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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미디어위원회
2008-12-23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의 나이는? 

(Contradictions: Two Ages at Once Just how old was Ahaziah anyway?)

Stacia McKeever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이더라” (왕하 8:26)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사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요 오므리의 손녀더라” (대하 22:2)

아하시야(Ahaziah)가 왕이 될 때에 나이는 22세 인가, 42세 인가? 이러한 불일치는 하나의 필사 오류(a copyist error) 때문이다. 아하시야의 진정한 나이는 더 자세한 조사들로부터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열왕기하 8:17절을 보면, 아하시야의 아버지 여호람은 32세에 왕이 되어, 8년 동안을 치리하였다. ”여호람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삼십 이세라 예루살렘에서 팔년을 치리하니라”(왕하 8:17). 여호람이 죽을 때 그의 나이는 40세였다. 따라서 아들인 아하시야가 42세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의 나이는 22세였다.  

구약의 사본들은 수작업을 통해 손으로 필사되었음을 기억하라. 필사오류는 성경의 진정한 모순의 증거가 아니다.  


*참조 : Two Ages at Once

https://answersingenesis.org/bible-timeline/genealogy/two-ages-at-once/

 How Old Were Ahaziah and Jehoiachin When They Began Their Respective Reigns?

https://apologeticspress.org/how-old-were-ahaziah-and-jehoiachin-when-they-began-their-respective-reigns-744/

Inspired Writers and Competent Copyists

https://apologeticspress.org/inspired-writers-and-competent-copyists-209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08/12/15/contradictions-two-ages-at-once

출처 - Answers, 2008. 12. 15.

미디어위원회
2008-11-24

사랑의 하나님은 왜 여리고성 사람들의 진멸을 명하셨는가? 

(Contradictions : Slaughter at Jericho.  Could the loving God of the New Testament order 

the complete destruction of the inhabitants of Jericho found in the Old Testament?)

Steve Fazekas 


     여리고(Jericho) 성에 거주했던 사람들에 대한 대량학살(massacre)은 주의 깊은 독자들에게 여러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고등 비평가들은 오랫동안 성경과 고고학적 자료들 사이에 충돌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단지 과장되고 포장된 신화(myth)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일부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신약성경의 신은 사랑, 관용, 인내의 신인 반면에, 구약성경의 여호와는 변덕스런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회유와 피의 희생을 요구했던 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무신론자들은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은 전쟁광이고, 여성들과 천진난만한 아이들까지도 죽이는 잔인한 살인자라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기독교인들에게 ‘입증’하기 위해서 성경의 이 부분을 사용한다. 그래서 성경의 하나님은 자신의 커다란 자아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예배와 존경을 강요하는 경배할만한 가치가 없는 신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많은 신실한 기독교인도 이 성경 구절의 부끄러움 없는 적나라한 기록에 대해서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이 부분은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과 이 세상의 존재하는 악 사이에 관계를 정립하는 데에 갈등을 야기시키고 있다. 특별히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진멸하라고 말씀 부분에서 그러하다.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적에 전통적인 미국 복음성가를 노래하였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 전투를 하였네, 여리고, 여리고,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 전투를 하였네, 성벽이 무너져 내렸네”

물론 주일학교에서 양각 나팔을 부는 흉내를 내면서 의자들 주위를 행진했을 때, 우리는 분명히 좋은 사람들 편에 있었다. 반면에 여리고성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비록 그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도시를 잃게 되는 악한 사람들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우리는 그 죽음의 행진에는 냉정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우리들의 어린 시절 연극에 새롭고 깊은 의미를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그 구절을 숙고해보자 :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수 6:21)

비록 우리가 여러 면으로 해석해 보려고 노력해보지만, 약탈을 일삼는 유목민인 이스라엘 군대를 이끄는 여호수아의 발아래 짓밟히고 있는 여리고성 사람들이라는 딜레마를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을 직접적인 범죄로부터 피할 수 있게 해드리는 어떤 종류의 변형된 허락 또는 금지로 여길 수도 없어 보인다. 사실 그러한 행동은 특별한 목표를 가진 주의 깊게 계산된 행동이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명령하셨고(신 7:2), 여호수아는 그것을 수행했다(수 6:21).

이 이야기의 배경은 ”아모리 족속의 죄악(iniquity of the Ammorites)”으로 표현된 창세기 15:16절과 관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나안 땅을 점령했던 민족들은 문화와 관습에 있어서 끔찍할 정도로 타락하고 부패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즉각적으로 임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세의 기록으로부터 하나님이 오랜 인내를 끝내시고 이제 행동을 하시기 위하여 준비하고 계시는 중이셨음을 알 수 있다.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레 18:25)

모세의 글들 여러 곳에서 아모리 족속은 팔레스타인(블레셋) 전체를 대표하는 족속으로 여호와께서 여기고 계시는 것으로 나타난다. 더군다나 그들은 너무도 타락하여 마치 땅도 스스로 토하여낼 정도로 부패했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최근 우가릿(Ugarit)에서 발견된 문서들은 그곳이 우상숭배, 남색, 수간, 마법, 아이 제물(child sacrifice) 등으로 가득했다는 것이 밝혀져 성경 기록을 확증해주고 있었다. 따라서 여리고의 각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우상숭배, 타락한 문화, 역병 등을 전해줄 수 있었다. 우리는 신명기 18:9–12절의 말씀을 어제 뉴스를 읽는 것처럼 무감동과 무관심 하에 읽어서는 안 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신 18:9–12)

부모들은 그들의 아이를 몰록(Molech, 몰렉) 신에게 불로 태워 드렸다. 유아를 희생제물로 드리는 행위는 고대의 한 종족에 있었던 불행한 관습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자신들 스스로를 짐승들로 여기며 타락했던 사람들에 의해서 저질러지던 비틀린 의식이었다. 가나안의 문화는 오늘날 낙태할 수 있는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그러한 수준의 종교적 행사가 아니었다.

