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ology
2004-07-24

추상적인 세속 인본주의의 '창시자들'


      (이 모든 복원은 추론적이고, 편견적 상상력을 가진 사람의 작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진실된 과학적 법의학은 진실에 대한 탐구에서 커다란 '믿음의 도약'을 허락하지 않는다.)  

 

 

 

 

 

 

 

 

 

 

 

 

(발자국에 관한 흥미로운 점은 그들 모두는 분명한 Homo sapien의 발자국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추리는 화석기록에서 발견된 발자국 모두는 해부학적으로 현대인과 완전히 동일하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 Lucy) 든지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의 것이든지 그것들은 현대인의 것과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에게는 혼란스럽게도, 거기에 고릴라, 침팬지, 원숭이의 발자국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시기든지, 어떤 종류의 화석기록이든지 원숭이로부터 사람으로의 전이형태의 발자국은 명백히 없다. 이것에 대한 단순한 이유가 있다. 인간은 항상 인간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것은 창조론적 입장에서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창조론은 이것을 예견하고 있다. 처음 6명의 머리와, 처음 4명의 긴 팔을 제외하고, 복원된 몸, 다리, 발은 우리의 행성을 걸었던 것으로 발견될 수 있다. (비록 오늘날 우리의 이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발자국들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보라. 발자국 형태의 화석기록에서 완전한 현대인의 발자국이 아닌 것이 발견되거나, 보고되어 출판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omniology.com/METAPHYSICAL-PATRIARCHS-OF-HUMANISM.html

출처 - The California Institute of Omniology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81

참고 : 390|1441|1440|1454|2712|3093|704|1452|1446|879|2523|1457|577|576

Omniology
2004-07-24

“폭로된” 추상적 원숭이 인간의 복원 해부학

 

 

 

 

 

 

 

 

 

 

 

 

 

 

 







이것은 대진화론적 편견으로 가득찬 내셔날 지오그래픽스의 관점이 어떻게 예술가들의 작업 결과에 영향을 미치어 방향을 결정하게 하는 지를 보여주는 뛰어난 사례이다.  

내셔날 지오그래픽스의 예술팀은 7 개의 불완전한 뼈 조각(왼쪽)으로부터 매우 유명하고, 존경받는 위치에 있으며, 잘 팔리며, 잘 알려진 잡지에, 경쟁하고 있는 4 명의 후보를 탄생시켰다.

그 뼈들이 '여성'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의 것인지는 이 '후보들' 이 말하고 있다. (그 뼈들이 어떻게 여성의 것임을 알았는지는 신비이다.) 그들은 또한 '그녀' 가 2백만 년 전의 진화론적 인류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 유인원의 모습' 으로 보여지고 있다.

그들의 미래의 고용주를 기쁘게 해주려는, 이러한 예술가들은 당신이 여기에서 보는 4 명의 '다른' 조상들을 '독립적으로'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가이드라인' 에 기초하여, 결과들은 미리 결정되었고, 직장을 계속 가지기를 원하는 예술가들은 당신이 보는 결과들을 만들어 내었다. 이것은 순수하고, 그리고 온전한 '경험적(실험적) 과학'이 아니다.

만약 위에서와 같이 적은 뼈들이 미지의 변사체나 시신으로부터 얻어졌다면, 그리고 법률적으로 고용된 법의학자들에게 그 유골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를 밝혀내라고 한다면, 그들이 무엇이라고 말할 것 같은가? 그들은 '불가능(impossible)' 이라고 말할 것이다.

The California Institute of Omniology는 이러한 추상적인 관점을 받아들이는 미국국립지리협회(National Geographic Society)와 문제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이 사실로서, 또는 과학적으로 정확한 것으로서 비쳐지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한다. 지성적으로 정직하다면, 경험적(실험적) 증거가 부족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믿는다(We believe)” 라는 말을 덧붙여야할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omniology.com/JackalopianArtists.html

출처 - The California Institute of Omniology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80

참고 : 390|1441|1440|1454|2712|3093|704|1452|1446|879|2523|1457|577|576

Omniology
2004-07-24

내쇼날 지오그래픽스가 복원한 원숭이(중간형태)인간 미스 호모 에렉투스

 

     내쇼날 지오그래픽스의 원숭이인간 복원 팀은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의 여성 얼굴을 복원하였다. (위 그림의 맨 왼쪽). The California Institute of Omniology의 복원 팀도 호모 에렉투스의 여성 얼굴을 다른 두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중간과 오른쪽)

 

 

 

 

 

 

 

 

 

독자는 이 복원된 것들 중 어느 것도 경험적인(관찰된) 과학적 사실들에 의하지 않았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들은 순전히 비경험적이고, 주관적이며, 추상적인 믿음의 소산물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에 상상으로 이루어진 유사과학(imaginary pseudo-science)이다.

멸종된 화석 생물체에 대한 모든 고인류학적 복원에는 5 가지의 완전히 임의적이고, 주관적인 문제점들이 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임의적이고 주관적으로 결정한다.

1. 그들을 hominid, hominoid, or humanoid 로 분류하는 것.

2. 피부색, 피부조직(털이 있는지 없는지)

3. 모발 색과 타입

4. 근육 정도와 지방조직 양

5. 눈 색깔

만약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당신이 도서관에 가서 복원된 조상들에 대해 다른 저자들에 의해서 쓰여진 책 3, 4 권을 살펴보고 도전을 받도록 하게 할 수 있다. 그러면 당신은 이것이 사실임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를 클릭하여 (http://www.omniology.com/LucySkeletons.html) 루시에 대해서 일어난 성체 복원과, 중간형태의 해부학적 복원(http://www.omniology.com/Jackalopianism.html)에 대해 살펴보라.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omniology.com/Jackalopian-Homo-Erectus.html

출처 - The California Institute of Omniology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79

참고 : 390|1441|1440|1454|2712|3093|704|1452|1446|879|2523|1457|577|576

Omniology
2004-07-24

원숭이(중간형태) 인간으로 복원된 네안데르탈인


  

      이 페이지의 내용은 1973년 발간된 Time-Life Books 'The Neanderthals' 로부터 취해졌다.

아래 오른쪽은 ”인류의 기원; 우리의 조상을 찾아서 (Human Origins; The search for our beginnings)” 라는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해부학적으로 복원에 대한 정직하고 편견이 없는 평가에 의하면, 이것은 진실된 네안데르탈인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글의 처음 몇 문장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그들은 인류와 동물의 조상을 '복원' 하는 데에 진화론이라는 추상적인 과학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한 가지는 이러한 복원들이 서로 그렇게 다른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이것들은 전혀 ”해부학적으로 공인된 면허를 가진 예술가"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둘 다 해부학적으로 주관적인 예술가들의 순수하고 단순한 작품들이다. 예술가들이 다른 해석을 할 때, 최종 작품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한 사람은 이것은 "현대적으로 보여 오늘날의 인류와 친척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은 이것은 ”사람보다는 원숭이에 가까운 생물체” 라고 말한다.   

아래는 이 주관적인 그림들의 또 다른 예이다. 오른쪽 위의 Australian aborigine의 그림을 주목해 보라. 그는 이 페이지의 복원된 몇몇과 매우 유사하게 보인다. 그렇지 않은가? 또 다른 흥미로운 관측은 그의 그림 아래에 기술되어 있다.

