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조상영
2018-07-05

4차 산업혁명시대! 

: 대중문화에 침투한 진화론 

(The Age of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Evolution that permeates popular culture)



요약

오늘날의 진화론은 대중매체를 통해 시각화되어 대중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해, 과거에 없었던 기술들인 AI, 빅데이터, Iot 등이 등장하면서, 이 기술들이 진화의 결과물로써 넥스트 휴먼(포스트 휴먼)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4차산업혁명시대 대중문화에 침투한 진화론 현상에 대해 알아보고, 진화의 사슬을 벗어나, 설계와 창조 문화로의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서론

매체가 발전하지 않은 시절에는 전문가들의 강연을 직접 듣거나, 인쇄된 책, 또는 신문, 잡지를 통해 정보가 움직였다. 그러나 현대 시대는 TV, 라디오, 인터넷 등 온라인 매체를 타고 빠르게 정보가 퍼지고 있으며, 진화론적 문화도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또한 파급의 속도만큼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4차 산업혁명시대(4IR)가 열려지고 있고, 이 기술들은 AI(인공지능), 빅데이터, Iot(사물인터넷) 등 인간의 지혜를 앞지르고 있는 듯 보인다.

대중들은 이러한 기술력을 볼 때마다, 오랜 과거부터 진화가 이루어져 오면서, 새로운 인류인 넥스트 휴먼이나, 포스트 휴먼의 출현이 가능하여,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본 연구는 매체에 의한 진화론의 왜곡된 파급력과 4차 산업혁명시대의 과학기술 발전이 진화론이 아닌 인간의 창의력에 의한 설계적 관점으로 풀어보면서, 진화론적 문화가 아닌 설계와 창조 문화로의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2. 본론 및 고찰

2.1. 진화론을 전파하는 매체의 힘

매체는 불특정 많은 사람들에게 대량 정보를 전달하는 물체나 수단으로서, TV, 영화, 신문, 라디오, 인터넷, 책 등을 말한다. 매체의 역할은 상품광고, 정치적 여론 형성과 중요한 정치적 이슈를 제공하고, 다양한 문화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일반 대중은 대중매체를 통해 사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 기회를 갖게 되어, 대중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많은 분야에서도 매체는 중요한 전달수단이지만, 진화론이나 창조론 진영에서도 논문 및 책 출간, 신문기사, 사이트, 유튜브 영상,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영화 등 on-off line을 통해 다양한 이슈들을 전개하고 있다. 히틀러 역시 장애인과 유태인들을 자연선택과 인종주의를 활용해 홀로코스트(Holocaust)를 자행시켜 나치독일의 세력 형성을 하였는데, 이때 사용되었던 것이 라디오 연설과 선전 영화 등 당시에는 최첨단 매체로 독일인들의 무의식을 세뇌했던 것이다.

.넥스트휴먼(포스트 휴먼)을 향해 가는 진화 흐름도

인간의 무의식을 세뇌하는 방식은 현재도 마찬가지이며, 더욱 다양화된 매체들을 이용해 진화론적 가치관을 만들고 있다. 진화를 다룬 다양한 다큐멘터리와 영화들은 수없이 많다. 이중  2015년 KBS에서 방영됐던 <넥스트 휴먼>은 1편에서는 ‘돌연변이의 탄생’, 2편은 ‘마지막 크로마뇽인-종의 위기’라는 주제로 방영됐다. 내용은 직립보행 할 수 있게 했던 큰 엉덩이 유전자, 다양한 피부색을 가지게 된 이유, 척박한 환경에서 인류를 살린 돌연변이 이야기, 최종 진화의 산물인 퍼펙트 휴먼을 통해, 문명의 흥망성쇠, 진화 과정에서의 인류의 몸을 다루었다. 이와 더불어 과학의 주류로 왜곡되어 있는 진화론 파급도 대중매체와 융합하여, 넥스트 휴먼 또는 포스트 휴먼이라는 진화적 흐름으로 간주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2.2. 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은 진화가 아닌, 인간의 설계적 능력이다.

세계경제포럼은 2016년 1월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을 화두로 제시하면서, 4차 산업혁명을 ”디지털 혁명에 기반하여 물리적 공간, 디지털적 공간 및 생물학적 공간의 경계가 희석되는 기술융합의 시대”로 정의했다. 현재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이 진화를 이끌어 냈으며, 긴 진화의 과정을 통해 기술적 진화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즉 도시혁명에서 산업혁명으로, 또 다시 정보혁명과 제2차 정보혁명을 진화시켜, 지금의 넥스트 휴먼(포스트 휴먼) 시대로 진입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진화론을 전파하는 대중매체의 주제와 과학기술이 하나로 일치되어, 진화론이 저변으로 확대되어 견고히 굳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특성은 ‘초연결성(Hyper-Connected)’, ‘초지능화(Hyper-Intelligent)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이 상호 연결되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으로 보다 지능화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의 초연결성과 초지능화로 인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다양한 연구와 기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로봇에 뇌를 이식하여 죽지 않은 인간을 만드는 러시아 아바타 계획(드미트리 이츠보프), 점점 소형화되고 고도화 되는 미래의 첨단무기(6kg 스마트 폭탄, 스펜스 탱크, 코너 샷, 전자칩을 단 곤충, 발리스틱 복서, 무인 정찰기 등), 무선주파수 식별장치인 RFID의 발전(집 밖 644㎞에서 찾은 고양이), 인간 사이보그 실험(케빈워릭, 닐 하비손, 엘론 머스크의 경우)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사이보그와 인공지능 문화가 의료, 산업, 군사, 연예 등 다른 분야에 끼치는 영향들은 상당히 광범위하다.

특히 네덜란드의 광고 회사 월터 톰슨(J. Walter Thompson)과 ING,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협업한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 프로젝트를 예를 들어보자.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는 AI와 3D 프린터로 렘브란트 화풍의 그림을 재현한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AI 딥 러닝 알고리즘이 346점의 렘브란트 작품을 분석하여, AI만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 알고리즘이 스스로 그림의 주제까지 선택해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는 것인데, 흰색 깃이 있는 어두운 색상의 옷을 입고 모자를 썼으며, 수염이 난 30~40대 백인 남성의 초상화를 그려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림 속 남성이 얼굴을 오른쪽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고 결정한 것도 이 알고리즘이다. 출력은 3D 프린팅 기술이 담당했는데, 페인트 기반의 UV 잉크를 사용해 렘브란트가 사용했던 그림의 질감이나 붓 터치를 재현한 3D 인쇄였으며, 1억 4,800만 픽셀 이상의 13개의 레이어로 구성되어 출력되었다. 이와 같이 대중들은 인공지능의 발달이 진화의 결정판이라고 판단할 테지만, 결국 인공지능은 인간이 부여한 알고리즘 설계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AI 딥러닝 알고리즘이 새롭게 만들어낸 렘브란트 경향의 작품.

 

3. 결론

자동차, 스마트폰, TV, 비행기, 의자, 의복, 시계 등 우리 주변에는 과학기술로 발명된 다양한 전자기기와 사물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도구들은 아메바에서 동물로, 그리고 인간으로 진화된 존재가 만든 것이 아닌, 모든 만물의 설계자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지혜를 부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진화론적 가치관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컨텐츠를 기획하는 책임자들이며, 매체의 소유자들이 결정한다. 이제 우주, 자연, 인간의 몸과 정신, 문명을 바라보는 진화론의 사슬에서 벗어나, 설계와 창조의 문화로 거듭나야 할 때다.

 

4. 참고 문헌
1. 유튜브, 진화론에 세뇌된 히틀러의 장애인 및 유태인 학살
(https://www.youtube.com/watch?v=81sur7-x9Bk), 2016
2. KBS, 넥스트 휴먼 다큐멘터리, 2015
3. 유튜브,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 2016( https://www.youtube.com/watch?v=IuygOYZ1Ngo)



출처 - 2018년도 한국창조과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62

참고 : 496|1174|2016|2039|2114|2307|2314|2330|2353|2359|2579|2710|2864|3024|3035|3037|3039|3041|3055|3077|3186|3242|3241|3244|3384|3423|3426|3642|3682|3717|3722|3728|3746|3780|3812|3887|4039|4069|4140|4516|4542|4635|4636|4765|4766|4782|5112|5179|5210|5211|5270|5272|5381|5397|5413|5461|5462|5466|5470|5621|5809|5859|6082|6110|6135|6146|6152|6153|6186|6285|6332|6452|6642|6553|6582|6614|6617|6620|6640|6652|6676|6680

Russell Grigg
2018-07-03

진화론이 낳은 괴물, 아돌프 아이히만 

(The struggle for the soul of Adolf Eichmann)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1962)은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유태인 600만 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대량 학살(Nazi Holocaust)의 주요 전범 중 한 명이다. 그의 임무는 유대인들을 체포 및 강제 이주시키고 지속적으로 학살 처리함으로서, 수용소의 살해 능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었다. 1960년 아르헨티나에 숨어있다가 체포되어, 1961년 예루살렘 법정에서 전범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사형이 확정되었다.[1] 사형 선고 후에 이스라엘에서 기독교 선교사로 27년간 재임했던  윌리엄 헐(William L. Hull) 목사가 이스라엘 종교국에서 사형수에게 배정하는 영적 자문관으로 임명되었다.


살인자와의 면담

아이히만은 1962년 4월 11일부터 라믈레 감옥(Ramleh Prison)의 사형수 방에 구금되어 있으면서 5월 31일 사형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50여일 동안 14번에 걸쳐(대개 1시간 정도 지속됨) 헐과 면담을 했다. 첫 번째 면담에서, 헐은 아이히만에게 독일어 성경을 건네주었고, 각 면담 시간마다 헐이 골라준 성경 구절들을 읽어온 후(아이히만도 동의함) 토론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 구절들 중 많은 것이 누가복음 12:4-5, 시편 9:27, 로마서 1:16-32과 같이 모든 사람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것과, 요한복음 3장과 요한복음 14:6절과 같은 복음에 관한 구절들이었다. 헐은 70여 구절 이상의 말씀들을 사용하였다.

