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의 아내는 누구인가?
김희택
이 질문은 성경 비판학자들이 제기한 질문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우리가 확신하기는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피상적인 모순을 성경의 원저자들이 간파하지 못했을 리 없다는 점이다.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우선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중요한 사실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즉,
① 아담은 최초의 인간이었다 (창 2:7,18~19).
② 아담은 930년 동안 살았다 (창 5:5).
③ '이브' 라는 이름은 모든 산 자들의 어미이기 때문에 주어졌다 (창 3:20).
④ 아담과 이브는 많은 자녀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창 5:4).
⑤ 창조시에 모든 것들은 가장 좋은 상태이었다 (창 1:31).
⑥ 아담의 죄로 인하여 창조물들은 저주를 받게 되었다 (창 3:17, 롬 8:20~22).
⑦ 아브라함은 그의 이복누이와 결혼했다 (창 20:12).
⑧ 근친상간을 금하는 법은 모세 시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레 18~20).
이상의 9 가지 기본적인 사실들이 가인이 그의 여동생 중의 하나와 결혼했음이 틀림없음을 제안하는데 실마리가 된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셨을 때, 그들은 최초의 인류였다. 창세기의 그들 각자의 창조기원을 알려주고, 또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할 것을 지시 받게 된 것에 대하여 기록한다.
성경에는 아담과 이브의 자녀들 중에서 단지 '가인', '아벨', '셋'의 세 명의 이름만 거론한다. 이 세 사람의 이름은 우리가 꼭 알아야 될 중요한 사건들 때문에 자세하게 언급된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 5장 4절에 의하면 아담과 이브는 많은 아들과 딸들을 거느리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아담이 첫 번째 인간이었다는 사실과 아담은 930 년 동안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참고로 창세기 5 장 족보에 열거된 홍수 이전의 족장들의 평균수명은 912 년이다. 가족의 크기나 평균수명 등에 관한 보수적인 가설에 근거해서 가인의 죽음 이전에 이 땅에 이미 많은 인구들이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이 가인이 몇 세에 아우를 살해했는지, 또 몇 세에 아내를 취하고 성을 세웠는지 지적하지 않음으로 기록상 아무 모순이 없다.
이 모든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최초의 인류인 두 사람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에 의해 창조되었고, 아들들과 딸들의 많은 자녀들을 가졌으며, 확실하게 아들들은 자손들의 번성을 위해 딸들과 결혼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가인의 아내는 그와 아주 가까운 근친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상의 결론을 근친상간을 금하는 법을 들어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은 법은 모세 시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모세보다 약 400 년 전에 살았던 아브라함은 이복누이와 결혼했음을 성경은 말해준다.
그러면 왜 이와 같은 금지법이 출현하게 되었는가? 이런 금지에 대한 과학적인 이유는 그런 결혼의 결과로 나타나는 자녀들이 일반적인 결혼보다 더 기형아이거나 저능아인 가능성이 많다는데 있다. 두 사람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들의 유전인자에 더욱 유사한 결함을 가지게 될 확률이 커지게 된다. 만약 이들이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게 될 경우, 자녀들중 어느 아이인가는 부모로부터 각각 결함을 갖는 유전인자를 상속받게 되고, 이것으로부터 형성된 유전자쌍이 기형의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두 사람의 관계가 멀면 멀수록 그들의 유전인자는 서로 다른 결함을 갖게 될 확률이 크며, 이들로부터 유전인자를 전수 받은 아이들은 각 쌍에 서로 다른 하나의 결함인자만을 갖는 결과가 되어, 앞의 경우에서와 같은 완전한 기형은 발생하지 않게 된다. 예로 완전히 기형인 귀를 갖는 대신 단지 꼬부라지기만 한 귀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최초의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 그들은 완전했고 모든 만물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창 1:30). 이것은 그들의 유전인자가 완전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세상을 저주하셨고 완전했던 창조세계는 퇴보하기 시작했다. 즉 죽음과 타락으로 인한 고통을 겪게 된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이 퇴보는 생명체의 유전인자 재료에 각종의 잘못을 발생시키는 결과를 낳게 했다. 더욱이 이러한 퇴보는 노아의 대홍수 이후에 크게 가속화되었는데, 그 이유는 홍수 이후의 기후 조건이 극도로 나빠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홍수 이후에 돌연변이를 유발할 수 있는 해로운 우주복사선(cosmic radiation)의 양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 돌연변이는 발생한 이후에 다음 세대에 계속 전달되게 되며, 그래서 그것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축적되는 것이다. 약 2,500 년이 지난 모세의 시대에 와서 비로소 형제자매간 근친상간에 대한 금지법을 만드는 것이 필요할 만큼 인간종족에 축적되었음을 성경은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가인은 태어난 첫 번째 아이였다. 그는 아마도 아담과 이브로부터 사실상 거의 손상 받지 않은 완벽한 유전인자를 물려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의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형제와 자매는 어떤 기형의 자손을 낳을 가능성이 없이 결혼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항상 일관성이 있다. 그것은 그 자체의 기록뿐 아니라, 잘 알려진 모든 과학적 사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렇다.
