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cyclopedia
2004-07-24

고대인 - 1 (Ancient Man - 1) 

: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유인원들의 실상


      당신은 원숭이의 후손이 아니다. 진화론자들은 당신의 유산을 훔치기를 원한다. 그들이 그것을 하도록 놓아두지 말라. 그들은 당신을 동물화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진화론은 신화이다.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했다. 분명한 증거가 그것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은 과학 대 진화이다. Creation-Evolution Encyclopedia은 당신에게 창조과학의 진실을 알려줄 것이다.

 내용 : 고대인 - 1 (Ancient Man - 1)

1. 흥미로운 사실들 - 여기에 당신이 알고 있는 몇몇 기초적인 사실들이 있다.

2. 기초적인 질문들 - 진화론자들이 대답하기를 원하지 않는 질문들.

3. 유인원 (hominids) - 이것은 당신의 조상들로 상상된다. 그러나 결코 아니다.

 

1. 흥미로운 사실들

.동굴인과 원인(ape-men). 초등학교부터 계속 위에 올라가면서, 학교교과서는 우리에게 모피를 입은 '동굴인'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원숭이나 작은 생물체의 직계 후손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반은 원숭이고 반은 인간인 뼈들이 발견되었다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의 진실은 무엇인가?

.멈춰진 진화. 초기 시대부터 진화론을 지지하는 인간의 잔존물들에 관한 유용한 증거들은 없다. 이러한 명백한 사실 때문에 진화론자들은 사람이 10만년 전에서 진화를 멈췄다는 결정을 하여 이 사실을 비켜 가려고 한다. 이것은 증거없이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실제로 사람이 다른 종(species)의 후손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것에 놀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web Encyclopedia의 초기 글에서 배웠고, 진화는 어떠한 동물이나 식물에서도 발생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5,000년보다 적은 이유는.  만약 사람이 과거 100,000년 동안 동일했었다면, 왜 100,000년 전에는 문자, 기술, 도시, 농사 등과 같은 것들을 만들지 못했을까? 왜 인간의 역사는 단지 5,000 년 보다도 적게 이뤄지고 있는가?

.원숭이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만약 사람이 원숭이와 같은 생물의 후손이라면, 우리는 그들과 같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다른 DNA를 갖고 있다. 우리의 척추에 있는 뼈의 숫자는 다르다. 우리의 두개골(뇌)의 용량은 완전히 다르다. 그 밖의 많은 다른 것들의 예를 들 수 있다.

.원시적인 사람들. 몇몇 지역에서 고대인들은 기후가 열악한 지역으로 이동했고, 도시를 만들고 가축과 농업을 시작할 기회를 가질때 까지 한 동안 '석기시대'로 살았다. 몇 지역에서는 (New Guinea와 같은 지역) 상황은 너무 어려워서 석기시대의 삶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뉴기니 어린이들은 현대적인 문화인이 될 수도 있다. 즉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하고 세계적인 일류기업에 취직할 수 있다. 사람들은 집을 갖고 정착할 수 있었을 때까지 한 동안 동굴에서 살았다. 고대에도 다른 사람들이 나무와 동굴에서 살 때, 동시에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과 같이 집에서 살았다는 증거들이 있다.

.네안데르탈인들. 유럽에서 수천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이러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동안 동굴안에서 살았다. 그리고 우리들보다 확실히 큰 두개골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오늘날의 우리보다 훨씬 지혜롭고 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진화론에서는 그 사실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은 열악한 식량과 그들이 살았던 기후가 축축하고, 추운 것으로 인해 구루병과 관절염을 갖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것이 그들의 휘어진 대퇴골과 큰 눈썹 마루의 원인이 됐다고 말한다. 네안데르탈인들은 햇빛이 많지 않았던 시절에 살았다. 이 글의 다음 주제에서(홍수의 영향) 우리는 홍수후 많은 화산들이 폭발하여 수세기 동안 기온의 하강과 어두웠던 대기권을 만들었다는 풍부한 증거들을 배우게 될 것이다. 또한 한 증거는 네안데르탈인이 근래의 세기까지 살고 있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한 명의 네안데르탈인이 중세의 쇠사슬 복장을 한 채 묻혀 있었던 것이다.

.크로마뇽인. 이들은 분명히 사람이었다. 몇몇은 신장이 6 feet (180 cm) 이상이었고, 두개골의 용량은 우리들 것보다 약간 컸다. 그들은 원숭이도 아니고, 원숭이로부터 사람으로의 변화되는 증거도 아닌 정상적인 사람들이었다.

 

2. 기초적인 질문들.

우리는 신문에서 유인원에 관해서 들을 수 있는 것은 1 백만년 이상 되었고, 반은 사람, 반은 원숭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매우 긴 속임수 계보에 우리의 시선을 돌리고자 한다. 우리가 이것들을 살펴볼 때, 스스로 이러한 질문들을 물어보게 될 것이다.

.언제나 한 시대마다 오직 한 종만이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수백 수천 종은 없는가? 만약 이들이 우리의 조상이라면, 수 백만의 우리의 조상들이 있었음에 틀림없는데 말이다.

.왜 오직 각 견본의 작은 뼈조각 몇 개만 발견되는가? 왜 완전한 전체 뼈들은 결코 발견되지 않는가? 발견이 적을수록 많은 이론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는 자바인(Java Man)과 필트다운인(Piltdown Man)의 뼈들이 보여준 것과 같이, 이것들에 대한 완료된 연구에서, 단지 몇 개의 뼈만이 사용될 때 원숭이의 두개골이 얼마나 쉽게 사람의 것으로 속여질 수 있는지를 분명히 나타내었다.

.왜 이러한 특별한 뼈들만 부패되지 않는가? 이들 뼈가 1 백만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한다면, 왜 부패되지 않았는가? 뼈들은 흙속에서 1 세기 안에 썩어진다는 것은 진실이다. 바위암석에 화석으로 새겨진 화석과 혼동하지 말라. 그들은 다르다. 많은 화석들은 홍수의 기간에 진흙, 자갈, 점토 등으로 압력을 받아 만들어졌다. 2 세기 안에 실제 뼈들은 보통 사라져 버린다. 어떻게 수백만년씩이나 된 뼈들이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인도네시아나 중국, 영국 등의 축축한 지역에서 발견될 수 있는가? 그것은 일어날 수 없다. 뼈들은 습지 기후에서는 더 빨리 썩어질 것이다.

 

3. 유인원 (Hominids)

몇 조각의 뼈들과 일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매우 큰 요구가 만들어진다. 발굴한 사람은 유명하게 되고, 명예를 누리며, 좋은 봉급을 받게된다. 그러나 그들이 가져왔던 뼈들은 부엌 테이블의 위에도 놓여지지 않아야 했다. 여기에 그들이 있다.

.자바인(Java Man). 1891년도에 유진 듀보아(Eugene Dubois)는 자바에 있는 강옆 습지에서 두개골 윗부분과 15m 떨어진 곳에서 한 개의 대퇴골, 그리고 후에 또 다른 장소에서 3개의 이빨을 발견했다. 듀보아는 그들 모두가 같은 사람의 것이고, 1 백만년전의 것이라고 결정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의심을 가졌지만, 듀보아는 그의 발견을 수행하는데 수년을 보냈다. 1907년도에 독일 탐사대가 듀보아가 뼈를 찾았다는 장소를 조사하기 위해서 자바로 갔다. 그리고 그들은 최근 얼마전에 폭발로 다수의 사람들을 묻었다는 화산근처 유출물로부터 취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듀보아는 죽기 전에 그 뼈들은 긴팔원숭이(gibbon)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필트다운인(Piltdown Man). 진화의 모든 사기극중에서 이것은 고전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매우 조심스럽게 계획했다. 선별된 원숭이 뼈조각들을 조각하고, 오래된 모습으로 보이기위해서 화학물질로 처리됐다. 결국 몇몇 앞서있던 진화론적 과학자들이 음모속에 빠져들었다. 단지 두개골과 턱뼈의 몇 부분들이 포함됐는데, 그것으로부터 실물의 모습과 크기, 원래 생물체의 두개골의 용량을 결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뼈들은 반-원숭이 반-사람의 중간 형태로 석고상으로 놓여지게 되었다. 전세계의 진화론자들은 흥분하였다. 그리고 많은 상상으로 이 꾸며낸 허구가 Eoanthropus Dawsoni ('Dawson's Dawn Man')로 명명되어졌다. 이것은 그 이름과 같이 과학적이여야 했다! 결국 사기극의 범인들은 원숭이와 사람의 중간형태의 깎여진 이빨을 포함한 몇 개의 뼈들을 더 '발견했다'. 두 사람이 사무실에서 오래된 뼈로 염색하는 도슨(Dawson)을 발견했다고 보고했지만, 그들의 말을 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필트다운인은 사람이 원숭이로부터 왔다는 위대한 증거로서 믿어지게 되면서 한 세대가 성장했다.

1953년에 두 명의 영국 과학자들이 영국 박물관에 수십년동안 주의깊게 보관되어 왔던 원본 뼈들을 조사하게 되었다. 새로운 불소시험(fluorine test)을 사용해서, 그 뼈들은 꽤 최근의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그것들은 세밀히 조각되어졌고, 중크롬산염(bichromate)으로 염색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기극이 밝혀지기 3 년 전에 영국 의회는 엄청난 금액의 돈을 필트다운 자갈 웅덩이에 진화론의 경이를 위한 국립 기념관을 만드는데 소비하였다.

.로데시아인(Rhodesian Man). 1921년도에 몇몇 뼈들이 아프리카 동굴안에서 발견되어졌다. 그리고 선정적인 뉴스가 모든곳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후에 유능한 해부학자들이 그 뼈들은 단순히 정상적인 사람의 것이라고 선언했다. 추가로 수백만년 되었다는 사람이 이빨에 현대적인 식사에 의한 충치(caries)와 그의 머리에 탄환이나 석궁에 의한 구멍을 가지고 있었음이 발견됐다. 결국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던 것이다. (참조 : Rhodesian Man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03_1/j03_1_137-151.pdf)

.타웅의 아프리카인(Taung African Man). 192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는 한 동굴에서 발견된 이 두개골은 사라진 잃어버린 고리라고 주장되었다. 그러나 후에 전문가들은 그것이 어린 원숭이의 두개골이었음을 발견했다.

.네브라스카인(Nebraska Man). 한 개의 어금니가 1922년 Midwest 에서 발견되어졌다. 그리고 이것은 7월 25일에 테네시주 데이톤에서 있었던 스코프스 재판(Scopes trial) 에서 중요한 증거가 된다. 발견자들 중 하나는 그의 기념비적 발견으로 영국의 왕으로부터 기사작위를 수여받았다. 1928년에 그것은 멸종된 돼지 이빨인 것으로 밝혀졌다. 1972년에 동일한 종류의 돼지가 살아있는 것이 파라과이에서 발견되어졌다.

.북경인(Peking Man). 우리가 1920 년 중국에서 발견되어 갖고 있는 것은 석고상뿐이다. 원래의 뼈들은 후에 잃어버렸다. 그들은 동굴속에서 수 천의 뼈들중에서 발견됐는데, 대부분이 동물뼈였고, 단지 소수만 사람뼈였다. 그 장소는 쓰레기 집합장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사람의 뼈까지도 버려지기 전에 살이 먹혀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것에서부터 진화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오스트랄로피테신(Australopithecines). 아프리카에 있는 어떤 원숭이 뼈들은 '남쪽 원숭이'로 불려진다. 전문가들은 그들 모두는 원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은 그들이 우리의 조상이었다고 견고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들중 가장 유명한 것중의 하나가 '루시(Lucy)' 라고 불려지는 것이다. 이 원숭이들은 보통의 두개골 용량보다 컸다. 그러나 다른 전문가들에 의해 검사되었을 때 그들은 크기에 있어 정상적임이 발견되었다.

.호두까기인(Nutcracker Man). 1959년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일련의 뼈들은 잘못 짝지어진 또 하나의 경우이다. 두개골은 원숭이 같고, 턱뼈는 훨씬 컸다 (그래서 그 이름이 호두까기(nutcracker)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 뼈들은 거의 사람이었다. 후에 발견자인 루이스 리키(Louis Leakey)는 원숭이 두개골과 같음을 인정했다.

.두개골 1470(Skull 1470). 1973년에 리처드 리키(Richard Leakey)는 280만년 되었다는 두개골을 발표했다. 그러나 아래 턱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은 더 이야기가 되어야한다. 그것은 현대적인 작은 뇌의 사람 두개골로 보였다. (오늘날 사람의 두개골의 크기는 1000~2000cc 사이로 다양하며, 평균은 1500~1600cc, 경우에 따라서는 750cc의 작은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작은 두개골의 발견은 진화의 증거가 아니다.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18살의 머리가 작은 학생은 Skull 1470의 크기인 775cc의 두개골의 용량을 가진다.  

.뼈 목록 (Bone Inventory). 'Time-Life' 라는 책이 1972년에 출간됐는데, 그 동안의 발견된 모든 뼈들을 목록화하였다. 1,400 예들이 주어졌지만, 대부분이 뼈조각들과 격리된 이빨같은 것들이었다. 사람 전체의 완전한 뼈는 단 하나도 없었다. 거기에는 파편들과 조각들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어린 원숭이와 큰 원숭이들. 유명한 과학자들에게도 읽어지도록 인쇄되지 않는다면, 어린 원숭이나 큰 원숭이들의 두개골은 미성숙한 사람의 두개골로 보일 수 있다. 그렇게  반-원숭이 반-사람의 두개골들은 발견되어질 수 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Mass spectrometer를 이용한 새로운 약진.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여 서반구의 가장 초기인으로 알려진 11개의 사람 뼈들이 시험되었다. 그리고 탄소동위원소 연대측정결과 그들 모두가 5,000년보다 적었다. 그러한 조사가 허락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실수였다. 당신은 그러한 시험이 다시는 실시되지 않을 것은 확실할 수 있다. 만약 그것이 리키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발견된 유명한 아프리카 뼈들에 적용하여졌다면, 그 고대의 모든 유인원의 뼈들은 단지 수천년 정도의 연대만을 나타냈을 것이다.

그들에게 결코 방사선동위원소에 의한 연대측정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pathlights.com/ce_encyclopedia/Encyclopedia/13anc02.htm

출처 - Encyclopedia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86

참고 : 390|1441|1440|1454|2712|3093|704|1452|1446|879|2523|1457|577|576|1206|1207|1253|1290|1319|1334|580|581|579|187|188|2149|2325|3988|3880|4078|4266|3994|4260|4232|4172|4053|4047|4007|4019|4000|3989|3916|3890|3882|3867|3848|3827|3825|3834|3833|3743|3721|3715|3643|3687|3684|3685|3656|3615|3431|3419|3239|3178|3063|2984|2928

Duane T. Gish
2004-07-24

새로운 화석의 발견들은 창조를 지지한다.


       진화론적인 연대 개념으로 거의 2억2천5백 만년의 시대적 간격을 지녔다고 하는 조상새와 호미니드(hominid)의 화석 사이에 공통적으로 관계되는 것은 무엇인가? 기술적으로는 별다른 관계가 없으나, 이 두 가지 화석들은, 이미 확고한 과학적 사실들이 진부한 이론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어 마치 차가운 북극해에서 침몰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 배처럼 진화론자들의 새장(cages)을 와르르 무너뜨리고 있다. '호미니드(hominid)'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협곡(Olduvai Gorge)에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인류기원 연구소 소장인 도날드 요한슨(Donald Johanson)에 의하여 주도된 탐험대에 의하여 발견된 화석으로,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라고 명명되었으며, 180만년 전의 화석으로 추정되었다. 진화론자들은 호모 하빌리스가 원숭이와 인간 사이의 중간 단계의 동물이라고 항상 주장하여 왔다. 새의 화석은 2억2천5백 만년 되었다는 텍사스 주의 포스트(Post) 근처에 있는 도쿰(Dockum) 지층에서 텍사스 공과대학의 고고학자인 상카 채터지(Sankar Chartterjee)에 의하여 발견되어졌다. 영국의 과학 저널인「Nature」의 기사는 이 두 화석화된 새의 발견에 대한 표제 기사1)로 '화석새, 진화론적 가설을 뒤흔들다' 라고 하였으며, 미국의 과학저널인「Science」의 기사에는 호미니드의 발견에 대하여 '최초의 '인류' 는 원숭이에 더욱 가깝다'2) 고 제목을 달았다. 

