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미디어위원회
2016-06-22

소위 ‘예수 아내 복음서’는 사기로 확인됐다. 

(Fake ‘Gospel’ Manuscript Exposed)

David F. Coppedge


      소위 '예수 아내 복음서(Gospel of Jesus’s Wife)'라는 고대 문서는 거의 확실한 사기(fraud)로 밝혀졌다. 당신이 이러한 사기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다면, 이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1세기 크리스천들에게 신약성경의 4 복음서(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성경으로 받아들여진 후, 수세기 동안 수많은 가짜 문서들이 예수님과 관련하여 쓰여졌다고 주장됐었다. 2012년에 발표됐던 최근의 한 사례는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었다. Live Science (2016. 6. 17) 지는 말한다 :

2012년에 발표된 이후로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예수 그리스도가 결혼을 했다고 제안하는 한 고대 파피루스 문서는 거의 확실하게 가짜임이 밝혀졌다.

소위 ‘예수 아내 복음서’를 발견했고, 그것이 진짜라고 주장했던, 하버드대학 교수인 카렌 킹(Karen King)은 이제 그 파피루스 문서가 위조(forgery)된 것 같다는 것과, 그 고대 문서의 소유자가 문서의 출처와 배경에 대해서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위조범은 월터 프리츠(Walter Fritz)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그럴듯하게 말하는 플로리다 거주자로, 포르노 사진작가이며, 이전 동독의 비밀경찰 스타시(East German Stasi)의 회원이었다. 그 파피루스 조각이 진품이라고 제일 먼저 주장했던, 하버드 대학의 역사학자이며, 페미니스트(Feminist)인 카렌 킹은 이제 그 사건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가려 하고 있다. The Atlantic 지에서 아리엘 사바르(Ariel Sabar)는 그것을 '터무니없는 현대적 사기'라고 부르면서, 그 사기 사건의 음모, 위조, 기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보도하고 있었다.

당신은 이제 정상적인 생활로 다시 돌아가면 된다.



대대적으로 선전됐던 안티 기독교인의 한 '증거'는 또 다시 쓰레기통에 들어가게 되었다. 왜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훼손하려고 하는 것일까? Live Science 지는 쓰고 있었다. ”2012년에 그 문서가 처음 공개된 이후, 많은 언론 매체들은 그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었다.” 진화론이 만연해 있는 오늘날의 학문 세계에서 이러한 종류의 쓰레기 주장들은 너무나도 넘쳐나고 있다. 그 문서를 위조했던 사람의 면면을 살펴보라. 공산주의자, 포르노 사진가, 사기꾼... 정말로 슬픈 일이다. 정확한 보도를 해준 Live Science 지와 The Atlantic 지에 감사드린다. 그러나 처음에 보도됐던 것만큼 대대적으로 보도되지는 않고 있었다. 따라서 대중들은 그것이 사기로 밝혀진 사실을 잘 모를 수 있다.  

2017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성경 박물관(The Museum of the Bible)'이 개장될 예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경 박물관 중 하나로 여겨짐). 이미 소규모의 미니 전시관이 여러 도시들을 순회하며 개최되고 있다. 설형문자로 된 고대 문서에서부터, 원본 사해문서와 사본들, 종교개혁 시대의 성경, 희귀 사본들, 현대의 디지털 성경까지 4만 점 이상의 많은 전시물들이 특수 효과와 함께 전시될 계획으로 있다고 한다.



*이전 관련기사 : 예수의 아내 언급한 고대 파피루스 문서 발견 (2012. 9. 20.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People/3/06/20120920/49538270/1

”예수의 부인 언급 파피루스, 고대문서 맞다” (2014. 4. 11.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632388.html

예수 '나의 아내…' 직접 언급한 고대 파피루스 문서, 위조 아닌 진짜'(2014.4.11.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11/20140411023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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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발견 관련 기사 : 예수님 아내 등장하는 파피루스 가짜 (2015. 2. 28. 교회와 신앙)
CNN 다큐멘터리 '<예수 아내 복음서>는 위조된 것” 방송 예고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549

”'예수 아내 복음서'는 현대에 위조된 것” 전문가들 결론 (2015. 7. 19.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7/19/0200000000AKR20150719003800091.HTML

‘예수의 아내 파피루스’의 가치는 먼지 수준. 美 신학자들, 신빙성 혹평하며 위조 확실시 (2016. 6. 21. 기독일보)

‘예수 아내 복음서’ 파피루스, 현대에 베껴 쓴 위조품  (2015. 7. 20.데일리굿뉴스)

http://www.goodnews1.com/news/articleView.html?idxno=6242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6/06/fake-gospel-manuscript-exposed/ 

출처 - CEH, 2016. 6. 19.

미디어위원회
2015-09-08

갈릴레이에 대한 오해

 (The Galileo 'twist')

Russell Grigg

 

      오늘날 창조과학자들은 갈릴레이 시대에 로마 가톨릭 교회가 범했던 실수를 똑같이 되풀이 하고 있다고 (창조과학자들의 입장을 반대하는, 진화론과 수십억 년의 장구한 지구 연대를 믿는 크리스천들로부터) 자주 비난 당한다. 그 당시 제도권 교회들은 천동설(태양이 지구의 

둘레를 도는 것으로)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 반대(지동설)가 사실임이 갈릴레이에 의해서 밝혀진 후, 신자들은 성경 내에서 그들의 믿음에 어떠한 문제 없이 이 새로운 사실이 편안하게 수용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갈릴레이를 둘러싼 역사적 사건들은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의 창조를 주장하는 창조과학자들에게가 아니라, 유신론적 진화론자들과 오래된 연대의 지구를 믿는 사람들에게 경고가 되어야만 한다. 


배경 

2천 년이 넘는 이전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384–322 BC)는 지구가 완벽한 우주의 중심이고, 별들은 끝없이 원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AD 2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Ptolemy)는 천동설(Ptolemaic system)로 알려지게 된 생각으로 이것을 확장하였다. (아래의 박스 글을  보라). 그리고 16세기에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1473–1543)는 지구와 행성들이 태양 둘레는 돈다는 더 나은 설명을 가정했다.1,2 

 

17세기에, 갈릴레이(Galilei Galileo, 1564–1642)는 망원경을 가지고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를 반박하고, 코페르니쿠스를 지지하는 반복 가능한 관찰을 반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그는 태양의 흑점이 표면에서 움직이는 것을 관측하여, 태양이 완전하지 않으며 스스로 회전하고 있음을 알아내었다. 그는 금성의 상(phases)들을 관측하였고, 이것으로 금성은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음이 틀림없음을 알아내었다. 그리고 그는 목성의 4개의 위성들이(지구가 아니라) 목성의 둘레를 돌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지구가 모든 것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1618년에 그는 프톨레마이오스의 투명 구체(crystalline spheres, 행성들과 별들이 지구 둘레를 돌고 있는 것으로  추정)를 통해 쉽게 통과하는 3개의 혜성들을 관측함으로서, 이 구체가 상상임에 틀림없음을 보여주었다.   


태양중심설(heliocentric system, 그리스어 helios는 태양) 또는 코페르니쿠스설(지동설)은 아리스토텔레스나 프톨레마이오스의 생각을 가르치며 생계를 이어가던 그 당시의 천문학자, 철학자들의 입장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변화를 거부하는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갈릴레이의 글들을 무시하며, 조롱하고, 파괴하며, 적의를 가지고 반대했다.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우주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 추종자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성경은 천동설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갈릴레이의 주장은 성경과 모순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의 발견을 부인하기 위해서 갈릴레이를 죽음의 고통으로 밀어 넣을 만큼 맹렬히 반대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1. 이것은 당시 교회 지도자들이 세계관의 과학적 기저를 이루고 있었던 아리스토텔레스나 프톨레마이오스와 같은 이교 철학자들의 믿음체계를 교리로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교회 지도자들은 당시의 지식을 평가하는데 성경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해석하는데 그 당시의 지식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2. 그들은 갈릴레이가 반복적이며 과학적인 관측을 근거로 하여 논란의 여지가 없는 증거들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주에 관한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와 같은 ‘소수의 견해(minority view)’을 거부하고, ‘대다수의 의견(majority opinion)’에 매달렸다. 

3. 그들은 성경이 지구 둘레를 태양이 돌고 있음을 말한다고 생각한 몇몇 구절들을 성경에서 선택해 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의 기록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이해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데 실패했다. 모세가 ”해가 돋았더라 (risen) (창19:23)” 그리고 ”해가 진지라 (set) (창28:11)” 라고 기록했을 때, 그의 목적은 천문학적 관점으로 기술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세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 당시 사람들이 말하던 표현으로 언어를 사용하였다.3 그리고 가장 편리한 기준 틀(reference frame, 이 경우에서는 지구)로 상대적 운동을 기술하는 것은 물리학에서 완벽하게 유효한 것이었다. (다음의 글 Sunspots, Galileo and heliocentrism 을 보라). 


명백한 의미는 태양 자체가 움직인다는 이차적인 추론을 요구하지 않고, 보여지는 현상을 언어로 완벽하게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이것은 오늘날의 기상학자들이 기상예보 시에 ‘해 뜨는(sunrise)’ 시각과 ‘해 지는(sunset)’ 시각을 알려줄 때 사용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이다. 그들은 기준점을 지구로 사용하여, 보여지는 현상을 표현하는 언어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말을 편리하게 사용하였다고 해서, 기상 예보관들을 과학을 모르는 비과학적인 사람들이라고 취급하지 않듯이, 성경에 그러한 표현이 있다고 성경을 비과학적으로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분명히 시적 표현을 의미하는 시편 19:6, 시편 93:1 과 같은 구절들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4,5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시19:6).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 (시93:1))  


오늘날 

오늘날 우리들은 대부분의 과학적 제도들이 자연주의(naturalism, 모든 것들이 자연적 원인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와 오래된 연대(long ages)에 매우 편향되어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 과학적 제도들은 우주의 모든 것들은 한 번의 큰 폭발(빅뱅)로 기원 되었으며, 수십억 년 동안의 진화를 거쳐서 모든 것들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서, 자연주의적 믿음 체계를 선전하고 있다. 오늘날 정말로 많은 천문학자, 과학자, 교사들이 이러한 이론을 가르침으로서 그들의 생계를 꾸려가며, 돈을 벌고 있고,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프톨레마이오스 계 (The Ptolemaic System, 천동설)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하면, 태양, 달, 행성, 별들은 일련의 오목한, 수정구체(crystalline spheres)의 둥지 안쪽에 고정된 지구 둘레를 돌고 있었다. 이것은 지구중심설(geocentric or earth-centred system) 이라고 불리웠고, 천동설로서 알려져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이 완전히 설명하지 못했던 몇 가지 문제점들이 있었다. 특히 지구에서 보여 지기에 하늘을 가로지르며 앞뒤로 움직이는 행성들의 움직임이었다. 그래서 그는 독창적인 그리고 처음에는 설득력이 있었던 몇 가지 메커니즘을 가정했다. 그러나 결국 불가능하도록 복잡하고, 과학적으로 잘못되었음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각 행성들은 주전원(epicycle)이라 불리는 자신의 작은 곡선 내에서 움직인다고 말했다. 반면에 모든 주전원들은 지구 둘레를 더 큰 가상의 원(deferents) 내에서 움직였다.


