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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미디어위원회
2024-05-13

시간 추적 : 우리의 달력은 어디에서 왔는가?

(Tracking Time: Where Do We Get Our Calendar)

Liz Abrams


   10월 4일은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 제정 기념일이다.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통해 년, 월, 일을 정한다. 그레고리력은 1600년 이상 달력 체계였던 줄리안력(Julian calendar)을 대체하기 위해, 1582년 10월에 교황 그레고리 13세에 의해서 제정되었다. 줄리안력은 여전히 세계의 몇몇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여전히 줄리안력을 사용한다면 2022년 10월 4일은 9월 19일이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이해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 중 하나는 사건이 발생한 시점을 아는 것이다. 당신의 생일은 1년에 한 번 돌아온다. 크리스마스는 항상 12월 25일이고, 발렌타인 데이는 2월 14일이다. 여러분은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인 결혼 10주년, 50주년을 기념할 수 있고, 그러한 커플은 충실한 결혼 생활을 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달력(calendar, 역법)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아담은 1월 1일에 창조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12월 25일에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제 예수님의 탄생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달력의 기원도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간의 흐름을 측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타난, 창세기에 언급된 최초의 것은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을 나누신 첫째 날부터 시작된 낮/밤 주기이다. 아직 해와 달이 창조되지는 않았지만, 어떤 빛이 있었던 시간이 있었고(아마도 지구에 있는 사람이 경험했을 것으로), 그 뒤에 어둠의 시간이 뒤따랐다. 낮(day)과 밤(night)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오늘날 우리가 태양과 달을 통해서 경험하는 낮과 밤의 길이와 비슷했음을 의미한다.

넷째 날에 하나님은 태양, 달, 별 및 기타 천체를 창조하셨다. 동시에 그분께서는 그것들의 목적을 밝히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14~15)


태양(sun)인 "큰 광명체"는 우리에게 낮과 밤을 분명하게 구분해 준다. 달(moon)은 우리에게 시간의 다음 구분인 월(month)을 제공한다. 달은 햇빛을 반사하는데, 반사하는 달의 반쪽이 지구를 향할 때 보름달이 된다. 달의 대부분이 햇빛을 지구로 향해 반사하지 못할 때, 그것은 초승달(new moon, 신월)이며, 보름달 사이에 여러 단계의 위상 변화가 있다. 초승달에서 초승달까지가 음력(태음력)으로 한 달(a lunar month)이다. 오늘날 서구 세계의 달력(태양력)은 음력과 일치하지 않지만, 고대 달력에서는 일치했다.

태양과 지구의 관계를 사용하여 연도를 측정하는 데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태양년(solar year)은 태양이 천구의 적도를 지날 때 춘분점(vernal equinox)에서 다음 춘분점까지의 시간으로 365.2422일이다. 항성년(sidereal year)은 천구상을 지나는 태양이 황도상에 고정된 별과 겹친 뒤 다시 겹쳐질 때까지의 시간을 말하며 365.2564일이다. 항성년은 태양년보다 약간 긴데, 그 이유는 춘분점이 천구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차 운동으로 인해 조금씩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점년(anomailistic year)은 지구가 근일점에서 다음 근일점에 이르는데 걸리는 시간으로 365.2596일이다. 근점년은 항성년보다 약 5분 정도 더 길다.


고대 달력들

사람들이 언제부터 달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담의 나이는 년 단위로 측정되어 있으며, 우리는 그것이 정확한 측정이라고 믿는다. 즉, 아담이 상당히 일찍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을 알아냈음에 틀림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어떤 년을 사용하고 있었을까? 달과 날들은 태양력에 잘 맞지 않는다. 음력으로 12월은 태양력보다 11일이 짧다. 음력(음력 12개월 = 354일)을 사용했다면 태양년으로 901세가 된다. 창조로부터 노아 홍수까지의 기간인 1656년을 음력으로 측정하면 1606년이 된다.

창세기 6~7장에 나오는 연대표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모세가 30일씩 12개월로 나눈 360일의 음력 달력을 사용하여 홍수 기간을 계산했음을 알 수 있다. 자세한 설명은 홍수 연대표에 대 한 성경적 개요(Biblical Overview of the Flood Timeline)를 참조하라.

성경 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초기의 증거는 사람들이 아주 일찍부터 태음력과 태양력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었고, 태음태양력(lunisolar calendars)을 사용했다는 것을 가리킨다. 태음태양력에서 달은 음력이지만, 년은 태양력이다. 수메르(Sumer)에서는 달력을 태양력과 일치시키기 위해, 왕들이 주기적으로 윤달(intercalary months)을 선포했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천문학적 지식이 윤달들을 표준화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때까지, 상당히 임의적으로 행해졌다.

고대 이집트에는 30일로 된 12달에 5일의 윤달이 더해진 365일의 달력이 있었다. 이 달력은 이집트인들이 4년마다 하루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나님은 히브리 달력을 언제 개편하셨는가?

유월절(Passover) 직전은 하나님께서 히브리 달력을 다루시는 특이한 시기인 것 같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즉시 떠날 준비를 해야 하므로, 애굽 사람들에게 온갖 귀중품을 요구해 가져오게 하시고, 급히 준비한 유월절 음식을 신을 신은 채로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달(후에 니산월이라고 불리는 아빕월, 대략 3월/4월에 해당함)은 그들에게 한 해의 첫 달이 되었다.(출 12:1~2)

왜 하나님께서는 달력을 재설정(reset)하시기 위해, 그 순간을 선택하셨을까? 장자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박해와 노예 생활에 대해 바로와 이집트를 심판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집트인들의 거짓 신들에 대한 그분의 우월성을 일련의 심판들을 통해 보여주셨다. 이 거짓 신들은 달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의 거짓 신들로부터 분리하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바로 달력을 바꾸셨다.

대신 히브리력(Hebrew calendar, 유대력)은 하나님에 의해서 정해졌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그분이 실행시키신 것이었다. 이스라엘에 대한 그분의 구출(deliverance, 해방)은 너무도 특별한 것이어서, 출애굽의 달을 한 해의 시작으로 정했던 것이다.


안식일 원칙

동시에 하나님은 그들의 일주일을 개편하셨다(reformed). 하나님께서 7일 동안 창조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실 때까지, 창조 주간에 근거한 사람들을 위한 7일 주간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은 없었다. 홍수 이야기 중 여러 7일 기간은 사람들이 모세 율법 이전에 7일 주간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여러 문화권에는 길이가 다른 "주(weeks)"들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이집트인들은 일주일이 10일이었다. 하지만 유월절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로 일주일은 7일로 정해졌다. 어떤 사람들은 수메르인들이 달이 한 위상에서 다른 위상으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을 기준으로 일주일이 7일이었고, 바빌로니아인들이 수메르인들로부터 일주일을 물려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역사 초기에 이스라엘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사회와의 문화적 교류는 고사하고 중요한 상호 작용도 없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10일제를 지켰다면,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심으로서 7일제를 굳게 세우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실 때,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삼으시려고 여섯째 날에는 두 배로 거둘 것을 모세에게 명하셨다. 사람들은 일곱째 날에 쉬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신 시내산까지 설명되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히브리인들의 안식일 준수를 창조 6일 후의 하나님의 안식과 분명하게 연결하셨다(출애굽기 20:8~11). 모세는 창세기의 인간 저자/편찬자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특히 수백 년 동안 이집트 신화에 둘러싸여 창조의 역사를 잊어버렸을 가능성이 있다. 창세기에 있는 우리의 역사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성경의 형태로 다시 받아들여지기 전까지,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마나 많은 역사가 기억됐는지는 알 수 없다.

고대 이스라엘에게 안식일 준수는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출애굽기 31장과 출애굽기 35장에서 안식일을 어긴 것에 대해 사형을 제정하셨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을 엄숙하게 상기시키고, 하나님이 6일 만에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째 되는 날에 쉬셨음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주 안식일을 지키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밭에 파종하여 6년 동안 소출을 거둘 것이나, 7년째 되는 해에는 파종하지 말고 밭도 쉬고 종들도 쉬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레 25장). 이러한 관습은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 휴식하는 주기를 반영하고 강화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7년째 해에 쉬는 것을 따르지는 못했다.


연례 절기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한 해가 이집트와 가나안의 거짓 신들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절기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하셨다. 연초의 무교절, 맥추절, 연말의 수장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구원과 공급하심을 경배하고 경축하는 절기였다(출 23:14-17). 이 절기들은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출애굽기 34장에서 그것들을 반복하여 말씀하셨다. 이방 관습을 진정한 신에 대한 경배로 대체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 염소를 어미 젖에 삶는 것을 금지하는 특이한 금지 사항도 설명된다. 이것은 요리에 관한 금지 행위라기 보다는 땅(소출)의 비옥함을 보장하기 위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러한 이방 관습에 의존하는 대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추수 초에 맥추절을 지키고, 추수 끝에 수장절을 지켰다.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이 절기 준수를 더럽혔다. 이사야 시대에 하나님은 정하신 절기까지 거절하셨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이사야 1:12~14)

유대력에서 종교적 절기들과 안식일의 휴식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 그들의 절기들을 지키는 행동은 위선적인 관습이 되었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본래 의도와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달력을 연대기로 바꾸기

어떤 달력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연도를 측정하는 방법이 결정된다. 하지만 고대인들은 세월의 흐름을 어떻게 측정했을까? 전 지구적 홍수는 창조 후 1656년경에 일어났지만, 창세기는 “창조 후 1656년”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고 되어 있으므로,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주어진 족장들의 나이들로부터 추적하여 계산해볼 수 있다. 또한 이것은 다음 세대가 태어날 때, 족장들의 나이와 그들의 전체 수명을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 5장과 11장의 족보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 족보들은 "노아가 600세" 였을 때를 "창조 후 1656년"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세부 사항일 것이다.

노아 홍수와 바벨탑에서의 흩어짐 이후에, 적어도 어떤 곳에서는 통치하는 왕과 함께 문화와 정부 제도를 다소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 지역의 제도가 족장들의 수명으로 연대를 계산하는 것에서, 왕의 통치 기간으로 연대를 표시하는 것으로 바뀐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수메르, 바빌론, 이집트는 모두 연호(regnal years, 즉위년)를 사용했다. 수메르 왕들의 목록(Sumerian King List) 및 왕들의 목록(Canon of Kings)과 같은 문서는 이러한 관행에 대한 증거를 제공한다. 야곱이 130세에 이집트로 내려와 147세에 죽기 전까지, 창세기에 족장들의 연대기가 치밀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왕들의 연호에 의한 달력을 접하게 되었을 것이며, 아마도 족장들의 수명에 따라 시간을 계산하는 것을 점차 중단했을 것이다. 성경은 창조 때로부터 유대인들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충분한 연대기적 표시들을 제공하고 있다. 야곱이 죽은 후부터 연대 표시는 개인의 수명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대 달력의 시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의 시조는, 초승달로 시작하는 달이 태양년과 일치하도록 윤달을 포함시켰던 고대 로마력(ancient Roman calendar)이다. 전설에 따르면 로물루스(Romulus, 로마의 건국자)는 304일을 10개월로 나눈 첫 번째 달력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달력은 태양년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역사적일 가능성은 없다. 이 달력이 실제로 사용되었다는 역사적 증거도 없다.

대신 가장 초기에 증명된 달력인 로마력(Roman republican calendar)은 현대 달력과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12개월이었고, 그들 중 대부분은 오늘날 우리가 표시하는 달의 이름과 유사하게 명명되었다. 1년의 길이는 특정 간격으로 윤달을 포함하기 때문에, 24년 주기로 다양하다. 그러나 이 보간법(intercalation-윤년, 윤달, 윤일을 중간에 넣어 날짜를 보정하는 방법)은 365.25일이라는 꽤 정확한 1년의 평균 길이를 갖고 있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는 BC 46년 달력을 개편하여, 1년의 길이를 365일로 하고, 4년마다 윤년을 두어 366일로 했다. 이것은 365.25일의 1년을 달성하는 더 간단한 방법이지만, 실제 태양년인 365.2422일보다 약간 더 길다. 즉, 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은 128년마다 하루가 늘어난다. 이것은 큰 오차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축적된다.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 오늘날 사용되는 태양력)은 윤년의 특성을 약간 변경하여 윤년을 태양년과 더 가깝게 조정했다.

