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창조과학 컨퍼런스를 마치고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사 40:26).
이것은 2001년에 열렸던 시카고 창조과학 컨퍼런스의 표어이자 곧 주제이기도 하였는데, 과연 이 말씀대로 2001년 컨퍼런스는 이틀 동안 연인원 700명을 동원하는 대성황 가운데, 하나님께서 온 우주와 우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창조주 되심을 증거하는 축제의 한마당이 되었다. 그동안 개별 강사들에 의한 크고 작은 세미나는 여러 차례 있어 왔지만, 이때처럼 여러 강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창조의 과학적 사실을 증거하는 일은 시카고 교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어서 그것 자체만으로도 이 행사는 매우 뜻 깊은 일이 되었는데, 참석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창조의 사실을 바탕으로 세상을 옳바른 성경적 세계관으로 바로 보게하고 우리의 신앙을 기초부터 다시 다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게 하였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었다고 하겠다.
이 행사에 어떤 분은 워싱턴 DC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고, 미시건주의 한 목사님은 10여명의 청년들을 이끌고 참석하는 등 인근 각지에서 많은 분들의 관심이 있었는데, 당시 컨퍼런스에서 소개된 여러 주제 강연들의 하이라이트를 요약하여 이 자리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창조과학회가 발족한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한국과 미국에 거주하는 많은 강사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은 물론이요 미주지역 교민들에게도 창조과학 강의를 해오고 있지만 (미주지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한 것은 1998년이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창조과학 자체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고 있거나 그 중요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이 사역의 필요를 더욱 느끼게 되는데, 우선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소위 과학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 하는 것과 그 것이 내가 믿는 성경과는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첫째 날 저녁 집회에서 김석화 박사(의약화학 전공)는 창조론과 진화론이라는 과학적 개념의 발달이 역사를 통하여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그리고 이것이 과학의 정의와 맞물려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과학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관찰 가능하거나 실험을 통해 증명할 수 있는 대상을 상대로 연구를 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창조니 진화니 하는 문제는 본질적으로 관찰이나 실험적 증명이 불가능한 성질의 것이어서 엄밀한 의미에서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밝혀진 기존의 과학적 지식과 방법을 이용하여 어떤 기원적 설명이 보다 더 합리적으로 현재의 과학적 지식과 모순 없이 들어맞는가를 논할 수는 있으므로, 이런 식의 연구를 우리가 Dallas 신학교의 Norman Geisler 교수가 제안한 것처럼 일반과학과 분리하여 소위 “기원과학”으로 부른다면 무엇을 우리가 논의하고, 또 그 한계는 무엇인지를 분명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창조과학은 어디까지나 과학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오직 우리가 과학적 지식으로 알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미 자연계에 나타난 창조의 사실을 증거 함으로 성경의 역사성을 뒷받침하여, 궁극적으로는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 전체를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하는데 그 사역의 목적이 있는 것이지, 결코 성경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들거나 하나님의 말씀 보다 과학적 지식을 더 위에 두지 않는다.
성경의 창세기는 성경 전체의 기초가 되는 책이다. 그 중에서도 창세기 1-11장은 모든 것의 기원을 설명해 주는 매우 중요한 내용들이 들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신앙생활을 오래하신 분이나 일부 목사님들조차도) 이 부분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인류를 심판하신 기록이 창세기 6-8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 성경에 기록된 홍수를 단순히 노아가 살던 지역에 내린 지역홍수 정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둘째 날 낮 특강과 저녁 집회를 통해서 이재만 한국창조과학회 미서부지부장(지질학 및 구약학 전공)이 자세한 지질학적 증거들을 통하여 밝히 보여준 것처럼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퇴적암과 그 속에서 발견되는 생생한 화석들은 도대체 전 지구를 뒤덮은 대홍수가 아니고는 이들의 존재를 설명하기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그 동안 진화론적 해석에 의하여 지층이나 바위, 그리고 산맥의 형성이 아주 오랜 시간동안 서서히 형성되어 왔을 것으로 많은 학자들이 생각해 왔으나, 새로운 관찰과 보다 정확한 실험적 자료에 의하면 이것들이 형성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라 오히려 과거에 이들을 만들기에 충분하였을 어떤 큰 사건이 필요했다는 것이 점점 밝혀져 가고 있다. 이같은 지질학적 증거는 혹자가 생각하듯이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년이나 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 같은 사건이 과거에 실제로 일어났었음을 강력하게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물론 과학책이 아니다. 하지만, 성경에 어떤 자연에 관한 기록이 나올 때는 놀라우리만치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과학적 사실과 일치한다. 예를 들어, 우주 비행사가 보내온 사진을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우주 공간에 그냥 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물체 간의 힘에 의해 공간에 위치해 있는데, 로켓트가 개발되기 이미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는 성경 기자를 통하여 우리가 사는 지구가 공간에 매달려 있다고 정확히 말하고 있어(욥 26:7) 우리를 놀라게 한다. 한편, 이사야서(40:22)에도 ‘그가 땅 위의 궁창에 앉으시며...’라고 말할 때 히브리어 “khug (영어로 circle이란 뜻)”를 사용함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당시 이사야 선지자가 이미 알고 있었음을 보여줌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천문학적인 발견과 성경의 기록이 놀라우리 만치 일치 됨을 둘째 날 이동용 박사 (항공기계공학 전공)의 낮 특강을 통해 증거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만물 가운데서도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창조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딱다구리의 두 개골과 부리 사이의 놀라운 충격흡수 장치와 그 머리를 뒤로 감싸며 돌아가는 긴 혀는 이 새가 도저히 우연히 진화될 수 없음을 강력히 증거하며, 그 외에도 꽁무니에서 내는 빛을 통해 짝짓기 신호를 절묘하게 조절하는 반디에서부터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박테리아의 몸을 움직이는 편모와 세포 속의 DNA를 비롯한 여러 가지 분자 구조들에 이르기 까지 생물체의 몸 곳곳에서 발견되는 소위 ‘더 이상 축소할 수 없는 복잡성 (irreducible complexity)’의 발견들은 어떤 지혜를 갖춘 이의 의도적 설계가 아니고는 이 땅에 생물체가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임을 필자도 첫째 날 저녁 집회를 통해서 피력하였다.
앞서도 밝힌 것처럼 창조과학 사역은, 인본주의 진화론 교육으로 인해 비뚤어진 우리의 세계관을 바로 잡아준다. 우리는 우연 발생의 목적 없이 태어난 산물이 아니고, 창조주의 계획아래 예수를 영접함으로 그 분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누릴 귀한 존재들이다. 지식과 증거가 없어도 우리는 모두 그의 자녀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바른 성경적 지식과 생생한 체험적 증거는 우리의 신앙을 매우 굳건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담대함을 얻어 이방인들에게 나아가 복음을 증거케 하는 힘이 된다. 이방인의 사도라고 불렸던 바울이 그리스의 아테네등에서 설교할 때(행 17:22-31) 처럼, 창조주에 대한 지식은 복음을 들어가게 하는 기초를 형성한다. 둘째 날 저녁 집회에서 최인식 박사(의사, 한국창조과학회 미주지부장)는 이 같은 사실을 강조하면서, 아울러 복음 증거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의 창조과학의 시대적 필요성을 피력 하였는데, 바로 욥에게 행하신 하나님 자신의 직접적인 ‘창조과학 세미나’를 통하여 (욥 38-41장)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크고 작은 모든 인생의 질문들은 크고 위대하신 토기장이 하나님 그 분의 절대 주권을 발견하고 그 안에 우리가 안주 할 때 그 안에서 모두 녹아질 수 있음을 깨닫게 하였다.