인류(Homo sapiens)는 유일하게 인류의 가계 안에 있는 생존하고 있는 종이다. 창조론자들은 호모 사피엔스 만이 인류 가계 안에서 일찍이 유일하게 존재한 종으로 믿는다. 반면에 진화론자들은 일정한 시기(약400~3,000만년 전)에 사람과 원숭이는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리되어 졌다고 믿는다. 아무튼 그들은 이 고대의 집단이 한쪽은 현대의 원숭이들로, 또 다른 한쪽은 현대인으로 두 진화론적인 계보로 갈라졌다고 믿는다. 진화론자들은 원숭이로부터 사람에 이르는 사람의 계보 안에 모든 가설적 중간 단계를 포함한다. 그리고 이 모든 가정된 중간 단계를 '호미니드(hominids)' 라고 부른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라는 속명으로 알려진 원숭이를 닮은 생물의 화석은 남아프리카에서 다트(Raymond Dart)에 의하여 발견된 A. africanus 와, 동아프리카에서 리키(Louis Leakey)에 의하여 발견된 A. bosei, 이디오피아에서 요한슨(Donald Johanson)에 의하여 발견된 A. afarensis가 있다. 루이스 리키는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협곡에서 발견된 화석들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더 진보된 화석이라고 주장하였다 - 그것들을 인간과 같은 속명에 포함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진보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들이 원시의 연장도구를 만들었을 것으로 믿고,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 소위 'handy man') 라고 명명하였다3). 그러나 많은 고고인류학자들은 이들 화석이 단순히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변종이라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은 비록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조잡한 원숭이를 닮았을지라도 현대의 원숭이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보다는 다소 인간과 닮은 치아를 지녔다고 오랫동안 주장하여 왔다. 그리고 그들은 본질적으로 인간처럼 직립 보행을 하였다고 주장되어 왔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고 '호미니드'로 불려졌다. 그러나 쥬커만(Lord ZucKerman) 이나 옥스나드(Charles Oxnard) 같은 진화론자들은 이와 같은 견해를 강력히 부정하며,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인간과 같이 직립 보행을 하지도 않았으며 원숭이와 사람 사이의 중간 단계도 아니라고 주장한다4)

비록 아직은 단편적이기는 하나, 호모 하빌리스의 보다 완전한 화석 골격의 발견은 이들이 현대의 원숭이들과 동일한 것들은 아닐지라도,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단순히 원숭이의 일종에 불과하다는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을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요한슨 팀의 팀 화이트(Tim White) 에 의하여 추가적으로 발견된 화석이 최근 「Nature」잡지에 기사화되었다5). 이 화석의 몇몇 중요한 특징은 진화론자들을 놀라게 하였다. 첫 번째 충격은 이 화석의 작은 신장(身長)이었다. 이 화석은 단지 약 3피이트(90cm)의 키를 지닌 성인 여자였다. 이 화석은 요한슨에 의하여 이디오피아에서 발견된 A. afarensis즉, '루시(Lucy)' 라고 알려진 약 380만년 되었다는 성인 여자의 화석보다도 더욱 작은 것이었다. 더욱이 Postcranial의 골격(두개골 아래에 위치한 골격 부분)은 180만년 되었다고 추정되는 호모 하빌리스의 화석보다도 대략 2백만년 더 오래되었다고 하는「루시」의 그것처럼 원숭이를 닮은 원시적인 작은 모습이었다. 이 호모 하빌리스 화석 팔 부분의 조각을 원상 복구한 것은 무릎 아래까지 닿는 손끝을 지닌 매우 긴 팔을 지닌 원숭이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하빌리스의 모든 종들은 길게 휜 손가락과 발가락을 가졌다. 그와 같은 해부학적 구조를 지닌 생물은 그것을 단지 한 가지 목적으로만 사용한다 - 즉 나무 사이에서 가지에서 가지로 흔들거리며 매달리도록 사용한다.

얼마전, 존스 홉킨스 대학의 워커(Alan Walker)와 루이스·메어리 리키 부부의 아들인 리차드 리키(Richard Leakey), 그리고 케냐의 국립박물관 관장은 케냐의 추루가나(Turukana)호수 서쪽 해안에서 12살된 남자의 화석 조각들을 발견하였다고 발표하였다6). 그 키는 5인치 6피이트로 워커와 리키는 만일 그가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았었다면, 그는 6피이트의 키가 되었을 거라고 하였다. 워커는 설명하기를 그의 후두개골(postcranial)은 현대인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여 보통의 병리학자(pathologist)들도 차이점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하였다. 더욱이 이 화석 두개골의 턱뼈를 맞추어보았을 때 네안데르탈인의 그것과 흡사하였다고 말하였다. 그와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네안데르탈인은 완전한 호모 사피엔스로 분류되며, 12살된 이 후두개골의 골격은 현대인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워커와 리키는 이 화석을 호모 사피엔스보다 아래인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로 분류하였다. 말할 것도 없이 이와 같이 분류되는 주요한 이유는 호모 사피엔스보다 대략 150만년 오래된 약 160만년 전의 화석으로 계산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결과는 진화론자들을 당황하게 하고 궁지에 빠뜨렸다. 가장 원시적인 호미니드라고 하는 '루시(A. afarensis)'는 대략 380만년 전에 출현하였고, 호모 하빌리스의 새로운 화석은 이 보다 약 200만년이나 더 젊다. 진화론자들이 예측하듯 훨씬 더 진화되고 인간을 닮은 이와 같은 호모 하빌리스 대신에, 이것은 현대의 원숭이들처럼 길다랗게 휘어진 손가락을 지닌 긴 팔을 소유한 3피이트 키의 생물이다. 이것의 후두개골은 본질적으로 '루시'의 그것과 동일하므로, 이 화석은 대략 200만년은 더 오래된 것이다. 이 2백만년 동안 후두개골 내에서는 어떠한 진화론적인 변화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20만년 후, 진화론자들에 따르면(진화론적 연대 개념으로는 단지 눈 깜짝할 만한 시간) 갑자기 이 생물이 나타났는데(워커와 리키에 따르면 12살된 호모 에렉투스), 그는 현대인과 동일한 후두개골을 지니고, 그 후 160만년 동안 이 골격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만일 진화론자들이 믿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진화론은 사실을 교묘히 속이는 게임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들('루시'와 그와 동류의 화석들)은 400만년전에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 어디로부터 왔는지 아무도 모르게, 이 작은 생물은 3~4피이트의 키를 지니고 약 200만년 혹은 그 이상 그들의 후두개골에 관하여 아무런 특별한 변화도 없이 이리 저리 떠돌아 다니다가 눈 깜작할 지질학적 시기에 그들의 긴 팔과 길다랗게 휜 손가락과 발가락을 포함하여 후두개골이 현대인과 실제적으로 동일한 골격으로 재배치되었다. 그리고는 약 160만년 동안 지나는 현재까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게 되었다. 

이제 진화론을 이해하였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고대 조상들의 발자취가 없이 갑작스럽게 등장한다. 그들의 화석은 남·동아프리카를 통하여 분산되어 있다. 그들 사이에는 오늘날 서로 다른 종족 사이에 발견되어지는 것보다도 지리학적으로나 시대적으로 별 차이점이 없다. 호모 에렉투스는 현대인의 그것과 동일한 후두개골을 지닌 채로 갑작스럽게 아프리카에서 나타났으며,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그것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창조과학자들은 더욱 새로운 화석들의 발견을 기대하고 있는데, 그것은 추가적인 발견들이 과거 발견되었던 화석들인 필트타운인(조작된 괴물로 판명), 네브라스카인(멸종된 돼지의 이빨로 판명), 라마피테쿠스(오랑우탄), 오스맨(Orce Man : 당나귀의 두개골), 그리고 네안데르탈인(호모 사피엔스)들과 같은 운명을 지닐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제 새의 화석에 대하여 알아보자. 1억5천만년 되었다는 쥬라기 상층의 지층에서Archaeopteryx(시조새) 라는 새의 화석이 발견되었으며, 진화론자들은 이것이 알려진 것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단계의 화석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새의 화석은 조류의 날개 모습과 현존하는 나는 새의 것과 동일한 깃털, 횃대에 앉을 수 있는 다리, 새와 동일한 두개골, 차골(furcula, 叉骨), 창사골(暢思骨) 그리고 또 다른 새와 유사한 특징 등을 소유하였으나, 진화론자들은 이것이 날개 끝에 달린 발톱과 이빨, 그리고 긴 꼬리를 포함하여 파충류적인 특징을 많이 소유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생존하는 몇몇 새들도 날개에 발톱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것은 새들 가운데에서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새들 가운데는 이빨을 지닌 새들도 있으며, 또 그렇지 않은 새들도 있다. 이와 같은 것들은 어류를 포함하여 양서류, 파충류 그리고 포유동물 등 척추동물군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 Archaeopteryx의 이빨과 이빨을 지닌 다른 새들도 파충류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더욱이 지난 몇 년 동안의 연구결과는 Archaeopteryx의 파충류를 닮았다고 하고 특징은 실제로는 새를 닮았음을 보여준다7) 8). 필트타운인의 예처럼 진화론자들이 Archaeopteryx에서 알려는 것은 무엇이 그것에 대한 진실인 것인가 하는 것보다는, 그들이 바라고 알기를 기대하는 바로 그것이다. 

채터지에 의하여 텍사스 포스트 근처의 도쿰(Dockum) 지층에서 발견된 이 두 새의 화석은 파충류와 조류 사이의 중간형태에 대한 전통적인 모습으로서의 Archaeopteryx에 대해 최종적인 치명타를 가했다. 채터지에 의하여 발견된 새의 화석은 Archaeopteryx보다 대략 7500만년 더 오래된 약 2억2천5백 만년으로 추정되었다. 2억2천5백만 년은 공룡의 출현에 대한 추정시대인 중생대의 지질학적 초기인 소위 삼첩기(Triassic Period)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이제, 진화론자들이 Archaeopteryx보다 7500만년 더 오래된, 가장 오래된 공룡만큼이나 오래된 시조새를 기대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말할 필요도 없이 그들은 이 새의 화석이 Archaeopteryx 보다 파충류의 조상에 훨씬 가깝도록 파충류를 닮았기를 기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에게는 애석한 일이지만 그것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채터지에 의하여 발견된 새의 화석은 그 반대였다. 즉 Archaeopteryx 보다도 훨씬 더 새를 닮았던 것이다.

채터지에 의하여 발견된 화석은 대부분의 현존하는 새들의 특징인 실질적인 용골돌기(keel)를 지녔으며, 흉골(sternum)을 지녔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한 Archaeopteryx에는 그것이 없다. 이 새들은 속이 비어있는 뼈를 지녔으며, 역시 대부분의 현존하는 새들도 그러하다 (물론 모든 새가 다 그러한 것은 아님). 반면 Archaeopteryx는 단단한 뼈를 지녔다. 채터지는 새로 발견된 이 새의 화석은 Archaeopteryx 보다 현존하는 새들에 더 가깝도록 이 새를 분류할 수 있을 만큼 발달된 조류의 특징을 가졌다고 언급하였다. 채터지의 발견은 이제 Archaeopteryx에 대하여 가졌던 전통적인 입장에 대한 진화론자들의 주장을 완전히 침묵하도록 만들고 있다. 

(※ Gish 박사는 버클리대에서 생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코넬대 교수를 역임하였고, 코넬의대 재직시에는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빈센트 두 바이노드 박사 등의 연구진과 뇌하수체 호르몬 합성에 대하여 공동 실험한 적이 있으며, 버클리대의 바이러스 연구실장과 엎존회사 연구실장을 거쳐 현재는 ICR (미창조연구소) 부소장으로 있음.)

참고문헌 

1. Tim Beardsley, Nature, 322:677(1986).

2. Roger Lewin, Science, 236:1061(1987).

3. Louis Leakey, P. V. Tobias, and J. R. Napier, Nature, 202:5(1964).

4. See D. T. Gish, Evolution : The Challenge of the Fossil Record, Master Books, El Cajon, CA, 1985, pp.148-151.

5. D. C. Johanson (and nine co-authors), Nature 327:205(1987).

6. See D. T. Gish, ibid., pp.200-202.

7. M. J. Benton, Nature, 305:99(1983).

8. L. D. Martin, J. D. Stewart, and K. N. Whetstone, The Auk, 97:86-93(1980).

 


출처 - 창조지, 제 53호 [1988. 6]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83

참고 :

Duane Gish
2004-07-24

리처드 리키의 두개골 1470 

(Richard Leakey's Skull 1470)


      케냐의 루롤프 호수 동쪽 호변 근처에서 리처드 리키(Richard Leakey)가 최근에 발견한 두개골(頭蓋骨, skull)의 진정한 의미를 지금 당장에 그 어떤 형태로건 확신을 가지고 평가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그렇지만 그 발견이 인간기원에 관련한 진화론에 미친 영향은 가히 충격적 잠재 폭발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좀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이 시점에 잠정적으로나마 그의 보고를 평가해야할 것 같다. 어느 신문은, “그 사람 (리키의 두개골 1470) 때문에 인류학에 관한 모든 책들과 인간진화에 관한 모든 기사와 인간계보 나무의 모든 도면들은 하나같이 폐기처리 되어야할 것이다. 지금까지 있던 모든 것은 틀렸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고 보도하고 있다. Science News1 에 실린 기사의 제목은 “리키의 새로운 두개골이 인간계보를 고치다...” 이었다.


리처드 리키는, 루돌프 호의 약 500마일 남방에 위치한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계곡(Olduvai Gorge)에서 속칭 일련의 선풍적 발견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루이스 리키 박사 (Dr. Louis Leakey)의 아들이다. 루이스 리키 박사의 주요 발견은  “유인원”으로 보고 된 두개골 이었다. 그는 그것을 진잔트로푸스(Zinjanthropus), 또는 “동부 아프리카 인”이라고 불렀다. National Geographic 지와 다른 정기간행물과 뉴스 메디아, 그리고 광범위한 광고를 통한 성급한 판단과 과장된 주장을 종합한 보고들로 인해, 거의 모든 진화론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은 리키 박사가 발견한 매우 독특한 생명체의 유골은 약 200만 년 전에 살았던 인간후손의 직계의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하였던 것이다.


리키 박사의 두개골에 대한 전문가들의 철저하고 주의 깊은 평가는 루이스 리키 박사의 “진잔트로푸스' 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의 한 변종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최종적으로 밝혀냈다. (리키 박사 자신도 결국에는 이 평가를 인정한바 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유인원의 것으로서 그 유골들이 이미 35년 전에 남아프리카의 다트 (R. A. Dart)에 의해서 발견된 적이 있었던 것이었다. 이와 같이 해서 리키 박사는 여러 해 전에 이미 발견된 적이 있었던 것을 “발견한” 결과로 유명인사가 되었던 것이다! 비록 몽타규(Montagu)2와 궤닉스발트(Koenigswald)3와 같은 권위자들이 오래 전부터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는 인간 조상의 계보 밖에 있는 존재라는 결론을 고수하고 있었지만, 진화론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항시 양각직립(兩脚直立)하고 있는 유인원으로서 인간으로의 직결계보에 있다고 주장했다.


리처드 리키는 인류학 분야의 박사(Ph. D.) 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아니다. 사실상 그는 어떤 학위도 취득한 적이 없었다. 그는 대학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랜 세월 아버지를 따라 일하고 연구하였다. 그가 조직한 팀에는 박사학위를 소지한 과학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최근 수년 동안에 전개되었던 그의 연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가 인간기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지지를 보내 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생명체(화석인류)들과 관련된 증거들에 대한 우리의 평가를 이미 피력한바 있다. 우리가 믿는 바로는 그 생명체(화석인간)들은 결론적으로 원숭이였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4 만약에 리처드 리키가 최근에 발견한 두개골 1470 (Skull 1470)에 대한 그의 평가가 인정된다면, 그는 인간기원에 대한 자기 아버지의 이론 (그 이론에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가 중심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그 밖에 다른 사람들의 이론들도 철저하게 박살내는데 성공할 것이다.