100으로 정확히 나누어 떨어지는 해를 제외하고, 4로 나누어지는 해는 모두 윤년이지만, 정확히 400으로 나누어 떨어지면 윤년이다. 예를 들어 1700년, 1800년, 1900년은 윤년이 아니지만, 2000년은 윤년이다.


세계의 나이 계산

글을 쓰는 시점은 2022년이지만, 무엇으로부터 2022년 후인가? 약어 AD는 라틴어 anno Domini의 약자로, "우리 주님의 해(year of our Lord)"를 의미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후 몇 년이 흘렀는가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지만, 여러 이유로 몇 년 떨어져 있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BC 6년에서 2년 사이로 추정한다.

우리는 이 세계의 창조(creation)와 유대인들이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시간 사이에 몇 년이 경과했는지 측정할 수 있는 성경 기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성경적 연대표를 세속적 연대표와 일치시키어서 높은 정확도로 세계의 나이를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기록은 우리가 주어진 측정에 내재된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날짜 또는 정확한 연도까지 세계의 나이를 계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셋(Seth)이 아담의 130번째 생일에 태어났는지, 아니면 그날과 그가 131세가 되기 전날 사이의 어느 날에 태어났는지 알 수 없다. 아담의 창조 1주년에, 그는 1살로 계산되었을까? 아니면 2살로 계산되었을까? 비슷한 불확실성이 연대기적 사슬의 모든 연결 고리들에서 발생하며, 이로 인하여 지구의 정확한 나이에 대한 불확실성이 수십 년까지는 아니어도, 최대 몇 년에 이를 수 있다.

역사를 통틀어 성경의 역사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다양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구약을 사용하여 세계의 연대기를 만들었다. 그러한 사람들 중에 제임스 어셔 대주교(Archbishop James Ussher)가 가장 유명하며, 그의 세계 연대기는 오늘날까지도 흥미롭게 읽히고 있다. 그는 지구가 BC 4004년 10월 23일에 창조되었다고 믿었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과학적 천재성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과학보다 신학에 관해 더 많은 글을 썼으며, 지구의 나이도 계산했다. 그는 세상이 BC 3998년에 창조되었다고 믿었다. 이 사람들과 비슷하게 지구의 나이를 계산했던 또 다른 사람들도 당시 최고의 학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을까?

비록 세상이 타락했지만, 해와 달과 별들은 계절과 날과 해를 나타내는 그들의 창조된 목적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다. 우리의 달력이 태양과 일치하지 않을 때, 달력은 다른 방법이 아닌 태양년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하나님은 시간과 역사를 염두에 두시고 세상을 창조하셨고, 성경은 우리가 세상의 역사를 측량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역사적 세부 사항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이 과학적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질서 있는 우주를 창조하셨듯이, 하늘의 질서는 역사적 탐구를 가능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에게 그분과의 특별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상기시키기 위해, 안식일과 절기들을 주셨던 것처럼,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일주일의 첫날에 예배를 드린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원래 제정하신 안식일을 기념하기 위해 여전히 토요일에 예배를 드린다. 우리가 예배하는 날은 예배를 드린다는 사실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부활절에는 예수님의 죽음으로부터 부활을, 크리스마스에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것도 그렇다. 이것들은 성경에 결코 명령되어 있지는 않지만, 기념일들을 통해 그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하기에 적합하다.


Footnotes

“Introduction to Calendars,” Astronomical Applications Department, US Navy, accessed October 3, 2022, https://aa.usno.navy.mil/faq/calendars.


*참조 : 더 많은 날과 월을 가진 달력들 : 창세기에 기록된 시간 단위와 로마력, 태음력, 이슬람력.

https://creation.kr/Genesis/?idx=1289130&bmode=view

기록들은 얼마나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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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연대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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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역사가 왜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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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의 연대기적 틀 - 1부 : 문제점, 자료, 및 방법론 ; 고대 근동 및 이집트 역사는 크게 부풀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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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일 창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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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지구 지질학에 대한 성경적 지질학자들의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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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나이 논쟁에 있어서 열쇠 : 노아 홍수는 장구한 시간과 양립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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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로 침투한 수억 수천만 년이라는 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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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 대한 타협은 성경의 기초를 허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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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의 확산과 지구 나이의 변화 : 장구한 연대가 결정되는 과정을 추적한 책 ‘연대측정 게임’

http://creation.kr/BiblicalChronology/?idx=1289294&bmode=view

좁은 길 : 문자 그대로의 6일 창조론이 걸어가는 길

https://creation.kr/Genesis/?idx=1289067&bmode=view


출처 : AiG, 2022. 10. 4.

주소 : https://answersingenesis.org/bible-history/tracking-time/

번역 : 양승원

미디어위원회
2024-05-06

신약성경에 언급된 전 지구적 대홍수 

(The global Flood—according to the New Testament)

Lita Cosner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그들의 신학을 세우기 위해 구약 성경의 역사를 자주 인용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의 역사를 버린다면, 구약에 근거한 신약의 교리 역시 거의 필연적으로 버려지게 된다는 것임을 의미한다. 미국과 다른 지역의 주류 교단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약성경의 기자들이 구약 역사를 사용하여 기독교의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한 사례는 노아 시대의 전 지구적 대홍수이다.[1]


노아 시대의 세상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노아 시대에 사람들은 대홍수가 올 때까지 ‘평소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고 말씀하신다 :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태복음 24:38~39).

그러나 그때는 살기 좋은 곳이 아니었다. 문화가 너무나 부도덕해서, 베드로는 그것을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이라고 불렀다(베드로후서 2:5). 심지어 그 당시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유다서 1:6) 범죄한 천사들(베드로후서 2:4)도 있었다. 신약은 이 죄가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했다는 언급과 잘 들어맞는다. 즉 타락한 천사들이 인간 아내를 취해서 네피림을 낳았다.[2]


방주와 승객들

히브리서의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히브리서 11:7). 베드로는 방주에서 노아 외 일곱 사람, 즉 여덟 명만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한다(베드로전서 3:20; 베드로후서 2:5). 다른 모든 사람들은 대홍수로 죽었다(누가복음 17:27).


대홍수의 규모

대홍수는 노아가 방주로 가져간 물건들, 기록 및 노하우를 제외하고는 그 당시 존재했던 모든 인류 문명을 파괴했다(마태복음 24:39; 누가복음 17:27; 베드로후서 2:5, 3:5-6). 대홍수의 범위는 전 지구적이었으며, 너무나 격변적이어서, 사실상 창조 둘째 날 하나님이 마른 땅을 드러내시기 이전의, 전 지구가 물로 덮여 있던 상태와 유사하게 물로 뒤덮였다. 이것은 베드로후서 3:6절에서 강하게 언급되어 있다. 거기에서 세상(kosmos)이 멸망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홍수가 전 지구적 규모였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

멸망된 것은 “그 때에 세상”이었다. 이것은 다음 구절에서 언급된 “이제 하늘과 땅”과 대조된다. 멸망의 초점은 확실히 그 세상에 거주하던 인간들에 관한 것이지만, 멸망은 모든 “세상”에까지 미쳤다. 즉, 몰려오는 물들은 창세기 1:6~10절의 원상태로 돌려놓음으로써, 창조를 물로 뒤덮인 혼돈으로 돌아가게 하고, 부수적으로 창세기 1:10절 이후에 창조되었던 생물들을 파괴했다.[3]

따라서 ‘점진적 창조론자’ 또는 ‘오랜 연대 창조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노아 홍수는 지역적 홍수가 아니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노아의 홍수는 전 지구적 홍수였다.


무지개와 약속

무지개는 하나님이 노아에게 지구상에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는 그분의 약속을 기억하게 하는 것으로써,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싸고 있다(요한계시록 4:3). 전 지구적 대홍수의 개념은 종종 세속주의자들뿐 아니라, 그 역사성을 의심하는 기독교인들에게도 조롱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 시대에 보내신 것과 같은 대홍수를 다시는 보내시지 않기로 약속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노아의 홍수가 매우 재난적인 지역적 홍수였다면, 그때 이후로 많은 지역적 홍수들이 있어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어기시는 것이 된다.


대홍수에 대한 신약의 신학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구약성경을 그 자체로 언급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그들은 구약성경에 대한 믿음을 기본적인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그들의 신학적 논증을 뒷받침하기 위한 역사적 사건의 사례나 선례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신약의 기자들은 창세기를 역사적 사실로서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그들은 드러나게 그것을 역사 이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창세기 1~11장은 주로 지구와 인류의 초기 역사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행동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신약의 기자들은 주로 이 사건들이 하나님에 관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 사건들이 기록된 대로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사건들이 실제로 우리에게 하나님에 관하여 말해줄 수 없다.(이것이 실제 역사로서 덜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대홍수 이야기에는 하나님의 의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을 때 사람뿐만 아니라, 천사들도 심판하신다(베드로후서 2:4; 유다서 1:6). 그러나 하나님은 의로운 자를 아끼신다는 점에서 그분의 자비 역시 분명하다(베드로후서 2:5). 베드로는 대홍수 이야기를 사용하여 하나님은 노아 시대에 그러하셨듯이, 오늘날의 세상에서도 동일하게 죄를 심판하고, 의인을 보존하신다고 가르쳤다(베드로후서 2:9~10).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심판을 오래 참으신다. 하나님께서 노아가 방주의 건조를 마칠 때까지 참고 기다리셨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기를, 오래 참고 기다리고 계신다(베드로후서 3장).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이 안심하고 있으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대홍수를 예상하지 못했듯이, 그분의 ‘재림’이 갑자기 예상치 못하게 있을 것이며(마태복음 24장, 누가복음 17장), 마찬가지로 시간이 있을 때 믿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너무 늦을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기독교 신학은 역사와 묶여 있다.

많은 현대인들이 신학(theology)과 역사(history)를 분리하기를 원하지만, 신약에서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역사는 올바르게 해석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역사가 정확하지 않으면 신학은 기초가 없는 것이다. 신약의 기자가 역사적 사실을 인용할 때마다, 그것은 과거에 하나님이 일하신 방식에 대한 선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신약의 기자는 청중들에게 단순히 ‘노아가 전 지구적 홍수를 피하기 위해 방주를 지었다’는 것만을 믿게 하려는 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그들이 성경을 믿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오히려 역사적 요점은 ‘하나님이 세상을 한 번 심판하셨으므로, 다시 그렇게 심판하실 수 있다’는 것을 기자가 가르치고 있으며, 그러한 신학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신약의 기자들이 역사적 사실로서 받아들였던 사건들을 거부한다면, 그들의 신학적 논증은 기초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베드로가 전 지구적 대홍수에서 노아 방주에 들어갔던 생물들만 살아남았다고 말한 것은 잘못되었지만, 그의 신학은 정확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비논리적인 것이다.

우리는 신약성경의 기자들이 성경의 역사(Bible’s history)에 대해 매우 큰 확신을 갖고 있었다는 것에서 용기를 얻어야만 하며, 우리도 그러한 확신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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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수를 인용한 신약성경의 구절들


*(마 24:37-39)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눅 17:26-27)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히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벧전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벧후 2:4-5)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벧후 3:5-6)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유 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계 4: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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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1. Angels are spiritual beings and do not marry in heaven. But they have been known in Scripture to manifest in our realm using corporeal bodies which can eat and so presumably carry out all normal human body functions, including reproduction. 

2. Davids, P. H. (2006). The letters of 2 Peter and Jude. The Pillar New Testament commentary (271). Grand Rapids, Mich.: William B. Eerdmans Pub. Co. 

3. Morris, L. (1992).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614). Grand Rapids, Mich.; Leicester, England: W.B. Eerdmans; Inter-Varsity Press. 

*LITA COSNER, B.A., M.A.

