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기술된 인간의 초기 역사 4
유종호
8. 고도로 발달되고, 기술 지향적인 사람들
이 사람들은 어떤 형태의 문명을 가지고 있었을까? 범죄 하기 이전의 아담과 이브는 모든 시대 가운데서도 가장 완전하였고, 결함이 없었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언어와 지구상의 모든 동물과 식물과 광물들에 관한 가장 놀랄 만큼의 지식을 갖춘 영명한 지능을 부여받았다. 아담과 이브는 지구상의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고, 또 그 모든 것들을 지배했다. 그들은 이런 능력과 천부적 특권을 가지고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만들어 주신 만물에 대하여 통치자로서, 주인으로서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창작할 수가 있었다. 아담은 틀림없이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장과 도구들을 즉시로 만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가 불을 사용하기까지는 진화론자들이 선사시대 사람들이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 것처럼 그렇게 수백만 년의 긴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아담과 이브가 그들의 생각과 말을 글로 표현하고 계산을 시작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창 4:17에 보면 아담의 아들인 가인은 두 번째의 세대인데 이미 도시를 건설하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서 아담의 후손이나 어쩌면 아담 자신이 직접 광물들을 캐내고 제련해서 모든 종류의 금속제 도구, 무기들, 현악기나 오르간형의 악기 등 금속으로 물건을 제작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쉽게 문명을 발달시키고 일찍이 초기 이집트인들이나 수메르인들이 지었던 것들보다 훨씬 우수한 건물들과 구조물들을 지을 수 있었다. 진화론자들이 선사시대라고 부르는 것보다 훨씬 전에 아담과 이브와 그들의 후손들은 연장들과 발명품들과 금속제품들을 만들고 있었다. 진화론자들이 수백만 년 전으로 소급된 인간들의 골동품들에 대해 기록하면서도 그들이 선사시대라고 명명한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지능과 능력들이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았거나 오히려 우수했으리라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만일 오늘날 우리가 엄청난 폭풍우(이 지구에 전무후무하리만큼 그리고 지구가 통째로 뒤집힐 만큼의)로 인하여 경천동지할 정도로 격변적이고 흙탕으로 뒤덮였던 시기의 땅 위에 쌓인 수천 피트의 석회암 지층을 파내려 갈 수 있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당시에 존재했던 선진 문명에 접하고 엄청나게 경악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노아와 그의 자녀들(아마도 당시의 고용인들과 함께)이 이처럼 모든 격식들을 갖춘 3층 구조의 대형 방주를 지을 수 있었다고 믿기를 어려워한다. 노아와 그의 아들들이 가졌던 상당한 수학지식과 공구의 사용과 발달된 건축기술을 갖춘 조선과 설계 기술의 능력은 홍수 이후의 시대로 자연스럽게 전수되었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이 초기 이집트와 수메르에서 발견된 건축술과 문명이 홍수 이전의 기술과 건축술로부터 자연스럽게 이전되었을 것이라는 이유이다.
이집트와 수메르와 기타 갑자기 출현한 경이로운 문명들은, 만일에 그들이 노아와 그의 자손들로부터 홍수 이전의 기술들을 전수 받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만일 전 세계적인 파괴적 홍수에서 파괴되어버린 문명이 이집트와 수메르보다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가장 단단한 화강암으로 된 피라미드와 조각품들과 조상(彫像)들과 스핑크스들, 그리고 글을 쓰는 능력, 고도로 조직적인 정부, 모든 종류의 기능과 기술들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인구가 수백만으로 증가되었고, 온 지구에 분포된 큰 집단으로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도의 문화 문명을 달성했을 것이다. 이것은 일반 역사책이 인류의 역사를 반원(半猿), 반인, 미개인, 원시인, 야만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기술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인류사에 있어 황금기였다. 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진화론적 역사책은 인간을 오늘날의 가장 퇴보된 야만인들보다도 더 미개하고 무력하게 그리기를 좋아한다 (이 책의 세 번째 단락의 웨스트(W. West)로부터의 인용을 보라).
특히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춤으로써, 홍수 이전에 단 하나의 언어만 있었던 이래 여러 기록들과 역사들은 구어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씌어진 기록들에 의해서도 전해져 내려 왔다. 홍수 이전에 사람이 생산했거나 지은 모든 것들은 홍수가 나서 파괴되어 버렸거나, 대부분은 바위가 되어버린 수백 내지 수천 피트 지하의 진흙 속에 묻혀 버렸기 때문에, 이 모든 기록들도 상실되었다. 그러나 홍수 이전의 모든 기록들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노아와 그의 자손들이 이전 세대로부터 전수 받은 기술과 건축의 노하우뿐만 아니라, 홍수 이전 족장들의 명단, 그들의 나이, 그리고 자녀들에 관한 사항까지 다음 세대로 물려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날 성경이 홍수 이전의 자세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에덴동산에서 약속된 구세주인 “한 여자의 후손”의 조상들이 되었던 가장 중요한 몇몇 인물들의 이름과 그들에 관한 사항들을 알고 있는 것이다.
9. ‘오파츠 (OOPARTS)'
홍수 이전 문명이 번성하였다는 또 하나의 성경 외의 근거는 '오파츠(OOPARTS, Out Of Place ARTifactS, 고고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로서 있어서는 안 될 장소에 있는 유물, 또는 시대와 일치하지 않는 인공물)'에 관한 연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것은 분명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oopart'는 '장외의' 인공물이다. 이 오파츠는 고고학자들이 고대 문명을 발굴할 때 발견한 인공물 혹은 물체들인데, 혹자들은 이것들이 틀림없이 이 사람들이 가졌으리라고 생각하는 문명 이전 사람들의 장외 문명인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어떤 고고학자들은 르네 누어버겐(Rene Noorbergen) 저 1977년 판 <잃어버린 종족의 비밀들> 2쪽에 의거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많은 경우에 오파츠의 기술적 정교성이 그들의 유물들이 발견되는 고대인들의 발명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이 오파츠가 인류 역사보다 훨씬 이전에 인간 기원의 슈퍼문명과 발전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가능할까? 멀리서 아득히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 같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것의 그런 존재 가능성은 무엇인가? 인류역사에 오늘날 20세기 사회와 비견되거나 어쩌면 더욱 발달되었던 문명(들)이 존재했던 한 기간이 존재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4쪽에서 그는 내가 몇 단락 전에서 언급했던 것과 비슷한 생각을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다.
“자연계의 대격변(그는 대홍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은 홍수 이전 사람들을 매몰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기술적 성취들도 철저히 파괴시켜 버렸다. 왜냐하면 이 엄청난 대 지각변동은 어떤 형태의 기계나 구조물도 확실하게 말살시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그리고 그가 말한 많은 것 가운데 과학적(나는 그렇게 말해야겠는데) 언급이 21쪽에 있다. 즉:
“모든 인간을 파멸시켰던 홍수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은 고고학, 지질학, 전통적 역사, 그리고 성경적 역사를 종합적으로 연계시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 분의 이런 판단이 얼마나 정확한지! 나는 내가 책을 쓰면서 이것을 입수하기 전까지는 이 진술을 보지 못했다. 고고학 분야에서 진화론의 비논리성과 이집트 문명과 전통적인 세속 역사에서 그리고 바로 지금은 성경의 역사에 나와 있는 다른 발달된 사람들에 대하여 내가 저술한 것을 보면서, 나는 한 가지의 주제 즉 지질학을 더 고려해야겠는데 이것은 노아의 홍수시대를 분석할 때 취급될 것이다.
거론된 몇몇 오파츠에는 1967년 콜로라도주 굴만 광산의 지하 120m에 있는 은 광맥에서 발견된 사람의 뼈와 4인치 길이의 구리 화살촉이 있다. 매서추세츠주 도체스터 광산에서 1891년에 표면으로부터 4.5m 지하에 있는 견고한 암석에서 다이나마이트로 폭파하여 꺼낸 금속제 화병도 또 다른 오파츠이다. 그 화병의 측면은 은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1891년 일리노이 주 모리슨빌에서는 정교한 솜씨로 된 금 사슬이, 둘로 쪼개진 석탄 덩어리에서 발견되었다. 그와 같은 많은 오파츠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곤 했다. 건전지와 전기에 대한 당시의 노하우가 있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만일 오늘날 존재하는 어떤 인간보다도 훨씬 우수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신뢰를 우리가 하나님께 돌리기를 원한다면 위의 모든 것은 가능하다.
누어버겐은 그의 책 205쪽에서 요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즉;
"정통 역사학자들의 주된 가정(우리의 문명이 원시적인 시작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왔다고 하는)은 지금은 매우 심각하게 도전 받을 수가 있다. 오파츠, 성경의 역사, 고고학, 지질학, 고생물학, 그리고 일반적인 상식들이 우리를 그런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우리의 초기 조상들이, 문명의 모든 측면에서 오늘날 우리를 능가하는 사회를 창조하셨다는 증거의 비중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10. 거대한 체구
홍수 이전 또는 아담 후의 사람들에 관하여 언급하여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거대한 체구이다. 우선 지구의 초기 시대의 동물들의 크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나의 반 친구요 연구소 행정관인 힐버트 R 시글러는 그의 탁월한 저서 <진화? 퇴보? 어느 쪽?>의 22쪽에서
“최초로 창조된 동물과 식물은 유전학적 잠재력 때문뿐만 아니라 형태학적 관점에서도 우수하였다. 사실 과거의 척추동물들은 크기와 지능지수에 있어서나 급박한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에 있어서도 매우 우수했다.”
누구나 거대한 공룡과 친숙하다. 공룡의 뼈 화석들이 있는 거대한 지층들이 세계의 곳곳에서 발견되어 오고 있다. 그들은 중서부 전역, 블렉 힐, 로키산맥 일대, 그리고 고비사막에서 발견되어 왔다. 콜로라도 주와 유타 주에 있는 국립 공룡 유적지에는 300마리 이상의 여러 종류의 공룡 뼈들이 발견되었다.
캐나다 앨버타의 붉은 사슴 계곡에는 수 천 마리에 이르는 26종의 공룡들이 발견되었다. 어떤 것은 길이가 24-45m 이상이고, 어떤 거대한 공룡은 무게가 40톤이나 되었다.
대형 매머드가 시베리아와 알래스카에서 발견되었다. 알래스카 코디액 곰을 마치 난쟁이처럼 보이게 하는 어떤 대형 곰들도 발견되었다. 당시의 조류들은 지금의 가장 큰 타조보다도 60cm나 더 큰 3m 였다. 어떤 조류들은 편 날개 길이가 7.5-9m 였고, 부피가 2 갤런, 지름이 28cm 크기의 알을 낳았다. 길이가 3.6m 되는 거북이도 발견되었다. 타조의 화석은 기린만큼 컸다. 박쥐 화석은 편 날개의 길이가 4.5m 였고 양(sheep) 만큼이나 컸다. 모든 거대 동물의 뼈 화석들은 모두 전 세계에 걸쳐 석회석과 암상(巖床)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초의 인류도 지금 보다는 훨씬 컸으리라고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중국에는 옛날에 오늘날 우리보다도 2배나 큰 사람들이 아름다운 땅에서 살았는데 자연의 법칙대로 살지 않아서 그 땅을 잃어버렸다는 우화가 있다. 창세기 6:4절은 홍수 직전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당시에 땅에 네피림(거인들)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창 6:4).
아마도 그들은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이집트)에서 귀환했을 때,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팔레스틴에서 만나게 되었던 사람들만큼 컸거나 그들보다도 더 컸을 것 같다.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 3:33).
우리 모두는 다윗과 거인 골리앗 이야기에 친숙하다. 홍수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나타나며 힘이 세고 영웅적이고 유명하고 걸출한 사람들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당대의 영웅이나 귀인으로 존경을 받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들이 원숭이에서 온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여러 분야에서 고도로 숙련되고 정교하고 발달되고 매우 유능하였다.
