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미디어위원회
2004-07-26

홍수 이후 단축된 인간의 수명

김명현 


       한 학생이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질문을 한다. "선생님, 아담이 930살이나 살았다고 성경에 쓰여 있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그리고 이 세상이 6일만에 창조되었다고 하는데 과학적으로 맞지가 않는대요. 지구과학 시간에는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법으로 지구의 나이가 45억 년이라고 하는데 이건 너무 차이가 나잖아요. 그리고 또, 아담은 원시인이었나요? 아니면 우주인인가요?" 이럴 때에 무어라고 대답해주어야 할까? 


이 경우 학생들에게 "성경은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니까 무조건 믿어야한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학생들은 성경에 대한 신뢰와 흥미를 잃어버리고 창세기의 기록에 대해 무관심해져버리며 청년의 때를 지나기까지 창조에 대한 믿음의 확증을 갖지 못하게 된다. 


실제로 성경을 창세기부터 읽어나가다 보면 믿어지지 않는 기록들이 많다. 그 중의 하나가 아담의 장수(長壽)이다. 아담으로부터 그 10대 후손인 노아까지의 수명이 대략 900세 이상으로서, 아담은 930세이며, 최장수를 기록한 므두셀라는 969세, 노아는 950세로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기껏해야 130년 정도가 최고 수명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과거에 있을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은 창세기를 읽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졌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기록을 믿을 수 없어서 창세기의 기록을 실제적인 역사의 기록이 아닌 설화나 전설 정도로 여기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보기 위해서 만들어진 설명 중의 하나가 노아 홍수 이전의 나이 계산법이 오늘날과 달랐다는 주장이다. 아담부터 노아까지는 1년에 10살 정도씩 나이를 먹었을 것이라는 주장으로, 예를 들어 아담의 나이 930세가 실제로는 93년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그럴듯한 풀이로 생각된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이 오늘날과 다른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고 하여서 그것을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억지로 해석하는 것은 더 큰 혼란과 문제를 일으킨다. 아담이 93세 살았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일어나는 문제는 가인과 아벨 이후에 출생한 셋(Seth)이다. 창세기 5장3절에 "아담이 130세에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라고 기록되어있다. 나이 계산법의 차이로 해석한다면 아담이 셋을 낳은 나이는 13세밖에 안 된다.


오늘날 13세에 아이를 낳는 것은 매우 어렵다. 혹시 아담이 조숙하여서 13세에도 아들을 낳을 수 있었다고 치더라도 더 큰 문제는 아담의 4대 후손인 마할랄렐이다. 마할랄렐은 야렛을 65세에 낳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나이 계산법의 차이로 설명하려면 6살 반에 아들을 낳았었다고 믿어야 한다. 결국, 900세 이상의 수명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여 그럴듯한 이론으로 성경을 이해하려 하였지만, 그 결과는 더욱 비현실적인 상황을 믿어야 하게 된 것이다·


창세기에 나타난 인간의 수명변화를 기록된 그대로 살펴보면 아담의 10대 후손인 노아 때부터 수명이 급격히 감소된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지구상에 대홍수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홍수 직후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약 450세 정도로 홍수 전에 비해 반으로 줄어들었고, 벨렉의 때에 또 반으로(200여세) 줄어들었다. 그 후에도 수명은 점차 줄어들었고, 아브라함(175), 이삭(180), 야곱(147), 요셉(110) 그리고 출애굽 당시의 평균 수명(70~80)은 모세의 기도(시90:10)에 나타나 있으며, 오늘날의 수명과 비슷하다. 


노아 시대의 대홍수(창조 후 1656년, 지금으로부터 약 4500년 전)는 수명감소의 원인이 되는 중요한 사건이며,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셨던 세상과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구분 짓는 역사인 사건이었다. 대홍수로 인한 큰 변화 중의 하나가 창세기 1장 6~8절에 기록되어 있는 궁창(하늘)위의 물이다. 이것은 오늘날 하늘의 구름이나 안개라기 보다는 눈에 뵈지 않으면서 빛을 투과시키는 수증기였을 것이다.


하늘 위의 물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하나님이 고안하신 매우 특별한 옷이었다. 그 첫 번째 역할은 빛을 선별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지구에 들어오는 빛의 대부분은 태양으로부터 오는데 인간의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 외에도 그보다 강한 자외선, 엑스선(X-ray), 감마선(우주선) 등이 있다. 이러한 빛들은 생명체 내의 세포들을 파괴시키는 빛으로서 그중 자외선은 피부노화의 원인이 되며, 결국 사람의 수명을 감소시킨다. 이와 반대로 약한 빛인 적외선, 원적외선, 마이크로파, 라디오파 등도 있는데, 그 중에서도 원적외선은 생명체의 활성을 유지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채소나 고기 등의 음식물에 원적외선을 쏘이게 되면 싱싱하게 보존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늘 위의 물(수증기)층이 지구를 감싸고 있었을 때에는 강한 빛들은 이 물분자들에 의해 차단되므로, 지구 표면에는 수증기를 통과하는 약한 빛들 곧 가시광선, 원적외선 등만이 가득하게 된다. 즉, 생명체에 해로운 빛들은 걸러지고, 생명체의 활성을 높여주는 빛들이 충만하였던 환경이 바로 노아 홍수 이전의 지구환경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노화가 거의 진행되지 않으므로, 모든 생명체가 오랜 수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아 때까지의 평균 수명이 900세 이상이 가능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의 장수에 대하여 "아마도 그때 사람들은 꽤 지겨웠을 것이다. 100살도 되기 전부터 늙었을 텐데 주름살 투성이의 얼굴에 머리는 다 빠지고 이빨도 다 빠지고 허리는 구부러져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서 900년 동안을 살아야 했다니..."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해이다. 노아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늙지 않으면서 젊음을 유지한 채로 천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던 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사람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신비하고 정교한 설계로 되어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25세 정도까지 성장을 해 놓고서 그 젊음을 단 몇 년도 유지하지 못하고 곧바로 늙어가기 시작한다. 이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이 원래부터 젊음을 누리지도 못하고 곧바로 늙어죽도록 설계되어 있던 것이 결코 아니다. 오늘날 인간이 이토록 빨리 늙고 병들어서 죽게된 것은 인간의 죄악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인간의 원래 모습은 영원한 생명과 젊음을 누리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죄악 가운데 태어난 우리들은 유전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타락되고 피폐해진 상태에서 살게되었기 때문에 원래 하나님께서 누리게 하고자 하셨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지 못한 채로 짧은 인생을 고통과 슬픔 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세상과는 너무나 달라진 세상이다. 하나님이 지으셨던 처음 세상은 바로 노아의 홍수 때에 철저하게 파괴되어 사라져버렸으며, 그 후 노아로부터 다시 시작한 두 번째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있는 것이다. 우리는 홍수 이전의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고 좋았던 세상은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피조세계는 탄식 가운데에서 하루 속히 회복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참조 : Did People Like Adam and Noah Really Live over 900 Years of Age?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08/06/04/did-people-live-over-900-years


출처 - 창조지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창세기에 기록된 멘델의 법칙

이웅상 


       오늘날 볼 수 있는 200만 종의 생물들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물론 성경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종류대로 창조하셨음을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였으니(롬 1:28),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롬 1:22),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롬 1:25), 하나님의 창조물을 자연발생설로 설명하려고 노력해왔다. 즉 창조자 없이 저절로 생명이 발생될 수 있다는 학설을 주장해왔다.

마침내 19세기에 와서 파스퇴르에 의해 자연발생은 일어날 수 없으며, 생물이 존재해야만 생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물속생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오파린이 제안한, 초기의 원시 지구에서 한번의 자연발생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가설로 인해 현재까지 자연발생에 의한 생명의 기원을 믿고 있다. 이렇게 해서 원시 지구에서 자연 발생된 최초의 생물은 진화에 의해 오늘날 200만 종이나 되는 생물로 분화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진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19세기까지의 생물학자들은 환경으로부터 얻은 획득형질을 사용했다. 환경에 의해 생물의 각 세포에 생긴 변이가 범유전자(pangenes)를 만들고, 이것이 혈액에 의해 생식세포로 운반되어 후손에게 유전된다는 설명이다 (범생설, pangenesis). 이런 이론은 진화론을 처음으로 체계화한 다윈에 의해 주장되었다. 즉 현대의 유전학이 밝혀낸 유전법칙과 유전인자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었던 당시에는, 환경에 의해 생긴 변화가 후손에게 전달되어 진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856년 멘델에 의해 현대 유전학의 기초가 되는 유전법칙들이 관찰되기 시작했다. 유전현상은 환경에서 얻은 획득형질에 의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인자에 의해 이미 세포 속에 고정되어 있음을 밝힌 것이다. 자주색 꽃을 가진 완두를 같은 자주색 꽃을 가진 완두와 교배할 때 흰색 꽃을 피우는 완두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은, 자주색 꽃을 가진 완두에 흰색 꽃을 피우는 유전인자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유전인자는 열성으로 부모에게서는 우성인 자주색에 눌려 형질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인 것이다. 이 놀라운 발견은 다윈의 진화론과 범생론에 의해 생물학자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1900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드브리스, 베이트슨, 모르간 등의 학자들에 의해 인정을 받게 되면서 빛을 보게 되었다. 수천 년이 걸려서 마침내 유전의 바른 원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보다 약 4000년 전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 과학적 진리를 꿈을 통해 보여주신 사실이 나타나 있다. (창세기 30~31장). 변화받기 전의 야곱이 가지고 있던 생각(멘델 이전의 모든 과학들이 믿고 있었던 획득형질의 유전)이 하나님에 의해 수정되는 과정을 보면 너무나 흥미롭고 신기하다.

