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다윈주의와 유신론은 양립 가능한가?
Darwinism : Science or Philosophy - Chap. 4
Introduction
아칸소 재판 판결문에서 Overton 판사는 "창조주에 대한 믿음과 과학적 진화이론의 수용은 상호 배타적"이라는 창조과학자의 주장에 격분하면서, 이러한 의견은 "많은 사람들의 종교적 견해에 대하여 공격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시민의 대략 40%가 유신론적 진화론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무목적적이고 무의식적이며 무방향적인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해 모든 생물이 진화하였다고 믿는 동시에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 입장일까?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요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일까?
Episode I
카톨릭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어떤 신앙심 깊은 여교사는 수업시간에 창조론이 아니라 진화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진화가 인도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한동안 침묵하다가 "No"라고 대답하였다.
'유신론적 진화론'이라는 용어는 진화가 하나님에 의해서 시작되고 인도되어 사람에 이르게 된 과정이라고 암시하는 듯 하다. 대부분의 유신론적 진화론자는 가슴으로는 진화가 하나님이 선택한 창조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머리는 이런 생각은 다윈주의자들이 '진화'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바가 결코 아님을 또한 이해하고 있다. 예컨대 다윈주의자 George Gaylord Simpson는 "사람은 사람을 염두에 두지 않은 목적없는 자연적 과정의 산물이다"라고 분명히 말한다. 여교사는 아마도 가슴과 머리가 갈등하는 동안 대답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Episode II
Irving Kristol이 1986년에 New York Times에 다윈주의자들이 무신론을 퍼뜨리고 있다는 칼럼을 쓰자 지도적인 진화론자인 Stephen Jay Gould는 Discovery에 그에 대한 답을 썼다. Gould는 19세기 설교자 Henry Ward Beecher를 인용하면서 "매번 새로 설계하는 것보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설계하는 것이 더 위대하다"고 썼지만, 다윈주의는 어떠한 설계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알리려 하지는 않았다. 또 Gould는 다윈주의가 '종교'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Theodosius Dobzhansky가 위대한 진화론자이면서 평생 러시아 정교 신자였다고 썼지만 사실 Dobzhansky의 종교는 진화론적 자연주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Dobzhansky의 제자였던 Francisco Ayala에 따르면 Dobzhansky는 인격적인 하나님의 존재나 사후의 삶과 같은 것은 믿지 않았으며, 우주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믿은 점에 있어서는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 의미라는 것은 진화에 의해서 구현되는 것이었다.
Episode III
다윈주의가 종교와 양립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Gould처럼 개인적인 경우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국립과학원은 1984년 공식 언급에서 "진화론이 종교와 과학간의 화해할 수 없는 충돌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하였다. Frank Press박사는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교리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은 채로 과학적인 근거로 진화를 받아들인다고 설명하였지만, 그들이 단순히 논리적 모순을 간과한 것인지 여부나 버릴 필요가 없었던 교리에 생명체를 설계하거나 구성하는 데 활발한 역할을 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것이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는 말해주지 않았다. 또한 Press박사는 1981년 국립과학원 위원회 결의를 인용하여 "과학과 종교는 서로 분리된 인간 사고 영역이다. 그것들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하게 되면 과학이론과 종교적 신앙 양자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무목적적 진화나 우주의 역사에서 초자연적 창조주의 부재를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과학자들에게 과학과 종교의 분리가 암시하는 바가 무엇일지는 말하지 않았다.