어떤 사람들이 이것을 성경에 나오는 “신화”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나는 룻 무어가 1953년에 저술한 진화론 서적인 <인간, 시간 그리고 화석>에 대하여 언급고자 한다. 그녀는 그 책의 249쪽에서 자바에서 발견되어 1941년에 미국 자연사 박물관의 T. 바이덴라이히 박사에게 보내졌던 거대한 턱과 이빨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바이덴라이히 박사와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거인(네피림)의 턱뼈라고 믿었다. 그는 그 뼈를 영어로 “고대 자바의 거인” 이라는 단순한 뜻의 메간트로푸스 팔레오 자바니쿠스라고 명명했다. 그는 인간의 조상들은 실로 거인들이었으나, 이것은 진화론 사상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다.
룻 무어는 상기한 그녀의 책 250-251쪽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바이덴라이히는 이 고대의 거인들이 엄청나게 거대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빨과 뼈들을 살아있는 동물들의 것과 비교하고 해부학적으로 신중하게 측정해 보고나서 그는 자바의 거인은 살아 있는 어떤 고릴라보다도 훨씬 컸고 중국의 거인은 1.5배나 컸다고 결론지었다. 그것은 숫 고릴라의 두 배나 컸을 것이다! ("당시에는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라는 창 6:4의 성경 말씀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바이덴라이히의 책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한다). 나는 이 모든 형태가 인간에게도 적용되어야 하고 그것이 추적될 수 있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거인들에게까지 이른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거인들이 직접 인간의 조상일지도 모른다.”
거인의 화석들은 자바나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남아프리카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류학자인 로버트 브룸에 의해서 트래시 바이덴라이히 박사에게 보고되었다. 오늘날 진화론자들은 자기 자신들의 이론과는 반대로 유사한 발견들을 보고한다. 1985년 11월 판 내셔날 지오그래픽은 629쪽에 괄목할만한 내용을 싣고 있다.
“키가 160cm인 트루카나 출신 소년은 같은 나이의 현대 소년들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크다. 그는 180cm 까지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 옷을 잘 어울리게 입고 낮은 이마와 튀어나온 광대뼈를 가리는 모자를 쓰고 있으면, 그는 아마도 현대인의 군중 속에서도 눈에 잘 띄지 않을 것이다. 이 발견은 인류가 수천 년 넘게 성장해 왔다고 오랫동안 지녀왔던 생각과 모순되는 호모 에렉투스에 대한 그 이전의 발견들을 연상시켜 준다. 아프리카 사바나의 우리 조상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상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우람했을지도 모른다. 더 열악한 환경에 있는 일부의 사람들은 최근에 상당히 적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실로 우리는 1백5십만 년 전에 이미 현대인의 평균 체구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초기시대에 살았던 화려하고 거대한 이런 인간들을 보면서, 어떤 이들은 그들의 거대한 체구야말로 이집트, 수메르, 프랑스, 영국, 이스터 섬들과 기타 지역에서 어떻게 그토록 어마어마한 빌딩과 석조물들을 건설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들이 그들의 거대하고 억센 근육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번뜩거리는 기지를 마음껏 발휘하였음을 확신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읽고서 나는 가끔 할리우드가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주목할 만한 화두를 놓쳤는가를 의아하게 생각한다.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내셔날 지오그래픽, 타임지, 리더스 다이제스트, 모든 신문 잡지, TV, 그리고 저술가들도 지구의 창조 이래 전 시대를 통해 최대 사건의 하나인 지구를 격변적으로 파괴한 대홍수와 인간의 구세주인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빼먹고 있다. 할리우드에게 지구 초기의 지적이고 고도로 기능적이고 발달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보다도 더 좋은 이야기가 있을까?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성경에 기술된 인간의 초기 역사 3
유종호
6. 창세기의 첫 번째 4장들은 수백 년이 포함되어 있다.
아담과 이브 그리고 그들의 자녀, 손자, 증손자 등등 지구상의 첫 인류들과 관련하여 독자는 창세기의 앞부분인 2, 3, 4장들을 읽으면서 거기에 기록된 사건들은 매우 짧은 기간에 발생했다는 인상을 가지게 될 것이다. 거기에서 다뤄진 역사의 주된 목적은 인간이 어떻게 자기의 창조자 하나님을 배반하였는지, 죄를 범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로부터 어떻게 치유하고 구원하시는 지와 구세주인 구원자가 오시게 될 후예들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분명히 상당한 기간이 빠져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위해 준비하신 집인 에덴동산에서 그들은 상당 기간 동안에는 분명히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다.
그런데 선악을 알게 하는 금단의 과일을 먹음으로써 곧바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했다. 그들이 각각 이름이 붙여진 4개의 강(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으로 나누어서 관류하던 에덴동산에 대해서 알았다는 사실은 그들이 광범위한 지역을 탐사하기에 충분할 만큼 그곳에서 오래 살았다는 것과 그들 및 후손들이 거주한 중동의 광활한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했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하윌라 땅에서 금, 은, 보석이 발견된 것은 이 지역이 탐사되었고 따라서 상당한 세월이 흘렀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므로 아담과 이브의 창조됨,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과 그에 대한 배반, 하나님의 장중에서 사탄에게로 타락한 사건들 사이에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랜 기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타락은 아담과 이브의 죄성을 이어받은 그들의 첫 아이를 임신하기 이전이었을 것이다.
또한 창세기 4장에 기록된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상당한 기간의 시간을 요한다. 이 형제는 둘 다 함께 성인으로 성장했고 그때까지 굉장히 많은 형제자매들이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 아담과 이브는 창 1:28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젊었을 때뿐만 아니라 나이를 많이 먹어가면서도 매우 많은 자녀를 두게 되었다. 다산성이었던 초기 인간들의 임신 기간은 현대인들의 50세보다도 훨씬 길었을 것이다. 가인과 아벨은 둘 다 쉽게 사냥을 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을 만큼 성장을 했다. 가인과 아벨은 가인이 자기의 동생을 죽인 인류 사상 최초의 살인 사건이 있기 전에, 그들의 가족과 함께 이미 가축을 사육하고 과일과 채소와 곡식을 재배하고 있었다. 실제로 창 4:3에는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라고 말한다.
우리의 첫 조상이 하나님의 단순한 명령을 불순종하여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분리되었을 때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짓고 하나님으로부터 타락했지만, 가인이 그의 동생 아벨을 죽였을 때 또 한 번 하나님과 멀어지고 분리되는 사건이 생겼다. 가인과 그의 자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다른 형제자매 일가친척들과도 더욱 멀어지고 분리되었다. 살인으로 인하여 도망자가 되고 방랑자가 되는 저주가 그에게 내려졌다. 가인은 하나님께 이 형벌은 견딜 수가 없을 만큼 심하다고 불평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한 표를 찍어 주면서 보호를 약속했다. 그리고 창세기 4장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가인의 후손 중에 첫 번째의 가장 뛰어난 자들과 그들이 종사하게 된 일들과 솜씨들이 언급되어 있다.
에녹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인의 아들은 이미 수많은 후손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 도시를 건설하고 자기 이름을 따라 그 도시의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창세기 4:18에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고 계속된다.
아담으로부터 5대손 또는 가인의 가계로 따져 증손자(만일 'begat' 이라는 단어가 구약 연대기에서 씌어진 방식 때문에 세대들이 빠지지 않았다면)에 관하여, 이 땅의 물질로 만든 큰 진보가 있었다는 큰 증거가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셨다. 라멕은 아다와 씰라라는 두 부인들을 두었는데, 그녀들은 라멕에서 딸들과 함께 유명한 세 아들들을 낳았다. 야발과 그 후손들은 짐승들을 치면서 장막에서 살았다. 유발과 그 후손들은 노래를 잘 부르고, 하프와 풍금과 아마도 다른 악기들을 잘 탔을 것이다. 두발가인과 그의 후손들은 황동과 철로 금속제품을 열심히 만들고 구리와 주석으로도 제품을 만들었다. 이것이 지구상에서 발달된 금속제품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다. 가인의 자손들의 생활과 생각들은 점점 이 세상의 일과 향락을 지향했다. 아다는 “치장을 한 자”라는 뜻이고, 씰라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자“라는 뜻이며, 딸 나아마는 ”예쁜 자“라는 뜻임을 볼 때, 그의 부인들에게 주어진 이름에서도 이것을 엿볼 수 있다.
창세기 5장에는 에덴동산에서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으로서 구세주인 여자의 씨가 나오게 될, 아담과 이브의 가장 훌륭하고 중요한 아들인 셋과 그의 자손들에 관한 기사가 계속된다. 그의 아들인 셋을 통한 아담의 계보가 나온 후에 아담의 8대손인 또 다른 라멕에 이르게 된다. 이 라멕은 노아의 아버지이다. 만일 'begat' 이라는 단어의 광의적 적용으로 몇 세대가 누락되지 않았다면, 초기 세대들의 장수와 많은 다른 장수 세대와 겹치는 한 세대 때문에 아담과 노아 사이에는 약 1,650년 이상의 년차가 발생했다. 이때까지 하나님에 관한한 하나님의 아들들 또는 죄로부터 구세주를 믿는 자들과, 사람의 딸들(및 아들들) 또는 불신자들이라는 두 가지의 종족 또는 계층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라멕과 그의 아들 노아, 그리고 노아의 세 아들들 즉 셈, 함, 야벳을 언급한 후에 창 6:1-2에는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사람이 땅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따라서 인간이 창조된 지 수 세기가 경과되는 동안 가인의 자손과 셋의 자손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계보로 발전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가인의 후손들을 사람의 자식들이라고 부르시고 셋의 후예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부르셨다. 가인 족은 자기들의 조상을 닮아서 세속적이고 사악했다. 그들은 오래 전에 하나님을 저버렸고 그분께 저항했고 마치 오늘날의 진화론자들이 그러하듯이 그분의 존재마저도 부인한 듯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반역적인 마음과 생각대로 살았다. 이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진화론자들이 오늘날의 사람들을 일컫기를 좋아하는 그러한 최초의 진화론적 인본주의자들, 인간의 능력을 숭배하는 자들, 교만한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 등을 이미 가지고 있지 않았나 싶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이런 배신과 반항과 패역이 오늘날의 양상과 꼭 같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가족과 믿는 자들 속으로까지 확산되었다. 그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도덕의 이완을 드러내는 것이다. 약 1,600년 정도 흘렀을 무렵에는 나중에 살펴보는 바와 같이 인구가 수백만으로 증가했고, 셋의 후손들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아내를 선택함에 있어 영향을 미치는 세속적이며 육적인 고려들을 허용하였던 것이다. 셋 족속의 여인들도 틀림없이 가인 족 남성들에게 유혹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불경건한 이웃들의 영향을 받아서 결국 그들처럼 되었다. 사람의 딸들은 세상이 그들의 인생의 목표를 제공해야하는 모든 향락을 만들었고, 그들의 미모는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유혹의 덫이 되었다. 이런 잡혼의 결과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사람의 자녀들처럼 불경건하고 독신적(瀆神的)이 되고 세속화되었다. 그래서 영웅 숭배자, 인간 숭배자가 되고 결국에는 진화론적 인간들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로부터 보편적 도덕의 타락과 부패 등이 흘러넘쳐서 요원의 불길과 같이 퍼져나가는 악을 초래하였고, 결국 이 세상에 경건한 모든 것을 파괴하여 버렸다. 오늘날 전 세계로 요원의 불처럼 번지고 있는 AIDS와 거의 대부분 성적 문란을 통해 그들 자신들과 타인들에게 밀어 닥치는 치명적인 질병의 치료법을 정부가 해결해 주도록 아우성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혹자는 우리가 마치 노아와 그의 가족들만 유일하게 믿음을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대홍수 직전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는가 하고 의심할 정도이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날에는 당시에 살아남았던 8명의 하나님의 사람들보다는 상당히 더 많은 신실한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도 사악하고 독신적으로 변모한 아담의 후손들에 관하여는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무시하고 불순종하는 인간들의 강한 경향성에 더하여 수많은 요인들이 있어왔다.
