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생물학
(The Bible and/or Biology)
생물학(biology)이라는 용어는 bios(생명)와 logos(말씀)의 두 그리이스 단어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생명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키며, 성경(Bible)은 많은 증거와 그 자체의 주장에 의해 확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성경은 생물학을 비롯하여 사실에 근거한 과학(factual science)을 연구할 것을 격려(실제로는 명령)하고 있다. 사람에게 주어진 첫 번째 신성한 명령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 1:28)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땅을 정복하고 생물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의 본성과 기능을 알아야만 했으므로, 소위 이 '지배명령(dominion mandate)'은 실제로는 "과학을 하라"는 명령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명백히 생물학의 확립을 암시하는 것으로서 이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의 동물과 식물 자원을 보호하고 적절히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과 생물학 사이에는 어떠한 충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화 생물학'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이 입장은 특별창조가 관여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순전히 자연주의적인 입장으로 모든 형태의 생명의 기원과 발달 역사를 설명하려는 시도로서, 과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으로 본다면 성경은 진화론적 입장의 생물학에는 반대한다. 성경은 창세기 1장에서 10번씩이나 오직 '종류대로' 여러 형태의 생명이 생겨났다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창세기 1:11,12,21,24,25). 물론 같은 종류일지라도 정확히 똑같은 두 개의 개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이 '변이(variation)'의 가능성마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창조된 종 내에서의 그러한 '수평적(horizontal)' 재조합은 과학연구의 적절한 주제가 될 수 있으며, 성경과 충돌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생물학을 전문적으로 전공한 많은 기독교 창조론자들은 이러한 성경 말씀을 큰 어려움 없이 인정한다. 예를 들면 미국의 창조과학연구소(ICR)에는 적어도 30명의 생명과학 전문가들이 있으며, 창조연구회(CRS)와 다른 창조론 모임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이나 다른 생명과학자들은 철저하게 진화론에 헌신되어 있다. 이것은 특히 생물학 분야에서 두드러진 사실이다. 최근의 미국 학술원 회원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과학 전 분야에 걸쳐 많은 주도적인 과학자들이 무신론을 신봉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생물학자들이 특히 많다고 한다.
"물리학자와 천문학자들은 하나님과 불멸을 믿는 비율이 각각 7.5%인데 반해, 생물학자들은 그 비율이 가장 낮아 겨우 5.5%만이 하나님을, 7.1%만이 불멸을 믿고 있었다."1
또한 사실상 하나님을 믿는 적은 수의 사람들 중 대부분도 유신론적 진화론자이지 창조론자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진화론에 헌신한 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은 과학적 증거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적 기독교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는 것이 강조되어야만 한다. 다윈조차 성경의 신적 형벌교리를 거부했기 때문에 진화론자와 회의론자가 되었다.2
실제적으로 볼 때에는 생물학적 진화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기껏해야 매우 빈약할 뿐이다. 역사상 진짜로 진화가 일어났다는 증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가장 간단한 생명체에서까지 발견되는 엄청난 복잡성은 진화론으로 설명하기에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도 어쨌든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모든 피조물의 생식과정을 관할하는 유전학적 코드도 너무나 복잡하여 지적인 설계가 있었음을 명백히 암시하고 있다. 그래도 역시 그들은 이것을 자연선택으로 돌리고 있다. 다음의 진술에 주목해 보자.
"유전학적 코드는 단순히 무작위적인 결과가 아니라, 초기의 자연선택에 의한 결과물이라고 영국의 과학자들은 말한다. 그들의 분석에 의하면 그 코드는 수 십억의 수 십억 배에 달하는 가능한 코드 중 최선의 것이라는 것이다. 대략 1020 개의 코드가 가능한데 자연에서 실제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35억년 이전에 표준으로 채택된 것이다." 3
지적인 존재가 관여했다는 명백한 결론을 내리는 대신, 그들은 이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일어났다고 가정한다.
"....그러한 효율적인 코드가 우연에 의해 생겨났다는 것은 극히 희박하다. 자연선택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이 틀림없다." 4
따라서 자연선택은 종의 기원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생명을 주관하는 놀라운 코드의 기원에서조차 하나님의 위치를 대신하게 되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수많은 진화생물학자들은 그러한 놀라운 특질을 성취하는데 있어 자연선택에만 의존하는 것이 매우 불합리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두 명의 매우 뛰어난 진화론자들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동물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주된 의문들은 신다윈주의를 통해서는 답을 얻을 수가 없다. 그러한 질문들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어떻게 새로운 구조가 진화를 통해 일어나는가?' '수많은 환경의 변화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화석기록으로 보건대 진화에 있어 왜 균형상태(stasis)가 그토록 우세한가?' '어떻게 한 그룹의 기관이나 한 분자세트가 서로로부터 진화되었는가?" 5
이러한 질문들은 창조론자들이 수년간 진화론자들에게 제기해 온 질문과 동일한 것인데, 명백하면서도 진실된 해답은 성경적 창조에 있다.
물론 이러한 해답을 진화론자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단순히 그랬을 것이다 (just-so stories)라고만 설명하거나, 또는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라는 불가사의한 시나리오를 고안해 낸다.
"이런 가상적인 개념은 신다윈주의자들에 의해 고안되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은 공학자나 물리학자, 수학자로 출발한 과학자들로서 생물학이 '쉽다'는 것을 알았다." 6
위에서 언급한 공저자들(coauthors)은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한 점진적 진화라는 신다윈주의자들의 개념에 완강히 반대하며, 또한 굴드(Gould)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주장한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해답이 가이아(Gaia)라는, 지구자체-소위 어머니로서의 지구(Mother Earth)-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라는 고대 이교도들의 생각에 있다고 믿는다.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은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신다윈주의자이며,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역시 영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신다윈주의자이다. 윌슨(사회생물학의 주요 주창자로 잘 알려져 있다)의 최근 책을 리뷰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했다.
"....책의 몇 군데 구절에서, 복잡성의 문제가 모든 과학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임을 암시하고 있다." 7
그의 동료 다윈주의자인 도킨스는 그러한 문제는 모두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그의 '눈먼 시계공' 이론에 의해 여하튼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선택을 통해 인간의 두뇌를 설명하려고 시도하던 윌슨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뇌(brain)의 진화는 300만년 이상에 걸쳐 우리의 유인원 조상과 호모 사피엔스(약 100만년 전에 나타난) 사이에서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가장 이상한 특징은 인간의 두뇌의 용적이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크기보다 훨씬 컸다는 점이다. 더욱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은, 조금이라도 진화론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모든 문명의 최초의 기록으로부터 우리를 단절시키는 것에 반해, 일단 뇌가 형성되고 난 이후에는 단지 수천년 안에 엄청난 문명의 분화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8
물론 인간의 뇌와 문명의 기원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받아들인다면 위의 어떠한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태초에 신에 의한 창조라는 단순한 해결책을 받아들이는 대신,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을 설명하는데 있어 신다윈주의, 단속평형설, 가이아 이론의 상대적 우위성을 강조하느라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하버드 대학의 스티븐 제이 굴드(Steven Jay Gould, 단속평형설의 주창자)는 비록 듀안 기쉬(Duane Gish)와 같은 창조과학자와의 토론은 거절했지만, 이러한 주제에 대해 도킨스 및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토론에는 참여하였다. 최근에는 인간심리학이 다윈적인 선택의 결과인지, 아니면 단속평형의 결과인지에 대한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진화론적 인류학자이자 언어학자)와의 논쟁을 널리 공표하기도 했다. 과학 저술가인 브룩스의 다음 논평은 매혹적이며 적절하다.
"굴드는 이제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인정하는 단순하면서도 쓸모 없는 오래된 논쟁의 필연적인 부산물과도 같다. 그것은 지적으로 우월해지려는 것 외에 어떠한 명백한 기능도 없는 것이다. 이 문제는 많은 상상과 논쟁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양측 모두의 견해에 대한 증거가 매우 빈약하기 때문이다." 9
이 특별한 논쟁은 진화심리학에 관한 것이지만 동일한 비평이 진화생물학에도 적용될 수 있다. 즉 어느 쪽도 관찰에 의한 증거를 댈 수 없다는 것이다. 신다윈주의에 대해 진화학자 도버(G. A. Dover)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진화론 연구는 목적론적인 컴퓨터 시뮬레이션,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 그리고 잘못 기획된 확률놀음에서 제거되어 실험실과 현장으로 되돌려보내져야 한다...... 아직 배워야 할 여지가 많이 있으므로 신다윈주의자의 통합(neo-Darwinist synthesis)은 눈먼 시계공 이론에 의해 끝까지 방어되어서는 안 된다." 10
현장 연구를 통해 단속평형론자들은 화석기록에 보편적인 진화간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거로 제시한다. 이러한 간격에도 불구하고, 또 현재 현장이나 실험실에서 결코 목도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석의 기록은 진화가 과거에 실제로 일어났다는 일반적인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화석은 점진주의(gradualism)나 단속주의(punctuationism) 모두에 대해 확고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화석의 발견은 단순한 진화계통수를 만들려는 우리의 시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 주요 시대의 화석은 대개 중간화석이 아닌 많은 다른 그룹의 특징들로 뒤범벅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주 화석그룹은 단순히 선형적(linear)이거나 진행적(progressive)인 방식으로 조합되지 않는다. 새로운 특징들은 종종 다른 시대의 다른 그룹으로부터 '취해서 붙여 놓은(cut and paste)' 것에 지나지 않는다." 11
암석에 남겨진 수십억 개의 화석 중 전이형태의 화석은 없을 뿐더러, 명백한 진화론적인 순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고고학에 '닭이냐 달걀이냐 (chicken and egg)' 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만일 주요 특징들에 대한 독립적인 진화가 일반적이라면, 계통발생학은 어떻게 인식될 것인가?" 12
생물학적 기원의 모든 문제에 대한 올바른 출발선은 바로 성경의 기록이 모든 실제적인 과학적 현실과 일치한다는 것이며, 진화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References
1. Edward J. Larson and Larry Witham, 'Leading Scientists Still Reject God,' Nature (vol. 394, July 23, 1998), p. 313.
2. Charles Darwin, Autobiography, reprinted in The Voyage of Charles Darwin, edited by Christopher Rawlings (BBS, 1978). See 'A Scientist's Thought on Religion.' New Scientist (vol. 158, April 18, 1998), p. 15.
3. Jonathan Knight, 'Top Translator,' New Scientist (vol. 158, April 18, 1998), p. 15.
4. Ibid.
5. Lynn Margulis and Dorion Sagan, Slanted Truths: Essays on Gaia, Symbiosis, and Evolution (New York: Springer-Verlag, 1997), p. 100.
