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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미디어위원회
2023-04-11

미래의 희망은 진화인가, 부활인가?

(Future Hope: Evolution or Resurrection?)

by Jake Hebert, Ph.D.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증거는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진화가 사실이었다면, 생물의 기본 종류(kinds)들 사이에 무수히 많은 과도기적 전이형태의 생물 화석들이 존재했어야 한다. 이것은 단세포 생물에서 인간으로 진화되었다는 생명체의 진화를 명확하게 나타내줄 것이다. 진화론자들도 이러한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s)"가 명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1] 게다가 비생명체로부터 생명체의 자연발생은 결코 관찰된 적이 없으며, 물리학 법칙들과 화학 법칙들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지적으로 설계되었음을 가리키는 수많은 사례들이 관측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과학적 증거 때문이 아니라, 정서적 분위기 때문에 (진화론을 거부하게 되면 받게 되는 불이익과 비난과 조롱 때문에) 진화론을 받아들인다.

사람들이 자신의 죄와 자신의 도덕적 실패들을 정직하게 바라본다면, 미래에 초자연적 창조주 앞에 서서 자신의 삶을 회계할 때에 암울하고 무서울 것이다. 심지어 다윈도 그의 자서전에서, 기독교가 진실하지 않기를 바라는 강력한 이유는 지옥의 교리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했었다.[2] 그러나 무신론적 진화론은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 가능성을 제거시켜준다.

또한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진화론은 표면적으로 미래에 희망이 있으며, 우리의 후손들은 결국 더 나은 버전으로 진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아마도 슈퍼맨처럼 "인간의 힘과 능력을 훨씬 능가하는" 존재로 진화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이것이 만화책과 공상과학 영화에서 그렇게 흔한 주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후손들이 우월한 존재로 진화한다고 해도, 이것이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인류가 더 나은 미래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수십억 명에게, 그것은 어떤 희망을 제공할 수 있는가? 게다가 진화 이야기에 의하면, 미래의 우주는 최대의 무질서 상태에 도달하고 끝이 난다고 말한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우리의 후손들은 그들이 성취했을지도 모르는 "더 고도로 진화된" 상태와 관계없이 멸망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증거가 없는 허구적 진화 이야기는 서로 큰 대조가 된다. 우리 인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성경(창세기 3장; 로마서 8:22-23)이 가르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쇠퇴되고 있다는 증거들은 풍부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많은 증거'들이 있다.(사도행전 1:3).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죄가 용서된다고 확신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화평을 얻게 된다.(로마서 5:1)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은 썩지 아니할 것으로, 영광스러운 것으로, 강한 것으로,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며(고린도전서 15:42-44),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화시켜 주실 것이라고(빌립보서 3:21)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우리 인간이 더 높고 더 고귀한 상태로 올라갈 수 있는 현실적으로 유일한 방법이다. 제조업에서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설계를 업그레이드 해야만 한다. 생산 공정에서 무작위적인 오류로 성능이 개선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죄의 경향은 영원히 추방될 것이며, 우리는 더 이상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이, 주님의 임재 안에서 영원토록 기뻐할 것이다(요한계시록 21:4). 그리고 우리는 이 축복된 상태를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의 과학적 문제를 지적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진화론에 대한 믿음은 궁극적으로 증거가 아닌, 자신들의 생각(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진화론이 정서적으로도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만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갈망이 충족될 수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Morris, J. D. and F. J. Sherwin. 2011. The Fossil Record. Dallas, TX: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2. Morris, H. M. 1994. Birthrights and Pottage. Acts & Facts. 23 (7).

3. Sanford, J. C. 2008. Genetic Entropy and the Mystery of the Genome, 3rd ed. Waterloo, NY: FMS Publications.

* Dr. Hebert is Research Scientist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earned his Ph.D. in physics from the University of Texas at Dallas.

.Cite this article: Jake Hebert, Ph.D. 2023. Future Hope: Evolution or Resurrection?. Acts & Facts. 52 (3).


*참조 : 그리스도의 부활 : 확증된 역사적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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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과 성경 기록의 정확성에 대한 영상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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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대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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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은 근본적 진리이다. 이레네우스: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창조를 근본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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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교회의 뜨거운 감자, 창조론 대 진화론 논쟁! : 청소년 사역자를 놀라게 하는 조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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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지대의 삶 : 예수님 시대와 유사한 오늘날의 문화적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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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성경적 이해, 그리고 창조와 십자가 : 유신진화론자들의 죽음에 대한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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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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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적 창조신앙의 중요성 

https://creation.kr/Topic501/?idx=6790739&bmode=view

▶ 교회에서 창조신앙 교육 

https://creation.kr/Topic501/?idx=6790619&bmode=view


출처 : ICR, 2023. 2. 28.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future-hope/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3-04-05

다니엘서 : 예언인가, 익명의 위작인가?

 (Daniel: Prophecy or Pseudonymous Forgery?)

by Liz Abrams 


     다니엘서는 그 책에 묘사된 사건들이 일어났던 시기에 기록됐다는 강력한 증거들을 갖고 있다.


   다니엘서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짓 신을 숭배하는 이교도 왕 아래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대한 지속적인 순종과 충성과 관련하여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비록 한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이 심판을 받았지만, 그러한 신실한 믿음은 하나님이 제국이나 그들의 이방 신들보다 더 위대하심을 증명해보이심으로 보상받았다. 하나님은 풀무불과 사자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종들만이 해석할 수 있는 계시를 왕에게 나타내고, 왕이 너무 교만해지면 직접 심판하셨다.

선지자들이 정확한 예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역사의 흐름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그의 꿈과 해석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다니엘 2장) 느부갓네살 왕에게 꿈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꿈의 내용과 해석을 모두 다니엘에게 또한 주셨기 때문이다.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만이 예언적 꿈과 해석을 주시고, 그것을 성취하실 수 있으시며, 하나님이 바빌로니아 왕과 그의 거짓 신들, 그리고 이교도 점성술사들보다 더 크심을 보여주셨다. 창세기는 다니엘서의 "전면과 중심(가장 중요한 위치)"은 아니지만, 다니엘서 신학의 기초가 되므로, 그러한 기초 없이 다니엘서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창세기는 다니엘서의 "전면과 중심"은 아니지만, 다니엘서 신학의 기초가 되므로, 그러한 기초 없이 다니엘서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거의 모든 책들의 구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당연히 그들은 고고학에 의해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채로, 성경의 거의 모든 세부적 사항들에 대한 역사적 정확성을 의심한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공격을 많이 받는 책 중 하나가 다니엘서이다. 느부갓네살 이후에 일어날 왕국들을 예견한 꿈은 예언이거나, 아니면 이 왕국들이 일어난 후에 쓰여진 위작이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초자연적 창조를 배척하기 때문에, 정확한 예언도 배척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세속주의자들은 창세기를 거부하는 것과 동일한 이유로 다니엘서를 거부한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유물론자(materialists)들이다. 그들은 약 6,000년 전 6일 동안 이 세계가 초자연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누군가가 창조주로부터 미래의 사건들에 대한 실제 지식을 전달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이렇게 다니엘서의 예언들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강력한 메시지였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강력한 메시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서는 마카비 시대에 쓰여진 위작인가?

다니엘서의 저자가 다니엘(BC 6세기 초)이 아니라는 의문을 제기했던 최초의 사람은 신플라톤학파의 철학자였던 포르피리우스(Porphyry, AD 232~303년경)였다. 그는 그의 저서 <기독교에 대한 반론(Against the Christians)>에서, 미래에 대한 예언적 말씀 같은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다니엘서는 BC 2세기 경에 쓰여졌음에 틀림없다고 주장했다.[1] 이것이 사실이라면, 저자는 다니엘이라는 가상의 유대인에 대한 역사를 지어냈던 마카비 시대(BC 167~63)의 한 유대인(a Maccabean Jew)이 될 것이다. 즉 익명의 유대인이 다니엘서를 썼다는 것이다. 오늘날 유물론자들이 기록된 그대로의 창조와 노아 시대의 전 지구적 홍수를 거부하는 것처럼, 이러한 주장은 진정한 예언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우선적으로 거부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마카비안 가설(Maccabean Hypothesis)은 오늘날에도 유행하고 있다. 다니엘서가 실제로 이 기간 동안에 쓰여진 한 유대인의 위작인지, 반대되는 증거들을 살펴보자.


1) 위작은 일반적으로 확립된 등장인물과 설정을 확장시킨다.

첫째, 우리는 구약과 신약시대 사이에 쓰여졌던 익명의 글들은 일반적으로 순 엉터리 등장인물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그들은 아담과 하와, 이사야, 또는 사악한 왕 므낫세와 같은 잘 알려진 성경 인물로부터 확장시킨다. 이들 위작의 저자는 청중들이 알만한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에스라의 예언을 확장한 글은 실제 예언이 아닌, BC 2세기 유대인 저자의 것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다니엘(문자적으로 "하나님은 나의 재판장"이라는 뜻)은 다니엘서 말고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히브리 사람들의 한 이름이다. 다윗에게는 다니엘이라는 한 아들이 있었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사람들 가운데 이다말의 후손인 다니엘이 포함되어 있었고, 한 다니엘은 느헤미야 10장에서 언약을 인봉한 사람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다. 에스겔서는 매우 의롭고 현명했던 다니엘에 대해(노아와 욥과 함께)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언급만으로는 전체 익명의 책의 기초를 형성하기에는 너무 모호하다.


2) 위작에는 역사적 부정확성이 포함되어 있다.

유딧서(the book of Judith)처럼 이전 규칙에 예외가 있는데, 거기에는 느부갓네살의 통치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유딧서의 경우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의 왕이 아니라, 앗수르의 왕인 것으로 기술되어 있어서, 명백한 역사적 부정확성이 들어있다.[1] 현대에도 과거 수백 년 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쓸 때, 연대기적 오류나 다른 역사적 오류를 범하기 쉽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니엘서에서 그와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사실 다니엘서는 놀랍게도 (세속적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정확하다. 부재한 아버지 나보니두스(Nabonidus)를 대신하여 통치하고 있던 벨사살(Belshazzar)에 대한 다니엘서의 기록은 바빌론 밖에서 그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다.[1] 나보니두스의 아들 벨사살을 언급하고 있는 ‘나보니두스의 원통(Nabonidus Cylinder)’이 발견되기 전까지, 회의론자들은 벨사살을 역사적 오류의 예로 사용했었다. 

다니엘서에 묘사된 형벌의 방법조차도 각 나라의 형벌과 일치한다. 바빌론 사람들은 불로 처벌했지만, 페르시아 사람들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졌다. 불은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신성했기 때문이다.[1] 이것들은 수백 년 후에 다른 문화권의 저자였다면 틀렸을 것이 분명한 종류의 세부 사항들이다.

그러나 다니엘서의 역사적 정확성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몇 가지 고고학적 세부 사항들을 확인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은 다니엘서를 역사 소설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그들이 유물론자로서, 초자연적 예언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벨사살 왕”은 오류인가?

벨사살의 역사성은 ‘나보니두스 원통’의 발견으로 확립되었지만, 그가 결코 왕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고레스(Cyrus, 키루스)는 나보니두스가 왕이었을 때, 바빌론을 정복하고 벨사살을 죽였다. 그러나 우리는 바빌론의 역사 기록을 통해 나보니두스가 약 10년 동안 자발적으로 망명 생활을 하다가, 고레스의 침공 몇 년 전에 돌아온 것을 알고 있다. 그 기간 동안 벨사살은 모든 면에서 공동 섭정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를 "벨사살 왕(King Belshazzar)"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치에 맞는다. 왜냐하면 그는 왕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다니엘에 대한 상으로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았다는 다니엘서 기록은 이치에 맞는 것이었다. 이것은 왕국의 2인자였던 벨사살이 줄 수 있었던 최고의 보상이었다.


다니엘서의 역사적 정확성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몇 가지 고고학적 세부 사항들을 확인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은 다니엘서를 역사 소설이라고 부른다.


히브리인들은 다니엘서를 선지서로 여겼는가?

다니엘서의 신뢰성에 반대하는 또 다른 주장은 성경에 대한 ‘히브리 성경의 분류’에서 다니엘서가 선지서(예언서)가 아니라, 역사서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것이 다니엘이 다른 선지서들과 동시대가 아니라, 선지서 정경이 끝난 후에 기록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오랫동안 다니엘서의 위치에 주목해 왔으며, 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갖고 있다. 다니엘은 원래 선지자가 아니었다. 그는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의 궁정 관리자였으며, 우연히 예언을 받았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다니엘서를 역사서로 분류했다고 해서, 다니엘서가 더 작은 책이라고 생각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니엘서가 어떻게 70인역에 포함될 수 있었겠는가?