여리고의 문제는 쉽게 풀려질 수 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그 분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고 계셨다. 모세에게 스스로 나타나신 하나님은 그 분의 성품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 34:6-7)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오래 참으심, 공평, 자비, 인내 등에서 볼 수 있지 않은가? 하나님은 반사적인, 그리고 변덕스러운 행동을 결코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그의 창조물에 대한 우주적 권위를 가지고서,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때에 그 분의 뜻을 행하시는 창조주로서의 권리를 남겨두고 계신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탄원하면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 18:25)라고 주장했을 때 그랬다. 따라서 그 문제의 답은 성경에 나타나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특성에 달려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에 의한 대량학살이 정당성이 있었던 때가 일찌기 있었는가? 대답은 틀림없이 ‘예’이다. 왜냐하면 전 지구적인 홍수 심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고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오랜 참으심은 언젠가 심판하심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을 바로 알자(The Knowledge Of The Holy)’에서 토저(A. W. Tozer)는 말한다 :

”어느 곳에서든지 기독교 교회가 소멸되어가기 전에, 먼저 교회의 가장 근본적인 신학에 있어서 부패가 일어난다. 교회가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라는 질문에 잘못된 대답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비록 교회가 건전한 명목상의 교리를 고수하고 있을지라도, 실제적인 행동 교리들은 잘못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 신도들이 실제의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음흉하고 치명적인 종류의 이단이다.”     

여기 바울 사도의 말씀은 우리에게 성경적인 하나님의 특성과 성품을 생각해보도록 하는데에 도전이 되고 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롬 11:22)


*참조 : Does the Bible condone torture?

https://creation.com/torture

Is the Bible an immoral book?

https://creation.com/bible-immoral-book

Is the Bible ‘evil’?

https://creation.com/evil-bible-fallacies

Why would a loving God send people to Hell?

https://creation.com/hell

What about bad things done by the Church?

https://creation.com/bad-things-by-church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08/10/27/contradictions-slaughter-at-jericho 

출처 - AiG–U.S. October 27, 2008.

미디어위원회
2008-11-11

아벨은 양을 제물로 드렸으므로, 육식을 하고 있었는가?

 (Contradictions: Meat of the Matter. 

Was Abel eating meat soon after the curse when he wasn’t supposed to be (Genesis 1:29), 

since he kept the flocks and sacrificed an animal in Genesis 4:2–4?)

Bodie Hodge 


이 주장되는 모순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지 않은 행동을 아벨(Abel)이 하고 있었다는 주장으로부터 온다. 관련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창 1:29)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창 4:2-4)

이것이 하나의 모순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식물을 먹으라고 명령받았던 아벨이 제물(고기)을 먹었다고 가정하고 있다. 마태복음에는 아벨이 의인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는 창세기 1:29절에서 채식을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지 않았음에 분명하다.[1]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 가리라” (마 23:35)

그러므로 아벨이 고기를 먹었다고 가정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이것은 성경의 모순이 아니다.

그러면 왜 아벨은 양들을 치고 있었을까? 우리는 양들로부터 털, 우유, 가죽, 죄를 위한 희생제물 등과 같은 많은 다른 것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영양상태가 좋은 살찐 양은 다른 동물들 보다 훌륭한 털을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매우 귀중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아벨이 살찐 양을 희생하였을 때, 그는 가장 좋은 것을 드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피의 제물이었다. 이 제물은 하나님이 열납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했던 피의 희생을(창 3:21), 그래서 그들의 죄를 덮으셨던 일을(히 9:22) 따라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 구절은 아벨이 제물을 먹었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아벨이 육식을 하였다고 가정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의 죄를 덮으시기 위하여 (가죽옷을 얻기 위해) 동물들을 희생하였을 때, 아담과 하와가 그들을 먹었다고 볼 수 없다. 아벨은 하나님이 하셨던 일을 따라했기 때문에, 그가 희생 제물을 먹었을 것이라고 믿을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최초로 고기를 먹게 되었던 때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홍수 직후에 방주에서 나와서 그들이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드리고 나서였을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육식도 허락하셨다.(창 8:20-9:3). 비록 홍수로 멸망해버린 홍수 이전의 사람들 중 일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일찍부터 육식을 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Footnotes
It wasn’t until Genesis 9:3 that mankind was permitted to eat meat.

 

*참조 : The Scriptural advent of animal carnivory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5_1/j15_1_69-75.pdf

The carnivorous nature and suffering of animals
http://creation.com/the-carnivorous-nature-and-suffering-of-animal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08/10/08/contradictions-meat-of-the-matter 

출처 - AiG, 2008. 10. 8.

미디어위원회
2008-11-10

성경은 라합의 거짓말을 칭찬하고 있는가? 

(Contradictions : A Righteous Lie? 

Why was Rahab praised for lying in James 2:25 

when lying is forbidden in the Ten Commandments?)

Bodie Hodge 


     이 내용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땅을 탐지하기 위해서 여호수아가 정탐꾼들을 보내는 여호수아 2:1–16절에서 나온다. 라합(Rahab)은 정탐꾼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그들을 숨겨주며 추적자들을 다른 방향으로 가도록 유도하였다. 추적자들과 대화하는 동안에, 그녀는 정탐꾼들이 있는 곳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정탐꾼들을 지붕에 숨겨준 후에 추적자들을 따돌리고 있었다. 그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으로 가만히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수 2:1)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 하였으나 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수 2:3-6)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따르는 사람들이 너희를 만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 사흘을 숨었다가 따르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 길을 갈찌니라” (수 2:16)

야고보서 2장에서 라합의 행동은 의로운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 2:25) 

첫째로 지적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 구절 어디에서도 정탐꾼들에 관해 거짓말을 한 라합의 행동이 칭찬받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녀는 사자를 접대하고 다른 길로 나가게 한 행동으로 칭찬받고 있었다. 또한 히브리서 11:31절에서도, 라합의 믿음은 정탐꾼들을 평안히 영접한 것으로 칭찬받고 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히 11:31).

