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D. Morris
2004-07-26

노아는 어떻게 방주를 혼자 힘으로 만들었을까?


     어떤 사람들은 노아의 방주를 제작하는 것이 불가능 한 일이라면서 홍수 이야기를 비웃는다. 과연 노아는 어떻게 방주를 제작했을까? 사실상 우리는 이 점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몇 가지 합리적인 가정을 한 후에 그 일이 얼마나 큰 일인지 살펴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가 살던 당시의 죄악 된 문화를 120년 후에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셨다(창세기 6:3). 그러나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지시한 때는 명확하지 않다(창 6:14-16). 일단 우리는 노아가 120년 동안 이 일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노아의 세 아들들은 홍수가 일어나기 100년 전쯤부터 태어나기 시작했으므로(창 5:32, 7:6), 어느 정도의 기간동안은 아들들이 방주 제작을 도왔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노아의 할아버지인 무드셀라는 홍수가 나던 해에 죽었으므로 방주를 제작하는 동안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은 단지 8명이다. 그 8명은 노아와 그의 아내, 그리고 노아의 세 아들과 그들의 부인들을 의미한다. 이들 모두는 대홍수가 닥쳤을 때 살아남았던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었다(창세기 7:13; 베드로 후서 2:5). 어쩌면 노아는 도움을 받기 위해 일꾼들을 고용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노아가 방주를 제작하는 기간동안에는 생계를 꾸려나가지 않아도 될 만큼의 재산을 가졌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점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자세히 아는 바가 없다.


자 그럼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보자. 방주 제작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노아와 세 아들들뿐이라고 가정해 보자. 과연 그들만의 힘으로도 방주를 제작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방주를 제작하는 일이 어느 정도의 일인지를 먼저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한 규빗을 18 인치로 가정해볼 때 길이가 450피트, 넓이가 75피트 높이가 45피트로(창세기 6:15), 성경은 우리에게 방주의 전체 크기를 알려주고 있다.(참고 : 1피트는 12인치, ⅓야드, 30.48 cm 와 같은 길이이다.) 우리는 또한 방주에 세 개의 갑판(deck)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 이를 정리해보면 방주의 전체 부피는  와 같다.

 

그러나 내부 구조는 대부분 비어 있었다. 비록 큰배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내부 구조물은 95% 이상이 비어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최악의 시나리오 상황에서 방주의 부피의 20%가 목재로 이루어져 있고, 네 명의 사람들이 목재를 모으고, 방주 제작 장소로 이동하고, 필수적인 외형을 제작했다고 가정해보자. 


유의할 점은 방주는 외형의 아름다움이나 배의 속력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지 강하고 물에 잘 뜰 수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모양 면에서는 난잡한 축사와 닮았을 것이고, 기술적으로 안정하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창조 후에 오랜 수명을 가지고 이상적인 환경 속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은 틀림없이 지적이며 유능했을 것이다. 만약 노아의 가족들이 일년 내에 방주 제조 일에 익숙해졌을 것이라고 가정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 모두가 이 분야의 전문가였을지도 모른다. 네 명의 경험 많은 일꾼들이 하루에 평균 체적 15 피트의 목재를 다루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가능할지라도 이것은 굉장히 느리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최악의 상황임을 기억하자.


이제 계산을 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이 결과로 볼 때, 최악의 시나리오 아래에서 계산해 보았을 때 65년이 걸린 것이다. 방주를 제작하는 일은 커다란 일이다. 그러나 노아는 신실한 사람이었으며 이 일을 성취했다. 우리가 보는 것처럼 단순한 계산을 통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의 믿음을 확장시킬 수 있다.

 

* 편집자주 ; 본 글은 ICR에서 나오는 Back To Genesis 지 136호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출처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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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720|721|6255|6254|6320|5906|5930|5468|5065|5062|2851|1458|1455|3032

김희택, 박진호
2004-07-26

노아의 방주 그 과학성을 밝힌다


문 : 노아의 방주는 과연 우수한 선박이었는가? 


답 : 세계 조선공학사(造船工學史)상 뿐만 아니라, 세계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배를 손꼽는다면 뭐니뭐니해도 노아의 방주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노아의 방주야말로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의 제 2기원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유명한 배는 오늘의 미국이 있게 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산타마리아호 인데, 콜럼부스가 이 배를 타고 대서양을 향해하여, 결국 신대륙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스페인 마드리드에는 산타마리아호를 전시한 박물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배에 대한 저술이나 연구가 활발한데 비해, 노아의 방주는 가장 기념비적인 선박이지만, 노아의 방주에 대해선 알려진 게 무척이나 미약한 실정이다. 이에 우리나라에서 행해진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면밀히 살펴보기로 한다.

 

방주에 대한 역사적 고찰 

방주에 대한 고대의 기록으로는 비록 성서상의 방주와는 동떨어진 치수지만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된 설형문자 점토판이 있다. 이 점토판에는 길이, 너비, 높이가 다 같이 140규빗(80m)으로 6층의 방주가, 그 위에 돛대가 있었고, 조타수(操舵手)도 있다고 쓰여져 있다. 이러한 방주의 조타수에 대해서는 성서에 일체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단지 물위에 그냥 띄워두기 위한 개념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사각형의 배가 존재했을 것으로는 믿을 수 없다. 이에 비해 성경의 기록은 단순하지만 월등한 것이다. 방주는 격심한 풍랑을 견디기 위해 그 형태와 규격이 완벽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방주의 형태에 대해 개략적으로 묘사해 본다면 방주는 밑바닥이 평평했고, 파도를 헤치고 속력을 낼 수 있도록 뱃머리가 날렵한 선박의 형태와는 달리, 적재용량을 최대한으로 하기 위한 거대한 장방형(長方形)의 평저선(平底船)으로서, 엄청난 홍수를 견디며 물위에 안정되게 떠 있을 수 있는 구조물이라고 여겨진다.

과거 노아의 방주보다 규모는 작으나 모양을 그대로 본뜬 방주를 네덜란드나 덴마크에서 여러 척 만들었는데, 속력을 위주로 하지 않고 적재량이 우선되는 선박으로서 뛰어난 성능이 발휘됨이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실험이 있기 전에 이미 입증되었다. 예를 들어 다른 선박보다도 적재량이 1/3이나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화물을 처리하는데 소요된 인력은 동일한 규모의 다른 선박과도 같았다.

게다가 물위에 축소된 모형방주를 띄워놓고, 6개월 동안 물을 점진적으로 증가시켰다가, 다음 6개월 동안 점차적으로 물을 감소시키고 모형방주를 물이 비교적 적은 내륙으로 이동시켜 본 결과, 그러한 구조물이 성서에 나타나는 환경의 변화를 견딜 수 있음이 증명되기도 하였다.

한편, 그리스의 역사가 베로수스(Berosus)는 방주의 길이가 5스타디온(1,000m), 너비 2스타디온(400m)이라고 했다. 또 오리게네스(Origenes)라는 학자는 방주의 치수가 길이 40km 너비 1.2km라는 과장된 수치를 내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창세기의 저자가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았더라면, 점토판의 기록이나 그리스 역사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길이 135m, 너비 22.5m, 높이 13.5m라는 합리적이고 현실성 있는 치수를 내놓기란 전혀 불가능했을 것이다.

 

창세기의 노아 방주를 현대과학으로 

그렇다면 창세기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는 구체적으로 과연 어느 정도의 과학적 설계에 의해 건조되었을까? 창세기가 쓰여진 이래 수천년 동안 사실이면서도 면밀한 고증과 소위 '과학적 증거'가 뒷받침되어 있지 않아 일반인들은 물론 성서를 믿는 기독교인들까지도 상징적인 교훈이나 문학적인 우화로 치부되어진 노아의 방주를 현대 선박공학적인 측면에서 조사해 본 결과, 매우 견고하고 안전한 선박이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방주가 매우 현실성이 있는 배였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국가공인기관에 의한 노아 방주 실험 

국가출연기관인 해사기술연구소(海事技術硏究所, 舊선박연구소)가 작년 6월부터 본 학회의 요청으로 노아의 방주를 조선공학적 입장으로 접근, 이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연구소는 선박의 선형시험 및 관련성능 평가업무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관으로서 세계 조선 2위국인 우리나라 수출선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성능평가를 받고 있고, 그 결과는 외국의 선주(船主)들에게도 그대로 인정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480여 척의 선박을 성능 평가했다고 알려져 있다.

해사기술연구소는 본 학회의 의뢰를 받아 선박의 안정성 연구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인 홍석원 박사를 팀장으로한 9명의 전문연구팀에게 맡겨 선박의 안전성능을 실험하게 되었다.

연구에 앞서 우선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있었는데, 기초자료의 부족이 그것이었다. 특히 방주의 외부모습, 방주의 내부 구조에 대한 자료 등이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주자료의 제약성에도 불구하고 성경 창세기에 나와있는 노아 방주의 규격(길이135m, 너비 22.5m, 높이 13.5m)과 아라랏산에서 목격된 방주의 형상을 토대로 제작한 노아 방주 복원도를 바탕으로 하여 실험용 방주를 건조할 수 있었다.

 

현대의 최첨단 선박보다 우수 

1950년대 미국에서도 일찍이 방주에 대한 실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선박공학의 수준이나 기타 제반 여건들은 90년대인 지금과 비교할 때 모든 면에 있어서 뒤쳐져 있었다. 그래서 50년대 미국에 있었던 방주실험은 아주 기초적인 선박의 복원안정성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따라서 이때부터 40여년이 경과한 지금 현대적 수준에 걸맞은 실험을 하고자, 앞서 미국에서 있었던 복원안정성 뿐만 아니라 방주의 종합적인 안정성평가에 주안점을 두었다. 특히 두드러진 점은 방주자체의 모형실험에 큰 의의를 두었고, 다른 형상을 갖는 배와의 상대평가도 수행하여 이 배의 진면목을 알아보려고 하였다. 이를 위해 홍박사 팀은 테스트에 쓰인 실험용 방주로 길이를 50분의 1로 축소(길이 2.7m) 제작하였고, 해사기술연구소의 대형수조(길이 200m, 폭16m, 수심 7m)에서 인공적으로 다양한 높이, 강도, 속도의 조류, 파도, 풍랑, 바람을 만들고 역시 축소된 내부 선체, 선원을 실은 상태, 내부 화물을 적재한 상태 등 다각적으로 실험을 수행했다. 그 결과 노아의 방주가 현대의 최첨단 조선공학적 기법으로 제작된 그 어느 선박보다 뛰어난 안정성을 갖고 있는 배였다는 것이 실증되었다. 또 상대평가에 의한 우수성을 알아보기 위해 노아 방주와 동일한 부피를 가지면서 길이, 폭, 높이의 비율이 각기 다른 현대 조선공학적 기법으로 제작한 12척의 다른 모형선박을 만들어 선박의 안정성(파랑안전성, ·구조안전성, 복원안전성)에 대해 수 차례의 비교 수치해석과정을 거쳤다. 조선공학적인 관점에서 변환 가능한 12척의 모형 배들과의 비교 수치해석결과, 선형(船形)의 높이가 같은 경우에는 노아 방주가 가장 최적인 복원안정성을 주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에 대해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장창두 교수는 아직 방주구조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결과가 없는 상태에서, 이 정도수준의 연구성과는 과거 외국의 실험보다 더 한층 앞선 것이라고 언급했다.

 

방주학의 태동 

방주의 안정성 실험은 방주연구에 있어서 지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로선 방주의 종합적인 연구가 불충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주내부구조에 대해선 아직 밝혀내지도 못한 실정이다. 따라서 창조과학에 대한 깊이 있고 전반적인 연구 못지 않게 방주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리라 본다.

어차피 창조과학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피조세계의 오묘한 이치를 밝혀나가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그 한 분야인 방주학(方舟學: Arkology)도 창조과학의 중요한 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큰 범주로써 창조과학이 하나님의 지으신 피조세계들을 밝히는 여러 가지 과학적인 행위들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또 하나의 작은 범주로써 방주학은 노아의 방주 그 자체의 종합적인 연구뿐만 아니라, 방주로 인한 노아의 홍수 전, 후의 제반적 환경까지도 포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그래서 방주학을 접근할 때, 홍수를 지사학적 측면에서 과학적으로 다룰 지질학자, 지리학자, 그리고 홍수이전의 문명과 생활사를 연구하는 고고학자, 인류학자, 홍수이전(以前)과 이후(以後)를 구분 짓게 한 분기점인 노아의 방주, 그 자체를 현대의 선박공학적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는 조선공학자, 해양학자, 홍수이전 주민 수를 가늠하는 인구학자, 통계학자, 방주 건조에 쓰였던 여러 가지 구조의 재질(才質)을 알아낼 수 있을 재료공학자, 임학자, 화공학자, 홍수이전에 통용되었던 최초의 언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 기호학자, 홍수로 인한 지구의 기온하강이나 천체의 변화를 연구하는 기후학자, 천문학자, 방주에 승선했던 생물과 홍수전후의 생물들의 사이를 연구하는 동물학자, 식물학자, 방주의 원형(原形)을 컴퓨터그래픽(Computer Graphics)에 의해 재현시킬 수 있는 그래픽디자이너 등 실로 다양한 관련분야의 전공이 필요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이렇게 다양한 전공분야의 연관성 때문에, 전 이화여대 교수였던 민희식 교수는 방주연구를 위해 각계 각층의 전공분야를 가진 학자들이 모여서 심포지엄을 해야 할 정도라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방주학의 연구에 있어선 어느 특정한 한 분야의 전공으로만 파헤쳐 지기보다는, 총체적(holistic)이고, 다양한 측면에서의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 방주의 영적 의미를 제시할 수 있는 신학(神學)까지도 포함될 수 있겠다.

아무튼 창조과학의 대부분의 분야가 그러하듯이, 아직 방주학은 미개척 학문분야로 남아있다. 조금이라도 자기가 하는 전공과 관련되어 질 수 있고, 방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성과가 진척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출처 - 창조지, 제 86호 [1993. 5~6]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44

참고 : 720|721|6255|6254|6320|5906|5930|5468|5065|5062|2851|1458|1455|3032

김희택, 박진호
2004-07-26

노아 대홍수의 증거물인 방주는 존재하는가?


