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창조과학회
2004-07-24

네안데르탈인


      네안데르탈인은 독일 뒤셀돌프(Dusseldorf)에서 동쪽으로 7마일 떨어진 Wuppertal 근처 네안데르계곡의 한 동굴에서 1856년에 처음 발견되었다. 이것은 처음에 호모네안데르탈렌시스로 분류되었으며, 절반쯤 서서 다녔던 '유사인간'으로 묘사되었다. 이처럼 잘못 생각한 주요 원인은 진화론으로 기울어진 고생물학자들의 편견과 그 대상이 관절염으로 불구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게다가 비타민D의 부족으로 생긴 구루병 환자였음이 밝혀졌다. 그 후에 수많은 두개골이 발견되었으나, 두뇌용적은 현대인간과 같은 것으로 진짜 인간인 호모사피엔스였다.

쿠오조(John W. Cuozzo D.D.S.) 는 메릴랜드 볼티모어에서 1980년 10월 25일 있었던 중부대서양 치열교정학자회의에서 그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파리에 있는 「Muses de 1 'Homme(인류박물관)」을 방문하고,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 슬라이드 300장과 8장의 X선 촬영을 했다. 이것은 현대 치열교정술에 의한 정밀한 측정을 의미하는데,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에 있어서 이런 연구는 처음이다. 이 기계는 최초로 밀워키의 로버트 말린(Robert Mallien) 박사에 의해 발명된 것으로 고인이 된 그는 연구원이자 치과의사이며 제네랄 전기회사의 협동개발연구원이었다. 말린 박사와 그의 부인은 둘 다 학위를 가진 연구가로 먼저 이 기구를 가지고 콜롬비아와 남부아메리카의 정글로 가서 문명으로부터 격리된 원주민을 대상으로 측정했었다.

 

화석측정

다음 3가지의 네안데르탈인 화석을 측정했다.

1. La Chapelle-aux-Saints 성인

2. La Ferrassie 1 성인

3. Pech de 1'Aze 2∼3세의 아이

  이 세 개의 화석은 모두 파리에 있는 Muses de 1'Homme에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많은 다른 네안데르탈인이 프랑스 여러 군데서 발견됐지만, 이 3개만 그 기구로 정확히 측정될 수 있는 완전한 것이었다. 치아와 턱의 맞물림, 그리고 두개골의 정면과 측면에 있어 X선 측정을 했다. 보조로 사진촬영을 했다. Rocky Mountain Data System사에서 X선을 분석했고 정상치와 비교했다.

 

뒤로 들어간 턱

쿠오조가 맨 먼저 발견한 문제는 아이 화석을 복원시킨 Pech de 1'Aze 두개골은 턱이 튀어나온 모양이었으나, 실제 검사한 결과로는 뒤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인류학자들은 아이인 네안데르탈인은 성인네안데르탈인에 비해 원시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어져야만 했다고 주장했다. 진화론에 의하면 보다 더 원시적인 턱은 튀어 나와야만 한다. 진화가 계속 진행되면서 아이는 성인이 되기 때문에 진화의 진행과 성숙의 표시는 턱이 뒤로 들어가는 것이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네안데르탈인은 턱이 튀어나와야 하고 성인보다 아이에서 더욱 튀어나와야 한다. 그러나 쿠오조가 성인과 아이의 두개골을 조사했을 때, 아이의 두개골에서 이미 턱이 뒤로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한 쿠오조는 이가 서로 끝과 끝이 맞물리는 경우에는 occlusion, 이에 반해 턱이 들어간 경우에는 overbite 형태를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아이 네안데르탈인은 오늘날의 아이보다 턱이 들어가 있고, 그의 overbite는 현대인의 평균치보다 훨씬 깊다. 유인원은 초기에 젖니에서나 영구치에서 앞니의 overbite를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인원에서는 상악과 하악의 치열이 치아가 발달함에 따라 정확하게 맞물리기 때문에 그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overbite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 네안데르탈인을 복원시킬 때 유인원처럼 보이도록 치아의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치아의 회전각도

쿠오조가 조사한 진화론자들의 결론과 대조되는 또 다른 특징은 아이로부터 성인까지 턱이 돌아가는 각도였다. 네안데르탈인인 화석에서 상악의 경구개와 구개골의 각도는 Frankfort horizontal에 대해 -14도였다. 현대 아이의 정상 치도는 +1도이다. 아이의 각도는 시계방향으로 매우 단단히 감겨있는 일종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음에 따라 이 각도는 시계반대 방향으로 풀리게 된다. Cuozzo가 성인의 네안데르탈인을 조사한 결과 그 각도는 +3.6도에서 +1도였다. 이것은 구개에서 15도에서 17.6도 정도가 돌아갔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이 현재에는 발견되지 않는데, 이것은 네안데르탈인이 현재 사람보다 장수했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균수명이 150년 내지 200년이었음을 나타낸다.

 

치아의 사용

3개의 네안데르탈인 화석을 조사한 결과 쿠오조는 그들이 현대인보다 훨씬 오래 그리고 심하게 사용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치아가 굉장히 마모되어 있었고, 근심이동(mesial migration)이라고 부르는 중앙으로 치아의 이동이 있었다. 이것은 오래 그리고 심하게 사용했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La Ferrassie 네안데르탈인의 전체 치아구조는 앞으로 이동한 것 같아서 Chin이 없는 모양을 나타낸다. 실제로 Chin은 치아와 뼈의 이동에 의하여 가려졌다. 이것은 오래 그리고 심하게 사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령에 따른 변화

쿠오조는 네안데르탈인의 눈두덕, 날카로운 코의 각도, 길어진 두개공, 넓적한 광대뼈, 귀 주위의 두개골과 대뇌두개골이 연결된 것 등의 특징이 연령이 많아짐에 따라 모양과 크기 면에서 변한다는 사실을 또한 발견했다. 이런 여러 가지의 네안데르탈인의 특징은 그들이 원시적이거나 조상형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러한 특이한 것들은 그들이 장수하였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아이의 턱이 들어 간 것, 치아의 회전각도의 변화, 치아의 심한 마모와 이동 등이 원시조상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150년 내지 200년을 산 우리와는 다른 인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창조모델

위의 연구에서 발견된 사실들은 창조모델을 잘 설명해 준다,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평균수명이 약 900년이었다. 홍수 후에도 400년 정도 살았지만, 200년 뒤에는 평균수명이 200년 정도였다. 욥은 210년을 살았고, 아브라함은 175년, 이삭은 180년, 야곱은 143년, 모세는 120년을 향수했다. 나의 개인적인 의견으론 네안데르탈인은 그들의 신체적 특징으로 보아 홍수이전에 살았던 것 같다.

 

 

참 고 문 헌

.John Cuozzo, 1980, 'Neanderthal Study' in Bible-science News letter, November .H. Israel, 1973, 'Age Factor and pattern of Change in Craniofacial Structures' in   American Journal of Physical Anthropology

.Hrdlicka, 1936, 'Growth During Adultal Arch by Approximal Attrition' in British Dental   Journal, June.

 


출처 - 창조지, 제 5호 [1982. 3]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60

참고 : 3880|3994|4078|4260|4266|4410|4682|5768|5528|5525|5507|5492|5406|5375|5349|5334|5218|5180|5155|5157|5129|5051|5025|4880|4833|4720|4785|6623|6621|6606|6605|6476|5796|6292|6425|6423|6305|6271|6243|6190|6052|5952|5948|5819|5818|5802

Walt Brown
2004-07-24

유인원들? (Ape-Men?)


       1세기 이상 사람의 진화를 믿도록 하는데 주요한 수단이었던, 두개골과 치아의 특징들은 자주 잘못된 결과를 가져왔다.1 또한 사람의 진화에 대한 화석 증거들은 단편적이고, 여러 해석들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에 가장 가까운 살아있는 친척으로 생각하는 침팬지의 진화를 보여주는 화석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2 원시적인 유인원의 화석이 발견되었다고 주장되는 이야기들은 과장되었다.3

* 필트다운인이 사기였다는 것을 지금은 모두가 다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40 년 이상 교과서에 실려있었다.4

* 1978 년 이전까지, 라마피테쿠스(Ramapithecus)의 증거는 몇 개의 치아와 턱조각 뿐이었다. 우리는 지금 이 조각들이 루이스 리키(Louis Leakey)와5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사람의 턱뼈와 유사한 형태로 사실과 다르게 맞추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6 라마피테쿠스는 원숭이(ape)에 불과했다.7 (그림 13을 보라)

* 네브라스카인(Nebraska man)의 단지 한 개의 유품은 돼지의 치아로 입증됐다. (그림 14를 보라).

* Eugene Dubois 는 자바인(Java man)을 발견하고 40 년이 지나서, 그것은 큰 긴팔원숭이(gibbon)와 유사함을 시인했다. 또한 Dubois는 같은 장소에서 4 개의 긴팔원숭이 넓적다리뼈를 발견했음에도 보고하지 않았음도 인정했다.   

