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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유종호
2005-08-02

대홍수 이후 시대 2


5. 대홍수와 바벨탑 사이의 기간 중의 사람들과 그들의 기술들

대홍수 이후에 사람들은 다시금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몇 배나 더 잘 순종하기 시작했다.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 의해서 대홍수 이전 사람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기술과 능력들(특히 건축 부문)이 곧장 도시와 국가 건설에서 분명히 나타났다. 이 사람들은 글을 읽고 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바벨탑과 계단식 피라미드형으로 건설한 신전 또는 사원들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수학, 건축, 그리고 기술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지구의 인구를 늘리고 상업을 발전시키고 나라를 형성하는 데 있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들은 러시아가 터키로 진출한 후인 1810년경부터 우크라이나의 공한지에 토지를 허용했던 게르만인들과 매우 흡사했다. 1880년 제 3세대 만에 그 지역의 인구밀도가 매우 조밀해져서 수많은 젊은 가족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야할 첫 번째의 기회를 잡게 되었다. 이런 건설적인 게르만인들을 바라본 러시아 원주민들은 “이것이야말로 게르만식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홍수 후 겨우 1-2세대 만에 홍수 이전 시대에 풍미했던 교만과 반역과 독신(瀆神)과 반신(反神) 현상이 다시 만연했는데, 특히 그들이 하늘까지 닿을 탑을 쌓으려고 계획했을 때는 그 도가 극에 달했다. 아마도 그들은 오늘날의 교과서와 도서관들이 당시 그들의 역사에서 보여주고 있는 신전과 같은 탑들을 지었을 것이다. 그들은 “성과 대(臺)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창11:4)”라고 말한다. 아마도 홍수 이전에는 사람들이 온 세상에 널리 흩어져 있었을 것이다. 탑을 쌓은 목적은 또한 아담 이후 “사람의 아들들” 이래로 인간들이 늘 그래왔듯이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 인간을 영화롭게 하고 인간을 신성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햇볕에 말린 일상적인 벽돌을 쓰는 대신에 그들은, 기후와 시간에 의한 파괴를 더 잘 견딜 수 있을 불에 뜨겁게 구운 벽돌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벽돌들이 서로 잘 접착되도록 하기 위하여 바벨론 근교에서 진흙 또는 아스팔트를 갖다가 사용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또한 인간의 언어를 변화시키는 말씀의 능력으로 그들의 교만한 계획들을 모두 무위로 돌려버렸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다”라는 말씀(잠언16:9)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고 그들의 말을 교란시키셨다. 이것은 분명히 셈과 함과 야벳으로부터 내려온 가족과 부족들과 백성들에게 관한 것이지 각 개인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가족 간에도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개개의 가족이나 부족은 각기 고유한 방언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말들이 옛 생각과 연합을 이룸에 의한 내적 과정으로 구성된 기적이 그들로부터 제거되고, 각 가족과 부족에게는 즉시로 새롭고 상당히 다른 모습의 표현방식이 부여되었을 것이다. 언어의 혼돈이 너무나도 철저해서 사람들은 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떤 일도 함께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더 이상 서로가 함께 일을 할 수가 없게 되었을 때, 그들은 가족끼리, 종족끼리, 부족끼리 지구의 모든 지역으로 흩어졌고, 그때 각각의 무리들은 그들 자신의 고유한 언어, 문자, 문서, 문화, 문명을 발전시키기 시작했을 것이다. 

현대 인간(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교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후 대홍수 전, 바벨탑 전, 그리고 역사를 통해 줄곧 그랬던 것과 다르지 않다. 안토니 펠드만은 그의 저서 <공간, 1980> p.215에서 별을 삼키는 블랙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즉;

“만일 그 이론이 맞는다면 은하의 운명은 결정적이다. 우리가 지금 밤하늘에서 보는 별들이 소멸되어 버리는 것은 오직 시간의 문제다. 다행히도 그와 같은 대재앙의 시간 스케일이 매우 길다(수십억 년). 그래서 우리 자신의 태양계가 위협받기 전에 우리는 블랙홀이 미치지 못하는 다른 은하계를 식민지로 삼아 멸망을 피하는 방법을 능히 고안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또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 없이 살아 갈 수 있는지를 보라. 이것이 바벨탑 사건 때의 인간의 태도였고 “사람의 아들들”의 태도였다.


6. 진화론자들은 언어의 기원을 모른다.

진화론자들은 왜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갑자기 많은 다른 언어들을 구사하기 시작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수천가지의 언어들과 방언들이 있고, 오늘날 사람들은 다른 언어를 배우기가 어렵다.

진화론자들은 인간의 언어가 원숭이의 채팅과 다른 동물들의 각종 울음소리들로부터 발전되어 왔으며, 인간이 언어를 발전시킨 것은 오랜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했다는 것을 설명하려고 애써오고 있다. 이 주장은 시를 짓는 사람들에 의해서 부인되었다. 언어학자인 노암 춈스키는 인간의 언어와 동물들의 울음 등은 전혀 달라서 심지어 서로를 비교할 수조차 없다. 유명한 철학자인 막스 뮬러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까지 아무도 감히 터치하지 못하는 장벽 즉 언어의 장벽이 있다. 언어는 우리의 루비콘 요새이고 어떤 사람도 그것을 감히 넘어가지 못할 것이다. 어떤 자연선택의 과정도 새들과 동물들의 표현으로부터 의미 있는 말들을 추출해낸 적이 없다” (언어학 강론 p.23, 240, 370에서).

언어가 동물들의 정글에서 생겨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원시인들의 언어는 일반적으로 고도로 복잡하다는 것이다. 다윈이 인류 가운데 가장 미개하고 그들의 언어는 조잡하다고 여겼던 남아메리카의 최남단에 사는 사람들은 30,000개 이상의 어휘를 가졌는데, 이는 셰익스피어가 사용한 것의 2배 이상이나 되는 분량이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언어는 헬라어보다도 더 복잡하다. 고대 헬라어와 라틴어는 현대의 그것들보다 더 복잡하다. 아마도 바벨탑 사건 때에 야기됐던 혼잡한 언어가 문어(文語)로 정착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들의 사상과 개념들을 표현하기 위한 더 많은 다른 단어들을 고안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7. 기록물(문서들)

인간의 언어가 바벨탑 사건으로 혼잡하게 되고 다른 가족들과 부족들이 그들의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한 후,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문어체로 발전시키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이전에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해 왔다. 버나드 람 교수는 그의 저서 <과학과 성경에 대한 크리스천의 관점> p.327에서 “창4, 5장에 사람들의 이름과 나이, 도시와 농업과 금속 제련과 음악에 대한 기사가 있다. 이것은 그들이 쓰고 계산하고 건설하고 농사짓고 쇠를 녹이고 작곡하는 능력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이런 일들은 아담의 바로 후손들에 의해 행해졌다는 사실이다 .

만일 인간들이 홍수 전에 문자로 기록할 수가 있었다면, 당연히 홍수 후에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홍수에서 바벨탑 사건까지의 기간 동안 창11:1에 “온 땅의 구음이 하나요, 언어가 하나였더라.”라고 씌어있는 대로 인간은 하나의 언어만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언어와 기록이 인간이 창조된 바로 그 순간부터 존재했을 것이기 때문에, 대홍수 전과 대홍수 후의 족장들의 자세한 족보가 노아를 거슬러서 아담 때부터 정확히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기록들은 필기를 해놓지 않으면 유지 보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전 기간을 망라한 족보 내역은 어딘가에 기록으로 보존되어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노아는 족장들의 역사적 기록들을 방주에 가지고 들어갔을 것이고, 그것이 창세기에 잘 요약되어 있다. BC 2,500에서 BC 3,000년 이전의 문자와 기록된 역사가 존재하지 않은 것은 바벨탑 이후에 새로운 언어가 생겼음으로 옛 것은 잊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제네크 쿠팔이 그의 저서 <인간과 그의 우주, 1972>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대로 그때 문자가 온 지구상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대 애굽의 그림 모양의 표현, 수메르와 아카드 땅에서 사용된 상형문자, 인디아의 모헨조-다로에서 발견된 원시 인디언들의 심벌(아직도 해독되지 않았지만) 등은 대략 같은 시기에 각각 독자적으로 발명되었다.”

각기 다른 가족들과 부족들 단위로 땅 위에 흩어졌음으로 자연스럽게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각각에게 내려주신 새로운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과 대화를 그들이 개발한 문자들로 기록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지구 전역에 갑자기 출현하기 시작했다. 여러 기록들이 대충 그때부터 애굽, 수메르, 바빌로니아, 인도에서 뿐만 아니라, 또한 중국, 일본, 그리고 페루의 잉카,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마야, 그리고 물론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그리고 전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되었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84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참고 :

유종호
2005-08-01

대홍수 이후 시대 1


1. 대홍수 이후의 지구

대홍수 기간과 그 직후에 지구 위에서 생겼던 모든 재난을 감안해 볼 때, 대홍수 이후의 지구는 과연 어떠했을까? 한 가지는 아주 분명하다. 대홍수 이후 물이 빠진 세계는 그 전에 존재했던 아름답고 쾌적하고 풍성한 옛 모습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베드로후서 3:6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다.” 위에 있던 수증기 층으로부터 지구상에 엄청나게 퍼부은 많은 양의 비와, 거칠고 파괴력을 가진 바람과 토네이도, 사이클론, 허리케인, 북극지역에서의 거의 순식간에 -130℃로 기온의 급강하, 해저 샘(깊음의 샘)들의 터짐, 땅덩어리와 산들의 융기, 화산과 지진에 의한 전 지구가 흔들림, 빠른 속도로 밀려와서 육지를 덮친 엄청난 높이의 파괴적인 해일, 부서지고 깨진 바윗돌과 온갖 잡탕들과 뒤섞여 버린 비옥한 토양 등... 이 모든 것들이 1, 2마일 또는 그 이상의 깊이로 새로운 퇴적층을 이루었다. 또한 이 모든 것들이 지구에 살아남은 거민들을 위해 전혀 새로운 지구 환경을 만들었다.

대홍수 이전에 존재했던 비옥한 원시 토양은 아마도 영원히 잃어버린 것 같다. 노아와 그의 세 아들 내외가 방주에서 나왔을 때, 그들은 전혀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되었을 것이다. 유럽인들이 미국의 새로운 땅으로 이민해서 유럽지방의 옛 지명들을 미국의 새 정착지에 붙인 것과 마찬가지로 노아와 그 후손들은 분명히 홍수 전부터 알고 있던 옛 지명들을 새로운 정착지에 부여했을 것이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창조 시에 지상의 물을 분리하시고 마른 땅을 드러나게 하셨을 때, 즉 대홍수 이전의 육지는 지금보다는 훨씬 넓었을 것이다. 대홍수 이전에는 기복이 덜하고 평평했던 지구 표면은 홍수 이후에는 궁창의 물이 쏟아져 내려서 험준한 산맥과 깊은 해저를 이루며 변형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해저 특히 대륙 인근의 대륙붕들은 옛날에는 마른 육지였을 것이다.

풍성하게 자라던 수많은 맛있는 과일들, 견과류, 딸기류, 손쉽게 구할 수 있던 각종 채소류들은 모두가 사라졌다. 그 전에 있던 삼림과 인공적인 거대한 문명의 산물들은 없어져 버렸다. 울퉁불퉁한 산들과 급하게 흐르는 강들이 인간들이 다니려고 하는 모든 길을 막아버려서 넘고 건너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들은 마치 딴 행성에 온 것과 같은 형국이었다.

달라진 것은 지구 표면만이 아니었다. 기후도 엄청나게 변했다. 그때까지는 궁창 위에서 보호막 역할을 하던 물 층이 그들을 보호하고 땅위에 알맞게 수분도 공급해 주었었는데, 이제는 온난하고 쾌적한 봄날 같은 기후는 더 이상 누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들은 혹서와 혹한과 무시무시한 폭풍우의 날씨가 반복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기후와 직면하게 되었다. 젯드 기류를 따라 이동되는 고·저 기압체계는 하루하루의 날씨가 예측할 수 없고 끊임없이 변화무쌍했다. 보호막 역할을 하던 물 층이 사라지자 당대 인간은 물론이요 자녀들과 후손들 그리고 동물들의 수명은 단축되었고, 마찬가지로 식물들의 수명도 현저히 단축되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을 나뉘게 하시매(창1:7)” 이전에 궁창 위에 있던 물에 정영 무슨 일이 생겼을까? 일단 떨어진 이 물들은 지금은 없는 것으로 보아 다시 하늘로 되돌아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땅 덩이를 들어 올려(융기시켜) 산맥들을 형성하셨을 때, 동시에 모든 홍수 물들을 저장해 둘 처소를 만들기 위해 땅의 어떤 부분의 깊이는 낮추셨다. 

이것은 모두가 시편 104:5-8의 내용과 잘 어울리는데 즉,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 옷으로 덮음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뢰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8절을 좀 더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산은 솟아오르고 골짜기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마련해 놓으신 처소로 내려갔나이다.”이다. 진실로 노아와 그의 후손들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세상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다.