6. Op. cit., p. 270.
7. Charles C. Gillispie, 'E. O. Wilson's Consilience: A Noble Unifying Vision, Grandly Expressed,' Review of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by Edward O. Wilson (New York: Alfred Knoph, 1998), 322pp. In American Scientist (vol. 86, May/June 1998), p. 282.
8. Op. cit., p. 281.
9. Martin Brookes, 'May the Best Man Win,' New Scientist (vol. 158, April 11, 1998), p. 51.
10. G. A. Dover (1998), cited in Margulis and Sagan, op. cit., p. 271.
11. Neil Shubin, 'Evolutionary Cut and Paste,' Nature (vol. 394, July 2, 1998), p. 12.
12. Op. cit., p. 1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12.htm
출처 - ICR, Impact No. 312, 1999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1
참고 :
놀라운 7일 사이클
(The Amazing 7-Day Cycle)
Kenneth Westby
과학이 밝혀내고 있다.....
사람 몸은 놀랍게도 7일이라는 리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현대과학은 밝혀내고 있다. 6일 동안 일하고 제 7일에 안식하면, 사람 몸과 마음은 완전히 최상의 상태로 재출발 할 수 있지만, 이를 어기고 10일까지 일을 한다면 그 다음에는 이틀을 쉬어도 스트레스 호르몬이 0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현대 의학이 밝혀낸 결과이다. 이러한 주기는 결코 사회적인데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생체 깊숙한 내부적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Top-down 이 아니고 Bottom-up 현상인 것이다. 즉 사람 안의 여러 미세조직들이 다 미세조직 차원에서 7일 리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몸의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critsol 호르몬, 적혈구, 혈압, 심장박동, 소변의 양과 성분, 면역체계, 심장박동.. 등등이 모두 7일 리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뿐이 아니라, 말라리아 환자나, 신장 이식수술을 받은 환자 등의 임상적 상태가 신비한 7일 주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료계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놀라운 7일 주기는 사람뿐만이 아니고, 동물 식물 등에서도 일관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관찰된다는 사실이 최근 속속 입증되고 있다. 예를 들어 쥐, 얼굴파리(face fly) 등에서 이러한 리듬이 입증된바 있다. 최근에는 algae 라는 거대한 단세포 조류(藻類) 식물을 실험한 결과 이러한 단순한 생물조차도 역시 7일 리듬을 가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고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생명체들이 7일 리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 15년간 수퍼컴퓨터가 발달하면서 과학계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학계는 보고하고 있다. '시간생물학(chronobiology)' 이라는 분야는 생물체에 존재하는 리듬을 밝혀내는 학문으로써, 여러 기관들에서 (NASA, 여러 주요 대학, 정부 NIH 연구소 등)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특히 Franz Halberg 교수는 이 분야의 개척자이고 많은 주요한 논문을 발표하였다.그의 웹 자료를 보면 그가 과학자로서 어떻게 국제 사회로부터 그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7일 안식일 제도는 당연한 것도 아니요, 우연한 것도 아님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Jeremy Campbell은 (Winston Churchill's Afternoon Nap) 7 일 안식일이 오직 기독교와 유대교부터 비롯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대부분의 민족들은 3일장, 5일장, 10일장과 같이 시장을 중심으로 공동체의 생활리듬을 삼아 왔다. 오직 기독교 국가들만 7일 안식일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프랑스가 '혁명'을 한 후 기독교를 말살시키려는 의도로 안식일 제도를 없앴었다. 그들은 10일 안식일제를 1793년 10월 법으로 정하고, 교회는 안식일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이를 어기면 호된 벌금과 형무소 처벌로 다스렸다. 그러나 10일 제도는 1805 년에 실패로 돌아갔고, 7일 안식일제는 다시 복원되었다.
스탈린도 기독교를 말살시키기 위해서 (또 한편으로는 국내 생산을 늘리기 위해), 1929년에 10일 안식일제를 도입하였으나, 오히려 생산성이 거꾸로 내려가는 바람에 1940년에 7일 안식일 제도로 되돌아간 적이 있다. 이제는 전 세계가 7일 안식일제를 지키고 있다!
*참조 : Seven-day human biological rhythms: An expedition in search of their origin, synchronization, functional advantage, adaptive value and clinical relevance.
https://pubmed.ncbi.nlm.nih.gov/27830946/
페일리의 시계가 생물체 내에서 발견되었다.
https://creation.kr/Plants/?idx=13735242&bmode=view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oocities.org/heartland/pines/4655/daycycle.html
NASA는 잃어버린 하루를 찾아냈는가?
(Has NASA Discovered a “Missing Day”?)
Bert Thomson
Q. 태양이 ”멈추었다” 라는 여호수아 이야기에 대한 근거가 나돌고 있다. 지구와 태양의 궤도를 컴퓨터를 사용하여 계산하던 NASA의 과학자들이 인류 역사에서 '잃어버린 하루'를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내가 이것을 추적해본 결과, NASA의 과학자들이 잃어버린 하루를 찾는데 사용한 컴퓨터가 성경의 기록이 옳았음을 증명하였다는 이야기이다. 과연 그것은 정말일까?
A. 위의 내용과 같은 이야기들이 오가면 심심치않게 (통상 교회의 주보나 종교 출판물에) 실제 사건인양 나돌곤 한다. 이 정보의 최초 발언자는 신실한 의도에서 출발하였다는 것과, 불신자의 화살과 돌팔매로부터 성경을 지키고자 하는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그렇지만, 과학자들이 여호수아의 '긴 하루'를 찾아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 이야기를 조사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밝혀졌다.
어쨌거나 엇비슷한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는지도 이럭저럭 반세기가 되었다. 해리 림머 (Harry Rimmer)는 1936년에 처음 출판된 자신의 저서 ”과학과 성경의 조화 (Harmoney of Science and Scripture)” 의 마지막 장(章) 전부를 ”현대과학과 여호수아의 긴 하루”에 관한 내용을 위하여 할애하였다. 림머는 이 장에서 하나님이 태양의 운행을 멈추게 하였다는 (여호수아 10장) 이야기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는 기적적인 그 하루에 대해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즉, ”그 날의 기록은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과학은 증언할 것이다. 시간이 엄연히 존속하는 이상, 그 날의 기록은 남는다.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증언한 저명한 과학자가 있다. 나는 이름이 알려진 두 사람의 증언을 여기서 인용하고자 한다.” (1936, p280).
그리고 림마 박사는 영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볼 경(Sir Edwin Ball)과 예일 대학교의 토튼(C.A. Totten) 교수를 소개했다. 그는 ”태양계의 시간 체계에서 24 시간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하였다는 볼 경의 말을 믿는다고 했다. 림마는 이어서 이렇게 묻는다. ”그 24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 이 불가사의한 시간이 사라진 원인은 무엇일까? 또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을까?” (p 280). 바로 다음 단락에서 그는,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확실히 있다. 현직에 있는 과학자가 증언한 내용이다. 예일 대학교의 토튼 교수는 1890에 출판한 책에서 이 사건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p 281)라는 말을 인용한 다음, 림마는 토튼의 책의 '요약'이라고 하며 제시한 글에서, 토튼이 '사라진' 날을 찾아낸 정확한 경로라는 것을 제시하였다. 림마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여호수아가 전투를 벌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정확한 달과 날이라고 하면서, 그 날을 7월 22일 화요일이라고 추정하였다. (p 266)!
여호수아의 잃어버린 하루를 찾아냈다는 이야기는 과연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우선 이 해묵은 이야기부터 상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그러면 새로운 이야기가 옛날의 이야기를 분명히 각색해 내놓은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림마 박사는 볼 경과 토튼 교수의 책을 인용한다는 말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따옴표로 표시한 인용 구절은 하나도 없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림마 박사는 1890년에 토튼 교수가 저술하였다는 책의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림마 박사는 자기 책의 한 장(章) 전체를 할애할 정도로 중요하게 다룬 주제임을 고려해보면, 이 것은 어딘가 좀 이상하다고 아니 할 수 없다.
셋째로, 림마 박사는 볼 경과 토튼 교수의 책이라고 하면서, 그 책들에 관한 서지학적 정보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 학자들의 책들이 림마 박사의 논거일진대, 당연히 신빙성을 확실히 해야할 필요가 있을 텐데, 그의 모호한 주장이 여기서도 또 다시 비상식적이 아닐 수 없다.
넷째로, 볼 경이나 토튼 교수의 주장을 앞세운 림마 박사의 주장은 그 신빙성을 확실히 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그 한 예로, 버나드 람 (Bernard Ramm)은 The Christian View of Science and Scripture에서 림마의 주장과 토튼의 주장에 대한 림마의 해설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하면서, 그들이 제시하였다는 '증거'에 대해 아주 정선(精選)한 어휘로 점잖게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있다. ”나는 이 증거를 확인할 수 없었다..... 쿨프 박사 (Dr. Kulp)는 예일 대학교에서는 토튼의 주장을, 그리고 영국에서는 에드윈 볼 경의 이론을 자세히 조사했으나 그 증거를 확인할 수 없었다.” 라고 했다. (1954, pp 109,117)
림마 박사는 이 이야기를 말할 때 그 진실성을 확실히 믿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입증할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문서적 배경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런 이야기들의 발원지를 찾아내기란 떠돌고 있는 경로를 찾아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일단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믿을 만한 인사들과 관련된 사실들에 의해서 '보강되면', 선의의 사람들은 철저한 조사를 해보기도 전에 그것을 진실로 수용하기 쉽다. 일단 수용되고 나면,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옹호하는 데 쓰일 좋은 합리적 방패로 삼으려 한다. 현재 찾아볼 수 있는 관련된 모든 자료를 검토해 본 결과, 볼과 토튼의 이야기는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앞부분에서 NASA의 이야기에 관한 질문에서도 같은 대답 패턴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여기서도 이 이야기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림마 박사가 말하던 그 이야기가 처음 출판되었을 때, 모두 크게 흥분했었다. 그래서 성경의 진실성을 '간증'하는 과학을 고대해 마지않던 사람들은 무비판적으로 그의 말을 수용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애초의 흥분이 가라앉고 나서, 그 이야기는 곧 잊혀지고, 거들떠보는 이 없는 가운데 역사유물 창고에 처박히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그 상태로 처박혀있지는 않았다. 누군가 (이 순간까지도 그 사람이 누군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 이야기를 다시 찾아내어 '먼지를 털고' (틀림없이 오늘날의 사회와 사람들의 마음에 더 호소력을 갖게 하기 위하여) 얼마쯤은 각색하여, (관련 있는 개개인들과 회사들, 그리고 도시들의) 이름을 연관시켜놓고는, 상당부분 의도적으로 일반 대중의 신임이 두터운 유명한 정부기관 (NASA)과 결부시켰다. 그 이야기의 '배경설명'은 언뜻 보기에 완전하리 만치 그럴싸하게 잘 짜여져서 의심하거나 미심쩍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NASA에서 일하고 있는 과학자들이 우주선의 탄도궤적을 계산하기 위하여,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태양, 달, 그리고 별들의 위치를 추적하고는, 더 나아가 1000년 전의 것도 추적하고 있었다. 정부기관의 정교한 컴퓨터들이 입력된 데이터를 계산하다가, 전혀 예상 밖으로 갑자기 삐걱거리며 작동을 멈췄다. 하지만 달려온 정비기술자들은 아무런 기계적 하자를 찾아낼 수 없었다. 여기서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즉, 컴퓨터들은 하루에 해당하는 시간을 잃어버린 사실을 발견한 것이 알려졌다. 어느 누구도 컴퓨터가 왜 그렇게 멈춰야 했었던가, 또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과학자 팀에 소속했던 어느 과학자가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 배웠던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특히 하나님이 하루 동안, 대강 그 정도의 시간 동안, 태양을 멈췄다는 이야기를 기억 속에 떠올렸다. 하나님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믿지 않는 나머지 NASA의 과학자들은 그 따위 '정보'를 가지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 그 자체를 비웃었다. 하지만 그 과학자는 여호수아 10장을 펴들고 성경을 읽었다. 그런 다음 정비기술자들이 컴퓨터의 입력 데이터 안에 여호수아의 잃어버린 하루를 입력하자 컴퓨터는 거의 완벽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컴퓨터가 또 다시 멈췄다. 컴퓨터가 찾아낸 잃어버린 시간은 만 하루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는 다시 이렇게 이어졌다) 컴퓨터가 찾아냈던 잃어버린 시간은 23시간 하고 20분이었다. 다시 말해서 40분이 모자랐었다는 것이다. 그 때, 성경을 참조해보자고 건의하였던 그 과학자는 이 수수께끼를 다시 한번 성경 안에서 찾아보자고 제의했다. 그는 주일학교에서 배웠던 내용 중에 뭔가 다른 내용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었다. 열왕기하 20장에 있는 이야기를 생각했던 것이다.