다시 한번 그 구절에서도 거짓말에 대해서 칭찬하지 않았다. 라합은 그녀의 거짓말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다른 행동으로 즉, 1)정탐꾼들을 유숙하게 해주었으며 2)안전한 방향으로 정탐꾼들을 보낸 행동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행동들로 인해 야고보는 그녀를 의로운 행동을 하였다고 간주한 것이었다. 따라서  야고보서에 영감을 불어넣으신 하나님께서는 라합의 거짓말이 정당하다고 말씀하신 것이 결코 아니었다. 단지 그녀의 다른 행동들이 의로웠다는 것이었다.

거짓말은 9번째 십계명을 어기는 것이고, 어떤 상황 하에서 하던지, 어떤 사람에 대하여 하던지 간에 하나님에 의해서 결코 묵인되는 것이 아니다. ‘의로운 거짓말(righteous lie)’ 같은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합은 그 당시에 성경의 하나님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제한적 이해를 기초로 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의로운 행동을 하였다. 라합의 인생은 심령이 변화되고 삶이 변화된 하나의 증거가 되고 있다. 한때 가나안의 사람으로 기생이었던 여자가 변화되어 시온의 딸이 되었던 것이다.

이 전체 이야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이방인이었고 매춘부였던 라합이 보아스(룻의 남편)를 낳고, 다윗왕의 혈통으로 들어오게 되어 이스라엘의 어머니로서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의 놀라우신 겸손을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기자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었던 것이다 :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히 2:11)


*참조 ; A Righteous Lie? 

https://answersingenesis.org/morality/a-righteous-lie/

Is Lying Justified?

https://answersingenesis.org/sin/is-lying-justified/

Lying—a survival strategy?

https://creation.com/lying-as-survival-strategy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08/11/03/contradictions-a-righteous-lie 

출처 - AiG, 2008. 11. 3.

미디어위원회
2008-10-06

겨자씨는 모든 씨들 중에 가장 작은가?

(Is the mustard seed the smallest of seeds?)

Daryl E. Witmer 


주장되고 있는 성경의 문제.

마태복음 13:31,32절에서 예수님은 겨자씨(mustard seed)는 다른 모든 씨들보다 작은 것이지만, 그것이 완전히 자라면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충분히 커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 13:31,32) 


한 작은 겨자나무(mustard plant)

오늘날에는 겨자씨보다도 더 작은 씨들도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예컨대 난초 씨(orchid seed)는 너무나도 작고 미세해서, 그것은 거의 먼지와도 같다. 또한 겨자씨가 새의 둥지를 지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큰 나무로 자라날 수 있는지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난초(orchid)

만약 (하나님과 같으신) 예수님이 겨자씨에 관한 말씀이 틀렸다면, 그가 하신 다른 말씀들을 우리는 신뢰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슨 근거로 성경이 과학적 혹은 역사적 문제들에 대해서 신뢰할 만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합리적인 해결책

예수님이 겨자씨를 세상의 모든 식물 씨들과 비교해서 말하지 않고, 한 지역의 팔레스타인 농부가 ”자기 밭에 갖다 심을 수 있었던” 씨들과 비교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흑겨자 씨(black mustard seed, Brassica nigra = Sinapis nigra)는 1세기까지 그 지역의 농부들이 재배했던 식물들 중 가장 작은 씨였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현대의 많은 백과사전들이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흑겨자 씨는 전형적으로 3.7m 높이까지 자라나고, 새들이 깃들일 만큼 충분히 크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성경은 단순한 진리를 전달하기 위하여 자주 일상적 용어들을 사용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에도 전문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실제로 내려가는 것이 아님을(지구의 자전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태양이 진다”라고 흔히 말한다. (방송국에서는 ‘해 뜨는(일출)’ 시간과 ‘해 지는(일몰)’ 시간으로 보도한다).

사람들이 미국 메인(Maine) 주에 있는 우리를 방문하러 올 때, 우리는 그들을 차에 태워 수많은 호수들 연못들을 통과하여 무스헤드호(Moosehead Lake)로 데리고 가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그들에게 ”모든 호수들 중에 가장 큰 호수”라고 설명해 줄 것이다. 물론 우리의 방문객들은 나의 말을 전 지구에서 가장 큰 호수가 아니라, 그 지역에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으로 알아들을 것이다. 그들은 나의 말에 대한 신뢰성을 거의 의심하지 않는다.

마태복음 13장의 내용은 예수님께서는 식물학자들의 국제 학술대회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평범한 청중들에게 설교하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사실들을 과학적, 역사적, 그리고 기술적으로 올바르게 접근한다면), 이 구절을 가지고 예수님이나 성경을 의심하기 위한 근거라고 끈질기게 주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성경의 난제들을 다루는 적절한 원칙들

▶ 문맥에서 본문을 살펴보라. 특별한 구절 또는 문장에 대한 역사적 성경적 맥락을 고려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일 수 있다. 성경의 본문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경을 인용하거나 언급하는 사람들이 모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 애매한 것들은 명백한 것들에 종속시키라. 성경은 많은 것들에 대하여 명쾌하고 분명하다. 그럼으로 항상 분명한 것으로 하여금 분명하지 않는 것을 푸는 데에 길잡이가 되게 하라. 다시 말하면 성경의 명확함을 신뢰하라. 옛 격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분명한 것이 되게 하고, 분명한 것이 중요한 것이 되게 하라.”

▶ 부분적인 설명, 인용, 그리고 특별한 관점들을 참작하라. 보고나 인용이 단지 100% 완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항상 틀렸다고 추정하지 말라. 

▶ 인용과 인용문의 차이를 인정하라. 구약의 성경 구절들은 인용부호를 달지 않고도 신약에서 많이 인용되고 있다. 성경 저자가 오늘날 자주 사용되는 것과 같은 따옴표를 사용한 정확한 단어 대 단어의 인용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인용이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가? 

▶ 성경은 문학적 기법들을 도입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은유, 유추, 상징, 우화, 과장, 비유들이 다 이런 예들이 될 것이다.