* 많은 전문가들은 북경인의 두개골은 완전한 사람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목이 잘려지고, 식사(food)로 이용된 원숭이(ape)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9 북경인을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로 분류한 것은 결단코 잘못된 것이었다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생각하고 있다.10   

*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의 최초로 확인된 사지(limb) 뼈들은 최근까지 계속 발견되어져 왔는데, 그들은 분명히 원숭이와 비슷한(apelike) 비율을 가지고 있었으며,11 결코 사람과 비슷한(manlike, Homo) 것으로 분류되어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12    

* 오스트랄로피테신(australopithecines)들은 루이스 리키와 메리 리키에 의해서 유명해졌는데, 이들은 사람하고는 분명히 달랐다. 오스트랄로피테신들에 대한 여러 정밀한 연구에 의하면, 그들의 신체 비율은 사람과 살아있는 원숭이 사이의 중간체가 아니었다.13 그들의 내이골(inner ear bones)에 관한 또 다른 연구에서, 이것들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침팬지와 고릴라의 것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14 루시(Lucy)라고 불리는 105 cm의 키에 몸무게 27 kg의 성인으로 긴 팔을 가진, 한 오스트랄로피테신 화석은 모든 오스트랄로피테신이 직립보행을 한다는 증거로서 처음에 제시되었었다. 그러나 단지 무릎관절(knee joint) 만이 아니라, 루시 전체에 대한 해부학적 연구는 직립보행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15 그녀는 아마도 나무에 매달렸고,16 피그미 침팬지(pygmy chimpanzees)와 유사하였다.17 오스트랄로피테신은 아마도 멸종된 원숭이(ape)로 보인다.18

* 약 100 여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네안데르탈인은 구부정하며, 원숭이 같다는(apelike)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은 관절염과 구루병(rickets)과 같은 뼈 질환을 가졌던 몇몇 네안데르탈인에 기초하고 있다.19 최근에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치아와 X-ray 연구는 그들이 오늘날보다 매우 장수하였으며, 느리게 성장되는 성숙한 사람들이었음을 제시하고 있다.20 오늘날 네안데르탈인, 하이델베르그인(Heidelberg man), 그리고 크로마뇽인(Cro-Magnon man)은 완전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들에 대한 화가들의 그림은 (특별히 그들의 근육이나, 살 부분), 상상에 의해서 그려졌으며, 증거에 의해서 지지되지 않는다.21   

더군다나, 이러한 화석들의 연대측정에 사용되는 기술들은 매우 의심스럽다. (See pages 31-34.) 

 

 

 

 

 

 

 

 

 


 

 

 

그림 13 : 라마피테쿠스(Ramapithecus). 몇몇 교과서에는 아직도 라마피테쿠스가 사람과 원숭이 사이의 중간형태로서 인류의 조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은 1932년에 그림의 왼쪽 위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윗 치아와 두 개의 뼈조각으로부터 결과되었다. 이것은 그림의 오른쪽 위와 같은 사람의 포물선 형태의 아치(parabolic arch) 비슷한 치아 형태로 배치되어졌다. 1977 년에 라마피테쿠스의 완전한 아래 턱이 발견되었다. 턱의 진정한 모습은 포물선 형태가 아니라, 원숭이(ape)의 전형적인 형태인 U자 형이었다.    

 

 

 

 

 

 

 

 

 

 

 

 

 

 




그림 14 : 네브라스카인(Nebraska Man). 화가의 그림은 추측에 의해 그려졌지만, 대중들에게 강한 영향을 끼쳤다. 네브라스카인은 멸종된 돼지의 이빨 한 개에 기초한 잘못된 판단이었다. 그러나 1922 년에 사진이 첨부된 London News는 우리들의 상상의 조상으로서 이와같은 그림을 출판하였다. 물론 어떠한 화석 증거도 여기에서와 같이 벌거벗은 사람이 몽둥이를 들고있는 이러한 그림을 지지하지 않는다.

  


References and Notes

1.'... existing phylogenetic hypotheses about human evolution [based on skulls and teeth] are unlikely be reliable.” Mark Collard and Bernard Wood, 'How Reliable Are Human Phylogenetic Hypothese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Vol. 97, No. 9, 25 April 2000, p. 5003.

2.'Fossil evidence of human evolutionary history is fragmentary and open to various interpretations. Fossil evidence of chimpanzee evolution is absent altogether.” Henry Gee, 'Return to the Planet of the Apes,” Nature, Vol. 412, 12 July 2001, p. 131.

3. Lord Zuckerman candidly stated that if special creation did not occur, then no scientist could deny that man evolved from some apelike creature, 'without leaving any fossil traces of the steps of the transformation.” Solly Zuckerman (former Chief Scientific Advisor to the British Government and Honorary Secretary of the Zoological Society of London), Beyond the Ivory Tower (New York: Taplinger Publishing Co., 1970), p. 64.

* Bowden, pp. 56-246.

* Duane T. Gish, Battle for Creation, Vol. 2, editor Henry M. Morris (San Diego: Creation-Life Publishers, 1976), pp. 298-305.

* Ibid., pp. 193-200.

4. Speaking of Piltdown man, Lewin admits a common human problem even scientists have:

How is it that trained men, the greatest experts of their day, could look at a set of modern human bones - the cranial fragments - and 'see” a clear simian signature in them; and 'see” in an ape’s jaw the unmistakable signs of humanity? The answers, inevitably, have to do with the scientists’ expectations and their effects on the interpretation of data. Lewin, Bones of Contention, p. 61.

* Since 1953, when Piltdown man was discovered to be a hoax, at least eleven people have been accused of perpetrating the hoax. These included Charles Dawson, Pierre Teilhard de Chardin, and Sir Arthur Conan Doyle, creator of Sherlock Holmes.

The hoaxer now appears to have been Martin A. C. Hinton, (?) who had a reputation as a practical joker and worked in the British Museum (Natural History) when Piltdown man was discovered. In the mid-1970s, an old trunk, marked with Hinton’s initials, was found in the museum’s attic. The trunk contained bones stained and carved in the same detailed way as the Piltdown bones. [For details, see Henry Gee, 'Box of Bones ‘Clinches’ Identity of Piltdown Palaeontology Hoaxer,” Nature, Vol. 381, 23 May 1996, pp. 261-262.]

5. Allen L. Hammond, 'Tales of an Elusive Ancestor,” Science 83, November 1983, pp. 37, 43.

6. Adrienne L. Zihlman and J. Lowenstein, 'False Start of the Human Parade,” Natural History, August/September 1979, pp. 86-91.

7. Hammond, p. 43.

* 'The dethroning of Ramapithecus - from putative [supposed] first human in 1961 to extinct relative of the orangutan in 1982 - is one of the most fascinating, and bitter, sagas in the search for human origins.” Roger Lewin, Bones of Contention, p. 86.

8. Java man consisted of two bones found about 39 feet apart: a skull cap and femur (thighbone). Rudolf Virchow, the famous German pathologist, believed the femur was from a gibbon. By concurring, Dubois supported his own non-Darwinian theory of evolution - a theory too complex and strange to discuss here.

Whether or not the bones were from a large-brained gibbon, a hominid, another animal, or two completely different animals is not the only issue. This episode shows how easily the person who knew the bones best could shift his interpretation from Java 'man” to Java 'gibbon.” Even after more finds were made at other sites in Java, the total evidence was so fragmentary that many interpretations were possible.

* 'Pithecanthropus [Java man] was not a man, but a gigantic genus allied to the Gibbons, superior to its near relatives on account of its exceedingly large brain volume, and distinguished at the same time by its erect attitude.” Eugene Dubois, 'On the Fossil Human Skulls Recently Discovered in Java and Pithecanthropus Erectus,” Man, Vol. 37, January 1937, p. 4.

'Thus the evidence given by those five new thigh bones of the morphological and functional distinctness of Pithecanthropus erectus furnishes proof, at the same time, of its close affinity with the gibbon group of anthropoid apes.” Ibid., p. 5.

'The success of Darwinism was accompanied by a decline in scientific integrity ... A striking example, which has only recently come to light, is the alteration of the Piltdown skull so that it could be used as evidence for the descent of man from the apes; but even before this a similar instance of tinkering with evidence was finally revealed by the discoverer of Pithecanthropus [Java man], who admitted, many years after his sensational report, that he had found in the same deposits bones that are definitely human.” W. R. Thompson, p. 17.

* W. R. Thompson, in his 'Introduction to The Origin of Species” by Charles Darwin, refers to Dubois’ discovery in November 1890 of part of a lower jaw containing the stump of a tooth. This was found at Kedung-Brubus (also spelled Kedeong Broboes), 25 miles east of his find of Java 'man” at Trinil, eleven months later. Dubois was confident it was a human jaw of Tertiary age. [See Herbert Wendt, In Search of Adam (Westport, Connecticut: Greenwood Publishers, 1955), pp. 293-294.] Dubois’ claims of finding 'the missing link” would probably have been ignored if he had mentioned this jaw. Similar, but less convincing, charges have been made against Dubois concerning his finding of obvious human skulls at Wadjak, 60 miles from Trinil.

* C. L. Brace and Ashley Montagu, Human Evolution, 2nd edition (New York: Macmillan Publishing Co., 1977), p. 204.

* Bowden, pp. 138-142, 144-148.

* Hitching, pp. 208-209.

* Patrick O’Connell, Science of Today and the Problems of Genesis, 2nd edition (Roseburg, Oregon: self-published, 1969), pp. 139-142.