2. 대홍수 이후의 사람들

홍수 이후의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틀림없이 그들은 고도의 지적 수준을 가졌으며, 기술적으로 발달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르네 누어버겐은 <잃어버린 인종들에 대한 비밀, 1977>에서 노아와 그의 아들 가족 등 소수의 생존자들은 대홍수 이전에 있었던 기술지식을 거의 보유할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같은 책 p.26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우리는 바뀐 환경에 낯선 생존자들인 이 8명의 적은 집단이 홍수 이전 문명으로 알려져 있는 모든 부문의 기술적 환경여건을 재생시키기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물론 기술 분야는 그것의 유지를 위해서 많은 인구가 꼭 필요하다. 따라서 생존한 인간 가족들이 대홍수 이후 시대에 재건할 수 있었던 문명의 수준은 심각하게 낮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왜냐하면 노아와 그의 아들들이 대형 3층 선박을 건조하고 있던 전 기간 동안(약 120년)에 그들이 능히 그들의 자손들에게 가르칠 수 있었던 여러 다른 분야에서도 추가적인 기술과 기능을 틀림없이 습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도급자들을 고용했다면 틀림없이 그들로부터 많은 기능을 배웠을 것이다.

노아는 홍수 이후에도 350년 동안을 생존했는데, 창세기 10:1-4절에 보면 노아의 손자들과 증손들의 명단이 나와 있다. 이들과 증손들의 또 다른 후손들은 노아와 그의 아들들이 홍수 이전부터 전수해 온 많은 기술을 배웠을 것이다. 이런 기술로부터 고도의 기술과 발달된 애굽(이집트), 수메르,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문명들로 이어졌다. 우리는 애굽인들이 피라미드와 다른 많은 건축물들을 건설하기 위해서 얼마나 뛰어난 문명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이미 살펴본바 있다. 사실 창세기 10:8-10절에는 함의 아들인 구스의 아들 니므롯이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시작되었으며”라고 씌어 있다. 바벨과 시날과 니느웨는 수메르와 바벨론의 발달된 문명의 사람들에게로 우리를 인도해 준다.

어떤 세대는 구약의 족보에서 가끔 그랬던 것처럼 생략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노아와 그의 아들들이 가지고 있던 기술지식은 그들의 후속 세대로 전수된 것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은 홍수 이후 10대 손에 해당한다. 홍수 이후에도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었고, 노아 자신도 홍수 이후에 350년 동안이나 살았고, 각 세대간 수 백년 씩이나 서로 겹쳐서 살았음으로, 노아와 그의 아들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은 분명코 여러 세대에 걸쳐 후손들에게 전수되었을 것이다. 비록 바벨탑 이후의 민족과 부족들은 조상으로부터 후손들에게 잘못 와전된 내용을 전하였지만, 이 사람들은 대홍수 이야기를 다음 세대들에게 전하였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홍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홍수 이전의 역사에 관한 지식도 전해 주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히브리 민족은 아담과 하와 때로부터의 인류의 역사에 관하여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지만, 수메르인들 조차도 대홍수 이전 시대에 대해서는 다소간 왜곡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바벨론 우르의 아브라함 고향 마을로부터 1-2마일 북쪽에서 웰드-브룬더 탐험대는 BC 2100년 경 누르-닌수브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쓴 이야기가 내포되어 있는 웰드 프리즘을 발굴했다. 이 프리즘에는 대홍수 이전에 살았던 10명의 왕(성경에 있는 홍수 전 10족장들을 언급한 것임)의 이름이 올라 있다. 이 누르-닌수브르라는 사람에 관하여 르네 누어버겐은 그의 저서 <잃어버린 인종들의 비밀들> p.26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의 설명에서 그는 10명의 홍수 이전 왕들의 명단을 기록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슬픈 말들로 끝맺고 있다. “그리고 대홍수가 온 땅을 뒤덮었다.” 수메르 인들과 후기 바벨론 인들 그리고 앗시리아 인들은 대홍수 이전 시대를 우수한 문학적 자원으로 더 깊이 인식하고 있다. 바벨론의 한 왕은 “그가 대홍수 이전 시대의 작품들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고 기록했다. 니느웨에서 대형 도서관을 발견한 앗수르 바니팔은 “대홍수 이전 시대의 대형 비문”에 관해서 언급했다. 그것은 대홍수 전·후의 문명이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의 그것보다도 더욱 빠른 속도로 발달된 이유는,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그들은 자기들 뇌의 전용량을 온전히 사용하였던 반면, 오늘날의 우리들은 우리 뇌의 용량의 1/6만 쓰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만일 노아와 어쩌면 도급자들과 함께 그의 세 아들들이 그렇게 큰 배를 지었다면, 그들과 후손들은 태평양 또는 최소한 아프리카와 남미를 횡단하는 배도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과테말라의 마야인들은 그곳에서 많은 지식을 소유했던 최초의 인류라고 말했다.

대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950년 이상을 살았고, 노아는 홍수 이후로 350년을 더 살기는 했지만, 대홍수 이후의 사람들은 훨씬 단명했다. 궁창 위의 물 층이 오늘날 인간의 생명을 단축시키고 있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유해파 일부를 차단시키는 것을 도와줌으로서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장수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요인들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것은 여성들의 가임(可妊) 연한에 관한 것이다. 그 때 여성들이 임신할 수 있는 기간은 오늘날의 약 50세까지보다 수년 또는 수십 년은 더 길었을 것이고, 대홍수 때까지 인구는 수십억 명에 달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홍수 이후 단 기간 내에 인구는 한 나라를 이룰 만큼 증가될 수 있었을 것이다. 창10:32절에 이르기를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


3. 바벨탑

위에 인용한 창10:32 직후, 창11:1,2절에는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시날 평지는 노아의 증손인 니므롯이 나라를 세웠던 땅이다 (창10:10). 역사적으로 시날은 바벨론과 관련을 맺고 있다.


4. 대홍수와 바벨탑 사이의 기간

노아 시대와 바벨탑 사건 사이의 몇몇 족장들의 이름들이 창세기 10과 11장에서 빠져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위의 두 사건 사이의 기간은 불확실하다. 아마도 그 기간이 150년에서 350년 정도일 가능성이 높다. 아브라함의 출생년도가 BC 2167년이라는 것을 기초로 할 때 대홍수는 BC 2460년에 발생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바벨탑 사건은 대홍수 후 150년 내지 350년 기간 사이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상의 다른 사건에서 미루어 대홍수와 바벨탑사건은 그보다도 수 세기 이르게 발생했을 수도 있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80

참고 :

유종호
2005-07-20

이 지구의 홍수 이전 역사, 지질학, 그리고 기후


       노아 시대에 있었던 가공할 홍수를 생각해 보기에 앞서 홍수 이전에는 지구의 환경이 어떠했을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약 1,600여 년간의 인류의 역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홍수 이전 기간에 있어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그와 같이 오랜 기간의 지리학과 기후였다.


1. 홍수 이전의 지표

지구가 창조되었을 때부터 전 지각을 바꾸어 버린 격변적이고 파괴적인 대홍수가 있었던 시기 사이에 지구의 표면은 어떠했을까? 단정적인 어떤 것도 성경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창세기 첫 장에 일반적인 암시가 있기는 하다. 창조의 여섯째 날 마지막에 이르러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31)고 쓰여져 있다. 모든 것들이 ‘심히 좋았다‘는 단순한 사실은 이 땅 위에 산들이나 사막과 같은 극단적인 장애물들이 없어서 인간이 마음대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중의 많은 양이 궁창 위에 수증기층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당시의 모든 육지는 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온 땅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막는 어떤 물리적인 장애물도 땅 위에 두지 않으셨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 창조의 제3일에 육지가 드러나게 하셨을 때, 그는 인간들이 별다른 장애물 없이 편하게 여행 다닐 수 있게 완만한 기복이 있는 땅을 창조하셨을 것 같다. 창 7:19-20에서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약 7m)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라고 홍수 때의 물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산들이란 ”깊음의 샘들이 터진' 후의 오늘날의 산들보다 그 높이가 훨씬 낮았을 것이다. 그 때의 땅은 지구의 모든 구석들까지도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짧은 시간 안에 전 지구 위에 쉽게 분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담과 이브의 후손들은 약 100년 이내에 지구의 모든 곳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바다와 대양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물이 당시에는 궁창 위의 물 층에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다음에서 보게 되는 바와 같이 육지가 지금보다는 더 많이 지구의 대부분을 차지해서 사람들이 편히 땅 위를 여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2. 홍수 이전의 기후

초기의 1,600 여년 동안에 사람들을 매우 기동성이 있고 활동적이고 부지런하게 했던 것들과 관련된 또 하나의 요소는 당시의 기후였다. 지구의 모든 곳에서 발견되는 화석들을 보면 홍수 이전에는 심지어 북극과 남극까지를 포함하여 지구의 모든 곳이 일정하게 온난한 기후였음을 나타내준다.

오늘날과 같이 극단적인 기후나 무시무시한 폭풍우 같은 것은 없었다. 앨프레드 레윈클 교수는 그의 저서 <대홍수>라는 책 7쪽에서 앨프레드 월레이스의 글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기후는 전 지구상에서 계속적으로 봄날처럼 온난하였다. 어떻게 전 지구적으로 그렇게 따뜻한 기후가 가능했겠느냐는 것은 추측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기후가 실제로 계속해서 따뜻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은 화석과, 죽은 즉시 순간적으로 동결되어 완전한 상태로 원상이 보존된 채 시베리아 동토에서 발견되는 냉동동물들을 보면 명백하다. 화석은 오늘날에는 온난한 기후에서만 발견되는 동식물들의 것들이다. 오늘날처럼 다른 기후대가 아니라 지구 전역에 오직 단일한 온난 기후대만 있었던 것 같다. 대홍수 이전에는 아마도 사막이나 양 극지방도 없었고 기후적으로나 물리적 장애물을 형성하는 로키산맥이나 히말라야산맥과 같은 높은 산들도 없었을 것이다. 육지는 낮고 완만한 구릉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때에는 정글이나 오늘날 북미 알래스카와 시베리아 사이, 그리고 영국과 유럽 사이에 존재하는 것과 같이 큰 대륙 사이에 바다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마도 인간들과 모든 종류의 동물들은 전 지구상에 쉽게 분포되었고, 노아 일행과 함께 방주에 들어갔던 각종 동물들은 방주를 짓고 있던 지역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과는 달리 아마도 많은 동물들은 방주를 타기 위해 수천 마일씩이나 이동해 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3. 공중에 있었던 물 층

온 지구상의 기후가 그렇게도 아름답고 쾌적하고 온난했던 이유는 의심할 여지없이 전 지구를 둘러싸고 있었던 물 층 때문이었다. 지구는 지금처럼 23.5도 기울지 않고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더라도 전 지구가 따뜻하게 될 수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태양은 지구의 모든 지역, 심지어 북극과 남극 지역까지도 균일하게 비추었을 것이다. 진화론자들마저도 한 때는 극지방도 따뜻하고 열대성 기후였다는 것을 믿고 있다.

소년시절부터 줄곧 나를 당혹스럽게 해온 창조 이야기에 관련된 한 가지는 둘째 날의 창조이다. 그것은 창1:6-7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만일 하나님께서 물을 이렇게 나누셨다면 위의 물이 어디에 있었느냐가 문제다. 하나님은 분명히 둘째 날에 물을 나누실 때 오늘날 전 지구상에 있는 물을 약 2인치 이상의 두께로 펴셨을 것이다. 매우 많은 양의 물이 쾌적한 기후를 위한 방패 막을 형성하고 태양광선으로부터 전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물안개의 담요처럼 지구 위에 둘러 펼쳐졌을 것이다. 지구 위에 있던 많은 용량의 물은 지구를 둘러싸서 일종의 물 층 역할을 했고, 이 물 층이 많은 양의 태양열과 직사광선을 흡수했을 것이다. 태양열은 북극과 남극에까지도 항상 쾌적한 기후가 되도록 전 지구에 골고루 방산(放散)되었을 것이다. 이런 기후는 양치류와 같은 아열대성 식물들도 거기서 자랄 수 있게 했다.

존 윗콤과 헨리 모리스가 공저한 <창세기의 홍수>라는 책 256쪽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즉;

"현재의 대기권에서 성층권은 매우 춥다. 그러나 성층권 위에는 기온이 쉽게 비등점 이상이 될 만큼 아주 따뜻하다. 그래서 엄청난 양의 보이지 않는 수증기가, 만일 어떻게 하여 수증기가 성층권 위에 있었다면, 그곳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상부 대기권에 있는 이런 높은 온도는 밤낮으로 계속 유지된다. 그래서 밤에도 수증기가 응결될 가능성은 없다. [본서 240쪽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80마일 이상의 영역은 화씨 100도 이상으로 매우 뜨겁고 때로는 화씨 3,000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실제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곳을 열권(熱圈)이라고 부른다. 물론 높은 온도는 많은 양의 수증기를 현상 유지시키는 핵심적인 필요조건이다.”

‘국제 지리의 해’ 프로그램과 인공위성 프로그램은 이에 대한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물들을 나누셨을 때 대기권보다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한 공간(궁창) 위에 많은 양의 물을 두셨다. 이 공간은 그 위층에 있는 방대한 양의 물과 아래의 대양에 있는 방대한 양의 물을 분리하는데 사용되었다.


4. 대홍수 이전의 물 층의 온실효과

대홍수 이전의 물 층은 양극을 포함하는 전 지구상에 울창한 식물이 자라도록 했다. 또한 동물이나 인간들도 더 잘 생육할 수 있었다. 남극으로부터 겨우 1-2백마일 이내에 그곳을 무성하게 했던 울창한 식물과 숲이 있었다는 증거들이 있고, 북극으로부터 800마일 이내에 아열대성 숲과 다량의 야자나무잎 화석들이 발견되어 오고 있다. 뉴-시베리아 섬의 동토에서는 푸른 잎과 익은 과일이 달려있는 큰 과일나무 화석이 발견되었다.

