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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연대문제

유종호
2005-10-19

연대측정 방법과 가정들 1 - 연대측정 방법의 기본 가정들


1. 연대측정 방법

지구와 우주의 연대를 결정할 때, 진화론자들은 우라늄과 다른 방사성 동위원소들의 붕괴율을 이용한 연대측정 방법에서 여러 실수들을 범하고 있다. 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무시하기 때문에, 이러한 원소들이 100% 순수한 물질에서 시작하였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구를 창조할 때부터 성숙한 지구를 창조하셨다.


원소들과 다른 물질들의 창조를 고려할 때, 우리는 표면상의 나이와 진짜 나이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아담과 이브가 창조 당시 대략 20에서 50살로 보였으나, 그들의 실제 나이는 0살이었다. 예수님께서 빵과 물고기로 5천명을 먹이실 때, 물고기는 몇 년 자란 것처럼 보이는 물고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물고기는 0살에 불과했다. 예수님께서 물로 만든 포도주는 수년간에 걸쳐 숙성한 포도주 같았다. 에덴동산의 나무, 관목, 꽃 그리고 4개의 강은 수년에 걸쳐 이루어진 것 같지만, 그들의 실제나이는 0살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빛은 진화론자들에게는 수백만 년 또는 수십억 년의 세월을 날아 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빛은 별들과 같이 한 순간에 존재하게 되었다. 만약 진화론자들이 하나님의 창조 당시에 존재해서 하늘을 쳐다보았더라면, 오늘날 지구와 우주의 연령에 대해 취하는 그들의 행동처럼 수십억 년의 세월을 따라 잡았을 것이다.


진화론자들이 지구의 연령을 수십억 년이라고 주장하는 방사성 동위원소 물질들도 마찬가지이다. 과학자들의 발견에 따르면, 우라늄 같은 방사성 물질이 천천히 납과 같은 안정된 물질로 붕괴되고, 세월이 흐르면서 모(母)원소와 자(子)원소의 일정한 비율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숙한 지구와 우주를 창조할 당시 진화론자들이 생각하는 수십억 년의 세월을 겪은 모습으로 지구의 물질들을 창조하셨지만, 그들의 실제 연령은 단지 0살 인 것이다. 표면적인 연령은 그동안의 붕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한 최초의 모습이다. 


진화론자들은 모원소인 우라늄과 자원소인 납, 혹은 그 밖의 다른 원소들의 연령을 결정하기 위하여 세 가지의 특별한 가정을 하고 있다. 즉 1) 최초에 방사성 물질은 중간 혹은 마지막의 붕괴물질(자원소)을 포함하지 않는 상태로 있었다. 2) 그것은 아무 것도 뺄 수도 더할 수도 없는 닫힌계 였다. 3) 붕괴율은 전 시대를 걸쳐서 항상 일정했다.


첫째 가정은 최초 암석에는 모원소 우라늄만이 있었고, 자원소인 납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지구의 모든 물질을 창조하실 때 성숙한 상태의 물질들을 창조하셨다면 이 가정은 잘못된 것이다. 진화론에 필요한 수십억 년의 세월을 확보하기 위하여, 진화론자들은 처음에는 중간 혹은 마지막의 붕괴물질이 없었다고 가정한다. 『사기 사업(The Monkey Business』p.102.에서 진화론자인 닐 엘드리지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만약에 우리가 암석이 형성된 시기에 최초에 존재하는 모원소와 자원소의 양을 알 수 있다면, 그리고 만약 모원소가 자원소로 붕괴하는 비율을 알 수 있다면, 우리는 모원소와 자원소의 현재 조성 비율을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암석의 연령을 계산할 수 있다. 아! 창조론자들을 울려라, 수많은 가정들이 거기에 있구나! 붕괴비율이 일정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는 암석의 연령과 그 속에서 발견되는 화석을 비교하는 낡은 순환논법으로 전개하고 있지만, 그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논리이다. 암석과 화석의 연대측정 방법은 방사성 동위원소 방법과 비교된다. 그는 그러한 방법이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잘못된 순환논법은 과거에 진화론자들이 반복적으로 사용했던 방법이다. 이러한 빗나간 전제를 동원하는 논법으로는 아무것도 입증할 수 없다.

최근에 발생했던 일을 생각해 볼 때, 창조 시에도 많은 양의 방사성 붕괴물질 자(子)원소들이 함께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진화론: 명백한 몰락』 p.30에서 헨리 히버트(Henry Hiebert)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근의 화산 폭발에 의해 생겨난 암석에서조차 방사성 붕괴물질인 납이 우라늄과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1968년 7월 15일 지구물리학 연구라는 저널에서, 실제 연령 168세였던 하와이 용암이 포타슘-아르곤방법에 의해 2천9백6십만 년으로 추산되었던 실례가 인용되었다. 이것은 드문 현상이 아니다. 현대의 용암들이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 계산으로 나이를 측정할 때, 그들의 납-우라늄 연대는 흔히 수십억 년이 넘게 나타난다! 만약 연대를 알 수 있는 암석들이 그렇게 비현실적인 나이를 나타낸다면, 연대를 모르는 암석들의 나이를 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가?”

168년과 29억6천만년 사이에는 1760만 배의 차이가 있다. 만화 같은 이야기다.


두 번째 가정은 방사성 동위원소의 붕괴가 가감이 없는 닫힌계에서 발생하였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럴 것 같지 않다. 특히 깊음의 샘들이 터져나오는 대홍수 때에 지구의 암석들이 겪었을 격렬한 지각운동에 비추어보면 그럴 것 같지 않다. 모든 암석 시스템들이 격렬한 소동 속에서 충돌하고, 으깨지고, 산산 조각이 되었을 때, 많은 것들이 암석에 있는 방사성물질들의 구성을 변형시키며, 일실되었고, 더하여졌을 것이다. 그런 시기에 많은 암석들이 걸러질 수 있었다. 수억 수천만 년 동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이다. 6,000년에서 8,000년의 세월조차도 많은 것이 특히 격렬한 홍수의 시기에는 더욱 변할 수 있었다.


방사성 동위원소에 의한 연대측정에서 진화론자들이 세운 세 번째 가정은 붕괴율이 항상 일정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대홍수의 시기에는 방사능 붕괴율이 크게 변화될 수 있었다. 대홍수라는 비교적 짧은 시기에 무슨 변화가 발생했는지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대홍수는 방사성 원소들을 뒤섞고, 침전물의 퇴적을 증가시킴으로써, 사용하는 연대측정 방법의 가능성을 파괴하였을 것이다. 또한 화석에서 명백히 드러난 바와 같이 대홍수의 시기에 큰 기후의 변화가 있었다. 또한 홍수시기에 대기를 변화시켰다. 이것은 우주에서 오는 방사선을 변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만약 우주 방사선이 더 이상 동일하지 않다면, 방사능에 의한 연대측정 방법은 믿을 만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세계가 성숙한 상태로 창조되었던 창조 당시에 어느 정도의 방사능이 있었는지를 누가 알겠는가? 그러므로 붕괴비율이 일정하다는 가정은 증명할 수도 없으며 시험할 수도 없다.


일반적으로 연대측정 방법은 매우 불안정한 가정들을 전제로 한다. 연대측정 방법에서 가정된 전제와 결론은 전체의 진화론과 마찬가지로 분명치 못하다. 사실 이러한 연대측정 방법으로 추산된 연령은 신빙성이 없다. 말콤 머거리지(Malcom Muggeridge)는 진화론의 책자들을 검토하고 진화의 증거가 없음을 알고 난 후에, 진화를 위해 요구되는 수천만 년의 세월이 ”순수한 환상으로서의 신화에서도 포착될 수 없기에, 어느 누구에게나 감명을 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진화를 신화로 이해했다. 머거리지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그러한 부주의하고 불확실한 이론이 그토록 쉽게 20세기의 정신세계를 사로잡고, 그토록 폭넓게 분별없이 적용되었다는 사실에 후손들은 확실히 놀랄 것이며, 즐거워하기를 나는 바란다.” 

그러나 그러한 연대측정방법에서 가정된 수십억 년의 세월은 진화론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진화가 발생한 수천만, 수십억 년의 세월을 확보할 다른 방법들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조작된 수십억 년의 세월은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수십억 년이라는 충분한 세월을 확보한 그들은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 있게 하였고, 그 다음에 가능한 모습을 있음직한 일로, 마지막으로 있음직한 일을 거의 절대적으로 확실한 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로버트 실버버그(Robert Silverberg)가 쓴 『시대를 위한 시계들』p.75의 다음 인용문에는 진화론자들이 수십억 년의 세월로 어떠한 환상들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즉,

”어떤 경우에도 지질학적 역사의 패턴을 명백하다. 아마도 가장 보편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이론에 따르면, 처음에 지구는 둥근 불덩어리였다. 그것이 냉각되고 응고됐다. 대기에서는 물이 응축하여 비가 수백만 년 동안 끝없이 내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바다가 형성되었다. 수십억 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 설명할 수 없이 바다에서 화학성분이 뒤섞이면서 생명세포가 등장했고, 그것이 번성하고 번식하면서 더욱 더 복잡한 미생물이 나타났다. 20억 년이 지난 후에 이러한 미생물들이 바다를 차지했다. 그러나 갑자기 진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지구가 존재한 최근의 6억 년 간에 수많은 생명체, 즉 삼엽충, 벌레,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과 상황을 사색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인간으로 알려진 가장 최근의 존재를 등장시켰다.”  

그러나 둥근 불덩어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수백만 년 동안 내린 비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살아있는 세포에 있는 생명은 어디에서 온 것이며, 번식 능력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어떻게 해서 하나의 종이 수천의 종으로 변할 수 있었는가? 오늘날에 보면 어떠한 종도 다른 종으로 변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임을 나는 확신한다. 그는 적어도 진화론에 근거한 사상들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진술하고 있다.


현재 진화론의 대부인 칼 세이건은 수십억 년의 세월에 대해 가장 설명을 잘한 인물 중의 하나이다. 1987년 5월 31일 『퍼레이드 매가진』에 그는 ”수십억에 수십억(billions and billions)”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글을 실었다. 즉,

”나는 결코 그것을 정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오, 나는 아마도 일천억 개의 은하계와 셀 수 없는 별들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엄청난 숫자를 동원하지 않고는 우주에 대해 말하기란 어렵다. 나는 우주에 관한 텔레비전 연재에서 수십억이란 말을 했다. 그러나 나는 ”수십억에 수십억”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도 부정확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수십억에 수십억”은 과연 얼마를 나타내는가? 단순한 수십억인가? 그것은 다소 막연하다.... 사람들은 그런 소리를 좋아한다. 이따금 내가 코스모스 책의 사본을 복사해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 속표지에 ”수십억에 수십억”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당신이 아는 바와 같이 나는 실제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OK라고 말하면 여하튼 써 주세요 라고 답한다.... 코스모스 텔레비전 프로가 처음으로 시작되었던 1980년에, 사람들은 수십억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단지 수백만의 표현은 소규모적이고 인기 없는 인색한 표현이 되었다..... 아주 유행하는 수의 개념은 이제 새로운 영역인 수 조의 개념에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을 보면 진화론의 환상을 많은 사람에게 퍼뜨리기가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리고 진화론자들이 왜 지구의 나이가 45억년이라는 생각을 퍼뜨리고 있는가? 그리고 왜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이라는 우화를 실제 사실로 여기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심지어 1960년의 노벨 수상자인 피터 메다워(Peter Medawar) 경의 경우도 그러하다.(Ⅺ장 16번을 참고하시오)


국가적인 채무가 한 때 수백만 달러, 수십억 달러, 이제는 수조 달러에 달한다. 사람들이 그런 숫자에 익숙해지면서, 진화론자들은 그런 수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만약 수조의 단위가 오래 전에 사용되었더라면, 만약 진화론자들이 불가능을 가능성으로, 가능성을 그럴 듯한 것으로, 그럴 듯한 것을 절대적인 사실로 변화시키는데, 수억 년의 개념으로는 충분치 못하다고 하더라도 나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923

참고 : 2719|2882|2961|2946|3273|3351|3702|3775|3781|4074|4190|4435|4693|4838|4992|5053|5240|5243|5377|5367

John D. Morris
2004-07-26

젊은 지구(The Young Earth) 1장. 암석이 말하는 지구의 연대


    신문에서 새로운 화석이나 고고학적 발견 또는 지하 단층에 대한 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는 으레 과학자들이 그것을 발견함으로 말미암아 진화론이 또 다시 입증될 수 있게 되어 매우 흥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수백 만년, 수억 년 혹은 수십억 년 전으로 연대가 제시된다. 아무도 그 연대의 정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되지 않으며, 독자들 또한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느낀다. 과학자들이 그 연대를 어떻게 얻었는지 궁금하게 여긴 적이 있었는가? 어떻게 그들은 그렇게 오래 전에 일어났던 일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일까? 마치 암석과 화석들이 말을 하거나 자기들의 나이와 지금까지 되어온 과정을 설명하는 표라도 달고 나온 것처럼 말이다. 내가 비밀을 말하건대 사실 암석들은 말을 할 수도 없고 어떤 표를 달고 나오지도 않는다. 내가 아끼고 돌보는 암석들이 몇 개 있다. 그들에게 '바위야, 너 몇 살이니? 화석아, 너는 어떻게 화석이 되었지?' 라고 물어봤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 진화론 과학자들도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연대와 역사는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그 대답은 너무 간단하다. 그러나 그 개념이 이 책의 중요 공격 목표이다. 이 책에서 나는 암석과 화석의 연구방법과 그것들의 역사에 대해 어떻게 결론이 내려지는지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그런 연구 방법이 보통 어떻게 진행되는지 왜 그렇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지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진화론자들도 대부분 훌륭한 과학자들이다. 그들의 이론들은 정교하고 섬세하다. 혼란을 주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다만 진화론자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마음의 덫을 보여 주고, 보다 나은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쓴 이유이다. 이제 어떻게 암석이나 화석의 연대를 측정하는지에 대해 한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이것은 꾸며낸 것이지만 실제 전형적인 방법이다.