외삼촌인 라반의 속임수로 14년 이상을 무료로 봉사해온 야곱은 처자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한다(창 30:25). 그러나 라반이 야곱을 계속 붙들어놓기 위해 품삯을 야곱 스스로 정하도록 제의하자, 야곱은 야심에 가득찬 요청을 하게 된다.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떼로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를 가리어내며, 염소 중에 점 있는 자와 아롱진 자를 가리어 내리니 이 같은 것이 나면 나의 삯이 되리이다” (창 30:32).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탈취하고, 아버지를 속여 형 몰래 축복까지 가로챈 간교한 야곱이 이렇게 어리석은 제안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개의 양은 흰색이며, 염소는 검거나 짙은 갈색이라는 사실을 야곱이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물론 아니다. 야곱은 오랫동안 라반의 양과 염소를 돌보아오면서 비록 흰 양과 검거나 갈색인 염소가 주류를 이룬다 하더라도 그들로부터 얼룩지고 아롱진 후손들이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관찰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대부분의 양이 흰색이고 염소가 검은 색이지만, 특별한 환경 조성을 통해 변이를 유도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더욱더 간교한 라반은 야곱의 삯을 정한 후, 그 날로 야곱이 말한 무늬 있는 양과 염소는 모두 가려 자기의 아들들이 돌보게 하고 이들을 야곱이 돌보게 될 자신의 것과는 사흘 길이나 멀리 떼어놓았다.(창 30:35~36). 그냥 내버려두어도 무늬를 가진 변종이 생겨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이젠 아예 변종을 모두 따로 분리시켜 제거해 놓았으니, 라반이 계속 야곱을 거저 부리게 될 것은 시간 문제일 것처럼 보였다.

한편 야곱은 또 야곱대로 꾀를 내고 있었다. 그는 양들이 새끼를 밸 때에 나무의 껍질을 벗겨 얼룩무늬를 내고 그것을 보면서 교미를 하게 하면 무늬가 있는 새끼를 낳게 된다고 믿고 있었다. 열성형질인 얼룩무늬가 태어날 수 있다는 놀라운 유전법칙을 관찰하긴 했지만 환경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근본 원인을 잘못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실제로 실험에 성공하여 지신의 가설이 옳은 줄 오해하게 된다. 무늬가 있는 나뭇가지를 보고 그 영상력으로 새끼를 밸 때 실제로 새끼들의 무늬가 영상을 닮아 얼룩진 것들이 많이 나오게 된다는 사실에(창 30:37~39) 자신을 얻은 야곱은, 실한 양과 약한 양을 구분하여 실한 양은 무늬가 있는 나뭇가지를 보며 새끼를 배게 해 실하고 무늬가 있는 자신의 양을 낳게 하고, 약한 양은 가지를 두지 아니하여 약한 흰 양을 낳게 해 라반의 것이 되게 하는 데까지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주관하심 속에 이루어진 것임을 두 단계를 거쳐 야곱에게 가르쳐주신다.

첫 단계에서는 라반이 약속을 어기고 야곱이 정한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게 한다. 그때마다 인간의 조작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리만큼 정확하게 라반이 야곱의 소유로 정하는 것들이 태어나게 된다.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떼의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떼의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창 31:8).

두 번째 단계에선 꿈으로 직접 보여주신다. 라반이 정한 색깔의 새끼들이 나게 되는 것은 영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라반이 야곱에게 행한 모든 악한 행위를 보시고 야곱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며, 생물학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무늬 있는 숫양만이 교미하도록 하셨기 때문이었다(창 31:10~12). 라반이 모든 무늬 있는 양을 다 격리시켰지만, 흰 양중에 무늬를 내는 유전인자를 가진 숫양만이 교미하도록 하신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양떼를 탄 숫양은 모두 무늬 있는 것들로 꿈에 보여주신 것이다.

수천 년간 생물학자들이 믿어왔던 획득형질의 유전이 자신의 이권을 위해 간교한 꾀를 부렸던 야곱에 의해 관찰되고 실험으로 입증되는 듯 하였으나, 하나님의 지혜로 그 허실이 밝혀지고, 멘델보다 약 4000년이나 앞서 정확한 유전의 원리를 깨닫게 하심을 대하게 될 때,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의 말씀인 성경 앞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조 : 야곱의 아롱진 양과 염소 : 응용 유전학의 성경적 사례

https://creation.kr/BiblenScience/?idx=15728061&bmode=view

Jacob’s livestock, a biblical example of applied genetics

https://creation.com/jacobs-sheep


미디어위원회
2004-07-26

하나님께서 지구를 아무 것에도 매달지 않으셨다.

차성도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자신을 스스로 나타내시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특별 계시인 성경과 일반 계시인 피조세계를 허락하셨다 창조하신 우주만물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신 창조주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면, 피조세계와 이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일치해야 한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시 19:7).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는 것이 주요 목적이지만, 성경의 증거는 확실하기 때문에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여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신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1:20). 피조세계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분명히 표현되어 있으므로, 그 만드신 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두 가지 계시를 통해 자신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신앙)뿐만 아니라, 사고하고 연구할 수 있는 혼(이성)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뿐 아니라, 이성에 의한 과학적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셨다. 역사로 기록된 성경과 과학으로 읽을 수 있는 피조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은 동일하신 분이므로, 신앙과 과학을 별개의 것이 아니며, 신앙과 과학은 하나님의 창조를 통하여 연결된다. 

피조세계를 과학적 방법을 통해 편견 없이 관찰하고 연구할 때, 피조세계에 실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영이신 하나님을 과학이란 객관적 방법만으로는 모두 알 수 없으므로, 특수 계시로 주어진 성경이 우리를 하나님과 피조세계를 바로 이해하도록 인도하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피조세계 가운데 우리가 거하고 있는 지구의 상태와 모습에 관한 성경은 어떤 기록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과학의 설명과 일치하는지 살펴보자.

 

”하나님께서 지구를 아무 것에도 매달지 않으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놓여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예로부터 의문의 대상이었다. 현대적 과학의 연구가 있게 전까지는 지구가 아틀라스 신의 어깨나 우주 코끼리의 등위에 올려져 무엇인가에 고정되어 있었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으며, 별과 행성들이 고정된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구가 고정되어 있다는 이 천동설은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가 1543년 지구의 회전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발표하기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심한 반대를 받았다. 이와 같은 상황은 뉴톤의 연구 결과와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이 일치하여 지동설이 인정되기까지 지속되었으며, 그 유명한 갈릴레오의 종교재판도 이런 싸움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고 있기 때문에, 태양과 지구 사이에 보이지 않는 인력이 지구를 붙잡고 있어 지구가 우주공간에 떠있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늘의 별이나 태양에 비교하면 지구는 하나의 작은 행성에 불과하지만, 질량은 약 6×1024Kg이고, 평균 반경은 약 6×106 m나 된다. 이와 같이 무겁고 큰 지구가 공간에 떠 있다는 것을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20세기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라도 만유인력이라는 물리학적 이해가 없이는 올바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코페르니쿠스가 뉴톤의 설명이 나오기 수천년 전에 기록된 욥기를 통해 이미 지구가 공간에 달려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욥26:7). ”He stretches out the north over empty space; He hangs the earth on nothing” (KJV). 개역성경에도 지구가 공간에 달려 있다고 표현되어 있지만, 흠정역(KJV, King James Version)에서는 ”하나님께서 지구를 아무 것에도 매달지 않으셨다” 라는 표현을 통해 지구가 공간에 그냥 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하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질량이 있는 물체간에는 각 물체의 질량 곱에 비례하는 힘이 작용하는지 힘에 대하여 관찰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법칙을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으며, 모든 법칙을 성실히 유지시킨다는 것이다. 물리법칙이 우주의 어떤 곳에서 단 1초라도 유지되지 않는다면, 온 우주의 질서는 깨져버리고 말 것이다.

 

”둥근 지구 위에 앉으신 하나님”

로마인들은 지구를 주위가 바다로 둘려있는 평평한 판이라고 생각했기에 먼바다로 항해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우리들은 이렇게 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지구가 우리들의 일반적인 인지 범위보다 매우 크기 때문에 일상적인 경험에 의해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인공위성이나 달에서 촬영한 영롱한 구 모양의 지구 사진이 새삼스레 신선한 충격을 준다. 불과 수세기 전만 해도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기록된 성경을 본다면, 비상식적(만유인력에 대한 이해 없이는 지구 아래편의 사람들은 떨어져 버릴 것으로 생각할 것이기에) 이라고 비웃을 것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지구가 공간에 달려 있다고 설명해 준 욥기는 우리에게 지구의 모습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있다.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으되 빛과 어두움의 지경까지 한정을 세우셨느니라” (욥26:10) ”He drew a circular horizon on the face of the water, at the boundary of light and darkness”(KJV). 개역성경에는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다고 만 표현되어있고, 어떤 모양의 수면이 그어졌는지가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흠정역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둥근 모양의 수평선을 그으셨다” 라는 표현을 통해 지구의 기하학적인 형태, 특히 해수면과 관련하여 지구가 둥근 원의 모양을 갖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지구의 둥근 모습에 관하여는 잠언과 이사야서에도 기록되어있다.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을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잠 9:27). ”When He prepared the heavens, I was there, When He dew a circle on the face of the deep” (KJV).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사 40:22). ”It is He who sits above the circle of the earth.....” (KJV). 흠정역의 표현에 의하면, 잠언에서 ”하나님께서 해면을 원으로 그으셨다” 로 되어있어 지구가 원모양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둥글다는 것이 이사야서에는 ”둥근 지구 위에 앉으신 하나님” 이라는 표현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여기서 'circle'로 표현된 단어의 히브리 원어는 'khug'으로 구상(球狀)을 나타낸다.

 

성경 속의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 

성경의 기록과 현대 과학이 설명하는 지구의 상태와 모습을 통하여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바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여호와 하나님임을 엿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특별계시인 셩경과 일반 계시인 피조세계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께서 가장 확실하게 자신을 드려내셨는데, 바로 우리에게 직접 찾아온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경은 우리에게 성경의 기록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 20:31). 따라서 하나님의 모든 계시-광대한 우주 전체와 방대한 성경 기록-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믿게 하려고 주어졌으며, 이것을 믿음으로 생명을 누리길 원하신다. 과학은 단지 하나님의 피조세계의 일부분을 알 수 있게 하지만, 성경은 피조세계뿐 아니라 영적 세계의 비밀을 알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모든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한다.

 

출처 - 창조지

장대식
2004-07-26

성경이 증거하는 우주의 구조


성경이 증거하는 우주의 구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 하나이다” (느 9:6). 

 

(1) '하늘들' (the heavens) 이란 말의 의미 

한글 개역 성경의 창세기 1장 1절에 '천지'(天地)로 번역된 단어의 히브리어 성경 원래의 의미는 '하늘들과 땅' 입니다. 그래서 영문 번역에서는 대부분(NKJV, NIV, NRSV, NASB, GNB, LB 등) '하늘들과 땅'(the heavens and the earth)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땅 은 지구(地球)라고 쉽게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 '하늘들'(the heavens)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대부분의 성경 주석에서는 이 단어에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혹 설명을 첨가한 주석에서도 하늘을 복수로 쓴 것은 히브리인들의 다층천(多層天) 사상에서 기인한 것으로 쉽게 간과해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자연과학이 수많은 하늘들로 이루어진 대우주를 발견하게 된 이상 우리는 '하늘들'(the heavens)의 의미를 다시 한번 분석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하늘들'의 의미가 오늘날 대우주(大宇宙)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소우주(小宇宙)들을 지칭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탐색해 보기로 합니다. 

