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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학생이 과학 이해하기

신학생이 과학 이해하기


     지난 학기에 신학생을 대상으로 ‘자연 과학의 세계’라는 과목을 강의해 줄 것을 요청 받았다. 수강인원은 46명인데 교양 선택과목으로 한 학기 강좌였다. 평소에 늘 과학자의 눈으로 본 창조주 하나님을 신학생에게 소개하고 싶었던 필자는 자연과학을 가르치는 기회를 당연히 창조과학을 전하는 기회로 보았다. 이미 신앙이 있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창조 과학적 개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 글은 창조 과학적 개념 보다는 신앙이 있는 사람들이 창조과학 내용을 접할 때 있을 수 있는 어려움,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 그리고 그 결과를 소개하였다.


1. 창조 과학이 어려운 이유

신학생이면 기본적으로 신앙이 있는 학생들이므로 창조 과학을 쉽게 받아 들일 것으로 기대하기 쉽다. 그러나 창조는 신앙이고 진화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아직도 지배적인 사회 분위기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이 창조주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방해하고 있다. 신앙이 있는 사람이 창조 과학에서 경험할 수 있는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첫째, 교육 체제로 인한 어려움이다. 교과서를 비롯해서 일반인을 위한 영상매체나 서적 등에서도 진화는 과학의 이름으로 늘 사실처럼 다루어지고 있어서 창조를 지지하는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접할 기회는 아주 드물다. 신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은 믿음의 기초가 어느 정도 되어 있는 학생들이겠지만 이들도 일반인들과 똑같은 교육 체계를 거치고, 영상매체와 서적을 접하고 살아왔다. 과학이라는 도구는 언제나 진화론을 지지하는데만 사용되며 창조론과 진화론 두 입장에서 공평하게 비교해 보는 경험을 할 기회는 거의 없다. 그 결과 창조에 대해서 과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 자체를 잘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과학에 대한 자신감의 부족이다. 신학교에 오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문과적 경향이 강하므로, 과학을 스스로 따져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영역으로 보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권위를 가진 존재(여기서는 대부분의 과학자)가 제시하는 결과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하는 영역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신학생 뿐 아니라 일반인에게서도 자주 관찰되며, 그 바탕에는 스스로 과학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것으로 확정지어 버린, 스스로에 대한 낮은 기대치가 자리잡고 있다.

셋째, 상대주의적인 사고가 팽배한 지금의 사회에서 두 가지 입장이 대립될 때 어느 한쪽이 옳은지 따져 본다는 것은 고루하고 편협한 행동으로 해석되기 쉽다. 서로 다른 두 입장이 있을 때, 두 가지를 모두 포용하지 않고 한 가지 입장만을 고수하는 것을 원칙을 지키는 일관성있는 태도라고 보기보다는 경직된 경향이라고 보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 결과 창조주에 대한 신앙과 다수의 과학자가 주장하는 진화 사이에서 타협하여 유신론적 진화론으로 기울어져 있거나 이해하기를 포기한 학생들도 상당수 생기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 학생들이 창조 과학에서 다루는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거의 모든 일반인이 인정하고 있으며 자신이 어릴 때부터 공교육 체제에서 배운 내용을 부정해야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주로 제시된 결과를 받아들이는 영역이었던 과학에서 스스로 증거를 검토하고 자기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과정은 과학적 연구 방법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관찰되는 사실과 사실에 대한 해석을 구별하는 것을 기초로 하며 대부분의 사람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부분이다. 이는 창조 과학의 개념이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기 위해 넘어야 하는 장벽과 같다. 따라서 창조 과학의 내용과 더불어 다음의 세 가지 목표를 정했다.


목표 1 : 학문의 한 영역으로서 과학의 위치를 바로 한다.

지적인 능력은 사람이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능력 중 한 가지이며 과학은 사람의 지적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영역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한다. 따라서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노래를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것처럼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과학적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다. 또한 과학의 발달로 인해서 누리는 축복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학이 다른 모든 진리 탐구의 방법을 대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목표 2 : 과학적 연구 결과에 대한 신뢰성의 한계를 분명하게 한다.

과학은 측정할 수 있는 대상을 연구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물질 세계에 대해서 연구한다. 만일 연구의 대상이 특정 과목에 대한 학생의 자신감과 같이 물질이 아닌 경우, 학생에게 그 과목의 예상 점수를 쓰라고 하는 것과 같이 숫자로 처리할 수 있는 자료의 형태로 수집하는 경우가 많다. 측정이나 자료수집은 누구나 되풀이 할 수 있고,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서로 검토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검토하는 과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적 연구에 신뢰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모든 의문이 실험으로 확인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같은 자료에 대해서 연구자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여기가 과학의 한계이다. 즉 측정 가능한 요인으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으며, 측정 가능한 사실을 근거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목표 3 : 이해하는 것과 믿는 것의 차이를 명확하게 한다.

