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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설계

정병갑, 장은성
2005-04-18

자극에 대한 반응을 통하여 알아본 

식물의 신비와 하나님의 창조섭리 

(Perspectives of God's Creation Providence and 

Investigation of Mysterious Responsiveness of Plants to Stimulation)


요 약

식물은 동물보다 훨씬 민감하게 자극에 대하여 반응할 뿐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사람과 교감을 나누기도 한다.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을 구분하기도 하며 집안에 침입한 도둑을 알아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좋은 음악을 들으면 춤을 추기도 하고 병해충에 저항하는 능력이 강해지기도 한다. 식물이 나누는 사랑은 너무 아름답고 은근하고 아기자기해서 식물의 사랑을 닮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또한 자신의 신체 일부가 잘려지거나 상처를 입게되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고, 기분이 좋으면 기뻐서 환호성을 지른다. 이처럼 식물이 나타내는 다양한 반응을 통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정교한 생명체를 만드셨는지 인식하고 식물이 보여주는 사랑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아 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Key Words :  자극, 식물의 반응, 좋은 음악, 식물의 사랑, 창조섭리


I.  식물도 생각할 수 있을까?

식물도 생각할 수 있을까? 정원에 탐스럽게 피어난 아름다운 장미꽃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식물에게 음악을 들려주면 잘 자라고 병충해도 없으며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일까? 이러한 의문은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보았을 것이다.

미국의 Christoper Bird와 Peter Thomkins는 이러한 의문에 대하여 분명한 답을 주었다. 이 두 사람은 식물을 정성들여 키웠다. 때를 따라 물과 거름을 주고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식물에게 다가가서 "잘 잤니? 어제 저녁에 춥지 않았어?” 라고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쓰다듬어 주곤 하였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잘 자, 좋은 꿈꾸고...” 라고 속삭여 주었다. 외출할 때면 "나 잠시 나갔다 올께. 아마 2시간 내에 돌아올 수 있을 거야” 라고 말을 하고 외출을 한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3개월 정도 키우게 되면 식물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외출하면 돌아올 때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게 된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달라고 외치게 되고, 목이 마르면 물을 달라고 소리 지르며 어디가 아프면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신호는 사람의 귀로는 들을 수 없고 적절한 측정 창치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Christoper Bird와 Peter Thomkins는 한 가지 실험을 실시하였다. 식물이 나타내는 미세한 반응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와 그것을 기록할 수 있는 기록계를 연결하였다. 그리고 기록계의 시계와 자신이 가진 시계를 9시 30분으로 정확하게 맞춘 후 수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까지 외출을 하였다. 물론 외출할 때 식물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몇 시간 후에 돌아올 것이니 그동안 잘 있으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외출한 후 10시 정각에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자동차가 다니는 차도로 갑자기 뛰어들어 길을 건넜다. 달리던 자동차 운전자들은 이 사람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급브레이크를 밟게 되고 어떤 운전자들은 화가 나서 욕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한동안 커피숍에서 앉아서 휴식을 취한 다음 11시에는 낭떠러지에서 갑자기 뛰어 내렸다. 잘못해서 발목을 다칠 우려도 있겠으나 위험을 감수하고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 한동안 길을 돌아다니다 12시에는 안락하고 편안한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 식물에 연결된 기록장치를 보니 놀라운 반응이 나타난 것을 발견하였다. 

즉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무단 횡단했던 10시에는 식물의 반응이 급격히 증가하였고, 11시 직전까지는 평상시보다 약간 높은 반응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11시에는 10시와 마찬가지로 급격한 반응을 나타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12시에는 평상시처럼 조용한 반응을 나타내었다. 즉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던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식물이 그것을 알고 반응을 나타내었음을 알 수 있다. 몇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실을 식물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실로 놀랍고도 신비한 일이다.

그렇다면 식물이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위의 두 사람은 또 다른 한 가지 실험을 시도하게 되었다. 식물을 한 그루씩 화분에 심고 역시 정성들여 키운 다음 밀폐된 공간에 두 그루의 식물을 나란히 놓아두고 다섯 사람을 한 사람씩 방안에 들여보냈다. 그리고 각자 식물 앞에 잠깐 동안 서 있다 나오게 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사람에게는 두 식물 중 한 식물을 꺾어 버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남아있는 식물에 전류계를 연결한 다음 그 방에 들어간 사람을 한 사람씩 남아있는 식물 앞에 서게 한 다음 식물을 꺽은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실험을 하였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섰을 때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식물이 자신의 친구를 꺾어 버린 사람이 섰을 때는 급격한 반응을 나타냄으로서 식물도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처럼 식물이 사람을 알아본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II.  성경속의 식물

우리나라에는 약 5,000여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고 성경에도 많은 식물이 기재되어 있다. 성경 속의 식물 중에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파, 마늘 같은 식물이 있는가 하면, 합환채(창 30:14-15)나 고벨화(아 1:14) 처럼 전문가도 알 수 없는 식물이 있다. 성경에는 약 110-128종의 식물이 기록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나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 원전에는 한 가지 이름으로 기록된 식물이 번역본마다 다르게 기록되어 있고, 다른 이름으로 기록된 식물이 실제로는 같은 식물인 것으로 확인된 것도 있으며, 현존하지 않는 식물도 기록되어 있어서 어떤 식물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각 나라마다 자기나라에 있는 비슷한 식물의 이름으로 번역하였기 때문에 엉뚱한 식물로 바뀐 경우도 있다. 우리말 성경은 중국어 성경을 토대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중국어 성경에서 사용한 말을 그대로 우리말로 쓰다보니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감람나무는 원래 올리브나무로 번역하는 것이 옳은데, 중국어 성경에 감람(橄欖)으로 번역되어 있는 것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 적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동번역 성경에는 올리브나무로 바르게 번역되어 있다. 

성경의 무대인 이스라엘과 중동 지방의 기후는 과거 1,000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아서, 식물상(vegetation)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성서식물 중 현지 자생식물에 관한 연구는 현재 식물상을 토대로 가능하지만 재배식물과 외래 도입종에 대해서는 정확한 동정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의 식물은 과일나무, 농작물과 정원식물, 야생초본류, 나무종류, 늪지 식물, 광야 식물, 가시나무 종류, 들에 피는 꽃 종류, 향료와 약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성경에는 식물의 신비에 관한 여러 가지 기록이 있다. 창세기 30-31장에는 야곱과 삼촌 라반 사이의 유전학적 지식에 근거한 속임수(?)가 기록되어 있다. 10년도 넘게 야곱을 부려먹은 라반이 그동안 일한 대가를 주지 않으려 하자, 야곱은 그 동안의 목동생활에서 터득한 유전의 원리를 이용하여 점 있는 양이나 아롱진 염소가 태어나면 자신의 소유로 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라반도 약삭빠른 사람이어서 자신의 소유 중에 점 있는 양이나 아롱진 염소를 3일 걸리는 먼 거리로 격리시켜 버렸다. 

그런데 야곱이 보통 꾀가 많은 사람인가? 태어날 때부터 형의 뒤꿈치를 잡고 나오더니 팥죽 한 그릇에 형의 위치를 차지해 버린 꾀쟁이 아닌가? 어쨌든 야곱과 라반 모두 유전의 원리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10년 이상 실험적으로 연구한 야곱의 실력이 더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야곱은 신풍나무, 버드나무, 살구나무 등의 껍질을 벗긴 나뭇가지를 개울가에 놓아두고 튼튼한 양과 염소들은 아롱지고 점 있는 새끼를 낳게 하여 모두 자신의 재산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허약한 양과 염소가 물을 먹을 때는 이 나무들을 치워서 정상적인 색을 가진 양과 염소, 즉 약하고 비실비실한 것들은 모두 라반의 재산이 되게 하였다.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야곱이 사용한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가 어떠한 특징이 있어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신풍나무는 도대체 어떤 나무일까? 이것을 현대 유전학에 적절하게 응용한다면 훌륭한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선지자 엘리사가 요단에 이르렀을 때 한 사람이 나무를 베다가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서 물에 떨어졌고,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서 도끼가 떠오르게 한 사건(열왕기하 6:5-7)도 신비스럽기 그지없다. 어떻게 물 속에 가라앉은 도끼가 나뭇가지를 물에 던졌다고 물위에 뜰 수가 있을까? 과연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엘리사가 던져 넣은 나무는 무슨 나무일까?  그 나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특별한 성분이 있는 것일까 ?

이러한 질문에 모두 답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현대과학의 수준이 하나님의 능력과 신비에 턱도 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성경은 과학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에 대하여 세세하게 기록해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기록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과학적인 설명이 많이 있고 이곳에서 힌트를 얻어서 훌륭한 과학적 업적을 쌓은 사람들이 실제로 많이 있다.

성경에는 약 120여 종의 식물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는 오늘날 우리가 알 수 있는 식물도 있으나 기록만으로는 알기 힘든 식물도 있고 동일한 식물을 다른 이름으로 기록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식물을 분류해 보면 거의 대부분 풀, 씨 맺는 채소,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 등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식물들 중에는 우리나라에 있는 식물도 있으나, 이스라엘, 시리아, 요르단 등 중동지역에만 서식하는 식물이 있는 반면에,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서식하고 있었으나 현재에는 멸종된 식물도 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 속에 기록된 생물, 특히 식물에 관한 신비한 기록이나 식물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기록된 식물과 동물에 대하여 먼저 알게 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성경에는 약으로 사용하는 식물, 향료나 맛을 내는데 사용하는 식물, 집을 짓거나 무엇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식물 등 다양한 식물에 관한 기록이 있다. 성경 말씀을 잘 이해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 위해서 이와 관련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더 깊은 은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III. 생명나무는 어떠한 나무일까?

1) 성경에 나타난 생명나무 기록

120여종의 식물 중에서 성경에 맨 처음 기록된 식물은 생명나무이고, 맨 마지막에 기록된 식물도 역시 생명나무 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2: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19).

그런데 이 생명나무는 무엇일까? 실재하는 나무였을까, 아니면 그 의미만 해석해야 하는 대상일까? 에덴동산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아담과 하와가 따먹고 범죄하여 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쫓겨난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생할까 염려되어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 길을 지키게 하셨다 (창 3:22-24).

생명나무가 어떠한 나무였는지 알 수 없지만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으면 영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영생하지만 육신은 죽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생한다는 것은 육신이 영생한다는 말일 것이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도 육신의 죽음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고 영생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그룹과 화염검으로 생명나무 길목을 지키고 계신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나무는 어떠한 나무일까? 문자 그대로 나무를 일컫는 것일까? 아니면 비유로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일까?