답: 성경의 많은 기록이 역사적인 사실로 확인된 것과 마찬가지로 아라랏산에 방주가 안착되었다는 기록은 단순한 우화나 에피소드가 아니며, 방주는 지금까지도 실존(實存)하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에 지면을 할애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대홍수』와 이 홍수 재난에도 불구하고 수천년 동안 계속 전승되었던 방주에 대한 기억은 아마도 인류의 전설 가운데서도 가장 끈질긴 것일 것이다. 비록 이것이 전설이라도 말이다. 성경 창세기에는 이 대홍수에 관한 이야기가 무려 5장을 차지하고 있다. 천지창조,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 에덴의 동산, 가인과 아벨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전부 합해도 불과 4장 밖에 안 되는데 말이다. 

「방주」가 『아라랏산』의 산상에 표착하였다는 성경의 기록은 기독교 세계에서는 2천년 가깝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 왔으며, 그 보다 몇 세기 이전부터 헤브라이, 아르메니아,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등을 포함한 여타 상이한 문화지역에서조차도 인정되고 있다. 이슬람 세계의 경전인 『코란』에서「방주」에 관한 전설이 사실로 인정된 지도 이슬람교가 7세기 중엽에 창건된 이래로 거의 1400(AD 7C~20C)년이나 된다.

이럴 정도까지 깊이 믿을 수 있게 된다면, 현대의 탐험가가 지난 120년 동안 아라랏산에 거대한 배가 지금도 남아 있는가를 확인하려한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들에 있어서 힘이 되는 것은 그 산에 올라가 「방주」를 보고 만졌으며 내부에 들어가 보았다고 하는 사람들의 체험담과, 또 아라랏 산정 부근을 비행 중에 그것을 보았다는 파이롯들의 보고들이다. 1972년 미국의 '지구자원 인공위성'(ERTS)이 포착한 사진이나, 정찰기인 U-2기에 촬영되었다고 하는 사진도 있어, 방주가 산상에 존재할 가능성을 가일층 높여주고 있다. 

아라랏산의 「방주」가 있다는 끈질긴 신앙은 비단 종교그룹 뿐만 아니라, 선사문화(先史文化) 연구자들이나 고고학자, 그리고 최근에는 지질학자 가운데에도 있기 때문에, 그 실존을 에워싼 문제는 기존의 고고학계(考古學界)에서도 문제시되었다. 펜실베니아 대학 박물관의 레이니 관장은 이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이 세상에 어떠한 일이라도 있을 수 있지만, 혹시 고고학상 있을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이것이 그것이다."


그러면 고대의 배가 썩거나 자연재해에 의해 파손되지 않고 수천 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보존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크게 3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자. 

첫째는, 방주의 재질(才質)이다. 방주의 건조에 사용했던 나무는 영어표기로 'Gopher'라는 나무였다. 오늘날 고퍼라는 나무가 어떤 종류의 나무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단지 학자들은 '고퍼'를 삼목(杉木) 즉 참나무로 추측한다. 이 나무는 건축에서 가로 들보용으로 많이 사용되었고, 중국의 明, 淸나라에서는 정크선과 같은 목조선을 건조할 때 사용되었었다. 참나무는 방수성(防水性)이 아주 강하면서 자연적인 수분을 함유하고 있다. 그리고 단단하고, 바탕이 치밀하며, 농도가 높은 목재이기 때문에 방주 건조용 재료로는 아주 안성 마춤인 것이다. 노아가 이처럼 바탕이 질기고 밀도가 높으며 내구성(耐久性)이 아주 강한 참나무를 사용했기 때문에 수천 년이 지나도 방주는 별다른 이상 없이 아라랏 산상에서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배를 건조할 때 방수제로 사용했던 역청(또는 피치: pitch)에 있다. 역청은 역청암이라는 검거나 푸른빛의 광택이 나는 화산암(火山岩)에서 나오는 광물성 기름의 찌꺼기로, 고대에는 주로 물과 습기가 스며들지 못하도록 성벽 축조시 벽돌과 벽돌 또는 매듭의 틈바구니를 메우기 위해 사용했다. 이러한 역청은 사해(死海)에서 페르시아만옆 아랍지역의 원유 산유국까지 풍부하게 발견되고 있는데, 배의 방수용으로 가장 이상적인 역청이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다량으로 발견되었고, 또 로마제국 시대에도 커다란 역청의 덩어리가 사해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이라크의 바그다드市에서 불과 15Km 떨어진 지점에서 많은 양의 역청이 쏟아져 나왔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노아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그 어느 평원에서 방주를 건조했으리라 짐작된다.

中東지방에서 우리나라까지 유조선으로 원유를 운반하면, 연안에 위치한 정유공장의 증류탑에서 원유를 증류시키게 되는데, 비점 범위에 따라 제일 먼저 가솔린이 나오고, 다음에 나프타 등유, 경유, 중유 그리고 맨 아래에 찌끼유가 남는데, 보통 우리나라에서 아스팔트 도로를 깔 때 도로에 쏟아 붓는 피치라는 물질로 역청에 해당된다.

이렇게 오늘날에는 자동차 타이어 마찰의 완충제 역할을 하는 역청이 고대 성벽의 돌구조의 틈새를 메워주거나 목조선을 건조하는데 방수제 역할을 주로 담당했던 것이다. 노아가 방주를 건조할 때, 방주의 내부, 외부에 골고루 발랐던 피치는 후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안착하고 나서부터는 썩는 것을 최대한 억제시켜주는 방부제(防腐劑) 기능도 발휘했을 것이다. 

셋째, 방주 보존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을 요소로 해발 4000미터가 넘는 지점에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고 추정되는 방주를 보호한 아라랏산의 추운 기후와 만년설(萬年雪)이다. 이렇게 방주는 1년내내 거의 녹지 않는 만년설(萬年雪)에 덮여 있기 때문에, 사시사철 거의 완벽할 정도로 냉동되어, 이 목재 구조선이 썩거나 부패되지 않았을 것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아라랏산이 거대한 대형 냉장고의 구실을 하기 때문에, 냉장고 속에 담겨져 있는 식빵같이 장기간에 걸쳐 싱싱하게 저장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최근 알프스 산맥에서 발견된 Ice Man에 관한 기사이다. 3000년도 더 오래된 인간의 육체가 그 오랜 세월 동안 썩어 없어지거나 흙과 진흙에 묻혀 없어지지 않고, 시체보존 처리가 고대제국에서도 가장 우수하다고 정평이 나있는 이집트 람세스 왕의 미이라보다 더 완벽하게 보존되었다는 사실에서 만년설(萬年雪)의 냉동보존 능력이 탁월함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노아의 방주는 인체구조보다 더 견고한 참나무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인간의 육체보다 더 이상적으로 완벽하게 더 오랜 기간동안 부패에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니, 하물며 만년설 속에서는 얼마나 잘 보존되었겠는가? 이렇게 고대의 배가 냉동 저장된 덕분으로 설산(雪山) 정상 복판에 보존되었다는 것은 그렇게 있을 수 없는 일일까? 회의론자가 말하는 장소와 기후상의 문제는 오히려 그 보고의 신빙성을 뒷받침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목조 배나 거대한 목조 구조물이 몇 천년이고 보존되는 유일한 방법들은 빙하의 내부, 동토(凍土)의 속, 심해(深海)의 모래언덕 혹은 사막의 구릉에 파묻혀 있는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수목(樹木)이 자랄 수 없는 4000미터가 넘는 산상에 방주가 어떻게 올려져서 오늘날까지 보존되었냐고 한다면, 그것은 지구상에 대이변으로 해양의 물이 산더미 같은 홍수로 변하여 격동과 융기나 침강을 되풀이하여 지표를 돌진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산상에 배가 올라가는 것을 검토하려면 우선 인류 역사상에 있어 세계적 대홍수와 지진이 있었다고 하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실이 아직까지는 전통적인 고고학계(考古學界)의 대다수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고대와 중세의 해설자들은 아라랏산의 방주 이야기를 할 때 그들은 그 존재를 일반상식과 같이 당연하게 취급하였다. 왜냐하면, 당시엔 누구라도 산에 올라가 볼 수가 있었으며, 때로는 평지에서도 빙하의 눈과 얼음을 배경으로 방주가 새까맣게 보였기 때문이다. 


BC 3세기 바빌로니아의 신관(神官)이며 저술가인 베롯소스에 의하면, 방주까지 올라간 사람은 언제나 배의 측면에서 송진을 깍아내 가지고서 귀신을 몰아내는 부적(符籍)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송진이라는 것이 보통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송진이 아니고 방주의 이음새 부분의 피치로서 방주를 문질러서 피치를 수집해 부적으로 사용했음을 암시한다. 다른 저술가의 설명에 의하면 기념품을 목표로 하는 무리들은, 올라가는데 힘들고 방주는 곧장 눈속에 파묻히기 때문에 이런 기회는 좀처럼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송진뿐만 아니라,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작은 나뭇조각을 절취하여 돌아왔다고 한다. 

그로부터 600년이 지난 AD 4세기 사라미스의 승정(僧正) 에피파뉴스는 교리를 뒷받침하는 증거로서 방주의 틀림없는 실존을 들고나와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날에 와서도 노아방주의 잔해가 쿠르드족의 땅에 가면 볼 수 있다고 하는 것에 당신은 정말로 우리들이 자기들의 주장을 증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과거 쿠르드족(族)은 낯선 사람들을 보면 바로 발포해 온다고 알려져 있어 아라랏산의 탐험가들을 그 동안 꽁무니 빼게 하는 위험 요소 중에 하나였다. 또 다른 위험으로는 쿠르드인의 울프라하운드(거대한 늑대개), 곰, 독사, 그리고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들개의 집단들이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것은 급작스런 눈사태, 푸석푸석한 암석의 낙하, 빙하의 눈과 얼음, 얼음 가운데에 돌발적으로 입을 벌리는 함정인 크레바스,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지진, 변화불측한 악천후의 날씨 등이다. 

노아의 홍수 이후 몇 백 세대에 걸쳐 아라랏산을 지나가는 여행자들은 자신의 조상이 유래된 성지(聖地)임을 알았던지, '혹시나 거대한 배 같은 것이 빙하에서 튀어나오지 않는가, 그것보다 두개의 아라랏산 (원추형의 소(小)아라랏산과 중앙에 원개형인 대(大)아라랏산)에 끼어진 낮은 곳 부근에서 보이지 않을까하고 언제나 눈을 집중시켜 왔다. 고명한 아르메니아의 왕자로 나중에 프랑스의 수도승이 된 제한 하이슨은 13세기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라랏산의 정상에는 언제나 거대한 검은 물체가 보인다...「노아의 방주」라고 말들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저명한 탐험가 마르코 폴로(AD 1234~1324)는 그의 여행 도중 아라랏산을 지나칠 무렵에 그의 저서『동방견문록』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아무도 오를 수 없는 산봉우리, 만년설로 뒤덮인 이곳에는 노아의 방주가 있다.'"

1883년 5월에 지진으로 산의 일부가 빠금 입을 벌리고 목조의 배로 보여지는 것이 노출되어 있는 것을, 지진의 피해상황을 관찰하기 위해 온 터어키 관리들의 눈에 포착되었다. 관리들은 빙하에 돌출한 거대한 목조 구조물을 발견하였다고 보고하면서, 높이는 12m~15m라고 추정하였는데, 물체의 나머지 부분은 빙하깊이 묻혀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길이인가는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영국의 조사위원이 낀 동조사대는 내부로 들어가 보았다. 그 일부는 높이 4.6m 구획이 된 칸막이를 한 것 같이 보였다. 그 배와 같은 물체의 누워있는 모양으로 볼 때 산중턱으로 빙하와 같이 미끌어 온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었다. 산중에서 뜻밖에 얼어붙은 배에 조우했던 조사위원회는 「노아의 방주를 드디어 발견했다」고 보고하였다. 

당시 미국의 각 신문들은 현재의 UFO 목격 사건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약간 장난조의 반응을 표시하였다. 『뉴욕 헤럴드』는 「방주」에 얼음이 가득 차 있으면 미국까지 수송하는 비용의 일부를 이번 여름에 얼음을 팔아서 처리하자고 제안하였다. 또 이 신문의 별도 사설 난에서 이렇게 첨가하고 있다. "해군성은 지금 바로 「방주」를 구입하여야 한다. 세계 최대의 공화국의 면모답게 해군 공창(工廠)을 나오는 순간에 부패하지 않는 배를 적어도 한 척쯤은 보유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방주」발견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메소포타미아의 누일리 왕자라고 하는 남자가 1894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우리나라 대전 EXPO '93의 전신)에 나타나 적절한 자금원조를 해준다면 터어키에 있는「방주」를 세계박람회장에 까지 실어와서 많은 나라에서 몰려오는 관람객들에게 보여 줄 수 있게 하겠다고 어느 자본가 그룹에 제안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라랏산에서 터키의 관리들에게 발견된 물체는 얼마 뒤에 다시 얼음 밑으로 자취를 감춰 버리고 20세기 과학 문명의 발달에 힘입어 최초로 이 산의 상공을 비행한 파이롯에 의해 얼음의 위와 아래에 배 모양의 물체가 사진에 찍히게 될 때까지는 1, 2차 세계대전을 겪어야만 했다. 

최근에 와서도 여러 명의 사자(死者)나 행방불명자가 나오는 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설 탐험대가 조직되어 아라랏산의 수색에 나서며, 또 개인적인 등반자들로 끊이지 않고 있다. 아라랏산 밑의 도그바야짓트 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방주를 찾아 나선 탐험대나 개인등산가들의 베이스 캠프로 되어있다. 