"Homo sapiens sapiens 가 지리학적으로 인종이 나뉘어지는 것은 임의적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분명한 차이점이 없기 때문이다."

원숭이인간으로 복원된 조상은 '임의적' 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화석 기록으로 가장 많고 완벽한 뼈화석들을 제공하고 있는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진실이다. 많은 뼈조각들로부터 인류의 추상적인 조상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매우 큰 '믿음의 주관적 도약'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우리가 원숭이(중간형태)인간의 해부학적 복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우리의 웹페이지 'Lucy's Fraudulent Frame, Lucyism & Evolucyism'를 본다면, 당신은 이것이 사실인 이유를 알게될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omniology.com/NeanderRecons.html

출처 - The California Institute of Omniology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78

참고 : 6190|5525|5025|5918|5819|5528|4682|4820|4410|6127|6052|4812|5884|5818|5802|5792|5796|5768

미디어위원회
2004-07-24

60 여개의 두개골 조각들과 하나의 팔뼈로 복원된 

원숭이(중간형태)인간 럭키

 

      위에 있는 이 성숙한 몸체의 복원은 경험적인 과학의 입장에서 볼 때, 루시(럭키의 연인)보다도 더욱 불합리하다. 단지 60 여개의 두개골 조각들과 한 개의 큰 팔뼈(척골, ulna)을 가지고 사람들은 이것을 남성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stralopithecus afarensis)로 추정하고 보고하였다.

1996년 3월호 내쇼날 지오그래픽스에 실려있는 이 화석에 관한 주변 사실들은 럭키가 얼마나 임의적으로 복원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두개골 조각들은 444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반면에 하악골(mandible), 척골(ulna), 그리고 전두골(frontal bone) 조각은 438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루시의 화석 유물들에서와 같이, 럭키의 화석 머리는 하나 이상의 개체의 것으로부터 임의적으로 복원되었다. 럭키는 경험적인 과학적 사실에 의한 소산물이 아니라, 추상적인 진화론적 편견에 의한 소산물이다.

여기에 그려진 또 다른 사기(deception)는 럭키와 루시가 '같은 시대에 부부' 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들의 진화론적 조상들로 입증됐다는 것이다. 사실 이 내쇼날 지오그래픽스 잡지에서 루시는 럭키보다 18만년(9천 세대) 오래되었다고 하였었다.

이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라. 그들의 뼈들은 함께는 물론 아니고, 조금도 서로 가까이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Omniology은 과학적 연구의 어떠한 분야도 포함하는 모든 분야의 과학적 상호관계를 다룬다. 이 경우에서, 인구증가율의 통계적 공식은 P=Po-e^rt 이다. 이것은 럭키의 출생에 앞서서 태어났을 인구의 수를 결정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위의 공식은 Kilgore College의 Pre-Calculus Mathematics text, 4th ed., by Karl J. Smith, pg. 200 에서 인용했다.)

이 공식에서 인구증가율(r)을 정상적인 2%가 아니라, 1%의 반인 0.5%로 낮추어 가정했다. (Po=2, e=2.718, r=0.005, t=180,000. 성능 좋은 계산기를 사용하여)

        : 0.005 × 180,000 Enter = 900.  2.718^900 Enter × 2  Enter 하면,

답은 1.33 × 10^391 이다. (1.33×10391 )

간단히 말해 럭키가 출생하기 전에 아파렌시스 조상들의 수는 133 다음에 0 이 389 개가 붙어 있는 수만큼 살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 수는 다음과 같다.

133,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000,000,000,000,000,00


만약 당신이 이 해석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면, 아래의 관측되었던 인구증가율과 이것을 비교해 보라. 웹사이트 http://infoplease.com 에는 세계 인구증가율이 나와있다.

1804년에 10억, 1927년에(123년 후) 20억, 1960년에(33년 후) 30억, 1974년에(14년 후) 40억, 1987년에(13년 후) 50억, 1999 년에(12년 후) 60억 명이다.

과거 195년 동안 일어난 전쟁, 기근, 역병 등 모두를 고려하여도, 세계인구는 제한된 기간 안에 10억에서 60억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혼자 한 번 계산해 보라. 이런 증가율로 지구의 육지 면적 57,510,000 평방마일에 사람이 가득 차는데 얼마의 기간이 걸리겠는가? 인류의 진화라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며, 불합리한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우스꽝스러운 인류 진화의 또 다른 문제점은 그 오랜 기간을 살아왔던 모든 인류의 화석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하는 점이다. 만일 루시의 가족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오래 되었다면, 인류 조상의 화석들은 적어도 행성 지구의 모든 곳에서 발견되어야만 한다. 진화론자들의 말처럼 그들 모두가 아프리카의 한쪽 끝의 일부 지역에서만 살았고 죽었을 수 없다.

매우 드물게 루시 가계들의 화석들이 단지 홍수 퇴적물에서 발견되는 것은 보다 합리적이고 보다 정확하게 창조론적인 젊은 지구, 전 지구적 홍수 개념과 일치한다. 

 

 

 

 

 

 

 

 

 

 

 

 

 

 

 

 

 


(내쇼날 지오그래픽스의 설명은 매우 중요하다. 거기에도 루시 가족의 화석 모두는 과거에 일어난 홍수의 결과로 묻혔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적 관점과 창조론적 관점 사이의 차이는 단지 홍수의 규모가 지역적이었는가 아니면 전 지구적이었는가 하는 점과, 과거에 홍수가 일어난 시점이 수백만 년 전인가 아니면 수천 년 전인가 하는 점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omniology.com/Skullduggery.html

출처 - The California Institute of Omniology

미디어위원회
2004-07-24

사기의 한 세기 : 필트다운인 사기의 발견 50주년

(A century of fraud

: 50th anniversary of the discovery of the Piltdown man fraud)

Michael Matthews 


     진화론적 과학자들은 그 사기극을 잊어버리려고 하거나, 오히려 그것을 교활한 방어적 이야기로 바꾸어버린다. 이번 주말에 영국 BBC-TV는 필트다운인 유인원,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기” 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할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그들이 믿었던 이 바보같은 이야기에 대한 기록들이 역사의 자갈 구덩이에 잊혀지기를 기대한다. 

실제, 역사 수정론자들은 필트다운인 사기는 진화 ‘과학’의 힘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학자들이 실수와 오류의 잡초들을 제거하여, 스스로 수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과학자들이 그러한 분명한 사기를 발견하는데 왜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한 대답은, 과학자들은 인간이 진화했다는 믿음과 잃어버린 고리를 볼 수 있다는 믿음을 철저하게 맹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와 기원에 대해 성경적 기록을 믿고 있는 사람들은, 필트다운인 사기는 "20세기 진화론적 속임수의 가장 대표적인 예” 로서 간주할 수 있다. 위조된 사람 두개골과 화석처럼 보이기 위해 거칠게 손질된 오랑우탄 턱뼈는, 1953년 사기극이 폭로될 때까지 40여년 동안 잃어버린 고리로서, 그리고 인간 진화의 증거로서 대대적으로 선전되었다.

영국을 최근에 방문한 AiG-US의 회장인 켄 햄(Ken Ham)은, 필트다운의 작은 마을 근처에 위치한 필트다운인이 발견된 자갈구덩이가 있는 유명한 장소를 방문하였다.

