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글 5

6) 천국의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


사도 요한은 자신이 천국에서 본 사람들에 대하여 계 7:10,15 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천국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덕택이라는 생각을 최우선적으로 한다. 만약 하나님이 구원해주시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와 같은 천국의 영광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구원을 자신들의 마음에 최우선으로 삼고 그들은 하나님께 순전한 감사로써 아무리 감사를 드려도 부족한 것처럼 계속해서 감사하고 찬양을 드린다.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한 후에 천사들도 더 이상 침묵을 지킬 수가 없어 후렴으로 이렇게 노래한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계 7:12).


우리는 구원받은 자들의 찬양과 천사들의 찬양 사이에 큰 차이를 느낀다. 천사들은 구원의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구원에 관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들은 찬양의 맨 앞에 “구원”이라는 말을 언급한다. 만약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인류를 위해 구원을 마련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지금 천국에 있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은 자들과 천사들의 찬양에는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런 사업과 특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7) 천국에서 구원받은 자들이 누리는 축복은 무엇인가?


먼저 우리는 세상에 있는 악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이다. 계 7:16-17 절을 보면;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임이러라.”


계 21:4에서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리하여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지상에서 겪게 되는 모든 고통, 골치 아픔 그리고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다. 이 세상은 고작해야 고해이고 눈물의 골짜기이다. 어둠 속에 맹인이 허우적대는 듯한 음식과 옷에 대한 아우성 소리,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려는 병든 자들의 갈망, 채무에 시달리는 자들의 근심 등등 인간의 근심은 결국 많은 사람들을 불시의 죽음으로 이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그러한 악마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들이 다르다. 그들은 더 이상 배고픔도 갈증도 없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표현이 유복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겠지만, 그것의 의미가 절실한 지역, 즉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부의 사람들을 살펴보자. 그 곳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배고픔의 고통이 없는 날이 없다. 그들에게 “굶주림이 없고 갈증도 없다.”는 말은 천국의 영광과 축복을 누린다는 것 이외에도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천국에 들어갈 복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속적이고 거리낌 없는 행복의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세상살이에서의 고통과 악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영원 속에서 눈물로 앞을 가리는 일이 없을 것이고 슬픔으로 우는 일이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는 신체적 불구가 되었더라도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천국에서 모든 사람들과 동등하게 정상인이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난하였으나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더 이상 굶주림이나 갈증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는 병이 들었으나 구원받은 자들은 천국에서는 고통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고통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 경멸받고 따돌림을 받은 자들은 영광의 왕관을 쓰고 천국의 거민들에게 존경을 받을 것이다.


더욱이 천국에는 더 이상 죽음이 없다. 죽음은 아무도 구해주지 못하는 무자비한 원수이다. 수 세기동안 죽음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무수한 사람들을 살해했다. 어린이들과 성인들을 죽음에 빼앗겼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전 15:54). 천국에서 구원받은 자들은 사망의 가능성을 초월해 있다. 왜냐하면 눅 20:36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8) 열역학 제2의 법칙, 퇴화, 쇠퇴 그리고 엔트로피가 제거될 것이다.


먼저 우리는 모든 악들 가운데 최고의 악인 죄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죄의 시조이자 뿌리인 원죄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우리는 모든 현실적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러했듯이 더 이상의 슬픔이 없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는 건져내랴?”(롬 7:19, 24)고 했지만 천국에는 죄를 범하려는 유혹조차 없을 것이다.
 


9) 천국에서는 불행, 슬픔, 고통, 질병, 죽음과 죄가 없다.


천국에서는 불행, 슬픔, 고통, 질병, 죽음과 죄가 사라질 뿐만 아니라, 오로지 즐거움과 행복만이 영속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현명한 사람들의 생각과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들의 구상(構想)은 이와 같은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천국에 관하여 쓴 내용은 요정의 이야기의 한가로운 꿈이거나 우화가 아니라, 천국에 계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보증한 사실이다. 성경을 보면 천국은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의 장소라고 되어있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눅 6:21)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천국에는 웃음, 순수한 천국의 웃음만이 있을 것이다. 찡그린 얼굴도, 맥 빠진 영혼도, 근심도, 슬픔도, 우울함도 없을 것이다. 영원한 기쁨의 웃음이 구원받은 자들의 얼굴을 밝혀 줄 것이다.


