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위원회
2017-01-26

다윈주의를 격렬히 비판한 비글호의 선장, 피츠로이

(FitzRoy, Captain of the Beagle, Fierce Critic of Darwinism)

Andrew Sibley 


배경 (Background)

로버트 피츠로이(Robert FitzRoy) 장군은 다윈으로 유명해진 항해선 HMS 비글호의 선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피츠로이는 명망 있는 왕실 혈통으로 태어났으며, 그의 뛰어난 능력과 부분적으로 그의 혈통으로 말미암아, 2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배의 지휘권을 얻었다. 그의 조상은 사실상 왕실 가문의 찰스 2세(Charles II)와 클리브랜드(Cleveland) 공작부인인 바바라 빌리에르(Barbara Villiers)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그는 또한 캐슬레이 경(Lord Castlereagh)의 조카였다. 그는 후에 수로 및 크로노그래프 조사(hydrographic and chronographic survey)를 위해 왕립협회(Royal Society)의 회원으로 임명되었고, 또한 영국 내 새롭게 조직된 상무부 기상관측과(Meteorological Department of the Board of Trade; 현 영국 기상청)의 최초의 통계과장으로 발탁되었다. 전 생애에 걸쳐, 그는 크리스천으로서의 강력한 의무감과 생명 보호, 특히 동료 선원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바램을 가지고 있었고, 왕실칙허 해군재난에 이어 영국 주변의 폭풍 경고 시스템 개발에 있어서 선구자였으며, 처음으로 정기적인 일기예보를 만들어 발행했다.

피츠로이는 1805년 7월 5일, 서폭(Suffolk), 암톤 홀(Ampton Hall)에서 태어났고, 1733년에 설립된 전 왕립해군사관학교인 포츠머스(Portsmouth)에 기반을 둔 해군왕립대학(Royal Naval College)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이처럼 오래 전에 설립된 학교에서 매우 뛰어난 장학생의 능력을 보이면서, 100% 합격 평가로 금메달을 딴 최초의 학생이 되는 영예를 얻었다.[1] 이것은 그가 뛰어난 학자적 자질을 갖추고 있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다윈의 지지자들은 나중에 그의 명성을 깎아 내리려고 시도했으나, 피츠로이는 현재 뛰어난 과학적 능력을 지녔던 사람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는 1828년에 HMS 비글호의 지휘권을 가지게 되었고, 3년 뒤인 1831년에 가장 유명한 두 번째 항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것은 박물학자(naturalist)인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을 남아메리카와 갈라파고스 군도(Galapagos Islands)로의 탐험으로 이끈 여정이었다. 피츠로이는 또한 더욱 신실한 크리스천이 되어, 후에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 (The Origin of Species)』이라는 책의 출판에 뒤이어 진화론의 주된 비평가가 되었다.

비글호 항해는 프랜시스 뷰포트(Francis Beaufort) 장군에 의해 의뢰되어 조직되었으며, 1831년 12월 27일에 플리머스(Plymouth)를 떠났다. 그러나, 피츠로이의 원래 계획은 자신의 비용으로 세 명의 원주민을 티에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로 데려다 주는 여행으로 정해져 있었다. 라밸리(Lavallee)는 이전 Impact 글(아래 관련자료 링크 1번 참조)에서, 어떻게 이 세 명의 원주민이 이전 항해로부터 영국으로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을 크리스천으로 교육해서 두 명의 선교사들과 함께 다시 돌려보내려고 했던 피츠로이의 계획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2] 해군에서 그 여행에 대한 조직을 하였는데, 예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되게 되었다. 해군의 주된 목적은 해상 안전을 위해 남쪽 항로에 대한 정확한 항해도를 작성하기 위해서 남아메리카의 해안과 바다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비글호 항해 (Beagle Voyage)

젊은 다윈은 그의 이전 교수였던 존 헨슬로(John Henslow)의 권유에 따라, 그 배의 박물학자(naturalist)로서, 그리고 선장의 동반자로서 비글호에 합류했다. 피츠로이와 다윈은 그 이후 수년간 친구로 남아있었다. 피츠로이가 이 오랜 항해에서 해안을 살피는 동안, 다윈은 주변 지질, 식물상, 동물군 등을 조사하도록 되어 있었다. 피츠로이와 다윈 둘 다 『HMS 비글호 탐사의 항해 이야기(Narrative of the Surveying Voyages of His Majesty's Ships Adventure and Beagle)』로 알려져 있는 3권짜리 책 속에서 비글호의 탐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피츠로이는 1, 2권을 썼고 (비록 첫 번째 책은 대개 파커 킹(Parker King)과 프린글 스트로크(Pringle Stokes)가 편집한 자료를 사용했지만), 다윈은 세 번째 책을 썼다. 피츠로이의 고백에 의하면, 그는 처음에는 창세기의 진실성에 대해 확신이 없는 듯 했으며, 사실상 다윈에게 오랜 항해 동안 읽도록 라이엘의 『지질학의 원리(Principles of Geology)』라는 복사본 책을 준 것에 대해 책임이 있었고, 그리고 그는 나중에 이 결정을 몹시 후회하였다. 피츠로이는 초기에 의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신실한 크리스천이자 인도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초기에 모세에 의해 영감으로 쓰여진 역사를 믿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의심하는 경향으로 말미암아 많은 근심으로 고통 받았다. 나는 그 기록에 대해, 또는 구약과 신약이 연결되어 있는 밀접한 방식에 대해서 너무나 아는 것이 없어서, 다른 기록들의 진실성은 진심으로 믿었던 한편, 모세가 기록한 어떤 사건들은 신화적이거나 터무니없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었다. 견해들 사이에서 흔들리는 믿음은 오직 혼란한, 따라서 불행한 마음상태를 만들어냈을 뿐이었다.”[3]

어떤 사람들은 신실한 부인과의 결혼이 피츠로이의 관점을 의심하는 자에서 설교자로 변화시켰다고 주장했으나, 그의 책에 따르면 항해 도중에 처음으로 관찰한 지질학적 증거들을 통해 그의 마음이 창세기에 대한 문자적 진실을 받아들이도록 바꾸는 데 주된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1834년 4월과 5월에, 피츠로이는 포경용 보트에 다윈을 동승시켜 리오 산타 크루즈(Rio Santa Cruz)의 강을 거슬러 탐사하였다. 영국으로 돌아와서, 피츠로이는 이 발견들을 왕립 지질협회(Royal Geological Society)에 보고했고, 그의 책에 이 조사 내용들을 적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뛰어난 지질학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피츠로이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물에 깎인 조약돌과 대홍수 퇴적물들이 이러한 평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지 않은가? 지금 판타고니아(Pantagonia) 사막에 묻혀있는 조약돌들을 매끄럽게 한 이러한 물의 작용은 광대한 규모로 그리고 어느 정도의 지속 기간으로 있었음에 틀림없다.” [4]

”비록 강의 퇴적층은 용암층 훨씬 아래쪽에 있긴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흐르는 물의 지속적인 작용에 의해 강바닥이 침식되었음을 보여주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용암 표면은 눈에 수평으로 보이는 평원 위에서 모든 방향으로 뻗어있기 때문에, 그 지역의 자연적 수평면으로 생각할 수 있다. 방대한 넓이의 지표면 위로 액체 상태의 용암을 퍼뜨린 엄청난 화산활동이 있었음에 틀림없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가!”[5]

이러한 관찰로부터, 피츠로이는 격변적 사건을 지세를 형성하는 데 물의 작용과 화산활동 양쪽 면에서 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산악 암석에서 발견된 조개 화석의 증거가 피츠로이에게 창세기의 대홍수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데 있어서 기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내게 대홍수의 보편성에 대한 확실한 증거로 보였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이것을 다른 원인으로 설명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속임수에 대한 결정적인 논박은 이것이다. 즉, 평원과 산 양쪽 지층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조개들은 만과 근처 지역에서 발견되는 바로 그러한 종류의 것들이라는 것이다. … 내가 볼 때 이것들은 원래 그 바다에서 났었는데, 거기로부터 물에 의해 운반되어 현재 발견되고 있는 그곳에서 퇴적되었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6]

그 항해 후에, 피츠로이는 켄트(Kent)의 다운 하우스(Down House)에 있는 다윈을 1857년 봄까지 정기적으로 계속해서 방문했으나 [7], 그들의 우정은 1859년에 다윈의 책이 출판된 후에 심각하게 뒤틀리게 되었다. 피츠로이는 자신의 친구의 책에 대해 주된 비평가가 되었고, 비록 그가 우울증과 날카로운 기질 때문에 고통을 겪었지만, 그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결코 악감정을 가지지 않았으며, 동정심을 보였다. 1859년 12월, 피츠로이는 14,000년으로 연대가 측정된 솜(Somme) 강 근처에서 발견된 석기 도구(stone tools)의 연대를 비판하면서, 타임지(The Times)와 서신교환을 시작했다. 이러한 서신은 Senex라는 필명 하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필명은 ”노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만 한다” 라는 뜻의 라틴어 nemo senex metuit louem 로부터 유래한 것이다.[8]


1860년 옥스퍼드 논쟁 (1860 Oxford Debate)

1860년 6월, 다윈이 기원에 관한 그의 책을 출판한 약 6개월 후에, 영국 옥스퍼드에서 주요 연사들인 사무엘 윌버포스 주교(Bishop Samuel Wilberforce)와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와 더불어 유명한 논쟁이 벌어졌다. 반노예운동을 펼친 윌리암 윌버포스의 아들인 윌버포스 주교는 과학자가 아니었으나, 대신 런던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의 설립자인 리차드 오웬(Richard Owen)으로부터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이 모임은 영국학술협회(British Association)에 의해 개최되었으며, 약 1천 명 정도의 꽉 찬 청중이 참석했다. 모든 것들이 못마땅하게 진행되었다. 증거들이 실제로 그것을 뒷받침하지 않았으며,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리고 누가 이겼는지,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윈과 헉슬리의 추종자들은 후에 승리를 주장하였다. 시대풍조는 바뀌어 가고 있던 중이었다. 지도자적 주교에 대한 헉슬리의 무례함과 거칠음, 그리고 수사적인 말투는 청중으로부터 인기를 얻게 했다.

피츠로이도 또한 감정적으로 격했던 이 모임에서 말을 했다. 그 모임이 끝날 무렵, 피츠로이는 구약의 선지자처럼 자신의 머리 위로 무거운 성경책을 들어올리며, 다윈의 저서는 ”그에게 가장 극심한 통증(the acutest pain)”을 야기했다고 말하면서 [10], 청중들에게 ”사람보다 하나님을 믿으라고 탄원했다.”고 보고되고 있다 [9]. ”아세니움(The Athenaeum)' 지의 공식 보도에 의하면, 피츠로이는 ”...[그는] 다윈의 책 출판을 유감스럽게 생각했으며, 그것이 사실에 대한 논리적 정렬이었다는 헉슬리 교수의 주장을 부인했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1] 피츠로이는 크게 소리 질렀던 것처럼 보이며, 브루스터 부인(Lady Brewster)은 열띤 분위기와 격앙된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기절해서 실려 나가야만 했다.[12]

이 논쟁에 있어서 피츠로이의 공헌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약 6년 후에 율리어스 캐러스(Julius Carus)는 다윈에게 보내는 사적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1860년 옥스퍼드(논쟁)에서 있었던 영국학술협회의 연합 모임에서 피츠로이 장군이 당신의 이론처럼 그토록 충격적인 이론에 대한 사실들을 수집할 기회를 당신에게 준 것에 대해 자신의 슬픔을 표현했던 것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오.”[13]

영국학술협회의 공동창시자인 데이빗 브루스터(David Brewster) 경도 또한 진화론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람이었고, 피츠로이에게 보내는 개인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다윈의 책과 에세이, 그리고 논평들은 저명한 사람들의 무신앙과 무분별함에 대해 가장 큰 경종이 울리고 있다는 증거일 걸세.” [14]

얼마 후 브루스터와의 또 다른 서신에서, 피츠로이는 진화론에 대한 다윈의 이론을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와 같다고 언급했다. [15]

피츠로이는 뛰어난 학자이자, 과학자였으며, 다윈이 제시한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격렬하면서도 중요한 비판가였다. 후에 다윈의 지지자들은 피츠로이의 명성을 공격했는데, 왜냐하면 비글호의 선장의 비평은 진화론에 엄청난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츠로이는 주목할 만한 과학자이자, 홍수지질학(Flood geology)과 창조론(Special Creation)의 지지자였다.