 

(2) 대우주(macrocosmos)의 구조 

우리는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구와 달과 태양을 포함한 우리가 밤하늘에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별들로 이루어진 우주는 은하계 우주(銀河系 宇宙 ; the Milky Way Galaxy)라 합니다. 이 은하계 우주에는 태양과 같은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桓星)들이 약 1,000억 개 있다고 합니다. 우주 내에는 이 은하계 우주와 같은 우주가 다시 약 1,000억 개가 있는데 이러한 우주 하나 하나를 소우주(小宇宙 ; microcosmos)라 하고, 약 1,000억 개의 모든 소우주를 통틀어 대우주(大宇宙)라 합니다. 또, 대우주 내의 소우주들은 몇 십개 내지 몇 천개씩 모여서 집단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이들을 은하군 또는 은하단 이라 합니다.

소우주인 우리 은하계의 크기는 그 지름이 약 10만 광년(光年)이며, 대우주의 크기는 그 지름이 100억 광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자연과학적으로 알려진 하늘들의 구조는 수많은 별들로 이루어진 작은 하늘들이 다시 수없이 많이 모여 큰 하늘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3) 대우주에 대한 성경의 증언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You alone are the Lord. You have made heaven, the heaven of heavens, with all their host, the earth and all thing on it, the sea and all that in them, and You preserve them all. The host of heavens worship You ; KJV)” (느 9:6).

우리는 이상의 말씀의 영문 중에서 밑줄친 부분의 의미를 유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늘들의 하늘(the heaven of heavens)”이란 말의 의미를 분석해 봅시다. 어떤 번역에서는 ”하늘들의 하늘(the heaven of heavens)”을 ”가장 높은 하늘(the highest heaven; NIV)”이라고 번역을 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아직 우주의 구조가 밝혀지지 않았을 때 의역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들의 하늘(the heaven of heavens)”을 만드셨다는 것인데 이것은 ”수많은 소우주로 이루어진 대우주를 만드셨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단순히 '하늘들'이 아니고 '하늘들의 하늘'이란 표현을 다층천(多層天)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뒷받침해주는 문맥은 개역 한글성경에 '일월 성신'으로 번역된 'with all their host'입니다. 여기서 'host' 는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주인이란 뜻이 아니고 무리, 즉 '별의 무리'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늘들을 만드실 때 각각 그들의(their) '별 무리'도 함께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많은 하늘들을 그들의 별 무리와 함께 만드셔서 하나의 큰 하늘을 이루셨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별 무리를 포함한 하늘들이라면 분명히 오늘날 소우주를 지칭하게 되는 것이며, 이들 소우주들로 이루어진 하늘이라면 분명히 대우주를 의미하게 됩니다. 


둘째로 개역 한글 성경에 ”모든 천군”으로 번역된 ”the host of heavens”는 ”하늘들의 무리”, 즉 ”하늘들의 별 무리”로 바로 잡아야만 합니다. 역시 'host'의 원 뜻은 '주인'이 아니고 '무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대신 ”하늘의 별 무리들이 주께 경배하나이다”로 번역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지금까지 분석한 것을 정리해보면 느헤미야 9장 6절의 성경 말씀은 분명히 대우주의 구조를 증언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성경에는 대우주의 구조를 시사해 주는 말씀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heaven and the heaven of heavens)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까” (왕상8:27, 대하 2:6). 이 말씀은 솔로몬왕이 건축하여 봉헌하는 성전이 대우주보다도 크신 하나님께 비하면 너무나 작고 초라하다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heaven and the heaven of heavens)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신 10:14)라고 하여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우주와 만물이 본래 하나님의 것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4) 결 론 

지금까지 성경 말씀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여 성경이 분명히 대우주의 구조를 증언하고 있는 이상 창세기 1장 1절의 하늘들(the heavens)도 대우주를 지칭한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지 아니한 대우주가 따로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우주의 구조에 관한 이야기 외에도 성경은 은하계 내에 있는 성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네가 열두 궁성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북두성과 그 속한 별들을 인도하겠느냐? 네가 밤하늘의 법도를 아느냐? 하늘로 그 권능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욥 38:31-33).

20세기에 들어와 전파 망원경이 발달됨으로써 많은 은하단이 발견되고 대우주의 구조가 보다 구체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에 비하면 성경에는 이미 2,400년(느헤미야)내지 3,400년(창세기) 전에 이러한 사실을 기록해 두었으니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구로 떨어진 운석(隕石 : falling stone)의 기록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른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 여호와께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 (수 10:11). 

(1) 자연과학적 지식과 성경 번역 

신구약을 통털어 성경 원본은 거의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성경원본은 하나님(성령님)께서 주신 영감대로 기록이 되어 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전해 내려오는 사본들 중에는 원본에 충실하지 않고 번역하는 사람들의 지식 수준에 따라 때로는 의역(意譯)으로 표현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성경 중 성경 전체적으로는 영문 번역의 'The Living Bible'이나 한글 번역의 '현대어 성경'이 그 대표적인 의역 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글의 '공동번역 성서'도 의역으로 표현한 부분이 많이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대부분의 성경에 의역된 부분이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하늘들과 땅'(the heavens and the earth)으로 번역 해야할 것을 한글 성경에서는 '천지' (한글 개역, 표준 새번역), '하늘과 땅' (공동 번역, 현대어 성경, 한글 킹 제임스), '우주' (현대인의 성경)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또 '하늘들의 하늘' (the heaven of heavens:느 9:6)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을 하늘 위의 하늘 (공동 번역), '한없이 먼 하늘' (현대어 성경), '하늘' (현대인의 성경), '가장 높은 하늘' (the highest heaven; NIV)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원형의 지구 위에 앉으시나니 (He sits above the circle of the earth)” 라고 번역해야 될 것을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한글개역), ”지구의 대기권에 앉아 계시는 이” (공동번역), ”땅 위 하늘 높이 앉아 계신 분이”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있는 보좌 위에 앉아 계셔서” (현대어 성경)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서로 번역이 다르게 된 것은 번역하는 시대의 지식 수준, 특별히 자연과학의 지식 수준과 번역하는 사람의 지식 수준에 따라 내용을 해석해서 번역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잘못인 것입니다. 따라서 때로는 번역하는 사람이 그 내용을 알지 못하더라도 단어를 그대로 옮겨 놓는 것이 바람직한 번역이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특히 자연과학적 진리에 대해서는 자연과학이 발전됨에 따라 일찍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던 난해한 내용이 하나씩 진리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에벤의 올바른 의미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른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 여호와께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The Lord cast down large hailstones from heaven on them as far as Azekah),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자(who died from the hailstone)가 더욱 많았더라”  (수 10:11).

이 이야기는 여호수와가 이끄는 이스라엘군이 기브온을 도우려고 아모리군과 싸울 때 하나님께서 큰 덩이 우박들을 하늘로부터 던져내려 적군을 진멸하셨다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우박'(hailstone)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원문 '에벤'의 뜻은 돌, 바위, 추, 보석, 무게 등으로 우박이란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한글 번역에 보면 하나같이 '우박'으로 번역이 되었고, 다만 한글 킹 제임스 번역에만 앞에서는 '돌덩이', 뒤에서는 우박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문 번역에서도 모두 우박(hailstone)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당시에 아직 '하늘에서 떨어지는 돌' (운석)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돌들은 당연히 우박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늘에서 지구로 떨어지는 돌들(유성의 잔해)은 운석(隕石; meterite, falling stone)이라 하는데 이 운석의 정체가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19세기 초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오늘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돌”의 정체가 밝혀진 이상 성경 원문에 기록된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돌들(1arge stones )을 던져내리셨다” (수 10:11)는 말씀의 의미를 다시 한번 분석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 '에벤' 이란 단어에 대해 별 의심 없이 그대로 우박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박' 이라고 믿기 어려운 증거들이 있습니다.

1997년 10월 13일 밤 경기도 평택 지역에 굵은 호두알만한 우박들이 집중적으로 쏟아져서 채소 등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히고 스레트 지붕에 구멍이 나며 강아지가 맞아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장한 군인들이 집단적으로 맞아 죽을 만큼 위력이 큰 우박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에벤'이 우박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결정적인 증거는 그 용어 자체에 있습니다. 즉 '우박'을 표현하는 히브리어 원어는 '바라드' 입니다(출 9:18, 시18:12). 애굽왕 바로 앞에서의 우박 재앙(출 9:23) 및 욥기의 눈 곳간과 우박 창고(욥 38:22) 등 여러 곳에 '바라드'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아모리와의 전쟁 때 하나님께서 던져 내리신 것은 '바라드'(우박)가 아니고 '에벤'(돌)이었습니다. '에벤'에는 우박 (hail)이란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아모리군을 멸한 '큰덩이 우박들'(1arge hail stones)은 우박이 아니라, 돌로 되어 있는 운석(唱石; meterite, falling stone)의 무리임에 틀림이 없다 하겠습니다. 이 운석 무리의 최근 기록으로는 1908년에 퉁구스타 운석이 시베리아를 강타하였던 재앙이었는데 30Km내의 지역을 완전히 불태웠고, 8,000만 그루의 나무를 성냥개비처럼 쓰러뜨렸다고 합니다. 

 

(3) 결 론 

자연과학적 지식이 발전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자연과학적인 지식으로 깨닫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직도 숨겨진 많은 자연과학적 지식이 남아있고 그 중 일부가 발견되어 인간들이 이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운석만 하더라도 성경은 벌써 약 3,200년 전에 그 존재를 기록해두고 있었지만, 자연과학은 19세기가 넘어서야 운석의 정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직도 성경에 있는 많은 자연과학적 비밀이 자연과학의 발달과 함께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bible/b1/b12/b12c5.htm

출처 - 창조지, 제 111호 [1998. 11~1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4

참고 :

장대식
2004-07-26

모든 생물은 흙으로 만들어졌다.


Ⅰ. 모든 생물은 흙으로 만들어졌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창 2:19). 

