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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설계

식물 나타난 창조 신비 - 식물도 생각할 수 있는가?

식물 나타난 창조 신비 - 식물도 생각할 수 있는가?


      식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각도 하고 말도 하며 음악을 들려주면 잘 자라고 병충해도 없으며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일까 ?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자란 식물은 더 잘 자랄 뿐만 아니라 병충해에 더 강하고 농약을 적게 사용해도 된다고 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자란 채소와 과실은 맛이 좋아지고 당도가 높으며 인체에 좋은 생리활성물질이 더 많이 생긴다고 말하면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 식물도 생각할 수 있을까 ?

미국의 Christoper Bird 와 Peter Thomkins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연구를 하였다. 이 두 사람은 식물을 정성들여 키웠다. 때를 따라 물과 거름을 주고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식물에게 다가가서 ”잘 잤니? 어제 저녁에 춥지 않았어?” 라고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쓰다듬어 주곤 하였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잘 자. 좋은 꿈꾸고...” 라고 속삭여 주었다. 외출할 때면 ”나 잠시 나갔다 올께. 아마 2시간 내에 돌아올 수 있을 거야”라고 말을 하고 외출을 한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3개월 정도 키우게 되면 식물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으며 자기를 키워준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 이후에 Bird 와 Thomkins는 실험을 실시하였다. 식물이 나타내는 미세한 반응을 측정 할 수 있는 기계장치와 그것을 기록할 수 있는 기록계를 연결하였다. 그리고 기록계의 시계와 자신이 가진 시계를 9시 30분으로 정확하게 맞춘 후 수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까지 외출을 하였다. 물론 외출할 때 식물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몇 시간 후에 돌아올 것이니 그 동안 잘 있으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외출한 후 10시 정각에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자동차가 다니는 차도로 갑자기 뛰어들어 길을 건넜다. 달리던 자동차 운전자들은 이 사람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급브레이크를 밟게되고  어떤 운전자들은 화가 나서 욕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한동안 커피숍에서 앉아서 휴식을 취한 다음 11시에는 낭떠러지에서 갑자기 뛰어 내렸다. 잘못해서 발목을 다칠 우려도 있겠으나 위험을 감수하고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 한동안 길을 돌아다니다 12시에는 안락하고 편안한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 식물에 연결된 기록장치를 보니 놀라운 반응이 나타난 것을 발견하였다. 

즉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무단 횡단했던 10시에는 식물의 반응이 급격히 증가하였고 11시 직전까지는 평상시보다 약간 높은 반응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11시에는 10시와 마찬가지로 급격한 반응을 나타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12시에는 평상시 처럼 조용한 반응을 나타내었다. 즉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던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식물이 그것을 알고 반응을 나타내었음을 알 수 있다.  수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실을 식물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 실로 놀랍고도 신비한 일이다.

또한 식물이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다른 실험을 시도하게 되었다.  식물을 한 그루씩 화분에 심고 역시 정성들여 키운 다음 밀폐된 공간에 두 그루의 식물을 나란히 놓아두고 몇 사람을 한 사람씩 방안에 들여보냈다. 그리고 각자 식물 앞에 잠깐 동안 서 있다 나오게 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사람에게는 두 식물 중 한 식물을 꺽어 버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남아있는 식물에 전류계를 연결한 다음 그 방에 들어간 사람을 한 사람씩 친구를 꺽어버린 목격자 식물 앞에 서게 한 다음 누가 범인인지 밝혀내는 실험을 하였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섰을 때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식물이 자신의 친구를 꺽어버린 사람이 섰을 때는 급격한 반응을 나타냄으로서 식물이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즉 식물은 자신의 친구를 죽인 범인의 인상착의를 기억하여 수사관에게 진술한 것이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낮 말은 풀이 듣고 밤 말은 나무가 듣는다”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2. 식물도 음악을 좋아할까?

