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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미디어위원회
2004-06-21

창조-진화 논쟁 : 회고와 전망

박희주 


      진화론 논쟁은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의 출간과 함께 시작되었다. [종의 기원]은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출간되었으나, 초기의 논쟁은 주로 영국에서 발생했다. 이 논쟁은 생물학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철학 등 사회 각 영역에 걸쳐 다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특별히 여기서 우리는 종교적 논쟁에 관심을 가진다. 영국에서의 논쟁은 대략 지식인들 간의 논쟁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반진화론적 흐름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영국교회는 진화론과 타협 또는 화해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반면 미국의 경우는 반진화론적 경향이 우세했으며, 진화론 논쟁은 처음부터 사회적인 논쟁으로 치달았다. 1920년대 본격화된 이 논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따라서 창조-진화 논쟁사에 있어서 중심무대를 차지하는 것은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20세기 미국의 경우를 중심으로 창조-진화 논쟁사를 살펴보기로 한다.

창조과학이란 용어는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는 1980년대 초 한국에 소개된 바로 그 창조과학이며, 미국의 창조론 운동은 올해 20주년을 맞은 한국창조과학회의 지적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지난 20년간 전개되어온 한국 창조론 운동의 특성과 그 전개과정은 미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창조-진화 논쟁사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특별히 한국창조과학회 20 주년을 맞아, 그 역사적, 지적 배경을 더듬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나아가 창조과학회가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함에 있어 이러한 역사적 반추는 필요 불가결한 작업이라고 믿는다.

미국 창조-진화 논쟁은 1960년을 전후로 대략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920년대 스코프스 법정 논쟁으로 대표되는 반진화론 운동과, 1980년 아칸소 법정논쟁으로 정점을 이룬 창조론운동이 그것이다. 이외 1990년대 초 등장한 지적설계운동은 최근 미국 창조-진화논쟁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앞의 두 가지 운동이 창조-진화 논쟁의 회고 부분이라면, 지적설계운동으로 시작된 최근의 동향은 앞으로의 전망과 연결되어 있다. 오늘 발표에서는 대략 이 세 가지를 다루고자 한다.

 

1) 스코프스 논쟁 (1925)

1859 년 '종의 기원” 출간으로 미국 과학자 사회에 소개된 진화론은 당시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기원에 대해 지배적 답변이었던 '특별 창조설’을 급속히 대체하기 시작하여, 1880년경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 추세는 과학 교육에도 곧 반영되어 이때쯤 진화론은 처음으로 고등학교 생물교과서에 등장한다. 20세기 초 미국 중등교육의 급속한 팽창에 힘입어 진화론은 광범위하게 미국사회에 보급되며 이에 위협을 느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반진화론 운동을 일으킨다. 3 번이나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던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은 이미 교과서에서 사라진 특별창조론과 교육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진화론을 제거해야한다는 주장을 하며 이 운동을 이끈다. 미국 전역에 걸친 대대적 반진화론 운동의 결과 테네시(1925), 미시시피(1926), 아칸소(1928) 주에서 진화론교육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반진화론법이 통과된다.     

테네시주에서 반진화론법이 통과된 직후 미국시민자유연맹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이후 ACLU로 약칭)은 이 법의 실효성을 시험할 것을 선언하고 나서고, 이에 협조하기로 한 스코프스(John Thomas Scopes)라는 교사가 진화론을 교실에서 가르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테네시주가 즉각 스코프스를 고발하고 ACLU가 맞서 변호하는 희대의 재판이 1925년 7월 데이튼이라는 소도시에서 열린다. 약 2주간에 걸친 대 논쟁은 결국 스코프스 측이 $100 벌금형을 선고받음으로써 일단락 된다. 이 재판 과정에서 ACLU측 변호사 다로우 (Clarence Darrow)와 역시 변호사 출신이었던 브라이언이 맞붙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브라이언은 재판이 끝난 3일 후 돌연사 한다. 법률적으로는 진화론 측이 패소했으나, 자유적 경향의 미국 주류언론들은 스코프스 논쟁을 원숭이 재판으로 희화화하고, 반진화론적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조롱거리로 만듦으로서 근본주의 측 역시 큰 이미지 손상을 입게된다.

1920 년대 반진화론 운동을 돌이켜 볼 때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사건에 대한 역사적 해석의 변천과정이다. 스코프스 재판이후 60 년대에까지 이르기까지 이 사건에 대한 주류해석을 형성했던 자유주의적 해석들은 대체로 그 궤를 같이한다. 이들은 스코프스 재판(특히 재판 중 브라이언과 다로우의 격돌)을 근본주의와 모더니즘의 대결을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사건으로 부각시켰다. 이러한 구도 하에 아무런 지적내용이 없는 남부 농촌의 근본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브라이언을, 그리고 모더니즘의 상징으로 다로우를 설정한 후, 다로우의 냉정한 이성적 심문에 의해 브라이언의 맹목적 신앙이 철저하게 조롱거리가 된 것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이를 스코프스 재판의 하이라이트로 제시함으로써, 브라이언의 패배를 곧 근본주의의 패배로 연결시켰다. 한 마디로 스코프스 재판이 근본주의의 쇠퇴를 결과했다는 것이다. 브라이언의 돌연사도 결국 이러한 패배의 충격으로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볼 때 이들은 반진화론운동을 현대 세계와 과학에 대한 두려움 (1차 세계대전의 참상에 대한 반동, 교육과 사회를 근본주의의 이상과 부합하도록 교정하려는 욕구) 등 시대착오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규정하고, 현대 사회에서 그 영향력이 죽어가는 운동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반진화론적 근본주의가 부활함에 따라 이러한 예측은 빗나가고 만다. 따라서 자유주의적 해석에 근원적인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60년 대 이후 수정주의 역사이다. 대표적인 수정주의 역사가로 폴 카터(Paul Carter), 에른스트 산딘(Ernest Sandeen), 조지 마스덴(George Marsden) 이 세 사람을 꼽을 수 있다.


폴 카터 : 그는 근본주의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곧 쇠락할 주변적인 사이비 신앙이 아닌 수백만의 추종자가 따르는 강력한 신념으로 파악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스코프스 논쟁 이후 근본주의가 무너졌다는 주장은 근본주의를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연구하지 않은 자유주의 학자들이 만들어낸 판에 박힌 해석이라고 카터는 일축한다. 오히려 근본주의가 보이는 지속적인 활력에 주목하여 이를 가능케 한 요인을 근본주의 운동에서 찾아내는 것이 근본주의 연구에 있어 주요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제언한다.

에른스트 산딘 : 근본주의의 이념적 뿌리를 추적. 산딘은 근본주의 세력과 이념의 근원으로 무식한 남부의 시골문화를 지목한 기존의 해석과 달리 근본주의는 종말론적 신학과 관련된 당시 보편적 믿음이었으며, 따라서 지적 정통성을 지닌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조지 마스덴 (George Marsden): 이러한 수정주의 해석은 1980년 출판한 {근본주의와 미국의 문화: 20세기 복음주의의 형성, 1870-1925} (Fundamentalism and American Culture: The shaping of Twentieth-Century Evangelicalism: 1870-1925)에서 집대성된다. 마스덴은 근본주의 운동의 지적 이념적 기반을 분석함으로써 산딘과 함께 근본주의는 지적인 내용이 결여된 공허한 운동이라는 자유주의자들의 전제를 비판하며, 근본주의 운동의 해석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들 수정주의자들은 스코프스 논쟁을 자유주의적 언론이 창출한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으로 해석한다. 자유적인 경향의 언론이 반진화론 운동의 지적신뢰성에 손상을 가하기는 했으나, 이 운동의 운명에 즉각적인 그리고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스코프스 재판이후 반진화론운동은 곧장 몰락의 길로 접어들지 않는다. 재판이 끝난 2년 후인 1927년에 모두 13개 주에서 반진화론 법이 상정됨으로써 반진화론 운동은 오히려 그 정점에 도달한다. 사인은 불분명하지만 (대식가인 브라이언이 급체로 인해 사망했다는 설이 유력) 브라이언이 재판의 충격으로 고뇌 속에서 죽었다는 해석 역시 사실과 다르며 실제 낮잠을 자던 중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다. 수정주의자들은 브라이언의 죽음이 반진화론 운동의 쇠퇴원인으로 작용했다는 해석도 반박하며, 브라이언의 죽음은 근본주의자 들에게 순교로 받아들여졌으며, 오히려 잠깐이나마 반진화론운동을 가열시킨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자유적인 경향의 언론에 의해 반진화론운동이 타격을 받기는 했지만, 이 운동의 사멸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스코프스 재판이후 30년 동안의 소강상태 동안 진화론이 미국 생물교과서에서 모두 사라지는 다시 말해 반진화론 운동의 목적이 궁극적으로는 이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교과서 출판업자들이 진화론을 생물교과서에 그대로 둘 경우 각 주의 교과서 채택위원회에서 이를 문제 삼을 소지가 있고, 이는 교과서 판매부수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진화론을 기피했기 때문이다. 또한 반진화론적 근본주의는 이의 임박한 종말을 예언했던 자유주의적 해석과는 달리, 60년대 새로운 활력을 지니고 부활하여 80년대에는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까지 부상하게 된다.

 

2) 아칸소 법정 논쟁 (1981)

20년대 근본주의자들의 반진화론 운동은 60년대 창조론 운동으로 부활한다. 이들 운동의 가장 큰 전략적 차이는 전자가 교과서에서 진화론의 제거를 요구했다면, 후자는 창조론의 삽입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냉전체제 하에서 발생한 구 소련의 스퓨트닉 인공위성의 발사성공은 미국에 안보위기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고, 이는 대대적인 과학교육개혁작업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생물학 분야에서도 60년대초 진화론이 생물학 교과서에 복귀한다. 복귀하게된 진화론을 제거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인식하게 된 창조론자들은 기왕에 그렇다면 진화론과 함께 창조과학을 교과서에 포함시켜 기원에 대한 교육의 형평을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게 된다.

이에는 한 가지 문제가 따랐는데, 미국 헌법에 의하면 국가공공 기관인 공립학교에서 종교를 가르치는 행위는 위헌사항으로 규정되어있다. 창조과학이 종교라면 헌법에 의해 이를 공립학교 교과서에 포함시킬 수 없게 된 상황인데, 이를 우회하기 위해 고안해낸 전략이 과학적 창조론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적 창조론 (혹은 창조과학) 이라는 용어 자체가 70년대 중반 만들어졌는데, 창조론을 '성서적 창조론'과 '과학적 창조론' 둘로 나누어 종교인 전자는 배제하고, 과학인 후자만 선택적으로 생물 교과서 삽입을 요구한다는 전략이었다. 이와 아울러 두 모델접근법이라는 전략을 개발하여, 진화와 창조를 생명체의 기원을 설명하는 두 개의 모델이라고 제안하며, 기원의 문제는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양자택일의 문제라고 규정한다.

새로운 전략에 바탕하여 70년대 말 창조론자들은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1시간 가르치면 마찬가지로 창조과학도 1시간 의무적으로 가르칠 것을 요구하는 소위 '동등시간법' (Equal-Time Law) 을 고안하고, 미국 전역에 걸쳐 이 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게 된다. 그 결과 1981년 아칸소와 루이지애나 주 의회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성공한다.

동등시간법이 통과되자마자 미국시민자유연맹 (ACLU) 이 나서서 이 법의 위헌성을 제소한다.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닌 종교이며, 따라서 국가공공기관인 공립학교에서 이를 가르치도록 규정한 동등시간법은 위헌이라는 것이 제소의 요지이다. 따라서 창조과학의 과학성이 재판의 핵심문제로 떠올랐다. 아칸소주에서만 정식 재판이 열렸는데, 하일라이트는 창조 진화 양측이 동원한 전문가들의 일주일에 걸친 증언이었다. 양측에서 모두 자기 측을 대표하는 최고의 과학자, 신학자, 교육전문가들을 동원하였는데, 가장 관심을 끌었던 사람은 진화론 측의 생물철학자 마이클 루스(Michael Ruse) 였다. 오늘날 대표적 생물철학자중 한사람인 Ruse는 증언에서 창조과학이 과학이 아님을 입증하는 다섯 가지 과학의 요건을 제시하였다.


1. 과학은 맹목적이고 변치 않는 자연의 규칙성에 (자연법칙)에 기초해야만 한다.

2. 과학은 자연법칙에 의해 설명가능 해야한다.

3. 과학은 경험적 실재에 비추어 검증 가능(testable)해야 한다.

4. 과학은 반증 가능(falsifiable)해야 한다.

5. 과학은 잠정적(tentative)이어야 한다.     