2) 생명나무 열매로 영생하는 방법

그렇다면 오늘날 사람이 육신적으로 영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실제로는 불가능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의학과 생명과학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으므로 발전된 생명공학적 방법을 사람에게 적용하면 죽지 않는 방법을 개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생한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볼 때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는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생명공학적 연구는 그리 쉽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전 세계적으로 윤리적, 도덕적 문제로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을 뿐 아니라, 실제 연구를 하는 당사자들 간에도 이를 제지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윤리와 도덕적인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반대해야 할 것이다. 아담 이후에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런데 죽지 않으려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연구 자체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모습을 보시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방법을 쓰실지 모르지만 그룹들과 화염검으로 그 길을 막으실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필자는 개인적으로 복제인간의 탄생 및 영생하는 것에 대하여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친히 섭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IV.  식물의 성생활

20-30 년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오던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될 때 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진정한 사랑”일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어떠한 사랑일까? 물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 된 사랑일 것이지만, 육체적이고 인간적인 사랑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식물의 성생활을 통하여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식물이 보여주는 성생활

식물이 서로 사랑하는 모습은 어떠할까? 식물도 성생활을 할까? 만약 한다면 어떠한 모습일까? 식물도 동물이나 인간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수정을 하고 열매를 맺는 과정에 성생활을 즐기는 것일까? 동물이나 사람의 성생활과 비교하여 식물의 성생활을 통하여 인간이 배울 점은 없을까? 이러한 의문은 오래 전부터 필자가 가져왔던 생각이었고, 문헌연구 결과 많은 식물이 사랑을 동반한 성생활을 해 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식물은 성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은근하게 기다리며 아기자기한 밀어를 속삭일 뿐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데 있어서 매우 적극적으로 임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열매를 잘 맺을 수 있을지 하는 점에 성행위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 과정에는 암술과 수술간의 사랑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식물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성숙한 시기가 아니면 성생활을 하지 않으며, 인간사회에 있는 강압적인 성행위는 절대 찾아볼 수 없다.

달맞이꽃이나 나팔꽃 등 저녁이나 아침에 피는 꽃도 있지만, 대부분의 꽃은 낮에 피었다가 저녁에는 오므라들기 때문에 식물의 성생활은 밝은 대낮에 이루어지고 있다. 식물의 성생활 과정에는 암술과 수술사이의 긴밀한 협조가 없으면 수정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즉 강제적인 방법으로는 성생활을 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식물에 있어서는 수정이 일어나는 시기에 암술에서 특수한 분비물이 분비되는 등 실제로는 매우 적극적인 성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2) 밤에 피는 꽃과 향락산업

식물 중에는 수술과 암술이 매우 특이한 구조로 서로 격리되어 있어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수정이 일어날 수 없는 식물도 있다. 쥐방울 덩굴의 꽃은 맨 안쪽의 격리된 방에 암술이 위치하고 있는데, 털이 나있는 좁은 통로에 의하여 수술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정상적인 방법에 의하여 수정이 일어날 수 없다. 이 식물은 밤에 활동하는 곤충이 좋아하는 고기 썩는 냄새를 풍기므로 곤충을 유인하게 되고 좁은 통로를 통해서 곤충이 꽃가루를 묻혀서 들어오게 된다. 안쪽의 격리된 방에 들어온 곤충은 먹을 것을 찾지만 아무 것도 없고, 속은 것을 안 곤충이 탈출하기 위하여 발버둥을 치지만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은 죽게 된다. 곤충들이 탈출하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사이에 꽃은 자신이 목적하는 수정을 끝내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많은 향락산업이 발달해 있다. 이들 향락산업은 그 활동 시기가 주로 밤이다. 그리고 밖에서 볼 때는 매우 화려하고 사람들이 좋아할 냄새(?)를 풍긴다. 쥐방울 덩굴이 곤충을 유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밤에 활동하는 유흥업소는 자극적이고 향락적인 요소를 내세워서 사람들을 유인하게 된다. 그러나 그곳에 한 번 빠지게 되면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탕진하고서야 빠져 나오거나 쥐방울 덩굴의 꽃에 들어간 곤충처럼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3) 식물의 성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쥐방울 덩굴 같은 식물도 있지만 대개의 식물은 기다림 끝에 은근하고 분위기 있는 성행위 결과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이다. 물달개비는 암술 끝이 3개로 갈라져 있는데, 수술이 첫 번째 암술과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입맞춤(?)을 하여 수정을 하게 되면 두 번째 암술은 오후의 작렬하는 태양아래에서 성행위를 하게 되고, 세 번째 암술은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 아래서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꽃 한 송이 내의 암술과 수술 사이의 성생활은 이러한 기다림 끝에 은근하고 분위기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식물의 성행위 목적은 철저하게 열매를 얻기 위한 방향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그 바탕에는 암술과 수술사이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 노력을 사랑(?)이라고 표현 할 수는 없을까 ?

이러한 성생활 결과 열매가 맺히게 되는데 그 과정 역시 빈틈없이 일어나게 된다. 성경에 보면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그 땅의 소산 중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에스골 골짜기에서 포도 한 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장정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돌아온(민 13:23) 사건이 기록되어있다. 과연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메고 운반해야 할 정도로 큰 포도송이가 열릴 수 있었을까? 외국의 잘 가꾸어진 자연사 박물관이나 식물 표본관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콩 한 개가 주먹 만 하였고 콩깍지의 길이가 2미터 정도인 표본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을 볼 때 가나안 땅의 포도 한 송이도 두 사람이 메고 운반해야 할 정도로 큰 것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V.  자극에 대한 반응을 통하여 알아본 식물의 신비

1) 음악을 좋아하는 식물

식물도 음악을 감상할 줄 알며,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자란 식물은 더 잘 자라고 더 예쁘게 자란다고 말하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음악을 듣고 자란 식물은 병에 덜 걸리고 해충의 피해도 적어서 농약을 적게 뿌려도 된다고 하면 더더구나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자란 채소와 과실은 맛이 더 좋아지고 더 당도가 높으며 인체에 좋은 생리활성물질이 더 많이 생긴다고 말하면 누가 믿을까?

식물과 음악의 관계에 대하여 최초로 관심을 기울인 사람은 다아윈으로서, 1860년대에 미모사에게 나팔소리를 들려주고 잎이 움직이는가를 살펴보았으나 실패했다는 기록이 있다. 1950년대에는 인도의 Singh 교수가 소리굽쇠나 바이올린 음악을 들려준 결과 활발한 원형질운동을 관찰하였다. 또한 미모사에게 인도의 전통음악인 Raga를 들려준 결과 기공수, 표피의 두께, 세포의 크기가 현저히 증가했음을 알아냈다. 지속적인 연구를 통하여 벼의 수확량이 25-60%, 땅콩 수확량이 50% 증가했다는 결과를 얻었다.

미국에서는 1968년에 Retellack은 호박덩굴에게 고전음악을 들려준 결과 덩굴이 스피커를 감싸지만, 록큰롤(Rock'n'roll) 음악을 들려주면 스피커와 반대 방향으로 도망가는 현상을 관찰하였다.

또한 농촌진흥청의 이완주 박사는 식물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 생육이 촉진되고 병해충 발생이 저하되며 오이의 경우 당도가 증가하는 등 재현성 있는 실험결과를 얻었음을 보고하였다. 그리고 식물체내의 화학성분이 변함을 관찰하고, 이러한 좋은 음악을 그린음악(green music)이라고 하여 국내 특허를 얻기도 하였다.

이러한 결과를 종합해 볼 때, 헤비메탈(Heavy metal)이나 록큰롤과 같은 시끄러운 음악보다 고전음악이, 타악기보다는 현악기의 음악을 식물이 더 좋아하며, 2,000Hz 근처의 음파를 좋아한다는 정도가 알려져 있다.


2) 물리적 자극에 대한 식물의 반응

식물체 내에는 평상시에 10-50mv의 약한 전류가 흐르고 있다. 그러나 물리화학적인 자극을 가하면 전류의 흐름이 변화되고 이렇게 나타내는 반응을 검출기를 통해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자극의 종류에 따라서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며, 자극의 세기에 따라서도 다른 반응을 보일 뿐 아니라, 같은 자극이라고 하더라도 식물에 따라서 다른 반응을 나타내게 된다. 사람의 눈이나 귀로는 이러한 식물의 반응을 감지할 수 없지만 식물체에 기계장치를 연결하면 식물이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식물을 유리막대로 건드릴 때와 선풍기 바람을 쏘여줄 때, 처음 식물이 보이는 반응은 큰 차이가 없이 움찔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선풍기 바람에는 더 이상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바람을 즐기는 반면, 유리막대로 건드리는 경우 유리막대를 정지시킬 때까지 계속해서 긴장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식물이 바람과 유리막대 자극을 구별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긴장상태에 있었다면 지구상에 식물이 남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상태에서 식물은 계속 바람을 맞으면서 살고 있는데, 하루 종일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긴장상태에 있다면 결국 생산하는 에너지보다 소비하는 에너지가 많아서 식물은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물이 없는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을 것이다. 식물이 바람과 다른 자극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비한 것인지 모른다. 참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가 아닐 수 없다.

 

3) 거짓말 탐지기로 측정한 식물의 반응

2001년 8월부터 1년 간에 걸쳐 부산지방 경찰청에서 운영되고 있는 Stolting 805-000 형 거짓말탐지기인 Galvanometer를 사용하여 베고니아(Begonia semper), 씨클라멘(Cyclamen persicum), 고무나무(Hevea brasiliensis) 등을 사용하여 식물에게 지극한 사랑을 베풀어주고 난 후 이들 식물에게 스트레스성 자극을 가했을 때, 어떠한 변화를 나타내는지에 대하여 연구를 실시하였다.

실험 조건은 1)식물을 구입하여 잘 보살피면서 하루에 1번 이상 식물에게 사랑한다, 잘 지냈느냐, 보고 싶었다, 나는 네가 좋다 등의 말을 하도록 하고, 2)이들 식물을 각각 2개월 이상 정성껏 기른 후에, 3)부산 지방 경찰청으로 옮겨서 다양한 자극을 주고 식물이 나타내는 반응을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하여 측정하였다.

그 결과 베고니아 잎의 일부를 안과 수술용 가위로 자랐을 때 베고니아는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는 듯이 거짓말 탐지기의 바늘이 활발하게 움직였다. 씨클라멘의 잎에 드라이아이스에 넣어서 차갑게 한 알루미늄 막대를 접근하였을 때 베고니아와 유사한 반응을 나타내었다. 반면에 고무나무의 잎을 자르거나 드라이 아이스에 차갑게 한 알루미늄 막대를 접근 시켰을 때, 반응을 나타내기는 하였지만 베고니아와 시클라멘처럼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반응의 강도도 약한 편이었다. 이는 베고니아와 씨클라멘은 초본인 반면, 고무나무는 목본이기 때문에 자극에 비교적 둔감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꽃에 자극을 가하고 잎에서 반응을 측정하였을 때에 더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었고, 꽃에 자극을 가하고 꽃에서 반응을 측정하였을 때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었다. 뿐만 아니라 동물에서 한쪽 다리를 자르는 정도로 큰 줄기를 잘라내게 되면 식물이 아예 반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생식기관인 꽃이 영양기관인 잎보다 더 민감하게 자극에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고, 식물체의 큰 부분을 자르게 되면 일시적으로 기절하는 정도의 반응을 나타내거나 아예 죽은체 하므로서 더 이상의 자극에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VI.  결 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사는 40년 동안 주식으로 먹었던 만나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먹여주신 기적의 양식이다. 만나는 "이것이 무엇이냐” 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기적의 양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직후 더 이상 내리지 않았고, 단지 언약궤 속에 일부 보존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도 시나이 반도 유목민은 6월경이면 아침 일찍 들에 있는 위성류 아래에 가면 하루에 1kg 정도의 둥글고 흰색의 덩어리를 주워서 여행자들에게 만나라고 판다고 한다. 단맛이 나기 때문에 설탕 대신 사용하기도하며 과자처럼 그냥 먹을 수도 있다.

