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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김영길, 김해리
2004-07-26

진화론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


질문 1. 동물의 배(胚)발생과정을 비교해 보면 매우 비슷한 점에 놀라게 된다. 원시적인 동물이 필요로 하는 것이 고등동물들의 발생과정에서도 나타나는데, 이것은 발생 후기에는 사라지거나 거의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화된다. 예를 들면 포유류의 배는 하등동물이 갖고 있는 새궁(gill arch)과 새열(gill slit)을 갖는 단계를 거친다. 사람의 배에 나타나는 꼬리가 또 다른 예다. 최종적인 성체 형태에 도달하는데는 이 보다 더 직접적인 길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와 같이 비능률적인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이 동물들이 공통 조상으로부터 발생메커니즘에 관한 지식을 유전 받았기 때문이다. 창조론으로는 어떻게 이를 설명할 수 있을까?


답변 - 동물의 배(embryo) 발생과정에서, 사람이나 물고기, 닭 등의 배가 비슷한 것을 진화의 증거라 하여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되풀이한다"는 학설을 1866년 헤켈은 발표했다. 그러나 1920년대에 이미 일련의 학자들(Ehrlich, Holm)에 의해 부정됐다. 오늘날에는 대다수의 진화론자들조차도 이 이론을 믿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 옹호의 이론으로 자주 이용되고, 초보적인 교과서에 게재되고 있는 것은 큰 잘못중 하나다.

수년 전 유명한 진화론자인 몽태그(Ashley Montague) 박사는 프린스턴 대학 토론회에서 발생반복설이 진화론을 지지하는 이론으로 더 이상 사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동물의 배 발생과정에서 생기는 새궁이나 새열은 물고기의 것과는 다르다. 물고기 배의 새열은 숨을 쉬게 하는 아가미로 발전되지만, 사람 배의 목부분에 있는 막대기나 나사홈형태와 비슷한 부분은 물고기에서와 같이 아가미로 발전되지 않고, 아래턱 귀의 중간부분 및 내분비선(gland)으로 자라게 된다.

따라서 외견상 비슷하다고 하여 같은 근원에서 출발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유전정보상 서로 다른 근원을 가져서 다른 기관으로 발전하는 것이라고 보는 편이 과학적으로 더 타당하다.

 

질문 2. 생물의 진화를 입증하는 특별한 예로 흔적기관을 들 수 있다. 보아뱀이나 고래를 해부해 보면 척추동물의 엉덩이뼈에 상동하는 뼈를 볼 수 있고, 비단뱀이나 보아뱀의 뒷다리에서는 흔적기관을 볼 수 있다. 이 뱀들과 고래 모두가 같은 조상(사지동물)으로부터 진화했다고 생각하면 어째서 이러한 진화적 유산의 흔적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하는 의문을 쉽게 풀 수 있다. 만약 모든 종이 각각 특별히 창조됐다면 이와 같이 설계상 기능이 없는 부분까지 창조해야 했을까?


답변  - 흔적기관은 사용되지 않는 기관이나 구조를 일컫는 용어로 사용돼 왔다. 1백년 전 독일 과학자인 비더스하임(Wiedersheim)은 흔적기관으로 180 여 가지를 지적했지만, 최근에는 5, 6 가지로 줄고, 그것도 차차 그 역할이 밝혀짐에 따라 흔적기관이라는 용어자체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 추세에 있다. 실례로 최근까지 흔적기관의 대표적인 것으로 알려져 왔던 맹장(appendix)은 림프조직으로 구성돼 있어 질병의 면역에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또 꼬리뼈는 근육(posture muscle)이 부착돼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편도선도 면역기관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귀의 근육은 안면 표정에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보아(Boa)뱀을 비롯해 몇 종의 뱀(Python, Eryx, Torrix)은 뒷부분에 5∼8 m 정도 되는 두 개의 가시를 가지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이 가시가 뱀의 조상이 가지고 있던 뒷다리가 퇴화된 흔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뱀은 가시 외에도 피부 밑에 숨겨진 많은 가시가 있고, 특히 이 부분의 피부는 유연하고 느슨해 쉽게 가시를 움직여 이동할 수 있다. 뱀은 먹이를 압사시킨 후 이 가시를 사용해 먹이를 자르기도 한다고 넬슨(Nelson)은 설명했다. 나무 위로 올라가거나 가지에 매달릴 때도 주로 이것을 사용하며 한 비단뱀(Python)은 땅 위에서 앞으로 전진할 때 이 가시를 이용하기도 한다. 또한 적과 싸울 때에도 이용한다.

 '흔적' 개념은 특정기관의 기능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지, 그 기관의 기능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따라서 설계상 기능이 없는 부분까지 창조했다는 말은 옳지 않다. 아직까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과학의 지식이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이므로, 그 부분에 대해 계속 연구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과학자의 자세일 것이다.

 

질문 3. 하와이섬들의 대부분은 지질학적으로 보아 비교적 최근에 바다로부터 솟아올라 생긴 것이다. 이 섬들에는 각종 동식물이 다양하고 풍부한데 육지생물과는 다름을 볼 수 있다. 만약 종이 변할 수 없다면 이 섬들에 사는 모든 동물들이 육지의 것들과 같아야 한다. 이를 어떻게 창조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답변 - 진화론에서는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진화하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보는데 짧은 시간동안에 다양하고 풍부한 동식물들이 하와이 섬에 존재한다는 것이 진화론으로 볼 때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진다.

지렁이와 개미 등을 제외하고는 전 지구적으로 분포돼 있는 생물은 없다고 한다. 대부분이 지역적 한계를 갖고 있으며, 하와이섬에 사는 모든 동물들이 육지의 것들과 같아야 한다는 논리는 타당하지가 못한 것이다. 육지에 없는 생물들이 하와이섬에 설혹 있다고 해서 그것이 진화의 증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동식물의 서식분포를 보면 어느 특정 지역에 특정생물이 서식하고 있음을 흔히 발견하게 된다. 생물 중에는 거의 멸종돼 가는 것도 있고, 이미 멸종된 것들도 많다.

다음의 예는 하와이섬의 다양한 동식물들에 대한 적절한 해답이 될 것이다. 1883년 인도네시아 자바와 수마트라섬 사이의 순다해협에 있는 크라카토아섬은 엄청난 화산폭발로 파멸돼 대부분의 생명체가 살아남지 못했다. 그러나 1908년의 조사에 따르면 이 섬에서 다양한 식물들이 다시 발견되기 시작했으며, 상당수의 새, 도마뱀, 연체동물, 곤충, 지렁이들이 서식하기 시작했음이 보고 됐다.

동물학자인 프랭클린 설(A. Franklin Sull)은 하와이섬보다도 훨씬 특이 생물군이 많은 마다가스카르섬의 동물상이 아프리카대륙이 아닌 1천 3백km 북쪽에 위치한 시실리 군도와 유사하며, 시실리 군도의 동물들은 인도양을 건너 아시아 본토(마다가스카르섬과는 4천km가 떨어져 있음)의 동물로부터 유래한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하와이섬에 있어서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에 일어난 다양한 동식물 분포는 창조된 동식물의 분산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신속히 이동할 수 있음을 보여줄 뿐 진화론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질문 4. 서로 다른 시기에 생성된 지질층에서 다른 종류의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생성이 오래된 지질층일수록 더 적은 수의 생물 종류와 덜 복잡한 생물들이 관찰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생성이 오래된 지질층일수록 더 적은 수의 생물 종류와 덜 복잡한 생물들이 관찰되고 있다. 이러한 지질층은 층서학(層序學), 화석의 종류, 탄소 동위원소, 방사능, 대륙의 지자기 등의 자료를 독립적으로 검증해서 일치를 본 것으로, 그 절대시기를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화석생물은 지질이 형성된 시기에 살았던 생물로 볼 수 있으므로, 후기의 생물은 과거의 생물로부터 진화해온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창조론의 해석은 무엇인가?


답변 -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150만 여종의 생물이 진화론의 가설대로 단세포 아메바로부터 오랜 시간 동안 점진적으로 진화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종(species)과 종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전이형태의 화석들이 무수히 발견돼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l980년 10월 미국 시카고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린 전 세계 유명 진화론자 및 지질화석학자 회의에서 중간형태의 화석이 전혀 없다는 이유로 다윈의 점진론적 대진화론이 부정됐다.

실제로 현재까지 발견된 수백만점의 모든 화석들은 급작스럽게(abruptly) 완전히 발달된 형태로 나타났다. 또 종과 종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전이형태도 없을 뿐더러, 화석과 오늘날 살고 있는 생명체들과의 모양에서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따라서 중간화석 없이 완전히 발달된 형태로 발견된다는 것은 종류대로 각각 완전하게 창조됐다는 창조모델을 결정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질문 5. 소련의 유전학자 카페첸코(Karpechenko)는 무염색체의 한 조(2n)와 배추 염색체의 한 조(2n)를 모두 갖는 다배수체성 식물을 만들어냈다. 이 식물은 성공적으로 재배될 수 있었고, 조상형의 어느 쪽과도 교잡을 보이지 않았으므로, 새로운 식물 종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밖에 피자식물, 곤충, 물고기, 양서류, 파충류 등에서도 다배수체성이 관찰되고 있다. 현재 종의 분화의 한 메커니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배수성에 의한 종의 분화를 어떻게 부정할 수 있는가?


답변 - 유전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설령 새로운 종(種)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진화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목수가 소나무를 다듬어 판자를 만들고, 거기에 쇠붙이 장식구를 붙여 책상을 만들었다고 해서 책상이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더구나 책상은 책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목수의 지혜없이 책상이 제작될 수 없듯이 카페첸코의 지혜없이 다배수체성 식물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설령 자연적으로 다(多)배수성 생물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그것이 정말 서로 다른 종간의 교합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다배수성 생물이었는지를 증명할 수도 없다.

인위적인 타종간의 교합에 의해 생겨난 후손(F2)은 생식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위적인 다배수체성 식물 외에 자연 상태에서 저절로 다배수체성 동식물이 나온 예는 단 한 건도 없다. 또 이렇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다배수체성 동식물이 자손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단 대에 끝나는 것은 오히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진화될 수 있다는 가설을 반박하는 것이다. 씨없는 수박, 말과 당나귀에서 나온 노새, 얼룩말에서 나온 제브론키(zebronky), 사자와 호랑이에서 나온 라이거(liger)는 모두 생식능력이 없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배수체가 다른 것과 교잡이 이뤄져야 진화할 터인데 이러한 교잡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철저한 종(種) 특이성을 보이는 창조의 증거다.

 

질문 6. 여러 생물의 기관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상동 상사기관을 발견했다. 또 아미노산 배열에서도 분자의 생화학적 상동현상을 찾을 수 있다. 좋은 예로 뇌하수체 후엽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은 종간에 상당한 유사성이 있으나 생리작용은 다르다. 이러한 유사성을 공통의 조상분자로부터 진화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답변 - 생물간의 유사성과 차이를 통해 근연관계와 그 계통을 유추하고자 하는 것이 진화론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분자수준에서 유사성을 논하는 문제는 재고돼야 한다. 분자의 생화학적 상동현상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제껏 진화론에 근거한 생물종간 비교와 아미노산 배열의 예는 거의 진화론을 지지하는 쪽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예는 진화론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러 동물의 체내에 존재하는 단백질인 인슐린의 아미노산 차이를 한번 비교해 보자. 인슐린을 이루는 아미노산의 구조가 닭 오리 타조의 경우에는 거의 유사하며, 생쥐와 토끼도 서로 닮아 있다. 그런데 가다랭이(bonito)라는 물고기의 인슐린 구조는 같은 어류인 복어(toadfish)보다 오히려 닭이나 오리 사람 등과 더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생쥐는 가까운 기니픽 보다는 오히려 닭, 방울뱀, 가다랭이와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예로 시토크롬 C (cytohrome C)는 에너지 대사에 중요한 효소인데 104 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져 있다. 이 아미노산의 동물간 유사성을 조사해봐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젖먹이 동물인 회색고래의 시토크롬C는 같은 젖먹이 동물인 원숭이보다 오리의 그것에 더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 또 두꺼비는 방울뱀 보다 초파리와 더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치의 시토크롬c도 같은 어류인 돔발상어(dogfish)보다 오히려 토끼의 그것과 닮았다.

이 질문에서 예시한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은 초기에는 같은 것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알았지만, 최근의 연구결과 선구물질(precursor)이 다르고, 그것은 만들도록 지시하는 유전인자도 별개라는 것이 판명됐다.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의 아미노산 배열에서 세 번째와 여덟 번째의 아미노산만이 다른 것은 질서정연한 창조의 모습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3/e31/e31c26.htm 

출처 - 창조지, 제 75호 [1991. 7~9]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63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6022

Walt Brown
2004-07-26

창조를 지지하는 과학적 증거들


소멸되고 있는 진화론

1. 진화는 관찰된 적이 없다.

1. 자연발생(무기물로부터의 생명 출현)은 관찰된 적이 전혀 없으며, 모든 실험 결과는 생물은 생물로부터만 발생됨을 보여 준다. 이것이 생물발생설이다. 생물이 무생물로부터 발생한다는 진화론은 이 법칙에 위배된다.

2. 멘델의 유전법칙에 의하면 모든 물리적 변이는 예를 들어 개라는 family는 그 종류 안에서만의 변이만 가능하다. 멘델의 법칙과 현대의 이론은 이러한 변이에는 유전적 한계가 있다고 결론짓는다. 생육 실험은 이러한 한계가 존재함을 확고히 하였다.

3. 후천적 획득 형질(acquired characteristics)은 유전되지 않는다.

4.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은 새로운 종을 만들 수 없으며, 그것은 이미 있었던 형질이 단지 도태한 것이다.

5. 돌연변이는 새로운 유전 정보가 진화에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유일한 메커니즘이다. 자연 환경에서 유익한 돌연변이는 있다하더라도 거의 무시할 정도로 드물게 나타난다. 더불어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해로운 방향으로 일어나며 많은 경우에는 치명적이기까지 하다.

6. 돌연변이로 인하여 그 종의 선조보다 더 분화되고 활력을 지닌 생명체를 이룬 경우는 전혀 없다.

7. 70년 동안의 초파리 실험이나 수많은 인류세대동안 우발적으로나 인위적으로나 분화되고 고등한 결과를 산출한 믿을 만한 경우가 전혀 없다. 돌연변이를 증가시키기 위한 많은 인위적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유전적 유익한 결과를 보인 적이 없다.

8. 돌연변이가 눈, 귀, 두뇌 등의 새로운 기관을 만들었다는 믿을 만한 증거가 없다. 75년 동안 지속적인 급유가 없이도 작동되는 10온스 펌프인 인간의 심장은 공학적 경이로움이다.

9. 한 주요한 동식물군이 다른 동식물군으로부터 유래하였다는 증거가 없다.

10. 모든 종들은 완전한 발달 형태를 갖추며 반쯤 진화한 형태는 없다. 반쯤 진화한 날개, 눈, 피부, 관상기관(동맥류, 정맥류, 장류 등) 이밖에 무수한 생명기관들이 반쯤 진화한 경우는 없다. 실예로 수족이 날개로 진화된다면 그것이 훌륭한 날개가 되기 전에 결함투성이의 수족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11. 어떠한 경우에도 입증된 외계 생명체의 증거가 없다.

12. 언어가 진화되었다면 최초의 언어는 최고로 단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가 고대로 가면 갈수록 (예를 들면 BC 2000년경의 라틴어, BC 800년경의 희랍어, BC 1500년경의 산스크리트어) 구문, 격(格), 성(性), 태(態), 법(法), 시제 그리고 동사형태에 있어서 더욱 복잡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선의 증거는 언어가 퇴화했음을 밝혀준다.

13. 다른 인간과 접촉이 없이 격리되었던 어린아이(야생소년)에 대한 고증된 연구 자료는 인간의 언어는 오직 다른 인간으로부터 만이 습득될 수 있음을 증거한다. 인간은 언어의 천부적 능력을 분명히 지니지 않았다. 그러므로 최초의 인류는 언어 능력을 부여받아야만 했을 것이다. 언어가 진화한 증거는 전혀 없다.