분명코 당시의 땅은 홍수 이후보다는 훨씬 더 좋은 기후 조건 때문에 생산성이 매우 높았다. 육지는 잔잔한 안개로 적셔지고 날씨는 온화한 봄날 같았고 토양은 지극히 비옥해서 사람과 동물들은 필요한 모든 먹이들을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참으로 편안한 생활이었다. 또 다른 요인은 인간에게 허용된 900세 이상 되는 수명이다. 당시의 인간들은 오늘날에는 허용되지 않은 부를 가지고 있었다. 아담과 이브의 후손들은 그들이 소유했던 엄청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창조주에 대한 관심을 쉽게 버릴 수도 있었고, 심지어는 창조주가 계셨다는 사실 자체마저 망각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창조자 하나님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했다. 수백 년 동안 죽음을 보지 못한 이들 대부분은 그들이 영원히 살 것이라고 믿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인간들은 하나님에 관한 한 외견상으로는 더욱 쉽게 반체제적 즉, 반하나님적, 하나님을 부인함, 하나님을 대항함 등으로 될 수 있었고, 부패하고 포악하고 패역적으로 되고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기만 했던 것이다.
7. 대가족 수 - 수백만 명의 사람들
아담으로부터 대홍수까지의 인구수에 관련하여, 땅을 채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넓게 개방된 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최소한 10명에서 많게는 50명 혹은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창세기 5장에는 족장들마다 그들의 수가 매우 많음을 시사하면서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홍수가 있은 다음 오랜 후인 사사기 8:30절에서 우리는 기드온이 70명의 아들들이 있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사사기 12:9절에는 입산이 30명의 아들들과 30명의 딸들을 두었고, 12:14절에 압돈은 40명의 아들들을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이집트에 있을 때 “이스라엘 족속이 크게 번창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근래에도 한 가정 안에 10-15명의 자녀들이 있는 경우가 있다. 오하이오 주의 한 흑인 여자는 1946년에 27번째의 아이를 낳았다. 20명 이상의 자녀를 둔 경우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대홍수 이전에 대가족이 되게 한 또 다른 요인은 인간의 수명이 900세 이상이었고, 오늘날의 출산 연령을 훨씬 지난 후까지 자녀를 생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노아는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을 때가 500세였다. 땅의 생산성이 매우 높고 이 지구에서 인간이 활동할 수 있는 땅이 많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땅에 충만하기 위해서는 대가족이 필요했다. 또한 그때는 기후 조건이 훨씬 이상적이고 땅이 비옥해서 식량은 풍부하고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과 사람들의 긴 수명 때문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던 것이다.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인구를 계산에 보면 대홍수 때까지 10억 내지 100억 명의 인구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담으로부터 대홍수까지 1,600년 이상이 걸렸다고 볼 때 오늘 날 만큼의 사람들이 살았을 수도 있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성경에 기술된 인간의 초기 역사 2
유종호
3. 창조와 대홍수 사이의 기간
이때의 사람들과 문명을 생각해 보기 전에 우선 아담-이브에서 대홍수까지의 기간과 아브라함 시대까지는 얼마나 긴지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우리의 많은 영어 성경의 난외주(欄外註)에는 특정 사건의 발생 시기를 말해주는 날짜들이 있다. 이 날자들은 아일랜드 주교였던 제임스 어셔(Ussher, 또는 Usher)에 의해서 계산되었고 1701년판 킹 제임스 번역본 성경에 수록되었다. 어셔는 BC 4,004년을 세계의 창조 년도로 보았고, 그 이후의 어떤 이들은 그 사건이 발생한 날짜의 시각까지도 기술한 바 있다. 진화론자들은 그와 같이 확정된 숫자를 비웃곤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우주의 기원이 150억 년 전이고, 지구의 기원은 46억 년 전이며, 우주가 3분 동안에 빅뱅으로 만들어졌다고 선포하는 진화론자들의 생각에 비하면 그렇게 웃기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계속 논의될 것이다.
어셔는 구약성경에 있는 각기 다른 연대기(시간 간격에 관한 연구)의 날자들을 매우 복잡하게 더하고 빼고 함으로써 이 숫자들을 계산해 내었다. 어셔가 계산한 BC 4,004년은 마소라 학파가 펴낸 히브리어 판 구약성경에 근거한 것이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인 70인 역과 사마리아 오경, 그리고 역사가 요세푸스는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족장들이 첫 아들들을 낳았을 때의 나이를 다르게 잡고 있다.
그래서 구약기간의 길이가 늘어났다. 70인 역은 그 기간을 1,466년으로, 요세푸스는 1201년으로, 사마리아 오경은 301년으로 잡는다. 이와 같이 다른 숫자들도 창조의 일자를 1,500년 이상으로 변경치 못한다. 계산에 넣어야할 또 다른 요소는 구약의 연대기에 있는 ‘begat’ (역자 주: ‘주로 아버지 기준으로 자식을 보다’라는 뜻) 이라는 단어의 용법이다. 창세기 5장과 11장에 있는 구약 족장들의 연대에서 어셔는 begat 이라는 단어를 문자적인 의미로 해석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것같이 보이나, 한편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begat이 고손까지의 단순한 조상을 나타내는 광의로 사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표현은 마 1:8의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라는 구절에도 있다. 그러나 구약 역대상 3:11-12에서 우리는 요람이 웃시야의 고조부임을 알 수 있는데, 마 1:8에는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 등의 이름이 빠져 있다. 요람은 아하시야의 아버지요, 아하시야는 요하스의 아버지요, 요아스는 아마샤의 아버지였다. 그래서 Uzziah와 Azariah라고도 불렸던 웃시야의 진짜 아버지는 아마샤였다.
유사한 경우가 창46:18에도 있는데, 거기에는 실바가 야곱에게서 자손 16명을 낳았다고 되어 있는 반면, 그녀의 손자들과 증손들이 16명 가운데 계상되어 있음도 보여주고 있다. 신구약에 있는 계보의 목적은 주로 메시야 약속의 역사를 보여주고 아담과 이브로부터 여자에게서 날 약속된 씨인 세상의 구세주인 예수까지의 후손들의 혈통을 보여주자는 데에 있었다.
이런 모든 편차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창조 시기는 어셔가 제안한 BC 4,004년을 넘어 2,000년에서 1, 2백 년을 넘기는 어렵다. 어떤 이는 창조의 년대를 BC 8,000년까지 잡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고도한 문명이 이집트나 수메르에서 BC 3,500-4,000경에 이미 존재했었다는 어떤 고고학자들과 역사가들의 주장을 더욱 가능하고 그럴듯하게 해준다. 안트(Arndt) 교수는 1932년판 그의 저서 <성경의 난해 구절들(Bible Difficulties)> 51쪽에서 두 가지 시간 설을 강하게 주장했다. 즉;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그의 지혜로 성경에 대한 완전하고 절대적으로 확실한 연대기를 가능케 할 만큼의 정보를 우리에게 허락키 않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들의 연대기 계산치의 결과를 발표함에 있어 순수하고 겸허하게 말한다면......”
그래서 나는 구약 연대기의 기록들로 독자에게 부담을 주지는 않겠다.
4. 초기 인간들의 매우 긴 수명
그러나 구약 족장들과 관련하여 몇 가지 언급해야 할 것 같다. 한 가지는 그들이 오늘날 인간들의 수명의 10 내지 12배에 달하는 900세 이상을 향수하는 초 장수를 누렸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이런 결과로 아담은 7, 8세대 후손에게 천지 창조와 인간의 타락에 관한 얘기를 직접 구전할 만큼 여러 세대가 동시대를 함께 살았다. 그는 9, 10세대 후손인 므두셀라나 라멕과 대화할 수 있었고, 그들은 노아의 아들인 셈과 대화를 나누었으며, 셈은 아브라함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어셔의 연대기에 따르면 2,100년 동안, 또는 세상 존재기간의 약 2/3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에 창조 기사는 이런 식으로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 단지 2세대를 통해 전해졌다.
더구나 우리는 이렇게 고도의 지능을 가진 사람들이 씌어진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당시에 존재했으리라고 여겨지는 기록과 역사들은 노아 때에 있었던 극도로 격렬하고 거칠고 진흙투성이의 파괴적인 홍수로 멸실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명심해야할 또 다른 사항은 이집트와 바벨론인들의 전통들이다. 그들은 각각 구약성경의 열 족장들과 유사한 10명의 왕들을 홍수 전 기간에 가지고 있었다. 이 모든 사실들은 비록 이집트와 바벨론의 기록들에 있는 인간의 수명들이 지극히 높게 과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홍수 이전 시대에 가족의 수장이나 통치자들로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성경의 기사에 신빙성을 부여한다. 1977년 9월판 리더스 다이제스트 130쪽에 1922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굴을 시작했던 영국의 고고학자인 레오나드 우울리 경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다.
“우울리가 발굴을 시작하기 이전에도 여러 학자들은 왕조의 핵심사인 소위 수메르 왕들의 목록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홍수 이전에 통치했던 왕들로 시작한다. 그리고 무려 총 241,000년에 8 왕조가 더해진다. 연대기는 분명히 엉터리다”라고 우울리는 평했다.“
대홍수 이후의 수메르인들은 대홍수 이전 시대에 그들보다 앞서 존재했던 문명에 대한 어느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구약시대 사람들의 장수에 관한 또 다른 문제는 그들이 어째서 그렇게도 장수할 수 있었는 지와 홍수 이후 사람들의 수명은 왜 시대가 지날수록 점점 더 단축되어 갔느냐는 것이다. 홍수 직후에는 그전 사람들에 비해 약 절반인 450년을 향수했다. 아브라함 시대까지는 수명이 175 세로 낮아졌다. 이에 대한 명백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때까지 지구를 둘러싸고 있던 보호적 물 층(궁창 위의 물)과 관련이 있다. 창1:6-7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과학자들은 이 물 층이 태양으로부터 오는 장파장에 대하여 보호막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층은 또한 과학자들이 남극 상공의 오존층에 구멍이 생겨서 지구는 그것을 잃어가고 있다고 우려하는 보호적 오존층을 결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홍수 전에 물 층과 오존층이 지구에 내려오는 유해한 방사선을 막아주었다면 생물들은 더 건강하고 더 장수하며 홍수전의 생물들의 몸집이 훨씬 컸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처음에 창조되었던 상태의 전 지구에서는 인간들이 질병에 걸리거나 죽지 않고 오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엄청난 방사선의 양과 하나님이 내린 저주와 함께 다른 요소들이 더해져서 지구는 인간을 점진적으로 약화시키고 수명을 감소케 하였을 것이다.
5. 성경에는 선사 시대가 없다.
창세기에 이름들이 올라있고 신약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다시 거론되는 사람들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언급해야겠다. 성경에 나와 있는 역사는 추정이나 이론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진화론자들이 선사 시대에 관하여 즐겨 언급하는 기간 동안에 있어서의 사람들의 실제 이름과 그들이 언제 살았으며 얼마나 오래 살았으며 무엇을 하였는가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실제 역사는 놀라우리만큼 많다. 그리고 그것은 우둔하고 건조하고 재미도 없고 지루하기까지 한 어떤 것들처럼 진부한 것이다. 눅3:23에서 시작되는 약 60세대의 족보 이야기에서 “예수는 요셉의 아들이었고, 요셉은 헬리의, 헬리는 맛닷의 아들이었더라.” 등등. 그리고 그 장의 마지막 즈음(36절)에 이르러 “아(르)박삿은 셈의 아들이었더라” 라고 계속 쓰고 있다. 그러고 나서 창10:6-11로 거슬러 올라가 셈의 친척들이 나온다. 그의 친척들이란 동생인 함의 후손이요, 함의 아들들 중 하나의 이름은 구스요, 그의 아들은 니므롯이다. 그러므로 니므롯은 셈의 조카의 아들이다. 이 니므롯에 관하여 창10:8-11에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라고 씌어있다. 바벨은 또한 바벨론이라고도 한다. 바벨론 또는 수메르는 세계의 역사책들이 시작되고 있는 곳이다. 이것이 그들의 실제 역사의 시작이다.
그러나 성경의 진술은 니므롯의 5촌 할아버지이고 노아의 아들인 셈으로 이어진다. 눅3:36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면서 혹이 선사 시대라고 부르는 곳으로 연결한다.
노아의 아들이었고, 라멕의 아들이었고, 므두셀라의 아들이었고, 에녹의 아들이었고, 야렛의 아들이었고, 마할랄렐의 아들이었고, 가이난의 아들이었고, 에노스의 아들이었고, 셋의 아들이었고, 아담의 아들이었고, 하나님(창조주)의 아들이었던 셈.