프랑스의 등산가 훼루난 나바라는 산상의 눈 밑에서 파낸 사람의 손에 의해 다듬어진 흔적이 있는 대들보용 목재를 가지고 돌아왔는데, 후에 이것을 엄밀한 방사선 탄소측정법 (C14)에 의해 측정해 본 결과 BC 5000년이라고 하는 연대측정이 나왔다. 나바라 이후로 또 다른 탐험대들과 2차대전 후 비약적으로 신장된 첨단 항공기구에 의해 방주는 수차례나 목격되었다. 

수백년 동안 끊이지 않았던 방주에 관한 이야기나, 최근 20세기 비행기에 의한 방주 목격 사례가 수십 건이 넘는 것을 미루어 본다면, 방주는 오늘날까지 해발 5165m의 대(大)아라랏산 중턱의 만년설 속에 고이 묻혀 존재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창조지, 제 82호 [1992. 12]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42

참고 :

Henry M. Morris
2004-07-26

노아(NOAH)의 방주


방주의 목적 

대홍수에 대한 성서적 기록은 전세계적인 대격변으로서 그것을 묘사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대홍수의 목적과 결과는 다음과 같이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다.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세기 6:7)

육상 동물에 관한한 홍수에 의한 파괴는 전세계적이었다.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창세기7 :22)

그러나 홍수 이후 지상에 재 거주할 노아와 그의 가족 그리고 각종 동물 두 쌍을 보존하도록 하나님께서 방주 짓기를 명령하셨다.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창세기 6:14~16)

방주의 크기 

방주는 본래 수면에서 이동하는 것보다는 홍수의 물 가운데서 안정하도록 설계된 매우 커다란 상자였다. (히브리어 자체가 이것을 의미한다). 대략 한 규빗은 1.5 ft (피이트) 이므로 방주의 규모는 45 ft × 75 ft × 450 ft 이었다. 그림 1은 150 대 1의 비율로 축소한 방주의 그림을 나타낸다. 방주는 보통의 3 층 빌딩보다도 높고 축구 경기장의 1.5 배 가량 되는 매우 큰 규모였다. 그 총 부피는 450 × 45 × 75 ft = 1,518,750 입방피트, 즉 56,250 입방야드였다. 가축운반 표준화차의 용량은 2,670 입방피이트이므로 방주는 가축운반 표준화차 569 개와 맞먹는 용량을 지녔다. 이것은 엄청난 수의 동물들을 운반할 수 있었으며, 전 세계 모든 종류의 동물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음이 명백하다.

 

방주의 안정성 

대홍수로 인하여 야기된 수력학적, 기체역학적 힘안에서 방주는 온 일년동안을 물위에 떠다닐 수 있어야만 하였다. 방주 건조에 사용된 잣나무는 의심의 여지없이 매우 강하며 내구성이 있었다.

중간 갑판의 선상(船床)뿐 아니라 뱃전과 배밑바닥을 이루는 재질(材質)도 아마 세상에서 1600 년 이상 자라온 나무들로 깎아 만들었을 것이다. 역청(櫪靑; 히브리어 'Kaphar' 는 단순히 '덮는다' 는 뜻으로 영적으로는 ”죄를 용서한다”는 뜻. 즉 ”하나님 앞에서 죄가 덮여진다는 의미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 편집자 주)은 과거에는 사람들이 알지 못했으나, 확실히 아주 우수한 방수(防水) 재료였다.

떠다닐 뿐만 아니라, 방주는 방주에 닥쳐올지도 모르는 큰 파도와 비바람의 충격에도 전복되지 않아야만 한다. 성경은 홍수시 물이 불어 적어도 가장 높은 산들의 위로 15 규빗에 이르렀다고 기록하여 (창세기7:20), 방주가 물의 흐름에 따라 어느 곳으로든지 자유로이 떠다녔음을 지적한다. 방주의 높이는 30 규빗이었으므로, 아마도 이것은 짐을 실은 방주의 흘수(吃水 : 물에 잠긴 배의 아래 부분의 깊이 -편집자 주)가 15 규빗 임을 나타내는 것 같다.

방주가 이러한 깊이로 떠다녔을 시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에 따라 방주의 무게는 배제(排除)된 물의 무게와 동일한 부력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방주의 중량 W는 W = 450 × 75 × 45/2 (W) 이다.

여기서 (W)는 물의 입방피이트 당의 무게를 나타낸다 

순수한 물은 입방피이트 당 62.4파운드의 무게를 지니며 바닷물은 64파운드이다. 물 속에 존재하는 무기물과 침전물들에 의하여 그 당시의 물의 밀도는 적어도 바닷물의 그것과 흡사했을 것이므로, 이 경우에 방주의 무게는 48,600,000 파운드로 계산될 것이다. 이 수치는 실제의 목적에 거의 가까운 숫자이다.

이때 방주의 평균 단위중량은 입방피이트 당 물의 절반 즉 32파운드이다. 방주와 방주 내의 사람과 동물 등을 포함한 전체 방주의 무게 중심은 아마도 동물들과 다른 방주 내의 포함 성분들이 그 구조 안에서 다소 균일하고도 대칭적으로 분산된 구조였을 것이므로, 방주의 기하학적 중심과 거의 근사하였을 것이다.

 

안정성에 대한 2 가지 실험 

설계된 방주는 특별히 안정한 구조였을 것이다. 폭 50규빗에 15규빗의 흘수(吃水)를 갖는 30규빗의 방주 높이를 지닌 단면도의 경우 전복이 거의 불가능하며, 심지어 큰 파도와 격심한 비바람의 중심에서도 안정할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림2 에서처럼 물의 표면과 방주의 지붕이 실제로 닿게 되는 각을 이루도록 기울어졌을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때는 대략 31도의 각을 이루는데, 즉 각의 탄젠트(tangent)는 30/50이다. 방주의 무게는 불변하므로, 방주의 단면도의 절반에 해당하는 물의 양과 바꾸어 놓을 수 있다. 따라서 물의 표면은 대각선과 일치한다. 부력 B는 방주의 무게 W와 동일하다.

그러나 두 힘은 동일한 선상에서 작용하지를 않는다. 무게 W는 방주의 단면 중앙에서 아래로 수직방향으로 작용한다. 

힘 B는 삼각형 LQN의 도심(圖心; centroid)을 따라 수직방향으로 작용하므로, 이 힘이 물 속에 잠긴 체적의 무게 중심에 위치하여 방주를 제자리로 돌려놓게 되는 것이다. 방향은 반대이나 힘의 크기가 동일한 힘 W와 B가 두 힘 사이의 간격에 의하여 짝힘(couple)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작용선 B는 방주의 잠수면에 대해서 W의 위쪽에 위치하는 한, 방주를 올바른 위치로 복원하도록 작용할 것이며, 이 짝힘을 복원'우력'(復元 '偶力': righting couple)이라고 한다. 짝힘의 크기는 별로 특별한 흥미를 주지 않으나, 경심(傾心: metacenter) M의 위치는 중요하다. M이 배의 대칭축에 있는 G점보다 위에 위치하는 한 배는 안정하다. 

주어진 조건으로부터 계산할 때 점 M은 대칭축 상의 점 G보다 8.9규빗 위에 있다.

(그림상의 치수로부터 계산할 때 : 25/3 /tan31 - 5 = 125/9 - 5 = 80/9 Cu).

이것은 도심보다 거의 13.5 ft 위에 해당하며, 이렇게 큰 경사각 아래서도 방주는 극히 안정하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이때 짝힘은 

8.9 (sin 31) (W) = (25/3 -5)/tan31 × 0.515 × (48,600,000) ≒ 222,000,000 ft-Ibs 이다.

실제로 G와 M사이의 거리 즉 경심고(傾心高 : metacentric height)는 훨씬 각이 큰 단면도에서도 안정하다. 예를 들어 그림 3 에서처럼 60도 기울어진 배를 가정해보자. 잠수면의 도심(圖心)이 분명 작용선 G의 오른편에 있으므로 복원우력(復元偶力)이 있으며, 경심고(傾心高) GM 은 안전하다. 

사실 방주는 M과 G가 일치하기 전에 완전히 수직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즉 방주는 스스로 복원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방주의 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큰 길이(폭의 6 배)는 전 길이를 통하여 같은 크기로 부딪혀오는 파도의 힘으로부터 견디도록 유지해주는데, 이것은 파도면이 일련의 길게 형성된 물마루라기 보다는 부서지거나 여러 양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특히 대홍수와 같이 혼란된 수력학적 현상을 수반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사실인 것이다. 어쩌면 생길지도 모르는 소용돌이에 대해서도 폭보다 상대적으로 긴 길이는 이것에 저항하며 소멸시킬 것이다. 

사실 방주는 그 긴 축으로 인하여 파도와 유수(流水)의 세력 방향과 평행을 유지하며, 이러한 방향에 의하여 수력학적 힘과 흐름에 따른 잔상에 의하여 정렬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방주는 반유선형 몸체로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면에서 볼 때, 설계된 방주는 매우 안정하였으며, 일년에 걸친 대홍수의 폭우 속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그 목적에 알맞도록 제조되었던 것이다.

 


번역 -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geology/g3/g3/g3c1.htm ,

출처 - 창조지 제 34호 [1986. 7]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36

참고 : 720|721|6255|6254|6320|5906|5930|5468|5065|5062|2851|1458|1455|3032

고재형 외
2004-07-01

노아의 방주에 관한 24개의 질문과 답 (FAQ)


1. 노아 방주

Q1. 노아 방주가 실제로 존재하였음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노아의 방주가 실제로 존재하여 수많은 동물들을 홍수로부터 구해 냈는지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 먼저 성경 창세기에 무려 6, 7, 8, 9장에 걸쳐 기록된 노아의 홍수사건과 방주로 동물들을 구해낸 사건이 한낮 설화나 후세의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라면,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지니지 못한다. 노아의 홍수와 방주사건은 성경 도처에서 인용되고 있고, 마지막 때에 예수님 재림시의 심판과 구원을 상징하는 사건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비판할 때 노아의 홍수와 방주사건을 제일 먼저 들고 나와 비판해 왔으며, 무신론자, 이성주의자, 인본주의자, 과학주의자, 진화론자들이 성경을 비지성적이며, 비과학적인 책으로 폄하할 때 가장 먼저 인용하였던 부분이 이 노아의 홍수와 방주사건이었다. 노아의 홍수와 방주사건을 믿는 신앙인들은 과학적 지식이 없는 무식한 종교적 열심가들로 취급하게 되었고, 수많은 신앙인들이 이 사건에서부터 성경에 대한 권위와 믿음을 잃어버리고, 의심의 싹이 자라기 시작하여 마침내 성경을 발췌하기 시작하고, 비유의 말씀으로만 해석하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신앙을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이다.(1)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최근 지질학의 발달로 지층과 지형의 모습들이 자세히 조사되면서, 지구는 과거에 대홍수와 같은 엄청난 격변을 겪었던 흔적들이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전지구 대부분에 수백 m에서 수 km 깊이로 쌓여 있는 퇴적지층들, 수조개의 화석으로 멸종되어 있는 생물들, 세계 도처에서 강같이 흘렀던 용암들, 구부러지고 휘어져 있는 산들, 바다 속에 깊게 패어진 해저캐년들, 지구를 휘감고 있는 해저산맥들, 엄청난 넓이로 평행하게 쌓여져 있는 지층들, 히말라야나 알프스 산꼭대기에서 발견되는 바다생물의 화석들, 극지방에서 발견되는 두터운 석탄층들, 온대지역의 풀을 먹다 얼어죽은 시베리아 매머드들, 지층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사람의 유물들, 오늘날의 모습과 똑 같은 채로 발견되는 고생대, 중생대의 화석들...등등. 그러므로 최근 지구의 지층과 지형은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동일과정설과 같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노아의 홍수와 같은 대격변에 의해 단기간에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고 다시 부활하게 된 것이다.(2, 3, 4)

 그러면 이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전지구적 재난 속에서 오늘날의 수많은 동식물들은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 지구를 덮은 대홍수 속에서도 오늘날의 수많은 동식물들이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면, 대격변설은 결국 지역적 홍수설, 지역적 격변설로 그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아의 방주는 노아의 홍수와 같은 전 지구적 대격변설을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대격변설이 입증된다면 진화론적 동일과정설을 폐기될 것이며, 동일과정설이 폐기된다면, 수십억 년의 지구연대도 폐기될 것이고, 진화할 시간이 없는 진화론도 당연히 폐기될 것이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위를 되찾고,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음이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Q2. 노아 방주의 성경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17장 24-30절에는 예수님의 마지막 심판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노아의 대홍수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 전개될 마지막 심판의 모형과 그림자였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는 이 마지막 심판에서 구원받을 유일한 영적 구조선인 보이지 않는 교회의 모형과 예표였다. 따라서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가 몸되신 교회의 진정한 모습을 지상적 모형으로 보여주던 그림자였고, 방주 내의 동물 사육은 교회의 본질 곧 교회내 성도 양육의 모형이었던 것이다. 노아는 '그 집을 구원'(히11:7)하기 위하여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창 7:3)하기 위하여 모든 종류의 동물을 둘 씩 방주에 태우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순종하여 생명들을 구원하였다. 우리들도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세상의 많은 영혼들을 오늘날의 방주인 예수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여야할 것이다.  

 

Q3. 노아 방주는 보통의 배와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노아 방주와 같은 의미로 방주는 아기 모세가 나일강에서 탔던 바구니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 방주는 내부에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노나 키가 없다. 단지 뜨기만 하고 조정이 불가능하여 물결이 흘러가는 대로 움직인다. 단지 뜨기만 하고 나의 삶을 내가 조정하지 않고 성령님께 맡기는 신앙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Q4. 노아 방주의 크기는 얼마입니까? 

창세기 6장 14~16절에 나와있는 치수대로의  방주 크기는 길이가 삼백규빗(135m), 폭이 오십규빗(22.5m), 높이가 삼십규빗(13.5m)으로, 43,200 m3 정도의 부피를 가지는데, 이는 한 량에 240마리의 양을 실을 수 있는 화차 522 량에 해당하는 용량과 같다. 방주는 농구코트 20개를 10개씩 2열로 배열한 넓이로서, 현재 축구장보다 길이는 더 길고 폭은 약간 좁은 넓이의 상, 중, 하 삼층으로 되었다. 그러므로 방주는 통상적인 배가 아니라 바지선 형태의 거대한 선박이었다. 