그러나 천동설과 같은 이러한 생각은 비록 재치가 있고 무신론자들에게 아마도 설득력 있게 보이기는 하겠지만, 복잡함과 모순으로 가득 차서 짐이 되고 있으며, 간단히 말해 틀린 생각이다.6 


동시에, 우주와 생명체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하나님에 의해서 직접 창조되었음) 성경은 더 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과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창조과학자들은 과학자들 중에서 소수이다. 그들은 설계의 흔적들, 화석 기록, 세포 내의 엄청난 정보...등과 같은 것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면 기대되는 것들이라고 말한다. 갈릴레이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모든 증거들은 무시당하고, 조롱

당하며, 감춰지고, 기존 과학계에 사람들에 의해서 악의적으로 반대되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교회의 지도자들은 대학에서 가르쳐지는 과학에 의해 설득 당해서, 빅뱅, 수십억년, 진화론과 같은 것들이 모두 성경과 양립할 수 있다고 말함으로서, 무신론자들의 공격을 피하여 버렸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소수(창조론자들)의 견해를 반대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1. 그러한 교회 지도자들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스테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등과 같은 비기독교인(즉 이교도)의 믿음 체계이며 철학을 교리로서 받아들였다. 그래서 17세기의 전임자들처럼 당시의 지식을 평가는데 성경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해석하는데 당시의 지식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2. 그들은 오래된 연대의 지구와 우주를 반대하고 있는 (젊은 연대를 나타내고 있는) 압도적인 관측들이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행해졌던 어떠한 (반복해 볼 수 있는 소수의) 실험 결과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진화는 확립되지도 않았고, 관측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견해(minority view)’을 거부하고 ‘대다수의 의견(majority opinion)’에 매달렸다.7 

3. 그들은 창조에 대한 창세기의 기록을 신화로서, 또는 오래된 시대에 걸쳐 일어난 일로 설명하며 빠져나가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창세기에서 저자가 전달하려고 했던 표현으로 이해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 실패했다. 따라서 본문을 읽을 때에 모세의 목적은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화들이나 옛날이야기들을 수집해서 늘어놓기 위함이 아니며, 창세기 1장의 날들은 오래된 시대와 같은 어떤 것의 은유적인 표현이나 원시문화의 사람들에게 수십억 년을 간단하게 설명하기위해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8 오히려 성경은 모세가 세계 역사를 태초의 창조 시점에서부터 히브리인들의 이집트 도착까지를 문자 그대로 기록하면서 창세기를 썼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갈릴레이의 상황에 대한 흥미로운 오해이다. 그 이후 교회 지도자들은 성경에서 시의 형태(poetic format)로 쓰여졌거나, 시가서의 구절들은 문학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오늘날에 그들은 산문으로 쓰여졌거나, 글자 그대로의 역사를 의미하는 성경의 구절들까지도 시(poetry)로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진정한 교훈 

창조과학자들은 교회가 17세기에 했던 것과 같은 똑같은 실수를 (즉 성경이 사실과 다른 것을 말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교회들이 대체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교회는 역사의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 그리고 성경을 지지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아직도 권위적인 대중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것을 고집하고 있다. 갈릴레이 시대의 교회 지도자들이 실수로 성경이 지구중심설을 지지한다고 생각했을지라도, 지구가 움직인다는 개념은 본질적으로 무신론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구와 태양의 상대적인 움직임을 방어하기 위한 다른 교리가 없었다. 


이에 비해, 진화론은 기원에 대한 무신론적 설명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속적 인본주의를 정당화하고 있는 이론이다. 또한 하나님을 죽음과 고통의 저자(원인 제공자)로 만들고 있다.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의 역사로, 창세기의 날들을 지구의 일상적인 날들로 받아들이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다른 많은 성경 구절들과 교리들을 설명해야만 할 것이다. 예를 들면, 타락 이전에 동물들의 먹이가 되는 녹색 식물들(창1:30), 안식일의 계명(출20:9-11), 하나님이 태초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는 예수님의 가르침(마19:4), 최초의 남자와 여자에 기초한 결혼에 대한 가르침(마19:3-9), 아담이 글자 그대로 최초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기초한 복음에 대한 바울의 설명(로마서 5장, 고린도전서 15장)...등등       


따라서, 갈릴레이로부터의 교훈은 교회가 진화론을 반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화론을 반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은 진화론을 입증하지 못했고, 오히려 진화론은 과학에 반대됨이 입증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도 명백히 반대되기 때문이다. 



*End notes :

Thomas Schirrmacher 박사의 글 'The Galileo Affair: history or heroic hagiography, CEN Technical Journal 14(1):91–100, 2000 (download PDF file)”은 전설과는 반대로,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교회 공직자들에 의해서 매우 존중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오만, 동료들의 시기, 그리고 교황 어반 8세의 정책 등에 의한 희생자였던 것이다. 그는 성경을 비판한다고 고소당한 것이 아니라, 교황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소당했다. 또한 Danny Faulkner 박사의 글 Geocentrism and Creation 과 Q&A의 다른 글들을 참고하라 Q&A: Galileo and Geocent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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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동영상] 태양도 공전한다! 태양계의 실제 움직임 화제(2012. 12. 31. NewDaily)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36482


References and notes

1. His book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On the Revolutions of the Celestial Spheres), published in 1543, challenged Aristotle’s (and thus also at that time the Church’s) teaching that the earth was the centre of all change and decay, and that

around it were the changeless heavens.

2. In the Copernican system the earth and planets circle the sun, with the earth taking one year to do so; in the Ptolemaic system the sun, planets, and stars are all required to circle the earth every 24 hours. A huge problem with the latter system is that the nearest star, Proximus Centauri (also known as Alpha Centauri C),is 4.3 light years away, so that if this star circled the earth every 24 hours, its speed would need to be nearly 10,000 times the speed of light (and much greater speeds would be needed for the more distant stars).

3. Similarly, Joshua was using the language of appearance in Joshua 10:12–13. For a discussion on this miracle, see my article Joshua’s long day: Did it really happen—and how? Creation magazine, 19(3):35–37, June–August, 1997.

4. Psalm 19:4–6 metaphorically describes the sun as coming forth from a tent in the heavens, and also personifies the sun both as a bridegroom and as a strong man running a race. One would have thought that even the inflexible literalists of Galileo’s day might have allowed the writer of this Psalm to have meant it to have had a poetical meaning.

5. In Psalm 93:1, the phrase ‘the world also is established, that it cannot be moved’needs to be read alongside v. 2, ‘[God’s] throne is established of old, where the same Hebrew word [kown = ‘established’] is used and has the meaning 'set up', 'stable', 'secure', 'enduring', ‘confirmed’, etc., not ‘immobile’ or 'stationary’. Likewise the Hebrew word for ‘moved’ (v.1) is used in Psalm 16:8, ‘I shall not be moved’, meaning that the writer would not stray from the path of the Lord, not that he was rooted to any one spot.

6. For example, the exponents of the big bang fail to say where the energy originally came from, where the laws of science came from, and what it was that ‘quantum fluctuated’ before there was anything there to fluctuate, and so on—see What about the big bang? and If God created the universe, then who created God?. Molecules-to-man evolution is contrary to the principles of thermodynamics, as well as to the law of biogenesis (life comes only from life), the fossil record, and much more.

7. See, for example, John Morris, The Young Earth, Master Books, Arizona, 1994, and Evidence for a young world by Russell Humphreys.

8. Top-flight Hebrew academics, e.g. Professor James Barr of the University of Oxford, are unanimous that the plain meaning that the Hebrew text is intended to convey is that ‘creation took place in a series of six days which were the same as the days of 24 hours we now experience’. (See Six days? Honestly!)


출처 : Creation 19(4):30–32, September 1997

URL : https://creation.com/the-galileo-twist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15-01-08

성경 족보에 간격이 있는가? 

(Are there gaps in the biblical genealogies?)

Lita Cosner


       성경을 읽다가 성경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할 것만 같은 이름들이 장황하게 나열된 곳을 만나면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건너뛰고 싶어 한다. 이러한 족보들은 창세기와 역대기 및 구약 몇 군데에 나타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도 예수님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는데, 아브라함과 아담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조상들을 추적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목록에 싫증을 느끼는 경향이 있지만, 원래 성경이 쓰여졌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이들 족보가 실제 역사에 있었던 이야기와 실제로 살았던 사람들에 바탕을 둔 것이므로, 성경의 중요한 부분으로 보았을 것이다.


아담에서 노아까지

창세기(5장과 11장)에서 처음 등장하는 족보에는 아들을 낳았을 때 아버지의 나이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연대기 족보(chronogenealogies)’라 부른다. 이로부터 우리는 각 세대마다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를 매우 높은 정확도(일 년 이내)를 가지고 알아낼 수 있다. 또한 이름들 사이에 간격이 없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원래 성경이 쓰여졌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이들 족보를 성경의 중요한 부분으로 보았을 것이다.

창세기 5장은 아담에서 노아에 이르는 10세대를 제시하며, 노아의 세 아들들로 끝을 맺고 있다.