식물과 음악의 관계에 대하여 최초로 관심을 기울인 사람은 다아윈으로서 1860년대에 미모사에게 나팔소리를 들려주고 잎이 움직이는가를 살펴보았으나 실패했다는 기록이 있다. 1950년대에는 인도의 Singh 교수가 소리굽쇠나 바이올린 음악을 들려준 결과 활발한 원형질운동을 관찰하였다. 또한 미모사에게 인도의 전통음악인 Raga를 들려준 결과 기공수, 표피의 두께, 세포의 크기가 현저히 증가했음을 알아냈다. 지속적인 연구를 통하여 벼의 수확량이 25-60%, 땅콩 수확량이 50% 증가했다는 결과를 얻었다. 

미국에서는 1968년에 Retellack은 호박덩굴에게 고전음악을 들려준 결과 덩굴이 스피커를 감싸지만, Rock'n'roll 음악을 들려주면 스피커와 반대 방향으로 도망가는 현상을 관찰하였다.

또한 농촌진흥청의 이완주 박사는 식물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 식물체내의 화학성분이 변함을 관찰하고 이러한 음악을 그린음악(green music)이라고 하여 국내 특허를 얻었다. 그린 음악은 바탕이 클래식이며 사이사이에 새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삽입하여 편집한 음악이다. 그린 음악을 들려주면 식물의 생육이 촉진되고 병해충 발생이 저하되며 오이의 경우 당도가 증가하였는데 이러한 결과는 재연성이 있었다. 식물은 Heavy metal이나 Rock'n'roll 과 같은 시끄러운 음악보다는 고전음악을, 타악기보다는 현악기의 음악을 좋아하며 2KHz 근처의 음파를 좋아한다는 것도 밝혀지게 되었다. 

특히 식물을 유리막대로 건드릴 때와 선풍기 바람을 쏘여줄 때, 처음 식물이 보이는 반응은 큰 차이가 없이 움찔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선풍기 바람에는 더 이상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바람을 즐기는 반면, 유리막대로 건드리는 경우 유리막대를 정지시킬 때까지 계속해서 긴장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식물이 바람과 유리막대 자극을 구별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긴장상태에 있었다면 지구상에 식물이 남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상태에서 식물은 계속 바람을 맞으면서 살고 있는데 하루 종일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긴장상태에 있다면 결국 생산하는 에너지보다 소비하는 에너지가 많아서 식물은 죽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물이 없는 지구는 사람이 살수 없는 환경이 되었을 것이다. 식물이 바람과 다른 자극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비한 것인지 모른다. 참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가 아닐 수 없다.

백합은 사람보다 10배 이상 큰 유전체를 갖는다. 그렇다고 백합이 사람보다 10배 더 복잡한 것은 아니다. 백합의 유전체가 사람보다 큰 이유는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가 많아서가 아니고 단백질을 암호화하지 않은 비암호화 유전자(noncoding gene)를 그만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암호화 유전자는 어떠한 기능을 할까? 아무런 쓸모없는 유전자일까? 아직은 이 질문에 대하여 정확한 답을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무 쓸모없는 유전자를 아무 목적 없이 세포안에 넣어 두셨을까?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목적에 맞도록 만드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다만 현대 과학으로는 비암호화 유전자의 기능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백합이 사람보다 더 큰 유전체를 갖는 이유를 모를 뿐이다.

식물이 보여주는 반응은 동물과 인간이 나타내는 반응보다 훨씬 더 예민할 뿐 아니라 정확하고 분명하다. 그러나 식물이 동물처럼 움직이지 못하며 큰 소리로 울부짖거나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살아있으나 의식이 없는 환자를 식물인간이라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을 속삭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위험에 처한 것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친구를  죽인 범인을 기억하기도 하는 식물에게 이러한 말을 사용할 수 없다고 본다. 식물인간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 식물인간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식물이 들으면 몹시 섭섭해 할 것이기 때문이다.