‘한 영혼의 투쟁(The Struggle for a Soul)’은 이러한 면담으로 밝혀진 사실들에 대한 헐의 기록이다. 헐은 서문에서, 그 글을 쓰게 된 이유를 적고 있었다. ”어떻게 한 사람이 그러한 흉악한 범죄의 도구로 파괴적인 인간의 삶을 살게 되었는지…이 세상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바로 이 세상이 아돌프 아이히만과 같은 사람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p. xii). 헐은 계속하여 ”...아이히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어떤 중재자의 필요성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이렇게 지적했다. ”아이히만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를 거의 공개적으로 거부함으로써, 그와 그의 악한 행동은 기독교와는 완전히 분리된 것임을 보여주었다”(p. xiii).

또한 헐은 아이히만의 말에 어떠한 비밀적인 내용이나 자백은 없었고, 항시 네 명이 이상의 교도관들이 지키고 있어서 미세스 헐이 통역하며 들었던 것처럼, 그가 중얼거리는 말까지 모두 듣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이히만은 죄를 뉘우치는 어떠한 기색도 없었다는 것이다.

토론 시간 동안 아이히만은 그가 프로테스턴트 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지만(p. 34), 예수가 죄인들을 위해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p. 37). 그는 자연 속에서 그리고 철학자들의 글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p. 83). 구약은 단지 유대인들의 이야기이며 우화이고(p. 23), 신약은 아무 쓸모도 없다고 말했다(p. 30). 그는 지옥과(p. 24) 사탄을(p. 86) 믿지 않았고, 누구나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pp. 132–33, 140). 그는 ”나는 자백할 것이 없다”, ”난 죄가 없다” 그리고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선포했다(p. 83). 아이히만은 다른 주제들로는 불교, 칸트, 플랑크, 쇼펜하우어, 니체, 스피노자 등의 사상들을 언급했다.

아이히만은 ”나는 나의 자연주의적 개념과 일치하지 않은 그 어떠한 것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말했다. 


아이히만의 진화론적 세계관

여섯 번 이상의 면담 시간마다 매번 아이히만이 헐에게 언급했던 주제는 진화론과 수십억 년의 연대에 관한 그의 믿음이었다.

1. 헐이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아이히만은 물었다. ”만약 하나님이 그의 독생자를 보낼 필요가 있었다면, 왜 수백만 년 전에 일찍 보내시지 않고, 그 오랜 기간 동안 기다렸는가?”(p. 36).

2. 세 번째 면담 시간에, 헐은 그에게 창세기 2:7절을 읽어보도록 권했고, 아이히만은 큰 소리로 읽었다 :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그리고 즉각적으로 말했다. ”나는 인간이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다고 믿지 않으며, 원시세포로부터 진화되었음을 믿고 있다.”(pp. 46-47)

3. 헐의 네 번째 방문에서, 아이히만은 다시 물었다. ”하나님은 왜 창조 시로부터 구원을 베푸시지 않고, 수백만 년을 기다렸다가 단지 2000년 전에 예수를 보냈나?”(p. 53). 

4. 이 방문 후에, 아이히만은 헐에게 편지를 써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의 자연주의적 개념과 일치하지 않은 그 어떠한 것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사람은 수백만 년 이상에 걸친 발달을 거쳐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된 것이다”(p. 77).

5. 헐의 여섯 번째 방문에서, 아이히만은 ”하나님이 세상을 수십억 년에 걸쳐 창조하셨고, 이 세계를 준비하셨는가?”라고 재차 물어보았다.(p. 69).

6. 그리고 아이히만은 헐에게 긴 편지를 써서, 여덟 번째 방문에 전해주었다. 거기에서 그는  ”..시간의 시작은 대략 백억 년 전에 발생했다.”는 교황 비오 12세(Pope Pius XII)의 말을 인용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스피노자의 말도 인용했다. ”이 세상에는 그 자체가 악이라고 하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말을 이어 ”이 세계가 창조주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믿는 사람은 완전한 인간상으로 나아가는 도중에서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전의 동물적 본능은 우리 안에 있는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완전성을 향한 사람의 발달은 몇 세대에 걸쳐서가 아니라 장구한 시간을 걸쳐 측정되어야만 한다.”(pp. 146-49).

분명히 아이히만은 진화론적 세계관(evolutionary worldview)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말은 비교적 현대적 용어이지만, 이러한 믿음 체계의 영향은 1962년에도 다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히틀러에 의해서 기초가 세워지고 아이히만에 의해서 실행된 다윈주의적 인종차별주의는 그의 모든 사고에 영향을 주었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나치의 대량학살에 참여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했다. 또한 그러한 아이히만의 사고는 헐이 전해준 성경 말씀의 진실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했다.

진화론적 인종차별주의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나치의 대량학살에 참여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했다. 

아이히만이 적어도 여섯 차례 이상의 면담에서 이러한 개인적 견해를 표명했지만, 헐은 아이히만의 영혼에서 이 핵심 부분을 놓쳤던 것으로 나타난다. 앞에서 본 것과 같이 헐은 그의 서문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을 그렇게 만든 것이 ‘이 세계(the world)’라고 비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범죄를 실행케 하고 양심을 마비시켜 버린 것은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 년이라고 생각한 아이히만의 진화론적 믿음이었다. 그것은 그가 읽었던, 또는 헐이 들려주었던,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복음의 시작부터 막아버린 절대적 장벽이었던 것이다.

헐의 기록에서 흥미로우면서도 놀라운 사실 하나는, 아이히만이 교황 비오 12세의 말을 인용하여 ”백억 년”이라는 쓴 글 옆에 헐은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에 따르면 50억 년 전이다)”라는 괄호글을 추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p.147). 이것은 헐 자신도 오래된 연대를 믿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그가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을 믿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사건에서, 헐은 아이히만의 진화론적 믿음 체계에 대한 어떠한 과학적 변증이나 성경적 변증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그리고 그렇게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원하는 크리스천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복음 전도자는 의심 없이 성경적 세계관을 확고히 가지고 있고,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인정해야할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세계관(특히 진화론적 세계관)과의 논쟁에서 성경을 방어하고 지킬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상대방의 비성경적 세계관을 성경적 세계관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3]

헐이 서문에서 말했던 것처럼(p.xiii), ”구원은 논쟁에서 승리하여 얻어내는 결과물이 아니며, 지혜로운 사람만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 성령에 의해서 마음이 온유해져서 구원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더 말해져야 될 것이 있다 :

1.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는(엡 6:17) 성경 말씀을 기록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검을 무디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 돌밭에 떨어진 말씀이 자라기 위해서는, 먼저 돌들이 제거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4] 

아이히만이 가졌던 세계관의 문제점에 대해서 헐이 그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했다는 것은 비극이다. 성경은 명백하게 이 우주와 지구는 최근에 창조되었고, 권능의 말씀으로 즉시 운행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세계에는 창세기의 기록이 사실이며, 역사적으로 정확하다는 풍부한 증거들이 있다. 그리고 이 세상 만물에는 창조주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롬 1:20)

하나님이 베푸신 용서와 구원을 받아들이기 전에 (진화론의 허구성을 깨닫고) 진리를 확신할 필요가 있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1:18절의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번역 - 김정화

링크 - http://creation.com/adolf-eichmann

출처 -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621

참고 : 518|1176|2358|2644|3717|467|486|487|496|502|330|5397|510|5470|682|3057|3077|3369|3384|3642|3722|5179|3728|4069|4636|4766|5270|5462|3640|3589|5542|5381|4869|5809|5859|6082|6332

Jake Hebert
2018-04-24

진화론이라는 신비주의와 과학의 종말

(Evolutionary Mysticism and the End of Science)


      세속적 진화론자들은 매우 자주 '마술적' 추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종종 자신들을 경험주의적 과학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유물론적 자연주의는 매우 부적절하다는 것이 점점 더 명백해지고 있다. 30년 전에 창조연구소(ICR)의 설립자인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 박사가 지적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진화론이라는 신비주의적 개념을 너무도 쉽게 받아들인다.[1]

진화론자들이 설명하기 가장 어려운 두 가지는 생명의 기원(origin of life)과, 생각 또는 정신의 기원(origin of consciousness)일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실험적 증거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체가 비생명체인 화학물질들로부터 우연히 생겨났다고 주장한다.[2] 자연주의적 과정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어 보이는, 세포를 이루고 있는 극도로 복잡하고 정교한 수천의 유기물질들이 모두 동시에, 종류별로 우연히 만들어져서, 또한 우연히 조립되어, 생명체가 자연발생 했다는 것이다. 또한 다음 세대로 전해줄 유전 정보들과, 전달에 관여하는 모든 유기물질들이 모두 우연히 생겨나, 번식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실험적 증거들은 완전히 제로이다.

생명의 기원(origin of life)과 생각의 기원(origin of consciousness)은 진화론자들이 설명하기 가장 어려운 두 가지일 것이다.