이 덩어리는 위성류의 줄기와 잎을 갉아먹고 사는 곤충이 나뭇잎 속에 들어있는 질소성분은 흡수하고 함께 포함된 당분은 몸 밖으로 버리는데, 이 당분이 공기와 접촉하면 굳어져서 하얀 덩어리가 되고 이것이 만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곤충은 밤에만 활동하므로 아침 일찍 들에 나가서 만나를 모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늦게 들에 나가면 개미들이 다 물고 가버리기 때문에 성경에는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스러졌더라"(출 16:21)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 대하여는 몇 가지 의문이 있다. 만약에 이러한 해석이 옳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다음 날부터 만나가 내리지 않았는데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갑자기 그렇게 많던 곤충이 다 죽은 것인가? 아니면 위성류가 말라죽은 것인가? 그리고 평일에는 이틀 분을 거두게 되면 썩었지만 안식일 전날에는 이틀 분을 거두어도 썩지 않은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한 얼마나 많은 곤충과 위성류가 있었길래 200만명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일 수 있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성경에는 많은 신비한 기록이 있고 이들 중 많은 기록이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일부 기독교인 과학자들은 성경이 지극히 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든 성경기록을 과학으로 설명하려고 한다면 우리의 눈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과학만 보이게 되며 과학이 곧 하나님을 대신하게 된다. 과학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미래에 과학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능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치한 수준일 것이다.

식물이 보여주는 신비함은 음악을 알아듣는 정도에서 더 나아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고 자신을 죽인 범인의 인상착의를 기억하여 수사관에게 진술을 하는 등 실로 신비한 반응을 나타냄을 알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자극을 주었을 때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고 정확하게 표현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식물이 보여주는 반응은 동물과 인간이 나타내는 반응보다 훨씬 더 예민할 뿐 아니라, 정확하고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잘 다스리고 가꾸어야 함에 있어서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라도 하찮게 볼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따뜻하게 보살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름 모를 잡초(사실 모든 식물은 귀한 이름이 있어서 이렇게 말하면 식물들이 서운하겠지만....) 한 포기라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핑계치 못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정병갑 교수, 장은성 : 고신대학교 생명과학과


참고문헌 

Tompkins P. and C. Bird. 1972. The secret life of plants. Harper & Row Publishers Inc. New York.

양진배, 송태원, 오민석. 1998. Green 음악과 자연음악이 Ethanol 중독 백서의 요산 및 간 대사효소계에 미치는 영향. 한방재활학회지 8(2):480-503

이완주, 이근영, 윤성중, 이동우, 방혜선. 1997. 음악에 의한 식물 생육 촉진 및 성분함량의 변화. 한국정신과학회지 1(2):31-36.

이완주. 1995. 동식물 생육을 촉진시키는 그린음악.  연구와 지도 36(1):27-29. 

이완주. 1997. 그린음악. 서울, 농촌진흥청 잠사곤충 연구소.

이완주. 1997. 음악 들으며 자란 식물은 더 잘 자라고 예쁘게 자란다. 서울, 월간조선 1997년 1월호

임은희. 1994. 음악 속에 숨은 의학. 서울, 청암.

차윤정. 2000. 식물은 왜 바흐를 좋아할까? 중앙 M & B.


 

*참조 :  Venus flytrap : Ingenious mechanism still baffles Darwinist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340/



출처 - 창조과학학술대회 논문집, 2004. 11. 27.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577

참고 :

Rodney McQueen
2005-02-22

튀겨나감의 성공 

: 균류들의 놀라운 분산 방법 

(Splashing success)


      그들은 균류(fungi, 곰팡이와 버섯류)들인데, 아마도 당신은 그것에 대해 모를 것이다. 그들의 키는 단지 수 밀리미터에 불과하나, 조그만 생명체들의 덩어리 안에 놀랄만한 하나의 우주가 들어있다. 그들은 컵 모양(cup-shaped)의 형태이고, 그 안에는 작고 단단한 납작콩 모양의 ‘알(eggs)’들이 깔끔하게 정렬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새둥지버섯(bird’s-nest fungi)‘ 라고 불려지는 이유이다.

1790년까지는 그들은 현화식물(flowering plants)로서 생각되었다. 그리고 작은 알들은 씨(seeds)라고 생각했었다.1 1951년에 이르러서야 브로디(Brodie) 라는 사람에 의해서 어떻게 알들이 둥지에서 날아 나가는지가 밝혀졌다2 (이상하지요? 보통 알들은 깨어 나와야 날아다닐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 알들은 정말 날아간다. 1940년대에, 균류들을 연구하는 어느 헌신적인 과학자가 Juneberry 관목 아래의 땅에 이 작은 둥지의 일부를 알들이 들어있는 채로 놓아두었다. 약 한 달 후에 그는 알들의 일부가 없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셜록 홈즈 탐정처럼 잘 조사해본 결과, 그는 많은 알들이 약 3인치(7.5cm) 길이의 실에 매달려 둥지 위의 나뭇잎에 붙어 있음을 발견했다. 

어떻게 거기로 날아갔는지가 수수께끼였고, 브로디가 그것을 풀었다. 그러나 이것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이 작은 알집과 알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자. 알집은 사실은 Basidiomycete (담자균류, 네 가지의 주요 균류 중의 하나) 라는 균류의 열매(fruiting bodies)이다. 알들은 소피자(peridioles)들이고, 어떤 담자균류에서 포자를 보관하는 특별한 종류의 방이다. 소피자 안에는 대량의 균류의 씨앗(seeds)들인 담자포자(basidiospores)들이 들어있다. 컵마다 여러 개의 소피자들이 있고, 이들은 소피자자루(funiculus)라고 불리는 가늘고 긴 연결체로 인해 컵 안쪽에 붙어있다. 이 소피자자루는 매우 잘 늘어나는데, 축축할 때 잡아 늘이면 8인치 까지도 늘어난다. 그런 상태에서 소피자자루의 끝인 부착기(hapteron)는 매우 접착성이 있어서 어디에든 잘 들러붙는다. 이 사실이 소피자가 둥지에서 날아간 방법에 관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오랫동안, 이 매력적인 균류를 연구했던 많은 사람들은 소피자가 균체 자체의 폭발력에 의해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그냥 해보는 공상이 아닌데, 그 이유는 실제로 그러한 균류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수의 실험에도 불구하고 그런 폭발 메커니즘은 발견되지 않았다.

일부 연구자들은 동물들의 역할이 있었는지를 생각했다. 동물들이 소피자 둥지를 가볍게 스치고 지나며 소피자를 달고 갔을까? 그러나 균류들을 정밀하게 검사한 결과 그러한 가능성은 없었다. 컵의 모양과 소피자의 정교한 부착으로 미루어 보아, 포자 분산(spore dispersal)을 위한 정확하고 정교한 메커니즘이 있음이 틀림없었다.1

브로디는 다른 사람들이 추측했었던 데로 이들의 분산 방법을 발견하였다. 새둥지버섯의 컵은 정확한 기하학적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튀겨내는 접시(splash-cups)로서 작용하는 것이었다. 즉, 폭우 시에 초당 약 6m의 속도로 빗방울이 떨어지면, 소피자(peridioles)들은 대략 1m의 거리를 튀겨나가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당구공을 칠 때 친 당구공의 운동량이 맞은 당구공으로 전달되듯이, 빗방울의 운동량 일부가 소피자에 전달되어 이렇게 튀겨나가는 것이었다.  

튀겨나가는 힘은 주머니(purse)라 불려지는 소피자자루 부분이 터지고 소피자자루 끈과 부착기(hapteron)를 분리시키는 원인이 되어진다. 축축하고 접착성이 있는 부착기는 공기 중을 날아가며 어디에든 닿기만 하면 들러붙게 된다. 들러붙은 후에는 부착된 끈(cord)이 탄성으로 인해 늘어졌다 수축했다를 반복하며 들러붙은 물체에 감긴다. 이 과정은 매우 빨리 일어난다. 

그 다음 소피자는 부착된 곳에 매달려 있다가 껍질이 터지거나 동물에 먹혀서 포자를 퍼뜨리게 된다. 동물에 먹히는 경우에 이 포자들은 아무런 피해 없이 동물들의 소화기관을 통과한 후, 동물의 배변물 위에서 자라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 균류의 디자인에 대해 기적적으로 이루어진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느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새둥지버섯은 경제적으로는 아무 가치가 없지만, 식물학자들에게는 대단히 매혹적인 존재이다. 이 종들의 대다수가 물의 튀김으로 포자를 분산시키는 방법으로 기막히게 적응한 것은, 경이로운 진화의 완벽성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특징들은 이 기능에 맞춰져 있다. 둥지가 부착되어진 모양, 둥지의 외관, 컵 벽면의 각도와 두께, 물론 놀라운 소피자의 꼬리도 포함하여, 이 모든 것들은 성공적으로 포자들이 분산될 가능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1 

진화론자들의 믿음은 확실히 대단한 믿음이다. 사실, 이 균류의 기막힌 설계는 이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Encyclopedia of Mushrooms, Dickinson and Lucas, p. 33.

2. Introductory Mycology, Alexopolous, p. 527.


* Rodney McQueen : Rodney McQueen은 미국과 호주에서 22년간 목회를 해 왔다. 그는 피조물에서 하나님의 창조능력을 발견하는 ‘자연 신학(natural theology)’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현재 태즈마니아의 Westbury에 살고 있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9/i3/success.asp

출처 - Creation 19(3):44–45, June 1997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475

참고 : 5438|5430|5426|5432|5335|5351|5352|5359|5317|5382|5327|5287|5224|5158|5128|5104|5088|4764|4762|4849|4856|4759|4728|4693|4219|4212|4197|4151|4056|4041|3947|3806|3976|3855|3394|3803|2988

손기철
2004-12-10

불가능한 현상 '생명수의 비밀'


     진화론적 입장에서 보면 흔히들 식물은 동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 즉 움직임이 없고 또한 해부학적으로 덜 복잡하기 때문에 동물보다 진화가 덜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덜 복잡하다는 것이 열등을 의미하는 것일까?

 식물은 그 구조적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적응력으로 동물이 살지 못하는 곳에까지 분포하고 있다. 단순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강한 생명력을 보인다는 것은 식물이 오히려 동물보다 진화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진화론적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생존이기 때문이다

생존에 있어 중요한 환경 요인 중의 하나는 물이다. 진화론자들도 태초의 생명체는 물에서 발생하였을 것이라고 가정하듯이 물이란 생명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동물은 말할 것도 없이 식물에 있어서도 모든 반응은 바로 세포 내의 물에서 일어나며, 또한 식물체가 자란다는 것은 바로 식물체가 많은 물을 함유하여 세포를 크게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식물체의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자라나는 그 높이도 다양하다. 1983년판 기네스북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무는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국립공원에 있는 세쿼이아(Sequoia sempervirens)로 기록되어 있다. 이 나무의 높이는 1970년에 111.6 미터로 측정되었다 뿌리로부터 계산한다면 대략 120미터가 넘는 꼭대기의 잎까지 수분이 운반된다고 볼 수 있다.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서 수분이 이렇게 높은 곳까지 운반될 수 있을까? 가장 높은 곳의 잎이 하루에 한 번씩 물을 배급받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공급하에서 생리, 생화학작용을 하며 동시에 증산작용을 한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식물체가 물을 최정상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도 아니다. 이 지구상의 대기압은 1기압이므로 가장 좋은 흡입펌프를 사용할지라도 물을 10.3 미터 이상은 끌어올리지 못한다.