성경기록에 의하면, 히스기야 (Hezekiah) 왕이, 병이 나을 것이며 장수를 약속 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약속의 징표를 요구하였더니, 하나님께서 해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가게 하였다는 이야기다. 해그림자의 10도 후퇴는 정확하게 40분에 해당한다고 그 과학자는 계산했다. 그래서 이 두 사건이 컴퓨터가 필요한 24시간을 채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이 컴퓨터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다 채웠다는 것이다!
위 이야기는 여러 정보통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 있는 커티스 엔진 회사 (Curtis Engine Company)의 사장 해롤드 힐 (Mr. Harold Hill) 씨는 그 정보가 정말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이 사건이 벌어졌다고 알려지고 있는 NASA 시험장이 위치하고 있는 도시 이름도 알고 있었다. 그는 잃어버린 하루를 찾아낸 곳이 메릴랜드의 그린벨트에 있는 NASA 시험장이라고 했다. 그밖에 다른 '사실들'도 알려지고 있으나 지면관계상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겠다. 어떤 설명에 의하면 힐 씨 자신이 어린 시절 주일학교엘 다녔다던 그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사람이 NASA의 컴퓨터가 여호수아의 잃어버린 하루를 찾아내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으리라고 하는 말은 재미있다. 다른 설명들도 없지는 않았는데, 대개 이렇게 이어지는 이야기들이다. 즉, 힐 씨는 NASA에서 그 사건들이 벌어졌을 때 그냥 그 곳에 참석한 것말고는 특별한 것은 없었다는 이야기다. 혼란스럽게도, 어떤 이야기 속에는 힐 씨의 이름을 전혀 거론되지도 않았으며, 또 그가 그 일에 아무런 참견도 한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보려는 기도는 모두 실패했다. 19870년 4월에 Bible-Science Newsletter 지에 이 이야기가 출판된 이후 수많은 독자들이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 있다는 커티스 엔진 회사의 힐 씨 앞으로 편지를 띄웠다. 그런데 그 편지들은 우체국의 '수취인 불명'이라는 딱지를 달고 죄다 되돌아왔다. Bible-Science Newsletter 1989년 7월호에 실린 기사에 1970년 4월 호의 출판 이후 몇몇 독자들이 마침내 힐 씨로부터 회신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내용인즉슨, 힐 씨는 자신이 그 이야기를 처음 쓰지 않았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직접 힐 씨와 연결이 된 적이 있다는 어느 독자는, 힐 씨가 자신이 그 이야기를 쓰지 않았음은 물론, 그 정보를 들은 기억조차 없다.” (Bartz, 1989, p 12)고 했다.
1989년도 7월판 Bible-Science Newsletter는 이런 기사내용이 실었다. 즉, 볼튼 데이비다이샤 (Bolton Davidheiser) 박사가 메릴랜드 주 그린벨트에 있는 NASA 사무소에 편지를 보내어 이 이야기가 일어났다는 곳이 어딘 지를 물었다고 한다. NASA는 해롤드 힐 씨에 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으며, 또 '잃어버린 하루' 이야기를 전혀 확증할 수 없다는 회신을 보냈다고 했다.
그 NASA의 편지 결론 단락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비록 우리는 우주선의 궤도를 확정하기 위하여 컴퓨터를 사용하여 행성들의 위치를 계산하지만, 그린벨트의 우리 기관에서 일하는 그 어떤 우주비행사나 과학자도 힐 씨와 관련이 있는 그 ”잃어버린 하루” 문제에 개입된 적이 없다.” (p12). 결국 이 이야기의 순수성을 확증하려하였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만 것이다. 어쨌거나 그 이야기의 출처가 의심스럽다. 이야기에서 거론된 사실들은 문제의 실질적인 진실에 부합되지 않는다. 여호수아 10절의 '잃어버린' 하루를 찾는 일에 개입돼 있을 법한 사람들은 NASA에서 있었다는 사건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컴퓨터가 잃어버린 하루를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다” 라고 하는 주장만 해도 믿을만한 사람들은 죄다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하여야 하는가를 알지 못했다.
여기서 도출될 수 있는 단 하나의 결론은 이런 것이 될 것이다. 즉 이 이야기는 허위라는 것이다. 이 결론이 사실일진대 더 이상 이 이야기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상시적인 안목으로 조금만 깊이 조사해보면 전혀 현실적인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이런 이야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한다”면,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상케 할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킬 수 있으며, 지켜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점을 명심하자. 즉, 하나님의 말씀을 ”부러진 검”을 들고 지키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References
1. Bartz, Paul (1989), ”Qustions and Answeres”, Bible-Science Newsletter, 27(7):12
2. Ramm, Bernard (1954), The Christian View of Science and Scripture (Grand Rapids, MI: Eerdmans).
3. Rimmer, harry (1936), The Harmony of Science and Scripture (Grand Rapids, MI: Eerdmans).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ation.com/has-nasa-discovered-a-missing-day
출처 - Reason & Revelation, 11(5):17–19, May 1991.
여호수아와 히스기야의 긴 날들은 설명될 수 있을까?
성경은 여호수아 10장에서 태양과 시간이 멈췄던 하루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에서 아모리 족과 싸움을 벌리고 있었다. 전투 중에 여호수아는 태양과 달이 멈추기를 기도했다. 소임을 다 끝내려면 덤으로 햇빛이 더 필요하였기 때문이었다. 성경은 그의 기도가 응답을 받았다고 기록되어있다.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수10:13). 아모리 족이 경배해 마지않던 하늘의 태양과 달이 오히려 자기네와 싸우게 되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들을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실제로 어떤 형태로든 기적은 없었다는 의견. 다만 시적 표현이 있었을 따름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너무도 열심히 싸웠기 때문에 하루나 이틀을 이어서 싸운 것 같다.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한낮의 열기가 식어 오후 내내 쉬지 않고 싸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 그러나 더위로부터의 해방은 이스라엘 민족한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적에게도 골고루 해당되었을 것이다.
.햇빛을 가린 일은 일식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 이 또한 일식은 몇 분 정도를 헤아리는 시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계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해석들은 예외 없이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여호수아 10:14), 그리고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하박국 3:11)라는 성경의 묘사와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그 특별한 날에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모든 기적이 다 그렇지만, 기적을 과학적인 이론으로 사색한다는 것은 허황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은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하나님은 빛을 굴절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며, 혹은 지구의 자전을 느리게 운행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며, 또 어쩌면 전체 우주를 (모두 동일한 정도로) 멈추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호수아한테는 시간이 멈추었고, 히스기야한테는 시간이 후진하였다. (열왕기하 20:9-11). 하나님은 이 사건을 히스기야의 건강회복을 약속하는 특별한 징표로 사용하셨다. 태양의 그림자가 열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아마 해시계로 다섯 시간이나, 여섯 시간을 후퇴하는 시간에 해당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태양이 서쪽으로 움직이지 않고 동쪽으로 움직였다는 말이 된다. 여기서도 결론은 동일하다. 즉, 그런 기적은 과학적인 설명을 초월한다.
하나님은 지구 위에 살고 있는 모든 거주자를 태운 채로 잠시 지구의 자전을 역행시켰을지 모른다. 또한 어쩌면 히스기야의 하루는 전 세계적인 규모가 아니고, 한 지방에만 있었던 기적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후자의 의견은 역대하 32:31절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라는 구절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다.
여호수아와 히스기야는 둘 다 하나님한테 저 하늘이 움직이게 해주십사 하는 고매한 기도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을 주셨다. 창조자의 말씀의 권능으로 우주공간에 자리를 잡게 된 태양과 달, 그리고 별들인 다음에야 그것들도 당연히 창조주의 말씀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참조 : 여호수아의 긴낮과 징조(태양아 멈추어라...달아 그리할지어다), 김명현 박사
https://www.youtube.com/watch?v=mm71uvGqXmw
아하스의 해시계 그림자 표적(창세기 1장 강해), 김명현 박사
https://www.youtube.com/watch?v=DL9cS6XOmb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hristiananswers.net/q-eden/edn-c016.html
출처 - christiananswers.net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21
참고 : 2323|1412|1413|629|2746|1805|528|2545|2515|2458|522
창세기에서 찾아본 올바른 식습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 중 많은 것들이 암이나 변비, 또는 관상동맥계 질환을 일으키는 원인물질로 비난을 받고 있고 최근 수 년간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건강식품에 대한 지식의 범람으로 혼란이 일고 있다. 예를 들어 올리브유의 경우, 처음에는 동맥을 막는 아주 나쁜 음식으로 인식되었지만 그후 심장질환을 우려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형태의 유지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처럼 많은 불확실한 이론 가운데, 하나의 명백하고 지속적인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창세기에서 발견되는 식습관이다.