또 하나의 자연주의적 수수께끼는 사람이 무기물에서부터 진화한 물질적인 생물학적 기계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스스로를 인식하고 판단하며 살아가는 생각(consciousness, 정신)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이 단지 생물학적 기계에 불과하다면, 왜 개인용 컴퓨터와 같은 기계들은 생각을 갖고 있지 못하는가? 슬프게도, 일부 진화론자들은 개인용 컴퓨터도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뿐만 아니라, 우주의 다른 모든 것들도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범신론(panpsychism)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신념은 생각은 단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 자체의 근본적인 특성이라고 주장한다. 범신론에 따르면, 만물은 초보적 수준의 생각을 갖고 있으며, 심지어 개별적 입자로 되어있다고 말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자가 인식 객체는 외부 영향과는 별개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것은 일부 과학자들이 실제로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인 그레고리 매틀로프(Gregory Matloff)는 어떤 별(stars)들은 의식적으로 그들의 운동을 바꿀 수 있다고 이론화했다. 그가 제안한 두 가지 메커니즘은 한 별이 의도적으로 한 방향으로만 물질 제트를 방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생각을 하는 것인가? 이것은 정신적 활동인 생각이 될 수 없다![3]

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이 과학적 사람들이라고 우쭐대며 말하면서, 실제로 이런 것을 제안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이러한 것을 제안할 수 있는 과학계의 환경이 150여년 넘게 지속되어 왔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이 과학적 사람들이라고 우쭐대며 말하면서, 실제로 이런 것을 제안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성경은 사람과 동물 모두, 생명과 정신의 존재에 대해 합당한 설명을 제공한다.(창 1:20-31, 2:7).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하셨고, 사람은 불멸하는 영적인 구성 요소와, 물리적 구성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창세기 1:21절에 따르면, ‘고등한‘ 동물은 아마도 적은 형태의 네페쉬(nephesh) 의식을 갖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성경의 설명을 거부하기 때문에, 미래의 과학적 진보뿐만 아니라, 이미 달성된 과학 지식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체가 자체 움직임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다면, 어떤 경로를 지나갈 때 뉴턴의 운동법칙(Newton‘s Laws of Motion)을 따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물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균형을 깨뜨린 외부적 힘이 작용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 물체가 스스로 움직이기를 선택했기 때문인가? 세속적 물리학자들은 정말로 이러한 길을 걸어가고 싶어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과학에 대해서 특별히 물리학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진화론자들은 창조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과학적 퇴보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현대과학은 초기의 창시자들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4] 그러나 오늘날 많은 과학자들은 과학적 결과와 관계없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한 불합리한 행동을 지식이나 과학에 대한 사랑으로 동기 부여를 할 수 없다. 그들은 창조주를 거부하고 경멸하려는 자신들의 생각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사람과 동물 모두, 생명과 정신의 존재에 대해 합당한 설명을 제공한다.

이것은 창조론 대 진화론 논쟁이 단지 부차적 논쟁이 아님을 가리킨다. 사람이 생명의 기원에 대해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는지는 정말로 엄청나게 중요하다. 모든 과학자들은 창조주 앞에서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고, 성경 창세기로 돌아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Morris, H. M. 1987. Evolution and the New AgeActs & Facts. 16 (3).
2. Tomkins, J. P. 2018. The Impossibility of Life’s Evolutionary Beginnings. Acts & Facts. (47) 3: 11-14.
3. Matloff, G. L. 2017. Stellar Consciousness: Can Panpsychism Emerge as an Observational Science? EdgeScience. (29): 9-14.
4. Hebert, J. 2016. How Theology Informs Science. Acts & Facts. 45 (5): 14.

* Dr. Jake Hebert is Research Associate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earned his Ph.D. in physics from the University of Texas at Dallas.
Cite this article: Jake Hebert, Ph.D. 2018. Evolutionary Mysticism and the End of Science. Acts & Facts. 47 (4).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10552/

출처 - ICR News, 2018. 3. 30.

구분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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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6636|6634|6627|6610|6604|6597|6585|6583|6582|6562|6556|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38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5|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

Russell Grigg
2018-03-06

다윈의 멘토 : 뜻하지 않게 진화론의 수립을 도운 성직자들 

(Darwin’s mentors : How clergymen unwittingly helped pave the way for evolution)


   찰스 다윈의 생애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두 사람은 목사면서 과학자였다. 둘 다 진화론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평생의 친구였다. 한 사람은 캠브리지 대학의 식물학 교수였던 존 헨슬로(John Henslow) 목사이며, 다른 한 사람은 캠브리지 대학의 지질학 교수였던 아담 세지윅(Adam Sedgwick) 목사였다.


존 스티븐스 헨슬로 (John Stevens Henslow, 1796~1861)

헨슬로는 많은 분야에 흥미를 가진 학구적인 사람이었다. 1818년 졸업 후 아담 세지윅과 함께 와이트(Wight) 섬과 만(Man) 섬의 탐사에 참여한다. 1882년 캠브리지에서 광물학 교수로 임명을 받는다. 1825년에는 같은 대학에서 식물학 교수로 자리를 옮긴다. 그러던 중 1824년에는 성공회 목사가 된다.

존 스티븐스 헨슬로 (1796~1861)

캠브리지 대학 식물원의 창립자인 헨슬로는 1821년부터 영국 전역의 식물표본을 채집하기 시작한다.[1] 그의 목적은 창조된 종(created species) 내의 변화(variation)의 한계를 분석하는 것이었다.[2] 그는 대조 조사를 통한 실습을 통해 변화의 한계를 종으로 규정하는 데에 사용했다. 여기서 그는 종(species)은 진화하지 않고 한계 내에서 변화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관점을 확립했다.

찰스 다윈은 그의 자서전에서 헨슬로와의 친분은 그의 생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다고 적었다.[3] 이것은 1828년 다윈이 학부생으로 헨슬로의 리셉션에 참석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후 그는 헨슬로의 5주짜리 식물학 강의 코스를 1829년, 1830년, 1831년에 3번이나 듣는다.

헨슬로는 캠브리지를 거닐며 이 강의를 위한 준비를 하곤 했다. 다윈은 이 수업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다른 강사들은 다윈을 ‘헨슬로의 그림자’라고 불렀다.

다윈은 그의 자서전에서, 헨슬로를 이르기를 ”그는 아주 경건하고, 정통적이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만약 국교 신조 중 한 글자라도 바뀐다면 아주 슬플거라고 얘기했다.” [5, 6]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슬로는 길고 복잡한 지질학 역사에 대해서는 수용하고 있었다. 비유적으로나 대략적으로 보지 않는다면, 창세기와 적합시키기는 어려운 부분이었다. 헨슬로는 노아 홍수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로 혜성에 의한 재앙적 충돌의 결과라는 가설을 제안했었다.[7]

1831년 헨슬로는 비글호(HMS Beagle)의 박물학자로 찰스 다윈을 추천한다. 비글호는 영국 군함으로 로버트 피츠로이(Robert FitzRoy) 함장의 지휘 하에 남미로 탐사를 떠나는 배였다. 이보다 앞서 헨슬로는 다윈에게 지질학에 대한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아담 세지윅 교수와 함께 북 웨일즈 지방의 지질학 탐사를 동행할 수 있게 했다.[8]

 

아담 세지윅 (Adam Sedgwick, 1785~1873)


아담 세지윅 (1785~1873)

세지윅 역시 성공회의 목사이자(1818)  교수로서 캠브리지 대학의 지질학 학장이었다. 지금의 기준으로, 그는 복음주의적이지 않았으며, 젊은 지구 창조론자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진화론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지질학적으로 격변론자였다.[9] 그는 장구한 역사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신성한 창조 행위가 이어져왔다고 믿었다.”[10] 오늘날로 보자면 점진적 창조론자(progressive creationist)라고 분류할 수 있겠다. 이상하게도 그는 인류의 역사는 짧고, 지질학적 역사는 길다는 믿음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현현하심은 수천 년의 짧은 인간 역사에 제한받지 않으신다. 지질학자들은... 연속적인 지층들에 장구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썼다.[11] 

비록 그는 긴 연대론을 믿는 지질학자였지만, 세지윅은 모든 생물학적 진화론에 대해 철저하게 부정했다. 1884년에 로버트 체임버스(Robert Chambers)는 익명으로 진화 또는 돌연변이에 관한 책인 ‘창조 자연사의 흔적들(Vestiges of the Natural History of Creation)’을 출간한다.[12] 그러자 새지윅은 찰스 라이엘에게 쓴 편지에서 그것을 맹렬히 비난했다. ”만약 그 책이 사실이라면 진지한 사고는 헛된 것이고, 종교는 거짓이며, 법은 불필요한 것이며, 도덕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위해 했던 일들은 미친 짓이며, 인간은 그저 벌레보다 조금 나은 존재일 뿐이다.”[14]

 


다윈의 종의 기원에 대한 세지윅의 견해

새드윅은 1859년 출간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대해서도 역시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다윈에게 쓴 편지에서 말했다 :

”자네의 글을 읽으면서 즐겁기보다는 괴로웠네. 일부는 높이 평가하는 부분도 있고, 배꼽이 빠질 만큼 웃은 부분도 있었네. 나머지 부분에서는 크게 슬픈 마음으로 읽었네. 왜냐하면 그것은 완전히 거짓이고, 완전한 험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네. 자네는 이탈했어....진실된 추론 방식을... 물질계에처럼 자연에도 도덕적이나 철학적인 면이 있지. 이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깊은 어리석음의 늪에 빠지게 된다네.”[15]

그리고 그의 논평은 1860년 3월 24일 ‘스펙테이터(The Spectator)’ 지에 실렸다. 새지윅은 이렇게 썼다 :

”나는 이 이론에 혐오감을 표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이론의 확고한 유물론적인 측면 때문이다. 그것은 물리적 진실을 추구하는 유일한 방법인 귀납적 추론도 배제시켜버렸다. 최종 원인은 완전히 배제함으로써, 불충분한 이해를 그 옹호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나는 다윈이 무신론자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유물론은 무신론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오히려 명백한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것이며, 진실을 찾는 방법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매우 해로운 것으로 보인다.”

”각각의 사실들은 연속적인 가정들과, 반복되는 하나의 잘못된 원리를 통해서 묶여있다. 공기 방울에서 실을 뽑아낼 수는 없는 일이다.”[16]

 


다윈을 빗나가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나?

이렇게 다윈의 학문적 경력에서 중요한 두 멘토를 살펴보았다. 헨슬로와 세지윅은 평범한 기독교인이 아닌, 열정적일뿐 아니라, 모든 생물학적 진화론에 반대했던 인물들이었다. 그렇다면 왜 다윈은 그러한 롤 모델들의 가르침을 배반하고, 자신만의 반-기독교적인 진화론 철학을 발전시켰을까?

찰스 다윈

답은 간단하다. 헨슬로와 세지윅의 기독교적 증거들과 다윈이 그들과 나눈 기독교, 성경, 특별한 창조, 종의 불변성 등에 대한 대화들에도 불구하고, 다윈이 확실히 받아들인 한 가지는 (특별히 세지윅에게서 받은 영향인) 장구한 지질학적 연대(지구의 나이)에 관한 믿음이었다. 그렇게 해서 의도하지 않게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의 증거를 무너뜨리는, 진화가 ‘작동될 수 있는’ 시간 틀을 다윈에게 제공했던 것이다. 다른 것들은 중요치 않았다.