출처 - 창조지, 제 79호 [1992. 9]
루터교도들은 코페르니쿠스를 도왔다.
(Lutherans Helped Copernicus)
David F. Coppedge
우리가 '알고(know)' 있는 것들이 진실(true)인지를 재검토해보게 될 때, 진실은 그 반대와 더 가깝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그는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둘레를 공전한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서 교회를 위협했던 용감한 과학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너무도 두려워해서 죽을 때에도 그의 ‘이단적인(heretical)‘ 견해를 출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에 방영되었던 시리즈물 ‘우주(Cosmos)’ 에서 칼 세이건(Carl Sagan)은 코페르니쿠스의 견해는 루터교도들에 의해서 조롱당했다는 도시의 전설(urban legend)을 되풀이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하버드 대학의 천문학자이며, 역사가인 오웬 징거리치(Owen Gingerich)는 그의 생애의 많은 부분을 역사 기록을 바르게 정립하는데 바쳤다. 징거리치는 'An Annotated Census of Copernicus’ De Revolutionibus' 라는 제목의 이전 책에서 30년 동안의 프로젝트 결과를 출판하였다. 그 책은 알려진 원본들에 대한 각각의 복사본들을 게재하였고, 코페르니쿠스의 책(‘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이 전 유럽에 걸쳐 배포되었고 토론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꼼꼼하게 그 당시의 독자들에 의해서 기록된 수백의 주변 노트들을 분석하였다. 이제 징거리치는 그의 결과물들을 새로운 책, 'The Book Nobody Read : Chasing the Revolutions of Nicolaus Copernicus” (Walker, New York, 2004) 으로 출판함으로서 더 재미있고 접근 가능한 형태로 만들었다. 이 책은 2004. 4. 28일자 사이언스(Science)1 지에서 피터 바커(Peter Barker)에 의해 리뷰되었다. ('De Revolutionibus 은 아무도 읽지 않는 책(the book nobody read)' 이었다는 아더 코스틀러(Arthur Koestler)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징거리치는 책의 제목을 코스틀러의 주장으로부터 취했다). 여기에 바커의 리뷰에서 나타난 도시 전설의 몇 가지 수정사항들을 제시한다.
● 코페르니쿠스는 그의 원고를 젊은 루터교인이며, 수학자인 레티쿠스(Georg Joachim Rheticus)에게 위탁했다.
● 책은 루터교인인 인쇄업자에 의해서 뉘른베르크(Nuremberg)에서 출판되었다.
● 한 루터교 성직자는 책에 사인 없이 서문을 추가했다.
● 프러시아의 군주는 루터교도였고, ‘De Revolutionibus’를 출판했던 사회에서 후원자였다.