세쿼이아의 경우 지상으로부터 꼭대기까지 물을 끌어올리려면 기본적으로 10.83기압의 압력이 필요하고, 수분 운반경로의 내부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상당한 압력을 더 가해야만 흐름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흐름에 대한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서 물을 끌어올리는 만큼의 압력이 필요하다고 가정하면 전체적으로 약 22기압의 압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지구표면의 대기압에서는 물이 나무꼭대기까지 밀려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여기에 바로 창조주의 놀라운 섭리가 숨겨져 있다. 바로 생명수의 비밀인 것이다.

줄기의 도관 내 물의 상승기제에 관해서는 증산작용, 응집력, 부착력 그리고 장력의 복합설(TACT forces)로 설명할 수 있다. 잎의 엽육세포에서 증산(식물체의 표면으로부터 물이 증발되는 것)이 일어나면 흡수력(수분 퍼텐셜)이 증가되는데, 흡수력은 세포를 통과하여 도관에까지 이르러 도관 내의 물을 빨아들인다. 뿌리의 경우 삼투현상에 의해서 물이 흡수된다. 일단 뿌리 속에 들어간 물은 뿌리의 살아 있는 세포의 피층을 통하거나 혹은 그 세포들 사이로 또는 세포벽을 따라 이동하며, 마침내 뿌리의 유관 속의 세포로 들어간다.


100미터 나무 위로 수분 이동은 이론상 불가능,

대기압에서 물만의 예외적인 특성

도관(물이 통과하는 관. 흔히 목질부라 함) 세포는 죽어 있어 세포질이 없으며, 잎에서 뿌리까지 이어지는 관으로 되어 있고 그 안에는 하나로 이어지는 수주(물기둥)가 있다. 도관 내에서 물분자와 물분자 사이의 응집력은 대단히 크며, 도중에서 끊어지는 일이 없다. 이러한 힘은 바로 물의 수소결합에 기인된 것이다. 또한 도관벽과 물분자와의 흡착력도 크며 물기둥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일도 없다. 따라서 물이 잎세포와 주위 공기 사이에 의해 일어나는 증산작용의 결과로 빨려 올라가면 도관 안에서 물기둥 상태로 끌려 올라가게 된다. 이것을 응집력설이라 하며, 도관에서 물이 상승하는 것은 증산류에 의해 잃은 물을 채우기 위해 물이 계속해서 목부로 나아갈 때 응집력으로 상승하게 된다.

응집력설에 대한 신빙성은 줄기의 경우 밤과 같이 증산작용이 낮을 때는 부풀어 있고, 증산이 왕성한 낮에는 도관 속에 형성되는 엄청난 장력에 의해서 오목해지므로 도관으로부터 물이 빨려 올라가고 있음이 확인된다.

화학의 법칙에는 예외가 없다. 또한 모든 생명체는 바로 이러한 화학의 법칙에 의해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화합물은 분자량이 적을수록 어느 점과 끓는 점이 낮아지는 것이 원칙이다. 즉 분자량이 적을수록 낮은 온도에서 액체로 존재하는 법인데, 물(H2O)만은 바로 이 자연법칙의 이단자인 것이다.

황화수소(H2S)는 분자량이 34로써 섭씨 -60도와 -82도 사이에서 액체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분자량이 18인 물은 섭씨 -91도와 -100도의 범위 내에서 액체로 존재해야 한다. 즉, 화학의 법칙에 따르자면 물은 우리가 생활하는 온도에서 기체로 존재하여야 한다. 만약 지구의 모든 물이 수증기로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물이 없었더라면 생명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은 0~100도에서 액체로 존재한다. 이 불가사이에 의해서 90퍼센트 이상의 수분을 가진 식물이 지구상에 생존하는 것이다.

너무나 하찮은 물에서조차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이 보여짐은 창조론을 부인할 수 없게 한다. 상온에서 액체로 존재하는 물은 세상에서 가장 값이 싸고 구하기 쉽고 유동성이 좋으며 화학적으로 안정하다. 더욱이 엄청난 표면장력, 그리고 수소결합의 특성, 극성용매의 성격, 가장 높은 비열 등 오직 물만이 가지는 예외적인 특성으로 1백 미터가 넘는 식물에게까지 생명수를 보급할 수 있는 것이다.


물은 한마디로 경이의 물질이다.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로 만드신 놀라운 창조물질 중의 하나임을 증거하는 것은 우리 주위에 너무나도 많다. 즉 물은 지구라는 이 행성의 4분의 3이나 되는 표면을 덮고 있다. 이 4분의 3이라는 분포 상태는 현상태의 온도와 기후 조건에 필수불가결한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물의 특성이 없다면 기온의 대격변이 일어나 생물에게 전반적인 파멸을 미칠 것이다.

우리는 흔히들 만물이 우연에 의해서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진 자연(自然)의 법칙에 의해서 주관되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 비친 세상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 그렇게 만드신 참자연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 또한 그분이 주관하시는 세상이기에 만물의 질서와 규칙이 수학공식과 같이 획일적으로 운용되거나 법칙 일변도로만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애적인 요소가 자연의 곳곳마다 신성과 능력으로 나타나 있음을 볼 수 있다.

과학으로 풀 수 없는 기적이란 바로 이것에 연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도 마찬가지이다. 태초부터 우리의 과학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사랑으로 지으신 물이 있었기에 모든 생명체가 살 수 있었고 하찮은 나무에 있어서도 아무런 에너지 투입 없이 1백 미터 이상의 높은 곳까지 물이 이동될 수 있는 것이다.

식물은 토양에 뿌리를 박고 그 속에 생명수를 빨아 올려 살면서 이 세상의 지체적(肢體的)인 사명을 다하고 있다. 우리의 지체적인 사명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 7:38)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렘 2:13)

예수에게 우리 삶의 뿌리를 내리고 그분이 주시는 값없는 생명수를 마시자.



출처 - 신비한 생물 창조섭리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352

참고 :

손기철
2004-12-01

상상을 초월하는 종자들의 생명여행


     인간이 자식을 낳아 번성하듯 식물 또한 자식을 낳아 번식한다. 그러나 식물은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식을 인간이나 동물처럼 하나 둘 낳는 것이 아니라, 매해 수백, 수천, 심지어는 수백만 개의 종자를 생산하며, 이들은 여행을 한다. 바로 생명의 여행인 것이다.

만약 식물체가 스스로 종자를 만든 다음 그 종자를 자기 발밑에만 떨어뜨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종자가 자라나기 시작하면 공간, 물, 영양분, 햇볕에 대하여 서로 경쟁을 하게 된다. 따라서 자원에 대한 어린 식물들의 이러한 상호경쟁은 결국 죽음과 결핍증을 초래하고 만다.

실제로 한 지역에는 많은 식물을 자라게 할 자원이 풍부하지 못하다. 종자의 산포(散布)만이 같은 종 내의 심각한 경쟁을 감소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또한 이러한 산포는 종자를 널리 퍼뜨림으로써 본래의 조건보다 오히려 좋은 환경으로 인도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식물들은 특이한 형태의 과실이나 종자를 생산해내며, 특별한 전파방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과연 이것만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과학적 해답일까?

과실이나 종자의 산포는 특별한 매개물 없이 환경에 의해서 스스로 산포하는 것도 있으나, 대부분의 식물들은 그들 스스로 종자를 산포하는 대신 바람, 물, 동물, 심지어 인간까지도 매개물로 이용한다.

많은 과(科)의 과실들은 때때로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상당한 물리적인 힘으로 종자들을 방출한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 풍년화의 낭(囊)은 건조해짐에 따라 낭이 폭발적으로 터져서 종자가 12미터 이상을 날아간다. 몇몇 콩과식물인 봉숭아의 종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왜성겨우살이는 항온동물이 가까이 왔을 때 그 열에 반응하여 종자를 격렬하게 산포하며, 그 힘이 너무 세어 동물의 표피에 맞으면 자국을 남기기도 한다.

필라리라는 식물의 종자 산포는 마치 지혜를 가진 것처럼 매우 신비하다 과실의 각 심피는 둘로 분리되어 중심선으로부터 밖으로 구부러진다. 각각의 작은 과실은 기부(基部)에 존재하는 하나의 작은 종자를 포함하고 있으며, 다른 쪽의 끝에는 길고 얇은 부리처럼 생긴 것이 있는데, 이것은 습도의 변화에 민감하다. 습도가 증가하는 밤에는 부리가 비교적 곧으나 햇볕이 있으면 나사모양으로 꼬인다. 그렇게 꼬임으로써 뽀족한 종자는 땅 속으로 드릴처럼 뚫고 들어가 스스로 심겨진다.

난과(蘭科)와 석남과(石南科)의 식물은 먼지 무게 정도로 가볍고 미세한 종자를 생산하여 바람에 의해서 널리 이동되어진다. 단풍나무과의 익과(翊科 ․ 단풍 속의 식물의 열매처럼 익상채로 날아 흩어지는 것)는 구부러진 날개를 가지고 있어서 나무에서 떨어질 때 돌면서 떨어진다. 바람이 세차게 불 때는 이들 익과가 10킬로미터 정도까지 날아간다.

우리가 흔히 아는 민들레의 경우도 자세히 조사하면 놀랍기 짝이 없다. 작은 과실은 깃털을 가지고 있어서 낙하산같이 이동된다. 만약 공중 수분도가 높거나 비가 많이 오면 과실은 이동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깃털을 접어둔다. 그 후 날씨가 맑아 건조해지면 과실은 다시 깃털을 활짝 펴서 미풍에도 날아가게 되는 것이다.

한편 잡초의 일종인 텀블워드는 가을철에 일정하게 자라 종자가 어느 정도 성숙하면 밑둥지가 바람에 의해 부러지고, 그 때부터 바람에 의해 구르며 긴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 중 어떤 물체에 부딪힐 때마다 종자를 흩뿌리는 것이다.

수매(水媒, 물에 의한 여행)하는 식물종자나 과실의 경우는 조직의 일부분에 공기를 포획하거나 조직 자체가 공기를 넣기에 적당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예를 들어 골풀의 경우는 공기가 들어가 부풀려진 주머니로 둘러싸인 종자를 갖고 있는데, 이 주머니는 종자가 뜨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물에 떠 있는 동안 흡수를 방지하기 위해서 표면에 왁스물질을 지니는 것도 있다.

어떤 과실은 특히 대양해류에 의한 여행에 적합한데, 이들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코코넛이다. 이 코코넛은 수년에 걸려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하기도 한다. 열대 바다에 새로 생긴 환초에서 어김없이 코코넛이 자생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새의 소화기관 거쳐야만 발아(發芽) 되는 씨앗

모든 생명체, 환경을 매개로 전파


동물 산포에 대해 과일과 종자가 적응하는 경우는 무수히 많다. 조류, 포유류, 개미류 심지어 인간까지도 모두 여행 매체로 작용한다. 해변에 서식하는 조류는 발밑의 진흙에 부착된 종자를 아주 멀리 떨어진 곳까지 운반하며, 다른 새들과 포유류는 과일을 먹는데 그 과일의 종자는 상처가 나지 않은 채 그 동물들의 소화관을 통과해 지나간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러한 처리를 받지 않으면 아예 발아하지 않는 것도 있다.

