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설계

만들어진 사물들

만들어진 사물들 (Things That Are Made) 

: 당신은 창조의 과학적 증거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인가?


     ”창조의 증거는 있나요? 창조는 당신이 믿는 그 무엇이 아닌가요? 어떻게 당신은 창조의 과학적인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진화론자들은 창조의 증거가 관찰되지 않기 때문에 과학에 속하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심지어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창조에 대한 긍정적인 과학적 증거가 진정으로 발견될 것인가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창조임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사상(事象, events)의 정상적인 경로에서 자연스럽고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가끔씩 당신은 모양이 재미있는 조약돌들을 집어 든다. 어떤 돌멩이 모양은 신발이나 인형을 연상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이것들이 언뜻 보아 어떤 디자인의 양상을 띠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실은 시간과 우연, 그리고 풍화작용과 부식작용으로 생긴 모양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산책하고 있던 중에 조약돌 가운데서 인디언의 돌화살촉을 하나 발견했다고 상상해 보자. 비록 인디언의 공예기술에 관해 사전지식이 없는 당신이지만, 당장에 이 물건의 변별성쯤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시간과 우연, 그리고 부식으로 생긴 조약돌들의 모양은 윤곽이 둥글게 무뎌져 있어서 전반적인 외양은 취약한 결(lines)과 함유된 광물질의 편차(偏差), 그리고 때로는 암석의 '조직”에 따라서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돌화살촉의 예리한 각은 어떤 광물질을 거슬려 골고루 깎아 세운 날인가 하면, 또 어떤 날의 취약한 부위는 마모되지도 않았고, 갈아낸 모서리 날은 암석 '조직”을 좇은 것이 있는가하면 거슬려 있는 것도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나 우연, 그리고 부식으로는 그런 패턴이 결코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시간, 우연, 그리고 부식은 실질적으로는 패턴의 흔적을 없애고, 그 자리에 각종 광물질 본래의 부식 저항력이나 암석 안에 있는 취약한 결에 대한 저항력을 반영하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돌화살촉에서 관찰되는 저민 자국이나 무늬는 모종의 패턴을 반영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일 뿐만 아니라, 그 패턴은 부식의 결과와 광물질 안에 내재하는 잠재력의 결과로 생길 수 있는 것을 훨씬 초월하는 모종의 계획에 따라 대리인의 힘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명백히 드러난다. 당신은 창조자나 창조행위를 보지 않고서도 그 창조의 증거를 발견하고 어렵지 않게 창조자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경우의 예에서 모양과 형틀을 만드는 물질과 새로운 패턴과 장치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만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다시 말해서 흔히 우리가 인간의 손재주로 제작한 종류의 창조물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창조 행위의 증거는 실제로 관찰된  관계로부터 도출되는 논리적 추론  위에 실질적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이 관찰에서 연역된 과학적인 추론은 심지어 창조 대행인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을 때에도 다른 대상물에까지 확대 적용될 수 있다. 천문학자나 정부 공무원들은 외계에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지적생명체의 탐색에 수백만 달러를 허비한 결과로서, 자연발생적인 신호와 의도적으로 발신된 신호와의 사이에 차이점을 식별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정상적으로 두 종류의 대상물을 구별한다. 즉, 창조된 대상물과 시간, 우연 그리고 다양한 자연과정의 결과로 생긴 대상물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차이점은 대상물 자체의 '디자인”도 아닐뿐더러, 디자인의 필연적인 복잡성도 아니다. 그것은 디자인의 종류(kind of design) 이다.


예컨대, 눈(雪)송이는 믿을 수 없을 만치 아름다운 디자인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양 또한 복잡하다. 그러나 눈송이 하나하나는 0oC의 상태 하에서 물의 분자가 ”자연적으로 무엇을 행함으로” 생긴 결과다. 눈송이 패턴을 본 딴 모자이크 타일의 디자인은 눈송이의 그것보다 더 이상의 대단한 디자인을 보여주지 못함은 물론, 모자이크 타일의 복잡성 또한 눈송이의 복잡성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모자이크 타일에서 창조된 디자인을 인식한다. 왜일까? 우리는 그 채색 돌멩이들이 스스로는 그와 같은 패턴으로 배열되고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패턴은 반드시 외부로부터 온 것이다. 그리고 그 타일들을 적절하게 배열을 유지하기 위해 뭔가가 작용한 것이다.


