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설계

미디어위원회
2014-12-12

식물에 내장되어 있는 광합성 조절 스위치

(Plants' Built-in Photosynthesis Accelerators)

by Brian Thomas, Ph.D.


      햇빛은 식물의 심장 박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 잎은 강력한 태양빛 아래에서 단 1초만에도 광합성 과정으로 당(sugar) 분자를 만드는데 필요한 빛 이상의 많은 빛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몇 초 후에 구름이 식물 위에서 햇빛을 가리면, 식물의 광합성 기구는 굶게(광합성을 할 수 없게) 된다. 최근 한 식물생물학 연구팀은 식물이 이처럼 빠르게 변하는 빛 상황에 대처하는데 도움을 주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발견했다.[1]

생물학 교과서에는 광합성 기능의 기본 엔진이 어떻게 작동되는 지가 설명되어 있다. 경이로운 효소들이 식물 잎 내의 분자펌프들을 가동하여 들어오는 햇빛을 수확 및 전달한다. 이러한 분자펌프들은 물이나 공기를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신 한 번에 하나씩 양성자와 다른 이온들을 이동시킨다.


이 새로운 연구는 잎의 복잡한 또 다른 층을 조사했는데, 그것은 자동차 가속 페달(accelerator pedal)의 작동 방식과 유사했는데, 이온의 흐름을 관리함으로써, 광합성이 효율적으로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인간을 포함한 육상의 모든 생물들은 궁극적으로 식물이 만드는 당(sugar)에 기초한 산물에 의존하므로, 우리는 식물이 어떻게 산발적인 빛 조건하에서도 얼마나 원활하게 광합성을 작동시키는지에 대해서 감사해야만 하고 또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한 국제 그룹의 연구자들은 KEA3(K+ efflux antiporter 3)라 불리는 잘 알려지지 않은 효소에 대한 중요한 과제를 수행했고,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했다. 그 효소는 하나의 ”역운반체(antiporter)”로써, 막을 건너 수소이온을 칼륨이온으로 교환하는 바로 정확한 순간에 켜진다. 이것은 식물 잎이 고강도의 빛 하에서 적절히 생산을 하다가, 저강도의 빛에서 추가적 생산의 필요가 있자마자 곧 발생한다는 것이다.


연구 저자들은 Nature Communications 지에서, ”이러한 데이터는 KEA3가 빛이 과도하게 비추는 조건에서 제한적으로 비추는 조건으로 전환될 때, NPQ(Non-Photochemical energy Quenching, 비광화학적 에너지 소멸) 붕괴를 가속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함을 보여주었다”고 적고 있었다.[1] NPQ는 비광화학에너지 억제를 유지시키는 것으로, 식물들이 강한 햇빛으로부터 세포 피해를 줄여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메커니즘이다. KEA3의 작용은 수초 내에 NPQ 작동을 끈다. KEA3가 없다면, 이 작용은 몇 분이 걸릴 것이고, 그래서 그 때에는 구름이나 그늘을 만들었던 물체가 제거됐을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식물은 다양한 빛의 조건하에서 거의 실시간으로 반응함으로써 매우 효율적으로 당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들은 어디에서도 이 새로운 식물에서 발견된 능력이 햇빛에 기인한다고 적지 않고 있었다. 그 대신 KEA3를 포함하여, 식물의 내부 메커니즘에 기인한다고 정확하게 적고 있었다. 그들은, ”식물은 이들 KEA3 생성을 가속시키는 내장된 기계를 가지고 있어서 작물 생산을 증가시키고 있음을 우리는 발견했다”고 적고 있었다.[1]


핵심 문구는 ”내장(built-in)”되어 있다는 것이다. 태양광 패널(solar panel)을 만드는 사람들은 태양빛을 수집하여 다른 형태의 유용한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기계를 만들 때에, 자연(nature)이 필요한 정확한 부품들을 조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연 밖에 있던 어떤 지적 존재(사람)가 그러한 장치를 만든 것에 틀림없음과 마찬가지로, 식물에서도 누군가 어떤 지적 존재가 그것을 만들었음에 틀림없다.


다른 말로 하면, 오직 하나님만이 광합성에 사용되는 복잡하고 동적인 ”내장된” 기계를 설계하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새로운 연구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광합성이 효율적으로 작동되도록 하는 신속-반응 광조절 메커니즘을 발명하셨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

1.Armbuster, U. et al. Ion antiport accelerates photosynthetic acclimation in fluctuating light environments. Nature Communications. Published online November 13, 2014, accessed November 14, 2014.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www.icr.org/article/8495 

출처 - ICR News, 2014. 11. 20.

미디어위원회
2014-12-09

나무는 정말로 “보기에 좋도록” 창조되었다. 

(Trees Really Are 'Pleasant to the Sight')

by Brian Thomas, Ph.D.


      창세기 2:9절은 하나님께서 나무를 창조하신 원래의 목적을 기록하고 있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한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고 말씀하고 있다. 새로운 연구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성경 구절의 진실성을 확증하면서, 나무를 바라보는 것이 왜 기분이 좋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일리노이 대학 조경학과의 윌리암 설리반(William Sullivan) 교수와 강사인 빈 지앙(Bin Jiang)는 6분 길이의 3D 파노라마 동영상에서, 주변 숲을 바라본 참석자들의 스트레스 수준을 측정했다. 나무숲이 뒤덮은 범위는 2~62%로 다양했다.[1]


연구자들은 스트레스를 측정하기 위한 세 가지 수단을 사용했다: 타액의 코티졸(cortisol) 농도, 피부 전도성(skin conductance) 측정, 그리고 제출된 자기-기술서(self-reports)였다. 부신(adrenal glands)은 스트레스에 반응하여 코티솔(cortisol) 호르몬을 방출한다. 그리고 스트레스에 대한 또 다른 반응으로, 습한 피부는 건조한 피부보다 전기 전도성이 더 높아진다. 그들의 분석 결과는 62%의 나무로 뒤덮여있는 지역을 보고 있던 실험 참가자들은 60%의 스트레스 감소를 경험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들의 결과에 의하면, 참가자의 41%는 인근 나무의 차지 비율이 25% 또는 그 이하일 때에는 스트레스 수준에서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일리노이 대학의 뉴스에 따르면, ”나무의 차지 비율이 36%로 증가하면, 90% 이상의 참가자가 그 비디오를 보는 동안 편안함을 느꼈다”는 것이다.[1] 이러한 발견은 도시계획자와 조경건축가들이 그들의 계획 속에 녹색 공간을 삽입하는 것이 건강하고, 평온한 지역 주민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임을 지지한다. 


나무를 바라봄으로써 오는 기쁨과 평온함은 어떻게 진화될 수 있었을까? 진화론적으로, 그것은 인류가 진화로 출현한 이래로, 고대의 잔혹한 동물들과 싸우고 생존하는 데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을까?

그것보다는 오히려, 사람이 나무를 보며 하나님이 부여하신 인간의 능력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나무들을 만드셨던 것은 아닐까? 단순히 기쁨과 평온함을 얻기보다는, 나무로부터 주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감상하는 것은 얼마나 좋은 생각인가?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나무숲을 바라볼 때 생기는 긍정적인 효과는 하나님이 ‘보기에 좋도록’ 나무들을(단지 선악과만이 아니라) 창조하셨다는 창세기의 말씀을 확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Forrest, S. Watching 3-D videos of trees helps people recover from stress, researchers say. News Bureau, University of Illinois. Posted on news.illinois.edu October 21, 2014, accessed November 4, 2014.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www.icr.org/article/8480 

출처 - ICR News, 2014. 11. 17.

Elizabeth Mitchell
2014-10-28

카페인 : 수렴진화된 것인가, 창조된 것인가? 

(Caffeine: Convergently Evolved or Creatively Provided)


    카페인(caffeine)은 여러 번 진화되어 왔는가? 아니면 공동 설계자(창조주)께서 많은 식물들에 유전자를 제공하여 그것이 만들어지도록 하셨는가? NY Times(2014. 9. 4)은 다음의 제목의 기사를 싣고 있었다. 카페인은 어떻게 식물의 생존과 사람들의 각성을 돕도록 진화되었는가? (How Caffeine Evolved to Help Plants Survive and Help People Wake Up)


커피(coffee)는 당신의 삶에 (커피를 사랑하든 싫어하든)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심지어 당신의 언어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당신이 '블랙커피'로 하루를 시작하거나[1], 자판기에서 나온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거나, 커피숍의 우수 고객이거나간에, 커피는 당신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커피는 콜라와 함께 우리에게 친근한 기호품 중의 하나이다. 이제 한 국제 연구팀은 커피 유전체(genome)의 염기서열을 분석했고,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가 한번 이상 일어나 카페인이 만들어졌다고 결론짓고 있었다.  


카페인은 커피나무(coffee trees), 차(tea bushes), 마테차(yerba mate), 카카오(cacao), 콜라나무(kola), 과라나(guarana), 심지어 감귤나무(citrus trees)를 포함한 다양한 식물들에서 발견된다. (오렌지와 포도나무 꽃의 넥타에도 카페인이 들어있는데, 그것은 벌들이 기쁘게 다시 돌아오도록 해준다). 연구자들은 전 세계 커피의 약 1/3을 차지하고 있는, 2배체의 '로부스타(robust)' 종인 코페아 카네포라(Coffea canephora)의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이 종은 전 세계 커피의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는, 잡종 3배체 종인 코페아 아라비카(Coffea arabica)의 두 양친중 하나이다.[3] 


스타 트렉(Star Trek) TV 시리즈는 이전까지 어떠한 커피열매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커피를 안내하고 있었지만, 이 검정색의 볶은 커피는 스타 트렉 보이저호(Star Trek Voyager)의 선장 제인웨이(Janeway)가 말했듯이 지구의 커피 애호가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지금까지 고안된 최고의 유기현탁액”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커피나무와 (진화계통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종류의 식물들이 카페인을 만들었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Image: Wikimedia Commons)

꿀벌들이 커피나무 꽃에서 꿀을 모을 때 약간의 카페인을 얻게 된다. 이러한 향기에 대한 기억은 벌들이 다시 찾아오도록 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분명 벌들에게 강렬할 만큼 너무도 많이 들어있을 필요는 없다. 약간의 카페인을 가지고 있는 식물들도 그들의 수분자(pollinators)에게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Image: Wikimedia Commons)


카페인의 뿌리

식물의 천연 알칼로이드인 카페인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정신활성 물질(psychoactive substance)이다. 뉴욕 타임즈의 칼 짐머(Carl Zimmer)는 ”카페인이 약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뒷골목 허름한 화학실험실의 제품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장구한 시간에 걸친 식물 진화의 산물이다. 우리는 엄청난 량으로 카페인을 마시고 있지만, 과학자들은 어떻게, 왜 식물들이 카페인을 만들었는지, 그 방법과 이유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라고 적고 있었다. ”새로운 연구는..... 어떻게 식물들이 카페인을 만들었는지, 어떻게 동물과 사람의 행동을 조절하는 방법을 가지도록 진화되었는지에 대해 빛을 비쳐줄 것이다”라고 덧붙이고 있었다. 


카페인은 효소들로 제어되는 일련의 단계를 통해서, 크산토신(xanthosine)이라는 불리는 분자로부터 만들어진다. N-메틸전이효소(N-methyltransferases)라 불리는 효소는 순차적으로 그 분자의 주요 위치에 '메틸” 그룹을 추가시키는데, 그 결과가 카페인이다. 연구진은 Coffea canephora가 다양한 N-메틸전이효소를 생산하는 23개 유전자들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러한 유전자들은 차(tea)와 카카오 유전자의 위치와는 다르게, 커피 유전자의 서로 다른 위치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연구팀은 카페인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일련의 효소들이 서로 다른 식물 계통에서 각각 독립적으로(우연히 여러 번) 진화되었다고 믿고 있었다.[5]


커피 유전자의 뿌리를 밝히고자 하는 연구팀의 일원인, 분자생물학자 로버트 헨리(Robert Henry)는 ”흥미로운 점은 카페인 합성이 세 식물들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진화되어 왔다. 그것은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이다. 만약 카페인이 적어도 세 번에 걸쳐 독립적으로 진화되었다면, 분명 카페인은 특별히 잘 디자인된, 또는 생물학적으로 효과적인 분자이다”라고 말했다.[2] 

카페인은 크산토신(xanthosine)으로부터 세 단계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효소들은 순차적으로 'SAM'(S-adenosylmethionine)에서 '메틸' 그룹(CH3)을 제거하고, 그것을 분자의 질소(N) 원자에 부착시킨다. N-메틸전이효소(N-methyl transferase) 중 일부는 여기에서 약자로 (XMT, MXMT, DXMT)에 표시했다. 이 경로는 중간체로서 테오브로민(theobromine)과 더불어 식물들이 카페인을 만들기 위해 이용하는, 효소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제어 통로이다. (Image: page 1183 of F. Denoeud et al., 'The coffee genome provides insight into the convergent evolution of caffeine biosynthesis,” Science 345, no. 6201 (5 September 2014), doi: 10.1126/science.1255274.)