청어치와 딱따구리 그리고 그 밖의 새들은 견과류와 과일을 운반하고, 날아가는 도중에 그것들을 떨어뜨린다. 많은 종자들은 동물과 조류의 털이나 깃털 속에 붙는다. 갈퀴덩굴 속의 식물과 개자리, 그리고 도꼬마리는 털 또는 등산객의 양말 속에 걸리기 수운 작은 고리들로 뒤덮여 있다.

유니콘 식물(북미산의 초본)의 커다란 씨 꼬투리에는 약 15센티미터 길이의 두 개의 크고 구부러진 고리가 있다. 이것들은 우연히 과일을 밟는 사슴이나 그 밖의 동물들의 털에 걸리게 되며, 동물이 움직임에 따라서 흩어 진다.

금낭화, 연령초와 그 밖의 몇몇 식물들은 종자에 개미를 유인하는 오일이 함유된 돌출물을 가지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일련의 단일 개미 집단에 의해서 3만6천개 이상의 종자들이 개미집으로 옮겨지고, 그곳에서 개미들은 먹이를 얻기 위해서 그 돌출물을 벗겨내지만 종자 자체는 손상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듯 전 세계에 걸친 생명의 전파와 여행은 오늘도 진행되고 있다. 도대체 생명의 번성은 어째서 일어날까. 번성이란 진화론이 말하는 것처럼 우연에 의해 생긴 생명체가 환경과의 관계로 만들어진 수동적인 결과인가. 수동적인 번성이라면 이렇게 다양하고 정교한 생명여행의 양식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왜 모든 생물체는 스스로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 대신에 번식하는 법을 배웠을까.

실제로 종족번식이란 자신의 죽음으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거룩한 작업이다. 그렇다면 사랑과 희생과 이타주의가 용납되지 않고 철저한 약육강식과 자연선택에 기반을 둔 진화가 과연 이러한 방향의 진화를 택할 수 있을까.

같은 서식처, 같은 환경에서 사는 식물들이 수없이 다양하고 독특한 생명여행 양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실과 종자의 놀라운 생명여행은 자신의 종족번식을 위하여 서서히 진화되어 온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풍성하게 하고 모든 생물에게 식물을 주기 위한 이미 계획된 섭리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보시기에 아름다운 세상을 꾸미기 위해서, 하나님의 명령인 음식물로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땅끝까지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혼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모든 생명체가 조화하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한다. 이 놀라운 창조의 비밀을 보라. 지구상의 모든 동물이 먹으면 먹을수록,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올수록, 식물종자의 생명여행은 더욱 신비스럽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 인간도 “말씀의 씨앗”으로 신비한 생명여행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신비한 생물 창조섭리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337

참고 :

손기철
2004-07-26

식물의 신비 (1)


     식물은 진화론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많은 수수께끼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관찰되는 식물의 외관뿐 아니라 내적인 면에 있어서도 그렇다. 이 지구상에 수없이 많은 꽃들이 존재한다. 그 꽃들은 갖가지 아름다운 색깔과 다양한 형태를 지니며, 종류에 따라 향기와 꿀도 있다. 그러나 어떤 과학기술로도 산야에 피는 이름 모를 꽃에서부터 우리가 정원과 실내에서 재배하는 화초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흉내내지 못한다. 

꽃은 왜 피는가? 진화가설은 꽃이 종족번식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암술과 수술이라는 배우체를 만들며, 수분과 수정을 통하여 다음 세대를 이어간다. 따라서 꽃은 수분을 해주는 벌과 나비 등 많은 충매들을 유인하기 위해 각각 독특한 아름다운 색과 다양한 형태로 진화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지 수분만이 목적이라면 색깔, 형태 그리고 향기가 그렇게 다양할 필요가 있을까?

진화론자들은 꽃은 색깔과 형태에 있어 매개체와 상호 진화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같은 매개체를 이용하는 꽃이 색깔과 형태가 다양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환경에 적응하도록 진화되어 왔다면 같은 장소에서 자라는데, 어떤 식물은 일년생이고 어떤 식물은 다년생이 되는가? 또한 매개체를 이용하지 않는 수많은 꽃들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바람에 의해 전파번식되는 식물들은 왜 꽃을 피우는 방향으로 진화되지 않았을까? 

과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진화론자들은 꽃에서 열매가 맺히기 때문에 꽃피는 식물은 열매를 가진다고 생각하며 그 속의 씨는 새로운 종자이고 나머지 우리가 먹는 부분은 자손을 번식하기 위한 영양분을 저장한 것이라고 한다. 나무에 달린 과실은 때가 되어 땅에 떨어지면 그 영양분을 이용해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실의 존재가치가 단지 번식이 목적이라면 수많은 과일의 아름다운 색깔, 맛과 향기는 왜 생겨나며 필요이상의 풍성한 영양분은 왜 간직하는 것일까? 생존과 적응만이 목적이라면 각각의 독특성과 다양함을 지닐 이유가 없을 것이다. 과실이란 식물체가 생명유지와 성장을 위한 필요성을 다 채울 뿐 아니라, 또 다른 목적-동물의 영양-을 위한 잉여영양분의 저장소인 것이다. 

식물은 크게 꽃, 열매, 잎, 줄기, 뿌리 등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수많은 식물들은 모두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삶을 영위하고있다. 진화론자들은 식물의 다양함은 환경에 따른 적응과 변이의 결과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고구마는 뿌리가 진화한 것이고, 감자는 줄기가 진화한 것이며, 완두는 잎이 진화하여 덩굴손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왜 감자는 줄기가, 고구마는 뿌리가 진화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같은 환경에 사는 식물들이 잎과 줄기, 뿌리 그리고 열매가 서로 다른 것은 어떻게 해명해야 하는가? 우리가 흔히 알뿌리 식물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생각해 보자. 이러한 식물들은 양분을 저장하는 독특한 땅속 저장기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같은 환경속에서도 어떤 것은 뿌리가, 어떤 것은 잎이, 어떤 것은 줄기가 변형되어 저장기관을 형성한다. 형태 또한 다양하기 그지 없다. 우리가 먹는 마늘, 양파에서부터 백화, 수선화, 달리아, 글라디올러스 등의 조화를 생각해보라. 이런 것을 어떻게 진화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흔히 환경에 맞게 변화되어 왔다고 한다. 차후에 구체적으로 다루겠지만 우리는 적응과 진화를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 환경에 적응할 수는 있으나, 그 변화가 축적되어 새로운 종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가을의 단풍은 아름다운 색의 조화로 우리에게 황홀감을 준다. 이러한 조화와 아름다움이 우연히 생겨난 것일까? 진화론자들은 나무가 추위가 오기 전에 자신의 생존을 위해 엽록소를 파괴하고, 영양분을 체내에 보관하며, 그러한 과정의 산물로서 단풍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단풍의 색을 내기 위해서는 당이 잎속에 축적되어야 하며, 카로틴과 크산토필, 그리고 화청소라 불리는 일종의 플라보노이드 계통의 물질이 새로 합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생합성을 하는 이유를 자기보존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진화가설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나뭇잎의 떨어짐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생명과 토양의 비옥함을 위한 자기희생이며, 떨어진 나뭇잎은 토양 속에 있는 수많은 미생물들에 의해 다시 식물체가 이용할 수 있는 무기물로 분해되고, 지력의 밑거름이 된다. 이러한 모든 상호관계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의해 처음부터 설계된대로 완벽한 조화와 질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창세기 1장 11-13절, 29-30절 그리고 2장 9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각기 그 종류대로 만드셨으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울 정도로 조화, 균형, 질서와 다양함을 갖춘 식물들을 만드셨으며, 식물이 인간이나 동물의 음식물이 되도록 만드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알의 종자가 죽어서 완전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일련의 과정과 들에 핀 백합화의 아름다움을 보노라면 하찮은 식물에게까지 미치는 그분의 놀라운 사랑과 섭리를 알 수 있다. 창조주의 섭리 안에서 모든 피조물이 그분의 경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면, 어찌 이와 같은 조화와 균형과 질서, 그리고 한치 오차없는 통합성과 합리성이 자연계에 편재할 수 있는가? 

모든 것에 확신과 믿음으로 일관해 온 과학자들일지라도 자연만물의 증거자료를 분석종합하여볼 때 과학적 탐구로는 지혜의 존재 그 자체는 알 길이 없으나, 놀라운 지혜의 손길은 의심할 수 없으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보여 주셨던 보이지 않는 그분, 그 사실을 우리의 유추적인 논리로서도 넉넉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1:20) 이다. 

과학이란 하나님의 활동을 관찰하고 그를 통해 좀더 그분을 알고, 그분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하는 활동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지구상에 사는 사람중 약 20%는 쌀을 주식으로 한다. 아시아의 경우 약 6천년 전부터 쌀이 경작되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모든 식물 중 쌀만큼 지속적으로 우리의 모든 노력을 경주한 것도 없을 것이다. 즉 가장 오랜 동안, 가장 인위적이고, 가장 극단적인 처리를 한 식물이라면 벼를 들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수천년 간, 증산과 품질향상을 위해 일반 재배법의 개선에서부터 방사선처리까지 모든 방법을 다 시도해 왔다. 그러나 얻은 것은 무엇인가. 키가 크든 작든, 잘 생겼든 못 생겼든, 또는 생산량이나 저항성이 크든 작든 간에 결국 쌀을 얻었을 뿐이다. 

자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의 보존, 즉 생존이다. 그런데 왜 모든 생물체가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진화의 결과 얻어지는 이득이 무엇인가?

진화가설의 핵심 주장은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화가설대로 태초의 한 하등동물을 생각해보자.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가는 접어두고, 진화하지 않아도 생존하는데 이 생물체는 고등한 생물체로 진화해야 하는가?

아메바에게는 생의 목적도 사랑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소위 과학의 발달이라는 가면을 쓴 인간의 탐욕을 슬그머니 진화가설에 끼워 넣어 모든 생명체에게 확대하는 것은 왜일까? 

오늘날 수없이 많은 생물체를 보고, 그것의 복잡함을 따져서 진화의 서열을 정한다. 그러나 여기 중요한 점은 오늘날 진화가 잘된 생물체만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등생물까지도 엄연히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도 서로 직, 간접으로 상리상생하면서 말이다.

어느 생물체가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의 관계, 즉 생존만이 중요하다면 아메바가 가장 진화된 생물일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단순하면서도 최상의 적응으로(가장 경제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화가설은 필연성에 대한 해답을 전혀 주지 못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우연에 의해서, 몇 개의 원소가 모여 분자가 되고, 그것이 마침내 하나의 독립세포로 이루어졌다는, 순전히 물질론적인 진화가설로는, 무목적성 생명체인 아메바가 선택압에 의해서 최상의 생명체로 진화되어 왔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데, 그것으로 인간이 가지는 생명체 내부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삶에 대한 성스러운 명령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렇다면 인간이나 돌이나 다를 바가 무엇인가?

