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 입증되었는가? 아니면 손상되었는가?
(Evolutionary Theory : Verified? or Vilified?)
피츠버그 대학(University of Pittsburgh)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제프리 슈와츠(Jeffrey Schwartz)는 그의 특별한 진화론이 최근에 일부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기뻐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고전 다윈주의(classical Darwinism)와 신다윈주의(neo-Darwinism)의 폐허 위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자신의 이론을 지지하면서, 그는 표준 진화론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을 발로 차 빼내어 버렸다.
화석(Fossils) : 다윈이 발견하기를 기대했던 잃어버린 고리들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견되지 않는다.” 점진주의적 이론은 '화석 기록에서의 간격들을 억지로 해석하고 있다”라고 그는 비난한다.
점진주의(Gradualism) : 점진적인 변화는 발생하지 않는다 : '진화는 점진적인 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 갑작스럽게 극적인 변화를 필요로 한다.'
변화에 대한 저항(Resistance to change) : '왜 세포들은 다윈이 제안했던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미묘하고 작은 변화들을 지속적으로 일으키지 않는가? 세포 생물학자들은 그 대답을 알고 있다 : '세포들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쉽게 변화되지도 않는다.”
품질 관리(Quality Control) : '정상적인 상태에서 세포들은 여러 벌의 분자들을(여러 종류의 단백질들) 가지고 있다. 그들의 일은 그들 세포의 기능에 간섭해서 탈선을 일으킬 수도 있는 오류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일부 단백질들은 세포막을 완전한 상태로 유지하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다른 단백질들은 분자들을 세포의 적절한 위치에 배치되도록 하는 샤페론(chaperones)들로서 역할을 한다...등등. 요컨대 그와 같은 종류의 변화를 막는 보호 장치로 인해, 어떠한 종류의 돌연변이든지 간에 발판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가능성이 없음(Improbability) : 돌연변이는 대대적으로, 또는 유익하게 일어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유기체를 죽인다.
불균형(Disequilibrium) : '이 계시는 유기체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늘상 변화한다는 개념에 대해 엄청난 암시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그들의 평형을 깨는 것은 환경이다. 그리고 환경이 변화될 때 결국에는 유기체들을 죽일 것이다. 그래서 유기체들은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라고 슈와츠는 주장한다.
창조론자의 글처럼 보이는 이와 같은 글에서 슈와츠가 표준 신다윈주의(standard neo-Darwinism) 입장에서 제안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갑작스런 기원 이론(Sudden Origins Theory)’ 이라고 불려지는 것이다. 그것 역시 창조론처럼 들리나 창조론이 아니다. 그것은 오래된 지시되지 않은 자연적인 방법을 이야기하는 재포장된 진화론이다. 그러나 그것은 적응 변화의 유발 원인으로서 환경(environment)을 더 강조하고 있다.
동료인 이안 태터살(Ian Tattersall)의 도움을 받아, 슈와츠는 6년 전에 "갑작스런 기원 : 화석, 유전자, 그리고 종들의 출현 (Sudden Origins: Fossils, Genes, and the Emergence of Species, John Wiley & Sons, 2000)” 이란 한 권의 책을 썼었다. 그리고 언론은 이것을 요약 발표하였다 :
"저자가 설명하고 있는 메커니즘은 이것이다. 즉, 환경적인 대변동(environmental upheaval)은 이들 유전자들의 돌연변이에 원인이 되어지고, 그들 변경된 유전자들은 후손이 새로운 두 개의 새로운 돌연변이 복사체를 가지고 나타날 때까지 개체군 사이에 은밀하게 확산되면서 열성 상태(recessive state)로 남아있다가, 갑자기 무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변화된다.”
세포들은 변화에 저항하고, 그들의 오류를 정정하기 때문에, 점진적인 변화는 일어날 수 없다. 슈와츠와 태터살은 돌연변이를 만드는 다른 방법들을 찾았다. 환경은 유기체들을 나쁜 상태로 만들고, 그들의 유전자 안으로 창조적인 변화의 씨앗을 심을 수 있는(열성 상태로) 스트레스 요인(stressor)이 된다. 거기에서, 유기체를 죽이지 않은 돌연변이는 다음에 번성할 때까지 기회를 기다린다. 이들 열성 돌연변이(recessive mutations)들은 환경에서 어떤 필요가 생겨날 때까지,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알지 못한채 남아있는, 진화를 위한 일종의 정비공이 가지고 있는 공구세트(toolkit)과 같다는 것이다.
왜 6년 전에 제안된 이야기를 이제야 보도하는가? 슈와츠는 브루노 마레스카(Bruno Maresca)와 2006년 1월 30일자 New Anatomist Journal에 실린 한 논문의 공저자로서 참여했는데, 거기에서 그들은 언론 보도에서는 특별히 취급되지 않았던 밝혀진 일부 세포구조의 이해에 기초하여 새로운 이론을 지지한다고 주장하였다.
슈와츠 이론의 의미는 오늘날의 생물체들은 이전의 환경적 스트레스로 일어난 돌연변이들을 축적해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너무 느려서 환경에 대한 빠른 수정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 세포 생물학에 의해서 강화된 갑작스러운 기원 이론(The Sudden Origins theory)은 오늘날의 삶을 증진시킬 뿐만아니라, 현 세대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환경이 보존되어야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렇게 그는 그의 미친 생각을 수사적 기법과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방법으로 합법화시키기 위해서 수정 환경론자인 것처럼 약간은 정치적인 화려한 말로 끝을 맺고 있다. 슈와츠와 태터살은 창조론자들이 신다윈주의자들에게 제기했던 모든 비평들을 확증해주었다 : 돌연변이들은 대게 유해하다. 세포들은 변화에 저항할 수 있도록 극도로 복잡하게 설계되었다. 화석기록들은 거대한 간격으로 존재하며, 점진주의의 정체는 폭로되고 있다...등등. 감사하다. 슈와츠 박사. 역사의 쓰레기통 안으로 표준 진화 이론을 던져버리는 데에 도움을 주어서 고맙다.
그러나 그의 대체 이론은 조금 더 낳은 것인가? 그가 주장했던 모든 것은 진화의 창조적인 힘을 한 지시되지 않은 자연적인 원인(점진적 자연선택)으로부터, 또 다른 지시되지 않은 자연적인 원인(환경과 갑작스런 자연선택)으로 이동시킨 것에 불과하다. 그는 열성 돌연변이가 일어난 유전자 풀이 어떤 창조적인 힘으로, 오래 기간동안 서서히 변화되었다는 점진주의가 보여주지 못했던 날개(wings)나 눈(eyes)을 만드는 것을 보여주었는가? 그는 완전히 형태를 갖춘 기능을 하는 복잡한 기관들이 어떻게 아무 것도 없던 곳에서 갑자기 나타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가? 이것은 과학(science)이 아니다. 이것은 마술(magic)이다. 이 새로운 진화론자들은 공중에서 비둘기를 만들어 내는 환상가들이다.
이와 같은 친구들로 인해, 찰리(찰스 다윈)는 적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보도 자료는 창조론자와 지적설계 사람들에 대한 비판의 호기에 발표되었다. 그리고 모든 진화론의 비판들을 '갑작스런 기원” 진화론이라는 수풀로 가리우며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너희들처럼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어!”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200601.htm
출처 - CEH, 2006. 1. 26.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109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6022
그 외의 재판사건들 - 2
캘리포니아, 루이지애나, 앨라배마, 테네시 사건 등
유종호
1981년 캘리포니아에서 있었던 캘리 시그래이브스 사건
1981년에 다시 또 다른 진화론 재판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때 캘리포니아에서 종의 기원에 대한 유일한 설명으로서 다윈의 진화론을 교육 받음으로써 자신들의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3명의 샌디에이고 고등학생들이 캘리포니아 주를 상대로 제소했다. 1981년 2월 21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에 의하면;
”원고들은 캘리포니아 주가 인간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과학과정에서 배제하는 진화론을 하나의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사실로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또한 진화론이 특정 종교, 즉 세속적인 인본주의 핵심 교리라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들의 종교와 상충되는 견해를 주입받기 때문에 그것이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였다는 것이다. 국가는 그것이 진화론에 대한 어떤 신뢰할만한 과학적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어떤 권리도 침해받고 있지 않다고 말하였다.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견해는 과학적으로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 수업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근거에서 국가는 진화론을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선포하고, 진화론에 대한 "신뢰할만한 과학적 대안”이 없다고 선포하는가? 기원의 문제는 진화론자들에 의해서나 창조론자들에 의해서나 과학적으로 입증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또한 진화론자들이 추정한 거짓 근거 이외에 어떤 근거에서 외부의 비물질적인 힘이나 존재가 자연적인 물질의 제1원인이 될 수 없다고 선언될 수 있다는 것인가? 국가나 진화론자들은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는 어떤 것을 가정하고 있다. 진정한 과학은 물질의 현재 과정을 연구하고 평가함에 있어 초자연적인 것들을 무시할지도 모른다. 그런 과학은 2가지의 열역학 법칙과 생명 속생법칙에서 발전했으나, 진정한 과학은 이런 법칙들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다. 만일 진화론자들이 기원 문제를 연구하고 가르치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물질을 창조하는 비물질적 제1원인의 가능성을 도외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82년의 루이지애나 재판
1982년에 루이지애나 주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균형취급법을 통과시켰다. 법적 기소과정에서 상원의원이고 법률서의 저자인 윌리엄 캐네스는 1985년 7월 9일자 (멘카토) 프리 프레스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그들은 창조과학이 하나의 종교적 신념이지만, 진화론도 또한 하나의 종교적 신념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힌두교, 불교, 유니테리언, 그리고 신학적 자유주의자들의 기본적인 신념이다.”
그는 세속적인 인본주의를 첨가했을 수도 있다. 이 사건은 결국 루이지애나에서 제5차 순회 재판에까지 갔다. 관련된 15명의 판사들 중에서 8명이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즉,
”그것이 과학적 증거로써 전적으로 뒷받침되느냐 여부에 관계없이 창조과학은 하나의 종교적 신념이다.”
7명의 다른 판사들은 ‘창조론이 종교적 신념이라’는 사실은 그 이론이 과학적으로도 옳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이렇게 근소한 표차의 투표는 1968년의 아칸서스에서와 같이 더욱 많은 판사들과 다른 사람들이 진화론이 과학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됨에 따라, 어느 날엔가는 대법원의 결정을 번복하는 사태가 생길 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결국 그 사건은 미국의 대법원으로 이첩되었다. 1987년 7월호 교회와 국가라는 잡지 p.6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즉,
”6월 19일의 판결에서 미 대법원은 ‘창조과학’을 가르치라고 명령한 루이지애나 주 법령은 교회와 국가의 헌법적 분리를 위반했다고 7:2로 결정했다. 재판에서 다수의 판사들은 그 수단이 공립학교에 의해서 종교적 교훈을 요구하기 위해 살짝 위장된 시도임을 알아냈다.”
법원의 결정은 미국의 헌법수정 제1조의 근거 위에서 창조과학을 가르치는 것을 불허했다는 데서 옳았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교회와 국가>가 보도했던 것처럼 그것이 '종교적 교훈을 요구하기 위해 하나의 살짝 위장된 시도”였다는 진술을 의심하고 있다.