수렴적으로 진화되었는가, 자연적으로 선택되었는가?
진화 연구자들은 실질적으로 진화계통수에서 멀리 떨어진, 카페인을 생산하는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은 크산토신을 메틸화시키는 한 효소를 가졌던, 오래된 고대의 조상을 공유한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오늘날 작용하는 모든 N-메틸전이효소들을 만들기 위해, 이 효소가 거듭거듭 돌연변이 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공저자인 빅터 알버트(Victor Albert)는, 카페인을 만드는 생합성 경로에서 많은 효소들은 ”크산토신 화합물 주변에서 시작된(간섭된) 한 공통조상 효소의 모든 후손들”이라고 설명했다. 알버트는 카페인을 만드는 커피의 유전적 능력은 ”자연선택의 영향에 의해서 가능성이 매우 높은 현재 위치에서 멈춰진 사고”라고 설명하고 있었다.[6] 어떻게 그 최초의 가상의 조상 효소는 만들어졌는가? 그것을 만들었을 세포기계들도 매우 적었을 것임에도 말이다. 물론 이런 것들에 대해 진화론자들은 설명할 수 없다.


식물들은 생화학적으로 별개인, 두 개의 효소적 제어 경로 중 하나를 통해서, 크산토신으로부터 카페인을 생산한다. 두 생산 경로는 차와 커피에서 공존하지만, 보다 효율적인 경로가 우세하게 된다.[7] 그것은 연구자들이 카페인은 최소 두 번 진화했다고 말할 때 언급하고 있는 서로 다른 생산경로가 아니다. 사실 일차 생산경로에 필요한 효소들을 암호화하고 있는 유전자들은 커피, 차, 카카오의 유전자에서 서로 다른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최근까지 커피의 카페인 생산에 대한 유전적 기초는 탐구되지 않았다. 만약 커피를 만드는데 필요한 유전자들이 식물 염색체의 비슷한 위치에서 항상 일어나 있었다면, 진화론자들은 그것은 카페인 생산이 어떤 먼 조상으로부터 한번 진화되었고, 세월을 통하여 계승된 증거라고 가정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그런 경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카페인 생산은 자연선택에 의해서 매우 강요되어서 거듭거듭 진화로 생겨나게 되었다고 결론짓고 있었다. 


카페인의 생존과 번성

카페인을 생산하는 식물들은 수분자인 꿀벌을 위해 자신의 꿀 속에 소량의 카페인으로 기억향상 즐거움을 제공하여, 반복해서 되돌아오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과학자들은 카페인을 만드는 일부 식물 잎의 고농도 카페인은 잎을 갉아먹는 곤충들에게 쓴 충격을 줄 수 있어서, 카페인은 천연살충제일 수도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 또한 어떤 과학자들은 카페인이 풍부한 썩어가는 잎은 경쟁식물의 발아를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진화론자들은 자연선택이 카페인 생성 식물들의 진화를 위해 필요한 일련의 효소들을 선택하여, 카페인 생성 식물들의 번성을 도왔다는 많은 이유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당신이 한 분자를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으로 같이 사용할 수 있다면 멋진 일일 것이다. 카페인을 생산하는 식물이 고농도에서는 유독하고, 저농도에서는 두뇌를 향상시키는 유사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생물학에서 우연의 일치일 수 있다. 그들은 우리 모두를 조절하고 있다”고 신경생물학자 줄리에 머스타드(Julie Mustard)는 말한다.[8] 


그것은 정말로 '멋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기물-사람으로의 진화가 아니다. 심지어 화학물질-카페인으로의 진화도 아니다. 자연선택은 카페인을 합성하는 효소를 만드는 유전정보를 만들지 못한다. 그 대신 매우 많은 서로 다른 식물 종들에서 카페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많은 식물 종들이 카페인 생성 능력을 갖도록 설계하셨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결국, 카페인은 식물들에게 꽃가루 매개 곤충과의 협력을 강화시키고, 곤충들이 과도하게 잎을 씹어 먹는 것을 저지시키고, 근처의 경쟁식물의 생장을 조절하는 많은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좋은 설계의 사례이지, 진화의 사례가 아닌 것이다.  


유전체의 변이

커피 유전체(genome)의 유용한 변이(variations)는 산업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으며, 모두에게 혜택이 될 수 있다. 커피에서 리놀릭산(linoleic acid) 생성 유전자의 발견에 더하여(그것은 커피의 향기와 맛에 영향을 준다), 연구자들은 튼튼한 품종의 작물을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내병성 유전자를 발견했다. <커피의 깨움>이라는 그의 사설 논평에서 히브리대학의 식물학자인 대니 자미르(Dani Zamir)는 새로 확인된 유전자들과 관련된 잠재적 표현형 특성 파악의 경제적 중요성에 대해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었다. 그는 ”커피를 좋은 작물로 생존하도록 가능케 하는 열쇠는 아프리카 종에서 발견되는 유전적 변이에 놓여 있다”고 적었다.[9]


커피의 유전적 뿌리를 연구하는 팀의 일원인 분자생물학자 로버트 헨리(Robert Henry)는 ”우리는 커피 구성물의 유전적 조절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 다음에는 그것이 어떻게 커피의 궁극적인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이해하고자 한다”고 말했다.[2] 더욱이 ”우리는 커피나무가 자랄 수 있는 지역의 범위를 확장시키기를 원한다”[2] 헨리(Henry)는 언젠가 비-열대지방에서도 질이 좋은 커피나무가 자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기술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 다른 계층의 시장에서 커피의 특성을 조절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라고 말했다.[2] 


하나님은 약 6,000년 전에 모든 종류의 동식물들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는 하나님께서 카페인을 만드는 능력을 가지는 많은 종류의 식물들을 설계하셨다는 개념을 지지한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식물과 동물들을 그 종류대로 번성하도록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생물학적 관찰들은 그것을 확증하고 있다. 우리는 생물학에서 매우 많은 생물 다양성의 발달을 볼 수 있다. 식물과 동물들은 때로는 매우 신속하게 돌연변이와 다른 유전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개체변이들을 통하여, 그들의 창조된 종류 내에서 매우 큰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자미르(Zamir)가 언급했던 것처럼, 커피 유전체 내에는 무수히 많은 표현형의 변이들을 만드는 유전적 다양성이 들어있다. 거기에 생물학이 어떻게 작동되는가에 대한 답이 있으며, 먼 과거에 진화가 작동되었다고 상상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For more information:
Mystery of the Flower’s Missing Pollen: A Paleobotanical Puzzle
Kingdom of the Plants: Defying Evolution
The Origin of Plants
Pollen Places Floral Roots Deeper in the Fossil Record
Scientists Map Plant Protein Interactions
Fungi from the Biblical Perspective

For more information: Get Answers


Footnotes
1.The intrepid Captain Janeway from the popular Star Trek series Voyager insists on 'Coffee, black” to start her day. She is clearly the most coffee-loving of all the Star Trek captains, though the captain’s chair is a highly caffeinated post no matter who occupies it. Who can, after all, forget TNG Captain Picard’s classic order, 'Tea, Earl Grey, hot”? The variety of caffeinated beverage preferences in the Star Trek franchise is a reminder of the plethora of plants that produce caffeine. Those who wish to further explore the galactic variety of coffee in the Star Trek universe can learn more at en.memory-alpha.org/wiki/Coffee
2.
news.discovery.com/human/life/coffee-genome-reveals-secrets-of-a-good-brew-140905.htm
3.Polyploidy—having more than the usual two sets of chromosomes—is very common among plants. Coffea arabica is a tetraploid hybrid of the diploid coffee species Coffea canephora and Coffea eugenioides. While such polyploid hybrids may have more genetic variety available to express than the parents and possess more genetic raw material from which to develop additional phenotypic variations in future reproductive cycles, they remain the same kind of plant as the parent plants. The extra copies of chromosome sets come from the same kind of plant and do not provide the information required to evolve into a new more complex kind of plant. Thus this is neither an example of nor a mechanism for the upward evolution of complexity.
4. 'Coffee—the finest organic suspension ever devised. It’s got me through the worst of the last three years. I beat the Borg with it.”—Captain Kathryn Janeway in the 1998 Voyager episode, 'Hunters.”
5.Information to augment media reports obtained from F. Denoeud et al., 'The coffee genome provides insight into the convergent evolution of caffeine biosynthesis,” Science  345, no. 6201 (5 September 2014): 1181–1184, doi: 10.1126/science.1255274.
6.www.nbcnews.com/science/science-news/coffee-genome-generates-buzz-how-did-caffeine-evolve-n196101
7.Both biosynthetic pathways producing caffeine from xanthosine have been documented in tea and in coffee plants. The primary biosynthetic pathway for caffeine involves at least eight known enzymes and includes an intermediate compound called theobromine in its final step. The secondary biosynthetic pathway for caffeine involves at least seven known enzymes and includes an intermediate compound called paraxanthine in its final step. The secondary pathway is known to operate in tea plants and in Coffea arabica but is not documented in Coffea canephora, the species recently sequenced. The two pathways have some enzymes in common, and most of the enzymes are N-methyl transferases. The enzymatic conversion to theobromine is ten times faster than the conversion to paraxanthine, so even in plants equipped with all the enzymes for both pathways, the theobromine pathway is the major biosynthetic path to caffeine.
8. www.nytimes.com/2014/09/04/science/how-caffeine-evolved-to-help-plants-survive-and-help-people-wake-up.html
9. Dani Zamir, 'A wake-up call with coffee,” Science  345, no. 6201 (5 September 2014):1124, doi: 10.1126/science.1258941.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s://answersingenesis.org/evidence-for-creation/design-in-nature/caffeine-convergently-evolved-creatively-provided/

출처 - AiG, 2014. 9. 20.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024

참고 : 4581|4569|5891|5710|5591|5860|4837|1072|5933|5901|5746|5735|5692|5654|5526|5527|5958|6176|6165|6158|6023|5966

E. Hughesand, G. Howard
2014-09-25

어린이를 위한 창조과학: 빛을 바라보기 

(Creation for Kids - Facing the light)


      식물은 생존을 위해 빛과 물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식물이 빛과 물에 ‘끌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이것을 굴성(tropism, 향성)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자연 속에 설계해 놓으신 놀라운 표현이다.

굴성이란 식물이 자기들의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것을 향하여 이동하는 방법에 대한 과학적인 이름이다. 굴성이란 그리스 단어 ‘트로포스’에서 온 것으로, ‘돌아서기/turning’를 의미한다.

식물은 하나님이 그들의 성장을 위해 제공하신 것들에 다다를 때까지 이동할 것이다. 씨가 싹이 틀 때, 뿌리는 항상 아래로 자라며, 줄기는 항상 빛을 향하여 위로 자랄 것이다. 식물은 중력으로 인한 끌림을 감지할 수 있으며, 뿌리의 성장은 그 끌림의 방향을 향해 나갈 것이다. (이것을 굴지성/geotropism이라고 한다.) 뿌리나 줄기가 장애물을 만나면, 그들 진로 상에 있는 장애물을 돌아서 이동할 것이다.

또한 식물은 햇빛의 가장 직접적인 원천을 향하여 이동한다. 만약 빛이 새싹의 한쪽으로 떨어지면 다른 쪽은 더 빨리 자라서 빛을 향하여 잎을 구부리려 할 것이다(굴광성/phototropism). 무의 묘종을 창문 가까이에서 기르면, 창문에 빛이 들어오는 쪽을 향하여 구부러질 것이다. 화분을 돌리면 수 시간 안에 다른 쪽으로 다시 구부러질 것이다.


납작한 잎 – 설계에 의한 것이다.

식물은 빛을 향하여 자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잎이 자기들에게 내려오는 빛으로부터 최선의 것을 얻으려는 방식으로 자라난다. 이런 방법 중의 하나가 잎이 납작하게 자라는 것이다. 잎이 말려 있다면 잎의 일부가 그늘이 지기 때문에 햇빛을 많이 받지 못할 것이다. 잎이 납작하게 자란다는 것이 쉬운 것으로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매우 복잡하다. 그렇게 되려면 가운데 부분보다 가장자리 부분이 더 빨리 자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라려면 매 순간마다, 그리고 매 세포마다 조정이 필요하다. 새로운 묘종이 자라는 것을 관찰하면,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처음에 말려서 시작하다가 점점 펴져서 줄기는 직선으로, 잎은 납작하게 된다. 그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식물이 빛을 향하여 구부러지는 것과 같은 동일한 성장 규칙을 이용하는 것이다.

식물과 햇빛에 관한 또 다른 사항으로, 그들이 당신과 나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다. 당신의 몸(그리고 다른 모든 생명체)은 살아가기 위해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등에다 석유(가솔린) 통을 지고 다닌다거나 태양광 판넬을 머리에 이고 다녀도 소용이 없다. 당신에게 필요한 에너지는 당신이 먹는 음식, 특히 과일이나 채소와 같은 식물로부터, 또는 소나 닭처럼 식물을 먹는 동물로부터 온다.


