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온통...

   세상이 온통 진화론에 물들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저희 집에서 보는 신문에 국악 세 쌍둥이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그 다음 장에 ‘악기의 진화’라는 제목으로 25줄 가야금과 10현 거문고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원래 가야금은 12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이 25줄로 진화되었답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발전하는 단계로 나아가면 그것을 진화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원래 단어의 뜻과 상관없이 ‘발전’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다윈이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에서 말한 진화의 개념은, 예를 들면 원숭이에서 점점 변화의 단계를 거쳐 오랜 세월이 지나면 사람으로 진화된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러한 점진적 진화이론이 틀린 이론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직도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화는 과학적인 사실인 양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진화’라는 단어의 개념을 ‘발전’이라는 단어와 혼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12줄 가야금을 오랜 세월 동안 놔두면 저절로 25줄이 된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신문에서마저도 ‘발전’ 대신에 ‘진화’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보통 사람들은 가야금에 대해서는 ‘진화’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것을 ‘발전’이라는 뜻으로 새겨들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이나 동물에 대해 ‘진화’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그것은 점진적으로 오랜 세월동안에 그렇게 변화한 것으로 믿어버립니다. 정확한 단어의 의미를 사용하여 말할 때, 가야금은 진화될 수 없지만, 무생물에서 생물로는 진화될 수 있다고 믿어버리는 것이 요즘 과학 시대에 산다고 하는 사람들의 수준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논리적 판단도 필요 없고 아주 강한 신념이 되어버렸습니다.
 
세상은 그렇다고 쳐도 기독교계에까지 진화론적인 사상이 물들어 있습니다.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ism)이랄지, 아니면 창세기의 간격이론(Gap Theory) 등 진화론과 타협하는 사고방식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저는 아침에 출근할 때 거의 기독교방송을 듣는 편인데, 수영장에 갔다가 출근하는 날에는 대개 ‘행복한 세상’이라는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입니다. 11월 초순에 방송을 듣다가 또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오뭐뭐라는 여자 아나운서가 멘트 중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공룡이 멸종한 것이 1억 2천만 년 전 아닙니까?” 하면서 남자 아나운서와 대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만약 제 옆에서 기독교인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면 “그거 아니야!”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것이고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 방송(CBS)에서 가끔씩 저런 이야기는 안했으면 하는 것을 듣습니다. 언젠가는 역시 아침 방송 중에 진행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어제 저녁에 술을 많이 마셔서 제가 횡설수설하는군요.” 제발 그런 사람은 아무리 인기 있는 연예인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기독교방송에는 출연을 안 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멘트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200만 년 전에 진화되어 지금에 이른 것이 아닙니까?” 사람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된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기독교 방송은 기독교인에 의한 기독교인을 위한 방송이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지나친 기대일까요? 선교를 목적으로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그 가운데서 기독교인의 참 모습을 보여주어야 진정한 선교가 되지 않을까요?


진화로 물들어 있는 세상 가운데서 기독교인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그나마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시대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의 항소법원에서는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 내려진 적이 있습니다. 교수가 수업 시간에 강의할 때, 자기가 유대인이라고 말하거나, 이슬람교도라고 말하거나, 교회에 간다거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부적당하다고 결론짓습니다. 그런데 같은 교수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거나, 종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허용이 됩니다. 요약하자면, 교수는 ‘종교적인’ 가치나 믿음으로 정의되는 말은 무엇이나 반대하여 강의를 할 수 있으나, 그것에 찬성하여 강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항소 법원은 대학교가 ‘얼마나 주의 깊게 제시되었든지 간에 종교적 관점의 표현은 학생들에게 괴로움(anxiety)을 일으키므로’ 학생들이 종교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을’ 막는다는 점에서 ‘합법적인 관심’을 취했다고 판정했습니다. 그가 기독교인이라면, 수업 시간에 그의 개인적인 세계관을 아주 간략하게 언급하는 것조차도 못하도록 했고(Bishop 소송 사건), 단지 무신론적이거나 불가지론적인 세계관을 가진 교수들만 자유롭게 그들의 관점을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훨씬 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입니다. ‘발전’을 ‘진화’라고 표현해도 되지만, ‘진화는 틀렸다’고 말하거나, ‘나는 어제 교회에 다녀왔다’ 내지는, ‘나와 우리가족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다’ 라든가, 더 나아가서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한 거야’라고 강단에서 말하더라도 아직은 법률적으로 제재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은 자유가 보장되어 있을 때 그 자유를 제대로 누리는 사람들은 근거도 없는 진화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헛된 것을 믿고 있는 사람들은 목소리를 많이 내는데, 창조를 믿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도 제발 목소리를 높입시다.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베드로후서 3:4-5)


분류:창조신앙-교육
출처:대구지부 월간소식지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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