그리고 노아의 조상들은 거의 900세 이상을 살았다. 이것이 진화론자들이 무시하고 경멸하며, 그들이 관장하는 역사책에 없는 역사이다. 그러나 창세기가 우리에게 주는 것보다도 더 나은 소위 선사적인 역사 혹은 사실의 역사를 우리나 우리 자녀들이 가질 수 있을까? 만약에 진화론자들이 창세기 첫 부분의 11장을, 진정한 과학자들이 진리 탐구를 위하여 실험실에서 하는 것과 같은 정신으로 고려해 보기만 한다면 그들은 창조에 대한 성경의 설명이 만물의 기원을 설명하는 양식 있고 합리적인 유일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교육 현장으로부터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권리들을 위한 싸움에서 글로브를 벗을 때가 왔다. 성경을 온 나라의 지역학교가 채택케 함으로써가 아니라, 진화론자들의 종교적, 반종교적 신앙과 신념들을 학교에서 몰아냄으로써 말이다. 나는 교회와 국가의 단순한 분리가 아니라 “의회는 종교의 설립에 관한 법률을 만들지 말 것”을 규정한 (진화론자들의 종교 및 반 종교를 포함해서) 종교와 국가의 분리라고 하는 미국 헌법 수정조항 제1조의 조항들에서 분리 문제를 다룰 때 이 사항을 언급하려고 한다. 이 주제에 대해서 추가적인 취급이 있을 것이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성경에 기술된 인간의 초기 역사 1
유종호
1. 창세기의 처음 장들
진화론적 신념에 대해 배경을 제시한 후에, 그리고 고고학을 연구해 본 후에, 다음으로 창세기의 첫 장들에 기초하여 역사상 발생했던 것들을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지구와 태양과 달과 행성들과 별들과 퀘이사들과 우주의 기원 그리고 빅뱅과 블랙홀 등에 대하여 주장된 것들은 앞으로 계속해서 가볍게 집고 넘어갈 것이다.
아담과 이브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의 창조를 비롯해서 우리는 이집트인과 수메르인 등 인간의 사실상의 시조였던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시기 전에 인간을 위한 처소로서 이 지구를 창조하시고 준비하셨다. 이 지구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을 때, 그것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면에서 철두철미하게 완벽하였고, 상상을 초월할 만큼 아름답고 안락하고 쾌적한 곳이었다. 창 1:31에서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라고 언급한 대로 하나님이 좋았다고 말씀하신 것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것이었다. 그것은 미세한 부분까지 완전하고 완벽하였으며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한 포기의 잡초나 한 그루의 엉겅퀴나 단 한 개의 가시나 기타 아담의 행복을 해칠 어떤 것도 없었다. 에덴동산은 가히 지상 낙원이었다. 땅은 아담의 소원과 쾌락과 안락과 소망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무엇이나 다 공급해 주었다. 사람과 동물들에게 충분한 양식이 있었고, 사람과 동물들 간에, 동물과 동물들 간에 생존경쟁도 없었다. 사막이나 추위나 불편한 영역 즉 아픔이나 죽음도 없었다. 오늘날 가장 즐겁고 안락하고 상쾌한 남양군도(태평양)도 당시의 전 지구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초기의 지구는 그렇게 아름다웠다. 성경은 창 2:8-15에서 에덴동산을 아담과 이브에게 특별히 아름답고 안락하고 유쾌한 거처라고 묘사하면서 옷이 없어도 그들은 완벽하게 안락할 수 있다고 했다. 그곳은 금과 보석으로 가장 아름답게 꾸며졌을 것이다.
아담을 창조하실 때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격이 마치 우리 인간들이 서로 상의하고 심사숙고해서 말하듯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라고 선언하셨다. 창 1:26에 보면 마치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의 최대의 지혜와 최고도의 솜씨를 그의 마지막 피조물에 쏟아 부으시는 듯하다.
인간은 이미 만들어진 모든 다른 피조물과는 달라야만 했던 것이다. 아담은 지상에 있는 가시적인 우두머리와 통치권자로서 다스릴 권위를 지닌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대리자였다. 육체와 영혼, 하늘과 땅, 이 두 가지가 인간 속에 공존하고 있어서 사람은 이 땅과 하늘을 연결시켜 준다. 하나님이 인격이듯이 인간도 그러하고 하나님이 의롭고 거룩하듯이 인간도 그러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주님이듯이 사람도 모든 땅 위의 주가 되는 운명을 타고 났다. 아담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었고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이었으나, 그는 창조주의 지상적 형상이었고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는 육체를 가진 자로 흙으로 만들어져 그 땅에 속했으나 영혼을 가진 자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속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것인 생명의 숨을 아담의 코에 불어 넣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안에 하나님 자신의 영을 가진, 하늘과 땅 그리고 하나님과 세상의 연결 고리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광스러운 피조물을 창조하시기 위하여 특이하고도 유일한 어떤 일을 하셨다. 그는 단순하게 명령을 발하셔서 사람이 완벽한 존재로 걸어 나오도록 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방법으로 인간의 형체를 만드셨다. 그는 땅의 먼지로 된 진흙덩이를 취하시고 그것으로 다른 모든 피조물과는 판이한 경이로운 형상으로 신적인 피조물을 만드셨던 것이다. 인간을 두 발로 서서 걸으며 그의 얼굴은 앞과 위를 향하도록 만드셨다. 그 형상은 처음에는 생명이 없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기를 그 속으로 불어넣자 그 생기가 전류처럼 온 몸으로 흘러 퍼졌다. 그의 눈으로는 보은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때 이 아름다운 형상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는 신령한 빛이 있었고 평화와 안온함이 사방에서 그를 둘러쌓았고 그의 높은 이마는 위대한 생각들을 떠올렸고 그의 손으로는 가까이 있는 물건들을 능숙하게 이것저것 손댔다. 이 형상 속에는 동물적인 욕구의 거칠고 불합리한 충동 같은 것은 없었고, 어떤 행동들을 취하기 전에 그것을 심사숙고해 보는 차분하고 사려 깊은 사색가의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권자답게 그리고 근엄하게 다른 모든 피조물 중에 군림하였다.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단연 주인으로 인정되었다. 하나님은 매우 중요한 대화를 이 사람과 나누었다. 영혼이 없는 동물들을 그의 앞에 데려다 놓자 그는 본능적으로 그들의 실체(정체)들을 알아보고 말하는 은사를 받아서 이 모든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 아담은 분명코 식물학(식물들)과 동물학(동물들)과 그 분류들을 망라하는 생물학 분야에서 지금까지 생존했던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해박한 지식의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그가 만일 우리 시대의 최고의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이었다면, 모든 과목에서 100점 만점으로 학위를 받고 존재하는 모든 영예를 차지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식물학에 대해서 그에게 주신 결함이 없고 명민한 지각으로 그는 어떤 식물이 먹기에 좋고 나쁜가를 알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주위에 둘러주신 땅의 다른 나무와 식물들도 알았다.
그래서 동물학 분야에서도 들에 있는 모든 가축과 짐승들과 공중의 새들도 알아보고 하나님이 그들을 그의 앞으로 오게 하셨을 때에 자기 언어로 이름을 지었다. 물론 바다의 고기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언급이 없지만 그는 분명히 그들도 다 알았을 것이고, 또한 분명히 땅의 광물들과 그들의 용도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아담과 이브의 손자들이 황동과 철을 가지고 제작을 했다는 기록이 창4:22에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라고 나온다.
모든 사람의 조상인 아담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 식물들, 동물들, 원소들과 광물들을 알았으나 그들의 이름을 짓기 위해 책으로 공부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현대의 모든 과학자들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았다. 아담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피조물이었기 때문에 지상에 살았던 어떤 사람보다도 해박했고 그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으며 과학자 중의 과학자였다. 그러나 그가 가졌던 모든 지혜 중 가장 큰 지혜는 자기의 기원에 대해 어떤 추리를 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가 원숭이와 같은 피조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은 물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아니한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었다.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우주 만물의 기원과 조직을 알고 있었다. 그는 모든 분야에서 박사학위에 해당하는 모든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그가 필요로 하지 않았던 유일한 박사학위는 의학박사였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어떤 질병이나 우환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알 필요가 없었다. 아담은 그의 뜻을 말로 알렸고 그의 생각을 표현했다. 또한 이 사람에게는 딴 어떤 피조물도 가지고 있지 않은 독특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광활한 대지 위에 단 홀로 그러나 지금까지 살았던 누구보다도 당당하게서 있었다. 그에게는 자기의 즐거움과 행운을 함께 나눌만한 어떤 동반자도 없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음성이 한 번 더 있어 가로되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으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만들어 그에게 주리라”(창 2:18)고 하셨다. 하나님이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그가 잠들어 있는 동안 옆구리에서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그것을 넣어서 여자를 만드셨다.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자 아담은 그녀가 자기의 혈육이요 분신인 것을 즉시 알아차렸다. 이브는 하나님의 손에서 나아올 때에 처녀(Miss)임과 동시에 유부녀(Mrs)였다. 영원한 우주는 가장 아름답고, 지적이며, 완숙하고, 우아하고, 다정하고, 완벽하고 왕비 같은 영원한 여인이다. 아담과 이브 안에는 어떠한 결함도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담과 이브와 견주어보면 다 변형되고 퇴화되었다. 상호간 경이로움과 함께 애모하는 가운데, 이 땅에 살았던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아름답고 지혜롭고 충성스러웠던 이 두 사람, 하나님이 친히 주례로써 부부로 맺어주셨던 이들은 자신들의 창조주 앞에 경건히 경배하며 서 있었고, 그들은 믿기 어려울 만큼의 어마어마한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천부(天賦)의 선물로 주신 이 땅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창조적 행위의 산물로서 성숙도는 분명히 오늘날의 20세 청년에 해당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단지 0살에 불과했다. 그들은, 마치 창조 당시의 우주가 완숙한 상태였던 것과 같이, 완숙한 존재였다. 죄가 없었던 아담과 이브는 우환이나 질병이나 부패 같은 것은 없었다. 그들은 부패나 노쇠에 대한 어떤 증후도 없이 이 지상에서도 영원히 살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경이롭던 이 두 사람이야 말로 우리의 진정한 조상이요 선조였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 경이롭던 피조물인 이 아담과 이브는 그들의 육체가 특별하게 창조되었다든지 그들의 생각을 구성하고 그것을 말과 글로 표현하기 위한 합리적인 마음과 능력을 부여받았다든지 등의 그런 단순한 존재만은 아니었다. 삼위일체의 인격적 하나님이 이 영광스러운 최초의 인간을 창조하기 위하여 서로 의논하실 때에 결정된 핵심 사항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창 1:26) 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형상”의 구성 요소들 중에 어느 것이 진정으로 인간을 동물들과 구분 지으며,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가운데 인간을 가장 영화롭게 만드는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은 특별히 두 가지의 특성 즉 하나님에 대한 최상의 행복한 지식과 완벽한 의와 성결임을 안다. 사람에게는 이 땅의 것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 대한 지식도 부여되었다. 사람이 맨 처음 창조되었을 때에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분인지 알았다. 그는 하나님의 본질적 사역뿐만 아니라 영적인 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도 알고 또한 이해하였다. 그는 하나님은 그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고 무엇을 하지 않기를 원하는지 완벽하게 알았다. 그가 하나님의 뜻인지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하여 율법서를 연구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에는 인간은 그 뜻에 따라 살아갈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아가서 인간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축복해주시는 분으로 알고 있었다. 하나님에 대해 오직 행복하고 축복받고 화평한 관계만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실로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지식은 그들에게 가장 달콤한 축복이요 고상한 희락의 근원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은 또한 완전한 거룩과 의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맨 처음 창조되었을 당시에는 의로웠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았다. 인간이 하나님을 불순종할 수도 있다는 사실 이외에는 그는 선했고 죄가 없었으며 완전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완전하시고 악한 것을 미워하고 선한 것을 사랑하는 분이라는 의미에서 인간도 완전했다. 그러므로 아담과 이브는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그 분을 피하려고 할 하등의 이유도 없었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을 모든 다른 피조물과 구별 짓는다. 인간과 원숭이와 다른 동물들 간에는 엄청난 차이들이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인간이 물고기와 새들과 가축들과 다른 동물들과 기타 지상의 모든 피조물에 대해 지배권을 갖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지상의 모든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창조되었다. 인간은 또한 영원히 살도록 운명 지워져 있다. 인간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에는 결코 죽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뀀에 귀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하셨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음으로써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그를 배반하게 되었고, 이때 이 모든 것은 바뀌었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분명히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인류사상 첫 죽음이 그들의 자녀들 중 하나(가인)가 다른 아들(아벨)을 죽인 살인 사건으로 인한 것이기는 했지만 아담과 이브는 육체적으로는 즉시 죽지 않았다. 정녕 죽어야 할 순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절망적이고 처참한가! 그러나 아담과 그의 다른 후손들은 900세를 넘게 살면서 거의 1,000년을 죽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오래 살았다.