식물 : 태양으로 작동되는 식품 공장

우리가 이들 식품으로부터 얻는 에너지는 최초에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햇빛으로부터 오는데, 식물이 그것을 받아들일 때 통상적으로 잎 안에서 광합성/photosynthesis이라고 하는 매우 복잡한 과정 안에서 그 일이 일어난다. (‘광/photo’은 앞서 ‘굴광성/phototropism’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빛과 관계가 있으며, ‘합성/synthesis’은 사물을 함께 모으는 것과 관련이 있으므로, 광합성이란 빛을 이용하여 화학물질들을 결합함으로써 에너지를 저장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이런 이유로 식물들이 빛을 향하여 자라는 것이다.

광합성에서 주로 사용되는 화학물질은 물과 이산화탄소이다. 물은 땅으로부터 본체 혹은 줄기를 통해 올라오고, 이산화탄소는 공기로부터 온다. (‘광자’라 부르는) 햇빛의 입자가 잎사귀에 내려앉으면, 잎사귀에 있는 화학물질이 그것을 포획한다. 잎사귀는 한 번에 네 개의 광자의 에너지를 저장하는 작은 공장을 가지고 있다. 네 개에 해당하는 에너지만 있으면 물 분자(H2O)에 있는 강한 결합을 깨뜨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면 물 분자로부터 나온 수소(H)와 산소(O)는 이산화탄소와 결합하여 녹말과 당을 형성하며, 이것이 저장된 에너지 전부이다. 그것이 바로 과일에 달콤한 당이 있으며, 고구마에 녹말이 있는 이유이다. 동물과 사람은 그들이 식물 식품을 먹을 때, 이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


식물과 사람 : 둘 다 예수님이 창조하셨다.

이들 복잡한 체계를 하나님이 설계하지 않으셨다면, 생명이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많은 것들이 세상에서 어두움을 야기시킨다. 그러므로 식물이 빛을 향해 이동할 수 없거나, 그 안에서 에너지를 포획할 수 없다면, 그들은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며, 우리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로우신 설계의 일부이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식물과 많이 유사하다: 우리는 자라며, 재생산하고, 숨을 쉬고, 물을 필요로 하며,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식물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물리적인 빛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또한 영적인 빛도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 세상의 일들은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에 그림자를 던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이 공급하시는 ‘빛’을 향하여 자라가면, 우리는 어떤 어두움도 극복할 수 있으며, 성격과 믿음에 있어서 강하게 자랄 수 있다.

잠언 16:15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왕의 희색은 생명을 뜻하나니 그의 은택이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 여기서 왕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식물이 설계된 방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에 관하여 말하는 멋진 방법인 것이다. 요한복음 8:12절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번역 - 이종헌

링크 - 

출처 - Creation ex nihilo Vol. 36(2014), No. 4, pp.30-33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004

참고 : 5788|5123|4225|5778|5432|5700|5978|5933|5823|5774|5772|5763|5757|5746|5754|5736|5738|5735|5692|5679|5663|5654|5529|5526|5477|5391|5356|5363|5137|3854|3183|5045|5046|4830|4712|4433|4408|4407

미디어위원회
2014-08-04

똑똑한 클로버 : 진화의 증거인가? 

(Clever Clover: Evidence for Evolution?)

by Brian Thomas, Ph.D.


      토끼풀로 알려진 클로버(clovers)는 매우 다양한 크기를 가지고 있는 식물로서, 그 중 일부는 매우 놀라운 흥미로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식물학자들은 특별히 한 특성을 연구해 왔는데, 그것은 독특한 패턴으로 나타나거나, 사라진다. 이러한 패턴은 진화적 변화를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면 이 특성을 켜고 끄는 어떤 완전히 다른 스위치가 있는 것인가?

정밀하게 조사 중에 있는 그 특성은 클로버의 잎 조직이 으깨질 때 나오는 시안화물(cyanide)과 관련된 것이다. 만약 곤충이 클로버 잎을 씹어 먹는다면, 약간의 나쁜 맛이 나는데(곤충을 죽일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이것은 클로버 잎을 즐기려는 곤충을 억제하기에는 충분한 것이다.

그 식물은 자신의 조직을 보호하면서, 오직 필요할 때에만 이 독을 배포하기 위한 독창적인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다. 정상적인 조건 하에서, 시안화물은 당(sugar) 분자와 안전하게 결합된 채로, 각각의 식물세포 내의 안전한 주머니(포켓)에 격리되어 있다. 당으로부터 시안화물을 분리시키는 효소는 그 주머니 밖에 놓여있다. 어떤 곤충이 클로버 잎을 씹어 먹을 때, 시안화물-당 결합물과 효소는 서로 섞이게 되고, 마치 구부려서 흔들어 혼합하면 불이 켜지는 플라스틱 야광 막대처럼, 독성의 시안화물 칵테일은 분비되는 것이다.   

워싱턴 대학의 진화생물학자들은 시안화물을 만드는 클로버 품종들을 추적해 왔다. 클로버 속 (genus Trifolium)의 서로 다른 27종(species) 가운데, 6종은 두 변종(variants, 시안화물을 만들거나 만들지 않는)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을 가진 변종의 이면에는 흥미로운 한 유전자 스위치가 존재하고 있었다.

흔히 돌연변이(mutations)란 유전자에 손상을 주는 오류로 생각하고 있다. 한 복잡한 단백질을 제조하기 위한 과업 지시에서 단 하나의 DNA 복제 오류는 작은 것일 수 있지만, 그 형태에 있어서는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쓸모없는 쓰레기를 빠르게 만들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연구자들이 클로버 잎에서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워싱턴 대학의 보도 자료는, ”시안화물을 만들지 않는 클로버는 필요한 유전자가 정상적으로 발견되는 유전체 부위에서 결손(deletions)되어 있었다. 그것은 유전자가 돌연변이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완전히 없어진 것이다”라고 적고 있었다.[1]

워싱턴 대학의 켄 올슨(Ken Olsen) 교수는 워싱턴 대학의 뉴스에서, 무작위적인 돌연변이가 아닌 무엇인가가 독립적으로 반복해서 전체 유전자를 삭제했음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DNA 염기서열은 흔히 삭제된 유전자의 측면에 위치하고 있었다. 올슨 교수는 클로버의 성세포(sex-cell)의 분열 동안 교차(crossing-over)에 관여하는 세포 기계가 때때로 ”틀린” 반복 염기서열에 연결되어, 전체 유전자의 삭제를 가져온다고 추정했다.

올슨은, ”정상적으로, 이와 같은 유전자의 삭제는 해로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전자가 삭제 될 때, 그 식물은 어떤 특정한 환경에서 선호되고, 그래서 그러한 타입이 유지된다”고 말했다.[1] 그러한 유전자 삭제는 이로울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클로버는 시안화물을 제조하고 그것을 방출하기 위한 효소와 결합하는 데에 들어가는 세포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워싱턴 대학의 뉴스는, 이 클로버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여러 번의 ”진화”가 일어날 수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진화”라고 부를 수 없는 몇몇 이유들이 있다.

클로버 식물 종류와 같은 한 종류(a kind) 내에서의 변화는, 그리고 같은 한 종류 내에서의 어떤 특성의 변화는, 단세포 생물이 식물로 바뀌는 진화와 같은 대대적인 규모의 변화라기보다는, 완전히 다른 기능적인 면에서 작동되는 변화인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램이 하나 혹은 다른 서브루틴(subroutine)을 실행한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운영체계에서 실행되는 프로그램으로 형태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큰 그림의 진화(아메바-사람으로의 진화 같은)는 새로운 특성, 새로운 장기나 기관, 그것을 암호화하는 유전자 등을 발명해내는 방법이 필요하고, 그러한 추가물들이 새로운 몸체로 통합되는 방법이 필요하다. 시안화물 유전자의 삭제는 이러한 복합적인 변화를 만드는 방법이 아니다. 클로버가 자신의 시안화물 유전자를 삭제하는 정교하게 반복되는 수단은 초월적 지성의 창조주가 클로버를 정교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Lutz, D. How repeatable is evolutionary history?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News. Posted on news.wustl.edu June 23, 2014.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www.icr.org/article/8201/ 

출처 - ICR News, 2014. 7. 9.

미디어위원회
2014-06-11

태초에 창조된 식용 채소의 “종류”에 대한 현대 분류학적 검토

(A View on “KINDS” of Food Vegetables Created in Genesis 

Compared to the Modern Binomial Classification System)

이미순 외 


Abstract                                                                                          

This publication is a simple view on 'kinds” of biblically created food vegetables written in Genesis under modern classification system. Original genesis of 'kinds” of plants were viewed with several selected vegetables of five families under botanical classification. An attempt was made to inspect the biblical 'kinds” with the ones of Latin binomial nomenclature by sensory analysis and subjective assessment. Here, the practical examples of cultivated food vegetables were evaluated to determine which specific item or category, under the present classification system, would be equivalent to 'kinds” shown in Genesis. Biblical 'kind” could be the level of genus in Liliaceae, species in Brassicaceae, family in Cucurbitaceae, family in Fabaceae and genus in case of the fruits and species in case of tuber in Solanaceae. 

 

1. 머릿말 


성경에서 식물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 내용은 창세기 1:11-12절에 나타나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자 지상의 식물들은 6일 창조기간 중 제 3일째 후반기에 나타났다. NIV[1]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11-12)

여기서 식물(vegetation)은 모든 식물의 총칭으로, 두 가지 주요 타입인 초본성 및 목본성으로 분류한다. 식물자원의 관점에서 초본성 식물은 곡류(cereal grains), 두류(legumes), 유류종자(oil seeds) 및 채소를 포함하고 , 목본성 식물은 배과(梨果, pome), 핵과(核果, drupe), 장과(醬果,berry), 감귤류(citrus), 열대성 및 아열대성 과실과 견과류 등을 포함한다. 

NIV[1]와 달리, KJV[2] 및 NKJV[3] 성경은 풀, 허브 및 과목의 세 종류를 나타낸다. 프리처 성경(The Preacher’s Outline and Sermon Bible)에 따르면, 풀(히브리어 deshe)은 녹색 혹은 축축한 식물을 의미하며, 그 중요한 특성은 종자를 맺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그룹의 식물은 이끼(moss, 혹은 lichens), 조류(藻類, algae), 진균류(眞菌類, fungi), 양치류(羊齒類, fern) 등이다. 이들은 포자(spores)에 의하여 생식하고(reproduce), 지상 혹은 지하 표면에 번식하는 식물들이다. 허브(히브리어 esebh)는 곡류, 채소, 관목(bush, 혹은 shrub), 꽃, 잡초 및 풀과 같은 모든 씨맺는 식물을 포함한다. 과수 혹은 과목(fruit tree)은 반드시 가식성 과일을 맺는 나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솔방울(cones), 견과류(nuts), 장과류(漿果類, berries) 및 다른 형태의 종자를 맺는 나무를 의미하기도 한다.

위에서 열거한 채소(vegetables)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식물자원의 하나로써 가장 널리 재배되고 있다. 본 논문의 목적은 성경적으로 창조된 식량자원 채소의 ”종류”에 대한 관점을 현대 분류시스템으로 추구하려는 것이다.

 

2. 창조된 식용식물의 '종류”.

 성경적으로 하나님은 모든 생물을 그들의 ”각기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종류”라는 용어의 의미에 대해 생물학계에서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종류”가 일차적 관심과 흥미의 초점이 된 이유는 아마도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기본적 형태(”종류”)의 수를 훨씬 능가하는 무수한 식물이 현재 지구상에 널리 분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종류”대로(”according to its kind” 혹은 ”after its kind”)라는 말은 모든 식물(all plant life) 종 그 자체의 생식이나 번식을 내포하는 말이다.[4]  Morris [5]는 ”종류”라는 낱말이 식물 ”종류”의 본질에 관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한정되고 고정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사르파티(Sarfati)[6]에 의하면, 성경적 ”종류”는 오늘의 종보다는 더욱 넓은 범위를 지칭한다. 여러 다른 ”종류”의 풀, 허브 및 과목이 식물계의 일원으로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성경적 ”종류”를 관능적 검사와 주관적 평가에 의하여 현대 채소분류법의 ”종류”와 비교하고자 한다.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려면 우선적으로 외관에 대한 가시적인 연구가 유전학적 분석이나 내적 분석에 선행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현재의 분류 체계하에서 어떠한 특수 품목 혹은 범주의 채소가 성경에 나타난 ”종류”에 상응하는지를 살펴보기 위하여, 실제로 재배되고 있는 채소들을 대상으로 평가하였다.

르바츠키와 야마구치(Rubatzky & Yamaguchi)[7]가 집필한 세계의 채소(World Vegetables)의 목록에 제시된 피자식물(被子植物, Angiosperms)의 단자엽식물(Monocotyledons) 및 쌍자엽식물(Dicotyledons) 중에서 가식부위나 전 식물체가 특징적인 형태를 가진 채소를 다음의 다섯 가지의 다른 과(科, Family)중에서 선정하였다. 단자엽식물에서는 백합과(Liliaceae), 쌍자엽 식물에서는 배추과(Brassicaceae[Cruciferae]), 박과(Cucurbitaceae), 콩과(Fabaceae 혹은 Leguminosae) 및 가지과(Solanaceae)등을 포함하였다.