9. Ibid., pp. 108-138.

* Bowden, pp. 90-137.

* Marcellin Boule and Henri V. Vallois, Fossil Men (New York: The Dryden Press, 1957), p. 145.

10.'[The reanalysis of Narmada Man] puts another nail in the coffin of Homo erectus as a viable taxon.” Kenneth A. R. Kennedy, as quoted in 'Homo Erectus Never Existed?” Geotimes, October 1992, p. 11.

11. Donald C. Johanson et al., 'New Partial Skeleton of Homo Habilis from Olduvai Gorge, Tanzania,” Nature, Vol. 327, 21 May 1987, pp. 205-209.

12.'We present a revised definition, based on verifiable criteria, for Homo and conclude that two species, Homo habilis and Homo rudolfensis, do not belong in the genus.” Bernard Wood and Mark Collard, 'The Human Genus,” Science, Vol. 284, 2 April 1999, p. 65.

13. Dr. Charles Oxnard and Sir Solly Zuckerman, referred to below, were leaders in the development of a powerful multivariate analysis procedure. This computerized technique simultaneously performs millions of comparisons on hundreds of corresponding dimensions of the bones of living apes, humans, and the australopithecines. Their verdict, that the australopithecines are not intermediate between man and living apes, is quite different from the more subjective and less analytical visual techniques of most anthropologists. This technique, however, has not yet been applied to the most famous australopithecine, commonly known as 'Lucy.”

* '... the only positive fact we have about the Australopithecine brain is that it was no bigger than the brain of a gorilla. The claims that are made about the human character of the Australopithecine face and jaws are no more convincing than those made about the size of its brain. The Australopithecine skull is in fact so overwhelmingly simian as opposed to human that the contrary proposition could be equated to an assertion that black is white.” Zuckerman, p. 78.

* 'Let us now return to our original problem: the Australopithecine fossils. I shall not burden you with details of each and every study that we have made, but ... the conventional wisdom is that the Australopithecine fragments are generally rather similar to humans and when different deviate somewhat towards the condition in the African apes, the new studies point to different conclusions. The new investigations suggest that the fossil fragments are usually uniquely different from any living form ...” Charles E. Oxnard (Dean of the graduate School,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Los Angeles, and from 1973-1978 a Dean at the University of Chicago), 'Human Fossils: New Views of Old Bones,” The American Biology Teacher, Vol. 41, May 1979, p. 273.

* Charles E. Oxnard, 'The Place of the Australopithecines in Human Evolution: Grounds for Doubt?” Nature, Vol. 258, 4 December 1975, pp. 389-395.

* 'For my own part, the anatomical basis for the claim that the Australopithecines walked and ran upright like man is so much more flimsy than the evidence which points to the conclusion that their gait was some variant of what one sees in subhuman Primates, that it remains unacceptable.” Zuckerman, p. 93.

* 'His Lordship’s [Sir Solly Zuckerman’s] scorn for the level of competence he sees displayed by paleoanthropologists is legendary, exceeded only by the force of his dismissal of the australopithecines as having anything at all to do with human evolution. ‘They are just bloody apes,’ he is reputed to have observed on examining the australopithecine remains in South Africa.”  Lewin, Bones of Contention, pp. 164-165.

* 'This Australopithecine material suggests a form of locomotion that was not entirely upright nor bipedal. The Rudolf Australopithecines, in fact, may have been close to the ‘knuckle-walker’ condition, not unlike the extant African apes.” Richard E. F. Leakey, 'Further Evidence of Lower Pleistocene Hominids from East Rudolf, North Kenya,” Nature, Vol. 231, 28 May 1971, p. 245.

14.'The closest parallel today to the pattern of dental development of [australopithecines] is not in people but in chimpanzees.”  Bruce Bower, 'Evolution’s Youth Movement,” Science News, Vol. 159, 2 June 2001, p. 347.

15. Fred Spoor et al., 'Implications of Early Hominid Labyrinthine Morphology for Evolution of Human Bipedal Locomotion,” Nature, Vol. 369, 23 June 1994, pp. 645-648.

16. William L. Jungers, 'Lucy’s Limbs: Skeletal Allometry and Locomotion in Australopithecus Afarensis,” Nature, Vol. 297, 24 June 1982, pp. 676-678.

* Jeremy Cherfas, 'Trees Have Made Man Upright,” New Scientist, Vol. 93, 20 January 1983, pp. 172-178.

* Jack T. Stern, Jr. and Randall L. Susman, 'The Locomotor Anatomy of Australopithecus Afarensis,” American Journal of Physical Anthropology, Vol. 60, March 1983, pp. 279-317.

17. Adrienne Zihlman, 'Pigmy Chimps, People, and the Pundits,” New Scientist, Vol. 104, 15 November 1984, pp. 39-40.

18.'At present we have no grounds for thinking that there was anything distinctively human about australopithecine ecology and behavior. ... they were surprisingly apelike in skull form, premolar dentition, limb proportions, and morphology of some joint surfaces, and they may still have been spending a significant amount of time in the trees.” Matt Cartmill et al., 'One Hundred Years of Paleoanthropology,” American Scientist, Vol. 74, July-August 1986, p. 417.

* 'There is indeed, no question which the Australopithecine skull resembles when placed side by side with specimens of human and living ape skulls. It is the ape - so much so that only detailed and close scrutiny can reveal any differences between them.” Solly Zuckerman, 'Correlation of Change in the Evolution of Higher Primates,” Evolution as a Process, editors Julian Huxley, A. C. Hardy, and E. B. Ford (London: George Allen and Unwin Ltd., 1954), p. 307.

'We can safely conclude from the fossil hominoid material now available that in the history of the globe there have been many more species of great ape than just the three which exist today.”  Ibid., pp. 348-349.

19. Francis Ivanhoe, 'Was Virchow Right About Neanderthal?” Nature, Vol. 227, 8 August 1970, pp. 577-578.

* William L. Straus, Jr. and A. J. E. Cave, 'Pathology and the Posture of Neanderthal Man,” The Quarterly Review of Biology, Vol. 32, December, 1957, pp. 348-363.

* Bruce M. Rothschild and Pierre L. Thillaud, 'Oldest Bone Disease,” Nature, Vol. 349, 24 January 1991, p. 288.

20. Jack Cuozzo, Buried Alive: The Startling Truth about Neanderthal Man (Green Forest, Arkansas: Master Books, 1998).

* Jack Cuozzo, 'Early Orthodontic Intervention: A View from Prehistory,” The Journal of the New Jersey Dental Association, Vol. 58, No. 4, Autumn 1987, pp. 33-40.

21. Boyce Rensberger, 'Facing the Past,” Science 81, October 1981, p. 49.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2/e29/e29c23.htm

          http://www.creationscience.com/

출처 - CSC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14

참고 :

Omniology
2004-07-24

추상적인 세속 인본주의의 '창시자들'


      (이 모든 복원은 추론적이고, 편견적 상상력을 가진 사람의 작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진실된 과학적 법의학은 진실에 대한 탐구에서 커다란 '믿음의 도약'을 허락하지 않는다.)  

 

 

 

 

 

 

 

 

 

 

 

 

(발자국에 관한 흥미로운 점은 그들 모두는 분명한 Homo sapien의 발자국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추리는 화석기록에서 발견된 발자국 모두는 해부학적으로 현대인과 완전히 동일하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 Lucy) 든지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의 것이든지 그것들은 현대인의 것과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에게는 혼란스럽게도, 거기에 고릴라, 침팬지, 원숭이의 발자국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시기든지, 어떤 종류의 화석기록이든지 원숭이로부터 사람으로의 전이형태의 발자국은 명백히 없다. 이것에 대한 단순한 이유가 있다. 인간은 항상 인간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것은 창조론적 입장에서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창조론은 이것을 예견하고 있다. 처음 6명의 머리와, 처음 4명의 긴 팔을 제외하고, 복원된 몸, 다리, 발은 우리의 행성을 걸었던 것으로 발견될 수 있다. (비록 오늘날 우리의 이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발자국들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보라. 발자국 형태의 화석기록에서 완전한 현대인의 발자국이 아닌 것이 발견되거나, 보고되어 출판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omniology.com/METAPHYSICAL-PATRIARCHS-OF-HUMANISM.html

출처 - The California Institute of Omniology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81

참고 : 390|1441|1440|1454|2712|3093|704|1452|1446|879|2523|1457|577|576

Omniology
2004-07-24

“폭로된” 추상적 원숭이 인간의 복원 해부학

 

 

 

 

 

 

 

 

 

 

 

 

 

 

 







이것은 대진화론적 편견으로 가득찬 내셔날 지오그래픽스의 관점이 어떻게 예술가들의 작업 결과에 영향을 미치어 방향을 결정하게 하는 지를 보여주는 뛰어난 사례이다.  

내셔날 지오그래픽스의 예술팀은 7 개의 불완전한 뼈 조각(왼쪽)으로부터 매우 유명하고, 존경받는 위치에 있으며, 잘 팔리며, 잘 알려진 잡지에, 경쟁하고 있는 4 명의 후보를 탄생시켰다.