● ”나이 많은 가톨릭교도가 교황에게 헌정된 그의 천문학 책을 일단의 개신교도들에게 위탁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커는 묻고 있다. ”뉘른베르크 인쇄업자들의 전문적 지식이 확실히 한 요인이었다. 아마도 코페르니쿠스는 지방의 주교(bishop)로부터 그가 보호되기 위해서 프러시아의 군주를 또한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가톨릭의 반대가 아마도 지역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 루터교의 수학자들은 열망하여 그 책을 얻었고, 그것을 공부했고, 그것에 기록을 했고, 그들의 친구들에게 복사본들을 건네주었다. 많은 루터교도들은 아직도 고정된 지구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대게 코페르니쿠스의 모델을 받아들였고, 감사해했다.
● 루터교도인 티코 브라헤(Tycho Brahe)는 그 책의 많은 복사본들을 소유했다. 바커는 말한다. 징거리치 연구에서 ‘매우 놀랄만한’ 점은, 브라헤는 그의 태양중심적인 대체 모델을 신사이며 여행가였던 폴 위치(Paul Wittich)로부터 얻었다는 것이다.
● ”프톨레미의 천문학은 그것이 주전원(epicycles)들에 과도한 부담이 되었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았다.” 바커는 말한다. '실제로, 코페르니쿠스의 전 후의 천문학자들은 단순한 하나의 주전원 계를 사용했는데, 가끔 코페르니쿠스 자신에 의해서 사용된 하나의 작은 주전원에 의해 증대되곤 했다.”
● 코페르니쿠스의 모델은 엄밀하게 말하면 태양중심설이 아니다. ”사실, 그의 계의 중심으로서 어떤 지점을 간주해야 하는지 말하는 것은 꽤 어렵다.” 그 모델은 관측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더 수학적인 것이었다.
● 바커는 놀라움을 표하며 언급하고 있다. ”또 하나의 예상외의 발견은, 갈릴레오 사건의 여파로서 (Galileo biography을 보라), 코페르니쿠스의 책을 정정하려는 교회의 시도는 대부분 효과가 없었다.”
”징거리치의 평가에 의해서 재강조되는 점은, De Revolutionibus의 인쇄된 원본은 400에서 500권 사이였는데, 그의 조사(Census)에 의하면 이들 중 277권이 남아있는 것으로 살펴볼 때, 책이 실제로 파괴되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탈리아 밖에서, 심지어 가톨릭의 국가에서도 교회의 명령으로 수정된 복사본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바커는 우주에서의 우리의 위치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던 획기적인 책에 관한 진실을 밝혀보기 위한 징거리치의 ”놀라운 추적”을 칭찬하고 있다. ”그의 서술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초기 현대 과학의 역사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일으킬 것이다.”
1Peter Barker, 'A History Recorded in the Margins,” Science Vol 304, Issue 5671, 686, 30 April 2004, [DOI: 10.1126/science.1097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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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거리치 박사는 잘못 알려졌던 도시 전설에 대한 이러한 정정을 해줌으로서, 역사에 대한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위대한 공헌을 하였다. 16세기 과학적 전진의 적대세력은 루터교인도 아니고, 가톨릭교인도 아니며, 아리스토텔레스학파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말하자면, 루터(Luther)가 코페르니쿠스를 바보(fool)라고 불렀다는 도시의 전설은 의심스러운 것이다. 루터가 말했던 것들, 또는 의미했던 것들은 한참 후까지 기록되지 않았다. 그리고 의미의 전달이 잘못될 수도 있었다. 도날드 코브에 의한 Leadership U 분석을 보라.
De Revolutionibus이 현대의 코페르니쿠스 원리를 이끌어 냈는지는 또 하나의 의문이다. 최근까지, 천문학자들은 지구는 우주의 물질 체계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가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궁극적으로 코페르니쿠스의 모델을 외삽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De Revolutionibus 만큼 혁명적일 수 있는 새로운 책에 의해서 도전받고 있다. 그 책은 곤잘레스(Gonzalez)와 리챠드(Richards)에 의해서 쓰여진 ‘특별한 행성(The Privileged Planet)‘ 이다. 우리는 이것이 웹 사이트의 대화방 등에서 어떠한 주변 노트를 얻게 될 지, 또는 다윈의 교회가 그 책을 무시하는데 성공할 것인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04/04/lutherans_helped_copernicus/
출처 - CEH, 2004. 4. 30.