루이스 리키 박사가 발견하였다고 주장했던 2 종의 “진잔트로푸스' 중 첫째 종은 보다 덜 진화되어 원시 형태를 하고 있는 두개골 이었으며, 나중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보투스(Australopithecus robustus) 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그리고 나머지 한 종은 보다 진화된 가냘픈 형태를 하고 있었으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Australopithecus africanus) 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그런데 리처드 리키는 지금 이것들은 단일 종안에서의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두개골이라고 주장하면서, 가냘픈 형태의 것은 여성이고, 건장한 형의 것은 남성이라고 하였다.5, 6 이들 사이에 원시형태로부터 발전된 형태로의 진화 따위가 있었다는 증거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극도로 단편적인 증거들 (그리고 고집스러운 선입관)에 근거하여 진화론자들의 통일된 의견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가 습관적으로 직립보행을 했었다는 주장이다. 직립보행이야말로 인간의 가상조상인 유인원과 인간과의 사이에 있었을 것으로 가정하는 과도기 형태를 예견케 하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최근 2, 3년 동안 리처드 리키에 의해 제시된 증거들은 오히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가 직립보행을 하지 않았음은 물론, 긴 팔과 짧은 다리를 하고 있었으며, 사실상 현존하는 아프리카의 원숭이들처럼 앞발의 발가락 등쪽을 땅에 대고 걸었다는 사실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리키의 최종 발견은 인간의 원조로서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에게 최후의 철퇴를 가했을 수도 있다. 만약에 그의 발견이 사실상 받아들여진다면, 진화론이 현재 내세우고 있는 인간의 모든 조상계보는 송두리째 박살나고 말 것이다. 지난 해에 샌디에고에서 가졌던 그의 강의에서 (나 자신도 참석하였었다), 리키는 자신이 발견한 사실이 인간진화에 관해서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웠던 모든 내용을 박살낼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그리고 그는, “나는 그 자리를 채워줄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인간진화에 관한 일반화된 관념은 약 200 만년 전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가 등장할 때까지 지금으로부터 대략 3000 만년 전후에 생존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상의 인간과 원숭이의 공통조상을 포함하고 있다. 그 이후 이 인간조상 유인원(apelike man)은 보다 더 인간을 닮은(man-like, 즉 원숭이에서 멀어진 인간)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Pithecanthropus erectus, 자바에서 발견된 자바인, Java man)와, 중국에서 출현한 시난트로푸스 페키넨시스(Sinanthropus pekinensis, 북경인, Peking Man)에 의해서 승계되었다고 믿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이들(자바인과 북경인)을 (순전히 억측으로) 약 50만 년 전으로 그 년대를 설정하였다. 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은 그들을 단일 종으로 보고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로 지명하였다. 진화론자들이 이 생명체에 대해 처음으로 기술한 이래4, 이 생명체의 진화라는 것은 실은 그 표본에 대한 진화론자들의 묘사의 진화에 불과하며, 우리들은 이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상세하게 토론한바 있다. 이 생명체들에 대한 초기의 묘사는 매우 원숭이를 닮았었다. 그러나 그 이후 이어진 보고에서는 점점 인간을 닮아가다가, 프란츠 바이덴라이크(Franz Weidenreich)에 이르러서는 그 생명체들이 정말 인간을 닮게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불행히도 그 유골들은 몽땅 2차 세계대전 와중에서 소실되었다. 그래서 이 생명체가 인간이었는지 원숭이였는지 확인할 길이 막혀버리고 만 것이다. 우리는 그것들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와 마찬가지로 그냥 원숭이에 지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이와 같이 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그림을 한 장 가지게 된 것이다. 인간과 원숭이의 공통조상(3000만년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 유인원, 200만년전), 자바인, 북경인(인간에 가까운 생명체, 50만년전), 현대인(지금에 와서는 네안데르탈인도 온전한 인간으로 인정된다. Homo Sapiens). 가정상의 진화론적 년대인 3000 만년이라는 시간범위와 진화론자들의 허망한 상상을 고려할 때, 50만년 정도는 전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리처드 리키는 지금 주장하기를 자기 팀이 두개골 (KNMR 1470이라 명명됨)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심지어 “북경인”보다 더 현대적인 것으로서, 오늘날의 인간의 두개골과 사실상 근본적으로 동일하며 (다만 크기를 제외하고), 그런데도 그 년대가 거의 300 만년전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8,9 만약에 리키의 평가가 인정된다면, 즉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에 추정된 년대 (200만년전)와 “북경인” (50만년전), 그리고 KNMR 1470 (300만년전)에 추정된 년대가 인정된다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는 물론 북경인까지도 인간으로 가는 고대인의 계보는 될 수 없다. 왜 그런가 하면, 어떻게 현생 인류가, 다시 말해서 근본적인 현생 인류가 어떻게 자기의 조상보다 더 오래 전에 살 수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제 자녀들보다 젊은 부모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는가?


리처드 리키 부부와 런던의 해부학자 버나드 우드 박사(Dr. Bernard Wood)와 그리고 그 밖에 여러 사람들이 재구성한 그 두개골은 너무도 현대인의 것과 닮았다.9 그 두개의 골편(骨片)의 두께는 엷었고, 전반적인 형태는 인간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재구성된 두개는 두드러진 눈썹마루 라든가 거대 유양돌기 돌출(supra-mastoid crests), 그 밖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와 “북경인” 한테서 다양하게 발견되는 것과 같은 원숭이를 닮은 특징들은 별로 없다. 더욱이 몇 마일 떨어져 있는 동일한 퇴적층에서 케냐의 국립박물관 소속 고생물학자 존 해리스 박사(Dr. John Harris)가 발견한 사지(四肢)의 뼈들은 현대인의 그것과 구별이 되지 않았다고 보고 된바 있다. 그것들은 아마도 '두개골 1470'으로 식별된 생명체의 뼈들일 것이다.


리키는 그 두개골 1470의 뇌의 용량은 단지 800cc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추산하였다. 이 용량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의 용량 (450cc - 500cc)을 훨씬 능가한다. 다른 한편, 알려진바 대로 그 1470 두개골의 고대성(古代性)을 고려하여 그것은 “대형 두뇌로 불린다. 그렇지만 이 용량(800cc)은 현생 인류의 두개 범위(약 1000-2000cc, 평균 약 1450cc)에 훨씬 못 미친다. 두개골 1470의 나이와 성별은 단정할 수 없다. (애초에는 남성으로 믿었으나, 지금은 여성으로 믿어진다).


이 두개골의 뇌 용량이 작은 것 말고, 그 밖의 것들은 현생 인류의 것들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고 보면, 뇌만이 지나치게 작은 용량을 어떻게 조화시켜야할 것인지 난감하다고 하지 않은 수 없다 (영국의 해부학자 Dr. Alec Cave는 그 두개골을 “전형적인 인간”의 것으로 묘사하였다)10. 비록 호주의 원주민 여성의 뇌 용량이 약 900cc로 보고 되기도 하였지만, 피그미족조차도 뇌의 용량이 1470의 것을 틀림없이 초과한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인류학자 알란 만(Dr. Alan Mann) 박사는 최근에 어느 신문11과의 인터뷰에서  지난여름 케냐에서 리키와 함께 4 주간을 지냈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알란은 두개골 1470에 관한 리키의 보고내용에 대해서 애초에는 회의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해 여름 한철 리키와 함께한 후, 그는 리키가 인류학에 혁명을 일으켰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리키가 두 번째의 두개골을 발견하였다고 보고하면서, 이번에 발견된 두개골은 1470 두개골을 덮어씌울 수 있을 정도로 크다고 하였다.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처럼 알란 자신도 이 리키의 발견이 내포하는 암시에 허를 찔려서 철저하게 혼란에 빠져버린 것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는 “우리로서는 대관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다. 거기에는 실물 이론 같은 것은 없다. 너나없이 모두 깜짝 놀란 것 같다, … 그것은 그냥 우리를 ‘꺼져’ 하면서 내쳐버린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리키는 “진잔트로푸스' (1-3/4 백만 년)와 “북경인”, 그리고 자기가 발견한 '두개골 1470'에 어떤 년대를 지정하고 있는가? 젊은 지구를 믿기 때문에 진화론자들의 년대 추정을 무효라고 믿는 창조론자들이 그의 년대 추정을 진화론적 년대 추정이론의 무효화에 이용하는 것은 정당한 것인가? 당연하다! 만약에 리키의 1470에 관한 보고가 진실이라면, 그리고 만약에 그 두개골의 주인공에 대한 추정 년대와, 그리고 “진잔트로푸스'와 ”북경인“의 추정 년대가 모두 유효하다면, 그 때에는 인간의 조상으로서의 ”진잔트로푸스' (그리고 모든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와 “북경인”의 위치는 깡그리 말살되고 말 것이다. 그리 되면, 진화론자들은 빈털털이로 남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 만약에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년이 아니고, 수천년 선이라면, 그 때에는 진화론의 총체적 개념은 믿기 어려워진다. 이런 까닭으로, 이쪽 경우이든 저쪽 경우이든 관계없이, 우리 인간에게는 진화론적 조상은 없는 것이 된다.


지금 이 시점에서 리키가 발견한 두개골의 본질에 관한한 우리는 거의 전적으로 리처드 리키와 그의 동료들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다는 것을 강조해두고 싶다. 더욱이 너무 이른 감이 있는 지금, 우리는 유사-과학 잡지와 신문에 발표되는 보고에 접할 기회가 제한적이다. 이와 같이 해서 리키의 발견이 내포하는 중요성과 암시성은 전적인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보고는 물론, 아직까지도 비평가의 세밀한 분석을 필요로 하는 데이터가 뒤따라 발표될 것이라고 예견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내용을 주의 깊게 관망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대목에서 최근의 리키의 보고가 인간과 원숭이는 언제나 동시대에 살아왔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창조론자에게 상당한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한 편, 그것은 진화론자들 한 복판에 폭탄이 되어 떨어졌다고도 말할 수 있다. 아마 그것이 지난  한 해 동안 우리가 진화론자들과 가졌던 많은 토론과 논쟁에서 인간진화에 관해서 이야기를 솔선해서 나누려는 진화론자를 찾아볼 수 없었던 이유일는지 모르겠다!


그 밖에 최근에 일련의 발표들은 창조론자들의 입지를 강화하였다. 예를 들자면, 네안데르탈인은 원시적인 아류-인간으로,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직접적인 선조로 묘사되어왔다.  그의 자세는 겨우 반 직립으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밖에도 여러 측면에서 원시인적인 특징들을 가졌다. 예컨대, 두룩한 눈썹 마루, 깊이 다붙은 목, 웅크린 어깨, 그리고 안짱다리 따위다. 여러 해 동안 시카고의 자연사박물관은 네안데르탈인의 한 가족을 전시하였었다. 거기에는 허리가 굽었고, 굽은 손가락 마디의 등을 땅에 끌고, 덥수룩하고, 투덜거리는 아류-인간으로 묘사된 네안데르탈인이 짙은 눈썹 아래 감춰진 움푹 파인 두 눈을 가지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 네안데르탈인의 그림을 완성시키는데 사용된 해골의 주인공은 관절염과 그 밖에 다른 질병 조건으로 심하게 고통 받았던 개체였다. 이런 사실은 19세기에 이미 유명한 해부학자 버초우(Virchow)에 의해서 밝혀졌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스트라우스(Straus)와 케이브(Cave)가 이 사실을 확인한 바도 있었다. 이들의 보고에 의하면 …


“이와 같이 해서, 네안데르탈인의 자세가 … 오늘날의 인간의 그것과 현저하게 다르다는 … 가정에는 전혀 정당한 이유가 없다. 네안데르탈인의 원형자세의 모델로 사용된 르샤뻴-오-쌩 (LChapelle-aux-Saints)의 관절염 ‘노인’은 실제로는 병적 척추 후만증(後彎症)을 가진 몸으로 일어서서 걸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그는 오늘날 척추의 변형성 관절염(osteoathritis)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과 유사한 입장에 있는 셈이 될 것이다. 드러난 그의 병세로 보아 그는 우리들에게 건강하고 정상적인 네안데르탈인 그림의 모델은 될 수 없었던 것이 확실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시 살아있는 육신을 입고 뉴욕의 지하철 안에 서있다면 ━  목욕과 면도를 끝내고 현대식 옷을 입고 있다고 가정 하에서 ━ 다른 사람들과 특별히 다른 주목을 받을 것 같지 않다.”12


아주 최근에 프란시스 아이반호(Francis Ivanhoe)는 네안데르탈인의 치아들은 구루병(비타민 D 결핍증)을 앓은 증거를 나타내고 있으며, 네안데르탈인의 해골에 대한 X-rays 사진은 특징적인 구루병 환(丸)의 패턴13을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그는 네안데르탈 어린이의 두개골에 대한 조사에서 그들은 모두가 심각한 구루병에 걸려있었다고 보고하였다. 큰 머리, 높고 튀어나온 이마, 뼈관절의 늦은 폐쇄, 그리고 결손 골편조각들, 그리고 유약한 치아들, 이런 것들로부터 얻은 결론이다.


네안데르탈인이 약간 수그리고 있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의 눈 마루, 튀어나온 이마, 축 처진 두 어깨, 안짱다리, 그 밖에 여러 “원시적인 특징들은 심각한 비타민 D 결핍증이 유발한 유연해진 뼈와 여러 가지 질병적인 조건들 때문이었다. 이렇게 관절염을 앓고 있는 장애자의 모습이 지난 100 여년 동안 수많은 교과서를 장식하였던 네안데르탈인의 완성된 그림이었던 것이다 ━ 그 그림이야말로 진화론자들이 현생 인류와 유원인과의 연결고리로서의 네안데르탈인이라고 주장하는 그림인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 네안데르탈인의 그림은 폐기되어 버렸다. 그리고 오늘날 그를 더 이상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로 분류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 즉 당신이나 나와 같은 현생 인류로 분류된다. 시카고의 자연사박물관은 예전에 전시되어있던 네안데르탈인의 모형을 제거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는 훨씬 더 현대적인 외모를 하고 있는 모형으로 채워졌다. 이와 같이 하나 하나 ━ 네브라스카인(Nebraska Man, 돼지 치아를 근거로 만들어졌음), 필트다운인(Piltdown Man, 현대의 원숭이 턱뼈를 근거로 만들어진 사기), 진잔드로푸스(Zinjanthropus), 동아프리카인, 북경인, 네안데르탈인 ━ 다시 말해서 우리의 원숭이를 닮은 조상으로 가정되어오던 모든 생명체들은 슬슬 빠져나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지금 리처드 리키는 모든 조사를 다시 하여보겠노라고 자금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References

1. Science News, Vol. 102, p. 324 (1972).

2. A. Montagu, Man: His First Million Years, World Publishers, Yonkers, N.Y., 1957, p. 51.

3. G.H.R. von Koenigswald, The Evolution of Man,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Ann Arbor, 1962; see also J. Hawkes review of this book, Science, Vol. 204, p. 952 (1964).

4. D.T. Gish, Evolution: The Fossils Say No!,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San Diego, 1973.

5. R.E.F. Leakey, Nature, Vol. 231, p. 241 (1971).

6. Science News, Vol. 99, p. 398 (1971).

7. Science News, Vol. 100, p. 357 (1971).

8. Science News, Vol. 102, p. 324 (1972).

9. R.E.F. Leakey, National Geographic, Vol. 143, p. 819 (1973).

10. J. Hillaby, 'Dem Ole Bones', New Scientist, December 21, 1972.

11. J.N. Shurkin (Knight Newspapers writer), The Cincinnati Enquirer, October 10, 1973, p. 6.

12. W.L. Straus, Jr., and A.J.E. Cave, The Quarterly Review of Biology, December, 1957, pp. 358, 359.

13. F. Ivanhoe, Nature, August 8, 1970 (see also Science Digest, February, 1971, p. 35; Prevention, October, 1971, p. 115).

  

* Biochemist. Dr. Duane T. Gish is widely known as one of the most effective speakers and writers in the creationist movement today. He received his B.S. in Chemistry from U.C.L.A. in 1949 and his Ph.D. in Biochemistry from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 in 1953. He served on the research staff at Berkeley and at Cornell University and spent many years as research biochemist for The Upjohn Company in Kalamazoo, Michigan. He is a member of the Board of Directors of the Creation Research Society and has written many papers on creationism, as well as two ICR books: Evolution? The Fossils Say NO! and Speculations and Experiments on the Origin of Life: A Critique. Dr. Gish is Professor of Natural Science at Christian Heritage College and Associate Director of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011.htm

출처 - ICR, Impact No. 11, 1974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07

참고 : 3890|3988|4007|3994|3880|3684|3656|3431|2712|2325|2523|1441|1454|1457|390

Dave Phillips
2004-07-24

네안데르탈인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Neanderthals are still Human!)