둘 다 분해해보면 똑같은 재료요, 더 따져보면 똑같은 분자나 원자로 이루어진 것 아닌가! 진화가설은 삶에 대한 성스러운 명령(인생의 목적)에 대해서는 이처럼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는 것이다. (계속)

 


출처 - 창조지 제 101호 [1997. 1~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3

참고 : 5772|5775|5788|5823|5855|5933|5938|5956|5978|6024|6050|6053|6056|6057|6114|6200|6236|6269

손기철
2004-07-26

식물의 창조섭리


1. 에덴동산을 그리워하는 성도

과학의 발달로 인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인간의 생활수준을 급격히 향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생활방식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의식주 해결이 생활의 중심이 되었던 소위 '생리적' 생활양식이, 경제적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자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보다 높아진 '사회적' 생활양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약간의 여유만 있어도 도시를 탈출할려고 노력하며, 지금 생활하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삶의 재충전의 기회를 가질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의 내면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이미 우리가 저질러 놓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미해결된 생활환경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대기오염, 수질오염, 쓰레기, 범죄, 녹지의 감소, 정신과 육체의 불균형으로 인한 사회적 범죄 등으로 우리 생활주변의 '환경의 질'은 '삶의 질'을 항상 위협하고 있는 '이카루스(Icarus)'적 삶을 살고 있는 실정이다.

 

2. 식물의 창조와 이해

1) 창조의 시기

[개역](창 1:11)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개역](창 1: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개역](창 1:1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2) 음식물로 주심

[개역](창 1: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개역](창 1: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 식물을 통한 자연의 아름다움

[개역](창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개역](창 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4) 삶의 환경

[개역](창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개역](창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5) 생명체의 에너지원(광합성)

욥 8:16, 식물이 일광을 받고 푸르러서 그 가지가 동산에 벋어가며, 이 지구상의 모든 기식하는 생명체를 먹여 살리는 기작은 바로 녹색의 잎이에 일어나는 광합성이라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이 광합성의 기작을 알게된 것은 채 100년도 되지 않습니다. 즉, 이산화탄소와 물이 태양광선을 받아 잎에서 우리가 먹는 탄수화물을 만들고 산소를 방출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욥기 8장에 이미 광합성의 신비에 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3. 식물의 치료효과

 자연을 우리의 유익만을 위해서 마음대로 훼파하고 정복해도 되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자연에 행했던 모든 일에 대한 반대급부로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 오존층 파괴, 지진과 홍수 등 환경파괴의 벌을 혹독히 받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sick building syndrome'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실내에 식물을 둔다면 얼마나 많은 유익이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실내볼륨의 약 5-10%정도의 식물만 두면, 겨울철에는 습도를 20-30%까지 높일 수 있으며, 여름철과 겨울철 각각 실내온도를 약 3도 정도 떨어뜨리거나 올릴 수 있다. 또한 식물체는 광합성을 할 때 공해물질을 동시에 흡수하여 어떤 공기 청정기보다 효과적이다. 더욱이 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컴퓨터나 TV에서 발생되는 유해 전자파를 제거하는데 다른 어떤 기기보다도 효과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식물이나 원예활동은 단지 육체적인 면뿐만아니라 정신적인 면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이것을 통한 치료, 재활, 회복, 그리고 삶의 질을 높이는 원예치료(horticultural therapy)라는 학문이 국내외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예를 들어 창밖으로 식물을 볼 수 있는 입원실과 그렇지 않고 단순히 건물만을 볼 수 있는 입원실에서 수술한 환자가 회복되는 것을 비교해 보면 두통, 아픔, 불평, 회복기간 등 모든 면에서 식물을 본 환자가 나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식물을 볼 때, 뇌파의 델파파가 감소되고 알파파가 증가되어져 단순히 식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치료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식물은 과거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히 덜 진화된 하찮은 생명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인 것이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이 심신의 불균형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주신 식물의 소중함을 알고 원예생활의 즐거움을 맛보자.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이땅에 에덴동산과 에덴마음의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4. 식물은 그리스도인에게 왜 중요한가?

1) 사람들이 산소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지내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물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먹거리외의 역할을 생각해 보신적이 있나요?

2)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계의 자연, 그 자연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환경관련 연구단체에서는 식물을 통한 환경회복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우리 인간의 유익만을 위해서 자연을 파괴한 결과로서, 환경오염과 이상기후와 같은 여러 가지 재난을 받고 있습니다.

3) 비그리스도인은 진화론을 믿고 있지만, 진화론(원숭이들이 살던 숲속)을 믿든 창조론(에덴의 동산)을 믿든 간에 우리 인간 삶의 시작은 녹색의 동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현대인의 모든 정신적, 육체적 불균형은 궁긍적으로 녹색을 잃어버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녹색은 치유의 색이며, 하나님이 우리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색이라는 사실입니다.

4) 천지창조 6 일중 제 3일째 육지를 만들고 식물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인간의 자유의지에 사용한 도구가 바로 생명나무라는 점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초의 생명체는 바로 식물입니다. 이 식물을 우리가 어떻게 잘 활용하는가가 하나님의 나라를 그분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관건이 되는 것입니다.

 5) 21세기를 향한 오늘 시점에서 지구의 환경보전에 가장 책임을 지며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타락시 인간뿐만아니라 피조계 전부가 타락되었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인만이 올바른 환경관을 가지고 이 피조세계를 회복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인간이 세상에 대해서 오감을 통하여 배우는 첫 대상이 바로 식물이라는 것입니다.

 

5. 결론

자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의 보존 즉 생존일 것이다. 왜 모든 생물체는 진화되어와야 하는가? 진화의 결과로 얻어지는 득이 무엇인가? 진화론의 핵심은 바로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화론적으로 태초의 한 하등생물을 생각해 보자.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해서는 접어두고, 왜 이 생물체는 고등한 생물체로 진화해야만 하는 것일까? 진화하지 않아도 엄연히 생존하는데 말이다. 아메바에게는 생의 목적도 사랑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더 편하게 더 잘 살아야 한다는, 과학의 발달이라는 가면을 쓴 인간의 탐욕을 슬그머니 진화론에 끼여넣어 모든 생명체에게 확대적용하는 것은 왜일까? 오늘날 수없이 많은 생물체를 보고, 그것의 복잡함을 따져서 우리는 진화의 서열을 정한다. 그러나 여기에 중요한 사실은 오늘날은 진화가 잘된 생물체만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등생물까지도 엄연히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우기 그것도 서로 직,간접으로 상리상생하면서 말이다. 어느 생물체가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의 관계 즉, 생존만이 중요하다면, 아메바가 가장 진화된 생물일 것이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최상의 적응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진화론은 하등에서 고등으로 진화의 필연성에 대한 답을 전혀 주지 못하고 있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amazement/a1/a13/a13o2.htm

출처 - 교육원교재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

참고 : 6402|6391|6309|6269|6236|6200|6114|6057|6056|6053|6050|6024|6004|5978|5956|5938|5933|5855|5823|5788|5778|5856|5775|5774|5772|5763|5757|5754|5746|5736|5735|5700|5692|5679|5665|5663|5657|5656|5654|5574|5571|5554|5529|5526|5524|5478|5477|5475|5432|5430|5426|5391|5363|5362|5356|5352|5345|5341|5292|5242|5165|5137|5123|5089|5046|5024|5023|4854|4830|4712|4708|4574|4556|4457|4454|4433|4408|4407|4358|4325|4225|4059|4034|3953|3921|3861|3854|3758|3711|3183|3158

손기철
2004-07-26

진화론은 식물의 광합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아무런 비판이나 의심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왔던 진화론적 결과들이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창조론적 입장에서 자연계, 그 예로 지구상 생물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식물을 살펴보자. 우리는 자연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까지 우리는 모든 자연을 특히 식물을 진화론적인 측면에서 생각하고 연구하고 보아왔다. 즉 모든 식물은 우연에 의해서 생겨났으며, 적응과 돌연변이, 그리고 자연도태와 양육강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근본은 실용주의적 혹은 이기주의적(egoism), 그리고 자기 보존적인 것이며, 자연을 인간중심적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에 비하여 창조론적인 사고방식은 자연이 처음부터 한 설계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완벽한 피조물로서 조화, 균형, 그리고 질서 속에서 서로 상호화합하여 아름다움을 유지해 가는 것으로, 하나님의 성품인 이타주의와 자기 희생적 상리상생(相利相生)으로 보는 관점이다. 

식물은 진화론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관찰하는 식물의 외관적인 면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외관적인 면에서 몇 가지만 관찰해보자.

 

꽃은 '생존' 보다 아름다움이 더 큰 존재 이유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창:1143).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창 1 :29).

이 지구상에는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꽃들이 존재한다. 들 위나 산야에 피는 이름 모를 꽃들에서부터 우리가 정원과 실내에서 재배하는 화초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어떠한 과학적 방법도 그 자연의 아름다운 색을 흉내내지 못한다. 또한 꽃은 갖가지 아름다운 색깔과 다양한 형태를 지니며. 종류에 따라 향기와 꿀까지 지니고 있다. 

꽃은 왜 피는가? 너무나 당연한 질문일지 모르겠다. 진화론적으로 꽃은 종족번식을 위한 수단으로 암술과 수술이라는 배우체를 만들며, 수분과 수정을 통하여 다음 세대를 이어간다. 따라서 꽃은 수분을 해주는 벌과 나비 등 많은 충매들을 유인하기 위해서 각기 독특한 아름다운 색과 다양한 형태들로 진화되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지 수분만이 목적이라면 색깔과 형태, 그리고 향기에 있어 그렇게 다양함이 필요할까? 

꽃은 색깔과 형태에 있어 매개체와 상호 진화해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같은 매개체를 이용하는 꽃들의 색과 형태의 다양함은 어떻게 설명되어질 수 있는가? 또한 매개체를 이용하지 않는 수많은 꽃들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굳이 생존만을 위한 것이라면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치장이다. 또한 단지 바람에 의해서 전파번식 되는 그러한 식물들은 왜 꽃을 가지기 위한 방향으로 진화되지 않았을까?

 

과실, 식물체의 잉여영양분 저장소 

과실을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꽃으로부터 열매가 맺히기 때문에 꽃피는 식물은 열매를 가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부분 열매란 자방이 성숙한 것으로 그 속에 씨를 가지고 있다. 열매 중에는 아몬드와 같이 딱딱한 것도 있고, 사과나 배와 같이 신선한 과실도 있다. 과실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진화론적인 사고방식으로 씨는 새로운 종자이고, 나머지 우리가 먹는 부분은 자손번식을 위한 영양분을 저장한 것이라고 한다. 나무에 달린 과실은 때가 되어 땅에 떨어지면 그 영양분을 이용해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킨다. 단지 과실의 존재가치가 번식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수많은 과일이 각기 아름다운 색깔, 맛, 향기는 왜 생겨나며, 그리고 필요 이상의 풍성한 영양분은 왜 간직하는 것일까? 생존과 적응만이 목적이라면 각각의 독특성과 다양함을 지닐 이유가 없다. 사실 과실이란 식물체가 자기의 생명유지와 성장을 위한 필요성을 다 채운 다음, 또 다른 목적을 위한 잉여 영양분의 저장소인 것이다. 