다니엘서가 BC 2세기 경에 기록되었다는 생각에는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고대부터 다니엘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과 모순된다는 것이다.

다니엘서는 원래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그것은 유대 세계 전역에 퍼졌고, 그 후 어느 시점에서 벨과 용(Bel and the Dragon), 그리고 수산나(Susanna) 내용이 추가되었다(70인역에는 13장, 14장이 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이야기). 그것은 성경으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BC 2세기 경에 70인역(Septuagint, LXX)의 나머지 부분과 함께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

만약 다니엘서가 BC 2세기에 기록되었다면, 기껏해야 수십 년 안에 복사, 배포, 추가, 성경으로 받아들여지고, 번역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70인역에 들어있는 다니엘서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니엘서는 훨씬 더 오래 전에 유대인 성경의 일부로 존재했어야만 했다.


예수님께서는 다니엘서를 권위있는 말씀으로 여기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궁극적 권위이시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니엘서를 성경으로 여기셨는지 살펴봐야 한다.

예수님은 분명히 다니엘 7장 13, 14절에 언급된 것처럼, 자신을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인자로 해석하셨다(마태복음 24:30).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6:64절에서 이 주장을 하셨을 때, 예수님과 그분의 유대인 반대자들 모두 이것이 메시아에 대한 주장임을 이해했고, 둘 다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것을 인정했으며, 예수님의 기소된 범죄는 신성모독, 즉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긴 것이었다. 이것은 다니엘서가 예수님 뿐만 아니라, 유대인 반대자들 모두 정경(Canon)으로 간주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사용하신 자기 묘사는 “사람의 아들(Son of Man, 인자)”이다. 일각에서는 그가 인간성에 대한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다니엘서를 다시 언급하고 있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에스겔서에 등장하는 것처럼(에스겔 2:1절과 책 전체에 걸쳐 여러 번) 한 사람의 아들(“a” son of man)이 아니라, 다니엘서가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적 인물인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이라고 주장하고 계신 것이다.

마태복음 24장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그 시점까지 아직 미래의 일이었던, 멸망의 가증한 것에 대한 다니엘서의 예언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셨다. 그 예언의 성취 시기에 대한 해석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그것을 일어날 일에 대한 참된 예언으로 여기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느부갓네살은 정말 미쳤는가?

다니엘의 역사적 정확성에 대한 공격 중 하나는 느부갓네살의 미친 행동에 대한 기술과 관련된 것이다. 회의론자들은 다니엘서를 쓴 마카비시대의 한 유대인 저자가 나보니두스 대신에 느부갓네살 왕이 미친 것으로 실수로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느부갓네살의 미친 행동에 대한 이야기 직후에, 나보니두스의 아들인 벨사살의 이야기는 추가적인 증거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나보니두스의 원통(Nabonidus Cylinder)’이 발견되기 전까지, 현대 학자들은 벨사살의 존재를 믿지 않고 있었으며, 아마도 바빌로니아 제국이 멸망하고 수백 년 후인 마카비시대의 저자로 추정되는 사람도 그에 대한 지식이 없었을 것이다.

현실은 느부갓네살 왕의 통치를 자세히 기록한 문서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부분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설사 모든 바벨론 기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바벨론 왕궁 문서들이 그들의 왕이 미쳤던 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록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증거들로부터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이방 왕들과 그들의 거짓 신들보다 훨씬 더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강조하는 다니엘서가 마카비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격려가 될 수 있었겠지만, 증거들은 그들 중 한 사람이 다니엘서의 저자가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성경 정경의 일부로서, 다니엘서는 점점 더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으로 되어가고 있는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격려와 교훈을 줄 수 있다.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거짓 신들(우상)에게 그들이 진짜 신이라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예언을 해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거짓 신들은 참된 예언을 할 수 없다. 예언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분의 창조에 대한 역사적 설명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확증하고 있는 다니엘서의 예언과 같은, 성경의 초자연적인 모든 측면을 방어하는 것도 중요함을 상기시켜준다.


Footnotes

1. Stephen R. Miller, Daniel,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1994), electronic version.

2. Michael D. Coogan, ed., The New Oxford Annotated Bible: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with Apocrypha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p. 1365.

3. Miller, Daniel, electronic edition.

4. Ibid.


*참조 : ▶ 성경을 지지하는 고고학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4724&t=board

▶ 성경의 예언과 성취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791225&t=board

▶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

https://creation.kr/Topic502/?idx=6828823&bmode=view

▶ 성경의 오류 논란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8792&t=board


출처 : AiG, 2022. 7. 15.

주소 : https://answersingenesis.org/bible-history/daniel-prophecy-or-pseudonymous-forgery/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3-03-06

요세푸스는 신뢰할 만한가?

 (Is Josephus Reliable?)

by Brenton H. Cook


   성서 시대의 세계에 대해서 가장 많이 인용된 자료 중 하나는 1세기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누구였으며, 우리는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있을까?


    유명한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 플라비우스(Josephus Flavius)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지 얼마 되지 않은, AD 37년 또는 38년에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제사장의 아들이었던 그는 바리새인이 되었고, 유대인 저항군의 지휘관이 되었으며, AD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을 목격했다. 최초의 교회 역사가인 유세비우스(Eusebius)는 그를 "그 시대의 가장 유명한 유대인"이라고 부르며, 로마에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동상에 대해 이야기했다.(요세푸스는 로마군의 포로가 된 뒤 전항하였고,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배려로 풀려나 로마시민이 되었다).

2천년 동안 기독교 학자들은 요세푸스의 저술, 특히 ‘유대 전쟁사(The Jewish War, 또는 유대 반란(Jewish revolt))’와, 창조로부터 1세기까지의 하나님 백성들의 완전한 역사인 ‘유대 고대사(Antiquities of the Jews)’를 보존하고 연구해왔다. 목회자들은 종종 그들의 설교에서 세부 사항들이 요세푸스에게서 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포함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의 저술은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한 소중한 목격자

모든 역사학자들은 오류를 범할 수 있고, 그래서 주의 깊게 읽어야 하지만, 특히 역사가들이 직접 보고 알게 된 지식을 보고할 때는 매우 도움이 될 수 있다. 십대 때 요세푸스는 다양한 유대 종파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고, 그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후에 최전선에서 유대 반란을 목격했다. 그가 포로가 되었을 때, 그는 반대편에서 그것을 보게 되었다. 실제로 그는 로마의 장군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가 제국의 왕좌에 오를 것을 정확하게 예언함으로써, 그의 호감을 얻었다. 요세푸스는 결국 전향하여 로마 시민권을 얻었고, 심지어 베스파시아누스의 황실 성씨인 플라비우스(Flavius)를 성으로 채택하였다. 그는 이제 황제의 도서관, 군사 보고서, 헤롯과 팔레스타인의 다른 통치자들의 재판기록에도 접근할 수 있었다.

요세푸스 저술의 주된 가치는 BC 100년부터 AD 100년까지의 유대 역사에 대한 그의 기록에 있다. 이 시대에 대한 요세푸스의 기록은 그가 수집하고 능숙하게 해석했던 수많은 확실한 출처들에 의해 강력하게 뒷받침된다.


요세푸스의 저술은 다른 어떤 기록에도 없는 귀중한 세부 정보들을 제공한다.


요세푸스의 저술은 다른 어떤 기록에도 없는 귀중한 세부 정보들을 제공한다. 사실, 그는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총독 벨릭스(Felix), 빌라도(Pilate)와 같은 많은 주요 정치적 인물들에 대한 가장 중요한 성경 외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자주 방문하셨던 성전과 같은, 헤롯의 많은 건축물들에 대한 지식의 대부분은 요세푸스 기록에서부터 나온다.

그의 저술은 또한 바리새인(Pharisees)과 사두개인(Sadducees)과 같은 1세기 유대 종파의 내부 활동들에 대한 통찰력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또 다른 종파인 에세네파(Essenes)에 대한 그의 설명은 그들이 ‘사해 두루마리(Dead Sea Scrolls, 사해 사본)’의 저자임을 확인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는 또한 성전 파괴(마태복음 24:2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예언됨)와 마사다(Masada) 꼭대기에서 일어난 유대인의 최후 저항과 같은 1세기의 여러 사건들에 대한 흥미로운 세부 사항을 제공한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그의 저술에 기록된 대부분의 사건들을 목격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역사서는 그 출처만큼만 훌륭한 것이다. ‘유대 고대사(Antiquities of the Jews)’의 초기 역사는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단지 성경과 일치하는 세부 사항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것들은 그가 의존했던 전통보다 더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친-유대인적 편견

많은 유대인들은 요세푸스를 반역자로 여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백성에게 충성을 유지했다. 유대인의 반란은 로마인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요세푸스는 역사가이자, 유대 민족을 옹호하는 사람으로서, 그것을 바꾸고자 했다. 칭찬할 만하지만, 이러한 편향은 주의해야 한다.

그의 친-유대인적 동정심은 ‘유대 전쟁사’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저술은 대부분의 유대인을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으로 묘사한다. 그는 1세기 유대 사회의 붕괴에 대해, 자신이 "산적(bandits)"과 "도적(brigand)"이라고 불렀던, 유대인 열심당원(Jewish zealots)들을 비난한다.

나중에 쓰여진 ‘유대 고대사’에서, 그는 유대 문화의 우월성과 고대성을 보여주려고 시도한다.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으로, 유대인들의 좋은 것들을 과장하고, 아론의 금송아지와 같은 부끄러운 실패는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오늘날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가 ‘선전된 역사(propagandistic history)’ 였다는 해롤드 아트리지(Harold Attridge)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그가 구약성경의 기록을 의역한 것은 유대역사를 "새로운 환경에서 적절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매력적인" 것으로 제시하고자 목표로 한 "창조적 각색"이었다는 것이다.[1]


다른 기준의 설정

요세푸스의 저술을 올바르게 읽으려면, 그것은 한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1세기 로마의 독자들은 오늘날 우리와 다른 기대를 갖고 있었다. 역사가들이 이야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 세부 사항을 구체화하거나, 추가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이 산꼭대기의 마사다 요새에서 마지막으로 저항했던 유명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항복 대신에, 유대인들이 몇 명의 사람들을 선택하고, 그들이 칼로 동료들을 죽인 후, 마지막에 자결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그의 이야기를 입증할만한 사체들을 찾지 못했다.

또한 그 시대의 다른 역사가들과 마찬가지로, 때때로 요세푸스도 영웅적인 이야기를 지어내어, 마사다 정상에서 유대인 지도자 엘리아자르(Eleazer)의 애국적인 웅변을 기술하고 있다. 엘르아자르의 말을 들었던 사람들은 포위 공격으로 모두 죽었고, 요세푸스는 로마에서 기록을 썼기 때문에, 요세푸스가 그 웅변을 완전하게 접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숫자와 통계에 주의를 기울였던 고대 역사가들은 거의 없다. 학자들은 요세푸스가 자신이 잘 알고 있었던 1세기 사건의 연대기에 대해서도 종종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가 제공하는 수치에 대해서는 조심해야 한다.


요약하면, 요세푸스의 저술들은 신약 시대에 대한 세부 사항을 수집하는 데 매우 중요하고 도움이 되지만,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기독교를 변증하는 자료로서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유대교를 선호했던 그의 편견과, 유대인의 유산에 대해 더 멋진 그림을 제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구약의 기록을 다시 쓰려했던 그의 의지가 내포되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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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요세푸스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 성경 인물과 장소들에 대한 세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당신은 다음의 주장들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것들은 요세푸스의 기록에서 나온 것이다.


● 헤롯 대왕은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Caesar Augustus)의 칙령에 따라 유대의 왕이 되었다(유대 전쟁사 1.20.2).

● 헤롯 앞에서 춤을 추며 세례 요한의 머리를 요구한 소녀의 이름은 살로메(Salome)였다(유대 고대사 18.5.4).

● 헤롯은 세례 요한을 사해 동쪽에 있는 마케루스(Macherus)에 있는 감옥으로 보냈다(유대 고대사 18.5.2).

