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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설계

자극에 대한 반응을 통하여 알아본 식물의 신비와 하나님의 창조섭리

정병갑, 장은성
2005-04-18

자극에 대한 반응을 통하여 알아본 

식물의 신비와 하나님의 창조섭리 

(Perspectives of God's Creation Providence and 

Investigation of Mysterious Responsiveness of Plants to Stimulation)


요 약

식물은 동물보다 훨씬 민감하게 자극에 대하여 반응할 뿐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사람과 교감을 나누기도 한다.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을 구분하기도 하며 집안에 침입한 도둑을 알아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좋은 음악을 들으면 춤을 추기도 하고 병해충에 저항하는 능력이 강해지기도 한다. 식물이 나누는 사랑은 너무 아름답고 은근하고 아기자기해서 식물의 사랑을 닮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또한 자신의 신체 일부가 잘려지거나 상처를 입게되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고, 기분이 좋으면 기뻐서 환호성을 지른다. 이처럼 식물이 나타내는 다양한 반응을 통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정교한 생명체를 만드셨는지 인식하고 식물이 보여주는 사랑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아 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Key Words :  자극, 식물의 반응, 좋은 음악, 식물의 사랑, 창조섭리


I.  식물도 생각할 수 있을까?

식물도 생각할 수 있을까? 정원에 탐스럽게 피어난 아름다운 장미꽃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식물에게 음악을 들려주면 잘 자라고 병충해도 없으며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일까? 이러한 의문은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보았을 것이다.

미국의 Christoper Bird와 Peter Thomkins는 이러한 의문에 대하여 분명한 답을 주었다. 이 두 사람은 식물을 정성들여 키웠다. 때를 따라 물과 거름을 주고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식물에게 다가가서 "잘 잤니? 어제 저녁에 춥지 않았어?” 라고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쓰다듬어 주곤 하였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잘 자, 좋은 꿈꾸고...” 라고 속삭여 주었다. 외출할 때면 "나 잠시 나갔다 올께. 아마 2시간 내에 돌아올 수 있을 거야” 라고 말을 하고 외출을 한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3개월 정도 키우게 되면 식물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외출하면 돌아올 때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게 된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달라고 외치게 되고, 목이 마르면 물을 달라고 소리 지르며 어디가 아프면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신호는 사람의 귀로는 들을 수 없고 적절한 측정 창치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Christoper Bird와 Peter Thomkins는 한 가지 실험을 실시하였다. 식물이 나타내는 미세한 반응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와 그것을 기록할 수 있는 기록계를 연결하였다. 그리고 기록계의 시계와 자신이 가진 시계를 9시 30분으로 정확하게 맞춘 후 수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까지 외출을 하였다. 물론 외출할 때 식물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몇 시간 후에 돌아올 것이니 그동안 잘 있으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외출한 후 10시 정각에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자동차가 다니는 차도로 갑자기 뛰어들어 길을 건넜다. 달리던 자동차 운전자들은 이 사람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급브레이크를 밟게 되고 어떤 운전자들은 화가 나서 욕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한동안 커피숍에서 앉아서 휴식을 취한 다음 11시에는 낭떠러지에서 갑자기 뛰어 내렸다. 잘못해서 발목을 다칠 우려도 있겠으나 위험을 감수하고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 한동안 길을 돌아다니다 12시에는 안락하고 편안한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 식물에 연결된 기록장치를 보니 놀라운 반응이 나타난 것을 발견하였다. 

즉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무단 횡단했던 10시에는 식물의 반응이 급격히 증가하였고, 11시 직전까지는 평상시보다 약간 높은 반응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11시에는 10시와 마찬가지로 급격한 반응을 나타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12시에는 평상시처럼 조용한 반응을 나타내었다. 즉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던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식물이 그것을 알고 반응을 나타내었음을 알 수 있다. 몇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실을 식물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실로 놀랍고도 신비한 일이다.