가을날의 단풍을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 색의 조화를 이루는가? 황홀할 지경이다. 이러한 조화와 아름다움이 우연히 생긴다는 말인가? 흔히들 우리는 추위가 오기 전에 나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엽록소를 파괴하고, 영양분을 체내에 보관하며, 그러한 일련의 과정의 산물로서 단풍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단풍의 색을 내기 위해서는 화청소(anthocyanin)라 불리는 일종의 플라보노이드 계통의 물질들이 새로 합성되어야 한다.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러한 생합성을 하는 이유는 자기 보존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진화론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광합성은 생물권 성립의 핵심 

이제는 내면적인 면에서 생각해보자. 태초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살아나가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누구나가 의심없이 태양에서 오는 빛에너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생명체는 그 빛에너지를 그냥 이용할 수 없으며, 빛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전환한 후에야 사용할 수 있다. 이때 빛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꾸는 최초의 기작이 바로 녹색의 식물체가 행하는 광합성이다. ”식물이 일광을 받고 푸르러서 그 가지가 동산에 벋어가며”(욥816). 식물은 태양을 향하여 녹색을 띤 잎을 벌리고, 태양 에너지를 받고, 기공을 통하여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뿌리에서 흡수한 물을 사용해 광합성을 하며, 그 결과 모든 생명체의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합성하고 동시에 산소를 발생시킨다. 

광합성! 이 놀라운 생명 에너지의 비밀은 가장 작은 수은 전지보다 천만 배나 더 작은 보이지 않는 식물세포 세계의 소공장에서, 태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그리고 소음없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을 먹여 살리는 지상 최대의 공장에 주인이 없으며, 소음하나 없다니 참으로 기적 중의 기적이다. 따라서 식물의 광합성이야말로 생물권(biosphere)을 성립시키는 핵심인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직물원료, 재목, 고무, 섬유, 유지, 연료 등 사람을 위한 모든 생산물은 바로 이 광합성이라는 신비스러운 과정을 통하여 생산되어진 것이다. 현재 우리는 아직도 광합성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이타주의와 상리상생의 창조질서 회복해야 

20세기 말 현재 눈부신 과학의 발달로 말미암아 인간이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 누릴수록, 지구의 생물권은 몸살을 앓게 되었으며. 마침내 오늘날에는 그 정도가 심화되어 위기의식까지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이상적인 기후변화와 더불어 대기오염이나 산성비, 이산화탄소의 증가에 의한 지구의 온난화 및 이상기후 발생, 오존층 파괴에 의한 유해 자외선 량의 증가 등으로 말미암아 생태계의 파괴가 점차 진행 중에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점에서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땅을 정복하라”(창 1:27,28) 라는 말씀을 올바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인간은 땅을 지배하라는 하나님의 신적 위임을 마치 우리 인간에게만 귀속된 속성으로 잘못 판단하여, 인간이 피조물이기를 (자연과 화합하기를), 과학의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 포기함으로 마침내 인간과 환경과의 바른 관계를 상실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동안 우리가 과학의 물밑에서 움직이는 진화론적인 사고방식 즉, 개인화, 소유화, 전문화되어지는 과정 속에서 전체 관계성에 대한 통찰을 잃어버렸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오늘날 환경보호론자와 범신론자들에 의해 주장되는 인간만의 행복과 건강만을 위한 생태계의 보호 및 환경보호에 대한 기독교인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기도 하다. 진정한 에덴동산은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곳으로 모든 생물체가 협력하는 곳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모든 식물에 관한 신비를 단 몇 줄의 하나님 말씀으로 확연히 깨달을 수 있다. 창세기 1장 11-12, 29절과 2장 9절의 말씀으로부터 1)하나님은 식물체를 처음부터 각기 그 종류대로 만드셨으며, 2)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울 정도로 조화, 균형, 질서와 다양함을 갖춘 식물들을 만드셨으며, 3)식물들이 인간이나 동물들의 식물(음식물)이 되도록 만드셨으며, 나아가 4)인간 혼자가 아니라, 식물과 동물이 상호 공존하여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드셨다는 것이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amazement/a1/a13/a13o3.htm 

출처 - 기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5

참고 :

이웅상
2004-07-26

태양 에너지와 식물 생리학 (성경에 나타난 광합성의 원리)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생산자인 녹색식물들은 어디서 어떻게 영양분을 얻어 성장하고 열매를 맺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소비자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해줄 수 있는 것인가. 1630년까지 생물학자들은 식물이 뿌리를 박고 있는 토양으로부터 모든 영양분을 흡수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결국 식물이 성장함에 따라 토양은 점차로 소모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963년에 식물학자인 헬몬트(Van Helmont)는 식물이 자신의 유기물질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지, 토양으로부터 단순히 흡수하는 것이 아님을 실험을 통해 입증하였다. 그는 200파운드의 토양을 화분에 채운 뒤 버드나무를 심었다. 5넌 후에 이 버드나무의 무게는 성장으로 인해 164파운드로 늘어났으나, 토양의 무게는 단지 2온스밖에 줄지 않았다. 이 실험으로 헬몬트는 식물을 성장시키는 요인은 그가 준 물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늘날 우리는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유기물들이 다양한 물질대사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세포의 70% 이상이 물로 되어 있음을 감안할 때, 식물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물임을 알 수 있다.

성경은 과학자들이 이 사실을 밝히기 전에 이미 물의 중요성을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다. 에스겔 31장4~5절에 '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신긴 곳을 둘러 흐르며 보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그 나무가 물이 많으므로 키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높으며 굵은 가지가 번성하며 가는 가지가 길게 빼어났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물에 의하여 식물의 키와 굵기가 성장할 뿐만 아니라 가지의 수와 길이도 물에 의해 자라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사야 44장14절에도 '나무를 심고 비에 자라게도 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비가 식물 성장의 주 요인임을 밝힌 구절이다.

물만으로 식물의 성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헬몬트에 이어, 1772년 프리스트리(Joseph Priestley)는 식물이 탁한 공기를 맑게 정화시켜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1779년에 인겐하우츠(Jan Ingenhousz)는 식물이 해가 비치는 동안만 탁한 공기를 정화시킬 수 있으며, 정화 정도는 일조량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게 되었다. 빛이 없이는 오히려 공기를 더욱 탁하게 만들뿐이다. 이렇게 해서 생물학자들은 빛이 식물에 어떻게 이용되는지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1782년에 스위스의 목사였던 세너비어(Jean Senebier)는 광합성에 이산화탄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이어서 1796년에 인겐하우츠(Jan Ingenhousz)는 식물이 흡수한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영양분으로 이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1804년에 이르러서야 스위스의 과학자 소셔(Nicholas Heodore de Saussure)에 의해서 광합성의 전반적인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이 밝혀졌다. 소셔는 식물에 빛을 쪼여준 결과 증가된 식물의 양은 공기로부터 소모된 이산화탄소의 양보다 크다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으며, 이 차이는 바로 물 때문에 생긴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광합성 원리의 대략적인 윤곽이 이산화탄소에 물과 태양에너지가 첨가되어 산소와 탄수화물이 생성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때까지 생물학자들은 광합성의 결과 생성되는 산소는 이산화탄소가 분해되면서 생겨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와 영국의 생화학자인 힐(Robin Hill)에 의해 산소는 이산화탄소가 아니라, 물이 분해되어 생성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1961년에 이르러 캘빈(Melvin Calvin)은 식물이 어떻게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물과 이산화탄소를 재료로 탄수화물을 합성하는가에 대해 그 과정을 생물학적으로 확실히 밝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과학자들은 물 외에도 태양에너지가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주 요인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보다 약 3400여년 전에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 저장한 물과 태양이 결실케 하는 보물과...' (신33:13~14) 라고 말씀하셨다. 즉 이슬과 땅 아래 저장한 물(지하수) 이외에 또 태양이 식물 성장에 필수적 요건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태양은 식물의 성장뿐만 아니라 결실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식물이 물과 햇빛으로 자란다는 것은 이미 살펴본 학자들의 연구로 알게 되었지만, 어떻게 정한 시기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는지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오랜 시일에 걸친 학자들의 또 다른 연구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햇빛에 의해 조절된다는 것은 1920년에 이르러 가너(W. W. Garner)와 알라드(H. A. Allard)의 연구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즉 식물은 낮과 밤의 길이가 변하는 것을 감지하여 일년 중 정해진 때에 개화한다는 광주기(光週期)에 관한 이론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비록 성경이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려는 목적을 가진 과학서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창조원리와 자연의 질서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많은 성경구절에서 우리는 과학을 수천년 앞선 진리들을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되고, 그분의 말씀 앞에 또 다시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6

참고 : 1902|1903|4454|1553|380|4433|4407|4358|4225|4105|4113|4034|3854|3758|4830|4854|5432

손기철
2004-07-26

생명 존재의 신비 '광합성' 

: 산소발생설은 비과학적이며 모순덩어리


      식물은 빛에너지를 이용한 광합성 공장을 가동시킴으로써 그 결과 산소를 발생시킨다. 식물은 광합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탄수화물을 다시 산소를 이용해 산화시켜(호흡하면서) 에너지를 만들고 골격을 형성하면서 생명을 유지한다. 이러한 호흡은 비단 식물뿐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호흡하는 모든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이 세상에 산소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어떠한 생명체도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산소는 생명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파장이 짧은 빛이나 다른 흥분된 고에너지 분자와 결합하면 무차별적인 유해산소 형태(흔히 활성산소종이라 함)로 변하여 생체를 파괴하는 무서운 물질로 변하고 만다.

특히 빛을 가장 잘 흡수하는 엽록체는 산소와 반응하기 쉬우며 따라서 조금이라도 시간적 공간적 그리고 환경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되면 활성산소종은 유전물질인 DNA나 단백질 그리고 세포를 이루는 세포막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여 파괴시킨다. 따라서 모든 생명체는 산소에 의해서 살지만 이 산소 때문에 죽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생물의 노화나 암에도 유해산소가 치명적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이러한 산소독성을 피하기 위해 정교한 보호기제들을 가지고 있으며 식물체 또한 정교한 방어기제를 살아있는 동안에 가동시킨다. 즉 세포는 이러한 피해를 주는 활성산소종을 중화시키거나 분해하는 특수한 효소를 가지고 있으며 엽록체 내에 있는 카로티노이드나 비타민 E, 비타민 C 등과 같은 항산화제는 우선적으로 산소의 공격을 당하면 먼저 산화됨으로써 방어작용을 한다. 또한 식물체는 광합성 작용시 광호홉(C2 경로)이라는 진화론적으로는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경로를 가동시킨다.

광호홉(photorespiration)이라는 것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일반적 호흡과는 달리 광합성의 명반응 동안 발생된 산소와 ATP 및 NADPH 라는 에너지가 이미 만들어진 탄수화물을 엽록체 퍼록시좀 그리고 미토콘드리아를 거치면서 다시 이산화탄소로 전화시키는 것으로 에너지 측면에서 볼 때 사치적이고 낭비적인 경로이다.