그 뼈들이 '여성'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의 것인지는 이 '후보들' 이 말하고 있다. (그 뼈들이 어떻게 여성의 것임을 알았는지는 신비이다.) 그들은 또한 '그녀' 가 2백만 년 전의 진화론적 인류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 유인원의 모습' 으로 보여지고 있다.

그들의 미래의 고용주를 기쁘게 해주려는, 이러한 예술가들은 당신이 여기에서 보는 4 명의 '다른' 조상들을 '독립적으로'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가이드라인' 에 기초하여, 결과들은 미리 결정되었고, 직장을 계속 가지기를 원하는 예술가들은 당신이 보는 결과들을 만들어 내었다. 이것은 순수하고, 그리고 온전한 '경험적(실험적) 과학'이 아니다.

만약 위에서와 같이 적은 뼈들이 미지의 변사체나 시신으로부터 얻어졌다면, 그리고 법률적으로 고용된 법의학자들에게 그 유골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를 밝혀내라고 한다면, 그들이 무엇이라고 말할 것 같은가? 그들은 '불가능(impossible)' 이라고 말할 것이다.

The California Institute of Omniology는 이러한 추상적인 관점을 받아들이는 미국국립지리협회(National Geographic Society)와 문제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이 사실로서, 또는 과학적으로 정확한 것으로서 비쳐지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한다. 지성적으로 정직하다면, 경험적(실험적) 증거가 부족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믿는다(We believe)” 라는 말을 덧붙여야할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omniology.com/JackalopianArtists.html

출처 - The California Institute of Omniology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80

참고 : 390|1441|1440|1454|2712|3093|704|1452|1446|879|2523|1457|577|576

Omniology
2004-07-24

내쇼날 지오그래픽스가 복원한 원숭이(중간형태)인간 미스 호모 에렉투스

 

     내쇼날 지오그래픽스의 원숭이인간 복원 팀은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의 여성 얼굴을 복원하였다. (위 그림의 맨 왼쪽). The California Institute of Omniology의 복원 팀도 호모 에렉투스의 여성 얼굴을 다른 두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중간과 오른쪽)

 

 

 

 

 

 

 

 

 

독자는 이 복원된 것들 중 어느 것도 경험적인(관찰된) 과학적 사실들에 의하지 않았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들은 순전히 비경험적이고, 주관적이며, 추상적인 믿음의 소산물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에 상상으로 이루어진 유사과학(imaginary pseudo-science)이다.

멸종된 화석 생물체에 대한 모든 고인류학적 복원에는 5 가지의 완전히 임의적이고, 주관적인 문제점들이 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임의적이고 주관적으로 결정한다.

1. 그들을 hominid, hominoid, or humanoid 로 분류하는 것.

2. 피부색, 피부조직(털이 있는지 없는지)

3. 모발 색과 타입

4. 근육 정도와 지방조직 양

5. 눈 색깔

만약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당신이 도서관에 가서 복원된 조상들에 대해 다른 저자들에 의해서 쓰여진 책 3, 4 권을 살펴보고 도전을 받도록 하게 할 수 있다. 그러면 당신은 이것이 사실임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를 클릭하여 (http://www.omniology.com/LucySkeletons.html) 루시에 대해서 일어난 성체 복원과, 중간형태의 해부학적 복원(http://www.omniology.com/Jackalopianism.html)에 대해 살펴보라.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omniology.com/Jackalopian-Homo-Erectus.html

출처 - The California Institute of Omniology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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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390|1441|1440|1454|2712|3093|704|1452|1446|879|2523|1457|577|576

Omniology
2004-07-24

원숭이(중간형태) 인간으로 복원된 네안데르탈인


  

      이 페이지의 내용은 1973년 발간된 Time-Life Books 'The Neanderthals' 로부터 취해졌다.

아래 오른쪽은 ”인류의 기원; 우리의 조상을 찾아서 (Human Origins; The search for our beginnings)” 라는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해부학적으로 복원에 대한 정직하고 편견이 없는 평가에 의하면, 이것은 진실된 네안데르탈인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글의 처음 몇 문장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그들은 인류와 동물의 조상을 '복원' 하는 데에 진화론이라는 추상적인 과학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한 가지는 이러한 복원들이 서로 그렇게 다른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이것들은 전혀 ”해부학적으로 공인된 면허를 가진 예술가"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둘 다 해부학적으로 주관적인 예술가들의 순수하고 단순한 작품들이다. 예술가들이 다른 해석을 할 때, 최종 작품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한 사람은 이것은 "현대적으로 보여 오늘날의 인류와 친척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은 이것은 ”사람보다는 원숭이에 가까운 생물체” 라고 말한다.   

아래는 이 주관적인 그림들의 또 다른 예이다. 오른쪽 위의 Australian aborigine의 그림을 주목해 보라. 그는 이 페이지의 복원된 몇몇과 매우 유사하게 보인다. 그렇지 않은가? 또 다른 흥미로운 관측은 그의 그림 아래에 기술되어 있다.

"Homo sapiens sapiens 가 지리학적으로 인종이 나뉘어지는 것은 임의적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분명한 차이점이 없기 때문이다."

원숭이인간으로 복원된 조상은 '임의적' 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화석 기록으로 가장 많고 완벽한 뼈화석들을 제공하고 있는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진실이다. 많은 뼈조각들로부터 인류의 추상적인 조상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매우 큰 '믿음의 주관적 도약'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우리가 원숭이(중간형태)인간의 해부학적 복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우리의 웹페이지 'Lucy's Fraudulent Frame, Lucyism & Evolucyism'를 본다면, 당신은 이것이 사실인 이유를 알게될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omniology.com/NeanderRecons.html

출처 - The California Institute of Omniology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78

참고 : 6190|5525|5025|5918|5819|5528|4682|4820|4410|6127|6052|4812|5884|5818|5802|5792|5796|5768

미디어위원회
2004-07-24

60 여개의 두개골 조각들과 하나의 팔뼈로 복원된 

원숭이(중간형태)인간 럭키

 

      위에 있는 이 성숙한 몸체의 복원은 경험적인 과학의 입장에서 볼 때, 루시(럭키의 연인)보다도 더욱 불합리하다. 단지 60 여개의 두개골 조각들과 한 개의 큰 팔뼈(척골, ulna)을 가지고 사람들은 이것을 남성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stralopithecus afarensis)로 추정하고 보고하였다.

1996년 3월호 내쇼날 지오그래픽스에 실려있는 이 화석에 관한 주변 사실들은 럭키가 얼마나 임의적으로 복원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두개골 조각들은 444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반면에 하악골(mandible), 척골(ulna), 그리고 전두골(frontal bone) 조각은 438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루시의 화석 유물들에서와 같이, 럭키의 화석 머리는 하나 이상의 개체의 것으로부터 임의적으로 복원되었다. 럭키는 경험적인 과학적 사실에 의한 소산물이 아니라, 추상적인 진화론적 편견에 의한 소산물이다.

여기에 그려진 또 다른 사기(deception)는 럭키와 루시가 '같은 시대에 부부' 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들의 진화론적 조상들로 입증됐다는 것이다. 사실 이 내쇼날 지오그래픽스 잡지에서 루시는 럭키보다 18만년(9천 세대) 오래되었다고 하였었다.

이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라. 그들의 뼈들은 함께는 물론 아니고, 조금도 서로 가까이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Omniology은 과학적 연구의 어떠한 분야도 포함하는 모든 분야의 과학적 상호관계를 다룬다. 이 경우에서, 인구증가율의 통계적 공식은 P=Po-e^rt 이다. 이것은 럭키의 출생에 앞서서 태어났을 인구의 수를 결정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위의 공식은 Kilgore College의 Pre-Calculus Mathematics text, 4th ed., by Karl J. Smith, pg. 200 에서 인용했다.)

이 공식에서 인구증가율(r)을 정상적인 2%가 아니라, 1%의 반인 0.5%로 낮추어 가정했다. (Po=2, e=2.718, r=0.005, t=180,000. 성능 좋은 계산기를 사용하여)

        : 0.005 × 180,000 Enter = 900.  2.718^900 Enter × 2  Enter 하면,

답은 1.33 × 10^391 이다. (1.33×10391 )

간단히 말해 럭키가 출생하기 전에 아파렌시스 조상들의 수는 133 다음에 0 이 389 개가 붙어 있는 수만큼 살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 수는 다음과 같다.

133,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00


만약 당신이 이 해석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면, 아래의 관측되었던 인구증가율과 이것을 비교해 보라. 웹사이트 http://infoplease.com 에는 세계 인구증가율이 나와있다.

1804년에 10억, 1927년에(123년 후) 20억, 1960년에(33년 후) 30억, 1974년에(14년 후) 40억, 1987년에(13년 후) 50억, 1999 년에(12년 후) 60억 명이다.

과거 195년 동안 일어난 전쟁, 기근, 역병 등 모두를 고려하여도, 세계인구는 제한된 기간 안에 10억에서 60억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혼자 한 번 계산해 보라. 이런 증가율로 지구의 육지 면적 57,510,000 평방마일에 사람이 가득 차는데 얼마의 기간이 걸리겠는가? 인류의 진화라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며, 불합리한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우스꽝스러운 인류 진화의 또 다른 문제점은 그 오랜 기간을 살아왔던 모든 인류의 화석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하는 점이다. 만일 루시의 가족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오래 되었다면, 인류 조상의 화석들은 적어도 행성 지구의 모든 곳에서 발견되어야만 한다. 진화론자들의 말처럼 그들 모두가 아프리카의 한쪽 끝의 일부 지역에서만 살았고 죽었을 수 없다.