비글호에 탔던 다윈에게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의 책 ‘지질학의 원리(Principles of Geology, 1830)’를 추천한 사람도 헨슬로였다. 그 관점을 모두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경고했지만, 그 책은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 균일설)을 주장하고 있었다. 즉, 지구는 동일한 과정에 의해 아주 장구한 시간을 거쳐 서서히 점진적으로 변화되었다고 본다. (오늘날과 같은 느린 퇴적률과 느린 침식률이 과거에도 언제나 항상 동일했다고 가정한다). 그 책에 대해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헨슬로가 그 책을 다윈에게 권한 이유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 자신도 오래된 연대에 대한 관점을 무의식중에라도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찰스 라이엘은 생물학적 진화론을 완전히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는 ”가족 중에 누가 침팬지라는 생각과, 침팬지가 사람의 인격과 태도를 가지게 되어 인간이 되었다고 발상 자체부터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18] 지질학의 원리 2권(1832)은 라마르크의 진화론에 관한 반박을 담은 책이다. 생물들은 진화했고 진화계통수로 나타낼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현명한 논쟁을 담고 있다.[18, 19]

다윈은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에서 아직 비글호에 승선하고 있을 때, 이 두 번째 책을 받았다. 그러나 다윈이 다시 한번 받아들인 것은 생물들의 진화를 위한 막대한 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결론

오늘날 많은 교회들과 신학 대학들에서 수십억 년의 오래된 연대가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대략 1만 년 이내의 창조 연대를 배척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비기독교인들을 전도하는데 이 편이 더 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다윈의 예에서 보듯, 현재도 마찬가지로 성경에 반하는 가르침은 결코 믿음으로 이끌지 못한다.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불신을 야기시키고, 무신론적인 진화론을 더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This was sufficiently detailed for Henslow to publish A Catalogue of British Plants in 1829.
2. Kohn, D. et al., What Henslow taught Darwin, Nature 436(7051):643–45, 2005.
3. The Autobiography of Charles Darwin, with original omissions restored. Edited with Appendix and Notes by his grand-daughter Nora Barlow, Collins, London, p. 64, 1958.
4. The historic statements of doctrine and summary of belief of the Anglican Church.
5. Ref. 3, pp. 64–65.
6. All ordinands for Anglican priesthood had to swear allegiance to the Thirty-nine Articles.
7. Walters, S. and Stow, E., Darwin’s Mentor: John Stevens Henslow, 1796–1861,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162, 2001.
8. Henslow was also the chairman of the historic debate involving Bishop Samuel Wilberforce and Thomas Huxley, held at Oxford on 30 June 1860.
See Grigg, R., Did Wilberforce say it? Creation 13(1):33, 1990; creation.com/Wilberforce_say.
See also Sarfati, J., Post-script: Wilberforce Jr. v Huxley debate, creation.com/wilberforce#huxley, 20 February 2007.
9. That is, that the earth’s history was marked by repeated catastrophes, such as floods, with Noah’s Flood being the last one.
10. Adam Sedgwick, Wikipedia, www.en.wikipedia.org/wiki/Adam_Sedgwick, accessed 3 May 2008.
11. Sedgwick, A., Discourse on the Studies of the University, Leicester University Press, p. 22, 1969 reprint from 1833 original.
12. The work suggested that everything in existence had developed from earlier forms: solar system, Earth, rocks, plants and corals, fish, land plants, reptiles and birds, mammals, and ultimately, man.
13. Induction is a form of reasoning that draws general conclusions from individual instances or evidence.
14. A. Sedgwick to C. Lyell, 9 April 1845 in Clark, J.W. and Hughes, T.M., The Life and Letters of the Reverend Adam Sedgwick, Cambridge University Press, Vol. 2, pp. 83–84, 1890.
15. A. Sedgwick to C. Darwin, 24 December 1859 in Darwin. F., The Life and Letters of Charles Darwin, D. Appleton & Co., New York, Vol. 2, pp. 43–44, 1911.
16. Quoted by Darwin in a letter to Charles Lyell, ref. 15, pp. 91–92.
17. Desmond, A. and Moore, J., Darwin, Penguin Books, London, p. 108, 1991. Return to text.
18. Ref. 17, p. 131.
19. After Lyell had read Darwin’s Origin, he wrote to Darwin on 3 October 1859 : '… when, as I fully expect, a new edition is soon called for, you may here and there insert an actual case to relieve the vast number of abstract propositions” (ref. 15, p. 2). Lyell finally 'published an infuriatingly tepid endorsement of evolution in his Antiquity of Man” (in 1863).

Source: Milner, R., Putting Darwin in his place, Scientific American 287(4):79–80, 2002. 



번역 - 박창민

링크 - http://creation.com/clergy-mentor-darwin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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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257

참고 : 162|4635|670|161|1897|1907|2329|2633|3164|4585|3024

Dean R. Marshall
2017-08-10

템플턴, 그레함, 라이엘, 그리고 의심. 

: 어떻게 ‘거짓말’이 한 복음전도자를 실족시켰는가? 

(Templeton, Graham, Lyell, and doubt. How ‘lies’ confounded an evangelist)


      의심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으며, 빌리 그레함(Billy Graham)과 찰스 템플턴(Charles Templeton)에게도 직면한 문제였다.[1, 2] 그들은 좋은 친구였으며, 둘 다 유명한 복음전도자였으며, 그러한 의심에 대해 서로 토론을 했었다.

그와 같은 의심은 결국 찰스 템플턴(Charles Templeton)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만들었다.[1~3] 그렇게 템플턴이 가졌던 의심의 토대는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현대지질학의 주류인 동일과정설의 아버지)의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장엄한 나이가라 폭포는 관광객들이 꼭 보아야할 볼거리이다.


라이엘의 불순한 동기와 방법

라이엘은 자기의 친구 중 한 사람에게 편지를 썼다.[4] : ”나는 5~6년 전에 그 아이디어를 확신했다네. 만약 모세의 지질학(연대기)을 파기할 수 있다면, 그것(성경)은 역사적인 꼴불견이 되는 것이지”.[5] 그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역사와 지질학을 만들어냄으로써, 성경의 역사와 지질학을 불신시키도록 계획했다.

찰스 라이엘은 나이아가라 폭포(Niagara Falls)를 방문했을 때[6], 폭포가 점차적으로 강 위로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오랜 기간 동안 폭포를 관측해온 원주민에게 물어보았고, 폭포의 침식율이 약 1년에 약 1m(3피트)인 것을 관측했다. 이 침식율은 성경의 기록에 너무도 근접한 지구의 연대를 제공했기 때문에, 라이엘은 그 주민의 관측된 침식율을 거부하고, 그 대신 그의 책 ‘지질학 원리(Principles of Geology)’에서 침식율은 매년 30cm(1피트)라고 억측을 했다.[7] 오늘날 나이아가라 폭포의 침식 속도는 이보다 훨씬 더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8]

이것은 찰스 라이엘이 만들어냈던 추측의 한 사례이다. 찰스 라이엘은 1848년에 기사 작위를 받았는데, 그것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사람들 마음에 그의 책에 대한 엄청난 신뢰성과 권위를 부여했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침식에 걸린 시간이 35,000년 이라는, 그의 불성실하고 왜곡된 생각은, 논쟁 없이 수용되었다. 이것은 어셔(Ussher) 대주교의 비교적 최근의 창조 연대를 수용했던 사람들의 믿음을 파괴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템플턴이 하나님께 작별을 고한 기초는 찰스 라이엘의 개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서, 과학계의 반창조론자들이 주장하는, 지구의 연대가 수천만 년(후에는 수십억 년)이라는 주장은 찰스 템플턴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의 책 ‘하나님과의 작별: 내가 크리스천의 믿음을 거부한 이유(Farewell to God: My Reasons for Rejecting the Christian Faith)’를 쓰게 되었다. 슬프게도, 템플턴은 과학자들의 관측과 그들(불순한 동기를 지닌 과학자들)의 의견(해석)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의 결함

수십억 년의 지구 연대를 믿는 지질학자들은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을 보정하기 위해서, 역사적으로 알려진 연대의 암석(분출 연대가 알려진 암석)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 년이라는 가정 하에,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을 사용한다. 그들은 그들의 모델과 일치하는 연대를 얻을 때까지 연대측정을 실시하고 재해석한다.[9] 이러한 장구한 연대측정 방법은 암석의 연대를 실제 연대보다 훨씬 오래된 수백만 년, 심지어 수십억 년으로 평가하게 만든다.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 19세기에 지질학자로 변신한 스코틀랜드의 변호사.  wikipedia.org


예를 들어, 1980년 폭발한 세인트 헬렌산(Mount St Helen)에서 흘러나온 10년 된 용암에 대한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은 39만~270만 년으로 측정되었고, 1800년 하와이에서 흘러나와 굳어진 암석은 1억2천만~30억 년까지 측정되었다.[10] 그러나, 지질학자들은 이러한 독립된 연대측정 결과를 무시해버리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모델(장구한 지질 연대)이 가리키는 연대보다 오래된 연대로 나오면 시료가 오염되었다고 말하고, 젊은 연대로 나오면 폐기시켜버린다. 만약 오염과 폐기에 대하여 물으면, 그들은 (그들의 오래된 연대 모델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 외에는) 그들 주장에 대한 어떤 정당성이나 증거를 대지 않는다.[11]

템플턴 외에도 오래된 연대(진화론에 반드시 필요한)의 장구한 시간 모델로 인해서 하나님의 믿음을 떠난 많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수많은 젊은 친구들이 교회를 떠났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의 창조에 대한 기록을 믿을 수 없다고 배웠기 때문이다.[12] 수십억 년의 오래된 지구 연대는 우생학(eugenics), 낙태, 대량학살, 히틀러에 의해 실시된 생체실험 등을 정당화하는 데에 사용되었던 진화론과 한 통속이다.[13]


장구한 연대의 결함
 
모든 성경적, 신학적, 역사적 논의들이 진화론과 수십억 년의 연대와 반대됨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그것을 필요로 한다는 근거로, 수십억 년의 지질학적 연대를 수용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교회 내에도 있다. ”만약 지구가 실제로 젊다면, 하나님이 지구를 오래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셔서 우리를 속이지 않으셨을 것이다”라고 그들은 말한다.[14]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그 반대의 경우이다. 