많은 연구결과들에 의하면 식물성 급원의 천연식품이나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자연식품을 섭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건강상태를 제공해 준다고 보고되고 있다.
규칙적인 운동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형태의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이 건강한 생활을 보장하며 건강문제에 관한 위험도를 낮추어 준다는데 이견을 제시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즉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의 많은 부분은 감자나 쌀 또는 다른 곡류식품들의 도정을 적게 한 전분질 식품으로 구성되어져야 하고, 신선한 과일, 야채, 견과류 등도 그 음식물들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야 한다. 또 서구 여러 나라의 식습관과는 상반되게 우유나 계란, 육류같은 단백질 식품의 소비는 적게 이루어져야 하며, 지방의 섭취 역시 매일의 식품을 통한 에너지 섭취 중 가장 낮은 비율을 나타내야 한다.
실제적인 예
일본과 같이 쌀, 야채, 생선 등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에서는 심장병 발병율이 아주 낮다. 그러나 이런 지역 사람들이 서구의 식습관과 같이 가공식품이나 고지방식품을 많이 섭취하게 되면 심장병에 걸리는 비율이 높아지게 되고 서구의 나라들과 비슷한 경향들 보이게 된다. 또 견과류나 종자류, 과일, 뿌리채소 등을 주로 먹으면서 가끔씩 생선이나 육류를 섞어서 섭취하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의 경우, 오늘날 튀긴 스넥류나 패스트푸드, 청량음료 등을 자주 섭취하게 됨에 따라 과거에는 없었던 당뇨병이나 관상동맥계 심장질환과 같은 질병들이 위험한 수준으로 발생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단순한 유전적인 요인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안식일 재림파와 같은 서구의 채식주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이들에게 심장병이나 암 등의 발병율은 훨씬 낮고 평균수명도 다른 비교군보다 더 길다는 것이 나타나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논리적 근거
이와 같은 현상들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처음 의도하셨던 계획을 고려해 보면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창세기 1장 29절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라고 말씀하 고 계신다. 이담과 이브는 아마도 충분한 과일과 야채류, 그리고 견과류 등의 많은 식물성 식품들을 즐겼을는지도 모른다. 노아의 홍수 이후부터 인류가 육류를 섭취하는 것이 허용되었으므로 이들에게 있어서 지나친 지방섭취라는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노아의 홍수가 끝난 직후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창세기9장 3절과 같이 명령하셨다.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우리의 몸이 저지방과 채식주의적 식습관에 맞게 고안되어 있다는 많은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육류의 섭취를 허용하셨을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다음과 같은 하나의 유력한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노아의 홍수로 인한 식물의 소멸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어떤 특정 식물이나 그것의 종자를 방주에 실으라고 요구하신 기록은 없으며, 또한 홍수 기간 동안 호흡을 하는 동물과는 달리 반드시 식물만을 살릴 의도도 없으셨을 것이다. 즉 홍수로 인하여 널리 분포되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많은 식물들이 소멸되었다.
이들 중에는 아마 건강을 위해 필요한 적합한 형태의 단백질과 다른 영양소들을 많이 제공해 주었던 식물들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요즘은 육류를 섭취하지 않고도 적절한 양과 형태의 단백질, 철분, 비타민 등을 섭취할 수 있다. 우유나 계란마저 섭취하지 않는 완전한 채식주의자들의 경우, 이들이 적절한 종류의 식물성 단백질로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모른다면 적어도 이론적으로 영양결핍에 걸릴 위험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많은 영양지식과 충분한 영양학적 '노하우'를 배경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에 있어서 이들이 영양결핍에 걸리는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그러한 상황하에서 동물성 식품을 자유로이 섭취하는 것은 영양결핍이라는 문제에 대한 부담을 크게 줄여주게 된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공급
만약 위의 추측들이 사실이라면 노아의 홍수로 인해 많은 양질의 식물성 급원들이 소멸된 후,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육류의 섭취를 허용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공급이며, 예비하심이라고 볼 수 있다.노아의 홍수 이전 육류소비에 관한 금지명령을 지켰던 사람들은 지키지 않았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건강한 상태를 지녔을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어떠한가? 믿는 자들로서 우리는 성령이 거하시는 곳인 우리의 몸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고린도전서를 통해 잘 알고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린도전서 3:16).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6:19).
자신을 학대하거나 흡연으로 건강장애를 초래하는 것을 언잖게 생각하는 많은 기독교인들도 운동은 거의 하지 않고 지나치게 가공된 고지방식품을 과식하거나 때때로 나쁜 건강상태를 가지게 되기도 한다.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건전하고 바람직한 식습관을 가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해답은 창세기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의 생활양식이 에덴동산에서의 그것과 닮아가면 갈수록 우리는 보다 더 나은 건강상태를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육체를 우상숭배시하여 열광적으로 체육관을 쫓아다닌다거나, 광천수를 마시고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날을 지연시키고자 노력하는 무리들에게 가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담과 이브의 후손인 우리 모두는 육체적인 죽음이라는 저주하에 있고 따라서 일시적인 우리의 육체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들만이 요한계시록 22:3절에서와 같은 더 이상의 저주가 없는 영원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과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요한계시록 22:3).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고린도전서 15:54)
(Paul Emerson, Ceration ex nihilo Vol 18 No. 2 pp.10~ 13)
* 역자 주: 최근 사이콜러지 투데이에 실린 연구결과에 의하면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고 과일이나 야채를 적게 먹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특히 포화지방산)가 높은 사람은 심장병이나 암에 걸릴 위험이 높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우울증, 정서장애 등을 보이고 적개심과 공격성이 높다고 한다. 또 과일류에 많이 들어 있는 포도당을 적절히 섭취한 학생은 그렇지 못했던 학생에 비해 수업성취도가 높았고, 매일 육류를 먹던 사람이 아침식사를 곡류로 바꾼 후 우울증이 좋아지고 공격성이 감소했다는 보고도 있다. 또한 최근 현대판 불로초로 알려진 항산화제는 과일, 채소, 차, 토마토, 그리고 우수한 식물성단백질 급원인 콩에 많이 들어 있으며, 특히 콩단백질은 지방합성에 관여하는 효소의 생성을 억제함으로 비만을 방지하는 효과가 우유단백질보다 더 크다고 보고되고 있다. 한국인들이 많이 섭취하는 고추는 뇌에서 엔돌핀이 많이 나오게 해 진통효과가 있고, 마늘은 혈중 콜레스테콜치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여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쥐의 경우 뇌세포의 재생을 촉진시켜 주게 된다.
번역 - 배지현
출처 - 창조지, 제 98호 [1996. 7~8]
성서에 나타난 천문학적인 통찰
: 묘성과 삼성 (Astronomical Insights)
Barry Setterfield
(편집자 주 : 성서는 저자가 원래 의도했던 의미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도록 해석되어야 한다고 많은 창조론자들은 믿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글은 중력 위치 에너지에 관해 알지 못하는 욥기의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중해야한다고 말한다. 옛 독자들은 매우 촘촘한 플레이아데스 성단을 창조하실 수 있으며, 욥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오리온 성좌를 펼쳐서 창조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시적인 표현으로 그것을 간주해왔던 것이다).
고대 욥기서에는 아주 특이한 성구가 발견됩니다.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 욥에게 말씀하시고, 사람의 제한된 지식과 하나님의 경이로운 힘을 다루는 일련의 심오한 질문들을 하셨습니다. 이 질문 중 하나가 욥기서 38:31에서 발견됩니다.
[개역 한글] ”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공동 번역] ” 네가 북두칠성에게 굴레라도 씌우고 오리온 성좌의 사슬을 풀어 주기라도 한단 말이냐?”
[표준새번역] ” 네가 북두칠성의 별 떼를 한데 묶을 수 있으며, 오리온 성좌를 묶은 띠를 풀 수 있느냐?”
[The King James Version (AD1611, revised 1769)] 'Canst thou bind the sweet influences of Pleiades, or loose the bands of Orion?'
[The American Standard version (1901)] 'Can you bind the sweet cluster of Pleiades, or loose the bands of Orion?'
[The Revised Standard Version (1946)] 'Can you bind the chains of the Pleiades, or loose the cords of Orion?'
플레이아데스 성단과 오리온 성좌는 지금도 있으며 맑은 날 밤에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천문학적인 관측을 통해 우리는 이 성구에서 놀라운 통찰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천문학의 현상들을 두 개의 대조를 이루는 질문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질문의 두 대상 즉, 보통 일곱 자매(Seven Sisters)라고 불리는 플레이아데스 성단, 그리고 냄비자리(Saucepan)로 알려진 별의 일단인 오리온 성좌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Job, Can you bind the chains of the Pleiades, or loose the cords of Orion?)"
육안으로 플레이아데스 성단은 황소자리의 성좌에서 수줍게 반짝이고 있는 여섯 혹은 일곱 별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망원경으로 보면 전체 성단은 직경 50광년의 구형 내에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거의 410 광년이나 됨) 약 500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음을 드러냅니다. 사진은 가스와 먼지로 이루어진 희미하고 투명한 푸른 아지랑이에 감추어진 약간의 별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가스와 먼지는 여러 가지 색으로 별빛을 받아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것에 관한 창조자의 기술은 매우 적합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것은 정말로 보기에도 즐거운 별의 ‘떨기’ 입니다. 육안으로도 매우 매력 있는 별무리입니다.
그러나, 욥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욥이 아마 알지 못하고 있던 천문학적인 진리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플레이아데스 성단은 성단 가운데 매우 특별한 성단입니다. 그것은 은하 또는 산개성단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성단 별 사이의 먼지와 가스가 소량이기 때문에, 다른 다수의 그런 산개성단과는 달리 흩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개개의 별의 운동 에너지가 성단 중력의 속박을 극복할 수 없어서 성단 내 별들이 달아날 수 없는) 중력적으로 속박된(bound) 성단의 전형적인 실례입니다. 실제로 이 성단이 팽창하고 있긴 하지만, 그 성단의 직경을 눈에 띄게 바꾸는데는 10억 년이 걸릴 것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1 이러한 상황은 매우 드뭅니다. 그 반대적인 상황이 보통 산개 또는 은하 성단에 나타나는데 이는 매우 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실제 관측으로도 진실임을 발견할 때, 우리는 욥이 가졌던 당황함에서 창조주의 무한한 지혜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불가능하지만 전능자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어떤 일들에 대해 욥이 가졌던 한없는 경외감과 깊은 겸손을 공유하게 됩니다.