 

Ⅱ. 진화에 대한 모든 견해들은 낡은 것들이며, 비논리적이며,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14. 별개의 종들 간의 많은 유사점들이 계통학적 상호관계를 반드시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동일한 설계자의 작품임을 암시한다.

15. 인간 기관의 기능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그것이 진화한 선조로부터의 흔적 기관임을 암시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의학지식이 진보함에 따라 이러한 기관들의 기능이 발견되어 왔다.

16. 태아(embryo)가 진행됨에 따라 가정된 진화의 조상과는 다른 성숙한 단계를 통과하게 된다. 발생학자들은 더 이상 몇몇 태아(embryo)와 유사한 동물사이의 성숙한 모양이 지니는 외형의 유사성이 진화의 증거일거라고 고려하지는 않는다. 이것을 진화의 증거로 일반화시켰던 헤겔(Ernest Haeckel: 1843-1919)의 도표는 오히려 이 이론이 잘못되었음을 알려 준다.

17. 많은 단세포 생물은 있으나 반면에 2, 3, 혹은 20 여 개의 세포를 지닌 생물체는 없다. 만약 기관의 진화가 있었다면 이러한 상태의 생명체가 풍부히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으며 어쩌면 진화의 이론으로는 줄기 없는 나무가 있어야 할 것이다.

18. 원숭이를 닮은 원시인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했던 이야기는 과장된 것이다. 필트다운인(Piltdown Man)은 조작된 인간이었다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네브라스카인(Nebraska Man)을 이루는 파편의 화석은 돼지의 치아임이 판명되었다. 쟈바인의 발견자는 후에 쟈바인이 긴팔원숭이임을 알았고 그는 그 사실에 대한 증거를 보류해 왔다. 북경인은 인간이 식량으로 취하여 의도적으로 목을 베고 이용한 원숭이들의 화석이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1978년 이전까지 라마피테쿠스(Ramapithecus)라고 알려진 화석은 단편적인 이빨과 턱조각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 뼈조각들은 인간 턱뼈와 유사한 부분처럼 보이도록 리키(Louis Leakey)에 의하여 서로 모순되게 결합시킨 것으로 현재 밝혀졌다. 라마피테쿠스는 완전한 원숭이였다. 오스트랄로피테신(Australopithecines)의 면밀한 컴퓨터 연구분석은 결론적으로 그것들이 인류와 원숭이 사이의 중간단계가 아님을 보여 준다. 오스트랄로피테신은 리키부부(Louis and Mary Leakey)에 의하여 조작되어진 유명한 것이고, 실제로 이것은 인간과 원숭이로부터 완벽히 구별된다. 오스트랄로피테신의 한 형태인 루시(Lucy)는 인간처럼 직립으로 보행한 최초의 인류로 믿어져 왔던 것이다. 최근의 루시(Lucy)의 완벽한 해부학적 연구 결과는 그것이 여성의 무릎관절부가 아님을 설명하고 있고, 이것이 전혀 있을 수 없는 것임을 보여 준다. 약 100년 동안 세계는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 Man)이 직립하였고 원숭이와 유사하다고 믿어왔다. 최근의 연구결과로 네안데르탈인이 관절염과 구루병을 앓는 불구자였음이 알려졌다. 네안데르탈인, 하이델베르그인과 크로마농인은 완전한 사람이었다. 예술가에 의한 그들의 신체의 묘사 그림은 완전히 상상일 뿐이며, 증거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연대계산은 의심할 여지가 있다.

19. 상세한 화석의 연한 육질부의 관찰에 의하면 세상의 많은 화석들이 그들의 분해되기 전에 매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석탄기(Carboniferous), 중생대(Mesozoic), 신생대(Cenozoic)층에서 압착된 상태의 화석과 다지층(Polystrate) 화석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러한 퇴적물이 순식간에 매몰되었음을 알려 준다. - 이것은 수억 년 동안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다지층 화석은 2개 이상의 지층에 포함된 화석).

20. 현대인의 것과 동일한 다량의 뼈가 진화론으로 예견하였던 것보다도 수백 만년 이상 되었다는 암석층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많은 증거들을 진화론자들은 묵살하여 왔다.

21. 화석의 수직적 배열이 진화론적 법칙을 인정하는 자료는 아니다.

22. 진화가 일어났었다면 화석 기록은 연속적이어야 하고 동일 과정을 거쳤음을 저층부터 맨 윗층까지 배열하고 모든 생물 형태를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결과는 그와 반대로 나타난다. 해파리, 해충, 달팽이류, 산호초, 삼엽충, 해면체, 연체류, 완족류(腕足類)등 다양한 종류가 다세포 생물과 함께 최 아래층에서 갑자기 출현한다. 그러므로 많은 간격과 불연속성이 전 지층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고, 어떠한 화석 형태도 원생동물과 무척추동물, 무척추동물과 척추동물, 어류과 양서류, 양서류와 파충류, 파충류와 포유류, 파충류와 조류, 영장류와 다른 포유류를 잇는 연결고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수많은 화석들은 이러한 간격이 존재함이 사실임을 결론지어 왔다 간격은 결코 메워질 수 없다. 화석의 기록은 진화를 부정한다. 실제로 수많은 화석을 포함하는 방대한 첨전물들이 유수(流水)에 의하여 침전되었다. 방대한 화석 기록은 홍수에 의하여 순식간에 사멸되고 매몰된 동식물의 증거를 보여준다. 이것은 장기간 균일하게 변화되었음을 부정한다.

 

III. 새로운 연구결과에 따르면, 생명체는 수억 년 동안에 걸쳐 우연히 생겼다고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요구체 임을 증거한다.

25. 진화론에서 추정하듯 초기의 지구가 대기에 산소를 포함했다면, 생활에 필요한 화학 성분은 산소에 의하여 제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산소가 없었다면 오존이 없었을 것이고, 오존이 없이는 모든 생명체가 태양의 자외선에 의하여 쉽게 파괴되었을 것이다.

26. 한 개의 단백질이 가상적인 초기 지구의 대기 하에서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는가 설명하려는 불가능한 시도에 상상력이 동원되어 왔다. 지구 암석의 화학은 이러한 대기는 전혀 실재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무엇보다도 필연적인 화학반응은 진화에 의하여 주장하는 것과 반대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지구의 열, 하전(荷電), 태양 방사선이 어떻든 간에 각 개의 유명한 에너지원은 단백질이 형성될 수 있었을 기간보다 수 천만 배 빠른 속도로 파괴되었을 것이다.

27.  실제 이러한 주장들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단백질이 우연히 발생하였다 해도 그것이 피막 형성, 자기 복제, 생세포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 단백질의 가상적 자연 상태와 최초의 살아 있는 세포에 관한 안정된 상태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어떠한 과학자도 이러한 복합물질 내에서 환상적 비약이 일어날 수 있다고 실험적 제안을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28. 정말 생명이 궁극적인 우연한 결과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신이 현재 생각하는 것도 단지 우연의 결과이고, 그러므로 당신의 사고는 타당성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29. 컴퓨터 비교에 따르면 한 단백질은 모든 종류의 동물과 식물에 일반적인 아미노산 배열을 이룸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진화론의 추정을 완전 부정하고 있다.

30. 신체 각 세포에 포함된 유전 정보는 4000권 분량의 책을 지닌 도서관과 맞먹는다. 이러한 정보량을 통하여 돌연변이와 자연 도태가 있으려면 4000권의 책을 재출판하는 다음의 절차를 밟는 것과 유사하다.

(a) 주요한 구문의 재검토

(b) 잘못이 있는 구문을 재 활자화하여 부가된 문장을 삽입한다.

(c) 새로운 문장이 적절한 지 조사

(d) 유효하면 그것으로 재배치한다.

(e) 원래로 환원

4000권 분량의 서적을 축적한다는 것은 이러한 과정이 10의 3000 승의 동물 세대가 이어진 것보다도 훨씬 더 진행해야 하는 것과 같다.

31. DNA는 어떤 효소의 도움으로만 생산될 수 있다. 그러나 이 효소는 DNA의 지시에 의해서만 생산할 수 있다. 각 개의 것들이 다른 각개를 요구하듯 하나의 기원에 대한 완벽한 설명을 하려면, 동시에 다른 것의 기원을 설명하여야만 한다. 어떠한 증거도 이러한 것을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없다.

32. 비생명체에서 발견된 아미노산들은 화학적으로 두 가지 형태인데 하나는 D형(right-handed)이며, 또 하나는 L형(left-handed)이다 (광학적 이성질체). 그러나 식물, 동물, 박테리아, 곰팡이, 심지어 바이러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단백질 분자들은 오직 L-형태만으로 되어 있다. 한 개의 단백질 분자가 오직 L-형 아미노산만을 지니게 될 수학적 확률은 사실상 제로이다.

33. 가장 단순한 생명체는 약 600 여 개의 다른 단백질 분자들로 구성된다. 한 개의 분자가 적당한 아미노산들로 우연히 배열될 수 있는 수학적 확률은 1/10의 527승 보다도 훨씬 작다. (10의 527 승이라는 숫자의 크기는 얼마나 어마어마한지는 육안의 우주가 약 직경 10의 28 승 인치라고 알려져 있음으로 알 수 있다.)  

34. 전혀 다른 생활 양식을 지닌 생물이 서로 완전히 의존적인 실례가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무화과나무와 무화과 벌(Pig gall wasp), 유카나무와 pronuba 나방, 많은 기생생물과 그들의 원주인(hosts), 화분식물과 꿀벌 등이 있고, 심지어 꿀벌을 이루는 여왕벌, 일벌, 숫벌은 상호의존적이다. 만약 상호의존 하는 그룹의 한 일원이 먼저 진화한다면(예를 들어 꿀벌 일원중의 어느 하나, 혹은 동물과 공존하는 작물이 먼저 진화한다면) 상대편은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모든 집단의 일단이 유지된다는 사실은 그들이 반드시 동시에 존재하여 왔다는 것을 증거한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3/e31/e31c25.htm

출처 - 창조지, 제 15호 [1984. 11]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62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6022

한국창조과학회
2004-07-26

반창조론자의 근거없는 주장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진화론자라기 보다는 창조론을 극력 반대하는 반창조론자일 뿐이다. 불행히도 이들은 과학적 사실들을 검토해 보지도 않은 채 반대론 만을 주장하곤 한다. 이 소고는 반창조론자에 의한 이런 거짓 보도에 대한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의 답변을 인용 사실을 밝히는 바이다.

보도(반창조론자의 주장) : "William G. Mayer는 말하기를 창조론이 매우 성공적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선전효과를 많이 이용하며, 또한 전담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반면 진화론을 지지하기 위한 전담기관이나 지원받는 과학자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Science News, 1981. 1. 10. p.19)

사실 : 창조론을 지지하기 위해 전담으로 고용된 사람은 없다. ICR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에는 10 명의 과학자가 시간제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이들은 실제로 많은 다른 임무들이 있다. 한국창조과학회에도 300 여명의 회원 중 자연과학을 연구한 과학자가 107 명이 있으나, 이들은 모두 연구소나 대학에 직장을 두고 있다. 특히 임원 1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각기 전공분야에 권위자들로 소속 기관에서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많은 대학의 무수한 진화론자들은 실제 창조론자보다 실제 진화론을 가르치고 연구하는데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창조론자들이 지원을 많이 받는다고 했지만, 이 말을 한 Mayer 자신은 진화론에 근거한 BSCS 생물교재를 개발하는데 정부로부터 2천만불(약 140억원)의 지원을 받았다. 이에 비하면 정부지원면에서 비교할 수도 없으리 만큼 차이가 있다.

보도 : "창조모델은 진화론과 같이 과학적 타당성이 없다. 이 말은 창조론이 생명의 기원에 관해서 사실일 수 없다 라는 말은 아니다. 창조론은 사실일 수도 있다." (Today's Education, 1981.4∼5월 p.58)

사실 : 진화론자들이 '과학적' 이란 정의는 '기계론적인(mechanistic)' 혹은 '자연적인(naturalistic)'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잘못이다. '과학'이란 것은 '지(知)'를 의미하며, 과학적 방법의 필수요소는 관찰과 반복성이다. 대진화는 관찰될 수도 반복적 일 수도 없으므로 과학적일 수가 없다. 진화론자들이 창조론이 사실일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면, 또한 그들이 말한대도 학생들이 진리를 찾을 수 있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창조론을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은 당연하고도 필연적이다.

보도 : "창조론자는 그들의 주장을 표현하기 위해 과학적 용어를 사용하는데 재능을 보여왔다. 그러나 그들의 견해는 독단적인 기독교근본주의에 의한 것이고 비과학적이다." (The Science 1981.4. p.18)

사실 : 과학적 창조모델이 성서기록과 일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실제적인 과학적 자료와 창조모델이 일치하는지의 문제와는 무관하다. 모든 창조론자는 성서의 창조와 과학적 창조가 일치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공립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 것은 오직 과학적 창조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창조모델이 기독교를 지지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진화모델이 마르크스의 무신론이나 종교적 인본주의 혹은 자유신학을 지지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실은 창조론과 진화론이 둘 다 논의 될 수 있고 단순히 과학적 모델로 비교될 수 있다는 사실과는 무관한 것이다.

보도 : "만약 기독교의 세계관이 과학적으로 가르쳐 진다면 힌두교와 불교의 세계관도 과학적으로 가르쳐져야 되지 않겠는가?" (American School Board Journal, 1980.4. p.32)

사실 : 세계관에서는 오직 창조론과 진화론 두 가지 견해밖에 없다. 이것은 서로 큰 차이가 있다. 유교, 도교 이외의 모든 범신론적인 종교가 동일하듯이 힌두교와 불교의 세계관은 "저절로 생겨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진화론적인 세계관의 변형이다. 창조론자들은 성서의 창조기록을 공립학교에서 가르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일반적인 창조모델을 일반적인 진화모델에 다른 하나의 의미 있는 과학적 모델로 가르치길 원하는 것이다.

보도 : "창조론자들은 훌륭한 많은 과학자들이 지지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실제로 생물학자는 거의 없다. 창조론자들은 거의 자기 스스로 연구한 것이 없다." (Time, 1981.3.16. p.81)

사실 : 수 천명의 유명한 창조론자들이 있으며, 그들의 많은 수가 생물학을 하고 있다. Creation Research Society의 현재 임원과 과거 임원이었던 사람들의 반 이상이 생물학을 한 사람들이다. ICR과 직접 교유하고 있는 29명의 과학자중 17명이 생물학을 했다. 15명이 유명한 대학에서 생물학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나머지도 모두 최종학위는 생화학이나 의학 등 생물학에 연관된 분야이다. 독자적인 연구 면에서도 ICR은 전형적일 것이다. ICR의 전임교수인 10명의 과학자(H. Morris, Gish, Bliss, Barnes, Slusher, Parker, Cumming, J. Morris, Austin, Rybka)들은 적어도 150개의 논문을 정규과학잡지에 발표했으며, 10권의 책들을 유명한 출판사를 통해 출판해냈다. 그 뿐 아니라, 수 명의 창조론자들이 창조론에 관련된 50여권의 책과 기사를 썼다.

보도 : "기본적 전제, 기본적 독단은 성스런 창조주의 존재이다. 그들이 창조론을 가르치고자하는 학문의 자유로서의 장은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는 학문의 자유와 같다." (Discover, 1980.10. p.94)

사실 : 창조론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성서를 가르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성스런 창조자의 존재라는 독단은 진화론자들의 창조주가 없다는 가정과 신비한 세계의 기원으로 물질이 존재했다는 가정과 복잡한 조직의 무한한 배열의 가정에 비하면 훨씬 덜 독단적이다.

