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의예과 시절이었다. 인간존재의 의미, 신의 유무, 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 등을 깨닫기 위한 사색을 일기장에 열심히 써 보던 때가 기억난다. 그러나 힘든 공부, 졸업 , 군복무, 결혼 그리고 유학 등의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문제들로 말미암아 이런 궁극적인 문제들은 뒤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언어와 외관적인 조건의 한계를 느끼고 그나마 나대로 세운 조그마한 목표들을 그런대로 하나씩 이루어 가면서 그때나마 잠깐의 만족과 기쁨을 즐겨보는 생활을 하던 중 어느 날 추구할 것이 그만 바닥이 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던 나였으나 이제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은 병든 사람들을 매일 대하는 단조로운 일과의 반복이며 무미건조한 일상의 연속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게 삼사십년 잘 산다고 해도 곧 그것이 끝나면 나의 존재는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영원히 다시 찾아볼 수 없는 망각 속으로 사라져 버림을 깨닫고 심각해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무엇을 해도 지속되는 만족이 없고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공허감을 메꿀 수가 도저히 없었다. 한번은 유명한 극장에서 이름난 쇼를 보던 중이다. 갑자기 무대에서 연극하는 사람들이나 좌석을 메꾼 사람들이 모두 다 죽은 생명 없는 물체의 집단으로 보이면서 의미 없는 짓들을 하고 있는 그들 가운데 의미 없이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서 도중에 뛰쳐나오고야 말았다.
그 무렵에 NASA에 다니던 한 공학자의 가정에 저녁 초청을 받아간 일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분명히 전도를 위한 모임이었음이 분명한데 결국 나의 보잘 것 없는 얄팍한 인생철학을 떠벌리는 것으로 그날 저녁을 그대로 허비해 버린 것을 기억한다. 사교의 목적으로 그때까지 일년에 몇 번씩 교회를 나간 지는 6년이 되었으나 전혀 하나님의 뜻, 인간의 문제, 나의 문제를 깨닫지 못한 상태였으니 기독교를 그냥 세상종교의 하나로, 인생살이의 한 가지 악세사리로만 생각하던 나였던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남의 눈에 띄는 것만 잘하면 의로운 줄 알고 마음으로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니 마음으로 의로워지는 방법을 알 길이 없었다.
그 후 공학자의 가정은 뉴저지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연말 기분으로 흥청거리는 어느 12월이 되었을 때 연말 파티 겸 학회 참석차 뉴욕을 가게 되었다. 이미 그 곳에서 천사부부라고 별명이 붙어있는 이 공학자의 가정에 사랑하는 어느 친구 부부와 함께 방문하게 되었다. 나는 식사 후 여러 가지 어려운 질문을 나 자신과 그 부부를 향해 또 던지기 시작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 의 어떻게 보면 가장 비효율적이고 또 모순적인 인간에 대한 처사에 대해서 시원한 궁극적인 해답을 요구했다.
유숙의 간청을 거절하고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뉴욕 시내에서 갖기 위해 그 집을 나섰다. 헤드라이트에 반사되어 간간히 내려오는 가는 빗줄기의 어둠을 뚫고 허드슨 강변을 달리는 중이었다, 강변에 늘어선 가로등의 불빛이 검은 강물 위의 물결에 부스러지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가슴 깊이 들려오는 가늘면서도 강력한 음성이 있었다. 좌석에 깊숙이 파묻혀 있던 나는 스프링처럼 반사적으로 허리를 펴고 앉았다.
“피조물로서 어떻게 조물주의 하시는 일을 다 알아야 하겠다고 하는가? 겸손이란 말을 너는 아는가? 그의 계시에 의하지 않고는 도저히 더 알 재간이 없는 것이다. 사과 안에 있는 작은 수분입자가 사과의 모양을 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순간 나는 강한 전류가 내 마음을 스치고 지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나는 겸손이 필요하다. 광대하신 조물주 앞에서 겸손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참지혜가 아닌가, 그와 같은 생각을 하며 곧장 시내로 갔으나 그렇게 흥이 나질 않았다, 호텔에 돌아오자 유령 같은 맨하탄 빌딩의 뒷면을 창문으로 내다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녘이 되었다. 화장실로 들어갔다. 빨리 준비해서 되는대로 집으로 돌아오려는 생각이었다. 문득 화장실 안에 있는 아내의 가방에 꽂혀 있는 책을 하나 발견했다. 무심코 집어 겉장을 보고는 첫 페이지를 폈다. 웬일인가? 내가 물어오던 여러 가지 질문을 누가 듣고 그대로 제목으로 써서 답을 다 써 놓은 것 같은 책이었다. 택시 안에서도 읽고 비행기 안에서도 계속 읽다가 집에 와서 곧 다 읽게 되었다. 마음이 기쁘고 가벼웠다. 유숙의 초청을 뿌리치고 나오는 우리를 뒤따라와 아내의 가방 속에 혹 도움이 될까 싶어 꽂아주고 계속 하나님께 나의 회심을 위해 간청한 이 천사부부에 대해 지금도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성경의 독특성에 모든 열쇠가 달려 있음을 느꼈다. 점점 관심이 커져갔다. 성경의 독특성과 신빙성은 성경 전체의 테마인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성과 신비성으로 연결되었다. 그것은 결국 나와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은 그 후 조금 시간이 걸렸다.