매우 드물게 루시 가계들의 화석들이 단지 홍수 퇴적물에서 발견되는 것은 보다 합리적이고 보다 정확하게 창조론적인 젊은 지구, 전 지구적 홍수 개념과 일치한다. 

 

 

 

 

 

 

 

 

 

 

 

 

 

 

 

 

 


(내쇼날 지오그래픽스의 설명은 매우 중요하다. 거기에도 루시 가족의 화석 모두는 과거에 일어난 홍수의 결과로 묻혔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적 관점과 창조론적 관점 사이의 차이는 단지 홍수의 규모가 지역적이었는가 아니면 전 지구적이었는가 하는 점과, 과거에 홍수가 일어난 시점이 수백만 년 전인가 아니면 수천 년 전인가 하는 점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omniology.com/Skullduggery.html

출처 - The California Institute of Omniology

미디어위원회
2004-07-24

사기의 한 세기 : 필트다운인 사기의 발견 50주년

(A century of fraud

: 50th anniversary of the discovery of the Piltdown man fraud)

Michael Matthews 


     진화론적 과학자들은 그 사기극을 잊어버리려고 하거나, 오히려 그것을 교활한 방어적 이야기로 바꾸어버린다. 이번 주말에 영국 BBC-TV는 필트다운인 유인원,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기” 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할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그들이 믿었던 이 바보같은 이야기에 대한 기록들이 역사의 자갈 구덩이에 잊혀지기를 기대한다. 

실제, 역사 수정론자들은 필트다운인 사기는 진화 ‘과학’의 힘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학자들이 실수와 오류의 잡초들을 제거하여, 스스로 수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과학자들이 그러한 분명한 사기를 발견하는데 왜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한 대답은, 과학자들은 인간이 진화했다는 믿음과 잃어버린 고리를 볼 수 있다는 믿음을 철저하게 맹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와 기원에 대해 성경적 기록을 믿고 있는 사람들은, 필트다운인 사기는 "20세기 진화론적 속임수의 가장 대표적인 예” 로서 간주할 수 있다. 위조된 사람 두개골과 화석처럼 보이기 위해 거칠게 손질된 오랑우탄 턱뼈는, 1953년 사기극이 폭로될 때까지 40여년 동안 잃어버린 고리로서, 그리고 인간 진화의 증거로서 대대적으로 선전되었다.

영국을 최근에 방문한 AiG-US의 회장인 켄 햄(Ken Ham)은, 필트다운의 작은 마을 근처에 위치한 필트다운인이 발견된 자갈구덩이가 있는 유명한 장소를 방문하였다.

 

두개골과 턱뼈가 발견된 자갈 구덩이 (gravel pit)

 

진화론자들의 속임수에 대한 수치스런 기념비. (비문은 아래 링크 주소 클릭)

 

필트다운인 사기라는 이름이 주어진 근처 마을.

 

.오명으로 이익을 내고 있는 한 호텔(hotel/pub)

그것을 개인적인 성질의 것으로 취급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체 사건을 잊어버리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필트다운인의 진정한 교훈을 기억하기 위한 좋은 시간.

제 50 주년은 황당한 사건의 교훈을 기억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인간의 진화에 관한 논쟁은 정말로 과학에 관한 것이 아니라, 출발점에 관한 것이다. 만약 과학이 올바른 출발점에서 (오류가 없고, 역사가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시작하였다면, 결코 필트다운인과 같이 추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유인원의 후손이었다는 실제적인 증거가 있는가? 핵켈의 배아 그림, 가지나방 이야기, 깃털 있는 공룡 시조새에 관한 내쇼날지오그래피의 사기 등 여러 똑같은 사기들이 속기 쉬운 공공학교에 침투되어 가르쳐지고 있다.  

진화론의 최고의 증거들은 계속 바뀌고 있다. 스코프스의 원숭이 재판에서 필트다운인은 인간 진화의 주요한 증거였다. 진화론적 과학자들은 계속 틀리고 있지만, 성경은 결코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2003/1118piltdown.asp

출처 - AIG, 18 November 2003.

미디어위원회
2004-07-24

루시는 직립보행을 했는가?

(Did Lucy walk upright?)

by Michael J. Oard, Ph.D.


      20년 이상 동안, 루시(Lucy) 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는 우리들의 처음 조상 중의 하나로 간주되어 왔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립보행을 했다고 추정되었기 때문이었다.1  직립보행의 중요성은 이디오피아 하다르(Hadar) 근처에서 루시를 발견했던 발견자 도날드 요한슨(Donald Johanson)의 말에도 반영되어 있다.

 ”1973년에,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떠나 있을 때, 나는 우리의 조상들이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인 큰 뇌를 갖기도 전인 350 만년 전에, 거의 직립보행을 했었음을 의심없이 입증할 수 있는 사람의 것처럼 보이는 무릎관절 (humanlike knee joint) 을 발견했다.” 2

비록 이족보행(bipedalism)의 기원이 미스테리로 남아있지만, 진화론자들은 똑바로 서서 걷는다는 것을 매우 중요한 위치로 두었고, 그것을 사람의 조상으로 정의하는데 사용하였다.

”이족보행은 전통적으로 유인원(호미니드, hominids)이 다른 영장류들과는 구분되는 기본적인 적응현상으로 간주되어 오고 있었다. 화석 증거는 410 만년 전, 그리고 아마도 더 일찍 호미니드는 두 발로 걷는 것에 적응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화석 기록은 이족보행의 기원에 대해서는 거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3

그래서 원숭이와 같은 몇몇 화석 생물체들이 이족보행을 했는지 안했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루시의 무릎 관절(knee joint)의 상태와 관계없이, 루시는 몇몇 살아있는 원숭이들(apes)의 특징적인 모습인 분명한 4족 보행인 너클 워커(knuckle-walker4, 앞다리의 지관절의 등을 땅에 대고 걷는 모습)의  (직립보행과는 분명히 다른) 형태를 보인다는 새로운 증거가 나왔다. 리치몬드(Richmond)와 스트레이트(Strait)는 살아있는 너클 워킹(knuckle-walking, 앞다리 지관절의 등을 땅에 대고 걷는 걸음)을 하는 원숭이(apes), 침팬지, 고릴라의 요골(distal radius)에 대한 4 개의 골격 형태를 확인하였다. 그들은 또한 루시를 포함한 초기의 두 ‘호미니드'에서 이와 유사한 골격 형태를 확인하였다.

”UPGMA 밀집 도표(clustering diagram)은 A. anamensis, A. afarensis와 너클 워킹을 하는 아프리카 원숭이의 요골들 사이의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이 호미니드들이 너클 워커가 가지는 손목관절(wrist) 형태를 보유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5

인터뷰에서, 리치몬드는 살아있는 너클 워커의 손목관절의 특성들을 분석했다고 말했다. 그와 스트레이트는 자연사 박물관에서 복도를 따라 걸으며 모형 캐스트들을 조사하였다.

  ”나는 진열장을 따라 걷다가 루시 앞에 이르렀다. 얍.... 루시는 전형적인 너클 워커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6   

이것은 루시를 포함하여 실제로 초기 인류의 조상이라고 추정되는 것들은 사실 너클 워커였고, 직립보행을 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강력한 증거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전의 이족보행의 증거들은 건전하며, 그리고 이들 조상들은 단지 이전 조상들이 가지고 있던 너클 워킹의 모습을 단지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루시가 가지고 있지 않은 잃어버린 너클 워킹의 약간의 형태학적 모습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6 그러나 이 모습들이 살아 있는 너클 워커에 항상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루시가 너클 워커였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연구자들은 루시가 너클 워커였다는 사실을 거부하도록 거의 강요당한다. 루시가  너클 워커가 아니었다면, 루시는 똑바로 서서 걷는 것과, 나무에 오르는 것과(긴 팔과 긴 손가락에 근거하여), 너클 워킹에 모두 적응되었어야만 한다. 여기에 진화론적인 어려움이 있다. 어떻게 루시는 세 가지의 분명히 구별되는 행동적인 특성들을 모두 가지고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게다가, 이러한 특성들은 그들의 생활양식(lifestyle)과 관계되어 결정되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기능을 하기위한 것이 아니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다는 것이다.7


저자들은 너클 워킹이 침팬지와 고릴라에서 평행 진화에 의해 독립적으로 기원됐는지,  아니면 인간의 추정 조상, 침팬지와 고릴라 등이 공유하고 있던 특성이었는지를 알아서 이 새로운 정보를 계통의 파생 분석(cladistic analysis)에 하나의 좋은 점으로 사용한다. 리치몬드와 스트레이트는 지금 후자의 가설을 주장한다. 분자적 DNA 비교(이전과는 모순된)는 지금 이 새로운 파생 분석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루시가 너클 워킹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발견은 가상의 호미니드 계통발생(hominid phylogeny)에 혼란을 가져다 주었다. 루시는 A. africanus의 조상으로 생각되고 있다. 왜냐하면 루시의 두개골은 침팬지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새로운 A. africanus 종의 발 뼈와 아래 다리는 기대에 어긋나게 루시보다 더욱 원숭이(ape)를 닮았다.또한 A. africanus는 루시보다 더욱 원숭이 같은 사지 비율(limb proportions)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A. africanus는 리치몬드와 스트레이트가 루시에게서 발견했던 너클 워킹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신체의 다른 각 부분들은 각기 다른 진화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리치몬드와 스트레이트의 작업은 그림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A. africanus가 약간의 너클 워킹의 모습을 보유했다는 것을 제시한다. 그러나  A. africanus 는 너클 워킹을 하지 않았다. 일련의 계통발생 관계(phylogenetic relationships) 중의 하나로 두개골을, 그리고 서로의 두개 골격(단지 skull)을 더 이상 비교할 수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두개골 외의 다른 부분들은 같은 계통발생 과정을 지지하지 않을 수도 있다.” 8

전혀 진화론적 관계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인가? 이들은 모두 독특한 멸종된 원숭이란 말인가?     