보도 : "ICR은 확실히 자금이 풍부하다. 이 자금이 그들의 주장을 출판과 로비활동으로 선전하는데 쓰인다. 그들은 정부의 각계에 활동을 벌이며 자금을 얻기 위해 미국회에 청구서를 제출해 왔다." (Geotimes, 1981.1 p.12)

사실 : ICR은 자금이 풍부하지 못하다. ICR은 다섯 분과가 있는데, 현재 전담으로 일하는 임원이 적어도 20 명이 있다. 이 많은 임원과 힘든 일들이 650,000 불로 운영되는데, 이 재정은 일반 대학의 생물학분과의 재정보다도 적은 액수이다. ICR은 결코 창조론을 위한 법적소송이나 입법활동을 벌이지 않았다. 우리는 교육과 설득이 강요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바람직하다는 것을 믿고 있다. ICR 임원들은 그런 입장에 있어서 증인이요 훌륭한 상담자로 수고하고 있다. 그런 이런 활동이 창조론에 관심있는 시의 단체에 의해 실시되고 자금이 모금되고 있는 줄 안다.

반창조론자들은 모든 논쟁에서 대진화에 대한 실제 과학적 증거를 가지고 토론하기를 회피한다. 만일 그들이 어떠한 증거라도 있다면 그들은 적극적으로 토론하고자 할 것이다. 대신 그들은 과장과 비난, 왜곡, 명예훼손 등에 억지 의지한다. 아직은 창조론과 진화론 논쟁에 관여하지 않은 많은 과학자들이 두 모델을 동시에 연구하는 것이 모든 과학적 탐구에 이익이 되리라는 것을 확실히 인지할 것이다.


출처 - 창조지, 제 5호 [1982. 3]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61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

고건
2004-07-26

타임(Time) 지가 강력히 비판한 진화론의 문제점들


     타임(Time) 지는 최근 세 차례 진화론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한 번은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또 한 번은 진화에 대해, 그리고 한 번은 인류의 조상에 대해 각각 표지를 장식하는 특집기사를 보도했다. Time 지는 세계 누구나 그 권위를 인정하는 시사주간지이다. 이러한 Time 지가 다윈의 진화론은 과학적 근거가 희박하고, 이제 폐기될 수밖에 없는 이론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아래에서는 이 세 기사를 중심으로 세계 유명 시사주간지에 조명된 진화론의 현주소를 소개하고자 한다.


(1) 1993. 10. 11 일자.

1993년 10월 11일자 Time 지의 표지기사는 '생명의 기원'이다. 1871년 다윈은 첫 생명체가 물 속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1953년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밀러(Miller)라는 대학원생이 유리관 속에 물, 암모니아 가스, 메탄 가스 등을 넣고 전기 스파크를 일 주일 동안 가해보니까, 소량의 아미노산이 검출되었다. (아미노산들은 다시 결합하여 단백질을 이룬다.) 이때 사람들은 '생명의 기원' 논쟁이 끝난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서둘러 떠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1963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중고등학교에서 기도와 예배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이 케네디 대통령은 그 일가가 계속적인 비극에 휩싸이는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1994년 스페인에서 개최된 '생명의 기원' 주제 세계학술대회에서 밀러 실험은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었다. 그 이유로는

첫째, 지구상 대기가 암모니아 가스 등으로 뒤덮인 적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현대 과학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생명체 내의 모든 단백질은 DNA/RNA 지령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므로, 밀러가 만든 방식의 아미노산은 생명체와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신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밝혀진 바에 의하면 DNA/RNA 자신이 생성되려면 다시 단백질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면 단백질을 만들라는 지령은 DNA/RNA가 내리는데, DNA/RNA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단백질은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이것은 마치 닭과 달걀과 같은 수수께끼이다.)

셋째, 최근 지구상에서 확인되는 모든 화석 층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종들이 다 한꺼번에 출현된다. (이 기사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다룬다) 마지막으로 첫 생명체는 단순한 아미노산이어서는 안 된다. 이 개체는 처음부터 '완전한 번식능력'을 가지고 생겨나야만 한다. 번식능력을 갖추지 않고 생겨난 생물체는 후세로 이어지지 않은 생물체이다. 번식능력이 없이 생겨나 자신 한 세대만 살다 가버린 생물체는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생물체이고, 우리와 관계가 있는 모든 생물체는 첫 세대부터 번식을 통해 우리에게까지 전달된 것들뿐이다. 그러니 생명체는 생겨난 첫 대부터 자신과 동일한 종을 재생산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처음부터 매우 정교한 생식기능, 유전자 등을 가지고 태어나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돌연변이도 적자생존도 시작될 수가 없다. 그런데 진화연습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어떻게 이러한 복잡하고 정교한 기능을 갖출 수 있는가?

첫 생명이 물과 번개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가설이 위와 같이 무너지자, 진화론자들은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여러 개의 새로운 가설들을 제안하고 있다.

첫 번째 주장은 바다 속 깊은 곳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첫 생명이 탄생되었다는 주장이다. 지상에서는 밀러 실험과 같은 환경이 갖추어진 일이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러한 환경이 있었을 법한 곳을 찾아 바다 속 화산을 지목한 것이다. 그곳은 화산 용암이 분출하면서 암모니아 가스 등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가설은 섭씨 120 도가 넘는 뜨거운 곳에서는 모든 생물이 다 죽는다는데 어떻게 거꾸로 생명체가 생겨날 수가 있는가라는 질문 등에 대해 잘 설명을 못하므로, 아직 과학적 정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바다 속 화산근처에 생명체가 있다면, 그것은 거기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거꾸로 주변에서 이민해간 것이라는 설이 더 유력하다. 

두 번째 주장은 유성 등이 대기 중으로 떨어지며 타들어 가는 순간 암모니아 가스 등이 발생되고 여기서 생명체가 탄생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연소 기간은 수 분밖에 안되어 너무나 짧고, 태어나야 할 생명체는 너무 복잡하여, 이 역시 설득력이 모자란다.

세 번째 주장은 외계의 생명체가 우주 먼지 등에 묻어 지구로 왔다는 주장이다. 외계에 생명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그곳에 안 가본 사람(?)은 반박해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생명체가 우주 먼지를 타고 지구로 이민해올 수 있는지 여부도 큰 의문이다. 지구까지 오려면 엄청나게 긴 세월 동안 엄청나게 비친화적인 환경 (온도, 유해 우주선 등)을 견뎌야 하는데, 그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문 투성이다. 물론 이것도 증명은 안된 것이다. 최근에는 화성 생물 탐사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쓰고 있고, 인터넷을 통해 외계로부터 전파를 받는다고 야단들이다. 화성의 생명체를 탐사하려고 엄청난 돈을 쓴다는 것은 곧 바꾸어 말하면 ”지구에서는 생명이 스스로 우연히 생길 수 없습니다”를 시인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Time 지는 오늘 현재 '생명의 기원' 에 대해서는 다만 서너 개의 설익은 주장만이 난립해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2) 1994. 3. 14 일자.

인류의 조상에 대해서는 Time 지가 1994년 3월 14일에 표지 기사로 실었다. 여기서는 그 기사 중 가장 중심  부분인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글을 소개한다. 네안데르탈인 화석을 처음 조사한 과학자는 불란서 사람 Boule이었다. Time 지에 의하면 그는 그 시대를 풍미하던 다윈의 진화론에 매우 부담을 느낀 것 같았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그는 네안데르탈인을 인류와 원숭이 사이의 연결고리라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Boule의 보고에 의하면 네안데르탈인은 (그 모양이 마치 현대인과 원숭이의 중간처럼 보여서)   

      ”발을 원숭이처럼 곧바로 펴지를 못했었다.     
      원숭이처럼 발로 물건을 쥘 수 있었다.  
      원숭이처럼 척추를 곧게 펴지 못했었다. 
      원숭이처럼 턱이 앞으로 나왔다”

라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1957년 미, 영 과학자들이 Boule이 조사했던 바로 그 화석을 재조사해 보니,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재조사에 의하면 네안데르탈인은

      발을 곧바로 폈었다. (Boule이 조사한 화석은 관절염 때문에 굽었었다) 
      발로 물건을 쥘 수 없었다. 
      척추는 곧바로 뻗었었다.

더욱 더 수상한 것은 네안데르탈인의 두뇌는 우리의 두뇌보다 더 컸는데, 이 중요한 사실을 Boule 은 보고서에서 일부러 누락시켰다는 것이다. 1957년 이후로도 계속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연구가 되면 될수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들은 완전한 다른 종임이 입증되고 있을 뿐이다. 1997년 12월 17일 CNN은 영국 과학자들이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조사해 본 결과, 네안데르탈인은 인류와 무관한 종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내 교과서는 오늘날까지도 네안데르탈인을 인류의 조상으로 고집하고 있다.

네안데르탈인뿐이 아니라, 1996년 6월 3일자 Time 지는 필트다운인(Piltdown Man)에 대해서도 기사를 내보내었다. Piltdown Man은 1912년 영국에서 발견되어, 한때 원숭이와 현대인 사이의 연결고리로 각광을 받았었다. 그러다가 1950년대에 그것이 가짜인 것으로 밝혀졌었다. 누군가가 사람의 두개골에 원숭이의 턱을 일부러 끼워 넣고, 그것을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페인트 칠을 하고, 줄칼로 밀은 사실이 정밀분석 결과 밝혀진 것이다. 1996년 Time 지는 그것이 누구 짓인지를 밝혀낸 것이다. 그는 바로 영국 박물관의 동물학부 책임자로 일하던 Hinton 라는 사람이었다. 그 증거로는 Hinton 씨가 생전에 소유하고 있던 여러 뼈들의 유전자를 조사해봄으로서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Time 지는 인류의 조상에 대한 특집을 마감하며, 이 분야를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는 주장은 사실 데이터에 입각한 과학적 주장이 아니라 한낱 상상에 불과하다."  이러한 결론은 진화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모욕이다. 또한 그것은 그들의 생업에도 큰 지장을 줄 수 있다. 과학이 아닌 상상따위로 알려지면 더 이상 연구비, 교수 승진 등을 기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Time 지 독자란에 아무런 항의도 없는 것을 보면, 이러한 모욕적인 기사에 대해 별달리 항의할 근거도 없는 것 같다.


(3) 1995. 12. 4 일자

1995년 12월 4일 Time 지는 화석과 진화에 대해 다루고 있다. 지구에서 발견되는 여러 가지 지층 중에 캄브리아기(Cambrian)는 매우 유명하다. 캄브리아기는 수 km의 화석층을 이루는데, 거기에서는 척추동물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생물 종들이 한꺼번에 다 발견된다. 캄브리아기 지층은 영국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다윈 시대에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래서 다윈에게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캄브리아기 층에서는 모든 생명체가 다 한꺼번에 어우러져 발견되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캄브리아기 밑 어딘가 진화를 증명하는 지층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이제 더 이상 설득력이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다윈 이후 130년간 지구의 지층을 조사해왔고, 이제는 그 조사가 다 끝났기 때문이다. 1987년 이후 그린랜드, 중국, 시베리아, 그리고 최근 나미비아까지 모든 지층이 보여주는 바에 의하면 전 세계 지층들은 동일한 시간대에, 동일하게 발전했음을 보여주고 있고, 또 캄브리아기 위로는 거의 모든 종들이 한꺼번에 갑자기 출현하지만, 캄브리아기 밑으로는 생물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여 주고 있다. 캄브리아기 밑으로는 아메리카, 아프리카, 호주 등이 대양을 사이에 두고 서로 멀어지며, 육지와 바다와 히말라야 산들이 형성되던 흔적과, 엄청난 화산,지진 등의 흔적과, 도저히 생명이 살수 없는 환경이였음을 알려줄 뿐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만일 캄브리아기의 생명체들이 진화해서 생긴 것이라면 그 진화에 소요된 기간은 아무리 길어야 500만 년~1000만 년 정도에 폭발적으로 빠르게 진화했어야만 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는 사실이다.

Time 지는 이러한 현상을 "생물학적 빅뱅(Biology Big Bang)" 또는 "초음속 진화"라고 부른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이 기사에서 취재대상이 된 하버드, MIT 교수들은 이러한 발견이 동료 생물교수들에게 매우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생물학자들은 모든 종이 500만 년에 다 진화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버드, MIT 교수들은 ”우리가 과거 추정하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종들이 생겨났습니다. 엄청나게 이상한 일입니다 ... 이 결과는 생물학자들이 불안해할 정도입니다.”  Time 지는 이 기사 끝 부분에서 ”다윈의 진화론은 이제 화석에 나타난 현상들을 더 이상 설명할 수가 없다. 다윈의 가설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진화론이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고 맺고 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창조론은 시인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Time 지는 생명의 기원 문제에 대한 다원과 밀러의 가설은 이제 완전히 폐기되었고, 새 이론은 검증된 것이 없으며, 현재 화성 등 외계에서 생명의 기원을 찾는 중이라는 말로 맺고 있다. 이는 곧 지구상에서는 생명체가 스스로 우연히 생겨날 수 없음을 시인하는 말이다. Time 지는 인류의 조상을 연구하는 분야는 과학이 아니라, 상상에 불과한 분야라고 결론 짖고 있다. 마지막으로 화석은 이제 거의 탐사가 끝난 상태이고, 그 결과는 다윈 진화론의 폐기라고 보도하고 있다. 즉 모든 생물 종들은 한꺼번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생물 종들이 진화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면, 그 진화 시기는 아무리 길어도 500-1000만 년이라고 적고 있었다. 그러므로 Time 지는 공공연히 다윈 진화론이 죽었음을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 차례의 도전적인 기사에 대해  진화론자들은 단 한번의 반론도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년간 과학은  실로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께 정면으로 도전하는 진화론은 단 한치의 진전도 없었다. 너무나 큰 대조이다.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Time 지의 보도 보다도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국내 언론들이 오늘도 UFO 같은 글들은 대문짝하게 다루면서도, 위에서 소개한 기사는 한 번도 제대로 다루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 모든 과학 섹션 기사들은 왜 이러한 중요한 보도를 외면하는가? 밀러가 실험 결과를 발표할 때,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했을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도 난리법석을 떨며, 하나님을 서둘러 떠나고, 헌법까지 고치고 했는데, 막상 그 진화론의  정정기사가 나가니, 이제  아무도 서둘러 이를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고, 서둘러 전하려 하는 사람도 없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과학이라는 이유로 하나님을 성급히 떠난 사람들이 왜 이제는 과학이라는 이유로 하나님 앞으로 성급히 되돌아오지 않는가? 왜 아무도 이 기사들을 보도조차 않는가? 그것은 아마도 과학이나 이성의 문제가 아니고, 죄의 본성 문제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Time 지는 매주 표지 기사마다 그 편집후기를 Time 지 맨 앞 쪽에 게재한다. 1994 3월 14일 Time 지에는 (인류의 조상을 표지 기사로 내보내었던 때이다.) 수석부사장이 표지 기사 편집 후기를 쓰고 있었다. 거기서 수석부사장은 그 기사를 취재했던 기자의 소감을 그대로 적고 있다. 

”인류의 조상을  취재했던 기자는 기자가 되기 전 테네시 고등학교에서 과학 선생님을 하셨습니다. 이제 그는 고등학교에서 가르쳤던 모든 진화론 내용이 엉터리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모든 학교도 마찬가지로 엉터리를 가르쳐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최근  몇 차례의 Time 지의 진화론 특집기사로 밝혀졌습니다. 이제  진화론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시던 분들은 그러한 생각을 바로 잡으시기 바랍니다.” 