  

연대 측정은 보통 어떻게 수행되는가? 자, 당신이 아주 잘 보존된 화석을 담고 있는 석회암을 발견했다고 하자. 그 암석의 나이를 알고 싶어서 근처 대학의 지질학과의 한 교수에게로 가지고 갔다. 다행히 그 교수는 당신이 가진 암석에 흥미를 갖고 있어서 나이를 측정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교수는 '탄소 연대 측정은 오직 유기물질에 사용될 수 있지 암석에는 사용될 수 없다'며, C-14 연대 측정법은 사용하지 않는다. 화석도 암석이기 때문에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탄소 연대 측정은 이론적으로 과거 수천 년의 역사에만 유효한데, 당신의 화석은 수백 만년은 족히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 전문가는 화석을 담고 있는 암석의 종류는 퇴적암인데 이런 암석은 방사성 연대 측정법에 의해 정확하게 연대를 측정할 수 없다며, 방사성 동위원소의 농도를 측정하지도 않는다. 방사성 연대측정법은 오직 용암과 화강암 같은 화성암에만 적용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 대신 그 교수는 화석의 모양과 특징만을 연구할 뿐이며, 화석의 나이를 앎으로써 그 암석의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편의상 당신의 화석이 조개라고 해보자. 물론 지금도 많은 종의 조개들이 산다. 그런데 이 조개는 당신이 이제껏 보아온 것들과 약간 다르게 생겼다. 그 교수는 과거에 많은 종류의 조개들이 살았으며, 그것들은 지금 조개들의 조상이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멸종되었다고 말해준다. 그리고는 무척추 고생물학이라는 책을 꺼내 조개에 대한 페이지를 편다. 조개 그림이 많이 있다. 언뜻 보면 다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약간씩 다르다. 교수는 책에 있는 그림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더니 마침내 당신의 조개와 아주 비슷한 것을 찾아낸다. 그림 아래에 있는 설명을 보니 시준화석으로 약 3억2천 만년 전의 것이라고 되어 있다. 교수는 만족한 표정과 확신 있는 어투로 '당신의 암석은 약 3억2천만년 되었군요'라고 설명한다.

  

정작 암석은 조사되지 않았음을 기억하라. 암석의 연대는 그 안에 있는 화석들에 의해 측정되고, 그 화석의 연령은 시간에 따른 진화론적 연대표에 의해 측정된다. 석회암 자체는 시대를 불문하고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암석의 연대를 측정하기 위해 암석을 사용할 수는 없다. 화석들이 암석의 연대를 결정하고 진화론적 연대표가 화석의 나이를 결정한다. 석회암은 흔히 화석을 포함하고 있지만, 어떤 석회암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화석들이 아닌 매우 미세한 입자 층으로 되어있다. 많은 석회암의 경우 화석들은 분쇄되어 파편들로 되어 있고 사암과 셰일(혹은 혈암)같은 퇴적암들은 전혀 화석을 담고 있지 않다. 그런 경우는 어떻게 합니까 라고 당신이 물어 보았다고 하자. 그러면 교수는 층서, 즉 지층들이 어떻게 발견되는지에 대한 정보, 제일 오래된 것(즉 제일 오래된 화석을 담고 있는 것) 위에 보다 최근의 것이 쌓이는 식으로 지층이 발견되는 방식에 대해 짤막한 강의를 해준다. 이해가 간다. 분명 밑의 지층은 위층이 생기기 전에 퇴적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당신이 '그 연대는 어떻게 알 수 있지요?' 라고 물으면, '그 지층이 담고 있는 화석에 의해서'라고 대답한다.

  

많은 퇴적암들은 그 암석만 가지고는 전혀 연대를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퇴적암이 진화체계 내에서 연대를 나타내는 화석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 위층과 아래층에서 화석을 담고 있는 다른 층을 찾아서 그 암석의 연대를 그 사이에 끼워 넣어야 한다'고 교수는 말하였다. 그와 같은 층이 동일 지역에 없을 수도 있지만 옆으로 층을 추적해 가다 보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에서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운 좋게 당신의 암석은 그 안에 좋은 화석, 진화 역사에서 오직 한 기간에만 살았던 생물로 정의되는 시준 화석을 갖고 있다. 그것은 다른 조개와 본질적으로는 같지만 다른 조개에는 없는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런 종류의 조개를 볼 때 우리는 그 조개 화석을 담고 있는 암석은 3억2천만년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조개는 3억2천만년 전에 살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화석은 시준 화석이 아니다. 많은 조개, 달팽이, 곤충, 심지어 단세포 생물조차도 수억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았고 여러 지층에서 발견된다. 그 생물들은 어느 특정한 시기에만 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암석의 연대를 알기 위해 그것들을 사용할 수 없다. 오직 시준화석만이 유용한데, 이것들은 한 암석층에서만 발견되어 지질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에만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화석들을 발견할 때마다 그 암석의 연대를 그것에 따라 추정한다.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이 사고 과정이 순환논리임을 깨닫도록 하자. 이 논리는 결코 과학에서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관찰로부터 결론에 이르는 대신, 결론이 관찰을 해석하고, 관찰은 결론을 '증명'한다. 화석들은 진화를 지지하는 중요 증거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암석의 나이가 그 안에 들어 있는 시준화석의 진화 단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시준화석은 암석의 나이에 의해 자동적으로 연대가 결정되고 배열된다. 그래서 암석은 화석의 나이를 결정하고, 화석은 암석의 나이를 결정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굳어진 용암을 발견했다고 하자. 분명히 그것은 화석을 담고 있지 않지만, 당신은 이 암석의 나이도 알고 싶어한다. 지질학과에 근무하는 교수는 지구 물리학과에 가보라고 추천한다. '거기 가면 이 암석의 나이를 알아낼 수 있을 거요' 라고 말한다. 당신의 암석을 보자 지구 물리학 교수는 매우 기뻐한다. 그는 이 암석이 그 속에 있는 방사성 동위원소들의 함량 비의 정확한 측정에 기초하는 방사성 연대측정 기법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일단 그 비가 알려지면 수학 공식에 대입하여 그 암석의 절대 연령을 얻을 수 있다. 불행히도 그 검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암석을 가루로 빻아서 특정 광물을 분리해야 하고, 그 광물을 비율을 결정하는 연구소로 보내 결과 보고를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런 다음 컴퓨터로 방정식을 풀어 연대를 결정한다.


  지구 물리학자는 이 검사는 매우 비용이 많이 들지만, 당신의 암석이 매우 흥미있고, 자신이 연구비가 많기 때문에 당신에게는 비용을 전혀 받지 않겠다고 알려준다. 게다가 그는 당신의 암석에 대해 여러 개의 다른 검사를 수행할 것이다. 우라늄-납(U-Pb) 방법, 포타슘-아르곤(K-Ar) 방법, 루비디움-스트론티움(Rb-Sr) 방법, 그 외 여러 방법들이 있다. 이것들은 전체 암석 혹은 암석 내의 개별 광물에 대해서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이다. 그것들은 모델 혹은 isochron(등시성) 기법에 의해 분석될 수 있고, 이상의 여러 방법들은 동일 암석에 적용된다. 그리고 바위의 절대 연대를 알려주는 것이다. 여러 주 후에 그 교수는 전화를 걸어 당신에게 결과를 알려준다. 마침내 당신은 암석의 실제 연령을 알게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다른 검사들의 결과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각 방법마다 나이가 다르게 나온 것이다. '같은 암석에 대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라고 당신은 의아해한다.

     우라늄-납 방법으로는 5억 ± 2천만 년의 나이였다.

     포타슘-아르곤 방법으로는 1억 ± 2백만 년의 나이였다.

     루비디움-스트론티움 모델 검사로는 3억2천5백만 ± 2천5백만 년의 나이였다.

     루비디움-스트론티움 등시성 검사는 3억7천5백만 ± 3천5백만 년의 나이였다.


  그때 가장 중요한 질문이 뒤따른다. '당신은 이 암석을 어디에서 발견했습니까? 이 용암을 담고 있는 노두(露頭)근처, 위 혹은 아래에 어떤 화석들이 있었나요?'  당신이 그 용암이 3억2천만년된 화석을 담고 있는 석회암층 바로 아래 있었다고 보고할 때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루비디움-스트론티움 연대가 정확합니다. 당신의 암석이 3억2천5백만년과 3억7천5백만년 사이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다른 검사들은 부정확한데 아마 약간의 침출이나 오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화석들이 암석의 연대를 결정하고, 화석은 진화론적 연대표에 의해 그 연대가 결정된다. 이 이야기는 결코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다. 보통 이런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 해석의 도식이 이미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각 연대 측정 결과는 진화의 가정에 의해 평가-수용 혹은 거부-되어야 한다. 연대 측정의 전과정이 오래된 지구 각본 안에서 진행된다. 오래된 지구 관점에 어긋나는 어떤 증거도 남아있지 못한다. 참된 증거가 무엇을 보여주든지 간에 진화는 견고하고 오래된 지구 사상들은 견고하다. 별개 사실은 그것이 진화의 일치하는지 여부에 따라 타당한 증거로 채택되든지 거부된다.

 

 이 딜레마에 대해 몇몇 진화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겠다. 첫 번째 사람은 고생물학자 데이비드 키츠 박사인데, 우리는 오클라호마 대학에서 함께 재직했다. 열렬한 진화론자인 키츠 박사는 정직하고 우수한 과학자이며 훌륭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그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진화론자들의 전형적인 사고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 진화의 기록은 다른 역사적 기록과 같이 특별한 선개념과 일반적인 선개념의 복합체 내에서 구성되었고, 그 가정은 진화는 일어났다는 것이다." -  David Kitts, Paleobiology, 1979, pp.353,354

 "'이것은 어떤 문제를 야기한다. 만약 우리가 화석에 의해 암석들의 연대를 측정한다면 어떻게 돌아서서 화석 기록에서 시간에 따른 진화적 변화 유형에 대해 말할 수 있단 말인가?" - Niles Eldridge, Time Frames, 1985, p.52

  "순환 논리가 발생한다 : 진화론에 의해 화석 기록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조사해보고 그래서 그것이 진화론을 입증한다고 말한다. 자,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 Tom Kemp, 'A Fresh Look at the Fossil Record', New Scientist, Vol. 108, Dec. 5, 1985, p.67


하나님의 형상대로

순환적 사고가 과학이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인가? 보다 나은 결정은 없는가? 과학자들은 영원히 이 원 안에서 달려야 할 운명인가? 인간의 사고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가? 성경은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 1:20). 피조물을 연구함으로써 확실한 사실, 특히 만물이 어떤 것 혹은 어떤 존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피조물들의 특성은 그 조물주의 특성을 드러낸다. 확실히 이것은 자연인이 그의 감각과 사고력을 통해 아마도 어떤 한계 내에서 정확한 관찰과 해석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만, 관찰자가 어떤 핑계를 하지 않는 한 만물이 저절로 생겨났다거나, 조물주가 있지만 그 또한 만물의 일부라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피조물을 연구함으로써 적어도 창조주의 본질에 대한 이해,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그 구절은 사람들이 우리의 경험을 통해 확인된 분명한 진실, 즉 바른 결론에 항상 이르지는 못한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가르친다 (창 1:27).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다. 사람은 전능하지도, 전지하지도, 무소부재하지도 않다. 반면 하나님의 형상은 어떤 능력과 특성을 부여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어떤 것을 부여하는가? 하나님의 형상이라 함은 하나님의 육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 하나님은 그 자신을 사람에게 나타내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7), 구약 시대에도 때때로 그러하셨다 (창 18장, 24장 등). 다른 예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속성 혹은 활동을 말씀하면서 그의 손, 얼굴, 혹은 팔에 대해 언급한다. 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지 하나님이 육체를 가졌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영이시다(요 4:24) 그보다는 '하나님의 형상'은 주로 사람이 인격적, 합리적 그리고 도덕적 자질을 가졌고 神의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이 점에서 사람은 다른 동물과는 전적으로 구별된다. 사람의 물리적 그리고 감정적 구성의 많은 부분이 동물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동물들은 종류대로 창조되었으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어느 정도 적절하게 그 분의 영광과 속성들을 반영하고 있다. 이 형상은 태초에는 '심히 좋았다' (창 1:31).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며 단지 그의 형상을 나타낼 뿐임을 인식하자.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를 연구하고 이해할 수 있는 위대한 잠재적 능력을 수반한다. 아담과 이브가 수행하도록 명령받았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창 1:26,28).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더라면 그들과 그 후손들이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 않았다. 대신 창조주에게 반역하는 길을 택했고,그 분의 진노를 촉발하였다 (창 3). 그들은 죽음의 벌을 받게 되었고, 모든 피조물들과 함께 쇠퇴하기 시작해 궁극적으로는 죽게 되었다. 하나님의 형상도 손상되어 사람의 영적, 정신적 능력도 줄어들었다. 이브로부터 시작한 인간의 자연적 본성은 죄의 결과를 피하고 권력의 자리로 자신을 높이려는 것이어서 하나님을 창조주로 시인하기를 거부한다. 오늘날 아담의 후손들이 자주 거짓 결론에 이르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버렸다 (롬 1:21, 22).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시 14:1).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였다 (고후 4:4).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의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 (엡 4:18). 이 불완전한 사고 능력과 진리를 향한 열망의 부족은 불완전한 논리와 의미 있는 자료들을 발견하고 분간하고자 하는 마음의 부재와 맞물려서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 으로 이끈다 (딤전 6:20). 이론적으로는 손상된 하나님의 형상도 진리를 발견할 수는 있으나, 실제로 궁극적 의미에서 사람은 이것을 거의 성취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존재하시고 창조는 일어났으나 과연 우리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대개 희미한 근사치를 성취하는 것이 최선일 따름이다. 아마도 타당한 관찰과 이 관찰에 대한 해석을 분리하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특히 이 해석 과정이 무신론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타당한 관찰을 수행할 수 있다. 과학자는 한 암석 내의 원소들의 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고, 다른 암석층에서의 층서학적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화석을 기술하고 분류할 수 있으며, 그것을 다른 화석들과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암석과 화석의 퇴적과 그 시기는 관찰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이와 기원을 해석하기란 훨씬 어렵고 매번 순환논리에 의지해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대안은 있는가?