창조과학 사역은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발견케 한다. 그러나, 동시에 얼마나 그분이 섬세한 분이신가도 깨닫게 한다. 전에는 귀로만 듣던 신앙에서 이제는 눈으로 보는 신앙으로 우리를 한 차원 끌어당긴다. 그랜드 캐년(Grand canyon)을 말로만 듣는 것과 실제로 가 보는 것이 어찌 같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위대하신 하나님의 창조 솜씨를 실제로 본 자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 이브의 배꼽, 아담의 갈비뼈- 중에서
출처 - 이브의 배꼽, 아담의 갈비뼈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596
참고 :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김정훈
오래전,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선지자였던 이사야는,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라고 예언을 한 바 있다. 이때 사용된 처녀라는 히브리 단어는 almah 인데, 보통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자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사야가 말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는 말은, 정숙하지 못한 처녀가 결혼도 하기 전에 혼전 성관계로 인하여 아기를 갖게된 경우를 가리키는 말로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주께서 이 말씀을 징조로 주셨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사야가 사용한 처녀라는 말은 단순히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 보다는 결혼을 하였다 하더래도 아직 남자와의 성관계를 갖지 않은 정숙한 젊은 여자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사실, 그 당시에도 주변에서 미혼모를 발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임으로, 단순히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의 처녀가 아기를 낳았다는 것만으로는 전혀 징조가 될 만큼 놀랄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의 여부를 떠나서 만약 남자와의 육체적 관계를 전혀 갖지 않은 여자가 아기를 갖는다면, 이것은 분명 우리의 경험과 상식을 뛰어 넘는 기적에 속한 일임으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가히 메시야 탄생의 징조로 받아들일 만한 일대의 사건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사야서를 비롯, 구약에 기록된 수 많은 예언대로 과연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한 아기가 태어나고야 말았으니, 성경은 이 일에 대하여,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였으나 동거하기 이전에 성령으로 잉태하였다 (마 1:18; 눅 1:34-35)는 말씀으로 이 일이 사실임을 증거하고 있다. 생물학적 법칙에 의하면, 사람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세포와 난세포간의 수정이 이루어져야만 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마리아의 수태는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루어졌음으로, 이 일은 자연법칙을 초월하여 역사할 수 있으며, 창조의 능력을 갖고 계신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법칙은 완전하다. 그러나, 아주 드물긴 해도 필요할 때면, 하나님께서는 자연법칙을 초월하여 역사하실 때가 있는데,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일이나, 오병이어의 기적, 혹은 중력의 법칙을 초월하여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의 이적 등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연법칙을 위배하지 않으면서도, 다만 확률적으로 있을법하지 않는 어떤 사건을 발생케 함으로서 섭리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믿는 자들이 일상 생활에서 기도 가운데 경험하게 되는 대부분의 기적이 이 범주에 속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연법칙을 창조하시고, 또한 우리로 하여금 그 법칙을 연구하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과학 기술의 혜택을 누리게 하신 것이 사실이지만, 이와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필요 하시다면 언제든지 그 분이 만드신 자연법칙을 스스로 간섭하심으로서라도,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기적을 일으키신다는 것도 성경에 나타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그러면,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 이 기적은 꼭 이와 같이 자연법칙을 초월하여야만 할 어떤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이 방법을 쓸 수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자연적인 방법에 의한 수태를 할 경우에는 이미 아담 안에서 죄의 본성을 물려받고 있는 마리아와 요셉의 피가 섞이는 것을 피할 수가 없게 되는데, 우리의 죄를 구원하려는 그 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분 자신은 죄가 없으셔야 했기에, 하나님은 처녀를 잉태시켜야만 했던 것이다. 과연 성경은 그 분을 가리켜, 죄를 알지도 못한 자라고 증거 (고후 5:21; 히 4:15; 벧전 2:22)하고 있으며, 그 분은 그 출생의 목적대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니 (벧전 2:24), 그 분의 이름은 예수, 즉,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자란 뜻이다 (마 1:21). 할렐루야.
출처 - 도서, '이브의 배꼽, 아담의 갈비뼈' 중에서
부활의 필요 충분 조건
기독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없다. 왜냐하면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복음 전하는 것도 우리의 믿음도 헛 것이며,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 15:14, 17). 바로 이와 같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부활의 사건을 두고, 지난 수 세기에 걸쳐 인본주의에 영향을 받은 학자들에 의하여 여러 가지 의심들이 제기 되어졌는데, 이를 요약하면 첫째,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죽으신게 아니라 다만 기절하고 있다가 깨어난 것이라는 주장과, 둘째, 예수님께서 죽기는 죽으셨었으나 부활하지는 않았다는 주장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기 위해서는, 그의 죽음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함으로, 예수님의 죽음은 부활을 이루기 위한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과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숨을 거두셨는가? 우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기 까지 받으신 극심한 고통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동안, 로마 병정들로부터 수 없이 많은 채찍질을 받으셨는데, flagrum 이라고 불렸던 이 채찍은 가죽 끝에 날카로운 톱니 모양의 뼈와 납조각을 붙여 만들어, 한 번 내리칠 때마다 살점을 뜯어냄으로, 여러 번 내리치게 되면 피부 밑에 근육까지 뜯어지게 되고, 결국에는 피와 살점이 엉겨 붙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지경으로 피부 조직을 망가뜨리면서, 극심한 고통과 함께 반 죽음 상태로 만들어 간다. 거기다가 예수님이 지셨던 십자가의 무게 (대략 50kg)로 인하여 고통은 가중되고, 마침내 언덕에 다달아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그의 육신은 이미 죽음의 문턱에 가 있게 된다.
의사 Truman Davis는 그의 저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동안, 인간의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에 관해 잘 기술하고 있다. 먼저 온 몸을 지탱하고 있던 양 팔의 근육에 경련이 일어 나면서, 점차 가슴의 근육이 마비되고, 결국은 숨을 못 쉬게 됨으로, 십자가 상에서 질식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구부리고 있던 다리를 위로 밀어 올려 주면 막힌 숨을 내뿜어 잠시나마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이때 십자가에 매달린 자의 다리를 꺽어주게 되면, 그들의 죽음을 재촉할 수가 있는데, 성경(요 19:31-34)에 보면, 바로 이와 같이 로마 병정들이 예수님 곁에 같이 매달렸던 강도의 다리를 꺽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다리는 그가 이미 죽은 관계로 꺽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그의 죽음을 재차 확인하기 위하여,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보니 피와 물이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상처난 곳에서 많은 물과 피가 흘러 내리는 경우는 십자가 상에서 심장파열로 죽은 경우에 나타난다고, Josh McDowell은 그의 책 <기독교 신앙의 역사적 증언>에서 더블린 대학의 생리학 교수인 Samuel Houghton의 말을 인용하여 적고 있다. 만약 예수님께서 조금이라도 살아 계셨다면 피만 나왔을 것이나, 피와 물이 같이 나온 것으로 보아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십자가 상에서 숨을 거두신게 분명하며, 따라서 로마 병사는 그의 다리를 꺽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의 영혼이 떠나셨고 (마 27:50; 요 19:30), 운명하셨다고 (막 15:37; 눅 23:46) 네 명의 기자가 공히 증거하고 있으며, 또한, 빌라도는 백부장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까지 하였으므로 (막 15: 44-45),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더 이상의 의심은 없어도 될 것 같다.
이제 예수님의 부활을 이루기 위한 필요 조건은 갖추어 졌으나, 부활이 문자 그대로 부활이 되기 위해서는, 정말로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에게 충분한 증거로 남아 있어야 한다. 과연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는 무엇인가? Josh McDowell은 그의 저서 <부활의 요인>에서, 고려해야 할 일곱 가지 사실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첫째, 예수님의 돌 무덤의 인봉 (마 27:66)이 끊어진 사실이다. 이 일로 붙잡히게 되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어야 되는 두려운 일을 누가 감히 겁도 없이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예수님을 가까이서 따르던 제자들 조차도 모두 자기 몸이 잡힐까 두려워서 겁을 잔뜩 먹고 몸을 피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예수님의 빈 무덤이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지척에 둔 예루살렘에서 부활을 증거하였는데, 만약에 빈 무덤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들의 주장은 누군가에 의해 금방 탄로가 났을 것이다.
셋째, 무덤 입구를 막았던 큰 돌(대략 1360-1800kg의 무게라고 한다)이 누군가에 의해 옮겨졌는데, 무덤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던 로마 병정들의 눈과 귀를 막지 않고서는, 이같이 큰 돌을 그들에게 들킴 없이 옮기는 일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넷째, 로마 병정들이 도망 쳤다는 사실이다. 만약, 빈 무덤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들이 도망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다섯째, 제자들이 무덤에 가보았을 때, 예수님의 몸은 온데 간데 없고, 세마포만 그대로 놓여 있었으며, 머리를 쌓던 수건 또한 딴 곳에 개켜 있었는데,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도적질 해갔다면, 그렇게 옷을 벗기고 또한 가지런히 정돈까지 할 수 있었겠는가?
여섯째,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증인이 너무나도 많고 또한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고전 15:1-8). 단순히 눈으로만 목격된게 아니라, 직접 손으로 상처까지 확인되고 (요 20:24-29), 같이 식사도 하였으며 (눅 24:13-35; 요 21:1-14), 다양한 시각에 여러 계층의 사람에게 나타났는데, 그를 따랐던 자들 뿐만 아니라, 그를 박해하는 자에게 까지 나타났었다 (행 9:1-9). 그러므로, 예수를 열렬히 따르던 자들에게서 있을 법한 무슨 집단 환각 증세 같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적 증거가 너무나도 분명하다.
일곱째,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자들이 여자들이라는 사실이다. 당시 유대인의 풍습에 따르면, 여자들의 증언은 법정에서도 인정이 되지 않을 만큼 무시 되었다. 따라서, 만일 부활의 사건이 날조되어진 것이라면, 여자들의 목격은 의도적으로 성경의 기록에서 삭제되었을 것이다.