재판을 주재했던 오버 (William Overton) 판사는 루스의 증언을 받아들여, 창조과학은 초자연적 설명에 바탕하고 또한 근본적으로 독단적인 믿음에 근거하므로 과학이 아니라고 판정을 내린다. 동등시간법은 결국 위헌판정을 받게된 것이다. 이어 1986 년 루이지애나주에서도 이와 동일한 판결이 내려진다.

창조과학의 과학성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보다 더 치열한 논쟁이 재판 후 발생했다. 재판이 끝난 후 얼마 되지 않아 몇몇 중진 과학철학자들이 루스가 너무한 것 아니냐며 반론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래리 라우든(Larry Laudan), 필립 퀸(Philip Quinn) 등이 그들인데, 이들은 모두 창조과학에 반대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루스가 전문 철학자로서의 윤리에 충실치 못하고 이중 잣대를 적용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했다. 전통적으로 과학철학자들 간에 과학을 비과학으로부터 구분하는 문제(demarcation problem)는 수세기를 끌어온 난제였는데, 이는 논리실증주의의 붕괴이후 해결할 수 없는 문제, 혹은 가짜 문 (pseudo-problem)로 간주되어왔다. 과학철학계가 이렇게 포기한 상황에서 Rus 가 대담하게 다섯 가지 범주를 제시한 것이었다.

라우든이 먼저 포문을 열고 나섰다. 라우든은 법정 판결이 내려졌던 1982 년 Science, Technology, & Human Values 가을호에 게재한 글에서 '창조과학'이 시험불가능, 독단성(비잠정적), 반증불가능 등의 이유로 창조과학을 비과학이라고 한다면 이는 잘못된 결론이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창조과학은 시험, 반증가능한 경험적 주장을 실제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구연령이 6,000-20,000년이라는 주장이나, 지구 초기역사에서 발생했던 대홍수가 현재의 대부분의 지질현상들을 결과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경험적으로 확인가능하며, 또한 실제 확인 절차를 밟았으며, 그 결과 틀린 것으로 판명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과학'을 반박하는 정공법은 창조론이 포함하는 경험적 주장들을 반박하는 것이지, '창조과학'이 그러한 주장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고 가장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라우든은 주장한다. 만일 '창조과학'의 핵심주장들 - 예를 들어 인간은 하등동물로부터 진화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였음, 노아 홍수는 역사적으로 실재한 사건임 - 이 변경 불가능한 독단이라면 마찬가지로 과학의 역사에 등장하는 여러 핵심이론들 역시 가변적인 보조가설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쉽게 포기되지 않는 독단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라우든은 루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범주 역시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비판한다. 어떤 현상이 자연법칙에 의해 설명될 때만이 비로소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과학사상에 등장하는 여러 중요한 자연현상에 대한 주장 역시 비과학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갈릴레오와 뉴튼은 중력현상에 대한 인과론적 설명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중력의 실재를 가정했으며, 다윈은 멘델에 의해 유전현상이 설명되기 전에 자연선택 이론에서 이미 그 존재를 가정했다. 노아 홍수의 실재가 자연법칙에 의해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비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면, 같은 논리로 중력이나 유전현상을 가정한 뉴튼이나 다윈 역시 비과학적이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 정리하면 문제의 핵심은 다분히 논쟁의 소지가 있는 과학의 범주를 '창조과학'이 만족하느냐 여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가지고 있는 증거가 진화론과 '창조과학' 어느 쪽에 보다 강력한 논거를 제공해주는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다고 라우든은 결론짓는다.

과학철학자들 간에 5 년여를 끌었던 이 논쟁은 필립 퀸의 제안에 의해 적당한 선에서 절충되는 것으로 끝난다. 퀸은 상아탑 속의 학자가 비 이상적인 세상 법정으로 나가서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해야만 할 때는 세상적 필요와 학문적 이상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여 손을 더럽힐 수밖에 없고, 다시 상아탑으로 돌아올 때는 손을 씻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때 타협의 역할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가끔씩만 수행함으로써, 한 개인의 전문가적 양심이 타락으로까지 가는 것을 방지하는 한도 내에서 이러한 타협은 현실적으로 용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논쟁에서 창조론에 반대하는 과학철학자들의 사회적 가치와 그들의 전문가적 양심 사이의 갈등이 절충되는 과정은 결국 과학 비과학 구별문제가 인식론적 문제인 동시에 다분히 사회 정치적 문제라는 것을 시사한다. 창조-진화 논쟁은 과학적이고 인식론적인 주제인 동시에, 이 논쟁에 참여한 당사자들이 가진 가치관의 갈등을 감안하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에서의 창조-진화논쟁이 전통적 프로테스탄트 가치와 새로운 다원주의적 가치 체계간의 갈등인 문화전쟁의 큰 틀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3) 지적설계운동 (1990 -  )

동등시간법이 1981 년 아칸소주와 1986 년 루이지애나주에서 패소한 사건은 몇 가지 중요한 결과를 초래했다.   

첫째, 법률제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벽에 부딪치게 된다. 그 결과 전국적인 동등시간법 캠페인을 주도했던 젊은지구창조론은 교육현장에서의 개별적 문제해결이라는 풀뿌리 운동으로 전략을 수정한다.

둘째, 지구연령문제가 표면으로 부상한다. 아칸소주와 루이지애나주에서의 동등시간법 통과는 진화론자들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동안 창조론운동을 무시해왔던 진화론 진영은 이 사건을 계기로 조직적인 반창조론운동을 펼쳐가기 시작한다. 이들은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지구연령문제를 창조과학의 아킬레스건으로 규정하고 이를 집요하게 공격하였다. 이러한 공격과 두 번의 법정패소는 복음주의 교회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특히 지구연령문제를 과도한 지적부담으로 여기면서, 오랜지구창조론의 목소리가 복음주의 교회 내에서 커지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지구연령문제를 중심으로 창조-진화 논쟁은 분열적인 이슈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셋째, 지적설계운동의 등장이다. 지구연령문제를 비롯해 창세기 1-2장의 구체적 해석을 둘러싼 서로 다른 시각들은 복음주의 교회의 결속을 심각하게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열상을 수습하기 위한 반성적인 움직임이 1980년 말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인물로 버클리 캘리포니어 주립대의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창조-진화 논쟁이 처한 상황을 분석하고 그 해결책으로 전략적 선회를 제안한다. 기존의 논쟁구도가 창조 대 진화 이었다면, 이제 초점을 옮겨 유신론 대 자연주의적 무신론의 대치구도로 이행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선회는 지적설계운동이라는 형태로 가시화 된다.

제한된 지면상 지적설계운동의 구체적 내용을 설명하기는 힘들고, 여기서는 몇 가지 중요한 전략적 의미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기로 한다. 무엇보다 유신론 대 자연주의적 무신론이라는 보다 큰 구도로 판을 다시 짤 경우, 창조-진화론 논쟁에서 보였던 보수 교단간의 미묘한 입장차이로 인한 갈등이 무마되며, 공통된 외부의 적에 대항하여 단결 할 수 있다는 잇점이 있다. 둘째, 기존의 창조과학 운동이 대중운동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어 오면서 보수 기독교 인구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성공을 거둔 반면, 지식인 사회로부터는 냉대 당하며 보수 기독교에 반지성적 이미지를 안겨준 한계를 지적한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지적설계운동은 지식인 사회, 특히 대학사회에서 기독교 유신론의 입지를 확보하는데 주된 목표를 두게된다. 셋째, 오늘날 세속학문의 절대적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자연주의의 폐해에 대한 인식이다. 자연주의의 한계를 조직적으로 비판하여 숨통을 트지 않는 이상 학문의 주 생산지인 일반 대학에서 진지한 유신론적 논의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창조-진화 논쟁에서 자연주의는 부수적인 이슈였으나, 지적설계운동에서는 자연주의의 한계 비판과 유신론의 과학적, 학문적 가능성에 대한 모색이 핵심적 이슈로 떠오른다. 진화론은 이들 이슈를 논의하는 대표적 사례로 사용된다.

아직 성장 단계에 있는 지적설계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평가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으나, 기원에 관한 논쟁의 맥락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 한가지만 지적하기로 한다. 지적설계운동이 기원문제에 관한 담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이다. 1920 년대 반진화론운동은 스코프스 논쟁을 거쳐가며 1930년대 들어서는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다. 창조론 운동 역시 80 년대 두 차례에 걸친 법정논쟁을 거쳐가며 한계를 노출하기 시작하고 활력을 잃는 듯 했으나, 90년대 등장한 지적설계운동으로 기원문제에 관한 논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 결과 지난 10년 미국에서의 기원문제에 대한 논의는 전혀 그 열기가 식지 않았으며, 오히려 기원문제를 지식사회 내에서 담론화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기원문제에 관련해서 복음주의 사회의 지적신뢰성을 구축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결론

한국의 창조론 운동은 이상과 같은 미국의 경험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체계적으로 답하기 위해서는 지난 20년 동안의 한국 창조론 운동사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창조론 운동사에 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유일한 예외가 한국창조과학회에서 오랫동안 간사로 일했던 조덕영 목사가 신학석사학위 논문으로 한국 창조론 운동을 내부자의 시각에서 정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상세한 비교연구는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 놓을 수밖에 없고,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한계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교훈을 미국의 경험에서 유추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전반적으로 볼 때 창조과학회의 자체적인 독창적 연구가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조덕영 목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의 창조론 운동은 신학적인 뒷받침이 빈약한 상태에서 과학 기술시대에 나타난 과학자들에 대한 대중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창조론이 전파되어온 감이 없지 않았다. 또한 번역물에 의존하고 자체적인 연구에 등한하다보니 신학과 과학 양쪽에 있어 창조론 운동이 침체기에 들어간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국내 창조과학 운동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대중운동으로서의 창조론이 성공하게된 핵심 요인을 과학자에 대한 대중의 전폭적인 신뢰에서 발견할 수 있다면, 이제는 이러한 신뢰의 원천인 과학적 전문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원에 관한 논쟁에 있어서 입장은 다를지라도 학문적 엄밀성만큼은 반대자들도 수긍할 정도의 전문성을 확보하지 않고는 앞으로 전문지식인은 물론이고 일반대중의 신뢰 역시 점점 기대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미국의 경우 젊은지구창조론은 외부적으로는 자연주의적 진화론, 그리고 기독교 내부적으로는 오랜지구창조론과 유신론적 진화론과의 경쟁가운데서 보다 확고한 논의를 개발하는데 치열한 노력을 경주해 왔다. 젊은지구창조론의 대표적 이론가들인 폴 넬슨과 존 레널즈는 젊은지구창조론이 지난 20 년 동안 꾸준하게 '엄밀성과 정교함'을 더해왔다고 주장하며 '국제창조학회'(4년에 한번씩 개최)에서 발표된 최근 논문들을 그 증거로 든다. 나아가 미국의 젊은지구창조론은 "몇몇 자체 주장들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시인하는 학문적 책임감"과 심지어 "자기 비판적이기까지"한 열린 태도를 보인다고 넬슨은 지적하며, 이를 오랜지구창조론과 유신론적 진화론에 비해 상대적 강점으로 꼽았다. 넬슨의 분석에 따르면 자유로운 경쟁과 학문적 책임감, 그리고 비판적 태도가 최근 젊은지구창조론의 '엄밀성과 정교함'을 가능하게 한 요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상황에 비해 기원문제에 대한 한국의 논의는 상당히 제한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미국에서도 창조-진화 논쟁을 이끌었던 주류는 젊은 지구창조론이지만, 오랜지구창조론과 나아가 유신론적 진화론도 활발하게 논의에 참여했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들 간에 갈등도 발생했고 나아가 분열의 소지도 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원에 관한 논의의 폭과 깊이를 더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비판과 선의의 경쟁은 건강한 논의를 위해서는 필요 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이는 창조과학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한국창조과학회의 현 시점에서 새겨볼 점이라고 생각한다. 엄밀한 논의의 생산은 내부적으로 외부적으로 열린 토론과 건강한 비판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의 논의는 창조-진화를 넘어서 학문과 사상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무신론적 자연주의에 대한 전략적 대응으로 흐르고 있다. 지난 20년간 갈등과 분열도 있기는 하였으나, 기원에 관한 미국의 논쟁은 그 폭과 깊이에 있어 상당한 진전을 보여주었다. 이에 비해 국내의 현황은 20 년전 도입 당시의 젊은지구창조론에 멈추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한국은 미국과 호주에 이어 창조론 논의가 가장 활발한 나라이다. 이제 기원문제에 관한 국내의 논의도 한 단계 도약할 시점이라고 본다. 한국창조과학회 창립 20주년은 이러한 도전적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출처 - 창조지, 제 125호 [2001. 5~8]

미디어위원회
2004-06-21

과학동아에 게재됐던 창조-진화 논쟁 

: 네 차례(1991년 7, 8, 10월, 1995년 10월)에 걸친 토론 전문

미디어위원회


1991년부터 '과학동아'에 게재되었던 네 차례 (1991년 7, 8, 10월, 1995년 10월)의 창조론-진화론 지상 토론을 모아 놓았다.