장구한 연대는 진화론과 한 통속이다.

수십억 년의 연대를 수용함으로써 진화론자들은 시험 가능하고, 검증될 수 있는 진짜 과학을 무시하고 있다.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지구가 정말로 수십억 년 되었다면, 하나님은 대략 6천 년 전 6일 동안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너무도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함으로서, 우리를 속이지 않으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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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Wieland, C., Death of an apostate, Creation 25(1):6, December 2002; creation.com/apostate.
2.Battles with doubt add credibility to Billy Graham’s story, articles.chicagotribune.com, 10 October 2008.
3.Once in an interview [Strobel, L., The Case For Faith, Zondervan, Grand Rapids, Michigan, 2000], Templeton lamented how much he missed God (and then composed himself).
4.Letter of Charles Lyell to George Poulett Scrope, June 14, 1830, Life, Letters and Journals of Sir Charles Lyell, Edited by his sister-in-law, Mrs Lyell, John Murray, 1881, Vol. I, pp. 268–71.
5.Set down—v.intr., to diminish or decline; to set aside. Translating Lyell’s quote into contemporary English: 'I came up with the idea five or six years ago that if ever the history according to Moses could be discredited without offending its believers, I would do it by making up my own history.”
6.Niagara Falls straddles the international border between Canada and the United States.
7.Lyell, C., Principles of Geology, 9th Ed., Little, Brown & Co., Boston, USA, 1853, pp. 214–18.
8.Pierce, L., Niagara Falls and the Bible, Creation 22(4):8–13, 2000; creation.com/niagara.
9.Walker, T., How dating methods work, Creation 30(3):28–29, 2008; creation.com/dating-flaws.
10.Austin, S.A., Excess argon within mineral concentrates from the new dacite lava dome at Mount St Helens volcano, Journal of Creation 10(3):335–343, 1996; creation.com/lavadome.
11.Snelling, A., Geological conflict, Creation 22(2):44–47, March 2000; creation.com/geological-conflict.
12.Sarfati, J., Why is the church losing its young people?, Creation 32(4):6, 2010; creation.com/church-losing-young.
13.Bergman, J., Darwinism and the Nazi race Holocaust, Journal of Creation 13(2):101–111,1999; creation.com/holocaust.
14.Morris, H.M., Recent creation is a vital doctrine, Creation 12(4):42–45, 1990; creation.com/vital-doctrine.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creation.com/templeton-confounded-by-lyell

출처 - CMI, 2014. 10. 16.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082

참고 : 5448|5381|5542|4869|3640|1571|4198|1528|4693|3775|2251|422|5506|5531|5718|5053|3702|3901|6044|2864|2710|3682|6079|6141|6144|6180|6208|6356|6370|6405|6444|6480|6499|6505|6512|6534|6579|6649|6064|6066|6071|6107|6110|6135|6146|6152|6153|6189|6283|6351|6360|6414|6477|6491|6581|6639|6642

Jerry Bergman
2017-05-26

과학 실험에 있어서 많은 위조와 사기들. 

(More Fakes in the Science Laboratory)


       가짜 뉴스(fake news)는 단지 정치권에서의 문제만이 아니다. 과학계에서도 특히 진화론 분야에서 가짜 연구(fake research) 문제는 오랫동안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되어 왔다. (Jerry Bergman의 새로운 책 ”진화론의 사기, 실수 및 위조(Darwinism's Frauds, Blunders and Forgeries)”, Atlanta, GA : CMI Publishing, 2017.을 보라). Nature(545:148-149, May 15, 2017) 지에 게재된 새로운 한 연구는, 심지어 많은 과학 연구들에서 가짜 시약, 가짜 화학물질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증거를 보고하고 있었다. 그 글의 제목은 ”위조 과학에 대한 비밀스런 전쟁(The Secret War Against Counterfeit Science)”이었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

2013년에 황송(Huang Song)은 북경 북서부에 있는 한 프린트 가게에서, 뻔뻔하고 만연해있는 기업범죄의 증거와 마주쳤다. 황송은 그곳에서 불과 15km 떨어진 북경의 국립생물과학 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Biological Sciences)에서 합성-생물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의 실험에 필요한 수백 개의 라벨을 만드는, 소형의 데스크탑 기계를 찾아내고, 그는 특정 모델이 내열성 용지에도 인쇄될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상점 주인은 같은 기계를 사용하여, 고객을 위해 만든 샘플을 자랑스럽게 꺼내 보여주었다.

이 라벨들은 아브캄(Abcam) 및 셀 시그널링 테크놀로지(Cell Signaling Technology)를 비롯한, 선도적인 서구의 연구소에서 생산된 값비싼 항체와 시약들의 라벨과 정확히 같은 것으로 보이는 라벨들이었다. 그것은 가짜의 불량 제품을 순수한 품질의 정품으로 속이기 위해 생산된 것들이었다. 황송 교수는 자신과 그의 동료들이 오랫동안 의심해왔던, 중국 유통업체가 판매하는 많은 항체(antibodies)들이 위조품이라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완전히 가짜인, 또는 낮은 농도로 희석된 불량 시약들이 만연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의학 및 생물학 분야에서 발표된 막대한 수의 연구 결과들이 의심스러운 것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한 문제는 과학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선두 주자가 되기 위한 중국의 노력을 훼손시킬 수 있었다.

어떤 연구가 잘못되었는지 알아보는 유일한 방법은 수천의 과거 연구들을 다시 반복해보는 것인데, 그러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항체는 박테리아, 바이러스, 독소와 같은 특정 항원을 만나면, 그 반응으로 체내에서 생성되는 단백질이다. 항체는 또한 여러 인공적 수단으로도 생산될 수 있는데, 가령 병원체나 독소에 특이적 항체가 사람, 말, 또는 다른 동물로부터 얻어져서, 면역력이 없는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다. 항체는 신체가 파괴시키거나 중화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과 화학적으로 결합한다.

저질의 불량 항체를 사용하여 발생했던 사례로, 한 과학자가 논문을 게재한 후 6개월 후에 그의 실험 결과가 반복되지 않음을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검토한 후에, 그는 세포 내로 DNA를 도입하는데 사용됐던 시약이 위조품일 가능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어떤 연구가 잘못되었는지 알아보는 유일한 방법은 수많은 과거의 연구들을 다시 반복해보는 것인데, 그러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과학 분야에서 이러한 사례가 얼마나 많이 일어났었는지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 연구에 있어서 보상(rewards)은 새로운 실험과 발견에 대해 주어지지, 다른 과학자가 수행했던 실험을 반복했을 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연구들은 다시 반복 실험되어 확인되지 않는다.

이 문제와 함께, 연구비, 업적, 승진 등의 보상을 바라며 수행되는 연구들은, 이미 문헌으로 잘 확립된 어떤 이론이나 연구 결과를 지지하도록, 데이터들이 위조될 수 있다는 문제가 과학계에서, 특히 진화 과학 분야에서 만연해있을 수 있는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7/05/fakes-science-laboratory/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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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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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dy J. Guliuzza,
2017-05-24

진화론 진영의 분열은 창조론자들에게 기회가 되고 있다. (

Schism in Evolutionary Theory Opens Creationist Opportunity)


     진화생물학은 거의 100년 전에 ‘현대종합이론(Modern Synthesis)’이 등장한 이후로, 가장 심각한 분열을 겪고 있다. 2016년 11월 영국의 왕립학회(Great Britain’s prestigious Royal Society, The Royal Society of London for Improving Natural Knowledge)는 새로운 발견들로부터 인한 신선한 개념을 수용하기 위해서, 진화론을 확장해야 하는지, 아니면 개조해야 할지를 심의하기위한 컨퍼런스를 열었다. 회의의 한 주최자는 Trends in Ecology & Evolution(2017, May) 지에 ”왕립학회의 분열과 통합(Schism and Synthesis at the Royal Society)”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면서, 왜 ”그 토론이 마음을 모으지 못했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1]

Nature(2014. 10. 8) 지는 이 회의의 중요성을 대위법을 사용하여, ”진화론은 재고될 필요가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한때 다뤘었다.[2] ”연구자들은 어떤 과정이 근본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지를 두고 분열되었다”고 쓰고 있었다. 어떤 이론의 중심에 있는 기본적 과정을 두고 분열되었다는 것은, 그 이론이 불완전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연구들에 기초하고 있거나, 파손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진화론은 대대적인 개조가 필요하다는, ‘확장된 진화 종합이론(Extended Evolutionary Synthesis, EES)’을 주장하는 한 연구자는 세인트 앤드류 대학의 케빈 라랜드(Kevin Laland)이다. 그는 ”우리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들은 매일 매일 더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주장되는 ‘확장된 진화 종합이론(EES)’은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종종 감정적이면서, 심지어 적대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관련 토론은 너무도 자주 터무니없는 비난과 악 감정, 거짓말, 독설로 끝을 맺는다.”[2] 라랜드가 제기하는 논란은 학문적 진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영혼을 두고 벌이는 투쟁이기 때문에 치열한 것이다.


논쟁 : 적응적 혁신을 일으킨 원인은 무엇인가?