가장 커다란 기쁨은 넘치는 영광과 광체와 구원받은 인류를 위한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뵙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끝까지 우리를 지켜 주어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의 왕관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을 우리가 얼굴을 맞대고 만나게 될 때 얼마나 큰 기쁨이겠는가? 하나님은 스스로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끝없는 기쁨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천국의 시민들은 무한한 축복이며 기쁨이 되는 것이다.



10) 먼저 우리는 영원히 천국의 영광을 누릴 것이다.


천국의 축복은 결코 방해받지 않고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아무 간섭 없이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 베드로는 천국에 간직해 둔 유산은 결코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4). 우리가 땅 위의 집인 “우리의 집과 달콤한 집”에서 머무르는 것은 불확실하다. 우리는 언젠가 그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천국의 아버지 집”에 거하는 것은 영원할 것이다. 요 3:16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다.



11) 이제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천국에 가는가?”이다.


만약 우리가 천국에 가는 방법을 모른다면 천국과 그곳의 영광과 축복에 대해 우리가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가장 중요한 이런 질문에 관하여 생각해 보자! 아무도 천국에 대한 소망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려하고 반짝이는 도시에 대하여 듣고는 기뻐한다. 그들은 다시 사랑받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러한 희망과 욕심만으로는 충분할 수 없다. 우리는 확실한 방법을 알아야한다. 성경의 언어는 아주 단순해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12) 인간과 천국 사이에는 넘어야할 장애물, 즉 죄라는 장벽이 있다.


인간은 다 천국에 들어갈 권리를 상실했다. 이것은 예외 없이 모두에게 적용된다. 성경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만일 우리의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라고 말한다. 우리는 죄 때문에 천국에 합당하지 않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롬 6:23).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13)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죄의 장벽을 제거해 주실 분이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인의 죄를 대속했다. 그는 우리를 대신해서 죄의 형벌을 받아 고통과 죽음을 당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그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홍수의 시대에 노아의 방주가 유일한 피난처였듯이, 그리고 중동지방에 한재(旱災)가 닥쳤을 때 요셉이 식량을 공급해주는 유일한 존재였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에 관하여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사람들 앞에서의 우리의 공로, 우리의 도덕 그리고 우리의 외적인 호감이 우리를 천국으로 가게 해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은 죄와 알고 지은 죄를 범해왔기 때문이다. 그곳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는 우리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펄전은 한 때 한 노인에게 “당신의 생이 다할 때 기쁨으로 운명하시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말하자 노인은 “그럼요, 나는 그렇게 했어요. 술도 마시지 않았고, 불경스런 말도 쓰지 않았고, 이따금씩 교회도 나갔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스스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스펄전이 그런 자기 기준으로 평가한 마음의 상태를 가지고 죽는다면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했을 때 그는 매우 놀랐다. 이런 방식으로 천국에 가려는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천국은 결코 행위를 통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크리스천의 찬송가는 다음과 같이 그런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당신의 율법을 충족할 수 없지요
               나의 열정은 어떠한 휴식도 알 수 없어요
               나의 눈물은 영원히 흐르고
               죄를 대신해 아무것도 보상할 수 없어요
               당신, 당신만이 구원하실 수 있나이다.


진실로 천국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국은 죄인에게 어울릴 수 없다.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생명이다.”(롬 6:23). 이러한 사실은 계7:13-14절에서 뚜렷하게 언급되어있다. 천국에서 장로 중의 한 명이 특권을 얻어 천국을 바라보는 사도 요한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유일한 방법이란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어내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타인을 믿는 믿음과 같은 여하한 종류의 믿음, 그리고 심지어는 어떤 종류의 하나님 신앙과 같은 그런 믿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오로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사도 요한은 신적 영감으로 쓰인 요한계시록에서 우리에게 얼마나 멋진 천국의 장면을 진술해 주었는지! 만약 성경에서 언급한 내용의 10퍼센트 혹은 1퍼센트 정도라도 진실이라면 우리의 시간을 그것의 준비에 활용할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사실 성경은 천국의 영광과 축복에 대한 일부만을 언급하고 있다. 인간의 언어로는 천국을 다 묘사 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더 확실히 믿기만 한다면 우리는 세상에 대한 애정이나 인생에 대한 마음의 짐을 덜고 기쁨이 한없고 슬픔이 없는 저 축복의 곳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만약 이 점을 확실히 믿게 된다면, 우리는 공포와 근심으로 죽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소망으로 죽음을 소망하게 된다.


 


분류:창조신앙-중요성
출처: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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