뿐만 아리라 눈송이같이 자연발생 체계 내에서는 전체의 성질이 철저하게 부분의 성질에서 연유되고 있다. 창조된 체계에서는 외부로부터 오는 조직의 성질이 각 부분에 새로운 성질들을 부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성질은 체계의 부분 부분이 스스로 개발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개발할 수도 없다. 요컨대, 시간, 우연, 그리고 자연과정이 만들어낸 체계의 질서는 '내부에서의 결정”이다. 이에 비하여 창조는 ”외부에서 결정한” 질서를 가진 체계를 생산하고 있다.


과학적 관찰과 논리적 연역에 근거하여 창조된 대상물을 변별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생명 체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하여 보자.

바이러스를 위시하여 생명체계의 두 가지 기본적인 '성분”은 DNA와 단백질이다. DNA는 유전인자이고, 단백질은 구조와 기능의 기본 분자이다.


비록 당신이 DNA에 관한 나의 프로그램 학습 교본을 읽고 그 내용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DNA와 단백질은 기본적으로 단순한 분자들로서 각 분자는 중복된 단위들 중의 한 고리(chain) 또는 폴리머(重合體)이다.1 DNA는 일련의 염기, 즉 뉴클레오티드이다. 그리고 단백질은 일련의 아미노산이다. 모든 생명 체계에서 DNA 안에 있는 염기의 유전 배열(sequence)은 각 종의 단백질을 특징짓는 아미노산의 독특한 배열의 생산을 지시한다.


만약에 DNA와 단백질과의 사이에 개재하는 관계가 시간, 우연 그리고 자연적인 과정에 의한 결과라면, 그 때에는 DNA와 단백질 사이에는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어떤 종류의 성질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런 성질이 있는가? 그렇다. 그런 성질이 당연히 있는 것이다. 베이킹 소다와 식초를 섞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산과 염기가 반응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아미노산과 DNA의 염기가 반응하고 있음도 안다. 당-산(sugar-acid), 아민 인산(amine phosphoric acid), 그리고 여타의 전반적인 자연적 화학반응들은 DNA와 단백질의 무작위적인 파편들 가운데서도 역시 일어난다.


그렇다면 DNA와 단백질 파편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자연적 화학반응의 경향들은, 시간, 우연, 그리고 화학법칙들이 이러한 분자들의 혼합물로부터 궁극적으로 생명(life)을 생산해낼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는가? 어림도 없다. 실상은 그 반대다. 문제는 이 모든 자연적인 화학반응들은 생명 체계에 관한 한 잘못된 반응(wrong reaction)이다. DNA와 단백질은 시간, 우연, 그리고 그 자체의 화학적인 성질에 맡겨두면 생명 체계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반응하며, 생명의 기초 원리로 가정되는 어떠한 진화도 방해할 것이다. 사실상 DNA와 단백질 간의 자연적인 교차 연결은 나이를 먹는 기간동안 유전인자의 비활성화에 얼마간 이바지하고, 염기-아미노산 반응은 죽어가는 세포 속에 일어나는 대대적인 화학적 파멸의 일부분이 된다.


그러나 살아있는 세포 속에 있는 DNA는 모종의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단백질 분자들의 생산을 지시하는 유전암호를 사용하고 있는데, 어떤 화학자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한 번에 3 기(基)씩 묶여진 염기 그룹들이 특정 아미노산 분자들의 직선배열을 명시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그 특정 아미노산 분자들의 각 분자마다 소속 R 그룹에 의해서 식별된다. 20 종의 R 그룹은 광범하게 다양한바 - 산, 염기, 가용성 지방, 가용성 물, 수소의 단일 원자, 긴 고리, 고리가 없는 것, 단일 고리, 또는 이중 고리 등등이다. 그런데 어떤 자연적인 화학적 성질 같은 것이 있어서 일련의 3기 한 벌 염기 그룹으로 하여금 일련의 아미노산 R 그룹을 직선 배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3기 한 벌 염기와 R 그룹과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그 어떤 화학적인 근거도 없기 때문에, 시간과 우연이 그들을 연결할 수 없는 것은, 한 쌍의 주사위를 굴려서 13의 수를 나오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돌화살촉이 창조된 것임을 알고 있으며, 또 그것은 시간, 우연 그리고 부식의 결과로 생긴 조약돌의 형태와는 구별된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그런 다음, 비슷한 방법으로 DNA와 단백질과의 사이에서 관찰되는 종류의 관계로부터 도출되는 논리적 추론은 지구상의 생명체는 창조된 것이라는 직접적이며 긍정적인 증거를 제공해준다.