● 감옥에 있던 바울을 불러 그의 말을 들었던, 로마 총독 벨릭스는 유대인 아내 드루실라(Drusilla,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딸)에게 남편과 이혼하고 자신과 결혼하자고 간청했다(유대 고대사 2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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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s

1. Harold W. Attridge, The Interpretation of Biblical History in the Antiquitates Judicae of Flavius Josephus (Scholars Press: Missoula, Montana, 1976), p. 181.

*Dr. Brenton Cook is associate professor of philosophy and of apologetics and worldview at Bob Jones University in Greenville, SC. He teaches church history and the history of New Testament times at Bob Jones Seminary.


*참조 : 창세기는 말하고 있는 그대로를 의미한다고, 요세푸스는 말했다. 

https://creation.kr/Genesis/?idx=1289083&bmode=view

교회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은 어떤 창조론을 믿고 있었는가?

https://creation.kr/Topic502/?idx=13865052&bmode=view

창조신앙의 역사, 그 교회사적 고찰 : 초대교회를 중심으로

http://creation.kr/Faith/?idx=1293813&bmode=view

창세기는 말하고 있는 그대로를 의미한다고 칼뱅은 말했다. 

http://creation.kr/Genesis/?idx=1289082&bmode=view

진화론이 만연한 이 시대에도 필요한 외침, ‘오직 성경’ 

http://creation.kr/Faith/?idx=1293853&bmode=view


출처 : Answers Magazine, 2013. 1. 1. (last featured 2020. 11. 8)

주소 : https://answersingenesis.org/bible-history/is-josephus-reliable/

번역 : 양승원

미디어위원회
2023-03-03

경계지대의 삶

: 예수님 시대와 유사한 오늘날의 문화적 상황

 (Life in the Borderland)

Tim Chaffey


     창조박물관(Creation Museum)의 최신 전시물을 조사하는 동안, 콘텐츠 작가는 그리스도 시대의 삶과 오늘날의 문화 사이에 놀라운 유사점을 발견하였다.


    구약은 유대 민족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로 잡혀 있다가, 그들의 땅으로 돌아오면서 끝을 맺는다. 예루살렘의 성전과 성벽은 재건되었지만, 상황은 암울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당국 아래서 쇠약해지는 400년 동안 침묵을 지키시고 계셨다.

신약 시대가 시작되면서 유대 민족은 철학적, 종교적, 정치적 파벌로 나뉘어졌다. 그리스 언어와 사상은 사회에 스며들었고, 로마제국은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대인으로 자란 이두매(Idumaean, 에돔) 사람이 예루살렘에 왕으로 앉아 있었다.

예수님이 탄생하기 300년 전,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는 그리스에서부터 동쪽으로 인도까지 진군했다. 그의 정복은 새로운 형태의 정부, 교육 및 종교 관행을 가져왔다. 헬레니즘화(Hellenization)라고 불리는 그리스 문화의 확산은 유대인 생활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도전했다.

일부 유대인은 기꺼이 헬레니즘을 받아들이는 반면, 다른 유대인은 변화에 저항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침묵을 깨시고, 그분의 아들을 이 경계에 놓인 지대로 보내, 동정녀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다. 예전과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 경계지대: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창조박물관의 한 새로운 전시물)


   이 잡지를 발행하는 Answers in Genesis의 또 다른 사역인 창조박물관에서, 2021년 7월 6일에 멋진 새 전시관을 공개했다. 35개 이상의 원본 예술작품, 갑옷과 의복의 정확한 재구성, 수십 개의 실제와 같은 미니어처 인물상 등으로 가득하다. ‘경계지대: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Borderland: Israel in the Time of Jesus)’은 관람객들에게 신약성서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몰입감 있게 보여준다.


‘경계지대’ 전시관에는 창조박물관의 다른 전시물보다 더 많은 콘텐츠들이 포함되어 있다. 창조박물관의 콘텐츠 관리자로서, 나의 주요 역할은 노아방주 전시관(Ark Encounter) 및 창조박물관(Creation Museum)에서 전시할 콘텐츠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의 전시물은 일반적으로 내레이션이 뒤따라진다. 모든 설명글(표지판)은 한 요점을 강조하고, 논리적으로 다음 설명글로 연결된다. 그러나 ‘경계지대’는 신약성서의 배경 연구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다르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을 시작으로, 그리스도 탄생 이전의 격동의 4세기를 거쳐,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끝나는 주제는 전쟁과 무기에서부터 일상생활과 의복 스타일, 예수님이 다니셨던 그때 세상을 살았던 사람들과 역사적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나의 특정 주제를 자세히 조사한 다음, 그것에 대해 길게 쓰는 대신, 이 전시물에서는 여러 주제들을 조사한 후에, 각 주제들을 짧은 한두 단락으로 요약하여 놓았다. 


나는 1세기 경의 이스라엘 문화에 몰두하면서, 그것이 어쩐지 꽤 친숙해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작은 경계지대는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이 처해있는 풍경에 대해 많은 교훈을 준다. 나는 종종 시대나 문화에 관계없이, 사람들이 문화적 압력에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또한 오늘날 우리 세상의 소란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동일하다는 것을 상기하게 되었다.

그림 1 . 이방인들은 이방인의 뜰(Court of the Gentiles)을 넘어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 초기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자주 성전에서 함께 모여 기도하고 가르쳤다.

 

그리스 문화의 영향

다음의 상황에서 유대인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생각해보자. 셀레우코스 제국(Seleucid Empire, 알렉산더 사후에 헬레니즘의 계승국 중 하나)이 이스라엘을 통치했을 때(BC 2세기), 유대 사회의 많은 부분에 그리스(Greek)의 종교적, 철학적 사상이 빠르게 스며들었다. 많은 상류층 시민들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대대로 전해져오던 조상들의 신앙을 타협하면서, 그리스 문화의 관습과 관행을 받아들였다. 일부는 권력을 얻기 위해 정치적 음모를 사용했다. 야손(Jason)이라는 사람은 돈으로 대제사장직을 사서, 예루살렘을 그리스의 도시로 만들려고 했다. 그의 후계자 메넬라오스(Menelaus)는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Antiochus IV Epiphanes)에게 뇌물을 주고 관직을 사고, 성전에 급진적인 헬레니즘 관습을 도입하려고 시도했다. 예루살렘 밖에 살던 많은 유대인들은 이러한 변화를 거부했고,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 명하신 대로 믿음대로 살려고 노력했으며, 동족에게 박해를 받거나, 헬라인에게 죽임을 당했다.

한계점에 이르자, 일부 유대인들은 압제자들에 대해 폭력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마타티아스(Mattathias)라는 이름의 사제는 이방 신에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을 거부했고, 자원하여 제물을 바쳤던 셀레우코스 관리와 타협적인 유대인을 죽였다. 이 사건은 결국 로마에 완전한 속국이 되기 전까지, 반독립(semi-independent) 국가로 이어졌던 마카비 혁명(Maccabean Revolt)을 촉발시켰다.


로마의 지배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할 때에도 같은 유형의 행동들이 생겨났다. 일부 유대인들은 박해를 피하거나 정치적 권력을 얻기 위해서, 신앙을 타협했다. 그들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지만, 사두개파(Sadducees)는 신학적 올바름보다, 정치적 권력에 훨씬 더 관심이 있었던 상류층의 종파였다.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헤로데 1세)과 같은 통치자들은 부패했고, 자신의 백성에게 막대한 세금을 부과했으며, 카이사르와 로마의 신들에게 바쳐졌던 기념비적인 구조물들을 세워 로마의 환심을 샀다.

많은 유대인들, 특히 시골 지역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려고 노력했지만, 종종 그들의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았다. 바리새파(Pharisees)는 토라와 그들이 발전시킨 전통에 대한 엄격한 고수를 강조하면서, 이러한 사고 방식을 극단적인 수준으로 가져갔다. 쿰란 공동체(Qumran community, 에세네파) 사람들과 같은 일부 사람들은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려 했다. 예수님이 오시고 수십 년 동안, 시카리(Sicarii, 열심당)로 알려진 소수의 이스라엘인들은 거리에서 테러 행위를 일삼고, 그들의 살인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하면서, 무력으로 로마를 전복하고, 유대인 왕국을 설립하려고 했다. 

그림 2. 수도인 예루살렘에는 국가의 정치 및 종교 당국이 있었다. 유대 성전(Jewish Temple)과 인접해있는 로마의 안토니아 요새(Roman Antonia Fortress)는 유대 민족과 점령 중인 로마 사이의 불편한 긴장 관계를 상징했다.


시대는 변했지만, 동일하다.

“변화가 거듭될수록, 본질은 더욱 한결같아진다”라는 오래된 속담이 맞는 것 같다. 오늘날 서구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최근의 세속적이고 이교도적인 문화적 압박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생각해 보라. 이전의 사두개인들처럼,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성경적 교리를 버렸다. 잘 알려진 목회자, 작가, 예술가들이 우리 문화의 변화된 입장 때문에 창조, 영원한 형벌, 성, 젠더, 생명의 신성함, 또는 기타 성경적 가르침에 대해 타협했다. 슬프게도 일부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을 완전히 부정하고, 세속주의자들과 함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가르친 대로 살아가려는,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제자를 가르치는 삶을 추구하는 기독교인들을 조롱하고 박해하기까지 한다. 기독교인이라고 공언하는 일부 사람들은 정치적 노력을 통해 문화를 변화시키려고 하지만, 정치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처럼, 돈과 권력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부패와 타협으로 이어진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세속 문화에 굴복하기보다, 신앙에 대한 엄격한 고수를 강조하고, 바리새인들처럼 그들 자신의 전통 중 일부를 교리 수준으로 높였다. 그리고 그들의 접근 방식을 따르지 않는 동료 기독교인들을 자주 공격한다. 광야 근처에 살았던 쿰란 공동체처럼, 오늘날 일부 신자들은 세상 문화를 등지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불경건한 행동을 하는 자들을 맹렬히 비난한다.

예수님 당시의 시대를 통해 사회적 압박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언제나 그렇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교활한 정치인, 타협적 종교인, 위선적 율법주의자, 폭력적 혁명가, 신실한 하나님의 추종자 등 많은 범주의 사람들과 교류하셨다.

사두개인들이 미래에 있을 부활의 교리를 조롱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회적 압박에 굴복하지 않으셨다. 대신에 예수님은 그들의 타협에 반대하여, 죽음 이후의 삶을 분명히 암시하는 구약 구절을 강조하셨다(마태복음 22:32).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이 식사 전에 손을 제대로 씻지 않는다고 비판했을 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며 만든 율법주의적 전통을 정죄하셨다(마태복음 15:3~9). 군중들이 자신들의 상황에 대한 정치적 해결책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을 때(요한복음 6:15), 예수님은 때가 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즉 우리 죄의 형벌을 짊어지고 끔찍한 죽음을 당하시는 일을 위해(요한복음 3:16-17), 그곳을 떠나셨다.

그림 3.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 있는 가버나움에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려운 때가 왔을 때, 폭력을 행사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사실, 군인들과 관원들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을 때, 그분은 베드로에게 칼을 넣으라고 말씀하셨다(요 18:1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정치적 해결책만 찾거나, 사회를 완전히 등지거나, 문화적 압력에 직면했을 때 신앙을 버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을 방어하지 말라거나, 정당한 전쟁에 참여하지 말라거나, 정치에 뛰어들지 말라거나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활동들이 우리의 문화적 문제들에 대한 주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죄(sin)가 이들 문제의 핵심이고, 사람들이 창조주에 대해 계속적으로 반역하기 때문인 것이다.   

예수님은 해결책이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의 십자가에서의 희생적인 죽음과, 그에 따른 부활은 삶을 영원히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계획을 신뢰하거나 사람들의 칭찬을 구하는 대신에,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항상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해야 한다. 격동적인 오늘날의 문화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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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스펙트럼

1세기의 이스라엘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배경과, 광범위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유대 민족은 일반적으로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영원한 왕국을 약속받은 특별한 민족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지만, 그 왕국이 언제 어떻게 세워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돌했다. 성경에 나오는 이 무리들을 알아보자.


유대 기독교인

기독교로 개종한 최초의 유대인들은 나사렛 예수가 참으로 그들의 메시아이자, 왕이라고 믿게 된 유대인들이었다. 초기에 이 새로운 신자들은 성전에서 만났지만, 예수님을 거부한 유대인들과의 긴장이 커지면서, 결국 그들은 성전과 회당에서 추방당했다.