창조론자는 순환 논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설득력 있는 과학자는 순환 논리에 어떻게 대응해야만 하는가? 앞에서 인용했던 3 명의 진화론자들처럼 신중한 태도로 거부해야 할 것이다. 순환 논리는 과학에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보다 잘 할 수 있다. 그 열쇠는 처음부터 가정을 갖고 출발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데 있다. 진화에 대한 가정이 과학에 꼭 필요한가? 현대 진화론자들은 그렇다고 주장하지만 분명히 그렇지 않다. 다른 가정들은 가능한가? 그렇다! 좋은 과학이 자연주의에의 배타적 헌신 없이도 가능한가? 확실히 그렇다. 그렇다면 어떤 가정의 집합이 옳은지 어떻게 결정할 수 있는가? 이것을 논의하기 전에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극소수의 사람만 인식하며 진화론자들은 거의 인정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해 말이다. 과학은 현재를 다루며 엄밀한 의미에서 현재에 국한된다. 과학적 이론들은 다른 것들도 포함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현재 존재하는 자료와 과정의 관찰을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누가 먼 과거를 본 적이 있는가? 암석과 화석들은 지금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수집하고 분류하고 연구하며 실험한다. 이 모든 것이 현재 일어난다. 과학적 방법은 현재를 다룬다 (물론 인류 역사 이내의 관찰과 기록은 관찰자를 신뢰할 수 있는 정도 내에서 사용 가능하다).

  

과학적 이론은 또한 검증될 수 있어야 하고 잠정적으로 반증 가능해야 한다. 즉 그것들이 틀렸다고 증명할 수 있는 어떤 가능한 방법이 존재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누가 과거에 대한 사상이 틀렸다고 증명할 수 있는가? 진화(혹은 창조)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리기 위해 어떤 검사를 수행할 수 있단 말인가?

  

과학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것은 재현 가능성이다. 이것은 오늘 어떤 사건이나 물체를 관찰했을 때 내일 관찰해도 똑같을 것임을 의미한다. 유사한 사건들은 유사한 결과와 유사한 관찰을 만든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오직 한번 일어났다면 그것을 관찰하고 결과를 연구할 수는 있지만, 그 사건이 반복될 수는 없다. 오직 한 번 일어나는 사건들 중 지구의 기원과 같은 사건들은 전혀 관찰조차 할 수 없었다. 과학자들이 어떤 사건의 결과 혹은 그 이후의 결과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일회적 사건의 충분한 재구성은 가능하지 않다. 이 개념이 어렵지만 좀 더 설명해 보겠다. 내가 과학을 불신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학의 한계를 보이고자 한다. 예를 들어 지질학은 존재하는 암석과 화석의 성질, 그리고 그것들의 형성과 변형 과정을 연구하는 과학이다. 암석의 미래에 대한 예견은 다른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역사 지질학(암석과 화석의 관찰되지 않은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런 어려움이 생물학, 생태학, 천문학, 고고학 등에도 존재한다.

  

진화가 정말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관찰할 수 없는 과거의 일이고,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진화의 각 단계도 단 한번만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라. 어느 누구도 생명이 없는 무기 화합물로부터 생명이 시작된 것을 본 적이 없다. 어는 누구도 어떤 종류의 생명체로부터도 완전히 다른 종의 생명체 (대진화)가 발생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어느 누구도 의미있는 진화론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조차 한 적이 없다. 동식물 집단 내에서 현재도 일어나는 작은 변이(소진화) (예, 곤충의 DDT 저항성, 후추나방의 지배적인 색의 변화 등)는 진화적 변화가 아니다. 실제로 창조는 창조된 종류 내에서의 적응과 변이를 허용하기 때문에 작은 변이는 완전히 창조론과 양립할 수 있으며, 그것 자체가 진화의 증거는 결코 아니다. 주요 변화(대진화)는 결코 과학적으로 관찰되지 않았으며, 공통조상으로부터의 진화 이론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고 증명될 수도 없다. 그것이 과거에 일어났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그것이 과거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진화는 과거에 대한 과학자들의 믿음(신념) 체계이며, 그들은 이 역사관을 현재의 증거를 해석하기 위해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창조가 정말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관찰할 수 없는 과거의 일이며 현재는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도 창조가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창조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고 증명될 수도 없다. 그것 역시 과학자들이 과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념이다.

<참고> 증명을 위해 성경의 권위에 호소하는 것이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가능하지만 현대적 의미에서 관찰과 반복성을 요구하는 과학적 증명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성경이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신뢰할 수 있다.

  

한편, 우리는 어떻게 성경이 권위적이며, 그것의 저자는 신뢰할만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 주제로 책을 썼고 저자들마다 약간씩 다르게 접근하며 나도 나의 견해가 최종적인 결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 대한 우리의 신뢰가 아무 것도 없는 데서부터 나온 것이 아니며, 믿음의 맹목적인 도약이 아니라는 점만 말해두자. 우리 모두는 현실 세계에 살고 있고, 이 현실 세계는 항상 세련된 철학적 틀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떤 가설이 현실에 잘 적용되는지 관찰할 수 있으며 실제로 관찰하고 있다. 어떤 가설이 반복적으로 적용되지 않거나 우리가 알고있는 지식에 위배된다면 우리는 그 가설을 버린다. 성경의 많은 내용은 시험과 반증이 가능하다. 우리가 성경을 연구해보면 그것이 진실이거나 최소한 사실일 가능성 (충분한 자료와 완전한 사고 능력이 동원되는 전제하에서)을 발견하게 된다. 많은 비평가들이 성경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쳤지만, 객관적이고 엄격한 연구에 의해 잘못되었음이 밝혀졌다.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이 의학, 경제학, 과학, 그리고 역사학에서의 타당한 원리 내지 발견과 부합됨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성경의 예언들이 기록된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성취되는 것을 본다. 사회와 가정이 성경적 원리를 따른다면 사법, 행정, 그리고 교육 제도와 마찬가지로 사회와 가정도 번영할 것을 알게 된다. 우리의 영혼은 사랑, 정직, 그리고 진실과 같은 성경적 가치들이 옳다는 것을 안다.

  

단적으로 말하면 성경은 역사(役事)한다. 우리는 성경이 모든 영역에서 유익한 결실을 가져온다는 것을 안다. 다른 제도들과 가르침들은 그렇게 잘 작동하지 않는다. 이것이 성경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아직도 믿음으로 그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항상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 그 지식에 대한 우리의 해석 또한 기꺼이 다듬어가야 하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참되고 권위 있는 말씀으로 인정할 수 있는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과학적으로 성경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성경이 옳고 모든 영역에서 적용 가능하다는 믿음을 견지하는 것은 타당하다. 성경은 최근의 창조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연구와 지식을 이끌 수 있는 기본적인 과학적 모델, 즉 이 세상의 과학이론 시장에서도 고려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모델을 제공한다. 그러나 창조는 인간이 관찰할 수 없는 과거의 일회적 사건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그래서 진화와 창조는 모두 경험과학 영역밖에 있고 과학적 방법에 의해 접근할 수 없다. 관찰할 수 없고 되풀이할 수도 없다. 그것은 일회적인 사건의 범주에 속한다. 현시점에서 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우리 눈에 보이는 현재를 있게 한 과거, 하지만 관찰할 수는 없는 과거의 일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과학자들은 가능한 한 가장 논리적인 방법으로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으나, 그 어떤 역사적 재구성도 증명할 수는 (혹은 부정될 수는) 없다. 기원에 관한 어떤 관점도 궁극적으로는 믿음에 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과학적으로 역사에 대한 창조의 관점이 옳다는 것을 전적으로 확신한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하나님의 자녀이며, 조금의 의심 없이 이것을 사실로 알지만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나는 창조주를 개인적으로 알며, 과거 사건들에 대한 그 분의 설명을 믿는다. 그는 그 곳에 계셨으며 그 모든 일을 하셨다. 그 분의 기록인 성경은  과학적 세부 지식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나 자신의 과학적 연구를 지도할 일반적 체계를 제공한다. 나는 그것이 실제 사건에 대한 정확한 기록임을 확신한다.


그리스도인의 자원

여건이 같다면 그리스도인은 성경적 관점에서 탐구하고 사고하기 때문에 비성경적(즉 잘못된) 세계관을 가진 비그리스도인보다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다. 이것은 비그리스도인에게는 없는 자원, 즉 성령께서 각 그리스도인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예수님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저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 라고 가르치셨다 (요 16:13).  하지만 성령의 임재가 바른 결론을 보장하지는 않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인일지라도 현실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도 죄가 관영한 세상에 살고 있고 손상된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있다. 구원받았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 모두는 세속적인 관점으로 사람들을 세뇌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며, 우리 마음속에 새겨진 오류를 없애는데 어려움을 갖고 있다. 개인적인 죄는 어떠한가? 죄를 용서받을 수 있고 잘못된 습관에 대해 승리할 수 있지만, 죄는 아직도 우리의 사고 과정을 흐트러뜨리고 온전한 성령의 주관을 억제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바른 관점에서 시작할 수 있고 매번 정도는 다를지라도 성령의 조명을 받는다. 성령의 사역, 곧 내적 확신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가운데 진리를 분별할 수 있다. 우리가 더 많은 정보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성숙이 깊어질 때 우리는 기꺼이 생각을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적어도 비그리스도인들보다 진리에 도달할 잠재적 능력을 훨씬 많이 갖고 있다. 성경에 주어진 고대 역사에 대한 관점을 채택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은 창조의 결과인 동물과 식물의 유형을 연구할 수 있다. 또한 노아 시대 홍수의 결과인 화석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구 퇴적암을 연구할 수 있다. 창조와 홍수를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들이 실제 일어났었음을 확신하고 바른 역사적 사고 체계 내에서 현재의 증거와 과거의 결과를 해석하고자 시도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 지식의 빠진 부분을 채울 수 있고, 보다 만족스럽게 과거와 현재를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성경이 옳고 창조, 저주, 홍수, 바벨탑 사건이 실제 일어났었다면, 진화론적 역사를 인정할 때 어떤 일이 생기는가? 만일 누가 참 역사를 부정하고 잘못된 가정을 수용한다면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모든 시도는 분명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잘못되었을 테고, 실제 사건에 기초하여 재구성한 것에 비해 질이 떨어질 것이고, 내적 일관성도 없을 것이고, 과학적으로 만족할만하지도 못할 것이다. 자료들이 이론에 들어맞지 않아도 그 이론이 틀리다고 절대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다. 언제든지 그 증거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은 사실이고 증거는 증거라는 것을 유념하자. 오직 믿음으로 창조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대개 사실에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의 믿음에 반하는 어떤 것이 발견될까 겁낸다. 그래서 차라리 대면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그러나 현재 존재하는 사실들이 과거에 대한 우리의 가정들과 양립할 수 없을지 모른다고 염려해서는 안 된다. 사실들은 암석 같은 것들이고, 그것들은 말을 하지 못하며, 한 사람의 가정에 의해 해석되어야만 한다. 내가 대학원에 있을 때 교수들은 자주 시인했다. '가치 판단이 배제된 사실같은 것은 없다'. 특히 관찰되지 않은 역사를 다룰 때는 더욱 그렇다. 사실들은 해석되어야 한다. 어떤 의미를 갖기 전에 존재하는 세계관 내에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사실들에 대한 하나님의 해석을 발견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또한 과학과 성경에 대한 이해가 자라갈 때 우리의 전제들을 기꺼이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진리는 분명 존재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한계를 극복하고 꾸준히 연구하여 그것을 밝혀 내도록 해야 한다.

  

관찰되지 않은 과거에 관한 사실 혹은 자료들이 보통 하나 이상의 세계관 내에서 하나 이상의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 사태를 악화시킨다. 하지만 두 가지 해석이 다 옳을 수는 없다. 이 장의 시작에서 언급한 화석이 바로 그 예이다. 그 조개 화석은 진화론적 역사 재구성에 의하면 다른 동물, 궁극적으로는 단세포 생물로부터 진화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견해에서 그 조개는 3억2천만년 전에 살았고, 그 후대 생물들은 멸종되었던지 지금의 조개로 그 계통을 유지해 왔다고 본다. 혹은 창조론적 역사 재구성에 의하면 노아의 홍수 기간 동안 퇴적물 속에 묻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창조 5 일째 창조된 '조개' '종류' 안에서 처음부터 조개로 그때까지 번식해 왔다. 다른 조개들은 홍수 기간 동안 살아 남았고, 그 종들이 오늘까지 살아있다.


  이 경우 그리스도인 창조론자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창조 기록을 수용한다. 어떤 사람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창조론의 관점에 근거한 과학적 연구는 결코 사소하지도 비생산적이지도 않다. 그 견해의 세부 사항들은 아직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고, 알아야 할 내용이 많이 있다. 그러나 성경의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특정 화석 퇴적물의 구체적인 것들을 정확하게 재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면 역사를 부인하는 자들은 결코 그럴 가능성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우리의 논리를 반박하고 현재를 우스갯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열등한 재구성을 영원히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모든 영역, 과학과 과거의 재구성 영역에서도 성경에 따라야 한다. 우리는 거기에 주어진 사고 체계 내에서 과학적 자료를 해석해야 한다.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가?