‘확장된 진화 종합이론(EES)’을 지지하는 또 다른 과학자는 비엔나 대학의 뮬러(Gerd Muller) 교수로, 그는 진화론의 '확장'은 ‘외재주의(externalism)’의 '제한'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3] 외재주의는 주로 생물이 어떻게 형성됐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한 방법이다. 외재주의자들은 생물체의 형질은 외부적 조건에 의해서 부여된 것으로 본다.[4] 이러한 외부적 조건은 '선택적 압력(selective pressures)'으로 불려진다. 이러한 '압력'은 본질적으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어떤 특성(trait)이나 특성들을 형성하는, 생물체의 적응을 유도하는 환경적 문제들이다. 이에 반해, ‘확장된 진화 종합이론’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문제를 극복하는 특성들은 분명히 생물체의 내부 시스템에서 기인된 것으로 말한다. 그러므로 연구들은 주로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이루어져야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왕립학회 컨퍼런스의 주제 중 하나는 배아 발달(embryonic development)이었다. 이들 ‘확장된 진화 종합이론’을 주장하는 내재주의자(internalists)들은 일부 생물체의 어떤 특성은 ”발달 메커니즘에 대한 지식으로 예측될 수 있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이들 생물학자들은 다른 형태보다 좀 더 쉽게 일부 특성을 형성하는 발달적 편향이 적응적 진화의 과정을 구체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외재주의자인 더글라스 푸튀마(Douglas Futuyma)는 생물체의 적응 특성은 선택(selection)에 의해서만 기인한 것으로 보는, 보다 전통적인 관점을 제시했다...”[5]

내재주의자들은 또한 생물체가 선택적 외부 압력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움직였다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생태학적 적소를 탐험하고 채울 수 있도록, 여러 세대 동안 충분히 유연성을 발휘할 특성들의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출발의 또 다른 영역은 발달적 유연성(developmental plasticity)에 대한 것이었다. 이것은 과거의 선택들에 의해서 적합되어서 만들어진, 유전적으로 특화된 반응 규범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후성유전학 메커니즘을 통하여 세대를 통해 전파되는, 보다 개방적인(즉, 탐험적인) 발달 과정에 의존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6]

왕립학회의 이러한 날카로운 분열은 생물의 특성들에 대한 원인을 확인하는 데에,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주장하고 있었다. 내재주의자들은 관찰 가능한 메커니즘을 기술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외재주의자들은 그 회의에 참석한 한 과학부 기자가 ”그 사건은 과학적 공란을 채우기 위해서, 자연선택이라는 주문(mantra)에 의존하는 사람들을 압박하기 위해서, 갈고리가 있는 날개(wings with a hook)를 가진 어떤 것이 유익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글을 언급하면서, 반복적으로 자연선택에만 호소하고 있었다. 자연선택이라는 용어에 대한 반복적인 언급은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패트릭 베이트슨 경(Sir Patrick Bateson)은 마지막으로, 자연선택은 하나의 행위자(agent)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비유의 남용에 대해 경고했다.[7] 또한 라랜드(Laland)는 참석한 인류학자와 고고학자들은 그들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유연성-우선 가설(plasticity-first hypothesis)'을 환영했다고 썼다. 이들 사회과학자들에게, 표준 유전자 중심적 선택론자(gene-centric selectionist)들의 설명은 그렇게 만족스러운 설명은 되지 못했다.


동일한 데이터들로부터 다른 해석

흥미롭게도, 왕립학회의 이러한 깊은 분열은 창조론자들이 그동안 지적해왔던 중요한 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종종 창조론자들은 사실상 아무런 데이터도 갖고 있지 않지만, 자신들은 진화론을 뒷받침할만한 산처럼 많은 데이터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창조론자들은 그들과 동일한 데이터들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다. 왕립학회에서 소수자의 입장에 있는 라랜드는 이와 같이 말했다. ”이러한 긴장감은 동일한 발견에 대한 다른 해석의 목소리를 내는 토론에서 나타난다. 컨퍼런스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이 점이었다 : 이들 논쟁(debates)은 데이터에 관한 것이 아니라, 관측된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따라서 논쟁은 일반적으로 어느 진영이 데이터를 가지고 있느냐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데이터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이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진화론자들은 진화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신랄한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그들은 진화가 일어났을 것이라는 공통된 신념에는 여전히 일치되고 있다. 그들의 마음속에, 진화는 사실인 것이다. 라랜드는 ”합의점이 있었다”고 독자들을 안심시켰다. ”모든 분파들은 진화 생물학이 활발하고 진보적인 과학 분야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싸우기를 바라는 창조론자들과 일부 언론인들에게는 안됐지만, 개혁을 해야 한다는 요구는 없었다.”


창조론은 데이터들을 더 잘 설명한다.

창조론자들은 ‘확장된 진화 종합이론(EES)’의 지지자들과 몇 가지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첫째, 우리는 생존 경쟁의 발전적 반복에 의해서, 무작위적인 유전적 돌연변이가 '작동'되었다고 제안하는 ‘현대종합이론(Modern Synthesis)’은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생물체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메커니즘으로서 문제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적인 행위자만이 정상적으로 이해하고 파악하는 문제점들을, 자연(nature)이 실제 행위자(agency)로서 의지력을 가지고 대처하고 있다는, 근본적인 개념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생물계의 기초 연구에서, ”과학적 과정이 어떻게 작동되고, 어떻게 작동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적어도 다른 개념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라랜드와 동의할 수 있다. ”변화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었던 회의에서, 발표자들은 어떤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어떤 데이터들이 수집되었고, 어떤 요인들이 주요한 원인인지에 대한, 개념적 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왕립학회에서 논의된 메커니즘은 역동적인 환경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조정할 수 있고,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생물체를 강조하는, 지적설계에 기초한 창조론을 지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창조론에 의하면, 생물들은 환경적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내부적 능력을 가진 채로 창조되었고, 따라서 발달적 편향과 유연성, 그리고 새로운 생태학적 적소를 메울 수 있도록 해주는 후생유전학적(epigenetic) 메커니즘과 다른 많은 메커니즘들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환경 조건들에 따라서, 적소를 채우는 일은 매우 빠르게(한 세대 내에서도) 일어났을 수 있다. 그리고 후손들도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퍼져나갔을 수 있었다.

사실, 지속적 환경 추적(Continuous Environmental Tracking) 모델을 주장하는 창조론자들은 설계-기반 모델이 가리키는 시스템 요소들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으며, 아직 미확인된 것들이라도 적절한 기능 수행에 필수적일 것으로 예측하게 한다. 심지어 진화론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종종 자연주의적 연구 틀에 갇혀 있는 ‘확장된 진화 종합이론’의 지지자들조차도, 서술해야만 하고, 조사되어야만 하는 명백한 핵심 요소들을, 확인되지 않는다면,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발달적 편향(developmental bias)은 적어도 세 부분으로 구성된 시스템의 출력 반응일 뿐이다. 진화론적 문헌에서는 거의 기술되지 않고, 확인하지도 않고 있지만, 생물체는 먼저 환경에서 어떤 특정 사건이나 변화를 인지할 수 있는 센서(sensors)들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 다음에 이에 상응하는 신호를 발생시키고, 만약 그렇다면 세 번째로, 어떤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기관에서 이에 대한 대책을 지시하는 신호가 필요하다. 이에 대한 결과로서 적절한 발달적 편향이 유도되는 것이다.

진화론은 수동적 생물을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에, 외부의 환경조건에 의해서 모습과 특성이 능동적으로 변하는, 자가-조절을 촉진하는 내부적 메커니즘이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발견으로 인해서, ”규칙을 뒤흔드는 근본적인 투쟁”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메커니즘은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월적 지혜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물들은 변화하는 환경 조건을 추적하도록,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되고 창조되었다는 창조론 모델을 지지하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150년이 넘도록, 자신들의 이론을 발전시키고 수정해왔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근본적인 과정에 대해 지금도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시간과 데이터들은 창조론자들의 편이다.



References
1. Laland, K. N. 2017. Schism and Synthesis at the Royal Society. Trends in Ecology & Evolution. 32 (5): 316–317.
2. Laland, K. et al. 2014. Does evolutionary theory need a rethink? Nature. 514 (7521): 161–164.
3. Muller, G. B. and M. Pigliucci. 2010. Evolution: The Extended Synthesis. Cambridge, MA: The MIT Press, 13.
4. Denton, M. J. 2013. The Types: A Persistent Structuralist Challenge to Darwinian Pan-Selectionism. BIO-Complexity. 2013 (3): 1–18.
5. Laland, K. N. Schism and Synthesis at the Royal Society, 316.
6. Laland, K. N. Schism and Synthesis at the Royal Society, 316.
7. Mazur, S. Pterosaurs Hijack Royal Society Evo Meeting. Huffpost, The Blog. Posted on huffingtonpost.com November 21, 2016 accessed on April 25, 2017.

*Dr. Guliuzza is ICR’s National Representative. He earned his M.D. from the University of Minnesota, his Master of Public Health from Harvard University, and served in the U.S. Air Force as 28th Bomb Wing Flight Surgeon and Chief of Aerospace Medicine. Dr. Guliuzza is also a registered Professional Engineer.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10010

출처 - ICR News, 2017. 5. 18.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611

참고 : 6081|4866|4238|6582|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

Andrew Sibley, M.S.
2017-01-26

다윈주의를 격렬히 비판한 비글호의 선장, 피츠로이

(FitzRoy, Captain of the Beagle, Fierce Critic of Darwinism)


배경 (Background)

로버트 피츠로이(Robert FitzRoy) 장군은 다윈으로 유명해진 항해선 HMS 비글호의 선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피츠로이는 명망 있는 왕실 혈통으로 태어났으며, 그의 뛰어난 능력과 부분적으로 그의 혈통으로 말미암아, 2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배의 지휘권을 얻었다. 그의 조상은 사실상 왕실 가문의 찰스 2세(Charles II)와 클리브랜드(Cleveland) 공작부인인 바바라 빌리에르(Barbara Villiers)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그는 또한 캐슬레이 경(Lord Castlereagh)의 조카였다. 그는 후에 수로 및 크로노그래프 조사(hydrographic and chronographic survey)를 위해 왕립협회(Royal Society)의 회원으로 임명되었고, 또한 영국 내 새롭게 조직된 상무부 기상관측과(Meteorological Department of the Board of Trade; 현 영국 기상청)의 최초의 통계과장으로 발탁되었다. 전 생애에 걸쳐, 그는 크리스천으로서의 강력한 의무감과 생명 보호, 특히 동료 선원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바램을 가지고 있었고, 왕실칙허 해군재난에 이어 영국 주변의 폭풍 경고 시스템 개발에 있어서 선구자였으며, 처음으로 정기적인 일기예보를 만들어 발행했다.