그렇다면 식물이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위의 두 사람은 또 다른 한 가지 실험을 시도하게 되었다. 식물을 한 그루씩 화분에 심고 역시 정성들여 키운 다음 밀폐된 공간에 두 그루의 식물을 나란히 놓아두고 다섯 사람을 한 사람씩 방안에 들여보냈다. 그리고 각자 식물 앞에 잠깐 동안 서 있다 나오게 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사람에게는 두 식물 중 한 식물을 꺾어 버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남아있는 식물에 전류계를 연결한 다음 그 방에 들어간 사람을 한 사람씩 남아있는 식물 앞에 서게 한 다음 식물을 꺽은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실험을 하였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섰을 때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식물이 자신의 친구를 꺾어 버린 사람이 섰을 때는 급격한 반응을 나타냄으로서 식물도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처럼 식물이 사람을 알아본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II.  성경속의 식물

우리나라에는 약 5,000여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고 성경에도 많은 식물이 기재되어 있다. 성경 속의 식물 중에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파, 마늘 같은 식물이 있는가 하면, 합환채(창 30:14-15)나 고벨화(아 1:14) 처럼 전문가도 알 수 없는 식물이 있다. 성경에는 약 110-128종의 식물이 기록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나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 원전에는 한 가지 이름으로 기록된 식물이 번역본마다 다르게 기록되어 있고, 다른 이름으로 기록된 식물이 실제로는 같은 식물인 것으로 확인된 것도 있으며, 현존하지 않는 식물도 기록되어 있어서 어떤 식물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각 나라마다 자기나라에 있는 비슷한 식물의 이름으로 번역하였기 때문에 엉뚱한 식물로 바뀐 경우도 있다. 우리말 성경은 중국어 성경을 토대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중국어 성경에서 사용한 말을 그대로 우리말로 쓰다보니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감람나무는 원래 올리브나무로 번역하는 것이 옳은데, 중국어 성경에 감람(橄欖)으로 번역되어 있는 것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 적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동번역 성경에는 올리브나무로 바르게 번역되어 있다. 

성경의 무대인 이스라엘과 중동 지방의 기후는 과거 1,000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아서, 식물상(vegetation)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성서식물 중 현지 자생식물에 관한 연구는 현재 식물상을 토대로 가능하지만 재배식물과 외래 도입종에 대해서는 정확한 동정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의 식물은 과일나무, 농작물과 정원식물, 야생초본류, 나무종류, 늪지 식물, 광야 식물, 가시나무 종류, 들에 피는 꽃 종류, 향료와 약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성경에는 식물의 신비에 관한 여러 가지 기록이 있다. 창세기 30-31장에는 야곱과 삼촌 라반 사이의 유전학적 지식에 근거한 속임수(?)가 기록되어 있다. 10년도 넘게 야곱을 부려먹은 라반이 그동안 일한 대가를 주지 않으려 하자, 야곱은 그 동안의 목동생활에서 터득한 유전의 원리를 이용하여 점 있는 양이나 아롱진 염소가 태어나면 자신의 소유로 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라반도 약삭빠른 사람이어서 자신의 소유 중에 점 있는 양이나 아롱진 염소를 3일 걸리는 먼 거리로 격리시켜 버렸다. 

그런데 야곱이 보통 꾀가 많은 사람인가? 태어날 때부터 형의 뒤꿈치를 잡고 나오더니 팥죽 한 그릇에 형의 위치를 차지해 버린 꾀쟁이 아닌가? 어쨌든 야곱과 라반 모두 유전의 원리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10년 이상 실험적으로 연구한 야곱의 실력이 더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야곱은 신풍나무, 버드나무, 살구나무 등의 껍질을 벗긴 나뭇가지를 개울가에 놓아두고 튼튼한 양과 염소들은 아롱지고 점 있는 새끼를 낳게 하여 모두 자신의 재산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허약한 양과 염소가 물을 먹을 때는 이 나무들을 치워서 정상적인 색을 가진 양과 염소, 즉 약하고 비실비실한 것들은 모두 라반의 재산이 되게 하였다.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야곱이 사용한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가 어떠한 특징이 있어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신풍나무는 도대체 어떤 나무일까? 이것을 현대 유전학에 적절하게 응용한다면 훌륭한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선지자 엘리사가 요단에 이르렀을 때 한 사람이 나무를 베다가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서 물에 떨어졌고,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서 도끼가 떠오르게 한 사건(열왕기하 6:5-7)도 신비스럽기 그지없다. 어떻게 물 속에 가라앉은 도끼가 나뭇가지를 물에 던졌다고 물위에 뜰 수가 있을까? 과연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엘리사가 던져 넣은 나무는 무슨 나무일까?  그 나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특별한 성분이 있는 것일까 ?

이러한 질문에 모두 답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현대과학의 수준이 하나님의 능력과 신비에 턱도 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성경은 과학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에 대하여 세세하게 기록해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기록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과학적인 설명이 많이 있고 이곳에서 힌트를 얻어서 훌륭한 과학적 업적을 쌓은 사람들이 실제로 많이 있다.