  역사에 대한 견해가 결국 과학적으로 증명 혹은 부정될 수 없다면 무슨 희망이 있는가? 창조/진화 논쟁은 영원히 계속될 것인가, 아니면 해결할 수 있는가?  가정 혹은 전제 수준에서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이 논쟁에 진전이란 거의 있을 수 없다. 사실들은 역사에 대한 두 가지 모델에 어느 정도 일치한다. 양쪽 진영에서 모두 좋은 과학이 수행될 수 있고, 해석들은 각 모델 내에서 일관적일 수 있으나, 서로 매우 다르다. 이 도식 묘사는 그 점을 잘 나타내 준다. 그것은 현재의 여러 상황에서도 사실인데 한 예로 정치에 진보와 보수가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당신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우리가 살펴 본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가정(假定)은 성령의 인도와 그 가르침에 복종하는 자세로 성경의 신중하고 정직한 해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진화론자의 가정은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일차적 위치에 있는 과학자들의 능력을 불필요하게 높게 평가하는데서 온다. 그들은 전체 중 일부 자료에 의지하고 잘못될 수 있는 논리적 도구를 사용하며 필요할 때 관찰을 위해 그 곳에 있지도 않았던 유한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충분히 과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으나 한계를 갖고 있다. 나는 거의 모든 진화론자들이 단순히 진화론이 그들이 이제껏 배운 유일한 개념이기 때문에 믿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부터 그들을 지도했던 사람들은 오직 무식한 근본주의자들 (편평한 지구를 믿는 사람들)만이 창조를 믿는다는 잘못된 개념을 주입시켜 왔다. 그래서 그들은 연구를 하지도 않으면서 그것을 거부한다. 결코 창조에 대한 신뢰할만한 변호를 들어본 적도 없다. 그래서 진화가 유일하게 적법한 관점이라는 거짓말을 계속한다. 이 오류는 과학을 창조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자연주의(naturalism)로 재정의함으로써 심화된다.


혜성들 : 가정과 해석

두 모델을 흥미로운 사례에 적용해 보자. 우리는 태양을 타원 궤도로 도는 태양계 내의 혜성들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혜성이 태양을 한 번 돌 때마다 질량의 얼마를 잃는다는 것을 관찰한다. 혜성의 질량과 시간에 따른 잃는 양을 측정함으로써 많은 혜성들, 특히 회전 주기가 짧은 것들은 그렇게 오래된 것들이 아니라는 결론을 지을 수 있다. '젊은 지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태양계가 젊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 왔다. 태양계가 수백 만년 되었다면 짧은 회전 주기를 가진 혜성들은 모두 없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혜성들이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것은 태양계가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얼마나 단순하고 쉬운 논리인가?

  

그러나 '오래된 태양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혜성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입장을 고수한다. 그들은 현재의 혜성이 오래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시인한다. 그러나 태양계는 오래되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태양계 바깥에 가상의 혜성 창고가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너무 멀어서 망원경으로 볼 수 없고 어떤 감각 도구로 측정할 수도 없는 곳이다. 그들은 이 가상의(실제로는 상상의) 혜성 구름을 이것을 처음 주장했던 사람의 이름을 따라 오르트 구름(Oort Cloud)이라고 부른다. 오르트는 '성간(星間)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간혹 안정한 구름으로부터 물질의 일부를 흐트러뜨려 가까운 태양계로 진입하게 함으로 우리 태양계 내에 계속 혜성들을 공급해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신은 그 논리를 제대로 이해했는가?

            가정 : 태양계는 오래 되었다.

            관찰 : 혜성의 수명은 매우 짧다.

            결론 : 젊은 혜성들이 계속해서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태양계로 들어오고 있다.

'젊은 태양계' 지지자들이 혜성의 나이를 가지고 나오면 오래된 태양계 지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 그 문제는 이미 해결됐어. 혜성들은 오르트 구름으로부터 계속 나오고 있거든'. 이렇게 관찰을 가정보다 덜 중요하게 취급한다. 그 가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하지 않고는 그로 하여금 상상의 오르트 구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도록 하기는 쉽지 않다. 과학적 관찰 영역 바깥의 사건들, 즉 매우 오래된 일회성의 가정적 사건들을 다룰 때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참고: 뉴튼과 파스퇴르와 같은 과거의 신중한 과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관찰들은 적법하다. 우리는 항상 과학적 데이터와 자료의 해석, 관찰된 과거와 관찰되지 않은 추론의 과거, 이 차이를 분간해야만 한다. 한편 과학의 많은 선구자들은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며 창조론자들이었고 성격적 세계관을 갖고 연구를 수행했다. 그 과학자들의 짧은 전기를 보려면 'Man of science: Man of God' (Henry M. Morris)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불행하게도 진화론자들은 그들이 전제를 갖고 있다는 것을 거의 시인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치 관찰된 사실인양 역사에 대한 그들의 관점과 해석을 제시한다. 학생들이나 일반 사람들은 소위 '전문가들'에 의해 회유되거나 겁을 먹고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한 세계관을 수용해 버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화를 믿는 진짜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화를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이 배워왔던 모든 것이다. 만약 창조를 언급하면 조롱 당하거나 불공평하게 평가된다. 그래서 진화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면서 옳다고 증명되지도 않고, 창조는 거부되면서 틀렸다고 증명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쪽에서 그들의 가정과 해석 과정을 인식하기만 한다면 비교, 평가, 합리적 토론이 가능하다. 자신이 전제를 갖고 있음을 시인조차 하지 않는 사람과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추진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증거를 예측하기

각 모델의 형식적 진술이 완료되면 '예측'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자료에 대한 예측이다. 각 모델의 지지자들은 '만약 나의 가정이 옳다면 우리가 자료를 검토할 때 이런 특징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 증거를 보다 잘 예측하는 모델이 더 옳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어느 것도 궁극적으로 증명되거나 부정될 수는 없다. 우리는 내적 비일관성을 조사해 봄으로써 예측들을 평가한다. 예측부터 검증까지 일관적인가? 일관되기 위해 이차 조정을 필요로 하는가? 모든 자료에 다 들어맞는가? 전혀 부합하지 않게 보이는 사실이 있는가? 보다 근본적이며 직관적인 수준인데 삶의 실제 현장에서 잘 작동하는가? 상식과 일치하는가 아니면 상상적인 요소를 요구하는가? 나는 그것이 함축하는 바를 가지고 살 수 있는가? 목적과 희망을 위한 나의 개인적 필요를 충족시키는가?  적적하고 실용적인 삶의 철학으로 인도하는가? 이러한 평가 과정을 거쳐 우리는 적절한 모델, 즉 과학과 삶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모델을 선택해야 한다.  나는 창조 모델에 대해 3 가지 주장을 한다. 그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1)그것은 내적 일관성을 가지고 자료들을 다룬다. (2)그것은 진화 모델보다 분명히 우수한 방법으로 그렇게 한다. (3)그것은 만족스럽고 잘 적용되는 삶의 기초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가정들

1990년 나는 모스크바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강의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공산주의가 붕괴되기 직전이었다.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한번은 모스크바 대학에서 수백 명의 생물학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강의한 적이 있다. 그 때 모스크바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보다 흥미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국의 학생들은 교수가 가르친 것을 암기하여 시험에서 기억해 내도록 요구받는 반면 러시아 학생들은 전제를 기초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당시 러시아인들은 공개적으로 무신론과 자연주의적 과학관을 시인하는 반면 많은 미국 학생들과 교수들은 깨닫지 못하는 동안에 암묵적으로 자연주의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미국인보다도 더 한층 전제를 기초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고, 다른 모델에 직면할 때 겁을 덜 먹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 러시아인들은 전적으로 진화론적 사고로 기울어 있었다. 공산주의는 변함없이 무신론에 기초하고 있고 공산주의가 붕괴할 때까지 현 세대는 계속해서 무신론에 대해서만 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진화론은 공산주의 세계관에 과학적 신뢰성을 제공하였다.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나는 이란의 샤(Shah) 정권 아래 자라면서 공산주의자가 되어 공산주의를 더 알기 위해 1년 동안 모스크바에 유학생활을 했던 한 학생을 기억한다. 그가 오클라호마 대학의 대학원 과정에 있을 때 알게 되었다. 모스크바에서 그가 무엇을 배웠을 것 같은가? 마르크스? 아니다. 레닌? 아니다. 일년 내내 그는 진화론을 배웠다. 진화는 막시즘에 꼭 필요한 기초이다. 진화가 사실이면 나머지 모든 것들이 다 자연적 과정들로부터 나온다. 시간에 따른 진화는 필연적이고, 막시즘은 가장 진화된 사회적·정치적 체계라고 주장된다.


  러시아인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들은 과묵하며 강의 장소에서 거의 금욕적인 경향이 있다. 70년 동안 초청교수 같은 권위 있는 사람들을 매우 존경하여 감정을 보이지 않도록 요구되어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강의동안 나는 어떤 청중의 반응도 관찰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과학의 전제적(presuppositional) 성격과 창조론적 전제의 적법성, 그리고 그에 따른 해석들의 과학적 논리에 초점을 맞춰 말했다. 나는 도식을 사용하여 가정 A와 B는 각각 해석 A와 B를 낳는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나서 오직 하나의 가정과 하나의 해석만 가지고 있는 도식을 그들에게 보여 주면서 이것이 러시아에서 수행되는 방식이고, 그들이 교육받았던 방식이라는 것을 부각하였다. 놀랍게도 방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그 점을 인식하였던 것이다. 이 반응에 고무되어 나는 통역자를 통해 '이것은 교육이 아니고 세뇌다'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의미있는 웃음이 방 전체에 퍼져 나갔다. 그 분위기를 더 띄우기 위해 '이것은 당 노선을 따르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들은 웃음을 머금고 자기들끼리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그 도식 속에서 그들의 교육과 자기 자신들을 인식했고 그들이 보았던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시점으로부터 학생들과 교수들은 집중해서 그 자체적으로 그리고 실제 세계와 일관성을 가진 창조론적 세계관 발표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강의를 마치자마자 기자들이 몰려와서 취재를 하더니 나에 대한 기사와 여행 일정까지 프라우다 지에 게재하였다. 이런 일은 이제껏 없었다. 나의 여행은 기드온 모스크바 지부의 일부 지원을 받아 이루어졌다. 그들은 방금 성경을 배로 가득 받았다. 성경은 학생들에게 있어 이제껏 본 적도 없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내 강의가 끝났을 때 창조를 가리키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정보가 제시되었고 학생들은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했다. '창조의 증거가 이렇게 많다면 하나님은 계셔야만 한다. 이 하나님은 누구인가? 우리는 그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학생들이 그런 질문들을 갖고 강단에 올라올 때 기드온 협회의 사람들이 상자 속에 든 성경을 배포하였다. 창조가 가진 자유케 하는 힘은 어둠 속에서조차 큰 능력을 갖는다. 반대로 진화론적 사상은 많은 비애를 가져왔다. 막시즘은 진화론과 자연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다윈의 책, 「종의 기원」이 사회 영역에서의 진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에 과학적 신뢰성을 부여하였다고 생각했고 그의 책 「자본론」을 다윈에게 헌정하였다. 진화의 이름으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많은 악들이 특히 막시스트와 전체주의 국가에서 고착화 되어왔다. 오늘날 서구의 많은 사회적 병폐들 또한 그들의 삶과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권위를 거부하고 진화론을 채택한 결과들이다. '생각이 행동을 낳는다' 이것은 과거에 대한 생각에 대해서도 사실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1993년 중국 베이징에서 2,700명의 중국 관료, 대학생, 공산당 간부들로 가득 찬 군중들에게 연설했을 때이다. 믿지 못하겠지만 정부는 그리스도인 전문가들을 초청해 기독교가 중국에 주는 가능한 유익들에 대해 연설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 집회를 조직하고 강의 제목을 정하고 강사들을 선정하는 일에 참여하였고, 창조의 세계관이 과학에 주는 유익을 토론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몇 달의 준비 기간을 거치는 동안 정부는 내 강의를 포함해서 많은 발표들을 여러 번 취소하였다. 그러나 매번 내가 그 강연회 준비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것 때문에 다시 번복되었다. 그들은 내가 말할 것에 대해 매우 부담스러워 했으나, 그것을 취소함으로써 체면을 잃을까봐 꺼려하였다. 마침내 강연회 전날 밤 그것은 다시 취소되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내가 강의할 주제는 그들 세계관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사실 그렇지만 말이다.


 그러나 마지막 협상에서 내 이름과 강의 주제가 이미 프로그램 순서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창조, 진화, 기독교 혹은 성경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전공인 지질학 연구에 대해 말할 것을 동의한다면 강연하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제의했다. 다른 중요한 주제 강연들이 모두 취소되었고 이것만이 그래도 무언가 말할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했다. 나는 1980년 헬렌산의 화산 폭발에 대해 슬라이드로 강의하고 과거의 관찰되지 못한 지질학 사건들에 대한 해석의 함축들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발표에서 과거에 대한 단순한 해석 이상의 것을 포함시켰다. 나는 미국 교육이 초기부터 이학 박사 학위 과정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불완전한지를 보여 주었다. '헬렌산에서 발견했던 것과 같은 많은 정보가 나의 교육이나 모든 지질학 교육에서 빠져 버렸다. 이런 새로운 '격변적' 사상들은 지질학에서 매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정보와 학생들의 사고 방법을 규제하는 것은 학생에게나 그 같은 세뇌에 참여하는 나라에게도 해로운 영향을 준다.' 앞줄에 앉아 있었던 공산당 간부들은 내가 무엇을 말하고 있고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들은 매우 화난 것처럼 보였다. 반면 학생들은 기뻐하였다. 그들은 이제까지 듣지 못했던 것을 듣고 있었다. 강연이 끝나자마자 과학자들이 나에게 모여들었다. 그 중에 과학원장도 있었다. 그들이 결코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상들에 대해 장시간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들은 비공식적으로 나를 여러 대학들에 초청하였고, 심지어 격변설이 석유와 광물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티벳 지역 야외 탐사에 합류하도록 초청받았다. 검열과 세뇌를 시인한 사람들은 바로 보호해야할 세계관, 이 경우는 진화에 기초한 무신론적 세계관을 가진 자들이다.