Endnotes

1. Gribbin, J. & M., FitzRoy, Review, Headline Book Publishing, p. 23, 2003. Comments by Professor Inman.
2. Lavallee, L. 'The Voyage of the Beagle -- In the Creator's Service, Impact 358, ICR, April 2003.
3. Gribbin, J. & M., ref. 1, p. 79.
4. Ibid., p. 155.
5. Ibid., p. 156.
6. Ibid., p. 163.
7. Barlow, D., 'The Devil within: Evolution of a tragedy,' Weather, Royal Met. Soc., vol. 52 (11), pp. 337-341, 1997.
8. Gribbin, J. & M., ref. 1, p. 264.
9. Reported in Cadbury, D., The Dinosaur Hunters, 4th Estate, Harper Collins, London, p. 310, 2000.
10. Barlow, ref. 7. Sourced from: Origins of Meteorology: An analytical catalogue of the correspondence and papers of the first Government Meteorological Office, under Rear Admiral Robert FitzRoy, 1854-1865, and Thomas Henry Babington 1865-1866, of the successor Meteorological Office from 1867, primarily during its first two years under the Scientific Committee appointed by the Royal Society, and of registers of Instruments issued by successive Meteorological Offices from 1854 to c. 1915. Held at the Public Records Office, Kew, England.
11. The Athenaeum, 14th July. 1860. From www.oum.ox.ac.uk/debate4.htm --Accessed July 2005 -- Website of the Oxford University Museum of Natural History.
12. Cadbury, D., ref. 9, p. 310.
13. Letter from Julius Carus to Charles Darwin, 15th Nov. 1866, (From Gribbin, J. & M., ref. 1, p. 325.)
14. Barlow, ref. 7, (Source as ref. 10).
15. Barlow, ref. 7, (Source as ref. 10).

* Andrew Sibley is a Meteorologist working for the Met Office in the UK. He has a Masters of Science and is a Council member of the Creation Science Movement.


번역 - 길소희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fitzroy-captain-beagle-fierce-critic-darwinism/

출처 - ICR, Impact No. 389, 2005.

미디어위원회
2016-05-05

공교육 체계에서 문제아를 만드는 방법

(How to build a bomb in the public school system)

David Catchpoole 


      왜 그들은 학교 동료들을 총으로 쏘아 살해했을까? 이것은 1999년 4월 19일 미국 콜로라도 주의 콜럼바인 고등학교(Columbine High School)에서 총을 난사하여 12명의 학생들과 1명의 교사를 살해한 사건 후에 제기되었던 질문이다. 젊은 학생들이 왜 살인과 파괴, 총격과 자살을 하는 것일까? (범인인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는 총기 난사 후 자살함). 그들이 입고 있던 옷은 이 십대 살인자들의 생각을 알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단서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살인자들 중의 한 명에 대한 부검 보고서에 의하면, 사건이 벌어진 비극의 날에 그는 검은 색 전투장화, 오른 손에 검은 장갑, 그리고 앞쪽에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란 글귀가 새겨진 흰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1]


공교육 체계에서 문제아를 만드는 방법.

1)아이들에게 다음을 가르치라 :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 생명은 우연히 만들어졌다. 사람은 동물로부터 진화되었다. 수억 수천만 년 동안 폭력, 살해, 죽음, 질병, 아픔, 고통 등을 통해서 사람이 존재하게 되었다. 신은 없다. 성경은 진실이 아니다.

2)성경, 기도, 십계명을 학교로부터 제거하라.

3)그리고 뒤로 물러나서 기다려 보라.     

 


티셔쓰에 쓰여진 '자연선택'은 무엇을 의미했는가? 한 신문 기자는 티셔츠에 새겨진 글귀는 같은 이름의 비디오 게임과 관련지었다. 그 게임은 ”글자 그대로 적자만이 생존하는 곳으로서... 자연스러운 방법인, 자연선택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로” 선전되고 있었다.[1] 콜럼바인 학살 사건 이후 가해자들은 잔인하고 피로 물들은 비디오 게임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들은 또한 다윈의 투쟁 개념에 의해서 불붙게 된 ‘지배 인종(master race)’ 이라는 독일 나치(German Nazi) 당원들의 믿음에 매료되어 있었다.[2]  

이 비극적인 사건의 원인을 찾아보려고 시도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수많은 십대들이 폭력적인 게임이나 비디오나 책들을 접하면서 기쁨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놀람과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고정 관념이었던 폭력과 죽음은 사람이 진화로  태어나기까지 수백 수천만 년 동안 일어났었던 ‘자연적인(natural)’ 진화 메커니즘인 것으로 서구 사회의 대부분의 공립학교들에서 가르침으로서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놀라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은 단지 동물의 일종이고, 죽음과 폭력은 진화 도중에 발생하는 자연적인 부분이며, 오직 적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교육을 받았던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이 완전한 절망 상태로 빠져드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계신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많은 이들은 죽음과 투쟁과 우연의 세계에서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러한 가능성은 과학적 사실에 의해서 부정된 것임으로 그들을 더 화가 나게 하거나 불쾌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죽음 이후 심판에 대한 어떠한 두려움도 없는, 그리고 분노와 증오를 언제 폭발시킬지 알 수 없는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walking time-bombs)‘인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이들 폭탄들의 뇌관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해답이다. 그러나 진화론으로 물들어 있는, 진화론으로 세뇌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 이들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를 알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기원에 관한 진실을 이들에게 가르치고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역사에 대한 참되고 정확한 창세기의 설명은 젊은이나 노인들에게 왜 이 세계는 폭력, 죽음, 피 흘림, 질병, 고통 등으로 가득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할 것이다. 그것은 죄(sin)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할 희생 제물로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리고 죄인들은 그들의 창조주를 만날 수 없었으나,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d. Note: see the cartoon How to defuse a ‘bomb’ in the public school system.


References and notes

1. Denver Rocky Mountain News, pp. 4A, 14A, 25 June 1999.

2. Bergman J., Darwinism and the Nazi race Holocaust, CEN Technical Journal 13(2):101?111, 1999.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answersingenesis.org/public-school/how-to-build-a-bomb-in-the-us-public-school-system-cartoon/

출처 - Creation 22(1):17, December 1999.

미디어위원회
2016-02-25

진화론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

황승아 


        ”나 자살할 거예요. 구공탄을 사서 거기에 불을 피우고 냄새 맡으면 자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게 실패하면 칼로 손목을 그어서...” 지난 해 6월 어느 날 내가 담임을 맡고 있던 중학교 2학년 A여학생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나온 말이었다. A여학생은 그 무렵 친구 관계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춘기의 여학생들이 흔히 겪는 정도의 갈등 상황이었다. 멀쩡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라는 그 아이의 입에서 자살하겠다는 말이 이렇게 쉽게 나오는 현실이 난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드린 간절한 기도,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일깨움, 그리고 계속적인 관심과 전문상담교사와의 연결, 학부모와의 상담 등을 이어갔고, 다행히도 A여학생은 조금씩 안정을 찾는 듯 했다. 

십여 년 전, 내가 어렵게 과학교사가 되었을 때, 진화론 일색의 과학 교과서 속에서 어떻게든 창조주를 전하는 과학 교사가 되겠다는 당찬 다짐을 했다. 학교에서 창조과학 동아리를 만들었다가 교감 선생님께 불려가서 종교 편향 교육 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고, 아침 기도모임을 믿음의 아이들과 시작했지만 교장 선생님의 제재로 접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해프닝은 나에게 또 다른 돌파구를 찾는 열정을 심어주었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여러 창조과학 동역자들과 함께 ”착한과학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창조과학 청소년 사역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과학 교과서 속에서 진화론을 배우고 익힐 뿐 아니라 게임, 광고, 만화, 영화, 교양서적 등을 통해 진화론에 친숙해지며, 적자생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입시 경쟁을 겪으며 진화이론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진화론은 아이들의 사고 깊은 곳에 꽈리를 틀고, 생명의 가치를 외면하고 허무하게 살아가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사실 과학 교과서 속의 진화론은 여러 가지 반증 사례들을 제시하고 설득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의 사고체계 속에 깊이 박힌 진화론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난 우리 반 A여학생의 경우가 그저 독특하고 예외적인 사례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생명에 대한 가치를 모른 채 목적 없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급의 학생들에게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자신의 진로에 대해 물어보면 뚜렷한 답을 하는 학생은 한 반에 두세 명 정도에 불과하다. 심지어 되고 싶은 게 없는데 왜 이런 걸 물어보냐며 따지는 아이도 있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세상에 발표된 이후 다양한 내용들이 추가 혹은 수정 되었지만 진화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저절로 생겨났다는 추론이다. 즉, 진화론은 생명의 탄생을 하나님 없이 설명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다. 따라서 생존에 성공한 하나의 동물 종에 불과한 인간에게 특별한 존엄이나 가치는 없다. 그래서 진화론은 성경 말씀과 정면으로 대치되며, 청소년을 전도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또한 이미 신앙을 가진 청소년들에게는 학교에서의 사고체계와 교회에서의 사고체계를 이원화 하도록 강요하고, 갈등 속에서 교회를 아예 떠나도록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다음 세대가 사라지고 있는 교회의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을 생각하면 내게 항상 떠오르는 성경 말씀이 있다. 늑대 무리 속에 양을 보내는 목자의 마음으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 (마 10:16)”고 말씀하셨다. 마치 진화론 일색의 교육현장에 있는 나에게 신중하고 분별력 있게 그리고 순결하게 다음 세대를 양육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 말씀에 힘입어 오늘도 자신들이 적자생존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믿으며 소망을 상실한 아이들에게 ”네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이 세상에서 감당할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열렬히 전하고 싶다. 또한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를 청소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샘솟길 간구한다. 주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부어주소서...

미디어위원회
2015-12-09

19세기의 누룩 : 찰스 라이엘, 토마스 찰머스, 헨리 드러먼드, 필립 헨리 고스 

(The 19th Century ferment

- Charles Lyell, Thomas Chalmers, Henry Drummond, Philip Henry Gosse)

John Rendle-Short 


      19세기에 기독교계를 뒤흔들었던 (특히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된 이래로) 사활이 걸렸던 투쟁을 150여 년 후에 평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진화론이라는 과학 이론만이 문제를 일으켰던 것은 아니었다. 니체(Nietzshe)의 신은 죽었다는 철학, 마르크스와 엥겔스(Mark and Engels)의 정치적 견해, 프로이드(Freud)의 정신분석 이론,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 適者生存)을 경제에 적용한 극단적인 자본주의, 현대주의(modernism)와 자유주의(liberalism)로 인도한 일부 신학자들의 고등비평(higher criticism dogma, 高等批評) 등도 문제를 일으켰으며, 이들의 공통점은 성경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창세기 1장이 시(詩), 신화, 전설이라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지구의 창조주(創造主; Creator)가 아니시며, 인간은 동물에 불과하며, 모든 기적들도 (동정녀 탄생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포함한) 역시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의 죄 값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구세주가 아니라, 우리를 진화의 여정 꼭대기로 안내해주는 뛰어난 지도자일 뿐이다. 찬송가에 이런 구절이 있지 않은가. ”오! 사람의 아들이시여. 강하고 온유한 나의 영웅이시여.”[1] 19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모든 격동적 상황에 대한 실상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그들은 기독교 신앙이 믿을만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증거가 진화론이 진실인지 아닌지에 달려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진화론(다윈의 방대한 연구 성과의 출판과 더불어 시작된)만이 기독교 신앙에 문제를 일으킨 유일한 과학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에 걸쳐 시작된 지질학, 동물학, 식물학에 대한 급격한 관심의 증가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운동’이 임박했다는 경고를 이미 발하고 있었다.

     동일과정설의 원리는 지질학으로부터 점차적으로 생물학으로 확장되었다.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은 자신이 ‘모세 체계’(the Mosaic system)라고 이름 붙인 ‘창조와 노아 홍수’의 토대를 용의주도하게 허물었다. 1830년에 출판된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Principles of Geology)’는 반세기 동안이나 유행했다. ‘지질학 원리’의 부제(副題)는 ”지구 표면에서 이미 일어난 변화를 현재 작동 중인 원인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였는데, 이것은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의 사상을 명백하게 드러내는 표현이었다. 동일과정설은 ‘현재는 과거의 열쇠이다’라는 주장으로서, 지층암석은 현재 알려진 자연의 힘인 물, 서리, 바람과 열의 풍화작용 등에 의해서 장구한 시간에 걸쳐서 형성되었다는 이론이다.  