 

두개골과 턱뼈가 발견된 자갈 구덩이 (gravel pit)

 

진화론자들의 속임수에 대한 수치스런 기념비. (비문은 아래 링크 주소 클릭)

 

필트다운인 사기라는 이름이 주어진 근처 마을.

 

.오명으로 이익을 내고 있는 한 호텔(hotel/pub)

그것을 개인적인 성질의 것으로 취급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체 사건을 잊어버리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필트다운인의 진정한 교훈을 기억하기 위한 좋은 시간.

제 50 주년은 황당한 사건의 교훈을 기억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인간의 진화에 관한 논쟁은 정말로 과학에 관한 것이 아니라, 출발점에 관한 것이다. 만약 과학이 올바른 출발점에서 (오류가 없고, 역사가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시작하였다면, 결코 필트다운인과 같이 추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유인원의 후손이었다는 실제적인 증거가 있는가? 핵켈의 배아 그림, 가지나방 이야기, 깃털 있는 공룡 시조새에 관한 내쇼날지오그래피의 사기 등 여러 똑같은 사기들이 속기 쉬운 공공학교에 침투되어 가르쳐지고 있다.  

진화론의 최고의 증거들은 계속 바뀌고 있다. 스코프스의 원숭이 재판에서 필트다운인은 인간 진화의 주요한 증거였다. 진화론적 과학자들은 계속 틀리고 있지만, 성경은 결코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2003/1118piltdown.asp

출처 - AIG, 18 November 2003.

미디어위원회
2004-07-24

루시는 직립보행을 했는가?

(Did Lucy walk upright?)

by Michael J. Oard, Ph.D.


      20년 이상 동안, 루시(Lucy) 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는 우리들의 처음 조상 중의 하나로 간주되어 왔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립보행을 했다고 추정되었기 때문이었다.1  직립보행의 중요성은 이디오피아 하다르(Hadar) 근처에서 루시를 발견했던 발견자 도날드 요한슨(Donald Johanson)의 말에도 반영되어 있다.

 ”1973년에,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떠나 있을 때, 나는 우리의 조상들이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인 큰 뇌를 갖기도 전인 350 만년 전에, 거의 직립보행을 했었음을 의심없이 입증할 수 있는 사람의 것처럼 보이는 무릎관절 (humanlike knee joint) 을 발견했다.” 2

비록 이족보행(bipedalism)의 기원이 미스테리로 남아있지만, 진화론자들은 똑바로 서서 걷는다는 것을 매우 중요한 위치로 두었고, 그것을 사람의 조상으로 정의하는데 사용하였다.

”이족보행은 전통적으로 유인원(호미니드, hominids)이 다른 영장류들과는 구분되는 기본적인 적응현상으로 간주되어 오고 있었다. 화석 증거는 410 만년 전, 그리고 아마도 더 일찍 호미니드는 두 발로 걷는 것에 적응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화석 기록은 이족보행의 기원에 대해서는 거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3

그래서 원숭이와 같은 몇몇 화석 생물체들이 이족보행을 했는지 안했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루시의 무릎 관절(knee joint)의 상태와 관계없이, 루시는 몇몇 살아있는 원숭이들(apes)의 특징적인 모습인 분명한 4족 보행인 너클 워커(knuckle-walker4, 앞다리의 지관절의 등을 땅에 대고 걷는 모습)의  (직립보행과는 분명히 다른) 형태를 보인다는 새로운 증거가 나왔다. 리치몬드(Richmond)와 스트레이트(Strait)는 살아있는 너클 워킹(knuckle-walking, 앞다리 지관절의 등을 땅에 대고 걷는 걸음)을 하는 원숭이(apes), 침팬지, 고릴라의 요골(distal radius)에 대한 4 개의 골격 형태를 확인하였다. 그들은 또한 루시를 포함한 초기의 두 ‘호미니드'에서 이와 유사한 골격 형태를 확인하였다.

”UPGMA 밀집 도표(clustering diagram)은 A. anamensis, A. afarensis와 너클 워킹을 하는 아프리카 원숭이의 요골들 사이의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이 호미니드들이 너클 워커가 가지는 손목관절(wrist) 형태를 보유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5

인터뷰에서, 리치몬드는 살아있는 너클 워커의 손목관절의 특성들을 분석했다고 말했다. 그와 스트레이트는 자연사 박물관에서 복도를 따라 걸으며 모형 캐스트들을 조사하였다.

  ”나는 진열장을 따라 걷다가 루시 앞에 이르렀다. 얍.... 루시는 전형적인 너클 워커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6   

이것은 루시를 포함하여 실제로 초기 인류의 조상이라고 추정되는 것들은 사실 너클 워커였고, 직립보행을 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강력한 증거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전의 이족보행의 증거들은 건전하며, 그리고 이들 조상들은 단지 이전 조상들이 가지고 있던 너클 워킹의 모습을 단지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루시가 가지고 있지 않은 잃어버린 너클 워킹의 약간의 형태학적 모습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6 그러나 이 모습들이 살아 있는 너클 워커에 항상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루시가 너클 워커였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연구자들은 루시가 너클 워커였다는 사실을 거부하도록 거의 강요당한다. 루시가  너클 워커가 아니었다면, 루시는 똑바로 서서 걷는 것과, 나무에 오르는 것과(긴 팔과 긴 손가락에 근거하여), 너클 워킹에 모두 적응되었어야만 한다. 여기에 진화론적인 어려움이 있다. 어떻게 루시는 세 가지의 분명히 구별되는 행동적인 특성들을 모두 가지고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게다가, 이러한 특성들은 그들의 생활양식(lifestyle)과 관계되어 결정되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기능을 하기위한 것이 아니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다는 것이다.7


저자들은 너클 워킹이 침팬지와 고릴라에서 평행 진화에 의해 독립적으로 기원됐는지,  아니면 인간의 추정 조상, 침팬지와 고릴라 등이 공유하고 있던 특성이었는지를 알아서 이 새로운 정보를 계통의 파생 분석(cladistic analysis)에 하나의 좋은 점으로 사용한다. 리치몬드와 스트레이트는 지금 후자의 가설을 주장한다. 분자적 DNA 비교(이전과는 모순된)는 지금 이 새로운 파생 분석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루시가 너클 워킹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발견은 가상의 호미니드 계통발생(hominid phylogeny)에 혼란을 가져다 주었다. 루시는 A. africanus의 조상으로 생각되고 있다. 왜냐하면 루시의 두개골은 침팬지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새로운 A. africanus 종의 발 뼈와 아래 다리는 기대에 어긋나게 루시보다 더욱 원숭이(ape)를 닮았다.또한 A. africanus는 루시보다 더욱 원숭이 같은 사지 비율(limb proportions)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A. africanus는 리치몬드와 스트레이트가 루시에게서 발견했던 너클 워킹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신체의 다른 각 부분들은 각기 다른 진화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리치몬드와 스트레이트의 작업은 그림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A. africanus가 약간의 너클 워킹의 모습을 보유했다는 것을 제시한다. 그러나  A. africanus 는 너클 워킹을 하지 않았다. 일련의 계통발생 관계(phylogenetic relationships) 중의 하나로 두개골을, 그리고 서로의 두개 골격(단지 skull)을 더 이상 비교할 수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두개골 외의 다른 부분들은 같은 계통발생 과정을 지지하지 않을 수도 있다.” 8

전혀 진화론적 관계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인가? 이들은 모두 독특한 멸종된 원숭이란 말인가?     