(1)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졌다니!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흙으로 질그릇을 만들거나 흙벽돌을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 1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면 곧이 들을 사람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죽은 생물체가 썩어서 변하는 것을 누구나 눈으로 볼 수는 있었지만 흙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창세기에 이 사실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창세기는 모세가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모세는 BC.1446년에 출애굽하여 BC.1406년에 느보산에서 죽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는 지금부터 약 3400년 전에 기록되었음이 틀림이 없습니다. 지금부터 3400년 전에 모든 생물이 흙으로 되어 있다고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성경에는 단순히 ”사람과 모든 생물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드셨다”고 선언한 것이 아니라 상당히 논리적으로 전개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2) 생물이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성경적 증거  

먼저 풀과 채소나 과일 등 모든 식물(植物)은 하나님이 흙으로부터 나게 하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11-12). 말씀이 증언하는 바와 같이 식물은 흙으로부터 나서 흙으로부터 영양을 섭취하고 사는 이상 흙으로 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다음 흙으로 만들어진 동물은(창 2:19) 흙으로 된 식물을 먹고 산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 1:3O). 말씀에서처럼 흙으로 만들어진 동물이 흙으로 된 식물을 먹고 살게 되니 동물은 역시 흙일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은(창2:7) 역시 흙으로 된 동물과 식물을 먹고 산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창 1:29).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창 9:3).

사람에게도 처음에는 식물인 채소와 과일만을 양식으로 주셨으나 노아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는 동물도 사람의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해서 결과적으로 식물과 동물과 사람은 모두가 흙으로부터 나거나 흙으로 만들어져서 흙으로 된 양식을 먹으므로 말미암아 흙으로 된 존재인 것입니다. 즉 모든 생물은 흙으로 된 존재인 것입니다. 

 

(3) 생물이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과학적 증거 

현대 과학은 사람을 비롯한 생물이 흙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생물은 그 구성 원소를 분석해보면 흙의 성분과 거의 같기 때문입니다. 생물체의 모든 원소의 구성비(무게 %)는 아래 표와 같으며 생물의 종류에 관계없이 거의 일정합니다. 한편 지각(암석)의 구성 원소는 산소(O), 규소(Si), 알루미늄(A1), 철(Fe), 칼슘(Ca),나트륨(Na), 칼륨(K), 티타늄(Ti), 수소(H), 인(P), 구리(Cu), 크롬(Cr), 니켈(Ni), 납(Pb), 아연(Zn), 망간(Mn), 주석(Sn), 우라늄(U). 텅스텐(W), 은(Ag), 수은(Hg), 금(Au), 백금(Pt)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중 생물체와 흙(지각)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성분은 산소, 수소, 칼슘, 칼륨, 인, 나트륨, 마그네슘, 철, 구리, 망간, 크롬 등입니다. 그리고 생물체에 두 번째로 많이 포함된 탄소(C)는 지각 성분에는 없으나, 실제로 흙(토양)에는 유기 화합물로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생물체의 모든 성분은 빠짐없이 흙 속에 들어있는 성분입니다. 이상과 같이 원소로 분석해 볼 때 생물체는 분명히 흙으로 되어져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생물체의 구성 원소>
 

원 소

기호

무게(%)

미량원소

산 소

O

62

구리(CU)
망간(Mn)
몰리브덴(Mo)
코발트(CO)
아연(Zn)
플루오르(F)
셀레늄(Se)
크롬(Cr)

탄 소

C

20



수 소

H

10



질 소

N

3.3



칼 슘

Ca

2.5



P

1.0



S

0.25



칼 륨

K

0.25



염 소

CI

0.2



나트륨

Na

0.10



마그네슘

Mg

0.07



요오드

I

0.01



Fe

0.01

 

 

(4) 결 론

 결론적으로 모든 생물체는 화학적으로 성분을 분석하면 흙인데 다만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 받아서 존재하기 때문에 흙과 구분이 됩니다. 따라서 모든 생물체도 생명을 잃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필경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니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 3:19).

이 하나님의 말씀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명쾌한 말입니까? 약 3,400년 전에 기록된 말씀이라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II. 우주는 낡아져서 멸망한다 

”하늘과 땅은 멸망할 것이나(They will perish)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They will all grow old like a garment)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히 1 :11-12).

 

(1) 서 론 

위의 성경 말씀에 의하면 하늘과 땅은 시간이 흐르면 의복과 같이 낡아져서 언젠가는 못쓰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산업공해로 인한 환경의 오염으로 생태계(生態系)가 손상을 입고 있으며, 오존층의 파괴 및 지구 온실화로 인하여 기상 변화 등 지구의 환경 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이 낡아져서 멸망될 것이라고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믿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열역학 제2법칙 (熱力學 第二法則)이란 자연 법칙이 이 사실을 잘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먼저 요즘에 문제가 되고 있는 지구 온실화 문제에 대해서 알아 본 후 성경에 예언된 우주의 멸망 문제를 자연과학적으로 증명해 보기로 합니다. 

 

(2) 이산화탄소(CO2) 배출량 감축 회의 

지구 표면은 태양으로부터 열을 받아 그 중 일부를 흡수하여 지표의 온도를 유지하고 나머지는 우주 공간으로 방출하여 열적으로 평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산화탄소(CO2)는 방출하는 열을 공간에서 흡수하여 간직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만약에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CO2)의 비율이 커지면 그만큼 대기의 온도가 상승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을 지구의 온난화라 부르고, 온난화를 촉진시키는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메탄(CH4), 이산화질소(NO2) 등의 기체들을 온실 가스라 합니다. 현재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CO2) 의 양은 정상보다 약 60% 정도 많으며 이 증가 추세를 그대로 두면 21세기 초에는 정상의 2배가 될 것이고, 지표의 평균 온도는 약 3℃ 가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계속 지구의 온난화를 방치하게 되면 지구의양극에 있는 빙산이 녹아서 해수면이 상승하게 되고 따라서 육지는 좁아지며 지구 환경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하여 1997년 12/1-12/10에 일본 교토(京都)에서는 유엔기후변화기본협약 제3차 회의가 열렸습니다. 세계 170여국 정부 및 비정부 대표 5,000여명이 모여서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회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4차 회의는1998년 11월2일부터 아르헨티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열렸습니다. 산업, 교통, 난방, 취사 등 탄소 연료(석유, 가스, 석탄 등)를 사용하는 곳에서는 어디나 이산화탄소(CO2) 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CO2 배출량을 억제하자는 것은 산업 및 모든 생활을 억제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만큼의 효과를 거둘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3) 가용(可用) 에너지 고갈 문제 

연료가 연소한 후 배출되는 이산화탄소(CO2) 도 문제이지만 그 연료 자체도 문제입니다. 오늘날 연료의 대종은 석유와 가스 그리고 원자에너지 등입니다. 이 석유와 가스는 언젠가는 바닥이 날 것이고 원자에너지의 연료인 핵연료도 언젠가는 고갈이 될것입니다.

한편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물이 살기 위해서는 양식이 필요합니다. 이 양식도 또한 에너지입니다. 생물이 섭취한 음식물은 소화가 되면서 많은 에너지를 발하여 생물이 살아 움직이게 하고 있습니다.

생물이 살아 움직이거나 우주 내 천체의 운행이나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기계의움직임에는 모두 질서가 필요합니다. 이 모든 움직이는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원동력이 바로 에너지인 것입니다. 가령 생물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생물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이 질서 정연한 조직에 의하여 그 기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너지가 되는 양식이 공급되지 않으면 질서는 파괴되고 기능은 마비되며 세포는 죽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 식용 에너지(양식)의 부족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에너지와 식량 문제는 인류의 장래를 위협하는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가용 에너지가 점차 고갈되어 간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생명체의 종말을 고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일인 것입니다. 

 

(4) 가용 에너지의 감소와 열역학 제2법칙 

앞에서 말한 이산화탄소(CO2)나 원자에너지의 부산물인 원자로 폐기물은 모두가가용 에너지의 폐기물입니다. 다시는 가용에너지로 바꾸어 쓸 수가 없습니다. 다만 삼림의 광합성 작용에 의한 이산화탄소의 정화작용도 앞으로 5O년 후이면 삼림이 황폐되어 그 균형이 깨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가용 에너지는 점점 감소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주내 모든 사물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가용 에너지는 점점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어 있습니다. 이 자연 법칙을 '열역학 제2법칙' (熱力學 第二法則)이라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연계에서 자발적인 반응은 항상 무질서도(無校序度; entropy)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주는 자연 법칙에 의하여 서서히 쇠퇴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고도의 질서를 요하는 존재이며 이 질서는 가용 에너지에 의하여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우주 내에 가용 에너지가 점점 감소되면 생명체의 존재는 불가능하게 되고 결국 우주자체도 무질서하게 되어 천체의 운행 질서 마저도 파괴되는 태초의 혼돈 상태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5) 결 론

”하늘과 땅이 멸망할 것이다(They will perish).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질것이다 (T hey will all grow old like garment)” (히 1:11-12).

이상의 두 마디 말씀은 자연 법칙인 열역학 제2법칙을 참으로 잘 뒷받침해주는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날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옷과 같이 낡아져서 멸망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우주가 낡아진다는 것은 질서의 파괴를 의미하며 또 이것은 가용 에너지의 고갈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이야말로 바로 열역학 제2법칙을 증언해주는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한편 역으로 이 우주의 가용 에너지가 감소하면서 우주가 점점 무질서해져 가고 있다는 열역학 제2법칙은 바로 이 성경 말씀을 과학적으로 해석해 주는 객관적인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bible/b1/b12/b12c4.htm

출처 - 창조지, 제 113호 [1999. 3~4]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3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지구는 허공에 떠 있으며, 그 모양은 둥글다

장대식 


1. 지구는 허공에 떠 있으며, 그 모양은 둥글다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욥 26: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을 두르실 때 내가 거기 있었고 (잠 8:27),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퍼셨으며 거할 천막같이 베푸셨고” (사 40:22) 

(1) 지구는 허공에 떠 있다. 

성경은 지구가 허공에 놓여 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구는 어떤 받침대 위에 놓여 있거나 어떤 지지대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텅빈 공간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He stretches out the north over empty space ; He hangs the earth on nothing)” (욥 26:7) 라는 말씀을 영어 번역본(NKJV)에서 해석해 봅니다. 먼저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지구의 북쪽(the north)을 허공(empty space)에 펴신다(stretches out)”는 의미입니다. 여러 영역본(NKJV, NRSV, NASB 등)과 히브리어 성경 원문에는 그냥 북쪽(the north)이지 거기에 우리 개역 한글성경처럼 '하늘(sky)'이란 말이 첨가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신다”는 표현보다는 ”지구의 북쪽을 허공에 펴신다”라고 표현해야 바른 의미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지구의 북쪽이 어디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허공(empty space)에 펼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의 의미는 다음 구절인 ”땅을 공간에 다시며 (He hangs the earth on nothing)” 라는 말씀으로 잘 보충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공간'이라고 번역된 nothing은 '아무 것도 없는 것' 즉 무(無)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땅을 공간에 다신다”는 말씀은 '지구를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다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결국 위의 말씀에서 '허공'(empty space)이나 '공간(nothing)'은 같은 의미이고 지구는 어디에 의지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마치 큰 풍선이 떠 있는 것처럼 그냥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지구의 놓임 상태를 과학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욥기는 약 2,500년 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라면 사람의 지혜로서는 지구의 놓임을 누구도 그렇게 말할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2) 지구는 둥글다.