1987년 앨라배마 재판
1987년 3월 미국 지방법원 판사 W. 핸드는 600명의 학부모와 교사들로 이루어진 집단소송에서, 모든 앨라배마 주의 공립학교 교실로부터 44개의 교과서를 실질적으로 금지했다. 1987년 3월 5일자 <뉴스 서비스>에 따르면 핸드 판사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즉,
”이런 책들로 앨라배마 주는 그의 도를 지나쳤고 그의 적절한 비종교적 기능을 이행하는 것을 철회해야만 했다.”
두 주 반 이내에 속개된 재판에서 1986년 10월 핸드 판사 앞에서 다음과 같은 토론이 벌어졌다. 즉,
”여러 종류의 책에서 세속적인 인본주의가 종교라고 가르쳐지고 있었다. 근본주의자들은 세속적인 인본주의는 영원한 영적 가치에 대하여 인간 가치의 일시적인 고양이라고 말하고 인간들은 신적인 간섭이 없이 그들 자신의 문제들을 처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핸드 판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도를 벗어났다. 즉,
”그는 역사책들이 청교도들의 역사와 초기 부흥운동과 같은 역사를 빠뜨리고 있는 것에 대하여 그다지 ”개탄스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많은 다른 교파들의 종교적인 역사는 공립학교나 심지어 교회학교에서의 역사 수업에 있어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니다.
1987년 8월 26일 애틀랜타에서의 항소사건에 대한 미국 11번째 순회재판은 핸드판사의 판결을 파기했다. 그러나 이 법정은 세속적인 인본주의가 미국 헌법수정 제1조의 정의 안에서 종교인가의 여부는 결정하기를 거절했다. 그 법정의 프랑크 존슨 Jr. 판사는 대법원이 그것이 그처럼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종교라고 규정하는 것에 대하여 포괄적인 시험을 결정하는 것을 항상 회피해 왔다고 말했다.
44개의 책들에 관하여 순회법정은 그들이 책에서 어떤 특정 종교의 관점을 장려하는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1988년 테네시 사건
1988년 2월 22일 자 AP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즉,
”대법원은 그들의 자녀들이 ”무신론적인” 공립학교 교과서에 노출되어서 종교적 자유가 침해당했다고 말하는 테네시 주의 일곱 가정에 의한 (애틀랜타 순회법원으로부터의) 소송을 기각했다. 재판관들은 아무런 논평 없이 근본주의적인 크리스천 아이들에게 그 책들을 읽을 것을 요구하는 규정은 합헌적이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AP는 또한 다음과 같이 보도하기도 했다. 즉,
”대법원의 평가를 연구해 보면 일곱 가정들의 변호사들은 그 사건이 자녀들의 교육에 관하여 부모들과 공립학교 당국자들 사이의 고전적인 대결을 대변하고 있다.” 그들은 자녀들이 학교에서 퇴학당하지 않을 조건으로 종교적으로 내키지 않는 책을 읽도록 요구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 소송은 대법원이 1943년에 공립학교 학생들에게 매일의 충성맹세 낭송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서부 버지니아주 법을 기각한 결정을 유발했던 여호와의 증인들에 의해 행해진 것들에 대한 가족들의 반대와 비유되었다. 그 소송은 ”제6차 순회재판에서 야기된 판결은 아이들은 억지로 그들이 읽은 것의 내용을 강제적으로 믿게 하지 않는 한 신실한 종교적 신념에 위배되는 책들을 읽도록 강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의 종교적 신념에 반대되는 책을 그들이 읽도록 강요당하는 것은 그들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속해있고, 아이들은 그들이나 그들의 부모들이 반대하는 어떤 것도 가르침 받아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교사나 국가가 가르치기를 원하거나, 선량한 시민 됨에 필요한 주제가 단순히 가르쳐지기를 원하는 어떤 것도 가르쳐지지 않는 학교에 보내져야만 한다.
분명히 모든 부모들은 학교에서 그들의 자녀들에게 가르쳐 지는 바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국가나 교사들에 의해서만 결정되도록 놓아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학교 당국과 교사들은 학부모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만일 국가와 교사들이 학부모들이 원하는 것과 반대로 가르쳐지도록 결정하기를 주장한다면, 우리는 러시아에서 발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가르쳐질 것의 절대적 통제권을 갖는 정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그 외의 재판 사건들 - 1
: 아칸서스 주의 반진화론 법
유종호
아칸서스 주의 반진화론 법
아칸서스 주 리틀록에 살았던 생물 교사인 수산 에퍼슨은 다윈의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한 1928년도의 아칸서스주 법은 그녀로 하여금 ”말할 자유의 일부를 상실”하게 했다고 1966년에 소송을 제기했다. 미니애폴리스 트리뷴지(1966년 9월호)에 따르면:
”아칸서스 대법원보다 한 단계 아래인 형평법 재판소 판사 머레이 리드는 5월에 그 법은 지역사회에 어떤 위해도 제기하지 않는 이론을 금지시킴으로써 알 권리를 제한할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리드는 가르칠 권리와 알 권리는 그것이 사회에 유해한 교리를 포함하고 있지 않는 한 억제되지 않아야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진화론이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고 결정했다...” (‘억제되지 않는’이라는 단어를 주목하라.)
미니애폴리스 트리뷴지는 미연방대법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계속해서 썼다.
”····미연방대법원은 말할 자유란 절대적인 것도 전적으로 억제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예컨대 1972년 미연방대법원이 부도덕하거나 공공복지에 유해한 것을 가르치는 것은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의무로서 가르친다 해도 주정부에 의해 금지될 수 있다고 판정했다.” (‘전적으로 억제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는 단어를 주목하라.)
유해하다는 말은 정당하지 않거나 거스르거나 적대적이거나 호의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편 미니애폴리스 트리뷴지는 다음과 같이 보도한다.
”아칸서스 주 검찰총장 부루스 베니트는 (일부다처제와 같은) 다윈의 진화론은 공공복리에 유해하다는 데에 동의한다. 베니트는 연방정부의 공무원들은 정당의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햇치 법(the Hatch Act)을 포함해서 말할 자유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제한은 합법적이라고 판정되었음을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미세스 에퍼슨은 주정부의 하부 기관에 의해 고용된 주의 공무원이고 주정부의 재정으로 월급을 받고 있기 때문에 진화의 법에 의해 금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세스 에퍼슨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합리적인 제한은 학문의 자유와 상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AP의 모든 설명 전반에 걸쳐서 볼 때 상당히 흠이 있는 합리화가 흐르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 법에는 말할 자유에 대한 제한이 없다. 미세스 에퍼슨은 진화론에 관련하여 진화론은 원하는 모든 것을 설명하고 가르칠 권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공공 기관에서 가르치거나 국가가 세금으로 후원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머레이 리드 판사가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이 그 지역에 해를 끼치지 않았고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다고 추정한 것은 전적으로 틀렸다. 당연히 만일 당신이 진화론자이고 무신론자라면 그것은 해가 되지 않겠지만, 그들의 자녀들이 그런 반-기독교적인 주의-주장이 가르쳐지는 것을 원치 않는 부모들에게는 엄청나게 큰 해를 끼치게 된다. 많은 기독교인 부모들은 공립학교에서 가르쳐지는 진화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립학교에서 자녀들의 교육을 위하여 비용 지불을 강요당해 왔다. 만일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정확하게 규정한 바와 같이 공립학교에서와 교육기관에서 종교를 조장하고 입증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면 진화론 사상을 통하여 반-창조론과 반-종교를 조장하고 입증하는 것도 꼭 같이 잘못된 것이다. 국가 공무원들은 전적으로 그들이 봉직하는 공립기관에서 어떠한 종교적 혹은 반종교적 사상을 조장하는 입장에 있지 않다.
미국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바르게 선언하고 있다. 즉;
”공공의 안녕에 대하여 부도덕하고 유해한 것을 가르치는 것은 국가가 금지할 수 있다.”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은 진화론자들에 의해 유신론적 진화론 신앙으로 오도되어지는 사람들은 제외되지만,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믿는 바에 극도로 배치되고 적대적이고 유해하다.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은 또한 ”공공의 안녕에 유해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끊임없이 시민들 사이에서 마찰과 내분과 대립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에퍼슨 부인은 주의 공무원이기 때문에 진화론 법칙에 의해 금지하기로 한 아칸서스 주 검찰총장 부르스 베네트의 선고에다 그녀는 수많은 그리스도인 부모들의 신앙에 적대적이고 대립적인 사상을 가르치고 있었다는 문장이 첨가되어야 할 것이다. .
무엇보다도 모든 소송 사건을 통하여 진화론이 마치 입증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는 것이다. 프리 프레스(미네소타 주 멘카토)에 따르면 AP는 1967년 10월 24일 자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즉,
”수잔 에퍼슨 부인은 진화론에 대한 다윈적 개념을 설명하지 않고서는 자기가 생물학을 적절하게 가르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첫째, 생물학을 가르칠 때 생명의 기원은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없고, 기원의 문제는 생명의 현재의 구조와 번식을 공부하는 데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생명과 식물과 동물의 기원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
둘째, 만일 그녀가 생물학에서 생명의 기원을 적절하게 가르치기를 원했다면, 그녀는 창조론과 같은 또 다른 생명의 기원에 대하여도 마땅히 가르쳤어야만 했다.
그러나 미니애폴리스 트리뷴지에 의하면 대법원은 이 모든 것과 대비해서 1968년 11월 13일 자로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즉,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한 주 법률은 비 헌법적이다.”
AP 보도에 따르면 (멘카토) 프리 프레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즉,
”미국의 대법원은 화요일 자로 아칸서스 주 공립학교에서의 진화론 교수의 금지는 주에 의한 종교의 장려였고 위헌적이었다고 말하면서 한 법률을 사멸시켰다.”
결코 과학적이라고 증명된 바 없는 진화론을 어떻게 금지했는가는, 성경의 문자적 가르침이 이해를 초월한다는 것을 확증시키고 있다. 이것이 한 모든 것은 증명되지 아니한 기원에 관한 토론을 교실로부터의 축출한 것이다. 진화론을 금지하는 것은 성경의 문자적 가르침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도치(倒置) 또는 역의 논리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대체로 창조신앙은 진화신앙을 금지시킴으로써 확립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증명되지 아니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창조론을 확립하는 것도 아니고, 진화론을 배격하는 것도 아니다.
아베 포타스 판사는, 미국의 헌법수정 제1조에 주어진 바와 같이 확립된 종교의 금지에 관한 대법원의 만장일치의 결정을 기술하면서, 1981년 5월호 <교회와 국가> p10에 따라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즉,
”국가는 공립 중고교나 대학에서 어떤 종교를 권장하거나 반대하는 교과과정이나 실습(기)을 채택해서는 안 된다. 이 금기는 예외가 없다. 그것은 마찬가지로 특정한 신조에 대해 적대적으로 여겨지는 어떤 종교의 교리의 추천이나 이론의 금지를 금하고 있다.”