계통발생론(phylogenies)에는 많은 주관적인 판단들이 개입된다는 인상을 받는다. 또한 사람들은 글들을 읽으면서, 글 속에는 진화론적인 관계를 결정하도록 특성들이 주관적으로 선택되는 듯한 느낌을 알 수 있게 된다. 하나의 유사한 특성이 진화와 관계될 수 없다면, 그것은 단순히 평행진화 또는 수렴진화(parallel or convergent evolution)에 의한 것으로, 다른 말로 가상의 유사환경으로 가정되는 것이다.

”아듀 루시 (Goodbye, Lucy)” : 과학적 발견들은 루시를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가장 중요한 예로서 간주했던 진화론자들의 가정이 완전히 사실무근임을 밝혀냈다. 유명한 프랑스의 과학 잡지인 Science et Vie는 1999년 2월호에 ”Goodbye, Lucy” 라는 표지 제목으로 글을 실으면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사람의 조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References

1. Johanson, D.C. and Edey, M.A., Lucy: The Beginnings of Humankind, Simon and Schuster, New York, 1981.

2. Johanson, D. and Shreeve, J., Lucy’s Child: The Discovery of a Human Ancestor, William Morrow and Company, Inc., New York, p. 19, 1989.

3. Richmond, B.G. and Strait, D.S., Evidence that humans evolved from a knuckle-walking ancestor, Nature 404 (6776): 382, 2000.

4. Richmond and Strait, Ref. 3, pp. 382–385.

5. Richmond and Strait, Ref. 3, p. 383.

6. Stokstad, E., Hominid ancestors may have knuckle walked, Science 287 (5461): 2131, 2000.

7. Collard, M. and Aiello, L.C., From forelimbs to two legs, Nature 404 (6776): 340, 2000.

8. Collard and Aiello, Ref. 7, p. 339.

  

*참조 : Lucy Was Buried First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3/n2/lucy-buried-first

No more love for Lucy?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17.pdf

Australopithecines—the extinct southern apes of Africa: a fresh light on their statu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4_3/j14_3_91-99.pdf

The ‘Lucy child’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8-9.pdf

These apes were made for walking: the pelves of Australopithecus afarensis and Australopithecus africanu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2/j20_2_104-112.pdf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tj/v15/i2/lucy.asp

출처 - TJ 15(2):9–10, August 2001.

Michael D. Lemonick
2004-07-24

Time 지 기사 번역 모음 1 

- 인간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TIME 94년 3월 14일자 기사 : Cover Story

새로운 증거는 최초의 인간이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아프리카를 떠났음을 알려주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인간)는 한 때 여러 곳에서 진화된 것인가?


인간을 다른 동물들로부터 구별할 만큼 중요한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언가(空言家)들은 이 차이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인간을 도구와 이성, 불을 사용하고 웃을 수 있으며 기타 여러 가지 표현을 할 수 있는 동물로 묘사한다. 이 중에서 다른 것보다 인간을 잘 묘사한 말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은 아주 심각하게 그리고 끝없이 자신의 기원에 대하여 탐구하는 동물이라는 표현이다. 1856년에 발굴된 네안데르탈인 뼈의 발견을 시작으로 고고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아프리카, 유럽 그리고 아시아 지역을 돌아다니며 발굴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우리의 존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대답을 해줄 화석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인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을까? 만약 이 주제에 대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책과 문서들이 어떤 사실을 알려준다면, 비과학자들도 전문가들처럼 그 해답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 방영된 인간 기원의 탐사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은 지난주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 1세기 동안의 발굴에도 불구하고, 화석기록은 정말로 너무나도 부족하다. 매우 작은 실마리를 가지고 있는 단순한 뼈들조차도 우리가 생각한 것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화석들은 모든 것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사실상 모든 주된 발견들은 기존의 생각과 크게 달라서 심한 논쟁 가운데 과학자들은 새로운 이론들을 만들 필요를 느끼게 된다.

지금 이런 상황이 다시 발생하고 있다. 지난 2주 동안에 발표된 발견들은 인류학의 기초를 흔들면서 일부 놀랄 만한 가능성들을 일으키고 있다. 인류의 조상들은 과학자들이 전에 추측했던 것 보다 빨리 인류의 발상지인 아프리카를 떠났다. 인간은 한 장소에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장소에서 진화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종인 호모 사피엔스는 예측했던 것보다 더 오래 전에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 주장들의 일부분이라도 사실로 증명이 된다면, 학자들은 인류의 진화에 대해서 책을 다시 써야 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왔고, 우리가 누구인지의 이야기에 대해 근본적으로 바꿔서 알려야 할 것이다.

최근에 실린 Nature지의 논문에서, 중국과학자들은 10년 전에 중국에서 현대인처럼 보이는 인간의 두개골을 발견했으며, 이 두개골은 적어도 지난날 세계 도처에서 발견된 다른 Homo sapiens보다 두 배 가량 오래된 20만년 정도되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게다가, 두개골의 특징이 현재 살고 있는 아시아인의 특징과 닮았다. 여기에는 큰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현대인은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믿었던 것처럼 아프리카에서 진화된 것이 아니라, 지구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Nature지의 논문은 경쟁지인 Science지에 실린 더 놀랄만한 논문이 발표된지 한 주 후에 발표된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연구자들은 자바섬의 두 장소에서 발견된 두개골 파편 화석의 연대를 다시 측정했다. 초기에는 백 만년으로 해석된 것이 이번에는 약 2백만 년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Homo erectus로 알려진 종으로부터 유래되었다. 호모 에렉투스는 현대의 인간처럼 보이는 최초의 영장류로 최초로 불을 사용하고 석기 도구를 정교하게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 버클리 대학교의 인류학자인 F.Clark Howell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놀랄 만한 일이며 어떠한 사람도 그와 같은 시대를 예측하지 못했다.”

만약 자바섬의 증거가 사실이라면, 원인(原人)은 그들의 고향인 아프리카를 수십 만년 전에 떠난 것을 의미한다. 교과서에는 그들이 아프리카를 떠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발전된 석기도구를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되어있는데, 이 도구가 개발되기 전에 이미 그들은 아프리카를 떠났으며, 이 시기는 사람들이 믿었던 것보다 빠른 시기이다. 이것은 또한 호모 에렉투스가 서로 다른 두 종으로 진화하기에 충분한 시간임을 의미한다. 하나는 아프리카인 또 하나는 아시아인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과(科)의 아프리카쪽이 현대인으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아시아인쪽은 무엇인가? 그들은 모두 멸종했는가? 또는 중국에서 발견된 새 증거가 제안하는 것처럼 호모 사피엔스를 발생시켰을까?