William Provine은 국립과학원의 이러한 입장이 정치적으로는 이해할 만 하지만 지적으로는 정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Reformulating problem
많은 경우에 주어진 문제에 올바른 답을 얻는 것보다 올바른 문제를 구성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 이 글은 다윈주의가 의미있는 유신론과 양립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많은 경우 이런 질문은 다윈주의가 옳은 것으로 가정하고 유신론을 버려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그렇지만 질문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는 것도 유익하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다윈주의가 말하는 바처럼 모든 생물이 전적으로 자연적인 진화과정을 통해 생겨났다고 믿을 이유가 있겠는가? 물론 아니다. 화학진화로 생명이 생성되는 것이나, 자연선택에 의해 새로운 신체형태나 복잡한 기관이 생긴다는 것은 전혀 증명된 바 없으며, 오직 이미 존재하는 형태 내에서의 변이만이 관찰되었을 뿐이다. 화석기록은 점진적 변화의 연속과정을 보여줄 수 없으며, 그래서 고생물학자들은 생물형태의 변화가 어떤 도약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화학진화와 생물진화가 생명체가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이라면 증거가 부족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자연주의적 진화는 유일한 대안이 아니며 따라서 유신론자가 진화를 믿을 이유가 없다.
Episode IV
James Trefil은 그의 저서 1000 Things Everyone Should Know About Science에서 예를들면 다음과 같은 식으로 얘기한다. "지구상의 생명은 무기물질로부터 발전되었음에 틀림없다. 그것 말고 또 무엇이 있었겠는가?" 그의 태도는 자연주의 또는 실증주의적인 것이다. 실증주의에서는 과학을 어떤 신적인 활동을 사용하지 않고 세상을 설명하려는 것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그의 입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자연주의적인 화학진화와 생물진화가 일어났다. 왜냐하면 그 외에 다른 일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신론자는 이러한 식의 논증을 받아들일 하등의 이유가 없다.
Darwinsim : Science or Philosophy
다윈주의가 형이상학적 자연주의 - 이는 완전한 무신론이다 - 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다윈주의를 받아들이면서 거기에 유신론적 해석을 가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이 늘 헷갈리는 점은 다윈주의가 관측사실에 기반한 경험적인 학설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렇다고 하면 유신론적 해석을 가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사는 핀치새 부리 모양의 변이나 산업화에 따라 검은 나방의 생존률이 높아지는 것과 같은 현상에는 유신론적 해석에 반대할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G. G. Simpson의 과학적 결론 -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 창조작업을 수행하였다 - 은 받아들이면서 그의 철학적 결론 - 우주는 목적이 없다 - 은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진화론자들이 자연선택이 모든 생물을 설계할 수 있는 창조력이 있다고 믿을 때, 그럴 만한 충분한 경험적인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적이지 않고 목적이 없는 과정만이 작동하였다고 철학적으로 가정하기 때문에 그렇게 믿는 것이다. 다윈주의자들은 자연선택이 캄브리아기 지층에 갑자기 나타나는 여러 생명형태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이런 결론을 뒷받침하는 관찰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연주의 철학이 다른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Conclusion I
다윈주의가 유신론과 양립가능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이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를 사용할 수 없으시기 때문이 아니다. 다윈주의적 진화는 비성경적인 듯 하고, 하나님이 쓰시지 않을 듯한 방법이긴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 기대 밖의 일을 하실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다윈주의와 유신론이 양립불가능한 데에는 좀 더 깊은 이유가 있다. 다윈주의가 옳다고 논증하려면 자연주의적 진화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가정해야만 한다. 그 말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거나 적어도 하나님이 창조할 수 없다고 가정한다는 얘기가 된다. 창조주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다윈주의가 옳다고 논증해 놓고 다윈주의를 하나님의 창조방법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Conclusion II
다윈주의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아는 사람들이 다윈주의와 유신론의 양립불가능성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윈주의자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면 할수록 그것이 유신론과 얼마나 충돌하는지 보게되어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다윈이나 그 후계자들은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이 뭔가 빠뜨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자연선택의 창조적 역할이 하나님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올바르게 항의하지만, 실증주의적 과학의 입장은 자연세계에서 활발한 역할을 하는 초자연적 창조주의 존재와는 근본적으로 양립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Conclusion III
다윈주의자가 그 이론의 유신론적 종교에 대한 함의를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위험하다. 다윈주의자들은 그들의 이론이 공격받을 때 흔히 과학의 실증주의적 정의 - 과학은 모든 현상에 대해 자연주의적 설명을 찾는 것이다 -를 내세워 다른 활동은 과학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입장이 성립하려면 '과학'은 그저 하나의 지적인 게임이며 유신론자들은 아무 손실 없이 '종교'라는 다른 게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 두 게임의 위치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학은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공교육을 통제한다. 유신론자의 아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의 아이든 상관없이 "진화는 사실이다"라고 배우게 된다. 이 말은 '진화'에 반대되는 것은 - 창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포함하여 - 모두 틀렸다는 얘기가 된다. 만일 '진화'가 그렇게 유신론에 반하는 것이라면 정치사회에 속한 유신론자들이 다윈주의자에게 '진화'가 정말 옳으냐고 물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과학을 하는 방법입니다'라는 대답은 적절하지 않다.
