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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미디어위원회
2024-03-29

예수님의 부활 : 고고학적 분석

(Jesus’s Resurrection : An Archaeological Analysis)

Matt Dawson


요약 :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유물들이 아직까지 많이 발견되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적은 수의 고고학적 유적지와 유물들의 의미와 중요성은 매우 크다. 이 논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된 7가지 고고학적 발견들과 유적지들을 살펴보고 있다.


1)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 주님 무덤 성당. 부활 기념 성당) 

2) 정원무덤(Garden Tomb, 동산무덤) 

3) AD 1세기의 굴림돌 무덤(rolling-stone tombs of the first century AD) 

4) 여호하난의 유적(remains of Jehohanan son of HGQWL) 

5) 알렉사메노의 그라피토(Alexamenos graffito) 

6) 므깃도 모자이크 비문(Megiddo Mosaic Inscription) 

7) 나사렛 비문(Nazareth Inscription).


종합적으로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간접적인 증거들이 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교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과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7가지 고고학적 발견과 유적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유적지들은 성묘교회, 정원무덤, AD 1세기의 굴림돌 무덤, 여호하난 유적, 알렉사메노의 그라피토, 므깃도 모자이크 비문, 나사렛 비문 등이다. 정원무덤을 제외한 다른 모든 발견들은 종합해보면,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었음을 가리키는 간접적인 증거들을 제공한다. 성묘교회와 나사렛 비문은 부활 이야기와 더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강조되고 있다.


결론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증거들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증거들은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들임을 보여주고 있다. 성묘교회, 예수 무덤의 특성, 기타 유물 등이 부활 이야기의 이해와 개연성을 풍부하게 하는 간접적인 증거라고 강조한다. 이 논문은 예수님 부활의 역사성은 고고학뿐만이 아니라, 신약성경에 기록된 목격자들의 증언에 근거하고 있으며, 고고학적 발견들은 신자들의 믿음을 강화하고, 부활의 합리성을 옹호하며, 성경 기록의 세부 사항을 확인해주고, 기독교인들을 격려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증거만으로는 회의론자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부활을 받아들이는 열쇠는 믿음임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고린도전서 15:14~19절에 요약된 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앞에서 논의한 고고학적 증거들이 크리스천들에게 예수 부활의 진리에 대한 믿음을 강화해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전 15:14~19)



논문 전문 바로가기 : https://answersresearchjournal.org/resurrection-archaeological-analysis/


*참조 : 그리스도의 부활 : 확증된 역사적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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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있는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 성경에서 반복되고 있는 ”I 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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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아담 대 마지막 아담

https://creation.kr/BiblenScience/?idx=1288860&bmode=view


출처 : ARJ 2021 Volume 14: pp. 125–157, 


요약 및 교정 : ChatGPT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4-03-06

존 넬슨 다비, 스코필드 주석성경, 그리고 오래된 지구 창조론의 부상

(John Nelson Darby,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and the rise of old-earth creationism)

Andrew Sibley


요약 :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긴 간격(오랜 시간)이 있다고 가정하는 간격이론(Gap theory)은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1800–1882)의 가르침과 저술, 조지 호킨스 펨버(George Hawkins Pember, 1837–1910)의 저술, 그리고 사이러스 잉거슨 스코필드(Cyrus Ingerson Scofield, 1843-1921)의 스코필드 주석성경(1909, 1917)을 통해 19세기 복음주의권에서 대중화되었다. 간격이론은 18세기 후반 제임스 허튼의 책 ‘지구의 이론’에서처럼, 오래된 지구에 대한 믿음이 커지면서, 토마스 찰머스(Thomas Chalmers, 1780~1847)에 의해 처음 개발되었다. 이 간격이론은 자유주의적이고 비판적인 선집인 ‘에세이와 리뷰(Essays and Reviews, 1860)’에 찰스 굿윈(Charles Goodwin)이 기고한 글에 의해 지지되었다. 비록 다비와 스코필드가 진화론에 반대하고, 특히 인간 진화론에 대해 강력히 저항했지만, 세속적 지질학(오랜 연대)에 대한 이러한 수용(타협)은 많은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로 퍼져 나갔다.


  이 글은 19세기 및 20세기 초에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 운동 내에서 영향력이 있었던 인물들과 그들의 창조론에 대해 다루고 있다. 존 넬슨 다비와 사이러스 잉거슨 스코필드는 이 운동의 주요 인물이었으며, 구약성서 창세기에 대한 해석에서 오래된 지구 창조론(old-earth creation)을 지지했다. 특히 그들은 간격이론을 선호했는데, 이는 창세기 1:1절과 1:2절 사이에 긴 시간 간격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아담 이전에 어떤 인류가 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는 않았지만, 장구한 지질시대들과 공룡들의 번성과 멸종 등을 수용하고 있었다. 다비는 지질학적 발견들과 성경 기록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간격이론을 제안했다. 그는 창세기의 첫 두 절 사이에 수억 년의 간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기간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스코필드는 자신의 주석성경에서 이 간격이론을 더 널리 퍼뜨렸다. 그의 성경은 간격이론을 지지하는 주석과 함께 출판되어,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스코필드 주석성경(Scofield Reference Bible, 1917 version)에서 창세기 첫 페이지.


다비와 스코필드 모두 창조의 첫째 날과 둘째 날 사이에 커다란 간격이 있다는 점에 동의했으며, 이를 통해 과학적 발견과 성경 기록을 조화롭게 해석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의 진화를 명백히 거부했으며, 아담과 하와의 창조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었다. 그들의 접근 방식은 성경을 과학적 발견과 조화시키려는 시도였지만, 일부 기독교 핵심 교리와 충돌하는 위험을 갖고 있었다. 다비와 스코필드의 간격이론은 일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오래된 지구 창조론을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여러 해석학적 접근 방식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또한 이 글은 플리머스 형제단 운동에서 영향력 있었던 다른 인물들, 특히 조지 호킨스 펨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펨버는 공룡과 같은 선사시대 생물들이 아담 이전에 존재했다고 보는 간격이론을 지지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과학과 성경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해석들이 등장하도록 했다.

 

결론에서는 다비, 스코필드, 펨버의 입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신학자들은 오래된 지구 연대를 주장하는 진화론적 지질학자들의 주장을, 창세기 1:1절과 1:2절 사이에 오랜 시간이 있었다는 간격이론을 통해서 성경의 기록과 조화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간격이론은 19세기에 세속적 지질학들의 주장에 대응하여 개발되었던 것이다. 토마스 찰머스에서 시작된 간격이론에 대한 신학적 정당성은 ’에세이와 리뷰(Essays and Reviews)‘에 의해서 기반을 다진 것으로 보인다. 이 저작물은 성서비평학(biblical criticism)에 관여한 자유주의 기독교인들이 썼으며, 여러 면에서 기적에 대한 믿음과 문자 그대로의 텍스트 읽기에 반대했다. 다비와 스코필드가 오래된 지구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성경 본문을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진화론에 대한 그들의 반대는 이후 수십 년 동안 많은 플리머스 형제단과 다른 복음주의자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이끌었다. 영국에서 지적설계와 오래된 지구 창조론을 지지하는 많은 현대인들이 플리머스 형제단 운동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원문 바로가기 : https://creation.com/darby-and-scofield-bible

                         https://dl0.creation.com/articles/p157/c15745/j36_3_123-12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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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Journal of Creation 36(3):123–128, December 2022.

요약 및 교정 : ChatGPT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4-03-03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성경으로 다시보기


오경숙 

한국창조과학회 본부장


  인류의 시작에 대한 두 가지 주장, 진화와 창조  

  사람이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진화되었다는 주장을 한다. 인간의 이론과 지식을 총동원하여, 자연주의적 진화 과정을 통해 인간이 출현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다. 모든 것이 시작된 순간은 관측한 이도 없고, 관측할 수도 없는 영역으로, 인간의 이성으로는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또한 인위적으로 재현하여 확인해 볼 수도 없기에, 과학의 영역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인류의 시작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성경 창세기 말씀에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7)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막 10:6)

기독교 신앙의 기반이 되는 성경에는 세상의 창조, 사람의 타락, 그리고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뜻과 역사하심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창조, 타락, 구속은 기독교 세계관의 세 기둥이다. 하나님은 먼저 자신의 영원한 권능과 지혜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천지만물을 무에서부터 창조하셨다(창 1:1-31; 롬 1:20; 히 11:3). 이렇듯 기독교 신앙은 창조신앙으로 시작한다. 창조 역시 확인할 길은 없지만, 진화론이 인간 지식의 산물이라면, 창조론은 인간의 이성에서 나온 이론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미디어와 학교 교육을 통해 인간은 동물에서 진화된 존재로 배우며,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선사시대를 거쳐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고 배운다. 이러한 진화론적 세계관 속에서 교육받는 세대들에게 성경은 역사적 사실로 여기기보다 교훈서로 전락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사와 한국사 등에 대한 세속적 역사는 성경의 역사와 충돌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워 한다. 믿음이 자라고 지식과 지혜가 자라면서, 결국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아담은 신석기시대를 살았던 첫 사람인 걸까?”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는 성경의 역사 어디에 해당하는 걸까?”

“언제부터 어떻게 누가 신석기시대와 구석기시대를 구분하게 된 걸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창조는 사실일까?”


누군가는 가볍게 무시하고 말겠지만, 지금 이 시대의 청소년들에게는 제법 진지한 질문들이다. 실제 이러한 질문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쉽게 답해주는 이가 없다.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을 수 있고, 또 잘 정리되지 않아서 알려주지 못할 수도 있다. 이미 알고 있던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던지, 아직 고민해보지 않았더라도, 성경 속에서 먼저 그 답들을 찾아보자. 성경 창세기 3장과 4장에 농경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에 대한 정보가 있다.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창세기 3:18b~19a)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창세기 4:2)

성경에는 첫 사람 아담도 밭의 채소를 먹었다는 것과,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었다는 말을 통해, 아담도 농사를 지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의 아들 가인은 농사짓는 사람이었고,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었다. 후에 가인은 그가 농사지은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 이처럼 이미 아담 때부터 농경시대는 시작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창세기 4:21~22a)

창세기 4장의 말씀에서 찾아보면, 가인의 후손인 유발의 시대에는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는 예술 문화가 있었다. 두발가인은 구리(청동)와 쇠(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들었다고 기록된 걸 보면, 노아 훨씬 이전부터 농경문화, 예술문화, 청동기시대, 철기시대가 이미 자리 잡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역사가 도전받게 된 걸까?


누가 언제부터 어떻게 신석기시대와 구석기시대를 구분하게 된 걸까?

  ‘구석기(Palaeolithic)’, ‘신석기(Neolithic)’라는 시대 구분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존 러벅(John Lubbock, 1834-1913)이다. 1865년에 그가 연구하고 집필한 책  『선사시대(Pre-Historic Times)』 라는 책에서 구석기와 신석기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존 러벅이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에는 1859년 진화론의 본격적 시작으로 알려진 다윈의 『종의 기원』의 영향을 받은 것에서 시작된다. 다윈의 진화론을 사실로 받아들인 그는 모든 세상을 진화론의 안경으로 바라보고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의 연구를 책으로 남기며, 인류의 시작에 대한 밑그림을 제시했다. 바로 인류의 시작 시기에 대한 관점으로 선사시대를 제안하며,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제시했다. 