Lita has a B.A. in biblical studies from Oklahoma Wesleyan University and an M.A. in New Testament from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She is the full-time Information Officer for CMI-USA. For more: creation.com/cos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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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reation Magazine Vol. 42(2020), No. 2 pp.22-24

https://creation.com/nt-global-flood

번역 : 이종헌

미디어위원회
2024-03-29

예수님의 부활 : 고고학적 분석

(Jesus’s Resurrection : An Archaeological Analysis)

Matt Dawson


요약 :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유물들이 아직까지 많이 발견되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적은 수의 고고학적 유적지와 유물들의 의미와 중요성은 매우 크다. 이 논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된 7가지 고고학적 발견들과 유적지들을 살펴보고 있다.


1)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 주님 무덤 성당. 부활 기념 성당) 

2) 정원무덤(Garden Tomb, 동산무덤) 

3) AD 1세기의 굴림돌 무덤(rolling-stone tombs of the first century AD) 

4) 여호하난의 유적(remains of Jehohanan son of HGQWL) 

5) 알렉사메노의 그라피토(Alexamenos graffito) 

6) 므깃도 모자이크 비문(Megiddo Mosaic Inscription) 

7) 나사렛 비문(Nazareth Inscription).


종합적으로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간접적인 증거들이 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교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과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7가지 고고학적 발견과 유적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유적지들은 성묘교회, 정원무덤, AD 1세기의 굴림돌 무덤, 여호하난 유적, 알렉사메노의 그라피토, 므깃도 모자이크 비문, 나사렛 비문 등이다. 정원무덤을 제외한 다른 모든 발견들은 종합해보면,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었음을 가리키는 간접적인 증거들을 제공한다. 성묘교회와 나사렛 비문은 부활 이야기와 더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강조되고 있다.


결론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증거들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증거들은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들임을 보여주고 있다. 성묘교회, 예수 무덤의 특성, 기타 유물 등이 부활 이야기의 이해와 개연성을 풍부하게 하는 간접적인 증거라고 강조한다. 이 논문은 예수님 부활의 역사성은 고고학뿐만이 아니라, 신약성경에 기록된 목격자들의 증언에 근거하고 있으며, 고고학적 발견들은 신자들의 믿음을 강화하고, 부활의 합리성을 옹호하며, 성경 기록의 세부 사항을 확인해주고, 기독교인들을 격려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증거만으로는 회의론자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부활을 받아들이는 열쇠는 믿음임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고린도전서 15:14~19절에 요약된 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앞에서 논의한 고고학적 증거들이 크리스천들에게 예수 부활의 진리에 대한 믿음을 강화해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전 15:14~19)



논문 전문 바로가기 : https://answersresearchjournal.org/resurrection-archaeological-anal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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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RJ 2021 Volume 14: pp. 125–157, 


요약 및 교정 : ChatGPT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4-03-06

존 넬슨 다비, 스코필드 주석성경, 그리고 오래된 지구 창조론의 부상

(John Nelson Darby, the Scofield Reference Bible, and the rise of old-earth creationism)

Andrew Sibley


요약 :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긴 간격(오랜 시간)이 있다고 가정하는 간격이론(Gap theory)은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1800–1882)의 가르침과 저술, 조지 호킨스 펨버(George Hawkins Pember, 1837–1910)의 저술, 그리고 사이러스 잉거슨 스코필드(Cyrus Ingerson Scofield, 1843-1921)의 스코필드 주석성경(1909, 1917)을 통해 19세기 복음주의권에서 대중화되었다. 간격이론은 18세기 후반 제임스 허튼의 책 ‘지구의 이론’에서처럼, 오래된 지구에 대한 믿음이 커지면서, 토마스 찰머스(Thomas Chalmers, 1780~1847)에 의해 처음 개발되었다. 이 간격이론은 자유주의적이고 비판적인 선집인 ‘에세이와 리뷰(Essays and Reviews, 1860)’에 찰스 굿윈(Charles Goodwin)이 기고한 글에 의해 지지되었다. 비록 다비와 스코필드가 진화론에 반대하고, 특히 인간 진화론에 대해 강력히 저항했지만, 세속적 지질학(오랜 연대)에 대한 이러한 수용(타협)은 많은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로 퍼져 나갔다.


  이 글은 19세기 및 20세기 초에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 운동 내에서 영향력이 있었던 인물들과 그들의 창조론에 대해 다루고 있다. 존 넬슨 다비와 사이러스 잉거슨 스코필드는 이 운동의 주요 인물이었으며, 구약성서 창세기에 대한 해석에서 오래된 지구 창조론(old-earth creation)을 지지했다. 특히 그들은 간격이론을 선호했는데, 이는 창세기 1:1절과 1:2절 사이에 긴 시간 간격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아담 이전에 어떤 인류가 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는 않았지만, 장구한 지질시대들과 공룡들의 번성과 멸종 등을 수용하고 있었다. 다비는 지질학적 발견들과 성경 기록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간격이론을 제안했다. 그는 창세기의 첫 두 절 사이에 수억 년의 간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기간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스코필드는 자신의 주석성경에서 이 간격이론을 더 널리 퍼뜨렸다. 그의 성경은 간격이론을 지지하는 주석과 함께 출판되어,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스코필드 주석성경(Scofield Reference Bible, 1917 version)에서 창세기 첫 페이지.


다비와 스코필드 모두 창조의 첫째 날과 둘째 날 사이에 커다란 간격이 있다는 점에 동의했으며, 이를 통해 과학적 발견과 성경 기록을 조화롭게 해석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의 진화를 명백히 거부했으며, 아담과 하와의 창조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었다. 그들의 접근 방식은 성경을 과학적 발견과 조화시키려는 시도였지만, 일부 기독교 핵심 교리와 충돌하는 위험을 갖고 있었다. 다비와 스코필드의 간격이론은 일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오래된 지구 창조론을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여러 해석학적 접근 방식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또한 이 글은 플리머스 형제단 운동에서 영향력 있었던 다른 인물들, 특히 조지 호킨스 펨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펨버는 공룡과 같은 선사시대 생물들이 아담 이전에 존재했다고 보는 간격이론을 지지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과학과 성경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해석들이 등장하도록 했다.

 

결론에서는 다비, 스코필드, 펨버의 입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신학자들은 오래된 지구 연대를 주장하는 진화론적 지질학자들의 주장을, 창세기 1:1절과 1:2절 사이에 오랜 시간이 있었다는 간격이론을 통해서 성경의 기록과 조화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간격이론은 19세기에 세속적 지질학들의 주장에 대응하여 개발되었던 것이다. 토마스 찰머스에서 시작된 간격이론에 대한 신학적 정당성은 ’에세이와 리뷰(Essays and Reviews)‘에 의해서 기반을 다진 것으로 보인다. 이 저작물은 성서비평학(biblical criticism)에 관여한 자유주의 기독교인들이 썼으며, 여러 면에서 기적에 대한 믿음과 문자 그대로의 텍스트 읽기에 반대했다. 다비와 스코필드가 오래된 지구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성경 본문을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진화론에 대한 그들의 반대는 이후 수십 년 동안 많은 플리머스 형제단과 다른 복음주의자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이끌었다. 영국에서 지적설계와 오래된 지구 창조론을 지지하는 많은 현대인들이 플리머스 형제단 운동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원문 바로가기 : https://creation.com/darby-and-scofield-bible

                         https://dl0.creation.com/articles/p157/c15745/j36_3_123-12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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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진적 창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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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중격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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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Journal of Creation 36(3):123–128, December 2022.

요약 및 교정 : ChatGPT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4-03-03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성경으로 다시보기


오경숙 

한국창조과학회 본부장


  인류의 시작에 대한 두 가지 주장, 진화와 창조  

  사람이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진화되었다는 주장을 한다. 인간의 이론과 지식을 총동원하여, 자연주의적 진화 과정을 통해 인간이 출현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다. 모든 것이 시작된 순간은 관측한 이도 없고, 관측할 수도 없는 영역으로, 인간의 이성으로는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또한 인위적으로 재현하여 확인해 볼 수도 없기에, 과학의 영역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인류의 시작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성경 창세기 말씀에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7)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막 10:6)

기독교 신앙의 기반이 되는 성경에는 세상의 창조, 사람의 타락, 그리고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뜻과 역사하심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창조, 타락, 구속은 기독교 세계관의 세 기둥이다. 하나님은 먼저 자신의 영원한 권능과 지혜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천지만물을 무에서부터 창조하셨다(창 1:1-31; 롬 1:20; 히 11:3). 이렇듯 기독교 신앙은 창조신앙으로 시작한다. 창조 역시 확인할 길은 없지만, 진화론이 인간 지식의 산물이라면, 창조론은 인간의 이성에서 나온 이론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미디어와 학교 교육을 통해 인간은 동물에서 진화된 존재로 배우며,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선사시대를 거쳐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고 배운다. 이러한 진화론적 세계관 속에서 교육받는 세대들에게 성경은 역사적 사실로 여기기보다 교훈서로 전락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사와 한국사 등에 대한 세속적 역사는 성경의 역사와 충돌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워 한다. 믿음이 자라고 지식과 지혜가 자라면서, 결국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아담은 신석기시대를 살았던 첫 사람인 걸까?”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는 성경의 역사 어디에 해당하는 걸까?”

“언제부터 어떻게 누가 신석기시대와 구석기시대를 구분하게 된 걸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창조는 사실일까?”


누군가는 가볍게 무시하고 말겠지만, 지금 이 시대의 청소년들에게는 제법 진지한 질문들이다. 실제 이러한 질문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쉽게 답해주는 이가 없다.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을 수 있고, 또 잘 정리되지 않아서 알려주지 못할 수도 있다. 이미 알고 있던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던지, 아직 고민해보지 않았더라도, 성경 속에서 먼저 그 답들을 찾아보자. 성경 창세기 3장과 4장에 농경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에 대한 정보가 있다.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창세기 3:18b~19a)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창세기 4:2)

성경에는 첫 사람 아담도 밭의 채소를 먹었다는 것과,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었다는 말을 통해, 아담도 농사를 지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의 아들 가인은 농사짓는 사람이었고,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었다. 후에 가인은 그가 농사지은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 이처럼 이미 아담 때부터 농경시대는 시작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창세기 4:21~22a)

창세기 4장의 말씀에서 찾아보면, 가인의 후손인 유발의 시대에는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는 예술 문화가 있었다. 두발가인은 구리(청동)와 쇠(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들었다고 기록된 걸 보면, 노아 훨씬 이전부터 농경문화, 예술문화, 청동기시대, 철기시대가 이미 자리 잡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역사가 도전받게 된 걸까?


누가 언제부터 어떻게 신석기시대와 구석기시대를 구분하게 된 걸까?

  ‘구석기(Palaeolithic)’, ‘신석기(Neolithic)’라는 시대 구분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존 러벅(John Lubbock, 1834-1913)이다. 1865년에 그가 연구하고 집필한 책  『선사시대(Pre-Historic Times)』 라는 책에서 구석기와 신석기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존 러벅이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에는 1859년 진화론의 본격적 시작으로 알려진 다윈의 『종의 기원』의 영향을 받은 것에서 시작된다. 다윈의 진화론을 사실로 받아들인 그는 모든 세상을 진화론의 안경으로 바라보고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의 연구를 책으로 남기며, 인류의 시작에 대한 밑그림을 제시했다. 바로 인류의 시작 시기에 대한 관점으로 선사시대를 제안하며,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제시했다. 

.존 러벅(John Lubbock, 1834-1913) 

  

존 러벅이 제시한 구석기시대는, 인류문화의 흔적이 시작되었다고 추정하는 250만 년 전부터 약 1만2천 년 전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구석기시대는 사람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아직 지능이 덜 발달해서, 겨우 돌을 깨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을 가졌던 사람이 살았던 시대로 ‘뗀석기(타제석기) 시대’라고 하였다. 신석기시대는 구석기시대 이후인, 약 1만2천 년 전부터 청동기시대 전으로, 사람의 지능이 더 발달해서, 돌을 갈아서 도구로 사용할 줄 아는 간석기(마제석기) 시대로 제시하였다. 우리가 분별해야할 것은,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라는 단어는 과학적 사실이나 역사적 사실에서 기반한 것이 아니라, 진화론이 사실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된 시대 구분이라는 사실이다. 선사시대의 연대는 연대측정으로부터 정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유물을 통해 추정된 연대임을 유의해야 한다. 19세기 말부터 개발된 연대결정 방법은 유적이나 유구, 유물의 상대적 시간 순서를 정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실제 연대측정은 20세기 중반에서야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을 통해 신뢰를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은 5만 년 이내의 연대만 측정할 수 있기에,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다고 추정하는 선사시대의 유물들은 연대측정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포타슘-아르곤 연대측정법 등의 긴 연대측정 방법이 있으나, 신뢰도가 너무 낮다는 것을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잘 알고 있다. 즉 선사시대의 연대는 연대측정 결과로 제시한 연대가 아니라,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에 대한 개념을 먼저 정의하고 나서, 그 환경을 유추하여 추론하여 제시된 연대에 불과한 것이다. 