1) 백합과(Liliaceae) 

백합과에서는 거의 모든 재배 채소가 파·마늘류(Allium 속)에 속하며, 파·마늘류에는 다른 일반명을 가진 7종(種, Species)이 있다.[7] 가식성 식용식물인 파·마늘류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그들이 가진 휘발성 향미 성분이다. 

파·마늘류는 강한 침투성의 향미성분(aromas)을 가지고 있다. 아리나제(Alliinase 혹은 alliin lyase)를 포함한 효소를 방출하도록 조직이 손상을 입을 때에는 취기성(臭氣성)의 휘발성 유황 함유 물질을 내뿜는다.  파·마늘류의 가식 부위는 잎(foliage leaves), 줄기, 및 클로브(cloves)를 포함한 인경(鱗莖, bulbs) 등이다. 

위의 파·마늘류(종)에서 보듯이, 가식부위들이 모두 비슷한 양상을 나타내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종류”가 백합과에서는 속(genus)의 수준임을 암시한다. 따라서 모든 파·마늘류는 창세기가 말하는 ”종류”로부터 유래되었을 것으로 추리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식물들은 형태학적으로나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하고, 공통적인 향미성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 배추과(Brassicaceae) 

그러나 배추과의 상황은 백합과의 파·마늘류와는 다르다. 배추과에는 일반명이 서로 다른 10개의 속과 18개의 종(35개의 채소)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 중에는 23개의 채소가 배추과(Brassica)에 속한다. 브라시카 준키아(Brassica juncea)는 품종이 없는 개체와 각각 품종을 가진 2개의 개체를 포함한다. 브라시카 나푸스(Brassica napus) 에는 각각의 품종을 가진 2개의 채소가 있다. 브라시카 라파(Brassica rapa)에는 각각의 품종을 가진 8개의 채소가 있다. 배추과에는 각각의 식물학적 그룹(botanical group)을 가진 동일한 올레라키아(oleracea) 종에 속하는 8개의 재배형(cole crops)이 있다. (7)

보통 배추(Brassica oleracea)의 전형적 가식 부위는 구(球)를 가졌거나 갖지않은 잎, 미성숙한 꽃(Inflorescence)이나 꽃부위(curd), 그리고 연하거나 부푼(swollen) 줄기 등이다.

배추과 채소는 또한 강한 매운 맛 성분을 가지고 있다. 이들 채소에서 유황을 함유한 휘발성 화합물인 향미물질은 파쇄된 조직에서 S-글루코시드(S-glycosides, glucosinolates)에 대한 글루코시노라제(glucosinolases)의 작용을 통하여 형성된다.

따라서, 선정된 6개의 일반 채소의 종들(케일, 꽃양배추, 양배추, 방울다다기 양배추, 콜라비, 브로컬리등)은 한 ”종류”(창조된 기본 형태)로 간주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전 식물의 형태는 물론, 가식부위의 형태와 구조 등이 매우 정교하고 유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종류”는 배추과 채소에서는 종의 수준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박과 식물(Cucurbitaceae) 

박과 식물에는 14개의 속과 일반명이 다른 26개의 종이 있다. 그들 중에서 3개 종의 10개 채소는 쿠쿠미스(Cucumis) 속에 속하며, 6개 종은 쿠쿠릐타(Cucurbita) 속에 속한다. [7] 멜론, 오이 및 호박 등의 박과 식물이 기본적으로 비슷한 속의 양상을 가진 것으로 판단할 때, 성경에서 말한 ”종류”가 과(family)에 속함을 알 수 있다. 


4) 콩과(Fabaceae) 

콩과 식물에는 일반명이 다른 22속과 38종 (41개품목)이 있다.[7] 콩, 강낭콩, 완두 및 잠두와 같은 콩과 채소의 가식부위는 크기, 형태 및 색이 다양하다. 그러나 콩과 식물은 한 ”종류”(창조된 기본 형태)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경에서 말하는 ”종류”가 콩과 식물에서는 과(family)의 수준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5) 가지과 채소(Solanaceae)  

가지과 채소에는 일반명이 서로 다른 6개의 속과 27개의 종(28개 채소)이 있다.[7] 기본 형태 (창조된)로 추정되는 대표적 채소로는 캡시쿰(Capsicum) 속의 고추, 리코페르시콘(Lycopersicon) 속의 토마토 등이 있다. 가지와 감자는 솔라눔(Solanum) 속에 속한다. 가식부위는 고추, 토마토 및 가지에서는 열매, 감자의 경우에는 괴경 부위이다. 가지과에서 ”종류”는 열매의 경우에는 속(屬)의 수준에, 괴경의 경우는 종의 수준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3. 결론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하나님이 창조한 성경이 말하는 식물의 ”종류”는 현대의 채소 분류체계에서는 과(科), 속(屬), 혹은 종(種) 등으로, 그 범위가 매우 넓은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기본형태(창조된)는 확인할 수 없지만, 모든 식용 채소들은 오랜 기간을 통하여 성장에 영향을 주는 온도, 광도, 일장 및 토양의 성질과 같은 여러 환경 조건하에서 한 가지의 형태로부터 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의 생물학적 계통분류와 명명법의 기초를 확립한, 성실한 창조과학자였던 린네우스(Carolus Linnaeus, 1707-78)는 종은 불변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단지 한 개의 종만을 창조하셨으나, 그 번식은 자연 교잡을 통하여 속내에서 완성되었다고 하였다.[8]

백합과, 배추과, 박과, 콩과 및 가지과에서 보듯이, 채소에는 수많은 품종과 그룹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품종’은 명확한 형태적 특성을 가진 종을 세분화 한 것이고, ‘그룹’은 식물의 품종을 원예학적으로 지칭 하는 학술용어이다.[7] 품종과 그룹 및 종은 자연 교잡을 통하여 속(屬) 내에서 생길 수 있으며, 따라서 창세기가 말하는 ”종류”라는 표현 속에는 식물 종의 다양성을 내포한 것으로 보인다.[6]

구약의 레위기(11:14-15; 19; 22; 29)[2]는 같은 유형의 다양한 동물들의 종류에대해 기술하고 있다. 이 구절들은 ”종류”라는 용어에 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식물과 동물의 ”종류”는 서로 밀접한 유사성, 광범위한 다양성 및 종 내에 수많은 변종의 가능성을 암시하지만, 구체적인 표현에서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9]

창조 6일 동안에 최초로 지상에 나타난 생물은 식물이었다. 온 세계에 존재하는 수십만 종의 식물 중에서 극히 일부인 일 천여 개의 식물만이 채소로 이용되고 있다.[7]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식용채소의 일부를 대상으로, 현대의 이명식 명명법을 창세기에 기술된 ”종류”와 비교해 보았다.

식물의 명명법을 수립한 린네우스는 성실한 창조론자였다. 그러므로 그의 업적과 사고는 신의 설계 (Divine design)의 개념에 기초한다. [8] 학자들의 분류체계는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사역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식물 창조에 대한 우리의 계속적이고 다각적인 연구를 통하여 창조의 신비를 조금이나마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4. 창조란 용어 사용에 대한 간결한 설명  

성경이나 문헌에 보면 창조에 대한 많은 다른 용어들(created, made, produced, formed 등)이 나타난다. ‘빠라’(bara, create)는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관한 독점적인 용어이다. 이 용어는 하나님의 천지창조(창 1:1), 식물을 포함한 생물(창 1:21) 및 인류(창 1:27)의 창조에서 보듯이, ‘무(無) 에서 유(有)’의 창조(Creatio ex nihilo) 인 세 가지의 특수한 경우만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식물이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다.(창 1:11-12) 

‘아사’(asah, make)라는 용어는 식물체에서 보듯이 기존의 재료를 이용하여 어떤 형태를 만드는 행위이다.(창 8:6, 13:4, 출 5:16).[9, 10] 야짜르(yachar, form)는 토기를 만들듯이, 기존 재료로 어떤 형태를 조립하는 경우 사용되었다.(시 95:5, 사 29:16, 44:10). 이에 반해 ‘빠나’(bana, build)는 벽돌로 성을 쌓듯이, 새로운 물건을 차근차근 쌓는 행위를 말한다.(창 11:5, 민 32:37). [11] 하나님은 ‘바라’에 의해 창조하신 물질(땅)로 6일 동안 식물을 포함한 천지만물의 형태를 만드시고(아사), 조립하시고(야짜르), 쌓으셨다(빠나).

 

감사의 말씀

Dr. Elmer Ewing의 격려에 감사드린다. 선정된 채소의 모든 이미지는 Reader’s Digest의 ”Food from your Garden”에서 인용되었다.

 

참고문헌

[1] The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Study Bible. Kenneth Barker.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5

[2] Holy Bible. The Open Bible Edition. King James Version. Thomas Nelson Inc., Publishers, Nashville, Tennessee. 1975

[3] The MAC ARTHUR Study Bible. John Mac Arthur. New King James Version. Thomas Nelson Bibles, A Division of Thomas Nelson, Inc., 1977

[4] The Preacher’s outline and Sermon Bible. Genesis I, New International Version, Leadership Ministries Worldwide, Chattanooga TN, 2000

[5] Morris HM (ed). Scientific Creationism, Maser books, ElCajon, California, 1985

[6] Sarfati, J. Refuting Compromise, Master Books, 2004

[7] Rubatzky E, Yamaguchi M. World Vegetables (2nd ed), Chapman and Hall, 1997

[8] Young M & Edis T. Why Intelligent Design Fails: A Scientific Critique of the New Creationism. Rutgers Univ. Press, New Brunswick, NJ, 2006

[9] Bible Study Fellowship (BSF), International Notes, Genesis, Lesson 3, 2004

[10] Lim B. S. Introductive Creation Science.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2007 

[11] 제자원 편집: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p46-48, 제자원, 서울, 2006 

 

이미순, 임번삼 & 이웅상

 mslee@duksung.ac.kr, bslim112@naver.com, wslee@mju.ac.kr

* 이 글은 저자들이 영문으로 발행한 논문을 한글로 번역한 것임을 밝힙니다.

미디어위원회
2014-06-04

식물도 눈을 가지고 있다. 

(Even the Plants Have Eyes)

David F. Coppedge


     식물(plants)은 어떻게 빛을 향해 나아가는 것일까? 그들은 분자 크기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빛의 신호를 받아들이는 광수집기가 아니라면, 그 눈은 무엇일까? 그러나 식물 역시 눈을 가지고 있다. 피토크롬(phytochromes)은 식물과 일부 박테리아에서 빛에 민감한 단백질이다. 이 분자 중 하나가 빛의 광선과 부딪힐 때, 그것은 줄기와 잎이 빛의 근원을 향하도록 하는 것을 포함하여, 일련의 후속 영향을 유발하는 스위치를 켜서, 형태에 있어서 운동적 변화를 진행한다. 그것이 상자에서 자라는 어린 콩 줄기가 빛이 있는 구멍을 향해서 자라나는 이유이다.

피토크롬은 다른 분자기계들의 스위치를 켜는 분자기계이다. 몇 옹스트롬(Å)에 불과한 피토크롬 모양의 매우 작은 변화도, 잎의 운동에 있어서 거대한 변화로 증폭될 수 있으며, 이것은 어린이가 로켓의 발사 스위치를 내리는 것과 같다.

이 과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이번 달 Nature(2014. 5. 8) 지에 ”피토크롬 광센서의 신호 증폭 및 전달”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예테보리 대학(University of Gothenburg)의 자세한 요약 글이 제공되었는데, 연구팀의 일부 멤버들은 환호하고 있었다. ”식물에 있는 빛에 민감한 눈”이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는 그 놀라움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 

대부분의 식물들은 그늘을 피하고 빛을 향하여 자란다. 다른 생물들 사이에서 식물은 광합성을 통하여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소비함으로써 그것을 가능케 한다. '피토크롬”으로 알려진 단백질이 이 과정을 제어한다. 식물의 피토크롬은 빛의 복사를 통해 변화되고, 신호들은 세포로 전달되는 것이다.

다른 대부분의 단백질처럼, 피토크롬은 3차원의 입체 분자 구조를 지닌다. 빛은 피토크롬에 의해 흡수되고, 단백질 구조가 변한다....

”우리는 어떤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빛의 신호가 세포들을 위쪽으로 향하도록 전달했음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러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는지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밝히고자 했던 것이다. 거의 완벽하도록 분자들이 재구축되었다”고 세바스찬 웨스텐호프(Sebastian Westenhoff)는 말했다. 

웨스텐호프는 이러한 피토크롬을 공학적 용어로 설명했다 : ”단백질들은 생명체의 공장이고 기계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구조는 그들의 특정한 임무를 수행할 때 변경된다”는 것이다.

Nature 지의 논문에서, 스위치의 지렛대처럼 작용하는 피토크롬 분자의 혀 모양 부분은 ”진화적으로 보존되었다(즉, 진화되지 않았다)”라는 말을 제외하곤, 진화에 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실제로, ”혀 모양 부위의 광센서와 주요 아미노산 서열들은... 전체 피토크롬의 상과(superfamily)에 걸쳐 고도로 (변화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진화론은 분자 수준에서 식물들의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에 전혀 쓸모가 없다. 분자생물학적 연구는 언제나 진화론이 기여한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분자기계는 박테리아에 처음부터 있었고, 그 이후로 전혀 진화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여기에 관련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피토크롬은 정교하게 배열된 수백 종의 아미노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단백질이 매우 다른 두 상태 사이에서 변경되어 재배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분자들이 거의 완벽하게 재구축되고 있었다. 그러한 구조적 변화는 어떻게 변화에 반응해야하는지를 알고 있는 다른 분자기계들이 없다면, 쓸모없는 것이 될 것이다”고 그 논문은 말하고 있었다. 