홍수 이전에 있었던 이 물 층이 온실효과를 갖는다고 언급되는 이유는 열이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온실 안에서와 같은 작용을 하여 온실 안의 온도가 올라가는 이치이다. 수증기는 기온을 온난하게 유지해 줄 뿐만 아니라, 양극 사이의 전 지구 온도를 균일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훨씬 더 온난한 기후대에서만 발견되는 동물과 식물의 잔해들이 극지방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또한 아프리카와 미국의 사막 지역에서도 이 땅이 예전에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랐었고 한 때는 습도가 높고 수분공급이 잘 되어 크게 속성하는 나무들로 덮였었다는 증거들이 많이 있다.

존 바커는 그의 1993년판 소책자 <창조>의 32쪽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즉;

"물층의 단열효과로 인하여 적도와 극지방, 여름과 겨울, 밤과 낮 사이에 온도 차가 비교적 적었다. 그래서 여러 기후조건은 보편적으로 거의 '열대성”이었다. 전 지구적인 온도차가 바람과 기상을 좌우하기 때문에 강풍이나 폭풍우 등은 없었을 것이고 대기는 오히려 싱싱한 식물들이 풍성하고 계속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잔잔하고 다습하였을 것이다. 식물이 계속해서 울창하려면 아마도 대기 중에 훨씬 많은 탄산가스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환경이 온실효과를 더욱 강화했을 것이다."


5. 인간과 동물들을 보호해 준 온실효과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들과 동물들은 초기의 그 보호적 물 층 하에서는 수명도 길고 건강하고 체구도 컸을 것이다. 몸을 부패시키고 쇠약하게 하고 해롭게 하며 생물체를 노화시키고 결국 죽게 하는 태양광선과 각종 유해파들이 물 층에 의해서 흡수 차단되어서, 그 결과 인간과 동물들은 굉장히 장수했고, 실제로 홍수 이전 대부분의 인간들은 거의 1,000살까지 살았다. 홍수 이전 사람들이 900세 이상 살았다는 사실이 족장들에 대한 구약의 이야기에서 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나라들의 기록들과 문헌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창세기에만 그 기록들이 세밀하게 보존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매우 얇은 막의 대기만이 태양에서 오는 치명적인 광선과 매우 유해한 혹서와 혹한으로부터 우리를 겨우 보호해 주고 있다. 그리고 엷은 양의 수증기만이 우리의 기후를 조절해 준다. 또한 수증기는 지구의 외기권에 있는 보호적 오존층을 유지시켜 준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우리의 지구가 그 보호적 오존층을 특히 남극의 상공에서 급속하게 잃어버리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6. 홍수 이전 사람들의 교만

홍수 전후의 사람들이 고도로 발달되었었다는 사실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대영박물관이 공동으로 1922년 갈대야 우르에 있는 고대 유적지에서 수행했던 발굴들을 통해서 명백하게 드러났다. 발굴단은 레오나르드 우울리의 책임 하에 앞선 시대의 문명의 폐허 위에 건설한 많은 문명과 도시의 유물들을 발굴했다. 첫 번째 도시보다 훨씬 아래에서 그들은 대왕들과 왕비들의 무덤들이 포함되어 있는 깊은 구덩이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금과 하늘 빛 청금석(lapis lazuli)과 다른 세공품의 유물들을 발견했다. 우울리는 그의 저서 <갈대아 우르>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즉;

"그 유명한 우르의 금으로 만든 양날 단검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손잡이는 금 못으로 장식된 청금석으로 되어있었고 칼날은 금으로 된 기막히게 아름다운 무기였다.”

우울리는 계속해서 쓰고 있다.

"무덤의 내용은 매우 발달된 도시형 구조의 국가였음을 설명해 주고 있다. 그 사회의 건축가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알려져 있는 기본적인 건축원리에 친숙하였다.”

이 모든 것들에 비추어 볼 때, 홍수 이전 사람들은 고도로 발달된 수준의 문화, 기술, 그리고 문명을 가지고 있었음이 명백하다. 그들은 위대한 수준의 문명을 발달시키고 있었다. 인류사에 황금기가 있었음은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은 역사책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인간은 반인 반원 상태에서 출발하였고, 무지했고, 발달이 더뎠고, 번개로 인하여 시작하게 된 불의 사용 방법을 배우기까지 수백만 년이 걸린 미개인이었다고 가르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빈약한 논리인가!

세상의 창조와 땅을 흩어놓았던 홍수 사이의 수백 년 동안에 유력하게 실재하던 조건들과 관련된 이런 배경들을 볼 때 우리는 확실하게 명백한 오만, 자만, 자존, 거만, 불손하고, 허풍떠는 기질, 그리고 인간들 가운데서 더욱 분명해진 것 같은 자기 숭배와 하나님을 부정하는 기질 등이 있지 않았나 상상할 수가 있다.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비하면 진정한 낙원에서 살았기 때문에, 현재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답고 유쾌한 세계에서, 모든 종류의 정신적 능력과 재능과 방법론과 세상일에 우수한 사람들과 함께 인간의 몸으로 하는 모든 종류의 기능에 있어 모험심이 강하고 개명되고 숙달되며 수백 년의 수명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죽음의 공포 없이 사는 것이 그들 앞에 확실하게 가능했다.

우리는 그들이 전적으로 무시하고 도전했던, 그들의 창조자에 대항하여 인간이 가장한 오만과 도전을 쉽게 상상할 수가 있다. 사람들은 아주 쉽게 지구의 도처로 돌아다닐 수가 있었다. 오늘날의 남양군도의 기후도 비교적 거칠다고 할 만큼 기후는 온난하고 상쾌했다. 그들에게는 어떤 피난처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가장 맛있는 음식도 남아돌았고, "모든 것이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왜 우리가 다른 것과 다른 사람 특히 하나님이나 영원에 대하여 마음을 써야 하는가. 창4:23 이하에 보면 교만한 마음을 가진 라멕은 두 아내들인 아다와 씰라에게 다음과 같이 뽐냈다.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가인을 위해서는 벌이 칠 배일찐대 라멕을 위해서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인간들이 그들 상호간에 대한 교만과 죄악 그리고 하나님을 반역한 1,600 여년 동안 거의 모든 인간들이 오직 자기 자신들만을 경배하기에 이르렀다. 창 6:1-6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즉;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땅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 6:11-13에서 다음과 같이 다시 강조하고 있다.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나님은 사람들이 패괴하고 강포가 땅에 충만하였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땅 위의 네피림, 고대의 용사, 유명한 사람 등으로 부르고 있으나, 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과 그의 뜻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은 명백하게 하나님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부인하였다. 그들은 심지어 그들을 어떤 종류의 신에 대한 생각으로 유도할지도 모르는 여하한 우상들도 가지지 않았다. 우울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즉;

"사람들이 종교성이 있다고 생각할만한 어떤 신의 모습이나 어떤 표상이나 장식이 있는 무덤은 단 한 기도 없었다.”

그들은 지혜와 능력과 힘이 있었기 때문에 분명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자신들을 숭배했다. "나는 가장 위대한 - Homo sapiens sapiens - 초(超) 지혜자이다.” 그들은 이 세상일에 대해서는 위대했으나, 그들의 마음은 세속적이고 물질주의적이었다. 그들은 오직 이 세상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인간의 패역이 너무나도 심해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사람을 위하여 만드신 모든 유익하고 좋은 것을 다 부셔버리기로 작정하셨다. 창 6:7-8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참조 : How Much Is Known About Climate History? (Headlines, 2008. 8. 1)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808.htm#20080801a
 

Hypercane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4_2/j14_2_123-127.pdf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60

참고 :

유종호
2005-07-19

성경에 기술된 인간의 초기 역사 4


8. 고도로 발달되고, 기술 지향적인 사람들

이 사람들은 어떤 형태의 문명을 가지고 있었을까? 범죄 하기 이전의 아담과 이브는 모든 시대 가운데서도 가장 완전하였고, 결함이 없었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언어와  지구상의 모든 동물과 식물과 광물들에 관한 가장 놀랄 만큼의 지식을 갖춘 영명한 지능을 부여받았다. 아담과 이브는 지구상의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고, 또 그 모든 것들을 지배했다. 그들은 이런 능력과 천부적 특권을 가지고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만들어 주신 만물에 대하여 통치자로서, 주인으로서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창작할 수가 있었다. 아담은 틀림없이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장과 도구들을 즉시로 만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가 불을 사용하기까지는 진화론자들이 선사시대 사람들이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 것처럼 그렇게 수백만 년의 긴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아담과 이브가 그들의 생각과 말을 글로 표현하고 계산을 시작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창4:17에 보면 아담의 아들인 가인은 두 번째의 세대인데 이미 도시를 건설하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서 아담의 후손이나 어쩌면 아담 자신이 직접 광물들을 캐내고 제련해서 모든 종류의 금속제 도구, 무기들, 현악기나 오르간형의 악기 등 금속으로 물건을 제작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쉽게 문명을 발달시키고 일찍이 초기 이집트인들이나 수메르인들이 지었던 것들보다 훨씬 우수한 건물들과 구조물들을 지을 수 있었다. 진화론자들이 선사시대라고 부르는 것보다 훨씬 전에 아담과 이브와 그들의 후손들은 연장들과 발명품들과 금속제품들을 만들고 있었다. 진화론자들이 수백만 년 전으로 소급된 인간들의 골동품들에 대해 기록하면서도 그들이 선사시대라고 명명한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지능과 능력들이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았거나 오히려 우수했으리라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만일 오늘날 우리가 엄청난 폭풍우(이 지구에 전무후무하리만큼 그리고 지구가 통째로 뒤집힐 만큼의)로 인하여 경천동지할 정도로 격변적이고 흙탕으로 뒤덮였던 시기의 땅 위에 쌓인 수천 피트의 석회암 지층을 파내려 갈 수 있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당시에 존재했던 선진 문명에 접하고 엄청나게 경악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노아와 그의 자녀들(아마도 당시의 고용인들과 함께)이 이처럼 모든 격식들을 갖춘 3층 구조의 대형 방주를 지을 수 있었다고 믿기를 어려워한다. 노아와 그의 아들들이 가졌던 상당한 수학지식과 공구의 사용과 발달된 건축기술을 갖춘 조선과 설계 기술의 능력은 홍수 이후의 시대로 자연스럽게 전수되었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이 초기 이집트와 수메르에서 발견된 건축술과 문명이 홍수 이전의 기술과 건축술로부터 자연스럽게 이전되었을 것이라는 이유이다.

이집트와 수메르와 기타 갑자기 출현한 경이로운 문명들은, 만일에 그들이 노아와 그의 자손들로부터 홍수 이전의 기술들을 전수 받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만일 전 세계적인 파괴적 홍수에서 파괴되어버린 문명이 이집트와 수메르보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가장 단단한 화강암으로 된 피라미드와 조각품들과 조상(彫像)들과 스핑크스들, 그리고 글을 쓰는 능력, 고도로 조직적인 정부, 모든 종류의 기능과 기술들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인구가 수백만으로 증가되었고, 온 지구에 분포된 큰 집단으로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도의 문화 문명을 달성했을 것이다. 이것은 일반 역사책이 인류의 역사를 반원(半猿), 반인, 미개인, 원시인, 야만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기술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인류사에 있어 황금기였다. 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진화론적 역사책은 인간을 오늘날의 가장 퇴보된 야만인들보다도 더 미개하고 무력하게 그리기를 좋아한다 (이 책의 세 번째 단락의 웨스트(W. West)로부터의 인용을 보라).

특히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춤으로써, 홍수 이전에 단 하나의 언어만 있었던 이래 여러 기록들과 역사들은 구어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씌어진 기록들에 의해서도 전해져 내려 왔다. 홍수 이전에 사람이 생산했거나 지은 모든 것들은 홍수가 나서 파괴되어 버렸거나, 대부분은 바위가 되어버린 수백 내지 수천 피트 지하의 진흙 속에 묻혀 버렸기 때문에, 이 모든 기록들도 상실되었다. 그러나 홍수 이전의 모든 기록들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노아와 그의 자손들이 이전 세대로부터 전수 받은 기술과 건축의 노하우뿐만 아니라, 홍수 이전 족장들의 명단, 그들의 나이, 그리고 자녀들에 관한 사항까지 다음 세대로 물려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날 성경이 홍수 이전의 자세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에덴동산에서 약속된 구세주인 “한 여자의 후손”의 조상들이 되었던 가장 중요한 몇몇 인물들의 이름과 그들에 관한 사항들을 알고 있는 것이다.


9. ‘오파츠 (OOPARTS)'

홍수 이전 문명이 번성하였다는 또 하나의 성경 외의 근거는 '오파츠(OOPARTS, Out Of Place ARTifactS, 고고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로서 있어서는 안 될 장소에 있는 유물, 또는 시대와 일치하지 않는 인공물)“에 관한 연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것은 분명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oopart'는 ”장외의' 인공물이다. 이 오파츠는 고고학자들이 고대 문명을 발굴할 때 발견한 인공물 혹은 물체들인데, 혹자들은 이것들이 틀림없이 이 사람들이 가졌으리라고 생각하는 문명 이전 사람들의 장외 문명인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어떤 고고학자들은 르네 누어버겐(Rene Noorbergen) 저 1977년 판 <잃어버린 종족의 비밀들> 2쪽에 의거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많은 경우에 오파츠의 기술적 정교성이 그들의 유물들이 발견되어지는 고대인들의 발명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이 오파츠가 인류 역사보다 훨씬 이전에 인간 기원의 슈퍼문명과 발전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가능할까? 멀리서 아득히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 같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것의 그런 존재 가능성은 무엇인가? 인류역사에 오늘날 20세기 사회와 비견되거나 어쩌면 더욱 발달되었던 문명(들)이 존재했던 한 기간이 존재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4쪽에서 그는 내가 몇 단락 전에서 언급했던 것과 비슷한 생각을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다.