.존 러벅(John Lubbock, 1834-1913) 

  

존 러벅이 제시한 구석기시대는, 인류문화의 흔적이 시작되었다고 추정하는 250만 년 전부터 약 1만2천 년 전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구석기시대는 사람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아직 지능이 덜 발달해서, 겨우 돌을 깨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을 가졌던 사람이 살았던 시대로 ‘뗀석기(타제석기) 시대’라고 하였다. 신석기시대는 구석기시대 이후인, 약 1만2천 년 전부터 청동기시대 전으로, 사람의 지능이 더 발달해서, 돌을 갈아서 도구로 사용할 줄 아는 간석기(마제석기) 시대로 제시하였다. 우리가 분별해야할 것은,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라는 단어는 과학적 사실이나 역사적 사실에서 기반한 것이 아니라, 진화론이 사실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된 시대 구분이라는 사실이다. 선사시대의 연대는 연대측정으로부터 정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유물을 통해 추정된 연대임을 유의해야 한다. 19세기 말부터 개발된 연대결정 방법은 유적이나 유구, 유물의 상대적 시간 순서를 정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실제 연대측정은 20세기 중반에서야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을 통해 신뢰를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은 5만 년 이내의 연대만 측정할 수 있기에,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다고 추정하는 선사시대의 유물들은 연대측정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포타슘-아르곤 연대측정법 등의 긴 연대측정 방법이 있으나, 신뢰도가 너무 낮다는 것을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잘 알고 있다. 즉 선사시대의 연대는 연대측정 결과로 제시한 연대가 아니라,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에 대한 개념을 먼저 정의하고 나서, 그 환경을 유추하여 추론하여 제시된 연대에 불과한 것이다. 

.구석기시대의 유물 타제석기                   

.신석기시대의 유물 돌화살촉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러벅의 제안이 바로 받아들여진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당시 존 러벅은 1864년부터 1865년까지 영국의 민족학회 회장이었으며, 1865년에는 린네학회 부회장, 1868년에 국제 선사고고학회의 회장을 포함하여, 영향력 있는 여러 학문적 직책을 갖고 있으면서, 학계에 상당한 신임을 받고 있었고, 그에 따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보고서처럼 작성한 그의 저서 『선사시대』에는, 1860년대 초 스코틀랜드, 런던, 덴마크, 프랑스 등의 유럽 일대의 여러 곳을 방문하며, 여러 연구자들과 실시한 방대한 연구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신뢰할만한 것처럼 보였다. 그의 연구 대상은 대부분 고분에 남아있는 시신의 매장방식, 도자기 종류, 조개껍질, 뼈, 동굴, 부싯돌, 강가의 자갈, 유럽 여러 박물관의 전시물 등이었으며, 그에 대한 기록이 600여 페이지에 달했다. 분명, 연구를 진행하기 전에 이미 다윈의 영향을 받아 모든 생물들은 진화되었다는 전제하에 연구하였기에, 답을 정하여놓고 접근한 연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분량과 많은 연구자들에 의한 보고였기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에 대한 그의 주장은 지금까지도 선사시대를 구분하는 데 있어서 교과서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을 보면, 존 러벅의 영향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도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인간이 남긴 유물들로서, 돌칼, 도끼, 토기 등 고정형의 유물과, 집터, 무덤 등 고정된 유구, 그리고 그 주변의 일정한 넓이의 장소를 유적으로 구분하여 연구한다. 이 연구에서 얻은 분석 결과를 통해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구분한다. 최근에는 좀 더 구체적인 기준들을 세웠다. 구석기시대로 구분하는 돌은 구석기시대로 추정되는 층에서 발견되어야 하며, 사람이 인위적으로 깬 흔적이 있어야 구석기시대의 돌로 구분한다.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주먹도끼, 송곳, 찌르개와 나무와 뼈 등에 새기는 새기개 등이 있다. 빙하기도 구석기시대로 포함하여 제시하고 있다. 학자들은 신석기시대에 타제석기와 마제석기를 혼용하여 사용했을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기도 하다. 청동기시대에도 역시 마제석기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구석기시대 유물인지, 신석기시대 유물인지, 청동기시대 유물인지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유물이나 고분, 혹은 집터 등 복합적인 자료를 토대로 제시하고는 있으나, 이러한 추론이 정확한지에 대해 확인할 명확한 방법은 없다.

 특별하게 구분지어지는 부분은 신석기시대는 농업혁명이 일어난 시기로, 돌을 도구로 사용하여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농사를 지으며 정착생활을 했다고 설명한다. 다만 세계 모든 지역에서 동시에 신석기시대로 진입하는 것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다. 특히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비옥한 초생달 지역에서 농업이 먼저 나타난다고 고고학자들은 주장한다.

.인류의 진화론적 선사시대표


한국의 선사시대는?  

한국의 선사시대는 언제, 어떤 문화를 남겼을까? 한국의 선사시대는 일반적으로 문자기록이 없었던 시대로 규정하며,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부터 철기문화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시기를 선사시대로 보며,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의 세 시대로 구분한다. 시대 구분에 대해서는 한국 역시 존 러벅이 제시한 연대와 추정 방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국내 곳곳에서 깨뜨려서 만들어진 듯 보이는 주먹도끼(돌도끼)나 연장이 발견되면, 구석기시대 유물로 정한다. 그렇게 파주, 남양주, 충주, 단양, 영월, 곡성 등 국내 곳곳에서 발견되었으며, 구석기시대 유물로 보존하고 있으며, 교과서에도 소개되고 있다. 구석기시대에는 매장문화가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기에, 이러한 단순한 돌에도 큰 의미를 부여한다. 역사학자들은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사이인 BC 10,500~8,500년 동안에 갑자기 추워져서,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었다고 제시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선사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하여 해석하고 있다.

한편 신석기시대의 유물들은 많다. 농업이 시작되었고, 정착 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배웠던 빗살무늬 토기와 돌화살촉이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 매장문화가 발달하여, 다양한 무덤들이 발견된다. 국내의 신석기시대 유물로 제시하고 있는 지역은 60여개 이상의 지역이 있다. 

유럽에서 청동기시대는 BC 2,200~1,600년으로 제시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도시문화와 계급사회를 형성하는 시대로 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유물로는 특이한 돌무덤인 고인돌이다. 청동기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곡물로 쌀을 꼽을 만큼, 농업이 발전했음을 가늠할 수 있다. 다양한 장신구들, 청동검, 다양한 기구들로 문화와 기술이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청동기시대까지는 암각화 외에 그렇다할 문서기록이 없기에, 삶의 방식을 명확하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한국의 시작인 고조선의 출현 시기를 BC 2,333년으로 제안하고 있는 역사학자들의 의견과 비교한다면, 청동기시대가 시작되는 시기와 고조선 시기가 맞닿아 있다. 고조선이 청동기시대에 태동된 나라라면, 어떤 이들에 의해서 태동된 것일까? 청동기시대는 이미 완전한 사회를 이루며 살았을 시대로 추정되므로, 그 기원이 좀더 구체적이지 않을까 기대할 수 있다.

.강화 부근리 고인돌(청동기시대의 상징)

.한국의 역사


한국의 시작 고조선, 곰이 사람이 된 단군신화?  

하지만 한국의 시작인 고조선은 청동기문화의 배경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함이 있다. 곰이 사람이 되어 신의 아들과 결혼하여 얻은 아들 단군이 세운 나라라는 기록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좀 더 살펴보자면, 한국의 첫 시작 고조선을 세운 단군은 천제인 환인(桓因)의 손자이며, 환웅(桓雄)의 아들로 BC 2333년에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 조선을 개국하였다. 단군의 탄생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나온 내용을 통해 살펴보자.

옛날 하느님(환인)이 아들 환웅이 인간 세상에 뜻을 두고 탐내다가, 아버지에게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도록 세상에 내려가 다스리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환인은 거울, 칼, 방울의 천부인을 내주며 허락하였다. 환웅은 바람신, 비신, 구름신 등 3천여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박달나무) 아래 내려와서, 그곳을 신시라 이름 짓고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환웅은 농사, 생명, 질병, 형벌, 선악을 비롯한 360여 가지의 일을 돌보며 세상을 다스려 나갔다.

이때 곰과 호랑이가 찾아와 “저희들은 사람이 되는 것이 소원입니다.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니 부디 인간으로 만들어 주십시오.”하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환웅은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면서 “너희들이 동굴에 들어가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굴속으로 들어간 호랑이는 백일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갔으나, 곰은 끝까지 견뎌 여자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결혼할 남자가 없던 웅녀는 성황당 밑에서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이것을 본 환웅이 웅녀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니, 바로 단군왕검이다.

환인을 천제이신 하느님으로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에 곰이 사람이 되어 하늘의 아들과 결혼하여 고조선을 세웠다는 단군신화는 신화일뿐, 이를 실제 사실로 받아들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를 증명할만한 자료도 없거니와, 과학적으로도 설명이 불가하다. 하지만 고조선의 시작에 대한 자료는 뚜렷이 없어 보인다. 한 나라의 시작이기에 무언가 이야기를 만들어 신화화한 것일 수 있으며, 이는 고조선뿐만은 아닐 것이다. 하나 유심히 살펴볼 것은 환웅이 말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말이다. 이는 한국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이 이념이 지금의 대한한국의 건국이념에까지 전해지고 있음도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사시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분명한 것은 노아홍수 심판 이후의 세상은 그 전과 비교할 때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땅이 갈라지는 엄청난 대격변이 지구에 임하면서, 대규모의 쓰나미 물들이 덮치며, 깨지고 부서졌을 것이다. 또한, 엄청난 양의 흙들에 뒤덮였을 것이기에, 기존의 에덴동산도 노아홍수 이전의 모든 문명과 기술들도 모두 부서지고 파괴되어, 그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대륙의 70%가 퇴적지층이며, 그 퇴적지층의 평균 깊이가 1.6km인데, 이 퇴적층들이 대부분 노아홍수 때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으므로, 홍수 이전의 환경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심지어 육상동물들은 그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울만큼 파괴되고 화석들로만 남겨지게 되었고, 사람이나 유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기에, 홍수 이전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단서는 없다고 볼 수 있다. 

그 이후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가 달라지고, 나라와 민족으로 나뉘어 이동하며, 한 번의 빙하기가 찾아오고, 서로 분리되어 살다 보니, 나라와 민족들마다 문화와 기술이 다르게 발전해 나갔을 것이다. 철이나 청동이 많이 나고, 철과 청동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청동기문화 및 철기문화와 기술이 발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흩어진 지역마다 얻을 수 있는 재료들이 다르고, 갖고 있는 기술들이 달랐을 것이고, 일부는 기술이 있어도 청동이나 철이 없다면 사용할 수 없었고, 그 기술도 잊어버리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구분은 존 러벅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용어이다. 그리고 성경 창세기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담 시대부터 청동기문화, 농경문화, 철기문화와 기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노아홍수와 바벨탑 이후에, 나라별로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를 겪은 시기가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바벨탑을 쌓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빌론 지역은 앞서 농경문화와 도시가 가장 먼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메소포타미아 남동쪽에 위치해 있다. 바벨탑 사건의 기록은 성경적 연대기록에 근거하면 약 BC 2300년경이다. 이스라엘의 태동은 아브라함이 장성한 시기인 BC 2200년경으로 추정될 수 있다. 바벨탑 시기와 이스라엘의 태동, 그리고 고조선의 태동 시기가 유사한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을 근거로 한 역사연구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온전히 드러나길 소망한다.

  

그리고 고조선의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 바로 복을 받는 복의 시작이 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창세기 12:2-3절과 어딘가 닮았다. 창세기 11장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바벨탑 사건 이후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어 흩어져 살게 하신 후,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을 소개하며, 새로운 나라 이스라엘의 시작으로 전환하신다. 바벨탑 사건 이후 흩어지며 말씀조차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세대에서, 이스라엘만큼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시며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시고 싶으셨던 것 같다.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스라엘의 조상,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며, 복을 주시고는, 복 그 자체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걸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복을 받는 것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복이 되어 복을 흘려보내고 나눠주는, 복의 통로가 되라는 말씀으로 전해진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다윗이, 그리고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셨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은 이제 모두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말씀하신다.(요 1:1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 12:2-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사실 처음부터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었으나, 바벨탑 사건 이후에 모두 다 이것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각 나라마다 건국신화들을 만들어내면서까지, 각 나라 마다의 신들을 섬기며,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성경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안다.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자녀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과 자녀로서의 권세를 누리고, 또한 나누고 전해야 하는 소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부르신 소명을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는다.