       지난 세기 중엽에 최초로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이 발견된 이래, 그들의 유물은 상당한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1950 년대 중반에 들어 일부 과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인간이었다는 관점을 지지하는 풍부한 증거들을 제시하면서, 네안데르탈인이 현대인인 Homo sapiens의 아종(subspecies) 이라는 주장을 자신만만하게 피력하기 시작하였다 (Lewin, 1998).

 

언어 (language)

일부 진화론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현대인처럼 구화(口話)를 구사할 능력이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은 두개골 기저에 관절을 구부릴 수 없는 평평한 근육(flat nonflexing) 때문에, 그리고 인후(咽喉) 안의 후두의 위치가 현대인이나 심지어 침팬지와 비교하여 보다 높게 붙어있어서, 모음의 전음역(全音域)을 발음할 능력이 부족하였다는 것이다 (Lieberman and Crelin, 1971; Trinkaus and Shipman, 1992; Shreeve, 1995). 그들의 구강구조를 컴퓨터로 재구성해본 결과, 네안데르탈인의 구강 뒷부분에 있어야할 공명 효과를 내는 공간이 거의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그들의 주장들 중에서 많은 부분이 지금은 철저히 반박되고 있다. 고인류학자 Jean-Louis Heim이 1989 년에 새롭게 재구성한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을 보면, 현대 인간의 두개골 바탕에 있는 관절을 구부릴 수 있는 근육이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Trinkaus and shipman, 1992; Shreeve, 1995). 이보다 더 최근에, La Chapelle 두개골을 중세에 발견 된 현대인의 두개골 표본과 비교한 것을 보면, La Chapelle 두개골은 인간의 두개골과 전혀 다름이 없었다 (Frayer, 1993).

1983년 Levant 지방에 있는 Kebara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은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완벽한 네안데르탈인의 화석들 중의 하나다. 그 화석에는 최초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설골(舌骨) 뼈의 화석도 포함되어 있었다. 인후 내부에 있는 이 뼈는 인간의 성도(聲道)의 구조에 직결되어 있다. 그런데 발견된 설골 뼈는 현대인의 그것과 조금도 구별되지 않았다 (Arensburg et al., 1987).

 

네안데르탈인의 뇌 (Neanderthal Brains)

네안데르탈인의 뇌 크기는 현대인의 뇌 크기와 같든지 오히려 더 큰 편이다 (Deacon, 1994). 그리고 그 부피가 1200-1750 ml 로서 현대인의 뇌보다 약 100 ml 정도가 더 크다(Stringer and Gamble, 1993). Holloway (1985: 320)는 '나는 네안데르탈인의 뇌가 전적으로 인간(Homo)의 뇌였으며, 그들의 뇌 조직은 우리들의 그것과 비교하여 근본적인 차이가 전혀 없었다"라고 진술한바 있다. 비록 뇌 크기와 지능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하더라도, 네안데르탈인의 뇌 용적은 인간의 뇌가 진화되면서 커졌다는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네안데르탈인의 해부학 (Neanderthal Anatomy)

네안데르탈인의 해부학적 내용을 보면 인간의 골격과 동일한 골격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범위가 근본적으로 인간과 같다. 그들의 골격 기능도 인간의 그것과 같다 (Trinkaus and Shipman, 1992). 그렇지만 그들의 골격의 건장함 (두께와 힘)의 측면에서 인간의 그것과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이런 차이점들은 하찮은 것으로서, 사실상 현대인들의 개인차에서도 보여진다 (Lewin, 1998). 비록 어떤 신체적 특성이 네안데르탈인의 형태조직의 특징인가에 대해서는 공식적 합의는 없었지만, 하나의 특징이 네안데르탈인의 형태조직을 변별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두개(頭蓋)의 특징으로서, 두개의 특징들은 아래 표에 열거되어있다.

현대인들 속에서는 왜 전체적 조별 특징이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는지 궁금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들은 전형적으로 한냉한 지역에서 살았던 관계로 홍수 후 빙하기로 인해서 일반적으로 고립되었었다는 점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해부학적 특징과 생리학적 특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Stringer and Gamble, 1993).

생태학의 두 법칙은 사지(四肢)와 대동맥의 해부학적 치수와 형체 사이의 상호관계를 기술하는 것이다. 신체 외부에 관한 버그만의 법칙(Burgmann's Rule)은 체중이 추운 기후에 더 비대해지는 경향을 자명한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형체가 유사한 두 신체를 비교하여보면, 비대한 쪽이 신체 크기의 단위당 외부가 작기 때문에, 한냉한 기후에서 체열(體熱)유지를 비교적 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알렌의 법칙(Allen's Rule)은 비교적 한냉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사지가 짧아 외부 면적을 줄여서 체열손실을 줄이는 효과를 유지할 것이라고 암시한다. 이 법칙은 한냉한 기후에 살고 있는 많은 동물들한테서 볼 수 있는 짧은 꼬리, 귀, 주둥이 등에서 알 수 있다. 에스키모들과 같이 한냉한 기후에서 사는 인간들은 비대한 신체에 짧은 사지를 가지고 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많은 경우 한대(寒帶)조건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땅딸막한 몸집에 짧은 사지를 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Holliday, 1997). 사실상 서남아시아의 보다 온난한 기후에서 살던 네안데르탈인들의 사지는 빙하기 유럽에서 살던 그들에 비교하여 더 긴 사지를 하고 있다. 다리 지수(Crural Index)라고 불리는 경골(脛骨)/대퇴골의 길이의 평균지수(mean index)에 근거하여 볼 때, 네안데르탈인의 사지의 비율은 평년 기온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현대의 에스키모나 라플란드인(Laplander) 보다 사지의 비율이 더 한냉(寒冷) 적응적으로 나타난다 (Stringer and Gamble, 1993: stringer and Mckie, 1996).

그 밖에,  많은 경우 외상 때문에 뼈가 부러져 생긴 상해유골들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네안데르탈인들은 왕성한 육체활동을 요하는 생활 형태를 살았던 것이다 (Trinkaus and shipman, 1992). 더욱이 최근에 발표된 치아에 대한 집중연구에 근거하여 네안데르탈인들은 현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장수하였으리라는 암시도 있다. 치아는 그들의 신체구조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Cuozzo, 1998).

 

 

 

 

 

 

 

 

 

네안데르탈인의 문화 (Neanderthal Culture)

수많은 문화적 관습 척도는 Homo sapiens와 동물과의 거리를 구별짓는다. 그들을 제외하고 보다 더 복잡한 연장을 만들고, 시신을 매장하고, 불을 사용하기 위하여 불을 통제하고, 종교예식을 행하고, 구화(口話) 문법에 따른 복잡한 구문을 사용하고, 악기를 연주하던 생물체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네안데르탈인들의 화석에서 발견된 바로는 그들도 이런 행위들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안데르탈인들의 유해가 용의주도하게 매장된 흔적들이 대부분의 유라시아 주의 여러 지역에서 최소한 36 곳이나 알려지고 있다 (Gowlett, 1994). 그중 최소한 20 곳은 완전한 해골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Lewin, 1998). 어떤 무덤에는 석기와 동물뼈, 그리고 땅속에 묻힌 꽃이 네안데르탈인의 유해와 함께 발굴되기도 하였다. 우즈베키스탄의 테시크-타시(Teshik-Tash) 네안데르탈인 유적지에서는 산양의 뼈와 뿔로 된 고리와 일종의 의식을 나타내는 levallois 연장들로 둘러쳐진 소년의 무덤이 있다. 매장은 시체가 아무런 준비과정도 없이 구덩이 속에 그냥 내동댕이쳐진 것이 아니고, 인위적인 형태로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Trinkaus and shipman, 1992). 매장은 그들이 사후의 삶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으며, 또 어떤 형식을 갖춘 예식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심각한 신체상의 상해를 당한 개인들을 간호(看護)한 흔적을 남긴 경우를 유추해 보면, 네안데르탈인들은 강력한 사회적 유대관계를 유지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i.e., the Shanidar 유적).

1996 년에 네안데르탈인의 인간성을 나타내고 있는 원시적인 증거가 세상에 알려졌다. 슬로베니아의 어느 동굴 안에서, 곰의 정강이뼈를 다듬어 만든 조그만 피리가 한 점 발견되었던 것이다. 피리는 10.16 cm 길이의 뼈의 한 변에 정확하게 거리를 잡아 4개의 구멍이 가지런히 뚫려 있었다 (Folger and Menon, 1997). 이와 같은 문화생활의 흔적은 네안데르탈인들의 인간성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  

독일의 뒤셀도르프(Dusseldorf) 근처에 있는 네안데르 계곡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들의 유해들 속에서 추려낸 우측 상박골(上膊骨)로부터 최근에 추출된 미토콘드리아 DNA는 진화론자와 창조론자들로부터 똑같이 대단한 관심을 끌었다 (Kings et al., 1997).

현대인간의 미토콘드리아 DNA와 그 네안데르탈인에서 추출된 미토콘드리아 DNA를 비교한 결과에 근거하여, 진화론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의 계보'가 '유인원(hominid)'의 계보로부터 분기되어 나가서 약 B.P. 600,000 년에 Homo sapiens 주민들에게 미토콘드리아 DNA를 제공하지 않고, 곧바로 현대인간으로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 주장은 네안데르탈인들은 현대인간과는 종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위에서 언급된 해석은 과학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 루베노우(Lubenow; 1998)는 다수의 현대인간의 표본들의 통계학적 평균치의 사용 (994 sequences from 1669 modern humans)을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 서열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더욱이 미토콘드리아 DNA의 서열의 오차는 현대 인간들 사이에서도 1 에서 24 까지 치환이 가능하리만큼 광범하다. 그러나 현대 인간과 네안데르탈인의 표본과의 미토콘드리아 DNA 서열의 오차는 22 에서 36 까지의 치환이 가능하다. 이것은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여도 네안데르탈인을 현대 인간의 범위 언저리에 위치시키고도 남는다.

 

결론 (Conclusion)

네안데르탈인은 인간(human)이었다. 그들은 시신을 매장하였으며, 연장을 사용하였으며, 복잡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언어를 구사하였으며, 그리고 악기를 사용하였다. 네안데르탈인의 해부학적 신체구조의 차이는 극히 근소하여 대부분의 경우 유전학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이, 열악하고 한냉한 기후조건 하에서 거칠게 살았던 삶의 결과로 설명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다.

 


*관련기사 : 초기 현생 인류는 네안데르탈인들과 교잡했습니다 (2015. 6. 24. 뉴스페퍼민트)
http://newspeppermint.com/2015/06/23/early-human-interbred-neanderthal/

현생인류 몸에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존재(2014. 1. 30.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300300005&code=610100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섹스한 동굴? (2014. 1. 29. 한국일보)
http://www.hankookilbo.com/v/6d78e038accb4e5c8ad99496ae4fbd3c

네안데르탈인, 땅 파고 시신 매장한 듯 (2013. 12. 17. 파이낸셜뉴스)
http://www.fnnews.com/view?ra=Sent1101m_View&corp=fnnews&arcid=13121711231069&cDateYear=2013&cDateMonth=12&cDateDay=17

네안데르탈인도 우리처럼 말할 수 있었던듯 (2013. 12. 21. 연합뉴스)
http://media.daum.net/digital/newsview?newsid=20131221101605962

伊 동굴의 '네안데르탈인', 사실은 15세기 유럽인 (2013. 12. 31. 매일경제)
http://vip.mk.co.kr/news/view/21/21/2025892.html

네안데르탈인, 채소 곡식 요리해 먹어  (2010. 12. 30. CNN 한글뉴스)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cnn/article.asp?Total_ID=4862473

네안데르탈인, 來世 믿었나? (2011. 4. 25.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11/04/25/0906000000AKR20110425082700009.HTML

네안데르탈인, 조개껍데기로 몸치장 (2010. 1. 13.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1/13/2010011300593.html

네안데르탈인 얼굴에 화장했다 (2010. 1. 10.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398073.html

네안데르탈인 식탁에 물개ㆍ돌고래도 올랐다 (2008. 9. 24. 매일경제)
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08&no=584809

5만년 전 네안데르탈인 살해범은 (현대인?) (2009. 7. 22. 매일경제)
http://news.mk.co.kr/se/view.php?year=2009&no=396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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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eberman, P. 1989. The Origin of Some Aspects of Human Language and Cognition. In: P. Mellars and C. Stringer (eds.), The Human Revolution. pp. 391-414. Edinburgh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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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inger, C. and C. Gamble 1993. In Search of the Neanderthals. Thames and Hud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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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lpoff, M. and R. Caspari. 1997. Race and Human Evolution: A Fatal Attraction. Westview Press.

* Dave Phillips earned the M.S. in physical anthropology from California State University, Northridge, in 1991 and is now working on his Ph.D. in paleontology.

*참조 : End of the Neanderthal Myth? (Headlines, 2008. 9. 23)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809.htm#20080923a

Neandertal speech capability and the limitations of osteological analysi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134



Impact No. 32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index.php?module=articles&action=view&ID=468 ,

출처 - ICR, Impact No. 323, 2000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04

참고 : 3093|704|1452|1446|879|2523|3880|3994|4078|4260|4266|4410|4682

Carl Wieland 외
2004-07-24

16 만년 전 인류 조상에 대한 의견 2

: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가장 초기의 인류 

(Ethiopian ‘earliest humans’ find)


휴 로스(Hugh Ross)와 '점진론적 창조론자'들의 타협적인 신념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다.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最古의 인류' 또는 '우리들의 최고의 조상들'━16 만년 전으로 연대를 추정━에 관한 보도로 언론매체가 왁자지껄 소란하다. 사실상 비전문가인 많은 일반인들은 이 기사 내용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워한다. 인류의 조상은 이 보다 훨씬 오래된 '연대'로 추정되어왔던 것이 아니었던가? '인류 조상들'의 연대는 수백만 년 전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이번에 추정된 연대와 이전에 추정되었던 연대와의 사이에 벌어진 차이점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에 발견된 두개골은 현생인류 (Homo sapiens)의 것이라고 하며, 본래 캘리포니아의 버클리 대학의 Dr. Tim White가 1997년에 에티오피아의 아디스 아바바(Addis Ababa)의 북동쪽 230km 지점에 있는 Herto 마을 근처에서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 발견이 저명한 Nature 지 (2003년 6월 12일)의 표지에 실렸다. 그리고 이 잡지는 이 발견에 대한 지도자급 고인류학자들의 기사를 싣고 있다. White와 동료들은 그 화석에 관한 보고를 발표하였다.1 그리고 다른 신문들은 두개골에 대한 최근의 방사성동위원소 방법을 통해 얻어진 연대와, 그 두개골이 가지고 있는 전폭적인 인간 모습의 증거들에 관해서 보고하고 있다.2

또 한 사람의 지도자급 진화론적 고인류학자인 런던의 자연사박물관의 Human Origin Group에 소속된 Dr. Chris Stringer는 그 기사내용에 대해서 깊이 있는 논평을 발표하였다.3 그는 이 두개골이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의 표본을 더욱 지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쟁적 진화론자의 다중-기원설의 표본에 반대하는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두 표본에 대한 기사내용은 'No Bones About Eve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3778.asp)' 에서 볼 수 있다).

AiG는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법의 오류들과 가정들에 관해서 끊임없이 밝혀왔다. 예컨대, 우리는 오류가 없다고 가정되어오던 이 연대측정방법이 일관성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바 있다. 즉, 목재에 대한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이 수천 년으로 나타나는 반면에 용암에 갇혔던 목재에 대한 칼륨-아르곤 방법으로 측정하였을 때에는 수천만 년으로 나타나는 예가 그것이다 (Q&A: Radiometric Dating을 참조.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aq/dating.asp). 그러므로 일관성이 없는 연대측정방법에 현혹되지 않고 성경적 역사관의 틀 안에서 추정하면, 이 에티오피아의 두개골은 아마도 바벨탑-이후, 즉 홍수 이후의 또 다른 하나의 인류 두개골 화석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에 흥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Q&A: Anthropology를 참조.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aq/Anthropology.asp).