바리새인

일반적으로 율법주의자로 간주되는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전통에 대한 전문지식과 엄격한 준수로 알려진 대규모의 유대 종파였다. 그들은 거룩함과 의식적 순결을 강조했고, 이것은 율법과 전통에 대한 순종을 통해 온다고 믿었다. 많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메시아적 주장을 강하게 반대했다.


사두개인

신약성경에 14번 언급된 이 사람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들은 영과 천사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미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거부했음을 보여준다(행 23:8). 이는 그들의 글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과 불화가 있었던 출처로부터만 알려져 있다. 그들은 신학적 올바름보다 정치 권력을 지키는데 더 관심이 많았던, 대제사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상류층 종파였던 것으로 보인다.

 

열심당/시카리

로마가 유대인 시민들을 학대하고 성전 금고를 약탈한 것에 좌절한 많은 하급 사제들은 AD 60년대에 성전을 되찾고 정치적 권력을 얻기 위해 맞서 싸웠다. 이 열심당원들은 타협했던 종교지도자들을 타도하고, 로마와의 전쟁을 추진했다. 한편, 시카리는 대규모 군중 속에서 개인을 암살한 후, 섞여들어 몰래 빠져나가는 은밀한 폭력에도 가담했다.


현재 북부 켄터키의 창조박물관에 새롭게 전시되어 있는, ‘경계지대: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Borderland: Israel in the Time of Jesus)’를 한번 방문해 보라. 이 멋진 전시관에서는 유물, 비디오, 디오라마, 실물 크기 모형, 표지판 등을 통해 1세기 이스라엘에 대해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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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양승원, 송원준

주소 : https://answersingenesis.org/bible-history/life-borderland/

출처 : Answers magazine, October 1, 2021. 


미디어위원회
2023-02-15

모세를 찾아서 1 

(Searching for Moses)

David Down


     이집트 역사의 전통적인 연대기로 따지면, 제18왕조의 통치는 대략 BC 1550년부터 BC 1320년 까지이다. 성경 연대기에 의하면 출애굽은 약 BC 1446년에 있었다. 그런데 이집트 제18왕조의 기록 어디에서도 이집트를 휩쓸었다던 어마어마한 10가지 재앙의 결과로 생겨났을 대대적인 재해의 증거들이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이 기간에 있었다는 이집트 군대의 괴멸의 증거도 찾아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있었을 여호수아 휘하의 군대에 의한 팔레스타인 침공을 증명할만한 고고학적인 증거물도 없다.

이 문제의 해결은 이집트의 연대기를 몇 세기 삭감하여(축소하여) 찾을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즉, 제12왕조를 모세와 출애굽의 시기로 끌어내려서 산정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고 보면, 모세 당시에 수많은 유태인 노예들의 존재, 피폐한 이집트, 그리고 유태인 노예들의 돌연한 출국의 흔적 등을 풍부하게 찾아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집트 연대기의 축소(reduction)는 이스라엘에 있는 고고학적 유물의 연대에 대한 해석에서도 고루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후기 청동기(Late Bronze Period) 말기에 팔레스타인 침공이 있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전기 청동기 말기에 파손된 것으로 보이는 여리고의 성벽과 이질적인 문화를 지닌 낯선 민족이 침공한 증거가 있는바, 이 침공자는 여호수아 휘하의 이스라엘 군으로 식별될 수 있다.


성경에 대한 도전 (The Challenge to the Bible)

1995년 12월 18일자 타임(Time) 지에는 10계명이 새겨진 석판(石版)을 들고 있는 모세의 그림이 표지에 등재되어 있었다. 그 그림 한복판에 성경은 사실인가, 아니면 가공인가?” 라는 질문이 가로로 쓰여 있었다. 이 기사의 주장은 이랬다.

”구약성경의 여러 내용들은 증거에 상충되든가, 아니면 여전히 충족치 못하다. 이집트에서의 이스라엘 노예, 모세의 실존, 출애굽, 성지에 대한 여호수아의 침공 … 등등에 관한 증거들이 그러한 예이다. 족히 6년 동안 여리고 유적을 발굴하였던 캐슬린 케년(Kathleen Kenyon)은 그 당시에 있었을 파괴의 증거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p.54)

실제로 그녀는 성경의 출애굽기에 해당되는 BC 1400년 경에는 여리고 현지에 주민이 살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1

”제반 자료들을 현대의 지식에 비추어 분석하여 보면, BC 1580년과 BC 1400년 사이에는 무덤 양식과 고대 건축물에 있어서 양쪽 다 완전한 간격이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당시에는(at that time)’ 이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하다. 사실상 이집트의 노예제도, 모세의 존재, 출애굽, 그리고 여호수아의 성지 정복에 관한 증거들은 풍부하다. Garstand 교수는 여리고에서 무너진 성벽들을 발굴하면서, 성이 있던 곳에 생겨난 언덕 밑에서 전 지역을 덮고 있는 두터운 잿더미 층(thick layer of ash)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은 의도적으로 방화한 화재로 인한 것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외각 성벽이 가장 심하게 손상되었다. 무너진 성벽의 잔해들은 경사를 흘러내렸다… 맹위를 떨친 화재의 흔적은 역력하였다. 붉게 탄 벽돌들, 깨진 암석들, 검게 탄 목재들과 잿더미 등등이 그랬다. 불타 무너진 가옥의 잔해들은 성벽을 따라 땅바닥에 즐비하였다. 가옥 내부의 토기들은 무너져 내린 지붕에 깔려있었다.” 2

그렇지만 고고학자들이 그 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한 시점(time)은 잘못된 것이었다.

”초기 발굴에서 발견한 그 방어벽은 후기 청동기 도읍의 것으로서, 그 파괴의 원인은 지진과 화재로 믿고 있었다. 최근의 발굴은 이 성벽들의 시기가 잘못 산정되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성벽들은 실질적으로 초기 청동기 때의 것이었다.” 3

열왕기상 6:1에서 밝히고 있는 정보로부터, 출애굽의 시기가 계산될 수 있다. 이 구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 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 년 시브(Ziv)월 곧 이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솔로몬이 BC 970년 경에 즉위하였다는데 동의한다.4 그의 즉위 4차 년은 BC 966년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때를 기산(起算)하여 480년 전은 BC 1446년 경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는 전통적인 연대 산정에 따르면, 그 때는 이집트의 제18왕조의 시기에 해당한다.


이집트의 연대기에 대한 수정 제안 (A Proposed Revision of Egyptian Chronology)

‘그 당시에’ 모세의 흔적이나, 이집트에 내려진 10가지 재앙, 또는 출애굽의 증거가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수많은 학자들은 이집트 역사의 연대기 계산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수 세기를 삭감하여 계산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와 같은 수정된 연대기 계산은 제12대 왕조를 모세의 시기로 끌어내려서 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왕조 기간에는 성경 기록을 지지하는 상황 증거들이 풍부하다.

제12왕조의 말기에 재위하였던 왕들 중에 세소스트리스(Sesostris) 3세가 포함된다. 그의 석상에 묘사된 인상으로 보아, 그는 능히 백성들에게 냉엄한 노예제도를 시행하고도 남았을 잔악한 독재자로 생각된다. 그의 아들 아메넴헤트(Amenemhet) 3세도 못지않게 잔악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그의 통치는 46년간이나 계속되었다. 그리고 모세는 그의 통치 초기 어느 때에 탄생했을 것이다.

.세소스트리스 3세의 두상. 세소스트리스 3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 수 있었던 잔인한 폭군이었다.


아메넴헤트 3세한테는 아메넴헤트 4세로 불려졌던 아들이 하나 있었던 것 같다. 이 왕자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서 부왕을 추종하였든지, 아니면 부왕과 공동섭정을 하였던 것 같다. 만일 후자의 경우라면, 아메넴헤트 4세는 모세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메넴헤트 4세는 아메넴헤트 3세의 서거 이전에 미스터리하게도 종적이 묘연해졌다.

아메넴헤트 3세한테는 소벡네페루(Sobekneferu) 라는 딸이 하나 있었다. 이 공주는 아이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6 만약에 그녀가 목욕하려 강가로 내려갔다던 바로(Pharaoh)의 딸이었다면, 강가로 갔던 이유는 쉽게 이해된다. 그것은 공주의 방에 목욕시설이 없어서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세정(洗淨) 의식을 거행하고, 다산(多産)의 하신(河神)  하피(Hapi)에게 기도를 드리려고, 그 곳에 내려왔을 것이다. 아기를 못 가졌던 그녀로서는 그와 같은 신이 필요했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아기 모세를 그 곳에서 발견하였을 때에, 그녀는 이 아기가 그녀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쉽게 믿었을 것이다.(출애굽기 2:5~6).

.아메넴헤트 3세의 동상. 아메넴헤트 3세는 제12왕조의 마지막 통치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또한 모세가 살았던 당시의 바로였을지도 모르는 고약한 인물이었다. 그는 그의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고, 그의 딸 소벡네페루는 자식이 없었는데, 이것은 그녀가 왜 아기 모세를 왕위 계승자로 기꺼이 받아들였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러나 나이 들어 스스로의 정체성을 이스라엘 사람으로 인식한 모세는 이집트를 도망쳐야만 했다. 이 일로해서 왕위에 공백이 생겨 아메넴헤트 3세가 서거하였을 때에는 대를 이을 왕자가 없었다. 공주 소벡네페루가 바로로 즉위하여 8년 동안 통치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과 더불어 왕조도 끝나고, 뒤이어 제13왕조가 대두하였다.


이스라엘 노예들 (The Israelite Slaves)

지난 15년간 나는 이집트의 연대기를 정정하기 위하여 애써왔다.7 그 결과로 페이윰(Faiyyum)의  카훔(Kahum)에 있는 12왕조의 피라미드들의 건설에 동원되었던 노예들이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노예로 언급된 셈족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15년 전만해도 나는 고고학적 현실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간주됐었다. 그러나 시간이 그 모든 것을 바꿔놓은 것이다.

나보다 먼저 나의 정정 내용과 동일한 정정을 임마누엘 벨리코브스키(Immanuel Velikovsky) 박사가 주장하였던 것은 물론이다.8 그리고 도노반 쿠빌(Donovan Courville) 박사도 같은 정정을 제안했었다.9 그러나 그들은 고고학자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해서, 그들의 주장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무시되었었다. 하지만 그 때 이후에도 인정을 받는 고고학자들이 한 목소리로 정정을 제안하고 있다.

1991년에 피터 제임스(Peter James)는 ‘암흑의 세기들(Centuries of Darkness)’ 라는 저서를 펴냈다. 그는 이 저서에서 이집트의 연대기는 250년을 삭감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10 제임스는 저명한 학자이다. 그리고 그의 저서는 캠브리지 대학교의 콜린 렌프루(Colin Renfrew) 교수의 머리말을 싣고 있는데, 렌프루 교수는 ‘연대기 개정이 진행 중’(p. XVI)이라고 인정하면서, "역사는 새로 편찬돼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p. XIV). 데이비드 롤(David Rohl)은 1995년에 출판한 자신의 저서 ‘시간의 시험(A Test of Time)’에서 이집트의 연대기는 350년 삭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1 이 주장들이 의미하는 바는 이집트의 제12왕조의 종말은 BC 15세기로 산정되어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때가 대략 성경의 출애굽기의 시기에 해당된다. 그때 카훈에 거주하면서 제12왕조의 피라미드건축에 노력 동원된 것으로 알려진 노예들은 이스라엘인들이었다.

성경연구학회(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 소속 브라이언 우드(Bryan Wood) 교수는 카훈에 살고 있던 셈족 노예들이 틀림없는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다고 결론짓고 있다.12 그는 이 결론에 이르는데 다른 시각에서 출발하였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는 출애굽기 12:40 절에서 언급된 430년13,, 14 이라는 기간이, 갈라디아서 3:17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아브라함의 시대부터 출애굽 당시까지의 전체 기간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였던 실질적인 기간이라고 결론 맺고 있다. 이 추정도 앞에서의 예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인의 이집트 노예 시대를 제12왕조 기간으로 산정한 것이다.

이 때의 증거들은 성경의 기록과 잘 들어맞는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 /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출애굽기 1:8~11).