피츠로이는 1805년 7월 5일, 서폭(Suffolk), 암톤 홀(Ampton Hall)에서 태어났고, 1733년에 설립된 전 왕립해군사관학교인 포츠머스(Portsmouth)에 기반을 둔 해군왕립대학(Royal Naval College)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이처럼 오래 전에 설립된 학교에서 매우 뛰어난 장학생의 능력을 보이면서, 100% 합격 평가로 금메달을 딴 최초의 학생이 되는 영예를 얻었다.[1] 이것은 그가 뛰어난 학자적 자질을 갖추고 있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다윈의 지지자들은 나중에 그의 명성을 깎아 내리려고 시도했으나, 피츠로이는 현재 뛰어난 과학적 능력을 지녔던 사람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는 1828년에 HMS 비글호의 지휘권을 가지게 되었고, 3년 뒤인 1831년에 가장 유명한 두 번째 항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것은 박물학자(naturalist)인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을 남아메리카와 갈라파고스 군도(Galapagos Islands)로의 탐험으로 이끈 여정이었다. 피츠로이는 또한 더욱 신실한 크리스천이 되어, 후에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 (The Origin of Species)』이라는 책의 출판에 뒤이어 진화론의 주된 비평가가 되었다.

비글호 항해는 프랜시스 뷰포트(Francis Beaufort) 장군에 의해 의뢰되어 조직되었으며, 1831년 12월 27일에 플리머스(Plymouth)를 떠났다. 그러나, 피츠로이의 원래 계획은 자신의 비용으로 세 명의 원주민을 티에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로 데려다 주는 여행으로 정해져 있었다. 라밸리(Lavallee)는 이전 Impact 글(아래 관련자료 링크 1번 참조)에서, 어떻게 이 세 명의 원주민이 이전 항해로부터 영국으로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을 크리스천으로 교육해서 두 명의 선교사들과 함께 다시 돌려보내려고 했던 피츠로이의 계획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2] 해군에서 그 여행에 대한 조직을 하였는데, 예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되게 되었다. 해군의 주된 목적은 해상 안전을 위해 남쪽 항로에 대한 정확한 항해도를 작성하기 위해서 남아메리카의 해안과 바다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비글호 항해 (Beagle Voyage)

젊은 다윈은 그의 이전 교수였던 존 헨슬로(John Henslow)의 권유에 따라, 그 배의 박물학자(naturalist)로서, 그리고 선장의 동반자로서 비글호에 합류했다. 피츠로이와 다윈은 그 이후 수년간 친구로 남아있었다. 피츠로이가 이 오랜 항해에서 해안을 살피는 동안, 다윈은 주변 지질, 식물상, 동물군 등을 조사하도록 되어 있었다. 피츠로이와 다윈 둘 다 『HMS 비글호 탐사의 항해 이야기(Narrative of the Surveying Voyages of His Majesty's Ships Adventure and Beagle)』로 알려져 있는 3권짜리 책 속에서 비글호의 탐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피츠로이는 1, 2권을 썼고 (비록 첫 번째 책은 대개 파커 킹(Parker King)과 프린글 스트로크(Pringle Stokes)가 편집한 자료를 사용했지만), 다윈은 세 번째 책을 썼다. 피츠로이의 고백에 의하면, 그는 처음에는 창세기의 진실성에 대해 확신이 없는 듯 했으며, 사실상 다윈에게 오랜 항해 동안 읽도록 라이엘의 『지질학의 원리(Principles of Geology)』라는 복사본 책을 준 것에 대해 책임이 있었고, 그리고 그는 나중에 이 결정을 몹시 후회하였다. 피츠로이는 초기에 의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신실한 크리스천이자 인도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초기에 모세에 의해 영감으로 쓰여진 역사를 믿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의심하는 경향으로 말미암아 많은 근심으로 고통 받았다. 나는 그 기록에 대해, 또는 구약과 신약이 연결되어 있는 밀접한 방식에 대해서 너무나 아는 것이 없어서, 다른 기록들의 진실성은 진심으로 믿었던 한편, 모세가 기록한 어떤 사건들은 신화적이거나 터무니없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었다. 견해들 사이에서 흔들리는 믿음은 오직 혼란한, 따라서 불행한 마음상태를 만들어냈을 뿐이었다.”[3]

어떤 사람들은 신실한 부인과의 결혼이 피츠로이의 관점을 의심하는 자에서 설교자로 변화시켰다고 주장했으나, 그의 책에 따르면 항해 도중에 처음으로 관찰한 지질학적 증거들을 통해 그의 마음이 창세기에 대한 문자적 진실을 받아들이도록 바꾸는 데 주된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1834년 4월과 5월에, 피츠로이는 포경용 보트에 다윈을 동승시켜 리오 산타 크루즈(Rio Santa Cruz)의 강을 거슬러 탐사하였다. 영국으로 돌아와서, 피츠로이는 이 발견들을 왕립 지질협회(Royal Geological Society)에 보고했고, 그의 책에 이 조사 내용들을 적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뛰어난 지질학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피츠로이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물에 깎인 조약돌과 대홍수 퇴적물들이 이러한 평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지 않은가? 지금 판타고니아(Pantagonia) 사막에 묻혀있는 조약돌들을 매끄럽게 한 이러한 물의 작용은 광대한 규모로 그리고 어느 정도의 지속 기간으로 있었음에 틀림없다.” [4]

”비록 강의 퇴적층은 용암층 훨씬 아래쪽에 있긴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흐르는 물의 지속적인 작용에 의해 강바닥이 침식되었음을 보여주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용암 표면은 눈에 수평으로 보이는 평원 위에서 모든 방향으로 뻗어있기 때문에, 그 지역의 자연적 수평면으로 생각할 수 있다. 방대한 넓이의 지표면 위로 액체 상태의 용암을 퍼뜨린 엄청난 화산활동이 있었음에 틀림없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가!”[5]

이러한 관찰로부터, 피츠로이는 격변적 사건을 지세를 형성하는 데 물의 작용과 화산활동 양쪽 면에서 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산악 암석에서 발견된 조개 화석의 증거가 피츠로이에게 창세기의 대홍수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데 있어서 기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내게 대홍수의 보편성에 대한 확실한 증거로 보였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이것을 다른 원인으로 설명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속임수에 대한 결정적인 논박은 이것이다. 즉, 평원과 산 양쪽 지층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조개들은 만과 근처 지역에서 발견되는 바로 그러한 종류의 것들이라는 것이다. … 내가 볼 때 이것들은 원래 그 바다에서 났었는데, 거기로부터 물에 의해 운반되어 현재 발견되고 있는 그곳에서 퇴적되었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6]

그 항해 후에, 피츠로이는 켄트(Kent)의 다운 하우스(Down House)에 있는 다윈을 1857년 봄까지 정기적으로 계속해서 방문했으나 [7], 그들의 우정은 1859년에 다윈의 책이 출판된 후에 심각하게 뒤틀리게 되었다. 피츠로이는 자신의 친구의 책에 대해 주된 비평가가 되었고, 비록 그가 우울증과 날카로운 기질 때문에 고통을 겪었지만, 그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결코 악감정을 가지지 않았으며, 동정심을 보였다. 1859년 12월, 피츠로이는 14,000년으로 연대가 측정된 솜(Somme) 강 근처에서 발견된 석기 도구(stone tools)의 연대를 비판하면서, 타임지(The Times)와 서신교환을 시작했다. 이러한 서신은 Senex라는 필명 하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필명은 ”노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만 한다” 라는 뜻의 라틴어 nemo senex metuit louem 로부터 유래한 것이다.[8]


1860년 옥스퍼드 논쟁 (1860 Oxford Debate)

1860년 6월, 다윈이 기원에 관한 그의 책을 출판한 약 6개월 후에, 영국 옥스퍼드에서 주요 연사들인 사무엘 윌버포스 주교(Bishop Samuel Wilberforce)와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와 더불어 유명한 논쟁이 벌어졌다. 반노예운동을 펼친 윌리암 윌버포스의 아들인 윌버포스 주교는 과학자가 아니었으나, 대신 런던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의 설립자인 리차드 오웬(Richard Owen)으로부터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이 모임은 영국학술협회(British Association)에 의해 개최되었으며, 약 1천 명 정도의 꽉 찬 청중이 참석했다. 모든 것들이 못마땅하게 진행되었다. 증거들이 실제로 그것을 뒷받침하지 않았으며,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리고 누가 이겼는지,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윈과 헉슬리의 추종자들은 후에 승리를 주장하였다. 시대풍조는 바뀌어 가고 있던 중이었다. 지도자적 주교에 대한 헉슬리의 무례함과 거칠음, 그리고 수사적인 말투는 청중으로부터 인기를 얻게 했다.

피츠로이도 또한 감정적으로 격했던 이 모임에서 말을 했다. 그 모임이 끝날 무렵, 피츠로이는 구약의 선지자처럼 자신의 머리 위로 무거운 성경책을 들어올리며, 다윈의 저서는 ”그에게 가장 극심한 통증(the acutest pain)”을 야기했다고 말하면서 [10], 청중들에게 ”사람보다 하나님을 믿으라고 탄원했다.”고 보고되고 있다 [9]. ”아세니움(The Athenaeum)' 지의 공식 보도에 의하면, 피츠로이는 ”...[그는] 다윈의 책 출판을 유감스럽게 생각했으며, 그것이 사실에 대한 논리적 정렬이었다는 헉슬리 교수의 주장을 부인했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1] 피츠로이는 크게 소리 질렀던 것처럼 보이며, 브루스터 부인(Lady Brewster)은 열띤 분위기와 격앙된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기절해서 실려 나가야만 했다.[12]

이 논쟁에 있어서 피츠로이의 공헌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약 6년 후에 율리어스 캐러스(Julius Carus)는 다윈에게 보내는 사적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1860년 옥스퍼드(논쟁)에서 있었던 영국학술협회의 연합 모임에서 피츠로이 장군이 당신의 이론처럼 그토록 충격적인 이론에 대한 사실들을 수집할 기회를 당신에게 준 것에 대해 자신의 슬픔을 표현했던 것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오.”[13]

영국학술협회의 공동창시자인 데이빗 브루스터(David Brewster) 경도 또한 진화론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람이었고, 피츠로이에게 보내는 개인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다윈의 책과 에세이, 그리고 논평들은 저명한 사람들의 무신앙과 무분별함에 대해 가장 큰 경종이 울리고 있다는 증거일 걸세.” [14]

얼마 후 브루스터와의 또 다른 서신에서, 피츠로이는 진화론에 대한 다윈의 이론을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와 같다고 언급했다. [15]

피츠로이는 뛰어난 학자이자, 과학자였으며, 다윈이 제시한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격렬하면서도 중요한 비판가였다. 후에 다윈의 지지자들은 피츠로이의 명성을 공격했는데, 왜냐하면 비글호의 선장의 비평은 진화론에 엄청난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츠로이는 주목할 만한 과학자이자, 홍수지질학(Flood geology)과 창조론(Special Creation)의 지지자였다.