다음에 성경은 ”지구는 둥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을 두르실 때 내가 거기 있었고 (When He prepared the heavens, I was there, When He draw a circle on the face of the deep)” (잠 8:27) 라는 말씀의 영문 번역을 봅니다. ”궁창으로 해면을 두르실 때”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깊음의 표면 위에 원(圓)을 그리실 때” 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깊음의 표면 위에 (on the face of the deep)”라는 표현은 창세기 1장 2절에 나오는 ”깊음 위에(on the face of the deep)” 라는 표현과 완전히 일치하는 말씀으로 천지 창조 초기의 지구의 모습을 나타내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원을 그리실 때” 라는 말씀은 지구의 표면 위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He prepared) '하늘(궁창, heavens)로 원을 그리실 때(drew a circle)'라는 의미입니다. 즉, 지구의 표면에 하늘(궁창)을 둥그렇게 원형으로 그리셨다는 말씀입니다. 결과적으로 지구의 표면은 원형(구형)으로 되어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He sits above the circle of the earth, and its inhabitants are like grasshopper)” (사 40:22) 라는 말씀의 영문 번역(NKJV)을 봅니다. 여기서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He sits above the circle of the earth)”라는 표현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지구의 원(圓) 윗쪽에 앉으시다” 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 부분은 히브리어 원문에도 똑같은 의미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원형으로 된 지구 표면의 윗쪽 높은 곳에 앉으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높은 곳에서 '지구(땅)의 거민들(its inhabitants)을 바라보시니 메뚜기같이(like grasshopper) 작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상의 성경 말씀은 분명히 지구는 원형(구형)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깊음의 표면 위에 원을 그리실 때 (He drew a circle on the face of the deep)” 라는 잠언 8장 27절의 표현과 '하나님께서 지구의 원(圓) 윗쪽에 앉으시다 (He sits above the circle of the earth)' 라는 이사야 4O장 22절의 표현에서 성경은 분명히 ”지구는 둥글다” 라고 증언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옛날 중국 사람들이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하여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가 났다”고 하던 생각에 비하면 성경이 얼마나 과학적인 표현입니까? 지구가 둥글다고 확실히 믿은 최초의 사람은 15세기 말의 이탈리아 항해자 콜럼버스(Columbus) 였습니다. 그는 지구가 둥글다고 믿었기 때문에 동쪽에 있는 인도를 서쪽으로 항해해서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492년 그는 대서양을 서쪽으로 항해하기 시작해서 북아메리카의 서인도 제도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그곳이 인도인 줄 알았기 때문에 '서인도 제도'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유치원 어린이까지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약 2,700년 전 성경 기록 당시(잠언, 이사야) 사람의 지혜로는 상상도 못할 내용인 것입니다. 

 

(3) 결론 

성경에는 많은 과학적 지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지식이 과학적으로 연구된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내용을 기록하거나 번역할 때 바르게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구의) 북쪽'을 '북쪽 하늘'로 표현한다던가, 또는 지구가 둥글다는 의미의 '원형(circle)'이 삭제되어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지금까지의 성경말씀을 분석함으로써 "지구는 둥글며 허공에 떠있다"는 명백한 과학적 지식이 적어도 2,500년 전에 기록된 성경에 증언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2. 물, 공기 및 기상에 관한 과학적 기록 

”이는 그가 땅 끝까지 감찰하시며 또 천하를 두루 보시며, 바람의 경중을 정하시며 물을 되어 그 분량을 정하시며, 비를 위하여 명령하시고 우뢰의 번개를 위하여 길을 정하셨음이라” (욥 25:24-26).

”그가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 즉 그것이 안개 되어 비를 이루고, 그것이 공중에서 내려 사람 위에 쏟아지느니라.” (욥 36:27-28). 

(1) 공기의 무게와 물의 양 

”바람의 경중을 정하시며 물을 되어 그 분량을 정하시며 (to establish a weight for the wind, and mete out the waters by measure)” (욥 28:25) 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영문번역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고 물의 분량을 되로 측정하셨다” 는 것입니다.

공기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바람으로 느낄 수가 있기 때문에 옛날부터 공기(바람)가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1643년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토리첼리(Torricelli)가 대기압을 측정할 때까지는 누구도 공기의 무게가 있다고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측정에 의하면 지구표면 1㎠에 미치는 공기기둥의 무게는 1,033g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지구표면의 공기의 무게를 압력으로 나타내어 1기압이라 합니다. 따라서 1기압 = 1,033g/㎠입니다. 물론 성경에 공기의 무게를 정량적으로 표현해 놓지는 않았지만 약 2,500년 전 성경 기록 당시에 공기의 무게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지혜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한편 물의 양을 측정한다는 사실도 옛날에는 엄두도 못내는 일이었습니다. 거대한 바다와 계속 흐르는 강물의 양이 일정한 것인지조차도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에 있는 전체 물의 양은 일정하며 그 총량은 약 13억 5,759만 6천 ㎦라고 합니다. 

 

(2) 수증기와 물의 순환 

옛날 사람들도 구름에서 비가 온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구름이 어떻게 해서 생기는 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이 사실을 과학적으로 기록해 두고 있습니다. ”그가 물을 가늘게 끌어 올리신 즉 그것이 안개가 되어 비를 이루고(For he draw up drops of water, which distill as rain from the mist), 그것이 공중에서 내려 사람 위에 쏟아지느니라” (욥 36:27-28).

여기서 ”물을 가늘게” 라고 표현한 ”물 방울들(drops of water)”은 분명히 수증기를 표현한 말입니다. 수증기는 분자상태의 물(H2O)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강이나 바다에서 물이 증발되어 수증기가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아득한 옛날에 이 볼 수 없는 내용을 기록해 두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끌려 올려진 수증기는 안개가 되어 비를 이룬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안개와 구름은 마찬가지입니다. 수증기가 응결하여 작은 물방울이 된 것이 안개요 구름입니다. 구름방울이 커지면 무거워져서 땅에 떨어지게 되는데 이것이 곧 비입니다.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욥 26:8),

”구름이 평평하게 뜬 것과 지혜가 온전하신 자의 기묘한 일을 네가 아느냐?” (욥37:16).

공중에 놓인 물방울은 땅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으므로 구름 속에 물방울이 생기면 곧 땅에 떨어져야 된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위의 성경 말씀은 구름이 물을 싸고 있으나 떨어지지 않는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구름 속에는 상당히 커진 물방울이나 얼음 조각이 있지만 때로는 상승기류 때문에 땅으로 떨어지지 못하고 구름 속에 많은 양의 물방울들이 모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습기로 빽빽한 구름 위에 실으시고”(욥 37:31).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전 11:3)라고 증언하여 비가 내리게 되는 원리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름에 비가 가득 쌓여져서 더 이상 상승기류의 힘으로 지탱하기 어려우면 물방울은 땅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상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성경은, 바닷물이나 강물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구름이 되고, 빽빽한 구름 속에 빗방울을 모으고, 구름에 빗방울이 가득하면 땅으로 쏟아지게 된다는 물의 순환과정을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물은 대기 중에서 ”물→수증기→구름→비→물”의 순서로 순환되고 있음을 성경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3) 우뢰, 번개, 이슬, 서리, 얼음, 기타 

위에서 말한 공기(바람), 물, 수증기, 구름, 비 외에도 우뢰, 번개, 이슬, 서리, 얼음 등 기상 전반에 관한 내용을 성경의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시 인간의 지혜를 초월한 내용인 것입니다.

”누가 폭우를 위하여 길을 내었으며 우뢰의 번개길을 내었으며,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고, 황무하고 공허한 토지를 축축하게 하고 연한 풀이 나게 하였느냐? 비가 아비가 있느냐? 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얼음은 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물이 돌같이 굳어지고 해면이 어느니라” (욥 38:25-30).

 

출처 - 창조지, 제 114호 [1999. 5~6]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성경과 과학 

(Bible and Science)

서민호 


     많은 사람들은 성경책을 윤리-도덕적으로는 훌륭한 책이지만 과학적으로는 신뢰성이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성경은 물론 과학책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초자연적인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피조세계중의 하나인 과학과 성경은 당연히 일치하게 되어있다. 현대의 과학수준이 성경의 사실들을 이해할 만큼 충분히 발달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피상적으로 보기에는 성경이 비과학적인 것처럼 오해되어왔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결국 성경이 옳았다는 사실이 꾸준히 증명되어왔으며, 첨단과학의 시대라고 하는 20세기 말에 이르러서도 성경의 기록들이 과학적으로 틀렸다고 밝혀진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성경은 비과학적인 책이 아니라 초과학적인 책이라는 몇가지 예를 들어보도록 하자.

1. 지금부터 약 3400년전에 기록된 창세기 22장 17절과 예레미야 33장 22절에 보면 하늘의 별은 바다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이 많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늘의 별은 수천개 정도에 불과하며 성경이 틀렸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천체망원경이 발달하면서 하늘의 별은 엄청나게 많으며, 우리가 살고있는 은하계(Galaxy)만 해도 별이 1000억개나 되며, 우주에는 이러한 은하계가 1000억개 이상이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성경말씀 그대로 하늘의 별은 1000억 곱하기 1000억개나 되는, 셀수 없이 많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2. 욥기 38장 31절에 보면 하나님이 욥에게, "네가 묘성(황소자리의 별)을 매어 떨기(성단) 되게 하겠느냐 삼성(오리온자리 별)의 띠를 풀겠느냐"라고 하시면서 인간능력의 제한성을 지적하시고 하나님은 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근래까지만 해도 묘성은 아무관계 없이 흩어져 있는 별이며, 삼성의 별자리는 요지부동의 띠모양이라고 생각하여서 성경이 틀렸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현대천문학의 발달로 인하여 묘성은 떨기별(성단)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오리온자리 별의 허리띠인 삼성은 지구에서 볼때만 허리띠 모양이었고, 실제로는 우주공간에 뚝뚝 떨어져있는(풀려있는) 아무 관계없는 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창세기 만큼이나 오래전에 기록된 성경이 20세기에 와서야 밝혀진 것이다.