.우리 모두의 역사


참고문헌

.김범철, 성춘택, 천선행(2021). 고고학자가 얘기하는 우리의 선사시대, 중앙문화재연구원:과천

.민병덕(2009). 한국사 I, 혜원출판사:파주

.신시아 브라운(2020). 세상이 궁금할 때 빅 히스토리, 이근영(역), ㈜북하우스 퍼블리셔서:마포(원저는 2017년 출간됨)

.일연(2022). 삼국유사, 김원중(편저), ㈜민음사:서울

.일연(2009). 삼국유사, 훈민출판사:고양

.John Lubbock (1872). Pre-History Times, NEW YORK:D. APPLTON AND COMPANY


*참조 :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는 무엇인가?

https://creation.kr/Apes/?idx=12687892&bmode=view

‘석기시대’ 사람들은 놀랍도록 현대적이었다. : 배를 만들고, 장신구와 화장을 하고, 곡물을 먹고, 구분된 공간을 가졌다.

https://creation.kr/Apes/?idx=1852106&bmode=view

50만 년 전 현생인류의 조상이 만든 목조구조물?

https://creation.kr/Apes/?idx=17069535&bmode=view

330만 년 전으로 주장되는 돌 도구(석기)의 발견으로, 교과서의 인간 진화론은 또 다시 수정되어야만 한다.

https://creation.kr/Apes/?idx=1852243&bmode=view

80만 년(?) 전의 인류는 세분화된 거주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 그리고 157만 년(?) 전의 유럽인들은 연장을 만들고 있었다.

https://creation.kr/Apes/?idx=1852196&bmode=view

50만 년 전(?) 인류는 돌칼을 만들고 장애아를 돌보았다.

https://creation.kr/Apes/?idx=1852074&bmode=view

고대 인류의 유물이 섬에서 발견되었다 : 초기 인류(20만 년 전)는 배를 타고 항해를 했다.

https://creation.kr/Apes/?idx=2613754&bmode=view

인류의 조상들은 배를 타고 항해를 할 수 있었다 : 지중해 크레타 섬에서 석기시대(13만 년 전)의 돌연장들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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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무심코 돌 도구(석기)를 만들고 있었다 : 초기 인류가 만들었다는 타제석기는 의문스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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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타제석기를 만든다.

https://creation.kr/Apes/?idx=9134200&bmode=view

노아의 16명의 손자 : 고대의 지명과 민족들의 이름 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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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태양신 호루스는 신격화된 함이다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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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태양신 호루스는 신격화된 함이다 : 2부

https://creation.kr/archaeology/?page=1#16067923

고대 이집트에서 아담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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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석기시대와 타제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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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적인 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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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구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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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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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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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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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의 역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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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을 지지하는 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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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위원회
2023-12-24

<리뷰> 크리스마스에 교회가 전해야 할 메시지! 

(Christmas Sermons—Are Churches Preaching an Irrelevant Message?)

Bodie Hodge 


     일상적인 '크리스마스 메시지'가 불신자를 감동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목회자와 교회에 유익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오랜 기간 동안 이 절기에 나는 예수님의 출생에 관한 몇몇 크리스마스 설교들을 들어왔다. 오늘날 기독교 세계관을 잃어버린 서구 문화에서, 크리스천들이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의 이 시점에서 사람들이 반드시 들어야만 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크리스천 신앙에 갈등을 겪고 있는 한 친구를 크리스마스 시즌에 교회로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고, 함께 가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감격했었다. 우리가 교회에 도착하기 전에, 그는 나에게 본인이 생각해왔던 질문을 했다. 그는 내게 예수님, 말구유, 동방박사, 예수님의 탄생을 알린 목동들, 천사들에 관해서 묻지 않았고, 대신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 땅에 악한 것들이 존재하는가? 왜 육식동물은 다른 동물을 잔인하게 잡아먹고 살아가도록 만드셨는가? 공룡을 비롯한 멸종된 생물들을 하나님은 무엇때문에 창조하셨다가, 왜 멸종시키셨는가?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정하신 운명을 거슬러, 장기이식으로 생명을 길게 연장하려고 노력하는가?” 그는 계속해서 ”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그들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천국에 가면 되지 않겠는가? 왜 이 땅에서 계속 살아남으려고 애쓰는가?” 였다.

그는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오늘날 공교육과 교육시스템, 그리고 언론 매체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절대 진리로서 성경을 거부하도록 계속 유도하며, 세속적 문화로 인해 점점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과 성경을 믿는 믿음은 공격받고, 조롱당하며, 비난받고 있다. 왜냐하면, 소위 과학(진화론)이 그것이 사실일 수 없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성경 '창세기'는 실제 역사가 아닌, 신화들과 비유들을 모아 놓은 '이야기 책'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내 친구는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그러한 질문은 수년간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답을 들을 수 없었던 질문이었다. (슬프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와 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을 모른다. 왜냐하면 그와 같이 죽음의 기원과 의미를 설명하는 창세기에 기록된 이 세계의 참된 역사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들어야하는 크리스마스 설교는 성경의 창세기를 신화로 여기지 않는 목회자가 전하는 설교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한 목회자는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는지를 상기시켜줄 수 있다. 내 친구는 대답이 필요했다. 나의 대답을 통해, 그는 설교를 듣기 전에 성경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가 마음에 묻어두었던 것을, 그의 기독교 신앙을 방해했던 것을 나에게 물어주어서 기뻤다.

내 친구는 죽음과 고통과 죽어감이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죽음이 원수(enemy)이며, 죄로 인해 들어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린도전서 15:26). 하나님이 죽음을 만드시고 창세기 1:31절에서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하신 것이 아니었다. 죽음은 아담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들어온 죄의 결과였다. 나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완벽하게 창조하셨다고 설명했고, 아담이 처음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죄에 대한 형벌로서 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해주었다. 말해지고 있는 것처럼 지구는 수십억 년이 되지 않았고, 사람 이전의 장구한 세월 동안 죽음, 질병, 고통, 육식 등이 있지 않았다고 설명해주었다.

나는 계속했다.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의롭고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죽음으로 죄를 심판하셔야만 했다. 또한 하나님 없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사람이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분의 권능을 일부 거두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질병과 고통과 같은 일들을 허락하시지만, 이것에 대해 비난받아야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비난받아야할 대상은 사람인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내 친구의 머리에 전등이 켜지는 것과 같았다.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자, 성경은 그에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슬프게도, 창세기에 기록된 진리 대신에, 수십억 년의 장구한 시간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교회 내에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내 친구와 같은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정확한 답을 주지 못하고, 대신 그들의 질문과 벗어난, 구유에서 나신 아기 예수님에 대한 관계없는 메시지만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The 'god” of an Old Earth'을 참조하라)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과 성경의 진리를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역사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 친구와 마찬가지로, 역사와 삶의 의미에 대한 진정한 설명으로 성경을 거부하도록 하는 교육을 받았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구원을 받는 데에 주요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많은 비-기독교인들이 이와 같은 하나님에 대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들은 일 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에 교회로 올 수 있다. 나는 목회자들과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 기회를 이용하여 크리스마스 설교로 이 이슈를 들려줄 것을 기도한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성경이 진리임을 그들에게 확신시켜줄 수 있다.


크리스마스의 기초

내가 전에 들었던 한 크리스마스 설교에서 목사님은 ”크리스마스의 기초를 알아보기 위해 성경을 찾아봅시다.”라고 말하면서 누가복음 2장으로 갔다. 나는 즉시 ”거기는 크리스마스의 기초가 아닌데, 거기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일 뿐인데”라고 속삭였다.

크리스마스의 기초는 훨씬 더 후퇴한다. 그것은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초기 언급은 창세기 3:15절에 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5)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직후에, 예수의 동정녀 탄생(여자의 후손)의 예언이 있었다. 그들은 사망 선고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자비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처녀에게서 태어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속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기초는 창세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많은 언급은 예수님이 이삭의 후손이라는 창세기에 기초를 두고 있다.(창 28:13~14).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기초는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은 크리스마스 설교가 시작되어야하는 곳이다. 특히 성경의 이 부분이 사실일 수 없다고 세뇌된 문화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사람들이 베들레헴, 목동들, 동방박사에 관한 설교를 들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성경은 신뢰할 수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다.

창세기는 죽음이 창조된 세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용한, 아담의 죄에 관한 나쁜 소식에 대해 우리가 먼저 배워야하는 곳이다. 오늘날의 문화에서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했지만, 창세기에 있는 나쁜 소식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좋은 소식(복음)을 거부하는 이유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창세기의 나쁜 소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받아들여야할 필요성을 이해시키기 전에, 그들이 왜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지를 이해하도록 가르칠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는 적절한 기초가 필요하다. 그들에게 창세기에서부터 가르칠 필요가 있으며, 현대 과학은 이 역사적인 문서를 반증하지 못했으며, 과학은 창세기의 기록이 실제로 사실임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런 다음 창세기의 기본 진리에 대해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왜 동정녀의 몸에서 오셔야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크리스마스와 그 기초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크리스마스는 무엇인가?(What Is Christmas?)”을 읽어 보라.


왜 예수님이 오셔야만 했는가?

창세기로 돌아가서, 나쁜 소식은 아담의 죄로 인해 죽음이 이 세계로 들어왔다는 것이다(창 2:17). 로마서 6:23절은 죄의 대가가 죽음임을 확인해주고 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었다. 그래서 죄를 갚기 위해 무엇인가가 죽어야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죄를 갚기 위해 동물을 죽이신 이유이다(창 3:21). 어떤 동물이 희생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종종 어린 양으로 묘사되어, 복음을 예표했다.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람들의 죄를 대신 감당하시기 위한 마지막 희생 제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불순종의 죄를 갚기 위해, 동물의 생명을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써 이 패턴을 따랐다. 그러나 동물은 사람의 죄를 없앨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생물과 관련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누군가가 자신의 범죄함으로 형벌을 받아야할 때, 그 형벌을 스스로 당신이 감당하시는 것은 은혜와 자비이다. 이것이 우리의 창조주께서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이다. 그는 인간으로 오셔서(그러나 신성을 가지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형벌을 받으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사망을 선고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이 그 형벌을 대신 지심으로, 우리에 대한 그 분의 사랑을 확증해주셨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갖고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갚기 위한 마지막 희생제물이 될 수 있도록 완전한 삶을 사셨다. 이것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유이며,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고린도전서 15:45)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새 아담', '완벽한 아담'이 되셔서, 아담의 자손을 위해 죽으실 수 있었고, 우리에게 값없이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

성경은 사랑의 가장 위대한 행동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요 15:13). 성경의 하나님은 이러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정말로 동정녀에서 태어나셨는가?

창세기 3:15절 외에 이사야서에는 처녀가 아이를 낳을 것이며, 이것이 징조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14)

이 예언은 처녀인 마리아에게서 실현되었다. 그녀는 아기를 낳았고,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받았는데, 이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God with us)”이라는 의미였다. 동정녀 출생에 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Is the Perpetual Virginity of Mary a Biblical View?를 보라.