찰스 라이엘(1797-1875)은 ‘현재는 과거의 열쇠이다’라고 주장했다

동일과정설에 대한 대안적 이론이 격변설(catastrophism)이다. 이 이론은 지층암석은 격렬한 변화, 예를 들면, 대홍수나 화산폭발과 같은 격변적인 상황 하에서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격변설은 지구가 겪었던 전 지구적 노아 홍수에 의해서, ‘어마 어마하게 많은 동물 화석과 식물 화석들(예를 들면, 석탄)’이 형성되었다고 설명한다. 다윈은 비글호(HMS Beagle)를 타고 오랜 여행 시간 동안에, 찰스 라이엘의 첫 번째 책 ‘지질학 원리’를 늘 읽었다. 두 번째 책은 몬테비데오에서 구했다. (역자 주 : 찰스 라이엘은 3년 여에 걸쳐(1830-1833), ‘지질학의 원리’ 3권을 출간했다.)  

다윈의 주요 여행 목적 중의 하나는 그가 방문할 나라의 자연사(natural history)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다윈의 전기(傳記)를 쓴 작가 중 어떤 사람들은 ”다윈은 출항할 때는 창세기를 믿었지만, 여행하면서 그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성경과 진화론, 어느 것이 사실일까? 지구는 대략 6,000년 밖에 되지 않았으며, 노아 시대의 전 지구적 홍수는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자연 재해였는가? 아니면, 지구는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느리고 점진적인 작용에 의해서 수억 수천만 년에 걸쳐 형성되었는가?  

진화와 성경을 조화시키려는 초기의 시도는 스코틀랜드 자유교회(Free Church of Scotland)의 설립자였던 경건한 사람이었던 토마스 찰머스(Thomas Chalmers)에 의해서 시도되었다.

점차적으로 동일과정설은 지질학으로부터 생물학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다윈은 기발하게도 수 백만 년이라면 하나님의 개입 없이도, 점점 더 복잡한 생명체, 그리고 사람까지도 출현하게 했을 간단한 방법을 제안했다.  

19세기 초에 유행했던 진화와 돌연변이에 관한 책으로, 1844년에 익명으로 출판됐던 ‘창조 자연사의 흔적들(Vestiges of the Natural History of Creation)’이 있었는데, 40년 후에야 저자가 로버트 체임버스(Robert Chambers)로 밝혀졌다. 로버트 체임버스는 인기가 있었던 ‘체임버스 사전’의 최초 편집자였기 때문이었다. 비난과 악용당할 것을 염려한 로버트 체임버스는 ‘창조 자연사의 흔적들’의 저자가 자신인 것을 밝힐 용기가 없었다. 과학 작가라기보다는 문학가였던 체임버스는 자신의 다른 저서들에 미칠지도 모르는 손해를 우려했던 것이다. 

체임버스는 하나님을 믿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불가사리 같은 생물들을 만드신 다음, 또 해양 무척추동물을 추가하시고, 또 갑각류를 출현하게 하시고, … 또 물고기를 만드시고...” 이러한 과정은 끝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과정이 그분의 영광을 훼손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발전의 법칙”(후에 진화론으로 알려짐)을 통해서 자연이 작동되도록 하셨다는 것이었다. 

체임버스의 생각을 비롯한 이러한 비슷한 이론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심각한 혼란에 빠뜨렸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왔을 때, ‘종의 기원’이 과학, 문화, 종교에 미친 강력한 영향은 아무리 과장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다윈의 책을 수용할 토양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진화론이라는 꽃은 활짝 피어났던 것이다. 


창조론 대 진화론

당시의 창조론자들과 새로이 출현한 진화론자들 사이의 주요 쟁점은 무엇이었을까? 

1. 지구의 나이. 지구의 나이는 동일과정설자들의 주장처럼 수백만 년인가, 아니면 성경에 언급한 것처럼 6,000년 정도인가?

2. 종의 변화인가, 종의 고정인가. 어떤 생물 종이 다른 종으로 변화될 수 있는가? 예를 들면, 파충류가 조류로, 원숭이가 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고양이 종류’ ‘개 종류’와 같은 각각의 종류들을 창조하셨는가? (종(species)이 무엇이며, ‘종류(kind)’와 같은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무시됨.)

3. 노아의 홍수. 노아의 홍수는 중동 지방에 발생했던 국지적 홍수였는가, 아니면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전 지구적 대홍수였는가? 

이러한 쟁점들에 대한 답이 수백만 년의 지구 나이, 종의 변화, 국지적 홍수라면, 창세기 기록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지구와 생명의 기원은 우연에 의해 발생했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도 모든 것들을 설명할 수 있으며, 초자연적 영역이 없어지는 것이다. 모든 기적들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논리적이고, 확실한 것처럼 보이는 새로이 출현한 과학이론들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이라는 책과 성경이라는 책은 둘 다 같은 하나님이 쓰신 것이기 때문에, 그 둘 사이에 모순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둘을 조화시키는 것은 반드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어떠한 불일치는 우리가 이쪽이나 저쪽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라고 생각했고, 더 연구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토마스 찰머스

진화론과 성경을 조화시키려는 초기의 시도는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의 설립자였던 경건한 토마스 찰머스(Thomas Chalmers, 1780~1847)에 의해서 시도되었다. 그는 찰스 라이엘 및 찰스 다윈과 동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는 신앙에 대한 과학의 공격에 대해 안타깝게 여기고, 무신론의 무자비한 공격으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성경을 과학과 조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토마스 찰머스(1780-1847)는 성경과 과학을 조화시키려고 ‘간격 이론’을 제안했다.

그래서 찰머스는 ‘간격’이론(gap theory) 또는 ‘파괴-재창조’ 이론(Ruin-Restoration theory)으로 알려진 이론을 제안했는데, 스코필드 성경은 이 이론을 받아들였다. 변형된 이론들이 몇 가지 있기는 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창세기 1:1절에 기록된 완전한 창조가 있었고, 창세기 1:1절과 1:2절 사이의 연대기적 간격 (사람들이 좋아하는 만큼) 동안 지구의 파괴가 있었으며, 창세기 1:3절에서 다시 시작하는 재창조가 있었다고 제안했다. (더 자세한 것은 스코필드 성경 1917년 판을 참고하기 바란다. 보다 최근 판에는 그 이론이 훨씬 더 축약되어있다. 헨리 모리스가 쓴 글 ‘간격이론: 허점투성이 이론?(The gap theory—an idea with holes?)’을 보라.)

‘간격’이론(gap theory)이란 무엇인가? 이 이론을 지지하는 성경적 근거도 과학적 근거도 없다. 그리고 이 이론은 급속히 그 기반을 잃고 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목적을 이루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많은 그리스도인 한 분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나는 간격이론에 감사한다. 내가 몇 년 동안 의심하면서 창조/진화 문제로 혼란스러워 할 때, 간격이론은 내가 신앙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제 나는 그것이 틀리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창세기는 그 자체로 완전하다는 것을 안다.”


헨리 드러먼드

진화론의 공격을 반격하기 위한 또 다른 시도가 헨리 드러먼드(Henry Drummond, 1851~1897) 교수가 쓴 책 ‘영계의 자연법칙(Natural Law in the Spiritual World)’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이 책은 널리 유행하여 1897년에는 33판이 출판되었다.

.헨리 드러먼드(1851-1897)는 진화론의 공격을 반격하려고 노력했다. 

서문에서 드러먼드는 전혀 다른 삶의 두 영역에 있는 두 부류의 청중에게 정기적으로 강연을 하게 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는 주중에는 자연과학 분야의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고, 일요일에는 다양한 영역의 노동자들로 구성된 청중에게 신앙과 도덕의 본질에 대하여 강연한다.”

드러먼드는 처음에는 어렵지 않았다고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두 영역을 완전히 독립적인 것으로 본다. 두 영역은 사고의 대척점에 있으며, 내 마음속으로 과학과 신앙이 서로 담을 쌓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 ‘지식의 두 샘물이 넘치기 시작하여 마침내 그 물들이 만나고 섞여, 신앙의 영역에 큰 변화가 있었다.’ ” 

책의 나머지는 두 영역의 물이 섞인 결과를 설명한다. 오늘날 그의 저서 ‘영계의 자연법칙’은 과학자도 신학자도 수용하지 않는, 만족스럽지 못한 형이상학일 뿐이다. 


필립 헨리 고스(Philip Henry Gosse)

과학과 신앙을 조화시키려는 또 하나의 시도가 필립 헨리 고스(Philip Henry Gosse, 1801~1888)에 의해 이루어졌다. 고스는 상당한 명망을 갖춘 영국의 박물학자(naturalist) 였다. 그의 ‘해양 동물학 매뉴얼(Manual of Marine Zoology, 1855)’은 과학의 새로운 분야를 열었다. 고스는 ‘종의 기원’ 출판 2년 전에 조셉 후커와 찰스 다윈이 앞으로 나올 책의 내용을 알려 주려고 (책을 출판했을 때 분명히 일어날 '저주의 함성”을 잠재우는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접근했던 여러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을 잘못 보았다. 고스는 플라이머스 형제단 열성 단원이었으며, 종의 불변을 확고하게 믿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의 아들 에드먼드는 이렇게 썼다,

”그러면 진지하고 정확한 관찰자로서의 그(필립 헨리 고스)의 위치는 어디인가? 분명히 그는 다윈, 월러스, 후커와 함께 새로운 진리의 선구자들과 함께 있었다. 창세기 2장은 6일 동안에 천지가 완성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일곱째 날에 하나님이 일을 마치셨는가?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지질학이 분명 사실인 것 같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이다. 성경이 천지에 있는 모든 것들이 6일 동안에 창조되었다고 말했다면, 6일 동안에 창조된 것이다. 하루 24시간씩 문자적인 6일 동안에 창조된 것이다.”


.필립 헨리 고스(1801~1888)는 과학과 신앙을 조화시키려 노력했다.  


고스는 라이엘이 인간의 지질학적 역사에 대한 책을 쓰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스는 라이엘을 다윈보다 더 싫어했으며, ‘옴팔로스: 지질학의 매듭을 풀기위한 시도(Omphalos: An Attempt to Unite the Geological Knot)’라는 책을 만들어 반격했다. 그 책은 창세기를 지질학과 조화시키려했던 이상하고 전적으로 실패했던 시도였다. 아담의 배꼽이 (옴팔로스(Omphalos)는 그리스어로 배꼽임) 자연적 출산을 흉내내기 위해 준비되었던 것처럼, 하나님이 사람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화석들을 창조하셔서 암석 속에 넣어두셨다는 것이었다. 

그 책은 하나님이 ‘그렇게 엄청나고 불필요한 거짓말’을 하셨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고스(그리고 다윈)의 친구인 찰스 킹슬리(Charles Kingsley)의 조롱과 함께 사라졌다. (Gosse and Omphalos를 보라).


결론

필자는 19세기에 새로운 과학이 신앙인들에게 미친 파괴적인 영향을 열거해보았다.

• 찰머스는 창세기 1:1~2 절을 해석하는 기발한 방법을 제안했으나, 불행하게도 찰머스의 성경 해석학이나 지질학적 지식 둘 다 부정확했다.

• 드러먼드는 과학과 성경의 핵심을 융합하려 했지만, 철학적 이야기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 고스는 지질학을 수용하는 독창적인 방법을 제안했다. 고스의 시도는 실패했으며,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또 노아 홍수의 명백한 지질학적 의미를 간과했다.

만약 당신과 내가 그 당시에 살고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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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Written by Frank Fletcher in 1924. 

 

번역 - 홍기범

링크 - http://creation.com/19th-century-revolt-against-the-bible

출처 - Creation 10(1):46–48, December 1987.

심리학에서의 오류와 진화론 

(For Shame, Psychologists)


       한 심리학자가 수십 년 동안 완전히 실패한, 쓸모없는 비유(tropes, 전의)를 포함하여, 자신의 분야에서 결점들을 지적하고 있었다.

토마스 쉐프(Thomas Scheff) 박사는 심리학에서 수치심(shame)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거기에 하나의 수수께끼가 있다. UC Santa Barbara Current 지에 게재된 그의 글 ‘심리학의 수치(The Shame of Psychology)’에서, 쉐프는 감정(emotion)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무능력이 왜 심리학 분야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 그의 감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쉐프는 통속적 심리학(pop-psych)이 실패했던, 진실이 아닌 것으로 오래 전에 밝혀진 몇몇 사례들을 나열하고 있었다. 최근 Review of General Psychology 지에 게재된 한 논문에서, 그는 대중들의 마음속에 상식처럼 자리 잡고 있는 '심리학의 세 스캔들(Three Scandals in Psychology)'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공격 카타르시스(aggression catharsis) : 당신의 분노를 발산하는 것이 당신에게 좋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틀렸다.