  

우리는 진화론을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탈피해야 한다. 그것은 종교적 함축을 지닌 과거에 대한 철학적 세계관이며,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창조주 하나님 없이 우리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미친 시도이다. 그것은 결국 나쁜 과학, 참 역사의 부정, 그리고 그것을 채택한 백성들과 나라들에게 큰 불행을 가져온다. 하나님이여, 너무 늦기 전에 이 나라가 빛과 논리로 돌아올 수 있게 하소서.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연대문제/연대문제와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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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연대문제/젊은 우주와 지구에 있는 많은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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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5호 [2001. 5~8]

번역 - 조정일

출처 - 창조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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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창조과학회
2004-07-26

창세기 6일 창조에 대하여


      보통 우리들이 성경을 들고 창세기 제1장을 읽을 때 하나님이 이 세상과 우주와 그 안에 거하는 모든 것들을 6일 동안 (하루가 24시간)에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교회 내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날들(days)” 이라는 뜻이 수천년 혹은 수백만년 더 나아가서는 수십억년에 걸친 기간일 수도 있다는 견해들이 나돌고 있다. 이 날수들이 실제로 얼마만한 기간이었는가가 정말로 문제가 되는가? 이 날수들이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ordinary) 날들인지, 혹은 더 긴 기간이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한지? 


‘날(day)’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창세기 1장에 나타나는 ‘날(day)’ 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yom' 이다. 그 의미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24시간인 하루, 혹은 24시간 중 낮부분(밤과 구별되는 낮), 혹은 정해지지 않은(indefinite) 어떤 기간의 의미로(예를 들면 사사시대, 혹은 주님의 날) 사용될 수 있다. 모든 히브리어 성경에서의 단어 ‘yom’은 ‘기간 (period)’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특정한 시작과 끝을 갖고 있는 확실한 오랜 기간을 지칭하는 데는 사용되지 않았다). 더 나아가서 주목해야할 것은 ‘yom’ 이라는 단어가 정해지지 않은 어떤 기간의 의미로 사용될 때 ‘day’ 라는 단어의 의미가 문자적 의미로 의도되지 않는다는 것을 문맥 내용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몇몇 사람들은 창세기에 나타난 'day’ 라는 단어가 상징적으로 사용되어졌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중요한 점은 맨 처음 그 단어가 사용될 때는 상징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신약에서 우리들은 예수께서 '문(door)” 이라고 하신 말을 듣는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우선 단어 'door(문)'가 들어가는 입구(entrance)를 의미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 즉 그 말의 문자적 의미를 우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상징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door)’ 이라는 단어는 우선 우리가 그것의 문자적 뜻을 이해한 후에 이런 식의 상징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즉 단어의 문자적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상징적 의미로 해석할 수 없다.


그러므로 'day”라는 말은 처음으로 창세기에서 사용되는데, 이것이 상징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아니된다. 참으로 이것이 바로 창세기 기자가 처음에 나오는 'day”를 자세하게 심사숙고하여 정의하려 노력하는 이유이다. 창세기 1장4절을 보면 하나님은 빛을 어두움으로부터 나누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l장 15절에서는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셨다는 것을 읽게 된다. 바꿔말하면 이와 같은 용어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정의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day”이란 용어가 어두움이 ‘밤’과 구분되어 사용된 것과 마찬가지로 '빛”으로 정의되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5절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것이 첫째 날이라”로 끝맺는다. 이것은 바로 나머지 5일들에 사용된 귀절들과 동일한 것으로 명확하게 확립될 낮과 밤의 주기 즉 빛과 어두움의 주기를 보여준다. 6일간의 각 날에서의 빛의 주기는 마침내 하나님이 창조사역을 하셨을 때이고, 어두움의 주기는 창조사역을 하지 않으셨을 때를 의미한다. 

 

하루와 태양

그런데 만일 태양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는 낮과 밤이 어떻게 있을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이 창세기 1장에 명백하게 나타나듯이 태양은 4일에 가서야 창조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창세기 1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은 첫째 날에 빛을 만드셨는데, 이 문구 '저녁과 아침”을 보면 빛과 어두움의 주기가 교대로 나타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태양이 창조되기 전에 빛은 존재하고 있었고, 자전하는 지구에 어떤 고정된 빛의 원천으로부터 직접 얻어져서 낮과 밤의 주기를 나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정확히 이 빛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알 수 없다. 창세기 1장3절에서 ‘빛’이라는 단어는 빛이 창조된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14절 19절에서 우리는 4일째에 태양이 창조되어서, 그 이후로 계속 빛의 원천이 되었다고 알고 있다. 태양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낮’을 주관하기 위하여 창조되었다. ‘낮은 전과 같이 유지되었으며, 단지 빛의 원천이 새로워졌을 뿐이다. 태양이 창조되기 전의 처음 3일간은 태양이 창조된 이후의 3일간과 같은 형태의 날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태양을 제 4일째 창조한 가능한 이유 중에 하나는 시대가 지남에 따라 인류가 태양을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여 태양을 숭배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 하겠다. 진화론적인 우주기원에 대한 이론으로는 태양이 지구보다 먼저 있었다고 하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태양보다도 지구와 빛을 먼저 창조했다고 하였다. 태양은 제 4일째에 창조되어 태양이 빛을 발하는 발광체가 되었다.


세기의 창조일을 보통의 24시간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커다란 이유 중에 하나는 아마도 지구가 수십억년 되었다는 연대를 과학자가 증명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지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절대적 연대측정 방법은 없다. (그 예로서 방사선동위원소 방법에서 초기 조건이 불명확하며, 붕괴속도가 과거나 현재나 동일하다는 가정을 하고 있지만 변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왜 엿새인가?

하나님은 무한하신 존재이다. 이것은 하나님은 무한한 힘과 무한한 지식과 무한한 지혜 등을 가지신 분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가 하고자 원하시는 일은 시간을 끌지 않으시고 즉시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순식간에 즉시 온 우주와 땅과 그 속의 모든 것을 창조해온 창조사역이 가능한 분이시다. 아마도 우리가 질문해야 하는 의문은 왜 하나님은 어떻든지 간에 엿새동안의 기간을 택하셨을까? 하는 점이다. 결국 엿새란 기간은 무한하신 존재인 하나님께는 어떤 것이든 창조하시는데 너무 긴 시간이란 점이다.


그 해답은 출애굽기 20장 11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출애굽기 20장은 10계명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 계명은, 우리가 출애굽기에서 읽는 바대로 바로 그 ‘하나님의 손가락’에 의해 표시된(하나님이 친히 쓰신) 돌판에 기록되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것이더라 (출애굽기 31:18).”

20장 9절에 기록된 네번째 계명은 우리에게 엿새동안은 힘써 일하고, 하루는 쉬도록 말씀하고 있다. 그 이유는 11절에 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이것은 창세기 1장에 있는 하나님의 창조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이 된다.

이 점에 일치되도록 하기 위해서는(우리는 반드시 일치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창세기 1장에서 ‘날(day)’ 이란 뜻으로 사용된 것은 무엇이든지 여기서도 그대로 사용되어야 한다. 만약 ‘날’ 이란 말을 창세기의 긴 시간의 한 기간의 뜻으로 하고자 한다면, 이것이 가능한 유익한 방법은 ‘하루’란 정해지지 않는 시간, 또는 측정하기 힘든 기간 (정의되는 시간은 아니)이란 인식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20장 9절-11절의 인식은, 일해야 하는 여섯 정해지지 않는 기간과 휴식하는 일곱번째의 정해지지 않는 것같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넌센스이다. 하루(날)들을 통상의 날들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가 통상의 6일 동안 일하시고, 통상의 하루동안 쉬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데, 이 통상의 하루(24시간)는 우리가 지금도 살고 있는 7일 한 주일의 생활양식 그 양식을 인간에게 정해 주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여기 출애굽기 20장에서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만물의 창조에 엿새의 기간을 택하셨는지 ?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날-시대 이론의 모순 (문제점)

창세기의 '날”들을 하나의 긴 기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일관성이 없음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창세기 1:26-28절에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아담)을 제 6일에 만드셨다. 아담은 남은 부분과 제 7일을 살았는데, 창세기 5:5절에 보면 930세에 죽었다(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을 마치고 안식하셨다고 한 창세기 2:2절을 '아직도 안식하고 계신다.”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이 오늘 우리는 아직도 제 7일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만약하루가 백만년 이었다고 하면 참으로 문제가 생긴다. 실인즉 하루가 천년이었다고 하더라도 아담이 죽었을 때 나이가 이치에 맞지 않게 된다. 

 

하루가 천 년같이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베드로후서 3:8의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 라는 말씀을 인용한다. 이 귀절을 이용해서 많은 사람들이 창세기에서 말하는 하루를 천년으로 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아주 잘못된 것이다. 시편 90:4에서 이와 매우 유사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을 수 있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벧후 3장과 시편 90편의 전체 문맥은 하나님이 자연적인 현상이나 시간에 의해서도 전혀 제약받지 않는 분임을 의미한다. 이와 반면에 시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신다. 시간에 매여 있지 않는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두 성경귀절 모두 창세기에 나오는 날들과 같은 뜻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음을 지적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것을 베드로후서 3장에서 설명하는 문맥 내용은 시간이 하나님께는 의미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내용은 창세기의 창조의 날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베드로후서 3:8에서 하루라는 단어가 천년과 대조되고 있다. '하루” 가 '천년” 이라는 귀절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대조되고 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의 메시지 핵심은 사람이나 자연이 완성되려면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순식간에 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우연이라는 자연의 무작위 현상에 의해서 사람으로 진화하려면 수백 만년이 요구된다고 주장하는 진화론자들을 주목하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다. 많은 기독교인들도 수백만년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성경 말씀을 덧붙여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는데 수백만년이 걸렸다고 말하고 있다. 진화론에서는 오랜 기간이 요구되지만, 하나님은 시간에 제약받지 않는다는 것이 벧후 3:8의 요점이다.


베드로후서의 '하루가 천년 같다' 라는 귀절 앞부분에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쫓아 행하며 기롱하여 말하기를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3:3-4)' 라는 설명이 있음을 주목하는 것도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마치 수백만년동안 만물이 계속되어왔다고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말세에는 사람들이 만물이 여전히 계속되어왔다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간섭하심을 믿지 않는다.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라는 말은 바로 현대의 '동일과정설” 개념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개념은 지질학에서 '현재는 과거에 대한 열쇠”라는 관점으로(즉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는 것처럼 수백만년동안 이 세상이 계속 진행되어가고 있다) 현대 지질학에서 널리 받아 들여지고 있다. 참으로 이 개념이 현대 진화론적 지질학의 기초가 되었다. 대부분 현대 지질학자들은 하나님이 수천년 전에 이 세상을 창조한 것을 믿지 않고, 수백만년에 걸친 진화 과정의 산물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이 6일동안 만물을 창조했고, 또한 출애굽기 20장에서 설명한 특정 목적 때문에 6일이라는 기간에 걸쳐 창조했다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일자와 연한

창세기 1장 14절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만약 여기서 일자라는 말이 글자 그대로 하루가 아니고 긴 연한을 의미한다면 연한이란 말을 바로 다음에 또 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일자와 언약

예레미야 33:25-26에 보면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주야의 약정이 서지 아니 할 수 있다든지 천지의 규례가 정한대로 되지 아니할 수 있다 할진대 내가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려서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게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된 자로 돌아오게 하고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주님이 주야가 있도록 하신 그 언약은 깰 수 없는 것인데, 왜냐하면 다윗과 그 자손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오실 것에 대한 언약과 연결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야가 있도록 하신 그 약정은 창세기 1장에서 하신 것인데, 만약 주야가 보통 우리가 말하는 24시간 하루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이 언약도 헛것일 것이다. 

 

날짜가 문제가 되는가?

결론적으로 그러면 우리가 날들을 보통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날로 받아들이든지 또는 그렇지 않든지 정말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가? 그것은 분명히 문제가 된다. 이것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참 원칙이 되기 때문이다. 예로써 우리가 이것을 하루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러면 그 날들이란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고, 결국 가서는 모르겠다는 대답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날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들도 창세기의 다른 기사들을 그대로 해석해야 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분명해진다. 즉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예로써, 하나님이 흙으로 아담을 만드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일 흙을 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제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창세기를 문자가 표현하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의해야 할 것은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문자적 해석은 용어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거나, 그것을 해석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 어떤 사건이 분명히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있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며,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을 때에는 앞뒤 문맥으로 보아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들어갈 것이며, 또는 그 본문에서 우리에게 그렇다고 분명히 말해줄 것이다.


창세기에서 가르치는 바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리고 그 날들을 보통의 하루로 받아들일 때, 창세기의 나머지 부분에서 말하는 모든 것을 아무런 문제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20:11).