진화냐 창조냐? : 첫 번째 논쟁

이 글은 과학동아 1991년도 7월호에 실린 기사이다 :

진화론과 창조론의 공방이 뜨겁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 먼저 불이 붙어 한국까지 건너온 이 논쟁은 급기야 법정으로 비화되기에 이르렀다. 창조론을 옹호한 고등학교 생물교과서에 대해 교육부가 허가취소를 한 것인데, 현재 이 문제는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남겨 놓고 있다. 19세기 영국의 찰스 다윈으로부터 시작된 진화론은 처음 발표됐을 당시 창조론자로부터 커다란 저항을 받았으나, 이를 극복 현재는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그때 창조론자들에게는 진화론에 맞설 이론적 무기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근의 논쟁은 제반 사정이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19세기와는 정반대로 챔피언과 도전자의 입장이 뒤바뀌어 있다. 특히 도전자가 제시하는 과학적 근거가 만만찮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내로라 하는 과학자들이 창조과학회를 결성, 자신들의 과학적 신념을 줄기차게 내보이고 있다. 과연 무엇이 옳은가? 진화론은 전열을 새로 가다듬은 창조론의 주장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창조론의 이론가들은 오래도록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진화론의 어떤 허점을 파고들고 있는가? 양측에서 팽팽하게 펼치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 들어보자.    - 과학동아 편집자 -


1. 진화는 때때로 신속하게 이뤄진다. (진화론측 주장)

2. 엔트로피와 화석은 창조론을 지지한다. (창조론측 주장)

3. 창조론자에게 묻는다. (진화론측)

4. 진화론자에게 묻는다. (창조론측)

  


진화냐 창조냐? : 두 번째 논쟁

이 글은 과학동아 1991년도 8월호에 실린 기사이다.


1. 진화론측 주장

비전문가의 아전인수식 해석은 곤란

2. 창조론측 주장

진화론만이 옳다는 독선은 버려야

  


지형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 세 번째 논쟁

'서서히' 대 '급격히' 

이 글은 과학동아 1991년도 10월호에 실린 기사이다.


1. 진화론측 주장

'현재는 과거의 열쇠다'

2. 창조론측 주장

'땅은 윤회하지 않는다'

  


진화론 vs 창조론 : 네 번째 논쟁

이 글은 과학동아 1995년도 10월호에 실린 기사이다.


1. 최초의 생명체는 언제 어떻게 생겼나?

2. 화석의 '잃어버린 고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3. 열역학법칙을 어떻게 볼 것인가?

4. 인간정신의 기원은 무엇인가?

 5. 미래 인간의 모습은 어떤 형태일까?


출처 - 과학동아

이재만
2004-06-14

고생물학자와 대화


      창조과학 사역 초기에 7월 아는 분의 소개로 화석을 공부하는 한 고생물학자와 전화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고생물학은 화석을 연구하는 지질학의 한 분야로 전반적으로 진화론에 근거를 두고 발전하여 왔으며, 많은 분야에 진화론이 사실인 것으로 인식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여왔다. 대화를 시작할 무렵에는 자신은 크리스천이며, 진화론은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대화 가운데 스스로 진화론이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도, 진화론에 벗어나지 못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분은 “왜 성경이 꼭 맞아야 하느냐?”고 하면서 “성경은 믿는 것이지 과학으로 접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필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기도 하였는데 그 중 “성경이 맞다면 왜 사람 화석과 공룡 화석이 함께 발견되는 화석이 발견되지 않느냐?” 등 이었다(물론 이 질문을 하는 자체가 진화의 산물인 지질시대가 사실로 자신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질문 자체에 성경이란 말을 포함 하였기에 성경적인 상황 증거를 대려 하자 “성경은 언급하지 말고 대답하라”고 하였다. 성경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성경을 갖고 설명하려 하는 것도 못하게 하였다. 그러면서 “성경은 믿는 것이지 증거를 대는 것이 아니다”라고 계속해서 주장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화가 진전될 것 같지 않기에, 일단 그 분의 학위 논문을 이야기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역시 진화론에 근거하여 연구된 것들이었다.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던지자, 예를 들면 “연구하신 상어화석이 신생대인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등과 같은 것들이었다. 왜냐하면 진화론자들은 자신의 사고의 틀에 매어 상어화석이 나오는 층을 신생대로 정하기로 약속한 것이지, 실제로 상어화석 스스로 어느 시대인지는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이분은 “왜 그런 질문들을 하느냐?” “그런 것들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들이 아느냐?” 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필자의 질문들이 그 동안 이 분이 옳다는 “전제”로 두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들을 건드렸던 것이다. 한 90여 분의 대화가 오갔다. 성경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하기에 그 동안은 성경에 관한 언급을 피하였다.

긴 시간 동안의 전화통화 후에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느꼈을 때, 필자가 하나의 부탁을 하였다. 성경이 사실이라고 연구하는 지질학자들의 의견을 몇 분간 설명해도 되겠냐고 하였다. 그리고는 설명하였다.

먼저 화석 가운데 중간단계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야기 했다. (물론 이 분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화론을 믿는 지질학자들이 만들어왔던 지질시대표를 순서적으로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은 지구상 어떤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물론 이 분은 이 사실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화석이 만들어지는 것은 생물이 죽은 다음 “시간”이 지나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했다. (물론 이 내용도 잘 알고 있었다). 계속해서 수십 억년 하는 방사성 동위원소법의 문제점도 이야기 했다. (이 점에 대하여도 어떠한 반론을 피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분은 자신이 갖고 있는 진화론적 사고를 버리고자 하지 않았다.

필자는 결국 마지막 한 가지를 추가했다. 하나님이 생물을 만들기 전인 창세기 셋째 날 만들어졌으므로 화석을 포함하지 않는 층(노아홍수 이전의 층)과, 엄청난 물과 격변 때문에 (진화의 연속성 없이) 갑자기 화석들이 출현하는 홍수 동안에 만들어진 층들과, 홍수 후에 지층이 안정화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홍수 후 층들에 대하여 성경적 지질학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하였다.

물론 이러한 접근을 이 분은 이전에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음에 당연하였다. 그렇지만 이분은 성경이 사실이라고 보고 접근한 성경적 지질층서의 분류가 진화론에 근거한 것 보다 훨씬 명확하다는 것을 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얼마간의 침묵이 흘렀다. 이 박사님의 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학문을 버리겠다”고 말하였다. 어쨌든 이 분 역시 처음으로 진화론의 우산에서 벗어나서 “사실”에 근거한 지질학을 처음 대하였던 것이다.

그렇다. 성경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적인 답변을 할 때 가장 설득력 있는 답변을 찾을 수 있다. 이제까지 지구의 역사에 관한 연구를 성경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하지않았을 뿐이지, 성경에서부터 시작할 때 가장 쉽고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지식의 근본(The beginning of knowledge)은 여호와를 경외함이니 (잠언 1:7)” 여호와에 대한 언급은 성경을 제외하고 찾아볼 수 없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하나님께서 전해준 성경에서부터 시작할 때 분명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51

참고 :

김준
2004-05-11

창조론과 진화론


     성경의 내용과 오늘날의 과학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 가운데는 상충되는 것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현대과학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로서 어떻게 동시에 참된 그리스도인 될 수 있으며, 자연과학의 연구 결과들을 어떻게 신앙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일까 하는 문제는 많은 젊은이들의 고민거리라 하겠다. 그 많은 고민거리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문제가 '창조와 진화' 의 문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를 선포하고있는 반면, 많은 사람들은 과학은 진화를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흔히 '창조냐, 진화냐?' 하는 논쟁이 과학에 의해서 판결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진화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만이 과학적이고 우월하며, 창조론이라는 것은 순전히 비과학적이고 맹목적인 신앙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창조와 진화의 문제에 관한 한 과학과 신앙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전제를 갖고서 과학의 우월성 및 합리성의 주장을 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생명의 기원의 문제에 관한 한 엄밀한 의미에서 무엇을 아느냐에 관한 과학적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무엇이 진리임을 믿느냐에 관한 철학적 혹은 신앙적 영역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또한 성경과 과학이 모두 진리임에 틀림이 없으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성경은 수천년의 신앙의 기본을 이어온 불변의 진리이며, 과학은 그 시대의 지식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현상을 해석한 가변적인 진리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과학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무수히 그 이론이 깨어지고, 변화 및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며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창조론이든 진화론이든, 생명의 기원에 관한 논의는 진정한 의미에서는 과학적인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보편적인 관찰이나 실험적 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사람의 기원에 대한 견해를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믿느냐에 관한 종교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이 비과학적인 부분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진화론을 고수하려고 하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방법론의 적용 여부를 놓고 볼 때, 성경에 계시된 창조 기사는 창조주에 의한 관찰과 경험적 검증이 이루어진 생명 및 우주의 기원에 대한 진술이다. 우리가 대부분의 과학적인 지식을 과학자와 교사들이 전달하는 세상적인 지식을 믿는 것에서 얻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기원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은 만물의 시작을 관찰하고 경험한 인격적인 하나님과 그의 계시를 담고 있는 성경을 믿음으로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결코 불합리한 것이 아니라고 우리 기독교인들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지금 지구상에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이 존재하고 있는데는 태초에 분명히 어떤 원인이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생명체의 기원에 대한 설명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진다. 누군가가 만들었거나(창조설) 아니면 저절로 생겼거나(자연발생설) 둘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생명체는 저절로 생겨 났다는 진화론을 믿을 수 밖에 없음은, 그렇지 않다면 누가 그것을 만들었나하는 질문에 봉착하게 되어질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물학이 시작된 이래 생명체의 자연발생은 결코 관찰된 적이 없다. 아니 확률적으로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수 있다. 오히려 생명체는 생명체가 원인이 되어야만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 생명체를 정의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실험실에서 물질로부터 생명체를 합성하겠다는 실험은 계속 시도되고 있지만, 지금의 과학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만일 먼 훗날 그 실험들이 엄청나게 정교한 실험방법을 사용하여 성공을 거둔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결코 생명체의 자연적 발생에 대한 증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체가 우연히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은 과학적으로 0이기 때문에 만일 생명체가 만들어 졌다면, 그것은 누군가가 세밀하게 간섭하여 이루어 진 것이며, 결국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생명체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얼마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로부터 재미있는 질문을 받았다. "너 아직도 교회 다니고 창조론 믿으면서 대학교에서 생명공학을 연구하냐"는 의미있는 질문을 받았고 나는 "물론이지"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나의 친구는 어떻게 생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진화론을 안 믿을 수 있냐며 "너는 사이비 과학자든지 사이비 기독교인이다"라고 농담을 하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이 이상한 사람이 자기의 친구라고 이야기를 했다. 물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해가 안 가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지 40여년이 되어가고 또한 생물학을 전공으로 시작한지 20여년이 넘었으나 아직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을 의심한 적이 없었고 기독교인으로 과학을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사이비 과학자와 사이비 기독교인 중에 하나를 택하려면 차라리 사이비 과학자를 택하련다.



번역 -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evolution/e3/e31/e31o22.htm

출처 - 교육원교재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98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

미디어위원회
2004-05-11

20세기를 마감하면서 - 창조론과 진화론 논쟁을 중심으로


      타락 이후 사람들은 그 마음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섬기고 하나님이 있어야 할 위치에 자신들을 올려 놓았다. 성경이 명백히 증거하고 있는 바 이 우주와 생명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에도, 태초에 물질만이 있었으며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연이란 과정을 통해 이 물질이 스스로 조직화되고 변화되어 지금의 정교한 우주가 되었다는 진화론을 주장하고 있다. 과학의 발달로 인해 진화론은 점점 교묘한 양상을 띠게 되었으며 이제는 일반인은 이해하기도 힘든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진화는 사실이 아니고, 이 우주는 절대자의 지혜와 의도에 의해 창조되었고, 지금도 그분의 손길 아래 유지되고 있다는 창조론을 믿는 과학자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런 현상은 몇몇 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유능한 과학자들이며 일생을 진화론 교육만 받아 왔던 사람들이다. 사물을 보는 건전하고 과학적인 눈이 있으며,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인재들이다. 과연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진화론에서 창조론으로 전향하게 하였는가? 그들이 창조론을 믿음으로써 모두 과학을 포기하였는가? 그렇지 않다. 이들은 현재 우리가 지니고 있는 과학적인 방법론과 도구들을 이용하여 면밀히 검토하더라도 오히려 창조론이 더 합리적이고 더 과학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사람들이다.