플린더 페트리(Flinders F. Petrie) 경은 페이윰에 있는 도시 카훈(Kahum)을 발굴하였다. 그리고 로잘리 데이비드(Rosalie David) 박사는 그의 발굴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 그 책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즉,

”이 도시에는 상당수의 아시아인들이 있었던 것 같다. 이집트의 다른 곳에서도 이 사실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시리아나 또는 팔레스타인 지방에 있었을 그들의 고국은 정확하게 확인할 길이 없다…  그들이 이집트에 와서 살게 된 정확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15

로잘리 데이비드나 플린더 페트리는 이 셈족 노예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는 걸 확인할 수 없었다. 그들은 성경의 사건을 제12왕조보다 수 세기 이후로 산정하는 전통적인 이집트 연대기를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페트리는 또 다른 한 가지 흥미진진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아마도 원래는 옷가지나 다른 소유물들을 보관하는 데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대형 나무 상자들이 카훈(Kahun)에 있던 많은 가옥들의 방바닥 밑에서 발견되었다. 이 상자들은 아기들의 유골들이 담겨 있었는데, 때로는 한 상자 안에 2명 또는 3명의 유해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죽을 당시 아기들의 나이는 몇 개월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16

이에 대한 설명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는 히브리인 조산원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린 적이 있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를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출애굽기 1:16). 조산원들은 이 명령을 무시하였던 결과 ”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출애굽기 1:22). 수많은 산모들은 품속에서 빼앗긴 아기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비탄의 눈물을 삼키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죽은 아기들을 상자에 넣어 살던 집 방바닥 밑에 묻었던 것 같다.17

.아기 해골이 발견된 나무 상자. 플린더 페트리 경은 이집트 제12왕조의 피라미드를 지은 노동자들의 집 바닥 아래에서 많은 상자들을 발견했다. 그것들은 생후 몇 달밖에 되지 않은 아기 해골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들은 왕의 명령에 의해 살해된 아기들일 수 있다.


페트리가 발견한 것 중에 또 하나 놀라운 것은, 노예들이 돌연히 현장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는 사실이다. 로잘리 데이비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즉,

”바로의 피라미드 건설의 완공이 카훈 주민들이 연장과 가재도구를 일터나 집에 내버려둔 채, 끝내 그 도시를 떠나야했던 이유가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18

”이 최초의 카훈 거주가 어떻게 막을 내리게 되었는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가옥들 안에 내버려진 일상용품들의 수량, 그리고 그 용도의 범위나 형태들의 다양성은 능히 그들의 이탈이 돌발적이며, 사전에 계획된 바 없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19

그들의 출발은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돌발적인 것이었다! 이보다 더 성경의 기록과 부합하는 기사는 없을 것이다.

사백 삼십 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출애굽기 12:41).

.진흙 벽돌에 짚을 넣어 만든 아메넴헤트 3세의 피라미드. 그의 피라미드는 출애굽기 5:7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짚으로 엮은 진흙 벽돌로 지어졌다. 


*참조 : Biblical Archaeology : Evidence of the Exodus from Egypt
http://www.bibleandscience.com/archaeology/exodus.htm

Biblical Archaeology : The Date of the Exodus According to Ancient Writers
http://www.bibleandscience.com/archaeology/exodusdate.htm

The Exodus: Fact or Fiction?

https://www.biblicalarchaeology.org/daily/biblical-topics/exodus/exodus-fact-or-fiction/

Exodus Evidence: An Egyptologist Looks at Biblical History

https://www.tsaritsyn-tours.com/wp-content/uploads/2020/04/the_bas_library_-_exodus_evidence_an_egyptologist_looks_at_biblical_history_-_2017-02-10.pdf


*모세를 찾아서 2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12&bmode=view


*자료실 /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들 / 출애굽의 증거들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16723&t=board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reation.com/searching-for-moses

          http://www.answersingenesis.org/tj/v15/i1/moses.asp 

출처 - TJ 15(1):53–57, April 2001.

미디어위원회
2022-09-01

바벨탑과 언어를 창조하신 하나님


이은일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전 한국창조과학회 회장


     창세기가 실제 역사라는 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바벨탑 사건도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교훈적인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아담과 하와로부터 인류가 시작되었다는 성경의 기록도 믿지 못한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이미 수십년 전에 인류가 한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연구하여 발표하였고, 다양한 언어들을 사용하는 여러 인종이 사실상 한 가족이라는 것도 생명과학이 증거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 가족으로부터 시작된 인류가 하나의 언어를 가지지 않고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진 다양한 언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 더 이상한 것이다. 다양한 언어 중에는 지역에 따라 시기에 따라 표현하는 방식 등이 달라지면서 다양해진 것도 있지만,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른 언어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언어는 하나의 언어에서 출발할 수 없다고 언어학자들은 주장한다. 한 가족인 인류가 전혀 다른 구조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이 수수께끼는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바벨탑 사건이 있어야만 완벽하게 풀리게 된다. 창세기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언어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악과 불순종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바벨 지역에서 성과 탑을 쌓던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바벨탑 쌓은 일을 중단하고 언어가 같은 사람들끼리 흩어지게 하셨다. 이 상황을 비유하면 모두가 한국말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들은 영어, 어떤 사람들은 중국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어는 배워서 익히는 것인데, 이런 일이 갑자기 일어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초월적 능력에 의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언어에 관련된 은사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단어, 문장의 의미를 배우지 않았는데 저절로 알게 되고 사용할 수 있을까? 언어라는 것은 부모와 주변 사람들로부터 배우고 익혀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인데 저절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처음 언어가 주어진 특별한 상황에서만 일어나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바벨탑 사건 당시에는 가족 또는 종족 단위로 다양한 언어가 주어져 서로 소통할 수 있었고, 아담과 하와도 처음부터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언어능력을 가지고 창조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사람은 동물들과 달리 사랑하고, 희생하며, 느끼고, 생각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이해하고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언어를 창조하여 주신 것이다. 당연히 사람은 동물들과 달리 정교한 언어를 발성할 수 있는 세밀한 발성기관을 주셨다. 언어 자체도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 작품이지만, 그 언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하신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고 놀라운 업적을 이루기도 한다. 그런데 언어는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타락하면 언어도 타락한다. 필립 얀시는 자신의 책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서 수 많은 단어들이 본래의 뜻을 잃고 타락했다고 말했다. “사랑, 남자와 여자, 권위, 정의, 자유, 과학, 창조” 등 많은 단어들이 본래의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로 변질 되어 이해되고 있다. 


언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따라서 타락한 단어들의 본래 의미를 회복하는 것도 그리스도인들의 중요한 사명이다. 또한 다양한 외국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바벨탑 사건이 역사적 사실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언어와 피부색이 아무리 달라도 인류가 모두 한 가족임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 기근, 질병, 억압 등은 바로 나의 가족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세상에서 복음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땅 끝까지 회복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우리도 동참하도록 초청받은 것이다.



*참조 : 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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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 전설인가, 역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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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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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사건과 민족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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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류에 대한 DNA 분석은 바벨탑의 인류 분산을 확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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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 DNA는 바벨탑 이후의 유전적 다양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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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16명의 손자 : 고대의 지명과 민족들의 이름 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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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3 조상 가족으로부터 유래했음을 유전자 연구는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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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언어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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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기원에 대해 논쟁하고 있는 언어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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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혼잡에 관한 전 세계의 전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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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가장 오래된 언어는 단지 4500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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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언어는 젊은 지구 모델과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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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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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창조, 그리고 속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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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와 사람의 어원 : Manu, Man, Maru, Mano, Anu, Marine...단어들의 기원과 대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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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들은 얼마나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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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생물학이 아니라, 문화에 의해서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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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사람에게만 있는 유일한 특성임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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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은 언어를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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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휘파람으로부터 진화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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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가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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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XP2와 인간 언어의 비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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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기원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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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말 : 최초의 사람은 언어 능력을 부여 받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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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히브리 문자가 해독됐다 : 성경 기록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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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와 잃어버린 점토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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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로니아 점토판에 성경 속 인물이 언급되어 있었다. 느부갓네살 왕의 환관장 살스김의 이름이 새겨진 점토판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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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압 석비가 입증하고 있는 성경 기록의 역사적 사실성 : 모압 왕 메사의 자랑은 창세기를 확인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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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은 구약성경의 역사성을 확증한다 : 느부갓네살 왕의 관리 이름이 기록된 점토판은 예레미야서의 역사성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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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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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역사가 왜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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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거짓 역사 : 창세기 1~11장의 기록은 진정한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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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미토콘드리아 DNA 연구는 노아를 확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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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인의 DNA 분석은 성경의 정확성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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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류에 대한 DNA 분석은 바벨탑의 인류 분산을 확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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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 DNA는 바벨탑 이후의 유전적 다양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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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의 유전체 분석은 성경적 역사와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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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들에 대한 유전자 분석은 창세기를 확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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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염색체 연구는 창세기 시간 틀을 확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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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염색체 아담과 미토콘드리아 이브는 동시대를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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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아담을 지지하는 과학적 사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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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아담을 거부하는 이유는 과학 때문이 아니라, 진화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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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족보에 간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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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전학은 역사적 아담을 확증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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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유신진화론 :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아담이 없다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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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유전자는 쇠퇴되고 있다고 유명한 유전학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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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시계들은 최근 창조를 가리킨다 : 미토콘드리아 DNA, Y-염색체의 돌연변이 발생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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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과학적, 수학적 도구들은 아담과 이브를 발견했는가? : 미토콘드리아 이브

http://creation.kr/IntelligentDesign/?idx=1291576&bmode=view

사람 돌연변이의 대부분은 지난 5,000년 내에 발생했다.

http://creation.kr/Mutation/?idx=1289832&bmode=view

인구성장률이 가리키는 인류의 역사는? 

http://creation.kr/Math/?page=1#1288169

고대 이집트는 창세기가 실제 역사임을 확증하고 있다.

http://creation.kr/Genesis/?idx=1289135&bmode=view

비아미 족의 전설들 : 파푸아 뉴기니 식인종족에게 전해져 온 창조와 홍수 이야기

http://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88389&bmode=view

창조주에 대한 마오리 족의 기억 : 뉴질랜드의 원주민들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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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족(苗族)에게 전승되어온 창조(創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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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와 축축했던 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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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누가 썼는가? : 사해사본과 엔게디의 불에 탄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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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2022. 8. 27. 온누리신문 

미디어위원회
2021-12-30

잃어버린 역사

: 빅 히스토리 vs 성경

오경숙 (한국창조과학회 본부장)

     

     역사를 아는 것은 나를 아는 것의 시작이다. 우리가 믿는 바,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성경에는 처음부터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완벽하게 창조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창1:1-31, 요1:1-3). 그러므로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시고,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구원자 이시다. 나를 알려면 창조주를 만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역사는 믿음의 여부와 상관없이 하나이다. 성경의 창조역사와 세속의 진화역사는 공존할 수 없다. 성경은 사실이며 지금까지의 모든 인류의 역사를 담아내고 있다. 특별히 창세기 1장부터 11장에 이르는 역사의 기록은 만물과 인류의 창조 그리고 타락에 따른 심판의 예표인 대홍수와 언어와 민족이 나뉘는 바벨탑 사건은 신화나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이다. 이 역사의 흐름에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민족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데에 있다. 그렇게 성경의 역사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이다. 노아의 방주가 당시 유일한 살 길이 되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이 시대의 유일한 살 길이다. 이 역사를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시절 동안 하나님의 역사를 잃어버리고 노예신분으로 전락했을 때에 에스라가 역대기를 통해 잃어버린 역사를 바로 세우고 존재의 시작이신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을 일깨웠듯이 우리 또한 우리의 시작과 지금까지 인도하신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 이심을 일깨워야 한다.


그런데 이 시대의 청소년들은 과학교과서를 통해 ‘나’ 라는 존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배우고 있다. 공신력을 가진 학교현장에서 교과서를 통해 ‘나’ 라는 존재는 큰 그림의 시간 속에서 전자와 양성자와 같은 작은 물질에서 시작되어 빅뱅과 우주에서 태양과 지구가 생성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 우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생명이 생성되어 ‘나’라는 인류에 이르기까지 진화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 인류가 원시 시대에서 농경기, 철기 시대를 거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여러 변화를 통해 지금의 내가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렇듯 처음에서 지금까지의 거대 역사를 이야기로 엮은 것을 빅 히스토리라고 한다.


1. 빅 히스토리?