이 질문들에 대해 대답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한다. 확실한 증거는 고인류학 분야가 매우 논쟁적이기 때문에 나오기가 쉽지 않다. 20만년 가량보다 더 오래된 화석의 연대를 직접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운 좋게도 많은 표본들이 시대별로 쌓여있는 퇴적암에서 발견되었다. 암석층의 연대를 측정하는 방법을 통해, 과학자들은 암석층 안에 포함된 화석들의 대략적인 연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 방법들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특별히 20만년 된 중국의 두개골은 연대 측정기술이 아직도 실험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 사실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확신은 인도네시아의 호모 에렉투스 화석의 연대를 통해 더욱 강해졌다. 이 팀의 리더들이 분석을 했는데 그들은 과거로부터 연대를 측정하는 지구연대학의 문학석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버클리에 있는 인간기원연구소(IHO)의 Carl Swisher 과 Garniss Curtis 이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Alan Walker는 초기 인류에 대해 전문가로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IHO는 세계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다.” Swisher 와 Curtis가 연구한 뼈들은 지질학적 힘이나 침식에 의해 그들의 본래의 위치에서 벗어날 경우가 항상 생기고, 결국 화석 자신보다 더 오래된 침전물 안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아마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표본들은 서로 다른 장소로부터 가져왔기 때문이다. Switch는 다음을 지적한다. ”두 장소에서 같은 종류의 오류를 당신이 얻게 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결국 피할 수 없는 결론은 호모 에렉투스가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약 백 만년정도 빠르게 아프리카를 떠났다는 것이라고 Swisher은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이 발견 때문에 인간의 기원이라는 이 복잡한 이야기를 어떻게 바꿀지 결정하기 위해 허둥대고 있다. 과학자들이 화석기록에 대해 더욱 연구할수록, 원숭이가 인간으로 되는 진화가 단순한 변이가 아님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아마도 많은 잘못된 시작으로 이제는 궁지에 몰린 것 같다. 어느 때인가 세계의 일부지역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Hominid 종들이 생존을 위해 경쟁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투쟁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벌어졌을 것이다. 현대의 호모 사피엔스는 명백하게 지능적인 존재를 위해 필수 불가결하게 설계된 것은 아니다. 이 종은 여러 경쟁적인 분류 중의 하나로 보인다. 그것은 오늘날 진화론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종이다.

지구를 지배했던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이 언제 어디서 출현했는지에 대한 많은 질문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기는 하지만, 인간의 조상들은 4백만년 전에 거의 확실하게 아프리카의 우거진 숲으로부터 왔다. 따뜻한 기후는 적합했고, 동물도 풍부했으며, 그곳은 가장 오래된 호미니드 화석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1974년에 오랫동안 찾아왔던 원숭이와 인간사이의 '잃어 버린 고리(Missing Link)'가 발견되었다. 현재 IHO의 책임자인 도날드 요한슨(Donald Johanson)이 이끄는 탐험대는 에디오피아로 파견되어 뛰어난 여러 고대 원시 두개골 조각들을 열심히 모았다. 비록 두개골의 많은 부분을 포함한 뼈의 60%정도 가량이 손실되어 있었지만, 과학자들은 동물들이 3피트 6인치 정도로 컸다고 말했다. 그것은 호미니드로서는 너무 짧은 것처럼 보였지만, 동물은 모든 중요한 인간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 존재했다고 알려진 다른 원시 종들과는 다르게, 이 생명체는 완전히 수직으로 걸었다. 어떻게 연구자들은 알았을까? 그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무릎 관절은 동물들은 완전히 다리를 곧게 펼 수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의 침팬지와 고릴라를 구별시켜 주는 비능률적인 O자형 다리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이 작은 호미니드는 암컷으로 추정되었고, 요한슨은 그녀를 루시(Lucy)라고 이름 붙였다. (그가 그의 텐트에서 처음 화석을 점검하던 동안에, 빛나는 하늘아래 비틀즈의 루시가 그의 카세트에서 연주되고 있었다.)

과학적인 이름이 팝송으로부터 유래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루시에게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 라는 매력적인 이름이 주어졌다. 1970년대 중반 유명한 고고학자인 메리 리키(Mary Leakey)가 이끈 팀이 탄자니아에서 발견한 잘 보존된 발자국을 포함해서 점점 더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어졌다. 응고된 화산재에서 형성된 발자국들은 루시와 그녀의 동료들이 인간처럼 걸었음을 확증하고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표본 중의 일부는 약 390만년 가량으로 추정되며 그들은 가장 오래된 호미니드 화석들이었다.

루시가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였다는 마지막 단서는 요한슨 팀이 조각그림처럼 선사시대의 화석조각을 모아서 상당히 완벽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두개골을 완성하자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 찔러 넣은 턱과 침팬지 크기의 뇌를 가진 것으로 보아 인간보다는 원숭이와 더 닮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들 짧은 생명체들(수컷은 5피트정도 크기이다.)은 아마도 일반적인 원숭이보다 더 똑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직립자세와 두발로 걷는 것은 그들에게 손이 자유로운 혜택을 주었고 더 효율적으로 음식을 모을 수 있게 해 주었을 것이다.

이것은 적어도 한 가지 이론이다. 자연선택의 법칙 아래에 있는 어떤 요인들이 루시와 그의 동료들을 번성하게 했으며 그들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였다. 과거 300만년에서 2백만년 사이에, 소수의 건강한 후손들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로 부터 생겨났고, 직립원인들의 전체적인 몸은 루시와 닮았으나, 구체적인 뼈의 구조는 달랐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파란트로푸스 로부수투스(Paranthropus robustus),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Paranthropus boisei)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번성했다. 그러나 진화의 단계 중에 두 파란트로푸스 종은 결국 사라져 갔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아서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그 다음 형질들을 일으켜주었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또는 ”손재주 있는 사람(handy man)”이라고 불려지는 종이다. 약 250만년 쯤에 출현한 새로운 호미니드는 아마도 그 조상들과는 외모가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다소 큰 뇌를 가졌다. 그리고 아마 도구를 만들 수 없었던 다른 호미니드들의 지식이 쌓임에 따라, 호모 하빌리스는 도구를 만드는 방법을 최초로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다.

초기의 원인(原人)도 역시 땅을 파는 데 사용한 뿔과 뼈, 흙더미에서 흰개미를 잡기 위한 막대기 등의 도구를 사용했다. 그러나 호모 하빌리스는 도구를 바위에 두들겨서 유용한 모양으로 만들었다. 아마도 이 도구는 인류학자들이 한때 생각한 것처럼 사냥에 사용된 것은 아닌 듯하다. 평균적으로 호모 하빌리스는 1.5m보다 작았고, 100파운드보다 작은 무게였다. 그래서 이들은 아프리카의 자연 속을 뛰어다니는 사자와 표범과는 거의 경쟁할 수가 없었다. 대신에 호미니드들은 거의 확실하게 청소부의 역할을 했다. 즉, 육식동물들이 먹다 남은 고기와 함께 대부분 채식을 했다. 하이에나와 자칼과 같은 다른 청소부들은 초기 인간보다는 강하고 거칠었다. 그러나 호모 하빌리스는 육식동물의 습성을 예상할 수 있는 지능을 가졌던 것 같고, 아마도 나머지를 빠르게 도살하고, 안전하게 가지고 돌아올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선사시대 아프리카의 가혹한 삶에 적응하면서 호모 하빌리스들은 50만년 이상 한 종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그들 중의 한 그룹은 2백만년 전쯤에 키가 크고, 강하고 똑똑한 인간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평균적으로 5피트 6인치 정도의 키를 가진 호모 에렉투스(Homo eretus)는 목 아래는 현대 인간과 거의 구별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목 위로는 이들은 여전히 원시인이었다. 두개골은 고릴라나 침팬지의 것과 비슷하게 평평한 이마와 돌출한 눈두덩을 가지고 있었다. 턱뼈는 턱과 닮은 어떤 암시도 주지 않고 있다. 뇌는 해가 지날수록 커져갔지만, 최초의 성인 Homo erectus는 아마도 현대의 4살짜리 아기보다는 작은 뇌를 가졌던 것 같다. 그렇지만 4살먹은 사람이 창조성과 이성을 통한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음을 모든 사람들은 알고 있다.