성경에는 약 120여 종의 식물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는 오늘날 우리가 알 수 있는 식물도 있으나 기록만으로는 알기 힘든 식물도 있고 동일한 식물을 다른 이름으로 기록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식물을 분류해 보면 거의 대부분 풀, 씨 맺는 채소,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 등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식물들 중에는 우리나라에 있는 식물도 있으나, 이스라엘, 시리아, 요르단 등 중동지역에만 서식하는 식물이 있는 반면에,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서식하고 있었으나 현재에는 멸종된 식물도 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 속에 기록된 생물, 특히 식물에 관한 신비한 기록이나 식물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기록된 식물과 동물에 대하여 먼저 알게 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성경에는 약으로 사용하는 식물, 향료나 맛을 내는데 사용하는 식물, 집을 짓거나 무엇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식물 등 다양한 식물에 관한 기록이 있다. 성경 말씀을 잘 이해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 위해서 이와 관련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더 깊은 은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III. 생명나무는 어떠한 나무일까?

1) 성경에 나타난 생명나무 기록

120여종의 식물 중에서 성경에 맨 처음 기록된 식물은 생명나무이고, 맨 마지막에 기록된 식물도 역시 생명나무 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2: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19).

그런데 이 생명나무는 무엇일까? 실재하는 나무였을까, 아니면 그 의미만 해석해야 하는 대상일까? 에덴동산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아담과 하와가 따먹고 범죄하여 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쫓겨난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생할까 염려되어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 길을 지키게 하셨다 (창 3:22-24).

생명나무가 어떠한 나무였는지 알 수 없지만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으면 영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영생하지만 육신은 죽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생한다는 것은 육신이 영생한다는 말일 것이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도 육신의 죽음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고 영생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그룹과 화염검으로 생명나무 길목을 지키고 계신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나무는 어떠한 나무일까? 문자 그대로 나무를 일컫는 것일까? 아니면 비유로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일까?


2) 생명나무 열매로 영생하는 방법

그렇다면 오늘날 사람이 육신적으로 영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실제로는 불가능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의학과 생명과학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으므로 발전된 생명공학적 방법을 사람에게 적용하면 죽지 않는 방법을 개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생한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볼 때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는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생명공학적 연구는 그리 쉽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전 세계적으로 윤리적, 도덕적 문제로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을 뿐 아니라, 실제 연구를 하는 당사자들 간에도 이를 제지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윤리와 도덕적인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반대해야 할 것이다. 아담 이후에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런데 죽지 않으려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연구 자체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모습을 보시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방법을 쓰실지 모르지만 그룹들과 화염검으로 그 길을 막으실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필자는 개인적으로 복제인간의 탄생 및 영생하는 것에 대하여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친히 섭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IV.  식물의 성생활

20-30 년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오던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될 때 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진정한 사랑”일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어떠한 사랑일까? 물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 된 사랑일 것이지만, 육체적이고 인간적인 사랑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식물의 성생활을 통하여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식물이 보여주는 성생활

식물이 서로 사랑하는 모습은 어떠할까? 식물도 성생활을 할까? 만약 한다면 어떠한 모습일까? 식물도 동물이나 인간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수정을 하고 열매를 맺는 과정에 성생활을 즐기는 것일까? 동물이나 사람의 성생활과 비교하여 식물의 성생활을 통하여 인간이 배울 점은 없을까? 이러한 의문은 오래 전부터 필자가 가져왔던 생각이었고, 문헌연구 결과 많은 식물이 사랑을 동반한 성생활을 해 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식물은 성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은근하게 기다리며 아기자기한 밀어를 속삭일 뿐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데 있어서 매우 적극적으로 임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열매를 잘 맺을 수 있을지 하는 점에 성행위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 과정에는 암술과 수술간의 사랑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식물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성숙한 시기가 아니면 성생활을 하지 않으며, 인간사회에 있는 강압적인 성행위는 절대 찾아볼 수 없다.