2. 아담의 타락과 홍수사건 사이의 지구
인간 문제를 더 계속적으로 다루기 전에 인간들이 살고 있던 지구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지구는 그 위에 내려진 저주 때문에 처음 상태와 같이 그렇게 완전하고 쾌적한 곳이 더 이상 아니었다. 창 3:17-19에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사도 바울도 롬 8:22에서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죄와 죽음이 그 세상에 들어왔어도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마틴 루터는 ”그것은 그 다음 세상에 비하면 진정한 낙원이었다“고 말했다.
창조와 홍수 시대 사이의 지구에는 아직도 아름답고 즐거운 곳이 남겨져 있었다. 낮의 안개가 땅을 적셨고 번개와 천둥과 우박과 토네이도와 같은 거센 폭풍우는 없었다. 오늘날 격렬한 천둥 번개 속에서 놀라 쩔쩔매는 것은 신앙이 없는 무신론자라도 하나님께서 만물을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이 지구의 육지는 낮았고 기복이 있어서 사람들은 쉽게 땅위 어느 곳으로든지 옮겨 다닐 수가 있었을 것이다. 토양은 기름지고 살이 깊고 열매를 많이 맺혔다.
그 증거는 대홍수 때에 함께 눌린 조밀했던 식물들로 형성되었다고 주장되는 석탄 광맥을 생각해 보면 명백하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의 윌리엄 윈스턴 교수는 그의 저서 <지구에 관한 새 이론(1969)>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대홍수 이전의 지구는 현재보다 훨씬 비옥했고 식물도 매우 풍성했다. 땅은 부드럽고 연하고 수분도 풍부했다. 대홍수 이전의 공기는 다량의 짙은 수증기나 오랫동안 공중에 떠있는 구름 등도 없었다. 우리가 소나기라고 부르는, 한꺼번에 많은 양이 쏟아지는 큰 빗방울들도 없었다. 그러나 땅은 낮 동안에 올라갔다가 바로 그날 저녁에 대량으로 내려오는 잔잔한 안개와 수증기에 의해 적셔졌다. 그때의 세계는 거센 바람이나 폭풍우나 땅과 바다 위에 미치는 영향들과 함께 일으키는 교란 등이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저주가 내린 이후에도 당시의 지구는 아직도 월등히 좋은 곳이었기 때문에, 그 초기 사람들은 그 이후의 모든 사람들보다도 우수했던 것이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여호수아의 긴 하루
(Joshua's Long Day : Did it really happen—and how?)
Russell Grigg
난해한 성경 구절의 의미에 관한 토론이 있을 때마다 핵심적인 문제는 성경 기자가 전달하고자 했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었을까를 파악하는 데로 귀결된다. 여호수아서는 B.C. 1400 년경,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복과 12 지파들의 땅 분배 사건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그 때의 일을 명백한 역사적 사건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아모리 족(Amorites) 다섯 왕의 연합군과 이스라엘 군과의 사이에 벌어졌던 전투 중에 태양이 운행을 멈췄다는 사건이었다.1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스라엘 군은 싸움에서 이기고 있었으나, 완전한 승리를 위하여 낮 시간을 더 많이 필요로 했다.
여호수아 10장 11절에서 13절을 보면,
그것은 정오 또는 정오를 조금 지난 시점으로 생각된다. (히브리어: 하늘 중천에 떠 있는 태양).3 그리고 성경 기자는 태양이 완벽한 하루 동안 머물러 있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하루 한 나절을 뜻하기보다는 대략 24시간을 뜻한다고 보는 주석가들이 많다.
여러 다른 문화권이 이 사건에 근거를 둔 것처럼 보이는 전설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아폴로의 아들인 파에톤(Phaethon)은 태양의 행로를 하루 동안 방해한 적이 있었다. 여호수아 10장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면,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문화권에서는 '긴 밤' 에 관한 전설들이 전해져 내려와야 마땅할 것이다. 사실상, 뉴질랜드의 마오리(Maori) 사람들은 그들의 영웅 마우이(Maui)가 태양이 뜨기 전에 일출 시간을 멈췄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다른 한편, 멕시코의 쿠아우티틀란 연대기 (Mexican Annals of Cuauhtitlan : Culhuacan과 Mexico 제국의 역사)에는 밤 시간이 연장되었다는 기록이 나타나 있다.4
이 대목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아모리 족속은 태양과 달을 숭배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신들이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복종한다는 사실은 아모리 족속한테는 말도 안되는 경험이었음에 틀림없다. 이것은 왜 하나님께서 그때 즉,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시작한 초기에5 그러한 특별한 기적을 행하셨는지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될 것이다.
지구중심설(천동설)과 상황 언어 (Geocentrism and the language of appearance)
여호수아가 태양의 운행을 멈추라고 말하였다고 해서 그의 명령이 지구중심설 (즉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설)을 지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상황(appearance)과 관찰(observation)의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6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이와 꼭 같이 하고 있다. '일출과 일몰' 시간을 알리는 TV 아나운서의 일기예보를 준비하는 과학자들이 그런 예다. 사실, 달에게도 멈추라고 명한 사실은 우리에게 움직이는 것은 지구라는 것에 대한 사실성과 그 근거의 신성한 출처를 확증시켜주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여호수아가 원했던 것은 오로지 긴 낮 시간뿐이었기 때문이었고, 당대의 고대인들이 움직이는 것은 지구가 아니고 태양이라고 믿고 있었으므로, 만약 어떤 상상의 이야기를 지어내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태양이 멈췄다고만 말하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See also Answering Bible skeptics Q&A.)
NASA와 잃어버린 하루
행성의 위치를 조사하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하는' NASA 과학자들이 역사상 하루가 빠져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는 이야기들이 떠돌곤 한다.
이 이야기는 하나의 '도시의 신화(urban myth)' 로 되어있다. 이 근거가 분명치 않은 연구는 세상을 놀래기 위해 발표되지는 결코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계산을 하려한다면, 우선 그 잃어버린 어떤 날이 실제로 있기 이전의 행성의 위치들은 물론이고, 그 이후의 위치들도 알고 있어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1890년 찰스 토튼(Charles Totten)은 제 나름의 계산도 없이 하루가 사라졌다는 것을 증명하기위해 '여호수아의 긴 하루 (Joshua's Long Day)' 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에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적용하였다. 그 모든 계산들은 단지 태양와 달이 과거 어느 때에 실제로 어디에 있었느냐 가 아니라 (태양와 달의 운행 속도가 변함 없다는 전제 하에서 현재의 운행 위치에 근거를 두고 계산하여), 그 때 태양와 달이 어디에 있었어야만 했는가를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See also Astronomy and Astrophysics Q&A.)
실제로 무엇이 일어났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3가지 주된 범주로 나누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1. 태양과 달로부터 발원하여 지구에 도달되는 빛의 굴절(refraction or bending) 형태.
: 이 관점은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셔서 '대략 하루 동안' 가나안 땅에 태양 빛과 달 빛이 계속 비치도록 하셨다고 생각한다. 이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지적하고 있다.7
a. 여호수아가 필요로 하였던 것은 빛이지 지구운행의 지연이 아니었다.
b.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언약하시기를, ”땅이 있을 동안에는 ... 낮과 밤이 쉬지 아니 하리라”(창세기 8:22) 하셨다. 이 말씀은 인간역사의 종말까지 지축중심의 지구자전을 멈추게 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구 자전 속도에 대한 일시적인 지연까지 배제시킨 것 같지는 않다.)
c. 히스기야(Hezekiah)의 통치 당시 아하스의 일영표(日影表)의 해 그림자를 10도 물러나게 하셨던 (열왕기하 20:11) 기적은 어떤 형태의 빛의 굴절로 보인다. 이것은 팔레스타인 땅에서만 있었던 하나의 사건처럼 보인다. (역대하 32:31.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2. 지구 자전축 방향의 흔들림
: 이 대목은 지구의 자전축이 흔들려 궤도가 천천히 's' 자 형태로, 또는 원의 형태로 운행했던8 것을 뜻한다. 그런 사건은 어떤 관찰자한테는 태양과 달이 운행을 멈춘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지구자전의 회전속도가 실제로 감소되는 것을 뜻할 필요까지는 없다.
또 이런 의견도 있다. 즉, 지구와 화성의 궤도가 바로 그 날 근접하였던 까닭에 일어난 사건일 수 있다는 것이다.1 그런데 이것은 문제가 있다. 이런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고대의 화성 궤도가 현재의 궤도와는 사뭇 다르다는 가정을 전제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밖에 몇 가지 제시된 원인들로는 지구에 소행성들이 충돌했을 가능성에 관한 것들이다.
3. 지구자전의 지연
이 의견은 하나님께서 지구의 자전을 지연시켰던 결과로 24 시간이 아니라, 48 시간 동안 일대 변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이로 인해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거대한 파도(tidal waves)의 격랑과 같은 자연계의 격변을 멈추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잘못된 가정들을 주장하면서, 이 의견을 반대하였다. 즉, 만약에 지구자전의 속도가 늦춰지면 사람은 물론 땅 위에 고착되어있지 않은 모든 사물들은 공간 속으로 내동댕이쳐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얼핏보아 사물들을 지구 밖으로 내동댕이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원심력의 힘은 지구중력의 약 30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만약 지구 자전이 (갑자기 또는 천천히) 멎는다면, 그 외부로 향하려는 '힘 (원심력)' 은 멈추게 되어, 실제 우리들은 중력으로 더욱 단단히 잡아 매일 것이다.
적도 상에서 측정되는 지구자전의 속도는 1,600 km/h (1,000 mph) 이다. 지구중력을 벗어나는데 필요한 속력은 약 40,000 km/h (25,000 mph) 이다. 만약에 지구의 자전속도가 이렇게 빠르다면, 지구자전이 갑자기 또는 천천히 멈추는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들은 그냥 그대로 대기권으로 내동댕이쳐질 것이다.
지구상에서 1,600 km/h로 달리는 사람들이나 사물들의 운동량(momentum)은 어떨까?
100 km/h로 달리는 자동차의 제동시간이 수초 이내라면, 차는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안정한 상태로 멈출 것이다. 그리고 1,600 km/h로 달리는 물체에 타고 있는 사람들도 제동시간이 수분 이내라면, 이 물체가 멈출 때 안정한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이 시나리오만으로도 하나님께서는 대기권과 대양, 그리고 지구의 회전을 지연시킬 때 뒤따라 일어날 수 있는 격변적인 해일이나, 지구 중심부 액체층의 완만한 회전마찰이 유발할 그 어떤 지열상승의 효과까지도 동시에 멈추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여호수아의 긴 하루가 끝난 후에, 모든 자연현상의 운행이 재시동이 되어야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에서 세우신 지구상의 모든 사물의 자연 질서들 가운데 몇 가지 주요 부분들을 재정립하신다는 것이 마냥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결론
기독교는 창세기 1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행위로부터 요한계시록 22장에 기록된 그 불가사의한 사건들까지를 망라한 기적의 종교이다. 성경은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냥 하나님께서 그런 기적을 의도하시자, 그런 기적은 일어났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몇 가지 기존의 자연법칙(노아의 홍수와 같은)을 사용하실 수도 있고, 또는 자연법칙의 그 어떤 개입도 배제하실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에서와 같이). 때로 하나님의 기적은 자연 현상의 시간대에 맞추신 하나님의 의도일 수도 있다 (밤새껏 불어대던 강풍을 이용하시어 홍해를 갈라놓으신 하나님의 솜씨).