창조과학 운동은 이제 소수 몇몇 과학자들만의 운동이 아니다. 이 운동은 이제 기독교인들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관심을 갖고 호응하게 되었으며, 최근 미국의 캔자스주의 결정과도 같이 교육계도 수용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더불어 창조론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창조론-진화론의 논쟁은 과학의 논쟁 이전에 세계관의 차이, 패러다임의 충돌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며 20 세기를 마감하는 이 때에, 인류역사에 나타난 창조론과 진화론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현재 서 있는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며, 앞으로 나갈 길을 정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1.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와 생명의 자연발생설

생명의 기원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자연철학자로서 그는 부식토나 썩은 고기에서 작은 생물이 번식한다는 관찰에서 생물은 부모없이 무생물로부터 저절로 생겨난다는 자연발생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엄밀한 실험을 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생각은 17세기까지 지배적인 생명의 기원에 대한 이론이었다.


2. 케플러, 뉴턴, 패러데이, 켈빈, 파스퇴르 등 (17~19세기)

역사상 위대한 과학자들 중엔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창조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많았다. 행성의 운동법칙을 발견한 케플러는 우주에는 창조주가 부여하신 질서와 조화가 있다는 믿음을 가졌으며,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역학, 광학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뉴턴은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나는 넓은 바닷가에서 예쁜 조개껍질 몇 개를 줍고 기뻐하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하였다. 뉴튼은 성경이 문자적으로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성경의 연대기와 예언서에 관한 책을 쓰기도 하였다. 전자기 법칙을 발견한 패러데이, 지금도 절대온도 단위에 그 이름이 남아 있는 켈빈경, 발효와 세균학분야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파스퇴르 등 과학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과학자들 중에는 진화를 부정하고 창조를 받아들인 사람이 많았다.  


3. 허튼(1726-1797)과 라이엘(1779-1875)의 동일과정설

근대 지질학의 원조로 알려진 제임스 허튼은 1785년 지구에 관한 이론을 발표하여, 지구의 표면은 침식, 퇴적되고 습곡을 통해 새로운 지형을 이루며 다시 침식, 퇴적의 과정이 반복되는 순환하는 지구를 가정하였다. 라이엘은 이러한 '현재는 과거의 열쇠이다' 라는 생각을 더욱 발전시켜, 오늘날과 같은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이라는 이론을 만들어 냈다. 이 이론에 의하면 과거에도 지금과 똑같은 과정이 일어났으므로, 현재 일어나는 지질작용을 관찰하면 과거의 일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지층, 계곡, 산 등은 무한히 오랜 시간동안의 침식, 퇴적운동의 결과이며, 지구가 아주 오래되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라이엘이 쓴 지질학 원론은 다윈의 진화론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라이엘 이전에는 과거에는 지금과 다른 대격변이 있었다는 퀴비에(Cuvier, 1769-1832)의 격변설(catastrophism)이 주로 받아들여졌다. 최근에는 다시 격변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4. 다윈(1809-1882)의 종의 기원

다윈 이전에는 종은 변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굳게 자리잡고 있었다. 스웨덴의 린네(Linnaeus, 1701-1778)는 다양한 생물의 세계에 분류를 통해 질서를 부여하고자 하였다. 그는 지금도 쓰이고 있는 7 단계 분류법을 창안하였다. 그러나 다윈은 비이글호를 타고 5 년간의 항해 끝에 얻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구상의 다양한 생물들은 단일 종 혹은 몇몇 종으로부터 진화하였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1859 년 그의 저서 '종의 기원'을 통해 다윈은 1) 종은 불변이 아니며 새로운 종이 나타날 수 있고, 2) 진화라는 과정을 통해 모든 혹은 거의 모든 생명의 다양성을 설명할 수 있으며, 3) 이러한 과정은 자연선택 혹은 적자생존에 의해 인도된다는 가정을 하였다. 다윈식의 진화론은 그 후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고 더욱 공교히 되어 현대종합이론에까지 이르게 되어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 버렸으나, 그 기본적인 개념, 즉 종간의 진화가 가능하다는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진화론은 생물학 분야뿐 아니라 다른 학문분야, 우리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쳐 현대를 풍미하고 있는 주요 패러다임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5. 멘델(1822-1884)의 유전법칙 

비록 다윈이 여러 가지 증거를 들어 진화를 설명하려 했으나, 수많은 문제에 부딪혔다. 그중의 하나가 유전법칙인데, 오스트리아 부린의 수도원장이었던 멘델에 의해 1865 년 발표되었다. 멘델은 부모의 형질이 어떻게 자손에게 유전되는지를 정량적으로 밝혔는데, 이 이론에 의하면 부모에게 없는 형질은 절대로 자손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이론은 한 종으로부터 다른 종이 진화될 수 있다는 다윈의 진화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멘델의 유전법칙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는 당시 많은 학자들이 이미 다윈의 진화론을 신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6. 파스퇴르(1822-1895)와 생물속생설 

희랍시대로부터 믿어져 내려온 생명의 자연발생설은 17세기 후반에 들어, 생물은 생물에 의해서만 생긴다는 생물속생설이 제기되면서, 200년 동안 논쟁이 벌어졌다. 프랑스의 위대한 과학자였던 파스퇴르는 백조목실험이라는 유명한 실험을 통해 생물속생설을 결정적으로 증명하였다. 이 실험에서 파스퇴르는 S자 모양의 목이 긴 플라스크를 이용해 공기는 통하지만 미생물의 감염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든 뒤 플라스크내의 멸균된 고기즙을 조사한 결과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미생물이 생기지 않는 것을 발견하였다. S자 모양의 관을 사용하지 않으면 곧 공기중의 미생물에 의해 고기즙은 감염된다.  


7. 오파린(1894-1980)의 가설과 밀러(1930-)의 실험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인 후 무생명체와 생명체를 연결해 주는 고리가 필요하였는데, 소련의 생화학자 오파린은 화학진화가설을 발표하였다. 이 가설에 의하면 최초의 지구의 대기는 수소, 암모니아, 메탄, 수증기 등 환원성이었는데, 태양으로부터 빛을 받거나 번개 등에 의해 방전되어 아미노산을 비롯한 여러 유기물들을 만들고, 이것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 교질상태가 되었다가, 단백질 등의 콜로이드 입자가 결합된 코아세르베이트라는 작은 알맹이 형태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 코아세르베이트 내에서 효소가 형성되고, 유기물이 분해되어 에너지를 얻고 점점 성장하여, 최초의 생명체가 생겨났을 것이라고 오파린은 가정하였다. 환원성 대기로부터 아미노산이 합성되었다는 오파린의 가설은 1953년 시카고대학의 유레이와 밀러의 실험에 의해 확인되었고, 마치 오파린의 주장이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초의 대기가 환원성이었다는 증거가 없고, 생성된 아미노산이 생명체가 필요하는 L-형이 아닌 D-형과 L-형이 동일한 양으로 함유되어 있는 혼합물이라는 사실은 화학진화의 가설을 부정하고 있다.  


8. 인류의 조상을 찾아서 - 조작된 증거들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된 후 사람들의 초점은 역시 인류의 조상이었다. 사람도 진화의 산물이라면 인류의 조상을 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많은 사람들이 유인원의 뼈를 찾는데 일생을 바쳤다. 그러나 대부분 불충분한 자료로부터 얻어낸 결론이거나 선입관에 의한 결론이었다. 심지어 자료를 조작하거나 변형시킨 경우도 있었다. 1892 년 듀보아는 자바에서 두개골, 치아, 대퇴골을 수집하고, 이것이 50 만년 전의 직립원인이었다고 주장했으나, 나중에 자바인은 원숭이라고 고백하였다. 1922 년 도오손 등이 영국의 필트다운 근처에서 발견한 턱뼈와 두개골은 이들이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원숭이의 턱뼈를 줄로 연마하고 긁은 것임이 밝혀졌다. 한편 해럴드 쿡은 네브라스카 강바닥에서 멧돼지의 치아 하나를 발견하고, 이것이 원인에 속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1959년 리키 부부가 동부 아프리카에서 발견한 두개골은 원숭이의 두개골로 판명되었으며, 1907 년 독일 마우어에서 발견된 턱뼈는 25 만년 전에 살았던 하이델베르크인이라고 하였으나, 치아로 보건대 이는 완전한 사람의 치아임이 확인되었다. 이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조상을 발견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인류의 진화를 믿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나온 편견일 따름이다. 


9. 지구의 연대 논쟁

창조론과 진화론의 핵심에는 지구의 연대에 관한 논쟁이 있다. 진화는 매우 천천히 일어나는 과정이므로 진화론자들에게는 필연적으로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창조론에서는 상당히 젊은 지구를 가정한다. 중세의 대학자이며 캔터베리 주교였던 어셔(Ussher)는 1650년 오랜 연구 끝에 지구는 BC 4004년에 창조되었다고 계산하였다. 본격적으로 과학적인 방법으로 지구의 연대를 계산한 사람은 켈빈경이었다. 그는 정교한 수학을 바탕으로 몇 번의 계산끝에 지구는 약 1억 년 정도 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 값은 현 창조과학적 입장에서 볼 때 매우 긴 연도지만 다윈의 진화론을 만족시키기에는 매우 짧은 연도였다. 이렇게 시작된 지구의 연대논쟁은 러더포드에 의해 방사성 동위원소에 의한 연대측정이 개발되면서 일단락되었다. 현재 진화론자들은 약 45억년 정도로 지구의 나이를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지구의 나이가 젊다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일례로서 지구의 자기장의 세기변화가 있다. 자기장의 세기는 계속 감소하는데, 감소속도로부터 자기장의 세기가 너무 강해 생명체가 살 수 없을 때까지의 연도를 계산하면 대략 1만 년 내외의 연도를 얻는다.  


10. 원숭이 재판과 진화론의 확산 

1925년 미국 테네시주의 데이튼이란 조그만 도시에서 세기적인 재판이 열렸다. 흔히 원숭이 재판으로 불리는 이 재판은, 피고인 스코프스라는 청년이 주헌법이 금하고 있는 진화론 교육을 공공연히 한데서 비롯되었다. 보조 생물교사였던 존 스코프스라는 청년이 당시의 몇몇 인물들과 모의하고 창조론 대신 진화론을 가르쳤다. 이 사실은 곧 교장에게 보고되었고 헌법을 위반한 죄로 고소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전 미국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재판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더 집중시킨 것은 검사와 변호사 모두 자원하고 나섰는데, 검사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서 세 번이나 경선에 나선 윌리암 제닝스 브라이언이었고, 변호사는 당시 명성을 날리고 있었던 클레런스 대로우였다. 그러나 결과는 브라이언의 참패로 끝났다. 이 사건으로 진화론은 더욱 위세를 떨치게 되었으며, 미 전역에 진화론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1981년 루이지애나주 입법자들은 공립학교에서 '진화 과학(evolution-science)' 을 가르칠 때는 '창조 과학(creation-science)' 도 동등하게 가르쳐져야 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법안은 연방판사가 종교를 세우려는 시도이므로 비헌법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시행되지 못하였다. 1987년 연방대법원은 루이지애나의 법안은 비헌법적이다 라고 7 : 2로 다시금 확인시켰다. 윌리엄 브레난 판사는 그 법안의 목적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인간을 창조했다는 종교적 관점을 고양하는 것이므로 비헌법적이라고 했으나, 반대의견을 낸 안토닌 스칼리아 판사는 "기독교인을 포함하여 루리지애나 사람들은 누구나 진화에 반대되는 과학적인 증거는 무엇을 막론하고 들을 자격이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창조론 교육이 금지되고 기도가 금지된 후 청소년들의 범죄율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통계는 얼마나 창조론 교육이 중요한지를 말해 준다. 현재 대부분의 주에서 창조론 교육이 금지되고 있지만, 학부형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다수가 창조론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11. 세인트 헬렌산 폭발과 지층의 형성 

1980년 5월 18일 미국 시애틀 남쪽의 캐스캐이드 산맥에 있는 세인트 헬렌 화산이 폭발을 일으키면서 주위에 지질학적 증거들을 남기게 되었다. 히로시마 원자탄의 수만배에 달하는 위력의 이 폭발은 엄청난 양의 화산분출물을 배출하였으며, 단 몇일만에 북쪽 평원에 지층을 형성하였다. 또한 화산활동으로 터져나온 엄청난 양의 흙더미가 화산 북쪽에 위치한 큰 강을 막아버렸고, 호수같이 변해버린 강에는 계속적으로 물이 차다가 결국 둑을 터뜨리고 홍수가 나면서 주변을 침식시켜 리틀 그랜드캐년(Little Grand Canyon)이라는 협곡을 형성하였다. 동일과정설에 의하면 수십, 수백만년이 걸려야 형성될 지질학적 과정들이 단 몇일 내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격변론을 증거하는 것으로서 부정합, 다지층 규화목 등을 포함한 여러 지질학의 난제들이 풀리게 되었다.  