“자연계의 대격변(그는 대홍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은 홍수 이전 사람들을 매몰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기술적 성취들도 철저히 파괴시켜 버렸다. 왜냐하면 이 엄청난 대 지각변동은 어떤 형태의 기계나 구조물도 확실하게 말살시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그리고 그가 말한 많은 것 가운데 과학적(나는 그렇게 말해야겠는데) 언급이 21쪽에 있다. 즉:

“모든 인간을 파멸시켰던 홍수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은 고고학, 지질학, 전통적 역사, 그리고 성경적 역사를 종합적으로 연계시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 분의 이런 판단이 얼마나 정확한지! 나는 내가 책을 쓰면서 이것을 입수하기 전까지는 이 진술을 보지 못했다. 고고학 분야에서 진화론의 비논리성과 이집트 문명과 전통적인 세속 역사에서 그리고 바로 지금은 성경의 역사에 나와 있는 다른 발달된 사람들에 대하여 내가 저술한 것을 보면서, 나는 한 가지의 주제 즉 지질학을 더 고려해야겠는데 이것은 노아의 홍수시대를 분석할 때 취급될 것이다.

거론된 몇몇 오파츠에는 1967년 콜로라도주 굴만 광산의 지하 120m에 있는 은 광맥에서 발견된 사람의 뼈와 4인치 길이의 구리 화살촉이 있다. 매서추세츠주 도체스터 광산에서 1891년에 표면으로부터 4.5m 지하에 있는 견고한 암석에서 다이나마이트로 폭파하여 꺼낸 금속제 화병도 또 다른 오파츠이다. 그 화병의 측면은 은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1891년 일리노이 주 모리슨빌에서는 정교한 솜씨로 된 금 사슬이, 둘로 쪼개진 석탄 덩어리에서 발견되었다. 그와 같은 많은 오파츠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곤 했다. 건전지와 전기에 대한 당시의 노하우가 있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만일 오늘날 존재하는 어떤 인간보다도 훨씬 우수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신뢰를 우리가 하나님께 돌리기를 원한다면 위의 모든 것은 가능하다.

누어버겐은 그의 책 205쪽에서 요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즉;

"정통 역사학자들의 주된 가정(우리의 문명이 원시적인 시작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왔다고 하는)은 지금은 매우 심각하게 도전 받을 수가 있다. 오파츠, 성경의 역사, 고고학, 지질학, 고생물학, 그리고 일반적인 상식들이 우리를 그런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우리의 초기 조상들이, 문명의 모든 측면에서 오늘날 우리를 능가하는 사회를 창조하셨다는 증거의 비중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참조 : 1. 땅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이상한 유물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43
2. 고대문명들과 현대인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46
3. 오래된 지층 속에서 나오는 사람의 유물들과 발자국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28
4. 고대인의 신비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28

 

10. 거대한 체구

홍수 이전 또는 아담 후의 사람들에 관하여 언급하여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거대한 체구이다. 우선 지구의 초기 시대의 동물들의 크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나의 반 친구요 연구소 행정관인 힐버트 R 시글러는 그의 탁월한 저서 <진화? 퇴보? 어느 쪽?>의 22쪽에서

“최초로 창조된 동물과 식물은 유전학적 잠재력 때문뿐만 아니라 형태학적 관점에서도 우수하였다. 사실 과거의 척추동물들은 크기와 지능지수에 있어서나 급박한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에 있어서도 매우 우수했다.”

누구나 거대한 공룡과 친숙하다. 공룡의 뼈 화석들이 있는 거대한 지층들이 세계의 곳곳에서 발견되어 오고 있다. 그들은 중서부 전역, 블렉 힐, 로키산맥 일대, 그리고 고비사막에서 발견되어 왔다. 콜로라도 주와 유타 주에 있는 국립 공룡 유적지에는 300마리 이상의 여러 종류의 공룡 뼈들이 발견되었다.

캐나다 앨버타의 붉은 사슴 계곡에는 수 천 마리에 이르는 26종의 공룡들이 발견되었다. 어떤 것은 길이가 24-45m 이상이고, 어떤 거대한 공룡은 무게가 40톤이나 되었다.

대형 매머드가 시베리아와 알래스카에서 발견되었다. 알래스카 코디액 곰을 마치 난쟁이처럼 보이게 하는 어떤 대형 곰들도 발견되었다. 당시의 조류들은 지금의 가장 큰 타조보다도 60cm나 더 큰 3m 였다. 어떤 조류들은 편 날개 길이가 7.5-9m 였고, 부피가 2 갤런, 지름이 28cm 크기의 알을 낳았다. 길이가 3.6m 되는 거북이도 발견되었다. 타조의 화석은 기린만큼 컸다. 박쥐 화석은 편 날개의 길이가 4.5m 였고 양(sheep) 만큼이나 컸다. 모든 거대 동물의 뼈 화석들은 모두 전 세계에 걸쳐 석회석과 암상(巖床)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초의 인류도 지금 보다는 훨씬 컸으리라고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중국에는 옛날에 오늘날 우리보다도 2배나 큰 사람들이 아름다운 땅에서 살았는데 자연의 법칙대로 살지 않아서 그 땅을 잃어버렸다는 우화가 있다. 창세기 6:4절은 홍수 직전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당시에 땅에 네피림(거인들)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창 6:4).

아마도 그들은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이집트)에서 귀환했을 때,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팔레스틴에서 만나게 되었던 사람들만큼 컸거나 그들보다도 더 컸을 것 같다.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 3:33).

우리 모두는 다윗과 거인 골리앗 이야기에 친숙하다. 홍수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나타나며 힘이 세고 영웅적이고 유명하고 걸출한 사람들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당대의 영웅이나 귀인으로 존경을 받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들이 원숭이에서 온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여러 분야에서 고도로 숙련되고 정교하고 발달되고 매우 유능하였다.

어떤 사람들이 이것을 성경에 나오는 “신화”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나는 룻 무어가 1953년에 저술한 진화론 서적인 <인간, 시간 그리고 화석>에 대하여 언급고자 한다. 그녀는 그 책의 249쪽에서 자바에서 발견되어 1941년에 미국 자연사 박물관의 T. 바이덴라이히 박사에게 보내졌던 거대한 턱과 이빨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바이덴라이히 박사와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거인(네피림)의 턱뼈라고 믿었다. 그는 그 뼈를 영어로 “고대 자바의 거인” 이라는 단순한 뜻의 메간트로푸스 팔레오 자바니쿠스라고 명명했다. 그는 인간의 조상들은 실로 거인들이었으나, 이것은 진화론 사상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다.


룻 무어는 상기한 그녀의 책 250-251쪽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바이덴라이히는 이 고대의 거인들이 엄청나게 거대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빨과 뼈들을 살아있는 동물들의 것과 비교하고 해부학적으로 신중하게 측정해 보고나서 그는 자바의 거인은 살아 있는 어떤 고릴라보다도 훨씬 컸고 중국의 거인은 1.5배나 컸다고 결론지었다. 그것은 숫 고릴라의 두 배나 컸을 것이다! (‘당시에는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라는 창6:4의 성경 말씀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바이덴라이히의 책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한다). 나는 이 모든 형태가 인간에게도 적용되어야 하고 그것이 추적될 수 있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거인들에게까지 이른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거인들이 직접 인간의 조상일지도 모른다.”

거인의 화석들은 자바나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남아프리카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류학자인 로버트 브룸에 의해서 트래시 바이덴라이히 박사에게 보고되었다. 오늘날 진화론자들은 자기 자신들의 이론과는 반대로 유사한 발견들을 보고한다. 1985년 11월 판 내셔날 지오그래픽은 629쪽에 괄목할만한 내용을 싣고 있다.

“키가 160cm인 트루카나 출신 소년은 같은 나이의 현대 소년들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크다. 그는 180cm 까지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 옷을 잘 어울리게 입고 낮은 이마와 튀어나온 광대뼈를 가리는 모자를 쓰고 있으면, 그는 아마도 현대인의 군중 속에서도 눈에 잘 띄지 않을 것이다. 이 발견은 인류가 수천 년 넘게 성장해 왔다고 오랫동안 지녀왔던 생각과 모순되는 호모 에렉투스에 대한 그 이전의 발견들을 연상시켜 준다. 아프리카 사바나의 우리 조상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상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우람했을지도 모른다. 더 열악한 환경에 있는 일부의 사람들은 최근에 상당히 적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실로 우리는 1백5십만년 전에 이미 현대인의 평균 체구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초기시대에 살았던 화려하고 거대한 이런 인간들을 보면서, 어떤 이들은 그들의 거대한 체구야말로 이집트, 수메르, 프랑스, 영국, 이스터 섬들과 기타 지역에서 어떻게 그토록 어마어마한 빌딩과 석조물들을 건설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들이 그들의 거대하고 억센 근육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번뜩거리는 기지를 마음껏 발휘하였음을 확신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읽고서 나는 가끔 할리우드가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주목할 만한 화두를 놓쳤는가를 의아하게 생각한다.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내셔날 지오그래픽, 타임지, 리더스 다이제스트, 모든 신문 잡지, TV, 그리고 저술가들도 지구의 창조 이래 전 시대를 통해 최대 사건의 하나인 지구를 격변적으로 파괴한 대홍수와 인간의 구세주인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빼먹고 있다. 할리우드에게 지구 초기의 지적이고 고도로 기능적이고 발달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보다도 더 좋은 이야기가 있을까?



*참조 : 1. 과거 지구상에 거인들이 있었다 : 120 cm 크기의 사람 대퇴골의 발견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91

2. 팔룩시 강의 거인 발자국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89

3. 거인과 공룡이 함께? : 같이 나 있는 공룡과 사람의 발자국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17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57

참고 :

유종호
2005-07-18

성경에 기술된 인간의 초기 역사 3


6. 창세기의 첫 번째 4장들은 수백 년이 포함되어 있다. 

아담과 이브 그리고 그들의 자녀, 손자, 증손자 등등 지구상의 첫 인류들과 관련하여 독자는 창세기의 앞부분인 2, 3, 4장들을 읽으면서 거기에 기록된 사건들은 매우 짧은 기간에 발생했다는 인상을 가지게 될 것이다. 거기에서 다뤄진 역사의 주된 목적은 인간이 어떻게 자기의 창조자 하나님을 배반하였는지, 죄를 범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로부터 어떻게 치유하고 구원하시는 지와 구세주인 구원자가 오시게 될 후예들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분명히 상당한 기간이 빠져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위해 준비하신 집인 에덴동산에서 그들은 상당 기간 동안에는 분명히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다.

그런데 선악을 알게 하는 금단의 과일을 먹음으로써 곧바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했다. 그들이 각각 이름이 붙여진 4개의 강(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으로 나누어서 관류하던 에덴동산에 대해서 알았다는 사실은 그들이 광범위한 지역을 탐사하기에 충분할 만큼 그곳에서 오래 살았다는 것과 그들 및 후손들이 거주한 중동의 광활한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했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하윌라 땅에서 금, 은, 보석이 발견된 것은 이 지역이 탐사되었고 따라서 상당한 세월이 흘렀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므로 아담과 이브의 창조됨,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과 그에 대한 배반, 하나님의 장중에서 사탄에게로 타락한 사건들 사이에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랜 기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타락은 아담과 이브의 죄성을 이어받은 그들의 첫 아이를 임신하기 이전이었을 것이다.

또한 창4에 기록된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상당한 기간의 시간을 요한다. 이 형제는 둘 다 함께 성인으로 성장했고 그때까지 굉장히 많은 형제자매들이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 아담과 이브는 창1:28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젊었을 때뿐만 아니라 나이를 많이 먹어가면서도 매우 많은 자녀를 두게 되었다. 다산성이었던 초기 인간들의 임신 기간은 현대인들의 50세보다도 훨씬 길었을 것이다. 가인과 아벨은 둘 다 쉽게 사냥을 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을 만큼 성장을 했다. 가인과 아벨은 가인이 자기의 동생을 죽인 인류 사상 최초의 살인 사건이 있기 전에, 그들의 가족과 함께 이미 가축을 사육하고 과일과 채소와 곡식을 재배하고 있었다. 실제로 창4:3에는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라고 말한다.

우리의 첫 조상이 하나님의 단순한 명령을 불순종하여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분리되었을 때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짓고 하나님으로부터 타락했지만, 가인이 그의 동생 아벨을 죽였을 때 또 한 번 하나님과 멀어지고 분리되는 사건이 생겼다. 가인과 그의 자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다른 형제자매 일가친척들과도 더욱 멀어지고 분리되었다. 살인으로 인하여 도망자가 되고 방랑자가 되는 저주가 그에게 내려졌다. 가인은 하나님께 이 형벌은 견딜 수가 없을 만큼 심하다고 불평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한 표를 찍어 주면서 보호를 약속했다. 그리고 창세기 4장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가인의 후손 중에 첫 번째의 가장 뛰어난 자들과 그들이 종사하게 된 일들과 솜씨들이 언급되어 있다.