특히 요셉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될 수 없었다! 마태복음 1:1~16절에 있는 요셉의 족보는 여호야긴(여고냐)이 요셉의 직계 조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 예레미야서에서 여호야긴에게 주어진 저주를 읽어 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 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예레미야 22:30)

다윗의 왕좌에 영원히 앉아계시는 예수님께서 여호야긴의 후손이 될 수는 없었다. 여호야긴의 후손은, 따라서 요셉의 후손은 다윗의 보좌를 상속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처녀가 되어야 했다. 이사야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왕좌에서 다스리실 것임을 확인해준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 9:7)


동방박사의 중요성

몇 명의 동방박사들이 왔었을까? 우리는 모른다. 단지 두 명 이상이고, 그들이 세 가지 선물을 가져왔다는 것만 안다.(더 자세한 정보는 ”We Three Kings”을 참조하라.) 마태복음 2:1~11절은 이 동방박사가 이스라엘로 인도한 별을 따라 동방에서부터 여행해 왔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What Was the Christmas Star?” 참조)

이 박사들은 약속된 메시아인 그리스도를 찾고 있었다. 박사들의 이야기에서, 그들은 동쪽에서 왔다. 아마도 페르시아일 가능성이 있지만, 동양일 가능성도 있다. 아기 예수님께 선물과 경배를 드리기 위해서, 그렇게 먼 거리를 왔다는 사실은, 이 사람들이 창세기 역사와 관련된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사람들은 어떻게 먼 타국에서도 약속된 메시아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사람들은 바벨탑에서 흩어지면서, 지구의 모든 지역으로 분산되었다. 그들의 후손은 6대륙에 흩어져 살 때까지 계속 이주해 나갔다 ('Flood Legends” 참조). 또한 솔로몬 시대에도 하나님에 관한 정보가 세상의 많은 곳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다.

'동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중국인은 창세기 기록과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그들의 문자(한자) 속에 상징으로 들어있다. 심지어 그들은 거대한 홍수 동안 창조주이시며 사람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상제)께 희생제물을 드렸다는 기록을 갖고 있다. ('The Original ‘Unknown’ God of China'을 참조. 아래 관련자료 링크 93번).

이것은 바벨탑 이후 어떤 시점까지 동쪽으로 이주해갔던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을 실제로 알고 있었음을 확인시켜준다. 이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며 귀중한 정보들을 잃어버렸지만,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방박사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현명한 사람들이었다.(아마도 페르시아에서는 다니엘이 영향력을 끼쳤을 가능성). 이 사람들은 성경의 역사를 잃어버린 동시대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님이 오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성경적 역사와 성경의 신뢰성과 대한 확증은 바벨탑에 대한 성경적 기록이 정확했음을 입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진실한 역사를 잃어버렸다. 그들은 '수십억 년'의 역사를 받아들였고, 동방박사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기 예수의 중요성

예수님이 이 세상으로 들어오신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먼 곳에서부터 와서 예물을 드리고(시편 72:10), 지역 목동들이 그 앞에 굽히고(시편 72:9)와 같은 성취된 예언, 헤롯 왕이 두 살 아래 아기들을 죽인 사건(예레미야 31:15, 마태복음 2:16~18), 한밤중에 애굽으로 피하라는 현몽(마태복음 2:13~15) 등은 이 아기의 중요성을 암시하는 몇 가지 징조였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6)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권좌에서 내려와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 그 분은 우리 중 한 사람으로 사셨지만, 하늘의 완전함을 이 땅에 남겨놓으셨다. 이 아기는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러 오셨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1)

예수님께서는 지구 역사상 매우 중요한 시점에 이 땅에 오셨다. 과거를 숙고해보고, 이 중요성에 대한 큰 그림을 얻자. 아래 다이어그램을 참조하라.

아담과 하와가 지상에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을 때, 100%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신뢰하지 않았다.

노아 시대에 그의 가족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던 유일한 지상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인구가 계속 증가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 비율은 매우 낮아진다.

하나님이 홍수를 보내신 후에, 노아와 그의 가족은 지상에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으므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던 사람들은 다시 거의 100% 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셨다. 궁극적으로 지구의 인구가 재번성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비율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탄생 직전에 세계 사람들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신뢰하지 않았다. 위의 그림은 이러한 일반적인 원칙을 설명한다.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의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조차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따랐다. 그리고 성경에서 하나님이 실제로 말씀하신 것을 믿지 않았다. 믿었다면 메시야를 기대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했던 동방박사들, 마리아, 요셉, 안나, 시므온, 세례 요한의 가족들과 소수의 사람들만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렸다.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은 매우 낮은 비율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때 오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것은 역사상 가장 낮은 비율의 시점이었기 때문에, 오신 시기는 매우 중요했다. 그 사명을 완벽하게 완수하셨으며,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값없는 구원의 선물로 인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9)


크리스마스 날에 축하해야 하는가?

어셔 대주교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기원전 4년경에 태어났다. 예수님은 어느 날에 태어났을까? 우리는 알지 못하며, 성경은 그 날을 알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크리스마스(12월 25일 그레고리력)로 선택된 날짜는 예수님이 태어난 날짜가 아닐 것이다 ('The Origin of Christmas” 참조). 회의론자와 비판론자들은 크리스마스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Defense of Christmas’를 읽어 보기 바란다. 문제는 실제 날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억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는 악하고, 그것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내게 말했다. 다음은 내 개인적 견해이며, AiG의 공식 견해가 아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편 24:1)

우리가 크리스마스 날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경배하면(롬 14:5-6), 그 날이 어떻게 악한 것일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크리스마스로 축하하는 날은 로마 이교도의 축일에서 왔음을 상기시켜주었다. 나는 그에게 우리는 매일 날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감사드려야한다고 말했다. 왜 우리 크리스천들이 이 날에 하나님을 경축하는 것을 거절해야 하는가? 우리는 언제 어느 때나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사실 성경은 이것을 장려한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시 86:12)

'영원토록'은 크리스마스로 축하하는 날도 포함된다.

어떤 사람들은 예레미아 10:1~6절에서 장식된 나무를 내게 상기시켜주었다. 나는 죄가 되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거짓된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마음임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면, 그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장식된 나무로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면(거짓 신과 반대로), 어떻게 죄가 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탄생일을 휴일로 기념하도록 사람들에게 결코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예수님이 그 반대도 금지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이제 내가 틀렸다고 하지 말라. 나는 이 글에서 크리스마스 날을 축하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함으로써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을 금지시킬 이유는 없다.

 

크리스마스에 전할 메시지에 대한 결론

목사님들이나, 교회 지도자들은 이 특별한 연휴 기간 동안,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메시지를 전해줄 것을 요청한다 :

▶ 크리스마스는 아담의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기억하는 때가 되어야 한다.

▶ 크리스마스는 하나님께서 자발적으로 낮아지셔서, 우리를 위해 태어나시고, 살다가, 고통당하시고, 죽으셨음을 기억하는 때가 되어야 한다.

▶ 크리스마스는 우리 크리스천들 모두가 예수님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일상생활의 안락함을 떠나야할 의무가 있음을 기억하는 때가 되어야 한다.

비-그리스도인들이 이번 휴가철에 교회에 올 때, 그들이 묻는 질문들에 우리가 답을 해주어야 한다. 이것에 관해서는 Answers의 글들을 참조하라.

크리스마스 설교나 일상 대화에서, 크리스마스에 관한 모든 토론은, 복음서에 나오는 좋은 소식(복음)과 함께, 창세기의 나쁜 소식도 같이 설명해 주어야할 필요가 있다. 그 경우에 불신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선물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소식이 있다고, 잠시 시간을 내어달라고, 불신자들에게 요청하라.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answersingenesis.org/holidays/christmas/making-the-christmas-sermon-relevant-for-todays-culture/ 

출처 - AiG, 2017. 12. 14.

미디어위원회
2023-07-05

‘일곱자매별'의 유사성은 진화가 아닌, 바벨을 가리킨다.

(‘Seven Sisters’ similarities point to Babel, not evolution)

by David Catchpoole


    호주 원주민 여성으로 윈스턴 처칠 펠로우(Winston Churchill Fellow)인 수지 베츠(Susie Betts)는 일곱자매별(Seven Sisters star constellation)로 말해지는, 플레이아데스(Pleiades) 성단이 포함되는 토착 원주민들의 창조 이야기를 연구했다.[1] 그녀의 연구는 그녀를 북미와 남미로 데려가게 했다.

<CC BY-SA 4.0 Juan lacruz | fotovika © 123RF.com | ravenestling © 123RF.com | PD – B.E. Minnsseven-sisters>


그녀는 그곳에서도 자신의 위랑구(Wirangu) 족의 창조 이야기와 비슷한 점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 이야기에서 사냥꾼인 오리온(Orion) 별자리(그들의 언어로는 사냥꾼 '트길비(Tgilby)')는 일곱자매(유가릴야, Yugarilya)와 사랑에 빠지고 쫓아간다.

그리고 그것은 증명되었다. "그녀의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원주민들은 일곱자매별과 창조의 연관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면 왜 고대 그리스, 우크라이나 등 지리적으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플레이아데스 성운의 별들은 일곱 명의 여성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대부분 자매일까? 그리고 왜 사냥꾼에게 쫓기고 있는 것일까? 가장 오래된 그리스 신화 작가인 헤시오도스(Hesiod, BC 8세기)는 "플레이아데스는 강력한 오리온을 피해 도망친다"라는 대사를 남겼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전에 쓰여진 책인 욥기에는, 하나님께서 욥에게 “네가 묘성(Pleiades, 플레이아데스)을 매어 묶을 수 있으며 삼성(Orion)의 띠를 풀 수 있겠느냐”라고 묻는 대목이 기록되어 있다.(욥 38:31).

진화론적/장구한 연대의 관점에서 설명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별들의 모습에서 자매나 심지어 여성을 암시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왜 고대 그리스인들과 위랑구인들 모두에게 동일한 별 무늬가 사냥꾼을 암시할까? 별들을 자매로 부르는 이러한 연결이 전 세계 문화권들에서 우연히 여러 번 발생해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우연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이것은 불과 수천 년 전 인류가 바벨에서 흩어졌다는 성경의 기록이 진실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Hamilton, J., Seven Sisters stars creation story reconnecting people to their country after clifftop massacre taboo lifted; abc.net.au, 8 Oct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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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성서에 나타난 천문학적인 통찰 : 묘성과 삼성

https://creation.kr/BiblenScience/?idx=1288805&bmode=view

Pleiades and Orion: two ancient Hebrew word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2/j20_2_100-103.pdf

Pleiades and Orion: bound, unbound, or … ?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8_2/j18_2_44-48.pdf

▶ 바벨탑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4661&t=board

▶ 성경 속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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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의 홍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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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홍수 후 인류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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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reation 43(4):56, December 2021

주소 : https://creation.com/seven-sisters-similarities-point-to-babel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3-06-22

성경의 아담들

(The Adams of Scripture)

Shaun Doyle and James Hughes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고린도전서 15:45)이라고 불린다. 그렇다면 그분 앞에 몇 명의 ‘아담’이 나왔는가? 

물론 적어도 한 명이 있다. 같은 구절에서 바울은 창세기 2장 7절을 인용하여 하나님이 흙으로 지으신 사람을 “첫 사람 아담”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마가복음 10:6-8에서 예수님께서 창세기 2장을 창조주간 6일째에 있었던 특정 사건의 확장판으로 읽으신 방법과 일치한다.[1]

고린도전서 15:45~47에서 바울은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45절)과 “둘째 사람”(47절)이라는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첫 아담과 대조하고 있다. ‘둘째 사람’이 ‘둘째 아담’과 동의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2, 3, 4]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여러 ‘아담들’ 중 마지막이었음을 보여준다.

 

아담 : 하나님의 첫 번째 제사장-왕

아담은 사상 최초의 인간이었다. 그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다(행 17:26). 국가, ‘인종’, 민족 그룹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에게 창조물을 다스리는 첫 번째 왕으로서 땅을 다스리는 권세(창세기 1:26-28)를 포함하여 특별한 역할을 주셨다. 이것은 아담의 사명(또는 지배 명령)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담은 또한 첫 번째 제사장이었다. 에덴동산은 후대의 성막과 성전처럼 아담과의 특별한 만남의 장소였다.[5]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에게 후대의 제사장들처럼 ‘섬기고 순종’(창세기 2:15-16)하라고 명하셨다.[6]

그러나 아담은 실패했다. 그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음으로 죄를 지었다. 하나님이 그를 동산에서 쫓아내셨고, 모든 생물에게 죄와 사망이 들어왔고, 온 세상이 허무한 데 굴복하게 되었다(롬 8:20-22).