호모 에렉투스는 특별히 성공적인 이동 그룹이었으며 대단히 여행을 잘 했다. 왜냐하면 실제 이 종의 화석들이 본래 고향인 아프리카로부터 수천마일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1890년대에 모험심이 많은 네덜란드 내과의사 유진 듀보아(Eugene Dubois)는 인도네시아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 군대에 지원했었다. Dubois는 초기 인간과 원숭이들이 서로 관계가 있다는 다윈의 생각에 동의했다. 인도네시아에는 오랑우탄이 있었기 때문에 듀보아는 '잃어버린 고리'의 화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듀보아는 루시와 같은 것을 찾을 수는 없었던 반면에, 자바에 있는 솔로(Solo) 강을 따라 침식된 침식물 안에서 흥미로운 원시 화석들과 두개골 및 다리뼈를 발견하였다. 그것들은 부분적으로는 인간처럼 보였고, 부분적으로는 원숭이처럼 보였다. 듀보아는 그들이 고대 유인원과 연관되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그 생물을 Anthropopithecus erectus라고 불렀다. 이것의 유명한 이름이 자바인이다. 그후 몇 십년이 지난 후에 비슷한 뼈들이 중국(북경인)에서 발견되었고 마지막으로는 아프리카에서도 발견되었다.

점차적으로 인류학자들은 이들 화석들이 대단히 비슷한 생물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들을 단일 종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하였다. 비록 아프리카의 뼈들이 제일 마지막에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이 화석들이 다른 어느 곳에서 발견된 것보다 더 오래된 것들이라고 믿었다. 대부분의 고대 아시아의 화석들은 가장 오래된 것이 100만년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화석들은 적어도 180만년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호모 에렉투스의 조상들이 아프리카에서 폭넓게 발견된다는 사실과 함께 과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가 최초로 대륙에 나타난 후에 한때 존재했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들이 아프리카를 떠난 것은 언제이며, 그 이유는 무엇일까? 확실히 인류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가 난관을 돌파하여 그들이 익숙했던 지역 보다 더 넓은 지역에서 번성했다고 보고 있다. 기술이 발전해가면서 증거들을 확보해 갈수 있었다. 호모 에렉투스가 출현한지 40만 년이 지난 14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과거에 사용된 단순한 도구들보다 더 정교하게 제작된 손도끼들과 날이 긴 도끼들이 많이 풍화된 채 발견되었다. 이 도구들은 처음 발견된 지역인 프랑스의 성 아슐(Acheul)이란 도시의 이름을 따서 아슐 문화기(Acheulean) 도구라고 불려진다. 이론에 따르면, 호모 에렉투스는 더 나은 도구들을 가지고 쉽게 음식을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수십만년 내에 이 종들은 아프리카의 경계를 넘어 이동했고 중동지역으로 먼저 퍼져갔으며, 그후 유럽과 태평양으로 다양하게 이동해 들어갔다.

모든 사람들이 헛점을 알지 못한 동안에는 이 이론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한가지 문제는 만약 발전된 도구들이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떠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었다면, 왜 그들은 여행자들이 갈 수 있는 모든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일까? 캔버라에 있는 호주 국립대학의 Alan Thorne 는 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는 돌보다 내구력이 약한 어떤 것으로부터 발전된 도구를 만들었다고 제안한다.그는 ”대나무로 만들어진 이 도구들은 많은 면에서 석기 도구들보다 뛰어났고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다”고 보았다. 돌과 다르게 대나무는 백만 년이 지난 후에 흔적이 남지 않는다.

아시아에 호모 에렉투스가 도달한 때를 알려주는 가장 정확한 증거는 명백하게 아시아에서 발견된 화석들의 연대를 통해서 이다. 그러나 정확한 연대는 정의하기 어렵다. 자바안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결함과 부식에 의해 노출되어 있으면서 지질학 역사의 비밀스러운 기록들을 보여주고 있는 동아프리카의 Rift 계곡과는 대조적으로, 대부분의 자바인은 논 아래 묻혀 있었다. 지하에 있는 암석층은 연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전통적으로 근처에서 발견된 멸종된 포유동물 화석의 연대를 측정함으로써 자바인의 연대를 추정했다. 1936년에 발견된 'Mojokerto child' 라고 불리는 어린아이의 두개골은 약 백 만년으로 평가되고 있다. Sangiran으로부터 얻은 부서진 얼굴과 부분적인 두개골은 어린이로 판정되었다.

이들 연대들이 심각하게 의문시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단지 과학적인 독불장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IHO의 커티스(Curtis)는 과학 논문의 저자 중의 한면이다. 1970년에 그는 Mojokerto의 화석을 포함하는 침전물로부터 화산의 부석(浮石)을 소량 얻어서 이것에 대해 방사선 연대 측정기술을 적용해 보았다. 커티스는 Mojokerto child는 백 만년이 아니라 2백 만년에 더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이것은 이 기술이 자바에서 발견된 부석들에 있어서는 오차가 생기기 쉽기 때문이었다. 커티스의 연대는 그와 Swisher가 새롭고 더 정밀한 방법으로 부석을 재측정하기 전까지, 20년 이상 불확실하게 남아있었다.

새로운 연대는 결국 과거의 커티스의 작업이 유효함을 보여주었다. Mojokerto child과 Sangiran 화석은 아프리카의 가장 오래된 호모 에렉투스의 연대와 대조적으로 각각 약 180만년과 170만년 가량 이었다. 여기서 인간의 진화라는 커다란 미스테리 중의 하나에 대해 그럴싸한 해답이 있다고 Swisher는 말한다. ”우리는 왜 호미니드가 아프리카를 벗어나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항상 궁금해 왔다.” 명백한 해답은 적어도 선사시대의 기준에 따르면 100만년 이라는 그 많은 시간을 모두 사용한 것이 아니라, 아마도 단지 10만년 정도만 사용된 것 같다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로부터 모험을 하기 위해 특별한 도구가 필요했다는 개념은 완전히 필요없게 되었다. 그러나 Swisher는 놀랄 만한 결론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코끼리는 그들의 역사동안에 여러 번 아프리카를 떠났다.” 그는 ”많은 동물들이 그들의 영역을 넓혔다. 주된 요인은 환경이 변하여 팽창을 쉽게 해 주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를 벗어나는데 석기 도구가 필요했던 동물은 하나도 없었다.”라고 지적한다.

과학자들은 이미 초기의 호미니드조차 다양한 거주지와 기후에서 생존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 예일대학의 고생물학자인 Elisabeth Vrba는 그들의 진화론적 성공(이것뿐만 아니라 Homo종이 계속 이어서 번성한 것)이 기후의 변화가 일어났던 곳과 연관되어 있음을 믿는다. 250만년에서 270만년 전 사이에 빙하기가 일어나 전체 온도가 20F정도로 내려갔으며, 습기가 많은 아프리카의 삼림지대는 건조하고 개방된 (아)열대 지방의 대초원으로 변했다.