.구석기시대의 유물 타제석기                   

.신석기시대의 유물 돌화살촉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러벅의 제안이 바로 받아들여진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당시 존 러벅은 1864년부터 1865년까지 영국의 민족학회 회장이었으며, 1865년에는 린네학회 부회장, 1868년에 국제 선사고고학회의 회장을 포함하여, 영향력 있는 여러 학문적 직책을 갖고 있으면서, 학계에 상당한 신임을 받고 있었고, 그에 따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보고서처럼 작성한 그의 저서 『선사시대』에는, 1860년대 초 스코틀랜드, 런던, 덴마크, 프랑스 등의 유럽 일대의 여러 곳을 방문하며, 여러 연구자들과 실시한 방대한 연구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신뢰할만한 것처럼 보였다. 그의 연구 대상은 대부분 고분에 남아있는 시신의 매장방식, 도자기 종류, 조개껍질, 뼈, 동굴, 부싯돌, 강가의 자갈, 유럽 여러 박물관의 전시물 등이었으며, 그에 대한 기록이 600여 페이지에 달했다. 분명, 연구를 진행하기 전에 이미 다윈의 영향을 받아 모든 생물들은 진화되었다는 전제하에 연구하였기에, 답을 정하여놓고 접근한 연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분량과 많은 연구자들에 의한 보고였기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에 대한 그의 주장은 지금까지도 선사시대를 구분하는 데 있어서 교과서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을 보면, 존 러벅의 영향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도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인간이 남긴 유물들로서, 돌칼, 도끼, 토기 등 고정형의 유물과, 집터, 무덤 등 고정된 유구, 그리고 그 주변의 일정한 넓이의 장소를 유적으로 구분하여 연구한다. 이 연구에서 얻은 분석 결과를 통해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구분한다. 최근에는 좀 더 구체적인 기준들을 세웠다. 구석기시대로 구분하는 돌은 구석기시대로 추정되는 층에서 발견되어야 하며, 사람이 인위적으로 깬 흔적이 있어야 구석기시대의 돌로 구분한다.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주먹도끼, 송곳, 찌르개와 나무와 뼈 등에 새기는 새기개 등이 있다. 빙하기도 구석기시대로 포함하여 제시하고 있다. 학자들은 신석기시대에 타제석기와 마제석기를 혼용하여 사용했을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기도 하다. 청동기시대에도 역시 마제석기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구석기시대 유물인지, 신석기시대 유물인지, 청동기시대 유물인지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유물이나 고분, 혹은 집터 등 복합적인 자료를 토대로 제시하고는 있으나, 이러한 추론이 정확한지에 대해 확인할 명확한 방법은 없다.

 특별하게 구분지어지는 부분은 신석기시대는 농업혁명이 일어난 시기로, 돌을 도구로 사용하여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농사를 지으며 정착생활을 했다고 설명한다. 다만 세계 모든 지역에서 동시에 신석기시대로 진입하는 것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다. 특히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비옥한 초생달 지역에서 농업이 먼저 나타난다고 고고학자들은 주장한다.

.인류의 진화론적 선사시대표


한국의 선사시대는?  

한국의 선사시대는 언제, 어떤 문화를 남겼을까? 한국의 선사시대는 일반적으로 문자기록이 없었던 시대로 규정하며,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부터 철기문화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시기를 선사시대로 보며,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의 세 시대로 구분한다. 시대 구분에 대해서는 한국 역시 존 러벅이 제시한 연대와 추정 방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국내 곳곳에서 깨뜨려서 만들어진 듯 보이는 주먹도끼(돌도끼)나 연장이 발견되면, 구석기시대 유물로 정한다. 그렇게 파주, 남양주, 충주, 단양, 영월, 곡성 등 국내 곳곳에서 발견되었으며, 구석기시대 유물로 보존하고 있으며, 교과서에도 소개되고 있다. 구석기시대에는 매장문화가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기에, 이러한 단순한 돌에도 큰 의미를 부여한다. 역사학자들은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사이인 BC 10,500~8,500년 동안에 갑자기 추워져서,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었다고 제시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선사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하여 해석하고 있다.

한편 신석기시대의 유물들은 많다. 농업이 시작되었고, 정착 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배웠던 빗살무늬 토기와 돌화살촉이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 매장문화가 발달하여, 다양한 무덤들이 발견된다. 국내의 신석기시대 유물로 제시하고 있는 지역은 60여개 이상의 지역이 있다. 

유럽에서 청동기시대는 BC 2,200~1,600년으로 제시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도시문화와 계급사회를 형성하는 시대로 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유물로는 특이한 돌무덤인 고인돌이다. 청동기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곡물로 쌀을 꼽을 만큼, 농업이 발전했음을 가늠할 수 있다. 다양한 장신구들, 청동검, 다양한 기구들로 문화와 기술이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청동기시대까지는 암각화 외에 그렇다할 문서기록이 없기에, 삶의 방식을 명확하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한국의 시작인 고조선의 출현 시기를 BC 2,333년으로 제안하고 있는 역사학자들의 의견과 비교한다면, 청동기시대가 시작되는 시기와 고조선 시기가 맞닿아 있다. 고조선이 청동기시대에 태동된 나라라면, 어떤 이들에 의해서 태동된 것일까? 청동기시대는 이미 완전한 사회를 이루며 살았을 시대로 추정되므로, 그 기원이 좀더 구체적이지 않을까 기대할 수 있다.

.강화 부근리 고인돌(청동기시대의 상징)

.한국의 역사


한국의 시작 고조선, 곰이 사람이 된 단군신화?  

하지만 한국의 시작인 고조선은 청동기문화의 배경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함이 있다. 곰이 사람이 되어 신의 아들과 결혼하여 얻은 아들 단군이 세운 나라라는 기록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좀 더 살펴보자면, 한국의 첫 시작 고조선을 세운 단군은 천제인 환인(桓因)의 손자이며, 환웅(桓雄)의 아들로 BC 2333년에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 조선을 개국하였다. 단군의 탄생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나온 내용을 통해 살펴보자.

옛날 하느님(환인)이 아들 환웅이 인간 세상에 뜻을 두고 탐내다가, 아버지에게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도록 세상에 내려가 다스리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환인은 거울, 칼, 방울의 천부인을 내주며 허락하였다. 환웅은 바람신, 비신, 구름신 등 3천여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박달나무) 아래 내려와서, 그곳을 신시라 이름 짓고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환웅은 농사, 생명, 질병, 형벌, 선악을 비롯한 360여 가지의 일을 돌보며 세상을 다스려 나갔다.

이때 곰과 호랑이가 찾아와 “저희들은 사람이 되는 것이 소원입니다.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니 부디 인간으로 만들어 주십시오.”하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환웅은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면서 “너희들이 동굴에 들어가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굴속으로 들어간 호랑이는 백일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갔으나, 곰은 끝까지 견뎌 여자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결혼할 남자가 없던 웅녀는 성황당 밑에서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이것을 본 환웅이 웅녀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니, 바로 단군왕검이다.

환인을 천제이신 하느님으로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에 곰이 사람이 되어 하늘의 아들과 결혼하여 고조선을 세웠다는 단군신화는 신화일뿐, 이를 실제 사실로 받아들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를 증명할만한 자료도 없거니와, 과학적으로도 설명이 불가하다. 하지만 고조선의 시작에 대한 자료는 뚜렷이 없어 보인다. 한 나라의 시작이기에 무언가 이야기를 만들어 신화화한 것일 수 있으며, 이는 고조선뿐만은 아닐 것이다. 하나 유심히 살펴볼 것은 환웅이 말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말이다. 이는 한국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이 이념이 지금의 대한한국의 건국이념에까지 전해지고 있음도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사시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분명한 것은 노아홍수 심판 이후의 세상은 그 전과 비교할 때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땅이 갈라지는 엄청난 대격변이 지구에 임하면서, 대규모의 쓰나미 물들이 덮치며, 깨지고 부서졌을 것이다. 또한, 엄청난 양의 흙들에 뒤덮였을 것이기에, 기존의 에덴동산도 노아홍수 이전의 모든 문명과 기술들도 모두 부서지고 파괴되어, 그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대륙의 70%가 퇴적지층이며, 그 퇴적지층의 평균 깊이가 1.6km인데, 이 퇴적층들이 대부분 노아홍수 때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으므로, 홍수 이전의 환경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심지어 육상동물들은 그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울만큼 파괴되고 화석들로만 남겨지게 되었고, 사람이나 유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기에, 홍수 이전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단서는 없다고 볼 수 있다. 

그 이후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가 달라지고, 나라와 민족으로 나뉘어 이동하며, 한 번의 빙하기가 찾아오고, 서로 분리되어 살다 보니, 나라와 민족들마다 문화와 기술이 다르게 발전해 나갔을 것이다. 철이나 청동이 많이 나고, 철과 청동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청동기문화 및 철기문화와 기술이 발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흩어진 지역마다 얻을 수 있는 재료들이 다르고, 갖고 있는 기술들이 달랐을 것이고, 일부는 기술이 있어도 청동이나 철이 없다면 사용할 수 없었고, 그 기술도 잊어버리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구분은 존 러벅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용어이다. 그리고 성경 창세기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담 시대부터 청동기문화, 농경문화, 철기문화와 기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노아홍수와 바벨탑 이후에, 나라별로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를 겪은 시기가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바벨탑을 쌓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빌론 지역은 앞서 농경문화와 도시가 가장 먼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메소포타미아 남동쪽에 위치해 있다. 바벨탑 사건의 기록은 성경적 연대기록에 근거하면 약 BC 2300년경이다. 이스라엘의 태동은 아브라함이 장성한 시기인 BC 2200년경으로 추정될 수 있다. 바벨탑 시기와 이스라엘의 태동, 그리고 고조선의 태동 시기가 유사한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을 근거로 한 역사연구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온전히 드러나길 소망한다.

  

그리고 고조선의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 바로 복을 받는 복의 시작이 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창세기 12:2-3절과 어딘가 닮았다. 창세기 11장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바벨탑 사건 이후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어 흩어져 살게 하신 후,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을 소개하며, 새로운 나라 이스라엘의 시작으로 전환하신다. 바벨탑 사건 이후 흩어지며 말씀조차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세대에서, 이스라엘만큼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시며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시고 싶으셨던 것 같다.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스라엘의 조상,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며, 복을 주시고는, 복 그 자체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걸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복을 받는 것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복이 되어 복을 흘려보내고 나눠주는, 복의 통로가 되라는 말씀으로 전해진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다윗이, 그리고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셨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은 이제 모두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말씀하신다.(요 1:1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 12:2-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사실 처음부터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었으나, 바벨탑 사건 이후에 모두 다 이것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각 나라마다 건국신화들을 만들어내면서까지, 각 나라 마다의 신들을 섬기며,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성경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안다.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자녀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과 자녀로서의 권세를 누리고, 또한 나누고 전해야 하는 소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부르신 소명을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는다.