쉐프는 이것은 분명한 실패임에도 불구하고, 분노의 배출은 오랫동안 받아들여져 왔던 심리치료라고 회상했다. 오래 전에 결혼상담가로 일했을 때에, 그는 상담 시 분노의 배출을 사용하도록 권장 받았다. ”화가 나있는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으로, 그들에게 테니스 라켓으로 베개를 내려치게 하거나, 베개에 입을 대고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게 하라고 내 선생님은 나에게 말했었다.” 그는 말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작동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도움이 됐다는 고객을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치욕(stigma) : 심리학자들은 수치(shame)에 대해서 단서가 없다고, 쉐프는 말했다. 이상하게도, 심리학자와 대중들은 수치가 무엇인지를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이 나쁜 것처럼 ”수치에 대해서 수치스러워” 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

쉐프에 따르면, 치욕은 광범위하게 연구되어 왔지만,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이 잘못 알고 있는 또 하나의 영역이다. 문제는 치욕이 어떤 굴욕의 결과로써, 대게 불명예의 표시로써 정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설명했다. 그러나 치욕은 사실 과학적으로도 잘 이해되지 않고 있는, 하나의 감정으로써, 특정한 종류의 수치(부끄러움)이다. 그는 주장했다. ”학자들은 대중들처럼 감정에 대해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감정은 연구되고 있지만, 그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자존감(self-esteem) : 또 다른 잘못된 생각은 자존감(자아존중감)은 당신을 위해 좋다는 것이다. 심지어 심리학자들은 그것을 측정하는 방법도 가지고 있다; 자존감은 얼마나 유용한가?

쉐프는 자존감에 관한 연구에 대해 혹독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는 지난 50년 이상 동안 20,000건 이상의 연구들이 200개의 자존감 척도를 사용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들의 실패는 분명하다. 그는 말했다. 행동을 예측하는 그 척도의 능력은 5% 미만이다.


쉐프는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Tycho Brahe)의 경우를 지적하고 있었다. 티고 브라헤는 행성들의 위치를 매우 세밀하게 측정했지만,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는 큰 그림을 결코 본적이 없었던, 모든 행성들이 지구를 공전하고 있다는 그 당시 사조(천동설)의 포로였다. 심리학자들은 오늘날에 브라헤의 실수를 범하고 있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심리학자들은 인간행동에 관한 잘못된 그림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심리학과 대중은 감정의 의미와 파급 효과를 해결한 후에만 발전할 것이다”라고 그는 조언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기술했던 것처럼 나쁜 실적을 가지고 있다면, 그의 제안도 오류가 아니라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당신이 보고 있는 것처럼, 진화 심리학은 우주론(cosmology), 고인류학(paleoanthropology)과 함께 매우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학문 분야이다. 우주론자들이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기억하라.(6/20/2015) 선입견 없이 시작한다면, 각 분야들은 완전히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6/24/2015).

이제 캘리포니아 대학의 한 심리학자가 자신의 분야에서 틀렸던 사례들을 폭로하고 있었다. (과거 글들 참조). 50년 이상에 걸친 자존감에 관한 20,000여 연구들이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완전히 쓸모없었다는 것이다. 쉐프의 교사들은 모두 상담자들에게 분노를 배출시키도록 지도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 소리를 지르고, 테니스 라켓으로 베개를 내려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1세기가 넘도록 과학의 각 분야에서 진화론과 관련되어 보고된 논문들은 얼마나 될까? 진화론의 오류가 밝혀지는 날 얼마나 많은 논문들이 폐기되어야 할까? 잘못된 한 이론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돈과 힘을 낭비했을 지를 생각해보라.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5/06/for-shame-psychologists/

출처 - CEH, 2015. 6. 30.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186

참고 : 3746|4715|5690|3384|5546|5500|3848|4019|4499|4650|3882|4133|3687|4139|5843

Carl Wieland
2015-05-05

당신의 동굴인 아이 길들이기? 

: 새로운 ‘대중 전문가’는 아이 양육에 진화론을 이용하고 있었다.

(Taming your caveman children?)


      진화심리학 (evolutionary psychology, 아래 박스글을 보라)은 때때로 대유행을 하곤 했다. 사람들이 왜 그들의 배우자를 속이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는가? 그 이유는 수백만 년 동안 진화를 거치면서 우리 유전자 속에 프로그램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 진화심리학은 사람의 거의 모든 행동 측면마다 진화론적 용어를 사용하며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일시적 유행 중 최근에 일어난 것은 아이들의 양육에 관한 것이다. 소위 ‘유명연예인 담당 소아과 의사’인 카프(Harvey Karp) 박사는 말썽꾸러기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에게 자기가 ‘해결책’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당신의 어린아이는 진화단계 중 원시 단계를 거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그 아이 수준의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아이 양육법으로 전환한 열정적인 인사들로는 유명 연예인들인 마돈나(Madonna), 미쉘 파이퍼(Michelle Pfeiffer), 피어스 브로스넌(Pierce Brosnan) 등이 있다.

카프 박사의 베스트셀러 작품인 ‘거리의 가장 행복한 유아(The Happiest Toddler on the Block )’ 라는 책은 오래된 배아의 발생반복설 (embryonic recapitulation)에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 주었다. 조작되어 그려진 거짓된 배발생 그림[2]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히게 된 이 아이디어는, 자궁속의 태아가 어류, 양서류, 파충류의 단계를 거쳐 발생되어 간다고 가르친다. 이 생각은 지금 전적으로 불신당하고 있다. 그러나 카프 박사는 그 생각을 재활용하여 초기 영아기에 적용시켰다. ”당신의 아이를 생후 12~18개월 된 침팬지라고 생각하라” [3], 그렇다면 이 아이는 네안데르탈 단계를 거치는 것인데, ‘200만년 전’ 시대로부터 온 아이인 것이다. 24개월부터 36개월까지, 당신의 아이는 ‘더 사회적으로 진보된 난폭한 동굴인 아이 (cave-kid)’에 해당한다. 그리고 가방을 장난감들로 가득 채우고 있는 3세 아이는 약 5만년 전의 ‘모여서 마을을 이루는(villager-gatherer)’ 단계에 해당한다.

당신의 어린 아이에 대하여 이렇게 새로운 통찰력을 가지게 된다면, 당신은 이제 ”그들의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된다”고 카프는 말한다. 그리고 기뻐하는 많은 유명 연예인 부모들에게 말한다. ”몸을 엎드려 ‘동굴인 아이’에게 돼지처럼 꿀꿀 소리를 내십시요. 비록 붐비는 슈퍼마켓에서 손과 무릎을 바닥에 꿇어야만 할지라도, 그것은 그 아이를 진정시키는 데에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들의 이상한 새로운 행동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하여, 쉽게 그들의 난폭성이 분산될 수 있는 명백한 ‘성공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카프는 짧은 구절들을 사용하고, 반복적으로, 아이가 발산해내는 에너지 수준으로 대응하라고 말한다. 잠 투정, 대소변 가리기, 심지어 부모와 떨어질 때의 불안감, 손톱 물어뜯기 등과 같은 것들은 ‘고전적인 네안데르탈식 자기 표현’이라고 카프는 그 특유의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한다. 그러나 진화가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또한 (심지어 많은 진화론자들사이에도 논란이 있는) 네안데르탈인들이 우리의 조상이라 할지라도, 네안데르탈인의 의사표현 방식이 그것과 같았을 것이라고 그 어느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진화론적 만병통치약 (snake oil)?

카프는 세속적인 학자들 사이에서도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오래된 속임수에 불과한 방법을 사용한다”고 비판당하고 있다.[3] 그 속임수들 중 생각나게 하는 하나는 지금은 구닥다리가 된 ‘프라이멀 스크림 요법(primal scream therapy, 유아기의 외상체험을 재체험시켜 신경증을 치료하는 정신 요법)’ 이다. 그 요법에서 사람들은 진화의 ‘동물 조상’ 단계로 되돌아가서 그들의 골칫거리를 극복하도록 권장되고 있다. 마치 야생동물처럼 울부짖으며 ‘모든 것을 탁 터놓고 말해버리라’는 식이다. 비록 종국적으로 억제할 수 없는 분노를 발산하게 됨으로써 기분이 상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단기적인 위안을 경험한다. 그런 사람들은 아마도 ”우와, 이 방법이 통하는구나 전체적인 진화 이야기는 사실임에 틀림없구나” 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동을 변화시킨 그 어떤 특별한 방법이 ‘통하는지’ 또는 안 통하는지로, 그 방법이 기초한 이론이 옳다 아니다를 말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4] 예를 들면, 프로이드식 정신분석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을 때, 환자들은 그들을 만나서 약간의 치료를 경험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행동과학자들은 그러한 개선이 환자들에게 기울여진 시간과 주의만큼에 비해서 너무 적어, 프로이드의 개념은 대체적으로 불신을 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카프의 ‘속임수’가 일부 아이들에게 통하였다할지라도, 인간 기원에 관한 그의 독특한 이론, 또는 주장되는 진화론적 생각이 지지받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린 아이들을 통제하기 힘들어하는 부모들이 그 어떤 효과를 보았다는 것은 진화론적 믿음을 강화시켜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카프의 책과 그의 신조는 부모들이 그 해결책을 열망하던 때에 히트를 쳤던 것이다. 유년기의 행동 문제들은 어느 때를 막론하고 많이 발생하여왔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서구의 방종한 아이들 세대 때에, 그리고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이전보다 덜 받게된 때에  발생한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것은 많은 부분, 전반적으로 성경에 근거한 사회적 가치와 규범이 파괴됨에 기인한다. 성경과 반대되는 진화론(evolution)과 오래된 연대(long-age history)에 대한 가르침은 그 어느 것보다 성경에 대한 신뢰성을 훼손하고 있다. 따라서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나쁜 행실이 많아진 것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단순히 카프와 그의 할리우드 열광팬들이 써먹고 있는 방법에만 향해질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으로 진화론에 향해져야만 할 것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Wieland, C., ‘Evolution made me do it!’ Creation 22(3):4, 2000
2. Grigg, R., Ernst Haeckel: Evangelist for evolution and apostle of deceit, Creation 18(2):33–36, 1996; Fraud rediscovered, Creation 20(2):49–51, 1998.
3. Daily Express (UK), 29 March 2004, p. 35.
4. For example, various diets claim to be based on how our ancestors ate when they were in the Garden of Eden. Others claim to reflect a competing ideology; how our ancestors ate when they were primitive cavemen. But the extent to which any of these ‘work’ or not does not necessarily support the underlying theory of origins. See Wieland, C., Living (and eating) like a caveman? Creation 23(3):6, 2001.



진화심리학 :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에 대한 많은 설명들을 보면 처음에는 표면상 진화론과 뜻이 통하는듯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랬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 만들기(just-so storytelling)’이기 때문이다. 어떤 부여된 행동이 우리의 가상적 원시 조상들에게 유익했었을 것이라는 말을 너무도 쉽게 하는 것에 놀라울뿐이다. 

자녀를 돌보는 모성본능을 예로 들어보자. 진화심리학에서는 이런 행동을 하는 유전적 사고(genetic accidents)들은 이런 행동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들에서보다 더 잘 유전되었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보살핌을 받는 아기들이 방치된 아기들보다 더 잘 생존할 수 있기 (그래서 엄마의 유전자들을 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로서 모성본능(maternal instinct)을 설명한다면, 이것도 뜻이 잘 통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추리는 사실상 어떠한 행동도 설명할 수 있다는(이것은 진정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사실은 쉽게 간과되고 있다.

예를 들어, 만약 한 여성이 10살 정도의 자녀를 정기적으로 사랑하며 돌보아주지 못했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진화심리학자는 이것도 역시 설명할 수 있다. 그 나이의 아이들은 유아보다 더 생존하기 더 쉽다. 그래서 모체 유전자들은 그녀의 관심이 다음번에 태어날 유아들을 돌보도록 전환된다는 것이다.