여기서 진화론은 반종교적이거나 종교적 내용을 함축하고 있지 않은 단순히 하나의 ”이론”으로 언급되고 있다. 대법원의 의견을 기술하면서 포스타스 판사에 의해 만들어진 거짓된 가정은 진화론이 과학적인 이론으로 간주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화론이 그 전에도 밝힌 바와 같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이론이거나 사실이 아니라, 반종교적이고 종교성을 함축하고 있는 하나의 사상이라는 것이다. 진화론의 핵심은 반-창조론적이고, 무신론적(반-신)이거나 유신론적(하나님과 연관된)이다. ”진화”라는 용어는 모든 다른 용어나 사상과 같이 그것이 의미하는 바의 요체라고 생각되는 모든 태도의 총화다. 그리고 반-창조론과 무신론과 유신론은 진화론과 연관된 아류들이다.
진화론과 반-창조론과 반-종교는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있어서 반-창조론과 반 종교가 진화론과 연관된 함의를 가지고 있다. 진화론의 핵심은 반-종교적이기도 하고 종교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들의 밀접한 관련성 때문에 크리스천들은 3가지(진화론, 반-창조론, 반-종교) 모두 헌법수정 제1조를 함께 위반한 공범이라고 주장해야만 옳다. 3가지가 다 그들의 종교적 신념과 그들 부모들의 종교적 신념으로 아이들을 오도함에 있어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수정헌법 제1조는 특정한 교의(dogma)에 반대하는 것 같이 여겨지는 이론의 금지를 금한다고 선언하면서 진화론을 입증된 과학으로 격상시키고 모든 다른 종교와 구별하여 학교(교실)에서 진화론의 무신론적 유신론적 태도를 정착시킨다. 그러나 진화론은 과학적이지도 아니하고 과학도 아니다. 그래서 아베 포타스가 의미했던 대로 과학적인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종교다. 그러므로 공공기관에서 진화론이 가르쳐지도록 허락함으로써 그것은 진화교에 ”우선권”을 주고 있고 진화의 종교를 ”정착시키고” 있다. (p.328-340, 349-359 참조)
아칸서스 주는 1981년 또다시 전국적 관심을 모았다.
이때의 그것은 만일 학교가 진화론을 가르친다면 그들은 창조론도 종교와 연관시키지 않고 과학적 기초 위에서 가르쳐야만 한다는 것을 언급하는 창조과학과 진화과학을 위한 균형적 취급법이다. 이 소송 사건 때에 하버드 대학의 스티븐 굴드 교수는 다음과 같은 낡고 증명되지 않은 진화론을 들고 나왔다. 즉,
”진화론은 마치 나무에서 떨어지고 있는 사과와 같이 하나의 엄연한 사실이다.”
여기서 입증되지 않은 진화론이 입증된 중력의 법칙과 같은 수준에 올려놓아졌다. 이것은 구차하고 거짓된 논리다. 우리가 전에도 본 바와 같이 진화론이 사실이라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 같은 식으로 창조론도 최소한 제일 원인이라는 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논리적이고 합리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는 없다. 창조과학은 진화론이 그런 것처럼 종교적 함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미국 헌법수정 제1조에 위배된다고 법원에 의하여 기각되었다. 그래서 또한 종교적, 그리고 반종교적인 진화론은 1966년 아칸서스 주에서 금지되어야만 했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스코프스의 “원숭이” 재판
유종호
그 재판에 누구와 무엇이 포함되었는가?
그 재판은 1925년 7월 10일 테네시 주 데이턴에서 처음 시작됐다. 고등학교 교사인 존 스코프스는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테네시주 법을 위반하고 진화론을 가르친다는 고소를 당했다. 특별 검사의 역할(창조론측)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맡았었는데, 그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 재임 시의 전 국무장관이었고, 민주당에 의해 3차례나 대통령후보에 지명되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성경을 문자대로 믿는 근본주의적 크리스천이었다. 그러나 그는 과학자가 아니었고, 진화론에 대한 최근의 과학적 지식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미국 시민자유연맹과 그것의 수석 변호사(진화론측)인 클러렌스 대로우가 그에게 함정을 쳐놓은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대로우는 시카고에서 유명한 자유주의 성향의 형사문제 법률가였다. 그는 또한 불가지론자이기도 했다. 대로우는 재판에 계류된 진화론 대신에 브라이언과 그의 근본주의 신앙이 재판을 받게 하고 브라이언이 대로우의 경멸과 모욕에 의해 웃음거리가 되도록 재판을 그럴듯하게 교묘히 유도했다. 오늘날처럼 진화론에 깊이 빠져있었던 엄청난 수의 언론 매체들이 이 재판을 보도하였다.
대로우의 잘못된 논리
대로우는 재판 중의 한 진술에서 몇 가지의 중요한 잘못된 생각과 논리를 발언하게 된다. <원숭이 대 재판, 1968>이라는 책 p.223에서 캠프(Sprague de Camp) 목사는 그의 발언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었다. 즉,
”국가는 어떤 이론이나 과학적인 견해가 어떤 종교적 사상과 상충될 수 있다는 사실로서 그것을 금지할 어떤 권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부분의 천문학과 지질학은 금지 조치를 당했을 것이다.”
이 대로우의 발언이 잘못된 이유를 살펴보겠다.
첫째, 진화론은 증명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증명되거나 실험될 수 없기 때문에, 과학적 이론이 아니다.
둘째, 국가는 어떤 종교적 사상과 상충되는 사상을 금지할 수는 없지만, 정부 기관에서 그 사상이 가르쳐지는 것을 금지할 권리와 책임을 가져야만 한다. 다른 사람의 종교적 신념을 반대하는 어떤 종교적 혹은 반종교적 사상도 정부의 시설 내에서 허락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만일 진화론이 금지된다 해도 천문학과 지질학이 금지되는 것이 아니다. 천문학과 지질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기원에 대한 거짓된 가정들만이 금지되어야 한다.
넷째, 사람들이 여러 가지 형태의 종교적 주제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은, 진화론자들에게 어떤 것이 딴 것보다 더 우수하다거나 다른 사람들의 종교적 사상과 상충되지 않는다 등과 같은, 기원에 관한 그들의 반종교적 그리고 종교적 사상을 가르칠 면허증을 주는 것이 아니다.
<원숭이 대 재판, 1968>이라는 책 p.224에서 캠프 목사는 대로우의 거짓 논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즉,
”대로우는 성경의 많은 다른 해석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했다. 따라서 진화론이 성경과 상충되는 것으로 취급될 수는 없다.”
창세기의 기원에 관한 여러 다른 해석들은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를 믿는 사람들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유신론적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견해이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만물의 기원에 관하여는 결국 무신론적 진화론과 같은 급에 속한다. 그런고로 둘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 근본적으로는 둘은 같다.
대로우는 거짓 논리를 사용해서 ”고함치는 그의 목소리” p.257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오늘 공립학교에서 진화론과 같은 것을 취급하고 그것을 가르치는 것을 위법행위로 만들어 버린다면, 내일은 사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위법행위로 만들 것이고, 내년에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려할 것이다.”
그는 헌법수정 제1조에 따라서 ”신앙의 자유”가 공공교육기관 밖에서는 금지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대로우는 그 책 p.257에서 다음과 같이 계속 썼다.
”불원간에 당신은 가톨릭을 개신교와 대적시키고, 개신교끼리 대적시키고, 인간들의 마음속에 당신 자신의 종교를 슬그머니 집어넣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바로 진화론자들이 시도하고 있는 짓이다.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은 창조론을 가르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공립학교에서는 어떤 종교나 반종교도 이것이 다른 것을 반대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1925년 대로우 시대 이래로 진화론자들의 빈약한 논리는 전혀 발전되지 않았다. 창조론과 진화론 문제를 강의했고, 광범위하게 토론했으며, 미국 인본주의자 협회의 행정책임자였던 프레드 에드워즈는 <왜 창조론을 과학으로 가르쳐서는 안 되는가? (1980)>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진화론이 정상적으로 가르쳐졌을 때, 학생들이 반드시 따를 것(忠順)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이 기반 위에서 충순(忠順)이 요구되지 않는 한, 로마 가톨릭은 학교에서 개신교도에게 자기들의 신념을 가르칠 수 있고, 그 역(逆)도 마찬가지다.
에드워즈는 계속해서 말한다. 즉,
”객관적으로 제시된 개념들에 대한 그들의 이해만이 추구된다. 그러므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은 어떤 아이들의 신앙의 자유에 대하여 위협이나 부담이 되지 않는다. 학생들은 언제나 그들이 배운 이론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을 자유를 구사할 수 있다. 만일 그들이 진화론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면, 그들은 자녀들을 사립 종교 학교에 보낼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가르치기를 원하는 어떤 것을 가르칠 권한을 가지고 있는 교사는 한 아이에게 어떤 종류의 교의를 주입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아이는 조롱의 위험에 놓이게 된다. 환언하면 나치 독일이나 러시아에서처럼, 아이들은 교사들이나 국가의 변덕과 환각에 예속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자녀들을 신앙의 자유로부터 멀리 멀리 옮겨놓게 된다.
인본주의자이며 진화론자인 프래드 에드워드의 다음과 같은 말에는 모든 오만방자함이 표현되어 있다. 즉;
”······· 이것은 나머지 모든 학생들에게 열등한 교육을 정당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충분하지 않다.”
아이들에게 하나의 우등한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입증되지 않은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인가? 오만은 계속된다.
”이런 자료를 가르치고 그것을 배타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국가적으로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진화론이 모든 과학을 하나로 통합하는 위대한 원리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학생들이 만약 진화론에 대해서 몽매하다면, 그의 과학적인 생애는 적절하게 준비될 수가 없다.”
만약 대부분의 과학들이 증명하지 않은 진화론적 가정들에 의해 오도되지 않았다면, 더 올바른 입장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진화론은 통합된 원리가 아니며, 또한 증명된 과학도 아니다. 그래서 에드워즈는 하나의 틀리고 비논리적인 진술과 논쟁에서 또 다른 것으로 왔다 갔다 하며 계속 헤매고 있다.
브라이언은 함정 속으로 잘못 걸려들었다.
대로우가 쳐놓은 함정 속으로 브라이언이 어떻게 걸려들었는가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니테리언 교회의 목사인 캠프가 쓴 <원숭이 대 재판, p346>에서, 그 재판의 말미에서 대로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증언석 위에다 바이블 전문가를 올려놓으려고 한다. 그렇지! 당신이 아니라 당신 보다고 더 위대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전문가를---그에 의하면.”
포터는 대답했다. 즉,
”당신의 말은 브라이언 자신을 의미하고 있지요? 당신은 그를 증언석 위에다 올려 놓고 있어요. 그에게 물어봐요. 그것은 멋진 조처가 될 것이요!”
대로우는 포터에게 성경에서 몇 개의 가능성 있는 비과학적인 점들을 찾아내 달라고 말했다. 재판의 말미에서 브라이언은 증언석 위에 세워지고 대로우가 질문하는 것을 동의했다. 브라이언은 나중에 대로우에게 질문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브라이언이 대로우에게 질문할 수 있기까지 재판은 지속되지 않았다.
대로우는 성경의 여러 곳 특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기적들에 대해서 브라이언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 자신이 증언석 위에 서게됨으로서, 브라이언은 진화론 대신에 그 자신과 성경의 기적들이 재판을 받게 했다. 대로우는 브라이언에게 맨 처음에 성경이 문자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 질문을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브라이언에게 요나와 고래에 대해서, 태양이 중천에 머문 일, 노아의 대홍수와 홍수의 시기, 베벨탑, 지구의 나이 등에 대해서 질문했다. 이 모든 질문을 하는 동안에 대로우는 브라이언을 모독하고 멸시로 일관했다. 마지막으로 대로우는 죽일 듯이 대들었다.
