 몸이 환경의 영향으로 변하는 경우에도 생식세포에는 있는 생식질은 변하지 않고 자손에게 유전된다는 '생식질의 연속성'도 주장하였다. 이들은 후천획득형질의 유전설을 주장하는 스펜서(Spener 1820-1903), 헤켈, 기어드(Giard), 페리어(Perrier) 등의 신라마르크주의(Neo-Lamarkism)와 충돌하였다. 신라마르크주의자들은 자연에 의한 도태설을 부인하고, 환경요인이 진화의 직접적인 요인이라고 주장하였다. 집단유전학자들도 돌연변이설을 부정하였다.

 

2. 정향진화설 (定向進化說 Orthogenesis)

다윈진화설에 대한 반론으로 코프, 네겔리(Negeli), 에이머(Eimer 1871) 등은 진화가 자연선택이 아니라, 생물체내에 있는 어떤 '고차원적인 섭리'에 의해 어느 정해진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쉰데볼프(Otto H. Schindewolf 1896-1971)도 생물은 일정한 방향으로 정향적으로 진화하며 말발굽 계열을 그 예로 들었다. 그러나, 저명한 진화학자인 심프손(Simpson)을 비롯한 고생물학자들은 화석의 진화경로에서 정향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설을 반박하였다. 그리고, 쉰데볼프가 제시한 말의 계열도 그 순서대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학자들이 짜 맞춘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3. 집단유전설(集團遺傳說 Population Genetics)

생물군이 지리적으로나 생리적으로 격리되면 변종이 생긴다는 이론은 일찍이 바그너(Wagner 1813-1887)와 로마네스(Romanes 1848-1894)등에 의해 제기된 바 있었다. 이러한 이론은 그 후 하디-바인베르크 법칙, 할데인, 심슨, 그리고 현대종합이론이 가미되어 집단유전설로 발전하였다. 특히, 영국의 수학자인 하디(Godfrey H. Hardy 1877-1947)와 독일인 의사인 바인베르크(Wilhelm Weinberg 1862-1937)가 제창한 하디-바인베르그 원리(Hardy-Weinberg's principle 1908)는 집단유전학을 출범시킨 계기를 만들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교배는 무작위로 일어난다.

 (2)대립인자와 인자형은 적합성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

 (3)대립인자는 유전자의 이동에 의해 증가하거나 감소하지 않는다.

 (4)돌연변이는 일어나지 않거나 무시할 정도이므로 대립인자의 빈도는 항상 일정하다.

 (5)집단은 크기 때문에 여기에 무작위적인 부동이 작용하지 않는다.

 (6)윗 조건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유전자빈도에 변화가 일어나 대진화를 촉발한다.

율(G.H. Yule 1873-1949)과 할데인(John B.S. Haldane 1892-1964), 라이트(Sewell Wright(1889-?), 피셔(Fischer), 심슨(Simpson) 등은 격리집단에서 돌연변이에 의한 자연선택으로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피셔의 <자연선택의 유전학적 이론>(1930)은 자연선택설에 대한 유전학적 기초를 수립했고, 할데인은 <자연선택 및 인위선택의 수학적 이론>(1924)에서 여러 종류의 자연선택이 유전자빈도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수리적으로 연구하였다. 이 설에서는 진화의 단위가 격리된 집단(isolated population)이며 진화의 기본기구는 한 집단내의 개체에서 나타나는 유전적 변이(genetic variation)라고 주장한다. 즉, 한 집단이 격리된 상태에서는 격리집단의 모든 유전자가 섞인 유전자 풀(gene pool)을 형성하며, 이 상태에서 유전자빈도(gene frequency)의 점진적인 변화가 진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한 집단이 유전적으로 평형일 때(환경변화가 없을 때) 진화는 일어나지 않지만, 유전적평형이 파괴될 때에는 유전자빈도의 상승으로 급격한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소수의 개체군이 지리적 또는 기능적으로 모집단에서 격리되어 있을 때 종의 분화는 더 빨리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종으로 관찰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 이 설의 취약점이기도 하다. 피셔와 할데인은 진화요인이 자연선택이라 했으나, 라이트는 유전적 부동현상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돌연변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를 부인하고, 집단내의 유전적 변이와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점진적으로 진화가 일어난다고 보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진화가 유전적 변이에 대한 자연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는 주장은 다윈의 진화론과 같으나, 획득형질의 유전을 인정치 않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환경변화가 없을 때에는 유리한 변이는 선택되고 불리한 변이는 배제하여 형질의 안정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작용하지만, 환경이 변할 경우 자연선택은 환경에 적응한 형질을 집단 내에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주장은 자연선택설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진화의 단위를 집단으로 해석한 점이 신다윈주의와 다르다.