그렇지만, 그 새로 발견된 두개골은 '점진적 (오래된 지구 연대를 주장하는) 창조론자'들을 낙담시킬 것이다. Reasons to Believe 선교회의 Dr. Hugh Ross가 토로한 낙담이 전형적이다.

(Q&A: 창세기━성경에 수십억 년을 가산하는 것이 왜 잘못되었는가? 기사를 참조.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aq/Genesis.asp#progressive).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점진적 창조론자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주제에 관해서 조금은 더 이해하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 그들은 ”성경을 믿는 보수적 복음주의자” 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 그들은 공공연히 인류의 연대측정방법을 오류가 없는 것으로 믿을 것을 (타협하라고) 촉구한다. 그런 까닭으로,

. 그들은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을 해석할 때, ”문자 그대로의 창세기 말씀”을 ”수백만 년 나이”에 끼어 맞추려고 노력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결국 죽음, 암, 고통, 그리고 피흘림과 같은 현상들이 타락/저주 이전에 있었다는 것이다. 즉, 이것은 성경과 연관된 주요한 문제들을 야기시킨다.

또한 (이것은 새로 발견된 두개골과 관련되어 있다) 그들은 아담의 창조를 분리하고 있으면서도, 아담의 가계는 글자 그대로 믿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가능한 최고로 오래된 연대에 맞추려고 한다. 비록 어투는 인류 연대가 성경의 연대기에 맞는 것으로 취급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근래에 와서는 60,000 년에 맞추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그들이 '화석 인류'에 관해서 어떤 괴로운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예컨대, 네안데르탈인과 Homo erectus, 그리고 심지어 (archaic) Homo sapiens로 분류된 몇몇 화석들의 경우 문화, 공예품, 등과 같이 그들이 분명한 사람이라는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인류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에 그들을 인류라고 인정한다면, '아담'의 연대로 그들은 고통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화석들 중에서 많은 것들은 100,000년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연대 추정은 성경의 연대기를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늘리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들은 인류가 아니고, '영이 없는 유인원' 이었지만, 어쩌다가 불과 도구를 사용하였고, 암벽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으며, 그 밖에 여러 가지 일들도 하였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공룡이나 그 밖에 다른 생명체들은 인류와 함께 살았던 적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동굴 암벽에 그림 그리기 같은 짓들을 하던 이 '유인원'들도 하나님이 창조하였으나, 나중에 아담이 죄를 범하기 훨씬 전에 멸종되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훨씬 잘 보전된 이 해부학적으로 분명한 현생인류의 두개골 (사실상 현생인류의 두개골의 평균 크기보다 더 큰 이 두개골)이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되었으니, 저들의 주장은 크게 진퇴양단에 빠지고 만 셈이다. 이 두개골에 적용한 160,000년이라는 나이는 아르곤 동위원소(argon isotopes)를 포함하는 40Ar/39Ar 방법이라는 '매우 안전한' 연대측정방법에 의한 추정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그러므로 휴 로스(Hugh Ross)의 진용은 그들이 기독교인들에게 모든 것을 '건전한 과학'으로 인정하라고 부추기던 그들의 주장을 내동댕이치든지, 아니면 그 두개골이 해부학적으로 현생인류의 것이라고 반드시 아담의 후손이 될 수는 없다는 주장을 새롭게 펼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또한 이 유물들은 시체의 매장 관습, 대형 동물의 도살방법, 그리고 진화론자들이 '중석기 시대와 후기 아슐기(late Acheulean)[2]' 3 기술의 흥미로운 혼합' 이라고 부르는 흔적들과 같은 의심할 수 없는 인류문화의 특징들을 지니고 있었다. 사정이 이러니만치 휴 로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그들이 아담의 후손이란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부정하려면 그들은 인류와 동물 간에 엄연한 차이점을 모호하게 얼버무리는 길 밖에 다른 방도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그들의 주장까지도 결국 깎아내릴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최근에 발견된 두개골의 주인공들에게 아담 이전의 비-인류적인 신분을 부여하는 이유라면 유일하게 연대측정 뿐이지, 그 두개골이 지니고 있는 실질적인 증거나 그들의 생활관습이 아니기 때문에, 두개골에서 인류적인 특징들을 부정하는 그들의 입장은 최악의 '유별난 변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이 이 시점에서 아담의 창조를 우리들에게 말하려고 애쓰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그리되면 그것은 창세기 가계를 또 다시 100,000년을 잡아 늘려서 160,000년이 되게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형태의 타협 중에서도 최악의 타협 형태는, 아마도 에티오피아 두개골을 ”보다 더 오래된” 형태의 인류의 유골과 해부학적으로 완전히 분리시켜놓는 것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분명하게 현생인류(Homo sapiens)인데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고풍스러운' 인류의 해부학적 구조를 연상시키는 특징들을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에서 그 두개골의 주인공들에게 Homo sapiens idaltu 라는 보다 충분한 이름을 붙여주자는 암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Homo sapiens idaltu 라고 하면 그 두개골의 주인공들이 우리 현생인류의 아류 (즉, 하부 집단) 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말의 의미는 그 두개골의 주인공들이 현세적인 형태의 인류 일뿐만 아니라, 그들은 휴 로스 집단이 인류의 족보에서 완전히 퇴짜 놓으려 노력하였던 형태의 두개골을 가진 존재와 유전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해부학적으로 현생인류(Homo sapiens)와 교배된 혼종(hybrids)임을 말해주는 강력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네안데르탈인을 여기에 포함시킨다.).

결론은 분명한 것 같다. 즉 'archaic' 종과, 이번에 발견된 에티오피아의 'sapiens'의 두개골은 분명히, 그리고 뚜렷하게 현생인류의 가계, 즉 아담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연대측정'을 무비판적으로 인정하였던 것이 문제이고, 또 오랫동안 문제로 내려왔던 것이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하나님 말씀의 권위와 성경의 분명한 암시 위에 굳건하게 서서 성경-과학의 활동과 복음을 수호하기 위해 단결한다면, 화석연대와 연대측정방법에 숨어있는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복음은 더욱 쉬워질 것이고, 창조과학은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지금의 대답들 보다 더 많은 대답을 주면서, 더욱 발전하여 총체적 무대를 더욱 넓혀나갈 것이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로마서 3:4).

 

References

1. White, T. et al., Plestocene Homo sapiens from Middle Awash, Ethiopia, Nature 423 (6941): 742-744, 12 June, 2003; see abstract.

2. Clark,D. et al., Statigraphic, chronological and behavioral contexts of Plerstocene Homo sapiens from Middle Awash, Ethiopia, Nature 423(6941):747, 12 June 2003; see abstracts.

3. Stringer, C., Human evolution: Out of Ethiopia, Nature 423(6941): 747-752, 12 June 2003: see online article.

4. Wong, K., Who were the Neandertals? Scientific American Special Edition 13(2):28-37, 200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2003/0612sapiens.asp

출처 - AIG, 12 June 2003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42

참고 :

임번삼
2004-07-24

유인원의 허구 6 : 인간진화론의 허구


      이상에서 보았듯이, 진화론자들은 일단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했으리라고 가정한 후, 그러한 가설을 입증하기 위하여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 나섰던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들이 찾아내었다는 유인원의 유골이나 증거물들은 다음과 같은 의혹들을 자아내고 있다 (표7).


지금까지 발표된 모든 유인원(호미노이드, 호미니드)은 예외없이 진화인류학자들의 상상의 산물이거나 조작된 것이다. [Malcolm Bowden; A Fabricaed Class of Ape-Man, Ex Nihilo Technical Journal, vol. 3, p 152, 1988]


첫째, 여러 곳에서 발견한 유골들을 흡사 한 곳에서 발굴한 것인 양 위장하여 발표한 사례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아팔원인과 쟈바인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심한 경우는 유골을 조작하기도 하였으며, 동물의 유골을 유인원의 것으로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트다운인이나 헤켈이 제시했던 배발생도가 극명한 사기극의 사례일 것이다.


둘째, 유골의 연대가 같은 샘풀에 대해서도 많은 연대차이가 나올 경우 자기들의 이론에 부합하도록 임의로 연대를 선정했다는 사실이다. 그 연대의 실험치는 보통 수십만년에서 수백만년, 심한 경우 수천만년이나 된다. 이 정도의 편차는 그들에게는 별로 부담이 되지 않는 숫치인 상 싶다. 미국지질협회의 지원을 받은 도널드 요한슨이 발굴한 아팔원인의 연대도 310-530만년의 넓은 간격을 나타내었으나, 그들은 340만년전의 것으로 결정하였다. 리쳐드 리키가 발굴한 유골(KNM-ER 1470)의 측정연대는 29만년에서 2억2천만년전의 범위가 나왔으나, 진화론자들은 260만년으로 임의로 결정하였다. 최근에 그들은 이 연대를 다시 180만년전으로 재조정하였다고 한다. 실험이 아닌 추리로 연대를 임의로 선택하는 방식은 과학적인 자세라 할 수 없다. 


셋째, 사실 자체를 은폐하려고 한 사례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북경인, 쟈바인, 로디지아인, 구아델로프 유골, 칼라버라스 두개골 등이 그 예이다. 북경인의 발굴에 참여한 샤르뎅은 현대인의 유골 발굴을 은폐하였으며, 쟈바인을 발견한 듀보아도 현대인의 유골인 와드잭 두개골(Wadjack Skull)의 발견사실을 오랫동안 은폐해 왔다. 로디지아인은 조립된 유골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책자에서는 아직도 현생인류의 조상으로 가르쳐지고 있다. 이러한 조작사건에는 수많은 진화학자들의 음모가 있었음이 점차로 밝혀지고 있는 일은 불행스러운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넷째, 동물의 유골로 확인된 후에도 계속하여 호미노이드로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듀보아는 자신이 발굴한 쟈바인의 유골이 사실은 긴팔원숭이의 뼈라고 하였으며, 북경원인의 발굴에 관여하였던 샤르뎅은 북경원인의 유골들이 큰 원숭이의 것이었다고 고백하였다. 네브라스카인의 어금니는 멧돼지의 것으로, 서남콜로라도인의 치아는 말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수많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하빌리스의 유골들도 동물의 것으로 판명되었거나 확실시되지만, 그들은 불확실하고도 빈약한 몇 점의 유골을 내세워 그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 유골의 주인공을 인류의 중간조상인 호미노이드의 것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진화의 증거로 제시하는 두개골의 용적은 대부분 실측치가 아니라, 임의로 추정에 의한 것이다. 많은 경우, 두개골 전체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진화론자들은 자기들의 이론에 부합하도록 자기들끼리 두개골의 용적을 산출한 것이 대부분이다. 필트다운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아팔원인, KNM-1450, 북경인, 쟈바인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여섯째, 유골들의 의문적인 분실이나 공개를 중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경원인의 유골은 중일전쟁, 2차대전후 및 1960대 후반의 세 차례에 걸쳐 모두 분실(?)되었으며, 지금은 치아 두 개와 캐스트 한 개가 남아 있을 뿐이다. 듀보아가 발견했다는 쟈바인의 유골은 진위시비가 일어난 후, 지금까지도 화란의 라이덴 박물관의 창고 속에 감추어진 채 일반인에게는 물론 전문자들에게도 일체 공개되지 않고 있다. 도대체, 왜 공개를 꺼리는 것일까? 그들은 유골들을 하루 속히 공개하여 전문적인 검증을 통하여 오해(?)를 불식하는데 협조해야 할 것이 아닐까?


일곱째, 많은 유골들이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필트다운인, 쟈바인, 로데지아인 등 그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보우덴(Bowden 1988)은 진화론자들이 동물이나 사람의 인골을 적절히 조합함으로써 원인(猿人)이나 원인(原人)으로 믿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첫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된 쟈바인은 고릴라류의 두개골에 사람의 다리뼈를 조립한 것이며, 북경인은 완전히 원숭이의 뼈들이며.... 진화인류학자들은 원숭이와 현대인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 어떤 원숭이의 두개골은 인골처럼 확대시켰으며(북경인과 루시), 반대로 인간의 두개골을 원숭이처럼 보이도록 줄이기도 하였다(1479 Man).”

"'호모 하빌리스의 두개골도 인류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것이었다. 이들은 원숭이의 뼈들이거나 (사람들이) 먹다 버린 뼈들일 것이다.... KNM-1470 유골도 리챠드 리키는 발견 당시에는 호모 하빌리스가 아니라고 했다가 후일 하빌리스라고 입장을 바꾸었다. 그러나 영국 자연사박물관에서는 지금까지도 이 유골을 호모 하빌리스의 명단에서 생략하고 있다..... 내가 그의 어머니인 메리 리키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리챠드는 1470으로 호모 하빌리스를 대신하고 싶어했다고 하였다..... 요한슨은 에티오피아의 하달(Hadar) 지구에서 수백개의 뼈들과 최소한 13구의 개인 유골을 발견하고 아팔원인이라고 하였으나, 모두 원숭이의 뼈들이었다." [M. Bouden; Homo erectus, A Fabricated Class of Ape-Men, Ex Nihilo Technical Journal, vol 3, pp 152, 1988]

대부분의 유인원의 뼈들은 사람과 유사하게 보이도록 진화론자들이 화가들에게 주문을 한  것들이다. [Malcolm Bowden; Ape-man-Fact or Fallacy? Sovereign publications, Bromley, Kent, England, 1981]. 그리고, 발굴된 유골이 폐기되거나 소개되지 않았다는 증거들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두개골의 조각들이 너무 작아서 원숭이의 것인지 사람의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는 사실도 문제이다. [Bowden; ibid,pp 95, 155, 157, 202, 1981]

그러면서 보우덴은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몇가지 대표적인 유골들을 동물과 사람의 인골로 다음과 같이 분류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Bouden; ibid, p 153]

1) 인골로 확인된 뼈들 ; 쟈바인의 다리뼈, 버테스졸로스의 두개골(Vertesszollos skull), 스완스콤 두개골(Swanscombe skull), 폰테쉬베이드 두개골(Fontechevade skull), 1470 유골, 필트다운인, 크로마뇽인, 북경 윗 동굴인 두개골(Upper Cave Man), 솔로인, 듀보아의 와드잭 두개골, 로데지아인, 리챠드 리키의 KNMER 3733 두개골, 카우스앰프 유골(Kow Swamp), 네안델탈인, 라에톨리 발자국(Laetoli footprints)

2) 원숭이 등의 동물뼈들 ; 호모 하빌리스, 북경인 두개골, 필트다운인 아래턱뼈, 모든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유골들, 루시, 케닉스발트가 발굴한 피테칸트로푸스Ⅱ,Ⅲ,Ⅳ(로부투스) 등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보우덴(Bouden 1901)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Malcolm Bouden; Ape Men-Fact or Fallacy? pp 95-202, Sovereign Publications, Bromley, Kent, England, 1901]. 이밖에,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한 소로인(Solo-Man)의 두개골도 여러 뼈들을 조립한 것이다. 윗 턱뼈와 아래 턱뼈 및 두개골 하단부는 원숭이처럼 보이도록 확대시킨 것이다. [Bill Cooper; Rhodesian Man, Ex Nihilo Technical Journal, vol. 3, p 147, 1988].