대로우는 브라이언의 출신 주인 네브래스카에서 발견된 이빨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이 이빨에 대해서는 내가 제11장 제4절 ”진화론자들의 날조와 사기”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진화론자들은 그 이빨을 수백만 년 전의 원인(猿人)의 것이라고 발표해 놓고 있었다. 테네시 주의 데이턴 재판 때에 시카고 대학의 H. 뉴먼 교수와 같은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그 이빨이 수백만 년 되었다고 하는 증거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브라이언은 조롱당하고 경멸당했다. 그 이빨에 대해서 주장된 연대는 대로우의 손에 쥐어진 무기였다. 브라이언이 그 이빨의 추정 연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지구의 나이와 다르게는 결코 산정할 수 없는 창조의 날의 길이에 대하여 잘 대답하지 못했다. 브라이언에게 던진 대로우의 회심의 질문은 ”당신은 지구가 6일 동안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까?” 브라이언은 ”24시간으로 된 6일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몇 가지 질문을 더 한 다음 대로우는 그 날들은 얼마나 긴 것이었습니까? 라는 대답으로 그를 유인했다. 브라이언은 수백 년을 포괄하는 기간이라고 대답했다. 법정에 있던 방청객들은 브라이언이 그와 같은 진술을 한 것에 대하여 믿을 수 없어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브라이언의 이런 생각은 수백만 년 이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어떤 신학자들에게서 얻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겨우 2년 후인 1927년 그 이빨은 돼지 턱에서 나온 돼지이빨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진화론자들도 이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 재판에 대한 보도는 뉴스 매체를 통해 이미 전 세계에 널리 퍼졌기 때문에, 온 세상의 진화론자들은 그들이 설 수 있는 기반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대로우는 두 가지의 목적을 이루었다. 첫째는 성경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과 진화론자들이 문제 제기를 했었다는 사실이었고, 둘째는 진화론이 많은 과학인들 사이에서 사실로서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선전거리를 얻었다는 사실이었다.
한편 뉴스 매체들은 브라이언의 성경에 대한 신뢰를 조롱하고 멸시했으며, 이런 부류의 소위 진화론 전문가들의 증언이 전 세계로 방송되었다. 그 질문 이후에 문제를 더욱 논쟁거리로 삼으려는 대로우와 진화론측 사람들에 의한 교활한 운동 속에서 브라이언은 변론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말았다.
진화론은 결코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다.
진화론이 재판에 부쳐질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대로우는 창조론과 성경이 재판에 부쳐지도록 책동하였다. 진화론의 궤변과 비과학적 기초들은 토론되지도 않았다. 만일 그것들이 토론되었다면, 어떤 법정도 그 문제들을 종결지으며 진화론이나 창조론 어느 쪽도 입증된 과학적 사실이라고 선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925년 이래 적어도 2개의 다른 법정에서 창조론자들은 그들 자신들을 진화론 대신에 다시 재판에 부쳐지도록 했다. 1981년 아칸서스 재판과 1985년 루이지에나 재판 등에서 진화론의 오류에 관한 토론이 회피되었거나 매우 우회되었다.
브라이언의 사망
재판이 끝난 지 바로 며칠 후에 브라이언은 낮잠을 자다가 65세를 일기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대로우에 의한 반대신문으로 그가 당했던 엄청난 혼란과 정서적 시련이 그의 갑작스런 비운의 죽음과 관계가 있을 것이란 약간의 의문도 제기되었다. 당시의 한 동정적인 저널리스트는 이 사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고했다(de Camp 413).
”브라이언에 대한 대로우의 반대신문은 엄청나게 잔인했다. ”무식쟁이”나 하나의 ”바보, 그리고 근본주의자 꼴통”이라고 부르고, 그의 신앙을 ”당신들의 그 바보 같은 종교”라고 언급한 것을 듣는 굴욕감 등이 브라이언을 쉽게 쓰러지게 했을 것이라는 점을 의심치 않는다. 재판이 끝난 지 4일 후에 나는 그와 약간 길게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때까지도 그는 그에게 적용됐던 모멸적인 별명들에 대한 아픔으로 치를 떨고 있었다. 그는 망가지고 으깨어져 있었다.”
이 모든 것들 때문에 대로우는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어떤 이는 그가 브라이언을 대하는 태도가 무례하고 잔인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한 법정을 진화론 선전장으로 사용했고, 서커스 분위기를 조성하여 이렇게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보수주의 신학자들과 수많은 다른 이들은 물론, 자유주의 신학자들로부터도 책망을 들었다. 만일 브라이언이 한 번이라도 대로우를 반대 신문했더라면, 대로우의 진화론 사상을 ”당신의 그 저주받고, 비과학적이며, 비논리적이며, 바보같은 진화론 사상들”이라고 바르게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
진화론은 미국 전 과학계와 교육계에서 새로워진 발판을 확보했다.
재판 중에 진화론 사상에 대한 어떤 검증도 없었지만, 대로우는 어떻든 진화론 사상을 확산시키는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는 소위 ‘전문적인’ 과학자들에게, 특히 브라이언의 고향인 네브래스카 주에서 발견된 ‘이빨’이 수백만 년 되었다는 것으로, 진화론의 과학적 증거라며 제시하였다. 이러한 소위 진화론의 과학적 증거들에 관한 보고들이 오늘날 아직도 세계 모든 지역에 퍼져있다.
로버트 겐트리 박사는 <창조의 아주 작은 불가사의, 1988> p.88에서 이것이 세상에서 갖는 영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즉,
”과학자들 가운데에 인식된 재판의 결과는 널리 퍼져서 멈출 줄 몰랐다. 이렇게 해서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을 공공연하게 믿는 어떤 과학자든지 간에 그들의 동료들 가운데서 의심을 받게 되었다. 창조론에 대한 이런 경멸은 과학자 자신들과 교육자들에 의해서 새로운 세대의 대학생들에게로 계승되었다. 과학자 자신들과 교육자들 대부분은 과학계의 그들 동료들을 흉내 내는 것 이상은 알지 못했다. 스코프스의 재판 이래 대학교육을 받은 미국인 3세대들은 진화론이 과학적 진리를 대표하고 있다는 견해로 세뇌되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 이후로 진화론에 반대되는 증거들이 엄청나게 많이 쏟아져 나와서 진화론 교수들이 창조론자들과 토론하는 것을 회피하려고 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지난 세기의 어느 때보다도 진화론에 반대되는 더 많은 것들이 논의될 수 있다. 왜냐하면 진화론에 반대되는 더 많은 진실들과 더 많은 반진화론적 증거들이 꾸준하게 발견되고 있고, 진화론 사상을 반대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진화론은 비과학적이다 - 4
: 진화론은 모든 것을 우연의 탓으로 돌린다.
9. 우연
최종적인 분석에서 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의 진화론을 우연의 탓으로 돌린다. 우리의 우주 전체와 지구의 정교한 운행과 작동이 모두 우연히 되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세계 최고의 문학 작품이 인쇄소에서 원숭이들이 뛰어 놀다가 쓰여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진화론자들은 우주의 형성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다. 빅뱅 사상은 과학과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조잡한 가정이며, 절망적인 시도일 뿐이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폭발은 왜 일어났는가? 어떤 힘이 그러한 최초의 폭발을 야기했는가? 영국의 천문학자인 M. W. 스마트는 1951년에 우주는 우연의 산물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리가 우주를 연구하고 우주의 웅장함과 질서정연함을 감상할 때 우리는 한정된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창조의 힘과 우주의 합목적성을 인정하도록 이끌리게 되는 듯하다.”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그리고 세기마다 우리의 지구가 적당한 속도로 지축에 따라 회전하는 방식, 적당한 낮과 밤의 길이,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속도로 태양의 주위를 도는 지구의 공전, 적당한 기울기에 한결같은 속도로 지구가 움직임에 따라 계절이 변화하는 지구를 생각할 때, 이것은 결코 우연일 리가 없다. 얼마 후에는 우리는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동지를 맞이한다. 그리고 이제 점점 낮이 길어지고 화창한 봄과 과일과 식물을 먹을 수 있는 여름을 기대한다. 신뢰할 수 없는 우연이 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인가!
1946년에 뉴욕 과학원의 전 원장인 크레시 모리슨은 1946년 12월호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과학자가 하나님을 믿는 7 가지의 이유”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그는 과학이라고 알려진 많은 사실들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우주는 위대한 공학적 지식에 의해 설계되고 이룩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과 다른 예들에 의해서, 우리의 행성 위에 생명체가 우연히 발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우연한 일들이 모두 우연히 일어나야 한다.”
이것은 우리를 다시 생명의 기원으로 이끈다. 생명의 기원은 결코 우연히 발생하거나 진전할 수 없는 거대한 신비이다. 만약 생명이 아미노산을 강타한 우연한 번개로 인해 발생되었다면, 그러한 과정이 왜 오늘날에는 또 다시 발생하지 않는가? 유명한 천문학자인 프레드 호일 경은 <임펙트, 1984. 12> p1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생화학자들이 생명의 복잡성에 관하여 점점 더 많은 것을 발견함에 따라 생명이 우발적으로 시작했다는 가능성은 너무도 미미해서 완전히 제거될 수 있다. 생명은 결코 우연히 발생했을 리가 없다.”
호일이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그는 지구에 생명이 출현한 배후에는 어떤 지성의 존재가 있음을 확실히 믿고 있다. 호일이 지적하기를 “생명이 스스로 발생하여 진화했을 가능성은 색맹이 루빅큐브를 맞추려는 것만큼이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우연히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다른 예를 들었다. 그것은 747 비행기의 부품이 들어있는 창고에 폭풍이 몰아닥쳐서, 우연히 비행기의 부품들이 조립되어 즉각적으로 상업용 비행기가 만들어질 우연성과 같다는 것이다. 평범한 상식에 비추어 보아도 우주의 모든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최고의 지성이 요구된다. 우주, 지구, 태양계에 현존하는 장엄한 업적과 최상의 조건을 바라볼 때, 하나의 논리적인 결과는 최고의 설계자만이 이것을 이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제임스 맥스웰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하나님이 우주를 운행하게 할 필요가 없었다는 우주의 기원론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성경을 알지 못했던 고대의 로마인 키케로마저도 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믿음에 대한 강력한 원인은 천상의 한결같은 운행과 회전이었고, 태양과 달과 별들의 질서정연한 아름다움과 다양한 무리들, 그리고 결코 우연의 결과로 볼 수 없음을 충분히 증명하는 바로 그 모습들이다. 우리가 집이나 학교 또는 공중집회에 가서 질서와 규율 그리고 시스템을 관찰할 때, 이런 모든 것들이 원인 없이 일어났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즉 우리는 지휘하고 통제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과거의 헤아릴 수 없이 오랜 기간 동안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천체들의 거대한 움직임과 어마어마한 물질들의 질서정연한 과정들을 볼 때 거대한 세계의 움직임은 어떤 인격자의 의도(Mind)에 의한 것이라고 추론하지 않을 수 없다. .... 그렇다면 이 경우에 ‘하나님’보다 무슨 명칭이 더 나을까?“
그렇다 오늘날 세계에 존재하는 종교적, 비종교적인 교리와 신념 가운데 진화론은 가장 비합리적이며, 비과학적이고, 부조리하다. 그들의 신조는 과거와 현재의 어떤 종교적인 교리보다 큰 신앙을 요구한다.