이상 위에서 열거한 일곱 가지 사실 이외에도, 무엇 보다도 예수님의 죽음 이후 180도 달라진 제자들의 변화된 삶이 예수님의 부활을 또한 무엇보다 잘 증거하고 있다. 만약에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왜 무엇 때문에 그들은 목숨을 바쳐 이를 증거하려고 하였겠는가? 증거의 신빙성을 다루는데 있어 최고의 전문가로서, 하바드 대학의 법학 교수를 지냈으며, 이 분야의 불후의 명저로 손 꼽히는 <증거의 법칙에 관한 논문>을 남긴 바 있는 Simon Greenleaf는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역사적 증거들을 조사해 본 끝에,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상의 그 어느 사건 보다도 더 많은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렇다. 이제 우리는 부활의 필요충분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이 확실한 증거들 앞에 더 이상 어찌 부활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자, 이제 우리 모두 일어나자. 그리고 크게 외치자. 할렐루야, 우리 주님 부활 하셨으니,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다같이 소리 높여 우리 주를 찬양할 찌어다!
- 이브의 배꼽, 아담의 갈비뼈-중에서
출처 - 이브의 배꼽, 아담의 갈비뼈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555
참고 :
현대 의학? : 그것은 그리 현대적인 것이 아니다.
(Modern medicine? : It's not so modern!)
David A. Wise
현대 의학(modern medicine)과 위생(hygiene)의 많은 기본적인 원리들이 현대과학에 의해서 발견되기 수천 년 전에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다. 공중 보건과 공중 위생의 실행방법들을 가장 먼저 실시한 사례들은 성경의 처음 글들인 모세오경(Pentateuch)에서 발견된다.
성경에는 병에 걸린 이스라엘 사람들을 격리하도록 (필요하면 격리장소에) 지시하고 있다.1이스라엘 사람들은 오염된 물건이나2 상처를 싸매었던 것들을 불태워 폐기하였고3, 숙소 밖에 분변들을 묻어 버렸다.4 그들은 자연적 원인으로 죽은 동물들을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5또한 그들은 개인적인 위생을 실천하기 위해서 손을 씻고 청결을 유지하도록, 그리고 감염된 사람이나 시체를 만질 때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경고 받고 있었다.6
"'...누구든지 몸에 유출병이 있으면 그 유출병을 인하여 부정한 자라....유출병 있는 자의 눕는 상은 다 부정하고 그의 앉았던 자리도 다 부정하니, 그 침상에 접촉하는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유출병 있는 자가 정한 자에게 침을 뱉으면 정한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유출병 있는 자가 물로 손을 씻지 아니하고 아무든지 만지면 그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레위기 15:2,4,5,8,11)
이와 같은 규칙은 출산 후 특별한 날들 동안 여성에게도 적용되었다.7 게다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부부 이외의 어떤 성관계도 분명히 금지하고 있었다.8 만약 성관계가 한 명의 남편과 한 명의 아내로 이루어진 성경적 결혼의 부부 안에서만 이루어졌다면(창 1:27, 2:23,24), 성병들은 분명히 사라졌을 것이다.
건강을 누리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이 그들에게 일련의 지시(instructions)들을 내려주고 계시다고 믿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순종했다면, 그들은 큰 건강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불순종했다면, 건강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출애굽기 15:26)
현대 의학(modern medical science)은 1876년경 루이스 파스퇴르(Louis Pasteur)와 로버트 코흐(Robert Koch)에 의해서, 병원체(contagion)가 사람들 사이에 감염을 일으킨다는 생각을 입증하면서 (거의 동시에, 그러나 서로에게 알려지지 않고)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발견은 그 당시의 전체 의학계에 의해서 사실상 무시되었고, 심지어 조롱을 받으며 거부되어졌다. 의학자들과 개업하고 있던 의사들은 미생물(microbial life)은 어떤 상황 하에서는 무기물에서 저절로 새롭게 생겨날 수 있다는 오래된 그리스 철학을 열렬히 지지하고 있었다.
.루이스 파스퇴르(Louis Pasteur)와 같이 보건과 위생 분야에 공헌했던 사람들에 의해서,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생명체는 생명체로부터만 생겨난다.
신중한 실험을 통하여, 파스퇴르와 코흐는 심지어 가장 단순한 생명체라도 우연히 저절로 생명이 없는 무기물로부터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반박할 수 없도록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코흐는 특별한 종류의 미생물들은 특별한 종류의 질병만을 일으킨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의 독창적인 백조목 플라스크(swan-neck flask) 실험을 통하여, 파스퇴르는 승리를 선언하며 말했다 :
"나는 창조의 근원인 물을 시험관에 취했다. 그리고 미세한 생명체들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성분들을 가득 넣어주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나는 처음 창조의 그 아름다운 장면이 다시 재현될 수 있을지 의심하면서 바라보았다. 그러나 수년 전에 그 실험을 시작한 이후로 그것은 침묵, 침묵이었다. 생명체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생물(germs)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 의해서 그것은 차단되어졌기 때문이었다. 생명체(Life)는 미생물이었고, 미생물은 생명체였다. 자연발생설이라는 교리는 이 간단한 실험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다시는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9
진화론이라는 신화
매우 신앙심이 깊었던 루이스 파스퇴르는10, 생명체는 생명체로부터만 발생되어짐을 증명했던 것이다. 그의 실험은 생명은 무생물체에서 발생한다는 진화론적 신화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오늘날 진화론자들은 아직도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자연발생설의 반증(refutation of spontaneous generation)과 질병에 있어서 병원균 개념의 확립(establishment of the germ concept of disease)은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공헌 중에 하나였다. 이것이 없었다면, 의사들은 아직도 환자의 몸 안에서 저절로(spontaneously) 생겨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병원체들과 싸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의사들은 병원균들은 우연히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며, 몸 밖에서 감염된 모체 병원균의 후손들인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증거들을 제시하며, 파스퇴르와 몇몇 사람들은 외과의사들과 의료종사자들에게 보건과 위생 방법들을 채택하여 보급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4,000여년 전에 모세오경에 기록된 것과 놀랄만큼 유사한 방법이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구해졌으며, 구해져 오고 있다.
성경에서의 현대 의학
현대의 의학적 사실들이 성경과 놀랍도록 일치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예를 들어, 출산, 성관계, 손 씻음, 상처와 유출물 관리, 격리, 매장시 주의사항, 폐기물 처리....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것은 질병이 전염성이 있으며,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전파를 차단하는 것임을 가리키고 있다. 창세기 1:24,25 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생명체들에게 "그 종류대로(after their kind)" 번성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보게 된다. 예방의학(preventive medicine)은 이러한 진리를 아는 지식과 더불어 가능한 것이다!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성경은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이 과학적인 문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때, 그것은 진실되고 정확한 것만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성경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감동된 기록(the inspired Word of God)이기 때문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자연발생설과 같은 고대의 진화론적 교리가 폐기되기까지 의학 분야에서의 건설적인 발전은 가능하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미세한 생명체의 기원에 관한 이러한 미신적 신화를 타파하기 위해 치루었던 격렬한 전투는 확실히 현대 의학의 오랜 발달 과정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무용담 중에 하나인 것이다.
* 모세오경에 기록된 보건과 위생 관련 지침들 :
1. 상처, 피부, 유출물의 주의 사항 : 레위기 15:2-11, 17:11
2. 분만 후 주의사항 : 레위기 12:2-3
3. 매장 시 주의사항 : 민수기 19:11, 14-16,19,22, 레위기 11:24-28, 40
4. 격리와 격리장소 : 레위기 13:1-14:57, 민수기 5:2-4, 신명기 23:10
5. 쓰레기 처리 : 신명기 23:12-14, 레위기 11:33, 13:47-58, 15:12
REFERENCES AND FOOTNOTES
1. Leviticus 13:1-14:57; Numbers 5:2-4; Deuteronomy 23:10.
2. Leviticus 11:33 and 15:12.
3. Leviticus 13:47, 50-54, 58.
4. Deuteronomy 23:12, 13.
5. Deuteronomy 14:21; Leviticus 22:8.
6. See also Numbers 19:11, 14-16, 19, 22 and Leviticus 11:24-28, 40.
7. Leviticus 12:2, 3.
8. Leviticus 18, 20:10-16, and Exodus 20:14.
9. Rene J. Dubos, Ph.D. and James G. Hirsch, M.D., Bacterial Mycotic Infections of Man, Fourth Ed., J. B. Lippincott Company, Philadelphia, Pennsylvania, 1952, p.3.