 

노아 : 새로운 시작을 위한 새로운 '아담'

아담 이후에 상황은 더 나빠졌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창세기 4장). 죽음은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창세기 5장). 그리고 땅에 폭력과 악이 가득 차게 되었다(창 6:5,11). 그래서 하나님은 대홍수로 그 세상을 멸망시키셨다.

그러나 그 후에 새로운 세상이 일어났다.[7] 그래서 하나님은 새로운 ‘아담’, 즉 노아에게 사명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아담에게 동물을 데려오셨던 것처럼(창세기 2:19-20), 그분은 동물들을 노아에게로 데려오셨다(창세기 6:19-20). 노아가 대홍수 후 방주에서 나왔을 때, 노아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를 드렸다(창세기 8:20).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주신 복을 노아에게도 주셨다(창세기 9:1-7).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또한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권을 다시 확립하셨다(창세기 9:2-3).

또한 하나님은 모든 육체를 멸하는 대홍수를 다시는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전 지구적인 홍수만이 그렇게 할 수 있었고, 그 이후로 그런 홍수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은 창세기 대홍수가 전 지구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담처럼 노아도 실패했다. 노아는 포도원을 가꾸고 나서 술에 취해 벌거벗었다. 그의 아들 함은 벌거벗은 그의 아버지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

 

아브라함 : 새로운 약속을 위한 새로운 아담

아담의 후손들처럼 노아의 후손들도 더 나빠졌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땅을 채우는 대신에, ‘그들의 이름을 내기 위하여’ 탑을 쌓기 시작했다(창세기 11:1-9). 이에 대한 대응으로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을 흩으셨다. 그래서 인류는 퍼져나갔고, 다른 나라들로 쪼개졌다.(창세기 10장 민족들의 표 참조).

그래서 분열된 세상 속으로 하나님은 또 다른 ‘아담’인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하나님은 창세기 12:1-3에서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28의 사명을 주셨다. 비일(Beale)은 이렇게 설명한다 :

예를 들어 그 사명은 아브라함에게서 반복된다 : (1)‘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2)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정복하고 다스림’).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 (창세 22:17-18).[8]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지만(창세기 15:6), 그는 때때로 흔들리기도 했다(예를 들어 이스마엘을 낳기 위해 첩을 얻음). 그리고 그는 또 다른 사람인 살렘의 수수께끼 같은 제사장-왕인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았다(창세기 14:18-20). 작은 자가 큰 자에게 복을 받기 때문에(히브리서 7:7). 이것은 이 신실한(불완전하지만) 새 ‘아담’이 마지막이 아니었으며, 아브라함보다 더 큰 ‘아담’이 아직 계시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이스라엘 : 새로운 에덴에 있는 국가적 '아담'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약속은 대부분 약속으로 남았다. 예외는 이삭이었다(창세기 17:19).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삭과 그의 아들 야곱에게 넘기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아담의 사명을 완수하기로 선택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기’ 시작했다(출애굽기 1:7). 그런 다음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여 시내에 있는 “하나님의 산”(출애굽기 18:5)으로 인도하셨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자신의 백성을 처음 만나셨다.

.시내 산의 이스라엘. (요세푸스 작품의 1723년 네덜란드 버전)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아담의 사명을 주셨다. 아담이 제사장 겸 왕이었던 것처럼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가 되어야 했다(출애굽기 19:5~6). 출애굽기 23:20-33에서 피로 언약을 인봉하시기 전에 이스라엘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에서(출애굽기 24장),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동산에 두셨던 것처럼(창세기 2:8) 그들을 “내가 예비한 곳”(20절)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아담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넘어졌다. 예를 들어, 금송아지 사건, 약속의 땅으로 가게 하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음, 가나안 족속과 언약을 맺음 등으로, 이스라엘의 죄는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사사기 21:25) 까지 계속되었다.

 

다윗 : 새로운 계보를 위한 새로운 아담 

이스라엘은 새로운 아담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윗을 주셨다. 그는 제사장-왕의 역할을 맡았다. 그는 제사장의 옷을 입고 춤을 추며 언약궤의 행렬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했다(사무엘하 6:14). 그는 제사를 드린 다음 백성을 축복했다. 하나님의 임재는 약속의 땅의 중심인 예루살렘의 ‘새 에덴’에 임했고,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안식을 주셨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은 그에게 사무엘하 7장의 웅대한 약속을 주셨다. 비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사무엘하 7장은... 성전 건축의 필요성(7:2-13)을 창세기 1:28의 다음 측면과 밀접하게 연결한다 : (1)다스리고 정복함(7:9-16), (2)하나님의 왕의 부섭정(vice-regent, 섭정의 대리인)에 대한 축복(7:29).[9]

그러나 다윗 역시 넘어져서, 밧세바와 간음하고 헷 사람 우리아를 죽였다. 아담과 노아 이후에 일어난 일처럼 상황은 더 나빠졌다. 다윗은 가족 문제로 인해 이전의 영광스러운 자신의 그림자로 사망했다. 솔로몬도 시작은 잘했지만 … 실패했다(열왕기상 11:1-8). 이 죄악된 패턴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추방하셨던 것처럼,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을 추방하실 때까지 계속되었다.

 

예수님 : 모든 아담들을 끝내는 아담

너무 많은 아담들, 너무 많은 실패들! 그들은 왜 계속 실패했을까?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이며(창세기 8:21), 아담도 마찬가지였다. 아담이 성공하려면, 그는 죄가 없어야 한다. 우리는 죄 없는 제사장-왕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모든 이전 아담들이 실패한 곳에서 성공하셨다. 그분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었다(고린도후서 5:21). 따라서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이시며(고린도전서 15:45), 영원한 제사장-왕이시다(히브리서 4:14-5:10). 예수님은 라멕이 노아를 통해 예언한 영원한 안식을 주셨다(창세기 5:29, 참조, 마태복음 11:28-30).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씨이다(갈라디아서 3:16). 예수님은 참되고 신실한 이스라엘 사람이시다(마태복음 2:15; 참조, 호세아 11:1).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시다(로마서 1:3). 그리고 그분은 또한 두 번째 아담인 노아의 후손이시며, 첫 사람이신 아담의 후손이시다(누가복음 3:23-38).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으로서, 하늘에서 난(고린도전서 15:47) 둘째 사람이 되셨다. 아담이 원래의 창조의 첫 번째 예이듯이, 예수님은 그분의 부활을 통한 새로운 창조의 첫 번째 예이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이상이시다. 그분은 또한 “살려주는 영이 되셨다”(고린도전서 15:45; 요한복음 5:21). 즉, 그분은 죄 많은 인간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신다(고린도후서 5:17; 갈라디아서 6:15). 그분은 하나님-사람이시며, 인간의 육체로 거하시는 참 창조주이시다(골로새서 1:16-17, 2:9).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다른 아담들이 실제로 존재했을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 하나님은 첫 번째 아담과 마찬가지로, 다른 아담들에게 제사장-왕으로서의 사명을 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과 우리가 항상 되기를 원하셨던 것을 성취하셨다. 예수님은 첫 번째 아담의 창조와 함께 시작된 역사인, 구원 역사의 절정이시다.

 

References and notes

1. Wieland, C., Jesus on the age of the earth, Creation 34(2):51-54, Apr 2012; creation.com/jesus-age.

2. Boa, K“ and Kruidenier, W., Romans, Holman New Testament Commentaries, Vol. 6, Broadman & Holman Publishers, Nashville, TN? p. 176, 2000.

3. O’Brien, P.T., The Epistle to the Philipp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Eerdmans, Grand Rapids, MI, p. 263, 1991.

4. Woicik, L., Second Adam; in: Barry, J.D. et al. (Eds.), The Lexham Bible Dictionary, Lex ham Press, Bellingham, WA, 2016.

5. Doyle, S., Was the Garden of Eden a “sanctuary’ from a hostile outside world?

creation.com/eden-sanctuary, 3 Jan 2015.

6. Beale, G.K., The Temple and the Church's Mission, IVP, Downers Grove, Illinois, p.75, 2004.

7. Batten, D., Adam and Noah: two beginnings, Creation 34(1):12-14, January 2011;

creation.com/adam-and-noah.

8. Beale, ref. 6, p. 123. 9. Beale, ref. 6, p. 136.


*SHAUN DOYLE B.Sc.(Hons.), Grad.Dip. NRS

obtained a Bachelor of Environmental Science (Hons.) and a Graduate Diploma in Natural Resource Studies from the University of Queensland, Brisbane, Australia. He works fulltime for Creation Ministries International in New Zealand. For more: creation.com/doyle.

*JAMES HUGHES B.A., M.A., Dip Th.

Jim has a bachelor’s degree (cum laude) from Harvard, and a master’s from the Univ, of British Columbia. He managed large projects in systems integration and software development before becoming involved with CMI Canada. For more: creation, com/jim-hug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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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reation 44(2):18–20, April 2022

주소 : https://creation.com/adams-of-scripture

번역 : 이종헌

미디어위원회
2023-04-11

미래의 희망은 진화인가, 부활인가?

(Future Hope: Evolution or Resurrection?)

by Jake Hebert, Ph.D.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증거는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진화가 사실이었다면, 생물의 기본 종류(kinds)들 사이에 무수히 많은 과도기적 전이형태의 생물 화석들이 존재했어야 한다. 이것은 단세포 생물에서 인간으로 진화되었다는 생명체의 진화를 명확하게 나타내줄 것이다. 진화론자들도 이러한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s)"가 명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1] 게다가 비생명체로부터 생명체의 자연발생은 결코 관찰된 적이 없으며, 물리학 법칙들과 화학 법칙들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지적으로 설계되었음을 가리키는 수많은 사례들이 관측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과학적 증거 때문이 아니라, 정서적 분위기 때문에 (진화론을 거부하게 되면 받게 되는 불이익과 비난과 조롱 때문에) 진화론을 받아들인다.

사람들이 자신의 죄와 자신의 도덕적 실패들을 정직하게 바라본다면, 미래에 초자연적 창조주 앞에 서서 자신의 삶을 회계할 때에 암울하고 무서울 것이다. 심지어 다윈도 그의 자서전에서, 기독교가 진실하지 않기를 바라는 강력한 이유는 지옥의 교리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했었다.[2] 그러나 무신론적 진화론은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 가능성을 제거시켜준다.

또한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진화론은 표면적으로 미래에 희망이 있으며, 우리의 후손들은 결국 더 나은 버전으로 진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아마도 슈퍼맨처럼 "인간의 힘과 능력을 훨씬 능가하는" 존재로 진화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이것이 만화책과 공상과학 영화에서 그렇게 흔한 주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후손들이 우월한 존재로 진화한다고 해도, 이것이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인류가 더 나은 미래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수십억 명에게, 그것은 어떤 희망을 제공할 수 있는가? 게다가 진화 이야기에 의하면, 미래의 우주는 최대의 무질서 상태에 도달하고 끝이 난다고 말한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우리의 후손들은 그들이 성취했을지도 모르는 "더 고도로 진화된" 상태와 관계없이 멸망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증거가 없는 허구적 진화 이야기는 서로 큰 대조가 된다. 우리 인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성경(창세기 3장; 로마서 8:22-23)이 가르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쇠퇴되고 있다는 증거들은 풍부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많은 증거'들이 있다.(사도행전 1:3).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죄가 용서된다고 확신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화평을 얻게 된다.(로마서 5:1)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은 썩지 아니할 것으로, 영광스러운 것으로, 강한 것으로,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며(고린도전서 15:42-44),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화시켜 주실 것이라고(빌립보서 3:21)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우리 인간이 더 높고 더 고귀한 상태로 올라갈 수 있는 현실적으로 유일한 방법이다. 제조업에서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설계를 업그레이드 해야만 한다. 생산 공정에서 무작위적인 오류로 성능이 개선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죄의 경향은 영원히 추방될 것이며, 우리는 더 이상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이, 주님의 임재 안에서 영원토록 기뻐할 것이다(요한계시록 21:4). 그리고 우리는 이 축복된 상태를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의 과학적 문제를 지적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진화론에 대한 믿음은 궁극적으로 증거가 아닌, 자신들의 생각(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진화론이 정서적으로도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만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갈망이 충족될 수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Morris, J. D. and F. J. Sherwin. 2011. The Fossil Record. Dallas, TX: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2. Morris, H. M. 1994. Birthrights and Pottage. Acts & Facts. 23 (7).