달맞이꽃이나 나팔꽃 등 저녁이나 아침에 피는 꽃도 있지만, 대부분의 꽃은 낮에 피었다가 저녁에는 오므라들기 때문에 식물의 성생활은 밝은 대낮에 이루어지고 있다. 식물의 성생활 과정에는 암술과 수술사이의 긴밀한 협조가 없으면 수정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즉 강제적인 방법으로는 성생활을 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식물에 있어서는 수정이 일어나는 시기에 암술에서 특수한 분비물이 분비되는 등 실제로는 매우 적극적인 성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2) 밤에 피는 꽃과 향락산업

식물 중에는 수술과 암술이 매우 특이한 구조로 서로 격리되어 있어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수정이 일어날 수 없는 식물도 있다. 쥐방울 덩굴의 꽃은 맨 안쪽의 격리된 방에 암술이 위치하고 있는데, 털이 나있는 좁은 통로에 의하여 수술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정상적인 방법에 의하여 수정이 일어날 수 없다. 이 식물은 밤에 활동하는 곤충이 좋아하는 고기 썩는 냄새를 풍기므로 곤충을 유인하게 되고 좁은 통로를 통해서 곤충이 꽃가루를 묻혀서 들어오게 된다. 안쪽의 격리된 방에 들어온 곤충은 먹을 것을 찾지만 아무 것도 없고, 속은 것을 안 곤충이 탈출하기 위하여 발버둥을 치지만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은 죽게 된다. 곤충들이 탈출하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사이에 꽃은 자신이 목적하는 수정을 끝내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많은 향락산업이 발달해 있다. 이들 향락산업은 그 활동 시기가 주로 밤이다. 그리고 밖에서 볼 때는 매우 화려하고 사람들이 좋아할 냄새(?)를 풍긴다. 쥐방울 덩굴이 곤충을 유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밤에 활동하는 유흥업소는 자극적이고 향락적인 요소를 내세워서 사람들을 유인하게 된다. 그러나 그곳에 한 번 빠지게 되면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탕진하고서야 빠져 나오거나 쥐방울 덩굴의 꽃에 들어간 곤충처럼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3) 식물의 성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쥐방울 덩굴 같은 식물도 있지만 대개의 식물은 기다림 끝에 은근하고 분위기 있는 성행위 결과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이다. 물달개비는 암술 끝이 3개로 갈라져 있는데, 수술이 첫 번째 암술과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입맞춤(?)을 하여 수정을 하게 되면 두 번째 암술은 오후의 작렬하는 태양아래에서 성행위를 하게 되고, 세 번째 암술은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 아래서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꽃 한 송이 내의 암술과 수술 사이의 성생활은 이러한 기다림 끝에 은근하고 분위기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식물의 성행위 목적은 철저하게 열매를 얻기 위한 방향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그 바탕에는 암술과 수술사이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 노력을 사랑(?)이라고 표현 할 수는 없을까 ?

이러한 성생활 결과 열매가 맺히게 되는데 그 과정 역시 빈틈없이 일어나게 된다. 성경에 보면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그 땅의 소산 중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에스골 골짜기에서 포도 한 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장정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돌아온(민 13:23) 사건이 기록되어있다. 과연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메고 운반해야 할 정도로 큰 포도송이가 열릴 수 있었을까? 외국의 잘 가꾸어진 자연사 박물관이나 식물 표본관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콩 한 개가 주먹 만 하였고 콩깍지의 길이가 2미터 정도인 표본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을 볼 때 가나안 땅의 포도 한 송이도 두 사람이 메고 운반해야 할 정도로 큰 것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V.  자극에 대한 반응을 통하여 알아본 식물의 신비

1) 음악을 좋아하는 식물

식물도 음악을 감상할 줄 알며,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자란 식물은 더 잘 자라고 더 예쁘게 자란다고 말하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음악을 듣고 자란 식물은 병에 덜 걸리고 해충의 피해도 적어서 농약을 적게 뿌려도 된다고 하면 더더구나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자란 채소와 과실은 맛이 더 좋아지고 더 당도가 높으며 인체에 좋은 생리활성물질이 더 많이 생긴다고 말하면 누가 믿을까?

식물과 음악의 관계에 대하여 최초로 관심을 기울인 사람은 다아윈으로서, 1860년대에 미모사에게 나팔소리를 들려주고 잎이 움직이는가를 살펴보았으나 실패했다는 기록이 있다. 1950년대에는 인도의 Singh 교수가 소리굽쇠나 바이올린 음악을 들려준 결과 활발한 원형질운동을 관찰하였다. 또한 미모사에게 인도의 전통음악인 Raga를 들려준 결과 기공수, 표피의 두께, 세포의 크기가 현저히 증가했음을 알아냈다. 지속적인 연구를 통하여 벼의 수확량이 25-60%, 땅콩 수확량이 50% 증가했다는 결과를 얻었다.