*참조 : Mustard Seed Mistake or Misunderstanding?

https://apologeticspress.org/mustard-seed-mistake-or-misunderstanding-3738/

Get Answers: Countering the Critics

https://creation.com/countering-the-critics-questions-and-answers

Countering the Critics Questions and Answers

https://creation.com/countering-the-critics-questions-and-answers

Apologetics Press : Alleged Discrepancies

https://apologeticspress.org/category/alleged-discrepancie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hristiananswers.net/q-aiia/mustardseed.html 

출처 - ChristianAnswers.net

미디어위원회
2008-10-04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성경의 모순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If the Bible is the Word of God, how can you explain the contradictions of the Bible?)

Ray Comfort


    성경은 그 안에 많은 모순들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4 복음서는 십자가에 붙어있었던 팻말에 대해 서로 다른 4가지의 설명을 하고 있다.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마 27:37)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막 15:26)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눅 23:38)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요 19:19).

그러므로 모순점을 찾고 있는 사람들은 ”보라, 성경은 오류로 가득하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리고 성경을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서, 전적으로 거부하기로 결정할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4복음서들을 조화시키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만일 그 팻말이 단순하게 ”이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고 쓰여져 있었다면 전혀 모순이 없다. (더 상세한 것을 위해서는 다음 글을 보라: Why do all four Gospels contain different versions of the inscription on the Cross?)

두 진리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신뢰될 수 있다 :

1)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딤후 3:16)

2) 성경의 기초적인 한 법칙은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을 ”가려내기” 위해서, 그의 말씀인 성경에 외견상의 모순들을 포함시키셨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눅 10:21).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 (고전 1:27). 

만일 어떤 불경건한 사람이 스스로 교만하여져서 복음에 순종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리고 대신 성경의 오류와 모순들을 만들어내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자신의 교수대를 만들기에 충분한 목재와 재료들을 주시는 것이다.

이런 놀라운 원리는 유다 왕 시드기아(Zedekiah)의 포로됨에 대한 설명에서 잘 나타나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시드기아 왕에게 하나님이 그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시드기야는 자기가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질 것을 전해 들었다.(렘 32:4).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취할 것이며 유다 왕 시드기야는 갈대아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운바 되리니 입이 입을 대하여 말하고 눈이 서로 볼 것이며 그가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어가리니 시드기야가 나의 권고할 때까지 거기 있으리라..” (렘 32:4).

이것은 예레미야 39:5-7절에서 확인되는데, 그는 포로가 되어 느브갓네살에게 보내졌고, 그때 그들이 ”그를 바벨론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그를 사슬로 묶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바벨론 왕이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목전에서 그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인을 죽였으며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 하여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렘 39:5-9).

그러나 에스겔 12:13절에서는 하나님이 친히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내가····그를 끌고 바벨론에 이르리니 그가 거기서 죽으려니와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 (겔 12:13)

여기 성경을 공격하고 반대할 수 있는 재료가 있다. 그것은 분명히 성경의 오류처럼 보인다. 성경의 세 구절들은 왕이 바벨론으로 끌려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그가 바벨론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어떤 곳으로 끌려갔는데 어떻게 그 곳을 보지 못할 수가 있는가? 라고 말한다. 만약 시드기야가 눈이 멀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말처럼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히 기록된 대로 일어났다. 시드기야는 느브갓네살을 대면했고, 목전에서 그의 아들이 살해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서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고 가기 전에 그의 두 눈을 뽑았다.(렘 39:6,7). (더 많은 자료를 원하면 다음을 보라: Zedekiah in the Christian Answers Bible Encyclopedia.) 

이것이 성경의 많은 ”모순들”처럼 보이는 것들의(다윗은 얼마나 많은 말들을 가졌는가? 예수님의 부활 후에 무덤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누구였는가?... 등과 같은) 뒤에 있는 근본적인 원칙이다.  

하나님은 교만하고, 오만하고, 자기 지식을 자랑하고, 자기 의를 자랑하는 자들에게는 상황을 역전시켜 버리신다. 그가 거만하게 하나님의 나라 밖에 서서, 그가 생각하는 성경의 불신적 증거들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믿음을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고, 겸손하게 허리를 굽히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도록, 영생의 문을 낮추신다는 것을 그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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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 Get Answers: Countering the Cr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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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tering the Critics Questions and Answers

https://creation.com/countering-the-critics-questions-and-answers

Apologetics Press :: Alleged Discrepancies

https://apologeticspress.org/category/alleged-discrepancie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hristiananswers.net/q-comfort/contradictions-bible.html

출처 - ChristianAnswers.net

미디어위원회
2008-10-03

이새(다윗 왕의 아버지)는 몇 명의 아들을 두었는가?

(How Many Sons Did Jesse (Father of King David) Have?)

Daryl E. Witmer 


주장되는 성경의 모순

사무엘상 16:10,11절은 분명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버지 이새(Jesse)가 적어도 8명의 아들을 두었고 그중 다윗은 여덟 째였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역대상 2:13-15절에 이새는 일곱째로 다윗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삼상 16:10,11)

”이새는 맏아들 엘리압과 둘째로 아비나답과 세째로 시므아와 네째로 느다넬과 다섯째로 랏대와 여섯째로 오셈과 일곱째로 다윗을 낳았으며” (대상 2:13-15)

어떤 본문이 맞는가? 이새는 실제로 몇 명의 아들을 두었는가? 그리고 만일 한 곳의 기록과 다른 곳의 기록이 서로 모순된다면, 성경은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


.다윗이 그의 아버지와 7명의 형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무엘에 의하여 기름부음(안수)을 받고 있다.


합리적인 해결책

두 기록 모두 정확하다. 역대기 저자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새의 아들 중 한 명은 다윗의 통치 동안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전에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역대상 2:13-15절에는 이새가 7명의 아들들을 두었다고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에는 단순히 (다윗을 포함하여) 그의 일곱 아들과 두 딸의 이름들이 거명되고 있다. (”Jesse was the father of Eliab his firstborn; the second son was Abinadab, the third Shimea, the fourth Nethanel, the fifth Raddai, the sixth Ozem and the seventh David.” - 1 Chronicles 2:13-15. NIV)

만약 이새의 아들들 중 한 명이 결혼 전에 일찍, 혹은 자녀가 없이, 아니면 특별히 주목할 만한 어떤 일을 하지 않고 죽었다면, 그의 이름이 역대상의 기록에서 누락된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자녀들만 거론되는 것은(공식 족보를 제외하고) 매우 흔한 관행이다.