3. 고대인들은 거대한 거북이 등이나 여신의 허리 위에 지구가 얹혀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욥기 26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이 "땅(Earth=지구)을 공간(Space, Nothing=우주공간)에 다시며"라고 하여, 지구는 우주공간에 떠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과학적으로는 근래에 와서야 밝혀진 사실을 성경은 지금부터 수천년전에 이미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4. 운석의 존재가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1803년이다. 그런데 지금부터 수천년 전에 기록된 여호수아서 10장 1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우박(Great Stone)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게 하시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덩이우박 (Great Stone)'은 운석을 뜻하는 것으로서, 성경은 과학적 기록보다 수천년 앞서서 운석의 존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5. 시편 8편 8절에 보면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해양학의 아버지 매튜 머리(Matthew Maury) 박사는 이 성경귀절을 듣고 깨달아 세계 최초로 해로를 발견하였다.


6. 아인슈타인 박사에 의해 밝혀진, 현대과학의 대단히 중요한 발견중의 하나가 "질량과 에너지는 근본적으로 동등하다"는 사실이다. 즉 물질은 실제로는 에너지의 한 형태이며, 원자에너지로 알려져있는 에너지 형태의 표출이다. 우주의 물질은 궁극적으로 물질적인 것이 아니며, "나타나지 않은" 그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부터 1900년전에 기록된 성경기록인 히브리서 11장 3절을 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world-time)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고 되어있다. 성경은 공간과 질량과 시간의 연속체로서의 우주를 설명하고 있으며, 우주의 물질적 본질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무한한 에너지의 근원으로부터 나오는 능력에 의해 창조되고 지탱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성경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기 1900년 전에 이미 물질의 근본을 정확히 과학적으로 기록하였던 것이다.


7. 현대과학에 있어서 모든 물질과학의 절대적인 기초 법칙으로서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질량불변의 법칙이 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란 "폐쇄된 계 안에서 에너지의 한 형태가 다른 형태로 변화할 때,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법칙이며, 질량불변의 법칙이란 "모든 물질은 그 크기와 상태와 형태에 있어서는 변할수 있어도, 그 총 질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법칙이다. 이러한 법칙들이 의미하는 바는 한결같다. 즉, 물질 및 에너지의 창조나 파괴는 물질세계의 그 어느곳에서도 완전히 이루어질 수 없음을 뜻한다. 성경은 수천년동안 창조가 더 이상 진행중에 있지 않으며, 현존하는 체계는 단지 태초에 있은 하나님에 의한 창조의 결과일 뿐이라는 위대한 진리를 가르쳐왔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때에 마치니" (창세기 2:1-2; 기록연대=기원전 1446년경). 성경기록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8. 역시 모든 물질과학의 절대적인 기초 법칙으로서 무질서 증가의 법칙(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있다. 무질서 증가의 법칙이란 '폐쇄된 체계 안에서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으나, 그 에너지가 가지고 있던 효용성과 유용성의 양은 언제나 줄어들어서, 에너지의 질이 계속 저하된다.'는 법칙이다. 무질서 증가 법칙의 의미는 "지구의 거의 모든 에너지는 태양으로부터 오는데, 언젠가 태양은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되어 버릴 것이며, 지구상의 모든 활동도 끝나게 된다. 즉, 우주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으며, 낡아가고 퇴락해 가고 있으며, 궁극적인 물질적 죽음을 향해 냉혹하게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지금부터 수천년 전에 기록된 구약성경 시편 102편 25-27절을 보면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天地)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경의 기록은 무질서 증가의 법칙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9. 미국 초대 대통령인 죠지 워싱턴 장군은 왜 죽었을까? 늙어 죽었을까? 병들어 죽었을까? 아니면 암살당했을까? 미국 버지니아 의학월보에 죠지 워싱턴 장군의 사망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있다. "1799년 12월 12일, 눈-비 내리는 추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장군은 습관대로 말을 타고 농장을 돌았다. 13일날 장군은 목이 아픔을 호소하며 집안에서 쉬었다. 14일 새벽 3시에 장군은 열이 심하게 났으며, 그날 낮에 농장관리인이 와서 많은 피를 뽑았다. 밤 11시에 제임스 크레 박사와 다른 두 명의 의사가 와서 두 번에 걸쳐 많은 피를 뽑아내었으며, 증세의 호전이 없어서 또다시 피를 뽑았다. 마지막으로 피가 천천히 나오며 피가 진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장군은 사망하였다." 워싱턴 장군은 추운날 말을 타다가 심한 감기-몸살이 걸렸는데 그당시의 무지하던 의학지식에 의하여 몸속에 나쁜 피가 많아서 병이 난 것으로 간주하여 여러번에 걸쳐 많은 피를 뽑아낸 결과 나중에는 나올 피가 없어서 피가 나오다가 굳어질 정도가 되었고, 워싱톤 장군은 출혈에 의한 쇼크로 죽게된 것이다. 요즘에 와서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워싱턴은 의학적 무지 때문에 살해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죽어가는 워싱턴 장군의 머리맡에는 성경책 한권이 놓여있었다. 그 성경책 레위기 17장 11절과 14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성경은 인간의 생명은 피에 있으며 피를 뽑으면 죽는다는 분명한 의학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비록 워싱턴 시대의 의학수준이 저급했다 하더라도, 성경이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만 있었어도 늙은 장군을 그토록 안타깝게 죽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지와 불신앙, 이 두가지가 미국 독립의 영웅을 죽인 것이다.


10. 많은 과학자들은 인류는 지구상 여러곳에서 각각 발생하여 여러종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주장하며, 문명도 지구상 여러 곳에서 각각 발생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최근에 미국 워싱톤 주립대학의 과학자들이 세포내 마이토콘드리아 DNA와 첨단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하여 인류의 조상을 조사한 결과 인류의 여자조상은 한 명이었음을 증명하여 그당시 '올해의 과학자 상'을 받게 되었다. 그때 시상식장에서 기독교를 믿는 교수들이 "성경만 읽어봤으면 될걸 그랬네(All he had to do was read the Bible!)"라고 농담겸 칭찬을 하였다. 정말 그렇다. 구약성경 창세기 3장 20절에 보면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이브)'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라고 기록되어있다. 현재의 모든 인류는 이브가 낳았거나 이브의 딸들이 낳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성경은 수천 년 전부터 놀랍도록 정확하게 과학적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과학이 계속해서 발달함에 따라 성경의 초과학성이 계속해서 밝혀질 것으로 생각된다.

위대한 과학자 아이삭 뉴톤은 유명한 저서 프린키피아에서 "천체(우주)는 태양, 행성, 혜성 등으로 매우 아름답게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은 지성을 갖춘 강력한 실재자의 의도와 통일적인 제어가 있기 때문에 비로소 존재하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지극한 하나님은 영원, 무궁, 완전하신 분이시다" 라고 말했으며, 또한 "과학이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라고 과학의 정의를 내렸다. 아인슈타인은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와 같다"라고 결론내렸다. 또한 20세기의 위대한 복음주의 신학자 프란시스 쉐퍼는 "성경은 기록된 말씀 그대로 믿는것이 중요하며, 실제 역사적 사건으로 믿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을 기록된 말씀대로 해석하지 않고 의미로만 해석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정통 기독교신앙을 벗어난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린도전서 1:25)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로마서 11:33)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출처 - 창조지

미디어위원회
2004-07-26

고서 검증법(Bibliographical Test)으로 본 성경의 신뢰도

심영기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사본이 얼마나 원본에 가까운지를 검증하는 방법으로 고서검증법(Bibliographical Test)이라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원본이 없는 경우 현재 갖고 있는 사본들끼리 서로 비교하여 보아, 원본과의 정확성 정도를 알아보는 방법이다. 이 방법에 의하면 사본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본이 원본으로부터 만들어진 시간적인 차이가 적으면 적을수록, 또 사본과 사본 사이에 오류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 사본은 원본과 가까운 사본이 된다. 이는 고고학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는 방법으로, 원본이 없는 대부분의 모든 사본에 대하여 응용되고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은 구약은 물론 신약 성경도 최초의 원본이 만들어진 시간이 지금부터 무려 4,000년 또는 2,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원본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성경의 신뢰도를 알아보는 객관적인 방법으로는 고고학자들이 이용하고 있는 고서검증법을 이용하여 그 정확성 정도를 가늠할 수가 있다. 위의 방법에 따라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의 신뢰도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1. 신약성경 사본의 정확성 

신약은 원래 헬라어로 쓰여졌다. 신약성경의 일부 또는 전부를 포함한 현존하는 사본은 약 5,500여 개, 번역 사본이 약 18,000여 개로 모두 25,00O여 개의 사본이 남아있다. 신약 성경과 비교하는데 가장 좋은 대조 서적으로는 호머(Homer)의 일리어드(Illiad)가 이용되고 있다. 신약성경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암기되고 또 비문에 적히기도 하며 후세 사람들에게 베껴져 전해졌듯이, 호머의 일리어드도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어 지금까지 전해 내려왔기 때문이다. 

이 두 책을 고서 검증법에 따라서로 비교하여 표를 만들어 보면 위와 같다. 

내 용

신약성경   

일리어드

사본의 수

원본 기록연대

최초 사본연대

시간적 차이

오류의 정도

24,643

AD40~100

A.D. 125

25년

0.5%

643

B.C. 900

B.C. 400

500년

5%

 

신약성경의 사본들은 고대의 어떤 사본들보다도 단연 오래된 것이다. 예를 들어 역사가 카툴루스(Catullus)의 책은 3개의 사본만 현존하는데, 원본 이후 100년 후에 만들어진 것이며, 헤로도투스(Herodotus)도 8개의 사본만 현존하는데 원본 이후 1,300년이나 지나서 기록된 것이다.

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신약성경은 대조 고서인 일리어드에 비해 사본의 수에서는 40여 배, 시간적인 차이에서 20 배, 그리고 오류의 정도는 10 배 정도 더 신뢰도가 높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기준보다 무려 약 8,000 여배 이상이나 신뢰도가 높은 것임을 보여 준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약성경은 인류가 갖고 있는 어떠한 책보다도 원본에 가까운 책임을 알 수가 있다.