진화론의 허구가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1998년 4월 27일 Time 지는 미국 중고등학교에서의 종교활동 상황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앞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언급하며 설명한 것과 같이, 1963년 미국은 학교에서 종교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그후 공립학교에서는 일체의 예배가 금지되어 왔다. 요즈음 미국 법정은 이 문제를 다시 다루기 시작하였고, 판결이 아직 나지도 않았는데, 공립학교 중 상당수가 이미 학교에서 기도와 예배를 부활 시켰다. 최근에는 십계명까지 다시 교실에 걸기 시작하였다. 98년 당시 Time 지가 통계 낸 바에 의하면, 미국 공립학교의 4분의 1이 이미 위와 같은 신앙활동을 부활 시켰다.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공립학교가 헌법에서 금지한 예배를 교정에서 부활 시켰다는 것은 -- 그것도 준법정신이 유달리 강한 미국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 최근 캔자스 주에서는 학교에서 진화론을 ”검증이 안된 가설로만 가르칠 것”, ”진화론을 사실로 입증된 것처럼 가르쳐서는 안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또 ”진화론은 일체 시험에 못 낸다”고 못박았고, 다른 주들에서도 비슷한 조치를 검토 중이다.

많은 사람들은 최근 미국 고등학교에서 계속적으로 총기 사고가 일어나는 근본 원인을 미국 교육현장에서 기독교 교육을 없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진화론의 가장 큰 문제는 "진화론은 우리 사회와 역사를 죄악으로 몰아간다”는 데에 있다. 당연한 결과이다. 필자는 최근 서점에서 추천하는 역사책을 읽은 적이 있다. 서점 점원은 청아출판사의 이야기세계사 라는 책을 추천해주었는데, 이 책은 서울대 역사학과 교수들을 위시하여 전 세계 유명한 역사학자들이 저술하고 감수한 역사서로서, 읽기 쉽도록 풀어서 쓴 책이었다. 그런데 그 책에서도 ”진화론은 우리 인류에게 말할 수 없는 죄를 짖게 한 장본인”이라는 결론을 큰 지면을 할애해서 적고 있다.

”서구인들은 다윈의 설을 빌려 제국주의, 인종차별, 민족주의, 군국주의를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시행할 수 있었다. 서구인들은 진화론의 적자생존 이론을 빌미로 우수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착취하고 말살시키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계율이라고 받아들였다. 패자는 당연히 멸절되야 한다는 것을 자연의 법칙으로 받아들였다. 진화론이 나온 후 갑자기 정복민족을 자처하는 민족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진화론이 나온 후, 갑자기 민족마다 민족주의, 민족우월성 고취운동을 경쟁적으로 벌이게 되었다. 영국은 세익스피어를, 독일은 괴테를 민족 우수성을 입증하는 도구로 부각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상부상조 정신은 말살되었고, 휴머니즘은 찾아볼 수 없는 덕성이 되었다. 사회적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을 변용하여 영토확장, 군비증대, 민족간 불신, 국가간 적대감을 악화시키는 일, 유태인 말살 등의 인종청소에 사용하며, 세계대전에까지 이르는 길을 예비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 모든 죄악의 주범으로 이 역사책은 진화론을 지목하고 있다. (336 쪽 이야기 세계사)

나는 최근 web에서 허블망원경으로 찍은 밤하늘 사진을 보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체험하였다. 밤 하늘에서 우리 눈으로는 1000 억개 이상의 별들을 볼 수 있는데 보기에는 한 개의 작은 점으로 밖에 안 보이는 그 별들이 막상 허블망원경으로 찍어보니 그 하나 하나가 다시 1000억개의 별들로 구성된 은하계로 나타나고 있다! 'Deep Space' 라는 이름이 붙은 이 허블망원경 사진은 (www.seds.org/hst/hst.html에 들어가면 누구나 그 jpeg 사진을  볼 수 있다.) 실로 우리 우주가 얼마나 광대한 가를 압도적으로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정반대로 나는 또 아주 가느다란 모기 다리를 보며 은혜를 받는다. 그 실보다 가는 모기 다리 속에 신경이 있고, 혈관이 있고, 양분과 산소를 결합하여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연소기관이 있고, 심줄과 같은 운동 기관이 있고, 연소후 나오는 노폐물을 몸 밖으로 걸러내는 기관이 있을테니 실로 신묘막측하다. 그 가는 다리로 모기는 (털이 수북하고 때로는 가파르기도 한) 우리 몸 위를 걸어 다니며 한번 넘어지는 일도 없이 잘도 다닌다. 어디 그뿐이랴,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절묘한 다리를 만들되 (그것을 손으로 조립하듯 만드는 것도 어려운데) 그것을 일일이 DNA/RNA 로 설계하고 제작하셨으니, 참으로 모기 다리는 상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경이로운 작품일 수밖에 없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나, 눈을 내려 땅을 보나, 이 세상은 실로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만한 증거로 가득찬 곳이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 1:19-20) 아멘.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진화론의 주장에 있는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J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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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조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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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철
2004-07-26

창조냐 진화냐


     생명의 기원에 대하여는 크게 진화론과 창조론의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진화론은 오랜 시간의 역사 속에서 원소들이 우연히 결합하여 단세포 생물이 되고, 이것이 진화하여 현재의 다양한 생명체들이 나왔다는 것이며, 창조론은 창조주에 의해 - 그 지혜와 설계에 의해 처음부터 다양한 생물들이 종류별로 단시간동안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견해를 비교해보기 위해 먼저 과학적 접근 방법을 생각해 보자.  과학이란 일반적으로 현상의 관찰, 원인에 대한 문제 제기, 가설의 설정, 실험을 통한 검증이라는 일련의 방법을 거쳐서 비로소 하나의 "과학적 법칙"이 성립되는 학문 체계이다. 그러나 기원의 문제는 그 첫 단계인 현상의 관찰이 불가능하고 실험을 통한 검증으로 사실 여부를 밝힐 수도 없다. 따라서 이 문제에 과학을 적용하려면, 이미 밝혀진 과학적 자료를 고찰하여 어느 것이 더 과학적 논리와 법칙에 타당하게 들어맞는지를 판별하거나, 제한된 실험을 통하여 기원 과정들을 단편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하여야 한다.

한 예로, 단세포로부터 고도의 복잡한 생물체로의 변천을 주장하는 진화론이 증명되려면 수많은 중간 단계의 생물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생물에서도, 발견된 화석에서도 그러한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화석은 현재와 똑같은 과거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인데, 이것은 진화론보다는, 생물이 처음부터 종류별로 창조되어 존재해 왔다는 창조론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게다가 말과 당나귀의 교배로 출생한 노새가 생식 능력이 없는 것이나, 초파리의 돌연변이 실험에서처럼, 아무리 다양한 돌연변이를 일으켜봐도 비정상적인 초파리만 나올 뿐 본래의 종을 뛰어넘는 새로운 생물이 탄생되지 않는다는 사실 등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물체의 변화는 환경에 적응하는 수준에서 그 종류 내에서만 이루어질 뿐, 다른 종으로의 변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편, 생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할 경우를 수학 확률적으로 계산해 보면 제로로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이에 대해 과학자 카프란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라는 잡지에서 "생명체 형성의 확률이 1/10^130이라고 한다면 생명은 생명을 주는 자, 즉 창조주 없이는 생겨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또한 이미 밝혀진 과학적 사실들이 오히려 자연발생 및 진화의 개념을 부정하고 있는 좋은 예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비과학적인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진화론을 고수하고 학생들과 어린이들에게 열심히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창조론과 진화론의 비교에 있어서 반드시 짚어보아야 하는 중요한 문제인데, 이를 위해서는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진화론을 고수하는 과학자들의 주장은 과학과 신앙이 별개의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 둘은 서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지고 완전히 대치되는 별개의 영역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과학은, 흔히 생각하듯, 철저히 가치 중립적이고 객관적 영역이 아니며, 그 시대 다수 혹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신념의 체계(세계관)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즉,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증기기관에 대한 이론과 연구가, 우주시대에는 천체물리학과 로켓엔진에 대한 실험이, 세계대전이 발발한 때에는 원자폭탄에 대한 과학자들의 밤샘연구와 그 실적들이, 에너지가 부족한 평화시기에는 같은 원자폭탄의 원리가 원자로의 개발을 위한 연구에 사용되고 연구되는 것이다.  

좀 더 관념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자신 속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사고 체계 위에서 자연계의 현상들을 해석하고 그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자연 현상들을 바라보면서 창조론자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것이며, 진화론자로 대변되는 무신론자들은 증명 불가능한 가설과 이론들을 만들어 내어서라도 우연과 오랜 시간에 의해 그것들이 형성되었음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이,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고 오히려 과학적인 반증들만 수없이 제시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계속 진화론을 주장하는 것 역시, 그들이 무신론의 테두리안에 있는 한 다른 대안을 생각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창조냐 진화냐 하는 문제가 단순한 과학적 사안이 아니라 신념이 작용하는 문제임을 이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과학 자체가 신앙에 비해 우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사람이 행해온 다른 일들도 그렇듯이, 과학도 장구한 세월에 걸쳐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현시점에 이르게 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학이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에 있는, 미완의 상태인 것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타당한 학자적 고백이 된다.  생명의 기원을 논하는 수많은 생물, 화학, 물리, 지구과학 관련 서적이 출판되고 무수히 개정되어 우리들의 도서관에 진열되어있다.  아마 전세계에 있는 이 책들을 다 모은다면 잠실운동장을 채울 분량이 될 것이다. 새로운 학설이나 이론이 발표되어 학자들간에 동의가 얻어지고 이것이 서적화 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이전에 알고있던 이론에서 오류를 발견하여서 수정할 필요가 생겼거나, 또 다른 하나는 이전에는 미쳐 알지 못하던 사실을 발견하고 그 기전을 설명하거나 같은 현상을 사람이 조절할 수 있는 상태, 즉 실험적으로 반복 재현한 것들인 것이다.  과학자들이 생명의 기원에 대해 연구하고 비판하고, 가설을 다듬어 온 과거 100여년간 이 작업은 무수히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계속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창세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3400년 전에 씌어 지고 그 이후 개정된 바가 없는 이론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은 과거 100여년간 만들어지고 계속적으로 수정된 여러 이론 (또는 가설)과 3400년 전 씌어지고 한 차례도 수정되지 않은 한 이론 사이의 논쟁이다.

과학에서는 가설 (한사람 또는 몇몇 과학자들의 주장으로 대변되는)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으며, 여러 차례 수정된 가설은 신뢰가 더욱 떨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하나의 현상을 놓고 대립된 여러 가설들이 대립된 상태에서 다시 개별적으로 수정되어 가는 과정을 반복한다면 그 가설 전체가 불신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실은 변화하지 않는 것이며 진리는 수정되거나 증명할 필요가 없는 단일한 것이어야 한다.  창세기는 3400년간 변화하지 않았으며, 여러 나라의 말로 각 나라의 언어학자들이 원어에 가장 가깝게 번역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인 가운데 번역되기는 하였지만 이 과정에서도 수정판이나 증보판이 발간되지 않은 하나의 생명기원이론을 담고 있다.  어느것을 진리로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의 제한된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서라도 말이다.

수세기전 철학과 과학이 함께 태동하고 발전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대 학문의 최고 분야로 자타가 공인하던 물리학 (physics), 그 물리학의 막강한 권위 앞에서도 그보다 더 낳은, 가시적인 증거를 통해 입증할 수 없는 어떠한 물리학, 물리학 위의 어떤 것이 있음을 과학철학자들은 인정하였다.  과학자들은 그것을 meta-physics (형이상학)라 부르기로 했다.  물리학 다음의 물리학, 물리학 위의 물리학인 것이다.  자연과학 위의 자연과학, 자연과학의 다음 세대에 오는 자연과학.  그것을 우리는 창조과학이라 부른다.  성경 로마서 3장 23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자연과학에 대한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해결 받고 과학자들이 거듭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며 천지를 조성하신 창조주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주신 세상 속에서 과학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창조주의 놀라운 지혜와 권능을 더욱 분명하게 보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시104:24)

 

출처 - 창조지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98

참고 :

신재헌
2004-07-26

유신론적 진화론에 대한 소고


<글의 순서> 

     I. 서론: 용어의 정의와 중요한 논점들

     II.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고찰

     III. 진화론의 철학적 함의들에 대한 고찰

     IV. 성경과 과학에 대한 유신론적 진화론의 입장 


I. 서론 : 용어의 정의와 중요한 논점들
 

진화론을 신앙안으로 수용하자는 주장 ―유신론적 진화론― 이 최근 기독인들 중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바 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특별히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고찰과 유신론적 진화론에 대한 신학적·성경해석학적 고찰을 통하여 진화론과 유신론적 진화론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근본주의적 창조과학과의 비교를 통하여 성경과 과학의 올바른 관계정립에 대한 도전을 주고자 한다. 앞으로의 논리전개를 위하여 진화론과 창조론에 관련된 용어들을 간략히 정의 하면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생물학에서 말하는 '진화'는 소진화와 대진화를 모두 포괄하는 용어이고, '진화론'은 진화의 메커니즘을 다루는 과학 이론이다. '소진화'란 보통 어떤 종(species)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과 종분화(speciation) 과정을 수반하는 작은 변화를 의미한다 [1,2]. '종분화'란 어떤 종이 지리적 격리 등과 같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어미종(원래 종)과 상호 교배할 수 없을 만큼 생식적으로 격리된 새로운 종을 형성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3]. (종분화의 정의는 종의 정의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예를 들면 유전적으로는 교배가 가능하지만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절대로 교배하려고 하지 않는 두 생물군을 같은 종으로 볼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견차이가 있다.) '대진화'란 현재 생물계의 모든 분류군들이 오랜 시간동안 소진화 즉 종분화와 같은 미세한 과정의 축적에 의하여 최초 (무생물의) 형태로부터 유래했음을 의미하는 (가설적) 과정이다 [1,2,4]. 많은 진화론자들은 종분화 자체를 대진화로 여기면서 종분화에 대한 증거들을 가지고 대진화가 과학적 사실이라고 말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는데, 애석하게도 창조/진화 논쟁의 격렬한 싸움들은 이와 같이 진화에 관련된 용어들의 정의를 엄격하게 사용하지 않는데서 대부분 비롯된다 [5]. '유신론적 진화론'이란 창조적 진화론이라고도 하는데 진화를 하나님의 창조의 방법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즉, 하나님이 태초에 시공과 물질 그리고 자연법칙을 창조하셨고 그 이후에는 부여하신 자연법칙 하에서 자연적인 과정으로 우주를 형성시키셨고 생물들을 진화시키셨다는 것이다 [6,7,8]. 온건한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최초 생명체의 발생과 인간 영혼의 창조 등 일어나기가 매우 어려운 몇 가지 것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특별히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셔서 직접 창조하셨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생물의 기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이 많아지는 기준으로 몇 가지 기원론들을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무신론적 진화론 → 이신론적 진화론 → 유신론적 진화론 → 점진적 창조론 → 순간(명령)적 창조론  

여기서, '이신론(理神論)적 진화론'이란 태초에 빅뱅을 시작시킨 원인이 초자연적 존재냐 아니냐 라는 점에서만 무신론적 진화론과 틀리고 나머지는 무신론적 진화론과 같다 [9]. 이러한 이신론적 진화론은 우주와 생명의 발전에 있어서 어떠한 신적 목적이나 계획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므로 전적으로 비기독교적 견해이다. '점진적 창조론'은 하나님께서 생물들을 매우 긴 지질학적 시간동안 단계적으로 창조하셨는데 각 창조의 사이사이에는 소진화를 사용하셔서 종들을 다양하게 하셨다 라는 것으로 지질학적 발견들을 성경과 조화시키면서도 대진화는 인정하지 않는다 [10,11]. '순간(명령)적 창조론'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인 행위를 통하여 사실상 거의 즉각적으로 모든 생물들을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으며 그 생물들이 원래의 종류에서 크게 벗어남 없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라는 것으로 [9], 홍수격변설과 함께 창조과학의 이름으로 활발히 주장되고 있는 창조론이다. 점진적 창조론과 순간적 창조론은 창세기 1장에 나와 있는 '종류대로의 창조'를 지지하는데, 이 때의 '종류'는 현재 생물분류학에서 가장 작은 단위로 취급하는 '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속(genus)'이나 '과(family)'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근본주의적 창조과학자들은 창세기에 나오는 종류라는 단어를 종에 가까운 의미로 해석하면서 종분화까지도 부인하려는 경향이 강하지만 좀 더 온건한 창조론자들은 종분화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5]. (앞으로 특별한 수식어 없이 그냥 '창조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점진적 창조론과 순간적 창조론을 함께 의미하는 것으로 하겠다.)