두어 번 부흥회를 열심히 참석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린 사실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으며 피의 의미를 누가 내게 설명해 주면 좋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죄인의 삯은 사망이요-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 하느니라-피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느니라”
아 ! 나는 정말 소망이 없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예수님의 피가 필요하다. 주님이 바로 영원한 생명이시니 나는 주님이 필요하다. 할렐루야 !
어느 순간인지는 모르나 이미 내 속에 임재하신 주님을 곧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새벽모임에서 나는 내 인생 전부 '속고 살아왔다'는 후회와 새 삶의 환희로 두 손에 머리를 파묻고 하염없이 흐느낀 적이 있다. 그 후부터는 하나님의 논리는 너무나 타당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귀한 비밀, 외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물어서 영생을 허락하시는 주님은 너무나 사랑이 많으시고 공의로우시고 또 현명하시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다운 처사이다.
그리스도 예수로 이제 자신을 발견하고 생명을 되찾은 나는 제일 먼저 사랑하는 부모님과 혈육의 형제, 자매를 위해 주님께 매달렸다. 나의 가치관은 점점 바뀌어졌다. 인생관, 우주관, 결혼의 의미, 가족의 의미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내가 살아야 할 이유와 죽어야 할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제 주님을 모신 부모님, 슬하 삼십여 명의 혈육인 형제, 자매 모두 믿음으로 주안에서 한 식구가 된 우리를 통하여 주님은 계속 관계 중심의 전도 열매를 오늘도 허락해 주고 계시다. 정말 주님은 생명을 주시되 더욱 풍성히 주시는 분이시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 : 10)
분류:창조신앙-중요성
출처:'열리는 영의 세계'(1991년 간) 중에서
그것은 의예과 시절이었다. 인간존재의 의미, 신의 유무, 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 등을 깨닫기 위한 사색을 일기장에 열심히 써 보던 때가 기억난다. 그러나 힘든 공부, 졸업 , 군복무, 결혼 그리고 유학 등의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문제들로 말미암아 이런 궁극적인 문제들은 뒤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언어와 외관적인 조건의 한계를 느끼고 그나마 나대로 세운 조그마한 목표들을 그런대로 하나씩 이루어 가면서 그때나마 잠깐의 만족과 기쁨을 즐겨보는 생활을 하던 중 어느 날 추구할 것이 그만 바닥이 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던 나였으나 이제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은 병든 사람들을 매일 대하는 단조로운 일과의 반복이며 무미건조한 일상의 연속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게 삼사십년 잘 산다고 해도 곧 그것이 끝나면 나의 존재는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영원히 다시 찾아볼 수 없는 망각 속으로 사라져 버림을 깨닫고 심각해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무엇을 해도 지속되는 만족이 없고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공허감을 메꿀 수가 도저히 없었다. 한번은 유명한 극장에서 이름난 쇼를 보던 중이다. 갑자기 무대에서 연극하는 사람들이나 좌석을 메꾼 사람들이 모두 다 죽은 생명 없는 물체의 집단으로 보이면서 의미 없는 짓들을 하고 있는 그들 가운데 의미 없이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서 도중에 뛰쳐나오고야 말았다.
그 무렵에 NASA에 다니던 한 공학자의 가정에 저녁 초청을 받아간 일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분명히 전도를 위한 모임이었음이 분명한데 결국 나의 보잘 것 없는 얄팍한 인생철학을 떠벌리는 것으로 그날 저녁을 그대로 허비해 버린 것을 기억한다. 사교의 목적으로 그때까지 일년에 몇 번씩 교회를 나간 지는 6년이 되었으나 전혀 하나님의 뜻, 인간의 문제, 나의 문제를 깨닫지 못한 상태였으니 기독교를 그냥 세상종교의 하나로, 인생살이의 한 가지 악세사리로만 생각하던 나였던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남의 눈에 띄는 것만 잘하면 의로운 줄 알고 마음으로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니 마음으로 의로워지는 방법을 알 길이 없었다.