요약
다음 항목들의 근거에 의해서 진화론은 비과학적이다.
1. 최근 알려진 지질학적 사실들에 의하면 지층과 암석들은 점진적으로 형성되지 않았다.
2. 잘 알려진 고고학적 사실들에 의하면 초기 인류는 고도로 지적이고 문명된 자들이었다.
3. 동·식물학에서 잘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동물이 식물로, 식물이 동물로 변할 수 없다.
4. 인간과 동물의 서로 다른 수많은 복잡한 기관들이 기능적으로 한꺼번에 발달할 수 없다.
5. 모든 것이 다 우연히 발달할 수 없다.
6. 하나의 종이 다른 종으로 변할 수 없다.
7. 인과율의 법칙은 우연히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거부한다.
8. 지구와 태양계는 너무도 완벽하고, 정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운행되고 있다.
9. 인류의 알려진 실제의 역사는 진화론을 거부한다.
10. 진화론자들이 무시하고 거부하는 성경에 기록된 역사는 사실임이 밝혀지고 있다.
12. 입증된 과학 법칙들은 진화론과 상이하다.
13. 진화론은 일반 상식과 논리에 맞지 않는다.
이러한 것을 근거로 할 때 진화는 전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진화론은 지성인들의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어리석고, 비논리적이며, 비과학적인, 우스꽝스러운 사상인 것이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21
참고 :
진화론은 비과학적이다 - 3
: 진화론 전문가들의 지지는 진화가 사실이라는 증거가 될 수 없다.
8. 전문가들
전문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계속 주장하는 것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뒷받침이 되고 버팀목이 된다. 이것은 특히 진화론자들의 주장에서 그러하다. 많은 경우 과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진화론자들의 주장에 과학자들의 이름만을 덧붙인 과학자들이 있는 반면에, 대부분의 경우 전문가들은 진화론자들이다. 나는 이미 진화론자들의 주장을 거부하는 진실한 과학자들의 진술을 인용해왔다. 또한 어떤 진화론자가 다른 진화론자를 거부하는 여러 가지의 사례도 언급한 바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증언과 진술은 아무 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이런 경우에 소위 진화론의 전문가들은 단지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정신과 전문의들 사이에 하나의 놀라는 사례는 레이건 대통령에게 총을 발사한 존. W. 힌클리 Jr.의 경우이다. 그는 「보스톤 헤럴드 아메리칸」에서 보낸 편지의 답장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네 명의 의사들이 두 가지의 인격 문제로 나를 고독한 존재로 보고 망상적인 정신병자라고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본다. 나의 경우에 있어서 나를 검사한 의사들은 아무도 나의 두뇌의 생각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어떤 분야에서는 기초를 벗어나 있었다.”
경제 전문가들은 경제적인 전망에 있어서 수시로 오판을 하고 있다. AFL-CIO를 이끌었던 조지 미니는 경제학은 한 사람이 전문가로서 옳지 못하면서도 장기간의 명성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전문 분야라고 말했다.
클레어몬트 레터는 1985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핸리 카우프만은 얼마나 자주 시장의 이율을 예측함으로써 시장에 가파른 경기 침체를 야기시켰는가? 지난 3년간 카우프만과 최고의 분석가들이 반복해서 빗나갔다. 그들은 예측했으나 몇 주 이내에 시장은 그들이 말했던 대로 되지 않았다.”
증권 전문가들은 지난 8차례의 경기침체 가운데 28번을 예측했다. (그렇다 8번의 경기침체에서 28이 맞다.)
1985년에 자체적인 판단으로 투자한 백만장자인 모톤 슈만은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운 없게도 빗나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캐나다에서 주간 TV쇼를 진행하곤 했다. 일 년에 한번 나는 투자 관련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런 쇼 이후에 나는 전문가들이 말했던 어리석음에 경악하여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들은 여러 차례 고객들을 죽음으로 내몬 예상과 추천을 할 때 아주 뻔뻔했다.”
그러나 최악의 전문가들은 증권시장의 추세를 전망하는 분야에 있었다. 전문가들의 조언이 담긴 투자회보를 점검하는 헐버트 파이낸셜 다이제스트는 1985년 가을에 지적하기를 “전문가들의 추천에 유의했던 투자자들은 망해 버렸다.” “I'm the Greatest'의 대명사 죠 그랜빌이 하나의 두드러진 경우였다. 그랜빌은 전문적인 조언자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의 고객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1985년 10월 그는 추수감사절 무렵에 급강하하여 주가가 1,200정도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반대로 주가는 급상승하여 1,500 정도 상승하였다.
고객을 죽음으로 몰고 간 최악의 경우는 증권시장이 1982년 8월에 극도로 낙관적으로 변할 때였다. 그런데 조 그랜빌은 계속 시장의 예칙과 권고를 했고, 최악의 상황은 과부들을 포함한 고객들이 공매하는 경우였다. 많은 고객들은 그러한 전문가들의 권고에 따르다가 수십만 달러를 잃어버렸다. 놀라운 일은 이러한 전문가들이 뉴욕증권시장에서 5년 동안 권고를 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1987년 9월 시장은 이미 역사상 가파른 최고의 하락을 하고 있을 무렵 그는 낙관적으로 다우존스의 증권시장이 1987년 말까지 3,000포인트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1988년 훨씬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1987년 10월 19일에 시장은 500포인트로 하락했다. 전문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증권시장이 최고조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기침체가 발생했다.
증권시장의 조언자들과 동일한 유형의 “전문가” 조언은 진화론 영역의 소위 전문가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진화론의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증거도 없이 수백만 혹은 수십억 년의 세월을 이야기 한다. 그러한 전문가들의 조언과 정보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과 성인들이 영원에 대한 혼돈을 겪게 되는가? 그들은 영원한 죽음으로 잘못 유도되고 있는 것이다.
별들, 은하계, 퀘이사들이 지구로부터 수백광년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우주의 연령을 증명하지 못한다. 지구, 태양계, 별들, 은하계를 창조한 동일한 하나님은 성숙한 우주를 창조하자마자 제자리에 빛을 둘 수 있었다. 1984년 8월 27일의 미니애폴리스 트리뷴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지 않다.
“이것은 수십억 년 전, 시간이 시작할 무렵, 우주를 창조했던 물질이 최초로 팽창한 부분인 물질에서 시작했던 빛을 우리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할 수 있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19
참고 :
진화론은 비과학적이다 - 2
: 진화론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의견 일치가 되지 않는다.
5. 진화론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의견 일치가 되지 않는다.
진화론자들이 과학적 근거도 없는 이론을 가지고 세운 가정들은 오류를 포함한 중구난방에 불과하기 때문에, 서로 견해가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진화론자들 간에 의견 불일치는 찰스 다윈의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03. 6. 9자 뉴욕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New York Times Literary Supplement)는 <진화론자들의 수수께끼>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머 감각을 가진 자라면 어느 누구도 재미없이 진화론의 전투를 숙고할 수 없다. 그들의 戰場은 수많은 병사들의 피로 빨갛게 물들어 있고 시신으로 널려있다..... 결코 그러한 난투장을 본적이 없다. 여기서의 유머란 그들 모두가 “과학”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오늘날 진화론은 저명한 과학자에게서도 공격을 받고 있다. 런던 타임스의 필자이며, 진화론자인 크리스토퍼 브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은 아주 아름다울 정도로 단순하고 매력적인 이론이다. 단 한 가지의 문제점은 다윈이 부분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거대한 구멍으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다윈이 사망한지 1세기 후에.... 거의 공개적인 전쟁이 진화론자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반복적으로 상호 대립하고 있다. 한 사람이 확정된 확실성을 가르치면 다른 사람은 강한 확실성을 가지고 반대한다. 영국의 New Scientist 지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점점 수가 증가하는 과학자들, 특히 많은 진화론자들은.... 다윈의 진화론이 진정한 과학적 이론이 아니라고 논쟁한다. 그러한 많은 비평가들은 최고의 지적 자격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6. 진화론 - 하나의 사기 행위
그렇다. 진화론은 비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사기 행위이며, 허위 주장이다. 뇌와 두개골은 조작되었고, 1985년 11월호 내셔널 지오그래픽스에 게재되었던 것처럼 소기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 사진들도 조작되었다. 진화론자들을 위해 거짓으로 꾸며진 저속한 필트다운인과 네브래스카인이라는 것이 있다. 1926년에 동물학자인 폴 카머러는 아주 다른 두 종의 불도마뱀이 서로 서로의 특성을 물려주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검증을 받았을 때 “획득된 특성”은 인도의 잉크를 사용하여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고, 그 후에 그는 자살을 시도했다.
진화론자들은 과학적 근거도 없이 1억-2억년 전이라며 새와 동물들을 언급할 때 사기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방사성 연대측정을 이용하여 역으로 연대를 추정함으로써 엄청난 나이를 생각해냈다. 그들은 순박하고 단순한 인상을 주고 마치 초-지능적이며 발달된 사람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하여, 이러한 환상적인 연령을 증거로 발표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람들이 진화론이라는 새로운 바알신 앞에 엎드려 숭배하도록 노력했다. 여기서 그들은 히틀러의 유명한 말을 따랐다.
“만약에 당신이 거짓말을 해야 한다면 대담하게 거짓말을 하고, 사람들이 믿을 수 있게 하려면 확실하게 거짓말을 해라.”
지난 일백 수십년 동안은 사람들이 진화론이라는 우화와 사탄의 거짓말을 믿고 지식인들이 공적인 세금으로 그러한 거짓말을 공표했을 때, 우리의 역사는 모든 시대 가운데 가장 속기 쉬운 시대가 되어버렸다. 사실 정부가 처벌하는 금전적인 사기 사건들보다도 더 해로운 사기 사건에 해당하는 것이 진화론의 기만적 범죄이고, 감언이설이며, 허위진술이다.
창조를 가르치는 것은 이생에서나 영원에 대하여 어느 누구에게나 해를 입히지 않는다. 그러나 어린이를 잘못된 길로 이끈 자들에게 어떤 저주가 기다리고 있을까?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 (눅17:2) 라고 기록되어 있다.
7. 진화론은 어떠한 과학적 증거도 없이 사실이라고 선포된다.
진화는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사기행위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들은 진화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1982년 9월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p.9에 실린 논문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지난 2세기동안 지질학, 고생물학, 분자생물학, 그리고 다른 과학적 학문에서 수집된 증거는 진화를 확실한 사실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어떠한 증거도 제시되지 못했다. 1984년 2월 2일에 천문학 교수인 스치븐 쇼어는 기쉬 박사와의 토론의 서두에서 진화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1985년 2월 20일의 또 다른 논쟁에서 아이오와 주립대학에 존 패터슨 박사는 진화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거듭 어떠한 과학적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1987년 2월 17일에 아프리카에서 화석을 캐는 리처드 리키는 미네소타 주의 맨카토 주립대학에서 많은 군중에게 연설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화를 중력에 비유했다.