식물 피토크롬에서 C-말단 조절 영역에 포함되는 두 개의 추가적 PAS 도메인과 세린/트레오닌 키나아제(serine/threonine kinase) 활성과 상호작용 파트너의 친화성과 같은 더 복잡한 기능 패턴들이 조절되어야만 한다. 모든 경우에서, 생산량 활성은 아마도 광센서 중심부의 구조적 변화에 의해서 조절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모든 개시 스위치의 후속 효과는 빛으로부터 혜택을 얻기 위해서, 박테리아 또는 식물이 협력해야만 한다. 이것은 지시되지 않은, 무작위적인, 눈이 먼, 과정이 아니라, 공장에서 어떤 작업이 질서 있게 순차적으로 수행되는 것처럼, 먼 목표를 향해, 구성요소들이 조직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작품들에 의해 ”빛이 비춰지고” 있는 것은 진화론이 아니라, 공학적 설계인 것이다.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crev.info/2014/05/even-the-plants-have-eyes/ 

출처 - CEH, 2014. 5. 14.

미디어위원회
2014-02-19

사막의 미스터리한 식물 

: 살아있는 화석 웰위치아 

(Mystery Plant of the Desert)

Tom Hennigan


서론

 
1859년 남부 앙골라의 나미브사막(Namib Desert)을 탐험하던 식물학자 프리드리히 웰비츠크(Friedrich Welwitsch)는 한 모습에 압도되어 무릎을 꿇고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일종의 식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무릎을 꿇고 있는 뜨겁고 건조한 사막에서 그러한 이상한 식물 표본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식물은 목본성 근계(root system)와 두 개의 넓은 잎이 달린 우묵한 줄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잎들은 아래로 구부러져 지상을 따라 포복하며, 수십 번 나눠지고 잘게 조각이 나서, 마치 곱슬 리본의 덩어리처럼 보였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었을까?


그림1. 웰위치아(Welwitschia plant)의 구과(cones) 모습 (출처 : Wiki commons.)

미스터리가 풀리다.

오늘날 식물 웰위치아의 미스터리는 풀렸다. 과학자들은 위대한 탐험가이자 의사였던 그의 이름을 따서 그 식물을 웰위치아(Welwitschia)로 명명했다. 물론 아프리카의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그 식물을 알아왔었고, 그것을 날것으로 먹거나, 뜨거운 재로 구워서 먹었다. 후테로(Htrero)의 지역 언어에서는 그것을 onyanga 또는 ”사막의 양파(onion of the desert)”로 불렀다. 식물학자들은 그것을 나자식물(gymnosperm, 겉씨식물)로 분류했는데, 크리스마스 트리로 사용되는 소나무와 가문비나무처럼 솔방울이 달리는 식물 그룹이다. 나자식물은 문자 그대로 이 그룹의 종자들이 종자를 둘러싸는 보호 조직이 없어 ”나출된 종자”로 있음을 뜻한다. 한편, 피자식물(angiosperms, 속씨식물, 현화식물, ”종자가 덮혀 있음”)은 꽃을 생산하고 보호조직으로 자라서 과실처럼 종자 주변이 보호되는 식물 그룹을 뜻한다.

라틴어 이름으로 Welwitschia mirabilis는 문자 그대로 놀라운 Welwitsch를 뜻한다. 그와 같은 식물은 전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도 이상해서, 과학자들은 그것을 그것만의 종, 속, 과, 목의 유일한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것이 이 식물의 진화론적 기원 역사를 어렵게 만들었는데, 그것의 조상으로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번식과 성장

이 나무는 암수 식물이 따로 존재한다. 웅성 화분(male pollen)은 주황색의 구과로부터 정자를 만들고, 자성 식물은 청녹색 구과로부터 난자를 만든다. 화분은 숫나무에서 암나무로 여행할 필요가 있고, 많은 나자식물에서 바람이 이 일을 수행하지만, 웰위치아는 그렇지 않다. 대신 나방, 파리, 말벌 같은 곤충의 도움을 받는다. 암수의 구과들은 꽃처럼 행동하며, 곤충들을 유치하기 위한 꿀을 만든다. 이 말벌과 파리들이 달콤한 꿀을 찾을 때, 화분이 암술에 들러붙는다. 곤충들이 웅성의 구과에서 자성의 구과로 여행을 할 때, 그들은 화분 알갱이를 암술머리로 운반하는 것이다. 일단 화분이 암술의 구과에 정착하면, 하나의 관이 화분 알갱이와 자성 난자로부터 자라서, 화분관에서 수정이 일어난다. 이것은 특별한 일이다. 왜냐면 화분알갱이 만이 난자 쪽으로 향하여 자라기 때문이다. 수정이 일어나면 새로운 생명(종자)이 만들어진다.

그림 2. 웰위치아의 구과. 출처는 Curtis의 식물잡지(1863).

이 나무의 생장 형태는 기묘하다. 왜냐하면 종자가 발아한 이후에 생기는 문제 때문이다. 식물의 수직 생장부분(정단 분열조직)이 처음 두 개의 잎을 만든 다음에 죽는다. 그것은 마치 ”머리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그리고 키로 자라기보다는 잎들이 기저부로부터 바깥쪽으로 포복을 한다. 줄기는 지상위로 1m 정도 자랄 수 있고, 뿌리는 지하로 1m 정도 자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잎은 4m로 엄청 크게 자랄 수 있고, 둘레는 8m에 달한다.


고대의 살아있는 화석

웰위치아는 ‘살아있는 화석(living fossil)’이다. 그것이 전기 백악기(마지막 공룡시대)의 웰위치아 화석과 비교했을 때 조금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화석은 브라질의 북동부에 퇴적되어 있었는데, 그 지역은 홍수 이전의 초대륙에서 아프리카 나미비아와 인접해 있었던 지역이다. 진화론적 가정에 기초한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이 식물은 공룡과 함께 살았고, 1억4천만년 이상 동안이나 변화하지 않은 것이다! (참조: Evolution Exposed: Biology Chapter 4: Unlocking the Geologic Record). 그 식물은 수많은 역사를 경험한 것이며, 그 식물의 형태는 그러한 장구한 기간 동안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웰위치아는 1,000년을 살 수 있고, 어떤 것은 2,000년 이상 오래 살 수 있다.


고도가 높은 건조지역에는 남아 있지 않다.

웰위치아는 나미브 사막의 초건조 지역에 자생하고, 세계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보츠와나의 습지 지역에 예외적으로 가능하다. 우리의 하나님은 웰위치아를 높고 건조한 지역에 두지 않으셨다. 대신 하나님은 이 식물을 놀랍게 설계하셔서, 년 강수량이 0~25인치에 불과한 건조한 지역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다. 종종 건조한 강 언덕에서 발견이 되는 것은 지하의 뿌리와 줄기가 물을 끌어올려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밤 동안에 남대서양의 차가운 벵겔라 해류에서 온 찬 공기가 나미브 사막에서 온 뜨거운 공기와 만나서 그 지역에 두꺼운 안개 이불을 만든다. 리본과 같은 잎은 그 응결된 안개를 모은다. 왜냐하면 그것이 아래로 구부려져 있고 굴곡되어 있어, 물이 토양의 지면 식물 아래쪽으로 굴러 떨어지고, 그곳의 줄기와 뿌리가 그것을 쉽게 흡수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안개 역시 기공이라 불리는 잎의 특별한 열린 문으로 직접 들어갈 수도 있다. 그 식물의 물을 흡수 저장하는 능력은 물론 다른 생물체를 돕는다.    

건조기 동안에 코뿔소와 영양 같은 동물들은 물을 얻기 위해 그 두꺼운 잎을 씹을 것이고, 나머지는 내뱉는다. 또한 그들의 물-전달 세포들은 나자식물에만 전형적인 것이 아니다. 예로서 많은 침엽수의 뿌리와 줄기는 가도관(tracheids)이라 불리는 작은 수분-전달 세포들을 지니고 있다. 피자식물의 뿌리와 줄기는 가도관과 물을 전달하기에 이상적인 도관(vessel)이라 불리는 커다란 텅빈 세포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매혹적으로 웰위치아는 구과가 달리는 나자식물로서 하나의 모자이크(여러 특징이 섞여있는) 형태로서, 나자식물(gymnosperms)에 있는 물/양분 전달 세포인 가도관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피자식물(angiosperms)에서만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도관 요소 역시 지니고 있는 것이다.

많은 식물들은 낮 동안에 기공(stomata)을 연다. 태양에너지를 이용하여 당을 만들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밤에는 닫는다. 그러나 만약 나미브사막의 낮 동안에 기공이 열린다면, 그 식물은 물과 탄수화물의 많은 양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사막의 많은 피자식물들은 낮 동안에 기공을 닫고, 밤 동안에 열어서, 이산화탄소를 흡수 저장한다. 다음날 태양에너지가 유용할 때, 전날 밤 세포 속에 산(acid)으로 저장된 이산화탄소를 화학형태로 바꾸어 당이 만들어지도록 한다. 웰위치아는 나자식물로서 특이한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막의 꽃이 피는 피자식물이 행하는 것과 같은 동일한 복잡한 이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많은 연구가 이것을 입증하기 위해 필요하다.

프리드리히 웰위치아의 연구 덕분에 우리는 이 식물의 설계에 관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 웰위치아는 생물체에 생명 유지와 제공을 위한 창조주의 솜씨에 대한 또 다른 증거이다. 이 독특한 식물은 갈증과 더위의 역경을 극복하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특별한 설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독특하게 창조하셨음을 상기시킨다.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되시며, 그 분의 살아있는 말씀을 흡수하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가 그를 즐기고 인생의 고난의 열기를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를 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 1:1~3).


References

The Living Fossil: Welwitschia mirabilis. Nature Conservancy. Retrieved from taxusbaccata.hubpages.com/hub/Welwitschia-mirabilison May 24, 2013.

Welwitschia mirabilis. Retrieved from www.plantzafrica.com/plantwxyz/welwitschia.htm on May 24, 2013.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id/v8/n1/mystery-plant-desert 

출처 - AiG, October 23, 2013.

미디어위원회
2013-11-18

씨앗의 경이로움 

: 작은 꾸러미는 하나님의 작품임을 증명하고 있다. 

(Sensational Seeds: compact packages attest to God’s handiwork)

David Catchpoole


”...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막 4:26, 27)

비록 사람이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지만, 예수님의 말씀(막 4:26b-27)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리이다. 나 자신도 공부를 한 식물학 박사이지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씨앗, 씨앗의 발아, 묘목의 생장을 계속 연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를 정말로 상세히 잘 모른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어느 누구라도. 씨앗 하나가 하고 있는 일을 어느 것 하나라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 저널들은 씨앗이 싹을 내고 자랄 때, 씨앗 속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복잡한 과정들을 자세히 설명하는 연구 논문들로 가득 차 있지만, 어떻게 그 모든 것이 식물 내에서 일어나는지는 불가사의로 남아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막 4:28).


(Wikimedia commons/Eric Hill).

작은 씨앗이 성숙한 식물로 바뀌는 것은 전 세계의 많은 시인들과 작가들의 시와 문학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예를 들어보자 :

”하나님의 경이로운 세계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아무 것도 없는 땅에 하나의 씨를 심어서 그 결과를 보는 것만큼 나에게 더 놀라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예로서 양귀비의 씨를 생각해보라. 그것을 당신의 손바닥에 올려 놓아보라. 가장 단순한 원자들로 이루어진 물질, 거의 보이지 않는, 하나의 작은 반점, 장식 핀의 끝처럼 작은, 그러나 그 안에는 형언할 수 없는 영혼의 아름다움이 새겨져 있고, 속박을 끊고, 어두운 땅속에서 나타나, 어떠한 표현으로도 안될 만큼 눈부신 화려함으로 꽃을 피운다” - Celia Thaxter (미국 시인, 1835-1894).

씨앗 알갱이 각각은 부모와 같은 또 다른 씨앗이며, 농부는 '적기' 혹은 '파종기'에 씨를 뿌릴 수 있고, 다시 씨 뿌리고... 자라고... 수확하는 심음과 거둠의 주기를 계속 반복해 나간다(창 8:22).