II.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고찰
 

과연 대진화를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과연 모든 생명체가 무생물로부터 발생되어 어떤 자연적인 과정을 거쳐 현재의 복잡한 형태로까지 되었다는 주장을 사실의 차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본 장에서는 이러한 질문을 다루고자 한다. 과연 과학으로서의 진화론은 어떠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가? 

첫째, 진화론자들은 소진화의 사실성이라는 측면을 연장해서 그대로 대진화에 부여하는 우를 범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소진화는 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종 내에서의 다양한 변이로부터 어미 종으로부터 딸 종으로 분화하는 종분화 현상까지를 포함하는 말이다. 식물의 경우 종분화는 관찰 가능한 과학적 사실이다. 동물의 경우에도 비록 직접 관측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16종의 갈라파고스 핀치새"라든가 "수백 종의 하와이 초파리" 등과 같이 종분화를 지지하는 몇 가지 '상황 증거'들이 있는데, 그 증거들은 ―물론 '종류' 내에서의 다양한 변이라는 창조론적 해석도 가능하지만― 일단 종분화를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는 된다 [12]. 신다윈 종합설에 의하면 이러한 종분화의 메커니즘을 구성하는 것은 '자연선택', '유전적 (돌연)변이', 그리고 '지리적 격리'이다.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많은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종분화 현상을 그대로 대진화로 여기면서 대진화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으며 실제로 일어났었다고 믿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기독인) 학자들은 소진화의 사실성이라는 측면을 연장해서 그대로 대진화에 부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13-17]. 금붕어와 지네의 차이나 낙지와 꿀벌과의 차이와 비교해 볼 때, 하와이 초파리의 종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너무나 미소하다 [17]. 그러한 미소한 형질의 변화가 쌓이고 쌓여서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형태의 기관"을 만들어낸다는 진화론적 설명은 실제적 증거가 아닌 가설과 유비를 근거로 한 추론에 불과한 것이다 [13]. 비록 우연한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 소진화의 메커니즘은 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매우 다른 형태의 새로운 기관을 만들어내는 대진화의 메커니즘으로써 역시 동일하게 사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마이클 덴튼(M. Denton)은 이러한 상황을 '날씨 변화'와 '계절 변화'에 비유하는데, 매일 매일의 날씨 변화를 설명하는 고기압이나 저기압과 같은 현상을 가지고 계절 변화와 같이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변화를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17]. 

종분화가 대진화의 메커니즘이 될 수 없다는 또 하나의 논증은, 종분화 과정이 유전정보가 새로 생성되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잃는' 과정이라는 주장에 기초한다 [18]. 새로운 기관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그 기관의 특성을 규정하는 유전정보들이 새롭게 생성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파충류가 진화해서 조류가 되기 위해서는 존재하지 않던 날개가 생겨야 될 뿐만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던 허파나 심장 같은 여러 기관들도 그 형태가 엄청나게 변화해야 하는데 [19], 이러한 과정이 실제로 일어나려면 새로운 기관의 특성을 규정하는 기능적 정보들이 하나 둘 생성되어 기존의 유전정보에 첨가되거나 아니면 기존의 것을 대체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종분화 과정은 특정 유전정보를 잃음으로써 어미종으로부터 분리되어져 가는 현상이므로 이와같은 대진화적 변화의 근거로 제시되기가 힘들다 [18]. 

최근에 필자는 만약 대진화가 사실이라면 오늘날의 새들이 점점 진화해서 나중에는 우주를 날라다니는 새들도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과연 새가 수 억년 (또는 수 십 억년) 뒤에 우주를 날라다니는 생물로 진화될 수 있을까? 혹자는 허황된 소리라고 웃을지 모르겠지만 대진화를 사실로 믿는 사람들은 그런 일이 먼 훗날 발생할 지도 모른다고 분명히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화론의 가능성에 너무나 심취된 나머지, 진화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식의 어떤 '신앙'적 형태로 진화론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1960년 줄리안 헉슬리(J. Huxley)는 다윈 100주년 기념식에서 "생명의 진화는 이제 더 이상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이며 우리의 모든 생각의 근거이다... 우리는 의미론과 정의라는 수렁에 빠져서 꼼짝 못하게 되기를 원치 않는다..." 라는 식의 교조적 발언을 했다 [13]. 반면, 그 바로 전 해인 1959년 독일의 동물학자 베른하르 렌쉬(B. Rensch)는 대진화는 소진화 과정을 연장해서 설명할 수 없으며 현재 알려진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서도 설명할 수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당시 지도적 생물학자들의 리스트를 제시하였다 [20]. 이러한 의견 차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진화론의 두 번째 문제점은 진화계통수상의 가상적 공통 조상들과 전이 형태의 생물들이 화석 상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만약 대진화가 사실이라면 원시 단세포 생물과 현재의 복잡한 생물들 사이에 있을 법한 수많은 '공통 조상' 또는 '전이 형태'의 화석이 존재해야만 한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오히려 전이적 형태의 부재가 더 일반적인 법칙임을 보여주고 있다 [21, 22]. 거의 모든 주요 무척추동물 문들의 대표들이 어떤 전이 형태 없이 갑자기 등장한 소위 '캄브리아기 폭발'이나, 대부분의 '피자식물' 즉 꽃식물들이 이들이 속하고 있는 군의 분류 형질을 그대로 갖고 특수화 된 채 백악기에 돌연히 출현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출현초부터 고도로 특수화 되어 있고 서로가 고립된 분류군으로서 돌연히 출현하고 있는 '어류군' 등은 아직도 해석이 안되는 골칫거리로 남아 있고 [21, 22], 이 외에도 화석상의 수많은 의문점들이 점진주의적 다윈 진화론의 문제점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현재 주류 기독인 생물학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리처드 라이트(R. T. Wright) 교수는, "화석은 진화에 대한 단 하나의 진실한 역사적 증거이지만 이는 점진적 다윈주의자들이 제안한 계속적 변화이기보다는 불연속적 기록이다. 즉, 전이적 형태들보다는 공백이 더 많은데 이는 대량 멸종이 발생하며, 새롭고 복잡한 것들이 화석 유물에 아주 갑자기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형태들은 감지할 만한 변화 없이 수백 만년 동안 존재한다... 즉, 진화론의 경우 문제점은 화석 증거의 부족 ―전이적인 형태의 부재― 에 주로 기인하며.."라고 말한다 [21]. 

이외에도 대진화의 가설적 추론적 성격을 보여주는 몇 가지 논점들이 더 있지만 그것들을 다 살펴보는 것은 본 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므로 생략하고자 한다. 본 장에서는 마지막으로 최근 몇몇 주도적 신학자, 과학자, 과학철학자 등 여러 분야의 기독인 학자들에 의하여 활발히 주장되고 있는 '지적설계가설' (intelligent design hypothesis, ID)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ID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발견된 많은 생물학적 지식들이 생물이 진화에 의해 탄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성적 설계에 의하여 탄생한 것임을 증거해준다고 말한다 [23]. 이것은 세포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물학적 기작들이 '환원'될 수 없을 정도의 복잡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생명현상이 자연적으로 탄생했다고 믿는 것 보다는 어떤 설계자에 의해 의도된 것이라고 믿는 것이 훨씬 더 '과학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모래 사장에 쓰여진 어떤 글자를 볼 때 그것이 오랜 세월에 걸쳐 파도와 바람에 의해 저절로 생성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누군가가 그 글자를 썼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생각이듯이, 그리고 과학자들이 외계에서 오는 메시지를 찾기 위해 그렇게 애쓰는 것도 그러한 메시지가 자연적으로 날라온 것이 아니라 어떤 외계의 지성적 존재가 보내 준 것이라는 지극히 정당한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듯이, 복잡하고 정교한 생명현상을 보면서 지성적 존재에 의한 설계를 추론해 내는 것이 결코 '비과학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24]. 이러한 논의는 다분히 과학철학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차후에 좀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행해질 것이라고 기대된다. 



III. 진화론의 철학적 함의들에 대한 고찰
 

"진화론은 과연 기독교 유신론과 배치되는가?" 이러한 질문은 유신론적 진화론 논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주제일 것이다. 만약, 진화라는 단어를 "무목적적이고도 우연한 과정에 의하여 모든 생명체가 탄생한 것"이라는 식의 의미로만 사용한다면,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 "Yes!"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인으로서 유신론적 진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목적'과 '우연'이라는 철학적 함의들을 진화론으로부터 제거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오히려 무신론적 진화론자들로부터 공격받는 빌미가 되고 마는데 그들은 유신론적 진화론이 우연이라는 과정에 신의 손길을 가정함으로써 진화론 자체를 무너뜨린다고 생각한다. 즉, "자연적인 메커니즘만으로도 충분히 진화가 일어나는데 왜 거기다가 신의 의지를 집어넣는냐"라고 비난하는 것이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의 반응이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또한, 창조론자들로부터도 비난을 받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를 인정한다면 왜 가설적인 진화론에 집착하느냐?"라는 식으로 유신론적 진화론을 몰아부친다. 양측으로부터의 호의적인 반응을 기대했던 유신론적 진화론은 도리어 양측으로부터의 공격에 부딪치고 있는 셈이다. 진화론의 철학적 함의들에 대한 고찰은 바로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이 있다. 

먼저, 과연 진화론은 무신론인가? 라고 질문해 볼 수 있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당연히 "No!" 라는 대답을 함으로써 진화론을 기독교적으로 수용하는 첫 번째 이유로 삼는다. 물론 이 질문의 답은 당연히 "No" 이다. 왜냐하면 서론에서 다루었듯이 진화론은 생물 현상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의 몇몇 부류는 이 질문에 '예' 라고 대답한다 [25]. 역시 서론에서 다루었듯이 이러한 불일치는 바로 용어의 정의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예' 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진화론과 '진화주의'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진화주의'는 세계관 차원으로 끌어올려진 진화론을 의미하는데, 자연적인 과정인 진화만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의 모든 생물과 우주의 발달에 유일한 원인이 된다는 '믿음'이다 [26]. 이러한 진화주의는 현재 '자연주의 세계관' ―보이는 물질만이 실체의 전부라고 믿는 세계관― 과 함께 무신론을 대표하고 있다. 무신론자들이 다윈식 진화론을 환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이 모든 기원의 문제를 단순한 자연적인 메커니즘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신다윈 종합설의 대가인 마이어(E. Mayr)도, "살아 있는 자연의 모든 현상에 대해 순수하게 유물론적인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자연도태가 '하나님을 폐위시켰다'고 거론되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27]. 결론적으로 말하면, 과학으로서의 진화론은 무신론이 아니지만 무신론적 세계관에 이론적 기틀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무신론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진화론을 받아들인다는 것과 그 사람이 무신론자라고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진화론이 함의하고 있는 '우연' 또는 '무목적성'은 기독교적 창조관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면서 통상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이신론적 진화론에 가까운 답변을 하는 부류인데, 하나님이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최초의 생명체를 창조하실 때 진화에 의한 최종 산물을 미리 염두에 두시고 모든 '초기조건'을 정교하게 잡아주셨다는 것이다 [28]. 즉, 오늘날의 모든 생물체는 하나님의 개입없이 진화를 해왔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오늘날의 생태계가 이룩되었기 때문에 기독교적 창조관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두 번째 부류는 점진적 창조론에 가까운 답변을 하는 부류인데, 양자역학적 함의를 도입하여 진화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 자체에 신적 행위가 개입될 수 있다 라고 말한다 [29]. 이것은 진화의 밑바탕에 있는 유전적 돌연변이가 '불확정'적인 양자적 사건에 의해 발생하고 있고, 이 불확정성은 하나님에 의해 양자세계에 부여된 본질적인 법칙이므로 하나님께서 자연법칙을 깨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의지대로 진화를 이끌어 갈 수 있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29]. 즉, '우연'이라는 양자적 자연법칙 안에서 하나님은 얼마든지 진화 과정을 조정하실 수 있으므로 기독교적 창조관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부류의 대답은 어떤 경우이든지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두번째 질문을 무사히 통과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일단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에 의한 계획과 의지를 인정한다면, 더 이상 무작위적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해 초기의 단세포 형태로부터 지금의 다양한 생물계를 이루었다 라는 가설적 설명 ―대진화적 설명― 을 수용할 필연성이 없어진다. 우리에게는 수백 만 번의 변이 없이 각 생물을 그 종류대로 즉각적으로 만드실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6]. 

세 번째로 던질 수 있는 질문은, 과연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가 사랑이신 하나님의 창조의 방법으로 합당한가? 하는 것이다. 비록 유전적 변이에 하나님이 개입하신다 하더라도 자연선택이 제 기능을 하려면 결국 수많은 변이 형태의 생물들이 생겨나야만 한다. 그러므로, 수많은 변이적 생명체들은 주어진 환경에 가장 적절하게 적응될 후손 ―하나님이 의도하신 생물― 이 등장하기까지 적자생존과 경쟁이라는 지극히 잔인한 메커니즘의 '희생물'로서의 가치밖에 없는 것이다 [30].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생물들을 보시고 기뻐하셨다. 모든 생물들이 정말로 수많은 변이체의 희생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면 그러한 것이 과연 보시기에 좋으셨을까? 이러한 논점에 대한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의 답변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사랑'이라든가 '잔인'이라든가 '가치'라든가 하는 개념은 인간적인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차피 지금도 그러한 적자생존이 생태계에 존재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첫 번째에 대해서는 비록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은 인간의 그것과는 다르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가치 기준과 감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성품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라고 반박할 수 있겠다. 두 번째에 대해서는 분명 지금의 생태계는 아담의 범죄 이후이고 하나님의 창조는 그 이전이므로 그 둘을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반박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자연선택 또는 적자생존에 의한 창조라는 개념은 기독교적 창조관과 매끈하게 조화되기 힘든 부분이라고 판단된다.


IV. 성경과 과학에 대한 유신론적 진화론의 입장
 

"유신론적 진화론은 성경과 과학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유신론적 진화론은 창세기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는가?" 등과 같은 질문은 유신론적 진화론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논점이 된다. 이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성경의 영감성에 대하여, 성경해석에 대하여, 그리고 과학의 한계와 성경의 한계에 대하여 깊이있는 연구와 이해를 필요로 한다 [31]. 본 장에서는, 성경해석에 있어서 그리고 성경과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유신론적 진화론이 가지는 문제점들을 살펴보고, 근본주의적 창조과학과의 비교를 통하여 좀 더 나은 합일점을 향한 방향제시와 도전을 주고자 한다. 이러한 고찰은 비단 창조/진화 문제에 대한 평가 뿐만 아니라 성경과 과학의 올바른 관계에 대한 모색에도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된다. 그럼, 성경해석에 있어서 그리고 성경과 과학의 관계정립에 있어서 유신론적 진화론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첫째, 유신론적 진화론은 창세기의 구절들을 단지 상징적으로 해석한다. 조직신학자 에릭슨(M. J. Erickson)은 '창세기의 처음 몇 장을 다룰 때에 유신론적 진화론이 사용하는 전략은 다음 두 가지 중 하나인데, 하나는 창세기가 생물과 인간 기원의 방식에 관하여 어떤 구체적인 사항도 말하고 있지 않다고 단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들이 다만 상징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9]. 이는 분명히 옳은 지적인데, 왜냐하면, 유신론적 진화론은 진화론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는 창세기의 구문들을 단지 상징적 또는 알레고리(풍유)적인 표현으로 치부해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담을 지은 '흙'이 어떤 선재하는 피조물을 상징한다거나, "번성하고 충만하라"가 다른 종류를 생산하라 라는 것을 상징한다거나 하는 것). 그러나, 이러한 상징적·알레고리적 해석과는 달리 개신교의 전통적 성경해석학에서는 문자적 해석을 가장 우선시한다 [32]. 여기서 '문자적'의 사전적 뜻은 "글이나 표현의 자연스럽고 당연한 구성과 의미를 따르는, 또는 단어의 일상적이고 명확한 의미를 따르는"이다 (Webster's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물론,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고 하는 것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언어의 수사학적 표현이나 상징들, 모형들, 혹은 알레고리를 간과한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32]. 중요한 것은, 문자적 접근은 다른 모든 문학서의 해석에 있어서도 통상적 관행이며, 문자적 해석이 본문을 이해하는 데 부적절하다고 판명 나지 않는 이상 상징적 또는 알레고리적 의미로 대치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2,33,34]. 