이런 유연성(flexibility) 때문에 심지어 진화론자들조차 진화심리학에 냉소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진화론자들도 그것은 시험될 수도 없고, 그리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실상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한다. 진화심리학의 전문가중 한 사람은 ‘짝짓는 마음 (The Mating Mind)’의 저자인 제프리 밀러(Geoffrey Miller)이다. 그의 생각은 낭비적인 TV 시리즈인 과학영상 시리즈(PBS-Nova) ‘진화론(Evolution)’과 여러 인기 포럼들에서 무비판적으로 전달되었다. 그러나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 ) 지에 실린  그의 책에 대한 리뷰는 다음과 같다 :

”어떻게 한 사람이 실제로 이 이론들을 테스트할 수 있는가? 공동의 노력없이, 진화심리학은 진정한 과학이기보다는 탁상공론의 오락물 범주에 포함시켜야할 것이다.” [1]

선도적인 진화론적 고인류학자인 이안 태터샐(Ian Tattersall) 역시 밀러의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통렬하게 비평했다 :

”결국 우리가 이곳에서 목도하고 있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이야기꾼의 소설이다”.[2]

 

References
1. Birkhead, T., Strictly for the birds, review of The Mating Mind by Geoffrey Miller, New Scientist 166(2238):4849, 13 May 2000.
2. Tattersall, I., Whatever turns you on, review of The Mating Mind by Geoffrey Miller, New York Times Book Review, 11 June 2000.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7/i1/children.asp

출처 - Creation 27(1):22–23, December 2004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384

참고 : 5859|5809|5621|5470|5466|5462|5461|5413|5397|5381|5272|5270|5211|5210|5179|5112|4782|4766|4765|4636|4635|4542|4140|4039|3887|3812|3682|3426|3423|3244|3241|3077|3055|3041|3039|3037|3024|2864|2710|2579|2359|2353|2330|2307|2114|2039|2016|1174

미디어위원회
2015-03-05

기독교계로 침투한 유신진화론 1 

: 유신론적 진화론의 주장과 문제점들

임번삼


(1) 유신진화론

1. 창조론과 진화론

  기독교의 교리는 창조론의 기초석 위에 구원론이라는 건물을 지은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창조론이 파괴되면 구원론도 무너지게 되므로 전통신앙에서 창조론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 진화론이 창조론을 대체하여 영향력을 교회내로 침투시키고 있는 것은 성경적으로는 말세에 일어날 사건으로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지금은 크리스쳔 엘리트들과 양식있는 학자들이 각성하고 진화론의 실체를 직시해야 할 때라 생각한다.

진화론과 기독교의 양립은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거의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무기질로부터의 자연발생설 대 창조주에 의한 창조설, 자연선택적 진화설 대 처음부터 종류대로의 완벽한 창조설, 인간에 대한 유물론 대 영육론, 생명기계론 대 목적론적 생기론, 현세주의 대 내세대망론, 무신론 대 유신론 등 어느 것 하나 대립적 개념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계 내로 다양한 형태의 진화사상이 유입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독교가 진화론으로 물든다면 기독교는 교리상 치명적인 파멸을 맞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2백여년 전에 무신론자인 볼테르(Voltaire 1694-1778)는 기독교가 길게 잡아 일세기내에 지구상에서 살아질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테일러는 경고하기를 앞으로도 진화론과 종교(기독교)를 결합시키려는 새로운 시도들이 나타나겠지만, 이는 양측을 파멸로 이끌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양식있는 자라면 부패하기 쉬운 소수의 엘리트집단이 통치하는 막스주의적인 인본주의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부패할 수 없는 창조주의 통치를 받을 것인지 선택하라고 촉구한다. [Taylor; ibid, p 30]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독교사역자들은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해 너무 등한시하고 있는 것 같다. 알 수 있는 기회가 적기도 했겠지만 알려고 하는 관심도 적었던 상 싶다. 그것이 끼칠 반기독교적인 파괴력을 아직도 대부분의 교역자들이 느끼지 못 하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진화사상에 물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교회교육의 커리큘럼에 창조론을 필수과목으로 시급히 추가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화론의 기독교 내로의 유입은 교묘한 양상을 띄고 있다. 처음부터 무신론적이거나 유물론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기독교계는 놀라 대항했을 것이다. 진화사상은 서서히, 점진적으로 성경(특히 창세기)에 대한 다양한 해석방법의 일환인 양 신학의 통로를 이용하여 진보적인 유신진화론자들에 의해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2. 유신진화론 (Theistic Evolutionism)

유신진화론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힘들다. 아직 학문적으로 확립된 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 주장이 가지는 파괴력은 그 어느 학문보다 큰 것 같다. 특히, 기독교신학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더 그러하다. 유신진화론은 그 단어가 말하듯이 ”하나님이 천지를 진화론적으로 창조하셨다는 주장”이다. 창조주를 믿으면서 진화론도 수용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이론은 창조의 주체를 하나님으로 설정한 것만 제외한다면 내용적으로는 거의 진화론적이다. 예컨대, 우주만물의 진화적 형성, 진화에 필요한 긴 지질연대의 설정, 각 지질연대에 부응하는 지층과 화석의 점진적인 형성, 유인원으로부터 인간의 진화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유신진화론의 범주에 우주만물의 진화를 주장하는 진행적 창조론을 비롯하여, 비록 진화 자체를 직접 주장하진 않았다 하더라도 긴 지질연대를 내세우는 날-연대설과 간격설, 그리고 창세기를 비유나 신화로 폄하하는 골격가설 등을 포함시켜 기술하고자 한다. 이러한 이론들을 유신진화론이 범주에서 제외한다면 유신진화론의 실체는 거의 남는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복음에 위협이 되는 사상이 바로 그러한 이론들이기 때문이다. 헨리 모리스는 그의 저서를 통하여 이러한 이론들이 얼마나 깊숙이 진화론과 연계되어 있는지 경고하고 있다. [Henry Morris; Scientific Creationism, 16th ed, pp 215-255, Master Books, El Cajon, CA, 1991] 그것은 과학이 아닌 신학적 해석체로서, 인간의 타락과 구속의 필연성을 명백히 부인한다. [Morris & Parker; ibid., p 300], [G. Wilson; Theistic Evolution, CEI Publishing Co.]

이들은 공공연히 다윈의 진화론과 동일과정설을 성경해석에 인용하거나 조화시키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간격설(1814)이나 날-연대설(4C)은 다윈이 <종의 기원>(1859)을 발표하기 이전부터 있어 온 신학문제로서, 이러한 이론들을, 진화론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성경과 조화시키려 하는 것은 진화론의 기독교 내로의 새로운 침투로 인식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유신진화론의 사상적 뿌리는 일부 교부들의 6기간적 견해, 아리우스주의에 뿌리를 둔 유니테리언, 범신론적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을 수용한 스콜라철학 및 큐비에의 다중격변설, 근세의 자연발생설과 세속인본주의 및 벨하우젠의 문서가설, 벨그송의 생의 철학 등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영향을 받아 19세기말부터 카톨릭과 개신교는 물론 유대교와 이슬람의 내부로 유신진화사상은 급속히 침투하였다.

 

1) 아리우스주의와 유니테리언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4C)을 비롯한 초대교회 시대의 일부 교부들은 6일을 기간으로 해석하였다. 그들 자신이 유신진화론자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이론은 후일 동일과정설로 이어지게 되었다. 루터는 이들의 그러한 자세에 대하여 강하게 비판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사제겸 신학자였던 아리우스(Arius 250-336)는 예수의 신성과 삼위일체설을 부인하여 니케아종교회의(325)에서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다. 그를 따르던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이에 위협을 느끼고 유럽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이 일어나자 반 카톨릭적인 루터교회로 스며 들었으나, 거기에서 다시 추방되었다. 그후, 이들은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커다란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들은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을 부인하고, 모든 자연현상을 이성으로 해석하려 하였다. 그리고, 인도주의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의 일원인 비들(John Biddle 1615-1662)이 세운 유니테리언교회(Uniterian Universal Church)는 개인적인 활동방식을 추구하면서 유니테리언의 이름으로 결속을 다지는 방식을 취하였다. 초창기에 이 운동에 가담했던 대표적인 인물로는 실낙원을 쓴 밀튼(John Milton)을 비롯하여 철학자인 로크(John Locke), 물리학자인 뉴톤(Issac Newton), 산소를 발견한 프리스틀리(Joseph Prietley), 미국작가인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등이 있다. 이들은 개인적으로 활동하였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막강하였다. 런던에 영국교회(Anglican Church 1773)가 설립된 데 이어 20여년후(1793년)에는 보스톤에 미국 최초의 킹스채플(King's Chapel)이 세워졌다. 그 후, 같은 보스톤 지역에 세워진 하버드대학(1816)은 아사 그레이(Asa Grey)의 주도로 유니테리언의 본거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유니테리언은 내용상 진화론과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레이는 다윈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의 사상을 미국에 적극적으로 전파하여 <진화론의 전도사>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프리스틀리와 같은 유니테리언 교회에 다녔던 다윈도 청년시절에는 유니테리언이었다는 사실은 음미할만한 일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유니테리언 사상은 진화론은 물론 벨하우젠 등의 문서가설의 형성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2) 스콜라철학

한편,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을 창세기와 조화시킨 스콜라철학(13C)은 카톨릭계에 신비주의적 요소를 가미시킴으로써 범신론적 요소를 부여하였다. 스콜라철학이 카톨릭의 교리로 공인된 것은 트렌트공의회(1545)에서 이지만 실제적으로는 13세기부터 수용되어 온 이론이다. 오늘날 카톨릭단체가 펼치는 환경운동도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자연은 성경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땅을 정복하라”고 명령하셨으므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내에서 조화롭게 개발하여 활용하자는 것이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이었다.

 

3) 다중격변설

유신진화론의 형성에 영향을 준 큐비에국부적인 홍수가 역사상 여러 차례 일어났으며, 그 때마다 홍수에 의한 격변으로 지금과 같은 지층들이 형성되었다는 '다중격변설(multiple catastrophism)'을 주장하였다. 그는 마지막의 전 지구적인 대홍수가 노아의 홍수였다고 하였다.

*참조 : 창조과학의 노아홍수설 반대…다중격변설 제시,

           SFC, 양승훈의 ‘다중격변 창조론’ 출간. (2011. 9. 16. 기독교보).

          양승훈교수 다중격변론의 문제. (2009. 3. 13. Acts)

 

4) 간격설

에딘버러 대학의 교수이며 목사였던 챨머스는 창세기와 다중격변설을 조화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6일 창조기간의 하루는 24시간의 하루로 이해하는 전통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이러한 간격설은 후일 펨버에 의해 보강되어 스코필드 주석성경에 인용됨으로써 대중적인 공감을 얻게 되어 개신교의 유신진화론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5) 날-연대설

한편, 옥스퍼드대학의 교수이며 목사였던 버클랜드는 일부 교부들의 6일 기간설과 챨머스의 간격설을 종합하여 날-연대설을 주창하였다. 그의 6기간설은 유니테리언과 함께 유신진화론을 구미대륙에 전파하는 구심체 역할을 하였으며, 후일 그의 제자인 라이엘에 의해 동일과정설로 발전하였다.

 

6) 영국성공회

개신교의 일파인 영국성공회(Anglican Church)는 진화사상을 교회내로 이끌어 들이는 선봉적인 역할을 하였다. 지도층에 있었던 스트라우스 등이 개인적으로 진화론을 수용한 데 이어, 킹즐리(Charles Kingsley)는 다윈의 ‘종의 기원’에 영향을 받고 종의 불변성을 믿지 않게 되었노라고 다윈에게 편지하였다. [Chales Darwin; Letter from Kingsley to Darwin, 18 November, 1859] 그는 특별창조의 대안으로 유신진화론을 채택하였다.

보이스카웃의 창설자이며 옥스퍼드대학 교수인 파월(Baden Powell)은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의 신봉자로서, 구약성서를 엉뚱한 이야기로 생각했다(Powell 1957). 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의심 많은 유대기록보다는 다윈의 진화적 관점으로 더 잘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교회는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파월과 같은 시기에 영국성공회의 추기경이었던 클렌소(John Colenso 1814-1883)는 <모세오경과 여호수아서>(Pentateuch and the Book of Joshua)에서 구약성경을 비판하였다. 결국, 그는 추기경의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선고되었으나(1860) 다음 재판에서 승소하여 그는 그 직을 유지하였다.

또 하나의 극적인 사건은 영국성공회의 최고위직인 켄터베리 대주교였던 템풀 부자가 다윈주의를 수용한 것이다. 훼더릭 템풀(Federick Temple 1821-1902)은 1860년에 런던지구추기경으로서 성공회내에 진화론을 확산시켰다. 그는 무신론적 유물론자인 다윈이 서거하자(1882년) 그를 영국교회의 상징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영웅으로서 국장을 치루도록 영국상원과 같이 주선하였다. 그의 아들인 윌리엄 템풀(William Temple 1881-1944) 역시 캔터베리 대주교가 되어 진화론과 더부러 좌익사상을 성공회내로 끌어 들였다.

그 즈음, 신학자이면서 고생물학자인 스미스(William R. Smith)는 브리타니카의 주필이 되면서(1881) 15여년간 문서가설과 유신진화론의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의 영향으로 1890년경에는 자유주의적 인물들이 신학계의 요직을 독점하게 되었다.

 

7) 생명의 자연발생설

19세기 중엽에 파스퇴르의 생명발생설을 격렬히 비판했던 니이담뷰퐁의 생명의 자연발생설(Abiogenesis)에 영향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물과 흙으로부터 연속적으로 생물을 창조하셨다고 해석하면서, 교리적으로 생명의 자연발생설을 주창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당시에는 카톨릭교회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8) 생의 철학

19세기말에 진화론과 창조론을 이론적으로 조화시키려고 처음 시도한 사람이 <생의 철학자>라는 별명을 가진 벨그송(H. Bergson 1859-1941)이다. 그는 진화현상을 물질이나 기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배척했으나, 진화의 역사적 측면은 인정하였다. 그는 우주속에서 일어나는 생명현상이 생물학적인 사실 외에 그 내면에 잠재적인 어떤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즉, 하나님이 진화라는 메카니즘을 통하여 지금과 같은 생물들을 창조하셨다고 믿었다. 그는 변종을 자연이 선택하여 신종이 탄생하게 한다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반대하였다.