완전한 식물로 자라는데 필요한 정보와 소형 분자기계들이 어떻게 그렇게 작은 용기(씨앗)에 압축해 넣을 수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거기에는 작은 에너지 저장고도 있는데(배유로 알려짐), 발아하는 씨앗이 처음 뿌리를 내려 어린 식물이 땅에 고착하고 물과 양분을 찾아내도록 돕는다. 그 다음에는 태양에너지 집열판(잎)을 세워서 씨앗에 저장된 에너지가 고갈된 이후에 식물이 자라도록 에너지를 제공한다. 상상해보라. 스스로 유지되고 작용하는데 필요한 지침과 장비, 그리고 친환경적 태양에너지 수집시스템(광합성)이 모든 것들이 작은 씨앗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텃밭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콩을 심으면 콩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현재 수십 년 동안, 태양에너지 분야의 최고 공학자들은 식물이 태양 빛을 연료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모방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실 과학자들은 그것을 복사하는 것은 차치하고, 아직도 광합성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들을 충분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다.[1] 그래서, 그렇게 고도로 지적인 과학자들이 지금도 도전하고 있다면, 광합성의 배후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한 화학 과정과 반응들을 설계하신 어떤 누군가가 존재한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누군가가 어떻게든 작은 씨앗 내에 자신이 설계한 태양에너지 키트를 장착시켰고, 기본적 구성 요소들과 지속적 유지를 위한 지침서를 완성하여, 씨앗 내에 입력시켜놓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 대신에 목적도 없고 방향도 없고 생각도 없는, ”진화가 그것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창조주의 솜씨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그들은 모든 씨앗들 내에 들어있는 독특한 놀라운 설계들을 무시해버리지 못할 것이다.(롬 1:20). 그래서 모든 텃밭을 가진 사람들이면 누구나, 하나님이 창조 주간 셋째 날에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각기 종류대로 내라고 명령하신 말씀대로(창 1:11~12), 식물들에 미리 프로그램 시키신 것과 일치하여, 콩 심은데 콩이 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파종기에 농부가 밀 씨앗을 뿌리면 싹이 나고 자라서 밀을 생산한다. 이때 백합이나 엉겅퀴 혹은 담쟁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만약 밀이 ”그 종류대로” 밀을 내지 않는다면, 밀 재배농가는 곧 파산하게 될 것이다! 감사하게도 우리의 하나님은 모든 파종기와 수확기에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것처럼, 질서의 하나님이시지, 혼돈과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다.(고전 14:33a).

(Wikimedia commons/Okko Pyykkö).
들판에 서양 유채(canola, or rapeseed) 꽃이 만발했다. 유채 과(Brassica family)에는 캐놀라, 양배추, 검정겨자, 순무, 싹이 긴 양배추 등이 포함되며, 위에서 보면 꽃의 화판이 십자가 모양을 띠어 십자화과(Cruciferae) 식물로 알려져 있다. 수분(pollination) 후에 화판은 떨어지고, 종자가 발달하기 시작한다. 좋은 조건 하에서 캐놀라 씨앗은 4주 후에 수확을 할 수 있다.


양배추가 꽃양배추로 변하는 것은?

한편 식물의 각 종류는 그 종류대로 씨앗을 맺는다. 우리는 오늘날의 '종(species)'을 하나님이 창조주간 셋째 날에 만드신 '종류(kinds)'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로써, 순무(Brasica rapa)와 양배추(Breasica oleraceae)는 서로 다른 종 이름을 가졌지만, 동일한 창조된 종류 내에 속하는 것이다. 그 증거로 두 종을 같이 심으면, 어떤 것은 일부 순무가, 혹은 황색무(rutabaga)가 만들어진다. 유사하게, 순무와 검정겨자를 같이 심으면 일부 갈색겨자(B. junca) 종자가 생산된다.[2]

예수님은 천국을 비유하시면서,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라고, 겨자씨가 나무가 되는 것으로 비유하셨다(마 13:31-32). 오늘날의 겨자(mustard)는 한해살이 식물이어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비유한 겨자가 다른 식물일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복음서에 쓰여진 그리스 단어는 ‘sinapi’ 인데, 그것은 ‘Sinapsis’에서 온 것으로, 그것은 유채과(Brassica family) 중에 흰겨자(white mustard)로 알려진 한 속에 해당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식물은 아마도 검정겨자(Brassica nigra) 였던 것 같다. 그것은 빠르게 발아되고, 매우 빠르게 성장해서, 높이 3m에 이르는 ‘정원 식물 중의 가장 큰 것’이 되며, 실제로 ‘가지에 새가 길들 만큼’ 커진다.


하나님이 식물을 창조하셨음을 믿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흔히 진화의 증거로 그러한 변이를 이용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창조된 종류 내에서 일어나는 변이인 것이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유전자들의 재배열의 결과이지, 새로운 것으로의 '진화'가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이와 교잡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즉 당신이 순무(turnips)와 망고(turnips)를 아무리 많이 심어도, 당신은 그것의 잡종으로 ‘순망고'나 ’무망고'의 씨앗을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유채과 내에서 볼 수 있는 변이의 일부는, 한 때 완벽한 창조로부터의 타락의 결과로,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창 3장)로 이제는 ‘타락의 굴레’(롬 8:9-22)에 놓여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예로써 꽃양배추(cauliflower)는 채소이지만, 변형된 커다란 꽃송이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잎에 의해서 덮여져 있기 때문에 하얀 색으로 남아있다. 돌연변이는[3] 유전자의 복제 오류로부터 기인되는 것으로서, 최초의 유전적 정보들을 일부 파괴해 왔다(그것은 돌연변이를 통해, 미생물에서 인간으로의 진화에 필요한 유전적 정보의 증가를 가져왔을 것이라는 진화론자의 희망과는 엄격하게 대조가 되는 것이다).[4]


실제로, 일부 돌연변이들은 씨앗 내의 암호인 유전정보들을 파괴해 왔다. 우리는 상업적으로 만들어낸 바나나 변종, 일부 감귤류, 선발된 테이블포도 등에서 씨가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변종들은 인간 때문에 살아남았다. 인간이 원하는 특성을 지닌 것들은 씨앗 없이 영양번식을 통해 변종을 생산해 왔다. 즉, 씨앗 없이도 감자를 쪼개서 여러 개의 감자를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생산비용에 있어서 씨 없는 품종이 비싸다. 예를 들면, 흔히 성장하는 씨앗에서 방출되는 화학물질이 과실의 크기를 촉진하는데, 적당한 크기와 생산성에 도달하기 위해서, 어떤 씨 없는 포도에서는 인위적으로 살포해야만 한다. 

.피자식물(속씨식물, Angiosperms)은 단자엽 식물(monocotyledons, 초본류처럼 단 하나의 떡잎을 가지는 종자식물)과, 쌍자엽 식물(dicotyledons, 콩처럼 두 개의 떡잎을 가지는 식물)로 나뉘어진다.
 

인간에게 유익한 씨앗

씨앗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식품 가치의 관점으로만 보더라도, 우리는 아마도 매우 굶주렸을 것이다. 예로써, 밀, 벼, 옥수수, 보리, 호밀, 귀리의 씨앗은 오늘날 우리의 주된 식량이다.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콩은 단백질의 주요 원천이다. 그것들을 재배하는 것은 또한 매우 고된 일을 필요로 하며, 매년 그 모든 종류의 작물들을 수백만 에이커에 심어야만 한다.

그러나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 최초의 두 사람은 식량을 얻기 위해 토양을 경작해야하는 매우 고된 노동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동산에서 단지 과일을 따기만 하면 모든 영양분을 얻을 수 있었다(창 2:15-16). 그러나 처음 한 사람의 죄의 결과로 인해 그들은 더 이상 과일에만 의존할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필연 ”이마에 땀을 흘려야”만 했으며, 다양한 농작물들을 재배했어야만 했다.(창 3:17-19).

일부 독자들은 ”만약 최초의 인류가 농업을 경작했다면, 석기시대(Stone Age)는 어떻게 된 것이냐?”고 말하며 궁금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답은 이렇다 : 인류의 역사에서 ‘석기시대’, ‘청동시대’, ‘철기시대’ 등은 결코 없었다는 것이다.[5] (흔히 기만적인 진화론자들은 ‘원시적’ 수렵과 채취가 농업에 앞선다고 주장을 한다). 태초부터 사람들은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들었다.(창 4:22).

그렇다면 수렵 채취(hunter-gatherer) 인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몇 가지 점에서 그 사람들은 분명 농업을 중단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갑작스럽게 농업용 작물 종자를 이용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생계를 위해 수렵과 채취로 방향을 전환했기 때문인 것 같다.

과거 여러 시대에서, 농업 작물용 씨앗을 갑자기 쓰지 않게 된 것은 일부 그룹의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서 수렵과 채취로 방향을 전환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부 진화론자들도 이것을 인정하고 있다. 예로써, 태국의 산악 부족으로 수렵-채취인 므라브리(Mlabri) 부족은 진화인류학자에 의해 ”석기시대로부터 변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말해진다. DNA와 언어적 연구로부터 그들은 작물을 재배했던 태국의 틴프라이(Tin Prai) 족의 후손임을 보여주었다. 틴프라이 부족은 수백 년 전에 그들의 사회에서 젊은 소년과 소녀를 추방하여, 뗏목으로 강 아래로 떠내려 보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소년과 소녀는 떠내려간 하류의 정글 속으로 도피했고, 작물 씨앗들이 없었기에 생존을 위해 정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시작해야만 했었을 것이다. 그 한 소년과 소녀가 므라브리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 그들의 후손은 어떤 선택의 여지없이, 오늘날에 발전되어 있는 태국 사회로 재융합되어 돌아갈 기회가 있기 전까지는, 수렵과 채취인의 ‘전통’을 계속해야만 했었다.[6]

태평양의 다른 수렵 채취인들에 대한 연구와 함께 므라브리 족의 경우는 진화인류학자들에게 동시대의 석기시대로부터 변하지 않은 사람들인 수렵 채취 부족은, 농경인에 선행했던 인간 집단을 자동적으로 나타낸다고 가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7]

2006년 노르웨이 정부는 ‘세상 마지막 날’을 위한 종자은행(seed bank)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씨앗의 무한한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여,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식량급원 확보를 위한 노력으로 전 세계에서 다양한 종자들을 수집하기 위해 움직여 왔다. 예로써 2006년 북극에서 단지 1,100km 떨어진 롱이어비엔(Longyearbyen) 근처에서 모인 북유럽 5개 국가의 수상들과 함께, 노르웨이 정부는 ‘지구 최후의 날’을 위한 종자은행 건설을 시작했다.[8] 그 종자 저장소는, 로키 산맥 옆의 얼어붙은 지하로써, 3백만 개에 이르는 씨앗들이 저장될 것이다. 당국자들은 저온 상태에서 수분을 유지하는 알루미늄 은박지 속에 저장을 하는 기술을 결합시켜, 종자들이 수백 년 동안 생존될 것으로 희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적인 관측일 뿐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씨앗들은 발아력을 잃지 않고 40년 이상 저장될 수 없기 때문이다.[9]


종자 ‘노아 방주’는 진화론에 기초한 비논리성의 극치이다.

농부들은 식물 육종가들에 의해서 교잡된 변종 품종을 택하기 때문에, 오래된 (수확량이 적거나, 맛이 적거나, 재배하기 힘든...) 전통적 품종들은 포기되고 버려진다. 그래서 변종들만 대부분 종자은행에 저장되게 되었다.[10] 그러한 버려진 품종들에는 대단위 경작에 접합한 선택된 품종들이 잃어버린(빠져있는) 유전자들을 지니고 있다.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선택(선발)은 유전정보의 손실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짧은 줄기의 밀을 선발하면, 결과적으로 긴 줄기의 유전자를 제거하는 것이다(야생의 밀은 두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다양한 키의 식물이 혼재되어 나타나며, 다양한 크기는 기계적 수확을 부적합하게 만든다).

.콩 종자의 여러 부분들 : 콩 종자의 껍질(testa)을 벗기면, 여러분은 종자의 내부가 어떠한지를 볼 수 있다. 종자에는 두 개의 자엽(종자의 잎), 유근(배의 뿌리), 배축(자라서 줄기가 됨), 상배축(배의 꼭대기)이 있다. 산배축은 어린 싹을 지탱한다(후에는 식물의 최초 진짜 잎으로 자란다). 초기 생장 에너지(즉 잎이 광합성을 시작하기 이전)는 배유(배를 위한 양분 저장소)에서 온다. (위의 그림은 식물창조 탐험 책자, 유치원, 초등학교 교재, 제니 K 플브라이느의 우수한 책 24 page에 있다).

유전자 다양성의 소실이 나쁘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 왜냐하면 유전자 다양성은 현재는 평가되지 않은 질병저항성이나 양분 특성의 육종과 같은 식물 육종의 중요한 미래 유전정보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11] 그러나 만약 식물의 유전적 정보 모두가 어떤 지적 존재의 개입 없이 수십 억 년에 걸쳐 우연적인 변화(돌연변이)들에 의해 우연히 생겨났다면(진화론의 기초 교리), 최고급 두뇌의 지적인 과학자들은 몇 개의 유전자들은 만들어낼 수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과학지식의 놀라운 발전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질병저항성을 갖는 새로운 기능의 유전자를 발명하는 것은 아직도 과학자들의 능력 너머의 요원한 일이다. 예로써, 모든 과학자들의 지성을 결집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 식물에서 질병저항성 혹은 가뭄 저항성에 필요한 생물적 정보를 발명하거나 창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그들도 창조하지 못한 동일한 유전정보가 어찌되었든 어떤 지성도 없고, 방향도 없고, 목적도 없는, 눈이 먼, 복제 실수인 자연적 과정으로 우연히 그저 운 좋게 생겨났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비논리적이다.