여덟째, 필트다운인의 사기사건에 연루되었던 많은 학자들이 '잃어버린 고리‘를 찾기 위해 국제적인 연대를 가지고 활동했다는 사실이다. 예컨데, 필트다운인의 사기사건을 주도한 인물중 하나였던 스미스(Grafton Smith)는 남아공에서 타웅어린이를 발굴한 다아트와, 북경원인을 발굴한 블랙(Davidson Black)을 교육시켰을 뿐 아니라, 자신이 직접 테네시주의 원숭이재판에 이용되었던 네브라스카인(후일 멧돼지어금니로 판명)을 현생인류의 조상으로 부각시키려고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케이스(Arthur Keith) 역시 조작된 필트다운인의 유골을 진상조사회의에서 진품으로 판정했는데, 후일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 자신이 필트다운인의 사기극에 깊히 관여했던 것으로 밝히 드러났다. 그는 일찌기 자기 포부는 영국의 인류학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었다. 우드워드(Woodwards)는 필트다운인의 공동 발견자였으며, 로데지아인의 유골을 의도적으로 호미노이드처럼 그의 실험 파트너인 파이크라프트에게 조립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쟈바인을 발굴한 유진 듀보아는 독일의 예나 대학에서 헤켈에게 7년간이나 배운 후 '잃어버린 고리”를 찿으러 인도네시아로 출발한 사람이었다. 헤켈은 수많은 상상도와 추리로 듀보아를 세뇌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듀보아는 쟈바에서 발굴한 인골과 원숭이뼈를  흡사 호미니드를 발견한 것처럼 헤켈에게 보고하기도 하였다. 샤르뎅은 필트다운인의 사기사건에 원숭이의 송곳니를 투입하는 등 적극 개입하였다. 그리고, 뇌용적도 임으로 조절하도록 케이스와 우두워드의 중간역할을 자청하였다. 뿐만아니라 북경인 사건때에는 바이덴라이히와 더불어 현대인 유골의 발굴사실을 은폐하였고, 현대인이 사용한 잿더미(7m)의 흔적을 흡사 북경인이 처음으로 불을 사용했던 것처럼 오도하도록 노력하였다. 그뿐 아니라, 샤르뎅은 로데지아인의 두개골에 있는 총상흔적의 두 구멍을 임의로 메꾸어 조작된 그림을 화보에 싣기도 하였다.

한편, 미국의 지질협회와 내쇼날지오그라픽지의 지원을 받은 루이스 리키는 중동부 아프리카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발굴에 나섰으며, 내쇼날지오그래픽지는 많은 학자들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그 진쟌투로푸스 보이세이를 현생인류의 조상으로 계속하여 주장하고 있다.


아홉째, 최초의 원인(猿人)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더 오래 된 지층에서 수많은 현대인의 유골들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몇 가지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테이블산(Mt. Table, CA)의 금광에서 스티븐스(Oliver W. Stevens 1853)는 돌사발을, 헙스(Paul Hubbs 1857)는 사람의 두개골을 발견하였다. 이 광산의 주인이었던 매티슨(Mr. Mattison 1866)도 1,200만년이 된 지층에서 완벽한 형태의 두개골을 발견하였는데, 하버드 대학의 와이맨(L. Wyman)에 의해 완벽한 현대인의 것으로 판정되었다.

  *1억 3,500만년의 역사를 가졌다는 콜로라도주의 로키포인트 광산(Rockey Point Mining, Gilman)의 지하 120m 지하에서 사람의 뼈와 잘 다듬어진 구리화살촉이 같이 발견되었다. [Iowa City Saturday Herald,Fabruary 1867]

  *미국의 한 잡지에서 부스(R.W. Booth)는 드라이브랜취(Dry Brabch, Franklin County)의 5.4m 지하 철광산에서 현대인의 유골들(두개골, 갈비뼈, 척추, 쇄골, 척추)과 숯조각을 발굴하였다고 발표하였다. [Scientific American 1880]. 이 지층은 고생대의 실루리아기에 해당하는 4억2,500만년전의 것으로 분석 되었다.

  *그지프릿(J.C.F. Siegfredt)은 베어크릭(Bear Creek, Billings, Montana) 석탄광의 3번 갱도(3천만년전)에서 사람의 치아를 발견하였다. [Carbon County News, Nov. 11, 1926]

  *스위스 자연사 박물관의 후엘첼러(Johannes Huerzeler 1958)는 투스카니(Tuscany, Italy) 석탄광산의 지하 180m 지점에서 5-6세된 어린이의 턱뼈를 발굴하였다. 이 지층은 마이오세(Miocene 2,000만년전)의 것이었다.

  *암석수집가인 오팅거(Lin Ottinger 1973)는 빅 인디어(Big India, Moab, Utah) 구리광산의 암석에서 뼈와 치아를 발굴하였다. 그는 이어서 유타대학의 인류학 교수인 마윗(J.P. Marwitt) 교수와 같이 현대인의 인골 두 구를 발굴하였다. 이 지층은 1억년된 것으로 측정되었다.

  *이밖에도 수많은 발자국과 흔적들이 발굴되었다. 마이스터(William J. Meister, 1968.6.1)는 안텔롭 스프링스(Antelope Springs, Delta, Utah)에서 삼엽충 화석 위에 찍힌 가죽 신발자국(sandal print, 길이 26cm, 폭 8.9cm)을 발견하였다. 이 자국은 유타주 지질조사단의 돌링(Hellmut H. Doelling)에 의해 가죽샌달로 확인되었다. 마이스터는 6월 20일 다시 같은 장소에서 다섯 개의 발가락이 찍힌 어린이의 발자국(길이 15cm)을 추가로 발견하였다. 이 지층은 6억년전의 캄브리아기 지층이었다. 지질학자인 죤슨(Troy Johnson)은 300-500만년전의 지층인 툴사지역(Tilsa, Oklahoma)의 사암층에서 다섯 발가락을 가진 많은 발자국들을 발견하엿다. [Tulsa Sunday World, May 25, 1969]


  이러한 발견들은 진화론적 주장과 상치되기 때문에 지질학계를 주도하고 있는 진화론자들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거나 기록에서 제외되어 버렸다고 한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334

참고 : 5768|5796|6292|6425|6476|6423|6305|6271|6243|6190|6052|5952|5948|5819|5818|5802|5701|5528|5525|5507|5496|5492|5455|5406|5375|5349|5334|5218|5180|5155|5157|5129|5051|5025|4880|4847|4842|4833|4824|4820|4812|4785|4763|4751|4720|4709|4682|4660|4650|4626|4593|4563|4499|4498|4432|4410|4372|4315|4266|4176|4053|4007|4000|3989|3988|3890|3867|3848|3834|3656|3431|6623|6621|6606|6605|6560|6521

임번삼
2004-07-24

유인원의 허구 3 : 호모 하빌리스 (Homo habilis)


(3)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① 메리 리키와 호모 하빌리스

   진화론에 의하면 170-220만년 전에는 뇌용적이 커지면서(500cc) 안면이 넓고 둥근 머리에 사람(Homo)과 비슷한 형태를 가진 호미노이드가 등장하였다고 한다. 즉, 루이스 리키의 부인인 메리 리키(Mary Leaky 1961)는 아프리카의 올두바이 협곡에서 수백야드 거리에 있는 지층에서 현대인의 팔 다리뼈와 매우 유사한 유골들을 발굴하였다. 그 지층도 포타슘-알곤법으로 측정한 바 진쟌트로푸스가 발견된 올두바이의 지층과 같은 175만년전의 것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인 루이스 리키(Leaky et al 1964)는 이 유골의 주인공을 '손재주 있는 사람'(handy man)이라는 의미로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라 명명하였다(그림 11). 리키는 ‘호모 하빌리스야말로 순수하게 인간과 포유동물의 사이를 연결해 주는 연결고리’ 라고 하였다. 이러한 발언은 진화론의 이론체계에 심각한 혼란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Payne 1965). 

  그녀는 이 유골의 주인공이 작은 키(4.5피트)에 뇌용적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1.45배(600-700cc)이며, 동굴에서 돌도구(Oldowan stones)를 사용하며 문화생활을 했으리라고 추리하였다. 그러나, 많은 전문학자들은 도구를 사용했을 가능성을 부정하였다. 그 이유는 이 유골들중의 손뼈 한 개는 포유동물의 것으로, 두 개는 원숭이의 것으로 보이며, 여섯개는 확인되지 않은 비(非)호미노이드의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John Reader; Missing Links, Collins, London, 1981]


  그러나, 메허트(Albert W. Mehert 1987)는 이들이 개코원숭이임을 확인했으며, 로빈슨(J. T. Robinson 1965)은 이들이 이미 원숭이로 밝혀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와 꼭 닮은 동물이라고 주장하여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호모 하빌리스는 진화론에서 확실한 인류의 조상으로 아끼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루이스 리키가 죽던 1972년경에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호모 하빌리스가 오스트랄로피테신(Australopithecine)으로 판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Taylor; ibid, p 246] 


② 리챠드 리키와 KNM-ER 1470 유골의 연대

루이스 리키의 아들인 리차드 리키(Richard Leaky)는 학문적 배경은 취약하지만 연구자금의 동원력과 메스콤활동 및 잡지투고 등의 공공활동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는 1972년, 케냐의 루돌프 호수(Lake Rudolf, Koobi Fora)에서 현대인과 유사한 유골인 KNM-ER 1470(Homo ergaster, 150-280만년전)을 발굴했다고 발표하였다(1972.11). [Richard Leaky; Skull 1470, National Geographic Magazne, 143(June), p 819, Washington, 1973]. 뼈들은 부러져 있었으나, 조립한 결과 현대인과 매우 유사하였다(사진 9). 

그는 이 유골의 주인공이 호모 하빌리스보다 더 큰 뇌용적을 가진 것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후예가 아니며, 독자적인 경로로 진화되어 온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Richard Leaky; The Oldest Man? Newsweek, Nov. 20, p137, 1972]. 그는 샌디에고에서 열린 강연회(1973)에서 '이러한 발견물들에 의해 지금까지 주장되어 왔었던 인류의 기원에 관한 모든 이론들이 백지상태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선언하였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현생인류의 직계조상으로 주장된 50-100만년전의 쟈바인이나 북경원인보다도 더 현대화한 인종이 280만년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같은 지층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하빌리스 및 호모 에렉투스를, 그 아래 지층에서는 현대인이 만든 석조물(石造物)도 함께 발굴하였는데, 이는 그 당시에 현대인이 유인원(동물들)과 같이 살았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리챠드 리키의 주장과는 달리 많은 학자들은 이 유골의 주인공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믿고 있다. 포타슘-알곤법으로 측정한 연대는 260만년이었는데, 이 연대는 화석기록상으로는 초기인류가 출현하는 시기에 해당하는 것이다(Fitch & Miller 1970). 첫번의 분석용 시료는 2억2천1백만년이 나왔으나, 그는 다시 시료를 채취하여 보냈던 바 260만년이 나왔으므로 이 수치를 유골의 연대로 정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연대라면 그들이 표현했듯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의 조상이 되는 셈이다. 그 후, 같은 시료를 보내어 재실험한 바 29만년에서 195만년까지 다양한 데이터가 나왔다고 한다(John Reader 1981).


이처럼, 실험방법 자체가 재현성이 부족한 것은 연대측정법이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확한 측정법이 개발될 때까지 이러한 연대법에서 얻은 숫치를 절대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차가 많은 포타슘-알곤법이 아직도 채택되고 있는 이유는 선입관에 사로 잡힌 고생물학자들에게 적당한(오래된) 추정치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Taylor; ibid, p 247]. 그 후, 진화론자들은 소문없이 KNM-ER 1470의 연대를 호모 하빌리스와 같은 연대인 180만년전으로 재조정하여 사용하고 있다(G.H. Curtis et al; Age of KBS Tuff in Koobi Fora formation, East Roudorf, Kenya, Nature, 258 (Dec.4), p 396, London, 1975)

 

이 유골의 모습은 내쇼날 지오그라픽지의 부탁으로 4명의 화가들이 호모 하빌리스 암컷(7개 화석뼈의 주형으로 그린 것)을 모델로 하여 작성된 것이다. [National Geographic 197(3), p 140, March 2000]. 이러한 리키 가문의 발굴비용으로 사용된 비용은 80만불에 이른다고 한다(Reader 1981).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253

참고 : 390|1441|1440|1454|2712|3093|704|1446|2523|1457|577|576|1206|1207|1290|1319|1334|580|581|579|186|187|188|2149|2325|3890|3988|4007|3994|3880|3684|3656|3431|5768|5796|6292|6425|6476|6423|6560|6305|6271|6243|6190|6052|5952|5948|5819|5818|5802|5701|5528|5525|5507|5496|5492|5455|5406|5375|5349|5334|5218|5180|5155|5157|5129|5051|5025|4880|4847|4842|4833|4824|4820|4812|4785|4763|4751|4720|4709|4682|4660|4650|4626|4593|4563|4499|4498|4432|4410|4372|4315|6623|6621|6606|6605

임번삼
2004-07-24

유인원의 허구 2 

: 오스트랄로피테쿠스 (Australopithecus)


(2) 오스트랄로피테쿠스 (Australopithecus)

① 다아트와 타웅 어린이(Taung's Child) 

  원숭이와 현대인의 중간화석을 발굴하려는 노력은 학술적인 명예, 재정지원자의 확보, 경쟁심의 발로였다. 그러한 사례중 하나가 다아트(Reymond. A. Dart 1924)라 할 수 있다(사진 4). 그는 호주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필트다운인과 네브라스카인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던 스미스(Grafton Elliot Smith) 밑에서 두뇌해부학과 신경계통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박사후과정중 남아프리카로 건너가 위트워터스랜드 대학(Witwatersrand Univ, Johanesburg)의 해부학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1924년에 타웅(Taung, Kimberley, South Africa)의 석회채석장에서 다이나마이트의 폭발로 생긴 암석파편에서 몇 개의 치아와 어린이(Taung child, 5-6세 추정)의 두개골을 발굴하였다(사진4). 두개골은 침팬지보다 크고 원숭이를 닮았으나 치아배열이 사람과 비슷하고 직립보행을 했으리라 추정하고, 라틴어로 ‘남쪽(aust)아프리카의 원숭이(pithecus)’라는 뜻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Australopithecus africanus140-400만년전)라 명명하였다. 이것이 소위 호미노이드화석에 대한 두번째 발굴이면서 아프리카에서의 인골화석 발굴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그가 네이쳐 지(1925.2.7)에 발표한 글에 대하여 학계에서는 대체로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원숭이라기 보다는 ‘다아트의 어린이’(Dart's child)라고 불렀다. 그의 스승인 스미스는 제자의 의견을 지지했으나, 다른 진화학자인 케이스(Arthur Keith, 1925)는 이러한 주장을 부인하였다. 언론들도 두 견해로 나뉘었다(Reader 1981, 1989) 그러나, 이 유골의 발견은 진화론자들에게는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소위 호미노이드의 화석이 유진 두보아에 의해 처음으로 보고된 이래(1893) 아무런 유골도 발견되지 않고 한동안 잠잠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타웅 어린이는 많은 권위자들이 어린 원숭이의 것으로 무시하고 있으나, 다아트의 이름은 이 발견으로 역사적인 인물로 부각되었다. 최근에, 대영박물관의 클라크(Wilfred LeGros Clark 1967))는 '다아트와 두보아의 발견 사이의 비정상적인 반복적 일치현상은...지나치게 좋은 일로 생각된다.”고 의미있는 지적을 한 바 있다. 여기에 블랙에 의한 북경인의 발견까지 감안한다면 그 일치성은 더욱 가중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내과의사들이면서 유럽의 저명한 진화 인류학자들에게서 공부한 후 전 세계의 지역으로 흝어져 유골의 발굴작업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뇌용적이 750cc 미만인 것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그보다 큰 것은 피테칸트로프스로 명명하기로 하였다.

(참조 : Raymond Dart and the ‘missing link’,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344)

 

②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투스와 파란피테쿠스 로부투스 

 다아트는 계속하여 1940년대에 토비아스 등(Tobias et al)과 함께 요하네스버그의 북쪽 200마일지점의 마카판스가트(Makapansgat)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투스(A. robutus)도 발굴하였다(사진 5).

다아트와는 별도로 그의 동료인 내과의사 브룸(Robert Broom 1930s-1940s)은 같은 지역의 트란스발(Transvaal)에서 인류화석을, 스테르그폰테인(Sterkfontein)에서 치아와 두개골을 발굴하고(1936)플레시안트로프스(Plesiantropus transvaalensis)라 명명했으나 이것은 후일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에 포함되었다. 브룸(사진 6)은 이어서(1938) 크롬드라이(Kromdrai)에서 대형 유골들을 발굴하고 파란트로프스 로브투스(Paranthropus robutus)라 명명하였다. 