여기 문제의 두 성경 구절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난제는 해결될 수 있고, 성경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데에 사용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정확 무오한 계시로서의 성경의 권위는 손상되지 않는다.


성경의 난제들을 다루는 적절한 원칙들

성경은 100% 신뢰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많은 수의 성경 구절들이 도전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적어도 처음에는)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의’ 구절들은 오래 전에 제기되어서, 신중하게 고려되었고, 지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되었다. 새롭게 제기되어지는 난제들은 없다. 문제가 있어 보이는 성경 본문들을 다룰 때에, 명심해야 할 몇 가지 원칙들이 있다 :


▶ 성경에서 난해한 문제를 만날 때에 우리는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한다. 하나는 성경에 설명하기 어려운 약간의 본문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는 전제를 선택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성경은 여전히 많은 진리를 내포하고 있지만, 성경은 오류투성이라는 전제를 선택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선입관은 자주 결정적임이 입증되고 있다. 

▶ 만일 우리가 전제로서 성경은 사소하지만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성경은 자동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잃어버리게 된다. 만일 성경이(역사와 과학의 문제에 관하여서까지도) 100% 정확하지 않다면, 그때는 100% 의심될 수밖에 없다. 성경이 무오하지 않다면, 성경은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고, 성경에 오류가 있다면, 성경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뢰될 수 없다.
▶ 성경은 확실히 100%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으며, 권위가 있음을 스스로 표명하고 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 예수님은 일관되게 모든 성경은 신뢰할 수 있고 권위를 가지는 것으로 말씀하셨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8)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눅 16:17)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요 10:35)

▶ 구절의 문맥과 역사적인 단어들의 용법은 많은 성경의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들을 푸는 데에 관건이다.

▶ 필사 오류와 전달상의 실수들은 성경의 오류를 의미하지 않는다. 필사자들의 여러 오류들은 확인되어왔고, 분류되었고, 합리적으로 설명되어 왔다. 이러한 것들이 원본(성경)의 오류로서 주장될 수는 없다.


*참조 : Jesse's Missing Son

https://apologeticspress.org/jesses-missing-son-799/


Helpful Resources
1. Dr.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 (SP Publications, 1992).
2. Dr. Gleason Archer, Encyclopedia of Bible Difficulties (Zondervan, 1982).
3. Erwin W. Lutzer, Seven Reaons Why You Can Trust the Bible (Chicago: Moody Press, 1998).
4. Josh McDowell, A Ready Defense: Over 60 Vital 'Lines of Defense' for Christianity (San Bernardino, California: Here's Life Publishers, 1990).


MORE INFORMATION ABOUT THE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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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 scientific evidence for the reliability of the Bible
About the Bible

When we say that the Bible is the Word of God, does that imply that it is completely accurate, or does it contain insignificant inaccuracies in details of history and science? Answer
Discovering the Bible
(videos)
Canon
Apocrypha 

Visit AIIA Institute - ChristianAnswers.Net/aiia


Author: Daryl E. Witmer of AIIA Institute. *The problems of traditional chronology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2/j21_2_44-47.pdf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hristiananswers.net/q-aiia/jessesons.html 

출처 - ChristianAnswers.net

미디어위원회
2008-09-20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의 나이는?

(How old was Jesus when He died?)

Stacia McKeever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을 때의 나이가 33세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더 깊은 연구에 의하면, 예수님은 37살 경에 돌아가셨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은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Caesar Augustus)가 천하로 다 호적하라고 명령했던 시기에 태어나셨다.(눅 2:1-7). 그때 구레뇨(Cyrenius)는 시리아(수리아)의 총독(governor of Syria)으로 있었다. 이 일은 헤롯왕이 죽기 전에 일어났다.(마 2:19). 헤롯왕의 죽음은 역사적으로 BC 4년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 이전 해(또는 2년 전)인 약 BC 5년경에 태어나셨다.

세례 요한은 로마의 황제 디베료 가이사(티베리우스 카이사르, Tiberius Caersar)가 즉위한지 15년째 되던 해에 주님의 길을 예비하기 시작하였다.(눅 3:1). 이것은 30번째 희년(year of the thirtieth Jubilee)이었고, 그때 예수님의 나이는 30세쯤 되셨다.(눅 3:23).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그에게 오시기 전 얼마의 기간 동안 세례를 베풀었고, AD 27년에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다.(마태복음 3장, 누가복음 3장).

AD 29년은 요한이 사역을 시작한지 4년째 되는 해였다. 이 시점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후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그의 첫 기적을 일으키시며 그의 공생애를 시작했던 시점이었다. 제임스 어셔(James Ussher)에 의하면, 예수님의 사역을 위해 4년의 준비 기간이 있었다는 것은 비합리적이지 않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그러한 많은 위대한 일들을 행하시기에는 기간이 너무 짧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은 상당 기간 준비되었다. 세례 요한은 천사 가브리엘이 그의 부친 사가랴에게 확증했던 모든 것들을 완수하는 데에 기적의 도움 없이, 그 일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바울의 다음 말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 세례 요한에 의해서 회개의 말씀이 전파되던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전체 기간은 짧은 기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요한이 그 달려 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으니” (행 13:24-25) [1]

이 시점에서부터 4 번의 분명한 유월절(Passovers)들이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나타나있다. 첫 번째 유월절 동안에 예수님은 성전을 깨끗이 청소해버리셨다.(요 2:12-17). 이 일은 헤롯왕이 BC 17년에 성전 건축을 시작한지 46년째에 일어났다.(요 2:20). 예수님은 AD 33년에 그의 4번째이자 마지막 유월절을 기념하셨다. 우주의 영원하신 창조주이신 예수님이 죄인 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이 땅에 오시고, 대신 십자가에 달리시고, 3일만에 부활하셔서, 믿는 자에게 죽음의 저주를 끊어버리신 것이 그 분의 인간 나이 37세쯤이었다.