흥미롭게도, 오늘날의 많은 서구사회에서 성경 지식이 쇠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영향력은 종자은행과 같은 것이 노아의 ‘방주’에 비유될 정도로 여전히 인용되고 있다. 그리고 방주에 탄 동물들은 창세기 6~9장의 전 지구적 대홍수 재앙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씨앗은 토양으로부터 물을 흡수할 때 발아가 시작된다.


노아홍수 시에 씨앗들은 어떻게 생존했을까?

많은 식물 종들이 노아홍수 시에 생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어디에서도 자라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홍수 동안에 퇴적된 암석 지층에서 발견되는) 소수의 화석 식물 종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량으로서 영양원을 잃어버린 그들의 사라짐은 하나님께서 노아홍수 이후에 사람의 육식을 허락하셨던(창 9:3) 이유에 대한 부분적 설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많은 식물 종들은 노아홍수에서 살아남았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는 식물의 아름다움, 식량, 과일, 식물성 기름, 섬유소, 조미료, 음료의 가치를 즐기고 있다. 많은 식물 종들은 씨앗(seeds)을 통해서 생존했을 것이다. 많은 육상식물의 씨앗들은(찰스 다윈이 관찰했던 것처럼) 다양한 농도의 소금물에서 장기간 생존할 수 있다. 실제로 소금물은 일부 씨앗의 발아를 방해한다. 그래서 그러한 씨앗은 담수보다는 염수에서 잘 견딘다. 또한 어떤 씨앗은 단단한 씨앗의 외피가 손상처리, 즉 산불 등으로 약해지지 않는 한, 물을 전혀 흡수 할 수 없다.

찰스 다윈이 관측했던 것처럼, 많은 씨앗들은 소금물에 잠겨도 장기간 생존할 수 있다.

노아홍수 동안에 일부 씨앗들은 죽은 초식동물의 떠다니는 시체 내의 팽창한 위 속에서 생존되었을 것이다.[12] 다른 식물들은 홍수 물 표면에 떠다니는 식물 매트, 혹은 화산 활동으로 분출된 떠다니는 경석(pumice, 가벼운 돌) 위에서도 생존했을 것이다. 많은 식물 조각들은 무성적으로 싹을 낼 수 있으며, 후에 씨앗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노아방주에서 날려 보낸 비둘기가 가져온 감람나무 새 잎사귀(olive leaf, 창 8:11)는, 노아의 가족들이 371일 동안 방주에서 머물렀다 떠나기 전에, 재번식 했음을 잘 보여준다.

많은 씨앗들은 동물의 모피에 스스로 들러붙는 장치를 가지고 있어서, 일부는 이러한 방법으로 방주에 올라타 홍수에서 생존했을 것이다.

물론, 노아는 대홍수에 앞서 방주에 식량을 비축했다.(창 6:21). 따라서 거기에는 많은 씨앗들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일부 씨앗들은 식량 저장고에 우연히 포함되어 배에 오르게 되었지만, 틀림없이 대부분은 의도적으로 배에 실려졌을 것임에 틀림없다. 노아는 홍수 후에 재배를 위한 파종 씨앗들도 일부 별도로 남겨두었을 것이다. 홍수 후에 노아는 심지어 자신의 집 앞에 포도를 심었던 것으로 보인다(창 9:20-21). 그것은 후에 성경의 말씀과도 맥을 같이 한다.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너를 위하여 밭에서 준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잠언 24:27).

나는 대학에서 농업과학 학부 시절에 많은 작물(crop plants)의 기원이 비옥한 초승달 지역(Fertile Crescent)으로 추적될 수 있다고 배웠다. 즉 중동이 있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좁고 긴 지역이다. 크리스천으로서 나는 이것이 창세기의 역사적 설명과 정확히 들어맞을 수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곳은 바벨탑이 세워졌던 시날(Shinar) 평원의 지역을 언급한다. 이곳은 대홍수 이후에 하나님이 언어를 혼잡시켜 사람들을 흩으셨던 장소이다(창 10:1~11:9). 그래서 노아가 방주에 실었던 여러 형태의 많은 종자들은 ‘아라랏 산’에 방주가 도착하여 육지로 내려지게 되었고(창 8:4), 홍수 이후에 주의 깊게 아껴서 사용되었다. 그러한 작물 종과 품종들은 시날 평원에 정착한 계속된 세대에 의해 사용되었다. 바벨로부터의 흩어짐에 따라, ”그들의 언어대로 나뉘어진” 특정 가계들은 각각 농장 경영의 전문지식을 취했을 것이고, 그들이 퍼져나가면서 그들과 함께 씨앗 급원도 퍼져나갔을 것이다. 이것은 노아 홍수 이후에 전 세계로 농작물(식물)의 분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씨앗이 퍼진 다른 방법들

물, 동물, 사람이 씨앗 살포의 유일한 매체는 아니다. '날개'가 있는 씨앗은 바람이 불 때 모체 식물에서 공중으로 멀리 떨어진 곳까지도 갈 수 있다. 민들레 씨앗의 낙하산 같은 '관모(pappus, 갓털)'는 몇 시간 동안 하늘 높이 떠다닐 수 있고, 그 동안에 실제로 매우 먼 거리를 날아갈 수 있다. 그러나 씨앗 전파에 있어서 새(birds)들의 역할은 가장 뛰어난 것임에 틀림없다.

새의 위 속에 들어있는 소화력이 있는 산(acid)은 많은 씨앗들의 종피를 약화시키는데 매우 적합하다. 그렇지 않다면 날아다니는 새의 ‘똥’으로 소화되지 않은 채 나와서, 씨앗들은 발아되지 못하고 천연비료로 쌓여졌을 것이다.

새의 위 속에 들어있는 소화력 있는 산(acid)은 벚나무와 같은 여러 씨앗의 종피를 연화시키는데 안성맞춤이다. 그렇지 않다면 날아다니는 새의 '똥'으로 소화되지 않은 채 나와서, 알갱이로 적절히 쌓여 영양분이 풍부한 천연비료가 될 것이다.

따라서 만약 이러한 씨앗 '소포'가 알맞은 장소에 떨어지면, 발아가 준비되고, 틀림없이 자라게 된다. 엄청나게 많은 씨앗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전파되고 번식이 된다.

그러나 피뇬소나무(pinyon pine)과 같은 일부 씨앗은 매우 얇은 종피를 가지고 있어서, 피뇬제이(pinyon jay, 이 새는 피뇬소나무 종자를 너무도 좋아한다)가 먹으면 쉽게 소화된다. 그래서 새가 떨어뜨려 식물로 성장할만한 '소포'를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피뇬제이는 피뇬소나무의 번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씨앗을 먹은 새는 미래를 위해 땅 속에 여분의 씨앗들을 즉시 묻는다. 그래서 씨앗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랜드 캐니언 근처의 피뇬소나무 숲에서 1월에서 9월까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250마리의 피뇬제이 한 떼가 약 450만 개의 피뇬소나무 씨앗들을 파묻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무 곳에나 씨앗을 묻지 않는다. 그들은 넘어진 나무 근처, 열린 공간의 장소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겨울이 되면, 피뇬제이는 주의 깊게 숨겨둔 씨앗을 수확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실제로 먹는 것보다 더 많은 씨앗들을 숨겨놓도록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남겨진 씨앗들은 바로 적합한 장소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서, 다음 세대의 피뇬소나무 숲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와 같은 멋지게 균형 잡힌 생태학적 합의는 생태계에 관한 진화론적 아이디어 보다는 하나님이 그의 선한 창조 시에 처음부터 설계하신, 일종의 질서 정연한 조화로운 시스템과 잘 들어맞는 것이다.[13]

실제로, 생태학자들은 황무지에 식물이 나타나는 최근의 관찰에서 생태학적 ‘천이’의 이론을 다시 생각해야만 했다. 예로써, 세인트 헬렌산(Mount St Helens)은 황폐화된 풍치가 ‘선구자’ 종과 ‘최우점’ 종이 나란히 자라는 것을 보여주었다.[14] 그리고 1960년대 화산 폭발로 형성된 셔트지(Surtsey) 섬에서, 진화생물학자들은 ‘초기 침입종’이 그들이 기대했던 지의류와 이끼류가 아닌, 현화식물인 것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랐다.[15] 세인트 헬렌산과 셔트지 섬에서의 관측 사실은 진화론적 예측이 실패했음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황폐화된 지역에서 다시 종자가 뿌려져서, 원래대로 창조된 상태가 다시 복원되는 사실을 진화론자들이 크게 간과하였던 것이다.   

. 씨앗을 생산하는 식물은 나자식물(gymnosperms, 소나무처럼 '노출된 종자'를 가지는 것)과, 피자식물(angiosperms, angion=vessel, 아몬드나 밀처럼 종자가 씨방(ovary) 이라 불리는 용기 속에 둘러싸여 있는 꽃을 피우는 식물)로 나뉜다.

그러한 사실은 진화론자들이 지구의 ‘역사‘는 그들의 주장대로 초기의 용융된 물질에서 수억 년이 지난 후에 이끼류와 지의류(mosses and lichens)가 처음 녹색식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가정함을 생각해 볼 때, 놀랄 일도 아니다. 반대로, 만약 생태학자들이 유익하고(딤후 3:16) 지혜를 주는(잠 19:7b) 성경의 가르침에 주목했다면, 그들은 지구의 녹색 생태계에 대한 훨씬 합리적인 기초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식물들이 창조주간의 셋째 날에 함께 창조되었음을(지구는 처음부터 물이 충만하였고, 용융된 상태가 아니었다) 보게 될 것이다. 또한 창세기 대홍수의 설명으로부터, 새롭게 노출된 땅(창 8:11)에 처음으로 이끼류와 지의류가 자리 잡았을 것이라고 예상할 이유가 없게 될 것이다.


씨앗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도덕적, 영적 교훈.

성경에서 씨앗은 여러 번 중요한 도덕적 영적 문제를 이해시키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이 글은 싹을 틔우는 씨앗에 관한 마가복음 4: 26b-28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함으로서 시작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실제로 하나님의 왕국이 무엇과 같은 지에 대한 예시로 사용하셨다(26a). 즉 성장기 다음에는 영혼의 수확기가 있게 될 것이다(29절)는 것이다. 실제로, 씨앗은 또한 성경에서 중요한 도덕적인 문제와 영적인 문제를 이해시키는 방법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한 사람이 자기가 심은 씨앗의 종류에 따라 수확하는 것이 불가피한 원리인 것과 꼭 마찬가지로, 또한 다른 사람에 대한 그의 행위도 그대로 거둔다. 사도 바울은 또한 고린도전서 3:6절에서 씨앗을 비유적으로 사용하여 표현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세계에서 알려진 가장 큰 씨앗은 자이언트팬 야자(giant fan palm), 또는 로도이세아 말디비카(Lodoicea maldivica)이다. 흔히 겹야자(double coconut) 또는 코코드메르(coco de mer)로도 알려져 있다. 그것의 무게는 44파운드(20kg)에 이른다.

겨자씨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는 두 가지 측면을 나타내고 있다 :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마 13:31~32), 그리고 사람의 믿음(마 17:20)에 관한 비유이다. 예수께서는 또한 마귀의 아들과 비교하여 하나님 나라의 아들에 관하여 그들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를(마 13:24~30, 36~43) 가르치시려고 가라지와 좋은 씨의 비유를 사용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가장 잘 알려진 씨앗의 비유는 당연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이다(마 13:1~9). 그 비유는 정원사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속담을 불러일으킬 만큼 명성이 있는 것이다. (비록 매우 현실적인 충고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예수께서 의도하신 적용은 아니었다) (마 13:18~23) :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아마도 씨앗을 사용한 예수님의 가장 심오한 영적인 교훈은 요한복음 12:23~24절이었다. 거기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필연성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그것 역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생명에 관하여 암시하고 계시는 것이었다(25절) :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도 바울은 후에 씨앗의 '죽음”에 과한 주제를 다시 언급하면서, 사람들에게 부활의 확실성을 재확인하고 있었다(고전 15: 35~38)...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 그리고 이렇게 계속되고 있었다.(고전 15:42~44).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사도 바울의 이러한 위로의 말들은 진리이다. 왜냐하면 씨앗(종자)의 창조자 자신이 창세기 3:15절에서 말씀한 약속된 '후손(씨)'이시기 때문이다. 그의 희생을 통해서 우리가 믿게 되었고, 비록 우리가 아담 안에서 모두 죽었지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사람이 삶을 얻게된 것이다.(고전 15:22). 물론, 예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시며, 가장 위대한 씨앗이신 것이다!