 


③ 리키가족과 진잔트로푸스 보이세이(동부 아프리카인 Nutcracker Man)

이들과는 별도로, 아프리카의 동중부지방에서도 유골의 발굴작업이 뒤따랐다. 이러한 작업은 미국 지질협회의 재정적 후원을 받고 있었던 루이스 리키 일가족(사진 7)과 도날드 요한슨에 의해 주도되었다.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루이스 리키(Louis Leaky)는 부인인메리 리키(Mary Leaky)와 같이 동부아프리카로 건너갔다. 이들 부부는 동아프리카의 올두바이계곡(Olduvai George, Tanzania)에서 유골화석들을 발굴하고(1959.7.17) 진쟌트로푸스 보이세이(Zinzanthropus boisei, 일명 Nutcracker Man 140-230만년전)라 명명하였다. ‘진지’는 동아프리카의 옛 지명이고 ‘보이스’(Charles Boise)는 탐사자금을 기부한 미국인의 이름이며 ‘안드로푸스’는 사람이므로 이 말은 '보이스의 동부 아프리카인”(Boise's East African Man)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작은 두개골에 비해 큰 턱을 가지고 있다 하여 호도까는 사람(Nutcracker Man)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진화론 화가들은 이러한 유골을 모델로 하여 제각기 다른 모습의 초상화를 그렸다(그림 8). 그러나, 많은 진화론자들은 이 유골의 주인공이 로부투스의 지역적 변종으로 보기도 한다. 이들이 주로 활동한 올두바이계곡은 킬리만자로의 서쪽 100마일거리에 위치한 곳이다. 모두 다섯 지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데(그림 9), 진쟌트로프스는 가장 아래층(OH5)에서 발굴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내쇼날지오그라픽지에 자세히 소개되었다. [Louis Leaky; Finding the world's earliest man, National Geographic Magazine, 118(September), p 420, Washington, 1960] 이러한 발견으로 재정의 고갈에 직면했던 리키에게 내쇼날지오그라픽사는 항구적 지원을 약속하였다. 그 후에 캘리포니아대학에서 포타슘-알곤법으로 그 두개골이 들어 있었던 암석을 측정하여 175만년전의 것으로 선언하였다(리키외 1961). 이것이 가장 오래 되었다는 호미노이드의 등장이다. 그러나, 리키의 발견에는 많은 문제점이 야기되었다.

 

첫째로, 그림에서 보듯이 이 두개골이 발견된 최저지층(BedⅠ)의 아래로 최상지층(BedⅤ)이 달리고 있었다. 더구나, 1968년에 최저지층을 탄소막대법으로 측정했던 바 놀랍게도 101,000년이라는 숫치가 나왔다고 한다. [L.S.B. Leaky, R. Prosch, R. Berger; Age of Bed Ⅴ, Olduvai Gorge, Tanzania, Science 162(Nov.1), p 559, 1968]

 둘째로, 독일의 인류학자인 렉(Hans Reck)이 이미 1913년도에 같은 지역의 2번지층(Bed Ⅱ)에서 완전한 현대인의 유골과 동물의 뼈들을 동시에 발굴(사진 8)했었다는 사실이다. [Bowden, 1977]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인 자료들은 리키의 학설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셋째로, 이 유골의 존재에 대하여 루이스 리키(1928)는 독일에서 조사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었지만 그가 이 유골의 바로 아래층(Bed Ⅰ)에서 발견했다는 진쟌트로프스에 대해 발표할 때(1959), 46년전에 발견했던 이 완전한 현대인의 유골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논평도 하지 않았다.

넷째로, 프로취(Protsch 1974)는 이 인골에 대하여 탄소막대법으로 연대를 측정하려고 뮌헨에 가져 갔는 데, 두개골을 제외한 모든 유골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졌다. 이 두개골의 나이는 16,920년이었다고 한다(Protsch 1974, Straus & Hunt 1962). 이러한 측정치가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175만년과 비교하면 엄청난 격차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R. Protsch; Age ane the position of Olduvai hominoid Ⅰ, Journal of Human Evolution, 3(September), p 379, London, 1974]

리키는 한 때 진쟌트로프스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는 현대인을 닮았다고 했다가 취소하는 해프닝도 연출하였다. 결과적으로, 그는 진쟌트로푸스가 오스트랄로피테신(Australopithecine)의 일종이며, 다아트가 발견한 타웅어린이와 같은 것이라고 인정하였다. 진화론자인 케이스(Arthur Keith)를 포함한 많은 학자들도 진쟌트로푸스가 분명히 원숭이라고 했지만, 진화론의 전파에 열성적인 미국의 내쇼날지오그라픽지는 일반인들에게 알려진대로 계속하여 인류의 조상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Taylor; ibid, p 245]. <동아프리카인>이라고도 불리운 이 유골은 그 후에 불을 사용했으리라는 주장도 부인되었다. 이와는 별도로 루이스 리키의 부인 메리 리키(Mary Leakey 1972)는 올두바이계곡에서 남쪽으로 30마일 지점에 있는 라에톨리(Laetoli, Tanzania)에서 두개골과 턱뼈들을 발굴했는데, 이들은 360만년전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하였다.  

 

④ 요한슨과 루시(Lucy)의 데이트 

 

이들과는 별도로, 요한슨(Donald Johnson 1972-1977)은 코펜스(Y. Coppens), 타이브(M. Taieb)와 같이 에티오피아 및 탄자니아의 아팔(Afar, Laetoli, Awash River, Hadar)의 삼각지대에서 인골의 발굴작업에 5년동안(1972-1977) 참여하였다. 스웨덴계 미국인인 요한슨은 박사후과정중, 에티오피아의 오모강이 흐르는 리프트계곡(Rift Valley)에서 40%의 유골형태가 남아 있는 여인의 뼈(1-1.3m, 30-40Kg, 뇌용적 450cc)를 포함하여 14인의 유골의 것으로 보이는 197개의 호미니드의 뼈들을 발굴하였다(1974). [D.C. Johanson; Ethiopia yields first family of early man, National Geographic Magazine, 150(Dec.), 150, Washington, 1976]


처음에는 침팬지의 것과 유사한 아래턱을 제외하고는 두개골이나 몸체가 이상하리만큼 발견되지 않다가 1974년, 크리스마스를 맞으면서 갑자기 다른 팔과 다리뼈들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하였다. 두개골은 끝까지 발견하지 못했으므로 뇌용적은 측정할 수가 없었다. 요한슨은 그 뼈의 주인공이 30대초반의 여자라고 생각하고 그 당시에 유행했던 비틀즈의 노래인 '하늘의 루시‘(Lucy in the sky)’에 나오는 이름을 따서 루시(Lucy)라고 명명하였다. 그리고, 진화론 화가들로 하여금 서서 걸어 다니는 여인의 그림을 그리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여 최초의 호미노이드중 하나인 ’루시’라는 여인이 탄생한 것이다(그림 10).


그들이 잘 사용하는 포타슘-알곤법으로 그 유골의 연대를 측정한 바 310-530만년 사이의 수많은 데이터들이 얻어졌다(Bowden 1977). 이러한 데이터 중에서 요한슨과 에디(Johanson & Edey 1981)는 가장 오래된 초기인류의 출현연대에 걸맞도록 300-340만년전의 것으로 임의로 결정하였다. 이처럼, 진화론자들이 곧 잘 범하는 함정은 기술적 오차보다 실험숫치를 임의로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연구기금을 타기 위해 보다 극적인 시점에 공개적인 연구발표를 한다는 점이다. 요한슨도 이 유골들의 발견을 4년간이나 비밀리에 붙쳤다고 한다. 이들은 두개골의 용량도 임의로 호미노이드에 걸맞게 450cc로 책정하였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루시’라는 별명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가 <초기인류에 관한 노벨심포지움>(Nobel Symposium on Early Man 1978) 석상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D.C. Johanson; A systemetic assessment of early African hominids, Science 203(Jan. 26), p 21, 1979] 그러나, 이 논문의 발표시 두개골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참석자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인근 라에톨리의 화산재층에서 두 발로 보행한 발자국도 발견하고 아팔원인은 두 발로 직립보행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는 '대퇴골의 각도와 대퇴부의 무릎을 연결하는 관절부위의 납작한 표면은 루시가 두 다리로 걸어 다녔음을 증명해 준다”고 하였다. [Donald Johnson; ibid, pp 790-811, Dec, 1976] 영장류가 직립보행을 하게 된 원인에 대하여 데이(Dei 1986)는 ①음식물의 향상된 획득방법으로, ②사냥감을 추적하고 경쟁자로부터 도망하기 위해서, ③그리고 생식의 결과(love-joy theory)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확인된 바에 의하면 요한슨이 루시의 직립보행의 증거로 제시한 무릎관절은 유골들의 발굴지점으로부터 70m 하부지점에서, 다른 뼈들은 3Km나 떨어진 곳에서 발굴한 것들을 한 장소에서 발굴한 것처럼 조립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흡사 한 지점에서 발굴된 것인 양 발표했던 것이다. 더구나, 리치몬드 등은(2000) 루시의 형태가 원숭이나 침팬지 및 고릴라처럼 두 손으로 나무를 잡으며 걷는 <너클 워커>(knuckle walker)였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B.G. Richmond, D.S. Strait; Evidence that humans evolved from a knuckle-walking ancestor, Nature 404(6776), pp 382-385, 2000]

 

⑤ 오모언덕(Omo Hill)의 부울

올두바이에서는 주로 리키부부가 활동한 데 반하여 프랑스의 저명한 인류학자인 부울(C.A. Boule)은 1955년경부터 에티오피아의 오모강변에서 유골의 발굴작업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그는 유신진화론자인 샤르뎅의 은사이기도 하다. 1967년경에는 국제조사단이 이 곳을 집중적으로 발굴하여 100톤이 넘는 화석을 채취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동물들의 뼈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결국, 부울은 별다른 소득이 없이 발굴작업을 마무리하였다고 한다.

 

⑥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대한 평가

오늘날, 진화학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아팔원인, 아프리카누스(A.africanus 230-300만년전)처럼 작은 턱과 치아를 가진 소인(小人, 40-70 lb, 40-50Kg, 1.3m, 뇌용적 400-450cc)과 이들보다 어금니가 크고 뾰족한 목덜미를 한 로부투스(A. robutus, Kromdraai, South Africa, 150-190만년전)나 보이세이(A. boisei,Olduvai Gorge, Tanzania, 140-230만년전)와 같은 대인(大人, 1.7m, 뇌용적 500-550cc) 및 리키(Richard Leakey, 1958)팀에 의해 발굴된 검정 해골(A. ethiopicus, Black skull, Omo Basin, Ethiopia, 230-280만년전)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유골들에 대하여 많은 인류학자들의 의견은 대체로 원숭의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먼저, 몬태규(Ashley Montagu 1957)는 '모든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개골 형태는 원숭이와 매우 비슷하다....여러 면에서 원숭이와 비슷한 특징을 가진다.”고 하였다. 영국의 저명한 진화해부학자 쥬커만(Solly Lord Zuckerman 1972-1973)은 15년간 면밀히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간의 조상이 아니라 원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시카고 대학의 저명한 인류해부학자인 옥스나아드(Charles Oxnard 1974-1975)는 뼈들을 컴퓨터로 분석하고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결코 직립보행을 하지 않았으며, 사람이나 원숭이와는 다른 오랑우탕과 유사한 동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1981). 영국의 저명한 인류학자인 와이너(Joseph Weiner)는 두개골들을 종합분석한 후 침팬지와 유사하는 결론을 내렸다.


진화인류학자인 보우텐(Bouten)은 이들 화석이 조각들의 형태로 다른 동물들의 화석과 섞여 나온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 동물들은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잡아 먹은 동물들의 뼈들이라고 하였다. 창조과학자인 기쉬(Duane T. Guish 1985)도 비비원숭이(baboon)와 유사하다고 하였다. 심지어, 루이스 리키마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원숭이이며 호모 하빌리스가 진정한 가장 오래된 인류의 조상이라고 확신하였다. [Louis Leaky; Furthur evidence of lower pleistocene hominids from east Rudorf, North Kenya, Nature, 231(May 28), p 241, London, 1971] 


최근, 타임지는 인류조상에 대한 특집에서 '현재로서는 원숭이가 진화하여 사람이 되었다는 주장은 사실데이터에 입각한 과학적 주장이 아니라 한낱 상상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지었다. [Times, March 14, 1994]

 

한편, 영국의 생물학자인 오클리(Okley)는 같은 계곡의 박쥐똥에서 자연발화가 일어난 사실들을 감안하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불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자연발화한 것이라고 하였다. 다아트(1959)도 <빠진 고리를 찾는 모험>에서 불을 사용했다는 주장을 부인하였다. 최근에는, 루시가 나타나기 이전부터 직립보행한 증거도 발견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즉, 카나포이인(Kanapoi hominid)과 카스테네돌로인(Castenedolo Man)의 유골이 그것이다. [Parker; ibid, p 4] 이것이 사실이라면 루시의 꿈은 허황한 신화로 기록될 것이다.


이처럼,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치아의 배열과 하악골의 구조로 불 때 원숭이의 변종(갈라다 개코원숭이)이라는 데 의견이 대체적으로 일치하고 있는 것 같다. 대체적으로, 원숭이의 뼈에 다른 동물이나 사람의 뼈들을 조합하여 그들의 선입관에 맞도록 의도적인 방향으로 조립한 작품이라는 유감스러운 해석을 내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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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번삼
2004-07-24

유인원의 허구 1 : 라마피테쿠스 (Ramapithecus)


(1) 라마피테쿠스 (Ramapithecus)

 

 예일대학의 인류학과 대학원생이었던 루이스(G. Edward Lewis 1934)는 인도서북부의 시왈릭 언덕(Siwalik Hill)에서 이빨(40개)과 턱뼈들(15개)을 발굴하여 조사하였다. 그 결과 앞니와 송곳니가 원숭이의 것보다 작고 치열이 포물선을 이루며 턱뼈의 경사도가 사람쪽으로 유사하다 하여 중신세에 나타난 인류의 첫 조상으로 추정하게 되었다. 인도어로 ‘왕자 또는 크다’는 뜻의 ‘라마’에 라틴어로 ‘원인’(猿人)이라는 뜻의 ‘피테쿠스’를 조합하여 라마피테쿠스(Ramapithecus brevirostris)라 명명하였다(그림 7). 


이 학설은 당시는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1960년에 저명한 인류학자였던 하버드대학의 필빔(David Pilbeam)과 예일대학의 선사생물학자인 시몬즈(Elwin Simons)가 공동으로 당시까지 알려진 원인들의 화석들을 조사하는 과정에 일부의 화석들이 라마피테쿠스와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하여 그들은 드리오피테쿠스, 브라마피테쿠스, 라마피테쿠스로 분류해 오던 것을 라마피테쿠스만 따로 떼어 새로운 학명을 부여하였다. 이 유골들을 K-Ar 법으로 조사하고 1,400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하게 되었다. 시몬즈는 라마피테쿠스와 브라마피테쿠스가 동일한 동물임을 확인하고 브라마피테쿠스의 이름을 없애고 라마피테쿠스로 통일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 유명한 최초의 호미노이드인 라마피테쿠스가 탄생한 것이다. 진화론적 주장을 반영하는 타임-라이프지(1978)는 최근까지도 이렇게 단언하였다. “그러므로 더욱 확실한 후보가 나타날 때까지는 라마피테쿠스를 인간의 조상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한국일보타임-라이프; 원시인, p42, 1978]


그 후, 이와 유사한 유골들이 케냐(Fort Teman)를 비롯하여 파키스탄, 독일 스페인, 중국 등지에서도 발굴되었다. 1970년대부터 새로이 발굴된 유골들을 비교한 바, 라마피테쿠스는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살았으며, 시바피테쿠스와 유사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진화학자인 리키와 르윈(Richard E. Leaky & Rodger Lewin 1977) 및 힐(W.C.O. Hill 1970)은 라마피테쿠스의 잇빨과 턱의 모습이 개코원숭이(Gadala baboon)과 흡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급기야, 인류의 조상이라고 주장해 왔던 필빔(David Pilbeam 1982)마저 파키스탄(1973-1976)과 중국/파키스탄(1978-1981)에서 라마피테쿠스와 유사한 화석과 인골들을 발굴하여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라마피테쿠스는 인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오랑우탕과 유사하다는 놀라운 발표를 하였다. 이는 라마피테쿠스가 인류의 조상이라던 자신의 과거 주장을 번복한 것으로 당시 진화학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이 실수한 이유는 턱뼈와 치아화석만 분석하였고, 비교해부학이나 분자통계학의 자료를 무시하였으며, 중신세의 다양한 호미노이드에 대한 상상에 현혹되었기 때문이라 고백하였다.