12. 창세기 대홍수와 미국의 창조연구소의 설립 

현대 창조론의 시작은 1961년 헨리 모리스와 존 윗컴의 저서 '창세기 대홍수' 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9년 종의 기원 출판 100주년 기념행사가 시카고에서 대대적으로 열렸는데, 참가한 많은 과학자들은 이제 창조론은 사라지게 되었으며, 진화론만이 명백한 사실로 입증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창세기 대홍수'의 출판은 미약했던 창조과학 운동 부흥시키는 촉발제가 되었으며, 1963 년 창조연구회(Creation Research Society)를 설립하였으며, 1972 년 창조연구소(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를 설립하여 전세계의 창조과학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이 연구소에 창조과학 연구뿐 아니라, 석사과정의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으며, 해마다 전미국을 순회하며 '창세기로 돌아가자(Back to Genesis)' 강연을 하고 있다. 창조과학 박물관의 운영과 수많은 저술을 통해 창조과학의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13. 한국창조과학회 설립 

1980 년 복음화 대성회때 미국의 창조연구소의 과학자들을 초청하여 창조과학 세미나를 개최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81년 1월 31일 창립하게 되었다. 초대회장으로 김영길 박사(현 한동대 총장)가 임명되였으며, 현재 전국의 각 지역에 지부는 물론 미국 및 일본에도 지부를 두고 천 여명의 회원을 갖는 기독과학자 단체가 되었다. 사역은 주로 저술, 강연, 세미나를 통해 이루어지며, 최근에는 전국적인 창조과학 교사협의회, 청년창조과학자 모임이 결성되어 교육현장에서의 창조론 교육을 도모하고 있다. 또한 창조과학 교육원을 개설하여 기초교육과정 및 강사훈련과정을 통해 창조론 전파와 강사를 발굴하고 있다. 앞으로 창조과학관을 만들어 많은 이들이 직접 창조과학의 내용에 접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으며, 현재 인터넷 창조과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14. 생물교과서 소송사건 

이화여대 이양림 교수와 서울과학고의 이광원 교사(현 서울시 장학관)는 1990년부터 사용될 고등학교 생물교과서의 '생물의진화' 부분을 기존의 진화론과는 다른 입장에서 집필하였으나, 결국 교육부의 검정 불합격 처분을 받았다. 2차 심사까지 통과하였으나, 교육부의 수정지시는 책의 전체 내용을 흐리게 할 수 있고 집필의도와 상반되는 내용을 첨가해야 하므로 저자들은 이에 검정포기사유서를 제출하였다. 이에 교육부는 최종심사 불합격 판정을 내렸으며, 저자들은 탄원서를 제출하였으나, 교육부의 별다른 조치가 없자 교과서검정 불합격처분 무효확인 청구소송을 내게 되었다. 이 소송도 패소하게 되었으나, 창조론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생물교과서 소송사건은 현 교육계를 비롯한 우리 사회 지도층의 지적 수준을 나타낸 것으로서, 진화론의 영향이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15. 미국 캔자스주 교육위원회의 진화론 교육 금지 결정 

지난(1999년) 8월 11일 미국의 캔자스주 교육위원회는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모든 공립학교에서의 진화론 교육을 폐기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실로 획기적인 사건으로서 지난 수십년 동안 진화론은 과학이라는 미명 아래 진화론만 교육했던 미국을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다. 이 결정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사건은 지난 6 월의 컬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사건과 연이은 학생 총기사건이었다. 총기난사로 숨진 학생들의 장례식에 참석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는 "학교가 신앙교육을 금했고 그 결과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가 가장 위험한 곳으로 바뀌었다"고 설교했다. 그후 미 하원에서는 공립학교 및 공공건물에 십계명을 게시할 수 있다는 법안을 큰 표차로 통과시켰다. 진화론의 영향을 미국사회는 이제 인식해 가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창조지, 제 117호 [1999. 11~12]

이은일
2004-05-11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이라고 믿는 그리스도인 형제에게 

: 장대익 씨의 '한국창조과학 운동을 재고한다' 에 대한 반론


    *이 글은 '복음과 상황' 1998년 2월 호에 실린 장대익 씨의 "한국창조과학운동을 재고한다"에 대한 반론 글로서, '복음과 상황' 1998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 글 후에도 장대익 씨는 1999년 1월호에 "진화론이 과학이 아니라면 도대체 과학은 있는가?" 라는 글을 게재하며 한국창조과학회를 비판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에게 이 글을 드립니다. 이 글을 통해서 창조과학 사역에 대한 오해(?)를 풀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길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과학적 사실인 것처럼 여겨지는 진화론이 실재는 과학적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1.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진화론과 하나님의 말씀을 조화시킨 유신론적 진화론을 주장합니다. 이러한 유신론적 진화론은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이라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나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대진화'가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하버드 대학의 굴드 교수의 '단속평형론', 도킨즈의 '누적적 선택론'이 대진화의 난제 (대진화의 화석증거가 없는 등)를 해결했고, 진화론은 혹독한 반증의 시도에 잘 견디고 있다고 혹자는 생각하지만, 대진화 이론은 여전히 증명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합니다. 현재의 과학적 수준에서 대진화가 일어났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습니다. 단지 대진화가 일어났다는 전제하에서, 대진화의 증거가 없는 것에 대한 변명만 있을 뿐입니다. 진화론자들이 확실한 과학적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종 내에서 일어나는 변이 뿐입니다. 이러한 변이는 확실한 사실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변이를 종내의 진화(소진화)로 해석하고 있고, 이러한 소진화가 누적되어 종간의 진화(대진화)는 일어났을 것이라고 믿고 있을 뿐입니다. 유신론적 진화론을 믿는 형제들은 진화론에서 다루는 과학적 사실과 진화론적 해석(믿음)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진화론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진화론에 대한 믿음과 신앙의 조화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을 과학과 신앙의 조화로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과학과 신앙의 조화

기독교인이 과학에 적대적 태도를 갖는 것이 잘못된 것이며, 실제로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창조과학회가 과학에 적대적 태도를 갖게 하는데 기여하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입니다. 창조과학회는 과학의 주인도 하나님이며, 따라서 모든 과학이 성경 말씀과 배치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경 말씀이 과학적 사실을 기술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므로 성경말씀을 통해 모든 과학적 사실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과학적 사실이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과학적 사실이 성경을 보다 잘 해석하는데 기여할 수는 있지만, 성경 말씀의 전체 흐름을 변형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신앙의 영역에서 과학을 쫓아낸 제거주의적인 입장이나 신앙과 과학을 분리해서 다루는 분리주의 관점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르네상스 이후 인본주의 하에서 발전된 과학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열등감, 일제 시대를 경험한 한국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비주의와 기복주의의 영향 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권위주의적인 정권들을 거치면서 말씀과 삶이 분리되는 기독교인을 양성하는 우리 나라 교회 풍토에 그 책임의 일부가 있을 것입니다.

과학과 신앙의 문제를 다룰 때 이것들을 별도의 세계로 다루면서 두 세계의 조화를 이루려는 접근 방법보다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의 세계라고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나은 접근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일반 은총과 특별 은총으로 유지되고 있듯이, 과학의 세계에도 하나님의 일반 은총에 의한 과학자들의 발견이 계속 되고 있으며, 특별 은총에 의한 놀라운 과학지식의 발견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공부할 때도 지식과 지혜 없이 되는 것이 아니듯, 하나님의 자연세계를 공부할 때도 지식과 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다고 반드시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영적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듯, 과학의 세계도 예외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과학의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도구를 그리스도인들이 이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듯, 어둠의 세력도 과학 지식을 이용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사람들이 멀어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은 하나님이 주인이신 과학세계가 하나님 없이도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과학에서 진화론이 빠지면 많은 부분이 수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진화론이 없다고 해서 과학분야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있습니까? 현재의 과학은 진화론을 바탕으로 하나님 없이 기원문제를 설명하고, 홍수의 심판 없이 역사를 설명하고, 대홍수의 격변 없이 지층구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사실들을 솔직히 살펴보면 진화론적 가정이 얼마나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창조과학 강연을 듣고 충격을 받는 것은 과학과 성경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의 주인도 하나님이며, 따라서 과학지식을 통해 주인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질서를 연구하는 일은 하나님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지혜의 근본 되신 하나님과 함께 하면 더 잘할 수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세상의 과학자들에 비해 탁월한 업적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과학적 사실들이 성경말씀에 의해 모두 해석되어지지는 않습니다. 또한 창조과학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도 현재의 과학지식의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3. 유신론적 진화론에 대한 비판 

진화론과 성경말씀의 조화를 시도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유신론적 진화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창조론에 대한 해석에는 진화론을 성경말씀과 적대적인 것으로 취급하는데, 유신론적 진화론 입장에 있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진화론과 신앙의 조화를 시도하기 전에 우선 진화론이 진정 과학적 사실인지 더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화론의 많은 지식이 모두 거짓일 수 없지만, 진화라는 전체 틀은 아무도 증명할 수 없는 가설일 뿐입니다.

유신론적 진화론이 진화론과 신앙이 조화된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우선 무신론적 진화론과 유신론적 진화론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은 사람도 언젠가 새로운 생명체로 진화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유신론적 진화론에서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저절로 오랜 시간 후에 진화될 것이라고 믿고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유신론적 진화론에서는 진화론을 바탕으로 창세기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러한 해석이 보수적인 신학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이 복음주의자라고해서 자신의 신학이 옳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화론적인 창세기 해석은 성경말씀을 중심으로한 해석이 아니라 진화론에 성경말씀을 억지로 맞추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떤 유신론적 진화론을 주장하는 형제는 진화론자들의 과학적 지식은 옳은데 그들의 무신론적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진화론자들의 태도만 무신론적인 것이 아니라 진화론 자체가 무신론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진화론은 기원에 관한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자연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는 학문입니다. 모든 것이 우연히,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님 없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이 진화론입니다. 유신론적 진화론에서는 "모든 것이 우연히,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진 것"이 하나님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우연을 유신론적 진화론에서는 하나님의 의지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유신론적 진화론은 과학적인 비판과 신학적인 비판에 모두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당신의 뜻과 말씀으로 창조하실 때 우연과 오랜 시간 속에 두신 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의 범죄, 구원, 최후의 심판이 우연과 오랜 시간 속에서 어떻게 조화되는 것인지 성경 말씀이 주는 해석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어떻게 이런 우연과 오랜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의지와 지혜를 발견하여 그분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보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많이 봅니다. 진화론이 맞다면, 하나님은 자신을 창조주로 주장하기보다는 관찰자로 주장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놀라운 만물이 단지 하나님이 주신 우연과 시간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으로도 자연세계에서 발견되는 엄격한 법칙과 질서가 어떻게 우연히 생성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아름답고 거대하게 지은 교회를 보면서, 설계도에 의해서 지어졌다고 믿는 것이 타당한지, 우연히 여러 재료들이 결합되면서 반복하여 오랜 시간동안 건축되면 언젠가는 가능한 것이었다고 믿는 것이 타당한지를 분별하는 것과 유사한 것입니다. 자연 세계의 엄격한 질서와 아름다움은 원인 없는 우연한 발생보다는 초자연적인 지혜가 개입된 창조임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형성에 대하여도, 단지 오랜 시간과 우연에 의해 이 모든 것이 이뤄졌다는 진화론적인 주장에 대하여 많은 비그리스도인 과학자들도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교한 디자인이 저절로 우연히 이뤄지기에는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우주의 나이인 150억 년의 시간도 너무나 짧습니다.

어떤 형제는 존경받는 복음주의자 존 스토트의 견해를 소개하며 유신론적 진화론이 복음적인 진영에서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존 스토트가 유신론적 진화론자라고해서 그가 존경받는 복음주의자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도 많은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여러 가지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일으킨 종교개혁의 중요성과 그의 역할이 과소 평가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존 스토트의 견해도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출발한 것 뿐입니다. 

 

4. 진화론과 과학

한 형제는 "자신의 유신론적 진화론이 진화론 자체가 무신론을 결과하지 않는다는 인식, 더 나아가 과학 전반이 무신론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중요한 통찰로부터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진화론에 대한 논의는 이미 했으므로 제외하고, 그 밖의 과학지식은 무신론을 결과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많은 과학지식이 가치 중립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 전반이 무신론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요? 과학적 지식은 과학적 관찰과 과학자의 해석이 함께 해서 이뤄지며, 그 시대가 만든 특정한 패러다임 내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진화론이 혹독한 비평에도 계속 유지되는 것이 과학적으로 뒷받침되는 증거라고 한 형제의 글에서 시사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화론은 기원과 연관된 큰 패러다임입니다. 생물학, 우주과학, 역사학, 인류학 등 여러 학문분야에서 처음 시작을 설명하는 패러다임입니다. 이 패러다임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과학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대신할 패러다임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을 대치할 패러다임은 창조론 입니다. 즉, 처음 시작부터 전능자의 지혜가 개입되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비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은 창조론은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진화론은 과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창조론이 진화론을 대처할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논란과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많은 새로운 진화 이론들이 나오지만 진화론이라는 전체 패라다임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입니다.