최초의 올림피아드(Olympiad)으로부터 시작하여 AD 140년까지의 역사를 기록했던 트랄레스의 블레곤(Phlegon)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신 해를 AD 33년으로 확증하고 있었다. 그는 티베리우스(디베료) 즉위 19년째인, 202회 올림피아드 4년차 때에(즉 AD 33년), 커다란 일식(eclipse)이 발생하여 육시(정오) 경에 낮이 밤처럼 변했으며, 지진이 일어나 니케아(Nicaea)에서 많은 집들을 파괴했었던 사건을 언급하고 있었다.[2] 물론 그는 오직 일식 때문에 그러한 일이 발생했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실 그 어두움은 너무 오래 지속되어서(육시부터 구시까지, 마 23:44) 태양의 일식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유월절은 보름달이 뜨는 시기와 가깝다. 그때는 태양의 일식이 발생할 수 없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에 온 땅에 어두움이 임했던 사건은 기적적인 사건이었다.


*For more information on these and other questions concerning the Adam–Christ timeline, see The Annals of the World by James Ussher, edited by Larry Pierce.


Footnotes
[1] Ussher, James. Annals of the World, Master Books, 2003, p. 804.
[2] Ussher, James. Annals of the World, Master Books, 2003, p. 822.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1/n2/chronology-conundrums

출처 - AiG, Answers Magazine

미디어위원회
2008-09-19

성경은 왜 66권인가?

 : 어느 책이 성경에 속하는 것인지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Why 66 : How Can We Be Sure Which Books Belong in Our Bible?)

Brian H. Edwards 


      성경(The Bible)은 66권의 낱권 책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전체의 책들은 신성한 계시인 정경(canon)으로 알려져 있다.[1] 이 책들은 약 2천년이라는 기간 동안에, 약 40명의 서로 다른 저자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그러나 오직 한 분의 저자이신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셨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 66권의 책들만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성스러운 책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혹시 더 있거나 덜 있지는 않는가?


구약성경

고대 히브리인들은 명백하고 분명하게 밝혀진 성경 본체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처음부터 확인되어졌고, 어느 책이 성경에 속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전혀 의심이 없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의 책들의 순서를 배열하지 않았고, 어떤 책들은 서로 묶여졌었다. 그러나 내용은 동일하였다, 더도 없었고 덜도 없었다.

성경 내에서의 증거들은 구약 책들의 대부분이 그들이 기록했던 사건들이 있던 그 시기에 씌어졌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주어졌던 말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성경 밖의 역사적 기록들은 이 결론을 강화시켜 준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을 인용하실 때, 구약의 기록들이 항상 성경이었음을 확증하셨고, ”기록되었으되”(마 4:4,7,10) 그리고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요 10:35)라고 주장하셨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신탁)”(롬 3:2)을 의심하지 않았다. 현대 신학자인 칼 헨리(Carl F. H. Henry)는 다음과 같이 지혜롭게 결론을 내렸다. 즉 ”교회는 구약성경을 물려받았고, 예수님은 이 기록들을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정경으로서 방어하시고, 고취하시고, 충성스럽게 따르셨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셨다”[2].

한 유명한 유대인들의 종교회의가 AD 100년 경에 잠니아(Jamnia)에서 열렸다. 가끔 잘못 추정되고 있는 것처럼, 그 회의의 목적은 어떤 책들이 유대인들을 위한 성 문서들에 포함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목적은 어떤 책들이 이미 받아들여졌는가에 관한 것이었다.[3]. 그 종교회의는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구약 정경에 접근할 수 있었다.


신약성경 

성경 내에서의 증거는 대부분의 신약 성경들이 AD 70년까지 씌어졌다는 결론을 지지한다. 한편 요한의 저서들은 이보다 약간 늦다.[4]. 대부분의 책들은 저자의 이름을 땄고, 모든 책들은 다른 책들에게 유용한 단서들을 제공한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우리들이 더욱 정확하게 연대 계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성경에 있는 몇몇 기술들은 신약성경이 사도들에 의해서 씌어졌거나, 사도들에게 승인을 받았음을 가리키고 있다. 베드로는 바울의 편지를 '성경(scripture)'이라고 불렀고(벧후 3:16), 바울은 자기와 다른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을 말했다고 했다.(살전 2:13). 

1 세기가 끝나기 전에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는 반 이상의 신약성경을 인용했거나 참조하였고, 그것들을 '성경(scripture)'이라고 불렀다. AD 180년까지 리용의 이레니우스(Irenaeus) 주교는 그것들을 성령에 의해 주어진 '거룩한 성경(holy Scriptures)'이라 불렀으며, 1,000구절 이상을 거의 모든 신약성경으로부터 인용하였다. 동시에 북아프리카의 터툴리안(Tertullian)은 '신약성경(New Testament)'으로 언급하며, 그것의 대부분에 대하여 해설했다. AD 240년에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Origen)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27권을 성경이라고 말했고,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AD 367년에 같은 목록을 사용했다.[5]. 그들은 같은 방식으로 다른 책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2세기 초까지는 4복음서(그 외의 다른 것은 전혀 없었음)와 13편의 바울서신이 전 로마 제국에 걸쳐 모든 교회들에서 아무 문제없이 받아들여졌음이 확실하다.

AD 180년까지 우리의 모든 신약성경(베드로후서만 제외하고) 책들은 교회 지도자들의 글에서 직접 인용되거나 또는 암시로 발견되어진다. 이 해까지, 소수의 교회들은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 2,3서, 베드로 후서, 히브리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그 나머지 모두는 보편적으로 수용되었다. 교회 지도자들은 신약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정경이 아닌 책들은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AD 150년 무렵에 최초로 편집된 무라토리 정경(Muratorian Canon)은 성경의 신약정경으로서 확인된 책의 형태로 된 가장 초기의 문서적 증거이다. 비록 8세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본은 열악한 상태에 있었고 일부를 잃어버렸지만, 그것은 신약성경에서 4권의 책들을 제외한 모든 책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정경의 내용을 토론하기 위하여 어떤 종교회의도 소집되지 않았다. 정경은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의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었다

.교회 지도자들이 성경의 어떤 책들이 정경의 일부인가를 결정했던 곳으로 잘못 생각되고 있는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를 묘사하고 있는 한 성화.