 

3. 성경속의 식물

우리나라에는 약 5000여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고 성경에도 많은 식물이 기재되어 있다. 성경속의 식물 중에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파, 마늘 같은 식물이 있는가 하면 합환채(창 30:14-15)나 고벨화(아 1:14)처럼 전문가도 알 수 없는 식물이 있다. 성경에는 약 110-128종의 식물이 기록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나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 원전에는 한 가지 이름으로 기록된 식물이 번역본마다 다르게 기록되어 있고, 다른 이름으로 기록된 식물이 실제로는 같은 식물인 것으로 확인된 것도 있으며 현존하지 않는 식물도 기록되어 있어서 어떤 식물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각 나라마다 자기나라에 있는 비슷한 식물의 이름으로 번역하였기 때문에 엉뚱한 식물로 바뀐 경우도 있다. 우리말 성경은 중국어 성경을 토대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중국어 성경에서 사용한 말을 그대로 우리말로 쓰다 보니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감람나무는 원래 올리브나무로 번역하는 것이 옳은데 중국어 성경에 감람(橄欖)으로 번역되어 있는 것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 적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동번역 성경에는 올리브나무로 바르게 번역되어 있다. 

성경의 무대인 이스라엘과 중동 지방의 기후는 과거 1000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아서 식물상(vegetation)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성서식물 중 현지 자생식물에 관한 연구는 현재 식물상을 토대로 가능하지만 재배식물과 외래 도입종에 대해서는 정확한 동정이 어려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의 식물은 과일나무, 농작물과 정원식물, 야생초본류, 나무종류, 늪지 식물, 광야 식물, 가시나무 종류, 들에 피는 꽃 종류, 향료와 약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생물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분류한 인류 최초의 분류학자는 아담이라고 할 수 있다. 분류학자들이 하는 일 중에 하나는 생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인데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 2:19)처럼 생물을 보고 곧 바로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능한 학자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식물을 발견하고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와 검토를 거쳐야 가능한 일이지만 아담은 곧 바로 이름을 부여했던 것이다.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제처 두고라도 수천 종류의 식물에게 부여한 이름을 기억해야만 자손들에게 그 이름을 정확하게 가르쳐 줄 수 있는데 아담은 우수한 두뇌를 가졌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잘 해냈으라고 생각된다.


3.1. 야곱이 사용한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

식물과 관련되어 성경에 기록된 사건 중에는 참으로 신비한 것이 많은데 그 중에서 창세기 30-31장에 기록된 야곱과 삼촌 라반 사이의 양과 염소 떼 사건도 쉽게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다. 10년도 넘게 야곱을 부려먹은 라반이 그동안 일한 대가를 주지 않으려 하자 야곱은 그 동안의 목동생활에서 터득한 유전의 원리를 이용하여 점 있는 양이나 아롱진 염소가 태어나면 자신의 소유로 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라반도 약삭빠른 사람이어서 자신의 소유 중에 점 있는 양이나 아롱진 염소를 3일 걸리는 먼 거리로 격리시켜 버렸다. 

그런데 야곱이 보통 꾀가 많은 사람인가? 태어 날 때부터 형의 뒤꿈치를 잡고 나오더니 팥죽 한 그릇에 형의 위치를 차지해 버린 꾀쟁이 아닌가 ? 어쨌든 야곱과 라반 모두 유전의 원리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10년 이상 실험적으로 연구한 야곱의 실력이 더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야곱은 신풍나무, 버드나무, 살구나무 등의 껍질을 벗긴 나뭇가지를 개울가에 놓아두고 튼튼한 양과 염소들은 아롱지고 점 있는 새끼를 낳게 하여 모두 자신의 재산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허약한 양과 염소가 물을 먹을 때는 이 나무들을 치워서 정상적인 색을 가진 양과 염소, 즉 약하고 비실비실한 것들은 모두 라반의 재산이 되게 하였다.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일어 날수 있을까 ? 야곱이 사용한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가 어떠한 특징이 있어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신풍나무는 도대체 어떤 나무일까 ? 이것을 현대 유전학에 적절하게 응용한다면 훌륭한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3.2. 삭개오가 올라간 뽕나무