3. Sanford, J. C. 2008. Genetic Entropy and the Mystery of the Genome, 3rd ed. Waterloo, NY: FMS Publications.

* Dr. Hebert is Research Scientist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earned his Ph.D. in physics from the University of Texas at Dallas.

.Cite this article: Jake Hebert, Ph.D. 2023. Future Hope: Evolution or Resurrection?. Acts & Facts. 52 (3).


*참조 : 그리스도의 부활 : 확증된 역사적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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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과 성경 기록의 정확성에 대한 영상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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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CR, 2023. 2. 28.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future-hope/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3-04-05

다니엘서 : 예언인가, 익명의 위작인가?

 (Daniel: Prophecy or Pseudonymous Forgery?)

by Liz Abrams 


     다니엘서는 그 책에 묘사된 사건들이 일어났던 시기에 기록됐다는 강력한 증거들을 갖고 있다.


   다니엘서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짓 신을 숭배하는 이교도 왕 아래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대한 지속적인 순종과 충성과 관련하여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비록 한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이 심판을 받았지만, 그러한 신실한 믿음은 하나님이 제국이나 그들의 이방 신들보다 더 위대하심을 증명해보이심으로 보상받았다. 하나님은 풀무불과 사자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종들만이 해석할 수 있는 계시를 왕에게 나타내고, 왕이 너무 교만해지면 직접 심판하셨다.

선지자들이 정확한 예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역사의 흐름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그의 꿈과 해석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다니엘 2장) 느부갓네살 왕에게 꿈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꿈의 내용과 해석을 모두 다니엘에게 또한 주셨기 때문이다.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만이 예언적 꿈과 해석을 주시고, 그것을 성취하실 수 있으시며, 하나님이 바빌로니아 왕과 그의 거짓 신들, 그리고 이교도 점성술사들보다 더 크심을 보여주셨다. 창세기는 다니엘서의 "전면과 중심(가장 중요한 위치)"은 아니지만, 다니엘서 신학의 기초가 되므로, 그러한 기초 없이 다니엘서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창세기는 다니엘서의 "전면과 중심"은 아니지만, 다니엘서 신학의 기초가 되므로, 그러한 기초 없이 다니엘서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거의 모든 책들의 구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당연히 그들은 고고학에 의해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채로, 성경의 거의 모든 세부적 사항들에 대한 역사적 정확성을 의심한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공격을 많이 받는 책 중 하나가 다니엘서이다. 느부갓네살 이후에 일어날 왕국들을 예견한 꿈은 예언이거나, 아니면 이 왕국들이 일어난 후에 쓰여진 위작이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초자연적 창조를 배척하기 때문에, 정확한 예언도 배척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세속주의자들은 창세기를 거부하는 것과 동일한 이유로 다니엘서를 거부한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유물론자(materialists)들이다. 그들은 약 6,000년 전 6일 동안 이 세계가 초자연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누군가가 창조주로부터 미래의 사건들에 대한 실제 지식을 전달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이렇게 다니엘서의 예언들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강력한 메시지였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강력한 메시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서는 마카비 시대에 쓰여진 위작인가?

다니엘서의 저자가 다니엘(BC 6세기 초)이 아니라는 의문을 제기했던 최초의 사람은 신플라톤학파의 철학자였던 포르피리우스(Porphyry, AD 232~303년경)였다. 그는 그의 저서 <기독교에 대한 반론(Against the Christians)>에서, 미래에 대한 예언적 말씀 같은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다니엘서는 BC 2세기 경에 쓰여졌음에 틀림없다고 주장했다.[1] 이것이 사실이라면, 저자는 다니엘이라는 가상의 유대인에 대한 역사를 지어냈던 마카비 시대(BC 167~63)의 한 유대인(a Maccabean Jew)이 될 것이다. 즉 익명의 유대인이 다니엘서를 썼다는 것이다. 오늘날 유물론자들이 기록된 그대로의 창조와 노아 시대의 전 지구적 홍수를 거부하는 것처럼, 이러한 주장은 진정한 예언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우선적으로 거부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마카비안 가설(Maccabean Hypothesis)은 오늘날에도 유행하고 있다. 다니엘서가 실제로 이 기간 동안에 쓰여진 한 유대인의 위작인지, 반대되는 증거들을 살펴보자.


1) 위작은 일반적으로 확립된 등장인물과 설정을 확장시킨다.

첫째, 우리는 구약과 신약시대 사이에 쓰여졌던 익명의 글들은 일반적으로 순 엉터리 등장인물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그들은 아담과 하와, 이사야, 또는 사악한 왕 므낫세와 같은 잘 알려진 성경 인물로부터 확장시킨다. 이들 위작의 저자는 청중들이 알만한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에스라의 예언을 확장한 글은 실제 예언이 아닌, BC 2세기 유대인 저자의 것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다니엘(문자적으로 "하나님은 나의 재판장"이라는 뜻)은 다니엘서 말고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히브리 사람들의 한 이름이다. 다윗에게는 다니엘이라는 한 아들이 있었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사람들 가운데 이다말의 후손인 다니엘이 포함되어 있었고, 한 다니엘은 느헤미야 10장에서 언약을 인봉한 사람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다. 에스겔서는 매우 의롭고 현명했던 다니엘에 대해(노아와 욥과 함께)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언급만으로는 전체 익명의 책의 기초를 형성하기에는 너무 모호하다.


2) 위작에는 역사적 부정확성이 포함되어 있다.

유딧서(the book of Judith)처럼 이전 규칙에 예외가 있는데, 거기에는 느부갓네살의 통치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유딧서의 경우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의 왕이 아니라, 앗수르의 왕인 것으로 기술되어 있어서, 명백한 역사적 부정확성이 들어있다.[1] 현대에도 과거 수백 년 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쓸 때, 연대기적 오류나 다른 역사적 오류를 범하기 쉽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니엘서에서 그와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사실 다니엘서는 놀랍게도 (세속적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정확하다. 부재한 아버지 나보니두스(Nabonidus)를 대신하여 통치하고 있던 벨사살(Belshazzar)에 대한 다니엘서의 기록은 바빌론 밖에서 그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다.[1] 나보니두스의 아들 벨사살을 언급하고 있는 ‘나보니두스의 원통(Nabonidus Cylinder)’이 발견되기 전까지, 회의론자들은 벨사살을 역사적 오류의 예로 사용했었다. 

다니엘서에 묘사된 형벌의 방법조차도 각 나라의 형벌과 일치한다. 바빌론 사람들은 불로 처벌했지만, 페르시아 사람들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졌다. 불은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신성했기 때문이다.[1] 이것들은 수백 년 후에 다른 문화권의 저자였다면 틀렸을 것이 분명한 종류의 세부 사항들이다.

그러나 다니엘서의 역사적 정확성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몇 가지 고고학적 세부 사항들을 확인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은 다니엘서를 역사 소설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그들이 유물론자로서, 초자연적 예언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벨사살 왕”은 오류인가?

벨사살의 역사성은 ‘나보니두스 원통’의 발견으로 확립되었지만, 그가 결코 왕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고레스(Cyrus, 키루스)는 나보니두스가 왕이었을 때, 바빌론을 정복하고 벨사살을 죽였다. 그러나 우리는 바빌론의 역사 기록을 통해 나보니두스가 약 10년 동안 자발적으로 망명 생활을 하다가, 고레스의 침공 몇 년 전에 돌아온 것을 알고 있다. 그 기간 동안 벨사살은 모든 면에서 공동 섭정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를 "벨사살 왕(King Belshazzar)"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치에 맞는다. 왜냐하면 그는 왕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다니엘에 대한 상으로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았다는 다니엘서 기록은 이치에 맞는 것이었다. 이것은 왕국의 2인자였던 벨사살이 줄 수 있었던 최고의 보상이었다.


다니엘서의 역사적 정확성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몇 가지 고고학적 세부 사항들을 확인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은 다니엘서를 역사 소설이라고 부른다.


히브리인들은 다니엘서를 선지서로 여겼는가?

다니엘서의 신뢰성에 반대하는 또 다른 주장은 성경에 대한 ‘히브리 성경의 분류’에서 다니엘서가 선지서(예언서)가 아니라, 역사서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것이 다니엘이 다른 선지서들과 동시대가 아니라, 선지서 정경이 끝난 후에 기록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오랫동안 다니엘서의 위치에 주목해 왔으며, 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갖고 있다. 다니엘은 원래 선지자가 아니었다. 그는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의 궁정 관리자였으며, 우연히 예언을 받았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다니엘서를 역사서로 분류했다고 해서, 다니엘서가 더 작은 책이라고 생각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니엘서가 어떻게 70인역에 포함될 수 있었겠는가?

다니엘서가 BC 2세기 경에 기록되었다는 생각에는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고대부터 다니엘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과 모순된다는 것이다.

다니엘서는 원래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그것은 유대 세계 전역에 퍼졌고, 그 후 어느 시점에서 벨과 용(Bel and the Dragon), 그리고 수산나(Susanna) 내용이 추가되었다(70인역에는 13장, 14장이 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이야기). 그것은 성경으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BC 2세기 경에 70인역(Septuagint, LXX)의 나머지 부분과 함께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

만약 다니엘서가 BC 2세기에 기록되었다면, 기껏해야 수십 년 안에 복사, 배포, 추가, 성경으로 받아들여지고, 번역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70인역에 들어있는 다니엘서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니엘서는 훨씬 더 오래 전에 유대인 성경의 일부로 존재했어야만 했다.


예수님께서는 다니엘서를 권위있는 말씀으로 여기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궁극적 권위이시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니엘서를 성경으로 여기셨는지 살펴봐야 한다.

예수님은 분명히 다니엘 7장 13, 14절에 언급된 것처럼, 자신을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인자로 해석하셨다(마태복음 24:30).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6:64절에서 이 주장을 하셨을 때, 예수님과 그분의 유대인 반대자들 모두 이것이 메시아에 대한 주장임을 이해했고, 둘 다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것을 인정했으며, 예수님의 기소된 범죄는 신성모독, 즉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긴 것이었다. 이것은 다니엘서가 예수님 뿐만 아니라, 유대인 반대자들 모두 정경(Canon)으로 간주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사용하신 자기 묘사는 “사람의 아들(Son of Man, 인자)”이다. 일각에서는 그가 인간성에 대한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다니엘서를 다시 언급하고 있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에스겔서에 등장하는 것처럼(에스겔 2:1절과 책 전체에 걸쳐 여러 번) 한 사람의 아들(“a” son of man)이 아니라, 다니엘서가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적 인물인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이라고 주장하고 계신 것이다.

마태복음 24장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그 시점까지 아직 미래의 일이었던, 멸망의 가증한 것에 대한 다니엘서의 예언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셨다. 그 예언의 성취 시기에 대한 해석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그것을 일어날 일에 대한 참된 예언으로 여기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느부갓네살은 정말 미쳤는가?