Q5. 성경에 기록된 방주의 크기는 과연 배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크기입니까? 

길이와 폭의 비율 6 : 1은 매우 뛰어난 선박 안정성을 보이는 비율임이 선박공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졌는데, 노아의 방주는 홍수기간 동안의 폭풍과 파도속에서도 충분히 견디어 냈을 것이다. 노아의 방주의 안정성에 대해서는 ”Q9 노아의 방주는 정말 대홍수를 견딜 만큼 견고합니까?”를 참고할 것.

 

Q6. 방주는 땅에 호흡하는 모든 동물 한 쌍씩을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컸습니까?  

노아 방주의 배수량은 약 20,000톤, 용적은 14,000톤이며, 방주내의 사용 가능한 총면적은 100,000 평방피트 이상이고, 총부피는 43,200 m3 정도이다. 이제 노아의 방주 내로 들어와야 하는 땅에서 호흡하는 동물들은 모두 몇 마리나 되는지를 알아보자.

미국의 유명한 분류학자인 Ernest Mayr에 의하면 세계에는 백만종(species) 이상의 동물(animals)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중 대부분은 물에서 사는 동물이라 방주에 탈 필요가 없다. 21,000 종의 물고기(fish), 1,700 종의 피낭동물(tunicates), 600 종의 불가사리와 같은 극피동물(echinoderms), 107,000 종의 홍합이나 굴과 같은 연체동물(mollusks), 10,000 종의 말미잘과 같은 강장동물(coelenterates), 5,000 종의 해면동물(sponges), 30,000 종의 원생동물(protozoans)과 단세포생물 등이 이들이다. 또한 포유동물중 고래나 바다표범과 같은 일부 동물들은 물에서 사는 동물이다. 양서류도 모두 다 방주에 올라탈 필요가 없으며, 악어와 바다거북같은 파충류도 그러하다. 또한 838,000 종의 절지동물(arthropods)중 바다가재, 새우, 게 등과 같은 대부분의 동물들이 바다에서 사는 동물이다. 그리고 곤충(insect)들은 매우 크기가 작아 방주에 탓다 하더라도 적은 공간을 차지했을 것이고, 35,000 종의 벌레(worms)들과 같이 방주 밖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다. 사실 곤충과 벌레들은 홍수시 떠다니는 거대한 나무 매트(floating log mats)들에 붙어서, 또는 알이나 유충상태로 충분히 생존할 수 있다 (대홍수 Q5 참조).

그리고 성경도 곤충과 벌레는 방주에 타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 창7:22)에 나오는 '코로(through nostrils)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에 곤충은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곤충은 코로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외부 골격에 있는 작은 관(tubes)으로 숨을 쉬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 창6:19, 7:8~23, 8:17)에 나오는 '땅에 기는' 것들로 번역된 'creeping thing (remes)'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사용된 예를 살펴볼 때 벌레보다는 파충류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또 하나 창세기에서 말하는 종류(kinds)의 개념이 오늘날의 종(species)의 개념과는 다를 수 있다. 많은 연구자들은 이 kinds는 오늘날의 분류학상의 과(family) 또는 아과(subfamily)에 해당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후대에 수많은 속(genera)과 종(species)들을 만들어 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즉, 모든 종(species)의 개들을 실은 것이 아니라 대표로 개의 한 종류(kind)만 태웠다는 것이다. 이 경우라면 매우 적은 수의 동물들이 방주에 승선하였을 수도 있다. Don Batten 은  이미 존재했던 유전정보의 분류(sorting)와 소실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종들이 분화될 수 있다고 하였다.(5) 그는 분명히 다른 종과 속의 생물들이 교배되어 후손을 낳을 수 있는 잡종들이 만들어지는 예들을 제시하였는데, 말, 얼룩말, 당나귀는 아마도 말 종류(equine kind)에서, 개, 늑대, 코요테, 재칼은 개 종류(canine kind)에서 갈라졌을 수 있으며, 북극곰(polar bear)은 원래의 곰 종류(bear kind)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진화가 아니다. 왜냐하면 북극곰은 새로운 유전적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극곰은 위장을 위하여 색을 띄는 유전인자를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다윈의 핀치새에 대한 연구는 450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다양한 핀치새들이 분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96년에 열린 분화(speciation)에 관한 주요 회의는 무심결에 진화가 아닌 홍수 후 빠른 분화에 관한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을 지지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종류(kinds)는 과(family) 이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노아는 육상척추동물의 매우 소수만 태웠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이 경우 2000마리 정도의 적은 동물들이 방주 내로 들어갔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최대로 오늘날 살고 있는 포유류 3,500종, 조류 8,600종, 파충류와 양서류 5,500종이 모두 승선하였다고 하여도 총 동물의 수는 17,600 마리로 각 쌍으로 계산할 경우 35,200마리의 동물을 실어야 한다. 이 동물들의 크기는 다양함으로 평균 크기를 양(羊)만하다고 가정하였을 때, 방주는 125,280 마리의 양들을 수용할 수 있는 용량이므로, 방주는 실제 승선했던 동물보다 3배 이상의 동물들을 태울 수 있는 크기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양의 크기는 동물들을 크기 순으로 나열한다면 11% 정도에 위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양이 평균적 크기가 되기에는 너무 크고, 승선시킨 동물들 중에서 덩치가 큰 동물들의 경우 새끼나 어린 동물들을 태웠을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방주에 승선한 동물들의 용량은 더욱 줄어들 수 있다. 여분의 장소에는 멸종된 동물들, 식량, 물, 노아의 가족, 방주에서 태어난 새끼들을 위해 사용되었을 것이다.

우드모라페(Woodmorappe) 박사는 그의 책 '노아의 방주 : 그 가능성 연구(Noah,s Ark : A Feasibility Study)'에서 구체적으로 방주에 들어간 동물들의 종류와 마리 수를 포유류 7,428 마리, 조류 4,602 마리, 파충류 3,724 마리의 총 15,754 마리로 약  16,000여 마리의 동물들이 방주 내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하였다(6). 이에 대해 Don Batten은 방주에 탄 동물의 수를 16,000마리로 추정한 것은 진화론자들에게 너무도 관대한 수치라고 하였다.

만약 동물이 평균 50×50×30 cm의 케이지에 들어간다면 부피는 한 동물당 75,000 cm3 으로 16,000 마리이면 단지 1,200 m3에 해당한다. 만약 곤충 100만 종이 방주 내에 있다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로, 세로, 높이 10cm의 공간에 곤충이 한 종씩 있을 경우 1,000m3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곤충은 방주에 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여하간 이들의 부피는 방주 용량 43,200m3에 비하면 매우 적은 부피이다. 방주는 이들 동물들을 충분히 실을 수 있는 크기인 것이다.    

 

Q7. 노아의 방주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동물들이 탔을 텐데, 배설물을 수거하고 음식물을 먹이는 일을 방주 안의 8 명의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들은 ”노아의 방주 안에서 수많은 크고 작은 동물들의 배설물을 수거하고 음식물을 먹이는 일은 8명의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다” 라고 주장하며 노아의 방주를  부인하려 한다.

창세기 8장 1절에는 ”하나님이 노아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권념하사' 라는 말은 '기억하다, 간섭하다' 라는 히브리말 '자칼'을 번역한 것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동물들에게 주신 놀라운 능력중의 하나는 공기가 탁하거나 기온이 떨어지고 빛이 줄면 이에 적응하기 위해 동물들이 동면이나 하면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예를 들면 다람쥐는 동면에 들어가면 체온이 1~2℃로 떨어지며 심장박동이 350번 정도에서 2~4번 정도로 떨어져 평상시의 2% 정도의 에너지를 소비하며 긴 겨울을 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체온이 15~20℃만 되어도 모든 기능이 정지되어 버리는 사람과 비교하여 볼 때, 이런 낮은 온도에서도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이유는 풀리지 않는 비밀이다. 또한 새들은 동면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푸우월 같은 새는 동면하는 것으로 알려져 새들도 동면의 잠재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하겠다. 이와 같이 동물들이 동면하는 능력들이 비정상적으로 강해져 대부분의 동물들이 동면을 하였다고 하면 홍수 기간 중 8명의 노아 식구들이 동물들을 돌보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동면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정말 노아의 8식구가 동물들을 돌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인가. 우드모라페는 16,000 마리의 동물들이 방주에 승선한 경우를 가정하여 가능성이 충분함을 제시하였다.(7) 먼저 생각하여야할 것은 방주내의 동물들은 동물원과 같이 넓은 장소에서 관리되는 것이 아니라, 잘 계획된 실내공간에서 실험동물이 지내는 것과 같은 상황으로 관리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적인 시설의 실험동물 사육장에서는 한 사람이 5,900 마리의 랫드, 마우스, 토끼를 사육하며, 양돈장에서는 3,840 마리의 돼지를, 양계장에서는 30,000 마리의 닭을 사육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물론 오늘날의 최신식 설비 하에서의 통계이지만 노아의 방주도 많은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면 노아의 식구 한 사람당 2,000 마리의 동물사육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는 120 년의 설계와 제작을 거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창6:3). 실제로 노아의 방주는 수많은 동물들을 관리하기 위한 여러 구조나 장치들을 장착했음이 틀림없다. 예를 들면 자동먹이공급 장치, 자동음수 공급장치, 빗물을 받아 공급하는 장치, 경사진 배설물 처리구, 복도에 운반용 수레장치 등등을 설치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이들은 흔들리는 배에서 동물들에게 물을 주는 것도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도 주장하나, 고대 로마인들은 머리만 들어가도록 구멍이 난 뚜껑이 있는 통에 물을 담아서 많은 새들에게 자동으로 충분히 물을 공급했다는 기록도 있기 때문에 노아가 그런 생각을 충분히 하였을 것이다.     

또한 노아가 동물들을 방주에 태우기 전 격리장소에서 동물들의 특성을 잘 파악하여 동면을 하는 그룹, 물을 많이 먹는 그룹, 건초를 좋아하는 그룹, 특별한 먹이를 줘야하는 그룹, 배설물을 많이 만드는 그룹,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그룹... 등으로 큰 부류로 나누어 승선시켰다면 이들을 돌보는데 훨씬 일이 줄어들 수 있다. 분명히 노아도 이러한 문제를 두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을 것이고, 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하였을 것이다. 8 식구가 동물들을 돌보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다.     

 

Q8. 노아는 어떻게 오늘날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육상동물들을 방주에 모을 수 있었습니까?

노아는 어떻게 호주에서 캥거루 한 쌍을 데려 올 수 있었을까? 지구 반대 지점에 사는 동물이나, 섬에서 사는 동물들은 어떻게 데려왔을까? 펭귄이나 나무늘보 같이 육지를 이동하기 어려운 동물들을 어떻게 데려 왔을까? 또한 노아가 살던 지역의 기후와 다른 한랭지역 동물들, 열대동물들은 극심한 기후 차를 견디면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생각은 과거의 기후환경도 오늘날과 같이 지역에 따라 극심한 온도차를 보이며, 동물들도 오늘날과 같이 바다로 가로막힌 지역에서 서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가 생각하여야할 것은 노아가 살던 시기의 기후환경과 대륙분포가 오늘날과 같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많은 동식물의 화석들이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대홍수 전에 지구 전체는 따뜻한 아열대 기후였으며, 지역에 따른 극심한 온도차도 없었다. 북반구나 남반구에서 발견되는 동식물의 화석과 동일한 화석들이 남극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도 초기 지구는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실 정도로 (창 2:6) 온화한 기후였으나, 홍수 후에 추위와 더위가 생겨났다고 (창 8:22)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모든 동물들은 섞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살던 지역과 방주가 있던 지역과의 기후 차를 극복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또한 대륙도 하나로 붙어 있었고, 대륙사이의 바다나 높은 산맥들은 홍수 후에 생성되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바다나 높은 산맥들은 동식물들을 데려오는데 장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성경 창세기 1:9~10절에도 천하의 물은 한 곳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땅도 이어져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대륙이 과거에 하나로 붙어 있었다는 것은 여러 증거가 있는데, 먼저 남, 북아메리카의 동부해안과 아프리카, 유럽의 서부해안의 해안선이 조각 맞추기처럼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프리카 남부와 마다가스카르섬 및 남아메리카의 브라질에서 아르헨티나에는 빙하의 흔적들과 빙하가 운반해온 티라이트라는 암석과 소철 무리인 Glossopteris 등의 식물이 같이 분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다이아몬드가 많이 생산되는데 남아메리카의 남단 지역도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다는 것이다. 지질학에서도 지구의 육지가 한때는 초대륙으로 한 덩어리였다는 판게아 이론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1910년대 독일의 베게너는 이것을 근거로 대륙이동설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홍수 후 엄청난 대륙들의 이동이 시작되었고, 융기와 침강을 동반한 엄청난 지질학적 격변들이 일어났고, 산맥과 해구들이 생겨났으며, 해수면의 변동이 일어났고, 궁창 위의 물층의 붕괴로 지역에 따른 극심한 온도차가 발생되었으며, 다른 대륙이나 섬으로 격리된 동물들은 서로 다른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오랜 기간 적응하여 오늘날의 한대지역 동물, 열대지역 동물, 건조지역의 동물들이 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8)

다음으로 노아의 8 식구는 그 많은 동물들을 어떻게 다 포획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도 조금만 깊게 생각하여보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동물을 데려오는 사람들이 8 명보다 많을 가능성이 높다. 창세기에 기록된 사람들은 대부분이 족장들이다. 노아도 족장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거대한 방주도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일사불란하게 지었을 가능성이 있고, 수많은 동물들도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데려올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족장이 아니더라도 거대한 방주를 지을 만큼 재력이 있었다면 동물들을 사거나 인부들을 동원하여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노아는 방주근처에 거대한 동물원이나 동물 격리장소를 만들어 방주에 태우기 전까지 상당기간을 계류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곳에서 지켜보면서 가장 튼튼한 동물들로 선별하여 한 쌍씩 태웠을 것이다. 또한 노아는 홍수기간동안 동물들이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창6:21) 식물들을 저축하면서 각 동물들의 식습성과 소비량까지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고대 중국의 황제 Chi Hang-ti 는 거대한 동물원과 3,000 종의 식물들을 수집한 식물원을 가지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많은 동물들을 방주로 불러 모으셨다는 것이다. 창세기 6:20, 7:9, 7:15 절에는 동물들이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노아가 잡으러 쫒아 다닌 것이 아니라 동물들이 노아에게 나아왔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여러 군데에서 하나님이 동물들을 마음대로 움직이셨음이 기록되어 있다. 애굽의 재앙을 가져온 개구리와 파리(출 8장), 메뚜기(출10장), 발람의 나귀(민 22:28), 요나를 삼킨 큰 물고기(욘1:17), 다니엘을 해치지 못하게 입이 봉해진 사자(단 6:22), 엘리야에게 떡과 고기를 가져다주는 까마귀(왕상 17:6)...등등. 이 경우라면 노아의 일은 매우 줄어들 수 있고 모든 동물을 방주에 태우는 일은 더욱 쉬어졌을 것이다.(9)

        

Q9. 노아의 방주는 정말 대홍수를 견딜 만큼 견고합니까? 

