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 예수님의 그림자? 언약: 그 구속의 파노라마 II. 주제연구 (7)

이삭! 예수님의 그림자?

(Isaac; The Shadow of Jesus?)


  창세기 22:1-14을 정독하시고 다음의 물음에 답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다음의 두 가지 모순된 사실로 인하여 매우 혼미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세기 22:2)

•하나님은 이삭과 그 후손을 통한 미래의 축복을 약속하셨다. (God promised the future around Isaac and his descendants.)

•하나님은 이삭의 후손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삭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기를 원하셨다. (God wanted him to sacrifice Isaac.)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창세기 22:5의 'We will worship and we will come back.”은 아브라함의 부활을 믿는 견고한 신앙을 보여줍니다(참조: 히브리서 11:17-19).

이 내용을 단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해 보았고 아브라함이 그대로 순종하므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는 관점이 아니라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습니까?(이삭은 언약 안에서 난 아브라함의 독생자임을 유의하십시오. 이스마엘은 육신으로 언약 밖에서 난 자식이었습니다.)

어느 곳에서 번제를 드리라고 하였습니까? (2-4절에서 삼일씩이나 가야 하는 특별한 곳, 모리아 산(Mount Moriah)에서 번제를 드리라 함에 유의하십시오. 단지 믿음을 시험하려면 아무데서나 번제를 드리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삼일씩이나 가야하는 특정한 곳 모리아산 입니까?) 모리아 산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습니까?

이 때 이삭의 나이는 16-18세 정도였을 것입니다. 청년으로서 힘이 가장 좋을 때지요. 아브라함의 나이는 116-118세 이었겠지요. 번제단에서 죽기까지(voluntary death) 아무 저항 없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이삭의 모습에서 연상되는 것이 있습니까? 자기가 죽을 그 나무를 지고 가는(6절) 아브라함의 언약의 독생자 이삭의 모습에서 연상되는 것이 있습니까? 이삭을 위해서 대신 준비되고 죽어야 할 수양(male lamb)은 누구를 상징하는 것일까요?(요한복음 1:29, 로마서 5:8)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창세기 22:13)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한복음 1:29)

'여호와 이레(Yahweh Yireh)”는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죄로 죽어야 할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녀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준비하신다는 것일까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이가… (로마서 8:32) He(Yahweh) did not spare his own Son but gave him up for us all. (Romans 8:32)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창세기 22:14)

모리아 산은 성전 산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곳에 바로 성전이 세워졌기 때문이지요(역대하 3:1).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성전 밖 골고다 언덕(해골 산)이 바로 이 모리아 산입니다. 당신이 만약 당신의 자녀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 심정이 어떠할까요? 아브라함은 그 심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을까요? 그 심정은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하나님의 심정일까요?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예루살렘 성전산)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시편 2: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시편 139:6)

역대상 21:14-22:1을 정독하십시오.

다윗과 온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심판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여호와의 사자(The Angel of the Lord, maybe pre-incarnate Christ or God Himself)에게 여호와께서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15절)고 명하셨습니다. 이 때 다윗은 회개하며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17절)라고 말합니다. 마치 온 인류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심정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사자가 선지자 갇(Gad)을 통하여 다윗에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고 명하십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오르난에게 얼마의 비싼 대가라도 치를 것이니 그 땅을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팔라고 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은 기업으로 물려받는 것이고 함부로 파고 살 수 없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의 환경이나 상황에서는 그곳에 성전이 세워질 수 없었습니다.

(참고: 사무엘하 24장에도 같은 기사가 있습니다. 여기서의 오르난(Ornan)과 사무엘하 24장의 아라우나(Araunah)는 타작마당(threshing floor)의 주인 되는 같은 사람입니다. 단지 발음상으로 다르게 표현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천사를 본 오르난 가족은 기꺼이 땅뿐만 아니라 번제물로 쓸 소와 곡식들도 자발적으로 헌납하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모리아 산에 번제단을 세울 수 있었던 다윗은 그곳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죽음의 재앙의 심판을 철회하십니다.

•번제(burnt offering)는 죄의 사함(forgiveness of sin)을, 화목제(fellowship offering)는 끊어졌던 관계의 회복(또는 파기될 수 없는 언약의 회복: renewal of unbroken covenant relationship)을 상징합니다. 결국 그 번제와 화목제는 누구의 사역을 가리킵니까?

29절에 보면 그 당시 하나님의 장막(tabernacle)과 번제단이 기브온 산당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22:1에 결국 성전은 모리아 산 즉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세워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 오시기 전에 구속주로 오셔서, 오르난의 타작마당 밖(성전 밖) 모리아 산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상에서 화목제로 드려졌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결국 자신의 현현으로 드려진 단 한번의 영원한 제사를 흠향하시고 심판의 칼을 집에 꽂으셨습니다(27절).

그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 바로 아브라함이 독생자 이삭을 바쳤던 곳이며, 성전이 세워졌던 곳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제물로 바쳐졌던 곳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 눈에 바라보시는 분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독생자 이삭을 굳이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라고 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자신의 독생자를 모라아 산에서 제물로 바침으로써 이룰 구속을 바라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가장 큰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당신은 그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얼마나 헌신하고 있습니까? 오늘날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구체적인 희생의 제사가 있습니까? 기쁨과 감사로 드리고 있습니까?


분류:기독교-세계관

출처:`성경적 세계관 세우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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