그는 생명체가 왜 더 복잡성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물질론적인 진화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하였다. 생명속에는 보다 고차원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는 ‘생명의 추진력’(Vital impulse)이 있으므로 생명의 기원과 역사는 창조적 진화론에 의해 이해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이 ‘생명의 추진력’을 ”생명에 스며 들어가 신체의 내부에 퍼져 있는 의식의 흐름(a stream of consciousness)이나 초월적 의식”이라고 정의하였다. 이 흐름은 생식작용을 통하여 다음 세대로 이전되며, 이러한 과정이 되풀이 되면서 신종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화의 목적인 생명의 존재이유는 인간을 지구상에 존속시키려는 데 있다고 하였다.

 

9) 인본주의(Humanism)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의 인본주의를 스콜라철학에 도입하였다. 14세기부터 17세기에 이르는 300여년간 유럽에서는 중세 암흑기에 반발하여 인본주의적인 르네상스운동이 일어났다. 그림과 조각을 중심으로 불이 붙은 르네상스의 주제는 그리스학문과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그예술작품의 내용은 그리스와 성경의 내용이 테마를 이루었고, 라틴어 성경이 각국 방언으로 번역되기 시작하였다.

르네상스 말기에는 프랑스의 볼테르(Francois Voltare 1694-1778), 룻소(J. Roussau 1712-1778), 디데로(Diderit), 영국의 로크(J. Lock)와 (S. Mill)과 같은 인문주의자들은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주장하였다. [Taylor; ibid, pp 25-26] 특히, 프랑스의 인문주의자들은 중세교회의 억압에 반발하여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인 성향을 극명하게 드러내었다. 이러한 인본주의적 사상은 유니테리언과 진화론자들에게로 이어졌다.

한편,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자연주의(naturalism)는 자연법칙을 신격화하였다. 이러한 범신론적 사상은 그후, 진화론의 한 축을 이루었다. 다윈의 스승이었던 페일리는 자연속의 신비한 조화는 창조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다윈은 그러한 조화는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선택의 결과로 해석하였다. 아사 그레이는 이러한 자연의 조화를 지적설계(interigent design)라 부르면서, 그 실체가 유신론자들에게는 창조주를, 무신론자들에게는 자연법칙을 의미하는 것으로 편리하게 설명하자고 다윈에게 제안하기도 하였다.


 

3. 유신진화론의 주장

유신진화론은 여러 학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 내용과 범위가 넓어 하나의 통일적 견해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테일러는 유신진화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은 창세기의 첫 11장을 모두 부인하고 신화, 풍유, 비유로 해석한다. 지적설계를 인정하지만 설계자를 사실상 신의 위치에 두기를 거부한다. 신은 단지 창조과정에만 관여하며, 자연법칙에 따른 여러 진화과정에 의해 생물종이 스스로 나타나도록 하는 일과 진화의 최종단계에 선택받은 유인원에게 인간의 요소를 부여하는 작업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이들은 창조주가 자연선택에 개입하는 증거로 도약진화설(puctuated equilibria)을 든다...이렇게 함으로써 화석기록에 나타나는 간격을 설명하려고 한다.” [Taylor; ibid, p 366]

유신진화론은 다양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공통적인 내용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2) 창조의 방법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하는 진화 메카니즘을 택하셨다.

(3) 진화과정에 따라 오늘의 우주, 지구, 생명이 탄생하였다. 따라서, 진화론의 골격인 우주기원에 대한 빅뱅설, 지형형성에 대한 동일과정설과 지질주상도를 수용한다.

(4) 생명체의 다양성은 하나님이 진화과정을 통하여 그렇게 만드신 것임을 보여 준다.

(5) 영장류에게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 넣어 아담과 같은 현생인류가 탄생하였다.

(6) 이러한 생명의 진화에는 오랜 세월이 소요되었다. 따라서, 6일창조설은 문자적인 24시간의 하루로 해석해서는 안 되며 지질연대로 이해해야 한다. (단, 간격론자들은 문자적 24시간설 지지)

(7)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존재한다. 처음 창조된 우주는 루시퍼가 이끄는 일부이 천사들이 반역하여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서 파괴되었다. 창세기 1장에 기록된 6일창조는 하나님의 재창조과정을 나타낸 것이다. (단, 일부의 날-연대주의자는 격변설에 반대)

(8) 화석형성은 처음의 창조세계가 파괴되면서 만들어졌다는 간격설과  6단계의 지질연대 때마다 차례로 형성되었다는 날-연대설로 양분되어 있다. 두 이론의 공통점은 화석, 석탄, 석유의 생성이 노아홍수때 생성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노아홍수를 국지적 홍수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9)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 진화를 진행시키시다가 불필요시에는 중단시키신다. 요즈음, 진화현상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진화를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진화과정으로 신종의 출현이 어려울 때에는 하나님이 창조사역에 직접 개입하신다(과정적 창조론).

(10) 창조사역은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님이 하신 일이요, 기독교의 핵심교리인 구원사역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므로, 기독교가 이 문제에 대해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된다. 특히, 골격가설에서는 성경의 핵심은 구원론이므로 창조과정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고 주장한다.

(11) 제목설, 재창조설, 기간문제와 같은 지엽적인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기독교내에 분파싸움을 낳을 우려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관용적으로 넘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적개념을 분명히 하여 기독교 공동의 적인 무신론적 자연주의(진화론)와 싸워야 한다. (단, 일부에서는 진화론 자체를 전폭 수용)

(12) 첫사람 아담은 흙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유인원(원숭이)에게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 넣어 창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창세기의 ‘생령이 된지라’(창2;7)라는 구절을 든다. 이 밖에, 가인이 말한 ‘나를 만나는 자’(창4;14), 노아홍수 직전에 살았던 ‘사람의 딸들’(창6;2-3)은 유인원의 후손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4. 유신진화론의 문제점

이러한 유신진화론의 주장은 외관상은 성경의 기록과 상충할 것 같지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성경의 원리와는 너무나 먼 이론임을 알게 된다.

첫째, 성경을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 말씀으로 믿지 않고(蓄字靈感說), 상징적이거나 상황적으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글자가 나타내는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상징적 또는 알레고리(풍유적)로 해석하거나 문장속에 흐르는 의미만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예컨데, 아담을 지은 흙은 어떤 선재하는 피조물을 상징하는 것이라든가, 번성하라는 뜻은 다른 생물종을 생산하라는 뜻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의 절대권위를 폄하하려는 이러한 자세는 구미의 고등비평자들에 의해 주도되어 온 것이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축자영감설에서 주장하는 문자적 해석을 틀린 것이라고 비판하는 자신들의 주장도 잘못된 것이 되는 자가당착의 논리에 빠지게 된다. 조직신학자인 에릭슨(M. J. Erickson)은 이렇게 지적한다. ”창세기의 몇 장을 다룰 때 유신진화론들이 사용하는 전략은 두 가지 중 하나이다. 하나는 창세기가 생물과 인간의 기원에 관하여 어떤 구체적인 사항도 말하고 있지 않다고 변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들을 다만 상징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둘째, 진화론적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말은 창세기 1장에 10회에 걸쳐 '종류대로” 만드셨다는 기록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풀, 채소(1;12), 모든 물고기들(1;21), 모든 새들(1;21),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모든 생물들(1;24-25)을 종류대로(min, after his kind) 만드셨다고 하셨다. 신약성서에도 육체는 다 같은 것이 아니며 사람, 짐승, 새, 물고기의 육체가 서로 다르다고 말한다(고전 15;39). 더구나, 창세기에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불어 넣으신 것으로 명백하게 기록하고 있다(창1;27, 2;7).

셋째, 모든 생물을 과정적으로 만드셨다면, 진화론적으로 사람은 유인원에서 진화했을 뿐 아니라 다시 다른 동물로 바뀔 것으로 믿어야 한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물이 보다 고차원적인 생물로 진화한다는 말이다. 이는 열역학 제2법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명백히 성경에 반하는 이론이다. 이러한 해석은 킹제임스번역(King James Version)에 ‘생령이 된지라'(창2;7b)를 'man became a living soul'이라고 번역한 내용을 근거로 유인원이 사람이 되었다(became)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러한 해석은 반성경적이다. 그 이유는 후술하고자 한다.

넷째, 창조의 기간이 길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창조기간이 너무 짧다고 비판한 그들의 주장과 모순논리에 빠지게 된다. 창조기간이 짧다는 주장을 비판한다면, 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로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모른다고 한다면 솔직한 대답이 될 것이다. 우리가 창조주의 전지전능성을 인정한다면, 창조의 기간은 사실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기간문제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창조기간을 길게 해석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섯째, 창조론이 기독교의 핵심교리가 아니며, 기독교가 싸워야 할 공동의 적은 진화사상이므로 주적개념을 분명히 하자는 데에는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는 오늘날 기독교(특히 청소년층)를 쇠락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 진화론적 교육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자기들의 주장이 진화론과 내용적으로 같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대한 심각성은 물론 시정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교회에서는 열심히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가르치지만, 학생들은 학교교육에서 배운 유물론적인 진화사상에 물들어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더 나아가, 많은 청소년들이 진화론과 대립하는 창세기의 기록에 회의를 품고 무신론적 사고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러한 잘못된 풍조에서 우리 자녀들에게 두 이론을 모두 가르침으로써 학생들이 한 이론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여섯째, 유신진화론은 성경과 과학의 분리주의(compartmentalism)의 입장을 견지한다. 유신진화론자들은 하나님이 처음에 시간, 공간, 물질을 창조하신 후 자연법칙에 따라 자연적으로 우주가 발전하도록 하셨으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우주가 탄생한 후 자연법칙에 따라 여러 생물종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특별한 경우에만 필요에 따라 초자연적으로 창조작업에 개입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개입을 최소화하려는 이러한 태도는 유신진화론이 기독교보다는 자연주의에 더 영향을 받은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연에 부여한 내재적인 힘‘은 범신론적(汎神論的)이며 이신론적(理神論的)인 것이다.

이러한 태도에 대해 라이트(Richard Wright)는 유신진화론자들을 이렇게 비판한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창세기의 초반부를 신화가 아니면 역사적인 창조나 자연계에 대한 정보가 결여된, 신학적 진리를 가르치기 위한 일련의 비유로 해석한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그 문제들을 아예 도외시함으로써 과학과 성경사이의 갈등을 피하려 하는 것이다.” 비록, 창세기의 기술은 과학적인 기술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속에는 창조의 목적과 순서 및 방식이 분명하게 선언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피조물간의 관계와 역할 및 속성이 잘 나타나 있다.

일곱째, 아담의 창조로 창조사역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진화과정을 통해 지금도 창조사역은 계속되고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창조의 질서는 시간이 갈수록 더 완벽해지는 쪽으로 진화해 가는 것이므로, 태초의 질서지금의 우주질서 보다도 더 불완전한 것이 되고 만다. 이는 타락이전의 완전했던 피조세계를 무시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한 피조세계의 회복도 불필요한 것이 되므로 비복음적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주계의 모든 반응은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여덟째, 인류의 조상 아담은 유인원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창조된 것이라면, 아담 이전의 영혼이 없었던 ‘사람동물들‘은 어떠한 존재이며, 아담의 후손과 ’사람동물들‘의 딸이 결혼하여 태어난 자손들은 과연 영혼이 있는 존재인지 아닌지 해석하기 어렵게 된다. 더구나,”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육체)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된지라”(창2;7)고 하셨는 데, 육체를 만드신 후 지질학적으로 수천만 년을 기다리셨다는 말이 된다.