국민일보 1993년 2월 17일자

”현대조선공학으로 제작된 그 어느 선박보다도 뛰어난 안정성을 갖고 있다.”  

- 해사기술연 홍석원 박사팀 -

국가공인기관인 해사기술연구소에 의해  수행된 노아 방주 실험은 다음과 같다.

해사기술연구소가 1992년 6월부터 한국창조과학회의 요청으로 노아의 방주를 조선공학적 입장으로 접근, 이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10) 이 연구소는 선박의 선형시험 및 관련성능 평가업무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관으로서 선박수출 2위국인 우리나라 수출선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성능평가를 받고 있고, 그 결과는 외국의 선주들에게도 그대로 인정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480여 척의 선박의 성능을 평가했다고 알려져 있다. 해사기술연구소는 본 학회의 의뢰를 받아 선박의 안정성 연구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인 홍석원 박사를 팀장으로 한 9명의 전문연구팀에게 맡겨 선박의 안전성능을 실험하게 되었다. 연구에 앞서 우선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있었는데, 기초자료의 부족이 그것이었다. 특히 방주의 외부모습, 방주의 내부구조에 대한 자료 등이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주자료의 제약성에도 불구하고 성경 창세기에 나와있는 노아 방주의 규격(길이 135m, 너비 22.5m, 높이 13.5m)과 아라랏 산에서 목격된 방주의 형상을 토대로 제작한 노아 방주 복원도를 바탕으로 하여 실험용 방주를 건조할 수 있었다.

 그림 2-5 1993년 2월 17일자 국민일보에 난 노아 방주 실험결과 기사. ”노아 방주는 매우 안전한 선박” 이라는 기사가 인상적.

1950년대 미국에서도 일찍이 방주에 대한 실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선박공학의 수준이나 기타 제반 여건들은 90년대인 지금과 비교할 때 모든 면에 있어서 뒤쳐져 있었다. 그래서 50년대 미국에 있었던 방주 실험은 아주 기초적인 선박의 복원안정성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따라서 이때부터 40여 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현대적 수준에 걸맞는 실험을 하고자 앞서 미국에서 있었던 복원안정성 뿐만 아니라 방주의 종합적인 안정성 평가에 주안점을 두었다. 특히 두드러진 점은 방주자체의 모형 실험에 큰 의의를 두었고 다른 형상을 갖는 배와의 상대평가도 수행하여 이 배의 진면목을 알아보려고 하였다. 이를 위해 홍박사 팀은 테스트에 쓰일 실험용 방주를 길이를 50분의 1로 축소(길이 2.7m) 제작하였고, 해사기술연구소의 대형수조(길이 200m, 폭 16m, 수심 7m)에서 인공적으로 다양한 높이, 강도, 속도의 조류, 파도, 풍랑, 바람을 만들고 역시 축소된 내부 선체, 선원을 실은 상태, 내부 화물을 적재한 상태 등 다각적으로 실험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노아의 방주가 현대의 최첨단 조선공학적 기법으로 제작된 그 어느 선박보다 뛰어난 안정성을 갖고 있는 배였다는 것이 실증되었다. 또 우수성을 알아보기 위해 노아 방주와 동일한 부피를 가지면서 길이, 폭, 높이의 비율이 각기 다른 현대 조선공학적 기법으로 제작한 12척의 다른 모형선박을 만들어 선박의 안정성(파랑안정성,  구조안정성, 복원안정성)에 대해 수 차례의 비교 수치해석과정을 거쳤다. 조선공학적인 관점에서 변환 가능한 12척의 모형 배들과의 비교 수치해석결과, 선형의 높이가 같은 경우에는 노아 방주가 가장 최적인 복원안정성【그림2-6 참조】을 주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림 2-6 방주의 복원 안정성 (31o 기울어져 있는 경우) 방주의 치수대로라면 방주는 거의 전복될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90o 이하의 임의의 각으로 기울어져 있을 때 방주의 무게중심 G에 대해서 전복되려는 힘의 반대 방향으로 복원 부력이 작용하게 되어, 결국 원래 상태로 재빨리 되돌아 올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1 cu = 45 cm)

 

Q10. 목재로 된 거대한 방주가 1년여의 거친 항해를 견디어낼 수 있었습니까? 

노아의 방주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노아의 방주는 목재로 만들어졌고 강철로프도 없어 파도치는 바다에서 거대한 몸체는 부서졌으며,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썩고, 바다벌레들에 의해 구멍이 나며, 물이 계속 새어 들어오기 때문에 홍수기간동안 노아의 식구들은 물을 퍼내기에도 바빴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말 노아의 방주는 항해하기에 부적합했는가?

이것은 고대인들의 건축기술과 선박건조기술을 터무니없이 낮게 평가하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이다.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고대문명들의 유적과 건축물들은 매우 놀랄만한 수준인 것이다. 수학, 물리학, 천문학, 수리학, 건축학 등은 오늘날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인 것이다. 노아 이전시기에 벌써 금속을 가공해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설계해 만들 정도로 고도로 기술이 발달되어 있었음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창4:22). 노아의 방주는 무지한 고대인이 만든 임시적인 피난용 뗏목이 아닌 것이다. 노아는 무려 120 여년에 걸쳐서 치밀하게 설계하고 제작하여 방주를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창6:3). 그리고 이 치밀한 설계와 제작을 여러 사람이 도왔을지 모른다.

노아의 나이 600 세에 홍수가 났고(창7:11), 노아의 아들들은 노아가 500 세 된 후에 태어났으므로(창5:32), 방주의 준비를 시작한 480 세 경에는 아들들도 없었다.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노아를 낳은 m후 595년을 살았음으로(창5:30) 홍수가 나기 5년 전 즉 노아가 방주제작을 시작한지 115 년째에 죽었다. 또한 아담의 나이 687 세 경에 태어난 노아의 할아버지 므두셀라는 아담,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등 그의 선조들과 동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직접 대면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다. 그는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시고 늘 동행하던 에녹의 아들로서 손자인 노아의 신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되는 인물이다. 그는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인물로서 969 세로 죽었는데, 그 해는 공교롭게도 그의 이름이 말하는 것과 같이(므두 = death, 셀라 = to bring) 죽음을 가져오는 홍수가 나던 해였던 것이다 (187세 라멕 낳음 + 라멕은 182세 노아 낳음 + 노아 600세에 홍수 = 969년). 므두셀라와 라멕은 그들의 말년에 노아가 120 여년에 걸쳐 방주를 준비하는 전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을 지도 모르며, 많은 기술적 자문과 재정적인 후원을 하였을 지도 모른다. 135m의 거대한 목조선이 파도 속에서 견디기 위하여, 수많은 동물들을 싣고 홍수기간 동안 방주에서 노아의 식구들이 살아가기 위하여, 엄청난 홍수로부터 동물들을 살려내어 번성시키기 위하여, 그때까지의 모든 기술과 지식이 총동원되었을 것이며, 이 일을 위해 노아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치밀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방주가 오늘날의 배와 다른 것은 무거운 엔진이 없으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물에 뜨기 위한 것이므로 장사방형의 평평한 바닥구조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간이 침하되는 현상(sagging)을 매우 완화시켰을 것이다. 네덜란드의 선박기술자인 Werff는 배의 휘어지는 현상은 아래쪽에 보강용 갑판의 설치로 극복될 수 있다고 하였다. 실제 고대 그리스의 Syracusia (또는 Alexandris)라는 이름의 선박은 4,000톤의 화물을 운반했으며, 15세기 중국의 바다화물선이 Cheng-Ho 호는 노아의 방주와 비슷한 크기였으며, 8세기의 선박은 비록 호수에서 사용되었지만 노아방주보다 큰 배가 있었음이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목재가 긴 항해에 부적합했다면 과거에 목재로 만든 수많은 범선들은 어떻게 항해를 하였는가. 이들이 항해할 때 새어 들어오는 물을 퍼내는 일에 대부분의 인력을 동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19세기에 목재로 만들어진 범선들은 1년 이상 항해에도 큰 수리를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티크 목재로 만들어진 몇몇 선박들은 중대한 수리 없이도 35년간을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노아 방주의 목재로 사용되어진 잣나무는 매우 견고하고 단단한 나무로 1년여의 항해를 충분히 잘 견뎠을 것이다. 바다벌레(shipworm) 문제도 그렇다. 바다벌레는 선박의 나무를 갉아내고 굴을 파고 사는 생물이다(대표적으로 Teredo). 그러나 이들은 주로 해안가에서 사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서식하지 않는 곳도 많으며, 더욱이 대양에서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대부분의 바다벌레들은 1.3 cm 이상으로 깊게 굴을 파지 않음이 보고되고 있다.(11)

   

 Q11. 방주 내로 그 많은 동물들을 7 일만에 다 태울 수 있습니까? 

노아의 방주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모든 동물을 노아의 방주에 태우는데 걸리는 시간으로 7일은 불가능하며 극히 비현실적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노아가 동물을 실을 수 있는 기간이 7일(10,080분) 밖에 없었다면, 35,200 마리의 동물들은 밤낮을 쉬지 않고 17초마다 들어가야 한다. 정말 그런가?

이들은 창7:4절에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라는 구절만을 근거하여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 구절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후 하신 말씀임을 알 수 있다. 분명히 창7:9~10절에는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 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라고 되어있다. 분명히 방주에 들어간 후 칠일 후에 홍수가 났음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창6:13~21절에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고 혈육 있는 생물을 암수 한 쌍씩 태워 생명을 보존케 하며 식물을 저축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창6:22절에서 ”노아가 그와 같이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라고 되어 있고 그 이후에 7장 4절의 말씀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노아에게 동물을 태우는 시간이 실제로 7일만 주어졌다 하더라도 방주에 최대 35,200마리의 동물들을 싣는 것이 불가능한 일인가? 상황은 조금 틀리지만 1시간에 1,000마리의 돼지를 한 라인에서 도축할 수 있는 도축장도 가동되고 있다. 이 경우와 같은 속도라면 이틀이면 동물들을 방주에 다 태울 수 있다. 또한 앞에서의 계산들은 방주 내로 동물들을 태우는 문이 하나일 때만을 가정한 것이다. 그러나 창6:16)절에도 문은 옆으로 내라는 말씀만 기록되어 있지 문의 폭이나 개수는 알 수 없다. 거대한 방주 내부는 상, 중, 하 삼층으로 되어있고, 동물들의 대분류에 따른 큰 구획들로 나누어져 있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문도 이들 동물들이 구분되어 들어갈 수 있도록 여러 개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며, 방주 내부 시설물의 설치 및 운반, 사료나 물의 운반 및 저장, 폐기물 처리 등을 위해서도 문이 여러 개였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여러 문으로 동시에 동물들이 들어갔다면 7일만에 방주에 동물들을 태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다. 또한 동물들의 대부분이 초식을 하였다면 서로를 공격하는 일이 거의 없어 동물들을 태우는데 훨씬 수월하였을 것이고, 방주에 탄 동물들은 35,200마리 보다 훨씬 적을 수 있으며, 노아의 식구 8명 외에 방주에는 타지 않았지만 동물을 태우는데 동원된 사람들이 있었다면 7일이라는 시간은 충분할 수도 있는 것이다.(12)      

 

 Q12. 방주 내로 태워지는 각 동물의 숫자는 암수 일곱씩입니까, 둘씩입니까? 

성경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방주에 태워진 동물의 숫자가 창6:20), 창7:9), 창7:14,15)에는 둘이고, 창7:2,3)는 일곱이기 때문에 성경의 오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면 정결한 동물들은 암 수 일곱씩, 부정한 동물들은 암 수 둘씩 방주에 탔음을 알 수 있다. 창7:3)절의 공중의 새는 2절의 정결한 짐승 중에 포함되어 계속되는 문장인 것이다. 즉 공중의 새 중 정결한 새는 암 수 일곱씩 태워졌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홍수기간 동안 방주 내에서 정결한 짐승들을 잡아 노아가 제사를 드리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창8:20)절에는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를 드리는 장면이 나온다. 만약 모든 동물이 한 쌍씩만 들어갔더라면 그 동물은 노아의 번제와 동시에 멸종해버렸을 것이다.

그러면 정결한 동물은 얼마나 될까? 반추동물들은 모두 일곱 쌍씩 들어갔는가? 유대학자들은 정결한 동물을 단지 굽이 갈라진 모든 반추동물들이 아니라, 큰 포유동물 중 단지 소수만이 해당된다고 말하고 있다. 신명기 14장에는 정결한 동물들이 나와있는데, 이들은 매우 소수인 것이다.       

*참조 : 노아 방주에 탄 정결한 짐승들의 수는 성경의 오류인가?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1758691&bmode=view


Q13. 공룡도 방주에 실었습니까? 실었다면 그 큰 공룡을 어떻게 방주에 실을 수 있었습니까? 