브루스(F. F. Bruce)는 ”신약성경의 증거는 고전 작품에 대한 증거보다 훨씬 많으므로 그 신빙성을 의심할 수 없다” 고 말했다. 

 

2. 구약성경의 정확성 

구약성경의 가장 오래된 번역 사본은 오랫동안 A.D. 900년 경의 맛소라사본(Masoretic Text)이었으므로, 구약성경의 정확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해왔다. 왜냐하면 구약이 마지막 기록된 B.C. 400년경과 A.D. 900년과는 무려 1300년이라는 긴 시간적인 차이가 나는 셈이므로, 사본의 정확도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의심을 가졌던 것이다. 더욱이 구약성경의 히브리어 사본은 구약이 완성된 이후 1,400년이나 지난 A.D. 1008년의 바빌로니쿠스 서판(Codex Babylonicus Petropalitanus) 뿐이었다. 그 때까지 성경학자들은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이나 이집트의 파피루스를 유일한 자료로 활용해 왔다. 그런데 1954년 베두인(Bedouin) 목동이 우연히 B.C.125년경 쯤에 만든 사해사본(Dead Sea Scroll)을 발견함으로써, 원본과의 차이를 275년으로 좁혀 놓았다. 40,000여개의 사본 조각들로부터 500 여권의 책이 구성되었는데, 이중 1/3이 구약성경이었다. 사해사본에서는 놀랍게도 에스더서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구약성경 전체가 발견되었다. 더군다나 사해사본과 1,000여 년의 간격을 두고 만들어진 맛소라사본과 서로 비교해 보았더니, 이 둘이 서로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고고학자인 알브라이트(WilliamF. Albright) 박사는 사해 사본의 발견에 지대한 공을 세운 존 트래버(John Traver)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가장 위대한 사본을 발견하신 일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번 사본들이 나쉬(Nash) 파피루스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구약 성경의 일부분) 보다 더 오래된 것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 시기는 B.C. 100년경으로 짐작됩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발견입니다. 더욱이 사본의 순수성에 관하여는 추호도 의심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견해 

성경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구약성경을 어떻게 보셨는가? 하나님 자신이라고 주장하신 그분 자신의 견해는 구약성경의 권위에 대한 최종적 결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구약이 하나님에 의해 영감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라고 믿었다. 예수님은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라고 말씀하셨다 (요 10:35). 그는 구약을 ”하나님의 명령”(마 15:33),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마 15:6) 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경은 없어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8). 일점 일획이라고까지 말씀하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의 사람들을 대할때, 그들이 제자이건 종교지도자이건 간에 예수님은 계속적으로 구약에 대해 언급하셨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했느냐?” (마 22:32) 

 

4. 필사(筆寫) 작업 

사실 유태인들은 탈무디스트(Talmudist)라는 특수한 집단에 의해 원본과 똑같은 성경을 17개의 엄격한 규칙아래 베껴 왔다. 그들의 피땀 흘린 노력으로 우리는 원본과 같은 사본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철저한 복사 작업의 결과로 성경은 의심할 것 없이 수천 년을 거쳐 내려오면서도 내용에 아무런 변화도 없이 지금까지 전수되어 온 것이다. 성경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책이라 할 수 있으므로, 지금 우리가 성경에서 과학적인 설명들을 찾아 현대 과학과 비교해 보는 것은 불과 수십 년 전의 내용과 비교해 보는 것이 아니다. 수 천년 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자연 현상들이 정리되기 훨씬 이전, 그들이 직접 경험한 것들을 기록한 것과 비교해 보는 것으로 인위적인 조작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 

 

5. 성경 속의 과학적 내용 분류 Code 

성경 속에 나와 있는 과학적 기술을 다음 다섯 개의 code 분류하여 개괄적인 표를 만들어 이해를 도우려고 한다. 

1) Code의 설명

2) Code의 적용

예를 들어 욥기 26:7에 "그가 땅을 공간에 다시며…(He…hangs the earth on nothing)" 라는 기사는 위 분류 code에 따라 만들어 보면 그 code가 AAAAB가 된다.

① 첫번째 글자 'A' … 번역은 정확하다. 전치사 'on'은 히브리어 '알(AL)'에서 온 말로 '위에', '…에 대하여' 라고 번역되는 것으로 지구가 아무런 지지(支持)없이 (unsupported) 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② 두번째 글자 'A'… 욥기 26:7은 그 내용이 정확히 지구의 지지 system을 기술하고 있다.

③ 세번째 글자 'A'… 현대 과학으로 알려진 것이다. 지구를 무엇인가 떠받치고 있지 않음을 우주선에서 찍은 지구 사진으로 확인하였다.

④ 네번째 글자 'A'… 이 현상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장비가 필요하다. 측지학이나 우주 비행으로 확인할 수 있다.

⑤ 다섯번째 글자 'B'… A.D. 1600년 이후 과학적으로 인정되었다. 1543년 이전까지 세계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하늘의 모든 별이 지구를 포함해 모두 굳은 것으로 지지되어있다는 톨레미 시스템(Ptolemy System)을 믿어 왔다. 지구를 포함한 하늘의 별들이 아무런 지지를 받지 않고 운행한다는 것은 폴랜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 (Copernicus; 1473~1543)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참조 : What is the importance of the Dead Sea Scrolls?
http://christiananswers.net/q-abr/abr-a023.html


출처 - 창조지, 제 111호 [1998. 11~12]

Henry M. Morris
2004-07-26

성경과 생물학 

(The Bible and/or Biology)


      생물학(biology)이라는 용어는 bios(생명)와 logos(말씀)의 두 그리이스 단어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생명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키며, 성경(Bible)은 많은 증거와 그 자체의 주장에 의해 확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성경은 생물학을 비롯하여 사실에 근거한 과학(factual science)을 연구할 것을 격려-실제로는 명령-하고 있다. 사람에게 주어진 첫 번째 신성한 명령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 1:28)'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땅을 정복하고 생물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의 본성과 기능을 알아야만 했으므로, 소위 이 '지배명령(dominion mandate)'은 실제로는 '과학을 하라'는 명령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명백히 생물학의 확립을 암시하는 것으로서 이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의 동물과 식물 자원을 보호하고 적절히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과 생물학 사이에는 어떠한 충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화 생물학'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이 입장은 특별창조가 관여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순전히 자연주의적인 입장으로 모든 형태의 생명의 기원과 발달 역사를 설명하려는 시도로서, 과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으로 본다면 성경은 진화론적 입장의 생물학에는 반대한다. 성경은 창세기 1장에서 10번씩이나 오직 '종류대로' 여러 형태의 생명이 생겨났다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창세기 1:11,12,21,24,25). 물론 같은 종류일지라도 정확히 똑같은 두 개의 개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이 '변이(variation)'의 가능성마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창조된 종 내에서의 그러한 '수평적(horizontal)' 재조합은 과학연구의 적절한 주제가 될 수 있으며, 성경과 충돌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생물학을 전문적으로 전공한 많은 기독교 창조론자들은 이러한 성경 말씀을 큰 어려움 없이 인정한다. 예를 들면 미국의 창조과학연구소(ICR)에는 적어도 30명의 생명과학 전문가들이 있으며, 창조연구회(CRS)와 다른 창조론 모임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이나 다른 생명과학자들은 철저하게 진화론에 헌신되어 있다. 이것은 특히 생물학 분야에서 두드러진 사실이다. 최근의 미국 학술원 회원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과학 전 분야에 걸쳐 많은 주도적인 과학자들이 무신론을 신봉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생물학자들이 특히 많다고 한다. 

물리학자와 천문학자들은 하나님과 불멸을 믿는 비율이 각각 7.5%인데 반해 생물학자들은 그 비율이 가장 낮아 겨우 5.5%만이 하나님을, 7.1%만이 불멸을 믿고 있었다.1 

또한 사실상 하나님을 믿는 적은 수의 사람들 중 대부분도 유신론적 진화론자이지 창조론자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진화론에 헌신한 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은 과학적 증거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적 기독교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는 것이 강조되어야만 한다. 다윈조차 성경의 신적 형벌교리를 거부했기 때문에 진화론자와 회의론자가 되었다.2 

실제적으로 볼 때에는 생물학적 진화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기껏해야 매우 빈약할 뿐이다. 역사상 진짜로 진화가 일어났다는 증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가장 간단한 생명체에서까지 발견되는 엄청난 복잡성은 진화론으로 설명하기에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도 어쨌든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모든 피조물의 생식과정을 관할하는 유전학적 코드도 너무나 복잡하여 지적인 설계가 있었음을 명백히 암시하고 있다. 그래도 역시 그들은 이것을 자연선택으로 돌리고 있다. 다음의 진술에 주목해 보자. 

유전학적 코드는 단순히 무작위적인 결과가 아니라 초기의 자연선택에 의한 결과물이라고 영국의 과학자들은 말한다. 그들의 분석에 의하면 그 코드는 수 십억의 수 십억 배에 달하는 가능한 코드 중 최선의 것이라는 것이다. 대략 1020개의 코드가 가능한데 자연에서 실제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35억년 이전에 표준으로 채택된 것이다.3 

지적인 존재가 관여했다는 명백한 결론을 내리는 대신 그들은 이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일어났다고 가정한다. 

......그러한 효율적인 코드가 우연에 의해 생겨났다는 것은 극히 희박하다. 자연선택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이 틀림없다.4 

따라서 자연선택은 종의 기원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생명을 주관하는 놀라운 코드의 기원에서조차 하나님의 위치를 대신하게 되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수많은 진화생물학자들은 그러한 놀라운 특질을 성취하는데 있어 자연선택에만 의존하는 것이 매우 불합리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두 명의 매우 뛰어난 진화론자들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동물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주된 의문들은 신다윈주의를 통해서는 답을 얻을 수가 없다. 그러한 질문들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어떻게 새로운 구조가 진화를 통해 일어나는가?' '수많은 환경의 변화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화석기록으로 보건대 진화에 있어 왜 균형상태(stasis)가 그토록 우세한가?' '어떻게 한 그룹의 기관이나 한 분자세트가 서로로부터 진화되었는가?'5 

이러한 질문들은 창조론자들이 수년간 진화론자들에게 제기해 온 질문과 동일한 것인데, 명백하면서도 진실된 해답은 성경적 창조에 있다.

물론 이러한 해답을 진화론자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단순히 그렇다라고만 설명하거나 또는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라는 불가사의한 시나리오를 고안해 낸다. 