에녹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인의 아들은 이미 수많은 후손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 도시를 건설하고 자기 이름을 따라 그 도시의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창세기 4:18에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고 계속된다.

아담으로부터 5대손 또는 가인의 가계로 따져 증손자(만일 'begat' 이라는 단어가 구약 연대기에서 씌어진 방식 때문에 세대들이 빠지지 않았다면)에 관하여, 이 땅의 물질로 만든 큰 진보가 있었다는 큰 증거가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셨다. 라멕은 아다와 씰라라는 두 부인들을 두었는데, 그녀들은 라멕에서 딸들과 함께 유명한 세 아들들을 낳았다. 야발과 그 후손들은 짐승들을 치면서 장막에서 살았다. 유발과 그 후손들은 노래를 잘 부르고, 하프와 풍금과 아마도 다른 악기들을 잘 탔을 것이다. 두발가인과 그의 후손들은 황동과 철로 금속제품을 열심히 만들고 구리와 주석으로도 제품을 만들었다. 이것이 지구상에서 발달된 금속제품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다. 가인의 자손들의 생활과 생각들은 점점 이 세상의 일과 향락을 지향했다. 아다는 “치장을 한 자”라는 뜻이고, 씰라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자“라는 뜻이며, 딸 나아마는 ”예쁜 자“라는 뜻임을 볼 때, 그의 부인들에게 주어진 이름에서도 이것을 엿볼 수 있다.

창세기 5장에는 에덴동산에서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으로서 구세주인 여자의 씨가 나오게 될, 아담과 이브의 가장 훌륭하고 중요한 아들인 셋과 그의 자손들에 관한 기사가 계속된다. 그의 아들인 셋을 통한 아담의 계보가 나온 후에 아담의 8대손인 또 다른 라멕에 이르게 된다. 이 라멕은 노아의 아버지이다. 만일 'begat' 이라는 단어의 광의적 적용으로 몇 세대가 누락되지 않았다면, 초기 세대들의 장수와 많은 다른 장수 세대와 겹치는 한 세대 때문에 아담과 노아 사이에는 약 1,650년 이상의 년차가 발생했다. 이때까지 하나님에 관한한 하나님의 아들들 또는 죄로부터 구세주를 믿는 자들과, 사람의 딸들(및 아들들) 또는 불신자들이라는 두 가지의 종족 또는 계층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라멕과 그의 아들 노아, 그리고 노아의 세 아들들 즉 셈, 함, 야벳을 언급한 후에 창세기 6:1-2에는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사람이 땅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따라서 인간이 창조된 지 수 세기가 경과되는 동안 가인의 자손과 셋의 자손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계보로 발전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가인의 후손들을 사람의 자식들이라고 부르시고 셋의 후예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부르셨다. 가인 족은 자기들의 조상을 닮아서 세속적이고 사악했다. 그들은 오래 전에 하나님을 저버렸고 그분께 저항했고 마치 오늘날의 진화론자들이 그러하듯이 그분의 존재마저도 부인한 듯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반역적인 마음과 생각대로 살았다. 이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진화론자들이 오늘날의 사람들을 일컫기를 좋아하는 그러한 최초의 진화론적 인본주의자들, 인간의 능력을 숭배하는 자들, 교만한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 등을 이미 가지고 있지 않았나 싶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이런 배신과 반항과 패역이 오늘날의 양상과 꼭 같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가족과 믿는 자들 속으로까지 확산되었다. 그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도덕의 이완을 드러내는 것이다. 약 1,600년 정도 흘렀을 무렵에는 나중에 살펴보는 바와 같이 인구가 수백만으로 증가했고, 셋의 후손들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아내를 선택함에 있어 영향을 미치는 세속적이며 육적인 고려들을 허용하였던 것이다. 셋 족속의 여인들도 틀림없이 가인 족 남성들에게 유혹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불경건한 이웃들의 영향을 받아서 결국 그들처럼 되었다. 사람의 딸들은 세상이 그들의 인생의 목표를 제공해야하는 모든 향락을 만들었고, 그들의 미모는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유혹의 덫이 되었다. 이런 잡혼의 결과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사람의 자녀들처럼 불경건하고 독신적(瀆神的)이 되고 세속화되었다. 그래서 영웅 숭배자, 인간 숭배자가 되고 결국에는 진화론적 인간들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로부터 보편적 도덕의 타락과 부패 등이 흘러넘쳐서 요원의 불길과 같이 퍼져나가는 악을 초래하였고, 결국 이 세상에 경건한 모든 것을 파괴하여 버렸다. 오늘날 전 세계로 요원의 불처럼 번지고 있는 AIDS와 거의 대부분 성적 문란을 통해 그들 자신들과 타인들에게 밀어 닥치는 치명적인 질병의 치료법을 정부가 해결해 주도록 아우성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혹자는 우리가 마치 노아와 그의 가족들만 유일하게 믿음을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대홍수 직전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는가 하고 의심할 정도이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날에는 당시에 살아남았던 8명의 하나님의 사람들보다는 상당히 더 많은 신실한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도 사악하고 독신적으로 변모한 아담의 후손들에 관하여는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무시하고 불순종하는 인간들의 강한 경향성에 더하여 수많은 요인들이 있어왔다.

분명코 당시의 땅은 홍수 이후보다는 훨씬 더 좋은 기후 조건 때문에 생산성이 매우 높았다. 육지는 잔잔한 안개로 적셔지고 날씨는 온화한 봄날 같았고 토양은 지극히 비옥해서 사람과 동물들은 필요한 모든 먹이들을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참으로 편안한 생활이었다. 또 다른 요인은 인간에게 허용된 900세 이상 되는 수명이다. 당시의 인간들은 오늘날에는 허용되지 않은 부를 가지고 있었다. 아담과 이브의 후손들은 그들이 소유했던 엄청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창조주에 대한 관심을 쉽게 버릴 수도 있었고, 심지어는 창조주가 계셨다는 사실 자체마저 망각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창조자 하나님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했다. 수백 년 동안 죽음을 보지 못한 이들 대부분은 그들이 영원히 살 것이라고 믿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인간들은 하나님에 관한 한 외견상으로는 더욱 쉽게 반체제적 즉, 반하나님적, 하나님을 부인함, 하나님을 대항함 등으로 될 수 있었고, 부패하고 포악하고 패역적으로 되고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기만 했던 것이다.


7. 대가족 수 - 수백만 명의 사람들

아담으로부터 대홍수까지의 인구수에 관련하여, 땅을 채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넓게 개방된 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최소한 10명에서 많게는 50명 혹은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창세기 5장에는 족장들마다 그들의 수가 매우 많음을 시사하면서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홍수가 있은 다음 오랜 후인 사사기 8:30절에서 우리는 기드온이 70명의 아들들이 있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사사기 12:9절에는 입산이 30명의 아들들과 30명의 딸들을 두었고, 12:14절에 압돈은 40명의 아들들을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이집트에 있을 때 “이스라엘 족속이 크게 번창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근래에도 한 가정 안에 10-15명의 자녀들이 있는 경우가 있다. 오하이오 주의 한 흑인 여자는 1946년에 27번째의 아이를 낳았다. 20명 이상의 자녀를 둔 경우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대홍수 이전에 대가족이 되게 한 또 다른 요인은 인간의 수명이 900세 이상이었고, 오늘날의 출산 연령을 훨씬 지난 후까지 자녀를 생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노아는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을 때가 500세였다. 땅의 생산성이 매우 높고 이 지구에서 인간이 활동할 수 있는 땅이 많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땅에 충만하기 위해서는 대가족이 필요했다. 또한 그때는 기후 조건이 훨씬 이상적이고 땅이 비옥해서 식량은 풍부하고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과 사람들의 긴 수명 때문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던 것이다.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인구를 계산에 보면 대홍수 때까지 10억 내지 100억 명의 인구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담으로부터 대홍수까지 1,600년 이상이 걸렸다고 볼 때 오늘 날 만큼의 사람들이 살았을 수도 있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55

참고 :

유종호
2005-07-16

성경에 기술된 인간의 초기 역사 2


3. 창조와 대홍수 사이의 기간

이때의 사람들과 문명을 생각해 보기 전에 우선 아담-이브에서 대홍수까지의 기간과 아브라함 시대까지는 얼마나 긴지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우리의 많은 영어 성경의 난외주(欄外註)에는 특정 사건의 발생 시기를 말해주는 날짜들이 있다. 이 날자들은 아일랜드 주교였던 제임스 어셔(Ussher, 또는 Usher)에 의해서 계산되었고 1701년판 킹 제임스 번역본 성경에 수록되었다. 어셔는 BC 4,004년을 세계의 창조 년도로 보았고, 그 이후의 어떤 이들은 그 사건이 발생한 날짜의 시각까지도 기술한 바 있다. 진화론자들은 그와 같이 확정된 숫자를 비웃곤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우주의 기원이 150억 년 전이고, 지구의 기원은 46억 년 전이며, 우주가 3분 동안에 빅뱅으로 만들어졌다고 선포하는 진화론자들의 생각에 비하면 그렇게 웃기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계속 논의될 것이다.

어셔는 구약성경에 있는 각기 다른 연대기(시간 간격에 관한 연구)의 날자들을 매우 복잡하게 더하고 빼고 함으로써 이 숫자들을 계산해 내었다. 어셔가 계산한 BC 4,004년은 마소라 학파가 펴낸 히브리어 판 구약성경에 근거한 것이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인 70인 역과 사마리아 오경, 그리고 역사가 요세푸스는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족장들이 첫 아들들을 낳았을 때의 나이를 다르게 잡고 있다.

그래서 구약기간의 길이가 늘어났다. 70인 역은 그 기간을 1,466년으로, 요세푸스는 1201년으로, 사마리아 오경은 301년으로 잡는다. 이와 같이 다른 숫자들도 창조의 일자를 1,500년 이상으로 변경치 못한다. 계산에 넣어야할 또 다른 요소는 구약의 연대기에 있는 ‘begat’ (역자 주: ‘주로 아버지 기준으로 자식을 보다’라는 뜻) 이라는 단어의 용법이다. 창세기 5장과 11장에 있는 구약 족장들의 연대에서 어셔는 begat 이라는 단어를 문자적인 의미로 해석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것같이 보이나, 한편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begat이 고손까지의 단순한 조상을 나타내는 광의로 사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표현은 마1:8의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라는 구절에도 있다. 그러나 구약 역대상 3:11-12에서 우리는 요람이 웃시야의 고조부임을 알 수 있는데, 마1:8에는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 등의 이름이 빠져 있다. 요람은 아하시야의 아버지요, 아하시야는 요하스의 아버지요, 요아스는 아마샤의 아버지였다. 그래서 Uzziah와 Azariah라고도 불렸던 웃시야의 진짜 아버지는 아마샤였다.

유사한 경우가 창46:18에도 있는데, 거기에는 실바가 야곱에게서 자손 16명을 낳았다고 되어 있는 반면, 그녀의 손자들과 증손들이 16명 가운데 계상되어 있음도 보여주고 있다. 신구약에 있는 계보의 목적은 주로 메시야 약속의 역사를 보여주고 아담과 이브로부터 여자에게서 날 약속된 씨인 세상의 구세주인 예수까지의 후손들의 혈통을 보여주자는 데에 있었다.

이런 모든 편차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창조 시기는 어셔가 제안한 BC 4,004년을 넘어 2,000년에서 1, 2백년을 넘기는 어렵다. 어떤 이는 창조의 년대를 BC 8,000년까지 잡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고도한 문명이 이집트나 수메르에서 BC 3,500-4,000경에 이미 존재했었다는 어떤 고고학자들과 역사가들의 주장을 더욱 가능하고 그럴듯하게 해준다. 안트(Arndt) 교수는 1932년판 그의 저서 <성경의 난해 구절들(Bible Difficulties)> 51쪽에서 두 가지 시간 설을 강하게 주장했다. 즉;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그의 지혜로 성경에 대한 완전하고 절대적으로 확실한 연대기를 가능케 할 만큼의 정보를 우리에게 허락키 않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들의 연대기 계산치의 결과를 발표함에 있어 순수하고 겸허하게 말한다면......”

그래서 나는 구약 연대기의 기록들로 독자에게 부담을 주지는 않겠다.


4. 초기 인간들의 매우 긴 수명

그러나 구약 족장들과 관련하여 몇 가지 언급해야 할 것 같다. 한 가지는 그들이 오늘날 인간들의 수명의 10 내지 12배에 달하는 900세 이상을 향수하는 초 장수를 누렸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이런 결과로 아담은 7, 8세대 후손에게 천지 창조와 인간의 타락에 관한 얘기를 직접 구전할 만큼 여러 세대가 동시대를 함께 살았다. 그는 9, 10세대 후손인 므두셀라나 라멕과 대화할 수 있었고, 그들은 노아의 아들인 셈과 대화를 나누었으며, 셈은 아브라함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어셔의 연대기에 따르면 2,100년 동안, 또는 세상 존재기간의 약 2/3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에 창조 기사는 이런 식으로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 단지 2세대를 통해 전해졌다. 