둘째, 유신론적 진화론은 성경과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분리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성경과 과학에 대한 분리주의(구분주의, compartmentalism)란 성경과 과학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고 주장하면서 [35], 성경으로부터 문자적·역사적 의미는 무시하고 도덕적·영적 의미만 추출하고자 하는 이원론적 태도이다. 리처드 라이트는 분리주의에 대하여, "창세기 초반부는 신화적으로, 혹은 우리에게 역사적인 참조점이나 자연계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결여된 신학적 진리를 가르치는 일련의 비유로 본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그 문제들을 아예 도외시함으로써 과학과 성서 사이의 갈등을 피하고 있다. 만일 진화론이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세계관으로 확장되지 않는다면, 분리주의자들에게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35]. 유신론적 진화론은 "창세기에 기술된 하나님의 창조 기사로부터는 창조의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알아낼 수 없다"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이는 결국 성경과 과학에 대한 분리주의적 태도에 매우 가까움을 시사하는 것이다. 물론 성경은 과학의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며 성경이 기술된 방식도 비이론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구절들을 신화적 서술로 격하시키거나, 아니면 엉뚱한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분명한 것은 비록 일상적인 용어를 사용한 비이론적 서술이지만 창세기에는 분명 창조의 방식이 기술되어 있으며 이와 함께 피조물들의 관계와 지위, 역할, 속성 등도 함께 나타나 있다. 유신론적 진화론의 문제점은 이러한 구절들의 문자적 의미 자체를 아예 포기한다는데 있다. 

성경해석에 대하여 그리고 성경과 과학의 관계에 대하여 유신론적 진화론이 취하는 입장은 근본주의적 창조과학이 취하는 입장과 정확히 반대이다. 근본주의적 창조과학의 문제점은 창세기의 구절들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해서 모든 과학을 평가하거나 제거하고자 한다는데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유신론적 진화론이나 근본주의적 창조과학이나 모두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의도와 역사적 배경이 무시된 채 비유적으로만 혹은 문자적으로만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성경과 과학의 관계에 있어서 과학이 성경의 해석을 좌지우지하게 해서는 안되듯이 마찬가지로 성경을 가지고 과학을 평가하거나 제거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중요한 점은, 어떤 과학이론이 성경의 구절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일때 어느 한쪽을 무시하기에 앞서서 성경과 과학을 각각의 올바른 방법론에 의해 평가하고자 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선행될 때에 모순처럼 보이던 부분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최소한 필자의 눈에는― 이러한 노력이 결여되어 있으며 이는 근본주의적 창조과학도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만약 이러한 노력들이 진지하게 전개된다면 양자는 분명 좀 더 나은 합일점에 도달하게 되리라고 본다. 성경은 어떤 책이며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그리고 성경과 과학은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좀 더 깊은 논의가 활성화되기를 소망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참고문헌> 

[1] R. T. Wright, 신앙의 눈으로 본 생물학 (권오식 역), p.125, IVP, 1995.

[2] C. E. Hummel, 과학과 성경 갈등인가 화해인가 (황영철 역), p.277, IVP, 1991.

[3] R. A. Wallace, et. al, 생물학 -생명의 과학- 3판 (이광웅 외 7인 역), pp.370-374, 을유문화사, 1993.

[4] M. Denton, 진화론과 과학 (임번삼 외 2인 역), p.99, 한국창조과학회, 1994.

[5] Del Ratzsch, The Battle of Beginnings, Ch. 4, 7, 10, 11, IVP, 1996.

[6] W. Grudem, 조직신학(상) (노진준 역), pp. 402-407, 은성출판사, 1997.

[7] M. J. Erickson, 복음주의 조직신학(상) (신경수 역), pp. 434-435,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5.

[8] M. J. Erickson, 복음주의 조직신학(중) (신경수 역), p. 46,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5.

[9] M. J. Erickson, 복음주의 조직신학(중), pp. 44-46.

[10] M. J. Erickson, 복음주의 조직신학(상), p. 435.

[11] M. J. Erickson, 복음주의 조직신학(중), p. 47.

[12] M. Denton, 진화론과 과학, pp. 93-98.

[13] C. E. Hummel, 과학과 성경 갈등인가 화해인가, pp. 277-278.

[14] Del Ratzsch, The Battle of Beginnings, p. 90.

[15] R. T. Wright, 신앙의 눈으로 본 생물학, pp. 125-126.

[16] P. E. Johnson, Darwin on Trial 2nd Ed., pp. 19-20, 68-69, IVP, 1993.

[17] M. Denton, 진화론과 과학, pp. 99-105.

[18] P. Davis, D. H. Kenyon, and C. B. Thaxton, Of Pandas and People, Haughton Publishing Co., Dallas, pp. 15-20, pp. 77-89, 1989.

[19] M. Denton, 진화론과 과학, pp. 223-238.

[20] B. Rensch, Evolution above the Species Level, Columbia Univ. Press, New York, p. 57, 1959. (M. Denton, 진화론과 과학, p. 99)

[21] R. T. Wright, 신앙의 눈으로 본 생물학, pp. 128-130.

[22] M. Denton, 진화론과 과학, Ch. 8.

[23] 지적설계이론에 대해서는 www.origin.org 와 www.discovery.org/crsc 등의 인터넷 사이트 참조 바람.

[24] J. Wells, Evolution and Intelligent Design, http://www.discovery.org/crsc/crscviews/wellsdesign.html

[25] Del Ratzsch, The Battle of Beginnings, pp. 181-185.

[26] R. T. Wright, 신앙의 눈으로 본 생물학, p. 132.

[27] R. T. Wright, 신앙의 눈으로 본 생물학, p. 122.

[28] Del Ratzsch, The Battle of Beginnings, p. 186.

[29] Del Ratzsch, The Battle of Beginnings, pp. 186-188.

[30] Del Ratzsch, The Battle of Beginnings, pp. 189-190.

[31] C. E. Hummel, 과학과 성경 갈등인가 화해인가, Ch. 8, 10.

[32] Bernard Ramm, 성경 해석학 2판 (정득실 역), pp. 167-176, 생명의 말씀사, 1996.

[33] C. E. Hummel, 과학과 성경 갈등인가 화해인가, pp. 197-202.

[34] Bernard Ramm, 성경 해석학 2판 (정득실 역), p. 158.

[35] R. T. Wright, 신앙의 눈으로 본 생물학, p. 93.

 

출처 - 창조지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96

참고 :

윤성호
2004-07-26

과학철학으로 바라본 창조, 진화 논쟁


Abstract

'과학'이라는 용어는 우리가 자주 사용하면서도 그 뜻을 정확이 모르고 사용하는 단어이다. 창조과학서도 진화론과 창조론을 비교하며 '과학'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그 의미가 매우 불만족스러운 때가 많다고 생각한다.  이로인해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을 비판함에 있어서 "당위적 연역법"에 근거할 때가 많고 인식론적(認識論的) 형평성을 잃을 때가 많다. 본 글에서는 과학철학의 내용을 중심으로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기존의 논의(-주로 창조론적 입장에서)에서 사용된 '과학'의 정의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고자 한다. 또한 여려형태의 과학철학 이론에 근거하여 창조, 진화문제를 새롭게 조명해보고자 한다.

 

1. 문제제기

    위의 (명제 1, 2)는 국내의 대부분의 창조론자들이 동의하고 주장하는 명제라고 생각한다.  가끔씩 (명제 3)을 주장하는 창조론자들도 있지만 현재의 추세는 (명제 3)까지 쉽게 주장하지는 않는다.

    위의 주장들이 공통적으로 함의(imply)하고 있는 주장은 "과학이란 증명가능하고 실험적으로 확실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 필자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살펴보기 위하여 대표적인 과학철학적 견해들 - 논리실증주의, 칼 포퍼와 반증주의, 토마스 쿤과 패러다임, 라카토슈와 연구 프로그램, 파이어아벤트와 아나키즘(anarchism) -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위의 명제들은 논리실증주의적 견해에 의존하는 것이고 이러한 견해는 오래전에 포기된 주장들이다.

 

2. 논리 실증적 입장에서의 과학

    즉 이론은 실험에 의해 확인되어져야 하고 다른 누구라도 다시 실험을 하며 재현되어야 하며 이렇게 해서 얻어진 과학적 지식은 객관적이고 확실하다는 것이다.

    논리실증주의의 주장들인 위의 세 주장은 1900년대 초반 학계의 과학에 대한 이론이며 현대의 일반인 및 대다수의 창조론자들의 '과학'의 개념에 대한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러한 위의 3가지 주장을 기반으로 한 과학에 대한 개념은 이미 깨진지 오래이다.

    위의 견해가 깨진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한가지를 한다면 '관찰의 이론의존성 (theory laden)'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가 어떠한 사실을 관찰할 때는 필연적으로 몇가지 이론들이 전제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행성 등의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물체의 운동을 관찰할 때는 만원경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이 때는 광학이론의 도움을 받게된다. 원자 등의 미시세계를 관찰할 때는 구름상자등의 실험적 도구를 받게된다. 만일 우리가 어떠한 이론적 도움을 받지 않고 단지 감각에 느껴지는 진술만을 한다면 "밤하늘의 달은 새끼 손톱만하다"라는 주장과 "태양이 지구를 돈다"라는 주장을 하게 될 것이다. 즉 어떠한 관찰도 이론적 바탕없이는 이루어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엄밀한 의미에서의 "객관적인 과학이론", 혹은 "객관적 증명"은 성립하지 않는다. 어떠한 관찰, 실험도 순수하게 객관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자세한 예는 생략한다. 이것은 기초적인 과학철학 입문서2)를 보면 수없이 많은 예가 나와있다.

    만일 논리실증주의의 견해를 따른다면 분명 "진화론은 과학이론이 아니다". 왜냐하면 실험적으로 재현할 수도 없고 정확한 의미의 증명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떠한 과학이론도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주장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포퍼의 주장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다.


3. 포퍼와 반증주의3)

    "어떠한 이론도 정확하게 증명될 수 없다"라는 것을 받아들인 포퍼는 "과학이론이란 반증가능성이 있는 이론이다"라고 하였으며 하나의 과학이론이 반증되었을 때 - 틀렸다고 판단했을 때 - 기존의 과학이론을 폐기처분하고 새로은 과학이론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즉 과학이론은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반증(falsify)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과학이론은 계속적으로 반증되며 보다 정확한 이론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는 'Britanica' 및 대부분의 사전적 정의 및 교과서적 정의로 이용된다.

    예를 들어보자. 가장 간단한 예로 열역학 1법칙, 2법칙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 두법칙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지 이것을 아직까지 반증할 수 없었기에 우리는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반증될 가능성은 있다. 그것은 '영구기관'을 만들어보이는 것이다. 두 번째 예로 뉴튼의 법칙을 들어보자. F= ma 로 표현되는 뉴튼의 이론은 증명된 이론인가? 천만에!! 그저 F= ma 라고 썼더니 많은 사물 현상들이 설명되었을 뿐이다. 게다가 현재와서 뉴튼의 이론을 적용하다 보니 반증사례가 나타났다. 수성의 궤도운동, 미시세계의 원자의 운동에 있어서는 뉴튼의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서는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등을 도입하여야 한다.

    여기서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비록 F= ma가 반증되었지만 '반증가능성'이 있었기에 과학이론으로 다루어야 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증가능성이 없는 이론으로는 "물체는 그 고향을 땅에 두고 있기 때문에 밑으로 떨어진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과 모든 현상을 '잠재의식'과 '성욕'으로 해석한 프로이드의 이론 등을 들 수 있다.

    포퍼의 '반증가능성'을 가지고 진화론의 과학여부를 따져보자. 진화론은 엄격한 의미에서 '반증'될 수 없기에 과학이론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다. 창조론은 어떤가? 창조론 또한 반증가능이 불가능하기에 과학이론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다. 여기서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종종 "창조는 과학적인 사실이다."라는 주장을 듣게 되는데 만일 어떠한 이론이 과학이론으로써의 자격을 갖는다면 언제든지 '반증'될 수 있어야
하며 폐기처분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4. 과학이론은 엄밀한 증명도 반증도 불가능하다.

    포퍼는 '반증가능성'을 가지고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였고 과학의 객관성을 지키고자 하였으나 그 시도는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 많은 철학자들에 의해서 '반증가능성'이란 개념이 비판받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과학 이론은 중심이론과 그 이론주변을 감싸고 있는 보조이론으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하나의 이론의 반증 예에 부딪치게 되면 그 주변의 보조가설을 수정함으로써 그 반증 예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첫 번째로 천동설과 지동설의 주장이 양립할 당시의 예로 티고브라헤라는 과학자는 지동설을 다음과 같이 반증하였다. "만일 지구가 돈다면 오늘 바라보는 별들의 위치와 내일 바라보는 별들의 위치가 연주시차에 의하여 달라 보일 것이다. 그런데 몇 일에 걸쳐 별의 위치를 확인하였더니 별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고로 지구는 돌지 않는다." 그러나 티코 브라헤는 별들과 지구와의 거리가 짧다라는 보조가설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실제로는 별들과 지구의 거리는 매우 크기에 눈으로 연주시차가 확인되지 않는다. 두 번째 예로 뉴튼의 이론이 발전할 당시 뉴튼의 이론은 천왕성의 운동을 설명하지 못하였고 이것은 당시의 뉴튼이론의 반증사례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누군가 천왕성 외부에 새로운 행성이 있다면 천왕성의 운동이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역으로 미지의 행성의 위치를 계산하여 만원경으로 확인하였더니 지금의 해왕성이 발견된 것이다. 이와같이 과학이론의 반증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엄밀한 의미에서의 과학이론의 증명도, 반증도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 현대의 과학철학은 토마스 쿤과 페이어 아벤트에 의하여 상대론적 결론으로 다가서게 된다.


5.  토마스 쿤과 파라다임4)

    이러한 주장들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 영향을 받은 사상이다. 60-70년대 이후 과학철학을 대표하는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에 의하면 과학이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며 변화하게 된다.

정상과학 → 이상 현상 → 위기 → 혁명 → 새로운 정상과학

    즉 어떠한 이론(이론 A)에 의하여 과학이론이 계속하여 발전하다가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나거나, 그 시대의 패러다임(paradigm)과 일치하지 않을 때 위기를 겪게 되고 이것을 대치할 만한 새시대의 패러다임에 일치하는 이론(이론 B)이 나오면 그 이론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혁명은 결코 누적적이거나 점진적인 변화가 아니라 혁명적이고 또 전혀 새로운 형태로의 발전이라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새로운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듯이 말이다. 또한 패러다임이란 그 시대의 과학자 사회가 공통적으로 가지는 가치관, 문화적 배경, 실험적 엄밀성의 정도 등 여러 가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요소로 구성되어진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뉴톤의 이론으로 뉴톤의 이론에서 아이슈타인의 이론으로의 발전은 축적적 연속적인 과정이 아니라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진 것이고 이것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쿤에 의하여 "한 이론이 과학적 이론인가, 아닌가?" 라는 문제라든지 "한 이론이 과학적 참인가 아니면 거짓인가?"라는 문제는 실험적 사실의 판별 여부 객관성에 있지 아니하고 다분히 과학자 사회의 동의여부에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창조론도 진화론도' 그의 주장에 의하면 과학의 범주 않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 진화론은 다수의 과학자가 승인하는 정상과학의 형태이고 창조론은 소수의 과학자가 받아들이는 이론인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최근의 학계의 경향 - 많은 생물학자들이 대진화의 과정을 찾아내는데 실패하고 점차로 증가하는 수의 과학자들이 여러 가지 형태의 창조론을 제시하는 경향 - 은 진화론에 위기현상이 오지 않았나하는 추측도 해본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혁명이 실제로 일어나고 하나의 이론이 새로운 이론으로 대치되었을 때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을 것이다.