창조론을 종교적 믿음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없이 이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식(과학)과 사람(믿음)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좋은 예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라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입니다. 세상사람들이 죄인이라고 해서 항상 악한 일만 하는 것이 아니듯, 이러한 죄인들로 이뤄진 과학자들이 이루어낸 업적이 항상 무신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인정할 수 없는 무신론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5. 창조과학과 과학

창조과학자들이 자기의 주장만이 옳으며, 기존의 과학적 사실을 외면하는 분파주의라는 어떤 형제의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오류는 성경에 대한 바른 해석과 과학적 사실에 의해, 무엇보다도 성령님의 인도하에 계속 수정될 것입니다. 그러나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는 명백한 진리를 창조과학회는 선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화론은 창조주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진화론 문제와 젊은 지구 문제 등 연대에 대한 문제는 연계되는 주제이지만 결코 같은 주제는 아닙니다. 창조과학자들이 젊은 지구를 주장하는 것은 진화론적인 가정에 따라 오랜 시간에 걸쳐 우주와 지구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대 문제에 대한 해석에 창조과학자들 사이에도 다른 의견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창세기 1장의 '날(욤)'이 24시간을 의미하는 것인지, 오랜 시간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의 기록이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가 온 우주에 임하기 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현재의 과학적 발견이 하나님이 최초로 창조하셨을 때의 우주에서도 동일하다고 주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처음 하나님이 창조하신 죄가 없는 세계는 지금과 다른 법칙 하에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

창조과학회가 과학의 세계에서 하는 일은 하나님이 주인(Lord)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창조과학회에서만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창조과학회에 가입되지 않은 많은 그리스도인 과학자들 중에는 자신의 영역에서 하나님께 귀한 도구로 쓰임 받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창조과학회 이외에도 과학과 지식의 세계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그리스도인 단체들도 있습니다. 창조과학회는 여러 기독교인 형제들이 하나님께 부름받고 하시는 여러 사역에 대하여 존경과 사랑을 표합니다.

창조과학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진화론자들을 적, 이단자, 심지어 마귀의 자식들로 보는 태도가 있었다면 이것은 잘못된 교만한 태도일 것입니다. 진화론이 분명 잘못된 것이며, 많은 청소년들에게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게 하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삶의 현장에 적용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할지라도,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창조과학 운동에 대한 여러 그리스도인 형제의 비판도 창조과학 운동을 하는 우리들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학술단체라기 보다는 선교단체라는 비판은 바른 지적입니다. 창조과학회는 학술적인 발전을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과학회는 학술적인 발전과 함께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과 진화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선포하는 일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6. 글을 마치며

저는 한 친구를 알고 있습니다. 생물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석, 박사 학위를 한 후, 박사후(post Doc)과정을 하면서 그때서야 예수님을 믿게 된 이 친구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기 전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하면서, 생명이 창조자 없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믿었다. 그 엄청난 질서와 규칙은 절대로 만든 자 없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한 자매는 "캐나다에서 생물학을 공부하는데 그리스도인이 아닌 교수가 진화론은 하나의 가설일 뿐이라고 강의시간에 이야기하여 충격을 받았다"고 저에게 이야기 했었습니다. 창조과학자 중에는 뛰어난 학자로 인정되고 있는 생물학 전공자가 있습니다. 이 생물학 전공자는 진화론을 믿지 않고, 창조론을 믿는데 아무런 갈등이 없습니다.

진화론의 지식 속에서 진화론을 보지 말고, 진화론 밖에서 진화론을 보면, 그것은 인간이 만든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곧 알 수 있습니다. 창조론도 진화론과 마찬가지로 믿음 체계입니다. 그 믿음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창조과학자들은 경험하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증거보다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창조과학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하거나 오류를 범하지만, 주님께서 우리들의 사역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에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꿈은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창조과학관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 엄청난 일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제 더 이상 진화론 문제로 인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나눔이 있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미 많은 과학적 증거가 진화론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창조론도 증명할 수 없는 믿음체계이지만, 자연세계의 질서와 법칙은 자연세계를 만드신 분이 있다는 것을 지지합니다. 창조과학은 과학으로 하나님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으로 하나님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형제님들이 자신의 적은 지식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시고, 어렵더라도 그분을 무조건 신뢰하고, 그분이 하신 성경말씀을 제한하지 않고 믿으시길 바랍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라" (롬 1:20)


출처 - 창조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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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line News
2004-04-27

100명의 과학자들이 다윈이론에 도전하는 성명서에 서명하였다


      The Discovery Institute 1는 우연한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으로 복잡한 생명체들이 생겨났다는 설명은 매우 의심스러우며, 다윈의 이론들에 대한 증거들은 매우 주의 깊게 조사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성명서에 100 명의 과학자들이 서명하였다고 발표하였다.(2001년 9월). 덧붙여서 공공 여론 조사기관(national Zogby Poll)의 여론 조사3에 의하면, 81%의 미국인들이 “공공 방송에서 다윈의 진화 이론을 다룰 때, 진화론에 찬성하는 과학적 증거들뿐만 아니라, 진화론에 반대되는 과학적 증거들도 같이 소개하여야만 한다” 고 응답하였다.     


이것은 PBS가 그들의 “진화 (Evolution)” 시리즈를 TV에 방영함에 있어서 대중의 의견을 어떻게 무시하고 있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모든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인정하고 있다는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The Discovery Institutes는 말한다.

  “반복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시리즈의 제작자는 다윈 이론에 반하는 과학적 증거들을 소개하기를 거부했다. 대신 제작자는 시리즈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과학적 반대자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단지 개인적인 신앙 이야기와 "하나님은 누구신가?"에 관한 이야기로 유도하여, 다윈 이론에 반대하는 주장들이 단지 종교적인 주장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1) http://www.discovery.org/

2) http://www.reviewevolution.com/press/pressRelease_100Scientists.php

3) http://www.zogby.com/soundbites/ReadClips.dbm?ID=3944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0901.htm 

출처 - CEH, 2001. 9. 26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190

참고 : 3688

임번삼
2004-04-27

과학과 종교


      많은 사람이 오해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과학과 종교가 서로 상충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진화론은 과학이지만 창조론은 과학이 아닌 기독교의 교리라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과학과 종교가 상충하고, 창조론이 기독교의 교리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편견이다. 20세기의 위대한 물리학자로 추앙받는 아인슈타인(1879-1955)은 "종교가 없는 과학은 장님이고, 과학이 없는 종교는 절름발이"(Science without religion is lame, religion without science is blind)라 하였다. [Albert Einstein; Ideas and Opinons, Crown Publishers, New York, 1954] 뉴톤(Issac Newton 1642-1727)은 종교와 과학은 충돌하지 않으며, 이성(理性)은 종교의 적이 아닌 벗이라 하였다. 모두 종교와 과학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과학계는 매우 이상한 풍조에 휘말리고 있는 것 같다. 과학의 영역이 비과학적인 편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 극명한 예가 진화론에 대한 맹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오늘날 진화론은 흡사 학문적으로 완전히 실증이라도 된 학설인 양 학교교육에서 배타적으로 가르쳐지고 있는 데, 이는 매우 비합리적이고 부당한 일이다. 생명의 기원문제나 동식물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는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로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식물들이 무기물에서 저절로 발생했다는 자연발생설(自然發生說)만이 옳고, 창조주가 목적을 가지고 처음부터 종류대로 완벽하게 창조했다는 창조설(創造說)은 기독교의 교리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비과학적이라고 진화론자들은 매도한다.

 

오늘날 3천여만 종에 달한다는 동식물의 다양성(多樣性 biodiversity)에 대해서도 이들 모두가 단세포인 아메바가 점진적으로 진화되어 생긴 것이라는 진화론(進化論)이 흡사 유일한 과학의 정설인 양 학교교육에서 가르쳐지고 있으며, 처음부터 생물이 종류대로 만들어졌다는 창조론은 철저히 배격되고 있는 실정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동일한 사상(事象)에 대한 해석법은 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교육계에서는 진화론적 해석만 가르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흡사 중세시대에 잘못된 교회권력이 학문을 억압했던 것과 꼭 같은 상황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진화론은 분명히 실험적으로 증명이 안 된 가설(hypothesis)이라는 점에서 비과학적(非科學的 non-scientific)이라 할 수 있다. 증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창조론도 마찬가지이다. 두 이론 모두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그렇게 되었으리라고 믿는 해석체계(interpretation paradigm)요 신념(belief)이며 신앙(faith)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적 창조론(biblical creationism)이야말로 비과학으로 매도되어 온 초과학(超科學 super-science)이라 할 수 있다. 두 이론 모두 '과학적으로는 검증할 수도 없고(not falsifiable), 따라서 재현성이 없는(not reproducible), 자연을 바라보는 하나의 해석체계이며 세계관'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Thomas Kuhn;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icago, 1961] 창조론이 눈에 보이지 않는 창조주를 믿는다는 점에서 신앙적인 요소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무기질에서 생명이 저절로 발생했다고 믿는 진화론은 창조론자들보다 더 큰 믿음을 필요로 한다. 결국, 두 이론은 가치관의 충돌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은, 신앙에 따라 견해를 달리할 수는 있겠지만, 창조주인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다. 따라서, 창조원리를 추구하는 과학과 성경은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내용이 과학의 이론에 얽매이지 않는다. 과학적 지식은 시대가 흐르면 바뀔 수도 있으며 오늘의 정설이 내일은 잘못된 가설로 수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의 과학이론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하여 성경의 기술내용이 비과학적이라고 단언해선 안 된다. 만일, 하나님이 진실로 창조주이시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창세기를 덮어두고서 우주와 자연을 논한다는 것은 넌센스가 될 것이다. 이 경우, 성경은 과학의 이론으로 해석될 수 없으며 과학을 오히려 성경에 비추어 해석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우주를 만든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설사, 기독교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창세기의 창조기사(創造記事)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을 성경에 근거한 창조과학이 세계학문의 구심점이 되어 왔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직접 연구하며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진화론뿐 아니라 창조론도 같이 가르치고 교육내용에 대한 선택은 학생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처럼 중고등학교의 교과서가 국가의 검인정을 받는 나라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누가 무슨 권리로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인, 게다가 실험 검증도 거치지 않은 진화론만 가르치도록 강요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람의 조상을 원숭이라 가르치면서, 인격을 운운하는 무신론적인 교육을 왜 우리 자녀들이 받도록 강요당해야 하는 것일까? 창조론은 기독교교리(biblical creationism)로서가 아니라 당당한 창조과학(scientific creationism)으로서 가르쳐져야 마땅할 것이다.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2

참고 :

Kent Hovind
2004-04-08

호빈드 박사의 25만 불 제안 2 

(Dr. Hovind's $250,000 Offer 2)


25만 달러 제안에 대한 일반적 질문에 대한 대답


국가 세금으로 예산이 지원되는 공공학교의 학생들이 진화론은 사실이다 라는 가르침을 받아오고 있다. 진화론은 과학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종교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진화론은 어떠한 과학 교과 과정에서도 제외되어야 한다. 그것은 과학의 주제와 관계가 없다. 과학교과서에서 사용되는 진화(evolution)라는 단어에는 적어도 6 가지의 다른 의미들, 그리고 관련 없는 의미들이 들어 있다.

1. 우주 진화 (Cosmic evolution) - 시간, 공간, 물질의 기원. 빅뱅(Big Bang).

2. 화학 진화 (Chemical evolution) - 수소로부터 무거운 원소들의 기원.

3. 별과 행성 진화 (Stellar and planetary evolution) - 별들과 행성들의 기원.

4. 유기 진화 (Organic evolution) - 무생물로부터 생명체의 기원.

5. 대진화 (Macroevolution) - 주요한 종류(kinds)들의 기원.

6. 소진화 (Microevolution) - 종류(kinds)들 내에서의 변화들(variations).

단지 마지막 항목 하나만이 관측될 뿐이다. 그리고 처음의 5가지는 종교적이다. 그것들을 입증할 만한 어떠한 경험적 증거(empirical evidence)도 없음에도, 그들은 신념에 의해서 믿고 있다. 나는 처음의 5가지를 받아들이는 진화론자들의 위대한 신념에 감탄하면서, 이러한 종교적인 선전(religious propaganda)이 납세자들의 비용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에서 합법적인 과학으로 포함되는 것에 반대한다.