 


*참조 1 : <신간> 예수와 다윈의 동행 - 신재식(호남신학대 신학과 교수) (2013. 7. 31.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13/07/31/0903000000AKR20130731125700005.HTML

진화론을 믿는 크리스천 과학자가 있다고? (2009. 6. 19. 오마이뉴스)
[서평] 우종학 박사의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59342

'창조의 방법으로 진화를 사용하셨다” (2015. 2. 10. 기독신문)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90276

'아담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해석 (2015. 2. 2. 뉴스앤죠이)
[서평] <아담의 진화: 성경은 인류 기원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는가?>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8385

 템플턴재단, 유신론적 진화론 보급에 동참 (2009. 3. 18. 크리스찬투데이)
'기독교신학계 악영향 우려한다” D.I. 평가

http://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14933§ion=sc73§ion2=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중에서

미디어위원회
2015-02-23

유신진화론자, 테야르 드 샤르댕의 사상 

(The ideas of Teilhard De Chardin)

G. J. Keane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1881~1955)‘ 신부는 진화론을 열렬히 받아들이고, 기독교를 진화론 안으로 집어넣으려고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881년 프랑스 오베르뉴(Auvergne)에서 태어났고, 18세에 가톨릭 예수회(Catholic Society of Jesus)에 들어갔다. 그 후 3년간 카이로에서 물리학과 화학을 배웠고, 그 후 4년은 영국 해스팅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911년에 예수회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그는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은 고생물학에 대한 갈증이 생겼고, 성인이 되어서는 인간의 진화론적 조상을 찾기 위해 중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1929년 소위 북경원인(Peking Man, 베이징원인)을 발굴하는데 참여했다. 하지만 그의 생애 동안 전통적인 가톨릭과 진화론의 과학적 체계를 완전히 조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또한 대놓고 그의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 할 수도 없었다.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Wikipedia.org)

샤르댕은 결국 신비주의자가 되었고, 그의 생각은 그가 죽은 이후에야 책으로 나왔다.

또한 샤르댕은 필트다운인 사기 사건(Piltdown hoax)에도 연루되어 있었다. 대영박물관의 직원에 의해서 사람의 두개골(human skull)에 오랑우탄(orang-utan)의 턱뼈를 붙이고, 화학 처리를 통해 오래 된 것처럼 보이게 하고, 인간의 이빨과 비슷한 것으로 채워 넣었던 위조 사건이 결국 발각되었던 것이다. 이 사기 사건에서 샤르댕이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에 관한 분석은 저명한 진화론자였던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의 한 글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1]

굴드의 분석에 의하면, 샤르댕도 분명히 사기임을 알고 있었으며, 그가 뉴욕에서 죽기 몇 년 전이었던, 1953년에 이 사기사건이 폭로되자 굉장히 당혹해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샤르댕의 사상

샤르댕의 신비주의(mysticism)에 대한 열정과 함께 진화론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는 전통적인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양립할 수 없는 견해를 제안하게 했다. 그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70)가 열린지 단지 30년도 되지 않은 1899년에 사제단에 가입했다. 그 공의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신조를 발표했었다 :

”유일하시고 진리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은, 천지의 창조주이시며, 전능하시고, 영원하시며, 무한하시고, 이해될 수 없으신, 무한히 지혜로우시며, 그의 뜻과 완전함 안에서, 홀로 하나이시고, 절대적으로 단순하시며, 변하지 않으시는 영적인 존재이십니다. 이 세상과는 본질적으로 구분되시고, 완전한 아름다움은 그 안에 그리고 그로부터 시작되며,  존재하거나 지각될 수 있는 모든 것 위에 계시는, 형언할 수 없는, 경배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선하시고, 전능하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은 그의 완전함을 스스로 늘려 가시거나 얻으시는 것이 아니라, 이를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서 입니다…영적세계와 물질세계, 즉 천사계와 지상계, 영과 육체를 가진 인류를 모두 무에서부터 창조하시고…”[2]

10년 간 사제로써 훈련을 받은 후에, 샤르댕은 1870년 선언됐던 가톨릭의 입장(진화론과 반대되는)에 대해서 친숙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도 불구하고, 샤르댕은 진화론이 사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교회가 창세기의 창조에 관한 말씀을 기록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비과학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교회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며, 세상에 뒤쳐져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신학도 현대적인 진화론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교회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3]



조작된 필트다운인의 두개골.

미술가에 의해서 그려졌던 필트다운인(Piltdown Man).

그러한 (진화론과 신학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그의 삶에 사명이 되어 버렸고, 결국 그의 완성품은 신비주의적 진화론적 신학(mystical evolutionary theology)이 되었다.

교회는 찰스 다윈의 시기까지 객관적인 창조론에 기초한 실체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우주는 실재하는 분명한 물질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샤르댕은 이것을 바꾸려고 했다! 그는 우주는 실재하는 물질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모든 것들은 '오메가(Omega)”라고 불리는 미래의 목적지로 진화되고 변화되어가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우주에 통일성을 부여함에 틀림없는 것은 오직 영적 혹은 신비적 영역이며,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통일하는 힘이라고 했다. 샤르댕에 따르면, 하나님은 어느 정도 스스로 진화 과정에 개입하고 계시고, 그리스도의 힘으로 모든 것을 '오메가”라는 목적지로 이끌고 가신다는 것이다.

그는 창세기의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창조주로써 분명하게 묘사되고 있음을 인정했다. 샤르댕은 이렇게 쓰고 있었다 :

”어떻게 하나님이 통일시키는 것일까? 하나님은 부분적으로 물질에 스며드심으로써, 원소들이 되고, 그리고 물질의 중심부의 지켜보기 좋은 곳에서, 우리가 오늘날 진화라고 부르는 것을 조절하고 이끌고 계시는 것이다. 우주 생명력의 원리이신(사람들 사이에서 사람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자신보다 아래 위치에 자리를 잡으시고(그 이후로 그 자리를 지키시며) 그가 스스로 투입된 곳을 순결하게 하시며, 일반적으로 의식을 증가시키기 위해 초월적인 생기를 불어넣으신다.”[4]

그의 견해는 가톨릭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가 죽은 후 출간된 책 ‘인간현상(Phonomenon of Man)’은 샤르댕의 소위 과학적 논문들이 들어있다. 그 논문에는 그의 진화론적 ‘팩트’가 서술되어 있고, 어려운 질문들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넘어가고 있다.


진화론

그가 이야기한 지구의 시작은 순전히 우연한 사고였다.

”수억 년 전, 일반적인 별의 진화 과정의 하나로서, 믿기 힘든 놀라운 사고의 결과로 (다른 별과의 충돌? 내부적인 대변동?) 안정된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의 일부가 태양의 표면에서 떨어져 나왔다. 다른 부분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은 채, 모항성(Mother star)으로부터 적당한 빛을 받을 수 있는 적절한 거리에서, 이 조각은 응축되고 회전을 하고,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구 모양과 궤도 안에 미래의 인류를 가지는 한 천체가 생겨났다.”[5]

”지구는 아마도 우연히 생겨났을 것이다. 하지만 진화의 가장 일반적인 법칙 중 하나를 따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욱 희귀한 일들이 뒤따라 일어났는데, 어떤 것들이 자연적으로 유도되어 곧바로 사용되고 재구성되도록 만들어졌다.”[6]

샤르댕에게는 최초 세포(first cell)의 기원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

”역사 이래로 단지 한 번 세포가 자연적으로 발생되었다면, 그것은 분명 원형질의 원래 구조가 지구의 일반 화학과 딱 한번 밀접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7]

세포의 복제에 대해서도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

”처음 나타난 복제(번식)는 자연의 한 간단한 과정으로 나타났다. 처음에는 행복한 사고였거나, 생존의 수단이었지만, 신속히 변형돼서, 발전과 정복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었다.”[8]

사람의 의식(consciousness)의 진화에 대해서 그는 ‘정신탄생(noogenesis)”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그는 말했다 :

”...정신탄생(noogenesis), 즉 마음이 만들어지고, 처음으로 한 살아있는 생물체가 본능적으로 자신을 그 거울을 통해 인식했을 때, 전 세계는 전진하기 시작했다.”[9]

줄리안 헉슬리(Julian Huxley)의 촌철살인의 표현을 빌자면, ”스스로의 자각이 가능해지면서 인간은 진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10]

샤르댕에게 진화는 너무도 확실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창조”라는 단어는 그의 책 목차에도 없었다. 그는 썼다 :

”진화론은 이론인가? 시스템인가? 혹은 가설인가? 진화론은 그 이상이다. 진화론은 모든 이론과 모든 가설과 모든 시스템들이 굴복해야만 하는, 일반적인 상황이며, 생각할 줄 알고 진리를 알고 싶어하는 이들은 이에 만족할 것이 틀림없다. 진화론은 모든 사실을 밝히는 빛이며, 모든 선들이 따라가야만 하는 곡선이다.”[11]


원죄

그렇다면 샤르댕의 관점에서 원죄(original sin)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는 아담, 하와, 사탄, 또는 원죄란 단어를 그의 책에 기록하지 않았다. 원죄가 없다면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필요가 없어진다. 그리고 구세주가 필요 없다면, 기독교 교회는 존재할 수 없다.

샤르댕이 죽은 후에, 그는 가톨릭과 성공회 소속 진화론자들에게 추종의 대상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의 아이디어가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었으며, 그의 가르침이 결국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의 혼란스러운 추정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객관적 진리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데에 방해가 되었으며, 신비주의는 항상 상식을 비상식으로 바꾸어 놓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샤르댕의 추정적 이론은 과학적이지 못했으며, 형이상학적이었다! 그의 이론의 타당성은 진화론이 역사적으로 사실인지 아닌지 여부에 달려 있으며, 오늘날 진화론의 신뢰도가 크게 줄어들면서, 그의 글들은 상상으로 가득한 적-그리스도적인 판타지가 되어버렸다. 그의 생애 동안 샤르댕은 그의 이론을 책으로 내는 것을 거부했으며, 그는 그의 상관에 순종적이었다는 것 역시 공정하게 말해져야만 한다.

(진화론이 사실인 줄로만 믿고, 기독교와 진화론을 조화시키려했던, 그래서 성경을 훼손하고 기독교 신앙을 왜곡시켰던, 샤르댕이 걸었던 길을 뒤따라가고 있는 유신진화론자들을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Footnote
As one Catholic theologian has pointed out: 'Teilhard’s fundamental error was to seek for something more elementary than being as the basis of his metaphysics. He thought he had found it in the concept of unification, but he was mistaken … Created being is composite and oriented towards an end distinct from itself, not in so far as it is being, but in so far as it is created.”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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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ther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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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Gould, S.J., The Piltdown Conspiracy, Natural History magazine 89(8):8–28, August 1980,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2. Vatican Council 1, Enchiridion Symbolorum, Denzinger 18–20, 1782–3.
3. Refer Teilhard’s letter to Abbe Breuil (12 July, 1941): ' … isn’t this just the time for a Catholic to speak openly and as a Christian on lines determined by the best scientific thought of today? (Works so orientated are coming out from every quarter at this very moment!)”, p. 231, Letters From A Traveller (a collection of letters by Teilhard 1923–1955), Fontana Books, William Collins Sons & Co. Ltd, London, 1967.
4. Teilhard de Chardin, P., The Phenomenon of Man, p. 322, William Collins Sons & Co. Ltd, London, 1980.
5. Ref. 4 p. 73.
6. Ref. 4 p. 80.
7. Ref. 4 p. 162.
8. Ref. 4 p. 115.
9. Ref. 4 p. 201.
10. Ref. 4 p. 243.
11. Ref. 4 p. 241.
12. Duggan, G.H., SM, Teilhardism and the Faith, p. 33, The Merrier Press, 4 Bridge St, Cork,1968.


번역 - Jay Lee

링크 - http://creation.com/teilhard-de-chardin

출처 - Creation 8(2):31–33, March 1986.

미디어위원회
2015-01-23

다윈주의에 대한 반란 

(The revolt against Darwinism)

by John G. Hartnett Ph.D.


      당신은 우주의 기원 이론인 빅뱅이론(big bang theory)에 대해서 과학자들이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2004년에 33명의 정상급 과학자들이 뉴사이언스(New Science) 지에 유료 광고를 게재했는데[1], ‘과학계에 보내는 공개서한(An Open Letter to the Scientific Community)’이라는 제목으로 ”빅뱅이론은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는 요지의 선언이었다. (‘Big bang theory busted by 33 top scientists)



‘33명의 정상급 과학자에게 한 방 얻어맞은 빅뱅이론’이라는 제목으로 www.rense.com에 실렸던 기사(2004. 5. 27).

이 선언에 동의한—즉, 우주의 기원에 관한 빅뱅이론에 반대한—과학자들의 명단은 이곳을 클릭하면 볼 수 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선언에 동참했다. 선언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오직 이 한 가지 사실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빅뱅이론은 파산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다윈주의에 대한 새로운 반란

생물학적 진화론에 대해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다윈주의에 대한 과학적 이의’(Scientific Dissent from Darwinism; www.dissentfromdarwin.org)라는 이름의 웹사이트에는 ”생명체에 존재하는 유전정보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으로부터 관측되는 작은 변화들로부터 외삽하여, 모든 복잡한 생명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약 900명 정도의 과학자들 명단을 게재하고 있다.
    