기적은 과학적인 분석으로 드러나지 않고 간증하는 믿음 속에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은 기적들을(여호수아가 태양의 운행을 멈추게 하였던 사건까지 포함하여) 행하실 수 있었을까 하고 이리저리 추측해보는 것도 흥미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성경을 신성한 기록으로 인정하는 사람) 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궁극적으로는 믿음으로 그 기적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9 우주를 6 일 만에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한다면, 여호수아의 ”긴 하루의 기적을 행할 수 없다” 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과학적으로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 설명을 주저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진화론의 허구적 우주연대와 타협하고, 6 일 동안의 우주창조를 부인하는, 결과적으로 성경의 권위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Donald Patten, Ronald Hatch, Lorenc Steihnhauer, The Long Day of Joshua and Six Other Catastophies, Baker Book House, Michigan, 1973 give the date as 'circa October 25, 1404 bc'. Other commentators give a slightly different date, e.g. C.A.L. Totten, July 22, 1443 bc.
2. Jasher (KJV), 혹은 Jashar (몇몇 현대의 번역에서)의 책은 고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찬미하기 위해 쓰인 송시들을 집대성한 책 (사무엘 하 1:17-27 비교). 태양에 대고 외친 여호수아의 말은(이 책에서 인용된 것으로 보이는) 시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또 오늘날의 대부분의 성경에도 이런 형식으로 쓰여 있다. 여기에 쓰인 표현이 시적이라고 해서 그 사건에 대한 글자 그대로의 해석을 무효화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다윗의 생애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묘사한 시편의 기록들이 시적으로 표현되었다고 해서 사건에 대한 글자 그대로의 해석을 저해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쨌거나, 여호수아 10:13b의 구절은 여호수아의 기도에 대한 화답에 기록된 내용을 히브리어 산문형식으로 바꾸어 쓰이고 있다.
3. 전투가 있던 이른 아침에 온전히 하루 해가 앞에 놓여 있는데, 여호수아가 하루 해의 길이를 늘려주기를 기원하였다는 것은 어쩐지 이치에 닿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4. Immanuel Velikovsky, Worlds In Collision, Dell, New York, 1950, p. 16 note 3. See also other historical references to long days or nights in this book.
5. 예컨대 말벌 (출애굽기 23:28)을 사용하거나 혹은 적을 혼란시키는 (열왕기하 7:6) 대신.
6. 이 맥락에서, 헨리 모리스(Henry Morris)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즉, ”모든 운동 (motion)은 상대적인 운동이다. 그리고 태양도 지구와 마찬가지로 우주공간 속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운동을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하는 방법은 속도 '0' 으로 가정되는 어떤 임의의 한 점을 지정해 두고, 여타의 속도들을 그 점과 상대적으로 측정하는 것이다. 어떤 특수한 계산을 위하여 그러한 임의의 점을 지정하려할 때 사용하기에 가장 적절한 점은 해당 관찰자가 쓰기에 가장 편리한 곳이 그런 점이 될 것임은 당연하다. 우주 공간의 천체들의 운동을 관찰하여야 할 경우, 가장 적절한 점은 관찰자가 위치하고 있는 지구상의 위도와 경도의 접점이다. 그런 까닭에 이곳이 쓰기에 가장 '과학적'인 점이다. 다윗 (시편 19:6)과 여호수아가 자기네들이 관찰한 내용을 서술할 때 이와 같은 표현 관습을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저들의 비평가들보다 더 과학적이었다고 하겠다.”
Henry Morris with Henry Morris III, Many Infallible Proofs: Practical and Useful Evidences for the Christian Faith, Master Books, Arizona, 1996, p. 253.
7. For example, John C. Whitcomb, 'Joshua's Long Day', Brethren Missionary Herald, July 27, 1963, pp. 364-5.
8. Procession: the motion of the axis of rotation of a spinning body about a line that makes an angle with it, so as to describe a cone.
9. 『「기적은 일어날 수 없다」라고 단정하는 것은』결코 과학적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 크리스천이「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신다.」라고 말할 때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의 신앙간증이다. Hugh Silvester, 'Miracles', Eerdmans Handbook to Christian Belief, Michigan, 1982, p.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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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reation 19(3):35–37, June 1997
주소 : https://creation.com/joshuas-long-day
번역자 : IT사역위원회
바벨탑 사건은 홍수 후 불과 100여년 후인데,
건설하는 데 필요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가?
고대에는 많은 자녀들을 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노아는 세 아들과 자부로부터 16명의 손자를 두었다. 손자만 16명이므로 손녀도 16명으로 보면 한 부부가 평균 10.7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 후부터 한 쌍이 대략 12명의 자녀(6명의 아들과 6명의 딸)를 두었다고 하면, 그리고 셈, 함, 야벳서부터 5세대 후라면 얼마가 될까? 방주에서 나온 후 1세대(노아의 손주들)는 32명(16쌍), 2세대는 192명(96쌍), 3세대는 1,152명(576쌍), 4세대는 6,912명(3,456쌍), 5세대는 41,472명이 될 것이다.
바벨탑을 건조하는 시기는 홍수 이후 대략 100 여년이 지난 시기이므로 4세대 정도가 흘렀을 것으로 본다면, 수천 명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나 조부모들도 아직 살아있을 것이므로, 바벨탑을 건설하기에 충분한 숫자였을 것이다.
또한 누가복음 3:36 절에는 아(르)박삿의 아들이며 셈의 손자인 가이난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만약 한 세대가 빠졌다면, 그 숫자는 더욱 많았을 것이다. [보완설명] 벨렉의 시대에 땅이 나뉘어졌다는 기록을 통해 이 때에 바벨탑 사건이 일어났던 것으로 본다. 하지만, 벨렉은 홍수 후 100여년 후에 태어나서 239세를 살았기 때문에, 바벨탑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대략 홍수 이후 100여년부터 330여년까지의 기간 내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시점에 따라 인구의 숫자는 위의 계산보다 더 많았을 가능성이 있다.
* 참조 : Was the Tower of Babel Dispersion a Real Event?
https://answersingenesis.org/tower-of-babel/was-the-dispersion-at-babel-a-real-event/
Babel: More Historical Confirmation of the Bible
https://apologeticspress.org/babel-more-historical-confirmation-of-the-bible-5498/
므두셀라는 어떻게 969살 까지 살았나?
창세기 전반부 기록의 가장 놀랄만한 부분 중에 하나가 바로 노아홍수 이전의 사람들 수명에 관하여 거침없이 쓰여졌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만약 창세기가 최근에 쓰여졌다면 여기에 몇 마디 설명을 추가했던지, 아니면 경이로운 표현들을 섞어가며 써나갔을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창세기 저자는 “나중 세대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등의 설명조차 없이 이러한 부분들을 단순하고 직설적인 방법으로 써내려 갔다.
창세기 5장은 첫 인간 아담부터 노아까지 홍수 이전의 족장들의 계보를 단순하게 보여준다. 이들이 탄생했을 때의 나이와 죽었을 때의 나이가 순서대로 적혀있다. 아담은 930세까지, 므두셀라는 969세까지 살았으며, 9명의 홍수 이전의 족자의 평균나이는(죽지 않은 에녹을 제외하면) 912세다. 이 나이들은 분명히 “년”의 개념으로 쓰여졌으며, “달”의 개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마할랄렐의 경우 65세에 아들을 낳았는데, 이는 달의 개념으로 똑같이 적용하면 6세 이전에 아들을 낳게 되는 더 괴상한 기록이 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홍수 이후에 노아가 950살에 죽은 것과 데라가 205세에 죽을 때까지 수명이 단계적으로 천천히 감소하여다는 것을 보여준다.
분명히 홍수의 기간에 인간 수명이 단계적으로 감소하는 영향을 주는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었음에 틀림없다. 확실치 않더라도 적어도 과학과 성경 모두에게 만족할 만한 암시가 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하여 먼저 나누어보자. 오늘날 어느 과학자도 과연 무엇이 죽음을 일으키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인간이 왜 100년 이하 밖에 살지 못하는지 알지 못한다. 생명이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에 대하여는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단지 과학자는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차이를 묘사할 수 있을 뿐이다. 과학자가 왜 죽는지 모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과학자는 아직까지도 왜 사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생명이 무엇인지 모른다. 이들이 아는 것은 단지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점을 나열하는 정도이지 “왜”에 대하여는 손도 대지 못한다. 순서적으로 왜 사는 것을 알아야 왜 죽는지 접근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성경에서는 원래 영원히 살도록 창조되었으나, 죄로 인한 하나님의 벌로서만 죽음이 왔다고 한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로마서 5:12). 현대 수명을 연구하는 학문에 의한 놀랄만한 사실은 어떤 사람도 단지 나이가 많다는 것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나이를 먹는다”는 말과 “늙는다”는 말은 같은 말이 아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신과 관계없이 시간이 지나감을 의미한다. 반면에 “늙는다”는 의미는 한마디로 노화되는 것이다.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가 희거나 빠지고, 아픈 곳이 많아지고 이런 등등의 것을 늙는다고 말할 수 있다.
노화에 대하여 여러 이론들이 있지만 가장 확실한 증거는 체내돌연변이설이다. 체내돌연변이는 체내 세포구조 안에 갑작스럽고 불규칙한 변화를 말한다. 거의 모든 돌연변이는 해로우며, 여러 기관과 조직세포에 점차적으로 누적된다. 이는 어쩔 수없이 신체 효율을 감소시키고 신체 성분들을 완전히 파괴시킨다. 또한 지금의 여러 환경요소가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방사능인데, 이는 태양과 다른 방사능 근원지로부터 온다. 생식세포는 체내세포보다 훨씬 잘 보호되지만 방사능은 생식세포 안에서도 유전돌연변이를 일으킨다. 이 유전돌연변이는 항상 해로우며, 개인뿐 아니라 자손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체내돌연변이와 유전돌연변이 모두는 노화를 통해 죽음에 이르게 한다. 물론 다른 요소들도 영향을 주지만 이들이 가장 넓게 수용되고 있는 원인으로 꼽힌다. 노아 홍수 이후에 인류는 8명으로 줄어들면서, 유전자 풀이 줄어드는, 유전적 병목현상이 일어났다. 여기에 일어난 돌연변이들은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또한 노아홍수 이전에 “궁창 위의 물”(창세기 1:7)이 상부 대기층에 투명한 수증기 층으로 있었다. 이것은 훌륭한 “그린하우스 효과”를 가져올 뿐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온화하고, 온순한 기후를 유지시켰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지구 밖에서 오는 치명적인 방사능을 아주 효과적으로 여과시켰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노아홍수 이전에 환경 방사능은 현재보다 훨씬 적었고, 홍수 이전 사람들의 긴 수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그 궁창 위의 물이 홍수동안에 모두 쏟아졌다고 했다. 그 훌륭한 기능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홍수 후에 일어난 갑자기 변한 기후와 궁창 위의 물이 사라진 지구는 의심할 여지없이 수명감소를 일으켰을 것이다. 우리는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서도 성경에 기록된 홍수 후에 수명이 단계적으로 감소하였다는 것에 의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참조 : 아담은 정말 930년을 살았는가? : 사람 수명의 감소곡선은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가리킨다.
http://creation.kr/Genesis/?idx=1289129&bmode=view
노아 홍수 이전 사람들의 긴 수명에 관해 밝혀지고 있는 사실들.
http://creation.kr/BiblenScience/?idx=1288883&bmode=view
900년의 수명 : 홍수 이후 단축된 인간 수명의 원인은?
http://creation.kr/Genesis/?idx=1289068&bmode=view
노아의 아들로부터 백, 흑, 황인종이 생길 수 있나요?
미디어위원회
성경에 의하면 오늘날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노아와 그의 아내 그리고 세 아들들과 자부들로부터 기인하며, 그 이전의 기원은 아담과 이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제로 진화론자들도 여러 인종들이 각기 다른 기원을 지니지 않는다는 데에는 견해가 일치한다. 즉 그들이 다른 종류의 동물로부터 각기 진화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진화론자들의 일치된 입장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화론자들도 동일한 고유의 집단으로부터 모든 인종이 유래하였다는 데에 관하여는 성서적 창조론자들과 견해를 같이한다.