계통발생론(phylogenies)에는 많은 주관적인 판단들이 개입된다는 인상을 받는다. 또한 사람들은 글들을 읽으면서, 글 속에는 진화론적인 관계를 결정하도록 특성들이 주관적으로 선택되는 듯한 느낌을 알 수 있게 된다. 하나의 유사한 특성이 진화와 관계될 수 없다면, 그것은 단순히 평행진화 또는 수렴진화(parallel or convergent evolution)에 의한 것으로, 다른 말로 가상의 유사환경으로 가정되는 것이다.

”아듀 루시 (Goodbye, Lucy)” : 과학적 발견들은 루시를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가장 중요한 예로서 간주했던 진화론자들의 가정이 완전히 사실무근임을 밝혀냈다. 유명한 프랑스의 과학 잡지인 Science et Vie는 1999년 2월호에 ”Goodbye, Lucy” 라는 표지 제목으로 글을 실으면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사람의 조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References

1. Johanson, D.C. and Edey, M.A., Lucy: The Beginnings of Humankind, Simon and Schuster, New York, 1981.

2. Johanson, D. and Shreeve, J., Lucy’s Child: The Discovery of a Human Ancestor, William Morrow and Company, Inc., New York, p. 19, 1989.

3. Richmond, B.G. and Strait, D.S., Evidence that humans evolved from a knuckle-walking ancestor, Nature 404 (6776): 382, 2000.

4. Richmond and Strait, Ref. 3, pp. 382–385.

5. Richmond and Strait, Ref. 3, p. 383.

6. Stokstad, E., Hominid ancestors may have knuckle walked, Science 287 (5461): 2131, 2000.

7. Collard, M. and Aiello, L.C., From forelimbs to two legs, Nature 404 (6776): 340, 2000.

8. Collard and Aiello, Ref. 7, p. 339.

  

*참조 : Lucy Was Buried First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3/n2/lucy-buried-first

No more love for Lucy?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17.pdf

Australopithecines—the extinct southern apes of Africa: a fresh light on their statu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4_3/j14_3_91-99.pdf

The ‘Lucy child’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8-9.pdf

These apes were made for walking: the pelves of Australopithecus afarensis and Australopithecus africanu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2/j20_2_104-112.pdf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tj/v15/i2/lucy.asp

출처 - TJ 15(2):9–10, August 2001.

Michael D. Lemonick
2004-07-24

Time 지 기사 번역 모음 1 

- 인간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TIME 94년 3월 14일자 기사 : Cover Story

새로운 증거는 최초의 인간이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아프리카를 떠났음을 알려주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인간)는 한 때 여러 곳에서 진화된 것인가?


인간을 다른 동물들로부터 구별할 만큼 중요한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언가(空言家)들은 이 차이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인간을 도구와 이성, 불을 사용하고 웃을 수 있으며 기타 여러 가지 표현을 할 수 있는 동물로 묘사한다. 이 중에서 다른 것보다 인간을 잘 묘사한 말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은 아주 심각하게 그리고 끝없이 자신의 기원에 대하여 탐구하는 동물이라는 표현이다. 1856년에 발굴된 네안데르탈인 뼈의 발견을 시작으로 고고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아프리카, 유럽 그리고 아시아 지역을 돌아다니며 발굴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우리의 존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대답을 해줄 화석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인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을까? 만약 이 주제에 대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책과 문서들이 어떤 사실을 알려준다면, 비과학자들도 전문가들처럼 그 해답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 방영된 인간 기원의 탐사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은 지난주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 1세기 동안의 발굴에도 불구하고, 화석기록은 정말로 너무나도 부족하다. 매우 작은 실마리를 가지고 있는 단순한 뼈들조차도 우리가 생각한 것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화석들은 모든 것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사실상 모든 주된 발견들은 기존의 생각과 크게 달라서 심한 논쟁 가운데 과학자들은 새로운 이론들을 만들 필요를 느끼게 된다.

지금 이런 상황이 다시 발생하고 있다. 지난 2주 동안에 발표된 발견들은 인류학의 기초를 흔들면서 일부 놀랄 만한 가능성들을 일으키고 있다. 인류의 조상들은 과학자들이 전에 추측했던 것 보다 빨리 인류의 발상지인 아프리카를 떠났다. 인간은 한 장소에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장소에서 진화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종인 호모 사피엔스는 예측했던 것보다 더 오래 전에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 주장들의 일부분이라도 사실로 증명이 된다면, 학자들은 인류의 진화에 대해서 책을 다시 써야 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왔고, 우리가 누구인지의 이야기에 대해 근본적으로 바꿔서 알려야 할 것이다.

최근에 실린 Nature지의 논문에서, 중국과학자들은 10년 전에 중국에서 현대인처럼 보이는 인간의 두개골을 발견했으며, 이 두개골은 적어도 지난날 세계 도처에서 발견된 다른 Homo sapiens보다 두 배 가량 오래된 20만년 정도되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게다가, 두개골의 특징이 현재 살고 있는 아시아인의 특징과 닮았다. 여기에는 큰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현대인은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믿었던 것처럼 아프리카에서 진화된 것이 아니라, 지구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Nature지의 논문은 경쟁지인 Science지에 실린 더 놀랄만한 논문이 발표된지 한 주 후에 발표된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연구자들은 자바섬의 두 장소에서 발견된 두개골 파편 화석의 연대를 다시 측정했다. 초기에는 백 만년으로 해석된 것이 이번에는 약 2백만 년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Homo erectus로 알려진 종으로부터 유래되었다. 호모 에렉투스는 현대의 인간처럼 보이는 최초의 영장류로 최초로 불을 사용하고 석기 도구를 정교하게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 버클리 대학교의 인류학자인 F.Clark Howell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놀랄 만한 일이며 어떠한 사람도 그와 같은 시대를 예측하지 못했다.”

만약 자바섬의 증거가 사실이라면, 원인(原人)은 그들의 고향인 아프리카를 수십 만년 전에 떠난 것을 의미한다. 교과서에는 그들이 아프리카를 떠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발전된 석기도구를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되어있는데, 이 도구가 개발되기 전에 이미 그들은 아프리카를 떠났으며, 이 시기는 사람들이 믿었던 것보다 빠른 시기이다. 이것은 또한 호모 에렉투스가 서로 다른 두 종으로 진화하기에 충분한 시간임을 의미한다. 하나는 아프리카인 또 하나는 아시아인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과(科)의 아프리카쪽이 현대인으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아시아인쪽은 무엇인가? 그들은 모두 멸종했는가? 또는 중국에서 발견된 새 증거가 제안하는 것처럼 호모 사피엔스를 발생시켰을까?

이 질문들에 대해 대답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한다. 확실한 증거는 고인류학 분야가 매우 논쟁적이기 때문에 나오기가 쉽지 않다. 20만년 가량보다 더 오래된 화석의 연대를 직접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운 좋게도 많은 표본들이 시대별로 쌓여있는 퇴적암에서 발견되었다. 암석층의 연대를 측정하는 방법을 통해, 과학자들은 암석층 안에 포함된 화석들의 대략적인 연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 방법들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특별히 20만년 된 중국의 두개골은 연대 측정기술이 아직도 실험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 사실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확신은 인도네시아의 호모 에렉투스 화석의 연대를 통해 더욱 강해졌다. 이 팀의 리더들이 분석을 했는데 그들은 과거로부터 연대를 측정하는 지구연대학의 문학석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버클리에 있는 인간기원연구소(IHO)의 Carl Swisher 과 Garniss Curtis 이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Alan Walker는 초기 인류에 대해 전문가로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IHO는 세계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다.” Swisher 와 Curtis가 연구한 뼈들은 지질학적 힘이나 침식에 의해 그들의 본래의 위치에서 벗어날 경우가 항상 생기고, 결국 화석 자신보다 더 오래된 침전물 안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아마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표본들은 서로 다른 장소로부터 가져왔기 때문이다. Switch는 다음을 지적한다. ”두 장소에서 같은 종류의 오류를 당신이 얻게 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결국 피할 수 없는 결론은 호모 에렉투스가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약 백 만년정도 빠르게 아프리카를 떠났다는 것이라고 Swisher은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이 발견 때문에 인간의 기원이라는 이 복잡한 이야기를 어떻게 바꿀지 결정하기 위해 허둥대고 있다. 과학자들이 화석기록에 대해 더욱 연구할수록, 원숭이가 인간으로 되는 진화가 단순한 변이가 아님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아마도 많은 잘못된 시작으로 이제는 궁지에 몰린 것 같다. 어느 때인가 세계의 일부지역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Hominid 종들이 생존을 위해 경쟁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투쟁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벌어졌을 것이다. 현대의 호모 사피엔스는 명백하게 지능적인 존재를 위해 필수 불가결하게 설계된 것은 아니다. 이 종은 여러 경쟁적인 분류 중의 하나로 보인다. 그것은 오늘날 진화론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종이다.