전형적인 공공학교의 교과서들을 살펴보면, 학생들은 위에 제시된 6 가지 진화의 종류들이 모두 입증되었다고 생각하도록 속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진화라고 불리는 작은 변화에 대한 증거 밖에 제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속임수는 고전적인 유인 상술(bait and switch)이라고 할 수 있다. 진화의 한 정의만 주어지고(가령 변화를 나타내는 후손과 같은), 나머지 것들은 사실인 것처럼 가정하고 있다. 처음의 5가지 의미들은 결코 관측되지 않기 때문에 신념에 의해서 믿어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종교적이다. 단지 마지막 것만 과학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성경에서도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있다. 동물과 식물들은 종류대로 번성하라고 창세기 1장에 기록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진화의 과학적 증거에 대한 나의 25만불 제안에 대해서 반응해 왔다. 제안의 기간과 조건들은 나의 웹 사이트 ww.drdino.com 에서 명백하게 기술해 놓았다. 여기에 흔히 물어보는 질문들에 대해 대답을 해 놓았다.

1. 제안은 합법적이다. 나의 부자 친구가 은행에 돈을 가지고 있다. 제안된 조건이 충족된다면, 돈은 즉시 지불될 것이다. 나의 말은 사실이다.


2. 제시된 증거를 판단할 위원회의 과학자들은 모두 과학 분야에서 학위를 가지고 있고, 각자의 분야에서 오랜 기간 현장 일들을 수행한 경험이 있는 매우 잘 훈련된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그들은 동물학자, 지질학자, 우주공학자, 방사선, 생물물리학 교수, 이름이 알려진 방사성연대측정 전문가 등이다. 그들은 바쁜 사람들이고, 바보 같은 응답에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또한 진정한 대답을 원하지 않는 어리석은 질문들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 이것이 나의 제안에 대한 전형적인 반응이다) 회의론자들과 조롱하는 자들과 논쟁하는 데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을 것이다. 만약 위원회가 구성된다면, 그때 그들 스스로가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제시된 증거가 명백하고 합리적이라면, 그들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3. 동식물의 같은 종류(kind) 내의 작은 변화에 대한 증거는 증거로서 간주하지 않을 것이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위원회에 보내지도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불임 잡종에서의 염색체 수의 배가는 새로운 유전 정보를 증가시키지 못한다. 그것은 부모 식물에서 이미 존재하던 유전정보를 복제하는 것이다. 새로운 유전 정보의 더해짐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 식물은 새로운 종, 또는 다른 종으로 분류될 수 없다. 식물은 어떤 배수체(polyploid)의 식물에서 관측되는 것처럼, 많은 모습들이 (좀더 크고, 무성하고 등) 다를 수 있다. 그러한 쉽게 확인되는 표현형의 변화는 많은 혼동을 일으키고 있다.
일부 진화론자들은 하나의 새로운 종이 진화로 태어났다고 비약적인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종에는 어떠한 새로운 유전 정보도 증가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종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제안이 요구하는 진화의 증거가 아니다. 나의 웹 사이트에서 250,000 달러 제안에 대한 내용들을 살펴보라. 일부 사람들은 종류(kind)라는 단어의 간단한 정의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성경에서 종류는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부류로 말해지고 있다. 서로 교잡하여 번식할 수 있는 동물들은 원래 같은 종류이다. 6000 여년이 지나 지금에는 많은 다양성들이 나타나, 원래 종류의 몇몇 변화체들은 이제는 서로 번식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알라스카의 토끼는 플로리다의 토끼와 번식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같은 종류의 동물이었다고 생각한다. 개와 늑대는 같은 종류의 동물임이 분명하다. (그들은 현재 다른 종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번식이 가능하다.
종(species)의 간단한 정의는 무엇인가?). 그러나 개와 물고기는 다른 종류이다. 원래의 종류(kind)란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것은 가치가 있는 일로 아직까지 약간 애매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질문을 개진하는 것보다, 개와 물고기의 비교와 같은 명백한 경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이다. 이들은 분명히 다른 종류의 동물이다. 그래서 명쾌함을 위하여, 개와 물고기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진화되었음을 입증하면 된다. 정직한 과학자는 개와 물고기가 공통의 조상을 가진다는 것을 입증할만한 어떠한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개와 물고기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이 아니다. 그리고 그 점이 내가 제안을 하게 된 점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형태의 진화가 우연히 발생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순진한 학생들에게 사실로서 제시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나머지 4 개의 진화가 일어났었다는 증거는 확실히 없다.

4. 대다수의 과학자가 이 이론을 믿는다는 생각도 증거가 될 수 없다. 대다수 의견은 자주 틀렸었으며, 정정됐었다. 역사는 그러한 예로 가득하다.

5. 익명의 편지는 무시될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진화의 과학적 증거를 간단하게 제출하는 것보다는, 위원들은 누구인지, 은행에 돈은 정말 있는지, 종류라는 단어의 정의는 무엇인지 등등과 같은 핵심을 벗어난 문제들에 대한 질문 편지들을 보내며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내가 웹 사이트에 그러한 질문들에 대해 반응하지 않았을 때, 그들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거나, 나의 제안은 사기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주제와 상관없는 말로, 진화론 종교를 지지하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사실로부터 주의를 멀어지게 하려는 전술을 사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다시 한번 질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당신이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 둘러서 말하지 말고 그것을 나에게 보내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당신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증거를 우리에게 제출하라.

많은 사람들이 소진화의 증거를 제시한다. 그리고 나머지 5 가지 단어의 의미는 어떻게든 불가사의하게 연결되어졌다고 가정한다. 그들은 명백한 것에 대해 눈이 멀은 것처럼 보인다. 25만불의 제공은 그것을 이룬 사람에게 지급되도록 변호사가 취급할 것이다. 당신이 할 일은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사실로서 (위에서 언급한 진화라는 단어의 6가지 의미 모두) 가르쳐지고 있는 이론이 정말로 사실인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증명될 수 없다면, 진화론은 과학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임을 인정하여야만 한다.

몇몇 사람은 진화의 정의에 우주의 기원이 포함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진화란 단지 시대를 지나면서 유전자에 빈발하는 변화만을 지칭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이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은 교과서들을 읽어보라. 거기에는 위의 6 가지 의미들이 진화론으로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진화론이 교과서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당신이 동의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진실한 사람이라면, 그것을 교과서에서 제거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기 바란다.

수 년 동안 나는 많은 진화론자들이, 당신은 중력을 믿지 않는가? 라고 하면서, 중력의 법칙이 하나의 이론인 것처럼, 진화도 하나의 이론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왔다. 그들은 마치 반복이 진실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이 말을 반복해왔다. 그들의 예는 물론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중력은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매순간 관측될 수 있다. 우리는 중력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서 시험과 실험을 해볼 수도 있다. 누구도 그것의 예외를 일찍이 발견하지 못했다. 같은 표현으로, 누구도 진화를 관측하지 못했다. 그리고 종류 안에 소규모의 변화를 넘어서는 어떠한 진화도 설명하지 못한다. 중력과 같은 이론과 비유함으로서 진화가 과학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나의 25 만불 제안에 대한 거의 모든 응답들은 이와 같은 것들이었다. 물론 누구도 진화를 입증할 수 없다. 당신은 창조를 입증할 수 있는가? 이 반응이 내가 기대하는 것이고, 원하는 것이다. 기원에 관한 이론들은 입증될 수 없다. 둘 다 볼 수 없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신념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논리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왜, 세금으로 지원되는 공공학교나 기관에서 학생들은 진화론이라는 종교만을 배우고 있는데, 나는 왜 세금을 내야만 하는가? 모든 납세자들이 공공학교에서 진화론만이 독점적으로 가르쳐지는 데에 비용을 지불하도록 강요당했기 때문에, 진화론자들은 지난 130 여년 동안 수십억 달러의 연구비를 그들의 종교를 입증하기 위한 일에, 그리고 그들 이론의 증거를 확보하려는 일에 사용하여 왔다.

나는 긴 시간 e-mail을 통한 토론에 참가할 시간도 없고, 관심도 없다. 그러나 어떠한 자격이 있는 과학자와 대학에서의 공개 토론 (진화론자가 진행을 맡아도), 또는 라디오나 TV 에서의 공개 토론이나 전화 토론에는 누구하고도 이야기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전화를 한다면, 물어볼 질문 또는 토론할 주제의 목록을 정하고, 원한다면 대화하는 내용들을 녹음할 수 있다. 다만 당신이 녹음한다는 것을 나에게 먼저 알려주면 된다. 나는 이러한 반응이 만족스러울 것으로 희망한다.

나는 진화론은 진정한 과학과 혼합된 하나의 종교임에 불과함을 수 년 동안 가르쳐왔다. 진화론은 그것을 믿는 많은 사람들을 멍청이로 만들어 버렸다. 어떤 동물이나 식물이 다른 종류의 동물이나 식물로 변화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이제 전 세계의 많은 지식인들이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동물들의 종류들 사이에 변화가 있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종류대로 번성하라고 그들에게 말하셨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일찍이 관측된 전부이다. 같은 성경에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창조주 앞에 서서 그가 말하고, 행하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심판받게 될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 날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주님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누구에게나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준비해야 된다고 권하고 싶다. 만약 당신이 크리스천이 되어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나에게 전화를 하기 바란다. 나는 자리를 비울 때가 많지만, 사무실에 있을 때에는 전화를 받을 것이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대부분 850-479-3466 번으로 전화를 받을 수 있다. 만약 부재 시에 나와 통화하기를 원한다면, 나의 웹 사이트에서 나의 스케줄을 확인하기 바란다. 가능하면 나의 세미나에 참석하기 바란다. 나의 세미나는 무료이며, 참석한 사람이 물어보는 질문에는 항상 충분한 대답을 하고 있다.

평안하기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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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트 호빈드 (Kent Hovind)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drdino.com/cse.asp?pg=articles&specific=1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914

참고 : 1912

임번삼
2004-01-29

과학적 연구방법 이란? 

: 귀납법과 연역법, 그리고 진화론


    캠브리지 대학의 근대사 교수인 버터필드(H. Butterfly)는 <근대과학의 탄생>(Origin of modern science 1946)에서 인류역사상의 3대 혁명이 있었다고 하였다. 도시혁명, 그리스혁명, 과학혁명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과학혁명을 가장 중요시하였는데, 그 이유는 과학혁명이 다음과 같은 사건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1) 아리스토텔레스적 자연관의 붕괴

(2) 과학적 방법의 확립

(3) 과학과 기술의 결합

(4) 기계론의 승리

(5) 제도로서의 과학의 성립

이 중에서 주목할 사항이 과학적 방법 (Scientific Research Method)의 확립이다. 그는 모든 이론이나 학설이 과학적 방법으로 전개될 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정설로 수용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과학적 방법이란 어떤 것인가?

우리가 자연계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연구하면, 그 속에 숨어있는 자연의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원리에 대한 연구로 지식이 증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이 학문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실험과 검증을 통해 공인을 받아야 하며, 여러 번 반복해도 꼭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 즉, 과학 이론은 인과율과 재현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말이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원인이 있으므로 결과가 나타난다는 인과율(因果律 law of cause and effect)이 철저히 적용되기 때문에, 어떤 사실을 관찰하면 그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마련이다. 이처럼, 과학이란 자연이나 사물의 원리를 과학적 방법으로 추구하여 체계적인 지식을 세우는 작업이다.

이러한 과학적 방법론은 11세기의 이슬람의 실증적인 과학기술이 유럽으로 전달되면서 16-17 세기에 지금과 같은 이론으로 발전한 것이다. 베이컨, 로크, 데카르트, 갈릴레이 등이 그러한 방법론을 제시한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상적인 방법론을 거부하고 각기 다른 과학적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베이컨과 로크는 귀납법을 주장한 반면, 데카르트는 수학적 연역법을, 갈릴레이는 수학적 연역법에 실험을 가미한 실험적 연역법을 주장하였다. 베이컨의 귀납법(歸納法)과 데카르트의 수학적 연역법은 이태리의 파두아 대학에서 꽃을 피웠다. 현재, 자연과학에서는 귀납법이 가장 널리 수용되고 있다.