“사람들이 여전히 진화를 단지 이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중력도 이론에 의해서 밝혀진 것을 아는가.... 마찬가지로 진화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이것이 얼마나 비논리적인 생각인가! 중력은 단지 이론만이 아니다. 그것은 셀 수 없을 정도의 실험에 의해 입증된 사실이다. 그러나 진화는 결코 입증된 바가 없다. 그것은 심지어 이론도 아니다. 고작해야 추측, 가정, 또는 추정에 불과하다.
1961년 라이프라는 자연도서관은 다음과 같은 글에서 진화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진화론은 최초의 유기물 형태에서부터 인간의 중간단계의 선조에 이르기까지 오랜 진화를 하는 동안에 살다가 죽었던 동물들의 유물들에 의해 확실하게 증명되었다. 단지 인간의 출현에 대한 최종적인 증거만 발견되어야 할 상태이다.”
그러나 무척추 동물에서 어류로, 양서류로, 파충류로, 포유류로, 영장류로, 원숭이로, 그리고 인간으로 진화되었다는 허황된 도약만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증거도 제시된 것이 없이, 생물들 사이에 입증된 바 없는 간격만을 남겨두고 있다. 진화를 그럴 듯하게 만들려면, 중간단계의 동물들이 존재해야만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리처드 캐링톤은 자신의 책, 『지구의 이야기, 1956』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진실인 것은 과거의 어느 시기에 인간, 원숭이, 안경원숭이 등의 모체였던 동물 그룹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떠한 증거도 없다. 또 다른 가정과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어리석고도 비논리적으로 그는 같은 책 p.185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50년 전에 그러했던 것과 같이 오늘날도 인간과 원숭이가 같은 과(科)에 속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더 이상 옹호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러한 근거 없는 신념에 대한 증거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르네 두보스 박사는 1965년 3월 판 <미국의 과학자>의 “인본주의적 생물학”이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대부분의 계몽된 사람들은 이제는 우주의 모든 것(천체들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들이 진화의 과정을 거쳐 발전했고, 계속 발전한다는 것을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진화론이 사실이라는 주장을 계몽된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라. 그러나 거기에 증거는 없다. 계몽된 사람들이 전문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인해 오도되고 해를 당하고 있다. 나는 그러한 전문가들을 좀 더 지적하고자 한다.
나는 우선 최근의 진화론 전문가들을 언급하여야겠다. 토머스 헉슬리의 손자이며, 진화론 생물학자인 줄리안 헉슬리는 1960년 시카고 대학에서 열린 다윈의 100주년 기념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윈론에서 내가 지적하려는 첫 번째 요지는 더 이상 진화를 이론으로 볼 수 없고 사실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진지한 과학자라면 누구도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것처럼 진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논리가 아닌가!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의 방식으로 입증되었다. 그러나 진화론은 평가할만한 정도로 밝혀진 증거가 없다. 진화론을 태양의 주위를 도는 지구에 비교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교만이다.
하버드 대학의 스티븐 굴드는 1981년 5월 호『디스커버리』에서 진화가 사실이라는 궁색한 시도를 했다.
“진화가 일어났다는 우리의 확신은 일반적인 세 가지의 주장에 근거한다. 첫째 우리는 자연계와 실험실에서 풍부하고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진화의 생생한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 그 증거는 실험실에서 인위적인 선택에 따른 초파리들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의 변화에서부터, 공장의 매연이 나무를 검게 만들었을 때 검게 변한 영국의 가지나방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실험들이다. 나방들은 배경의 검은 색을 보호색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새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였다.”
나는 굴드 박사와 같은 지적인 사람이 초파리와 가지나방을 진화가 사실이라는 증거로서 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초파리의 수많은 세대에 걸친 실험결과는 단순히 초파리였을 뿐이고, 가지나방의 경우에도 오염으로 인해 흰색 가지나방들이 새들에게 많이 잡혀 먹어, 단지 검은색 가지나방의 개체수는 늘고 흰색 가지나방의 개체수는 줄어든 것 뿐이다. 이것은 개체수의 변화이지 진화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진화가 사실이라는 또 다른 예는 빅뱅과 우주와 관련해서 찾아볼 수 있다. 요셉 실크는 『빅뱅, 1979. 10』의 서문 p.14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빅뱅이론은 생각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사실에 의거한다. 게다가 빅뱅의 상대적인 단순성은 낯설은 우주론들보다 호감을 준다.”
그러나 빅뱅은 결코 과학적 사실일 수 없다. 그 어떤 폭발도 질서를 만들어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빅뱅은 질서를 창조할 수 없다. 진화론자들이 합작해서 만든 빅뱅 이론은 최대의 폭발과 무질서만을 야기했을 뿐이다. 우주는 폐쇄체계이고, 질서정연한 우주가 빅뱅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진화론의 가설과는 달리 빅뱅은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쇠퇴와 혼란만을 더욱 야기할 수 있을 뿐이었다.
진화가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또 하나의 어설픈 시도는 나일스 엘드리지의 『사기사업, 1982』에서 시도되었다.
“진화는 지구가 공처럼 둥글게 생겼다는 생각만큼이나 사실이다. 그러나 두 가지 사실들이 다 이론 - 속일 수 있는 과학적인 이론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이론도 아주 형편없는 논리이다. 지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둥글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그래서 그것은 이론일 뿐만 아니라, 증명된 과학적 사실이다. 그러나 진화론은 지금까지 입증된 바 없다. 진화론은 지금까지 내가 지적한 대로 얼마나 많이 거짓으로 드러났는가? 추측, 가정, 이론을 증명된 사실과 동등한 차원으로 간주하는 것은 빈약한 논리인 동시에 과학이라고 주장하려는 파렴치한 시도이다.
로버트 젠트리 박사는 『창조의 아주 작은 신비, 1986. 10』p85에서 진화가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어리석음을 다음과 같이 효과적이고도 명확하게 요약했다.
“그러나 진화는 확정된 이론도, 사실도 아니다. 만약 진화가 요구하는 대로, 생명이 우연히 시작된 것이라면, 진화론적 생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그러한 과정을 다시 발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십 년의 헌신적인 노력과 관대한 정부의 자금 지원에도 불구하고 불활성 물질에서 생명을 이끌어 내려는 시도는 아무런 결실이 없음이 판명되었다. 마찬가지로 만약에 생명이 하나의 주요한 그룹에서 또 하나의 다른 그룹으로 변형하여 진화되었다면, 진화론을 근거로 한 수많은 전이형태는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 만약 생물학자들이 실험실적 조건에서 행방불명의 연결고리의 견본을 생산할 수 있다면, 그들은 전이형태의 일반적 부재에 관한 놀라운 의문점을 화석의 기록에 남겨둘 수 있었을 것이다. 실험실에서 방사능을 쪼여서 변이를 유도하는 것과 같은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려는 시도들은 단지 기존 유형의 변이일 뿐이다.”
진화가 사실이라는 그들의 주장에 대하여 그렇게 끈질기게 내가 토론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그것이 추종자들의 확신을 끌어내려는 진화론자들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거짓말을 계속 반복한다면, 목동의 늑대 이야기에서와 같이 아무런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당신의 말을 믿을 것이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17
참고 :
진화론은 비과학적이다 - 1
: 진화는 증거가 없으며, 가정들에 근거하며, 합리적이지 않다.
비록 이 단원이 앞 단원의 반복이 된다 하더라도 여기서는 다른 각도에서 진화와 과학에 접근한다. 이것은 중요한 사실, 즉 진화가 사실이 아님을 강조한다.
1. 진화에 대한 증거가 없다.
비록 세계 전역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사실로 믿는다 해도, 진화론에는 어디에도 과학적인 진짜 증거가 없다. 과거에 발생했거나, 현재에 발생하고 있거나, 미래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진화에 대한 과학적 증거는 없다. 진화에 관한 어떠한 이론도 관찰이나 과학적 시험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진화론자들이 진화는 입증된 과학적 사실이라고 거듭 주장하지만, 그들은 하나의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다.
어느 누구도 무생물에서 생기기 시작한 생명의 증거, 화학적 분자가 재생산할 수 있는 동식물의 세포로 변한 증거, 어류가 육지동물로 변한 증거, 양서류가 새와 육지동물로 변한 증거, 원숭이가 사람으로 변한 증거를 본 일이 없다. 바다생물에서 파충류, 조류, 그리고 포유류가 진화했다는 단 하나의 증거도 없다. 진화론자들은 날개 달린 파충류가 새로 진화했다는 증거를 찾으려고 오랫동안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은 헛수고였다.
수직적 진화, 즉 하등동물이 고등동물로 발전해 올라가는 진화의 증거는 없다. 만약 진화론자들이 그러한 증거를 제시한다면, 창조론자들의 반응은 달라질 것이다. 여러 종류의 동물들의 화석들이 지구의 동일한 퇴적층에서 발견된다. 진화는 생물과 무생물, 식물과 동물 사이에 존재하는 아주 광대한 간격을 설명할 수 없고, 많은 생물들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으며, 다른 종류의 동식물들이 왜 변화되지 않고 고정되어 있으며, 서로 교차될 수 없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은 어떠한 새로운 유형의 생물이 진화되어 출현하지 않는 이유와 과거의 수천 년 동안 새로운 진화물이 등장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대영박물관의 에드리지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이렇게 거대한 박물관에도 종의 변이에 대한 증거물은 없다. 진화론자들의 거의 모든 말들은 관찰에 근거하지도 않고 있으며, 사실에 뒷받침 되지 않는 아주 상식 밖의 허튼 소리이다.”
스미드소니안 연구소의 오스틴 클라크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장 주요한 그룹의 동물들 중에 어떠한 동물도 다른 동물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어떤 사소한 증거도 없다.”
2. 진화론은 단지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을 뿐이다.
진화론자들의 모든 주장은 수백만 년에서 수십억 년을 포괄하는 가정에 기초한다. 런던대학 교수인 E. H. 엔드류스는 진화론자들이 사용하는 시간의 추정방식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그는 화석에 수억 년의 세월을 부여하는 그런 연대측정방식은 가정에 근거한 것이며, 그러한 가정은 과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진화론은 과학적 근거가 없고, 기원에 대한 과학적 대답을 줄 수 없고, 단지 가정에만 매달리고 있기 때문에, 진화론은 과학적이지 못하다. 진화론자들이 긍정적인 증거가 없이 사실이라고 가정할 때, 그들은 과학적 사실로 설정하기 위하여 비과학적인 방법에 매달리고 있다. 진화는 가정이고, 생각이며, 신념일 뿐이다. 그것에 상상력이 부여된다면, 그것은 철학이라 부를 수는 있어도 과학은 될 수 없다. 그것은 일종의 새로운 신화, 또는 종교로 간주되어야 옳다.
힐버트 시글러는 『진화냐 퇴보냐 어느 것이냐?』 p88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즉,
"도대체 전적으로 입증된 바 없이 그렇게 철저하게 가정에만 근거한 과학, 미해결된 수많은 문제점에 직면한 채로 번성한 과학, 이론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진화를 증명된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그러한 신봉자들이 존재하는 과학, 그리고 진화론을 과학이라 부르면서 유물론적 제단에 경배하는 자들이 존재하는, 그런 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3. 진화론자들은 과학이 진화 이론을 필요로 한다고 거짓되게 주장한다.