신약성경의 정경 목록을 확정하는데 그렇게 오래 시간이 걸렸던 이유는?

1. 사도들이 권위 있는 책들의 깔끔한 목록을 후대에게 남겨주지 않았고,

2. 어떤 두루마리도 모든 책들을 전부 포함할 수 없었고, 책을 만드는 과정(사본이라 부름)도 4세기까지 로마제국에서는 일반화되지 않았으며,[6]

3. 교회들은 로마제국 전역과 영국에서부터 북아프리카와 페르시아 동부까지 흩어져 있었다. 초기 크리스천들은 아직도 박해를 당하고 있었고, 서로 간에 쉽게 회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교회나 지도자가 다른 교회나 지도자들에게 명령할 권위를 갖지 못했으면서도, AD 150년 무렵에 무라토리 정경이 우리의 신약성경 중 4권의 책들 이외의 모든 책들을 목록화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많은 기만자(deceivers)들이 사도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고 사칭하면서, 가짜 복음서들과 서신서들을 작성했다. 그러나 초대 교회 지도자들은 그것들이 가짜이며,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서 퇴출했다.[7] 거짓 복음서들과 서신서들은 늦은 작성 시기와(사도 시대와는 많이 떨어진), 정경과 교회들이 받아들인 교리와는 명백하게 모순되는 가르침 때문에 가짜임이 스스로 드러났다. 


결론

역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분의 전체 말씀을 주셨고, 우리를 위하여 그 말씀들을 보존해 주셨다는 우리의 확신을 강화시켜 준다. 우리는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계획하셨던 66권의 책들을 모두 정확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  



Footnotes

1. 이 단어는 '갈대”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κανων(kanon)에서 왔다. 그것은 '자(ruler)” 또는 '측량 막대기(measuring stick)”를 의미하고, 측량 막대기는 '인증된 권위(recognized authority)”라는 개념을 갖는다. 4세기에 교회는 캐논이라는 단어를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으로 받아들여진 책들의 목록”을 의미하는데 사용하기 시작했다.
2. Carl F. H. Henry, God, Revelation and Authority, Vol. 4 (Carlisle: Paternoster, 1999), p. 407.
3. 이것은 이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See for example R. Beckwith, The Old Testament Canon of the New Testament Church (London: SPCK, 1985), p.276. Also A. Bentze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Vol. 1 (Copenhagen, 1948), p. 31. Bruce Metzger, The Canon of the New Testamen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7), p. 110. John Wenham, Christ and the Bible (London: Tyndale Press, 1972), pp.138–139.
4. 이것은 일반적인 복음주의적 입장이다. 그러나 복음주의자가 아니었던 존 로빈슨(John A. T. Robinson)은 그의 세부적인 학술 저서에서 전체 신약성경을 AD 70년 이전으로 위치시켰다. Redating the New Testament (London: S.C.M. Press, 1976).
5. 아타나시우스는 또한 신약성경 책들의 본체를 위해 캐논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6. 우리의 가장 초기의 거의 완벽한 단행본 헬라어 신약성경(4세기 중엽부터 내려오는 시나이티쿠스 사본(Codex Sinaiticus))의 크기는 16×14 인치이고, 두께는 694쪽이다.
7. 이들은 위서(pseudepigrapha)라고 불려진다.(헬라어로 ‘가짜 문서’라는 의미).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교회는 하나님이 성경 66권에 영감을 불어넣으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성경의 인간 저자들을 선택하시고, 이루어진 예언들과 기적들을 통해 그 책들의 신뢰성(authenticity)을 확증하셨다. 19개 이상의 지역으로부터 40명 이상의 인간 저자들이 동원되었지만, 성경의 메시지는 일관되고 상호간에 모순이나 오류가 없다.

유대인들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쓴 책들을 정경(canon, 지금은 구약으로 불려짐)으로 받아들였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자(messengers)들도 신약성경에 포함된 책들에 대해 책임이 있었다.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온 책은 역사적, 예언적, 과학적 정확성을 포함하여 어떤 기준을 충족시키는, 그리고 권위를 가지고 삶을 변화시키는 메시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사람의 집단들, 도시들, 풍습들에 관한 역사적인 세부 사항들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고고학적 발견들은 이런 세부적 내용들이 정확했음을 지속적으로 확인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www.answersingenesis.org/go/archeology 을 보라).

현대의 많은 과학적 사실들이 성경에서 발견되거나, 성경으로부터 추론될 수 있다. 즉,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사 40:22), 별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사실(창 15:5), 살아있는 것들은 그 종류대로(after their kinds) 자손을 번식한다는 사실(창 1:24,25), 대양에 '해로(paths)”가 있다는 사실(시 8:8) 등이다.

예언의 정확성에 관하여, 구약성경의 구절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생애와 죽음과 부활에 대해 50번 이상 예언하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탄생하기 400년 전에 씌어진) 모든 예언들은 사실대로 실현되었다.

또한 성경의 각 책들은 딤전 3:16,17절과 벧후 1:21절을 포함하여 여러 구절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 여러 곳에서 (인간) 저자는 신적 영감을 받았음을 주장하며, ”여호와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의 메시지는 삶을 바꾸는 능력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죄를 확신시키며, 사람들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삶에서 옮겨, 성령의 권능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바꾸어버린다. 다른 어떤 메시지도 인간에 대해 이러한 일을 한 적이 없다.

성경의 (원)저자가 하나님이라는 것은 성경에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만일 하나님의 감동을 받지 않았다면, 성경은 인간의 글들을 모아놓은 모음집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인간들에게 완전함을 요구하고, 그들의 죄를 확신시키고, 영원한 절망을 선고하며, 그들에게 구원을 베풀 권위를 가졌겠는가? 인간은 누구도 그러한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한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외경이란 무엇인가?