첫째 목표에서 말한 바와 같이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다양한 능력을 사용하게 된다. 필자는 이 글에서 우리의 지적인 능력과 과학이라는 방법을 사용해서 분명하게 서술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제한하여 이해한다는 표현을 쓰고자 한다. 과학자들 사이에 알려져 있고 서로 인정하고 있는 지식의 일부를 언급하고 그 단계까지의 지적인 노력을 인정하는 것을 곧 그 내용을 믿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건전하고 발전적인 토론이 계속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 목표에 따른 수업 전략과 그 효과


교재는 「기원과학」을 사용하였으나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는 기원과학에서 다루지 않은 주제들도 추가하였다. 또한 강의를 진행 하다가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시기에 위에서 서술한 목표와 어려움들에 관련된 주제들을 추가하였다. 각 목표에 따라 어떤 주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다음에 소개하였으며 학생들의 반응도 간단히 서술하였다.


목표 1 : 과학의 위치 바로하기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전 세대가 상상할 수 없던 풍요로움과 다양함을 다음 세대가 누릴 수 있게 하고 있다. 따라서 과학 기술의 위력에 대해서 사람들은 은연 중에 경외심마저 가지고 있으며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모든 것이 가능해 질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또한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 꼬리표를 달면 제시되는 내용을 부정하거나 의문을 제시하는 것을 꺼릴 정도이다. 그림 1은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단적으로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과학은 사람이 지적 능력을 사용해서 하는 일 중 한 가지일 뿐이다. 과학은 사람의 지적 능력을 사용하여 피조물에서 드러나는 창조의 질서를 밝히는 것이 그 목적이다. 또한 그러한 과정을 통해 과학자는 그들 고유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의 일부를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해석해 줌으로써 하나님을 찬양하는 또 하나의 도구를 제공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한편 진화론은 사람이 어쩌다가 우연히 똑똑해진 원숭이를 닮은 존재라고 주장한다. '유인원의 허구”라는 주제는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라는 주제를 다루기에 적절하다. 이때 지적인 능력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특징 중 하나로 소개하였다. 그 외 동물에게서 절대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닮은 형상으로 사람이 지닌 특징은 셀 수 없이 많지만, 몇 가지만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 예술적 능력 : 음악, 미술 등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과 창조성, 그리고 예술적인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신체의 기능(예: 사람 손의 정교함)

● 피조 세계의 질서에 대한 호기심과 호기심을 해결하는 수단인 지적 능력 : 동물은 지구가 태양주위를 도는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지 궁금하지 않다.

● 사람의 언어와 동물의 소리 차이

● 자유 의지 :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것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존재이다.


학생들은 주로 기독교라는 종교적 맥락에서 하나님을 닮은 형상을 생각하는데에 익숙하다.  위에 사용한 예를 통한 접근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매일 하는 행동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하며, 동물과 사람 사이의 차이를 보다 명확하게 해준다. 예를 들어 우리 눈이 가시광선에 매우 민감해서 색을 잘 구별한다든가, 사람의 손만 글씨를 쓴다든가 세공을 하는 것과 같은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등, 사람의 신체의 특징과 관련된 부분은 사람이 동물과는 구별되는 존재임을 보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실감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렇게 구별되는 존재로서 사람의 특징을 열거해 본 후, 지적인 면은 그 중 한 가지일 뿐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또 지적인 활동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면서(문학, 역사, 철학, 수학 등) 과학은 사람이 하는 다양한 지적인 활동 중의 하나라는 것이 보다 실감나게 부각되도록 할 뿐만 아니라, 과학은 세상 학문의 한 형태일 뿐이라는 것도 언급해 줄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러한 과정과 함께 병행해서 과학의 연구 대상은 물질세계의 규칙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즉 과학은 물질 세계에서 발견되는 규칙을 찾는 것이지, 그 규칙이 왜 그렇게 존재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과학은 인간이 왜 지구상에 존재하는지, 왜 이 세계에는 질서 있는 법칙이 존재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자연 현상에 대해서 잘 모를 때에도 사람들은 자연 현상을 바라보면서 감탄을 하게 된다. 자연계는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에 사람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놀라움과 경이를 불러 일으키는 일들이 많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자연계의 신비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과학이 발달할수록 자연 현상 배후에 더욱 더 정교한 질서와 오묘한 섭리가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유전 정보를 예로 들면, 생화학이 발달할수록 유전 정보가 보존되고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 수많은 화학물질이 질서정연하게 순서에 따라서 반응을 하도록 복잡하면서도 질서정연한 마치 거대한 공장과도 같은 체제가 세포 한 개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각각의 기능을 이해할수록 신비가 사라지기는 커녕 날마다 새로운 보석을 찾듯이 그 단계마다 신비감을 더해가게 된다는 것은 과학을 깊이 연구한 사람일수록 공감하는 사실이다.