예수님에 관한 고고학적 증거는 발견된 적이 있는가?
(Has Archaeological Evidence for Jesus Been Discovered?)
Dr. John D. Morris
회의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실존에 관한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된 적이 없다는 점을 가끔 지적하곤 한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 그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최소한 현재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최근의 발견이 어쩌면 그들의 말을 잠재울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한 가지 부차적인 문제가 있는데, 우선은 이 문제부터 먼저 고려하여야 할 것 같다. 그와 같은 유물이나 비명 따위를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한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인간 예수는 어느 정부의 특출한 지도자는 아니었다. 그는 본질적으로 거의 무일푼의 유랑 설교자로서, 결국에는 보통의 무법자의 죽음을 죽었던 것이다. 로마 사람들이 그의 비명이나 동상이라도 세워 기록할 이유가 있었을까? 확실히 없었다.

실제로 그 시대 전반에 걸친 유대의 고고학적 유물들은 오히려 희박한 편이다. 로마 제국의 도시들과, 헤롯(Herod) 왕, 빌라도(Pilate) 총독, 그리고 베스도(Festus) 같은 지도자들에 관한 적절한 비명이 기록된 거대하고 광범한 유물들이 남아있다. 그리고 가야바(Caiaphas)와 같은 영향력이 있는 유대 인사들의 유물도 역시 남아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의 삶에 관한 기록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게다가 주후 70년대에 예루살렘은 티투스 로마황제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대로 남아있던 유물들도 현대의 번창하는 도시건축으로 매몰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모든 조건들은 유물보전에 친화적이 아니란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에 관한 고고학적 유물이 거의 전무한 사실은 풍부한 그의 역사적 증거와는 대조적이다.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기록한지 얼마 후, 뒤이어진 바울의 편지들이 그 때에 살던 사람들이 생존하고 있는 동안에 이미 복사되고 널리 전파되었던 것이다. 로마의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그리스도/메시아로 불려졌던 예수의 아우인 야고보(James)라는 사람의 사형집행 사건을 포함하여 중요한 민사사건들에 관해 언급했는데, 그의 언급에서 그는 틀림없이 예수의 아우인 야고보를 지칭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야고보는 초기교회의 지도자였으며, 자기 이름으로 되어 있는 야고보서의 저자이기도 하다.
새로 발견된 유물은 중간 크기의 상자로서, 죽은 자의 살이 완전히 삭은 후 인골만을 추려서 영구 매장하는 납골궤(ossuary, 뼈단지)였다. 이 매장제도는 BC 20년대에서부터 AD 70년대까지 짧은 기간에 시행되었다. 그 궤는 그 지방에 흔한 부드러운 백악질의 석회석으로 되어있었다. 그 내용물은 오래 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궤의 한 쪽 측면에 글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그 글은 당시의 아람어로 '야고보, 요셉의 아들, 예수의 아우 (James, son of Joseph, brother of Jesus)' 라고 되어있었다. 전자현미경 스캐닝을 포함하여 세밀한 분석조사 결과 그 각명(刻銘)은 진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궤의 표면에 고루 녹슨 녹청은 각인된 글자들의 내면까지 덮고 있었다. 고고학적 유물평가의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앙드레 러맬 박사 (Dr. Andre Lemaire)는, '이 고대유물이 가짜가 아닌 진품이라는 나의 판단을 보고하게 되어 나는 기쁘다' 라고 말했다.
세 사람의 이름을 사용하는 습관은 그 지역에서는 보통이었다. 그러나 형제가 유명인사가 아닌 이상, 죽은 자의 형제의 이름은 사용하는 예는 드물었다. 기록되어 있는 세 사람의 관계가 성경에 기록된 관계와 꼭 들어맞게 되어있는 것을 보면, 납골궤에 수장된 주인공은 성경의 야고보일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고 하겠다.
납골궤는 물론 다른 고고학적 유물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그 사건들이 참이라는 우리의 확신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 크리스천의 믿음은 역사적 사실들 위에 근거한 합리적인 믿음이다. 그리고 성경은 온전히 정확한 기록이다.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우리들은 우리들의 삶과 영원한 생명을 바라볼 수 있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has-archaeological-evidence-for-jesus-been-discove
출처 - ICR, 2002. 12. 1.