더구나 우리는 이렇게 고도의 지능을 가진 사람들이 씌어진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당시에 존재했으리라고 여겨지는 기록과 역사들은 노아 때에 있었던 극도로 격렬하고 거칠고 진흙투성이의 파괴적인 홍수로 멸실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명심해야할 또 다른 사항은 이집트와 바벨론인들의 전통들이다. 그들은 각각 구약성경의 열 족장들과 유사한 10명의 왕들을 홍수 전 기간에 가지고 있었다. 이 모든 사실들은 비록 이집트와 바벨론의 기록들에 있는 인간의 수명들이 지극히 높게 과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홍수 이전 시대에 가족의 수장이나 통치자들로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성경의 기사에 신빙성을 부여한다. 1977년 9월판 리더스 다이제스트 130쪽에 1922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굴을 시작했던 영국의 고고학자인 레오나드 우울리 경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다.

“우울리가 발굴을 시작하기 이전에도 여러 학자들은 왕조의 핵심사인 소위 수메르 왕들의 목록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홍수 이전에 통치했던 왕들로 시작한다. 그리고 무려 총 241,000년에 8 왕조가 더해진다. 연대기는 분명히 엉터리다”라고 우울리는 평했다.“

대홍수 이후의 수메르인들은 대홍수 이전 시대에 그들보다 앞서 존재했던 문명에 대한 어느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구약시대 사람들의 장수에 관한 또 다른 문제는 그들이 어째서 그렇게도 장수할 수 있었는 지와 홍수 이후 사람들의 수명은 왜 시대가 지날수록 점점 더 단축되어 갔느냐는 것이다. 홍수 직후에는 그전 사람들에 비해 약 절반인 450년을 향수했다. 아브라함 시대까지는 수명이 175 세로 낮아졌다. 이에 대한 명백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때까지 지구를 둘러싸고 있던 보호적 물 층(궁창 위의 물)과 관련이 있다. 창1:6-7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과학자들은 이 물 층이 태양으로부터 오는 장파장에 대하여 보호막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층은 또한 과학자들이 남극 상공의 오존층에 구멍이 생겨서 지구는 그것을 잃어가고 있다고 우려하는 보호적 오존층을 결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홍수 전에 물 층과 오존층이 지구에 내려오는 유해한 방사선을 막아주었다면 생물들은 더 건강하고 더 장수하며 홍수전의 생물들의 몸집이 훨씬 컸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처음에 창조되었던 상태의 전 지구에서는 인간들이 질병에 걸리거나 죽지 않고 오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엄청난 방사선의 양과 하나님이 내린 저주와 함께 다른 요소들이 더해져서 지구는 인간을 점진적으로 약화시키고 수명을 감소케 하였을 것이다.


5. 성경에는 선사 시대가 없다.

창세기에 이름들이 올라있고 신약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다시 거론되는 사람들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언급해야겠다. 성경에 나와 있는 역사는 추정이나 이론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진화론자들이 선사 시대에 관하여 즐겨 언급하는 기간 동안에 있어서의 사람들의 실제 이름과 그들이 언제 살았으며 얼마나 오래 살았으며 무엇을 하였는가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실제 역사는 놀라우리만큼 많다. 그리고 그것은 우둔하고 건조하고 재미도 없고 지루하기까지 한 어떤 것들처럼 진부한 것이다. 눅3:23에서 시작되는 약 60세대의 족보 이야기에서 “예수는 요셉의 아들이었고, 요셉은 헬리의, 헬리는 맛닷의 아들이었더라.” 등등. 그리고 그 장의 마지막 즈음(36절)에 이르러 “아(르)박삿은 셈의 아들이었더라” 라고 계속 쓰고 있다. 그러고 나서 창10:6-11로 거슬러 올라가 셈의 친척들이 나온다. 그의 친척들이란 동생인 함의 후손이요, 함의 아들들 중 하나의 이름은 구스요, 그의 아들은 니므롯이다. 그러므로 니므롯은 셈의 조카의 아들이다. 이 니므롯에 관하여 창10:8-11에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라고 씌어있다. 바벨은 또한 바벨론이라고도 한다. 바벨론 또는 수메르는 세계의 역사책들이 시작되고 있는 곳이다. 이것이 그들의 실제 역사의 시작이다.

그러나 성경의 진술은 니므롯의 5촌 할아버지이고 노아의 아들인 셈으로 이어진다. 눅3:36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면서 혹이 선사 시대라고 부르는 곳으로 연결한다.

노아의 아들이었고, 라멕의 아들이었고, 므두셀라의 아들이었고, 에녹의 아들이었고, 야렛의 아들이었고, 마할랄렐의 아들이었고, 가이난의 아들이었고, 에노스의 아들이었고, 셋의 아들이었고, 아담의 아들이었고, 하나님(창조주)의 아들이었던 셈.

그리고 노아의 조상들은 거의 900세 이상을 살았다. 이것이 진화론자들이 무시하고 경멸하며, 그들이 관장하는 역사책에 없는 역사이다. 그러나 창세기가 우리에게 주는 것보다도 더 나은 소위 선사적인 역사 혹은 사실의 역사를 우리나 우리 자녀들이 가질 수 있을까? 만약에 진화론자들이 창세기 첫 부분의 11장을, 진정한 과학자들이 진리 탐구를 위하여 실험실에서 하는 것과 같은 정신으로 고려해 보기만 한다면 그들은 창조에 대한 성경의 설명이 만물의 기원을 설명하는 양식 있고 합리적인 유일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교육 현장으로부터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권리들을 위한 싸움에서 글로브를 벗을 때가 왔다. 성경을 온 나라의 지역학교가 채택케 함으로써가 아니라, 진화론자들의 종교적, 반종교적 신앙과 신념들을 학교에서 몰아냄으로써 말이다. 나는 교회와 국가의 단순한 분리가 아니라 “의회는 종교의 설립에 관한 법률을 만들지 말 것”을 규정한 (진화론자들의 종교 및 반 종교를 포함해서) 종교와 국가의 분리라고 하는 미국 헌법 수정조항 제1조의 조항들에서 분리 문제를 다룰 때 이 사항을 언급하려고 한다. 이 주제에 대해서 추가적인 취급이 있을 것이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53

참고 :

유종호
2005-07-15

성경에 기술된 인간의 초기 역사 1


1. 창세기의 처음 장들

진화론적 신념에 대해 배경을 제시한 후에, 그리고 고고학을 연구해 본 후에, 다음으로 창세기의 첫 장들에 기초하여 역사상 발생했던 것들을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지구와 태양과 달과 행성들과 별들과 퀘이사들과 우주의 기원 그리고 빅뱅과 블랙홀 등에 대하여 주장된 것들은 앞으로 계속해서 가볍게 집고 넘어갈 것이다.


아담과 이브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의 창조를 비롯해서 우리는 이집트인과 수메르인 등 인간의 사실상의 시조였던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시기 전에 인간을 위한 처소로서 이 지구를 창조하시고 준비하셨다. 이 지구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을 때, 그것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면에서 철두철미하게 완벽하였고, 상상을 초월할 만큼 아름답고 안락하고 쾌적한 곳이었다. 창1:31에서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라고 언급한 대로 하나님이 좋았다고 말씀하신 것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것이었다. 그것은 미세한 부분까지 완전하고 완벽하였으며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한 포기의 잡초나 한 그루의 엉겅퀴나 단 한 개의 가시나 기타 아담의 행복을 해칠 어떤 것도 없었다. 에덴동산은 가히 지상 낙원이었다. 땅은 아담의 소원과 쾌락과 안락과 소망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무엇이나 다 공급해 주었다. 사람과 동물들에게 충분한 양식이 있었고, 사람과 동물들 간에, 동물과 동물들 간에 생존경쟁도 없었다. 사막이나 추위나 불편한 영역 즉 아픔이나 죽음도 없었다. 오늘날 가장 즐겁고 안락하고 상쾌한 남양군도(태평양)도 당시의 전 지구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초기의 지구는 그렇게 아름다웠다. 성경은 창2:8-15에서 에덴동산을 아담과 이브에게 특별히 아름답고 안락하고 유쾌한 거처라고 묘사하면서 옷이 없어도 그들은 완벽하게 안락할 수 있다고 했다. 그곳은 금과 보석으로 가장 아름답게 꾸며졌을 것이다.

아담을 창조하실 때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격이 마치 우리 인간들이 서로 상의하고 심사숙고해서 말하듯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라고 선언하셨다. 창1:26에 보면 마치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의 최대의 지혜와 최고도의 솜씨를 그의 마지막 피조물에 쏟아 부으시는 듯하다.

인간은 이미 만들어진 모든 다른 피조물과는 달라야만 했던 것이다. 아담은 지상에 있는 가시적인 우두머리와 통치권자로서 다스릴 권위를 지닌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대리자였다. 육체와 영혼, 하늘과 땅, 이 두 가지가 인간 속에 공존하고 있어서 사람은 이 땅과 하늘을 연결시켜 준다. 하나님이 인격이듯이 인간도 그러하고 하나님이 의롭고 거룩하듯이 인간도 그러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주님이듯이 사람도 모든 땅 위의 주가 되는 운명을 타고 났다. 아담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었고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이었으나, 그는 창조주의 지상적 형상이었고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는 육체를 가진 자로 흙으로 만들어져 그 땅에 속했으나 영혼을 가진 자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속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것인 생명의 숨을 아담의 코에 불어 넣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안에 하나님 자신의 영을 가진, 하늘과 땅 그리고 하나님과 세상의 연결 고리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광스러운 피조물을 창조하시기 위하여 특이하고도 유일한 어떤 일을 하셨다. 그는 단순하게 명령을 발하셔서 사람이 완벽한 존재로 걸어 나오도록 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방법으로 인간의 형체를 만드셨다. 그는 땅의 먼지로 된 진흙덩이를 취하시고 그것으로 다른 모든 피조물과는 판이한 경이로운 형상으로 신적인 피조물을 만드셨던 것이다. 인간을 두 발로 서서 걸으며 그의 얼굴은 앞과 위를 향하도록 만드셨다. 그 형상은 처음에는 생명이 없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기를 그 속으로 불어넣자 그 생기가 전류처럼 온 몸으로 흘러 퍼졌다. 그의 눈으로는 보은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때 이 아름다운 형상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는 신령한 빛이 있었고 평화와 안온함이 사방에서 그를 둘러쌓았고 그의 높은 이마는 위대한 생각들을 떠올렸고 그의 손으로는 가까이 있는 물건들을 능숙하게 이것저것 손댔다. 이 형상 속에는 동물적인 욕구의 거칠고 불합리한 충동 같은 것은 없었고, 어떤 행동들을 취하기 전에 그것을 심사숙고해 보는 차분하고 사려 깊은 사색가의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권자답게 그리고 근엄하게 다른 모든 피조물 중에 군림하였다.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단연 주인으로 인정되었다. 하나님은 매우 중요한 대화를 이 사람과 나누었다. 영혼이 없는 동물들을 그의 앞에 데려다 놓자 그는 본능적으로 그들의 실체(정체)들을 알아보고 말하는 은사를 받아서 이 모든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 아담은 분명코 식물학(식물들)과 동물학(동물들)과 그 분류들을 망라하는 생물학 분야에서 지금까지 생존했던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해박한 지식의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그가 만일 우리 시대의 최고의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이었다면, 모든 과목에서 100점 만점으로 학위를 받고 존재하는 모든 영예를 차지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식물학에 대해서 그에게 주신 결함이 없고 명민한 지각으로 그는 어떤 식물이 먹기에 좋고 나쁜가를 알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주위에 둘러주신 땅의 다른 나무와 식물들도 알았다.

그래서 동물학 분야에서도 들에 있는 모든 가축과 짐승들과 공중의 새들도 알아보고 하나님이 그들을 그의 앞으로 오게 하셨을 때에 자기 언어로 이름을 지었다. 물론 바다의 고기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언급이 없지만 그는 분명히 그들도 다 알았을 것이고, 또한 분명히 땅의 광물들과 그들의 용도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아담과 이브의 손자들이 황동과 철을 가지고 제작을 했다는 기록이 창4:22에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라고 나온다.