뽕나무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중국 오나라에 효성이 지극한 청년이 살고 있었다.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거북이 한 마리를 잡아서 집으로 가다가 뽕나무 밑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거북이가 청년에게 ”헛수고 말게. 나는 장작불로 백년을 끓여도 죽지 않네” 라고 자신을 뽐내었다. 이 말을 들은 뽕나무가 ”여보게 자네 큰소리 치지 말게. 나를 베어서 장작을 만들어 불을 지펴도 자네가 죽지 않을 것 같은가?” 라고 하였다. 청년이 집에 와서 장작불로 아무리 삶아도 거북이 죽지 않자 뽕나무와 거북이의 대화가 생각났다. 그리하여 뽕나무로 장작을 만들어서 거북이를 삶았고 아버지의 병환을 고칠 수 있었다고 한다. 거북이와 뽕나무 모두 쓸데없이 입을 놀려서 모두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로서 우리도 말을 조심하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키 작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올라간 뽕나무(눅 19:4)는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어도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 17:6)”에 나타난 뽕나무와는 서로 다른 나무이다. 

삭개오가 올라간 뽕나무는 sycamore-fig tree로서 여리고나 예루살렘을 포함한 이스라엘 전역에 널리 자생하는 나무로서 잎과 수피는 뽕나무를 닮았고 열매는 무화과를 닮았기에 돌무화과라고 한다. 돌무화과는 무화과 및 뽕나무와 같은 과(科)에 속해있어서 이처럼 오역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나무는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같이 많게 하였더라(왕상 10:27)”에서 처럼 매우 흔하게 자라는 나무임을 알 수 있다.  

삭개오가 올라간 이 돌무화과는 무화과보다 작은 열매가 매우 많이 달리며 단맛이 나므로 애굽사람들이나 유대인에게는 귀중한 식량자원이었다. 지금도 카이로의 길가에서는 행상들이 팔고 있다고 한다. 돌무화과는 중국어 성경에서 상수(桑樹)로 번역되어 있는데 우리말로 번역할 때 예수님이 인용하신 뽕나무와 구별하지 않고 그대로 뽕나무로 번역하였기 때문에 삭개오가 올라간 나무가 뽕나무로 기록된 것 같다.

예수님이 누가복음 17장에서 비유로 인용하신 뽕나무는 mulberry tree이다. 이 나무는 우리 나라에도 자라고 있는 뽕나무와 동일한 종류로서 오디가 달리는 나무인 것이다. 열매가 맛이 있고 또 누에를 칠 수 있는 뽕나무는 나뭇가지 껍질을 벗겨서 로프를 만들고 뽕잎으로는 차를 만들고 잎, 뿌리, 어린 가지를 한약재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 나무는 영어로 black mulberry 로서 열매가 검은색으로 익고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white mulberry와는 조금 다르지만 돌무화과와는 완전히 다른 뽕나무인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뽕나무는 하얀 뽕나무(Morus alba)이고 예수님이 인용하신 뽕나무는 검은 뽕나무(Morus nigra)인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뽕나무를 하얀 뽕나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3.3. 히스기야왕의 종기를 치료한 무화과나무

뽕나무나 돌무화과 모두 무화과나무과에 속한 식물이다.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아야 할 무화과(마 24:32), 베다니에서 예수님이 시장하셨을 때 혹시 열매가 있나하고 찾으시다가 열매가 없자 저주하신 무화과(막 11:12-14)는 우리나라 각 가정에 한 두 그루씩 심겨진 무화과와 동일한 나무이다. 