그 족보는 족장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제시해 줄 뿐만 아니라, 각각의 자손에 대해 그가 아들을 낳을 때의 나이와 그의 전체 수명, 두 가지 핵심 통계(수치)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의 요점은 아담과 노아 사이에 많은 세대와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다. 문맥에 따르면, 인류의 타락으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와 그들의 숫자적 성장이라는 두 가지의 개념이 명백하게 반복된다. ... 또한 마치 ”여기서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말하듯이 하면서, 그들 사이의 문학적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1]

그러나 그것은 ”여기서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로부터 대홍수에 이르는 시간표를 만들 수 있게 하기에 충분히 특별하다. 족보에는 몇 가지 중요한 신학적 요점이 들어있다. 첫째, 아담의 아들 셋은 ”그 자신의 모양 곧 그의 형상과” 같았다(창세기 5:3). 이것은 아담이 자기의 죄성을 그의 후손에게 물려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 Broken images). 둘째, 죽음이 죄와 함께 했다. ”그는 ... 죽었더라”가 족보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데, 이는 하나님이 에녹을 죽음 없이 데려가셨다는 예외적 기록이 오히려 더 놀랍도록 하며, 죽음이 인류의 최종적인 끝은 아니라는 암시를 준다. 노아가 그들에게 쉼을 주리라는 라멕의 선언 또한 창세기 3:15절에서 구세주를 보내주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대홍수 이전의 경건한 사람들의 세대를 이어져 내려오는 소망이었음을 말해준다.

역대상 1장과 누가복음 3장은 이들 족보가 완전히 역사적 사실인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족보의 품격을 신화적 지위로 떨어뜨리는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연대기 족보의 순수한 가르침뿐만 아니라, 성경의 나머지 부분이 그것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나라들의 표

창세기 10장은 정확한 족보만이 아니라,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의 기원을 추적할 수 있게 한다. 거기서는 이스라엘과 관련이 없는 지역의 사람들은 다루지 않는다. 예를 들어, 중국인, 아일랜드인, 호주 원주민들의 기원은 찾아볼 수 없고, 모세 시대에 중동에 살던 사람들만 다루고 있다. 이 부분은 셈, 함, 야벳으로부터 나온 민족 뿐 아니라, 그 후손들에도 관심이 없다. 벨렉의 때에 세상이 나뉘었다는 언급 외에는 연대기적 상세함이 거의 완전히 빠져있다는 것이 그것을 뒷받침한다(그러나 창세기의 이 부분에서, 이야기는 흘러 바벨에서의 혼돈으로 이어진다). (참조 : In Peleg’s days, the earth was divided’: What does this mean?)

이들 중 많은 나라들이 이스라엘의 적이 되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그들이 노아 아들들의 공통적 후손이라는 것과 대홍수 이후 나라들의 형성에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개입하셨다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성경을 꼼꼼하게 읽는 독자들에게는 이들 나라 중의 일부가 궁극적으로는 약속된 구세주를 통하여 구원받을 개인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다말, 룻, 라합 같은 사람들도 구세주의 조상 속에 포함되어 있다.


셈에서 아브라함까지

창세기 11장은 셈에서 시작하여, 노아처럼 세 아들의 아버지인 데라까지 아홉 세대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아브라함이었다. 이 족보는 창세기 5장의 족보와 마찬가지로 ‘연대기 족보’이다. 여기서는 창세기 5장과 다르게 ”... 죽었더라”는 반복구절이 없으며, ”X가 Z를 낳은 후에 Y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라는 식으로 약간은 더 낙관적이다. 이것은 바벨 이전 이야기를 아브라함 및 그 후손의 역사와 연결해 주는 문학적 기능을 담당한다.

이 족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요소는 수명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참조 : Decreased lifespans). 창세기 5장에서 유일하게 (평균과 비교하여) 매우 짧은 수명을 가졌던 에녹은 하늘로 데려감을 당했지만, 대홍수 이전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긴 수명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홍수 이후에 각 세대는 점점 더 짧은 생애를 살았으며, 많은 자녀들이 자기들보다 오래 산 부모 혹은 할아버지 이상의 세대보다 먼저 죽었다. 아브라함 시대의 수명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보다 두 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들 족보는 역사 속의 특정한 장소에 살았던 각 사람의 연대기를 기록함으로써 창세기가 신화가 아니라, 실제 역사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족보에 나오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을 기록한 유일한 목적은 한 명의 중요한 사람을 다른 사람과 연결시키는 것으로 보인다(예를 들면, 노아를 아담까지 거슬러 연결시키는).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은 히브리인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대인의 족보

구약 시대에 모든 유대인들에게는 자기 지파의 유래를 입증하기까지 자기의 계보를 추적하는 것이 중요했다. 더욱이 레위지파와 아론의 후손에 있어서는 그들이 제사장으로서 합당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특히 더 중요했다(에스라 2:59~63절을 보라). 따라서 모세 시대에 그는 레위, 고핫, 아므람의 후손임을 말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기간은 400년으로 추정되는 기간이며, 그에 해당하는 세대의 1/4 정도만 주어졌다. 그렇지만 그것이 문제 되지는 않는다. 그 족보는 조상들 모두의 이름을 빠짐없이 나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모세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레위와 그의 아들, 그리고 모세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구약의 다른 족보에 대해서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유다의 아들 베레스와 다윗 사이에는 1,000년 정도의 기간이 있지만, 룻기 4:18-22에는 10세대밖에 나와 있지 않다. 역시, 전체 족보를 빠짐없이 가지고 있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역시 같은 이유로 그것이 문제되지는 않는다.


마태복음의 족보

앞의 기사에서 논의했듯이(참조 : The genealogies of Jesus), 마태복음의 족보를 기록한 목적은 정당한 상속인의 합법적 가계를 다윗의 보좌까지 추적하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생물학적 후손 뿐 아니라, 남자에게 후손이 없을 경우, 자격을 잃은 ‘양자’도 포함되어 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명백히 덜 중요한 사람을 생략하는 ‘단축기법’을 사용했다.

마태는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마태복음 1:17)라고 언급한 세대의 숫자 때문에 자기가 선택한 이름들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가장 가능성 높은 설명은 ‘다윗(David)’의 이름에 대한 숫자 값을 합하면 14가 된다는 것 때문이다.


누가복음의 족보

족보를 정확하게 해석하면 그것들이 신뢰할만한 역사적 기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누가복음의 족보는 훨씬 더 완전한 것으로 보이며, 그것은 아마도 마리아의 생물학적 족보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윗으로부터, 그리고 아담으로부터 예수님의 생물학적 조상을 알게 된다. 우리는 누가가 우리에게 예수님과 다윗을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연결하는 고리를 제공하기를 원했다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아담부터 다윗까지는 구약의 자료를 이용했는데, 위에서 설명했듯이 거기에는 간격들이 존재한다.

다른 모든 족보들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내려가는데,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그래서 그것은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로 끝난다. 이것은 그 족보가 ”하나님의 아들”로 시작하고 마친다는 것을 의미하며, 예수님이 아담의 공통 자손이라는 것을 통해 모든 인류와 연결되어 있다는 신학적 논점을 멋지게 만들어낸다.


믿을 수 있는 역사적 기록

성경에 등장하는 족보들을 조사할 때, 그들 각각의 배후에 있는 목적을 살펴봐야 한다. 그러면 그것들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정확하게 해석할 때, 우리는 그것들이 믿을 수 있는 역사적 기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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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ther Reading
•Genesis Questions and Answers


References and notes
1. Kein, W., Blomberg, C., Hubbard, Jr, R., Introduction to Biblical Interpretation (Thomas Nelson: Nashville, 1993), p. 340.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creation.com/genealogy-gaps 

출처 - CMI, 18 December, 2014.

미디어위원회
2014-02-17

구레뇨의 인구조사 누가가 잘못 알았을까?

(The Census of Quirinius : Did Luke get it wrong?)

Jonathan Sarfati 


      전통적인 성탄절 시즌 동안에 수백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마태와 누가의 예수 탄생 구절을 읽는다. 위대한 역사가였던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 시기와 배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이것은 구약에서 메시야에 관한 예언과 연결이 되는데, 탄생 시기는 다니엘서 9장, 장소는 미가서 5:2절에 들어있다. 누가복음 2:1~7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눅 2:1~7)

이 구절은 몇 가지 배경에서 회의론자들의 표적이 되었는데, 거기에는 인구조사의 실재성과 시기, 그리고 베들레헴으로 여행해야 할 필요성 등이 포함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종종 지적하였듯이, 경험에서 얻은 좋은 일반 원리는 ‘성경에 대한 회의론자들은 항상 틀리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드로전서 3:15절과 고린도후서 10:5절에 있는 성경의 명령에 따라 우리 믿음에 대한 이유를 갖고, 반대되는 논쟁들을 부숴버리자.


‘모든 세계(천하)’

어떤 사람들은 누가복음 2:1절에 있는 누가의 어법을 조롱한다. ”천하라고? 분명히 호주의 원주민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어!” 영어 번역에서도 그 본문을 이렇게 읽는 것은 어리석고 어색한 방식이다. 누가복음의 이 구절에서 ‘세계’라는 단어는 전 세계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을 논박하는 기사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

”이 절이 그리스어로는 πᾶσαν τἠν οἰκουμένην(파산 텐 오이코우메넨)이며, 그리스어를 생각해야 한다. ‘세계’로 변역된 기본 단어는 οἰκουμένη(오이코우메네)인데, 이 단어에서 ‘에큐메니칼(세계적인, 전반적인, 보편적인)’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리스 학자들은 신약성경에서뿐 아니라, 그 당시 세속의 그리스 문헌에서도 오이코우메네는 종종 ‘로마 제국’에만 국한된 것으로 사용되었다고 알고 있다. 따라서 아우구스투스 시저(가이사 아구스도)는 실제로 모든 오이코우메네, 즉 모든 로마제국의 인구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스코틀랜드의 아베르딘(Aberdeen) 대학의 신약 해석 명예교수인 마샬(I. Howard Marshall, 1934~)는 누가복음 주석가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렇게 설명한다 :

”ὀίκουμένη(오이코우메네)는 ‘거주하다’는 뜻의 ὀίκέω에서 나온 말로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라는 뜻이다. 그것은 로마제국에 대해 사용하는 말로써, 그것을 모든 세계로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NIV 성경에서 이 구절을 ‘전체 로마 세계’로 묘사한 것은 맞다.