지구를 지배했던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이 언제 어디서 출현했는지에 대한 많은 질문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기는 하지만, 인간의 조상들은 4백만년 전에 거의 확실하게 아프리카의 우거진 숲으로부터 왔다. 따뜻한 기후는 적합했고, 동물도 풍부했으며, 그곳은 가장 오래된 호미니드 화석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1974년에 오랫동안 찾아왔던 원숭이와 인간사이의 '잃어 버린 고리(Missing Link)'가 발견되었다. 현재 IHO의 책임자인 도날드 요한슨(Donald Johanson)이 이끄는 탐험대는 에디오피아로 파견되어 뛰어난 여러 고대 원시 두개골 조각들을 열심히 모았다. 비록 두개골의 많은 부분을 포함한 뼈의 60%정도 가량이 손실되어 있었지만, 과학자들은 동물들이 3피트 6인치 정도로 컸다고 말했다. 그것은 호미니드로서는 너무 짧은 것처럼 보였지만, 동물은 모든 중요한 인간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 존재했다고 알려진 다른 원시 종들과는 다르게, 이 생명체는 완전히 수직으로 걸었다. 어떻게 연구자들은 알았을까? 그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무릎 관절은 동물들은 완전히 다리를 곧게 펼 수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의 침팬지와 고릴라를 구별시켜 주는 비능률적인 O자형 다리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이 작은 호미니드는 암컷으로 추정되었고, 요한슨은 그녀를 루시(Lucy)라고 이름 붙였다. (그가 그의 텐트에서 처음 화석을 점검하던 동안에, 빛나는 하늘아래 비틀즈의 루시가 그의 카세트에서 연주되고 있었다.)

과학적인 이름이 팝송으로부터 유래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루시에게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 라는 매력적인 이름이 주어졌다. 1970년대 중반 유명한 고고학자인 메리 리키(Mary Leakey)가 이끈 팀이 탄자니아에서 발견한 잘 보존된 발자국을 포함해서 점점 더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어졌다. 응고된 화산재에서 형성된 발자국들은 루시와 그녀의 동료들이 인간처럼 걸었음을 확증하고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표본 중의 일부는 약 390만년 가량으로 추정되며 그들은 가장 오래된 호미니드 화석들이었다.

루시가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였다는 마지막 단서는 요한슨 팀이 조각그림처럼 선사시대의 화석조각을 모아서 상당히 완벽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두개골을 완성하자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 찔러 넣은 턱과 침팬지 크기의 뇌를 가진 것으로 보아 인간보다는 원숭이와 더 닮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들 짧은 생명체들(수컷은 5피트정도 크기이다.)은 아마도 일반적인 원숭이보다 더 똑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직립자세와 두발로 걷는 것은 그들에게 손이 자유로운 혜택을 주었고 더 효율적으로 음식을 모을 수 있게 해 주었을 것이다.

이것은 적어도 한 가지 이론이다. 자연선택의 법칙 아래에 있는 어떤 요인들이 루시와 그의 동료들을 번성하게 했으며 그들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였다. 과거 300만년에서 2백만년 사이에, 소수의 건강한 후손들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로 부터 생겨났고, 직립원인들의 전체적인 몸은 루시와 닮았으나, 구체적인 뼈의 구조는 달랐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파란트로푸스 로부수투스(Paranthropus robustus),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Paranthropus boisei)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번성했다. 그러나 진화의 단계 중에 두 파란트로푸스 종은 결국 사라져 갔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아서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그 다음 형질들을 일으켜주었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또는 ”손재주 있는 사람(handy man)”이라고 불려지는 종이다. 약 250만년 쯤에 출현한 새로운 호미니드는 아마도 그 조상들과는 외모가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다소 큰 뇌를 가졌다. 그리고 아마 도구를 만들 수 없었던 다른 호미니드들의 지식이 쌓임에 따라, 호모 하빌리스는 도구를 만드는 방법을 최초로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다.

초기의 원인(原人)도 역시 땅을 파는 데 사용한 뿔과 뼈, 흙더미에서 흰개미를 잡기 위한 막대기 등의 도구를 사용했다. 그러나 호모 하빌리스는 도구를 바위에 두들겨서 유용한 모양으로 만들었다. 아마도 이 도구는 인류학자들이 한때 생각한 것처럼 사냥에 사용된 것은 아닌 듯하다. 평균적으로 호모 하빌리스는 1.5m보다 작았고, 100파운드보다 작은 무게였다. 그래서 이들은 아프리카의 자연 속을 뛰어다니는 사자와 표범과는 거의 경쟁할 수가 없었다. 대신에 호미니드들은 거의 확실하게 청소부의 역할을 했다. 즉, 육식동물들이 먹다 남은 고기와 함께 대부분 채식을 했다. 하이에나와 자칼과 같은 다른 청소부들은 초기 인간보다는 강하고 거칠었다. 그러나 호모 하빌리스는 육식동물의 습성을 예상할 수 있는 지능을 가졌던 것 같고, 아마도 나머지를 빠르게 도살하고, 안전하게 가지고 돌아올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선사시대 아프리카의 가혹한 삶에 적응하면서 호모 하빌리스들은 50만년 이상 한 종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그들 중의 한 그룹은 2백만년 전쯤에 키가 크고, 강하고 똑똑한 인간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평균적으로 5피트 6인치 정도의 키를 가진 호모 에렉투스(Homo eretus)는 목 아래는 현대 인간과 거의 구별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목 위로는 이들은 여전히 원시인이었다. 두개골은 고릴라나 침팬지의 것과 비슷하게 평평한 이마와 돌출한 눈두덩을 가지고 있었다. 턱뼈는 턱과 닮은 어떤 암시도 주지 않고 있다. 뇌는 해가 지날수록 커져갔지만, 최초의 성인 Homo erectus는 아마도 현대의 4살짜리 아기보다는 작은 뇌를 가졌던 것 같다. 그렇지만 4살먹은 사람이 창조성과 이성을 통한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음을 모든 사람들은 알고 있다.

호모 에렉투스는 특별히 성공적인 이동 그룹이었으며 대단히 여행을 잘 했다. 왜냐하면 실제 이 종의 화석들이 본래 고향인 아프리카로부터 수천마일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1890년대에 모험심이 많은 네덜란드 내과의사 유진 듀보아(Eugene Dubois)는 인도네시아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 군대에 지원했었다. Dubois는 초기 인간과 원숭이들이 서로 관계가 있다는 다윈의 생각에 동의했다. 인도네시아에는 오랑우탄이 있었기 때문에 듀보아는 '잃어버린 고리'의 화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듀보아는 루시와 같은 것을 찾을 수는 없었던 반면에, 자바에 있는 솔로(Solo) 강을 따라 침식된 침식물 안에서 흥미로운 원시 화석들과 두개골 및 다리뼈를 발견하였다. 그것들은 부분적으로는 인간처럼 보였고, 부분적으로는 원숭이처럼 보였다. 듀보아는 그들이 고대 유인원과 연관되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그 생물을 Anthropopithecus erectus라고 불렀다. 이것의 유명한 이름이 자바인이다. 그후 몇 십년이 지난 후에 비슷한 뼈들이 중국(북경인)에서 발견되었고 마지막으로는 아프리카에서도 발견되었다.

점차적으로 인류학자들은 이들 화석들이 대단히 비슷한 생물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들을 단일 종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하였다. 비록 아프리카의 뼈들이 제일 마지막에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이 화석들이 다른 어느 곳에서 발견된 것보다 더 오래된 것들이라고 믿었다. 대부분의 고대 아시아의 화석들은 가장 오래된 것이 100만년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화석들은 적어도 180만년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호모 에렉투스의 조상들이 아프리카에서 폭넓게 발견된다는 사실과 함께 과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가 최초로 대륙에 나타난 후에 한때 존재했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들이 아프리카를 떠난 것은 언제이며, 그 이유는 무엇일까? 확실히 인류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가 난관을 돌파하여 그들이 익숙했던 지역 보다 더 넓은 지역에서 번성했다고 보고 있다. 기술이 발전해가면서 증거들을 확보해 갈수 있었다. 호모 에렉투스가 출현한지 40만 년이 지난 14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과거에 사용된 단순한 도구들보다 더 정교하게 제작된 손도끼들과 날이 긴 도끼들이 많이 풍화된 채 발견되었다. 이 도구들은 처음 발견된 지역인 프랑스의 성 아슐(Acheul)이란 도시의 이름을 따서 아슐 문화기(Acheulean) 도구라고 불려진다. 이론에 따르면, 호모 에렉투스는 더 나은 도구들을 가지고 쉽게 음식을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수십만년 내에 이 종들은 아프리카의 경계를 넘어 이동했고 중동지역으로 먼저 퍼져갔으며, 그후 유럽과 태평양으로 다양하게 이동해 들어갔다.