모든 사람의 조상인 아담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 식물들, 동물들, 원소들과 광물들을 알았으나 그들의 이름을 짓기 위해 책으로 공부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현대의 모든 과학자들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았다. 아담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피조물이었기 때문에 지상에 살았던 어떤 사람보다도 해박했고 그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으며 과학자 중의 과학자였다. 그러나 그가 가졌던 모든 지혜 중 가장 큰 지혜는 자기의 기원에 대해 어떤 추리를 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가 원숭이와 같은 피조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은 물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아니한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었다.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우주 만물의 기원과 조직을 알고 있었다. 그는 모든 분야에서 박사학위에 해당하는 모든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그가 필요로 하지 않았던 유일한 박사학위는 의학박사였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어떤 질병이나 우환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알 필요가 없었다. 아담은 그의 뜻을 말로 알렸고 그의 생각을 표현했다. 또한 이 사람에게는 딴 어떤 피조물도 가지고 있지 않은 독특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광활한 대지 위에 단 홀로 그러나 지금까지 살았던 누구보다도 당당하게서 있었다. 그에게는 자기의 즐거움과 행운을 함께 나눌만한 어떤 동반자도 없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음성이 한 번 더 있어 가로되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으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만들어 그에게 주리라”(창2:18)고 하셨다. 하나님이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그가 잠들어 있는 동안 옆구리에서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그것을 넣어서 여자를 만드셨다.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자 아담은 그녀가 자기의 혈육이요 분신인 것을 즉시 알아차렸다. 이브는 하나님의 손에서 나아올 때에 처녀(Miss)임과 동시에 유부녀(Mrs)였다. 영원한 우주는 가장 아름답고, 지적이며, 완숙하고, 우아하고, 다정하고, 완벽하고 왕비 같은 영원한 여인이다. 아담과 이브 안에는 어떠한 결함도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담과 이브와 견주어보면 다 변형되고 퇴화되었다. 상호간 경이로움과 함께 애모하는 가운데, 이 땅에 살았던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아름답고 지혜롭고 충성스러웠던 이 두 사람, 하나님이 친히 주례로써 부부로 맺어주셨던 이들은 자신들의 창조주 앞에 경건히 경배하며 서 있었고, 그들은 믿기 어려울 만큼의 어마어마한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천부(天賦)의 선물로 주신 이 땅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창조적 행위의 산물로서 성숙도는 분명히 오늘날의 20세 청년에 해당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단지 0살에 불과했다. 그들은, 마치 창조 당시의 우주가 완숙한 상태였던 것과 같이, 완숙한 존재였다. 죄가 없었던 아담과 이브는 우환이나 질병이나 부패 같은 것은 없었다. 그들은 부패나 노쇠에 대한 어떤 증후도 없이 이 지상에서도 영원히 살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경이롭던 이 두 사람이야 말로 우리의 진정한 조상이요 선조였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 경이롭던 피조물인 이 아담과 이브는 그들의 육체가 특별하게 창조되었다든지 그들의 생각을 구성하고 그것을 말과 글로 표현하기 위한 합리적인 마음과 능력을 부여받았다든지 등의 그런 단순한 존재만은 아니었다. 삼위일체의 인격적 하나님이 이 영광스러운 최초의 인간을 창조하기 위하여 서로 의논하실 때에 결정된 핵심 사항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창1:26) 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형상”의 구성 요소들 중에 어느 것이 진정으로 인간을 동물들과 구분 지으며,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가운데 인간을 가장 영화롭게 만드는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은 특별히 두 가지의 특성 즉 하나님에 대한 최상의 행복한 지식과 완벽한 의와 성결임을 안다. 사람에게는 이 땅의 것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 대한 지식도 부여되었다. 사람이 맨 처음 창조되었을 때에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분인지 알았다. 그는 하나님의 본질적 사역뿐만 아니라 영적인 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도 알고 또한 이해하였다. 그는 하나님은 그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고 무엇을 하지 않기를 원하는지 완벽하게 알았다. 그가 하나님의 뜻인지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하여 율법서를 연구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에는 인간은 그 뜻에 따라 살아갈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아가서 인간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축복해주시는 분으로 알고 있었다. 하나님에 대해 오직 행복하고 축복받고 화평한 관계만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실로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지식은 그들에게 가장 달콤한 축복이요 고상한 희락의 근원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은 또한 완전한 거룩과 의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맨 처음 창조되었을 당시에는 의로웠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았다. 인간이 하나님을 불순종할 수도 있다는 사실 이외에는 그는 선했고 죄가 없었으며 완전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완전하시고 악한 것을 미워하고 선한 것을 사랑하는 분이라는 의미에서 인간도 완전했다. 그러므로 아담과 이브는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그 분을 피하려고 할 하등의 이유도 없었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을 모든 다른 피조물과 구별 짓는다. 인간과 원숭이와 다른 동물들 간에는 엄청난 차이들이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인간이 물고기와 새들과 가축들과 다른 동물들과 기타 지상의 모든 피조물에 대해 지배권을 갖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지상의 모든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창조되었다. 인간은 또한 영원히 살도록 운명 지워져 있다. 인간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에는 결코 죽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뀀에 귀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하셨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음으로써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그를 배반하게 되었고, 이때 이 모든 것은 바뀌었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고 분명히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인류사상 첫 죽음이 그들의 자녀들 중 하나(가인)가 다른 아들(아벨)을 죽인 살인 사건으로 인한 것이기는 했지만 아담과 이브는 육체적으로는 즉시 죽지 않았다. 정녕 죽어야 할 순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절망적이고 처참한가! 그러나 아담과 그의 다른 후손들은 900세를 넘게 살면서 거의 1,000년을 죽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오래 살았다.


2. 아담의 타락과 홍수사건 사이의 지구

인간 문제를 더 계속적으로 다루기 전에 인간들이 살고 있던 지구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지구는 그 위에 내려진 저주 때문에 처음 상태와 같이 그렇게 완전하고 쾌적한 곳이 더 이상 아니었다. 창3:17-19에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사도 바울도 롬8:22에서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죄와 죽음이 그 세상에 들어왔어도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마틴 루터는 ”그것은 그 다음 세상에 비하면 진정한 낙원이었다“고 말했다.

창조와 홍수 시대 사이의 지구에는 아직도 아름답고 즐거운 곳이 남겨져 있었다. 낮의 안개가 땅을 적셨고 번개와 천둥과 우박과 토네이도와 같은 거센 폭풍우는 없었다. 오늘날 격렬한 천둥 번개 속에서 놀라 쩔쩔매는 것은 신앙이 없는 무신론자라도 하나님께서 만물을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이 지구의 육지는 낮았고 기복이 있어서 사람들은 쉽게 땅위 어느 곳으로든지 옮겨 다닐 수가 있었을 것이다. 토양은 기름지고 살이 깊고 열매를 많이 맺혔다.

그 증거는 대홍수 때에 함께 눌린 조밀했던 식물들로 형성되었다고 주장되는 석탄 광맥을 생각해 보면 명백하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의 윌리엄 윈스턴 교수는 그의 저서 <지구에 관한 새 이론(1969)>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대홍수 이전의 지구는 현재보다 훨씬 비옥했고 식물도 매우 풍성했다. 땅은 부드럽고 연하고 수분도 풍부했다. 대홍수 이전의 공기는 다량의 짙은 수증기나 오랫동안 공중에 떠있는 구름 등도 없었다. 우리가 소나기라고 부르는, 한꺼번에 많은 양이 쏟아지는 큰 빗방울들도 없었다. 그러나 땅은 낮 동안에 올라갔다가 바로 그날 저녁에 대량으로 내려오는 잔잔한 안개와 수증기에 의해 적셔졌다. 그때의 세계는 거센 바람이나 폭풍우나 땅과 바다 위에 미치는 영향들과 함께 일으키는 교란 등이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저주가 내린 이후에도 당시의 지구는 아직도 월등히 좋은 곳이었기 때문에, 그 초기 사람들은 그 이후의 모든 사람들보다도 우수했던 것이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51

참고 :

관리자
2005-06-25

여호수아의 긴 하루

(Joshua's Long Day)

Russell Grigg


    난해한 성경 구절의 의미에 관한 토론이 있을 때마다 핵심적인 문제는 성경 기자가 전달하고자 했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었을까를 파악하는 데로 귀결된다. 여호수아서는 B.C. 1400 년경,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복과 12 지파들의 땅 분배 사건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그 때의 일을 명백한 역사적 사건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아모리 족(Amorites) 다섯 왕의 연합군과 이스라엘 군과의 사이에 벌어졌던 전투 중에 태양이 운행을 멈췄다는 사건이었다.1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스라엘 군은 싸움에서 이기고 있었으나, 완전한 승리를 위하여 낮 시간을 더 많이 필요로 했다.

여호수아 10장 11절에서 13절을 보면,

  •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2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것은 정오 또는 정오를 조금 지난 시점으로 생각된다. (히브리어: 하늘 중천에 떠 있는 태양).3 그리고 성경 기자는 태양이 완벽한 하루 동안 머물러 있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하루 한 나절을 뜻하기보다는 대략 24시간을 뜻한다고 보는 주석가들이 많다.

여러 다른 문화권이 이 사건에 근거를 둔 것처럼 보이는 전설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아폴로의 아들인 파에톤(Phaethon)은 태양의 행로를 하루 동안 방해한 적이 있었다. 여호수아 10장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면,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문화권에서는 '긴 밤' 에 관한 전설들이 전해져 내려와야 마땅할 것이다. 사실상, 뉴질랜드의 마오리(Maori) 사람들은 그들의 영웅 마우이(Maui)가 태양이 뜨기 전에 일출 시간을 멈췄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다른 한편, 멕시코의 쿠아우티틀란 연대기 (Mexican Annals of Cuauhtitlan : Culhuacan과 Mexico 제국의 역사)에는 밤 시간이 연장되었다는 기록이 나타나 있다.4

이 대목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아모리 족속은 태양과 달을 숭배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신들이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복종한다는 사실은 아모리 족속한테는 말도 안되는 경험이었음에 틀림없다. 이것은 왜 하나님께서 그때 즉,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시작한 초기에5 그러한 특별한 기적을 행하셨는지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될 것이다.

*참조 : 여호수아의 긴낮과 징조(태양아 멈추어라...달아 그리할지어다), 김명현 박사

https://www.youtube.com/watch?v=mm71uvGqXmw


지구중심설(천동설)과 상황 언어 (Geocentrism and the language of appearance)

여호수아가 태양의 운행을 멈추라고 말하였다고 해서 그의 명령이 지구중심설 (즉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설)을 지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상황(appearance)과 관찰(observation)의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6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이와 꼭 같이 하고 있다. '일출과 일몰' 시간을 알리는 TV 아나운서의 일기예보를 준비하는 과학자들이 그런 예다. 사실, 달에게도 멈추라고 명한 사실은 우리에게 움직이는 것은 지구라는 것에 대한 사실성과 그 근거의 신성한 출처를 확증시켜주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여호수아가 원했던 것은 오로지 긴 낮 시간뿐이었기 때문이었고, 당대의 고대인들이 움직이는 것은 지구가 아니고 태양이라고 믿고 있었으므로, 만약 어떤 상상의 이야기를 지어내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태양이 멈췄다고만 말하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NASA와 잃어버린 하루

행성의 위치를 조사하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하는' NASA 과학자들이 역사상 하루가 빠져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는 이야기들이 떠돌곤 한다.

이 이야기는 하나의 '도시의 신화(urban myth)' 로 되어있다. 이 근거가 분명치 않은 연구는 세상을 놀래기 위해 발표되지는 결코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계산을 하려한다면, 우선 그 잃어버린 어떤 날이 실제로 있기 이전의 행성의 위치들은 물론이고, 그 이후의 위치들도 알고 있어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1890년 찰스 토튼(Charles Totten)은 제 나름의 계산도 없이 하루가 사라졌다는 것을 증명하기위해 '여호수아의 긴 하루 (Joshua's Long Day)' 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에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적용하였다. 그 모든 계산들은 단지 태양와 달이 과거 어느 때에 실제로 어디에 있었느냐 가 아니라 (태양와 달의 운행 속도가 변함 없다는 전제 하에서 현재의 운행 위치에 근거를 두고 계산하여), 그 때 태양와 달이 어디에 있었어야만 했는가를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무엇이 일어났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3가지 주된 범주로 나누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1. 태양과 달로부터 발원하여 지구에 도달되는 빛의 굴절(refraction or bending) 형태.  

  : 이 관점은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셔서 '대략 하루 동안' 가나안 땅에 태양 빛과 달 빛이 계속 비치도록 하셨다고 생각한다. 이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지적하고 있다.7

a. 여호수아가 필요로 하였던 것은 빛이지 지구운행의 지연이 아니었다.

b.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언약하시기를, ”땅이 있을 동안에는 ... 낮과 밤이 쉬지 아니 하리라”(창세기 8:22) 하셨다. 이 말씀은 인간역사의 종말까지 지축중심의 지구자전을 멈추게 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구 자전 속도에 대한 일시적인 지연까지 배제시킨 것 같지는 않다.)

c. 히스기야(Hezekiah)의 통치 당시 아하스의 일영표(日影表)의 해 그림자를 10도 물러나게 하셨던 (열왕기하 20:11) 기적은 어떤 형태의 빛의 굴절로 보인다. 이것은 팔레스타인 땅에서만 있었던 하나의 사건처럼 보인다. (역대하 32:31.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2. 지구 자전축 방향의 흔들림

   : 이 대목은 지구의 자전축이 흔들려 궤도가 천천히 's' 자 형태로, 또는 원의 형태로 운행했던8 것을 뜻한다. 그런 사건은 어떤 관찰자한테는 태양과 달이 운행을 멈춘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지구자전의 회전속도가 실제로 감소되는 것을 뜻할 필요까지는 없다.

또 이런 의견도 있다. 즉, 지구와 화성의 궤도가 바로 그 날 근접하였던 까닭에 일어난 사건일 수 있다는 것이다.1 그런데 이것은 문제가 있다. 이런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고대의 화성 궤도가 현재의 궤도와는 사뭇 다르다는 가정을 전제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밖에 몇 가지 제시된 원인들로는 지구에 소행성들이 충돌했을 가능성에 관한 것들이다.


3. 지구자전의 지연

이 의견은 하나님께서 지구의 자전을 지연시켰던 결과로 24 시간이 아니라, 48 시간 동안 일대 변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이로 인해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거대한 파도(tidal waves)의 격랑과 같은 자연계의 격변을 멈추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잘못된 가정들을 주장하면서, 이 의견을 반대하였다. 즉, 만약에 지구자전의 속도가 늦춰지면 사람은 물론 땅 위에 고착되어있지 않은 모든 사물들은 공간 속으로 내동댕이쳐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얼핏보아 사물들을 지구 밖으로 내동댕이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원심력의 힘은 지구중력의 약 30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만약 지구 자전이 (갑자기 또는 천천히) 멎는다면, 그 외부로 향하려는 '힘 (원심력)' 은 멈추게 되어, 실제 우리들은 중력으로 더욱 단단히 잡아 매일 것이다.