”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내가 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실지도 모릅니다.
오리온 성좌는 하늘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별 그룹 중의 하나입니다. 거성들과 함께 빛나는 사진들은 모든 별들이 실제적으로 파묻혀 있는 가스와 먼지의 거대한 후광을 보여줍니다. (이 성운의 일부는 육안으로도 냄비의 손잡이처럼 생긴 중앙 부분의 별 때문에 볼 수 있습니다). 사실상 전 성좌가 별들의 거대한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매우 특이한 경우입니다. 대부분의 성좌들은 실제로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이지만 같은 시선상에 위치함으로써 한 성좌를 이루는 것입니다. 오리온 성좌는 먼 것은 약 1600광년 떨어져 있습니다. 약 350광년이나 되는 직경과 그것이 갖고있는 광대한 다량의 가스와 먼지에도 불구하고, 전체의 계(system)는 중력적으로 불안정하고, 천천히 바깥쪽으로 팽창하고 있습니다.2 성좌를 함께 묶는 중력적 속박(bands)이 실제로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느슨해지고 있습니다. 성좌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성좌 안의 작은 성단들도 깨어지고 있습니다. 피터 밴 데 부우트(Peter Van de Voort) 박사는 오리온 성운안에 있는 한 성단 안의 별들의 개개의 움직임을 근거로 그 성단의 연령이 10,000년 미만임에 틀림없음을 주장하였습니다.3 이것은 또한 전체 성좌의 나이도 10,000년 미만임에 틀림없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호일(Hoyle) 박사와 가모브(Gamow) 박사가 새로운 별들은 가스와 먼지 덩어리의 절대 온도가 5도 이하가 아니면 가스와 먼지 덩어리로부터 생길 수 없다고 말한 것과도 일치합니다.5 관측된 평균 온도가 절대 온도 100도 이상이어서 덩어리의 수축은 단지 온도를 높이고, 그것은 곧 가스 덩어리를 재 팽창시킬 것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별이 가스와 먼지 덩어리로부터 생길 수 없고 성단의 나이가 10,000년 이하라는 것은 오리온 성좌 전체가 10,000년 이하라는 것을 강하게 나타내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셨던 말씀은 오리온 성좌가 거대한 깨져나가는 별들의 집단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최근에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또한 증거하고 있습니다.
”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물론 우리들의 답은 욥이 겸손함으로 대답하였던 것과 같을 것입니다. ” 아닙니다. 주님 그러한 것들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의 정확성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겸손하게 만듭니다. 망원경과 중력의 법칙이 발견되기 수 천년 전에 말씀이 주어졌다는 것을 생각할 때 더욱 더 그렇습니다.
참고문헌
1. Frontiers of Astronomy by Prof. F. Hoyle, p. 236, 238 ff.
1a. Caxton Atlas of the Universe, p. 204.
2. The Oscillating Universe by Prof. E. Opik, pp. 96-101.
3. The Age of the Cosmos by Prof. H Slusher, p. 15 reference
4. Frontiers of Astronomy, p. 234, 235.
5. The Creation of the Universe, Prof. G. Gamow, p. 93.
*참조 : Pleiades and Orion: two ancient Hebrew word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2/j20_2_100-103.pdf
Pleiades and Orion: bound, unbound, or … ?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8_2/j18_2_44-48.pdf
번역 - 황치옥
주소 - http://helpmewithbiblestudy.org/1God/WorksAstronomicalInsights_Setterfield.aspx
성경은 우주 비밀 푸는 '보고'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성경은 과학적인 사실을 설명하거나 기술하는 것이 그 의도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에 표현된 내용들이 과학과 상관없다는 것은 더욱더 아니다.
사실 성경에는 현재의 과학에 의해 밝혀진 정말 놀라운 사실들이 많이 기술되어 있다. 성경에 존재하는 이러한 표현들은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표현들은 성경이 기록된 그 당시의 과학적 수준에서 이해한다면 정말 ‘말도 안되는 표현’ 내지는 ‘상징적 표현’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1. 허공에 떠있는 지구 : 땅을 공간에 다시며 (욥기 26:7)
‘지구가 허공에 떠있다’라는 이 기록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모두는 이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지구가 공간에 떠있음은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표한 이후에야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만유인력에 의해 태양 주위의 공간에 지구가 떠있음이 밝혀진 이후에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됐다.
2. 무수히 많은 별 :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예레미아 33:22), 하늘의 허다한 별과 (히브리서 11:12)
육안으로는 약 6000개 정도의 별을 볼 수 있다.이 때문에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발명하여 하늘을 관측(17세기초)하기 전까지만 해도 별의 수는 기껏해야 6000개 정도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재 여러 종류의 망원경을 사용하면 ‘하늘에 허다한 별’이 있음을 보게 된다.
3. 묘성(昴星)과 삼성(三星) :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욥기 38:31)
처녀자리에 있는 묘성은 육안으로는 7개의 별밖에는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고성능 망원경으로 관측하면 200개 이상의 별들이 개방(떨기)성단을 이루며 함께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또한 오리온자리에 있는 삼성은 서로 가까이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임이 연구 결과 밝혀졌다.다시 말하면 삼성은 묶여 있지 않고 풀려 있다는 것이다.즉 수천년 전에 쓰여진 삼성과 묘성에 대한 욥기의 말씀은 고성능 망원경을 통하여서야 알 수 있었던 사실들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4. 물질의 구조 :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1:3)
현재 밝혀진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궁극적인 입자들은 쿼크(quark)라고 불리는 것들이다.이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일상 상태하에서는 쿼크들을 하나씩 개별적으로 관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쿼크들은 일상에서는 개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양성자는 업(up) 다운(down) 등 3개의 쿼크로 구성되는데 양성자는 일상에서 관측되지만(보이지만) 업 다운 등 쿼크는 개별적으로 분리돼 하나씩 관측되지 않는다.
5. 노아 방주의 안정성 :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창세기 6:15)
많은 사람들이 노아 방주의 실재성에 의문을 품고 있다.그 의구심중 대표적인 하나는 노아 방주가 과연 실재했다면 대홍수에 이 방주가 과연 안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안정성에 대한 문제이다.
여러 연구들에 의하면 위에서 언급한 방주의 길이,너비,높이의 비율은 풍랑 가운데 있는 배가 엔진을 끈 채 바다에 그냥 떠 있을 때 가장 빨리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비율임이 밝혀졌다.그뿐만 아니라 노아 방주는 30m 이상의 파도에 견딜 수 있는 배의 구조를 지니고 있음이 판명되었다.
6. 엔트로피 :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히브리서1:10,11)
여기서 옷의 낡아짐은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상태,즉 무질서가 증가하는 상태를 말한다.현재 우리 우주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상태로 다르게 말하면 질서를 잃어가는 상태이다.이러한 이해,즉 우리 우주가 질서를 잃어가고 있는 상태라는 사실은 17∼18세기 이후에나 알려진 것들이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성경은 과학책은 아니다.그러나 성경에서 묘사하고 있는 과학적 사실들은 성경이 쓰여진 시기의 과학적 수준을 생각하여 보면 한마디로 놀라움 그 자체이다.하지만 다음의 질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는 듯하다.위와 같은 과학적 사실들이 알려지기 이전의 사람들은 위에서 언급한 성경 구절로부터 성경 내용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 용어해설
△만유인력: 질량을 지닌 물체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아이작 뉴턴에 의해 17세기 후반에 체계화됨.
△쿼크(quark):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fundamental particle).업(up) 다운(down) 참(charm) 스트렌지(strange) 톱(top) 보톰(bottom) 등 6종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짐..
△양성자(proton): 원자를 이루는 원자핵을 구성하는 물질.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됨.
△엔트로피(entropy): 무질서(disorder)의 정도를 의미하는 물리적인 척도.엔트로피가 낮을수록 질서가 있음을 의미하고 엔트로피가 높을수록 질서가 없음을 의미함.
*참조 : Does the Bible say anything about astronomy?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wow/does-the-bible-say-anything-about-astronomy
The Splendor of God’s Creation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tba/splendor-of-creation
Black Holes :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3/n1/black-holes-evidence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성경과 기독교/성경과 과학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B01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bible/b1/b11/2001_127_3.htm
출처 - 창조지, 제 127호 [2001. 9~10]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00
참고 :
모유에 숨겨진 창조의 비밀
장해동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뒤 이곳에 온갖 식물과 동물을 만드셨고, 이들을 다스릴 인간을 만드신 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종류대로 생물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땅에 번성하라고 하셨고, 생물의 번성을 위해 여러 가지 특별한 배려를 해 놓으셨다는 사실이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하나씩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동물 가운데 유즙(젖)을 영양 공급 수단으로 삼는 동물을 포유류라고 분류한다. 포유류는 임신중에는 태반을 통하여 모체로부터 태아에게 모든 영양 공급을 하지만, 출생후 일정 기간 동안은 모체의 유선에서 만들어진 유즙을 통하여 영양소를 공급하게 된다. 따라서 유즙은 포유동물의 어린 새끼를 먹이기 위해 모체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린 생명체가 필요로 하는 모든 영양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어 영양학적으로 완전한 천연식품이라 할 수 있다.
우유는 소의 영양 공급 수단이다
유즙에는 3대 영양소인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뿐만 아니라, 무기질, 비타민 효소 등도 적당량 함유되어 있다. 유즙에 존재하는 단백질은 그 양과 질적인 면에서 매우 우수한 단백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칼슘, 인과 함께 독특한 콜로이드를 형성하고 있어 백탁현상으로 흰색을 띠게 한다. 유즙은 동물의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는데, 소에서 나온 유즙을 우유라 하고 말에서 나온 것은 마유, 사람의 경우에는 모유라고 한다.
특히 소에서 착유한 우유는 그 생산량이 많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볼 때 사람의 식품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유즙의 농도는 동물의 종류와 새끼의 성장속도에 따라 다르며 유즙의 조성도 개체의 여러 가지 상태에 따라 변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언제부터 사람이 우유를 식품으로 사용하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야생소를 집 또는 들에서 사육하면서 우유를 사용하게 되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믿고 있다. 낙농기술의 발달과 문화의 변천에 따라 근래에는 어린 아이들에게 공급되어야 할 모유가 우유로 대체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우유와 모유에 대한 자세한 과학적 지식이 없이 상식적 수준에서 생각해보아도 소의 영양 공급 수단인 우유가 모유의 대체 수단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과 소는 같은 포유류에 속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각기 독특한 종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소는 소대로, 사람은 사람대로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유 먹는 아기 질병에 더 잘 걸려
우선 우유와 모유의 성분 구성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우유에서는 카제인이라는 단백질이 우유 단백질 함량의 80%인 반면 모유는 40% 정도밖에 없고 나머지는 각각의 유청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모유로 대체될 어린이용 분유를 제조할 때에는 분유의 유청단백질의 비율을 인위적으로 높여 모유에 해당되는 60%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유청단백질의 함량을 모유와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분유가 모유를 대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유의 유청단백질에는 모유에는 없는 베타-락토글로블린 이라는 단백질이 다량 들어있어 어린 아이들로 하여금 식품 알러지를 야기시키기 때문이다.