이때, 창조의 증거는 우리가 DNA와 단백질과의 관계에 관해 알고 있고, 또 관찰할 수 있는 것에 근거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때때로 창조론자들은 지식의 공백을 하나님을 이용하여 메운다는 비난을 받는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실상, 광물질의 성질과 부식과정의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조각품을 시간과 부식의 제품으로부터 구별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산과 염기 그리고 생화학 과정의 성질에 관해서 알고 있기 때문에, 최초의 생명체가 특별한 창조의 제품임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나는 화학적 진화론에 관해서 많은 저서를 남긴 유명한 생화학자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는 나의 창조의 주장이 DNA와 단백질에 관해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하자, 거침없이 그는 그가 진화론을 지지하는 이유는 금후 50년 내에 새롭게 발견될 것으로 믿어지는 것에 근거한다고 언급했다. 


생명의 기원을 말하는 동안, 그는 DNA와 단백질과의 사이에 생명 연계의 기원에 관한 이론 따위는 없었다고 거침없이 말했었다. 그리고 질문 전 후에서 극적으로 숨을 고르면서, 그는 이와 같이 질문을 했다. ”[비-생명체와 생명체 사이에서의] 이행(移行)은 화학적인 것인가 아니면 철학적인 것인가?” 즉, 생명 체계는 자연발생적인 화학반응의 과정에서 파생될 수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화학물질들을 초월하여 유기조직을 위한 계획을 찾아봐야만 하는가? 현재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증거들은 확실히 우리들에게 화학물질들을 초월하여 창조의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얼마쯤은 역설적이지만, 일단 생명 체계가 창조되고 생명 유지에서 필요한 DNA-단백질 관계가 설정되고 나면, 생명체는 그 어떤 화학법칙도 위반하지 않으면서 이해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방법으로 그 종류대로 번성하기를 계속한다. DNA가 의미 있는 것이라고 전제하면, 그리고 에너지와 원재료의 공급이 조정되었다고 전제한다면, 또한 ”해석하는” 분자들 (메신저, 이동 RNA, 리보솜, 그리고 효소를 활성화하는 특수 아미노산 등등을 포함하여2)의 (무작위가 아닌)조합이 조정된다고 전제한다면, 생명체의 세포는 DNA를 사용하여 계속해서 단백질을 ”만들 것이며,” 그리고 순서에 따라서 다른 세포의 활동과 성장을, 심지어 재생산을 위한 DNA의 복사까지도 규제할 것이다. 이 메커니즘은 차라리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들은 생명 체계의 기원(origin)이 아닌 생명 체계의 작동(operation)을 설명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생명체의 세포는 텔레비전 세트와 같다고 하겠다. 텔레비전 세트의 작동은 그 어떤 물리학 법칙이나 화학 법칙도 위반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법칙들은 그 TV 세트의 기원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관련된 우연이나 또는 시간이 어떤 것이든 관계없이, TV 세트는 ”자연의 힘에” 내맡겨진 동, 인 그리고 유리에 작용하는 Ohm의 법칙이나 Coulomb의 법칙과 같은 법칙들의 단순한 결과가 아니다. 여기서 다시 관찰된 디자인의 종류는 의도적이며 목적적인 창조 행위를 가리킨다. 여기서 창조 행위라 함은 물질에게  텔레비전 화상송출의 능력을 부여하여 주는 행위를 말함인데, 그것은 물질 스스로의 힘으로는 개발되지도 않고 개발될 수도 없는 것이다.


또 다른 한 예를 고찰해보자. 알루미늄은 날 수 있을까? 과연 그것에 고무와 가솔린을 섞으면 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물론 불가능하다 ─ 당신이 이 모든 성분을 비행기를 제작하는 방법으로 옳게 배치하기 전에는 불가능 한 것이다. 그런데 비행기는 무엇이 날 수 있게 만드는가? 날개인가? 엔진인가? 조종사인가? 이 모든 것 중 어느 하나도 스스로는 날 수 없다. 사실상 (하지만 당신의 다음 항공 여행 시에는 이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항공기는 하나의 비-비행 부품들의 집합체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항공기의 비행 자질은 알루미늄이나, 고무 또는 가솔린의 성질에서 연유되지도 않았으며, 또 그 성질로 변형되지도 않았다. 이러한 물체들의 성질이 사용은 되었으나, 비행 능력은 이들 전체의 유기적 조직의 성질일 따름이다.