오늘날 생존하는 동물뿐만 아니라 멸종하여 볼 수 없는 동물들까지 한 쌍씩 방주에 실었을 때에도 방주 전체공간의 1/3 공간에 해당될 뿐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멸종비율을 그대로 홍수이후 기간에 적용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동식물의 멸종은 산업혁명이후 환경오염의 심화로 가속화되었음으로 오늘날의 멸종비율을 일률적으로 수천년 전까지 일정하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다. 진화론에서는 6천5백만년 전에 공룡이 멸종하였고 인류는 400만년 전에 출현하였다고 하지만, 인류와 공룡이 동시대에 같이 살았었다는 많은 기록과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일부 공룡들도 노아의 방주에 탔었음이 틀림없다. 물론 방주에 타지 못한 많은 공룡들은 노아의 홍수기간에 죽어갔을 것이다. 공룡은 668 종의 속(genera)이 있다고 하며, 10톤 이상의 공룡만 106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공룡 속의 숫자는 다소 과장된 것으로 생각된다. 일례로 브라키오사우르스, 아파토사우르스, 디플로도커스 등과 같이 매우 큰 공룡중의 하나인 사우로포드(sauropods)는 87종의 속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12속만 확실히 확립되었고, 또 다른 12속만이 비교적 확립된 정도인 것이다. 그러나 우드모라페는 관대하게 이들 공룡을 모두 계산에 포함시켰다. 공룡은 덩치도 크고 대식가이며, 배설물 또한 엄청난 양이기 때문에 방주에는 아마도 공룡의 새끼들을(또는 알) 태웠을 것으로 추정된다.【그림2-3,4,7 참조】또한 대부분의 파충류들이 날씨가 추워지면 동면하는 것처럼 그 당시 방주의 어두컴컴하고 탁한 공기 때문에 공룡도 마찬가지로 동면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공룡을 방주에 태우거나 사육하는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성경 창7:2)절에 암수의 표현이 ”the male and his mate”로 되어 있어 어린 동물이 어떻게 짝이 있는가, 그러므로 동물들이 성적으로 성숙했음을 암시한다고 말하면서 어린 동물들을 태웠음을 부정하나, 창6:19), 창7:3), 창7:9), 창7:16)절에는 암수의 표현이 'male and female'로 되어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Q14. 노아는 암 수가 같은 모양의 동물들은 어떻게 구별하였습니까? 

많은 동물들은 외부적으로 암 수의 구별이 쉽지 않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관찰한다면 암 수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구별해 낼 수 있다. 실례로 과학적으로 교육을 받지 않은 중국의 사냥꾼도 팬더곰의 암 수를 생김새와 행동의 약간의 차이로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조류의 경우도 깃털의 미묘한 차이나 번식기의 행동으로 암 수를 구별할 수 있으며, 쌍을 이룬 것은 같이 생활을 할 때가 많다. 노아가 동물격리장소를 만들어 동물을 모으고 있었다면 그곳에서 충분히 관찰할 수 있었을 것이고, 쌍을 이루어 후손을 낳을 수 있는지 확인한 후 방주에 태웠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또한 암수의 구별이 어렵고 무성생식을 하기도 하는 곤충들과 벌레들은 방주에 타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의 암수를 어떻게 구별하였겠는가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Q15. 방주 내에서 수많은 동물들이 1년여 동안 먹을 먹이와 물은 엄청난 양일텐데 그 양은 도대체 어느 정도이며, 어떻게 저장할 수 있었습니까?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16000 마리의 동물들이 홍수기간인 371일 동안 먹을 물과 먹이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양이며 그것을 노아가 과연 준비할 수 있었을까? 먹이들은 1년이 넘는 기간동안 냉장고도 없이 어떻게 부패되지 않고 보관될 수 있었을까?     

(Q7) 에서도 논의했지만 동물들이 동면에 들어간다면 이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만나(출16:14~36), 사르밧 과부에게 주신 가루와 기름(왕상17:14~16)처럼 하나님의 특별하신 돌보심이 있어 기적적으로 먹이들이 공급되어진다면 더욱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것은 도저히 준비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인가?          

우드모라페는 동물들의 실제 소비하는 먹이량과 음수량 등을 동물원에서의 자문과 방대한 자료와 문헌 등을 통해 자세히 조사한 후 저장해야할 먹이와 물의 양, 그리고 부피를 계산하였다.(13) 먼저 먹이는 부패를 막기 위해 건조상태에서 저장되었을 것임으로 건조중량으로 총 1990 톤으로 추정하였다. 건조 시 수분함량이 10~20 %는 남아 있을 것으로 보아 실제 방주에 저장한 먹이의 무게는 2200 ~2500 톤으로 추정하였고, 이때의 부피는 3~6000 m3으로 이것은 방주부피에 6~12 %를 차지하는 용량임을 보고하였다. 저장한 먹이는 주로 밀, 보리, 콩, 귀리 등의 곡류, 건초, 각종 식용씨앗, 압축한 건초펠렛, 말린 고기, 말려서 압축한 고기나 분쇄한 가루, 말린 과일, 말린 생선, 말린 벌레, 시럽, 설탕, 소금...등이었을 것이다.

또한 방주 내에서 마실 물의 량은 4.07 ML(million liters)로 계산하였다. 이는 4,070m3의 용량으로 방주용량의 단지 9.4 %에 해당하는 부피이다. 그러나 노아가 방주 지붕에 빗물을 받아 음수로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면 이 양은 대폭적으로 감소될 수 있다. 사실 노아의 방주는 다른 배와 특이하게 지붕이 있는 배임으로, 빗물의 고임에 의한 하중을 견디기 위해서라도 지붕을 경사지게 만들었을 것이고 이 경우라면 홈을 만들어 흘러내린 빗물을 필요에 따라 방주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매우 간단하였을 것이다. 또한 홍수초기 40 일 동안 주야로 집중적인 강우가 있은 후, 홍수 나머지 기간에도 간간이 비가 왔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화산 등의 폭발로 바다의 온도가 따뜻하여 증발량이 매우 많았을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여하간 이러한 가능성까지도 배제하고 홍수 처음부터 끝까지 방주 내에 물을 싣고 사용하였다고 가정하고 먹이와 물, 그리고 동물들이 차지하는 부피를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동물의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음으로 최대 35,200 마리의 동물이 탓을 경우 이들이 차지하는 부피는 방주용량의 28%이고, 16,000마리의 동물이 탔다면 용량은 13 % 임으로 (Q5 참조), 먹이 6~12 %, 물 9.4 %와 함께 이것들이 차지하는 방주내 공간은 28.4~49.4 % 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방주는 동물들과 함께 먹이와 물을 충분히 실을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방주의 크기는 실을 화물의 중량과 부피에 따른 선박의 안전성, 효율성 등을 따져볼 때 더 커서도 안되고, 더 작아도 안 되는 매우 적절한 크기로서 방주가 한낱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존재했던 배였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Q16. 육식동물들은 방주 내에서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고 살았습니까? 

다른 동물을 잡아먹고 사는 육식동물들은 방주 내에서 무엇을 먹고살았을까?  한 쌍의 동물들만 들어갔는데 육식동물이 잡아먹고 나면 그 종은 멸종되는 것인가? 먹이 피라미드 아래에 있는 동물들은 잡혀 먹히기 위해서 방주에 승선했는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동물들의 육식이 홍수 후에 시작되었다고 본다면 이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동물들의 육식이 홍수 전에도 있었다고 하더라도 방주에 탄 동물들의 상당수가 동면에 들어가 있었을 경우에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가 아니더라도 그들을 위한 먹이의 준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드모라페는 오늘날의 육식성 동물들을 모두 조사하여 방주에 탄 육식동물의 수를 7 목(order)의 약 2,000 마리 정도로 추산하였는데, 이들 육식동물이 홍수기간동안 필요한 먹이를 332 톤으로 계산하였다(전체 사료의 1/6 정도).(14) 물론 육식동물들이 방주에 탄 동물들을 잡아먹게 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고, 냉장고도 없는 상태에서 몇 일 후면 썩어버릴 고기를 아무런 가공처리 없이 준비하였을 리도 없다. 노아가 이런 준비도 없이 방주에 동물들을 태울 정도로 바보가 아닌 것이다. 사실 이러한 부분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의적이고 악의적으로 성경을 비판하는 자들이다. 고기들은 철저히 말려져서 건조된 상태에서 준비되었을 것이고, 고기, 내장, 피, 밀기울, 곡식가루 등으로 케이크를 만들어 말려진 후 비스켓처럼 제공되었을 것이다. 실제 이러한 먹이는 많은 사냥꾼들이나 동물원에서도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방법인 것이다. 또한 많은 물고기나 해산물들이 소금에 절여지거나, 말려져서 준비되었을 것이고, 어쩌면 일부 공간에서 개구리나 달팽이 같은 것들이 먹이용으로 사육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설치류와 같이 임신기간이 짧아 방주 내에서 태어난 많은 동물의 새끼들 중 일부는 먹이로 제공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Q17. 뱀, 팬더, 코알라, 세발가락 나무늘보, 벌레를 먹는 동물, 과일을 먹는 동물 등과 같이 특수한 먹이만을 먹는 동물들은 어떻게 먹이를 조달할 수 있었습니까? 

특별한 먹이를 먹는 동물들은 어떻게 방주 안에서 먹이를 구했을까? 뱀들은 오직 살아 있는 것만 먹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먹이를 구했을까? 물고기를 먹는 동물, 과즙이나 과일을 먹는 동물, 벌레를 먹는 동물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팬더곰이나 코알라처럼 한가지 나뭇잎만 먹는 동물들은 어떻게 방주 내에서 살았을까? 팬더(panda)곰은 대나무의 새로 난 순(bamboo shoot)을 먹으며, 코알라(koala)는 eucalyptus의 잎을 먹고, 세발가락 나무늘보(three-toed sloth, Bradypus)는 cecropia 잎을 먹기 때문에 이들의 먹이 공급은 불가능한가? 정말 그런가? 이러한 의구심들에 대해 생각하여 보자.

 사실 이러한 특별한 먹이만을 먹는 현상들은 홍수 후에 생긴 식습관일 가능성이 크다. 지역과 기후변화에 따라 자기가 살던 지역의 풍부한 동식물을 주식으로 하다가 굳어진 식습관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실제로 영장류인 Hapalemur는 매우 심하게 대나무 중심의 식생활을 하는 반면 유사한 다른 종들은 거의 대나무를 먹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하고 이들이 홍수 전에도 오늘날과 똑같은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먹을 수 있는 먹이가 없어서 방주 내에서 굶어 죽어야만 하는가?

뱀은 정말 살아있는 동물만은 먹는가? 뱀은 20세기초까지의 문헌에는 죽은 동물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뱀이 살아 있거나 식지 않은 먹이만을 먹는다는 것은 오해인 것이다. 뱀은 쉽게 죽은 동물을 먹을 수 있도록 훈련될 수 있으며, 야생의 뱀도 배가 고플 경우에는 죽은 동물을 먹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한 뱀은 껍질이나 썩은 고기도 먹을 수 있으며, 이스라엘 살모사(Pseudocerastes)는 썩은 고기를 더 좋아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뱀은 쉽게 건조된 펠렛(pellets) 사료에도 적응되는데, 베트남 땅군들에게 잡힌 코브라들은 건조된 펠렛사료로 잘 사육되고 있는 것이다. 팬더곰은 대나무순을 좋아하지만 포획 후에 쉽게 여러 먹이를 먹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특히 쌀로 만든 오트밀죽을 잘 먹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한 붉은 팬더는 대나무순의 공급 없이도 포획 후 상당기간을 지냈으며 아예 안 먹고도 살 수 있었음이 보고되고 있다. 팬더곰이 대나무순을 좋아함으로 이것이 없으면 죽는다는 생각은 과장된 생각인 것이다.

코알라는 비교적 먹이를 eucalyptus의 잎(= blue gum leaves)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식물을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코알라는 주로 eucalyptus를 먹지만 monterey pine도 잘 먹으며, 20여종의 gum leaves들을 먹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나무는 호주가 원산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하간 신선한 eucalyptus의 잎이 없다면 코알라의 먹이공급은 불가능한가? 먼저 홍수 전에도 코알라가 eucalyptus의 잎만을 먹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대체식물이 있었을지도 모르며, 홍수 후에 생겨난 식습관일지도 모른다. 실제 과거에는 코알라가 eucalyptus의 잎 이외의 식물들도 먹었다는 기록들도 있고, 포획된 코알라는 사료로된 비스켓을 상당량을 먹는다는 기록도 있다. 코알라도 유아기 10개월 정도는 우유에 의지하며, 우유와 곡식가루, 우유와 빵을 혼합한 먹이로 상당기간 키웠으며, 이렇게 자라난 어린 코알라는 매우 다양한 음식을 먹는다는 기록도 있다. 또한 노아의 방주 내에 eucalyptus의 잎이 건초로 저장되었을 수도 있으며, 코알라가 건초로 eucalyptus의 잎을 먹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은 코알라가 유럽 최초로 1880년 호주로부터 영국 동물원으로 수개월에 걸쳐 배로 수송되었을 때 확인되었다. 노아가 동물격리장소에서 관찰도중 코알라의 식습관이 생명에 지장이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면 이에 대한 준비를 하였을 것이다.         

세발가락 나무늘보는 우리에 갇혀 사는 생활을 잘 견디지 못하는 동물중 하나이다. 그래서 이 동물은 포획 후 상당기간을 동물이 살던 장소에서 다루어야 한다. 이것이 몇몇 사람들에게 세발가락 나무늘보는 cecropia 잎에 식사를 의존하기 때문에 우리에 가두어 키우는 것이 어렵다고 잘못 전해지게 되었고, 이것이 다시 노아의 방주를 비판하는 재료로 사용되게 되었다. 실제 세발가락 나무늘보는 다양한 식물들을 먹으며, 어떤 종들은 오히려 cecropia 나무근처에는 가지 않음이 보고되고 있다.