구레뇨 시대에 인구조사를?

회의론자들은 누가가 시기도 잘못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요세푸스의 주장에 따라 AD 7년 이전에는 구레뇨(Quirinius)가 시리아의 총독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헤롯 대왕이 죽기 전인 BC 4년에 태어났다. 그렇다면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이라고 말한 것은) 누가가 구레네의 치하에서 수행되었던 매우 잘 알려진 거대한 인구조사를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터무니없는 비난이다. 표면상으로 보더라도, 누가가 헛갈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 사도행전 5:37절에서 그는 AD 7년에 있었던 거대한 인구조사를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여기서 누가는 그것이 어떤 인구조사를 말하는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의 최초 독자들은 ”그 인구조사”가 어떤 것을 말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인구조사의 그리스어 단어로 ὰπογραϕῂ(아포그라페)를 사용했는데 이는 누가복음 2장에서와 같은 단어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그 둘 다 누가가 구레뇨가 실시했던 인구조사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

1. 누가복음 2:1~2절의 인구조사는 나중에 구레뇨가 행한 본격적인 인구조사가 아니라, 첫 번째 인구조사였으며(많은 성경 역본의 누가복음 2:2절에 ”첫 번째 인구조사(처음 한 것이라)”라고 되어 있다), 이는 사도행전에서 언급된 대대적인 인구조사 같은 것이 최소한 한 번 더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구레뇨가 시리아를 두 번, 한번은 BC 7년경에, 그리고 AD 7년경에 또 다시 통치했음을 의미한다. 고고학자이며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의 교수였던 윌리엄 미첼 램지 경(William Mitchell Ramsay, 1851~1939)은 구레뇨가 연속하지 않는 두 번에 걸쳐 시리아를 지배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1746년에 발견된 라틴 티부르틴(Tiburtine) 비문에 근거한 것으로, 누군가가 시리아를 두 번 통치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램지는 구레뇨가 그 기록에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푸블리우스 술피시우스 퀴리니우스(구레뇨, Publius Sulpicius Quirinius, BC 51~AD 21)는 가장 유능한 지휘관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의 터키산맥에 있는 갈라티아(Galatia)와 길리기아(Cilicia)의 호모나덴스(Homonadenses) 종족을 무찔렀다. 이것으로 인하여 그는 개선식을 했으며(‘개선식’은 위대한 승리를 축하하는 공공 행진이었다), 그가 죽은 후에는 공공장례가 치러졌다. 이것은 시리아의 공인된 통치자였던 푸블리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Publius Quinctilius Varus, BC 46~AD 9)와 대조가 된다. 그는 BC 7~6년과 BC 5~4년에 시리아를 통치했었다. 바루스는 재산을 거의 몰수하는 세금을 부과했으며, 2000명의 유대인 폭도들을 십자가에 처형한 잔인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더 중요한 것은, AD 9년에 있었던 튜토버그 숲 전쟁(Battle of the Teutoburg Forest)에서 세 개의 로마군단 전체가 전멸하도록 이끈 것으로 악명이 높다. 사람들은 그 전쟁을 클라데스 바리아나(Clades Variana) 혹은 바루스의 재앙(Varian disaster)이라고 부른다.

판단력이 좋았던 아우구스투스 시저(BC 63~AD 14)는 바루스가 인구조사를 감독할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나리오에 의하면, 아우구스투스는 구레뇨(Quirinius)가 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지시했다. 이 시기쯤 구레뇨의 개선식 현장인 길리기아가 시리아의 속주로 합병되었던 것이다. 그리스어 구절은 ἡγεμονεύοντος τῆς Συρίας Κυρηνίου(헤게모뉴온토스 테스 수리아스 쿠레니오우)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 총독(Governor)보다 낮은 직급의 관직인 지방총독('Legate”)을 뜻하는 단어 헤게몬에 근거한 동사구문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학자 글리손 아춰(Gleason Archer, 1961~2004)는 이렇게 제안한다 :

”효율성과 신속한 처리를 보장하기 위해, 아우구스투스는 사투르니우스(Saturnius)의 통치 말기와 BC 7년의 바루스의 재임기간 시작 사이에 시리아에서의 인구조사 등록을 맡을 사람으로 구레뇨(Quirinius)를 임명했다는 것이 타당하다. 그가 BC 7년의 인구조사를 유능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아우구스투스가 나중에 AD 7년의 인구조사를 그에게 맡겼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2. 이것은 구레뇨의 인구조사가 아니라 별칭으로 "그 인구조사”라고 부르는, 구레뇨 이전의 인구조사이었다. 신약학자 라이트(N.T. Wright)는 누가복음 2:2절의 πρῶτος(프로토스)는 ‘최초’를 의미하기도 하고, 소유격 앞에 나오면 ‘이전’을 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요한복음 1:15, 15:18 참조). 라이트의 견해를 많은 학자들이 지지하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맨체스터 대학 라이랜드 캠퍼스의 성경 비평학 교수였던 브루스(F.F. Bruce, 1910~1990)는 그 구절을 이렇게 번역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이 등록(인구조사)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이었을 때 했던 인구조사 이전의 것이었다.” 달라스 신학대학의 저명한 신약학 교수였던 헤롤드 호너(Harold Hoehner, 1935~2009)는 그 구절을 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인구조사는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이었을 때 했던 인구조사 이전의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탄생할 즈음에 했던 인구조사는 구레뇨가 시리아를 통치하기 이전에 일어났던 것이었다. 위에서 밝혔듯이 누가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베들레헴으로의 여행

어떤 사람은 무거운 몸의 임산부(마리아)가 그 먼 거리를 여행해야 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 기사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에서의 거리는 짧다. 1967년 이전만 해도, 요즘의 주에 해당하는 구역의 폭이 9마일(14.5km)밖에 안 되었는데, 이는 워싱턴 순환도로 폭의 반에 해당한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양아버지가 여행한 거리는 다소 멀기는 하지만, 그래도 70마일(113km)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마리아는 몸이 그렇게 무겁지 않았을 수 있다. 본문에는 예수님이 '그들이 그곳에 있는 동안에”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을 뿐, 그들이 도착한 그날 밤에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그래도 여전히 그들이 그곳으로 가야 했다는 것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는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기의 고향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 법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고고학적 발견은 누가의 정당함을 입증해 준다.

20세기 초반에 AD 104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파피루스가 발견되었다. 여기에는 이집트의 로마인 총독 가이우스 비비우스 막시무스(Gaius Vibius Maximus)의 다음과 같은 칙령이 들어있었다:

”가족별 등록이 다가오므로, 어떤 이유로든 자기 지역을 떠나있는 사람은 통상적인 과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자기 고향으로 돌아오도록 명령을 내려야 한다.”

위의 칙령에서 '등록”으로 번역한 단어인 ‘아포그라페’는 누가가 '인구조사”에 대해 사용한 것과 동일하다.

국제표준 성경사전(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예를 들어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에 의하면, 이집트의 장관(AD 104년)이었던 가이우스 비비우스 막시무스의 법령은 자기 지역을 떠난 모든 사람은 다가오는 인구조사에 대비하여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이었다(누가복음 2:1~5 참고).”

이것은 주로 이주 노동자들과 관련된 것이지만, 복음주의자가 아니었던 레이몬드 브라운(Raymond E. Brown, 1928~1998)은 혈통을 중요하게 여겼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보다 폭넓은 배경을 갖는다고 보았다.

”로마인들은 종종 지역적인 상황에 맞는 행정을 펼쳤기 때문에 유대지방에서 수행되었던 인구조사는 유대인의 지파와 조상의 관계가 강하게 밀착되었다는 것을 고려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누가의 기사를 뒷바침하는 또 다른 파피루스가 있다. 여기에 아버지의 관점에서 자기 가족을 바라본 글이 들어있다 :

”나는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임페라토(황제) 10년에 ...와 타오피스(Taopis)의 딸 타아시에스(Taasies)와 나에게서 태어난 아들 파켑키스(Pakebkis)를 등록했으며, 앞에서 언급한 나의 아들 파켑키스의 이름이 명단에 들어가도록 요청했다....”

이것은 로마의 지배 하에서 가족의 등록이 일상의 사실이었음을 보여준다.


결론

증거는 램지가 평생을 걸쳐 신약에 관하여 고고학적으로 연구한 것을 뒷받침해 준다 :

”나는 누가의 신뢰성을 고려할 때 그의 역사가 탁월하다는 관점을 취한다.... 다른 어떤 역사가들보다도 누가의 말을 더 받아들여도 좋으며, 그의 말은 예리한 조사나 혹독한 취급에도 견딜 수 있다.”

좋은 역사가들과 마찬가지로 누가는 우리로 하여금 성육신을 역사의 어떤 특정한 점에 위치시킬 수 있도록 상세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그에게는 신학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이 분리할 수 없도록 연결되어 있으며, 그 둘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이유가 된다.



<참고> ‘지역적’ 홍수?

어떤 타협자들은 누가복음 2:1절의 ”모든 세계”를 이용하여 창세기에서 가르치는 전 지구적인 대홍수를 공격하며, 지역적인 홍수가 동일과정설적 과학에 잘 들어맞는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아우구스투스의 지배가 분명히 호주까지 미치지는 못했다고 말하며, 그가 분명히 문자적으로 모든 세계에 등록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은 노아의 대홍수도 전 지구를 다 덮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첫째로 '세계”를 뜻하는 단어 οἰκουμένη(오이코우메네)는 전 지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에서 나타낸 바와 같이 로마제국을 의미한다. 둘째로, '모든”(창세기 기록에서 히브리 단어 לפ(콜))은 어떤 경우에는 전 지구를 뜻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창세기 7:19절에서는, 지역적인 홍수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해 어조를 훨씬 더 강조하고 있다.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And the waters prevailed exceedingly upon the earth; and all(콜) the high hills, that {were} under the whole(콜) heaven, were covered.” 류폴드(Leupold)는 ”‘all’(콜)의 이중 사용은 어떤 비교급의 의미로 볼 수 없다. 그것은 거의 히브리 단어의 최상급을 구성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 본문이 전 지구적인 대홍수의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믿는다”고 지적했다. 류폴드는 누가복음 같은 경우를 이렇게 논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이 ‘콜’을 한번 사용하는 경우를 무너뜨릴 수는 있지만, 본문의 경우처럼 ‘콜’을 두 번 사용한 경우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렇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Luke, Quirinius, and the Census

https://apologeticspress.org/luke-quirinius-and-the-census-907/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creation.com/quirinius-census-luke 

출처 - Creation ex nihilo, Vol. 36(2014), No. 1, pp. 42-44.