 

*참조 : Did Jesus Say He Created in Six Literal Days?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nab/did-jesus-say-he-created-in-six-days

The meaning of yôm in Genesis 1:1–2: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2/j21_2_52-55.pdf

Days 1–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69-76.pdf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연대문제/연대문제와 성경에 있는 많은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L05



제 74호 [1991. 4~6]

번역 -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dating/d4/d4/d4c1.htm

출처 - 창조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42

참고 : 4375|4380|4440|2982|2797|2942

성기문
2004-07-26

창세기 제1장의 YOWM에 대한 고찰


I. 서론 

건전한 기독교인들은 구태여 West-Minster 신앙고백서1)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고백한다. 그러나 성경의 신적 권위를 기꺼이 고백하는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도 그들의 관점들이 소위 제한영감과 완전(혹은 축자)영감론2)으로 나뉘는 것은 의외의 일일 것이다. 제한영감론자들의 말처럼 과연 성경이 소위 ‘신앙과 행위’ 부분에서만 무오하고, 역사적이며 과학적 측면을 기술한 부분에서는 오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3)


우리는 ”성경이 무오하지 않다면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4) 고 말한 E. J. Young의 말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그의 말처럼 만약에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한다면,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이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도 당연히 믿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기독교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성경이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우리의 신앙과 행위에서 그러하듯이) 오류가 없음을 전제해야만 하고, 또 그것을 믿어야만 한다. 그러나 성경의 절대성이 정통기독교에 유익이 되고 신앙적 기초가 된다고 해서 성경의 무오성을 주관적이거나 독단적으로 변증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과 실제에 근거하지 않았다면, 바로 그것이 성경의 오류를 입증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초자연적인 기초 위에 서 있다. 그러므로 이 확고한 기반이 흔들리고 의심된다면 기독교는 허물어지고 만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까지 단 한 부분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배제하고서는 자연스럽고 논리적으로 이해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연 질서의 주관자도 창조주 하나님이시므로, 편견 섞인 혹은 불충분한 과학지식으로서 무신론적 입장을 취하거나 성경의 진리를 왜곡할 수는 없다.


우리는 먼저 과학은 과연 중립적인가에 대하여 질문하여야 한다. 즉 과학은 편견이 없는가의 물음이다. 또한 세상의 기원에 대한 문제를 과학에서 해결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무엇보다도 먼저 제기되어야 한다. 과학이란 반복적이어서 관찰 가능한 것에만 국한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에 그 한계를 벗어나서 기원(origin)의 문제를 다루게 된다면, 그것은 자연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철학의 영역이나 종교의 영역이 되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설(즉 관찰의 대상이 될 수 없으므로)에 근거한 진화론적 세계관을 거부하고, 우리는 새롭게 성경에 근거하여 창조론 model을 세워야 하며 그래야 할 것이다. 이것이 과학적 창조론자들의 입장이며 필자의 견해이기도 하다.


”창세기가 과학서적으로서 의도되어 집필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주제를 다룰 때 창세기는 정확하다” 5) 고 말한 E. J. Young의 말처럼 창세기 1장은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한 자연계의 창조에 관한 기록이며 정확하다. 그러므로 단순히 철학적 사색이나 진화론적 관찰에 의거해서는 해결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논문은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창세기 1장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날이라” 라는 문구의 의미를 역사적인 접근과 과학적인 접근, 그리고 문법적인 접근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II. 본론 

창세기 1장에 대해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창세기가 역사적 사건임을 완전히 부인한다. 예를 들어서 신정통주의 신학자인 Karl Barth는 성경저자가 창세기 1장에서 태양과 달을 언급하기 전에 빛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당시의 모든 태양숭배에 대한 공개적 항의라고 말했다.6) 혹자는 Akitu 바빌론의식과 유사한 이스라엘의 신년제(New year festival)를 위한 노래라고 주장한다.7)


반면에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도 통일된 견해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포괄적으로는 두 가지 견해 즉 문자적 해석(a day)과 비문자적 해석(a period)으로 나뉜다.8) Yowm (히브리어로 날(day)을 의미함)은 구약에서 1,154회 사용되었다.9) Barabas에 따르면 구약에서의 용례는 1)문자적 하루(a day)(창1:5,2), 법적 공공적 하루 즉 밤과 반대되는 의미(legal, civil day)(창1:14,3), 시간에 대한 불확정적인 기간(창2:4), 4)특별하게 성별된 날(holy day)(창2:3, 출20:8~11), 5)주의 날(종말론적 의미에서)로 쓰였다.10)


E. J. Young은 Yowm의 문제에 관하여 ”우리가 Yowm에 관해서 매우 많은 이야기를 하기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충분하게 계시하지 않으셨다는 단순한 이유로 인해서 Yowm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11) 고 했지만, 이 논문에서 우리는 성경적인 가설이 허락되는 한 심도 있게 토론하여 보기로 한다. 


먼저 창세기 1장의 Yowm에 관한 여러 가지 해석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모세에 의해 쓰여진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문자적인 Yowm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다.

”엿새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 일에 쉬었음이니라.”12)

예수님과 동시대의 유대인인 요세푸스(Josephus)는 전 문자적인 날(Yowm)을 지지하였으나,13) 그 후 성경의 알레고리적인 해석이 주류를 이루는 동안 오리겐(Origen)은 상징적 의미로 각기 피조물의 등급으로서 이해하였고, Basillus the Great는 여기 기록된 날들의 길이가 다 같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14)


또한 위대한 신학자인 어거스틴(Augustine)은 그의 고백론15)에서 시간에 대하여 장황하게 논의하면서 이 날들이 무한한 길이의 기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에는 성경의 알레고리적 해석이 퇴조하였고, 문자적 해석이 주류를 이루었다. 개혁자들은 문자적인 육일로서의 창조의 날들로서 보았다.16)


즉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그의 창세기 강론에서 어거스틴의 상징적 해석을 비난하면서, 문자적 의미를 다시 강조하였다.17) 존 칼빈(John Calvin)은 그의 창세기 주석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육일간의 공정을 취하셨다. 그것은 그분의 일을 인간의 역량과 조화시키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18) 라고 말했다.


그 후 현대의 화란의 개혁주의 신학자 Abraham Kuyper와 Herman Bavink는 반문자적 날 이론(즉 전 3일간은 길고 후 3일은 통상일)으로 보았고19), 19세기의 독일의 유명한 보수주의 신학자 Keil과 Delitzsch는 그들의 모세 오경 주석20)에서, 그리고 Geerhardusvos는 그의 책 ‘개혁주의 교리(Gereformeerde Dogmatiek)’에서, Bavink의 후계자인 Hepp는 그의 책 ‘칼빈주의와 자연철학(Calvinism and the Philosophy of Nature)에서, Arie Noortzij는 그의 책 ‘하나님의 말씀과 시대의 증언(Godswoord en der Eeuwen Getuigenis: 1924)’ 에서 전문자적 날을 주장하였다.21)  그 외에 일순창조설22)(Calvin과 E. J. Young에 의해서 비판되었다), 간격설, 조화일치설(성경의 창조의 날들과 지질학적 연대와의 일치를 모색), 유신론적 진화론 등이 있다.23) 


결국 성경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축자영감되었다고 믿는 자들로부터 성경의 고매한 신적 유래와 권위를 인정치는 않으나 성경에 근거하려는 자들에게까지 그들을 사분 오열케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이미 전술한 것처럼 ”창세기 제1장을 겉핥기식으로 읽을 때 모든 창조의 과정이 24시간을 하루로 하는 6일만에 이루어졌다는 인상을 받는다?” 24) 고 말하면서 문자적 날 이론을 비판한 Gleason Archer의 견해처럼 문제는 현대과학과 성경과의 불일치로 인한 난점이다 (특별히 이 논문에서는 태양보다 빛이 먼저 존재할 수 있느냐 에 대한 질문25)과 창세기 제2장 4절에서의 기간(period)으로써의 Yowm의 문제를 다루어 볼 것이다).


이미 이 글의 서두에서도 제기한 바와 같이 자연과학, 즉 진화론 중심의 체계에서는 아무런 해답도 찾을 수 없다. 진화론은 무신론적 전제 하에서 하나의 불신앙적 편견을 발견시키고 있을 뿐이다. Louis Berkhof는 그의 책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에서 ”그것[비문자적 해결]은 석의적 연구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과학이론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다. 19세기 이전에는 창세기의 날들은 가장 일반적으로 문자적인 날들로 간주되었다.” 26)고 말한 것처럼 정확여부와는 관계없이 J. Ussher 감독(1581-1656)의 지구연대 4004년 이론27)을 꺼내지 않더라도, 성경적 연대계산은 쉽사리 진화론(소위 현대과학)과는 일치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날-시대 이론을 주장하더라도 태양보다 지구가 먼저 창조되었다는 것은 성경에 의해 부인될 수 없는 것이다. (우주진화론은 반대순서를 주장한다.)


우리는 생명체의 진화는 쉽사리 배척하면서도 진화론의 근거인 수백억년의 기간을 배격치 못한다. ”진화론의 주장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오랜 시간이 요구되나 창조론은 시간의 장단과는 무관하다..... 지구의 연대가 오래되었다는 주장에 반하여 매우 젊다는 과학적 증거도 많이 있다.” 28)


다시 말해서 생물의 진화를 설명하자면 당연히 지구의 나이가 길어야 하지만, 지구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면, 지구의 나이가 꼭 길고 오래되어야 할 필요 없는 것이다. 또한 지층의 연대 기준을 잡아주는 화석층도 진화론적 균일설보다는 성경적 격변설을29) 더 옹호해준다.


우리는 진화론에 의한 ‘우연’과 성경에 의한 '필연’ 둘 중에 하나를 확실히 택하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성경전체의 논리적 연속성 때문에 우리는 성경적 각각의 구석구석들이 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만일 성경적 우주발생론이 현대인들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성경의 계명들을 현대 도덕에 적용할 수 있다거나, 성경적 종말론이 미래를 위한 계획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30)

결국 과학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중립적이거나 적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기원의 문제에서는 양자병존이 불가능하고 더구나 많은 양심적인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부인 혹은 창조론을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빛의 선재성에 관하여 O. T. Allis는 그의 책에서 ”만약에 그것(즉 빛)이 우리가 그 굉장한 잠재력에 대하여 단지 배우기 시작한 우주광선이나 복사에너지 혹은 원자력 에너지를 포함한다면, 그 누가 태양 없이 혹은 그 이전에 빛이 식물을 자라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위치에 있겠는가?” 31) 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빛의 선재성에 대한 반대는 두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그 첫째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부인하는 것이요, 둘째는 비록 태양이 없이 식물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더라도 태양이 빛의 근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32)  


또한 저들이 예로 드는 태양이 없으면 하루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다는 질문에 답하기로 한다. 첫째로 빛이 선재 했기 때문에 태양의 역할이 잠시동안 필요 없이 진행될 수 있었으며, 둘째 하루의 개념은 태양의 유무가 아니라 지구의 자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비록 빛의 근원이 아직 지금의 형태의 태양은 아니었지만 저녁과 아침이 계속된 것으로 보아 땅의 축의 회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3)


마지막으로 Yowm의 용례에 관한 것인데, 이 문제는 문맥상의 해석의 상태로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창세기 2:4의 Yowm을 단어적 의미만 고집한다면 민수기 3:1의 Yowm도 단어적 의미로 해석해야 하겠고 당연히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문맥에 따라서 즉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가 반복된 문맥에선 하루(a day)로 해석하며, 창조의 전 과정을 언급할 때는 그때(at the time)로 해석함이 합당하다.”34)

 

III. 요 약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물론 성경은 역사책이나, 과학책이나, 법률책이나, 문학서적이나, 철학책으로 계획되어 기록된 책은 아니지만, 세상의 모든 참 진리를 포함하며 모든 것의 해결책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유신론적 혹은 무신론적 진화론을 버리고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성경적 과학적 방법론을 취한다면, 모든 분야에서 일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구세주로서 뿐만 아니라 만유의 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연구는 신학에만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모든 학문이 잠언에서 말하는 것처럼 신학(즉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를 배우는 학문으로서)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창세기 일장에서의 Yowm의 적절한 해석에 관하여 역사적인 접근과 과학적인 접근을 통하여 문맥에 따른 해석(즉 문자적 24시간)이 적합한 것이라는 결론을 맺는다.

”이는 만물이 주께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6)” 

〈이 글은 기독교학문학회 발표 논문집(89.8. 10~12)에 게재된 논문임을 알려드립니다.〉

 

END NOTES 

1)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I, i-x를 보라

2) 여기서 영감이란 성령께서 성경기자가 성경을 기록함에 있어서 기자를 감동시키셔서 성경기록에 오류가 없게 지켜주시는 작용을 말함.

3) James M. Boice(ed.), THE FOUNDATION OF BIBLICAL AUTHORITY (Michigan : Zondervan, 1978) : 일부 복음주의자들이 신적 영감과 무오성(INERRANCY)을 분리한다. 즉 신앙고백에서의 '신앙과 행위' 란 문맥만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려고 함. 그러나 이런 편중된 문자적 고집은 WESTMINSTER 신앙고백을 곡해함. 이 신앙고백은 완전무오와 완전영감을 고백함. cf. G. E. Ladd, THE NEW TESTAMENT AND CRITICISM (Michigan : Eerdmans, 1982), pp.16-17이 제한영감의 예이다 ; Harold Lindsell, BATTLE FOR THE BIBLE (Michigan : Zondervan, 1977), P.115를 참조하라.

4) Edward J. Young, THY WORD IS TRUTH (Michigan : Eerdmans, 1982), p.5.