벌레를 먹는 동물들을 위한 준비도 하였을 것이다. 많은 벌레들과 곤충들이 말려져서 보관되었을 것이다. 미국 인디안들은 잘 말려진 메뚜기와 열매, 견과류, 씨앗 등을 섞어 케이크로 만들어 오랜 기간 식량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노아도 수 톤의 말려진 벌레들을 준비했을 것이다. 또한 과일이나 과즙을 먹는 새나 동물들을 위하여 충분한 량의 과일이나 과즙이 건조되어 시럽이나 젤리, 설탕 등으로 보관되었을 것이고, 이들은 물에 불리거나 타서 제공되었을 것이다(15).  

  

Q18. 모든 동물이 창조시에 초식을 하였다면 육식에 필요한 송곳니는 왜 만들어졌습니까? 

성경에 의하면 모든 동물은 식물을 먹도록 창조되었고, 죽음과 죄는 아담이 범죄하기 전까지는 없었으며, 모든 것들은 보시기에 좋았다고 기록되어 있다(창1:31). 그러나 많은 동물들은 육식을 위한 여러 신체적 특징을 갖고 있으며,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기도 하며, 고안된 방어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것은 어떻게 된 것일까.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상세히 말해주고 있지는 않지만, 여러 상황들을 종합하여 합리적인 추론을 하여볼 수는 있다.      

첫째, 하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이미 아시고 동물을 창조하실 때 육식에 필요한 기능들을 미리 만들어 놓으셨을 수 있다. 둘째, 육식에 필요한 기관들은 원래에는 다른 어떠한 양성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제 날카로운 송곳니는 단단한 열매를 자르거나 껍질을 벗기는데도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셋째, 아담의 범죄 이후 유전적 변화가 일어나 만들어졌을 수 있다. 최초의 동물들은 초식동물로 만들어졌으나, 땅이 저주를 받아 거친 환경 속에서 변화와 적응이 일어나 육식동물로 변화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천사장 이었던 루시퍼가 타락하여 쫒겨난 후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물들을 파괴하기 시작하면서 변화되었을 수 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범죄케한 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모습이 바꿔지고, 하나님의 창조능력을 흉내낸 사탄에 의해서 사람과 동물과 식물에 유전적 변형이 일어나고 서로 물어뜯고 죽이는 형상으로 바꾸어 놓았을 가능성이다. 

창세기 3장에는 사람과 동식물이 저주를 받아 강력한 유전적 변형이 일어났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들이 저주를 받고(14절), 뱀은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게 되고(14절), 식물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고(18절), 하와의 신체도 변화되어 잉태하는 고통이 따르게 되고(16절), 땅도 소산이 줄어드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은 이제 죽음과 고통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아담은 자기의 잘못으로 저주받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던 일을 뼈저리게 후회하였을 것이다.    

 

Q19. 방주 내에 동물들의 배설물은 어떻게 처리되었습니까?  

매일 동물들은 엄청난 양의 배설물들을 생산할텐데 이들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냄새, 가스, 해충들을 어떻게 관리했을까? 이것들을 8명이 처리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앞에서도 논의했지만 동물의 많은 수가 동면에 들어간다면 배설물의 양도 적을 것이기 때문에 이것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동면하지 않았어도 8명으로도 배설물의 처리는 가능할 수 있다.   

우드모라페는 많은 자료들을 참고하여 16,000 마리의 동물들이 매일 배설하는 분변의 양을 하루 12톤으로 계산하였다. 동물의 분변은 평균 87 %가 물이기 때문에 건조물로서는 1.57 톤의 양이다. 이 양은 하루 5.32 톤(371 일 동안 1990 톤의 건조식량)으로 제공된 건조 식량의 70.5 %를 소화하고 나머지를 배설한 수치로, 농축사료로 제공되었을때 대부분의 동물들이 보이는 소화율과 일치한다. 노아의 방주에는 이러한 배설물을 처리할 수 있는 구조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케이지 바닥에 경사판을 설치하여 큰 통으로 모은 후 관을 통해 방주 밖으로 처리하는 방법, 장기간 동안 교체하지 않는 두꺼운 깔짚을 깔아주는 방법, 두껍게 흙을 깔아주는 방법, 물은 걸러서 흘려버리고 고형분은 퇴비를 만드는 방법 ...등이다. 이러한 일들을 더욱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맨 아래층에는 동면을 하거나 배설물을 적게 생산하는 그룹으로, 맨 윗층은 배설물의 양이 많은 그룹으로 나누어 승선시켰을 가능성이 크다.(16)

  

Q20. 방주 내에서 배설물로 인한 냄새와 악취, 유독한 가스 등에 대한 환기는 적절했습니까? 

방주내의 동물들은 배설물들로부터 발생된 메탄, 이산화탄소, 암모니아 등의 가스 때문에 고통을 받았는가? 이러한 생각은 방주에 가로 세로 한 규빗(45cm) 정도의 작은 창이 하나만 있었다고 오해함으로 생긴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방주의 크기를 생각해 볼 때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창6:16)에는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라고 되어 있는데 창문의 개수는 알 수가 없다. 성경학자인 Ben-Uri는 방주의 창은 처마밑으로 길게 연속적으로 나있는 구조일 것이라고 하였다. 이 구조는 실제 많은 동물들을 사육하는 농장에서 사용하는 창의 형태이다. 높이 13.5m의 공간에 위로부터 45cm의 크기로 연속적으로 나있는 창은 양돈장, 양 우리 등의 창 크기와 비교하거나, 바다에서의 비교적 빠른 바람, 온도유지, 방주 내 동물수 등을 고려하여 볼 때 매우 적합한 크기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외부의 신선한 공기의 유입을 위해서 방주의 중간 중간에는 천장으로부터 연결되어진 공기유입관들이 설치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창과 공기유입관들은 필요에 따라 개폐나 크기가 조절될 수 있는 구조였을 것이다. 방주 내가 동물들의 배설물의 냄새로 고통을 받으며, 산소부족으로 숨쉬기도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노아의 방주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과장으로 인한 오해인 것이다.(17)    

         

Q21. 방주 내 동물들은 너무 밀집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방주 내에 16,000 마리의 동물은 너무 과도하게 밀집되어 있어 방주 내는 동물들이 발생하는 체온으로 찜통이었을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물들의 생체량을 파악하여야 한다. 우드모라페는 16,000 마리의 동물들이 내는 열발생 생체량(biomass)은 241톤으로 계산하였는데, 방주 용적은 43,200 m3 임으로, 방주내 열생산 생체량은 5.58 kg/m3으로 계산된다. 이 수치는 밀집되지 않은 가금우리의 2.75 kg/m3 에 비해서는 2배 정도의 수치이나, 말들이 있는 마구간의 16.2 kg/m3에 비해서는 1/3 수준이며, 소들이 있는 외양간의 1/2~1/5 정도 수준이다. 오늘날 현대식 시설을 갖춘 양계장의 경우는 16 kg/m3 이며, 양돈장의 경우는 37 kg/m3 정도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므로 방주 내 동물들은 매우 적절한 공간에서 생활한 것으로 생각되며, 너무 밀집되어서 동물들의 체온으로 찜통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막연한 추측이요 오해인 것이다.(18)      

         

 Q22. 굴을 필요로 하는 동물, 발굽이 자라는 동물, 뿔이 있는 동물들은 어떻게 지냈으며, 방주 내 동물들은 운동 없이도 1년여의 기간을 지낼 수 있었습니까? 

굴속에서 사는 동물들은 흙을 담아줘야만 하는가? 굴속에서 사는 동물의 대부분은 굴이 없어도 적어도 일년동안은 생명에는 전혀 지장 없이 살 수 있다. 오늘날의 몇몇 동물원에서 이들 동물들은 콘크리트 바닥에서 키우고 있는데, 이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우리 일부를 캄캄하게 만들어 빛을 차단시켜 주면 전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굴속에서 사는 동물들은 포획하여 동물원에서 사육 시 곧 그 습성이 바뀌는 것이 확인됐는데, 설치류인 마못류(pacas)와 게르빌루스쥐는 굴속에서 사는 습성을 곧 잃어버렸으며, 남미의 야행성 포유동물인 아르마딜로는 짝짓기 시에만 어두운 장소를 필요로 했고, 호주산 유대동물인 웜뱃은 포획 후 굴이 없이도 온도만 올라가지 않으면 잘 적응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므로 방주에 거추장스럽게 따로 굴을 파줄 필요는 없었을 것이고, 방주 깊숙한 곳에서, 필요에 따라 빛이 차단되는 상자 속에서 이들 동물들은 잘 견디었을 것이다.

또한 코뿔소와 같이 뿔이 있어 위험한 동물들은 동물격리장소에서 미리 잘라주어 수송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였을 것이고, 발굽이 있는 동물들은 바닥이 너무 딱딱하거나 부드러울 때 발굽에 손상을 입는데, 노아도 고대 로마인들이 했던 것처럼 마루바닥에 흙을 깔아주는 등 적절한 표면처리를 하여 발굽손상을 예방하였을 것이며, 설령 준비를 못했다 하더라도 발굽의 자람은 그리 치명적인 손상이 되지 않는다. 또한 동물의 운동문제인데 방주 내 작은 동물들은 갇혀 있는 장소에서 충분히 운동할 수 있었을 것이며, 문제는 큰 동물들인데 소형 동물원이나, 실험동물 사육실, 서커스 동물우리 등에서 지내는 큰 동물들은 오랜 기간 운동 없이도 우리안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노아방주 안에 이들 동물들을 위한 운동공간이나 트랙이 존재하여서 정기적으로 운동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19)

            

Q23. 노아는 역청(pitch)을 어디서 구했습니까? 

성경을 비판하는 자들은 역청은 석유나 석탄으로부터 만들어지는데, 노아의 시대에는 석유나 석탄이 발견되지 않았을 것임으로, 노아는 역청을 구하지 못했을 것이고, 노아의 방주는 방수가 안되어 물이 새어 들어왔을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노아는 역청을 어디서 구했을까?

역청은 코올타르를 가열 증류할 때 남겨지는 검은색의 아교와 같은 끈적끈적한 물질로서 아스팔트와 유사한 물질이다. 오늘날 역청은 일반적으로 석탄을 가열할 때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석유나 석탄 외에 역청의 다른 출처를 대부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역청은 나무(wood)를 가열하거나 증류할 때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석유와 석탄산업이 발달하기 전에 이미 역청을 만드는 방법이 존재했던 것이다. 적어도 천년 동안은 유럽에서 역청을 만드는 산업이 발달해 있었다. 거대한 목조 선박들을 만드는데 역청제조는 반드시 필요했고, 유럽 역사 도처에 기록되고 있다. 역청제조는 어느 정도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많은 유럽사람들의 성씨에도 그 흔적들이 남아 있다. 폴란드에서 역청이나 타르를 의미하는 'smola'는 'Smola, Smolander, Smolen, Smolenski, Smolarz' 등으로, 독일에서 역청을 의미하는 'teer'는 'Teer, Teerman' 등으로, 영국에서는 'Pitcher, Tarrier, Tarmen' 등으로 성씨에 남아 있는데, 이들은 역청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역청은 울창한 숲에서 나무의 송진(resin)을 채취하면서 시작된다. 비스듬히 홈을 파 송진이 흘러내리게 한 후 나무밑에 용기를 두어 채취한다. 송진채취는 지금도 폴란드, 우크라이나, 러시아, 핀란드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송진채취가 끝난 후 나무를 잘게 잘라 흙으로 덮은 후 천천히 태워 숯(charcoal)을 만든다. 역청을 만드는 마지막 단계는 송진을 끓이면서 숯가루를 배합하는 것이다. 숯가루의 배합율에 따라 다른 성질을 가지는 역청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역청은 대양을 항해하는 목조선박의 방수를 위해 칠해졌던 것이다.

노아가 이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역청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석유와 석탄이 없어도 역청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노아 이전에 벌써 역청을 만드는 방법이 개발되어 전해 내려왔을  가능성이 크고, 방법이 없었다 하더라도 노아는 방주를 만들면서 많은 나무들을 벌목하고 다듬었을 것이고, 그 과정 중에 송진도 발견하였을 것이고, 송진을 다루다가 역청을 만드는 방법을 습득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Q24.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도착하였다면 실제로 목격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노아의 방주를 발견했다는 기록은 고대와 중세의 많은 문헌에 나타나 있다.(20) 먼저 BC 275년경 베로수스는 바빌로니아라는 역사책에서 ”아르메니아에 있는 고르디엔 산맥에는 아직까지 배의 일부분이 남아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역청의 조각들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부적으로 사용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배의 일부분은 아르메니아에 아직 남아있으며... 사람들은 역청을 가져다가 부적으로 사용한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이 장소를 방주가 보존된 하강한 곳으로 부르며, 오늘날까지 그 곳의 거주민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4세기경 살라미스의 주교 에피파네스는 ”노아의 방주의 잔해가 쿠르드의 나라에서 지금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산기슭에서 노아가 방주를 떠날 때, 주 하나님께 정결하고 살찐 짐승을 희생 제물로 제사를 지낸 제단의 잔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초대교회 교부였던 요한 크리소스톰은 ”노아의 방주가 있는 아르메니아의 산이 그것의 증거가 되지 않는가? 그리고 또한 노아의 방주 잔해가 요즘까지 우리에게 경고로서 거기에 남아 있지 않는가?” 라고 하였다.

15세기말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는 아라랏산 근처를 통과하면서 ”아르메니아 중앙에 아주 크고 높은 산이 있는데, 그 위에는 노아의 방주가 남아 있다고 하며 그래서 이 산은 방주의 산이라고 불리고 있다” 라고 기록하였으며, 1647년 아라랏산 근처에 살았던 아담 올리어리우스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방주 잔해들은 단단하게 되어 그들은 완전히 석화된 것처럼 보인다. 우리들은 메디아 페르시아에 있는 샤마키에서 검고 단단한 나무 십자가를 보았는데, 그 곳 주민들은 그것이 방주의 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확신하였다”고 하였다.