6. 페이어 아벤트와 아나키즘 5)

    'Anythings goes(어떠한 것이든지 좋다.)'라고 대변되는 페이어 아벤트의 주장에 의하면 과학이론이란 정치활동, 신화와 근본적이 차이가 없으며 과학자들의 학회는 정치인들의 정당대회와 유사하다.  자신의 필요에 의해 데이타를 조작하고 소수의 사람이 신봉하는 이론적 바탕에서 쓴 논문을 거절하는 일을 할 뿐이다. 이러한 견해는 포스트 모더니즘, 해체주의, 반 이성주의 철학등과 함께 최근에 점차로 큰 힘을 얻어가는 추세인 것 같다.

    "그에게 진화론이 객관적 사실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이야기 할 것이다. "당연히 아니다! 그런데 도대체 객관적 사실이 있다고 믿는거야?"  페이어 아벤트의 철학에 있어서 과학에 있어서의 객관성,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단지 어떠한 이론이 더 실용적이고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지가 중요할 따름이다. 필자는 이러한 견해가 수십년 내에 일반인들에게 암묵적으로 들어올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신앙이 암암리에 실존주의적, 반이성주의적 철학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과 같이. 그러한 시대에서 현재의 방식으로 창조론을 변증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7. 라카토슈와 연구프로그램

    라카토슈의 논증은 과학이론에 대한 직접적인 증명 혹은 반증을 시도하려는 오류를 피하는 동시에 토마스 쿤과 페이어 아벤트와 같은 상대론적 결론도 피하기에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라카토슈에 의하면 어떠한 이론 B가 기존의 이론 A보다 더 많은 현상들을 설명하고 또한 새로운 현상을 예측한다면, 또한 그 내부적 정합체계가 일관적이라면 이론 B를 이론 A를 대신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즉 그에 의하면 한 이론의 절대적인 증명, 반증은 불가능하지만 이론간의 상호 우월성 여부, 이론의 점진성(혹은 퇴행성) 여부를 판별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만일 그의 이론에 의하여 창조론, 진화론을 판별해 본다면 두 이론 중 어떠한 이론을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어떠한 이론이 보다 많은 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고 또한 과학활동에 도움을 주는지에 대한 비교가 될 것이다. 단순히 진화론의 비일관성 - 예를 들면 진화의 과정에 대한 이론이 여러 가지가 된다는 등의 - 만을 지적하는 것으로는 부적합하다.  왜냐하면 어떠한 이론이든지 보조가설 등을 변화시킬 수 있고 자신의 이론을 새롭게 다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조로 (그림 1)은 토마스 쿤, 라카토슈, 페이어 아벤트 등의 견해를 단순하게 나타낸 것으로 기존의 이론 A가 새로운 이론 B로 변화할 때의 상황을 나타낸 것이다. 토마스 쿤에 의하면 두 이론은 공통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서로 설명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며 라카토슈에 의하면 새로운 이론은 기존의 이론이 설명한 체계를 포함하고 더 넓은 영역을 설명할 수 있고, 페이어 아벤트에 의하면 두 이론이 설명하는 영역, 방식은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이다.


8. 결론

    이상에서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고 그 후 '과학철학자' 들의 주장을 살펴보았다. 단순히 생각한 '과학'이라는 용어를 놓고 여러 가지의 정의가 가능함을 보았으며 최근의 논의에 의하면 과학과 비과학의 구분이 그리 쉽지 않은 것도 살펴보았다. 또한 과학적 이론에 대한 증명과 반증이 그리 쉽지 않은 것도 살펴보았으며 이를 배경으로 각 과학관을 기반으로 하여 창조, 진화 논쟁에 대해 살펴보았으며 명제 (1, 2 혹은 3)으로 표현되는 창조론적 변증에 대한 비판도 언급하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독교적인 관점에서의 '과학관'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단순한 진화론 비판을 넘어서서 '창조론적 대안'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에 관하여서는 앞으로 많은 토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End Notes

1) 윤성호 형제는 청년 창조과학 연구회 회원이며 포항공대 환경공학과 석사를 졸업했습니다.

2). 현대의 과학철학, 차머스 저, 서광사, 1994.

3). 과학적 발견의 논리, 칼 포퍼 저, 박우석 역, 고려원, 1994

4). 과학혁명의 구조, 토마스 쿤 저, 김명자 역, 동아출판사, 1992.

5). 방법에의 도전, 페이어 아벤트 저, 정병훈 역, 1987.

 

출처 - 창조지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93

참고 :

Encyclopedia
2004-07-26

양자택일 : 진화냐 창조냐? 

(Only Two Alternatives)


      무엇이 지구의 생명을 만들었는가? 어떻게 하늘의 별들이 만들어졌을까? 과학자들은 이것을 주의깊게 심사숙고하여 왔다. 그리고 우리에게 단지 두 가지 가능성만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진화되었거나, 창조되었다. 여기에 그들의 말들이 있다. 이것은 과학 대 진화이다. Creation-Evolution Encyclopedia은 당신에게 창조과학이 진실임을 알려줄 것이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만약 과학자들과 우리들중 몇몇이 어리석은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결정한다면, 유일한 선택은 창조론 뿐이다. 별들과, 행성과, 식물과, 동물과, 사람들이 스스로 생겨나지 않았다면, 유일한 대안은 신이 그들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유일한 대안(창조론)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 우스꽝스러운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진화론은 동물학자들에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론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화가 실제로 발생한다고 보여지거나……또는 논리적인 증거에 의해 입증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유일한 대안 즉 특별한 창조가 확실히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 *D.M.S. Watson, 'Adaptation,' in Nature, Vol. 123, p. 233 (1929).

사실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인간의 지성뒤에는 진화론적인 변화 아니면 초자연적인 신의 개입이 존재한다” - *S. Zuckerman, Functional Activities of Man, Monkeys and Apes (1933), p. 155. 

신이 모든 것을 창조했거나, 모든 것이 스스로 진화되어 만들어졌거나 이다.

”그러한 설명은 두 가지의 부류중 하나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다. 즉 특별한 창조 또는 진화이다. 이 두 가지 개념에는 다양한 혼합과 변형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두 개념을 완벽하게 제외하고 기원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 *Davis and *E. Solomon, The World of Biology (1974), p. 395.

이 양자택일의 해결을 반박할 수는 없으나, 경멸할 수는 있다.

”시대에 뒤지고 완전히 비평되며, 무식하고 독선적이고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창조론을 제외하고는 경쟁할만한 가설은 없다.” - *H. Newman, Outlines of General Zoology (1924), p. 407. 

생물과 무생물 어느 쪽을 보건대, 우리는 명확한 설계와 세심한 의도를 볼 수 있다. 오직 훌륭한 지적능력과 이해력을 가진 '지성적인 존재' 만이 이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과학의 사실들이 단순히 우연이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우리가 지구를 연구하면 할수록, 그것은 만들어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내가 지구에 대해 연구한 것은 나를 절대자를 믿는 사람으로 만들기에 부족하지 않았다……우리는 확실히 신이 만들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신의 작품들을 보아 왔다.”

”정직한 사색가들은, 만약 그들이 세밀히 살펴본다면, 놀랄만큼 복잡한 우리의 세계와 그 속의 생명들은 절대의 정신(Infallible Mind)만이 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다.” - *Paul Francis Kerr, quoted in F. Meldau, Why We Believe in Creation, Not Evolution, pp. 50-51. 

그밖에 다른 가능성은 없다. 생물들은 완벽히 발달한 상태로 이 지구에 나타났거나 혹은 그 반대이다.

”창조와 진화, 이들 사이에, 생물의 기원에 대한 가능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물들은 완벽히 발달한 상태로 이 지구에 나타났거나 또는 그 반대이다. 만약 생물들이 발달되지 않은 상태로 출현하였다면, 그들은 계속 발달되어야만 하며, 또는 아닐 수도 있다. 만약 아니라면, 그들은 몇몇 변형과정에 의해 이전부터 존재하던 종들로부터 발달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완벽히 발달한 상태로 나타났다면, 그들은 절대적 지성에 의하여 창조되었을 것이다.” - *D.J. Futuyma, Science on Trial (1983), p. 197. 

진화론은 과학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지지하는 사실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화라는 사실은 생물학의 중심이고, 생물학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입증되지 않은 이론에 기초를 둔 과학이라는 특이한 위치에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과학일까 믿음일까? 그러므로 진화론을 믿는 것은 창조론을 믿는 것과 완벽히 유사한 입장이다. 두 가지 다, 믿는 자들은 진실이라고 생각하나 현재까지 둘 다 증명될 수가 없는 개념인 것이다.” - *L.H. Matthews, 'Introduction' to The Origin of Species by Charles Darwin pp. x, xi (1971 edition). 

대안 이론인, 창조론은 이것을 지지하는 사실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보다 더 깊이 들어가서 유일하게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은 창조론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이 물리학자들에게 몹시 혐오된다는 사실을 안다. 정말로 나에게도 그러하다. 그러나 실험의 증거가 뒷받침해 줄 경우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이론이라도 거부해서는 안된다.” - *H. Lipson, 'A Physicist Looks at Evolution,' Physics Bulletin, 31 (1980), p. 138. 

이 두 가지는 절대로 서로 조화될 수 없다. 하나가 받아들여지면 두 번째 것은 거부된다, 혹은 두 번째 것이 받아들여진다면, 첫 번째 것은 거부된다. 그리고 진실은 오직 한 쪽에만 존재한다.

”창세기의 창조이야기와 진화론은 조화될 수 없다. 둘 중 한 가지가 옳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틀릴 것이다. 화석 이야기는 창세기의 이야기를 긍정한다. 가장 오래된 암석에서 우리는 가장 원시적인 생명체부터 발달된 모습으로 점진적인 변화를 보이는 일련된 화석들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가장 오래된 암석에서 발달된 종들이 갑자기 나타난다. 모든 종들 사이에 중간과정의 화석은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 *D.B. Gower [biochemist], 'Scientist Rejects Evolution,' Kentish Times, England, December 11, 1975, p. 4. 

창조된 우주가 근원도 없고, 계획도 없고, 기준도 없으면서, 목적도 없고, 가능성도 없고, 미래도 없는 사람을 생산했다고 생각해 보라.

”다윈론자들의 이론이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렸기 때문에, 이 엄청난 충격으로 인간은 목적도 없고, 끝도 없는 우주를 방황하게 되었던 것이다. 현 시대에서 다른 지적인 혁명은 없다……그래서 인간들은 우주에서의 그들의 위치와 그들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법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 *Michael Denton [Australian molecular biologist], Evolution: A Theory in Crisis (1985), p. 67. 

단지 두 가지 선택만이 있을뿐, 세번째는 없다.

”적당한 입장은 자연발생을 믿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일한 대안은 초자연적인 창조가 태초에 한 번 일어났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세번째 입장은 없다.” - *George Wald, 'Origin of Life,' Scientific American, August 1954, p. 46.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pathlights.com/ce_encyclopedia/Encyclopedia/20hist15.htm

출처 - Encyclopedia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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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3800|3856|3841|4146|4039|3919|3808|3887|3744|3736|3729|3679|3677|3606|3598|3586|3593|3591|3426|3391|3360|3341|3293|3262|3109|3107|3059|3051|3012|2859|2748|2763|2752|2579|2504|2334|2125|2153|2114|2067|2061|1912|1914|1907|736|730|729|657|658|659|696|653|654|551|328|201|202|45

김기태
2004-07-26

하나님은 생물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데


      진화론은 화학진화의 결과로 생긴 최초의 원시세포가 오늘날 수 백만 종의 다양한 생명체의 공통조상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호에서 우리는  화학진화설이 과학이론으로서 얼마나 문제가 많은 주장인가를 검토한 바가 있다. 이를 인식한 과학자들 가운데는 최초의 생명체가 지구에서 자연발생한 것이 아니라, 외계로부터 일종의 포자와 같은 형태로 우주진에 섞여서 지구에 유입되었다는 소위 판스퍼미아설을 제안하는 경우가 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서 노벨상을 수상하였던 프란시스 크릭이 그 대표적인 사람이다. 

어쨋든 진화론에 있어서의 두번째 과제는 하나의 지극히 간단한 원시생명체에서 엄청나게 다양한 생물로의 진화를 자연적 메카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과 그에 대한 과학적 증거들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있다. 그래서 그들이 채택하고 있는 것은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한 신종의 출현 메카니즘과 화석학적 증거 내지는 발생학적 증거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풀과 씨 맺는 채소,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종류대로,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종류대로, 날개있는 모든 새를 종류대로,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것과 그들이 창조된 후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을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면 각각의 생명체들은 종류대로 초자연적인 기원을 갖고 있으며, 처음부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을만큼 완성된 모습을 갖추고 지구에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진화론과 성경적 창조론은 생물종의 출현과정에 대해서 다시 큰 이견을 보이게 된다. 즉 하나의 조상에서 부터 점진적인 변이를 거쳐서 새로운 생물종이 출현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각양의 생물종들은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들이 보고 있는 모습에 준하는 완성된 형태로 출현하게 되었는지 이다. 

이러한 두 가지 가능성을 점검하는데 가장 긴요한 과학적 자료는 생물의 화석이다. 화석재료는 생명체들이 지구상에서 어떠한 역사적인 변천과정을 거쳤는지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어쩌면 유일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진화론이 주장하는 점진적인 변이와 자연상태에 의한 생물종의 출현은 필수적으로 중간형태의 생명체가 역사적으로 존재했었음을 가정하게 된다.

예를 들면, 고래가 포유동물(대부분 육지에서 서식)이기 때문에 육상의 어떤 동물이 바다에서 살 수 있도록 진화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한다면, 육상의 동물이 가지고 있는 다리가 없어지면서 지느러미의 형태로 바뀌고, 몸은 유선형으로 바뀌고, 꼬리가 꼬리 지느러미의 형태로 바뀌는 점진적인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리나 꼬리가 지느러미의 형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양자의 특징을 부분적으로 지니는, 고래의 원래 조상이라고 생각되는 육상동물과 고래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형태의 생명체가 지구상에 출현했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세계 도처에서 발굴되고 있는 화석들 가운데에 이러한 애매한 중간형태의 것에 해당되는 화석이 분명히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창조론적인 관점에서 그 고래가 아예 처음부터 하나님에 의해서 완성된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면, 고래의 조상에 해당되는 육상동물과 고래를 연결하는 중간형태의 생물은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따라서 그러한 류의 화석이 발견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져 중간형태의 화석이 결코 발견된 바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이제는 많은 진화론자들도 동의하고 있다. 때로는 시조새의 화석과 같이 중간적인 특징을 지니는 것처럼 해석되는 화석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면밀한 검토를 하였을 때 그들은 언제나 하나의 독립된 생물종으로 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기는 하였다.