오늘날 다양한 모습을 지닌 인종과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피부색깔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실은 단 한가지 피부 색소만 존재한다. 즉 그것은 멜라닌 색소인 것이다. 약간의 멜라닌만을 만들어 낸다면 유럽계 백인을 의미하며 다량의 멜라닌을 만들어 낸다면 매우 검은 피부의 흑인이 될 것이다.【그림4-7 참조】
물론 이중에는 갈색 피부의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다른 피부의 색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짧은 기간 동안에 어떻게 다양한 피부색깔이 생겨나게 되었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 몇 가지 관찰을 해보자(여기서 피부색깔이라는 의미는 엄밀히 말해 하나의 피부색깔에서 나오는 다른 색조를 의미함이 더 정확하다).
피부색은 적어도 두개조(組)의 유전자로부터 지배받고 있음이 알려져 있다. 이것을 A와 B로 부르고 여기에 대하여 열성인 유전자는 a 와 b로 부르기로 하자(이 경우 소문자는 소량의 멜라닌을 나타내는 유전자 암호이다). 그러므로 상호 결혼하여 오직 검은 피부의 2세만을 낳는 검은 피부의 사람은 AABB로 표시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백색 피부를 지닌 사람의 경우는 aabb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흑백혼혈(AaBb)인 경우에는 퍼닛구획법(punnet square)에 의하여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를 보면 놀랍게도 단지 한 세대동안에 완전한 백인으로부터 완전한 흑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범위를 망라한 피부색깔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단지 특별한 유형의 중간 갈색피부를 지닌 양친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AABB를 지닌 자녀들은 피부에 전혀 밝은 색조가 없는 유전자를 지닌 완벽한 흑인이다. 만일 그들이 결혼하여 그들의 후손들이 다른 피부색깔을 지닌 사람들과는 전혀 결혼할 수 없는 지역으로 이주한다면, 그들의 모든 자녀들은 검은 피부일 것이다. 즉 완전한 흑인혈통이 될 것이다.
aabb의 사람들은 흰 피부이다. 만일 그들이 서로 결혼하여 다른 피부 색깔의 사람들과 서로 결혼할 수 없는 지역으로 이주한다면, 그들은 완전한 백인의 혈통이 될 것이다. 그들은 검게 되도록 하는 유전자 즉 다량의 멜라닌을 만들 수 있는 유전자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두 사람의 중간 갈색피부를 지닌 양친으로부터, 모든 피부색깔뿐 아니라 영원히 피부색이 다른 인종들이 손쉽게 태어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볼 수 있는 항상 중간 유색을 지닌 인종들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것도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 aaBB 라든지 AAbb와 같은 사람들은 그들이 더 이상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결혼하지 않는다면, 항상 중간 갈색 피부의 후손을 낳는 일이 가능해진다.
만일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자유로이 서로 결혼하고 자연스럽게 결합하여 스스로 지켜왔던 종족간의 결속을 깨뜨린다면 모든 종류의 새로운 조합이 나타날 것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어떤 특정한 인종 내에서 종종 다른 인종과 결합된 것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목격이 된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때때로 납작코를 지닌 유럽인이나 매우 창백한 피부의 중국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또 다른 특징들을 연구하는 유전학자들은, 이제 각 인종간의 평균적인 유전적 차이라는 것은 각 인종간에 존재하는 상이점만큼 그렇게 큰 것이 아님을 잘 안다. 이것은 역시 각 인종이 오랜 기간 개별적으로 진화되어 왔다는 것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참조 : 흑백 쌍둥이와 인류의 기원.
http://creation.kr/Genesis/?idx=1289137&bmode=view
흑백 쌍둥이가 태어났다.
http://creation.kr/Variation/?idx=1290378&bmode=view
다른 피부색의 쌍둥이가 연속해서 태어났다.
http://creation.kr/Variation/?idx=1290401&bmode=view
인종의 분화와 다양성
http://creation.kr/Human/?idx=1291513&bmode=view
인류는 3 조상 가족으로부터 유래했음을 유전자 연구는 가리킨다.
http://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88408&bmode=view
사람의 인종 간 차이에서 어떠한 진화도 발견되지 않았다.
http://creation.kr/Apes/?idx=1852078&bmode=view
어떻게 인종들이 달라지게 되었는가? :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의 기원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08&bmode=view
애굽의 열 가지 재앙 2 : 여호와 대 애굽의 신들, 10 대 0
(The ten plagues of Egypt 2 : Yahweh 10, Egyptian deities 0)
Russell Grigg
출애굽기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들을 애굽(이집트)에 보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출 3:8,19-20, 6:1,5)
2.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겠느냐’고 물은 바로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출 5:2, 7:5, 8:22, 9:14)
3.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여호와의 능력을 알게 하기 위해서 (출6:7, 10:2)
4. 이 땅(earth)은 애굽 신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에게 속하였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출 9:16,29, 11:7, 시 24:1)
5.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시기 위해서 (출12:12, 민33:4)
다음으로 이 재앙들이 애굽의 여러 신들에 대하여 어떻게 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첫 번째 재앙은 애굽인들이 생명의 근원으로 경배하고 있던 나일(Nile) 강 자체를 향하여 내려졌다. 이 재앙은 크눔(Khnum, 나일의 수호신), 하피(Hapi, 나일의 악령이며 다산의 신), 오시리스(Osiris, 지하세계의 신, 피로 변한 나일 강물은 그의 피로 여겨졌다) 등을 포함한 많은 강의 신들에게 내려진 것이다. 나일 강을 피(blood)로 변하게 하고, 물고기(Hathor와 Neith에 의해 보호받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던)들을 죽임으로, 모세는 애굽의 경배의 대상을 부끄럽게 했을 뿐만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손으로만 생명이 유지됨을 보여 주었다.
두 번째 재앙인 무수한 수의 개구리(frog) 재앙은 풍요로운 곡식(나일의 물로부터 유래된)과 다산의 상징인 애굽의 여신 헤퀫(Heqet)을 공격했다. 헤퀫은 보통 개구리 머리를 가진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이시스(Isis)는 또 다른 다산의 여신(fertility goddess)이었다. 개구리는 애굽인에게는 신성한 것이었다. 그러나 애굽의 여신들은 이들 생명의 상징들이 시체더미가 되어 썩어가는 것을 막아낼 힘이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애굽의 술객들도 그들의 술법으로 피와 개구리의 재앙을 흉내 내었다 (출7:22, 8:7). 이것은 속임수 일수도 있지만, 악마의 기적들처럼 보인다. 하나님의 능력과 같지는 않지만, 사단도 기적들을 일으키는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하나님은 술객들이 이 두 가지 재앙을 흉내 내는 것은 허용하셨지만 되돌리는 것은 허락치 않으셨다.
세 번째 재앙인 땅의 티끌이 이(lice, or gnats or mosquitoes)로 변한 재앙은 땅의 모든 신(예로 Akhor)들에 임하였다.
이것과 네 번째 재앙인 파리(flies) 재앙은 케프리(Khepri) 라고 하는 그들이 좋아했던 쇠똥구리(scarab, dung beetle) 신에게도 임했다. 쇠똥을 땅에 묻는 쇠똥구리의 작업은 파리들이 쇠똥 속에서 자라나는 것을 막기 때문에, 파리 재앙은 쇠똥구리 신들의 실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쇠똥구리가 쇠똥을 굴리는 것처럼, 이 신은 또한 하늘을 가로 질러 태양을 굴리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다섯 번째 재앙인 생축(livestock, 이것들은 식량, 우유, 의복 및 운송을 제공한다)들의 악질 재앙은, 신성한 황소신 아피스(Apis), 암소 모양의 어머니 여신으로 다산의 상징인 하토르(Hathor), 다산의 상징인 황소신 므네비스(Mnevis), 암소 임에도 머리에 뿔을 가지고 있는 신들의 여왕 이시스(Isis) 등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였다. 그 신들은 모두 무능한 사기꾼(imposters)들임이 드러난 것이다.
여섯 번째 독종의 재앙은 하이크(Hike)나 토쓰(Thoth, Imhotep) 등과 같은 마술과 치료의 신들의 무기력함을 보여준다. 술객들을 독종으로부터, 즉 여호와의 능력으로부터 막아줄 수 없었다.
일곱 번째 재앙인 우박 재앙과, 여덟 번째 재앙인 메뚜기(바람에 불려온) 재앙은 곡물들을 파괴하였고, 날씨를 주관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여러 하늘 신들, 예를 들면 공기의 신인 슈(Shu), 습기의 신인 테프눗(Tefnut), 하늘의 신인 누트(Nut) 등과 같은 신들을 공격하였다. 곡물들의 손실은 초목, 농사, 수확의 신들, 예를 들어 겝(Geb), 셋(Seth) 등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아홉 번째 재앙인 흑암의 재앙은 애굽 최고의 신인 태양신 라(Ra), 또는 아몬-라(Amon-Ra, 철자를 Re로 쓰기도 함)를 공격하였는데, 그 신들은 땅에 빛과 따뜻함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또한 호러스(Horus), 세커(Seker), 케프리(Khepri), 무트(Mut), 누트(Nut) 등과 같은 다른 하늘 신들도 무기력함이 드러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장자가 죽는 열 번째 재앙은 바로(Pharaoh)의 신성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애굽인들은 바로를 생명을 주는 오시리스(Osiris) 신과 태양신의 화신(incarnation)으로 믿고 있었다. 바로의 임무는 신들의 은총을 유지하고, 질서의 여신 마아트(Ma'at)의 법을 집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아들의 죽음도 막지 못하는 무능한 자였음이 드러났다. 그의 아들은 ‘신성한 통치자’의 자리를 계승할 자였고, 애굽 땅의 어떤 아들과도 다른 아들이었다. 따라서 여호와만이 홀로 죽음과 삶을 주관하시는 절대적인 분이시라는 것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YHWH' or Johovah, the sacred name of the one true GOD (Exodus 3:14).
2. Cf. Revelation 13:14, 16:14, 19:20
3. The magicians could not copy the 3rd plague and said 'it is the finger of GOD[Elohim]'. They were not honoring Yahweh here, but acknowledging that there existed a greater spiritual power than their own. They had had prior experience of this when Aaron's staff became a 'serpent' (Hebrew; tanniym)and swallowed their staffs (Exodus 7:8-13).
4. The firstborn Israelite children were protected by the lambs' blood which God told them to sprinkle on the doorposts and lintels of their houses. This prefigured the sacrifi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his N.T. title of 'the Lamb of God' e.g. John 1:29.
참조 : The Plagues of Egypt
Egyptian history and the biblical record: a perfect match?
Perspectives on ancient chronology and the Old Testament—part 1
Perspectives on ancient chronology and the Old Testament—part 2
번역 - 한국창조과학회 대구지부
출처 - Creation 27(1):36-37, December 2004.
모세를 찾아서 2
(Searching for Moses)
David Down
애굽에 내려진 10가지 재앙 (The Ten Plagues on Egypt)
바로는 이집트 땅에 내려진 10가지 파괴적인 재앙과 악질로 인해서, 모세의 요구대로 그의 노예들을 놓아주었다.(출애굽기 7~12장). 성스러운 나일강물은 핏물로 변하였고, 모든 생축은 악질로 죽었으며, 번갯불은 가연성 물질들을 모두 태웠고, 우박이 내려 밭에 있는 모든 채소를 치고, 과일 나무를 꺾었으며,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 남아있던 지상의 모든 식물을 먹어치웠다. 이집트의 경제가 그토록 피폐했었다면, 어디엔가 그와 같은 국가적 대재난에 관한 기록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그런 기록이 있다.