5) Edward J. Young, A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Eerdmans,²1983), p.49

6) Karl BARTH, CHURCH DOGMATICS(Ⅲ,i),trans., J. E. Edwards, O. Bussey, & H. Knight (edinbugh : T&T Clark, 1982), pp.120f

7) Derek Kidner, GENESIS (Leiceste : IVP, 1985), p.54

8) 정규남, 구약개론 (경기도 : 개혁주의 신행협회, 1985), pp87-88

9) Robert Young, YOUNG'S ANALYTICAL CONCORDANCE TO THE BIBLE (Michigan : Eerdmans, 1973) 여기서는 단독적인 형태의 빈도수만 계수한 것임.

10) S. Barabas, 'DAY', deit, Merrill C. Tenny, THE ZONDERVAN PICTORIAL ENCYCLOPEDIA OF THE BIBLE (Michigan : Zondervan, 1977), pp.45-46

11) Edward J. Young, IN THE BEGINNING (Edinburgh : The Banner of truth Trust, 1984), p.43

12) 출애굽기 20:11a, 한글개역성경전서, 대한성서공회, 1982

13) Josephus, (Ant.,I.1:1,2)

14) 박윤선, 성서주석(창, 출), VOL.1 (서울:영음사, 1975), p.78

15) St. Augustinus, THE CONFESSION, Vol. 21 trans. V. J. Bourke, the fathers of the church (Washington :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1953), XI, XII, XIII: R. S. Harris, INSPIRATION AND CANONICITY OF THE BIBLE, 박종칠 역(경기도 : 개혁주의신행협회 1978) p.25 : O. T. Allis, GOD SPAKE BY MOSES, Presbyterian & Reformed Co, 1951), p.10

16)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Michigan : Wm. B. Eerdmans, 1977), p.127

17) Martin Luther, LECTURES ON GENESIS: chapter 1-5 edit. J. Pelikan (St. Louis : Concordia Publishing House, 1958), p.4-5

18) John Calvin, GENESIS, trans. & edit. John King (Edinburgh : The Banner of Truth Trust, 1975), p.78

19) Louis Berkhof, p.154

20) C. F. Keil & F. Delitzsch, PENTATEUCH vol.1 (Michigan : Wm. B. Eerdmans, 1973), p.52

21) L, Berkhof, p.154

22) P. J. Wiseman, CREATION REVEALED IN SIX DAYS (Marshall, Morgan & Scott, 1948), pp.33f

23) L. Berkhof, p.158-163

24) Gleason Archer, A SURVEY OF OLD TESTAMENT INTRODUCTION (Chicago : Moody Press, 1980), p.181

25) G. Ch. Aalders, GENESIS I. trans. W. Heyne (Michigan : Zondervan, 1981), p.58 에서도 문자적 하루이론을 태양이 창조되기 이전임을 들어서 '부정적'인 입장을 하고 있다.

26) L. Berkhof, p.152

27) 한국창조과학회편,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 (서울 : 창조과학회, 1981), p.189 ; 창조과학회는 전 세계적으로 여러 곳에 있다. 이들은 모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Creationalist 들이다.

28) James Ussher, Annales Veterius et Novi Testamenti (1650-54)

29) J. Whitcomb & H. Morris, GENESIS FLOOD, 이기섭 역(서울 : 성광문화사, 1985) 여기서 격변설은 복구설(GEN.1:1-2)이 아니라 노아의 홍수의 결과라고 하는 증거를 더 확고히 변증하고 있다 ; H. M. Morris, 진화론과 현대기독교 (서울 : 생명의 말씀사, 1973)

30) H. M. Morris, 창세기의 대사건들 (THE BEGINNING OF THE WORLD), 이희숙 역, 생명의 말씀사, 1984 (p.5-6)

31) Oswald T. Allis, GOD SPAKE BY MOSES, (PRESBYTERIAN & Reformed Co., 1951), p.11

32) 창조과학회편, 창조는 과학적 사실인가? (서울 : 창조과학회, pp9-10)에서 '태양이 먼저 존재했다고 믿는 것은 지구가 먼저 존재했다고 했을 때 제기되는 문제만큼 이상의 문제를 제기한다.'

33) H. M. Morris, 창세기의 대사건들 (THE BEGINNING OF THE WORLD), P.24. 창조과학회편, 창조는 과학적 사실인가?, p.11에서 '태양이 존재하기 전의 하루는 (즉 길이는) 태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축을 중심으로 한 지구의 회전에 의해서 결정된다.' ; Henry M. Morris, THE GENESIS RECORD (Michigan ; Baker Book House , 1981), p.55.

34) U. Cassuto, DOCUMENTARY HYPOTHESIS, trans. Israel Abrahams (Jerusalem, Central Press, 1972), p.73; E. J. Young, IN THE BEGINNING, (Edinburgh : Banner of Truth Trust, 1983), pp.42-43을 참조하라

 

*참조 : The meaning of yôm in Genesis 1:1–2: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2/j21_2_52-55.pdf

Days 1–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69-76.pdf



제 66호 [1989. 12]

출처 - 창조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87

참고 : 1922|2016|2936|303|777|416|930|2638|2378|902|4440|3932|4297|2982|888|1571|2302|1940|2704|87|2134|766|2942|891|2336|3020|1790|1756|3302|3901|3898|3735|3709|3640|3589|3331|769|3707|3689|3628|3731|3641|2797|3186|4375|4380|4140|4374|4204

Encyclopedia
2004-07-07

기록들은 얼마나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가? 

(How Far Back Do The Records Go?)


     진화론자들의 주장대로 인류가 지구에 일백 만년 이상 전부터 존재했다면, 왜 인류의 활동에 대한 기록들은 겨우 수천년 전의 것들밖에 없는가? 발견되는 증거들은 진화론자들의 주장이 아닌 성경의 설명과 잘 들어맞는다. 진화론은 신화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드셨다. 수많은 증거들은 이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어떤 것도 산처럼 많은 증거들을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은 과학대 진화이다. Creation-Evolution Encyclopedia는 당신에게 창조과학이 사실임을 알려줄 것이다. 

내용 : 기록들은 얼마나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가?

1. 역사 기록들 : 모든 것들은 B.C. 2000~3000 년경 완전히 발전된 형태로 시작되었다.

2. 초기의 이집트 기록들 : 마네토(Manetho)의 왕들의 목록은 B.C.3200~3600 년경 아래로 수정되어야 한다.

3.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들 : B.C 1600년 이전 것에 대한 탄소14 연대측정은 정확하지 않다.

4. 성경의 기록들 : 가장 오래된 역사책은 모세가 B.C. 1510~1450 년경에 쓴 창세기이다.

5. 천문학적 기록들 : 가장 오래된 일식(solar eclipse) 기록은 B.C 2250 년경이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6. 문자 : 가장 오래 전에 기록된 문자는 수메르인의 것이며, B.C. 3500년 경으로 추정된다.

7. 문명 : 모든 초기의 문명들은,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아라랏산에서 남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하고 있다.

8. 언어 : 고대의 언어는 B.C. 3000년 전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펴져 나왔다.

9. 고대의 역사 기록 : 가장 오래된 연대는 약 B.C. 3000년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0. 가장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 : 그들은 B.C. 3000년경 이전으로 올라가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살았다.

11. 결론 : 인간은 수백만년전부터 살기 시작하여 계속 진화하다가 십만년전에 진화를 멈추었다고 진화론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왜 우리에게는 적어도 십만년전의 문명, 도시, 그리고 살았던 인류가 남아 있지 않는가? 


이 자료는 '지구의 나이'라는 책에서 발췌되었다. 이름 앞의 별표(*)는 창조론자들로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Of over 4000 quotations in the set of books this Encyclopedia is based on (see Order Sheet), only 164 statements are by creationists.

'지구의 나이'의 웹 페이지를 읽어보면, 다음에 제시되는 과학자들의 주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 역사 기록들 (Historical Records) 

모든 것은 B.C 2000~3000년 경에 거의 완전히 발전된 형태로 출발하였다. 만일 인류가 지구에 수백만년 전부터 일하며 살았다면, 왜 인류의 기록은 오직 B.C 2000~3500년 된 것들에서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기록들이 발견되면, 왜 그것들은 매우 발전된 문명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일까?  

우리의 책 '고대인'에서 자세하게 보여준 것처럼, 고대 인류의 문자, 언어, 그리고 문화들은 전부 발전된 형태로 시작했다. 그리고 약 B.C 2000~3000년 이전에 시작된 것들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2. 초기 이집트의 기록들 (Early Egyptian Records) 

마네토의 왕의 목록(Manetho's king lists) 는 B.C 3200-3600년 아래로 수정되어야 한다. 

가장 오래된 역사책은 이집트인과 히브리인의 것이다. 이집트인과 수메르인의 역사가 시작된 연대는 주로 왕들의 목록(list)에 근거한다. 가장 초기의 기록은 이집트 왕들의 명단(list)으로서 B.C. 3200~3600경에 첫 번째 왕조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적 외적 증거들은 그 연대가 더 낮춰져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한 이집트 학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이집트의) 첫 번째 왕조가 적어도 B.C. 3400년 이후에 시작되었고, B.C. 3200년보다 더 많은 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A. Scharff는 그 연대를 B.C. 3000 년경으로 낮추었다. 그의 주장은 매우 타당성이 높았다. 어쨌든 첫번째 왕조가 B.C. 3400년 보다 이전이 아니라 이후일 가능성이 크다.”- * H.R. Hall, 'Egypt: Archaeology,' in Encyclopedia Britannica, 1956 edition, Vol. 8, p. 37. 

첫번째 왕조의 연대에 관한 문제는 그것들이 수십세기 후인 B.C.250년 경에 살았던 이집트 제사장(priest)인 마네토(Manetho)가 기록한 왕들의 목록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네토의 글은 다른 고대 글들중에서 부정확한 인용문으로 보존되었던 것이다. 펜실베니아대학의 Barton은 그 문제점을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각각의 이집트 왕들이 통치했던 기간과 그 왕조들이 존재했던 기간의 길이를 비교해보면, 두 개가 다릅니다. 그래서 Manetho의 작업이 연대학의 근간(backbone)을 형성했다고는 볼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믿을만한 절대적인 연대를 제공해 주지는 않습니다.” George A. Barton, Archaeology and the Bible, p. 11. 

이것에 더 많은 이해를 위해서는 The Truth about Archaeological Dating을 읽어 보라.

 

3. 방사성 탄소 연대 (Radiocarbon Dates) 

Carbon-14 연대측정은 보통 B.C. 1600년 이후의 경우에만 정확하다. 

”Libby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을 연구하고 발전시킨 사람) 박사의 협력자인, Frederick Johnson 은 역사적으로 기록된 무덤, 사원, 그리고 궁전 등에서 가져온, 그 나이가 알려진 다양한 샘플들을 가지고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을 해본 결과 그 둘이 비교적 잘 맞는다고 하였다.

John G. Read (J.G. Read, Journal of Near Eastern Studies, 29, No. 1, 1970)에 의하면 잘 입증된 연대는, 이집트 역사에서 최대한 B.C. 1600년 정도까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B.C 1600년 이전의 것에 대한 탄소14 연대측정은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 H.M. Morris, W.W. Boardman, and R.F. Koontz, Science and Creation (1971) p. 85. 

분명히, 탄소-14 생성의 비율에 영향을 주었던 현저한 대기의 변화가 그 시기 이전에 있었다. 

이집트인의 연대는 우주학자, 연대학자, 사학자, 그리고 고고학자들의 이론에 강하게 의존되므로, 이집트인의 연대는 고대 시대의 연대에 매우 중요하고, 따라서 매우 영향력이 있다. 이는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오래된 역사 연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고고학적 연대측정(Archeological Dating) 에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훨씬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고고학적 연대를 낮추어 성경의 연대기와 같을 수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들이 있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은 B.C.1500년 이전 과거에서는 신뢰성이 심각하게 감소한다.

 

4. 초기 성경의 기록들 (Biblical Records) 

가장 오래된 역사책은 창세기로서, 이는 모세가 B.C. 1510~1450 경에 집필했다. 

성경은 매우 가치있는 역사책이고, 고대 사건들의 연대를 결정하기 위한 과학적인 노력들 가운데 성경이 제외되어서는 안된다. 성경은 권위있고 믿을만한 역사적, 고고학적 연구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증명되어왔다. (고고학적인 연대와 성경적인 연대의 불일치에 대한 주요 원인을 깊이 있게 분석하기를 원한다면, Archeological Dating을 보라) 

성경의 첫번째 책인 창세기는 B.C. 1510~1450년 경에 모세가 썼다고 전통적으로 생각되어 왔다. (출애굽은 약 B.C. 1492년 정도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창세기의 연대기적 자료에 의하면 창조 주간은 약 B.C. 4000년 경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노아의 홍수는 B.C. 2348년 경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노아 홍수의 연대에 대하여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고대의 연대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 홍수는 다소 더 일찍 발생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오히려 가장 오래된 세속의 연대가 다소 더 오래된 것일 수도 있으며, 지금의 경우가 아마도 이에 해당된다. 고대의 연대를 확증하기 위하여, 이집트나 수메르에서 발견한 것처럼 과거에 대한 세속의 기록에 전적으로 확신을 둘 수는 없다.

 

5. 천문학적 기록 (Astronomical Records) 

가장 오래된 일식의 기록은 B.C 2250년 경이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고대의 역사적 기록을 통하여보면, 학자들은 때때로 천문학적 사건, 특히 개기 또는 부분일식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것들은 더욱 정확한 연대 결정의 요소가 된다. 어떤 알려진 장소에서 자주 있지 않는 그 일식들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수천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모든 일식이 일어난 연대를 결정할 수 있다. 어떤 한 사건이 고대의 기록에 의하여 확실시되었을 때, 일식은 그 사건의 연대 결정의 강력한 도구가 된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사건은 단지 B.C. 1~2 천년 전의 것이었다. 