 

1. 귀납법

귀납법(歸納法 inductive method)은 어떤 가설을 설정해 놓고서, 개개의 존재나 사실로부터 일반적인 원리를 유도해 내는 논법이다. 이 방법은 영국성공회의 임원이었으며 제임스Ⅰ세 때(1620)에는 수상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던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이 자연과학의 방법론(Baconian principle of inductive reasoning)으로 제시한 것이다 (사진 1). 그는 <새 기관>(Novum Organum 1620)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불충분한 관찰로부터 일반원리를 무리하게 도출했다고 비판하면서, 과학적 방법으로서 경험론(Empiricism)에 기초한 귀납법을 주장하였다. 그는 학문을 함에 있어서 먼저 네 가지 우상을 제거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사물을 우리와 관련하여 보려는 종족우상, 성격과 교육에 따라 편향된 시각으로 보려는 동굴우상, 사물을 해석할 때 사용하는 언어를 잘못 선택할 수 있는 시장우상, 그리고 마음속의 철학체계의 영향을 받게 되는 극장우상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성과 관찰간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자연에 대한 자료를 수집, 분류, 도표화하여 일반화된 결론을 도출해야 하며, “경험주의자들은 자료를 모으는 개미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만큼 과학적 방법은 충분한 자료에 근거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학문하는 방법으로는 관찰성 (관찰이 가능하고 수량화할 수 있을 것), 객관성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관찰할 수 있을 것), 재현성 (누가 어디서 실험하든 동일한 결과가 나올 것)을 강조하였다. 이렇게 하여 얻은 결과는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미래사실에 대해 예측이 가능해야 하며, 새로운 관측에 의해 수정이 가능하고, 잘못되었을 경우 그 잘못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귀납법의 추진과정은 다음 순서에 따른 실험을 요구한다 (그림 2).

  (1) 자연현상을 관찰한다 (observation).

  (2) 관측으로부터 문제를 제기한다 (questionning).

  (3)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가정을 설정한다 (assumption).   

  (4) 가정을 증명할 수 있는 가설을 세운다 (working hypothesis).

  (5) 실험을 통하여 가설을 증명한다 (experimental demonstration).

  (6) 다시 반복실험을 하여 재현성이 있으면(reproducible) 자연법칙(natural law or principle)으로 인정을 받는다. [Randy L. Wysong; Creation-Evolution: The Controversy, p 42, Inquiry Press, Midland, Michigan, 1978]


이러한 귀납법의 등장은 그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연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귀납법의 가장 성공적 사례가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그는 어느 날,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왜 아래로 떨어지는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지구의 중심부에서 끌어 당기는 힘이 있으리라고 추리하였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가벼운 물건과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통하여 무거운 것이 더 빨리 떨어진다는 인력(引力 gravitation)과 가속도(加速度 degree of acceleration)의 원리를 입증했다. 그리고, 이러한 실험결과는 언제 어디서나 같은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재현성) 만유의 법칙(萬有法則 universal law)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소위 만유인력의 법칙(law of universal gravitation)이다.

그러나, 이러한 귀납법은 경험세계에서만 유효하며, 형이상학적 요소를 무시함으로써 실험과학의 독선에 빠지게 된다는 지적이 최근에 일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쿤(Thomas Kuhn)이다. 그는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ce Revolution 1970)에서 귀납적인 점진적 발전론을 비판하고, 기존이론에 대한 혁명적 전환에 의해 과학발전이 급속히 이루어진다는 패러다임 쉬프트설(paradigm shift theory)를 주장하였다. 즉, 패러다임 혁명은 기존학문과는 전혀 다른 질문과 이론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상반되는 패러다임 간에는 의사의 소통이 없이 서로 대립하게 되므로, 격렬한 논쟁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새로운 이론이 옛 이론을 축출하고, 새로운 정설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천동설에 대한 지동설, 뉴톤역학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 등을 그 예로 들었다. 이러한 귀납법에 대한 비판에는 포퍼(Karl Popper)도 가세하였다. 그는 귀납모델이 가르치듯이 과학자들이 실제적으로는 객관적인 자료를 수집하여 관찰하지 않는다고 자연과학자들의 성실성을 비판하면서, 마르크스주의와 프로이드 사상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2. 연역법

연역법 (演繹法 deductive method)은 일반원리에서 논리적인 방법으로 필연적인 결론을 유도해 내는 방식이다. 예컨데, “홍길동은 죽는다” 라는 명제를 증명해 보기로 하자. 연역적으로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 라는 대원리로부터 출발한다. 이는 누가 보아도 자명한 원리이다. 다음 단계로 ”홍길동은 사람이다“ 라는 보편적 사실을 설명한다. 마지막 단계로 ”따라서, 홍길동은 죽는다“는 자명한 결론을 유도한다. 이러한 삼단논법(三段論法)은 소크라테스가 처음으로 정립한 것이지만, 그 뿌리는 일원론(monism)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들은 우주의 원리로부터 세상에서 일어나는 제반 현상들을 연역적으로 설명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삼단논법을 포함한 변증법(辨證法, dialectic)은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60)에 의해 수학적 연역법으로 체계화되었으며(사진 2), 지금은 철학의 원리나 종교의 교리로부터 일상적인 생활법칙을 유도해 내는 데 많이 활용되고 있다. 예컨데, 헤겔(Hegel)은 변증사관을 수립하여 역사의 인식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그의 변증사관은 다시 마르크스에 의해 유물사관의 수립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이며 ‘근세철학의 아버지’로도 불리우는 데카르트는 예수회에서 철저한 교육을 받은 유신론적 과학자였다. 그는 철학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 하였으며, 그의 학문은 의심에서 출발하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말은 이러한 회의론을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의 <방법적 회의>(la doute methodique)는 첫째는 사물인식에 대한 감각적 경험이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회의, 둘째는 우리 마음이 감각적인 경험을 넘어 외부세계에 대한 바른 지식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회의이다. 그래서, 그는 감각을 부인하고 “이성(理性)은 신이 주신 자연의 빛(lumen naturale)이며, 이성에 의해 명석하고 확실하게(clair et distinct) 바른 것으로 인정된 것이 진리”라 하였다. 이처럼, 직관에 의해 자명하게 인정된 학문분야가 수학(數學)이라고 그는 주장하였다. <방법론에 대한 강연>(Discourse on Method 1637)에서는 “우주는 수학적 법칙이 지배하는 기구”로 보았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나 스콜라철학과는 다른 수학적 연역법을 도입하였으며, 가설과 수학적 추론으로 법칙을 유도하려 했으나, 경험(실험)을 무시하는 오류를 범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학문적 방법으로 다음의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하였다.

① 독단과 편견을 피하고, 진실이라고 생각되는 것 이외의 것은 받아들이지 말라. 자신이 의심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② 연구하려는 문제를 해결이 가능한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라.

③ 사고순서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방향으로 하라.

④ 전체를 종합하여 다시 보라. 그 문제를 완전히 설명할 수 있어야 진리이다.

그는 인간이 주관적으로 지식과 진리를 결정하는 주체라고 하여, 후일 서양학문이 인본주의적이며 반신적(反神的)인 방향으로 흐르는 길을 터놓았다. 그리고 “동물은 신이 만든 단순한 기계” 라는 생체기계론(生體機械論)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자연스럽게 라메뜨리의 생명기계론으로 연결되어, 생명사상에 관한 새로운 학술논쟁을 예고하게 하였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이성을 가진 존재이므로, 육체와 영혼은 별개의 것이라는 이원론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Traite e l'homme' 1630).

 

3. 실험적 연역법

지동설로 유명한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의 방법론은 데카르트와 같은 연역법이지만, 수학적 추리에 실험적 검증을 가미한 것이다. 연역법에 실험이 가미됨으로써 데카르트의 미비점이 보완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관찰과 실험을 중시하는 현대과학의 방법론이 확립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 후, 서양을 중심으로 한 자연과학은 귀납법과 실험적 연역법에 의해 급속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특히, 귀납법은 자연과학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었으며, 지금은 페러다임 쉬프트이론과 더불어 자연과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4. 형이상학은 믿음의 문제

이 세상에는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과학의 영원한 테마라 할 수 있는 생명의 기원과 생물의 다양성문제, 우주만물의 기원 및 인간, 내세, 영혼, 신, 진리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과제들은 실험과학으로는 증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과제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해석방법이 있다. 하나는 종교적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해석의 틀을 미리 설정해 놓고서 제반 사상(事像)을 그 틀에 맞추어 해석하는 방식이다. 전자가 우리 주변에 있는 고등종교들이고, 후자는 창조론과 진화론이다.

종교적 해석의 특징은 직관적이며, 주관성이 강하고 선언적이라는 것이다. 종교는 우주와 세계를 바라보는 세계관이며 가치관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학문으로 성립하기가 어렵다.

학문적 해석의 틀(interpretation paradigm)에는 역사적으로 두 이론이 대립하여 왔다. 우주만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해 왔다는 진화론이 그 하나요, 전능하신 창조주가 목적을 가지고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부터 우주만물을 종류대로 창조했다는 창조론이 다른 하나이다. 학문적 관점에서 볼 때, 이 두 이론 외에는 다른 해석체계가 없다는 것이 학계의 보편적 견해이다. 창세기에 기초한 창조론은 학문의 영역과 종교의 영역을 동시에 가진 셈이다. 그 이유는, 학문의 역사상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창조론이 학문의 주류를 이루어 왔을 뿐 아니라, 창세기의 기록이 우주의 기원과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데 광범위한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창조론은 기독교의 교리라고 비판을 받아 온 반면, 진화론은 철저히 절대성을 부인하고 상대주의를 고수한다. 그러나 우주의 기원(origination)이나 생물다양성(biodiversity)과 같은 문제들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므로,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두 이론은 모두 과거에 대한 추리(assumption)이며, 그렇게 되었으리라고 믿는 신념(belief)이며 신앙(faith)이라 할 수 있다. 창조론이 유신론적 신앙이라면 진화론은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인 신앙이다. 진화론은 추리에서 출발하여 추리로 끝나지만, 창조론은 창조주가 우주만물을 만드셨다는 창세기(創世記 genesis)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우주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는 창세기는 과거 3,500년간 원본대로 전해져 내려 온 인류 최고(最古)의 기록물이라는 사실은 그 동안 성경을 없애려고 노력했던 수많은 무신론자들에 의해 역으로 증명되고 있다. 문제는 성경이 거기에 기록된 내용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론과 창조론의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겠지만, 그것은 학문적 선택이면서, 동시에 믿음의 선택이며 개인적으로는 인생관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창세기의 내용은 매우 요약적이지만, 우주만물의 기원에 관한 거의 모든 기록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록들이 단순한 사람의 기록이 아니라, 창조주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이 점은 분명히 신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비과학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성경은 초과학적이라 할 수 있다. 한 때는 성경의 일부 내용이 과학과 상충하는 듯이 보이더라도 과학이 발전하면서 성경의 기록이 옳았다는 사실이 입증되곤 하였던 많은 사례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창조론이 창세기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 과학계에서 배척하려는 것은 학문적인 견지에서도 정당치 못하다. 중요한 사실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과학적 사실에 부합하느냐가 문제가 될 뿐이다.

불행스럽게도, 오늘의 자연과학계는 진화론 일변도로 물들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입만 열면 창세기를 특정종교의 교리라고 배척하면서 창조론자들을 편협한 근본주의자로 매도한다. 이러한 지적은 매우 부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진화론이 오늘처럼 세력을 얻은 것은 불과 100 여년에 불과하며, 창세기에 근거한 창조론은 1,500 여년의 긴 역사를 통하여 과학계에 널리 수용되어 왔던 이론이기 때문이다. 무수한 창조과학자들이 오늘의 자연과학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 할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증명될 수도 없는 가설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유물론적이고 무신론적 신념이요 신앙이라는 사실이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물질에서 출발한다는 유물론을 주장한다. 생명도 무기물에서 우연히 자연발생 하였고, 단세포에서 자연의 선택에 의해 다양한 동식물로 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인간도 동물의 일종일 뿐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초월적인 신의 개념이 개입할 여지란 전혀 없다. 모든 것이 옛날에 일어났던 일이라 알 수도 증명할 수도 없건만, 그들은 스스로 만든 가설의 틀에 갇히어 그렇게 되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자기 이론을 학술적으로 비판하는 창조론자들은 교조적이며 교리의 도그마에 붙잡힌 편협한 사람들이라고 매도한다. 진화론을 비판하지만 말고 대안을 제시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과연 누가 과연 편협하고 비과학적인지 혼란스럽게 된다. 그들은 오늘의 과학지식 대부분이 창조론적 과학자들에 의해 확립된 이론들임을 알고서 하는 말인지 의심스럽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다른 곳에 있다. 각자가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야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잘못되고 위험스러운 이론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 더구나, 그 대상이 우리 자녀들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아니 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에서는 진화론만 가르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은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주장이기 때문에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알게 된다. 두 이론을 굳이 조절해야 할 당위성도 없다. 두 주장이 극도로 상반된다는 것은 두 이론중 하나는 고의적이든 아니든 간에 분명히 거짓된 사설(邪說)임을 의미한다. 잘못된 이론에 일생을 맡긴다면, 그 사람의 일생은 물론이요 사회와 인류를 파멸로 이끌고 갈 뿐이다.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깊이 음미함으로써 교훈을 받아야 한다.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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