10. Henry M. Morris, Men of Science, Men of God, Master Books, El Cajon, California, 1982, p.60.
11. Joseph Lister also greatly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modern sanitary practices. He, like Pasteur, was a committed Christian (refer to Men of Science, Men of God, by Henry M. Morris, also Creation magazine Vol.14 No.2, pp. 48-51).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7/i1/medicine.asp
출처 - Creation 17(1):46–49, December 1994.
진화론과 부활절이 무슨 관계 ?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사건을 들라고 하면, 누구라도 주저없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지적할 것이다.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지만, 사실 기독교만이 유일하게 부활을 실제 역사적인 사실로 증거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기독교의 교리 또한 이 부활 사건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즉, 인간의 기원과 타락에서부터,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구속하심이 인류 역사를 통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하는 모든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이어지면서 이야기의 정점을 이루게 되어 있는게 바로 성경이므로, 이 부활 사건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바로 기독교를 믿느냐 안믿느냐하는 것과도 동일한 질문인 것이다.
한편, 현대 교육은 인본주의에 그 기초를 두고 있음은 누구나가 주지하는 바일 것이다. 인본주의란 출발부터 하나님은 없다고 전제하며, 동시에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저절로 우연히 생겨났다고 믿고 있는 신념의 체계이다. 이는 바로 진화론이 주장하는 바이므로 결국, 인본주의와 진화론은 그 뿌리가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진화론적 사상이 현대 교육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소위 현대 교육을 받은 우리들은 모두가 알게 모르게 진화론적 교육을 받은 셈이다. 그렇다면, 현대 교육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부활을 믿으면서 또한 동시에 진화론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가능할수 있는 일일까?
진화론에 의하면, 인류가 지구상에 처음 출현하기 시작한 것은 약 200 만년전으로서, 그 전에 이미 수많은 생물들이 지구 상에 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인류가 나타나기 까지 수없이 많은 죽음과 생존을 거듭하면서 나름대로 진화를 계속해오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인류가 이 땅에 있기 오래 전부터 이미 이 땅에는 죽음이 들어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정면으로 모순이 된다. 성경은 잘 아는대로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과 사람을 처음에 창조하셨을 때, 보시기에 매우 좋았다고 하셨는데 (창세기 1장), 이 말은 적자생존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죽음이 필연적으로 나타나야 하는 진화론적 개념과는 같이 어울려 생각하기 매우 어려운 말이다. 오히려 성경은 창조가 있은 후에,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비로소 이 땅에 죽음이 들어 왔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 내용은 신약성경에서 더 분명하게 명시되어 나타나는데, 바울은 말하기를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으며’ (롬 5:12) 또한, 그 한 사람은 바로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고전 15:22). 뿐만 아니라, 성경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들도 함께 탄식하며 고통을 받고 있다고 기록 (롬 8:22) 함으로써, 결국 생물계에 나타나는 죽음이 인간의 존재 이후에 생겨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진화론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성경을 믿는다는 것은 커다란 모순에 빠지는 일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죽음의 기원과 부활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부활은 한 마디로 죽음을 이긴 사건이다. 그리고 그 죽음은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이 땅에 생겨난 것이다. 이 말은 결국 부활이란 죄로 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죄없는 예수님이 죽음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음으로 부활을 하신 것처럼, 그를 믿는 우리들도 하나님으로부터 죄 없다 사함을 받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와 질 수 있다는 것이 기독교의 가르침이요 (고전 15:12-19), 그래서 그것이 기독교인들에게 부활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진화론적 사상을 받아들이게 되며는, 인류의 죄악이 있기 훨씬 이전에 이미 죽음이 이 땅에 존재하고 있었음으로 죽음은 우리의 죄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 따라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돌아 가셨다가 부활을 하셔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게 되고 만다. 이 말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동시에 성경의 모든 이야기가 우스꽝스럽게 되어 결국은 신앙을 버려야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음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바로 상관 없어 보이는 진화론과 부활절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 서로 대립되는 관계를 띠고 있음을 발견 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진화론적 사상이 어떻게 우리들의 신앙을 뿌리째 흔들어 놓고 있는가 하는 점인데, 복음을 전파하는데 매우 열심이면서도 정작 그 복음의 기초를 두고 있는 부활의 사실성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진화론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교회가 무관심이거나 혹은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는 현실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오늘날 청소년들이 신앙을 잃어 버리는데 진화론이 결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하는데, 비단 청소년들 뿐만이 아니라 기존에 신앙을 갖고 있으며 교회 활동에 열심인 성도들 가운데에도 사실 성경의 모든 내용을 아무런 의심 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물론 진화니 창조니 하는 내용을 전혀 모르고도 부활의 사실만을 받아들임으로서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또 교회 활동에 열심을 낼 수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성경을 깊이 공부하면 할수록, 우리의 믿음의 기초는 창세기의 역사적 사실에 그 깊은 뿌리를 두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또한,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데 성경을 오직 부분적으로만 믿는 것이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는지를 경험해본 이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십자가의 예수님 옆에 같이 있던 한 강도는 그냥 주만 믿어 천국에 가는 것만으로도 만족 할 수 있었겠지만,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아직 이 땅에 살면서 예수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될 뿐만 아니라 (엡 4:13), 믿음에 거하되 터위에 굳게서서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아야 (골 1:23) 할 것이 아니겠는가?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하겠는가? 이는 오직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으로서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창조과학은 성경 가운데서도 특히 가장 역사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민감한 내용인 창세기 1-11장을 전적으로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과학적 증거들을 찾아 뒷받침함으로써 성도들의 신앙에 유익을 가져오게 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게 함으로써 그야말로 성도들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창조과학 강의를 다니다 보면 많은 기독교인들이 창조과학적 활동을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많은 일 중에 한 가지 말단 지엽적인 issue 정도로 인식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아마도 이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되는 부활사건과 진화론의 관계를 충분히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서 오는 오해가 아닌가 싶다. 과거 다윈이 활동하던 시절에 그의 진화론을 누구보다도 앞장서 열렬히 지지하고 다니던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가 잘 파악하고 있던 것처럼, 기독교의 교리는 절대로 진화론과는 양립할 수가 없는 성질의 것이므로, 우리는 양자택일을 하여 오직 한 가지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Huxley는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신앙을 버리고 그가 주장하는 진리인 진화론을 받아들일 것을 종용하고 다녔다.
자, 여러분은 과연 어느 쪽을 진리로 택할 것인가? 창조에 기초를 둔 부활신앙인가, 아니면 죄의 기원을 찾기 어려운 그래서 부활의 의미를 상실케 하는 진화론인가? 창조과학은 진화론의 과학적 모순을 지적함으로써 기독교의 핵심 진리인 부활의 신앙이 확고히 설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다. 창조과학에 대한 교회의 지속적이고도 전폭적인 관심과 지원이 그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한 때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과학시대에 있어 진화론이야 말로 우리의 신앙을 노략질하는 철학이요 헛된 속임수이기 때문이다 (골 2:8).
-이브의 배꼽, 아담의 갈비뼈-중에서
출처 - 이브의 배꼽, 아담의 갈비뼈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540
참고 :
미국인들은 성경이 문자 그대로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가?
(Curious George : Do American literally believe that the Bible is 'literally' true?)
AiG News
첫 구절부터 성경의 정확성과 권위를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지 갤럽(George Gallup Jr.)의 여론조사는 용기와 실망을 함께 가져다 준 뉴스였다. 여론조사의 결과는 그의 새로운 책 “종교적 경향 조사(Surveying the Religious Landscape)” (공동 저자 D. Michael Lindsay)에서 살펴볼 수 있다.
긍정적인 면으로, 조지 갤럽은 미국인의 44%는 '하나님이 인간을 현재의 형태보다 훨씬 좋게 대략 1 만년 전 이내의 시기에 창조하셨음“고 믿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던 유명한 1997년의 여론조사를 인용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창조에 대한 성서적 설명이다. 퍼센트는 1990년대 초에 실시되었던 여론조사보다 단지 약간만 낮아졌을 뿐이다. (또한 1982년에 비해 1% 낮아짐). 또한, 1997년에 39%의 사람들은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 하나님이 수백만 년에 걸쳐서 사람의 진화를 인도하셨다는)’을 믿고 있었다. 응답자의 세 번째 부류는 소수의 사람들로서, 창조주는 없으며 완전히 진화만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자유주의 목사들과 자유주의 교사들이 수십년 동안 성경의 권위와 정확성(보통 창세기를 표적으로)을 난도질 해왔기 때문에, 조지 갤럽의 새 책은 지난 37 년 동안, '성경은 하나님의 실제 말씀이고, 글자 하나하나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을 믿는 미국인들의 수는 더 적어졌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고려해야할 점으로, 그 여론조사의 설문은 결점을 가지고 있다. 당신도 알고 있는 것처럼, 성경을 믿고 있는 크리스천들은 성경의 모든 구절들을 '문자 그대로(literally)'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시편 91:4절의 “저가 너를 그 깃(his feathers)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his wings) 아래 피하리로다” 라는 말씀같이 성경의 일부 구절들은 분명히 상징적이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즉 하나님이 날개를 가지신 분이라고 문자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Spirit)이시기 때문이다 (요 4:24). 그러므로 1997년의 여론조사에서,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들의 일부가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다. 그러나 성경에 있는 모든 구절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설문에 찬성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조지 갤럽의 다음 여론조사에서는, 성경에 대한 미국인들의 태도와 관련된 설문은 좀더 구체적으로 되어질 것으로 믿는다. 하여간, 1997년에 단지 17%의 사람들만이 “성경은 사람에 의해서 기록된 우화, 전설, 역사, 도덕적 지침들에 관한 고대의 책” 이라는 의견에 찬성했다. 지난 30여년 동안 성경에 대한 공격은 지속적으로 증가되었고, 골수 진화론자들에 의해서 진화론이 공공학교와 대중매체들에서 일방적으로 열렬히 가르쳐지고 전파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볼 때, 이것은 매우 가슴이 뜨거워지는 수치이다.