모든 사람들이 헛점을 알지 못한 동안에는 이 이론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한가지 문제는 만약 발전된 도구들이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떠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었다면, 왜 그들은 여행자들이 갈 수 있는 모든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일까? 캔버라에 있는 호주 국립대학의 Alan Thorne 는 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는 돌보다 내구력이 약한 어떤 것으로부터 발전된 도구를 만들었다고 제안한다.그는 ”대나무로 만들어진 이 도구들은 많은 면에서 석기 도구들보다 뛰어났고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다”고 보았다. 돌과 다르게 대나무는 백만 년이 지난 후에 흔적이 남지 않는다.

아시아에 호모 에렉투스가 도달한 때를 알려주는 가장 정확한 증거는 명백하게 아시아에서 발견된 화석들의 연대를 통해서 이다. 그러나 정확한 연대는 정의하기 어렵다. 자바안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결함과 부식에 의해 노출되어 있으면서 지질학 역사의 비밀스러운 기록들을 보여주고 있는 동아프리카의 Rift 계곡과는 대조적으로, 대부분의 자바인은 논 아래 묻혀 있었다. 지하에 있는 암석층은 연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전통적으로 근처에서 발견된 멸종된 포유동물 화석의 연대를 측정함으로써 자바인의 연대를 추정했다. 1936년에 발견된 'Mojokerto child' 라고 불리는 어린아이의 두개골은 약 백 만년으로 평가되고 있다. Sangiran으로부터 얻은 부서진 얼굴과 부분적인 두개골은 어린이로 판정되었다.

이들 연대들이 심각하게 의문시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단지 과학적인 독불장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IHO의 커티스(Curtis)는 과학 논문의 저자 중의 한면이다. 1970년에 그는 Mojokerto의 화석을 포함하는 침전물로부터 화산의 부석(浮石)을 소량 얻어서 이것에 대해 방사선 연대 측정기술을 적용해 보았다. 커티스는 Mojokerto child는 백 만년이 아니라 2백 만년에 더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이것은 이 기술이 자바에서 발견된 부석들에 있어서는 오차가 생기기 쉽기 때문이었다. 커티스의 연대는 그와 Swisher가 새롭고 더 정밀한 방법으로 부석을 재측정하기 전까지, 20년 이상 불확실하게 남아있었다.

새로운 연대는 결국 과거의 커티스의 작업이 유효함을 보여주었다. Mojokerto child과 Sangiran 화석은 아프리카의 가장 오래된 호모 에렉투스의 연대와 대조적으로 각각 약 180만년과 170만년 가량 이었다. 여기서 인간의 진화라는 커다란 미스테리 중의 하나에 대해 그럴싸한 해답이 있다고 Swisher는 말한다. ”우리는 왜 호미니드가 아프리카를 벗어나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항상 궁금해 왔다.” 명백한 해답은 적어도 선사시대의 기준에 따르면 100만년 이라는 그 많은 시간을 모두 사용한 것이 아니라, 아마도 단지 10만년 정도만 사용된 것 같다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로부터 모험을 하기 위해 특별한 도구가 필요했다는 개념은 완전히 필요없게 되었다. 그러나 Swisher는 놀랄 만한 결론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코끼리는 그들의 역사동안에 여러 번 아프리카를 떠났다.” 그는 ”많은 동물들이 그들의 영역을 넓혔다. 주된 요인은 환경이 변하여 팽창을 쉽게 해 주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를 벗어나는데 석기 도구가 필요했던 동물은 하나도 없었다.”라고 지적한다.

과학자들은 이미 초기의 호미니드조차 다양한 거주지와 기후에서 생존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 예일대학의 고생물학자인 Elisabeth Vrba는 그들의 진화론적 성공(이것뿐만 아니라 Homo종이 계속 이어서 번성한 것)이 기후의 변화가 일어났던 곳과 연관되어 있음을 믿는다. 250만년에서 270만년 전 사이에 빙하기가 일어나 전체 온도가 20F정도로 내려갔으며, 습기가 많은 아프리카의 삼림지대는 건조하고 개방된 (아)열대 지방의 대초원으로 변했다.

화석을 연구함에 따라, Vrba는 커다란 변화를 겪은 이들 환경에서 커다란 포유동물 집단을 발견했다. 많은 숲의 영양들은 커다란 버팔로와 다른 초식동물들에 의해 대체되었다. Vrba는 초기 호미니드의 진화도 동일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믿는다. 초원이 계속 확장되고 나무가 줄어들면서, 숲에 거주하는 침팬지는 개방된 곳에서 사는 데 더 익숙한 두발동물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마지막으로 호모 에렉투스는 구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갈 준비를 했다.

만약 초기의 인간들의 적응성이 그들을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면, 존스 홉킨스의 Walker는 급격한 육식의 증가가 이들의 이동을 촉진시켰다고 믿고 있다.  '일단 당신이 육식주의자가 되면, 세계는 달라질 것이다. 육식주의자는 거대한 자신의 영역이 필요하다.'라고 그는 말한다. 호모 에렉투스는 오늘날의 인간들처럼 아마도 고기와 식물을 모두 먹은 것 같다. 그러나 Walk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들 생명체와 다른 영장류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나는 그들이 활동적으로 사냥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항상 그들이 가능하자마자 아프리카를 떠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호모 에렉투스는 수 만년 내에 아시아로 갈 수 있는 모든 방식의 여행을 할 수 있었을까? Walker는 '만약 당신이 매 20년마다 20마일씩 전진한다면, 그 먼 곳으로 가는 것이 그리 오래 걸린다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지금 가장 큰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진화에 대한 가장 뜨거운 논쟁 중의 하나로 어떻게 아프리카에서 그렇게 빨리 탈출할 수 있었을까? 한쪽 측면은 '아프리카 기원설(out of Africa)'을 주장하는 인류학자들이며,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들이 단지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출현했다고 본다. 다른 쪽은 '다지역 기원설(Multiregional hypothesis)'를 주장하며, 현대의 인간들이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진화했다는 개념을 주장한다.

Swisher와 그의 동료들은 그들의 발견이 '아프리카 기원설'측의 학설을 지지한다고 믿는다. 만약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가 거의 100만년 동안에 나누어졌다면,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그들은 두 가지 다른 종으로 진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격리된 그룹들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한 종으로 진화한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Swisher는 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가 멸종되고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인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생각한다.

또다른 해석을 제공하는 '다지역 기원설' 측의 리더인 오스트레일리아의 Thorne는 그것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떠날 때마다, 결과는 동일했어야 한다. 집단은 격리에 의해서 진화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하는 그룹들과 상호 교배를 함으로써 유전 물질이 전해지면서 생긴다. Thorne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인간의 유전자는 요하네스버그와 베이징 그리고 파리와 멜보른 사이에 흐르고 있다. 빙하기의 차단을 분리해 놓고 보면, 그들은 아마도 호모 사피엔스 진화의 전체 영역을 통해 이일을 한 것 같다.”

영국의 국립 역사 박물관의 Shristopher Stringer는 ”만약 우리가 지난 50만년 동안의 화석 기록을 본다면, 아프리카는 원시인으로부터 현대인까지 진화의 연속성을 가진 유일한 지역이다”라고 반대 주장을 펼친다. Stringer는 현대인으로부터 가장 오랫동안 신뢰받는 화석들은 과거 12만년 전까지의 아프리카와 중동으로부터 얻은 것들이다. 최초의 현대 유럽인들과 아시아인들은 4만년 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중국에서 20만년 된 인간의 두개골이 발견되었다는 새로운 보고는 무엇인가? Stringer는 그 주장은 정말한 조사에 근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와 그의 동료들은 설명해야 될 일들이 많아질 것이다.

결국 인간의 진화라는 갈등의 무대는 모든 이론이 전투를 겪게 되는 곳이며 새로운 증거들은 다른 편에 의해서는 동일한 방식으로 해석되어질 여지가 거의 없다. 다음 번에 있을 큰 발견은 어쩌면 다지역 기원설로 기울거나 또는 아프리카 기원설을 확신하거나 또는 새로운 의견에 무게를 실어줄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호모 에렉투스는 아프리카 밖의 여러 곳에서 출현했으며, 그들의 조상이 태어난 대륙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돌아왔다는 식이다. 또한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에게 무시될지도 모른다.

다음 화석에서는 인간이 속한 과(科)에서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음을 증명할 수도 있다. 아마도 어떤 것들은 멸종했고 어떤 것은 중간 조상일 것이다. 빈약한 자료와 풍부한 상상 속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이 끊임없는 매혹적인 분야가 언젠가는 큰 놀라움을 가지고 올 것이라는 것이다.

 

번역 - 한국창조과학회 편집부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2/e29/e29o11/times.htm

출처 - 기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91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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