.우리 모두의 역사


참고문헌

.김범철, 성춘택, 천선행(2021). 고고학자가 얘기하는 우리의 선사시대, 중앙문화재연구원:과천

.민병덕(2009). 한국사 I, 혜원출판사:파주

.신시아 브라운(2020). 세상이 궁금할 때 빅 히스토리, 이근영(역), ㈜북하우스 퍼블리셔서:마포(원저는 2017년 출간됨)

.일연(2022). 삼국유사, 김원중(편저), ㈜민음사:서울

.일연(2009). 삼국유사, 훈민출판사:고양

.John Lubbock (1872). Pre-History Times, NEW YORK:D. APPLTON AND COMPANY


*참조 :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는 무엇인가?

https://creation.kr/Apes/?idx=12687892&bmode=view

‘석기시대’ 사람들은 놀랍도록 현대적이었다. : 배를 만들고, 장신구와 화장을 하고, 곡물을 먹고, 구분된 공간을 가졌다.

https://creation.kr/Apes/?idx=1852106&bmode=view

50만 년 전 현생인류의 조상이 만든 목조구조물?

https://creation.kr/Apes/?idx=17069535&bmode=view

330만 년 전으로 주장되는 돌 도구(석기)의 발견으로, 교과서의 인간 진화론은 또 다시 수정되어야만 한다.

https://creation.kr/Apes/?idx=1852243&bmode=view

80만 년(?) 전의 인류는 세분화된 거주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 그리고 157만 년(?) 전의 유럽인들은 연장을 만들고 있었다.

https://creation.kr/Apes/?idx=1852196&bmode=view

50만 년 전(?) 인류는 돌칼을 만들고 장애아를 돌보았다.

https://creation.kr/Apes/?idx=1852074&bmode=view

고대 인류의 유물이 섬에서 발견되었다 : 초기 인류(20만 년 전)는 배를 타고 항해를 했다.

https://creation.kr/Apes/?idx=2613754&bmode=view

인류의 조상들은 배를 타고 항해를 할 수 있었다 : 지중해 크레타 섬에서 석기시대(13만 년 전)의 돌연장들이 발견되었다.

https://creation.kr/Apes/?idx=1852101&bmode=view

원숭이도 무심코 돌 도구(석기)를 만들고 있었다 : 초기 인류가 만들었다는 타제석기는 의문스럽게 되었다.

https://creation.kr/Apes/?idx=1852220&bmode=view

말도 타제석기를 만든다.

https://creation.kr/Apes/?idx=9134200&bmode=view

노아의 16명의 손자 : 고대의 지명과 민족들의 이름 속에 남아있다.

https://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88381&bmode=view

이집트의 태양신 호루스는 신격화된 함이다 : 1부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5221417&bmode=view

이집트의 태양신 호루스는 신격화된 함이다 : 2부

https://creation.kr/archaeology/?page=1#16067923

고대 이집트에서 아담 찾기

https://creation.kr/Genesis/?idx=14698183&bmode=view

▶ 구석기시대와 타제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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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적인 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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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구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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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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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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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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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의 역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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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을 지지하는 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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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위원회
2023-12-24

<리뷰> 크리스마스에 교회가 전해야 할 메시지! 

(Christmas Sermons—Are Churches Preaching an Irrelevant Message?)

Bodie Hodge 


     일상적인 '크리스마스 메시지'가 불신자를 감동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목회자와 교회에 유익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오랜 기간 동안 이 절기에 나는 예수님의 출생에 관한 몇몇 크리스마스 설교들을 들어왔다. 오늘날 기독교 세계관을 잃어버린 서구 문화에서, 크리스천들이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의 이 시점에서 사람들이 반드시 들어야만 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크리스천 신앙에 갈등을 겪고 있는 한 친구를 크리스마스 시즌에 교회로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고, 함께 가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감격했었다. 우리가 교회에 도착하기 전에, 그는 나에게 본인이 생각해왔던 질문을 했다. 그는 내게 예수님, 말구유, 동방박사, 예수님의 탄생을 알린 목동들, 천사들에 관해서 묻지 않았고, 대신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 땅에 악한 것들이 존재하는가? 왜 육식동물은 다른 동물을 잔인하게 잡아먹고 살아가도록 만드셨는가? 공룡을 비롯한 멸종된 생물들을 하나님은 무엇때문에 창조하셨다가, 왜 멸종시키셨는가?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정하신 운명을 거슬러, 장기이식으로 생명을 길게 연장하려고 노력하는가?” 그는 계속해서 ”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그들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천국에 가면 되지 않겠는가? 왜 이 땅에서 계속 살아남으려고 애쓰는가?” 였다.

그는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오늘날 공교육과 교육시스템, 그리고 언론 매체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절대 진리로서 성경을 거부하도록 계속 유도하며, 세속적 문화로 인해 점점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과 성경을 믿는 믿음은 공격받고, 조롱당하며, 비난받고 있다. 왜냐하면, 소위 과학(진화론)이 그것이 사실일 수 없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성경 '창세기'는 실제 역사가 아닌, 신화들과 비유들을 모아 놓은 '이야기 책'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내 친구는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그러한 질문은 수년간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답을 들을 수 없었던 질문이었다. (슬프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와 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을 모른다. 왜냐하면 그와 같이 죽음의 기원과 의미를 설명하는 창세기에 기록된 이 세계의 참된 역사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들어야하는 크리스마스 설교는 성경의 창세기를 신화로 여기지 않는 목회자가 전하는 설교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한 목회자는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는지를 상기시켜줄 수 있다. 내 친구는 대답이 필요했다. 나의 대답을 통해, 그는 설교를 듣기 전에 성경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가 마음에 묻어두었던 것을, 그의 기독교 신앙을 방해했던 것을 나에게 물어주어서 기뻤다.

내 친구는 죽음과 고통과 죽어감이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죽음이 원수(enemy)이며, 죄로 인해 들어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린도전서 15:26). 하나님이 죽음을 만드시고 창세기 1:31절에서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하신 것이 아니었다. 죽음은 아담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들어온 죄의 결과였다. 나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완벽하게 창조하셨다고 설명했고, 아담이 처음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죄에 대한 형벌로서 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해주었다. 말해지고 있는 것처럼 지구는 수십억 년이 되지 않았고, 사람 이전의 장구한 세월 동안 죽음, 질병, 고통, 육식 등이 있지 않았다고 설명해주었다.

나는 계속했다.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의롭고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죽음으로 죄를 심판하셔야만 했다. 또한 하나님 없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사람이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분의 권능을 일부 거두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질병과 고통과 같은 일들을 허락하시지만, 이것에 대해 비난받아야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비난받아야할 대상은 사람인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내 친구의 머리에 전등이 켜지는 것과 같았다.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자, 성경은 그에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슬프게도, 창세기에 기록된 진리 대신에, 수십억 년의 장구한 시간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교회 내에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내 친구와 같은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정확한 답을 주지 못하고, 대신 그들의 질문과 벗어난, 구유에서 나신 아기 예수님에 대한 관계없는 메시지만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The 'god” of an Old Earth'을 참조하라)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과 성경의 진리를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역사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 친구와 마찬가지로, 역사와 삶의 의미에 대한 진정한 설명으로 성경을 거부하도록 하는 교육을 받았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구원을 받는 데에 주요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많은 비-기독교인들이 이와 같은 하나님에 대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들은 일 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에 교회로 올 수 있다. 나는 목회자들과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 기회를 이용하여 크리스마스 설교로 이 이슈를 들려줄 것을 기도한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성경이 진리임을 그들에게 확신시켜줄 수 있다.


크리스마스의 기초

내가 전에 들었던 한 크리스마스 설교에서 목사님은 ”크리스마스의 기초를 알아보기 위해 성경을 찾아봅시다.”라고 말하면서 누가복음 2장으로 갔다. 나는 즉시 ”거기는 크리스마스의 기초가 아닌데, 거기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일 뿐인데”라고 속삭였다.

크리스마스의 기초는 훨씬 더 후퇴한다. 그것은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초기 언급은 창세기 3:15절에 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5)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직후에, 예수의 동정녀 탄생(여자의 후손)의 예언이 있었다. 그들은 사망 선고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자비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처녀에게서 태어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속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기초는 창세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많은 언급은 예수님이 이삭의 후손이라는 창세기에 기초를 두고 있다.(창 28:13~14).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기초는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은 크리스마스 설교가 시작되어야하는 곳이다. 특히 성경의 이 부분이 사실일 수 없다고 세뇌된 문화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사람들이 베들레헴, 목동들, 동방박사에 관한 설교를 들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성경은 신뢰할 수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다.

창세기는 죽음이 창조된 세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용한, 아담의 죄에 관한 나쁜 소식에 대해 우리가 먼저 배워야하는 곳이다. 오늘날의 문화에서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했지만, 창세기에 있는 나쁜 소식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좋은 소식(복음)을 거부하는 이유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창세기의 나쁜 소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받아들여야할 필요성을 이해시키기 전에, 그들이 왜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지를 이해하도록 가르칠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는 적절한 기초가 필요하다. 그들에게 창세기에서부터 가르칠 필요가 있으며, 현대 과학은 이 역사적인 문서를 반증하지 못했으며, 과학은 창세기의 기록이 실제로 사실임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런 다음 창세기의 기본 진리에 대해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왜 동정녀의 몸에서 오셔야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크리스마스와 그 기초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크리스마스는 무엇인가?(What Is Christmas?)”을 읽어 보라.


왜 예수님이 오셔야만 했는가?

창세기로 돌아가서, 나쁜 소식은 아담의 죄로 인해 죽음이 이 세계로 들어왔다는 것이다(창 2:17). 로마서 6:23절은 죄의 대가가 죽음임을 확인해주고 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었다. 그래서 죄를 갚기 위해 무엇인가가 죽어야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죄를 갚기 위해 동물을 죽이신 이유이다(창 3:21). 어떤 동물이 희생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종종 어린 양으로 묘사되어, 복음을 예표했다.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람들의 죄를 대신 감당하시기 위한 마지막 희생 제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불순종의 죄를 갚기 위해, 동물의 생명을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써 이 패턴을 따랐다. 그러나 동물은 사람의 죄를 없앨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생물과 관련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누군가가 자신의 범죄함으로 형벌을 받아야할 때, 그 형벌을 스스로 당신이 감당하시는 것은 은혜와 자비이다. 이것이 우리의 창조주께서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이다. 그는 인간으로 오셔서(그러나 신성을 가지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형벌을 받으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사망을 선고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이 그 형벌을 대신 지심으로, 우리에 대한 그 분의 사랑을 확증해주셨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갖고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갚기 위한 마지막 희생제물이 될 수 있도록 완전한 삶을 사셨다. 이것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유이며,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고린도전서 15:45)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새 아담', '완벽한 아담'이 되셔서, 아담의 자손을 위해 죽으실 수 있었고, 우리에게 값없이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

성경은 사랑의 가장 위대한 행동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요 15:13). 성경의 하나님은 이러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정말로 동정녀에서 태어나셨는가?

창세기 3:15절 외에 이사야서에는 처녀가 아이를 낳을 것이며, 이것이 징조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14)

이 예언은 처녀인 마리아에게서 실현되었다. 그녀는 아기를 낳았고,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받았는데, 이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God with us)”이라는 의미였다. 동정녀 출생에 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Is the Perpetual Virginity of Mary a Biblical View?를 보라.

특히 요셉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될 수 없었다! 마태복음 1:1~16절에 있는 요셉의 족보는 여호야긴(여고냐)이 요셉의 직계 조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 예레미야서에서 여호야긴에게 주어진 저주를 읽어 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 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예레미야 22:30)

다윗의 왕좌에 영원히 앉아계시는 예수님께서 여호야긴의 후손이 될 수는 없었다. 여호야긴의 후손은, 따라서 요셉의 후손은 다윗의 보좌를 상속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처녀가 되어야 했다. 이사야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왕좌에서 다스리실 것임을 확인해준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 9:7)


동방박사의 중요성

몇 명의 동방박사들이 왔었을까? 우리는 모른다. 단지 두 명 이상이고, 그들이 세 가지 선물을 가져왔다는 것만 안다.(더 자세한 정보는 ”We Three Kings”을 참조하라.) 마태복음 2:1~11절은 이 동방박사가 이스라엘로 인도한 별을 따라 동방에서부터 여행해 왔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What Was the Christmas Star?” 참조)

이 박사들은 약속된 메시아인 그리스도를 찾고 있었다. 박사들의 이야기에서, 그들은 동쪽에서 왔다. 아마도 페르시아일 가능성이 있지만, 동양일 가능성도 있다. 아기 예수님께 선물과 경배를 드리기 위해서, 그렇게 먼 거리를 왔다는 사실은, 이 사람들이 창세기 역사와 관련된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사람들은 어떻게 먼 타국에서도 약속된 메시아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사람들은 바벨탑에서 흩어지면서, 지구의 모든 지역으로 분산되었다. 그들의 후손은 6대륙에 흩어져 살 때까지 계속 이주해 나갔다 ('Flood Legends” 참조). 또한 솔로몬 시대에도 하나님에 관한 정보가 세상의 많은 곳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다.