Endnotes

1. Gribbin, J. & M., FitzRoy, Review, Headline Book Publishing, p. 23, 2003. Comments by Professor Inman.
2. Lavallee, L. 'The Voyage of the Beagle -- In the Creator's Service,Impact 358, ICR, April 2003.
3. Gribbin, J. & M., ref. 1, p. 79.
4. Ibid., p. 155.
5. Ibid., p. 156.
6. Ibid., p. 163.
7. Barlow, D., 'The Devil within: Evolution of a tragedy,' Weather, Royal Met. Soc., vol. 52 (11), pp. 337-341, 1997.
8. Gribbin, J. & M., ref. 1, p. 264.
9. Reported in Cadbury, D., The Dinosaur Hunters, 4th Estate, Harper Collins, London, p. 310, 2000.
10. Barlow, ref. 7. Sourced from: Origins of Meteorology: An analytical catalogue of the correspondence and papers of the first Government Meteorological Office, under Rear Admiral Robert FitzRoy, 1854-1865, and Thomas Henry Babington 1865-1866, of the successor Meteorological Office from 1867, primarily during its first two years under the Scientific Committee appointed by the Royal Society, and of registers of Instruments issued by successive Meteorological Offices from 1854 to c. 1915. Held at the Public Records Office, Kew, England.
11. The Athenaeum, 14th July. 1860. From www.oum.ox.ac.uk/debate4.htm --Accessed July 2005 -- Website of the Oxford University Museum of Natural History.
12. Cadbury, D., ref. 9, p. 310.
13. Letter from Julius Carus to Charles Darwin, 15th Nov. 1866, (From Gribbin, J. & M., ref. 1, p. 325.)
14. Barlow, ref. 7, (Source as ref. 10).
15. Barlow, ref. 7, (Source as ref. 10).

* Andrew Sibley is a Meteorologist working for the Met Office in the UK. He has a Masters of Science and is a Council member of the Creation Science Movement.



번역 - 길소희

링크 - http://www.icr.org/index.php?module=articles&action=view&ID=2488 

출처 - ICR, Impact No. 389, 2005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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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Catchpoole
2016-05-05

공교육 체계에서 문제아를 만드는 방법

(How to build a bomb in the public school system)


      왜 그들은 학교 동료들을 총으로 쏘아 살해했을까? 이것은 1999년 4월 19일 미국 콜로라도 주의 콜럼바인 고등학교(Columbine High School)에서 총을 난사하여 12명의 학생들과 1명의 교사를 살해한 사건 후에 제기되었던 질문이다. 젊은 학생들이 왜 살인과 파괴, 총격과 자살을 하는 것일까? (범인인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는 총기 난사 후 자살함). 그들이 입고 있던 옷은 이 십대 살인자들의 생각을 알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단서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살인자들 중의 한 명에 대한 부검 보고서에 의하면, 사건이 벌어진 비극의 날에 그는 검은 색 전투장화, 오른 손에 검은 장갑, 그리고 앞쪽에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란 글귀가 새겨진 흰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1]


공교육 체계에서 문제아를 만드는 방법.

1)아이들에게 다음을 가르치라 :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 생명은 우연히 만들어졌다. 사람은 동물로부터 진화되었다. 수억 수천만 년 동안 폭력, 살해, 죽음, 질병, 아픔, 고통 등을 통해서 사람이 존재하게 되었다. 신은 없다. 성경은 진실이 아니다.

2)성경, 기도, 십계명을 학교로부터 제거하라.

3)그리고 뒤로 물러나서 기다려 보라.     

 

티셔쓰에 쓰여진 '자연선택'은 무엇을 의미했는가? 한 신문 기자는 티셔츠에 새겨진 글귀는 같은 이름의 비디오 게임과 관련지었다. 그 게임은 ”글자 그대로 적자만이 생존하는 곳으로서... 자연스러운 방법인, 자연선택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로” 선전되고 있었다.[1] 콜럼바인 학살 사건 이후 가해자들은 잔인하고 피로 물들은 비디오 게임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들은 또한 다윈의 투쟁 개념에 의해서 불붙게 된 ‘지배 인종(master race)’ 이라는 독일 나치(German Nazi) 당원들의 믿음에 매료되어 있었다.[2]  
 
이 비극적인 사건의 원인을 찾아보려고 시도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수많은 십대들이 폭력적인 게임이나 비디오나 책들을 접하면서 기쁨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놀람과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고정 관념이었던 폭력과 죽음은 사람이 진화로  태어나기까지 수백 수천만 년 동안 일어났었던 ‘자연적인(natural)’ 진화 메커니즘인 것으로 서구 사회의 대부분의 공립학교들에서 가르침으로서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놀라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은 단지 동물의 일종이고, 죽음과 폭력은 진화 도중에 발생하는 자연적인 부분이며, 오직 적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교육을 받았던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이 완전한 절망 상태로 빠져드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계신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많은 이들은 죽음과 투쟁과 우연의 세계에서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러한 가능성은 과학적 사실에 의해서 부정된 것임으로 그들을 더 화가 나게 하거나 불쾌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죽음 이후 심판에 대한 어떠한 두려움도 없는, 그리고 분노와 증오를 언제 폭발시킬지 알 수 없는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walking time-bombs)‘인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이들 폭탄들의 뇌관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해답이다. 그러나 진화론으로 물들어 있는, 진화론으로 세뇌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 이들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를 알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기원에 관한 진실을 이들에게 가르치고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역사에 대한 참되고 정확한 창세기의 설명은 젊은이나 노인들에게 왜 이 세계는 폭력, 죽음, 피 흘림, 질병, 고통 등으로 가득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할 것이다. 그것은 죄(sin)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할 희생 제물로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리고 죄인들은 그들의 창조주를 만날 수 없었으나,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d. Note: see the cartoon How to defuse a ‘bomb’ in the public school system.


References and notes

1. Denver Rocky Mountain News, pp. 4A, 14A, 25 June 1999.

2. Bergman J., Darwinism and the Nazi race Holocaust, CEN Technical Journal 13(2):101?111, 1999.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2/i1/bomb.asp 

출처 - Creation 22(1):17, December 1999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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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아
2016-02-25

진화론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


        ”나 자살할 거예요. 구공탄을 사서 거기에 불을 피우고 냄새 맡으면 자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게 실패하면 칼로 손목을 그어서...” 지난 해 6월 어느 날 내가 담임을 맡고 있던 중학교 2학년 A여학생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나온 말이었다. A여학생은 그 무렵 친구 관계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춘기의 여학생들이 흔히 겪는 정도의 갈등 상황이었다. 멀쩡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라는 그 아이의 입에서 자살하겠다는 말이 이렇게 쉽게 나오는 현실이 난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드린 간절한 기도,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일깨움, 그리고 계속적인 관심과 전문상담교사와의 연결, 학부모와의 상담 등을 이어갔고, 다행히도 A여학생은 조금씩 안정을 찾는 듯 했다. 

십여 년 전, 내가 어렵게 과학교사가 되었을 때, 진화론 일색의 과학 교과서 속에서 어떻게든 창조주를 전하는 과학 교사가 되겠다는 당찬 다짐을 했다. 학교에서 창조과학 동아리를 만들었다가 교감 선생님께 불려가서 종교 편향 교육 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고, 아침 기도모임을 믿음의 아이들과 시작했지만 교장 선생님의 제재로 접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해프닝은 나에게 또 다른 돌파구를 찾는 열정을 심어주었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여러 창조과학 동역자들과 함께 ”착한과학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창조과학 청소년 사역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과학 교과서 속에서 진화론을 배우고 익힐 뿐 아니라 게임, 광고, 만화, 영화, 교양서적 등을 통해 진화론에 친숙해지며, 적자생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입시 경쟁을 겪으며 진화이론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진화론은 아이들의 사고 깊은 곳에 꽈리를 틀고, 생명의 가치를 외면하고 허무하게 살아가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사실 과학 교과서 속의 진화론은 여러 가지 반증 사례들을 제시하고 설득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의 사고체계 속에 깊이 박힌 진화론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난 우리 반 A여학생의 경우가 그저 독특하고 예외적인 사례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생명에 대한 가치를 모른 채 목적 없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급의 학생들에게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자신의 진로에 대해 물어보면 뚜렷한 답을 하는 학생은 한 반에 두세 명 정도에 불과하다. 심지어 되고 싶은 게 없는데 왜 이런 걸 물어보냐며 따지는 아이도 있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세상에 발표된 이후 다양한 내용들이 추가 혹은 수정 되었지만 진화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저절로 생겨났다는 추론이다. 즉, 진화론은 생명의 탄생을 하나님 없이 설명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다. 따라서 생존에 성공한 하나의 동물 종에 불과한 인간에게 특별한 존엄이나 가치는 없다. 그래서 진화론은 성경 말씀과 정면으로 대치되며, 청소년을 전도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또한 이미 신앙을 가진 청소년들에게는 학교에서의 사고체계와 교회에서의 사고체계를 이원화 하도록 강요하고, 갈등 속에서 교회를 아예 떠나도록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다음 세대가 사라지고 있는 교회의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을 생각하면 내게 항상 떠오르는 성경 말씀이 있다. 늑대 무리 속에 양을 보내는 목자의 마음으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 (마 10:16)”고 말씀하셨다. 마치 진화론 일색의 교육현장에 있는 나에게 신중하고 분별력 있게 그리고 순결하게 다음 세대를 양육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 말씀에 힘입어 오늘도 자신들이 적자생존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믿으며 소망을 상실한 아이들에게 ”네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이 세상에서 감당할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열렬히 전하고 싶다. 또한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를 청소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샘솟길 간구한다. 주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부어주소서...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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