이런 가상적인 개념은 신다윈주의자들에 의해 고안되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은 공학자나 물리학자, 수학자로 출발한 과학자들로서 생물학이 '쉽다'는 것을 알았다.6 

위에서 언급한 공저자들(coauthors)은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한 점진적 진화라는 신다윈주의자들의 개념에 완강히 반대하며, 또한 굴드(Gould)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주장한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해답이 가이아(Gaia)라는, 지구자체-소위 어머니로서의 지구(Mother Earth)-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라는 고대 이교도들의 생각에 있다고 믿는다.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은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신다윈주의자이며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역시 영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신다윈주의자이다. 윌슨(사회생물학의 주요 주창자로 잘 알려져 있다)의 최근 책을 리뷰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했다. 

.....책의 몇 군데 구절에서, 복잡성의 문제가 모든 과학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임을 암시하고 있다.7 

그의 동료 다윈주의자인 도킨스는 그러한 문제는 모두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그의 '눈먼 시계공' 이론에 의해 여하튼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선택을 통해 인간의 두뇌를 설명하려고 시도하던 윌슨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른 것으로 보인다. 

두뇌의 진화는 300만년 이상에 걸쳐 우리의 유인원 조상과 호모 사피엔스(약 100만년 전에 나타난) 사이에서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가장 이상한 특징은 인간의 두뇌의 용적이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크기보다 훨씬 컸다는 점이다. 더욱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은, 조금이라도 진화론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모든 문명의 최초의 기록으로부터 우리를 단절시키는 것에 반해, 일단 두뇌가 형성되고 난 이후에는 단지 수천년 안에 엄청난 문화의 분화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물론 인간두뇌와 문명의 기원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받아들인다면 위의 어떠한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초기의 신적 창조라는 단순한 해결책을 받아들이는 대신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을 설명하는데 있어 신다윈주의, 단속평형설, 가이아 이론의 상대적 우위성을 강조하느라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하바드 대학의 스티븐 제이 굴드(Steven Jay Gould, 단속평형설의 주창자)는 비록 듀안 기쉬(Duane Gish)와 같은 창조과학자와의 토론은 거절했지만 이러한 주제에 대해 도킨스 및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토론에는 참여하였다. 최근에는 인간심리학이 다윈적인 선택의 결과인지 아니면 단속평형의 결과인지에 대한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진화론적 인류학자이자 언어학자)와의 논쟁을 널리 공표하기도 했다. 과학 저술가인 브룩스의 다음 논평은 매혹적이며 적절하다. 

굴드는, 이제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인정하는 단순하면서도 쓸모없는 오래된 논쟁의 필연적인 부산물과도 같다. 그것은 지적으로 우월해지려는 것 외에 어떠한 명백한 기능도 없는 것이다. 이 문제는 많은 상상과 논쟁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양측 모두의 견해에 대한 증거가 매우 빈약하기 때문이다.9 

이 특별한 논쟁은 진화심리학에 관한 것이지만 동일한 비평이 진화생물학에도 적용될 수 있다. 즉 어느 쪽도 관찰에 의한 증거를 댈 수 없다는 것이다. 신다윈주의에 대해 진화학자 도버(G. A. Dover)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진화론 연구는 목적론적인 컴퓨터 시뮬레이션,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 그리고 잘못 기획된 확률놀음에서 제거되어 실험실과 현장으로 되돌려보내져야 한다...... 아직 배워야 할 여지가 많이 있으므로 신다윈주의자의 통합(neo-Darwinist synthesis)은 눈먼 시계공이론에 의해 끝까지 방어되어서는 안된다.10 

현장 연구를 통해 단속평형론자들은 화석기록에 보편적인 진화간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거로 제시한다. 이러한 간격에도 불구하고, 또 현재 현장이나 실험실에서 결코 목도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석의 기록은 진화가 과거에 실제로 일어났다는 일반적인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화석은 점진주의(gradualism)나 단속주의(punctuationism) 모두에 대해 확고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화석의 발견은 단순한 진화계통수를 만들려는 우리의 시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 주요 시대의 화석은 대개 중간화석이 아닌 많은 다른 그룹의 특징들로 뒤범벅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주 화석그룹은 단순히 선형적(linear)이거나 진행적(progressive)인 방식으로 조합되지 않는다. 새로운 특징들은 종종 다른 시대의 다른 그룹으로부터 '취해서 붙여 놓은(cut and paste)' 것에 지나지 않는다.11 

바위에 남겨진 수십억 개의 화석 중 전이 형태의 화석은 없을 뿐더러 명백한 진화론적인 순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고고학에 '닭이냐 달걀이냐(chicken and egg)'라는 문제를 제 기한다. 만일 주요 특징들에 대한 독립적인 진화가 일반적이라면, 계 통발생학은 어떻게 인식될 것인가?12 

생물학적 기원의 모든 문제에 대한 올바른 출발선은 바로 성경의 기록이 모든 실제적인 과학적 현실과 일치하며 진화는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참고문헌

1. Edward J. Larson and Larry Witham, 'Leading Scientists Still Reject God,' Nature (vol. 394, July 23, 1998), p. 313.

2. Charles Darwin, Autobiography, reprinted in The Voyage of Charles Darwin, edited by Christopher Rawlings (BBS, 1978). See 'A Scientist's Thought on Religion.' New Scientist (vol. 158, April 18, 1998), p. 15.

3. Jonathan Knight, 'Top Translator,' New Scientist (vol. 158, April 18, 1998), p. 15.

4. Ibid.

5. Lynn Margulis and Dorion Sagan, Slanted Truths: Essays on Gaia, Symbiosis, and Evolution(New York: Springer-Verlag, 1997), p. 100.

6. Op. cit., p. 270.

7. Charles C. Gillispie, 'E. O. Wilson's Consilience: A Noble Unifying Vision, Grandly Expressed,' Review of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by Edward O. Wilson (New York: Alfred Knoph, 1998), 322pp. In American Scientist (vol. 86, May/June 1998), p. 282.

8. Op. cit., p. 281.

9. Martin Brookes, 'May the Best Man Win,' New Scientist (vol. 158, April 11, 1998), p. 51.

10. G. A. Dover (1998), cited in Margulis and Sagan, op. cit., p. 271.

11. Neil Shubin, 'Evolutionary Cut and Paste,' Nature (vol. 394, July 2, 1998), p. 12.

12. Op. cit., p. 1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12.htm

출처 - ICR, Impact No. 312, June 1999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

참고 :

이재만
2004-07-14

필요한 것부터 창조


    성경에서 가장 먼저 언급된 물질이 무엇일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하는 창세기는 곧바로 2 절에 지(earth)에 해당하는 땅에 대하여 설명을 해나간다. “땅(earth)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surface of water)에 운행하시니라.” 특정한 물질로는 창세기 1장 2절에 “물”이 처음으로 언급된다. 물은 잘 알다시피 화학식으로 H2O 다. 재미있는 것은 성경에 처음 언급된 물질이 우리가 알고있는 물질 중에 가장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보다 더 단순한 것들이 많이 있다. 수소, 산소, 핵, 소립자, 미립자….


만약에 우주의 시작이 우리가 알고있는 물보다 더 단순한 물질에서 시작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한 답은 그 이상의 진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수소에서 시작했다면 수소 폭발만 일어났을 것이고, 산소는 쇠를 녹일 수 있는 뜨거운 기체이다. 소립자에서 시작했다면? 미립자에서 시작했다면… 단순한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잠깐 우리가 숨을 쉬고있는 대기를 보자. 대기 중에는 산소가 21%가 된다. 우리가 호흡하는데 필요한 것이 산소라 해서 산소가 공기 중에 오늘날 보다 더 많게 된다면 지구는 불바다로 변할 것이고, 더 적게 된다면 모든 생물들이 바로 호흡 곤란을 일으켜 생명을 지탱할 수가 없게 된다. 단지 산소뿐만 아니라 모든 기체의 함량에서 조금만 실수(?)를 하셨다면, 지구에 생명체가 남아있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완벽한 분의 완벽한 디자인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성경을 제외하고 기원을 논하는 경우는, 일단은 단순한 것부터 시작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완전한 것으로 변화될 것을 기대한다. 그렇지만 과학은 분명히 단순한 것부터 시작할 경우, 그 다음 단계로의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창조는 “필요한 것”부터 “필요에 따라” 창조되어야 다음 단계로 진행될 수 있다. 물론 창조 후의 진행도 창조자의 역할이 필요함에는 논할 여지가 없다. 성경 속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모습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창조하시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부터 창조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과학적인 해답도 이 세상의 각 부분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디자인된 상태로 시작되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물에 대하여 논하여 보더라도, 거의 대부분의 물질과 다르게 물은 섭씨 4도에서 최소의 부피를 갖기 때문에, 얼음(고체)이 되었을 때 물위로 뜨게 된다. 만약 물도 일반적인 다른 물질과 같이 고체가 되었을 때 가라 앉는다면 즉, 얼음이 바닥에서부터 얼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보나마나 지구상에 있는 생명체는 남아있기 어렵다. 또한 물은 산성도 중성이 아닌 완전히 중성을 유지하고 있다. 물 하나만 다루려 할지라도 그 특성을 나열하는데 한이 없다. 지구표면의 70%을 차지한다. 물은 그 독특한 성질로 대기의 순환을 이루며 지구의 온도를 유지하고 생명체들에게 살 수 있는 근원을 제공하여 준다. 사람이 하루에 몇 컵의 물을 마실까? 한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식탁을 준비할 때 얼마만한 물이 필요한가? 물의 그 많은 성질 중에 한 가지만 틀려진다 할지라도 모든 생물은 살 수 없다. 물은 반드시 필요할 뿐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성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진화론은 우주 만물이 단순한 것부터 되었을 것이라는 비과학적인 사고를 우리에게 심어주었다. 그리고 복잡한 것으로 옮기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과학적으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옮기는 데는 시간은 역할을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사실 시간이 지나면 더 무질서해진다), 단순한 것부터 시작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원리 중에 가장 처음 언급하는 것은 가장 단순한 물질에서 시작했다고 하지 않으시고, “필요한 것”부터 “필요에 따라서” 만드셨다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진화론은 창조원리에 가장 근본인 “필요한 것”부터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중요한 사실부터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99

참고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3

대표전화 02-419-6465  /  팩스 02-451-0130  /  desk@creation.kr

고유번호 : 219-82-00916             Copyright ⓒ 한국창조과학회

상호명 : (주)창조과학미디어  /  대표자 : 박영민

사업자번호 : 120-87-70892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21-서울종로-1605 호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5

대표전화 : 02-419-6484

개인정보책임자 : 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