생명체의 체계도 또한 이런 것이다. 하나의 살아있는 세포는 살아있지 않은 분자들의 협동체다. 이 분자들이 가지고 있는 성장, 반응 그리고 재생산의 성질들은 그 체계에 포함된 분자들의 고유 성질로부터 연유된 것이 아니고, 그들의 유기적 조직의 특성으로부터 연유된 것이다. 이때 관찰되는 유기적 조직은 눈송이에서 관찰되든가 해변의 조약돌에서 관찰되는 조직의 종류가 아니다. 그것은 의도된 창조의 산물에서만 관찰되는 종류의 조직이다.


그런 뜻에서 창조주의는 생명주의와 기계주의의 고전적인 양극단 사이에 위치한다 하겠다.3 진화론자들을 포함하여 기계주의자들은 생명 체계는 단순히 복잡한 물질의 한 형태라고 하고, 물리 화학의 제 법칙들과 생명 체계의 작동에 중요한 분자들의 성질이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충분조건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주의자는 생기설(vitalism)과 기계론의 양 극단 사이에 위치한다.3 진화론자를 포함하여 기계론자는 생명 체계는 단순히 복잡한 물질의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고, 물리 화학의 법칙들과 생명 체계의 작동에 중요한 분자의 성질이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충분하다고 한다.


극단의 다른 한 쪽의 위치하는 생기론자(vitalist)는 '생명”이란 물질과는 전적으로 다른 그 무엇이라고 주장하면서, '활력 (vital force)'의 물질 안에로의 침입이 너무도 신비롭기 때문에 생명체계의 기원은 물론 그 작동까지도 도저히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창조주의자는 생명 체계는 질서정연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작동하고 있어서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 하나님의 신실한 배려가 잘 반영되고 있다고 인식하면서, 질서와 조직의 생물학적 표준이 물질의 성질에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에서만 발생한다고 인식한다. 이러한 생물학적 질서는 과학적으로 이해되고 설명될 수 있으나, 화학 법칙이나 물질의 성질에서 연유되지도 않았으며 축소되지도 않는다. 대신에, 작동하는 메커니즘과 조직의 패턴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생명의 기원이 특별한 창조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리켜준다.


이에 관해서는 바울이 로마서 1:20에서 하신 말씀만큼 적절한 설명은 없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 그리도 명백하게 피조물은 창조주를 증언하고 있기에 바울은 실제로 이렇게 부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로마서 1:20).


그렇다면, 증거가 그토록 명백한데 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는가? 바울은 사람들이 진리를 막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로마서 1:18).


과학대학원 학생들과 대학 교수들에게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 창조에 관한 나의 생물학적 세부 이론에 대해 어느 누구도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떤 분자생물학자 한 사람이 나의 결론을 받아드릴 수 없다고 하면서, 누군가(Anyone)가 '저 밖”에서 생명을 창조하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문제는 마음의 문제도 과학적인 증거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 심정(heart)의 문제다. 우리한테는 나중에 더할 데 없이 밝혀질 것으로 보이는 증거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선물로 주는 신앙이 필요한 것이다.


창조된 질서 그 자체로서도 우리들 속에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충분하다. 그것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시편 19:1). 이 얼마나 경이로운 ”침묵의 설교”인가! 얼마나 놀라운 신앙에의 부르심인가! 창조의 증거들은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있다. 창조주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시간은 참으로 고귀한 시간이다!



Reference

1Parker, Gary E., W. A. Reynolds, and Rex Reynolds, 1975, DNA: The Key To Life,2nd Ed., Programmed Biology Series, Educational Methods, Inc., Chicago.

2Parker, Gary E., 1970, 'The Origin of Life on Earth,' Creation Research Society Quarterly, Vol. 7, No. 2, 97-103.

3Parker, Gary E. & T.R. Mertens, 1973, Life’s Basis: Biomolecules, Self-Teaching Guides, John Wiley & Sons, New York.

* Dr. Parker Is Chairman of Life Sciences at Christian Heritage College and Research Associate with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in San Diego, California.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062.htm ,

출처 - ICR, Impact No. 62, August 1978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05

참고 : 1405|1489|1629|1891|2316|2391|2617|2696|3287|3293|3358|3585|3622|3724|3733|3951|3993|3858|4068|4149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3

대표전화 02-419-6465  /  팩스 02-451-0130  /  desk@creation.kr

고유번호 : 219-82-00916             Copyright ⓒ 한국창조과학회

상호명 : (주)창조과학미디어  /  대표자 : 박영민

사업자번호 : 120-87-70892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18-서울중구-0764 호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5

대표전화 : 02-419-6484

개인정보책임자 : 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