베들레헴의 별은 무엇이었을까?
(What was the Star of Bethlehem?)
Don DeYoung
크리스마스 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세 가지가 언급될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그 별은 왕들의 탄생과 같이 역사 속에서 중요한 일들이 발생할 때 전통적으로 생각하던 혜성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혜성의 관측 기록은 주의 탄생과 합치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헬리 혜성은 기원 전 11년에 있었고, 첫 크리스마스는 BC 5~7년 사이에 일어났다.
다른 학자들은 베들레헴의 별은 밤 하늘에 일어났던 행성들의 근접 현상이었다고 믿고 있다. 행성들은 태양의 둘레를 각각의 거리에서 다른 속도로 공전하기 때문에 행성들은 때때로 서로 근접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여러 행성들이 단일한 광원으로 보일 것 같지는 않다. 또한 행성 직렬은 다소 자주 있으며 그렇게 드문 편이 아니다. 기원전 6년에 목성과 토성의 근접이 있었지만, 훨씬 전인 기원전 66 년에 훨씬 더 가까운 근접현상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별을 설명하기 위해 폭발하는 별, 또는 초신성(supernova)이 제안되었다. 어떤 별들은 불안정하여 밝은 빛을 내며 폭발한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기록에는 예수님이 탄생하던 시기에 초신성에 대한 기록이 없다.
베들레헴 별에 대한 위 세 가지 설명 모두 다 민수기 24장 17절에 예언되었고, 마태복음 2장 1절에서 12절까지 기록된 본래 이야기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두 사건은 특별히 흥미가 있다.
첫째는 본문에 따르면 동방박사들만 그 별을 보았다는 것이다. 혜성의 출현이나, 행성 직렬, 혹은 초신성이었다면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그 별이 동방박사들 앞서 갔으며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그들을 인도했다는 것이다. 이 거리는 약 10km (6마일)이며 북쪽에서 남쪽 방향이다. 그렇지만 하늘에 있는 모든 천체는 지구의 자전으로 동에서 서로 움직이므로 별이 어떤 특별한 집으로 길을 인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결론은 베들레헴의 별은 과학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시적인 초자연적인 빛이었다. 첫 크리스마스는 기적의 시간이지 않은가?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채웠던 영광 (출애굽기 40:34-38), 성전을 채웠던 영광(열왕기상 8:11)과 사도 바울을 비췄던 빛(사도행전 9:3)처럼 종종 초자연적인 빛으로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셨다.
하나님의 현전에 대한 그러한 가시적인 징조는 세키나 영광(Skekinah Glory), 혹은 하나님의 임재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특별한 광채는 신성의 위엄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첫 크리스마스의 위대한 신비는 특별한 별의 기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세주께로 인도하는 별을 따라가도록 동방박사들이 선택된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똑같은 초대를 받은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참조 : The Star of Bethlehem : A Supernatural Sign in the Heavens?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1/n2/star-of-bethlehem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2002/1224star.asp
출처 - AIG, 24 December 2002.
노아 방주에 탄 정결한 짐승들의 수는 성경의 오류인가?
김홍석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창 7:2-3)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창 7:8-9)
자주 성경의 오류로 주장되는 구절은 노아의 방주에 태워진 정결한 짐승들의 수에 관한 것이다. 히브리 성서 맛소라 텍스트는 이에 대하여 분명하게 보여준다. 창 7:2절에서 정결한 짐승은 “쉬브아 쉬브아 이쉬 이솨”(일곱 일곱 수 암)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수컷 일곱 마리 암컷 일곱 마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곱 쌍이다. 부정한 것은 “쉐나임 이쉬 이솨”(둘 수 암)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수컷과 암컷(을 합하여) 두 마리”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한 쌍이다. 또한 창 7:3절에서 공중의 새도 “쉬브아 쉬브아 자카르 네케바”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수컷 일곱 마리 암컷 일곱 마리”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일곱 쌍이다.