Problems to Think together
1. Johnson은 다윈주의와 유신론이 양립불가능하다는 것을 논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이 놓치고 있는 요점 - 그 점을 이해한다면 유신론적 진화론을 포기하게 될 요점 - 을 지적하고 있을 뿐 유신론적 진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인 것은 아니다. 이것으로 충분한가?
2. Johnson은 Provine의 말을 인용해서 국립과학원의 입장이 정치적으로는 이해할만 하지만 지적으로는 정직하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Johnson 자신의 입장은 어떤가?
출처 - 창조지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99
참고 :
심판대 위의 다윈(Darwin on Trial) 1, 2, 3장
제 1 장. 법적 배경 - 시작하기 전의 예비적 고찰
1-1. 용어 정리
- 창조와 진화는 반드시 상치되는 개념은 아니다. 'Life - How Did it Get Here? By Evolution or by Creation?'이라는 책 제목은 잘못 붙여진 것일 수도 있다. 진화가 완전히 자연주의적인 진화 - 어떤 목적이 있는 지능에 의하여 지시되지 않는 진화를 의미할 때에만 '진화'는 '창조'와 상치되고 창조가 점진적인 발전이 아니고 갑작스런 창조를 의미할 때에만 '창조'는 '진화'와 상치된다. 여기서 사실 3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모든 종류의 창조와 상치되는 진화, 모든 종류의 진화와 상치되는 창조, 그리고 창조와 진화 모두에 상치되는 않는 입장이 그것일 것이다. 두 번째 것이 한국창조과학회와 미국 ICR (Institute of Creation Research)의 입장으로서 '창조과학(creation science)' 또는 '과학적 창조론(scientific creationism)'이라고 불린다. 두 번째 것과 세 번째 것을 합하여 '창조론'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첫 번째 것이 Richard Dawkins등이 견지하는 입장으로 저자는 이것을 '다윈론(Darwinism의 번역인 듯)'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이렇게 부르면서 저자는 이것을 첫 번째 것과 두 번째 것을 합한 의미의 '진화론'과 구분하려고 한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진화론이 아닌 다윈론을 주로 공격한다.
1-2. 두 번의 재판(trial)
♡ Scopes Trial ; 1925년 봄에 Tennessee주 Dayton에서 John Thomas Scopes라는 교사가 진화론 교육을 금지한 Tennessee주의 법령을 어겼다고 고백함으로써 시작된 재판이다. William Jennings Bryan이 검사측을 이끌고 Clarence Darrow가 변호사측을 이끌었는데 판결은 Scopes의 유죄였으나 사실상 반진화론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 사건은 반진화론자들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언론은 창조론자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으며 비록 1926년 Mississippi, 2년 후에 Arkansas에서 창조론 측이 재판에서 계속 이겼으나 1920년대 말에 이르러 입법운동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 Creation-Science ; 1968년에 대법원이 Arkansas주의 반진화론 법령을 위헌이라고 판정하였다. 창조론자들은 더 이상 진화론을 금지시키려 하지 않고 two-model approach를 주장하였고 자신들의 창조론(creationism)을 과학이라고 주장하여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이란 이름을 붙였다. 1980년대 초에 Arkansas주와 Louisiana주에서 이러한 two-model approach를 허용하는 법령이 통과되었으나 Arkansas주의 법은 1982년에, Louisiana주의 법은 1985년에 연방판사에 의하여 발효되지 못하였다. 1987년 대법원 판결은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가 인간을 창조했다는 종교적 관점을 진작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William Brennan 판사의 의견이 다수를 대변했고 '진화론을 반대하는 어떠한 과학적 증거도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Antonin Scalia 판사의 의견이 소수를 대변했다.