그 후 공학자의 가정은 뉴저지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연말 기분으로 흥청거리는 어느 12월이 되었을 때 연말 파티 겸 학회 참석차 뉴욕을 가게 되었다. 이미 그 곳에서 천사부부라고 별명이 붙어있는 이 공학자의 가정에 사랑하는 어느 친구 부부와 함께 방문하게 되었다. 나는 식사 후 여러 가지 어려운 질문을 나 자신과 그 부부를 향해 또 던지기 시작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 의 어떻게 보면 가장 비효율적이고 또 모순적인 인간에 대한 처사에 대해서 시원한 궁극적인 해답을 요구했다.
유숙의 간청을 거절하고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뉴욕 시내에서 갖기 위해 그 집을 나섰다. 헤드라이트에 반사되어 간간히 내려오는 가는 빗줄기의 어둠을 뚫고 허드슨 강변을 달리는 중이었다, 강변에 늘어선 가로등의 불빛이 검은 강물 위의 물결에 부스러지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가슴 깊이 들려오는 가늘면서도 강력한 음성이 있었다. 좌석에 깊숙이 파묻혀 있던 나는 스프링처럼 반사적으로 허리를 펴고 앉았다.
“피조물로서 어떻게 조물주의 하시는 일을 다 알아야 하겠다고 하는가? 겸손이란 말을 너는 아는가? 그의 계시에 의하지 않고는 도저히 더 알 재간이 없는 것이다. 사과 안에 있는 작은 수분입자가 사과의 모양을 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순간 나는 강한 전류가 내 마음을 스치고 지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나는 겸손이 필요하다. 광대하신 조물주 앞에서 겸손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참지혜가 아닌가, 그와 같은 생각을 하며 곧장 시내로 갔으나 그렇게 흥이 나질 않았다, 호텔에 돌아오자 유령 같은 맨하탄 빌딩의 뒷면을 창문으로 내다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녘이 되었다. 화장실로 들어갔다. 빨리 준비해서 되는대로 집으로 돌아오려는 생각이었다. 문득 화장실 안에 있는 아내의 가방에 꽂혀 있는 책을 하나 발견했다. 무심코 집어 겉장을 보고는 첫 페이지를 폈다. 웬일인가? 내가 물어오던 여러 가지 질문을 누가 듣고 그대로 제목으로 써서 답을 다 써 놓은 것 같은 책이었다. 택시 안에서도 읽고 비행기 안에서도 계속 읽다가 집에 와서 곧 다 읽게 되었다. 마음이 기쁘고 가벼웠다. 유숙의 초청을 뿌리치고 나오는 우리를 뒤따라와 아내의 가방 속에 혹 도움이 될까 싶어 꽂아주고 계속 하나님께 나의 회심을 위해 간청한 이 천사부부에 대해 지금도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성경의 독특성에 모든 열쇠가 달려 있음을 느꼈다. 점점 관심이 커져갔다. 성경의 독특성과 신빙성은 성경 전체의 테마인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성과 신비성으로 연결되었다. 그것은 결국 나와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은 그 후 조금 시간이 걸렸다.
두어 번 부흥회를 열심히 참석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린 사실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으며 피의 의미를 누가 내게 설명해 주면 좋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죄인의 삯은 사망이요-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 하느니라-피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느니라”
아 ! 나는 정말 소망이 없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예수님의 피가 필요하다. 주님이 바로 영원한 생명이시니 나는 주님이 필요하다. 할렐루야 !
어느 순간인지는 모르나 이미 내 속에 임재하신 주님을 곧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새벽모임에서 나는 내 인생 전부 '속고 살아왔다'는 후회와 새 삶의 환희로 두 손에 머리를 파묻고 하염없이 흐느낀 적이 있다. 그 후부터는 하나님의 논리는 너무나 타당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귀한 비밀, 외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물어서 영생을 허락하시는 주님은 너무나 사랑이 많으시고 공의로우시고 또 현명하시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다운 처사이다.
그리스도 예수로 이제 자신을 발견하고 생명을 되찾은 나는 제일 먼저 사랑하는 부모님과 혈육의 형제, 자매를 위해 주님께 매달렸다. 나의 가치관은 점점 바뀌어졌다. 인생관, 우주관, 결혼의 의미, 가족의 의미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내가 살아야 할 이유와 죽어야 할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제 주님을 모신 부모님, 슬하 삼십여 명의 혈육인 형제, 자매 모두 믿음으로 주안에서 한 식구가 된 우리를 통하여 주님은 계속 관계 중심의 전도 열매를 오늘도 허락해 주고 계시다. 정말 주님은 생명을 주시되 더욱 풍성히 주시는 분이시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 : 10)
분류:창조신앙-중요성
출처:'열리는 영의 세계'(1991년 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