우리의 생활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와 자연 환경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물을 때,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의 가치관과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과학도 그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면 적절하다. 과학의 위치를 바로 이해할 때 자연 현상을 통해 하나님의 솜씨를 일부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과학을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음악 전문가가 음악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일반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것 같이, 과학자는 자신의 이해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다 깊이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관점도 이해하게 된다.


목표 2 : 과학적 연구 결과에 대한 신뢰성의 한계

과학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것과 같은 신뢰는 실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과학자가 연구 결과를 발표 할 때에는 만일 필요하면 그의 연구 과정을 공개한다는 것이 가정되어 있다. 또한 그 결과는 다른 연구자가 되풀이 하더라도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므로 과학자가 발표한 연구 결과는 어떤 특별한 경우에만 맞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맞는 것으로 신뢰한다. 과학자가 주장하는 바가 실험을 근거로 하는 것이라면 언제나 실험실에서 제 3자에 의해서 확인될 수 있다.


그러나 실험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서 지구가 처음에 어떻게 생겼는지 실험적으로 확인할 길이 없다. 생명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기원에 대한 문제는 과학적 실험 방법으로 확인할 수 없다. 기원 이후에 있었던 일회적인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그랜드 캐년은 지구상에 하나 밖에 없다. 그랜드 캐년이 어떤 과정으로 생겼는지 현재의 기술로서는 실험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혹시 미래에 기술이 발달하여 실험이 가능해진다 하더라도 그랜드 캐년이 생기기 전에 그 지역의 지질학적 특징에 대해 알려진 바가 별로 없기 때문에 똑같은 조건에서 실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랜드 캐년의 형성과정을 실험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러면 기원이나 그랜드 캐년과 같은 일회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연구가 불가능할까? 그렇지는 않다. 일회적인 사건은 모델 접근법이라는 방법으로 연구를 한다. 모델 접근법이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첫째, 현장에 남아 있는 증거를 수집한다.

둘째, 증거를 바탕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사건이 진행되었는지 가상의 시나리오를 만든다. 이 가상의 시나리오가 사건의 모델(또는 모형)이 된다.

셋째, 모델이 맞다면 남아 있어야 할 증거들을 찾는다.

넷째, 수집된 증거에 의해 모델을 수정한다.

다섯째, 이렇게 수정된 모델을 근거로 더 많은 증거를 수집하고 지금까지의 증거를 근거로 모델을 수정해 가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불확실한 부분을 점점 축소해 간다.


이 과정에서는 사실(수집된 증거)과 해석(모델 형성 및 수정)의 과정이 되풀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과학적 결과로서 보고되는 자료를 접할 때 그것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실험으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는 자료인지, 또는 모델 접근법에 의해서 현재도 계속 수정되고 있는 자료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지구와 그 위의 생명체와 인류의 존재는 일회적인 사건이며 아무도 실험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모델접근법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으며, 어떤 이론이 나오더라도 그것은 모델이고 실험으로 확인 할 수 있는 종류의 이론이 아니다. 따라서 진화론도 과학으로 정립된 법칙이기보다는 하나의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진화론이 하나의 이론(가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납득하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과학에 대해 일반인이 가지고 있는 신뢰감은 상당히 크며, 과학에서 제시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인을 위한 자료들이 모두 진화론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는 관점에서 제작되며 진화론이 증거들을 논리적으로 맞추어 보기 위한 이론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 언급되는 경우는 전혀 없다. 이처럼 기원에 대해서 진화론이 가능한 이론 중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납득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사실과 그 사실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화석은 사실과 해석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효과적인 매체가 된다. 왜냐하면 화석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볼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인 반면 화석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도 없고, 관찰자도 없기 때문에 그 형성 과정을 설명하는 것은 철저하게 모델 접근법으로만 가능하다. 화석을 다룰 때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있는 사실 몇 가지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 지구 곳곳에서 화석이 발견된다.

● 살아 있을 때의 모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화석이 대부분이며, 갑자기 얼어버린 형태로 발견되는 화석이 대부분이다.

화석에 대한 해석의 예는 다음과 같다.