1-3. 논쟁의 헛점들
♡ Osborne의 경우 ; Scopes trial이 진행되던 1920년대 진화론의 주된 대변인은 미국 자연사 박물관의 책임자였던 Henry Fairfield Osborne이었다. 그는 지금은 사기극으로 판명된 Piltdown Man에 크게 의존하였으며 돼지의 이빨에서부터 잘못 추론된 Nebraska Man을 확인하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가 법정에 서면 Bryan보다 나을지 알 수 없다.
♡ '과학'과 '종교'라는 용어 ; 자연주의적인 진화가 '과학'이고 초자연적인 창조가 '종교'라고 말할 때는 전자는 진리이고 후자는 환상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립과학원은 '과학'은 자연주의적인 설명을 해야한다고 정의함으로써 초자연적인 창조는 용어의 정의상 과학적 연구가 불가능해진다. 그런데도 다윈론자들은 과학으로부터 다시 종교적인 결론을 이끌어낼 때가 많은데 이는 명백히 순환논법이다. 처음에 과학을 하기 위하여 자연주의를 가정한 다음 그로부터 필연적으로 이끌어져 나오는 자연주의적인 결론을 과학적 추론을 통하여 얻은 결론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이다.
♡ Patterson의 경우 ; '여러분들은 진화에 대해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것으로서,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어떤 한 가지라도 말할 수 있습니까?' Collin Patterson은 1981년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서 한 강연에서 특수 창조(special creation)와 진화론이 둘 다 믿음을 근거로 할 뿐 과학적으로는 공허하다고 말하였다.
♡ Kristol의 경우 ; Irving Kristol은 뉴욕 타임즈의 한 기사를 통해 다윈론적 진화가 종 내의 변이에서는 유효하나 한 종류의 생물을 다른 종류의 생물로 변형시킬 수 있다는 것은 가설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가르쳐지는 진화론이 부당한 반종교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일리가 있다고 말한다.
1-4. 저자의 입장
♡ 법학자로서 ; 이 문제가 논리 형식이나 가정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법학자로서의 잇점이 있다. 일반인을 위한 수많은 문헌이 있기 때문에 이를 마치 판사가 증거와 증언을 다루는 것처럼 다룰 수 있다. 사실 위에서 본 것과 같이 이 문제가 법정에서 다루어진 전례가 있기도 하다. 'Darwin on trial'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저자는 이 책에서 마치 판사가 재판에 걸린 문제를 다루듯이 다윈론에 대한 자료를 다루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 Intelligent Design theorist로서 ; '하려고만 한다면 무로부터서도 창조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자연적 진화과정을 통하여 창조작업을 완수하기로 작정했을지도 모르는 어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나는 창조-과학의 옹호자도 아니고 사실 이 책에서 성경적 기술과 과학적 증거 사이의 모순에 대해 언급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제 2 장. 자연선택 - 자연주의적 다윈론의 핵심
2-1. 다윈론에서의 자연선택의 위치
♡ 저자는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세 가지 중요한 명제를 내세웠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종의 가변성, 모든 생물의 공통기원, 자연선택이라고 한다. 한편 Ernst Mayr에 따르면 다윈론은 다섯 가지 소이론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다섯 가지 이론들이 세분할 수 없는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고 한다. 그 다섯 가지 이론은 다음과 같다.
1) 진화 그 자체 : 이 이론은 세계가 항상 일정하거나, 최근에 만들어졌거나, 영원히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변화되고 있으며, 생물들도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는 이론이다.
2) 공동 후손 : 이 이론은 모든 생물 무리들이 공동 조상에서 기원했으며, 동물, 식물, 미생물 등 모든 생물들이 궁극적으로는 지구상에 단 한 번 나타났던 생명체에서부터 유래했다는 이론이다.