다니엘의 역사적 정확성에 대한 공격 중 하나는 느부갓네살의 미친 행동에 대한 기술과 관련된 것이다. 회의론자들은 다니엘서를 쓴 마카비시대의 한 유대인 저자가 나보니두스 대신에 느부갓네살 왕이 미친 것으로 실수로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느부갓네살의 미친 행동에 대한 이야기 직후에, 나보니두스의 아들인 벨사살의 이야기는 추가적인 증거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나보니두스의 원통(Nabonidus Cylinder)’이 발견되기 전까지, 현대 학자들은 벨사살의 존재를 믿지 않고 있었으며, 아마도 바빌로니아 제국이 멸망하고 수백 년 후인 마카비시대의 저자로 추정되는 사람도 그에 대한 지식이 없었을 것이다.

현실은 느부갓네살 왕의 통치를 자세히 기록한 문서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부분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설사 모든 바벨론 기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바벨론 왕궁 문서들이 그들의 왕이 미쳤던 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록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증거들로부터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이방 왕들과 그들의 거짓 신들보다 훨씬 더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강조하는 다니엘서가 마카비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격려가 될 수 있었겠지만, 증거들은 그들 중 한 사람이 다니엘서의 저자가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성경 정경의 일부로서, 다니엘서는 점점 더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으로 되어가고 있는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격려와 교훈을 줄 수 있다.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거짓 신들(우상)에게 그들이 진짜 신이라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예언을 해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거짓 신들은 참된 예언을 할 수 없다. 예언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분의 창조에 대한 역사적 설명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확증하고 있는 다니엘서의 예언과 같은, 성경의 초자연적인 모든 측면을 방어하는 것도 중요함을 상기시켜준다.


Footnotes

1. Stephen R. Miller, Daniel,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1994), electronic version.

2. Michael D. Coogan, ed., The New Oxford Annotated Bible: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with Apocrypha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p. 1365.

3. Miller, Daniel, electronic edition.

4. Ibid.


*참조 : ▶ 성경을 지지하는 고고학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4724&t=board

▶ 성경의 예언과 성취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791225&t=board

▶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

https://creation.kr/Topic502/?idx=6828823&bmode=view

▶ 성경의 오류 논란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8792&t=board


출처 : AiG, 2022. 7. 15.

주소 : https://answersingenesis.org/bible-history/daniel-prophecy-or-pseudonymous-forgery/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3-03-06

요세푸스는 신뢰할 만한가?

 (Is Josephus Reliable?)

by Brenton H. Cook


   성서 시대의 세계에 대해서 가장 많이 인용된 자료 중 하나는 1세기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누구였으며, 우리는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있을까?


    유명한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 플라비우스(Josephus Flavius)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지 얼마 되지 않은, AD 37년 또는 38년에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제사장의 아들이었던 그는 바리새인이 되었고, 유대인 저항군의 지휘관이 되었으며, AD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을 목격했다. 최초의 교회 역사가인 유세비우스(Eusebius)는 그를 "그 시대의 가장 유명한 유대인"이라고 부르며, 로마에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동상에 대해 이야기했다.(요세푸스는 로마군의 포로가 된 뒤 전항하였고,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배려로 풀려나 로마시민이 되었다).

2천년 동안 기독교 학자들은 요세푸스의 저술, 특히 ‘유대 전쟁사(The Jewish War, 또는 유대 반란(Jewish revolt))’와, 창조로부터 1세기까지의 하나님 백성들의 완전한 역사인 ‘유대 고대사(Antiquities of the Jews)’를 보존하고 연구해왔다. 목회자들은 종종 그들의 설교에서 세부 사항들이 요세푸스에게서 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포함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의 저술은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한 소중한 목격자

모든 역사학자들은 오류를 범할 수 있고, 그래서 주의 깊게 읽어야 하지만, 특히 역사가들이 직접 보고 알게 된 지식을 보고할 때는 매우 도움이 될 수 있다. 십대 때 요세푸스는 다양한 유대 종파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고, 그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후에 최전선에서 유대 반란을 목격했다. 그가 포로가 되었을 때, 그는 반대편에서 그것을 보게 되었다. 실제로 그는 로마의 장군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가 제국의 왕좌에 오를 것을 정확하게 예언함으로써, 그의 호감을 얻었다. 요세푸스는 결국 전향하여 로마 시민권을 얻었고, 심지어 베스파시아누스의 황실 성씨인 플라비우스(Flavius)를 성으로 채택하였다. 그는 이제 황제의 도서관, 군사 보고서, 헤롯과 팔레스타인의 다른 통치자들의 재판기록에도 접근할 수 있었다.

요세푸스 저술의 주된 가치는 BC 100년부터 AD 100년까지의 유대 역사에 대한 그의 기록에 있다. 이 시대에 대한 요세푸스의 기록은 그가 수집하고 능숙하게 해석했던 수많은 확실한 출처들에 의해 강력하게 뒷받침된다.


요세푸스의 저술은 다른 어떤 기록에도 없는 귀중한 세부 정보들을 제공한다.


요세푸스의 저술은 다른 어떤 기록에도 없는 귀중한 세부 정보들을 제공한다. 사실, 그는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총독 벨릭스(Felix), 빌라도(Pilate)와 같은 많은 주요 정치적 인물들에 대한 가장 중요한 성경 외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자주 방문하셨던 성전과 같은, 헤롯의 많은 건축물들에 대한 지식의 대부분은 요세푸스 기록에서부터 나온다.

그의 저술은 또한 바리새인(Pharisees)과 사두개인(Sadducees)과 같은 1세기 유대 종파의 내부 활동들에 대한 통찰력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또 다른 종파인 에세네파(Essenes)에 대한 그의 설명은 그들이 ‘사해 두루마리(Dead Sea Scrolls, 사해 사본)’의 저자임을 확인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는 또한 성전 파괴(마태복음 24:2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예언됨)와 마사다(Masada) 꼭대기에서 일어난 유대인의 최후 저항과 같은 1세기의 여러 사건들에 대한 흥미로운 세부 사항을 제공한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그의 저술에 기록된 대부분의 사건들을 목격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역사서는 그 출처만큼만 훌륭한 것이다. ‘유대 고대사(Antiquities of the Jews)’의 초기 역사는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단지 성경과 일치하는 세부 사항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것들은 그가 의존했던 전통보다 더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친-유대인적 편견

많은 유대인들은 요세푸스를 반역자로 여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백성에게 충성을 유지했다. 유대인의 반란은 로마인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요세푸스는 역사가이자, 유대 민족을 옹호하는 사람으로서, 그것을 바꾸고자 했다. 칭찬할 만하지만, 이러한 편향은 주의해야 한다.

그의 친-유대인적 동정심은 ‘유대 전쟁사’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저술은 대부분의 유대인을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으로 묘사한다. 그는 1세기 유대 사회의 붕괴에 대해, 자신이 "산적(bandits)"과 "도적(brigand)"이라고 불렀던, 유대인 열심당원(Jewish zealots)들을 비난한다.

나중에 쓰여진 ‘유대 고대사’에서, 그는 유대 문화의 우월성과 고대성을 보여주려고 시도한다.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으로, 유대인들의 좋은 것들을 과장하고, 아론의 금송아지와 같은 부끄러운 실패는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오늘날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가 ‘선전된 역사(propagandistic history)’ 였다는 해롤드 아트리지(Harold Attridge)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그가 구약성경의 기록을 의역한 것은 유대역사를 "새로운 환경에서 적절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매력적인" 것으로 제시하고자 목표로 한 "창조적 각색"이었다는 것이다.[1]


다른 기준의 설정

요세푸스의 저술을 올바르게 읽으려면, 그것은 한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1세기 로마의 독자들은 오늘날 우리와 다른 기대를 갖고 있었다. 역사가들이 이야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 세부 사항을 구체화하거나, 추가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이 산꼭대기의 마사다 요새에서 마지막으로 저항했던 유명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항복 대신에, 유대인들이 몇 명의 사람들을 선택하고, 그들이 칼로 동료들을 죽인 후, 마지막에 자결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그의 이야기를 입증할만한 사체들을 찾지 못했다.

또한 그 시대의 다른 역사가들과 마찬가지로, 때때로 요세푸스도 영웅적인 이야기를 지어내어, 마사다 정상에서 유대인 지도자 엘리아자르(Eleazer)의 애국적인 웅변을 기술하고 있다. 엘르아자르의 말을 들었던 사람들은 포위 공격으로 모두 죽었고, 요세푸스는 로마에서 기록을 썼기 때문에, 요세푸스가 그 웅변을 완전하게 접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숫자와 통계에 주의를 기울였던 고대 역사가들은 거의 없다. 학자들은 요세푸스가 자신이 잘 알고 있었던 1세기 사건의 연대기에 대해서도 종종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가 제공하는 수치에 대해서는 조심해야 한다.


요약하면, 요세푸스의 저술들은 신약 시대에 대한 세부 사항을 수집하는 데 매우 중요하고 도움이 되지만,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기독교를 변증하는 자료로서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유대교를 선호했던 그의 편견과, 유대인의 유산에 대해 더 멋진 그림을 제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구약의 기록을 다시 쓰려했던 그의 의지가 내포되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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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요세푸스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 성경 인물과 장소들에 대한 세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당신은 다음의 주장들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것들은 요세푸스의 기록에서 나온 것이다.


● 헤롯 대왕은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Caesar Augustus)의 칙령에 따라 유대의 왕이 되었다(유대 전쟁사 1.20.2).

● 헤롯 앞에서 춤을 추며 세례 요한의 머리를 요구한 소녀의 이름은 살로메(Salome)였다(유대 고대사 18.5.4).

● 헤롯은 세례 요한을 사해 동쪽에 있는 마케루스(Macherus)에 있는 감옥으로 보냈다(유대 고대사 18.5.2).

● 감옥에 있던 바울을 불러 그의 말을 들었던, 로마 총독 벨릭스는 유대인 아내 드루실라(Drusilla,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딸)에게 남편과 이혼하고 자신과 결혼하자고 간청했다(유대 고대사 2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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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s

1. Harold W. Attridge, The Interpretation of Biblical History in the Antiquitates Judicae of Flavius Josephus (Scholars Press: Missoula, Montana, 1976), p. 181.

*Dr. Brenton Cook is associate professor of philosophy and of apologetics and worldview at Bob Jones University in Greenville, SC. He teaches church history and the history of New Testament times at Bob Jones Seminary.


*참조 : 창세기는 말하고 있는 그대로를 의미한다고, 요세푸스는 말했다. 

https://creation.kr/Genesis/?idx=1289083&bmode=view

교회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은 어떤 창조론을 믿고 있었는가?

https://creation.kr/Topic502/?idx=13865052&bmode=view

창조신앙의 역사, 그 교회사적 고찰 : 초대교회를 중심으로

http://creation.kr/Faith/?idx=1293813&bmode=view

창세기는 말하고 있는 그대로를 의미한다고 칼뱅은 말했다. 

http://creation.kr/Genesis/?idx=1289082&bmode=view

진화론이 만연한 이 시대에도 필요한 외침, ‘오직 성경’ 

http://creation.kr/Faith/?idx=1293853&bmode=view


출처 : Answers Magazine, 2013. 1. 1. (last featured 2020. 11. 8)

주소 : https://answersingenesis.org/bible-history/is-josephus-reliable/

번역 : 양승원

미디어위원회
2023-03-03

경계지대의 삶

: 예수님 시대와 유사한 오늘날의 문화적 상황

 (Life in the Borderland)

Tim Chaffey


     창조박물관(Creation Museum)의 최신 전시물을 조사하는 동안, 콘텐츠 작가는 그리스도 시대의 삶과 오늘날의 문화 사이에 놀라운 유사점을 발견하였다.


    구약은 유대 민족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로 잡혀 있다가, 그들의 땅으로 돌아오면서 끝을 맺는다. 예루살렘의 성전과 성벽은 재건되었지만, 상황은 암울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당국 아래서 쇠약해지는 400년 동안 침묵을 지키시고 계셨다.