같은 해에 영국 자연사박물관의 안드류스(Andrews 1982)는 라마피테쿠스가 오랑우탕계통인 시바피테쿠스(암컷)와 유사하다고 했으며, 중국학자들(1980)도 운남성에서 시바피테쿠스와 라마피테쿠스의 두개골을 발굴 조사하고 시바피테쿠스는 오랑우탕의 선조라고 하였다(1983).


뒤이어 미쉬간대학의 그린필드(Leonard O. Greenfield 1975), 안드류(Peter Andrew 1982) 및 칼리포니아 대학의 윌슨과 캔(A.C. Wilson & R. Cann) 등의 연구결과 루이스가 발견했다는 유골들은 오랑우탕 등의 뼈들을 결합한 것임이 들어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수십년간 인류의 첫 조상자리에 앉아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라마피테쿠스는 오랑우탕임이 밝혀지면서 하나의 촌극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 진화론자들에 의해서도 인정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인류와 역사앞에 책임있는 사과나 사죄한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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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번삼
2004-07-24

진화론적 인류기원설


 (1) 현생인류의 기원론

  진화론자들은 영장류에서 인간으로 진화했다고 믿기 때문에 영장류에 대한 분류를 매우 중요시한다(표 2). 그들의 분류에 의하면(Cartmill 1992), 지구상에는 230여종의 영장류가 있다. 영장류는 다시 하등의 원원류(原猿類  procimians)와 고등의 진원류(眞猿類 anthropodis)의 두 아목(suborder)으로 나뉜다. 전자는 작은 체구에 야행성으로 쥐와 일부 원숭이가 이에 속한다. 후자는 신대륙의 광비원류(廣鼻猿流 신세계원숭이 Platyrrhiness)와 구대륙의 협비원류(狹鼻猿流  Catarrhines)가 포함되어 있다. 협비원류는 다시 유미원(有尾猿,구세계원숭이, Cercopithecoidea)와 호미노이드(Hominoid 人猿類/類人猿/人間)의 두 상과(上科)로 구분한다. 호미노이드는 콜로버스(Colobidae 코주부원숭이)와 긴팔원숭이(Hylobatidae) 및 사람(Hominidae)의 세 과로 나눈다.

현생인류를 제외한 사람과(人科)에는 기본(Gibbon/Hylobates), 샤망원숭이(Siamangs)와 같은 작은 체구의 소원류(小猿類) 및 고릴라(Gorillas),침팬지(Chimpanzees), 오랑우탕(Orangutans)과 같이 체구가 큰 대원류(大猿類)로 나눈다. 이 대원류에서 현생인류가 출현했다는 것이 진화론자의 주장이다.

그러면, 이러한 네 발짐승인 대원류에서 현생인류가 어떠한 경로를 통하여 탄생한 것일까? 주지하듯이 진화론자들은 35억년전에 지구상에 단세포의 생명체가 출현하여 1-6억년전의 캄브리언기에 다양한 생물형태로 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후, 긴 세월이 지나면서 수중생물이 육상으로 상륙하여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를 거쳐서 오늘의 현생인류로 진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포유류에서 인간으로의 진화의 순서는 허리경사각(그림 2), 치아배열(그림 3), 안면경사각과 뇌의 용량(그림 4)등에 의해 구분한다. 유인원(類人猿)은 네발로 너클보행(knuckle walking)을 했으며 굽은 허리와 작은 뇌를 가졌고 안면 경사각이 완만하며 턱뼈와 잇틀이 말발굽형이었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차차로 허리경사각이 완만해졌으며, 두 발로 직립보행(bipedalism)하면서 허리경사각이 직각으로 바뀌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에 따라, 가파른 안면경사각에 큰 뇌와 넓은 치아의 배열형태를 가진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7천만년전(백악기 말기)의 대멸절기에 살아 남은 포유류 일부가 결국 오늘의 영장류로 진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영장류의 두개골은 서서히 직각이 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기준이 절대적인 것이 될 수는 없으며, 그렇게 되었으리라 추정하고 그러한 순서대로 의도적으로 배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뇌용적을 비교한다면, 러시아의 소설가 투르게네프의 뇌는 2,000cc로 매우 크지만 천재로 이름난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 1844-1924)의 뇌는 유인원 수준인 1,017cc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현대인보다 미개했다는 구인인 네안델탈인은 현대인(1,450-1,600cc)보다도 큰 1,750cc였다고 한다.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인류진화의 역사는 추리소설처럼 드라마틱하다(표 3). 초기 유인원인 플리오피테쿠스가 프로콘슬을 거쳐 드리오피테쿠스로 진화했다고 한다. 3천만년전에는 나무 위에서 생활을 하던 드리오피테쿠스(Driopithecus)가 몸집이 커지면서 육상으로 내려 왔으며, 오레오피테쿠스를 거쳐 1,300만년전에 라마피테쿠스가 되었다고 한다. 1,000만년전에는 파란피테쿠스가 나타났다는 것이다(그림 5). 

 

다아트는 파란피테쿠스가 처음으로 나무에서 내려왔다고 주장한다. 원숭이나 침팬지는 2천만년 전에 분리되었으며, 1천300만년 전에는 오랑우탄이, 6백만년 전에는 고릴라가, 5백만년전에는 아인류(亞人類)인 침팬지가 사람으로부터 분리되어 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360만년전 침팬지가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猿人)로 진화되었는데, 키가 작은 아팔원인(A. afarensis, 아팔猿人)과 키가 큰 오스트랄로피테쿠스(A. africanus, A. robutus, A. boisei)로 분화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뇌용적이 커지면서(500-600CC) 아팔원인으로부터 사람의 형태에 가까운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와 두 발로 완벽하게 직립보행(erect)을 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原人)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호모에렉투스는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육식을 하였고, 20만년전까지 지구상에 존속했다고 한다. 그 후, ‘지혜로운(sapience) 사람(Homo)’이라는 뜻을 지닌 호모 사피엔스인 네안델탈인(Homo sapience neanderthalensis 舊人)과 크로마뇽인(新人)을 거쳐 마침내 현대인(Homo sapience sapience)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원숭이와 현생인류의 중간에 위치한 포유류를 유인원(類人猿 hominoid)이라 부르고, 구인과 신인을 호미니드(hominid)라 구분하여 부른다(표3). 

 

현생인류로의 진화과정에 대해서는 현재 진화론자들은 두 학설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즉, 호모 에렉투스가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진화하여 현생인류로 진화했다고 하는 다지역발생설(multiregional generation theory)과 중부 아프리카에서 첫번째의 현생인류(Homo sapience)가 탄생하여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고 하는 단일지역발생설(African generation theory)이 그것이다. 이 두 학설간에는 현격한 견해의 차이를 보이면서 양측의 진화론자간에 서로의 모순성을 적나라하게 지적하며 논쟁중에 있는데, 이는 두 이론이 모두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아프리카지역에서 현생인류가 출현했다는 단일지역발생설이 진화론자들 사이에 폭넓게 수용되어 가는 추세이다.

단일지역발생설은 인류의 조상이 3-20만년전에 출현하였다고 주장함으로써 다지역설에 비해 매우 짧은 기간을 설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류가 중동 아시아에서 출현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창세기의 기록에 의견이 접근하고 있어 앞으로 전개될 이론공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 다지역발생설(多地域 發生說)

이 학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현생 인류가 여러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우연히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라 말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그 지역에서 발굴한 화석과 인골 및 문화유적들을 분석하여 추리한 것이다. [Alan G. Cann, Milford H. Wolpoff; The Multiregional Evolution of Humans, Scientific American, April, 1992, 日經サィェス, 6月號, pp 48-55, 1992] 그 결과, 유인원(5백만년전)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 猿人 400-200만년전),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2백만년전),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25-170만년전), 고대형 호모 사피엔스(archaic Homo sapience 40만년전), 구인(Homo sapience neanderthalensis), 신인(Homo sapience新人 10만년전)을 거쳐 현대인(Homo sapience sapience 現代人)로 진화하였다고 말한다(그림 6). [Michel D. Lemonick, Andrea Doefman; Up from this ape, Time Jan. 17, pp 34-45, 2000]

그들에 의하면, 5-7백만년전에 아프리카 대륙의 기온이 하강하여 열대림이 축소되고 사바나 기온이 조성되었으며, 이에 따라 부족해진 식물을 찾아 다니기에 편리한 이족(二足) 보행을 하게 되면서 도구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2-3백만년 전에 다시 기온이 하강하자 이에 대처하기 위해 뇌의 용적이 더 커진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가 탄생했으며 안면 경사각(顔面傾斜角)도 사람처럼 직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100만년전부터 아프리카에서 아시아와 유럽으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는 이동을 개시하였다. 인도(Namada지역)를 거쳐 인도네시아와 중국에서 많은 인골들이 발견되었다. 중국에서는 유안모(元謨, 雲南省)에서 치아가 발견되었고(80-90만년전 추정), 란티엔(鹽田, 山西省)에서는 뇌용적이 700cc로 추정되는 화석이 발굴되었다(70만년전 추정). 그리고, 쵸우코우티엔(周口店, 北京)에서는 23-46만년전의 것으로 추정된다는 북경원인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솔로강변의 트리닐(Trinil)과 상기란(Sangiran)에서 많은 유골들이 출토되었다. 상기란 남쪽 40마일 지점의 카부층(Kabuh)에서도 50-70만년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두개골(800-900cc)을 포함한 유골들과 퇴적물들이 다량으로 발굴되었다. 카부의 아래층은 70-100만년전의 푸챵안층(Puchangan)인데, 여기에서는 두개골(뇌용적 750cc)과 앞니와 송곳니가 붙은 하악골이 발굴되었다. 독일의 고인류학자인 케닠스발트(von Koenigswald 1930)는 모조케르토(,Modjokerto, East Surabaya)의 푸칸장층에서 두개골을, 야콥(Jacob 1973)은 상기란 인근의 삼붕마찬(Sambungmachan)에서 호모 에렉투스로 보이는 두개골(뇌용적 1000-1250cc)을 발견했다고 한다. 쟈바섬에서는 10만년전의 지층까지 오직 호모에렉투스만 출토되고 있다는 것이다.


홍적세 중기말에 해당한다는 40만년전에 살았다는 고대형 호모사피엔스(archaic Homo sapiensis)의 출현은 로데시아(현재의 잠비아)의 브로큰(Brocken Hill)에서 큰 두개골(뇌용적 1,100-1,300CC)이 발굴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이것은 호모사피엔스 로데시언시스(Homo sapience rodesiensis)라 불리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견물들이 고대형 호모사피엔스인지 호모에렉투스인지 지금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논쟁은 유럽지역인 독일(Mauer, Bilzingsleben), 헝거리(Vertesszolloes), 그리스(Petrlanona)에서 발굴된 유골들에 대해서 마찬가지이다. 이 중, 마우어지방에서 발굴한(1907) 하악골의 주인공은 60만년전의 호모사피엔스로 진화인류학자들은 취급하고 있다.


북아프리카의 살레(Sale, Rabat, Moroco)에서 출토된 두개골(960-1,000cc)은 40만년전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고대형 호모사피엔스가 10만년전까지 생존했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극동지역에서는 최근까지 호모에렉투스가 살다가 10만년전부터 중국의 달리(大劦, 陜西省), 직뉴산(金牛山, 遼寧省), 마바지방(廣東省)에서 출토된 두개골들이 고대형 호모 사피엔스로 교체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호상가바드(Hoshangabad, Middle India)에서 출토된 나르마다두개골(Narmada Skull)은 호모 에렉투스와 고대형 호모 사피엔스의 중간형으로 보고 있다.


20만년 전부터 유럽에서는 호모 네안델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가 등장하였다고 한다. 이들의 체구는 65Kg에  170cm의 키를 가졌다고 한다. 뇌용적은 1,750cc로 현대인보다 크며, 석기를 사용하고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까지 150개의 동굴매장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뇌의 특징은 얼굴 중앙부위가 돌출했고 아래턱이 길고 콧구멍이 크며, 빙하기를 견디느라 사지골이 발달했다고 한다. 이러한 유골들이 유라시아의 엔기스(Engis, Belgium), 라페라시와 라퀴나(La Ferrassie & La Qina, France), 타쉬크 타쉬(Tashik Tash, Uzbekistan), 아무드(Amud, Israel), 샤니다르(Shanidar, Iraq) 등지에서 발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극동지역과 아프리카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은 수렵을 비롯한 문화생활을 했는데 그들이 사용했다는 도구가 발굴된 무스티에(La Moustier, France)동굴의 이름을 따서 무스테리안 문화(Mousterian Culture)라 부르고 있다. 식인습관을 가졌다는 이들이  멸절한 것은 3만5천년전으로 추측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멸절사유는 신인인 호모 사피엔스에 의한 공격설등이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는 것이다.


네안델탈인의 뒤를 이어 10만년부터 초기 현대인류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 신인(新人), 만기지인(晩期智人) 등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동하였고, 2만5천년 전부터 신인들이 시베리아를 거쳐 미주대륙으로 이동했다고 진화론자들은 주장한다. 크로마뇽(Cro-Magnon, France)에서 발견한 화석(1868년)의 이름을 따라 크로마뇽인으로 명명된 유럽의 신인(新人)은 네안델탈인보다 키가 컸지만 뇌의 용적은 오히려 더 작았다(1,400cc)고 한다. 왜, 뇌가 반대로 작아졌는지 진화와 반대의 방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학설에서는 크로마뇽인의 뇌가 네안델탈인처럼 현대인보다 더 컸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코와 턱은 현대인처럼 작으며 치골도 현대인과 유사했으며, 3만5천년전에 나타난 크로마뇽인은 돌과 뼈를 이용하여 기구를 만든 후기 구석기문화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들이 살았다는 동굴에는 많은 벽화가 그려져 있고 종교생활을 한 흔적도 발견되었는데, 그 중 유명한 것이 니오동굴(Niaux Cave, South France)에서 발견된 창에 찔린 들소의 그림이다. 모스크바의 동부에서는 구슬장식을 한 크로마뇽인 노인의 유골(2-3만년전 추정)이 최근에 발굴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현대인과 유사한 오모유골(Omo-1, 6만년전)이 이디오피아에서 발견된 것을 비롯하여 클라지스(Klasies, South Africa 10만년전), 볼더(Border, South Africa 9만년전) 등지에서도 발굴이 되었다고 한다. 아시아지역에서는 이스라엘의 카프체(Qafzeh)와 스크훌(Skhul)에서 발굴한 유골이 10만년전의 것으로 추정되어 이를 근거로 신구인이 한동안 공존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중국의 류지앙(柳江, 廣西省)의 두개골은 3-7만년전의 것으로 몽골로이드의 조상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들의 피부는 흰 색에서 검은 색까지 혼합되어 있었다. 이렇게 하여 원숭이와 현생인류의 중간종이라는 호미노이드의 유골이 아래 표에서 보듯이 500여건이 넘게 발굴되었다(표 4).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같은 진화론자인 분자유전학자(分子遺傳學者)들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즉, 화석의 유체연구만으로는 인류의 발생기원을 확인할 수 없으며, 화석주변에서 발굴했다는 도구들에 대해서는 신뢰하기가 어렵고, 극소수의 화석을 가지고서 그 시대에 존재했던 수많은 생물군을 대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A.C. Wilson & R.L. Cann; ibid, p 46-47]

 

이처럼, 인간이 원숭이에게서 진화했다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기 때문에 이러한 모순된 내용을 보완하기 위해 단일지역 발생론자들은 분자생물학적으로 유인원에서 인간이 분리된 연대를 추정하는 분자시계(molecular clock)와 分子生態學(molecular taxonomy)에 의한 분자상동성(相同性, molecular homology)으로 동물들간의 상관관계를 진화계통수(進化系統樹)로 나타내려 하였다. 이러한 연구결과, 그들은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출현했다는 단일지역발생설을 주창하게 되었다.


그러면, 진화론자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호미노이드 및 호미니드의 실상에 대하여 살펴 보기로 하자. 다음에 소개하는 내용들은 진화론자인 마틴(Rorert Martin)이 말했듯이 '불충분한 자료를 기초로 하여 만든 상상의 산물'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의도적인 사기사건까지 발각되어 학계에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지금도 상존하고 있어 우려를 금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들은 진리를 탐구하는 학자로서 왜 연구결과를 조작하려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연구비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명예욕, 다른 학자들과의 경쟁심, 이데올로기에 대한 맹신 때문이라고 어느 논문은 분석한다. 이제,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례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하자.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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