추가적인 여론조사 결과들...
그 책이 출판에 들어간 이후, 여론조사 기관은 하나의 새로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지난 달, 갤럽은 미국인들의 46%가 거듭남의 체험이 있거나(born again), 복음적(evangelical)이라고 주장한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수치는 5년 전이었던 39% 보다 상승되어진 수치이긴 하지만, AiG는 크리스천들 사이에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함께 증가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일부 사람들은 ‘성경적 사고(thinking Biblically)’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요일에 교회에 나왔을 수 있다. 그러나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성경은 그들의 삶에 아무런 관련도 없고 권위도 없는 것처럼, 그들은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 Look for Ken Ham's Web commentary on this new book by George Gallup on Thursday April 6. (Source: The Associated Press, April 4, 2000).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2/4268news4-5-2000.asp
출처 - AiG, April 4, 2000.
애굽의 열 가지 재앙
: 기적인가, 자연현상인가?
(The ten plagues of Egypt : Miracles or 'Mother Nature')
Russell Grigg
출애굽기 7장~11장에 걸쳐 기록되어 있는 애굽(이집트)의 열 가지 재앙은 모두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명백한 기적인가? 그렇다. 모세의 기록에 따르면 그것은 명백히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이었다. 그러나 그레타 호르트(Greta Hort)의 주장에 의하면,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자연적 원인에 의한 현상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이러한 주장은 1957~58년에 처음 출판되었고1, 오늘날 성경 참고서적들과 백과사전 등에 광범위하게 인용되고 있다.2 그러나 호르트의 생각은 2003년 브라드 스파크(Brad Sparks)의 조사가3 이루어질 때까지, 독립적인 과학적 연구의 주제가 결코 되지 않았었다.
호르트의 주장에 따르면, 애굽의 첫 번째 재앙인 피(blood)의 재앙은 대량으로 번식한 붉은 색의 조류(red algae) 때문이었으며, 아비시니안 고원(Abyssinian Plateau)에 내린 폭우로 붉은 색의 토사들이 씻겨져 나일강으로 유입되어지면서 더 색깔이 붉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조류들은 물 속에 산소 농도를 낮추어, 물고기들을 죽게 했으며, 어찌 해서 탄저균(anthrax bacteria)이 증식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구리(frogs)들이 병을 앓기 시작했고, 강을 떠나서(두 번째 재앙) 죽게 했다는 것이다. 호르트에 의하면, 세 번째 재앙은 홍수 물에서 번식한 모기(mosquitoes)들이었다는 것이다. 네 번째 재앙은 무는 파리(biting fly)인 Stomoxys calcitrans 에 의한 재앙이었는데, 파리들은 나일강의 홍수가 물러가면서 남겨진 부패한 식물들에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 재앙인 생축들에서 발생한 악질(disease)은 그녀의 주장에 의하면 죽은 개구리들로부터 전파된 탄저병(anthrax)이라는 것이다. 여섯 번째 재앙인 사람과 동물들에서 발병한 독종은 무는 파리에 의해서 전파된 피부 탄저(skin anthrax)라는 것이다.
또한 호르트에 의하면, 일곱 번째 재앙인 우박(hail)과 뇌성(thunder)의 재앙은 지역적으로 이상 기후 현상이 일치하여 일어난 것으로, 여덟 번째 재앙인 메뚜기의 재앙을 촉진시켰다는 것이다.5 아홉 번째 재앙인 흑암(darkness)의 재앙은, '캄신(Khamsin)'으로 알려진 사막의 모래폭풍에 의해서 원인되었는데, 모래폭풍은 첫 번째 재앙에서의 붉은 색의 미세한 토사들을 대기 중으로 유입시켜 태양빛을 차단하도록 하였고, 광범위했던 나일강의 홍수가 감퇴되어질 때 땅에 남겨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호르트가 주장하는 열 번째 재앙은 장자의 죽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성경의 오기(corruption)에서 기인’ 하였는데 (Hort 1958:52~54)3, 추수하고 남아있던 마지막 첫 열매(first-fruits)들이 손상되었던 것이라는 것이다.
호르트 이론의 치명적 결점들
1. 그녀의 조류(algae)
호르트 이론에서 중요한 요소는 'Haematococcus pluvialis'와 'Euglena sanguinea' 라는 이름의 붉은 색의 두 조류(algae)이다. 그녀의 주장에 의하면, 이들 조류들은 흙탕물이었던 나일 강물의 색깔을 '피 같이 붉게' 만드는 것을 증진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두 조류는 혼탁하고 흐르는 물에서는 보통 붉은 색이 아니고, 녹색(green)을 띤다. 그러므로 당시 이집트 사람들이 그것을 피의 재앙으로 오해하여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100여년이 넘는 연구 기간동안, 과학자들은 나일강에서 서식하는 400여 종의 조류들 중에서 호르트가 말한 조류는 발견하지 못했고, 나일강 뿐만 아니라 동부 아프리카 전체에서 발견된 1,000여종의 조류들 중에서 위의 두 종은 발견되지 않았다.3 그 조류들은 '매우 드물고 쉽게 죽으며, 얼음물에 사는 종들로서 아북극의 추운 기후에서 서식하며, 눈과 얼음물의 온도에 대한 ‘산업화 지표(industrial indicators)’로서 사용되곤 한다. 그 조류들은 세계의 어떤 곳에서도 해로운 적조현상(Harmful Algal Bloom, HAB)7을 일으켰던 사례가 없고, 물을 오염시키지도 않으며, 물을 마실 수 없도록 하지도 않는다.3
또한 이들 조류들이 독성이 있거나 탄저병의 원인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 조류들은 전 세계적으로 인간과 동물의 식량 공급원으로 사용된다. 'H. pluvialis' 는 강격한 산화방지 능력을 가지고 있고, 항암 물질로서의 사용이 고려되고 있으며, 심지어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품 안정청(FDA)에서는 H. pluvialis에 대한 수년간의 안정성 평가 후, 1995년 4월 13일 사람이 소비하는 것을 승인했다.3 유글레나 조류 (Euglena algae)는 물고기 사료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3
2. 물고기들
물고기들은 호르트가 주장한 두 종류의 무독한 조류들 때문에 죽었을 가능성은 없다. 그들은 조류 증식으로 인한 산소결핍(anoxia)으로도 죽지 않았다. 왜냐하면 산소결핍은 조류들이 과도하게 번식한(algal bloom) 후에 나타나는 현상인데, 흙탕물(muddy water)에서는 조류들의 과도한 번식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물고기들은 피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3. 그녀의 붉은 진흙 (red mud)
나일강의 진흙은 붉은 색이 아니라(nor red), 갈색(brown)이다. 만약 호르트가 주장한 것처럼 흙먼지가 아홉 번째 재앙인 흑암의 재앙에서처럼 하늘을 뒤덮을 만큼 두꺼웠다면, 그것이 나일강 물에서 농축되었을 때는 수면 아래는 매우 어두웠을 것이다. 그때에 그녀가 주장하는 조류들은 즉시 죽어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류들은 식물이므로, 광합성을 위해서는 햇빛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기 중에 떠있는 흙먼지들은 이것을 방해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탁된 진흙(suspended mud) 입자들은 조류들에 달라붙어 응집(flocculation)을 유발했을 것이고, 조류들은 가라앉게 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서, 홍수의 정점에서 미사를 함유한(silt laden) 나일강의 홍수 물은 모든 종류의 조류들을 깨끗하게 청소했을 것이다.3 스파크(Spark)의 말에 의하면 '호르트의 이론은 조류(algae)와 조류를 죽이는 미사(silt)들을 같이 필요로 한다. 그녀의 이론은 논리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스스로 파멸되는(self-destructing) 자멸 이론인 것이다.3
만약 물이 단지 붉기만 했다면, 이집트인들은 진흙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 물을 그릇에 담아 두거나 걸러서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출애굽기 7:19~20절의 기록은 "아론이 자신의 지팡이로 물을 내리쳤을 때 나일강 물이 피로 변했다"고 말하고 있다. 시간이 지체된 것도 아니었고, 천천히 어떤 붉은 물체들이 축적되는 것도 아니었으며, 단지 나일강 물 뿐만 아니라, 운하, 호수, 그리고 나무 그릇, 돌 그릇 등에 담겨있던 물까지 모두 피로 변했던 것이다(출 7:19).