'동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중국인은 창세기 기록과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그들의 문자(한자) 속에 상징으로 들어있다. 심지어 그들은 거대한 홍수 동안 창조주이시며 사람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상제)께 희생제물을 드렸다는 기록을 갖고 있다. ('The Original ‘Unknown’ God of China'을 참조. 아래 관련자료 링크 93번).

이것은 바벨탑 이후 어떤 시점까지 동쪽으로 이주해갔던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을 실제로 알고 있었음을 확인시켜준다. 이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며 귀중한 정보들을 잃어버렸지만,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방박사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현명한 사람들이었다.(아마도 페르시아에서는 다니엘이 영향력을 끼쳤을 가능성). 이 사람들은 성경의 역사를 잃어버린 동시대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님이 오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성경적 역사와 성경의 신뢰성과 대한 확증은 바벨탑에 대한 성경적 기록이 정확했음을 입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진실한 역사를 잃어버렸다. 그들은 '수십억 년'의 역사를 받아들였고, 동방박사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기 예수의 중요성

예수님이 이 세상으로 들어오신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먼 곳에서부터 와서 예물을 드리고(시편 72:10), 지역 목동들이 그 앞에 굽히고(시편 72:9)와 같은 성취된 예언, 헤롯 왕이 두 살 아래 아기들을 죽인 사건(예레미야 31:15, 마태복음 2:16~18), 한밤중에 애굽으로 피하라는 현몽(마태복음 2:13~15) 등은 이 아기의 중요성을 암시하는 몇 가지 징조였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6)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권좌에서 내려와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 그 분은 우리 중 한 사람으로 사셨지만, 하늘의 완전함을 이 땅에 남겨놓으셨다. 이 아기는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러 오셨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1)

예수님께서는 지구 역사상 매우 중요한 시점에 이 땅에 오셨다. 과거를 숙고해보고, 이 중요성에 대한 큰 그림을 얻자. 아래 다이어그램을 참조하라.

아담과 하와가 지상에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을 때, 100%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신뢰하지 않았다.

노아 시대에 그의 가족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던 유일한 지상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인구가 계속 증가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 비율은 매우 낮아진다.

하나님이 홍수를 보내신 후에, 노아와 그의 가족은 지상에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으므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던 사람들은 다시 거의 100% 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셨다. 궁극적으로 지구의 인구가 재번성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비율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탄생 직전에 세계 사람들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신뢰하지 않았다. 위의 그림은 이러한 일반적인 원칙을 설명한다.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의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조차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따랐다. 그리고 성경에서 하나님이 실제로 말씀하신 것을 믿지 않았다. 믿었다면 메시야를 기대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했던 동방박사들, 마리아, 요셉, 안나, 시므온, 세례 요한의 가족들과 소수의 사람들만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렸다.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은 매우 낮은 비율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때 오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것은 역사상 가장 낮은 비율의 시점이었기 때문에, 오신 시기는 매우 중요했다. 그 사명을 완벽하게 완수하셨으며,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값없는 구원의 선물로 인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9)


크리스마스 날에 축하해야 하는가?

어셔 대주교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기원전 4년경에 태어났다. 예수님은 어느 날에 태어났을까? 우리는 알지 못하며, 성경은 그 날을 알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크리스마스(12월 25일 그레고리력)로 선택된 날짜는 예수님이 태어난 날짜가 아닐 것이다 ('The Origin of Christmas” 참조). 회의론자와 비판론자들은 크리스마스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Defense of Christmas’를 읽어 보기 바란다. 문제는 실제 날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억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는 악하고, 그것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내게 말했다. 다음은 내 개인적 견해이며, AiG의 공식 견해가 아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편 24:1)

우리가 크리스마스 날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경배하면(롬 14:5-6), 그 날이 어떻게 악한 것일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크리스마스로 축하하는 날은 로마 이교도의 축일에서 왔음을 상기시켜주었다. 나는 그에게 우리는 매일 날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감사드려야한다고 말했다. 왜 우리 크리스천들이 이 날에 하나님을 경축하는 것을 거절해야 하는가? 우리는 언제 어느 때나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사실 성경은 이것을 장려한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시 86:12)

'영원토록'은 크리스마스로 축하하는 날도 포함된다.

어떤 사람들은 예레미아 10:1~6절에서 장식된 나무를 내게 상기시켜주었다. 나는 죄가 되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거짓된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마음임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면, 그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장식된 나무로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면(거짓 신과 반대로), 어떻게 죄가 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탄생일을 휴일로 기념하도록 사람들에게 결코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예수님이 그 반대도 금지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이제 내가 틀렸다고 하지 말라. 나는 이 글에서 크리스마스 날을 축하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함으로써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을 금지시킬 이유는 없다.

 

크리스마스에 전할 메시지에 대한 결론

목사님들이나, 교회 지도자들은 이 특별한 연휴 기간 동안,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메시지를 전해줄 것을 요청한다 :

▶ 크리스마스는 아담의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기억하는 때가 되어야 한다.

▶ 크리스마스는 하나님께서 자발적으로 낮아지셔서, 우리를 위해 태어나시고, 살다가, 고통당하시고, 죽으셨음을 기억하는 때가 되어야 한다.

▶ 크리스마스는 우리 크리스천들 모두가 예수님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일상생활의 안락함을 떠나야할 의무가 있음을 기억하는 때가 되어야 한다.

비-그리스도인들이 이번 휴가철에 교회에 올 때, 그들이 묻는 질문들에 우리가 답을 해주어야 한다. 이것에 관해서는 Answers의 글들을 참조하라.

크리스마스 설교나 일상 대화에서, 크리스마스에 관한 모든 토론은, 복음서에 나오는 좋은 소식(복음)과 함께, 창세기의 나쁜 소식도 같이 설명해 주어야할 필요가 있다. 그 경우에 불신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선물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소식이 있다고, 잠시 시간을 내어달라고, 불신자들에게 요청하라.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answersingenesis.org/holidays/christmas/making-the-christmas-sermon-relevant-for-todays-culture/ 

출처 - AiG, 2017. 12. 14.

미디어위원회
2023-07-05

‘일곱자매별'의 유사성은 진화가 아닌, 바벨을 가리킨다.

(‘Seven Sisters’ similarities point to Babel, not evolution)

by David Catchpoole


    호주 원주민 여성으로 윈스턴 처칠 펠로우(Winston Churchill Fellow)인 수지 베츠(Susie Betts)는 일곱자매별(Seven Sisters star constellation)로 말해지는, 플레이아데스(Pleiades) 성단이 포함되는 토착 원주민들의 창조 이야기를 연구했다.[1] 그녀의 연구는 그녀를 북미와 남미로 데려가게 했다.

<CC BY-SA 4.0 Juan lacruz | fotovika © 123RF.com | ravenestling © 123RF.com | PD – B.E. Minnsseven-sisters>


그녀는 그곳에서도 자신의 위랑구(Wirangu) 족의 창조 이야기와 비슷한 점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 이야기에서 사냥꾼인 오리온(Orion) 별자리(그들의 언어로는 사냥꾼 '트길비(Tgilby)')는 일곱자매(유가릴야, Yugarilya)와 사랑에 빠지고 쫓아간다.

그리고 그것은 증명되었다. "그녀의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원주민들은 일곱자매별과 창조의 연관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면 왜 고대 그리스, 우크라이나 등 지리적으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플레이아데스 성운의 별들은 일곱 명의 여성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대부분 자매일까? 그리고 왜 사냥꾼에게 쫓기고 있는 것일까? 가장 오래된 그리스 신화 작가인 헤시오도스(Hesiod, BC 8세기)는 "플레이아데스는 강력한 오리온을 피해 도망친다"라는 대사를 남겼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전에 쓰여진 책인 욥기에는, 하나님께서 욥에게 “네가 묘성(Pleiades, 플레이아데스)을 매어 묶을 수 있으며 삼성(Orion)의 띠를 풀 수 있겠느냐”라고 묻는 대목이 기록되어 있다.(욥 38:31).

진화론적/장구한 연대의 관점에서 설명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별들의 모습에서 자매나 심지어 여성을 암시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왜 고대 그리스인들과 위랑구인들 모두에게 동일한 별 무늬가 사냥꾼을 암시할까? 별들을 자매로 부르는 이러한 연결이 전 세계 문화권들에서 우연히 여러 번 발생해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우연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이것은 불과 수천 년 전 인류가 바벨에서 흩어졌다는 성경의 기록이 진실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Hamilton, J., Seven Sisters stars creation story reconnecting people to their country after clifftop massacre taboo lifted; abc.net.au, 8 Oct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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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iades and Orion: bound, unbound, o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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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reation 43(4):56, December 2021

주소 : https://creation.com/seven-sisters-similarities-point-to-babel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3-06-22

성경의 아담들

(The Adams of Scripture)

Shaun Doyle and James Hughes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고린도전서 15:45)이라고 불린다. 그렇다면 그분 앞에 몇 명의 ‘아담’이 나왔는가? 

물론 적어도 한 명이 있다. 같은 구절에서 바울은 창세기 2장 7절을 인용하여 하나님이 흙으로 지으신 사람을 “첫 사람 아담”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마가복음 10:6-8에서 예수님께서 창세기 2장을 창조주간 6일째에 있었던 특정 사건의 확장판으로 읽으신 방법과 일치한다.[1]

고린도전서 15:45~47에서 바울은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45절)과 “둘째 사람”(47절)이라는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첫 아담과 대조하고 있다. ‘둘째 사람’이 ‘둘째 아담’과 동의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2, 3, 4]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여러 ‘아담들’ 중 마지막이었음을 보여준다.

 

아담 : 하나님의 첫 번째 제사장-왕

아담은 사상 최초의 인간이었다. 그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다(행 17:26). 국가, ‘인종’, 민족 그룹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에게 창조물을 다스리는 첫 번째 왕으로서 땅을 다스리는 권세(창세기 1:26-28)를 포함하여 특별한 역할을 주셨다. 이것은 아담의 사명(또는 지배 명령)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담은 또한 첫 번째 제사장이었다. 에덴동산은 후대의 성막과 성전처럼 아담과의 특별한 만남의 장소였다.[5]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에게 후대의 제사장들처럼 ‘섬기고 순종’(창세기 2:15-16)하라고 명하셨다.[6]

그러나 아담은 실패했다. 그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음으로 죄를 지었다. 하나님이 그를 동산에서 쫓아내셨고, 모든 생물에게 죄와 사망이 들어왔고, 온 세상이 허무한 데 굴복하게 되었다(롬 8:20-22).

 

노아 : 새로운 시작을 위한 새로운 '아담'

아담 이후에 상황은 더 나빠졌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창세기 4장). 죽음은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창세기 5장). 그리고 땅에 폭력과 악이 가득 차게 되었다(창 6:5,11). 그래서 하나님은 대홍수로 그 세상을 멸망시키셨다.

그러나 그 후에 새로운 세상이 일어났다.[7] 그래서 하나님은 새로운 ‘아담’, 즉 노아에게 사명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아담에게 동물을 데려오셨던 것처럼(창세기 2:19-20), 그분은 동물들을 노아에게로 데려오셨다(창세기 6:19-20). 노아가 대홍수 후 방주에서 나왔을 때, 노아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를 드렸다(창세기 8:20).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주신 복을 노아에게도 주셨다(창세기 9:1-7).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또한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권을 다시 확립하셨다(창세기 9:2-3).