적도 상에서 측정되는 지구자전의 속도는 1,600 km/h (1,000 mph) 이다. 지구중력을 벗어나는데 필요한 속력은 약 40,000 km/h (25,000 mph) 이다. 만약에 지구의 자전속도가 이렇게 빠르다면, 지구자전이 갑자기 또는 천천히 멈추는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들은 그냥 그대로 대기권으로 내동댕이쳐질 것이다.

지구상에서 1,600 km/h로 달리는 사람들이나 사물들의 운동량(momentum)은 어떨까?

100 km/h로 달리는 자동차의 제동시간이 수초 이내라면, 차는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안정한 상태로 멈출 것이다. 그리고 1,600 km/h로 달리는 물체에 타고 있는 사람들도 제동시간이 수분 이내라면, 이 물체가 멈출 때 안정한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이 시나리오만으로도 하나님께서는 대기권과 대양, 그리고 지구의 회전을 지연시킬 때 뒤따라 일어날 수 있는 격변적인 해일이나, 지구 중심부 액체층의 완만한 회전마찰이 유발할 그 어떤 지열상승의 효과까지도 동시에 멈추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여호수아의 긴 하루가 끝난 후에, 모든 자연현상의 운행이 재시동이 되어야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에서 세우신 지구상의 모든 사물의 자연 질서들 가운데 몇 가지 주요 부분들을 재정립하신다는 것이 마냥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결론

기독교는 창세기 1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행위로부터 요한계시록 22장에 기록된 그 불가사의한 사건들까지를 망라한 기적의 종교이다. 성경은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냥 하나님께서 그런 기적을 의도하시자, 그런 기적은 일어났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몇 가지 기존의 자연법칙(노아의 홍수와 같은)을 사용하실 수도 있고, 또는 자연법칙의 그 어떤 개입도 배제하실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에서와 같이). 때로 하나님의 기적은 자연 현상의 시간대에 맞추신 하나님의 의도일 수도 있다 (밤새껏 불어대던 강풍을 이용하시어 홍해를 갈라놓으신 하나님의 솜씨).

기적은 과학적인 분석으로 드러나지 않고 간증하는 믿음 속에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은 기적들을(여호수아가 태양의 운행을 멈추게 하였던 사건까지 포함하여) 행하실 수 있었을까 하고 이리저리 추측해보는 것도 흥미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성경을 신성한 기록으로 인정하는 사람) 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궁극적으로는 믿음으로 그 기적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9 우주를 6 일 만에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한다면, 여호수아의 ”긴 하루의 기적을 행할 수 없다” 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과학적으로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 설명을 주저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진화론의 허구적 우주연대와 타협하고, 6 일 동안의 우주창조를 부인하는, 결과적으로 성경의 권위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참조 : 아하스의 해시계 그림자 표적(창세기 1장 강해), 김명현 박사

https://www.youtube.com/watch?v=DL9cS6XOmbs


References and Notes

1. Donald Patten, Ronald Hatch, Lorenc Steihnhauer, The Long Day of Joshua and Six Other Catastophies, Baker Book House, Michigan, 1973 give the date as 'circa October 25, 1404 bc'. Other commentators give a slightly different date, e.g. C.A.L. Totten, July 22, 1443 bc.

2. Jasher (KJV), 혹은 Jashar (몇몇 현대의 번역에서)의 책은 고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찬미하기 위해 쓰인 송시들을 집대성한 책 (사무엘 하 1:17-27 비교). 태양에 대고 외친 여호수아의 말은(이 책에서 인용된 것으로 보이는) 시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또 오늘날의 대부분의 성경에도 이런 형식으로 쓰여 있다. 여기에 쓰인 표현이 시적이라고 해서 그 사건에 대한 글자 그대로의 해석을 무효화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다윗의 생애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묘사한 시편의 기록들이 시적으로 표현되었다고 해서 사건에 대한 글자 그대로의 해석을 저해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쨌거나, 여호수아 10:13b의 구절은 여호수아의 기도에 대한 화답에 기록된 내용을 히브리어 산문형식으로 바꾸어 쓰이고 있다.

3. 전투가 있던 이른 아침에 온전히 하루 해가 앞에 놓여 있는데, 여호수아가 하루 해의 길이를 늘려주기를 기원하였다는 것은 어쩐지 이치에 닿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4. Immanuel Velikovsky, Worlds In Collision, Dell, New York, 1950, p. 16 note 3. See also other historical references to long days or nights in this book.

5. 예컨대 말벌 (출애굽기 23:28)을 사용하거나 혹은 적을 혼란시키는 (열왕기하 7:6) 대신.

6. 이 맥락에서, 헨리 모리스(Henry Morris)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즉, ”모든 운동 (motion)은 상대적인 운동이다. 그리고 태양도 지구와 마찬가지로 우주공간 속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운동을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하는 방법은 속도 '0' 으로 가정되는 어떤 임의의 한 점을 지정해 두고, 여타의 속도들을 그 점과 상대적으로 측정하는 것이다. 어떤 특수한 계산을 위하여 그러한 임의의 점을 지정하려할 때 사용하기에 가장 적절한 점은 해당 관찰자가 쓰기에 가장 편리한 곳이 그런 점이 될 것임은 당연하다. 우주 공간의 천체들의 운동을 관찰하여야 할 경우, 가장 적절한 점은 관찰자가 위치하고 있는 지구상의 위도와 경도의 접점이다. 그런 까닭에 이곳이 쓰기에 가장 '과학적'인 점이다. 다윗 (시편 19:6)과 여호수아가 자기네들이 관찰한 내용을 서술할 때 이와 같은 표현 관습을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저들의 비평가들보다 더 과학적이었다고 하겠다.”

Henry Morris with Henry Morris III, Many Infallible Proofs: Practical and Useful Evidences for the Christian Faith, Master Books, Arizona, 1996, p. 253.

7. For example, John C. Whitcomb, 'Joshua's Long Day', Brethren Missionary Herald, July 27, 1963, pp. 364-5.

8. Procession: the motion of the axis of rotation of a spinning body about a line that makes an angle with it, so as to describe a cone.

9. 『「기적은 일어날 수 없다」라고 단정하는 것은』결코 과학적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 크리스천이「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신다.」라고 말할 때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의 신앙간증이다. Hugh Silvester, 'Miracles', Eerdmans Handbook to Christian Belief, Michigan, 1982, p. 90.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성경과 기독교/성경과 과학에 있는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B01


출처 : Creation 19(3):35–37, June 1997

URL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9/i3/longday.asp

번역자 : IT사역위원회

관리자
2005-06-25

 바벨탑 사건은 홍수 후 불과 100여년 후인데, 

건설하는 데 필요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가?


     고대에는 많은 자녀들을 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노아는 세 아들과 자부로부터 16명의 손자를 두었다. 손자만 16명이므로 손녀도 16명으로 보면 한 부부가 평균 10.7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 후부터 한 쌍이 대략 12명의 자녀(6명의 아들과 6명의 딸)를 두었다고 하면, 그리고 셈, 함, 야벳서부터 5세대 후라면 얼마가 될까? 방주에서 나온 후 1세대(노아의 손주들)는 32명(16쌍), 2세대는 192명(96쌍), 3세대는 1,152명(576쌍), 4세대는 6,912명(3,456쌍), 5세대는 41,472명이 될 것이다. 

바벨탑을 건조하는 시기는 홍수 이후 대략 100 여년이 지난 시기이므로 4세대 정도가 흘렀을 것으로 본다면, 수천 명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나 조부모들도 아직 살아있을 것이므로, 바벨탑을 건설하기에 충분한 숫자였을 것이다. 

또한 누가복음 3:36 절에는 아(르)박삿의 아들이며 셈의 손자인 가이난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만약 한 세대가 빠졌다면, 그 숫자는 더욱 많았을 것이다. [보완설명] 벨렉의 시대에 땅이 나뉘어졌다는 기록을 통해 이 때에 바벨탑 사건이 일어났던 것으로 본다. 하지만, 벨렉은 홍수 후 100여년 후에 태어나서 239세를 살았기 때문에, 바벨탑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대략 홍수 이후 100여년부터 330여년까지의 기간 내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시점에 따라 인구의 숫자는 위의 계산보다 더 많았을 가능성이 있다.

관리자
2005-06-25

므두셀라는 어떻게 969살 까지 살았나?


      창세기 전반부 기록의 가장 놀랄만한 부분 중에 하나가 바로 노아홍수 이전의 사람들 수명에 관하여 거침없이 쓰여졌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만약 창세기가 최근에 쓰여졌다면 여기에 몇 마디 설명을 추가했던지, 아니면 경이로운 표현들을 섞어가며 써나갔을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창세기 저자는 “나중 세대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등의 설명조차 없이 이러한 부분들을 단순하고 직설적인 방법으로 써내려 갔다. 

창세기 5장은 첫 인간 아담부터 노아까지 홍수 이전의 족장들의 계보를 단순하게 보여준다. 이들이 탄생했을 때의 나이와 죽었을 때의 나이가 순서대로 적혀있다. 아담은 930세까지, 므두셀라는 969세까지 살았으며, 9명의 홍수 이전의 족자의 평균나이는(죽지 않은 에녹을 제외하면) 912세다. 이 나이들은 분명히 “년”의 개념으로 쓰여졌으며, “달”의 개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마할랄렐의 경우 65세에 아들을 낳았는데, 이는 달의 개념으로 똑같이 적용하면 6세 이전에 아들을 낳게 되는 더 괴상한 기록이 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홍수 이후에 노아가 950살에 죽은 것과 데라가 205세에 죽을 때까지 수명이 단계적으로 천천히 감소하여다는 것을 보여준다. 

분명히 홍수의 기간에 인간 수명이 단계적으로 감소하는 영향을 주는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었음에 틀림없다. 확실치 않더라도 적어도 과학과 성경 모두에게 만족할 만한 암시가 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하여 먼저 나누어보자. 오늘날 어느 과학자도 과연 무엇이 죽음을 일으키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인간이 왜 100년 이하 밖에 살지 못하는지 알지 못한다. 생명이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에 대하여는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단지 과학자는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차이를 묘사할 수 있을 뿐이다. 과학자가 왜 죽는지 모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과학자는 아직까지도 왜 사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생명이 무엇인지 모른다. 이들이 아는 것은 단지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점을 나열하는 정도이지 “왜”에 대하여는 손도 대지 못한다. 순서적으로 왜 사는 것을 알아야 왜 죽는지 접근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성경에서는 원래 영원히 살도록 창조되었으나, 죄로 인한 하나님의 벌로서만 죽음이 왔다고 한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로마서 5:12). 현대 수명을 연구하는 학문에 의한 놀랄만한 사실은 어떤 사람도 단지 나이가 많다는 것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나이를 먹는다”는 말과 “늙는다”는 말은 같은 말이 아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신과 관계없이 시간이 지나감을 의미한다. 반면에 “늙는다”는 의미는 한마디로 노화되는 것이다.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가 희거나 빠지고, 아픈 곳이 많아지고 이런 등등의 것을 늙는다고 말할 수 있다. 

노화에 대하여 여러 이론들이 있지만 가장 확실한 증거는 체내돌연변이설이다. 체내돌연변이는 체내 세포구조 안에 갑작스럽고 불규칙한 변화를 말한다. 거의 모든 돌연변이는 해로우며, 여러 기관과 조직세포에 점차적으로 누적된다. 이는 어쩔 수없이 신체 효율을 감소시키고 신체 성분들을 완전히 파괴시킨다. 또한 지금의 여러 환경요소가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방사능인데, 이는 태양과 다른 방사능 근원지로부터 온다. 생식세포는 체내세포보다 훨씬 잘 보호되지만 방사능은 생식세포 안에서도 유전돌연변이를 일으킨다. 이 유전돌연변이는 항상 해로우며, 개인뿐 아니라 자손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체내돌연변이와 유전돌연변이 모두는 노화를 통해 죽음에 이르게 한다. 물론 다른 요소들도 영향을 주지만 이들이 가장 넓게 수용되고 있는 원인으로 꼽힌다. 노아 홍수 이후에 인류는 8명으로 줄어들면서, 유전자 풀이 줄어드는, 유전적 병목현상이 일어났다. 여기에 일어난 돌연변이들은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또한 노아홍수 이전에 “궁창 위의 물”(창세기 1:7)이 상부 대기층에 투명한 수증기 층으로 있었다. 이것은 훌륭한 “그린하우스 효과”를 가져올 뿐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온화하고, 온순한 기후를 유지시켰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지구 밖에서 오는 치명적인 방사능을 아주 효과적으로 여과시켰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노아홍수 이전에 환경 방사능은 현재보다 훨씬 적었고, 홍수 이전 사람들의 긴 수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그 궁창 위의 물이 홍수동안에 모두 쏟아졌다고 했다. 그 훌륭한 기능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홍수 후에 일어난 갑자기 변한 기후와 궁창 위의 물이 사라진 지구는 의심할 여지없이 수명감소를 일으켰을 것이다. 우리는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서도 성경에 기록된 홍수 후에 수명이 단계적으로 감소하였다는 것에 의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참조 : 아담은 정말 930년을 살았는가? : 사람 수명의 감소곡선은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가리킨다.

http://creation.kr/Genesis/?idx=1289129&bmode=view

노아 홍수 이전 사람들의 긴 수명에 관해 밝혀지고 있는 사실들.

http://creation.kr/BiblenScience/?idx=1288883&bmode=view

900년의 수명 : 홍수 이후 단축된 인간 수명의 원인은?

http://creation.kr/Genesis/?idx=1289068&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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