미국에서는 1968년에 Retellack은 호박덩굴에게 고전음악을 들려준 결과 덩굴이 스피커를 감싸지만, 록큰롤(Rock'n'roll) 음악을 들려주면 스피커와 반대 방향으로 도망가는 현상을 관찰하였다.

또한 농촌진흥청의 이완주 박사는 식물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 생육이 촉진되고 병해충 발생이 저하되며 오이의 경우 당도가 증가하는 등 재현성 있는 실험결과를 얻었음을 보고하였다. 그리고 식물체내의 화학성분이 변함을 관찰하고, 이러한 좋은 음악을 그린음악(green music)이라고 하여 국내 특허를 얻기도 하였다.

이러한 결과를 종합해 볼 때, 헤비메탈(Heavy metal)이나 록큰롤과 같은 시끄러운 음악보다 고전음악이, 타악기보다는 현악기의 음악을 식물이 더 좋아하며, 2,000Hz 근처의 음파를 좋아한다는 정도가 알려져 있다.


2) 물리적 자극에 대한 식물의 반응

식물체 내에는 평상시에 10-50mv의 약한 전류가 흐르고 있다. 그러나 물리화학적인 자극을 가하면 전류의 흐름이 변화되고 이렇게 나타내는 반응을 검출기를 통해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자극의 종류에 따라서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며, 자극의 세기에 따라서도 다른 반응을 보일 뿐 아니라, 같은 자극이라고 하더라도 식물에 따라서 다른 반응을 나타내게 된다. 사람의 눈이나 귀로는 이러한 식물의 반응을 감지할 수 없지만 식물체에 기계장치를 연결하면 식물이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식물을 유리막대로 건드릴 때와 선풍기 바람을 쏘여줄 때, 처음 식물이 보이는 반응은 큰 차이가 없이 움찔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선풍기 바람에는 더 이상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바람을 즐기는 반면, 유리막대로 건드리는 경우 유리막대를 정지시킬 때까지 계속해서 긴장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식물이 바람과 유리막대 자극을 구별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긴장상태에 있었다면 지구상에 식물이 남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상태에서 식물은 계속 바람을 맞으면서 살고 있는데, 하루 종일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긴장상태에 있다면 결국 생산하는 에너지보다 소비하는 에너지가 많아서 식물은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물이 없는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을 것이다. 식물이 바람과 다른 자극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비한 것인지 모른다. 참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가 아닐 수 없다.

 

3) 거짓말 탐지기로 측정한 식물의 반응

2001년 8월부터 1년 간에 걸쳐 부산지방 경찰청에서 운영되고 있는 Stolting 805-000 형 거짓말탐지기인 Galvanometer를 사용하여 베고니아(Begonia semper), 씨클라멘(Cyclamen persicum), 고무나무(Hevea brasiliensis) 등을 사용하여 식물에게 지극한 사랑을 베풀어주고 난 후 이들 식물에게 스트레스성 자극을 가했을 때, 어떠한 변화를 나타내는지에 대하여 연구를 실시하였다.

실험 조건은 1)식물을 구입하여 잘 보살피면서 하루에 1번 이상 식물에게 사랑한다, 잘 지냈느냐, 보고 싶었다, 나는 네가 좋다 등의 말을 하도록 하고, 2)이들 식물을 각각 2개월 이상 정성껏 기른 후에, 3)부산 지방 경찰청으로 옮겨서 다양한 자극을 주고 식물이 나타내는 반응을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하여 측정하였다.