 

산소발생설은 비과학적이며 모순덩어리

유해 파장 걸러주는 오존층 없으면 치명적

일반적으로 고등식물의 대부분(C2 식물)이 광호흡을 한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과정이라고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광호흡은 잠재적으로 유해한 활성산소종의 형성을 막거나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강한 광선 하에서 온도가 높을 때 일순간 광합성 속도는 빨라지나 곧이어 식물체는 지나친 증산작용을 막기 위해서 기공을 닫게 되고 마침내 이산화탄소의 고갈을 초래한다. 따라서 탄수화물을 만들어내는 캘빈 회로(합성과정 혹은 암반응)는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게 된다. 이 경우 식물체는 과도한 빛에너지에 의해서 명반응에서 많은 에너지를 생성하나 이산화탄소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탄소의 합성과정은 일어나지 못하게 되고 빛에너지는 계속적으로 엽록소에 차게 된다. 한편 세포 내 발생된 산소는 방출되지 못하므로 활성산소종이 발생되어 세포가 파괴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식물에는 합성반응(암반응) 중 가장 중요한 효소인 루비스코가 기묘하게 작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즉 세포 내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비율이 온도의 영향에 의해 산소가 높아지면 루비스코라는 효소는 이산화탄소를 고정하는 캘빈 회로(C3)를 작동시키지 않고 산소와 결합하여 광호홉경로(C2)를 작동시키게 한다. 이로 인하여 명반응에서 생성된 과잉에너지가 소비되고 이에 따라 지나친 산소가 소모되는 것이다.

하나의 소기관이 아니라 엽록체, 포록시좀 그리고 미토콘드리아의 여러 소기관들을 거치면서 일어나는 놀라운 자체방어를 어찌 진화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만약 광호흡 경로가 진화의 산물이라면 이것이 진화되기 전의 식물체는 어떻게 살아났을까?

태초의 원시대기에 산소가 없었다면 처음부터 식물이나 인간이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태초의 대기에 산소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문제는 성경말씀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것은 흔히 과학자들이 따지는 원시대기의 산화성 혹은 환원성에 관하여 논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명의 기원에 관한 중요한 논제이다. 대부분의 전공서적에 있는 전통적 진화론자들의 견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까지의 과학적 사실은 산화성 대기 중에선 중요한 생화학적 화합물의 합성이 일어나지 않으며 또한 안정하지 못하다. 생명의 탄생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환원성 물질이 원시대기의 구성분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생명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적 이론들은 대부분 원시대기가 환원성이었던 것으로 가정한다. 그러나 이는 원시지구 자체에 관한 연구의 결과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유기물의 형성에 유리한 조건으로 선택된 데에 불과하다. 원시대기는 지구상에 있어서 화학진화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므로 보다 정확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 부분을 자세히 읽어보면 진화론자들조차도 태초의 대기상태는 과학적 증명이 아니라 진화론적 가정에서 출발한다고 진술하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태초의 원시대기는 환원성이며 산소가 없다고 한다. 최초의 산소는 수증기가 분해되거나 광합성 세포에 의해 발생됐다고 본다. 그러나 광합성을 하는 생물은 이산화탄소를 물과 결합시켜 에너지를 만드는 반면 호흡을 하기 위해서 똑같은 양의 산소를 흡수한다. 따라서 그것이 사실이라면 현재 공기의 21퍼센트를 차지하는 산소는 어디에서 생겨났는가?

산소가 없던 태초의 대기에는 오존층이 없으므로 자외선 및 고에너지의 파장을 지닌 복사선이 지구 표면까지 도달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최초의 분자들이 서로 반응하여 화학진화, 단분자에서 고분자 물질로, 그것도 무질서에 질서로 변화할 수 있었을까? 최초의 물을 분해하여 산소를 발생시키는 광합성 박테리아나 식물들이 진화해 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모든 생물들은 지금의 수천 배에 달하는 위험에 직면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 빛이 발생된 산소와 결합하여 무서운 유해산소를 발생시키고 마침내 체내의 모든 분자들이 파괴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날 식물들이 과거의 생물들에서 계속적으로 진화된 것이라면 유해산소를 효율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오늘날 식물들에서 볼 수 있는 기제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한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해산소 억제기제들과 광호홉경로(C2)는 진화의 산물인가? 아니면 퇴화의 산물인가? 초기의 대기 상태를 오늘날과 같은 상태로 가정하지 않으면 생명체가 살아날 가망성은 전혀 없을 것이다.

태초부터 모든 생물이 존재하였으며, 산소를 이용한 호홉작용을 하였다는 성경적 사실이 우리의 지적 교만에 상치되는 것 외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에 위배되는 것이 무엇인가?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사40:26)


출처 - 도서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79

참고 :

손기철
2004-07-26

최대의 에너지공장 광합성


       태초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살아나가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새가 날고 인간이 움직이고 말하며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누구나가 의심 없이 태양에서 오는 빛에너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태양에너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가장 진화된 생명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광합성 작용을 하는 식물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은 식물이 가장 진화된 생명체라고 믿지 않는다.

왜 다른 생명체는 태양에너지를 직접 이용하는 쪽으로 진화되지 않았을까. 흔히들 이미 만들어 놓은 것에서부터 에너지를 취하는 형태로 진화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만든 것을 취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여러 기관들이 진화되어야만 한다. 식물에는 없는 입과 식도, 위장, 그리고 배설기관들... 거추장스럽고 때마다 아우성치며 지니고 다니기에 불편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따라서 이미 있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억지로 만들어가며 진화되었다는 것은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진화론적 과학으로는 도무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누군가에 의해서 처음부터 명백히 구분되어 졌다 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답일 것이다. 이 놀라운 생명에너지의 비밀은 가장 작은 수은전지보다 천만 배나 작은 보이지 않는 식물세포 세계의 광합성 공장에서 태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을 먹여 살리는 지상 최대의 공장이 주인도 없으며, 소음 하나 없다니 참으로 기적 중의 기적이다.

식물은 태양에너지를 그냥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빛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전환하여 사용하고 있다. 한때 과학자들은 식물이 모든 먹이와 영양분을 흙으로부터 흡수하여 살아가는 것으로 알았다. 그 뒤에는 물이 주원인이라고도 했다. 물이 식물 생체 중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식물 성장의 골격을 이루는 것은 광합성을 통한 탄소의 유기화로 밝혀졌다. 식물은 태양을 향하여 녹색을 띤 잎을 벌리고 엽록소로 햇빛의 에너지를 받고 기공을 통하여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뿌리에서 흡수한 물로써 광합성을 하고 있다. 광합성의 결과 탄수화물인 당이 합성되고 동시에 물 분해의 결과로 산소가 방출된다.

 

동물들은 엽록체 없어 태양에너지 이용 못해, 진화 따른다면 ‘녹색인간' 존재했어야

잎에는 물이나 양분을 보급하는 엽맥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으며, 뒷면에는 이산화탄소, 산소, 그리고 수증기가 출입하는 기공이 무수히 존재한다. 그 수는 1 mm2당 20~200 개, 크기도 식물의 종에 따라 다양하다. 기공의 뚜껑 역할을 하는 공변세포는 외부환경에 따라 팽압이 변하여 개폐가 자동적으로 조절된다. 녹색 잎의 단면을 살펴보면 광합성은 조직 중 흔히 책상조직과 해면조직을 포함하는 엽육세포에서 일어나며, 세포 내에 핵을 포함한 여러 소기관 중 엽록체라 불리는 곳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비한 과정이 일어난다.

하나의 엽세포는 대략 60개 정도의 엽록체를 지니며 이 엽록체는 빛의 방향과 강도에 따라 그 방향을 자유롭게 바꾸기도 한다. 엽록체는 빈대떡을 포개어 놓은 것과 같은 그라나와 그 외의 부분인 스트로마로 이루어져 있다.

광합성의 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빛이 필요한 반응(명반응)과 그렇지 않은 반응(암반응)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명반응은 그라나의 틸라코이드막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이 곳에는 빛을 흡수하는 클로로필이라는 녹색을 띠는 색소와 여러 복잡한 분자가 어우러져 광계를 이루고 있다.

이 광계의 반응센터에 충분한 에너지가 흡수되면 전자전달계 분자들을 통과하여 빛에너지가 최초의 화학에너지로 변환되고, 이 과정에서 생명체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인 ATP와 NADPH가 만들어진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빛에너지에 의해서 생체 내 자유에너지(일할 수 있는 에너지)가 높아진다는 뜻이다. 엽록체의 스트로마라는 곳에서는 바로 이 에너지를 이용해서 이산화탄소를 고정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탄수화물을 만드는 암반응이 일어난다. 탄소고정계에서는 이 화학에너지를 사용하여 많은 효소가 연속적인 작업을 통해 당을 합성한다.

식물계의 삶이란 바로 이러한 광합성 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 탄수화물과 산소, 그리고 뿌리에서 흡수한 양분을 가지고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나는 호흡 과정을 통해서 생장과 발육에 필요한 에너지와 모든 골격을 이루는 DNA, 지질, 단백질 등을 만들어낸다.

한편 그 결과로 생긴 물과 이산화탄소는 다시 대기 중으로 방출되어진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타가영양체는 이들 유기물(식물이 만들어 놓은 거대분자들인 탄수화물, DNA, 지질, 단백질 등)을 섭취하고 광합성으로 방출된 산소를 흡수하여 호흡함으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식물의 광합성이야말로 생물권(biosphere)을 성립시키는 핵심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직물 원료, 재목, 고무, 섬유, 유지, 연료 등 사람을 위한 모든 생산물은 바로 이 광합성이라는 신비로운 과정을 통하여 생산되어진다.

대자연의 법칙은 생각할수록 너무나 신비하다. 동물은 움직여 활동함으로써 그들의 먹이를 얻을 수 있도록 계획되었고,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은 광합성으로 그들의 식량을 조달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동물은 식물을 먹어야 하고, 그 대신 식물은 대자연으로부터 광합성의 특수비법을 제공받았다. 결국 창조적 안목으로 볼 때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처음부터 계획된 공생원리에 의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고차원적인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이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모든 책을 살펴 보라. 최초의 광합성 생명체가 어떻게 생성되었으며, 엽록체가 어떤 진화적 경로를 거쳐 발달하였으며, 빛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꾸는 기적이 어떤 진화적 경로를 거쳐 발생되었는가 등의 질문에 속시원한 답을 해주는 책이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것은 모두가 가정에서 출발되었음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관찰하고 알고 있는 지식은 진화론이란 틀에 끼워 맞추기 위해서 듬성듬성 연결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다음과 같은 사실은 광합성이 진화된 것이 아니라 창조되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 진화론적으로 살펴볼 때 전 지구의 생명의 핵심을 단지 하찮은 식물의 잎에 맡긴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 어떠한 연구결과도 광합성 기구의 생성 및 진화에 대한 합리적인 유추를 주지 못하며, 화학합성 다음에는 광합성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는 엄청난 과학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 광합성 기구가 진화되어져 왔다면 현재 녹색인간(이마나 몸 전체의 세포에 엽록체를 함유하고 있어 태양전지 시계처럼 태양광만 쪼이면 음식 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디

에서도 녹색인간은커녕 녹색동물도 없다는 사실이다.

 

*참조 : Green power (photosynthesis) : God’s solar power plants amaze chemist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476/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amazement/a1/a13/a13o7.htm

출처 - 도서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80

참고 : 1902|1903|4454|1553|380|4433|4407|4358|4225|4105|4113|4034|3854|3758|4830|4854|5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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