빅 히스토리란 한 눈에 보는 모든 인류의 역사라고 한다. 이 세상 모든 것과 내가 어떻게 해서 오늘날과 같이 되었으며, 그 이야기 속에 우리는 어디에 위치해 있고, 그 모든 것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설명하는 주장이다. 1989년 크리스천(David Christian)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으며, 1991년 ‘빅 히스토리’ 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만들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Brown, 2020, p. 16). 2011년, 크리스천(David Christian)과 베인(Bob Bain)이 저술한 『 빅 히스토리』는 그간의 강의를 정리하여 138억 년의 빅 히스토리 타임라인을 제시하였다. 빅 히스토리가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이라고 이야기하며, 인류의 오랜 전통과 연계하여 추론한 것을 제시하였다(Christian & Bain, 2015, p. 15). 빅뱅을 역사의 시작으로 소개하면서도 처음의 순간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 분명히 증거도 없다고 기술하고도 있지만, 빅 히스토리는 현대까지의 이론과 논리에 근거를 둔 가장 합리적인 이야기라고 강조한다(Christian & Bain, 2015, p. 79). 2017년에는 138억년 거대사 대백과사전인 『 빅 히스토리』를 출간하였으며, 이 책에서는 빅 히스토리의 단계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를 여덟 단계의 ‘문턱(threshold)’으로 나누며 인류가 변화하는 기준점을 제시하였다. 그 기준은 1)대폭발, 2)별의 탄생, 3)원소의 생성, 4)행성의 형성, 5)생물의 출현, 6)인간의 진화, 7)문명의 발달, 8)산업의 부상이다(Christian 등, 2017, p. 5-13). 대폭발 이후 우주와 지구, 생명과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와 조건들이 결합하면서 새로운 주체가 등장하는 전환점을 중심으로 빅 히스토리가 전개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빅 히스토리는 큰 그림의 진화 이야기이다.


사실 1980년 칼세이건의 『코스모스』의 마지막 장에 유사한 제안이 담겨있다. 1977년 9월 미국 나사에서 태양계 탐사를 목적으로 우주에 쏘아 올린 보이저 1호 연구에 참여한 칼 세이건(Carl Sagan)은 태양계를 탐사하며 얻은 여러 정보를 토대로 1980년에 『코스모스』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그는 그의 책을 통해 우주에 비해 지구가 얼마나 작고 보잘것 없는지에 대해 설명하였다. 대부분의 내용은 보이저 1호가 관측한 태양계 행성들의 신비하고 놀라운 사진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는 오직 인류만이 과학을 알고 연구하는 유일한 존재이며 자연선택의 과정을 거친 진화의 산물로 인류를 표현하였다(Carl Sagan, 2006, p. 660). 그리고 책의 마지막 말미에 빅뱅의 시작에서 생명의 시작과 진화 자연발생에서 사람이 되는 진화과정을 묘사하였고, 인류가 글자를 발명하고, 도시를 세우고, 예술과 과학을 발달시켜 그의 시대에 우주 탐사에까지 이르게 되었음을 언급하였다(Carl Sagan, 2006, p. 673). 이것이 우리 인류의 신화이고 역사이며 우주 진화의 대서사시라고 말한다(Carl Sagan, 2006, p. 674).


한편, 크리스천의 『 빅 히스토리』와 유사한 시기에 더 많은 대중의 인기를 끌었던 책은 2011년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의 『 사피엔스 』이다. 그가 제안하고 있는 역사 연대표에 따르면, 138억년 전 물질과 에너지의 등장하고, 이어 원자와 분자의 생성에서 시작하여 30만년 전 사피엔스의 등장한다. 12,000년 전 농업혁명, 5천년 전 최초의 왕국에 이어 제국과 돈의 사용 5백년 전 과학혁명과 2백년 전의 산업혁명에 이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Yuval Noah Harari, 2015, p. 14-15). 빅 히스토리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 내용은 빅 히스토리의 내용과 흐름을 같이 하고 있다. 칼 세이건이 우주의 탄생과 현재 우주에 대해 비중을 두고 다루었다면, 유발 하라리는 인류사에 좀더 비중을 두어 기술하였다. 무엇보다 인류는 결국 신의 자리에서 유전자를 이식하고 새로운 개체를 만들 것이며, 사이보그 공학은 과학기술을 이용한 생체공학적 기관인 의수, 인공심장박동기, 의료보장구와 다양한 감지 시스템 등인데 이것으로 사람의 건강을 진단함을 넘어서 능력과 성격, 정체성까지도 조절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낙관한다(Yuval Noah Harari, 2015, p. 572). 인간이 물질만을 이용한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공학기술을 이용하여 신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Yuval Noah Harari, 2015, p. 576).


2. 세상의 반응?

사업가인 빌 게이츠(Bill Gates)는 빅 히스토리를 접하고는 그의 인생 세번째 프로젝트(3rd project)라고 부를 정도로 극찬과 애정을 과시하며 빅 히스토리 교육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했다. 그는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1,000만 달러(한화 100억 원)를 투자하고, 온라인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Big History Project)’가 전개되며 빅 히스토리 교육은 체계화되기 시작했다(Christian & Bain, 2015, p. 8). 뿐만 아니라 그의 지원으로 크리스천과 브라운(Cynthia Stokes Brown)이 빅 히스토리 연구소(International Big History Association, www.bighistoryproject.com)를 설립하여 운영 중이다(Cynthia Stokes Brown, 2020, p. 6). 한국에서도 지구사연구소가 설립되면서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했다(김유미, 박소영, 2016, p. 12). 2018년 기준 다수의 자율형 사립고 등에서 빅 히스토리 교육이 행해지고 있으며, 미국은 1,500곳의 중·고등학교에서 교육되고 있다(이지은, 2018).


빅 히스토리에 대한 비판은 찬사만큼이나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하나의 분과 학문이나 주제에 정통하기도 어려운데 다른 사람들의 연구 업적을 바탕으로 해서 우주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지적 오만이라는 지적이다(이근영, 2020). 문학평론가인 박민영은 빅 히스토리에 극찬하는 빌 게이츠와 엮어 빅 히스토리야 말로 자본가들의 사업수단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였다. 그는 『인물과 사상』을 통해, 빅 히스토리는 자연과학적 세계관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것이며, ‘과학기술의 발전은 무조건 선(善)’ 이라는 명제, 즉 과학기술에 대한 교조적 숭배에서 나온다고도 평가했다(박민영, 2017, p.115). 빅 히스토리는 우리가 당면한 다양한 문제를 알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인간이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거창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지만, 결국 빅 히스토리라는 학문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박민영, 2017, p. 148-150). 모든 학문을 통합하는 새로운 학문을 제시하지만, 기초적인 내용만으로는 너무 빈약해서 학문으로 자리잡기 어렵다는 것이 박민영의 평가이다(박민영, 2017, p. 147). 극단적으로는 자연과학 전체를 동원하여 인문사회과학을 지배하려는 프로젝트로 해석하였다(박민영, 2017, p. 117). 빅 히스토리는 엄청난 양의 과학적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는 있지만, 진짜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거나, 언급하더라도 그에 대한 관점이 지배자들에게 이롭게 끔 섬세하게 조절한다고 비평했다(박민영, 2017, p. 149). 그는 빅 히스토리 학자들이 지적 탐험과 여정에 대해 ‘우주 속에서 길 찾기’라고 말하지만, 실재는 ‘우주 속에서 길 잃기’ 라고 평가했다(박민영, 2017, p. 148).


3. 빅 히스토리는 과학적이가?

빅 히스토리에 대해 과학으로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과학에 대해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원자모형을 정리한 영국의 물리학자 톰슨은 과학을 ‘관찰, 실험, 등록, 측정 등의 객관적인 방법들로 얻어 낸 일종의 지식’으로 이해했으며, ‘과학은 관찰과 실험으로 얻은 일반적인 데이터에 기초를 둔 체계화되고, 증명 가능하며, 전달 가능한 모든 지식을 포함한다’ 라고 정의하면서 특별히 자연과학만이 진정한 의미의 과학이라고 여겼다(박형룡, 한동수, 2016, p. 41-44).


  • 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 과학의 정의를 자연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들을 밝혀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연 속에 존재하는 질서정연하고 그것을 지탱해주는 원리들, 그 수많은 비밀들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 자연 속의 비밀은 과학적으로 살펴볼 때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면 어떻게 존재하게 된 걸까? 이런 질문에 대하여 현대과학은 해답을 주지 못한다. 자연 속의 수많은 비밀들은 누군가가 그 비밀들을 만들어서 자연 속에 넣어두지 않았다면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다. 즉 이 세계는 우연히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질서를 가지고 유지되도록 애초에 설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이웅상 외, 2013, 290-291). 설계되었다는 말에는 이성과 지식을 가진 존재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관찰하거나 연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모어랜드(J.P. Moreland)는 과학의 한계의 첫 예로 우주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J.P. Moreland, 2019, p. 193). 자연의 법칙과 시간, 공간, 물질은 우주의 시작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면, 물질 시작의 원인 그 자체는 시간, 공간, 물질과는 다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간의 원인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아니어야 한다. 자연의 궁극적인 법칙에 종속되지 않고 존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초자연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J.P. Moreland, 2019, p. 193). 아무리 수많은 재료가 있어도 지성을 가진 누군가의 설계와 감각이 동원되지 않으면 어떠한 실체도 존재할 수 없으며 더욱이 질서와 균형을 가진 안정된 상태로 존재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빅 히스토리의 시작인 빅뱅이론을 과학적으로 살펴보자. 초기 빅뱅이론은 적색편이 현상을 통해 우주팽창 역추적한 이론으로 초기 선형팽창의 빅뱅이론은 물리학계에서도 이미 낡은 빅뱅이론으로 불린다. MIT 대학의 알란 구수(Alan Guth)는 이를 보충하여 1초에 비할 수도 없는 짧은 시간(1/10-32 초)에 우주가 급팽창(inflation)하여 지금의 우주수준으로 커졌다는 주장을 하였으나, 이론자체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낡은 인플레이션 이론’으로 추락하였다(권진혁, 2016, p. 41). 인플레이션 이론에 가장 정통한 슈타인 하르츠(Paul Steinhardt) 교수는 빅뱅이론은 폐기되거나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2002년 빅뱅이론을 포기하고 전혀 새로운 자신만의 이론을 주장하기도 했다(John Lennox, 2013, p. 47). 그는 2011년 4월 SCIENTIFIC AMERICAN 학술지 표지에 급팽창이론이 붕괴하는 이미지를 내세우며 실질적인 빅뱅이론의 문제를 지적하였다(Steinhardt, 2011, p. 36-45). 또한 상대성이론과 우주론의 전문가이면서 2020년 블랙홀연구의 기여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여한 캠브리지 대학의 로저 펜로즈(Roser Penrose) 교수는 급팽창 이론에 대해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하였다(권진혁, 2016, p. 41). 지금까지도 빅뱅이론을 대체할 만한 이론이 없기에 교육에 적용되고는 있지만, 문제와 한계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공감하고 있다. 빅뱅이론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빅뱅의 문제는 자연히 이어지는 별과 행성의 형성에도 동일한 문제로 이어진다. 그리고 원소에서 생명으로 진화되었다는 화학물질에서 생명으로 이어지는 화학진화는 밝혀진 바 없는 이론이며, 한 생명에서 지금의 수많은 생명으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순서로 진화했다는 주장 역시 증거도 없고 밝힐 수도 없는 기원에 대한 가설에 불과하다.


생명의 시작에 대해서도 오파린의 생명발생설의 실험에서 증명된 되었듯이 생명은 오직 생명에서 만 나올 수 있다. 이는 진화론에 반대되며 오히려 창조론과 조화를 이룬다. 고(故) 조지 왈드(하버드대학교 교수이자 노벨상 수상자)는 자연발생설을 믿는 것이 ‘타당한’ 시각이라고 여겼는데, 그 이유로 ‘초자연적 창조의 유일하고 원초적인 행위’를 믿는 것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Wald, 1954, p. 46). 한편 열역학 제1법칙과 제2법칙에의하면, 우주 내의 총 에너지는 일정하게 유지되지만, 쓸모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에너지량은 계속해서 한다. J.P. 모어랜드와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는 이 법칙에 대해 자연주의적 시각에서 우주는 거대한 닫힌 체계인데, 시간만 충분히 주어질 경우, 우주의 그 모든 과정은 수명을 다하는 우주의 열역학적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Moreland and Craig, 2003, p. 478). 즉 가장 처음이 가장 보시기에 좋은 상태였으며(창1:31), 아담의 말미암아 땅과 만물이 저주를 받게 되면서 오히려 점점 나빠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창3:17-18; 롬8:21-22). 이처럼 과학은 오히려 창조를 지지한다.


4. 세계관의 충돌?