네덜란드의 라이덴(Leiden) 박물관에는 한참 나중에 기록했을 파피루스 기록이 보관되어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파피루스 기록은 어떤 초기 왕조 때의 파피루스 기록을 복사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대재앙이 휩쓸고 간 이후에 풍미했을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그 기록은 제13왕조 때의 것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 기록은 이렇다. 즉,
”아니, 그 보다는 심정이 광포하다. 재앙이 땅을 휩쓸었고 방방곡곡은 유혈이 낭자하다…. 아니, 그 뿐이랴. 강은 핏물이 범람한다. 사람이 그걸 마실까? 인간으로서는 못 마시리라.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다 …. 아니, 그 뿐이랴. 지체 높은 집 아들도 알아보는 이가 없다 …. 외지에서 낯선 사람들이 애굽으로 들어왔으니…. 아니, 그 뿐이랴. 알곡은 곳곳에서 말라죽는다. 사람들은 옷조차 걸치지 못한 알몸이고, 향수나 기름은 어림도 없다. 사람들은 입을 떼면, "더는 못 참겠네.” 다들 한숨이다. 곡간마다 텅텅 비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 곤궁한 백성들은 마침내 왕을 끌어내렸다.” 20
출애굽기의 바로 (The Pharaoh of the Exodus)
이집트 제12왕조의 말기를 통치하던 왕들의 기록이 남아있다 - 세소스트리스(Sesostris) 3세, 아메넴헤트(Amenemhet) 3세, 그리고 소벡네페루(Sobekneferu) 여왕이다. (여기에 소벡네페루를 앞서 아메넴헤트 4세로 알려진 모호한 인물을 포함시키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소벡네페루 여왕의 죽음과 함께 제12왕조도 막을 내렸음은 그녀한테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양자인 모세마저도 미디안(Midian)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제12왕조의 몰락과 더불어 한참동안 불안정한 기간이 이어졌다. 14명의 왕이 숨가쁘게 대를 바꿨다. 초기에 속하는 왕들은 아마도 제12왕조의 몰락 이전부터 나일강의 삼각주 (the Delta)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제13왕조의 왕들은 삼각주의 북동 지역을 이미 통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던 그들이기에 제12왕조가 몰락하자, 곧 권력의 공백을 메우고 제13왕조를 열었다. (왕조[dynasties]라는 개념은 당시의 이집트의 관념이 아니었다. 그 개념은 나중에 마네토(Manetho)가 창안한 관념이다. 마네토는 BC 3세기에 살던 이집트의 승려로서 이집트 역사라는 기록을 남기고, 왕들을 왕조 별로 분리시켜 계보를 만들었다).
온 이집트를 통치하기 위한 권좌에 등극하기 위해 이 왕들 간에는 맹렬한 정권쟁탈전이 전개되었고, 한 나라의 군주로서는 짧은 통치기간으로 이어지는 결과들을 초래했다. 이와 같은 정권쟁탈전은 네페르호텝(Neferhotep) 1세의 즉위와 함께 가라앉아, 그의 재위 11년의 기간동안 상당부분 안정을 회복하였다.
나는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요구하였던 상대자 바로를 카섹엠르-네페르호렙(Khasekemre-Neferhotep) 1세로 산정한다. 내가 그렇게 믿는 데는 페트리가 발견한 카훈에 있던 예전 왕들의 부적들을 보았기 때문이다.21 그런데 페트리가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발견한 부적은 네페르호텝의 것이었다. 이 네페르호텝은 힉소스(Hyksos) 족이 이집트를 ‘전투 없이’ 점령하기 전에 이집트를 마지막으로 통치했던 왕이었다. 전투 없이 점령하였다고? 이집트 군대는 어디에 있었을까? 홍해의 바다 밑바닥에 있었던 것이다.(출애굽기 14:28). 카섹엠르-네페르호텝(Khasekemre-Neferhotep) 1세는 아마도 출애굽 당시의 바로였을 것이다. 그의 미라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 카섹엠르-네페르호렙 1세의 동상. 그는 이집트가 힉소스에 의해 점령되기 전의 마지막 통치자였다. 그의 시체는 발견된 적이 없으며, 그는 출애굽 당시의 바로였을지 모른다.
우드(Wood) 교수는 자기의 강의에서 창세기 47:11과 출애굽기 1:11, 12:37에서 언급되는 라암세스(라암셋, Rameses)의 이름을 ‘도로의 출입문’이라는 뜻을 가진 이집트의 단어 ‘RW3TY’22에 연관시켰다. 그는 그것을 텔엘다바(Tell eld-Daba, (힉소스족의 수도인 Avaris)에 있는 새로운 인구 중심지의 Stratum d/222에 연결시킨다. 이곳은 오스트리아의 고고학자 맨프레드 비텍(Manfred Bietak)에 의해서 발굴되고 있는 현장이다. 비텍에 의하면 이 지층(stratum)에는 가나안(Canaan) 인들의 요소들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우드 교수는 Stratum d/2가 이집트에 있었던 이스라엘인들과 연관시킨다.12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바로를 라암세스 2세로 산정하는 사람들은 ‘라암세스(Rameses)'의 이름을 포함하고 있는 성경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성경의 바로가 이 라암세스와 동일인임을 지지하는 증거라고 한다. 그러나 만약에 라암세스가 출애굽기의 바로라고 하면, 그의 시체는 홍해의 해저 바닥에 누워있어야 할 것인데, 그의 시체가 현재 카이로 박물관에 있다. 우드의 주장은 라암세스의 이름을 성경의 구절에 연결시켜야할 필요성을 거부한다.
결론 (Conclusion)
만일 우리가 그 때 당시를 올바르게(맞게) 들여다본다면, 이집트에는 이스라엘 노예들이 있었다는 증거들이 풍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이스라엘 노예들의 돌연한 실종, 10가지 역병과 재앙으로 인한 이집트의 피폐, 이집트 군대의 괴멸.. 등등. 그래서 고대의 역사를 해석하는 데는 당시(시점, time)가 중요한 요소이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출애굽은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의 기초를 놓은 해보다 480년 전에 있었던 것으로 되어있다.(열왕기상 6:1). 이것으로 출애굽은 BC 1446년경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430년 앞선 때였기에 (출애굽기 12:40, 갈라디아서 3:16, 17), 그 때는 BC 1850년경이 된다. 노아의 선조의 시대로부터 창세기 12-13 장에 걸쳐서 주어진 연대들을 따져보면, 전 지구적 대홍수는 427년 앞선 BC 2302년경에 일어난 것으로 계산된다. 그러나 이집트 연대기에 관한 대부분의 권위자들에 의하면 피라미드들은 BC 1550년경에 건축되었으며, 이집트 최초의 왕조는 BC 3100년경에 통치한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23
이와 같이 해서, 일반적으로 해석되는 이집트 연대기와 성경 기록과의 사이에 모순이 존재하게 된다. 이집트의 최초의 왕조는 물론 피라미드들의 건축도 대홍수 이전에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에 내가 믿고 있는 바와 같이 성경이 역사적으로 믿을 수 있는 기록이라면, 일반적으로 해석되고 있는 표준 이집트 연대기에는 오류가 있음이 틀림없을 것이기에, 수 세기를 삭감하여 계산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이 사안은 명백하다. 이집트 역사에서의 현재 통용되는 연대기를 인정하고 성경의 연대기를 거부하는 것은, 엿새 만에 완성하셨다는 창조의 기록을 포함하여, 성경의 초기 기록의 잔여 부분에 대한 회의론에 문을 열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 연대기의 오류가 증명되면, 성경 기록을 인정하는데 중요한 장애의 하나가 제거될 것이며, 그 때에 가서는 창세기 역사가 정당시 될 것이다.
*데이비드 다운(David Down)은 현장 고고학자로서 매년 관광객 그룹을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안내하고 있다. 관광여행의 마감 때 즈음해서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그의 발굴 사역을 지지하는 편에 서게 된다. 그의 발굴 사역은 이스라엘 고고학 당국의 지원 하에 진행되고 있다. 그는 'Diggins' 라는 월간 고고학 뉴스레터와 전 호주를 커버하는 신문 발행인을 통하여 보급하고 있는 'Archaeological Diggings' 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그는 또한 Moscow Radio를 포함하여 전 세계에 있는 10여 방송국을 넘는 방송국들을 통하여 주당 15분짜리 고고학 토크 쇼를 녹화한다. 그리고 시드니(Sydney) 소재 Wesley Mission에서 고고학 클럽을 매달 주관한다. 그는 시드니 라디오 방송국 2GB를 통하여 Gordon Moyer 박사에 의한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 소식을 방송하고 있다.
References
1. Kenyon, K., Archaeology on the Holy Land, Praeger, New York, p. 198, 1964.
2. Garstang, J., The Story of Jericho, Marshall, Morgan and Scott, London-Edinburgh, p. 136, 1948.
3. Kenyon, Ref. 1, p. 210.
4. Mazar, A., Archaeology and the Land of the Bible, Doubleday, New York, p. 369, 1992; Ben-Tor, A., The Archaeology of Ancient Israel, Yale University Press, p. 304, 1994.
5. James, P. et al., Centuries of Darkness: A Challenge to the Conventional Chronology of the Old World Archaeology, Rutgers University Press, p. 318, 1991; Rohl, D., A Test of Time, Century Ltd, London, p. 143, 1995.
6. Edwards, I.E.S. et al., The Cambridge Ancient History, Vol. II, part I,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43, 1975; David, R., Ancient Egypt, Harper Collins, p. 20, 1988.
7. Diggings, Vol. 1, No. 3, p. 2, March 1985.
8. Velikovsky, I., Ages in Chaos, Doubleday, New York, 1952.
9. Courville, D.A., The Exodus Problem and its Ramifications, Challenge Books, Loma Linda, 1971.
10, James, Ref. 5, p. 318.
11. Rohl, Ref. 5, p. 143.
12. Wood, B., New evidence for Israel in Egypt, Newsletter of the Horn Archaeological Museum, p. 3, Winter—Spring 1999.
13. There are two main schools of thought on the 430 years of Exodus 12:40. One regards the period as commencing with the entrance of Israel into Egypt or the beginning of slavery, and the other commencing with the covenant with Abraham. As translated in the KJV, the Exodus 12:40 text seems to suggest the entrance of Israel into Egypt, but I consider the Hebrew in Exodus can be translated to support either view. I prefer to build on Galatians 3:17, which seems to place the period as beginning with the covenant with Abraham. Based on the ages of the patriarchs involved, I would consider it 215 years from the covenant with Abraham till Jacob entered Egypt and 215 years in Egypt. It is not possible to determine the years spent in slavery but, based on the pharaohs involved, I would think about 100 years.
14. See also: Beechick, R., Sojourn of the Jews; Williams, P., Reply to Beechick, Letters to the editor, TJ 15(1):60—61, 2001.
15. David, A.R., The Pyramid Builders of Ancient Egypt: A Modern Investigation of Pharaoh’s Workforce, Guild Publishing, London, p. 191, 1996.
16. David, Ref. 15, Plate 16.
17. If the sex of the babies could be determined to be all or mostly male, that would harmonise with Pharaoh’s edict to kill all the male babies. When Dr Rosalie David visited Australia two years ago, I asked her if the sex of the babies found by Petrie was known. She replied that unfortunately Petrie had only sent three skeletons to European museums and they have all been lost. None of them can be traced. Petrie buried the remainder of the skeletons in a sand dune, but no one knows which sand dune as he left no record of it.
18. David, Ref. 15, p. 195.
19. David, Ref. 15, p. 199.
20. Erman, A., Ipuwer Papyrus, Leiden Museum, quoted from The Ancient Egyptians, a source book of their writings, Harper and Row, New York, pp. 94—101, 1966.
21. The term scarab in archaeological reports refers to seals used for sealing documents though they were often used as ornaments. In either case, they were made of stone, metal or even pottery, with the shape of the scarab beetle on top and the name and title of the king engraved underneath, so when it was pressed down on the soft clay it left his seal impression.
22. After archaeologists have completed their reports they identify the strata or layers of occupation from the bottom up, so that the lowest layer may be early bronze, the next up middle bronze, the next up late bronze and the top layers iron age or later. But when they first start digging they cannot know what lies beneath, so they number the strata from the top down numbering them 1, 2, 3 etc. These are likely to be later subdivided with letters, so d/2 would be the second layer down and the 4th (d) subdivision of that layer or stratum.
23. Gardiner, Sir A., Egypt of the Pharaohs: An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pp. 430, 434, 1964.
*참조 : Biblical Archaeology : Evidence of the Exodus from Egypt
http://www.bibleandscience.com/archaeology/exodus.htm
Biblical Archaeology : The Date of the Exodus According to Ancient Writers
http://www.bibleandscience.com/archaeology/exodusdate.htm
Biblical Archaeology : Mt. Sinai
http://www.bibleandscience.com/archaeology/mtsinai.htm
Problems with ‘Searching for Moses’ article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2/j20_2_52-pro.pdf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tj/v15/i1/moses.asp
출처 - TJ 15(1):53–57, April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