References
1.Sarfati, J., Green power (photosynthesis)—God’s solar power plants amaze chemists, Journal of Creation 19(1):14–15, 2005; creation.com/greenpower.
2.Batten, D., Eat your Brussels sprouts!Creation 28(3):36–40, 2006; creation.com/brassica.
3.These are mistakes that occur in a fallen world as the genetic information is passed from one generation to the next.
4.See Wieland, C., The evolution train’s a-comin’ (Sorry, a-goin’—in the wrong direction), Creation 24(2):16–19, 2002; creation.com/train.
5.Niemand, R., The Stone ‘Age’—a figment of the imagination? Creation 27(4):13, 2005; creation.com/stone.
6.Catchpoole, D., The people that forgot time (and much else, too), Creation 30(3):34–37, 2008; creation.com/forgot.
7.Oota, H., Pakendorf, B., Weiss G., von Haeseler A., Pookajorn S., et al., Recent origin and cultural reversion of a hunter-gatherer group, Public Library of Science—Biology 3(3):e71, 2005.
8.Batten, D., Deep freeze seed bank initiated, creation.com/deep-freeze-seed-bank-initiated, 11 August 2006.
9.Hence the need to grow the seed periodically to produce fresh seed.
10.E.g., more than 80,000 rice varieties are maintained at the 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 (IRRI) in the Philippines.
11.An example of a nutritional feature previously unappreciated is the glycemic index (GI) of a cereal product, which indicates how quickly the starch in a food is converted into blood sugar (glucose). GI has only recently been recognized as important in human nutrition. Jasmine rice, which is very popular with Chinese food, has an extremely high GI, which is not good for the health of sedentary people. Some traditional varieties grown in Bangladesh have very low GI, which is much better. If the low GI varieties had been lost, it might not have been possible to breed new varieties with low GI. Seed banks ensure that such genetic information is preserved. For more on the need for preserving seeds, see Batten, D., 'What! … no potatoes?” Creation21(1):12–14, 1998; creation.com/potatoes.
12.For more on this and other matters relating to seed persisting through the Genesis Flood see creation.com/how-flora-survived.
13.Johnson, J., Providential plantingCreation 19(3):24–25, 1997; creation.com/providential-planting.
14.Swenson, K. and Catchpoole, D., After devastation … the recovery, Creation 22(2):33–37, 2000; creation.com/recovery.
15.Catchpoole, D., Surtsey still surprises, Creation 30(1):32–34, 2007; creation.com/surtsey-still-surprises.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creation.com/sensational-seeds 

출처 - CMI, 30 April, 2013.

미디어위원회
2013-11-04

녹색 파워 광합성 

: 경이로운 식물의 태양광 발전소 

(Green power (photosynthesis)

 God’s solar power plants amaze chemists)

Jonathan Sarfati 


     녹색식물은 지구 환경의 아름다운 부분이며, 생물들에 필수적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간의 셋째 날(창 1:10-13)에 동물보다, 심지어 태양보다 먼저 식물을 창조하셨다.[1] 태초 창조 시점에 사람과 모든 동물은 초식을 했다(창 1:29-30).

심지어 오늘날에도 식물은 먹이사슬(food chain)의 기초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식물은 광합성(photosynthesis)을 통해 태양으로부터 자신의 식량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식물은 모든 생명체의 호흡에 필수적인 산소(oxygen)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광합성은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화학반응의 하나인 것이다. 만약 우리가 광합성을 복사할 수 있다면, 아마도 지구상의 모든 에너지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2] 그러나 뛰어난 화학자들과 최고급 두뇌의 과학자들이라 할지라도, 보잘것없어 보이는 식물의 독창적인 이 기계에는 필적하지 못하고 있다.

독특한... 배열이...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4개의 광자(photons)로부터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어야하고, 바로 정확한 위치에서 물 분자를 붙잡을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는 완전해야만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전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합성은 자연선택의 무작위적인 변화로 하나씩 하나씩 점진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불완전한 중간 시스템은 전혀 사용될 수 없고, 그래서 그것은 자연선택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 분자의 폭파 문제

광합성의 핵심은 물 분자를 수소와 산소 분자로 깨뜨리는 것이다. 식물(그리고 초식동물)이 식량으로 이용할 수 있는 당(sugars)을 만들기 위해서, 수소는 공기로부터의 이산화탄소와 결합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엽록소(chlorophylls)라 불리는 분자들에서 일어나는데, 그것이 식물을 푸르게 해준다.

그러나 물을 쪼개는 것은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근본적으로 그 에너지의 양은 수소가 처음 장소에서 물을 형성하기 위해 연소될 때 방출된 것이다.

한 가지 문제는 바로 빛 자체의 성질에 있다. 빛은 에너지의 한 형태이지만, 그것은 광자라 불리는 ‘꾸러미(packets)'에서 온다. 만약 광자에너지가 물 분자를 쪼개기에 충분히 크지 않으면, 아무리 그것이 많이 있어도 (즉, 빛이 아무리 밝아도) 쓸모가 없다. 그러나 광자가 물을 쪼개기에 충분한 에너지가 있다면[3], 그 과정에서 대부분 생물학적 분자들은 산산히 부서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잎이 폭발하는 것을 볼 수 없다!

몇 년 전에 예일대학의 생화학자인 게리(Gary Brudrig)와 로버트(Robert Crabtrce)는 산소를 생산할 수 있는 인공 시스템을 만들었다.[4] 그러나 빛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을 계획하지 않았고, 그 대신 강력한 화학용 표백에너지를 사용했다.[5] 심지어 그런 경우라도, 그것은 파괴되기 전에 단지 100개의 산소 분자를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즉시 부서지지 않는 무엇인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인간의 기준으로는 위대한 성취였다.[6]


절묘한 해결책 [7]

식물 잎에는 광시스템 II (Photosystem II, 두 번째 발견되어 그렇게 부름)로 불리는 특별한 설비가 있다. 광자가 이것을 때리면, 그것은 P680이라 불리는 엽록소의 한 형태 내로 안내된다. 거기에서 원자로부터 전자가 제거되고, 이 에너지 전자가 결국 이산화탄소로부터 당을 만드는 것을 돕는다. 그러나 그 때 P680은 소실된 전자를 보충해야만 한다. 이것은 인위적인 광합성에서는 커다란 문제였다. (인간 화학자들은 광자에 의해 제거된 전자를 보충하는 시스템을 지금까지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 없이는 광합성이 빠르게 정지될 것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전자가 대체되었을까 ?

그들은 특별한 촉매의 핵심부로 가게 되고, 다시 빛의 도움을 받아 물로부터 필요한 전자를 제거한다. 빛은 두 개의 물 분자를 하나의 산소분자, 4개의 전자, 그리고 두 개의 수소이온으로 쪼갠다.

그 핵심부는 독특한 원자 배열을 지니고 있는데, 특이한 망간의 3원자 입방체, 한 개의 칼슘, 단일 망간에 부착된 4개의 산소가 있다. (최근자료 참조: Where Water Is Oxidized to Dioxygen: Structure of the Photosynthetic Mn4Ca Cluster, Science 314(5800):821–825, 3 November 2006; Learning how nature splits water). 이러한 촉매 핵심부는 산화 환원 전위의 형태로[8], 4개의 광자를 흡수하는 단계로써, 충분한 에너지를 만든다.

물의 산화 환원 전위는 +2.5V 이다. 반면 각각의 광자는 촉매 핵심부의 산화 환원전위를 1V 까지 올린다. 그래서 3단계 후에는, 단일 망간이 OH 기와 H+ 이온을 남긴 채, 물 분자에서 전자를 제거하기에 충분한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다음 촉매 핵심부는 4번째 단계로 들어가, 망간 원자가 충분한 힘으로 OH 기를 공격할 수 있게 하고, 고도 활성 산소 원자와 다른 수소 이온을 남긴다. 이때 입방체의 칼슘 원자가 필수 역할을 한다. 그것은 바로 적절한 위치에서 또 다른 물 분자를 붙잡고, 이 산소 원자에 의해 공격을 받아, 하나의 O2분자, 2개의 H+ 이온, 그리고 두 개의 전자를 생산한다.

독특한 Mn3CaO4-Mn의 배열은 모든 식물, 조류, 시아노박테리아에 존재하는데, 그것은 이러한 배열이 필수적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것은 틀림없이 4개의 광자로부터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어야만 하고, 바로 적절한 위치에서 물 분자를 소유해야만 한다. 이러한 구조는 완전해야만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물을 쪼개고 전자를 대체하는데 있어서 전혀 작동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불완전한 중간 시스템(진화 도중의 전이 단계)은 전혀 사용될 수 없고, 그것은 자연 선택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이러한 촉매 핵심부조차도 다른 많은 조정된 특성들이 없다면 쓸모없게 될 것이다. 예로써,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포함되는 에너지는 생물적 분자들에게 손상을 입힌다. 그러나 거기에는 핵심 단백질들이 있어서, 그것은 계속 복구되어야만 하고, 이러한 메커니즘은 또한 정위치에서 일어나야만 한다. 실제로, 이들 단백질의 불안정성은 그 핵심부 구조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던 것이다.[9]

만약 최고 두뇌의 과학자들이 최첨단 실험실에서 최첨단 장비들과 특급시약들을 사용해서도 광합성을 복제할 수 없다면, 광합성이 자연에서 무기물로부터 우연히 어쩌다 저절로 운좋게 생겨났다고 믿는 믿음이 합리적일 수 있을까? 오히려, 과학자들보다 훨씬 더 지능적인 존재가 광합성을 설계했다고 믿는 믿음이 더욱 합리적이지 않을까? 그리고 광합성은 느리고 점진적인 다윈의 진화 과정으로는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다. 왜냐하면 광합성이 작동되기에는 너무도 많은 필수적인 고도로 복잡한 메커니즘들이 있기 때문이다.[10]


식물은 태초부터 작동되고 있었다.

최근 연구는 진화론적 연대로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37억 년 된 암석에서도 산소가 존재했었음을 보여주었다.[11] 이것은 산소를 생산하는 녹색식물이 그 당시에도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는 약 38억 년 까지 운석에 의해 폭격당하고 있었다고 진화론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이러한 연구에 의하면, 생명체는 지구의 초기 시점부터 빠르게 존재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는 생명체가 진화하는 데에 필요한 ‘수십억 년의 세월’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들 생명체는 그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광합성을 할 만큼 충분히 발전된 형태였던 것이다.[12]

또한, 이러한 연구는 ‘생명의 기원(origin of life)’에 대한 화학진화 이론을 완전히 폐기시키는 것이다.[13] 유명한 스탠리 밀러(Stanley Miller)와 해롤드 유레이(Harold Urey)의 시험관 전기스파크 방전 실험에서, 시험관에 채워진 가스 중에 산소는 배제되었는데, 왜냐하면 산소는 유기분자들을 파괴시키고, 처음 장소에서 그것들의 형성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참조 : Why the Miller–Urey research argues against abiogenesis). 그러나 가장 오래된 암석에서 산소가 발견되었다면, 산소가 없는 대기를 가정하고 실시했던 밀러의 실험은 생명의 기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실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 대기 중에 산소가 없었음을 지지하는 그 어떠한 지질학적 증거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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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1.Great early Christian writers pointed out that God’s real historical creation of plants before the sun showed the futility of pagan sun worship. Jewish and Reformed writers likewise agreed that the sun was created on a literal 4th day. See Sarfati, J., Refuting Compromise, pp. 84–86, Master Books, Green Forest, AR, 2004.
2.Compare Knight, W., Spinach could power better solar cells, NewScientist.com news service, 21 September 2004.
3.The energy E is related to the frequency ν by E = hν, where h = Planck’s Constant = 6.6262 x 10–34 Js. A photon energetic enough to break water would be in the ultraviolet region of the electromagnetic spectrum.
4.Burke, M., Green miracle, New Scientist 163(2199):27–30, 14 August 1999.
5.Interestingly, humble single-celled organisms in the root nodules of legumes use a far better chemical energy mechanism to break apart the nitrogen molecule, even tougher than water. See Demick, D., The molecular sledgehammer, Creation 24(2):52–53, 2002.
6.See Ref. 3; cf. Plant energy miracleCreation 22(1):9, 1999.
7.Hunter, Ph., Flower Power, New Scientist 182(2445):28–31, 1 May 2004.
8.Redox (reduction/oxidation) potential measures how strongly a molecule or ion attracts electrons. The more electron-loving, the more positive; the more electron-releasing, the more negative. Redox potential is measured in volts. Water’s redox potential is high, so needs a very strong electron remover, such as an oxygen atom, to remove one of its electrons.
9.By X-ray crystallography—see Zouni, A. and six others, Crystal structure of photosystem II from Synechococcus elongatus at 3.8 Å resolution, Nature 409(6821):739–743, 8 February 2001.
10.See also Swindell, R. Shining light on the evolution of photosynthesis, Journal of Creation 17(3):74–84, 2003.
11.Rosing, M.T. and Frei, R., U-rich Archaean sea-floor sediments from Greenland—indications of >3700 Ma oxygenic photosynthesis, Earth and Planetary Science Letters 217:237–244, 2004. The evidence was fairly indirect—certain carbon isotope ratios were typical of phytoplankton, and the presence of uranium suggested that it was transported in solution by oxidized ocean water.
12.Davis, K., Photosynthesis got a really early start, New Scientist 184(2467):14, 2 October 2004 discusses evidence for photosynthetic microbes at 3.4 Ga, by evolutionary dating.
13.See <www.creation.com/origin> for problems with chemical evolution.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creation.com/green-power-photosynthesis 

출처 - Journal of Creation 19(1):14–15, April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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