또한 하나님은 모든 육체를 멸하는 대홍수를 다시는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전 지구적인 홍수만이 그렇게 할 수 있었고, 그 이후로 그런 홍수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은 창세기 대홍수가 전 지구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담처럼 노아도 실패했다. 노아는 포도원을 가꾸고 나서 술에 취해 벌거벗었다. 그의 아들 함은 벌거벗은 그의 아버지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

 

아브라함 : 새로운 약속을 위한 새로운 아담

아담의 후손들처럼 노아의 후손들도 더 나빠졌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땅을 채우는 대신에, ‘그들의 이름을 내기 위하여’ 탑을 쌓기 시작했다(창세기 11:1-9). 이에 대한 대응으로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을 흩으셨다. 그래서 인류는 퍼져나갔고, 다른 나라들로 쪼개졌다.(창세기 10장 민족들의 표 참조).

그래서 분열된 세상 속으로 하나님은 또 다른 ‘아담’인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하나님은 창세기 12:1-3에서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28의 사명을 주셨다. 비일(Beale)은 이렇게 설명한다 :

예를 들어 그 사명은 아브라함에게서 반복된다 : (1)‘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2)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정복하고 다스림’).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 (창세 22:17-18).[8]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지만(창세기 15:6), 그는 때때로 흔들리기도 했다(예를 들어 이스마엘을 낳기 위해 첩을 얻음). 그리고 그는 또 다른 사람인 살렘의 수수께끼 같은 제사장-왕인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았다(창세기 14:18-20). 작은 자가 큰 자에게 복을 받기 때문에(히브리서 7:7). 이것은 이 신실한(불완전하지만) 새 ‘아담’이 마지막이 아니었으며, 아브라함보다 더 큰 ‘아담’이 아직 계시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이스라엘 : 새로운 에덴에 있는 국가적 '아담'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약속은 대부분 약속으로 남았다. 예외는 이삭이었다(창세기 17:19).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삭과 그의 아들 야곱에게 넘기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아담의 사명을 완수하기로 선택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기’ 시작했다(출애굽기 1:7). 그런 다음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여 시내에 있는 “하나님의 산”(출애굽기 18:5)으로 인도하셨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자신의 백성을 처음 만나셨다.

.시내 산의 이스라엘. (요세푸스 작품의 1723년 네덜란드 버전)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아담의 사명을 주셨다. 아담이 제사장 겸 왕이었던 것처럼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가 되어야 했다(출애굽기 19:5~6). 출애굽기 23:20-33에서 피로 언약을 인봉하시기 전에 이스라엘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에서(출애굽기 24장),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동산에 두셨던 것처럼(창세기 2:8) 그들을 “내가 예비한 곳”(20절)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아담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넘어졌다. 예를 들어, 금송아지 사건, 약속의 땅으로 가게 하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음, 가나안 족속과 언약을 맺음 등으로, 이스라엘의 죄는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사사기 21:25) 까지 계속되었다.

 

다윗 : 새로운 계보를 위한 새로운 아담 

이스라엘은 새로운 아담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윗을 주셨다. 그는 제사장-왕의 역할을 맡았다. 그는 제사장의 옷을 입고 춤을 추며 언약궤의 행렬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했다(사무엘하 6:14). 그는 제사를 드린 다음 백성을 축복했다. 하나님의 임재는 약속의 땅의 중심인 예루살렘의 ‘새 에덴’에 임했고,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안식을 주셨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은 그에게 사무엘하 7장의 웅대한 약속을 주셨다. 비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사무엘하 7장은... 성전 건축의 필요성(7:2-13)을 창세기 1:28의 다음 측면과 밀접하게 연결한다 : (1)다스리고 정복함(7:9-16), (2)하나님의 왕의 부섭정(vice-regent, 섭정의 대리인)에 대한 축복(7:29).[9]

그러나 다윗 역시 넘어져서, 밧세바와 간음하고 헷 사람 우리아를 죽였다. 아담과 노아 이후에 일어난 일처럼 상황은 더 나빠졌다. 다윗은 가족 문제로 인해 이전의 영광스러운 자신의 그림자로 사망했다. 솔로몬도 시작은 잘했지만 … 실패했다(열왕기상 11:1-8). 이 죄악된 패턴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추방하셨던 것처럼,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을 추방하실 때까지 계속되었다.

 

예수님 : 모든 아담들을 끝내는 아담

너무 많은 아담들, 너무 많은 실패들! 그들은 왜 계속 실패했을까?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이며(창세기 8:21), 아담도 마찬가지였다. 아담이 성공하려면, 그는 죄가 없어야 한다. 우리는 죄 없는 제사장-왕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모든 이전 아담들이 실패한 곳에서 성공하셨다. 그분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었다(고린도후서 5:21). 따라서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이시며(고린도전서 15:45), 영원한 제사장-왕이시다(히브리서 4:14-5:10). 예수님은 라멕이 노아를 통해 예언한 영원한 안식을 주셨다(창세기 5:29, 참조, 마태복음 11:28-30).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씨이다(갈라디아서 3:16). 예수님은 참되고 신실한 이스라엘 사람이시다(마태복음 2:15; 참조, 호세아 11:1).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시다(로마서 1:3). 그리고 그분은 또한 두 번째 아담인 노아의 후손이시며, 첫 사람이신 아담의 후손이시다(누가복음 3:23-38).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으로서, 하늘에서 난(고린도전서 15:47) 둘째 사람이 되셨다. 아담이 원래의 창조의 첫 번째 예이듯이, 예수님은 그분의 부활을 통한 새로운 창조의 첫 번째 예이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이상이시다. 그분은 또한 “살려주는 영이 되셨다”(고린도전서 15:45; 요한복음 5:21). 즉, 그분은 죄 많은 인간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신다(고린도후서 5:17; 갈라디아서 6:15). 그분은 하나님-사람이시며, 인간의 육체로 거하시는 참 창조주이시다(골로새서 1:16-17, 2:9).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다른 아담들이 실제로 존재했을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 하나님은 첫 번째 아담과 마찬가지로, 다른 아담들에게 제사장-왕으로서의 사명을 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과 우리가 항상 되기를 원하셨던 것을 성취하셨다. 예수님은 첫 번째 아담의 창조와 함께 시작된 역사인, 구원 역사의 절정이시다.

 

References and notes

1. Wieland, C., Jesus on the age of the earth, Creation 34(2):51-54, Apr 2012; creation.com/jesus-age.

2. Boa, K“ and Kruidenier, W., Romans, Holman New Testament Commentaries, Vol. 6, Broadman & Holman Publishers, Nashville, TN? p. 176, 2000.

3. O’Brien, P.T., The Epistle to the Philipp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Eerdmans, Grand Rapids, MI, p. 263, 1991.

4. Woicik, L., Second Adam; in: Barry, J.D. et al. (Eds.), The Lexham Bible Dictionary, Lex ham Press, Bellingham, WA, 2016.

5. Doyle, S., Was the Garden of Eden a “sanctuary’ from a hostile outside world?

creation.com/eden-sanctuary, 3 Jan 2015.

6. Beale, G.K., The Temple and the Church's Mission, IVP, Downers Grove, Illinois, p.75, 2004.

7. Batten, D., Adam and Noah: two beginnings, Creation 34(1):12-14, January 2011;

creation.com/adam-and-noah.

8. Beale, ref. 6, p. 123. 9. Beale, ref. 6, p. 136.


*SHAUN DOYLE B.Sc.(Hons.), Grad.Dip. NRS

obtained a Bachelor of Environmental Science (Hons.) and a Graduate Diploma in Natural Resource Studies from the University of Queensland, Brisbane, Australia. He works fulltime for Creation Ministries International in New Zealand. For more: creation.com/doyle.

*JAMES HUGHES B.A., M.A., Dip Th.

Jim has a bachelor’s degree (cum laude) from Harvard, and a master’s from the Univ, of British Columbia. He managed large projects in systems integration and software development before becoming involved with CMI Canada. For more: creation, com/jim-hug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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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reation 44(2):18–20, April 2022

주소 : https://creation.com/adams-of-scripture

번역 : 이종헌

미디어위원회
2023-04-11

미래의 희망은 진화인가, 부활인가?

(Future Hope: Evolution or Resurrection?)

by Jake Hebert, Ph.D.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증거는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진화가 사실이었다면, 생물의 기본 종류(kinds)들 사이에 무수히 많은 과도기적 전이형태의 생물 화석들이 존재했어야 한다. 이것은 단세포 생물에서 인간으로 진화되었다는 생명체의 진화를 명확하게 나타내줄 것이다. 진화론자들도 이러한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s)"가 명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1] 게다가 비생명체로부터 생명체의 자연발생은 결코 관찰된 적이 없으며, 물리학 법칙들과 화학 법칙들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지적으로 설계되었음을 가리키는 수많은 사례들이 관측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과학적 증거 때문이 아니라, 정서적 분위기 때문에 (진화론을 거부하게 되면 받게 되는 불이익과 비난과 조롱 때문에) 진화론을 받아들인다.

사람들이 자신의 죄와 자신의 도덕적 실패들을 정직하게 바라본다면, 미래에 초자연적 창조주 앞에 서서 자신의 삶을 회계할 때에 암울하고 무서울 것이다. 심지어 다윈도 그의 자서전에서, 기독교가 진실하지 않기를 바라는 강력한 이유는 지옥의 교리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했었다.[2] 그러나 무신론적 진화론은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 가능성을 제거시켜준다.

또한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진화론은 표면적으로 미래에 희망이 있으며, 우리의 후손들은 결국 더 나은 버전으로 진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아마도 슈퍼맨처럼 "인간의 힘과 능력을 훨씬 능가하는" 존재로 진화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이것이 만화책과 공상과학 영화에서 그렇게 흔한 주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후손들이 우월한 존재로 진화한다고 해도, 이것이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인류가 더 나은 미래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수십억 명에게, 그것은 어떤 희망을 제공할 수 있는가? 게다가 진화 이야기에 의하면, 미래의 우주는 최대의 무질서 상태에 도달하고 끝이 난다고 말한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우리의 후손들은 그들이 성취했을지도 모르는 "더 고도로 진화된" 상태와 관계없이 멸망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증거가 없는 허구적 진화 이야기는 서로 큰 대조가 된다. 우리 인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성경(창세기 3장; 로마서 8:22-23)이 가르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쇠퇴되고 있다는 증거들은 풍부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많은 증거'들이 있다.(사도행전 1:3).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죄가 용서된다고 확신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화평을 얻게 된다.(로마서 5:1)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은 썩지 아니할 것으로, 영광스러운 것으로, 강한 것으로,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며(고린도전서 15:42-44),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화시켜 주실 것이라고(빌립보서 3:21)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우리 인간이 더 높고 더 고귀한 상태로 올라갈 수 있는 현실적으로 유일한 방법이다. 제조업에서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설계를 업그레이드 해야만 한다. 생산 공정에서 무작위적인 오류로 성능이 개선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죄의 경향은 영원히 추방될 것이며, 우리는 더 이상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이, 주님의 임재 안에서 영원토록 기뻐할 것이다(요한계시록 21:4). 그리고 우리는 이 축복된 상태를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의 과학적 문제를 지적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진화론에 대한 믿음은 궁극적으로 증거가 아닌, 자신들의 생각(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진화론이 정서적으로도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만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갈망이 충족될 수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Morris, J. D. and F. J. Sherwin. 2011. The Fossil Record. Dallas, TX: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2. Morris, H. M. 1994. Birthrights and Pottage. Acts & Facts. 23 (7).

3. Sanford, J. C. 2008. Genetic Entropy and the Mystery of the Genome, 3rd ed. Waterloo, NY: FMS Publications.

* Dr. Hebert is Research Scientist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earned his Ph.D. in physics from the University of Texas at Dallas.

.Cite this article: Jake Hebert, Ph.D. 2023. Future Hope: Evolution or Resurrection?. Acts & Facts. 52 (3).


*참조 : 그리스도의 부활 : 확증된 역사적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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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CR, 2023. 2. 28.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future-hope/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3-04-05

다니엘서 : 예언인가, 익명의 위작인가?

 (Daniel: Prophecy or Pseudonymous Forgery?)

by Liz Abrams 


     다니엘서는 그 책에 묘사된 사건들이 일어났던 시기에 기록됐다는 강력한 증거들을 갖고 있다.