진화론자인 프레스톤 크라우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형태론, 조직론, 고생물학, 분자생물학, 분자유전학, 유전학, 인구생물학, 생물지리학 등등의 다른 학문들을 연구하는 학생들은 통합적 원칙으로서 진화론이 없이는 그러한 학문을 이해할 수 없다. 그와는 반대로 이러한 학문들은 진화론을 지지하는 자료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진화론에다 제공해 주는 자료들은 입증된 과학적 실험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러한 모든 과학들은 진화론의 비과학적 원칙과 방법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더욱 정확히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4. 진화론은 합리적이지 않다.
진정한 과학자로서 진화론을 검증해 본 후에 고고학, 지질학, 그리고 초기 역사가 가르치는 맥락에서, 그리고 진화론적인 기만과 진화론적인 오류의 관점에서 진화론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인가를 알고서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과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이성의 탁월성에 대한 실없는 소리에 저항하지 않는 불신자의 뜻보다도 더 불합리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의 추정적인 지혜와 과학적 지식에도 불구하고, 불신앙은 사람을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하게 한다.
수백만 가지로 다른 종류들의 식물, 어류, 조류, 동물, 그리고 인간이 우연에서 시작되었다고 가정되는 생명의 섬광에서 어떻게 생길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오늘날의 생명의 한 종류도 다른 생명으로 변하지 않았고, 지난 수천년 동안 변한 흔적이 없는데, 다른 종류의 많은 생명체들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한 변화가 있었다는 증거를 화석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데, 어떻게 원숭이가 사람으로 발전할 수 있단 말인가? 가장 세련된 컴퓨터보다 더 복잡한 인간의 마음(mind)이 어떻게 우연히 발전하고, 연속적으로 인간이 재생산될 수 있단 말인가? 대뇌피질에서는 초당 수십조 비트의 정보를 처리하는 수십억의 뉴론들이 있다. 비록 인간의 지성이 발전시킨 컴퓨터가 복잡하긴 하지만, 인간의 마음(mind)은 훨씬 더 복잡하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인간의 두뇌가 우연의 결과라고 믿는 것은 극도로 비합리적이다.
신문의 컬럼니스트인 조지 윌이 언급한 어느 저명한 과학자는 선포했다. 즉,
"만약 우주가 폭발하고 흩어져서 인류가 제멋대로 만들어졌다면, 그것은 고물수집상을 강타한 폭풍이 컴퓨터를 만들어 낸 것과 견주어 생각할 수 있다.”
배후에 창조자가 없이 단세포가 인간, 혹은 복잡한 기관을 가진 동물로 발전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철이나 플라스틱, 나무, 또는 천조각 등이 복잡다단한 온갖 기능을 갖춘 자동차, 시계, 컴퓨터, 가옥, 공장, 또는 옷으로 스스로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주장은 과학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비논리적임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1985년 11월 24일에 "우주의 창조”에 관한 공영 TV 방송에서의 진화론 프로그램을 보았다. 우주에 있어서의 원자, 특히 빅뱅을 설명하는 내용은 매우 처량한 시도였다. 그들의 조물주는 분명코, 그 배후에 아무런 설계도 없이 우주의 모든 물질을 창조하기 위해 순식간에 빅뱅을 폭발시킨 작은 원자다. 진화론에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들 보다 더욱 신기한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한 기적들은 제아무리 비합리적이고, 우스꽝스러울지라도, 그것이 어떤 영적 존재, 또는 성경의 하나님에 의해서 수행되지만 않았다면, 진화론자들에게는 수용된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15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6022
과학이란 무엇인가? - 4
: 과학만능주의 - 거짓과학의 숭배
유종호
12. 넓은 의미에서 진화론은 입증될 수 없다.
진화는 관찰할 수 없고, 반복할 수 없으며, 시험할 수 없고, 현재의 진화론자들이 공식화한 것처럼 광범위한 의미에서 입증될 수 없다. 진화론자들에 따르면, 진화론의 핵심적인 사건들은 수백만 년, 수십억 년 전에 발생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또한 과학적 실험이 완성되거나 과학적 결론에 도달되기까지 미래에 수만 년의 세월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입증될 수 없다.
MIT의 진화론자인 머리 에덴은 진화론의 기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진화론에서 이것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이것은 내가 처음 부분에서 항진식(恒眞式, tautologous)이라고 불렀을 때 의미했던 것이다. 정말로 그것은 어느 것이나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입증될 수 없는 이론이다.”
스탠포드 대학의 폴 에르리히(Paul Ehrlich)와 시드니 대학의 L. C. 버치는 헨리 모리스의 <과학적 창조론> p6,7을 언급했다.
“우리의 진화론은 가능한 관측으로 논박될 수 없다. 모든 있을 법한 관측은 그것에 딱 들어맞는다. 그래서 그것은 ‘경험 과학의 밖’에 있지만 반드시 거짓된 것만은 아니다.”
13. 그러나 진화론적 사상들은 잘못되었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서로의 사상과 논거의 결점을 계속 찾아내고 있고, 서로의 합리화와 증거제시의 결함을 꾸준히 추적하고 있다. 진화론자들이 서로 공격하며 싸울 때, 그들 대부분의 사상은 잘못되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의 진화론에서 가장 중요한 선사시대 사람들은 원숭이나 유인원의 후손이 아닌 매우 진보된 지능의 존재였음을 나타내는 인류의 기록에 의해 거짓임이 판명되었다. 진화론은 또한 창세기 9장까지의 역사에 의해 거짓임이 판명되었다. 창세기 10장에 제시된 역사는 세상의 일반 역사와 일치한다. 왜 창세기의 첫 열 장을 무시하고 거부하며 과학의 법칙을 역행하는가?
최근의 진화론은 고고학에 의해서도 거짓임이 판명되었다. 고고학은 진보된 문명이 선사시대에도 존재했었다고 밝히고 있다. 진화론은 또한 지질학에 의해서도 거짓임이 판명되었다. 지질학은 여기 저기 산재한 화석뿐만 아니라, 점차적으로 축적된 것이 아니라, 노아의 홍수에 따른 결과로서 한꺼번에 거대한 화석들이 형성되었음을 밝혀주고 있다. 층과 층으로 이루어진 퇴적층들은 진화를 반박하고 점차적으로 퇴적되었다는 동일과정설이 거짓임을 입증하고 있다. 동물학은 다른 동물에서 서로 진화한 흔적이 없음을 밝힘으로써, 진화론이 거짓임을 규명하고 있다. 생물학은 생명은 오로지 생명으로부터만 비롯된다는 사실을 통해 진화론의 거짓을 규명한다. 그러므로 유기물인 생명체가 무기 물질에서 진화했다는 진화론은 거짓임이 판명되었다.
또한 모든 것이 상향으로 진화한다는 사상과 상충되는 열역학 제2법칙이 있다.
마지막으로 과학자 로버트 겐트리가 폴로늄의 다색성 후광을 연구한 책 『창조의 조그만 신비』는 지구의 화강암이 불과 몇 분 안에 생성되었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지구와 우주가 수십억 년 동안 진화했다는 이론이 거짓임을 규명하고 있다. 로버트 겐트리는 자신의 책 서문 p xii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의 중심 주제는 우리가 지구의 창세기 암석을 확인할 수 있도록 창조주께서 결정적인 증거를 남겨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의 진정한 증거는 아무리 많은 진화론의 퍼즐 조각들이 제아무리 잘 결합된다하더라도 기원에 대한 진화 모델은 거짓임을 입증하고 있다.”
14. 창조론도 과학으로 입증될 수 없다.
한편 창조론도 실험에 의해 증명될 수 없고, 인간의 관찰로 목격된 바가 없기 때문에, 입증될 수 없다. 과학의 법칙에 의하면 창조는 과학적 이론 혹은 법칙으로 생각될 수 없다. 그러나 창조는 거짓으로 판명된 바가 결코 없다.
1981년 5월호 디스커버리에 실린 “사실과 이론으로서의 진화론”이라는 논문에서 스티븐 고울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철학자 칼 포퍼는 수십 년 동안 과학의 주된 기준이 그 이론의 속임수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으나 속일 수는 있다. 원칙적으로 속여질 수 없는 일련의 사상은 과학이 아니다. “과학적 창조론”은 속여질 수 없기 때문에 자가당착적인 넌센스 문구이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진화 이론도 반증할 관찰과 실험을 계획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 잠재적 자료가 창조론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신념을 포기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지는 상상할 수 없다. 넘을 수 없는 시스템은 과학이 아니라 도그마이다.“
그렇다. 창조는 도그마이고, 성경의 교리이다. 그러나 창조는 비물질적인 제1원인(First Cause)의 기반 위에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모든 것이 물질과 생명의 존재를 포함하는 제1원인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로마서 1장 20절의 논리와 추론에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여 보라. 즉,
“창세기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비물질적인 존재)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그렇다. 창조는 고고학, 지질학, 동·식물학의 영원한 종류들, 기록된 역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화론자들이 반신, 반초자연적인 이유로 고의적으로 무시한 창세기의 첫 9장에 근거하여 살펴보아도 창조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15. 진정한 과학은 비평가들을 억압하지 않는다.
진화론자들은 창조론자들을 비과학적이며, 지적이지 않다고 억압하며, 계속 조롱하려고 한다. 사실과 진리를 추구하는 진정한 과학은 비평가들이 사상과 가설을 반증하거나 증명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므로 진화론자들이 자신의 신념 때문에 비평가들을 억압한다면 과학자로서의 그들의 지위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창조론이 지지자들과 다른 사람들의 영원한 복리에 영향을 주는 도그마이고 신념이기 때문에 창조론자들은 모든 반대 신념에 비평적일 필요가 있다.
16. 과학만능주의- 거짓과학의 숭배
과학은 아는 것 또는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과학은 그 자체로 우리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우리 모두에게 지극히 가치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내린 최초의 명령의 일부였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시편8:6에는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에 두셨으니” 라고 한다. 그러나 과학과 과학적 성과의 숭배는 과학만능주의와 우상이 되고, 수많은 다른 우상적 신념과 행위와 같이 여러 면에서 위험하다.
1) 과학과 그의 성취가 우리의 삶과 생각으로부터 하나님을 지배할 목적을 가지고 숭배의 대상이 되면(영광을 받으면) 과학은 결국 과학만능주의가 된다.
2) 과학이 하나님 없이 인간과 지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보여지면 과학만능주의가 형성된다.
3) 무엇보다도, 진화론이 지질학, 동물학, 식물학, 천문학, 역사학, 그리고 신학과 같은 많은 분야에서 근본 원리가 될 때, 그리고 진화론의 거짓이 과학적 사실로 주장되고 학교에서 교육되고 신앙으로까지 주입될 때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그런 것처럼), 과학만능주의는 진화론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종이 된다.
이러한 과학만능주의의 결과로 진화론은 고대인들의 우상 못지않게 우상숭배의 종교가 되는 것이다.