화석을 연구함에 따라, Vrba는 커다란 변화를 겪은 이들 환경에서 커다란 포유동물 집단을 발견했다. 많은 숲의 영양들은 커다란 버팔로와 다른 초식동물들에 의해 대체되었다. Vrba는 초기 호미니드의 진화도 동일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믿는다. 초원이 계속 확장되고 나무가 줄어들면서, 숲에 거주하는 침팬지는 개방된 곳에서 사는 데 더 익숙한 두발동물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마지막으로 호모 에렉투스는 구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갈 준비를 했다.

만약 초기의 인간들의 적응성이 그들을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면, 존스 홉킨스의 Walker는 급격한 육식의 증가가 이들의 이동을 촉진시켰다고 믿고 있다.  '일단 당신이 육식주의자가 되면, 세계는 달라질 것이다. 육식주의자는 거대한 자신의 영역이 필요하다.'라고 그는 말한다. 호모 에렉투스는 오늘날의 인간들처럼 아마도 고기와 식물을 모두 먹은 것 같다. 그러나 Walk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들 생명체와 다른 영장류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나는 그들이 활동적으로 사냥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항상 그들이 가능하자마자 아프리카를 떠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호모 에렉투스는 수 만년 내에 아시아로 갈 수 있는 모든 방식의 여행을 할 수 있었을까? Walker는 '만약 당신이 매 20년마다 20마일씩 전진한다면, 그 먼 곳으로 가는 것이 그리 오래 걸린다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지금 가장 큰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진화에 대한 가장 뜨거운 논쟁 중의 하나로 어떻게 아프리카에서 그렇게 빨리 탈출할 수 있었을까? 한쪽 측면은 '아프리카 기원설(out of Africa)'을 주장하는 인류학자들이며,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들이 단지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출현했다고 본다. 다른 쪽은 '다지역 기원설(Multiregional hypothesis)'를 주장하며, 현대의 인간들이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진화했다는 개념을 주장한다.

Swisher와 그의 동료들은 그들의 발견이 '아프리카 기원설'측의 학설을 지지한다고 믿는다. 만약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가 거의 100만년 동안에 나누어졌다면,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그들은 두 가지 다른 종으로 진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격리된 그룹들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한 종으로 진화한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Swisher는 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가 멸종되고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인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생각한다.

또다른 해석을 제공하는 '다지역 기원설' 측의 리더인 오스트레일리아의 Thorne는 그것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떠날 때마다, 결과는 동일했어야 한다. 집단은 격리에 의해서 진화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하는 그룹들과 상호 교배를 함으로써 유전 물질이 전해지면서 생긴다. Thorne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인간의 유전자는 요하네스버그와 베이징 그리고 파리와 멜보른 사이에 흐르고 있다. 빙하기의 차단을 분리해 놓고 보면, 그들은 아마도 호모 사피엔스 진화의 전체 영역을 통해 이일을 한 것 같다.”

영국의 국립 역사 박물관의 Shristopher Stringer는 ”만약 우리가 지난 50만년 동안의 화석 기록을 본다면, 아프리카는 원시인으로부터 현대인까지 진화의 연속성을 가진 유일한 지역이다”라고 반대 주장을 펼친다. Stringer는 현대인으로부터 가장 오랫동안 신뢰받는 화석들은 과거 12만년 전까지의 아프리카와 중동으로부터 얻은 것들이다. 최초의 현대 유럽인들과 아시아인들은 4만년 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중국에서 20만년 된 인간의 두개골이 발견되었다는 새로운 보고는 무엇인가? Stringer는 그 주장은 정말한 조사에 근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와 그의 동료들은 설명해야 될 일들이 많아질 것이다.

결국 인간의 진화라는 갈등의 무대는 모든 이론이 전투를 겪게 되는 곳이며 새로운 증거들은 다른 편에 의해서는 동일한 방식으로 해석되어질 여지가 거의 없다. 다음 번에 있을 큰 발견은 어쩌면 다지역 기원설로 기울거나 또는 아프리카 기원설을 확신하거나 또는 새로운 의견에 무게를 실어줄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호모 에렉투스는 아프리카 밖의 여러 곳에서 출현했으며, 그들의 조상이 태어난 대륙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돌아왔다는 식이다. 또한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에게 무시될지도 모른다.

다음 화석에서는 인간이 속한 과(科)에서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음을 증명할 수도 있다. 아마도 어떤 것들은 멸종했고 어떤 것은 중간 조상일 것이다. 빈약한 자료와 풍부한 상상 속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이 끊임없는 매혹적인 분야가 언젠가는 큰 놀라움을 가지고 올 것이라는 것이다.

 

번역 - 한국창조과학회 편집부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2/e29/e29o11/times.htm

출처 - 기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91

참고 :

Leon Jaroff
2004-07-24

Time 지 기사 번역 모음 4 

: 필트다운인 사기꾼이 밝혀지다.

Time 지 1996년 6월 3일자 : Talk of The Streets


      인간과 원숭이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로써 한 때 갈채를 받았던 필트다운인은 1950년대 초기에 사기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 미스테리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1912년에 이 유물은 잉글랜드 서부지역의 자갈 채취장에서 발견되었는데, 대체 원숭이의 더러운 턱과 인간 두개골의 파편을 사용하여 오래된 것처럼 만든 사기꾼은 누구일까? 지난주 영국의 고생물학자 브라이언 가디너(Brian Gardiner)는 그와 영국 자연사 박물관의 연구원인 앤드류 큐란트(Andrew Currant) 가 범인을 알아냈다고 발표했다. 그 범인은 예전에 죽은 박물관의 동물학 관리자로 일하던 마틴 힌톤(Martin A.C.Hinton)이었다. 증거는 무엇인가? 박물관의 지붕에서 힌톤의 이름의 머릿글자가 새겨진 가방이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서 더러운 뼈들이 발견되었다. 이 뼈들은 필트다운인 사기에 사용된 것들이었다고 가디너는 말한다. 왜 힌톤이 그와 같은 일을 했을까? 가디너에 따르면, 힌톤은 그와 사이가 나빴던 스미스 우드워드(Arthur Smith Woodward)라는 동료를 속이기 위해 이 일을 한 것 같다. 우드워드는 한 때 필트다운인을 통해 명성을 얻었었다. 가지너는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만약 당신이 어떤 것을 믿기 원한다면,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당신이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번역 - 한국창조과학회 편집부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881

참고 : 5768|5796|6292|6425|6476|6423|6305|6271|6243|6190|6052|5952|5948|5819|5818|5802|5701|5528|5525|5507|5496|5492|5455|5406|5375|5349|5334|5218|5180|5155|5157|5129|5051|5025|4880|4847|4842|4833|4824|4820|4812|4785|4763|4751|4720|4709|4682|4660|4650|4626|4593|4563|4499|4498|4432|4410|4372|4315|4266|4176|4053|4007|4000|3989|3988|3890|3867|3848|3834|3656|3431

Leon Jaroff
2004-07-24

Time 지 기사 번역 모음 2 : 네안데르탈인의 미스테리

     맨처음 독일의 노동자들이 멸종된 동굴 곰의 유해를 예전에 발견했던 것을 생각해 냈다. 1856년 어느 여름날 석회석을 채석하던 중에 그들은 뒤셀도르프(Dusseldorf) 근처에 Neanderthal (Neander 계곡)이라고 불리는 골짜기가 있었는데, 이 골짜기의 한 쪽 면에 있던 작은 굴을 폭파시켰다. 곡괭이를 가지고 동굴을 파가던 중에 그들은 이상한 두개골과 단단한 뼈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해골 유해를 옆에다 치워놓고 그들은 계속 땅을 파 나아갔다. 그들은 그들의 발견이 엄청난 혼란과 놀라움을 줄 것이며, 그리고 오늘날까지 열띤 토론이 계속되게 해 줄 것이란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뼈들은(그리고 다른 것들이 북쪽으로는 멀리 영국, 동쪽으로는 우즈베키스탄, 남쪽으로는 이스라엘에서도 발굴되었다.) 과거 27,000년에서 20만년 사이에 살았던 원시인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네안데르탈인의 유해들이다. 네안데르탈인과 관련된 많은 오해들과 미스테리들이 해결되는 동안 한가지 의문이 해결되지 않은채 남게 되었다. 진화론의 계통에서 네안데르탈인이 속한 branch는 소멸되고 반면에 Homo sapiens (현대인)는 끊임없이 진화했는가? 아니면 그들은 적어도 오늘날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실제 조상들인가?