● 지금 어디서나 관찰되는 것과 같은 느린 퇴적 작용에 의해서 죽은 동물이 묻혀서 화석이 되었다.

● 화석이 된 생명체가 살아 있을 때에 많은 양의 흙이나 눈이 덮여서 빠른 시간내에 화석이 되었다.


학생들은 화석의 사진들과 함께 현재 지구상에서 관찰되는 화산 작용, 강이나 바다의 퇴적 작용, 홍수의 영향 등을 근거 자료(사실 또는 증거)로 삼아 화석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해석 또는 모델 만들기) 또한 화석이 발견되는 지층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토론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일반적인 매체가 전달하는 과학 내용에 사실도 있지만 해석만으로 이야기하는 부분도 많다는 것을 이해할수 있도록 도우며, 또한 과학적 내용이라고 소개되는 매체들에 대해서 무조건 흡수하는 대신, 어디까지가 누구나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해석(제작자의 의도)인지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고력을 길러준다.


목표 3 : 이해하는 것과 믿는 것의 차이를 명확하게 한다

이해하는 것과 믿는 것의 차이가 불명확하면 창조론자와 진화론자 사이의 논쟁 뿐 아니라 창조를 믿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있게 된다. 창조를 믿는 과학자들이라 할지라도 세세한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성경에도 기록이 없고 과학적으로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특히 그렇지만 성경에 기록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의견이 달라질 수 있다.


첫날 창조된 빛에 대한 의견을 예로 들어서 이 개념을 설명해 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빛과 관련지어서 연상하는 태양은 네째날에 창조되었다. 그래서 과학자들 중에서 창조의 첫날 창조된 빛은 우리 눈이 보는 가시 광선이 아니고 에너지의 창조로 보는 사람이 있다. 즉 물질을 창조하기 전에 에너지를 먼저 창조하셨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날을 이야기 할 때 그 에너지를 사용해서 그 뒤에 나오는 물질을 만드셨다고 보기도 하고, 물질은 물질대로 별도로 창조했다고 보는 과학자도 있다. 또한 성경에서 빛이라고 말했으므로 첫날에 사용되는 빛이라는 단어가 우리 눈에 보이는 빛을 의미하거나 적어도 그 의미를 포함한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이런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현대 과학은 빛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이해하고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세 부류의 과학자가 빛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이야기하고 있다. 즉 물질이 에너지가 될 수 있고 에너지가 물질로 바뀔 수 있다. 그리고 이때 에너지는 전자기파의 형태로 존재한다. 한편 전자기파는 파장의 종류에 따라서 분류가 되며 장파, 라디오나 TV에서 사용하는 전파, 무선 전신에서 사용하는 단파, 초단파, 극초단파, 열선,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X-선, 감마선 등으로 나뉜다. 이중에서 우리 눈은 가시광선만 인식한다. 여기까지는 과학자들이 이해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면 왜 의견이 달라지는지 생각해 보자. 우선 하나님께서 에너지로서 전자기파를 만드셨다고 가정한다. (사실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가정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과학에서 어느 한 가지가 선택되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며 모든 종류가 골고루 같은 확률로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빛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전자기파를 창조하셨을 것이라는 견해가 나오게 된다. 이때 사람이 있었다면 사람은 다른 전자기파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으므로 일상 생활 속에서 보는 빛, 즉 가시광선만 인식했을 것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모든 것이 골고루 같은 확률로 존재한다는 과학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정이 사용되었다. 


한편 다른 이유로 가시광선이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입장도 있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을 기록한 것이 성경이므로 성경에서 빛이라고 말했을 때에는 특별히 다른 의미가 없는 한 누구나 이해하는 의미의 빛 즉 가시광선으로 보아야한다는 견해이다. 즉, 빛(가시 광선) 외에 다른 것도 있을 수 있으나 빛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 가셨다고 할 때 그 물이 그냥 늘 보는 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단 전자기파의 존재에 동의 한 후에도 그 전자기파에서부터 물질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자와 별도로 물질은 물질대로 따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보는 과학자를 비교해 보자. 전자는 과학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체계이므로 가능한 한 과학적 과정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일하셨을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후자는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없는 부분에 확대하는 것보다 만드셨다고 하셨으니까 만드신 것만 이야기 하고 그 과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우리가 주석을 달지 말자는 입장이다.