4. 그녀의 탄저병 (anthrax)
탄저균은 강물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토양(soil)에서 발생한다. 또한 이 균은 물고기(죽은 것이든, 살아있는 것이든)나 개구리 같은, 물에 사는 수생 생물(aquatic animals)들에게는 감염을 일으키지 않는다. 사실 하나님께서 재앙을 거둬들이셨을 때에, 남아있던 개구리들은 나일강으로 돌아갔다(출 8:11). 탄저균은 포유류(mammals)에 감염을 일으킨다. 예를 들면 토양에서 탄저균의 포자(spore)에 의해 오염된 풀을 뜯는 초원의 육상동물들에게 감염을 일으키는 것이다.
5. 그녀의 무는 파리 (biting flies)
무는 파리는 동물이나 사람에게, 그리고 죽은 동물에서부터 탄저병을 옮기지 않는다. 탄저병에 관한 의학-수의학 역사에서, 파리가 인간이나 소, 양 등을 물어서 탄저병을 감염시킨 사례는 지금까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고된 사례가 없다.3
6. 나일강의 홍수 (The Nile in flood)
호르트는 어둠의 재앙을 가져왔던 땅을 뒤덮은 붉은 진흙/먼지를 일으킨 원인으로, 그리고 모기들과 무는 파리들의 번식을 가능하게 한 것으로 홍수 물(floodwaters)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출애굽기에는 재앙이 있던 기간 동안에 홍수가 있었다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오히려 모세는 바로를 나일강 둑(하숫가)에서 만나고(출7:15), 애굽인들은 마실 물을 찾기 위해 강을 따라 땅을 팠었다(출 7:24). 이것은 홍수가 난 강에 대한 기술이 아니다.
7. 그녀가 주장하는 사막의 붉은 먼지 폭풍
호르트는 개구리, 파리, 메뚜기 재앙들을 홍수에 기인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 홍수는 또한 우박으로 인해 더욱 불어났다는 것이다. 그녀는 캄신(Khamsin) 폭풍이 주장되어지는 붉은 진흙들의 대량적인 포화(saturation)를 어떻게 건조시켰는지,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먼지로 바꿔버렸는지, 그리고 단지 수 시간 안에 대기 중으로 높이 올라갈 수 있게 하였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애굽인들은 종종 사막의 폭풍을 경험하곤 했을 것이다. 바로는 사막 폭풍이 3일 동안 지속됐다 할지라도, 그것에 의해서 크게 영향 받지 않았을 것이다.
8. '장자(firstborn)' 대신 '처음 난 과일(first fruits)'
이것은 호르트의 명백히 부정직한 해석으로, 그녀의 자연주의적인 이론을 실증하기 위해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의 히브리어 단어를 완전히 틀리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이와 같은 주장은 애굽 장자들의 죽음과 이스라엘 장자들의 구원에 대해 매우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2장 반에 걸친 이후 출애굽기의 기록들(출 11:1~13:16)을 모두 무시해버려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하나님은 자연적인 과정들을 통해 일하셨는가?
하나님은 그 분의 창조를 자연 법칙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이루셨다. 기적은 하나님이 특별한 경우에 행하시는 방법이다. 출애굽 시에 하나님이 행하셨던 기적적인 일들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모세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고 하셔서, 모세가 바로에게 미리 경고할 수 있게 하셨다.
2. 모든 재앙의 시작(그리고 중지)은 여호와의 대리인인 모세를 통해 정확히 예정된 시간에 모세와 아론의 행동과 기도가 이루어진 시점에서 일어났다.
3. 고센지방(이스라엘 민족이 살던 곳)은 재앙에서 제외되었다.
4. 재앙 그 자체.
하나님은 당신의 특별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자연적인 현상이나, 이차적인 인자들을 사용하시는 데에 방해받지 않으신다. 사실 출애굽기 10:13절에 기록된 하나님이 내린 여덟 번째 재앙인 메뚜기 재앙에서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 불게 하시니" 모든 메뚜기들이 불어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0:19절에 하나님이 메뚜기 재앙을 중지시키기 위해 "여호와께서 돌이켜 강렬한 서풍이 불게 하사 메뚜기를 홍해에 몰아 넣으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세가 자세히 기록한 당시의 재앙들 중에 단지 한 가지 재앙에 지나지 않는다.
‘논리적이고 연속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단지 자연현상들’12로서 재앙들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호르트(다른 모든 사람들)는, 왜 이러한 '자연 현상(Mother Nature)‘들이 그 당시 있었던 재앙과 비슷한 어떠한 것으로도 재반복 되지 않는지에 대해 설명해야만 한다. 재앙들에 대한 자연주의적 해석은 심판주로서의 하나님의 역할을 없애 버리는 것이다. 또한 호르트는 지난 3500여년 동안, 왜 유태인들이 출애굽 시 그들의 장자들이 살아남은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을 지켜왔는지 숙고하여야만 할 것이다.
기적과 관련하여, 기적을 일으킬 수 없는 신(god)은 따를 가치가 없는 신이고, 행한 일들을 정확히 후대에 전할 수도 없는 신이다.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들은 오직 유일하시고 진정한 신이신 하나님(God)만을 경배하여야만 한다. 그 분은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지켜야 할 법을 주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쁜 소식은 그 분을 믿고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분은 구세주가 되신다는 것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Hort, G., The Plagues of Egypt, 2parts, Zeitschrift fu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69:84-103, 1957; 70:48-59, 1958. Hort was 'a scholar of medieval English literature and religion' (ref.3)
2. E.g. The New Bible Commentary Revised, Inter-Varsity Press, London, Exodus 7:14-11:10, p.126, 1970; and The Illustrated Bible Dictionary, Part 3, Inter-Varsity Press, Leicester, England, Plagues of Egypt, pp.1234-1237, 1980. Also The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 William B. Eerdmans, Grand Rapids, Michigan, Plagues of Egypt, Vol.3, pp.878-880, 1986.
3. Sparks, B., Red algae theories of the ten plagues: contradicted by science, 2 parts, Bible and Spade 16(3):66-77, 2003 and 17(1):17-27, 2004, on which this article is based.
4. Hort wrote that we can only 'suppose that the waters of the Blue Nile.... had brought [the two species of 'red' algae] into the Nile from Lake Tana (Hort 1975:94, emphasis added)'. Quoted from ref. 3.
5. Hort changed the east wind that brought the locusts into a south wind, because they are supposed to come from the Sudan or south-western Arabia. She also changed the west wind that blew the locusts into the Red Sea into a north, or sea, wind (ref. 3)
6. Others, unacknowledged by Hort, have suggested red algae, red silt and anthrax.
'Hort's unique contribution has been to name two particular species of algae that are non-existent in Egypt and the Nile' (ref.3).
7. They are not listed in more than 170 species of algae known to cause HABs, listed by UNESCO and other sources (ref. 3).
8. Wild carnivores may (rarely) contract anthrax by eating infected carcasses; humans may contract it from eating infected meat, or, if they have cuts or abrasions in their skin, from handling infected hides or wool.
9. Moses announced or initiated plagues 1, 2, 4, 5, 6, 7, 8 and 10 before Pharaoh, but not, it seems, 3 and 9.
10. 'YHWH‘ or Jehovah, the sacred name of the one true God (Exodus 3:14)
11. Exodus says that plagues 4, 5, 7, 9 and 10 did not occur in Goshen, and no. 6(boils) occurred' on all the Egyptians'. Goshen is not mentioned in respect of 1, 2, 3 and 8.
12. Marr and Malloy (1996) postulated that a different set of organisms caused the plagues, that the 9 plague was blindness not darkness, and that the 10 plague was caused by a poisonous mould(from the droppings of the locusts) growing on the top portions of the grain supplies, with the firstborn receiving extra helpings. These and other naturalistic theories are counted in ref. 3.
* RUSSELL GRIGG, M.Sc (Hons.)
Russell was an industrial chemist before serving 20 years with 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 He is a staff member of Answers in Genesis in Australia.