빅 히스토리는 자연과학에서 세운 어떤 관점이나 이론을 인간과 문화를 넘어 철학과 세계관 그리고 신앙까지 흔들려고 한다. 세계관은 각 학문 분야를 접근하는 방법에서 특정한 관점을 제공한다. 그리고 각 학문 분야는 세계관과 밀접한 관계로 인해 가치를 지닌다(Noebel, 2013, p. 37). 우리가 배우는 모든 학문은 철학에서 체계를 갖추긴 하였으나, 철학은 결국 개인, 민족, 그리고 시대의 패러다임이나 신념 혹은 종교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성경적 믿음에 근거한 창조론과 빅 히스토리로 주장하는 진화론은 둘 다 실제적으로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서 입증될 수도, 반증될 수도 없다. 기원은 먼 과거에 일어난 일이고, 실제로 관측될 수 없기 때문이다. 커트 스웰(Curt Sewell)은 창조론과 진화론은 둘 다 과학에 근거한다고 하기 보다는 종교적인 철학에 근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언급했다(Curt Sewell, 1999). 왜냐하면 둘 다 어떤 종류의 신앙과 믿음 체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 믿음은 유신론이고, 다른 하나는 무신론이라는 것이다.


빅 히스토리는 무신론에 기반한 자연과학적 세계관에서 태동한 빅뱅과 진화론을 기정 사실화 하고 있으며, 기존의 실제 사실인 역사와 연결하여 실제 우리의 역사라고 제시하고 있다. 진화론적 빅 히스토리의 주장은 자연과학이 다 증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해도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역사의 흐름으로 볼 때 너무나 당연한 전개라고 암묵적으로 각인시키고 있다. 진화론의 기반인 인본주의는 인본주의 선언문을 통해 진화론의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다. “기술을 지혜롭게 사용하면서 환경을 제어할 수 있고, 가난을 정복할 수 있으며, 질병을 현저히 줄일 수 있으며, 수명을 연장할 수 있고, 두드러지게 우리 행위를 조절할 수 있고, 인간 진화와 문화적 발달의 행로를 변경할 수 있고, 새롭고 광대한 세력을 해방시킬 수 있고, 인류에게 풍족하고 의미 있는 삶을 달성하는 전대미문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Humanist Manifesto II, 1980, p. 14).” 세속적 인본주의는 역사의 모든 과정을 인간, 문화, 문명이 더욱 진보한 인간, 문화, 문명으로의 진화로 보고 있다(Noebel, 2013, p. 482).


반면 기독교 세계관의 기초는 성경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갖도록 교육해야 한다. 노에벨(David. A. Noebel)은 그의 저서 『충돌하는 세계관』에서 세계관의 열 가지 주요 구성 요소로 신학, 철학, 윤리학,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법학, 정치학, 경제학, 역사학을 예로 들며, 기독교는 우주의 존재와 그에 관련된 만물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정리하고 있다(Noebel, 2013, p. 506). 그는 신학에 있어 기독교는 인격적이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 계획된 우주, 그리고 인간 삶을 위해 준비된 지구에 대한 관념에 있어 무신론이나 범신론의 어떤 주장보다 우월하다고 단언했다. 철학적인 면에서는 정신(로고스)이 물질보다 먼저 있었다는 개념은 무신론의 물질이 정신보다 선행한다는 개념보다 우월하며, 생물학적인 면에서 생명을 창조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개념은 자연발생설이나 대진화에 대한 어떤 암시보다 증거에 더 잘 들어맞는다고 정리하였다. 그리고 역사학적인 측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나타날 미래의 왕국에 대한 성경적 약속이 죄악에 찬 유한한 인간이 상상해낸 인간, 문화, 문명으로의 진화로 보는 어떤 유토비아적 계획보다도 더 희망적인 것이라고 진단했다(Noebel, 2013, p. 506-507).

 

5. 성경으로 돌아가자

우리가 믿는 성경에는 세상의 창조, 사람의 타락과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뜻과 역사하심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먼저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한 권능과 지혜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천지만물을 무에서 창조하셨다(창 1:1-31; 롬 1:20; 히 11:3). 그 하나님께서 우주 안에 있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엿새 동안에 창조하셨으며(창 1:1-31),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창골 1:16; 행 17:24).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들을 처음 창조하실 때에 처음부터 각기 종류대로 만드셨기에(창 1:21, 24-25), 진화론과 수십억 년의 진화론적 시간 틀은 성경을 부인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른 피조물과 다르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으며, 이성적이며 불멸하는 영혼을 주시고, 지식과 의와 거룩한 존재로 만드셨다(창 1:26-27; 2:7; 전 12:7; 마 10:28; 눅 23:43; 엡 4:24; 골 3:10). 아담은 인류의 첫 사람이며, 아담이 죄를 짓기 전의 죽음은 없었다(롬 5:12; 고전 15:22).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엿새 동안의 창조,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타락과 죄의 형벌, 단 한 번의 전 지구적 심판인 노아 홍수, 바벨탑의 배도 등과 같은 기록들은 역사적으로 실제 있었던 사실이다(창 1:1-31; 3:1-24; 6-9장; 11장; 마 24:37-39; 눅 17:26-29).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자 하나님이신 참 하나님이시며, 창조주이시고, 성육하신 참 사람이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으며 하나님 우편에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시며 세상 끝 날에 다시 오시어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사 42:1; 요 3:16; 딤전 2:5; 벧전 1:19,20; 요 1:1,14; 갈 4:4; 빌 2:6; 요일 5:20; 눅 1:27,31,35; 히 2:14,16,17; 4:15; 마 26:27; 빌 2:8; 행 2:23,24,27; 13:37; 롬 1:4; 고전 15:3-5; 막 16:19; 롬 8:34; 히 7:25; 9:24; 마 13:40-42; 롬 14:9,10; 행 1:11; 10:42; 벧후 2:4; 유 1:6).


이것이 우리가 믿는 믿음이다. 창조나 진화가 철학이고 믿음의 영역이라면 우리는 성경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신 창조를 믿을 뿐 다른 타협은 없다. 성경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로 믿는 믿음이 하나님이 창조주 이심과 통치자 이심과 구원자 예수그리스도 이심을 믿는 믿음일 것이다. 성경의 역사를 바로잡고 가르치는 것은 세상에게 역사를 빼앗기지 않을 유일한 길이다. 역사를 알아야 나를 알 듯 하나님을 알아야 역사와 나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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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지, 류현모 역. (2013). 충돌하는 세계관. David A. Noebel(2006). Understanding the Times. 서울: ㈜디시티와이북스, p.37, p. 212-216, p. 481-482, p. 506-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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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뱁티스트 통권174호 (2022년 1-2월호). p133-143

미디어위원회
2021-09-01

왜 복음은 죽지 않는 것인가?

(Why Won't the Gospel Die?)

by Brian Thomas, PH.D. 


     복음(gospel)이 처음 등장한 직후, 고대 로마는 기독교를 말살하려 했다. 그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을 고문하고 살해했지만, 그것으로 복음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 수천 년이 지난 후 20세기 공산주의자들도 기독교를 말살하려 했지만, 소련과 중국의 순교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지 않았다. 그들의 충성은 정부가 복음을 말살하려는 것이 여전히 무력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복음은 무엇 때문에 그러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일까?

복음이라는 단어는 "좋은 소식(good news)"을 의미한다. 복음은 누구나 이해하고 반응할 수 있는 소식이다. 우리 인간은 거룩한 하나님께 죄를 지었고, 그에 따른 벌을 받아야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참으시고, 죄악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셨다. 죄인에게 좋은 소식인 복음은 하나님의 친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고린도 1:23), 죄악 된 자신의 삶을 회개하고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엡 5:2)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값없이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이다(계 22:17).

이 소식은 사탄이 교회를 외부에서부터 파괴하려고 할 때나, 내부에서 파괴하려 할 때조차도(벧후 2:1)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이 되어 계속 전해졌다. 역사의 한 시기에서 교회는 복음에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기독교 안으로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목록을 만들었다. 그러나 복음이 희석되어 사라질 것 같았을 때, 개혁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고귀한 희생을 하셨다는 복음을 이해하고 믿었다. 이 기쁜 소식은 수많은 선교사들과 헌신자들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모든 나라의 사람들은 자기 언어로 된 성경을 손에 갖게 되었다.

복음은 각 세대마다 새로운 위협에 직면했다. 복음에 대한 최근의 공격은 성경 번역을 위해 원문을 연구하는 학자들로부터 온다. 그들은 너무 자주 인간의 발달에 오랜 세월이 걸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비성경적 역사관은 성경이 진리를 포함하고 있지만, 성경이 전적으로 진리는 아니라고 믿도록 만든다. 목회자들은 복음을 가르치는 바로 그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훈련받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에 대한 신뢰성을 파괴하는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이 되고 있다.

모든 시대와 민족에서, 복음에 대한 공격이 외부이던 내부이던, 어떤 이는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지만, 어떤 이는 듣고 배척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는 말씀처럼 말이다.

그래서 2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는 동일한 오래된 말씀은 끊임없이 새로운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창조연구소(ICR)의 핵심 사역은 과학이 성경을 뒷받침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있다. 과학은 생명의 기원, 죄의 심각성, 다가올 심판 등을 포함하여 성경의 모든 말씀이 신뢰할 수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왜 복음은 지속되는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는 일을 아직 끝내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 Dr. Thomas is Research Associate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earned his Ph.D. in paleobiochemistry from the University of Liverpool.

.Cite this article: Brian Thomas, Ph.D. 2021. Why Won't the Gospel Die?. Acts & Facts. 50 (8).


출처 : ICR, 2021. 7. 30.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why-wont-the-gospel-die/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1-07-30

메뚜기의 다리에 대한 성경 기록은 오류인가?

(Grasshopper Apologetics : No Need to Get Jumpy)

James J. S. Johnson, J.D., TH.D.  


    가나안을 염탐한 후 10명의 이스라엘 정탐꾼들은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겁에 질려 스스로를 메뚜기로 여기며 보고했다.(민수기 13:33) 

메뚜기(grasshoppers)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포식자가 두려울 때마다 풀밭에서 서둘러서 튀어오른다.[1] 모든 메뚜기들은 6개의 다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메뚜기에 대해서 '네 발' 곤충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누군가가 대학교 신입생들에게 말할 때, 크리스천 신입생들은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2, 3]

레위기 11:20~24절은 성경의 오류인가? 모세는 잘못 알고 있었는가? 겁 많은 메뚜기들이 포식자로부터 도망치듯, 신입생들은 성경 비판가들에게 겁을 먹고, 이 과학적 논제를 회피해야 하는가?

세속적 과학자들은 과학(너무도 자주 잘못 표현되고 있는 용어)이 성경을 신뢰할 수 없음을 증명했다는 잘못된 주장을 함으로서, (우리 모두를 포함하여) 크리스천 학생들을 공격하고 비난한다. 그러한 폄하를 통해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들을 조롱한다.[2] 놀랄 일도 아니지만, 이것은 베드로와 바울이 예언했던 것이다.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베드로후서 3:3),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을 전할 것이라는 것이다(디모데전서 6:20, KJV).

하지만 어떻게 이러한 사이비 지식과 허구적 비판을 막아낼 수 있을까? 그 방법은 하나님이 실제로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을 주의 깊게 연구함으로써, 소위 성경과 과학이 충돌하지 않음을 밝히는 것이다. 그래서 날림 과학(sloppy science)과 날림 신학(sloppy theology)을 청소해내는 것이다.[4]

메뚜기에 관한 성경 기록은 틀렸다는 주장은 날림 과학과 날림 신학을 모두 보여주는 과잉단순화 오류(oversimplification fallacy)의 하나이다.[2, 4, 5] 메뚜기는 다리가 6개인 곤충으로서, 6개 다리로 걸어다닌다는 것은 날림 과학이다. 비행 중인 비행기가 바퀴를 접는 것처럼 메뚜기들은 걸을 때 뒷다리 두 개를 접는다.[5]

그러나 도약할 때, 메뚜기는 뒷다리를 힘차게 풀고, 배영 선수가 수영장 벽을 힘차게 밀어내고 출발하는 것처럼, 땅이나 잔디를 힘차게 밀어내어 수 미터의 먼 거리(메뚜기 몸길이의 최대 100배)를 도약한다. 이 경우에 힘과 가속이 동시에 터져나와야 한다. 그러나 근육운동은 보통 두 가지 모두가 아닌, 고강도 운동이나, 고속 운동만을 활성화한다.[5]

하지만, 하나님은 메뚜기가 이것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설계하셨다!