무화과는 좀 특이한 나무이다. 꽃이 없이 열매가 달린다 해서 무화과(無花果)라 하는데 꽃이 없이 어찌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 실상은 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무화과의 꽃은 열매 안쪽에 숨어서 피고 그곳에서 수정이 일어나서 씨를 맺게 되는 것이다. 무화과를 먹을 때 씹히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무화과 씨이다. 

무화과나무의 잎, 줄기, 열매 등을 자르면 하얀색의 유액이 나오는데 다양한 약효를 나타내는 성분이 들어있다. 무화과나무 잎을 재래식 화장실에 넣으면 구더기가 생기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강력한 살충작용을 나타냄을 알 수 있다. 

유대의 열 세번째 왕인 히스기야는 믿음이 좋았고 지혜가 뛰어난 왕이었다. 왕에 즉위한지 14년째 되던 해에 몸에 종기가 나서 죽게 되었는데 그 종기는 아마도 피부암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눈의 눈물을 보시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무화과 반죽을 가져다가 종기에 붙여서 낫게 하였다(왕하 20:1-7). 피부암이 치료되므로서 히스기야왕은 15년을 더 살 수 있었다. 

물론 히스기야왕은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받게 되었다. 그러나 무화과에는 특별한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에 무화과를 사용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무화과에 들어있는 성분이 피부암을 호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사실로 확인되었다. 최근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이러한 내용은 이미 수 천년 전에 기록된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있는 것이다. 성경 말씀 속에는 이처럼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이 나타난 기록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무화과나무는 여러 가지로 유용하게 사용된다. 잎은 아담과 하와의 치부를 가리는 인류최초의 의복이 되었고, 열매는 식용으로 사용되며 무화과 달인 물은 감기와 폐렴에 좋고, 잎을 말렸다가 목욕물에 넣으면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  어느 한 부분도 버릴 것 없는 매우 유용한 나무다.

 

4.  결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사는 40년 동안 주식으로 먹었던 만나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먹여주신 기적의 양식이다. 만나는 ”이것이 무엇이냐” 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기적의 양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직후 더 이상 내리지 않았고 단지 언약궤 속에 일부 보존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도 시나이 반도 유목민은 6월경이면 아침 일찍 들에 있는 위성류 아래에 가면 하루에 1kg 정도의 둥글고 흰색의 덩어리를 주워서 여행자들에게 만나라고 판다고 한다. 단 맛이 나기 때문에 설탕 대신 사용하기도하며 과자처럼 그냥 먹을 수도 있다. 

이 덩어리는 위성류의 줄기와 잎을 갉아먹고 사는 곤충이 나뭇잎 속에 들어있는 질소성분은 흡수하고 함께 포함된 당분은 몸 밖으로 버리는데 이 당분이 공기와 접촉하면 굳어져서 하얀 덩어리가 되고 이것이 만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곤충은 밤에만 활동하므로 아침 일찍 들에 나가서 만나를 모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늦게 들에 나가면 개미들이 다 주워가버리기 때문에 성경에는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스러졌더라”(출 16:21)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 대하여는 몇 가지 의문이 있다. 만약에 이러한 해석이 옳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다음 날부터 만나가 내리지 않았는데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갑자기 그렇게 많던 곤충이 다 죽은 것인가? 아니면 위성류가 말라죽은 것인가? 그리고 평일에는 이틀 분을 거두게 되면 썩었지만 안식일 전날에는 이틀 분을 거두어도 썩지 않은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한 얼마나 많은 곤충과 위성류가 있었길래 200만명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일 수 있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성경에는 많은 신비한 기록이 있고 이들 중 많은 기록이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일부 기독교인 과학자들은 성경이 지극히 과학적이라고 주정한다. 그러나 모든 성경기록을 과학으로 설명하려고 한다면 우리의 눈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과학만 보이게 되며 과학이 곧 하나님을 대신하게 된다. 과학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미래에 과학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능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치한 수준일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성경이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이 성경적이다 라고.......

 


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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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2011 국제학술대회 논집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109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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