애굽에 재앙이 있었다는 고고학적 증거
네덜란드의 라이덴 박물관(Leiden Museum)에는 이푸워(Ipuwer) 라는 이름의 고대 이집트인에 의해서 쓰여진 한 파피루스(a papyrus)가 보관되어 있다.1 거기에는 일반 애굽 사람들이 겪었던 출애굽 당시의 재앙들에 대한 목격담이 기록되어 있었다.2 다음은 기록 중에서 발췌된 것이다.
”재앙은 온 땅을 휩쓸고 지나갔다. 피는 모든 곳에 있다..... 강은 피로 변했다. 한 사람이 그것을 마시려고 했다. 그러나 마실 수 없었다. 그는 목이 타들어 갔다..... 오, 문과 기둥, 벽들은 모두 불타버렸다..... 오,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형제들의 무덤 옆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은 도처에 있다.... 오, 그러나 왕궁에 있는 사람은 지금도 인정하려하지 않는다.... 타지방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애굽으로 들어왔다.... 오, 곡식(corn)들은 모든 곳에서 죽어버렸다. 옷도 없고, 향료도 없고, 기름도 없다. 모두가 말한다. ”이제는 아무 것도 없다".... 곡식 창고는 텅 비었다.... 올 것이 왔다. 왕은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서 쫓겨났다.” 3
References
1. Catalogued as 'Leiden 344', it was discovered ing 1828, and translated in 1909 by Prof. Alan H. Gardner under the tile The Admonitions of an Egyptian Sage from a Hieratic Papyrus. 24 May, 2004.
2. Becher, M. The Ten Plagues - Live form Egypt, 21 April, 2004.
3. Down, D, Searching for Moses, TJ 15(1) : 53-57,2001, who quoter from Erman,
A. The Ancient Egyptians: A Sourcebook of Their Writings, Harper and Row, New York, pp. 94-101,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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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7/i1/plagues.asp ,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69/
출처 - Creation 27(1):34-38, December 2004.
하나님은 욥에게 창조과학 세미나를 하셨다?
김정훈
구약 성경 가운데 욥기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책 중의 하나이다. 이제까지 많은 주석들이 욥기에 부쳐졌지만, 대체적으로 보면 의인이 이유 없이 받는 고난에 대하여 신학적 설명을 시도하려는 방향으로 초점이 모아져 온 듯 싶다.
사실, 성경에서 욥은 순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자라고(욥 1: 8),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인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만큼 이유 없이 큰 고통을 받은 자로서 기록되어 있다. 욥이 이와 같이 원인 모를 고통 가운데 있을 때에 그에게 세 명의 친구가 찾아와 각기 변론을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한결 같이 욥의 받는 고통이 그가 지은 죄로 말미암아 비롯된다는 것이어서, 하나님께 인정받은 욥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뒤 어어 나타난 엘리후도 비록 한결 고상한 이론을 가지고 욥의 잘못을 나무라지만, 죄 없는 욥은 오히려 침묵으로 답변을 대신하며, 더욱 알 수 없는 절망 가운데로 빠져들게 된다.
이런 가운데 드디어 욥기 38장에 이르게되면, 하나님께서는 직접 폭풍가운데 나타나시어 욥에게 한 말씀을 하시는데, 이것이 전혀 우리가 기대했던 답변이 아니다. 욥과 친구들 간의 어려운 신학적 대화 끝에 정작 하나님께서 주신 대답은 시원스런 신학적 답변이 아니라, 현대과학도 아직 잘 답변을 하지 못하는 어려운 과학적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자연의 세계 가운데로 이리 저리 옮겨 다니며 질문을 받던 욥은 불현듯 어떤 깨달음을 얻고,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 42:5-6).> 무엇이 욥으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였는가? 욥이 이제는 눈으로 주를 본다는 고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다름 아닌 창조과학 세미나를 하신 것이다. 말로 듣기만 하던,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의 경륜과 지혜를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직접 보여 주신 것이다. 토기장이이신 그분께서, 내가 이유 없이 받는 것처럼 보였던 고통까지도 사실은 그의 주권 속에 섭리하고 계시다는 깨달음이, 욥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직접 그의 눈앞에서 펼치시는 창조과학 세미나를 통해 분명해졌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통치 하시고 우리들 삶의 주권을 잡고 계시는데, 무엇이 우리를 더 이상 두렵게 할 것인가? 창조과학 쎄미나는 바로 욥이 경험 하였던 것 처럼 우리에게 주의 창조의 세계를 보여 줌으로, 오히려 그 분의 우리를 향한 크신 사랑과 그를 이루기 위한 그 분의 오묘한 섭리를 깨달아 평생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갖도록 도와 준다. 우리에게도 주를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은 확실함이 우리들의 믿음 가운데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 이브의 배꼽, 아담의 갈비뼈- 중에서
요나와 큰 물고기
(Jonah and the great fish)
Russell Grigg
"요나를 삼킨 큰 물고기"의 이야기는 성경을 믿는 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true history) 인가, 아니면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의 비유(allegory) 인가, 아니면 성경을 비판하는 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터무니없는 이야기(nonsense) 인가?
성경은 요나의 이야기를 진실된 역사로서 간주하고 있다. 요나서는 실제의 역사로서 기록되었다. 요나(Jonah)는 실제 있었던 선지자였고, 열왕기하 14장 25절에도 언급되었으며, 예수님 자신도 요나의 이야기를 믿고 있었다. 예수님은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다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요나의 경우에 비유하셨다. (마태복음 12:39–41, 누가복음 11:29–30). 헨리 모리스(Henry Morris) 박사는 ”그러므로 요나 이야기의 사실성은 예수님이 무지하셨던지, 아니면 잘못 알고 계셨던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함 없이 부정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어느 쪽도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이다.”1 라고 하였다.
요나를 삼킨 바다 생물은 무엇이었을까?
요나서에서 바다 생물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인 ‘dag’ 는 ‘물고기(fish)‘를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 마태에 의해 사용된 그리스어는 ’këtos‘ 로서, 바다 괴물(sea monster)을 의미하며, 개정된 번역판에서도 그렇게 표기되었다.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에서 번역가들은 이 단어를 고래(whale) 로서 번역했는데, 고래는 그들이 알고 있던 가장 큰 바다 생물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a great fish)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욘1:17)”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말은 요나를 안전하게 수용하기 위해서 하나의 특별한 창조 행위를 하셨거나, 기존에 있던 바다 생물을 조절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나는 ”물고기의 뱃속에서(out of the fish's belly)” 하나님께 기도했다 (요나 2:1). 배(belly)는 고대 히브리어에서도 그렇지만 영어에서도 꽤 모호한 용어이다. 그래서 만일 요나가 향유고래(sperm whale)와 같은 생물에 의해 삼켜졌다면, 그는 굉장히 큰 후두 주머니(laryngeal pouch)에 있게 되었을 것이다. 만약 그 생물이 상어(shark)였다면, 요나가 상어의 위액(gastric juices)으로부터 보호되기 위해서 하나님에 의해서 특별히 준비된 위에 있었을 것이다.
한 남자를 통째로 삼킬 수 있는 큰 턱을 가지고 있는 바다생물들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호주 퀸즈랜드의 무루라바(Mooloolaba)에 있는 수상공원(Underwater World)에 있는 사진을 보라. 그리고 죠스 영화에서도, 고기잡이 배의 선주인 퀸트(Quint)는 상어에 의해서 통째로 삼켜지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다른 설명?