 

4. 현대종합이론 (Modern Synthesis Theory)

1930년대에는 다윈의 자연선택설과 멘델의 유전학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줄리언 헉슬리(Julian S. Huxley 1887-1975)는 <진화-현대적 총합>(1942)이라는 저술에서 지금까지 제창된 진화론을 종합하여 설명하고자 하였다.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ansky 1900-1975)는 이 설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되는 <유전학과 종의 기원>(1937)에서 초파리의 자연집단에 대한 연구로 소수개체의 격리에 의해 새로운 종이 형성된다고 하는 창시자원리(創始者原理/先驅原理)를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유전자돌연변이가 유전자풀에서 일어나면 좋은 종이 자연에 의해 신종으로 선택되어 진화한다는 것이다.

뮐러(Muller 1928) 역시 초파리에 대한 X-선 조사로 자연돌연변이율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설을 주장하였다. 심슨(Simpson)은 <진화의 속도와 양상>(1944)에서 고생물학적 사건들을 집단유전학으로 해석하고자 하였으며, 마이어(Mayer)도 <계통분류학과 종의 기원>(1942)에서 돌연변이가 유전자변이를 가져오는 요인이며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요인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현대종합이론(Modern synthesis theory)은 계통분류학, 유전학, 생태학, 분류학, 고생물학 등의 학문을 총합하여 짜깁기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계에서는 돌연변이가 유리한 방향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설의 취약점이다. 최근에, 현대종합이론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위해 모인 시카고의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렸던 진화론학술대회(1980.10.16-10.19)에서 이 분야의 일인자인 아얄라(Francisco Ayala)는 "화석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작은 변이들이 축적되지 않았음을 이제 확신한다"면서 점진진화론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리고, 굴드와 엘드리지(Gould & Eldridge) 역시 전통적 진화론을 비판하고 '바람직한 괴물설'을 주장하였다. 삼일간 걸쳐 진행된 이 회의에서는 이례적으로 "소진화는 대진화로 연결될 수 없다"는 중대한 성명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선언은 전통진화론에 치명적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R. Lewin; Evolution Theory Under Fire, An Historic Conference in Chicago, Challenges the Four Decade Long Dominance of the Modern Synthesis, Science, Vol. 210, pp 883-887, Nov. 21, 1980].

 

5. 도약진화설/단속평형설 (Punctuated Equilibria Theory)

이 설은 네겔리(Carl W. von Naegeli 1817-1891)의 정향진화설이나 헉슬리 등의 현대종합이론이 주장하는 점진진화론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1940년대에 슈밋트와 엘드리지(Gold Schmidt & Niels Eldrege)가 주장한 것이다. 즉, 전통적인 점진진화설에서 생물의 중간종이 발견되지 않은 데 대한 보완책으로 나온 것이다. 화석이나 자연계의 생물종들은 중간형태가 없이 갑자기 완벽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진화가 단속적으로 휴면상태에 들어갔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다른 종으로 발전한다는 것이 이 이론의 요지이다. 그래서, 도약진화설(saltatory(jump) evolutionism) 또는 퀀텀진화론(quantum evolutionism)이라고 불리운다.

엘드리지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누구도 (점진진화론자들이 기대하는) 중간종 형태의 증거를 발견한 적이 결코 없었다." [Niles Eldredge; Alternate Theory of Evolution Considered; Lack of Fossil 'Missing Link Evidance Causes Change in Thought, Los Angeles Times, Nov. 19, 1978]. 슈밋트(R. Gold Schmidt)는 <진화의 물리적 기초>(Material Basis of Evolution 1940)에서 종내 변화(소진화/변이)와 신종의 형성(대진화/진화)은 별도의 기구에 의한 것이며, 신종의 생성은 염색체구성의 전체적인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전체돌연변이설(systematic evolutionism)을 주창했으며, 이 때의 진화요인은 돌연변이라고 하여 '바람직한 괴물론'의 사고를 제시하였다.

이 설은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72년에 하버드대학의 굴드(Stephene Jay Gould)가 '바람직한 괴물이론'(hopful monster theory)으로 변형하여 재등장시킨 것이다. 굴드는 이렇게 말했다.

"돌연한 변형으로 나타나는 화석기록들은 점진진화설을 지지하지 않는다...대진화는 바람직한 괴물들이 희귀하게 나타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지 집단내의 작은 연속적 변화에 의한 것이 아니다."

"나는 다음의 10년간(1980's) 골드 슈밋트의 이론이 진화생물학계에서 널리 정당화될 것으로 예견한다."