홈페이지(http://www.dissentfromdarwin.org) 시작 화면 

시작 화면 왼쪽의 글을 번역하면,

우리는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 복잡한 생명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 다윈주의 이론의 증거라고 하는 것들에 대한 상세한 조사를 서둘러야 한다.       

내가 근무했던 대학과 내가 알고 있는 대학들에서, 신다윈주의(neo-Darwinism)는 사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진화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과학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선언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어떠한 과학적 견해 또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 또 그들의 신앙(信仰)이나 신조(信條)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이 모두 다 성경적 창조론자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늪지의 원시스프'에서 인간이 되었다는 개념과, 모든 과정들이 저절로 되었다는 진화 개념, 자주 일반 진화론이라 불리는 개념, 특히 신다윈주의 메커니즘에 대한 반대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다윈주의(Darwinism)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주장했던 ”모든 생명체는 한 단세포 조상(후에 주장하기를 일종의 ‘따뜻한 연못’으로부터 우연히 출현했다는 단세포)으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한 변이들이 자연선택을 통하여) 자연주의적으로 유래했다”는 가설이다. 그 후로 메커니즘이 더 세련되게 만들어져 신다윈주의가 출현했다. 무작위적인 돌연변이(mutations, 다윈이 몰랐던 DNA 복사 오류)가 변이의 일차적 과정이며, 그 돌연변이에 대해 자연선택이 작동한다. 그러므로 돌연변이는 모든 새로운 것들, 즉 미생물이 인간이 되기 위하여 출현해야 하는 형질정보(functional information)를 설명하는 유일하고 궁극적인 수단일 수밖에 없다. 

또한 다윈의 진화론은 장구한 시간(deep time)을 필요로 한다. 진화론은 반대하지만 장구한 시간은 인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크리스천임을 자처하는 제임스 투어(James Tour) 박사는 뛰어난 화학자이며, 금년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 50인에 선정되었다.[2] 그는 창세기에 기록된 6일 창조를 믿지 않는다. 그는 오래된 연대와 오래된 지구를 믿으며, 연대측정 방법을 수용한다. 제임스 투어는 말하기를, (제임스 투어의 발언 취지를 필자의 말로 표현한 것임) 하나님이 넷째 날에 태양을 창조하셨다면, 첫 3일을 측정하는데 필요한 태양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통상적인 6일을 말씀하셨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임스 투어는 창세기 1장에 대해 예수님이 믿고 인용하셨던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투어는 인간의 관점으로 성경 말씀을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경우 유감스러운 것은, 태양이 있기 전에도 저녁과 아침이 있었다는 아주 단순하고 실질적인 사실 때문이다. 사실 성경 본문의 진실성에 대한 더 많은 증거들이 있다. (태양이 넷째 날까지 창조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창세기 1장의 날들은 하루가 될 수 있는가?(see How could the days of Genesis 1 be literal if the Sun wasn’t created until the fourth day?)를 참조하라). 

투어는 인간의 관점으로 성경 말씀을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진화론이 생명체의 출현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으며, 생명체의 복잡성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그가 확인시켜주었다는 것이다.[2]  

”학술원 회원들과 노벨상 수상자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과학계의 비밀을 알아보기로 하자.” 제임스 투어는 말했다. 내가 그들과 공개석상이 아닌, 그들하고만 있을 때. 나는 ”당신은 이 모든 것들이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알고 있소?”라고 물어보곤 한다(내가 말하는 것을 상대방이 먼저 말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투어가 듣는 대답은 항상 ”아니오”라는 것이었다.

”내가 (이러한 사정을 아는) 합성화학자들과 같이 있을 때, 그들은 언제나 ‘아~아뇨’라고 대답했다.” 투어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예’라고 말하는 것이 두려울 경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나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말로 모르기 때문이었다.”   

만약 진화론이 생명체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면, 생명체는 어떻게 시작되었다는 것인가? ”가장 논리적인 대답은 단순하다”는 투어의 말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나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이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고 믿는다”고 투어는 Houston Chronicle 지에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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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Lerner, E., Bucking the big bang, New Scientist 182(2448):20, 2004.
2.Haley, G., Renowned Chemist Says Evolutionists Do Not Understand the Origin of Life, christiannews.net, 13 October 2014.
3.Veritas Forum, Nanotech and Jesus Christ-James Tour at Georgia Tech, watch from 49:00.


번역 - 홍기범

링크 - http://creation.com/revolt-against-darwinism 

출처 - CMI, 2014. 12. 11.

미디어위원회
2015-01-19

죽은 용 죽이기 

: 붕괴되고 있는 진화론의 계속되는 변신 

(Slaying yesterday’s dragons)

Robert Carter 


       하나의 과학으로서 다윈주의(Darwinism)는 진화하고 있다. 즉, 최초의 이론으로부터 계속 변해왔으며, 또한 계속 변해가고 있다. 지나간 이론을 논박하는 헛수고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진화론의 최근 동향에 주목해야 한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모든 생물 종은 단 하나의 공통조상(single common ancestor)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가정하면서, 변화를 유발하는 메커니즘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라 주장했다.[1] 그 때가 1859년이었다. 후에 찰스 다윈은 최초의 가설에서 후퇴하여, 다른 형태의 선택(예를 들어, 성선택[2])들이 진화에 관련될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설상가상으로 다윈은 유전학(genetics)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환경이 (후손에게 유전되는) 생체기관의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라마르크(Lamarckian)의 이론을 지지하고 주장했다.[3] 라마르크의 이론은 1862년에 동시대인인 그레고르 멘델(Gregor Mendel)이 발표한 유전법칙과 모순됐지만[4], 진화론은 19세기 말까지 여전히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포함하고 있었다.  

진화론에 또 다른 혁명이 일어날까? 아마 그럴 것이며, 이미 혁명의 도래를 알리는 소문이 들리고 있다.  

20세기 초에 다윈주의자들이 마침내 유전학을 수용했을 때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이 변화는 다윈의 후기 저서들을 통째로 폐기하는 것으로서, 결과적으로 오늘날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이 배우고 있는 ‘현대종합이론(Modern Synthesis of evolution)’, 유전학(genetics), 집단유전학(population genetics)으로 귀결되었다. 이 ‘유전자-중심’ 이론은 집단(populations)과 유전자 풀(gene pools)을 다루며, 개별 유전자가 아니라 개체(복잡한 형질의 조합)가 선택의 단위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론의 주창자들은 수학적 어려움에 봉착했다.[5] 그러나 유전체(genome)의 대부분이 ‘쓰레기 DNA(junk DNA)’라는 가설을 추가함으로써,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였다.[6]    

이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또 다시 변하고 있다. 유전학과 세포 내부 작동에 대한 더 많은 사실들을 밝혀지면서, 신다윈주의(neo-Darwinism, 현대종합이론의 또 다른 이름)는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진화론자들은 인간 유전체와 같은 엄청나게 복잡한 시스템을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생명체의 자연주의적 기원은 물리학, 화학, 유전학, 확률, 정보이론의 법칙들을 대담하게 부인하는 것이다. 인간 DNA의 대부분이 쓰레기(junk)라는 이론은 이제는 더 이상 지지받지 못한다. 수십 년 전에 드러났던 수학적 어려움은 생명체가 더욱더 복잡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더욱 악화되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이제 무엇을 하게 될까?

유명한 과학철학자인 토마스 쿤(Thomas Kuhn ①)은 과학적 혁명은 수 세대마다 한 번 씩 일어난다고 말한다. 어떤 새로운 이론이 정상에 오르면, 그 이론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다음 세대는 그 이론과 함께 살아가면서, 그 이론을 (사물이 작동하는) 기본 전제로 수용한다. 그렇지만 그 이론의 허점을 충분히 인식하게 되면[7], 특히 기존의 이론이 맞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 젊은 과학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이론을 통째로 뒤집는 일이 발생한다. 예를 들면, 연소(燃燒)에 대한 플로지스톤 이론(phlogiston theory)이 학계를 지배했지만, 1700년대 말에 몇 번의 실험에 의해 플로지스톤 이론은 폐기되었다. 또 다른 혁명이 1960년대에 일어났는데, 판구조론(plate tectonics)이 정적인 대륙지괴(static continental block)에 기초한 지질학을 대체해버렸다. 과학 이론은 대체로 상당한 관성(慣性)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번 지배적 패러다임이 되어버렸다면, 그것을 바꾸는데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바뀔 수 있다. 

진화론에 또 다른 혁명이 일어날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며, 이미 혁명의 도래를 알리는 소문이 들리고 있다. 이 말은 많은 과학자들이 성경적 창조론자가 될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과학계의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의 작동에 대한 주류 이론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과학자들이 이교적인 ‘가이아 이론(Gaia hypothesis ②)’을 주창하는가 하면[8], 어떤 사람들은 끊임없이 진화를 추진해나가는 물질이 내재해있다고 추정하는 애매모호한 '자기조립(self-organizing)'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9] 의심할 여지없이 토마스 쿤적인 혁명(Kuhnian revolution)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10] 그러나 새로운 혁명의 제안자와 활동가들은 수학과 집단유전학을 버리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다윈의 진화론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고, 문제는 신다윈주의 즉, 현대종합이론에 의해서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철학적으로 더욱 위험한 이론으로 선회하고 있다.   

※ 역자 주: ① 토마스 쿤(Thomas Kuhn): 과학 이론은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한 과학철학자이다. http://ko.wikipedia.org/wiki/토마스_쿤
② 가이아(Gaea): 그리스 신화의 대지의 여신을 말한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정의한 이론. http://ko.wikipedia.org/wiki/가이아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죽은 용을 죽이는데(slaying yesterday’s dragon) 정신을 빼앗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과학계의 새로운 경향에 대해 반드시 다른 형태의 방법으로 반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이런 새로운 이론을 접했을 때, 설득력 있는 무기로 집단유전학을 사용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무기물로부터 생명이 우연히 시작되었다는 이론은 물리학과 화학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모순된다. 고도로 정교한 생물체 구조들이 저절로 형성되도록 구동하는 고유한 성질에 의해서 우연히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실험과학을 통하여 발견되는 것들과 모순된다. 이것은 마치 우리 창조론자들이 경험과학을 고수하는데 반해, 진화론자들은 ‘간격의 다윈(Darwin of the Gaps)’ 진화 모델을 고수하는 것과 같으며, 이것은 모순되며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경험과학을 포기하고 철학적 가설들로 가득 찬 마음을 가진 과학광(科學狂; science buff)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진화 이론이 그 기본 원리를 교묘히 바꾸더라도, 실제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그렇게 많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진화론은 맹렬한 영적 전투를 감추기 위한 위장 연막(煙幕)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진화의 방법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으며, 진화론자들은 언제라도 진화의 메커니즘에 대한 그들의 신념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으며, 바뀐 신념을 이용하여 과학은 자기 교정(self-correcting)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떻게든 자연이 스스로 하지 않았다면,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진화론자들은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자신들의 이론을 기어코 방어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다윈주의로부터의 이탈이 아직 다수의 견해는 아니지만, 과학계 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우리가 앞으로 대면하게 될 큰 질문은 공립학교에 다니고 있는 새로운 세대에게 복음을 소개하려고 할 때 맞닥뜨리는 것과 비슷하다. 경험과학을 버리고 철학적 가설들로 가득 찬 마음을 가진 과학광(科學狂)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자연이 스스로 창조 능력을 가졌다는 신-이교도적 형이상학적 패러다임으로는 합리적인 과학을 수행할 수 없으며, 실제로는 심오한 철학적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라는 것이다. 과거 수십 년에 걸쳐 개발한 창조론자의 논거들은 적절하고 효과적이다. Creation Answers Book, creation.com, Journal of Creation, Creation Magazine 등과 같은 자료들은 여전히 변증을 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정보원(情報源; resources)들이다. 진실로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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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See creation.com/natural-selection-questions-and-answers.
2.Catchpoole, D., creation.com/peacock-poppycock, March 2007.
3.Carter, R., creation.com/epigenetics-and-darwin, 1 March 2011.
4.Lester, L., creation.com/genetics-no-friend-of-evolution, March 1998.
5.Batten, D., creation.com/haldanes-dilemma-has-not-been-solved, April 2005.

6.Carter, R., creation.com/junk-dna-slow-death, 9 June 2009.
7.This term refers to the holding of conflicting beliefs, and the tension/discomfort this causes.
8.Wieland, C., creation.com/pagan-panic, December 1992.
9.Depew, D. and Weber, B., The fate of Darwinism: evolution after the modern synthesis, Biological Theory 6(1):89-102, 2011.
10. Kulikovsky, A., creation.com/sloppy-lazy-and-dishonestDecember 2007.
11. Gitt, W., creation.com/information-science-and-biology, August 1996. 


번역 - 홍기범

링크 - http://creation.com/slaying-dragon 

출처 - Creation 35(3):12–14, July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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