그 결과 베고니아 잎의 일부를 안과 수술용 가위로 자랐을 때 베고니아는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는 듯이 거짓말 탐지기의 바늘이 활발하게 움직였다. 씨클라멘의 잎에 드라이아이스에 넣어서 차갑게 한 알루미늄 막대를 접근하였을 때 베고니아와 유사한 반응을 나타내었다. 반면에 고무나무의 잎을 자르거나 드라이 아이스에 차갑게 한 알루미늄 막대를 접근 시켰을 때, 반응을 나타내기는 하였지만 베고니아와 시클라멘처럼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반응의 강도도 약한 편이었다. 이는 베고니아와 씨클라멘은 초본인 반면, 고무나무는 목본이기 때문에 자극에 비교적 둔감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꽃에 자극을 가하고 잎에서 반응을 측정하였을 때에 더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었고, 꽃에 자극을 가하고 꽃에서 반응을 측정하였을 때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었다. 뿐만 아니라 동물에서 한쪽 다리를 자르는 정도로 큰 줄기를 잘라내게 되면 식물이 아예 반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생식기관인 꽃이 영양기관인 잎보다 더 민감하게 자극에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고, 식물체의 큰 부분을 자르게 되면 일시적으로 기절하는 정도의 반응을 나타내거나 아예 죽은체 하므로서 더 이상의 자극에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VI.  결 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사는 40년 동안 주식으로 먹었던 만나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먹여주신 기적의 양식이다. 만나는 "이것이 무엇이냐” 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기적의 양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직후 더 이상 내리지 않았고, 단지 언약궤 속에 일부 보존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도 시나이 반도 유목민은 6월경이면 아침 일찍 들에 있는 위성류 아래에 가면 하루에 1kg 정도의 둥글고 흰색의 덩어리를 주워서 여행자들에게 만나라고 판다고 한다. 단맛이 나기 때문에 설탕 대신 사용하기도하며 과자처럼 그냥 먹을 수도 있다.

이 덩어리는 위성류의 줄기와 잎을 갉아먹고 사는 곤충이 나뭇잎 속에 들어있는 질소성분은 흡수하고 함께 포함된 당분은 몸 밖으로 버리는데, 이 당분이 공기와 접촉하면 굳어져서 하얀 덩어리가 되고 이것이 만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곤충은 밤에만 활동하므로 아침 일찍 들에 나가서 만나를 모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늦게 들에 나가면 개미들이 다 물고 가버리기 때문에 성경에는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스러졌더라"(출 16:21)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 대하여는 몇 가지 의문이 있다. 만약에 이러한 해석이 옳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다음 날부터 만나가 내리지 않았는데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갑자기 그렇게 많던 곤충이 다 죽은 것인가? 아니면 위성류가 말라죽은 것인가? 그리고 평일에는 이틀 분을 거두게 되면 썩었지만 안식일 전날에는 이틀 분을 거두어도 썩지 않은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한 얼마나 많은 곤충과 위성류가 있었길래 200만명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일 수 있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성경에는 많은 신비한 기록이 있고 이들 중 많은 기록이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일부 기독교인 과학자들은 성경이 지극히 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든 성경기록을 과학으로 설명하려고 한다면 우리의 눈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과학만 보이게 되며 과학이 곧 하나님을 대신하게 된다. 과학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미래에 과학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능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치한 수준일 것이다.

식물이 보여주는 신비함은 음악을 알아듣는 정도에서 더 나아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고 자신을 죽인 범인의 인상착의를 기억하여 수사관에게 진술을 하는 등 실로 신비한 반응을 나타냄을 알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자극을 주었을 때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고 정확하게 표현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식물이 보여주는 반응은 동물과 인간이 나타내는 반응보다 훨씬 더 예민할 뿐 아니라, 정확하고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잘 다스리고 가꾸어야 함에 있어서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라도 하찮게 볼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따뜻하게 보살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름 모를 잡초(사실 모든 식물은 귀한 이름이 있어서 이렇게 말하면 식물들이 서운하겠지만....) 한 포기라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핑계치 못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정병갑 교수, 장은성 : 고신대학교 생명과학과


참고문헌 

Tompkins P. and C. Bird. 1972. The secret life of plants. Harper & Row Publishers Inc. New York.

양진배, 송태원, 오민석. 1998. Green 음악과 자연음악이 Ethanol 중독 백서의 요산 및 간 대사효소계에 미치는 영향. 한방재활학회지 8(2):480-503

이완주, 이근영, 윤성중, 이동우, 방혜선. 1997. 음악에 의한 식물 생육 촉진 및 성분함량의 변화. 한국정신과학회지 1(2):31-36.

이완주. 1995. 동식물 생육을 촉진시키는 그린음악.  연구와 지도 36(1):27-29. 

이완주. 1997. 그린음악. 서울, 농촌진흥청 잠사곤충 연구소.

이완주. 1997. 음악 들으며 자란 식물은 더 잘 자라고 예쁘게 자란다. 서울, 월간조선 1997년 1월호

임은희. 1994. 음악 속에 숨은 의학. 서울, 청암.

차윤정. 2000. 식물은 왜 바흐를 좋아할까? 중앙 M & B.


 

*참조 :  Venus flytrap : Ingenious mechanism still baffles Darwinist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340/



출처 - 창조과학학술대회 논문집, 2004. 11. 27.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577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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