메뚜기는 근육에 의해 발생하는 기계적 힘을 증폭시키기 위해 투석기(catapult)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메뚜기는 경이로운 생물이다... [그것은] 근육의 수축과 저장된 에너지를 방출하는 이완을 통해서 즉시 고속으로 가속될 수 있다.[5]

한편, 모세가 메뚜기를 네 발 달린 곤충으로 잘못 기록했다는 주장은 날림 신학이다. 왜냐하면 모세는 이 기며-뛰는(crawling-and-jumping) 생물을 글자 그대로 "네 발로 기어 다니는(walking upon four, hōlēk ‘al ’arba‘) 모든 곤충 중에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benders from over/above its feet, for to leap by them, kerâ‘îm mimma‘al leraglâîw lenattēr bâhēn)”라고 기록했기 때문이다.(레위기 11:21). 모세는 메뚜기가 네 발(두 앞다리, 두 중간다리)로 기어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한 투석기처럼 튕겨나가기 위해서, 기어 다니는데 사용하는 네 발 위로, 도약하는데 사용하는 접혀진/뛰는 다리(두 뒷다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구분하여 기록했던 것이다.

따라서 과잉단순화는 좋은 과학도 좋은 신학도 아니다. 모세는 내내 옳았다. 그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요한복음 5:44-47).


References

1. Johnson, J. J. S. Cabin Fever, Cattle Egrets, and Pasture-land Partnerships. Creation Science Update. Posted on ICR.org April 10, 2020, accessed April 15, 2021. See also Joern, A. 1992. Variable Impact of Avian Predation on Grasshopper Assemblies in Sandhills Grassland. Oikos. 64: 458-463. Regarding grasshopper timidity, see Job 39:20 and Nahum 3:17, corroborated by observations of Alpine Booney Grasshopper (Booneacris glacialis), August 1997, Appalachian Trail’s Presidential Range, White Mountains, New Hampshire.

2. This occurred at Dallas Christian College in the mid-1990s. Similar Q&As occur elsewhere. E.g., Morris, J. D. 2001. Does the Bible Really Claim that Insects Only Have Four Legs? Acts & Facts. 30 (7).

3. See Leviticus 11:20-24. Verse 20 mentions “flying insects that creep on all fours.”

4. See Johnson, J. J. S. 2017. Sloppy Religion and Sloppy Science. Acts & Facts. 46 (5): 21, which explains Psalm 93:1 and 19:1-6. See also Johnson, J. J. S. 2019. The Circle of the Earth. Acts & Facts. 48 (5): 21, explaining Isaiah 40:22.

5. Chuan, Y. L. et al. 2017. Biomimicry-Grasshoppers Inspired Engineering Innovation. International Robotics & Automation Journal. 2 (2): 77-80. See also Burns, M. D. and P. N. R. Usherwood. 1979. The Control of Walking in Orthoptera: Motor Neurone Activity in Normal Free-walking Animals.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79: 69-98.

* Dr. Johnson is Associate Professor of Apologetics and Chief Academic Officer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Cite this article: James J. S. Johnson, J.D., Th.D. 2021. Grasshopper Apologetics: No Need to Get Jumpy. Acts & Facts. 50 (7).


*참조 : 곤충의 다리 숫자에 관한 성경 기록은 오류인가?

http://creation.kr/BiblenScience/?idx=1288863&bmode=view

곤충의 발은 몇 개인가? : 곤충의 발에 관한 레위기의 기록은 오류인가?

http://creation.kr/Columns/?idx=1848882&bmode=view

성경은 오류로 가득한가?

http://creation.kr/BiblenScience/?idx=1288874&bmode=view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성경의 모순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64&bmode=view

창세기는 무오한가(오류가 없는가)?

http://creation.kr/Genesis/?idx=1289133&bmode=view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켰던 악마의 전략 :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조하고 의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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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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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권위로 다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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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과 2장은 창조 순서에 모순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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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창조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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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빛을 만들어내지 못함으로, 창 1:15절은 성경의 오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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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은 어디서 아내를 얻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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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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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초과학적인 생명의 책 - 성경에 언급된 ‘토끼의 되새김’도 뒤늦게 밝혀

http://creation.kr/Columns/?idx=1849909&bmode=view

에서의 아내들 : 성경의 오류라는 지적에 대한 반론

http://creation.kr/Genesis/?idx=1289059&bmode=view

이새(다윗 왕의 아버지)는 몇 명의 아들을 두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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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원주율을 3.0 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 열왕기상 7 장의 용기 둘레에 관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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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의 나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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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야긴이 감옥에서 풀려난 날은? : 예레미야 52:31과 열왕기하 25:27의 불일치는 성경의 오류인가?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74&bmode=view

예수님의 족보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서로 다른 이유는?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81&bmode=view

마태는 예수님 족보의 대 수를 잘못 계산하였는가?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76&bmode=view

누가복음 2장의 호적은 언제 시행됐는가? : 예수님 탄생 시기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오류인가?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60&bmode=view

구레뇨의 인구조사 누가가 잘못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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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롯 유다의 죽음에 관한 성경 기록은 오류인가?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77&bmode=view

겨자씨는 모든 씨들 중에 가장 작은가?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65&bmode=view

예수님이 무덤에 계셨던 기간은 밤낮 사흘이 될 수 없는가?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80&bmode=view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팡이를 가지지 말아야 했는가?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72&bmode=view

▶ 정확무오한 하나님 말씀인 성경

http://creation.kr/Series/?idx=1842641&bmode=view


출처 : ICR, 2021. 6. 30.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grasshopper-apologetics-no-need-to-get-jumpy/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1-05-06

창조에 대한 증거로서 성경

(Is the Bible Evidence for Creation?)

by Jake Hebert, PH.D.


      성경 비판론자들은 기원에 관한 논쟁 시에, 기독교인들에게 성경 밖으로 나와서 말하라고 주장하곤 한다. 회의론자들은 우리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이용해서 성경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거기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회의론자들은 증거를 판단할 때, 자신들은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성경이 다른 세계관보다 과학적이고, 역사적으로 더 정확하다는 것을 기독교인들이 보여줄 때, 반대하지 않아야 한다.

성경의 창조 기록(창세기 1~2장)은 생물들에서 보여지는 엄청난 복잡성과 설계된 모습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을 제공한다. 또한 모순처럼 보이는 것도 설명할 수 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면, 왜 질병과 쇠퇴가 일어나서, 결국 죽게 되는가? 왜 나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왜 세상에는 악과 고통이 있는 것일까? 그 답은 인간의 타락(창세기 3장)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성경은 우리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도 이치에 맞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그 분의 율법을 새겨놓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잘못을 합리화하거나 정당화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떤 잘못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1] 또한 하나님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도 마련해 주셨다. 우리는 창조주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로 인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그 분의 주장을 증명하셨다.[2]

창세기는 쉽게 간과될 수 있는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도 설명해준다. 사람의 탄생 이면에 있는 놀랍고 분명한 설계에도 불구하고(특히 미시적 수준에서), 여성은 왜 출산 시에 고통을 겪는지가 설명된다. 또한 왜 벌거벗었을 때 수치심을 느끼는지를 설명해준다. 만약 사람이 우연히 진화되어 출현했다면, 이러한 것들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성경은 기록된 역사에 대해서도 이치에 맞는다. 회의론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역사적 신뢰성에 대한 증거들은 창세기에서부터 풍부하다.[4]

마지막으로, 성경은 지구의 역사에 대해서도 이치에 맞는다. 전 지구적 홍수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은 전 세계의 모든 대륙에 쌓여있는 광대한 넓이의 두터운 퇴적지층들과, 그 안에 들어있는 수십억 개의 화석화된 식물과 동물들을 설명해줄 수 있다. 바다생물과 육상생물 화석들이 종종 뒤섞여서 함께 발견되는데, 이는 전 지구적 홍수에서 예상될 수 있는 것이다. 전 세계의 민족과 종족들에 남아있는 수백 개의 홍수 전설들은 전 지구적 홍수 시에 정확하게 예상될 수 있는 것이다.[5] 또한 전 지구적 홍수는 세속적 설명보다 훨씬 뛰어난 빙하기(Ice Age)에 대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6] 이러한 관측들과 성경은 매우 잘 들어맞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성경을 논쟁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러한 관측들을 설명할 수 있는 힘은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받아들일 때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만약 창세기를 신화나 비유로 해석한다면, 이러한 사실들을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세속주의자들이 진화론과 수십억 년의 연대를 거부하는 창조과학자들을 공격하고 조롱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ICR(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과 같은 성경적 창조론을 주장하는 단체가 왜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성경을 창조의 증거로 삼는 것은 절대적으로 정당하다. 기독교인들은 이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결코 거짓말을 하시거나, 실수하시지 않는, 목격자의 증언이기 때문에, 우리의 존재와 모든 사실들을 설명하는 데에 너무도 잘 들어맞는다는 것에 대해 놀라지 말아야 한다.


References

1. Romans 2:14-16.

2. Romans 10:8-10; 1 Corinthians 15:1-4.

3. Guliuzza, R. The Miracle of Human Life: Darwin or Design? DVD. Dallas, TX: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4. Cooper, B. 2012. The Authenticity of the Book of Genesis. Portsmouth, UK: Creation Science Movement.

5. Morris, J. D. 2014. Traditions of a Global Flood. Acts & Facts 43 (11): 15.

6. Hebert, J. 2018. The Bible Best Explains the Ice Age. Acts & Facts 47 (11): 10-13.

* Dr. Hebert is Research Associate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earned his Ph.D. in physics from the University of Texas at Dallas.

Cite this article: Jake Hebert, Ph.D. 2021. Is the Bible Evidence for Creation?. Acts & Facts. 50 (5).


*참조 : 역사와 거짓 역사 : 창세기 1~11장의 기록은 진정한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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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는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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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어린 양과 창세기의 역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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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는 실제 역사라고 히브리어 교수는 확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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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는 창세기가 실제 역사임을 확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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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기초 -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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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와 21세기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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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창세기는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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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reation.kr/Worldview/?idx=1876297&bmode=view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책은?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56&bmode=view

지구의 나이는 지엽적 문제인가?

http://creation.kr/BiblicalChronology/?idx=1289283&bmode=view

성경적 시간 틀로 지질주상도 이해하기

http://creation.kr/BiblicalChronology/?idx=1289279&bmode=view

어쨌든 믿어라?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4381356&bmode=view

오래된 지구 연대를 믿는 것은 진화론을 수용하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http://creation.kr/BiblicalChronology/?idx=1289278&bmode=view

오래된 지구 지질학에 대한 성경적 지질학자들의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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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로 침투한 수억 수천만 년이라는 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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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 홍수의 증거들로 가득한 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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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홍수의 지질학적 증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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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과 내륙 깊은 곳에서 발견되는 바다생물 화석들 : 창세기 홍수의 지질학적 증거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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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로 뒤덮인 세상 : 전 세계의 화석무덤들은 전 지구적인 대홍수를 증거한다. : 창세기 홍수의 지질학적 증거들 2 

http://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94935&bmode=view

대륙을 횡단하는 퇴적 지층들 : 빠르게 쌓여진 퇴적층들이 광대한 지역에 걸쳐 확장되어 있다. : 창세기 홍수의 지질학적 증거들 3 

http://creation.kr/Sediments/?idx=1288627&bmode=view

대륙을 가로질러 운반된 모래들 : 창세기 홍수의 지질학적 증거들 4 

http://creation.kr/Sediments/?idx=1288628&bmode=view

느리고 점진적인 침식은 없었다. 평탄하게 이어진 지층 경계면들은 장구한 시간 간격을 거부한다 : 창세기 홍수의 지질학적 증거들 5 

http://creation.kr/Sediments/?idx=1288636&bmode=view

암석 지층들은 부서짐 없이 습곡되어 있다. : 창세기 홍수의 지질학적 증거들 6. 

http://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88432&bmode=view

전 지구적 홍수를 가리키는 성경적, 과학적 증거들과 전 세계의 홍수 설화, 그리고 에누마 엘리쉬

http://creation.kr/Genesis/?idx=2851501&bmode=view

그랜드 캐니언에서 전 지구적 홍수의 10가지 증거들

http://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88480&bmode=view


▶ 압도적인 노아 홍수의 지질학적 증거들

http://creation.kr/Series/?idx=1833879&bmode=view


출처 : ICR, 2021. 4. 30.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is-the-bible-evidence-for-creation/

번역 : 미디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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