11-16 권의 외경(Apocrypha)들이 구약의 마감과 신약의 시작 사이 400년 동안에 집필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Roman Catholic churches)와 그리스 정교회(Greek Orthodox churches)는 이들 책들의 일부를 성경으로 취급했지만, 개신교(Protestant Christians)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 유대인들은 외경을 결코 히브리 성경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기간(외경이 집필된) 내내 이스라엘에 선지자들의 음성이 없었다고 믿었다. 그들은 ”충성된 선지자”가 나타날 날을 대망하고 있었다.(마카비전서 9:27). 유대인들에게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성경 계시는 BC 430년경 말라기서를 끝으로 일단락되었다.  

2. 예수님과 사도들은 외경을 결코 성경의 한 부분으로 여기시지 않았다. 신약성경에는 수백 구절의 구약성경 인용과 암시들이 있지만,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외경으로부터는 결코 인용하지 않으셨다. 성경의 저자들은 우연히 다른 책들을 참조했었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그 책들을 성경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유다서 14-15절은 에녹서(book of Enoch)를 참조했는데, 에녹서는 로마 가톨릭의 외경의 한 부분이 아니다.

3. 구약성경의 예언서들과 달리, 어떤 외경들도 결코 신적 권위를 주장하지 않고 있다.

4. 외경의 어떤 부분들은 커다란 역사적인 실수들을 포함하고 있다. 

5. 사해사본(Dead Sea scrolls)을 필사한 공동체는 구약성경에서와 같은 권위를 외경의 책들에 결코 부여하지 않았다.

 

*참조 : The Manuscripts
http://www.icr.org/bible-manuscript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2/n4/why-66 

출처 - Answers Magazine, September 18, 2007.

미디어위원회
2008-09-03

누가복음 2장의 호적은 언제 시행됐는가? 

: 예수님 탄생 시기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오류인가?

 (When did the Luke 2 census occur?)

Daryl E. Witmer 


주장되고 있는 성경상의 문제점

예수님 탄생 무렵인 BC 4-5년경에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Caesar Augustus, 가이사 아구스도)에 의해서 실시된 인구조사(호적, census)가 ”구레뇨(Quirinius/Cyrenius)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 시행됐다는 성경(눅 2:2)의 기록은, 만약 구레뇨가 실제로는 AD 6년까지는 총독이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정확하다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명백한 성경적 오류의 경우인가?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라”(눅 2:1-2).



이치에 맞는 대답

서두를 것 없다. 비평가들은 성경이 명백한 오류를 가지고 있다는, 그래서 성경을 신뢰할 수 없다는 근거로서 이 구절을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오늘날에는 누가복음의 기록에 더 유리한 해석을 제공하는 많은 이유들이 있다. 유명한 학자요 고고학자인 윌리엄 램시(William Ramsey) 경이 입증했던 것처럼, 누가(의사)는 그 자신이 신뢰될 수 있는 역사가였음이 반복해서(32개 국, 54개 도시, 9개 섬의 참고문헌들에서) 입증되었다. (Christian Answers' Web의 Bible Encyclopedia: What is a census?을 보라.)

연대에 대하여, 구레뇨 치하의 그 시기 즈음에 실시된 성경 밖의 문서에서 유일하게 기록된 인구조사(호적)는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해 기록된 인구조사였다.(요세푸스의 ‘Antiquities’ XVIII, 26 [ii.1]). 그는 그 책에서 AD 6년에 인구조사가 시행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 2장 2절에서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내려갔던 즈음에 시행된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Syria, 시리아)의 총독(governor)이었던 기간에 첫 번째로 실시된(‘첫 번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 이후에도 인구조사가 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 번째로 실시된 호적 이후에 실시된 호적(요세푸스에 의해 언급된 바로 그 인구조사)에 대해서 누가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구레뇨가 (정치적 분할 지역으로서 유대를 포함했던) 수리아 지역에 인구조사를 실제로 두 번 명령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좋은 이유가 있다. (흔히 ‘총독(governor)’이라고 번역되는 눅 2:2의 헬라어 표현인 ‘hegemoneuo’는 실제로는 단지 ‘지도하고 있는’ 또는 ‘담당하고 있는’을 의미한다). 첫 번째 호적은 BC 12~BC 2년 사이의 기간 동안, 호모나덴시안(Homonadensians)들에 대한 군사작전을 지휘하고 있었을 때였을 것이다. 그의 칭호는 ‘군정 장관(military governor)’이었을 수 있다.

1764에 발견된 한 라틴어 비문(inscription)은, 구레뇨가 수리아에 대하여 두 번의 분리된 경우에서 그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견해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그 시기 동안에 한 번의 세금부과가 확실히 있었고, 따라서 당연히 호적을 실시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누가의 시기에는 잘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 호적 조사는 사람들에게서 잊혀지게 되었던 것이다. 학자들은 누가의 기록(그러므로 성경)이 100% 진실하다는 다른 많은 설명들을 지속적으로 제시해오고 있는 것이다.



Helpful Resources
 Bible 'Contradictions' & Puzzles(Christian Answers. Net)
‣ The Quest Study Bible, Marshall Shelley, editor (Zondervan Press, 1994).
‣ The Defender's Study Bible, Henry M. Morris, editor(World Publishing, 1995).

  

*The Census of Quirinius : Did Luke get it wrong?
http://creation.com/quirinius-census-luke


More Information About Christmas
Was Jesus born on December 25 (and other common misconceptions about Christmas)? 
All about Christ's birth
(lots of information)


More Information About the Bible
Supposed contradictions in the Bible
Inspiration of Scripture

‣ How do we know the Bible is true? Answer
Archaeological evidence for the reliability of the Bible

‣ How can the Bible be infallible if it is written by fallible humans? Answer
Other scientific evidence for the reliability of the Bible
‣ 
About the Bible
‣ When we say that the Bible is the Word of God, does that imply that it is completely accurate, or does it contain insignificant inaccuracies in details of history and science? Answers
Canon
Apocrypha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hristiananswers.net/q-aiia/census-luke2.html 

출처 - ChristianAnswer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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