우리는 왜 고대인들이 매우 드믄 사건인 일식을 언급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본영 (일식때 태양 빛이 전혀 닿지 않는 지구, 달의 그림자 부분) 지역안에 짧은 시간동안 노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B.C 2250년 이전에는 사람들에 의해 관측된 일식에 관한 단 한 개의 기록도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은 젊은 지구의 중요한 증거가 된다. 

”확률적으로 가장 초기의 중국인의 연대는 'Book of History' 의 천문학적 참고자료에 근거하여 B.C. 2250년 경으로 추정된다.” - *Ralph Linton, The Tree of Culture (1955), p. 520.

 

6. 문자 (Writing) 

가장 오래된 문자 서판(tablets)은 B.C 3500년 경으로 평가되는 수메르어였다. 

가장 오래된 문자는 근동지역에서 서판에 새겨진 상형문자인 수메르어(pictographic Sumerian)이다. 이러한 가장 오래된 서판들은 약 B.C. 3500년 경으로 추정되는데, Inanna의 수메르인 사원에서 발견되었다. 

가장 초기의 서구형태(Western type)의 문자는 최초의 시나이 문자(the proto-Sinaitic) 였다. 이는 B.C. 1550 년경에 시나이 반도에서 나타났다. 그것은 오늘날 알파벳이 유래한 인도-아리안 (Indo- Aryan) 문자의 기원이었다. 

수메르인은 넓은 바빌로니아 지역에서 문자 기록을 가진 첫 번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초기 연대는 우리들이 이집트의 연대에서 발견했던 것과 같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 근동문명의 전문가인 *Kramer 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수메르의 초기 역사의 연대는 대부분 불확실하다.” - *S.N. Kramer, 'The Sumerians,' in Scientific American, October 1957, p. 72

 

7. 문명 (Civilization) 

최초의 것들은 모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위치하는데, 그곳은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아라랏산에서 조금 남동쪽에 위치한다

B.C.3000년경 이전의 역사들이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더 오래된 연대가 주장될 때, 그것은 사람에 의해 쓰여진 기록에 의해서가 아니라, 방사성 탄소연대 또는 다른 방법들을 통해서 주장되는 것이다. 

창세기8:4) 에는, 대홍수의 거의 말기에 방주가 아라랏산의 한 지역에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산지 지역은 오늘날 이란, 이라크 (고대의 페르시아와 바벨로니아)와 가까이 있는 터키의 극동지역에 위치해 있다. 창세기 10장에서 우리는 가계(races)의 목록과 대홍수 이후 후손들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민족들의 표'(the Table of Nations)를 발견할 수 있다. 미국 고고학계의 거두로 알려져 있는 William F. Allbright는 그 표를 '놀랄만큼 정확한 기록(an astonishingly accurate document)' 으로 간주했다. (See W.F. Allbright, 'Discoveries in Bible Lands,' in Young's Analytical Concordance, p. 30). 

이외에 더 많은 정보를 위해서는 우리의 책, 고대인(Ancient Man)을 보라. 그러나 농업재배, 가축이용, 금속가공, 마을과 도시 건축.. 등등 이런 모든 초기의 시작에 관한 기록들은 모든 예에서 모두 근동지역에서부터 시작한다. 이것에 대한 예외는 부정확하고 악명높은 탄소-14 연대측정에 의해 결정된 세계 여러 지역에서 발굴된 것들 뿐이다. 

”문명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사람에 의하여 세워진 가장 큰 구조물이고, 오늘날 미국의 Grand Coulee Dam을 능가한다. 그러나 그 웅장한 피라미드가 세워지기 1세기 전에는 전세계에 어디에도 돌로 만들어진 건축물이 없다. 이것이 진화처럼 보이는가?” - H. Enoch, Evolution or Creation (1967) p. 131. 

 

8. 언어 (Languages) 

고대의 언어는 B.C 3000 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있으며,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발생하여 퍼져 나갔다. 

인류는 매우 지적이어서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문자 기록으로 표현하여 지구의 표면에 남겨놓았다. 대홍수 직후에 언어와 방언들이 갑작스럽게 발달하였는데,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무리를 지어 사방으로 흩어질때에 바로 그렇게 발달되었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창세기 11:1-9) 

고대의 언어에 대한 기록은 B.C 3000년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문헌상의 그리고 언어학상의 연구를 통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던 그 무리의 대부분은 '언어 가계(language families)' 이었고, 그들의 대부분은 바벨로니아 지역으로부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예를 들어, 창세기 10장에 나열된, 야벳 후손들은 유럽과 인도로 흩어져 나갔는데, 거기서 그들은 소위 아리안 민족(Aryan peoples)으로 불리어졌다. 오늘날 그들은 인도-유럽어계(Indo-European Language Family) 라고 불리운다. 현대 언어학적 연구를 통하여 그들의 언어는 발트해에 대해 남동쪽 유럽의 중앙에서 근원이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은 노아의 방주가 상륙한 아라랏산 지역과 가깝다. 산스크리트어와 비교언어학의 전문가인 예일 대학의 Thieme는 다음과 같은 평가를 하였다.

”추측컨대, 인도-유럽어는 B.C 3000년 말경 독일의 발트해 연안에서 사용되었다고 생각된다.” - *Paul Thieme, 'The Indo-European Language,' in Scientific American, October 1958, p. 74. 

언어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보길 원한다면 우리의 책, Ancient Man를 보라. 

 

9. 고대의 역사적 기록 (Ancient Historical Records) 

가장 오래된 연대는 B.C 3000년 정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적 기록은 우리가 직접적으로 가지고 있는 유일한 연대측정의 정보가 된다. 단지 수천년에 불과한 역사가 시작되기전에 우리는 단지 암석, 물, 하늘, 그리고 추측만 가지고 있다. 기록된 역사에 관한 연대를 결정하는데 필요한 초기의 실제적인 정보들에 대한 추가적인 여러 진술들이 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오직 B.C 30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초기의 인류에 대한 기록은 단지 5,00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간다.” - *World Book Encyclopedia, 1966 edition, Vol. 6, p. 12. 

또 다른 과학자들은 역사적 기록은 B.C 20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기록된 역사에 의하여 사람의 존재를 생각하는 것은 흔한 실수이다. 역사적 기록은 B.C. 3000년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며, 이것은 사람이 지구에 살았던 시간에 비하면 매우 작은 비율이다.” - *A.M. Winchester, Biology and Its Relation to Mankind (1964), p. 600. 

*Montague 는 가능한 역사적 기록의 절대적인 한계를 B.C. 4000년 이라고 말했다.

”인류는 약 100만년전에 존재했다고 믿어지기 때문에, 그들은 지구상에 존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기록된 역사는 6,000년 이상 되지 않는다.”- *Ashley Montagu, Man: His First Million Years (1957), p. 21. 

연대를 늘리는 어떠한 방안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문자의 발명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가능성도 단지 B.C. 4,000년 정도밖에 올라가지 못한다.

”약 6000년전 문자의 발명은 사람의 역사상의 기간(period)을 알게 해 준다. 6000년 이전의 과거는 유사이전의 시대로 알려져 있다.” - *Mark A. Hall and *Milton S. Lesser, Review Text in Biology (1966) p. 354. 

가장 초기의 문자는 B.C. 4000년 경으로 말하여진다 하더라도, 가장 초기에 기록된 언어(written language)는 B.C. 3,500년 정도이다.

”가장 초기에 쓰여진 언어인, 수메리안 상형문자는 B.C. 3,500년 정도이다.” - *Ashley Montagu, Man: His First Million Years (1957), p. 116. 

우리는 B.C 4,000년 이전에 그 어떤 인류 문명에 관한 자료도 가지고 있지 않다.

”B.C. 4000년 이전의 인류 문명의 역사적 기록은 전무하다.” - H. Enoch, Evolution or Creation (1967)? p. 137. 

이상한 일이지만, 사람은 지난 100만년간 했던 일보다 지난 6000년 동안에 더 많은 일을 해냈다. 지난 100만년동안 인류가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어떠한 작은 증거도 없다는 사실은 그것을 더 명확하게 해준다.

”지난 6천년동안, 사람은 유사이전의 백만년 또는 그보다 더 오랫동안 발전했던 것보다 더 많이 발전했다.” - *Louise Eisman and *Charles Tanzer, Biology and Human Progress (1958), p. 509.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방법을 발전시킨 사람들은 B.C.3000년 이전에는 인류에 관한 어떤 기록도 없다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그들의 선생님들은 그것을 대학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연구는 두 가지 영역으로 나뉘었다. 그것은 각각 역사시대 그리고 역사이전 시대의 중요한 사건들로부터의 표본(sample)에 대한 연대측정이었다. 역사가 오직 50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려주었을 때, 그것은 동료인 Arnold와 나에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당신은 사회적 또는 고고학적 유적이 20,000년이 되었다는 글을 읽게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정확성을 가진 가장 초기의 역사적 연대는 이집트의 첫번째 왕조 시대인 것이다.” - *Willard Libby, Science, March 3, 1961, p. 624. 

수천년전 특정 시점 이전에, 사람이 존재했다는 흔적이 없다. 특정 시점 이후에 문명, 문자, 언어, 농업, 가축이용,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들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시작되었다.

”최근 발굴에 있어서, 문명이 갑작스럽게 세상에 나온 것보다 더 놀랄만한 발견은 없었다. 이 발견은 기대했던 것과는 매우 반대의 결과이다. 문명의 자취가 거의 없고, 토착민이 나타날 때까지는, 더 오래전 고대의 시기일수록, 발굴자들은 더 원시적인 것을 발견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사람의 거주지역으로 알려진 바벨로니아나 이집트에서도 그렇지 않았다.” - P.J. Wiseman, New Discoveries, in Babylonia, about Genesis (1949 ), p. 28. 

B.C. 3000년 또는 4000년 정도의 연대는 가장 많이 거슬러 올라가는 연대로 추정된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역사의 가장 오래된 문명이라고 말하는, 이집트로부터 증명된 믿을 만한 연대는 단지 B.C. 1,600년 정도까지만 거슬러 올라갈 뿐이다.

”증명된 믿을 만한 연대는 이집트의 역사로부터 오직 B.C. 1600년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John G. Read, Journal of Near Eastern Studies, (1970), Vol. 1, p. 29.


10. 가장 오래된 사람들 (The Oldest People) 

그들은 B.C. 3,000년 전으로 올라가지 않으며, 메소포타미아에 살고 있었다. 

다양한 방사성 연대측정의 기술들은 너무 부정확하며, 인류는 지구상에 오직 수천년 동안 살아 내려왔다.

”방사성 붕괴에 의하여 측정된 연대는 단지 몇 년정도가 아니라, 자리수가 틀릴 정도로 실제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사람은 360만년 동안 지구상에서 살아왔던 것이 아니고, 단지 수천년동안 인 것 같다.”- *Robert Gannon, 'How Old Is It?' Popular Science, November 1979, p. 81. 

우리는 인류의 문명이 수천년 이상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떤 기록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직 6000년 또는 7000년 전에... 문명은 출현하였고, 인간들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 *Jonathan Schell, The Fate of the Earth (1982), p. 181 

B.C. 3000년 이전에는 기록된 어떠한 자료도 없다.

”고대 세계에서 농업 혁명의 결정적 단계의 대부분은 B.C. 1000~5000년 사이에 발생했다....단지 마지막 5,000년 동안 인류는 문자로된 기록을 남겨두었다.” - *Readers's Digest, the Last Two Million Years (1984), pp. 9, 29. 

문명이 발생하자마자, 마을과 도시가 존재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메소포타미아에 있었다.

”대부분의 문명발생 지역에서, 도시화가 일찍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가장 오래된 문명과 가장 최초의 도시(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명과 도시)였다는 것에는 거의 의심이 없다.” - *Robert M. Adam, 'The Origin of Cities,' Scientific American, Vol. 203, September 1960, p. 154. 

가장 최초의 왕의 목록은 단지 B.C. 3,000년 정도까지만 추적된다.

”이집트 왕의 목록은 첫번째 이집트 왕조까지 추적되고, 그것은 약 B.C. 3,000년 전이다. 그 이전에는 어느 곳에서도 기록된 자료가 없다.” - *Colin Renfrew, Before Civilization (1983), p. 25.

 

11. 결론 (Conclusion) 

인간은 100만 년이 넘는 이전에 출현하여 10만년전에 진화를 멈췄다고('stopped evolving') 진화론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왜 적어도 10만년된 문명, 도시, 그리고 사람의 유물들은 없는 것일까? 

지구의 나이에 대한 진화론적 추정은 끊임없이 변하고, 날이 갈수록 길어졌다. (그것은 현재 50억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과학적 증거들은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있고, 새로운 믿을만한 증거가 나타남으로서, 지구의 나이는 견고할 정도로 확정되고 있다. 그것들 모두는 우리 행성의 시작이 6000년 전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어떤 사람은 7,000년에서 10,000년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증거들은 지구의 기원이 약 B.C. 4000년 경이라고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젊은 지구에 대한 증거들은 과학적으로 견고하다. 

진화론자들은 말하길, 최초의 인간은 1~2백만년 전에 존재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강조하여 인간은 10만년전에 진화를 멈추었다고 덧붙인다. 

그러면 왜 우리는 적어도 10만년 된 문명, 도시, 그리고 모든 종류의 잔재들을 찾지 못하는 것일까? 우린 그걸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성경은 옳고, 진화론은 틀리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이 세상을 6000년 전에 창조하셨다. 그리고 약 B.C. 2348년에 거대한 홍수가 지구를 덮었다. 우리는 매우 고대의 사건을 다루고 있음을 명심하라. 모든 증거들은 이러한 그림과 조화롭게 일치하는 것이다.

 

*참조 : The antediluvian patriarchs and the Sumerian King Lis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5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pathlights.com/ce_encyclopedia/Encyclopedia/05agee4.htm ,

출처 - Encyclopedia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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