17. 진정한 과학과 성경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때때로 사람들은 그 말에 대한 증거도 없이 “과학은 성경과 상충된다.”는 말을 한다. 이러한 말은 전적으로 진화론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진정한 과학과 성경 사이에는 어떠한 모순도 없다. 거짓 과학은 성경의 말씀을 곡해하거나 성경의 말씀에 거스른다. 고대 사람들은 성경 말씀이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하는 과학적 발견과 상반된다고 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과 진정한 과학에는 그 차이가 없다. 성경에서는 지구가 지축의 주위를 돈다는 표현 대신에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누구든지 성경이 과학적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하려면 그는 그것을 지적하고 증명해야 한다.
몇몇 위대한 과학자들이 과학과 성경을 조화시키는 문제를 결코 다루지 않았다. 사실 그것은 조금 다른 방식에서였다. 과학은 그들에게 성경의 진리를 확신시켰다. 아이작 뉴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주로 우주의 경이로운 질서에 있었다.”
제임스 진스경은 말했다.
“우주 배후에는 엄청난 수학적 어떤 분이 존재한다.”
우리는 『과학과 종교』라는 책 p149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을 수 있다.
“물리학은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우연의 사상을 수용하는 것을 점점 불가능하게 했다. 물리학은 설계자의 필연성을 선포하는 생명의 기원에서 설계를 발견했다....그리고 화학, 생물학, 인류학, 의학, 천문학, 생리학, 심리학, 그 밖의 다른 학문들도 마찬가지이다. 각각의 학문은 하나님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생명의 설명이 무용함을 천명하고 있다.”
진정한 과학은 관찰되고 증명된 사실과 우주, 지구, 생명의 기능들을 다룬다. 이러한 것들 가운데 어느 것도 성경의 가르침과 상반되는 것이 없다. 과학은 지금까지 성경을 거스르는 단 하나의 사실도 발견하지 못했다.
18. 거짓 과학에 대한 성경의 답변
그 답은 2000년 전에 바울 사도가 어린 디모데에게 한 (딤전 6:20,21) 충고에서 잘 나타나 있다.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과학이란 무엇인가? - 3
: 진화론과 창조론은 둘 다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없다.
유종호
6. 그러나 참 과학자들이 시험하고 입증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과학에는 지질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동물학, 고고학, 의학 등등의 실험이 가능하고 입증이 가능한 분야들이 있다. 지질학은 현재의 지질과정과 지구의 미래를 다룬다. 화학은 물질과 원소의 화학적 특성과 작용을 다루고, 물리학은 물리적 세계의 현상들을 취급한다. 생물학은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의 생명을 분석한다. 과학이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생명의 기원과 운명을 설명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과학과 성경의 진리 사이에 불화는 없을 것이다. 과학은 태양을 도는 지구, 중력, 전기, 그리고 자력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 그리고 수소와 산소가 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이 기원과 운명을 증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7. 과학과 기술
과학은 기술의 모체이다. 과학은 자연과정의 연구와 발견인 반면에, 기술은 과학의 발견을 실용적 목적에 적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술은 과학이 발견한 것을 가지고 유용한 용도에 맞추어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다. 과학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발명품들, 즉 자동차, 냉장고, 텔레비전, 비행기, 전화, 라디오, 배, 그리고 가전제품, 현대식 농기구와 의료기구 등등의 발명품의 어머니이다. 또한 중력, 자력, 그리고 전기의 과학적 지식 역시 기술에서 아주 유용하게 적용되고 있다.
8. 진화론 가설은 비과학적이다.
사실 진화론 그 자체는 과학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학생들은 대학원 과정에서 전공으로 수강을 하지 않으며 학위를 받지 않는다. 비록 진화론이 지질학, 물리학, 식물학, 동물학, 화학, 그리고 고생물학과 같은 과학 분야로 확대된다 하더라도, 이러한 분야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사용하거나 취급하지 않는다. 뉴스 매체를 통해서, 입증된 사실이라고 주장되는 진화론자들의 사상은 저명한 과학저널지의 조사와 검증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과학의 명성이 진화론의 가설에 대한 칭찬과 신뢰와 신용을 주는 데 잘못 사용되고 있다. 학생들이 진화론을 믿을 수 있도록 잘못 유도되고 있다. 그것이 과학적 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진정한 과학과 잘못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속적으로 퇴보한다고 가르치는 열역학 제2법칙이 고도의 상태로 진화한다는 진화론적 가설을 거부하는데도, 진화론은 과학을 통해서 학생들을 오도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정확할 수가 없다.
9. 모조품 과학으로서의 진화
진화는 가짜 과학, 소위 모조품이라 불리는 야바위꾼이다. 어떤 현상에 대한 진리를 발견하기 위하여 가설과 이론을 가지고 생각하는 데는 잘못이 없다. 진화론의 문제점은 가설과 이론들이 마치 입증된 사실로 확립된 것처럼 직간접으로 주장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진실과 과학적 사실을 추구할 때 해로운 역할을 하고, 그것은 많은 과학에 악영향을 미친다. p.415-417 참조.
그러나 진화론은 무신론, 공산주의, 인본주의와 같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이론적 근거로서 공헌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진화론은 세 가지 이데올로기들을 위한 시녀이다.
노만 맥베드는 『다윈의 재시도』에서 정확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불행히도 진화론 분야에서 대부분의 설명은 선하지 못하다. 사실 그것은 설명이라 할 수도 없고, 가설이라 불릴 가치조차 없는 제안, 육감, 그리고 허풍이다. 언어에 신중하고 정확한 사람이라면, 다윈설에 대해 이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헉슬리는 그것을 가설이라 불렀고 단지 잠정적인 차원에서 가볍게 다뤄지도록 추천했다.”
그러나 T. H. 헉슬리의 손자인 줄리안 헉슬리는 TV 시청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윈의 이론에 관한 첫 번째 주안점은 더 이상 이론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론을 시험할 방법이 없음에도 진화론은 사실이라고 주장된다. 그러나 진화론이 긍정적인 과학적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백만 년의 실험이 필요하다.
10. 진화론은 바보스럽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진화론자들은 우주의 기원이 수소라고 믿고, 모든 것은 수소에서 진화한다고 보았다. 또한 그들은 모든 것은 우연히 발생했다고 본다. 이러한 내용으로부터 사람들이 수백, 수십억 년의 진화과정을 통해 무색 무취의 가스인 수소에서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이러한 환상적이고 불가해한 결론에 도달한 것일까? 그들은 그것 말고 어디서 인간이 올 수 있단 말인가? 라고 주장한다. 한편, 가장 단순한 원소는 수소이고, 다른 한편 가장 진보된 생명은 인간에게 있다. 인간이 수소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고도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비록 그러한 생각이 어린이들을 영원히 오도할 만큼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을지라도 충분히 웃길 만큼 엉터리다.
지식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증거나 과학과는 모순되는 이론을 신뢰할 때, 진화론은 가련한 면이 있다. 창조론자인 존. N 무어와 비슷한 이름의 진화론자인 존. A 무어는 다윈과 그의 비평가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또한 지각을 구성하고 있는 성층암은 오래 전에 일반적으로 물 밑에서 퇴적된 물질을 대표한다고 인식된다. 그러한 물질이 천천히 바위로 변했고 어떤 경우에는 동시대의 동식물의 유해들이 그 층 속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동식물은 갑자기 그리고 깊숙이 매장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썩어버릴 것이다. 달리 생각된다는 것은 가련한 추론이다.
거짓 과학, 혹은 가련한 추론의 또 다른 경우는 어떤 동물들이 비슷한 외모나 생물학적인 유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통의 기원을 가졌거나 상호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진화론자인 나일스 엘드리지는 그의 저서 <사기재판> p36, 37에서 여러 다른 동·식물들의 기원을 둘 또는 그 이상의 수도사들이 고대 역사의 필사본을 필사할 때 실수를 저지른 결과로 달라진 고대의 필사본과 비교함으로써, 그런 추론을 키우려고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약간 다른 사본들이 생겨났다. 동식물의 기원에 관한 동일한 추론을 사용해서, 그는 비슷한 논쟁을 사용하려고 한다. 즉, 다른 동식물들이 하나의 생명의 기원에서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동물들은 양성 결합 없이도 우연히 생명체를 스스로 잉태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엘드리지는 p.36에서 말하기를;
“예견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진화론의 바로 그 생각은 각각의 종이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나 다른 종과 더불어 구조와 행동 면에서 유사성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더욱이 각각의 비슷한 종들은 다른 그룹의 종들과 비슷한 특성을 공유할 것이고, 이러한 공통적인 그룹은 또 다른 그룹과 함께 그 특성을 공유해야한다. 이러한 공통적인 유사성의 패턴은 최소한 하나의 유사성을 공유함으로써 모든 생명체가 연결되기까지 계속해야한다. 이것이 진화론의 거시적 예견이다. 유기적 세계에서 유사성의 패턴은 중국의 상자(크기대로 포개 넣을 수 있게 만든 상자)처럼 배열된다.”
이로부터 그는 개와 같은 동물에게 눈길을 돌리고 p37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들의 혈족은 폭이 넓다. 모든 개들, 육식동물, 포유동물, 그리고 네 발 짐승과 같은 동물들은 척추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어류라고 부르는 동물들의 여러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집단적으로 척추동물이다. 이러한 서클은 발전적으로 더 많은 그룹을 포섭하여 넓어진다. 개들, 버섯류, 장미 관목, 그리고 아메바들이 근본적으로 비슷한 세포를 가지고 있다.”
결국 그의 신념에 따르면 사람들과 장미들이 공통의 기원을 갖는다.
엘드리지와 다른 진화론자들은 비록 많은 것들이 척추를 가지고 있다 해도 다른 모든 동식물이 단세포 혹은 한 나무에서가 아닌 각각 다른 나무의 숲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한다.
11. 진화론과 창조론은 둘 다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없다.
대표적 진화론자들은 진화가 관찰과 실험으로 입증될 수 있는 과학적 이론이 아니라는 사실과, 그로 인해서 진화는 과학의 영역 밖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있다. 물질의 기원, 생명의 기원, 혹은 다른 동식물의 진화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기 위하여 어느 누구도 실험해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실은 반복, 관찰, 실험할 수도 없고, 사실도 아니기 때문에, 진화론은 과학이 아니다.
진화에 해당하는 것은 역시 창조의 설명에도 해당된다. 창조 역시 반복할 수 없으며, 관찰할 수 없고, 실험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없다. 진화론자이며 저명한 과학자인 칼 포퍼는 진화는 본질적으로 실험할 수 없으며, 증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기원이라는 전체의 주제는 과학적 증명과 반증의 범위를 넘어선다. 그러므로 진화와 창조는 어떠한 역사 이전의 사건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둘 다 믿음을 요구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집트인, 바빌론인과 그 밖의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거슬러 올라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세속의 역사는 창세기 10장의 내용에서부터 시작하며, 세속의 역사에는 1,700년에 달하는 창세기 1-9장까지의 역사가 없다. 이 기간은 그리스도의 시대부터 오늘 날에 이르는 그런 정도의 기간이다. 이 때 수십억의 인구가 태어날 수 있었을 것이고, 지구는 엄청나게 진보된 문명을 가질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그것은 사실 인류가 그리스도의 시대 이후에 발전했던 것보다 훨씬 진보할 수 있었을 그런 정도의 기간이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