네안데르 계곡의 발견이 있던 그 시점에, 찰스 다윈은 아직 그의 유명한 '종의 기원'을 출판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여전히 소수의 과학자들 사이에서 진화론에 대한 어설픈 추측만이 있을 뿐이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은 창조이래 분명히 변하지 않았음을 믿었었다.

동굴로부터 가져온 두개골과 갈빗대, 골반뼈 일부분과 팔다리뼈 등을 가져와서 점검해본 결과 아일랜드의 지질학자인 윌리암 킹(William King) 박사는 화석이 멸종된 인류의 다른 종인 것 같다고 제안했다. 그는 돌출된 눈두덩을 가진 두개골을 보고 이들이 야만스러움을 벗어나지 못한 체 한 때 살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오래되었다는 것조차 의심을 했다. 독일의 유명한 해부학자인 루돌프 버쵸(Rudolf Virchow)는 이 동굴인을 현대의 Homo sapiens 라고 불렀다. 이 동굴인은 어린 시절 구루병에 의해 기형적인 몸을 가졌고, 나중에 살면서 관절염에 걸렸다. 그리고 평평한 두개골은? 그는 이마에 강력한 가격을 당한 것 같다고 버쵸는 의견을 밝혔다.

버쵸의 견해는 추가적으로 두 개의 네안데르탈인의 해골들이 벨기에의 스파이(spy) 지역에 있는 동굴에서 발견될 때인 1886년까지 널리 받아들여졌다. 버쵸가 이들을 질병에 걸린 현대인의 유해라고 주장한 반면에, 다른 과학자들은 그와 같은 일치는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원시적인 도구들과 해골들 근처에서 발견된 멸종된 동물들의 유해를 보고서 깊은 자극을 받았다. 그들은 네안데르탈인이 오래되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다윈의 논쟁적인 새로운 이론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은 이 이상한 유해들이 그들과 같은 고상한 인간의 조상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1900년대 초에 많은 수의 네안데르탈인의 해골들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주로 프랑스 서부의 Dordogne지역에서 발견되었다. 가지고 있던 이들 유해들을 가지고 과학자들은 그들이 네안데르탈인의 구체적인 출현을 더 잘 묘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이런 재구성의 일은 프랑스의 고생물학자 마셀린 보울(Marcellin Boule)가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인간의 조상이라는 기존의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관념에 심한 부담감을 받았던 것 같다. 보울은 네안데르탈인은 물건을 잡을 수 있는 발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다리를 충분히 펼 수 없었고, 척추가 곧게 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서투르게 그의 머리를 앞으로 내밀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의 과학논문에서 보울은 '야만적인 모습에 꼴사나운 몸'이라고 묘사했다. 이와 같은 유인원의 그림은 수 십년 동안 도전을 받지 않고 널리 주장되어졌다. 실제로 이와 같은 점은 오늘날 교과서에서 '네안데르탈인'을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하면서, 삽화와 만화로써 계속 그 표현이 남아있다.

그러나 이 그림은 잘못되었다. 1957년에 미국과 영국의 연구자들이 보울이 연구했던 해골을 다시 재검사해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네안데르탈인은 똑바로 서 있었으며, 몸을 구부린 보울의 표본은 관절염에 기인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또한 발로 물건을 쥘 수는 없었고, 척추도 휘지 않았다. 그들은 네안데르탈인의 뇌가 초기 현대인만큼 크며, 보울은 그의 논문에서 이 사실을 무시했었다고 밝혔다.

지난 수 십년동안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자주 변화를 겪고 있다. 다양한 발굴지로부터의 증거는 그들이 단순한 도구들을 사용했으며, 장식품을 걸쳤으며, 종교의식이 있었고 의례를 갖춘 장례식을 가졌음을 밝혀냈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과 관련된 모든 연구자에게는 네안데르탈인들과 현대인들간의 관계가 여전히 뜨거운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다. 어떤 교과서들은 네안데르탈인을 Homo sapiens의 하위 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다른 종인 Homo neanderthalensis로 정리되어 있다. 영국의 고생물학자인 크리스토퍼 스트린저(Chrostopher Stringer)는 네안데르탈인은 Homo erectus로부터 유럽인으로 진화한 것이며, 35,000년과 30,000년전 사이에 갑자기 멸종하면서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Homo sapiens와 실제적으로 경쟁하지 못한 것임을 확신한다. 그는 '나의 견해로는 그들은 멸종했으며, 그들 자신의 방향으로 상당히 진화를 했지만 그러나 현대인의 방향은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이 주장을 인정하는 전문가들 중에는 텔아비브(Tel Aviv) 대학에 있는 해부학자 Yoel Rak도 있다. 그는 '네안데르탈인들은 우리의 역사와 전혀 관계가 없다.'라고 믿는다. '그들은 멸종되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아마도 유럽의 빙하기 때의 매우 추운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적응하는 등 너무 특별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또 '그러나 그와 같은 변화가 있었을 때, 매우 특별화된 생명체는 커다란 불이익을 받게 된다'라고 말한다.

다른 과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는 오늘날도 살아 남았다고 말한다. 미시간 대학의 인류학자인 밀포드 월포프(Milford Wolpoff) 는 여러 지역에서 수 만년 전에 함께 공존했던 Homo sapiens와 네안데르탈인 사시에 상당한 상호 교배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증거로써 초기 유럽인들 안에서 네안데르탈인의 특징을 지적했다.

하버드 대학의 인류학자인 Ofer Bar-Yosef는 빙하기 시대가 진행되면서 네안데르탈인들이 Homo sapiens가 있는 지역으로 이동해갔을 때 교배가 일어났으며, 빙하가 사라져가면서 초기의 Homo sapiens들이 북쪽 지방으로 되돌아가는 네안데르탈인을 따라왔다고 믿는다. 가장 최근의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해부학적 변화를 인용하여, 일부 과학자들은 그들이 초기 유럽인들로 독립적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한다. 월포프는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한 지혜로운 해답을 제안한다. '우리는 네안데르탈인이 인간의 조상인지를 물어볼 수는 없다. 우리는 단지 어떤 네안데르탈인이 일부 유럽인의 조상이었는가라고 질문해야만 한다. 대답은 '예'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번역 - 한국창조과학회 편집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879

참고 : 3880|3994|4078|4260|4266|4410|4682|6190|5525|5025|5918|5819|5528|4820|6127|6052|4812|5884|5818|5802|5792|5796|5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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