이들에 의하면(1973), 집단의 유전자가 평시에는 유전적 평형을 이루고 있다가 5천-5만 년 간격으로 갑자기 신종으로 교체가 된다는 것이다. 신종 출현은 당시에 살고 있는 생물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괴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더 좋은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났으므로 '바람직한 괴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다윈의 전통진화론과 정면으로 대립되는 개념이다. 이들은 대진화를 일으키는 요인은 근본적이고도 급속한 염색체의 재배치나 조기분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조절유전자나 초월적 유전자(super gene)의 격변적인 변이의 결과라고 말한다. [Stephene Jay Gould; The Return of Hopeful Monsters, Natural History, June/July, 1977].

이들은 중간형이 화석에서 발견되지 않는 이유는 신종이 갑자기 탄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컨데, 파충류의 알에서 종자가 전혀 다른 새(鳥類)가 부화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파충류-새의 진화모델에 대해 디스커버지(誌)가 창조론자인 모리스(Henry Morris), 블리스 (Richard Bliss), 기쉬(Duane Gish) 등의 창조론자들과 진화론자인 굴드(Stephene Gould) 및 세이건(Carl Sagan)에게 공개토론을 제의했으나, 진화론자들이 거절하는 바람에 좌절되었고, 그 대신 간단한 편지로 몇 마디로 논쟁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Discover, May-June, 1981].

먼저, 기쉬가 물었다. "최초의 새가 파충류의 알에서 나왔는가?"

굴드가 대답했다. "혹자들이 (진화론적인) 지적단계를 웃어 넘기게 하려고 당신처럼 진화론을 오해하는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니겠소."

그러자, 기쉬박사가 "파충류와 조류 사이의 도약(reptile-bird jump)은 잘못된 발상"이라고 반박했으나, 진화론자들이 대답을 피하는 바람에 논쟁은 중단되었다고 한다.  

그 후, 미국과학진흥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Advancement of Science)는 어린이교육협회와 공동으로 교재를 만들었는데(사진 11), 그 책에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새끼공룡이 알을 낳고 있는 공룡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지금 새끼공룡이 들어 있는 알을 낳고 있나요?"

어미공룡은 대답한다.

"그 알은 전혀 새롭고 놀라운 알이란다...그 알에서 세계 최초의 어린 새가 태어났으며, 그 새는 자라면서 깃털이 나오고...높은 나무가지에 앉아 처음으로 노래하는 아름다운 새가 되었단다... 아주 먼 옛날 옛적에." [Dahlov Ipucar; The Wonderful Egg,  Doubleday, Garden City, New York, 1958]

그러나, 이러한 도약진화설에는 굴드도 인정하듯이 몇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어째서 괴물이 아닌 바람직한 괴물이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은 불행스럽게도 염색체 재배치나 돌연변이에 의해 나타나는 생물은 예외 없이 기형적인 것만 보아왔다. 그 누구도 바람직한 괴물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파충류가 새로 도약한다는 것도 비논리적인 데, 하물며 다리가 어떻게 날개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셋째로, 새로 태어난 괴물은 누구와 짝을 이루어 후손을 번식시킬 수 있었겠느냐 하는 점이다. 즉, 이러한 괴물이 우연히 태어났다 하더라도 다른 성을 가진 또 다른 괴물이 반드시 같은 시기에 같은 지역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당대에서 끝이 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태어난 괴물이 성장하기까지 누가 키웠으며, 새끼새가 성숙할 때까지 어미공룡이 먹이를 가져다 주었어야 한다. 수많은 동물들이 과연 이런 식으로 출현했겠는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도약설이 점진진화설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창조론자와 도약진화론자간에 논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러한 분쟁 중에도 양자간에 중요한 공통점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잃어버린 고리는 영원히 잃어버린 것"이라는 사실이다(The missing links are the missed, forever).


*참조 : Eviscerating Eldredge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10

Just-so-stories for the punctuated evolutionist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8_1/j18_1_48-51.pdf
Punctuated equilibrium: come of age?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774

 

6. 분자진화설 (Molecular Evolutionism)

이 설은 훌로킨(Marcel Florkin 1900-)이 <생화학적 이론>(1944)에서 주장한 비다윈적 진화론이다. 예컨데, 어떤 단백질(Hb의 글로부린)이 척추동물의 진화에 따라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화석 등으로 추정되는 진화햇수에 대응하는 한 아미노산을 치환하는데 소요되는 햇수를 산출하는 것이다. 생물대표종의 특정 단백질(예; 사이토크롬 C, Hb)에 대해 조사하여 구성아미노산의 상동성에 따라 계통수를 작성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여 쥬커칸(E. Zuckerkan과 폴링(Pauling)은 헤모글로빈(Hb)분자에 대한 진화연구를 토대로 분자시계(分子時計)를 만들었고, 말고리어쉬(E. Margoliash 1965)는 사이토크롬 C의 진화에 대해 연구했으며, 핏치(W.M. Fitch 1967)는 생물계통수(生物系統樹)를 작성하였다.