3) 종의 증가 : 이 이론은 엄청나게 많은 생물 다양성의 기원에 관한 이론이다. 즉,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게 될, 지리적으로 격리된 발견자 집단에 의해 한 종에서 두 자손 종이 만들어지거자, 한 종에서 다른 한 종이 만들어지게 되어 종의 수가 증가한다고 설명한다.
4) 단계주의 : 이 이론에 따르면, 진화적 변화는 개체군의 단계적 변화에 의해서 일어나지, 새로운 형을 대표하는 새로운 개체가 급작스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5) 자연선택 : 이 이론에 따르면, 진화적 변화는 각 세대마다 유전적 변이가 많이 만들어지고, 다음 세대로 전해진 유전 형질 가운데 특별히 잘 적응한 유전 형질의 조합을 지닌 상대적으로 작은 수의 개체들만이 살아남게 되어 다음 세대를 이루게 된다.
저자가 이러한 요소들 중에 자연선택을 맨 처음에 다루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자연선택이야말로 다윈론이 자연주의적이게 하는 요소이며 전체 진화과정이 무의식적이고 무목적적이라고 말하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2-2. 문제의 핵심이 아닌 것들
♡ 문제는 자연선택이 일어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완전히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자연선택이 일어나며 소진화의 영역에서는 유전적 적합성을 유지하는 데에 기여한다는 점은 거의 틀림없다. 그러나 자연선택이 대진화를 일으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자연선택이 종분화를 일으킬 수 있느냐 하는 것도 역시 중요하지 않다.
♡ 인위선택 ; 다윈은 인위선택을 자연선택과 비슷한 것으로 보고 그것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으나 이는 intelligent design theory의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오류이다. 인위선택은 지능과 목적이 있는 존재에 의해 주도되는 과정이다. 반면에 자연선택은 무목적적이고 무의식적인 과정이다. 이것은 근본적이고 중요한 차이이다. 사실 인위선택으로도 육종에 한계가 있어서 새로운 종이 생긴 경우는 없다. 자연선택에는 훨씬 많은 시간이 있기는 하나 인위선택에는 지능적인 목적이 있는 것과 상쇄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인위선택에 관한 증거는 오히려 반증이 될 수도 있다.
2-3. 유어 반복법으로서의 자연선택
♡ 최적의 유기체가 최다의 후손을 생산한다. 이때 최적의 유기체란 최다의 후손을 생산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많은 진화론자들이 자연선택은 유어반복이라고 주장해왔으며 또한 '최적'을 위와 같이 정의해서 사용하였다.
♡ Karl Popper에 따르면 진정한 과학이론은 반증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만일 자연선택이 유어반복이라면 반증가능성이 전혀 없다. Popper에 따르면 자연선택이 무엇이든 설명할 수 있는 다목적 설명방식이기 때문에 사실상 과학이 아니다.
2-4. 연역적 논증으로서의 자연선택
♡ Collin Patterson은 모든 유기체는 번식을 해야 하며, 유전적 변이를 보여주며, 유전적 변이는 번식에 대한 영향에 차이가 있으므로 이로부터 연역적으로 유기체가 변화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자연선택으로 대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쩌면 소진화도 입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주어진 형태가 최적이고 모든 변이는 해로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5. 과학적 가설로서의 자연선택
♡ 저자는 Douglas Futuyma를 인용하며 자연선택의 증거라고 주장되는 6가지 사항을 나열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소진화적 변화에 대한 증거는 될 수 있을지라도 (그것도 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어떠한 완전히 새로운 기관이 자연선택에 의하여 생길 수 있는가 하는 데 대한 증거는 전혀 없다.