   다니엘서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짓 신을 숭배하는 이교도 왕 아래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대한 지속적인 순종과 충성과 관련하여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비록 한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이 심판을 받았지만, 그러한 신실한 믿음은 하나님이 제국이나 그들의 이방 신들보다 더 위대하심을 증명해보이심으로 보상받았다. 하나님은 풀무불과 사자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종들만이 해석할 수 있는 계시를 왕에게 나타내고, 왕이 너무 교만해지면 직접 심판하셨다.

선지자들이 정확한 예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역사의 흐름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그의 꿈과 해석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다니엘 2장) 느부갓네살 왕에게 꿈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꿈의 내용과 해석을 모두 다니엘에게 또한 주셨기 때문이다.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만이 예언적 꿈과 해석을 주시고, 그것을 성취하실 수 있으시며, 하나님이 바빌로니아 왕과 그의 거짓 신들, 그리고 이교도 점성술사들보다 더 크심을 보여주셨다. 창세기는 다니엘서의 "전면과 중심(가장 중요한 위치)"은 아니지만, 다니엘서 신학의 기초가 되므로, 그러한 기초 없이 다니엘서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창세기는 다니엘서의 "전면과 중심"은 아니지만, 다니엘서 신학의 기초가 되므로, 그러한 기초 없이 다니엘서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거의 모든 책들의 구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당연히 그들은 고고학에 의해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채로, 성경의 거의 모든 세부적 사항들에 대한 역사적 정확성을 의심한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공격을 많이 받는 책 중 하나가 다니엘서이다. 느부갓네살 이후에 일어날 왕국들을 예견한 꿈은 예언이거나, 아니면 이 왕국들이 일어난 후에 쓰여진 위작이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초자연적 창조를 배척하기 때문에, 정확한 예언도 배척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세속주의자들은 창세기를 거부하는 것과 동일한 이유로 다니엘서를 거부한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유물론자(materialists)들이다. 그들은 약 6,000년 전 6일 동안 이 세계가 초자연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누군가가 창조주로부터 미래의 사건들에 대한 실제 지식을 전달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이렇게 다니엘서의 예언들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강력한 메시지였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강력한 메시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서는 마카비 시대에 쓰여진 위작인가?

다니엘서의 저자가 다니엘(BC 6세기 초)이 아니라는 의문을 제기했던 최초의 사람은 신플라톤학파의 철학자였던 포르피리우스(Porphyry, AD 232~303년경)였다. 그는 그의 저서 <기독교에 대한 반론(Against the Christians)>에서, 미래에 대한 예언적 말씀 같은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다니엘서는 BC 2세기 경에 쓰여졌음에 틀림없다고 주장했다.[1] 이것이 사실이라면, 저자는 다니엘이라는 가상의 유대인에 대한 역사를 지어냈던 마카비 시대(BC 167~63)의 한 유대인(a Maccabean Jew)이 될 것이다. 즉 익명의 유대인이 다니엘서를 썼다는 것이다. 오늘날 유물론자들이 기록된 그대로의 창조와 노아 시대의 전 지구적 홍수를 거부하는 것처럼, 이러한 주장은 진정한 예언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우선적으로 거부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마카비안 가설(Maccabean Hypothesis)은 오늘날에도 유행하고 있다. 다니엘서가 실제로 이 기간 동안에 쓰여진 한 유대인의 위작인지, 반대되는 증거들을 살펴보자.


1) 위작은 일반적으로 확립된 등장인물과 설정을 확장시킨다.

첫째, 우리는 구약과 신약시대 사이에 쓰여졌던 익명의 글들은 일반적으로 순 엉터리 등장인물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그들은 아담과 하와, 이사야, 또는 사악한 왕 므낫세와 같은 잘 알려진 성경 인물로부터 확장시킨다. 이들 위작의 저자는 청중들이 알만한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에스라의 예언을 확장한 글은 실제 예언이 아닌, BC 2세기 유대인 저자의 것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다니엘(문자적으로 "하나님은 나의 재판장"이라는 뜻)은 다니엘서 말고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히브리 사람들의 한 이름이다. 다윗에게는 다니엘이라는 한 아들이 있었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사람들 가운데 이다말의 후손인 다니엘이 포함되어 있었고, 한 다니엘은 느헤미야 10장에서 언약을 인봉한 사람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다. 에스겔서는 매우 의롭고 현명했던 다니엘에 대해(노아와 욥과 함께)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언급만으로는 전체 익명의 책의 기초를 형성하기에는 너무 모호하다.


2) 위작에는 역사적 부정확성이 포함되어 있다.

유딧서(the book of Judith)처럼 이전 규칙에 예외가 있는데, 거기에는 느부갓네살의 통치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유딧서의 경우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의 왕이 아니라, 앗수르의 왕인 것으로 기술되어 있어서, 명백한 역사적 부정확성이 들어있다.[1] 현대에도 과거 수백 년 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쓸 때, 연대기적 오류나 다른 역사적 오류를 범하기 쉽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니엘서에서 그와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사실 다니엘서는 놀랍게도 (세속적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정확하다. 부재한 아버지 나보니두스(Nabonidus)를 대신하여 통치하고 있던 벨사살(Belshazzar)에 대한 다니엘서의 기록은 바빌론 밖에서 그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다.[1] 나보니두스의 아들 벨사살을 언급하고 있는 ‘나보니두스의 원통(Nabonidus Cylinder)’이 발견되기 전까지, 회의론자들은 벨사살을 역사적 오류의 예로 사용했었다. 

다니엘서에 묘사된 형벌의 방법조차도 각 나라의 형벌과 일치한다. 바빌론 사람들은 불로 처벌했지만, 페르시아 사람들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졌다. 불은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신성했기 때문이다.[1] 이것들은 수백 년 후에 다른 문화권의 저자였다면 틀렸을 것이 분명한 종류의 세부 사항들이다.

그러나 다니엘서의 역사적 정확성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몇 가지 고고학적 세부 사항들을 확인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은 다니엘서를 역사 소설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그들이 유물론자로서, 초자연적 예언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벨사살 왕”은 오류인가?

벨사살의 역사성은 ‘나보니두스 원통’의 발견으로 확립되었지만, 그가 결코 왕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고레스(Cyrus, 키루스)는 나보니두스가 왕이었을 때, 바빌론을 정복하고 벨사살을 죽였다. 그러나 우리는 바빌론의 역사 기록을 통해 나보니두스가 약 10년 동안 자발적으로 망명 생활을 하다가, 고레스의 침공 몇 년 전에 돌아온 것을 알고 있다. 그 기간 동안 벨사살은 모든 면에서 공동 섭정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를 "벨사살 왕(King Belshazzar)"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치에 맞는다. 왜냐하면 그는 왕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다니엘에 대한 상으로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았다는 다니엘서 기록은 이치에 맞는 것이었다. 이것은 왕국의 2인자였던 벨사살이 줄 수 있었던 최고의 보상이었다.


다니엘서의 역사적 정확성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몇 가지 고고학적 세부 사항들을 확인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은 다니엘서를 역사 소설이라고 부른다.


히브리인들은 다니엘서를 선지서로 여겼는가?

다니엘서의 신뢰성에 반대하는 또 다른 주장은 성경에 대한 ‘히브리 성경의 분류’에서 다니엘서가 선지서(예언서)가 아니라, 역사서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것이 다니엘이 다른 선지서들과 동시대가 아니라, 선지서 정경이 끝난 후에 기록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오랫동안 다니엘서의 위치에 주목해 왔으며, 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갖고 있다. 다니엘은 원래 선지자가 아니었다. 그는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의 궁정 관리자였으며, 우연히 예언을 받았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다니엘서를 역사서로 분류했다고 해서, 다니엘서가 더 작은 책이라고 생각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니엘서가 어떻게 70인역에 포함될 수 있었겠는가?

다니엘서가 BC 2세기 경에 기록되었다는 생각에는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고대부터 다니엘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과 모순된다는 것이다.

다니엘서는 원래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그것은 유대 세계 전역에 퍼졌고, 그 후 어느 시점에서 벨과 용(Bel and the Dragon), 그리고 수산나(Susanna) 내용이 추가되었다(70인역에는 13장, 14장이 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이야기). 그것은 성경으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BC 2세기 경에 70인역(Septuagint, LXX)의 나머지 부분과 함께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

만약 다니엘서가 BC 2세기에 기록되었다면, 기껏해야 수십 년 안에 복사, 배포, 추가, 성경으로 받아들여지고, 번역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70인역에 들어있는 다니엘서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니엘서는 훨씬 더 오래 전에 유대인 성경의 일부로 존재했어야만 했다.


예수님께서는 다니엘서를 권위있는 말씀으로 여기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궁극적 권위이시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니엘서를 성경으로 여기셨는지 살펴봐야 한다.

예수님은 분명히 다니엘 7장 13, 14절에 언급된 것처럼, 자신을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인자로 해석하셨다(마태복음 24:30).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6:64절에서 이 주장을 하셨을 때, 예수님과 그분의 유대인 반대자들 모두 이것이 메시아에 대한 주장임을 이해했고, 둘 다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것을 인정했으며, 예수님의 기소된 범죄는 신성모독, 즉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긴 것이었다. 이것은 다니엘서가 예수님 뿐만 아니라, 유대인 반대자들 모두 정경(Canon)으로 간주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사용하신 자기 묘사는 “사람의 아들(Son of Man, 인자)”이다. 일각에서는 그가 인간성에 대한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다니엘서를 다시 언급하고 있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에스겔서에 등장하는 것처럼(에스겔 2:1절과 책 전체에 걸쳐 여러 번) 한 사람의 아들(“a” son of man)이 아니라, 다니엘서가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적 인물인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이라고 주장하고 계신 것이다.

마태복음 24장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그 시점까지 아직 미래의 일이었던, 멸망의 가증한 것에 대한 다니엘서의 예언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셨다. 그 예언의 성취 시기에 대한 해석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그것을 일어날 일에 대한 참된 예언으로 여기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느부갓네살은 정말 미쳤는가?

다니엘의 역사적 정확성에 대한 공격 중 하나는 느부갓네살의 미친 행동에 대한 기술과 관련된 것이다. 회의론자들은 다니엘서를 쓴 마카비시대의 한 유대인 저자가 나보니두스 대신에 느부갓네살 왕이 미친 것으로 실수로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느부갓네살의 미친 행동에 대한 이야기 직후에, 나보니두스의 아들인 벨사살의 이야기는 추가적인 증거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나보니두스의 원통(Nabonidus Cylinder)’이 발견되기 전까지, 현대 학자들은 벨사살의 존재를 믿지 않고 있었으며, 아마도 바빌로니아 제국이 멸망하고 수백 년 후인 마카비시대의 저자로 추정되는 사람도 그에 대한 지식이 없었을 것이다.

현실은 느부갓네살 왕의 통치를 자세히 기록한 문서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부분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설사 모든 바벨론 기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바벨론 왕궁 문서들이 그들의 왕이 미쳤던 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록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증거들로부터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이방 왕들과 그들의 거짓 신들보다 훨씬 더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강조하는 다니엘서가 마카비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격려가 될 수 있었겠지만, 증거들은 그들 중 한 사람이 다니엘서의 저자가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성경 정경의 일부로서, 다니엘서는 점점 더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으로 되어가고 있는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격려와 교훈을 줄 수 있다.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거짓 신들(우상)에게 그들이 진짜 신이라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예언을 해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거짓 신들은 참된 예언을 할 수 없다. 예언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분의 창조에 대한 역사적 설명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확증하고 있는 다니엘서의 예언과 같은, 성경의 초자연적인 모든 측면을 방어하는 것도 중요함을 상기시켜준다.


Footnotes

1. Stephen R. Miller, Daniel,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1994), electronic version.

2. Michael D. Coogan, ed., The New Oxford Annotated Bible: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with Apocrypha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p. 1365.

3. Miller, Daniel, electronic edition.

4. Ibid.


*참조 : ▶ 성경을 지지하는 고고학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4724&t=board

▶ 성경의 예언과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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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

https://creation.kr/Topic502/?idx=6828823&bmode=view

▶ 성경의 오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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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iG, 2022.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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