그렇다면 창 7:8절에서 노아 방주로 들어갈 때 둘씩 들어갔다는 것은 무엇인가? 창 7:8절에서 “암수 둘씩”이란 “쉐나임 쉐나임”(둘 둘) 나아와서 “자카르 네케바”(수 암)가 방주로 들어갔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암수 둘씩(two and two)이란 의미는 노아에게 나아오는 모습과 방주로 들어가는 모습에 대한 묘사인 것이다.
*한 무신론자의 주장 <James Patrick Holding의 글>
한 무신론자는 노아 방주에 7쌍의 암수가 태워진 것에 대하여 이렇게 비판하고 있었다 :
“암수 7쌍을 취하는 이러한 생각은 여호와가 축산업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농부나 목장주도 소, 양, 말 등의 동물을 키우는 사업을 할 때 암수의 숫자를 똑같이 구매하지 않는다. 1 마리의 숫소와 13 마리의 암소, 또는 1 마리의 숫양과 13 마리의 암양을 구매하는 것이, 암수 각각 7 마리씩 구매하는 것보다 초기 투자 시에 매우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1 마리의 수컷이 13 마리의 암컷과 교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이러한 이야기가 쓰여졌다는 것은 그 저자가 동물들의 번식에 대해 빈약한 지식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한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이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한 번에 많은 새끼들을 낳는다. 코끼리를 생각해 보자. 아프리카 코끼리는 14살 정도에 번식할 수 있는 연령이 된다. 코끼리의 임신 기간은 평균 670일 이다. 반면에 인도코끼리들은 좀 더 일찍 성숙하고 좀 더 짧은 임신기간을 갖는다. 그래서 한 쌍의 코끼리가 25살의 나이에 4마리의 자손을 가졌을 것으로 가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코끼리의 개체 수는 100년 동안에 줄잡아 4번이나 2배가 될 수 있다(새끼들이 젖을 뗀 후, 부모 세대들이 곧 죽었다할지라도). 개체 수가 2배로 되는 것이 22번 일어나면 800만을 넘어선다. 이 숫자는 단지 550년(22×25)이면 도달될 수 있는 숫자이다.”
그리고 방주에 수컷을 한 마리만 태우는 것은 유전적 다양성을 위해서도 적절하지 않다.
또 다른 성경비판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
“이스라엘 자손들의 인구수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바로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에서, 바로는 모든 신민에게 히브리 여인들이 남자 아기를 낳으면 죽이고, 여자여든 살려두라고 명령한다(출 1:22). 이것은 인구수를 줄일 수 없는 멍청한 계획이다. 왜냐하면 인구성장률은 임신이 불가능한 남자의 수가 아니라, (그 그룹에 임신을 시킬 수 있는 적어도 한 남자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임신이 가능한 여자들의 수에 의존한다. 바로는 그 당시에 태어난 모든 남자 아기들을 죽이는데 성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구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살아남아 성숙해진 여자들은 이미 살아있었던 많은 나이든 남자들과 민족의 인구수를 늘리기 위해서 기꺼이 그들의 의무를 다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든 남성이 ”이 사랑스런 여인은 너무 젊어서 아내로 맞이하기에는 부끄럽소“ 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만약 바로가 약간의 상식을 가졌었다면, 또는 이 허풍적인 이야기를 지어낸 작가가 약간의 상식을 가졌었더라면, 그 이야기는 바로가 히브리 여인들에서 태어난 모든 여자 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었다고 썼을 것이다.”
의견을 구했던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정말 바보스러운 말이다. 기독교의 근본 교리가 바로가 상식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에 달려있는가? 그리고 바로는 하나님의 권능을 본 후에도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했었다. 어떤 경우에서든지 남자들은 무기를 잡고 전쟁을 할 수 있다. 반면에 여자들은 노예로서 많은 일들을 부려먹을 수 있다. ‘고대 사람들이 우둔했다’ 라고 말하는 것 외에도 연대기적 속물근성이 비판론자들 사이에 만연하고 있다. 오! 바로는 여자들이 태어나는 것을 허락함으로서 여자들이 인구성장률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