1891년 포크랜드 섬(Falkland Islands) 근처에서 캡틴 킬람(Captain Killam)이 지휘하던 포경선인 ‘동방의 별(Star of the East)’ 호에서 작살을 던지던 제임스 바틀리(James Bartley) 라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인용되고 있다. 고래 사냥 도중에 바틀리는 바다에 빠졌고 사라졌다. 한 고래가 잡혔고 다음 날 선원들이 배를 갈랐을 때, 놀랍게도 바틀리가 그 안에서 발견되었는데, 그는 아직도 고래의 위에서 살아있었다. 그는 깨어났고, 시간이 흐른 후 회복되었다.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고래의 뱃속에서 체류된 동안, 위액에 노출된 바틀리의 피부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 있었다. 그의 얼굴, 목, 손들은 창백하도록 흰색으로 탈색되어 있었고, 양피지 종이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바틀리는 굶주릴 때까지 아마도 뱃속 안쪽에서 살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는 공포로 감각을 잃어버렸고 그곳은 공기가 부족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2
이 이야기는 1892년 10월, 영자 신문인 ‘Great Yarmouth Mercury’에 처음 보도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다른 글들에서 재보도 되었는데, 1924년에 출판된 프란시스 폭스(Francis Fox) 경이 지은 책 'Sixty-three Years of Engineering, Scientific and Social Work” 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성경비판자들은 이 이야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박 주장을 하고 있다. 1906년에 캐논 윌리암스(Canon Williams)라고 불리는 영국 국교회의 목사가 이 이야기의 사실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캡틴 킬람에게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1906년 11월 24일 캡틴의 아내로부터 답장을 받았는데, 전체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없었고, ”나는 남편이 ‘동방의 별’ 호에 있었던 해에 남편과 함께 있었는데, 남편과 함께 있는 동안 한 사람의 선원도 바다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선원 이야기는 바다 사람들의 허풍이다”3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위의 상반된 보고서로부터, 누군가는 이 사건에 대해 경제적 문제로 얽혀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명백하지 않은 것은 단지 그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헤리 림머(Harry Rimmer) 박사는 영국 해협에서 트롤어선으로부터 바다로 떨어졌다가 거대한 Rhincodon 고래상어에 의해서 삼켜졌던 한 선원을 직접 만난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전체 트롤어선 선단은 상어를 잡기 위해 출항했다. 사고가 나고 48 시간이 지난 후, 그 상어가 목격되었고, 갑판에 있던 1파운드의 작살 총으로 살해되었다. 사체는 너무 무거워서 배의 갑판에 있던 윈치로 다루기에 힘들었다. 그래서 선원들은 그의 동료를 기독교 식으로 장례해주기 위해 그 상어 사체를 해안으로 끌고 왔다. 상어의 배가 열려졌을 때, 그 사람은 의식은 없었지만 살아 있었다. 그는 병원으로 급히 후송되었고, 충격으로 한 동안 고통을 당하였지만, 후에 퇴원하였다. 그의 사진과 이야기는 1 실링의 입장료를 내야하는 한 런던의 박물관(London museum)에 전시되어졌었고, ‘20세기의 요나(The Jonah of the Twentieth Century)' 로서 광고되어 졌었다.4
사흘 밤낮은 무엇인가?
고대 히브리인들은 관용적으로 하루의 한 부분도 하루로서 간주했다.5 그래서 사흘 밤낮(three days and three nights)은 38시간 정도의 짧은 기간도 될 수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무덤에 계셨던 기간(금요일 늦은 오후에서 일요일 이른 아침까지)을 요나의 경우를 비유로 들며 밤낮 사흘이라고 말씀하셨던(마 12:40) 것을 설명하고 있다. 마가복음 8:31절에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을 주목하는 것은 흥미롭다.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서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따라서 예수님은 두 가지의 시간 척도를 교대로(interchangeably) 사용하셨다. 성경비판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시간과 비교되어진 예수님이 무덤에 계셨던 시간은 아무런 오류나 모순이 없는 것이다.6
요나의 이야기의 많은 놀라운 부분 중의 하나는 그가 물고기의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욘 2:1) 꽤 긴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던 이유이다. 아마도 그는 기절을 했었고, 하나님이 마치 요나의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예표하시기 위한 의도인 것처럼, 그를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들이 생각하고, 믿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사건이 기적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실, 요나의 이야기는 하나님에 의해서 일어난 6 가지 기적적인 사건들도 이루어져 있다. 그 사건들의 일부는 자연 현상까지도 하나님에 의해서 조절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욘 1:4)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욘 1:17)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욘 2:10)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욘 4:6)
”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씹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욘 4:7)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욘 4:8)
이러한 기적들은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대홍수 사건, 바벨에서의 언어의 혼란, 출애굽 시에 애굽 땅에 내려진 재앙들, 홍해의 갈라짐, 엘리사에 의해서 이루어진 기적적인 치유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 예수님의 부활 등과 같은 기적보다 더 믿을 수 없어 보이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은 성경에 기초하고 있으며, 성경을 믿지 못한다면 무너지는 것이다.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라는 것을 결코 잊어버리거나 변명해서는 안 된다.
인간적으로 말해서, 왜 하나님은 요나에게 그토록 긴 시간 동안을 물고기 뱃속에 있도록 하셨어야만 했을까? 그에 대한 정당하고 충분한 이유가 되는 대답은 니느웨 백성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필요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말로, 요나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사흘 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우리들이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도록 하신(벧전 1:18-19) 사건을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AND FOOTNOTES
1. Henry Morris and Martin Clark, The Bible Has the Answer, Creation-Life Publishers, El Cajon (California), 1976, p. 74.
2. Sidlow Baxter, Explore the Book, Zondervan, Grand Rapids, 1966, Vol. 4, p. 153.
3. Leslie Rumble, Questions People Ask, Chevalier Books, Kensington (New South Wales), 1972, p. 25.
4. Harry Rimmer, The Harmony of Science and Scripture, Eerdman's, Grand Rapids (Michigan), 1952, pp. 188–189.
5. Unger's Bible Dictionary, Moody Press, Chicago, 1957, p. 1099.
6. Cf. in Matthew 27:63–64 the Pharisees tell Pilate that Jesus had said He would rise 'after three days'. They then ask Pilate for a guard for the tomb 'until the third day'. If 'after three days' was not interchangeable with 'the third day', they would have asked for a guard 'until the fourth day'—Adapted from Josh McDowell and Don Stewart, Answers to Tough Questions Skeptics Ask About the Christian Faith, Here's Life Publishers, San Bernardino (California), 1980, pp. 5051.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1/n1/great-fish
출처 - Creation 17(2):34–36, March 1995.
할례는 왜 하게 하셨죠?
이웅상
창세기 17:10-14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남자아이는 난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으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아브라함도 이삭을 난지 팔일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창 21:4). 과연 할례의 과학적 이점은 무엇이며, 왜 팔 일만에 행하도록 하셨을까요?
처음으로 혈액의 응고에 관한 지식은 1935년에 Dam 박사에 의해 Prothrombin이란 물질이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상처를 입으면 혈소판에서 분비된 물질에 의해 응고효소인 트롬빈이란 물질이 Prothrombin의 활성화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 물질은 섬유질의 전구물질인 피브리노겐을 피브린으로 활성화하여 함께 응고하여 상처나 부위의 출혈을 중지시키며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 Scanzillo 박사는 생후 3일된 아이의 Prothrombin 농도는 성인의 30%에 불과하나 생후 팔일에는 성인의 110%로 최고치에 이르렀다가 이후 바로 성인과 같은 수준을 평생 유지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난지 팔 일만에 할례를 행하게 하셨는지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번잡한 할례를 그 백성들에게 요구하셨을까요? 영적으로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임을 나타내는 예식입니다. 영적뿐만 아니라, 할례는 신체에도 청결한 육체를 유지하도록 한다는 의학적 이점이 밝혀졌습니다.
유대인 여성에게는 자궁경부암이 다른 민족에 비교해 8.5%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자궁경부암이 남성의 성기에 살고 있는 Mycobacterium smegmatis 라는 균이 전염되어 유발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즉 유대인 남성은 어려서 할례를 받기 때문에 성기에 이 균이 많이 살고 있지 않아 결혼 후에 부인에게 이 균을 전염시키지 않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이처럼 할례는 자신의 몸을 청결하게 유지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가족의 건강도 지켜 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자신의 백성들을 영적 뿐만 아니라, 육적으로도 성별되게 보호하시기 위한 조치였던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성경은 식생활에 대해서도 놀라운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레위기 11장에 식생활과 건강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동물에 대해서도 놀라운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1장 6절에 보면 "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라고 말씀하면서 먹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토끼가 오랫동안 동물학계에서 새김질을 하지 않는 동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과연 당시의 과학이 옳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옳을까요? 그래서 일부 성경비평가들은 '토끼는 새김질을 안 하는데, 평소에 입을 오물오물하니까, 모세가 오해하였을 것이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에 독일의 유명한 동물학자인 그리지맥 박사는 과학자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신뢰하고 직접 연구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연구하고 관찰을 해 보았더니, 놀랍게도 먹이를 주고 지켜 복 때는 되새김질을 안 하던 토끼들이, 사람이 보지 않는 잠이 든 시간인 밤 12시에서 새벽 3시 사이에 캄캄한 토끼 굴에서 혼자 몰래 되새김질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되새김질에는 특수한 물질이 필요한데, 그것이 토끼 똥입니다. 토끼는 두 가지 똥을 누는데, 하나는 진짜 똥이고요, 다른 하나는 되새김질에 필요한 특수 물질입니다. 낮에 풀로 배를 가득 채운 토끼는 밤에 소화에 필요한 물질을 배설하여 집어먹은 다음 되새김을 하면서 소화를 시킨다는 사실을 밝히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과학자들이 많은 실수와 노력으로 생물의 신비를 밝히기 이전에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놀라운 진리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성경과 과학은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갈등의 관계가 아닙니다. 이런 오해는 무신론에 입각한 왜곡된 과학관으로 기인되었을 따름입니다. 성경은 과학에 비교해 뒤진 책이 아니라, 너무나 초과학적이어서 그 당시 과학이 이해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출처 - 기독공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