미디어위원회
2013-04-18

두 개의 시작 : 아담과 노아

(Two Beginnings: Adam and Noah)

Don Batten 


      창조주간에 일어났던 일과 전 지구적인 노아의 대홍수 시기에 일어났던 일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유사성은 대홍수가 전 세계적이었음을 강조한다.

물과 마른 땅

하나님이 지구를 창조하셨을 때 처음에는 물로 덮여 있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 1:2)[1]

여기서 그 물이 ‘나빴다’는 암시가 없다; 그것은 단지 창조 과정의 한 단계였을 뿐이다.[2]

대홍수때 물이 다시 한번 지구를 덮었는데, 이때는 심판이었다: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창 7:19)

창조 시에는 하나님이 물을 한 곳에 모으셔서 땅이 드러나게 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9)

대홍수 이후에 물들이 땅에서 물러나 다시 마른 땅이 보였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창 8:3)...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창 8:14).

이것은 일반적인 성경의 원리를 말해준다: 심판은 창조의 역과정이다. 따라서 대홍수는 땅과 바다가 갈라졌던 창세기 1장의 사건의 역과정이다. 그래서 예레미야 4:23에서는 심판이 매우 혹독해서 창조를 창세기 1:2의 혼돈하고 공허한 상태로 되돌려놓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저주와 복

아담의 죄는 땅이 부패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 땅은 잡초를 내고 수고하여야 충분한 음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대홍수 때에 세상은 전 지구적인 멸망으로 저주를 받았지만, 그때 하나님은 결코 땅을 다시는 그러한 홍수로 저주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창 8:21).

죄가 인간의 본성을 전적으로 더럽혔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든 죄를 심판하려 하신다면 심판은 지속적으로 그리고 가차없이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러한 약속은 ”풍부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청나게 풍부한 은혜의 표현이다.”[3] 이는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용서를 베푸시는 것 안에서 하나님의 풍부한 은혜를 기대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간과하신다.

대홍수가 물러갔을 때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인간성이 나타났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과 함께 하나님은 아담에게 주셨던 것과 유사한 명령을 노아에게 주신다.

 

생육하여 땅에 충만하라

아담 :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

노아 :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창 9:7).

 

생물을 다스리라

아담 :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하).

노아 :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창 9:2).

최초의 ”심히 좋았더라”(창 1:31)는 창조에서는 두려움이 없었다는 것을 주목하라.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배반하여 생존을 위한 투쟁과 고통과 죽음(창 3:17-19)을 가져왔던 최초의 타락 이후에 두려움이 생겨났다. 이제 노아는 이 매우 다른 세상에서 살았다.

 

음식

아담 :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창 1:29).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유일하게 먹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던 식물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창 2:17)였다.

노아 :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창 9:3).

하나님이 노아와 그의 후손들에게 먹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던 고기에 관한 한 가지 제한 사항은 피를 먹지 않는 것이었다 :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창 9:4, 레 17:14을 함께 보라).

이 금지사항은 노아와 그의 후손들로 하여금 생명의 특별함과, 모든 죽음은 죄로부터 나왔다는 것과, 죄에 대한 벌은 죽음이라는 것(창 3)을 상기시켰을 것이다. 또한 이 금지사항은 그들에게 음식을 위해 동물을 죽이는 것은 최초에 하나님의 '매우 좋았던” 창조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을 것이다.

 

계절들

아담 :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창 1:14).

노아 :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 8:22).

이런 일들이 대홍수 기간 동안에는 멈췄었지만, '땅이 있을 동안에는” 또 다시 멈추지 않을 것이다.[4]

 

하나님의 형상

창조시에 하나님은 사람을 ”그분의 형상대로”(창 1:27) 창조하셨다. 대홍수 이후에 하나님은 살인을 금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창 9:5-6).

한때 기독교 사회였던 서구 세상에서, 하나님에 대한 존경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잃어버림에 따라,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경도 같이 잃어버리게 되었다: 우리는 낙태, 영아살해, 안락사 등을 점진적으로 허용하게 됨을 본다. 납세자들이 기금을 대는 교육에서 교의적으로 옹호하듯이, 인간이 단지 진화된 동물에 불과하다면, 인간의 생명에 대해 만연한 경시풍조가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다. 심지어 납세자가 기금을 대는 학교에서 대량학살이 일어나더라도 그렇다.

 

죄로 인한 피흘림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덮어주신다(창 3:21). 죄가 그들의 벌거벗음을 망가뜨렸으므로 덮을 것이 필요했으며, 이는 동물의 피흘림을 필요로 했다. 대홍수 이후에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은혜로 구원받은 노아는 제단에서 동물을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드렸다. 이는 그의 구원이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창세기 8:21은 기쁘시게 하는 향기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는 신약에서 인류의 죄에 대한 주 예수의 희생을 예표하는 것이다. 즉,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엡 5:2).

 

결론

모든 일의 시작과 대홍수 이후의 새로운 시작 사이의 많은 유사성은 노아의 홍수가 전 지구적인 사건이었으며, 한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일으키는 대격변이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강화해 주는 것이다. 대홍수는 국지적인 사건이 아니며 그것은 확실하다. 그 유사성은 또한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에 스며있는 구원의 메시지에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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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ther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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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1.Bible quotes from the English Standard Version (ESV).
2.For refutation of the ‘gap theory’, see the Creation Answers Book, ch. 3.
3.John Gill’s Exposition of the Entire Bible.
4.Incidentally, the first passage refutes claims that Earth’s axis was vertical before the Flood, because seasons require a tilted axis. Such claims are often not text-driven but model-driven, in this case that a meteorite impact initiated the Flood and tilted the earth’s axis. However, the science doesn’t work, and it also likely contradicts Scripture—see Sarfati, J., Flood models and biblical realismJ. Creation 24(3):46–53, 2010; When did evil begin, and is retrograde planet motion still a good argument? creation.com/actual-evil, 19 April 2008.
5.Pastor Gino Geraci came on the scene after two schoolboys wearing ‘Natural Selection’ T-shirts gunned down a number of their classmates at Columbine High School, Lyttleton, Colorado. 'When the superintendent came up to Gino later that day, weeping and asking why it had happened, Gino blurted out, ‘You have taught our children that they come from nowhere, and that is where they’re going, and that life is a point of pain in a meaningless existence. And they believed you.’ The superintendent’s response was shocked silence.” See Matthews, M., Tragic truth: Pastor Gino Geraci at Columbine and Ground Zero, Creation 25(3):10–15, 2003; creation.com/tragic-truth.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creation.com/adam-and-noah 

출처 - Creation, Vol. 34(2012), No. 1, pp. 12-14.


미디어위원회
2013-04-17

성경 역사가 왜 중요한가?

 (인간의 타락과 노아의 방주 시기 등을 포함하여)

(Why Bible history matters?)

Jonathan Sarfati 


우주의 역사책

성경은 시, 자서전, 로맨스, 교훈, 신학 등을 포함하는 여러 형태로 이루어진 66권의 책을 모은 것이다. 그리고 1,500년에 걸쳐 여러 종류의 저자, 즉 왕, 장군, 어부, 선지자, 학자, 세리, 의사 등이 썼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성경은 영원한 과거에서 영원한 미래로 향해가며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어떻게 영화롭게 하시는가를 보여주는 우주의 실제 역사라는 것이다.[1] 그리고 중심 테마는 하일스게쉬히테(Heilsgeschichte, '구원의 역사‘를 뜻하는 독일어)이다 : 하나님의 아들이 마지막 아담으로써(고전 15:46)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시는 그분의 영원한 계획.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은 세상의 기초가 놓일 때로부터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의 구원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다.[2]

따라서 성경이 시기를 포함하는 역사적인 정보로 가득 하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위대한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기독교 믿음은 전적으로 역사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 역사에 근거하고 있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매우 독특합니다. … 우리 기독교 믿음은 (불교나 힌두교 등과) 전적으로 다릅니다. 그것은 사실에 관심을 둡니다. … 에덴동산 … 대홍수의 역사를 기억하십니까?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역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새로운 시작을 주셨습니다. … 바벨탑 … 아브라함 … 우리 주님에 관한 사실들 …”[3]

 

역사가 문제가 된다!

사도 바울은 많은 교리의 근거를 역사적인 사건들의 순서에 둔다. 예를 들면, 로마서 4장에서 바울은 믿음만에 의한 칭의라는 지극히 중대한 진리를 가르치고 있는데 정확하게 그 이유는, 할례라는 행위(창 17장) 이전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는 믿음(창 15:6)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디모데전서 2:11-14에서 바울은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 임을 지적하면서 여자들의 역할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는데, 여기서도 역사적인 사건들의 순서가 없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7장에서 멜기세덱에 관한 창세기 모형(창 14)에 근거한 예수님의 제사장직이 레위족의 제사장직보다 앞선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이것은 정확히, 그들의 선조인 레위가 태어나기 오래 전에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공물을 드린 것에 기인한다.[4]

 

역사와 율법

성경의 역사를 이해하면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율법들에 관한 세속적인 공격들을 반박할 수 있게 해 주기도 한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한 나무의 열매를 제외하고) 모든 식물을 먹으라고 하셨다; 대홍수 이후에 그분은 노아에게 모든 동물을 먹으라고 하셨지만, 모세의 율법 시대에는 특정한 종류의 동물을 먹는 것을 하나님이 금하셨다. 이제 그리스도의 율법 하에서는 모세 시대에 금지했던 동물들도 먹을 수 있다. 어떤 시대에는, 하나님이 금지하신 어떤 것을 먹으면 도덕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역사 가운데서 그분의 프로그램을 진행시키시는 각각의 다른 단계라는 것을 알고 나면 어려움은 사라진다.