나라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분유를 먹는 아이들의 약 0.1~8%가 습진, 천식, 설사 등의 증상을 나타내는 식품 알러지로 고생을 하고 있으나, 이러한 식품 알러지에 대한 대책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선진국에서는 분유 알러지가 있는 어린이를 위해 콩을 이용한 분유를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지만 우유로 만든 분유에 비해 여러 가지 면에서 미치지 못하고 있다.
모유가 갖는 우유와 다른 조성상의 특성은 면역글로블린이라 할 수 있다. 면역글로블린이란 출산 이후에 각종 질병으로부터 어린아이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우유에 들어 있는 면역글로블린은 어린 송아지를 소의 질병으로부터 보호할 수는 있지만, 어린 아이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할 수는 없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분유를 먹는 아이들보다 모유를 먹는 아이들이 질병에 걸린 확률이 적을 뿐만 아니라 유아들이 원인 모르게 갑자기 죽는 유아 급사증후군의 발병률도 적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분유 회사들이 모유와 같은 분유를 제조하기 위해 모유에 존재하는 면역글로블린을 연구하여 인위적으로 분유에 첨가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엄마를 통해 하나님의 세밀하신 창조섭리에 따라 제조되는 것을 흉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태초에 다양한 종류의 동물과 식물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온갖 종류의 생물을 보존하시기 위해 행하신 배려가 얼마나 세밀하고 정확한 것인가를 알게 해준다.
모유는 아이의 정서를 안정시킨다.
모유에 있지만 우유에 거의 없는 단백질에는 락토페린과 라이조자임이 있다. 락토페린은 모유의 유청단백질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이 존재하는 단백질로 철분의 흡수, 이용과 깊은 관련이 있다. 철분은 인체 내의 여러 가지 성분의 구성 요소로 작용하면서 빈혈과 깊은 관련이 있다.
모유에 철분의 흡수 ·이용을 증진시키는 락토페린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는 것은 어린이들이 빈혈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효소 기운데 하나인 라이조자임은 세균의 세포벽을 분해시킴으로써 면역글로블린과 함께 어린이를 각종 질병으로부터 지켜주는 기능을 한다. 여러 가지 여건으로 모유를 먹이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모유를 먹이지 않고 인위적으로 조제된 분유를 어린 아이에게 먹이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거스림에는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아이에게는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엄마의 모유가 절대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어 잘 알 수는 없지만 모유를 먹고 자란 사람과 조제분유를 먹고 자란 사람 사이에 인격 형성의 차이점이 생길 수 있을 것이란 사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모유를 먹이는 동안 육신을 위한 영양소의 공급도 되지만 어린이와 엄마 사이에 다정한 정감이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모유 기피는 창조섭리를 무시하는 것
최근에 와서 모유 먹이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맞벌이 부부이기 때문에 피치 못할 경우도 있지만 엄마들이 미용을 핑계로 모유 먹이기를 싫어한다고 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어린 아기가 사모하는 것은 소에서 온 우유가 아니라 엄마로부터 온 모유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유는 사람에게 필요 없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어린 아이에게는 일정 기간 모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수유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유의 성분도 변하게 되고 아이도 자라나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커지기 때문에 우유를 포함한 여러 가지 식물을 필요로 하게 된다. 특히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우유에 존재하는 단백질과 더불어 칼슘은 뼈의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우유 단백질인 카제인과 함께 미셀이라는 독특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칼슘은 장내에서 다른 식품에 있는 칼슘보다 잘 흡수, 이용되는 것으로 연구 결과 밝혀졌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 힘입어 최근에는 우유 단백질로부터 칼슘의 장내 흡수를 도울 수 있는 CPP 라는 기능성 펩타이드를 만들어서 각종 건강 보조식품의 제조에 사용하고 있다. 우유의 칼슘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들의 골다공증의 예방과 치료에도 매우 긴요하게 쓰이고 있는 유용한 물질이다.
하나님께서 동식물의 생육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흔적은 과학이 발달하면서 더욱 자세히 밝혀질 것이다. 이제까지 알려진 과학적 사실로 볼 때 모유는 어린 아이를 위해, 우유는 어린 송아지를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만들어 놓으신 최상의 식물이라고 할 수 있다. 모유에 나타난 놀라운 사실들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 :21)란 성경 말씀을 확실하게 증거해준다.
땅을 공간에 다신 하나님
이웅상
「종교와 과학」이란 과목을 강의하고 나오는데 한 학생이 따라와 이렇게 물었다. "목사님, 교황이 성서의 오류를 시인하면서 갈릴레오를 복권조치 했다는 기사를 읽어보셨습니까?" 이에 나는 "아직 못 봤습니다. 복권조치 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성서의 오류를 인정했다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라고 대답하며 그 학생이 들고 있는 신문을 건네 받아 관련기사를 읽어보았다.
11월 3일자 동아일보의 '횡설수설' 난에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의 희곡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생애'를 간단히 소개하면서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파문 당한 갈릴레오를 천주교에서 성서의 오류까지 시인하면서 진실을 옹호한 데에는 커다란 역사적 의의가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또한 이에 대해 11월 7일자 기독신보에서는 갈릴레오뿐만 아니라, 1518년 이단으로 규정하고 1520년 파문시켰던 마틴 루터도 복권시켜야 할 것이 아닌가 논박하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러나 따지자면 중세 암흑시대에 종교재판에 의해 희생된 유명 무명의 진정한 신앙인들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지금에 와서 이들에게 교황이 절을 하며 사죄하고 복권조치를 한다고 해서 감사하며 카톨릭에 복귀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들이 그렇지 않아도 물질주의와 과학만능주의에 세뇌되어 성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현대인의 마음을 더욱 닫게 하며,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데 있다.
중세 로마 카톨릭의 타락과 갈릴레오가 주장한 지동설이 옳다는 것은 현대인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갈릴레오의 희생은 성서의 오류 때문이 아니다. 천동설은 이집트의 천문학자 프톨레미(Clandius Ptolemaeus)가 제안한 이론으로 16세기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져 왔다. 즉 이 당시까지만 해도 지구가 태양계의 고정된 중심으로 태양과 그 외의 혹성들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 후 1543년 폴란드의 천문학자인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에 의해 최초로 지동설이 제안되었으나 천동설의 견해가 당시 로마 카톨릭의 지도자들에게 깊이 뿌리 박혀 있었기 때문에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뒤를 이어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지지하며 나오자 교황이 그를 파문시킨 것이지 성서가 천동설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성경의 어느 곳에도 천동설을 주장하고 지동설을 부인하는 구절이 없다. 오히려 성경은 과학자들이 16세기까지 믿어오던, 지구가 무엇엔가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부정하고 있다. 욥기 26장 7절에 보면 욥은 지금으로부터 4천 년 전에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라는 말씀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지구가 어떤 것에 고정되어 태양계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떠있는 것임을 정확히 묘사하고있는 말씀인 것이다. 뉴톤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기까지 어찌 인간의 지혜로 이 놀라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뿐만 아니라 욥기 26장 10절에는 "수면에 경계(원)를 그으셨으되 빛과 어두움의 지경까지 한정을 세우셨느니라"고 기록함으로써 지구가 평평한 것이 아니라, 둥근 모양임을 기술하고 있다. 또한 잠언 8장 27절에도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원)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바다의 수평선이 원으로 되어 있다는 말씀은 지구가 둥근 모양으로 되어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은 지구의 모양뿐만 아니라 지구가 공중에 떠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으나, 당시의 천동설로 인해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당시 지구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또 하나의 오류는 지구의 기둥에 대한 성경의 언급에 관한 것이다. 욥기 9장 6절은 "그가 땅을 움직여 그 자리에서 미신즉 그 기둥을 흔들리며" 라고 말씀하고 있고, 사무엘상 2장 8절에는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을 인용하며 일부학자들은 성경이 지구가 기둥이나 지주 위에 놓여 있다는 히브리인들의 전설을 근거로 해서 쓰여졌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성경 본문의 '기둥' 이란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 '암무드(ammud)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 단어는 '기둥' 이란 뜻으로 쓰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기초' 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욥기 9장 6절은 '기둥'이 흔들린다는 표현이 아니라, 땅속의 '기초'가 흔들린다는 말씀인 것이다. 이렇게 이해될 때 이 말씀은 이미 언급한 욥기 26장 7절의 "허공에 지구가 떠 있으며", 욥기 38장 7절의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는 말씀과 조화를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오히려 '지구의 기둥'에 관한 말씀들은 지구의 중심부에 대한 놀라운 정보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들이다. 현대 과학자들은 지표면 속에는 맨틀이 있고 그 속에는 외핵과 내핵이 있지만 정확히 어떤 물질로 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지구 자장으로 미루어보아 자장을 만드는 니켈과 철로 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예레미야 31장 37절에는 이에 대해 "위로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아래로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행한 일을 인하여 그들을 다 버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모순들이 성서의 오류 때문이 아니라 과학의 영향을 받은 인간의 잘못된 해석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과학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구절들을 대할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첫째로, 과학의 모든 이론은 가정에서 출발한 것으로 끊임없이 변해왔으며, 또한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마태복음 5장 18절에 분명히 말씀하시길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말씀)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했다. 그런데 어찌 이처럼 자주 변해왔고 또 변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이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겸손히 과학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기다리는 태도를 가져한다.