신약 시대가 시작되면서 유대 민족은 철학적, 종교적, 정치적 파벌로 나뉘어졌다. 그리스 언어와 사상은 사회에 스며들었고, 로마제국은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대인으로 자란 이두매(Idumaean, 에돔) 사람이 예루살렘에 왕으로 앉아 있었다.

예수님이 탄생하기 300년 전,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는 그리스에서부터 동쪽으로 인도까지 진군했다. 그의 정복은 새로운 형태의 정부, 교육 및 종교 관행을 가져왔다. 헬레니즘화(Hellenization)라고 불리는 그리스 문화의 확산은 유대인 생활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도전했다.

일부 유대인은 기꺼이 헬레니즘을 받아들이는 반면, 다른 유대인은 변화에 저항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침묵을 깨시고, 그분의 아들을 이 경계에 놓인 지대로 보내, 동정녀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다. 예전과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 경계지대: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창조박물관의 한 새로운 전시물)


   이 잡지를 발행하는 Answers in Genesis의 또 다른 사역인 창조박물관에서, 2021년 7월 6일에 멋진 새 전시관을 공개했다. 35개 이상의 원본 예술작품, 갑옷과 의복의 정확한 재구성, 수십 개의 실제와 같은 미니어처 인물상 등으로 가득하다. ‘경계지대: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Borderland: Israel in the Time of Jesus)’은 관람객들에게 신약성서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몰입감 있게 보여준다.


‘경계지대’ 전시관에는 창조박물관의 다른 전시물보다 더 많은 콘텐츠들이 포함되어 있다. 창조박물관의 콘텐츠 관리자로서, 나의 주요 역할은 노아방주 전시관(Ark Encounter) 및 창조박물관(Creation Museum)에서 전시할 콘텐츠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의 전시물은 일반적으로 내레이션이 뒤따라진다. 모든 설명글(표지판)은 한 요점을 강조하고, 논리적으로 다음 설명글로 연결된다. 그러나 ‘경계지대’는 신약성서의 배경 연구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다르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을 시작으로, 그리스도 탄생 이전의 격동의 4세기를 거쳐,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끝나는 주제는 전쟁과 무기에서부터 일상생활과 의복 스타일, 예수님이 다니셨던 그때 세상을 살았던 사람들과 역사적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나의 특정 주제를 자세히 조사한 다음, 그것에 대해 길게 쓰는 대신, 이 전시물에서는 여러 주제들을 조사한 후에, 각 주제들을 짧은 한두 단락으로 요약하여 놓았다. 


나는 1세기 경의 이스라엘 문화에 몰두하면서, 그것이 어쩐지 꽤 친숙해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작은 경계지대는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이 처해있는 풍경에 대해 많은 교훈을 준다. 나는 종종 시대나 문화에 관계없이, 사람들이 문화적 압력에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또한 오늘날 우리 세상의 소란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동일하다는 것을 상기하게 되었다.

그림 1 . 이방인들은 이방인의 뜰(Court of the Gentiles)을 넘어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 초기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자주 성전에서 함께 모여 기도하고 가르쳤다.

 

그리스 문화의 영향

다음의 상황에서 유대인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생각해보자. 셀레우코스 제국(Seleucid Empire, 알렉산더 사후에 헬레니즘의 계승국 중 하나)이 이스라엘을 통치했을 때(BC 2세기), 유대 사회의 많은 부분에 그리스(Greek)의 종교적, 철학적 사상이 빠르게 스며들었다. 많은 상류층 시민들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대대로 전해져오던 조상들의 신앙을 타협하면서, 그리스 문화의 관습과 관행을 받아들였다. 일부는 권력을 얻기 위해 정치적 음모를 사용했다. 야손(Jason)이라는 사람은 돈으로 대제사장직을 사서, 예루살렘을 그리스의 도시로 만들려고 했다. 그의 후계자 메넬라오스(Menelaus)는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Antiochus IV Epiphanes)에게 뇌물을 주고 관직을 사고, 성전에 급진적인 헬레니즘 관습을 도입하려고 시도했다. 예루살렘 밖에 살던 많은 유대인들은 이러한 변화를 거부했고,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 명하신 대로 믿음대로 살려고 노력했으며, 동족에게 박해를 받거나, 헬라인에게 죽임을 당했다.

한계점에 이르자, 일부 유대인들은 압제자들에 대해 폭력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마타티아스(Mattathias)라는 이름의 사제는 이방 신에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을 거부했고, 자원하여 제물을 바쳤던 셀레우코스 관리와 타협적인 유대인을 죽였다. 이 사건은 결국 로마에 완전한 속국이 되기 전까지, 반독립(semi-independent) 국가로 이어졌던 마카비 혁명(Maccabean Revolt)을 촉발시켰다.


로마의 지배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할 때에도 같은 유형의 행동들이 생겨났다. 일부 유대인들은 박해를 피하거나 정치적 권력을 얻기 위해서, 신앙을 타협했다. 그들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지만, 사두개파(Sadducees)는 신학적 올바름보다, 정치적 권력에 훨씬 더 관심이 있었던 상류층의 종파였다.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헤로데 1세)과 같은 통치자들은 부패했고, 자신의 백성에게 막대한 세금을 부과했으며, 카이사르와 로마의 신들에게 바쳐졌던 기념비적인 구조물들을 세워 로마의 환심을 샀다.

많은 유대인들, 특히 시골 지역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려고 노력했지만, 종종 그들의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았다. 바리새파(Pharisees)는 토라와 그들이 발전시킨 전통에 대한 엄격한 고수를 강조하면서, 이러한 사고 방식을 극단적인 수준으로 가져갔다. 쿰란 공동체(Qumran community, 에세네파) 사람들과 같은 일부 사람들은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려 했다. 예수님이 오시고 수십 년 동안, 시카리(Sicarii, 열심당)로 알려진 소수의 이스라엘인들은 거리에서 테러 행위를 일삼고, 그들의 살인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하면서, 무력으로 로마를 전복하고, 유대인 왕국을 설립하려고 했다. 

그림 2. 수도인 예루살렘에는 국가의 정치 및 종교 당국이 있었다. 유대 성전(Jewish Temple)과 인접해있는 로마의 안토니아 요새(Roman Antonia Fortress)는 유대 민족과 점령 중인 로마 사이의 불편한 긴장 관계를 상징했다.


시대는 변했지만, 동일하다.

“변화가 거듭될수록, 본질은 더욱 한결같아진다”라는 오래된 속담이 맞는 것 같다. 오늘날 서구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최근의 세속적이고 이교도적인 문화적 압박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생각해 보라. 이전의 사두개인들처럼,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성경적 교리를 버렸다. 잘 알려진 목회자, 작가, 예술가들이 우리 문화의 변화된 입장 때문에 창조, 영원한 형벌, 성, 젠더, 생명의 신성함, 또는 기타 성경적 가르침에 대해 타협했다. 슬프게도 일부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을 완전히 부정하고, 세속주의자들과 함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가르친 대로 살아가려는,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제자를 가르치는 삶을 추구하는 기독교인들을 조롱하고 박해하기까지 한다. 기독교인이라고 공언하는 일부 사람들은 정치적 노력을 통해 문화를 변화시키려고 하지만, 정치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처럼, 돈과 권력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부패와 타협으로 이어진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세속 문화에 굴복하기보다, 신앙에 대한 엄격한 고수를 강조하고, 바리새인들처럼 그들 자신의 전통 중 일부를 교리 수준으로 높였다. 그리고 그들의 접근 방식을 따르지 않는 동료 기독교인들을 자주 공격한다. 광야 근처에 살았던 쿰란 공동체처럼, 오늘날 일부 신자들은 세상 문화를 등지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불경건한 행동을 하는 자들을 맹렬히 비난한다.

예수님 당시의 시대를 통해 사회적 압박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언제나 그렇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교활한 정치인, 타협적 종교인, 위선적 율법주의자, 폭력적 혁명가, 신실한 하나님의 추종자 등 많은 범주의 사람들과 교류하셨다.

사두개인들이 미래에 있을 부활의 교리를 조롱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회적 압박에 굴복하지 않으셨다. 대신에 예수님은 그들의 타협에 반대하여, 죽음 이후의 삶을 분명히 암시하는 구약 구절을 강조하셨다(마태복음 22:32).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이 식사 전에 손을 제대로 씻지 않는다고 비판했을 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며 만든 율법주의적 전통을 정죄하셨다(마태복음 15:3~9). 군중들이 자신들의 상황에 대한 정치적 해결책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을 때(요한복음 6:15), 예수님은 때가 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즉 우리 죄의 형벌을 짊어지고 끔찍한 죽음을 당하시는 일을 위해(요한복음 3:16-17), 그곳을 떠나셨다.

그림 3.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 있는 가버나움에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려운 때가 왔을 때, 폭력을 행사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사실, 군인들과 관원들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을 때, 그분은 베드로에게 칼을 넣으라고 말씀하셨다(요 18:1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정치적 해결책만 찾거나, 사회를 완전히 등지거나, 문화적 압력에 직면했을 때 신앙을 버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을 방어하지 말라거나, 정당한 전쟁에 참여하지 말라거나, 정치에 뛰어들지 말라거나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활동들이 우리의 문화적 문제들에 대한 주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죄(sin)가 이들 문제의 핵심이고, 사람들이 창조주에 대해 계속적으로 반역하기 때문인 것이다.   

예수님은 해결책이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의 십자가에서의 희생적인 죽음과, 그에 따른 부활은 삶을 영원히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계획을 신뢰하거나 사람들의 칭찬을 구하는 대신에,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항상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해야 한다. 격동적인 오늘날의 문화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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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스펙트럼

1세기의 이스라엘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배경과, 광범위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유대 민족은 일반적으로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영원한 왕국을 약속받은 특별한 민족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지만, 그 왕국이 언제 어떻게 세워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돌했다. 성경에 나오는 이 무리들을 알아보자.


유대 기독교인

기독교로 개종한 최초의 유대인들은 나사렛 예수가 참으로 그들의 메시아이자, 왕이라고 믿게 된 유대인들이었다. 초기에 이 새로운 신자들은 성전에서 만났지만, 예수님을 거부한 유대인들과의 긴장이 커지면서, 결국 그들은 성전과 회당에서 추방당했다.


바리새인

일반적으로 율법주의자로 간주되는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전통에 대한 전문지식과 엄격한 준수로 알려진 대규모의 유대 종파였다. 그들은 거룩함과 의식적 순결을 강조했고, 이것은 율법과 전통에 대한 순종을 통해 온다고 믿었다. 많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메시아적 주장을 강하게 반대했다.


사두개인

신약성경에 14번 언급된 이 사람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들은 영과 천사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미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거부했음을 보여준다(행 23:8). 이는 그들의 글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과 불화가 있었던 출처로부터만 알려져 있다. 그들은 신학적 올바름보다 정치 권력을 지키는데 더 관심이 많았던, 대제사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상류층 종파였던 것으로 보인다.

 

열심당/시카리

로마가 유대인 시민들을 학대하고 성전 금고를 약탈한 것에 좌절한 많은 하급 사제들은 AD 60년대에 성전을 되찾고 정치적 권력을 얻기 위해 맞서 싸웠다. 이 열심당원들은 타협했던 종교지도자들을 타도하고, 로마와의 전쟁을 추진했다. 한편, 시카리는 대규모 군중 속에서 개인을 암살한 후, 섞여들어 몰래 빠져나가는 은밀한 폭력에도 가담했다.


현재 북부 켄터키의 창조박물관에 새롭게 전시되어 있는, ‘경계지대: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Borderland: Israel in the Time of Jesus)’를 한번 방문해 보라. 이 멋진 전시관에서는 유물, 비디오, 디오라마, 실물 크기 모형, 표지판 등을 통해 1세기 이스라엘에 대해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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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양승원, 송원준

주소 : https://answersingenesis.org/bible-history/life-borderland/

출처 : Answers magazine, October 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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