모세 시대의 율법은 이 프로그램에 있어서 특별한 시기를 위한 것으로써,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을 장차 메시야가 나올 민족으로 구별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분의 메시야 민족이 주변의 우상을 섬기는 나라들과 구별되어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율법이 반복적으로 의식적인 구별을 갖고 있었다: 혼합된 직물로 옷을 만들면 안되며(레 19:19); 바다 생물이 발을 가졌다는 것이 바다와 육지의 의식적 경계를 어겼다는 이유로 랍스터를 먹으면 안된다(레 11:9-12).[5] 그리고 그들은 죄를 덮기 위해서 동물을 희생하라고 명령을 받았는데 이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기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장벽이 무너졌다(엡 2:14). 이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갈 3:28, 골 3:11). 따라서 그러한 구별되는 율법이 들어설 여지가 더 이상 없으며, 이제는 낡은 것이 되었다(히 8:13). 그리고 이제는 죄를 위하여 동물을 희생하는 것은 불법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 가운데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의 완전함을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히 10장).

 

역사적인 상세

성경에 있어서 역사가 매우 강조된다는 예로써, 의사이며 위대한 역사가인[6] 누가(Luke)는 아주 상세하게 기록을 했다: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눅 3:1-2).

그리고 창세기에서 우리는 세상 창조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7] 특히, 창세기 5장과 11장에서는 창조 주간의 제6일에 창조된 아담으로부터 유대민족 혹은 이스라엘의 시조인 아브라함까지의 역사를, 그 가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출생일 사이의 년수를 완벽히 가지고 있다.[8]  보통의 용법으로는 자식이 아버지의 생일에 태어난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므로, 각 세대의 시간 배열에 몇 개월이 추가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더라도 두 시기 사이에 최대한 20년이 추가될 것이며, 이에 따르면 창조/아담으로부터 대홍수까지 1656년, 그리고 대홍수로부터 아브라함의 탄생까지 353년이 된다. 유대인과 기독교인 학자들이 계산한 창조의 날짜는 대략 BC 4000년으로써 모두 매우 유사한 계산을 한다.[9]

 

논리적 추론에 의한 또 다른 역사

더욱이, 성경의 가르침은 명시적인 진술에 제한 받지 않고, 무엇이든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10] 이에 의하면,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묻는 다른 시기에 관한 질문에 대해 창세기를 통하여, 그 답이 명시적으로 진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진술되어 있는 것으로부터 추론해 낼 수 있다.

 

타락의 시기

인류의 타락은 언제 일어났는가? 성경은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앞으로 보게 되듯이, 성경은 묵시적으로 그 시기에 관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먼저, 성경은 우리에게, 창조의 6일에 창조를 마치시고 나서 모든 것을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음을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다(창 1:31). 따라서 그때까지는 사탄도 아담도 타락하지 않았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뒤따른다. 이것은 수백만 년이라는 ‘과학’과 타협하기 위한 모든 다양한 성경의 곡예들(예를 들면, 간격이론, 날-시대이론, 유신론적 진화론, 구조틀 가설[11])을 배제한다. 그렇게 한다면 아담 이전에 죽음이 있다는 말이 되고, 이는 고린도전서 15장, 로마서 5장, 로마서 8장과 맞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제7일을 복주셨다(창 2:3). 이 날에 죄나 저주가 있다는 힌트가 조금도 없다. 따라서 인류의 타락은 창조 주간 이후에 발생했다.

그러나 얼마나 뒤의 일인가? 첫 번째 사람들에 관해 드러난 역사로부터 추론해 보면 그리 오래지 않다. 아담과 하와는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창 1:28), 정의에 의하면 그들이 타락하기 이전에는 분명히 순종했을 것이다. 더욱이, 그들은 ”매우 좋게” 창조되었는데, 이는 육체적으로 완벽한 몸을 의미하므로 최소한 첫 번째 생리 주기 안에 즉시 임신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들의 첫 번째 아이(가인)는 인류의 타락 이후에 임신했고, 그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이 죄가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그들의 타락은 아마도 창조주간 이후 기껏해야 3 내지 4주 이내의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났을 것이다.

추론: 우리는 또한 사탄의 타락을 복받은 제7일과 인류의 타락 사이의 매우 좁은 창으로 제한할 수 있다.

 

노아가 얼마나 오랫동안 방주를 지었을까?

하나님은 노아에게 대홍수 때 탈 커다란 배를 지으라고 지시하셨다. 노아가 가진 장점 중의 하나는 수명이 매우 길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얼마 만큼의 수명을 가졌을까?

어떤 사람은 창세기 6:3절로부터 120년이라는 답을 한다. 사실상 이것은 인간의 수명과 관계된 것일 수 없다. 왜냐하면 대홍수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120년 이상을 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방주에 탄 사람 이외의 모든 사람을 대홍수가 쓸어버리기 전까지 모든 인류에게 남아있던 시간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답을 주지는 않는다: 이 120년의 시작점은 방주를 지은 때부터가 아니라, 창세기 6:4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짝을 지을 때부터이다.[12] 따라서 정확한 시기는 언제일까?

먼저,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주셨을 때는 노아가 세 아들과 자부들을 기다려야 했다(창 6:14-18). 이것은 노아가 그때까지는 아들들이 있었고, 또한 그들이 결혼할 만큼 충분히 장성했음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창 5:32). 창세기 7:6은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 노아가 600세였다고 말하는데, 이는 그 사건 이후 100년이 지난 뒤이다.

따라서 그들이 결혼하기에 충분한 나이를 30세라고 한다면, 대홍수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방주를 짓는데 70년 정도의 시간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결론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창세기 5:32절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갈 필요가 있다. 자, 성경의 진술로부터 논리적 추론을 하기 이전에, 성경이 말하는 바를 이해해야만 하는데, 종종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함으로써 이것이 가능하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이들 세 명이 노아가 500세 때 태어난 세 쌍둥이를 말하고 있지 않음을 추론할 수 있다. 이것은 셈이 홍수 후 2년에 아르박삿을 낳았는데, 그때 그가 100세였다는 사실로부터 기인한다(창 11:10). 따라서 대홍수가 왔을 때 셈은 98세였으므로, 그는 노아가 502세 때 태어났다. 함은 가장 어린 것으로 언급되므로(창 9:24), 야벳이 가장 나이가 많았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창세기 5:32절은 야벳 혼자만 태어났을 때 노아의 나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창세기 11:26절에서도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다 : ”데라는 칠십 세에(And Terah lived seventy years)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그러나 창세기 11:32절은 데라의 수명이 205세였다고 말하며, 창세기 12:4절은 데라가 죽은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술하면서,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이스라엘 땅으로 갔는데, 그때 그의 나이가 75세였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태어났을 때 데라는 130세였음이 분명하다.

 

결론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 몇 권의 책으로 기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기사를 확장해서 생각하더라도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역사에 비추어보아 성경이 맞지 않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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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ther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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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Sarfati, J., Should we trust the Bible? Creation 33(1):32–36, 2011; creation.com/trustbible.

2.Sarfati, J., The Incarnation: Why did God become Man? creation.com/incarnation, December 2010.

3.Martyn Lloyd-Jones, D., What mean these stones? Sermon preached 12 Nov 1977. Evangelical Action 2002(6):17–24. See also Batten, D., Famous preacher: Creation, not evolution , creation.com/mlj.

4.Cosner, L., The use of Genesis in the New Testament, Creation 33(2):16–19, 2011, creation.com/nt; Sarfati, J., Genesis: Bible authors believed it to be history, Creation 28(2):21–23, 2006, creation.com/gen-hist.

5.See also Cosner, L., Is eating shellfish still an abomination? creation.com/shellfish, 10 July 2010; Sarfati, J., A brief history of the Jews, creation.com/jews, 16 May 2000.

6.Sir William Mitchell Ramsay (1851–1939), the archaeologist and professor from Oxford and Cambridge Universities stated: 'Luke is a historian of the first rank; not merely are his statements of fact trustworthy…[he] should be placed along with the very greatest of historians.” The Bearing of Recent Discovery on the Trustworthiness of the New Testament, p. 222, Hodder & Stoughton, London, 1915. E.M. Blaiklock, Professor of Classics at Auckland University in New Zealand, (1903–1983), wrote: 'For accuracy of detail, and for evocation of atmosphere, Luke stands, in fact, with Thucydides. The Acts of the Apostles is not shoddy product of pious imagining, but a trustworthy record … it was the spadework of archaeology which first revealed the truth.” The Archaeology of the New Testament, p. 96, Zondervan, Grand Rapids, Michigan, 1970.

7.Genesis is written as history, not poetry. See the interviews with Old Testament scholar Dr Robert McCabe, Creation 32(3):16–19, 2010; and Hebrew scholar Dr Ting Wang, Creation 27(4):48–51, 2005, creation.com/wang.

8.Freeman, T.R., The Genesis 5 and 11 fluidity questionJ. Creation 19(2):83–90, 2005, creation.com/fluidity; Sarfati, J., Biblical chronogenealogies, J. Creation 17(3):14–18, 2003; creation.com/chronogenealogy; Cosner, L., How does the Bible teach 6,000 years? Creation 35(1):54–55, January 2013; creation.com/6000-years.

9.Hansen, P., Real history: the timeline of the Bible, Creation 27(4):28–29, 2005, creation.com/timeline; based on Archbishop James Ussher, Annals of the World, 1658; Revised and updated by Larry and Marion Pierce, 2003. Ussher’s calculated date is very similar to that of other scholars, so I suspect he was close to the mark—see this list in Batten, D., Old-earth or young-earth belief: Which belief is the recent aberration? Creation 24(1):24–27, 2001; creation.com/old-young.

10.Sarfati, J., Loving God with all your mind: logic and creation, J. Creation 12(2):142–151, 1998; creation.com/logic.

11.See creation.com/compromise.

12.See Batten, D., ed., Creation Answers Book, ch. 9.