2-6. 철학적 필연으로서의 자연선택
♡ Richard Dawkins는 '누적적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이야말로 우리가 아는 한, 조직화된 복잡성의 존재를 원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인 것이다'라고 썼다. 만일 과학이 자연주의적인 설명만을 하여야 한다면 Dawkins는 확실히 옳다. 자연주의적인 기반에서는 자연선택에는 경쟁상대가 없다. 자연선택에 부정적인 증거가 아무리 많이 나온다고 할지라도 자연선택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연선택으로 잘 설명되지 않는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성선택, 집단선택, 친족선택, 이기적 유전자 같은 개념들이 계속 필요했던 것이다. 어쨋든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연선택은 어떠한 증거에도 반박되지 않을 것이다.
제 3 장. 대소의 돌연변이 - Natura non facit saltum?
3-1. 눈과 날개
♡ 눈과 날개와 같은 복잡한 부분들의 섬세한 결합을 필요로 하는 기관은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문제가 다윈 이래로 진화론자들에게 골치거리였다. 이러한 기관이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자연선택에 의해 조금씩 조금씩 형성되었겠는가? 아니면 갑작스럽게 전체가 한 번에 생겼겠는가? 아니면 또 다른 가능성인가? 도대체 가능성이 한 가지라도 있기는 한 것인가?
3-2. Dawkins의 입장
♡ Richard Dawkins는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자연선택에 의하여 눈이나 날개가 생겼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눈의 5퍼센트만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유명한 질문에 그는 희미하게라도 보는 데에 사용하였을 것이라고 답한다. 완전하지 못하여 날 수 없는 날개도 추락시에 생존률을 높이는 데에 기여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눈의 경우에 시각 작용을 처리하는 신경작용까지 함께 고려할 때에는 곤란해진다. 날개의 경우 앞발에서 날개로 이행하는 중간형태는 양쪽 모두에 부적절하여 그러한 형태를 자연선택에 의해서 가지게 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3-3. Goldschmidt의 입장
♡ Richard Golschmidt는 점진적 자연선택으로 생길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예들을 제시하고 다윈론은 소진화에만 적용할 수 있으며 대진화는 대돌연변이를 통하여 일어났다고 제안하였다. 좀 심하게 이야기 하자면 첫 번째 새는 파충류의 알에서 부화되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거의 기적과 같은 이야기로 확률적으로 도저히 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도약진화는 사실상 특수 창조와 구별하기 어렵다.
3-5. Gould의 입장
♡ Stephen Jay Gould의 입장은 다소 모호하다. 그는 Goldschmidt를 지지한다고 했다가 도약진화를 할 때에도 누적적 자연선택을 통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자연선택 이외의 메카니즘이 있을 수도 있다는 다윈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눈이나 날개 같은 경우 중간단계에서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3-6. 그들의 입장들에 대한 가능한 하나의 설명
♡ 여기서 먼저 철학적 문제에 관하여 Francis A. Schaeffer가 했던 말을 인용함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비기독교적 입장을 붙잡는 사람이 자기의 전제에 논리적이면 논리적일수록, 그는 실제 세계에서 좀더 멀리 벗어난다. 그리고 그가 실제 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그는 자기 전제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일관된 입장을 취할 수 없게 된다.' 비록 Schaeffer는 철학적인 입장에 관하여 말한 것이기는 하나 여기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Dawkins는 자기 전제에 철저하게 논리적이다. 그는 실질적인 문제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논리적으로 유일한 결론을 알고 있으므로 그에게 실질적인 문제들이란 사소한 기술적인 문제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 같다. 한편 Goldschmidt는 실질적인 문제들을 충분히 고찰해본 후에 다윈론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음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자연주의적 진화를 믿고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그의 결론은 그의 전제와 명백히 모순된다. Gould는 실질적인 문제들과 전제의 논리적 결론에 함께 충실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그는 애매한 태도를 많이 보여주는데 이는 분명한 태도를 보이면 어디선가 모순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Questions to Think
1.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Intelligent Design Theory와 조화될 수 있는가?
2. '자연주의'를 경험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가능한가? 만일 그렇다면 위의 논의에 따라 '자연주의'를 기각할 수 있겠는가?
3. '과학'과 '종교'가 각각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가? 용어에 대한 편견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4. 자연주의를 포기하고도 과학을 할 수 있는가?
출처 - 창조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94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