이 모든 부분에서 현대 과학이 이해하고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의 경계는 명확하며 서로 다른 의견의 근거를 설명하기 전에 이미 소개하였다. 그 밖의 부분은 모두 각자 마음속에 있는 믿음 또는 가정에 의해서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빅뱅을 들 수 있다. 필자가 고등학생일 때에 교과서에는 우주에 관해서 수축 팽창설과 대폭발설(빅뱅이론)이 동등하게 소개되었다. 그러다가 빅뱅이 인정되었을 때 필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구절을 생각하면서 통쾌해 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빅뱅 이론에서 이야기 하는 우주의 진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우주에 시작이 있었다는 이론이 승리한 것이 기쁘다는 것이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성경이 맞다는 증거가 조금씩 조금씩 누적될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혹시 오해할 수도 있는 독자들을 위해서 필자가 6일 창조를 확고히 믿고 있다는 것도 밝혀두고 싶다. 그러나 그 부분을 과학적으로 이해했다고 하는 경지까지 과학이 발달한 것은 아니다.


현재 과학자들이 우주 나이 135억년을 이야기 할 때 필자는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그 길이가 훨씬 짧다는 증거가 점점 더 누적 될 것이며, 마침내 언젠가 한 때 과학자들이 135억년을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 어이 없어 하는 시기가 오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과학으로 이해한 범위 내에서 보여주는 자료는 아직 그렇게까지 분명하지는 않다. 다시 말해서 즉 우리의 이해의 범위는 우주의 나이가 만년 근처일지도 모르겠다는 수준까지는 갔지만 6일 창조를 증명 할 정도까지 발전하지 못했다. 어쩌면 영영 거기까지는 우리의 이해가 다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에서 6일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증거가 충분하던 충분하지 못하던 상관 없이 필자는 6일 창조를 믿는다.


위의 두 가지는 과학에서 보고하는 내용과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이 서로 다를 때 과학자인 필자가 어떻게 무엇을 믿기로 선택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예이기도 하다. 과학으로 이해하는 범위가 한계가 있으며 그것은 성경의 기록과 다를 수 있는데, 과학은 사람의 학문이고, 성경은 하나님의 기록이기 때문에 성경의 기록을 믿기로 선택한다는 단순한 선언은 많은 학생들에게 지식의 부족과 자신감의 부재로 인한 갈등을 해결하는 효과가 있었다.  학생들이 과학에서 제시하는 결론에 찬성할 수 없을 때 그 내용을 자세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당당하게 성경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학생 의견 듣기

창조 과학과 같이 믿음의 영역을 일부 포함하는 학과일 경우 학생들은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잘 보여주지 않는다. 필자는 퀴즈나 시험을 볼 때 자기 생각 쓰기라는 칸을 늘 제공하였다. 이 칸에 학생들은 창조와 진화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쓰기만 하면 배정된 점수를 받았다. 즉 필자가 수업시간에 제시한 관점과 다른 의견을 써도 감점이 없었고, 성의 없이 쓴 경우에만 감점이 있을 것으로 경고 하였다.  학생들은 비교적 솔직하게 쓰는 편이었으며 학생들의 관점이나 생각, 자신감 등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처음에 위에서 설명한 수업 내용에 대해서 상당히 어려워 했다. 과학 과목인데 과학적 지식의 모음도 아니고 의견이나 결론도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 학생들에게는 낯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학생들은 위와 같은 논의가 의미하는 바를 점차 이해했으며, 과학적 지식이 충분하지 않아도 과학의 한계를 이해할 수 있으며, 과학적 연구가 주장하는 바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검토 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사고도 가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3. 결론 및 요약

신학대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창조 과학 강의를 할 때 창조 과학 내용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필요성을 이해하고 또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과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학생들은 지나치게 과학이 중요하게 취급되는 현대 사회에서 신앙과 대립되는 존재로만 과학을 보는 시각에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학생들의 관점을 변화시켜서 과학을 신앙에 도움이 되는 유용한 도구로 볼 수 있게 돕고자 하였다.


이 글에서는 특히 과학적 연구 방법이 증명할 수 있는 한계, 측정 및 관찰이 가능한 사실과 사실을 근거로 하는 이론 및 해석의 구별, 그리고 개인의 관점이나 믿음에 따라 과학자들이 어떻게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과학이 누리고 있는 위치는 지나치게 크며, 사람이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지적인 능력을 사용해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 중 하나라는 과학 본연의 위치를 회복시키고자 하였다.


학생들의 의견은 퀴즈나 시험에서 '자기 생각 쓰기”라는 항목을 통해서 수집되었다. 본문에서 이미 서술한 것처럼 학생들은 과학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러한 이해는 과학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성경에 근거해서 과학에서 제시하는 결과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학생들이 신앙에 대립되는 존재가 아니라 창조주의 지혜를 엿보는 도구로서 과학을 보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출처 - 창조 139호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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