13.Cf. the famous quip by Ukraine-born evolutionist Teodosy (Theodosius) Grygorovych Dobzhansky (Теодосій Григорович Добжанський 1900–1975), 'Nothing in biology makes sense except in the light of evolution” (1973). Replace ‘evolution’ with ‘design’, and it would be right!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creation.com/bible-history-fall-ark 

출처 - Creation ex nihilo, Vol. 33(2011), No. 4, pp. 18-21

임선재
2013-01-18

고서(古書)검증법과 성경의 신빙성


     수 천년 전에 기록된 고서들 대부분은 원본이 소멸되어 버렸기 때문에, 원본이 없는 기록문서를 사본만을 가지고 TV에서 진품, 명품 가리듯이 그 책이 얼마나 가치 있고 정확한 책인가? 과연 원본과 사본과의 정확성 정도는 어느 정도이며 원본에 얼마나 가까운 책인가? 를 선입관 없이 객관적·과학적으로 검증하는 방법으로 고서검증법(Bibliographical Test)이 있습니다. 인류가 남긴 수많은 고문서(古文書; 호머의 일리아드, 세익스피어의 희곡들, 성경 등)의 신뢰여부를 이 방법으로 가리고 있습니다.

고서검증법에 의하면 사본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본과 사본과의 오류가 적으면 적을수록, 사본이 원본으로부터 만들어진 시간적인 차이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 사본은 원본과 가까운 사본이 됩니다.

고서검증학자들은 신·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특별한 입장에서가 아닌,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암송되어지고 비문에 적히기도 하고 후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베껴진,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수 천년 전 인류의 오래된 책 중의 하나로서, 가장 좋은 대조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여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현재까지 알려진 인류의 수많은 책 중에서 가장 신빙성이 있다고 알려진 호머의 일리아드와 비교함으로서, 우리가 들고 있는 현재의 성경이 과연 얼마나 신뢰할만한 책인가를 검증하였습니다.

이 검증법에 의하면 사본의 수에서 신약성경은 일리아드에 비해 약 40배가 많고, 원본 기록연대와 최초사본 기록연대의 시간적인 차이에서도 신약성경은 25년의 짧은 간격으로 20배 차이가 있고, 오류의 정도에서는 일리아드는 5.0% 신약성경은 0.5%로 10배 차이를 보임으로써 신약성경은 일리아드에 비해 약 8000배(40x20x10)의 정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8000배의 정확도는 그동안 인류가 남긴 책 중에서 가장 신빙성이 있다고 알려진 일리아드조차도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할 정도의 놀라운 차이이며, 앞으로도 이 정도의 정확도는 불가능한 것으로, 신약성경은 원본과 다름이 없는 신뢰할만한 책이라고 고서검증학자들은 결론 내렸습니다.

고서검증법에서 말하는 신약성경 0.5%의 오류의 정도도 그 내용면에서 보면 0.4%는 철자의 잘못으로, 예를 들면 '모든 교회에게 문안하노라” 하는 내용이 '모든 고회에게 문안하노라” 하는 식이고, 나머지 0.1%는 접속사의 오류로, 예를 들면 ‘A 그리고 B 그리고 C’ 라는 내용이 'A,(콤마) B,(콤마) C” 하는 식으로 접속사가 생략된 경우로 내용상이나 문맥상, 사실은 오류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판정된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마지막부분 기록 된 연대가 B.C 400년경으로 B.C 125년경에 기록 된 사해사본과 275년 간격, A.D 900년경에 기록된 맛소라 사본과 1000여 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사해사본과 맛소라 사본이 1000여 년의 간격을 두고 만들어진 사본들임에도 서로 비교해 본 결과 두 사본이 완전히 일치하는 똑 같은 성경임이 확인되었고,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모세가 기록하고 여러 선지자들이 기록한 그 성경과 똑 같은 성경임이 입증되었습니다.

古文書들은 예외 없이 단 몇 백년만 지나도 엄청난 양의 오류가 발견되고 있는데, 성경은 어떻게 이것이 유지될 수 있었는가? 유대인들은 특수한 탈무디스트라는 집단이 엄격한 규칙에 따라, 성경을 잘못 베끼는 일이 없도록 목숨을 걸고 똑 같이 베끼는 일을 수 천년간 해 왔기 때문에 그 내용에 변함이 없이 보존되어 온 것입니다. 물론 고서검증법으로 검증된 결과 때문에 성경이 믿을 만한 책이 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원래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믿을 만한 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을 믿지 않고 과학과 이성을 더 신뢰하기 때문에, 이러한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서 나타난 결과가 성경의 신뢰도를 높이는 영혼 구원의 도구로서 사용될 수 있다면 우리는 적극적으로 성경을 변증하는 일에 사용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561

참고 : 4043|4423|4414|4058|4878|4718|4714|4599|4387|4578|4868|3166|3218|3022|2688|4726|4725|4723|3162|4463|4450|4413|1756|3208|3249|4685|4480|3020|2530|4376|4381|4394

미디어위원회
2012-11-16

아프리카인의 유전체 분석은 성경적 역사와 일치한다. 

(African Populations Fit Biblical History)

by Brian Thomas, Ph.D.


      만약 유전학자들이 현대 인간의 DNA 염기서열에 숨어있던, 바벨탑 이후 분산에 대한 역사적 사건을 반영하는 단서를 발견한다면 어떻게 될까? 연구자들은 수렵-채집(hunter-gatherers)을 하고 살아가는 아프리카 세 부족 집단의 현대적 진화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한 최근의 시도에서 그러한 단서를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1]

과학자들은 피그미(Pygmy), 하드자(Hadza), 산다웨(Sandawe) 부족을 대표하는 5명의 남성에 대한 유전체(genomes) 염기서열을 (각각을 60번 이상) 분석했다. 이러한 상세한 분석은 그들이 실험한 각 DNA 염기서열의 정확성을 보장해주고 있었다. 그들은 아프리카인의 DNA 염기서열을 서로 비교했고, 유럽인들에 대한 유사 연구의 데이터와 비교 분석했다.

유전학자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발견을 했고, 그것을 Cell 지에 게재했는데, 데이터들은 창세기 기록과 같은 노아 홍수 이후의 빠른 다양화와 일치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세 부족 내에서만 발생되어 있는, 막대한 수의 새로운 DNA 변이(variations)들을 발견하였다. 변이의 대부분은 단일염기 다형성(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s, SNPs)이었다. 그것은 개체 간의 단일 염기쌍 차이로 발생한다.

특별히, 그들의 연구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의해 밝혀진 레퍼런스 염기서열 순서와 다른 13,407,517개의 SNPs를 발견했다. 연구의 저자들은 썼다 : ”우리의 염기서열 데이터는 실질적으로 인간의 유전적 변이의 목록을 확장시켰다.”[1] 이러한 결과는 인간의 변이(변화)가 대략 5,100년 전에 시작했던 유전적 다양성의 폭발(explosion of genetic diversity)과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한 최근의 연구들을[2, 3] 지지하는 것이다.

또한 Cell 지에서 저자들은 부족 그룹을 식별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염기서열을 조사했다. 먼저, 그들은 하드자 족과 산다웨 족 사이에 공유된 변이(shared variants)를 발견하지 못했다.[1] 두 부족은 탄자니아(Tanzania)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수렵-채집 부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독특한 고유의 DNA 변이를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단지 지난 몇 세대 전에 갈라졌다면, 그들은 근처 부족들과 오랫동안 상호 교배(interbreeding)하며 가지게 됐던 변이들을 공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공유된 변이가 없다는 것은 그 부족들은 오래 전에 나뉘어졌음을 가리키며, 부족들 사이에 상호 교배가 거의 없었음을 가리킨다고 저자들은 말했다.[4] 그러나 그들은 정확히 언제 갈라졌는가?

연구팀은 네안데르탈인(Neandertals)과 동시대에 살았던 고대 조상으로부터 유전된 게놈 부위를 발견했다.[1] 네안데르탈인은 대략 3,500~4,500년 전 사이인, 홍수 이후 빙하기 동안에 살았던, 현대인처럼 보이는 인류와 결혼을 했던 다양성을 가진 인류였다.[5] 

연구의 저자들은 이 아프리카인들 부족의 분기(divergence, 나뉘어짐) 이전인 오래 전에는 인류의 상호 교배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었다는 다른 증거를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Cell 지에 썼다. ”우리의 데이터 세트에서 한 놀라운 발견은 현존하는 수렵-채집 유전체에는 유전자 침투된(introgressed, 반복적으로 교배된) 고대 염기서열이 포함되어 있다는 압도적인 증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1]

진화론자들에게는 놀라운 일이지만, 성경적 창조론자들에게 이것은 예상됐던 결과였다. 성경 역사에 따르면, 상호 교배는 바벨에서 단일 국가를 이루고 있던 인류에게 수백 년 동안 자유롭게 일어났다. 그러나 하나님이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곧 70개의 고대 국가가 되는 가계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다.[6]

따라서 이러한 유전체 분석에 따르면, 세 현대적 아프리카 집단은 처음에는 비-아프리카 집단과 상호 교배 했었다. 그리고 흩어져 바벨에서 아프리카로 이주하면서 빙하기 동안에 분리되었다. 마침내 그들 유전체 변이의 대부분은 그들 집단이 확립된 이후 최근 발생했던 것이다. 이러한 유전체 분석으로부터 알게 된 결과는 성경적 역사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References

1. Lachance, J. et al. 2012. Evolutionary History and Adaptation from High-Coverage Whole-Genome Sequences of Diverse African Hunter-Gatherers. Cell. 150 (3): 457-469.
2. Tennessen, J. et al. 2012. Evolution and Functional Impact of Rare Coding Variation from Deep Sequencing of Human Exomes. Science. 337 (6090): 64-69.
3. Thomas, B. 2012. A Recent Explosion of Human Diversity. Acts & Facts. 41 (9): 17.
4. Interestingly, the study also found unique variants within Pygmy genomes, which makes sense since they live far from Tanzania in Cameroon. The team identified specific variations that affect pituitary gland development, which regulates height-determining hormones.
5. Thomas, B. 2011. Identifying Neandertal ManActs & Facts. 40 (3): 18.
6. Morris, H. 2004. God and the Nations. Green River, AK: Master Book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7090/ 

출처 - ICR News, 2012. 10. 31.

미디어위원회
2012-06-18

키르벳 퀘야파에서 발견된 유대인의 제례 예식의 증거. 