이러한 연구들은 1960년대에 전기영동법이 개발되면서 집단생물이 가지고 있는 유전적 변이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게 되어, 연구가 활기를 띠게 되었다. 아울러, 유전적 변이가 환경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아얄라와 존슨(Ayala & Johnson)은 유전자변이가 환경에 적응현상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그러나, 윌슨과 살리취(Wilson & Sarich)는 전기영동법으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는 진화에 관계되는 조절유전자가 아니라, 구조유전자에 대한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하였다.

쿄토대학의 키무라(Motoo Kimura 1924- )는 <분자수준에 있어서의 진화속도>(Nature 1968)라는 글에서 분자진화중립설(Neutral theory of molecular evolution)을 주장하여 관심을 끌었다. "돌연변이는 자연선택과는 무관하게 중립적이며, 우연히 집단 내에 축적이 되면서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현대종합설이 주장하듯이 유리한 변이는 선택되고 불리한 변이는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변이는 중립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집단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을 접목한 비다윈적 진화론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킹(King & Jukes) 등이 <비다윈진화>(Science 1969)에서 이 설을 지지하면서 진화론자들간의 찬반논쟁을 유발시키기도 하였다. 그의 분자중립진화설은 이러하다.

네 종류의 핵산염기가 둘씩 짝을 이루어 유전자쌍을 만들며 세 쌍이 하나의 아미노산을 만들도록 암호화(triple codon)되어 있다. 예컨데, GAT와 GAC는 모두 아스파라긴산을 만들도록 지시하는 암호이다. 즉, 끝자리의 T와 C가 서로 바뀌어도 결국 아스파라긴산이 만들어진다. T→C이든 C→T이든 같은 아아스파라긴산이 만들어지므로 그 아미노산을 함유한 단백질의 생성에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게 된다. 이런 현상을 중립적 돌연변이(neutral variation)라 했으며, 이러한 현상은 자연선택과는 무관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립적 돌연변이가 쌓이면 '휴식상태'에 있는 돌연변이가 그 생명체에 유리하게 작용하게 되고 자연선택에 의해 종 전체로 확산이 된다는 것이다. 즉, 중립적 변이는 유전적 변이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중립설은 유전자형(genotype)에 관한 것이며, 표현형(phenotype)에 대한 자연선택설을 수용한다.

그러나, 이 이론으로 분자진화의 특징인 '진화속도의 일정성'과 '진화의 보수성'은 잘 설명이 되지만, 분자진화와 표현형진화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중립설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중립적 돌연변이가 왜 생명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전적 변이를 일으키는지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돌연변이는 일반적으로 유해한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7. 형질발현 단계설(Stepwise Control Theory)

고려대학교의 생물학 교수였던 이영록(李永綠 1989)은 형질발현단계설(形質發現段階說)을 주장하였다. 표현형의 진화는 분자진화에 근거하나 유전형질의 발현은 분자, 세포, 개체 등 각기 다른 수준에서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며, 각 단계마다 환경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표현형의 진화속도는 분자진화의 속도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영록 교수 정년기념논총 간행위원회; 생물의 역사, p 17, 법문사, 서울, 1996] 그러나, 이 설 역시 진화가설에 대한 추상적인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증명할 아무런 실험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추론적 설명범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범균비래설(Panspermia)

전술했듯이, 생명포자(sperm)가 우주에 가득하게(pan) 날아 다니다가, 운석이나 외계의 우주선에 의해 원시지구에 떨어져 생명이 부화하여 오늘의 동식물들로 분화되었다는 설이다. 리히터(Hieronymus T. Richter 1824-1898), 헬무홀츠(Helmuhortz 1884), 캘빈(Lord Kalvin 1824-1907), 아레니우스(Svante A. Arrhenius 1859-1927)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최근에,  크릭(Francis H. Crick 1916-)은 <유전정보의 기원>(1968)에서 문명이 발달한 다른 혹성에서 생명의 종자를 우주선으로 보낸 것이라는 정향적 범균설(定向的 汎菌說 directed panspermia)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설은 결국 우주계의 생명이 최초에 자연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창조된 것인지 하는 근원적인 문제로 귀결하게 된다.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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