둘째로, 성경 자체를 바르게 해석하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올바른 성경관에 기초한 신앙서적 등을 참조하여 한 개인의 잘못된 경험과 편견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있는지 않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때로는 지나간, 수정된 과학적 이론과 자료들에 의존함으로 인해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가르침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 해석의 최종 권위를 가지고 계신 분은 성령이시며 성도들의 교사되신 분 역시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성경과 과학 2 : 진화론의 영향과 성경의 과학적 증거들
이웅상
1. 서론
성경과 과학
많은 사람들이 성경은 윤리, 도덕적으로는 위대한 책일지 몰라도, 과학적으로는 무엇인가 문제가 많은 책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중세 때 카톨릭교회의 과학에 관한 부정적 태도가 큰 원인을 제공하였고, 오늘날에 와서는 학문의 영역과 신앙의 영역을 따로 구분하고 서로 건드리지 말자 하는 이원론적인 사고가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즉 성경과 과학의 영역을 따로 구분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경과 과학의 관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갈등의 관계가 아니며, 잘못된 과학관으로 인해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것은 성경이 너무나 초과학적이어서 그 당시 과학이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지,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과학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의 한 부분으로서 성경과 과학은 자연스럽게 잘 화합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섭리 안에서 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인들의 고집만이 아니고 실제로 과학적으로 증명된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진화론의 영향 (1)
성경은 과학에 비교해 뒤진 책일까요? 아니면 과학이 성경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요? 위의 두 이유보다도, 오늘날 진화론 일색의 교육이 마치 성경이 비과학적인 것처럼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무기물에서 우연한 충돌에 의해 유기물이 생겨나고 여기서 최초의 생명체가 우연히 탄생했다는 화학진화론적 생명의 기원관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이 최초의 한 생명체에서 진화되어 나온 것에 불과하다는 생물학적 진화론이 그 원인인 것입니다. 이런 기원관으로 보면 결국 인간은 그 기원에 있어서 다른 동물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으며 궁극적으로 무생물에서부터 생겨난 우연의 산물일 뿐입니다. 이런 인간 속에 무슨 도덕과 영원한 세계가 있겠습니까? 우연히 무기물에서 왔다 무기물로 돌아가면 그만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진화론적 교육을 강요당한 지성인들에게 창조자 하나님은 하나의 우스운 전설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게 됩니다. 철저한 유물론적 사고로 세뇌된 이들에게 영적인 세계란 하나의 허황된 꿈과 같은 얘기일 뿐이며, 이러한 영원한 세계를 갈망할 필요도 없게 된다. 하나님의 독생자도 예수 그리스도도 별 의미 없게 되고 맙니다.
진화론의 영향 (2)
또한 이러한 철저한 유물론적 사고에 근거한 진화론적 사고는 인간의 도덕관념을 흐리게 합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동물과 같은 조상에서 진화된 존재에 불과하며, 결국 동물과 같은 모든 행동을 할 수 있다고까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인간의 상태라고까지 미화하는 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옷 입기를 거부하는 나체주의자와 현재의 가정제도를 부인하는 동성연애자들이 바로 이러한 영향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진화론의 영향 (3)
이 뿐만이 아니라 진화론은 이미 신앙을 소유한 기독인에게도 신앙성장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신앙이 시작된 후에도 이 문제가 분명히 해결되지 않으면 늘 방황하기 쉽습니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시절에 교회를 떠나는지 모릅니다. 고등학교까지는 부모님의 강권에 못이겨 교회를 나가고 자연히 창조에 관해 들어왔지만, 학교교육을 통해선 진화론만이 과학적 정설로 꾸준히 강요되면서 자연스럽게 진화론으로 세뇌되어 왔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대학에 들어가면 한꺼번에 밀려오는 너무 많은 자유 속에 부모님과 교회에 의해 강요되어 온 비과학적이라고 여겨온 창조론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청소년 때부터 신앙과 함께 진화론의 비과학성과 창조론의 과학성을 가르침으로 성경은 현대과학과 모순된다는 잘못된 학교 교육을 교정해 주어야 합니다. 일단 이렇게 기본적인 것에 확신이 생기면 그 후에 새로운 이론과 반론이 엄습해 올 때 스스로 방어할 준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본론으로 성경의 과학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과학이 밝히기 수 백년 내지 수 천년 전에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과학적 진리들을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17: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 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창세기 17:10-14)” 창세기 17:10-14에는 하나님께 서 모든 남자아이는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으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아브라함도 이삭을 난지 팔일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창 21:4). 과연 할례의 과학적 이점은 무엇이며, 왜 팔일 만에 행하도록 하셨을까요?
2. 성경의 과학적 증거들
혈액응고 과정
처음으로 혈액의 응고에 관한 지식은 1935년에 Dam박사에의해 Prothrombin이란 물질이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상처를 입으면 혈소판에서 분비된 물질에 의해 응고효소인 트롬빈이란 물질이 Prothrombin의 활성화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 물질은 섬유질의 전구물질인 피브리노겐을 피브린으로 활성화하여 함께 응고하여 상처나 부위의 출혈을 중지시키며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입니다. 이후에 Scanzillo박사는 생후 3일된 아이의 Prothrombin농도는 성인의 30%에 불과하나 생후 팔일에는 성인의 110%로 최고치에 이르렀다가 이후 바로 성인과 같은 수준을 평생 유지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게 하셨는지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번잡한 할례를 그 백성들에게 요구하셨을까요? 영적으로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임을 나타내는 예식입니다. 영적뿐 만 아니라 할례는 신체에도 청결한 육체를 유지하도록 한다는 의학적 이점이 밝혀졌습니다. 유대인 여성에게는 자궁경부암이 다른 민족에 비교해 8.5%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자궁경부암이 남성의 성기에 살고 있는 Mycobacterium smegmatis 라는 균이 전염되어 유발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즉 유대인 남성은 어려서 할례를 받기 때문에 성기에 이 균이 많이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멘델의 법칙
멘델은 1866년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우성의 법칙, 분리의 법칙이란 유전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 놀라운 유전에 관한 창조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50년 가까이 사장해 놓았었습니다. 보라색의 꽂을 피는 완두와 흰색의 완두를 교배하면 제 1대에선 보라색만 나오는데 그 이유는 보라색이 우성이요 흰색이 열성이기 때문입니다.
분리의 법칙
그러나 열성인 흰색도 같은 열성인자와 만나면 발현이 되는데 제 2대에선 우성과 열성이 3:1로 분리되어 나온다는 원리입니다. 20세기에 와서야 겨우 이해되기 시작한 이 이론이 3450년 전에 기록된 창세기에 언급되어있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창세기 31:12] ”가라사대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 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창세기 31:12) 야곱은 외삼촌이요 장인인 라반이 자기에게 주기로 약속한 아롱진 양, 점있는 자, 검은 양을 열 번이나 약속을 변역하면서 지키지 않지만 하 나님께서 해치 못하게 하시고 빼앗아 주신 것을 꿈에 천사를 통해 깨닫게 됩니다 (창 30:32; 31:7-12). 위의 열성 형질을 갖고 있는 양을 따로 분리했지만 교배하 는 수양은 모두 얼룩 무늬있는 것, 점있는 것, 아롱진 것이 되도록 하여 이런 열성 형질의 양이 많이 나오도록 하신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는 하얀 양이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열성인자를 하나님이 보시고 주로 교배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시편 139:16]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 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편 139:16) 생명을 창 조하시고 그 모든 형질을 기록하신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보시고 계시기 때문인 것 입니다.
Preformed Theory
부모에게 있는 쌍가풀과 귀의 모양이 어떻게 자녀에게 유전될까요? 사람은 사람만 낳고 돼지는 돼지만 낳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로 16세기까지 과학자들은 정자 속에 이미 다 형성된 작은 아이가 있는 것으로 설명해왔습니다. 이를 Preforemed theory 라고 합니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범유전자설이 제기되면서 온 몸에 있는 세포가 정자와 난자를 만드는 생식세포에 특별한 정보를 주어 부모를 닮은 후손을 생산하는 것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DNA 구조
그러나 1953년에 DNA의 구조가 밝혀지면서 모든 정보는 ATCG 라는 네 종류의 염기의 배열순서에 따라 다른 종류의 아미노산이 결정되고 이들의 순서에 따라 만들어진 단백질에 의해 여러 형질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단백질 생성순서
이 과정을 종합해 보면 DNA에 기록된 유전정보는 핵에서 정보RNA에 모든 정보를 전달하여 세포질에서 리보솜에 의해 단백질을 합성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부모에게 있던 정보가 후손에게 DNA로 전달된 후 형질로 나타나게 되어 닮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39:13]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이 말씀에서 장부 (원어로 케라요츠)는 신장을 의미하며 모태에서 나의 모든 장기를 조직하셨다는 이 말씀에서 16세기까지믿고 있던 Preformed theory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139:16]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 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이 말씀에 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모태에서 조직하시되 이미 기록된 정보대로 지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현대생물학이 밝힌대로 모든 정보는 DNA에 기록되어 있습 니다.
지구
이제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지구에 관한 몇 가지 사실들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듯이 지구는 둥글게 생겼으며 허공에 떠서 태양주위를 돌고 있다. 과학이 이러한 사실을 언제부터 이해하기 시작했을까요?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지구는 평평하며, 태양이 지구주위를 도는 것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그러나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는 둥글며, 태양주위를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주장하게 되었지요. 이 진리를 뉴튼이 17-8세기에 두 물체는 질량의 곱에 비례하며, 거리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이 작용한다는 중력의 법칙으로 훌륭히 설명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과연 지구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혹시 천동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사야 40:21-22]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 냐.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같이 베푸셨고” 여기서 '땅 위 궁창' 할 때의 궁창은 원형의 모양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NIV 영어성경은 'above the circle of the earth'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궁창은 (잠언 9:27)에도 말 씀하고 있다. 또한 (욥기 26:10)에는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으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경계라는 말의 의미가 역시 원이라는 뜻입니다.
[욥기 26:7-8]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물을 빽빽 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과학자들이 18세기에 와서야 정확히 이해한 지구가 허공에 떠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공간에 다시며'하는 말은 허공에 띄워 놓으셨다는 말로 NIV영어 성경은 이 의미를 'suspends the earth over nothing' 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과 같은 공식은 성경에 없지만, 지구에 대한 얼마나 정확한 표현인가? 이것을 히브리서 1:3은 만물을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으로 붙들고 계시다고 표현해 주고 있을 뿐입니다.
공기의 무게 발견
욥기 28:25절에 보시면 ”바람(공기)의 경중을 정하시며, 물을 되어 분량을 정하시며” 등등 많은 놀라운 기록이 있습니다. 물리, 화학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중에 공기도 무게가 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공기에 무슨 무게가 있겠나?”하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데 수 천년이 지나 1640년에 이탈리아 과학자 토리첼리 박사가 공기의 무게(압력)을 재는 기계를 최초로 만들었습니다. 압력계라고 하지요. 그래서 재어 보았더니 1기압이 수은으로 치면 760mmHg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토리첼리 박사가 이 단위를 자기 이름을 붙여 torr(토르)라고 하였습니다. 1600년대에 알게 된 사실을 성경은 이미 수 천년 전에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그 당시의 과학보다 성경이 훨씬 앞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기의 순환
17세기에 하틀리는 대기가 적도에서 상승한 기단이 양극으로 이동한다는 설을 주장하여 대기가 순환한다는 학설을 처음 주장했습니다. 이어 19세기에 코리올리와 페렐을 통해 북반구와 남반구에서의 반대 방향으로 휘어지는 대기의 움직임을 밝히게 되었습니다.