(Evidence of Cultic Activity in Judah Discovered at Khirbet Qeiyafa)

AiG News 


     키르벳 퀘야파에서 발굴된 인상적인 요새는 3,000년 전에 블레셋과 전쟁을 벌였던 유대인들의 부강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Bible History Daily2012. 5. 8)


   키르벳 퀘야파(Khirbet Qeiyafa)은 사울 왕 시기에 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Goliath)을 물리쳤던 장소인 엘라 골짜기(the Valley of Elah)를 내려다 보고 있는 고고학적 발굴 장소이다. (키르벳 케야파는 예루살렘 남서쪽 약 3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곳에서 엘라 골짜기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가까운 곳에 블레셋의 중요한 도성인 가드가 있다). 2008년 그곳에서의 발견은 3000년 전 유대인들은 강력한 중앙집권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도전이 되고 있었다. 키르벳 퀘야파는 새로 확립된 (성경의 사울 왕이나 다윗 왕일 수 있는) 유대 왕권의 통제 하에 있었던 강력한 요새였음을 새로 발견된 증거들은 가리키고 있었다.

”이것은 고고학자들이 유대의 다윗왕 시대에 요새화된 도시를 발굴해낸 최초의 사례이다” 히브리어 대학의 요세프 가핀켈(Yosef Garfinkel) 교수는 설명한다. ”예루살렘에서도 다윗의 기간 동안 명백하게 요새화된 도시를 발굴하지 못했다. 따라서 다윗 왕에 관한 성경적 기록을 거부하는 여러 제안들과 다윗 왕이 신화적 인물이라는, 또는 작은 부족의 지도자에 불과했다는 주장은 이제 잘못된 것으로 보여진다.”


.역사적인 엘라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삼상 17:19), 고대 블레셋 국경 지역인 키르벳 퀘야파(Khirbet Qeiyafa)의 요새화된 도시.[1]


다윗과 골리앗이 대적했던 시기에 블레셋은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를 지속해오고 있었다. BC 1020~980년 경으로 평가된 키르벳 퀘야파는 블레셋 국경 근처에 위치한 요새화된 도시였다. 아마도 블레셋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던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새였다.

키르벳 퀘야파에서 발견된 문서에 통치자의 이름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그러나 그 문서들은 블레셋이나 가나안 문자들이 아닌, 고대 히브리 문자로 쓰여져 있었다. 가나안 지역에서 발견된 전형적인 유물과는 다르게 키르벳 퀘야파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유대인 유물에서 뚜렷이 보여지는 두 가지 특징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종교적 유물에 조각된 형상들이 현저하게 부족했으며, 쓰레기에서 돼지 뼈들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지난 5년에 걸쳐 수 천 개의 동물 뼈들이 발견되었는데, 염소, 양, 소의 뼈들이었고 돼지 뼈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문화재청의 가핀켈과 사아르 가노르(Saar Ganor)는 그들이 발견한 새로운 종교 유물들을 3000년 전의 건축 양식과 유대인들의 종교적 관행에 대한 최초의 고고학적 증거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 장소가 솔로몬의 성전보다 앞선 연대이지만, 두 개의 작은 ‘휴대용 신당(portable shrines)’에는 사자와 새들이 새겨져있는 우아한 앞면과 정교한 외부 건축학적 세부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그 모형이 솔로몬 성전에 대한 성경적 세부 장식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바닥 왼쪽에 사자 머리와, 입구 위쪽에 세 마리의 새들, 아름다운 주름이 있는 휘장을 가진 정교한 앞면과 기둥을 가진 점토로 된 작은 휴대용 신당.[2]


그러한 휴대용 신당은 그 시대에 흔한 종교적 물건이었고, 대게 우상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비어 있었다. 가핀켈은 말한다. ”수 년 동안(2008년 이후) 양, 염소, 소 등을 포함하여 수천의 동물 뼈들이 발굴되었다. 그러나 돼지 뼈는 없었다. 이제 우리는 여러 제사 기구들이 들어있던 3개의 제사를 드리던 방을 발굴하였다. 그러나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이 새겨진 조각상(figurine)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것은 키르벳 퀘야파의 사람들이 두 가지 성경적 금지사항, 즉 돼지고기와 새겨진 형상을 금지했던 것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가나안 사람들이나 블레셋 사람과는 다른 신을 숭배했음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고고학자들은 키르벳 퀘야파의 거주자들은 유대인이었을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오스트라카(Ostraca)는 고대인들의 문자가 기록되어 있는 도자기 파편이다. 이들 문자를 해독한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의 에밀 퓌에시(Émile Puech)에 따르면, 키르벳 퀘야파의 오스트라카는 강력한 새로운 국가가 출현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문장은 더 높은 권위에 대한 인정의 필요성을 표현하고 있었고, 왕의 자리에 오른 인물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3] 세금과 법적 사항들과 관련된 여러 오스트라카는 작은 족장의 권력을 넘어서는 중앙집권 권력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퓌에시의 해석은 사울 왕 또는 다윗 왕의 통치와 적합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완전한 기록된 계시이기 때문에, 성경의 상세한 내용 모두가 고고학적으로 발견되지는 않을 것이며, 성경을 증명하기 위해서 고고학적 발굴에 의존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발견되고 있는 고고학적 증거들은 성경적 역사의 사실성을 확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오래 전 사람들이 남겨놓은 이러한 유물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며, 그들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 하에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키르벳 퀘야파의 돌들은 고대 유대 사람들이 이웃 민족들과는 다르게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며 살았었음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성경으로 보존하시기 위해 선택받았던 사람들로써, 하나님 계획의 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이 민족을 통하여 다윗 왕이 태어났고, 그의 후손으로 이 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던 것이다. 



Footnotes
[1] Image from Khirbet Qeiyafa Archaeological Project through

 http://www.huffingtonpost.com/2012/05/10/khirbet-qeiyafa-archaeology_n_1504722.html.

[2] Image from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through

http://www.diggingsonline.com/pages/rese/arts/other/2012/qeiyafa01.htm.

[3] http://www.bib-arch.org/bar/article.asp?PubID=BSBA&Volume=38&Issue=3&ArticleID=4 

 

*관련기사 : 다윗왕 시대의 고대 도시 발견 (2012. 6. 4. CGN 투데이)

http://news.cgntv.net/player/home.cgn;jsessionid=FA0568926D055CE6AD24C3AA046F741F?c=100&v=8858

이스라엘 학자 "다윗왕 궁전터 발견" 주장 (2013. 7. 22.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30722001500009

다윗 왕 관련 고고학적 발견 (2016. 9. 22. CTS TV)

https://www.cts.tv/news/view?ncate=CATTV&dpid=206812

성경의 ‘시글락’으로 추정되는 장소 발견 (2019. 7. 10. KRM)

https://krmnews.tv/2019/07/10/ziklag/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12/05/19/news-to-note-05192012

출처 - AiG News, 2012. 5. 19.

박창성
2012-02-23

하나님의 말씀, 성경


성경은 사람이 기록한 것인데, 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까?

성경은 40명 이상의 저자들이 1500여 년에 걸쳐서 기록한 66권(구약 39권, 신약 27권)의 책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 현대인들이 출판한 책들 중에도 이와 같은 형식의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황순원의 ‘소나기’ 등, 여러 작가들의 단편소설들을 모아서 하나의 책을 만든 경우입니다. 이 경우 ‘메밀꽃 필 무렵’과 ‘소나기’라는 책은 내용상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단순히 한 권의 책 안에 같이 들어있을 뿐이기 때문에, 서로 주제가 다르고, 주장하는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책들과는 다릅니다. 대부분의 성경 저자들은 직업, 신분뿐만 아니라, 활동한 시기, 장소가 서로 다르고, 서로 만난 일이 없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마치 한 사람이 쓴 한 권의 책처럼 서로 상충되지 않고 일관된 주제와 통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책들이 성경 안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와 비중이 있어서, 어느 한 권의 책이 빠질 경우 의미가 약화되거나 내용이 서로 연결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원저자가 따로 있고, 그 원저자가 시대에 따라 목적에 맞는 적절한 사람들을 택하여 성경을 기록케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행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원저자가 누구겠습니까? 바로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저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경험이 하나 있습니다. 20여 년 전 처음으로 중고차를 하나 구입해서 애지중지하며 타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차가 멈춰버렸습니다. 그래서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축전지(battery)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축전지에 연결된 전깃줄을 풀고 닦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공구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그것을 주우려고 손을 깊이 넣었는데, 갑자기 살이 타는 냄새와 함께 뜨거운 통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손목시계의 금속 줄에 전기가 합선되면서 순간적으로 불덩이가 되어 손목에 화상을 입게 된 것이었습니다.

한참 아픔을 가라앉힌 후, 차를 살 때 딸려온 매뉴얼(사용자 설명서)을 꺼내서 축전지에 대한 부분을 읽으려하였는데, 그 순간 첫 페이지에 적혀있는 경고가 저의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축전지를 다룰 때는 금속 목걸이와 시계를 풀어놓으시오.” 아! 이 매뉴얼을 미리 읽어보았더라면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을, 내 생각대로 하려다가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전자제품을 구입하면 매뉴얼을 잘 보관해 두었다가 고장이 났을 때, 고치기 전 미리 읽어보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자제품을 만든 회사가 매뉴얼을 꼭 딸려 보내듯이, 하나님께서도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매뉴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성경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매뉴얼과 매우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우선 전자제품의 매뉴얼에 누가 만들었는지를 명시한 제조원이 기록되어 있는데, 성경에도 창세기 1장 1절(”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만드셨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또, 매뉴얼에는 제품을 만든 목적과 어떤 부품을 써서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설명하고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우주와 인간을 만드신 목적과 과정이 기록되어 있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 가르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매뉴얼 끝 부분에는 고장이나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고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성경에도 고장 난 것을 고치는 것에 대한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에 대한 메시지로서, 성경 전반에 걸쳐 가장 중요하게 선포되고 있는 주제입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는 다른, 고장 난 상태입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 8:21-22)

성경에는 고장 난 것을 치유하는 단 한 가지 방법만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고장을 일으킨 원인을 제공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피흘려 돌아가시고, 우리를 원상태로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매뉴얼인 성경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실패하지 않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줄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시 2:11-1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306

참고 : 4423|4395|4401|4394|3350|3330|3332|3335|3337|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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