결국 성경에서 언급하듯이 모든 생물들이 각기 종류대로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어서 처음부터 완성된 모습을 가지고 지구에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 오히려 타당성을 지니게 되고, 점진적인 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한 생물종의 진화라는 주장은 아무런 과학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진화론자들은 기존의 이론을 대체하기 위하여 소위 '점단식 평형이론' 또는 '괴물이론' 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제안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오늘날 유전학이 이해하고 있는 유전의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는 황당무계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고 밖에 달리 평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를 테면, '괴물이론' 이라는 것은 도마뱀이 알을 낳았는데 그 알이 부화되고 나니 거기서 참새가 나왔다는 식이다. 점단식 평형이론 이라는 것도 새로운 종의 출현은 매우 급격한 속도로 진행이 되어서 그의 중간형태의 화석을 남길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식이어서 문제의 본질을 교묘하게 피해보려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예로 부터 '닭이 먼저냐, 달갈이 먼저냐?' 라는 질문은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수수께끼로 여겨왔다. 하지만 창조론적인 관점에서는 분명히 닭이 먼저라고 대답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면 분명히 닭을 창조하셨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달걀을 창조하셨다면 그 달걀은 누가 품어서 부화시켰는지를 설명하기가 어려워진다. 우리는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는 인과율이나, '송아지는 엄마소를 닮는다'는 유전학의 법칙 등 모든 과학적 추론을 동원해 볼 때, 성경이 가르치듯이 하나님께서 종류대로 모든 생물종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무신론적 진화론이 과학의 영역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은 결코 과학적 이유에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의 기본적인 원죄적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창조냐, 진화냐?'의 논쟁은 결코 과학적 논쟁으로 성립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창조지, 제 96호 [1996. 3~4]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81

참고 :

한국창조과학회
2004-07-26

한겨레 지상 논단을 게재하면서 : 한림대 송상용 교수의 창조과학 비판


     본 誌에서는 지난 1994년 4월 14일(목) <한겨레 21> 제4호에 게재된 송상용 교수(한림대)의 본회 사역에 관한 일방적 비방으로 시작된 <한겨레 21>의 지상 논단을 싣기로 결정하였다. 가감 없는 이 3편의 논지만을 가지고도 본회의 회원들과 본회를 기억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 그 진상을 정확히 알고 각자 스스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송 교수의 글이 나간 후 본회로는 명예훼손에 가까운 그런 글에 대하여 왜 창조과학회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느냐고 전화가 빗발쳤다. 그러나 본회는 가장 정중(?)하고도 의연하게 이 일에 대처하기로 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지만 끝까지 기다리신다"는 톨스토이의 말을 기억하면서......  
 

1. 1994. 4. 14일(목)자 한국창조과학회에 관한 송상용 (한림대 사학과) 교수의 비판 기사.

" '원숭이 재판' 다시 할 건가" 

"얼마 전 신흥종교 연구가의 피살사건을 계기로 또 다시 광신이 문제되었다. 물론 우리나라 뿐 아니다. 선진 미국에서 후진 아랍세계까지 광신과 몽매주의가 기승을 떨고 있다.

광신은 무지한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다. 최고의 지식인들도 곧잘 빠져든다. 창조과학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과학사학자 넘버즈가 쓴 〈창조론자들〉(1992)을 보면 미국이 수출한 한국창조과학회는 10년만에 회원 1천명을 확보했으며, 그중 3백명이 박사학위 소지자이고, 미국에 여러 개의 지부를 두고 있다. 이 모임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기본 생물체는 창세기에 말씀하신 대로 창조주간에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셨음을 믿는다"고 한다. 회원들은 그동안 5천여회의 강연을 통해 창조론이 과학임을 주장해 왔다. 대전엑스포 기간에는 5억원을 들여 창조과학전시관을 열었으며, 러시아 창조과학회 등을 불러 국제학술대회를 가졌다. 

사실 창조과학운동의 뿌리는 1925년 미국의 '원숭이 재판'까지 올라간다. 프로테스탄트 보수주의의 아성 테네시州에는 인간이 하등동물에서 진화했다고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있었다. 이에 반해 진화론을 가르쳤던 과학교사 스코프스는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42년을 끈 이 사건은 대법원이 반진화론법을 연방헌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판결함으로써 종지부를 찍었지만, 그 여파는 엄청났다. 이때 이후 생물 교과서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던 진화론은 최초의 유인우주선 스푸트니크호 발사 충격과 '종의 기원' 1백주년의 자극을 받은 과학 교과과정 개혁으로 1960년대 초에 복권되었다. 

창조론은 새 전략으로 이에 대처했다. 진화론과 똑같은 시간을 창조론에도 주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창조론을 교과에 넣으려면 진화론처럼 과학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창조론은 '과학적 창조론' 또는 '창조과학' 을 표방했다. 사회학자 넬킨에 따르면 창조론자들은 당시 가정의 몰락, 도덕적 타락, 공산주의 등의 책임을 과학에 덮어씌웠는데 진화론이 속죄양으로 걸려든 것이다. 창조과학 운동은 레이건 등 극우정치세력의 지지를 받았고, 1970 년대 보수회귀 무드에 힘입어 무섭게 커갔다. 1980년대 들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는데, 한국이 가장 강력한 우방이 된 것이다. 

미국에서 창조과학운동에 대항하는 만만치 않은 움직임이 번져갔다. 과학자, 과학 교육자, 진보적 종교지도자들이 정치가 과학에 개입하여 정통논리를 배척해 버린 '뤼생코 사건의 미국판'을 막자고 일어섰다. 20년대 스탈린의 소련 공산당은 농업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획득형질이 유전한다는 뤼생코의 설을 지지하고 정통 유전학을 배척하였다. 아무튼 이들은 '통신위원회'를 만들어 전국적인 연대를 이루었고, 언론, 의회, 법정에서 광신자들과 대결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창조과학운동은 미국과는 대조적으로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있다. 창조과학 고정칼럼을 주어 적극 지원하는 일간지가 있는가 하면, 다른 언론들도 가끔 호의를 보인다. 창조과학은 교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학교에 교두보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교재를 만들어 대학강의에 침투하고 있고 동아리를 만들어 교사강습회도 연다. 

3월 17일자 한 주간지(시사저널임)에는 한국창조과학회가 한국기계연구원 선박해양공학 연구센터에 3천5백만원을 주어 의뢰했다는 연구 과제의 결과를 보도했다.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조선공학적으로 안정성이 있는지를 연구했다는데, "그것이 지극히 과학적이며 대홍수 또는 역사적 사실임을 보여준 것"이라는 결론이다. 진화론의 약점만 들춰내면서도 스스로 과학임을 증명하지 못한 창조과학이 이제는 적극 공세로 전환하는 모양이다. 

이와 같은 웃음거리를 그대로 넘겨버리는 한국의 과학 풍토는 참으로 한심하다. 노아의 방주가 묻혀있다는 아라랏산에 발굴대를 보내야 정신을 차릴까. 과학자, 과학교육자들이 창조과학에 무관심하거나 회피하는 태도는 재고되어야 한다. 4년전 생물 교과서에 창조론을 포함시켰다가 검정을 못 받자 저자들이 문교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패소했지만, 아직도 계류 중이다. 기세 등등한 창조과학 쪽에서 앞으로 어떤 기발한 카드를 내놓을지 불안하다. 

한국 교회는 창조과학이 과학에 대한 모독일 뿐 아니라, 종교에도 불명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학회에 수천만원 기부금을 내는 교회 명단에는 진보적인 교파도 보이는 딱한 노릇이다. 원숭이 재판에 소리 높여 항의한 니버 같은 신학자가 이 땅에는 없을까? 다윈 당시 자유주의적인 신학자들은 신이 생물을 창조했고, 그 뜻에 따라 진화한다고 함으로써 멋진 타협을 제시했다. 현명한 그리스도교도라면 진화론을 과감히 수용하거나 과학의 일로 돌려놓을 것이다."


2. 송상용 교수의 창조과학 비판에 관한 본회 김정욱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의 반론 (1994.5.12일(목) 제8호 한겨레 21) 

'저절로 '펑' 터진 게 아니다.

'신의 섭리' 주장도 마땅히 존중되어야

사람의 판단이란 것은 참으로 믿을 것이 못된다. 살인범이라고 잡아서는 현장검증까지 다 하고 나서 처형했는데 나중에 보니 진짜 살인범은 엉뚱한 데서 나타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본다. 우리가 두 눈을 뻔히 뜨고 보는 세계에서도 이런 잘못을 범할 수 있는데, 하물며 아무도 본 적이 없고 실험도 해볼 수 없는 우주만물의 기원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사람의 머리엔 한계가 있다


우리는 〈사람의 두뇌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이 무슨 뜻인고 하니, 사람의 두뇌를 컴퓨터와 비교하여 설명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컴퓨터는 컴퓨터의 기본 작동단위보다 더 작은 공간이나 시간의 개념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즉 컴퓨터는 일정한 양의 전류의 흐름을 기본 작동단위로 하기 때문에 공간적으로 보아서는 그 전류의 흐름보다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 전혀 반응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두뇌도 어떤 전기 화학적인 작용이 기본 작동 단위가 된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두뇌가 감지할 수 있는 기본단위보다 더 작은 공간적인 사건, 또 그 보다 더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사건은 인간의 이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빛이나 소리를 컴퓨터가 전혀 느끼지 못하듯이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현상도 이 우주공간에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과학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우리의 감각기관이 느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현상을 연구할 수 있을 뿐이다. 그 현상을 일으키는 본질이 무엇인지는 결코 알 수 없다. 본질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 본질의 기원도 물론 알 수가 없고, 또 그런 본질이 있게 한 신(神)이 있는지 없는지도 증명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만물의 기원이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다고 보든지 저절로 진화되었다고 보든지, 그것은 다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둘 다 믿는 것일 뿐이다. 몇몇 진화론자들의 잘못은 자기들은 실제로 일어난 사실을 믿는데, 창조론자들은 틀린 것을 믿는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데 있다.

사실 나는 무신론자인 동시에 진화론자였다가 삼십대 후반에 들어서야 창조론자로 바뀌었다. 갑자기 무엇에 덮어씌여서 정신이 든 것이 아니라, 맑은 정신을 되찾고 깨달음이 생겨서 창조론자가 된 것이다. 내가 생각을 바꾼 후에 알게 된 것은 진화론이야말로 자연법칙상 일어날 수 없는 것을 믿는 하나의 믿음이었다는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당연한 것을 믿고 있을 뿐이다. 왜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몇 가지 쉬운 예를 들어 보겠다. 

우리는 아무리 자연을 관찰하고 실험을 해봐도 아무것도 없던 데서 에너지나 물질이 저절로 나타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창조론자들이 그렇다면 그것들은 초자연적으로 창조되었음이 틀림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나타난다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실험을 통해서 대칭되는 모양과 목적과 질서와 상호의존적인 것은 설계해서 만들지 않으면 저절로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엇을 하나 '펑!' 터뜨렸는데 거기서 대칭이며 질서며 목적이며 상호의존이며 그런 것이 나타난 것을 본적이 없다. 

민심을 어지럽히는 광신도?

우주와 생물과 원자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연에 나타나 있는 대칭성과 목적과 상호의존과 질서를 두고 창조론자들이 그렇다면 누군가 지혜로 설계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반면에 진화론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펑 터져서 나타났다고 믿는다. 누가 더 타당한 믿음의 근거를 가졌는가?

창조과학회에 있는 과학자들이 무슨 이상한 도를 퍼뜨려 민심을 어지럽히는 광신자들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인정된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 과학자들일 뿐이다. 그리고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충실히 일하고 훌륭한 업적을 쌓고 있어서 사회에서도 인정들을 받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정직하고 겸손한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신이 창조한 환경을 아끼며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도록 권면함으로써 과학의 발전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사회를 가꾸어 나가는 데 기여하고 있다.



3. 한겨레 21 송상용 교수 논단에 대한

한국과학기술원 창조과학연구회(RACS)의 입장 

시사주간지 한겨레 21에 실린 송상용 교수의 논단은 창조과학을 감정적으로 대하고 있으며,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 두 가지의 배경을 설정하고 있는데, 첫째가 국내의 탁명환 소장 피살 및 영생교 사건과 국외의 종교분쟁을 인용하고 있다. 송교수의 글에 의하면 광신과 정상적인 신앙을 혼돈하고 있는데, 창조과학 활동을 어떤 면에서 광신이라고 주장하는가? 사실 정직한 과학자라고 한다면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관한 한 아직은 잘 모른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과학자다운 자세라고 생각한다. 기원에 관한 각자의 판단에는 그것이 과학적이라기보다 신념과 신앙의 문제이다. 만약 생명의 기원이 진화론에 의해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라고 즉, 진화는 과학적 사실이라고 증명된 것이 있으면 제시해 보라. 결국 기원의 문제에 대해 잘 모르고 있거나 최소한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어떠한 가설이 현재의 상황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자신이 갖고 있는 신념,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신앙에 근거하여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창조과학회는 창조는 물론이고 진화도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둘 다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왜냐하면 기원에 대한 두 입장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실험이나 관측을 통해서 재현하거나 확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서 지적했듯이, 확인할 수 없는 기원의 문제를 대하는 자세는 어떤 가설이 더욱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선택하는 것은 일종의 신념에 관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관한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송교수가 예로 든 스코프스 재판에 대한 설명은 일부분만 본 것이다. 그 사건의 결말에 대해서 정확히 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송교수는 그 재판에서 어떻게 진화론자들이 승소했는지를 알고 있는가? 진화론자들이 그 재판에서 진화론이 과학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사용한 화석이 있었다. 그것은 당시 네브라스카인 이라고 명명된 이빨 화석이었는데, 당시는 그 네브라스카인이 인류진화과정을 설명해 주는 중간단계 화석으로 주장되어, 인간이 원숭이에서 유인원으로 다시 중간단계를 거쳐 현인류로 진화된 것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증거로 사용했다. 그 네브라스카인의 화석으로 인해 창조론은 패소했고 진화론은 승소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중간단계 화석이라는 네브라스카인은 미국 네브라스카 지방에선 멸종된 혹은 남미에서 발견되고 있는 멧돼지 이빨로 확인되었다. 아직까지도 원숭이에서 혹은 다른 생명체에서 인류가 진화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 상태로 남아있다. 그러므로 사실상 행정적인 판결은 아직 끝났으나 과학적인 판결은 아직 끝나지 않는 상태임을 알아야 한다. 원숭이 재판을 다시 하려 든다고 매도하지 말라. 다만 진화론이든 창조론이든 둘 다 기원에 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광신인가? 송교수는 창조론을 교과서에 넣으려면 진화론처럼 과학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에서 진화론이 과학이라고 주장하는가? 과학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증명도 할 수 없고, 실험도 할 수 없고, 관찰도 되지 않는 이론이 과학이라 할 때 그 한계는 어디까지나 가설의 범위를 넘을 수 없는 것이고, 가설은 과학자의 신념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기존의 중, 고등 과정뿐 아니라 대학과정의 교과서를 보아도 진화가 확인된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곳은 없다. 다만 진화가 됐을 것으로 생각하거나 추측할 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지금 한창 UR 문제와 북한 핵사찰 문제 등으로 인해 반미(反美) 감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이 때에 어디에 무슨 근거를 두고 있는지 모르지만 창조과학이 미국 내 극우세력의 정치적 지지를 받았다고 하면서, 한국창조과학회가 마치 미국의 정치적 영향을 받은 것처럼 기술하였다. 보수회귀 무드 하에서 진화론이 핍박을 받은 것 같은 감정적 표현에 대해 송교수는 무엇을 보고 그러한 판단을 내렸는가? 70년대 이후 지금까지 보수회귀 무드에 의해 진화론과 창조론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배격을 받았는지 송교수는 정직한 판단을 내리기를 바란다. 그리고 과학을 평론하는 사람이라면 보다 객관적이고 신중하며 정직하기를 바란다. 

노아 방주의 조선공학적 안정성에 관한 연구는 실제의 실험과 컴퓨터 시물레이션에 의해 밝혀진 결과였다. 어떤 이유에서 웃음거리인지, 또한 정신 못 차리고 한 일인지를 송교수는 보다 과학적으로 평가하고 평론하기를 바란다.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고 선입견과 주관적 견해로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송교수가 지적한 광신임을 명심해야 한다.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내용중 과학적으로 입증되며, 관찰되며, 증명된 사실이 있으면 지적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한 내용이 있으면 기원에 관한 창조론적 입장이 수정되고 개선되어야 할 문제이지, 타협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과학하는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일 것이다.

 

출처 - 창조지, 제 90호 [1994.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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