아마도 방주를  가장 많이 목격한 사람은  프랑스 보르도의 사업가, 페르난도 나바라 이다. 그의 첫 탐험은 1952년 8월로서, 세상에 방주가 존재하고 있다고 증거하는데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빙하의 얼음 덩어리 밑에 있는 배 모양의 거대한 검은 물체는 방주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되었다. 1953년 7월에 터키 사진사, 알래딘 세커를 동반하고 두 번째 탐험을 하였다. 그러나 악천후로 인해 방주의 파편을 가져오거나 사진을 찍는데 실패했다. 1955년 6월에 세 번째의 탐험이 이루어졌다. 1955년에 나 바라는 그의 아내와 세 아들과 함께 터키에 돌아왔다. 여행의 목적은 오직 아라랏 산에 올라 방주를 보았거나 만져보았다는 결정적인 증거들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마침 1955년은 수십 년만에 빙하가 가장 많이 녹는 해로 탐험하기에는 적당하였다. 아내와 두 아들을 뒤에 두고, 이제 11살인 그의 막내아들 라파엘과 함께 나바라는 아라랏 산에 등정하였다. 마침내 이 부자는 방주 사진을 찍었던 곳에 이르렀다. 나바라 혼자서 로프 사닥다리를 타고 빙하의 갈라진 틈으로 내려가서 흙 속에 묻혀있는 방주를 찾아냈다. 거기에는 잘 잘려지고 손으로 다듬어진 나무 버팀목들이 있었다. 상당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5피트의 나무 조각을 잘라내어 들어 올렸다. 이 파편이 실제 방주의 것인지는 파편의 연대에 달려있다. 나바라는 몇몇 관계 당국에 나무 파편들을 보냈다. 이집트의 농무성은 이 시커먼 나무 파편의 연대를 약 BC 5,000년이라고 추정하였으며, 재질은 참나무라고 발표했다. 또한 나바라는 카이로 박물관의 고고학부서에도 이 나무 파편을 보냈다. 카이로 박물관에서는 약 5,000년에서 6,000년 되었다고 발표했으며, 이들은 방사성 연대측정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방주를 탐사하는 데에는 아직도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고 있었다. 정부의 통제, 신체적인 어려움, 악천후의 날씨, 각종 동물들의 공격, 빙하 등이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하였다.

유대-로마 역사가인 조세푸스(Josephus)나 칼디안 역사가인 베로수스(Berosus)와 같은 고대 역사가들은 자신들의 저서에서 노아의 방주가 실존한다고 언급하였고, 마르코 폴로도 아르메니아의 산악지역에 노아의 방주가 있음이 보고되었다고 쓰고 있다. 서기 200 ~1700년대에 살았던 기타 십여 명의 기독교인 그리고 유대교 지도자들도 노아의 방주가 자신들이 살던 그 시대까지도 실제로 보존되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856년경 노아의 방주를 믿지 않는 세 명의 영국과학자들과 두 명의 아르메니아 안내자들이 방주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아라랏 산에 올랐다. 방주는 아마도 발견되었던 것 같은데, 영국과학자들이 현지 안내자들에게 사실을 그대로 보고하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몇 년이 지난 후 당시 미국으로 이주하여 살고있던 등반안내원인 아르메니아인중 한사람과 등반에 참가했던 영국인 과학자중 한 사람이 따로 따로 자기들이 등반당시 노아의 방주를 찾았었다고 보고했다.

19세기의 유명한 영국의 학자이며 여행가인 제임스 브라이스 경은 방주에 관한 대규모의 자료수집과 연구를 수행했다. 이 연구 후 그는 방주가 아라랏산 어딘가에 보존되어 있다고 확신케 되었다. 결국 1876년 그는 아라랏 산 정상까지 올랐고, 해발 13,000 피트 (timber line에서는 2,000 피트)에서 4 피트나 되는 손으로 만든 나무도구 조각을 발견했는데, 그는 이를 방주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다.

1883년 일련의 신문기사들은 일단의 터키 위원회 회원들이 이상기후로 유난히 더웠던 그 해 늦여름에 아라랏산의 산사태 상황을 조사하던 중 얼음 덩어리 밖으로 삐쭉 튀어나온 방주를 발견케 되었다고 보도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방주의 잔해 안으로 들어가 조사했었다고 주장했다.

유별나게 무더웠었던 1902년 여름, 조지 하고피안이라는 한 아르메니안 소년과 그의 삼촌이 아라랏 산을 등반했는데 앞서 보도되었던 얼음 덩어리 밖으로 튀어 나와있던 방주의 잔해를 찾았다. 그 소년은 방주 위로 올라갔었으며, 그것을 자세히 조사해보았다. 1904년에 이 소년은 그 방주를 다시 한번 방문했다. 1972년 그가 죽기 직전, 그의 증언이 자세히 녹음되었다. 이 녹음 테이프는 음성분석시험을 통과했는데, 이는 그의 증언이 상당히 신뢰할 만함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1차 세계대전 중 아라랏산 상공을 비행했던 한 러시아 조종사는 자신이 방주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발견소식은 러시아황제에까지 보고되어, 그 장소로 대규모의 조사단이 파견되었었다. 군인들은 그 배를 발견하여 조사까지 했으나, 그 결과가 황제에게 보도되기 전에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 그들의 보고서는 분실되었고 그 조사대의 군인들도 흩어졌다. 그들 중 몇 명은 미국에 정착케 되었는데, 그들의 얘기를 들은 많은 그들의 친척들과 친구들이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다.

1916년 다섯 명의 터키 군인들이 아라랏 산을 가로지르는 중에 방주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은 30일이 지나서, 자신들이 한 미국 탐험대를 그곳으로 안내할 때가 되어서야 이 얘기를 밝혔다. 그 탐험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며, 그들의 활약상은 그들이 죽은 후까지도 추적되지 않았다.

1943년 7월, 미 육군 중사인 에드 데이비스는 이란에 근무하고 있었다. 거기서 그는 루드족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그에게서 노아의 방주가 지척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아라랏산에 보존되어 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데이비스가 이 방주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저들은 그를 먼저 자신들의 마을로 데리고 갔다. 거기서 그는 방주의 몇 가지 잔해들을 보았다고 주장했는데, 이 잔해들은 마른 콩, 양 지팡이, 기름 램프, 그릇 종류, 아직도 꿀을 담고있는 항아리였다. 이 모슬렘 족들은 이 방주를 외부사람들로부터 보호해야함을 자신들의 종교적 의무로 생각했었고, 필요하면 죽이기까지도 불사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저들과 예외적으로 친했었던 관계로 데이비스는 살아 나올 수 있었다. 그 부족의 지도자였던 아바스-아바스(Abas-Abas)와 데이비스의 친구였던 그의 아들은 제 삼일째에 아라랏산의 북동쪽을 등반했다. 급하고 미끄러운 바위와 설상가상으로 내린 비로 인해 그들은 방주에 0.5 마일 이내로 접근할 수 없었다. 안개와 구름이 걷히자 그들의 좌우로 약 0.5 마일 가량씩 떨어져있는 두 개의 방주의 부서진 잔해를 볼 수 있었다. 나무기둥들, 갑판, 그리고 방들을 볼 수 있었다. 아바스-아바스는 데이비스에게 방주에 대해 상세하게 말했다. 사용된 나무는 아주 단단한 나무이며, 방주 건조에 못 대신 나무못이 사용되었고, 대형 옆문은 헛간의 바깥문같이 배의 밑 부분에서부터 위로 열리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지역은 최상갑판의 중앙에 48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85년에서 1986년까지 데이비스는 약 80여 명의 방주 연구가들과 7가지의 광범위한 면담식 질문회의를 성공적으로 통과했으며, 1989년 거짓말탐지기의 시험을 통과했다.

석유탐사 지질학자인 조지 그리인은 1953년에 헬리콥터에서 방주의 사진을 몇 장 찍어왔고, 방주의 그림을 몇 장 그려왔다. 미국으로 귀환하는 여행 중에 그리인은 자신의 사진과 그림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육상탐험을 위한 후원금을 모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다 그는 남아메리카를 여행 중에 죽었다. 비록 그의 사진과 그림들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30명 이상의 사람들이 산 절벽의 한 모퉁이에 위치한 녹고있는 얼음덩이로부터 돌출되어 나와있는 방주를 분명히 보여주는 사진들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그레고르 슈빙햄머는 1950년 말에 터키의 아다나에 위치했던 428 전략비행연대에 속해 있을 당시 F-100 비행기로 비행중 방주를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슈빙햄머는 그 방주가 마치 아라랏산의 높은 곳에 위치한 작은 골짜기에 누워있는 거대한 상자처럼 보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아라랏산 탐험자인 윌리암 크로스와  ”산 위 매우 깊은 협곡에 보이는 거대한 기차화물칸이나 또는 직사각형 배”처럼 생긴 방주를 목격한 조종사인 공군 대위 그레고르 슈빙햄머 사이에 우연치고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다름아니라 크로스가 방주의 목격자 하고피안 아래에서 아라랏산을 탐험했던 엘프레드 리가 그린 방주 전경 스케치를 담고 있는 ”노아 방주 탐험”이란 제목의 소책자를 슈빙햄머에게 보냈을 때에 일어난 것이다. 전에 한 번도 방주의 사진을 보지 못했던 슈빙햄머가 그가 보았던 방주를 그려달라고 그의 친한 사람중 한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했다. 산 정상의 눈 속에 묻혀있는 방주와 비행기에서 보면 아주 작아 보이지만 배의 상판을 따라 있는 창문만 빼놓고, 보통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직사각형 배 모양을 하고 있는 방주의 두개의 모양은 똑같았다. 그러나 두 개의 그림사이에 일어났던 우연의 일치는 방주가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자료로서가 아니라, 단지 같은 물체를 보고 그렸다는 증거일 뿐이다.  

 *노아의 방주가 정말로 발견됐는가?

https://creation.kr/Ark/?idx=5093941&bmode=view


*참조 : 노아의 방주 (동영상. 익스트림미스터리. 24:34)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ateid=24&clipid=23924419

Were Insects on the Ark? (Answers, 2016. 5. 6)
https://answersingenesis.org/noahs-ark/were-insects-on-the-ark/


번역 -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geology/g3/g3/q21.htm ,

출처 - 도서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21

참고 : 4198|4275|4235|4473|4490|4607|4610|6255|6254|6240|6228|6225|6223|6222|6136|6104|6076|6030|5556|5973|5468|5958|5957|5951|5898|5527|5841|5737|5721|3595|5675|5429|5419|5400|5399|5286|5260|4805|4211|4217|4214|4132|3968|3948|3111|4363|3044|3278|2912|2050|1493|1464|1192|557|2104|512|3032

Headlines
2004-05-28

노아의 방주 탐사 계획 (2004년)

(Noah's Ark Search Planned)



MSNBC Fox News는 위성 사진으로 아라랏산의 경사면 높은 곳에 위치하는 노아 방주(Noah’s ark)와 유사하게 보이는 한 물체를 조사하기 위해서, 2004. 7. 15 일

탐사가 진행될 계획임을 보고했다.

다니엘 맥기번(Daniel McGivern)이 이끄는 탐험대는 가까이에서 이것을 살펴보고 사진을 촬영할 계획이다.

National Geographic도 그 뉴스를 내보내면서, 상업위성 회사인 Digital Globe에 의해서 얻어진 위성 사진을 첨부하고 있다.

맥기번은 노아의 방주라고 98% 확신하고 있으며, 사진에서 나무로 된 들보(beams)도 확인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또 다른 방주 탐사 전문가인 렉스 가이슬러(Rex Geissler)는 회의적이다.

 



 물체는 너무 불분명해서 어떠한 결론도 내릴 수 없다. 이따금씩 방주들에 관한 감질나는 사진들이 나타날 때, 우리들은 항상 그것들은 다른 것으로 입증될 것이므로 방주가 아닐 것이라고 미리 포기해 버리는 입장을 가지게 된다. 1990년대에 상자 모양의 물체는 가까이에서 보았을 때 매우 다르게 보였던 것처럼,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던 탐험가들에 의해서 방주로 주장되었다가 낭패하여 철회하는 일들이 발생되곤 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주장들은 확실히 조사해볼 가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최선의 상태에서 보존되었다 하더라도, 나무 배가 수천년 동안의 풍화와 산사태 등으로부터 견뎌온 모습인 것 같지는 않다. 단지 뛰어난 증거만이 놀라운 주장을 뒷받침할 것이다. 강력한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 적게 말하는 것이 후퇴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 있다.


그래도 오랜 기간 동안 방주를 보았다는 계속된 주장들은 탐험가들을 자극하고 있다. 탐험이 매우 어려운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산 위의 얼음 덩어리들은 강설량이 적었던 해에, 그것도 짧은 기간만 녹는다. 그리고 산은 올라가기가 매우 힘들고, 그 지역은 터키-러시아-이란의 접경지역으로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위험한 지역이었다. 산을 돌아다니고 있는 총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위험성을 더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수년 동안 탐사를 희망하는 다른 여러 탐사대들이, 마지막 순간에 결정을 번복하는 변덕스러운 지방 관청의 허가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탐험가들이 바라는 최고의 희망은,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지금까지 부족했던), 회의론자(skeptics)들도 확신시킬 수 있는 의심할 수 없는 증거를 가지고 돌아오는 것이다.

방주가 존재하고 홍수가 발생했었다는 증거로 인해 회의론자들이 마음을 바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증거를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 참조 : 1. 노아의 방주를 찾아서 1 : 웹 사이트 탐방 (사진 자료를 중심으로)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55

2. 노아의 방주를 찾아서 2 : 웹 사이트 탐방 (사진 자료를 중심으로)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58

3. 노아의 방주를 찾아서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08

4. CIA는 새로운 노아의 방주에 대한 문서들을 공개한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58

5. 노아의 방주에 관한 24개의 질문과 답 (FAQ)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21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0404.htm ,

출처 - CEH, 2004. 4. 26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976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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