[전도서 1: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이 말씀은 이러한 대기의 순환을 이미 말씀하고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공기만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물도 순환하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1: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이 말씀에서 언급하고 있는 물이 순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로의 발견
시편 8편 8절에 보면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바다에는 '해로'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 해양학의 아버지 마태 마우리 박사라는 신앙이 좋은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병에 걸려 장기간 누워있을 때, 그의 아들이 성경을 읽어 드리곤 했는데, 마우리 박사는 이 시편 구절을 듣다가 큰 충격을 받고 영감을 받아서 '내가 해양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해로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들어보았다. 그런데 성경이 그렇게 말을 하니, 병이 나으면 한 번 조사해 보아야 겠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병이 낫자 바다에 가서 연구를 한 끝에 세계 최초로 해로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 결과 세계 최초로 해양지도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마우리 박사의 고향인 미국 버지니아 주의 리치몬드 시에는 마우리 박사의 묘가 있는데, 거기에는 기념비문이 있습니다. 그 비문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해양학의 아버지 마태 마우리는 시편 8편 8절을 읽고 해로가 있음을 깨달아 최초의 해양지도를 만들었다.' 성경이 비과학적이고 무식한 책이 아닙니다. 앞서가는 과학자를 더 앞서가게 하는, 그 시대로 보아서는 초과학적인 책임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되는 것입니다.
바다밑 샘의 발견
욥기 38장 16절에 보시면 ”네가 바다근원에 들어갔었느냐”는 말이 있습니다. '바다근원'이란 영어성경으로 보시면 'springs of the see' 즉, 바다 밑에 있는 샘 이라는 뜻입니다. 바다 밑에 샘이 있다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바다가 통째로 물인데 그 밑에 샘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했는데요, 1960년에 sound navigation ranging(SON) 연구에 의해 바다 속에 샘물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였고, 조금 세월이 지나 1973년에 심해 잠수함을 만듦으로서 바다 속에 샘이 있음을 촬영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불과 20여년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몇 천년 전에 이미 이와 같은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한 명의 하와
성경은 인류의 기원, 유전학에 대해서도 놀라운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흔히 인류는 황하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등 여러 가지 문명으로 각각 시작하였고, 모든 것이 따로따로 시작하였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미국 와싱턴 대학에 과학자들이 인류의 조상이 과연 각각 발생하고 문명이 각각 시작하였을까 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유전공학적인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하게 된 이유는 바로 미토콘드리아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사람의 세포입니다. 세포 속에는 핵이 있고, 핵 안에는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유전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DNA 라는 형태로 들어 있는데, 핵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핵 바깥에 그러니까 세포질 내에 에너지 만드는 공장인 미토콘드리아 안에도 독자적인 DNA 가 따로 있습니다. mitocondrial DNA 라고 하는데요, 그 미토콘드리아 DNA를 이용해서 인류의 조상을 조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처음 만들어질 때 모든 것이 엄마 아빠가 반반씩 기여를 하는데 미토콘드리아만은 엄마에게서만 받습니다. 이렇게 보면 사람 만드는데는 엄마의 역할이 더 크다 할 수 있지요. 그렇게 해서 사람들의 이 미토콘드리아의 특징을 조사해 올라가면 모계혈통을 조사해 올라가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어디서 왔을까? 하는 것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여기 보시면 여러 사람의 DNA를 받아 가지고, 특수한 제한 효소들을 이용해 잘라 가지고 각 DNA의 특징들을 비교해 보고 있는 광경입니다. 염색된 DNA가 300nm 정도 되는 자외선을 받아서 분홍색의 형광을 발하게 되어 분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흑인이건, 동양인이건, 백인이건 관계없이 모든 인류의 여자 조상은 단 한 사람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하는 것을 미토콘드리아 DNA 조사를 통해 증명하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에 대단한 발견이라 하여 연구자들이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와싱턴 주립대학에 많은 학자들이 모인 가운데 시상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그곳에 모인 기독교인 과학자들이 농담 겸 칭찬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만 보았으면 될 걸…' DNA를 뽑아 많은 고생 끝에 발견한 사실은 무엇입니까? '모든 여자의 조상은 한 사람이다.'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성경에 그대로 쓰여 있습니다. 창세기 3장 20절에 보시면 '아담이 그 여자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으니 하와는 모든 산자의 어미가 되었음이더라' 모든 사람들은 하와의 자손입니다. 그러다가 인류는 노아의 홍수 때 다 죽고 노아의 아내와 그 세 며느리로부터 오게 된 것인데, 이들도 결국은 하와의 자손이지요. 이렇게 성경은 예전부터 하와는 한명이었음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토끼의 되새김질
성경은 식생활에 대해서도 놀라운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레위기 11장에 식생활과 건강에 대해서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동물에 대해서도 놀라운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1장 6절에 보시면 광야생활을 하던 유대백성들이 토끼를 보더니 먹고 싶었겠지요. 그래서 모세에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를 했겠지요. 모세는 하나님의 응답대로 대답을 했습니다. '먹지 마라, 왜냐하면 되새김질을 해야 하고, 발굽이 갈라진 동물 즉 유재류 동물이라야 먹기에 좋은 동물이다. 그런데 토끼는 되새김질은 하기 때문에 합격이지만, 발굽은 안 갈라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부정하다. 그래서 먹지 마라'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토끼는 동물학계에서 새김질을 하지 않는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토끼가 새김질을 한다고 하셨거든요. 먹느냐 마느냐 하는 적나라한 순간에 이 부분을 다르게 영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큰일 난 겁니다. 모든 과학자들과 모든 농부들이 토끼는 새김질 안 해요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토끼가 새김질을 한다고 하였으니까요. 어떡하지요? 그래서 톰슨 성경에서는 주석을 달 때, "토끼는 새김질을 안 하는데, 평소에 입을 오물오물하니까, 모세가 오해하였을 것이다." 한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가 헷갈릴 사람이 아닙니다. 독일의 프랑크프르트의 유명한 동물학자인 그리지맥 박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프랑크프르트 동물원 원장도 하시고요, 유명한 동물학자인데, 이 분이 신앙이 좋은 분이었습니다. 토끼 때문에 큰 일 났네, 하다가 성경에서 말씀하셨으니까, 말씀을 신뢰하고, 내가 직접 연구해 보고, 결론을 내리자 한 것입니다.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연구하고 관찰을 해 보았더니, 놀랍게도 먹이를 주고 옆에 앉았을 때는 절대 되새김질을 안 하던 토끼들이, 모든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 잠이 든 시간인 밤 12시에서 새벽 3시 사이에 캄캄한 토끼굴에서 혼자 몰래 되새김질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되새김질에는 특수한 물질이 필요한데, 그것이 토끼똥입니다. 토끼는 두 가지 똥을 누는데, 하나는 진짜 똥이고요, 다른 하나는 되새김질에 필요한 특수 약품입니다. 그래서 토끼 깨끗하게 키운다고 똥을 다 치워버리면 영양결핍으로 토끼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소화불량으로 죽지요. 만일 성경이 말하지 않았다면, 모두들 토끼가 되새김질을 하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고, 토끼는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참조 : <사이언스> 토끼는 되새김질 반추동물인가? (2019. 8. 2. 모닝선데이)
http://www.morningsunday.com/sub_read.html?uid=18024
3. 결론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성경과 과학의 관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갈등의 관계가 아니며, 이런 관계는 잘못된 과학관으로 인해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성경은 과학에 비교해 뒤진 책일까요? 아니면 과학이 성경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요? 성경이 너무나 초과학적이어서 그 당시 과학이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지,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과학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의 한 부분으로서 성경과 과학은 자연스럽게 잘 화합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섭리 안에서 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인들의 고집만이 아니고 실제로 과학적으로 증명된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과학에 위배된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가지게 된 것은 오늘날 진화론 일색의 교육이 마치 성경이 비과학적인 것처럼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말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무기물에서 우연한 충돌에 의해 유기물이 생겨나고 여기서 최초의 생명체가 우연히 탄생했다는 화학진화론적 생명의 기원관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최초의 한 생명체에서 진화되어 나온 것에 불과하다는 생물학적 진화론이 그 원인인 것입니다. 이런 기원관으로 보면 결국 인간은 그 기원에 있어서 다른 동물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으며 궁극적으로 무생물에서부터 생겨난 우연의 산물일 뿐입니다. 이런 인간 속에 무슨 도덕과 영원한 세계가 있겠습니까? 우연히 무기물에서 왔다 무기물로 돌아가면 그만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진화론적 교육을 강요당한 지성인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은 하나의 우스운 전설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게 됩니다. 철저한 유물론적 사고로 세뇌된 이들에게 영적인 세계란 하나의 허황된 꿈과 같은 얘기일 뿐이며, 이러한 영원한 세계를 갈망할 필요도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도 예수 그리스도도 별 의미 없게 되고 맙니다.
또한 이러한 철저한 유물론적 사고에 근거한 진화론적 사고는 인간의 도덕관념을 흐리게 합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동물과 같은 조상에서 진화된 존재에 불과하며, 결국 동물과 같은 모든 행동을 할 수 있다고 까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진화론은 이미 신앙을 소유한 기독교인에게도 신앙성장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신앙이 시작된 후에도 이 문제가 분명히 해결되지 않으면 늘 방황하기 쉽습니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시절에 교회를 떠나는지 모릅니다. 고등학교까지는 부모님의 강권에 못 이겨 교회를 나가고 자연히 창조에 관해 들어왔지만, 학교 교육을 통해선 진화론만이 과학적 정설로 꾸준히 강요되면서 자연스럽게 진화론으로 세뇌되어 왔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대학에 들어가면 한꺼번에 밀려오는 너무 많은 자유 속에 부모님과 교회에 의해 강요되어 온 비과학적이라고 여겨온 창조론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청소년 때부터 신앙과 함께 진화론의 비과학성과 창조론의 과학성을 가르침으로 성경은 현대과학과 모순된다는 잘못된 학교 교육을 교정해 주어야 합니다. 일단 이렇게 기본적인 것에 확신이 생기면 그 후에 새로운 이론과 반론이 엄습해 올 때 스스로 방어할 준비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이 이와 같은 시작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우리는 지금까지 성경과 과학에 대해 함께 다루어 보있습니다. 기존의 고정관념들이 많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오늘 성경과 과학에 대한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교육원교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